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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농단 피해자는, 설이 없다

[포토스토리] 13년차 맞은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
2019.02.03 22:26:43
 

 

 

 

삶은 오르막길이었다. 길은 거칠고 날씨는 궂었다. 해고자들은 거리에 눕고, 고공에 오르고, 밥을 끊어가며 싸웠다. 숱한 갈등과 회한과 우울과 무기력감에 시달렸고, 긴 세월 위에서 하나 둘 떠나는 동료의 등을 지켜봐야 했다. 부당함은 명백했지만 그것을 되돌리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어느새 머리가 하얗다. 정년의 나이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복직을 기다린다. 복직해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에게 복직은 그 이상의 의미다. "명예롭게 복직해서 명예롭게 퇴직하겠다". 정년을 맞은 해고자의 말이다.  

 

긴 세월이 앗아간 것은 셀 수 없지만 의미 없는 시간만은 아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삶에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고마운 사람들과 숱한 빚을 지고 갚았다. 잃은 것들의 자리에 다른 것들이 있었다. 여기까지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다.

 

참으로 긴 시간. 이제는 정말 끝내고 싶다. 최장기 투쟁 사업장이라는 불명예도 내려놓을 때가 됐다. 늦었지만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으로 석연찮던 판결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장기 투쟁 사업장들이 속속 노사 합의로 농성을 끝내는 요즘 이들도 오래 묵은 축하를 받고 싶다. 

 

2007년 4월 시작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싸움이 12년, 햇수로 13년차를 맞았다. 콜텍 해고자들은 ‘끝장 투쟁’을 선언하고 10일 광화문의 천막을 콜텍 본사 앞으로 옮겼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이후 '사법 농단'의 피해자이기도 한 콜텍 해고노동자들의 천막을 들여다 봤다.  


 

 

▲ 싸우다보니 정년의 나이가 됐다. 그는 말한다. 힘들었지만 여기까지 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30일 금속노조 집회에 참석한 김경봉 씨. ⓒ프레시안(최형락)

 

 

 

 

 

 

▲ 지난해부터 많은 장기 투쟁 사업장들이 노사 합의로 투쟁을 끝냈다. '최장기 투쟁'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콜트콜텍의 해고자들 역시 이제는 축하를 받고 싶다고 말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콜트콜텍 사태가 길어진 배경에는 이른바 '사법 농단'도 있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24일 구속됐다. ⓒ프레시안(최형락)


 

 

 

 

 

 

▲ 58년생 김경봉 씨 ⓒ프레시안(최형락)




 

▲ 임재춘 씨가 30일 열린 금속노조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날 이른 아침 천막을 찾았다. 임재춘 씨의 첫 마디는 "너무 늦었다"였다. ⓒ프레시안(최형락)


 

 

 

 

 

▲ '정년이 되기 전에 복직'이라는 말이 쉽지 않다. 정년이 다 되도록 싸웠다는 말이기도 하고 복직해도 얼마 일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복직을 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명예롭게 퇴직하기 위해서' ⓒ프레시안(최형락)

 

 

 
 
 
 

▲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텍 본사 앞 ⓒ프레시안(최형락)

 

 

 

 

 

 

 

▲ 30일 콜텍 본사 앞에서 열린 문화제. 바나나몽기스패너, 윙크차일드태퍼스 등이 공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 콜텍 본사 앞 천막의 비닐에 물방울이 맺혔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 그는 2008년 10월 양화대교 옆 송전탑에 올라 단식 농성을 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12년이 어떤 시간이었느냐는 물음에 김경봉 씨는 느끼고 생각한 바가 많은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최형락 기자 ch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입사. 사진기자로 일한다. 취재 중 보고 겪는 많은 사건들에서 어떤 규칙성을 발견하며 놀라곤 한다. 전시 <두 마을 이야기>(2015), 책 <사진, 강을 기억하다>(2011, 공저).
 

 

 

 

 

▲ 30여년 기타만 만들어온 임재춘 씨가 13년째 거리에 서 있다. 이제는 정말 끝내고 싶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최형락 기자 ch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입사. 사진기자로 일한다. 취재 중 보고 겪는 많은 사건들에서 어떤 규칙성을 발견하며 놀라곤 한다. 전시 <두 마을 이야기>(2015), 책 <사진, 강을 기억하다>(2011,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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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미 특별대표, 4일 정의용 안보실장 면담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2/04 09:16
  • 수정일
    2019/02/04 09:1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5일 판문점서 김혁철 북 대표와 ‘비핵화-상응조치’ 논의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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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4  0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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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3일 오후 한국을 방문했다. 남북 당국자들과 연쇄 회동을 통해 다가오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3일 밤 외교부는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오늘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특별대표와 북미 후속 실무협상 등 현안에 관해 협의를 가졌으며, 향후 추가 협의를 지속적으로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건 특별대표는 4일 오후 청와대를 방문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만난다.   

5일 판문점에서는 북한 국무위원회 소속 김혁철 대표와 실무회담을 개최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지난달 17~19일(현지시간)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 때 상견례를 겸한 첫 실무회담을 개최한 바 있다. 

실무회담 의제와 관련,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달 31일 스탠포드대 강연에서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명시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관련 이행 로드맵을 짜고, ‘공동성명 초안’에 담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가 관건이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5월말에 폐기한 풍계리 핵실장에 대한 유관국 전문가 참관, △유관국 전문가 참관 아래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대 영구 폐기를 약속했다. 

북한은 또 미국의 상응조치를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포함한 추가적 비핵화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상응조치로는 인도적 지원 재개와 평양 연락사무소 개설, 종전선언이 꼽힌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명시된 관계 개선, 평화 구축 관련 조치들이다. 지난달 31일 비건 특별대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쟁을 끝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상응조치 중 난제는 제재 완화 여부다. 지난해 9월 남북 정상 간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됐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거론한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와 직결된 문제다. 비건 특별대표는 “우리는 ‘비핵화가 완료될 때까지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맞다”면서도 “‘당신이 모든 걸 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것도 안 하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여지를 남겼다.  

제재 완화의 폭은 영변 핵시설 관련 조치의 수준과 맞물릴 것으로 보인다. 영변에는 연료봉공장-5mw 원자로-재처리시설로 이어지는 플루토늄 생산시설과 원심분리기 2,000개 이상으로 구성된 우라늄농축시설 등이 있다. 

2007년 북한은 ‘2.13합의’를 통해 영변 핵시설을 폐쇄(shutdown)하고, ‘10.3합의’를 통해 불능화(disablement)한 바 있다. 당시 영변에는 우라늄농축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영변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중심이고, 폐기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미군 유해 추가 송환이나 공동 발굴, 평양 보통강변에 전시 중인 미국 해군 정찰함 ‘푸에블로호’ 반환을 약속할 수도 있다.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북한 친선예술단이 미국에서 공연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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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기다립니다” 설 명절 앞두고 학교 밖으로 쫓겨난 청소년상담사들

화성시, 2018년 12월31일 일방적 계약종료...해고된 인원만 40명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9-02-03 11:01:45
수정 2019-02-03 11: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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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인 계약종료로 해고된 화성시 학교 청소년 상담사들이 경기도 교육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일방적인 계약종료로 해고된 화성시 학교 청소년 상담사들이 경기도 교육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김화민 제공
 

설 명절을 앞두고 화성시 학교 청소년 상담사 40명이 무더기로 해고됐다. 지난해 12월 31일 일방적인 계약 종료로 해고된 청소년 상담사들은 학교 밖으로 쫓겨났다. 이들은 설 연휴 첫날인 3일에도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39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해 8월부터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중학교에서 청소년 상담업무를 맡아 근무했던 김화민 씨는 졸지에 해고자가 됐다. 그는 많게는 5~6년, 짧게는 3년 가까이 일하던 상담사 가운데에서 막내다. 화성시에 있는 초·중·고에 있는 40개 학교의 청소년 상담사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상담교사 또는 전문상담사가 배치되지 않은 중학교에서 학생 심리상담업무를 진행해 왔다. 상담은 보통 한 시간 정도로 진행되며 하루 평균 5건의 상담을 진행했다. 그는 학생들이 상담을 자발적으로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경우에 따라 담임교사와 학생부에서 학생 상담을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작년에 상담 건수가 500건 나왔다"며 "많은 선생님 중엔 1000건 넘는 선생님도 있다"고 말했다. 

"상담실에 문을 열고 들어와 자해를 하는 아이도 있고, 친구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존재하지 않는 친구를 만드는 망상 장애 학생도 있어요."  

