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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측위, '동맹대화' 즉각 철회 촉구

한미워킹그룹의 해체도 거듭 요구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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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7  10: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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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이창복)는 16일 논평을 내어 최근 한국과 미국 양국이 신설 논의중인 '동맹대화'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남북관계를 노골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줄곧 비판해 온 한미워킹그룹의 해체도 다시 한번 요구했다.

6.15남측위는 "미국의 패권정책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정책 기조 속에서 한미동맹 문제를 주로 다룰 국장급 상설협의체인 '동맹대화'를 신설하겠다는 것은 미국의 내정간섭을 제도화하고 미국의 대외 정책을 더욱 철저히 집행하는 상설기구를 추가하겠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강력히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합의과정에서 한미당국이 '인도·태평양에서 계속 평화와 번영의 힘이 되도록 동맹을 증진하는 방안들을 논의'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 "이는 미국 주도하의 대중봉쇄 정책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노골적으로 힘을 싣겠다는 것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증진시켜야 할 한국의 국익에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합의"라고 비판했다.

한미워킹그룹이 남북관계를 노골적으로 통제하고,  한미통합국방협의체가 미군의 군사정책을 관철하는 구조로 작동한다고 지적하고는 "현재의 한미동맹이 미국의 패권정책을 일방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한, 그리고 이를 개선하려는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전환이 없는 한, 어떠한 형태의 상설협의체도 미국 패권정책의 관철통로가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6.15남측위는 "한미워킹그룹을 해체하라는 목소리가 높은 지금, 워킹그룹 해체는커녕 오히려 외교정책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을 상설화하는 기구 건설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논평](전문)

한미간 상설협의체 ‘동맹대화 ’ 신설 움직임 규탄한다! 즉각 철회하라 ! 

최근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미국을 방문하여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과 회담을 갖고 한미동맹의 현안들을 논의하기 위해 양국 외교당국 사이에 이른바 ‘동맹 대화 ’라는 국장급 신설협의체를 신설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14일, 한미 양 정부가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계속 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면서 ‘한국이 제안한 동맹대화를 긍정적으로 고려하기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의 시민사회는 현재의 한미동맹이 미국의 패권정책을 일방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한, 그리고 이를 개선하려는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전환이 없는 한, 어떠한 형태의 상설협의체도 미국 패권정책의 관철통로가 될 뿐이라는 것을 지적해 왔다. 남북관계를 노골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한미워킹그룹이나 미군의 군사정책을 관철하고 있는 한미통합국방협의체는 한미간 상설협의체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미워킹그룹을 해체하라는 목소리가 높은 지금, 워킹그룹 해체는커녕 오히려 외교정책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을 상설화하는 기구 건설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외교당국 차원에서도 이미 한미간 장관급, 차관급 등 다양한 협의채널이 운영되고 있고 매 회담에서 미국 주도하의 대외정책을 추종하는 결정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한미워킹그룹 해체 요구에 대해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해 나섰던 것도 바로 외교부였다.

이번 차관급 회담에서도 한미 양국은 ‘인도태평양에서 계속 평화와 번영의 힘이 되도록 동맹을 증진하는 방안들을 논의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미국 주도하의 대중봉쇄 정책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노골적으로 힘을 싣겠다는 것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증진시켜야 할 한국의 국익에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합의이다.

미국의 패권정책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정책 기조 속에서 한미동맹 문제를 주로 다룰 국장급 상설협의체인 ‘동맹대화'를 신설하겠다는 것은 미국의 내정간섭을 제도화하고 미국의 대외 정책을 더욱 철저히 집행하는 상설기구를 추가하겠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강력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미 당국은 이른바 ‘동맹대화' 신설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
남북관계 방해하는 ‘ 한미워킹그룹’  즉각 해체하라!


2020년 9월 16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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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단] 미군 장갑차를 불태우다

하인철 통신원 | 기사입력 2020/09/1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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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인철 통신원

▲ 조나단 벨리시카 사진을 태우고 있다.  © 하인철 통신원

 

▲ 장갑차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 하인철 통신원

 

16일 오후 1시 대진연 미군장갑차 추돌 사망사건 진상규명단(이하 '진상규명단')이 캠프 케이시 앞에서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진상규명단은 기자회견을 끝내고 상징의식으로 여러 사진을 불태웠다. 

 

진상규명단은 "며칠째 농성을 이어가도 나타나지 않는 책임자들을 규탄하며, 미군 범죄를 끊어내고 싶은 마음을 담은 상징의식이다"라고 밝혔다. 

 

첫 번째로 불태운 사진은 미2사단 스티브 길랜드 사단장과 210포병여단 조나단 벨리시카 여단장이었다. 

 

두 번째로 불태운 사진은 이번 추돌 사망 사건의 문제가 된 장갑차였다. 

 

이후 면담요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캠프 케이시로 향했으나, 경찰에 가로막혀 사지가 들린 채 가로막혔다.

 

 

▲ 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하인철 통신원

▲ 면담요청서를 제출하기 위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하인철 통신원

 

이날 오후 4시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도 진상규명단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황석훈 단원은 "이번 미군장갑차 추돌 사망 사건은 명백히 주한미군의 잘못이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이후 체결된 '안전조치 합의서'를 전혀 지키지 않았다"라며 주한미군의 잘못을 짚었다. 

 

박재이 단원이 해리 해리스에게 전하는 면담요청서를 낭독했다. 

 

낭독 후 주한미대사관으로 면담요청서를 제출하러 가려 했으나 경찰에 가로막혀 제출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진상규명단은 "주한미대사 해리 해리스는 국민의 명령을 들어라. 더 이상 죽음을 두고 볼 수 없다. 우리의 주권을 되찾을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해리스는 이 땅을 떠나라"라고 외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아래는 면담요청서 전문이다

 

---------------아래------------------

 

2020년 8월 30일 포천시 영로대교에서 SUV 차량이 주한미군 2사단 210포병여단 소속 장갑차에 추돌하여 SUV 탑승객 네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이번 사건은 주한미군 측이 ‘훈련안전조치 합의서’ 규정 사항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 측은 불의의 사고라며 유감만 표할 뿐 어떠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주한 미 대사 해리 해리스 역시 애도 표명 이후 후속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의 국민이 한국 땅에서 안전규정을 위반하여 발생한 사망 사고이기 때문에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주한 미 대사에게도 분명한 책임이 있습니다. 주한 미 대사 해리 해리스는 지금 당장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적극 나서십시오. 또한 해당 미군기지가 사건을 은폐하기 전에 기지를 폐쇄하도록 하십시오. 주한미군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유가족과 국민 앞에 나와 사과하고 후속 조치에 대해 약속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진연 미군장갑차 추돌 사망사건 진상규명단>은 주한 미 대사 해리 해리스에게 대한민국 국민 네 명이 미군에 의해 무참히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한 사죄와 그에 따른 책임을 강력히 요구하고자 정식 면담을 요청합니다.

 

 

2020년 9월 16일 수요일

 

대진연 미군장갑차 추돌 사망사건 진상규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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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균형을 이뤄내는 이 돌다리의 비결

[세상을 잇는 다리] 넉넉한 자존심과 듬직한 힘으로 우뚝선 널돌다리

20.09.16 08:54l최종 업데이트 20.09.16 08:54l


월북 작가 이태준의 작품 중 <돌다리>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일제 강점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1943년 1월에 발표한 작품이니 다소 '계몽적' 요소가 담겼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논밭이 가진 시간과 역사, 그 땅에서 피땀 흘리며 살아내야만 하는 농부들의 숙명을, 결코 버릴 수 없는 튼튼히 버티고 선 돌다리에 비유해가며 가감 없이 표현해낸 작품이다.
면(面)사무소에서 지원해준 돈으로, 돌다리 옆 가까운 곳에 난간까지 곁들인 유려한 널다리가 생겨난다. 그러자 오래된 돌다리는 점차 잊히기 시작한다.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개울엔 서너 개 징검다리도 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태에 점차 잊히는 돌다리를 신념처럼 지켜내려 하는 아버지 모습이 눈물겹도록 고집스러워 더욱 애잔하다.
 

고양 덕양 강매석교 창릉천에 있는 우물마루 모양 상판을 가진 널돌다리다. 각진 굵은 돌기둥을 세우고, 멍엣돌로 결구시켰다. 귀틀돌을 멍엣돌 위에 결구시켜 경간을 구성하고, 그 위에 2열의 널돌(청판석)을 깔아 완성하였다.
▲ 고양 덕양 강매석교 창릉천에 있는 우물마루 모양 상판을 가진 널돌다리다. 각진 굵은 돌기둥을 세우고, 멍엣돌로 결구시켰다. 귀틀돌을 멍엣돌 위에 결구시켜 경간을 구성하고, 그 위에 2열의 널돌(청판석)을 깔아 완성하였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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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등장하는 돌다리는 묘사된 내용으로 보아 논산 석성 수탕석교나 보령 한내돌다리처럼 넓적하고 편평하며 길쭉한 자연석을 상판으로 얹힌 '널돌다리'가 분명해 보인다. 논밭을 팔아 서울에서 병원을 확장하고자 하는 아들의 젊은 의도와 '땅이란 천지만물의 근거'라 말하며 땅을 지켜내고자 하는 아버지 늙은 신념이 충돌한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마을로 통하는 길에 돌다리를 놓았고 그 다리를 통해 아버지의 할아버지 꽃상여가, 아들 어머니의 꽃가마가, 천자문을 옆구리에 낀 소년이던 아버지 발걸음이 마을로 드나들었다.

튼튼한 널돌다리의 비결   돌로 만든 다리(石橋)는 그 형식이나 모양이 비교적 다양하다. 진천 농다리나 주남 새다리, 담양 용대리 석교처럼 돌을 '막쌓기' 하여 교각을 축조한 다리가 있는가 하면, 돌기둥으로 교각을 만들고 상판은 가공하지 않은 넓적한 돌을 걸치거나, 정교하게 다듬어 우물마루 모양으로 만든 다리도 있다. 또한 교각을 무지개(虹霓) 모양으로 만든 돌다리도 있다. 이 중 널돌다리는 '돌기둥을 세워 교각을 축조하고, 상판은 돌로 마무리한 다리'에 한정하고자 한다.


우리 속담에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매사 확실해 보이는 부분도 꼼꼼하게 다시 살피고 검토하여 실수가 없게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홍예 자체가 완전한 구조물인 무지개다리(虹霓石橋)는 널돌다리보다 훨씬 더 튼튼한, 재론의 여지가 없는 구조물이다.

어쩌면 무지개다리는 두드릴 필요조차 없는 다리로 인식되었는지도 모른다. 속담에 등장하는 '두들기고 건너야 하는 돌다리'는 바로 널돌다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유비무환이고 만사불여튼튼이다. 조상들에게 있어 어지간한 일에는 절대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제자리를 지켜내는, 튼실함의 상징이 바로 널돌다리였다.
 
함평 학교면 고막천교 고막천교 교각은 제각각이다. 2층 교각도 있고, 홑 돌기둥을 세운 교각도 있으며, 사진처럼 지대석을 깔고 그 위에 서로 높이가 다른 교각을 세워 결구시킨 교각도 있다. 상판은 넓적하고 편평한 기다란 자연석과 2열 우물마루가 혼용돼 있다.
▲ 함평 학교면 고막천교 고막천교 교각은 제각각이다. 2층 교각도 있고, 홑 돌기둥을 세운 교각도 있으며, 사진처럼 지대석을 깔고 그 위에 서로 높이가 다른 교각을 세워 결구시킨 교각도 있다. 상판은 넓적하고 편평한 기다란 자연석과 2열 우물마루가 혼용돼 있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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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널돌다리는 왜 튼튼한 것일까? 비밀은 결구(結構) 방식에 있다. 한옥 결구방식은 매우 정교하다. 못이나 꺾쇠를 절대 쓰지 않는다. 기둥에 보와 도리, 창방이 결구되는 방식이다. 힘(荷重)을 받는 방향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고, 칸 간격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를 '가구식(架構式) 결구'라 부른다. 한 덩어리로 잘 짜인 구조체로, 큰 지진에도 끄떡없이 잘 견뎌낸다. 바로 각 부재 간 '짜임'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목조의 이런 가구식 결구가 석조 구조물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왕 무덤은 물론, 불국사 석축과 석굴암 전실에서도 가구식 결구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널돌다리에 목조·석조건축에서 사용한 가구식 결구가 유사한 방식으로 적용되었다. 그래서 튼튼한 몸체를 갖게 된 것이다. 짜인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은 매우 비슷하다. 나무냐 돌이냐 사용한 재료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하나의 구조물로 잘 짜인 널돌다리
 
강매석교 하부 결구 모습 돌기둥 교각을 물살흐름에 맞서 각지게 세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교각 위에서 멍엣돌을 결구시키기 위해 끝을 깎아낸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 위에 결구된 귀틀돌과 그 사이로 나와있는 상판 널돌(청판)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 강매석교 하부 결구 모습 돌기둥 교각을 물살흐름에 맞서 각지게 세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교각 위에서 멍엣돌을 결구시키기 위해 끝을 깎아낸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 위에 결구된 귀틀돌과 그 사이로 나와있는 상판 널돌(청판)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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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돌다리 축조는 앞서 살펴본 '널다리 축조과정'과 똑같다. 교각 놓을 자리에 적심작업을 하고, 주춧돌 모양의 지대석을 앉힌다. 지대석 위에 교각모양으로 홈을 파내,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돌기둥 각진 곳이 닿도록 결구시킨다. 열 맞춰 결구 된 교각 위에, 깎아낸 '멍엣돌'을 걸치거나 교각에 홈을 파내 흔들리지 않게 끼워 맞춘다.

교각과 교각은 멍엣돌 위에 '귀틀돌'을 얹어 같은 방식으로 결구시킨다. 귀틀돌 없이 자연석 상판을 얹어 완성한 널돌다리도 상당수다. 멍엣돌이나 귀틀돌끼리 접하는 부분은, 끝단에 나비모양 홈을 파 쐐기돌을 박아 고정시킨다.

귀틀돌 상부 가장자리를 따라 'ㄴ'자 모양으로 길게 홈을 파내고, 그 위에 '널돌(板石, 청판석)'을 끼워 맞춰 상판을 완성한다. 널돌 두께는 상부에서 가해지는 하중을 견뎌낼 만큼 충분히 두꺼워야 한다. 귀틀돌 개수(n)에 따라, 상판(널돌) 열(n-1)이 결정된다.

돌난간은 필요에 따라 설치한다. 돌난간을 설치한 다리는 궁궐이나 한양 청계천 등에 있는 다리 외에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돌난간 설치방법도 널다리 난간과 똑같다. 귀틀돌 가장자리에 '난대석'을 끼울 구멍이 파인 '동자석'을 결구시켜 세운다. 동자석 사이에 꽃잎 모양 '화엽석'을 세우고 난대석을 끼워 둘을 고정시키면 돌난간이 만들어진다.

널돌다리는 결구되어 '하나로 잘 짜인 구조물'이다. 이런 구조물의 특징은 무엇보다 분열되지 않는 '일체성'에 있다. 구조물을 구성하는 부재들 서로가 잇닿아 엇물려 있다. 서로 보듬고 보완해주지 않으면 구조물은 쉬이 무너지고 만다. 구조물에 가해지는 외부의 힘을 분산시켜 나눠 떠안아야 한다. 이런 합리성과 과학성이 구조물의 생명을 길게 만드는 원천이 되었다.

널돌다리가 던지는 질문들
 
광통교 돌난간 우물마루 가장자리 귀틀돌에 동자석을 세웠다. 동자석엔 난대석 끼울 구멍대신, 얹혀 끼울 수 있게 홈을 만들어 두었다. 뭉툭한 모양의 화엽석을 세우고, 그 위를 난대석으로 결구시켰다. 동자석 파놓은 홈에 난대석을 걸고 끼워서 결구시킨 모습이 특이하다.
▲ 광통교 돌난간 우물마루 가장자리 귀틀돌에 동자석을 세웠다. 동자석엔 난대석 끼울 구멍대신, 얹혀 끼울 수 있게 홈을 만들어 두었다. 뭉툭한 모양의 화엽석을 세우고, 그 위를 난대석으로 결구시켰다. 동자석 파놓은 홈에 난대석을 걸고 끼워서 결구시킨 모습이 특이하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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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짜였다는 것은 '하나의 흐름이고, 하나의 힘이며, 모두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혹여 하나의 교각에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이웃한 다른 교각과 부재들이 그 문제를 나눠 안고 보완해주는 역할을 해낸다. 내부 균열을 각 부재들이 나눠 떠안으며 깊이 포용하고 함께 해준다. 널돌다리는 이런 연유로 오랜 세월을 견뎌내는 힘을 쌓고 보전되어 왔다. 널돌다리가 품고 있는 이런 균형과 조화가 다리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널돌다리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상들의 지혜가, 작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꾸짖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 과연 합리성이 존재하는가? 온전한 상식이 통용되고 있는 사회인가? 부당한 외부의 힘에 일체화되어 대비하거나 하나의 흐름과 힘으로 균형을 지켜내는 지혜를, 우리 공동체는 과연 가지고 있는가?

우리 사회 곳곳에 상식수준에도 이르지 못한 생각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과도한 힘과 권세를 갖게 됨으로써, '하나로 잘 짜인 세상'에 이르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외부의 무지막지한 힘에도 말없이 무심한 세월을 견뎌냈을 널돌다리들을 찾아다니며 깊은 상념에 잠겼던 적이 여러 번이다.

이태준 단편소설 '돌다리'에서 의사인 아들은 땅을 팔아 돈을 마련하려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밤차 타러 돌다리 건너 서울로 가버린다. 시골에 남겨진 아버지는 밤잠을 못 이룬다. 아들을 떠나보낸 자신을 '야위고 늙은 어버이 제비 한 쌍만, 가을바람 소슬한 추녀 끝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고 묘사한 시를 통해 되돌아본다. 그러면서 전날 고쳐놓은 돌다리 한가운데에서 '쾅' 하고 굴러 보아도 발바닥만 아플 뿐, 돌다리가 끄떡할 리 없다. 돌다리처럼 단단히 '짜인' 그들 부자 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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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라 망치는 가짜뉴스와 ‘기레기’

가짜 뉴스 만드는 기레기들. 이들에게 진짜는 무엇이 있을까.
 
