정부가 재정준칙안을 발표하면서, 재정준칙 법제화를 본격 추진한다. 공개된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은 문재인 정부에서 제안한 기준보다 더 단순해지고 강경해졌다.
전문가들은 재정준칙이 재정의 유동성을 낮추게 되고, 경제적 위기 상황 등 재정을 상황에 맞게 운영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13일 발표한 재정준칙안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GDP(국내총생산)와 비교해 3% 이내로 관리한다는 것이 큰 틀이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재정수지 등 재정건전성 지표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규범이다. 방만한 재정활동을 경계하고 재정건전성을 추구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관리기준을 충족하도록하는 구조상, 정부의 재정활동이 경직되는 효과도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고금리 등 대외 위기는 물론 내부적으로 고령화, 탄소중립 산업 전환 등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재정의 경직은 역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인 정세은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고령화, 산업 전환 상황에 적극 대응해야 하는, 그래서 국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가재정이 실업안전망 등으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거꾸로 재정관리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하겠다는 건 주객전도"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재정 지출이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취약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것을 고려하면 취약계층에 대한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극빈층이 가장 힘든 상황이 되는데 여기에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곤란하다"면서 "실업 수당, 생계 수당 등에 물가 상승 고려하는 등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은 지난 문재인 정부의 재정준칙에 비해 단순하고 더욱 강경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2020년 발표한 재정준칙 관리기준은 '(국가채무 비율/60%)×(통합재정수지 비율/-3%)≤1.0'이다. 풀이하면 국가채무비율을 GDP 60% 이내, 재정수지 비율은 -3% 이내로 관리하되, 두 지표와의 관계를 고려해 융통성을 두고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관리재정수지 적자 GDP 비율 -3%로 단순화했다. 관리기준의 지표 또한 통합재정수지보다 엄격한 관리재정수지로 뒀다. 통합재정수지는 재정 총수입에 총지출을 뺀 것이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기금, 사학연금기금, 산재보험기금, 고용보험기금을 제외한 것이다. 이들 사회보장성기금이 흑자를 내는 상황인 것을 고려하면 통합재정수지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다.
재정준칙 기존안과 개정안 비교 ⓒ기획재정부
여기에 정부는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를 넘어가면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 대비 2%까지 상향하도록 했다.
단순하게 보면 빚(국채)이 늘어났으니 나라살림을 긴축한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채가 늘어나는 상황은 경제 위기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재정을 더욱 긴축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국채를 줄이기 위한 긴축재정은 오히려 국채를 늘리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나원준 교수는 "재정 지출을 긴축하면 GDP 성장 속도도 느려진다. 그러면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자동으로 사회지출이 늘어나게 되고 채무는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상황이 2010년 유럽 여러나라에서 입증됐고, 당시 EU(유럽연합) 대부분의 나라가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이 감세 기조와 함께 진행된다는 것이 큰 문제다. 재정 수입도 줄이면서 재정준칙까지 도입하면 지출 경직이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세은 교수는 결국 재정준칙의 효과가 복지지출 감소로 나타날 것을 우려했다. 그는 "지출 축소의 부담이 복지 분야로 전가돼서 결국에는 성장과 분배 양쪽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 이상 복지재정 확대는 요원해질 것이란 것"이라며 "산업 구조전환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낙오되는 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인 것을 고려하면 긴축재정의 부담은 취약계층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정수지에 기반한 재정준칙으로는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데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표만 맞추는 재정준칙은 재정건전화보다는 예산기술자들이 숫자를 가지고 장난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라면서 "재정건정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기준이 있지만 재정준칙대로면 GDP대비 적자수지 3%만 맞추면 재정이 건전한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과 지출 숫자만 관리하면 되는 지표로는 얼마든지 재정 관료의 회계 기술로 맞출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올해 2차 추경을 보면 융자사업 이차보전전환, 지출시기조절 등으로 지출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항목들이 있다.
이에 재정준칙을 발생주의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발생주의는 현금의 수입·지출과 상관없이 비용이 발생되었을 때 인식되는 개념이다. 현금의 수입·지출의 수지를 따져 관리하는 정부의 재정준칙은 현금주의 개념이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다른 나라의 준칙을 보면 발생주의적 개념이다. 이번 재정준칙안 같은 현금주의적 개념은 숫자만 조작하기 쉽다"고 강조했다.
스물일곱의 나이였던 1998년 짐 가방 하나 백팩 하나 달랑 메고, 이스라엘로 떠났던 청년이 있습니다. 이 청년은 이스라엘의 지역 공동체 키부츠 예히암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네덜란드에서 온 여학생과 이야기가 잘 통해서 단짝 친구가 되었다가 금세 애정 관계로 발전해서 아예 동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평생의 연인과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자신 삶의 절반 가까이를 유럽에서 살아왔고, 네덜란드 국적 취득을 위해 한국 국적은 포기했지만, 자신은 영원히 한국사람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사람으로서 유럽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대화를 프레시안에 기고합니다. 그 첫 번째로 특이한 저널리스트 그리셀다와의 인터뷰를 전합니다. (필자)
20세기 식민의 역사를 추적하는 네덜란드 여성 저널리스트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리셀다 몰러만스(Griselda Molemans, 58세) 180 센티미터가 훨씬 넘는 큰 키에,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 색에, 동서양 모두의 얼굴 생김새를 가진 그리셀다 몰러만스는 수리남계 아버지와 인도네시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녀와의 이야기를 엮어 보았습니다.
장광열 : 벌써 3년 전이던 2019년 말 네덜란드 저널리스트가 일본 종군 '위안부'에 대한 책을 써서 곧 나온다는 말을 듣고, 책이 나오자마자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해서 사서 앞부분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코로나 팬데믹에 휩쓸려 그 책을 책장에 넣어 놓고 잊고 있다가 얼마 전 다시 책을 꺼내 보고 그 책의 저자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먼저 책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그리셀다 :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처음 '위안부' 관련 책을 내려고 했던 건 2004년에 네덜란드 할머니들도 '위안부'로 동원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였어요. 하지만 당시 하던 일 때문에 미뤄 두고 있다가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쓰기 위한 자료 수집에 들어갔어요. 처음에 제가 주목한 것은 2차 대전 당시 아주 많은 인도네시아에 살던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도 '위안부'로 동원되었다는 점이었어요.
그런데 조사를 할수록 이 문제는 전체를 다 다뤄야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킨 다음부터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그리고 그 후 패전국 일본의 해외 파병군에 대한 승전국의 재판 기록들과 전쟁 당시 일본의 위안소 운영 실태에 대한 보고서가 만들어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러나 그 보고서는 몇 조각으로 분할 되어 비밀문서보관함에 들어 있었고, 어떤 보고서는 2026년까지 공개할 수 없게 묶어 놓은 걸 알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1945년에 15세였다면 2026년에는 96세가 되니까 '위안부' 출신 여성은 대부분 죽었을 거라는 판단을 한 것 같아요.
책이 많이 두껍습니다. 제 책을 넘겨 보면 아주 예쁜 한국 처녀의 사진이 있어요. 그분이 2019년 1월에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니예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분입니다. 꽃다운 나이에 일제에 의해 강제 매춘에 동원된 할머니가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셨지요. 정말 용기 있는 여성 인권운동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오래 전 일어난 일이고, 그동안 철저히 감춰진 역사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멀게만 느껴질 것 같아서, '위안부'할머니들의 젊은 시절 사진이나, 전쟁과 위안부 실태에 대한 문서 자료들을 많이 책에 담았어요.
▲ 20세기 식민의 역사를 추적하는 네덜란드 여성 저널리스트 그리셀다 몰러만스(Griselda Molemans, 58세) 180 센티미터가 훨씬 넘는 큰 키에,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 색에, 동서양 모두의 얼굴 생김새를 가진 그리셀다 몰러만스는 수리남계 아버지와 인도네시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 그리셀다 몰러만스
▲그리셀다는 이미 오래 전 일어난 일이고, 그동안 철저히 감춰진 역사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멀게만 느껴질 것 같아서 '위안부'할머니들의 젊은 시절 사진이나, 전쟁과 위안부 실태에 대한 문서 자료들을 많이 책에 담았다. ⓒ 그리셀다 몰러만스
장광열 : 제가 책을 읽어보니 일본이 침략한 곳의 지명이 목차에 쭉 나열되어 있어서 정말 일본의 종군 '위안부'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보는 위안부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그리셀다 : 저는 아시아 침략전쟁과 이른바 종군 '위안부' 동원은 동전의 양면처럼 딱 붙어 있는 일본 군국주의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 지역에 35개국 출신에, 50만 명에 이르는 일본 제국의 종군 '위안부'가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이 일은 민간이 한 것이고 일본정부는 간여 안 했다든가 위안부들은 자발적인 매춘부라는 말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입니다.
장광열 : 책 제목은 레이븐스 랑 오르로흐 (Levenslang Oorlog) 영어로는 라이프타임 워 (Life-time War) 입니다. 읽어보니 이 책은 학술서적 같지 않고, 딱딱한 역사 교과서도 아니고, 351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탐사보도입니다. 책의 첫 이야기가 인상적이였어요.
그리셀다 : 제 책은 유럽 최대의 항구도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2013년 11월 23일 보도된 믿을 수 없는 기사로 시작됩니다. 그것은 십 년 동안 죽은 채 자기 집에 누워 있던 인도네시아계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십 년 동안 유럽 최대의 항구도시에서 홀로 사는 할머니가 십 년 동안 죽어 있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었을까?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할머니의 가족들은 있을까? 이웃들은 왜 그걸 몰랐을까? 물세나 전기세, 가스요금 등 각종 공과금은 납부가 되었나? 노인 기초연금은 어떻게 받았을까? 이런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름은 베피(Beppie), 본명은 엘리자베스 도로시 더 브라운(Elisabeth Dorothy de Bruin), 1929년생이고, 200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74세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이 소식이 보도된 다음 날, 할머니의 외동 딸 보니(2013년 당시 68세) 가 나타납니다. 이 딸은 왜 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자기 어머니와 연락을 끊고 살았을까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버린 딸 보니, 어떻게 어머니와 십 년 넘게 연락을 아예 안 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보니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럼 베피 할머니는 딸에게 마음을 닫고 살았을까? 그 이유는 이 딸의 출생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베피 할머니는 인도네시아 태생이었고,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이 이곳을 점령하던 1944년, 이제 갓 사춘기를 보내던 열다섯 살에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하여 아이를 가졌고, 1945년에 이 아이를 낳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할머니가 된 딸 보니의 얼굴은 한눈에 일본 아버지와 인도네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임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8월 17일 인도네시아가 자주 독립국임을 선포했는데, 인도네시아와 유럽계 혼혈인 베피의 부모님은 1948년경 네덜란드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베피는 다른 가족들보다 늦게 갓난아기 보니와 함께 네덜란드로 들어와 살았고,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살아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베피와 보니는 여느 집안의 엄마와 딸의 다정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베피는 보니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아버지가 일본군이었을 거라는 걸 알았지요. 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서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베피는 일본 '위안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50만의 '위안부'들처럼 열다섯의 꿈 많은 소녀는 원치 않은 아이의 엄마로 평생을 살아야 했고, 죽은 지 십 년 동안 주위의 누구도 연락을 하지 않는 외로운 노년을 보낸 것입니다.
우리는 베피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같은 시대에 일본군의 침략을 받은 아시아 나라들에 살았던 수많은 이름 모를 여성들의 삶과 다름없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7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아픔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살아남은 가해자 중에는 단지 소수만 처벌 당했을 뿐 각자 자기의 터전으로 돌아가 한 가족의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처벌 받지 않은 이유는 처벌을 해야 할 무려 35개국에 달하는 피해자의 국가들이 이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방조자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아시아 나라들을 식민지로 거느렸던 수 많은 서구 열강들이 일본의 부녀자 강간과 '위안부'동원, 그리고 성적 학대, 폭력, 살인의 역사를 조사한 후에 비밀문서함으로 집어넣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태평양 전쟁의 승자였던 미국은 패전국 일본을 자신의 충성스런 속국으로 만들었고, 동북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던 소련을 막는 방파제로 이용하기로 하고, 일본 군국주의자들 일부를 처벌하는 선에서 덮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의 패망을 민족의 해방으로 이해하고 있던 아시아의 민중들은 원래 지배자인 서구 열강들이 되돌아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현실에 마주쳐야 했습니다.
그리셀다 : 1991년 8월 14일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공개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많은 할머니들이 평생 감추고 살아 왔던 아픈 과거를 폭로하면서 비로소 우리는 이 가공할 만한 전쟁범죄 진실의 파편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학순 할머니의 폭로가 있은 지 3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이 거대한 전쟁 범죄의 전말을 다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일부 극우인사들이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들이 자발적인 매춘부였고, 일본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독일의 나치 추종자들이 다시 등장해서 당시 유태인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게다가 한국의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할 이웃나라라고 선언했다고요? 용서와 화해는 죄를 지은 자가 본인의 죄를 인정하고, 참회하면서, 진정 어린 사과를 할 때만 가능합니다.
저는 아베 전 총리가 죽었을 때 이곳 유럽의 언론 보도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는 일본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려던 군국주의자입니다. 다시 욱일기를 달고 중국과 대항하는 강대국으로 살리는 게 그의 정치철학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조의를 표하면서 온통 비판적인 목소리를 아예 보도가 안 되더군요.
▲1991년 8월 14일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공개 증언했다. 그리고 그 후 많은 할머니들이 평생 감추고 살아 왔던 아픈 과거를 폭로하면서 비로소 우리는 이 가공할 만한 전쟁범죄 진실의 파편을 볼 수 있었다. ⓒWomen and War
장광열 : 당신은 책 표지 뒷면에 '위안부'라는 용어에 대해서 슬픈 완곡어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셀다 : '위안부'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용어입니다. 마치 전쟁으로 정신적 고통을 당하던 일본군 병사들에게 위안을 주었던 안락한 위안소에서, 자발적으로 일본군의 위로를 해주던 여성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일본군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곧이어 중국 상해로 쳐들어갔습니다. 일본의 본격적인 아시아 대륙 침략이 시작된 것이죠. 1932년 1월 28일 밤에서 29일까지 상해로 침입한 후에 무려 일본군의 강간 신고 건수가 223건이었습니다.
1937년 7월에는 중일전쟁이 터졌고, 일본군은 가는 곳마다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살해하였고, 가족 전체를 몰살시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딸을 강간하면서 부모와 형제들이 그걸 지켜보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수모를 당하고 나서 자살한 아버지도 있었고, 목을 맨 소녀들도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제국은 일본군의 미친 성욕을 채워주고, 병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군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서 점령지 곳곳에 위안소를 만들고, 일본의 매춘 여성만으로 그 요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일본과 조선, 간도 등에 있던 조선 여성들과 중국 여성들을 이 강제 매춘에 동원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에 따르면 많은 조선 여성들이 공장이나 좋은 직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서 상해까지 끌려왔다고 합니다. 위안소는 그 이름처럼 평온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소녀들이 처음 들어가면 신체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 검사는 군의관에 의해 행해졌고, 그중 몇몇은 군의관이나 장교들에 의해서 강간을 당하고 위안소 방에 갇혀서 매일 매일 적게는 7~8명 많게는 50명의 병사를 상대해야 했다고 합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 동남아 각지의 군대가 주둔하는 곳마다 모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위안소를 만들고 현지 여성들과 일본, 한국, 대만 등에서 여성들을 동원해서 채워 넣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지만, 제 책이 한국어로 번역 되어서 많은 분들이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장광열 : 일본군이 위안소를 체계적으로 운영했다고 하셨죠. 군대와 위안소는 밀접한 관계라는 의미겠죠?
그리셀다 : 일본 군국주의는 일본군의 부녀자 강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뿐 아니라, 일본군 병력의 전투 병력의 성병 감염을 막기 위해서 위안소에서 안전한 섹스를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1918년~22년 간도 지역에서 일본군이 한국의 독립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을 때 병력의 1/3이 매독이나 임질에 걸려서 전투병력에서 빠지게 되었고, 그중 많은 수가 죽었습니다.
이런 사태가 재발하는 걸 막기 위해서 위안소에서는 병사들이 의무적으로 콘돔을 사용하도록 했고, '위안부' 여성들은 성행위 후에 소독제로 중요 부위를 닦도록 했고요. 매주 군의관에게 신체검사를 받아서 성병에 걸린 여성에게는 강력한 항생제 주사를 놔 주고 회복한 후에 다시 위안소로 배치되도록 관리했습니다.
저는 당시 일본군에게 '위안부'는 없어서는 안 될 가축으로 취급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농장에서 키우는 젖소는 매일 매일 젖을 짜내고, 젖이 나오지 않으면 도살 당하지요. '위안부'들은 매일 매일 일본군 사병과 장교들, 군 사무관, 군대와 연관된 일본 사업가, 일본 회사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성 노예들이었던 겁니다.
너무나도 끔찍한 일을 당한 제 어머니, 큰 고모, 이모 나이의 50만 명이 넘는 그분들을 생각하면 슬픔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지옥 같은 위안소에서 탈출하다가 잡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 곳에서 자발적인 매춘을 한다는 게 말이 될까요?”
▲ 호주 전쟁기념관에 보관된 위안소의 이용 ⓒ 그리셀다 몰러만스
장광열 : 일본 정부는 민간업자들이 위안소를 운영했고, 자신들은 그 시설을 이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그리셀다 : 저는 책을 내기 위해서 일본군대가 짓밟고 간 모든 곳을 다 추적했습니다. 일본 본토와 한국과 대만 같은 곳에서는 청년 남자들은 학도병이나 황국의 군인으로, 여성들은 근로 정신대라는 명목으로 차출해 갔습니다. 일본 천황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영광을 누리라고 선동했지요. 침략한 곳의 여성들도 쪽수를 채우기 위해서 끌고 갔습니다.
