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조갑제씨도 비웃은 북한군 개입설 이젠 닥쳐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2/11 08:46
  • 수정일
    2019/02/11 08:4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아침신문 솎아보기] 지만원 망언에 동조한 한국당에 호남권 언론 분노… 중앙·동아일보도 사설 내고 비판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2019년 02월 11일 월요일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이었다.” “전두환은 영웅이다.”

지만원씨가 또 다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향한 망언을 쏟아냈다. 5·18은 북한군이 침투해 일으킨 게릴라전이었으며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간첩이라는 주장이다. 그가 이 같은 발언을 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주최한 대국민 공청회에서 이 같은 발언이 나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11일 광주전남지역 아침신문들에는 분노가 느껴졌다. 광남일보, 광주매일신문, 광주일보, 남도일보, 무등일보, 전남매일, 전남일보는 일제히 1면과 사설을 통해 이번 사안을 다뤘다. 광주매일신문의 사설 제목은 “조갑제씨도 비웃은 북한군 개입설 이젠 닥쳐라”다. 남도일보는 “광주를 다시 짓밟은 추한 자유한국당”, 무등일보는 “5·18 능멸한 한줌 세력들의 저의는 무엇인가” 사설을 냈다. 광남일보는 “지씨의 반역사적 정신병적 주장을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 무등일보, 남도일보 1면 기사.
▲ 무등일보, 남도일보 1면 기사.
 

지만원씨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할만한 근거가 없다. 무등일보는 1980년 계엄사령부의 조사를 포함해 국가차원의 6번의 조사에서 북한군 개입은 허구임이 드러났고, 전두환씨와 신군부도 이 같은 의혹제기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광주매일신문은 북한 대규모 병력이 한국군은 물론 미군도 모르게 남파될 수도 없다는 조갑제씨의 주장을 인용해 전했다. 2013년 대법원이 지만원씨의 명예훼손 주장을 인정해 유죄를 확정한 일도 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씨의 북한군 침투설 주장을 담은 인터넷 게시글을 삭제한 것이 정당하는 2017년 판결도 있다. 

이들 신문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토론회를 주최하고 망언에 동조한 점에도 분노했다. 이날 이종명 의원은 “사실에 기초해서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었다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고 했고 김순례 의원은 “종북좌파가 판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이 만들어져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태 의원 역시 “5·18 문제 만큼은 우파가 물러서면 안 된다”고 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나경원 원내대표가 해명을 했지만 “역사적 사실은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고 해 논란을 키웠고 야당을 중심으로 토론회를 주최한 의원들을 제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 11일 광주전남지역 신문 사설 모음.
▲ 11일 광주전남지역 신문 사설 모음.
 

전남일보는 “국회의원이 공식 석상에서 했으리라곤 믿기 힘든 망발”이라고 지적했다. 남도일보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백주 대낮에 이런 망언들을 쏟아낸 지씨와 김 의원 등의 과연 제 정신인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하면서 자유한국당을 가리켜 뿌리가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에 기초하고 있으며 반민주적 정담임을 스스로 실토하고 있다. 그런 정당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일“이라고 비판했다. 광남일보는 “지씨의 주장에 부화뇌동해 함께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로 반드시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전남일보는 망언에 힘을 보탠 의원들을 제명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5·18은 광주의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이 땅에 정의를 세운 한국의 민주화운동이기 때문이다.”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서울신문,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관련 사설을 내고 한국당 의원들과 지만원씨를 비판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한국당 의원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발언의 문제를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5·18 민주화운동을 근거 없이 폭동으로 매도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피땀 흘려 이룬 자유민주주의 근본정신마저 부인하는 처사”라며 “더 실망스러운 건 자유한국당의 태도”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이들의 주장은 대부분 가짜뉴스성”이라며 “나경원 원내대표조차 어른스러운 대응 대신 ‘역사적 사실은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고 해 논란을 키웠다. 극단적인 우익은 진정한 보수의 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중앙일보 11일 기사.
▲ 중앙일보 11일 기사.
 

다만 보수신문들에선 다른 신문과 온도차가 느껴졌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비판을 했지만 관련 사안을 다룬 6면 기사의 제목은 “김병준 ‘5·18은 민주화 밑거름’ 나경원 ‘희생자에 아픔 줬다면 유감’”으로 한국당의 해명에 방점을 찍었고 이 가운데서도 논란이 되지 않을 만한 내용을 제목으로 뽑았다. “여론 들끓는데...나경원 ‘5·18 다양한 해석 존재’ 발언 논란” 기사를 낸 한겨레와 대조적이다.  

조선일보는 관련 사설을 내지 않았다. 관련 기사는 “의원 3인의 5·18 비하... 코너 몰린 한국당”으로 제목을 뽑았고 동아일보는 기사와 사설을 통해 “한국당 일부 의원”이라고 썼다. 한국당 전체가 아닌 일부의 주장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6766#csidxc483810c23e80e69e093f805bdc92e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속보] 유엔 아동권리위, 일본정부에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권고

[속보] 유엔 아동권리위, 일본정부에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권고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8일 일본정부에 “조선학교도 고교무상화 대상으로 포함할것, 대학수험자격을 평등하게 보장할 것” para 39(c)에 대한 권고를 발표했다.

또한 차별금지 관련해서 일본에 아직도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존재하지 않은 것, 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으로 소외된 그룹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상황을 우려하며 para17 (a)(c), 특히 아이누, 부라쿠, 코리안을 비롯한 마이노리티 그룹에 속하는 아동, 이민 노동자의 아이들, LGBTI 아동, 장애를 지닌 아동에 대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인권계몽활동, 인권교육활동을 보다 활발히 진행할것을 촉구 하였습니다. para18(c)

앞서 지난달 16~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UN 어린이권리조약’ 일본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때 ‘재일조선학교 어머니 대표단’이 참가해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차별문제’를 항의하는 행동을 펼쳤다. 또한 ‘우리학교시민모임’(대표 손미희) 등 국내 조선학교 지원단체들은 UN에 제출할 항의 서한에 476개 단체 1,641명의 연서명을 받아 공동행동을 전개했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선중앙통신사 논평 “남측 군부 행태, 뜻밖의 결과 초래할 수도”

조선중앙통신사 논평 “남측 군부 행태, 뜻밖의 결과 초래할 수도”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2/08 [20:39]  최종편집: ⓒ 자주시보
 
 

 

북의 조선중앙통신사가 8, 논평 이중적 행태는 용납될 수 없다를 발표했다.

 

조선중앙통신사는 논평을 통해서 남측 군 당국의 행태, '군사비를 증액하는 것과 무력증강 및 장비현대화를 꾀하는 것'을 비난했다.

 

남측 군 당국의 이런 행위에 대해 논평은 내외의 전폭적인 지지와 환영을 불러일으킨 역사적인 북남선언들에 대한 도전이며 난폭한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논평은 남측 군 당국이 “(자신들의조치를 <자체의 방위력 강화를 위한 토대구축>으로 강변하고 있지만그것은 한갓 기만에 불과하다며 현실은 남조선군부가 동족과의 힘의 대결을 계속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조선중앙통신사 논평은 앞에서는 <화해의 미소>를 짓고 뒤에서는 대결의 칼을 갈며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보장에 엄중한 장애를 조성하는 남조선 군부의 이중적 행태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고 남조선 군 당국은 저들의 행위가 바람직하지 않은 뜻밖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데 대하여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래는 조선중앙통신사 논평 전문이다.

 

-------------------------아래------------------------------------

 

조선중앙통신사 논평이중적 행태는 용납될 수 없다.

 

남조선군부가 평화와 안정분위기를 해치는 무력증강소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 현재와 미래의 예상되는 군사적 위협과 안보변화에 대비한다.는 명목 하에 국방중기계획이라는 것을 새로 발표한 군 당국은 그에 따라 지난 시기보다 13.6%나 더 늘어난 2 500여 억US$의 군사비를 지출하려고 획책하고 있다.

 

이것은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온 겨레의 지향과 념원에 배치되는 위험천만한 행위이며 우리에 대한 로골적인 도발이 아닐 수 없다.

 

남조선군부의 행태는 내외의 전폭적인 지지와 환영을 불러일으킨 력사적인 북남선언들에 대한 도전이며 란폭한 위반이다.

 

지난해 북과 남은 대치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종식을 조선반도 전 지역에서의 전쟁위험제거와 적대관계해소로 이어나가며 특히 군사적 신뢰가 구축되는데 따라 군축을 실현해나가기로 확약하였다.

 

남조선당국에는 선언들에 명기된 대로 긴장완화에 배치되는 일체 행동을 금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더우기 지난날 있지도 않은 북의 위협을 운운하며 남조선전체를 극동최대의 화약고로 만든 군부로서는 그에 대해 론의 할 여지조차 없게 된 오늘의 정세 하에서 동족을 겨눈 살인장비들을 모조리 축소하는 데로 지체없이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우리 앞에서는 군사적 긴장완화에 관심이나 있는 듯이 생색을 내고 돌아앉아서는 정세가 긴장하던 시기보다 더 엄청난 규모의 군사비를 투입하여 무력증강과 장비현대화에 나서고 있으며 지어 스텔스전투기 F-35A와 고고도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해상고고도요격미싸일 SM-3》 등 외국산 무장장비들까지 대대적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진정 남조선군당국의 현 정세흐름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이며 조선반도를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지대로 만들려는 립장인가 하는 것이다.

 

군부세력은 저들의 조치를 자체의 방위력강화를 위한 토대구축으로 강변하고 있지만 그것은 한갓 기만에 불과하다.

 

실지로 군 당국은 저들의 무력증강책동이 핵 및 대량살상무기대응체계로 명칭이 바뀌여진 이전의 3축타격체계라는 북침공격체계를 완성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있다.

 

현실은 남조선군부가 동족과의 힘의 대결을 계속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동족상쟁종식을 확약한 북남합의의 리면에서 감행되고 있는 무분별한 군사적 행위는 우리의 강한 경계심과 내외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그것은 현 정세발전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에서는 화해의 미소를 짓고 뒤에서는 대결의 칼을 갈며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보장에 엄중한 장애를 조성하는 남조선군부의 이중적 행태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남조선 군 당국은 저들의 행위가 바람직하지 않은 뜻밖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데 대하여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광고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BBC 김복동 할머니 일대기 ‘절규하며 죽었다!’

‘우리의 영웅’, ‘우리의 엄마’, ‘우리의 희망’
 
뉴스프로 | 2019-02-08 12:24:4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BBC 김복동 할머니 일대기 ‘절규하며 죽었다!’ 
-일본에 강한 분노, 끝내 사과 받지 못해 
-‘우리의 영웅’, ‘우리의 엄마’, ‘우리의 희망’

BBC가 장문의 부고 기사로 김복동 할머니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유명한 정치인도 아닌, 유명한 과학자도 아닌 저 한반도 남쪽의 90세가 넘은 노인의 죽음에 대해 BBC가 그의 일생을 따라가며 되짚어내고 그의 죽음의 의미를 온 세계에 상기시킨 것이다.

그의 죽음과 삶을 되살리며 BBC는 일본의 전쟁 범죄와 사과하지 않는 파렴치함에 대해 전 세계에 알렸다. BBC는 그 가해자 일본에 대해 김복동 할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까지 강한 분노를 표시하며 ‘절규하며 죽었다!’고 전했다.

BBC는 3일 ‘Obituary: Kim Bok-dong, the South Korean ‘comfort woman’-부고: 한국의 ‘위안부’ 김복동 할머니‘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고 김복동 할머니의 참혹했던 일본군 성노예 실태, 해방 후 귀국, 어머니의 고통스런 죽음, 자신의 과거를 알리고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싸움에 나선 치열한 삶, 그 후 인권운동가로서의 삶과 끝내 사과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분노에 대해 끝까지 싸울 것을 당부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다루었다.

BBC는 ‘한국의 활동가 김복동 할머니가 향년 92세로 세상을 뜨셨다’로 기사를 시작하며 ‘할머니의 관은 서울에 주재한 일본 대사관 앞을 지나갔으며, 이 마지막 행렬에는 많은 조문객들이 현수막과 노란 나비들을 들고 함께했다. “일본은 사과해야 한다”라는 울부짖음이 군중들 위로 크게 울리기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조용히 훌쩍였다’고 장례식 풍경을 전했다.

BBC는 이 장례 행렬에 대해 ‘이것은 일반적인 장례 행렬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복동 할머니는 일반적인 여성이 아니었고 이 장례 행렬은 그녀로부터 많은 것을 훔쳐간 한 국가에 저항하는 이분의 마지막 행동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하며 그녀는 그토록 원했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여전히 불의에 맞서 싸우며, 그녀가 누릴 수도 있었던, 누렸어야 마땅한 자신의 삶을 낚아챈 일본에 대해 여전히 분노한 채로 월요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고 그의 죽음의 분노를 설명했다.

BBC는 ▲’I had to comply‘ ‘나는 복종해야 했다’ ▲First known footage of ‘comfort women’ ‘위안부’에 대해 알려진 첫 번째 영상 ▲’How could I tell anyone?’ “어떻게 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It’s not about money’ “돈이 문제가 아니다”로 나누어 김복동 할머니의 굳센 삶의 여정을 따라가며 조명했다.

특히 BBC는 김복동 할머니의 여성 인권운동에도 초점을 맞추며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에서 분쟁 중 성폭력을 당한 피해생존자들은 김복동 할머니를… ‘우리의 영웅’, ‘우리의 엄마’, ‘우리의 희망’이라고 부른다”는 정대협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김복동 할머니가 2016년 일본의 10억 엔을 지불하기로 한 2015년 한일 협정을 비웃었다며 김복동 할머니가 원했던 것, 할머니가 이제껏 싸워온 것은 상대가 죄를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BBC는 ‘김복동 할머니의 유산은 헛되지 않을 것’이라며 “할머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롤모델이시다”라는 장례식 참석 군중의 말로 김복동 할머니의 유지가 이어져 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글, 이하로)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BBC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s://bbc.in/2Ts0OOL

Obituary: Kim Bok-dong, the South Korean ‘comfort woman’

부고: 한국의 ‘위안부’ 김복동 할머니

By Flora Drury BBC News

South Korean campaigner Kim Bok-dong has died at the age of 92 
한국의 활동가 김복동 할머니가 향년 92세로 세상을 뜨셨다

The coffin passed the Japanese embassy in Seoul, accompanied on its final journey by mourners waving banners and holding yellow butterflies.

할머니의 관은 서울에 주재한 일본 대사관 앞을 지나갔으며, 이 마지막 행렬에는 많은 조문객들이 현수막과 노란 나비들을 들고 함께했다.

Cries of “Japan must apologise” rang out above the crowd, while others quietly sobbed.

“일본은 사과해야 한다”라는 울부짖음이 군중들 위로 크게 울리기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조용히 훌쩍였다.

It was not your usual funeral procession. But then, Kim Bok-dong was not your usual woman, and this was her final act of resistance against a country which had stolen so much from her.

이것은 일반적인 장례 행렬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복동 할머니는 일반적인 여성이 아니었고 이 장례 행렬은 그녀로부터 많은 것을 훔쳐간 한 국가에 저항하는 이분의 마지막 행동이었다.

Kim was one of thousands of so-called “comfort women” rounded up by the Japanese army and forced to work as sex slaves for years on end.

김 할머니는 일본군에 의해 붙잡혀 수년간 강제 성노예로 일하게 된 수천 명의 일명 “위안부” 여성들 중 한 명이었다.

She died on Monday, at the age of 92, without ever receiving the apology she wanted; still railing against the injustice; still angry with Japan for taking the life she could and should have had.

그녀는 그토록 원했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월요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여전히 불의에 맞서 싸우며, 그녀가 누릴 수도 있었던, 누렸어야 마땅한 자신의 삶을 낚아챈 일본에 대해 여전히 분노한 채로 말이다.

