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장이 100% 보유한 카카오 2대 주주
“승계작업”이란 해석에 힘 실릴 듯
카카오 쪽은 “승계와 무관” 해명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 카카오 제공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및 이사회 의장이 최근 두 자녀를 포함한 친인척에게 1400억원대 상당의 주식을 증여한 것을 두고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김 의장의 두 자녀(아들·딸)가 사실상 카카오의 지주회사란 평가를 받는 비상장회사 케이큐브홀딩스에 근무 중인 사실이 <한겨레> 취재 결과 확인됐다. 케이큐브홀딩스는 카카오의 2대 주주이자 김 의장이 지분 100%를 소유한 곳으로, 두 자녀에 대한 지분 증여가 승계작업을 염두에 둔 경영수업과 맞물린 게 아니냐는 해석에 좀더 힘이 실릴 전망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24일 김 의장의 아들 상빈(1993년생)과 딸 예빈(95년생)씨의 현재 거취와 관련한 <한겨레>의 거듭된 확인 요청에 “1년쯤 전부터 케이큐브홀딩스에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두 자녀의 직급과 직책과 관련해선 “내부적으로 직급을 두지 않는다. 직책에 대해선 확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카카오 쪽은 지난 19일 김 의장이 두 자녀에게 각각 6만주(262억원 상당)를 증여했을 때, 김 의장 자녀들이 회사와 계열사에 근무하지 않는다며 승계작업과 관련짓는 해석에 선을 그은 바 있다. 카카오 쪽은 이날도 <한겨레>에 “자녀들이 케이큐브홀딩스에서 근무하는 것은 승계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현재 대기업집단 카카오의 전체 지배구조는 김 의장과 케이큐브홀딩스가 각각 카카오의 1·2대 주주이고, 이를 통해 계열사 100여곳을 지배하는 방식이다. 이번 증여 이후 카카오의 김 의장 개인 지분은 13.74%, 케이큐브홀딩스 지분은 11.21%로, 둘을 합친 카카오 지분은 24.95%다. 2020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 공시를 보면, 2019년 말 기준 케이큐브홀딩스의 직원 수는 5명으로, 그해 급여 지출이 14억원에 이른다. 두 자녀의 정확한 입사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카카오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케이큐브홀딩스는 김 의장 개인 소유의 투자회사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며 “케이큐브홀딩스에서 일어나는 일은 공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계의 평가와 전망은 엇갈린다. 한 정보기술업체 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법정 세금을 투명하게 다 내면서 증여하고 자녀들이 아버지 개인회사에서 일하는 것만을 가지고 곧바로 뭐라 하기는 어렵지 않냐”는 의견을 밝혔다. 또 다른 업계 고위 관계자는 “기존 재벌들이 승계작업을 시작한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 게 사실”이라며 “회사를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던 만큼, 김 의장이 나서 배경 설명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제 막 출발선에 선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식과 그 이후 행보를 통해 전임인 트럼프 행정부와 분명한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은 20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한 의회 폭동의 여파로 '무관중' 취임식으로 진행됐지만, 그 면면을 보면 백인 인종주의와 극우를 상징하는 트럼프 정권 4년 동안 억압 받았던 2021년 미국의 또 다른 '오늘'을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부통령, 첫 흑인이자 아시안계 부통령이라는 역사를 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취임 선서 장면은 '백인 남성'(특히 수십건의 성범죄 의혹이 제기된 남성)이 이끌던 시대의 종말을 별다른 설명 없이도 분명히 보여줬다. 흑인 여성이 라틴계 여성 대법관 앞에서 미국의 부통령으로서 맡은 책임을 다하고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맹세했다. 지난해 대선 승리 선언 행사에 과거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상징생인 흰색 정장을 입었던 해리스는 취임식에는 보라색 정장을 입었다. 보라색은 공화당의 상징색인 빨간 색과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 색을 섞은 색이다.
미국 국가를 부른 가수 레이디가가는 평화를 상징하는 황금색 비둘기 브로치를 통해 화합과 평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히스패닉계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제니퍼 로페즈는 축가를 부른 뒤 스페인어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 등 전형적인 컨트리 가수 복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 브룩스는 공화당 지지자이지만, "분열에 매우 지쳤다"며 기꺼이 민주당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하 공연을 했다.
이날 취임식 참석 인사 중 바이든이 정부가 트럼프 4년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과제를 누구보다 잘 보여준 사람으로 평가 받는 이는 22세의 흑인 여성 시인 아멘다 고먼이었다. 고먼은 바이든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언어 장애(말 더듬증)이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고 2017년 미국 의회도서관이 주최한 '전미 청년 시 대회'에 참가해 수상했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인 질 바이든 영부인이 당시 고먼을 눈여겨 봤다가 이번 취임식 축시를 낭독할 시인으로 추천했다고 알려졌다. 고먼은 지난 6일 의회 폭동을 보고 쓰게 됐다는 자작시 '우리가 오르는 이 언덕(The hill We Climb)'은 이날 취임식의 주제이자 바이든 정부가 직면한 정치적 과제이기도 한 '통합과 화합'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 바이든 취임식에서 축시를 낭독하고 있는 고먼 시인. ⓒAP=연합뉴스
"우리는 나라를 함께 공유하지 않고 나라를 찢으려는 힘을 목도했다...그러나 민주주의는 잠시 멈출 수 있어도, 영원히 패배할 수는없다는 것도 목도했다...빛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가 그 빛을 직시할 용기가 있고, 스스로 그 빛이 될 용기가 있다면."
시 낭독 전에 자신을 "노예의 후예이자 깡마른 흑인 소녀"라고 소개하기도 한 고먼은 열성적인 인종차별 철폐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로 알려졌다. 고먼은 "20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서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취임일 저녁 행사에 턱시도를 입고 등장한 대통령의 딸 애슐리 바이든도 젊은 여성들의 찬사를 받았다. 애슐리 바이든은 검은 턱시도에 묶지 않은 나비 넥타이, 뒤에서 하나로 묶은 머리로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이런 모습은 전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자신 뿐 아니라 남편인 제러드 큐슈너까지도 백악관에서 보좌관으로 일했던 이방카와 달리 애슐리는 백악관에서 공식 직함을 맡을 계획은 아직 없다고 한다. 다만 영부인인 질 바이든이 노던버지니아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교수직을 계속 맡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영부인이 하는 일들(행사 참여, 귀빈 응대, 백악관 내부 장식 등)을 도울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언론에 알려졌다.
▲취임일 저녁 파티에 턱시도를 입고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딸 애슐리 바이든. ⓒ 트위터 갈무리
샌더스의 털장갑, 대중들이 열광하는 의미는?
바이든 취임식에 연단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아직까지도 계속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다. 취임식 관중석에서 두터운 점퍼에 털장갑을 끼고 앉아있던 샌더스의 사진은 다양한 '밈'(meme : SNS에서 유행해 다양한 모습으로 복제되거나 패러디된 사진이나 영상)으로 재탄생했고, 샌더스 사진을 다른 사진에 합성해 '밈'을 만들어 주는 앱마저 만들어졌다.
샌더스는 2020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바이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다.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도 '돌풍'을 일으켰지만 힐러리 클린턴에게 후보 자리를 내줘야 했던 그는 트럼프 재집권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위해 2020년 대선 경선에서도 중도 사퇴해야만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민주당 중도 진영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로는 트럼프를 상대로 본선 승리를 담보하기 어렵다며 바이든으로 몰아주는 물밑 작업을 벌였다는 설도 파다했다.) '메디케어 포 올'(전국민 의료보험), 그린 뉴딜(기후변화 관련 정책) 등 진보적 정책을 내세운 샌더스는 민주당 주류이자 중도를 대표하는 바이든과 정치 철학과 정책이 확연히 다르지만, 지난 대선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바이든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그러나 대선 승리후 바이든 정부의 요직은 '오바마 정권 사람들'로 분류될 수 있는 중도진영의 사람들이 독식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민주당 경선에 함께 했다가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한 카멀라 해리스는 러닝 메이트로 지명돼 부통령이 됐고, 피트 부티지지 전 사우스밴드 시장은 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에이미 크로버샤 상원의원은 이날 취임식 사회자로 등장했다. 진보진영인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의회에 남았다.
샌더스가 이날 취임식 연단이 아니라 관중석에 앉아 있는 모습은 처음에 지지자들에게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취임식 연단에 오른 인사들의 화려한 복장과 대비되는 소박하지만 가장 실용적인 복장을 한 샌더스의 모습은 그의 정치 철학을 보여주는 또 다른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샌더스가 낀 털장갑은 2년 전 한 지지자가 폐플라스틱으로 재생한 친환경 털실로 직접 떠서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샌더스는 화제를 모은 자신의 취임식 복장에 대해 자신의 지역구인 버몬트는 겨울에 매우 춥다는 것을 얘기하면서 "버몬트 사람들은 따뜻하게 입는다"고 웃으며 답했다.
'샌더스 밈'은 바이든 정부에서도 여전히 유효할 '샌더스 정치'에 대한 기대와 응원이 담겼다고 보여진다. 대통령 취임식에도 털장갑을 끼고 나타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계속할 한결 같은 샌더스에 대한 찬사와 박수다. 샌더스는 소셜 미디어에서 '밈' 놀이를 하는 청년층의 현실에 대해 가장 목소리를 높여온 정치인이기도 하다.
샌더스는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상원에서 예산위원장을 맡아 예산안 통과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됐다. 예산위원장은 상원 가결에 필요한 60표가 채워지지 않아도 단순 과반으로 개별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샌더스가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자신의 진보적 정치 이념을 구현할 다양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바이든 취임식에 참석한 샌더스 상원의원. ⓒAP=연합뉴스
공화당, 바이든 각료 인준-코로나 부양책-이민법 개혁 등에 '딴지' 시작
이런 '문화적 코드'를 통해 시대 착오적이었던 전임 정권에 '한방'을 시원하게 날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바이든 정부를 기다리는 것은 엄연히 트럼프와 그 지지세력들이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현실이다.
공화당에서 당장 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공화당은 바이든과 협력할 의사가 있지만,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법안들을 차단하는 것 또한 꺼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민주당이 상식에서 벗어나거나 물러날 때, 그들의 제안이 공공의 이익을 해칠 때, 공화당은 미국 국민들이 우리에게 준 힘을 이용해 옳은 것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상원과 하원 모두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지만, 상원에서 법안 처리를 방해하기 위해 시간을 끄는 필리버스터(소수파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다)를 제지하기 위한 정족수는 60명이다. 상원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50석을 차지하고 있고 상원의장인 해리스 부통령까지 합치면 민주당이 51표로 다수당이지만 공화당이 필리버스터를 할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공화당 원내대표인 매코널은 "오바마 정부를 사실상의 단임 정부로 만들었다"는 평가까지 받는 노회할 대로 노회한 정치인이다. 매코널은 오바마 정권에서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 된 뒤 오바마 정부의 주요 정책과 인사를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로 철저하게 방해한 인물이다.
공화당이 '딴지'를 걸고 나선 부분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상원에서 트럼프 탄핵재판이 열리는 시점을 2월 이후로 늦출 것, 둘째, 1조9000억 달러에 달하는 바이든표 코로나19 구제정책, 셋째, 이민개혁 정책 등이다.
이런 가운데 공화당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바이든 각료 인준을 무기로 트럼프 탄핵재판 연기를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취임 첫주 상원에서 인준된 바이든 내각은 2명(국가정보국장, 국방장관)에 그쳤고,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도 아직 인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민주당은 한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상원 다수당(민주당) 원내대표인 척 슈머는 매코널 대표와 회동을 하고 23일 트럼프 탄핵재판을 2월 9일 이후로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또 일부 공화당 지지자들은 바이든이 취임사에서 '백인 우월주의'에 대해 비판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바이든은 "정치적 극단주의, 백인 우월주의, 국내 테러리즘의 등장에 맞서야 하며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터커 칼슨 폭스뉴스 앵커 등 보수 인사들은 "무엇이 백인 우월주의냐"고 반문하면서, 트럼프 정부의 정책은 '백인 우월주의'가 아니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퇴임을 앞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장관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추 장관은 “무소불위 검찰로부터 온 가족이 탈탈 털린 분(조국 전 장관)의 후임으로 왔으니 시작부터 외로웠다”며 “재임 기간 내내 쏟아지는 화살을 온몸으로 막아야 했다. 오죽하면 법무장관 덕분에 다른 장관들이 편했다고 하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대권 도전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우선 스스로를 보듬어줄 시간이 필요하다”며 말을 아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62)이 예정대로라면 이번 주 퇴임한다. 그는 2020년 1월 검찰개혁의 과제를 안고 취임했지만 윤석열 검찰총장(60)과의 잦은 충돌로 임기 내내 뉴스의 중심에 있었다. 감찰권과 수사지휘권을 거듭 발동하고 검찰총장에 대한 초유의 징계를 추진했다. 하지만 윤 총장의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인용하면서 내상을 입었다. 추 장관에게는 검찰개혁의 초석을 놓았다는 긍정적 평가과 함께 재임 기간 동안 윤 총장 찍어내기에만 집중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지난 2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장관실에서 추 장관을 만났다. 장관실 입구에는 지지자들이 보내온 화환들이 가득했다.
- 법무부를 떠나는 소회가 어떻습니까.
“취임하고 한 달 정도 됐을 때 이미 6개월가량 지난 느낌이었어요. 취임하자마자 검찰 인사를 했고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한 수사와 기소 분리의 화두를 던졌는데, (검찰의) 저항과 반격이 굉장히 셌잖아요. 지금은 수사·기소 분리와 검찰개혁의 절대적 필요성에 대해 국민께서 공감해주고 계시다고 느껴 보람을 느낍니다. 진통 끝에 오늘 공수처도 설치됐고요. 다만 검찰개혁 완수를 제가 매듭짓지 못하고 떠나는 게 아쉽지요.”
- 사의 표명 과정의 진실은 뭔가요. 자발적 사직이냐, 사실상 경질이냐 의구심이 일었는데요.
“제가 그날(지난해 12월16일)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에 대한 재가서를 대통령께 드리면서 분명히 사의를 말씀드린 것이고요. 그에 대한 긴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 왜 사직을 결심했나요. 그날 청와대에 들어가기 4시간 전만 해도 브리핑을 통해 검찰개혁 완수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잖습니까.
“윤석열 검찰총장의 상당한 비위를 확인한 장관으로서 제가 먼저 사의를 밝히면 윤 총장도 그런 정도의 엄중함과 책임감을 가져주리라 기대한 것이죠.”
- 추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면 윤 총장도 스스로 그만둘 것이다?
“그렇죠.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이지만, 장관의 지휘와 징계심의의결서에 드러난 일련의 사건들이 총장 자신과 총장 측근, 또는 총장 가족과 관련된 것들이잖아요. 의결서에는 윤 총장의 비위 사실은 종합적으로 해임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어요. 그러면 관련 수사팀의 수사 독립성 보장과 국민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총장 스스로 직을 내려놓는 게 옳지 않겠는가, 한 것이죠.”
- 기대가 빗나갔군요.
“제가 기대라고 표현했지만 (윤 총장이) 그 정도의 눈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국민에 대한 예의 아닐까요?”
- 추 장관이 생각하는 검찰개혁은 뭔가요.
“경찰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검사가 인권보호 입장에서 수사 통제를 하라는 취지로 검찰제도가 탄생했어요. 그런데 검사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고 인권침해를 하고 있으니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중요하죠. 그렇다고 해서 경찰에 수사권을 다 넘긴다는 개념은 아니에요. 지금은 공수처만 보이겠지만, 미국의 FBI연방수사국, 영국의 중대범죄수사청(SFO)처럼 우리도 수사기관을 범죄유형별로 다양화, 다원화할 필요가 있어요.”
수사·기소권 모두 가진 검찰
이들의 인권침해 막는 게 개혁
범죄유형별 수사기관 다양화돼야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은 2020년 1월 추 장관이 부임하자마자 단행한 검찰 고위직 인사를 둘러싼 충돌이 서막이었다. 추 장관은 인사안에 대한 의견청취를 하겠다며 윤 총장을 법무부로 호출했는데, 윤 총장은 법무부 검찰국이 만든 인사안을 토대로 장관과 총장이 제3의 장소에서 협의하는 그간의 관행과 다르다며 반발했다. 해당 인사에서 조국 수사를 이끌던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수사를 총괄한 박찬호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 등이 줄줄이 좌천됐다.
- 검찰 간부 인사는 청와대와 법무장관, 검찰총장이 같이 하는 것으로 알아요. 장관은 제청권자이고, 총장과 협의하게 돼 있는데, 왜 이전 장관들과 다른 방식을 취했습니까.
“종전에는 청와대 민정수석, 법무장관 대다수가 총장의 검사 선후배이다보니, 밀실에서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를 하고 인사잡음도 없앴던 거예요. 검사 출신 장관이 검찰개혁을 말할 이유도 없죠. 자기도 장관 그만두면 변호사 개업하면서 조직에 편승해 득을 봐야 하니까요. 그런 익숙한 관행 속에 있다가 비검사 출신 장관인 제가 와서 밀실 인사 논의를 혁파한 거예요. 투명성을 위해 협의의 과정도 윤 총장에게 의견을 내도록 공식화하고 이를 문서화해 보관하고 있어요.”
- 정권 수사를 막기 위한 인사였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가짜뉴스인 건 잘 아시죠? 그 당시 인사를 할 때 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수사팀은 유지하라는 인사 원칙을 밝혔고 그 원칙대로 했어요. 시기적으로도 조국 전 장관 수사는 이미 끝나서 기소된 상황이었고, 울산 사건도 곧 기소가 됐어요.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 수사도 끝났을 때고요.”
- 하지만 당시 울산 사건의 경우 울산시청, 울산지방경찰청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으로 현 정권을 겨눌 때였는데, 부장을 제주로 보냈어요. 수사에 있어 간부의 역할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
“수사 검사가 중요하죠. 간부급 인사는 인사 시기에 맞춰 해야 하는 것이고요. 안 그러면 모든 검사는 수사를 하고 있는데, 장관은 인사를 하지 말라는 거죠(웃음).”
추 장관은 “검찰조직 내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회’처럼 군림하면서 주목받는 사건을 독식하고 그것을 통해 명성을 얻으면서 꽃보직을 계속 누려온 특수통 출신, 이른바 ‘윤(석열 총장)사단’”이라고 말했다.
