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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총장, 이제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윤석열 신드롬과 검찰 정치 20.11.14 20:44l최종 업데이트 20.11.14 20:44l하성태(woodyh)

측근들과 재회한 윤석열 총장  8개월 만에 전국 검찰청 순회 간담회를 재개한 윤석열 검찰총장(가운데)이 10월 29일 오후 대전 지역 검사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대전지방검찰청에 도착해 강남일 대전고검장(왼쪽), 이두봉 대전지검장과 인사를 나눈 뒤 건물로 향하고 있다
▲ 측근들과 재회한 윤석열 총장  8개월 만에 전국 검찰청 순회 간담회를 재개한 윤석열 검찰총장(가운데)이 10월 29일 오후 대전 지역 검사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대전지방검찰청에 도착해 강남일 대전고검장(왼쪽), 이두봉 대전지검장과 인사를 나눈 뒤 건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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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천하'였다. '윤석열 대망론'을 부추기던 언론들이 '충청 대망론'까지 쏘아 올리며 호들갑을 떨었던 이른바 '윤석열 신드롬' 말이다.

11일 한길리서치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쿠키뉴스 의뢰)가 발단이었다. 윤 총장이 지지율 24.7%로 1위에 올랐다. 1, 2위를 다투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22.2%)와 이재명 경기도지사(18.4%)를 최초로 꺾었다. 윤 총장은 물론 '야권 후보'로 분류됐다. (7~9일 전국 거주 18세 이상 남녀 1022명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조사방식으로 진행, 응답률 3.8%,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그러자, 국민의힘이 즉각 반응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윤 총장이 지금 지지도가 높다고 해서 야당 정치인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추미애 장관이 (정치 안 하겠다는) 윤 총장을 자꾸 정치로 밀어 넣고 있다"고 탓했다. 

 

애초 "옷 벗고 정치권에 들어와 싸워라"(김종민 의원)라는 여당의 분위기와 달리 보수야당은 한 마디로 '갈팡질팡'이었다. 검찰개혁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윤석열 옹호'에 나섰던 국민의힘은 복잡한 셈법을 굴리는 중이다.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자신이 구상 중인 "혁신 플랫폼을 같이 하자"며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다.

헌데, 단 이틀 만에 반전이 일어났다. 13일 한국갤럽(11%)과 CBS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공동 조사(11.1%)에서 윤석열 총장은 3위를 기록했다. '2강 1중'을 형성하던 기존 조사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반토막', '널뛰기', '추락'이란 제목의 언론보도가 잇따르며 한길리서치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한국갤럽 조사 : 10일부터 1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1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KSOI 조사 : 10~11일 1009명 대상,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1%p 응답률 12.7%. 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확인하면 된다.)

여론조사 1위의 함정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유‧무선 전화 비율 등 조사 방법의 차이를 지적했다. 한국갤럽의 경우 이전과 같이 조사자가 직접 대선주자를 고르는 방식이었다. 이와 비교해 야권 주자 중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을 뺀 여야 6자 후보 구도였던 한길리서치 조사가 윤 총장에 대한 중도보수층의 쏠림 현상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한길리서치 측은 14일 '쿠키뉴스'를 통해 "선거는 구도가 반영된다. 6자 구도 지지율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며 신뢰성 의혹을 반박했다.

사실 윤 총장의 1위 여부보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지표다. 안철수, 홍준표 등 보수야권 주자 지지율은 윤 총장을 제외하곤 미미한 수치였고, 이를 합산해도 범여권 주자를 위협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단 이틀 만에 반전을 끌어낸 '윤석열 신드롬'의 실체가 과장됐고, 기존 '2강 1중' 구도를 확인한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윤석열 신드롬'을 통해 기존 구도를 흔들려는 누군가의 '일장춘몽'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온 것도 그래서다.

윤 총장은 자신이 대선주자 여론조사에 처음 포함됐던 올 초만 해도, 대검찰청을 통해 "이름을 빼 달라"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후 대검이 그런 요청을 했다는 언론보도는 지난 8월이 마지막이었다. 12일 MBC도 "검찰과 여론조사기관에 다 확인해 봤는데, 지난 8월 이후 (윤 총장으로부터) 이름을 빼달라는 요청은 더 이상 없었다"고 보도했다.

그 사이 윤 총장의 행보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이라 할 만했다. 지난달 22일 국정감사 당시 "퇴임 후 사회와 국민께 봉사할 것"이라던 발언은 정치입문 가능성을 생각하게 할 만한 발언이었다. 이후 윤 총장은 느긋하게 전국을 돌며 일선 검사와의 대화 일정을 이어가는 중이다. 정치인으로, 대선주자로 호명되는 여론조사와 언론보도를 즐기는 듯 보일 지경이다. 이게 과연, 윤 총장에게 약일까, 독일까.
 
 윤석열 검찰총장이 9일 오후 진천 법무연수원에서 신임 차장검사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 위해 연수원 내에서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부터 배성범 법무연수원장, 윤 총장, 이문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직무대리. 2020.11.9
▲  윤석열 검찰총장이 9일 오후 진천 법무연수원에서 신임 차장검사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 위해 연수원 내에서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부터 배성범 법무연수원장, 윤 총장, 이문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직무대리.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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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신드롬과 검찰정치

정주영, 박찬종, 이인제, 고건, 안철수, 반기문...

'윤석열 신드롬' 직후, 줄줄이 소환된 '올드보이'들의 면면이다. 일부 언론이 '윤석열 신드롬' 을 거론하자, 과거 대선에서 '신드롬'의 주인공이었거나 여론조사 상 돌풍을 일으켰던 인물들이 소환되며 윤 총장과 비교되기 시작했다.
 
"'제3후보 잔혹사'라고 불릴 만큼 제3의 인물이 끝까지 완주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그나마도 특정 정당에서 강하게 영입 했을 경우에나 대세론이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서로 자기 당 인물이 아니라고 하는 상황이라 앞선 경우들과는 좀 다른 양상입니다." (12일 MBC <뉴스데스크> '정치적 참견 시점')<br /><br />"여론조사기관은 객관성과 전문성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언론이 중요합니다.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반드시 엄격하게 검증한 다음에 보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두 기관의 책임입니다." (13일 YTN <뉴스가 있는 저녁> '변상욱의 앵커 리포트')

이중 정주영, 고건, 안철수, 반기문의 예를 든 MBC는 '대선 포기'란 결과를 강조하기도 했다. 변상욱 앵커는 "여론조사라는 게 자칫 이렇게 여론을 엉뚱하게 전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일부 여론을 호도하려는 조사 자체도 문제지만, 이를 제대로 검증하는 언론 보도가 더 중요하고 그 차이를 가려내야 한다는 고언이었다.

'제3후보 잔혹사'의 경우처럼, 대선정국에서 새 인물을 띄우는 언론의 속성은 새로울 것이 없다. 다만 실제 여론과의 차이는 결국 마지막 레이스까지 가 봐야 확인된다. 그 과정에서 종종 여론조사와 언론보도를 이용하려는 세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윤 총장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론조사의 경우, 윤 총장 본인이 강하게 거부하면 그만이다. '윤석열 신드롬'의 정체가 신빙성이 있든 없든, 윤 총장 본인이 선을 그으면 될 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언론의 보도 행태다. 

현직 검찰총장의 장모가 검찰 소환조사를 받는 것도, 아내의 회사가 검찰의 압수수색과 수사 대상에 오르내리는 것도 사상 초유다. 이 자체만으로 '조국 일가족처럼 수사하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난해 '표창장 위조' 기소만으로 조 전 장관의 도덕성 운운하며 사퇴를 요구했던 보수야당을 향해 '기준이 왜 이렇게 다른가'란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윤 총장은 굳건하다. 이 역시 우호적인 언론 덕택이다. 현직 검찰총장의 일가족이 수사를 받아도,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발언을 일삼아도, 그 직후 '대선행보'라 비판받는 '검사와의 대화'를 이어가고 일선 검사들이 소란을 피워도 요지부동이요, 이를 그저 '강 건너 불구경'식으로 중계할 뿐이다.  

진영논리는 둘째 치더라도, '윤석열 검찰'의 '살아있는 권력 감시'란 주장에 매몰된 언론도 부지기수다. MB가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고 재수감돼도, 김학의 전 차관이 실형을 받아도 사과 한 마디 없는 '정치검찰'을 비판하지 않는 것 자체가 '검찰정치'를 부추기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급기야, 한 일간지는 "윤 총장의 검찰관에는 시대착오적인 부분이 있다"면서도 "우직하고 안쓰러운. 모두 여의도 정가에서 탐낼 법한 정치적 자산"이라 치켜세웠다. 10일자 <국민일보>의 <사나이 윤석열의 매력>이란 칼럼을 보자.  
 
"개인적으로 윤 총장의 '싸나이 리더십'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정치인 윤석열의 등판 여부는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선거는 공동체의 결핍을 채우는 과정이고, 대통령이 전인격으로 표상하는 덕목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요체 같은 거다. 사나이 윤석열의 매력은 지금 우리 사회가 찾아 헤매는 자질인 걸까. 간만에 대선이 기다려진다."

윤 총장을 "(영화) <베테랑> 속 열혈형사"처럼 "예스러운 남자의 매력이 넘친다"며 "'사나이'보다는 '싸나이'가 어울리는, 소신과 의리의 화신"이라 묘사한 이 칼럼이야말로 일부 언론이 부추기는 '윤석열 신드롬'의 요체라 할 수 있다.

안쓰럽게도 지극히 선거공학적인 발상이요, 일부 언론의 '조삼모사'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시각일 뿐이다. 불과 1년 전, 어느 보수언론이 취임 전 윤 총장을 '조폭'에 비유한 사실도 있지 않나(2019년 7월, <동아일보> '김순덕 칼럼' <조직을 사랑한 윤석열, 조폭과 뭐가 다른가>). 1년 동안 달라진 건 '사나이 윤석열'의 정치행보 뿐이다.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가족 의혹 관련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0.11.12
▲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가족 의혹 관련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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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검찰은 '정치'는 물론 '정책'에도 개입하고 있다. 조직 수장에 대한 비판 및 MB 부실 수사, 김학의 부실 수사, 라임·옵티머스 부실 수사 등에 대한 비판이 계속 일어나자, 바로 반격한 것이다.<br /><br />내년 재보궐선거 전까지 실무담당 공무원부터 시작하여 궁극에는 장관까지 관련자를 계속 소환하고 조사내용을 언론에 흘린 후 기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과정에서 문서 폐기 등 몇몇 공무원의 잘못이 드러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수사를 통해 탈원전정책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8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 페이스북 글 중에서)

이렇게, '윤석열 신드롬'을 부추기는 언론들이 먼저 할 일은 윤 총장의 '월성 1호기' 수사가 왜 문제인지, 그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국민들이 알기 쉽게 '따박따박' 분석하는 것 아니었을까.(이에 대해선 김성환 민주당 의원이 윤 총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윤석열 총장이 월성1호기 수사 멈춰야 하는 이유 http://omn.kr/1qhia)에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돼 있다)

윤석열 총장은 검찰 구성원들 전체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갈 생각이 아니라면, 결단을 내릴 때다. 
태그:#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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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일원을 생명에 이롭고 평화에 도움이 되는 곳으로"

[추가] 강원도 인제군, '금강-설악 DMZ평화생명지대' 본격 추진

  • 기자명 인제=이승현 기자 
  •  
  •  입력 2020.11.15 01:02
  •  
  •  수정 2020.11.15 09:49
  •  
  •  댓글 1
 
금강-성ㄹ악 DMZ 평화생명지대' 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사진은 지난 10일 인제군 서화면 한국DMZ평화생명동산에서 진행된 기획위원 위촉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금강-설악 DMZ 평화생명지대' 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사진은 지난 10일 인제군 서화면 한국DMZ평화생명동산에서 진행된 기획위원 위촉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금강에서 설악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비무장지대(DMZ)와 만나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리 DMZ 일원(DMZ, 민북지역, 접경지역). 

20여년 전 북측 금강군 일부를 포함한 이 지역을 '생명에 이롭고 평화에 도움이 되는 곳으로 만들자'고 뜻을 세운 한 평화운동가의 구상이 '금강-설악 DMZ 평화생명지대'사업으로 본격 추진된다.

강원도 인제군(군수 최상기)과 (사)한국DMZ평화생명동산(이사장 정성헌)은 지난 10일 인제군 서화면 한국DMZ평화생명동산 교육마을에서 '금강-설악 DMZ 평화생명지대' 기획위원 위촉식을 갖고 사업 협의와 현지 답사 등을 진행했다.

'금강-설악 DMZ 평화생명지대'는 전체 약 1억 1,208평(3만7,363헥타르) 규모의 DMZ 일원의 대상 지역을 민통선 이북지역(민북지역, 민간인통제선과 남방한계선 사이의 지역)인 '핵심지역'과 주민들이 거주하는 서화 1, 2리 중심의 '배후지역', 그리고 DMZ와 북측을 포함하는 '미래지역'으로 나누어 각각 △생태환경의 보전과 복원 △생명·평화 경제로 산업구조 대전환 △남북협력사업 등에 역점을 두어 진행하는 장기 프로젝트.

당장 구체적으로 실행에 돌입할 활동은 '인제 서화 DMZ 평화생명 특구'사업이다.

DMZ평화생명동산 부이사장인 정범진 특구 기획단장은 최소 특구 조성에만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올 연말까지 내년도 사업계획을 작성하고 관련 법 제정 및 개정, 관련 부처 협의와 간담회 등 절차를 거쳐 내년 8월까지는 기본계획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는 남쪽에서 먼저 추진할 수 있는 핵심지역과 배후지역의 사업을 진행하고, 미래지역에 대해서는 상황과 조건이 성숙할 때 북측과 협의하여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먼저 '핵심지역'인 가전리·심적리·대곡리 등 민북지역 약 3,874만평은 전체를 '음양사상오행수목원'의 관점에서 생태환경을 보전하고 복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금강산과 연계한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벨트 조성 △가전리 습지 보호와 람사르 등재 △지뢰생태공원 △군부대 이전지 활용 평화교육기관 유치 △금강·설악 국제평화생태관광 방문자 센터 조성 등이 제시되어있다.

또 현재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서화 1·2리 마을 2,018만평을 '배후지역'으로 정하고 전체 산업구조를 생명·평화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기순환농업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완전자급 △바이오 및 생물자원산업·연구소 유치 △적정기술연구소 및 교육기관 운영 등을 통해 접경지역 주민들의 낮은 소득과 불평등 문제도 해소한다는 구상이다.

과거 인제군 서화면에 있었으나 전쟁 후 북측 금강군으로 편입된 서희리(西希里)와 이포리(伊布里), 장승리(長承里) 등 DMZ를 포함한 북측 지역 5,415만평의 '배후지역'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상황을 보아가며 북측과 협의할 계획이다. 

△핵심지역과 배후지역의 사업경험 공유와 협업 △유기농전환 △산림협력 및 임농복합경영, 생태마을 △금강·설악 자유생태관광 모색 △서화면 가전리와 금강군 금강산 연결하는 총연장 35km의 생태친화적 금강·설악 평화도로 추진 등을 구상하고 있다.

 정성헌 이사장은 '생명의 열쇠로 평화의 문을 연다. 그렇게 연 평화의 들판에 통일의 집을 천천히 짓는다'는 생각이 DMZ평화생명지대를 실현하는 길이 될만하다고 소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성헌 이사장은 '생명의 열쇠로 평화의 문을 연다. 그렇게 연 평화의 들판에 통일의 집을 천천히 짓는다'는 생각이 DMZ평화생명지대를 실현하는 길이 될만하다고 소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성헌 이사장은 이날 "본론은 금강-설악 DMZ 평화 생명 지구에 관한 이야기이고, 구체적으로는 인제 서화지구 평화생명특구에 관한 이야기"라며, '금강-설악 DMZ 평화생명지대' 구상에 얽힌 사연과 과정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1998년 서화면민들의 숙원사업이 민북지역인 가전리 일대에서 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인제 군수의 이야기를 듣고 그 지역을 살펴보다 '생명에 이롭고 평화에 도움이 되는 곳으로 쓰자.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에 도움이 되는 곳으로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미치게 됐'던 것이 발단이 됐다. 

그러고 보면 일은 이미 22년전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남북관계로 새천년 밀레니엄을 열려는 열망이 강했던 김대중 대통령쪽에서도 관심과 협조를 아끼지 않았으나 그렇게 일이 빨리 진행되지는 않아서 한국DMZ평화생명동산 교육마을도 2006년에야 착공했다.

그때 계획으로 교육마을은 서하리에 하고, 가전리쪽은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으니까 사람들이 드나들되 상주는 하지 않는 생태공원으로 잘 보전·복원하고 연구하는 기능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 북쪽에도 이야기를 해서 내금강-DMZ 일원에 이와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걸 함께 연구하자는 구상을 했다.

(사)남북강원도협력협회 이사장 자격으로 2000년대 초 이같은 제안을 북측에 했고, 기억하기에 그쪽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당시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이 계획에 관심을 갖고 여섯번이나 찾아왔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는데, 주 사업지가 평양으로 옮겨가면서 자연히 멀어지게 된 일도 있다. 진행이 되긴 했지만 실질적인 진척은 좀처럼 없었다.

정 이사장은 "당위성만 가지고 하면 벌써 됐어야 할 일인데, 20여년 가까이 진행했지만 이 정도밖에 못왔다. 그동안 우리들의 노력이 미흡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쉬운 문제만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이걸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져서 성심성의껏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측과는 적당한 시점에 이야기 하되 (남쪽과)동시에 하려고 하면 어느 천년에 될지 모르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여기서 먼저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시, 왜 이 일을 꼭 해야 하는가?

정 이사장은 "우리에게 평화는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보자"고 말했다. 

지금까지 남북의 평화를 언급하는 순간 핵무기, 탄도미사일 등 정치·군사적 문제로 직결되어 실효성없는 이야기로 끝나버리게 되었다고 하면서 "남북의 평화를 제대로 매개하고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열쇠로 이 문을 열어야 한다. 생명의 질서를 가지고 평화이야기를 해야 진짜배기 이야기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생명의 열쇠로 평화의 문을 열려고 해야지 급하다고해서 남북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하다보면 또 헛짚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구호가 있었다며 소개한 것이 '생명의 열쇠로 평화의 문을 연다. 그렇게 연 평화의 들판에 통일의 집을 천천히 짓는다'는 것.

그래서 인제 서화지구 평화생명특구의 핵심 열쇠말은 생명이다. 

대암산과 향로봉 일대는 남북의 식물이 만나는 우리나라 식물 생태계의 보고인데, 이 일대를 특구로 잘 만들어 결정적으로 기후위기에 적응하는 한반도 생명의 질서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가면서 그 힘으로 다시 온대림과 아한대림이 만나는 압록강 옆 북의 오가산특구와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여길 먼저 만들어야 오가산특구와 만날 근거도 생기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남과 북이 함께 한반도의 모든 식물자원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고 역설했다.

또 하나,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평화생명지구도 가능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 지역뿐만 아니라 강화도에서 고성까지 접경지역 전체를 생명산업과 평화산업으로 대전환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생활목기의 중심지였고 현재 임업측정량으로 전국 1위인 이 지역에서 독일산 소나무로 만든 아이들의 장난감을 대체하는 사업, 접경지역 전체를 7개년 계획으로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사업, 대규모 장비와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세계 각지의 평화운동가들이 10달러씩 들고와 정성껏 흙을 털어내는 지뢰제거작업 등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이런 여러 가지 일을 하기 위해 평화생명지대의 면적도 1억 2천만평 가깝게 잡았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초심을 유지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면 '생명에 이롭고 평화에 도움이 되는 세계적인 성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9.19남북군사합의로 철거된 12사단 감시초소의 철근, 철조망, 외벽 등 원본기록물을 이용해 2020년 6월 한국DMZ평화생명동산 내에 세운 평화 상징물 '어머니의 땅'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2018년 9.19남북군사합의로 철거된 12사단 감시초소의 철근, 철조망, 외벽 등 원본기록물을 이용해 2020년 6월 한국DMZ평화생명동산 내에 세운 평화 상징물 '어머니의 땅'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산정에서 본 금강-설악 DMZ 평화생명지대]

맨 왼쪽 무산에서 가운데 국사봉, 비로봉, 장군봉이 보이고(위쪽 사진), 금강산 비로봉과 내금강 외금강 산줄기가 좀 더 가까이 보인다.(아래사진) [사진제공-한국DMG평화생명동산]  
맨 왼쪽 무산에서 가운데 국사봉, 비로봉, 장군봉이 보이고(위쪽 사진), 금강산 비로봉과 내금강 외금강 산줄기가 좀 더 가까이 보인다.(아래사진) [사진제공-한국DMG평화생명동산]  

아직 열린 적 없는 인제 DMZ 평화의 길 구간 중 대곡리 초소가 포함된 1052고지에서 '금강-설악 DMZ 평화생명지대'의 북측 지역을 내려다 볼 수 있다.  

1052고지는 백두대간의 주 능선으로 남측 최북단 지점이며 남북으로 설악산-향로봉-금강산을 연결하는 상징적 장소이다.

북쪽으로는 삼치령(三峙嶺)-무산-국사봉-호룡봉-백마봉-차일봉-금강산 비로봉으로 약 50km, 남쪽으로는 향로봉(香爐峰)-칠정봉-진부령-마산-신선봉-상봉-황철봉-소청봉-중청봉-대청봉까지 약 45km가 이어진다.

1052고지 정상에서는 동쪽으로 향로봉에서 고성산, 서쪽으로는 대암산-도솔산-가칠봉-매봉-구례산-화천령, 남쪽으로는 산머리곡산-매봉산-안산(한계산), 북쪽으로는 남강(南江)-해금강 삼일포까지 남과 북을 잇는 백두대간 봉우리들이 하나로 연결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구름 한점없는 청명한 가을 하늘아래 백두대간은 의연한 산하의 모습으로 있다.

흐릿하긴 하지만 이곳은 남쪽에서 금강산 비로봉과 내금강, 그리고 외금강 산줄기까지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지역이다.

매봉에서 무산까지. 아래로 장승리와 이포리의 위치가 육안으로 확인된다. [사진제공-한국DMZ평화생명동산]
매봉에서 무산까지. 아래로 장승리와 이포리의 위치가 육안으로 확인된다. [사진제공-한국DMZ평화생명동산]

남과 북을 잇는 백두대간 뿐만 아니라 1052고지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북쪽 지역으로 포함되어 지금은 금강군으로 이름을 바꾼 된 원래 인제군의 3개리인 서희리,  장승리, 이포리 위치가 육안으로 확인된다. 