장광열 : 2차 대전 이후에 식민지 인도네시아를 되찾은 네덜란드에서 일본군을 처벌이 진행되었나요?
그리셀다 : 네, 제가 자료를 모으는 중에 2차 대전이 끝난 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의 중심 도시 폰티아낙 지역에서 네덜란드 군 보안사가 일본의 '위안소' 운영에 대해서 조사해서 만든 보고서를 확보해서 그 내용을 책에 담았고, 얼마 전 8월 14일에 후속 보도를 냈습니다. 네덜란드의 군 정보국의 보고서 제목은 '보르네오 서부지역에서 일본 해군의 점령 기간 중에 있던 강제 매춘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1943년 상반기에 일본 해군의 헌병대, 또는 특별경찰부대가 일본군 부대나 일본계 회사에서 일하던 인도네시아 여성들을 '위안부'로 만들어 버렸고, 모자라는 인력은 길거리에서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해서 위안소에 배치해서 강제로 매춘을 시켰다는 일본군 포로의 진술이 나옵니다. 이 보고서가 작성자는 네덜란드 군 정보국의 J. N. 하이브룩(Heijbroek) 대위였습니다. 일본군 포위가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자백한 중요한 보고서였는데, 이 보고서는 내부에서만 공유되었습니다.
비밀문서로 일반인의 열람이 불가능했던 것이었는데, 영국의 군 문서 보관소에 있던 이 보고서 전체를 입수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군국주의 국가였습니다. 일본 황제는 신처럼 모셔졌고, 모든 일본과 한국 대만의 모든 황국 신민들은 황제의 백성으로 충성을 다하자고 부추겼죠.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서구 열강들이 차지하고 있던 동남아시아 나라들을 정복하기 위해서 일본은 강력한 황군을 만들고 그 병력을 잘 유지하고, 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았습니다. '위안부'는 "Of the Japanese Military, By the Japanese Military, For the Japanese Military," 즉 일본군의, 일본군에 의한, 일본군을 위한 성 노예였습니다.
'위안부' 충원을 위해서 민간 인신매매 브로커도 이용하고, 군대가 직접 위안소를 운영하거나, 이와 동시에 민간인 포주들에게 위안소를 운영하게 했지만, 위에서 말한 보고서에서도 나오듯이 모든 민간 위안소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다음 날 아침에는 전 일본 경제인 연합회(보국회)의 보르네오 지역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로 다 모이도록 했고, 자기 직원들에게 이 자금의 관리를 맡기고 관리 감독을 한 진술이 들어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위안소'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말은 괴변입니다.
장광열 : 일본 정부는 이미 태평양 전쟁 기간 중에 있었던 강제 노역이나 '위안부' 동원에 대해서 충분히 사과했고, 앞으로는 이에 대해서 언급하지 말라고, 한국 등 피해자들의 국가 정부에 합의를 종용했습니다. 미국 정부도 한일 정부의 원만한 합의를 촉구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셀다 : 제가 지난 8월 14일 공개한 탐사 보고서(관련 기사 ☞ 일본 전쟁자금 추적한 네덜란드 기자…'위안부'의 몫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저는 일본 군국주의는 전쟁 자금을 충원하는 역할을 두 개의 은행, 타이완은행과 요쿄하마 정금은행에 맡겼고, 이 두 은행이 일본군대의 해군과 육군의 현지 금고 역할을 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이 은행은 일본군에 자금을 공급하였고, 일본군은 그 자금으로 군수물자를 사들이고, 군인들에게 월급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은 억눌렸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위안소에 요금을 내고 성행위를 했습니다.
위안소는 매일 아침 전날의 수입금과 장부 내역을 관리 업체에 내면, 그중 1/3을 위안소 운영업자에게 주었고, 나머지 2/3는 '위안부' 여성 몫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에 의하면 2/3이 자기 몫으로 책정되었다는 걸 듣지도 못했고, 일부 '위안부'들이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면 운영업자는 '너희들은 돈 주고 사 온 여자들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그 금액을 내게 갚아야 하고, 내가 제공하는 방에서의 숙박비, 식비, 청소비 , 옷과 화장품, 비누값을 제하면 너희들에게 돌아갈 돈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익금의 2/3를 '위안부' 몫으로 쓰도록 했다는 건 눈속임에 불과하고, 실제로 이 금액은 위에 언급한 두 은행의 계좌 하나에 모두 저장되었고, 일본군 수뇌부는 이 돈을 다시 전쟁물자와 군인들의 급여에 썼습니다. 이 구조를 보면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운영으로 자국 군 병사와 장교,군 관계자 등을 상대로 전매사업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여성들을 성노예로 부리면서 67%의 전매사업을 한 것입니다.
장광열 : 정말 위안부의 실태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인간으로서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일의 나치의 만행에 결코 뒤지지 않아요. 작가님이 책을 쓰고 난 후 요즘의 근황은 어떠신가요?
그리셀다 : 이 책은 제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로 책을 썼고, 이 책이 영어와 한국어 일본어 등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 왔고 앞으로도 할 것입니다. 네덜란드 밖에서는 폴란드어 번역 출판을 위해서 출판업자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요즘 저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식민지 역사에 대한 탐사 활동과 저술 활동, 강연과 인터뷰 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또 책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나 유튜브 채널을 위한 짧은 동영상 제작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거대한 전쟁 범죄행위가 심판받지 않고, 가해자들이 활개 치고, 이 범죄의 주역들이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자랑스럽게 방문하고, 이런 파렴치한 행위에 대해서 피해자 국가들이 입을 닫고 침묵하고 있는 것, 그 결과 피해자들과 역사의 진실을 아는 소수의 시민들만 정의의 실현과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서고 있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우리는 2차 대전 기간 중에 독일 나치가 저지는 악행에 대해서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대한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 군국주의가 저지를 학살과 부녀자 강간, 폭력행위, 강제 매춘, 731부대의 끔찍한 생체실험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그저 한일 두 이웃 나라 사이의 분쟁인 것처럼 프레임이 짜여 있는 듯합니다.
한국 여성들이 가장 많이 '위안부'로 동원된 건 맞지만, 일본군의 만행은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은 어디서나 부녀자 강간을 일삼았고, 여성을 성 노예로 삼아서 소모품처럼 쓰고, 쓸모없으면 버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요즘을 신냉전 시대라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몇 달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다시 돌아온 점령자 러시아 군인에게 성적인 학대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 많은 언론의 증언입니다. 과연 우리가 일본 군국주의의 '위안부' 동원에 대해서 국제 사회가 엄벌에 처했다면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에도 민족이나 인종, 종교,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적국의 여성을 성 노리개로 삼는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시민들이 러시아에 제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위안부' 문제는 이미 끝난 과거가 아니라 계속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현상입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몫입니다. 저는 강대국들의 눈으로 보는 역사가 아니라 핍박받고, 수십, 수백 년 동안 억압당한 약소국 사람들의 눈으로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적 이익 때문에 불의에 눈 감는 국가 정부에 맞서서 힘없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고, 영상으로 만들어 대중들이 역사를 바로 보게 하는 것, 이것이 저의 사명이라는 마음으로 계속 탐사 저널리스트로 살고 싶습니다.
장광열 :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그리셀다 : 저는 '위안부'에 대한 주변의 잘못된 인식 속에서도 용감하게 진실을 밝힌 김학순 할머니와 '위안부' 사안을 넘어서 세상의 모든 여성들의 인권을 증진하는 운동에 헌신했던 김복동 할머니, 그리고 자기 일처럼 할머니들을 도왔던 이름 없는 많은 한국 시민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어요. 저는 그분들이 있었기에 그 역사를 알 수 있었고, 그분들의 열정에 힘입어 지금도 저널리스트로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책이 한국어로 출간되고 자라나는 세대들이 감춰진 역사를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셀다 몰러만스는 어떤 사람인가?
1964년 생이고, 1979년부터엔터테인먼트, 예술, 스포츠 및 역사를 전문으로 하는 프리랜서 기자로 일해 왔습니다. 그녀의 인터뷰와 기사는 미국, 브라질,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및 홍콩의 국제 언론에 게재되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Vrije Universiteit 자유대학교에서 미술사 및 고전 고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네덜란드 프로그램 NOS Studio Sport와 다양한 스포츠, 예술 및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의 진행자, 해설자 및 기자로서 TV 과제와 작문 기술을 결합했습니다.
그리셀다는 광적인 농구, 테니스, 스쿼시 선수이자 수영 선수, 예술 애호가이며 영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및 포르투갈어에 능통합니다. 그녀는 네덜란드령도(현재의 인도네시아)에서 식민군으로 복무한 아프리카 군인 후손들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인도-아프리카 재단과 부르키나파소의 지역 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나바 얌바가 재단의 이사입니다.
그녀는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인쇄, 오디오, 인터넷 및 TV 콘텐츠를 위한 시사,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및 자동차를 전문으로 하는 크로스미디어 언론사 QNA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서
Dochters van de Archipel (아치 섬의 딸들)
Met vlag en rimpel : Erfgenamen van Indie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의 피땀으로 빚어진 인생 역정 이야기)
In het voetspoor van de panter (가나 출신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용병들의 발자취)
From New York to LA (뉴욕부터 LA까지)
Zwarte huid, Oranje hart(검은 피부, 오렌지색 심장)
Opgevangen in andijvielucht(채소 안다이피 냄새가 밴 피난민 수용소)
지구온난화가 심화하면서 북극곰의 위태로운 생존, 사라지는 북극의 얼음 등을 단골 소재로 북극이 기후위기의 지표로 자주 언급된다. 북극의 얼음이 사라지는 시점을 두고도 이런저런 혼란스러운 소식이 전해진다. 도대체 북극 얼음이 언제 다 녹는다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에서 시작해 북극 얼음의 변화가 인간과 동물 그리고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되돌릴 수는 없는지 등 지구 극지방의 얼음과 지구온난화 사이의 상관관계 등을 6회에 걸쳐 시리즈로 준비했다.[기자말]
지구온난화 문제의 해법으로 지구 밖에 거울을 설치해서 태양광을 반사하면 어떨까. 만화책에나 나올 법한 이런 생각이 하버드 대학교 프랭크 코이치 교수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연구진이 구상한 SCoPEx(Stratospheric Controlled Perturbation Experiment) 프로젝트는 성층권에 탄산칼슘이나 황산염을 분사해 태양 복사 에너지를 반사하는 '우주 거울' 층을 만드는 것이다[1].
빌 게이츠가 후원하는 이 프로젝트는[2] 풍선 형태의 열기구를 지상 약 20km 대기 중으로 들어올려 100g에서 2kg 사이의 에어로졸을 방출하여 가로세로가 약 1km x 100m인 기단을 생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만들어진 기단은 태양광의 복사 에너지를 반사하는 '우주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3].
2019년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과거 200만 년 중 최대였고 지구 표면 온도 상승세는 최근 2000년 중 가장 가팔랐다[4]. 지구 차원의 이런 온난화 문제를 광대한 범위에서 획기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는데 지구공학(Geo-engineering)이 대표적이다. 기후공학(Climate engineering)이라고도 하는 지구공학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구 자연 시스템에 인류가 의도적이고 대규모로 개입하는 것을 일컫는다[5]. 지구공학은 크게 태양복사관리(SRM, Solar Radiation Management)와 온실가스제거(GGR, Greenhouse Gas Removal의 두 범주로 구분된다.
태양복사관리의 가장 대표적인 아이디어는 코이치 교수 팀의 SCoPEx와 같은 성층권 에어로졸 분사이다. 연구팀은 지난해 6월 스웨덴우주국이 운영하는 스웨덴 북쪽 이스레인지 우주센터에서 에어로졸을 실은 기구를 날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스웨덴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 등의 반대로 시험 비행이 취소된 상태다. 생태학자들은 섣부른 지구온난화 해법이 영화 <설국열차>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지구냉각을 야기할 우려와 함께 지구 생태계에 미칠 영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하늘에 특정 물질을 분사해 지구를 식힌다는 이른바 '피나투보 효과'는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면서 대기로 분사된 황산염 에어로졸이 온도를 끌어내린 것에 착안했다. 피나투보 화산의 분화로 생긴 성층권의 에어로졸이 15개월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을 0.6°C 하강하게 만들었다[6].
'피나투보 효과'를 적용한 대표적인 프로젝트 SCoPEx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잠정 보류된 상태이지만 지구온난화 추세가 심각한 만큼 언제든지 재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온실가스를 고통스럽게 줄이는 대신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를 줄인다는 거대 프로젝트여서 논란과 기대를 동시에 받고 있다.
빙하를 보호할 거대한 장벽
올해 파키스탄에 '스테로이드 몬순'으로 명명된 폭우가 내리면서 국토의 4분 1~ 3분1이 물에 잠기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스테로이드 몬순'을 만들어낸 지구온난화는 해수면 상승까지 일으켜 파키스탄과 같은 저지대 국가를 협공하게 된다. 21세기 중반에 지구 표면 평균기온이 2°C 상승하면 해수면이 평균 20cm 정도 상승하고 2100년까지는 1m가량 높아질 것이다[7].
그린란드와 남극 대륙 빙하는 이번 세기 해수면 상승에 다른 어떤 요인보다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분석된다[8]. 특히 '종말의 빙하'란 별명이 있는 남극의 스웨이츠 빙하는 미래 해수면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며 현재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9]. 극지방 바다에서는 소금 농도가 더 진한 따뜻한 해수가 깊은 곳에 흐르고 더 차갑고 담수에 가까운 물은 위쪽에 있다. 이 따뜻한 물이 빙하의 밑부분을 공략해 빙하가 불안정해진다[10].
과학자들은 스웨이츠 빙하를 따뜻한 바닷물로부터 보호하는 거대한 수중 장벽 건설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바위와 모래로 된 장벽은 온난한 해수가 빙하를 침식하는 것을 막아 빙하의 지반을 보호하게 된다. 용융 속도 또한 떨어진다.
▲ 해저 인공 장벽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안정된 빙하에서는 해저에 있는 자연 장벽이 따뜻한 물로부터 빙상을 차단한다. 2. 역방향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는 따뜻한 물이 빙붕을 깎아내려 불안정한 상태로 만든다. 3. 따뜻한 물을 차단하기 위한 인공 장벽을 건설하면 얼음이 녹는 속도가 줄어들어 빙붕이 두꺼워지고 바다까지 길게 이어질 시간을 벌어준다. 4. 만약 빙붕이 길게 이어져 인공 장벽 위까지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두꺼워진다면 빙하는 다시 질량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바다 밑에 건설될 장벽은 얼음의 엄청난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해야 하며 정확한 위치에 배치되어야 한다. 벽의 크기는 빙하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스웨이츠 빙하와 같이 큰 빙하는 가로세로 50km x 300m가량의 장벽이 필요하다. 비교적 작은 규모인 그린란드 서부의 야콥스하운 빙하엔 가로세로 약 5km x 100m의 벽으로 충분하다[11]. 장벽의 재료는 그린란드의 대륙붕에서 확보할 계획이다[12].
스웨이츠 빙하의 인공 장벽의 효과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수중 장벽은 따뜻한 물이 빙붕에 도달하는 것을 약 70% 정도 차단했다[13]. 이에 따라 스웨이츠 빙하는 400세기 더 유지되며 서남극 빙상의 붕괴를 약 30%의 확률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14].
인공 장벽 건설 계획은 이처럼 지연이지 예방은 아니다. 잠깐의 시간을 벌어줄 뿐 다른 지구공학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자체를 줄이는 노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 따뜻해진 바다를 막아도 결국 따뜻한 대기가 빙하를 녹일 것이기 때문이다. 해양 생태계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가 검증되지도 않았다[15].
앞으로 기후변화의 10년은 메탄에 달렸다
지구온난화와 관련하여 메탄의 효과가 과소평가됐다는 게 중론이다. 이산화탄소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까지 대기 중에 남아있기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즉각적으로 줄여도 21세기 후반까지는 기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메탄이 분해되는 데는 10년 정도가 걸린다. 당장 메탄 배출량을 줄이면 단기적으로 온실가스가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16].
메탄은 자체로 강력한 온실가스인 동시에 지상 오존 형성에 주된 원인이다. 메탄의 지구온난화지수(GWP)는 21로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 대비 21배 온난화 효과가 있다. 오존 대기 오염은 호흡기 질환을 유발해 연간 100만 명의 조기 사망과 관련한다[17]. 또한 향후 20년간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80배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기후 및 청정대기연합(CCAC)'은 최근 농업 관련 메탄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전 세계 메탄 배출량의 절반 이상이 주로 화석연료, 폐기물, 농업 등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한다. 인간 활동에서 비롯한 메탄 배출량에서 농업이 약 40%를 차지한다. 거름과 장내 발효로 인한 가축 배출량이 약 32%이며 쌀 재배는 8%이다[18].
UNEP 식량 시스템 및 농업 고문 제임스 로맥스는 농업 재배와 가축 생산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재고해야 한다면서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고 육식을 줄이며 대체 단백질원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업 부문의 메탄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건강하고 생산적인 목축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동물에게 더 영양가 있는 사료를 제공해서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효과적으로 생산해야 한다[19].
무엇보다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2022년 5월 네이처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향후 30년 내에 세계 소고기 소비량의 20%만 대체육으로 전환해도 삼림 벌채와 관련한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소고기 농장은 세계적으로 삼림 벌채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이며 소가 메탄의 주요 배출원이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2050년까지 인구, 소득 및 수요의 증가를 고려한 수학적 모델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지금처럼 소고기 소비의 세계적인 증가가 이어진다면 세계적인 연간 삼림 벌채 비율이 두 배로 증가한다. 2050년까지 전 세계 1인당 소고기 소비량의 20%를 균류 단백질로 만든 대체육으로 전환하면 시나리오에 비해 메탄 배출량을 11%까지 줄이고 연간 삼림 벌채와 이산화탄소 배출도 절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다. 1인당 소비되는 소고기의 80%를 대체육으로 바꾸면 메탄은 50% 가까이, 이산화탄소는 85% 가까이 줄어든다[20].