“I was born a woman,” she said, “but I never lived as a woman.” 
“나는 여성으로 태어났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나는 여성으로서 살아 본 적이 없다.”

‘I had to comply’ 
‘나는 복종해야 했다’

It took Kim Bok-dong almost 40 years to find the strength to tell her story.

김복동 할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용기를 내기까지 거의 40년의 세월이 걸렸다.

She was just 14 when the Japanese soldiers arrived at her family’s home in Yangsan, South Gyeongsang. They said she was needed to work in a factory. If she did not come, they warned her mother, the family would suffer.

할머니가 고작 14세였을 때, 일본군은 경상남도 양산에 있는 할머니 가족이 살던 집에 쳐들어왔다. 그들은 할머니가 공장에서 일하는 데 필요하다고 말했다. 만일 할머니가 따라오지 않으면 가족들이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할머니의 어머니에게 경고했다.

But Kim was not taken to work in a factory. Instead, the teenager found herself transported to one of hundreds of “comfort stations” set up by the Japanese Imperial Army across the territory it had seized.

그러나 김 할머니는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징집된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이 십대 소녀는 일본제국 군대가 점령한 영토 전반에 걸쳐 설치된 수백 개의 “위안소” 중 한 곳으로 실려가게 되었다.

First known footage of ‘comfort women’ 
‘위안부’에 대해 알려진 첫 번째 영상

These “stations” were, in reality, brothels where some estimate as many as 200,000 women were forced to work as sex slaves.

사실 이 “위안소”들은 추정상 약 20만 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강제 성노예로 일하도록 만들어진 매춘굴이었다.

Kim, who should still have been in school, was among them.

아직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의 김 할머니는 그들 중 하나였다.

Her young age did not go unnoticed after she arrived in China.

중국에 도착한 후 그녀가 어리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When they found out I was only 14, they talked among themselves saying ‘Isn’t she too young?’,” she told YouTube channel Asian Boss during an interview in October 2018.

“내가 14세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차렸을 때, 그들은 자신들끼리 말하길 ‘이 여자 아이는 너무 어리지 않나?’라고 했다”고 김 할머니는 유튜브 채널인 아시안 보스와의 인터뷰에서 2018년 10월 말했다.

Apparently, it was not a problem. She was sent to start work.

그것이 문제가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성노예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The first time, I got dragged into one of the rooms and beaten up a bit,” she recalled. “So I had to comply.”

“처음에 나는 여러 방들 중 한 방으로 끌려들어가 두드려 맞았다”고 그녀는 회상한다. “그래서 나는 복종해야만 했다.”

Afterwards, she said, the bed sheets were covered in blood. It was too much to bear, and she decided there was only one way out.

이후, 그녀는 말하길, 침대 시트는 피범벅이 되었다. 그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고, 그녀는 그곳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 뿐이라고 믿었다.

These Korean women were found by US Marines at a “comfort station” in China in April 1945 
이 한국 여성들은 미 해군에 의해 1945년 4월 중국의 한 “위안소”에서 발견되었다.

Using the little money she had been given by her mother, she and two others convinced a cleaner to buy them a bottle of the strongest alcohol they could find.

어머니가 주신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그녀와 두 명의 다른 여성들은 청소부를 설득하여 구할 수 있는 가장 독한 술 한 병을 샀다.

They drank until they passed out, but it wasn’t enough. The three girls were found, and their stomachs were pumped.

그들은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셨으나 그것은 충분하지 않았다. 세 명의 소녀들은 발견된 뒤 위 세척을 받았다.

When Kim finally woke up, she made a choice – no matter what happened, she would live to tell the tale.

마침내 깨어났을 때 김 할머니는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 이 이야기를 알려야겠다고.

‘How could I tell anyone?’

“어떻게 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The Japanese Imperial Army first introduced the idea of “comfort stations” in the early 1930s. It was supposed to stop their soldiers going on “raping sprees”, and keep them free of sexually transmitted diseases.

제국주의 일본군은 1930년대 초 “위안소”의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이는 일본군이 “무분별하게 강간하는 것”을 방지하고 성병을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In the beginning, it is thought they used prostitutes. But as Japan’s military grew, so did demand. Eventually, they turned to slavery.

초기에 일본군은 창녀를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군인의 수가 늘어나면서 수요도 늘었다. 결국 그들은 노예를 찾고자 했다.

The men, Kim Bok-dong later recalled, would line up outside, waiting their turn.

후에 김복동 할머니는 남자들이 밖에서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고 기억했다.

Weekends were particularly dreadful. On Saturdays, she would work for six hours, the men arriving one after the other. On Sundays, it was nine hours.

특히 주말은 끔찍했다. 토요일이면 김복동 할머니는 6시간을 일해야 했고 남자들은 쉬지 않고 들어왔다. 일요일에는 9시간이었다.

Sometimes she would see almost 50 men in a day. Some days, she lost count. By the time her “shift” ended, she could barely stand up or walk.

어느 때는 하루에 거의 50명 가량을 상대해야 했다. 어느 날은 수를 세다가 잊어버리기도 했다. 하루의 “근무시간”이 끝날 때면 할머니는 거의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했다.

Kim was moved from station to station, and in 1945 she found herself in Singapore. The Japanese began to move Kim and the other comfort women out of the brothels. Kim found herself working as a nurse, still waiting for rescue.

김 할머니는 여러 위안소를 전전했고 1945년에는 싱가포르에 있었다. 일본군은 김 할머니와 다른 위안부 여성들을 위안소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김 할머니는 간호사로 일하며 구조되기를 기다렸다.

After first telling her story in 1992, she became a dedicated justice campaigner 
1992년 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한 후로 김 할머니는 열성적인 정의 활동가가 되었다.

It was 1947 when she was finally brought home to South Korea. She didn’t know how long she had been gone; she also didn’t know how to find the words to explain what had happened to her.

김복동 할머니가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1947년이었다. 김 할머니는 자신이 얼마 동안 떠나 있었는지 알지 못했고 또한 자신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How could I have told them about my experiences?” she asked. “I had things done to me that were unfathomable.”

그녀는 “내가 경험한 것들을 어떻게 말할 수 있었겠나?”라고 물으며,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많은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She wasn’t alone in her silence, as the University of Connecticut’s Alexis Dudden explains.

커네티컷 대학의 알렉시스 더든 교수가 설명하듯 할머니는 침묵을 지켰던 유일한 사람은 아니었다.

“I think her history following her return to Korea is a really good explanation of the double victimization of those who survived,” the history professor said. “There was not space in this society for the women to go public.”

더든 역사학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할머니에게 있었던 일은 생존한 위안부들이 겪어야 했던 이중 희생화의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이 사회에서 그 여성들이 대중 앞에 나설 곳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Kim did find her voice though, a few years after her return. Her mother wanted her to marry, and she felt she had to explain why she would not.

하지만 김복동 할머니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귀국한 후 몇 년이 지나서였다. 어머니는 그녀가 결혼하기를 원했고, 할머니는 자신이 왜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I confessed that, given all the abuse done to my body, I didn’t want to screw up another man’s life,” she told Asian Boss.

김복동 할머니는 “내 몸에 가해진 온갖 학대를 생각하면 다른 남자의 인생을 꼬이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다”고 아시안 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Her mother, she said, became distressed. Unable to share her daughter’s secret, she died shortly afterwards of a heart attack. Kim believed it was the pain of the secret which killed her.

김복동 할머니는 어머니가 많이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딸의 비밀을 감당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김 할머니는 어머니를 죽인 것은 바로 그 비밀의 고통이었다고 믿었다.

‘It’s not about money’

“돈이 문제가 아니다”

It would take decades for Kim Bok-dong to talk again about what happened to her. She moved to Busan, where she ran a successful fish restaurant.

김복동 할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되기 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김 할머니는 부산으로 옮겨가 생선 음식점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And then Kim Hak-sun came forward, sharing her own story of being imprisoned as a “comfort woman” by the Japanese in China – the first South Korean victim to break her silence so publicly. It was 1991. By March 1992, Kim Bok-dong had come forward to tell the world her account.

그러던 중 김학순 할머니가 중국에서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붙잡혀 있었던 본인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말했다. 김학선 할머니는 침묵을 깨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최초의 한국인 피해자였다. 그게 1991년이었다. 1992년 3월, 김복동 할머니는 앞으로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다.

“She had incredible strength – she was a survivor,” says Prof Dudden, who first met her more than two decades ago. “She came forward to tell her truth. That is when she makes her mark on the page.”

20여 년 전 김복동 할머니를 처음 만난 더든 교수는 “김 할머니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생존자였다”며, “김 할머니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그 때가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Her story would not just impact her fellow survivors in South Korea, though. It would bring together survivors from around the world – including women in Vietnam who had been attacked by South Korean soldiers during the US war. In 2014, she set up The Butterfly Fund to support fellow victims.

하지만 할머니의 이야기가 한국에 있는 동료 생존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 각지의 생존자들을 결집하게 했으며 그 중에는 미국과의 전쟁 중에 한국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베트남 여성들도 포함되었다. 2014년 김복동 할머니는 동료 희생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나비재단을 설립했다.

“The survivors of sexual violence in conflict from the 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and Uganda, address Kim Bok-dong… as ‘our hero’, ‘our mama’, and ‘our hope’,” a spokesman for The Korean Council for Justice and Remembrance for the Issues of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recalls.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대변인은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에서 분쟁 중 성폭력을 당한 피해생존자들은 김복동 할머니를… ‘우리의 영웅’, ‘우리의 엄마’, ‘우리의 희망’이라고 부른다”고 회상한다.

Supporters marched alongside her coffin as it made its final journey through Seoul 
지지자들은 서울 시내를 지나는 김 할머니의 마지막 여정에 할머니의 관을 따라 행진했다.

Kim did not just share her story. When she had money, she gave it. In 2015, she started a scholarship for children in conflict regions with her own money. The fact her own education had been cut so short was a regret until the end of her life. When it became clear she was dying of cancer in 2018, she began to give away what little money remained.

김복동 할머니는 단순히 자신의 이야기를 알린 것만은 아니었다. 김 할머니는 돈이 있으면 이를 나누었다. 2015년 김 할머니는 자신의 돈으로 분쟁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장학금 지급을 시작했다. 이른 나이에 교육을 중단한 것이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할머니에게 후회로 남았다. 2018년 암으로 죽을 것이 확실해지자, 할머니는 남아 있는 약간의 돈마저도 기부하기 시작했다.

But through all this – speaking around the world, campaigning outside the Japanese embassy every Wednesday – she still did not get the apology she felt she and the other victims deserved.

그러나 이런 모든 일들, 즉 전세계에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캠페인을 벌이는 모든 행동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자신과 다른 희생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사과를 아직 받아내지 못했다.

She was derisive of the 2015 deal between the Japanese and South Korea, which saw her former captors pay 1bn yen ($8.3m, £5.6m) to fund victims. 김 할머니는 자신의 납치범들이 피해자들에게 10억 엔(830만 달러, 560만 유로)을 지불하도록 한 2015년 한일 협정을 비웃었다.

What Kim wanted – what she was fighting for – was a full admission of guilt. Some still allege the women were not forced to work in the stations.

김복동 할머니가 원했던 것, 할머니가 이제껏 싸워온 것은 상대가 죄를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 여성들이 매춘소에서 일하도록 강요 받은 것이 아니라고 아직도 주장한다.

“We won’t accept it even if Japan gives 10bn yen. It’s not about money. They’re still saying we went there because we wanted to,” Kim told lawmakers in 2016.

2016년 김복동 할머니는 국회의원들에게 “우리는 일본이 100억 엔을 준다 해도 받지 않을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곳에 가고 싶어해서 갔다고 아직도 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South Korea’s President Moon Jae-In has since said he will renegotiate the fund, focusing more on the victims.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그 이후 희생자들을 보다 초점을 맞춰 그 기금을 재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But it came too late for Kim. As she lay taking her final breaths, she expressed “strong anger” towards Japan, her friend Yoon Mee-Hyang told reporters. As Prof Dudden puts it, she “died screaming”.

그러나 김복동 할머니에게는 너무 늦었다. 윤미향 씨는 기자들에게 할머니는 병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며 일본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더빈 교수의 말처럼 김복동 할머니는 “절규하며 죽었다.”

But her legacy will not be lost. In among the crowd at her funeral was Kim Sam, 27, who first met Kim “sitting up straight even in the rain as she spoke about her struggle”.

하지만 김복동 할머니의 유산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장례식에 참석한 군중들 중에 27세의 김삼 씨는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할머님은 투쟁에 대해 말할 때 빗속에서조차도 자세를 똑바로 하고 앉으셨다”고 말했다.

“Upright, dignified – that’s how she always was, first as a victim and later as a human rights activist,” she recalled.

“고결하고 품위 있게, 김복동 할머님은 늘 그러셨다. 처음에는 희생자로서, 나중에는 인권운동가로서”라고 그녀는 회상했다.

“She’s a role model I respect the most.”

“할머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롤모델이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94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차송환 장기수·12명 종업원·김련희씨는 시급한 인도적 현안"

범시민대책회의 등, "김정은 위원장 답방때까지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9.02.08  18:07:14
페이스북 트위터
   
▲ 민변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대응TF 등은 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차 송환 장기수, 12명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김련희씨 등 인권 피해자들의 송환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건너간 후 2차 송환 희망자로 19년동안 남아있는 33명의 장기수. 3년 전인 2016년 4월 7일 총선을 며칠 앞둔 시기에 정보기관에 의한 납치 의혹을 받으며 한국에 들어온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2명과 지배인. 탈북 브로커에 속아 평양에 가족을 두고 한국에 들어왔다며 8년째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평양시민' 김련희씨.

4.27판문점선언 합의에 따라 시급히 해결해야 할 민족 분단으로 인한 인도주의 문제의 당사자들로 거론되는 이들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사건 대응TF'와 '북 해외식당 종업원 문제해결을 위한 범시민대책회의', '평양시민 김련희 송환촉구모임' 등은 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판문점선언 이행! 남북사이 시급한 인도적 문제 해결 및 송환촉구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이들에 대한 인권피해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원상회복 등을 촉구했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수많은 이산가족의 인도적 문제가 있지만 다른 방면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비해 이들 비전향 장기수, 강제 유인납치 의혹을 받는 12명 종업원, 김련희씨 등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정부에서도 일절 말이 없다. 이 문제보다 더 시급한 인도주의, 인권, 인륜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먼저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송환되고 2차 송환 대상자 33명이 북녘으로 가겠다고 요구했으나 정부는 초기에 이들이 전향을 했다는 자격문제,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등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상호주의 등을 걸어 머뭇거렸으며, 보수세력의 극심한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10년의 세월을 헛되게 보냈다"고 지적했다.

"30~40년 징역을 산 사람들을 출소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안관찰법 대상으로 묶어 놓고 감시, 통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지금도 어깨띠를 메고 민주화, 통일, 인권 현장을 다니고 있는 이 분들이 고향을 찾아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촛불정부의 소임"이라고 강조했다.

또 "12명 종업원의 강제입국은 국가정보기관이 개입하여 강제 유인 납치한 사건이라는 걸 이젠 세상이 다 알고, 김련희씨가 8년간 가족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사실도 세계가 다 알고 있다. 청와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고 개탄하고는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결단하여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할 때까지는 이들 모두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고 호소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인 박승렬 목사는 12명 종업원들의 강제입국 문제에 대해 "정권 차원에서 총선 승리를 위해 기획한 것이라는 진상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이들 12명 종업원들의 침해된 인권에 대한 원상회복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자초지종을 설명조차 하지 않고 있는 점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다"며, "왜 이 문제가 발생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말했다.

