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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확실한 안정세 들어섰단 믿음 생기면, 설연휴 전 방역 완화 검토”

장윤서 기자 blackdog@vop.co.kr
발행 2021-02-01 10:32:51
수정 2021-02-01 10: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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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 (자료사진)
정세균 국무총리. (자료사진)ⓒ정의철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1일 “이번주 상황을 지켜보고 확실한 안정세에 들어섰다는 믿음이 생기면 설 연휴 전이라도 추가적인 방역 조치 완화를 면밀히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정부를 믿고 조금만 더 인내하고 방역에 협조해주시기 바란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지난달 31일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와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조치 등을 2주간 연장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설 연휴 대목을 앞두고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은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우려하고 있다.

정 총리는 “앞으로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의 방역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며 “안정된 상황에서 집단면역을 형성하려면 지속 가능한 방역이 꼭 필요하다. ‘자율과 책임’에 기반한 사회적 거리두기 체계 개편을 미리미리 준비해 둬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장 고통받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라며 “중수본(중앙사고수습본부)은 관련 협회·단체와 적극 소통해 국민 수용성이 크고 이행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는 방역 전략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정 총리는 “최근 1주간 확진자 접촉에 의한 감염이 33%에 이르고, 경로를 알기 힘든 사례도 21%를 넘는다”라며 “방대본(중앙방역대책본부)은 임시 선별검사소 운영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숨은 전파자를 더 효과적으로 찾을 창의적 대안을 검토하라”고도 지시했다.

 

장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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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수함에서 정찰위성까지 모두 세계 일류급으로

[개벽예감 430] 핵잠수함에서 정찰위성까지 모두 세계 일류급으로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1/02/0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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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선제핵타격수단으로 개조된 3,500t급 중형 잠수함

2. 납-비즈머스 원자로 만든 조선, 핵잠수함 건조한다

3. 2016년에 쏘아올린 첫 번째 정찰위성, 올해 쏘아올릴 두 번째 정찰위성 

4. 기존 무인전략정찰기와 신형 무인전략정찰기, 어떻게 다른가?

5. 전민항전준비를 완성하는 것은 통일대전준비를 완성하는 것

 

 

김정은 조선로동당 총비서는 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국방과학기술을 고도로 발전시키고 첨단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을 더 많이 연구개발하여 인민군대를 재래식 구조에서 첨단화, 정예화된 군대로 비약발전시키는 것을 현 시기 국방과학부문 앞에 나서는 기본과업으로 규정”하면서 “무장장비의 지능화, 정밀화, 무인화, 고성능화, 경량화 실현을 군수산업의 중핵적인 목표로 정하고 연구개발사업을 여기에 지향시켜야 한다”고 언명하였다. 김정은 총비서의 그런 의도와 구상에 따라 지금 조선의 국방공업은 건국 이래 최전성기에 들어섰다. 조선의 국방공업이 얼마나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지를 지난주에 이어 살펴본다.  

 

1. 선제핵타격수단으로 개조된 3,500t급 중형 잠수함 

 

김정은 총비서는 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중형 잠수함 무장현대화 목표의 기준을 정확히 설정하고 시범개조하여 해군의 현존 수중작전능력을 현저히 제고할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았다”고 밝혔다. 시범적으로 개조된 중형 잠수함은 2019년 7월 22일 김정은 총비서가 시찰했던 바로 그 잠수함이다. 조선은 어떤 잠수함을 시범적으로 개조한 것일까? 한국 국방부가 2014년 말 청와대에 보고한 대외비 문건을 인용한 <신동아> 2020년 1월호 기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2014년 7월 정보당국은 조선이 탄도미사일을 탑재하는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는데, 당시 조선이 건조하고 있었던 잠수함은 로씨야의 G급 잠수함과 유사한 형태의 잠수함이라는 것이다. 로씨야의 G급 잠수함은 소련에서 개발된 골프급(Golf-class) 잠수함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2019년 7월 22일 김정은 총비서가 시찰한 잠수함은 조선이 1993년에 로씨야에서 수입한 골프급 잠수함을 시범적으로 개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골프급 잠수함의 외형적 특징은 함수 맨 앞쪽 하단부에 있는 크고 둥근 공처럼 생긴 돌출부다. 그런 돌출부를 구상함수(bulbous bow)라고 하는데, 항해할 때 조파저항을 감소시켜준다. 그런데 2019년 7월 22일 김정은 총비서가 시찰한 중형 잠수함이 나타난 조선의 언론보도사진을 보면, 그 잠수함이 구상함수로 설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은 골프급 잠수함을 몇 척 보유했을까? 1994년 1월 19일 로씨야 언론매체 <이즈베스티야> 보도기사에 따르면, 당시 로씨야 해군 태평양함대는 조선에 골프-2급 잠수함 10척을 수출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조선이 보유한 골프-2급 잠수함은 10척이다. 골프-2급 잠수함은 골프-1급 잠수함을 개량한 것이다. 골프-2급 잠수함의 수중배수량은 3,500t이며, 미사일수직발사관 3문이 설치되었다. 

 

김정은 총비서가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제시한 과업은 골프-2급 잠수함을 세계 일류급 잠수함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조선은 골프-2급 잠수함을 세계 일류급 잠수함으로 개조하는 사업을 다음과 같이 추진하고 있다.  

 

1) 골프-2급 잠수함 10척에 공기불요추진장치(air-independent propulsion)를 각각 설치한 것이다. 원래 재래식 잠수함은 축전지 전력으로 움직이는데, 축전지를 일정한 시간 동안 사용하면 재충전해야 한다. 공기불요추진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잠수함은 하루에 한 차례씩 해수면 가까이 떠올라 통기구(snorkel)를 해수면 위로 내밀고 잠수함 안에 있는 디젤발전기를 오랜 시간 돌려 축전지를 재충전한다. 그런데 통기구를 해수면 위로 내밀고 디젤발전기를 돌리면, 디젤이 연소되면서 발생한 방사열과 배기가스가 통기구를 통해 공중으로 뿜어져 나온다. 적외선탐지기를 탑재한 해상초계기나 대잠헬기는 바로 그 방사열과 배기가스를 포착하여 잠수함의 위치를 알아내고 폭뢰를 투하하거나 항공어뢰를 발사하여 잠수함을 공격한다. 그에 비해, 공기불요추진장치를 설치한 잠수함은 2주간 동안 떠오르지 않고 수중작전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해상초계기나 대잠헬기가 포착하기 힘들다. 원래 골프-2급 잠수함에는 공기불요추진장치가 없었는데, 조선은 그 잠수함을 개조하면서 공기불요추진장치를 설치했다. 

 

2) 골프-2급 잠수함 10척에 연료전지형 무기성발전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공기불요추진장치만 설치한 잠수함은 디젤엔진을 설치하고 작전해야 하지만, 공기불요추진장치와 연료전지형 무기성발전기를 모두 설치한 잠수함은 디젤엔진을 없애고 연료전지만으로 작전할 수 있다.   

 

그런데 용량이 얼마나 큰 연료전지를 만드는가 하는 것이 기술공학적 난제다. 소형 잠수정에는 용량이 적은 연료전지를 설치해도 되지만, 3,500t급 잠수함에는 2,000킬로와트급 연료전지를 설치해야 한다. 중형 잠수함에 설치하는 2,000킬로와트급 연료전지형 무기성발전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로씨야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 빠진 사람들은 조선이 공기불요추진장치도 만들지 못했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므로, 조선에서 중형 잠수함에 설치되는 연료전지형 무기성발전기를 개발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2019년 4월 8일 벨라루씨공화국 언론매체 <툿바이>가 놀라운 사실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개발된 연료전지형 무기성발전기를 대만에 수출하려는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대만은 중형 잠수함을 도입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므로, <툿바이> 언론보도는 조선이 중형 잠수함에 설치되는 연료전지형 무기성발전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했음을 말해준 것이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김정은 조선로동당 총비서가 2019년 7월 22일 함경남도 신포에있는 신포조선소 잠수함조립시설에서 개조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3,500t급 중형 잠수함을 시찰하는 장면이다. 이 중형 잠수함은 조선이 1993년에 로씨야에서 수입한골프-2급 잠수함을 시범적으로 개조한 것이다. 1993년 당시 조선은 로씨야 해군 태평양함대가 보유한 골프-2급 잠수함 10척을 수입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1년 1월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골프-2급 잠수함 10척을 세계 일류급 잠수함으로 개조하는 과업을 제시했다. 조선이 시범적으로 개조한 3,500t급 중형 잠수함에는 핵탄두를 장착한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 6기가 탑재된다.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이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은 선제핵타격에 사용되는 것이다. 조선이 골프-2급 잠수함 10척을 모두 세계 일류급 잠수함으로 개조하면, 조선인민군 해군 잠수함대의수중작전능력은 상상을 초월하여 비약적으로 강화될 것이다.  

 

지금 한국 해군은 최신형 3,500t급 잠수함 두 척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 해군이 보유한 3,500t급 잠수함의 국산화률은 76%이고, 조선인민군 해군이 보유한 3,500t급 잠수함의 국산화률은 100%다. 한국 해군은 3,500t급 잠수함에 공기불요장치만 설치했고, 연료전지형 무기성발전기는 설치하지 못했기 때문에 20일 이상 수중작전을 계속하지 못한다. 그에 비해, 골프-2급 잠수함을 개조한 조선의 3,500t급 잠수함에는 공기불요장치와 연료전지형 무기성발전기가 모두 설치되었기 때문에 수중작전을 45일 동안 계속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잠수함은 출항기지에서 작전수역으로 항해하여 작전한 뒤에 출항기지로 복귀하는데, 수중작전시간이 20일로 제한된 한국 해군 3,500t급 잠수함은 약 7일 동안 항해할 수 있다. 7일 동안 항해하여 작전수역에 도착한 뒤, 거기서 6일 동안 작전임무를 수행하고, 다시 7일 동안 항해하여 출항기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국 해군 3,500t급 잠수함의 잠항속도는 시속 5.6km인데, 그런 속도로 20일 동안 잠항하면 작전반경은 940km를 넘지 못한다. 그에 비해, 연료전지형 무기성발전기를 설치한 조선인민군 해군 3,500t급 잠수함의 작전반경은 3,000km다. 양측의 수중작전능력은 너무 큰 격차로 벌어졌다.    

 

3) 원래 골프-2급 잠수함에는 R-11 단거리탄도미사일이 들어있는 수직발사관 3문이 설치되었다. 50킬로톤급 핵탄두를 장착한 R-11은 소련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잠수함발사미사일인데, 사거리는 150km다. 골프-2급 잠수함에 수직발사관이 3문밖에 설치되지 않은 까닭은, R-11의 탄체가 길고 무겁기 때문이다. 골프-2급 잠수함의 함체지름은 8.2m인데, R-11의 탄체길이는 10.67m다. 그래서 수직발사관 3문을 함체가 아닌 함교 안에 설치했는데, 그렇게 해도 R-11이 들어가지 않아서 함교 아래쪽 함체 밑부분에 돌출한 확장공간을 더 만들었다.  

 

그런데 조선은 골프-2급 잠수함을 개조하면서 그 잠수함에 설치된 수직발사관 3문을 들어내고 독자적으로 설계한 신형 수직발사관을 설치했다. 2019년 7월 22일 김정은 총비서가 시찰한 중형 잠수함이 나타난 조선의 언론보도사진에서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보도사진을 보면, 원래 골프-2급 잠수함의 함교 아래쪽 함체 밑부분에 돌출된 확장공간이 없어졌고, 그 대신 함교 바로 뒤 함체등부(dorsal)에 돌출된 확장공간이 새로 생겼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직발사관은 함체등부에 돌출된 확장공간에 설치되었다.  

 

골프-2급 잠수함을 개조한 조선의 3,500t급 잠수함에 탑재된 것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이 아니라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이다. 그 잠수함에는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 수직발사관 6문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 잠수함에 탑재된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은 조선의 신형 중장거리순항미사일을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로 개조한 것이므로, 사거리는 3,000km이며, 절제수술식 정밀타격능력을 가졌다. 조선은 골프-2급 잠수함을 세계 일류급 잠수함으로 개조함으로써 핵탄두를 장착한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을 사용하는 선제핵타격능력을 비약적으로 강화했다.

 

 

2. 납-비즈머스 원자로 만든 조선, 핵잠수함 건조한다

 

김정은 총비서는 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새로운 핵잠수함설계연구가 끝나 최종심사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조선에서 핵잠수함 설계작업이 완료되었음을 밝힌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총비서가 핵잠수함을 “새로운 핵잠수함”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핵잠수함이라는 말은 기존 핵잠수함과 대비되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은 기존 핵잠수함을 보유했지만, 신형 핵잠수함을 더 건조하는 것이다.  

 

조선이 보유한 핵잠수함은 로씨야에서 1994년에 수입한 핵잠수함이다. 2003년 미국 국방정보국(DIA)은 연방의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조선이 로씨야에서 수입한 핵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이미 설계가 끝난 조선의 신형 핵잠수함은 어떤 핵잠수함일까?   

 

1) 핵잠수함을 건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잠수함에 설치할 소형 원자로를 만드는 것이다. 어떤 원자로를 설치하느냐에 따라서 핵잠수함의 작전능력이 달라진다. 조선이 로씨야에서 수입하여 운용해온 기존 핵잠수함에 설치된 원자로는 가압경수로(pressurized water reactor)다. 미국을 비롯한 핵강국들은 핵잠수함에 가압경수로를 설치했다. 

 

가압경수로를 설치한 핵잠수함은 7년에 한 번씩 함체를 절반으로 절개하여, 원자로를 열어놓고 고열이 식을 때까지 장기간 기다렸다가 핵연료를 재장전해야 한다. 그것은 너무 많은 비용과 너무 긴 시간이 요구되는 정비작업이다. 

 

그런데 조선의 핵과학자들은 그런 결함을 퇴치한 새로운 종류의 원자로를 만들었다. 그들의 놀라운 연구성과는 2018년 1월 15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평안남도 평성시 은정구역에 있는 국가과학원 방사성물리실험공장에서 2015년부터 금속랭각제를 사용하는 소형 원자로가 시험적으로 가동되었다고 한다. 금속랭각제를 사용하는 원자로는 냉각수를 사용하는 가압경수로와는 전혀 다른 종류다. 금속랭각제를 사용하는 원자로는 납과 비즈머스(Bismuth)를 일정한 비률로 섞은 특수합금을 냉각제로 사용하는 원자로다. 비즈머스는 창연(蒼鉛)이라고 부르는데, 수은 다음으로 열전도성이 낮은 금속물질이다. 납과 비즈머스의 특수합금을 냉각제로 사용하는 원자로를 납-비즈머스 원자로 또는 납고속랭각로(Lead-Cooled Fast Reactor)라고 부른다. 납-비즈머스 원자로를 설치한 핵잠수함은 전 세계에서 로씨야만 보유했는데, 조선이 소형화된 납-비즈머스 원자로를 2015년에 개발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스마트 원자로(System-Integrated Modular Advanced Reactor, SMART)’라고 부르는 소형 원자로를 개발했다. 그런데 이 원자로는 작동소음이 너무 커서 정숙성을 요구하는 잠수함에 설치할 수 없다. 잠수함에 무리하게 설치해도, 7년 마다 함체를 절반으로 절개하고 원자로의 고열이 식기까지 장기간 기다렸다가 핵연료를 재장전하는 엄청난 불편을 겪어야 한다. 정비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정비기간이 너무 길어지는 것이다. 

 

그에 비해, 조선이 개발한 납-비즈머스 원자로는 핵연료를 재장전하는 것이 아니라, 15~20년에 한 번씩 원자로 안의 핵심부품을 들어내고 새 것으로 간단히 교체하면 된다. 정비비용과 정비기간이 크게 줄어든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김정은 총비서가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언급한 신형 핵잠수함은 납-비즈머스 원자로를 설치한 세계 일류급 핵잠수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핵잠수함 설계를 마치면, 3년 만에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만리마를 타고 혁신의 불길을 일으킨다”는 조선에서는 잠수함건조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이미 설계를 끝낸 핵잠수함의 건조작업을 다그쳐 2년 만에 건조할 것으로 보인다. 함경남도에 있는 신포조선소는 앞으로 2년 뒤 납-비즈머스 원자로를 설치한 세계 일류급 핵잠수함을 진수할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이 운용하는 094형 핵잠수함의 수상기동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함교 뒤에 돌출된 확장공간이 눈길을 끈다. 그 확장공간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수직발사관 12문이 설치되었다. 중국이 2010년부터 실전배치한 094형 핵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10,000t급인데, 현재 6척이 운용되고 있다. 이 핵잠수함에는 사거리가 8,000~9,000km인 쥐랑-2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12기가 탑재된다. 2021년 1월 김정은 총비서는 조선로동당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새로운 핵잠수함설계연구가 끝나 최종심사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조선이 건조하게 되는 새로운 핵잠수함에는 납-비즈머스 원자로가 설치될 것이며, 사거리가 7,000~8,000km인 북극성-5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12기가 탑재될 것이다.이것은 조선이 건조하게 되는 신형 핵잠수함 1척에서 열핵탄두 96발을 쏠 수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거대한 대륙을 초토화할 수 있는 엄청난 핵타격력이다.  

 

2) 2020년 4월 유엔안보리 산하 대조선제재위원회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길이가 194m이고 폭이 36m인 대규모 잠수함조립시설이 함경남도 신포조선소에 건설되었고, 대규모 잠수함훈련시설과 대규모 지하잠수함수리시설도 건설되었다고 한다. 2016년 7월 22일 영국의 군사전문매체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Jane's Defense Weekly)> 분석기사에 따르면, 길이가 150m이고 폭이 34m인 잠수함정박시설이 신포조선소에서 건설되고 있었다고 한다. 길이가 194m이고 폭이 36m인 잠수함조립시설에서 조립되고, 길이가 150m이고, 폭이 34m인 잠수함정박시설에 정박하는 잠수함은 수중배수량 10,000t급 핵잠수함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김정은 총비서가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언급한 신형 핵잠수함의 수중배수량이 10,000t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이 보유한 094형 핵잠수함이 10,000t급인데, 조선도 그와 같은 핵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는 것이다.

 

3) 2021년 1월 14일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이 등장했다. 탄체에 도색된 ‘북극성-5형 ㅅ’이라는 선명한 글씨가 시선을 끌었다. 2020년 10월 10일 당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북극성-4형이 등장한 때로부터 불과 3개월 만에 북극성-5형이 등장한 것이다. 북극성-4형과 비교해서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북극성-5형의 탄체길이와 탄체지름이 각각 더 길어진 것이다. 

 

2020년 10월 15일 미국의 잠수함전문 웹싸이트 <은밀한 바닷가(Covert Shores)>에 실린 분석기사에 따르면, 북극성-4형의 탄체길이는 9.8m이고, 탄체지름은 1.8m다. 그런데 이번 8차 당대회 열병식에 등장한 북극성-5형은 북극성-4형보다 탄체길이가 약 1m 더 길어진 11m이고, 탄체지름도 약 0.2m 더 길어진 2m다. 

 

탄체지름이 2m이고 탄체길이가 13m인 중국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쥐랑(巨浪)-2는 사거리가 8,000~9,000km다. 그에 비해, 탄체지름은 같고 탄체길이만 2m 짧은 북극성-5형은 사거리가 7,000~8,000km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북극성-4형에 비해 더 커진 북극성-5형의 전투부 공간에는 여러 개의 각개발사식 재돌입체(MIRVs)가 들어간다. 각개발사식 재돌입체 1개마다 열핵탄두(수소탄두)가 1개씩 장착된다. 탄체지름이 2m인 쥐랑-2의 전투부에 각개발사식 재돌입체 8개가 들어가므로, 탄체지름이 그와 같은 북극성-5형의 전투부에도 각개발사식 재돌입체 8개가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094형 핵잠수함에 쥐랑-2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12기가 탑재된 것처럼, 조선이 건조하고 있는 신형 핵추진 잠수함에도 북극성-5형 12기가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북극성-5형 1기마다 열핵탄두가 8개씩 장착되었으므로, 조선에서 건조되고 있는 신형 핵잠수함 1척은 열핵탄두 96발을 쏠 수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장거리전략폭격기, 핵잠수함은 전 세계에서 미국, 로씨야, 중국만 보유한 3대 핵타격수단이다. 그 중에서도 핵잠수함은 은밀성과 타격력에 있어서 가장 우월한 무기체계다. 조선이 개조하고 있는 3,500t급 중형 잠수함이 선제핵타격수단이라면, 조선이 건조하고 있는 10,000t급 핵잠수함은 보복핵타격수단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수중고체발동기 대륙간탄도미사일개발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한다”고 밝혔고, “수중발사핵전략무기를 보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북극성-5형보다 더 강력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개발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사거리를 12,000km로 늘인 쥐랑-3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중인데, 조선도 사거리를 12,000km로 늘인 북극성-6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3. 2016년에 쏘아올린 첫 번째 정찰위성, 올해 쏘아올릴 두 번째 정찰위성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가까운 기간 내에 군사정찰위성을 운용하여 정찰정보수집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최중대연구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조선은 고도화된 핵무력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정찰위성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정찰위성개발사업은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되어 설계가 이미 완성되었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군사정찰위성설계를 완성하였다”고 밝혔다. 지금 조선의 위성제작기술자들은 완성된 설계도를 가지고 정찰위성을 만들고 있다. 

 

2016년 2월 7일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은 자국 최초의 정찰위성을 쏘아올려 궤도에 진입시켰다. 그 정찰위성이 광명성-4호다. 조선에서는 광명성-4호를 지구관측위성이라고 부르지만, 정찰위성과 지구관측위성은 사실상 동일한 위성이며 명칭만 다를 뿐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은 이미 2016년에 정찰위성을 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16년 2월 22일 로씨야 항공우주군 중앙우주상황감시쎈터는 광명성-4호가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늘도 광명성-4호는 약 500km 고도에서 매일 14~15차례씩 지구를 돌면서 지상을 촬영한 영상자료를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 보내고 있다. 

 

1) 정찰위성의 기능을 좌우하는 것은 전자광학촬영기의 성능이다. 미국의 정찰위성은 지상에 있는 10c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초정밀 전자광학촬영기를 탑재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올해 2021년에 쏘아올릴 정찰위성 아리랑 6호에는 지상에 있는 50c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전자광학촬영기가 탑재된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전 세계에서 광학기술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도이췰란드였는데, 나치 도이췰란드가 패전한 직후 그 나라의 광학기술은 점령국인 소련과 미국으로 각각 넘어갔다. 조선은 소련의 광학기술을 기초로 하여 자기의 광학기술을 발전시켜왔다. 이런 사실을 보면, 조선이 제작하고 있는 정찰위성에는 조선이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한 고성능 전자광학촬영기가 탑재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6년 2월 7일 지구관측위성 광명성-4호가 들어있는 위성탑재부가 서해위성발사장 조립시설에 놓여있는 장면이다. 이 위성탑재부는 위성운반로켓에 연결되는 것이다. 지구관측위성 광명성-4호는 조선이 자국 최초로 쏘아올린 첫정찰위성이다. 지구관측위성과 정찰위성은 사실상 동의어다. 오늘도 광명성-4호는약 500km 고도에서 매일 14~15차례씩 지구를 돌면서 지상을 촬영한 영상자료를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 계속 보내고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가까운 기간 내에 새로운 정찰위성을 쏘아올리겠다고예고했다. 조선이 쏘아올릴 새로운 정찰위성은 고성능 전자광학촬영기를 탑재하고약 500km 고도에서 지구를 돌다가 정밀한 영상을 촬영해야 하는 경우 위성관제종합지휘소의 원격조종으로 고도를 300km로 낮춰 지상의 물체를 촬영할 수 있는 세계일류급 정찰위성이다. 그 정찰위성이 촬영한 영상자료를 분석하면 30c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2) 미국의 정찰위성은 약 600km 고도에서 매일 14~15차례씩 지구를 돌면서 지상을 촬영하는데, 좀 더 정밀한 영상자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원격조종으로 고도를 300km까지 낮춰 촬영한다. 정찰위성의 고도를 300km로 낮춰야 지상에 있는 10c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정밀한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조선의 첫 정찰위성 광명성-4호는 위성의 고도를 변경하는 원격조종기능을 갖지 못했지만, 지금 조선이 제작하고 있는 신형 정찰위성은 원격조종기능을 가진 최첨단 정찰위성이다. 세계 일류급 위성제작기술을 가진 극소수 선진국들만이 그런 최첨단 정찰위성을 보유했는데, 조선이 그런 최첨단 위성제작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하면 아마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2015년 5월 2일 김정은 총비서는 새로 건설된 국가우주개발국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현지지도하면서,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 최첨단 설비들을 더 보강해주고, 우주와 꼭같은 환경 속에서 위성시험을 할 수 있는 우주환경시험기지를 건설해주어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우주환경시험기지는 우주환경과 꼭같은 환경에서 인공위성의 원격조종시험을 하는 특수시설이다.  