서쪽으로 가칠봉-매봉-구례산 지역이 서희리이며, 무산 서쪽과 회전령 인근은 이포리, 무산 동쪽과 삼재령, 36통문 인근까지가 장승리이다. 미수복 3개 지역의 면적은 약 15만 6,600km2이다.

전쟁 발발 3년전 서화리에서 태어난 김종율 선생은 "원래 서화면에 8개 법정 리가 있었는데, 현재는 4개리만 있다. 가전리는 민간인이 허가를 받아 출입할 수 있고, 을지전망대에서 바라 볼 수 있는 바로 앞산 지역이 서희리, 그 옆이 장승리, 장승리 뒤쪽이 이포리이다. 이포리는 북측 금강군에 속하고 장승리와 서희리는 남과 북에 걸쳐 있다"고 지형을 설명했다.

전쟁 전 북측 지역의 면 소재지로 번창했던 서화리에 대한 추억이 있는 김 선생은 "마을 가운데 중학교도 있던 당봉(堂峰)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당일 오후 늦게 구룡폭포로 유람을 다녀 온 부모님의 사진도 갖고 있다"며 임북천을 따라 내금강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서화리에서 시작된다고 알려주었다.

이헌수 남북강원도협력협회 이사장은 "이곳에서 구룡폭포까지 거리가 40~50km 정도 되니까 부지런히 걸어서 6~10시간 걸렸을 것이고 오후 늦은 시간이면 도착했을 수 있겠다"며 "흔적은 많이 없어졌지만 이곳이 양구 31번 국도보다 금강산으로 가는 가까운 길"이라고 부연했다.

DMZ 평화의 길 구간 중 인제 구간은 견학을 시작도 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6월 예정된 재개 일정도 무산되었고 여전히 방문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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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학살’, 20대 여성들은 왜 점점 더 많이 목숨을 끊나

등록 :2020-11-13 17:37수정 :2020-11-13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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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자살률, 일본 전후세대와 유사한 패턴
젊은 여성 고용위기 침묵이 ‘조용한 학살’ 불러
“여성을 노동시장 참여자로 만들어야 감소 도움”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 영상 갈무리" alt="젠더 미디어 <슬랩>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 영상 갈무리" style="border: 0px; margin: 0px; padding: 0px; width: 643px;"></슬랩>
젠더 미디어 <슬랩>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 영상 갈무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20대 여성들이 유례없이 늘고 있다.지난해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전년 대비 25.5% 늘었고, 올 1∼8월 자살을 시도하는 20대 여성은 전체 자살시도자의 32.1%로 전 세대 통틀어 가장 많았다. 여전히 전체 자살률을 놓고 보면 남성 자살률이 여성보다 2∼3배가량 높지만, 20대 여성 자살률의 증가 폭은 다른 세대와 성별을 훨씬 상회한다.젠더 미디어 <슬랩>이 12일 공개한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는 왜 ‘90년대생 여성’들이 목숨을 끊고 있는지 묻고, 우리 사회가 ‘조용한 학살’에 대답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슬랩 유튜브 바로가기 https://bit.ly/3pq8Jg0<슬랩> 인터뷰에 응한 장숙랑 중앙대학교 교수(간호대학)는 2019년 발표한 자신의 연구결과(청년 여성의 자살문제)를 바탕으로 20대 여성 자살률 증가 패턴이 2차 세계대전을 겪었던 일본 전후세대(1902∼1920년생)와 유사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말한다.“제국주의 때 전쟁에 참전했던 세대들, 패망한 국가를 견뎌야 했던 청년들, 그 청년들이 계속해서 우울증에 시달렸고 (생애 내내) 높은 자살사망률을 보였어요. 그걸 우리는 코호트 효과(특정한 행동양식을 공유하는 인구집단)라고 불러요.”장 교수는 덧붙인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코호트 효과가 똑같이 있나 봤는데 20, 30대 청년이었습니다.”장 교수는 특히 1996년생 여성 자살률이 1956년생 여성에 비해 7배 높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90년대생 중에서도 90년대 후반생으로 갈수록 더 자살사망률이 높아졌는데, 80년대생의 엄마 세대인 1950년대생과 비교했을 때 80년대생이 거의 다섯배 정도, 90년대생은 거의 7배 정도의 차이가 났어요. 결과적으로 엄마들보다 딸들이 20대에 자살을 선택할 그런 삶의 조건이라는 것이 5배 증가했다는 거잖아요.”일본 전후 세대가 전쟁을 겪으면서나 느낄 법한 상처가 오늘날 한국 젊은 청년들, 특히 20대 여성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는 뜻이다.
1951년생의 자살률과 각 년도 출생자의 자살률 비교. 장숙랑 중앙대 교수 제공
1951년생의 자살률과 각 년도 출생자의 자살률 비교. 장숙랑 중앙대 교수 제공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은 20대 여성 자살률 급등 원인을 이렇게 분석한다.“우리 사회에서 핵심 인력은 남성 노동자가 하고 여성은 보조 인력으로 필요할 때 일하고 불필요하면 언제든지 빼도 되는 잉여인력처럼 활용됐던 거잖아요. 그러니까 여성들이 주로 서비스 업종에 있게 되고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서비스 업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으니까 20대 여성도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거죠.”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분석한 9월 여성 고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여성실업률은 3.4%로 전년 같은 달보다 0.6% 늘었고, 그중 20대 여성의 실업률은 7.6%로 가장 높았다.임 자문위원은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젊은 여성들의 실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침묵이 ‘조용한 학살’을 부른다고 말한다.“3월달에만 20대 여성 12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어요. 압도적으로. 그런데 조용하더라구요. 이렇게 ‘조용한 학살’이 다시 또 반복되는 (것인데) 우리 사회가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저는 굉장히 가부장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정혜주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는지 여부가 자살률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분석한다.“(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보다 8%가 더 높은 상황이잖아요. 이 부분이 노동시장에서의 지위를 포함한 사회적인 지위로 이전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한국의 여성은 딱 그 위치에 있거든요.”정 교수는 유럽의 사례를 든다. “결국 (유럽에서) 청년 자살에 제일 영향을 크게 미치는 인자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에요. 여성이 ‘가정 내 여성’으로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고려되고, 같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힘을 모으는 ‘노동시장의 참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 유럽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남녀 자살률 감소에 도움이 됩니다.”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 영상 갈무리" alt="젠더 미디어 <슬랩>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 영상 갈무리" style="border: 0px; margin: 0px; padding: 0px; width: 643px;"></슬랩>
젠더 미디어 <슬랩>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 영상 갈무리
정 교수는 ‘가족 정책에 대한 지원이 많을수록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유럽의 연구결과도 제시한다.“이게 되게 놀라운데 아동수당 이런 거 다 포함돼서 가족이 잘 유지돼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책들인데, 이게 사실 가족을 형성할 생각이 없거나 형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가족 중심’으로 설계된 정책적 지원들이 노동시장에서 독립된 개인으로서 살고자 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가닿지 않고, 이런 여성들을 지원책에서 배제시켜 오히려 자살률을 높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달 31일 펴낸 ‘청년세대 생애전망에서의 남녀차이, 저출산의 근본원인’도 비슷한 견해를 제시한다.“청년들은 더이상 결혼제도가 전 생애 생존의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청년여성들은 전 생애에 걸쳐 노동중심적 생애를 유지하는 것을 절박하게 선택하고 있다.”결혼과 출산을 전제로 한 지원 정책은 자신의 직업과 커리어를 중심으로 삶을 설계하는 ‘개인’인 청년 여성들과는 괴리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슬랩>의 유튜브 영상에는 ‘공감하고 마음이 아프다’는 취지의 댓글이 200여개 달렸다.“90년대생으로서 내 또래들이 같은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일자리도 일자리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릴 때부터 겪은 여성혐오적 문화와 차별이 하나둘 쌓이면서 무기력을 학습하고 컸는데 노동시장에 크게 좌절해 자살로 이어지는 것 같다.”“동년배들이 죽고 싶지 않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바라지만 않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하겠습니다. 이 영상을 본 여러분도 그래 주셨으면 좋겠습니다.”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9898.html?_fr=mt2#csidx85c09fe2f02bf38858cbf727be4e4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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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대던 아이들이 변했다 "쌤, 저도 운동장에서 잘래요"

[필름사진 여행기] 운동장 야영, 8박9일 백패킹 노작기행의 시작

20.11.13 19:33l최종 업데이트 20.11.13 19:33l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기사의 사진은 필름을 이용하여 촬영하고 직접 스캔하였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괄호 안에 간단한 기종과 필름 종류를 기재하였습니다.[기자말]
나는 대안학교 교사이다. 학교의 유형을 정확히 말하자면 '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이다. 우리나라에서 5개만 존재하는 공립 대안 고등학교이자, 일반계 학교에서 계열을 변경한 케이스로는 유일하다.

많은 대안학교가 그렇듯 해외 이동학습이 계획되어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교육법과 교육지침을 따라야 하는 공립학교의 특성으로 인해 일정을 길게 할 수 없다는 것. 이동하는 시간을 빼면 6박 7일 정도의 시간을 해외에서 보내고 그동안 학생들은 문화교류 및 봉사활동 등을 할 예정이었다.

본교로 부임하기 1달 전 코로나19가 터졌다. 하필이면 해외이동학습을 추진해야 할 2학년 부장을 맡게 되었다. 4월 중순까지 고민과 토론을 거듭하다가 국내 기행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마저도 11월에 시행이 가능할지 불투명한 상태로 말이다. 

이 시기에 학교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는 이 지면에 다 표현 못한다. 학생들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결정을 해야 했고 지침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곤 했다. 평소 필름카메라와 야영장비를 들고 오지로 여행을 다녔던 경험들을 총동원하여, 학생 체험활동으로는 전무후무한 계획을 홀로 짜기 시작했다.
 
전체 이동경로 (캡처)완주에서 전세버스로 일단 이동을 한 후 현지에서 이동하는 방법 및 경로를 표시한 그림
▲ 전체 이동경로 (캡처)완주에서 전세버스로 일단 이동을 한 후 현지에서 이동하는 방법 및 경로를 표시한 그림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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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는 '생활 속 거리두기 수준의 상황에서 해당 지역에 신규 확진자가 없을 때'였다.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계획을 짰다. 백패킹 배낭 45개와 텐트 16개를 포함하여 2천만 원어치 야영장비를 구입했다. 총액으로만 보면 대단한 가격이지만 45명이 백패킹을 시행할 장비로서는 매우 저렴한 수준이다. 소위 가성비가 좋은 물건들을 선택하고 본사와 직접 연락해서 에누리를 하고 계약을 맺었다.


최초로 계획을 발표했을 때 교사와 학생의 반응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교사들은 참으로 교육적인 계획이라며 만장일치로 찬성했고, 학생들은 해외로 나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볼멘 소리를 해댔다. 4차례가 넘는 설명회를 통해 아이들을 설득했고 2학기에는 실제 연습을 위해 운동장 야영을 시작했다. 반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야영은 훌륭한 노작교육 컨텐츠였다

실제로 타프를 치는 과정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교실에서 그토록 설명하고 영상으로 보여주었건만 팩을 박지도 않고 지주폴부터 올려놓고, "쌤, 이거 어떻게 해야해요?"라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스토퍼 사용법부터 팩 박는 각도, 타프 치는 순서를 다시 차근차근 일러주고 모둠을 돌아가며 직접 가르쳐주었다. 어느 때보다도 아이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처음 타프를 진 날 (SW612/Portra800) 어떤 모둠은 타프 하나를 치는 데에 1시간 가까이 걸렸다.
▲ 처음 타프를 진 날 (SW612/Portra800) 어떤 모둠은 타프 하나를 치는 데에 1시간 가까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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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의 미션 중 하나 '컵라면 먹기' (핸드폰)4시간 안에 타프, 텐트를 친 후 컵라면을 먹고 정리까지 하는 것이 첫 번째 실습의 미션이었다.
▲ 첫 날의 미션 중 하나 "컵라면 먹기" (핸드폰)4시간 안에 타프, 텐트를 친 후 컵라면을 먹고 정리까지 하는 것이 첫 번째 실습의 미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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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6명 정도의 아이들이 기숙사 말고 운동장에서 잠을 자도 되냐고 물어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주중 외박은 병결이나 인정결석에 준하는 사유 말고는 불가능하지만 운동장은 학교 내이기 때문에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숙사 부장과 관리자 선생님들과의 상의 끝에 내가 곁에서 함께 자는 조건으로 운동장 취침이 허가되었다. 새벽 3시쯤 학생들의 상태를 살필 겸 잠시 나와 본 하늘은 매우 환상적이었다.
  
텐트와 학교와 오리온자리 (핸드폰)삼각대가 없어서 조명 스탠드에 세워놓고 16초 동안 노출했다.
▲ 텐트와 학교와 오리온자리 (핸드폰)삼각대가 없어서 조명 스탠드에 세워놓고 16초 동안 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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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회차에는 타프와 텐트를 비롯해 모든 장비를 세팅하고 캠핑요리경연대회를 열었다. 화기와 조리도구를 사용할 때 충분한 연습이 있어야 안전하기 때문에 기획한 행사였다. 점심시간 전 1시간을 이용하여 모둠별로 마트로 걸어나가 장을 보았고 오후 시간에는 계획한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했다.

작은 코펠세트와 버너 하나, 4명이 쓰기에는 턱없이 작은 백패킹용 테이블이 전부이다보니 상당히 불편하게 식재료를 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제약 때문에 더욱 집중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갈 만큼 아이들은 버너와 코펠에 온 감각이 집중되어 있었다.
 
요리 중 (67ii/Portra160)하트 모양으로 플레이팅을 할 볶음밥을 만들기 위해 즉석밥을 덥히고 있는 학생들
▲ 요리 중 (67ii/Portra160)하트 모양으로 플레이팅을 할 볶음밥을 만들기 위해 즉석밥을 덥히고 있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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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좀 봐주세요 (67ii/Portra160)조리를 마치고 담당 선생님께 간보기를 부탁하는 모습
▲ 간 좀 봐주세요 (67ii/Portra160)조리를 마치고 담당 선생님께 간보기를 부탁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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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었던 것은 백패킹 국내 기행을 끝까지 못마땅해했던 몇몇 학생들이 보여준 모습이었다. 막상 야영이 시작되니 어떤 학생들보다도 집중해서 주어진 과정들을 해내기 시작했다. 어찌나 열심히 하던지 얄미워 보일 정도였다고나 할까.

'운동장에서 대화하자!' 프로젝트

우리학교는 1달에 한 번 '달매듭'이라는 시간을 가진다. 모든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일과 시간 및 기숙사 생활에 대한 반성과 토의를 하는 것이다. 많은 선생님들도 함께 자리하여 학생들의 인지, 사회적 활동을 돕는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학년 간의 교류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실내에서 50인 이상 집회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올해의 신입생들은 상대적으로 선배들과 잘 섞이지 못했다. 이미 2, 3학년들은 사이가 돈독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2학년들이 처음 타프와 텐트를 치던 날, 1학년과 3학년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하루 종일 운동장을 기웃거리는 것을 목격했다. 어떤 생각이 번뜩이며 뇌리를 스쳤다.

'그래! 운동장에서 대화하면 되겠다.'

곧바로 교무실 컴퓨터에 앉아 2주 뒤의 행사를 기획하여 문서로 만들기 시작했다. 2학년이 야영 장비를 설치하고 요리경연대회를 하는 그 날부터 시작하여 전교생의 운동장 야영 및 실외 달매듭을 계획했다. 첫 날은 가장 서먹한 1학년과 2학년이 함께 만나는 날이 되었다.
 
운동장 야영 배치도 (캡처) 첫 날 주간과 야간의 운동장 야영 배치도
▲ 운동장 야영 배치도 (캡처) 첫 날 주간과 야간의 운동장 야영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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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의 저녁노을 (67ii/Ektar100)이 날의 화합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 황홀했던 석양
▲ 운동장의 저녁노을 (67ii/Ektar100)이 날의 화합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 황홀했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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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행사를 기획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운영위원장이자 학부모인 한 분은 집에서 LPG 가스통과 큰 솥을 가지고 오셨다. 시장을 돌며 어묵과 야채를 사서 50인분 어묵탕을 뚝딱 끓여내셨다. 목공 선생님은 폐 목재를 제공하여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을 지킬 겸 차박을 자청하기도 했다.

기숙사부장이 임원진 학생들과 함께 모둠을 짰고 아이들은 작은 의자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모둠은 웃음이 넘쳤고 어떤 모둠은 침묵이 흐르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들 비슷한 수준으로 평준화 되었다.
 
대화 후 영화 감상 시간 (67ii/Portra160)대화 후에는 추운 날씨 속 '오들오들 영화감상' 시간이 펼쳐졌다. 30초의 노출 시간 동안 움직이지 말 것을 요청하였으나 얼추 성공한 학생은 둘 정도. 당연히 마스크는 사진 찍을 때만 잠시 내린 것.
▲ 대화 후 영화 감상 시간 (67ii/Portra160)대화 후에는 추운 날씨 속 "오들오들 영화감상" 시간이 펼쳐졌다. 30초의 노출 시간 동안 움직이지 말 것을 요청하였으나 얼추 성공한 학생은 둘 정도. 당연히 마스크는 사진 찍을 때만 잠시 내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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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취침은 선택사항이었다. 아침 온도가 5~6도 정도로 예보되어서 상당히 쌀쌀한 상황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미리 겨울옷을 준비할 것을 일러놓은 상태였다. 애초 텐트 취침을 선택한 학생은 15명 정도였는데 밤이 깊어 갈수록 아이들이 하나 둘씩 내 앞으로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쌤. 저도 운동장에서 잘래요."

담임교사, 기숙사부장, 사감교사에게 차례로 통지를 하고 추운 곳에서 자는 요령에 대해 설명했다. 행사 동안 이틀 밤을 합하여 5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새벽까지 노닥거리는 아이들을 지켜보느라 잠을 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대화의 장을 열어주었다는 뿌듯함 덕에 피곤하지 않았다. 

이 기사를 작성하는 지금은 통합기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뒤인데, 이때의 운동장 야영 경험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날 추운 곳에서 자본 덕에 아이들은 교사의 설명대로 한겨울 옷을 배낭에 넣어서 왔고, 단 한 명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으며, 요리를 미리 해 본 덕에 일사불란하고 안전하게 움직였고, 매번 시간과 안전 지침을 잘 지켜주었다.

10월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8박9일의 백패킹 노작기행에서 담아온 10롤의 필름을 계속해서 스캔하고 있다. 사진작업을 마치는 대로 계속해서 후속기사를 작성할 예정이다. 미리 결과를 말하자면,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18세의 아이들이 4일 연속으로 텐트에서 잠을 청하고 마지막 날은 영하 5도의 새벽을 견디면서도 하루 하루를 행복해 했다는 것이다. 예고편 사진 한 장으로 기사를 마친다.
 
배낭을 메고 (645N/Ektar100)통합기행 5일차 아침, 이틀 밤을 묵었던 곳을 떠나는 모습
▲ 배낭을 메고 (645N/Ektar100)통합기행 5일차 아침, 이틀 밤을 묵었던 곳을 떠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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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노동자 교류 넘어 대미 자주권 회복 모색하겠다"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 합동토론회로 미리 본 평화통일 사업 방향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0.11.13 22:25
  •  
  •  수정 2020.11.13 22:27
  •  
  •  댓글 0
 
직선 3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2020 동시선거 일정을 진행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13일 위원장 후보 4명이 참가한 가운데 언론 초청 합동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직선 3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2020 동시선거 일정을 진행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13일 위원장 후보 4명이 참가한 가운데 언론 초청 합동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직선 3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2020 동시선거 일정을 진행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위원장 후보 4명이 참가한 가운데 언론 초청 합동 토론회를 개최했다.

김상구 후보(기호 1번), 이영주 후보(기호 2번), 양경수 후보(기호 3번), 이호동 후보(기호 4번)는 이날 각 진영의 핵심 공약을 밝히고 언론사 공통질의에 대한 답변과 후보간 상호토론을 벌여 그간 코로나19 영향으로 원활하지 못했던 지역 합동유세의 부족한 점을 보완했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노총 중앙선관위 유튜브를 통해 중계되었다.

김상구 후보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상구 후보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의 김상구 후보는 핵심공약으로 조합원 중심의 대중운동을 강조하면서 공세적인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고 국민이 지지하는 파업, 반드시 승리하는 파업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상균 위원장과 함께 직선 1기 사무총장을 지낸 이영주 후보는 "2017년에서 멈춘 민주노총의 역사를 변화시키겠다"고 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민주노총.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를 재편하는 3년의 로드맵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기아자동차 화성 사내하청 분회장을 지낸 양경수 후보는 최초이자 마지막인 비정규직 출신 위원장이 되겠다며 "내년 1월부터 준비해 11월 총파업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공공운수노조와 발전노조의 지도위원을 맡고 있는 이호동 후보는 '조합원의 민주노총. 당당한 민주노총. 실력있는 민주노총. 자랑스런 민주노총'을 캐치프레이즈로 소개했다.
 
민주노총이 강령에 담고 있는 '민족의 자주성과 건강한 민족문화 확립,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 실현'을 위한 사업 방향과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남북노동자의 자주적 교류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개입과 지배로 부터 벗어나는 투쟁방안을 적극 모색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상구 후보는 "그동안 남북통일사업은 통일위원회 등 일부의 활동에 불과했다"며 "(앞으로)대중적이고 일상적인 자주통일운동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별 단위 교류도 확대하고 상징성이 큰 남북 평화철도 잇기 사업에 조합원이 참여할 수 있는 대중사업으로 확대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한반도 전쟁종식 뿐만 아니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일, 그리고 2018년에 합의한 남북노동자 합의정신에 입각하여 남북노동자간의 자주적 교류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영주 후보 [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영주 후보 [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영주 후보는 "민주노총이 지금까지 평화통일사업에서 남북교류를 중심으로 진행했다면, 미국의 패권주의가 문제가 되는 지금 우리의 투쟁도 단순한 남북교류의 선을 넘어서 한반도, 동북아의 민중과 연대하고 미 제국주의와 투쟁할 수 있는 그런 투쟁방안들을 배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양경수 후보는 "민주노총의 통일사업은 그동안 시기적(8.15) 사업에 머물거나 통일위원회만의 사업으로 머물렀던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통일운동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노력해왔다"고 평가했다. 

