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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가짜뉴스 처벌, MB정부와 뭐가 다른가"

[인터뷰]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10.25 15:34:30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

위 조항은 이명박 정부 시절 발생한 '미네르바 사건'으로 위헌이 결정되어 폐기된 일명 '허위사실유포죄'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이 법과 닮은 '허위조작정보 유통방지법' 발의를 예고했다. 처벌 대상을 개인에서 SNS사업자로 확대했는데, 가짜뉴스의 유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허위사실유포죄'를 빼다박은 '허위조작정보 유통방지법'은 누가 허위조작정보를 판단할 것이냐는 문제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프레시안>은 2009년 당시 '미네르바 사건'의 증인으로 공판에 출석했던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나 의견을 들어봤다. 
 

▲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어떤 표현이 '허위'라고 해서 '불법'으로 규정한 법은 없다. 정부여당이 통계가 잘못됐다고 해서 혹은 허위인 사실을 유포했다고 해서 형사처벌 하는 것은 위헌으로 판결 난 '허위사실유포죄'를 적용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금융당국의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서, 금융당국의 환율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블로거 '미네르바'를 처벌하려고 했다. 그때, 소위 '허위사실유포죄'라고 명명한 법 조항을 쓰려고 했다가 그 법도 위헌 판정이 났고, 미네르바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규제자 입장에서 완패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지난 23일 민주당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특별위원회 박광온 위원장은 유튜브 측에 콘텐츠 삭제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한 사실을 밝히며 "전기통신기본법 47조에 (허위조작정보 유통방지법과) 비슷한 규정이 있는데 작동을 거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허위조작정보 유통을 실효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공적 규제의 보완 필요성을 절감했다"며 "(가짜뉴스는) 허위조작 범죄로 표현의 자유로 논란이 될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미 위헌으로 폐기된 '허위사실유포죄'가 포함됐던 전기통신기본법 47조를 근거로 공적규제의 보완 필요성을 언급했다. 민주당이 위헌이 확인된 법을 근거로 '가짜뉴스 대책'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전기통신기본법 2항은 위헌 결정이 나지 않았지만 입법취지와 내용은 비슷하다. 박경신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넓게 해석하면 2항도 위헌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47조 1항만이 위헌으로 결정 났지만 그 이유는 검찰이 '미네르바' 사건에서 그 조항만을 이용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박경신 교수는 민주당 '가짜뉴스 대책'의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의 사례도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은 이미 헌법적으로 이미 불법이라고 규정된 정보들에 대해 정보 매개자들이 책임을 지라는 것"이라며 "정부·여당은 불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정보들을 새롭게 '불법'으로 규정해서 단속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여서 적절한 모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그렇다면 '가짜뉴스'를 어떻게 해야 할까? 박 교수는 "가짜뉴스가 있다면, 가짜뉴스는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떤 뉴스가 허위라는 게 쉽게 판별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허위사실유포죄와 닮은 정부의 대책은 가짜뉴스를 지적하는 행위와 사실을 밝히는 행위도 근거가 불충분한 경우에 가짜뉴스로 처벌할 부작용이 있다"며 오히려 정부·여당의 가짜뉴스 대책이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가르는 시민들의 자정작용을 막을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25일 박경신 교수와 나눈 인터뷰 일문일답. 

"말 자체를 막는 게 공권력의 작용이어서는 안 돼" 

프레시안 : 지난 2일에는 국무총리가, 지난 16일에는 법무부 장관이 그리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까지 같이 가짜뉴스 잡기에 나섰다. 이유를 뭐라고 분석하나. 

박경신 :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평판을 저하시키는 허위정보들이 많이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단속하려는 것 같다. 최근 경제가 악화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답보상태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에 계속해서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고 정부·여당에서는 '자영업자가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계속 유통되고, 잘못된 통계가 더해져 확대되는 과정을 특별히 잡을 방법이 없으니까 정부·여당이 나서서 단속하려고 하는 것이다. 통계가 잘못됐다고 해서 혹은 허위인 사실을 유포했다고 해서 형사처벌 하는 것은 위헌 결정난 '허위사실유포죄'를 적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프레시안 : 정부·여당은 명예훼손 등 현행법에 금지된 피해를 막기 위해 가짜뉴스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경신 : 지난주 법무부 보도자료를 보면 명예훼손 등의 범죄에서 허위로 판단된 것은 고소·고발 없이도 직권 수사를 하겠다고 했다. 이런 의지의 천명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검찰이 인터넷 웹서핑을 하다가 허위정보를 발견했을 때, 고소·고발 없이 수사를 진행하면 그 수사의 수혜자는 유명한 사람이나 권력자가 된다. 검찰은 일반인이 허위사실로 명예훼손이 됐는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일반인이 어릴 때 커닝을 했는지, 안했는지 그런 정보를 꿰고 있지는 않지 않나. 사회 지도층이나 언론의 주목을 받는 사람들의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소·고발 없는 수사가 남용될 뿐이다.  

프레시안 : 민주당은 허위사실로 인한 피해가 명백하고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범죄 수준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논할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데. 

박경신 : 그 피해가 어떤 것인지 정부와 여당에 반문해야 한다. 그런 피해와 범죄 수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표현은 머릿속에 있건, 내뱉어져 있건 직접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그 표현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피해를 주는 경우가 한정 돼 있다. 그렇다면 그 피해를 단속하는 것이 공권력의 작용이어야 하지, 그 말 자체를 막는 게 공권력의 작용이어서는 안 된다. 법학계에서는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의 원리'라고 표현되는 물리적인 위험이 구현될 때만 공권력의 작용이 가능한 것이다.

 

 

▲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표현이 '허위'라고 해서 '불법'으로 규정한 법은 없다" 

프레시안 : 민주당이 가짜뉴스 대책을 설명하며 독일의 '소셜네트워크 법'을 예로 들었다. 독일은 형법에서 이미 금지하고 있는 내용의 SNS 유통을 막자는 것인데, 민주당은 이를 한국에 적용해 이미 법원, 언론 중재위 등 에서 '허위사실'로 판단된 것이 포털에 유통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이 내건 가짜뉴스 대책의 모델로 독일의 '소셜네트워크법'이 적절한가. 

박경신 : 어떤 표현이 '허위'라는 이유로 '불법'으로 규정한 법은 없다. 독일의 '소셜네트워크법'은 가짜뉴스를 불법 정보로 새로 규정한 법이 아니고, 기존의 형법에서 이미 금지된 정보들의 표현을 매개하는 소셜 네트워크 사업자들에 책임을 지우는 법이다. '허위'라는 이유로 '불법'으로 규정한 사례던 사례가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금융당국의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서, 금융당국의 환율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블로거 '미네르바'를 처벌하려고 했다. 그때, 소위 허위사실유포죄라고 명명한 법 조항을 쓰려고 했다가 그 법도 위헌 판정이 났고, 미네르바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규제자 입장에서 완패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독일은 이미 헌법적으로 이미 불법이라고 규정된 정보들에 대해 정보 매개자들이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이미 불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정보들을 새롭게 '불법'으로 규정해서 단속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여서 적절한 예시는 아니다.  

프레시안 : 민주당 가짜뉴스대책특위 위원장인 박광온 의원은 '전기통신기본법 47조'를 언급하며 이 법이 거의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전기통신법 47조의 1항은 '미네르바 사건'에 적용된 '허위사실유포죄'다. 

박경신 : 아마 민주당은 47조의 2항을 근거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위헌결정의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다. 47조 1항이 위헌으로 결정 났지만 그 이유는 검찰이 '미네르바'사건에서 그 조항만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헌재의 판결을 넓게 해석하면 2항도 위헌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봐야 한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폭동'과 같이 이미 법원에서 허위정보라고 판결이 난 사안에 대해서는 가짜뉴스 규제를 적용할 수 있는가.

박경신 : 허위라고 판명이 난 것과 불법은 다르다. 허위정보라고 할지라도 표현은 타인에게 직접적인 해를 주지 않는 한 섣불리 규제되어서는 안 된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지구평평론자들이 국제대회를 서울에서 했다. 내용으로만 따지고 보면 사회 신뢰를 더 떨어뜨릴 수 있는 정보다. 하지만 문명사회는 그런 루머에 대해 단속을 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이를 형사처벌하게 되면 칼자루를 쥔 검찰이 자신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쥔 행정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칼날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표현이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규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표현은 그 자체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효과에 대한 책임을 모두 발화자에게 물을 수 없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폭동'이라는 예시도 이 사실이 유통됐을 때 그게 어떤 피해를 줄지 명백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명제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처벌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가짜뉴스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가짜뉴스가 왜 심각한 문제가 되나"

프레시안 : 그렇다면 가짜뉴스를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와 여당의 지적처럼 SNS에서 가짜뉴스의 유통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팽배한 건 사실 아닌가. 

박경신 : 가짜뉴스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가짜뉴스가 뭔지 안다는 것이다. 가짜뉴스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가짜뉴스가 왜 심각한 문제가 되나. 어떤 뉴스가 허위라는 게 쉽게 판별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지구평평론의 국제 학회 숫자가 수십만 명이라고 해서 특별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짜뉴스 문제의 발단은 노인들이 유튜브와 카카오톡을 뒤늦게 사용하면서 그들끼리 믿고 싶은 정보만을 주고받으면서 증폭시키는 필터버블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보수언론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서 허위 통계로 경제를 왜곡하거나 하는 경우가 있을 때인데, 개인적으로 후자는 공권력이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전자는 큰 해악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가짜뉴스를 규제하고 단속할 것이 아니라 가짜뉴스를 밝혀내고, 어떠한 사실이 가짜뉴스라고 홍보를 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나 허위사실유포죄와 닮은 정부의 대책은 가짜뉴스를 지적하는 행위, 사실을 밝히는 행위도 근거가 불충분한 경우에 가짜뉴스로 처벌할 부작용이 있다. 

프레시안 : 차별금지제정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허위정보를 불법으로 규정하기보다 독일처럼 혐오 발언 등의 혐오표현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등의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경신 : 우리나라는 차별금지법 자체가 없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실 차별할 자유는 사실 인간의 중요한 자유 중에 하나다. 짜장면을 선호할지, 짬뽕을 선호할지. 연애를 할 때도 여성을 좋아할지, 남성을 좋아할지 선택해서 차별하게 된다. 매우 중요하지만 이를 내버려 두면 매우 비인간적인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문명국가의 마지노선으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것이다. 개인이 연애할 때는 어떤 성별을 좋아할지 남녀차별을 해도 되지만, 고용을 하거나, 주거를 하거나,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는 남녀를 차별하지 말라는 것과 같이 최소한의 공적인 기준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 특별법 정도가 있는데 실제로 그보다 더 넓은 분야에서 사람들이 차별당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경기도 산업단지에서 '호남사람 사절'이라는 채용공고가 있어 사회적 공분을 샀지만, 제재를 가할 근거가 없었다. 입법불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차별이 불법행위로 정해지면 이를 선동하고 조장하는 표현은 규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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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장파... '태극기'에 갇힌 김병준 비대위

[진단] 자유한국당, 2004년 오세훈·2012년 박근혜가 없다

18.10.26 07:42l최종 업데이트 18.10.26 07:42l

 

입장하는 김병준 비대위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성태 원내대표, 김용태 사무총장 등이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 입장하는 김병준 비대위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성태 원내대표, 김용태 사무총장 등이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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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이 없다."

한국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의 말이다. 여기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오 전 시장은 최근 '태극기 부대'를 통합 대상으로 언급하면서 "보수대통합 전당대회의 밀알이 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어진 설명이다.

"2004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오세훈을 말하는 거다. 오 전 시장은 그때 재선이 확실시 됐지만, 총대를 메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5·6공 인사들의 불출마까지 이끌어냈다. 인적쇄신은 그렇게 이뤄지는 거다. 그런데 지금은..."

 

이는 스스로 몸을 던져 당 쇄신을 주도할 사람이 현재 한국당에 없다는 혹평이다. 그는 그러면서 '김병준 비상대책위'가 추진중인 보수통합론도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총선과 대선, 그리고 6.13 지방선거 모두 사실상 '반(反)박근혜' 진영의 승리로 이어졌는데, 이를 뒤집기 위한 정치공학적 선택인 '통합'이 오히려 역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한국당 핵심들이 대표적인 친박 세력인 '태극기 부대'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기존의 구도만 공고히 하고 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결국, 취임 100일을 넘긴 김병준 비대위가 핵심 목표인 쇄신과 통합을 통해 향후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총평이었다.

김병준 위원장의 100일 자평 

물론, 김병준 비대위에 대해 혹평만 있는 건 아니다. 6.13 지방선거 참패 후 극심했던 당내 갈등을 비교적 잘 봉합했다는 평가도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지난 24일 한국당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를 통해 밝힌 '비대위 100일의 소회'에서 "▲ 계파갈등 해소 ▲ 새로운 비전·담론·정책·가치체계 정립 ▲ 당 운영체계 개선 ▲ 인적쇄신 등을 취임 당시 4대 과제로 생각했다"면서 앞의 2개 과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공천제도 및 지도체제, 당원 권리 확대 등을 요지로 한 당 운영체계 개선에 대해서는 "비대위 산하 소위를 두고 토론하고 있으며, 복잡한 사안이라 아직 공개는 못하고 있지만 열심히 토론하고 있다고 보고 말씀 드린다"라고 밝혔다. 인적쇄신 부분에 대해서도 "253개 당협위원장들의 사퇴를 일괄 처리하고 조직강화특위를 출범시켰고 이 일을 같이 도우면서 실사를 할 당무감사위원회도 완전히 구성이 돼 움직이고 있다, 조만간 실사를 시작할 것 같다"고만 밝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평가는 앞서 비대위 출범 전 '혁신형 비대위'를 주장하며 "의원 114명을 수술대 위에 올리겠다"던 김성태 원내대표의 공언을 감안하면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비대위 활동 마감 시점인 내년 2월 전당대회까지 가시적 성과를 내기 힘들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2004년 오세훈'은 어디에? 
 