“특수부의 고객은 기업오너를 포함한 경제사범 등 호화로워요. 전관예우 특혜를 통해 퇴임 후에도 돈 많은 고객을 상대하고 몰래변론을 하면서 큰 돈을 벌죠. 그래서 조직 내 정의를 찾기 위해 이른바 사조직화돼 있는 윤사단을 깨는 인사들을 단행했던 겁니다. 특수통 출신에게 주요 보직이 편중되는 비정상을 정상화하고, 형사·공판부 검사 우대, 우수 여성 검사 발탁 등에 주안점을 뒀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장관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주목받는 사건 독식해 명성 얻고
퇴임 후에도 특혜 누리는 특수통
‘하나회’처럼 군림한 윤석열 사단
해체가 비정상 바로잡는 인사
- 울산 사건의 경우 관련자 13명이 기소됐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사가 개점휴업 상태예요. 작년 4월 총선 후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 등 4명에 대한 공범수사도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아요.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가) 제가 기소하라고 강제할 수 있나요?”
- 해당 인사를 통해 이른바 ‘추 라인’을 만들었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추 라인이 있으면 윤 총장 징계 건과 관련해 전국의 검사들이 연판장에 서명할 때 적어도 검찰 내부에서 토론이라도 있지 않았겠어요? 추 라인은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아요.”
- 이른바 추 라인으로 언론에 자주 언급돼 온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어떤가요.
“서울중앙지검장은 제가 법무부에 왔을 때 검찰국장이시다가 일주일만에 나가신 분이에요. 교감은커녕 업무를 같이 한 적도 없어요. 다만 이런 구분은 가능하죠. 검찰개혁의 취지를 이해하는 검사와 취지에 반발하는 검사가 있을 때 핵심 보직에 누구를 앉히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을 추 라인이라고 하면 검사들이 웃을 거예요. 정무직 장관의 생명은 짧고 검찰조직은 영원한데, 뭐하러 장관 라인이라고 라벨(딱지)을 붙이겠어요?”
-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이 무혐의 처분한 옵티머스 자산운용 관련 사건을 두고 대검 감찰부와 합동 감찰을 지시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아직 감찰 결과가 아직 안 나왔어요. 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국감 시기에 박범계 장관 후보자가 하셨으니 장관으로 임명되시면 엄정하게 보실 것 같아요.”
우철훈 선임기자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사건은 채널A 기자의 검·언 유착의혹, 라임자산운영 로비사건, 윤 총장의 부인과 장모 관련 사건 등 6건이다. 이전까지 수사지휘권 발동은 지난 2005년 강정구 교수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천정배 장관이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것이 헌정 사상 유일한 예였다.
- 검·언 유착의혹 사건의 경우 윤 총장이 지휘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성과가 안 나왔어요. 채널A 기자와 유착 의혹을 받은 한동훈 검사장이 여전히 검언유착에 가담했다고 생각하나요.
“가담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왜 성과가 안 나오는 것이겠습니까? 한동훈 검사장이 수사에 협조를 안 해서죠. ‘라임 사건’의 김봉현(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술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전·현직 특수통 검사 4명이 지금 모두 휴대폰을 분실했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어요. 한동훈 검사장이 휴대폰이 압수된 후 비밀번호를 안 가르쳐줌으로써 법망을 피하는 방법을 후배들에게 몸소 가르쳐줬으니까요.”
- 수사지휘권 발동 사건들이 진척이 없다면 수사지휘권의 정당성도 훼손되는 것 아닌가요.
“법무부가 11월쯤 사무감사를 해보니 실제로 제가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사건들에서 수사 진척이 없었어요. 수사지휘권을 발동해도 특히 검찰총장과 관련된 사건들의 경우 일선 검사들이 감히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는 거죠. 그나마 윤 총장 장모 사건 중 하나는 기소됐어요. 라임 사건에선 윤갑근 전 고검장이 기소됐고요. 그러니 이건 수사지휘의 정당성이 있는 거죠.”
- 윤 총장 징계와 관련해선 두 번이나 법원으로부터 절차적 위법성을 지적받았어요. 무리한 징계를 했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이마를 짚으며) 첫번째 직무배제 효력정지에 대한 윤 총장 쪽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 자체는 존중해요. 그러나 정직 2개월에 대한 효력정지에 대해 절차적 하자 등의 이유를 들어 윤 총장의 손을 들어준 건 대단히 유감이에요. 기피당한 사람이 의사정족수에 포함되지 않았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은 여러 판례에서 보듯이 받아들이기 어렵거든요.”
(당시 재판부는 윤 총장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 등 핵심 징계사유의 주요 내용에 대해선 소명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다시 돌아가도 윤 총장을 징계하겠습니까.
“총장 징계를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 법적 절차 요구에 따른 장관의 책무예요. 국회에서도 요구했고 감찰에 따른 진상조사 확인 절차를 거쳐 한 것이기에 그것을 회피할 수 없어요. 저의 직무유기가 되니까요.
- 그런데 윤 총장은 국정감사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검찰개혁을 하겠다고 밝혔어요.
“검찰개혁은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하는 거예요. 오히려 윤 총장은 한명숙 전 총리 진정사건 처리를 인권부에 배당하는 등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게끔 방해했어요.”
- 윤 총장만 축출하면 검찰개혁이 성공한다는 식의 접근을 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윤 총장 축출이 목적이 아니에요. 윤 총장 하나 사직한다고 뿌리깊은 하나회 같은 사조직이 일거에 해소되는 건 아니겠죠. 그래서 인사가 중요해요. 박범계 법무장관 후보자께도 저의 인사원칙을 말씀드리고 인사원칙의 영속성은 지켜져야 한다는 취지로 당부드렸어요.”
우철훈 선임기자
정치 안 할 사람이 국립묘지 참배
이런저런 발언하겠나…맥락 있어
대통령 뜻 ‘정치하려면 나가서…’
- 추·윤 갈등으로 검찰개혁의 명분과 순수성이 훼손됐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만.
“추·윤 갈등이란 것은 검찰개혁에 반하는 반개혁 프레임이에요. 검찰이 무소불위 권력으로 온 가족을 탈탈 턴 조국 전 법무장관의 사태를 보면서 후임 장관으로 누가 갈까 많은 분들이 걱정했다고 해요. 저도 회피하고 싶었어요. 그랬으면 편하게 살았겠죠.(웃음). 그럼에도 이 길을 온 것은 검찰개혁이 그만큼 어렵고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저라고 응원해줬기 때문이에요.”
- 추·윤 갈등 탓에 대통령 지지도가 떨어졌다는 평가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실제로 추·윤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대통령 지지도가 30%로 떨어졌는데요.
“그것도 나쁜 프레임이고 납득하기 어렵죠. 그러면 1년 내내 추·윤 갈등 프레임을 씌웠는데 왜 이전에는 대통령 지지도가 높았을까요? 다만, 사람들은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니 대통령이 해임도 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부작위 상태가 지속되면서 불편감이 반영됐을 수 있었다고 봐요. 또 윤 총장 징계와 관련해서도 속시원한 결론이 안 난 상태이니까 실망감이 표출된 것일 수도 있고요.”
- 윤 총장이 강력한 대권후보로 부상했어요. 추 장관이 일등공신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언론의 공이 제일 큰 것 같은데요. 윤 총장이 강아지 산책시키고, 1년 전 순대국밥을 먹는 사진 등을 미담으로 포장해 연일 윤 총장을 띄어줬잖아요. 그 정도의 관심으로 윤 총장의 장모나 부인 사건 수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기자들이 관심을 가졌다면 수사속도도 붙을 텐데요.”
- 언론에 서운함이 많군요.
“진실은 편이 없잖아요. 그런데 (언론이) 너무 편 먹어요. 법조기자실이 서초동에 있잖아요. 거기서 대검의 이야기를 듣고 확인취재 없이 일방적으로 쓰다 보니, 법무부 대변인실은 1년 내내 오보대응만 열심히 하더라고요(웃음).”
- 법조기자단을 해체해야 한다고 보나요.
“진실에 있어 편이 없어야 한다는 건 공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법조기자단을 만들어서 기자단에서 인정하지 않거나 또는 기자단 아닌 언론사는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건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 아닐까요? 일종의 독과점을 누리는 거잖아요. 스스로 공정하지 않으면 남에게 공정을 요구할 수 없어요. 기자들 스스로 이를 깨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 국회에서 ‘소설 쓰시네’ 같은 감정적 대응 발언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제가 좀 뜨겁게 살죠(웃음). 정의를 위해서라면 미움받을 용기가 좀 있죠. 점수 따고 편하게만 지내기엔 제 직업이 험난하거든요.”
-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하고 표면적으론 윤 총장의 손을 들어줬어요. 서운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님은 당신이 믿는 장관을 나무라실지언정, 칼을 쥔 사람이 정의를 내세우면서 너무 잔인해지면 안 된다, 즉 검찰의 수사·기소 절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신 거라고 생각해요.”
-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표현한 의중은 뭘까요.
“정치하려면 나가서 하라는 엄명이죠. 검찰총장은 범죄수사와 관련한 검사사무를 위해 임기를 보장하는 거예요. 그 취지에 어긋나게 하려면 나가서 하라는 것이죠. 대통령이 엄명을 부드럽게 말씀하셨다고 해서 달리 해석하면 안 되죠.”
- 대통령은 윤 총장이 정치하려고 검찰총장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는데요.
“정치 안 할 사람이 국립묘지 참배하고, 이런저런 발언을 하겠습니까? 다 맥락이 다 있는데, 무슨….”
(검찰총장은 매 신년 초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누적확진자가 1000명이 넘은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는 K방역의 오점이 됐다. 추 장관은 두 차례에 걸쳐 사과했다. 최근엔 박상기 장관 재임 시기에 일어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긴급출국금지 위법성 논란이 일면서 법무부가 검찰 압수수색까지 당했다. 압수수색과 관련해 추 장관은 “법무부 간부들에 대한 검찰의 명백한 보복수사”라며 “모욕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출국금지는 수사처분이 아니라 출입국에 관한 법무부의 행정처분이기에 절차적 위법이 없고 그에 대한 판례(대법원 2012두 18363 판결)도 있다”고 말했다..
- 서울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해 왜 법무부의 조치가 늦었느냐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교정당국은 방역당국의 역학조사 지침에 따라 처음부터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수용자 및 직원에 대한 전수조사를 철저히 진행해왔어요. 다만 서울동부구치소는 밀집·밀접·밀폐 ‘3밀 시설’인 데다 입감과 출감이 빈번한 곳이에요. 입감 시 14일간 격리수용을 철저히 했음에도 무증상 감염자들도 있어 방역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 동부구치소 사태에 대한 첫 사과 창구도 그랬고 페이스북 소통이 잦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고, 이런 정도는 국민께 말씀드려야겠다는 필요성이 있을 때마다 생각을 표현하는 거예요.”
- 페이스북에 이육사 시인의 ‘절정’ 등 시 인용을 통한 심경 표현이 많던데요. 평소 시를 많이 읽습니까.
“시를 읽기도 하지만 제 시상이 떠오를 때도 있어요. 어제도 꽁꽁 언 한강 위에 눈이 하얗게 쌓여 있고 교각 주변으로는 강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문득 시상이 떠올랐지요.”
- 요즘은 뭘 읽나요.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읽었어요. 외롭기도 해서 스스로 위안 좀 받으려고요.”
- 외롭군요.
“탈탈 털린 분(조국 전 장관)의 후임으로 왔으니 시작부터 외로웠죠. 가까이 와 줄 사람도 없고, 시끄러우면 갈등이라고 하면서 멀리 하려고 하고…. 임기 내내 쏟아지는 화살을 갑옷도 없이 온몸으로 막아야 했어요. 오죽하면 법무부 장관 덕분에 다른 장관들이 편했다고 할까요.”
- 언제 가장 힘들고 외로웠나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 일을 하고 있어도 외롭고, 떠나도 외로운 것 같아요. 사람들은 무소불위 권력을 쥔 검찰에 대해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검찰개혁의 길이 험난할 수밖에 없죠. 요즘도 제게 꽃바구니를 보내는 분들이 많아요. 그 바구니 하나하나에 검찰개혁을 씩씩하게 해내라는 이름없는 분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외로워도 결코 외롭다고만 할 수 없는 자리가 됐죠.”
- 추·윤 동반사퇴를 건의한 여권 인사들에 대한 섭섭함도 있겠지요.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시민들이 더 잘 이해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2016년 촛불 때도 그랬죠. 촛불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대통령 하야를 요구할 때 국회에서는 거국내각이라는 타협안이 나왔어요. 광장보다 국회가 이 시대를 어떻게 매듭지어야 하는지 덜 절박했거나 뒤처졌던 거죠. 검찰개혁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제도가 아닌 검찰이 개혁 그 자체임을 드러냈어요. 코로나만 아니면 광장에 다시 100만명의 시민이 모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 후회되는 일은 없습니까.
“후회라기 보다는, 코로나로 민생이 힘들잖아요. 그런데 언론이나 여론조사기관에서 자꾸 추·윤 갈등이라 하고 총장 찍어내기라고 하니까 민생도 어려운데 자꾸 왜 싸우냐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뼈를 갈아서 쏟아붓는 열정으로 일했지만 그런 기울어진 운동장(언론보도 등)이 된 건 굉장히 아프고 안타까운 부분이에요.”
- 법무부를 떠나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은가요.
“힐링되는 시간을 갖고 시상도 떠올리고 그걸 메모할 시간도 갖고 싶어요.”
추 장관에게 내년 대권 도전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일단 여유를 많이 가져야 한다. 저에 대한 위로, 보듬어줄 시간이 필요하다”며 말을 아꼈다.
1995년 정계에 입문했으니 추 장관은 어느덧 정치인생 27년째를 맞고 있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추진력으로 ‘추다르크’라는 별명과 함께 5선 의원을 지낸 그의 삶에서 그리고 우리 정치사에서 2020년 법무부 장관의 시간은 어떻게 자리매김하게 될까. 오후 2시에 시작한 인터뷰를 마치고 법무부 청사를 나서자 밤하늘에서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2021년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다가오면서 각 당 후보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돌발 변수가 나올 수 있지만, 서울시장은 여야 유력주자 5명의 테두리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오마이뉴스>가 두달 반 앞으로 다가온 선거의 판세를 들여다봤다.
[민주당] 인지도 대 조직력, 누가 이길까?민주당 시장 경선은 우상호 의원과 박영선 전 장관의 '리턴 매치'로 치러지게 됐다. 두 사람은 3년 전 박 전 시장에 맞서 경선을 치른 바 있다. 박 전 시장이 2018년 4월 20일 66.2%의 압도적 득표율로 두 사람을 눌렀다(박영선 19.59%, 우상호 14.14%).
3년 전에도 두 사람의 득표율 차가 크지 않았던 만큼 양자 구도의 팽팽한 대결이 예상된다.
MBC 기자 출신의 박 전 장관은 여성 첫 국회 법사위원장과 정당 원내대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당의 '보스'인 유력 정치인들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경력을 쌓아왔다는 게 강점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직을 내려놓으면서 "때론 '질주 영선', '버럭 영선'을 꾹 참고 따라와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기는 것에 대해서도 여당 내에서는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정치인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박 전 장관이 출마 선언을 늦춘 것에 대해 "너무 뜸을 들인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박영선 지지 성향의 한 의원은 "소상공인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3차 재난지원금 지원은 마무리하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전했다.
우 의원은 이인영 통일부 장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민주당 586그룹의 간판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내주고 '81석 야당'으로 몰락한 2006년 2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당의 대변인으로서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는 논평을 도맡았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는 121석을 가진 민주당 원내대표로서 234표의 탄핵 찬성표를 이끌어내는 수완을 보였다. 임 전 실장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등 친문 그룹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박 전 장관과 같은 4선의 중진 의원이면서도 인지도에서 뒤지는 것을 놓고 "스타성이 부족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당내 경선은 인지도와 조직력의 싸움이다. 경선 결과는 권리당원 투표와 시민 여론조사 결과를 50대 50으로 반영해 확정한다.
우 의원은 작년 12월 13일 일찌감치 출마 선언을 한 뒤 서울의 민주당 의원들을 일대일로 접촉해 상당수를 응원군으로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 3년 전 경선에서 박원순 전 시장을 도왔던 일부 의원들도 "이번에는 우 의원을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상호 캠프의 관계자는 "권리당원은 우 의원, 여론조사는 박 전 장관이 유리하다. 그러나 우상호 표를 잠식할 제3 후보가 없는 것은 좋은 징후다. 권리당원 투표에서 60% 이상을 이기면 승산이 있다"고 내다봤다.
박 전 장관 측은 "우 의원으로 본선을 치를 수 있겠냐"는 입장이다. 출마 선언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주자 1위'를 기록한 만큼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경선을 쉽게 풀어보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10년 전 박원순 전 시장과의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박 전 장관은 6.6% 격차로 분패한 바 있다. 박영선 캠프의 관계자는 "우 의원이 당내 조직에서 우위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국회의원과 시의원들 모아놓는다고 권리당원들이 표 몰아준다고 자신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두 사람의 승부는 오는 29일 예비후보 등록이 종료된 후 설 연휴 전후에 치러질 TV토론에서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범야권] 국민의힘 후보만 14명, 관건은 단일화
작년 4월 서울 지역 총선에서는 여당이 압승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치러지는 보선 책임론을 떠안게 됐고, 이른바 '추미애-윤석열 갈등' 정국을 지나면서 인기가 급격히 떨어진 상태다.
국민의힘은 '박원순의 잃어버린 10년'을 찾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울시청 탈환을 노리고 있다. 국민의힘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로부터 권력을 되찾겠다고 했던 2007년에도 나온, 익숙한 슬로건이다.
21일 마감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공천 신청자는 14명에 이른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이 중에서 4명의 예비후보를 가려낼 방침인데, 현재로서는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구청장·당협위원장·전직 의원 그룹 2명이 경선 무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에서 가장 유력한 사람은 나경원과 오세훈. 여기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가 관건이다.
1년 전만 해도 나경원, 오세훈, 안철수 세 사람의 서울시장실 입성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000여 명에 이르는 서울시청 공무원들의 생각이 대체로 그랬다.
2011년 오 전 시장은 재임 5년 만에 "저는 비록 오늘 물러나지만 서울의 그 꿈, 여러분들이 반드시 이뤄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며 시장직을 내려놨다. 나 전 의원은 10년 전 박원순 전 시장과의 대결에서 46.2% 득표율로 낙선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3년 전 시장 선거에서 3위에 그쳤다(19.6% 득표).