김 씨는 "학교 현장에서는 선생님만으로 커버할 수 없는 교실 안 사각지대에 학생들이 존재한다"며 "아이들이 자신의 고통을 말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상담실"이라며 상담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해고됐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며, "인터넷에서 기사 보고 알게 된 친구들이 '선생님 관두면 자기는 비뚤어질 거다'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너 비뚤어진다고 걱정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라고 농담삼아 말했죠. 마음이 아팠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상담사 선생님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 상담가들이 학교 두곳을 맡아 순회 상담을 하는 곳이 많아 실질적으로 상담이 어려운 상태"라며 "자해와 자살, 우울과 불안, 학교폭력 등과 관련해 상담을 필요로 하지만, 상담사들은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빈 교실의 모습. 사진과 내용은 무관합니다.
빈 교실의 모습. 사진과 내용은 무관합니다.ⓒ제공 : 뉴시스

경기도 교육청과 화성시는 2012년 혁신교육지구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 이 협약에는 시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학교에서 상담사를 직접 선발해 학교장과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2015년 사업 2기를 진행하며, 근속 기간 2년 초과자들은 경기도교육청 소속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2년 미만, 만 2년 근무자들은 계약이 종료되며 대량 해고됐다.

이후 경기도교육청이 학교장 고용을 금지했고, 화성시는 학생 보호와 상담사 대량 해고를 막기 위해 위탁 형식으로 해당 사업을 지속했다. 2016년엔 YMCA를 위탁기관으로 선정해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재위탁하는 방식으로 재계약을 맺었다. 상담사들은 상시지속업무를 하면서도 1년에 한 번씩 계약 해지와 재계약을 반복해야 했다.  

또한 그는 2016년 3월 28일부터 2017년12월 31일까지 1년 9개월 '쪼개기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시측이 2016년 1월1일부터 계약하는 경우 정규직 전환 조건이 되는 '만 2년'이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상담사들은 2016년 1월1일부터 3월28일까지 약 3개월 동안 강제적 실직 상태에 놓여 고용불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화성시가 2017년 말 위탁기관을 청소년불씨운동으로 바꾸면서, 상담사들은 기간을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로 계약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학교에 보내온 공문
화성시에서 학교에 보내온 공문ⓒ민중의소리

김 씨는 이같은 '쪼개기'가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한 '꼼수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시 측이) 2019년부터는 1년 계약이 아닌 10개월 계약을 주장하자 상담사들이 이의를 제기했다"면서, "'2년 근무 연장 대신 각서를 쓰라'고 요구해 상담사들이 항의했더니, 결국 12월 31일 사업종료 시켰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1월 12일, 화성시에서 보낸 사업 종료 공문이 학교에 내려왔다. 날벼락 같은 해고 통지였다. 그는 "당시 상황이 믿기질 않았다"며 "아이들이 지금 정신적으로 (상담이) 너무 필요한데 이게 말이 되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라도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1천만원 이상을 들여서 상담실을 만들어 놓고, 상담실엔 사람이 없고 학생들이 상담을 못 받는 현실이 말이 되나. 학교가 필요로 하는데 그걸 없앨 수 있나 이런 생각을 했다"면서 "교육청이나 시청 하는 거 보면 노동자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는 거 같다"고 지적했다.

계약종료로 해고된 화성시 학교 청소년 상담사들이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오체투지를 하는 모습.
계약종료로 해고된 화성시 학교 청소년 상담사들이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오체투지를 하는 모습.ⓒ김화민 제공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상담사들은 학교 밖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해고는 살인이다, 고용안정을 보장하라"고 외치며 항의 행동에 돌입했다. 상담사들은 1월 11일과 24일 두 차례 차가운 아스팔트에 온 몸을 누이고 행진하는 오체투지를 벌였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과 화성시는 사태해결을 위한 책임 있는 조치를 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화성시 측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사업종료가 됐다"면서 "다른 방향을 저희가 모색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그분들이 저희 근로자가 아니지 않냐"면서 "시에서 채용해서 학교로 보낸 분들인데 저희가 관리하고 그랬던 분들이 아니다. 지금 거기 담당자가 누구다라고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편, 설 연휴에도 청소년 상담사들의 농성은 이어진다. 김화민 씨는 "일을 쉬는 것도 정말 지옥 같다"며 "가족들을 만나는 기분 좋은 설이 오히려 불안하고 피하고 싶다. 어디라도 도망가고 싶다"라며 편치않은 심정을 털어놨다.  

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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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부과방식으로 가면 된다고요?

[오건호의 연금개혁 완전정복] 부과 방식 전환의 역설
 
2019.02.03 10:32:31
 
 

 

 

 

<1회> 문재인 정부 연금안 평가 : 재정 개혁 방기
<2회> 국민연금 재정 계산 : 70년 계산 믿을 수 없다?
<3회> 국민연금의 특징 : 미래 재정 불안정
<4회> 국민연금의 재정 목표 : 재정 균형
<5회> 외국에서 연금 재정이 안정적인 이유
<6회> 국민연금의 부과방식 전환, 가능한가?
<7회> 국민연금의 역설 : 재분배 vs. 역진성
<8회> 기초연금의 강점 : 사각지대 없는 노인 기본소득
<9회> 퇴직연금의 잠재성 : 중상위계층 노후 소득 보장
<10회> 연금 개혁 대안 : 한국형 다층 연금 체계

 

연금 개혁의 방안을 살펴보자. 물론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국민연금은 재정불균형이 크고 향후 인구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다.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문가 사이에서도 백가쟁명식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이다. 그런 만큼 국민연금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각 개혁안의 타당성을 엄격히 검증해야 한다.  
 
국민연금 미래 재정구조의 방향은? 
 
이번 글의 주제는 국민연금 논의에서 긍극의 해법으로 등장하는 '부과 방식 전환'이다. 연금 재정 구조는 크게 적립 방식과 부과 방식으로 구분된다. 적립 방식은 퇴직연금처럼 가입자가 나중에 받을 연금액을 미리 보험료로 적립해두는 재정 구조이다. 받을 만큼 쌓아두기에 기금운용에서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재정은 안정적이다. 사적 연금은 당연히 적립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한다. 
 
부과 방식은 그해 필요한 지출을 그해 가입자(혹은 시민)에게 부과하는 재정 구조이다. 그때마다 재정을 조달하니 굳이 적립금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 예비비 성격으로 몇 년치 지출분만 지니고 있으면 대체로 부과 방식으로 불릴 수 있다.  
 
서구 공적 연금은 대부분 부과 방식 재정구조로 운영된다. 대표적으로 독일 소득비례연금은 현재 보유한 기금은 한 달치 지출분에 불과하다. 이 기금은 현금 유동성을 조정하는 역할에 그치고 수급자에게 지급하는 연금 재정은 매달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 충당한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어디에 속할까? 미래 받을 연금을 대비해 보험료를 쌓아두니 일단 부과 방식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래 받을 연금액만큼을 모두 적립하지 않는다. 평균 소득 가입자의 평균 수익비, 즉 급여/기여 배율이 2.1배이기에(기금수익률 할인, 40년 가입 기준), 급여 대비 절반만 보험료로 내고, 나머지 절반은 미래 세대에게 의지하는 구조이다. 언젠가는 기금이 소진되겠지만, 현재는 연금의 역사가 짧아 가입자가 많기에 기금이 상당히 쌓여 있다. 이에 연금학계에서는 국민연금을 '부분 적립 혹은 수정 적립' 재정 구조라고 부른다. 
 
이러다 보니 국민연금 재정 구조의 미래 전망을 두고 논란이 생긴다. 계속 지금처럼 부분 적립 방식으로 갈지, 기금이 소진된 후 부과 방식으로 전환할지, 혹은 받을 만큼 보험료를 모두 내 완전 적립 방식으로 갈지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국민연금의 미래 재정 구조의 방향에 대해 본격적인 토론이 진행된 적은 없다. 부과 방식 전환 역시 서구 사례가 소개될 뿐, 한국 국민연금의 이행 경로가 구체적으로 제시된 경우는 없다. 이렇게 연금 개혁 대안을 막연한 기대 수준에서만 되풀이하는 건 생산적이지 못하다. 우리가 수행해야 할 지금의 과제를 뒤로 미루는 효과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부과 방식 전환'의 의미와 타당성을 엄격히 살펴봐야 할 때이다.
 