 재선에 성공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선거사무실에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  재선에 성공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0년 6월 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선거사무실에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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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04년의 오세훈이 없다'는 앞서의 평가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물론 '2004년의 오세훈'이 특정 정치인 1명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이끌던 당 공천심사위원회는 당시 최병렬 당대표에게 불출마를 권고해 이를 관철시켰다. 오 전 시장이 공동대표로 있던 '미래연대(미래를 위한 청년연대 : 당시 당내 초·재선 소장파 모임)'도 힘을 보탰다. 이 때 함께 했던 이들이 남경필 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바른미래당 정병국·김성식 의원 등이다.

특히 소장파는 당시 '차떼기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에 휩싸였던 당을 구조하고 혁신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천막당사'를 가장 먼저 쳤던 것도 '남(경필)·원(희룡)·정(병국)' 트리오였다. 이는 17대 국회의 '새정치수요모임'으로 이어졌다. 소장파의 DNA는 18대 국회로도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 18대 총선을 앞두고 남경필·정두언·정태근 등 당시 한나라당 수도권 총선 출마자 55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8대 국회 때 새로 구성된 '민본21'도 당을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채찍질했다.

이러한 역사는 당 쇄신은 외부의 비대위나 명망가가 아닌 내부의 동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민본21'에서 활동한 정태근 전 의원도 지난 22일 KBS라디오 <열린토론>에 출연해 이 점을 지적했다. 전원책 위원이 제안한 '박근혜 끝장토론'이나 한국당 초선 의원들이 내달 초 황교안·원희룡·유승민·김태호·오세훈 등 범보수 유력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속토론회 개최 방안을 검토하는 것에 대한 쓴소리였다.

그는 "그 토론(박근혜 끝장토론)도 한 번은 하고 넘어가야지만 그것이 지금 한국당을 살릴 만한 핵심 관건인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다"며 "내부에 한국당을 바로 이끌어갈 수 있는 혁신역량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정 전 의원은 "사실 초선들이 이분들을 불러서 토론할 문제가 아니라 머리를 싸매고 앉아서 '우리의 혁신 방향은 이것이다, 앞으로 이런 인물들이 주도해서 나아가야 된다, 우리가 책임지겠다, 할 사람 없으면 나라도 총대 매겠다' 하는 게 소장 혁신세력"이라며 "흘러간 물들 다 불러 모아서 '어찌 했으면 좋겠다' 물어보는 식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방향 잘못 짚은 보수통합, 2012년 박근혜는 안 그랬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29일 오전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의 만남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2012년 10월 29일 오전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의 만남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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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통합' 혹은 '태극기 부대' 논란도 이와 연결된다. 내부 혁신·토론을 통해 형성된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저 정치공학적 목적의 '통합' 효과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김병준 비대위가 '태극기 부대'까지 통합 대상으로 명시하면서 그나마 얻을 수 있는 통합 효과가 줄어들 것이란 지적도 안팎에서 나온다.(관련기사 : 김병준 "태극기 부대 영입은 세 강화하는 것... 보수 통합해야" )

여론조사기관 윈지코리아 박시영 부대표는 24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 "지지율이 정체됐고, 인적청산을 할 엄두는 못 내고 있고, 내부 혁신동력도 안 보이기 때문에 손쉬운 카드를 선택한 것"이라며 "세력은 분명히 붙겠지만 영토가 좁아졌다, 전투력은 강해졌지만 전쟁에서는 필패하는 구도"라고 평가했다. 지금의 보수통합 방향이 '반박근혜 진영'을 더 공고히 만들 것이란 앞서의 평가와 맞닿은 얘기다.

이는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지난 19일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10월 3주차 정례조사 결과, 한국당 지지율은 13%였다. 이념 성향별로 구분했을 때, 자신을 보수라고 본 응답자의 39%, 중도라고 본 응답자의 8%, 진보라고 본 응답자의 2%가 한국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10월 16~18일 전국 성인남녀 1002명 전화조사원 인터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등을 참조)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본격화 되기 직전인 2016년 9월 2주차 한국갤럽 정례조사 당시 새누리당(현 한국당) 지지율은 34%였다. 특히 이념 성향별로 구분했을 때 자신을 보수라고 본 응답자의 60%, 중도라고 본 응답자의 26%, 진보라고 본 응답자의 11%가 한국당을 지지했다.(2016년 9월 6~8일, 전국 성인남녀 1009명 전화조사원 인터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등을 참조)

최순실 국정농단과 탄핵 정국에서 이탈한 보수·중도층의 지지를 탄핵 불복 운동을 펼치는 '태극기 부대'를 통합해 회복한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2012년 박근혜'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김종인 비상대책위'를 세워 당명과 당색을 바꾸고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를 앞세웠다. 개혁 보수·중도층을 겨냥한 이 시도는 성공했다. '반MB'를 기치로 단일화에 나섰던 야권을 상대로 2012년 총선과 대선 모두 승리했다. 1997년 총선 참패로 소멸할 뻔 했던 영국 보수당이 노동당보다 더 진보적인 세금·금융 정책을 내놓고, 기후변화·동성애 등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13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했던 사례와 유사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당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전원책 위원 등 조강특위 위원들은 지난 15일 입장문을 통해 "2012년 비대위가 '경제민주화'라는 진보주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이념과 동떨어진 '새누리당'이라는 정체불명의 당명으로 바꾸고, '보수를 버려야 한다'면서 빨간 색깔로 당색을 바꾸었을 때 한국당은 침몰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두언 전 의원은 지난 1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한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는 헌법에도 있는 가치"라며 "더군다나 그것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됐고, 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이 버텼던 큰 이유인데, 다시 그걸 비난하면서 원래대로 돌아가자? 그건 퇴행"이라고 일갈했다.(관련기사 : 전원책을 향한 정두언의 혹평 "한국당, 종 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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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특별재판부’에 경기 일으키는 이유는

[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 “삼권분립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 vs 한겨레 “사법부 불신 팽배, 공정한 재판 위해 불가피”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2018년 10월 26일 금요일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설치 법안, 한국당 반대 넘을까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사법농단 사건 재판을 담당할 특별재판부를 설치에 합의하면서 언론의 관심도 국회의 특별재판부 설치법 처리 가능성에 쏠린다.

25일 4당 원내대표가 “초유의 사법농단 사태를 공정히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부를 설치해야 한다”며 뜻을 모았지만, 한국당이 “특별재판부는 법리적으로는 위헌, 정치적으로는 야권 분열 공작”이라며 반대하고,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려면 거쳐야 하는 법제사법위원회의 위원장도 특별재판부 도입에 부정적인 여상규 한국당 의원이어서 통과가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동아일보는 “법사위를 우회하려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야 하지만 이 또한 한국당이 반대하면 쉽지 않다. 여야 4당의 의석수는 178석으로 신속처리안건 지정에 필요한 재적 의원 5분의 3(180명)에 못 미친다”며 “민중당(1명)과 친여 성향 무소속 의원(4명)이 찬성표를 던지더라도 이탈표가 나오면 법안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만 해도 김관영 원내대표가 특별재판부 도입에 합의하긴 했지만 같은 당 지상욱 의원은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당내 논의도 안 하고 원내대표가 이런 식으로 발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특별재판부 법안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동아일보는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 등 관련자들을 올해 안에 기소하려 하는 점도 변수로 꼽았다. 여야 4당으로서는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을 통과하려면 시간과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동아일보는 “다만 협상 과정에서 한국당이 요구하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를 여당이 수용하면 특별재판부 도입에 찬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 국민일보 26일자 8면
▲ 국민일보 26일자 8면
 
박근혜 사법부 ‘재판 거래’에 연루된 조선일보의 몸부림

 

박근혜 정권 양승태 사법부와 재판거래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조선일보는 여야 4당의 특별재판부 설치 입법 추진에 사활을 걸고 반대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공개된 사법농단 문건 가운데 조선일보가 연루된 것만 △(150128)상고법원 기고문 조선일보 버전(김◎◎) △(150203)조선일보 상고법원 기고문(김◎◎) △ (150203)조선일보 칼럼(이○○ 스타일) △(150330)조선일보 첩보 보고 △(150331)조선일보 기고문 △(150427)조선일보 홍보 전략 △(150504)조선일보 기사 일정 및 콘텐츠 검토 △(150506) 조선일보 방문 설명 자료 △(150920)조선일보 보도 요청 사항 등 9건이다.

조선일보는 26일자 “‘특별재판부’라니 이 나라에 혁명이라도 났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검찰이 청구한 구속 영장이 ‘죄가 안 된다’는 이유 등으로 기각되자 이번엔 정권과 여당이 앞장서서 판사를 교체하고 자기들 마음에 맞는 사람들에게 재판을 맡기겠다고 한다”면서 “삼권이 분립돼 있고, 사법부가 독립돼 있는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선례가 돼 권력이 입맛에 맞는 재판부를 만들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없다. 이야말로 진짜 사법 농단”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민주당 박주민 의원의 대표발의로 민주당과 평화당, 정의당 소속 의원 57명이 이름을 올린 법안을 보면 법원 내·외부 인사 9명(대한변호사협회·전국법원판사회의·시민사회 각각 3명)으로 특별재판부후보추천위원회를 꾸려 특별영장전담법관과 1·2심 특별재판부에 참여할 법관 후보자를 2배수로 추천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친정권 판사들이 재판을 맡게 된다’는 조선일보의 주장 자체가 과장이고 사실 왜곡이다.

 

▲ 조선일보 26일자 사설
▲ 조선일보 26일자 사설
 
또 조선일보는 “현 정권 출범 후 새 대법원장 주도 아래 전 정권 당시 재판 거래가 있었는지 조사한 결과,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이 주어진 업무 범위를 벗어나 일부 권한을 남용한 일은 있었지만 재판 거래는 없었다고 결론 냈다”며 “다른 사람도 아닌 현 정권 측 판사들이 내린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민이 현재 특별재판부 설치에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이유는 지금의 사법부가 ‘제 식구 감싸기’를 하며 사법농단 사건 수사를 가로막고 있고, 향후 공정한 재판도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된 압수수색 영장은 208건 중 185건이 기각돼 기각률은 90%였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을 분석한 결과, 지난 7월20일부터 10월4일까지 검찰이 사법농단 수사를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의 27.3%가 기각됐고, 일부 기각률은 72.7%를 기록했다.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에서 온전히 발부된 건수는 0건이었다. 

임종헌 구속영장을 기각되면 특별재판부 도입 압박 더 커질듯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여야 4당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 규명을 위한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로 한 것에 “바닥에 떨어진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초유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한국당도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일보는 “물론 국회가 법원의 재판 구성에 간섭하는 것이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있다. 1·2심을 특별재판부가 진행해도 최종심을 대법원이 맡기 때문에 실익이 없을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헌정 사상 초유의 사법농단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려면 특별재판부 설치는 불가피하다. 한국당도 공정한 재판이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에는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김성태 원내대표가 “김명수 대법원장이 자진사퇴하거나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사법부 수장 문제를 정리한 후 특별재판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법원장 진퇴 문제를 꺼내는 건 불참을 위한 변명으로 들릴 뿐”이라고 꼬집었다.

한겨레는 “일반 사건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이 90%지만, 사법농단의 경우 단 한건도 온전히 발부된 적이 없다는 점도 사법부 불신을 키웠다”면서 “사법부 태도가 지금과 같다면 특별재판부 설치는 불가피하다. 한국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특별재판부 구성에 동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동아일보 26일자 6면
▲ 동아일보 26일자 6면
 
한편 법원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 여부를 이르면 26일 밤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농단 의혹’ 수사 130일 만에 검찰이 첫 피의자 신병 확보 여부가 주목을 받으면서 여야 4당의 특별재판부 설치 법안 처리 합의에 법원은 더 큰 압박을 느끼게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민일보는 “앞서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90%,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현재 변호사)에 대한 ‘사법농단 1호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에 대한 여론은 악화됐고 정치권은 국정조사, 법관 탄핵, 특별재판부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며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내릴 경우 쏟아질 ‘제 식구 감싸기’ 비판도 법원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대목”이라고 짚었다.  

이어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원내대표가 특별재판부 설치를 위한 법안을 11월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키로 합의하면서 법원이 느끼는 압박감은 더 커졌다는 시각이 많다”면서 “법원이 임 전 차장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 특별재판부 도입 주장은 더 힘을 받게 된다. 한국당의 태도 변화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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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 길찾기, 1955년 아데나워를 기억하라

[현안진단] 가시권에 든 종전선언, 쟁점과 해법
2018.10.25 10:13:04
 

 

 

 

종전선언, 북·미 협상의 중간 착륙지점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 문제를 둘러싼 북·미 협상이 곡절을 겪고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핵심에 다가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초기 조치(Front Loading), 신고(Decleration)와 시간표(Timetable) 등 쟁점마다 삐걱거렸지만 쟁점을 옮겨가면서 협상은 이어지고 있다. 조마조마한 밀고 당기기 속에서도 타협이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타협의 접점에는 앞으로 명칭이야 어떻게 붙이든지 종전선언이 있다. 

명칭 때문에 오도될 수도 있으나, 종전선언은 이제 전쟁을 종료시킨다는 과거적 의미보다는 북·미간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해 출발한다는 미래적 의미가 훨씬 강하다. 이는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앞으로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종전선언은 핵무장을 완성했다는 북한에게 비핵화 명분을 주면서 제재완화와 체제보장을 원하는 북한에게 상응조치에 대한 신뢰를 높이면서 비핵화의 역주행을 자제케 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종전선언은 장차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문제나 유엔사 문제 등과 연결되는 평화협정 논의로도 이어질 수 있는 점에서 북한에게는 솔깃한 제안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에서, 일부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 종전선언은 시기상조라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그간 종전선언과 비핵화 조치의 선후문제, 종전선언에 중국을 포함할지 여부, 평화협정과는 어떻게 연관 지을지에 대한 논쟁과 논란이 치열하였다. 