서울시의 한 고위간부는 "사람 일은 알 수 없다는 게 실감난다. 직장 상사로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던 분들이 시장 후보로 거명되니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언론사들이 서울시민 대상으로 실시한 연말연시 여론조사에서는 여야 1 대 1 구도에서 야당 후보가 우세한 결과를 내놓았다. 국민의힘 후보군이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는 상황에서 야당 후보 1위는 안철수로 수렴됐다.
작년 12월 26~27일 시사저널-조원씨앤아이 조사는 양자 대결과 삼자 대결을 모두 소개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양자 대결에서는 안철수가 박영선을 42.1% vs 36.8%로 앞섰지만, 국민의힘 후보를 나경원으로 상정한 삼자 대결은 박영선(35.5%), 안철수(26.0%), 나경원(19.4%)의 순이었다.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 조사(같은 해 12월 27~28일)에서도 양자 대결에서는 안철수(44.6%)가 박영선(38.4%)을 앞섰지만, 삼자 대결 결과는 박영선(31.3%)-안철수(29.4%)-나경원(19.2%)이었다.
여론조사가 주는 신호는 자명했다. 두 야당이 후보 단일화를 하면 시장 선거가 수월해지지만, 3자 구도로 가면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비교적 빨리 읽은 쪽은 안철수 대표였다. 안 대표는 서울시장 출마 선언(작년 12월 20일)으로 대권의 꿈을 접게 됐지만, 시장 선거에서는 단연 주도권을 쥐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4년 간 두 번(2017년 대통령선거, 2018년 서울시장 선거)이나 서울시민들을 만난 만큼 인지도에서도 국민의힘 후보들을 능가한다.
[단일화 이후] 2012년 '아름답지 않은 단일화'의 기억
그런 면에서 오세훈 전 시장의 '시청 복귀' 선언은 국민의힘 경선 주자들을 놀라게 했다. '시장 행정 5년의 경험'을 가진 그가 어떤 식으로든 2022년 대선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자신을 지원해주길 기대했던 주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 전 시장은 조건부 출마 선언(1월 7일), 공식 출마 선언(1월 17일)이라는 점층식 접근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러나 "스스로 시장직을 던진 사람을 시민이 왜 다시 받아줘야 하냐"는 질문이 선거 내내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경원 전 의원은 2004년 국회에 나란히 입문한 박영선 전 장관과 자주 비교된다. 2007년 12월 유튜브에 '이명박 BBK' 동영상이 올라오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동시에 출연해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연말 '딸 대학성적 특혜 의혹'과 '사학비리 의혹' 등 검찰 수사 건을 무혐의로 마무리한 것이 나 전 의원의 정치 행보에 대한 부담을 덜어줬다. 한편으로는 1년 전 야당 원내대표로서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 투쟁을 이끌다가 기소된 만큼 향후 재판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지율 1위' 안철수 대표의 숙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급한 것은, 국민의당 당권을 쥔 김종인과의 '악연'을 푸는 것이다. 김 대표가 2012년 총선에서 정당을 만들어 정치에 도전하라고 권했을 때 안 대표는 듣지 않았다. "제 멘토 역할을 하는 분은 한 300명 정도 된다"는 발언도 그를 비롯한 정치원로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안 대표에게 한때 기대를 걸었던 김종인, 윤여준, 이상돈 등 '정계원로 트리오'가 모두 그를 떠났다.
국민의힘 후보에 이겨 단일화를 이룬다고 해도 '아름다운 단일화'가 아니라면 국민의당 안철수가 상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지도 미지수다. 단일화 이후 뜨뜻미지근한 결합으로 선거에서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은 2012년 문재인을 도왔던 안 대표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야당 후보가 시청에 입성할 경우 그의 가장 큰 시험대는 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와의 관계 설정이다. 시의원 109명 중 101명이 민주당 소속인데, 박원순 재임 시절에는 시청과 시의회의 갈등이 도드라지지 않았다.
무상급식 조례안을 놓고 극한갈등을 빚었던 2011년의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장과 시의회의 잔여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만큼 2022년 지방선거에서 '최종 승부'를 봐야할 지도 모른다.
최근 발간된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 점검 보고서는 코로나19 경제위기에 대한 세계 각국의 재정 대응을 분석하고 있다. 보고서와 함께 발표된 자료를 살펴보면 각국에서 이미 제도화된 ‘자동안정장치’(누진세와 같이 경기 변동의 충격을 자동적으로 줄이려는 거시경제 조절 수단)를 제외하고 순전히 각국 정부가 2020년 9월까지 재량적으로 실시한 재정 대응이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 비교 결과에 따르면 세계경제 주요 20개국, 즉 G20 가운데 한국이 포함된 선진경제 10개국은 평균적으로 각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8.2%에 해당하는 예산을 코로나19 대응에 재량 지출로 썼다. 그 가운데 0.8%는 보건 분야 지출이었고 나머지 7.4%는 비보건 일반 지출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보건 분야 지출 0.3%를 포함해 예산 대응 규모가 국내총생산의 3.5%에 그쳤다. 이는 대상 국가 중 최하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재정을 가장 덜 썼음에도 불구하고 방역과 경기 방어에 이만큼이나 성공한 다른 선진국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온·오프 혼합 방식으로 열린 2021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1.01.18.ⓒ뉴시스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재정 건전성,
그러나 과연 자랑만 할 일일까?
국제기구들에 의해 G20 전체 나라 가운데 한국이 2020년과 2021년 두 해 모두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 적자’(세금과 같은 정부의 수입을 정부의 지출이 초과하는 현상, 혹은 그 초과 금액)의 비율이 가장 낮은 그룹에 속할 것으로 전망되는 배경에도 이와 같은 방역과 경제 성과에서의 그간의 선방이 고려되었을 법하다. G20 국가들의 재정 적자 비율 평균값은 2020년 한국의 약 3배, 2021년 약 2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과 그나마 비교할 수 있는 G20 나라는 러시아, 멕시코, 독일 정도이다. 2020년과 2021년 국가 채무의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에서도 한국은 G20 가운데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터키에 이어 다섯 번째로 낮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보수 야당의 정치인들과 기성 매체에서는 한국경제가 방만한 재정 때문에 곧 망할 듯 연일 저주를 퍼붓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게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무디스 등의 국제신용평가회사에서 재정 적자나 국가 채무 비율 같은 몇 개 지표만 절대 기준으로 삼아 국가신용등급을 정할 리는 없다. 그보다는 평가 항목별로 비교 대상인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경제의 상대적인 지위가 어떠한지가 오히려 더 중요할 듯하다.
오늘도 시민들은 재정의 빈틈을 땀과 눈물로 메우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코로나19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재정을 이렇게 절약했다는 사실이 과연 자랑만 할 일인지 의심스럽다. 정부도 말로는 누누이 ‘전시 상황’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전쟁 같은 일을 치르는 사람들이 누군지 시민들은 안다. 턱없이 부족한 공공의료 시설을 지키는 현장의 간호사들, 생계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자영업자들, 요양이나 택배 등 이른바 고위험 집단과 필수업종의 노동자들, 그리고 소득 증빙도 취업도 할 수 없어 정부의 각종 선별지원에서마저 배제되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 ‘전시 상황’을 제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 정부가 재량적인 예산 대응을 3.5%에서 멈추지 않고 비교 대상이 되는 다른 나라들 정도로 지원의 수준을 늘렸더라면 어땠을까? 비록 재정 수치는 지금보다 나빠졌을지 몰라도 시민들의 수고를 국가가 조금은 더 나눠 짊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재정을 아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마땅히 졌어야할 부담을 시민들에게 미뤄두었던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보건의료노조가 12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전담병원 노동자의 소진과 이탈(퇴직,이직) 등 신속한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2021.01.12ⓒ김철수 기자
불평등의 시정과 적극적인 적자 재정이 곧 경제 회복의 길
1940년대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 통계연구소와 캐나다 몬트리올의 국제노동기구(ILO)에서 활동했던 폴란드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는 대공황과 전시경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경제 회복을 위한 방도를 요약해 제시한 바 있다. 그 방도는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정부가 항구적으로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 복지지출 등을 통해 가계 소비를 지원하고 공공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득 불평등을 시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정부의 적자 지출이 지속가능하다는 칼레츠키의 첫 번째 주장은 동시대의 경제학자 에브시 도마가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뒷받침되었다. 이 주장이 갖는 타당성은 한편으로는 기초적인 ‘국민소득 항등식’을 통해서도 가늠해볼 수 있다. 국민소득 항등식을 학생들은 보통 대학 경제학 전공 1학년 과정이나 고등학교 경제 교과에서 처음 배운다. 그 내용은 국민경제 구성원들의 소득을 모두 더한 국민소득이 소비, 실물투자, 정부지출, ‘순 수출’(수출에서 해외로부터의 수입을 뺀 것)의 합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식을 이용하면 우리는 실물투자와 순 수출이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재정 적자가 증가하면 딱 그만큼 ‘민간 저축’(가계와 기업이 벌어들인 소득 가운데 소비되지 않고 자산을 매입하는 목적 등으로 활용되는 부분)이 증가하는 관계를 도출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이론적으로는 재정 적자로 정부의 빚인 국채가 늘어나면 그 국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 가계나 기업의 누구에겐가 생긴다는 뜻이다. 물론 민간이 국채를 사지 않으려고 하면 그로 인해 금융시장에서 이자율이 오르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낮은 수준으로 관리하는 한에서는, 그리고 중앙은행이 표준적인 통화정책의 일환으로 국채를 매입하는 것이 일상인 현실에서는, 그와 같은 가능성이 실제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늘 한국경제에서도 기획재정부가 발행하는 국고채의 장기 이자율과 단기 이자율 간 차이가 비교적 안정적인 것을 비롯해 국채 발행의 여건은 나쁘지 않다.
혹자는 지속적인 적자 재정은 미래 세대의 부담을 키운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분배를 악화시킨다고도 한다. 하지만 국채는 한 사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소득 이전의 한 가지 수단일 따름이다. 미래의 납세자들이 부담하는 국채 이자는 같은 미래 세대의 국채 보유자들에게 소득이 된다. 국채 보유자와 납세자는 어쩌면 동일인일지도 모른다. 죽은 과거 세대가 관에서 일어나 국채 이자를 받아가지는 못한다. 적어도 세금의 대부분을 가난한 노동자가 내고 국채 이자의 대부분을 부유한 사장님이 걷어가는 것은 아니다.
예산 측면에서는 포용 국가의 지향에 걸맞은
포용적인 지출이 이루어졌는지 따져야
더 늦기 전에 사회안전망 본격적으로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적자 재정을 감수하자
새해에 들어서도 3차 확산의 기세는 여전히 거세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염원은 간절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시민들의 건강과 일상의 조속한 회복을 위해 방역과 경제의 두 측면 모두에서 2021년에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가야 한다. 새해 재정정책의 당면 과제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해 경제 회복의 길을 열어가야 하는 이유이다.
먼저 포용 국가를 지향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예산이 지금까지 충분히 포용적인 것이었는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무상 복지와 현금 살포로 나라가 망한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우리 예산은 늘 경제사업 위주로 편성되어 사회정책의 중요성은 후순위로 밀리기 십상이었다. 한국은 경제사업의 예산 비중이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큰 편이고 사회정책 관련 지출은 잘 알려진 것처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 가깝다. 하지만 인구 감소로 경제성장의 잠재력마저 훼손되는 상황에서 사회안전망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지금은 아껴야 한다는 주장도 늘 있지만 그 미래가 이미 현재가 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사회안전망을 본격적으로 강화해가야 한다. 기준중위소득 및 생계급여 수준의 현실화, 의료급여 관련 부양의무제도의 폐지, 주거용 재산의 소득환산 폐지 등 시민사회에서 숱하게 지적되어온 개혁 과제들이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이를 위해 적어도 당분간 적자 재정을 감수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사회안전망 강화를 주장하면 누군가는 또 마치 ‘요건 몰랐지’ 하는 식으로 남북통일 이야기를 꺼낸다. 미래에 있을 통일에 대비하려면 재정을 아껴야 한다는 식상한 주장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통일을 찬성한다면 실제로 평화를 모색할 일이다. 정치 협상을 하고 군축을 해서 예산의 10%에 달하는 방위비부터 줄여야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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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세제 측면에서는 자산 과제 형평성에 초점을 맞춰야
경제 회복의 길은 또한 불평등의 시정을 요구한다. 그 점에서 세제 측면에서는 자산 과세 형평성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2023년부터 적용하려는 금융투자소득세는 금융소득을 ‘분리과세’(다른 소득으로부터 분리해 별도 체계로 과세하는 것)하는 점에서 문제가 있으며 완전히 ‘종합과세’(다른 소득과 합산하여 종합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것)하는 방향이 맞을 것이다. 근로소득세와 달리 금융투자 소득에 대해서는 ‘면세 구간’(세금이 면제되는 일정 기준 이하의 소득 범위)을 두는 것도 이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배당 소득이나 주식 양도 차익이 상위 소득자에게 집중되는 실정을 감안하고 현재 관련 세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고 볼 수 없는 점을 고려해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과 관련해서는 올해 6월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인상을 앞두고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는 반발에 후퇴하는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주택 임대사업자들에게 종합부동산세를 여태껏 전액 면제해준 특혜는 당장 폐지해야 옳다. 국회의 동의도 필요 없고 종합부동산세 시행령 제3조의 개정만으로도 가능한 일인데 미루어서는 안 된다. 한편 상속세의 경우 미실현소득이지만 불로소득이므로 인하나 폐지를 요구하는 최근 일부 주장은, 과세 체계를 합리화하는 선에서 정리하고 허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재난에 맞선 시민의 연대를 위해서는
국가부터 마땅히 져야할 부담을 회피하지 말아야
칼레츠키는 대침체나 전쟁으로부터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는 자산 과세로 국가 채무 비율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현대 거시경제학의 아버지인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역시 지속적인 적자 재정이 정치적으로 시민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정치권에서 이익공유제나 사회연대기금, 재난연대세를 이야기하는 배경이 자못 궁금해진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있다. 국가가 마땅히 져야할 재정 부담을 또 다시 최소화하거나 회피하려고 든다면, 그런 기초 위에서는 재난에 맞선 시민의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코로나19 위기는 마라톤처럼 길게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도 힘들 그 긴 시간 동안, 땀과 눈물로 그간에 재정의 빈틈을 메워온 가난한 민중의 경제적 존엄은 오직 국가만이 지켜줄 수 있다. 새해 재정정책이 포용성을 강화하고 불평등을 바로 잡는 방향이 되기를 기대한다.
[토요판] 은유의 연결 고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
잇단 유민이 아빠, 용균이 엄마…
동생 잃고 ‘그’ 계보에 오른 누나
출근 사흘 만에 동생은 공사장 추락
중대재해처벌법 투쟁 앞장섰다
음주 실족사 될 뻔…재수사 끌어내
“원청 책임 실종, 합의하라 종용만”
“우리 같은 유가족 더 없었으면”
길가 건물마다 동생 죽음 보이는데
한해 추락사 건설노동자만 290명
“그들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어”
누더기 중대재해처벌법에 큰 실망
다시 싸움 현장에…“출발일 뿐”
청년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가 지난 6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이어가던 서울 여의도 국회 근처에서 여전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동생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씨의 동생 김태규씨는 2019년 4월 경기도 수원의 한 건설 현장에서 일한 지 3일 만에 산업재해로 숨졌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태일이 엄마, 종철이 아빠, 한열이 엄마, 유민 아빠, 용균이 엄마….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름들이다. 이들은 자식의 죽음으로부터 태어났다. 대개는 엄마 아니면 아빠였던 유가족 계보에 누나가 등장했다. “저는 청년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누나, 김도현입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2019년 4월10일 공사 현장에서 동생을 잃은 이후부터다. 세상은 동생의 죽음을 “비일비재한 추락사”로 몰아갔다. ‘욜로족’으로 살던 그는 투사가 됐다. 일하다가 죽는 일이 흔해서도 안 되거니와, 세상에 하나뿐인 ‘태규’가 죽었기 때문이다.
태규랑 용균이는 1994년생 동갑이다. ‘태규 누나’의 시간은 ‘용균이 엄마’의 시간과 자주 겹쳤다. 그는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의 일원이 됐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앞두고도 같이 싸웠다. 용균이 엄마가 있는 곳에는 태규 누나도 있었다. 유가족들은 “노동자의 죽음을 벌금 몇푼으로 바꾸는” 기막힌 현실의 증언자로서 손팻말을 들고 인터뷰를 했다. 특히 그는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따라 에스엔에스(SNS)로 유가족의 입장을 민첩하게 전하며 꺼져가는 법 제정에 불씨를 살려 불을 지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본회의 통과 이틀 전인 1월6일, 국회 앞 농성장에서 김도현(31)씨를 만났다.