이기명  | 등록:2020-09-15 11:14:10 | 최종:2020-09-15 11:18:4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칼럼] 나라 망치는 가짜뉴스와 ‘기레기’
기레기! 말 들어라. 국민은 무섭다.

가짜 뉴스 만드는 기레기들. 이들에게 진짜는 무엇이 있을까.
 
기레기들과 가짜 뉴스 욕을 할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내 과거가 있다. KBS 전속작가로 독재정권에 대한 아부 아첨을 밥 먹듯 하고 박정희·전두환 빠느라고 혀끝이 다 닳았다. 그때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가. 그러나 양심이 고개를 들면 더러운 손으로 찍어 눌렀다. 지금의 기레기와 다를 것이 없다.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빈다. 죽어서도 그 죄를 다 씻지 못할 것이다.
 
■ 5·16 군사정변과 언론
 
5·16군사정변 이후 기자들은 원고를 가지고 검열을 받으러 갔다. 새파란 초급장교가 볼펜을 들고 삐딱하니 앉아 기사를 북 북 그어댄다. 기사가 죽는다. 그 앞에 참혹하게 서 있는 기자들. 그땐 기레기란 단어가 없었다.
 
문득 생각한다. 지금 내가 검열관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른바 기레기들의 기사는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레기들이 언론자유 말살이라고 길길이 뛰겠지. 세상은 돌고 돈다.
 
이승만이 낚시를 하다가 방귀를 뀌면 옆에 모시고 있던 장관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아부를 떨고 기자들은 코미디 같은 기사를 쓴다. 자유당 시절만도 못한 오늘의 언론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미지 출처 - 채널A 영상 캡처)

■ 채널A와 이동재 기자
 
채널A의 이동재는 앞으로 출마를 해도 이름 알리기 위해 땀 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검언유착이라는 태풍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국민이 없다. 검언유착이 아니라고 기를 쓰는 모양인데 가만히나 있으면 세상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됐다고 동정이라도 할 것이다. 가만있거라.
 
요즘 기레기들 사이에 경고장이 돌아다닌다고 한다. ‘조국 전 장관’ 기사를 쓸 때는 열 번 백 번 각별히 조심하고 되도록 조국이란 이름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이유가 뭐냐. 모르면 계속 쓰다 고소당해 재판에서 똥바가지 써 봐라. 가짜 뉴스의 결과가 이런 것이구나 땅을 쳐도 이미 기차는 지나갔을 것이다.
 
기레기 얘기가 나왔으니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조선일보 김대중 사회부 차장이 특파원으로 광주에 갔는데 기사 중에 잊지 못할 것은 바로 “저기 복면을 한 무장 괴한들이 서성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서성거리는 무장 괴한’이라던 사람은 아마 지금 5·18 국립묘지에 묻혀 있을 것이다. 영향력 1위라고 떵떵거리던 김대중도 이제 나나 비슷하게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갈 날도 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김대중이 원조 기레기라고 할까.
 
오늘날 기레기들도 자신이 긁적거리고 있는 소위 기사라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알 것이다. 명색이 기자고 언론고시 공부한다고 보약 먹었을 것 아닌가. 기자 합격했다고 잔치하고 축하주 마셨을 것 아니냐. 그러나 이제 남은 것은 기레기란 오명뿐이다.
 
친구 놈 아들이 기레기다. 자식 놈 볼 때마다 불쌍해서 못 견디겠다는 것이다. 인터넷 박시영TV 사장이 방송에서 ‘조선일보 놈’이라고 하는데 속이 시원했다. 왜 그들이라고 모르겠느냐. 언론고시 합격생들이다. 종편을 보고 있으면 눈과 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정치평론가라는 자들이 지껄이는 것을 보며 저게 평론가냐. 저게 교수냐 하는 탄식이 나온다. 자신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나 알겠느냐.
 
■ 기자 풍년, 기사 흉년
 
너도, 나도 사장인 시절이 있었다. 명동에서 길을 가다가 사장님하고 부르면 가던 사람 거의 뒤돌아섰다고 한다. 지금은 어떤가. 기자님하고 부르면 그 꼴이 나지 않을까. 국회나 정당의 기자실이라는 데를 가보면 으악!! 웬 놈의 기자가 그렇게도 많으냐. 이건 몇 명 죽어도 누가 죽었는지 모를 지경이 됐다. 희소가치를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물건이 너무 많으면 값이 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의원도 한 절반 정도로 줄이면 안 될까.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들린다.
 
국회 얘기가 나오면 ‘밥이 아깝다’던 죽은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그 친구도 국회의원이었다. 전국구 의원이었다. 체면 봐서 참았지만 배지 떼고 나니까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국회에서 폼 잡고 마이크 잡은 의원들을 보면 왜 저 짓을 하고 있는가 하는 탄식이 나온다. 나름대로 좋은 교육 받는 사람들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나 오물통에 들어가면 모두 오물이다.
 
내가 언론을 욕하면 함께 있던 기자들의 얼굴이 변한다. 영 미안하다. 보통 반듯한 기자들과 자주 어울리고 맘 놓고 기자들 욕한다. 주로 욕하는 대상은 조·중·동이다. 요즘 조국 전 장관에게 고소당한 기자 애들은 얼굴도 모르지만 꿈자리 사나울 것이다. 낼 모레 죽을지도 모르는 늙은이한테 욕을 이렇게 먹고 있으니 죽을 때 같이 가자면 어쩌나 걱정할지도 모르나 걱정 마라. 니들같은 애들과 절대로 동행하고 싶지 않다.
 
■ 한겨레 ‘저널 어택’
 
요즘도 신문 읽는 사람들이 있는가. 있다. 나다. 골라서 본다. 내가 빠트리지 않고 보는 기사가 딱 하나 있다. 한겨레 김이택 대기자의 ‘어택 저널’이다. 설명하지 않는다. 읽으면 이유를 알 것이다. 특히 기레기들은 보거라. 보고 나면 자신이 지금껏 기사를 쓴 것이 아니라 똥을 퍼 날랐다고 생각할 것이다.
 
요즘 기레기들이 신바람이 나서 떠들어 대는 것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관절 수술 기사다. 기레기들도 한심할 것이다. 이 정도로 타락했다는 사실에 기가 찰 것이다.
 
신원식이란 ‘국민의힘’ 의원도 별을 세 개나 단 육사 출신이다. 육사의 명예가 있다. 군대는 쇳덩어리 기계가 돌아가는 사회가 아니다. 군대는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이다. 신원식의 처신을 보면서 군에서 나온 것이 다행이라 생각 했다.
 
■ 나를 겁 없는 남자라고 한다
 
후회를 남기지 말고 죽자. 이것이 내 생각이다.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던 알코올중독자. 세상 그럭저럭 살다가 죽으면 된다는 적당주의 요령주의자. 그게 나였다.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신지 몇십 년이 된다. 진짜 한 방울도 안 마셨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이후 친구의 충고가 있었다. 술 마시고 그렇게 말이 많으면 노무현이 너한테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나. 아 충격이었다. 맞아 술을 끊자.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아는가. 뼈를 잘라내는 고통을 이겨냈다.
 
거짓말 안 하기로 했다. ‘선생님. 거짓말 안 하면 속이 편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분들은 모두 좋은 분들입니다.’ 역시 노 대통령이 한 말이다. 자랑스럽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믿는다. 내가 믿는 사람이면 남들도 믿어준다. 왜 거짓말 안 하니까. 거짓말하는 사람과는 가까이하지 않는다. 힘들지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 나는 앞일을 예측한다
 
내가 돕는다고 나름대로 노력한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노무현·문재인이다.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앞날이 보이느냐. 내 대답은 이렇다. 보인다. 조건이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없으면 보인다. 욕심이 없으면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바라는 것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에도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욕심이 없으면 눈이 밝아진다. 밝아지면 멀리 볼 수 있고 환하게 볼 수 있다. 사람을 보는 눈도 같다.
 
지금 이러고 저러구 말 많은 사람들도 내 눈에는 전부가 보인다. 생각까지도 다 보인다. 난 이미 예측하고 있다. 다만 말을 안 하고 있을 뿐이다.
 
■ 지도자가 숟가락 얹을 생각만 하면 안 된다
 
언론이 지금 죄를 짓고 있다. 죄를 지어도 보통 죄가 아니다. 나라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두 길 사이에 있다. 어떠냐. 아니라고 할 자신이 있느냐. 언론 욕한다고 감정에 빠지지 말고 솔직히 말해야 한다.
 
자신들이 제기한 문제는 공자님 말씀이냐. 반론을 제기하면 잡아 죽이려고 기를 쓴다. 기자는 자부심으로 산다고 한다. 좋다. 지금 자부심 느끼는 기자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전에는 기자님이었다. 지금 기자 ‘님’ 소리 들으면 어떨까.
 
언론이 지도자를 만들어 낸다. 가장 광범위한 국민을 만나고 국민의 소리를 듣고 전하는 것이 언론이다.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정치인은 일관된 소신의 소유자여야 한다. 더구나 지도자 반열에 올라 있는 경우에는 더욱더 소신과 정직이 필요하다.
 
젓가락 하나 들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맛있는 반찬만 끄적거리는 태도는 옳다고 할 수 없다. 오래 못 간다. 자신의 생각만이 최고라는 독선은 금물이다. 지금 국민은 정직과 신뢰의 정치인을 갈구한다.
 
잘 살펴보자. 정신 차리면 보인다. 언론도 같다. 정신 차리자. 나라를 위해서다. 나라는 내 것이 아니다. 국민의 것이다. 국민 중에 부모 처자식 모두 들어 있다. 윤석열도 방상훈도 한동훈도 이동재도 모두 국민이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5014&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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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으로 두말 하는 정부?...10개월 전엔 "지역화폐 경제효과 커" 연구

지역화폐 폄하 연구 '서울 공화국' 대변?...이재명 "연구, 시기·내용·목적에서 엉터리"

문제는 역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행정자치부 산하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지난 12월 지역화폐가 경제 활성화에 효과가 있다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는 점이다.

 

국무총리실 산하인 조세재정연구원은 나라 살림을 다루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하는 기관이고, 행정자치부 산하인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지역 균형 발전 등 지방자치 관련 연구에 특화된 기관이다. 같은 국책 연구기관이 서로 상반되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낸 셈이라, 논란이 불가피하다.

 

또한 조정연의 연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현재까지 지역화폐 활성화 정책을 폈던 중앙정부의 정책들도 모두 실패한 게 된다. 또한 지역화폐를 사용해 온 지방정부와 지방 거주 시민들은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조정연은 지역화폐 '손실덩어리'로 봐...행자부 산하 연구원은 "지역화폐 경제효과 크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15일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역화폐는 각 지자체에서 발행해 지역 내 가맹점에서만 사용 가능하도록 제한한 화폐다. 2016년부터 전국 53개 지자체에서 1168억 원 규모를 발행했고, 2020년엔 229개 지자체가 9조원 규모를 발행한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243개 광역 기초단체의 절반인 177개 자치단체에서 발행 중이거나 도입을 앞두고 있으며, 2020년 지역화폐 내년도 발행 규모는 내년에는 발행 규모가 15조 원으로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지역 화폐는 기본적으로 발행한 해당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서 지역의 소득과 소비를 지역 내에 묶어 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KTX 등 교통 수단이 발달하면서 기대됐던 지역 소비 활성화 등의 효과는, 정반대로 서울 등 대도시로 소비 여력이 빨려들어가는 '소비의 삼투압 현상'으로 나타났다. 지역화폐의 등장은 이처럼 소비가 서울 및 대도시로 집중되는 현상을 완화하자는 취지다. 지역화폐는 액면가보다 10% 할인 판매된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으로 메워지는데, 그 보조금이 올해엔 9000억 원 수준이다.


 

즉 서울 등 대도시로 소비가 집중되고 지역 경제가 피폐해지는 걸 막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각 지방정부와 지역 주민에게 지역화폐 보조금을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조정연의 보고서는 이같은 지역화폐 발행이 정부에 손해를 끼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조정연은 2010~2018년 전국사업체 전수조사자료를 이용해 지역 화폐 발행 효과를 분석했고, 유의미한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동네 마트 등 일부 업종 매출만 늘었고, 지역 고용 효과도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지차게 부담하는 보조금 9000억원 중 소비자 후생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제적 순손실이 460억원인 것으로 추산하는 등 지역 화폐 발행에 따른 손실이 2260억 원에 달한다고 봤다. 대안으로 조정연은 지자체를 불문하고 사용할 수 있는 정부 발행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지역화폐보다 우월하다고 평가했고, 나아가 "지역화폐보다 사업체 직접 지원이 더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한국지방행정연구원(지행연)이 지난해 12월 낸 '지방자치 정책브리프' 제79호 '지역사랑상품권 전국발행의 경제적 효과'에 따르면, 지역화폐 발행의 경제 효과는 크다.


 

물론 연구 결과의 전제가 되는 상품권 발행 규모 등이 조정연과 다르게 추산돼, 두 보고서의 단순 비교는 힘들다.

 

그러나 지행연이 보고서는 조정연의 보고서와 달리 지역화폐의 경제 효과가 크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지역화폐 발행 보조금을 '지방 거주 가계의 소득'으로 보고 있으며 '지역 순환 경제'를 강조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 보고서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제공하는 지역사랑상품권의 할인액은 가계의 소득증가로 볼 수 있다"며 "올해(2019년) 8월까지 전국 상품권 발행에 따른 '발행의 총효과'는 발행액 1조 8025억 원에 대하여 생산유발액은 3조 2128억 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1조 3837억 원, 취업 유발인원은 2만9360원으로 추산된다"고 보고했다.

 

지행연은 "재정 투입에 따른 상품권 발행의 승수효과는 생산 유발액 기준으로 1.76배, 부가가치유발액 기준으로는 0.76배로 나타난다"며 "상품권 발행규모 이상의 생산유발효과를 거둘 수 있어 지역사랑상품권의 발행, 유통이 지역의 생산과 부가가치 증대에 긍정적 효과를 불러온다"고 결론을 냈다.


 

불과 10개월 여 차이로 발행된 정부 연구기관 보고서가 결론에서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지역화폐 비난 연구, 시기·내용·목적에서 엉터리"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같은 지행연의 보고서 내용을 언급하며 "조세재정연구원이라는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이 지역화폐가 무익한 제도로 예산만 낭비했다며 지역화폐정책을 비난하고 나섰다"며 "국민의 혈세로 정부정책을 연구하고 지원하는 조세재정연구원 연구결과발표가 시기, 내용, 목적 등에서 엉터리"라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첫째,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이자 현 정부의 핵심주요정책인 지역화폐정책을 정면부인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2019년부터 공약에 따라 본격적으로 지역화폐정책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번 1차 재난지원금도 전자지역화폐로 지급하였고, 홍남기 부총리는 '내년에 20조원 규모의 민간소비 창출을 위해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과 소비쿠폰 예산으로 1조 8천억원을 배정한다'고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또 조정연의 보고서가 지역화폐를 본격 시행하기 전인 2010~2018년 데이터를 이용했다며 "현재의 지역화폐 시행시기와 동떨어진다. 2년전 까지의 연구결과를 지금 시점에 뜬금없이 내놓는 것도 이상하다"고 반박했다.

 

이 지사는 특히 "연구 내용 중 '대형마트 대신 골목상권 소형매장을 사용하게 함으로서 소비자의 후생 효용을 떨어뜨렸다'는 대목은 골목상권 영세자영업 진흥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목표를 완전히 부인하고 있다. 또한 다른 행정안전부 산하 기관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등 다른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결과와 상반된다"고 비판했다.

 

이 지사는 "기재부와 협의로 과제를 선정해 연구하는 조세재정연구원이 왜 시의성은 물론 내용의 완결성이 결여되고 다른 정부연구기관의 연구결과 및 정부정책기조에 어긋나며, 온 국민에 체감한 현실의 경제효과를 무시한 채 정치적 주장에 가까운 얼빠진 연구결과를 지금 이 시기에 제출하였는지에 대해 엄정한 조사와 문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1609481268107#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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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다녔어도 2년마다 신입”..한국장학재단 콜센터상담사 전면파업 나선 이유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상담사들, 하루 전면파업 돌입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20-09-15 18:59:09
수정 2020-09-15 19: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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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학재단 콜센터에서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이 필요한 학생·학부모 상담을 담당하는 상담사들이 15일 하루 전면 파업에 나섰다. 2년마다 위탁업체가 바뀌면서 겪는 고용불안과 10년을 다녀도 신입사원과 똑같은 최저임금을 받는 현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고자 지난해 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생애 첫 파업에 나선 것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한국장학재단지회는 15일 한국장학재단에 식대·명절상여금·복지포인트 지급 및 임금 인상,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금지 등을 촉구하면서 총파업에 나섰다. 노조에 따르면, 2020년 임금교섭 결렬 후 2개의 센터에서 진행된 쟁의찬반 투표 결과 각각 94%·97%의 높은 찬성률로 가결됐다.

무엇이 이들 상담사를 이렇게 분노하게 한 것일까.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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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한국장학재단지회는 15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총파업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인 한국장학재단을 위해 일하는 상담사들의 처우개선 등을 촉구했다.
ⓒ김철수 기자

8년간 3개 업체 소속으로 일한 상담사
2년마다 새로운 근무지서 신입사원처럼

“희망을 나누는 한국장학재단 상담사 ○○○입니다”

 

한국장학재단 콜센터에 전화하면 들을 수 있는 상담사의 첫 인사말이다. 그런데 이런 매뉴얼에 따른 인사말과는 다르게, 이들 상담사들은 한국장학재단이 아닌 모두 민간위탁 사업장 소속 노동자들이다. 이 때문에 2년에 한 번씩 일하던 위탁업체가 바뀌면서 정들었던 근무지가 바뀌거나 센터가 통째로 통폐합되는 등 고용불안을 겪어 왔다.

또 2~3만원 수준의 근속수당이 적용됐다가도, 2년 뒤 업체가 바뀌면 다시 신입사원이 되는 수모를 반복해서 겪었다.