지금은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이견이 어느 정도 좁혀지고 있다. 종전선언의 성격이 정치적 선언이고 이로 인해 동북아 안보지형이 달라지지도 않으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없이 평화협정이나 북·미 수교는 없다는 것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의 접점에 종전선언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 지난 7일 북한에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국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북미 간 현안을 논의했다. ⓒ폼페이오 트위터


종전선언 발상의 배경과 논의 경과 

종전선언을 북핵문제와 관련지어 처음 화두에 올린 사람은 부시 대통령이다. 2006년 11월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여기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포기 대가로 공식적으로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 때는 북한이 첫 핵실험(2006.10)을 강행한 직후였다. 

부시 대통령은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을 명백히 구분하지 않았다. 북한 핵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평화문제를 북한의 핵포기 대가로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노무현 정부는 종전선언을 평화협정과 분리하여 비핵화 완료 전에라도 비핵화 과정을 추동하는 협상 카드로 쓰겠다는 구상을 수립했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과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 한반도에서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을 추진한다고 합의했다. 영변 핵시설의 가동중단과 상당한 정도의 불능화 조치를 취했지만, 마지막 단계인 핵폐기에서 주저하던 북한에게 체제안전을 정치적으로 보장하여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판단이 담긴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10.4선언'을 주도한 노무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대북 강경입장을 가진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장기간 공전하면서 종전선언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기회가 없어졌고, 내외여론의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그것을 10년 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꺼내 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연내 종전선언 추진에 합의했다. 5월 22일 워싱턴에서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종전선언에 동의하였고, 곧이어 6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판문점선언을 확인하며 여기에 합세했다.

협상을 하면서 종전선언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지만, 그럼에도 종전선언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거쳐야 할 통과지점으로 굳어졌다

종전선언 쟁점의 해소와 아데나워 방식의 채용 

종전선언과 관련하여 그동안 대두된 쟁점을 보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비핵화 조치와의 선후 문제다. 종전선언을 완전한 비핵화와 연계되어 있는 평화협정과 분리하면 사실 선후문제는 그다지 중요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다만 비핵화 과정의 어디서 종전선언을 하느냐는 어려운 문제지만 타협 정신을 발휘한다면 해결이 가능하다.

평화연구원은 196호 현안진단을 통해 북한이 미국의 핵무기 일부의 조기폐기(Front Loading) 요구를 받아들이고, 미국도 종전선언을 수용할 것을 제안했고, 비핵화 협상도 그런 방향에서 타결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둘째, 중국의 참여 문제인데, 이는 지난 9월 12일 시진핑 주석이 당면한 한반도문제의 당사자가 남·북·미 3자임을 인정하면서 쉽게 풀릴 수 있게 되었다. 평양 공동선언에서 사실상 남북이 종전을 선언했으므로, 이제 북·미간에 종전을 선언하면 종전선언의 핵심은 완성되는 셈이다. 

셋째, 평화협정 과정과의 연계 문제다. 전쟁을 종료하고 평화를 회복하려면 전쟁 배상, 전범자 처벌, 점령지 반환과 경계선 등의 조건이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일 공동선언과 한·중 수교공동선언처럼 영토문제나 종전·평화협정과 같은 어려운 문제를 미루고 관계 정상화를 먼저 하기도 한다. 

서독의 아데나워 수상은 할슈타인 원칙을 내세워 동독과 수교한 나라와는 국교를 정상화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1955년 9월 동독과 수교한 소련과 국교를 정상화했고, 당시까지 해결되지 않았던 양국 국경 문제는 추후 평화협정 때까지 미루었다. 같은 날, 일본과 소련의 런던 평화협상은 결렬되었는데 소련이 영토라고 주장한 쿠릴열도(일본명 북방도서) 때문이었다.

일본도 결국에는 1956년 아데나워 방식을 채용한 소·일 공동선언을 통해 영토문제(점령지 반환)를 후일로 미루고 소련과 종전을 선언하고 수교하였다. 하지만 영토문제로 인해 아직 평화조약을 체결하지는 않았다. 

북·미간의 종전선언도 아데나워 방식의 원용이 가능하다. 한반도의 평화와 전쟁재발 방지를 위해 해결되기 어렵고 우려가 따르는 많은 부분은 평화협정 체결 시로 미루고 비핵화와 북·미 관계개선 지향에만 초점을 맞춘 내용이면 충분하다. 결국 현 상황에서 종전선언의 핵심 포인트는 70년 가까이 휴지상태에 있어왔던 전쟁을 깔끔하게 끝낸다는 의미보다는,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반도에 평화를 확고히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데 의의가 있다.

앞으로 남·북·미 3자가 동의한 종전선언이 채택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상징적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촉진하게 될 것이고 북·미관계의 실질적인 개선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구상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한반도의 냉전구조가 역사 속으로 묻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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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박근혜 청, 갑질 근절·대체휴일을 “과잉 경제민주화”

등록 :2018-10-25 09:41수정 :2018-10-25 10:09

 

 

[박근혜 청와대 ‘캐비닛 문건’, 문을 열다 ③]
2013년 5월 남양유업 직원 ‘갑질’ 사회 문제 될 때
대리점거래공정화법률 등에 ‘유사·과잉 경제민주화법안’ 딱지
국회 입법 막으려 정부 부도 “행정입법 선제적 추진”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한겨레 자료 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한겨레 자료 사진.

 

 

<한겨레>는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가기록원에서 확보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대통령 주관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 비서실장 주관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 자료 등 이른바 ‘캐비닛 문건’을 여러 건 입수했다. ‘캐비닛 문건’은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청와대에 방치된 채로 발견된 이전 정부 문건들을 일컫는 말이다. <한겨레>는 이재정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1000여건이 훌쩍 넘는 문서들을 분류하고 분석해 연속으로 보도한다.

 

 

경제민주화 공약을 걸고 출범했던 박근혜 청와대가 출범한 지 석 달도 채 안 된 시점에서 여러 경제 개혁 법안을 ‘유사·과잉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선정해 관리했던 사실이 ‘캐비닛 문건’에서 추가로 드러났다.

 

<한겨레>가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받은 2013년 5월21일 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유사 과잉 경제민주화 법안 추진현황’을 보면, 유해화학물질 배출 기업의 처벌 강화, 연봉 5억원 이상 등기임원 및 감사의 연봉 공개, 대체휴일제 도입, 최저임금 기준 인상 등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법안들이 박근혜 청와대에서 문제 법안으로 꼽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부는 현재 이미 시행되고 있는 법안들이다. 2013년 5월이면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통해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출범한 지 석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일주일가량이 지난 5월28일,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작성한 ‘유사·과잉 경제민주화 법안 등: 14개 법안’(유사·과잉 14개 법안) 문건에는 대리점 계약해지 제한, 근로시간 단축, 남성 노동자 육아휴직 신청 시 의무화, 임대료 증액 제한 등 당시 여·야에서 발의하거나 추진 중이었던 경제민주화 법안 14개에 대해 추가로 문제 법안으로 지목했다. 2013년 5월은 남양유업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물량을 밀어내면서 욕설과 폭언을 하는 내용의 녹음 파일이 공개돼 ‘갑질 근절’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거셀 때이기도 했다.

 

박근혜 청와대가 ‘유사·과잉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지목한 경제 개혁 법안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박근혜 청와대가 ‘유사·과잉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지목한 경제 개혁 법안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무리한 입법 등으로 경제 구조에 악영향을 주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가 관련 법안을 검토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사·과잉 14개 법안’ 문건에는 ‘통상 마찰 우려’, ‘실효성 없음’, ‘과거 문제 된 사례 없음’ 등 추상적인 이유로 각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목이 여러 차례 나온다.

 

더불어 2013년 7월9일 작성된 ‘과잉 경제민주화 입법에 따른 문제점 및 대응방안’ 문건에는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은 사안까지 확대하여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현 경제 상황이나 기업부담 등 고려 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적혀있다. 박근혜 정부 추진 과제가 아닌 경제 개혁 법안에 ‘유사·과잉’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같은 문건에는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불공정한 ‘갑을 관계’ 시정을 위한 각종 입법시도가 본격화”됐다면서도 “갑을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은 공감하나, (전체 대리점을 대상으로 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등 내용이 포함된) 대리점법 등 과도한 법안이 시행될 경우 기업 경영위축, 협력업체 피해 증가, 나아가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판단했다. 또 “본사의 경영위축은 납품업체, 대리점 등 협력업체의 직접적인 매출 감소와 경영악화 초래” 등으로 본사가 잘 돼야 협력업체가 잘 될 수 있다는 이른바 ‘낙수 효과’를 중심으로 경제 개혁을 사고하는 측면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렇게 ‘유사·과잉 경제민주화 법안’을 스스로 꼽은 박근혜 청와대가 이 법안들을 막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은 ‘선제 입법’이라는 꼼수였다. 규제 수준이 낮거나 대상을 줄인 법안을 정부가 먼저 입법해 국회의 경제민주화 입법을 막겠다는 취지다. 2013년 11월28일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작성한 ‘경제민주화 관련 행정입법 선제적 추진’ 문건에는 “경제민주화 과잉입법 제정 움직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일부 법안을 정부 입법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통해 “야당의 신규입법 소지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2013년 11월17일 작성한 ‘유제품 분야 공정거래 모범거래 기준 제정’ 문건에서 이런 의도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문건에는 전체 대리점이 아닌 유통기간이 짧아 물품 ‘밀어내기’가 관행이었던 유제품 분야에 한정해 모범거래 기준을 세우고 정부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패키지화’해 발표하여 야당의 대리점법 입법 소지를 차단”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에 의지를 포장하기 위한 홍보에 대한 관심은 다른 문건에도 드러난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제민주화 관련 행정조치 홍보방안’ 문건에는 “공정위는 경제민주화 관련 6개 고시·지침 제·개정을 추진 중”이라며 “홍보 효과 극대화를 위해 을의 권익보호와 관련된 4개 고시 지침을 일괄발표”한다는 방안을 세웠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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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7283.html?_fr=mt1#csidxd576cb6a7d550ca871e0c4ed16cf0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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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 타러 왔다고 유죄? '전과 26범'의 최후변론

[인터뷰] 25일 1심 선고 앞둔 박경석 전국장애인철폐연대 공동대표

18.10.24 21:03l최종 업데이트 18.10.24 22:28l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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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에 꽁지머리를 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58·이하 전장연 대표)는 '전과 26범'이다. 물건을 훔치거나 누군가를 다치게 해서 받은 게 아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지하철 리프트에서 자꾸 장애인들이 떨어져 다치고 죽었다. 그래서 지하철 선로에 내려가 지하철을 멈춰 세웠다. 타인의 도움 없이 장애인은 버스에 올라탈 수 없었다. 그래서 힘겹게 버스에 올라 쇠사슬로 버스 좌석과 몸을 묶었다.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는 재단의 비리를 묵인하지 말라며 종로구청 앞에서 농성을 했다. 지난 1999년부터 벌인 투쟁은 하나하나 전과로 기록됐다.

지금도 그는 '자유의 몸'이 아니다. 지난 2016년 10월 7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1월 박 대표에게 2년 6개월을 구형했고 1심 선고가 오는 25일로 예정돼 있다. 선고를 앞두고 24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간학교에서 박경석 전장연 대표를 만났다.

"표 사서 버스 타는 게 미신고집회?"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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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라면 이골이 났을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긴장하고 있었다. 1심 선고만 8개월을 기다려 진이 빠진 것도 있겠지만 이전 재판들과는 다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경석 대표가 받고 있는 혐의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이하 집시법), 일반교통방해, 공동주거침입, 공동재물손괴 등에 따른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업무방해 등이다. 대부분 2014년에 발생한 사건들이다. 이전 재판과 비교해 혐의는 비슷할 수 있다. 다른 점은 그가 무죄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명백히 법을 어긴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유죄를 인정하고 재판부에 선처를 바라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유무죄를 다툴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 대표는 집시법 위반의 경우 표를 사서 버스에 타려고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지난 2014년 4월 20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표를 사서 버스를 타러 갔다"라며 "그런데 장애인 수백명이 버스를 타러 왔다고 경찰들이 우르르 왔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버스에 타려고 시도하는 우리를 경찰이 안거나 업어 태우지는 못 할망정 최루탄을 쐈다"라고 했다.

박 대표는 사법부에 되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표를 산 사람들이 버스에 타려고 하는 것을 처벌하려는 사법부가 왜 2005년에 도입하라고 한 저상버스를 만들지 않은 사람들은 가만히 놔두나"라며 "형평성 측면에서 그쪽에도 죄를 물어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에 따라 국토교통부 장관은 저상버스 도입을 포함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하지만 법 제정 후 9년이 흐른 2014년에도 장애인들은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갈 수 없었고 그는 버스에 타려고 한 것이다.

장애등급에 걸려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없던 고 송국현씨 집에 화재가 발생해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다음 날인 그해 4월 14일, 국민연금공단에 몰려간 것도 문제가 됐다. 당시 전장연 회원들은 국민연금공단 장애등급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센터 항의방문을 시도했다. 박경석 대표가 미신고 집회인 항의방문을 주관·진행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그 당시 일정 때문에 기자회견 이후 자리를 떠서 현장에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명동성당에 들어갔다고 주거침입?"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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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거침입, 공동재물손괴 혐의도 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것 같다. 이는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서 비롯됐다. 박 대표는 "교황님이 방한해 꽃동네를 방문한다는 계획이 발표됐다"라며 "교황님이 꽃동네에 방문하면 안 그래도 장애인이 시설에 거주하는 것을 소외, 배제의 문제로 모는 게 아니라 '해결'로 보는 인식에 정당성을 실어준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시설에서 집단 거주하는 것은 인권침해적 요소가 많다. 한 방에 여러 명이 함께 살며 밥은 물론 여러 활동을 같은 시간에 집단적으로 할 것을 강요받는 구조로 감옥과 비슷하다. 교황님이 꽃동네에 가기보다 지역사회에 나와 자립한 장애인을 만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그런 내용이 담긴 서한을 전달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그는 "2014년 8월 13일 경찰과 성당 경비원 등이 우리가 탄 차를 막았다"라며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 과정에서 차가 명동성당 입구에 설치된 차량 차단기를 밀쳤다"라고 했다. 그 결과 차단기가 고장 나, 공동재물손괴와 공동주거침입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박 대표는 "명동성당은 아무나 찾아갈 수 있는 곳 아니냐"라며 "사회적 약자에게 문을 개방해야 하는 곳인데 들어갔다고 주거침입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라고 했다.