또 "이들 종업원들이 끌려와서는 방치되어 있다. 두려움속에 살고 있으며 육체·심리적으로 대책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인권침해를 당하며 살고 있는 이들에게 정부는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송환계획, 정착을 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책임있는 계획을 발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경욱 민변TF 팀장은 "12명 종업원 전원이 계속되는 귀순공작 속에 숨어지내고 있다"면서 "일부 접촉 가능한 종업원들은 진상규명과 가해자처벌, 부모들에게 소식을 전해 줄 것을 원하고 있다"고 12명 종업원들의 근황을 소개했다.  

정보기관에서는 이들 종업원들에게 신변보호관을 붙여 사실상 감시를 하면서도 오히려 이런 상황을 이용해 민원창구 노릇을 하고 있는데, 민변 변호인들의 면담요구도 회피하고 있어 민변은 직권남용으로 신변보호관 등을 검찰에 고발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장 변호사는 "오는 4월 7일이면 이들 종업원들이 국가를 상대로 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단기소멸 시효한도'가 만료되지만 이를 전달할 방법도 없어 답답하다"면서 "이들 종업원들이 부모형제를 만나게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게 하면 진상규명도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측에 요구서한을 전달했다. 왼쪽부터 장경욱 변호사, 박승렬 목사, 진관스님, 권오헌 명예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수정 - 오후 11시 40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18 뒤집자"는 한국당 의원...'극우의 전당' 멍석 깔다

끝내 지만원 부른 한국당 "5·18은 폭동" 망언
2019.02.08 19:02:05
 

 

 

 

"저 빨갱이 새끼 잡아라. 빨갱이 앞잡이 새끼 잡아라. 간첩 잡아라!"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유족들에게 트라우마로 박힌 '빨갱이'와 '간첩' 소리가 버젓이 울려퍼졌다. 장소는 다름 아닌 국회였다. 

8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공동 주최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가 열렸다. 이 공청회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지만원 씨가 참석했다.  

논란 속에도 끝내 지 씨를 국회로 불러들인 이 자리를 1000여 명의 방청객이 발디딜 틈 없이 메웠다. 일부 방청객들은 성조기와 태극기를 가져왔고, 유튜브로 방송을 중계하는 60~70대도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모임인 5.18 유족회를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들은 공청회 도중 "역사를 왜곡해선 안된다", "진실은 거짓을 이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그러자 대회의실에 가득했던 천 여명의 관중들은 일제히 "빨갱이 새끼가 여기 있다", "간첩을 잡아라", "죽여라" 등의 거친 언사를 하며 격양된 반응을 보였고, 사회자는 "(5.18 유족 등을) 끌어내라"라고 소리쳤다.  

 

 

ⓒ프레시안(박정연)

 


20여 명 남짓한 5.18 유족회원들과 5월 어머니집 회원들은 약 100여 명의 방청객들에 의해 물리적으로 끌려나왔다. 이 과정에서 항의를 하는 5.18 유족들과 끌어내려는 방청객들 사이의 몸싸움이 일어났으나, 국회 방호직원들의 만류로 저지되기도 했다.

이들은 대회의실을 벗어나서도 계속해서 고성과 함께 몸 싸움 시도가 이어졌고, 이로 인해 경찰 5명이 출동하기도 했다. 방청객들은 광주 유족을 가리키며 "빨갱이를 잡아가라", "간첩을 잡아가라"고 소리쳤고, 광주 시민들은 "모욕하지말라"고 외쳤다.

5월 어머니집 회원인 이근례씨는 다른 유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방청객들을 향해 "왜 내 자식이 빨갱이냐"며 "거짓말 하지 말아라"고 눈물을 쏟았다. 그는 "어떤 남자가 나보고 아주 순식간에 '빨갱이 같은 년'이라고 욕을 했다"며 "5월 가족들은 '빨갱이'라는 단어에 트라우마가 있다. 광주 사람들은 대대손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국민인데 아주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유가족인 추혜성 씨는 "국회가 어디냐.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민의의 정당이다"라며 "5.18 특별법이 구성이 되어서 한국당도 진상조사위원을 추천해서 정당하게 구성을 했으면, 그것에 최선을 다해야지. 왜 5월을 폄훼하고 왜곡하냐"고 했다. 

그는 "지만원은 5월 광주를 폄훼하고 왜곡해서 벌금형을 받았는데 신성한 국회에서 왜 저런것(공청회)를 여냐"며 "지만원 말대로 북한군이 내려왔다고 하면, 북한군이 600명 침투해서 그런 짓을 할때 국민을 보호하는 이나라 군인들은 무엇을 했냐"고 강조했다.

김창수 조선의열단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이 국회까지 와서 이런 공청회를 연다고 하는 것은 국회를 모독하는 것이고 광주민주화운동을 모독하는 것이고 광주의 영령, 유가족 모두 모독하는 것"이라며 "국회는 민의의 전당인데 어느 국민이 국회에서 이런 공청회를 용납하겠나"라고 했다. 
 

▲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서 지만원씨가 5.18 북한군 개입 여부와 관련해 발표하려 하자 5.18 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항의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만원 "전두환은 영웅"... 여야3당 "멍석깔아준 한국당 제 정신이냐"

지만원 씨는 "전두환은 영웅"이라며 "전두환은 47살 때 별이 두 개 였는데, 그 순발력과 용기가 아니었다면 이 나라는 김재규가 일으키는 쿠데타 손에 넘어갔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다가 2013년 명예훼손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지 씨는 5.18 민주화운동에 600명의 북한군, 이른바 광수(북한 특수군인)가 개입했다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이라며 "시위대를 조직한 사람도, 지휘한 사람도 한국에는 없다"고 했다.  

망언은 지 씨에서 그치지 않았다. 행사를 마련한 한국당 이종명 의원은 “80년 광주 폭동이 10년, 20년 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민주화 운동이 됐다. 이제 40년이 되었는데 다시 뒤집을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80년 5월 전남도청 앞에서 수십 수백명 사람들이 사진에 찍혔는데, '북괴군이 아니라 나다'라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상으로 축사를 한 김진태 의원은 "5.18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 된다"면서 "이번 전당대회에 나온 사람들은 이러니 저러니해도 5.18 문제만 나오면 다 꼬리를 내린다, 이래서는 정말 싸울 수가 없다"고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 14일 오후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 앞에서 5.18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위원 선정과 관련 나경원 원내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중이던 오월 어머니회 회원들이 한국당 진상규명 조사위원 선정과 관련 기자회견을 준비하며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 씨는 "5·18 주역들은 북한인과 고정간첩, 적색 내국인으로 구성됐다"며 "작전의 목적은 전라도를 북한 부속지역으로 전환해 통일의 교두보로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 씨는 "(사진을 가리키며) 여기 얼굴이 보이는 사람이 장성택과 리선권"이라며 북한 고위간부를 지낸 이들이 5.18 당시 광주에서 주요직책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근거는 광주 5.18 사진 사료와 비슷한 구도로 찍은 북한 간부들의 사진 뿐이었다.

또한 5.18 당시 군부의 폭력 참상을 찍은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두고 "북괴가 찍은 사진을 받아 자신의 이름으로 세계에 방송하게 한 간첩"이라며 "(곤봉으로 시민을 매질하는 사진을 가리키며) 힌츠페터가 광주에 가서 몇 시간 만에 돌아와 일본에서 송고한 사진"이라고 했다.  

지 씨는 지난해 말 힌츠페터와 그의 광주행을 도운 택시기사 김사복씨를 '간첩', '빨갱이'로 지칭해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바 있다. 

여여 3당은 이번 공청회를 강하게 규탄했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허무맹랑하고 사기에 가까운 지 씨의 주장에 동조하는 건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의 원혼을 모독하는 행위"라며 "지만원 씨가 주장하는 허무맹랑하고 사기에 가까운 북한특수부대 광주 잠입설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주제로 배정한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평화당 최경환 의원은 논평을 내고 "황당하고 경악스럽다"며 "5·18 북한 개입설을 주장하다 사법적 심판이 끝난 지만원에게 멍석까지 깔아준 것도 모자라 악의적으로 국민 분열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분명해졌다"고 했다. 이어 "고작 지만원 같은 인사를 내세워 아무리 5·18을 왜곡하려 한다 해도 이를 믿어줄 국민은 없다"며 "자유한국당의 5.18 왜곡과 진상규명 방해 행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도 "이미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은 지씨를 다시 불러 행사를 개최하는 몰상식한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며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 한국당이 제 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정연 기자 daramj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국”과 “일본 속의 조선”이 처음 만나다

 

아래 기고문은 워싱턴 소재 <21세기 연구원> 정기열 원장이 보내온 글이다. 미국 드퍼대 학생들이 재일조선대학교를 방문한 경험이 의의가 깊다고 판단되어 소개한다. 기고문 일부 내용은 독자들과 판단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정기열 원장은 철학박사(미국), 사회정치학박사(조선) 학위 소유자이며, 김일성종합대학 초빙교수이자 동경 조선대학교 객원교수이며, 현재 영문 <The 21st Century>(21cir.com)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다.

들어가는 말: 천지개벽하는 조미관계와 ‘개 버릇 남 못 주는’ 제국의 이율배반

2019년 새해 벽두부터 ‘조미관계정상화’를 향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작년 2018년 한해 내내 조미관계가 ‘대결’에서 ‘대화’로 구도가 전환되며 ‘70년 조미(핵)대결사’는 오늘 드디어 종말을 고하고 있다. ‘극단적 비정상 상태’ 그 자체였던 70년 양국관계가 정상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모든 것이 근본에서부터 서서히 바뀌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디지만 하나씩 둘씩 바뀌고 있다. 그 사실을 오늘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오늘 바뀌고 있는 것은 그러나 구도만 아니다. 조선을 대하는 태도, 자세 또한 바뀌고 있다. 구도, 태도, 자세가 바뀌면서 두 나라 사이 많은 것이 오늘 근본에서부터 수정되기 시작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천지개벽(天地開闢)이 따로 없다. 그 격세지감, 천지개벽은 그러나 누가 선사한 것이 아니다. 누구의 선사품이 아니다. ‘제국’(帝国)이 개과천선(改過遷善)했기 때문은 더욱 아니다. 그들은 개과천선 같은 것을 모른다. 역사상 존재한 모든 제국이 같다. 그들은 자신을 근본에서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존재다. 밖에서 힘으로 강제하거나 아니면 안에서부터 썩을 대로 썩어 내부 붕괴를 하기 전엔 스스로를 바꿀 수 없는 존재다. 오늘 미국이 대표적 경우다.

2019년 새해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관계개선에 더욱 ‘올-인’하는 모습이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 트럼프 면담, ‘친서교환’, 스톡홀름에서의 조미실무회담 소식으로 세상 언론이 뜨겁다. 조미관계에서 변한 것이 하나 있다. 워싱턴은 조선 앞에선 이제 “제국 행보”를 삼가한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때로 제국 행세 할 때조차 눈치 보며 한다. 그러다 주제 파악 못한 채 과거 버릇이 계속되면 조선은 대꾸도 않는다. 워싱턴의 못된 버릇 고치기 위해서다. 요즘 그 못된 버릇이 고쳐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띤다. 이유여하를 막론코 미국은 오늘 조선 앞에선 더 이상 ‘제국 행세’ 않는다. 대신 종전선언, 평화협정체결, 교류, 친선, 협조, 관계정상화를 논한다. 그 워싱턴은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예의 그 못된 버릇을 여전히 벌리고 있다. 주권국가 베네수엘라에 대한 노골적인 ‘정권교체’를 시도하고 있다. 선출된 현직 대통령 마두로를 두고 어디서 기어 나온 듣도 보도 못한 30대 중반의 ‘워싱턴키드’’(Washington kid)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난리다. ‘붕괴 직전’ 모습의 워싱턴 정신상태가 오늘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이다.

매티스 전국방장관, 켈리 전비서실장: “우리가 임기 동안 한 일의 대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의 해외주둔(아프간, 시리아, 한국, 나토 등지의) 미군철수를 못하게 말리는 일이었다”

조선 앞에선 평화를 구걸하고 돌아서선 자기를 지킬 힘이 없는 상대에게 제국(늑대)의 이빨을 또 다시 드러낸 베네수엘라사건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물을 수 있다. 트럼프의 조선에 대한 절절한 구애가 진정성 없는 거짓인가? 아니면 임기 초 때처럼 그가 아직도 네오콘전쟁세력에게 포위되어 처신이 자유롭지 못한 것인가? 후자라고 진단한다. 매티스 국방장관 사퇴 직후 1년 반 비서실장으로 일하다 동반 사퇴한 존 켈리의 <LA Times> 대담기사 내용이 그리 진단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다. 둘 다 해병대 장성출신인 백악관 최고위각료들이 2년 가까이 한 일은 ‘대통령이 틈만 나면 주장한 해외주둔미군철수를 못하게 막은 일’이다. 그 대상 국가들은 지난 2년 시도했으나 실천에 옮기지 못한 국가들이다. 매티스, 켈리 사퇴 직후 그러나 트럼프는 결국 자신의 공약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먼저 시리아, 아프간에서 철군이 시작됐다. 어느 순간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빌미로 주한미군철수 또한 전격적으로 단행할 수 있다. 트럼프가 살아있을 경우 ‘나토에서의 탈퇴’ 또한 시간문제일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그가 오늘도 여전히 네오콘전쟁세력에게 포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019년 미국국가정보전략>: “트럼프 대통령 국가안전에 위협”

1월 23일 17개 국가정보조직이 공동으로 발간한 <2019년 국가정보전략>(2019 National Intelligence Strategy)의 충격적 내용이 공개됐다. “트럼프 대통령 국가에 위협적 존재’(“President Trump a Threat to the Nation”, 2019 US Intelligence Strategy Report Says)라는 주장이다. 지난 2년 트럼프시대를 끝없이 논하면서 한 이야기가 현실로 가시화되고 있다. 오늘 워싱턴은 기본 극소수의 트럼프진영과 절대다수의 반트럼프진영으로 나뉜 채 서로 막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언론은 거의 100% 반트럼프진영에 있다. 현직의 대통령을 국가정보조직들이 집단으로 ‘국가에 위협’이라는 주장은 1963년 케네디를 암살한 조직 곧 ‘딥스테이트’(Deep State)로 불리는 ‘금융지배세력’(The Financial Elites)이 그를 언제든 제거하겠다 공개 협박한 것에 다름없다. 트럼프가 과연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까? 그가 살아서 백악관을 걸어나갈 수 있을까? 등을 지난 2년 끝없이 물었던 상황이 오늘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 지배세력은 오늘 국면이 시리아, 아프간, 머지 않아 한국에서의 미군철수마저 실천에 옮길 것이 확실해보이는 트럼프를 더 이상 살려둘 수 없다 결론 내린 것 같다. 반대 경우 그와 같은 내용의 국가정보전략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와 같은 분석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정보 공개 직후인 1월 28일 CIA, FBI, NIA정보조직 수장들이 상원청문회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대통령의 조미관계개선, 시리아철군, 아프간철군에 대해 항명에 다름없는 발언을 던졌다. ‘대통령 정세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자신들을 임명한 대통령의 권한과 지위를 집단으로 능멸한 행위다. ‘나토탈퇴’ 즉 수백 년 세계를 지배한 ‘대서양세력’(The Atlantic Power)의 근본을 허무는 어마어마한 초대형사건마저 터트릴 것이 확실한 ‘미친 놈’ 트럼프를 더 이상 살려둘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워싱턴지배계급 내부에 자리잡음 없이 불가능한 일종의 공개반역행위들이 연일 터지고 있다. 살아있는 현직의 대통령을 ‘국가안전에 위협’이라 말한 것은 트럼프를 물리적으로 제거하겠다는 내부 결정이 이미 내려졌다는 증거다. 대단히 구체적인 위협이다. 트럼프가 고대하고 있는 2-3월 전후해서 가지려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2차조미정상회담 때까지 그가 살아남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모른다.