이어 "당장 올해 예산 문제만 보더라도 국방예산을 대폭 늘리고 미국의 방위비분담금을 대폭 인상하라는 요구속에서 복지예산이나 노동자들에 대한 예산은 당연히 삭감될 수 밖에 없다"고 하면서 "따라서 민주노총은 자주교류사업도 물론 중요하고 유의미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이제 미국의 지배와 개입으로부터 벗어나는 투쟁을 전 조직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호동 후보는 "당선되면 정말 잘해보고 싶은 사업이 노동자 통일사업"이라며, "8.15를 중심으로 한 시기적 사업, 통일위원회로 제한된 사업은 반드시 극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간의 여러가지 한계에 대해서는 조직적으로 토론하고 제대로 결의를 모아보겠다며, "통일사업이 좀 더 확대될 수 있도록 의지를 가진 집행, 실천을 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100만 조합원으로 제1노총의 지위를 갖게 된 민주노총이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을 내세우며 전략조직화 방안으로 강조하고 있는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조직화 방안에 대해서는 네 후보가 구체적인 접근 방법에서 차별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김상구 후보는 "민주노총의 전략사업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고 하면서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대부분이 사장과 직접 대면하면서 일하기 때문에 기업별, 직종별로 조직하기가 어려운 만큼 지역본부에서 인큐베이팅하고 산별노조에서도 함께 도와야 한다"고 방안을 제시했다. 

이영주 후보는 "지금까지 민주노총은 산별체계로 조합원을 가입받았지만 이제부터 산별이 자신의 영역과 부문을 조직화하기 시작하면 지역에서는 중소·영세·비정규직·5인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직가입으로 받을 수 있는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이 넘지만 조직률은 0.1%에 그치고 있는데, 바로 이들과 손 잡고 우리 조직의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민주노총을 혁신하고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민주노총이 모든 노동자의 대표성을 획득해 나가는 소중한 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양경수 후보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양경수 후보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양경수 후보는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고 야간수당, 잔업수당, 특근수당, 아무 것도 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무법지대인 5인미만 사업장의 실태를 폭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며,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가 여론화되니까 최근 일주일에 한 두곳씩 지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조직사업도 이렇게 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호동 후보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는 5인미만의 사업장의 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조건, 정서에 맞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차기 대선에서 민주노총이 취해야 할 후보전술, 지지후보 결정시 조합원 총투표 등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도 있었다.

김상구 후보는 주변화되고 있는 진보정치의 미래를 위해, 또 1백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힘을 모으기 위해 진보정치의 단일화 논의와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위한 대중운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영주 후보는 "지금 조합원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받는 것이 바로 '대선투쟁 노동자·민중 단일후보'라는 구호"라고 하면서 "우리의 사회대개혁 요구안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우리의 후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양경수 후보는 "대선에서 단일후보를 선출해 대응하자는 입장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꼭 성사되길 바란다"고 하면서 "다만 이 과정이 민주노총의 조직적 단결을 해치는 것이어서는 안되며, 당면한 민주노총의 투쟁을 발목잡는 것이라면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호동 후보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호동 후보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호동 후보는 "지역유세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토론을 통해 결정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섣부른 후보전술 논의로 인해 정치방침 자체를 결정하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오는 27일 자정까지를 선거운동 기간으로 정하고 11월 28일 오전 7시~12월 4일 오후 6시까지 일주일간 투표를 거쳐 당선자 공고를 낼 예정이다. 

연장투표와 일부 재투표·결선투표 등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12월 4일~6일 별도로 공고하게 된다.

이번 민주노총 직선은 자체 규약 44조에 따라 3인 1조 동반출마(러닝메이트)하는 민주노총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 그리고 산하조직인 16개 지역본부 본부장 및 수석부본부장·사무처장을 동시에 선출하도록 되어 있으며, 임기는 2021년 1월 1일부터 2023년 12월 31일까지이다.

 

[2020 민주노총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 후보]

[기호 1번] 김상구 위원장 후보(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 엔진1부, 전 금속노조 위원장), 박민숙 수석부위원장 후보(대전성모병원 해고자, 현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 황병래 사무총장 후보(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위원장)

구호 : 선을 넘자-과감한 변화! 사회적 교섭! 이기는 투쟁!

주요공약
-조합원과 함께 과감한 변화 주도(멈춰있는 산별운동, 사회대개혁, 정치세력화, 통일운동 조합원 중심 전면 재정비)
-공세적인 사회적 교섭 추진(교섭전략위원회 구성, 실력있는 사회적 교섭 등)
-100만 조합원이 참여하는 실질적인 공동투쟁 조직(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 200만 민주노총 시대 준비)

 

[기호 2번] 이영주 위원장 후보(전교조 서울지부 수석부지부장, 민주노총 직선1기 사무총장), 박상욱 수석부위원장 후보(기아자동차지부 광주지회 대의원, 금속노조 대의원), 이태의 사무총장 후보(학교비정규직 노동자, 공공부문 공동파업위원회 집행위원)

구호 : 민주노총을 다시 자랑스럽게

주요공약
-2021년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민중총궐기
-작은 사업장과 청년·학생도 쉬운 가입 '방방곡곡 민주노총'
-노동자·민중 단일후보로 돌파하는 2020년 대선

 

[기호 3번] 양경수 위원장 후보(전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화성 사내하청 분회장, 현 민주노총 경기지역 본부장), 윤택근 수석부위원장 후보(전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전종덕 사무총장 후보(전 강진의료원 지부장, 현 보건의료노조 광주전남지역 본부장)

구호 : 백만의 힘 거침없다. 민주노총

주요공약
-첫 정기대대 100만 총파업 결의(전태일 3법 쟁취 총파업 2021년 11월 3일로 확정)
-당선 즉시 위원장이 책임(택배·요양·돌봄·배달·콜센터·보육 등 통큰 코로나 투쟁)
-거침없이 새시대로(국가고용책임제·전국민고용보험제로 노동중심 세상 건설)
-동네마다 민주노총(전국의 모든 시군구에 민주노총 협의회 건설)
-학교부터 민주노총(특성화 고등학생 현장실습부터 조직사업 집중)
-내손안에 민주노총(민주노총 방송국 설립 백만조합원과 소통)

 

[기호 4번] 이호동 위원장 후보(발전노조 초대위원장, 현 공공운수노조·발전노조 지도위원), 변외성 수석부위원장 후보(전 전해투 집행위원장, 현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대의원), 봉혜영 사무총장 후보(사회보장정보원 분회장, 민주노총 부위원장·여성위원장)

구호 : 새로운 시작, 할 수 있다! 민주노총

주요공약
-조합원의 민주노총(임원, 대의원 전면 직선제 도입 및 소환권 강화 등)
-당당한 민주노총(수석부위원장 직할 상설투쟁체 설치 등)
-실력있는 민주노총(정책연구원 대규모 확대 개편 등)
-자랑스런 민주노총(200만 민주노총위원회 설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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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새로운 평화'...용기, 그리고 신뢰가 열쇠"

민화협·한국노총 토론회, 핵심은 내년 3월 한미훈련 중단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0.11.13 09:06
  •  
  •  댓글 0
 
민화협과 한국노총이 12일 '출구없는 남북관계 대안을 모색하다'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화협과 한국노총이 12일 '출구없는 남북관계 대안을 모색하다'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우여곡절 끝에 미국 대선은 조 바이든을 승자로 선택한 가운데 끝나고 바야흐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전망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이종걸)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 김동명) 그리고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이사장 김진향),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송영길 위원장을 비롯한 김영주·윤건영·김홍걸 국회의원 및 전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두루 나서 주최한 토론회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출구없는 남북관계, 대안을 모색하다'라는 주제에 걸맞게 남북관계 경색원인을 따져보고 대안을 찾으려는 이날 토론은 긴장감 넘치게 진행됐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남북관계 교착의 원인과 해법 : 평화의 위기를 기회로!'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남과 북 우리가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먼저, 2년전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서 '8천만 겨레와 전 세계에 한반도 평화 시대의 개막을 엄숙히 천명'했지만 하나도 된 것은 없지 않느냐는 통절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역사의 분수령이 된 싱가포르 북미 정상합의를 통해 미국은 북의 안전을 보장하고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그 후 한치도 진전이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해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미협상을 위한 담대한 양보를 요청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9.25 한미정상회담을 진행했으나 한미워킹그룹에 묶여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까지 5개월을 지체하고 이후 '비핵화 및 제재 프레임과 한미관계 중심의 대북 정책'으로 회귀하는 참혹한 시간을 겪었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평화협상 외에는 하지 않겠다는 북측의 입장이 굳어졌고 새 정부가 들어서는 미국으로서도 현재의 교착국면 유지가 최선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에 결국 우리 정부의 발빠른 행보만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교착을 풀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이 김 이사장의 주장이다.

우리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핵심적인 내용으로는 '비핵화 진전없이 남북관계는 한 발짝도 못나간다'는 비핵화 프레임의 오류와 한계를 넘어서 '비핵화는 평화를 위한 수단이며 평화를 위한 남북협렵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평화프레임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또 정부의 역할을 핵문제 중재자가 아닌 평화문제의 당사자로, 능동적 주체로 인식하고 한미공조와 대북제재의 틀에서 벗어나 민족공조와 화해의 자세로 정책기조를 바꿀 것을 주문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현 남북관계의 특징과 대안 : 외교·통일정책의 균형 실패 및 개선과제'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대북제재 사이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실적 제약을 탓하기 전에 용기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2018년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선언으로 자리잡은 현재 남북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평화'라는 것. 남북은 2000년 6.15선언을 통해 분단과 반목, 갈등을 벗어나겠다는 합의에 도달했으나 '돈으로 평화를 사려고 했던 경제적 접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2018년은 말 그대로 '평화, 새로운 시작'이었다. 남북관계에서 특별한 '평화'를 위해 군사적 신뢰구축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세웠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9.19군사분야합의서의 명칭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라고 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게 갈구했지만 한쪽은 평화를 향한 용기를 잃었고 다른 한쪽은 상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 현재 위기의 핵심이다.

따라서 지금 남북관계의 출구는 제대로 된 평화를 설계하는 것이며, 무너진 신뢰와 사라진 용기를 회복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 김 교수의 진단이다.

그래서 주문하는 바, 군사적 접근에 기초한 상호주의를 탈피해 일방적으로 조정하고 선제적으로 양보하는 탈상호주의를 취하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원 프레임을 협력개념으로 변화하는 탈수혜주의, 북맹탈출과 가짜뉴스를 극복하는 탈혐오주의, 조급함을 탈피하고 정책의 연속성을 고민하는 탈성과주의를 바탕으로 평화를 협의하여 원하는 평화를 얻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원희복 전 경향신문 부국장.

토론자로 나선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은 내년 초 미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고 북에서는 제8차 당대회가 열리는 한편 하반기 대선정국을 향해 집중하게 될 우리의 상황을 보면, 페리 프로세스로 시작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방문 직전까지 갔던 1999년의 데자뷔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진영에 합류한 한반도 전문가들의 성향까지 감안하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이 필요하다'는 공감이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중유제공을 대가로 핵무기 파기를 바꾸기로 한 2005년 9.19합의를 언급하면서 "새롭지는 않지만 이 해법을 바탕으로 북핵고도화, 정상합의 등 그동안 변화를 반영해서 새로운 이행방안을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고, 이걸 가지고 북미가 협의하는 프로세스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종전선언을 제안했을 때 이미 이 프로세스는 시작된 것이라고도 했다.

다만, 북측은 핵시설을 폭파하고 실험을 중지한 반대급부로 미국이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종전선언이 비핵화의 사전조치이므로 그밖에 전략무기의 일부감측 등 추가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차이가 있기 때문에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을 위해 종전선언을 어디에 위치시킬지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여기서 우리 정부가 중재자, 촉진자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 소장은 이어 "미국측 인사들이 북의 선비핵화와 핵 해체를 비롯해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갖고 있지만 이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어떻게 연계하여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는 "결국 우리의 역할이다. 내년 3월 한미합동군사연븟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문제가 문재인 정부로서는 큰 실험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 정책을 표방한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북이 미사일을 발사한 배경에는 한미합동군사연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정면돌파전을 앞세워 경제건설에 집중하는 북한의 사정을 감안하면 내년 3월 한미합동군사연습의 축소, 중단을 계기로 1999년의 이행방안이 미국과 중국사이에도 협의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종전선언은 했는데 주한미군과 유엔사는 그대로 있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은 계속된다면, 이런 종전선언은 비핵화를 압박하는 정치적 선언일 뿐 법적으로는 정전상태의 지속이라고 할 수 있다"며, "내년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실천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바이든 집권 후 7개월 이상의 공백을 예상하지만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경우 1월 20일 취임한 뒤 한달내에 한반도 정책을 발표한 바 있으며, 당시 북한은 한미군사훈련 중단으로 미국의 진정성을 확인하겠다고 했으나 결국 강행된 군사훈련이 북의 미사일 발사와 미국의 전략적인내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거듭 지적했다.

또 '비핵화' 프레임을 벗어나자는 의견도 있지만 이에 대해 남·북·미 사이의 합의된 정의도 없는 상태에서 더 이상 우회하거나 미룰 것이 아니라 우리식 비핵화 해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바이든도 언급한 바 있는 '비핵무기지대(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와 정의로 삼자고 제안했다.

한반도 비핵지대는 "남북이 비핵화를 확고히 이행하고, 핵보유국들은 남북에 핵무기 사용 및 사용위협을 가하지 않고 핵무기 및 그 투발수단을 배치하지 않는 다는 것을 구속력을 갖춘 형태로 보장하는 것"이며, "남북한이 '비핵지대 내' 당사자들로 조약을 체결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등 5대 공식 핵보유국이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비핵지대 외' 당사자들로 이 조약의 의정서에 가입함으로써 참여하는 구도"라고 설명했다.

원희복 전 경향신문 부국장은 '출구없는 남북관계'의 원인으로 반통일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가보안법의 폐지 또는 대폭 개정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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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가슴이 무너져내렸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자, 그 후](상)“나는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가슴이 무너져내렸다

특별취재팀 = 송윤경·이효상·정대연·윤기은 기자 kyung@kyunghyang.com

입력 : 2020.11.13 06:00 수정 : 2020.11.13 08:39

 

주 6일·12시간·최저임금 노동···절망할 틈도 없다 

지난해 1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585명을 대량 해고했다. 조용히 사라져야 했던 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진은 한 비정규직 해고자가 마지막으로 공장에서 일하던 날의 기록을 담은 일기를 보는 모습이다. 이 해고자가 '신입'이었던 대우차 시절엔 정규직·비정규직 개념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공장 내 '계급'이 있다는 것, 자신은 비정규직 계급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한국지엠 직원이 많은 동네의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서로의 아빠가 '직영'(정규직)인지 아닌지를 알아냈다.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은 임금이 '직영'(정규직) 절반이니 사는 모습이나 씀씀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때 중학교 갓 들어간 아들이 어린 마음에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그저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사측의 비정규직 대량 해고 때 공장을 나와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 특별취재팀

지난해 1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585명을 대량 해고했다. 조용히 사라져야 했던 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진은 한 비정규직 해고자가 마지막으로 공장에서 일하던 날의 기록을 담은 일기를 보는 모습이다. 이 해고자가 '신입'이었던 대우차 시절엔 정규직·비정규직 개념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공장 내 '계급'이 있다는 것, 자신은 비정규직 계급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한국지엠 직원이 많은 동네의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서로의 아빠가 '직영'(정규직)인지 아닌지를 알아냈다.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은 임금이 '직영'(정규직) 절반이니 사는 모습이나 씀씀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때 중학교 갓 들어간 아들이 어린 마음에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그저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사측의 비정규직 대량 해고 때 공장을 나와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 특별취재팀

 

대다수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인
중소·영세 공장으로 ‘재취업’
쉬고 싶어도 연차는 꿈도 못 꿔
배달·택배 노동자 환경도 열악
 

김현우씨(36·가명)는 올여름부터 음식배달 기사로 일하고 있다. 한 달 전 배달할 떡볶이를 받기 위해 분식점에 들어갔을 때였다. “아빠다!” 아내와 음식을 먹던 여섯 살배기 딸이 소리쳤다. 가족과 마주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당황스러웠다. 과속방지턱을 지나다 초밥이 한쪽으로 쏠려 6만5000원을 물어준 날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럴 때면 자신도 모르게 과거를 불러냈다. 8년간 힘든 일을 마다않고 일했는데 왜 쫓겨났을까.

김씨는 지난해 12월31일 해고된 585명의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중 한 명이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대량 해고하려면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사내하청 업체 소속 비정규직은 원청(한국지엠)이 업체들과 계약을 끊으면 쉽게 해고할 수 있다. 2018년 1월에도 이 공장은 비정규직 64명을 이런 식으로 내보냈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대량 해고는 대단한 뉴스가 아니다. 이들이 어떤 일자리로 이동하는지 역시 특별한 분석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전태일이 산화한 지 50년이 되는 2020년, 경향신문은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대량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추적했다. 대기업·대공장 정규직의 가장자리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다가 한 번 더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의 이야기엔 갈수록 심각해지는 일자리 양극화 등의 노동 현실이 담겨 있다.

취재진은 지난 6주간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649명 가운데 138명을 온라인 설문조사 했다. 그중 32명은 인터뷰를 했다. 설문응답자 가운데 한 번이라도 재취업을 한 사람은 85명이었다. 재취업 경험자 62%는 중소·영세 공장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었다. 32%는 음식배달·택배·화물운송을 경험했다. 나머지는 주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국지엠 시절보다 월수입은 50만~100만원(29%) 혹은 100만원 이상(23%) 줄었고 하루 노동시간은 2~3시간(39%), 3시간 이상(25%) 늘었다. 응답자 절반은 “연차 개념이 없는 곳에서 일한다”고 답했다.

인터뷰 결과 해고자들이 재취업한 영세·중소 공장은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이 통하지 않는 곳이 태반이었다. 평일 평균 10~12시간 일하면서 최저임금 수준을 받았다. 주로 토요일까지 강제로 일했고 더러는 일요일까지 나와 청소라도 해야 했다. 음식배달·화물·택배노동자가 된 이들은 아예 근로기준법 밖으로 밀려났다. 이들의 신분은 근로기준법이 보호대상으로 삼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다. 오토바이나 1t 트럭을 구입하고 일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의 책임을 떠안는다.

한국지엠 시절에 대한 해고자들의 감정은 양가적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립다고 했다. 정규직과 한 공간에서 일했기 때문에 노동시간, 유급휴가 면에서 법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했지만 하청업체 소속이란 이유로 정규직 임금의 50~60%를 받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이런 고용방식은 불법(파견법 위반)이다. 법원은 일관되게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8100억원을 지원받은 한국지엠은 곧 창원공장에 신차종을 배정하기로 했다. 공장의 일감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정규직 노조는 ‘동료 비정규직’의 해고에 눈을 감았다. 2018년 비정규직 64명 해고 직전엔 정규직 노조가 사측과 합의하기까지 했다.

중소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한 해고자는 휴식시간에 앉아있을 곳이 없어 땅바닥에서 쉰다. 그는 깍두기, 고추가 반찬의 전부인 식판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런 게 노예노동 아닐까.” 50년 전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산화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은 묻는다. 한국 사회는 과연 노동자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있는가.

그래픽 | 성덕환·김덕기 기자

그래픽 | 성덕환·김덕기 기자

그래픽 | 성덕환·김덕기 기자

그래픽 | 성덕환·김덕기 기자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2018년~2019년 649명의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했다. 5년~15년간(설문응답자 80%의 근속기간) 자동차를 만들던 비정규직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해고 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일터로 이동했을까. 해고자 28인의 이야기를 신문 지면 그래픽에 축약해 담았다(위 이미지들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아래는 위 이미지들 속 텍스트다. ‘①현재 하는 일’ ‘②노동시간, 수입’ ‘③과거와 현재 생활’ 등의 항목을 가지고 각 해고자의 상황을 정리했다.
 

■최우현(38·가명) 

① 현재 하는 일 : 물류 운송

② 노동시간·수입 : 주 6일 새벽 1시부터 아침 8시까지 노동. 월 수입 180만원

③ 23세에 한국지엠에 들어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다. 그는 사소한 사건으로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됐다. “사람들이 일할 때 이어폰으로 노래 듣는 걸 봤다. 저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근데 정규직이 와서 너는 들으면 안 된다고…. 그때 제가 비정규직인 걸 처음 알았다. 임금 차이가 크다는 것도.” 한국지엠에서 해고된 뒤 들어간 공장은 화학약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은 유통기업 하청업체로부터 물량을 받아 편의점에 배송하고 있다. 심야 노동을 하고 있는 그는 낮에 푹 잠들지 못한다.

■유근상(50대 후반·가명) 

① 나이가 많아 일자리 못 구함

③ 1995년 대우에 입사할 때는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이 없었다. 차별도 억울한데 해고까지 당하니 앞이 캄캄했다. 5년 전 아들이 “아빠처럼 비정규직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 해고 뒤 아내가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있다.
 

■정상민(39) 

① 택배기사

② 주 6일 아침 7시부터 저녁 9~10시까지 노동

③ 2018년 해고 이후 택배노동자가 됐다. 운전, 고객 응대, 배송, 장시간의 막노동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있다. 1년간 가족들도 말을 못 걸었다. “한국지엠도 참 불합리했는데 여기는 모든 책임을 노동자가 지는 노예계약이다.” 계약 만료 형태로 해고 위기에 놓인 동료를 도우려다 노조를 만들었다. 지난달에는 같은 대리점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 한 명이 저소득과 회사의 갑질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올해 물량 급증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와 동료들은 고인 죽음의 책임을 회사에 묻고 있다.

■차진우(39·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직

② 주 6~7일 주·야간 교대근무, 야간 때는 오후 7시30분 출근해 다음날 오전 8시 퇴근

③ 올 초 해고 이후 한국지엠 비정규직 동료들과 복직투쟁을 벌였다. 코로나19로 학교 개학이 연기되면서 아이들을 농성장에 데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비참하고, 미안했다.” 이후 공장 생산직 일을 알아봤다. 먼저 다닌 직장은 3명이서 할 일을 2명에게 시켰다. 담배 피울 짬도 안 나 그만뒀다. 현재 직장은 12월까지만 일할 수 있다. 구내식당 아침 메뉴는 깍두기, 고추, 멀건 국이 전부다. “1970~1980년대가 생각난다”고 했다.