"마틴루터 킹, 간디도 신고하고 행진했나"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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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지난 2014년 세월호 집회·노동절 집회 등에 참가해 도로를 점거해 교통을 방해한 혐의, 지난 2016년 9월 13일 '저상고속·시외버스 도입'을 촉구하기 위해 시외버스 앞바퀴 밑에 들어가 출발 지연을 시켜 승객 수송 업무방해를 한 혐의 등도 받고 있다.

쇠사슬로 몸을 묶고 지하철을 연착시키고 도로를 점거하는 등의 방식으로 꼭 싸워야만 할까. 박 대표는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것을 안다"라면서도 "우리 존재를 알리기 위해, 우리 문제를 사회가 심각한 인권 침해의 문제로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하철을 안전하게 이용하고 싶다, 버스를 타고 싶다고 하면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이동할 권리는 국가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시민적 권리다. 그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장애인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것, 인권적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고 시혜적으로 접근한다. 그러다보니 10원에서 20원 정도로 올려주면서 인심 썼다는 식으로 나온다."

박 대표는 "우리가 계속 싸워서 2007년에서야 활동보조서비스가 제도화됐다"라며 "현재 보건복지부 예산의 약 60%가 싸움을 통해서 얻어낸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여전히 OECD 기준으로 꼴찌다"라며 "우리가 얻어내기 전에는 개인과 가족이 모든 것을 부담해야 했고 그래서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목 졸라 죽이거나 장애인들이 시설에 가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여전히 장애인이 집에서 불타 죽고 남은 가족에게 부담이 될까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새벽에 목 졸라 죽이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떨어져 죽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계속 싸우는 것이다"라며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사법부는 집시법 위반이냐 아니냐, 실정법에 위반되냐 아니냐만을 두고 판단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마틴 루터 킹, 인도의 간디는 미리 신고하고 행진, 시위했나"라고 덧붙였다.

오는 25일 1심 선고 

장애인이 죽고 다치거나 온몸이 바스러지게 싸워야 조금씩 바뀌었기 때문에 박 대표는 '집유(집행유예) 인생'을 살았다. 집행유예 기간 중 또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쌍집'인 적도, 집행유예 4개를 선고받은 상태인 적도 있다. 그나마 최근 약 1년은 오랜만에 집행유예에서 자유로운 기간이었다. 하지만 오는 25일 오전 9시 50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있을 선고결과에 따라 자유는 끝이 날 수 있다.

박 대표는 무죄이길 바라나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만약 법정 구속되면 서울구치소가 아닌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는 동부구치소로 보내줬으면 좋겠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내가 감옥에 가야만 장애등급제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기꺼이 갔다 오겠다"라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박경석 대표가 지난 1월 한 최후변론을 전한다.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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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참여했던 그 모든 집회와 시위는 중증장애인들이 이 세상에서 '폐기물'로 처분 당하지 않기 위해 소리 높여 외친 목소리였습니다. 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 사회에서는 무척 외롭고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중증장애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그 권리를 노래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권리가 뿌리 내리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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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사태를 통해 본 문재인정부의 정체성

10,26사태를 통해 본 문재인정부의 정체성
 
 
 
김용택 | 2018-10-25 09:40:2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내일은 1961년 5월 16일 새벽 한강 인도교를 뒤흔든 총성으로 시작된 박정희의 쿠데타 정권 18년의 막을 내린 39주년을 맞는 10.26이다. 권력에 눈이 어두운 일본 육군장교 오카모토 미노루 박정희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며 일어난 4.19혁명정부를 총칼로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의 주인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다 그의 부하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이 쏜 발터 PPK 총에 맞아 삶을 마감한 날이다.

박정희는 국민의 권력을 도둑질해 혁명으로 포장해 미국의 도움으로 반공이데올로기로 주권자를 마취시키고 헌법을 마음대로 바꾸어 종신대통령을 꿈꾸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36년간 일제식민지시대는 끝났지만, 일제가 남긴 상처는 73년이 지난 지금도 곳곳에 똬리를 틀고 남아 있듯 박정희는 죽었지만, 그가 심은 독버섯은 지금도 고스란히 우리 삶을 옥죄고 있다. 박정희가 무슨 짓을 했기에 우리 민중의 삶이 그가 죽은 지 18년이 지난 지금도 독재자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대일본제국은 패전하였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장담하건대, 조선인들이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여 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식민지 조선의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이다. 그의 예언처럼 “조선인들은 서로를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다. 보아라! 실로 옛 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은 식민교육의 노예들의 나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식민지가 남긴 마취교육 때문일까?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면 구시대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록 희대의 독재자 박정희는 갔지만 39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유신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4,19혁명을 도둑질한 그를 칭송하고 대한민국경제를 살린 은인으로 생각하고 그의 딸에게 정권을 맡기는 웃지 못할 희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주권자를 기만하며 사기행각(詐欺行脚)을 벌여오던 독재자의 딸 박근혜는 국정을 농단하다 뒤늦게 깨어난 민중의 촛불혁명으로 쫓겨나 지금은 유치장에서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4,19혁명과 6월 항쟁, 촛불혁명으로 역사를 바로 세웠지만 그들의 저항을 끝난 것이 아니다. 태극기부대의 저항이 그렇고 이승만의 뿌린 독버섯 자유당의 후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저항이 그렇다. 그들은 외세와 통일을 가로막고 처절하게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친일과 이승만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진 독재자의 유습은 그들의 마술에서 깨어나지 못한 민중과 합세해 민주주의를 가로막아 온 것이다.

<무엇이 독재의 사슬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막는가?>

박정희가 한강 다리를 건너 가정 먼저 장악한 것이 방송과 언론이다. 독재자들은 분단 이데올로기인 반공과 3S라는 카드를 활용한다. 이를 체계적으로 의식화하기 위해 교육을 통한 마취는 필수다.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저의가 바로 역사왜곡을 통한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결국 이들의 저항은 주권자를 독재자의 아바타로 만들겠다는 꿈이 전교조라는 양심적인 교육자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문재인정부가 박근혜가 만든 전교조 법외노조를 원상회복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무엇이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는가?>

혹자는 문재인정부를 촛불정부라고 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말이다. 역사해석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권력의 편에서 본 역사도 민중의 편에서 본 역사도 객관적인 역사가 아니다. 4,19는 민중의 힘으로 일군 혁명이지만 장면정부는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17백만 국민들이 촛불로 세운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와 농민 민초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책무를 맡았지만 문재인정부는 촛불의 함성을 대변하고 있는가? 혹자들은 말한다. 70여 년의 분단, 식민지 잔재와 박정희가 만든 독재의 유습을 끊고 민족의 소원인 통일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정말 그런가?

박정희가 심어놓은 언론 적폐는 청산됐는가? 아니 청산을 위한 의지를 갖고 있는가? 민족교육 민주교육, 인간교육을 하겠다는 전교조는 왜 법외노조의 사슬에서 풀어주지 못하는가? 재벌개혁, 교육개혁, 언론개혁, 경제민주화, 사법 적폐청산은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 개혁은커녕 경제가 풀리지 않자, 고용 유연화, 규제 완화라는 이명박, 박근혜가 써 먹던 재벌의 이익을 위한 카드를 꺼내오고 있다.

“남북관계 호전은 자본의 이해관계에 배치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시장이 더 생기고 중국 동북지방과 러시아, 시베리아 연결이 훨씬 싸게 이뤄지니까요. 그러나 노동, 환경, 교육분야의 공공성 확대는 자본의 이해관계와 직간접으로 충돌합니다… 사교육은 물론이고, 특히 유치원, 어린이집, 사립학교가 더 그렇습니다. 정부가 최근 대입제도를 개편하면서 수능비중을 확대하고 영어 조기교육을 앞당기려 한 것도 그런 흐름으로 이해합니다.”

페친의 충고가 10,26을 앞두고 생각나는 이유는 독재자들의 마취에서 깨어난 늙은이의 기우(杞憂)이기만 할까?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재판 중인 피의자를 이끌고 방묵을하는 문재인정부는 독재와 함께 저지른 재벌에게 면죄부를 주는 제2의 4,19혁명정부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닐까? 촛불혁명에 함께 했던 이름 없는 시민의 눈에 비친 문재인정부의 우클릭을 보면서 촛불혁명의 염원이 수포로 돌아가는 비극이 다시는 없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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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폭등?...농민단체들, 언론의 왜곡보도 중단촉구

쌀값폭등?...농민단체들, 언론의 왜곡보도 중단촉구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10/25 [01:4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중당과 농민단체들이 언론의 '쌀값폭등' 관련 기사를 반박하고 나섰다. (사진 : 민중당)     © 편집국

 

농민단체들이 최근 쌀값폭등” 등에 대한 언론보도를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민중당과 농민의길(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가톨릭농민회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전국쌀생산자협회는 24일 오후 2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쌀값은 2016년도에 12만 원대로 대폭락했던 쌀값이 겨우 회복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언론에는 쌀값 폭등’ 기사가 올라오고 있는 가운데북에 쌀을 퍼주어 쌀값이 올랐다는 괴소문 뉴스부터쌀값이 올라 밥맛이 떨어진다소비자 주머니에 부담이 된다는 등의 자극적인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농민들은 지난 30년간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한 쌀 가격으로 고통 받았다며 “2016년 수확기 쌀 가격 12만 9천원은 30년 전 가격이며 2017년 수확기 쌀 가격 15만 3천 원은 20년 전 가격이라며 그동안의 저곡가 정책을 지적했다.

 

이들은 “2016년 밥 한 공기 평균 가격은 175원이었습니다. 2017년 밥 한 공기 평균 가격은 170원이었습니다. 2018년 10월 현재 밥 한 공기 가격은 220원입니다라며 농민들은 밥 한 공기 300쌀 1kg에 3,000원은 받아야 최소한 쌀농사를 유지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국민들을 향해 농민들에게는 쌀값을 보장하고 국민들에겐 쌀을 안정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며 주요 농산물 공공수급제 실시를 다 같이 요구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쌀값이 오른다고 서민과 농민을 대립하게 만드는 언론의 행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난 30년간 역대 최대치로 떨어진 2016년 가격과 비교해 30~40% 폭등했다는 기사는 지식인으로써 최소한의 지적탐구 의무와 공정보도를 해야 하는 언론인으로서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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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공기 300원 보장언론의 공정보도 촉구 긴급 기자회견문>

 

쌀값 폭락과 정부의 무분별한 농지전용으로 지난 10년간 쌀 재배 면적은 21% 감소했습니다.

2017년부터 쌀 생산량은 처음으로 400만 톤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2018년 생산량은 작년보다 12만 톤 떨어진 385만 톤이 생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농민들은 지난 30년간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한 쌀 가격으로 고통 받았습니다전체 농업소득에서 쌀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년 전 45%에서 현재 22%로 반 토막 났습니다.

2016년 수확기 쌀 가격 12만 9천원은 30년 전 가격이며 2017년 수확기 쌀 가격 15만 3천 원은 20년 전 가격입니다김대중 정부 때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정권이 다섯 번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바뀌지 않은 것은 쌀을 포함한 저()농산물 가격정책입니다.

 

2016년 밥 한 공기 평균 가격은 175원이었습니다. 2017년 밥 한 공기 평균 가격은 170원이었습니다. 2018년 10월 현재 밥 한 공기 가격은 220원입니다.

농민들은 밥 한 공기 300쌀 1kg에 3,000원은 받아야 최소한 쌀농사를 유지할 수 있다고 절절하게 호소합니다.

 

국민여러분!

우리는 그동안 쌀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쌀은 공기와 물과 같아서 항상 국민들 곁에 있었습니다너무 싸서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습니다쌀 걱정은 항상 농민들 몫이었습니다.

농민들에게는 쌀값을 보장하고 국민들에겐 쌀을 안정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제도가 있습니다.

주요 농산물 공공수급제 실시를 다 같이 요구합시다.

정부와 농협이 나서서 쌀을 공공재로 인식하고 수요와 공급을 조절해야 합니다쌀 공공수급제를 전체 주요 농산물 공공수급제로 확대하는 길이 농산물 값 안정의 지름길입니다.

 

국민여러분그리고 언론인 여러분!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 학생을 대결하게 하는 언론쌀값이 오른다고 서민과 농민을 대립하게 만드는 언론의 행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국민들은 쌀 값 너무 올라 장보기 두렵다’, 농민들은 더 올라야 한다‘ 이런 식의 대립구도를 언론이 만들고 있습니다.

 

2004년 정부 수매제가 폐지된 이후쌀 값 및 농산물 값 안정을 위해 취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농협과 농민생산자 조직의 역할을 재조명해야 합니다정부비축 및 공공급식 확대 등 농산물 수급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모색하는 일에 언론은 집중하길 바랍니다.

 

지금의 쌀값은 2012년과 2013년 가격을 회복하고 있습니다지난 30년간 역대 최대치로 떨어진 2016년 가격과 비교해 30~40% 폭등했다는 기사는 지식인으로써 최소한의 지적탐구 의무와 공정보도를 해야 하는 언론인으로서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임을 지적하고 비판합니다.

 

농촌 현장은 지금 수확이 한창입니다.

폭염과 가뭄가을 태풍과 잦은 비를 극복하기위해 농민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통일시대가 열리는 이 때식량을 우리민족끼리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전체 국민이 한 목소리로 농업회생의 새로운 길을 모색합시다.

감사합니다.