ⓒ연합뉴스

 
부과 방식, 아름다운 세대 간 연대  
 
나는 공적 연금에서 '부과 방식' 제도들을 볼 때마다 감동을 느낀다. 인류가 만든 여러 제도 중에서 부과 방식 연금은 세대 간 연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수십년에 걸쳐 부과 방식을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 그 시민들을 존경한다. 
 
2016년에 유럽 나라들의 노인 비중은 평균 20%이다(한국은 2017년 노인 비중 14%, 2025년 20% 전망). 공적 연금이 부과 방식이라는 건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후를 위해 보험료를 쌓아두지 않고 지금 노인을 위해 모두 사용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면 지금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의 노후는 누가 책임지지? 무엇을 믿고 보험료를 현재 노인을 위해 모두 사용해 버린다 말인가? 사회복지 분야에서 우문같지만 이는 무척이나 중요한 질문이다. 바로 '믿음'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늙었을 때 연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세대 간 믿음, 부과 방식 연금제도는 이렇게 그 사회의 신뢰와 연대를 보여준다. 
 
어떻게 서구에서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물론 2차 대전 이후 경제, 인구 환경이 공적 연금이 성숙되기에 유리했다. 부과 방식으로 전환했던 경제가 순조롭게 성장하는 자본주의 황금기였고 노인의 기대 여명도 지금보다 짧았다. 그럼에도 내가 주목하는 이유는, 각 세대가 공적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자신의 책임 몫을 성실히 다한 결과라는 점이다. 
 
서구 나라들에서 공적 연금은 길게는 백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다. 처음 시작할 때는 대체로 대체율과 보험료율이 모두 낮았다. 이후 노후 보장의 중요성이 부상하면서 점차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개혁을 추진하였고, 어느 시점이 되어선 대부분의 나라에서 굳이 보험료를 쌓아두지 않는 부과 방식으로 발전했다.  
 
대표적인 부과 방식 사례인 독일 공적 연금은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연금기금을 전시자금으로 전용해 소진하자 1957년부터 1967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재정 구조를 부과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 전환 기간 보험료율은 14% 수준이었고 이후 1980년까지 18%로 단계적으로 인상해 현재까지 18~20% 범위에서 운영되고 있다.  
 
국민연금을 '부과 방식'으로 전환하자? 
 
우리나라도 서구처럼 부과 방식으로 국민연금을 운영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미래에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되면 국민연금을 부과 방식으로 전환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부과 방식은 이미 연금 선진국에서 무난하게 운영되고 있고, 세대 간 연대를 잘 보여주는 제도이기에 귀를 솔깃하게 한다. 
 
근래 등장한 부과 방식 관련 논의들을 살펴보자. 우선 2013년에 진행된 제3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공식적으로 '부과 방식 전환'이 제시되었다. 당시 제도 개혁 방안을 담당한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국민연금 재정 개혁 방안으로 복수안을 내놓았다. <1안>은 '적립배율 2배 재정 목표'를 위해 보험료율을 12.9%로 인상하는 방안, <2안>은 기금 소진은 부과 방식 전환을 의미한다며 재정 목표를 '부과 방식으로의 연착륙'을 제안했다. <2안>에 의하면 기금수입이 지출보다 많은 2043년까지는 국민연금 재정이 최소한 위기라고 볼 수 없기에 당장은 보험료율 인상이 불필요하다. 
 
- 기본 방향: 기금 과다 적립 및 기금의 급격한 소진을 피하면서 부과 방식으로 연착륙(soft landing)
- 개선 방안: 현행 보험료율은 유지하되, 보험료율을 장기적으로 안정화시키는 포괄적 대책 집중 강구

이번 4차 재정계산에 따른 연금 개혁 논의에서 참여연대도 비슷한 내용을 펼친다. 애초 국민연금은 기금이 소진되도록 설계했기에 점진적으로 기금을 줄여 부과 방식으로 전환해 가자는 취지이다.  
 
"국민연금은 도입 당시에 본래 기금이 소진되는 것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국민연금제도가 성숙하면서 지나치게 많이 쌓인 기금이 점차 줄어들고, 매년 걷는 보험료와 세금으로 연금을 지급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참여연대, '적정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국민연금이 나아가야 할 방향 : 참여연대 연금개혁안', 2018년 12월 31일)
 
한편 작년 12월에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도 부과 방식을 시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정부는 4개의 연금개혁안을 제안한 후에 "장기적인 공적 연금 개혁 방향"을 다루면서 사실상 '부과 방식 전환'을 의미하는 미래 국민연금 재정 곡선을 제시한다.  
 
<그림 1>은 현행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되기 얼마 전부터 연금 개혁이 진행돼 매우 작은 적립금을 유지하는 '장기 개혁 방향'이다. 연금 재정 구조에서 작은 적립금은 예비비 성격을 지니기에 <그림 1>은 사실상 부과 방식 재정 구조로 평가할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순 없지만, 아직 부과 방식 전환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미래 연금 개혁 방향으로 부과 방식 그래프를 제시한 건 다소 파격적이다.
 

ⓒ프레시안(이한나)

  
처음부터 국민연금은 부과 방식을 전망하고 설계했다?
 
내 주변을 보면, 친복지 경향의 사람일수록 '부과 방식 전환'을 선호하는 듯하다. 부과 방식이 지닌 '아름다운 연대'를 주목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부과 방식 전환을 둘러싼 논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정말 국민연금이 부과 방식 전환을 염두에 두고 도입했을까? 또 하나는 앞으로 부과 방식으로 전환하려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할까? 
 
우선, 국민연금이 부과 방식을 전망하고 설계된 것인지 살펴보자. 1988년 국민연금이 시작되었다. 당시 설계도는 소득대체율 70%, 보험료율 9%였다(보험료율은 3%에서 시작해 1998년 9% 예정). 이는 수지 균형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후한 설계이다. 당시 소득대체율은 성숙 단계에 접어들어 높은 서구의 수준을 반영했지만, 보험료율은 급여 수준에 비해 무척 낮게 책정했다. 대체로 연금 도입 시점에는 가입자의 제도 순응성을 높이기 위해 보험료율을 낮게 설정한다 해도 국민연금의 경우는 그 격차가 컸다. 이러한 재정 불균형 구조에서는 언제가 기금이 소진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기금 소진을 예상하고 미래 부과 방식 전환을 염두에 둔 설계라는 추측이 생길 수 있다. 
 
당연히 '저부담 고급여' 구조에서 제도를 그대로 놔두면 언제가 기금이 소진될 것이다. 국민연금 설계자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이들은 향후 기금 소진 상황으로 가지 않도록 재정 안정화 조치를 동시에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을 설계하고 도입에 큰 역할을 한 기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다. 국민연금 시행 2년 전인 1986년 발간된 KDI 보고서 <국민연금제도의 기본 구상과 경제사회 파급효과>를 보자. 보고서는 앞으로 도입되는 국민연금에서 기금이 2033년에 정점에 도달하고 2049년에 고갈될 것이라 전망했다. 실제 2003년 진행된 제1차 재정 계산 결과(2047년 기금 소진)와 거의 같은 예측이다. 또한 보고서는 기금이 소진되면 필요 보험료율이 21.5%이 되어야 하므로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2010년대에 보험료율을 12.5%로 인상하고 2020년대부터 15%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했다. 1988년 한국인구보건연구원 국민연금연구팀이 낸 <국민연금 확대방안 연구> 보고서의 결론도 비슷하다.  
 
국민연금이 시행된 이후에도 비슷한 보고가 계속되었다. 1992년에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국민연금관리공단이 함께 개최한 <국민연금 확대와 재정안정방안에 관한 세미나>는 2039년 기금 고갈을 예상하며 기금운용의 고수익률 추구, 수급연령의 65세 연장, 보험료율의 단계적 인상 등의 재정안정화 방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연구 내용을 보면, 국민연금 설계자들은 제도 도입 당시에 이미 미래 재정 불안, 기금 소진을 예견했고 또한 단계적인 재정 안정화 조치를 제안하고 있다. 이는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된 후 부과 방식 전환을 지향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게다가 1998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5년 주기 재정 계산과 재정안정화 조치'가 법제화되었다. 이는 사실상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급여 수준에 부응하는 보험료율 개혁을 취하라는 의미이다. 결국 국민연금이 도입될 당시에도 그랬고, 현행 국민연금법 조항까지 감안하면, 국민연금이 부과 방식 전환을 염두에 둔 제도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부과 방식 전환을 위한 조건: 전환 앞뒤 가입자의 부담 형평성
 
물론 중요한 건 앞으로 우리의 의사결정이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국민연금을 부과 방식으로 전환하는 논의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부과 방식 전환을 위한 조건이다. 아무리 부과 방식이 아름다운 제도이고, 다른 나라가 시행하고 있다 해도, 부과 방식 전환을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다. 바로 전환 앞뒤 재정 부담의 형평성이다.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되는 2057년에 부과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가정하자. 제4차 재정계산 결과에 따르면, 연금 지출을 모두 보험료로 충당하는 부과 방식 필요보험료율이 26.5%에 달한다. 당시 가입자들은 이전 가입자들과 비교해 동일한 소득대체율을 적용받으면서도 3배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이들에게 이 보험료를 납부하라고 권할 수 있을까? 당신이 그 때 청년이라면 이 제도를 순순히 수용하겠는가? 
 