트럼프 생존 여부 관계없이 ‘늑대’는 과거처럼 조선 앞에선 늘 ‘순한 양’처럼 행동할 것이다

트럼프가 살아남아 그가 바라고 고대하던 대로 70년 조미(핵)대결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인 종전선언, 평화협정체결, 나아가 주한미군철수 결정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인류사적 과업을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이뤄낼 수 있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러나 만의 하나(오늘은 ‘만의 하나’가 아니다. 백의 하나도 아닐 것 같다. 어느 순간 그가 어떤 처지에 놓일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 2년에 비해 그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노골적이고 거세다. 트럼프로 인해 그들의 수백 년 세계지배구도가 극한의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가 잘못될 경우 트럼프행정부에서 ‘밀월관계’를 구가하며 순항하던 모양의 조미관계는 어떻게 될까? 많은 이들이 갖는 의문이다. 또 다시 과거의 핵대결구도로 180도 곤두박질칠까? 아니면 극도의 혼돈 과정을 거치더라도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조미관계는 결국 또 다시 대화구도에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을까? 이 역시 후자라 진단한다. 조미(핵)대결은 누누이 말했듯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누가 백악관에 있던 대화 구도는 따라서 결국 유지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일정한 기간 트럼프와 했던 밀고 당기는 과정이 또 다시 재연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조미관계는 누가 있으면 되고 없으면 안되는 상황은 이미 아니다. 두 나라는 이미 핵전략국가 대 핵전략국가 관계다. 대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관계다. 러미가 온갖 문제로 아무리 씨름해도 핵대결로 갈 수 없듯 조미관계 또한 이제 대화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세상천지 모든 상대에게 툭하면 이빨을 드러내는 제국은 조선 앞에선 언제나 ‘순한 양’처럼 행동했다. 70년 조미대결사 전기간 그랬다. 코리아전쟁 발발 6개월 뒤 휴전협상에 매달리던 때부터다. 왜? 제국이 조선 앞에서 어제오늘 변함없이 순한 양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딱 하나다. 힘 때문이다. 맨주먹으로 싸우다시피 한 조선을 상대로 1950년 전쟁 때 유엔을 등에 업고 15개 추종국가 끌고 갔던 때도 미국이 당시에 넘지 못했던 ‘조선의 힘’은 다른 것이 아니다. ‘조선사람의 정신’이다. 북녘동포들의 힘은 그러나 오늘 주지하듯 정신만이 아니다. 더 단단해진 정신력 외에 북녘동포들이 오늘 스스로를 지칭해 부르는 ‘핵전략국가’의 힘까지 더해진 (북녘 표현으로) ‘불패의 힘’이다. 그 힘을 이 글에선 ‘살리는 힘’이라 부르자. 늑대가 양을 해치는 힘을 ‘죽이는 힘’에 비유하면 늑대의 기(죽이는 힘)를 죽여 양을 살리고 지키는 힘을 ‘살리는 힘’이라 불러 크게 틀리지 않다. 그렇다. 조미대결사 전기간 제국이 조선 앞에서 양처럼 순하게 행동한 것은 앞에 논한 것처럼 그들이 개과천선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그리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강제한 조선의 힘 때문이다. ‘제국주의’ 본성이 ‘죽이는 힘’이라면 그 죽이는 힘을 ‘살리는 힘’으로 강제해 정의와 평화를 지켜내는 일은 따라서 ‘반제자주’라 정의해 역시 틀리지 않다. 조선이 1세기 가까이 금과옥조처럼 지켜온 반제자주는 그러므로 자신과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힘’이다. 그리 비유해 틀리지 않다.

조미관계개선의 본질: ‘제국주의 곧 죽이는 힘’과 ‘반제자주 곧 살리는 힘’의 역학관계

오늘 조미관계에 발생한 천지개벽은 우리민족의 1세기 위대한 반제자주민족해방투쟁이 이룩한 변화다. 반제자주의 살리는 힘이 강제한 변화다. 세상은 그러나 어제처럼 오늘도 여전히 거꾸로 말한다. 왜? 첫째는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는 제국주의가 세상을 속인(속이고 있는) 결과다. 둘째는 제국의 종이 되어 노예처럼 산 결과다. 셋째는 사대주의, 외세의존이 골수까지 찬 결과다. 그들이 세상을 거꾸로 보는 이유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필칭 소위 주류보수언론이 세상을 속이는 짓은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태영호 박상학, 이만갑 같은 “탈북자”들 데려다 세상 속이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무엇으로도 속일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들이 신주처럼 모시는 미국이 오늘 그들이 버리고 도망쳐 나와 “악마”라 욕하는 바로 그 ‘조국’ 앞에 순한 양이 되어 ‘종전선언’, ‘평화협정체결’, ‘조미관계정상화’에 동의하고 그를 실천에 옮기게 될 천지개벽의 변화다. 오늘 그들을 이용하는 “분단적폐세력”의 운명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갈까? 주인이 몰락할 경우 종들은 언제 용도폐기 될까? 시간문제다.

그렇다. 오늘 진행 중인 세상의 그 모든 변화는 누가 준 것이 아니다. 누구의 선사품이 아니다. 조미관계 경우 남북해외 우리민족이 피땀 흘려 쟁취한 것이다. 1세기 넘게 쉼없이 싸워 만든 결과다. 우리민족이 일궈낸 ‘위대한 인류사적 업적’이다. 그 모든 천지개벽은 2018년 김정은 위원장 신년사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신년사 뒤 70년 최악의 적대관계는 오늘 조미 양국 정상 간에 일종의 ‘밀월관계’가 형성될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밀월관계를 대표하는 상징은 오늘 ‘친서교환’이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 친서를 ‘러브레터’라고까지 부른다. 친서외교는 2019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천지개벽한 조미관계를 상징하는 정상 간 밀월관계 곧 ‘조미관계정상화’는 그러나 국가차원에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민간차원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최근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미국과 ‘일본 속 조선’과의 첫 만남”이 그것이다. 63년 역사 상 처음으로 ‘철천지 원쑤 제국주의’가 조대를 찾은 사건이다. ‘미국과 일본 속 조선’의 첫 만남은 그러나 뜨거웠다. 이글은 오늘 민간차원에서도 전개되는 ‘조미관계정상화’ 이야기다.

▲ 대화중인 재일조선대 학생과 미국 드퍼대 학생[사진 : 정기열 원장 제공]

“‘미국과 일본 속 조선’의 첫 만남’”: “North Korea in Japan: Colonialism and Education”

“일본 속의 조선”이란 표현은 조대를 찾은 미국 드퍼대(DePauw University) 학생들이 듣고 있는 교육학부 강의제목이다. 제목 뒤에 “식민주의와 교육”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14명 남녀(3학년 11, 4학년 3 / 백인 12, 흑인 1, 어머니가 우리민족, 아버지가 백인인 여학생 1) 대학생들을 인솔한 30대 중반의 백인교수 데맄 포드 박사가 개설한 강의다. 참고로 그의 조대 방문은 이번이 처음 아니다. 2016년 11월 조선대학교 60주년 기념학술대회 때 그는 미국측 발제자로 참가했다. 당시 그가 발표한 논문은 “세계사적 견지에서 본 해외코리안의 민족교육과 조선대학교: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민족교육”(Korean Education for Overseas Koreans and Korea University from the Perspective of World: Korean Education as Resistance to Colonialism)이다. 2016년 조대 방문 뒤 그는 북녘(조선) 방문을 희망했다. <21세기 연구원>은 다음 해 8월 그와 그의 친구 4명이 참가한 “조선학습관광”(Korea Study Tour)을 조직했다. 그리고 작년 초 포드 교수는 <21세기 연구원> 부원장 중 하나로 연구원 사업에 합류했다.

여행 직후 우리는 드퍼대-조선대가 참가하는 <국제학생교류프로그램>(Int’l Student Exchange Program: ISEP)을 함께 기획했다. 작년 1월 양쪽 대학에서 공식 허가가 내려졌다. 그 뒤 1년의 준비를 거쳐 모두 16명(교수 2명 포함)의 미국대학생대표단의 첫 조선대학교 방문이 실현됐다. 방문 이틀 째 포드 교수는 드퍼대, 조선대 학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진행했다. 강의 제목은 “The US-DPRK Relationship and the Fracturing of Unipolar Imperialism: Past, Present and Future”(조미관계와 일극제국주의의 붕괴: 과거, 오늘, 미래)다. 특강은 <21세기 연구원> 기관지 겸 독립영문매체인 <The 21st Century>(21cir.com)에 실렸다. 조선대학교 측에서도 외국어학부 교수의 영어 강의가 진행됐다. 강의 내용은 “재일본조선인역사와 민족교육운동”이다. 첫날 조대 방문에서 미국대학생들은 박물관 견학, 학생, 교직원과 함께 점심, 강의, 자유대화, 조선무용연습 참관, 무용학습과 통일열차, 풍물(이곳에서는 ‘세마치’라고 부른다)공연연습 참관, 풍물(북, 장구, 꽹과리, 징)학습, 그리고 저녁환영만찬을 대학식당에서 가졌다.

▲ 조선학교를 방문중인 미국 드퍼대 학생들[사진 : 정기열 원장 제공]

“생이 바뀌는 경험”(Life-changing Experience): “요코스카해군기지지하터널”, ‘강제징용’, ‘식민지노예노동’

체류 3일 째 아침부터 재일본조선인들의 ‘강제징용 노예로동’ 현장에 대한 학습방문이 시작됐다. 감상문에 소개된 것처럼 지하터널 현장 방문이 미국학생들에게 준 충격이 적지 않았다. 일제가 전쟁 말기 강제징용으로 끌고간 조선인노동자들을 동원 건축한 요코스카해군기지지하터널을 직접 들어가본 미국학생들의 “일본 속 조선”에 대한 학습은 그때부터 심각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미국학생들 생각이 빠르게 자라기/변하기 시작했던 시점은 바로 그때 같다. 그들의 ‘일본 속 조선’ 학습은 5일 째 늦은 오후 시간 바람이 몹시 매서웠던 날 문과성(文科省) 앞 ‘고교무상화 금요투쟁’까지 참가하게 되면서 그들 뇌리 속에 깊이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다. 그날 저녁 그들 모두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조선대 졸업생이 운영하는 불고기집 ‘온돌’에서 열린 만찬행사 때다. 14명 학생 거의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 이틀 뒤 오후 ‘일본 속 조선’에 대한 학습을 모두 마친 그들은 모두 무사히 미국에 돌아갔다. 몇일 뒤 그들 전원은 뜨거운 ‘감상문’을 보냈다. 교수도 귀중한 논문을 발표했다. 학생들 글에 ‘생이 바뀌는 경험’이란 표현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아래 감상문 내용을 짧게 요약한다: “오기 전 예상을 훨씬 넘었다, 끝없는 배움의 연속이었다. 짧은 5-6일 이리도 많은 것을 배울 줄 상상 못했다, ‘재일본조선인운동, 민족교육운동’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됐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반세기 식민지배가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 조선사람에게 통일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됐다, 코리아의 통일을 지지한다, 나도 당신들과 함께 코리아 통일을 위해 싸우겠다, 이번 여행을 평생 못 잊을 것이다, ‘생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등이다. 이미 감상문 일부는 <조선신보>(일어판)에 먼저 소개됐다. 독자들 반응이 뜨겁자 신보에서 학생들 감상문 전체를 우리말로 번역해 신문에 싣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이삼 일 안에 신보에 실리게 될 것 같다. 미국대학생들 방문 기간 조선대 학생 약 2-30여명도 행사 전기간 교대로 참가했다. 보다 많은 학생들의 참가를 위한 대학의 배려다. 언어문제로 참가는 외국어학부 영어전공 학생들이 먼저 선정 대상이 됐다. 둘째 날 드퍼대-조대 교수의 영어공개강의 참가는 그러나 제한이 없었다. 원하는 학생 누구나 참가했다.

강의에 조대생이 100여명 넘게 참가했다. 반응도 뜨거웠다. 조대도 미국학생들도 모두 놀랐다. 외국어학부 영어전공 학생들도 행사에 누가 참가하는지를 놓고 선정과정이 필요했을 정도다. 참가 요구가 높았기 때문이다. 행사에 대한 반응은 ‘미국과 일본 속 조선’ 모두 같다. 학생, 교수 누구랄 것 없이 모두 뜨거웠다. 무엇보다 학생들 반응이 놀라웠다. 그들 모두는 순간에 ‘친구’가 됐다. 마치 수십 년 사귄 친구처럼 됐다. 일주일을 모두 그리 보냈다. 금방 하나가 됐다. 북녘처럼 ‘일본 속 조선’에게도 미국은 평생 ‘제국주의적’이다. 북녘 식으론 ‘철천지 원쑤’다. 반면 미국에게 ‘조선’은 평생 ‘악마’다. 70년 ‘악마화선전전’이 가공해낸 악마다. 서로 평생 ‘적’으로, ‘악마’로 알고 살았다. 그래서 서로를 알 기회가 없었다. 만날 기회도 없다. 물론 그들만이 아니다. 세상 전체가 그랬다. 남녘동포들도 크게 차이 없다. 우리도 몰랐다. 우리도 몰랐으니 다른 곳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서로 평생 ‘적’, ‘악마’로 알고 살았던 그들은 그러나 만나자마자 ‘친구’가 됐다. 순간에! 그렇다. ‘가공된 악마’는 정녕 순간에 사라졌다.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제국주의 원쑤’도 가슴과 가슴이 만나고 서로의 심장이 통하며 금방 ‘동지’가 됐다. 그들이 배운 우리 말 중 하나가 ‘동지’다. ‘축배’란 말도 배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이 외친 우리말은 ‘축배, 동지’였다.

▲ 토론중인 재일조선대 학생과 미국 드퍼대 학생들[사진 : 정기열 원장 제공]

<21세기 연구원>의 첫 “국제학생교류프로그램”(ISEP)의 성과와 의의, 전망

방문을 마치며 포드 교수가 제안했다. 조선대학이 받으면 드퍼대학은 내년에도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연구원 측에 내년 또 다시 같은 프로그램을 조대와 함께 조직해줄 것을 부탁했다. 조대에 그런 뜻을 전했다. 조대도 드퍼대와 같은 반응을 내놨다. 드퍼대가 다시 온다면 더 뜨겁게 환영하겠다는 뜻을 알려왔다. 이번 첫 국제학생교류프로그램 사업 성과가 서로의 심장 속에 깊이 각인된 결과라고 믿는다. 행사 뒤 양 대학 모두 이번 사업을 발기하고 조직한 <21세기 연구원> 측에 감사를 표했다. 연구원은 이번 사업에서 얻은 수익금을 대학에 기증했다.