 

2018년 10월 24

민중당농민의길(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가톨릭농민회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전국쌀생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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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를 파괴해도, 노동자를 해고해도, 재벌이면 봐줍니까?”

“노조를 파괴해도, 노동자를 해고해도, 재벌이면 봐줍니까?”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10/24 [07:3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현대기아자동차를 판매해 온 비정규노동자들이 서울고용노동청을 규탄하고 나섰다. (사진 : 민중의소리)     © 편집국

 

현대·기아자동차 하청 대리점의 비정규직 자동차판매 노동자들이 재벌 감싸기로 일관하는 노동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는 지난 6월 18일 법률상 사용자인 현대·기아차그룹이 대리점을 앞세워 비정규직 자동차판매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침해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바 있다. 6월 25검찰은 서울고용노동청에 관련 사안을 조사하라고 수사 지시를 내렸지만 고용노동부가 4개월째 수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는 23일 오후1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차의 자동차 판매노동자 탄압과 이를 방기하고 있는 서울노동청을 규탄했다.

 

금속노조는 지금까지 현대·기아차 판매대리점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판매 노동자는 원청 판매직과 업무의 구분 없이 똑같은 일을 하고도기본급의 차별, 4대보험의 차별, 10년 넘게 근무하고도 퇴직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노예 같은 취급을 20년 넘게 견디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는 현대·기아차는 인간의 권리를 무시했다며 노조를 결성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대리점 소장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금속노조는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교섭을 요청한 자동차 판매 대리점 중에서 7곳이 강제 폐업 당했다며 모두 1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하루아침에 해고자 신세가 됐다남은 조합원들도 끊임없는 탈퇴공작과 회유에 시달렸고 끝까지 버티면 부당해고 통지가 날아왔다고 밝혔다.

 

판매연대지회는 지금까지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대리점소장들을 모두 검찰에 고소해 왔다하지만 금속노조는 지금까지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수많은 대리점 소장들이 벌금형 같은 미약한 처벌을 받았다고 지적했다금속노조는 수많은 대리점 소장들이 노동부 조사검찰 조사법원 재판과정에서 모두 한결같이 원청인 현대·기아차가 시켜서 한 일이라는 취지의 진술과 증언을 내놓고있으며 수많은 대리점 소장들이 한 명이라도 노조에 가입하면 대리점 재계약을 해지한다는 원청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조합원을 해고했노라고 진술한다고 설명했다.

 

금속노조는 서울노동청을 향해 수사 의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며 고의로 수사를 지연하고 있다며 이것은 하청업체에서 조직적으로 일어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원청을 직접 수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나아가 범죄 집단인 현대·기아차 재벌은 철저히 감싸고 돌면서 공직자로서 노동부의 책무는 등한시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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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현대차의 판매노동자 탄압조사조차 안 하는 서울노동청

노조를 파괴해도노동자를 해고해도재벌이면 봐줍니까?

 

우리는 자동차 판매 노동자다우리가 파는 자동차는 현대자동차 공장에서기아자동차 공장에서 똑같이 생산되는 똑같은 자동차다그러나 똑같은 자동차도 우리는 다르게 팔아야 한다왜냐하면우리는 비정규직 판매 노동자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정가보다 더 낮게기준보다 더 싸게 팔아야 한다왜냐하면우리는 하청 대리점 판매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현대·기아차 판매대리점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판매 노동자는 원청 판매직과 업무의 구분 없이 똑같은 일을 하고도기본급의 차별, 4대보험의 차별, 10년 넘게 근무하고도 퇴직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노예 같은 취급을 20년 넘게 견디고 있다이것이 잘못됐기 때문에노동자가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노동조합만이 길이라고 깨달은 우리는 지난 2015년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인간의 권리를 무시했다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이 존재하지 않았다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한 조합원은 노조를 결성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대리점 소장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당시 이 사건은 3일 연속 지상파 뉴스로 보도됐다이후 노조 위원장이 근무하던 현대자동차 안산중앙대리점을 선두로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교섭을 요청한 자동차 판매 대리점 중에서 7곳이 강제 폐업 당했다모두 1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하루아침에 해고자 신세가 됐다남은 조합원들도 끊임없는 탈퇴공작과 회유에 시달렸고 끝까지 버티면 부당해고 통지가 날아왔다.

 

판매연대지회는 지금까지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대리점소장들을 모두 검찰에 고소했다수십 명의 대리점 소장들이 기소됐다노조 위원장을 폭행했던 현대자동차 안산중앙대리점 소장은 고작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40시간을 선고받았다지금까지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수많은 대리점 소장들이 벌금형 같은 미약한 처벌을 받았다수많은 대리점 소장들은 부당노동행위로 기소되었고 이어진 노동부 조사검찰 조사법원 재판과정에서 모두 한결같이 원청인 현대·기아차가 시켜서 한 일이라는 취지의 진술과 증언을 내놓고 있다노조위원장이 근무했던 현대자동차 안산중앙대리점 소장은 형사재판과 민사재판 모두 원청인 현대자동차에서 김선영 노조 위원장을 해고하라 지시했으며 대리점을 폐업한 이유 역시 원청의 압박 때문이다.”라고 진술했다.

 

현대자동차 문래중앙 대리점 소장은 원청의 지시에 따라 조합원을 해고한 혐의로 기소돼 최근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기아자동차 목동법원 대리점 소장 역시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본사에 수십 번 불려 가 조합원을 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시인했다현대자동차 효성서부 대리점 소장은 본사 임원의 지시로 노조탈퇴서를 받고 탈퇴를 종용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최근 법원에서 벌금 500만 원의 유죄를 선고받았다위에 열거한 사례에 더해 수많은 대리점 소장들이 한 명이라도 노조에 가입하면 대리점 재계약을 해지한다는 원청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조합원을 해고했노라고 진술한다.

 

판매연대지회는 지금으로부터 4개월 전인 6월 18서울중앙지검에 현대·기아차 원청을 고소했으며 검찰은 즉시 서울고용노동청에 수사지휘를 내렸다하지만 놀랍게도 서울고용노동청은 4개월이 넘도록 단 한 명의 참고인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았다수사 의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며 고의로 수사를 지연하고 있다이것은 하청업체에서 조직적으로 일어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원청을 직접 수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나아가 범죄 집단인 현대·기아차 재벌은 철저히 감싸고 돌면서 공직자로서 노동부의 책무는 등한시한 것이다.

 

지금까지 노동부가 고의로 수사를 지연한 결과 전국에 걸친 현대·기아차 대리점에서는 수많은 노동탄압이 쌓여만 가고 있다노동부는 노골적으로 자본의 편에 섰던 과거를 반성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법과 정의공무원의 양심에 따라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은 현대·기아차 재벌을 엄정하게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이 보장받는 길은 노동부가 공정한 잣대로 노사관계를 바라보고 노동의 권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노동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금속노조는 진심으로 노동부의 반성과 변화를 기대한다금속노조와 판매연대지회는 노동부가 현대·기아차 재벌을 엄정하게 수사하고잘못을 가리고죄를 물을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8년 10월 23일 

전국금속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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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과 달러기축체제의 위기(1)

양적완화가 끝나고 있다
  • 손정목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10.24 10:23
  • 댓글 0

세계경제의 불안정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계에 이른 양적완화, 천문학적 부채위기가 전후 7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달러기축체제의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다. 미국이 최근 강력히 시행하고 있는 '대규모 무역전쟁'과 '금리인상', 그리고 '경제제재의 남발'은 본질적으로 달러기축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3대 경제전략이다. 당연히 이에 대항하는 주요국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달러국채를 팔아치우고, 제재에 저항하면서 달러결제시스템을 우회하는 새로운 국제결제시스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는 새로운 다극화된 경제질서로의 전환기에 서있다. [필자주]

1. 양적완화가 끝나고 있다

2. 금리인상과 무역전쟁 그리고 경제제재의 향방

3. 윤곽을 드러내는 다극화 경제질서

1. 한계에 이른 양적완화

지난 9월말 이래 미국 국채금리가 심리적 저지선이던 3%를 넘어 3.25%로 급격히 상승하고, 이에 영향을 받아 지난 10, 11일 미 증권시장이 대폭락하자 지난 수년간 제기되어 왔던 거품붕괴론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 공화당 의원 론폴(Ron Paul)은 지난 7일 미국의 CNBC방송에서 지금의 미국 금융상황을 “인류역사상 최대의 거품(bubble)”이라고 지적하고 내년 어느 시점에 미 주식시장이 50%이상 폭락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하였다. 나아가 그는 “이것은 막을 수 없다”고까지 비관적 전망을 하였다. 이런 전망은 비단 론폴만이 아니다. 유로퍼시픽캐피털의 CEO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피터 쉬프(Peter Schiff)등 상당수 경제전문가들 역시 현 상황을 미국, 유럽, 일본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QE)로 만들어진 사상최대 금융거품의 말기로 조만간 거대한 거품붕괴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류역사상 최대의 거품”이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붕괴된 채권, 주식시장에 자금을 주입해 연명시키기 위해 미 연준(Fed)이 주도한 양적완화(Quantity Easing. QE) 정책의 결과로 어마어마하게 부풀려진 채권과 파생상품의 거품을 말한다. 2008년 11월부터 시작된 이른바 양적완화는 미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이 국채나 회사채 등 각종 채권을 담보로 현금을 대량 찍어내 공급해온 정책으로 현재까지 10년간 13조 달러(약 1경4천조 원)가 증쇄됐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리먼브라더스 붕괴 이후 5년간의 양적완화로 4조5천억 달러(약 5천조 원)를 증쇄하고, 제로금리로 대규모 자금을 주입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연방은행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고, 기축통화로서의 신용 상실이 우려되자 2014년 가을 미 연준은 양적완화를 중단하면서 동맹국인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에 양적완화를 위임했고,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은 현재까지 8조5천억 달러(약 9천조 원)를 증쇄해 공급했다. 미국이 달러의 기축성 유지를 위해 금리를 올리는 방향으로 돌아섰는데 유럽과 일본은 달러기축체제를 떠받치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까지 채택한 것이다.

이런 부채기반의 양적완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높아지자 미 정부는 경제회복이란 장밋빛 청사진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가시적 실적 호조에 집착해 시간이 걸리는 생산영역 투자보다 단기적 금융차익에 집중하여, 실물경기는 회복되지 않은 채 채권, 주식시장만 과열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연출됐다. 그 결과 이제 세계 채권의 시가 총액은 100조 달러에 이르고, 채권 관련 파생상품 총액은 그의 5배가 넘는 550조 달러(약 60경원)에 이르게 됐다. 세계 GDP 총액보다 무려 7배나 더 많은 것이다. 또 국제금융협회(IIF)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부채는 247조 달러(약 27경6천조 원)에 달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이것은 한마디로 부채의 거품이자 바벨탑이다. 누구도 이 많은 부채를 갚을 수 없을 것이다. 이로써 미국 주도의 달러체제는 역사상 최대의 거품, 최고의 공황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양적완화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인 JP모건조차 “위기가 닥치면 지난 50년간 경험해보지 못한 주식시장 붕괴와 사회 불안정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3일 IMF도 ‘세계 부채가 2008년 이상으로 쌓이고, 은행시스템 개혁의 실패가 세계공황을 촉발할 수 있다’고 노란불을 켰다. 이제 영미식 세계 자본주의는 마지막 지점에서 그 탐욕과 기생성을 남김없이 발휘해 빚더미로 하늘에 닿으려다가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2.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ming)

2008년 금융위기로 금융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한 정책인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사실상 종말을 고했지만, 그 달콤한 열매에 중독된 금융독점자본은 반성은커녕 더욱 더 자기들만의 천국을 위한 탐욕의 질주를 계속했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높아진 은행과 금융시스템 개혁요구에 허울뿐인 규제법안인 도드-프랭크법을 제정했지만 이마저도 트럼프 정부는 폐기하려 하고 있다. 사실 무엇 하나 개선된 것은 없었다. 지난 10년간 미 연준에 모여 앉은 이들은 금융위기에 의한 유동성 부족을 명분으로 부채를 담보로 한 현금을 수혈 받아 더욱더 많은 부를 쌓아올렸고, 이로부터 소외된 일반대중의 가난은 더 심화되었다. 그 결과 세계는 슈퍼리치 8명이 세계 인구 절반의 부를 소유하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불평등 세계가 됐었다.