이에 대해 반론이 제기된다. 미래 국민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후세대 부담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는 보험료율 수준이 아니라 연금 지출 규모라는 주장이다. 미래 국민연금 지출 규모가 현재 유럽 나라들의 연금 지출 규모와 비슷하니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즉 "(지금 서구와 비슷한 규모의) 연금 지출이 미래 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어 미래 세대를 경제적 파국으로 이끌 것이라는 '세대 간 도덕질'이 설득력이 없다"는 비판이다.  
 
나의 계산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공적연금 지출은 총 국내총생산(GDP)의 3.3%, 2060년 즈음에는 대략 GDP 12% 수준으로 추정된다(기초연금, 특수직역연금 포함), 국민연금만 보면, 2018년 지출은 GDP 1.3%에 불과하지만 2060년에는 8.9%에 이른다. 
 
또한 지금 유럽 나라들은 미래 우리 수준의 연금 지출을 감당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유럽나라들이 평균 공적 연금 지출이 GDP 12.3%에 달한다. 그리스(17.3%), 이탈리아(15.6%), 프랑스(15.0%) 등은 15%가 넘는다.  
 

ⓒ프레시안(이한나)


물론 한국의 미래 세대도 지금 서구만큼의 경제력을 지닐 수 있다. 그런데 미래 세대의 경제력과 이들의 제도 수용 여부는 사실 별개의 주제이다. 여기서는 경제력보다는 형평성이 논점이다.  
 
국민연금이 현행 방식에서 그대로 부과 방식으로 전환할 경우 세대별로 책임져야 할 재정 몫의 차이가 너무 크다. 부과 방식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이 차이가 다음 세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여야 한다. 부과 방식 전환의 관건은 우리가 그러한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지금 그러한 방향으로 연금 개혁을 진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미래 연금 지출 규모 비교가 현재 우리의 책임을 면해주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부과 방식 연금의 도전, 인구구조의 초고령화 
 
부과 방식 운영에 큰 영향을 주는 인구학적 조건도 만만치 않다. 부과 방식은 노인 비중이 높을수록 약속된 급여를 지급하기 위한 당시 세대의 보험료율이 높아지는 구조이다. 한국의 경우 서구나라가 부과 방식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비해 고령화 수준이 매우 높다. 미래 인구구조 전망에서도 한국은 서구에 비해 노인 비중이 높다고 전망된다. 2050년 노인부양비가 72.4%로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53.2%보다 높다(여기서 노인부양비는 2064세 인구 대비 65세 인구 비중이다). 
 
이러한 인구 전망에서는 국민연금이 부과 방식 전환한 직후 필요 보험료율이 높게 나오고, 이로 인해 부과 방식 전환을 위한 앞뒷세대 보험료율 격차도 커진다. 서구와 비교하면, 현재 국민연금은 제도 내부의 수지 격차가 큰 문제와 함께 미래 인구 구조에서도 부과 방식 전환에 무척 불리한 조건에 있다. 지금의 인구구조의 개선이 필요하고, 동시에 미래 세대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일정한 적립금을 유지할 필요성이 오히려 제기되는 상황이다. 실제 서구 몇 나라에서는 이러한 취지에서 적립금을 일부 확보하는 방향으로 연금 개혁을 진행하기도 한다. 
 
부과 방식 전환의 역설, '부과 방식으로 가려면 보험료율 인상해야'
 
다소 완화된 부과 방식 전환도 제안된다. 아무래도 기금 소진 시점까지 그대로 놔두는 건 곤란하니 기금이 최대로 오른 후 줄어드는 시점부터 보험료를 올리면서 서서히 부과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다. 앞의 주장에 비해 보험료 인상 시기를 앞당기니 나름 책임 있는 제안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막연하다. 기금 적자 시점부터 어느 정도 보험료를 올리자는 것인지 구체적 이행 경로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략의 참고를 위해서 제4차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서 나온 재정안정화 '가'안을 살펴보자. '가'안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5%로 인상하고 보험료율도 9%에서 11%로 올린다. 이 때 보험료율 인상분은 소득대체율 인상에 따른 것이므로 기존 국민연금 40%/9%의 재정불균형은 그대로 존재한다.  
 
'가'안이 재정안정화 조치를 취하는 건 앞으로 15년 후인 2034년부터이다. 이때 보험료율을 11%에서 12.3%로 조금 인상하고 이후에는 재정 계산마다 '30년 적립배율 1배' 재정 목표에 따라 보험료율을 조정한다. '가'안의 논리에 따르면, 기금 소진시점을 2088년으로 늦추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이 2034년에 12.3%로 시작하지만 2048년에 20.2%, 2058년 23.9%로 급격히 올라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이 적자로 돌아서기 이전부터 재정안정화 조치를 취하더라도 지금부터 15년 동안은 보험료율을 그대로 놔둔 까닭에 보험료율 인상 경로가 가파른 편이다.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 요약본" 18쪽에 '가'안이 소개돼 있다. 하지만 필요재정을 '보험료율 상한 18% + 기타 재정안정 수단' 으로 설명해 보험료율 기준 최종수치 23.9% 정보는 담겨 있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연금개혁에 필요한 수치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지 않는 사례이다.)
 
결국 부과 방식 전환을 제안하면서 지금 보험료율 인상에 소극적으로 임할수록 향후 보험료율 인상 폭은 크고 가파르다. 부과 방식 전환을 주장하며 재정 안정화 개혁을 미룰수록 오히려 부과 방식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절벽은 높아지는 '한국식 부과 방식 전환의 역설'이다. 
 
국민연금 부과 방식 전환, 21세기에 현실화 어려워 
 
국민연금에서도 부과 방식 전환이 가능하다. 경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소득대체율 인하이다. 소득대체율 인하는 미래 필요 보험료율 수준을 낮추기에 부과 방식 전환 전후의 재정 부담의 차이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부과 방식 전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하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 방안은 현재 논의의 대상이기 어렵다.
 
또 하나의 길은 현행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면서 지금부터 단계적으로 보험료율을 올려 부과 방식 필요 보험료율과 격차를 줄이는 방안이다. 이후 어느 시점에서 보험료률 차이가 미래 세대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라고 판단되면 그때부터 보험료율을 유지하거나 아주 조금씩만 올리면서 점진적으로 기금을 줄여나갈 수 있다.  
 
나 역시 긍극적으로는 부과 방식에 매력을 느낀다. 미래 인구 환경을 감안해 적립금을 일부 지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연금 재정 구조에서는 부과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올려가야 한다. 부과 방식 대안이 현단계 연금 개혁을 회피하는 논리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정녕 부과 방식 국민연금을 원한다면 지금부터 우리 세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 방식에서는 우선 보험료율이 오르므로 당분간 기금은 더 늘어난다. 결국 한국에서 부과 방식 전환은 21세기에는 현실화되기 어려운 프로젝트이다.  
 
여기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 부과 방식 전환에 주는 영향을 생각해 보자. 이 부과 방식 전환과 관련을 맺는다. 정부의 연금개혁안에는 보험료율 인상안도 존재한다. 이는 소득대체율 인상을 충당하는 보험료율 인상이다. 미래 재정안정화의 의미를 지니지 않기에 부과 방식 전환을 위한 보험료율 격차를 개선하지 못한다. 이렇게 보험료율 인상 몫을 소득대체율 인상을 위해 사용해 버리면 앞으로 부과 방식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보험료율 절벽은 더 높아져 버린다.  
 
그래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연금 보장성 강화는 국민연금을 넘어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포괄하는 다층연금체계에서 모색하고, 국민연금 보험료율 카드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활용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이유이다.
 