대체육뿐 아니라 대체 사료를 이용하는 것이 메탄 배출량을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5개월 동안 소의 사료에 소량의 해초를 넣었을 때 소가 대기 중으로 내뿜는 메탄가스가 82%까지 줄었다[21].
북극곰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 이산화탄소
국제북극곰협회(Polar Bears International)는 북극곰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의 증가를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22]. 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CCUS) 기술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핵심 기술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전 세계 CCUS 시설은 매년 이산화탄소 40mt(Metric Ton) 이상을 포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23].
직접공기포집(DAC)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바로 잡아채는 기술이다. 포집된 이산화탄소는 파이프라인, 선박 등에 의해 압축 및 운송되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수소와 결합되어 식품 가공이나 합성 연료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깊은 누층에 주입하여 사실상 영구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24].
조류 농장(algae farm)은 DAC의 유망한 사례로 꼽힌다. 대표적인 조류에는 미세 조류인 식물 플랑크톤과 대형 조류인 해초가 있다[25]. 글로벌 조류 이노베이션(Global Algae Innovation)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쉔던에 약 20만 평의 조류 농장을 지을 예정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광합성을 하는 조류의 특성을 이용해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조류에 고정시킨다[26]. 조류 농장에서 수확된 조류는 기름과 단백질로 분리되어 고분자 제품, 연료, 음식, 사료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고분자 제품은 이산화탄소를 수백 년 격리할 수 있다[27]. 이산화탄소 직접 포집 외에 조류는 이처럼 사료와 바이오 연료로 전환돼 추가로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석유 및 가스의 매장층에 저장하는 석유회수증진(EOR) 기술은 화석연료 생산과 관련되어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지만 이미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28].
오늘날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배럴당 300~600kg의 이산화탄소가 석유회수증진 과정에서 주입된다. 1배럴의 석유가 연소할 때 약 400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석유 생산, 가공 및 운송 과정에서 평균 약 100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것을 고려하면, 석유 생산 과정 전반에서 이론상 넷 제로 또는 탄소 역배출을 달성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29].
이산화탄소를 다양한 제품 안에 넣어 격리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주입하거나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든 건축자재는 이산화탄소를 영구적으로 격리시킴으로써 제거한다. 콘크리트 제조 과정에 이산화탄소가 이용되면 시멘트 함량을 약 5% 줄일 수 있어 경제적인 이점이 있고 더 강화한 콘크리트를 얻을 수 있다[30].
지구공학이나 CCUS가 지구온난화 문제의 해결사가 될 수 있을까. 기대를 걸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우리 인류 문제의 근본 원인이 탐욕인 것을 떠올리면 문명 구조의 근본적 개조 없이는 어떤 찬란한 기술도 미봉책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직관적 판단이 앞선다.
[7] John C. Moore외 3명. (2018.03.14). “Geoengineer polar glaciers to slow sea-level rise”. Nature.
[8] John C. Moore외 3명. (2018.03.14). “Geoengineer polar glaciers to slow sea-level rise”. Nature.
[9] Charles Corbett. (2019.12.06). “Glacial Geoengineering and Law of Antarctica”. Legal Planet.
[10] David Cox. (2018. 03.29.) “Two audacious plans for saving the world’s ice sheets”. Mach.
[11] David Cox. (2018. 03.29.) “Two audacious plans for saving the world’s ice sheets”. Mach.
[12] John C. Moore외 3명. (2018.03.14). “Geoengineer polar glaciers to slow sea-level rise”. Nature.
[13] Fiona Harvey. (2018.09.20.). “Build walls on seafloor to stop glaciers melting, scientists say”. The Guardian.
[14] David Cox. (2018. 03.29.) “Two audacious plans for saving the world’s ice sheets”. Mach.
[15] John C. Moore외 3명. (2018.03.14). “Geoengineer polar glaciers to slow sea-level rise”. Nature.
Charles Corbett. (2019.12.06). “Glacial Geoengineering and Law of Antarctica”. Legal Planet.
[16] UNEP. (2021.08.20.) “Methane emissions are driving climate change. Here’s how to reduce them”
문홍식 국방부 대변인 직무대리가 13일 오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갈무리-e브리핑]
국방부가 13일 “만일 북한이 핵 사용을 기도한다면 한미동맹의 압도적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북한 정권은 자멸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선제공격을 명시한 북한의 핵무력법 채택’ 관련 질문을 받은 문홍식 대변인 직무대리는 △한미동맹의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 △한국형 3축 체계의 확충과 전략사령부 창설 등 “북핵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북한이 핵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강 대 강’ 대치가 오래 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지난 7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제안한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한 인도적 사안을 논의할 남북 당국간 회담’에 대해 북한은 13일까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오는 16일(현지시각)에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미 외교·국방차관들이 참석하는 ‘제3차 확장억제 전략협의체 회의’가 열린다.
이달 말에는 미국 7함대 소속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이 부산항에 입항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문홍식 직무대리는 “미군 전력의 한반도 전개는 한미 간의 긴밀한 협의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전개 시점에 대해서는 현재 답변 드릴만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무력법을 채택한 이유에 대해, 문홍식 직무대리는 “자신들이 핵 보유국임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한편, 현 한반도 정세의 책임을 한미에 전가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미 확장억제 실행력 제고, △한국형 3축 타격체계 구축 등을 거론하면서 “적들의 책동으로 긴장 격화된 정세는 오히려 우리에게 군사력을 더 빨리 비약시킬 수 있는 훌륭한 조건과 환경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자위력 강화의 정당성과 그 우선적 강화의 불가피한 명분을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홍식 직무대리는 “북한이 발표한 법제화의 주요 내용들은 한미 양국이 긴밀한 공조를 통해 이미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던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며, 북한이 취한 이번 조치는 한미동맹의 억제 및 대응 능력을 더욱 강화시키게 되고,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초래하며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OTT 막대한 수익 얻지만 창작자 보상은 미진
동아일보 “창작자 보상받을 수 있도록 저작권 제도 정비해야”
국무조정실 태양광 사업 문제 적발…“신재생, 그래도 가야 할 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방송계 아카데미’로 불리는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6관왕을 차지했다. 비영어권 드라마가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콘텐츠 창작자들은 오징어 게임의 이례적인 성공에도 웃을 수 없는 처지다. OTT가 콘텐츠 IP(지식재산권)와 판권을 독점하고 있어 수익 불균형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침신문들은 14일 1면 머리기사에 오징어 게임 수상 소식을 전하고, 사설에서 창작자 권리 강화를 위한 법제도 정비를 당부했다.
▲14일자 아침신문들 1면.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을 통해 1조 원에 가까운 수익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제작사가 얻는 이익은 한계가 있다. 세계일보는 2면 ‘‘넷플’ 공개되자 신기록 행진…거대 OTT 수익독식 해결과제’ 기사에서 “국내 자본이 투자를 꺼렸던 오징어 게임에 약 30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넷플릭스가 1조 원에 달하는 경제적 효과까지 누렸다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OTT 수익 분배는 새로운 이슈가 됐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오겜’ 6관왕, 74년 에미상 역사 바꿔 썼다’에서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글로벌 플랫폼이 아니었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좁은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는 이야기꾼들이 제2, 제3의 오징어 게임으로 문화 영토를 넓혀 나가길 기대한다. 창작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저작권 제도를 정비하고 불법 콘텐츠 유통을 근절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사설 ‘에미상 역사 새로 쓴 ‘오징어 게임’ 수상 쾌거’에서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으로 1조 원 가까운 수익을 냈지만 지식재산권(IP)이 없는 한국의 제작사는 수십억 원밖에 벌지 못했다. 국내 콘텐츠를 보호하고 세계 진출을 지원할 수 있는 정부와 국회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라고 했다.
▲14일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도 사설 ‘에미상 6관왕으로 K콘텐트 지평 넓힌 ‘오징어 게임’’에서 “K콘텐트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방안 마련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며 “특히 합리적인 창작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창작자가 흥행 수익을 나눠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오징어 게임처럼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해도 소정의 개런티에 만족해야 했다”며 “최근 황동혁 감독을 비롯해 강제규·윤제균 등 유명 감독들이 저작권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법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무조정실 태양광 사업 점검에 한국일보 “그래도 가야할 길
국무조정실이 13일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점검해 2616억 원 규모의 부당 대출·보조금 부당 집행을 적발한 것과 관련해 비판과 우려가 공존한다. 조선일보는 1면 ‘12개 시·군·구만 조사했는데…태양광 예산 2600억 줄줄 새’ 기사에서 “정부가 조사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한 만큼 ‘태양광 비리’로 인한 예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사설 ‘‘보는 사람이 임자’였던 지난 5년의 태양광 정부 지원금’에서 “문제는 지난 정부가 체계적인 전략 없이 탈원전의 대안이라며 앞뒤 재지 않고 밀어붙인 것”이라며 “감시가 부족하고 점검은 형식적이니 아무나 돈을 받아다 쓰면 되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고 지적했다.
▲14일자 조선일보,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는 사설 ‘졸속 확인된 文정부 신재생, 그래도 가야 할 길’에서 “졸속 신재생 사업은 철저히 단속하면서, 동시에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꾸준히 높여가는 지혜가 요구된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정부는 부당 지급된 보조금과 대출에 대해 철저히 환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 우선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 속출로 발생한 피해를 줄여야 한다. 자국의 앞선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무기로 무역장벽을 높이려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탄소 국경세’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일보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국전력 산하 발전자회사들이 추진하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무더기로 축소 철회하는 움직임은 가까운 장래에 경제발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겨레는 2면 ‘“문 정부때 태양광 등 신재생사업 과정 2616억 규모 대출·보조금 부당 집행”’ 기사에서 재생에너지 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정우식 태양광산업협회 부회장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는 노력은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 재생에너지 산업과 시장을 위축시키면 아르이(RE)100 대응, 수출 경쟁력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정부, 예타 요건 강화…“SOC와 복지 불공정 논란 생길 것
정부는 13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대규모 국책사업의 경제적·정책적 타당성을 따지는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예산 낭비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복지사업 예타는 엄격해진다. 정부는 복지사업 시작 전 ‘시범사업 평가’를 실시하고,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복지사업의 평가 결과를 검증해 예타 착수 여부를 결정한다. 사회간접자본(SOC) 예타 기준은 사업비 500억 원에서 1천억 원으로 상향된다.
▲14일자 한겨레 8면.
한겨레는 8면 ‘예타 문턱, SOC엔 낮추고 복지엔 높인다’ 기사에서 “조사 기준을 현실화하면서도 운용은 엄격히 해 세금 낭비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나, 자칫 자의적으로 운용될 경우 에스오시와 복지사업 간 불공정 논란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비수도권 지역신문들은 예타 요건 강화를 반대했다. 지역균형발전 사업 예타 면제 요건은 강화될 전망이다. 국제신문은 3면 ‘지역균형발전사업, 예타면제 더 어려워진다’ 기사에서 “비수도권 지자체가 해당 지역의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추진하려는 사업 중 시급히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는 까다로운 기준 적용으로 예타 면제를 받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고 했다.
▲14일자 강원일보 1면.
강원일보는 1면 ‘예타 면제요건 강화에 강원 SOC 급제동’ 기사에서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이 현실화할 경우 앞으로 예타를 앞두고 있는 강원도 내 주요 SOC 사업들은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예타 조사 자체가 투자비용 대비 효과를 분석하는 제도로, 산악지대 등 지형적인 제약이 많은 강원도에서는 사업비가 많이 들어가 경제성이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저당잡힌 미래, 청년의 빚]① 2022 청년부채 보고서
기자가 직접 대부업체에 취업
대출 연체 상환 추심업무 맡아
독촉전화 건 채무자 절반 20·30
일러스트 김대중.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청년 부채’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빚투’(빚내서 투자)를 비롯한 ‘도덕적 해이’부터 자산도 직업도 불안정한 ‘세대의 비극’까지 청년 부채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사실도 있다. 빚이 임계에 달한 2030의 비율이 11.3%로 전 세대 평균(6.3%)의 두배에 가깝다는 통계, 그리고 오늘의 불안은 내일 역시 위태롭게 한다는 경험칙이다.
시각이 갈리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사안을 제대로 살필 필요가 있다. 청년 부채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한겨레> 기자가 제3금융권인 대부업체에서 3주일 동안 일했다. 또 저마다 다른 이유로 빚을 진 채 살아가는 16명의 청년을 심층 인터뷰했다. 청년 부채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20~30대에 진 빚으로 오랜 기간 고통받아온 중장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겨레>는 청년 부채 문제를 해부한 ‘저당 잡힌 미래, 청년의 빚’을 4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① 2022 청년부채 보고서
② 연체의 늪에 빠진 이유
③ 청년빚의 두 얼굴
④ 대출이 제일 쉬웠어요
“일부러 전화 안 받은 게 아니에요. 휴대폰 요금을 못 내니 정지가 되어서요…. 월급날 돈 받으면 정지 풀어서 바로 연락드릴게요.”
유난히 작은 목소리로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는 34살 ㄱ씨는 대부업체의 오랜 고객이다. 지금 이 순간 그를 주눅 들게 하고 있는 빚은 고작 100만원. 그것도 8년 전인 2014년에 빌린 돈이다. 당시 ㄱ씨의 나이는 26살이었다. 8년 동안 낸 이자는 225만원으로, 이미 원금의 두배를 넘겼다. 하지만 8년 동안 갚은 원금은 3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성실한 채무자였던 그의 연체가 잦아진 것은 2018년 상반기 이후부터였다. 그의 직장 기록에 드문드문 공백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과 같다. 일자리가 위태로웠던 와중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구직난을 겪어온 것으로 보인다. “같이 사는 친구 번호를 알려드릴게요. 전화가 안 되면 그쪽으로 걸어주세요.” 어렵게 구했을 직장에서 추심 전화를 받은 그의 황급한 부탁이 이어졌다. 1만6천원 남짓의 한달 이자를 제때 구하지 못한 ㄱ씨는 휴대전화 착신 정지를 뚫고 직장으로 걸려온 추심 전화에 그렇게 고개를 숙였다.
제3금융권인 대부업체는 가진 재산이나 신용이 없을 때, 또는 대출이 너무 많아 다른 곳에서는 돈을 빌리기 어려울 때 마지막으로 찾는 제도권 금융기관이다. 그다음은 사채나 일수나 불법 사금융만 남는다. 그렇기에 대부업체에서 빚을 시작하는 이는 드물다. ㄱ씨의 다른 채무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소액의 이자마저 갚지 못한 것은 다른 곳에서 빌린 돈 때문으로 짐작된다. 대부업체를 찾은 대부분의 채무자가 그랬다.
지난 7월 기자는 3주 동안 서울의 한 대부업체에서 상담사로 일했다. 맡은 일은 약정일(이자 및 원금 납입일) 직전이나 약정일, 연체가 시작된 날에 매일 300명 정도에게 전화를 걸어 이자나 원금을 갚으라고 말하는 추심 업무였다. 그중 절반인 150여명은 20~30대 청년이었다. 명단은 날마다 바뀌지만 청년 비율은 변함없었다. 전화를 받는 경우는 10% 남짓이었고 청년들은 그 비율이 더 적었다. 그렇게 수화기 너머로 20~30대 빚진 청년 100여명을 만났다. 저마다 빌린 액수와 기간, 연체 횟수는 달랐지만 힘없고 위축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점만은 같았다.
대출광고 전단지. 한겨레 자료사진
500만원 때문에 채무 불이행자 되는 청년들
또 다른 공통점은 ㄱ씨처럼 소액의 빚에 오랫동안 시달리는 것이었다. 애초 신용이나 담보가 튼튼하지 않으니 많은 돈을 빌릴 수도 없었다. 간신히 대출 승인이 나더라도 최대 20%의 대부업체 이자를 내는 데 허덕이느라 원금을 갚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출 만기가 다가왔다는 안내 전화를 할 때 원금을 갚겠다고 답변한 청년 고객은 단 한명도 없었다. “만기 연장하고 이번 달에도 이자만 내도 되죠?”라고 모두 되물었다. 빚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인 듯했다. 만기 연장은 수월했다. 직장과 자택 주소에 변동이 없는지 확인한 뒤 온라인 계약서만 받으면 된다. 연락을 받지 않을 경우엔 자동으로 연장되기도 한다. 그렇게 쉽게 채무자의 신분 역시 만기 없이 연장됐다.
자산이 없고 직업이 불안정한 청년에겐 몇백만원의 대출도 풀기 어려운 족쇄였다. 50만원 이상을 3개월 넘게 연체하는 등 대출 상환을 제때 하지 못하면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등록되는데, 20대 금융채무 불이행자 중 41.8%는 500만원 이하의 대출금 때문에 각종 금융 거래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30대는 그 비율이 29.4%이지만, 500만원 이하 대출로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되는 비율은 청년층이 전 세대(평균 25.5%)에서 가장 높다.(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 한국신용정보원) 그만큼 적은 대출금의 적은 이자도 갚지 못하는 청년 채무자가 많다는 의미다.
연체 독촉했던 청년 90%는 다중채무자
적은 돈을 10년 가까이 갚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중채무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30대 초반의 ㄴ씨는 10년 전인 2012년에 500만원을 빌린 뒤 원금은 한푼도 갚지 못한 채 이자만 1천만원 넘게 냈다. 다른 곳에서 받은 대출까지 포함하면 대출 원금은 2억원이 넘는다. 연체가 잦았던 그는 그날도 연체 안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3주간 통화한 청년들의 90% 이상은 ㄴ씨와 같은 다중채무자였다.