용균·동준 엄마 옆에 태규 누나
―단식 10일차인데 몸은 어떠세요?“좀 힘이 쭉 빠지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정부안을 보고 잠을 못 잤어요. 누더기 법안을 만드니까 스트레스 때문이에요.”―이렇게 단식하는 거 처음이신가요?“전에 다이어트 한다고는 해봤죠. 사실 저는 처음에 안 한다고 했어요. 이런 무식한 방법 말고 세련된 건 없냐고.(웃음) 그리고 용균 어머님, 한빛 아버님 단식하시니까 지치지 않게 서포트하려고요. 나까지 기운 빠지면 안 되니까. 근데 동준 어머님이 동조 단식을 하겠다고 선언해서 그럼 저도 한다고 했죠.”―의리인가요?(웃음)“의리? 사랑이라고 해둘게요. 애정!(웃음)”―슬프게도 이미 가족을 잃은 분들이 나서서, 일하다가 죽지 않는 법을 만들자고 싸우고 있어요.“다시는 저희 같은 유가족 보고 싶지 않아요. 태규, 동준이, 용균이 누구 하나의 죽음도 다 개인 탓은 없어요. 열심히 일한 죄밖에…. 근데 죽은 거예요. 한 해에 산재로 죽는 사람만 2400명이고 다치는 사람은 10만명이에요. 그걸 다 지금 외면하고 있는 거잖아요. 저희는 노동자를 부품처럼 여기는 이런 사회구조와 이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에 맞닥뜨린 거고요. 자그마한 목소리라도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가족을 잃어서 싸울 수 있는 거네요.“이 법을 어떻게 해서든 통과시키면 일단 우리 아이들이 있는 곳에 ‘다시는’ 가족들끼리 가서 인사를 하자고 했어요. 우리가 이런 법을 만들었다고.”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은 2019년에 발족됐다. 다시는 누구도 산재로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모임이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고 김용균 엄마 김미숙씨, <티브이엔>(tvN) 조연출 고 이한빛 아빠 이용관씨, 씨제이(CJ) 진천공장 현장실습생 고 김동준 엄마 강석경씨 등 열 가족 남짓이 활동한다. “자식을 잃고 하루하루 버티어낸 부모님들이 동생을 잃은 저에게 힘을 주셨다”고 그는 말했다.고인이 된 동생은 그에게 각별했다. 태규는 월급날이면 누나를 불러내 막창에 소주 한잔을 샀다. 같이 영화도 보러 다녔다. 4년 전 아빠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후엔 누나를 더 챙겼다. 178㎝에 80㎏으로 건장하고 듬직했다. 태권도 유단자에 축구 선수였는데 중학생 때 다리를 다쳐 운동을 그만두고 특성화고에 들어갔다. 군대를 다녀오고 휴대전화 부품 만드는 하청업체에 다녔다. 1년 계약직이 끝나고 구직을 준비하던 중 ‘용돈벌이’로 일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태규는 무인도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애’라고 할머니는 말씀하곤 하셨다. 그랬던 동생이 공사 현장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일하러 나간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김도현씨는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서 죽을 것 같아도” 포기하지 않았다. 사건의 진상 규명은 동생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젠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동생 추락사 밝히려 뛰어다닌 시간들
―현장에 제일 먼저 가셨죠?“네. 사고 현장은 그대로 보존하는 게 원칙인데, 승강기가 1층에 내려와 있더라고요. 사측에서 처음엔 태규의 부주의로 휴대전화 보다가 떨어졌다고 했어요. 근데 20m 높이에서 휴대전화가 떨어졌는데 어떻게 그렇게 흠 하나 없이 멀쩡해요?”―사고의 원인이 자기 책임이라는 건가요?“다 태규 잘못으로 몰아가는 데 견딜 수 없었어요. 통상 일을 빨리빨리 하려고 승강기 문을 항상 열어놓고 다녀서 그 틈이 있다는 건 당연히 알 텐데, 실수로 떨어졌다는 거예요. 저희가 직접 알아볼 수밖에 없었어요. 저랑 엄마랑 태규 친구랑 제 친구랑 넷이서 20일 동안 모텔에서 합숙 생활을 했어요. 현장, 경찰서, 소방서, 고용노동부 일일이 다 찾아다녔어요.”―어떤 것들이 밝혀졌어요?“원래 사람이 타면 안 되는 미승인 승강기에 사람을 태웠고, 승강기에 안전바도 없고 공사 현장에 흔한 추락방지망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았어요. 동생은 아침에 신고 나간 운동화 그대로 신고 일했더라고요. 안전화도 안전장비도 없고. 회사는 일용직이어서 안전화를 주지 않았다고 해요.”―사측에선 자기들 잘못이 없다는 것인가요?“원청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졌으니 엘리베이터 업체에 연락하라’고 해요. 하청업체 현장 이사는 자기도 군대 간 아들이 있어서 태규를 아들같이 생각했다며 ‘급히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했다’더니, 시시티브이(CCTV)를 보니까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태규가 죽어간 현장으로 걸어가고 있는 거예요. 정말 분노가 단 한순간도 사그라지지 않았어요.(한숨) 저희가 처음에 수원에서 기자회견 했을 때 사측에서 엄청 막으려고 했대요. 제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한번 했더니 그때부터 매일 문자를 보내요.”―뭐라고요?“뵙고 싶다고. 얼마나 황망하시겠냐고. 태규 보내고 나서 21일째부터 문자를 하루에 한개씩 보내요.”―그렇게 20일간 증거를 모으고 시위도 하니까 경찰도 움직인 건가요?“처음엔 경찰에서 술 먹고 실족사한 걸로 방향을 잡고 수사를 하고 있었어요.”―술 이야기는 뭐예요?“저도 이게 뭔 소린가 했는데, 동준 어머니랑 용균 어머니 만나고 얘기 들어보니까 우리나라는 산재 사고를 항상 본인 잘못으로 몰고 간다는 거예요.”―평소에 우울했다, 대인 관계가 안 좋았다, 술을 마셨다, 고인 탓으로요?“네. 너무 억울해서 동생 시신을 부검까지 했는데 알코올은 검출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번에 한익스프레스 화재 사고 났을 때도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그분들도 용역노동자였는데 담배도 피우지 않는 사람한테 담배꽁초 버려서 불났다고 덮어씌우려고 했잖아요.”유가족의 노력 끝에 고 김태규 사건은 재수사에 들어갔고, 1심은 시공사 현장 소장과 차장에게 안전관리 소홀 책임을 물어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도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젠 위험한 공사 현장 그냥 못 지나쳐
김도현씨는 백화점 수입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서비스직 노동자였다. 민주노총 서비스노조 조합원이긴 했지만 “그땐 노조가 뭔지도 몰랐다”고 했다.―노조에 대한 인식은 어떠셨어요?“동료들이 다 회사가 아니고 노조 보고 일한다고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때 서비스노조 카페에 불편사항 같은 걸 글로 올리면 노조 위원장님이 사측이랑 교섭을 해주시는 거죠. 예를 들어서 유니화를 편한 걸로 바꿔준다든지, 앉아서 일할 수 있게 해준다든지. 그런 걸 보면서 노조가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은 했죠.”―그래도 이렇게 국회 앞에서 싸우게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겠어요.“네. 사실 저는 굉장히 이기적인 애예요. 놀 거 다 놀고 여행 다닐 것도 다 다니고, 태규 보내기 전까지니까 20대를 9년 동안 즐기며 살았어요.”그는 스물아홉에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 창업을 준비했다. 임차계약서를 쓰기로 한 날,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래서 사고 직후 자책했다. ‘내가 조금만 카페를 일찍 개업했다면 거기서 태규를 일하게 했다면 공사 현장에 안 가도 됐을 텐데….’ 그런데 사고 원인과 책임을 밝혀내면서 알게 됐다. 그랬더라면, 태규는 무사했겠지만 그 자리에 간 다른 태규가 참변을 당했으리란 사실을. 2018년 추락사한 건설노동자가 290여명에 달했다. 원청은 무리한 공사 기간 단축과 건설 비용 감축을 요구한다. 노동자의 안전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현재 법체계는 원청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누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현실이었다. 길가의 건물마다에서 ‘태규의 죽음’을 보게 된 ‘태규 누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안전하지 않은 현장을 보면 신고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한번은 건설 현장에서 안전모를 안 쓴 사람을 보고 ‘안전모 쓰세요’ 그랬어요. 당신이 뭔데 나한테 그러냐고 하면, 제가 공사 현장에서 동생을 잃었다고 말해요. 현장에서 안전모나 안전띠 없이 일하거나 추락방지망이 없으면 엄마랑 저랑 고용노동부에 신고해요. 여기 빨리 오라고. 이번에 고용노동부에서 엄마 앞으로 마스크 열장이 왔어요. 신고한 기록이 있어서 보내준 것 같아요. 엄마가 택배 상자에 테이프 다시 붙여서 그대로 돌려보냈대요.(웃음)”―사고 나고 1년9개월이 지났어요. 아직 재판 중인데 그동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은 없으세요?“사고 현장에 가니까 원청 업체 이사가 저한테 그래요. 네 동생이 죽어서 여기 공사 지연돼서 돈 더 들게 만든다, 여긴 사유지니까 들어오고 싶으면 경찰 대동해서 들어와라. 그 얘기를 듣는데 여기 5층에서 뛰어내리면 이 사람들이 알아줄까 싶고 그때 진짜 힘들었어요.”―유가족이 직접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도 고통인데….“가면 갈수록 진상 규명은 고사하고 책임자 처벌이 안 이뤄지고 무혐의, 불기소가 나오니까 진짜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었어요. 그때 유서도 썼어요. 아, 이래서 한 해에 2400명이 죽어도 ‘다시는’이 열 가족이 안 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왜 그렇다고 보세요?“모든 형사사건은 최종 책임자를 처벌하는 게 원칙인데, 산업재해는 그 원칙이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어요.”―개인이 싸우기가 너무 어려운 구조 같아요.“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합의하라는 소리만 해요. 나는 내 동생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하고, 아직까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요. 2심 때도 판사가 ‘이건 비일비재한 추락사다’ 이런 소리를 해대면서 합의할 기간만 주고 이래요.”김도현씨는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서 죽을 것 같아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책위도 없이 모녀가 외롭게 싸우는 걸 지켜본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그들에게 용균이 엄마 김미숙씨를 소개해주었다. 그때가 2019년 어버이날이다. 얼마 뒤인 5월28일 ‘구의역 김군’ 3주기 추모식에 가서는 ‘동준이 엄마’ 강석경씨와 인사를 나누었다. 유가족이 할 일 많은 나라에서 그들은 자주 만나게 됐고 금세 가까워졌다. 그의 엄마와 김미숙씨, 강석경씨는 동갑이다. 김도현씨는 다른 유가족들을 어머니, 아버지로 부른다. 국회 농성 중에 생일을 맞은 강석경씨에게 그는 손글씨로 쓴 축하카드와 선물을 전하기도 했다.―부모님 세대와 같이 활동하시잖아요. 세대 차이는 못 느끼시나요?“전혀요.(웃음) 너무 편해요. 도움도 많이 받고요.”―어떤 도움이요?“저희보다 먼저 절차를 다 밟아 오신 분들이니까 이때 되면 이건 힘들 거야, 이거 넘어가면 더 힘들다, 동준 어머님이 잘 말씀해주세요. 한빛 아버님은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위해 싸우는 의지, 투사의 모습을 보여주시죠. 용균 어머님도 우리 자식은 잃었지만 정말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말씀하세요. 존경하는 분들이죠.”―심리적인 거 외에 산재 관련해서는요?“태규 사건을 알리는 데에도 도움을 주셨죠. 인권활동가 명숙 동지가 이재정 의원실 통해서 보도자료도 배포해주셨어요.”―도움도 받고, 위로도 받고, 배우고, 좋은 관계네요.“이젠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를 갈 수가 없어요. 왜냐면 가면 항상 저한테 괜찮냐고 물어보거든요.”―뭐라고 하세요?“저번에 친한 친구라서 결혼식을 갔는데 저보고 괜찮냐고 물어요. 나 안 괜찮다고 하면 그때부터 분위기가 싸해지니까 난처해요. 저는 지금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이제 2년 됐으니까 태규 보내주면 안 되냐고 하는 거예요. ‘내가 태규를 안 보낸 게 아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태규를 위해서도 하는 일이고, 날 위해서도 하는 일’이라고 말하죠.”―그 활동의 중요한 결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되겠네요.“아까 용균 어머님한테 이야기하고 왔거든요. 힘내시라고. 저희가 진짜 큰일을 하고 있는 거다. 저희가 이 법이 필요하다고 진짜 많이 외치고 다녔거든요.”
김도현씨가 지난 6일 낮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단식농성 중 팻말을 들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온전한 법 되도록 계속 싸울 겁니다”
―글 쓰는 거나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거나 전에는 안 해보던 일인데 어떠세요?“처음에 앞에 나갈 땐 청심환 먹고 했어요.(웃음) 며칠 전에 제 페북을 보고 <오마이뉴스>에서 기사가 났더라고요. 그때부터 하루에 서너개씩 올리고 있어요. 피케팅도 저희가 그냥 무작정 본관에 가서 하는 거예요. 누가 시키지 않아요. 그러니까 기사도 나고. 저 사실 글 쓰는 거 무서워하고 말재주도 없는데, 그래도 계속 누군가는 보겠지 하는 조그만 생각에 계속 올리고 수정하고 하는 거죠. 한 사람이라도 생각이 바뀌는 게 중요하더라고요.”―김도현 선생님은 어떻게 바뀌었어요?“저요? 투사가 된 것 같아요.(웃음)”―거의 활동가 같으세요. ‘누구 동지’라고 부르시고.“처음에는 ‘북한도 아니고 웬 동지?’(웃음) 그랬는데, 지금은 저도 이제 자연스럽게 동지라는 말이 나오고 편해요. 진짜 내 동지구나. 투쟁하는 동지들. 어떤 직책을 다 떠나서 평등한 관계예요.”김도현씨의 변화는 서서히 주변으로 번져갔다. 그의 할아버지는 <티브이조선>과 <조선일보>를 끊고 다른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 손녀와 용균이 엄마가 나오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균 엄마, 한빛 아빠 너무 고생했고, 우리 도현이 사랑한다’면서 우셨다.”인터뷰 이틀 뒤인 1월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됐다.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벌금 하한선 삭제, 과로 자살과 일터 괴롭힘 제외 등 여러 문제점을 남겼다. 김도현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죽음마저 차별하는 법’이 되어버려 개탄스럽지만, 이제 출발이라고 생각한다며 “온전히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법이 되도록 ‘다시는’ 가족들과 함께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그 며칠 후, 단식 후 보식 기간 중임에도 부산으로 달려갔다. 경동건설 추락사 고 정순규님의 유가족과 함께 시위에 나서기 위해. 또 며칠 후 용균이 엄마 김미숙 동지의 생일에는 황태미역국을 끓여서 집으로 찾아갔다. 아들 없는 생일의 적적함을 조금이나마 달래드리기 위해. 녹취 홍혜원
▶ 은유: 글 쓰는 사람. 글쓰기 수업도 한다. <글쓰기의 최전선> <다가오는 말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등을 펴냈다. 2005년부터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고 인터뷰를 해왔다. 성폭력 피해 여성, 국가폭력 피해자, 성소수자, 산재 노동자까지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기록했다. 사람을 살게 하는 말을 모으고 나누는 인터뷰를 하고 싶다. ‘은유의 연결’은 4주에 한번 연재.
_______ 김도현을 만든 시간들 (사진은 김도현씨 제공)
2007년 2월14일 태규 초등학교 졸업식. ‘까불이’ 태규랑. 누나에게 유난히 각별했던 태규는 중학생 때 다리를 다치기 전까지 축구 선수였다.
2019년 4월10일 사랑하는 태규를 잃고 제를 올리고 있다. 태규는 용균이와 동갑이다. 이후 태규 누나의 시간은 용균이 엄마의 시간과 자주 겹쳤다.
2019년 5월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과 함께 태규 대책위를 꾸렸다. 고 김용균 엄마 김미숙씨, 고 이한빛 아빠 이용관씨 등과 함께했다.
2019년 6월13일 수원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고 김태규님 산재사망 고소·고발 및 재수사 촉구’ 기자회견.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서 죽을 것 같아도” 포기하지 않았다.
2020년 4월10일 수원지검 앞 기자회견. 사건 재조사에 이어 두달 뒤 현장 관계자들에게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2021년 1월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빼입은 멋쟁이들이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한 사람. 슈트 입은 멋쟁이들 사이에 점퍼와 털장갑을 낀 80대 남성이었다. 모자 달린 점퍼와 알록달록한 털장갑을 낀 사람은 버니 샌더스 의원이었고, 그날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이었다.
대통령 취임식 날, 등산점퍼를 입는 건 무례일까 합리일까? 샌더스 의원은 한 마디로 일축했다.
"버몬트 사람들은 추위를 잘 안다. 멋진 패션은 잘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따뜻하길 원한다."
샌더스 의원을 얼핏 보면 그저 실속파 같기도 하다. 격식보다 쓸모를 더 중시하는 실용 인간 말이다. 하지만 틀렸다. 그는 털장갑을 낄 때조차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사람이다. 샌더스 의원의 복장은 따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친환경적이었다.
털장갑은 낡은 스웨터와 재생 플라스틱으로 짰다. 스웨터를 버리지 않고 울(wool)을 풀었고, 재생 플라스틱에서 섬유를 뽑았다. 그가 입은 외투도 그의 지역구인 버몬트 지역 기업에서 만들었다. 물건의 생산, 유통에 들어가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생산된 물건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상원 최초로 '탄소세' 도입안을 발의하기도 했을 만큼, 그는 기후 위기 대응에 적극적이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 재활용 장갑과 지역에서 생산된 외투야 말로 대통령 취임식에 가장 어울리는 복장이었을 것이다.
내가 복직날 7년 된 패딩 입고 간 이유
버니 샌더스 의원은 취임식장에서 조금 창피했을까? 나는 창피했다. 1년 전, 나도 세련된 정장을 입고 우아한 매무새를 한 사람들 사이에서 7년 된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해서 처음 회의에 참가한 날이었다.
패딩 점퍼는 색이 바래거나 해진 것도 아니다. 여전히 따뜻했고 제 기능을 다 했다. 그러나 번듯하진 않았다. 7년의 겨울 동안 이 한 벌로 겨울을 났으니 어쩔 수 없다. 회의 시간, 내 차림새가 신경 쓰여 남모르게 속으로 아우성을 쳤다.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왠지 다들 나를 보는 듯, 자의식 과잉 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렇지만 그다음 날도 같은 패딩을 입었다. 의무감 때문이었다. 지구를 구한다는 심정으로 복직 기념 새 외투를 사지 않았다. 새 옷 한 벌에 들어있을 탄소 배출물이 마음에 걸렸다. 옷이 멀쩡하다면, 그 옷이 닳을 때까지 입어야 했다.
▲ 후손들이 지구에서 못 살까봐 번듯한 옷을 입을 수 없다. 오래된 패딩을 입고 마른 강바닥에서 쓰담 산책을 하는 일은 기후 위기 시대에 나를 치유하는 취미다.
진짜 친환경 옷은 친환경 섬유로 만든 새 옷이 아니라 이미 생산된 옷을 오래 입는 것이다. 나의 TPO(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는 '기후 위기'에 맞춰져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의 이번 생은 망했으니까. 지구를, 아니 나와 후손들을 구한다는 심정으로 복직 기념 새 외투를 사지 않았다. 창피해도 별 수 없다. 생존이 우선이니까.
복직 후 1년. 여전히 그 패딩 점퍼를 입고 다닌다. 이제는 8년 된 점퍼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옷, 그리고 끊임없이 버려지는 옷들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하다. 옷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소중하게 입는 것.