 

둘째, 2017년 2월 19일 조선국가우주개발국에서 근무하는 우주과학자 리문선은 <로동신문>에 장문의 글을 발표했다. 제목은 “인공지구위성의 무선추적”이다. 그는 자기의 글에서 인공위성의 무선추적체계들 가운데 가장 최신 기술로 개발된 “단일화된 반송파체계”에 대해 해설하면서, 조선에는 “위성추적 및 원격측정, 조종을 원만히 실현할 수 있는 현대적인 위성관제종합지휘소”가 있으며 조선의 “위성추적기술은 비상히 발전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이런 서술은 김정은 총비서가 우주환경시험기지를 건설하라고 지시한 때로부터 약 2년 뒤에 인공위성의 원격조종시험에 필요한 우주환경시험기지가 건설되었음을 말해준다. 

 

셋째, 2020년 12월 2일 조선과학기술총련맹 중앙위원회가 주최한 “우주과학기술토론회-2020”이 평양에서 진행되었다. 토론회에서 발표된 연구성과들 가운데는 “인공위성의 동작정확성을 높일 수 있게 하는 성과자료”도 있었다. 이것은 조선이 인공위성을 원격조종하는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였음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고성능 전자광학촬영기를 탑재한 조선의 정찰위성이 원격조종으로 고도를 300km까지 낮추면, 30c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정밀한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지금 조선은 세계 일류급 정찰위성을 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시기 광명성-4호를 제작한 조선의 기술수준을 보면, 정찰위성을 제작하는 데 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사정은 조선이 올해 2021년 하반기에 정찰위성을 쏘아올릴 것을 예고한다.  

 

원래 정찰위성은 지상에 있는 고정목표물을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정밀타격하는 데 사용되는 군사장비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15,000km 사정권 안의 임의의 전략적 대상들을 정확히 타격소멸하는 명중률을 더욱 제고하여 핵선제 및 보복타격능력을 고도화할 데 대한 목표”를 제시했는데, 그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찰위성이 정밀촬영한 영상이 필요한 것이다.

 

 

4. 기존 무인전략정찰기와 신형 무인전략정찰기, 어떻게 다른가?

 

정찰위성은 지구 위의 어떤 특정지역을 하루에 한 번밖에 촬영하지 못한다. 나머지 시간은 고고도정찰기가 메워준다. 정찰위성과 고고도정찰기를 모두 운용해야 상대를 24시간 감시할 수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가까운 기간 내에 500km 전방종심까지 정밀정찰할 수 있는 무인정찰기들을 개발하기 위한 최중대연구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무인정찰기가 500km 전방종심까지 정찰한다는 말은 작전반경이 500km라는 뜻이다. 

 

한국군 당국이 2014년에 청와대에 보고한 대외비 문서를 인용한 <신동아> 2020년 1월호 기사에 따르면, 2014년 당시 조선은 무인타격기 17대를 실전배치했는데, 그 무인타격기의 비행속도는 시속 400km이고, 작전반경은 800km라고 한다. 작전반경이 800km인 무인타격기는 800km를 비행하여 타격대상을 파괴하고 자폭하는 것이므로, 작전반경과 항속거리는 동일하다. 그와 달리, 작전반경이 500km 무인정찰기는 반경 500km의 넓은 지역 상공을 훑어가는 식으로 오랜 시간 동안 비행하면서 정찰사진을 촬영하고 발진기지로 돌아가야 하므로, 항속거리는 2,000km 정도로 늘어난다. 

 

2017년 6월 21일 강원도 인제에서 비행 도중에 연료부족으로 추락한 조선인민군 무인정찰기가 발견되었다. 그 무인정찰기의 비행경로는 강원도 금강군에서 경상북도 성주군까지 직선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이것은 그 무인정찰기가 성주에 있는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촬영하기 위해 발진하였음을 말해준다. 그 무인정찰기가 금강군에서 성주군까지 비행한 편도는 266km였는데, 왕복거리를 계산하면 그 무인정찰기의 항속거리가 500km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무인정찰기는 5시간 30분 동안 490km를 비행하던 중에 연료부족으로 추락했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2019년 10월 1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 '우전'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김정은 총비서가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밝힌 바에따르면, 조선에서도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를 개발하는 연구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조선이 개발하려는 새로운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의 외형은 위의 사진에 나타난 것처럼 거대한 가오리처럼 생길 것으로 보인다. 가오리처럼 생긴 기체모양은모든 스텔스 기종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외형적 특징이다. 조선이 개발하려는새로운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의 작전반경은 500km이고, 항속거리는 2,000km인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이 개발하려는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는 지상관제지휘소의 원격조종으로 지상의 이동표적을 정밀촬영한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지상관계지휘소에전송하는 최첨단 무인전략정찰기다.  

 

2017년 5월 8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은 성주에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촬영한 항공정찰사진을 방영했는데, 그 항공정찰사진은 지상에 있는 군사장비가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해상도를 가졌다. 그 항공정찰사진은 강원도 인제에 추락한 무인정찰기와 같은 기종의 무인정찰기가 촬영한 것이다. 

 

그런데 항속거리가 500km밖에 되지 않고, 해상도도 떨어지는 무인전술정찰기의 항공정찰능력은 제한적이다. 그런 무인전술정찰기가 촬영한 영상자료는 해상도가 너무 낮아서 첨단전술유도무기의 절제수술식 정밀타격에 사용될 수 없다. 첨단전술유도무기를 보유한 조선에게는 정밀한 영상을 촬영하는 무인전략정찰기가 필요하다. 

 

2016년 12월 27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방현-5’라고 부르는 무인정찰기를 개발했다고 한다. 방현-5는 4km의 고도에서 시속 200km의 속도로 10시간 동안 비행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이 이미 2016년에 작전반경이 500km이고, 항속거리가 2,000km인 무인정찰기를 개발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개발계획을 밝힌 무인정찰기도 작전반경이 500km이고, 항속거리가 2,000km다. 하지만 김정은 총비서가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언급한 신형 무인정찰기는 조선이 2016년에 개발한 무인정찰기와 전혀 다른 것이다. 조선이 개발하는 신형 무인정찰기는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서 원격조종으로 작동하는 최첨단 무인전략정찰기다. 위성관제종합지휘소는 원격조종으로 무인정찰기에 탑재된 전자광학촬영기의 촬영각도와 촬영범위를 조절하고, 정밀촬영한 영상자료를 실시간으로 전송받게 된다. 이 무인전략정찰기는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기 때문에 지상에서 육안으로 보이지 않고, 반항공레이더로 포착할 수 없는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다. 

 

원래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는 지상이나 해상에서 움직이는 이동표적을 정밀타격하는 데 필요한 군사장비다. 특히 항공모함, 강습상륙함, 구축함 등으로 편성된 미국 해군 함대가 동해에 진입할 때, 조선인민군이 정밀유도무기를 발사하여 그 함대를 정밀타격하려면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가 동해 상공을 비행하면서 실시간으로 전송해주는 동영상이 필요하다. 김정은 총비서가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개발계획을 밝힌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는 바로 그런 동영상을 촬영하여 실시간으로 전송하게 된다. 

 

5. 전민항전준비를 완성하는 것은 통일대전준비를 완성하는 것 

 

김정은 총비서는 8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국가방위력을 튼튼히 다지는 데서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중대한 사업인 전민항전준비를 완성할 데 대한 심도 있는 과업”을 제시하였다. 전민항전준비를 완성한다는 말은 민간무력의 전투준비를 완성한다는 뜻이다. 조선의 민간무력은 조선로동당의 전민무장화 방침에 따라 조직된 로농적위군과 붉은청년근위대다. 

 

2020년 7월 24일 미국 육군성이 발표한 ‘북조선의 전술(North Korean Tactics)’이라는 제목의 자료에 따르면, 로농적위군은 572만명이고, 붉은청년근위대는 62만명이다.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민간무력이 전투준비를 완성한다는 말은 정규군 군사장비에 버금가는 강력한 군사장비로 무장하고, 정기적인 군사훈련으로 단련하며, 전투동원태세를 갖춘다는 뜻이다. 

 

조선인민군의 기존 무기체계가 신형 무기체계로 전부 교체되는 것과 함께 조선인민군이 사용하던 기존 무기들이 로농적위군으로 이전되었다. 그로써 로농적위군의 무장력은 정규무력에 버금갈 만큼 급속히 증강되었다. 

 

로농적위군은 한미연합군이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할 때마다 비상소집령을 받고 야외실동훈련과 실탄사격연습에 참가했다. 한미연합군이 오는 3월에 또 다시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면, 로농적위군과 붉은청년근위대는 조선인민군과 함께 야외실동훈련과 실탄사격연습을 실시할 것이다. 

 

정규무력과 민간무력이 함께 싸우는 전민항전이라는 말은 조선에서 조국통일대전을 뜻하는 개념으로 널리 쓰인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김정은 총비서가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제시한, 전민항전준비를 완성하는 과업은 통일대전준비를 완성하는 과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정은 총비서가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제시한 군사부문의 과업들은 조선의 군사력을 세계 일류급으로 끌어올리는 엄청난 과업들이다. 조선의 군사력을 세계 일류급으로 끌어올리는 목적은 미국에게 협상압박을 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평화적인 방법으로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조선은 완전히 파산된 대미협상에는 관심이 없으며,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사업총화보고에서 미국의 무력개입을 원천봉쇄하고, 전쟁피해를 최소화하는 조국통일대전의 승리에 필수적인 과업을 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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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정치권 개입 최소화해야”

“가짜뉴스 개념 규정 필요, 심의 공정성과 독립성 위협받은 적 있어”
두 명의 위원과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해, 고 윤정주 위원 명복 빌어
 
 

 

“위원회가 심의의 공정성과 심의 업무의 독립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위원 구성에 있어 정치권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원회는 방송과 통신의 모든 내용과 관련된 사회적 기준을 정한다. 그런데 정치권 인사들이 오면 모든 것을 정치적 관점에서 당리당략의 눈으로만 보게 된다.”

지난 29일 제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임기를 마무리하는 이임식 자리에서 강상현 위원장은 ‘위원회의 심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마련되기 위해 위원을 구성하는 데 있어 정치권의 개입이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상현 위원장은 지난 3년 동안 4기 위원회가 이뤄낸 점과 아쉬운 점을 모두 밝혔다.

▲지난 29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강상현 4기 방통심의위원장이 지난 3년 동안의 소회를 말하고 있다.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지난 29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강상현 4기 방통심의위원장이 지난 3년 동안의 소회를 말하고 있다.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강상현 위원장은 “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에 관한 좀 더 명확한 인식 개선을 이루지 못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위원회는 방송과 통신의 내용 규제 업무를 전담하는 민간 독립기구다. 법적으로 심의 업무의 독립성도 보장하고 있다. 심의의 공정성과 심의 업무의 독립성이 핵심”이라고 짚었다.

강 위원장은 “그러나 지난 3년을 돌이켜 보면 국회나 정부 쪽에서 방심위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방심위를 방통위의 산하기관 정도로 아는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방심위를 정부 기관으로 아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이처럼 잘못된 인식에 기초해 심의의 공정성과 심의 업무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고 토로했다.

강 위원장은 5기 위원회에서 방통심의위의 독립성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정부의 어떤 부처도 방송과 통신의 심의 업무를 가져가려고 해서도 안 된다. 민간독립기구인 방심위가 있는 한 정부가 내용 심의에 관여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심의 업무의 도깁성이 좀 더 보장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예산면에서 보다 독립적일 수 있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노력을 5기 위원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해달라”고 했다.

또 방송 통신 기술과 미디어 환경이 날로 새로워지고 있는데 이런 변화를 심의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강 위원장은 “특히 개인방송이나 OTT, 미디어커머스와 같은 방송과 통신의 경계영역 혹은 신융합 서비스에 대해 어떤 내용 규제를 가져가야 할지, 좀 더 거시적인 규제 로드맵 설정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가짜뉴스’든 ‘허위조작정보’든 명확한 개념 규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도 짚었다. 그는 “4기 위원회는 특히 통신의 경우 최소규제의 원칙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고 노력했다. ‘가짜뉴스’ 논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도 법과 규정에 따라 심의를 했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가짜뉴스’를 제대로 규제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도 하고, 반대로 과잉규제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가짜뉴스’든 ‘허위조작정보’든 그에 대한 명확한 개념 규정을 해주거나 법과 규정을 바꿔 줘야 할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그런 불만을 얘기할 때는 참으로 섭섭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4기 방통심의위가 디지털성범죄심의지원단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권익보호특별위원회를 신설한 점도 빼먹지 않았다. 디성단은 디지털성범죄로 인한 피해자 보호를 보다 신속하게 할 수 있게 마련됐다. 디성단은 24시간 긴급심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사무처 직원들은 2교대 내지 3교대 근무를 해야 했다. 그는 “매일매일 심의하신 위원님들과 밤을 세워 고생하신 직원들에게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민경중 사무총장, 심영섭 위원, 황성욱 상임위원, 허미숙 부위원장, 강상현 위원장, 박상수 위원, 이소영 위원, 강진숙 위원, 김재영 위원. 사진=방송통심신심의위원회.
▲왼쪽부터 민경중 사무총장, 심영섭 위원, 황성욱 상임위원, 허미숙 부위원장, 강상현 위원장, 박상수 위원, 이소영 위원, 강진숙 위원, 김재영 위원. 사진=방송통심신심의위원회.

끝으로 9명의 위원 중 두 명과는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했다. 그는 “한 분은 갑작스런 우환으로 하늘나라로 가셨고, 다른 한 분은 결격사유가 생겨 중도에 그만두시게 됐다. 이 자리를 빌어 고 윤정주 위원의 명복을 빌며, 양성평등과 언론민주화를 향한 그분의 유지와 열정을 되새기고자 한다”고 했다.

지난 2018년 1월에 출범한 4기 방통심의위는 강상현 위원장, 허미숙 부위원장, 황성욱 상임위원, 이소영 위원, 김재영 위원, 심영섭 위원, 박상수 위원, 강진숙 위원, 이상로 위원 등 총 9인과 민경중 사무총장 체재로 마무리했다. 임기는 지난 29일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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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도 될 것 같은 ‘밑반찬 노동’이 세상을 청소할 거야

등록 :2021-01-31 09:05수정 :2021-01-31 09:09

 

[토요판] 비평
여성과 청소노동

엘지트윈타워 농성 중 청소노동자
보이지 않아야 할 존재 점거농성

2019년 승소한 톨게이트 수납원들
정직원 복귀 뒤 청소하는 자리 배치

모멸적 표현 듣는 ‘아줌마’ 노동자
노동자 지위 얻는 싸움을 먼저 해야

‘노동시장 밑반찬’ 같은 억울한 노동 세상 온갖 더러움 청소하게 될 것
지난해 11월16일부터 농성을 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엘지트윈타워 건물 로비에서 12월24일 한 노동자가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난해 11월16일부터 농성을 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엘지트윈타워 건물 로비에서 12월24일 한 노동자가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영하 16도의 아침, 산책을 다녀와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 청소노동자가 보였다. 막 닦아놓은 깔끔한 엘리베이터 바닥 위로 방금 전까지 얼어붙은 눈을 밟고 다니던 나의 두 발이 어색하게 올라선다. 물기가 있는 바닥 위로 나의 발자국이 찍혀 난감했다. 16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그는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계속 바닥을 닦으며 말했다. “바깥에는 닦으면 바로 얼어버려요. 얼마나 지저분한지, 말도 못 해. 근데 닦으면 바로 얼어버려서 지금은 닦을 수가 없어요.” 처음에는 그저 날씨에 대한 대화로 이해했으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뒤늦게 알아차렸다. 눈 온 뒤에 지저분한 아파트 입구를 재빨리 깔끔하게 회복시키지 못하는 노동자의 사정을 설명했다는 사실을.

1. 여성, 청소하다

청소노동자의 대걸레를 통해 사라진 나의 발자국처럼, 청소는 흔적을 지우는 게 중요한 목적이다. ‘집사람’인 여성들은 집을 청소하고 집 밖으로 나가 건물을 청소한다. 방바닥을 닦던 여성들은 빌딩을 닦고, 버스를 닦고, 기차를 닦고, 비행기를 닦는다. 청소노동자의 80% 이상은 여성이다. 집 안의 부불노동은 집 밖에서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으로 자리한다. 청소노동은 노동 이전의 노동이며, 노동 이후의 노동이다. 새벽 지하철역, 세상이 고요한 시간, 누군가가 쏟아놓은 오물과 아무 곳에나 내던져진 각종 쓰레기가 사라지고 ‘원상복귀’ 된다.

여성은 청결을 담당하는 존재다. 부지런한 할머니들은 여자가 더러운 것을 많이 만질수록 집이 깨끗해진다며 쉬지 않고 손을 움직인다. 청소노동자는 젠더와 공간, 청결 권력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여성 청소노동자는 공간을 청소하지만 공간을 갖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세균까지 닦아내면서 최종적으로는 그들도 사라져야 한다. 청소노동자의 점거 농성은 그런 면에서 다른 어떤 노동자의 점거보다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청소되어야 할 존재,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보이면 안 되는 존재가 장소를 점거했기 때문이다.

 

2018년 세상을 떠난 노회찬의 연설에서 언급된 서울 6411번 버스의 새벽 첫 승객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여성이며 청소노동자이다. 이들은 본격적 노동의 시간이 밝아오기 전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첫 버스에 오른다. 신희주 교수는 2020년 ‘6411 버스 첫 승객 분석을 통한 청소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청소노동자의 평균 나이는 61.1살이다. 이들은 주로 구로구와 영등포구에서 출발해 서초구나 강남구에 도착한다.

2017년 3월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연 ‘5회 청소노동자 행진 선포 기자회견-청소노동자의 봄’ 행사 참석자들이 거리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7년 3월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연 ‘5회 청소노동자 행진 선포 기자회견-청소노동자의 봄’ 행사 참석자들이 거리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 여성, 청소되다

2019년 톨게이트 수납원들의 투쟁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수납원은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발언을 했다. 실제로 ‘없어지는’ 중이다. 직업은 꾸준히 없어지고 새로 생긴다. 직업이 없어져도 사람은 있다. 그런데 없어지는 노동에서 남성 노동자는 최소한 ‘가장’으로 바라본다면 여성 노동자는 원래 부수적 존재였기에 그들의 ‘사라짐’을 더욱 함부로 대한다. 2019년 대법원의 판결로 승소한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정직원으로 복귀했지만 수납원이 아니라 고속도로 주변과 졸음쉼터 화장실 등을 청소하는 자리에 배치되었다. 여성은 청소되고, 또 다른 곳에서 청소한다.

여성의 노동은 ‘사라지는 것’이 본분처럼 여겨진다. 노동의 생산물도 사라져야 하며 생산의 주체로서 노동자인 여성도 사라져야 한다. 만들어놓은 음식은 먹어치우고, 깨끗해진 공간은 다시 더러워지고, 모든 돌봄은 물리적으로 그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돌봄 대상자에게 노동의 결과가 흡수될 뿐이다. 이렇게 사라지는 노동은 여성에게 맡겨진 채 여성은 노동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들은 노동하지 않는 존재이므로 그들에게 일자리의 사라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여성의 실직은 ‘가장’의 실직이 아니며, 여성은 그저 원래 있어야 할 곳인 가정으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집사람’이 집사람이 될 뿐이다.

비행기를 청소하던 노동자들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보이지 않는 노동자였기에 감염병 대유행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도 그들의 사라짐은 보이지 않는다. 하루 20대까지 청소하던 비행기 청소노동자는 지난해 3월부터 일자리를 잃었다.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며 물리적 공간을 청소하던 학교의 청소노동자들도 해고되기 시작했다.

지난 한해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더욱 고용이 줄고 실직이 늘었다. 여성 비경제활동 인구도 늘었는데, ‘비경제활동’이란 실업도 취업도 아닌 상태다. 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비경제활동’ 인구일까. 대부분 가사노동 부담으로 집 밖에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코로나19로 집 안에서 해야 할 돌봄과 가사노동이 증가했다. 이들은 노동을 하지만 ‘비경제활동’ 인구이다.

직격탄을 맞는 직종이 있다면 특수를 누리는 직종도 있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비대면 교육의 확산으로 텔레비전, 컴퓨터와 카메라 장비 등의 소비가 늘었다. 엘지(LG)디스플레이도 모니터 시장 점유율이 상승하면서 코로나 특수를 누려 거의 2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 회사가 입주한 엘지트윈타워 건물을 청소하던 청소노동자 80명은 집단 해고되었다.

젊지 않은, 남성이 아닌 노동일수록 일자리의 사라짐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 나이 많은, 여성에게, 일자리를 ‘주는’ 게 어딘데, 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그들이 임금 노동을 할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줄 안다. 실제로 이 ‘아줌마’ 노동자들은 “천원짜리 노동”, “하루살이 인생”, “일회용” 등 각종 모멸적 표현을 듣는다.

가사도우미의 노동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11조에서 “가사 사용인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며 가사노동자를 노동관계법의 보호에서 제외했다. 1953년 제정된 조항이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식모-파출부-도우미로 이름이 바뀌어왔을 뿐 그들은 여전히 ‘노동자’가 아니다. 용역업체가 만들어져 노동 ‘시장’은 형성되었어도 노동자는 여전히 투명인간이다. 가사노동의 큰 축은 청소와 요리, 육아인데 이 모든 노동은 집 안에서 여성이 마땅히 해야 할 자연현상으로 여긴다. 이 자연현상을 돈을 주고 외부 여성에게 맡겼기에 마치 공기와 바람에 돈을 쓰는 것처럼 아까운 지출이라 생각한다.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지난해 12월24일 서울 영등포구 엘지트윈타워 건물 로비에서 토의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지난해 12월24일 서울 영등포구 엘지트윈타워 건물 로비에서 토의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3. 여성이 청소할 것이다

‘레닌 동지가 세상의 더러움을 청소한다’. 러시아 혁명 임시 정부의 한 포스터 제목이다. 정장을 입은 레닌이 빗자루를 들고 구체제의 상징인 차르와 관료들을 쓸어버린다. 재치 있는 이 그림을 좋아하지만 다른 한편 소외감을 느낀다. 빗자루를 들고 세상을 청소하는 사람도 쓸려 나가는 사람도 모두 남성이다. 부패한 남성에서 혁명적인 남성에게로 권력이 움직이는 동안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게 바닥을 쓸고 닦는다. 여성은 노동자인가.

노동과 여성성은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드센, 억척스러운, 악바리는 주로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경제활동을 해나가는 여성에게 향하는 수사다. <회사가 사라졌다>는 폐업과 해고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을 조명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인데 이름이 그 자체로 메신저이며 메시지다. ‘조용함’을 거부한 채 싸우는 여성 노동자로서의 목소리를 또박또박 기록하고 또 기록한다. 레이테크코리아에서 해고당한 한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여자가 해고를 당하면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요. 남자가 해고당하면 ‘어쩌나, 그 집 어떡하지’ 그러거든요. 내가 주위 사람들한테 ‘나 해고당했어’ 얘기를 하면 쉬라고, 봉사활동이나 하라고 해요. 이렇게 노동가치를 뜨겁게 생각해주지 않는 거예요.”

여성의 노동가치를 ‘뜨겁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 그는 분통을 터뜨린다. 기록팀의 희정은 여성의 노동을 “밑반찬처럼 없어도 되는 일”로 여긴다고 지적한다. 냉장고에 처박아두고 까맣게 잊어버리는 밑반찬, 다른 반찬 없을 때 꺼내 먹다가 어느 날 냉장고 청소를 하면서 버리기도 하는 밑반찬, 때로 누가 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으며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돌고 도는 밑반찬, 늘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는 반찬이지만 있어야 할 게 있다고 해서 결코 알아주지 않는 그런 밑반찬, 똑같은 반찬이 계속 나오면 게을러 보이는 하찮은 밑반찬. 여성의 노동은 바로 노동 시장에서도 밑반찬 같은 노동이다. 부업, 아르바이트, 임시로 하는 노동이다. 그렇게 “반찬 같은 노동이기에, 세상이 함께 억울해하지 않는 노동”이다.