다중채무의 악순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30대 초반이던 2016년 4건의 채무가 있었던 ㄷ씨는 6년이 지난 지금 대출이 28건으로 늘었다. 빚이 늘어나도 청년들은 계속 추가 대출을 시도한다. 20대 초반에 2500만원의 대출을 안은 채 대부업체 문을 두드렸던 ㄹ씨는 3년 만에 5500만원의 빚을 떠안았다. ㄹ씨가 돈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대부업체는 그의 추가 대출 신청을 11차례나 거절했다. 대출 신청이 한번 거절되면 두 달 뒤에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ㄹ씨는 2년을 넘게 추가 대출의 문을 두드려온 것이다.
약정일 안내 전화를 걸었던 20~30대 청년 30명을 무작위로 뽑아 살펴보니 이들은 평균적으로 150만~200만원 정도의 월소득을 거뒀고 그 돈의 52%를 빚을 갚는 데 썼다. 또 10건 가까운 채무에 얽혀 있었다. 빚을 갚는 데 쓰고 남은 돈으로는 생계마저 꾸려가기 힘든 상황이다. 많게는 월급의 80% 혹은 100%를 이자 상환에 써야 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이들은 이미 몇천만원, 심하게는 1억원대의 빚을 갖고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으로 대부업체를 찾았다. “이 정도면 돌려 막기도 쉽지 않고, 빚에서 탈출하기는 불가능한 수준이지. 좋은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같이 채권을 살펴보던 한 직원이 말했다.
청년층 다중채무 문제의 심각성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2017년 1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4년여 동안 대부업을 포함한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한 다중채무액 증가율은 전 연령에선 22.1%이지만 청년층(39살 이하)에서는 그 수치가 32.9%로 치솟았다.(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실, 금융감독원) 그사이 늘어난 청년층의 다중채무액만 39조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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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추심이 필요했던 이유
대부업체 직원은 독해져야 한다. 한명의 다중채무자에게서 이자를 받아내기 위해 여러 금융기관과 대부업체가 달려들어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일한 대부업체는 약정일이 되기 이틀 전부터 안내 전화를 돌렸다. 업무 시작 첫날, 아직 연체도 안 했는데 독촉하는 것이 미안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더니 팀장이 바로 호출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요. 얕보이면 안 돼요. 여러곳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은, 먼저 갚을 채권자를 태도에 따라 가릴 수도 있어요.” 꾸지람을 듣고 난 뒤 같은 팀 직원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그가 팀장 편을 들었다. “기싸움을 잘하는 직원이 성과가 좋긴 하더라. 채무자들 입장에서 ‘이런 전화 받느니 갚고 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현재 대부업법은 과거보다 추심에 대해 훨씬 엄격해졌다. 고객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해 사생활이나 업무의 평온을 해칠 경우 처벌을 받는다. 고함이나 폭언은 내규에서 엄격하게 제한된다. 이 때문에 합법과 기싸움의 경계를 오가며 빚을 독촉하는 게 대부업체 상담원의 기술이다. 채무자들에게 돈이 생긴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날 채권자가 되기 위한 방법은 ‘부지런한 독촉’뿐이다.
실적이 저조해 단체로 질책을 받은 옆팀은 하루 종일 언성을 높였다. “이번달은 그래서 언제 주실 수 있다는 거예요? 그때까지는 기다리기 곤란할 것 같은데요.” “매번 이렇게 늦으시는 이유가 대체 뭔가요? 저희도 바쁜데 고객님은 매번 핑계만 대시고. 이유도 제대로 대답 안 하시잖아요.” 냉랭한 어조가 뿜어내는 긴장감은 채무자가 아닌 직원들까지 숨을 죽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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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독촉 전화에 대한 대응도 세대별로 갈렸다. 중장년층에선 ‘배 째라’ 식으로 나오는 이른바 ‘상담 유의’ 고객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청년층은 전화를 받지 않거나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집세가 없어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어요.” “월급만으로 이자를 갚기 어려워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티브이(TV) 수신료 2500원이 이중인출되어 이자를 갚을 통장 잔액이 남아 있지 않아요.” 말을 잇는 침묵에는 미안함과 민망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빚의 굴레에서 빠져나가는 길이 막연하기에 청년들은 그저 죄송할 뿐이다. 지루한 줄다리기 같은 통화음 끝에 전화를 받은 청년들이 무턱대고 말했다. “너무 죄송해요. 꼭 넣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월급이 아직 안 들어왔는데 어쩌죠. 내일까지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간곡히 부탁할 때는 말문이 막혔다.
약정일 이전에 안내 전화를 할 때는 “아직 돈 내는 날도 아닌데 전화를 하냐”고 투덜댔던 한 청년은 연체가 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통화에서 ‘죄송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얼굴도 모르는 상담원에게 간절하게 죄송해야 할 정도로 그들 수중에는 몇만원이 없었다. 그 몇만원을 약정일을 이틀 넘도록 납입하지 못하면 이들의 추심은 다른 팀으로 넘겨진다.
맥없는 목소리들을 상대하다 덩달아 울적해져 전화를 끊을 때면 교육 기간에 상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아마 화내고 욕하는 고객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 반응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상담원에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처지와 인생에 화가 나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추심 전화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소리는 고함이 아니었다. 얕은 한숨 소리였다. 끈질기게 전화를 시도하는 상담원 때문인지 혹은 이번에도 제때 입금을 하지 못한 자신을 향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방향도 없이 들릴 것이란 기대마저 없는 한숨. 채무의 덫에서 헤어날 수 없는 청년들은 화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지쳐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취재했나?
<한겨레> 기자는 법률 검토를 받아 대부업체에 취업해 1주일 교육을 거쳐 2주일간 추심 업무를 맡았다. 대부업체 취업을 취재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청년 부채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대출 시장에서 청년 채무자의 처지를 살펴보는 것이 당사자 취재와는 다른 구조적 측면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대부업체에서 받은 임금은 청년 부채 해결을 돕는 단체에 전액 후원한다.
녹색전환연구소는 9.24 기후정의행동을 맞아 정부와 지역정부의 기후에너지 정책 분석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살펴보았다. 기후위기 대응이 실종된 한국사회에서 시민이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 9.24 기후정의행동에 함께 해야하는 절박한 이유를 제안한다.
➀ 대한민국은 공항 활주로에 침몰할 위기
➁ 기후위기 시대, 불평등에 잠긴 집
➂ 김상협 위원장이 두 번 실패하면 안 되는 이유
➃ 누가 만드는 정의로운 전환인가?
지난 8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폭우가 쏟아졌다. 더 꺼질 것도 없는 낮은 땅에서부터 사회적 안전망은 무너져 내렸다. 며칠간의 폭우로 인해 무려 13명이 사망했고, 6명의 실종자, 154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정부에서 현재(22.9.10.)까지 파악한 규모만 이정도이다. 도시엔 큰 인명피해를 냈고, 지역 농가들은 막대한 재산손실을 입었다. 명절을 한 달 앞두고 벌어진 일이라 더욱 처참했다.
이번 기록적 폭우는 서울에서 지하와 반지하 같은 적정하지 않은 주거공간에 사는 사람에게 집중적인 피해를 입혔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주거문제와 더불어 장애, 빈곤과 같은 다층적인 문제를 함께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었다.
기후위기, 결론적으로 불평등 문제다
폭우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던 신림동에선, 반지하 집에 빗물이 들이닥치자 경찰에 신고했지만 구조되지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설상가상 주택 앞에 있던 싱크홀에서 물이 솟구쳐, 유일한 탈출구였던 반쪽짜리 창문으론 발달장애인 40대 여성 A씨와, 그의 여동생, 여동생의 딸은 나갈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생을 마감한 이들은 발달장애 가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초생활수급자 이기도 했다. 분명히 주거급여를 받아 생활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 주거급여로 마련한 집에서 국가의 구조를 기다리다 사망했다.
폭우가 쏟아지면서 지난 서울 신림동 한 주택 반지하에 살고 있던 발달장애인 40대 여성 A씨와 그의 여동생 B씨, B씨의 1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현장 신림동 반지하 주택 모습. 2022.08.09 ⓒ민중의소리
한때, 반지하와 옥탑방은 젊은이들의 낭만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사실상 이제 반지하나 옥탑방 같은 주거문제는 더 이상 ‘청년’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0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연령대별 지하 거주비율은 29세 이하가 2.1%로 가장 높다고 나타났지만 60대가 1.8%, 50대가 1.9%로 중장년층 역시 지하 또는 반지하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았다. 즉 이제 더 이상 반지하는 젊은 세대의 전유물은 아닌 셈이다. 2012년 건축법 개정을 통해 상습침수 구역을 주거용으로 사용할 시 건축제한을 하는 규정도 생겼지만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와 중에 코로나 이후 노숙인은 더욱 늘어가고 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매해 100~340명의 노숙인이 줄어들었다고 밝혀왔지만, 2020년 코로나 이후 반등하는 추세다. 증가한 노숙인의 절반은 ‘거리노숙인’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서울시의 주거권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표로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잦아지는 재난
게다가 연이어 태풍 ‘힌남노’ 소식이 더해지며 한반도는 더 바짝 긴장했다. 이미 일본을 휩쓴 태풍 힌남노의 위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전국민이 밤잠을 설쳤다. 지난 폭우 피해에 대한 보상과 회복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모든 이들이 태풍의 진로를 기다렸다. 결과적으로 포항에선 지하주차장에 갇혀 실종·사망하는 사고가 났고, 건물 한 동 전체가 빗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일이 일어났다.
이렇듯 살인적인 폭우와 슈퍼 태풍이 한국을 할퀴는 빈도는 점점 잦아지고 있다. 재난의 크기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큰 재난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재난을 예방, 또는 적응하기 위한 정부와 지역정부의 대응은 선명하지 않아 답답하다.
여전히 공백인 주거정책과 길을 잃은 공공임대주택
녹색전환연구소가 발행한 <17개 광역자치단체 인수위원회 보고서 분석>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착잡하다(보고서 분석 링크). 모든 지역에서 여전히 ‘토건’공약은 공항과 신도시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다. ‘그린리모델링’ 관련 정책들이 존재하는 지역들도 있으나 그 규모가 매우 작아 전체적인 주거품질을 향상시키고 주거안정을 확립하는 것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부산의 경우 기온 상승, 태풍, 해수면 상승 등 기후 리스크가 가장 높은 지역이고, 초고층 빌딩으로 만들어진 부산의 마린시티의 거센 빌딩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음에도 ‘해양도시’ 건설을 ‘기후변화’ 대응의 목표로 삼는 역설적인 일도 나타나고 있다. 부산시장이라면 국제사회에 인정받는 ‘지속가능한 해양도시’를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 전에, 이미 잦은 재난으로 생명권의 위협을 받는 부산시민들의 삶을 한 번 더 살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주거시민단체로 이루어진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은 8월 22일 서울시의회 앞에 시민분향소를 마련하고 동등하고, 평등한 주거권을 위해 기자회견을 벌였다. 이들은 ‘주거취약계층의 재난 위험 근본적 해결을 위한 10대 정책과제 요구’를 발표하며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주거품질 연계하는 방향의 주거비 지원 확대 ▲주거안전 기준 강화 ▲주거급여 대상 기준중위소득의 60%로 확대 등을 정부와 국회에 제시했다. 주거권 보장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재난불평등추모행동’ 요구의 핵심이다.
윤석열 정부는 8월 30일 2023년 예산안을 발표하며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안을 전년도 예산에서 5조 7천억을 삭감한 15조 1천억 원으로 내놓았다. 이는 30%를 잘라낸 어마어마한 칼질이다. 국토교통부는 주거취약계층의 이사비와 보증금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하며 ‘주거복지’의 빈틈을 완화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주거권 보장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대책인 공공임대주택 예산 수 조 원을 깎으며 이사비 몇 푼 쥐어주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9월 1일 국회는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또다시 완화시켰다. 종부세 과세 기준을 9억에서 11억으로 완화하고 상속주택과 지방주택은 주택 수 계산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여야가 합의했다. 시민사회는 이 같은 조치가 ‘다주택자를 양산하고, 수도권 투기 수요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풍선효과’를 만들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즉 여전히 정부와 국회는 십 수 명의 국민이 기후재난, 빗물 속에서 목숨을 잃어도 여전히 집부자들의 민원만 처리하는 정치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2022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주거단체들은 ‘불평등에 잠기는 주거권’을 되찾기 위해 주거권 대행진을 연다. ⓒ필자 제공
불평등에 잠긴 주거권을 구출하자
그렇기에 세입자 시민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부자감세를 반대하고 주거권 보장을 요구하는 조직된 힘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층’수로 구별되는 권리가 아니라 모두에게 동등한 주거권을 요구해야 한다. 이에 기후재난으로 악화되는 주거권의 미래를 구출하기 위해 모든 시민들이 함께 걸어야 하지 않을까.
2022 세계주거의 날을 맞아 주거단체들은 ‘불평등에 잠기는 주거권’을 되찾기 위해 주거권 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조금 먼저 있는 924 기후정의행진의 물결을 이어받아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더 큰 파도로 이어지길 바래본다.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세입자들의 걸음을 모아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주거취약계층, 인권취약계층이 기후위기취약계층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내자.
여야가 각기 '이재명 사법리스크', '김건희 특검'을 물고 늘어지며 추석 연휴의 마지막날까지 공방전을 벌였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은 12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민이)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 민생은 뒷전, 정치검찰은 상전이라고들 한다"며 정부의 야당 탄압을 비판했다.
조 사무총장은 "위기 상황에서도 정부는 하는 척 시늉만 하고 성과가 없다"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정부와 전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함에도 윤석열 정부는 정치 탄압에 몰두하고 경청 대신 딴청만 피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석열 사단이 되어버린 검찰은 최근 한 달에만 대통령기록관을 3차례나 압수수색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급기야 사상 초유이자 역대 최악의 야당 대표 (공직)선거법 기소를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관여 의혹 등을 규명하기 위한 '김건희 특검법'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조 사무총장은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서 불송치·무혐의 처분을 하려고 하고 있다"며 "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해 국민의 65%가 지지하고 있고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부당한 수사 기소에 대해 국민 비판 여론이 높다"고 설명했다.
당 내 기구인 '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범계 의원은 "연휴 기간 여론조사에서 눈여겨볼 점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불송치, 무혐의에 대한 국민의 불공정, 반감이 63~64% 이르렀다"면서 "여야에 대한 수사가 형평성을 잃었다는 답도 62~63%에 이른다. 반드시 특검을 통해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이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추석민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이같은 민주당의 특검 요구를 '정쟁'으로 치부하는 한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혐의점을 부각시키는 데 집중했다.
양금희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오늘 제1야당의 사무총장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추석민심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민생은 뒷전'이고, '낮에는 대통령, 밤에는 검사' 운운했는데, 기회만 있으며 정치탄압이라고 선동하고, 국정운영에 혼란과 부담을 주고자 사력을 다한다"고 지적했다.
양 원내대변인은 "범죄 혐의자를 수사하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수사절차에 대해 민주당은 당 대표 한 사람(이 대표)의 비호에만 몰두하며 '전 정권 죽이기' '야당 정치탄압' '표적수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공감하는 국민들께서 얼마나 있을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정당한 수사에 시비를 걸고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하는 민주당의 정쟁에 허락되지 않은 민심이란 이름을 함부로 갖다 쓰지 말길 바라고, 제1야당으로서 민생을 위한 역할에 전념하길 바란다"고 맞받아쳤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8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귀성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어리 기자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지역화폐'로 불려왔던 지역사랑상품권 정책에 대한 국가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지역화폐로 인해 지역경제가 살아나 지방세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 하에 이 예산이 조금씩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이 시점에서 '완전히' 없애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전국 각지의 높은 호응도와 그 분명한 정책효과를 고려할 때, 가히 충격적이다.
그런데 문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예산을 '0'으로 만들기 위해 공식적으로 들고나온 정부의 세 가지 논거다. 첫째, 지역화폐는 그 정책효과가 특정 지역에서만 한정돼 나타나는 것이므로 국가가 관여할 것이 아닌 지자체 고유의 사무로 규정하고 있는 점. 둘째, 제대로 된 연구분석과 실제 현장에 대한 발품을 판 조사도 없이, 지역화폐가 실질적으로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치부해버리고 있는 점. 셋째, 지역화폐는 어디까지나 코로나 국면에서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들을 살리기 위한 '한시적인' 정책이었으니 소상공인들에 대한 코로나 여파가 점차 완화되고 있는 지금은 지역화폐를 더 이상 유지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보인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거들은 사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지역이 처한 '국가 차원'의 위기에 대한 정부 문제의식의 빈곤을 반증한다.
지역화폐는 '백신'과 같다애초,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지역화폐를 국가 차원의 정책대응으로 설정한 것은 서울시를 제외한 우리나라 각지의 소득이 서울로 유출되면서 지역경제가 피폐화됐고, 또 이로 인해 본격화된 지역 간 격차의 심화와 나라의 존망이 달린 이른바 '지역소멸' 현상을 해소하고자 했던 것을 배경으로 한다.