샌더스 의원도 그랬을 것이다. 대통령 취임식만 생각한다면 국가 행사라는 경우에 맞게 정장을 입는 게 예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기후 협약에서 탈퇴한 후, 잃어버린 미국의 시간을 생각하면 고어텍스 점퍼에 재생 플라스틱으로 된 털장갑이 합당하다. 기후 위기의 시대, TPO에 알맞은 차림은 샌더스 의원의 옷인지도 모른다.
어렵고 수고스럽지만 해야 할 일
샌더스 의원이 낀 털장갑과, 강원도 작은 바닷가 마을 직장인이 입은 8년 된 패딩의 파급력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샌더스 의원이 털장갑을 끼고 나오면 법이 바뀐다. 기업은 새 제품을 내놓을 것이다. 그의 옷은 웃음거리가 되기는커녕, 그의 지지자들이 공식 계정에 밈(meme: 온라인상의 패러디 그림) 경연 대회까지 열었다.
하지만 내가 패딩 한 벌을 고이 입는다고 해서 법이 바뀔 리도 없다. 기업이 변할 리는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샌더스 의원처럼 입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후 위기 시대에 맞춰 예의 바른 옷을 입고 싶다. 옷의 수명을 2년 연장할 때마다 옷의 환경 영향이 20~30퍼센트 감소한다. 기후 위기로 인한 북극 한파라는 상황에서 가장 격식에 맞는 복장은 오래 입은 옷이다. 2021년에는 더욱 예의를 갖춘 옷을 입고 싶다.
2021년 1월 22일 오전 7시 40분경, 미국 사드 기지가 임시배치되어 있는 성주군 소성리 마을에 또다시 기지 공사를 위한 물품이 강압적으로 반입되었다.
경찰과 국방부는 동이 트기 전인 새벽 5시부터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반입 시도 준비를 진행하였다. 경찰은 주민들의 반입 반대 대응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승합차로 기지 진입로인 진밭교 앞에 경찰병력을 옮겨 차량과 사람을 차단하였고 소성리 마을 입구인 마을 보건소까지 병력을 둘러싸 소성리 마을을 완전 고립시켰다.
공사 자재 차량의 기지 반입을 막기 위한 주민들과 연대자들은 오전 8시경, 마을회관 앞에 모여 철골구조물에 몸을 넣고 차량 진입을 막았다.
이날 경북경찰청은 소성리 사드기지 인근에 600여 명의 경찰병력으로 공사 자재 차량 반입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강제로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철골 구조물에 들어간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이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경찰 지휘자가 “격자를 통째로 들어 올려서 끌어내라”라고 명령하자 구조물을 좌우로 흔들어 아래로 떨어트리는 위험천만한 과잉진압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1명은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
사드철회평화회의는 이를 명백한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이자 고의로 상해를 입힌 행위이며 반인권적이고 무리하며 위험천만한 과잉진압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지게 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또한 경찰이 언론을 대상으로 한 거짓말 역시 심각한 행위로 이에 대한 문제 역시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경찰의 과잉 진압에 따른 부상이 아니고 구조물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라며 “정확한 부상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라고 언론에 밝혀 거짓말 논란이 일었다.
사드철회평화회의는 공사 자재 강제 반입 상황이 종료된 후 “경찰이 무리하게 구조물을 들어 올려 부상자가 발생했다”라며 “경찰 지휘관의 무책임한 지시로 인해 오늘도 사람이 다쳤다. 명백한 경찰의 과잉진압이고 경찰청과 인권위가 그동안 사드 배치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한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과정에서 또 경찰 병력을 투입해 작전을 펼친 것은 주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코로나19 방역 상황에서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 등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는데도 고령의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마을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한 것 역시 방역법을 스스로 위반한 무책임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청 인권위는 2020년 9월부터 ‘경찰인권보호규칙’에 따라 진상조사팀을 꾸렸으며 성주 사드 4년간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런 와중에 벌어진 이번 과잉진압 사건으로 경찰의 반인권 행위 논란은 가중되고 있다. 더욱이 국가인권위 대구사무소도 지난해 5월 28~29일 장비 반입 과정에서 경찰에 의한 인권침해 진정서가 접수돼 조사하고 있어 두 기관의 조사가 완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소성리에 대한 공권력의 반인권적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찰의 공권력 과잉진압 인권조사에 진정성 논란 여론도 더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강현욱 소성리상황실 대변인은 “공권력에 의한 4년간 부상자는 100여 명이 넘는다. 다치는 사람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결국 사드를 철거해야 모든 폭력과 인권침해가 끝날 것이다”라고 밝혔다.
사드철회평화회의는 이번 사드 기지 공사 자재 강제 반입이 이토록 전격적이며 군사작전으로 이뤄진 이유에 대해서도 입장을 냈다.
사드철회평화회회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다음날 60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대형 트럭 20여 대 분량의 골재 등 34대 분량의 공사 자재와 장비를 사드 부지 내로 반입시켰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하고 있다. 우리는 사드 부지 공여도 환경영향평가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들을 짓밟고 불법 공사를 강행하는 한미 당국을 강력히 규탄하며, 코로나 방역 2.5 단계를 지속하며 5인 이하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고는 스스럼없이 방역 절차를 위반하며 대규모 경찰병력을 동원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밝혔다. 특히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과 미국이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며 남중국해에서의 대중국작전에 병력 파견과 사드의 안정적 배치를 연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오늘 공사 자재와 장비 반입이 강행되었다는 사실 역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라고 짚었다. 이어 평화회의는 “바이든 취임에 맞춰 사드 성능개량, 미국 MD기지화 실현을 위해 사드 배치를 정식배치하려는 꼼수일 수 있다”라며 이런 꼼수에 대해 계속 강력히 대응할 것을 밝혔다.
오는 26일 "2021/2022 〔미국 전쟁·반인륜 범죄 국제민간법정〕과
〔아메리카 NO 국제평화행동〕" 국제캠페인 선포식이 진행된다. 이와 관련, 류경완 코리아국제평화포럼(KIPF) 공동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1. ‘미국 전쟁·반인륜 범죄 국제민간법정’이란 무엇인가요?
문자 그대로 한(조선)반도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건국 이후 245년 간 미국이 저질러온 전쟁범죄와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를 단죄·심판하는 민간법정입니다. 2021년 초부터 2022년 9월 경까지 미국이나 유럽, 아시아 국가에서 개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류경완 코리아국제평화포럼(KIPF) 공동대표
2.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반갑습니다. 현재 국제민간법정 조직위원회에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있는 류경완입니다. (사)코리아국제평화포럼(KIPF, 이사장 한충목)에서는 공동대표 겸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KIPF는 1996년 이래 코리아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 화해·교류, 통일을 위한 국제연대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 땅에 점령군으로 들어온 지 꼭 75년이 된 작년 9월 8일 서울에서 ‘미국 전 세계 전쟁범죄 국제고발대회’를 주관하면서 이번 국제민간법정 추진 결의를 이끌어냈지요.
3. 미국의 주요 전쟁범죄 사례를 어디서 찾아볼 수 있나요?
글쎄요. 워낙에 침략전쟁으로 날이 새고 진 나라라 간단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39대 미 대통령 지미 카터(1977년~1981년)가 한 마디로 고백한 것처럼 미국은 “건국 후 전쟁을 하지 않은 기간이 16년에 불과한, 역사상 가장 호전적인 국가”입니다.
애초에 원주민 학살과 아프리카 노예 노동 위에 세워진 원죄가 있고, 건국 후 자국 바깥에서 150여 차례 이상 침략을 벌여온 전쟁국가입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에만도 37개 국가에서 근 2천만 명을 희생시키며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으로 군림해왔지요. 대표적인 피해국인 한국과 베트남을 포함해 중동, 남미 등 희생 국가는 전 세계에 걸쳐 있습니다.
침략을 통한 주권국가와 공동체 파괴의 후과로 수천만 명이 국제 난민으로 떠돌고 있고, 이는 지구촌 전체 정세 불안정의 뿌리입니다. 북과 중국,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세계인의 3분의 1은 국제법에 반하는 미국의 일방 제재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까지 감안하면 미국은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지구인의 절반을 제재하는 ‘집단적 징벌’을 가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나요?
지난 2001년 뉴욕 코리아국제전범재판 당시 추정한 한국전쟁에서의 미군 민간인학살은 350만 명에 이릅니다. 나아가 미국은 일본의 전범들을 이용해 이 땅에서 천인공로할 세균전과 화학전까지 감행했지요.(코로나가 창궐하는 현재도 여전히 부산 8부두에는 미국의 세계 생화학실험실 총괄센터가 있습니다.)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의 원폭 생체실험을 최초로, 유일하게 자행한 것도 미국입니다.
기타 저강도전쟁과 색깔혁명, 쿠데타 등을 통한 정권교체 공작, 인류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반인륜 범죄는 지금 일일이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필요하시면 민플러스에서 2018년 펴낸 <아메리카 제국의 몰락>이나 앞에 말씀드린 작년 국제고발대회에서 발표한 자료집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자료집 요청 ☞ kipf727@gmail.com)
▲ 아메리카NO 국제평화행동
4. 이런 민간재판과 유사한 사례가 있나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이 있지요. 우선 미군의 베트남전쟁 책임을 물었던 ‘러셀전범재판법정’(파리, 1967년)이 있구요. 전범 부시 대통령 등을 기소한 ‘쿠알라룸프르 전범민간법정’(말레이시아, 2013년), 미국 반전평화단체 코드핑크가 주최한 ‘이라크전쟁에 관한 민간법정’(뉴욕, 2016년) 등이 대표적입니다.
우리 경우엔 미군범죄 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의 ‘코리아국제전범재판’(뉴욕, 2001년), ‘일본군성노예 여성국제전범법정’(도쿄, 2000년),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규명하는 5.18시민법정’(광주, 2002년) 등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 법정이 개별 국가 문제나 단일 사건을 다루는 구체적 법정이었다면, 이번은 인류 현대사 200여 년, 특히 2차대전 이후 집중된 일극 패권국 미국의 전 세계 전쟁범죄를 다루는 최초의 법정입니다. 따라서 범위와 대상이 워낙 포괄적이고 민간법정의 형식이라 법적 구속력에도 한계가 있겠지만, 세계 양심과 함께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밝히고 정치적, 도덕적, 역사적 심판의 장으로 준비하려 합니다. 세계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국제적 접근을 통해 교육과 역사의 법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 아메리카NO 국제평화행동
5. 내년까지 진행되는 행사 개요를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크게 국제민간법정 추진과 '아메리카NO 국제평화행동’ 조직 두 갈래로 진행하게 됩니다. 법정은 준비 시간과 코로나 상황을 감안해 내년 9월까지 종결을 목표로 2년 간 진행할 계획입니다. 올해는 연초 재판부와 배심원단, 검사단과 변호인단 구성을 마치고, 국제고발인단 접수와 기소·고발, 미국이나 유럽, 아시아 국가 등에서 주요 피해국/역내 국제고발대회와 변론 등을 조직하고, 내년 가을 최종 선고를 내릴 것입니다. 이는 향후 미국 법정과 국제사법재판소(ICC), 유엔에 미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아메리카NO 국제평화행동은 평화를 염원하는 지구촌 시민들과 함께 법정 추진과 미국의 범죄상을 세계에 알리는 다양한 홍보와 캠페인으로 진행합니다. 작년 9월 9일부터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매일 이어가는 1인 시위를 받아 1월부터는 전국, 전 세계 50곳 이상의 상징적 도시에서 각지의 실정에 맞는 평화 의제로 공동행동에 나서게 됩니다.
6. 진행 과정에서 특별하게 강조하고 싶은 핵심 행사는 무엇인가요?
조직위원회에서 민간법정 및 법률 전문가들, 피해국들과 협의하면서 세부 계획을 세우겠지만 미국에 대한 포괄적 단죄 이외에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몇몇 사건, 예를 들면 1999년 대대적으로 폭로된 한국전쟁기 노근리 학살, 대전 산내와 황해도 신천 학살, 그리고 2020년 1월 이란 솔레이마니 장군 암살 등은 엄정한 법정 요건을 갖춰 정치하게 단죄하려 합니다. 이를 위해 유관 단체와 북측, 이란 등 해외 NGO 단체들과도 밀접하게 소통할 것입니다.
▲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날인 1월 20일 저녁 미 국제행동센터(IAC) 사라 플라운더스 대표와 회원들의 아메리카NO 국제평화행동(뉴욕 맨하탄 타임스퀘어 광장).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하라! 미군은 떠나라!”
7. 국내외 주요 참가인사와 단체들 소개 부탁합니다.
국내외에서 대표적인 평화운동 단체와 활동가, 진보적인 학자·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는데요. 조직위원회 상임공동대표로 한국에서는 고은광순 평화어머니회 상임대표와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요상 동학실천시민행동 상임대표, 심재환 통일의길 이사장, 이규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의장,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조헌정 예수살기 상임대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등입니다. 앞으로 시민사회단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민변 등의 전문가 그룹도 모실 예정입니다.
해외에서는 ‘빈곤의 세계화’, ‘전쟁의 세계화’로 잘 알려진 캐나다의 석학 미셸 초서도브스키 교수(세계화연구센터), 미국과 일본 최대 평화운동 단체인 ANSEWER의 브라이언 베커 대표(미), 국제행동센터 사라 플라운더스 대표(IAC, 미), 후지모토 야스나리 평화포럼 대표(일), 와타나베 겐쥬 일한민중연대전국네트워크 대표(일) 등이 참여합니다. 2001년 뉴욕 코리아국제전범재판 수석검사장이었던 램지 클라크(미) 전 법무장관도 당시의 경험과 자료를 공유하시기로 했습니다. 역시 민간법정 경험과 명망 있는 해외 인사들을 계속 모실 예정입니다.
▲ 독일 베를린 통일광장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선 한민족유럽연대 최영숙 의장
8. 26일 선포식은 어떤 의미가 있는 행사인가요?
아무래도 국제민간법정과 아메리카NO 국제평화행동의 출범을 국내외에 알리는 첫 시작이라는 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앞으로 세부 사업계획을 확정해가면서 국제 여론을 조성하고, 풀뿌리 공동행동을 통해 미국의 침략주의에 맞선 반제·반전 평화운동의 국제 연대를 강화해 나가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9. 민간법정 관련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국제민간법정 개최는 미국의 침략주의를 단죄·심판하고 그 종식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세계가 변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코로나 위기와 대선 난맥상 속에서 우리는 미국 ‘민주주의’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달러와 무력에 기초한 제국의 세기가 저물고 미 일극 패권의 쇠퇴와 다자주의 질서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계 반제 자주진영의 투쟁과 제국 내부 모순이 맞물리면서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에서까지 미국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끝내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세계 150여 개국에 산재한 900여 미군기지의 감축 및 철수도 불가피해질 것입니다. 그 길에 강권과 전횡, 침략과 약탈이 아니라, 정의와 평등, 호혜와 친선에 기반한 새로운 인류 공동체 문명의 시대가 열리리라 희망합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75년 미국의 지배를 끝내고 영구적 평화, 번영과 통일로 가는 새날이 열리리라 믿습니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 양심과 평화단체 여러분들의 성원과 동참을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내일 언론에 쌍용차 얘기로 가득 찰 것 같은데, 쌍용차 얘기는 모레 쓰시고 혁신성장 얘기를 내일 써주시라."
지난 12일,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몇 차례나 강조한 얘기다. 쌍용차에 대해 단협 유효기간을 3년으로 늘릴 것, 무쟁의를 서약할 것, 그러지 않으면 한 푼도 지원할 수 없다는 엄포를 놓았으니 참석한 기자들 대부분이 그쪽에 관심이 쏠려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동안 이동걸 회장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져온 <인사이드경제>도 당일 온라인 생중계로 간담회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그의 말에 동의하지도 않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저 얘기가 진심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사업재편 활성화 방안'
자, 이야기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이동걸 회장이 강조했고 문재인 정부도 틈만 나면 얘기하는 '혁신 성장'의 대표적인 산업은 전기차·자율차 등 미래자동차 부문이다. 미래차 분야로 전환이 이뤄지면 엔진·변속기가 사라지고 배터리·모터 등 전기차 관련 부품산업, 특히 전장부품 산업이 성장한다는 건 이제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한국의 주요 부품사들은 여전히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부품 생산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기존 주력업종을 바꿔 미래차 부품으로 전환하는 경우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산업자원통상부가 분기별로 '사업재편 계획 심의위원회(사업재편위)'를 열어 그런 부품사를 10개 안팎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갖고 있다.
이름 하여 '선제적 사업재편 활성화 방안'인데 여기에는 항공기·의료기기·디스플레이 등 유망 신산업도 대상이긴 하지만 주로 미래차 부품 관련 사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테면 지난해 6월 23일에 열린 제26차 사업재편위에서 내연차에서 친환경차 부품 산업으로 전환한 6개 기업을 승인해 지원대상으로 결정한 바 있다.
▲ 제26차 사업재편 계획 심의위원회 승인기업 개요.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특정 기업체 명단이 나왔으니 지난번 글에서처럼 이들 기업의 지난 1년간 주가 변동표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코넥이나 새한산업과 같은 기업들은 비상장기업이어서 주가를 살피는 게 어려우니 상아프론테크와 덕양산업을 선택해 보았다.
▲ 상아프론테크와 덕양산업의 지난 1년간 주가변동표.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거짓말처럼 6월 중·하순, 그러니까 사업재편위 결정을 전후한 시점부터 이들 기업의 주가가 뛰어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6월 중·하순부터 2개월 기간을 임의로 정해 점선 박스로 표현해 보았음.) 물론 그 전에도 조금씩 오르기는 했지만, 이들 주가 흐름에 사업 재편기업으로 승인된 사건이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주식시장 새로운 마법사?
▲ 제27차 사업재편 계획 심의위원회 승인기업 개요.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이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그렇다면 26차가 아니라 27차 사업재편위에서 미래차 부품 전환으로 승인된 기업들(아래 표)을 놓고 똑같은 일을 해보도록 하자. 아래 명단의 기업들 중 상장기업인 우수AMS, 서진오토모티브 2개 기업의 지난 1년간 주가 변동표를 살펴보도록 한다.