■김석표(40·가명) 

① 사업을 하는 친척을 돕고 있음

③ 2018년 해고 뒤 대출 받아 호떡 푸드트럭를 시작했다. 트럭 옆에 돗자리 깔고, 일하면서 아이를 봤다. 개인 사정으로 장사를 접은 후 공장에서 최저임금을 받았는데 생활이 힘들었다. 친척이 6개월간 월급 줄 테니 심부름을 해달라고 했다. 이후로는 어떻게 될지 그 자신도 모른다. 대출 빚을 못 갚아 아내는 곧 신용불량자가 될 것 같다.

■김규태(46·가명) 

① 육아 전담하며 구직 중

③ 남편이 해고되자 아내는 대기업 하청업체에 생애 첫 취업을 했다. 해고 후 빚은 2500만원이 늘었고, 집은 전세에서 더 좁아진 월세로 바뀌었다. 한국지엠에서 같이 일하던 비정규직 ‘동생’이 정규직이 몰던 차량에 치였지만 3일 만에 다시 출근해야 했던 게 16년 한국지엠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조호규(38·가명) 

① 담배 필터 제조

② 주 5일 10시간30분씩 노동. 2주씩 주야간 교대근무. 160도의 열 기계 앞에서 작업하다 팔에 화상 입음.

③ 두 자녀를 부양하는 그는 해고 후 3000만원을 대출했고, 차 한 대를 처분했다. 부모님과 처가댁에 매월 10~20만원씩 드리던 용돈도 5만원으로 줄였다. 어느 날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자녀분 적금통장 해약하시는 게 맞나요?” 아내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이의 적금통장을 몰래 깬 것이었다. 한국지엠 마지막 퇴근길에 조씨는 동료와 이런 말을 하며 공장을 나왔다. “우린 뭐였지? 나사 한 조각이었나?” 그는 해고 후 두어달 쉬는 동안 밖에 나갈 일을 최소한으로 만들었다. 아내는 최씨에게 “기운 차리라”며 응원했지만 그는 해고 후 “안쪽으로 침전하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진기(42·가명) 

① 전기 배선 설치

② 주 5일 하루 8시간씩 노동. 월 수입 300만원. 전선 설치 중 전기가 몸에 오르거나 전선이 터지는 경우 있음.

③ 김씨는 매년 12월 31일마다 아내와 가족 계획을 세운다. 김씨의 아내는 계획을 짤 때마다 “한국GM을 그만 두고 형 회사로 가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는 선뜻 한국GM을 나올 수 없었다. ‘언젠가 정규직이 될 수 있겠지’라는 보상심리에 11년 동안 한국GM 창원공장으로 출근했다. 해고가 되고 나서야 형 회사로 들어갔다. 김씨의 아내는 6년 전 유방암 판정을 받은 데에 이어 올해 혈액암 판정도 받았다. 김씨는 아내를 요양병원에, 초등학생 아들을 장모님께 맡겨야 했다. 해고 후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초등학생 아들이 다니던 학원 몇 곳을 끊었지만 김씨의 마이너스통장은 늘어나고 있다.
 

■한지석(44·가명) 

① 건설현장 일용직

② 일당 12만원. 코로나19 이후 공치는 날이 많음

■한석희(45·가명) 

① 아파트 관리

② 5일에 한 번 24시간 노동. 월 수입 230만원

③ 해고 뒤 정규직으로 재취업한 드문 사례다. 그러나 입주민 민원이 들어오면 바로 잘리는 신세다.

지난해 1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585명을 대량 해고했다. 해고자들이 10~20년간 일했던 창원공장을 그만두면서 라커룸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몇 가지가 안된다. 한 해고자는 한국지엠 정규직들의 동계 점퍼를 얻어 왔다. 하청 노동자의 점퍼보다 질이 좋고 따뜻하다. 그는 “직영(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작업복의 재질이 다르다”고 했다. 사진은 해고자들이 취재진에게 보여준 자신의 작업복이다. | 특별취재팀

지난해 1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585명을 대량 해고했다. 해고자들이 10~20년간 일했던 창원공장을 그만두면서 라커룸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몇 가지가 안된다. 한 해고자는 한국지엠 정규직들의 동계 점퍼를 얻어 왔다. 하청 노동자의 점퍼보다 질이 좋고 따뜻하다. 그는 “직영(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작업복의 재질이 다르다”고 했다. 사진은 해고자들이 취재진에게 보여준 자신의 작업복이다. | 특별취재팀

■김수현(50·가명) 

① 대리기사, 택배기사, 건설현장 일용직

② 일감이 생길 때마다 일함

③ 대학생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자녀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1000만원짜리 적금을 깼다. 생활비가 부족해 아내 명의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설복현(50·가명) 

① 전자제품 입·출하 보조

② 주 6일 12시간씩 노동. 최저시급

③ 2018년 먼저 해고된 65명 중 1명이다. 해고 후 여러 공장을 전전했다. 한 공장에선 파이프 절삭유를 다뤘다. “기름이 독해서” 고무장갑은 늘 하루만에 “열십자로” 찢어졌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한국지엠에서 그는 자동차 미션 만큼은 ‘빠삭’ 했다. 50대인 지금, 과거 쌓은 기술 대신 힘을 쓰는 상·하차 업무를 한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지금의 일터에 젊은이들이 상당히 들어왔다. 관리자들 눈빛이 달라졌다. 또 밀려날까봐 걱정스럽다. 부모님과 처제가 아파 빚이 늘고 있다.

■석동훈(49·가명) 

① 택배기사

② 주 80시간 노동. 월 수입 300만원

③ 2018년 해고 뒤 택배 노동 한 달 만에 몸무게가 20㎏ 줄었다. 배송 중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2주 만에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김희관(53·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 계약직

② 주 6일 중 평일 11시간, 토요일 8시간 노동. 월 수입 260만원

③ 해고 후 한 없이 작은 사람이 된 느낌이다. 인간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고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서동규(39·가명) 

① 화물 운송, 연삭기 공장 야간 파트타임(투잡)

② 평일 14~15시간씩, 토요일 12시간 노동. 월 수입 250만~300만원

③ 문씨는 여유가 없다며 여러번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와의 대화는 한밤중에 이뤄졌다. 1t 탑차로 화물운송을 하는 그는 아침 7시30분부터 12시간 일한 다음, 저녁 8시부터 밤 11시까지 중소공장에서 파트타임 노동을 한다. 하루라도 쉬려면 자신의 대타를 직접 구하거나 25만원을 물류회사에 지급해야 한다. 힘들어도 견뎌야 한다. 아픈 아이의 치료에 목돈이 드는데 해고 뒤 빚이 5000만원 늘었다. 한국지엠 시절 가족 캠핑을 간 적이 몇번 있다. 그후 두 아이는 캠핑가자고 노래를 부른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꼭 한번 더 캠핑을 가보고 싶다.

■김현우(36·가명) 

① 음식배달

② 주 6일 12~14시간씩 노동

③ 도급들(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날아간다’는 소문이 지난해 초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나오기 전에 2000만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해고 20일 후 아내가 둘째를 출산하고 위장 수술을 받았다. 생활비를 최대한 줄였는데도 마이너스 통장이 바닥났다. 아픈 아내가 걱정할까봐 말은 하지 못했다. 연말에 대출 만기 연장이 될지가 가장 걱정이다. 그는 “내년부터가 진짜 위기일 것 같다”고 했다.

■정우철(46·가명) 

① 퀵서비스,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 계약직

② 주 6~7일 12~13시간씩 노동. 최저임금

③ 아내가 코로나19로 어린이집 교사 구직에 어려움을 겪다가 7월에야 재취업할 수 있었다. 자녀 셋을 키우느라 월 300만원은 필요하다. 해고 후 빚이 5000만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종현(39·가명) 

① 카드 배송

② 카드 한 장 배달할 때마다 900원을 받는다. 하루에 많아야 40장을 돌린다.

■신호상(29) 

① 에어컨 실외기 생산직

② 하루 12시간 노동. 최저임금

③ 신씨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20대 초반부터 한국 GM에서 7년을 일해오며 돈을 모았다. 해고 후 작은 회사와 큰 회사 20여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신씨에게 ‘안정적인 직장’을 제공해주는 곳은 없었다. 코로나19가 불어닥쳐 일자리도 줄어들었고, 그가 면접보러 간 직장의 처우는 몹시 안 좋았다. 그는 “어딜 가나 정규직은 안 뽑는다.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한(41·가명) 

① 직업훈련학교 수강 후 구직 중

③ 한국지엠에서 쫓겨난 뒤 ‘자격증’에 매달렸다. 같은 일을 15년 넘게 했지만 해고돼 보니 “내가 했던 일은 누가 와도 금세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기술직이니까 함부로 해고할 수 없는” 전기기능사를 땄다. 한 단계 높은 전기기사도 공부 중이나 퇴직금이 바닥나 마냥 취업을 미룰 수 없다.

■신우근(39·가명) 

① 당구장 아르바이트

② 하루 5시간 노동. 최저임금

③ 일자리를 못 구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해고 뒤 결혼식을 미뤘다. 친한 한국지엠 정규직들은 최근 “인연 되면 다시 만나자”며 계모임을 깨버렸다. 짜증과 화가 많아졌다. 1년 새 성격이 바뀐 것 같다.

■정태우(42·가명) 

① 버스 운전

② 주 5~6일 하루 평균 8시간씩 근무. 매주 주·야간 교대. 월 수입 230만원

③ 한국지엠 다닐 때 생각없이 따놓은 대형면허로 버스 기사 일자리를 어렵게 구했다. 코로나19로 승객이 뚝 끊기면서 월급이 140만원까지 줄었다. 아내와 번갈아가며 지인의 호프집에서 야간 아르바이트까지 했지만 손님이 없어 지난여름 일이 끊겼다.

■조연재(39)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직

② 주 6일 하루 12시간씩 주·야간 교대근무

③ 2018년 한국지엠에서 해고되고 또 사내하청 노동자가 됐다. 밥도 보호장구도 안 주고, 법도 안 지키는 회사를 관두고 새 일자리를 구했지만 또다시 사내하청이었다. 아내 역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있다.

■하세호(47·가명) 

① 물류 운송

② 주 6일 근무

③ 해고 후 1000만원의 부채가 생겼다.

■신승연(41·가명) 

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함

③ 정규직으로 복직하겠다는 마음으로 입었던 한국지엠 작업복을 집 장롱에 모셔뒀다.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자 평소 내 이름을 부르던 정규직이 ‘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고호진(41·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직

② 하루 12시간씩 노동. 최저임금

③ 한국지엠에선 로봇으로 들 것을 지금 공장에선 사람이 든다. 그래도 여름에 에어컨이 나온다. 땀으로 뒤범벅이 되는데 선풍기만 트는 공장도 많다. 코로나19로 일을 몇 달 쉬었다. 회사가 아예 망할까봐 불안하다.

■태종현(55·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 계약직

② 주 6일 중 평일 11시간, 토요일 8시간 노동. 월 수입 263만원

③ 지금 일하는 공장엔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해고된다는 조건이 있다고 들었다. 휴식시간엔 의자도 없어 자판기 앞 땅바닥에 앉아 쉰다. 치매에 얼린 어머니와 관절이 성치 않은 누나와 함게 살고 있다. 어머니는 한밤중에 밖에 자주 나가신다. 한번은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헤매다가 파출소에서 어머니를 찾았다. 그는 “정상적인 걸 안 하면 보살피는 게 다 힘들다”고 말했다. 누님은 관절염 치료비를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고자 아픈 다리를 이끌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6개월 동안 했다. 태씨는 30여년 전 감속기 설계를 하며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부럽지 않은 월급을 받았다. 개인 작업실도 있었고 업무 도중 짬이 나면 직장 동료들과 작업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생활용품점을 열었지만 IMF로 인해 폐업했다. 그뒤 한국GM에 입사했다. 그는 같은 근무 시간이어도 감속기 설계를 하던 당시 시간과 비정규직으로 공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오중선(38·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직

② 평일 12시간, 토요일 8시간 노동

③ 현재 일하는 공장에선 연차휴가를 쓰는 사람을 한 번도 못 봤다. 코로나19로 이전 공장에서 일감이 없어 주 4일만 일하다 지금 일터로 옮겼다. 해고 전 받아놓은 대출을 아픈 부모님을 위해 쓰고 있다.

■해고노동자 649명 중 끝내 만나지 못한 510명…“휴일에도 근무” “새벽 2시에 끝나” 고단한 생업의 굴레

2018년 이후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649명에 이른다. 경향신문 취재팀은 지난 6주간 다양한 경로로 모든 해고자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심층면접과 설문조사에 총 138명이 응했다.

취재팀이 만나지 못한 510여명 가운데 일부는 경향신문과 직간접적으로 연락이 닿았지만 “주 7일 근무한다” “일이 새벽 2시에 끝난다” 등 생계를 이유로 취재를 거절했다. 해고 과정에서 겪은 맘고생으로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를 단절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복직을 위해 회사와 소송 중이어서 언론 접촉이 곤란하다는 해고자도 있었다.

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심층면접에 응한 노동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실업 상태인 사람도 많았지만 상당수는 영세 제조업 공장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택배 일이나 건설현장에서 날품팔이식 노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해고자 A씨는 “작은 회사의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옛 동료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사실상 강제로 이뤄지는 잔업 3시간까지 마치면 집에 밤 10시에 도착한다. 철야근무까지 한다”며 “맞벌이하는 부인과 아이 셋 육아 문제로 많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더라”고 말했다. B씨는 “공사판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지엠에 다니던 시절이 나았다고 말한다”며 “거의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기계에 손가락이 절단되거나 근골격계 질환을 겪는 등 산업재해를 당한 사례도 있었다. 보험료가 1년에 400만~500만원에 이르는 운송용 오토바이 보험을 들지 않고 일하다가 사고를 내고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해고는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겼다. 해고자 C씨는 “서로 바빠서 연락을 못하기도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연락해서 술도 먹고 할 건데 만나면 우울한 얘기만 하니까 서로 안 만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해고 후 이혼을 한 사람도 있고, 주변인과 연락을 끊고 시골 고향으로 간 경우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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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130600055&code=940702#csidx5599ef21eb6ba3ba87de3a10aedab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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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가슴이 무너져내렸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자, 그 후](상)“나는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가슴이 무너져내렸다

특별취재팀 = 송윤경·이효상·정대연·윤기은 기자 kyung@kyunghyang.com

입력 : 2020.11.13 06:00 수정 : 2020.11.13 08:39

 

주 6일·12시간·최저임금 노동···절망할 틈도 없다 

지난해 1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585명을 대량 해고했다. 조용히 사라져야 했던 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진은 한 비정규직 해고자가 마지막으로 공장에서 일하던 날의 기록을 담은 일기를 보는 모습이다. 이 해고자가 '신입'이었던 대우차 시절엔 정규직·비정규직 개념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공장 내 '계급'이 있다는 것, 자신은 비정규직 계급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한국지엠 직원이 많은 동네의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서로의 아빠가 '직영'(정규직)인지 아닌지를 알아냈다.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은 임금이 '직영'(정규직) 절반이니 사는 모습이나 씀씀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때 중학교 갓 들어간 아들이 어린 마음에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그저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사측의 비정규직 대량 해고 때 공장을 나와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 특별취재팀

지난해 1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585명을 대량 해고했다. 조용히 사라져야 했던 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진은 한 비정규직 해고자가 마지막으로 공장에서 일하던 날의 기록을 담은 일기를 보는 모습이다. 이 해고자가 '신입'이었던 대우차 시절엔 정규직·비정규직 개념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공장 내 '계급'이 있다는 것, 자신은 비정규직 계급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한국지엠 직원이 많은 동네의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서로의 아빠가 '직영'(정규직)인지 아닌지를 알아냈다.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은 임금이 '직영'(정규직) 절반이니 사는 모습이나 씀씀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때 중학교 갓 들어간 아들이 어린 마음에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그저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사측의 비정규직 대량 해고 때 공장을 나와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 특별취재팀

 

대다수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인
중소·영세 공장으로 ‘재취업’
쉬고 싶어도 연차는 꿈도 못 꿔
배달·택배 노동자 환경도 열악
 

김현우씨(36·가명)는 올여름부터 음식배달 기사로 일하고 있다. 한 달 전 배달할 떡볶이를 받기 위해 분식점에 들어갔을 때였다. “아빠다!” 아내와 음식을 먹던 여섯 살배기 딸이 소리쳤다. 가족과 마주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당황스러웠다. 과속방지턱을 지나다 초밥이 한쪽으로 쏠려 6만5000원을 물어준 날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럴 때면 자신도 모르게 과거를 불러냈다. 8년간 힘든 일을 마다않고 일했는데 왜 쫓겨났을까.

김씨는 지난해 12월31일 해고된 585명의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중 한 명이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대량 해고하려면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사내하청 업체 소속 비정규직은 원청(한국지엠)이 업체들과 계약을 끊으면 쉽게 해고할 수 있다. 2018년 1월에도 이 공장은 비정규직 64명을 이런 식으로 내보냈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대량 해고는 대단한 뉴스가 아니다. 이들이 어떤 일자리로 이동하는지 역시 특별한 분석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전태일이 산화한 지 50년이 되는 2020년, 경향신문은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대량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추적했다. 대기업·대공장 정규직의 가장자리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다가 한 번 더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의 이야기엔 갈수록 심각해지는 일자리 양극화 등의 노동 현실이 담겨 있다.

취재진은 지난 6주간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649명 가운데 138명을 온라인 설문조사 했다. 그중 32명은 인터뷰를 했다. 설문응답자 가운데 한 번이라도 재취업을 한 사람은 85명이었다. 재취업 경험자 62%는 중소·영세 공장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었다. 32%는 음식배달·택배·화물운송을 경험했다. 나머지는 주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국지엠 시절보다 월수입은 50만~100만원(29%) 혹은 100만원 이상(23%) 줄었고 하루 노동시간은 2~3시간(39%), 3시간 이상(25%) 늘었다. 응답자 절반은 “연차 개념이 없는 곳에서 일한다”고 답했다.

인터뷰 결과 해고자들이 재취업한 영세·중소 공장은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이 통하지 않는 곳이 태반이었다. 평일 평균 10~12시간 일하면서 최저임금 수준을 받았다. 주로 토요일까지 강제로 일했고 더러는 일요일까지 나와 청소라도 해야 했다. 음식배달·화물·택배노동자가 된 이들은 아예 근로기준법 밖으로 밀려났다. 이들의 신분은 근로기준법이 보호대상으로 삼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다. 오토바이나 1t 트럭을 구입하고 일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의 책임을 떠안는다.

한국지엠 시절에 대한 해고자들의 감정은 양가적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립다고 했다. 정규직과 한 공간에서 일했기 때문에 노동시간, 유급휴가 면에서 법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했지만 하청업체 소속이란 이유로 정규직 임금의 50~60%를 받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이런 고용방식은 불법(파견법 위반)이다. 법원은 일관되게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8100억원을 지원받은 한국지엠은 곧 창원공장에 신차종을 배정하기로 했다. 공장의 일감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정규직 노조는 ‘동료 비정규직’의 해고에 눈을 감았다. 2018년 비정규직 64명 해고 직전엔 정규직 노조가 사측과 합의하기까지 했다.

중소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한 해고자는 휴식시간에 앉아있을 곳이 없어 땅바닥에서 쉰다. 그는 깍두기, 고추가 반찬의 전부인 식판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런 게 노예노동 아닐까.” 50년 전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산화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은 묻는다. 한국 사회는 과연 노동자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있는가.

그래픽 | 성덕환·김덕기 기자

그래픽 | 성덕환·김덕기 기자

그래픽 | 성덕환·김덕기 기자

그래픽 | 성덕환·김덕기 기자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2018년~2019년 649명의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했다. 5년~15년간(설문응답자 80%의 근속기간) 자동차를 만들던 비정규직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해고 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일터로 이동했을까. 해고자 28인의 이야기를 신문 지면 그래픽에 축약해 담았다(위 이미지들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아래는 위 이미지들 속 텍스트다. ‘①현재 하는 일’ ‘②노동시간, 수입’ ‘③과거와 현재 생활’ 등의 항목을 가지고 각 해고자의 상황을 정리했다.
 

■최우현(38·가명) 

① 현재 하는 일 : 물류 운송

② 노동시간·수입 : 주 6일 새벽 1시부터 아침 8시까지 노동. 월 수입 180만원

③ 23세에 한국지엠에 들어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다. 그는 사소한 사건으로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됐다. “사람들이 일할 때 이어폰으로 노래 듣는 걸 봤다. 저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근데 정규직이 와서 너는 들으면 안 된다고…. 그때 제가 비정규직인 걸 처음 알았다. 임금 차이가 크다는 것도.” 한국지엠에서 해고된 뒤 들어간 공장은 화학약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은 유통기업 하청업체로부터 물량을 받아 편의점에 배송하고 있다. 심야 노동을 하고 있는 그는 낮에 푹 잠들지 못한다.

■유근상(50대 후반·가명) 

① 나이가 많아 일자리 못 구함

③ 1995년 대우에 입사할 때는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이 없었다. 차별도 억울한데 해고까지 당하니 앞이 캄캄했다. 5년 전 아들이 “아빠처럼 비정규직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 해고 뒤 아내가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있다.
 

■정상민(39) 

① 택배기사

② 주 6일 아침 7시부터 저녁 9~10시까지 노동

③ 2018년 해고 이후 택배노동자가 됐다. 운전, 고객 응대, 배송, 장시간의 막노동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있다. 1년간 가족들도 말을 못 걸었다. “한국지엠도 참 불합리했는데 여기는 모든 책임을 노동자가 지는 노예계약이다.” 계약 만료 형태로 해고 위기에 놓인 동료를 도우려다 노조를 만들었다. 지난달에는 같은 대리점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 한 명이 저소득과 회사의 갑질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올해 물량 급증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와 동료들은 고인 죽음의 책임을 회사에 묻고 있다.