여성은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우선 노동자의 지위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한다. 노동자 정체성을 인정받는 ‘노동자 되기’부터 이루어야 할 과업이다. 청소노동자나 식당노동자 등에게 ‘어머님’ 혹은 ‘이모님’이라 한다. 저임금 직종의 여성 노동자는 가족관계어, 특히 어머니로 부른다. 존중의 언어로 둔갑하고 있지만 실은 여성이 노동자의 지위를 가질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여성의 사회적 신분은 어머니이고, 어머니로서 싸울 때 가장 주목받는다. 그렇기에 여성의 투쟁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 흔히 “그들도 누군가의 어머니입니다”라고 말한다. 해고된 한 노동자는 “일터란 ‘나’라는 존재를 오랜만에 자각한 공간”이라며, 노동조합원으로 “그 관계의 끝을 최선을 다해 지키고 싶다. 그래서 싸운다”라고 한다.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2019년 노조를 만들었다. ‘어머니’들은 노동자로서 싸운다.

여성과 이주민의 노동은 노동의 ‘바닥’을 보여준다. 값싸고, 해고하기 쉽지만,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내기 어려운 노동자들이다. 여성은 해고되면 집으로, 이주민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면 그뿐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바닥을 닦는 사람이 조용히 사라지지 않으면 세상이 시끄러워진다.

세상의 더러움을 누가 청소하는가. 한 청소노동자가 “나는 평생 청소해서 세상을 구할 팔자인가 봐!”라고 말했을 때, 또록팀의 기록자 림보는 이 말을 어떻게 옮겨 적어야 할지 고민한다. 이 말은 제 노동에 대한 긍정인가, 청소노동의 여성화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이 목소리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 나는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세상의 더러움을 청소하는 사람은 정장 입은 남성이 아니다. 조용함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청소할 것이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 새해 첫날 계약해지된 엘지(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늘 청소하던 건물 로비에서 벌써 한달도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여성이 대다수인 청소노동자들의 해고와 복직투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소노동은 주로 ‘여성의 일’이다. 회사는 폐업과 정리를 거듭하며,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쉽게 치워지고, 지워진다. 이와 관련해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의 비평을 싣는다. ‘비평’은 4주에 한번 연재.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1099.html?_fr=mt1#csidx9f2984c8d3f1a98af53561e2cef9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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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나 고우나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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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1/01/31 09:36
  • 수정일
    2021/01/31 09: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인터뷰]신임 신준영 경기도 평화협력국장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01.30 22:00
  •  
  •  수정 2021.01.31 09:23
  •  
  •  댓글 0
 
신준영 신임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은 29일 지속가능한 남북교류협력 사업의 모델을 만들었다는 기대감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무너진 뒤 고민끝에 경기도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며, 마지막 힘을 내 남북관계 진전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사진-조천현]  
신준영 신임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은 29일 지속가능한 남북교류협력 사업의 모델을 만들었다는 기대감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무너진 뒤 고민끝에 경기도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며, 마지막 힘을 내 남북관계 진전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사진-조천현]  

월간 말지(誌) 기자로 북을 취재하다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던 그해 월간 민족21을 창간하고 그 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를 만들어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 조사를 비롯해 남북관계 진전에 매진한지 30년. 

대표적인 남북관계 전문가인 신준영씨가 지난 22일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으로 임명되어 2년 임기를 시작했다.

신준영 국장은 지난해 6월 남북정상의 합의로 세워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순간 자신의 인생도 무너지는 충격을 느꼈다며, 지난 30년간 남북관계 현장에서 목표로 삼아온 '지속적으로 실현가능한 남북 교류협력'를 위해 경기도에서 다시 신발끈을 매어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국내문제든, 남북문제든 '해야 할일은 반드시 하는' 이재명 지사의 일관된 자세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결심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같은 결정이 정치적인 선택으로 비춰지는데 대해서는 부담스러워했다.

경기도는 북측과 직접 사업을 만들어 합의하고 집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자신은 지속적인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위해 지방정부의 힘과 그 책임자의 강력한 의지를 바랬던 것이 서로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3년을 보지 않은 연인에게서 사랑을 기대하지 말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벌써 2년이다. 미우나 고우나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신 국장은 그래서 제일 중요한 일은 만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 좋게 생각하고 보고 싶어해야 뭐가 되지 않나. 서로 보기도 싫고 안봐도 아무렇지도 않으면 무슨 통일이 되겠나"라는 건 남북교류협력의 현장에서 쌓아올린 하나의 신앙같은 것이었다. 

지난 2019년 이후 남측의 제의에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지난 8차 당대회에서 '남측이 합의이행을 위해 움직이는 만큼 상대하겠다'고 한 언급은 진일보한 상황으로, 새로운 소통의 기회로 읽었다.

어느 시점엔가 북쪽에서도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일이 진행이 될텐데 그 시점을 지켜보고 모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중에서 제일 첫번째 할일은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8일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 북부청사에서 신준영 평화협력국장을 만나 폐허위에서 무엇을 할 지 고민했다는 그의 구상을 들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마지막 힘을 다해 남북관계 진전위해 노력하겠다

신 국장은 경기도로 자리를 옮기게 된데는 국내 문제든, 남북문제든 해야 할일은 한다는 일관된 태도를 보여준 이재명 지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말했다. [사진-조천현] 
신 국장은 경기도로 자리를 옮기게 된데는 국내 문제든, 남북문제든 해야 할일은 한다는 일관된 태도를 보여준 이재명 지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말했다. [사진-조천현] 

□ 통일뉴스 :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으로 자리를 옮긴데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한다. 멀리는 월간 말지 기자로 민족문제를 고민해왔고 가깝게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역협) 사무국장으로 오랫동안 민간에서 남북관계 관련 일을 해 오셨는데 경기도로 옮기게 된 계기나 배경을 설명해 달라.

■ 신준영 경기도 평화협력국장 : 사실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작년 12월에 결정했다. 제가 월간 말지(誌)부터 하면 남북 관련된 일을 한 게 30년, 역협은 20년 정도 된다. 구체적으로는 남북교류협력 관련 일을 했고 그동안 목표라고 하면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지속적인 교류협력 사업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2007년부터 만월대 발굴을 시작했는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도 지지를 얻어서 계속 했으니까 그게 보람이었다. 

2018년에는 진짜 기대가 컸다. 드디어 목표를 이루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2019년 이후 특히 작년 6월에 연락사무소 폭파되는 걸 보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내 인생 20년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든 탑이 무너졌다는 생각과 함께 개인적으로 이제 물러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년이면 나이가 60이 되는데 그 뒤에도 계속 일할 생각이 있지는 않았다. 젊은 사람들 같으면 다시 시작하면 되겠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계속 하고 있었고 그때 경기도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가서 일해보자고 마음속으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이재명 지사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분을 전혀 모른다. 내 편견인진 모르지만 많은 정치인들이 남북문제는 워낙 어렵고 위험하니까 국내문제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그런데 이 지사님은 국내문제든 남북문제든 일관된 것 같다. 그동안의 활동을 보면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일관된 자세를 갖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그래서 이런 분 밑에서라면 상황은 어렵지만 2년동안, 힘도 없지만 마지막 힘을 내서 해보자라는 생각을 한 거다.


□ 작년 말에 경기도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이 있었던 것인가.

■ 공채를 했으니까 지원해서 논술시험도 보고 면접도 보고 많이 했다.(웃음) 공모절차가 있었고 제가 거기 응시를 해 시험도 봤고 합격을 해서 임용이 된 거다. 


□ 역협 일은 어떻게 되나

■ 김경순 부장이 역협을 맡아서 하게 됐다. 원래 2년 정도 남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올해부터는 서서히 김 부장에게 넘겨주고 2년 후에는 그만둘 생각이었다. 출퇴근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려고 했다.


□ 경기도북부청사가 있는 여기가 의정부인데 출퇴근이 오히려 더 멀어지지 않았나.

■ 집이 서울인데, 너무 머니까 지금은 주말에만 집에 가고 근처 관사에 살고 있다. 가출을 한 셈이다.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 낮에는 보고도 받아야 하고 행사가 많아서  저녁에 보고서들을 봐야 하는 상황이다. 

2020년 6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인생 20년이 무너지는 충격으로 와닿았고 이후 계획에 깊은 고민을 남긴 계기가 되었다. [사진-조천현]
2020년 6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인생 20년이 무너지는 충격으로 와닿았고 이후 계획에 깊은 고민을 남긴 계기가 되었다. [사진-조천현]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인생 20년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 조금 전에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을때 인생 20년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어떤 느낌이었나. 2018년에 만월대 발굴 사업이 완료되거나 중단된 것이었는지.

■ 2018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두번이나 하고 북미회담까지 했으니까 엄청난 일들이 진행된 것 아니겠나. 그해 민간사업은 다 밀리는 중이었지만 만월대 발굴 조사는 통일부가 중요하게 미는 사업이니까 10월 22일 시작해서 12월 10일까지 진행을 했다. 

그때는 하노이 북미회담 전이었으니까 당연히 결과가 잘 나오면 만월대 발굴조사를 1년 내내 계속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고 기대도 있었다. 내 목표는 개성공단에 공장이 쉬지 않고 계속 돌아가듯이 사회문화사업에서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휴전선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계속 돌아가는 사업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고 그런 목표에 가까워졌다고 생각을 했던 거다. 

이런 모델을 하나 만들었으니까 내 할일은 거의 다 했다는 그런 생각...그랬는데 회담이 결렬이 되고 2020년에 그런 상황(남북연락사무소 폭파)까지 벌어지니까...

그 폭파에 대해서 평가를 가볍게 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꽤 장기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북에서)이렇게 까지 하는데, 그 행위 자체가 너무나 파괴적이고 충격적이지 않나. 그렇게까지 한 건데 그걸 금방 없었던 것처럼 되돌아 갈 수 있다면 그렇게 했겠나. 상당히 장기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앞으로 1년, 2년에 대한 단기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다. 나는 당장 올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현장 활동을 하는데 5년 후, 10년 후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20년 후에 한반도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순리대로 갈 것이라는 것은 당연히 믿는다.

한두 해 안에 회복될 일이 아니라는 충격과 함께 6.15 이후에 군사적 충돌도 있었지만 남북 정상합의에 의해 만든 건물인데, 그걸 폭파해 버린다는 건 6.15와 함께 저도 그렇고 통일뉴스도 그렇지만 그동안 쌓아온 20년이 다 날아가버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거다. 그 폐허 위에서 뭘 어떻게 해야되지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 원래 합의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면 만월대 발굴조사 사업은 언제쯤 마무리되는 것인가. 지속적인 사회문화교류 사업이라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된 것인가.

■ 원래 단계적으로 하도록 되어 있었다. 2006년 합의했는데, 순조롭게 연간 4~5개월씩 차곡차곡했다면 1단계는 5년 정도면 마칠 일이었다. 그런데 2006년에 시작해서 2018년 시점까지 보면 13년인데 그동안 1단계의 60%밖에 못했다. 순리대로라면 5년이면 끝났어야 될 일인데 13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반 조금 넘게 된 거다. 13년이라고 하지만 계산해보면 날짜로는 3년이 채 안됐다. 

그런 점에서 만월대 발굴 조사 모델로도 지속적인 남북교류협력 사업이라는 목표를 아직 못이룬 거다. 그러니까  과제는 남아있는 것이고 그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이다. 내게는.


□ 경기도는 그 목표를 달성할 또 다른 활동무대가 되는 셈인가.

■ 경기도 평화협력국의 일로 보면 남북협력은 한 부분이다. 남쪽 내부에서 평화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업도 있고, 디엠지 접경지역을 좀 더 평화의 분위기로 바꾸는 사업, 국제협력 등 다양한 사업이 있다.

그래서 평화협력국 자체의 사업계획들을 충실히 해야 한다. 그 중에 한 파트이기도 한 남북교류협력을 잘 이뤄내는 것은 개인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경기도의 목표이기도 하다.

민간단체에서 할 때보다는 조직도, 예산도 있고 훨씬 힘이 있으니까 최선을 다 해야된다는 생각이다.

 

신 국장은 8차 당대회를 통해 북은 내부문제를 인정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으며, 앞으로 5년간 상당한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진-조천현] 

북, 내부 문제 인정할 수 있는 단계 도달...상당한 성과 나올 것


□ 오랜 세월 남북관계 일선에서 일해 온 대표적인 민간 전문가로서 최근 북의 8차 당대회 이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나.

■ 저야 이론을 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활동을 하니까, 이론을 하는 분들의 평가를 보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늘 그런 느낌이 있는데, 우리(남쪽) 입장에서 북이 이렇게 움직이면 좋겠다는 기대섞인 평가를 하는 것 같다. 

인간 세상의 상식이라는 게 자기 계획은 나를 위해서 세우지 남을 위해 세우진 않지 않나. 그쪽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최선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고 본다.

이번에 제일 특징적으로 보였던 것은 단계가 달라졌구나 하는, 자기 내부의 문제를 정확히 인정하고 그걸 개선하고 해결해 나가겠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인정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단계가 있지 않나. 그것 자체가 또 빌미가 될 수 있으니까. 경제지표가 엄청나게 미달했다는 평가를 해도 괜찮은 단계에 도달했으니까 그런 평가까지 나온 것 같다.

이것도 세상의 상식이지만 자기 자신의 문제를 알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성과는 나오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5년후에는 상당한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보인다.


□ 북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매진할 수 있는 평화적 환경을 국방력 강화를 통해 마련하겠다는 완강한 입장이고 선 비핵화를 앞세우는 미국과 한국에 적대시정책 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외교·안보 환경에 대응하겠다는 기조인데, 남북간 새로운 소통의 기회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 남쪽에 대해서는 합의 이행을 위해서 움직이는만큼 상대할 것이라는 (북측의)언급이 있었는데, 나는 그건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노이 회담 이후에는 남쪽에서 무얼해도 북측이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비례적으로 움직이겠다고 한 것은 진전인 거다.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린 것이니까 중앙정부이든, 지방정부이든, 민간단체든 현실 가능한 방향, 방법론을 모색해서 움직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 보다는 정세에서 받는 제약이 적으므로 가능한 최대한 움직여서 성과를 내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으로 지자체가 교류협력의 주체가 되었지만 여전히 '공유재산법' 등으로 인해 지방정부가 구매한 물품을 북에 인도하는데에는 제약이 따른다.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한데 중앙정부와 협의해 나가겠다.


□ 생명·안전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우리 정부 입장과 달리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8차 당대회에서 방역·인도적 협력 등 남측 제안을 비본질적 문제라며 거부의사를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북과 대화, 협력의 길로 되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하는데 실효적인 방법은 눈에 띄지 않는다. 어떤 방안이 있을까.

■ 질문을 받고 드는 생각은 이제 내가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됐구나 하는 것이다. 경기도에 앉아 있는 사람이 통일부나 청와대에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지난해 11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설치된 경기도 평화부지사실을 찾아 이재강 부지사를 응원하는 시민사회단체 인사들. [통일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11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설치된 경기도 평화부지사실을 찾아 이재강 부지사를 응원하는 시민사회단체 인사들. [통일뉴스 자료사진]

제일 중요한 건 서로 만나는 일


□ 중앙정부보다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기도가 어떤 협력사업으로 꽉 막힌 남북관계에 숨통을 틔게 할 것인지 관심이 많다. 경기도 담당 국장으로서 남북 평화협력을 위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지금은 업무파악중일텐데 기본 방향이라도 말해달라.

■ 경기도가 계획하고 있는 남북협력사업은 이미 다 공개되어 있다. 문서로도 공개되어 있고 또 발표도 됐다. 작년 DMZ 포럼에서 이재명 지사께서 발표한 내용으로 남북공동방역 및 의료협력이라든지, 임진강 수계 관리 협력, 접경지 사업 공동조사, 산림복원, 농촌개발 등 오랫동안 추진해 온 사업도 있고 그 뒤에 추가된 일도 있다.

2018년에는 접촉 기회도 있었으니까. 일부 북측과 협의를 한 사업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항상 남북사업이라는 것이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우더라도 이걸 북측에 설명하고 그쪽 입장도 들어야 하지 않나. 우리는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쪽은 이차적일 수도 있는 것이고, 거꾸로 그쪽에서 일차적으로 시급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만나는 것이다. 만나서 공통분모를 찾아야 되는 건데 불행하게도 전통적으로 민간차원에서 남북사업을 담당하던 북측 단위들이 전혀 연락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는 아까처럼 비례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 천명되었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는 그쪽도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할 것으로 본다. 그에 따라서 일을 해 나갈 텐데, 그 시점을 지켜보고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본다. 제일 첫번째는 만나야 하는 것 같다. 


□ 그럼 만나자고 이야기할 다른 창구가 있나.

■ 아니 지금은 중단되어 있는 거지. 북측 민화협이 2019년 4~5월부터는 창구가 단절된 상태이지 않나. 그 밖에는 공식적인 창구들이 아니니까.


□ 엊그제 일년만에 6.15북측위에서 남측위 총회에 축전을 보냈는데.

■ 좋은 일이다. 단절이었다가 남쪽과 접촉을 하지 않는 방침이 비례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으로 진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서 북측 담당부서에서 사업계획이 세워지면 움직임이 보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 경기도 같은 지방정부의 카운터파트도 북측 민화협이 되나 

■ 그게 아직 안정해 졌을 거다. 왜냐하면 그동안에는 우리쪽에서 남북교류협력법상 지방자치단체가 교류협력의 주체가 아니라  민간단체의 사업을 후원하면서 민간단체의 카운터파트인 민화협을 만났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자체가 독자적인 북측 파트너를 만난 적은 없다. 


□ 경기도가 아태평화위원회를 만났던 것도 남북교류협력법 개정 전이다.

■ 그렇다. 북측도 지방자치단체가 독자적인 교류협력의 주체가 아닌 상황에서 지자체를 누가 담당할 것인지를 그동안 정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 문제도 앞으로 북측과 협의해야 할 문제일 것 같다.


□ 누구보다 북측을 많이 만나왔으니 앞으로 사업재개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크던 작던 합의한 것을 지켰는지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떤 이유로든 합의가 이행되지 않아 계약 상대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다시 사업하기 어렵지 않나.  제가 100% 지켰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최선을 다해서 합의는 지켰다고 생각한다.


□ 경기도에서 북측과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미 시기적으로 지나 버린 일들도 많이 있다. 개성공단 재개 촉구, 개성관광 재개를 비롯해 도라전망대에 경기도 집무실 설치 현안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이재강 평화부지사께서 굉장한 열의를 갖고 '개성공단 재개 선언이라도 남북이 함께 하자'는 의미에서 도라전망대에 평화부지사 집무실을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평화부지사 집무실은 지금 수원에도 있고 의정부에도 있다. 도라전망대에도 설치해서 돌아가면서 일을 보겠다는 뜻이다.

군 1사단과는 조건부 승인이 되어서 진행이 되어온 일이었는데, 설치 당일 군이 유엔사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설치가 지연되었고 지금까지 이에 대한 추가적인 언급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기도와 1사단이 DMZ와 관련해서 함께 하는 일이 꽤 있다. 생태로 조성을 위한 부지교환 등 여탸 사업에 대해서는 군 당국과 원만한 협의가 됐었는데, 도라전망대 집무실 설치에서 유엔사 동의라는 문제가 돌출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별안간 유엔사 동의가 없어서 안된다고 하니까, 정전협정을 뒤져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오래된 관행일 뿐이지 정전협정 자체가 그런 내용을 규제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개성 육로 방문할 때 유엔사 동의를 받고 들어가는 것도 오랜 관행이 제도화된 것 아닌가. 

물러설 수는 없고 문제제기를 해야되겠다는 마음에서 임진각에 텐트를 치고 임시집무실을 만들어서 11월 10일부터 12월 22일까지 43일간 평화부지사실 직원 6명까지 같이 가서 농성을 한 것이다. 삼보일배까지 하고...


□ 이재강 평화부지사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한다.

■ 부산에서 활동하던 분인데, 저도 여기와서 처음 뵙게 됐다. 개성갈 때 지나야 하는 통일대교가 상당히 긴 거리인데 거기서 삼보일배 할 때 날씨가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갔다. 

연세도 올해 60살이니까 적다고 할 수는 없는데 알고 보니 체육중·고등학교를 나왔더라. 꿈이 축구선수였을 정도였으니까. 남북문제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진 분이 체력까지 탄탄하게 갖추었기 때문에 삼보일배가 가능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 철이들어서 공부를 하기로 하고 부산대학교에 80학번으로 진학해서 학생운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43일 동안 누구도 못할 일을 했다. 지방정부의 부지사가 몸으로 부딪히면서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었으니까 굉장히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다. 그러면서 부지사의 뜻을 이어 받아 개성공단 재개선언을 밀고 나가는 단체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개성공단재개선언 범국민연대회의'를 결성하고 2월 9일 오후 4시에 임진각 디엠지생태관광지원센터에서 출범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코로나 방역상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공동대표들만 모여서 행사를 치를 예정이고 경기도는 지원역할을 할 예정이다.


□ 유엔사와는 구체적인 협의나 진척이 있나.

■ 더 이상의 언급은 없다고 들었는데-, 자기들 권한이니 승인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2018년 9월 말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 재개됐다. 사진은 발굴 예정지인 만월대 서편 축대 부분.[통일뉴스 자료사진]
2018년 9월 말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 재개됐다. 사진은 발굴 예정지인 만월대 서편 축대 부분.[통일뉴스 자료사진]

만월대 공동사업, 발굴 넘어 정비로 계속 확대될 것 


□ 개성 만월대 공동 발굴조사 사업은 교류가 끊기면서 북측 단독사업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는 않다. 개성 만월대 사업은 남북간에 공동사업으로 합의되었기 때문에 북측 내부에서도 존중한다. 

좀 독특한 일은, 2006년 역협과 북측 민화협이 만월대 발굴조사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한다고 합의한 후 2018년까지 2번 중단된 적이 있다. 남쪽이 가지 않아서 중단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재청과 같이 북측에서 실제 발굴조사를 하는 기관인 '조선민족유산보호지도국'에서는 문화재 보존차원에서 불만이 없지는 않다. 

진도가 늦어지면 '단독으로 했으면 벌써 다했다'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발굴조사라는 것이 짧은 시간안에 해야 효율적이고 문화유산의 훼손도 없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역협과 북측 민화협 간에 남북공동으로 추진한다는 합의가 있었으니까 오히려 북에서도 단독으로는 못한다고 조선민족유산보호국을 설득하고 있는 거다.


□ 공동사업이 중단됐다는 건 잘 못 알려진 것이라는 지적이다.

■ 한번 비슷한 일은 있었는데, 그 경우도 단독으로 했다고는 할 수 없다. 2015년 11월 말에 남측이 철수를 할 때였는데, 그때도 박근혜 정부로부터 2016년 1월부터는 일년 내내 해도 좋다는 약속을 받고 북측의 동의도 받아서 만월대 임시사무소를 지어놓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철수직전에 금속활자가 나왔다. 금속활자는 그 조그마한 것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노동강도가 뒤따른다. 먼저 금속활자가 있을 수 있는 지역을 특정한 다음 흙을 다 파서 1cm X 1cm 정육면체의 금속활자를 찾아내기 위해 파낸 흙을 일일이 쳐야 하는 노동을 해야만 한다. 

2015년에는 금속활자 발굴을 위해 채를 치는 조를 별도로 구성해서 하루 종일 했다. 그때도 발굴기간을 6개월이나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측은 2016년 1월에 오겠다고 했지만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2.10)상황이 발생하면서 개성에 들어가지 못했고, 북측은 작업량이 많은 채치는 조를 남겨서 1, 2, 3월 동안 작업을 벌여 활자 4개를 추가로 수습하고 철수한 것이다. 북측이 단독으로 발굴한 것은 아니다.


□ 공동사업 재개를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 조사 재개를 위해서는 코로나 사태 해결과 남북관계 재개가 필요하다.