2013년부터 한국장학재단 콜센터에서 일해 온 상담사 이재순 씨 또한 신입이 받는 똑같은 최저시급에 따른 임금을 받고 있다. 8년을 일했건만, 업체가 바뀔 때마다 신입사원이 되기를 반복한 것이다. 그가 지난 8년간 거쳐 간 업체만 유베이스, 유니에스, 한국코퍼레이션 등 3개다. 내년에 또다시 공개입찰로 업체가 선정되기 때문에 다시 소속 업체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점은 2년마다 바뀐 근무지였다. 유베이스 소속일 땐 경기도 부천 송내동에서 근무했다. 유니에스로 바뀐 뒤엔 서울 용산구에서 일했다. 또 한국코퍼레이션으로 바뀐 뒤엔 서울 영등포구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들었던 동료들과 반복해서 헤어지고 다시 신입사원처럼 새로운 근무지에서 적응하기를 반복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발표한 뒤 ‘더 이상 근무지를 옮겨 다니거나 고용불안에 떨어야 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기도 했지만, 정규직 전환은 요원한 상황이다. 한국장학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재단 콜센터 상담사들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3단계 대상이기 때문에 관련 절차에 따라 기관에서 실태조사 후 현행 민간위탁 체제를 유지하는 게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고용노동부 또한 이 같은 기관 측의 결정을 사실상 승인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상담사들은 10년을 일해도 근속수당 등 아무런 수당 없이 최저임금만 받는 처우라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고 임금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1년에 5만원은 인상할 수 있다”였다. 이에 15일 청와대 분수대 앞 기자회견에서 만난 한 상담사는 “상담사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라며 “1년에 5만원 임금 인상하겠다는 회사는 처음봤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콜센터 직원. (자료사진)
콜센터 직원. (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상담사들을 총파업에 나서게 한 이유는 또 있다. 감염병 앞에서조차 벌어진 차별적인 대우 때문이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7월 24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8층에서 11시경 확진자가 발생했다. 당시 상담사들은 4시간 넘게 이동을 할 수 없었고, 외부 식사도 금지됐다. 그러면서도 상담업무를 계속해야만 했고, 오후 4시10분경에서야 귀가조차 됐다. 그런데 지난 8월 25일 한국장학재단 서울사무소가 있는 연세빌딩 22층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을 땐 조치가 달랐다. 24층에 있던 한국장학재단 정규직 직원들을 즉시 귀가시킨 것이다.

이에 한 상담사는 “코로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해서 감염된단 말인가”라고 한탄했다.

한편, 노조는 이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장학재단의 무책임, 무대책에 분노한다”라며 “상담사들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무기한 총파업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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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역사의식, 이것밖에 안되나

  • 기자명 현장언론 민플러스
  •  
  •  승인 2020.09.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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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지난 9월 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지난 9월 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결국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정의기억연대) 관계자가 기소되었다. 
검찰에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검찰조사를 통해 위안부 운동, 정의연 운동에 대한 명예가 회복되고 진실이 바로 잡히길 바랬다. 그러나 그것은 망상이었다.

위안부 운동을 ‘묻지마 옹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위안부 운동이 그저 돈으로 보상이나 받자고 시작한 것이 아님은 검찰도 잘 알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성노예로 아시아 전역에 이리저리 끌려다녔던 할머니들에게 그동안 국가가 해준 것이 무엇인가. 국가가 받아내지 못한 식민지 지배와 성노예 범죄에 대한 진정어린 인정과 사죄를 받고자 하는 것이 위안부 운동이다. 그런데 국록을 먹는다는 검찰이 이게 뭔가. 일제의 국가적 범죄를 단죄하고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정의감이나 역사의식을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가 없다. 

국가가 국민을 외면하고 일제에게 팔아먹기까지 했을 때, 지난 30여년 동안 윤미향 등 시민활동가들이 할머니들과 함께 국가를 대신해서 스스로 나섰고 국제적으로도 전쟁범죄를 규탄하는 인권운동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과 국제여론의 열화같은 지지도 받았다. 그런데 지난 4개월은 뭔가. 위안부 운동은 처참하게 마녀사냥을 당했고 헌신적 활동가 한 분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차라리 일본놈들에게 당했으면 목청껏 싸움이라도 크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마녀사냥의 선봉에서 필봉을 휘둘렀던 자들이 친일의 후예임을 생각할 때, 참으로 통분할 일이다. 

윤 의원과 정의연을 사리사욕에 눈이 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했던 가짜뉴스들이 제기한 의혹들의 상당부분이 이번 검찰조사의 결과로 무혐의처분되어 다행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라. 친일수구언론들은 검찰의 기소가 그 동안 제기된 의혹을 사실로 확인한 것인양 다시 악귀같이 짖어대고 있지 않은가. 결국 검찰의 기소는 이들에게 먹이감을 다시 던져준 것이나 진배없다. 
검찰은 이번 기회에 정의연에 대한 의혹을 깨끗하게 풀어줌으로써 상처받은 위안부운동과 이와 함께했던 시민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했어야 했다. 

정치논리로 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쟁범죄에 대한 사법적 눈을 가진 검찰은 어디갔냐는 것이다. 이번에 검찰이 혐의를 둔 기소사항들을 보면 검찰이 빠져있는 형식주의적 논리가 어떤 황당한 상황을 만들어내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검찰이 윤의원에게 적용한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 부정수령’, ‘사전등록 누락한 기부금 모금’, ‘개인 계좌로 기부금 모금 및 사적 사용’, ‘안성쉼터 시세보다 고가 매입’ 등의 사항은 열악한 시민운동환경속에서 발생한 미숙성들이다. 시민단체활동가들이 인권을 위해 거리에서 악전고투할 때 검찰은 고시원에 있었을 것이고, 연수원에 있었을 것이다. 검찰이 불법혐의를 둔 이런 사항들은 자주적으로 운영되는 단체내 규약과 절차에 따른 조치들이다. 게다가 법적 규정이 시민사회단체 운영 현실을 다 반영하지 못해 발생하는 불일치적 요소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공권력이라는 검을 사용하는 검찰이 형식논리로 마구 휘두르면 걸려들지 않을 국민이 누가 있겠나. 기껏해야 시정경고나 벌금 정도의 사안에 불과한 것들을 무슨 어마어마한 범죄로 취급하는데 검찰도 한몫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검찰의 기소는 사실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검찰은 윤미향 의원이 ‘피해자(길원옥) 심신장애 악용하여 기부와 증여’를 받았다는 ‘저의’가 의심되는 기소를 하였다. 길원옥 할머니가 충분한 사실인식과 가치인식 속에서 위안부 운동의 확산에 기여하고자 한 기부행위라는 점에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약간의 관심만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명백한 팩트를 검찰은 왜 외면하는가. 게다가 이 건은 길원옥 할머니를 끼고도는 사적관계자의 고소를 인정한 데 기초한 것이다. 사적 욕망과 인권운동의 가치 중에서 어떤 법익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초보적 판단도 없어 보인다.

혐한정치의 주범이자 위안부, 징용노동자 문제로 한일무역전쟁까지 벌인 아베 수상이 물러나고 스시 전 관방장관이 제4기 아베내각을 꾸리는 정세이다. 스가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초강경정책으로 일관했다. 앞으로 대일관계가 중요할 것이다. 스가 내각은 이번 검찰 기소를 위안부나 강제징용문제를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풀어가는데 매우 유리한 정황으로 간주할 것이다.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역사로부터 고립되어 미시적인 형사법이니 소송법이니 법전이나 뒤져서 사건들을 처리할 때 골병드는 것은 민초들이다. 일본 제국주의 전쟁범죄를 이 나라 검찰이 앞장서서 사법적 정의를 행사하지 않을 때, 그 작은 틈을 비집고 다시 일본군국주의가 부활하고 한반도를 넘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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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은 모른다? 그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아니었다"

[공소장 분석 인터뷰 ①] '이재용 저격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야 할 일'

20.09.15 07:08l최종 업데이트 20.09.15 09:57l
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와 만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소장을 본 소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실현하기 위한 주가조작과 고의 분식회계가 있었다고 주장해온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소장을 본 소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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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시간은 딱 5분이다. (국회에서) 지적을 해도, 금융관료들이 '검토하겠습니다' 하면 끝난다. 확인해주지 않은 일들이 공소장에서 드러나니 정글 안에 갇혀있던 고대 석상이 나타난 느낌이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진행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공소장을 본 소감을 말하며 지난 4년을 떠올렸다. 2016년부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의문을 제기, 삼성바이오로직스(아래 삼바) 내부 문건 공개 등 총수 일가를 위한 승계 작업 과정에 불법이 있음을 주장해온 그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0일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공소장을 단독 공개했다. (관련기사 : [전문보기] 이재용 공소장 전문을 공개합니다  http://omn.kr/1ovbn

그가 인터뷰 도중에 금융당국을 언급한 건, 정무위나 예결위 등 현안질의 때마다 제기한 주가 조작, 회계 부정에 대한 질의에 금융위원회 수장 등이 보인 태도 때문이다.
 

"그 내용은 제가 이따 별도로 파악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지 못합니다." - 2018년 11월 7일 예결위원회,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br /><br />"주가가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조사할 순 없는 겁니다." - 2016년 12월 8일 정무위원회,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속기록 속 박 의원은 각각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국민연금의 꺼림칙한 주식 매도 흔적이나, 일부 회계 법인의 허술한 삼바 기업가치 평가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금융 관료들에게 대놓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가 인터뷰에서 금융 당국을 향해 "워치독(감시견)이 잠만 자면 어떡하나, 자는 척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은 이유다.

박 의원은 최근 공소장이 공개된 이후 금융당국이 삼성증권 조사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금융감독원이 '정해진 바가 없다'고 해명자료를 낸 사실에도 주목했다. "조사를 안 하면 웃긴 것"이라고도 했다. 박 의원은 "(공소장에 적시됐듯) 삼성증권은 제일모직의 자문사인데, 삼성물산의 주주들에게 이해상충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선 감독기구가 바로 잡아야하는 것 아니냐"며 "조사를 강력하게 요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라는 (그동안의) 논리가 공포스러웠다. 시가총액 430조가 넘는 그룹의 리더가 아닌가. 그런데 공소장을 보니 그렇지 않더라."


공소장에서 이 부회장이 직접 합병 과정에 참여한 사실을 언급한 대목에도 방점을 찍었다. 앞으로 시작될 재판의 쟁점 또한 여기에 있다고 봤다. 박 의원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두 기업의 합병을 성사하기 위해 투자자 이익에 반하는 결정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 숨겨진 조각들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아래는 박 의원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워치독] "언제까지 눈감나... 금융당국, 검찰 수사 별개로 나서야 할 때"
 
▲ 박용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소장을 본 소감은?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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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고위 간부들의 불법 재산 승계 의혹을 담은 검찰의 공소장이 공개됐다.
"4년이라는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삼바 내부문건을 공개하고, 증권선물위원회를 압박해 고발토록 하고... 그런데 어머나 세상에. 다 드러난 거다. 너무 신기했다. 국회의원의 시간은 딱 5분이다. 지적을 해도 금융관료들이 '검토하겠습니다' 하면 끝나는 거다. 묵인하고 확인해주지 않았던 일들이 공소장에서 드러나니, 칠흑 같은 정글 안에 갇혀있던 고대 석상이 나타난 느낌이었다."
 
- 가장 주목한 대목은?

"주가조작이다. 시장 경고음이 있었고, 누군가에 의해 조정됐을 수도 있다는 법원의 판단도 있던 상황이었다. 피해자들도 그런 징후를 이야기했고. 그때 당국자들은 시장에서 1(제일모직)대 0.35(삼성물산)로 합병비율이 나온 것을 어쩌란 말이냐는 식이었다. 그런데 공소장에선 (주가 조작) 움직임이 있었다고 나온다.

삼성물산의 경영진이 물산 주식은 단 한 주도 없는 이 부회장의 명령과 미래전략실의 지휘를 받아 물산 입장에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합병에 뛰어다니는 정황들이 나타났을 때 가장 놀랐다. 불리한 합병을 위해 삼성증권 PB들이 동원돼 순진한 투자자들이 왜곡된 결정을 하도록 만드는 것도 공소장을 통해 확인됐다.

비록 법정에서 확정되진 않았지만, 이런 정황이 증거와 함께 제출된 것 자체가 재벌 총수 일가 몇몇에 의해 장악된 한국 자본 시장의 슬픈 단면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추진 당시 삼바 내부문건 등을 공개하며 분식회계 의혹을 뒷받침해왔다.
"무슨 이야기만 하면 보수 언론이나 경제인 단체 등에서 삼성을 왜 그렇게 괴롭히느냐고 했다. 난 괴롭힌 적이 없다. 누가 투자자의 이익을 반했고, 자본시장에서의 신의성실을 위반했나. 공소장에 딱 나와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검찰의 수사 결론은 '(박용진 의원은) 반기업주의자'라는 낙인에 대한 사면장 같았다. 이재용 등 범법 혐의자들에게는 정말 지옥 같은 일일지 모르지만, 내 입장에선 터널 끝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 이 부회장이 실제로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비리 의혹에 얼마나 직접 참여했는지가 관건이었다. 공소장에서도 일부 언급돼 있긴 하지만, 제일 대표적인 대목은 어디라고 보나.
"삼성 측 변호인들의 작전 논리가 '우리 부회장님은 모른다'였다고 들었다. 실제로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도 같은 논리였다. 이 부회장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라는 건데, 공포스러웠다. 시가총액 430조가 넘는 그룹의 리더라는 사람인데. 아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공소장을 보니 정말 자기 이익에 충실하더라. 워런버핏이나 골드만삭스 CEO도 만나고, 바이오젠 CEO도 2번이나 만났다. 지시하고 회의에 개입하고. 재판 과정에서 그 부분은 확인 될 거라 본다."

- 지난 7월 인터뷰 당시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불기소 권고에 비판적 입장이었다. 검찰은 결국 기소했고, 수사심의위 제도의 취지를 묵살했다는 비판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
"수사심의위를 제도적으로 손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지가 기소 독점권을 견제하자는 것이었다면 책임 있는 자리로 구성돼야 맞다. 비전문가들이 반나절 뚝딱 심사할 문제가 아니었다. 회계사나 법조인들도 각자 전문영역이 다르다. 교수도 마찬가지다.

이 부회장의 혐의가 범죄냐 여부를 따지면 되는데 왜 그 자리에서 '한국경제'를 운운했을까. 당시 검찰은 짧은 브리핑 시간에 증거 자료도 제대로 제시 못했을 거다. 예를 들어 삼성증권 PB가 어떤 명령체계에서 지휘 받았을지, 이건 기소하고 재판에서 따져야할 문제다. 반나절 만에 '아니다'라고 할 사안이 아니었던 거다. 수사심의위의 회의록을 심의해 봐야 할 문제다. 달라고 하면 줄까?"

-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나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등 국회 질의에서 금융 관료들의 주가 조작, 회계 부정 의혹 방치를 질타하기도 했다. 당시 관계자들의 공통 답변은 '수사진행중'이라는 것이었는데. 수사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금융 당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까.
"(수사진행중이란 말은) 하기 싫으니까 하는 이야기였다. 검찰의 수사와 별개로 금융당국이 해야 하는 일은 시장 신뢰 유린 행위를 바로잡는 거다. 워치독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져나가기만 했다. 그건 지금도 욕먹을 일이다. 워치독이 잠만 자면 어떡하나. 자는 척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것도 의심스럽다."

- 공소장 공개 이후 금융감독원에서 삼성증권 조사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금감원 측에선 '정해진 바가 없다'고 해명자료를 냈다.
"안 하면 웃긴 거다. 삼성증권 PB들이야 법적으로 죄를 묻지 않아도 될 사람일지 모르지만, 금감원 입장에선 '우린 물어야겠다'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삼성증권은) 제일모직 자문사인데, 삼성물산의 주주들에게 이해상충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 감독기구가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조사를 강력하게 요구할 생각이다. 검찰과 자료도 공유해서 금융 당국 권한에 따른 원칙을 바로세우길 바란다."
 
- 삼성 측 변호인단의 해명은 주주들에게 보유 주식에 대한 이벤트를 안내한 것일 뿐이고, 이해상충이 아니라고 반박했는데.

"증거와 증인이 이야기할거라 본다. 삼성증권에서 안내를 받아 의결권을 행사한 사람들이 그 (합병) 시점에 30%씩 피해를 본 것 아닌가. 주식시장과 법의 정의는 다르다. 돈만 많이 벌면 된다? 사람 속여 다치게 하고, '다쳤으니 보험금도 받고 며칠 쉬니 다행이다'라고 하면 말이 되나? 누구를 속여 그 사람의 이익을 훼손시키지 말라는 게 우리 사회의 합의다. 삼성 측 변호인단이 이야기하는 '결과론'은 대한민국의 합의를 무시한 말이다. 공정한 룰이 작동돼 얻는 이윤을 보고 누가 뭐라 그러나. 내 선택도 아닌데, (총수 일가를 위한) 합병이 이뤄져 손해 보고 판 사람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또다른 워치독] "내가 다 화끈... 언론도 뼈저린 사과와 반성 필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뇌물공여, 특정경제가중처벌법(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위증) 위반 혐의에 대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 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뇌물공여, 특정경제가중처벌법(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위증) 위반 혐의에 대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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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다수 언론들은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 등이 합병 주주총회 직전 36억 원의 광고를 발주했다는 대목에 주목했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내가 다 화끈거렸다. 특히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이란 사람이, 공무 역할을 망각하고 자기 이름을 팔았다는 것.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총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기고문에 이름을 빌려줬다는 대목에 너무 창피했다. 이름을 얹는 매명 행위와 다름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떡값은 떡 사먹으라고 주는 돈이 아니라 뇌물인 것처럼, 이 수준이라면 언론 홍보비도 뇌물이다. 공적기능을 망각하고 광고비를 받아 장사를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책 <재벌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에서 재벌의 영향력이 아닌 '통제력'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가 사실이라면, 반사회적 기능을 한 언론들은 뼈저린 사과와 반성을 해야한다."