이미 부과 방식 연금 존재한다 : 기초연금 
 
정말 한국에서 내 생애 동안 부과 방식 연금을 접할 수 없는 걸까? 이미 우리 곁에 부과 방식 연금이 운영되고 있다. 바로 기초연금이다. 기초연금은 매해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부과 방식 연금이다. 2019년에 약 540만 명의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약 15조 원이 필요하다. 얼굴도 모르는 노인들을 시민들이 부양하는 아름다운 연대 제도이다. 또한 내가 늙었을 때도 이만큼의 기초연금을 받으리라는 기대도 점차 생기고 있다.  
 
기초연금의 발전 속도도 빠르다. 2008년 이름으로 약 10만 원으로 시작한 기초연금은 10년만에 30만 원을 내다보고 있다. 서구 나라의 부과 방식 연금을 부러워하기만 할 이유가 없다.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앞으로 노인 수가 늘어나기에 기초연금 재정 규모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부과 방식 연금을 가진다면 기초연금 제도 하나를 운영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부과 방식을 통한 직접적인 세대 간 연대를 구현한다면 무엇보다 기초연금의 강화가 가장 적절한 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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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필요한 미투 법안 소개합니다

미투 보도 117건 중 6건 실형, 법안 145건 중 35건 통과… 피해자 2차피해 보호할 법 국회 계류 중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9년 02월 03일 일요일

미투 운동은 제도 밖에서 진행했다. 성범죄를 학교 안에서, 사내에서, 심지어 사법부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불신 탓에 여론에 호소했다. 지난해 1월29일 JTBC에 나온 서지현 검사는 그 불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서 검사의 고백은 사실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검사조차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사법체계를 이탈했다.

미투 운동의 문제의식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오는 작업이 다음 단계다. 법이 문제면 이를 개정하고,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미투 관련 법안 처리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관련법 145건 중 35건(24.1%·부분 통과 포함)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나머지는 여성가족위원회(여가위)·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등에 계류 중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무죄 판결 이후 재판에서 이슈가 된 ‘비동의 간음죄’(폭행·협박이 없어도 의사에 반한 성관계를 처벌)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이 법사위에서 논의도 없었다는 지적은 언론에 많이 나왔다. 미디어오늘은 그 외에도 미투 운동 이후 한국사회에 필요하지만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한 법안을 살펴봤다. 

▲ 서지현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사진=연합뉴스
▲ 서지현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그의 고백이 1년 지났다. 사진=연합뉴스
 

 

누구든지 성희롱하면 안 된다는 법

현행법에선 사실상 성추행 이상만을 범죄로 본다. 이는 법에서 성희롱·성차별을 제한적으로만 금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미투 운동으로 한국 사회의 성인지 수준이 높아진 만큼 성희롱·성차별 제재를 강화할 법이 필요하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양성평등기본법·국가인권위원회법 등을 보면 ‘직장 내’ 성희롱만 규정했고, 피해자의 범위도 법마다 다르다. 또한 국가기관의 경우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언급하지 않아 권리구제에 미흡하다.  

성차별의 경우도 헌법 11조에 성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법률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꼴이다. 게다가 지난 2005년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를 폐지한 이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채 실체법이 없는 상태다.  

이에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3월 ‘성별에 의한 차별·성희롱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대표발의했다. 성차별·성희롱 금지를 다룬 일반법으로 19대 국회 때도 발의했지만 폐기됐다.  

누구든 성희롱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을 수 있고, 인권위가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는 권한도 명시했다. 또한 여성가족부장관이 피해자 상담을 지원하고 실태조사에 적극 나서도록 규정했다. 성희롱·성차별 신고자에게 불이익 조치를 해선 안 되고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 징역·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성폭력 신고자도 공익신고자로 보호하는 법 

“지난 1년간 입을 연 피해자·공익제보자로 살며 느낀 고통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였다.”

미투 1년을 맞아 서지현 검사가 29일 국회에서 한 말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옥죄는 2차 피해는 직장·언론·수사당국 등에서 광범위로 벌어진다. 신고자가 사적인 욕심으로, 특정인을 해하려 문제를 제기했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살라야 하는 시대”(서 검사)를 끝내려면 성폭력 피해자를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

▲ 국회 본회의장. 사진=이치열 기자
▲ 국회 본회의장. 사진=이치열 기자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해 2월 대표발의한 공익신고자보호법 일부개정안에는 공익침해행위 대상 법에 남녀고용평등법을 포함했다. 같은 문제의식으로 지난해 12월 고용진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익신고자보호법 일부개정안에는 공익침해행위 대상 법에 남녀고용평등법 뿐 아니라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도 포함했다.  

공익신고자법을 보면 사용자는 공익신고자 등이 인사조치를 요구할 때 요구내용이 타당하면 우선 고려해야 하며 공익신고자가 불이익 조치를 받으면 국민권익위원회에 원상회복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공익신고자에게 손해를 입힌 자는 손해에 대해 3배 이하의 배상책임을 진다. 현행법상 약 200개의 법률에 규정된 공익침해행위만 보호한다.  

채 의원은 “성희롱·성폭력 범죄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국민의 안전·건강을 해치고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중대한 공익침해 행위”라며 “성폭력 신고자를 법으로 두텁게 보호해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자를 제재할 수 있게 한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고 의원은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을 금지하고, 불이익을 받을 경우 구조금 등을 받을 수 있게 했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 광주지역 예술인들과 여성단체는 지난 17일 오후 5·18민주광장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진행하고 있는 #Me_Too 운동에 함께하는 #With_You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광주지역 예술인들과 여성단체는 지난 17일 오후 5·18민주광장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진행하고 있는 #Me_Too 운동에 함께하는 #With_You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2차 가해자 처벌 강화법

비슷한 맥락에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줄 경우 처벌을 강화하자는 법안은 더 있다. 현행법상 사용자가 직장 내 성희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거나 인사 등 불이익 조치를 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형법상 범죄가 아니므로 ‘솜방망이 처벌’이란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3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하지 않거나 피해자가 요청했는데도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기존 500만원의 과태료가 아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해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4월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같은 법 개정안을 같은 취지로 대표발의했다. 직장 내 성희롱 은폐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성희롱 가해자를 처벌할 때 2차가해 여부도 고려하도록 했다.  

또한 사업주가 사실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할 경우 제재수위를 현행 과태료에서 벌칙으로 상향하도록 했다.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정보가 퍼질 경우 또 다른 2차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성차별·성희롱으로 손해를 입힐 경우 3배 이하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국민일보가 지난해 2월부터 약 1년간 언론에 알려진 미투 117건을 본 결과 가해자가 구속돼 실형을 받은 사례는 6건에 불과했다. 안태근 전 검사장,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등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등장한 인물이 대부분이다. 법 제도의 미비를 여론의 힘으로 보완했다는 뜻이다. 계류 중인 법 통과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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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 그후] 나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결혼한 게 아니다

19.02.03 11:34l최종 업데이트 19.02.03 11:34l

 

여성에게 희생과 침묵을 요구하는 명절문화에 반기를 드는 며느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며느라기'를 지나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웹툰 <며느라기> 6_4.제사편 중 한 컷 (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  웹툰 <며느라기> 6_4.제사편 중 한 컷 (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 며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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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나는 시가에 가지 않았다. 반란의 시작은 부부 싸움이었으나, 오래 전부터 하기 싫었던 일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결혼한 지 12년, 추석과 설날 전날에는 같은 지역에 사는 시어머니, 형님, 나 셋이 모여 항상 전을 부치고 음식을 준비했다. 간혹 시부모님이 나서서 '이번 명절에는 쉬라'는 집들도 있다는데, 나의 시부모님은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 스스로 안식년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들만 시가로 갔다.

눈치 싸움

 

그동안 여러 번의 명절을 겪을 때마다 형님과 나, 어머님이 서로 장 보는 일을 미루기 위해 보이지 않는 눈치 싸움을 벌였다. 여러 신경전이 오가면서 서로 감정이 상하는 건 기본이었다.

게다가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명절 전날에는 최대한 늦게 시가에 가려고 눈치를 봤다. 시부모님과 가까이 사는 덕에 저녁에는 집에 돌아갈 수 있었지만, 도리어 가깝기 때문에 명절 당일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놔두고 새벽 일찍 시가에 가 오전 6시부터 명절 음식을 차려야 했다. 형님은 차례를 지내기 10분 전에 도착하시곤 했다.

이 모든 것이 명절 때마다 되풀이되는 신경전이었다. 어머님, 형님, 나, 이 집안의 여자들 누구 하나 달갑게 명절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매번 명절 음식을 차려야 하고, 차례를 지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형님, 즉 남편의 형수님은 나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리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니 남편의 형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나는 '형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존댓말을 써야 했고, 형님은 나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결혼을 하고 나니, '나'란 존재는 없어졌다. 시가에서 나는 전통의 역할을 부여받은 둘째 며느리일 뿐이었다. 모두에게 당연한 이 상황이 나는 내내 불편했다. 