이 조사가 한번 시작되면 적어도 3~4개월은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숙소문제가 중요한데, 남측조사단의 만월대로 출퇴근하려면 개성공단 숙소가 필요하다. 2018년에는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 숙소 신세를 졌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생각같아선 제3국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가서 개성시내에 머물면서 단기간 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라도 성사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지금까지는 통일부와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사업이 진행되었는데, 발굴에서 정비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필요예산도 더 커지고 있다. 경기도도 개성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만월대 조사에 참여해서 사업을 보다 확대해서 진행하는 방향으로 협의해 보려고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개성 만월대 열두해의 발굴'이라는 순회전시가 진행될텐데 경기도도 올 하반기에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발굴성과를 도민들에게 보여드리고 남북협력사업에 대한 지지와 공감을 넓히려고 한다.


□ 암튼 대단한 전문가를 모시고 경기도에서도 기대가 클 것 같다. 이재명 지사의 특별한 당부는 없었는지.

■ 그 이전에 이재명 지사님이나 이재강 부지사님과는 개인적으로는 전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기도에서는 민간에서 남북사업을 오래한 경험이 있는 현장활동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정책 담당자가 아니라 북측과 직접 사업을 만들고 개발하고 합의하고 집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저는 어려운 상황에서 뭔가 작은 구멍이라도 내려면 민간단체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제가 목표로 했던 지속적인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하는데 경기도와 같은 지방정부의 힘과 지방정부 책임자의 의지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로 필요가 맞은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이 원서를 내고 필기와 면접시험을 통과한 사람들 중에 최종적인 결정은 지사가 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를 선택한 것을 보면 남북사업을 현장에서 해 본 사람을 택한 것이다. (경기도가) 남북사업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 남과 북이 만나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는데, 왜 그러한지 다시 한번 말해달라.

■ 말지에서 처음 방북취재를 시작할 때 혼자 북에 왔다 갔다했는데 그 때 사람들이 너만 혼자 그러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오갈 수 있도록 하라고 해서 그때 생각한게 사람이 오고가야 관계가 진전이 되는 것이니까 나 혼자 그럴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만든 게 남북역사학자협의회였다.

학자들은 교류라는 게 기능적인 접근이고 한계가 있다고 비판도 하지만 결국 남북의 사람들이 서로 좋게 생각하게 하는게 교류의 목표인 것 같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 좋게 생각하고 보고 싶어해야 뭐가 되지 않나. 서로 보기도 싫고 안봐도 아무렇지도 않으면 무슨 통일이 되겠나. 

'3년을 보지 않은 연인에게서 사랑을 기대하지 말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벌써 2년이다. 미우나 고우나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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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기대를 접고 우리를 믿고 간다

[희망뚜벅이 김진숙] 청와대 앞 노상단식 40일 차

김진숙 복직촉구 청와대 앞 노상단식 40일 차다. 내 심경이 어떠냐고 누가 물었다.

 

우리는 다른 곳이 아닌 청와대 광장으로 왔다. 집회 시위 금지구역이라며 농성자에게 천막조차 허용하지 않는 곳.

굶어가면서도 기록적인 한파 속 산바람, 펑펑 쏟아지는 폭설, 사선으로 퍼붓는 겨울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청와대가 35년 전 국가폭력과 공기업의 합작인 김진숙의 부당해고 정도야 곧 바로잡아 주겠지. 해를 넘기기 전에 나서서 힘 보태주겠지. 대공분실 고문과 폭력으로 얼룩진 삶에 늦었지만 이제라도 당연히 고개 숙여 사과하고 명예회복시켜주겠지. 했던 마음이었다.


 

전두환 군부독재 시대 대의원 대회에 다녀와서 대의원 대회 보고 글 150여 장을 동료들에게 돌린 게, 열악한 노동현장을 언급하고 어용노조의 폐해를 지적한 단 몇 줄이 빨갱이로 몰려 대공분실로 잡혀가 피떡이 되도록 맞으며 해고될 일이었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터라 그랬다.


 

그런 작고 소박한 기대는 아주 순진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 이미 뒷간에 갈 적 마음과 달라져 우리를 잊은 이에게, 우리를 저버린 지 오래인 이에게,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추억을 쌓고 있는 이에게 여태 같은 편인줄 착각하고 예전 기억만으로 매달리기도 구차하다는 생각이다.


 

그럼 옛 동지에게 여전히 동지인지를 물으려고, 지금도 부당해고라고 생각하는지를 확인하려고, 변함없는 눈빛인지를 보려고 걸어오는 김진숙 동지의 발걸음은 의미 없는가. 끝까지 싸워 복직하라던 당사자에게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지 그 끝을 물으려는 것은 부질없는가.


 

대통령과 청와대의 답변이야 무응답으로도 충분히 들었다. 동지가 아니라는 답이었고, 국가폭력 문제를 노사 문제라며 등 돌린 것이었고, 세상을 보는 눈은 이미 질끈 감아 버렸다는 응답이었다. 해고와 복직 문제를 풀지 못하면 저승에 가서도 자리를 찾기 어렵겠다는 암투병 중인 해고 노동자 김진숙 동지에게. 저승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그 끝이라는 매몰차고 비정한 답을 벌써 준 것이고 일찌감치 받은 것이었다.


 

▲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한 시민이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는 108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숙과 40일 단식자들을 길바닥에 버려둘 겁니까' 연대자들 일천여 명이 함께 하루를 굶으며 신문광고로 공개적으로 물어도 마찬가지다. 답 없음이 그 답이다.


 

뚜렷이 알겠다. 수도 없이 써 보내는 짝사랑의 편지질은 멈춰야 한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마시는 김칫국 사발은 이제 그만 내려놓아야 한다. 아니라면 스토커 신세일뿐이다.


 

오늘 우리는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 다시 촛불을 든다. 노동 말살의 위급 세상을 알리는 봉화 같은 촛불을 든다. 부정의한 세상을 비추는 횃불 같은 촛불을 든다.


 

나와 같이 혹한 속 극한의 단식을 이어온 성미선, 송경동, 정홍형 동지. 우리의 40일 단식과 희망뚜벅이의 한 달여 행진은 문재인 정권의 무책임과 무능력함만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으로 그치진 않을 것이다.


 

서로 짝짜꿍인 한진중공업 사측과 어용노조, 노동자를 짓밟는 산업은행장 이동걸, 한때는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의 청와대. 저들과는 상관없이 과정이 아름다운 싸움이기 때문이다.


 

알맹이를 빼고 누덕누덕 기운 중대재해처벌법을 제대로 바꾸고,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를 투기자본에 넘기는 걸 저지하며, 비정규직 없는 세상, 해고 없는 세상을 꿈꾸는 걸음을 함께 떼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로도 발길로도 잊은 지 너무도 오래인 민주주의를. 타는 목마름의 우리가 같이 써가는 걸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목 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해 성취해 갈 우리를 믿는다. 

[생중계] 김진숙 복직! 해고금지! 광화문 촛불 클릭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13018432439791#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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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자 반미폭동' 50년을 맞아

  • 기자명 오키모토 유우지(沖本裕司)
  •  
  •  승인 2021.01.29 22:26
  •  
  •  댓글 0
 
 

1970년 오키나와 코자에서 일어난 폭동

이 기사는 한일연대기구 저명활동가가 추천한 기사이다. 

번역 : 한희수(코리아국제평화포럼KIPF 국제팀)

 

▲ 타운 음 시장 1층 플로어. [1970 년 12 월 코자 반미 폭동의 사진전]
▲ 타운 음 시장 1층 플로어. [1970 년 12 월 코자 반미 폭동의 사진전]

1970년 12월 20일의 코자 반미 폭동으로부터 벌써 50년이 지났다. 오키나와시 전후(戦後)문화 자료전시관 <히스토리트 ヒストリート>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기획전 <‘코자 폭동’을 생각하다-그로부터 50년->을 개최하고 있다(1월 30일까지). 또 12월 20일을 목표로 ‘오키나와 아시아 국제 평화예술제 실행위원회’등이 주최해 류큐신보사와 오키나와시의 <뮤직타운 소리 시장>에서 사진전을 개최했다. 신보 1층 광장에서는 12월 12일, MP1)를 본뜬 폐차를 젊은이들이 뒤집는 퍼포먼스도 벌어졌다. 신보와 타임스의 현지 신문 2지는 연일 지면에 그 내용을 다루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게재하고 폭동인지 소동인지, 왜 일어났는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등을 물었다. 50년이라는 세월, 반세기가 흘러도 바래지 않고 당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는 12월 20일의 사건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배경에서 일어나고 어떤 결과를 초래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걸까. 

주1) Military Police의 약칭. 미군기지 내에서의 미군・군속 등의 사건, 사고의 조사, 풍기 위반을 단속하는 것이 임무다.

오키나와 타임즈 <분출한 마그마 - ‘코자소동’ 50년>(中)
콘 이쿠요시(今郁義)씨의 보고에서

현지신문에 게재된 여러가지 논평 중에서 오키나와 타임스 <분출한 마그마 – ‘코자 소동’ 50년>(中)(20.12.17)의 콘 이쿠요시씨 글이, 12월 16일 이토만(糸満)2)의 긴조 토요(金城 トヨ)씨의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을 규탄하는 현민대회, 19일 미사토의 독가스 철거 현민대회, 그리고 그날 밤의 스티커 부착과 당시 경과를 더듬어 20일 새벽부터 동이 틀 때에 이르는 코자 대폭동의 단초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좀 길지만 그 글을 인용하자. 

주2) 오키나와 섬 최남단에 위치한 시.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과 일본군의 격전지로 알려진 이토만시에는 평화 기념공원이 자리하기도 한다.

근 한 시간이 지나 마을의 코자 우체국 근처에 이르렀을 때, 군도3)(軍道)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 팔레스 호텔 근처 길거리에 2,30명의 인파가 있었다. ‘겟 어웨이, 겟 어웨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무리였다. 뭐지 싶었지만 우리도 머지않아 그 사람들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큼지막한 노란 번호판 차를 지키듯 MP가 몰려드는 사람들을 쫓으려고 위압적으로 외쳐댔다. 그러자 사람들 속에서 한 남성이 “차로 사람을 치어 놓고는 뭔가!”라며 달려들었다. 나는 그 때 노란 번호판 차가 사람을 친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남성이 또 “이토만을 아느냐”며 MP에게 덤벼들었다. 엉터리 영어로 MP에게 마구 소리치는 청년도 있었다. MP가 이 사람들의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군중의 표정으로 보아 미군이 일으킨 교통사고가 사람들을 화나게 했다는 것만은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3) 일본 복귀 전의 오키나와에 미정부가 설치하고 유지・관리했던 도로로 군용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등 군사적 관점에서 전 노선이 포장되어 있었다. 일부는 미군기의 비상 활주로 역할도 했으며 복귀와 동시에 국도, 현도로 이전되었다.

차 안의 미국인 남성 세 명과 두 명의 우치난추(‘오키나와 사람’이라는 오키나와말) 같은 여성의 표정은 굳어 있다. 차를 둘러싼 사람들은 늘어나고 보닛 쪽에 있는 몇 사람은 차를 위아래로 흔든다. 커다란 외제차는 이상하게 흔들리고 있다. 현장에 출동한 코자서의 경찰관이 “경찰이 처리할테니 즉시 해산해달라”고 경고했지만 “당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냐”는 군중의 한 마디에 씁쓸한 웃음만 지을 뿐이다. 

▲ 타운 음 시장 1층 플로어. [1970 년 12 월 코자 반미 폭동의 사진전]
▲ 타운 음 시장 1층 플로어. [1970 년 12 월 코자 반미 폭동의 사진전]

위아래로, 좌우로 흔들리는 노란 번호판 차에서 미국인들이 MP의 도움을 받아 밖으로 나온다. 그들에게 직접 손을 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빈차가 된 노란 번호판 차는 금방이라도 뒹굴 듯이 흔들린다. ‘세-노(하나 둘)!’하는 구호와 함께 넘어간 노란 번호판의 차. 어디선가 “가솔린!”, “성냥!”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곧 차의 앞쪽에서 ‘쾅’하는 소리를 내며 불길이 밤 하늘로 치솟는다. 몇 초 동안일까. 순간 정적이 흐른다. 둘러보니 군중의 수는 100명을 훌쩍 넘어 있었다. 우리가 이 상황을 맞닥뜨린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15분일까, 한 시간일까. 친구들과도 이미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 타운 음 시장 1층 플로어. [1970 년 12 월 코자 반미 폭동의 사진전]
▲ 타운 음 시장 1층 플로어. [1970 년 12 월 코자 반미 폭동의 사진전]

천천히, 천천히 차가 다가온다. “노란 번호판이다!”라고 누군가가 외쳤다. 동시에 군중의 물결이 크게 흔들리며 이동한다. 미군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차에서 달아난다. 남자들이 그 차를 밀고 나아가 앞서 불타고 있는 차에 부딪친다. “와” 하고 함성이 터진다. 함성이 신호인 듯 사람들은 몇 무리로 갈라져 길거리에 주차중인 차량 중 노란 번호판만 골라 끌어낸다. 밀면서 달리기 시작한다. 불꽃이 인다. 엔진이 터진다. 교토 관광호텔, 펠리스 호텔에 주차되어 있는 노란 번호판 차도 군도 24호선의 중앙 부근에서 불타오른다. 기묘할 정도의 고요함과 함성이 교차하며 군중은 매우 자연스럽게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 타운 음 시장 1층 플로어. [1970 년 12 월 코자 반미 폭동의 사진전]
▲ 타운 음 시장 1층 플로어. [1970 년 12 월 코자 반미 폭동의 사진전]

미군을 공포에 빠뜨린 노란 번호판 108대의 불길

그 후 남쪽은 미군의 라이캄・하우징 지역에 이르는 시마부쿠로 사거리 방면으로, 북쪽은 고야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여 게이트 통로에서 가데나(嘉手納) 공군기지 제 2 게이트로, 불타는 노란 번호판의 수는 점점 더 늘어갔다. 덧붙여서 복귀 후 ‘노란 번호판’은 ‘Y 번호판’으로 바뀌었지만 당시 미군 군속 관계의 번호판은 노란색으로 아래쪽엔 ‘KEYSTONE OF THE PACCIFIC(태평양의 요새)’라고 써 있었다. 

▲ 카데나 기지의 제 2 게이트. 2021.1.13
▲ 카데나 기지의 제 2 게이트. 2021.1.13

당시 코자 고등학교의 체육 교사였던 아사토 츠구노리(安里嗣則)씨는 “오키나와인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다”, “오늘이야말로 미군을 물리친다”라며 거리에서 호소하고 MP에 투석했다. 그러나 이후 미군 관계 차량을 불지르며 나아가 언덕 아래를 보니, 미군 주택지구 인근에 무장한 미군들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아사토씨는 “죽으면 안된다”며 더 이상 나아가는 것을 말렸다고 한다(타임스 2020.12.21). 미군 보고서에 따르면 오전 1시 35분 ‘폭동’이 발생, 수백명의 무장 미군병을 출동시켰다고 한다)

▲ 타운 음 시장 1층 플로어. [1970 년 12 월 코자 반미 폭동의 사진전]
▲ 타운 음 시장 1층 플로어. [1970 년 12 월 코자 반미 폭동의 사진전]

당시를 회상하며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해방구 같았다”, “혁명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다. 게이트로 향한 사람들은 제2게이트를 뚫고 기지 안쪽으로 진입해 패스 발권소와 미국인 학교 등에 불을 질렀으나 경찰과 무장미군에게 진압되었다. 헬기를 저공 비행시켜 취루탄가스를 발사한 미군에 봉기한 맨손의 시민들은 콜라나 주스 병으로 만든 즉제 화염병과 투석으로 대항했다. 불에 탄 노란 번호판 차는 미국 정부의 보고서에서는 82대라고 적혀있지만 당시 현장의 2km를 3번 왕복하며 불에 탄 차를 세웠던 아라사키 게이코(新崎敬子)씨에 의하면 108대였다고 한다(류큐신보 <여성들의 코자 소동 50년>(2020.12.18)). 현재 니시하라쵸에 사는 아라사키씨는 그 날, 경찰차가 초스피드로 달려 고야 사거리 방면으로 향하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해 현장으로 갔고 현장의 분위기에 사로잡혀 끝까지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다고 한다. 

타마키 데니(玉城デニー) 오키나와 지사의 인터뷰가 신보의 <코자 소동 50년>(2020.12.16) 기사에 실려 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지사는 비스지스센터 거리(현재의 중앙파크애비뉴)에서 북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다. 20일 아침 7시경, 친구와 셋이서 고야 사거리 쪽으로 가니 불에 탄 자동차가 새까맣게 변해 있었고 오일과 고무 타는 냄새가 주변에 가득해 전쟁이 일어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복화술사인 잇코쿠도우(いっこく堂)씨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 모친이 마을에서 <샌드위치 샵 타마키>라는 가게를 하고 있었고 손님의 90%가 미군이었다. 그날 아침 6시경 형과 함께 현장에 가 어른들 틈에 섞여 빈 병과 돌을 던졌다고 한다. 미군은 그 후 외출금지령을 발동. 코자 마을에서 미군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잇코쿠도우 어머니의 가게는 빚을 지고 문을 닫았다(타임스 <코자 소동 50년>(2020.12.17)). 

이날 밤의 사건은 현지 신문 2지의 1면에 전해졌다. 신보와 타임스 모두 제1보는 <코자 폭동>이었다. 당일 새벽 3시쯤 고등판무관과 함께 일등특기관 슈바르츠씨의 차를 타고 현장을 찾은 램퍼트 고등판무관은 베트남 전쟁의 광경이 겹칠 정도의 소동에 놀라 뒷골목으로 철수했다고 한다. 고등판무관은 이날 tv를 통한 성명에서 이날 밤 오키나와 사람들의 행동을 ‘폭동’, ‘완전한 파괴 행위’라며 ‘Law of the Jungle(정글의 법칙)’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현지 신문의 표현은 다음날부터 ‘코자 소동’으로 바뀌었다. 류큐 신보는 <코자 반미 소동 정치문제로 발전>(12.21), 오키나와 타임스는 <기지 마을 코자에서 심야 소동>(12.20호 외)이라고 보도했다. 

전국의 신문은 12월 21일의 지면에서 <오키나와 코자시에서 ‘반미 폭동’. 기지에 난입, 방화. 쌓인 분노 폭발.>(마이니치 신문), <오키나와 코자에서 반미 소동. 미군범죄에 분노 폭발. 기지에도 난입, 방화>(요미우리 신문), <오키나와 코자시에서 반미 방화 소요. 교통사고 처리에 군중 분노. 번화가에 5천명, 부상자 다수>(아사히 신문 오사카 본사)라고 보도해 전국민의 주목을 끌었다. 

‘폭동’인가, ‘소동’인가, ‘소요’인가?

‘폭동’인가, ‘소동’인가, ‘소요’인가? 아직까지 정해진 명칭은 없다. ‘소동’으로 보는 사람들의 주장은 “폭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배자 측의 견해”이지, 미군 당국이 말하는 무질서한 폭력행사 ‘폭동’이 아니라 강압 정치에 대한 정당한 분노의 표명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란 번호판 차를 불태우는 행동은 자제되어 있었고 또 쌓일 대로 쌓인 미군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 표출은 미군 개인을 향해 무질서하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가게를 약탈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행동은 ‘반미’라는 점에서 자각적이었다. 특히 흑인 병사를 저격하거나 손 대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노란 번호판 차, MP차량, 가데나 기지 게이트 내 패스 발권소와 미들 스쿨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불지르고 파괴했다. 무섭고도 대단한 집단적 폭력행사 아닌가. 미군 당국이 ‘Riot(폭동)’이라고 비난한 것은 두려움의 반영이며 그날 행동이 그만큼의 충격을 상대에게 주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코자 반미 폭동’이라고 부르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오키나와시의 시사 편집 담당자에 따르면 시민들의 “단순한 소동으로 좋은 것인가”라는 강한 항의의 목소리와 미군 자료 등을 바탕으로, 잠정적으로 괄호를 달아 ‘폭동’이라고 표현해왔다고 한다. <히스토리트>도 마찬가지다. 그 날의 행동에 ‘소동’은 확실히 너무 가볍다. 현민이 스스로 행동의 의의를 과소평가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상대가 원하는 일일 것이다.

‘폭동’도 ‘소동’도 아닌 평가가 있다. 소설 <타카라지마(宝島(보물섬))>의 저자 신토(真藤)씨는 신문(2020.12.20)에 실린 인터뷰에서 “모종의 시민혁명 같다”고 말한다. ‘시민 혁명’, 좋은 말이다. 전후 25년에 걸친 미군에 의한 오키나와 점령과 미군정부지배의 무법, 겹겹이 쌓인 범죄의 축적. 류큐 경찰에 따르면 1960년대 10년 간, 미군・군속에 의한 사건・사고・범죄가 매년 천 건 전후로 기록되어 있다. 베트남전의 수렁 속에서 오키나와 주둔 미군들은 거칠어졌다. 택시 요금을 내지 않고 도망치는 것은 기본. 폭행사건, 교통사고도 일상다반사. 미군정은 이들 미군・군속 가해자를 재판하는 데 있어 일관되게 공평하지 못했고 피해자를 구제하는데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현민은 하나하나의 사건・사고・범죄를 잊지 않았다.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미점령군과 미군정에 대한 분노가 마그마가 되어 축적되어 갔다. 

코자 폭동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 권력자의 불합리한 압정이 있을 때는 반드시 민중에 의한 다양한 형태의 반격이 일어난다. 오키나와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그마가 폭발한 것일 뿐이다. 만약 같은 사태가 반복된다면 또 마그마는 폭발할 것이다. <히스토리트>의 전시는 끝맺음으로 ‘’코자 폭동’은 오키나와의 분노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적었다.  

당시 속해 있던 단체의 전단에 코자 폭동을 ‘대미군실력투쟁’이라고 썼다는 콘 이쿠요시씨는 타임스의 인터뷰(2020.12.13)에서 “미군을 향한 하룻밤의 봉기”라고 말한다. 코자 민중의 미군에 대한 자각적 폭력에 공감하는 논자는 ‘봉기’, ‘궐기’라는 의미를 부여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도 ‘봉기’라고 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탈취가 의식화된 것이므로 과대평가는 금물이다. 자연발생적인 봉기로 코자의 중심가를 지배하고 코자를 해방구로 만들어 낸 민중의 권력은 새벽과 함께 사라졌다. 코자 반미 폭동은 하룻밤만의 ‘오키나와 혁명’이었다. 아침을 맞이하자 미군기지에서는 폭동에 참가한 기지 종업원도 미군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출근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 오키나와시의 게이트 거리에 있는 전후 문화 자료 전시관
▲ 오키나와시의 게이트 거리에 있는 전후 문화 자료 전시관

코자 반미 폭동이 일어난 복귀 직전의 상황

당시 1972년 오키나와 반환은 기정 사실이었다. 12월 20일의 코자 반미 폭동에 앞선 복귀 운동의 축적, 교공 2법 저지 투쟁4), 전군노(全軍労)5)의 거듭되는 파업 등 1960년대 투쟁의 고양을 배경으로, 미군정과 일본 정부에 대해 오키나와의 분단 지배를 깨부술 때까지 쌓아 온 힘의 관계는 현민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에 ‘오키나와를 얕보지 말라’고 하는 강한 자각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주4) 교직원의 정치활동에 제한을 가하여 복귀 투쟁을 봉쇄하려는 권력 측의 움직임에 위기감을 느낀 교직원회가 100% 연가투쟁을 조직하고 입법원을 포위하여 법안을 유보시켜 실질적인 폐안을 쟁취함

주5) 전오키나와군노동조합의 약칭. 전군노 투쟁은 1971년 미군의 오키나와 노동자 대량해고에 맞선 오키나와 미군기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수차에 걸쳐 대항.

▲ 구시멘트 안화(安和) 부두 입구 게이트 앞. 꾸준히 항의의 목소리를 올린다. 2021.1.13.
▲ 구시멘트 안화(安和) 부두 입구 게이트 앞. 꾸준히 항의의 목소리를 올린다. 2021.1.13.

코자 반미 폭동의 다음해인 1971년 11월 10일에는 오키나와의 첫 역사적 총파업에 10만 명이 참가했고 궐기 집회가 열린 요기 공원에는 수 만명의 인파가 결집해 짓챠쿠(勢理客)의 미군기지까지 데모 행진을 이어갔다. 당시 요기 공원은 지금처럼 울타리나 화단의 경계가 정비되어 있지 않은 그저 탁 트인 광장이었기 때문에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집회에 알맞았던 것이다.