이런 상황은 대중의 강력한 분노를 낳았고,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신흥국들은 부채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는 달러체제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비롯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등에서의 반EU 정권 등장,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서유럽에서 반EU 정치세력 강화 등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새로운 정치현상은 모두 누적된 불평등한 사회경제정책과 금융독점자본의 탐욕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중국, 러시아 등 신흥국들의 달러 국채 매각, 금 보유의 확대, 석유 거래에서 달러가 아닌 자국 통화 내지 위안화, 유로화 결제 확대, 달러를 배제한 새 금융결제시스템 구축 시도 등은 모두 달러기축체제의 붕괴를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미 정부와 대부분 주류언론들(국내 언론 포함)이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마치 양적완화가 금융위기를 이겨내고 경제를 살린 것처럼 호도한다. 미 정부는 주식시장의 활황을 내세워 경제가 살아나고, 실업률이 떨어지고 소비력이 증대하고 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3월 “미국 식료품 체인의 연속된 파산은 ‘소매상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듯이 미국은 식품은 물론 백화점, 전자부품, 완구 등 대형 소매체인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있다. 132년 된 미국의 대표적 백화점 시어스, 70년 된 장난감 회사 토이저러스, 대표적 식료품체인 톱스마케츠 등 최근 2~3년 동안 30여개의 전통적인 소매 대기업들이 문을 닫은 것은 소비력이 살아나지 않았다는 단적인 예다. 주류언론들은 이를 아마존과의 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란 식으로 평가하지만, 이런 평가는 마치 한국의 롯데, 현대백화점이 네이버 쇼핑몰에 밀려 무너졌다는 것과 같은 주장이다. 이런 분석은 미국의 실물경기 실상을 가리기 위한 연막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양적완화는 소수의 금융독점세력과 군산복합세력들이 탐욕과 이익을 위해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극한으로 남용해 세계경제를 헤어날 수 없는 부채와 금융위기의 늪으로 빠뜨린 결정적 정책이다. 이들은 이를 분식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선전하고 주식시장에 자금을 주입해 활황세를 지속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물경기가 받쳐주지 않은 조건에서 주식시장으로 자금 유입이 중단되거나 감소된다면 시장의 붕괴는 불가피하다. 양적완화가 중단된다면 부채의 바벨탑이 무너지는 파국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3, 금리인상, 무역전쟁, 경제제재의 남발은 양날의 칼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부채의 무한증대는 불가능하다. 기축통화국인 미국 자체도 양적완화를 5년 만에 중단했듯이 유럽과 일본의 양적완화 역시 그들 경제의 건전성을 심각히 훼손하기에 지속될 수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연합은 적”이란 발언과 일본에게도 ‘환율협상’을 요구한 것처럼 유럽, 일본과의 관계가 더 이상 동맹이 아닌 경쟁상대로 여겨진 조건에서 EU와 일본이 계속 미국과 달러체제 유지를 위해 헌신할 리 없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미 지난 6월 올해 안에 양적완화를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일본 역시 내년 중에 양적완화를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양적완화 중단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가 달러체제를 유지하고 자국 주식시장의 활황을 지속하면서 동시에 제조업 육성 등을 위해 시행하는 비상한 조치가 금리인상과 무역전쟁 그리고 경제재재의 확대다. 금리인상은 양적완화와 제로금리로 상실된 달러의 신용을 회복해 기축체제를 유지하고,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달러를 미국으로 모아 주가를 떠받치기 위한 직접적 수단이다. 그리고 무역전쟁과 경제제재는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여러 신흥국과 EU까지도 저울질하고 있는 달러 배제의 새로운 국제통화체제, 다극화된 경제질서 준비를 막기 위한 조치다. 이들 세 정책은 각기 고유의 특성이 있지만 모두 위기에 처한 달러기축체제 유지를 공통의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상호 연관돼 있다.

그러나 금리인상과 무역전쟁, 그리고 경제제재의 남발은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론 미국의 패권과 달러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해당국의 반발을 불러와 달러기축 붕괴를 가속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이 압도적 무력을 앞세워 달러로만 석유대금을 결제케 했던 이른바 페트로 달러(Petro-Dollar) 체제에선 이런 압박정책이 해당국을 순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미국의 핵무력이 압도적이지 않고 달러체제 역시 천문학적 부채로 위태로운 조건에서는 제재와 압박이 되레 해당국들의 단결을 촉진시켜 달러를 배제하는 다극화된 경제질서를 앞당기는 명분이 된다.

전후 70년을 유지해온 달러를 축으로 한 세계경제질서가 근본에서 흔들리고 있다. 세계는 정치, 군사적 측면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전환기적 진통을 겪고 있다. 겨울이 오고 있다. 이 겨울이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준비기가 될지 아니면 더 긴 혹독한 추위로 이어질지는 향후 몇 년 안에 판가름 날 것이다.(2편에 계속)

손정목 편집기획위원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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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고아들 유럽으로 보낸 북한, 김일성의 큰 그림

다큐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조명한 북한 전쟁고아의 삶

18.10.24 09:44최종업데이트18.10.24 09:44
아주 어린 나이에 미국이나 유럽에 입양돼 성장한 뒤, TV 화면에 나타나 가족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런 아픔의 시작은 6·25가 배출한 전쟁고아들의 해외입양이다.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전쟁고아는 아직 그 정확한 수치마저도 완전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남한 측에서 발생한 전쟁고아의 수가 4만 4648명, 5만 9000명, 4만 8322명 등으로 파악되는 것으로 보아, 대략 5만여 명 내외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국전쟁으로 한반도 전체에서 발생한 전쟁고아의 수를 약 10만 명으로 보는 견해(국방부 견해)에 따른다면, 북한 지역에서도 남한과 거의 비슷한 숫자의 전쟁고아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2015년 <중동유럽한국학회지>에 실린 이해성의 논문 '폴란드에 남겨진 북한 전쟁고아의 자취를 찾아서.'
 
위와 같이 남북한에서 배출된 전쟁고아는 대략 5만 정도로 추정된다. 남한의 경우에는, 그중 상당수가 고아원이나 외국 양부모의 손에 맡겨졌다. 북한 경우에는 만경대혁명학원 같은 국립시설 또는 외국 국립양육기관에 맡겨졌다.
 
남한과 판이했던 북한 전쟁고아 실태를 소개하고 그로 인해 북한 고아들이 받았을 심리적 영향을 다룬 영화가 추상미 감독의 다큐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다. 6·25가 배출한 북한 전쟁고아들을 가장 많이 수용해준 나라가 폴란드다. 이 영화가 폴란드로 간 전쟁고아들을 다룬 이유는 그런 대표성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포스터.ⓒ 보아스필름

  
북한의 전쟁고아와 남한의 전쟁고아
 
감독 겸 주연으로 출연한 이 영화에서 추상미는 북한 전쟁고아에 관심을 갖고 다큐영화를 준비하게 된 사연, 이 문제를 함께 탐사하게 될 탈북소녀 송이를 만나게 된 사연, 송이와 함께 폴란드로 날아가 북한 고아 양육시설을 답사하고 거기 근무했던 폴란드인들을 만난 이야기 등을 순차적으로 들려준다.
 
감독은 영화 중간 중간에, 1951년 이후 촬영된 북한 고아들의 폴란드 생활을 담은 동영상이나 사진, 이 문제와 관련된 신문기사 등도 함께 제시했다. 그러면서 송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탈북 청소년들의 이야기도 이따금씩 들려줬다.
 
송이를 폴란드행의 동반자로 선택한 것은, 감독 본인이 전쟁고아들의 심경을 탈북소녀를 통해 들여다보는 한편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곳곳에서 탈북 청소년들의 가슴 속의 상처를 들려준 것도 그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한 추상미.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한 추상미.ⓒ 보아스필름

  
폴란드로 날아간 추 감독과 송이가 접한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는, 그동안 남한에서 접했던 남한 전쟁고아 이야기와는 상당히 다르다. 전쟁고아들이 겪었을 아픔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별 차이가 없겠지만, 이 문제를 대하는 양쪽의 접근법에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이승만 정부가 이 문제를 원칙상 민간에 맡긴 것과 대조적으로, 북한에서는 정권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국내에서 수용할 수 없는 아이들을 중국·소련 혹은 동구권 동맹국들로 보내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 중에서 동구권에 보내진 고아들은 "1951년부터 1959년까지 폴란드에 6천여 명, 루마니아에 3천여 명, 헝가리에 950여 명, 동독에 600여 명, 체코슬로바키아에 400여 명, 불가리아에 500여 명"이라고 위의 이해성 논문은 말한다.
 
폴란드가 북한 고아들을 가장 많이 수용한 것은 동병상련 때문이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제작노트에 언급된 것처럼,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에 망명정부를 둬야 할 정도로 시련을 겪었을 뿐 아니라 "(1945년) 당시 폴란드 고아원의 90% 이상이 전쟁고아로 가득 찼을 정도로" 인평피해와 재산손실도 크게 경험했다.
 
그런 폴란드인들을 적극 도운 나라가 인도였다. 이해성 논문에 따르면, 인도의 지방 유력자인 잠 사헵 디그비자이신지(Jam Saheb Digvijaysinhji) 같은 사람은 천여 명의 폴란드 고아를 직접 보살피는 한편, 5천여 명의 폴란드 아이가 여타 유력자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이렇게 인도인들한테 빚진 경험이, 폴란드인들로 하여금 북한 고아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배우 겸 동반자로 출연한 송이.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배우 겸 동반자로 출연한 송이.ⓒ 보아스필름

  
가장 많은 전쟁고아를 받은 폴란드
 
그런데 북한 고아들을 맡아준 나라들이 이들에 대해 배타적 보호권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도 언급됐듯이, 아이들이 해외입양이 아니라 위탁교육 형식으로 맡겨졌기 때문이다. 남한 전쟁고아들에 대해 해외입양 방식이 적용된 데 비해, 북한 전쟁고아들에게는 해외위탁 방식이 적용됐다. 위 논문에 따르면, 북한 고아들이 폴란드로 떠나는 날 김일성이 작별인사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희들은 멀리 유럽의 어느 나라로 간다. 그곳에서 너희들은 가능한 한 최대로 많이 배워야 하며 더욱 더 많이 익혀야 한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이곳으로 돌아와서 사랑하는 우리 조국을 건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서도 소개됐듯이, 아이들은 폴란드 교사뿐 아니라 북한 교사의 지도도 함께 받았다. 이해성 논문에 따르면, 북한에서 파견된 교사들은 한글과 역사뿐 아니라 전통 무용과 민요까지 가르쳤다. 심지어 군사훈련도 있었다. 영화에 언급된 것처럼 사상교육도 있었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북한 전쟁고아들과 폴란드인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북한 전쟁고아들과 폴란드인들.ⓒ 보아스필름

  
전쟁고아들이 입양이 아니라 해외위탁 형식으로, 그것도 북한 교사의 관리 하에 폴란드에 거주했다는 사실은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스토리 전개방식과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영화에서는 탈북 청소년들의 심경을 통해 전쟁고아들의 심경을 유추했다. 하지만 이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탈북 청소년들은 북한과의 공식적 연계가 끊어진 데 반해, 전쟁고아들은 여전히 그 연계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 언급된 것처럼 아이들 상당수가 북한으로 돌아가기 싫어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북한 정부의 관리를 받았으므로 이들의 고통을 탈북 청소년들의 고통과 등치시키는 것은 최상의 접근법이 아닐 수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모국 정부의 관리를 받는 가운데 북한 전쟁고아들이 겪었을 독특한 시련이 관객들에게 설명됐어야 한다. 탈북 청소년들도 고통을 많이 겪었지만, 이 청소년들도 이해할 수 없는 전쟁고아들만의 독특한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이 점이 영화에서 나타나지 않은 게 아쉽다.
 
북한 정부는 고아들을 맡긴 지 7년 뒤인 1958년부터 고아들을 국내로 불러들였다. 이듬해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귀국시켰다. 북한이 이들을 불러들인 이유를,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북한 내부의 노동력 수요와 연결 지었다. 천리마운동에 참여시킬 인력을 확보하고자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체가 아닌 일부만 설명하는 해답이다.

뜻깊은 조명, 그럼에도 아쉬운 지점들
 
1958년이면 북한에서 전쟁복구가 어느 정도 이뤄진 뒤였다. 그래서 북한이 고아들을 귀국시킬 만한 여건이 조성돼 있었다. 이에 더해 공산권의 분열도 작용했다. 1956년 폴란드 및 헝가리에서 소련군 철수를 요구하는 폭동이 발생한 것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시기에는 동유럽 정치상황이 전반적으로 어수선했다. 거기다가 북한과 중국·소련의 관계도 예전처럼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쟁고아들을 더 이상 중국·소련 및 동유럽에 맡겨두기 힘들었다.
 
그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돼서 전쟁고아들의 귀국으로 연결된 것이다. 박종철·정은이의 논문 '한국전쟁 이후 북한 재건을 위한 동유럽 사회주의국가의 원조에 대한 검토'에서 보다 상세한 상황을 접할 수 있다.
 
"이 시기 동유럽의 북한 유학생과 전쟁고아들이 동시에 귀국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56년 2월 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 이후, 사회주의 각국의 권력투쟁과 관련이 있다. 북한의 8월 종파사건(정권전복 음모에 맞선 숙청작업)과 헝가리·폴란드 사태 시기에, 개인 숭배에 대한 비판 및 레닌주의적 민주원칙이 주창되면서 북한은 체제 단속을 위하여 유학생과 고아의 동시 귀국을 추진하였다. 둘째, 8월 종파사건으로 북중·북소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김일성은 중국인민지원군의 철수를 요구하였고, 1958년 철군이 완료되었다."
 
-  2014년에 <중동유럽한국학회지>에 실린 논문
 
북한과 공산권의 연계가 약해지고 동유럽이 정치적으로 혼란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전쟁고아들을 맡겨두기 힘들어서 1958년부터 전쟁고아들을 귀국시켰던 것이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강조한 것처럼 노동력 확보를 위한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측면이었다.
 
동유럽에서 7, 8년 정도 생활하다가 북으로 귀화한 아이들 중에는 그 7, 8년의 경험을 토대로 북한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들이 적지 않다. 폴란드로 간 전쟁고아들 중에서 한의표는 폴란드 대사가 됐고 한경식은 인민군 대좌를 거쳐 폴란드대사관 무관이 됐다. 박동호는 외교관이 됐고, 조성무는 조선·폴란드 친선협회 의장을 거쳐 폴란드어 교수가 됐다.
 
북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다들 그랬던 것은 아니다. 폴란드에 보낸 편지에서 그 7, 8년의 그리움을 토로하는 아이들도 있고, 폴란드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덜 얽매인 상태에서 자신을 안아준 폴란드인들의 품이 북한에 가서도 잊히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북한 고아들을 태우고 폴란드를 떠나는 비행기.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 컷. 북한 고아들을 태우고 폴란드를 떠나는 비행기.ⓒ 보아스필름

  
전쟁이 발발하면 누구나 다 고통을 겪지만, 전쟁고아들의 고통은 일반인들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그런 고아들에 대해 남북이 각각 별개의 접근법을 취했고, 이로 인해 남북의 전쟁고아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그럴지라도 전쟁고아로서 겪는 시련은 동일하겠지만, 모국과의 연결고리라는 측면에서 남북 고아들은 서로 다른 조건에 처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낯선 북한 전쟁고아 문제와 그들의 독특한 경험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영화라는 점에서 뜻 깊은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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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티 비리 연루자를 부산교통공사 사장에 임명한 오거돈 부산시장

정무수석부터 부산시장까지 연루됐던 엘시티 게이트
 
임병도 | 2018-10-24 09:16: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후보자가 부산시 정책기획실장, 행정부시장으로 재직했던 시기에 엘시티 시행사로부터 금품을 수수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 22일 부산시 류제정 감사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2월 엘시티 비리를 수사하던 검찰로부터 받은 명단을 부산시에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이 통보한 명단에는 2010년부터 2016년 2월까지 엘시티 측으로부터 명절 때마다 선물을 받은 현직 공무원 5명, 퇴직 공무원 13명, 공기업 임직원 4명, 부산시 도시계획위원 6명으로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후보자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 게이트 주범인 청안건설 이영복 회장은 돈과 여자로 부산 지역 정,관계 인사를 꽉 잡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이영복 회장을 아는 자체가 부산 지역의 권력자임을 나타내는 증거와도 같았습니다.