즉 지역화폐 정책을 통해 우리나라 각 지역의 시민소득 및 기업수익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현상을 막아 쓰러져가는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것은 '지역소멸'과 '지역불균등발전'이라는 국가 차원의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지역화폐는 원래 소상공인들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고 위태로운 우리나라 '지역'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었다. 이렇듯, 정책의 목적과 문제의식은 매우 타당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 동력들이 서울로 다 새어나가면서 초래된 지역경제의 침체와 지역소멸 그리고 그로 인한 나라 전체의 지속가능성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된 지역화폐 정책을 중앙정부는 외면해도 되는 지자체만의 사무로 간주했다. 어불성설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지역 살리기'를 위한 대응을 가장 중요한 '국가과제'로 설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또 지역의 경제 동력이 수도권으로 새어나가는 현상은 지자체가 감당할 수도 없는 '국가 차원의 구조적인' 문제다.
순기능을 간과할 것인가
▲ 정부가 내년 지역화폐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밝힌 8월 3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전통시장에 지역화폐 가맹점을 알리는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2022.8.30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장에 있는 모두가 체감하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다. 지역화폐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쓸 수 없고 지역 내 소상공인들의 매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어서, 지역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상공인 경제를 지켜내는 방패막 역할을 했다. 지역 소상공인들의 매출을 증가시켰다.
또한 그 수익을 본사가 있는 서울 또는 수도권으로 유출하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와는 달리, 소상공인들의 매출 증대로 늘어난 수익은 고스란히 지역 안에서 돌고 또 돈다. 이는 우리나라 지역경제의 위기를 초래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2021년 경기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시민들이 지역화폐를 쓰기 위해 그 사용처를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전통시장 및 지역 내 소상공인 매장으로 변경할 의사가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또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2020년 분석에 의하면, 지역사랑상품권가맹점은 지역사랑상품권 도입 후 월평균 매출액이 87만5000원(3.4%) 증가했으나, 비가맹점은 8만6000원(0.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화폐는 소상공인들의 매출을 늘려 지역상권을 활성화하고 지역경제 순환을 담보하는 데 기여한, 지역경제 관련 정책들 가운데 가시적인 효과를 보인, 몇 안 되는 정책이다. 특히, 지역화폐 정책은 비수도권 지역의 소득과 수익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 즉 '국가 차원'의 위기적 현상을 일정 부분 완화하는 데에, 소비자의 구매력을 높여 지역경제 내 수요를 증대시키는 데에, 그리고 지역화폐 기반 부가서비스를 통해 소상공인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지역화폐는 코로나 대책을 위해 도입된 '한시적인' 정책이 아니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원래 정부(행정안전부)는 지역 화폐금융의 차원에서 '지역소멸' 현상과 '지역불균형발전'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자 지역화폐를 정책화했다. 이에 대한 국가예산은 코로나 국면에 돌입하기 전이었던 2019년부터 이미 지원되고 있었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발행량을 보였던 인천광역시의 지역화폐 '인천e음'의 경우, 2019년에 국비예산 224억 원이 투입됐었다. 그래서 코로나가 터지기 전인 2020년도 이전의 지역화폐는 지자체가 알아서 발행한 것이었고, 또 국비가 투입됐다 하더라도 소액에 불과했다는 기획재정부의 주장과 논리는 사실과 다르다.
현금살포성 재정 중독사업이라고?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역화폐를 '현금살포성 재정 중독사업'이라 폄하했다. 그러나 지역화폐는 전국 232개 지역의 시민들이 적극 사용하면서 그 '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지역들 안에서 연간 20조 원 이상의 소비가 일어나게 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한 일국 차원의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이자 지역살리기 정책이었다. 만약 세금만 축내고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이러한 성과를 보이진 못했을 것이다.
정부는 지역화폐 정책을 세금으로 캐시백이나 뿌려대는 단순 재정사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역 소상공인 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 그리고 지역공동체 강화를 통해 지역경제의 피폐화를 막고 나라의 존폐가 달린 '지역소멸'의 위기를 해소하는, 국가적 차원의 지역살리기 정책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역화폐 정책에 대한 국가예산의 전액 삭감 조치는 자칫 '지역'을 돌보지 않는 나라, 지역 활성화라는 국가적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정부로 오명이 씌워질 수 있는 사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양준호씨는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입니다. 저서로는 <지역화폐가 대안이다> <지역 회복, 협동과 연대의 경제에서 찾다> 등이 있습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깡통전세 피해 75%가 2030
한겨레, 1면에 대부업체 상담사로 일한 후 취재물 보도
“300명에게 전화 걸어 추심업무, 절반이 20~30대 청년”
지난 3월 치러진 20대 대통령선거와 관련한 선거사범 총 609명이 기소됐다. 12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일인 지난 9일까지 총 2001명을 입건했고, 이 중 609명을 기소했다. 구속 기소자는 12명이다. 입건 인원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시행한 이후 역대 최다였지만, 입건 대비 기소율은 30.4%에 불과했다. 19대 대선 당시(58.3%)보다 절반 남짓 수준으로 줄었다.
동아일보 “선거사범 가장 많은 대선 오명까지 안아” 비판
한겨레 3면 기사에 따르면 17대(2007년) 대선에서는 1432명이 입건됐고, 997명(69.6%)이 기소됐다. 18대 대선 당시엔 739명이 입건됐고, 428명(57.9%)이 기소됐다. 19대 대선 당시엔 878명이 입건, 512명(58.3%)이 기소됐다.
▲13일자 아침신문들 1면.
한겨레는 기사에서 “20대 대통령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꼽힌다. 윤석열·이재명 양강 후보와 후보 배우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호감도를 크게 앞질렀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지지율 속에 선거캠프와 정치권 등은 상대 후보의 작은 실수마저 용납하지 않고 고소·고발을 남발했다”며 “유례없는 진흙탕 대선의 결과가 6개월 뒤 수사 결과로 고스란히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검찰이 재판에 넘긴 사람 중에는 현역 의원 4명도 포함됐다. 조선일보는 10면 기사에서 “검찰이 재판에 넘긴 명단에는 대장동·백현동 사업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거 사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 선거운동 기간이 아닌 때 확성기로 선거운동한 혐의를 받는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 대선을 앞두고 당원들과 선거 관련 집회를 한 혐의를 받는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 등 총 4명의 현역 의원도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13일자 한겨레 3면.
▲13일자 조선일보 10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치러진 첫 선거 수사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검찰의 입장을 기사에 반영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이번 선거사범 수사는 지난해 1월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시행된 첫 전국 규모 선거(보궐 선거 제외)에 대한 것이었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은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를 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한 뒤 “검찰에 따르면 경찰은 공소시효 만료 1개월 전인 지난 8월부터 한달간 집중적으로 약 300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런 사건의 경우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하거나 검찰이 직접 보완 수사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대검 관계자는 ‘제도적 허점이 명확히 드러난 만큼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도 6면 기사에서 “검찰은 이번 선거사범 수사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의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보고 공소시효 연장 등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과거에는 수사지휘권이 있어 경찰 수사 초기부터 기록을 공유했지만 지금은 공소시효가 6개월에 불과한데 경찰이 사건을 넘길 때까지 기록을 볼 수 없다. 경찰은 공소시효 만료 1개월 전 한꺼번에 300여 명의 선거사범을 검찰에 넘겼는데, 공소시효 만료를 사흘 앞두고 넘긴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13일자 동아일보 6면.
▲13일자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민주화 이후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는 평가를 받았던 올해 대선은 선거사범이 가장 많은 대선이라는 오명까지 안게 됐다”고 비판한 뒤 “선거법으로 고소·고발되면 공소시효 6개월 안에 정치인과 유권자가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게 되면서 공권력 남용을 유발할 수 있다. 정치의 영역에서 풀어야 할 문제를 수사기관으로 가져가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고, 유권자의 선택을 가로막는 선거법 독소 조항을 이참에 정치권이 제대로 손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떼인 전세금 사상 처음 1000억원 넘어
깡통전세 피해 75%가 2030
12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난달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사고 금액이 1089억 원이라고 밝혔다. 집주인이 전세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금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억 원을 넘어선 것.
2013년 전세금반환보증보험이 출시된 이후 사고 금액은 계속 늘어났다. 사고 금액은 2016년 34억원, 2017년 74억원, 2018년 792억원, 2019년 3442억원, 2020년 4682억원, 지난해 5790억원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13일자 국민일보 1면.
국민일보는 1면 기사에서 “‘깡통전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않은 보증금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피해자 4명 중 3명은 2030세대였다. 상습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악성 임대인’도 기승을 부린다. 1명이 578억원의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사례까지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전세사기가 급증하자 국토교통부는 지난 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앞으로는 전세계약 체결 직후 집주인이 해당 주택을 매매하거나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집주인은 전세계약을 맺기 전에 세입자에게 보증금보다 우선 변제되는 체납 세금이나 대출금 등이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상습적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악성 임대인 명단과 전세사기 피해가 많은 빌라의 시세도 공개한다”고 알렸다.
한겨레, 1면에 3주 동안 대부업체 상담사로 일한 취재물 보도
한겨레는 기자는 지난 7월 3주 동안 서울의 한 대부업체에서 상담사로 일한 뒤 보게 된 현실에 대해 보도했다. 보도에 앞서 한겨레는 “법률 검토를 받아 대부업체에 취업해 1주일 교육을 거쳐 2주일간 추심 업무를 맡았다. 대부업체 취업을 취재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청년 부채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대출 시장에서 청년 채무자의 처지를 살펴보는 것이 당사자 취재와는 다른 구조적 측면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고 취재 배경을 설명한 뒤 “대부업체에서 받은 임금은 청년 부채 해결을 돕는 단체에 전액 후원한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1면 기사에서 “맡은 일은 약정일(이자 및 원금 납입일) 직전이나 약정일, 연체가 시작된 날에 매일 300명 정도에게 전화를 걸어 이자나 원금을 갚으라고 말하는 추심 업무였다”고 설명했다.
▲13일자 한겨레 1면.
▲13일자 한겨레 5면.
한겨레는 이어 “그중 절반인 150여명은 20~30대 청년이었다. 명단은 날마다 바뀌지만 청년 비율은 변함없었다”며 “전화를 받는 경우는 10% 남짓이었고 청년들은 그 비율이 더 적었다. 그렇게 수화기 너머로 20~30대 빚진 청년 100여명을 만났다. 저마다 빌린 액수와 기간, 연체 횟수는 달랐지만 힘없고 위축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점만은 같았다”고 보도했다.
기사를 보면 대부분의 청년은 소액의 돈을 빌려 빚에 시달렸다. 한겨레는 “또 다른 공통점은 ㄱ씨처럼 소액의 빚에 오랫동안 시달리는 것”이라며 “애초 신용이나 담보가 튼튼하지 않으니 많은 돈을 빌릴 수도 없었다. 간신히 대출 승인이 나더라도 최대 20%의 대부업체 이자를 내는 데 허덕이느라 원금을 갚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출 만기가 다가왔다는 안내 전화를 할 때 원금을 갚겠다고 답변한 청년 고객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설명하며 대부분 이자만 내도 되는 거 맞냐는 말을 되묻는 현실을 보여줬다.
나는 1995년 3월 11일 미국 뉴욕에 통일학연구소를 설립한 이후 오늘까지 27년 동안 1,000편 이상의 정세분석론문과 사회변혁론문을 계속 집필해왔다. 지난 27년 동안 집필한 정세분석론문들을 훑어보면, 집필 방향을 바꿔놓은 전환적 계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2년 9월 3일 내가 ‘폭우 속 전선시찰과 작전계획 최종 결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것이 바로 그 전환적 계기다. 10년 전에 발표한 정세분석론문에서 나는 조선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1년 11월 1일 나는 ‘미국은 두 개의 고강도 지역전에서 연패한다’라는 제목의 정세분석론문을 발표했는데, 그 논문에서 나는 조국통일대전의 의미를 영토 완정을 실현하기 위한 해방전쟁으로 해석했고 그때부터 나는 ‘남조선해방전쟁’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조선의 대외비 문서들에서 ‘남조선해방전쟁’이라는 용어가 쓰이는지 또는 쓰이지 않는지 외부에서는 알 수 없지만, 조선의 공개 문헌이나 언론보도에서 ‘남조선해방전쟁’이라는 용어가 쓰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남조선해방전쟁’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정세를 분석하는 유일한 필자다.
내가 고찰하는 정세관의 핵심은 오늘 조선의 ‘남조선해방전쟁’ 수행 의지와 중국의 대만해방전쟁 수행 의지가 서로 맞물리면서 우리나라 정세와 동북아시아 정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나는 우리나라 안팎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정치군사적 현상들을 분석, 고찰하는 과정에 그런 핵심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2022년 9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핵무력 정책이 입법화된 것이다. 그날 채택된 법령의 공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다. 미국, 중국, 로씨야를 비롯한 9개 핵보유국은 각자 핵무력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핵무력 정책을 입법화한 핵보유국은 전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다. 조선이 핵무력 정책을 입법화한 것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일이다.
조선이 핵무력 정책을 입법화한 것은 조선의 핵무력 사용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의 핵무력 사용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핵무력을 가졌다는 제국주의 깡패국가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핵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은 자기를 핵위협과 핵공갈로 끊임없이 괴롭히는 제국주의 깡패국가와 맞서 싸우는 반제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간의 대립과 투쟁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조선과 제국주의 미국의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반미전쟁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필연인 것이다.
조선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조선의 반미전쟁이 역사적 필연으로 되는 까닭은 단지 미국으로부터 핵위협과 핵공갈을 받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이 조선의 영토를 무력으로 점령하였기 때문에 조선의 반미전쟁은 역사적 필연으로 되는 것이다.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이 무력으로 점령한 조선의 영토는 남조선이다.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남조선은 한국의 남반부인 남한이 아니라 미국이 무력으로 점령한 남반부 영토다. 그러므로 조선은 미국이 무력으로 점령한 남조선을 해방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조선이 남조선을 해방하는 것이 영토완정이다.
2022년 9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입법화된 새로운 법령에 의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력은 국가의 주권과 령토 완정, 근본 리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전쟁을 방지하며 세계의 전략적 안정을 보장하는 위력한 수단”이라고 한다. 또한 새로운 법령에 의하면, 조선이 보유한 핵무력의 사명은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 공격으로부터 국가 주권과 령토 완정, 인민의 생명 안전을 수호하는 국가방위의 기본 력량”이라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두 문장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의 핵무력이 영토 완정을 실현하는 위력한 수단이며, 영토 완정을 실현하는 것이 핵무력의 사명이라는 사실이다.
조선이 말하는 영토 완정은 1953년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이 정전된 이후 미해방지역으로 남아있는 남조선을 미국의 점령에서 해방하는 ‘남조선해방전쟁’을 의미한다.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1953년 7월 27일부터 시작된 정전은 ‘남조선해방전쟁’이 일시적으로 중지된 비정상적인 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남조선해방전쟁’은 영토 완정을 실현하기 위해 언젠가는 반드시 수행해야 할 최고의 역사적 과업이다. 또한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조선의 핵무력은 ‘남조선해방전쟁’을 압도적인 승리로 결속시킬 가장 위력적인 공격수단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이 이번에 실행한 핵무력 정책의 입법화는 영토 완정을 실현하는 ‘남조선해방전쟁’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에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나는 우리 혁명 앞에 조성된 현 국면과 정세 발전 추이로 보나 공화국 핵무력의 사명으로 보나 매우 중대한 력사적 시기에 핵무력 정책이 법화되었다고 인정”한다고 언명하였다. 김정은 총비서가 말한 “매우 중대한 력사적 시기”는 ‘남조선해방전쟁’을 앞두고 있는 중대한 시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총비서는 ‘남조선해방전쟁’을 앞두고 있는 중대한 시기에 핵무력 정책을 입법화하여 ‘남조선해방전쟁’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고 언명한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시정연설에서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 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놓은 여기에 핵무력 정책의 법화가 가지는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언명하였다. 이것은 조선이 미국을 상대로 어떤 형태의 핵협상도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단언한 것이다. 조선이 핵협상을 영구히 중단한 것은, 다른 정치문제를 논의하는 협상도 완전히 종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이번에 조선이 핵무력 정책을 입법화함으로써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정치협상의 가능성도 소멸된 것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정치협상의 가능성이 소멸되었다는 말은, 조미 적대 관계와 남북적대관계를 평화적 방도로 해결할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조미 적대 관계와 남북적대관계를 평화적 방도로 해결할 수 없으면, 비평화적 방도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조미 적대 관계와 남북 적대 관계를 비평화적 방도로 해결하는 것이 곧 ‘남조선해방전쟁’이다.
2. 지난 1년 3개월 동안 ‘남조선해방전쟁’을 순차적으로 준비하였다
돌이켜보면, 조선은 2021년 6월 초순부터 내가 이 글을 집필하고 있는 2022년 9월 초순까지 1년 3개월 동안 ‘남조선해방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정치적 준비, 군사적 준비, 법적 준비를 순차적으로 실행해왔다. 순차적인 실행경로는 다음과 같다.
‘남조선해방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정치적 준비는 2021년 6월 11일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2차 확대회의에서 실행되었다. 김정은 총비서는 그날 확대회의에서 “중국과 미국의 대결이 격화되고 있는 현시기, 연평도 포격전처럼 적들을 전율케 하는 기습공격으로 남반부를 순식간에 타고 앉으려면 모든 전선에서 고도의 격동태세를 견지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지시를 내렸다. 김정은 총비서가 조선인민군에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은, “기습공격으로 남반부를 순식간에 타고 앉는 남조선해방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정치적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은 정치적 준비를 완료한 이후, ‘남조선해방전쟁’에 필요한 공격수단들을 매우 짧은 기간에 신속하게 개발, 완성하였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미국의 군사전문가들도 선뜻 믿지 못할 지경이었다. 구체적인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은 2022년 1월부터 4월까지 첨단기술이 도입된 전술미사일들의 시험발사, 검열사격훈련, 검수사격시험을 연속적으로 진행했는데, 그 진행 일정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월 11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
1월 14일 철도기동미싸일련대 검열사격훈련
1월 17일 화성포-11 나형 검수사격시험
1월 27일 익명의 전술유도무기 시험발사
1월 25일과 27일 익명의 장거리순항미사일체계 갱신을 위한 시험발사
4월 16일 익명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시험발사
위에 열거한 시험발사, 검열사격훈련, 검수사격시험은 ‘남조선해방전쟁’에 필요한 전술핵무력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1년 1월 9일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무기화를 더욱 발전시켜 전술핵무력을 완성하는 전략적 과업을 제시했고, 그와 더불어 선제핵공격력을 고도화하는 목표도 제시했는데, 올해 2022년 1월부터 4월까지 진행된 각종 첨단미사일들의 시험발사, 검열사격훈련, 검수사격시험은 조선이 ‘남조선해방전쟁’에 필요한 전술핵무력을 완성하고, 선제핵공격력을 고도화한 과정이었다.