누군가는 이틀만 참으면 된다고 했고, 아이들 생각해서 그냥 참으라고도 했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야 후손들이 잘되는 것이라고 또 참으라고 했다. 이 조언들의 기본 사상은 엄마는 희생하고 참는 존재, 그래야 아이들이 잘되고, 가정이 평화롭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궁금했다. 아이와 모성을 볼모로 여성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건 아닐까?

추석 때 시가에 가지 않았다는 말을 하자 주변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대단하다', '용기 있다'가 첫 번째였고,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냐', '그 이후가 궁금하다'는 질문이 두 번째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음이 불편했다. 추석 이후 어머님과 꽤 오랜 시간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워킹맘인 나는 어머님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아이들 하원 후부터 내가 회사에서 돌아올 때까지 어머님이 아이들을 봐주시는데, 어머님은 추석 이후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셨다. 왜 오지 않았느냐고 묻지도 않으셨다.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 <며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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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는 '추석의 반란(?)' 이후를 고민하기도 했다. 어머님께서 아이들을 봐주지 않으시겠다고 하면 아이 돌보미를 구하는 것까지도 고려했다. 그만큼 나에게는 힘든 결정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계속 돌봐주셨지만, 한동안 불편함은 감수해야 했다.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명절에 가기 싫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결혼하고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명절을 참고 지낸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이들의 양육 문제 때문이었고, '응당 명절은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이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같이 둘러앉아 즐겁게 지내야 한다는 것.

평균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삶에 관대하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평균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나는 왜 갑자기 평균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사위는 백년손님... 며느리는?

가끔 남편에게 묻는다. 왜 나와 결혼했는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나왔다. 나도 같은 이유였다. 나를 존중해주고, 내가 하려는 것들에 대해 지지해줄 것 같아서 결혼을 했다.

그런데 왜 같이 살 수 없는 조건들이 우리 관계에 따라다니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었다. 남편의 능력을 바라거나, 남편에게 의지하기 위해서 한 결혼이 아니었다. 남편이라는 존재를 보고 선택했는데, 결혼이라는 제도에 붙어오는 의무들이 너무 많았다. 서로 대등한 부부 사이를 유지하고 싶은데, 자꾸 가사노동이, 명절이라는 문화가, 며느리라는 역할이 내게 따라 붙었다. 불편했다. 그 불편함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남편도 내가 명절 때 시가에 가지 않는 것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나름 불편했던 모양이다. 추석을 지내고 와서 나에게 말했다.

"너도 아들 둘 키우잖아."
"내가 시어머니 된 다음에 누가 차례 지낸대? 그리고 특별한 날엔 내 아들들만 보면 되지, 굳이 며느리까지 애타게 보고 싶을 것 같진 않은데?"


며느리를 보고 싶어 하는 이유가 노동을 위해서만은 아닐 테다. 하지만 사위는 '백년손님'이고, 며느리는 음식 준비라는 노동을 대물림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 그게 대한민국 명절의 현실이다.

아는 지인 A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지 않고 십 년째 동거 중이다. 남자친구가 장남이라는 게 이유다. 그와 결혼하면 각종 제사와 차례 등 맏며느리의 의무가 자신의 몫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란다.

A는 남자친구의 가족 행사에도 대부분 참여한다. 남자친구 부모님 생신 때도 손님으로서 함께한다. 그러나 명절에는 가지 않는다. 남자친구는 남자 형제만 3명인데, 둘째 며느리가 제사 및 차례를 전담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지인 B는 맏며느리인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은근히 제사를 가져갈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제사를 가져가라는 이야기는 제사 준비와 지내는 것 모두 지인 B의 집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B가 모든 것을 주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B는 그 뒤로 은근히 시어머니를 피하고 있다고 했다.

지인 A와 B의 사례, 나의 추석의 사례가 모두 가사노동의 대물림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며느리는 손님처럼 시가에 가면 안 되는 것일까? 남편이 백년손님인 것처럼.

그건 반쪽짜리 평화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는 부처의 얼굴을 하고 참아야 하는 걸까?
▲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는 부처의 얼굴을 하고 참아야 하는 걸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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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명절에도 나는 반란을 꿈꾸고 있다. 물론 불편하고 두렵다. 여전히 어머님께서 아이들 등하원을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다. 내가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으니까. 아이들 양육을 독립하겠다고 가정 경제를 내려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온전히 전통적인 며느리 역할을 벗어 던질 수 없는 이유다.

추석이 지나고 한동안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던 어머님과 내가 다시 화해를 하게 된 건 어머님 덕분이었다. 어머님은 다시 예전처럼 말을 걸어오시고, 이전처럼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파김치가 되어 퇴근한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신다.

가끔, 어머님과 형님을 시가라는 관계가 아닌 일상 속 타인으로 만났다면 어떠했을까 상상해본다. 명절이라는 노동과 며느리라는 의무를 제외한 그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어머니는 아들 둘을 훌륭하게 키워내신 존경스러운 여성이었을 것이고, 형님은 편하게 수다 떨 수 있는 동네 친구 엄마였을지도 모른다. 

가족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족의 평화를 위해 누군가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하고, 그 희생으로 인해 불행하다면, 그건 반쪽짜리 평화다. 며느리도 가족의 일원이다. 그림자가 아니다. 모두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그림자처럼 부엌에 숨어들어 고된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존재에 머물러선 안 된다. 

설 연휴를 앞둔 지금, 나는 또다시 치열하게 고민한다. 나는 무엇을 지키고 싶은 것인지, 어떻게 해야 나와 가족의 행복을 지킬 수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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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北 신년사 제대로 읽기(3): 북미관계

2019년 北 신년사 제대로 읽기(3): 북미관계<기고> 김광수 정치학 박사
김광수  |  no-ultar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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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2  22: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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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 · 『수령국가』 저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모두가 신년 벽두부터 북의 신년사를 분석하느라 무척 바쁘다. 격세지감이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북의 신년사에 이렇게 관심을 가졌던가? 과거에는 주로 운동권이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그런 신년사가 이제는 대한민국의 정계, 언론계, 학계를 넘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희한한’ 일이다. 왜 그렇게 북의 존재가 180°로 확 바뀌었을까? 뭐니 뭐니 해도 그 중심에는 북의 핵무력 완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밖에 달리 설명할 길도 없다. 

 그 전제하에 이 글은 총 세 번에 걸쳐 2019년도 북 신년사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유는 많은 분들이 북 신년사를 분석해 내었지만, 본질을 제대로 짚은 신년사가 많이 없기 때문이다. (본인 또한 제대로 된 신년사에 접근하기 노력할 뿐 ‘완전하다’는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제1부는 <2019년 북 신년사 제대로 읽기: 북 내부문제>이다. 제2부는 <2019년 북 신년사 제대로 읽기: 남북문제>이다. 좀 의역하면 ‘남북문제에 있어 2019년 북 신년사에서 오독하지 말아야 할 것들’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마지막 편에 해당되는 제3부는 미국문제(대외정책)에 해당되는 <2019년 북 신년사 분석: “새로운 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실리게 된다. 

  독자들의 많은 필독을 원하고, 문재인 정부에게는 제대로 된 이해에 바탕 해 2019년도는 남북, 북미관계 정책을 세워내는데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필자 주>  

 

  막상 시작해놓고 보니 고민이 많아졌다. 논리적 정합성 문제도 그렇고, 북의 정확한 의도를 읽어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니... 그렇게 옥죄던 그 무게도 제3부, ‘북미관계’를 끝으로 종결하려하니 정말 가슴이 후련하다. 아울려 이제까지 부족한 글을 정독해주신 독자들께도 정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황금 돼지해에 첫 반가운 소식은 뭐니 뭐니 해도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낭보였다. 2월 말(혹은, 3월)이면 정말 열리게 된다.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협상 2라운드가 그렇게 열리는 것이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말이다. 해서 이 글은 2019년 북 신년사 분석을 토대로 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정론적으로 고찰해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유는 그래야만 ‘결렬과 파국’보다는 ‘협상과 해결’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제대로 예측할 수 있고, 그것보다 더 선행되어져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고착화되어있던 ‘북미협상 2라운드가 왜 그렇게 시작될 수밖에 없었던가?’라는 물음에 답이 가능해져서 그렇다. 동시적으로 2017년에 발표된 북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에 대한 진가도 알 수 있다. 종착점은 다름 아닌, 그로 인해 미국의 버티기는 끝나고, 결국에는 북미간의 관계변화와 주한미군 철수 및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 평화지대라는 대격변이 있다. 