- 관련 의혹을 4년 쫓았는데, 검찰의 수사 결과 전체 평가를 한다면?
"2018년 11월 7일인가, (삼바 내부 문건을) 받아놓고 일주일 전전긍긍했다. 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데 증선위에서도 이 자료를 봤다는 거야. 공개했고, 기자회견장은 인산인해였다. 보도는 몇 군데 안 나더라고? 그 다음날 경제면 1면 대부분이 이재용과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회장의 만남, 두 남자의 호텔 미팅... 이런 걸로 쫙 깔렸더라. 뭐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덮이는 느낌을 받았다.

내부 문건을 공개하고 일주일 뒤인 11월 14일, 증선위가 고발한다고 밝혔다. 난 거기까지가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에. 검찰이 삼성물산을 갔다는 거다. 미사일이 날아오면 사람들은 무너진 자국만 쳐다보기 마련인데, 검찰은 발사 원점을 찾아갔다. 골드만삭스도 가고, (합병에 유리한 보고서를 쓴) 4개 회계 법인도 갔고, 국민연금도 뒤지는 걸 보면서 수사 의지가 있구나, 생각했다."

- 수사팀을 공개 응원하기도 했다.
"검찰 흉보는 게 국민 스포츠 중 하나 아닌가. 저도 못지 않았다. 검찰을 방송에서 칭찬하긴 처음이었다. (수사팀장인) 이복현 당시 경제범죄형사부장을 라디오 방송에서 '상한가'라고도 평가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도 기소 못할 거면 물러나라 했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도 끌어다가 이야기 하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국민에게도 (총수 일가 수사는) 검찰이 보여준 실망감을 누그러뜨리는 과정이었다."
 
 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이복현 부장검사가 이른바 '삼성 불법승계 의혹'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이복현 부장검사가 이른바 "삼성 불법승계 의혹"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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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워치독] "삼성의 촉수가 국회 감쌌을 때, 이름을 올리라는 동료 의원들"

- 삼성 측 변호인단이나 검찰의 여론전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슈의 관심이 이어지는 게 관건인데.
"지금부터 두 가지가 중요하다. 이런 반기업적인 범죄를 실행한 사람들을 정확히 처벌한다는 의지가 있는 정부가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 여러 말들이 많지만, 우리 정부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수사심의위원회에서 엉뚱한 소리가 나왔을 때도, 기자회견을 하자고 하니 당 의원들이 함께 했다."

- 하자고 하니 하는 것 아닌가. 능동적이진 않다.
"그게 어딘가. 여당 의원들은 삼성이 얼마나 바쁘게 움직였는지 안다. 호떡집에 불났더라고. 내가 단체 카카오톡 방에 (기자회견 예고를) 올리고 한 시간도 안돼서 전화가 쏟아졌다. 삼성의 촉수가 국회를 감쌌다. 와중에도 '(회견문에) 내 이름 올려'라는 의원들이 많았다. 고마웠다. 당이 국민에게 이야기한 공정이란 불도저는, 아직 폐기처분 되지 않았기에 몰고 갈 수 있다고 본다."
 
- 나머지 하나는?

"수사팀 입장에서도 대국민 선전의 시간이 됐다. 공판 과정에서 경악스러운 일들이 많이 나올 거라 본다. 공판 전략상 공소장에 담지 못한 것도 많을 거다. 그 흐름을 잘 유지했으면 좋겠다."

- 내달 22일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 재판이 시작된다.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민들에게 해당 재판의 관전 포인트를 미리 꼽아 준다면?
"검찰이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봐야 할 거다. 우리 개미들은 주식 투자를 할 때 뉴스나 공시를 보고 하는데, 이게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누군가를 위한 홍보나, 거짓 정보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나는 정보 조각들을 가지고 국회서 따졌는데, 이 조각이 피라미드 어디에서 떨어져 나온 건진 몰랐다. 그 피라미드가 재판과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개인과 기업의 이익은 다르다는 것. 이재용의 이익과 삼성의 이익은 다르고, 총수와 전체 경제의 이익은 오히려 거꾸로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두 기업의 합병을 성사하기 위해 투자자 이익에 반하는 결정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 숨겨진 조각들이 나올 거라고 본다. 그 점을 주목해서 보시면 될 거 같다."

- 재판을 어떻게 지켜볼 생각인가.
"공소장을 보면서 유죄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회장도 더 이상 이렇게는 안된다는 걸, 우리 경제도 이런 행위를 용납해선 안된다는 게 분명해지면 다르게 갈 거라고 본다. 사건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보다 제도 개선으로 옮겨갈 때가 온 것 같다. 삼성생명법, 상법, 공정거래법, 자본시장법 등의 개정안을 통해 '이 정도 반칙은 괜찮아' 했던 것들을 법적으로 안되도록 만들려고 한다."

- 재벌 지배구조 개선 법안도 마찬가지고, 21대에서도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회계사 등 자본시장에 민감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이런 일 많니?'라고 물어보면 '비일비재하지'라고 한다. 삼성 쪽에선 '이게 왜 죄야' 할 수도 있다. 자본시장법에 '남을 속이지 말자'고 꼼꼼하게 써 있다. 마치 신호등이 있어도 '원래 막 다녔어' 하는 것과 같다.

(이번 기소로) 딱지 하나는 떼는 중이다. 빨간 불이 아닌 파란 불에 건너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괜찮아, 우리 아버지 이건희야, 가도 돼' 식이라면, 어떻게 선진국으로 가겠나. 거창하게 말하면 공정을 지켜내는 사명이 검찰의 어깨에 달려 있다. 감시하고, 발언하고, 안 될 땐 고함도 지르는 국회의원들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물산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 분식회계에 대해 금융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물산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 분식회계에 대해 금융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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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가난한 자를 위해, 숫자를 무기로 세상을 바꾸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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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0/09/15 10:15
  • 수정일
    2020/09/15 10:1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여성, 정치를 하다](10)아프고 가난한 자를 위해, 숫자를 무기로 세상을 바꾸다

장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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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학으로 의료 개혁을 이끌다,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은 열일곱 살에 자신과 했던 약속, 아프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 보건·의료·복지가 정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하지 않았고 여성의 정치 참여를 강조했다. 사진은 1870년의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은 열일곱 살에 자신과 했던 약속, 아프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 보건·의료·복지가 정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하지 않았고 여성의 정치 참여를 강조했다. 사진은 1870년의 나이팅게일.

 

영국 귀족 사회 박차고 나와
전염병 만연한 크림전쟁 자원
병사 의무기록체계부터 개혁
 

“저는 공직에 계신 분들을 언제나 믿어왔어요. 아이가 부모를 신뢰하듯 이분들이야말로 제가 본능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사태를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이고 공식적으로, 고의적인 방식으로 타인들은 알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지금껏 벌어진 일만큼이나 혐오감이 밀려듭니다. (…) 정부는 1854년도에 겪은 끔찍한 교훈의 산물을 고의로 파괴했어요. 누구에게든 다시 편지를 보내어 정부와 군대가 책임져야 할 군인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알려주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제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마저 박탈당할까 두려워요. 물론 여성 한 명이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쳤던 기회가 언제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선량한 행위로 시작된 실험과 무자비한 행동 모두에 제가 희생양이 되고 말았지요.”

1853년 7월, 러시아군은 오늘날 루마니아 영토에 해당하는 몰다비아와 왈라키아에 침입했다. 석 달 뒤인 10월에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약속 받은 오스만제국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렇게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적 교훈을 남겼다”고 역사에 기록된 크림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투로 인해 사망한 영국군의 수는 약 5000명이었다. 더 큰 복병이 나타났다. 전염병이 돌았다. 콜레라로 군인 1만5000명이 사망했다. 영국은 부상병 간호를 위한 자원봉사대를 모집했다. “영국에는 진정 크림반도로 갈 용기 있는 간호사가 없는가?” 당시 런던의 한 요양소 경영을 맡고 있었던 서른세 살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전쟁터로 돌진했다. “저는 지금이라도 당장 크림반도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육군부의 허락이 없어도 저는 크림으로 가겠습니다.”
 

1820년 영국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나이팅게일은 열일곱 살에 자신의 삶을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바치겠다고 선언했다. 간호사를 천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에는 귀족의 딸이 할 만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나이팅게일이 간호사가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잠시 쓰러졌다. 나이팅게일의 언니도 동생을 뜯어말렸다. 가족 가운데 누구도 나이팅게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은 혼자서 의료 서적을 읽고, 병원과 요양소를 방문하면서 차분하게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다. 귀족 사회를 박차고 나왔다. 1852년 쓴 글에서 나이팅게일은 영국 상류층 여성들에게 “할 일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영국 사회를 향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남성의 시간이 여성의 시간보다 더 귀중한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1853년 나이팅게일은 런던 요양소에 책임자로 부임했다.

[여성, 정치를 하다](10)아프고 가난한 자를 위해, 숫자를 무기로 세상을 바꾸다
막사를 둘러보는 나이팅게일을 그린 일러스트(위 사진)와 1907년 노년의 나이팅게일.

막사를 둘러보는 나이팅게일을 그린 일러스트(위 사진)와 1907년 노년의 나이팅게일.

1854년 11월4일, 나이팅게일은 38명의 간호사와 함께 보스포루스 해협 인근에 도착했다. 나이팅게일은 “스쿠타리 막사 병원”에서 절규한다. “누구도 씻을 곳, 씻을 도구 하나 없어요. 깨끗한 물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을 용감하게 뚫고 가는 5만명의 병사를 위해 가져온 군용 리넨 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싸워야 할 대상은 러시아군이 아니라 무능하고 무책임한 영국 군부였다. 약품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침대와 이불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나이팅게일은 영국 육군부 장관 시드니 허버트에게 편지를 보냈다. “매트 한 장을 공급하는 데에도 반드시 문서가 필요합니다. 침대 구입부터 병동을 새로 개설하는 것까지 상부에 보내는 서신과 제출 서류를 몇 백 통이나 작성해야 합니다.”

나이팅게일은 영국 군인들에게 먼저 옷부터 만들어 입혔다. 악취와 해충이 전염병 환자 수를 증폭시켰다. 나이팅게일은 병원 청소를 시작했다. 환자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나이팅게일은 ‘타임스’ 구호기금 약 3만파운드로 주방용품과 식재료를 구입했다.

나이팅게일이 부임한 지 닷새 후인 1854년 11월9일 수많은 부상자가 스쿠타리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총감은 아비규환의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이팅게일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녀에게 진료 지원과 간호를 요청했다.

나이팅게일은 군 병원의 의무 기록 시스템부터 개혁했다. 일분일초를 아껴 가며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희는 살아 숨 쉬는 것 이외에는 한순간도 여유가 없습니다.” 야전병원에서 사망자 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운영일지를 기록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이팅게일은 환자 숫자와 질병 종류를 의무적으로 기록하고 보고하는 체계를 다졌다. 간호부장 나이팅게일은 부상자와 사망자 숫자를 꼼꼼하게 살폈고, 물품 보유 현황도 반드시 신고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나이팅게일 한 사람의 노력으로 전염병과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감염자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1855년 2월 애버딘 총리는 책임을 통감하고 내각 전원 사퇴를 발표한다. 파머스턴이 후임 총리로 결정되었다. 시드니 허버트 장관도 내각에 다시 등용되었다. 같은 달 야전병원 실태 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병원 내부 위생 상태에 대한 문제 제기가 비로소 공론화되었다. 스쿠타리 병원은 병원 하수구와 급수로를 손보았다.

특별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나이팅게일은 간호부대를 결성하여 존경할 만한 헌신의 마음으로 환자와 부상병을 돌보는 일을 맡아 왔다”고 평가했다. 나이팅게일은 입원 중인 환자들을 위해 병원 내에 도서관을 설립하고, 영어 수업을 개설하는 한편, 휴게실을 만들어 교양 강좌를 운영했다. 군인들의 월급을 관리하고 송금할 수 있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직접 나이팅게일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주길 바랍니다.” 나이팅게일의 개혁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1856년 스쿠타리 병원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질서를 확립했다. 영국으로 귀환한 군인들이 나이팅게일의 업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이팅게일 기금 4만5000파운드가 순식간에 모였다. 하지만 그녀가 대중적 지지를 얻을수록 반대 세력도 늘어났다. 군사령관 존 홀은 나이팅게일을 음해하는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나이팅게일과 간호 원정단은 규칙을 지키지 않고, 반항적이며, 정직하지 않고, 사치스럽고, 부정부패와 낭비를 일삼았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확인된 바도 없었다. 여성이 개혁을 주도하는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문제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 여성들은 항상 어떤 사람과 어울리면 안 되는지 혹은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되는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팅게일은 “자신의 성공과 안위에만 몰두해 있는 자들이 승진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더 막막할 따름”이라고 응수했다. 자신을 “잔 다르크처럼 불에 태워 죽이고 싶어 하는 자들” 앞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1856년 3월16일 나이팅게일에게 씌워진 혐의는 모두 근거 없는 모략으로 결론이 났다. 나이팅게일은 영국군 병원 총책임자로 공식 임명된다.

[여성, 정치를 하다](10)아프고 가난한 자를 위해, 숫자를 무기로 세상을 바꾸다

통계에 기초, 정치까지 발 넓힌
보건·의료·복지 향상의 신념
“정치는 인류 행복의 기본 조건
여성이 정계의 중심에 있어야”
 

1856년 3월30일 파리 강화회의에서 체결된 평화협정으로 크림전쟁은 끝이 난다. 4개월 후인 7월28일 나이팅게일은 프랑스로 갔다. 영국에서 준비 중이던 자신의 귀국 환영회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1856년 9월 그녀는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았다. 나이팅게일은 영국군 보건 왕립위원회의 실행위원회를 구성하고, 보건의료 체계 구축에 매진했다. 의료 개혁을 위해 자료와 통계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다녔다. 통계의 실효성을 입증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 수학에 큰 매력을 느꼈다. 나이팅게일은 1856년 의료 통계학자 윌리엄 파르에게 통계 처리 과정을 직접 배웠다.

1858년 나이팅게일은 ‘로즈 다이어그램’을 발표했다. 크림전쟁 기간에 발생한 부상자와 사망자 수, 질병의 종류와 입원 기간 등을 재조사하고 기록했다. 복잡한 숫자로 나열된 통계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나이팅게일은 분석 결과를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게 그림으로 정리했다.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통계 작업에 매달렸다. “나는 살해당한 사람들의 제단에 서 있다. 내가 살아있는 한 그들을 죽인 원인과 싸울 것이다.”

1858년 나이팅게일이 발표한 ‘로즈 다이어그램’. 크림전쟁 기간에 발생한 부상자와 사망자 수, 질병의 종류와 입원 기간 등을 분석해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그림으로 정리했다.사진 크게보기

1858년 나이팅게일이 발표한 ‘로즈 다이어그램’. 크림전쟁 기간에 발생한 부상자와 사망자 수, 질병의 종류와 입원 기간 등을 분석해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그림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의 통계 방식을 비판하는 학자들도 만만하지 않았다. “통계는 세상의 모든 읽을거리 중에서 가장 건조해야만 합니다.” 나이팅게일은 통계 공부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1860년 나이팅게일은 런던에서 개최된 세계통계학대회에 참석했다. 통계와 확률론으로 인간 행동과 사회 질서의 규칙성을 밝혀내고 ‘사회 물리학론’을 발표한 아돌프 케틀레를 만났다. 나이팅게일은 케틀레의 이론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가 제시한 비판적 사고의 틀은 존중했다. 나이팅게일의 학문적 깊이는 점차 높아졌다. ‘타임스’는 “그녀는 외국어뿐만 아니라 수학과 예술, 과학, 문학에까지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재원이다. 현대인이 쓰는 외국어 중에 그녀가 모르는 말이 거의 없을 정도다” “최고의 강점은 수학이다. 숫자와 통계를 전문가 수준으로 다룬다. 분석적이고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정리하고 추론한다”고 나이팅게일을 소개했다.

나이팅게일은 통계가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학문적 신념을 철저하게 지켰다. 1868년 그녀는 왕립위생위원회에서 주택 위생을 위해 배수 및 하수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공공보건의료 법률 제정을 이끌어 냈을 뿐만 아니라, 지역별 보건진료소 운영도 정부에 건의했다. 그녀는 간호학에 국경이 없다고 생각했다. 영국 전역은 물론이고, 1867년에는 호주 시드니 병원에 나이팅게일의 간호학 이론을 따르는 학교를 설립했다. 1870년대에는 미국의 간호사 양성 학교 설립을 지원했다. 나이팅게일은 열일곱 살에 자신과 했던 약속, 아프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잊은 적이 없었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로서의 소명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보건·의료·복지가 정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특히 여성의 정치 참여를 강조했다. “정치는 행복한 인간 생활을 하는 데 매우 커다란 힘을 가졌다. 여성이 정계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사회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소외될 수밖에 없다.” 영국 의료 개혁의 초석을 닦은 여성 정치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1910년 90세의 나이로 생을 평화롭게 마감했다. “나는 행복하다.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을 거의 다 했기 때문이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행복은 인류에게 축복이 되었다.

 
[여성, 정치를 하다](10)아프고 가난한 자를 위해, 숫자를 무기로 세상을 바꾸다

■장영은

성균관대학교에서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고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를 함께 썼고,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썼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온 여성들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들의 말과 글을 차근차근 모아 널리 전하고자 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9150600005&code=960100#csidx16d2968b4124337beeb25a32c8221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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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법칙으로 본 문재인 정권의 위기

 

  • 기자명 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  
  •  승인 2020.09.14 1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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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리히 법칙 [사진 : SBS 현장21 캡처]
▲ 하인리히 법칙 [사진 : SBS 현장21 캡처]

추미애 장관 아들논란의 경우는 아직 사건이 진행되는 현재진행형이고, 적폐들 준동에 의한 '가짜뉴스'가 뒤섞여 진실게임이 끝나지 않는 쟁점이니 섣불리 예단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은 그 지점을 넘어선다. 이 정부가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성찰적으로 들여다보려 하기 때문이다.

그 출발지점을 다음과 같이 잡는다. 

지금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가 민주당 지지세력을 제외한다면 초기 출범할 때의 그런 희망과 설레임으로 가득한 ‘촛불시민’적 지지라 할 수 있겠는가? 

마지못해, 즉 적폐세력들의 총체적 공격 앞에 무기력하기만 한 이 정부에 대한 연민과, 그래도 적폐세력들에게는 결단코 다음 정권을 넘겨줄 수는 없으니 더 이상 이 정부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내어야 한다는 ‘정치적’ 방어 외엔 없다. 