2022년 6월 5일 조선은 각종 첨단미사일들을 서로 다른 사격원점들에서 연발 사격하는 원격다종배합련사훈련을 실시함으로써 전술핵무력이 완성되고, 선제핵공격력이 고도화되었다는 것을 현실로 입증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시정연설에서 “가장 중요하게는 우리 핵무력의 전투적 신뢰성과 작전 운용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게 전술핵 운용 공간을 부단히 확장하고 적용 수단의 다양화를 더 높은 단계에서 실현하여 핵전투태세를 백방으로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남조선해방전쟁’에 필요한 전술핵무력을 완성하고 선제핵공격력을 고도화한 조선은 곧바로 ‘남조선해방전쟁’ 작전계획을 수정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2022년 6월 22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3차 확대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중앙군사위원들과 함께 남반부 지역이 표시된 여러 장의 군사작전 지도를 놓고 “작전계획을 수정하는 사업”을 토의했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작전계획수정에 관한 연구토의를 진행했으며, 연구토의 결과를 중앙군사위원회에 보고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남조선해방전쟁’ 작전계획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위에 서술한 내용을 종합하면, 조선은 2021년 6월 11일 ‘남조선해방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정치적 준비를 완료했고, 2022년 4월 16일 ‘남조선해방전쟁’에서 사용할 전술핵무력을 완성하였고, 2022년 6월 22일 ‘남조선해방전쟁’ 작전계획수정을 완료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남조선해방전쟁’을 수행할 정치적, 군사적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조선해방전쟁’을 수행할 정치적, 군사적 준비를 완료한 뒤에 나서는 최종 절차는 ‘남조선해방전쟁’을 수행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2022년 9월 8일 조선은 핵무력 정책을 입법화함으로써 마침내 ‘남조선해방전쟁’의 법적 근거를 확정하고 최종 절차를 마무리한 것이다.
3. 세 가지 북침 공격 징후가 나타났을 때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법령을 입법화하였다. 이 새로운 법령에는 조선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핵공격 조건이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명시되었다.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핵무기 또는 대량살륙무기공격이 감행되였거나 림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2)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이 감행되였거나 림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3) “국가의 중요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이 감행되였거나 림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4)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
5)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핵공격 조건은 조선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문턱을 크게 낮추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은 적대세력의 공격을 받은 전시상황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적대세력의 공격이 임박한 준전시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컨대,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이 동해 작전 수역에 출현하여 전술핵공격연습을 감행하는 경우, 조선은 북침 공격이 임박하였다고 판단하고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는 선제핵공격으로 ‘남조선해방전쟁’을 시작할 가능성이 비상히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이 핵무력 정책을 입법화한 새로운 법령에 선제핵공격권이 명시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 핵보유국들 가운데 선제핵공격권을 법령에 명시한 핵보유국은 조선밖에 없다. 미국의 확장된 북침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15에는 조선인민군의 대남공격이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는 선제핵공격권이 명시되었는데, 조선의 ‘남조선해방전쟁’ 작전계획에도 한미련합군의 북침공격이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는 선제핵공격권이 명시되었다. 조선이 한미련합군의 북침 공격이 임박하였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징후가 나타났을 때다.
1) 미국이 오산 미공군기지와 군산 미공군기지에서 F-16 전투기와 F-35A 스텔스전투기에 B-61 전술핵폭탄을 탑재하려는 징후가 나타났을 때
2)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이 동해 작전 구역에 출현하여 B-61 전술핵폭탄을 탑재한 F/A-18F 함재기를 출격시키려는 징후가 나타났을 때
이런 사정을 보면, 가뜩이나 위태로운 정전상태 속에서 조선인민군이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채택된 새로운 법령을 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와 관련한 모든 결정권을 가진다”고 규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이 핵무력을 사용하는 문제는 김정은 총비서의 결심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총비서가 핵무력 사용을 결심하는 순간, 조선의 선제핵공격이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이번에 채택된 새로운 법령에 의하면, 조선의 국가핵무력지휘기구는 김정은 총비서의 핵무기사용결정을 보좌하게 된다. 한미련합군의 북침 공격 징후가 나타났을 때, 김정은 총비서는 핵무력사용을 결심하게 되는데, 국가핵무력지휘기구는 그 결심에 따라 전술핵공격계획을 신속하게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핵무기의 사용조건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이 전쟁 확대와 전쟁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한 것이다. 만일 미국이 ‘남조선해방전쟁’에 무력 개입을 감행하여 전쟁이 확대되고 장기화되면, 인명피해와 전쟁피해가 증대될 것이므로, 조선은 미국이 ‘남조선해방전쟁’에 무력개입을 감행하기 전에 전술핵공격으로 한미련합군을 신속하게 제압함으로써 인명 손실과 전쟁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4. 북침 공격 징후에 대처하는 조선의 선제핵공격
해방전쟁에서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로씨야의 노보로씨야해방전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군에 정찰정보와 무장장비를 넘겨주고, 반로씨야 제재조치를 감행하는 식으로 노보로씨야해방전쟁에 깊숙이 개입하여 전쟁을 장기화시키고 인명손실과 전쟁피해를 증대시키고 있는데도, 로씨야는 전술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로씨야는 전술핵미사일 한 방으로 해방전쟁을 결속할 충분한 작전능력을 가졌는데도, 전술핵무기를 사용하지 하지 못하는 것이다.
로씨야가 노보로씨야해방전쟁에서 전술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까닭은, 우크라이나를 전술핵공격으로 제압하는 경우 그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로씨야에 전술핵공격을 가할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씨야가 우크라이나를 전술핵공격으로 제압하려면 유럽에 전진 배치된 미국군부터 전술핵공격으로 먼저 제압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노보로씨야해방전쟁(국지전)이 로씨야와 미국의 핵교전(전면전)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보면, 로씨야가 미국의 핵억제력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씨야 영토인 노보로씨야는 미국의 점령지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점령지다. 또한 미국군과 우크라이나군은 연합군으로 결속되지 않은 별개의 군대들이다. 그와 달리,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남조선은 미국의 점령지이고, 미국군과 한국군은 점령군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연합군으로 결속되었다. 이런 사정은 노보로씨야해방전쟁이 로씨야군과 우크라이나군 사이의 전쟁으로 한정될 수 있지만, ‘남조선해방전쟁’은 조선인민군과 한국군 사이의 전쟁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남조선해방전쟁’에서 조선인민군과 점령군 사이의 교전은 불가피하다. 중국의 대만해방전쟁도 인민해방군과 대만군 사이의 전쟁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이 중국의 대만해방전쟁에 무력 개입을 감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조선이 ‘남조선해방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점령군을 전술핵공격으로 제압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의 ‘남조선해방전쟁’ 작전계획은 조선인민군이 한국군을 전술핵공격으로 제압하는 작전계획만이 아니라 점령군을 전술핵공격으로 제압하는 작전계획, 그리고 조선인민군이 점령군을 전술핵공격으로 제압한 이후 미국의 보복핵공격을 억제하는 작전계획 등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이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한 것은 미국의 보복핵공격을 억제하는 작전계획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선의 전략핵무기는 미국의 보복핵공격을 억누르는 억제 수단이고, 조선의 전술핵무기는 한미련합군을 제압하는 공격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의 핵무력은 전략적 억제와 전술적 공격의 양면성을 지닌다. 조선의 핵무력이 지닌 양면성 중에서 전술적 공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1) 2022년 9월 현재 조선은 전술핵무기 10종을 보유했다. 조선은 핵보유국들 가운데 가장 많은 종류의 전술핵무기를 보유한 핵강국이다. 조선은 한미련합군을 전술핵공격으로 신속하게 제압해야 하기 때문에 그처럼 다종다양한 전술핵무기를 보유하였다.
2) 조선의 전술핵무기는 전부 갱도 기지에 들어가 있어서 한미련합군의 정찰을 따돌린다.
3) 조선은 한미련합군의 감시망에 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은밀하고, 신속하게 전술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4) 조선의 전술핵미사일은 빠른 속도로 주행하는 발사대차에 탑재되어 기동성이 매우 높고, 따라서 고속기동전에 적합하다.
5) 조선의 전술핵미사일은 황해북도 사리원에서 강원도 통천으로 이어지는 사리원-통천 축선 이남의 전선 지대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발사된 후 남반부의 타격목표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매우 짧으며, 따라서 한미련합군에 대응 시간을 주지 않는다.
6) 조선의 전술핵미사일은 좌우상하로 기동하는 변칙비행미사일 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극초음속미사일이므로 한미련합군의 반항공망을 간단히 뚫고 들어갈 수 있다.
7) 조선의 전술핵미사일은 변칙비행, 이중궁형 변곡비행, 극초음속비행, 저고도비행, 순항비행, 탄도비행 등 비행양태가 매우 다양하고, 여러 사격지점들에서 동시다발로 발사되기 때문에 한미련합군이 대응할 수 없다.
8) 조선의 전술핵폭탄은 일류신-28A 전술핵폭격기에 탑재되는데, 폭격기의 비행거리(2,100km)와 전술핵폭탄의 투하거리가 합산되어 타격 거리가 대폭 늘어났다. 조선은 일류신-28A 전술핵폭격기 80대를 보유했다.
9) 조선의 전술핵탄두는 소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에 탑재되었는데, 잠수함의 수중 작전 거리와 전술핵미사일의 사거리가 합산되어 타격 거리가 대폭 늘어났다. 소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조선의 잠수함은 한미련합군의 정찰을 완벽하게 따돌릴 수 있다.
10) 조선의 전술핵무기는 타격정밀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민간시설을 파괴하지 않고 한미련합군의 주요시설만 골라서 외과수술식으로 적출, 파괴할 수 있다.
11) 조선의 전술핵무기는 ‘남조선해방전쟁’을 72시간 안에 신속히 결속시키는 공격수단이다. ‘남조선해방전쟁’ 작전계획은 72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는 단기속결전계획이다.
‘남조선해방전쟁’에서 조선의 전술핵공격은 한미련합군의 북침 공격 징후에 대처하는 선제핵공격이다. 조선이 한미련합군을 선제핵공격으로 제압하려면, 24시간 핵전투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이번에 채택한 새로운 법령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은 핵무기 사용 명령을 즉시 집행한다”라고 규정되었는데, 김정은 총비서가 핵공격명령을 내리자마자 전술핵공격을 즉시 시작하려면 핵전투 태세를 24시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법령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은 핵무기 사용 명령이 하달되면 임의의 조건과 환경에서도 즉시에 집행할 수 있게 경상적인 동원태세를 유지한다”라고 규정되었다.
조선이 핵무력 정책을 입법화한 것은 ‘남조선해방전쟁’이 임박하였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바이든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매우 불길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징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남조선해방전쟁’이 임박하였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징후가 나타나 군사 전문가들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그것은 2022년 7월 4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전투 예비 물자의 보유상태 및 관리실태를 검열하고, 종장배비정형을 검열하라는 특별명령을 조선인민군 전군에 하달한 것이다. 종장배비라는 말은 전투물자를 보충하거나 재배치한다는 뜻이다. 전투 예비 물자 저장 시설에 대한 경비 문제와 전투 예비 물자 저장 시설을 한미련합군의 정찰에 노출되지 않게 위장하는 문제도 이번 최고사령관의 특별명령에 포함되었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받은 국방성과 총참모부는 검열조들을 각지에 파견하였다. 지난 시기에는 국방성과 총참모부가 자체 계획에 따라 전투 예비 물자와 종장배비를 검열했는데, 이번에는 최고사령관의 특별명령에 따라 전투 예비 물자와 종장배비를 검열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원래 조선에서 전투 예비 물자 검열은 2년마다 한 차례씩 진행된다. 2022년 3월 12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비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만단의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기 위해” 불시에 전투 예비 물자 검열을 진행했었다. 그런데 불시 검열을 진행한 때로부터 불과 4개월 뒤에 최고사령관의 특별명령에 따라 또다시 검열을 진행했다. 주목되는 것은, 지하갱도와 반지하시설을 신속히 건설하여 지상에 보관하고 있는 전투 예비 물자를 지하로 옮기라는 국방성과 총참모부의 명령이 하달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조선이 전투 예비 물자와 종장배비에 대한 검열을 이례적으로 4개월 만에 다시 시행했을 뿐 아니라, 지상에 보관하던 전투 예비 물자를 지하로 옮긴 것은 ‘남조선해방전쟁’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로 보인다.
▲ 라면업계 1위 농심이 주요 제품 가격을 오는 15일부터 평균 11.3%인상한데 이어 팔도는 다음달 1일부로 라면 가격을 평균 9.8% 인상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올해 외식물가 고공행진이 계속하는 상황에서 추석 명절 이후 서민음식의 대표 주자인 라면과 우유 가격이 크게 오를 것으로 보여 서민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12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고물가시대에 서민음식의 대표 주자 라면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특히 추석이 지나면 우유제품 가격도 더 올라갈 전망이다.
농심은 추석연휴 이후인 오는 15일부터 라면 26개 품목의 출고가를 평균 11.3% 올린다. 주요 제품인 신라면과 너구리는 각각 10.9%, 9.9%씩 인상되며, 대형마트에서 봉지당 평균 736원에 판매되고 있는 신라면의 가격은 약 820원으로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라면업계 1위인 농심이 지난달 24일 가격 인상을 발표하자 다른 라면업체들도 줄줄이 가격을 올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 팔도의 경우 다음 달 1일부터 라면 12개 제품 가격을 평균 9.8% 인상한다. 주요 제품의 인상 폭은 공급가격 기준으로 팔도 비빔면은 9.8%, 왕뚜껑 11.0%, 틈새라면빨계떡 9.9% 등이다.
오뚜기는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반면 삼양식품은 가격 인상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라면 업계 한 관계자는 "라면의 주재료인 팜유와 밀가루의 원료인 소맥 가격이 치솟으면서 팔아도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 현실화하고 있다"며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3~4분기에 라면 가격 인상이 유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경기도 내 한 마트에서 판매 중인 우유. (사진=강현수 기자)
추석이 지나면 우유제품 가격은 더 오를 전망이다. 특히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추석 전후로 올해 원유가격 인상분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판매처를 기준으로 볼 때 흰우유 제품 1ℓ 평균 가격이 3000원에서 3500원으로 16.66% 오를 수 있다.
현재 대형마트·백화점·편의점·슈퍼마켓 등에서 판매되고 있는 흰우유(1ℓ) 우유 제품 가격은 최소 2300원에서 최대 3690원에 거래되고 있다.
제품별로는 서울우유 흰우유(1ℓ)는 2350원에서 3100원에, 매일우유 오리지널(900㎖)은 2610~2800원에, 남양유업 맛있는우유GT(1ℓ)는 2650원~2990원에 판매되고 있다.
우유 제품 가격이 오를 경우 우유를 사용하는 주요 제품군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이에따라 우유를 재료로 사용하는 치즈와 아이스크림, 빵 가격 인상도 불가피하다.
앞서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의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 들면서 ‘도미노 인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맥도날드는 지나달 25일부터 주요 메뉴 가격을 평균 4.8% 인상했다. 대표 메뉴인 ‘빅맥’ 단품은 4600원에서 4900원으로 올랐다.
신세계푸드의 노브랜드버거도 40여 종 제품 판매 가격을 평균 5.5%(약 268원) 올렸다. 도미노피자는 피자 26종 가격을 일괄 인상했다. 라지 사이즈 피자는 1000원, 미디움은 500원씩 올랐다. 슈퍼디럭스 라지 피자 한 판이 2만7900원에서 2만8900원이 됐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당·포장재 등 원부자재와 함께 물류비, 인건비 상승으로 제조원가 부담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17일 취임 100일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그간 정부의 노력과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 115년 만의 기록적인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 직후였지만, 대통령의 발언에 '기후'라는 단어는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피해 지원과 복구'와 같이 이번 폭우를 자연재해의 일환으로만 대하는 인식을 드러냈다.
탈원전 폐기 반대 여론 높아
에너지 전환 기조도 들을 수 없었다. 반면 원전 산업의 부활에 대해서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스스로를 추켜세웠다. 윤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의 원전 산업을 다시 살려냈"고 원전 세일즈 외교 덕분에 해외 원전 발주 움직임이 시작됐다며 "앞으로도 제가 직접 발로 뛸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전 세일즈맨'으로서의 대통령 이미지가 지지율을 올리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는지 모르지만, 여론은 반대였다. CBS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탈원전 정책 폐기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만 18세 이상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 결과 '탈원전 정책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47.5%, '탈원전 정책은 폐지되어야 한다' 응답은 37.8%로 조사됐다.