미군정 말기, 복귀 전야의 오키나와 정세는 수온(水温)에 비유한다면 들끓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배자처럼 미군의 음주 운전 교통사고 사망사건을 무죄로 만드는 미군들. 인권 유린을 거듭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미군들. 심지어 핵무기와 독가스를 현민이 모르는 사이에 대량으로 반입해 독가스 누출 사고를 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미군들. 이러한 미군에 대한 강한 분노가 정치적인 자신감으로 뒷받침되어 현민의 마음 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12월 20일 코자 민중에 의한 미군에 대한 철저한 폭력 행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군은 ‘좌익이 군중을 선동해 일으킨 폭동’으로 파악하고 류큐 경찰은 ‘소란죄’를 적용해 주모자 색출에 혈안이 됐다. 그 결과 51명이 ‘주모죄’로 송치되어 10명이 기소됐으나 ‘소란죄’를 입증하지 못해 4명이 ‘방화’, ‘기물파손’으로 집행유예 유죄판결을 받았다(1975.6.17, 나하지법). 네 사람은 그 자리에 있던 수 천 명, 아니 오키나와 현민 100만 명의 대표이자 대신이었다. 복귀협6)은 끝까지 이 재판을 곁에서 지지했다. 

주6) 오키나와 저항운동의 모체가 된 ‘오키나와 현 조국 복귀 협의회’의 약칭.

가데나 경찰서 경장 C・K씨는 ‘소요죄’ 수사를 맡게 되어 법을 공부했다. ‘수괴, ‘주모자’, ‘실행범’, ‘사람의 수’, ‘조직화’, ‘무기 종류’등 소요죄의 키워드가 ‘사람의 수’를 제외하고는 이 사건에 해당되지 않았다. 특별한 지도자가 없고 모두 맨 손으로 무기도 없어서 소요죄는 적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경장은 “진상을 규명해 마땅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수사관의 심리”라면서, 반면에 우치난추로서 마음 속 어딘가에 ‘시타히햐(‘잘했다’는 오키나와 말)’라는 감정도 있었다고 말한다.

NHK의 ETV 특집 <오키나와가 불탄 밤 ~코자 소동 50년 후의 고백~>이 2020년 12월 19일에 방송되었다. 콘 이쿠요시씨는 이 방송에 출현해 그 날 밤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사실대로 고백하며 노란 번호판의 차를 5, 6대 불태웠다고 했다. ‘소란죄’, ‘방화’, ‘흉기준비집합죄’등으로 범죄시되는 마당에 “노란 번호판 차를 뒤집었다, 불태웠다, 투석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5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그 날 밤의 행동을 증언한 그는 그 이유를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체포・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은 4명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현재에 이르는 코자 반미 폭동의 충격

코자 반미 폭동의 충격은 현 안팎의 우치난추에게도 큰 힘을 미쳤다. 당시 오사카에 있던 킨죠미노루(金城実)씨는 사건의 소식을 접하고 “시타이햐! 우치나!(‘잘했다! 오키나와!’의 오키나와말)“라고 엉겁결에 외쳤다고 한다. 킨죠씨가 영혼의 조각가가 될 결의를 굳힌 것도 이 사건 때문이었다고 하며 그는 타임스 논단에 ‘오키나와전과 미군 지배에 대한 저항의 역사. 자기결정권을 향한 선구적 역할을 짊어진 것이 코자 사건 아니었던가. 민중의 저항이야말로 비폭력 불복종의 ‘봉기’는 아닐까.(2020.12.16)’라고 적었다. 

▲ 게이트 앞. 안화(安和) 광산에서 덤프가 줄을 잇고있다. 2021.1.13
▲ 게이트 앞. 안화(安和) 광산에서 덤프가 줄을 잇고있다. 2021.1.13

코자 반미 폭동은 일본과 미국, 양 정부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토록 큰 폭동에 미군은 무장 미군을 출동시켰으나 무력 진압은 하지 않았다. 당시 발사된 총은 실탄으로 손등을 스친 남성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군중을 해산시키려고 MP가 허공을 향해 쏜 것이었다. 만약 미군이 진압에 실탄을 사용하겠다는 선택을 했더라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극을 낳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핵 반환, 기지 자유 사용 반환’을 은폐하는 사토 총리와 미국의 기만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미 1년 반 후에 오키나와 반환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군도 직접 진압을 삼가하고 있던 것일 게다. 만일 이 폭동이 1950년대에 일어났다면 총검과 불도저 폭력 지배의 절정에 있던 미군은 ‘피의 탄압’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 게이트 앞. 안화(安和) 광산에서 덤프가 줄을 잇고있다. 2021.1.13
▲ 게이트 앞. 안화(安和) 광산에서 덤프가 줄을 잇고있다. 2021.1.13

실제로 미군은 오키나와 현민의 반(反)기지 투쟁에 대한 단속을 복귀 후 일본 정부의 역할로 선택했고, 현민 또한 본토 복귀를 통해 오키나와현으로 편입하고 거기에서 기지 철거로 가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오키나와의 투쟁 구도는 코자 반미 폭동으로부터 이어진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021.1.20) 

 #코자반미폭동 #오키나와 #주일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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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 사건? 4차 대유행 시작?... IM선교회 '나비효과'

[방역 전문가 4인에게 물어보니] 곤혹스런 방역당국, 일단 판단 유보... 며칠 더 지켜보기로

21.01.29 18:05l최종 업데이트 21.01.29 18:05l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확진이 발생한 광주 서구 안디옥교회에서 28일 오전 신도와 그 가족이 전수 검사에 참여하고 있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확진이 발생한 광주 서구 안디옥교회에서 28일 오전 신도와 그 가족이 전수 검사에 참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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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선교회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방역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당초 29일(오늘)로 예정되어있었던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안' 발표도 31일로 미뤄졌다. 기존에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하향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IM선교회발 집단감염 사태가 중대한 변수가 됐다.

불과 1주일 전까지만 해도 1일 확진자가 300명대까지 감소했으나, 최근 500명대까지 다시 상승했다. 핵심은 최근의 상승이 일시적 사건일 뿐인지, 4차 대유행의 전조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IM선교회발 대규모 집단 감염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대유행 전조로 해석하는 전문가도 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현재 정부는 "(일시적 현상인지, 4차 대유행 시작인지) 판단하기에 애매한 상황"(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루 이틀의 환자 유행 상황의 변동도 중요한 분석 자료가 되므로, 시간을 좀 더 벌어놓고 판단하자는 게 정부 입장이다. 만약에 이것이 4차 대유행의 전초일 경우를 고려한다면 거리두기 완화는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전국적인 이동이 예상되는 설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하지만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소폭이라도 거리두기에 의한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을 '재유행'이라고 단정짓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에 대해서는 신중한 분위기다.

[이재갑 교수] "설 연휴때까지는 지금 기조 유지해야"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설 연휴 때까지는 지금의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방역 이완이 되면 확진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라며 "안정됐다고 보기 어렵고 위험요인이 많아서 재유행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지금 자영업자가 버티기가 힘든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라면서도 "그러나 지금 단계를 낮췄다가 확진자가 증가해서 다시 올리는 것과, 지금 거리두기 단계를 연장하는 것 중 무엇이 반발이 더 심할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애매한 상황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코로나19 유행에서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지금의 기조는 힘들더라도 유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한국퍼스널트레이너협의회장 김광연 트레이너가 운영하는 헬스클럽이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 시행으로 문을 닫았다.현재는 강사들이 기구를 점검하기 위해 문을 연다.
▲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한국퍼스널트레이너협의회장 김광연 트레이너가 운영하는 헬스클럽이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 시행으로 문을 닫았다.현재는 강사들이 기구를 점검하기 위해 문을 연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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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교수] "숨통 트이긴 했지만... 4차 대유행 준비하고 있는지 의문"

김동현 한림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한국역학회 회장)는 "1차 유행이 끝나고 나서는 확진자 기저 수준이 한 자리, 2차 유행 이후에는 50명~100명, 3차 유행 이후에는 400~500명이다"라며 "이 상황에서 4차 유행이 오면 확진자가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는데 그 부분은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400~500명이면 지금으로선 방역 대응을 잘 하는 것 같지만, 확진자 수를 더 내려놓지 않으면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면서 "그래서 거리두기 단계 조정을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지금은 3차 위기를 복기하고, 당시 드러났던 문제점들을 고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며 "하루하루의 확진자를 따질 게 아니라, 앞을 내다보고 '확진자 2000명'이 나오는 상황에 대한 대비를 지금부터 해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방역 강화·유지와 동시에 자영업자의 불만을 줄일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영업 제한 조치 역시 기존의 일방통행식이 아니라 업계와의 협의를 통해 설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자영업자에 대한 보상이 그동안 정치적인 공방으로 다뤄진 게 문제"라며 "자영업자의 영업 중단이 방역에 기여한 게 분명한 만큼, 일본이나 유럽처럼 대규모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기석 교수] "국민 희생 큰 상황... 가족 모임 10인은 허용해야"

정기석 한림대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당분간은 확진자가 급증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 교수는 "IM선교회는 하나의 집단감염 사건일 뿐"이라며 "지금까지의 방역조치가 대폭발을 막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서서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 교수는 "거리두기 단계를 내릴 때는 조심스럽게 내려야 한다. 수도권 2.5단계는 계속 유지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는 완화되어야 한다는 게 정 교수의 제안이다. 그는 "국민들의 고통과 희생이 큰 상황에서, 외부 모임이나 회식은 자제시키더라도 가족 모임은 10인 미만까지는 허용해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 "그 대신 정부가 2.5단계에서 방역조치를 위반하는 사각지대를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큰사진보기 1월 24일 대전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IM선교회 운영 IEM국제학교에서 학생과 교직원 127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진은 25일 확진자들의 아산 생활치료센터 이송과 건물 폐쇄 업무를 하고 있는 경찰과 방역당국 관계자들.
▲  1월 24일 대전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IM선교회 운영 IEM국제학교에서 학생과 교직원 127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진은 25일 확진자들의 아산 생활치료센터 이송과 건물 폐쇄 업무를 하고 있는 경찰과 방역당국 관계자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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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교수] "4차 대유행은 결국 오긴 온다, 시기 늦추는게 목표"

정재훈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방역당국 입장에서는 2.5단계를 유지하면서 위기의식을 계속 끌고 가면 좋지만, 국민들이 버티려면 거리두기 단계를 내리는 시점이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4차 유행을 늦추기 위해선 단계 완화는 부드럽고 천천히 가져갈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수학적 모델링에 따라 정 교수가 예측한 4차 대유행의 정점은 3월 4일부터 4월 23일 사이다. 지금 당장 대유행이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이 시점을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 교수는 "4차 대유행은 결국 오긴 오겠지만, 최대한 시기를 늦추는 것이 해법"이라며 "최대한 백신 접종을 많이 한 상태에서 유행이 오면 노약자와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고, 중환자실 병상 수급도 여유가 생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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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실명제’ 탄생부터 종말까지

‘선거 실명제’ 17년 만에 ‘위헌’, 바뀐 재판부 구성에 ‘소수자 억압’ 문제제기 등 결실
양대 실명제 참여정부서 태동, ‘인터넷 실명제’ 기성 정치권 강행에 민주노동당만 ‘반대’
입법 후 시민단체·언론에 다음카카오·유튜브까지 문제제기 
 
 

 

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8일 공직선거법상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선거법 82조의6 조항)에 ‘위헌’을 결정했다. 오픈넷과 미디어오늘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따른 결과다. 2012년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으로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폐지 역시 시간 문제라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 폐지로부터 9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 같은 결정이 나왔다.

문제 우려되니 틀어막자? ‘과잉’ 판단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 언론사에 선거 기간 동안 본인 확인을 통한 실명 댓글을 강제하는 내용이다. 익명 게시판 형식의 인터넷 언론사 댓글창을 방치하면 경과하는 날 만큼 과태료가 붙는다. 언론사들은 실명 시스템을 적용하거나 댓글창을 임시 폐쇄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적용 대상 언론사에는 포털도 포함된다.

“인터넷이 형성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의 다양한 의견 교환을 억제하는 것이고, 이로써 국민의 의사표현 자체가 위축될 수 있으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자유로운 여론 형성이 방해될 수 있다.”
- 2021년 1월28일 헌법재판소

재판의 최대 쟁점은 필요 이상으로 규제해선 안 된다는 ‘과잉금지원칙 위배’ 여부였다. 헌재는 “모든 익명표현을 사전적,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보다 행정편의와 단속편의를 우선함으로써 익명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익명표현의 제한이 구체적 위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심판대상조항(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으로 인해 위법한 표현행위가 감소할 것이라는 추상적 가능성에 의존하고 있는 점”도 짚었다. 실명제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관련 명예훼손, 후보자 비방죄 등 사후적인 제재 장치가 있는 점도 ‘과잉 제재’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있다. 사진=민중의소리.

6년 전엔 ‘합헌’ 이번엔 ‘위헌’

6년 전인 2015년 헌재는 같은 법 조항에 ‘합헌’을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선거운동기간 중 인터넷 언론사 게시판 등을 통한 허위사실이 유포될 경우 언론사의 공신력과 지명도에 기초하여 광범위하고 신속한 정보의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합헌’과 ‘위헌’, 상반된 결과지만 2015년 당시 헌법재판관 5명이 합헌 의견을, 나머지 4명이 위헌 의견을 내놓아 불과 1명 차이로 엇갈린 판단이 나왔다. 반면 이번에는 6명이 ‘위헌’을, 3명이 ‘합헌’ 의견을 냈다. 이번 결정에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선거 기간 흑색선전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로 과도하지 않다며 6년 전 합헌 의견과 일맥상통하는 입장을 냈다.

헌법소원을 담당한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결국 헌법상 과잉금지원칙, 비례의 원칙을 판단함에 있어 주관적 가치 기준이 작용할 수밖에 없고 재판부 자체의 구성, 재판관 성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수가 사상의 자유 측면에서 ‘규제’를 원칙으로 하는 보수 성향인지, ‘자유’를 원칙으로 하는 진보 성향인지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 있을 것이고, 단언할 수 없지만 합헌 결정 당시와 재판부의 구성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라고 했다.

▲ '인터넷 실명제' 캠페인 관련 이미지. 사진=진보네트워크센터
▲ '인터넷 실명제' 캠페인 관련 이미지. 사진=진보네트워크센터

28일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합헌’ 의견을 낸 헌법재판관은 이종석, 이영진, 이선애 등 3명이다. 이들은 각각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과 바른미래당 추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지명 인사다. 이들 헌법재판관은 같은 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헌법소원 심판에서도 다수와 달리 공수처 합헌 의견을 내지 않았다(이선애 재판관은 각하, 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위헌 의견). 

오픈넷이 과거 ‘합헌’ 결정에 대한 적극적인 반박을 한 점도 차이였다. 손지원 변호사에 따르면 실명확인으로 인한 ‘정치적 보복’ 문제 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들의 피해 문제도 지적했다. 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한 후보에 대한 댓글을 쓸 때 실명확인을 거치는 과정에서 신원이 드러날까 염려하게 되는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차별과 불이익을 우려해 표현을 자제하게 되는 문제를 집중 제기한 것이다.

또한 ‘선거운동 기간’만 한정하기에 표현의 자유 제한 정도가 크지 않다는 기존의 합헌 논리에는 ‘오히려 선거 기간이기에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식으로 반박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그 결과 결정요지에서 ‘선거운동기간이 정치적 의사표현이 가장 긴요한 시기’라는 점이 고려되어 기본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판단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헌재 결정문에 언급된 ‘사후 규제’가 이미 많다는 점 역시 오픈넷이 집중적으로 제기한 문제였다.

시민단체와 언론, 카카오 유튜브까지 ‘저항’

인터넷 실명제의 역사는 참여정부 때인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 도입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하면서 논란이 시작된다.

먼저 논의된 건 뒤늦게 사라진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였다. 2004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합의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온다. 회의록을 보면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도입을 적극 주장했다. 같은 해 시민사회단체와 인터넷 언론사들이 ‘인터넷 검열 반대 공대위’를 구성하고 선거 실명제 불복종을 선언한다. 그러나 2004년 3월9일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은 해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각하되면서 제대로 된 법리다툼조차 하지 못했다.

이어 2005년 이른바 ‘개똥녀’ 사건과 ‘연예인 X파일’ 이슈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면서 인터넷 익명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귀결됐다. 이 국면에서 진대제 장관은 사이버폭력 대응방안으로 ‘인터넷 실명제’ 카드를 다시 꺼내든다. 같은 해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실명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나서는 등 여당의 화답이 이어졌다.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이어 본격적인 ‘인터넷 실명제’ 논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2007년 인터넷 실명제 반대 기자회견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2007년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반대 기자회견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결국 2006년 6월5일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이어 ‘인터넷 실명제’가 국회를 통과한다. 훗날 ‘인터넷 실명제’가 헌재에서 만장일치 위헌 결정을 받은 사실을 감안하면 논쟁이 첨예했을 것 같지만 정작 주류 정치권에선 이견이 없었다. 당시 재적의원 179명 중 10명을 제외한 169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권영길, 노회찬, 단병호, 이영순, 천영세, 최순영, 현애자 의원 등 8인이다. 열린우리당 장향숙,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은 기권했다.

한편 2006년 5월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되자 저항이 이어졌다. 참세상, 민중의소리 등 언론사들은 실명제 불복종 운동을 전개했다. 참세상은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에서 과태료 처분을 받으면서까지 실명제에 맞섰다. 2009년 본인확인제 대상 사이트로 지정된 유튜브가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는 입장을 내고 한국 국가 설정으로 접속한 이용자의 영상 업로드 및 댓글 작성 기능을 제한하는 강수를 던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민중의소리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반대 선언 기사 갈무리.
▲ 민중의소리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반대 선언 기사 갈무리.
▲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불복한 참세상.
▲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불복한 참세상과 진보네트워크센터.
▲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불복한 유튜브.
▲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에 불복한 유튜브.

2010년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두 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된다. 참여연대는 오마이뉴스, YTN, 유튜브 네티즌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미디어오늘은 진보네트워크센터와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년 만인 2012년 헌재는 ‘인터넷 실명제’가 익명 표현의 자유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언론의 자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만장일치로 위헌 결정했다.

당시 기사를 보면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에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가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는 여전히 강력하게 적용됐다. 2012년 블로터(당시 블로터닷넷)는 SNS 계정 로그인을 연동해 댓글을 쓰는 ‘소셜 댓글’을 도입하며 우회로를 찾는다. 소셜 댓글은 언론사 댓글처럼 보이지만, 실은 실명인증 의무가 없는 SNS 계정을 통한 글이었기에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단속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선관위가 초기에 소셜댓글도 실명제 대상이라고 규정하면서 논란이 이어졌다.

당시 이희욱 블로터닷넷 편집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매체는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을 갖고 기사를 작성하고, 정책에 반영한다. 그런데 시스템에 의해서 선택지가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본격적인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헌법소원은 2012년 8월 딴지일보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면서 시작된다. 2013년 1월 실명확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다음카카오(현 카카오)도 같은 해 10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며 힘을 보탰다. 중앙선관위도 인터넷 실명제 폐지 이후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폐지 의견을 낸다. 하지만 2015년 합헌 결정을 받으면서 다시 제자리 걸음이 됐다. 

논란이 끊이지 않자 국회에서 다시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가 화두가 됐다. 2015년 정개특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2015년 12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진태·김도읍 당시 새누리당 의원 등이 익명 댓글이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며 반발해 관련 조항은 빠졌다.

이후 미디어오늘, 비마이너, 직썰, 뉴스민 등 언론사들이 실명확인 조치 거부 입장을 내고 댓글창을 닫는 등 문제 제기를 이어갔다. 딴지일보는 20대 총선과 19대 대선 당시 실명확인을 하지 않아 과태료를 부과 받은 뒤 위헌법률심판제정 신청에 나섰고, 2020년 미디어오늘과 오픈넷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지난 28일 ‘위헌’ 결정을 얻어냈다.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양대 실명제는 폐지됐지만, 또 다른 ‘실명제’는 아직 숨 쉬고 있다. 진보넷은 29일 입장을 내고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터넷상 익명성을 침해하는 제도들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문제적 법률이 법률상 ‘본인확인’ 제도, 달리 말해 ‘셧다운제’다. 오병일 진보넷 대표는 “셧다운제를 하려면 청소년 확인을 위해 연령을 확인하는데, 이는 본인 확인 조치이기에 게임 실명제로 작용한다”고 했다.

오병일 대표는 “인터넷 기업들이 관행적으로 본인확인업체를 통한 본인확인을 하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보통신망법에 본인확인 기관을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를 굳이 둘 필요가 없다”며 “사업자가 필요에 의해 본인확인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를 정부가 규정하고 필요 이상으로 관행적으로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여전히 들여다봐야 할 문제적 제도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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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없는’ 전기차의 역습…2030년 생산직 60%는 사라진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1/29 11:23
  • 수정일
    2021/01/29 11:2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21-01-29 05:00수정 :2021-01-29 10:10

 

지난 21일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아이오닉5 테스트 차량 투입을 저지하는 모습. 독자 제공
지난 21일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아이오닉5 테스트 차량 투입을 저지하는 모습. 독자 제공
지난 한 해 전세계는 전기차 시대를 향한 기대감으로 들썩였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앞다퉈 미래차 산업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놨지만, 미래차의 등장과 함께 사회가 겪게 될 성장통은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자동차산업 전반의 구조조정과 전통적인 노사관계의 해체는 아직 펼쳐보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미래차가 우리 사회에 일으키고 있는 균열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지난 20일 낮 12시30분,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 아이오닉5 테스트 차량을 만들던 공정이 갑자기 멈춰섰다. 노동자들이 차체 투입을 가로막은 탓이다. 이들이 나선 이유는 전기차 핵심 부품의 외주화.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 대신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전기차 생산 계획을 확정짓고, 그 첫 타자로 아이오닉5를 시범 양산 중이다. 이대로라면 완성차 공장의 절반가량은 내연기관차와 함께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울산공장의 풍경은 전기차 시대에 자동차산업이 맞닥뜨리게 될 구조조정 드라마의 예고편을 보여준다. 산업 패러다임 급변으로 기업들은 한편으론 신사업에 투자재원을 쏟아부으면서 다른 한편에선 원가절감에 어느 때보다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노조의 ‘고용 안정’ 요구에 확답을 줄곧 피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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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이미 시작된 현대차

28일 현대차 노사 양쪽의 설명을 들어보면, 현대차그룹은 내연기관차의 파워트레인에 해당하는 E-GMP(일렉트릭-글로벌 모듈러 플랫폼) 전기차의 PE(파워 일렉트로닉스) 모듈을 모두 부품 계열사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E-GMP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오는 3월 출시하는 아이오닉5를 시작으로 모든 전기차에 적용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E-GMP 전기차 파워트레인의 경우 현대모비스와 (그룹 바깥의) 다른 부품업체들을 경쟁시켜 원가를 절감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 “현대차나 기아는 선택지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현재 현대차 공장의 절반가량은 완성차 조립, 나머지 절반은 주로 내연기관차 파워트레인 생산을 맡는다. 전기차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후자는 점차 몸집을 줄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에 노조는 지난해 단체교섭 때 전기차 PE 모듈 물량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노조 집행부도 이를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집행부 관계자는 “매번 임단협 때마다 성과급이나 챙기면서 이런 상황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이미 늦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는 사이 현대차는 이미 사실상의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있다. 매년 정년퇴직 인원만큼 공정을 대폭 없애는 작업이다. 회사는 이를 ‘공정개선’이라 부른다. 지난해 ‘개선’ 대상은 1041개 공정으로 모두 1572명분이다. 같은 해 정년퇴직 인원 1436명을 조금 넘는다. 1970명이 정년퇴직하는 올해는 1712명분의 공정이 없어질 전망이다.