그는 권력을 등에 업고 인허가 과정에서 각종 특혜를 받았고, 분양 대금 등을 빼돌려 수백억 원의 비자금 등을 조성한 혐의로 징역 6년의 실형을 받았습니다.


이영복 ‘돈을 풀지 않으면 (포스코 건설) 사장이 바뀔 것’

▲엘시티 비리 주범이었던 이영복 회장은 비자금을 조성하던 분양대금 통장을 포스코 건설이 막자, 황태현 포스코 건설 사장을 협박하기도 했다. ⓒSBS뉴스 화면 캡처

2009년 당시 해운대 엘시티 부지는 고층 건물이나 주거 시설 등을 건설할 수 없어 수익성이 떨어져, 건설사가 모두 포기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산시는 돌연 ‘고도 제한’이나 ‘아파트 건축’ 등의 규제를 풀어줬습니다.

규제가 풀렸지만, 건설사들은 엘시티 건설을 주저했습니다. 특히 세계 최대 중국 건설회사조차 사업성이 없다며 시공 계약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포스코 건설이 엘시티 사업의 시공을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영복 회장은 포스코 건설 덕분에 사업비 1조 7천8백억 원을 대출받는 데 성공했고, 이 회장은 하청 대금이나 분양 수수료를 허위로 지급하는 수법으로 570억 원을 빼돌렸습니다.

이영복 회장의 비자금 조성에 포스코 건설이 제동을 걸자, 이 회장은 직접 포스코 건설 사장을 찾아가 “돈을 풀지 않으면 사장이 바뀔 것”이라며 협박까지 했습니다.

이 회장의 협박은 사실로 이루어졌습니다. 황태현 포스코 건설 사장은 이 회장의 요구를 거절하고 한 달 뒤에 연임이 되지 않고 회의 중에 해임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영복 지명 수배 중에도 아들은 박근혜 만나 기념사진

▲ 2016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VR 관련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이영복 회장 아들 A씨(박 대통령 뒤)ⓒ박근혜정권 청와대

2016년 엘시티 비리 문제로 이영복 회장은 검찰의 지명 수배를 받았습니다. 이영복 회장이 도피 생활을 하는 중에도 이 회장의 아들은 서울에서 열린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 상암동 DMC에서 열린 ‘코리아 가상현실 페스티벌’ 현장에 방문해 VR 전문 벤처 스타트업 대표들과 만났습니다. 청와대가 올린 행사 사진을 보면 이 회장의 아들 A씨가 박 대통령의 뒤에 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A씨는 아버지 이영복 회장이 소유한 엘시티 시행사인 청안건설의 임원입니다. 이영복 회장의 공소장에도 A씨의 이름이 올라와 있어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영복 회장은 A씨 등 가족을 엘시티 시행사 임직원 이름으로 등재한 뒤 임금 등 75억 원을 횡령하기도 했습니다.


정무수석부터 부산시장까지 연루됐던 엘시티 게이트

▲엘시티 게이트에 연루된 정,관계 인사 ⓒ부산일보

엘시티 게이트는 전직 부산 시장은 물론 전직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연루된 권력형 비리였습니다. 엘시티 비리 수사 결과 관련된 인물들은 1심에서 전원 실형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1억 25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정기룡 전 부산시 경제특보는 엘시티 시행사 법인카드로 4800만 원을 쓴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받았습니다.

허남식 전 부산시장은 측근을 통해 3000만 원의 현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을, 배덕광 자유한국당 의원은 7700만 원의 현금과 향응을 받은 혐의로 징역 6년의 실형을 받았습니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최측근이었던 전 포럼부산비전 사무처장 김모씨는 2억 2000만원의 현금과 사무실 임대료 대납 등의 받은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습니다.


허남식, 서병수 부산시장 재임 시절 금품을 받았던 정경식

▲서병수 부산시장 재직 시절 행정부시장이었던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후보자. 그가 재직 시절 청렴을 강조했던 동영상 ⓒ부산시 유튜브 화면 캡처

해운대 엘시티 비리에는 허남식 전 부산시장과 서병수 부산시장의 최측근이 연루됐습니다. 이번에 부산교통공사 사장으로 내정된 정경진 후보자는 이 기간에 부산시 정책기획실장과 행정부시장으로 재직했습니다.

정경진 후보자는 부산시 고위공무원으로 재직하던 2012년 하반기부터 3년 6개월 동안 금품을 정기적으로 상납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부산시는 정경진 후보자가 받은 금품과 직무관련성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전, 현직 부산시장이 비리로 연루됐던 엘시티 시행사가 정기적으로 금품을 보냈다는 사실 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산지하철노조, 오거돈 시장은 즉각 인사 철회 해야 한다

정경진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을 하루 앞둔 10월 23일 부산지하철노조는 “오거돈 부산시장은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를 즉각 철회하고, 부산시의회는 인사검증을 취소해야 한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 8월 22일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부산 민선7기 지방공기업 공공성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세미나

부산지하철노조는 이런 사태를 예견이나 한 듯 지난 8월에 ‘부산 민선7기, 지방공기업 공공성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과거 부산시장들의 독단적인 낙하산 인사로 공공성이 훼손됐던 지역 공기업을 어떻게 하면 시민의 품으로 돌려줄지에 대한 논의를 가진 바 있습니다.

바뀔 것이라고 믿었던 오거돈 부산시장도 과거 전임 시장들과 똑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공공성과 공익성을 우선시해야 하는 지방공공기관이 여전히 부산시의 밀실 보은 낙하산 인사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지난 3월 오거돈 후보를 취재하면서 엘시티 비리 공무원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오 후보의 답변을 들으면서 적폐 청산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엘시티 비리 연루자를 공공기관장에 내정한 오거돈 부산시장을 보며, 설마 했던 우려가 사실로 드러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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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끈은 말‧글‧얼이다

<칼럼>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김동환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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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4  0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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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그 집단의 문화정체성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로 민족성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또한 사회문화적 동화의 신뢰할 만한 지표 역시 민족집단의 언어동화가 우선시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언어는 민족정체성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족정체성이란 공유된 민족적 특성들로 인해 어느 한 개인이 어느 특정 민족 집단에 대해 느끼는 소속감으로 개념화 할 수 있다. 우바(Uba, L.)는 (1) 한 개인이 자신의 민족 집단에 대한 일반 지식, 신념, 기대들을 일으키고, (2) 그가 사물, 상황, 그리고 타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들의 의미를 해석하느냐를 결정짓는 인지적, 정보처리적 틀 또는 필터로서 기능하며, (3) 그의 행위 기준이 된다고 민족정체성을 설명하였다. 한마디로 나와 우리를 규정짓는 처음과 끝이 민족정체성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민족정체성은 그 집단의 언어와 떨어질 수 없다. 언어(말과 글)가 민족정체성(얼)을 지탱하는 그물망이라면, 얼은 더더욱 말과 글의 정신적 뿌리가 된다. 언어의 상실이 민족정체성의 붕괴와 직결되듯, 민족정체성의 쇠퇴는 언어의 퇴행을 필연적으로 몰고 올 수 밖에 없다. 말‧글‧얼을 떼어 놓고 이해할 수 없는 근거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가 그 대표적 경험이다. 우리의 말‧글‧얼을 말살시키기 위해 광분했던 일제의 준동(蠢動)에서 그 실상이 드러난다. 일제는 식민통치의 완성을 위하여 우리의 말‧글‧얼을 철저하게 압살해 갔다. 1910년대 후반부터 우리 얼의 중심인 대종교의 국내 거점을 궤멸시키는가 하면, 우리 국어(한글)를 외국어(조선어)로 몰아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성(神道와 일본어)을 우리의 국교(國敎)와 국어로 이식(移植)시켜 식민지의 완성을 도모하려 하였다.

일제는 1937년 중국 침략 전쟁을 본격화하면서 조선에 대한 말살정책을 더더욱 가속화해 갔다. 1938년 이후 외국어처럼 가르쳤던 조선어 교육마저 폐지하고 일본어의 사용을 강제하는가 하면, 한글로 된 신문과 잡지마저 전면 폐간시켰다. 그리고 1940년에 들어서는 창씨개명을 통해 우리 이름마저 일본식 이름으로 강제화하였다.

그러한 민족말살의 정점이 '조선어학회사건(1942. 10)'과 ‘대종교지도자일제구속사건(大倧敎指導者一齊拘束事件, 1942. 11, 대종교에서는 ’壬午敎變‘이라 부름)’이다. 1개월의 사이를 두고 발생한 이 사건은, 일제가 우리의 말‧글‧얼을 없애기 위해 저지른 마지막 발악이었다.

말‧글‧얼을 분리해 이해할 수 없듯이 조선어학회와 대종교 역시 떼어 놓고 말하기 힘들다. 조선어학회의 정신적 뿌리가 대종교였으며 대종교의 비밀결사가 조선어학회였기 때문이다. 조선어학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주시경으로부터 김두봉‧이극로‧최현배‧신명균‧권덕규‧정열모‧이병기 등등, 그 중심인물들의 대부분이 대종교의 핵심이었다.

두 사건 모두 이극로와 연관이 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당시 이극로는 대종교의 국내 중심이자 조선어학회의 간사장이었다. 임오교변이 이극로가 윤세복에게 보낸 「널리펴는 말」이라는 글이 단서가 된 것 같이, 조선어학회사건은 만주에서 윤세복이 국내 이극로에게 보낸 「단군성가(檀君聖歌)」라는 가사가 단초가 되었다. 「단군성가」가 조선어학회 이극로의 책상 위에서 일경(日警)에 의해 발견됨으로써 조선어학회사건의 결정적인 빌미가 된 것이다.

일제가 우리 말‧글‧얼의 중심이었던 대종교를 그렇게 없애려 한 이유가 무엇일까. 대종교가 국내외적 모든 기반을 잃어가면서 끝까지 일제에 저항한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정체성의 다툼이었다. 지키고자 한 집단과 바꾸고자 한 세력의 양보 없는 전면전이었다.

해방 이후에 들어 우리의 정체성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망국(亡國)의 대가로 찾아 낸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의 스스로의 노안(奴眼)에 의해 다시 풍비박산이 났다. 우리의 해방은 자력에 의한 환희가 아니었다. 더욱이 이념의 족쇄와 분단의 고착은 한반도를 질시와 반목이 판을 치는 공간으로 몰아넣었다. 민족을 묻어버린 부류와 민족을 배반한 자들 간의 좌우의 굿판이 시작된 것이다.

6‧25는 근근이 숨을 쉬던 그 정체성의 잔명마저 질식시켜 놓았다. 일제강점기 정체성의 중심이었던 대종교지도자들은 해방 이후 남북으로 쪼개졌다. 김두봉을 중심으로 한 북과 윤세복을 정점으로 한 남으로 찢어진 형국이 되었다. 조만간 합쳐질 것으로 기대한 윤세복의 바람과는 달리 남과 북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치달았다.

6‧25 직전에 월북한 이극로와 홍명희, 전쟁 당시 납북 당한 조완구‧조소앙‧안재홍‧정인보‧명제세, 그리고 전쟁 발발 후 자진 월북한 정열모‧류열 등등으로 인해, 남쪽의 대종교 인물 지형은 더더욱 공동화(空洞化) 되었다. 나아가 전쟁 직후 이들의 입지는 남북 쪽 모두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한 쪽에선 종파주의로, 또 한 편에선 공산주의‧국수주의 등으로 매도되어 사라져갔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얼을 지키던 인물들의 도태와 더불어 대종교의 기반은 사라졌지만, 우리의 말과 글만은 그 인물들에 의해 지켜졌다. 북에서는 김두봉, 그리고 그를 계승한 이극로‧정열모‧류열 등이 우리의 말과 글을 갈고 닦았다. 남에서는 최현배가 고군분투하며 한글을 사수했다.

김두봉은 나철의 수제자이자 주시경의 수제자로 대종교의 교리‧교사와 한글 부문에서 누구보다 해박한 인물이었다. 그는 1914년 주시경이 세상을 떠나자, 스승이 못다 한 일을 이어 받아 『조선말본』을 저술했다. 당시 『조선말본』은 그 때까지 발표된 문법학설로는 가장 깊고 넓게 연구된 대표적 권위라는 평가를 받은 책이다. 1916년 나철이 구월산 삼성사에서 자결할 당시는 수석시자(首席侍者)로도 동행한 인물이 김두봉이다.

최현배 역시 주시경‧김두봉의 영향을 받고 1911년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경성고보 시절 그가 중시한 두 가지가 주시경에 의한 한글공부와 나철에 의한 대종교 참여였다. 심지어 일본인 교사로부터 대종교에 참여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받았던 인물이 최현배다.

남북은 단절과 대립 그리고 전쟁으로 더더욱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북의 흰못[白淵, 김두봉의 우리말 호]과 남의 외솔에 의해 우리말‧우리글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같은 얼을 공감해 온 이들이 정체성의 외연(外延)을 놓지 않은 것이다.

개천절과 한글날이 얼마 전 지났다. 안재홍의 말처럼 ‘국가적 의미에서 개천절이요, 민족문화적 의미에서 한글날’이다. 한글을 기리는 행사가 남북 모두 열린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다만 남쪽은 한글 반포일을, 북쪽은 한글 창제일을 기준으로 함이 다를 뿐이다.