원전 확대는 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에너지 전환 정책 방향과 차별화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탄소중립부터 한전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이르는 문제를 해결할 가장 중요한 해법이 원전 활용이라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특히 올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촉발된 국제 에너지 가격 인상과 공급망 불안은 각국이 '에너지 안보' 이슈에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윤석열 정부는 에너지 위기에 따른 해외 국가들의 원전 회귀 움직임을 국내 원전 확대 정책의 주요 명분으로 내세운다. 이와 관련한 해외 정책 동향을 살펴보는 한편 한국의 상황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도 분석하고자 한다. 아울러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돌파하기 위해 원전 확대는 불가피하고 효과적인 대안인지도 따져본다.
▲ 고리원자력발전소. ⓒ함께사는길(이성수)
유럽이 친원전으로 회귀? 사실은
우선, 최근 각 정부의 원전 정책에 변화가 있는 건 사실일까. 러시아 침공에 따른 가스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유럽의 경우,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는 한편 재생에너지 목표를 상향하기로 했다. 지난 6월 영국의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유럽 27개국이 발표한 정책에 따라 2030년 전력 비중의 변화가 예상된다. 2030년 화력발전 비중은 기존 26%에서 18%로 하락하는 반면 재생에너지 비중은 기존 55%에서 63%로 높아졌다. 원전 비중은 19%로 그대로 유지된다. 에너지 위기를 맞은 유럽 국가들이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다만, 일부 국가는 원전 정책을 수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의 최대 원전 운영국인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원전이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9%에 달하는 프랑스는 원전 비중을 낮출 방침이었지만 올해 2월 원전 부활을 선언하며 25기가와트(GW) 규모의 원전 14기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프랑스 원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원전 건설 공사기간과 비용은 계속 상승 추세다. 프랑스전력공사(EDF)가 건설 중인 플라망빌 3호기 원전은 당초 33억 유로의 건설 비용으로 2012년 완공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원전은 아직 건설 중이며 준공 예정일은 2023년으로 연기됐고 건설 비용 역시 127억 유로로 껑충 뛰었다. 올해 역대급 가뭄으로 프랑스 원전 절반이 가동을 멈추는 등 프랑스전력공사 재정 악화도 문제다. 프랑스의 원전 확대 계획이 실제 현실화될지 낙관할 수 없는 이유다.
벨기에의 경우, 애초 2025년 원전을 모두 폐지하기로 했지만, 러시아발 위기에 따라 지난 3월 원전 가동을 10년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수명 연장 대상은 도얼 4호기와 티앙주 3호기 등 원전 2기다. 다만 벨기에 정부는 원전 운영사인 프랑스 업체 엔지와 원전 수명 연장과 관련한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앞서 엔지는 벨기에 정부 발표에 대해 원전 수명 연장에 따른 안전 문제와 규제 불확실성이 크다며 상당한 의구심을 표한 바 있다. 최근 벨기에 총리는 올해 말까지 최종 합의에 도달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외에, 그리스와 불가리아가 원전 공동 건설과 관련해 협의 중이다.
독일이 올해 말로 예정된 최종 원전 폐쇄 일정을 번복하고 녹색당마저 친원전으로 '유턴'했다는 식의 국내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사민당)와 로버트 하벡 경제기후보호장관(녹색당)은 반복적으로 탈원전 기조를 분명히 해왔다. 그럼에도 국내에 독일의 원전 정책 번복이라는 식의 보도가 나오게 된 배경은 원전 수명연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자민당)의 발언 때문이다.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독일 정부는 원전 수명 연장이 타당한지와 관련해 8월 말까지 진행되는 전력계통에 대한 2차 평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앞서 3월에 진행된 1차 평가에서는 원전 수명 연장이 현재 에너지 위기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에너지 위기를 재생에너지 확대 기회로 삼는 유럽
국내 언론이 주로 소개하는 유럽 동향을 보면, 원전을 확대하거나 폐지를 유예하겠다는 발표가 있긴 했지만, 이는 일부 국가, 특히 프랑스 같이 원전 의존도가 전통적으로 높은 국가들에 국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마저도 원전 비용 상승과 강화된 안전 규제에 따라 건설 계획이 이행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원전으로 회귀하는 흐름을 대세라고 보기에는 무리라는 의미다.
유럽 국가들의 탈원전 정책에 다소 제동이 걸리거나 원전 활용으로 일부 회귀하는 흐름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여기엔 한국 사정과는 다른 차이점이 있다. 첫째, 유럽은 러시아 화석연료 수입 의존을 완전히 그리고 신속하게 줄이려는 강력한 행동을 취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발표된 유럽연합의 '리파워이유(REPower EU)' 계획은 러시아산 화석연료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이루고 녹색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목표와 방향을 담았다.
2030년까지 에너지 소비량 감축 목표를 기존 9%에서 13%로 상향하고, 재생에너지 1차에너지 비중 목표도 기존 32%에서 45%로 높였다. 발전량을 기준으로 하면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는 69%로 올라간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2100억 유로의 신규 투자가 필요하지만, 화석연료 수입 비용을 줄여 해마다 1000억 유로를 절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연합 내 러시아 화석연료 최대 수입국인 독일의 경우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석유와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할 예정이다. 가스의 경우, 2024년 여름까지 러시아 수입을 종료할 계획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러시아 화석연료 수입을 줄이려는 특별한 정책 방향을 발표하지 않았다. 기후 에너지 분석기관인 <에너지청정대기연구 센터(CREA)> 데이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100일 동안 한국은 화석연료 구입비로 약 30억 유로를 러시아에 지불했다. 한국의 러시아 화석연료 수입액 규모는 석탄 5위, 석유 7위, 천연가스 8위로 나타났다.
에너지 위기를 맞아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도 없다. 정부가 지난 6월 23일 '시장원리 기반 에너지 수요효율화 종합대책'을 발표해 2027년까지 에너지 소비량 감축 목표를 제시했지만, 이전 정책 목표보다 후퇴됐다. 국내 에너지 소비량은 2000년 이후 연평균 2.3% 증가하는 추세지만, 정부가 에너지 감축에 대해 무기력한 신호를 보낸 셈이다. 올여름 전력 수요 역시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책 초점이 에너지 소비 감축보다는 원전과 같은 대규모 발전원을 통한 공급 위주로 여전히 맞춰져있다는 방증이다.
또 다른 뚜렷한 차이는 에너지 위기를 재생에너지 확대 기회로 삼는 데 있다. 원전 확대는 매우 일부 국가에 한정된 움직임인 반면, 재생에너지 보급 촉진은 공통적 추세다. 화석연료 가격이 크게 솟구치면서 재생에너지 경쟁력 역시 올라갔다. 재생에너지는 프로젝트 개발과 공사 기간이 짧아 단기적으로 화석연료를 대체해 에너지 안보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운영 과정에도 원전이나 화력발전처럼 연료비가 들지 않아 장기적으로 에너지 요금을 줄이는 데도 긍정적이다.
앞서 프랑스가 25GW의 원전을 추가 건설하겠다고 소개했지만, 재생에너지 확대 규모는 이를 넘어선다. 프랑스는 2050년까지 해상풍력 40GW, 육상풍력 37GW를 확대할 계획이다. 독일은 2030년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을 기존 65%에서 80%로 상향하기로 했다.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는 지난 5월 북해에 2050년까지 해상풍력 150GW를 공동 개발하는 사업 계획에 합의했다. 영국은 내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15% 확대하고, 2035년까지 태양광을 5배로 늘릴 계획이다. 50GW 규모의 해상풍력도 추진한다. 유럽 19개국은 코로나19와 에너지 위기를 지나는 지난 2년 사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더 강화하기로 발표했다.
최근 극적인 소식은 미국에서도 들려왔다. 지난 8월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막대한 투자 방안을 포함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면서 이를 법률로 확정했다. 이 법의 핵심 목표는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고 고유가로 인한 국민 에너지 비용부담을 줄이며,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로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4400억 달러의 정책 지출 예산 중 3750억 달러(약 489조 원)는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40% 감축하기 위한 사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재원은 연 매출 10억 달러 이상의 대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마련된다. 청정에너지 공급망 전반에 약 600억 달러를 투자하여 2030년까지 태양광 패널 9억5천만 개, 풍력발전기 12만 기, 배터리 발전소 2300개를 가동할 예정이다.
원전 올인에 기후도 국민도 뒷전인 한국
재생에너지 확대에 막대한 투자 흐름에 따라 세계 에너지 산업의 지형 변화가 예상된다. 이는 무역뿐 아니라 국내 산업과 일자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글로벌 기업들의 RE100(재생에너지 전력 100% 조달) 이행 요구와 미국과 유럽 등의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같은 새로운 무역장벽에 대비하지 않는 상태를 방치하다간 국내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속도 조절'하겠다며 뒷전인 반면 원전 산업계 살리기에만 올인하겠다는 식의 기조에 매몰돼있다. 윤석열 정부의 원전 부흥 정책에 기후도 국민의 살림살이도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함께 사는 길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지난 밤늦게 잠들었는데도 오전 4시에 눈을 떴다. 추석 당일 아침 차례를 드리기까지 여유가 있어 눈을 다시 붙여도 되건만 잠이 오질 않았다. 모든 제수를 미리 손질하고 진설만 하면 되는데 왠지 모르게 새벽부터 마음이 부산하다. 차를 마시며 잠시 1970년대 초반 우리 집 추석 풍경을 떠올린다. 그때 아버지는 내가 지금 하는 것처럼 추석 차례를 준비하며 추석을 맞았다. 식구들은 아버지 따라 제주를 올리고 제례를 지냈다. 차례상 병풍에는 내게 조부모 되는 어르신 영정사진 대신 지방(紙榜)이 자리하고 있었다.
차례를 마치자 아버지는 우리에게 수고했다며 상을 물리라 지시했다. 나는 뜬금없이 아버지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지 않고 언제 돌아가셨는지 모르는데 왜 차례를 지내는지 따져 물었다. 그때 아버지는 당돌한 내 물음에 특별한 말이 없었다.당시 북에 가족을 둔 이산가족들은 귀향할 곳이 없어 이렇게 추석을 보냈다. 갓 대학에 입학한 나는 쓸쓸한 아버지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염장을 질렀다. 그리고 이런 추석 분위기는 대를 이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추선 연휴 이산가족들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심란하다. 이산가족 후손으로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70여 년 세월이 흘러도 실향세대의 귀향 염원은 후손들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추석 목전에 제기한 이산가족 문제, 씁쓸한 이유
▲ 8일 권영세 통일부장관이 이북5도청에 열린 이산가족의 날 행사에서 이산가족을 격려하고 있다.
지난 8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북한당국에 남북이산가족 회담을 제의했다. 남북 간 생사확인, 서신교환 및 수시상봉 등 이산가족의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당장 가능한 모든 방법을 활용하고 장소와 시기는 북한에 일임한다는 취지도 덧붙였다.
그러나 대다수 이산가족은 권영세 장관의 제안이 반갑지 않다. 따지고 보면 회담 제의는 늘 같은 어조이고 예전의 제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이 호응할 리도 만무하다.
가뜩이나 추석연휴를 코앞에 두고 회담 제안이라니, 이산가족에게 변죽만 울리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추석 밥상에 화젯거리를 추가하고 이산가족을 정치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는 일부 비판도 면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산가족 메시지도 빈말에 불과하다. 이 문제를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새 정부가 지난 정부와 달리 이산가족 문제에 전향적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역시 공허할 뿐이다.
통일부 장관이 회담을 제안한 이날은 41회 이산가족의 날이다. 민간단체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추석 이틀 전인 8일을 이산가족의 날로 정해 오래전부터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이날 통일부 장관은 이북5도청 행사장을 찾아 이산가족들을 위로 격려했고, 통일부와 적십자는 이산가족을 위로하는 덕담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의례적인 행사가 아닌 이산가족들이 실감하는 획기적인 조치가 절박한 시점이다.
이산가족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 서둘러야
▲ 8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서울사무소 별관 이산가족민원실에서 직원들이 지난 8월말까지 접수된 이산가족 신청 현황을 확인하고 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이날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북한에 공식 제의했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이산가족 생존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현재 남한의 이산가족 생존자는 4만3천746명으로, 90세 이상 1만2천856명, 80대 1만6천179명, 70대 8천229명 등 대부분 고령자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사망한 이산가족 신청자만 2천504명에 이른다.
이산가족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도 하세월이다. 2013년 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지만 폐기됐다. 20대 국회도 시간을 끌다 폐기하고 말았다.
21대 국회도 이산가족의날 기념일 제정안을 계류하고 있지만 통과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회 스스로 이산가족을 위로하고 지원하는 국내법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북 간 이산가족상봉 제안은 한낱 허구일 뿐이다.
2000년 8월 시작한 이산가족 상봉 실적도 초라하다. 이산가족정보시스템 교류 일지에 보면 28회에 걸친 상봉행사(7차례 화상상봉포함)를 통해 3000여 명이 상봉했다. 이는 이산가족 신청자의 2.28%에 불과하다. 내 주변에도 상봉을 신청한 실향민이 많지만 선정돼 상봉의 꿈을 이룬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 상봉을 기다리다 지쳐 돌아가셨다. 2018년 8월 금강산 이산가족상봉 이후 상봉문제는 겉돌고 있다.
이산가족 유관단체들이 추산하는 700~800만 명 정도의 이산가족에 비해 상봉신청자는 13만여 명에 불과하다. 이 숫자는 2017년 이후 답보상태다. 추가신청자가 더는 나타나지 않고 고령자들이 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청자의 고령화로 2016년 2월부터는 사망자가 생존자를 앞지르고 있다. 그럼에도 이산가족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고 국민적 공감대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산가족등록현황에 따르면 이산가족 신청자는 올 8월 현재 13만 3654명, 생존자는 4만 3746명(33%), 생존자 중 80세 이상 고령자는 2만 9035명으로 66.4%다. 이들은 6·25전쟁 당시 10~20대 젊은이들로 실향의 아픔을 직접 경험하고 증언해줄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마저 돌아가시면 이산가족 개념 자체가 역사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는 신청자뿐 아니라 미신청자 다수도 북한에 좌우되는 상봉행사에 더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걸 반증하기 때문이다.
이산가족들에게 자부심 심어주는 대한민국
▲ 8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서울사무소 별관 이산가족민원실에서 직원들이 남측 이산가족의 모습을 담아 북측 전달용으로 모아둔 이산가족 영상편지 자료를 확인하고 있다.
평화의길, 통일의길, 평화철도,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AOK 등 다양한 통일운동 단체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해왔던 정용일 전 [민족21] 편집국장이 9월 4일 뇌출혈로 쓰러져 9월 6일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고인이 참여했던 단체들을 중심으로 ‘통일운동가 고 정용일 동지 민주사회장’으로 치렀고, 고인은 9월 8일 오전 11시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1980년대 대구지역 학생운동 시절부터 고인과 인연을 맺어 민족21과 평화의길에서 함께 활동해온 안영민 평화의길 사무처장(전 [민족21] 대표)이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보내왔다. / 편집자 주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치된 정용일 전 [민족21] 편집국장. 묘역 영결식 참가자들이 함께 모였다. [사진제공-안영민]
“형이 쓰러졌어요. 아무런 의식이 없어요. 어떡하면 좋아요.”
9월 4일 저녁 7시 30분, 전화기 너머로 통곡하며 외치는 정면(전 [민족21] 디자이너)의 목소리였다. 가슴이 쿵 했다. 119 구급대의 다급한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급히 집에서 나와 차를 몰았다. 그새 ‘은평성모병원으로 가고 있어요’라는 문자가 떴다. 우선 전대협 시절 용일 형과 함께 활동했던 정명수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말하고 빨리 병원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빗속을 어떻게 운전해서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휴일 저녁에 전해온 뜻밖의 비보(悲報)
8시 40분 은평성모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보호자 1인 외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발만 동동 굴렀다. 잠시 후 환자가 워낙 위급한 상황이다 보니 한 사람 더 들어와도 좋다고 했다. 그렇게 들어간 응급실 안에서 넋이 나가 울고 있는 면이를 만날 수 있었다.
곧이어 담당 의사가 나왔다. 현재로선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출혈이 심하고, 발견된 시간도 많이 늦었다고 했다. 의학적으로는 ‘뇌사’ 상태라는 것이다. 지금 바로 수술을 한다 해도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연명 치료를 할지 말지 결정해달라고 했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족들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동지들도,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비보(悲報)였다. ‘평화의길’ 사무실에서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대며 함께 했는데, 불과 며칠 전에도 막걸리 한 잔 하며 통일운동 진로와 평화의길 사업방향을 토론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질 수 있는지…….
울고 있는 면이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잠시 밖으로 나와 정명수 형과 상의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다는데, 수술도 연명 치료도 결국 형에게 더 큰 고통만을 안겨줄 뿐이다……. 냉정한 현실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응급실로 들어가 면이를 만났다. 어렵사리 상황을 설명했다. 그 순간 쌍둥이 오누이 여산이, 여운이가 떠올라 북받치는 울음을 참기 힘들었다.
병원의 안내를 받아 형이 누워 있는 응급 병동 중환자 병실로 들어갔다. 형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곁에서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간혹 몸을 뒤척였지만 무의식의 반응일 뿐이었다. 면이와 함께 형의 손발을 주무르며 계속 말을 걸었다. 하지만 형은 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우리는 떠나보낼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는데……
면이가 자꾸만 자책했다. 오후 3시 10분쯤 볼일이 있어 외출하고, 형이 쌍둥이를 돌보고 있었단다. 저녁 6시쯤 형에게 전화를 했는데 통화가 안 됐단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전화를 못 받나 싶었단다. 7시 10분쯤 집에 돌아와 보니 형은 침대 아래 누워 있었단다. 그때는 그냥 잠이 들었나보다 싶었단다.
아이들한테 “아빠 깨워.” 했더니 “아빠가 안 일어나.”라고 했단다. “그럼 아빠 다리를 밟아서라도 깨워.” 했는데, “엄마, 그렇게 했는데도 안 일어나.”라고 했단다. 그래서 형을 깨우러 와서 보니 그때서야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진 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형이 집에서 언제 쓰러졌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쓰러진 아빠를 아이들은 잠을 잔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내가 집에 있었다면……. 내가 외출하는 바람에…….”