그래서 정말 이 정권의 담당자, 담지자들은 분명하게 깨달아야 하는 지점이 하나 있다. 

무릇 정치라는 것이 자신들의 정권출범 의의와 시대적 소명, 이를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때로는 한 발짝, 때로는 반 발짝, 그것마저도 힘들면 0.01mm라도 앞서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데도 이 정부는 어찌 된 판인지 앞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정치를 법 타령과 윤석열 때리기, 적폐세력들의 준동과 반격에 방어하기에만 급급하고, 나아가 지난 정부 탓만 하고 있다. 

왜, 정반대의 인식을 하지는 못하는가?  

자신들의 정치적 행위가 지난 정부와 비교되면서 정당성을 입증해야만 될 만큼, 그렇게도 자신감이 없는가? 

준거를 세우려면 청산해야 될 시대적 과제는 분명하게 청산하고, ‘이게 나라다’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국가에 대해 '자긍'하게 만들고, 국민들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서는 희망을 주고, 꽉 막힌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평화와 통일로 화답하는, 그런 정치가 되게 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적폐세력들의 준동이라는 미명하에 자꾸만 뒤에 숨는다.

한두 번 변명이면 충분하게 족하다. 

대신, 국민들만 바라보고 정치를 하겠다고 했으니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삶을 행복하게 해 주고, 자긍하게 만들기 위해 지금이라도 초심 때와 같이 혼신의 힘을 다해 분투해야만 한다. 

비록 검찰과 제도, 관료들의 저항과 현실적 장벽, 나아가 ‘가짜뉴스’와 적폐세력들의 준동이 제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그건 반드시 뛰어넘어야만 하는 과정으로, 아니 숙명으로 여겨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걸 뛰어넘으라고 촛불정부를 만들어 줬고, 그렇게 하라고 180여석의 거대 집권여당도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협치니, 뭐니 하면서 국민들을 볼 생각대신, 적폐세력들과 손잡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들다 이 지경까지 왔다면 그건 반성과 성찰의 영역이지, 변명의 영역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그 위기의 징후를 알린다. 

‘위태롭다’는 의미를 ‘몰락’ 직전이라는 해석 대신,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집권 3년 차를 지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은 정말 위태로운 상황까지 와있다.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명하려 한다.

첫째는, 하인리히 법칙으로 읽는 정치적 위기징후이다. 

양극화 해소, 소득주도 경제를 비롯한 일자리 창출, 청년실업 해소정책, 부동산정책, 여성 성 감수성 등 기층민중 중심의 정책은 물론 대부분의 공약에서도 후퇴했다. 특히, 예기치 못한 한미동맹으로의 포박은 지난 적폐정부보다 더한듯하다. 한미 워킹그룹도 모자라 ‘동맹대화’라는 것까지 만들었다. 남북관계도 더할 나위 없다. 충분히 기대 이하이다. 사실상 낙제점인 F이다. 

둘째는, 논란에 대응하는 방식의 문제이다.

모든 문제제기에 적폐세력의 뒤에 숨어버린다. 그리고 진영만 있다. 비겁할 뿐만 아니라, 정직하지도 않다. 

▶ 이미 집권한 지 3년이나 지났다. 
▶ 정치는 진실게임이 아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를 진실게임으로만 본다.
▶ ‘내로남불’을 너무나 당연하다 여긴다. 

안희정, 오거돈, 추미애 아들 문제가 그 연장이다. 관련해 문제가 되는 부분은 국민들은 위 문제들이 진실이냐·아니냐의 문제도 들여다보지만, 다른 각도에서도 충분히 보고 있음이 간과되고 있다. 

예하면 이런 것이다. 추미애 아들의 경우, 역린을 건드렸다며 자식 휴가 문제같이 사소한 문제 갖고 왜 그렇게 난리들이라는 주장을 여권에서는 하지만, 진작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즉, 휴가 연장 문제 하나만 놓고 보면 사소한 문제일지는 모르겠으나, 불공정과 특혜문제, 그것을 대하는 고위공직자의 태도 및 정직성 문제 등으로 다 연결되어진다면 권력 갑질(gab-jil)여부로 민심이 흐른다는데 있다. 

즉, 애초 시작은 사소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름하여 이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기회는 균등하며,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강조, 필자)이라는 정치철학이 무너지고 있다. 

셋째는, ‘첫째’와 둘째‘의 합으로 존재하는 이 정권에 대한 연민문제이다. 

박근혜 탄핵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진정으로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 ‘이게 나라다’라고 자긍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정부는 그럴 국민들에게 전혀 만족을 시켜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서 지금의 ‘촛불시민들’은 이 정부에 대해 믿음과 신뢰에 바탕 한 ‘자긍’적 지지라기보다는, 마지못해 이 정부를 지지하는 ‘버티는’ 지지이다. 그래서 연민만 늘어나고 있다. 

이렇듯 문재인 정부는, 아니 정권은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벼량 끝에 선 위기상황이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사)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  자문위원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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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4개월 만 의원 재산 10억 불어...국민의힘 전봉민 800억 넘게 ↑

경실련 발표, 상위 15인 증가액 112억 달해

특히 국회의원 중 평균 재산액보다 더 크게 재산이 증가한 상위 15명의 증가액은 111억7000만 원에 달했다. 당선 후 매달 30억 원씩 재산이 불어난 셈이다.

 

14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1대 국회의원들의 총선 당선 전후 전체 재산과 부동산 재산의 증감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들이 입후보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전체 재산 평균은 18억1000만 원이었고, 부동산 재산 평균은 12억4000만 원이었다.

 

그러나 당선 후 국회사무처에 신고한 전체 재산 평균은 28억1000만 원, 부동산 재산 평균은 13억3000만 원이었다.

 

21대 총선은 4월 15일 치러졌다.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21대 국회 신규 등록 국회의원 175명의 재산 내용을 공개한 때는 지난 달 28일이다. 해당 자료는 총선 입후보 과정에서 국회의원이 선관위에 신고한 재산신고 내용과 당선 이후 국회사무처에 신고한 재산신고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경실련은 두 해당 자료(선관위 자료, 공직자윤리위 자료)를 비교해 이 같은 평균치를 얻었다. 단순히 비교하면, 단 4개월여 사이에 국회의원 재산이 평균 10억 원, 부동산 재산은 평균 9000만 원씩 불어난 셈이다.

 

국회의원들이 선관위에 거짓 신고한 게 아니라면, 4개월 간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급격한 재산 증가가 국회의원들에게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들 국회의원 중 당선 전후 전체 재산 신고차액이 10억 원 이상, 즉 전체 평균보다 컸던 이들은 15명이었다. 이들의 평균 차액은 111억7000만 원에 달했다.


 

당선 전후 재산 격차가 가장 컸던 이는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전 의원은 후보 당시 전체 재산 48억1000만 원, 부동산 재산 9억8000만 원을 각각 신고했으나, 당선 이후에는 전체 재산 914억1000만 원, 부동산 재산 22억2000만 원을 신고했다.


 

전체 재산 차액은 866억 원, 부동산 재산 차액은 12억4000만 원에 달한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후보 당시 전체 재산 163억6000만 원, 부동산 재산 103억5000만 원을 신고했으나, 당선 후 전체 재산 452억1000만 원, 부동산 재산 105억1000만 원을 각각 신고해 차액이 288억5000만 원이었다.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후보 당시 40억3000만 원(전체), 25억8000만 원(부동산)을 신고한 후, 당선 뒤에는 212억7000만 원(전체), 30억 원(부동산)을 변경 신고했다. 차액이 172억4000만 원이었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86억2000만 원),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83억6000만 원),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37억 원),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23억6000만 원),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20억1000만 원),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18억6000만 원), 양정숙 더불어민주당 의원(17억1000만 원),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14억3000만 원),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12억5000만 원),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12억2000만 원),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11억6000만 원),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11억5000만 원)의 당선 전후 재산 증가액도 전체 평균 10억 원을 넘었다.


 

이들 15인 중 10명이 국민의힘 의원이었고 5명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다른 정당 의원은 없었다.

 

이들 15인 중 전봉민 의원부터 강기윤 의원까지 상위 9명은 재산 증가 사유가 비상장주식의 재평가라고 밝혔다. 양정숙, 서병수, 이광재, 홍성국 의원은 부동산재산 가액 변화와 추가등록에 따른 가액 상승을 사유라고 전했다. 조태용 의원은 모의 예금자산과 임차권을 재산에 추가했고, 조수진 의원은 본인과 배우자, 장남 예금자산을 추가해 재산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체 부동산 자산 신고 평균액 9000만 원보다 부동산 재산이 당선 후 더 크게 불어난 국회의원은 총 60명이었다. 이들의 재산 합계액은 후보 신고 당시 1122억 원에서 당선 후 1343억 원으로 220억 원 상승했으며 1인당 평균 상승액은 3억7000만 원이다.


 

이수진(지역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후보 신고 당시 부동산 재산 5억4000만 원을 신고했으나, 당선 후에는 23억2000만 원을 신고했다. 불어난 가치가 17억8000만 원이다. 실거래한 서울 서초구 아파트의 추가 잔금납부가 후보자 재산신고 이후 이뤄지면서 후보자 재산 신고 내역에 기재됐다.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의 부동산 재산은 16억 원 증가했다. 본인 토지 7개 필지, 자녀 주택 1채 등 8건이 추가됐다.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의 부동산 재산은 분양권 잔금 납부, 공시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12억3000만 원 증가했다.

 

이들 외 홍성국, 이광재, 허은아, 홍기원, 이수진(비례대표) 의원도 부모 재산을 추가 등록하면서 부동산 재산 가액이 5억 원 이상 늘어났다.


 

한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서울 서초구 아파트 매도와 종로구 아파트 매입에 따라 부동산 가액이 6억3000만 원 증가했다. 

양항자 의원의 경우 본인 소유 화성시 토지의 신고가액을 후보 시절 5000만 원이라고 밝힌 후, 당선 후 실거래가로 정정 기재해 부동산 재산이 5억4000만 원 불어났다.


 

김홍걸 의원이 신고한 아파트, 상가 등 4채의 부동산 가액은 후보시절 76.4억에서 당선 직후 81.6억으로 5.2억 늘었다. 이중 최근 차남증여로 논란이 된 서울 개포동 루첸하임 아파트 가치는 후보 등록 시기 17억2000만 원에서 당선 후 12억3000만 원으로 4억9000만 원 감소했고, 서초동 아파트와 서대문구 상가의 가액은 10억 원 상승했다.

 

한편 국회의원 당선 후 신고가액이 감소한 의원도 있었다. 1억 원 이상 감소한 경우는 18명이었다. 후보 시절 신고 부동산 재산을 매각 등의 사유로 당선 후 재산에서 제외했거나, 신고가액이 변경했거나, 후보 시절 신고한 가족 재산 고지 거부 등이 주요 이유다.


 

유기홍 의원은 본인 토지 1필지를 신고 재산에서 제외해 18억5000만 원이 감소한 부동산 재산을 당선 후 신고했다. 김은혜 의원은 배우자 토지 2필지를 제외(감소액 8억8000만 원)했고, 박성민 의원은 배우자 토지 1필지를 제외(감소액 3억2000만 원)했다.


 

후보자 등록 당시 시세로 부동산 재산을 신고한 후, 당선 뒤에는 공시가로 신고해 재산이 감소한 경우도 있었다.

 

김민석 의원은 후보 등록 당시 어머니가 보유한 서울 양천구 빌라 1채를 시세 3억6000만 원으로 신고 했으나, 당선 후 1억6000만 원으로 낮춰 신고했다.


 

경실련은 "국회의원 후보 등록 당시 제대로 된 검증 절차가 없어서 허위신고가 이뤄진 결과"라며 "선관위 내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있으나, 후보자 신고 재산검증 여부는 임의조항에 불과하다"고 이 같은 사태의 근본 원인을 지적했다.

 

경실련은 관련 법이 정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단 당선 전후 재산이 크게 차이 난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재산 변동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경실련은 강조했다.


 

경실련은 "당선 전보다 증가액이 큰 국회의원은 후보 시절 재산 누락이 원인인지, 당선 후 추가 매입이 이유인지, 단순한 공시가 변동이 일어났는지 등을 철저히 소명"해야 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경실련은 아울러 향후 의원실의 소명 내용을 확인하고, 정당의 해명 내용을 청취한 후, 관련 내용을 추가 조사해 문제가 있을 경우 검찰 고발 등을 진행하겠다고 전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1414044364035#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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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계속된 전쟁은 없다. 더 기다릴 수 없다"

한반도 종전·평화 집중행동, "남북·북미합의 이행,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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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4  21: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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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들은 14일 오후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2주동안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반도 평화선언 서명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국전쟁 발발 70주년 계기에 시작된 '한국전쟁 종식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국제 캠페인'이 9월 평양공동선언 2년을 맞아 14일부터 26일까지 세계 시민과 함께 하는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으로 추진된다.

7대 종단을 포함해 전국 353개 시민사회가 참여하고 있는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들은 1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주민들이 나서 70년간 지속된 한국전쟁 완전 종식과 조속한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한반도 평화선언(Korea Peace Appeal) 서명운동'에 함께 할 것과 이를 위해 앞으로 2주동안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에 참여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들은 이날 김삼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과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에서 지난해 하노이 북미회담이 합의없이 끝난 이후 사실상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멈춰선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지만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위주 처방에 묶여 정작 남북간 불신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며, "이제 정부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이땅에서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야 할 한반도 주민 스스로 평화만들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냉전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것은 지난 70면으로도 충분하니,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고 함께 외치자고 제안했다.

정부의 대북 접근법과 정책이 지금과 달라져야 한다며, "군사적 불신을 가중시키는 군사훈련이나 군비증강 정책은 자제하고 변경"해야 하며, "(제재 일변도의 압박정책을 펴는)미국의 논리와 주장을 관성적으로 따르기보다 불가피한 차이는 국민앞에 과감히 드러내고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사회를 맡은 이현숙 여성평화외교포럼 명예대표를 비롯해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들은 국내외 온 겨레와 세계 평화를 지지하는 모든 세력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행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 왼족부터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지은희 전 여성가족부 장관,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한반도 분단은 민족내부의 갈등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외세에 의한 것"이라며, "우리는 일제 식민지 36년만해도 서러운데, 끝난 뒤에도 2차세계대전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우리가 일본 대신 분단되어 70년간 민족상잔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반도 평화와 종전이 아니라 완전히 '휴전' 그 자체를 없애는 평화체제를 이룩하는 것. 그것은 결국 외세에 의존해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 70년 분단을 겪은 오늘날 우리들의 각오여야 한다"며,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지은희 전 여성가족부장관은 "평양공동선언 2주년이 되는 이 시점에 이런 기자회견을 하게 된 것은 그동안 진전이 하나도 없이 국민모두를 실망시키고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일들만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 원인을 따져보고 지금 생각하는 바는 "미국이 과연 한반도 평화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그리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진정으로 맺고자 하려고 하는지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직격했다.

이어 "70년을 지속되면서 종전되지 않은 전쟁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북미나 한국정부에만 맡겨놓아서는 힘들고 한반도 뿐만 아니라 세계시민 모두가 나서 70년간 계속되는 이런 전쟁을 막아내고 평화를 만들어 내자고 호소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최근 미국이 일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를 축으로 아시아판 나토, 안보동맹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면서,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열심히 우리 당국자들을 워싱턴으로 불러들이고 있는데, "절대로 한국정부는 그런 일에 응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있기도 전에 또 다시 미국과 중국간 대결의 구체적인 표현인 아시아판 나토결성에 참여한다면 종전협정도 평화협정도 다 날라가는 그런 결과가 생길 것"이라며,"그런 것을 거부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선언을 확고하게 만들어 가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번에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대대적인 서명을 해보자는 것은 새로운 발상이고 효과가 어찌되었든 한번 해볼만하다고 판단하여 미력이나마 돕고자 하는 생각"이라고 기자회견에 참여한 소회를 밝혔다.

백 교수는 '왜 70년이 가깝도록 한반도 평화협정이 안되고 있느냐'라는 질문앞에서 '인식의 전환', '좀 더 새롭고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한반도의 이런 현실이 오래 지속되는 원인은 한편으로 실제 전쟁 재발위험은 크지 않지만 전쟁위험은 끊임없이 남아있는 이런 세상을 너무 즐기는 소수의 세력이 있고, 그 뿐만 아니라 이런 현실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거기에 길들여져서 다른 생각을 잘 하지 않으려는 다수의 사람들이 합작해서 (이런 분단체제를) 이루어놓고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단체제의 삶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전환이 좀 더 일찍 일어난다면 "3년 후 정전협정 70년이 되기 전이라도 평화협정이 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서명운동 시작이 동시에 한층 깊은 공부와 삶에서 큰 전환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한반도평화선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태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이날 유튜브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26일까지 2주일간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을 진행한다며 앞으로 온라인을 통해 한반도 종전과 평화를 위한 선언에 대한 지지와 서명, 홍보를 위한 활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18일에는 경기도가 주관하는 2020DMZ포럼의 평화운동협력 6개 세션에 함께 참여하고 평양공동선언 2주년을 맞는 19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집중행동으로 종전 평화 피케팅 1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21~25일까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종전 평화 릴레이1인 시위가 진행되고 전국 곳곳에 한반도 평화선언(Korea Peace Appeal) 포스터를 부착한다.

26일에는 그간 성과와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대선 후보들에게 한반도 평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낼 계획이다.