■차진우(39·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직

② 주 6~7일 주·야간 교대근무, 야간 때는 오후 7시30분 출근해 다음날 오전 8시 퇴근

③ 올 초 해고 이후 한국지엠 비정규직 동료들과 복직투쟁을 벌였다. 코로나19로 학교 개학이 연기되면서 아이들을 농성장에 데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비참하고, 미안했다.” 이후 공장 생산직 일을 알아봤다. 먼저 다닌 직장은 3명이서 할 일을 2명에게 시켰다. 담배 피울 짬도 안 나 그만뒀다. 현재 직장은 12월까지만 일할 수 있다. 구내식당 아침 메뉴는 깍두기, 고추, 멀건 국이 전부다. “1970~1980년대가 생각난다”고 했다.

■김석표(40·가명) 

① 사업을 하는 친척을 돕고 있음

③ 2018년 해고 뒤 대출 받아 호떡 푸드트럭를 시작했다. 트럭 옆에 돗자리 깔고, 일하면서 아이를 봤다. 개인 사정으로 장사를 접은 후 공장에서 최저임금을 받았는데 생활이 힘들었다. 친척이 6개월간 월급 줄 테니 심부름을 해달라고 했다. 이후로는 어떻게 될지 그 자신도 모른다. 대출 빚을 못 갚아 아내는 곧 신용불량자가 될 것 같다.

■김규태(46·가명) 

① 육아 전담하며 구직 중

③ 남편이 해고되자 아내는 대기업 하청업체에 생애 첫 취업을 했다. 해고 후 빚은 2500만원이 늘었고, 집은 전세에서 더 좁아진 월세로 바뀌었다. 한국지엠에서 같이 일하던 비정규직 ‘동생’이 정규직이 몰던 차량에 치였지만 3일 만에 다시 출근해야 했던 게 16년 한국지엠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조호규(38·가명) 

① 담배 필터 제조

② 주 5일 10시간30분씩 노동. 2주씩 주야간 교대근무. 160도의 열 기계 앞에서 작업하다 팔에 화상 입음.

③ 두 자녀를 부양하는 그는 해고 후 3000만원을 대출했고, 차 한 대를 처분했다. 부모님과 처가댁에 매월 10~20만원씩 드리던 용돈도 5만원으로 줄였다. 어느 날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자녀분 적금통장 해약하시는 게 맞나요?” 아내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이의 적금통장을 몰래 깬 것이었다. 한국지엠 마지막 퇴근길에 조씨는 동료와 이런 말을 하며 공장을 나왔다. “우린 뭐였지? 나사 한 조각이었나?” 그는 해고 후 두어달 쉬는 동안 밖에 나갈 일을 최소한으로 만들었다. 아내는 최씨에게 “기운 차리라”며 응원했지만 그는 해고 후 “안쪽으로 침전하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진기(42·가명) 

① 전기 배선 설치

② 주 5일 하루 8시간씩 노동. 월 수입 300만원. 전선 설치 중 전기가 몸에 오르거나 전선이 터지는 경우 있음.

③ 김씨는 매년 12월 31일마다 아내와 가족 계획을 세운다. 김씨의 아내는 계획을 짤 때마다 “한국GM을 그만 두고 형 회사로 가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는 선뜻 한국GM을 나올 수 없었다. ‘언젠가 정규직이 될 수 있겠지’라는 보상심리에 11년 동안 한국GM 창원공장으로 출근했다. 해고가 되고 나서야 형 회사로 들어갔다. 김씨의 아내는 6년 전 유방암 판정을 받은 데에 이어 올해 혈액암 판정도 받았다. 김씨는 아내를 요양병원에, 초등학생 아들을 장모님께 맡겨야 했다. 해고 후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초등학생 아들이 다니던 학원 몇 곳을 끊었지만 김씨의 마이너스통장은 늘어나고 있다.
 

■한지석(44·가명) 

① 건설현장 일용직

② 일당 12만원. 코로나19 이후 공치는 날이 많음

■한석희(45·가명) 

① 아파트 관리

② 5일에 한 번 24시간 노동. 월 수입 230만원

③ 해고 뒤 정규직으로 재취업한 드문 사례다. 그러나 입주민 민원이 들어오면 바로 잘리는 신세다.

지난해 1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585명을 대량 해고했다. 해고자들이 10~20년간 일했던 창원공장을 그만두면서 라커룸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몇 가지가 안된다. 한 해고자는 한국지엠 정규직들의 동계 점퍼를 얻어 왔다. 하청 노동자의 점퍼보다 질이 좋고 따뜻하다. 그는 “직영(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작업복의 재질이 다르다”고 했다. 사진은 해고자들이 취재진에게 보여준 자신의 작업복이다. | 특별취재팀

지난해 1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585명을 대량 해고했다. 해고자들이 10~20년간 일했던 창원공장을 그만두면서 라커룸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몇 가지가 안된다. 한 해고자는 한국지엠 정규직들의 동계 점퍼를 얻어 왔다. 하청 노동자의 점퍼보다 질이 좋고 따뜻하다. 그는 “직영(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작업복의 재질이 다르다”고 했다. 사진은 해고자들이 취재진에게 보여준 자신의 작업복이다. | 특별취재팀

■김수현(50·가명) 

① 대리기사, 택배기사, 건설현장 일용직

② 일감이 생길 때마다 일함

③ 대학생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자녀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1000만원짜리 적금을 깼다. 생활비가 부족해 아내 명의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설복현(50·가명) 

① 전자제품 입·출하 보조

② 주 6일 12시간씩 노동. 최저시급

③ 2018년 먼저 해고된 65명 중 1명이다. 해고 후 여러 공장을 전전했다. 한 공장에선 파이프 절삭유를 다뤘다. “기름이 독해서” 고무장갑은 늘 하루만에 “열십자로” 찢어졌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한국지엠에서 그는 자동차 미션 만큼은 ‘빠삭’ 했다. 50대인 지금, 과거 쌓은 기술 대신 힘을 쓰는 상·하차 업무를 한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지금의 일터에 젊은이들이 상당히 들어왔다. 관리자들 눈빛이 달라졌다. 또 밀려날까봐 걱정스럽다. 부모님과 처제가 아파 빚이 늘고 있다.

■석동훈(49·가명) 

① 택배기사

② 주 80시간 노동. 월 수입 300만원

③ 2018년 해고 뒤 택배 노동 한 달 만에 몸무게가 20㎏ 줄었다. 배송 중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2주 만에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김희관(53·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 계약직

② 주 6일 중 평일 11시간, 토요일 8시간 노동. 월 수입 260만원

③ 해고 후 한 없이 작은 사람이 된 느낌이다. 인간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고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서동규(39·가명) 

① 화물 운송, 연삭기 공장 야간 파트타임(투잡)

② 평일 14~15시간씩, 토요일 12시간 노동. 월 수입 250만~300만원

③ 문씨는 여유가 없다며 여러번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와의 대화는 한밤중에 이뤄졌다. 1t 탑차로 화물운송을 하는 그는 아침 7시30분부터 12시간 일한 다음, 저녁 8시부터 밤 11시까지 중소공장에서 파트타임 노동을 한다. 하루라도 쉬려면 자신의 대타를 직접 구하거나 25만원을 물류회사에 지급해야 한다. 힘들어도 견뎌야 한다. 아픈 아이의 치료에 목돈이 드는데 해고 뒤 빚이 5000만원 늘었다. 한국지엠 시절 가족 캠핑을 간 적이 몇번 있다. 그후 두 아이는 캠핑가자고 노래를 부른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꼭 한번 더 캠핑을 가보고 싶다.

■김현우(36·가명) 

① 음식배달

② 주 6일 12~14시간씩 노동

③ 도급들(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날아간다’는 소문이 지난해 초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나오기 전에 2000만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해고 20일 후 아내가 둘째를 출산하고 위장 수술을 받았다. 생활비를 최대한 줄였는데도 마이너스 통장이 바닥났다. 아픈 아내가 걱정할까봐 말은 하지 못했다. 연말에 대출 만기 연장이 될지가 가장 걱정이다. 그는 “내년부터가 진짜 위기일 것 같다”고 했다.

■정우철(46·가명) 

① 퀵서비스,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 계약직

② 주 6~7일 12~13시간씩 노동. 최저임금

③ 아내가 코로나19로 어린이집 교사 구직에 어려움을 겪다가 7월에야 재취업할 수 있었다. 자녀 셋을 키우느라 월 300만원은 필요하다. 해고 후 빚이 5000만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종현(39·가명) 

① 카드 배송

② 카드 한 장 배달할 때마다 900원을 받는다. 하루에 많아야 40장을 돌린다.

■신호상(29) 

① 에어컨 실외기 생산직

② 하루 12시간 노동. 최저임금

③ 신씨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20대 초반부터 한국 GM에서 7년을 일해오며 돈을 모았다. 해고 후 작은 회사와 큰 회사 20여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신씨에게 ‘안정적인 직장’을 제공해주는 곳은 없었다. 코로나19가 불어닥쳐 일자리도 줄어들었고, 그가 면접보러 간 직장의 처우는 몹시 안 좋았다. 그는 “어딜 가나 정규직은 안 뽑는다.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한(41·가명) 

① 직업훈련학교 수강 후 구직 중

③ 한국지엠에서 쫓겨난 뒤 ‘자격증’에 매달렸다. 같은 일을 15년 넘게 했지만 해고돼 보니 “내가 했던 일은 누가 와도 금세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기술직이니까 함부로 해고할 수 없는” 전기기능사를 땄다. 한 단계 높은 전기기사도 공부 중이나 퇴직금이 바닥나 마냥 취업을 미룰 수 없다.

■신우근(39·가명) 

① 당구장 아르바이트

② 하루 5시간 노동. 최저임금

③ 일자리를 못 구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해고 뒤 결혼식을 미뤘다. 친한 한국지엠 정규직들은 최근 “인연 되면 다시 만나자”며 계모임을 깨버렸다. 짜증과 화가 많아졌다. 1년 새 성격이 바뀐 것 같다.

■정태우(42·가명) 

① 버스 운전

② 주 5~6일 하루 평균 8시간씩 근무. 매주 주·야간 교대. 월 수입 230만원

③ 한국지엠 다닐 때 생각없이 따놓은 대형면허로 버스 기사 일자리를 어렵게 구했다. 코로나19로 승객이 뚝 끊기면서 월급이 140만원까지 줄었다. 아내와 번갈아가며 지인의 호프집에서 야간 아르바이트까지 했지만 손님이 없어 지난여름 일이 끊겼다.

■조연재(39)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직

② 주 6일 하루 12시간씩 주·야간 교대근무

③ 2018년 한국지엠에서 해고되고 또 사내하청 노동자가 됐다. 밥도 보호장구도 안 주고, 법도 안 지키는 회사를 관두고 새 일자리를 구했지만 또다시 사내하청이었다. 아내 역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있다.

■하세호(47·가명) 

① 물류 운송

② 주 6일 근무

③ 해고 후 1000만원의 부채가 생겼다.

■신승연(41·가명) 

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함

③ 정규직으로 복직하겠다는 마음으로 입었던 한국지엠 작업복을 집 장롱에 모셔뒀다.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자 평소 내 이름을 부르던 정규직이 ‘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고호진(41·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직

② 하루 12시간씩 노동. 최저임금

③ 한국지엠에선 로봇으로 들 것을 지금 공장에선 사람이 든다. 그래도 여름에 에어컨이 나온다. 땀으로 뒤범벅이 되는데 선풍기만 트는 공장도 많다. 코로나19로 일을 몇 달 쉬었다. 회사가 아예 망할까봐 불안하다.

■태종현(55·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 계약직

② 주 6일 중 평일 11시간, 토요일 8시간 노동. 월 수입 263만원

③ 지금 일하는 공장엔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해고된다는 조건이 있다고 들었다. 휴식시간엔 의자도 없어 자판기 앞 땅바닥에 앉아 쉰다. 치매에 얼린 어머니와 관절이 성치 않은 누나와 함게 살고 있다. 어머니는 한밤중에 밖에 자주 나가신다. 한번은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헤매다가 파출소에서 어머니를 찾았다. 그는 “정상적인 걸 안 하면 보살피는 게 다 힘들다”고 말했다. 누님은 관절염 치료비를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고자 아픈 다리를 이끌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6개월 동안 했다. 태씨는 30여년 전 감속기 설계를 하며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부럽지 않은 월급을 받았다. 개인 작업실도 있었고 업무 도중 짬이 나면 직장 동료들과 작업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생활용품점을 열었지만 IMF로 인해 폐업했다. 그뒤 한국GM에 입사했다. 그는 같은 근무 시간이어도 감속기 설계를 하던 당시 시간과 비정규직으로 공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오중선(38·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직

② 평일 12시간, 토요일 8시간 노동

③ 현재 일하는 공장에선 연차휴가를 쓰는 사람을 한 번도 못 봤다. 코로나19로 이전 공장에서 일감이 없어 주 4일만 일하다 지금 일터로 옮겼다. 해고 전 받아놓은 대출을 아픈 부모님을 위해 쓰고 있다.

■해고노동자 649명 중 끝내 만나지 못한 510명…“휴일에도 근무” “새벽 2시에 끝나” 고단한 생업의 굴레

2018년 이후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649명에 이른다. 경향신문 취재팀은 지난 6주간 다양한 경로로 모든 해고자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심층면접과 설문조사에 총 138명이 응했다.

취재팀이 만나지 못한 510여명 가운데 일부는 경향신문과 직간접적으로 연락이 닿았지만 “주 7일 근무한다” “일이 새벽 2시에 끝난다” 등 생계를 이유로 취재를 거절했다. 해고 과정에서 겪은 맘고생으로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를 단절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복직을 위해 회사와 소송 중이어서 언론 접촉이 곤란하다는 해고자도 있었다.

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심층면접에 응한 노동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실업 상태인 사람도 많았지만 상당수는 영세 제조업 공장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택배 일이나 건설현장에서 날품팔이식 노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해고자 A씨는 “작은 회사의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옛 동료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사실상 강제로 이뤄지는 잔업 3시간까지 마치면 집에 밤 10시에 도착한다. 철야근무까지 한다”며 “맞벌이하는 부인과 아이 셋 육아 문제로 많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더라”고 말했다. B씨는 “공사판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지엠에 다니던 시절이 나았다고 말한다”며 “거의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기계에 손가락이 절단되거나 근골격계 질환을 겪는 등 산업재해를 당한 사례도 있었다. 보험료가 1년에 400만~500만원에 이르는 운송용 오토바이 보험을 들지 않고 일하다가 사고를 내고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해고는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겼다. 해고자 C씨는 “서로 바빠서 연락을 못하기도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연락해서 술도 먹고 할 건데 만나면 우울한 얘기만 하니까 서로 안 만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해고 후 이혼을 한 사람도 있고, 주변인과 연락을 끊고 시골 고향으로 간 경우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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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130600055&code=940702#csidx5599ef21eb6ba3ba87de3a10aedab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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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노동개악을 반대하는 이유

민주노총이 노동개악을 반대하는 이유

  • 기자명 선현희 기자
  •  
  •  승인 2020.11.12 14:14
  •  
  •  댓글 0
 
 

김재하 민주노총 비대위원장 인터뷰

 

11월 14일 노동자대회를 앞두고 김재하 민주노총 비대위원장 인터뷰를 진행했다.
민주노총이 정부의 노동법에 대해 '노동 개악'이라고 칭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전태일 3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출처 : 노동과세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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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이 묻는다 "왜 아직도 일하다 죽는 게 당연하죠?"

'전태일50'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특별기고문

20.11.13 07:33l최종 업데이트 20.11.13 07:33l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이 전태일 열사 산화 50년 뒤인 2020년, 모자가 서로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눌지를 상상해서 글을 썼다. '전태일50' 신문에 실린 전태일과 이소선이 나누는 '가상대화'를 오마이뉴스에도 싣는다. [편집자말]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의 무덤 뒤에 위치한 이소선의 무덤.
▲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의 무덤 뒤에 위치한 이소선의 무덤.
ⓒ 전태일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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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제일 먼저 일어나 "태일이 엄마"를 찾던 이웃 종철이 아버지가 조용하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깬 이소선은 조용히 전태일을 불렀다.

"어머니, 부르셨어요?"
"그래. 너도 잠을 제대로 못 잤구나."
"그렇죠. 벌써 50년, 이곳에서 저는 기다렸어요. 언젠가 내가 굴리다 다 못 굴린 그 덩이를 다 굴렸다는 소식을 듣기를 말이죠. 노동자들이 일어나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저는 너무 기뻤어요. 매년 내 무덤 앞에 와서 환한 얼굴로 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던 노동자들이 기억나요.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기운이 없어 보여요. 다들 힘들다고 해요."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전태일이 먼저 입을 뗐다.

 

"어머니, 제가 세상을 뜬 뒤에 어머니가 저와의 약속을 지키려 무던히 애쓰는 모습을 봤어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워서 미안했어요. 장남으로 어려운 살림 꾸려가는 어머니를 돕지도 못하면서 어머니에게 몹쓸 짓을 하고 떠나면서도 제가 못다 한 일을 꼭 이뤄달라고 했는데... 어머니를 믿었어요."

"태일아, 네가 피를 토하면서도 약속하라고 했던 그 모습을 어떻게 잊냐, 그러면 사람이 아니지. 그 약속을 지키는 것, 그것만이 내가 살아야 할 이유였어. 그러다가 세상을 봤고, 큰 공부를 했지. 너를 여기 묻고 집에 가서 며칠 있는데 함석헌 선생님이 찾아오셨어. 그분이 내 손을 잡고는 전태일은 예수처럼 자신의 모든 걸 버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죽은 거다. 그러니까 전태일이 수많은 전태일로 부활할 거라고 했어."

"누가 그러더라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제 곁에 누웠을 때 마흔한 살에 태일이를 잃고 꼭 41년을 더 사시다 가셨다고, 그 41년 동안 250번을 잡혀 갔다고. 어머니가 당한 고초, 너무 힘들었을 텐데. 어머니를 꼭 안아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 살도 오래전에 다 녹아버리고, 몸이 없으니 어머니를 안아주지 못했어요. 그게 슬펐어요."

"경찰들에게 둘러싸이고, 중앙정보부에도 끌려가고, 빨갱이라고 불라고 매질을 할 때도 나는 이를 악물었어. 나는 태일이 엄마다. 목숨까지 버린 자식 앞에서 비겁하면 안 되잖아."


침묵이 흘렀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태일이 밝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태삼이가 어머니 비석 만드는 날 그랬지요. 검은 바탕 비석에 어머니가 마이크 잡은 사진을 새겨 넣은 걸 보고는 어머니가 여기 모란공원 사람들하고 매일 밤 집회할 거다고 말이죠. 참, 어머니는 사람들 웃기고, 울리고, 너무 말씀을 재밌게 하세요. 그러니까 매일 어머니한테 사람들이 와서 얘기해 달라고 하잖아요. 나는 그런 어머니가 너무 부러워요."

"태일아, 내가 뭔 말을 잘하냐. 배운 것도 없고, 무식쟁이 할머니인데, 내가 싸우면서 겪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좋아하더라. 그런데 사람들이 박수를 치려면 제대로 치든가 해야지 박수도 치다 말아. 그래서 박수를 제대로 한번 쳐봐라, 그러면 사람들이 신나게 박수를 쳐. 그럴 때 꼭 한 마디 부탁했어. 노동자가 단결하면 두려울 게 없다, 절대 갈라지지 말고 하나가 돼서 싸워야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태일이 바라던 세상이 온다고 말이지. 난 어려운 말 몰라. 그냥 내가 겪은 대로 말한 거지. 온몸이 아프다가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걸 보면 없던 기운도 나서 나도 신이 나는 거야."

"맞아요. 모여야 힘이 나죠. 저는 그게 사랑인 거 같아요. 우리가 사는 이유가 그런 건데… 어, 저분, 이 아침에 벌써 오시네."


이제 동녘이 희붐하게 밝아오고, 어둠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는 때였다. 김미숙씨가 박래전을 지나서 성유보를 지나서 노란 자전거 탄 김용균 앞에서 멈춘다.

"에고, 날이 밝기도 전에 용균이 엄마가 왔네. 저 엄마가 밤에 잠도 못 잘 거야. 저 엄마를 보면 내 생각이 나. 두 동강이 난 아들을 봤잖아. 얼마나 끔찍했을까. 저 엄마도 나처럼 평생을 용균이를 가슴에 안고 살아갈 거야.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데 묻기는 왜 묻어, 같이 사는 거지. '태일이었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 '태일아, 엄마가 잘하는 거 맞냐?' 하고 말이야. 나처럼 용균이 엄마도 그러겠지."

"어머니가 평화시장 노동자들 국수 끓여 먹이면서 노조 만들고, 노동자들 투쟁하는 곳마다 응원해주고, 나중에는 학생들 투쟁하는 데나 재야인사들 투쟁하는 데도 같이 합류해서 싸웠잖아요. 그러다가 의문사한 엄마들 아버지들하고 의문사 진상규명하라고 싸우고. 참 우리 엄마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그게 다 똑같아. 저 사람도 자식을 잃었고, 가족을 잃었고, 동료를 잃었잖아. 그 사람들이 불러서 간 게 아냐. 나는 너하고 같이 간 거야. 얼마나 많은 사람 눈을 감겨 줬냐. 그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팠어. 목매 죽고, 분신해서 죽고, 병들어 죽고, 사고당해 죽고... 죽음의 행렬이었어. 저걸 멈춰야 하는데, 제발 죽을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싸우자고 눈물로 호소하고 다녔어."

"그러니까요. 왜 아직도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게 당연하죠?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이고 국민소득도 높다는데 왜 아직도 장시간 노동에다가 저임금으로 사람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거죠? 제가 만들고 싶었던 '태일피복' 3000만 원이 없어서 포기한 그런 업체가 왜 안 되는 거죠? 근로기준법 지키고, 노동조합 활동도 보장해주면서도 이윤을 올리는 그런 기업이 왜 안 되는 거죠?"

"가진 사람들이 너무 탐욕스러워. 정치인들도 탐욕을 부리는 이들과 한패야. 그러니까 안 되지. 노동자 알기를 노예나 머슴 부리듯 한다니까. 나와 같은 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없이 마른 수건 쥐어짜기만 하다가 버려 버리잖아. 그러니 자꾸 죽지. 말로만 사랑 타령이거든."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때 내 모든 것을 던져서 먹구름 뒤덮인 하늘에 작은 구멍 하나 낸 거거든요. 그 구멍으로 사람들이 파란 하늘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 구멍을 여러 사람이 넓히고 넓혀서 세상 사람들 모두가 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구멍이 다시 좁아지고 있어요. 먹구름 덮인 하늘을 이고 땅에서 서로 싸우면서 살 것 같아서 걱정돼요.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고 왜 한목소리로 외치지 못하나요. 답답해요."