인력 충원이 필요한 곳에는 신규 채용 대신 시니어 촉탁제로 대응하고 있다. 시니어 촉탁제는 정년퇴직한 뒤에도 최장 1년간 계약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제도다. 2019년 노사 합의로 도입됐다. 한 조합원은 “최대한 신규 채용을 하지 않으려는 회사와 정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고 싶은 고령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30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친환경 미래차 현장방문’ 행사 종료 후 현대차그룹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현대차 공영운 사장, 알버트 비어만 사장, 이상수 지부장, 정의선 회장, 하언태 사장, 이원희 사장, 기아차 송호성 사장. 현대차그룹 제공
지난해 10월30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친환경 미래차 현장방문’ 행사 종료 후 현대차그룹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현대차 공영운 사장, 알버트 비어만 사장, 이상수 지부장, 정의선 회장, 하언태 사장, 이원희 사장, 기아차 송호성 사장. 현대차그룹 제공
“노사 모두 대책이 없다” 지적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와 맞물려 이뤄지는 비가역적 구조조정이란 측면에서 혼란은 더욱 심하다. 향후 노사분쟁으로 이어질 조짐도 보인다. 최근 울산1공장에서 빚어진 충돌이 대표적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조합원은 “백번 양보해 전기차 파워트레인을 줄 수 없다면, PE 모듈과 서스펜션을 통합하는 프런트 섀시 모듈이라도 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라며 “아이오닉5 공정을 중단시킨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강경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노조가 요구하는 총고용 보장에 대해서도 최근에는 언급 자체를 꺼린다. 정년 보장이 아닌 ‘고용 보장’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노조 집행부는 지난해 10월 정의선 회장과 만나 “총고용 보장 합의서에 대한 믿음을 달라”고 요구했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정 회장이 “고용 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정규직 생산직 비중이 높은 현대차·기아의 생산 물량을 대폭 줄이는 계획은 조만간 본격화될 공산이 크다. 신규 채용을 사실상 ‘0’으로 둔 현재 계획대로라면 2030년에는 생산직의 40%만 회사에 남게 된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5만 조합원’의 현대차 노조도 옛말이 되는 셈이다.

현대차 고용안정위원회 내부에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안정위원회는 2019년부터 미래차 시대에 대비해 생산직 재배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한 자문위원은 “현실적인 재배치 방안을 찾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며 “기본적으로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인데 본사에서는 (고용안정위를) 형식적인 절차라고만 여기고 이대로 정리하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짙다”고 말했다.

현대차 공장의 위축은 자동차산업 전반에서 변주될 가능성이 높다. 미래차 투자에 막대한 금액이 들어가는 만큼 내연기관차 생산 쪽에서 원가를 줄여야 할 유인이 커지고 있어서다. 현대차 원가절감추진위원회는 2018~2025년 총 41조원을 절감한다는 계획을 올해 새로 수립했다. 기존 목표인 2018~2022년 34조5000억원에서 기간과 금액 모두 늘렸다. 또 다른 자문위원은 “노사 모두 단기 이익에만 골몰하는 데서 벗어나 미래 세대를 위해 자동차산업이 어떤 일자리를 제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80948.html?_fr=mt1#csidx530523c12ebc1c1adb945376e2d6b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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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사법농단 판사’ 2명 중 임성근 탄핵만 추진하는 이유

법리적·정치적 다툼 소지 경계하고, 위헌성 확실한 임성근에 ‘탄핵 집중’ 방침

최지현, 남소연 기자
발행 2021-01-29 09:28:15
수정 2021-01-29 09:28:15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28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의 모습. 자료사진. 2021.01.28.
28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의 모습. 자료사진. 2021.01.28.ⓒ정의철 기자 /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은 28일 '사법농단 판사'로 지목돼 탄핵 대상으로 거론되던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와 이동근 서울고법 부장판사 중 임 판사에 대해서만 탄핵소추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전날에 매듭짓지 못한 '사법농단 판사' 탄핵 추진 여부를 논의했다. 그 결과에 대해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헌법 위반 혐의를 받는 임 판사에 대한 의원들의 탄핵소추 추진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가 앞장서는 게 아니라 개별 의원들의 탄핵소추안 발의를 '허용'한다는 수준에 그치면서, 당 지도부가 '사법농단 판사' 탄핵에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당 안팎에서 터져 나왔다.

애초 민주당 지도부는 당내에서 판사 탄핵 움직임이 일고 있는 데 대해 부담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 탄핵을 추진했다가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야당의 반발로 정국이 혼란해지는 것을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판사 탄핵에 결론을 내지 못했던 전날 의원총회가 끝난 뒤 박성준 원내대변인이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 입장에서는 민생국회 고민이 많은데 (판사 탄핵까지 하려면)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부분은 (논의 중에) 있었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틀 연속으로 진행된 의원총회에서 판사 탄핵에 대한 찬성 의견이 다수 나오고 당 안팎의 지지 여론도 높은 만큼 당 지도부가 이를 완전히 외면하긴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진지한 검토 끝에 민주당 지도부는 '사법농단 판사' 2명 중 1명에 대해서만 탄핵소추 추진을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홍정민 원내대변인은 이날 의원총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판사 탄핵을 당론으로 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당론이 '일하는 국회법'밖에 없다"며 "(나머지는) 당론이라고 명칭하고 추진하는 건 거의 없다"고 밝혔다. '당론으로 정하지 않은 것은 무책임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는 "당론으로 정해 의원 의사를 강제적으로 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사법농단 판사' 탄핵을 함께 추진해오던 박주민 의원도 이날 밤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 의원을 비롯한 많은 의원들이 애를 쓰셨고, 지도부가 현명하게 결정해줬다"고 평가하면서 "마무리 과정도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판사 탄핵 여론을 일으킨 문제의 사건은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사법농단을 수사한 검찰 기록에는 이 사건 재판장이던 이동근 부장판사가 선고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던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선고 요지 초안문을 이메일로 보냈고, 임 판사는 '청와대가 싫어할 것'이라는 취지의 이유로 초안의 특정 표현과 문장을 고쳐 답신했다고 나와 있다.

임 판사는 답신에서 "허위사실은 명백하지만, 비방 목적이 없으니 무죄"라는 취지가 드러나는 방향으로 수정을 요구했고, 이 판사는 최종 선고문에 해당 부분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 중 임 판사의 죄가 탄핵에 이를 만큼 중하다고 민주당은 판단했다.

이 대표는 이날 밤 페이스북 글을 통해 "당초 이탄희 의원은 판사 2명의 탄핵소추를 준비했으나, 잘못이 현저한 임 판사만 소추하는 것으로 이 의원 스스로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임 판사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요구를 위축시키기 위해 외신기자의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에 개입해 판결문 수정을 요구하는 등 담당 판사의 재판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법원은 1심에서 임 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임 판사의 행위가 위헌적이라는 것은 판결문에서 6차례 언급했다"며 "더불어 2018년 법관대표자 회의는 그에 대한 탄핵소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수호해야 할 판사의 위헌적 행위를 묵과하고, 탄핵소추 요구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국회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라며 "법원에서 위헌적 농단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저희는 고심 끝에 탄핵소추를 인정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소추까지의 과정은 국회법에 따라 진행되고, 소추 이후의 과정은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늘 아침에 당내 법률전문가 몇 분으로부터 이 판사는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다"며 "그 제안 이 의원이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우선 법관대표자 회의 결정문의 해석상 이 판사가 포함되느냐 여부에 대해선 다툼의 소지가 충분히 있다. 일부 법률전문가는 (탄핵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고 의견을 개진했고 이 의원도 다툼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고 받아들였다"고 부연했다.

또한 "(이 판사의 경우 임 판사보다) 잘못이 상대적으로 경미하다는 것 또한 이 의원이 수용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홍 원내대변인은 "의원들 가운데 여러 찬반 의견이 있는데, 조금 더 확실한 분을 (탄핵소추)하게 되면 좀 더 찬성하는 의원이 많아질 거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국회법 130조에 따르면 국회는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 보고된 뒤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표결해야 한다. 늦어도 이달 안에 탄핵소추안 서명작업이 마무리돼야 다음 달 2일 첫 본회의에서 보고한 뒤 72시간째가 되는 5일에 탄핵소추안이 처리될 수 있다.

앞으로 '사법농단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던 이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정의당, 열린민주당, 기본소득당 의원 107명을 중심으로 임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판사 탄핵 요건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발의와 과반수 찬성이다.

만약 판사 탄핵이 끝내 불발될 경우 정치권 안팎에서 상당한 반발이 예상된다. 탄핵소추가 될 경우에는 이후 헌법재판소가 최종 판단하게 된다.

최지현,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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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와 강원도, 그리고 북조선

[단번도약, 북조선] 스위스가 보여주는 북조선의 미래

스위스 하면 알프스다. 알프스가 곧 최고의 자연 보배이자 최상의 자원 보고이다. 스위스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6할이 곧장 알프스로 달려간다. 유럽에서도 가장 큰 산맥으로 유럽의 중앙부를 동서로 1200㎞나 가른다. 그 중 20% 남짓이 스위스에 자리하고 있다. 국토의 6할이 온통 알프스산인 것이다. 알프스 평균 고도가 1700m이니 스위스는 전형적인 산악 국가, 뫼의 나라다. 북위 45도에서 49도 사이,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보다도 더 북쪽에 터하고 있다. 위도도 높고 고도도 높은 고고(高高)한 나라이다.

 

쥐라 산맥도 있다. 넓이는 60㎞, 길이는 250㎞. 영토의 1할을 차지한다. 켈트어로 '숲'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레만호에서 라인강까지 굽이굽이 뻗어 있다. 프랑스 동부와 독일의 남부를 잇는 석회암 산맥이다. 평균 해발 700m, 알프스 못지않게 아름다운 아고산지대이다. <쥐라기 공원>으로 널리 알려진 쥐라기라는 개념이 바로 이곳에서 유래하였다. 과거에는 바다였다고 한다. 웅장한 알프스의 조산운동으로 쥐라까지 덤으로 솟아오른 것이다. 그래서 암모나이트 화석이 지금도 종종 발굴된다. 이 암석을 연구한 18세기 후반의 지질학자들이 '쥐라기'라는 명칭을 공식화한 것이다.

 

알프스와 쥐라, 양대 산맥을 겸하면서 스위스는 4000m가 넘는 산을 48좌나 보유하고 있다. 이 작은 나라에 드높은 봉우리가 경쟁적으로 솟아 있는 것이다. 알프스 최고봉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국경에 걸쳐있는 몽블랑(4810m)이고, 스위스 최고봉은 몬테로자(4634m)이다. 유명세로 치자면 으뜸은 마터호른이다. 하늘과 맞닿는 4478m, 3454m에 자리한 융프라우가 마터호른으로 가는 중간 거점이다.


 

두 산맥 사이로 약 3할의 국토가 고원지대이다. 레만호와 보덴호 사이, 중앙고지에 스위스 국민의 대다수, 7할이 살아간다. 평균 고도 580m, 여름 평균 기온 섭씨 20-25도, 겨울 평균 온도 2-6도의 쾌적한 환경이다. 제네바부터 취리히까지 스위스를 대표하는 주요 글로벌 시티들도 바로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제네바 호수 전경. ⓒ이병한

산이 깊으면 물도 맑다. 깊은 산속 옹달샘을 유럽인이 나눠먹는다. 스위스는 유럽 총면적의 0.4%에 불과하지만 담수의 비축량만 따지면 6%에 이른다. 알프스 전체로는 26%를 저수하고 있으니, 말 그대로 유럽의 분수령(分水嶺)인 셈이다. 라인강과 로이스강, 티치노강과 론강 등 유럽의 주요 강들이 알프스에서 발원한다. 알프스 빙하가 녹은 담수가 북으로는 독일과 네덜란드를 지나 북해에 가닿고, 남으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거쳐 지중해를 만난다. 그리스의 와인이 프랑스로 건너와 보르도와 브루고뉴 명산지에 전파된 것도 이 하천망 덕분이었다. 스위스에 수원을 둔 주요 강들이 사방팔방 흘러가서 문화를 전파하고 물자를 운반하는 사통팔달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산에서 물이 흘러가면 강이 되고, 산 속에 물이 고이면 호수가 된다. 스위스에는 자그마치 1,500개의 호수가 있다. 가람의 나라일 뿐만이 아니라 호반국가이기도 한 것이다. 거개가 산정호수이고 빙하호수이다. 프랑스 국경의 제네바 호와 독일 국경의 보덴 호를 첫손에 꼽는다. 스위스 국내만 따지자면 뇌샤텔호가 가장 크고, 루체른호와 취리히호 등도 제법 크다. 눈 녹은 호수에 비친 알프스의 그 눈 시린 풍경은 하늘이 이 땅에 허여해준 은총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함에도 19세기까지 스위스 여행자는 극히 드물었다. 험준한 알프스 산맥 탓에 이웃나라에서 스위스로 가기가 마땅치 않았다. 스위스 내부에서의 이동조차 여의치 않았던 시절이다. 우뚝 솟은 알프스는 독일과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도시를 방문할 때 가급적 빨리 통과해버리면 좋을 장애물이었다. 반전의 계기는 계몽주의에 반감을 품은 낭만주의의 출현이다. 루소와 바이런과 괴테 같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근대성에 물들고 있는 도시문명을 비평하며 알프스의 자태를 칭송해마지 않았다. 근대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알프스의 매력은 더욱 깊어졌다. 야만으로 비하했던 풍광이 어느 순간부터 낭만의 정점으로 뒤바뀌어 간 것이다. 조야한 이미지가 근원적 이미지로 탈바꿈하였다. 수많은 도시인들이 야생을 즐기고자 굳이 구태여 알프스를 오르기 시작했다. 19세기 토마스 쿡이 출범시킨 알프스 단체여행 상품은 대박을 터뜨렸다. 산악인들도 경쟁적으로 알프스 영봉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등산이라는 매우 이례적인 행동이 어느덧 가장 각광받는 대중적 스포츠가 된 것이다. 알피니즘의 탄생이다.


 

그러나 등산화와 등산복만으로는 알프스에 오르기 힘들었다. 험한 산길과 거센 물길을 잇는 매끄러운 인공 통로, 철도의 건설이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알프스 여행의 백미는 역시나 등산 열차이다. 스위스가 품고 있는 가장 웅장하고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창밖으로 지긋하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장까지 통유리로 된 파노라마 특실 객차도 있다고 한다. 베르니나 특급, 빌헴름 텔 익스프레스, 골든패스 등 4대 특급열차 가운데 내가 타 본 것은 마터호른을 향해가는 빙하특급(Glacier Express)이었다. 평균속도 34㎞. 세계에서 가장 느긋하고 느릿하게 달리는 특급열차이다. 291개의 다리와 91개의 터널을 지나 8시간 동안 울창한 삼림과 호젓한 호수와 시원한 계곡을 통과한다. 산골짜기에서 요들송을 부르며 무해한 삶을 살아가는 스위스 시골사람들의 순박한 생활도 엿볼 수 있다.


 

산악열차는 해발 3454m에 자리한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요흐까지 닿는다. 1912년, 장장 16년의 공사 끝에 전면 개통한 꼭짓점이다. 온통 만년설로 뒤덮인 마터호른이 맞은편에 떡하고 당당히, 꼿꼿이 버티고 서있었다.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탄성이 절로 새어나온다. 사피엔스가 등장하기도 훨씬 이전부터 솟아오르기 시작한 거대한 바위일 것이며, 스위스라는 나라가 탄생하기 훨씬 전부터 쌓여왔을 두텁고도 두꺼운 빙하이다. 일순에 일년, 십년, 백년 역사적/인간적 시간감각이 수줍어진다. 만년 억년 지질학적/지구적 시간감각에 압도당한다. 좀처럼 쓸 기회가 드문 우리말, '웅숭깊다'라는 이례적 수사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장소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에게는 알프스의 색감이 푸른 산도 아니요, 파란 물도 아닌 하얗디하얀 빙하로 남아있다.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이 빛나는 밤. 하얀 달빛을 머금고 하얀 별빛까지도 품었던 마터호른 산도 하얗게 빛이 났다. 그 빛나는 밤을 하얗게 지새우다 빙하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동트는 새벽을 맞이했다. '빛을 보다', '관광'(觀光)이라는 단어가 이보다 더 어울리는 장소는 지구상에 또 없을 것만 같았다.


 

▲스위스 빙하 특급 열차. ⓒ이병한

2. 관광대국


 

철도대국은 관광대국의 초석이 되었다. 철길이 산길과 물길을 잇는 촉매가 되었다. 스위스의 동서남북으로 유럽인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세계인들의 눈길도 유독 쏠렸다. 유네스코 선정 3개의 자연유산과 8개의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나라가 스위스다. 단숨에 세계 굴지의 관광대국으로 도약하게 된 것이다. 객관적 지표가 관광업의 위상을 말해준다. 국내총생산(GDP)의 3%가 외국인들이 스위스를 방문하고 쓰고 간 돈이다. 2011년 다보스포럼이 발표한 여행 산업 경쟁력 보고서에도 스위스는 당당하게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항로와 육로의 인프라가 워낙 탄탄한데다가 안전과 청결 면에서도 최고의 평가를 얻었다.


 

아무리 등산열차가 훌륭하다 한들, 창밖으로 바라만 보는 것으로 나는 도저히 족할 수 없었다. 쓱 보고 셀카만 찍고 휙 돌아서는 여행은 애당초 체질에 맞지 않는다. 오죽하면 걸으면서 생각하는 사람, '로샤'(路思)가 부캐가 되었다. 타고난 방랑벽을 한껏 끌어올리는 장소이다. 알프스까지 왔는데, 두 발로 걸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걸어야 제 맛이다. 시각만이 아니라 후각과 촉각 등 오감을 모두 자극한다. 풍경 속으로 내가 빨리어 들어간다. 내가 풍경의 하나로 녹아내리어 간다. 불일불이(不一不二)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지경에 진입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스위스는 하염없이 마구 걷기에 제격인 나라다. 대자연을 만끽하며 하이킹하고 트래킹 할 수 있는 코스도 여럿 정비되어 있다. 전국 전역을 잇는 둘레길이 장장 6만㎞에 달한다. 난이도도 다양하다. 아장아장 아이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평이한 코스부터 전문 장비를 갖추지 않고서는 도전할 수 없는 험준한 코스까지 각양각색이다. 때와 곳이 어울리면 금상첨화인바, 내가 알프스를 걸은 시점은 마침 4월 하순이었다. 눈이 녹아내린 드넓은 초원에 풋풋한 야생화가 폭발적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웅장한 빙하와 짙푸른 숲에다 찬란한 햇빛이 반짝거리는 호수만으로도 충분히 호사였건만, 겨울을 뚫고 흐드러지게 만발한 들꽃까지 곁들이니 바로 여기가 지상천국, 도원경이구나 싶었다.

 

사시사철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막 겨울 스키 시즌이 끝나던 무렵이었다. 한겨울이면 이 일대는 온통 스키부츠를 신은 사람들뿐이라고 한다. 최고의 설질을 자랑하는 리조트에서 신나게 스키를 타고나면 따뜻한 스파로 몸을 녹인다. 스키와 스파로 노곤노곤해진 몸을 누이고 쉬어갈 호텔산업도 스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전국에 6000개에 육박하는 호텔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호텔리어들 사이에서는 레전드로 통하는 호텔왕 세자르 리츠를 배출한 나라가 바로 스위스이다. 굴지의 산업과 최상의 교육은 무관할 수 없는 바, 전국 각지에서 세계적 명성을 확보한 호텔 학교들이 미래의 호텔리어를 양성하고 있다. 역시나 유학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글로벌 교육기관들이다.

 

물론 최정상급 호텔들만 즐비한 것도 아니다. 유스호스텔과 에어비앤비 등 선택지 폭이 넓다. 에어비앤비에 접속하노라면 대자연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캠핑장부터 장기 체류형 홀리데이 아파트, 주민들 및 동물들과도 함께 생활해 볼 수 있는 팜스테이 등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초콜릿과 치즈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눈에 띈다. 걷고 자고 먹고 마시는 그 어떤 방면으로도 남다르면서도 충실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관광대국 스위스의 진면모이다.

 

▲알프스 국립공원. ⓒ이병한

3. 환경 선진국


 

<유라시아 견문> 3년 내내 참으로 자주 비행기를 탔다. 어마어마하게 긴 탄소발자국을 남긴 것이다. 천일 유랑에는 한 점 후회가 없건만, 끝내 영 찜찜한 것은 여행이 수반하는 탄소 배출이다. 그나마 알프스 견문이 위안이었다면 마터호른의 발치에 자리한 체르마트가 대표적인 카프리(car-free) 청정 마을인 덕분이다. 오래된 목조 가옥에 내부 인테리어만 새로 한 부티크 호텔에서 이틀을 묵었다. 깜찍한 사이즈의 전기자동차가 부지런히 여기와 저기를 오가며 이곳과 저곳을 분주히 잇고 있었다. 생명을 살리는 생태마을, 21세기형 '새마을'이었던 셈이다.


 

'빙하여 잘 있거라.' 작별 인사는 극지방, 남극과 북극의 극단적 사례가 아니다. 유럽의 한복판, 알프스의 설산도 녹아내리고 있었다. 설경이 갈수록 자취를 감춘다고 한다. 알프스 빙하의 거개도 스위스에 자리하고 있다. 전체 국토 면적의 3%가 얼음일 만큼 빙하대국이다. 그러나 연년세세(年年歲歲) 그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지난 150년 알프스 평균 기온은 1.5도 상승한 것으로 추정한다. 백 년 전에 견주어 빙하의 표면적은 20% 이상 줄었다. 6번째 대멸종을 거부하는 '멸종저항운동'은 자연물의 하나인 빙하에도 해당되는 셈이다.


 

자연에 반하는 자동차부터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스위스는 배기가스 규제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유명하다. 디젤 트럭 운송도 대폭 줄여가고 있다. 도로 대신에 철도를 활용하는 딜리버리 모빌리티 혁신을 꾀하고 있다. 이미 사방팔방, 사통팔달 깔려있는 철도를 십분 활용하여 사람만이 아니라 물자도 이동시킨다는 복안이다. 장기적으로 스위스 국내 물류의 7할까지 철도가 소화하는 것이 목표란다. 실제로 스위스를 여행하노라면 도로보다 철도가 훨씬 편하게 구축되어 있다. 기차와 트램과 케이블카에 이르기까지 전국 6,300㎞의 철도 노선만 똘똘하게 활용하면 원하는 곳 어디든 쉽사리 도착할 수 있다. 통계상으로도 여타 유럽인들보다 스위스 사람들의 철도 이용률이 2배 높다고 한다. 대부분의 기차역에서는 공용 자전거도 빌려준다. 자가용을 몰면서 별도로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고도 쾌적하고 편리한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만사에 음과 양이 함께 있다. 빙하가 녹아내려 더욱 풍부해진 수량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지난 세기에도 산악지대에 건설한 수력발전소가 국내 발전의 절반을 도맡았는데, 2012년 9월에 발표한 <에너지 전략 2050>을 보노라면 2050년까지 그 비중을 3분의 2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신재생 에너지에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특히 태양광 발전을 확대하여 기왕에 3할을 소화했던 원자력의 비중을 대폭 낮춘다는 계획이다. 2011년 3.11 후쿠시마 사태 직후에 마련된 청사진인지라 원전은 더 이상 짓지 않기로 결정했다. 모자라는 에너지는 전국 30여개에 달하는 쓰레기 처리시설의 소각열을 이용해 벌충할 것이라고 한다.


 

물만큼이나 숲도 적극 이용하고 있다. 삼림 자원이 원체 풍요로운 나라이다. 롤렉스를 비롯하여 그 유명한 스위스 시계 산업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 의약품 수출이다. 내가 여행했던 2017년 통계로 의약품은 38%요, 시계는 9%이니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바이오 생명과학의 선진국이기도 한 바, 그 근간은 역시나 알프스가 품고 있는 그 생물다양성의 풍요로움에 있다 하겠다.