남북, 북미 합의 이행하라.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전문)
 
9월 평양공동선언 2년,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 주간 시작을 알리며

오는 9월 19일은 남과 북이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한 지 2년째 되는 날입니다. 앞서 남북 정상은 온 겨레와 국제사회의 관심 속에 만나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우리가 잡고 이 땅에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항구적인 평화의 시대를 열겠다고 전 세계에 선언했고, 온 겨레와 약속했습니다.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 선언이 촉매제가 되어 북미 정상은  싱가포르에서 만나 새로운 북미 관계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실현해나간다는 데 합의하고,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 속에서 남북 정상이 다시 9월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회담이 합의이행의 순서와 상응 조치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합의 없이 끝난 이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사실상 멈춰 섰습니다. 북미 간 협상이 교착되는 가운데 북한에 대한 미국 주도의 국제 제재는 더욱 엄격해지고 있고, 남북 간의 최소한의 교류 협력조차 번번이 가로막히면서 남북 간에도 합의가 이행되지 않는 현실을 둘러싸고 이견과 불신이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 6월에는 일부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계기로 남과 북의 군사적 긴장이 충돌 직전까지 치달아 남과 북이 맺은 군사분야합의서의 효력마저도 위태로운 위기 상황이 초래되었으며, 북한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현재 남북 간에는 대부분의 대화와 협력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심지어 코로나19, 장마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 같이 함께 마주하고 있는 재난에 관한 협력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 상황을 방치한다면 합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합니다.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는 수준을 넘어 한반도에는 새로운 차원의 군비경쟁과 위기가 일상화할 것입니다. 반목하고 대결하는 남과 북은 갈수록 심화되는 미중 간의 냉전적 대결의 대리전에 손쉽게 휘말리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한반도 주민들의 삶은 다시금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의해 크게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2017년의 위기를 넘어서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돌파구를 열었던 그 지혜와 결단력이 다시금 절실합니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주변국, 특히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실현해나갈 것을 확인하면서도, 남과 북이 합의하여 추진할 수 있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교류 협력만큼은 남과 북, 스스로의 힘으로 전진시켜나갈 것을 천명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과연 이 합의와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남과 북의 교류와 협력은 우리 정부와 시민의 판단보다는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전달되는 미국의 제재 위주의 처방에 묶여 있습니다. 한미워킹그룹은 정작 미국 조야에 조성된 북한에 대한 근본주의적이고 강퍅한 입장을 변화시키고 조율하는 데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자극적인 대남비난을 불편해하면서도, 정작 남북 간의 불신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는 제대로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군은 9.19 군사합의 이후에도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규모만 축소한 채 지속하고 있고, 북한의 총 GDP 이상의 규모에 도달한 지 오래된 군사비를 매년 대폭 인상하면서 미국으로부터 공격적 신무기를 연이어 도입하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체제경쟁은 끝났다고 선언한 마당에, 코로나19와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에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토록 많은 재원을 공격적 군비 확장에 투입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직 남북, 북미 간 합의가 파기된 것은 아니고, 소통과 연락이 완전히 단절된 것도 아닙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 희망을 살리자면 정부의 접근법과 정책이 지금과 달라져야 합니다.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주인이 되어 해결하겠다는 초심을 더욱 분명히 다지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남북 대화와 협력을 능동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여 일방주의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군사적 불신을 가중시키는 군사훈련이나 군비증강 정책은 자제하고 변경해야 합니다. 미국의 제재 일변도의 압박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미국의 논리와 주장을 관성적으로 따르기보다 불가피한 차이는 국민 앞에 과감히 드러내고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톱다운 방식으로 당국 간 진행하는 대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 정부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야 할 한반도 주민 스스로 평화 만들기에 나서야 합니다. 냉전과 전쟁의 한가운데서 고통받는 것은 지난 70년으로도 충분합니다.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70년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고 함께 외칩시다. 우리의 평화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줍시다. 70년 이어온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이 땅에 항구적 평화를 가져올 평화협정을 조속히 체결할 것을 남북 정부와 미중 등 전쟁 당사국 정부에 촉구하는 한반도 평화 선언(Korea Peace Appeal) 서명운동에 함께 해 주십시오. 9월 평양공동선언 2년을 맞아, 오늘로부터 9월 26일까지 2주 동안을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 행동주간으로 정해 전쟁 종식과 한반도 평화를 향한 우리의 열망을 내외에 드러내 보여주고자 합니다. 한반도와 전 세계 시민 여러분의 지지와 참여를 호소합니다. 


2020년 9월 14일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

구중서(기지평화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김경민(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김삼열(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 김영순(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문정현(신부), 백낙청(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윤정숙(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이기범(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 이부영(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이현숙((사)여성평화외교포럼 명예대표),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조성우(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정강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정기섭(개성공단기업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지은희(전 여성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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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마이트작전과 월미도방어전 70주년

[개벽예감 411] 크로마이트작전과 월미도방어전 70주년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9/1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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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1950년 6월 19일 미국의 북침작전계획

2. ‘작전계획 크로마이트’에 담긴 네 가지 씨나리오

3. 맥아더의 극비작전계획 빼돌린 조선인민군 정찰병 

4. 75,000명 대 400명의 싸움

5. 월미도의 마지막 혈전

6. 금성-4 순항미사일과 익명의 탄도미사일

 

 

1. 1950년 6월 19일 미국의 북침작전계획 

 

1950년 6월 25일 38도선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고속기동전으로 한국군 방어선을 돌파한 조선인민군은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공격을 중지했다. 남북무력충돌은 조선인민군의 서울점령으로 3일 만에 종식되었다.  

 

그런데 남북무력충돌이 종식된 이튿날인 1950년 6월 29일부터 미국 원동군 소속 폭격기들이 일본에서 바다를 건너와 폭격을 감행하면서 전쟁을 도발했다. 남북무력충돌은 사상자를 많이 내지 않고 3일 만에 종식되었는데, 미국의 전쟁도발로 조선은 새로운 전면전에 돌입해야 했다. 만일 미국이 무력침공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6.25전쟁은 3일 만에 끝났을 것이다. 

 

1950년 6월 당시 일본을 점령하고 있었던 미국 원동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원동사령부 산하 합동전략기획단에게 조선을 침공할 작전계획을 수립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맥아더는 3일 만에 끝난 6.25전쟁을 재발시키고 확전시킨 전쟁도발의 주범이다. 1950년 7월 4일 합동전략기획단은 자기들이 완성한, ‘블루하츠(Bluehearts)’라는 제목의 작전계획을 맥아더에게 보고했다. 그 작전계획에 따르면, 미국 해병대가 1950년 7월 22일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을 점령하고, 미8군은 남부전선에서 북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떠오른다. 1950년에는 컴퓨터도 없었는데, 합동전략기획단은 어떻게 그처럼 짧은 시간에 ‘작전계획 블루하츠’를 후닥닥 완성할 수 있었을까?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작전계획을 완성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개념계획을 작성한 다음, 세부적인 작전씨나리오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시켜 작전계획을 완성하려면 몇 달이 걸린다. 그런데 합동전략기획단은 불과 5일 만에 작전계획을 완성했다. 졸속작업이었을까?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1940년대 말 일본 도꾜 치요다구 유라구초에 있는 미국 원동사령부 청사의 모습이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점령지였으므로, 그 건물에서 일본을 지배하는 최고권력이 행사되었다. 이 석조건물은 1938년에 건립되었는데,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고,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원동사령부 청사로사용했다. 태평양전쟁 이후 원동사령부의 공식명칭은 연합국 최고사령부였고, 더글러스 맥아더가 총사령관이었다. 그 건물에 맥아더의 집무실이 있었다. 1950년 6월25일 38도선에서 남북무력충돌이 일어나자, 맥아더는 특별기획참모단을 조직하고그들에게 조선을 침공할 작전계획을 수립하라고 명령했다. 남북무력충돌은 사상자를 많이 내지 않고 3일 만에 종식되었는데, 미국은 바다를 건너와 무력침공을 감행하면서 전쟁을 도발했다.  

 

몇 달 걸리는 작전계획수립을 5일 만에 완성한 이변의 내막은 미국 역사학자 스탠리 웨인트롭(Stanley Weintraub)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2000년 미국에서 출판된 ‘맥아더의 전쟁: 코리아와 미국 영웅의 파멸(MacArthur's War: Korea and the Undoing of an American Hero)'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그는 미국 국방부가 6.25전쟁 직전에 ’SL-17‘이라는 제목의 작전계획을 마련해두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작전계획 SL-17'에 따르면, 38도선에서 일어난 남북무력충돌에서 패한 한국군이 남쪽으로 후퇴하여 부산방어선을 구축하면, 미국군은 인천에 상륙하여 북진한다는 것이다. 이 작전계획을 일정별로 정리하면, 미국군 1개 군단이 1950년 9월 30일까지 인천을 점령하고, 10월 15일까지 서울을 점령하고, 1951년 1월 31일까지 남포와 원산에 동시상륙하여 평양을 점령한 다음, 1951년 6월까지 38도선 이북 전역을 점령하는 것이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6일 전인 1950년 6월 19일, 미국 국방부는 이 작전계획을 승인했다.   

 

이처럼 미국 국방부가 6.25전쟁 직전에 작전계획을 완성해놓았기 때문에, 미국 원동사령부 산하 합동전략기획단은 6.25 전쟁 직후 맥아더의 명령을 받은 때로부터 5일 만에 ‘작전계획 SL-17'의 재판인 ‘작전계획 블루하츠’를 맥아더에게 보고했던 것이다. 

 

그런데 1950년 7월 당시 조선인민군은 고속기동전을 벌이며 부산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고, 미국군은 참패를 거듭하며 낙동강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1950년 7월 3일 한강을 도하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는 7월 5일 오산전투에서 미국군 제24보병사단 선견대를 궤멸시켰고, 7월 14일부터 16일까지 금강을 도하했고, 7월 20일에는 미국군 제24보병사단을 궤멸시키고 대전을 점령했다. 

 

맥아더는 합동전략기획단이 자기에게 보고한 ‘작전계획 블루하츠’가 ‘작전계획 SL-17’의 재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작전계획 블루하츠’를 폐기하고 새로운 작전계획을 수립하라고 명령했다. 맥아더의 명령을 받은 합동전략기획단이 ‘크로마이트(Chromite)’라는 제목의 개념계획(conceptual plan)을 완성한 날은 1950년 7월 23일이다. 조선인민군 전투부대들이 경상북도 포항으로 진격하고 있었던 1950년 8월 15일 맥아더는 개념계획을 작전계획으로 완성하기 위한 사업을 극비리에 추진할 것을 합동전략기획단에 명령했다. 그런 명령에 따라 개념계획을 작전계획으로 완성할 특별기획참모단(Special Planning Staff)이 조직되었다. 

 

 

2. ‘작전계획 크로마이트’에 담긴 네 가지 씨나리오

 

1950년 8월 23일 일본 도꾜에 있는 미국 원동사령부 청사에서 중요한 전략회의가 진행되었다. 맥아더가 소집한 전략회의에는 육군참모총장 육군 대장 조섭 콜린스(Joseph L. Collins), 원동군 참모장 육군 소장 에드워드 알몬드(Edward L. Almond), 해군참모총장 해군 대장 포레스트 셔먼(Forrest P. Sherman), 원동군 해군사령관 해군 중장 터너 조이(C. Turner Joy), 상륙전단사령관 해군 중장 제임스 도일(James H. Doyle), 제7함대사령관 해군 중장 아서 스트러블(Arthur D. Struble), 공군사령부 작전국장 공군 중장 아이드월 에드워드(Idwal H. Edward)가 참석했다. 맥아더는 합동전략기획단이 작성한 개념계획을 꺼내놓고 인천상륙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바꿔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은 인천 앞바다의 수로가 함대가 들어가기에 비좁다는 점,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세계 최고 수준이므로 함선이 개펄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점, 인천항 해안에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방조제가 있어서 상륙하기에 매우 불리하다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맥아더의 의견에 반대했다. 그런데도 맥아더는 고집을 부리며 45분 동안 그들을 설득하더니 이런 해괴한 말도 했다.

 

“나는 제2운명의 손길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만일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지 모른다. 인천(상륙전)은 성공할 것이고, 100,000명의 목숨을 구할 것이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고, 나는 적들을 짓밟을 것이다.”

 

맥아더와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이 인천상륙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낙동강 전선에서는 조선인민군의 격렬한 공격을 받은 미국군 방어선이 무너질 위험에 빠졌다. 낙동강 방어전을 지휘하던 미8군사령관 육군 중장 월튼 워커(Walton H. Walker)는 맥아더에게 미국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지만, 맥아더는 인천상륙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더욱이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맥아더에게 인천지역 이외에 다른 지역에 상륙하는 것을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는데도, 맥아더는 그런 지시를 따르지 않고 인천상륙을 고집했다.  

 

1950년 9월 1일 맥아더는 인천상륙전의 공식명칭을 크로마이트작전(Operation Chromite)으로 정했다. 크로마이트라는 말은 황연(Chrome)원광석을 뜻한다. 맥아더의 특별기획참모단이 작성한 ‘작전계획 크로마이트’는 1950년 8월 28일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승인을 거쳐 당시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의 최종승인을 받았다. ‘작전계획 크로마이트’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작전씨나리오로 구성되었다.   

 

1) 100-A: 미국 해병대가 전라북도 군산에 상륙하여 금강계선에서 조선인민군을 공격하는 작전씨나리오.

2) 100-B: 미국 해병대가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을 점령하고,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여 북진하는 미국 육군과 합세하여 38도선 이남지역에서 조선인민군을 공격하는 작전씨나리오.

3) 100-C: 미국 해병대가 인천에 상륙하였으나, 미국 육군이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지 못하는 경우 미국 해병대가 군산에 상륙하여 대전을 점령하는 작전씨나리오.

4) 100-D: 강릉-주문진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가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고 북진하는 미국 육군과 합세하여 조선인민군을 공격하는 작전씨나리오.   

 

 

3. 맥아더의 극비작전계획 빼돌린 조선인민군 정찰병 

 

맥아더가 인천상륙전 준비를 다그치던 1950년 8월 30일 평양에 있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무전실로 한 장의 무전통신문이 날아들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정보가 담겨있었다. 

 

“최고사령부 앞. 

미 극동사령부 비상련락회의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으로 아군의 배후를 타격하고 압록강 계선까지 북진하기 위한 작전이 결정되였음. 

상륙개시날자는 9월 13일. 

상륙지점은 인천.”

 

맥아더가 극비 중의 극비라고 하면서 철저한 정보보안조치로 은폐하였던 인천상륙전 극비정보를 빼돌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한 사람은 당시 일본 도꾜에 있는 미국 원동사령부 비상련락회의에 침투한 조선인민군 정찰병이었다. 조선은 그로부터 67년이 지난 2017년 12월 5일 온라인매체 <조선의 오늘>에 실린 ‘특집 - 전쟁과 녀인’에서 6.25전쟁 중에 배출된 여성영웅 14명을 소개하면서 맥아더의 극비정보를 빼돌린 여성정찰병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그 여성정찰병의 이름은 로남교다. 특집방송에 따르면, 1950년 8월 30일 로남교가 무선통신으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한 것은 ‘작전계획 크로마이트’ 중에서 인천상륙전씨나리오인 ‘100-B’였다고 한다. 

 

특집방송에서는 평양에 있는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영웅의 묘비를 방송화면을 통해 보여주었는데, 네 줄로 새겨진 묘비명에 영웅이 걸어온 한생이 비껴있었다. 

 

로남교 동지

남조선혁명가, 공화국 영웅

1907년 3월 3일 생 

2006년 1월 25일 서거

 

이 짤막한 묘비명만 읽어보면, 6.25전쟁의 운명을 바꿔놓은 극비정보를 빼돌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하기까지 로남교 영웅이 걸어온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 날 김일성상 계관인 허문길 작가는 로남교의 영웅적 투쟁을 형상한 장편소설 ‘포성 없는 전구’를 창작했고, ‘눈보라 창작단’은 그녀의 영웅적 투쟁을 형상한 다부작 영화 ‘포성 없는 전구’를 2014년에 창작했다. 조선의 특집방송에서 해설자는 일본 도꾜에 있는 미국 원동사령부 비상련락회의에 침투한 로남교 영웅이 “사랑하는 자식을 멀리 떼어두고 피눈물을 삼키며 적후활동을 벌였다”고 하면서, “몇 글자 안 되는 그 무전문에서 그가 넘어야 했던 아슬아슬한 순간들, 뛰여난 지략과 용감성으로 헤쳐야 했던 나날들과 죽음의 고비들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1950년 8월 30일 맥아더의 인천상륙전 극비정보를 평양에 있는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한 조선인민군 정찰병 로남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그녀는 미국 원동사령부 비상련락회의에 침투하여 극적인 정찰활동을 벌였다. 그녀가 무전통신으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보고한 것은 맥아더의 '작전계획 크로마이트' 중에서 인천상륙전씨나리오인 '100-B'였다. 그런 공로로 로남교는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았다. 그녀의 극적인 정찰보고를 통해 '크로마이트작전'에 관한 정보를파악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미국군이 1950년 9월 13일 인천상륙전을 개시할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로남교 영웅의 극적인 정찰보고를 통해 ‘크로마이트작전’에 관한 정보를 파악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미국군이 1950년 9월 13일 인천상륙전을 개시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두 가지 해결하기 힘든 작전적 난제를 안고 있었다.  

 

첫째, 조선인민군 주력부대를 낙동강 전선에 집결시켜 부산으로 진격하는 마지막 고비를 넘어서고 있었던 결정적인 시기에 주력부대 일부를 차출하여 인천으로 급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주력부대 일부를 인천으로 급파하면, 미국군은 조선인민군의 공격이 약화된 틈을 타서 낙동강 전선에서 총반격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었고, 조선인민군 주력부대 일부가 인천으로 이동하는 중에 미국군의 공습을 받아 인명손실을 입을 위험도 있었다. 

 

둘째, 조선인민군 주력부대 일부가 인천으로 이동하여 방어선을 구축한다고 해도, 미국군은 계획을 바꿔 인천이 아닌 다른 지역에 기습적으로 상륙할 수 있었다. 만일 미국군이 인천상륙-서울점령계획을 포기하고 남포상륙-평양점령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조선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난제들이 가로놓였기 때문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미국군이 인천에 상륙할 것이라는 정보를 알았으면서도 주력부대 일부를 인천에 증파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바야흐로 결전의 시각은 다가오고 있었다. 