그때다. 사람들이 서리 맞은 풀을 밟고 오는 발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어느새 동쪽 산 위로 해가 많이 올라 있었다. 발소리들은 전태일 앞에 멈추고 깃발을 세운다.

"안 되겠다. 오늘은 긴 하루가 될 거야. 사람들이 뭔 얘기하나 잘 들어보자."
"그래요. 밤에 얘기해요."


어느새 새들이 날아서 주위에 내려앉는다. 김미숙씨도 와서 노동자들과 인사를 나눈다. 전태일과 이소선은 종일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들 앞에서 사람들은 오늘 무슨 생각을 하고 돌아갈까, 그게 궁금해진다. 오늘(13일)은 50년 전 그날이다.

※ 이 기고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앞두고 제작된 <전태일50> 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전태일50> 신문 제작에는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오늘의 전태일' 이야기를 신문으로 만들겠다는 현직 언론사 기자, 사진가, 활동가들이 참여했습니다. ☞ 구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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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과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오늘...한 해고 택배기사의 외침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11/13 08:38
  • 수정일
    2020/11/13 08:3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50년 전 전태일의 외침은 오늘날 택배기사 등 특수고용직 목소리로 이어진다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20-11-13 06:52:56
수정 2020-11-13 06: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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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의 전태일 열사 영정.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의 전태일 열사 영정.ⓒ양지웅 기자  개발과 성장이 최우선 가치였던 1970년. 전태일은 햇볕조차 들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10~15살 어린 여공들이 하루 16시간가량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뒤늦게 근로기준법을 알게 된 전태일은 동료들과 바보회·삼동친목회 등을 결성해 평화시장 노동환경 실태를 조사하고, 노동청에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등 어린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 결과, 1970년 10월 경향신문에 “나이어린 여공이 좁은 방에서 하루 16시간이나 고된 일을 하며 보잘 것 없는 보수에 직업병까지 앓고 있어 근로기준법을 무색케 하고 있다”는 짤막한 기사가 났다. 전태일과 동료들은 이 짧은 기사에 기뻐했다. 하지만 그는 평화시장에서 불순분자로 낙인 찍혀 일자리를 잃었다. 그나마 노동청으로부터 근로감독을 약속받고 희망을 품었으나, 이 또한 국정감사 기간이 지나자 노동청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근로기준법이 존재하나 평화시장에선 누구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걸 직시한 그는, 그해 11월 13일 동료들과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 시위를 벌였다. 시위도 경찰의 제지로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그는 휘발유를 자신의 몸에 붓고 불을 붙였다.

그때 전태일은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전태일의 외침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절실하다고 하면, 누군가는 그런다. “그래도 50년 전이랑 지금은 다르지”라고. 맞다. 많이 달라지긴 했다. 광복 후 선진국의 노동법을 그대로 번역만 하다시피 들여올 때만 해도 사용자들은 “너무 선진화된 법”이라며 반대했지만, 오늘날 사용자들은 아예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직군을 만들어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런 고용형태의 변화다. 오히려 특수고용직 등 새로운 직군의 종사자가 많아지면서 근로기준법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현실의 결과로 나타나는 잇따른 노동자의 죽음은 ‘50년 전 상황으로 회귀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마저 준다. 대표적인 게 특수고용직이 제도화된 택배다.

새벽에 일어나서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버텨내고 밤늦게 집에 돌아가는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잇따르지만, ‘주 40시간’ 규정이 명시된 근로기준법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노조를 만들어서 처우개선을 요구하려고 했더니 계약을 해지해 버린다. 누가 봐도 부당해고다. 그런데도 ‘개인사업자에 가까운 특수고용직’이기에 근로기준법에 접촉되지 않는다고 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게 아니니, 부당해고가 아니라 한다.

그런 점에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가고 있는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하, 택배연대노조)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택배연대노조는 이 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올해 전태일 재단의 ‘전태일 노동상 단체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태일 열사가 산화(散華)한 지 50주년인 오는 1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전태일 재단은 이 상을 택배연대노조에 수여할 예정이다.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 자료사진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 자료사진ⓒ임화영 기자

수많은 태일이가 세운 노동조합
“전태일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택배연대노조는 2017년 1월 8일 ‘또 다른 전태일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노동조합이다.

2016년 중순경 택배기사들은 ‘택배기사 권리찾기’라는 모임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장시간 노동 문제와 택배사·대리점의 갑질 등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 처우개선을 위해선 회사와 교섭을 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선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본 택배기사들은 그해 말부터 노조설립을 준비하고 다음해 1월 8일 지금의 택배연대노조를 창립했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노조설립을 준비하는 택배기사가 모여 있는 대리점이 갑자기 폐업을 하거나, 부당한 계약 해지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특수고용직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허점을 이용한 부당해고였으며, 노조와해였다.

김태완 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 또한 노조를 만들다가 일자리를 잃은 해고자다. 당시 CJ대한통운은 김 위원장이 있는 대리점에서 노조가 세워질 기미가 보이자 대리점을 통째로 폐점시켰다고 한다. 이날로 김 위원장과 10여명의 동료 택배기사들은 모두 해고자가 됐다.

지난 11월 10일, 홈플러스 온라인배송기사의 해고투쟁 집회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해고 당시를 다음과 같이 떠올렸다. “노조하기 전 ‘고용안정’이라는 말은 책에서만 접한 단어였다. 이게 왜 중요한지 잘 몰랐다. 그런데 막상 당하고 보니, 해고는 파괴였다. 2016년 12월에 노조를 만들다가 해고가 됐는데, 그해 12월 2일에 둘째가 태어났다. 우리 집에 수입은 저밖에 없었고, 형제들도 다 어려워서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급여가 들어오지 않는 날을 일주일 앞두고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집에 들어가는 게 무서웠다. 평소 만나지 못했던 고등학교·대학교 친구들에게 연락 돌리며 돈을 빌리고. 이 생활을 한 3개월 했다. 내가 노조를 하는 건지 돈 빌리러 다니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해고는 그의 삶을 뒤흔들었다. 그는 “지금도 아내와 첫째는 내 눈치를 살핀다. 매일 저를 위로한다”며 “해고는 한 사람을, 그리고 그 가정을 파괴한다”고 말했다.

택배기사의 노동자성이 국가로부터 인정돼 택배연대노조가 합법노조가 된 지금도, 김 위원장의 복직 문제는 풀지 못한 과제로 남았다. 그 또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 문제를 CJ대한통운과 교섭할 수 있게 되는 날 반드시 풀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그를 만난 현장도 사실 특수고용직 해고 문제를 다루는 집회였다. 홈플러스 온라인배송기사인 이수암 마트산업노조 온라인배송지회 지회장은 노조 준비위원회 활동을 하던 올해 3월 18일 홈플러스 운송사로부터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당했다. 그는 다행히 “이 사건 근로자와의 운송계약 해지는 부당노동행위”라는 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을 받고 복직의 기회를 얻었으나, 최근 복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시장이 만들어낸 특수고용직이란 신분 때문에 근로기준법 제23조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등 징벌을 하지 못한다’는 규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니, 사용자는 해고나 마찬가지인 계약해지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계약해지 부당” 지노위 결정 후 복직 준비 중 또 계약해지된 홈플러스 배송기사)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처한 상황 탓인지, 김 위원장은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여전히 절실하다고 말했다. 집회가 끝나고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특수고용노동자’라는 게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제도적으로 만든 것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노동자들이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무권리 상태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권리를 찾으려고 하면 오히려 불법행위로 치부되고 해고된다”며 전태일의 구호가 오늘날에도 절실한 까닭을 설명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주범 재벌택배사 규탄대회’에서 택배노동자 김모씨가 과로사로 사망 전 동료에게 남긴 문자 메세지 앞에  택배 노동자가 앉아 있다. 2020.10.24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주범 재벌택배사 규탄대회’에서 택배노동자 김모씨가 과로사로 사망 전 동료에게 남긴 문자 메세지 앞에 택배 노동자가 앉아 있다. 2020.10.24ⓒ정의철 기자

특수고용노동자 노조의 탄생

전태일의 산화가 산업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노동문제에 큰 관심을 불러오고 수많은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것처럼, 택배연대노조의 투쟁 또한 다른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거름이 됐다.

택배연대노조가 2017년 11월 3일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설립필증을 받은 이래, 다양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설립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엔 배달노동자들의 노조인 라이더유니온이 노조설립필증을 받았고, 회사와 위수탁 계약을 맺고 건당 수수료를 받던 특수고용노동자인 코웨이 방문판매노동자들 또한 올해 5월 13일 노동부로부터 노조설립필증을 받았다. 마사회 경마기수들과 경륜 선수들도 올해 노조신고필증을 받았다.

이들 특수고용노동자는 활발한 노조 활동을 통해 처우개선과 단체교섭 등을 요구하며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가고 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9월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택배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촉구하는 기자회을 마친 뒤 택배차량 행진을 하고 있다. 이들은 추석이 있는 9월 물량이 평소보다 50% 이상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택배 분류작업 인력 확충 등 택배물량 증가에 대한 택배사와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2020.09.07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9월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택배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촉구하는 기자회을 마친 뒤 택배차량 행진을 하고 있다. 이들은 추석이 있는 9월 물량이 평소보다 50% 이상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택배 분류작업 인력 확충 등 택배물량 증가에 대한 택배사와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2020.09.07ⓒ김철수 기자

“뭉치면 주인 되고 흩어지면 노예 된다”

국토교통부·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1992년 택배서비스가 시작된 이래 택배물량은 연평균 12.1%씩(2014년 16억개→2016년 20억개→2018년 25억개) 증가했다. 또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 사태로 수요가 폭증했다. 택배물량 폭증은 안 그래도 과로노동이 심각한 택배기사의 고강도·장시간 노동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문제는 잇따른 택배기사의 과로사로 나타났다. 올해 사망한 택배기사 10명 중 9명은 모두 심혈관질환으로 쓰러져 숨졌으나, 대부분 산재보험 적용에서도 제외된 것으로 드러났다. 택배가 국민 보편서비스로 자리매김 하는 양적 성장 이면에 ‘택배기사의 과로사’라는 그늘이 짙어지고 있던 것이다.

택배연대노조는 이 같은 상황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렸고, 시민들도 이런 택배노동자들의 아픔에 ‘늦어도 괜찮아 해시태그 달기’ 등 다양한 운동으로 공감을 표했다.

덕분에 택배기사들의 처우개선 대책이 나오고 있다. 12일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도 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는 택배기사의 장시간·고강도 노동, 불공정 계약 관행, 산재보험 적용제외 등의 문제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속적인 처우개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택배사의 외면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단체교섭 등이 그것이다. 택배를 비롯해 특수고용직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고 있는 업계 대부분은 이들을 본인들이 고용한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교섭도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택배연대노조가 출범하고 합법노조로 인정받은 지 3년이 넘었건만, 택배사들은 여전히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택배기사들과 대면하는 교섭 자리를 회피하고 있다.

2020년 기준 5만4천여 명의 택배기사 중 노조에 가입한 인원이 4천여 명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점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궁극적으로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상시 해고 등의 위협에 노출돼 있는 문제도 해결해야할 과제다.

과제가 많긴 해도, 택배연대노조는 그래도 희망적이다. 비록 위원장의 해고 문제는 아직 풀지 못했지만, 수많은 해고 문제를 해결해 왔고,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며 잃어버린 권리를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동료를 지키는 일이 곧 자신을 지키는 일이며, 사업장 밖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일임을 자각하고 행동한 덕택이다. 집회에서 김 위원장도 이 부분을 강조했다. “나의 권리를 찾기 위해선 내 동료의 권리가 중요하다. 동료의 권리를 찾아낸다면 내 권리도 찾을 수 있다. 동료가 해고된다면 그다음은 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뭉쳐야 한다. 뭉치면 주인 되고 흩어지면 노예 된다. 우리가 수많은 해고 투쟁을 겪으면서 얻은 진리는 이것이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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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구 선생님을 기리며 2

[연재] 주미경의 ‘살구나무를 찾습니다’ (28)

 

 

  • 기자명 주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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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1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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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경 / 농부
 

살구나무를 찾아서 살구나무 동산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살구나무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 올해 우리 마을에는 많은 살구나무들이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인데, 나는 그것이 북측 회령 백살구나무이기를 바래서, 그것을 구하려 안타깝게 뛰어다니고 있다.
사라진 살구나무를 찾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구나무를 잃어버렸듯이 아주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위하여 그 많은 것들을 놓아버린 것일까? 여기 연재할 글들은 살구나무처럼 우리가 잃은 것들, 잊은 것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진지한 호명이다. / 필자

 

‘어떤 현대사’ 「끝나지 않은 길」 출판기념회에서. [사진-통일뉴스]
‘어떤 현대사’ 「끝나지 않은 길」 출판기념회에서. [사진-통일뉴스]

어떤 현대사

안재구 선생님의 두 번째 이야기는 당신의 나이 팔순이 다 되어가는 때에 이르러 이어진다. 첫 번째 이야기가 세상에 나온 후 14년이라는 세월이 또 흐른 후의 일이다. 사람의 나이 팔순이면 모든 일을 다 놓아버리기에 족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다시 펜을 들고 투쟁의 전선에 서있었던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무엇이 팔순을 바라보는 선생을 집필이라는 힘들고 고된 일로 떠밀었던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지금 세상에 대한 절망이고, 어쩌면 살아온 날들에 대한 자책이며, 또 어쩌면 그 속에서도 기어이 버릴 수 없는 후대들에 대한 기대일지도 모르겠다. 선생은 이렇게 쓰고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커다란 바위처럼 억눌린 일제 식민지 억압의 굴레가 풀리고 누구나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평등한 새나라가 건설되리라고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나랏일에 참여하고, 누구나 식・의・주의 걱정이 없고,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고, 누구나 질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리라고 바랬는데, 오늘날의 세상으로까지 되고 보니 우리들은 모두 다 헛살았다고만 생각되어, 차마 후대들에게 머리조차 들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왜 이 모양으로 되고 말았는가?」

이것은 선생이 지금 나라의 모습에서 떠올린 질문이며, 또한 역사와 시대가 던지는 질문이다. 선생의 고된 집필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스스로 떠안은 책무였을 것이다. 팔순이라는 나이를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되감아 펼치기라도 한 듯, 원고지 2,000여매에 달하는 두툼한 이야기 「어떤 현대사」는 여기서 출발한다.

책으로 출간된 ‘어떤 현대사’ 「끝나지 않은 길」 제1권 표지.
책으로 출간된 ‘어떤 현대사’ 「끝나지 않은 길」 제1권 표지.

뒤집어진 해방

이야기는 재판정에서 시작된다. 재판의 피고인은 당신의 할아버지, 해방의 날 북을 울리는 청년들에 둘러싸여, 만면에 웃음을 가득 채우고 서문다리를 건너오던, 볕에 그을린 붉은 얼굴의 ‘할배’다. 그 얼굴은 간데없고, 피고인이 되어 서있는 법정은 일제 때의 그것과 다름없다.

해방이 되자 맞아죽지 않으려 도망쳤던 일제 때 검찰청 서기가 검사자리에 앉아 할아버지를 윽박지른다.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밀양군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병든 몸으로도 고단함을 기쁨으로 알고 불철주야 일하시던 할아버지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해방의 기쁨도 해방된 그해의 연말이 가까워오자 조선의 남반부에 진주한 미군이 군정청을 설치하여 점령군으로 행세하고, 일제 통치의 주구들을 다시 불러 군정 통치의 하수인으로 고용했다. 일제 때 하부 관공서의 관리쯤 했던 자들은 면장도 되고 군수도 되었고, 경찰서의 순사하던 자들은 간부로 올랐으며 부장쯤 했던 자들은 서장이나 도 경찰부의 높은 자리에 올라 다시 해방된 조선 사람을 일제의 대신 미제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선생은 이와 같이 쓴다. 모두 다 아는 이야기이다. 이남 땅 방방곡곡에서 예외없이 한결같이 일어났던 일이다. 해방은 세상이 뒤집어지는 일이었다. 남의 땅에서 주인행세를 하던 일제와 친일파들이 쫓겨가고, 잡혀가고 떠나갔던 진짜 주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지도적인 반일 애국자들과 모든 사람들이 제 손으로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힘써 일하던 때였다.

미군점령은 그 세상을 다시 뒤집는 것이었다. 그들이 소환한 친일파 주구들이 되돌아오고, 믿을 수 없게도 일제 때와 방불한 세상이 먹구름처럼 덮쳐온다. 사람들은 불과 몇 달 사이에 세상이 두 번 뒤집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열세 살 아이의 해방

선생은 그것을 ‘석 달 동안의 해방’이었다고 쓴다. 선생은 열세 살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해방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한다. 새 나라를 세우려는 열띤 마음을 갖고 거리에 모여드는 사람들, 조선독립을 축하하는 벽보와 급조된 태극기의 물결, 고향 하늘에 울려퍼지는 농악소리와 거리에서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 조선왜놈들에 대한 농민들의 하늘을 찌르는 분노의 분출, 누구나 보았던 이러한 것들 외에 선생만의 특별한 기억도 있다.

「조선어철자법통일안」을 읽으며 한글 맞춤법을 익히던 기억, 아침밥만 후딱 먹고 거리에 나가 어른들의 모임에 기웃거리던 기억, 동무들과 함께 독립과 새 나라에 대해 주고받던 이야기들, 거기서 민주주의, 자유, 평등, 그리고 사회주의의 뜻을 익혀나가던 기억, 동무들과 쏘다니다가 아무 집에 가도 모두 반가워하고 할아버지의 안부를 묻던 기억, 어디를 가도 할아버지 덕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던 기억들이다.

달라진 학교의 모습은 더욱 감동적이다. 교문 오른편에 왜놈 천황의 조상을 모셨다는 ‘호안덴’도 없어지고, 전시물자생산으로 아이들을 내몰던 실습장도 없어졌다. 날마다 절하기를 강요했던 왜놈 천황이 산다는 ‘니쥬바시’ 사진도 없고, ‘그놈의 일장기’도 없고 날마다 외우게 했던 ‘고고꾸신민노 찌까이(황국신민의 다짐)’도 없다.

조선말을 하다가 죽도록 얻어맞았던 교실에는 조선말이 가득하고, 소년 안재구의 눈에서는 끝내 눈물을 나고야 만다. 날마다 새로 전학을 오는 동무들, 나라 안 먼 곳에서, 일본에서, 만주에서, 북해도 탄광에서, 사하린 얼음판 삼림에서, 대만에서, 남양에서, 해방된 조국을 찾아온 동포들의 아이들, 거기서 태어나 조선말에 서툴어도 아이들은 놀리면서 어울리며 하나가 된다.

선생은 해방을 일러, ‘새 세상에 새로 태어난 듯하다’고 적는다. ‘이때만큼 살맛나는 때는 없었다’고, ‘정말 신나는 세상이었다’고도 적는다. 추석을 앞두고 벌어진 고향동네의 해방잔치는 그 짧았던 세상의 절정을 묘사한다. 돼지를 잡고 떡과 묵을 치고 막걸리를 빚어 마련한 잔치였다. 글을 써나가는 선생의 눈에는 해방의 기쁨으로 활짝 펴진 할배, 아재들의 얼굴과 어깨를 우쭐거리며 신명이 난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마련한 국밥과 술로 점심을 걸판지게 먹고 온 동네가 떨쳐일어나 「농자천하지대본」 서낭기를 앞세우고, 북소리 장구소리를 둑닥거리며 농로를 따라 간다. 「인민공화국」 선포기념과 「인민위원회 결성대회」가 열리는 면소재지 초동학교를 향해 가는 것이다.

절정은 파국을 내포하는 것일까? 미군 비행기가, ‘조선독립 만세’와 ‘조선인민공화국 만세’와 ‘3.7제 소작료 만세’를 부르는 군중들 머리 위를 가로지르며 하얗게 전단을 뿌린다. 전단은 점령군의 포고문이다. 전단에는 ‘조선은 당장에 독립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은 북위 38도선 이남은 미군이 이북은 소련군이 진주한다.’ ‘38선 이남의 조선인민은 미군 통치에 절대 복종하라’는 포고령 1호, 연합군의 재산 생명 보호령으로 위반자는 사형까지 한다는 포고령 2호가 적혀 있다.

“왜놈들은 전쟁에 져서 조선 땅에서 쫓겨가지만 ‘호랑이 피하자 단범 만난다.’는 말이 있듯이 미국놈이 들어오면 그 놈들이 이 나라에서 잘 물러날까. 총칼 들고 들어온 놈은 꼭 총칼 든 놈 행세를 하는 법이거든.” 구한말 무관학교를 나와 참위를 지낸 윗집 큰할배가 선생에게 했던 염려이다. 전단은 그 염려가 현실이 되어간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활짝 펴졌던 사람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새 세상은 무엇이었나?

짧았을지언정, 해방의 세상을 살았던 사람은 과거의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해방이 무엇이고, 새 세상이란 어떤 것이며, 우리가 세워야 할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명료하게 알았던 사람들, 그들은 결코 그 세상에 대한 열망을 버릴 수 없다. 책은 선생의 평생을 관통하는 새 세상을 향한 열망과 투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써내려 간다.

새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당시 온 나라에 자주적으로 조직된 「인민위원회」를 기초로 수립했던 국호 속에 압축되어 있다. 「조선인민공화국」이다. 또 그것은 할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 속에 그려져 있다. 그것은 제일 먼저 ‘조선사람이 주인인 나라’이고,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평등한 나라’이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라를 세우자면 ‘미국놈들과 싸워 2차 해방이 되어야한다’고 말씀하신다.

새 세상은, 설을 앞둔 큰 장날에 열린 「미소공동위원회 환영 밀양군 인민대회」에 나와 햇볕드는 뚝 밑에 앉아 두런두런 나누는 할배들의 대화 속에 들어있다. 그것은 농민이 해방되는 세상이다. 농민의 해방은 땅에 있다. 할배들은 땅이 생겨야 농군들이 정말로 나라백성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새 세상은 농민들이 들고 행진하는 깃발 속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농민들의 수백 년 염원이 담긴 구호다 “정권은 인민에게로, 공장은 노동자에게로, 토지는 농민에게로”, “무상몰수 무상분배 토지개혁 실시하라!”, “미소공위 성공시켜 임시정부 수립하자!” 이제 막 도착했다고 여겼던 새 세상, 억눌리고 핍박당하며 자나깨나 그려보던 새 세상, 그것은 ‘내 나라’였다.