▲ 우수AMS와 서진오토모티브의 지난 1년간 주가변동표.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마찬가지로 사업재편위가 열린 시점 9월 22일을 전후로 이들 기업의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9월 중·하순부터 2개월 기간을 임의로 정해 점선 박스로 표현해 보았음.) 특히 우수AMS와 서진오토모티브는 9월 22일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10월 하순에 최고점을 찍는 유형까지 닮아 있다.
▲ 제28차 사업재편 계획 심의위원회 승인기업 개요.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이쯤 되면 호기심이 아니라 확신이 생기게 된다. 석 달 뒤인 12월 27일에 열린 28차 사업재편위 사례를 살펴보면 어떨까? 위 표에 적시된 기업들 중 마찬가지로 상장기업들 중심으로 에코플라스틱, 삼기, 디아이씨, 세코닉스 4개 기업의 지난 1년간 주가 변동표를 뽑아보았다.
▲ 에코플라스틱, 삼기, 디아이씨, 세코닉스의 지난 1년간 주가변동표.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이젠 뭐 거의 족집게 수준이다. 사업재편 기업으로 승인이 떨어진 12월 27일을 전후로 주가는 수직으로 상승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오르고 있다. 이 정도면 산자부 사업재편위는 주식시장의 새로운 마법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계자와 플레이어는 어디에?
"미래차·친환경차 부품으로의 전환을 정부가 보증했으니 주가 뛰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저평가된 기업 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인사이드경제>가 괜히 민감한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업재편 기업으로 결정되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수준의 주가였다가 갑자기 2~3배 이상 뛰는 일이 주기적으로 벌어지는데 이걸 이상하지 않게 여기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게다가 사업재편위에서 승인되는 기업의 리스트는 회의가 열리는 그날 결정되는 게 아니다. 후보기업들 리스트가 오래 전부터 올라와서 심사가 이뤄지고 미리 결정된다. 회의가 열리는 날은 사실상 승인되는 기업을 발표하는 세리모니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면 사업재편 승인이 이뤄지는 기업의 리스트가 발표되기 전에 미리 알 수 있는 인사들이 정부 고위급에 포진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기업들 중 상당수의 주가는 평온하게 유지되다가 명단이 발표되자마자 2~3배씩 갑자기 뛰어오른다. 이게 그냥 저평가된 주가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만 할까? 언제나 그렇듯이 설계자와 플레이어는 따로 있는 법이다.
▲ 416연대 세월호 유가족들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의 수사결과를 규탄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이희훈
▲ . ⓒ 이희훈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삭발하면 안 된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우리 아이들은 문재인 정부를 위해서 희생된 게 아니다. 우리 엄마, 아빠들은 더불어민주당 정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22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단원고 2학년 3반 고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삭발을 진행하기 전 한 말이다.
유 위원장은 "삭발 자체는 사실 두려울 것도 없고 대단할 것도 없지만 이렇게까지 상황이 오게 된 것에 대해, 삭발해서라도 우리 목소리를 전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화도 나고 두렵고 걱정도 된다"면서 "우리가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 두렵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세월호 참사 규명 위해 모든 권한 사용해야"
▲ 416연대 세월호 유가족들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의 수사결과를 규탄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이희훈
"2020년 9월 청와대는 '대통령께서 곧 의지를 표명할 테니 (농성을) 중단하고 기다려달라'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이토록 열심히 잘하고 있는데 굳이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야기 할 필요가 무엇인가, 이 정도면 다 보여준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그 결과가 검찰의 세월호 특수단의 수사 발표다."
유 위원장은 이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정권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책임자 처벌을 위해 그리고 이를 통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권한을 다 사용해야 한다"면서 "지금 당장 약속 이행을 위해 정부의 권한을 사용해 진실을 규명하기를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발언 후 단원고 2학년 3반 고 김시연양 엄마 윤경희씨와 단원고 2학년 6반 고 권순범군 엄마 최지영씨, 단원고 2학년 6반 고 신호성군 엄마 정부자씨, 단원고 2학년 7반 고 정동수군 아빠 정성욱씨는 진상규명을 위해 오랜 시간 함께 활동한 최헌국 목사와 함께 삭발을 했다.
앞서 지난 19일 세월호 특수단(아래 특수단)은 고 임경빈군 구조 방기를 비롯해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및 기무사의 유가족 사찰 의혹, 법무부의 세월호 수사 외압 행사 의혹 등 수사 대상에 오른 17개 혐의 가운데 2건만 기소하고 13건을 무혐의 처리하고 해체됐다.
발표 현장에서 임관혁 특수단 단장은 "유가족이 이런 결과에 실망하리라 생각한다"면서도 "법률가로서, 검사로서 되지 않는 사건을 억지로 만들 수 없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라고 강변했다.
삭발한 세월호 희생학생 엄마의 절규
▲ 416연대 세월호 유가족 고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씨가 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삭발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희훈
▲ 416연대 세월호 유가족들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의 수사결과를 규탄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이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진행된 세월호 유가족들의 삭발은 특수단의 수사결과를 규탄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성역없는 진상규명에 관한 입장을 표명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 진행됐다. 그러나 삭발식 내내 눈물을 감추고 애써 감정을 억눌렀던 세월호 희생학생의 엄마들은 미리 준비한 성명서를 나눠 읽으며 감정이 폭발했다.
특히 신호성군의 엄마 정부자씨는 입을 떼기 전 눈을 질끈 감은 채 "숨을 쉴 수 없다"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아아…"
그는 힘겨운 목소리로 "검찰특수단은 황교안, 우병우 등 권력의 수사외압을 모두 무혐의 처분함으로써 권력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해 김경일 정장 한 명을 겨우 기소했던 검찰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리고 정당화시켰다"면서 "검찰특수단이 정보기관의 불법사찰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한 것은 암묵적 지시를 하고 사찰의 수단을 들키지 않으면 민간인 사찰을 얼마든지 해도 된다는 뜻으로, 범죄를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삭발한 순범엄마 최지영씨도 "특수단은 '몰랐다', '기억이 안 난다' 등과 같은 피의자들의 일방적인 진술과, 당시 상황을 완전히 무시한 채 소위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경빈이의 생존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로 응급조치를 방해한 해경 전원에게 무혐의 처분을 했다"면서 "정부의 구조, 수습 방기 문제를 드러낼 계기였던 경빈에 대해 면죄부를 줬다"라고 비판했다. 순범엄마의 곁에는 청와대 앞에서 22일 기준 437일째 경빈엄마 전인숙씨가 서 있었다.
참사 이듬해인 2015년 4월 세월호 선체인양과 시행령 폐기를 주장하며 삭발을 했던 시연엄마 윤경희씨는 이날 정확히 5년 9개월 동안 길러 허리까지 닿았던 갈색 머리카락을 다시 잘랐다.
▲ 416연대 세월호 유가족 고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씨와 고 권순범 학생 어머니 최지영씨가 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삭발을 마치고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희훈
▲ 416연대 세월호 유가족들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의 수사결과를 규탄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머리를 민 윤씨는 "백서를 쓰는 심정으로 한 점 의혹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힌 특수단은 결국 과거 검찰의 부실수사와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는 발표만 했다"면서 "국민들 염원을 저버린 특수단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검찰 스스로 드러냈다"라고 밝혔다.
이날 삭발을 한 유족들은 한 목소리로 "그동안 일관되게 검찰 수사결과를 지켜보고 미흡하면 나서겠다고 이야기해 온 문재인 정부가 이제는 답을 해야만 한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우리(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와 마찬가지로 특수단의 수사결과가 미흡하다고 판단한다면 지금 당장 권력기관이 제한 없이 조사와 수사에 임하도록 지시하고 책임지겠다는 것을 문 대통령 스스로 직접 표명하고 약속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416연대 세월호 유가족 고 김시연 학생 어머니 윤경희, 고 권순범 학생 어머니 최지영씨, 고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씨의 삭발 전 후의 모습. ⓒ 이희훈
이를 위해 세월호 참사 희생학생 가족들은 23일 오후 '세월호 참사 7주기까지 성역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책임이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피켓을 들고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시민들과 함께 피케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25일부터는 매일 저녁 청와대 앞에서 촛불을 들 것이라고 예고했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21일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열린 가처분으로 노조 탄압 LG 규탄, 청소노동자 고용 승계 촉구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2021.01.20ⓒ김철수 기자
80여명의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가 집단해고된 사태가 풀리지 않고 있다. LG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LG가 100% 지분을 가진 LG트윈타워 건물 관리업체 S&I코퍼레이션’과 ‘구광모 LG 회장 고모들이 소유하고 배당금을 챙겼던 파견업체 지수INC’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LG는 전혀 관련 없다는 듯 아무런 반응조차 안 한다. 해고 자체는 파견업체에서 벌어진 일이니, LG와 관련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LG의 계산처럼 흘러갈까. 홍익대 청소·경비 노동자 집단해고 때부터 알게 모르게 반복되어온 파견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손쉬운 해고를 우리사회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① 10여년 반복된 노조파괴 공식 ‘노조결성→파견업체 계약 중단→집단해고’
직접고용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관련 없다는 태도부터 농성 행위마다 돈을 뜯어내겠다는 것까지 모든 면면이 부도덕한 기업의 행태와 같았다.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에 대해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크게 분노하고 있다. 110여개 서울지역 풀뿌리단체에 이어 60여개 학생·청년 단체까지 불매운동에 나섰다. 심지어 일본 불매운동을 연상케 하는 ‘NO LG’ 문구까지 등장했다. 이같이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크게 반응하는 이유는 LG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탓도 있지만, 단순히 그렇지만도 않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비판받아 왔던 기업들이 벌인 전형적인 ‘합법을 가장한 집단해고·노조파괴 공식’을 대한민국 4대 재벌 대기업 LG가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는 파견노동자들이 노조를 세우고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면, 파견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방법으로 손쉽게 집단해고·노조파괴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2011년 홍익대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가 가장 대표적이다. 당시 집단해고 사태를 겪었던 박진국 홍익대 경비노동자는 2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도 노조 출범 두 달 만에 용역회사와 홍익대가 재계약을 안 하면서 오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됐었다”라며 “우린 농성 중인데, 한쪽에서는 신규채용해서 교육하고 있고. 지금 LG트윈타워 상황과 똑같았다. 청소노동자들 마음고생이 엄청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인화(人和·사람을 아끼고 서로 화합한다) 경영’ 등 윤리적 경영 철학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어왔던 LG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에게 온라인으로 응원과 연대를 보내는 청년 학생들ⓒ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청년·학생 모임
노조결성→계약해지→집단해고
중소기업서 10년째 반복된 노조파괴 공식
이에 편승한 재벌 대기업 LG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길게는 10년 동안 각종 부당함을 견디며 일해 왔다. “토요일에도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일했다. 토요일에는 임금도 안 받고 서비스를 해준 셈”이라는 한 청소노동자의 말처럼, 회사는 하루 일터에 머무는 시간이 10시간가량 되는 청소노동자들의 평일 근무시간을 7.5시간으로 계산했다. 5일 기준 주 40시간이 안 되게 한 후 주말에도 주말수당 없이 일을 시키기 위함이다. 요즘은 소규모 회사에서도 잘 안 하는 이른바 ‘근무시간 꺾기’다. 특수 업체가 해야 할 왁스 작업도 이들 청소노동자의 몫이었다. 지난 14일 온라인 간담회에서 박소영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LG트윈타워 분회장은 “한두 번 닦아서 (식당 바닥의) 기름때를 뺄 수 없으니 5~6번은 닦았다”며 “너무 힘들어서 ‘이곳이 수용소’인가 싶었다”라고 한탄했다.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것은 지난 2019년 9월경. 청소노동자들은 육십 평생 처음으로 권리를 찾기 위한 쟁의행동을 시작했다. 청소노동자들의 정년을 70세로 연장해달라는 요구였다. 대부분 60세 이상의 노동자이기 때문에 나온 요구였다. 그러자, 회사는 파견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형태로 집단해고했다.
LG 자회사이자 LG트윈타워 건물 관리업체인 S&I코퍼레이션(S&I)은 1월 1일부로 청소노동자 80여명을 집단해고하면서도 당당했다. S&I는 언론에 “LG트윈타워 입주업체 조사에서 청소 서비스 만족도가 낮게 나왔기 때문에 파견업체를 바꿔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청소노동자들이 노조 결성 후 1년 동안 농성하느라 서비스에 신경을 안 썼기 때문에 본인들은 어쩔 수 없이 파견업체(지수INC)와의 계약을 해지했다는 설명이다. 피해자는 청소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뉘앙스가 담긴 설명이다.
S&I는 청소노동자 80여명이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파견업체 변경’을 진행하면서도, 고용승계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새로운 파견업체를 선정했고, 신규채용이 진행됐다. 사실상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시끄러워지자 파견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방법으로 전부 해고한 뒤 군말 없이 일만 할 청소노동자들을 구한 것이다.
“다른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전환 배치하겠다”는 방안은 집단해고로 논란이 된 뒤에서야 나왔다. 물론 이 또한 10년 동안 일하며 정든 일터를 떠나야 하고, 조합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노조가 와해된다는 문제가 있다.
S&I는 직접적인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방식으로 집단해고해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본 것으로 보인다. 용역·파견 업체 계약해지를 통한 집단해고가 한국사회에서 통상 벌어졌던 일이기 때문이다.
2011년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 170명도 똑같은 시나리오대로 집단해고를 당한 바 있다. 당시에도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자, 홍익대는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해고했다. 심지어 이후 해고된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사 측이 보여준 대응 방식까지 LG와 홍익대는 빼닮았다. S&I는 법원에 농성 행위 1회당 200만원을 지급하게 해야 한다며 업무방해 금지 등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는데, 10년 전 홍익대 또한 같은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농성을 방해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업장에서 같은 방식의 집단해고가 벌어졌다.
W사 상담사들이 23일 W사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2020년 11월 23일.ⓒ서비스일반노조 제공
지난해 6~8월에 벌어진 한동대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건도 비슷했다. 한동대도 재정적자를 이유로 들며, 청소용역업체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30여명의 청소노동자를 해고했다. 지난해 공기청정기 등 생활가전제품을 생산·판매하는 위닉스에서 일하던 콜센터 상담사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쫓겨났다. 상담사들이 노조를 결성해 단체협상 등을 요구하자, 원청인 위닉스는 “실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위탁업체인 메타넷엠플랫폼과의 계약을 종료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130여명도 2017년 같은 시나리오로 일자리를 잃었다. 하청업체 HTRC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교섭을 요구하자, 원청 만도헬라는 HTRC와의 계약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최근 동강병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병원 영양실 조리원들이 갑질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고 문제제기를 시작하니, 병원은 위탁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방법으로 조리원 28명을 집단해고했다. 이 때문에, 보건의료노조는 조리원 집단해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동강병원 및 새 위탁업체를 상대로 ‘총력투쟁’을 선포했다.
이같이 다수의 사용자는 아무런 도덕적·법률적 부담 없이 10여년째 똑같은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용자들이 파견업체 노동자 집단해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여부 등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민주노총·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서비스연맹 법률원,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등 노동법률단체는 지난 19일 의견서를 통해 “LG 측이 주장하는 ‘도급관계’를 전제하더라도 S&I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상의 사용자로서 지위가 인정된다”며 노조법상 사용자는 반드시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고 지적했다.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와 관련해 LG 자회사 S&I도, 그리고 LG도 책임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법원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건을 단순히 업체 간 계약해지 건으로 보지 않고 있다. LG 측이 제기한 업무방해 금지 등 가처분 신청에서,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이 사건 건물의 청소에 관한 도급인인 채권자(S&I)는 수급인인 지수INC를 통해 지수INC의 근로자인 채무자(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가 제공한 근로의 결과를 향유했고, 이를 통해 LG로부터 수탁한 업무를 수행했다”며, S&I가 노조법 제38조 제1항의 ‘쟁의행위와 관계없는 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짚었다.
S&I가 청소노동자들을 고용한 직접적인 사용자는 아니지만, 노동자들이 농성하는 이유와 관련 있다고 본 것이다.
22일 종합일간지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택배 노사 과로사 대책 합의, 공수처 출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언론은 바이든 취임을 일제히 1면에 배치하고 통합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택배 노사의 과로사 관련 대책 합의에서, 기존에 문제가 됐던 분류작업은 택배사가 책임지기로 했다. 택배노조는 예정됐던 파업을 철화했다.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택배가 느려지고 비싸질 것이라고부터 짚었다. 공수처가 출범에 신문들은 중립적인 인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트럼프 지우기’ 평가 공통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취임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연설에서 통합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리나라 역사에서 지금 우리가 직면한 것보다 큰 도전과 고난의 시절은 거의 없었다”며 “이제 정치적 극단주의, 백인 우월주의, 국내 테러리즘의 부상과 대결하고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수단으로 ‘통합’을 주창했다.
22일 한국의 주요 일간지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소식을 대부분 1면 탑기사로 보도했다. 경향신문 “바이든 ‘민주주의와 통합의 미국’ 선언” (1면 탑), 국민일보 “바이든 ‘기후협약, WHO복귀 첫 행정명령은 트럼프 지우기”(1면), 동아일보 “바이든 ‘동맹 복원, 전세계 이끌겠다’”(1면 탑), 서울신문 “‘민주주의의 승리’ 통합의 미국이 돌아왔다” (1면 탑), 세계일보 “바이든 ‘동맹 복원, 전 세계 다시 관여’”(1면 탑), 조선일보 “민주주의가 돌아왔다, 안으론 통합 밖으론 동맹”(1면 탑), 중앙일보 “바이든 ‘화합 취임사, 링컨을 소환했다’” (1면), 한겨레 “분열의 미국 앞 ‘내 영혼 다 쏟아 통합’”(1면 탑), 한국일보 “미국이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1면 탑) 기사들이 배치됐다.
▲1월22일 1면.
조선일보 1면은 “바이든 대통령은 약 20분간의 연설에서 ‘우리(we)’를 106번, ‘통합’과 ‘통합하는 것(uniting)‘ 등의 단어를 11번 말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의 첫 업무를 두고 ‘트럼프 지우기’란 평가가 공통적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 15건의 행정명령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 재가입, 세계보건기구(WHO) 재가입, 연방건물과 부지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 일부 이슬람 국가 이민·여행금지 해제,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중단 등이었다.
경향신문 1면 기사는 “‘트럼프 지우기’를 통한 미국 재설정 작업이 시작됐다”고 보도했고 조선일보는 “트럼프 뒤집기”라고 썼다. 국민일보도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의 입법 없이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인 행정명령을 활용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요 정책들을 즉각적으로 폐기했다”고 전했다.