연구원이 이번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한 목적은 아래와 같다: 1) 드퍼대 포드 교수 강의 제목처럼 ‘일본 속의 조선’을 세상에 바로 알리기 위함이다; 2) 세상이 전혀 몰랐던 재일본조선인들의 70년 민족교육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3) ‘일본 속의 조선’은 일본당국이 해방 이후에도 조선사람(총련동포)들에게 끝없이 가한 식민지시대 민족차별정책과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법적 문제 등 온갖 형태의 탄압과 정치사회경제문화적 권리 박탈, 제약, 차별, 제재가 70년 넘게 가해지는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고 아름답게 활짝 핀 한송이 흰색의 ‘목련꽃’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목련꽃은 조선대학교의 ‘대화’(大花)다); 4) 재일본조선인들에 대한 역대 일본당국의 온갖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적 차원의 차별, 억압, 탄압 문제들 중에서도 ‘조선학생들을 고교무상화프로그램에서 유독 제외시키고 있는’ 일본당국의 비열한 처사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5) 재일본조선인들을 상대로 70년 넘게 일본당국이 벌이고 있는 “국가차원의 인권범죄, 인종범죄”가 세상에 철저히 숨겨져 있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6) 달리 말해 70년 넘게 재일본조선인들이 처하고 있는 ‘최악의 인권문제”가 세상에 철저히 숨겨져 있는 현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7) 아베가 공언하고 있는 ‘총련조직과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을 말살’하기 위한 비열하고 악랄한 민족차별정책으로 인해 전국의 수많은 조선학교들이 오늘 더욱 더 큰 재정위기, 폐교위기에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8) 끝으로 ‘조선(우리)학교 살리기 운동’에 우리민족은 물론 국제사회 특히 미국유럽사람들도 참가할 수 있도록 “재일본조선인문제”를 영어권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 풍물강습을 받고 있는 미국 드퍼대 학생들[사진 : 정기열 원장 제공]

“교수님, 우리가 미국서 배운 것 혹 모두 거짓 아닌가요?”

미국학생들이 행사 기간 자기들 교수를 찾아가 토로한 고백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그 동안 배우고 아는 거의 모든 것이 혹 거짓 아닌가?’였다. 한두 학생만 그런 물음을 던진 것이 아니다. 두 교수의 전언에 의하면 거의 모든 학생들이 자신들을 찾아 같은 내용의 고백을 했다는 것이다. 남녘 표현으로 ‘참교육’의 중요성을 또 다시 절감한 1주일이었다. “누가 무슨 내용으로 어떤 방향으로 무슨 목적을 갖고 어떻게 후대들을 교육하는가?”라는 문제가 교육에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또 다시 새롭게 절감한 시간이었다. 포드 교수가 행사 5일 째 오전 조선대학교 행사(영어강연대회) 때 드퍼대, 조선대 학생 모두 앞에서 한 짧은 축하연설을 소개한다: “교원으로 가장 보람되고 기쁜 일은 가르치는 학생들의 생각과 사고가 자라고 깊어지는 것을 보는 일이다. 이번 행사를 통해 자신이 데리고 온 학생들 거의 모두가 5-6일이라는 짧은 기간 빠르게 자라고 변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동을 경험한다. 이번 교류프로그램이 성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 나서고 자신들을 가족처럼 따듯하게 맞아준 조선대학교와 학생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 공동체놀이 중인 재일조선대 학생들과 미국 드퍼대 학생들[사진 : 정기열 원장 제공]

”13명 일본인 납치문제”와 일제강점기 “수백만 조선인(납치, 징용, 징병, 성노예 등)희생자 문제”

일본당국이 하루 속히 일제강점기 저들이 우리민족에게 가한 온갖 형태의 식민지범죄와 1945년 해방 뒤에도 일본 땅에 남은 수십 만 재일본조선인들에게 오늘 이 시간까지 또 다시 가한 온갖 형태의 식민지범죄에 대한 사죄와 보상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천인공노할 과거 그 모든 범죄에 대한 진솔한 인정과 사죄, 적극적 보상없이 “조선과 관계정상화 하겠다”는 주장은 한낮의 개꿈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제국)에 편승 우리민족의 영구 분열을 70년 넘게 획책하고 확대, 조장하는 것으로 자신의 이득을 꾀한 비열한 과거의 모든 공개, 비공개 범죄들에 대해서도 성실하게 인정, 반성, 사죄하고 적극 보상해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일본당국은 오늘도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틈만 나면 ‘13명 납치자문제’를 끄집어낸다. 일본우익들의 소위 ‘납치자 문제’는 “작은 바늘을 큰 몽둥이”라 우겨대는 행태를 빗댄 표현인 ‘침소봉대’(針小棒大)의 극단적 형태다. 집단적 사이코패스행위다. 집단정신병이다. 수십 년 같은 ‘거짓깃발’(False Flag)을 끝없이 흔들어대는 것은 사이코패스행태에 다름없다. ‘납치문제’는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처럼 ‘늑대 출현 거짓말’을 끝없이 반복하는 행위와 같다. 같은 거짓말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병이다. 소위 납치문제는 따라서 제 국민 모두를 집단으로 정신병자 만드는 일에 다름아니다. 제 국민과 세상을 상대로 “이미 오래 전 끝난 납치자 문제”를 수십년 재탕하며 오늘도 “조선사람 모두를 끝없이 악마화하는” 일본지배세력의 행위는 위선의 극치다. 부끄러운 줄 모르면 그는 이미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숱한 양심적 일본인들을 위해 소위 ‘납치자 문제’에 대한 정의를 아래 다시 정리한다.

‘납치문제’는 “일제가 식민지시대 수백만 조선인들을 저들의 침략전쟁과 강제노동 현장으로 끌어가고 수십만 조선여인들을 ‘일본군성노예’ 목적으로 ‘납치해간’ 국가차원의 범죄”가 진정한 “납치자 문제”다. 그들의 반세기 제국주의범죄가 진정한 납치자 문제다. 수백만 조선인들에 대한 제국주의범죄는 70년 지난 오늘도 부정한 채 ‘수십 명 납치자 문제’를 오늘도 끝없이 재탕하며 조선사람들을 악마화하는 일본사람들의 정신상태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일본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납치자 문제는 자기기만이다.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하여 결국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일이다. 하기야 아베, 다로 같은 일본우익세력은 납치자 문제를 저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 권력을 얻는다. 오늘도 그것으로 자리를 유지한다. 그들에 달리 할 말을 잃는 이유다. 그들 정신세계에는 자신을 진솔하게 돌아보고 반성하는 기능은 아예 본래부터 없다고 진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일본군성노예로 끌려갔던 김복동 할머님께서 몇일 전 93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치셨다. 돌아가시면서도 ‘일본에 대한 분노’를 외치셨다. “아베 사죄를 받지 못한 것이 한’이라는 유언도 남기셨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과 집단, 민족, 국가에게 미래는 없다.

나가는 말

‘미국과 일본 속 조선’의 첫 만남 전기간 서울 KBS TV 편집국 기자 3명이 조대를 방문했다. 그들은 ‘재일본조선인 민족교육운동’ 전반을 1년 넘게 특별 취재하고 있다. 같은 기간 KBS TV 보도국도 3명의 기자들을 파견 조선초중급학교를 중심으로 특별 취재를 벌이고 있었다. 두 기자단은 우리 행사도 취재했다. 미국학생들과 대담도 했다. 미국대학생들의 역사적인 첫 조대방문이 나름 의미가 적지 않다 생각한 것 같다. KBS TV로부터 왜곡함이 없는 객관적 기사를 기대해본다. 머리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모든 것은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정녕 천지개벽이다. 이번 주 동국대학에서 교수와 박사생 4명이 조대를 방문했다. 다음 주에는 북한학대학 교수 10여 명이 조대를 방문한다고 한다. 그렇다. 조미관계가 ‘대결’에서 ‘대화’로 구도가 바뀌며 우리민족을 70년 나눠 놨던 온갖 분단의 장벽들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동시에 지난 70년 역대일본당국이 장막 뒤에 꼭꼭 숨겨 놓은 재일본조선인들에 대한 그들의 천인공노할 ‘식민지범죄’ 또한 오늘 만천하에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끝)

▲ 재일조선대와 공동프로젝트에 참가한 미국 드퍼대 학생들[사진 : 정기열 원장 제공]

정기열 21세기연구소 발행인 겸 편집인  webmaster@minplus.or.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형제복지원에서 아동 시신 소각했다" 의혹 제기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복수 증언 확보...오거돈 부산시장 "진상 규명 필요"
2019.02.08 08:25:44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인권 유린의 상징 중 하나인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아동들의 시신을 소각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나와서 주목된다. 

7일 방송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충격 증언 '형제 지옥원'"편에서는 1970-80년대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불법 납치, 감금, 구타, 성폭행 등 무자비한 인권 유린의 실태에 대해 취재, 보도했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는 <프레시안>에서 최초로 보도했던 형제복지원이 수용됐던 아동들을 해외로 입양보낸 사실 뿐 아니라 아동들이 질병 등으로 사망했을 경우 불법으로 소각했을 가능성에 대해 보도했다. (☞관련 기사 바로 보기 : [단독] 형제복지원도 입양기관과 공생관계였다) 

"쓰레기장에서 사람을 태웠다. 소각 후 뼈를 직접 봤다" 

형제복지원에서 '선도실 소지(심부름하는 사람)'로 있었던 김모(가명) 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걷지도 못하고 그냥 울기만 하는 아기들을 관리했다. (관리자들은) 아기에 대한 영·유아 지식이 없었다. (그때) 애들이 많이 죽어 나갔다, 조그마한 애들이"라고 '유아소대'의 실상에 대해 증언했다.  

김 씨는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마대 포대 등에 담아서 나왔다"면서 "그 야밤에 선도실 요원이 손수레를 끌고 목욕탕 불로 태웠다. 사람 타는 냄새는 나무 타는 냄새와 확연히 다르다"고 밝혔다.  
 

형제복지원에 무려 22년간 수용됐던 하인복 씨도 이날 인터뷰에서 유사한 상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어린 나이에 배가 고프면 주워 먹는데 최고 만만한 게 쓰레기다...그런데 쓰레기장이 목욕탕 옆에 있었다. 그렇게 먹다가 불 때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간부 세 사람이 와서, 밑에 세 사람이 들고 와서 온갖 쓰레기 섞어서 뚤뚤 (마대자루로) 말아서 갖고 왔다. 이 세 사람이 안 가고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사이에 다 탔을 거 같으니까 한 사람이 할아버지에게 '꺼내봐라' 했다...사람을 태운 거죠. 그거는 그 말을 그렇게 하는데 나는 처음에 얘기할 땐 안 믿었다...저는 그거(뼈) 모아둔 걸 보여주는 걸 직접 내가 봤죠."

하 씨는 머리뼈, 골반뼈 등의 모양을 봤을 때 다른 동물의 뼈가 아니라 사람의 유골이었다며 "어른 뼈는 아닌 것 같았다"고 말했다.  

 

 

▲ 형제복지원 생존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린 아동 시신 소각 당시 상황. ⓒJTBC 화면 갈무리

 

▲ 형제복지원 생존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린 아동 시신 소각 당시 상황. ⓒJTBC 화면 갈무리


"가족이 있는 아이들도 부랑아로 둔갑시켜 불법 수용...보조금, 노동착취, 해외입양으로 아동 팔아 돈 벌었다"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다수의 아동이 실제로는 오갈데 없는 부랑아나 고아가 아니라 멀쩡히 가족이 있는 경우도 다수였다는 사실도 지적됐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강호야 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길거리 단속 과정에 경찰에게 잡힌 뒤 형제복지원에 가게 된 상황을 증언했다.  

"(집이 있다고) 했다. 했는데 시청으로 보내주더라. 영도다리 건너입니다. 우리 집이' 이랬더니 '응 그래 집 보내줄게' 이러는데 그때부터 형제복지원 차가 와서 우리를 싣고 가 버리는데, 그때부턴 내 인생이 내 정체를 잊어버렸다. 그때부터." 

'부랑인 단속' 과정에서 잡힌 아이들은 형제복지원으로 끌려와 머리를 깎이고, 헌옷을 입고 깡통을 들게 한 뒤 '부랑아'로 조작돼 사진이 찍힌 뒤 불법 수용됐다. 이처럼 형제복지원은 빈곤층 아동을 사실상 납치해 '고아', '부랑아'로 둔갑시킨 뒤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받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날 방송은 형제복지원이 이처럼 불법 납치, 감금, 수용한 아동들을 정부 보조금, 노동 착취, 해외입양 등 세 가지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면 그 과정에서 부산의 경찰, 시 공무원들이 형제복지원과 결탁돼 있음을 알 수 있다.

 

 

 

▲ 형제복지원에서 조작한 부랑아 사진들 ⓒJTBC 화면 갈무리



"박인근 일가, 사상 온천, 호주 골프장 등 상당한 부 축적"

형제복지원은 1987년 검찰 조사로 충격적인 실상의 일부가 외부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인근 원장(2016년 사망)은 당시 2년 6개월형만을 살고 풀려났고, 이후 재단 이름을 바꿔가며 사회복지시설을 계속 운영했다. 그는 아들에게 법인 대표직을 물려주는 등 그가 형제복지원을 통해 축적한 엄청난 부는 자식들에게 상속됐다. 2014년 '느헤미야'로 법인명을 변경한 형제복지원은 설립 55년 만인 지난 2017년에서야 허가가 취소됐다.

이날 방송은 박인근 일가가 형제복지원이 있던 부산 사상구의 한 온천과 그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인근 전 원장의 최측근은 박 전 원장이 "'내가 그래도 가족들한테 (건물) 한 개 씩은 다 물려줬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방송은 "온천, 골프장을 비롯한 상당 수 건물과 재단 운영권이 박인근 일가로 넘어갔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민성 부산시의원은 "대부분은 목욕탕 사업을 하는데 쓰이거나 호주 골프장을 구입하거나 이런 비용으로 지출이 된다. 박인근의 재산을 은닉하고 재산을 불리는 데 쓰였다"고 밝혔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태에 대해 수사한 김용원 전 검사(현재 변호사)는 당시 형제복지원 수사가 청와대의 압력에 의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형제복지원이 정치권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면서 "이 (수사) 외압의 주체는 청와대"라며 "시설 운영 주체가 누구냐? 박인근 원장이 운영했냐? 천만이다. 전두환 정권이 운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바로 보기 : "전두환은 왜 형제복지원 수사를 방해했나") 

오거돈 부산시장은 이날 방송에서 형제복지원 문제에 대해 "진상 규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목격자의 제보를 취합하고 시굴도 하는 등 사전 작업을 거치고, 필요하다면 앞으로 유해발굴 작업까지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2018년 취임 후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진상 규명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해 11월 20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당시 검찰 수사가 외압에 의해 조기 종결됐다고 사과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검찰은 1987년 당시 내무부 훈령을 근거로 박인근 전 원장이 특수감금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법원의 판결에 법령위반이 있다며 형제복지원 사건을 대법원에 비상상고 했다.

 

관련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고 발생부터 장례 시작까지..‘김용균이 떠난 뒤, 57일간의 투쟁’

유족·동료노동자들·시민사회·정치권 공조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결말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9-02-08 00:43:53
수정 2019-02-08 00:43:53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22일 오후 충남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고 김용균 씨의 시신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 빈소가 마련됐다.
22일 오후 충남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고 김용균 씨의 시신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 빈소가 마련됐다.ⓒ김철수 기자
 

지난 5일, 정부와 여당은 태안화력 故 김용균 씨 사고와 관련한 후속대책을 발표했다. 당·정 발표문에는 그동안 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와 유족이 요구해 온 내용이 적잖이 반영됐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원칙으로, 하청노동자 사망사고의 책임이 원청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용균 씨가 몸 담았던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부터 ‘공공기관으로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키로 했다. 또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권고를 정부·여당, 사측이 수용하기로 약속했다. 

안전을 외면하고 비용과 효율을 앞세워 진행되어 온 발전산업 민영화의 흐름을 바꾸는 출발점이 마련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28년 만에 하청노동자 산업재해 사고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 원안에 비해 후퇴된 지점도 많았지만, 노동법률 전문가들은 긍정적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성과는 “내 아들의 죽음이 다신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와 그 가족들,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을 바로잡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거리로 나섰던 시민대책위 관계자들과 용균 씨 동료들, 이 투쟁을 곁에서 응원하고 함께해 온 시민들,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줄 알았던 일부 정치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용균 씨의 죽음 또한 다른 하청 노동자들의 사고처럼 묻히고 말았을 일이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5차 범국민 추모제에서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발언하고 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5차 범국민 추모제에서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발언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청년 노동자의 쓸쓸한 죽음에  
촛불든 시민들…“내가 김용균이다”
 

지난해 12월11일 새벽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에서 김용균(24)씨가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분진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사고를 당한 뒤, 몇 시간 동안이나 방치돼 있다가 동료들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사고를 당한 용균 씨의 상태는 너무나 처참했다. 