세상 속으로

가난과 시련은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하는 법이다. 당시의 조선 아이들은 일찍 철들고 일찍 어른이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선생의 정신적 성장은 놀라운 것이다. 할아버지 슬하라는 환경과, 타고난 발군의 영리함과, 많은 양의 독서를 통해 도달한 높은 지적 수준과, 거기에 활달하고 낙천적인 성격과 사람에 대한 사려깊고 섬세한 감수성이 더해져 선생은 너무나 일찍 격랑의 세상 속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일제말기의 혹독한 삶을 날려버린 해방의 기쁨이 미군정 하에서 다시 식민지로, 가난으로, 억압으로 전락하는 것을 온 몸으로 목격하며 선생은 성장한다.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3·7제 소작료를 관철하려던 종조부 유천할배가 테러를 당하고, 「인민위원회」가 강제 해산되고 치안유지법이 재등장하면서 할아버지가 예비검속으로 잡혀간다. 끼니를 잇기 어려운 세월이 다시 시작되고, 점점 험악해 가는 세월 속에서 선생은 중학교에 진학한다.

1946년

1946년이었다. 불과 한 해도 못되는 사이에 해방은 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미군정의 신한공사가 일제가 강탈했던 조선사람의 땅을 차지하고 농민들에게 소작료를 받아갔다. 모리배들을 동원해 조선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내 식량사정이 극도로 나빠지고 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온 나라에 ‘쌀을 달라’는 아우성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강제적 식량공출은 도처에서 농민들과의 충돌을 일으키면서 농민들의 원한을 쌓아갔다.

사람들이 기대를 버리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미·소공위」가 공전되는 가운데, 미군정의 폭압적인 재식민지화는 멈추지 않는 기관차처럼 온 나라를 깔아뭉개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었다. 민주진영 언론들의 강제 폐간과 대대적인 검거선풍, 미군정의 지원을 받는 우익폭력집단들의 무자비한 테러와 폭력, 식민지교육정책을 위해 고안된 「국대안」이 사람들의 분노를 쌓아갔다.

온 나라를 뒤덮은 가난과 분노는 미군정이 일제 하수인들을 소환해 조직한 군정관리들과 군정경찰의 폭력적 탄압 속에서 봉기로 터져오른다. 「9월 총파업」과 대구 「10월인민항쟁」의 깃발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1946년은, 조국의 38도선 남반부를 강점한 미제가 「모스크바 3상회의결정」을 파탄내고 남조선을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미제의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로 재편하려는 기초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던 해였다.

미제는 남조선을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 즉 신식민지의 경제적 기초를 형성하기 위하여 일제가 조선민족으로부터 강탈한 토지를 다시 점령군 군정청의 이름으로 강탈했고, 일제가 조선민족의 경제를 파탄내고 착취와 수탈로써 차지한 각종 동산・부동산을 적산이라는 이름으로 군정청 적산관리청으로 끌어 모아 탈취하여 매판자본을 형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1946년은 미제가 조국의 남반부를 그들의 신식민지로 재편하려는 강도적 압제의 해였고, 이에 대한 남조선 민중의 새로운 저항을 고하는 새로운 민족해방의 시작의 해였던 것이다.」

선생은 1946년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선생은 중학생이 되어 험한 세상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디딘다. 그것은 2학년 선배의 권유로 6명의 1학년생들이 모인 작은 독서회 모임이다. 당시의 중학교는 졸업하면 초급교사의 자격이 생기는 상급 교육기관이었다. 학생들의 연령도 다양해서 동급생의 모임이었지만 모두 선생보다 두어살 위의 학생들이었다. 모임은 학습과 함께 첫 벽보투쟁을 출발로 새 세상을 향한 노를 저어가기 시작한다.

체포와 고문을 견디고

한 주에 두 차례 하는 학습과, 거리에 구호를 써붙이는 벽보투쟁과, 장날 읍사무소 앞에서 시도하는 가두연설이 다음 해에 「밀양중학교 학생자치회」를 결성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자치회의 활동으로 전교생이 「메이데이 기념식」에 참가한 사건을 빌미로 선생은 퇴학을 당하고, ‘교장배척운동’의 투쟁수위를 올려 학교 밖으로 확장시키는 벽보투쟁 함화투쟁을 하다가 경찰에 잡혀 밀양경찰서 유치장에 갇힌다. 첫 번째 수감이다.

무지막지한 구타와 비행기 고문, 물고문이 뒤따랐다. 14살 아이에게 말이다. 「일제헌병경찰」이 조선사람에게 가했던 악랄한 고문을, 그 앞잡이들이 이번에는 「미제군정경찰」이 되어 14살 아이에게까지 악착하게 들이댄다. 하지만 선생은 18일 간의 그 고문을 모두 견디고 함께 일한 동료들을 끝까지 보호한 채 석방된다.

이 경험은 선생의 삶에 있어 중요한 결절점이었으리라. 고문은 인간을 육체적으로는 물론, 더욱 혹심하게는 정신을 파괴하는 악행이다. 그래서 고문을 견딘다는 것은 고통과 함께 공포와 싸우는 일이 된다. 사람은 흔히 고통보다도 공포에 굴복한다.

공포란 고통에 대한 예상과, 더 크게는 고립감으로부터 온다. 자신이 세상과, 또 사람들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은 공포를 무력화시키고 고통을 견디게 하는 힘으로 된다. 그것이 한 사람의 내면의 힘이고 사상의 힘이다. 그래서 고문을 견디는 것은 바로 파괴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이 되는 것이다.

선생은 그것을 견뎠다. 고문을 견디는 일에 대한 보상은 떳떳함이다. 사람의 내면에 있어 떳떳함보다 강한 힘은 없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것은 당사자에게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자긍심을 갖게한다. 혹독한 고문을 견디고 나온 열네살 소년에게, 잡혀가고 쫓겨다니면서도 굴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삶을 일상으로 보며 자란 소년에게, 좌절이란 없다. 선생은 이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않았지만, 이후 선생의 행로는 이러한 정황을 넉넉하게 짐작하도록 한다.

소년 선전대 일꾼으로

석방되어 나온 선생을 할매와 식구들이 모두 눈물로 맞아주지만, 함께 퇴학당한 동무들은 거의 다 부산, 마산으로 전학가고 할 일도 없어졌다. 짧은 공백의 시간이다. 하지만 선생에게는 공포도 좌절도 갈등도 없다. 처음으로 찾아간 대구의 그림같은 외갓집에서 딴 세상처럼 보낸 한 달도 도피가 아닌 재충전의 시간이다.

신문을 통해 임시정부수립을 놓고 결사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곧장 머리에 떠오른 것은 동지들과 할배다. 한가하게 보낸 시간을 자책하며 바쁜 마음으로 밀양에 돌아온 선생은 곧장 소년선전대 일꾼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7월27일, 「미・소공동위원회속개축하와 민주주의임시정부촉구를 위한 밀양군인민대회」에 운집한 십만에 달하는 밀양군민은, 당시 인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지지하는가를 선명하게 알려준다. 그것은 ‘자주독립’과 ‘토지개혁’과 ‘민주개혁’이다. 선생은 선전대원으로 대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지만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운동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검거와 테러와 대탄압의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남조선단독정부수립의 음모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미군정은 한 손으론 미.소공위를 파탄내고 조선문제를 무도하게 유엔으로 끌고가면서, 또 한 손으론 애국세력에 대한 가일층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한다. 놈들이 잡으려고 혈안이 된 할아버지의 행방은 오리무중인 채, 필시 선생과 아버지에게 미칠 검거를 피해 온 식구가 대구 구지의 외가로 피신한다. 검거와 테러를 피해 달아나고 지하에 숨어든 애국세력의 겨울은 혹독했지만, 그 모든 탄압과 난관을 무릅쓰고 다음 싸움은 준비되고 있었다.

1948년

1948년이었다. 반만년을 두고 하나로 살아온 민족을 둘로 갈라버린 해, 이후 70년을 넘어 지속되는 나라의 정체성에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지어버린 해, 애국과 매국, 분단과 반분단의 판가리 혈전이 궤도에 오른 엄중한 해였다.

섣달 그믐날,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없는 가운데 식구들이 모여든다. 여러 할매와 할배, 아재와 아지매들이 신년제사를 준비하느라 왁작 웃음꽃이 피어난다. 연계소집에서의 마지막 제사였다. 도동할배는 조직이 무장할 시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독서회에서부터 동지가 되었던 강성호는 반분단의 문제가 민족지상의 과제로 대두되었음을 정리하고 연락방법을 약속한다.

“입학결정 31일 속래” 구지에서 강성호의 연락을 받은 선생은 밀양으로의 떠남을 준비한다. 구지가 피신의 장소이고 휴식의 장소라면, 밀양은 투쟁의 현장이고 조직원으로서의 임무가 기다리는 곳이다. 밀양으로 가는 길은 할배 할매에게로 가는 길이며 투쟁으로의 복귀이다. 아버지 어머니를 설득하고,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집안일을 거들고 동생들을 돌보며 선생은 가슴이 메어진다.

16세 소년 안재구는 자기가 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2년 전 중학교 때의 활동이 어마지두에 벌어진 일이었다면 이제부터 가는 길은 결단과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그것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가족과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별이 될지도 모르는 길이라는 것을, 이미 주변에 널려있는 숱한 죽음들 속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선생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새 세상을 향한 길이라는 것을, 그것이 내 나라를 세우는 길이라는 것을, 그것이 내 가족과 내 고향,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그리고 또 그것이 할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비무장에서 무장으로

「2·7구국투쟁」의 신호가 올랐다. ‘단선단정 반대’의 기치를 들고 일어난 「2·7구국투쟁」은 남로당과 민전이 주도한 준비된 투쟁이다. 「전평」 산하 30만 노동자가 전국적으로 일제히 총파업에 돌입하고, 지서습격과 무기탈취, 가두시위와 봉기, 학생들의 동맹휴학이 전국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그것은 민족분단을 막으려는 필사적인 판가리 싸움의 시작이었고, 비무장에서 무장으로 전환하는 분기점이었으며, 야산대에서 장기적인 지구전으로 발전해 「제주4·3항쟁」으로 폭발하면서 조직되는 「남조선인민유격대」 빨치산의 출발점이었다.

밀양에서의 투쟁은, 본서경찰의 지원차단을 위해 도로에 함정을 설치하고, 초동면 오방동과 청도면 오산 경찰지서를 습격 무장해제 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선생은 이 봉기의 한 복판에서 다시금 체포되지만, 시위현장에서 검거된 수백명의 군중들 속에 섞여 기지를 발휘하여 빠져나온다. 삶과 죽음이 갈린 첫 번째 순간이다.

몰래 연계소집에 숨어들어 급하게 짐을 챙기는 선생에게 할매는 “무슨 세월이 이리도 모질꼬.” 한탄하며 주먹밥을 뭉쳐준다. 강성호가 남긴 쪽지에 따라 다시금 합류한 동지들 속에는 초동면 면책인 계음아재와 죽서할배, 월산할배도 있다. 그 동지들과 함께 수행한 종남산 정상에서의 봉화투쟁을 끝으로 하나의 싸움은 일단락되지만, 그것은 선생에게 있어 보다 깊이 조직적인 투쟁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무릉동에서

봉화투쟁을 마무리하고 동지들이 이제 헤어진다. 군당 방침에 따라 일부는 귀가하고, 일부는 야산대로 들어가고, 오랜 친구이자 둘도 없는 첫 동지였던 강성호는 「강동정치학원」으로 갔다. 선생은 새로운 동지들과 만나면서 조직이 부여하는 ‘신덕생’이라는 이름을 받아안는다. ‘하는 일마다 사람들에게 덕을 베푸는 일을 하자’는 뜻을 담은 그 이름을 받으면서 선생은 “이름값을 하도록 인민을 위해 살겠다”고 말한다. 선생은 그 다짐을 지켰다. 열여섯살의 어느 날, 스스로 했던 다짐을 평생 지켜왔던 사람, 선생이시다.

「무릉동 이야기」라는 전설을 품은 무릉동에서 선생은 산사람의 삶을 시작한다. 조선의용군에서 일제와 싸웠던 지도원 동지, 박철환 선생을 만나고 함께 훈련할 4명의 동료들이 도착했다. 무장투쟁의 간부가 되기 위한 훈련이다. 산길 34킬로미터를 6시간대로 달리기 위한 훈련과 유격대 생활에 필요한 여러 기술적 방법들을 배워나간다. 실탄없는 사격훈련으로 총기 다루는 법을 익히고, 사상이론학습과 함께 조직생활의 원칙과 의무들을 익혀나간다.

시간에 밀도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어마어마한 부피를 압축한 시간이었으리라. 두 달 반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바깥 세상은 「3·1절 봉기투쟁」으로 시작된 투쟁의 불씨가 제주 「4·3항쟁」의 불길로 타오르며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고, 해발 800미터, 하늘에 닿은 무릉동 산골짝에서는 능히 한 시대를 떠메고 나갈 새 사람이 태어나고 있었다. (… 다음 편에 계속)

 

필자 약력

서울에서 성장하고 학교 다님.
몇 가지 자영업을 전전하고,
산에 다니면서 글쓰기를 시작함.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다,
2015년 입농(入農)하여 농부가 됨.

2005년 암벽등반 수필집으로 등단
2005년 제13회 한국산악문학상 수상 (월간 「사람과 산」 주관)
2006년 중앙일보 산악칼럼 연재
2007년 월간 「사람과 산」 등반기 연재      
2013년 계간 「삶창」 밥 이야기 연재
2015년 (사)겨레하나 주관 ‘개성공단 사람들’ 독후감 공모전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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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줄 달렸습니다, 꼭 국방예산에 써야합니까

[폭증하는 국방비 이대로 좋은가 ③] 국방예산과 해고 위기 노동자

20.11.12 08:06l최종 업데이트 20.11.12 08:06l
국회의 정부 예산안 심의가 본격 시작됐다. 유례없는 코로나19 위기 속에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쓸 것인가가 정하는 일이 어느 해보다 중요한 때다. 그런데 전체 예산의 10%에 달하는 국방예산은 올해 처음 50조 원을 돌파한데 이어 내년 예산으로 52.9조 원이 편성됐다. 이에 국방예산 증액의 문제점과 대안을 네 차례 걸쳐 연재한다.[편집자말]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린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코로나피해 실태 및 정부 정책 평가 기자간담회'에서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위원이 여론 조사 결과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린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코로나피해 실태 및 정부 정책 평가 기자간담회"에서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위원이 여론 조사 결과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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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해고 위기

지난 11월 10일 민주노총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을 통해 30인 미만 작은 사업장 노동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코로나19 이후 월평균 임금이 약 40만 원 감소하는 등 노동조건이 심각하게 나빠진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회사폐업, 장기무급휴업, 해고 등 고용불안을 가장 걱정하고 있었다.

이스타항공은 전체 직원 1700여 명 중 600여 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고, 코로나19로 인해 강제휴직 상태였던 한 승무원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하나하나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았고,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렸다.  실업을 겪고 있는 노동자뿐 아니라 해고위기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노동자 또한 수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을 정부 관계자들은 알까.

  
문재인 정부가 제출한 2021년 국방예산은 지난해 대비 5.5% 인상해 52조90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코로나19도 없었고 남북군사합의도 없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평균 국방비보다 1.5배나 많은 액수다.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는 2021~2025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향후 5년간 국방비로 301조를 투입할 계획이라 밝혔다.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아시아 지역의 많은 국가들이 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고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축소하고 민생예산을 확충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코로나 민생지원에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반면, 국방예산 대폭 인상은 당연하다는 태도다. 과연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묻고 싶다.

지난해 대비 국방예산 인상액은 2조7647억 원이다. 기존의 국방비는 그렇다 치더라도 인상된 예산만큼이라도 줄여서 코로나 위기 속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민중을 위한 예산으로 더 확보할 수는 없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8일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 도중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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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방비 인상액 = 2020년 고용유지지원금

정부가 다양한 고용유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지난 10일 민주노총의 조사결과를 보면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8명 중 1명은 '코로나 실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재직자 고용유지 대책'과 관련해 작은사업장 노동자 10명 중 약 7∼8명(72.9∼83.5%)은 해당 대책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실제 혜택을 받은 작은사업장 노동자는 100명 중 대략 3∼8명(3.5∼8.3%)에 그쳤다.

2020년 고용유지지원금 예산은 총 2조6800억 원이다. 국방비 인상액과 비슷한 금액이다. 기간 기업 지원 중심의 코로나19 대응에서 재직자 고용유지, 실직자 소득지원 대응 중심으로 전환하고 그 대상을 더욱 확대하는 데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 한순간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코로나로 노동강도가 높아진 노동자를 위해

배달노동자, 돌봄노동자, 보건의료 종사자와 환경미화원 등 비대면 일상을 지키기 위해 대면 노동의 위험을 감수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 노동자들의 임금, 근무여건 등은 누구보다 취약하다.

택배노동자의 잇단 과로사는 민간업체에게만 내맡겨져 있고,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보건노동자들에게는 예산이 없다며 정당한 수당조차 제때 주지 못했다. 감염병이 일상화되는 시대인 만큼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인 대책이 시급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들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한 예로 캐나다는 의료·돌봄·청소·물류 등 필수 직군 종사자들의 임금 인상에 40억 달러(약 3조5000억 원)를 지원한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저임금과 낮은 처우,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지금의 우리 사회를 받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을 위한 예산은 반드시 늘려야 한다. 

급하지 않고 불필요한 국방예산만 줄여도
 
 지난 4일 저녁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연 이스타항공 정리해고 철회 촛불 문화제에서 한 참가자가 차가워진 날씨에 언 손을 녹이고 있다.
▲  지난 4일 저녁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연 이스타항공 정리해고 철회 촛불 문화제에서 한 참가자가 차가워진 날씨에 언 손을 녹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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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유례없는 코로나 팬더믹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이 사회를 만들고 이끌어 나가는 이들이 있는 곳. 이야말로 지금 당장 예산을 늘려야 할 절실한 곳이다.

자주국방은 미국산 첨단무기를 수입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코로나시대,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생존권이 위기에 놓여있음을 심각히 생각하고 노동자민중의 민생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예산부터 확충하자. 

당장 급하지 않고 불필요한 국방예산을 줄이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안혜영씨는 민주노총에서 통일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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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법무부, 군대식 줄세우기 ‘검사 석순’ 8년 만에 없앴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입력 : 2020.11.12 06:00 수정 : 2020.11.12 06:01

 

인사 때 ‘사법연수원 기수의 우선 적용’ 등 담은 비공개 예규
검사 출신 변호사 “검찰 조직의 상명하복 위계질서 보여줘”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월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및 선거담당 부장검사 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월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및 선거담당 부장검사 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법무부가 최근 비공개 예규 ‘검사의 석순 기준’을 폐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예규는 검찰의 ‘군대식 줄세우기 서열 문화’를 보여주는 내부 규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11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법무부는 2012년 3월 만든 ‘검사의 석순 기준(예규 992호)’을 지난 3일 8년 만에 폐지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 각 행정부처의 훈령·예규가 일관된 기준 없이 비공개되고 있다는 취지의 국회 지적이 있었고, 해당 예규의 존치 필요성을 재검토한 결과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해 폐지했다”고 밝혔다.

‘검사의 석순 기준’은 법무부 검찰국 검찰과가 인사관리를 위해 내부적으로 정한 지침으로 검사들의 서열 기준을 자세하게 정한 것이다. 사법연수원 기수의 우선 적용, 동기일 경우 연장자 우대, 군법무관 출신이나 경력 임용 검사의 기수 인정 방식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군복무, 학업 등을 이유로 사법연수원 입소가 늦어져 기수가 밀린 경우 사법시험 기수를 놓고 계산하는 기준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청법상 검사의 직급은 ‘검찰총장’과 ‘검사’ 두 가지로만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검찰총장·고검장·검사장·차장검사·부장검사·부부장검사 등의 직급이 운영되고 있다. 검사의 승진·전보 인사에서는 같은 직급이라도 석순을 고려한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높은 선배 검사를 후배 검사보다 선순위 보직에 발령하는 식이다.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권영빈 변호사는 “검찰 내부적으로 석순 규정까지 만든 것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통하는 조직으로 운영해왔다는 의미”라며 “인사관리 방식은 물론 서열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는 ‘검사의 석순 기준’ 폐지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중간간부급 A검사는 “요즘에는 검찰청 배치표에 이름을 올릴 때 말고는 석순이 특별하게 작용하지 않는 것 같다”며 “예규는 폐지했지만 인사 실무상으로는 어느 정도 적용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B검사는 “비공개 내규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많으니 굳이 내규로 둘 필요가 없으면 없애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2007년 1월 만들어진 ‘검사복무상황표 작성지침(예규 763호)’도 지난 3일 13년 만에 폐지했다. 복무상황표는 상급자가 후배 검사에 대해 탁월·우수·보통·미흡 단계로 평가한다. 다만 지침만 폐지했고 복무상황표 자체를 폐지한 것은 아니다. 법무부 검찰국은 복무상황표 등 여러 평가자료를 종합해 부부장급 이상 검사에 대해서는 사법연수원 기수별로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를 매겨 인사관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120600015&code=940301#csidx1177b2d87d607e1968152ee25d236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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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미국, 트럼프의 미국과 다르지 않을 것"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11/12 10:01
  • 수정일
    2020/11/12 10:01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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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①

도널드 트럼프의 몰락과 바이든의 집권이 확실해 보이는 이 때 그 다음을 걱정하는 이들은 몇 가지 의문을 꺼내든다. 코로나로 미국이 겪은 어려움은 온전히 트럼프의 탓이었을까. 바이든의 미국과 트럼프의 미국은 다를까.

 

미 대선을 일주일여 앞두고 출간한 책 <아메리칸 엔드 게임>(현암사 펴냄)의 저자인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도 그 중 한 명이다.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 김 교수의 책에서 읽어낼 수 있는 답은 다음과 같다.

 

트럼프가 방역에 실패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이 코로나로 겪은 어려움의 기저에는 민간 중심 의료체계와 불평등을 켜켜이 누적시켜온 대기업, 월가, 사모펀드 중심 경제체계가 있다.