 

4. 75,000명 대 400명의 싸움

 

지도에서 월미도를 찾아보면, 그 섬을 중심으로 사방에 펼쳐진 묘한 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원래 월미도는 면적이 0.7㎢밖에 되지 않은 작은 섬이었다. 그 섬의 가운데에는 해발고가 108m인 월미산이 있다. 1950년 9월 당시 월미도에는 주민 600여 명이 살고 있었다. 월미도에서 마주보이는, 면적이 104㎢인 영종도는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 영종도에는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섰고, 영종대교와 인천대교가 영종도와 육지를 연결해주었지만, 1950년 9월에는 영종도와 월미도는 월미수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다. 6.25전쟁 당시 미국군은 월미수로를 날치수로(Flying Fish Channel)라고 불렀다. 미국군이 인천을 점령하고 서울로 진격하려면 반드시 월미수로를 통해 월미도에 상륙해야 한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에게 월미도는 인천과 서울을 방어하는 전략요충지였고, 미국군에게 그 섬은 인천과 서울을 점령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상륙지점이었다. 

 

미국과 한국에서는 인천상륙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그들의 상륙지점은 인천이 아니라 월미도였다. 조선에서는 인천방어전이 아니라 월미도방어전이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는 인천상륙전을 월미도상륙전으로 고쳐 부른다.   

 

미국 해군 제7함대사령관 아서 스트러블이 월미도상륙전 지휘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럽의 노르망디상륙전에 지휘관으로 참전했고, 필리핀의 레이트상륙전에도 지휘관으로 참전한 경력이 있어서 ‘상륙전의 백전로장’으로 자처했다. 

 

그는 1950년 8월 18일과 8월 20일 인천 앞바다에 있는 덕적도와 영흥도에 정찰병들을 침투시켜 조선인민군의 해안방어태세를 파악했다. 그는 정찰보고를 통해 월미도에 소수의 조선인민군 방어대가 주둔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월미도상륙전에 참가한 제7합동타격단은 제77항모타격단, 제91해상봉쇄단, 제99해상정찰단, 제79전투비행단, 제90상륙공격단, 해상수송단, 한국군 해군부대로 편성되었다. 

 

제7합동타격단은 1950년 9월 4일부터 인천지역을 폭격하면서 동시에 군산지역과 남포지역도 함께 폭격했다. 월미도가 상륙지점이라는 정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군산과 남포도 함께 폭격한 것이다. 그들은 매일 같이 B-29 폭격기를 출격시켜 인천 중심부로부터 반경 50km 안에 있는 모든 대상물을 파괴했다. 

 

제7합동타격단은 월미도상륙전 직전인 1950년 9월 10일 항공모함에서 이함한 함재기 43대를 출격시켜 주민 600여명이 사는 월미도에 소이탄(napalm tank) 93발을 투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미국 해병대 여단장으로 월미도상륙전에 참전한 에드윈 씨몬즈(Edwin Simmons)는 2013년에 출판된, ‘해안벽을 너머(Over the Seawall)’라는 제목의 책에서 그날 소이탄 폭격으로 월미도에 있는 집들이 모두 완파되었다고 회고했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1950년 9월 초 미국군 항공정찰기가 촬영한 월미도 사진이다. 당시 월미도는 육지와 연결되지 않은 작은 섬이었다. 그 섬의 가운데에는 월미산이 있다. 월미도는 월미수로를 사이에 두고 영종도와 마주보고 있다. 6.25전쟁 중에 조선인민군에게 월미도는 인천과 서울을 방어하는 전략요충지였고, 미국군에게 그 섬은인천과 서울을 점령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상륙지점이었다. 1950년 9월 13일 미국제7합동타격단 75,000명과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400명이 싸운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인민군 월미도 방어대에게는 물리력으로 싸울 수 없는 전투였고, 죽음을 각오한 정신력으로 싸워야 하는 혈전이었다.  

 

결전의 날, 월미도상륙전에 참가할 제7합동타격단의 총병력은 75,000명이었다. 그들의 무장력은 다음과 같다.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 상륙정, 상륙함, 보급함 - 261척 

함포, 견인포, 기관포 - 1,600문 

전차 - 500대 

함재기 - 500대

 

제7합동타격단의 상륙을 저지할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는 제918포병련대 일부병력, 제3보병대대 일부병력, 제226륙전대 일부병력을 합쳐 400명으로 편성되었다. 그들의 무장력은 다음과 같다.

 

76mm 견인포 - 5문

37mm 견인고사포 - 2문

37mm 박격포 - 소량

 

1950년 9월 13일 마침내 결전의 날은 왔다. 바다를 건너와 남의 땅을 침공하는 ‘미제침략군’ 제7합동타격단 75,000명과 조국의 작은 섬을 피로써 사수하는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400명이 싸운 전투였다. 항공모함을 비롯한 방대한 규모의 최신식 무장장비로 중무장한 제7합동타격단 75,000명과 견인포 7문밖에 갖지 못한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400명은 세계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피의 결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에게 그것은 물리력으로는 싸울 수 없는 전투였고, 죽음을 각오한 정신력으로 싸워야 하는 혈전이었다. 

 

1950년 9월 13일 오전 10시 10분, 전운이 감도는 월미수로에 순양함 4척과 구축함 6척으로 편성된 함대가 나타났다. 10척의 거함들은 40mm 기관포를 쏘아 월미수로의 부유기뢰를 하나씩 폭파하면서 서서히 월미도로 접근했다. 

 

오후 12시 20분, 순양함 4척은 월미도에서 11~16km 떨어진 먼 바다에서 기동을 멈췄고, 구축함 6척은 월미도에서 730m 떨어진 해상까지 바짝 접근했다. 그러는 사이에 수평선 넘어 항공모함에서 이함한 함재기들이 까마귀떼처럼 하늘을 뒤덮으며 월미도 상공으로 몰려들어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이미 9월 4일부터 계속되어온 9일 동안의 연속폭격으로 월미도는 폐허로 변했건만, 함재기들은 폐허 위에 또 다시 폭탄을 투하했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가 보유한 37mm 견인고사포 2문은 포신을 85도 각도로 세워 공중으로 사격하는 방공무기인데, 유효사고도는 3km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월미도상륙전에 출격한 코쎄어(Corsair) 함재기의 비행고도는 10km 정도였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는 37mm 견인고사포로 코쎄어 함재기를 격추할 수 없었다. 미국 해군 항공모함 한 척에는 날개가 접히는 코쎄어 함재기를 100대나 실을 수 있었는데, 그 함재기에는 20mm 기관포 4문이 장착되었고, 127mm 로켓탄 8발 또는 1,800kg의 폭탄을 탑재할 수 있었다.  

 

코쎄어 함재기의 집중폭격이 끝나자, 구축함 6척이 1시간 동안 월미도를 향해 127mm 함포를 집중사격했다. 폭격과 포격이 끝났을 때, 타래치는 포연과 불길 속에서 희미한 모습을 드러낸 월미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제7합동타격단 지휘관들은 완전히 파괴된 월미도에서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으로 여겼다. 포연과 불길 속에서 희미한 모습을 드러낸 월미도는 죽음의 침묵을 말해주는 듯했다.   

 

 

5. 월미도의 마지막 혈전

 

그런데 상상을 초월한 ‘기적’이 일어났다. 집중타격을 받고 전멸한 줄 알았던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의 75mm 견인포 5문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불을 뿜었다. 수백 발의 포탄과 폭탄을 맞아 산산이 부서지고 불타버린 작은 섬에서 불사조처럼 살아남은 월미도방어대가 75mm 견인포를 지하진지 밖으로 끌어내 미국 구축함에게 기습타격을 시작한 것이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의 반격은 어떤 전과를 가져왔을까? 미국 역사학자 로이 애플먼(Roy E. Appleman)이 집필했고, 미국육군군사연구소가 1961년 워싱턴에서 초판을 발행한 ‘남으로는 낙동강, 북으로는 압록강(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 책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가 포탄 9발을 명중시킨 2,200t급 미국 구축함 콜렛함(USS Collett)은 화력통제장치가 파괴되었고 승조원 5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또한 포탄 3발이 명중한 3,400t급 구축함 걸크함(USS Gurke)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었고, 승조원 3명이 부상당했으며, 2,200t급 구축함 스웬슨함(USS Swenson)은 포탄이 함체에 스치면서 승조원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당했으며, 2,000t급 구축함 드 헤이븐함(USS De Haven)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가 사용한 76mm 견인포의 사거리는 13km다. 주목되는 것은, 그 견인포가 BR-350A 철갑탄을 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철갑탄을 쏘면 2km 밖에 있는 타격대상을 60도 각도로 직격하는 경우 43mm 두께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부대가 쏜 76mm 철갑탄이 명중했어도 거대한 미국 구축함은 부분적으로 파손되었을 뿐 격침되지는 않았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의 기습반격을 받고 놀란 미국 구축함들은 오후 1시 47분 견인포 사거리 밖으로 달아났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미국 순양함들은 오후 1시 52분부터 월미도를 향해 1시간 30분 동안 203mm 함포를 미친 듯이 쏘아댔고, 함포사격의 뒤를 이어 함재기들이 까마귀떼처럼 또 다시 날아와 월미도를 맹폭했다. 폭격이 끝나자 미국 순양함들은 오후 4시 10분부터 30분 동안 또 다시 함포를 쏘아댔고, 오후 4시 40분이 되어서야 수평선 너머로 물러갔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1950년 9월 15일 월미도 전투가 끝난 직후 촬영된 월미도의 모습이다. 상상을 초월한 격전이 3일 동안 벌어진 월미산에는 온전한 나무가 한 그루도남아있지 않았다. 그날 아침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는 76mm 견인포를 지하진지에서 끌어내 해안으로 몰려드는 미국 해병대 상륙정들을 향해 마지막 남은 철갑탄을쏘았다. 해안으로 밀려든 상륙정들에서는 미국 해병대원들이 긴 사다리를 해안방조제 곳곳에 걸쳐놓고 개미떼처럼 기어올랐다. 사흘 간의 격전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300여 명은 해안방조제를 기어오른 미국 해병대원 수 천 명에 맞서마지막 순간까지 혈전을 벌였다.  

 

이튿날인 1950년 9월 14일 오전 11시경 제7합동타격단 함대가 다시 월미수로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전날과 달리 순양함들이 먼저 월미도를 향해 203mm 함포를 집중사격했고, 그 다음에 함재기들이 날아와 월미도를 맹폭했고, 마지막으로 구축함들이 월미도를 향해 127mm 함포를 집중사격했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는 반격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철갑탄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0년 9월 15일은 월미도 전투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오전 5시 함재기들이 날아와 월미도를 폭격했고, 순양함과 구축함들이 포격했고, 203mm 로켓포를 탑재한 군함 3척이 월미도 해안으로 접근하여 로켓포탄 1,000여 발을 난사했다. 오전 6시 25분, 월미도 해안에서 약 2km 떨어진 해상에 집결한 상륙정 17척과 상륙함 3척이 연막탄을 터뜨리며 일제히 해안으로 돌진했다.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부대는 76mm 견인포를 지하진지에서 끌어내 해안으로 몰려드는 상륙정들을 향해 마지막 남은 철갑탄을 쏘았다. 마지막 철갑탄은 벌떼처럼 몰려드는 상륙정 3척에 명중했다. 

 

이제 월미도방어대에게는 소총과 수류탄 같은 개인화기들, 그리고 37mm 박격포밖에 남지 않았다. 미국군 상륙정들은 해안방조제에 접근했다. 해병대원들은 꼭대기에 갈고리가 달린 긴 사다리를 해안방조제 곳곳에 걸쳐놓고 개미떼처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포연이 자욱한 월미도 해안에 운명의 시각이 왔다. 지난 사흘 동안 맥아더의 75,000명 대군을 상대로 벌인 격렬한 방어전에서 살아남은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300여 명은 미국 해병대원 수 천 명을 상대로 마지막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미국 역사학자들이 서술한 많은 기록들은 월미도방어대의 마지막 전투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날 해병대원들과 함께 월미도에 상륙한, 미국의 저명한 여성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Marguerite Higgins)가 남긴 목격담이 월미도방어대의 마지막 전투를 증언해주는 유일한 역사기록이다. 

 

“우리가 사다리를 타고 수직에 가까운 해안방조제에 기어올랐을 때, 치명적인 함포사격과 폭격 속에서 살아남은 북조선 병사들이 해안 가까이에서 소총과 박격포로 쉴 새 없이 공격하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히긴스의 목격담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300여 명은 해안방조제를 기어오른 미국 해병대원 수 천 명에 맞서 마지막 순간까지 혈전을 벌였다. 미국측 기록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월미도방어대 210여 명은 끝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했고, 나머지 136명은 부상당하거나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6. 금성-4 순항미사일과 익명의 탄도미사일

 

월미도가 피로 물들었던 그날로부터 세월은 흘러 7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월미도에서 혈전의 흔적은 사라졌고, 포탄화염이 작열했던 바닷가에는 유원지가 들어섰다. 

 

그러나 조선은 월미도 혈전을 잊지 않고 있다. 2014년 7월 23일과 7월 26일 <로동신문>은 “조국해방전쟁시기 47개 주요전투들”을 간략하게 해설한 기사를 실었는데, 거기에는 월미도방어전이 들어있다. 1982년 조선에서 첫 상영의 막을 올린 영화 ‘월미도’는 월미도방어대 400명이 제7합동타격단 75,000명과 맞서 혈전을 벌이며 최후를 맞는 이야기를 담은 명작인데, 요즈음도 그 영화는 가끔 <조선중앙텔레비죤> 전파를 타고 방영된다. 

 

월미도 혈전은 조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만이 아니다. 조선은 미국과 또 다시 결전을 벌여 그들을 기어이 꺾어버릴 강한 힘을 키워왔다. 월미도방어전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강한 힘이다. 70년 전 조선인민군에게는 눈앞의 적함을 격침시키지 못한 72mm 견인포와 철갑탄밖에 없었지만, 70년이 지난 오늘에는 수평선 너머 보이지 않는 적함을 격침시킬 타격력이 있다. 금성이라고 불리는 순항미사일이다. 

 

조선인민군은 금성-1 지대함순항미사일, 금성-2 공대함순항미사일, 금성-3 함대함순항미사일, 금성-4 지대함순항미사일을 해안지대 지하기지들 안에 대량으로 실전배치했다. 2017년 6월 8일 강원도 원산 인근 해안에서 동북방향으로 시험발사된 금성-4 지대함순항미사일은 레이더망을 피하여 낮은 고도로 200km를 날아가더니 표적에 가까운 상공에 이르러 공중에서 1~2차례 선회비행을 하고 아주 작은 표적에 명중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도화된 정밀타격력이다. 이런 적아식별능력과 선회비행능력은 섬 뒤쪽에 숨은 적함까지 쫒아가 타격한다는 뜻이다. 금성-4 지대함순항미사일은 2020년 4월 14일과 7월 4일에도 시험발사되었다.  

 

그런데 미국이 자랑하는 100,000t급 핵추진항공모함은 함체길이가 332m인 거함이므로, 금성 계렬 순항미사일로는 격침하지 못한다. 조선인민군의 항모격침미사일은 따로 있다.

 

2017년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군사행진 중에 세계 군사전문가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특이한 모양의 탄도미사일이 등장했다. 조선은 그 탄도미사일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미국은 ‘KN-18’이라는 자의적 명칭으로 부른다.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2017년 5월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로 진행된 시험발사에 다시 등장했다. 비행거리가 450km이었으므로, 실제 사거리는 500km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다음과 같은 절묘한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2017년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군사행진에 등장한 특이한 모양의 탄도미사일이다. 이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2017년 5월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로 진행된 시험발사에 다시 등장했다.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초정밀타격력을 지난 항모타격미사일이며,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항모타격미사일이며,500km 밖에 있는 거대한 핵추진항공모함을 단 한 방에 격침시킬 수 있는 고체연료탄도미사일이다. 70년 전 월미도에서 견인포와 철갑탄을 쏘며 혈전을 벌였던 조선인민군은 70년이 지난 오늘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항모타격미사일을 보유했다.  

 

1) “적함선을 비롯한 해상과 지상의 임의의 바늘귀 같은 개별적 목표들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정밀조종유도체계가 도입되었다. 중간비행구간에서 소형 열분사발동기에 의한 속도교정 및 자세안정화계통의 정확성이 재확증되였고, 보다 정밀화된 말기유도체계에 의한 재돌입구간에서의 초정밀유도정확성이 확증되였다.” 그리고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예정목표점을 7m의 편차로 정확히 명중하였다.” 

 

(해설 -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대기권을 벗어나 120km 고도에서 중간비행을 하는 동안, 미사일 탄체에 장착된 여러 개의 소형 열분사발동기로 비행속도와 비행방향을 조절했다. 또한 대기권 밖에서 대기권 안으로 재돌입할 때, 말기유도장치로 비행방향을 조절했다. 그리하여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450km 밖에 있는 작은 해상표적을 7m의 편차로 맞추는 초정밀타격능력을 과시했다.)

 

2) 시험발사에서는 “조종전투부의 말기유도단계까지 세밀한 원격관측”을 할 수 있었다. 

(해설 -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대기권 밖 120km 고도에서 해상표적을 향해 극초음속으로 낙하돌진비행을 했는데, 조선국방과학원 과학자들은 낙하돌진비행을 원격관측했다. 이것은 450km 밖에 있는 해상표적 인근 상공에 무인전략정찰기를 날려보내 원격관측을 했다는 뜻이다. 450km 밖에 있는 작은 해상표적은 레이더로 포착할 수 없으므로, 무인전략정찰기를 날려 보내야 포착할 수 있다. 이로써 익명의 탄도미사일과 무인전략정찰기가 연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인민군이 운용하는 방현-5 무인전략정찰기는 시속 200km의 속도로 10시간 동안 비행하는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다. 이런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를 날려 보내 원격관측을 하지 않으면, 익명의 탄도미사일로 450km 밖에 있는 작은 표적을 맞추기는커녕 포착할 수도 없다. 조선은 2016년에 스텔스무인전략정찰기를 개발했고, 2017년에 그것과 연동되는 익명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

 

3) “발사 전 준비공정이 고도로 자동화되여 발사시간을 훨씬 단축하도록 체계가 완성”되었다. 

(해설 - 발사준비공정이 고도로 자동화되었다는 말은 고체연료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탄도미사일은 액체연료를 주입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발사준비시간이 대폭 단축된다.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탄도미사일이다.)

 

4) 익명의 탄도미사일은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에 탑재되었다. 