고인과 가족들의 단란한 시절. [사진제공-안영민]
끝없이 자책하는 면이를 우선 달랬다. 함께 형 곁에 앉아 손발을 주물렀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형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새벽 1시, 형은 결국 면회가 차단된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병원을 나서며 생각했다. 형을 이렇게 보내야만 하나. 기적은 정말로 일어날 수 없는 걸까. 우리는 그 누구도 형을 떠나보낼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는데…….
형의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쓰러진 다음날인 5일 저녁부터 전반적인 수치가 모두 떨어지기 시작했다. 언제든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상태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장례식을 생각했다. 하지만 차마 이 말을 면이에게 꺼낼 수가 없었다. 이제 겨우 일곱 살인 여산, 여운 쌍둥이 남매. 아버지의 죽음이 뭔지 실감할 수도 없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어찌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를 수 있단 말인가. 형을 아는 우리가, 남은 동지들이, 그의 마지막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주 노릇을 내가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형이 참여했던 여러 단체들, 평화의길, 통일의길, 평화철도,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전대협동우회……. 각 단체로 급히 연락했다. 오늘밤이 고비라고, 만약 형이 세상을 떠난다면 우리가 함께 장례를 책임져야 한다고. 그렇게 해서 각 단체에서 모인 책임자들이 장례위원회의 얼개를 짜고 바로 실행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
밤 12시가 넘어 후배가 잡아준 숙소에서 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태풍이 몰고 온 비바람이 대지를 적시고, 슬픔의 눈물이 밤새 내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병원으로 갈 준비를 하는데 7시 15분쯤 면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태가 심각하니 빨리 중환자실로 올라오라고 통보가 왔다는 것이다. 서둘러 병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중환자실로 올라가는 사이, 형은 사랑하는 가족과 동지들을 남겨두고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 7시 36분이었다.
심장이 멎은 형의 모습을 눈물로 지켜봤다. 어린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심정이 과연 어땠을까.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슬퍼할 새가 없었다. 바로 SNS에 공지를 올리고, 장례위원회 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면서 장례식장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분주하게 연락을 취했다. 전날 밤 미리 기사를 작성해둔 연합뉴스 이충원 기자도 빠르게 부고 기사를 올려주었다. 그렇게 장례식 첫날이 시작됐다.
대대협의 ‘정차’
대학시절 동료들과 함께 봉화에서. [사진제공-안영민]
내가 형을 처음 만난 건 대구에서 학생운동을 할 때였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후배들은 형의 이름도, 출신 학교도 몰랐다. 그저 우리에게는 ‘정차’ 형이었다.
‘정차’라는 별칭의 내막은 이랬다.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8월 19일 전국적 규모의 학생조직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결성됐다. 이에 발맞춰 대구에서도 대구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대대협)가 결성됐다. 이때 용일 형이 맡은 직책이 대대협 정책차장이었다. 그래서 붙은 별칭이 ‘정차’였다.
정책국장도 아닌 정책차장, 하지만 형은 당시 대구지역 학생운동을 총괄하는 지도핵심이었다. 외형적으로는 총학생회와 총학생회장이 운동의 지도부였지만, 이들을 배후에서 지도하던 비공개 핵심이 바로 ‘정차’ 형이었던 것이다. 형은 1986~87년 당시 학생운동의 비공개 핵심조직이었던 ‘반미청년회’의 회원으로 대구지역의 조직사업을 총괄하고 있었다. 반미청년회는 1986년 10월 애학투련 사건(소위 건대항쟁)을 겪으며 기존 써클 중심의 운동 방식을 극복하고 학생회 중심의 새로운 대중운동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던졌다. 형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대구지역에 적극 전파했다. 학생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새로운 길을 앞장서 열어나간 것이다.
1980년대 말 대대협 시절의 '정차' 정용일 [민족21] 편집국장. [사진제공-안영민]
대대협 시절 형은 정책은 물론 연대사업까지 책임졌다. 전대협 중앙과 대대협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대구지역의 주요 대학은 물론 중소 규모 대학과 경북 지역 대학, 나아가 전문대까지 포괄하면서 정열적으로 조직사업을 펼쳐 나갔다. 그 결과 대구지역 학생운동은 질적 양적으로 성장해나갔다. 1989년 대대협이 대구경북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대경총련) 준비위원회로 발전해나갈 때, 대구는 물론 경산, 구미, 안동, 경주 등 대부분 대학에서 학생회를 세워 내고 학생운동의 핵심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기에는 각 대학을 돌며 조직사업에 몰두했던 형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후배들은 학생회실에서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정세를 토론하고, 새벽이 되어서야 의자를 붙여놓고 새우잠을 청하던 ‘정차’ 형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 형은 사상과 이론 문제에서 막힘이 없었다. 또한 후배들의 어떤 고민이든 풀어주고 질문에 답해주었다. 이런 형을 우리는 ‘정차’ 형이라 부르며 참으로 믿고 따랐다.
1989년 말부터 형은 조직사업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활동을 하나둘씩 정리했다. 형의 신원을 확인하고 추적해 들어오는 공안당국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시작된 수배생활은 1994년까지 이어졌다. 김영삼 문민정부 들어서고도 한참 후에야 형에게 내려진 수배조치는 해제됐다. 1995년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형은 서른두 살의 나이로 뒤늦게 군에 입대했다. 너무 많은 나이 때문에 당시 방위제도가 없어지고 새로 만들어진 공익요원으로 발령받았다. 형은 계명대 뒷산인 와룡산의 산불감시원으로 복무하며 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민족21]의 ‘정국장’
2000년대 중반 [민족21]에 근무하던 시기 동료들과 함께(가운데가 고인). [사진제공-안영민]
1994년 봄, 나는 1993년 8월 창립한 전대협동우회의 지역모임인 대구경북지역동우회 조직을 위해 몇 년 만에 정차 형을 만날 수 있었다. 나 역시 1991년 경북대 총학생회장 활동으로 수배를 받아 경찰에 쫓기면서 형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수배 해제 이후 다시 만난 형과 지역 활동에 대한 전망을 세우는 것도 잠시, 나는 그해 6월 구국전위 사건으로 구속되고 말았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나는 형과 다시 오랜 시간 떨어져 있게 됐다.
1996년 가을에 출소한 나는 가족이 있는 서울에 눌러앉았다. 형의 소식은 간간이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정도였다. 2001년 봄, 민족21이 창간된 후 형은 누구보다 반가워했다. 6.15선언 실천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적극 환영했다. 그러면서 통일언론의 필요성과 지속가능성을 볼 때마다 강조했다. 그러다 2002년부터는 민족21의 대구지사장을 맡아 민족21 보급과 열독 운동에 앞장섰다.
2003~2004년 무렵 나는 통일운동의 새로운 방식과 내용을 모색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형을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민족21 기자인 내게 형은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남쪽 민중들이 북에 대한 객관적인 현실에 눈을 뜰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방북취재의 물꼬를 튼 민족21이 북을 왕래하고 교류하면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런 형에게 나는 “형도 민족21에 힘을 보태 달라.”고 요청했다. 우선은 민족21에서 교정 아르바이트라도 해달라고 제안했다. 형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비록 아르바이트이지만 젊은 후배 기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이 인연이 돼 민족21 사무실을 자연스럽게 드나들었던 형은 2006년부터 취재부장을 맡아 민족21에 공식 합류했다.
민족21은 형에게도 꼭 맞는 옷이었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다독가였던 형은 정세를 바라보는 눈이 남달랐고, 특히 북에 대한 이해가 탁월했다. 민족21 시절 형은 묵직한 인터뷰 기사를 도맡았다. 문정인, 정세현, 임동원 등 당대의 남북관계 전문가들과 진행하는 인터뷰에서 형은 인터뷰이들과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또한 깊이 있는 질문 속에 수준 높은 대담을 진행했다. 그런 과정 속에 2009년부터는 편집국장을 맡아 민족21을 진두지휘해나갔다.
진심을 다해 존경했던 사람, 안재구
2020년 7월 ‘통일애국지사 고 안재구 선생 민주사회장’ 장면. 고인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안재구 선생 추도식에서 사회를 봤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형과 내게 시련이 닥친 것은 2011년 7월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은 ‘조선로동당 정찰총국 지령 받아 종북잡지를 발행해왔다’는 얼토당토않은 간첩 혐의로 민족21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국정원의 표적은 당시 편집주간이었던 나와 편집국장이었던 형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의 수사는 흐지부지되었다. 나는 회합통신 혐의로 기소됐지만 7년의 재판 끝에 집행유예 형으로 끝났고, 형은 기소조차 되지 않은 채 수사가 마무리됐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당시 국정원의 수사기록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안재구 교수가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을 수 없어서 대신 오랫동안 검증해온 정용일을 조직사업의 후계자로 삼고 지도해왔다.”
실로 어처구니없고 실소가 나오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민족21에서 일하던 당시 형은 나의 아버지인 안재구 교수를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형이 20대 시절부터 진심으로 존경해왔던 안재구 교수의 회고록을 써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남로당 문제부터 전쟁 이후 남쪽의 변혁운동이 어떻게 뿌리를 잃지 않고 버텨냈는지, 4.19 직후 다시 혁신운동으로 부활하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인혁당, 남민전으로 이어지는 대구지역 변혁운동의 생생한 역사를 형은 아버지로부터 듣고 싶어 했다.
그런 기대 속에 여러 차례 만나 식사도 하면서 아버지의 증언을 들었던 것이다. 이를 국정원은 마치 두 사람의 관계가 무슨 조직적 관계라도 되는 양 의심의 눈으로 감시해왔고, 2011년 7월 안재구 교수와 아들인 나, 그리고 정용일을 엮어서 조직사건을 터뜨리려고 했던 것이다.
형은 안재구 교수의 평전 작업을 본인의 일생 목표로 세웠지만, 민족21 사건으로 그 목표는 중도에 꺾여야만 했다. 2016~17년 뒤늦게 인터뷰를 재개하며 다시 작업을 시작했지만, 이때는 안재구 교수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인터뷰를 지속하지 못했다. 그 뒤로는 형도 건강이 나빠지면서 작업은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이제는 인터뷰 자료만 남겨 놓고 아버지도 형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
다시 '평화의 길'에서 심장이 뛰다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열린 고인의 영겷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는 명진 스님. 고인은 명진 스님이 이사장으로 있는 '평화의 길'에서 함께 일했다. [사진제공-안영민]
민족21 이후 형과 내가 다시 한 공간에서 만난 것은 ‘평화의길’에서다. 민족21은 국정원 압수수색 사건 여파로 2013년 끝내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 질질 끄는 재판에 시달리던 나는 집에서 육아에 몰두하며 칩거 중이었다. 형은 형대로 악화된 건강을 돌보며 새로운 진로를 모색 중이었다. 나의 칩거는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점점 길어졌다. 형의 모색 또한 2013년 결혼과 2016년 쌍둥이가 태어나면서 단편적이고 분절적으로 흘러갔다.
그러던 우리의 가슴을 다시 들끓게 만든 것은 2018년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었다. 6.15선언과 10.4선언의 뒤를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4.27선언은 새로운 통일정세를 예고했다.
우리의 심장도 새롭게 뛰기 시작했다. 민족21은 비록 문을 닫았지만 새로운 통일정세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했다. 그런 마음들이 명진 스님을 중심으로 다시 하나로 뭉쳤다. 명진 스님은 민족21의 발행인으로 오랫동안 우리를 이끌어주셨던 분이다. 물욕과 권력욕으로 만신창이가 된 불교계를 비판해왔던 개혁적인 불자들도 명진 스님을 중심으로 다시 모여들었다. 이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만든 것이 바로 ‘평화의길’이었다.
2018년 11월 5일 창립한 ‘평화의길’은 4.27선언과 9.19선언의 실천대오였다. 우리는 지난 시절 평화통일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대중적 평화통일운동, 일상적 평화통일운동을 추구했다. ‘내 마음의 평화, 우리 이웃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라는 모토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향이자 좌표였다.
여러 단체의 각종 ‘위원장’을 맡다
10년 가까운 칩거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나와 달리 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새로운 방식과 내용의 평화통일운동을 고민해오고 있었다. 평화의길 이전에 통일의길 결성에도 적극 참여해 교육위원장을 맡았고, 평화철도 결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해 사무처장을 거쳐 정책위원장을 맡았다.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에서도 도원결의한 창립멤버로 홍보위원장을 맡았다. 해외동포들의 새로운 통일운동 조직인 AOK에서도 기획위원장을 맡아 적극 참여했다. DMZ생명평화누리동산에도 힘을 보태 통일교육사업단에 참여했다.
이처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는 사양하지 않고 겹치기로 출연했다. 여러 단체에서 진행하는 강연과 토론회, 세미나와 발표회에서도 토론자가 아니면 사회자로 참여했다. 그러면서 기자 출신답게 각종 매체에 기고 활동도 등한시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쪼개며 활동하는 동안 건강이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몸이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되면 몇 달씩 요양하기도 했다. 그러다 몸이 회복되면 다시 활동에 나서는 일이 반복됐다. 모임이 잦아지면서 술 약속도 많아졌다. 독주로 과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막걸리 한두 통에도 후유증은 계속 쌓이는 법이다.
2022년 들어 형의 건강은 다시 악화됐다. 2월에 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해서 대형병원에서 종합검진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진료 의사는 “무조건 술을 끊고 활동을 중단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형에게 진심으로 충고했다. 딱 석 달만 활동을 중단하고 건강 회복에만 집중해보자고 했다. 형은 나의 충고대로 따라줬다.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종종 연락을 해보면 새로 이사한 집에서 쌍둥이 챙기면서 푹 쉬고 있다고 했다. 면이에게 연락을 해봐도 “형이 술도 끊고 건강에 부쩍 신경을 쓴다.”며 달라진 형의 모습을 전해주었다. 몇 달 후 만난 형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한눈에도 건강이 많이 좋아진 듯 보였다.
징검돌 하나 놓고 사라지는 삶이라지만……
그런데 그게 독이었다. 아마도 7월부터였을 게다. 몸이 좀 좋아졌다 싶으니 다시 밀린 숙제하듯 활동을 벌여 나갔다. 약속이 늘고, 자연스레 술자리도 많아졌다. 한두 잔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술자리가 점차 길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때 독하게 말렸어야 했다. 이럴 거면 다신 안 보겠다고 소리라도 쳤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내가, 또 우리가 그 때문에 지금 얼마나 통탄하고 있는지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형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평화의길을 창립할 당시 우리는 기쁨과 희망에 들떴다. 새로운 평화의 길, 통일의 길에서 다시 우리의 열정을 불살라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기쁨과 희망이 사그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북 정상의 합의가 수포로 돌아가고,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무기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우리의 가슴도 어디 한 곳이 턱 막힌 것만 같았다.
특히 윤석열이라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자가 대통령이 되고나서부터는 형도 나도 깊은 침묵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아픔이 어찌 쉽게 가실 수 있으랴. 아무리 뛰어난 운동가라도 그 역시 희로애락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다. 힘들고 괴로운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정용일, 그가 품었던 이상이 너무 숭고했기에 슬프다. 그가 발 딛고 있었던 현실이 너무 척박했기에 슬프다. 운동가의 삶이 당대에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징검돌 하나 놓고 사라지는 생이라지만, 그래도 늦은 결혼으로 오십이 넘어서야 느꼈던 행복, 일곱 살 쌍둥이의 재롱을 보며 시름을 달래던 그런 소박한 행복조차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현실이 슬프다. 그래서 정용일, 그를 떠난 보낸 오늘이 아주 오래도록 우리의 주변을 맴돌며 우리를 끝없이 지켜볼 것만 같다.
“평화로운 통일세상, 아빠 대신 우리가 이루어줄게”
9월 7일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통일운동가 정용일 동지 민주사회장’ 추도식 장면. 수많은 지인들이 빈소를 찾았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태풍은 물러가고 있었지만 추석을 코앞에 두고 장례식을 준비하며 걱정이 태산 같았다. 형이 마지막 가는 길, 그래도 쓸쓸하지 않았으면 싶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빈소가 차려진 첫날 오후부터 형의 동지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형이 참여하고 있었던 여러 단체의 선후배들과 전대협, 대대협 시절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 형의 죽음을 가슴아파하는 수많은 지인들이 줄지어 빈소를 찾아왔다.
9월 7일 저녁 7시 30분에 열린 추모식장은 눈물로 가득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형의 아이들, 여산 여운 쌍둥이 남매를 보면서 다들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 우리는 함께 다짐했다.
“여산아 여운아, 아빠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우리가 이야기해줄게. 아빠가 너희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평화로운 통일세상, 누구나 행복한 평등세상을 아빠 대신 우리가 꼭 이루어줄게.”
고인의 추도식에서 호상 인사를 하고 있는 필자인 안영민 전 [민족21] 대표. [자료사진-통일뉴스]
추모식에서 대대협 2기 의장으로 형과 함께 활동했던 임채도(1988년 경북대 총학생회장,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은 형의 삶에 대해 이렇게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민청학련의 여정남 선생, 그리고 남민전의 이재문 선생 이후에 우리 대구경북지역이 다시 조국 역사에 바친 인물이 정용일 선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뜨거운 심장! 온화한 사람! 통일운동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온 모두의 동지, 정용일. 9월 8일 오전 11시, ‘통일운동가 고 정용일 동지’는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불굴의 한 길 인생을 마감하고 고단한 몸을 뉘었다. 그를 우리는 심장에 남는 사람으로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그의 남김 없는 사랑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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