  이 글은 그 전제하에 있다. 

  ■ 2019년 신년사에서 밝힌 ‘핵동결 선언’이 갖는 그 정치적 의미는?  

  아시다시피 북은 2018년 4월 20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핵정책을 결정한다. 더 이상 핵무기를 시험하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않고, 전파하지도 않는다는 3개 원칙의 명시가 그것이다. 이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핵무기를 이제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하나 더 추가하여 4원칙을 새로운 핵정책으로 천명한다. 이른바 4불(不) 핵정책이다. 

  생기는 의문은 (그 정책전환이 너무나 빨라) 갑자기 웬 동결? 충분히 생겨날 수 있는 의문이고, 그런 갑작스러운 우리의 인식이 과연 북의 전략시간표 상으로도 그럴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이다. 

  2018년 신년사에서 이미 그 전략노출과 북이 달성해낸 국가 핵무력 완성속도를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속도이다. “핵무기 연구부문과 로켓공업 부문에서는 이미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켓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나가야 합니다”라는 신년사 언급이 그것이고, 이후 북은 1년 만에  핵무기와 미사일의 대량생산과 실전배치가 완료되었음을 선언한다. 

  바로 그 ‘1년’에 숨은 비밀이 들어있는 것이다. 북의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이 서방세계 인식으로는 불가능했던 엄청난 속도전이었듯이 그 대량생산과 실전배치 또한 그들의 속도방식(만리마속도)에 의한 1년만의 충분히 완성 가능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해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2018년 후반기 어느 시점에 핵무기 대량생산이 마침내 최대 생산목표에 도달하여 더 이상 추가생산을 계속할 필요가 없어졌음으로 이번 2019년 신년사에서 핵동결 선언을 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 <NBC>방송 2018년 12월 27일 보도를 보면 이는 금방 이해된다. <NBC>는 우드로우 윌슨 국제학술쎈터의 제1부소장 로벗 리트웍(Robert S. Litwak)의 발언을 인용 보도했는데, 북이 현재 추세로 핵무기를 계속 생산하면 내년 2020년에는 영국의 핵무기보유량(185발)의 절반에 이르는 약 100발의 핵탄두를 보유하게 된다고 보도한 것이 그것이다.

  또 핵탄두 추정치 개수는 다르지만, 보다 확실성을 띄고 있는 정보로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북을 핵을 갖고 있는 그런 국가로 인정하지 않던 미국이 주일미군사령부(USFJ)를 통해 지난 1월 18일 발표된 동영상에서 북을 중국, 러시아와 함께 ‘핵보유 선언국’으로 확인해줬다. 숫자도 아주 구체적으로 북 15개, 중국 200개, 러시아 4000개로 각각 표시하면서 말이다. 

  이상과 같이 북이 핵동결 정책을 추진할만한 충분한 주·객관적 토대는 확보되어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해서 더 이상 북이 핵보유 국가, 핵전략무기 보유국가, 전략국가로서의 위상을 갖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식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그런 국가-핵을 보유한 국가만이 할 수 있는 그런 핵동결 선언을 했다는 것, 그것자체가 이를 충분히 증명해주고 있어서 그렇다.  

  그러면 다음의 의문도 풀려질 수가 있는 것이다. 

  미국이 왜 제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단계적, 동시적, 등가적 이행방식에서 버티다가 전격적으로 2차 북미정상회담에 응했는가? 하는 그런 의문 말이다.

  가설은 이렇다. 핵보유국들이 취하는 일반적인 핵동결(nuclear freeze)정책이 핵무기의 생산, 시험, 사용, 전파를 중단한다는 의미에서의 4불(不) 정책이라고 한다면, 2018년 4월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생산’을 미완으로 남겨났고, 그 마지막 퍼즐에 해당되는 ‘생산’ 중단을 왜 이번 신년사에서 발표했는지가 설명되어지면 미국의 입장변화가 설명되어질 수가 있다는 가설이 그것이다.  

  결론에 북이 원래 가지고 있던 목표량, 적정량의 생산과 실전배치가 완료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북도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감수했다.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이다. 온갖 간난신고와 국제사회의 멸시와 조롱, ‘그 돈으로 굶어죽는 인민들을 먹여 살려라!’를 견뎌내었어야만 했다. 그리고 북은 마침내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을 내왔고, 이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총화(결산)는 “우리 공화국은 마침내 그 어떤 힘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쟁 억제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보지 못합니다”였다. 

  구체적으로는 북이 2017년 11월 29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쏴 올렸고, 그렇게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기술과 ‘국가 핵무력 완성’을 정확하게 일치시켰다.(2017년 11월 29일) 이후 2018년도에는 수소폭탄을 포함한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에 의한 대량생산과 실전배치를 완료시켰다. 그것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적대관계 ‘철천지 원수’에 있는 북이 미국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등 전략무기를 보유하면서 말이다.  

  2018년 신년사에서 "핵탄두들과 탄도로켓을 대량생산하고 실전배치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면서 핵전력 강화를 선언한 것과, 그러고는 1년 만에 핵탄두와 로켓의 대량생산및 실전배치가 완료되었다는 의미의 ‘핵동결’선언을 내온다.(2019년 신년사) 말 그대로  ‘완료’되었기에 핵동결 선언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이의 정치군사적 의미(북미대결사)는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대량생산과 실전배치가 끝났음을 의미해준다. 

  바로 그 숨길 수 없는 사실이 결국 끝까지 버텨보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북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시위능력으로 인해 미국은 미합중국 창건 이래로(이는 북도 마찬가지다. 공화국 창건 이래 처음으로) 처음 북과 정상회담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까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렇게 결론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객관적으로도 기존 취해왔던 ‘전략적 인내’ 정책의 포기, ‘대결과 압박’ 방식에서 ‘대화와 협상’의 그 최상위 형태인 정상회담을 부득불 수용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이를 증명해주고도 충분히 남는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자국의 입장에서는 미본토를 지켜내어야 하는 절박감이, 패권국가로서는 NPT체제 유지를 그 근간으로 하여 유지되어온 자국 중심의 동북아 및 세계질서 유지라는 급박한 상황이 북과의 대결을 피하고 협상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요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그런 완료된 핵동결 선언이 미국을 최종적으로 대결과 압박정책을 파기시키고,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다시 나올 수밖에 없게 하였던 것이다.   

  핵동결 선언이 이렇게 제2차 북미정상회담,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를 다시 연동시키는 정치군사적 요인임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또한 분명한 것도 있다. 왜 그러면 지난해 그렇게 수많은 정상회담이 동시적으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의 성격이 정확하게 정립되지 않았는가? 하는 그런 점이다. 

  결론에는 위 연동-핵동결  선언, 제2차 북미정상회담,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가 처음부터 읽혀지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이유는 지금에 와서야-핵동결의 의미와 2차 북미정상회담의 그 상관성이 밝혀지고, 북이 왜 핵을 보유하려 했는지에 대한 의도가 분명하게 이해되어졌지만, 그 이전까지는 북이 다른 핵 패권국들과는 전혀 다른 패턴의 핵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에 이를 해석해낸다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 어떤 국가도 가보지 않는 그 길을 제시하다보니 당연히 그 메시지를 유관국들이 잘 읽지 못했을 뿐더러 완전히 혼란스러워한 것이다. 이른바 ‘긴가, 민가’한 것이다.  

  그래서 혼란은 당연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핵보유의 목적이 핵전력 강화를 통한 핵패권 추구에 있다고 본다면, 북은 핵보유의 목적을 처음부터 일관되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세계비핵화에 두고, 이를 핵동결 선언을 통해 시작해보려 했다는 점에서 다른 핵보유 국가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런 패턴이 선보여졌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도, 중국도, 대한민국도 그 패턴을 이해하려고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과도 우리가 다 목도했듯이 2018년 내내 북중 정상회담과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1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그 프레임이 ‘북핵 비핵화’ vs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가 대립했음이 그 증거이다. 

  하지만, 제2차 북미정상회담부터는, 아니 앞으로 전개될 모든 북미협상의 기본 프레임은 온전하게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라는 개념으로 정립되고, 그 의제도 ▷한반도 평화체제 보장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세계비핵화 추동이라는 그런 개념들로 확정되어질 수밖에 없다. 핵동결 선언으로. 