(해설 -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는 차륜식 자행발사대와 달리 길이 없는 산악지대로 들어갈 수 있다. 미국의 위성감시는 도로망을 따라 진행되므로, 익명의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가 도로를 멀리 벗어나 산악지대로 들어가면 미국의 위성감시망은 ‘먹통’이 된다. 또한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는 모래사장에서 익명의 탄도미사일을 쏠 수 있다. 차륜식 자행발사대가 모래사장에 들어가면 차체 중량으로 발사대가 기울어져 미사일을 쏠 수 없지만, 무한궤도식 자행발사대는 모래사장에서도 탄도미사일을 쏠 수 있다.)  

 

2018년 2월 12일 미국의 안보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는 2017년 7월 중국에서 발행된 해군전문지에 실린 분석기사를 인용하면서, 2016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화성-9 탄도미사일이 적함을 정밀타격하기 위한 무기로 생산되었는데, 이 탄도미사일은 중국의 둥펑(東風)-21D처럼 고도화된 정밀타격력을 지닌 탄도미사일이며,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항공모함을 격침시킬 수 있다고 해설했다. 그런데 그 분석기사의 필자는 미국이 'KN-17'이라고 부르는 탄도미사일, 다시 말해서 조선에서 2017년 5월 29일에 시험발사된 익명의 탄도미사일을 화성-9로 착각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익명의 탄도미사일이 중국의 둥펑-21D처럼 초정밀타격력을 지닌 항모타격미사일이며,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항모타격미사일이며,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탄도미사일이라는 사실이다.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조선의 항모타격미사일은 500km 밖에 있는 핵추진항공모함을 단 한 방에 격침시킬 수 있다.

70년 전 월미도에서 사거리가 13km밖에 되지 않는 견인포로 철갑탄을 쏘며 혈전을 벌였던 조선인민군은 70년이 지난 오늘 사거리가 500km인 항모타격미사일에 저위력전술핵탄두를 장착했다. 그런 엄청난 위력 앞에서 미국의 핵추진항공모함은 무용지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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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 앓는 청년들…2030 자해·우울증 확 늘었다

등록 :2020-09-14 04:59수정 :2020-09-14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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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자해, 20대 213건 30대 161건
전년 동기보다 두배 가까이 증가
확진 많은 대구·경기 증가율 높아
우울증 진료도 28~15% 증가
“취업난·거리두기에 스트레스 커져”
이은주 의원 “정부 차원 지원책을
우울증과 자해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은주(가명)씨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lt;한겨레21&gt;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우울증과 자해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은주(가명)씨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우울증을 앓고 있는 대학생 이아무개(23)씨는 지난달 23일 다시 자해를 했다. 이날은 이씨가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을 1년 만에 만날 약속이 있었지만 돌연 취소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에서 397명이 나왔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기대에 부풀었던 이씨는 크게 실망했다. 이씨는 <한겨레>에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면 스트레스가 조금 풀렸는데 최근엔 혼자 사는 좁은 방에서 매일 온라인 강의만 듣다 보니 우울함이 계속 커진다. 대형서점에서 종일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코로나19 재확산 이후엔 그마저도 할 수 없어 너무 힘들다”고 했다.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이후 청년층의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2020년 상반기 청년층의 자해 발생 진료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아 13일 공개한 ‘(고의적) 자해 발생 현황’ 자료를 보면 2020년 상반기에 20대가 자해로 병원 진료를 받은 건수는 213건으로 지난해 118건에 견줘 80.5% 증가했고, 30대는 161건으로 전년(86건) 대비 87.2% 증가했다. 20, 30대 다음으로는 60대가 자해 건수 증가율(69.2%)이 높았다. 전체 나이를 놓고 보면 올해 상반기에 1076명이 자해로 진료를 받아 지난해(792건)에 비해 35.9% 늘었다. 지역별로는 대구(87.5%↑)와 서울(36.9%↑), 경기(73.2%↑) 등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많은 지역에서 자해 건수 증가율이 높았다.
우울증도 지난해에 견줘 늘었다. 2020년 상반기 동안 20대 우울증 진료 건수는 9만3455건으로 전년도(7만2829건)에 비해 28.3% 늘었다. 30대 우울증 진료 건수도 지난해 6만7394건에서 올해 7만7316건(14.7%)으로 늘었다.전문가들은 병 분류를 위해 파악한 수치는 최소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 청년층의 자해 건수와 우울증 건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본다. 장창현 느티나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코로나19 이후 진료를 받으러 오는 2030 청년들이 늘고 있는데 감염병 유행 이후 커진 취업 어려움과 줄어든 대인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며 “혼자 사는 청년들이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스트레스 관리와 마음 건강 챙기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감염병 유행 상황이 장기화되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자해 경험을 공유하고 우울증을 호소하는 게시글이 잇따르고 있다. 대학생 ㄱ(24)씨는 “코로나19 이후 반년 가까이 집에만 갇혀 지내면서 주먹으로 벽을 치는 등의 자해를 하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이 의심된다. 심리상담 선생님이 약물치료를 권장하는데 전문가의 조언을 더 듣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중학생 ㄴ(14)씨는 “지난 1월 이사하면서 새 친구를 만들지 못해 우울감이 찾아왔고 살이 많이 찌면서 자해도 하게 됐다”며 역시 조언을 구하는 글을 남겼다. 이은주 의원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심리적 불안감과 고립감이 커지고 있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청년층과 저소득층에 대해선 (정신과) 상담과 치료비 지원 등 구체적인 대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1983.html?_fr=mt1#csidxffe6f6fae419f0aad3528250b699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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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짜장면의 고향은 인천이다

개항 이후 인천에 정착한 화교들, 그들이 남긴 짜장면 

20.09.13 18:10l최종 업데이트 20.09.13 18:1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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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화루 그냥 짜장면  예나 지금이나 제일 잘나간다. 가격 5,500원. 몇 알씩 올라가던 완두콩이 빠져 조금 서운하다
▲ 복화루 그냥 짜장면  예나 지금이나 제일 잘나간다. 가격 5,500원. 몇 알씩 올라가던 완두콩이 빠져 조금 서운하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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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의 위대한 탄생

인천은 항구다. 백여 년 전 근대적 개항을 단행했다. 우리의 뜻은 아니었다. 호시탐탐 한반도를 넘어 중국을 노리던 일본 제국주의가 강제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인천항을 통해 외래문물과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행렬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항구는 잠들지 않는다. 덩달아 그곳의 사람들도 그래야 한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늘 뜬 눈이어야 한다.

그 몇 해 전부터 중국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았다. 화교라 불렸다. 그들 중 대부분은 남성이었고, 배움이 짧았으며 가진 게 없었다. 그들은 집단생활을 하며 고된 육체노동을 주로 했다. 항구의 짐꾼도 대다수 그들이었다. 그들을 따로 '쿨리'(苦力)라 불렀다. 고객들은 시도 때도 없이 그들을 불렀다.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야 했다. 밥을 먹다가도 뛰어 가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먹을 수 있는 게 필요했다.

 

 항구 주변에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꽤 있었다. 아주 고급스러운 몇 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노점상 수준이었다. 그 중 한 곳에서 부두 노동자를 위한 신메뉴를 개발했다. 중국 산동지역의 '자지앙미엔(炸醬麵)'을 조선식으로 재해석한 비빔국수였다. 그 이름 자체가 튀긴(炸) 장(醬)이다. 돼지기름을 두른 무쇠 웍에 춘장을 달달 볶아, 삶은 면 위에 얹어 냈다. 짜장면은 그렇게 탄생했다(위키백과 '짜장면' :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p193-195, 인천광역시, 2015).


그런데 정말로 자지앙미엔이 짜장면의 원조인지, 중국본토에는 우리식 짜장면이 없다는 말은 맞는 건지 등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남아 있다. 짜장면을 한국음식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의견은 갈린다. 논쟁을 불렀던 한글 표기 문제는 지난 2011년 국립국어원이 '짜장면'과 '자장면'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하면서 일단락됐다.

어쨌든 짜장면의 고향은 인천이다, 그건 아무도 토 달지 못하는 명백한 사실(fact)이다. 인천항 인근의 차이나타운은 그걸 증거한다. 명칭만 남은 다른 도시와 달리 인천 차이나타운은 지금도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식당과 중국 식료품 가게 등이 즐비하다. 짜장면을 처음 개발했다는 옛 '공화춘' 자리엔 짜장면 박물관도 있다. 지금이야 코로나로 뜸하지만 얼마 전만 해도 경향 각지에서 짜장면 마니아들이 몰려들었다.

짜장면이 가장 대표적인 한국인의 소울 푸드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모든 한국인에게 짜장면은 추억이다. 졸업식, 첫 데이트, 이삿날 등 추억의 디테일은 달라도 각자의 역사와 감성이 그 한 그릇에 오롯이 담겨있다. 있는 사람들보단 없이 산 사람들에게 특히 그렇다. 지금은 서민음식이 되었지만 모두가 곤궁한 시절에는 큰 사치였다. 특별한 날 아니면 먹을 수 없었다. 그런 애틋한 심정은 그룹 GOD의 <어머님께>란 노래에 잘 담겨 있다.

사실 짜장면 조리법은 간단하다. 면 삶고, 춘장과 재료 볶아 얹으면 그만이다. 누구나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맛은 아무나 내지 못한다. 면 반죽, 삶는 시간 등에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장도 식자재의 신선도, 볶는 시간, 불의 온도 등이 다 중요하다. 면과 장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중식당의 평가 기준은 으레 짜장면이다. 짜장면이 맛있으면 다른 메뉴도 틀림이 없다. 동네 배달전문 중국집도 짜장면이 맛없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짜장면의 성지인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짜장면 잘하기로 소문 난 집이 한 집 건너 하나씩이다. 백년짜장, 유슬짜장 등 다른 곳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짜장면 메뉴도 다양하다. 그러나 짜장면 잘하는 집이 거기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인천 곳곳에 은둔고수들이 일가를 이루고 있다. 이주 초기 그들은 토박이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들은 대개 수십 년 이상 한 자리를 지켜오며 단골들의 사랑을 대물림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하라, 부평시장 '복화루'
 
  1945년 처음 문을 열었다. 3대 째 한 자리에서 짜장을 볶고 있다. 손주가 물려받으면서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   1945년 처음 문을 열었다. 3대 째 한 자리에서 짜장을 볶고 있다. 손주가 물려받으면서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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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화루도 그중 하나다. 중국 산동성에서 건너온 이곡충씨가 1945년 문을 열었다. 아내와 함께 인천항에 내린 그는 화교들이 많은 바닷가 동네를 마다하고 내륙 깊숙이 들어갔다. 부평이었다. 행정구역은 인천시 관내지만 지금도 부평을 별개의 도시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큰 재를 넘어야 오갈 수 있어서 그랬는지 문화와 정서가 사뭇 다르다. 부평에는 규모가 큰 시장이 있었다. 이곡충씨는 그곳 부평시장에 터를 잡았다.

시장 뒷골목의 테이블 서너 개짜리 작은 가게였다. 처음엔 한국말이 서툴러 애를 많이 먹었다. 거친 시장사람들의 텃세도 힘들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손님이 들기 시작했다. 비결은 냄새였다. 돼지기름에 춘장을 볶을 때 나는 냄새는 강렬하고 강력하다. 침샘 자극하는 구수한 냄새는 아주 멀리까지 퍼져 나간다. 시장사람들은 그 냄새에 홀린 듯 가게 문을 열었다. 장 보러 나온 아낙들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무리해서 사람이 많이 모인 시장에 가게를 낸 전략은 과연 효과가 있었다. 일종의 향(香) 마케팅이었다. 사람들은 난생처음 맡는 희한한 향기의 유혹에 넘어간 거였다. 짜장면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장사 시작한 지 2년 만에 아들 이본위가 태어났다. 아기가 복덩어리였다. 매출이 몇 배는 올랐다. 그 아들이 가게를 맡겨도 될 만큼 장성하자 아버지는 미련 없이 열쇠를 넘겼다.

이 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예나 지금이나 짜장면이다. 그중 가장 저렴한 그냥 짜장면(5500원)이 제일 많이 나간다. 물론 가장 맛있어서다. 그 맛은 참 담백하다. 기름진 느낌이 별로 없다. MSG 첨가를 최대한 자제하는 듯 쓴맛이 남지 않는다. 아무리 주문이 많아도 재료는 순서대로 볶는다. 양파와 호박을 맨 나중에 넣는다. 아삭거리는 본연의 맛과 향이 살아 있다. 면은 부드럽고 매끈하다. 전분과 밀가루의 배합이 기막히다.

"우리는 매일 새벽에 두 내외가 장을 보러 가요. 신선한 재료야말로 좋은 음식의 첫째 비결이죠. 이건 우리 시아버지께서 가장 강조하신 가르침이에요. 작년(2019년)에 큰아들에게 사업자는 물려줬지만 건강이 허락 되는 대로 계속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단골들은 꼭 우리만 찾거든요."

안주인 왕수영씨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복화루엔 나이 지긋한 단골들이 많다. 모두 수십 년 동안 인연을 맺어 왔다. 식구나 다름없다. 두 부부는 그들의 소소한 것들도 기억하며 인사를 건넨다. 그네들은 다른 집에선 짜장면 못 먹는다며 맞장구친다. 맛도 맛이지만 정 때문에 그런단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발길을 끊는 단골들이 늘어 속이 많이 상한다. 사람 생명이야 영원한 게 아니니 어쩔 도리는 없다.

신흥동 제일에서 대한민국 제일로, '신일반점'
 
신흥로터리 신일반점 1950년 문을 열었다. 지금은 수석주방장이었던 유방순 사장이 주방과 경영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
▲ 신흥로터리 신일반점 1950년 문을 열었다. 지금은 수석주방장이었던 유방순 사장이 주방과 경영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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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반점은 신흥동 로터리에 있다. 가게 이름은 '신흥동 제일'을 표방한다. 신흥동을 넘어 인천 최고라 해도 과하지 않다. 1950년 즈음에 산동성 옌타이 출신인 임서약씨가 문을 열었다. 지방의 식자재 상에서 일 하던 그는 거래처 식당 딸과 결혼하면서 다시 인천으로 올라왔다. 그의 아버지가 청관거리 부근에서 하던 호떡집을 업그레이드 해 신일반점을 차렸다. 물론 처가댁은 중국식당을 하던 화교 집안이었다(한국일보 '한국의 노포 14회', 2003년 12월 23일자 기사 참조).

2000년대 초 아들 헌일씨에게 가게를 물려주었다. 몇 년 동안 그가 운영하다가 수석주방장이던 유방순 현 사장에게 넘겼다. 유방순 신임 사장은 그 세계에선 꽤 유명한 실력자다. 젊은 시절 태화관이나 국일대반점 같은 유명 업소에서 실력을 닦았다. 임 사장에게 인정받아 스카우트 됐다. 오기 전부터 자타가 인정하는 고수였지만 이곳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유 사장은 임씨 가문의 비방에 자신의 노하우를 접목했다.

신일반점은 일찍이 유명세를 탔다. 유 사장 취임 후에도 언론매체나 블로거들이 자주 찾아 자발적으로 홍보해 주었다. 지난해(2019)엔 공중파 방송사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인'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달인의 메뉴는 탕수육이었다. 탕수육은 전임 임 사장 시절부터 유명했다. 그로부터 전수 받은 비법과 자신만의 노하우를 더 했다.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초마면도 유명하다. 초마면은 말하자면 짬뽕의 원조다. 국물은 하얗고 걸쭉하다.
 
 맨 상단에 유니짜장이 있다. 다른 집들은 짜장면이 있는 자리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말이다
▲  맨 상단에 유니짜장이 있다. 다른 집들은 짜장면이 있는 자리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말이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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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 사장이 가장 자랑스럽게 내놓는 건 유니짜장이다. 식당 벽에 붙은 메뉴판의 최상단에 유니짜장이 있다. 예전엔 다른 집처럼 그냥 짜장면이 그 자리에 있었다. '유니'는 '간다'는 뜻이다. 모든 재로를 곱게 갈아서 춘장과 볶는다. 하지만 신일반점 유니짜장은 고기만은 갈지 않는다. 식감 때문이다. 고깃덩이가 제법 두툼하니 씹는 맛이 좋다. 면은 말도 못 하게 차지다. 쫀득쫀득 씹히는 식감이 풍성하다. 면과 장을 비비면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된다.

"임 사장님은 제겐 시부이자, 친할아버지 같은 존재죠. 함께 일하는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중 제일이 정직입니다. 거짓은 손님이 먼저 알아챈다고 가르치셨죠. 앞으로 해삼 쥬스나 불도장 같은 고급 중식을 대중화해 많은 분이 드실 수 있게 하는 게 꿈입니다."

유 사장은 화교 3세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국말이 부자연스럽다. 사장뿐 아니라 가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 보조 주방장도, 카운터도 하물며 서빙하고 배달하는 사람들까지 다 똑같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땐 순 중국말만 쓴다. 매장은 늘 떠들썩하고 분주하다. 내용을 모르고 들으면 싸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 함께 웃음을 터뜨린다. 그들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활기찬 대화에는 중화민족의 자긍심이 한껏 묻어난다.

화교들에겐 에너지를, 한국인에겐 추억을

이 땅 화교들의 삶은 여전히 신산하다. 재산권은 근 100여 년 이상 제한 받았다. 영주권이 주어진 건 불과 20여 년 전이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화교로 국한 되어 있다. 아직도 교육이나 복지 혜택에서 상당 부분 소외되고 있다. 세금은 대한민국 국민과 똑같이 내는데도 그렇다. 그들을 비하하는 모욕적인 별칭들은 아직도 듣기 괴롭다. 그래도 그들은 특유의 만만디 정신과 강한 생활력을 무기로 지금껏 꿋꿋하게 버텨오고 있다.

짜장면은 그런 그들의 삶을 상징한다. 모질고 힘들지만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하소연하지 않고 온전히 제 몸뚱이로만 역경을 이겨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들은 선 채로 후다닥 짜장면을 먹고는 다시 일터로 달려 나갔다. 짜장면은 그렇게 고생하는 동족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우리에게도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GOD의 어머니는 짐짓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지만 속내는 아니었을 거다. 단언컨대 진짜 짜장면을 싫어하는 한국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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