한편, 한겨레는 1면 기사에서 바이든 취임식을 전하며 “이날 취임식에서 한껏 통합을 말한 뒤 백악관으로 걸어 들어가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CNN 기자가 소리쳐 던진 질문은 ‘미국을 통합할 수 있습니까?’였다”며 상징적인 장면을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을 말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어리석은 환상처럼 들릴 수 있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22일 한국일보 1면.
바이든 취임과 관련한 사설에서는 특히 바이든 시대가 한국에 미칠 영향과, 중국과의 관계를 짚은 글들이 많았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무엇보다도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그의 대외정책 성패를 좌우할 최대 난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대중 압박을 강화할 경우 무역전쟁뿐 아니라 남중국해에서의 무력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최소한 대중국 강경론만큼은 트럼프 외교 기조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요구는 트럼프 행정부 때보다 장기적이고 집요할 수 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트럼프 정부 때의 보호무역 기조가 자유무역으로 전환되면 한국 수출 증가율이 2.2%포인트, 성장률은 0.4%포인트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며 “반면 강력한 대중 견제정책 계승을 공언한 건 우리에게 큰 부담”이라고 전했다.
택배업계, 과로사 방지 방안 합의…조선일보는 “택배비 오를듯”
택배업계 노사가 21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방안에 합의했다. 합의안에는 일명 ‘까대기’라 불리는 택배 분류작업에 대한 택배사 책임을 명시했다. 또한 주 최대 노동시간을 60시간, 심야배송을 오후 9시까지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21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는 ‘과로사 대책 1차 합의문’을 도출했다. 택배사는 분류작업 설비 자동화를 추진하고, 불가피하게 택배노동자가 분류작업을 하는 경우 수수료를 지급하도록 했다.
▲22일 경향신문 1면.
택배 노조는 “이번 합의는 택배가 도입되고 28년 동안 분류작업이라는 공짜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택배노동자들이 (공짜 노동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날로 요약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한겨레, 한국일보가 해당 이슈를 1면에 배치했다.
▲22일 서울신문 2면.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겨레, 한국일보가 합의문과 관련한 내용을 중점으로 전했다면 조선일보는 합의문 내용을 전하면서 제목을 “심야에 배송금지 택배비용 오를 듯”이라고 썼다. 조선일보 온라인 기사 제목은 “심야 배송 금지…택배 늦어지고 비용은 오를 듯”이었다. 첫문장은 “당일 배송, 총알 배송 등 싸고 빠르기로 유명한 국내 택배 서비스가 앞으로 더 느려지고 비싸질 전망”이라고 썼다.
▲22일 조선일보 1면.
반면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과로사 주범이고, ‘공짜노동’ 시비가 이어진 분류작업이 택배노동자 업무에서 제외됐다”며 “설 특수기를 앞두고 노사 쟁점이던 분류작업 문제를 사회적 합의로 매듭지은 것은 시의적절하고 의미가 크다”고 썼다. 택배 가격과 관련해서는 “소비자가 내는 택배비(수수료)가 늘어날 수 있지만, 언택트 시대에 이익이 급증한 택배업계와 정부가 그 부담을 최대한 나눠 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공수처 출범에 신문들 중립성 갖춘 인사 강조
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공식 출범했다.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권력형 비리 전담기구로 검찰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은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취임식을 열고 “주권자인 국민 앞에서 결코 오만한 권력이 되지 않겠다”면서 “항상 겸손하게 절제하며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 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가장 중요한 덕목은 중립성과 독립성”이라고 전했다.
공수처는 공수처장과 차장 각 1명을 포함해 검사 25명, 수사관 40명, 행정직원 20명으로 구성된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는 1면에 공수처 출범 소식을 다뤘다.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는 공수처 출범 소식을 1면에 다루지 않았다.
▲22일 국민일보 1면.
사설로 공수처 출범을 다룬 종합 일간지는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였다. 모두 공수처의 ‘중립성’을 강조했지만 동아일보나 세계일보는 친정부 인사가 공수처로 임명되는 것을 우려했고 서울신문은 정치권이 지목하는 1호 수사 대상자를 특정해선 안된다고 썼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공수처의 중립을 강조하며 “23명의 검사 선발도 중립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썼다. 이어 “지난해 법 개정을 통해 수사나 조사 실무 경험이 없어도 변호사 경력 7년만 있으면 검사로 임명할 수 있도록 자격 요건이 대폭 완화됐다”며 “전문성이 부족한 친정부 성향 변호사들이 대거 검사로 임명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라고 전했다.
세계일보도 “7명으로 구성되는 검사 인사위원회에 야당 추천 몫 2명이 있지만 여당 입김이 좌지우지할 게 뻔하다. 벌써부터 공수처 운영의 실권을 쥘 차장에 친정부 성향의 비검찰 인사가 내정됐다는 말까지 들린다”며 “검사 출신이 절반을 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악용해 민변 등 특정 단체 출신이 득세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썼다.
서울신문은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 정치적 중립 꼭 지켜라”라는 사설에서 “상징성을 앞세워 정치권이 지목하는 1호 수사 대상자를 특정해서도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독립성과 정치적인 중립성을 지켜 나가는 일”이라고 썼다.
1월 20일(현지 시각) 바이든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정치적 이단아를 권좌에서 몰아낸 미국은 과연 이전과 같은 패권을 회복할 수 있을까? 미중관계는 어떻게 진전될 것이며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의 앞날은 어떻게 전개될까?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미국 전문가인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바이든 정부 출범을 계기로 향후 미국 패권의 향방과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미래를 조망해 봤다. 구체적으로 바이든 집권의 의미, 트럼프 집권과 퇴장의 의미, 미중 관계와 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전망 등 세 분야에 걸쳐 알아봤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후 전화 인터뷰 등을 통해 내용을 보완했다.
프레시안 :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관련해 국내에서의 관심은 트럼프 행정부 때 시작됐다가 중단된 북핵 문제 해결 및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과연 언제 어떻게 재개될 것인가, 그리고 향후 바이든 행정부가 미중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아닌가 싶다.
이혜정 : 바이든 행정부의 최대 과제는 동맹 복원과 패권 회복인데, 결국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대내적으로는 중산층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부상을 일정하게 견제하는 한편 동맹과의 경제적 연계와 이익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극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코로나로 인해 미국의 경제위기가 매우 악화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바이든은 대선 승리 연설 등에서 코로나19, 경제위기, 인종 갈등, 기후 위기 등 4대 과제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취임 직후의 최우선 과제는 코로나, 경제 위기 등 국내 문제 해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1조 9천억 달러의 코로나 지원금 발표는 이러한 대응의 일환이다.
대중국 정책이 대외정책의 최우선 과제인 것은 분명하고 중국에 대해 강경하게 한다는 게 미국 내 합의인 것 같다.
프레시안 : 대중국 견제는 2011년 말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때부터 나오던 것 아닌가?
이혜정 : 그렇긴 한데 오바마는 공식적으로 중국 부상을 환영하며,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즉 기존 관여 전략의 연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정도 여유가 없다.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은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신냉전-대결정책에는 반대하지만 핵 비확산과 기후변화 등에서는 중국과 협력하면서도 전략적 경쟁은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 때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입안했고 바이든 행정부에 신설되는 인도‧태평양 정책조정관으로 임명될 것으로 알려진 커트 캠벨이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의 입장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 대중정책의 방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는 오바마 이전의 대중 관여나 트럼프 행정부의 대결 정책 둘 다 문제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트럼프 때 훼손된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복원해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에 대응하며, 중국과는 사안 별로 협력과 경쟁을 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전략적 경쟁론이다.
그는 2018년 <포린어페어즈> 3/4월호 기고문에서 그동안 미국이 중국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에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즉 중국을 세계경제에 참여시켜 중국경제가 발전하게 되면 중국 정치가 민주화되고 개방적 경제체제로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이는 헛된 희망이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대중국 관여 전략이 미국의 기대와 달리 중국의 민주화와 평화적 부상을 견인하는 데 실패했다고 선언한 데 이어, 트럼프의 대중국 무역 공세가 한창이던 2019년에는 파국은 회피하고 기후변화 등에서는 협력하면서 안보, 기술, 무역 등의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을 주창했으며, 2020년에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중국의 공세적인 대외정책이 더욱 분명해져서 트럼프 행정부가 포기한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 복원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미국에는 전통적 관여, 전략적 경쟁론 외에 중국의 비자유주의적 체제 자체가 문제이므로 전면적인 대결을 통해 체제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대결론자들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탈패권을 주창하는 민주당 진보파의 입장이 있다. 중국, 미국 모두 노동자 착취하니까 그 게임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군사주의, 자본주의의 플롯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입장은 여전히 소수다. 즉 주류에는 관여, 대결, 경쟁의 세 입장이 있는데 바이든은 경쟁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하지만 대결과 경쟁이라는 게 그 경계가 좀 애매하지 않나?
이혜정 : 민주당 주류도 공화당의 '체제 경쟁'까지는 아니더라도 반중 정서가 있다. 혐중, 반중 정서는 분명해 보인다. 또 기존의 관여정책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도 분명하다. 증거는 존 케리에 대한 공격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을 기후문제 특사로 기용했다. 그런데 중국과 체제 경쟁까지는 아니지만 전략적 경쟁을 주장하는 신주류에서 존 케리를 불러들인다는 것은 경쟁보다 협력이 우선될 위험이 있다면서 케리 기용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인도‧태평양 조정관으로 내정된 커트 캠벨의 대중국 전략을 예상할 수 있나?
이혜정 : 좋은 자료가 있다. 2020년 1월 발간된 미국신안보센터(CNAS)의 <중국의 도전에 대한 대응(Rising to the China Challenge: Renewing American Competitiveness in the Indo-pacific)>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국의 도전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지를 검토해 달라는 미 의회의 의뢰로 작성된 것으로 CNAS는 캠벨이 2007년 설립한 싱크탱크다. 이 보고서 작업은 엘리 래트너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래트너는 캠벨과 함게 기존 대중 관여 정책을 비판한 인물이고 바이든 행정부 대중정책 실무책임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일관성이 없고 조율되지 않았으며 자원 투입이 부족했다고 평가하면서, 다음 6가지 평가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는 향후 바이든 행정부 대중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볼 수도 있다.
첫째, 중국 문제는 현재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미국 외교 전반을 조직하는 원칙이 돼야 한다.
둘째, 군사, 기술, 외교, 이념, 거버넌스, 인적 자원 개발 등 모든 영역에서 포괄적이고 조율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셋째, 미국 자신의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넷째, 동맹과 함께, 동맹을 위해 중국과 경쟁해야 한다.
다섯째, 중국의 도전에 대한 대응을 넘어 새로운 규칙과 제도 등 새로운 지역 질서를 적극적으로 창출해야 한다.
여섯째, 중국 문제의 단기적 해법은 없고 미 국민의 일정한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좋은 얘긴데, 문제는 미국의 능력과 실천 가능성이다. 예컨대 미국의 경쟁력 제고야말로 가장 근본적 해결책이지만, 코로나19 이후 미중의 국력 격차는 더욱 급속히 좁혀지고 있다. 대중 무역이 1순위인 나라가 더 많아졌다.
중국이 '쌍순환'과 기술 자립, 군사력 강화 등의 경제개발계획을 확정하는 동안 미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코로나19가 창궐하고 대선 불복으로 정권 교체가 늦어지고 있었다.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려면 첨단기술에 투자하고 해외 브레인들 모으고 해야 하는데, 백인우월주의와 반이민 정서가 끓어오르는 판국에 누가 미국에 가려 하겠나?
또 하나, '동맹과 함께, 동맹을 위해 중국과 경쟁'한다는 건 동맹의 참여로, 동맹에도 이익이 되는 대중 경쟁을 하겠다는 건데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반중연합을 만들려면 동맹에게 뭔가를 주어야 한다. 미국 편에 설 경우 확보할 이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보고서가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에 대해 가했던 가장 대표적 비판은 다른 국가들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미국의 반(反)중국 연합 참여를 강요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들에게 중국 화웨이의 5G 통신 장비를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게 가능하려면 화웨이를 대체할 수 있는 걸 동맹에 줘야 한다. 반대급부는 하나도 없이 화웨이를 쓰지 말라고만 하면 어쩌라는 것인가? 화웨이에 대체되는 대안적 기술 체계를 공동으로 개발하자는 이야기를 한 적도 없다. 이렇게 강압만 하면 당연히 반중 전선을 형성하기 어렵다.
미중 경제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그동안 중국과의 경제 협력으로 이익을 보았던 동맹국이나 미국의 금융, 정보, 유통 대기업들에게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 내에서 이를 아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중국과 경쟁 영역을 줄이고 동맹국과는 사안 별로 연합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캠벨의 경우 중국과 통신기술이나 AI 분야 등에서만 싸우자는 건데, 설사 그렇다고 해도 동맹국들이 중국에 등을 지고 미국을 택할 경우 미국이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이냐는 질문이 남는다.
빅터 차 같은 사람은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 보복했을 때 미국이 한국을 보호해주지 못했다면서, 향후 미중 갈등이 벌어졌을 때 한국을 끌어들일 수 있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호주는 신장, 홍콩, 대만 문제 등에 대해 중국을 비판했다가 중국으로부터 혹독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데 미국이 그 피해를 보상해 줬나.
한국에서는 미국이 미중 경쟁에서 대단한 묘수를 내놓을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실제 미국 안에서 나온 논의를 들여다보면 중국과의 탈동조화에 대한 미국의 대안이 거의 없다. 미국은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이다.
미국과 거래하며 먹고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사안별 협력 방식이 선호될 것이다. 그런데 이는 그 정도로 미국의 힘이 약화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적어도 담론과 정책을 취하는 방식에서 판단하자면 그렇다. 거꾸로 보면 미국이 그 정도로 자신이 없어졌다는 것이기도 하다.
▲ 20일(현지 시각) 미 의회 의사당앞에서 열린 46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조 바이든(왼쪽) 신임 대통령이 부인 질 바이든이 들고 있는 성경에 손을 올린 채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 복원을 통해 확고한 진영을 다질 것이기 때문에 미국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 미국 안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가 남긴 역설적인 두 가지 교훈이 있는데 첫 번째는 중동에서 금기라고 돼 있었던 이스라엘 주재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두 번째는 동맹으로부터 미군 주둔 비용 뜯어내는 것이다. 둘 다 하면 난리 날 줄 알았는데 막상 중동은 뒤집어지지 않았고 동맹들도 드러내놓고 미국에 불만을 표시하지 못했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별 반발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밀어붙여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반면 또 다른 교훈은 미국이 지도력을 행사해야 국제사회가 안정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는데, 그렇다면 미국 패권을 부정하고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웠던 트럼프 재임 기간이 국제적 혼돈 상태였나?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하면서 국제법 체계를 망가뜨리고 전 세계를 뒤집어 놓은 것과 비교하면, 트럼프 주장처럼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것은 그의 치적이고 그런 불개입정책으로 오히려 전 세계가 안정된 측면이 있다.
파리 기후 협정은 미국이 없어서 안했나? 이건 미국의 지분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의 지분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에 대해서 무엇을 하든 미국이 경제적 레버리지를 뒤집지 못하는 한 미국의 영향력은 떨어진다.
그러한 객관적 상황에서는 중국의 힘을 인정하고 꼭 막아야 할 곳은 막고 나머지는 냉전시대와 같은 진영이 아니라 임시방편의 사안별 연합과 최소한의 민주주의 동맹을 통해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 캠벨이 <포린 어페어즈>에 발표한 정책 내용이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가치에 입각한 진영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미국 편승을 주장한 한국 내 입장과 결이 다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캠벨이 한국을 D-10(10대 민주국가)의 일원으로 적시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기대를 분명히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패권 경쟁이라는 게 결국은 신기술 경쟁이고 금융 패권의 문제 아닌가? 미국이 화웨이 문제에 몰두하는 것도 5G 통신이 미래의 기술 패권을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이혜정 : 기존의 경제 영역에서 미국의 힘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이 하나 있고 기술 분야는 새로운 영역이다. 그러니까 미국이 겁을 내는 거다. 신기술 분야에서는 먼저 치고 나가 선점하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금융의 경우 IMF(국제통화기금) 안에서 미국지분이 압도적이니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중국도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의 국제 금융기구를 만들어 나름대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자신들이 구축한 국제질서에 정통성(legitimacy)이 있다고 자부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자유주의적인 국제질서란 사실상 허구에 가깝다. 실제 있었던 것은 대결적 성격의 냉전질서였다. 냉전 끝나고 미국에서 하도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이야기해서 정말 그런 줄 알지만, 설사 그게 있었다고 치더라고 그것은 서유럽과의 대서양동맹에 국한되는 이야기다.
2차 대전 후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안정자인 적이 별로 없었다. 항상 미국이 분쟁을 만들어냈다. 적어도 베트남전쟁 끝날 때까지는 그랬다. 그러다가 베트남전쟁 패배로 지역 관리 능력이 부족해지니까 중국과 타협해서 안정화가 된 것이다.
그 다음에 국내 문제를 보면, 인종 문제 등 미국 체제의 본원적 위선이 있는데, 의회 난입 사건 이후 국내정치에 대해서는 일정한 반성을 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대통령 자신이 불복하고 지지자들이 의사당 난입하고 그런 것을 보면 도저히 외국에 대해 미국 민주주의를 배우라고 말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외 정책에서는 아직 미국이 국제질서를 이끌 자격이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가 일단은 중국을 몰아붙이기는 할 것이다. 중국을 손보겠다는 의지는 분명한데, 언제까지 중국의 부상을 막을 수 있을까? 1-2년 게임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최소한 다음 2024년 대선 이후에도 정책적 연속성이 있으려면 대내외적인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
정책 써클 내에서, 그리고 정책 써클과 재계, 더 넓게 보면 엘리트와 대중 들 사이에 대중정책에 대한 합의와 타협, 대외적으로 동맹들과의 타협과 합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과 경쟁과 협력의 영역과 방법 등에 대한 합의와 타협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이익과 지분을 인정해줘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정치적 이념/가치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rans-Pacific Partnership)로 대표되는, 그리고 기존 동맹 네트워크 강화의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 것과 비교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가치와 경제의 축을 무너뜨렸고 기존 동맹의 논리를 부정했다. 그 결과로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은 군사적 논리만 강조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중국 입장에서 보면 주권의 원칙에 따라 신장, 홍콩, 대만 문제 등에서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허용할 수 없다는 건데, 그럼 중국과 전쟁할 것인가? 미국 내부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더 벌어지고 국내 정치가 난리인데 미국이 대만을 놓고, 또는 미래의 군사적 우위와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과 전면전을 벌일 수 있을까?