이 사고는 거의 모든 언론에서 다뤄졌고,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면서, 갖가지 사고 원인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발전소 점검 업무는 본래 2인1조가 원칙이었지만, 민영화 과정에서 예산과 인원이 축소돼 이같은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하청노동자들의 지속적인 위험 설비 개선 요구도 원-하청으로 나뉜 ‘위험의 외주화’ 구조 속에서 대부분 묵살돼 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원청 관리자가 하청 노동자들에게 직접 지시한 메신저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불법 파견 논란도 일었다.

또 용균 씨가 일했던 곳에서만 2010년 이후 8년 간 10여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숨진 사실도 드러났다. 사고가 있을 때마다 고용노동부의 조사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사고가 반복돼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원청 서부발전은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사측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다는 의혹도 언론을 통해 수차례 제기됐다.  

용균 씨 동료 노동자들은 시민사회와 결합해 ‘청년 비정규직 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용균 씨의 가족들은 권한을 시민대책위에 위임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는 수많은 시민사회의 동참으로 이어졌다. 사고발생 이틀 만에 태안시외버스정류장과 서울 광화문에서 용균 씨를 추모하는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시민대책위는 매주 토요일마다 추모문화제를 개최했다. 

광화문과 태안버스터미널에 모인 시민들은 “내가 김용균이다”를 외치며, ‘죽음의 외주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찾아간 용균 씨 어머니 
1400여 노동안전·법률 전문가들 
목소리에 힘입어 통과된 ‘김용균 법’
 

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자식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용균이가 겪은 안전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며 거의 모든 시민대책위 활동에 참가했다. 시민대책위 주최 대부분의 기자회견과 집회에 참석해 진상이 규명되고 사고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줄 것을 호소했다.  

또 김 씨는 시민대책위와 함께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 관련 법안 통과를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엔 하청노동자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부개정법률안이 계류되어 있었다. 법안 처리를 위해 상임위 논의와 공청회 등이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런데 보수야당 일부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발목잡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법률개정안 핵심 내용들이 후퇴되는 등 난항을 겪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특별감찰반원 김태우 수사관의 일방적 주장을 바탕으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여야만 민생법안을 처리해주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정부는 산안법 등 처리를 위해 이들의 정치공세까지 감내해야 했다. 

김 씨는 국회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끈질기게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국회 밖에선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영하의 날씨 속에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1400여명의 노동안전·법률 전문가들도 가세했다. 이들 전문가들은 “용균 씨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목된 ‘위험의 외주화’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산재사고 발생 시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쳐 ‘김용균 법’이라 불리는 산안법 전부개정안이 지난해 12월 27일 국회를 통과됐다. 

정부의 ‘알맹이 없는 대책’ 발표, 계속된 시민들의 투쟁 

정부 관계부처는 사고 발생 이후 수차례 해결 방안이 담긴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근본 원인과 관련된 내용이 빠진 ‘알맹이 없는 대책’이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잇따라 발생해 온 하청 비정규직 산재사고의 근본원인을 ‘위험의 외주화’로 판단했다. 본래는 정규직들이 하던 업무를 효율과 비용의 논리로 외주화 한 뒤,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데서 나온 판단이었다. 또 ‘하청비정규직들의 시설개선 요구가 대부분 비용을 이유로 묵살됐다는 점’과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이 무겁지 않았다는 점’ 등에서도 외주화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에 시민대책위는 “외주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는 곧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원청이 직접고용하라”는 요구였다. 

12월 17일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관련 합동브리핑’을 열었지만, 근본대책은 빠져 있었다.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긴급안전조치 등에 대해서만 발표했을 뿐, ‘위험의 외주화’ 문제와 관련한 대책은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이 같은 내용으론 뭔가 바뀐다 해도 겉핥기식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문제를 근본에서부터 바로잡기 위한 노동자와 시민들의 투쟁은 계속됐다.

전국 곳곳에서 故 김용균 씨를 추모하기 위한 촛불이 타올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故 김용균 씨의 유언이 되어버린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를 기치로 각종 기자회견과 집회, 행진, 선전전 등을 시작했다. 청년전태일 등 청년학생단체들은 ‘청년비정규직 故 김용균 청년추모행동’을 발족해 추모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용균씨가 사망한 지 한 달여가 지난 1월 11일, 시민대책위는 ‘故 김용균 청년 비정규 노동자 관련 대정부 요구안’을 내놨다. 설 명절 전에 용균 씨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1월 19일까지 정부가 관련해 답변을 달라고 요청했다.  

1월 15일 고용노동부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029건의 법 위반이 적발됐다”는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그달 18일엔 고용노동부과 산업통상자원부가 독립적인 조사활동과 중립적 운영이 보장되는 ‘특별산업안전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진상조사위원을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추천하는 전문가와 현장 노동자 등으로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라”는 요구와 관련해서는, “정규직 전환여부에 대해선 본격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라는 짧은 답변에 그쳤다. 

청년 비정규직 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유가족 및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대정부 요구 및 향후 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故 김용균 청년 비정규 노동자 관련 대정부 요구안을 제시하며, 정부에 관련 답변을 오는 19일까지 달라고 요청했다.  2019.01.11
청년 비정규직 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유가족 및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대정부 요구 및 향후 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故 김용균 청년 비정규 노동자 관련 대정부 요구안을 제시하며, 정부에 관련 답변을 오는 19일까지 달라고 요청했다. 2019.01.11ⓒ민중의소리

■ 관련기사 
-故 김용균 사망 한 달..유족 “장례 치를 수 있게 진상규명해 달라”
-‘김용균 사망’ 태안화력, 특별근로감독에서 법 위반 1029건 적발
-정부, 석탄발전소 안전 점검 위한 ‘특별산업안전조사위원회’ 구성
-故김용균 추모제에 모인 1만여 시민들, 문재인 정부의 결단 촉구

시민대책위 단식농성 15일째 발표된 당정 후속 대책 
시민대책위 “적폐 카르텔 뛰어넘지 못했다” 
공공운수노조 “정부 여당에만 기대지 않을 것”
 

사고 발생 40일이 넘어가도록 정부에서 근본문제에 대한 대책이 나오지 않자, 시민대책위는 투쟁의 수위를 높였다. 태안에 있던 빈소를 서울로 옮겼고, 시민대책위 공동대표 5인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종교인들은 추모기도회와 오체투지로 정부에 근본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이들은 설 연휴에도 단식과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대표단의 단식농성이 15일째에 접어들었던 설 명절 당일(5일), 정부와 여당은 전보다 진전된 대책을 발표했다. 그제서야 대표단의 단식농성도 중단됐다. 

사고발생 62일 만인 오는 9일, 어머니 김미숙 씨는 아들 故 김용균 씨를 떠나보낸다. 용균 씨의 장례식은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번 정부 발표로는 ‘위험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관행을 바로잡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시민대책위의 입장이다. 또 당·정이 용균 씨 동료들에 대한 ‘공공기관으로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지만, 직접고용을 통한 전환방식이 아니기에 원-하청 ‘외주화 구조’를 온전히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발전산업 민영화와 외주화를 추진해온 관료들이 정부 곳곳에 있는 한,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기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설 명절 당일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민대책위는 “우린 산업통상자원부와 공기업에 똬리를 틀고 발전 산업의 민영화와 외주화를 추진해 온 적폐 세력의 공고한 카르텔, 그것을 핑계 삼는 정부의 안일함을 뛰어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정부 여당의 발표에서 희망을 보았다”며 “노동자와 시민의 힘을 믿는다. 뜻을 모아준 시민들, 유족과 현장 노동자의 투쟁 없이는 오늘의 발표도 불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민대책위는 “애초 목표했던 바를 이루기 위해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대책위 중심에서 투쟁을 이끌었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도 성명을 발표하고 “‘죽음의 외주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이상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여당의 발표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단결한 투쟁으로 지속적으로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 등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를 출발, 청와대를 향해 고 김용균 노동자 문제 해결 촉구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 등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를 출발, 청와대를 향해 고 김용균 노동자 문제 해결 촉구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 관련기사 
-[현장] “외주화를 중단하라”…‘故 김용균 오체투지’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
-당정, ‘발전소 위험업무 정규직화’ 등 김용균씨 사고 대책 발표 (전문)
-김용균대책위 “단식농성 중단, 9일 장례 엄수”(입장 전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특별기고] 문재인 정부의 통치를 생각한다

[남재희 특별기고-문재인 정부 중간 평가] 북핵 협상의 결실은 임기 후에나 볼 듯
2019.02.07 14:40:08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반이 좀 넘었지만, 5년 임기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의 기간을 지난 것 같다. 정부 초기의 자리 잡기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후반기는 전반기에 비하여 큰일을 하지 못한 채 지난날의 뒷 수습에 급급하며 지내기가 일쑤이다. 따라서 지금 문재인 정부의 치적을 평가해도 좋은 시점이라고 하겠다. 우선 필자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본적인 느낌을 말해둔다면, 문재인 대통령 개인이 항상 서민을 생각하는 매우 선량한 인간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기에 전체적으로 호감을 갖고 관찰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야겠다. 이 기본적인 느낌이 평가에 있어서 다른 어떤 논리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4일 2019년 첫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우선 남북관계에 관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가장 전면에 떠오른다. 전 세계적인 국제 정세의 변화나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에 있어서의 정세 변화의 추세에 비춰볼 때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하겠다. 다만, 그 변화의 시간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이견이 있는 것이다. 6.25 한국전쟁 때 휴전 협정이 제의된 후 체결되기까지 장장 3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되었다. "북한을 석기시대로 되돌릴 수 있다"는 정도의 위력을 가진 미공군에 의한 폭격이 계속되고 있는 참혹한 상황에서도 장장 3년이라는 긴 기간을 밀고 당기며 흥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핵무기에 관한 협상은 북한에 대한 혹독한 경제제재가 있기는 하지만, 전쟁 당시의 폭격에 비하면 덜 심각한 일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길게 잡으면 휴전 협정 3년의 배 정도의 기간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지금 하는 일을 보면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무슨 협상 타결의 과실이 돌아올 것처럼 기대를 부풀게 하고 있어 걱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만, 전파 매체의 시대에 핵 협상이 조속히 진전되어 합의를 이루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지금 경제가 여러가지로 어렵다. 그것은 정부의 책임만으로 돌릴 일만은 아니다.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 초기에 정부 주도 경제는 끝이 나고 민간 주도 경제로 이행된 것이다. 지금 경제를 정부 주도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어디까지나 경제는 민간 주도로 되는 것이고, 정부의 역할은 그 뒷받침을 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인식을 새로이 할 때 우리의 경제에 관한 판단은 달라질 것이다. 크게는 국제 경제의 추세가 있고, 그 밑에 국내 경제의 변동이 있는 것이며 정부는 다만 3차적으로 돕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의 기본 방향은 서민 경제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최저임금의 인상 폭이 약간 너무 높았다고는 여겨지기도 한다. 

최근 한일 간의 갈등을 놓고 어느 국내 야당 지도자가 우리 외교의 축이 한··일에서 한··북한의 축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의 갈등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판단으로 비외교적인 언사라고 생각한다. 국제정치의 대세를 장기적으로 전망하여 볼 때 판세의 변화는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몇십 년 단위, 50년 또는 100년 단위의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야당 지도자의 말은 너무 성급하고도 미국의 위력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 혁명시대가 아닌 비혁명시대의 국제 정치의 변화는 미터(m)나 킬로미터(km)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밀리미터(mm)나 센티미터(cm)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빙하가 움직이는 것과 같이 알게 모르게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움직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러한 빙하의 움직임에 둔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세기 또는 세기적인 단위로 볼 때도 미국의 영향력은 지대할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줄 안다. 그러한 거시적인 안목에서 한일관계는 얼마간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과거 정권의 적폐청산을 놓고서도 논란이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한 전직 대법원장까지도 구속되어 재판이 계속되는 대규모의 적폐청산 작업이다. 촛불혁명이 100퍼센트의 혁명은 아니지만, 혁명에 준하는 대변혁이라고 볼 때 그러한 적폐청산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4.19혁명 후 수립된 장면 총리의 민주당 정권은 "혁명적 사태를 비혁명적 방법으로 수습한다"는 허정 과정수반의 방침을 따라 혁명적 상황을 비혁명적/평상적 방법으로 대응하였기에 혁명적 격랑에 밀려 전복되고 말았다고 할 것이다. 그때 있은 군사 쿠데타는 그러한 돌출 사태다. 따라서 혁명적 상황에는 혁명적 또는 준혁명적 대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 되었다. 그러한 역사적 안목에서 볼 때 이제까지의 문재인 정부 하의 적폐청산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어떤 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이제는 확장이 아니라 수습의 단계로 들어서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광주형 일자리 합의가 요즘 화제가 되었다. 경제각료를 지낸 광주시장의 새로운, 대담한 실험 같은데, 아무래도 어설픈 가건축물 같다. 특히 정상을 벗어난 노사관계의 합의는 지속성이 문제일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확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거대 야당에서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권후보 지망생들의 경합이 눈에 띄고 있다. 여당인 집권당 안에서도 앞으로의 대권주자 이야기가 슬슬 화제로 되고 있다. 여기에 노파심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대통령이 여당의 대권후보 경합에 개입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는 것이다. 대권후보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후보가 되는 것이지, 섣불리 대통령이 개입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언론인 출신으로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다. '비판적 보수주의자'로 불리며 이념을 떠나 보수와 진보 양쪽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원로 지식인이다. 프레시안에 연재한 기고를 바탕으로 <언론·정치 풍속사>를 냈고 이후 대담, 연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남북미중 정상, ‘세기적 드라마’ 연출할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2/08 08:02
  • 수정일
    2019/02/08 08:0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차 북미정상회담 확정과 4자 종전선언 가능성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9.02.07  14:31:04
페이스북 트위터
   
▲ 지난해 9월 14일 윤종일 신부는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남북미중 4자 정상이 모여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미중 무역전쟁 종전선언을 함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남북미중이 함께하는 협상에서 4개국 간에 현존하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갈등과 전쟁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북미 간의 과거의 한국전쟁과 현재의 핵 갈등, 그리고 미중 간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무역전쟁을 당사자 간의 협상과 포괄적 협상을 통해 매듭짓는 것입니다. 남북미중이 함께 한반도 평화와 세계경제 안정을 위해 북미간의 한국전쟁과 미중간의 무역전쟁에 대해 종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윤종일 신부, 통일뉴스 인터뷰 中, 2018.9.14)

지난해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가질 당시, 현실과 꽤 동떨어진 것으로만 여겨지던, 영성의 인도를 받은 한 원로 성직자의 즐거운 상상이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발표했고, 미중 정상회담 역시 같은 시기 베트남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 가능할까?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도 베트남으로 가서 남북미중 4자 한국전쟁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살리라는 희망섞인 조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1차 북미정상회담 당시 경험을 떠올린 듯 청와대는 신중한 반응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6일 문 대통령의 베트남행 질문을 받고 “북미 사이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달려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박지원 의원은 7일 아침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문재인 대통령도 가셔서 4자 정상회담이 가능하다, 저는 그렇게 본다”며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을 부르지 않고 세 분이 한다는 것은 너무 시진핑을 올려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북한이 주도적으로 판을 짜고 있고,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며 “정전체제의 종언이자 평화체제의 서막을 알리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윤종일 신부는 지난해 9월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간의 무역전쟁으로 양측은 물론이고 세계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깊은 내상을 입고 있다. 이쯤에서 양측은 협상의 계기가 주어지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미중의 무역전쟁을 종식시키면 세계인들이 환호할 것이다. 이것은 유엔의 대북제재에 명분을 잃게 하고 북측의 경제발전에 좋은 기회를 줄 것”이라고 제시했다. [관련기사 보기]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한 축과 북미 정전상태라는 다른 한 축이 연관돼 있고 두 개의 문제를 동시에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혜안인 셈이다.