 

패시브하우스 등 에코건축 기술도 발군이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취리히와 베른이 선도하고 있는 '미너지'(미니멈 에너지) 생태건축이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열과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활용하여 1년 내내 건물 실온을 20도 안팎으로 유지한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만들고 여름에는 시원하도록 하는 순환 환기 시스템도 빼어나다. 바이오매스를 적극 활용한 에너지 보완책도 구비하고 있기에, 통상보다 높게 책정된 건축 비용일지라도 10년만 살면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살리고 지구도 살리는 생명살림건축의 전형인 바, 미너지 프로젝트의 장래 또한 밝은 편이라 하겠다. 이만하면 자연을 보존하는 에코(eco)는 물론이요, 미래 산업을 개척하는 바이오(bio)에 스마트(smart) 건축까지, 글로벌 그린뉴딜을 선도하는 환경 선진국이자 생태 모범국으로 스위스를 꼽는다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마터호른. ⓒ이병한

4. 강원도의 힘


 

하늘과 땅 사이 사람이 자리한다. 산과 강 사이 인간이 살아간다. 스위스가 매력적인 나라인 것은 역시나 화룡정점, 알프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이다. 생기가 넘치고 활기가 돋아나는 특유의 생생활활한 기운이 솟구친다. 가급적이면 지붕 아래서 머무르기보다는 문을 박차고 나가 하늘 아래서 오랜 시간을 머무르고자 한다. 여가생활도 시청각을 자극하는 미디어 소비가 아니라, 온 몸을 다 쓰고 온 힘을 다 쏟는 야외 활동이 중심이다. 국토를 놀이터로 삼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든 숲길로 곧장 이어지는 오솔길이 마련되어 있고, 계절에 상관없이 숲속 오두막집은 항상 성황이다. 장작불을 때지 않아도 되는 철이 되면 스키를 거두고 자전거를 꺼낸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산악자전거 대회 또한 일생에 한번쯤은 도전해 볼만한 정신적 쾌락과 육체적 쾌감을 선사한다.


 

강과 호수도 멀리서 바라만 보지 않는다. 곳곳에서 하얀 요트 돛이 나무처럼 뻗어 있고, 카누와 카약을 즐기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협곡을 지나거나 암벽을 타오르는 등 익스트림 스포츠도 활황이다. 팔뚝과 허벅지가 터져나갈 듯 심박수를 최고치로 올린 다음에는 첨벙첨벙 노천탕으로 뛰어든다. 뭍에서도 물에서도 '스웻 라이프'(sweat life)에 흠뻑 젖어들어 사는 것이다. 용병으로 징발되었던 왕년의 알프스 사나이(=산아이)들이 이제 유럽에서도 가장 건강하고 가장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는 '워너비'들이 된 것이다. 2H(Health & Happiness), 행복과 건강이라는 21세기 최고의 가치를 앞장서 솔선수범하고 있는 것이다.


 

자고로 20세기형 부국강병, 강성대국과 선군정치는 이미 후지고 낡은 레토릭이 되었다. 경제성장과의 병진정책 또한 따라잡기(catch up), 따라하기(follow up)의 반복에 그친다. 단숨에 단도직입으로 미래형 행복국가로 도약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행복한 마음과 건강한 몸이 곧 국가의 목표이자 국정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 산이 국토의 7할이 넘는 산악국가라는 점도 북조선이 스위스와 은근히 빼다 닮은 구석이다. 추운 겨울이 길다는 계절적 특성도 흡사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각별히 마식령 스키장 일대를 국제적 휴양지로 키우려는 발상 또한 스위스 경험과 아주 무관치는 않을 법하다. 다만 관광대국의 근간에 철도대국이 있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스위스만 해도 불과 일백년 전에야 철도대국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우후죽순 경쟁적으로 노선을 만들어가던 초기의 혼란을 거두고 스위스 연방철도로 통폐합되어갔던 저간의 시행착오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크다. 북조선은 처음부터 국영기업이 총대를 메고 국책사업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쪽이 이로울 것이다. 고속철도와 광역철도망으로 전국 전역을 사통팔달 전변시켜야 한다.

 

미국은 자동차 중심의 개인주의 사회인고로 고속도로가 교통의 중심이었다. 러시아는 집단적 전통이 유장한 고로 시베리아의 동서를 잇는 철도가 교통의 주축이었다. '한강의 기적'이 경부고속도로에 기초하고 있었다면, 북조선의 기약은 스마트 철도일 공산이 크다. 산악국가 북조선을 꼬부랑 고갯길로 꼬부랑꼬부랑 오고갈 것도 없다. 터널을 뚫고 산 아래로 달려가는 직선 거리의 철도가 산을 깎고 나무를 밀어 구불구불 도로를 만드는 일보다 훨씬 더 생태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많다. 갈수록 비행기는 덜 타고, 자동차 운전은 최대한 줄여가야 할 것인바, 도로 중심의 교통체계를 구태여 시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린 모빌리티 생태계로 단번에 도약하는 차원에서도 방점은 스마트 철도에 찍혀야 할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의 모국 스웨덴에서는 플뤼그스캄(flygskam)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비행기 여행의 수치심'이라는 뜻이다. 그 대척점에 있는 단어가 바로 탁쉬크리트(tagskryt)이다. '기차 여행의 자부심'이다. 북조선은 회색국가, 잿빛국가를 통과의례처럼 겪을 것도 없이 적색국가에서 녹색국가로 단숨에 뛰어올라야 할 것이다. 스위스의 북쪽, 옛 동독 지역이 독일 환경산업의 메카로 탈바꿈했음도 유력하게 참조해 볼만하다.


 

▲1939년 일제가 발행한 금강산 여행 지도. ⓒ위키 재팬

북조선이 스위스보다 더 유리한 점도 있다. 내륙국가 스위스와 달리 북조선은 바다도 끼고 있다. 서해와 동해, 황해와 청해, 양해를 겸장한다. 아무리 호수가 크고 강이 넓다 한들 망망대해의 그 압도적인 공간감을 따라갈 수는 없는 법이다. 잔잔한 호반으로는 미처 채워지지 않는 거친 파도의 원초적인 매력도 대단하다. 서해는 남중국해를 지나 동남아에 가닿는다. 구름에서 비가 결빙되어 떨어지는 눈송이를 좀처럼 보기 힘든 더운 나라가 태반이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던 무렵 우연히 한국에서 연수를 한 공직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 시절 가장 그리운 것이 한겨울 펑펑 내렸던 함박눈의 풍경이라 했다. 북조선의 그 긴긴 겨울, 한철 내내 녹지 않는 눈사람이 돈다발을 안겨다 줄지도 모르는 것이다. 동해를 지나 태평양을 건너면 남북아메리카와도 연결된다. 한국은 비무장지대(DMZ)에 막혀 대륙과 직접 맞닿을 수 없는 반면에, 북조선은 바다를 통해 아라비아와 아메리카에 가닿을 수 있다. 북조선이야말로 대양과 대륙이, 구대륙과 신대륙이, 아메리카와 유라시아가 만나는 접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일백년 전 가동되었던 크루즈 여행 코스이다. 유럽인들이 알프스로 달려가던 바로 그 무렵에 미국인들은 캘리포니아에서 출항하는 크루즈를 타고 금강산(Diamond Mountain)에 당도했다. 그 중에서 특히 원산은 샌디에이고부터 샌프란시스코까지 동태평양 연안도시의 핫 트렌드가 곧장 전파되는 서태평양의 대표적인 글로벌 레저 도시였다. 한여름 서핑부터 한겨울 스키는 물론이요, 일 년 내내 스파도 즐길 수 있는 아시아의 관광천국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것이다. 일제가 패망하고 남북이 분단되고 한국전쟁을 통하여 원산폭격으로 기반시설이 죄다 붕괴되면서 원산은 반세기가 넘도록 삼엄한 군사도시로 연명했다. 백 년 전 그 찬란했던 "아시아의 샌프란시스코"의 영화를 영영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완전범죄, 영원한 망각 또한 없는 법이다. 오랫동안 미국과 일본의 관광엽서를 수만 장 수집해온 지인의 컬렉션에서 태평양 횡단 크루즈 여행의 대미가 원산이었음을 수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15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지워지지 않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과거사의 자료이자 미래산업의 원료이다.


 

금강산만큼이나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산으로 자강도의 오가산을 꼽고 싶다. 강원도 인제군의 향로봉이 북과 남의 식물이 만나는 남북 생태계의 접경지대라면, 오가산은 유라시아와 북조선의 생태계, 대륙과 반도의 동물과 식물이 교호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산악인들과 아웃도어 브랜드를 오가산으로 초청해서 산림 엑스포를 열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내년에 강원도에서는 '세계 산림 엑스포'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국내를 대표하는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이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그러고 보면 강원도의 힘 또한 산에서 나온다. 도 면적의 8할이 온통 산이다. 그리고 그 산맥은 남과 북을 가르지 않고 유유하게 흐르고 유려하게 춤춘다. 설악산부터 금강산까지가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세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장만은 아닐 듯하다. 더군다나 강원도는 지자체 가운데 유일무이 남강원도와 북강원도로 나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강원 세계 산림 엑스포"라고 하니, 남강원도만 홀로 진행할 것도 없을 것이다. 금강산 관광 중단 13년차, 사람 사이가 아직도 서먹하다면 산부터 이어가는 편이 이로울 것이다. 이 땅 한반도는 애당초 북조선 인민과 남한 국민, 한민족만 살아가는 터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피엔스 이전부터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아가야 할 보금자리이다. 산길과 강길과 바닷길부터 먼저 잇고, 동물과 식물과 미물을 다시 연결시키고, 끝끝내는 갈라지고 쪼개졌던 사람들의 응어리진 마음도 차근차근 차차 풀어갈 일이다.


 

그렇다면 강원도를 '한반도의 알프스'라고 빗댈 수 있을까? 유럽에서 스위스가 했던 중계와 중재와 중립의 역할을 한반도에서는 강원도가 감당해볼 수 있을까? 강원도 역시도 문자 그대로 '강의 원천'(江原), 산골이 깊어서 물길이 출발한 땅이다. 스위스에서도 산길과 물길을 이은 것은 사람들의 의지로 만들어낸 철길이었던 바, 동해북부선, 남북열차사업의 핵심도 남북강원도와 남북고성을 통과한다. 스위스가 자랑하는 그 특급 산악열차로 강원도의 북과 남을 촘촘히 튼튼히 묶고 엮어서, 찬찬히 음미해 볼 수 있는 관광열차를 만들어 보아도 좋을 것이다. 금강산부터 설악산은 물론이요, 넘실대는 동해의 풍랑까지 통유리로 감상할 수 있다면 세계의 관광객을 (다시) 끌어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백년만의 재개장인고로, 이번에는 태평양 횡단 크루즈에 족할 것도 없을 것이다. 아메리카는 물론이요 인도네시아와 인디아와 아라비아와 유라시아까지 만국의 만인을 두 팔 벌려 환대하고 싶다. 부디 북과 남의 강원도를 한통속으로 접근하여 동북아의 스위스로 가꾸어 나가보자. 스마트뉴딜과 그린뉴딜과 로컬뉴딜에 남북뉴딜까지 장착한 글로벌 K-뉴딜의 생생활활한 실험장이 될 수 있다.


 

하필이면 김정은이 나고 자란 고향 또한 북강원도의 중심, 원산이었음이 예사롭지 않다. 원산부터 춘천을 지나 원주까지, 설악산부터 DMZ를 지나 금강산까지. 북강원과 남강원을 두루 망라하여 치산치수에 정성을 쏟고 치심(治心)까지도 만전을 다하는 큰 정치가로서 실력을 쌓아가길 바란다. 2022년 5월이면 한국에서도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다. 바로 그 달, 한 해 가운데 가장 찬란하다는 계절의 여왕 5월에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리는 강원 세계 산림 엑스포가 '남북생명공동체'의 비전을 온 누리에 표방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가 되어줄 것이다. 한번은 금강산에서, 또 한 번은 설악산에서, 마지막으로는 DMZ에서,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연달아 열어볼 수도 있다. 내년 세계 산림 엑스포의 주제가 "세계-인류의 미래, 산림에서 찾는다"라고 한다. 살짝 비틀어 "북조선의 미래 - 한반도의 알프스, 남북 강원도에서 찾는다"라고 속닥속닥 귀띔해주고 싶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12817351653295#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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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수신료인상 KBS에 ‘정권나팔수’ 반발한 조선·중앙

조선일보, 한겨레·KBS 등 비판공세 높여…“어용방송 엄벌” 주장도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탄핵소추안 발의 허용…신문별 입장 나뉘어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승인 2021.01.29 08:45
더불어민주당이 당 소속 의원들의 이른바 ‘사법농단’ 판사 탄핵 추진을 허용했다. 다만 당론으로는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28일 의원총회에서 결정했다. 탄핵 대상은 이른바 ‘세월호 7시간’ 보도에 불법적으로 관여한 의혹을 받는 임동근 부산고법 부장판사다. 함께 거론됐던 이동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률적 판단에 따라 제외하기로 했다. 두 판사 모두 오는 2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29일 전국단위 주요 종합일간지 대부분이 관련 소식을 다뤘다.

경향신문(범여 111명 법관 탄핵 촉구…민주당 “당론은 아니다” 선긋기)은 “법관 탄핵에 소극적이던 민주당 지도부가 이날 법관 탄핵 추진을 허용한 것은 당 안팎의 거센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다만 당론 불가 결정을 내린 배경은 “향후 민생 입법 추진의 부담과 정치적 역풍을 감안한 조치”라는 해석이다.

경향신문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 등으로 피로감이 생긴 사법 이슈가 재부상하면 2월 임시국회 주요 과제인 ‘방역·민생·경제’ 입법 추진력이 떨어질 수 있다. 가뜩이나 최근 여권에 부정적인 판결이 나오는 상황에서 ‘사법부 때리기’로 비춰질 우려도 있다”고 했다.

▲1월29일자 세계일보 2면 기사
▲1월29일자 세계일보 2면 기사

현재 법관 탄핵 추진 제안서에는 민주당 일부 의원을 비롯해 정의당·열린민주당·기본소득당·무소속 등 111명이 동의해 발의 요건인 100명을 충족했다. 민주당 등에서 40여명이 추가로 합류하면 탄핵소추가 가능하다. 서울신문(174석 슈퍼여당 파워 첫 법관 탄핵 가시권)은 “174석을 보유한 민주당 의원들 대부분이 탄핵에 동의하는 기류여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법관 탄핵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번에 법관탄핵이 이뤄지면 국내 첫 사례가 된다. 서울신문은 “역대 국회에서 법관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적은 없다. 12대 국회가 1985년 판사들에게 불공정한 인사를 한 유태흥 대법원장의 탄핵소추안 처리를 시도했으나 부결됐고, 2009년 18대 국회에서 광우병 촛불집회 개입 의혹의 신영철 대법관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으나 자동 폐기됐다”고 전했다.

대부분 신문이 이번 법관탄핵 취지 등을 건조하게 전한 데 반해 일부 신문은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와 세계일보는 각각 1면에 “일반 판사 탄핵 與 초유의 시도”, “與, 법관 탄핵 추진…‘사법부 길들이기’ 논란”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조선일보는 “민주당이 임 부장판사 탄핵 추진에 나서자 법조계에서는 ‘착잡하고, 곤혹스럽다’는 반응이 잇따랐다”며 일부 판사들의 의견을 덧붙였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이미 법원 자체적으로 자정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끝내 판사 탄핵이라는 극약 처방까지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다른 부장판사도 ‘임 부장판사에 대한 법원의 최종 확정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탄핵을 성급하게 추진하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는 전언이다.

▲1월29일자 전국단위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1월29일자 전국단위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KBS 수신료 1340원 인상 추진…조선·중앙 ‘결사반대’

한편 이날 신문들 가운데 조선·중앙일보는 KBS의 수신료 인상 추진에 사설을 내어 비판했다. KBS는 27일 정기 이사회에 수신료 인상안(텔레비전방송수신료 조정안)을 상정했다. 월 수신료를 2500원에서 3840원으로 인상하고 EBS 수신료 배분율을 현행 3%에서 5%로 늘리는 방안이다. KBS 수신료는 지난 1981년 이후 인상된 적이 없다.

중앙일보 사설(방만경영·공정성 논란 KBS의 수신료 인상은 안 된다)은 “KBS는 2019년 759억원, 2018년 58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디지털 다매체 시대라는 급변해 온 방송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라며 “KBS는 광고수입 감소를 경영난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개혁하려는 자구노력이 미흡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KBS의 또 다른 중대한 과제는 공정성 확보다. KBS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편향성 논란에 휩싸였다. 정권 홍보기관으로 전락한 공영방송이란 비판마저 받았다. KBS의 친여 성향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부단히 지적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월29일 조선일보-중앙일보 사설 제목
▲1월29일 조선일보-중앙일보 사설 제목

조선일보 사설(정권 나팔수 KBS, 방만 경영하며 국민에 ‘수신료 더 내라’니)은 “공영 방송의 기본도 지키지 않고 정권의 노골적인 응원단 노릇을 해온 편파 방송이 국민을 향해 ‘돈을 더 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수신료는 인상이 아니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KBS가 정권 나팔수로 나선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라며 이른바 조국 사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비판 보도 등을 언급했다. 이어 “직원 4700명의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고 2급 이상 고위직 비율도 56%나 된다. 놀면서 월급 받는 직원이 얼마인지 헤아리기도 힘들다는 내부 고발이 있다. 정권 나팔수 역할을 완전히 청산하고 이런 비효율을 모두 걷어낸 다음에 수신료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MBC, 한겨레 등에 대해서도 화살을 쏘았다. 먼저 또 다른 사설(온통 거짓 조작인 ‘채널A 사건’, 정권·사기꾼·어용방송 엄벌해야)에서는 KBS와 MBC를 “어용방송”이라 칭했다. 일부 검사와 채널A 기자의 ‘검언유착’ 의혹과 관련해서다. 4면(한겨레 오보, 秋라인 검사가 준 이용구 자료 보고 썼다)에선 최근 한겨레가 이용구 차관 음주폭행 의혹에 대해 보도한 내용을 두고 ‘법무부 대변인실이 준 자료를 받아썼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모 부장이 해당 자료를 법무부 대변인실을 통해 한겨레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일부 언론)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법무부 입장을 전하면서 “해당 부장이 자료를 준 것까진 부인하진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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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측위, "한미군사훈련 중단 총력 행동전 나서겠다"

공동대표회의 개최, '남북합의 이행으로 신뢰회복해야'...북측위 축전 보내와(결의문 전문)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01.28 15:06
  •  
  •  수정 2021.01.2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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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6.15남측위는 27일 공동대표회의를 개최해 신임 상임대표 등을 선출하고 올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사진 왼쪽부터 상임대표로 선출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조성우 겨레하나 이사장,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수 신임 상임대표
6.15남측위는 27일 공동대표회의를 개최해 신임 상임대표 등을 선출하고 올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왼쪽부터 상임대표로 선출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조성우 겨레하나 이사장,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 [사진-6.15남측위 제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이창복)는 27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대강당에서 온라인 회의를 병행한 2021년 총회(공동대표회의)를 개최하여 신임 상임대표 등을 선출하고 한반도 평화와 주권실현을 위한 올해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9기 상임대표단의 상임대표의장으로 재선출된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은 이날 신년사를 통해 "지금 한반도는 중대한 기로위에 있으며, 지금이야 말로 멈춰진 한반도 평화를 회복하는 마지막 기회"라며 "문재인 정부는 민족이 부여한 역사적 책무 앞에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새로운 남북대화의 물꼬를 3월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선제적 중단으로 만들어 내자"고 호소했다.

6.15남측위는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전날 총회 개최 소식을 전하면서 "(올해)남북관계 개선의 첫걸음인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위해 총력을 다해 행동할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6.15남측위는 이날 총회에서 채택한 결의문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문제는 바이든 신임 행정부가 북미대화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지를 가름할 기준점이 될 것"이라며, "이번 한미연합군사훈련이 2021년 정세의 향배를 가늠할 중대한 과제라는 점에서, 각계각층 풀뿌리 단체와 개인, 국제 평화애호 세력들과 해외동포들의 의지를 최대한 결집하여 집중적인 촉구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또 "남북사이의 정치, 군사적 신뢰를 훼손하면서 보건협력이나 종전선언을 제안한들 신뢰가 회복될 리 만무하다"고 하면서 "남북공동선언을 훼손하는 행동을 멈추고, 모든 합의를 총체적으로 실현하려는 노력이 본격화될 때 비로소 신뢰는 회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각계와 연대하여 정부·여당에 남북공동선언 실현을 촉구하는 한편 다가오는 대선에서 모든 정치세력들이 남북공동선언 이행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하고 남북해외 각계각층 대표들의 연대와 단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6.15남측위는 "신임 바이든 행정부 역시 대북압박을 우선시하는 한편, 한미동맹을 앞세워 대중국 압박과 일본과의 협력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 우려"된다고 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주권 실현의 걸림돌인 미국의 패권정책과 호전적이고 불평등한 한미동맹을 해결하고 정상적인 한미관계를 만들기 위한 실천을 연중 꾸준히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총회에는 6.15북측위에서 축사를 보내 "(6.15남측위는)세계적인 보건위기 속에서도 자주통일운동을 줄기차게 벌여왔으며 그것으로 역사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해내외 각 계층의 투쟁을 고무추동하였다"고 하면서 "올해에 더 큰 성과를 이룩하게 되리라"는 인사를 전해왔다.

6.15북측위가 남측 민간에 축전을 보내온 것은 지난해 남북관계가 격화된 이후 처음이다.

6.15남측위원회 9기 1차년도(2021년) 공동대표회의(총회) 결의문 (전문)

2021년 우리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3년전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협력의 전망을 환하게 밝혔던 북미,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들이 사라져 버릴 위기이다. 뜻깊은 역사적 합의를 만들고도 한미 정부 모두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그 결과 남북, 북미대화는 모두 중단된 채 아까운 시간만 흐르고 있다.
 
세계적인 코로나 대확산과 경제위기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패권정책이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켜 온 것이었다는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 세계적인 위기에 직면하여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왔던 나라들이 진가를 드러내고 있으며, 강대국 중심의 횡포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공존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국제관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반도 전쟁과 분단 문제 해결이 지연되고, 여기에 감염병의 위협마저 더해진 오늘, 자주와 평화, 남북화해협력은 더욱 간절하고 소중한 가치가 되었다.

2021년, 미국에는 신임 정부가 들어섰고, 한국은 대선을 앞둔 정치세력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전 세계적인 보건, 경제위기와 한반도 갈등이 지속될 것인가, 다시금 자주와 평화, 통일의 불씨를 지펴 올려 이 위기를 새로운 전환의 기회로 만들어 낼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2021년 이 중대한 기로에서, 이 땅의 자주와 평화, 통일의 새로운 진전과 전환을 일구는 힘이야 말로 각계각층 깨어있는 시민들의 행동에 있음을 확신하면서, 우리는 2021년 정기공동대표회의를 열고 아래와 같이 결의한다. 

1. 우리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 정신에 기초하여 평화와 주권을 훼손하는 미국의 한반도 패권정책과 간섭에 반대하여 적극 행동할 것이다.

전임 트럼프 정부는 대중국 압박을 위해 주한미군의 활동범위를 확장하는 것은 물론 동맹의 이름으로 한국에 각종 부담을 전가하려 하였으며, 북미정상회담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외면한 채 남북협력마저 사사건건 방해해 왔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남북관계 방해, 주권 침해, 평화 파괴 정책에 사실상 순응하여 남북합의 이행에 소극적이었을 뿐 아니라, 사드 전면 배치, 막대한 군비증액과 무기 증강에 몰두해 온 것이 사실이다.

신임 바이든 행정부 역시 대북압박을 우선시하는 한편, 한미동맹을 앞세워 대중국 압박과 일본과의 협력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 우려되고 있다.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자주 정신으로 강대국의 패권정책과 간섭에 맞서 나가자. 미국의 정책을 절대 선으로 포장했던 시대는 이미 끝났으며, 우리 국민들은 현재의 한미동맹이 주권과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님을 엄중히 추궁하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주권 실현의 걸림돌인 미국의 패권정책과 호전적이고 불평등한 한미동맹을 해결하고 정상적인 한미관계를 만들기 위한 실천을 연중 꾸준히 강화하여 자주와 평화의 새로운 진전을 이뤄낼 것이다.


2.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단합 실현을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갈 것이다.

지난 2년간 남북공동선언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음에 따라 남북간 불신은 격화되고 갈등도 심화 되고 있다. 자주와 평화, 통일의 당사자인 온 겨레가 적극적으로 나서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무엇보다 남북공동선언의 합의 정신을 충실히 이행하여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시작으로 무기 증강 역시 멈춰 세워 군축으로 나아가야 한다.

남북사이의 정치, 군사적 신뢰를 훼손하면서 보건협력이나 종전선언을 제안한들 신뢰가 회복될 리 만무하다.

남북공동선언을 훼손하는 행동을 멈추고, 모든 합의를 총체적으로 실현하려는 노력이 본격화될 때 비로소 신뢰는 회복될 것이다.