프레시안 : 미국이 현재 가지고 있는 능력과 의도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인가?
이혜정 : 미국이 군사적으로 힘이 있긴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군사력이 모자라는 게 아니라 2008년 대침체 이후 세계자본주의 운영의 새로운 모델을 못 내놓고 있고 무엇보다도 미국 국내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정치적 대결 상태가 지속되면서 패권 유지를 위한 국내적 합의 기반이 무너졌다. 그런데도 미국은 군사력 위주의 패권 유지방식을 취하고 있다.
동맹은 기본적으로 수단이다. 미국도 동맹을 자산, 목적화한 것인데,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 보존과 동맹 자체를 목적으로 설정하면, 그에 대한 위협 요인들은 거의 무제한적으로 커져버린다. 즉 동맹을 유지하려면 미국이 일정하게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그런데 미국의 능력은 항상 모자란다. 그럼 계속 투자해야 한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대안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중산층이 공동으로 번영할 수 있는 묘책을 제시하든가, 아니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고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역할과 지위를 일정하게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이게 안 된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은 민주주의 수사를 남발하면서 실제로는 군사력을 통한 대중국 압박에 집중될 것이고 미중 간 협력의 공간은 쉽게 마련되지 않을 것이다.
대북 정책 재검토한다는 미국, 향후 대북정책 방향은
프레시안 : 북핵 문제는 어떻게 될까?
이혜정 : 국무장관 내정자인 토니 블링컨이 최근 의회 청문회 모두 발언에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예의 자신감과 미국의 리더십이 없으면 국제사회는 혼돈 상태가 된다는 주장을 이어나가서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 회견에서 공식적으로 싱가포르 선언 인정 등 한국 정부 입장을 밝혔으니 미국도 부담은 될 것이다.
▲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가 19일(현지 시각) 상원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북핵 문제는 북한이 도발하지 않는 한 바이든 행정부 정책과제에서의 우선순위는 밀릴 수밖에 없다. 지난 6일 의회 난입만 없었어도 우선순위는 경제 문제와 코로나, 그리고 새 정부 인선이었는데 여기에 의회 사건이 나오게 된 것이다. 사실 우선순위로 보면 국내정치 측면에서는 트럼프의 잔재를 치우는 게 1순위다.
미국 패권의 입장에서는 동맹 복원이 최우선이고 첫 번째는 대서양동맹이다. 미중 경쟁의 최대 우군이 유럽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중국과 유럽이 투자협정을 맺었는데 당시 제이크 설리반이 유럽에 "우리와 상의하라"라고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날렸지만 유럽이 이를 무시하고 강행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어떻든 유럽도 손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지금 유럽도 브렉시트 때문에 영국과 독일 입장이 나뉘어지고 있다. 일단 여기부터 빨리 수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이 잘 안 되는 이유가 여전히 유럽과 중동을 중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미국은 적대시 정책 철회하지 않을 것이고, 트럼프 때와 같은 탑다운 협상도 어렵고, 한국도 내년에 대통령 선거 있고, 미국 선거 때문에 1년을 기다렸는데 한국을 뭘 믿고 기다리겠나. 김정은에게 남겨진 것은 중국과 관계 개선 돼있는 것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지구적 차원에서 비확산, 반확산 체제를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북핵 이슈가 올라올 수도 있는데 이것도 힘들다. 러시아하고는 일단 핵감축조약(START2)의 시한을 1년 연장해 놓은 상태다. 반확산, 비확산 의제로 북핵 이슈가 뜨기도 힘들다.
사실 북핵 해결 방안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실제로 이를 집행할 의지가 없을 뿐이다. 지금은 북한의 체제 전환/대북 제재 만능/핵군축 타협 등으로 입장이 갈리고 있다.
북핵 해법은 핵 동결과 부분적 제재를 맞바꾸면서 단계적으로 신뢰를 쌓아가며 장기간에 걸쳐 협상하는 수밖에 없다. 전쟁은 불가능하고, 제재로 풀 수 없다면 협상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 견제도 하고 싶고 협력도 하고 싶다면, 중국 협력 이슈 중에 가장 큰 것이 북핵 문제와 기후 환경인데, 중국도 바보가 아니니까 그 협력의 대가를 바랄 것이다.
미국 쪽에 정책 처방이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중국과 북한에 대한 정책 처방이 있으면, 30년이 넘은 북핵 문제를 이렇게 방치해 뒀을까? 갑자기 새로운 정책 처방이 나오나? 결국 협상밖에 답이 없다.
빅터 차는 지난해 11월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에서 1단계로 북한이 핵물질 생산 동결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미국이 부분적으로 제재를 해제하며, 2단계로 북미 수교 등을 통해 신뢰 회복하고 마지막 단계는 핵군축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런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안을 내놓으면 한미가 난리가 나니까 이 방안에 대해 단계적인 것이라고 포장을 하자고 했는데, 이 패키지로 갈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사실 북한은 이제 핵보유국 아닌가. 그런데 미국 내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이혜정 : 북한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 입장이고 북한에 대한 정책을 하면서 한국을 중국 편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잡아두고 한미일 협력을 구축하면 나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임계점은 계속 넘어갔고, 현실적으로는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있지 않나? 전략의 기본은 목적-수단-방법인데,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는 이 기본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목표도 수단도 방법도 모두 북한의 선 비핵화만을 주장하는 것이다.
북한이 실제 핵무장 상태인데, 논리적으로 보면 무력으로 북핵을 제거하거나 제재 등 강압을 통해서 비핵화를 달성하거나 아니면 협상, 이 세 가지 방법밖에 없다. 무력-전쟁이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은 물론 지금까지 제재 국면에서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능력을 증가시켜온 점을 고려하면 무력도 강압도 작동하지 않았고 결국 현실적으로 협상 외에 해결책이 없다고 본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핵군축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는 협상과 '북핵 불용'이라는 정치적 입장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적, 정치적 능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대안은 그냥 북한 핵을 이고 사는 것이다. 이 경우 국제적, 국내적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향후 한국 외교의 방향 설정에 대해 제언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미중 대결 속에서 우리 중심을 잡고 한반도 평화를 확보하며 동아시아 지역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지.
이혜정 : 매우 거창한 질문인데 아주 간략하게 얘기하자면, 북한이 됐든 미국, 중국, 일본이 됐든 우리 주변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직시하면서 한국 입장에서 외교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이 한국 외교의 주요한 자산인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하락한 것도 분명하고 양국의 국익이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군사기술의 발달과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통합을 고려하면 한반도는 이제 지정학적 분단선이 아니라 정치체제의 분단선이다. 남북, 한중의 공존과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는 가치와 이익의 조화에 대한 고민과 전략이 필요한 것이지, 오직 가치에 따른 냉전식 진영 논리를 전부가 돼서는 곤란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와 동맹을 강조하고 있는데, 민주주의를 이견을 제시할 권리라고 본다면 민주주의 동맹은 동맹의 논리에 민주주의를 복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동맹 자체의 목적과 운영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국익과 민주주의에 따른 한미 동맹의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끝)
최근 개신교 선교단체 인터콥의 본부인 경북 상주 BTJ열방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지난해 신천지와 사랑제일교회에 이은 세 번째다. 특히 인터콥의 최바울 대표는 코로나19 관련 음모론을 언급해 방역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인터콥은 어떤 단체고 최바울 대표가 음모론을 퍼뜨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듣고자 지난 18일 가짜뉴스 모니터링 등을 하는 평화나무의 권지연 뉴스센터장을 전화로 연결해 들어보았다. 다음은 권 센터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개신교 선교단체 인터콥의 본부로 알려진 BTJ 열방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일어나면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 현재 상황 어떻게 보고 계세요?
"사실 걱정스럽죠. 왜냐면 이게 한 교회가 아니라 선교단체잖아요.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고, 또 그 사람들이 다시 본인들이 거주하는 지역, 교회로 흩어지게 되는 거잖아요. 인터콥이 이단으로 결의되지는 않았지만, 교단마다 '참여 금지', '교류 금지' 이런 결의를 한 곳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몰래 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면 몰래 간 분들은 인터콥에 갔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할 수도 있어서 신천지 발 코로나19 당시와 비슷한 양상도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인터콥에서 사과문도 내고 검사도 받으라고 당부하는 메시지를 냈다고는 하지만, 실상 당국의 조사를 대비하기 위해서 휴대폰도 끄고 동선을 숨기는 일도 벌어졌고 인터콥 차원에서도 역학조사에 협조하지는 않잖아요."
- 왜 핸드폰을 끄라고까지 했을까요?
"인터콥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교단 총회 때 거론됐던 단체였습니다. 신학적으로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이라든지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이원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다 보니까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예수님의 재림, 종말 이런 데만 매몰돼서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콥의 'BTJ열방센터'에서 'BTJ'가 바로 'Back To Jerusalem'의 약자입니다. 복음이 서진해서 중동 이슬람권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에까지 도달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생각하는 건데요, 세상이 사탄에게 지배당하니 싸워 빼앗아야 하고, 영적 전쟁을 치름으로써 예루살렘을 회복해야 한다고 믿는 겁니다. 그래서 미전도 종족이나 모슬렘 전교에 열정을 보이고요.
그런데 세상 자체를 이분법적으로 보기 때문에 코로나도 음모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측면이 있습니다. 최바울씨가 발언해서 논란이 된 것이 '백신을 맞으면, DNA가 조작돼 노예가 된다'는 주장이었잖아요. 이런 음모론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얘기하는 것들이 신학적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고, 당연히 '백신을 맞으면 노예가 된다'고 생각하니, 방역에도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는 현상이 따라오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다른 목적이 있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이런 사상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라는 선교기구가 있습니다. 여기서 인터콥을 지도했고 계속 기회를 줬습니다. 최바울씨도 '신학 지도를 받고 잘못된 것을 고치겠다'고 했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치지 않았습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KWMA로부터 지도를 받은 후 3개월 만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발간했는데, 여기에 문제로 지적된 백투예루살렘과 극단적 종말론 사상이 담겨 있어서 이단 전문가들로부터 또 지적을 받기도 했고요. 인터콥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단 연구가들을 고소하는가 하면 협박성 내용 증명을 지속해서 발송해 왔다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이단 전문가들도 있었어요.
그런 얘기가 들리는 것을 보면, 사실상 고칠 생각은 없었다고 보이는 거죠. 게다가 최바울씨를 계속 옹호하고 두둔하는 목사들도 있었거든요. 한국교회, 대형교회의 방관 내지는 동조 속에서 성장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 대형교회가 최바울씨 키워준 면이 있다고 하셨는데 전광훈 목사도 그렇지 않나요?
"맞아요. 한국교회와 목사들의 책임이 없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온누리교회 고 하용조 목사 같은 경우 최바울씨가 낸 <세계영적도해>의 추천사를 써주기도 했고, 그 외 유명한 목사, 교수들, 할렐루야 교회 장로인 김승규 전 국정원장 같은 분들도 인터콥에 가서 강의했습니다."
- 인터콥은 선교단체잖아요. 우리나라에 선교단체가 인터콥 말고도 있잖아요. 그런데 왜 인터콥은 문제가 될까요?
"인터콥 최바울씨나 핵심 멤버들이 지난 신학 사상 때문일 텐데요, 한국에서 신앙은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가르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디서든 문제는 발생할 수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한국이 선교 대국이 되고 그러면서 많은 선교사가 강조하는 것이 '토착화'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 스며들어 함께 생활하면서 필요를 채워주고 사랑을 전해주고,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터콥은 앞서 말씀드린 신학적 문제가 있다 보니 사탄으로부터 빨리 싸워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니까 선교방식이 매우 과격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인도 사원 앞에서 땅 밟기 하면서 찬양 부르며 기도한다든지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죠. 대표적으로 2007년 분당 샘물교회 아프가니스탄 사건 때도 그 선교팀 인솔자가 인터콥 선교사였거든요."
- 인터콥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인터콥 규모는 사실상 본인들이 주장하는 건데, 2020년 기준으로 해서 선교사 1400여 명 정도로 파견했다고 합니다. 단기간 훈련받고 빠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서 그 규모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214개 이상의 전국 중·고등학교에 UBTJ(U=Youth, BTJ=Back To Jerusalem) 모임을 결성해 청소년들 속에 침투해 왔다는 정황도 드러납니다."
- 다른 선교단체와 비교했을 때 큰가요?
"선교의 영역이라는 것이 매우 방대하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현장에 선교와 연결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해외선교를 하는 단체로는 큰 규모에 속한다고 봅니다."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 세상을 음모론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 인터콥은 이번에 코로나 방역 거부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동안 비상식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들을 유도해 왔다는 목소리도 있던데 아시는 게 있으세요?
"선교활동에서의 문제점이 신학 사상에 근거했다고 볼 수 있겠고요. 사실 아프가니스탄 사건만 봐도, 이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문제일 수 있는 건데 이때만 해도 많은 교회와 목사들이 이렇게 얘기했어요.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그들의 희생으로 그 지역이 지금 얼마나 복음화됐는지 모른다'라는 말들을 저도 꽤 많이 들었거든요.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감수하는 신앙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그런데 최근 코로나 상황에서 음모론을 퍼트리고 그래서 방역에도 방해가 되는 이 상황이 반사회성으로 흐른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 그럼 나올 게 나온 거라고 보세요?
"그렇습니다. 최바울씨가 2016년에도 언론에 기고문 냈던 게 있었는데 '영국의 EU 탈퇴 원인과 전망'이라는 기고문이었어요. 여기서도 '통합주의 글로벌 엘리트들은 반동을 잠재우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러면 그들은 세대통합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다. 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바벨 재건의 문명 프로젝트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기고문 낸 게 있거든요.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 체제의 출범을 위한 사악한 지상명령은 부단히 집행되어 갈 것이라면서 음모론적인 사상을 내비쳐 왔는데, 코로나 확산과 이런 시각이 딱 맞아떨어진 거죠."
- 인터콥의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이 방역 거부와 연결된다는 주장이 있어요. 이건 어떻게 보세요?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예수의 재림시점에만 집착하도록 만든다는 폐해가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런 신학 사상이 세상을 자꾸 음모론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고요.
코로나도 사실은 세계를 정복하고 통제하려는 세력이 만든 거라고 생각하고 백신을 맞으면 그들의 노예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방역에 협조적일 수가 없죠. 예를 들자면 전광훈씨 같은 경우도 계속 정부와 맞서야 된다는 기조의 메시지를 냈잖아요. 그러다 보니 전광훈씨 추종자 중에서도 숨고 도망 다니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인 거죠."
- 인터콥의 집단감염 문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세요?
"일단 인터콥이 선교단체잖아요. 거기 훈련을 참여하거나 이런 분들이 그냥 들어가는 게 아니라 당연히 회비도 되고 본인들을 신상정보도 다 제출하고 참여했을 것이기 때문에 참가자 명단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일차적으로 방역이 중요하니까 방역 당국에서 빨리 명단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이번에 어쩌다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인터콥의 그릇된 신학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봤을 때 이 문제가 인터콥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이번 기회에 한국교회가 한번 제대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교하는 단체라는 게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교회는 선교에 대한 자긍심이 무척 크잖아요. 그러니까 간혹 선교 방식의 문제가 발생해도, 문제 자체는 안타깝지만, 그 행위는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거죠. 또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인터콥이 그래도 선교단체 중에서 제법 규모도 크고, 거기에서 유착된 목사들도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최바울씨가 겉으로는 계속 본인이 지도를 받겠다고 했으니까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온정주의 같은 것도 흘렀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또 하나 한국 정통교회 내에도 문자주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그래서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바라보는 교인들이 꽤 많다는 겁니다. 외부의 적을 형성해서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가르치고, 우리는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군사들이라고 가르치면 얼마나 사람들을 모으기 쉽겠습니까. 그래서 부흥을 염원하는 개척교회 목사들이 인터콥 신학 사상에 심취하는 경우도 많고요."
- 개신교발 집단감염은 대면 예배 문제 제외하고 신천지, 사랑제일교회에 이어 세 번째잖아요. 또 이런 문제 나올만한 단체가 있을까요?
"섣불리 얘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운영하는 기도원 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곳들을 한번 취재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미 정통교회에 소속돼 있는 분 중에서도 방역에 굉장히 불만을 가지고 거부하고 성명 내는 목사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중요한 건 이분들 이력들을 살펴보면 전광훈씨와 친분이 있거나 전광훈씨와 비슷한 메시지를 내온 분들이거든요. 말하자면 현 정부의 반감을 가지고 있는 교회, 그리고 그런 목사들이 지금 방역에 불만을 성토하면서 결집을 꾀하는 모양새를 볼 수 있습니다. 결국은 현 정부가 싫어서 방역에까지 어깃장을 내는 것 같은 모습이거든요."
- 정부 흔들려고 방역을 방해한다고 보세요?
"정말 흔들려는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러나는 결과가 그런 거죠. 한국이 사실 방역을 굉장히 K방역이라고 할 만큼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음에도 한국 정부가 대응을 너무 못했다는 식으로 계속 얘기하고, 정부가 방역을 성공적으로 하는 것조차 마음에 안 드시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행동을 하고 계신 거죠."
-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제가 최근에 방역에 '종교탄압' 주장을 하는 목사에게 '코로나 시대 교회의 역할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그건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 묻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어려운 시기에 교회의 역할을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놀랍기도 하고 개탄스러웠습니다. 한국교회가 시대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목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까 생각이 드는 거죠.
또 많은 목사님이 '예수님이란 어떻게 하실까'를 매 순간 생각하면서 행동하라고 설교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그 목사님께 '예수님이라면 코로나 시국에서 어떻게 하실까요'라고 여쭈니, '내가 예수님을 속에 들어갔다 온 것도 아니고, 그런 질문은 그런 설교를 하는 목사에게 물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어떤 문자주의적 해석을 하거나 극단적인 주장을 내세우면서 코로나 시국에서까지 사회를 어지럽히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분들이 진짜 예수 정신에 관심이 있나, 성경을 제대로 보시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 기회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고민하면서 한국교회를 한번 전체적으로 점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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