 

2주간 격리된 환자에게 병원비 7300만 원을 청구하는 나라에 제대로 된 팬데믹 대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소상공인을 위한 코로나 구제금융마저 대기업이 채가는 나라에서 서민을 위한 경제위기 대응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치가 미국 의료나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제한 없는 슈퍼팩(Super Pack)을 통해 거액의 정치후원금을 낼 수 있는 부자들이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억만장자를 공격하는 버니 샌더스가 미 민주당 경선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이든도 대기업, 월가, 사모펀드와 같은 기득권 세력의 낙점을 받은 후보일 뿐이다. 실제로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고 바이든이 부통령이던 2012년 미 연방주택기업감독청은 사모펀드의 압류 단독주택 대량매집을 허용하며 부동산이 돈 놓고 돈 먹기의 장이 되는 길을 열었다.


 

따라서 아주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바이든 당선 이후 미국 사회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미 대선 개표가 한창이던 지난 6일, <프레시안>이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나라 미국에서 '아메리칸 나이트메어(American Nightmare)'가 펼쳐져 있다고 탄식하며 미국 사회에 필요한 건 표면적 정권 교체가 아닌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한 근본적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김 교수를 만났다. 그에게 미국사회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전망,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 방향을 물었다.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이 진행했다.


 

☞바로가기 : 김광기 교수 인터뷰 2편 "돈을 숭상하고 돈이 지배하는 미국, 언제까지 따라할 건가"

 

프레시안 책 제목이 '아메리칸 엔드 게임'이다. 미국 정치에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광기 끝났다기보다는 '막장'이라는 뜻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이 나와서 붙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민주당도 공화당도 금권 엘리트 위해 일하긴 마찬가지"


 

프레시안 책에서 '트럼프냐 바이든이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적었다.


 

김광기 의미가 없다. '예측 가능한 막장이냐 예측 불가능한 막장이냐'의 차이다. 국민이 아닌 미국 기득권이 볼 때 바이든은 예측가능하고 트럼프는 예측불가능하다.


 

미국 기득권인 대기업과 월가, 위성(危星) 월가인 사모펀드는 바이든을 원한다. 예측가능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도 자기들한테 콩고물을 주지만 독자적인 사익도 추구한다. 트럼프는 그들로서는 예측가능하지 않다. 바이든은 전적으로 꼭두각시다.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부릴 수 있다. 한 마디로 기득권 세력이 주체가 되겠다는 거다. 그러니 미국 기득권세력(월가, IT기업 등이)과 대중매체가 전폭적으로 바이든 편을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대선 전에 주류 언론이 얘기하는 대로 바이든이 큰 표차로 압승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근소한 차로 트럼프가 이길 거라고 봤다. 첫째,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이 엄청 크다. 둘째, 미국이 그 어느 때보다 두 쪽으로 첨예하게 분열되어 있는데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은 기존 대중매체를 믿지 않는다.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정도로 큰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언론에서 떠들어 대던 '샤이 트럼프', '트럼프의 뒷심' 이런 말 듣고 실소했다. 왜냐하면 미국엔 애초에 그런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이 거대기업이나 월가와 한통속이고 공생관계이다 보니 바이든 쪽으로 기울어진 보도와 조사가 나왔다고 본다. 억만장자를 공격했던 버니 샌더스는 민주당 경선에서 일찌감치 떨어졌다.


 

프레시안 미국의 고질적인 문제를 정치가 해결하려면 '샌더스 대 누군가'가 되는 게 맞는데 샌더스는 기득권 세력의 뜻에 따라 민주당 경선에서 떨어졌고, 이후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압승이라는 조사가 나온 건 학자들이나 기득권의 소망이 발현된 결과였다는 해석이다.


 

김광기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진보적 학자로 알려진 폴 크루그먼도 지난 대선과 이번 대선 때 보면 샌더스를 완전히 깔아뭉갰다. 심지어 <워싱턴포스트>에 코로나로 모두가 피해를 보는데 유일하게 이익을 본 사람이 샌더스라고 썼다.

 

코로나로 이익 본 사람은 따로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 완화해서 돈 풀고 초저금리 정책 써서 경제에 거품이 끼었다. 보통 사람은 가격이 올라서 집을 못 사는데 돈 있는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 같은 걸 이용해 이익을 봤다. 거품이 꺼지고 경제가 안 좋아지면 그걸로 이익을 본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거다. 이런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책임을 전가할 호재다.


 

경제에 거품이 끼게 하고 이익을 본 사람들이 따로 있는데 진보적인 학자로 알려진 사람(폴 크루그먼)도 샌더스를 공격한다. 이런 걸 보면 미국이 정말 막장이라고 느낀다.


 

프레시안 미국 언론은 바이든이 압승하고 민주당이 양원 선거도 이길 거라고 봤다. 결과를 보면, 바이든은 이겼는데 민주당은 양원 선거를 못 이겼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떨어졌지만 트럼피즘(Trumpism)은 남아있을 거다'라거나 '하원에서 민주당 의석이 많지만 상원에서 공화당 의석이 많아 비토크라시(Vetocracy,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두 거부하는 극단적 파당 정치)는 계속될 거다'라는 예측도 나온다. 바이든이 당선돼도 미국의 분열은 오래 갈까?

 

김광기 오래 갈 것 같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분열한다는 건 아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다 금권 엘리트에 의해 구워삶아져 있다. 겉으로는 싸우는 척 하지만 진짜로 하고 싶은 건 기득권 세력을 위해 규제를 풀고 봉사하는 거다.

 

"트럼프도, 오바마도 금권 정치의 포로였다"


 

프레시안 먼저 과거를 짚어보자.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해서 중산층 이하 보통 사람을 위한 정책을 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1조 5천억 달러 감세 같이 기득권 세력을 위한 일을 했다. 사실 중산층을 위해 한 일이 없다. 그렇게 된 이유는 뭔가?


 

김광기 트럼프는 상인이다. 그도 기득권 세력이다. 비록 주류에서 비껴나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또한 넓게 보면 기득권에 속한다. 중산층을 위한다고 해놓고 결국 사익 추구를 위해 일했다. 자기와 자기 동맹을 위한 정치를 했다. 트럼프는 양당 모두에서 아웃사이더였다.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면 기존 정치의 적폐를 청산하고, 미국을 기득권 세력만 잘 사는 불평등한 사회가 아닌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로 바꾸려는 생각이 일말이나마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결국 자기 욕심이 앞섰다.
 

 

또 하나는 인사 정책이다. 미국 정부 인사가 회전문 인사다. 한 사람이 사기업 갔다 고위직 공무원 갔다 한다. 그런 사람들은 공직에 있을 때 사기업을 위해 일한다. 그런 인사 안 한다고 했는데 했다. 사람을 그렇게 쓰면 기득권을 위한 정책을 펴게 된다.


 

대표적인 게 코로나 치료제 램데시비르의 희귀약품 지정이다. 희귀약품 지정은 환자 수 20만 명 미만인 희귀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제약회사의 투자비용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그런데 미국에만 확진자가 1000만 명이 넘는 코로나의 치료제를 희귀약품으로 지정했다. 이때 백악관 보건 정책 고문인 조 그로건이 램데시비르를 개발한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로비스트였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인 알렉스 아자르도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의 로비스트였다.

 

이 둘의 영향이 또 있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 때 약값 인하를 공약했다. 2019년 민주당이 약값 인하 법안을 발의하자 트윗으로 지지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약값 인하 법안이 통과되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그로건과 아자르가 그 때도 고문이고 장관이었는데 약값 인하에 반대했다. 이런 사람들을 쓰면 개혁은 할 수 없다.

 

프레시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당선된 버락 오바마도 1조 달러대 구제금융을 투입하면서 문제 일으킨 기업을 살려놓고 피해자는 안 살렸다. 금융제도 개혁도 못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뭔가?


 

김광기 오바마도 바이든처럼 금권 엘리트에 의해 발탁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말 잘 하고 잘 생겼고 흑인이라는 것도 이점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미국이 망하는 상황에 가 있었으니까 구세주(Savior)를 떠올리게 하며 오바마가 당선됐지만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는 한 게 없다.


 

오바마케어도 대단한 개혁이 아니다. 한국처럼 공공보험을 만든 게 아니다. 전 국민을 민간의료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시킨 거다. 민간의료보험의 보장 수준과 범위는 천차만별이다. 모든 병원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바마케어에 가입한 환자를 안 받는 병원도 있다. 민간의료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병에 걸리거나 병원을 잘못 가면 국민 입장에서는 보험료만 나가는 거다. 일종의 세금인 셈이다.


 

프레시안 위기가 왔으니 금융 시스템을 살리는 건 좋은데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피해 본 보통 사람을 살리는 데는 그만큼 돈이 안 든다. 왜 못했나.


 

김광기 피해를 본 서민에게는 신경 안 썼다. 금융위기 주범은 월가 대형 금융회사를 위시한 금권 엘리트였는데,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티머시 가이트너가 월가와 결탁해 혈세를 떼려넣어 금융위기에 책임 있는 기업은 다 살려줬다.

 

물론 금권 엘리트들이 비난받기는 했다. 그러니 이들이 위성 월가인 사모펀드를 만들었다. 월가 대형 금융회사에는 겉치레로나마 규제가 있다. 사모펀드는 그 정도 규제도 없다. 그러니 돈 버는 일이라면 아무거나 마음대로 다 한다.

▲ 급격히 오르는 미국의 약값을 잡겠다던 트럼프의 공약은 거대 제약회사의 로비스트로 일했던 이들을 보건복지부 장관과 백악관 고문에 앉히며 허언이 됐다. ⓒ현암사

사모펀드에 먹힌 미국 경제


 

프레시안 <아메리칸 엔드 게임>에서 사모펀드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뤘다.


 

김광기 사모펀드가 미국에서 어떤 일을 했나. 2008년 금융위기 때 빚을 못 갚은 사람들 집에 차압이 들어오니 집값이 폭락했다. 사모펀드는 돈이 있으니 그 집을 헐값에 대량으로 사들여 임대 사업을 했다.


 

2008년 금융위기 전에 사모펀드는 부동산에 손 안 댔다. 큰 상업용 건물은 샀어도 단독주택은 안 샀다. 그런데 2011년에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더니 2012년 7월까지 86억 달러를 들여서 미국 14개 지역에 주택 4만 4000채를 샀다. 2019년 6월 통계를 보면, 미국 17개 지역에서 8만 채를 보유하고 있다. 사모펀드가 제1의 부동산 재벌이 된 거다.


 

정치권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오바마 정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가 길을 터줬다. 2012년 연방주택기업감독청이 압류된 단독주택을 대량 매집해 임대 사업을 할 수 있게 하는 시험용 프로그램을 사모펀드에 허용했다.


 

블랙스톤 사장인 스티브 슈워츠먼은 트럼프 친구이기도 하다. 정치 후원금을 엄청나게 많이 냈다. 자기 생일 파티를 한다면서 트럼프가 소유한 리조트에서 2000만 달러를 쓰기도 했다. 사모펀드는 파생금융상품도 많이 판다. 트럼프는 오바마 때 이미 유명무실화된 파생금융상품 관련 규제를 더 많이 풀어줬다.
 

 

프레시안 <아메리칸 엔드 게임>에서 사모 펀드가 헐값에 몇 백만 채의 집을 샀다는 걸 보며 나오미 클라인이 말한 '재난 자본주의'가 떠올랐다. 경제적 위기라는 재난이 와서 서민들은 고생했는데 돈 있는 사람들은 집을 싸게 사서 이득을 봤다.


 

김광기 금권 엘리트가 금융위기를 불러와 놓고 위기로 탈탈 털린 시민을 돈의 노예로 만들었다. 사모펀드가 단독주택을 사서 임대시장에 내놓으니 금융위기 때 집을 빼앗긴 사람들이 그 집에 임차인으로 들어갔다.

 

사모펀드가 집을 대량으로 사들이니 집값도 터무니없이 올랐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2012년 이래 집값 중간값이 두 배 올랐다. 또 사모펀드가 집을 사서 살짝 고친 다음에 임대료도 전보다 올려 받았다. 월가의 사모펀드가 집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악덕 집주인으로 등극한 거다.


 

2018년에 <포츈>이 방 2개 월세 임대아파트를 얻으려면 최저시급을 얼마 받아야 하는지 계상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32달러, 샌프란시스코에서는 60달러였다. 그때 미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시급이 7.25달러였다. 이러면 집에서 살 수가 없다. 임차인이 노숙자가 된다. 월가가 집을 다 거머쥔 결과다.


 

이런 일을 해도 규제가 없다. 정부가 해야 하는데 안 한다. 트럼프도 그랬고 바이든도 그럴 거다.

 

프레시안 <아메리칸 엔드 게임>에서는 '기업 장의사'라는 표현을 쓰며 사모펀드가 기업에 준 악영향도 다뤘다.

 

김광기 사모펀드가 원래 기업을 사서 구조조정 한 다음에 팔아버리고 이익을 챙기는 일을 많이 한다. 주식 배당을 왕창 뜯어가기도 한다. 중저가신발업체 페이리스(Payless)도 사모펀드에 넘어가더니 3억 2200만 달러 이익 보는 동안 3억 5200만 달러를 주주에게 배당했다.


 

이런 식이면 정상적인 기업은 살 수가 없다. 돈이 몰려 사모펀드는 이익을 보는데 정작 기업은 망한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다. 돈이 몰려 사모펀드는 이익을 보는데 집값이 올라서 정작 집이 필요한 사람들은 살지를 못한다.

 

앞에서 욕하긴 했지만 폴 크루그먼이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Stock market is not economy)"라고 했다. 그 말이 정말 맞다. 특히 사모펀드가 활개 치면 금융과 실물 간 비동조화(Decoupling)가 너무 심해진다. 미국 최대 렌터카회사 허츠(Hertz)가 파산했는데 주식은 오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허츠도 파산보호신청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사모펀드 때문이었다. 사모펀드가 회사 지분을 많이 확보한 뒤부터 맥을 못 추는 좀비 기업이 되었다.

▲ 미국에서는 사모펀드가 2008년 금융위기 때 헐값이 된 주택을 대량으로 구입해 임대사업을 시작한 뒤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크게 올랐다. ⓒ현암사

"코로나, 미국 경제의 진상을 드러냈다"


 

프레시안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오바마 때부터 미국 경제는 호황이다. 유럽보다는 낫다'고 한다.

 

김광기 주식시장 보고 이야기하는 거다. 돈 있는 사람들은 주식이 오르니 좋다. 집 가진 사람들도 집값이 오르니 좋다.

 

트럼프는 일자리가 늘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안 좋은 일자리다. 미국 상황이 완전고용에 가깝다고 했는데 코로나가 오고 2020년 5월에 실업률이 14.7%까지 치솟았다. 그동안 늘었다던 일자리가 다 없어졌다. 튼실한 일자리는 위기가 와도 일정 기간 버틸 여유가 있다. 그게 안 되는 일자리가 많았던 거다.


 

책에도 썼지만, 코로나라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오면서 미국 경제가 나 홀로 잘 나갔다는 건 허상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문제는 트럼프 지지자든 오바마 지지자든 보통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졌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정확하게 분석하지 않고, 상대 진영 탓이라고만 한다는 거다.


 

프레시안 문제는 금권 엘리트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인데 서로 싸운다는 이야기다.


 

김광기 맞다. 그러니 기득권 세력은 위에서 보고 씨익 웃을 거다.


 

민주당이 이야기하는 대로 트럼프가 코로나 방어 못한 거 맞다. 그런데 트럼프만의 문제는 아니다. 켜켜이 쌓여온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 그런데도 코로나 탓만 하는 건 코로나를 자기 진영의 승리를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거다.


 

"미국 코로나 소상공인 구제금융, 대기업이 가져갔다"


 

프레시안 출구조사만 보면 투표할 때 제일 중요한 게 경제였다고 하더라. 그런데 기득권 세력은 지금 경제가 안 좋은 이유를 코로나 때문인 걸로 몰아버렸다. 금융위기 이후 사모펀드의 활동 등으로 인한 자신들의 책임은 지워버렸다.

 

김광기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똑같다. 위기의 원인인 거품을 만들며 열매를 따먹고 거품이 빠지면 구제금융으로 열매를 또 따먹는다.


 

코로나 구제금융 때도 그랬다. 코로나가 오니 정부가 대기업에 구제금융 줬다. 세금도 감면했다. 그랬는데 정부가 소상공인을 돕겠다며 내놓은 6600억 달러 규모의 PPP(급여 보호 프로그램, Paycheck Protection Program) 대출금도 대기업이 다 가져갔다. 1차 PPP 때 5% 대기업이 전체의 절반을 빌렸다. 15만 달러 이하 대출은 15%였다. 2차 때는 좀 나아졌다는데도 1% 대기업이 1/4을 빌렸다. 15만 달러 이하 대출은 37%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 보니 일단 트럼프 정부 인사와 기업 간 연줄이 작용했다. <가디언> 추산으로 트럼프 정부와 연계된 회사가 가져간 PPP가 2800만 달러다. 또 PPP 분배를 대행한 은행이 선착순 원칙을 세웠다. 대기업은 정보 습득이 빠르고 언제든 대출 신청 서류를 꾸밀 준비가 돼 있다. 구제금융을 선착순으로 분배하면 소상공인은 대기업과 게임이 안 된다.


 

정부가 코로나에 이런 식으로 대처하면 작은 기업이 많이 도산할 거다. 기업이 도산 위기에 처하면 현금을 들고 있는 사모펀드가 들어가서 또 장난친다. 헐값에 사들여 열매 따먹고 팔아치우거나 버리는 거다.

 

프레시안 2001년 9·11 테러나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코로나 때도 돈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게 될 거란 이야기다. 

김광기 극심한 불평등 뒤에는 파국이 왔다. 1928년에 상위 1%가 국가 소득의 24%를 차지했다. 1920년대 말에 공황이 왔다. 2007년에도 상위 1%가 국가 소득의 24%를 차지했다. 그 다음 금융위기가 왔다.


 

지금은 상위 1%가 차지하는 몫이 더 커졌다.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트럼프가 코로나 터지고 재선이 안 될 거 같으니 돈을 퍼부어서 막아놨을 뿐이다.


 

한국도 돈 퍼붓는 걸 흉내 내고 있다. 미국은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곳이니 돈 퍼붓는 게 가능하다. 한국은 미국처럼 하기 어렵다. 그렇게 돈 써서 서민을 살리면 모르겠는데 대기업만 살리고 문제다.


 

▲ 미국이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한 구제금융책인 급여 보호 프로그램(PPP)의 상당 비율은 대기업에 돌아갔다. ⓒ현암사

"트럼프와 바이든의 페이퍼컴퍼니는 같은 동네에 있다"


 

프레시안 <아메리칸 엔드게임> 마지막 장을 보면, 바이든 지역구인 델라웨어주에 조세회피처가 있다고 했다. 인구가 97만여 명인 주에 회사가 140여만 개 등록돼 있고, '델라웨어주 윌밍턴시 노스 오렌지 스트리트 1209번지'에는 월마트, 코카콜라 등 30여만 개가 회사가 등록돼 있다고 썼다.


 

김광기 그 주소에 힐러리 클린턴 회사와 빌 클린턴 회사, 트럼프 회사도 등록돼있다. 바이든이 만든 회사도 같은 블록에 있는 다른 집에 등록돼있다. 앞 주소는 다 같고 번지만 1201번지다. 다 탈세하려고 만든 페이퍼 컴퍼니다. 전세계 독재자들도 델라웨어주 같은 데 돈을 갖다 놓는다. 한국도 누가 갔다 놨을지 모른다.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 일단 미국 법 자체가 회사 수익 소유자 공개를 요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델라웨어주는 회사가 주 안에서 사업하지 않으면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페이퍼컴퍼니 설립도 쉽다. 수수료 조금만 내면 조건 없이 뚝딱 만들어준다. 델라웨어주 법을 이렇게 만드는데 오바마와 바이든도 역할을 했다.


 

재산이 많지 않아 '중산층 조'로 불리던 바이든이 부통령 임기 끝나고 부자가 됐다. 2017년 1월부터 2년 동안 재산이 1560만 달러 늘었다. 고액 강연과 저서 수입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속한 델라웨어주에 세금을 안 냈다.

 

힐러리와 트럼프가 붙을 때 이런 이야기 안 한다. 바이든과 트럼프가 붙을 때도 안 한다. 둘이 똑같으니까.

 

프레시안 퇴임 후 바이든이 돈을 벌었다는 말인데 많은 정치인이 권력 획득을 위해 정치자금을 모은다.

 

김광기 2010년 미 연방대법원이 정치후원금도 '표현의 자유'라며 정치후원금인 슈퍼팩(Super Pack) 한도를 없앴다. 오바마도 2012년에 친(親)오바마 슈퍼팩 모금을 지지했다.


 

델라웨어주에 있는 페이컴퍼니 같은 곳을 통해 정치후원금을 내면 누가 냈는지도 모른다. 받는 사람은 세금 안 내도 된다. 

희망이 없다.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안 본다.


 

프레시안 '정치인이 권력 획득을 위해 부자들의 정치후원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곳이 미국이고, 미국 정치인은 조세 회피처와 한도 없는 슈퍼팩이라는 제도로 정치 후원금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쉽게 말하면 유력 정치인이 금권 엘리트의 포로라는 건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나?


 

김광기 예전에도 정경유착이 있었는데 갑이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부터 권력관계가 역전됐다. 기업이 갑이 되고 정치인이 을이 됐다. 금권 엘리트가 지지하지 않으면 정치인이 뭘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러니 정치인이 가진 자를 위한 시스템을 만든다. 이른바 금권정치(plutocracy)다.


 

프레시안 사실 미국에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 됐다. 1992년 미 대선에서 로스 페로가 나오면서 불평등을 이야기했다. 1996년에도 팻 뷰캐넌이 대선에 나오면서 '1950, 60년대에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장가면 애들 대학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 된다' 는 이야기를 했다. 벌써 30년이 됐다. 그런데도 상황은 나빠진 것 같다.

 

김광기 더 나쁜 쪽으로 가고 있다. 미국의 중산층이 두터웠는데 지금은 아니다. 서민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 <아메리칸 엔드게임> (김광기 지음, 현암사 펴냄) ⓒ현암사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11116211605986#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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