그러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비핵화 문제고 미중 정상회담은 미중 무역 문제”라고 선을 긋고 “미중 간의 무역 문제하고 북핵 문제를 연계시키는 것은 미중 무역에서 미국이 관세 장벽을 조금 낮춰주는 대신 북한의 비핵화를 중국이 압박해라, 이런 식의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그게 그런 식으로 해서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중국 말을 듣는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공인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이 나란히 대통령 전용기 이용한다면?

   
▲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 이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릴 예정이다. '세기적 담판'에 전 세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윤종일 신부는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함께 대한민국 1호기에 탑승하여 워싱턴으로 가는” 방안과 “가능하다면,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탄 비행기도 동행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즐거운 상상력이고 한편의 드라마다. 남북미중 모두의 승리이고 세계평화의 시작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물론, 북미 정상회담 장소는 미국이 아닌 베트남으로 정해졌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용기 ‘참매 1호기’를 이용할 수 있는 거리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시진핑 주석이 베트남으로 향하는 ‘즐거운 상상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통상 북미간의 일대일 구도를 선호하는 북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용기인 ‘참매 1호기’를 타고 베트남으로 가서 북미 정상회담을 가진 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과 함께 4자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을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정창현 현대사연구소 소장은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4자 종전선언을 한 뒤 북-베트남 정상회담을 갖고 귀국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북측이 여러 여건을 감안해 제안해 온다면, 남북 정상이 함께 우리 대통령 전용기로 베트남으로 가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참매 1호기’ 보다는 우리 전용기가 안정성도 높고 남북 정상이 동승하는 정치적 상징성도 키울 수 있다.

세기적 담판, ‘북 선제 조치’, ‘미 상응 조치’ 나올까?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나는 앞으로도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미 정상회담과 미중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고, 남북미중 4자 한국전쟁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특별한 상황에 뒤켠으로 밀려나 있지만 역시 본질은 북미간 ‘세기적 담판’의 내용이다.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미 간에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 개설 등이 합의될 수 있는데 결국 미국이 상응조치로 뭘 더 내놓을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미국의 상응조치에 주목하고 “비건 대북대표의 협상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 3일 방한해 6일부터 북한에 머물고 있다. 아직 귀국 일정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정창현 소장은 “북한의 영변단지 폐지에 미국이 전력 지원 상응조치를 할 수 있고, 북한이 추가적으로 더 과감한 조치를 내놓는다면 미국도 더 나아간 상응조치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측의 선제적 조치에 주목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유엔안보리 결의나 미국 국내법에 따른 제재를 완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며 “남북 간의 철도.도로 연결사업이나 개성.금강산 관광 재개 등에 예외를 인정하는 방식이 현실성이 더 높아 보인다”고 관측했다.

김여정 이끄는 북 예술공연단 미국공연 성사될까?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 국정연설을 통해 2차 북미정상회담 날짜와 장소를 발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하룻만에 4개항의 합의문을 내며 마무리됐다면,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은 일정도 이틀인데다 합의문에 포함될 내용도 더욱 구체화되고 진전된 내용을 담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남북미중 4자 정상이 모여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내놓을 수도 있는 형국이다.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귀국일을 못박지 않고 6일 방북해 실무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며, 북측지역에서의 실무회담은 북측 최고지도부의 결심을 즉각 받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물론 후속 실무회담이나 고위급 혹은 특사 교환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미간 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미국 정부가 자국민 북한여행 금지조치를 일부 면제해 짐 로저스 같은 미국 기업인의 방북을 허용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이끄는 북측 공연단이 미국공연을 가질 예정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리수용 당 부위원장이 이끄는 북측 친선예술단(단장 현송월)의 베이징 공연장에 시진핑 주석 부부가 참석했고, 시주석은 리수용 부위원장을 접견한 바 있다. 북한식 판짜기가 이미 가동되고 있는 셈. 

어쨌든 북한이나 미국으로서도 이번 기회를 살려 성과를 거둬야할 객관적 이유가 뚜렷하다. 서로 자기 입장을 내세워 판이 깨지는 것보다는 다소 양보하더라도 윈-윈할 수 있기를 절실히 바리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김정은 발 뺄 수 있을까?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소식에 “우리는 이 기회를 무조건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의 칼끝에 내몰려 있고,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추가 공세가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의미있는 진전이 이루어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단박에 노벨평화상 유력후보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국정연설에서 “내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않았다면 내 생각에는 우리가 지금 북한과 큰 전쟁 중일 것”이라며 “대담하고 새로운 외교의 일환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사적 분투를 계속한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2017년 11월 29일 미국을 사정권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시험 성공과 함께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지난해 4월 당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에서 ‘사회주의경제건설 총력 집중’으로 방향을 틀고 북미협상을 개시했다. 그러나 국제적인 대북제재에 가로막혀 있는 상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자력갱생의 기치높이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는 구호를 제기하면서도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는것은 우리 당과 국가의 제일가는 중대사”라고 말했다.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국제적 대북제재 해결이 필수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남북미 모두에게 주사위는 던져졌다. 여기서 발을 빼기에는 너무 멀리 나갔고, 실익보다는 타격이 클 것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윤종일 신부는 “4자 정상회담 가능성이 현실화 돼 기쁘다”며 “북측이 강조하는 민족공조가 이번 기회에 '남북 정상 간의 민족공조'로 나타나고,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미중간 경제전쟁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추가, 15:1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로비스트 박수환과 동아일보 사장의 '흑거래'

[기고] 침묵의 카르텔보다 묵살의 카르텔이 더 무섭다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지난 1월 28일부터 '언론과 기업의 부적절한 공생관계'를 심층 취재한 내용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언론과 기업의 연결고리는 홍보대행사 뉴스컴 대표인 박수환이라는 여성이었다. 박수환은 2016년 8월,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던 송희영과 대우해양조선이 유착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송희영은 박수환의 '중계'로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접대골프, 초호화 해외여행 등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그로부터 2년 반쯤 지난 뒤 뉴스타파가 보도한 '박수환 게이트'는 한국사회의 수구언론이 얼마나 부패하고 반윤리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방대한 자료는 박수환의 휴대폰 문자 파일인데, 거기에는 2013년 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저장된 2만9534건의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뉴스타파는 '박수환 문자(1) 고위언론인의 채용 청탁'을 시작으로 '박수환 문자(2) 조선일보 기자들이 받은 비행기 티켓, 에르메스 그리고 전별금'(1월 29일자), '박수환 문자(3) 동아일보 사주와 박수환'(1월 30일자), "박수환 문자(4) '1등 신문' 조선일보의 기사거래”(2월 1일자)를 잇달아 내보냈다. 

 

'박수환 문자' (1), (2), (4)는 뉴스타파에 들어가면 금세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최고위 언론인'인 동아일보 사주 김재호(동아일보와 채널A 사장)에게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 관련 기사 바로 보기) 곁들여 말하면, 김재호는 1975년 3월 17일 새벽, 박정희 정권과 야합해 자유언론실천운동의 주역(기자, 피디, 아나운서 등) 113명을 폭력으로 추방한 김상만의 장손이다. 그들이 바로 그날 오후 결성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지금까지 44년 동안 복직과 명예회복을 끈질기게 요구해 왔는데도 김상만의 사주 자리를 물려받은 장남 김병관과 장손 김재호는 단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 지난 2013년 봄부터 동아투위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동아일보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글을 쓰고 있음을 밝혀 둔다.  

 

'박수환 문자'에 따르면, 김재호는 박수환과 수시로 골프 모임을 갖거나 식사를 함께 하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김재호가 박수환을 통해 '의사 처방 없이는 구입이 불가능한 전문의약품을 제공받았다'는 내용이다. 그 의약품은 한때 박수환의 고객사였던 동아제약이 제조, 판매하는 약품이다. 박수환은 2013년 3월 11일 김재호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외국에서 오신 연세 많으신 친척 분께 선물로 드릴 거라고 이미 얘기해 두었습니다. 염려 마시와요. 전문의약품이라 처방전 없이는 못 구하거든요. 선수끼리는 confidentiality가 최우선입니다. 오늘 중 비서실에 전달될 겁니다." 김재호는 바로 그날 이런 답장을 휴대폰으로 보냈다. "강 사장이 보내주셨는데 무지 많이 보내셨네요~^^; 주변에 쫙 뿌려야겠습니다~ 박사장님 혹시 필요하세요?" "주변에 도움이 많이 필요한 남정네들한테 선물 하시와요"(박수환의 응답) 문제의 '전문의약품'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두 사람은 제약회사 사장까지 동원해 '흑거래'를 했을까? 

 

 

▲ 뉴스타파 관련 보도 화면 갈무리

 

 

그 무렵 동아제약은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검찰의 의사 리베이트 수사 등 각종 현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김 사장이 동아제약으로부터 전문의약품을 선물 받은 보름 뒤, 선물을 보낸 동아제약 강정석 사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국내 1위에서 글로벌 제약회사가 되겠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동아제약 홍보기사였다. 하지만 인터뷰의 주인공인 강 사장은 이후 회삿돈을 빼돌리고,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건넨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뉴스타파 기사) 

 

동아일보가 박수환의 고객사와 기사 거래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메시지도 발견되었다. 2014년 10월 13일부터 동아일보가 4회에 걸쳐 연재한 홍보 기획기사 'GE의 혁신노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기획이 마무리된 뒤인 2014년 12월 19일 박수환과 김재호가 주고받은 문자에서 당시 기사가 1억 원짜리 청탁기사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회장님 안녕하시지요? 저희 클라이언트인 GE와 동아일보 산업부가 작지만 1억짜리 프로젝트였는데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해주셨습니다. GE가 아주 좋아해서 내년에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업부 칭찬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수환 올림." "네~ 감사합니다~"(김재호) 동아일보는 이듬해에도 'GE의 혁신'을 다룬 기사를 다시 내보냈다. 

 

사장인 김재호가 브로커인 박수환을 매개로 거액의 '게재료'를 받고 담당 부장에게 지시해서 GE 홍보기사를 연재하게 했음이 분명히 드러났는데도 김재호는 뉴스타파의 보도에 대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재호는 지난 1월 2일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아일보는 권력을 비판하면서도 펀 가르기가 아닌 공존의 가치를 생각하며 품위 있는 바른 언론의 길을 걸었다. (···) 1919년은 인촌선생과 동아일보 창간에 뜻을 모은 젊은 분들이 오로지 민족을 위한 신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과 헌신을 한 시기였다. (···)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면서 100년 전 오늘을 떠올려 본다. 20대의 청춘 인촌과 그 동료들은 암흑의 시절에도 민족의 미래를 꿈꾸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김재호의 이 말이 왜 새빨간 거짓인지에 대해서는 동아투위가 자유언론실천선언 44주년을 맞은 지난해 10월 24일 발표한 성명서('동아·조선일보 폐간운동을 제창합니다')를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동아일보는 1920년 4월 1일 '국민주주' 형식으로 창간되었는데, '창간 사주'를 자칭한 김성수는 동아일보를 교묘한 방법으로 사유화한 뒤 일제강점기 에 '천황 폐하'에게 거액의 '국방 헌금'을 바치는 등 부일(附日) 매국·매족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그의 장남 김상만은 박정희에 굴복해 1975년 3월 17일 동아일보사 언론인 113명을 강제 추방한 장본인입니다. 현재 사장 김재호가 이끄는 동아일보와 채널A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있던 때 얼마나 열심히 부역행위를 했는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동아일보는 내년 4월 1일이면 창간 100주년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세기 가까이 민주주의 발전과 민족의 통일에 기여하기는커녕 김성수와 그 후손의 사유물이 되어 치부의 도구로 전락한 동아일보가 성대하게 100돌을 기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뉴스타파의 박수환 게이트 보도를 보면서 한국 언론에 대해 느낀 바를 간단히 적겠다. 뉴스타파가 4 차례에 걸쳐 내보낸 탐사보도기사는 언론과 기업의 추악한 '공생'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획기적 성과였다. 그런데 한겨레 인터넷판과 <미디어오늘>, 그리고 <미디어스>가 뉴스타파의 기사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 것을 빼면 거의 모든 매체가 그 보도를 외면했다. '침묵의 카르텔'보다 심각한 '묵살의 카르텔'로 일관한 것이다.

 

cckim999@naver.com다른 글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정은 위원장의 세심한 지도로 탄생한 친선예술단 중국 공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2/07 12:13
  • 수정일
    2019/02/07 12: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정은 위원장의 세심한 지도로 탄생한 친선예술단 중국 공연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2/06 [17:2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 친선예술단의 공연 장면     ©자주시보

 

▲ 북 친선예술단의 공연을 소개하는 책자     ©자주시보

 

지난달 23일부터 30일까지 중국을 방문해 3회에 걸쳐 공연을 펼친 북 친선예술대표단 동영상이 해외 동영상 사이트에 공개되었다.

 

공개된 동영상에 의하면 북 친선예술단의 공연은 1시간 30여 분에 걸쳐 진행되었고공연 내용에 대해서 송영 가수와 서은향 가수가 번갈아 가면서 소개했다또한 북측 통역사가 중국말로 소개해서 중국 측 관객들에게도 노래와 내용에 대해서 잘 전달이 되게 준비를 했다.

 

서곡 조중친선은 영원하리라로 시작해 노래 오늘 밤은 잊지 못하리’(중국노래)로 막을 내린 북 친선예술단의 공연은 노세대 영도자들부터 시작된 북중 친선은 불패이고세대를 이어 친선은 영원할 것이라고 긍지 높게 표현하고 있다.

 

친선예술단 성원들이 선보인 공연에 대해서 중국 측 관객들은 몰입도 하고손뼉도 치면서 호응을 보냈다.

 

친선 예술단 공연을 보니준비를 매우 철저하게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노래뿐만 아니라 무대 뒤 배경화면에도 노래에 맞는 화면들이 연출되었고공연하는 배우들이나 연주하는 모든 사람이 노래에 맞춰 표정손짓까지 섬세했다.

 

북 공훈국가합창단의 연주가와 합창단은 200여 명에 가깝고모란봉전자악단의 김유경류진아김설미 등이, 남측에게 익숙한 삼지연관현악단의 송영 그리고 인민배우 서은향을 비롯한 모든 출연진이 하나같이 움직였다또한 타프춤(탭댄스)를 추는 예술단 성원들은 공연 중간에 변복도 일사불란하게 해 공연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중국 노래와 북측 노래를 절묘하게 배치해 북중친선’, ‘사회주의 지키자를 내용으로 담았으며 특히 중국당과 시진핑 주석의 영도 아래 중화의 위대한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 투쟁하는 중국의 모습까지 담아냈다.

 

특히 서곡 조중친선은 영원하리라’ 노래 배경화면에는 김일성 주석모택동 주석부터 시작된 북중 친선의 역사를 담고 있었으며 종곡 오늘 밤은 잊지 못하리는 북중두 나라의 영원한 미래를 축원하는 듯했다.