우리는 각계와 적극 연대하여 정부,여당에 남북공동선언들의 실현을 촉구, 압박하는 한편, 다가올 대선에서 모든 정치세력들이 남북공동선언들의 이행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견인해 나갈 것이다.

이와 함께 올해 남북해외 각계각층 대표들의 통일대회합 등 연대와 단합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나갈 것이다. 


3. 2021년 전환을 이끌어 낼 첫 단추는 단연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이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첫걸음인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위해 총력을 다해 행동할 것이다. 

모두가 인정하듯 2021년 초 국면의 전환을 이룰 첫 단추는 단연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 문제이다.

정부는 이 훈련이 연례적이고 방어적인 훈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최대규모의 무기를 동원하고 참수 작전 등 지휘부 제거와 점령을 상정한 훈련이 방어적 훈련일 수는 없다.

그동안 한미연합군사훈련문제가 북미, 남북관계의 주요 쟁점이었고, 지난 2018년 남북,북미정상회담 역시 한미연합훈련 중단 선언을 배경으로 하였을 정도로 연합훈련의 중단은 관계 개선의 중요한 징표이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문제는 바이든 신임 행정부가 북미대화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지를 가름할 기준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번 한미연합군사훈련이 2021년 정세의 향배를 가늠할 중대한 과제라는 점에서, 각계각층 풀뿌리 단체와 개인, 국제 평화애호 세력들과 해외동포들의 의지를 최대한 결집하여 집중적인 촉구 행동에 나설 것이다.

그리하여 전국 방방곡곡, 세계 곳곳에서 전쟁연습 중단, 남북,북미관계 개선의 목소리가 강력하게 울려 퍼지도록 할 것이다. 


2021년 1월 27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9기 1차년도(2021년) 정기공동대표회의 참가자 일동 

6.15남측위 9기 상임대표단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

김정길 (6.15광주본부 공동대표)

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만규 (흥사단 이사장)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원영희 (한국YWCA연합회 회장)

이규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의장)

이청산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

정성헌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

조성우 (겨레하나 이사장)

조헌정 (6.15서울본부 상임대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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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북한에 대한 당신의 모든 생각을 뒤집어 놓는다

  • 기자명 안양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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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2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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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4 class="subheading" style="box-sizing: inherit; margin: 0px 0px 1.875rem; padding: 0px 0px 0px 0.75rem; font-family: "Malgun Gothic", 돋움, dotum, Helvetica, "Apple SD Gothic Neo", sans-serif; font-weight: bolder; text-rendering: optimizelegibility; line-height: 1.25; font-size: 1.25rem; letter-spacing: -0.075em; border-left: 3px solid rgb(174, 174, 174); word-break: normal; overflow-wrap: break-word;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신간 소개] ‘부동의 목표 : 북한, 미국과 70년 동안 전쟁 중’</h4>

[신간 소개] ‘부동의 목표 : 북한, 미국과 70년 동안 전쟁 중’

 
 
 

미국 내 언론 매체 ICH(Information Clearing House)에서 소개한 아브람스(A.B. Abrams)의 신간(Clarity Press, 2020) ‘부동의 목표 : 북한, 미국과 70년 동안 전쟁 중’(Immovable Object: North Korea’s 70 Years at War with American Power)을 소개한 기사를 번역했다. North Korea는 북한, DPRK는 조선으로 번역했고, 특정인의 영어명은 영어로 표기했으며 직책은 본문에 따랐다. [편집자]

☞영문기사 보기

아브람스의 신간, ‘부동의 목표 : 북한, 미국과 70년 동안 전쟁 중’은 미국 측의 북한에 대한 일반적 생각들이 대부분 잘못된 것임을 보여 준다.

김일성 가문이 전체주의적 방법으로 통치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합리적이고 때로는 현명한 정책을 채택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 덕분에 북한은 전례 없이 강한 외부의 적의와 견제를 물리치고 상당한 정도의 군사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2017년 7월과 11월 사이에 북한은 3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한 개의 더욱 정교해지고 소형화된 수소핵탄두를 시험 발사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실험으로 미국의 가장 오랜 적대국 하나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음이 의심할 여지 없이 입증되었으며, 그 후에 미 정보당국도 북한의 핵탄두뿐만 아니라 실험발사 된 2개 유형의 ICBM 모두가 실전에 배치 가능함을 확인했다.

이제 북한은 더 이상 군사적 약자가 아니며, 미국과의 오랜 전쟁에서 유리한 입지로 올라서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북의 인민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22륜의 수직이동식발사대에 장착된 무명의 북한ICBM이 2020년 10월 북한 조선로동당 75주년 기념식을 축하하는 군사퍼레이드에서 전시중임
▲22륜의 수직이동식발사대에 장착된 무명의 북한ICBM이 2020년 10월 북한 조선로동당 75주년 기념식을 축하하는 군사퍼레이드에서 전시중임

갈등의 뿌리

미국과 북한 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 사이의 갈등은 그 뿌리가 미국주도의 세계질질서를 북한이 거부한다는 사실에 닿아 있다.

조선 건국의 아버지 김일성은 탁월한 조선민족주의자 김형직과 강반석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소련의 극동지역에 배치되어, 일본의 식민지배에 저항한 만주빨치산들의 지도자였다.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 사이의 식민지배 시기에 산업화를 추진하고 (전 세계에서 후버댐 다음으로 큰) 수풍댐을 건설했으며, 동시에 끔찍한 감시체제를 개발하여 정치적 반발을 억압했다.

미국은 남한에서 좌익민족주의 운동단체들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경찰국가체제를 건설했다는 측면에서 일본을 뒤따르고 있었다. 특히 그러한 국가 기관들은 과거의 일제하수인들에 의존하여 운영되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조선을 의도적으로 양분하고, 남한에는 이승만이 이끄는 종속정권을 수립했다. 이승만은 수년의 추방생활 끝에 더글러스 맥아더의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당시 CIA보고서들은 김일성과 이승만이 지도력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에서는 김일성의 지도하에 산업생산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으며, 공장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83%나 증가했다. 성공적인 토지개혁으로 농부들 또한 새로운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며, 많은 인민들이 국가보조를 받는 의료체계와 교육으로 혜택을 입었다.

반면에 이승만 정부는 남한경제를 일본경제에 부속시키려는 경제정책으로 사회적 반발을 촉발시켰다. 미국이 일본을 재건하여 냉전체제의 하위동반자로 삼고자 했던 결과였다.

그 밖에도 일제협력자들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반대진영에 대한 불관용이 사회적 반발을 더욱 거세게 키웠다.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발발전 이승만 정부는 미국 군사정치고문관들의 지원하에 적어도 10만의 자국민을 살해했다. 남쪽 섬 제주도에서의 좌익폭동이 특히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1940년대 후반, 김일성 정부는 자유로운 선거를 통한 평화통일을 주창했다. 미국 정부는 김일성의 승리를 예상했기 때문에 선거를 반대했다.

비슷한 사례로 베트남을 들 수 있다. 1956년 당시 미국정부는 호지명이 80% 이상의 득표로 승리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유선거를 무산시켰다.

미국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주권을 짖밟았다. 당시 미국은 이미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과정에서 동남아시아를 군사기지들로 포위할 수 있었으며, 이 기지들을 발판삼아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적 야망을 관철시킬 생각이었다.

한국전쟁

북이 1950년 6월 25일 남한을 침략함으로써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공식화된 견해이다. 그러나 아브람스의 설명에서는 그 반대임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가 제시된다.

선거를 통해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이(승만)의 병력은 북으로의 침공을 감행했고, 그 시발점이 6월 25일 국경 도시 해주에 대한 공격이었다. 남한 측은 후일에 반격의 일환으로 해주를 공격했노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성공적으로 해주를 점령했다는 발표는 널리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미국 정부관료들은 한국전쟁의 발발 소식에 고무되었다. 국무장관 Dean Dcheson은 “한국전쟁이 때 맞춰 일어났고, 그래서 우리를 구해주었다”고 말했다.

▲Dean Dcheson(오른쪽)과 Harry S.Truman 미국 대통령(왼쪽)이 한국전을 계획하고 있다.
▲Dean Dcheson(오른쪽)과 Harry S.Truman 미국 대통령(왼쪽)이 한국전을 계획하고 있다.

그밖에도 미국의 군부는 한국을 슈퍼바주카포, 네이팜탄, 젤리화된 개소린 등 새로운 무기체제를 시험하는 장소로 이용했다.

후에는 베트남이 동일한 목적을 위해 이용되었다.

북의 전쟁포로들은 의학용 실험쥐로 이용되었으며,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는 일본 전범들로부터 배운 세균전이 실험되었다.

일본전범들은 세계2차대전이 끝나고 메릴랜드의 미육군 생물전 본부에 비밀리에 초청받았고, 그 곳에서 강의했다.

일본제국주의를 상대로 전쟁을 이끈 경험이 있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살아있는 사람 중에 나만큼 유혈 낭자한 참상들을 많이 목격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전쟁만큼 처참한 파괴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다. 내가 그 곳에 있던 마지막 무렵에는 그 처참함에 위장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후에 맥아더는 그 전쟁에 대해 “인간 역사에 절대로 기록된적 없는 대살상극이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난지 수십년 후에 설립된 진실위원회에 의하면 남한군이 북한군(조선인민군 KPA)보다 6배나 더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미군 병사들 또한 마을을 불 지르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수십건의 대량학살을 저질렀으며, 그중 일부는 순전히 인종적 편견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다.

▲1950년 여름 대전에서 미군의 감시 하에 저질러진 측결처형
▲1950년 여름 대전에서 미군의 감시 하에 저질러진 측결처형

전투기 조종사, David Tatum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후에 우리를 공격할지 모르는 병사 한명을 죽이기 위해 민간인 10명을 죽여야 했다면, 우리는 후회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북한에서의 미군만행을 소재로 한 신천박물관의 그림
▲북한에서의 미군만행을 소재로 한 신천박물관의 그림

전쟁동안 북한이 격어야 했던 손실은 역사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적게 잡아도 북한 인구의 20%가 사망했다. 미 공군이 북한에 떨어뜨린 폭탄은 635,000톤 내지 698,000톤인데, 태평양전쟁 전기간 동안 일본 제국에 투하한 폭탄 503,000톤을 크게 넘어서는 많은 양이었다.

1950년 9월, 단 한차례 신의주시에 가해진 폭격만으로 공공건물 3,017채 중에서 2,100채, 주책 11,000채 중에서 6,800채, 초등학교 17개 중에서 16개, 종교시설 17곳 중에서 15곳이 파괴되었다. 폭격에 의한 사망자 중에 80%가 여성과 어린이였고, 생존자들은 지하동굴에서 살아야 했다. 공격은 소이탄(incendiary bomb)으로 시작되었고, 뒤따라 폭탄이 사용되었으며, 마지막으로 구조작업을 방해하는 시한폭탄이 사용되었는데, 그 목적은 순전히 사상자의 수를 극대화하자는 것이었다.

전에 도쿄 폭격을 지휘했던 Emmet O’Donnell 장군은 “전쟁 발발 3개월만에 한반도 거의 전역이 끔찍한 폐허로 바뀌었다. 공습의 결과로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이름값 할 만한 어떤 것도 서있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1953년 미 공군은 압록강 관계댐들을 공격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 수많은 마을들이 통째로 그리고 조선의 넓은 곡창지대가 수장되었다. 특히, 이곳의 쌀은 이미 영향실조에 걸려있는 주민들이 목숨을 연명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한 보고서는 “서양 사람들은 이 주곡의 손실이 그곳 아시아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굶주림과 서서히 찾아오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한국전쟁이 불러온 공포를 압축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한국전쟁은 이 나라에 38선이라는 영구분단선을 남기고 소강상태로 끝이 났다.

▲한국전쟁에 의해 폐허가 된 장면
▲한국전쟁에 의해 폐허가 된 장면

후에 미군의 군지휘관들은 중국과 북한의 전투력을 과소평가했음을 시인했고, 특히 맥아더는 북한 인민들에 대해 “강인한 적이고 통솔력 있는 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오늘날 북한민들은 한국전을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승리한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이 전쟁의 결과 김일성 가문은 정통성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이 망각 속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주된 이유는 이 전쟁이 미국의 정의로운 자화상에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을 기념하는 평양의 기념비
▲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을 기념하는 평양의 기념비

전쟁은 계속된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의 미국 정보보고서들은 이승만 정부가 북한에 대한 또 한 차례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수소폭탄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1957년 8월 9일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C) s702/2 보고서를 통해, 남한군의 조선에 대한 일방적인 선제공격을 허락했고 미군의 지원을 약속했다.

1958년 1월경 미국은 남한내 네 개의 군사 기지에 대략 150개의 핵탄두를 분산 배치했다. 이에 자극 받은 북측은 소련의 협력 하에 자체의 핵개발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 1968년 푸에블로 호 피랍 당시 체포된 미군
▲ 1968년 푸에블로 호 피랍 당시 체포된 미군

1968년 북한군이 미 해군의 감시선 U.S.S. 푸에블로 호를 나포하자 긴장이 끓어 넘쳤다. 북베트남은 이 사건이 있은 지 불과 일주일 후에 미군에 대한 ‘구정 대공세’를 개시했다. 일각에서는 푸에블로 호 나포와 ‘구정 대공세’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그 후의 통신들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펜타곤은 이 사건에 관한 미국 측 요구를 평양이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핵무기의 사용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한국전 휴전협정 당시 유리한 위치에 서기위해 핵무기 사용을 협박했던 사례와 아주 흡사하다.

1969년 미해군 비행기가 북측 영공에 침투했다가 일본영해에서 북측 Mig-21에 의해 격추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에 미 대통령 리차드 닉슨이 격분한 상태에서 핵공격을 승인했고, CIA 요원 Gorge Carver에 의하면 군부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다행히 좀 더 냉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그러나 긴장된 군사적 대치가 계속되었고, 그 와중에서 핵전쟁 위협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대리전쟁

핵전쟁 위협이 증가하는 가운데 미-북 간의 갈등은 대리전쟁을 초래했다. 예를 들어 북한은 베트남으로 조종사들을 파견했고, 이들은 베트남 인민군 공군을 위하여 공중 방위임무를 수행했다. 14명의 북한 조종사들이 사망했다.

베트남 전 국방부 차관이자 베트남전쟁 당시조종사였던 Tran Hanh은 “우리는 북한 조종사들이 굉장히 용감한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국가적 자존심이 아주 높았고..., 무엇도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의 공중공격으로부터 베트남을 방어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던 북한 조종사들
▲미국의 공중공격으로부터 베트남을 방어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던 북한 조종사들

보도에 의하면, 김일성은 1965년 중국대표와의 회견에서 베트남 인민들의 투쟁을 돕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미제국주의자들이 베트남에서 굴복하면 아시아에서도 무너질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전쟁이 우리의 전쟁이라는 생각에서 베트남 인민들을 돕고 있다. 베트남의 요청이 있으면, 우리는 우리 일을 내팽개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수의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군 병력은 북베트남군과 함께 지상전에 참여했으며, 북한군 심리전 전문가들이 북베트남군을 도왔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베트남 지도자들과의 대화중에 진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동굴을 파고 공장들을 그 안에 숨기라고 조언했다.

김일성은 1967년의 6일 전쟁 후에 이집트를 경제적, 군사적으로 지원했으며, 미국이 적극적으로 이스라엘 측을 지원한 1973년의 욤키푸르 전쟁에서도 원조를 제공했다.

그밖에도 1970년대 후반 김일성 정권은 1500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쿠바 지원하의 앙골라 인민해방군을 훈련시켰고, 고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국민회의(ANC)와 나미비아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 해방군, 그리고 미국 제재의 표적이 된 짐바브웨 로버트 무가베(Robert Mugabe) 정부를 지원했다.

1982년 북한은 이스라엘이 미국 후원하에 레바논을 공격했을 때 레바논의 방위에 기여했으며, 헤즈볼라가 지하무기고와 벙커, 그리고 통신망을 구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지하시설은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목적을 무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북한은 이란과 (2011년 카다피 붕괴 이전의) 리비아가 핵기술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미국이 바샤르 알아사드(Basharal-Assad)를 축출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자 특수부대를 파견하여 미국 후원하의 Jihadi군과 전투했다.

이상의 정책들은 완화될 줄 모르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적대감과 정권교체 계획 때문에 취해진 것이었다. 워싱턴 당국은 전세계에서 자신의 적들을 돕고 있는 북한의 현정권을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북 Vs 남

미국은 한국전 동안에 처음으로 북한에 대한 봉쇄조치를 취한 이후 1980년대까지 그 조치를 연장했다. 그 목적은 북한을 세계경제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의 전시기를 통하여 조선은 사회주의 진영의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견실한 경제적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성과는 농촌지역까지 포함하는 전 지역에서 높은 기술수준의 교육을 실시했던 덕분에 가능했다.

조선은 놀랍도록 거대한 수력발전 댐들과 전 세계에서 제일 깊은 지하철을 건설했다. 특히 깊은 지하철 건설은 한국전쟁동안에 지하방어시설을 건설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선이 전후에 빠른 속도로 사회의 기반시설을 재건했던 반면에, 남한은 1960년 이승만이 학생 주도의 시위로 권좌에서 축출되기까지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남아 있었다.

이승만이 집권하는 동안 남한은 GNP의 24%를, 미군병사 상대의 매음에 의존하고 있었다. 58세의 매춘 경험이 있는 김애란 씨는 2009년에 “미군에게는 제일 큰 핌프가 우리정부였다”고 말했다.

남한 경제는 1970년대 박정희 통치 하에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권보다 경제의 운영에서 유능했으며 일본자본의 대대적인 투입이라는 혜택을 누렸다.

1977년 전 한국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미국 의회에서 “북한에서는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북한 국민이 남한 국민보다 박탈감을 덜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북의 경제 생산이 감소하고 있던 시기에도 김일성 가문이 정권을 유지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1990년대의 생존

1990년대는 조선에게 특별한 고난의 시기였다.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했고, 그의 아들 김정일이 뒤를 이었다. 조선은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로 인하여 중요한 교역상대국들을 잃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은 연이은 자연재해를 겪어야 했다. 남서부 지역을 홍수가 강타하면서 식량창고가 사라졌다. 이 홍수로 인해 150만톤 규모의 지하 곡물저장고가 파괴되었다. 그 밖에도 전력생산능력의 85%가 사라졌으며, 540만 인민들의 집을 잃었다.

북한에서는 이 위기를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부른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국제사회가 고통을 완화시켜주기위해 개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오히려 경제봉쇄조치를 강화했으며, 북한으로 들어오던 유류공급까지 차단했다. 그 의도는 불만을 심어서 정권교체를 용이하게 해보려는 것이었다.

중국국경에 주둔하고 있던 CIA요원들은 절망적인 처지의 농민들에게 소꼬리를 댓가로 쌀을 제공했으며, 이 거래 뒤에는 북한의 농업경제를 더욱 철저하게 몰락시키겠다는 계산이 숨어 있었다. 기름이나 전기가 없어서 트랙터를 가동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는 소가 유일한 경작수단으로 남게 된다. 이때 소를 없애려했다면, 그 의도가 기아를 유도하려 했던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치명적인 지정학적 게임

북한 인민들은 모든 잔인한 수단들이 동원되는 치명적인 지정학적 게임에서 오랫동안 볼모로 잡혀 있었다. 그 유례를 찾아보자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경제봉쇄 조치가 최소 50만명 어린이들을 사망으로 내몰았던 이라크의 경우일 것이다.

북한의 경우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기구가 어린이들에게 비타민A 보충제를 제공하려 했으나 가로막혔고, 그 결과 적어도 2,772명의 어린이들이 죽었다.

2010년대 후반 출산건강에 관련된 의료장비에 대해 내려진 제재조치는 그 충격이 임신여성 72명과 신생아 1,200명의 사망으로 나타났다.

북한이 미국의 경제제재와 정권교체 시도에 당면하여 불가피하게 핵견제력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음을, 오바마 시절 국가정보원장을 맡았던 James Clapper와 같은 미국의 고위 관료들도 인정했다. Clapper는 북한의 핵프로그램에 대해 “생존을 위한 출구전략”이라고 말했다.

1994년 6월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핵프로그램 때문에 전쟁의 가장자리까지 접근했다. 그 위기는 김일성 정부가 영변핵시설을 조사하겠다는 국제 핵에너지 감시기구(IAEA)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시작되었다. 북측은 그들만이 차별적인 대상이 되었고, 조사팀에 정보요원이 침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거절했다.

미국 측이 선제군사 공격으로 협박하자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으로 날라가 김정일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중재로, 조선은 무기생산이 불가능한 새로운 원자로와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원유를 공급받는 대가로 자신의 핵프로그램을 동결하겠다는 내용의 합의를 받아들였다.

국무부 관리로서 그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Selig S. Harrison은 후에 북측이 협상의 목표에 부합하도록 영변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했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확인해 주었다. 특히 북이 식량부족을 비롯한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경제제재의 해제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북측 요구를 외면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측은 약속했던 원유공급과 경수로 제공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북한은 이 시점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상실하고, 2002년 핵협정(NPT)에서 철수했으며, 핵무기의 독자적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악의 축에서 트럼프까지

조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이라크, 이란 등 테러리즘의 후원국이라고 추정되는 국가들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함으로써 불에 기름을 부었다.

미 의회조사국의 동아시아 전문가였던 Larry Nikstch는 “북한에서의 정권교체가 부시행정부의 주된 목표였다”고 말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위해서 경제봉쇄 외에도 북의 항해로를 차단하는 등 새로운 경제적 압력이 가해졌고, 이러한 압박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국방장관 Donald Rumsfeld는 “다수의 목표를 향한 대대적인 공격계획을 폭넓게” 고려하고 있었다.

부시의 재임기간 동안에 잠시의 해빙기가 있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경제 압박을 강화하고, 조선의 핵 기반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는 등 강경노선에 따른 접근을 새롭게 시행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자유주의적 기조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들과 함께 앞서 말한 정책들을 선택했던 것은, 그들 스스로가 아시아의 악한 공산주의 정권 하나를 상대로 선한 대결을 벌리고 있다는 생각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년 동안, 주류언론들은 북한을 악마화하는 데 열중했고 돈을 대가로 조선에 대한 역정보를 파는 탈북자의 이야기를 방송했다.

2017년 김정은은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그의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했다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은 김정은이 연루되었다는 어떤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다. 북한의 공안국이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Otto Wambier)를 고문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비난이 있었지만, 이 비난 또한 근거가 없었다.

국무장관 Madeleine Albright는 2000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자신이 북한에 대해 역선전과 편견 때문에 무언가 크게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김정일이 얼마나 기이한 인물인가를 보고 받았는데, 그가 회담을 잘 준비했고, 매력적이고, 스마트하며, 군사 분야에 관해 기술적인 문제까지 잘 알고 있었으며, 풍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일반 대중의 전형화된 견해는 2014년 소니사가 제작한 헐리우드 영화 『The Interview』에서 잘 드러났다. 한 관람자에 의하면 이 영화는 “인종주의적 이미지와 용어”를 채택했고, “북한의 희화된 지도자가 피투성이로 처형되는 장면”을 즐겁게 전하려 했다는 것이다.

제작자 겸 배우인 Seth Rogen은 그를 비롯한 제작진이 정부에서 일하는 인사들을 만나서 조언을 들었는데 그들이 CIA에 소속되어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그 영화는 오래 지속된 선전활동의 일부였음이 분명했으며, 제작진의 예상을 뛰어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서 도널드 트럼프가 조선지도자 김정은을 만났을 때 그를 향한 조롱이 폭넓게 쏟아졌다. Hillary Clington은 평양과의 협상을 향한 그의 움직임을 “돼지에게 립스틱을 발라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외교적 제안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압박을 북한을 조정하는 지렛대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북-중 관계는 베이징이 평양을 지배하는 신제국주의적 관계가 아니었다.

아브람스의 책은 독자들이 조선이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힘을 이해하는데, 그리고 공격적인 정권교체 정책의 정당화에 도움이 되었던 대중매체의 고정관념을 깨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인들은 북한 인민들이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북한 인민들은 그 반대가 타당하다고 믿는다. 북측의 그런 믿음이 훨씬 더 탄탄한 근거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미국이 시작했고 미국이 끝내야 하는 갈등에서 북측은 도덕적 우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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