무슨 이유인지 개천절과 한글날만은 대통령이 너나없이 딴전을 핀다. 거시기 대통령이나 머시기 대통령, 그 대통령이나 저 대통령 다 만찬가지다. 정체성이 망가진 나라의 서글픈 초상이다. 올 한글날 대통령은 세종대왕 영릉은 참배했고, 남북 겨레말 큰사전 공동편찬 작업을 재개한다는 국무총리의 축사가 그나마 작은 위안을 주었다.

일부는 남북 언어의 이질화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우다. 외국어도 못 끌어다 써서 안달인 판에, 표준어면 어떻고 문화어면 어떠랴. 상호(相互)만이 단어고 호상(互相)은 단어가 아니란 법 없다. 방언(사투리)이 고어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또한 향토색을 살리고 표준어를 보완해 준다는 것도 주지하는 바다.

무엇보다 같은 말, 같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뜻 깊은 일인가. 남북지도자 단 둘이 나눈 판문점 '도보다리'의 밀담 모습을 우리는 보았다. 같이 웃고, 함께 고민하며, 더불어 공감하던 두 지도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둘이 아니라는 희열을 만끽하였다.

얼빠진 말과 글이 박제된 기호에 불과하듯, 말‧글 없는 얼은 심장만 박동하는 뇌사상태와 같다. 우리의 말‧글‧얼이 한민족 정체성의 본질이자 현상임을 다시금 강조해 보는 이유다. 다만 그 말‧글 속에 숨겨진 얼을 각성할 날은 언제 올 것인지. 그러한 깨우침이야말로 한민족 정체성 확립의 필요충분조건으로, 통일의 가장 확실한 끈임을 상기할 때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195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대학에서 행정사를 전공하였고, 한신대학교 강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술로는 『단조사고』(편역, 2006), 『종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한국혼』(편저, 2009), 『국학이란 무엇인가』(2011), 『실천적 민족주의 역사가 장도빈』(2013)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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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를 내고도 정신 못 차린 ‘조선일보’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 보도의 진실은?
 
임병도 | 2018-10-22 09:21:4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10월 18일 김성태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서울 시청에 진입하려다 이를 막는 시청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이날 김성태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시청에서 ‘청년일자리 탈취 고용세습 엄중수사 촉구’ 긴급 규탄대회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 청사 내부는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없는 곳이라 시청 직원들이 막은 겁니다.

당시 서울시청 청사 8층에서는 서울시 국정감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자유한국당 의원 8명 중 7명도 여기에 합류했습니다. 결국, 서울시 국정감사는 파행됐습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서울시청 로비에서 현수막을 내걸며 ‘청년일자리 도둑질 서울시’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오보 낸 조선일보, 하루 만에 정정보도

▲10월 19일에 조선일보가 보도한 ‘박원순 취임 후…해고된 서울교통공사 민노총간부 30명 복직’ 기사. 다음날 조선일보는 오보를 인정했다. ⓒ조선일보 PDF

자유한국당 김용택 사무총장은 이날 서울시 국감장에서 “서울교통공사 전 노조위원장 김모씨의 아들이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이 되고, 이번엔 정규직이 됐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김용택 사무총장의 발언을 받아 10월 19일자 3면에 ‘박원순 취임 후… 해고된 서울교통공사 민노총 간부 30명 복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직 노조위원장 김모씨를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본지 취재결과 아들이 교통공사에 특혜 취업했다는 의혹을 받는 전 노조 간부는 5대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을 지낸 김모씨다. (김씨는) 1993년 위원장 취임 후 이듬해 3월 서울·부산지하철 총파업을 주도해 해고됐다. 2000년엔 민노총 공공연맹 위원장을 지냈다. 2004년 총선에서 민노총 공공연맹 추천을 받아 민주노동당 후보로 광명시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복직 대상으로 꼽혔으나 당시 60세로 정년에 걸려 제외됐다.” (10월 19일자 조선일보/해당 기사는 현재 삭제)

조선일보가 사례로 지적했던 노조위원장은 서울지하철 5대 노조위원장을 지낸 김연환 위원장입니다. 김 전 위원장의 아들은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김연환 전 위원장은 복직은커녕 해고 노동자로 정년을 넘긴 채 떠났습니다.

조선일보는 오보가 명백하자, 20일자 신문 2면 귀퉁이에 ‘바로잡습니다’라는 내용으로 정정보도를 했습니다.

“지난 19일자 A3면 ‘박원순 취임 후…해고된 서울교통공사 민노총간부 30명 복직’ 기사 중 아들이 교통공사에 특혜 취업했다는 의혹을 받는 전 노조 간부는 5대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 김모씨가 아니라 전직 도시철도노조 위원장으로 확인됐기에 바로잡습니다. 김 전 위원장과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10월 20일자 조선일보)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 보도의 진실은?

조선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언론은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에 대해 앞다퉈 보도를 했습니다. 과연 그들의 보도가 모두 진실일까요?

서울시가 밝힌 서울교통공사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 과정 ⓒ서울시

Q:노조 친인척은 무조건 특혜 채용을 했다?
A: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 공사가 통합하면서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전환은 총 1.285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중 직원 친인척은 총 108명이며, 이 중 34명은 구의역 사고 (2016년 5월 28일) 이전 전환자로 13년에 걸쳐 누적된 인원입니다. 74명은 구의역 사고 이후 안전강화 차원에서 추가 채용됐는데, 이 중 제한 경쟁을 통해서 36명, 나머지 38명은 공개 채용됐습니다.

제한경쟁 채용 과정에서 21명의 가족 구성원이 밝혀졌는데, 엄정한 심사절차를 거쳐 6명은 최종 배제됐고, 15명만 채용됐습니다. (당시 15명 중 9명은 용역업체 채용 당시 공채과정을 거쳐 구제됐음)

Q:계약직이 정규직 된다는 소문 때 직원 가족이 대거 입사했다?
A:65명의 채용 공고와 입사가 이루어진 시기는 2016년 7월 15일에서 2017년 3월 17일 사이로 서울시의 무기계약직 일반직화 방침 발표인 2017년 7월 17일보다 이전이었습니다. 소문만 듣고 무기계약직 채용에 지원했다는 것은 일정상 불가능합니다.

Q:무기계약직에서 일반직 전환도 무시험으로 이루어졌다?
A: 무기계약직 전환 이후 동일노동 동일처우 요구가 일어났고,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안전업무직 전원을 일반직화 하는 내용의 노사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특혜 및 공정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일반직 7급 전환 시험 절차가 진행됐습니다. (당시 시험 과목:공통(취업규칙 5문항)+직종별 관련사규(20문항)+역량평가(25문항)

서울교통공사는 친인척 재직 문제(부부 동일부서 근무 방지 등)에 따른 인사운영을 위해 지난 3월에 ‘친인척 재직 현황 조사’를 했습니다. 당시 조사에 참여한 사람은 17,045명으로 공사 전 직원(17,084명)의 99.8%였습니다. 오히려 친인척 재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조사가 이루어졌던 셈입니다.


오보를 내놓고도 정신 못 차린 조선일보

▲조선일보의 10월20일자 지면 1면, 3면, 민주노총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문제를 다뤘다. 이날 조선일보 2면에는 19일에 보도한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가 작게 실렸다. ⓒ조선일보 PDF

조선일보의 정정보도가 나온 10월 20일자 지면 1면의 제목은 “그들끼리 나눠먹는 취준생 일자리”였습니다. 기사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채용 등이 편법과 꼼수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3면에서도 “인성검사 떨어진 민노총 前간부 아내, 채용방식 바꿔 합격”이라는 제목으로 민주노총을 겨냥해 비난했습니다.

민주노총은 페이스북을 통해 김용택 사무총장이 제기하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던 전직 노조 위원장은 ‘한국노총 산하 전직 위원장이며 현재는 공사 1급 간부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노조는 10월 20일자 조선일보 사설에 나온 ‘서울교통공사 식당․목욕탕 직원, 이용사까지 정규직이 되어서 ‘도덕적 해이’의 문이 활짝 열렸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언주 의원의 ‘밥하는 아줌마’ 주장처럼 조선일보의 주장은 특정 직역을 비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도덕적 해이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가 이런 기사를 내보내는 이유는 일자리 문제를 통해 정부를 공격하는 동시에 내부 갈등을 유발하기 위해서입니다.

조선일보가 악의적이고 부정적인 프레임을 만들려다 보니 오보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정신 못 차리고 기사마다 ‘고용 세습’, ‘부정’, ‘비리’,’ 특혜’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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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 PC방 살인사건으로 본 ‘심신미약 범죄’의 오해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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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8/10/23 09:54
  • 수정일
    2018/10/23 09:5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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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 PC방 살인사건으로 본 ‘심신미약 범죄’의 오해들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발행 2018-10-22 20:27:05
수정 2018-10-23 08: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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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씨가 22일 오전 정신감정을 받기 위해 서울 양천경찰서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씨가 22일 오전 정신감정을 받기 위해 서울 양천경찰서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정신 질환이 살인 보험이냐”

지난 14일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 청년이 살해됐다. 해당 사건 피의자 측은 10년간 우울증약을 복용했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살인 사건 피의자가 우울증약 복용을 이유로 감형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심신미약 감형 반대 여론이 형성됐다.

언론은 여론을 부추겼다. 피의자가 아직 심신미약 판정을 받지 않았음에도 언론은 이를 전제로 감형 여부에만 초점을 맞춰 기사를 쏟아냈다. 이에 더해 희생자 담당의가 자신의 SNS에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여론의 불씨를 잡아당겼다.

역대 최다 동의를 얻은 국민청원은 이렇게 탄생했다. ‘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청원자는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 이런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하느냐”며 “나쁜 마음 먹으면 우울증약 처방받고 함부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신과 의사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이하 봉직의협회)는 지난 20일 성명서를 통해 “현재 가해자는 심신미약의 여부는 물론, 정신감정을 통한 정확한 진단조차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가해자의 범죄행위가 정신질환에 의한 것이라거나, 우울증과 심신미약을 혼동해 마치 감형의 수단처럼 비춰지는 것은 정신질환을 앓는 많은 이들에 대한 또 하나의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심신미약이 뭐 길래  

심신미약은 정신의학이 아닌 법률상의 개념이다. 형법 제10조 제1항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 변별 능력이 없거나,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이어 제2항은 이 같은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형한다고 규정한다.  

형법이 규정한 심신장애는 범행 당시 사물 변별 능력, 의사 결정 능력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느냐에 따라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으로 나뉜다. 해당 능력이 아예 없는 심신상실 상태가 인정되면 무죄가 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애완견에게 있던 악귀가 옮겨갔다며 딸을 살해한 어머니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 그 예다. 당시 재판부는 어머니가 환각, 피해망상, 조울증 등 심각한 정신질환을 겪어 심신상실 상태라고 판단했다.  

심신미약은 어느 정도 사물 변별 능력, 의사 결정 능력을 할 수 있는 상태다. 주로 환청, 망상이 심해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조현병 환자, 정신지체 장애 등이 이에 해당한다. 김지민 봉직의협회 회장은 “주로 심신미약이 정신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이 쉽게 혼동한다”면서도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과 심신미약 상태는 전혀 다른 의미”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심신미약 상태는 단순 정신질환의 유무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과 심도 있는 정신감정을 거쳐 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리는 매우 전문적이고 특수한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피의자의 심신장애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법원은 국립법무병원 등에 정신감정을 의뢰한다. 국립법무병원 등은 피의자를 2주~4주 동안 입원시키고 의료진과 면담 등을 통해 심신장애 여부를 판단한다.  

피의자가 정신 질환에 걸렸다고 주장하거나 정신 질환에 걸린 척 연기한다고 심신장애 판단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과의 면담 이외에도 피의자가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환자들이나 간호사 등과 지내며 보이는 태도 역시 판단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대다수 정신과 의사들은 “(심신미약) 감형을 악용하기 위해 모두를 속이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심신장애 상태를 인정받은 피의자들이 무죄 또는 감형 선고를 받아도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치료감호시설에 수용돼 치료받아야 한다. 심신장애는 15년, 약물‧알코올 중독은 2년까지 수용될 수 있다. 실형과 치료감호가 동시에 선고되면 치료감호가 먼저 진행된다. 치료감호 기간은 형 집행 기간에 포함되며 추가 치료가 인정되면 2년씩 3번 연장될 수 있다.

“정신질환과 심신미약은 다르다”  

김 회장은 심신미약과 정신질환이 동일시되면서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신질환이 강력 범죄의 원인처럼 비치면서 사건과 관계없는 선량한 정신질환자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김 회장은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이 감형을 위한 수단으로 비치면 실제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심신미약 상태가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신미약 감형 자체가 안 좋은 것이 아니고 이를 악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며 “정신질환은 그 자체가 범죄의 원인이 아니며 범죄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황도수 건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교수는 형법에 심신미약 감형이 들어간 취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황 교수는 “기계에 책임을 안 지우는 이유는 자유가 없기 때문”이라며 “인간은 자유에 따라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잘못된 것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심신미약 감형 제도를 둔 이유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지 않은 행동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국민들이 심신미약 감형 규정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실과 제도의 괴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심신미약 감경의 취지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에 적합하다”면서도 “심신미약 입증이 애매해 변호사의 능력에 따라 입증 여부가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심신미약을 입증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돈을 많이 들여 능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면 결과적으로 법정에서 심신미약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 방지 위해 ‘치료 유지’돼야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강력 처벌이 아니라 치료 유지라고 말한다. 김 회장은 “중증 정신질환자는 스스로 치료받으러 오기 어렵다”며 “중증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질러 법적 책임을 다한 뒤 치료가 계속 유지되지 않아 또다시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중증 정신질환자라는 자체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며 “치료가 잘 안되면 병이 악화하고, 병이 악화하면 판단 능력이 더 떨어져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법적 책임을 다한 후에도 치료를 유지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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