 

하기에 이번 친선예술단 공연에 대해서 노동신문은 조중 두 당,두 나라 최고영도자 동지들께서 이룩하신 중요한 합의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2019년의 첫 친선사절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친선예술대표단의 중국방문 공연은 새로운 개화기를 맞이한 조중문화예술 교류사의 한 페지를 빛나게 장식하였으며 조선과 중국 두 나라 인민의 혈연적 유대를 위대한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더욱 공고발전시킨 의의 있는 계기라고 높이 평가했고중국의 언론들도 두 나라 인민들의 마음과 감정이 가까워지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이번 친선예술단 공연에 대해서 중국 당과 중국 인민에 대한 우리 당과 인민의 뜨거운 진정과 성의가 어린 훌륭하고 열정적인 공연 활동을 진행하여 올해 조중문화 교류의 첫 시작을 이채롭고 의의 있게 장식하고 조중친선을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승화 발전시키려는 당 중앙의 의도를 풍만한 공연성과로 실천한 예술대표단의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고 북의 언론은 소개했다.

 

▲ 김정은 위원장이 북 친선예술대표단의 시범공연을 보고 의견을 주고 있다.      ©자주시보

 

▲ 김정은 위원장이 북 친선예술대표단의 시범공연에서 리진쥔 북 주대 중국대사에게 의견을 나누는 모습     ©자주시보

 

북 친선예술단이 보여준 높은 수준의 기량세심한 연출 그리고 불패의 북중친선의 내용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세심한 지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친선예술단이 북으로 귀환한 뒤에북에서는 ‘2019년의 첫 친선예술사절들라는 기록 영상물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공연을 준비하는 성원들에게 세심하게 지도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노래하는 배우들 앞에서 직접악보를 들고 동선까지 점검해주면서 세심하게 알려주고 있었고공연을 보면서 현송월 단장을 비롯한 일꾼들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영상물에 담겨져 있었다.

 

또한 중국 인민들의 정서에 맞는지 리진쥔 북 주재 중국대사와 함께 공연을 보면서 의견을 청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친선예술단의 공연 이틀째시진핑 주석과 펑리위안 여사가 공연을 보고 만족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북 친선예술단에게 축하 전문을 보냈다.

 

영상물에 의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사랑하는 나의 동지들정말 수고가 많다습근평 총서기 동지를 모시고 공연한 소식을 받았는데 대단히 기쁘고 만족한다모두 건강하게 돌아오길 바란다고 축하 전문을 보냈다.

 

축하 전문을 받은 북의 예술단 성원들은 노래를 부르며 김정은 위원장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기록영상물에 담겨 있다.

 

친선예술단이 북으로 귀환하자마자조선노동당 본부 청사 앞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박수를 치면서 격려하고 만족을 표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 중국에서 공연을 하는 북 친선예술대표단에게 김정은 위원장이 축하 전문을 보내, 리수용 부위원장이 이를 읽고 있다     ©자주시보

 

▲ 김정은 위원장의 축하 전문을 받은 북 친선예술대표단 성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자주시보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월 31일 중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친선예술대표단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자주시보

 

▲ 2018년 2월, 김정은 위원장은 남측지역에서 공연한 삼지연관현악단 성원들과 함께 사진촬영을 했다.     ©자주시보

 

김정은 위원장의 예술단에 대한 세심한 지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삼지연관현악단이 남측에서 강릉과 서울 공연도 김정은 위원장이 노래 선곡부터 모든 것에 세심한 지도를 했고삼지연관현악단이 공연을 마치고 북으로 돌아갔을 때 공연성과를 축하했다.

 

당시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여러 차례 훈련장에 나와 곡목선정부터 형상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시연회를 몸소 지도하였으며 “23차 겨울올림픽 경기대회의 성공과 민족의 화합을 염원하는 우리 북녘 인민들의 뜨거운 마음을 전하고 남녘 동포들에게 기쁨을 더해준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성과를 따뜻이 축하했다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삼지연관현악단 성원들로부터 공연장 분위기에 공연에 대한 반향을 보고 받고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비롯하여 남녘 동포들이 공연을 보면서 뜨겁게 화답하고 만족을 표시하였다니 본인도 기쁘다고 말했다.

 

이번 북 친선예술단의 중국공연을 보니남측에서도 북측의 예술 공연이 열리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지난해 평양예술단의 공연이 무산되었는데 올해 남북관계가 민족의 요구대로 전진이 이뤄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앞서서 민족의 통일을 열어가는 북 예술단의 공연이 남측 곳곳에서 열린다면분단의 장벽은 사라지고통일의 전성기가 열리지 않을까.

 

아래는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북 친선예술단 공연 전체 영상이다북중친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영상 전체를 소개한다.

 

 

 
광고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국종이 기억하는 윤한덕 센터장 “나를 비꼬았으나 진정성 느꼈다”

이국종이 기억하는 윤한덕 센터장 “나를 비꼬았으나 진정성 느꼈다”

등록 :2019-02-07 11:08수정 :2019-02-07 11:18
 
지난해 10월 펴낸 ‘골든아워’에서 윤한덕 센터장 언급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걸어와”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왼쪽)과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왼쪽)과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가 지난해 10월께 펴낸 수필집 <골든아워>에서 지난 4일 숨진 채 발견된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에 관해 서술한 글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교수는 목차 하나를 내어 윤 센터장을 회고했다. 이 교수와 윤 센터장이 중증외상센터의 상황에 대해 함께 절망감을 느끼는 대목도 있다.

 

설 연휴 첫날인 지난 4일 오후 5시50분께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2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윤 센터장은 응급의료 전용헬기를 도입하고, 재난·응급의료상황실과 응급진료정보망 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 온 응급의학전문의이다. (▶관련 기사 : 응급진료 시스템 구축 앞장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 돌연사)

 

이 교수는 <골든아워> 2권 ‘부록’에서 이런 윤한덕 센터장을 두고 “그가 보건복지부 내에서 응급의료 일만을 전담해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정부 내에서는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윤한덕은 중앙응급의료 센터를 묵묵히 이끌어왔다”며 “임상 의사로서 응급의료를 실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일이 응급의료 전반에 대한 정책의 최후 보루라는 자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다. 외상의료 체계에 대해서도 설립 초기부터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고 했다. 이어 “내가 본 윤한덕은 수많은 장애 요소에도 평정심을 잘 유지하여 나아갔고, 관계에서의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걸어왔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골든아워>에서 윤 센터장을 ‘냉소적이면서도 진정성이 있는 인물'로 기억했다. 2008년 겨울, 이 교수가 윤 센터장을 찾아갔을 때, 윤 센터장은 이 교수에게 “지금 이국종 선생이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동안에 아주대학교병원에 중증외상 환자가 갑자기 오면 누가 수술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이 교수는 “그가 나를 보자마자 던진 질문의 함의는 선명했다. ‘외상 외과를 한다는 놈이 밖에 이렇게 나와 있다는 것은 환자를 팽개쳐놓고 와 있다는 말 아니냐? 그게 아니면 환자는 보지도 않으면서 보는 것처럼 말하고 무슨 정책 사업이라도 하나 뜯어먹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였다”고 썼다. 이 교수는 “그는 내내 냉소적이었으며 나를 조목조목 비꼬았다. 그럼에도 나는 신기하게도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외상센터 관련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그 시기에 그를 종종 보았다”고 했다.

 

이 교수 눈에 비친 윤 센터장은 ‘순수한 열의를 가진 젊은 의학도’이기도 했다. 2009년 가을, 두 사람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열린 외상센터 관련 심포지엄에서 만났다. 바쁜 일정 중에 시간을 쪼개 광주에 내려온 윤 센터장은 발표가 끝내고 강당을 빠져나갔다. 이 교수는 그를 쫓아갔다. 윤 센터장이 도착한 곳은 자신의 모교인 전남대 의과대학 강의실이었다. 계단식으로 놓여있는 책상을 손으로 쓸던 윤 센터장은 “내가 말이야, 여기서 공부했었어. 여기서 강의받을 때는 말이야. 이 답답한 강의실을 벗어나서 졸업만 하면 의사로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 요즘 애들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수업을 들을라나?”라고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이 교수는 “윤한덕의 표정이 어린 학생 같이 상기되었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몰아세우던 윤한덕은 거기에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순수한 열의를 가진 젊은 의학도의 뒷모습이었다”라고 했다.

 

이국종 교수가 펴낸 수필집 <골든아워> 표지.
이국종 교수가 펴낸 수필집 <골든아워> 표지.
2016년 새해 초에는 두 사람이 전국 중증외상센터 병원장들과 센터장들과 함께 세종시에 열린 회의에 참석해 절망적인 감정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회의에서) 병원 경영자들은 인력과 장비의 ‘효율적 운영'만이 중요해 보였다”며 “대부분의 병원과 중증외상센터는 중증외상센터의 의료진과 장비가 중증외상환자에만 사용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썼다. 회의에서 ‘중증외상센터에 환자가 없으니 국가에서 인건비를 지원받는 중증외상센터 전담 의료진을 타 부서 일반진료에 운용하도록 관련 규정을 완화해달라’는 의견이 주로 쏟아져서다.

 

이 교수는 “중증외상센터 공모가 있던 당시 내놓았던 대형 병원들의 말은 지금과 달랐다. 그들은 해당 지역에 중증외상 환자들이 수없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지역 주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중증외상센터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런 병원들이 권역별 중증외상센터 사업에서 우선적으로 선정됐다. 그랬던 이들이 지금은 외상환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들의 의견대로 가자면 이 사업은 시작된 의미가 없다”며 “중증외상센터의 사업의 종료를 생각했다. ‘중증외상센터 무용론’과 함께 국가적 지원이 끊어지면 모든 것은 뜻밖에 쉽게 정리될 수도 있었다”고 썼다. 이 교수와 함께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윤한덕 센터장은 “2018년 이후에 이 사업이 잘도 계속 가겠구나…”라고 읊조렸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윤 센터장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 교수는 “곧 끝나겠구만… 차라리 끝나는 게 좋겠어…”라고 말했다.

 

급성 심장마비로 인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윤 센터장은 평소 심정지 환자 생존율 개선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자동심장충격기’라는 말 대신 ‘심쿵이’라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용어를 사용하자고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26일 페이스북에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며 “언젠가는 심쿵이(자동심장충격기)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부착되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당신이 남을 돕지 않으면 누구도 당신을 돕지 않게 됩니다. 당신이 할애하는 십여분이 누군가에게는 수십 년의 시간이 됩니다”라며 “응급환자에게 이 기계를 사용하면 누구도 당신에게 배상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쓰러진 사람을 보면 적극적으로 도우십시오. 그로 인해 겪게 될 송사는 보건복지부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했다.

 

한편, 서울 중부경찰서는 7일 윤 센터장에 대한 부검 결과 “1차 검안 소견과 같이 고도의 관상동맥 경화로 인한 급성 심장사가 1차 소견이며 약물 검사 등 최종 부검 결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회신을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81187.html?_fr=mt1#csidx6e84db840ce79f8b719dee7d44e6ada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석방된 IT 사업가 “기분 좋지만 한편으론 답답”

[인터뷰] ‘국보법’ 기소된 대북 사업가 김호씨 부부

김지현 기자 kimjh@vop.co.kr
발행 2019-02-06 19:07:04
수정 2019-02-06 19:07:04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8일 오전 10시 30분 남북경협사업가 김호씨 등 국보법 증거 조작사건 시민사회 석방대책 위원회와 김호 국보법 증거날조 사건 변호인단 주최로 ‘공판준비기일에 즈음한 석방대책위 기자회견’이 열렸다. 해당 기자회견에는 김씨 가족과 친지 등도 참석해 이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8일 오전 10시 30분 남북경협사업가 김호씨 등 국보법 증거 조작사건 시민사회 석방대책 위원회와 김호 국보법 증거날조 사건 변호인단 주최로 ‘공판준비기일에 즈음한 석방대책위 기자회견’이 열렸다. 해당 기자회견에는 김씨 가족과 친지 등도 참석해 이들의 석방을 촉구했다.ⓒ민중의소리
 
 

중국을 통해 북한 기술자들과 경제협력 사업을 하던 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지난 1일 설 연휴를 앞두고 석방된 김호씨가 심경을 밝혔다.

김씨는 앞으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됨은 물론 지난해 여름 이후로 떨어져 있던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와 설 명절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김씨는 6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석방됐다고 끝난 게 아니라 답답하다”며 “말끔하게 사건이 종결된 게 아니라 재판은 계속 검찰에서 지저분하게 해왔던 방식대로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앞서 김씨 사건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조의연)는 지난 1일 오후 김씨 측의 보석 신청을 받아들인다는 결정을 내렸다. 

김씨 측 변호인은 국보법으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법원이 보석 신청을 허가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표현했다. 김씨도 석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해 8월 9일 자택에서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에 국보법상 회합·통신·자진지원 등 혐의로 체포된 뒤, 같은 달 11일 구속됐다.  

김씨 아내 고모씨는 그 이후부터 이날 남편의 석방까지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중학교, 초등학교, 어린이 집에 다니는 세 아이들과 김씨의 아내 고씨는 그 날, 낯선 사람들이 집안에 들이닥쳐 가장을 붙들어간 악몽이 자리 잡은 집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사실 그 때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낯선 사람을 보면 ‘혹시 나도 잡아가는 게 아닐까’, 집에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누군가 찾아오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이 있었어요.”

가족들은 최근 김씨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며 재판부에 보석신청서를 제출했다. 칠순의 아버지, 김씨의 누나 그리고 김씨의 아내와 세 명의 아이들이 각각 재판장에 편지를 썼다. 글을 모르는 막내는 그림을 그렸고, 김씨의 아내가 막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어 한켠에 적어주었다. 

“아빠, 보고 싶어. 아빠, 빨리 와. 빨리 와서 나랑 같이 놀이터 가서 놀자. 아빠, 사랑해.”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7살 막내딸이 김씨에게 보낸 편지의 전문이다.

김씨는 석방을 두고 가족들의 반응을 묻자 “막내딸이 가장 좋아한다”며 “저도 그게(막내딸이 좋아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이어 “저도 애들이 많이 걱정됐는데, 그 걱정이 덜어진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속내는 복잡하다. 그간 차근차근 쌓아온 사업 실적도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상황이다.김씨는 사업 이야기에 한숨을 쉬었다. “납품했던 것들을 다 마치지 못해서 손해가 큽니다. 어쩔 수 없죠.” 

앞으로 이어질 재판도 남은 숙제다. 김씨는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다.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 사건은 경제협력 활동을 국보법으로 사건화시킨 것이라고 생각해요. 공안검찰들의 반공주의로 사실 안보와는 전혀 관련없는 조직의 목적으로 저를 악용했던 거죠. 그런 것을 직접 겪으니 너무 억울합니다. 국보법의 문제점과 보안수사대의 악행이 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김씨의 가족들도 매주 열리는 재판에 열심히 참석하느라 바쁘다. 특히 김씨의 아버지는 평생 모르고 살던 국보법에 아들이 연루되자, 관련 토론회와 기자회견 등에도 빠짐없이 오가고 있다.

김씨 아내 고씨는 “아버님은 평생을 일만 하고 사신 분인데, 이젠 칠순 연세에 일도 안하셔야 하는데 생활비에 변호사비에 목돈이 필요하니까 일을 다니신다”며 “어머니 같은 경우는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신 데도 항상 재판에 가셔서 안 들리시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하시고 몇 시간을 사람들 입만 보고 오시는 거다”라고 시부모의 근황을 전했다. 

재판을 방청해오며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검찰이 우리한테 반공교육을 시키는건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판사들을 상대로 세뇌교육을 하는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저는 저희 남편 사건을 보면서, 남편 개인이 타겟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남북 평화모드로 돌아선 상황에서 그걸 원치않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저희 남편 사건은 경찰 내사가 몇 년전에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으면 그 때 했어야지. 그 때 잡아갔어야지, 국가안보를 위한 일 아닌가요? 지금 이 시기에 왜 이런 재판이 필요한 일인지 의문입니다. 지금 시기에 국보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평화협정을 반대하는 그런 사람들의 목적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김지현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