   ■ 재등장한 ‘중국의 역할론’을 어떻게 해석해낼 것인가? 

  실제 미국을 대화와 협상의 테이블로 유인하기 위한 최고의 압박전략은 이렇게 정치·군사적 압박요인이 그 기본임을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는 않는다. 이른바 외교압박전술이 남아있어 그렇고, 그 핵심에 ‘중국의 역할론’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외교전에도 참으로 능한 북이다. 2019년 들어서자마자 전격적으로 발생한 중국방문은 그 화룡점정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생일(1.8)도 마다하고 2019년 새해 벽두부터 방중 정상회담에 나섰다. 2019년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 그 당사자인 중국의 역할을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올해는 또 북중 수교 70주년이기에 그에 걸 맞는 북중 관계수립도 필수적이다. 즉, 작년까지는 북중관계의 복원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면 올해는 그 복원을 넘어 협력관계 ‘공조’를 구축하는 그 단계까지 가야하고, 이를 위한 그 교집합에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주요 사안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의제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그렇게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 ‘조선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외교정책에 정확하게 부합하고, 좀 더 직접적으로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제로 인해 단절되었던 북중 경협을 전면적 수준까지 복원해야 하는 그런 이해관계까지 얽히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적인 중국 방중을 이행해낸다.

  만나야 할 수요는 그렇게 발생했고, 이것이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밝힌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다자협상’으로 포장되어 언급되어졌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도 적극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문장이 그것이다. 미국을 덜 자극하기 위한 문장조절일 뿐 실상은 ‘중국의 역할론’을 공식화한 것과 다름없는 문장이다.  

  이 방중은 또한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다음 행보를 읽어낼 수 있게 하는 그런 바로미터 역할도 된다.   

  ‘2차 북미정상회담→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정상회담) →시 주석의 평양 답방(정상회담)→남북미중 정상회담(그리고 그 어디 사이에선가 북러 정상회담도 열리게 될 것이다.)’ 순서로 말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남북미중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체결이 완료될 것이고, 북미 간 새로운 관계정립도 본궤도에 오를 것이다.  

  동시에 이는 북으로 하여금 2016년에 채택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완료연도: 2020)을 성공적으로 총화 될 수 있는 그런 충분한 기반과 여건의 마련은 물론, 김정은 체제의 정당성과 위력, 공고성을 더욱더 강고하게도 할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자력갱생’의 정당성과 함께, 대외적으로는 남북 경협과 북중 경협의 복원을 통해 성과가 나오고, 외교안보적으로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다자 협상"의 개시와 남북미중 정상회담을 통한 평화협정체결로 그 마침표가 찍혀지는, 그런 김정은식 사회주의 강국건설 설계도가 완성되면서 말이다. 

  ■ 대외관계에서 읽어내어야 할 핵심메시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위 질문과 관련해서는 미국에게 태도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한 것이 그 핵심이다.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며 상응한 실천적 행동으로 화답해 나선다면”에서 그 전제조건은 ‘신뢰할만한 상응 조치’이다. 따라서 이 같은 전제조건이 충족된다면 북은 적극적으로 대미 협상에 나섰겠으나 반면, 미국이 그러한 전제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그 반대편의 답변이 그것을 상징해내고 있다하겠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반대편의 답변이 아니다. “어쩔 수없이 부득불”,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등과 같은 이른바 수동태 문장이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따라서 그 본질은 북이 그 같은 상황을 원치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부득불 미국이 그러한 자신들의 메시지를 잘못 읽거나 상응 조치를 거부한다면 그래서 북미 협상에서 진전이 없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그런 의미로 해석해내는 것이 그 정석이다. 

  해서 ‘새로운 길’이 그 핵심 키워드가 맞지만, 북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보자면 그 핵심에는 미국이 북의 제안에 응하라는 것이 그 본질이 된다.   

  어떻게? 한미군사연습과 전략자산 전개의 중지 등과 같은 평화적 조치가 그 첫 번째이고, 유엔안보리 제재와 미국의 독자적 제재, 즉 대북 제재 해제가 그 두 번째이다. 

  문장으로도 “조선반도 정세 긴장의 근원으로 되고 있는 외세와의 합동 군사연습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외부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입니다.”,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으로(강조, 필자)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6·12 조미 공동선언에서 천명한 대로 새 세기 요구(강조, 필자)에 맞는 두 나라의 요구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가 “나는 앞으로도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에서와 같이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그런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전제하에 이번 신년사중 대외부분에서 파악해야 될 내용은 크게 세 부분이다.  

  그 첫째가, 북의 시선이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수립을 넘어 이미 1960년대 북이 제3세계 비동맹운동을 주동했을 때 가졌던 ‘블록불가담운동’과 같은 그런 버전 업(ver.2)된 ‘세계자주역량’ 구축 운운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새로운 길’에 대한 해석을 해냄에 있어 병진노선의 부활, 혹은 중국과의 밀월, 전쟁의 방식이라는 식의 분석을 반대하면서도, 보다 더 본질적으로는 ‘핵-경제 병진노선’의 부활을 무조건 ‘과거의 길’이기 때문에 그것이 ‘새로운 길’이 아니라는 식의 접근법도 경계해야 함이다. 

  이유는 1960년대의 ‘국방-경제 병진노선’ 버전 업이 2010년대의 ‘핵-경제 병진노선’인데, 그렇다면 이 ‘핵-경제 병진노선’도 낡은 ‘과거의 길’로 진입한 전략노선이었다는 말과도 서로 상통하게 돼 이는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아서 그렇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선군정치’를 내세웠던 김정일 집권시기에도 북은 경제에서도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선군 경제 노선을 표방했다.
   
  셋째로는,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가 어떤 로드맵을 통해 이뤄질지에 대한 가설을 간략하게 서술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2019년 북 신년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서 그렇다. 

  (1) ‘세계자주역량’ 구축과 관련된 서술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북의 외교노선 근본이념은 ‘자주, 평화, 친선’이다. 이에 따라 반제자주역량 구축은 항상 일관되어온 외교정책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북은 전통적인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의 단결과 협력을 통해 반제자주운동의 핵심 역량을 구축하는 전략이 항상 있어 왔으며, 이 구현방식이 전통적인 우호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 쿠바, 러시아 등과의 단결과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났고, 좀 더 넓히면 시리아, 이란등과도 교류를 활발히 한 것 등이 모두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면 우리가 놓치는 것이 하나 있다. 지난해에 교황의 방북 의사에 긍정 반응을 보인 것 등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그런 문제가 남아있어서이다.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위기국면을 모면하기 위해’, ‘종교탄압 국가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한’ 위장술로서 해석하는 것은 북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고, 왜곡정도도 심한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들과 세계 여러 나라들 사이 당 국가 교류가 활발히 되어 깊어지고 국제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추동하려는 입장과 의지가 확인되었습니다”(2019년 신년사 중에서)에서와 같이 ‘국제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추동’하려는 것은 북의 일관된 의지이다. 그런 만큼, (편견이 없다면) 그 연장선상에서 교황의 방북 긍정반응을 해석해내어야만 한다.   

   또한 2019년 북 신년사에서 주목해 봐야할 지점은 “세 차례에 걸치는 우리의 중화인민공화국 방문과 쿠바공화국 대표단의 우리나라 방문은 사회주의 나라들 사이의 전략적인 의사소통과 전통적인 친선협조관계를 강화하는데서 특기할 사변(강조, 필자)으로 되었습니다”라는 평가이다.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그것도 ‘특기할 사변’으로 말이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친선협조관계를 강화하는데서’ 뭔가 특별히 기억되어야만 하고, 새로운 전환점이 될 만한 그 뭔가의 성과가 일어났다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이를 위해 다시 우리는 ‘자주, 평화, 친선’이라는 북의 외교이념을 소환해야만 한다. 연동하면 전통적인 사회주의 우호국과의 관계개선을 넘어 또 다른 한 세계(질서)이자 북이 기간 상당한 노력을 깃들여 만들어낸 제3세계와의 반제자주역량 구축문제가 남아있어서 그렇다. 이것이 고난의 행군 시기와 김정일 시대, 비핵국가 시기를 마감하고 스스로가 전략국가의 위상을 갖게 된 지금, 21세기를 자주의 시대로 전변시켜내기 위한 그 위대한 여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런 의지와 신념(자신감)이 ‘특기할 사변’으로 그렇게 총화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는 자주, 평화, 친선의 이념에 따라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단결과 협조를 계속 강화하며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마치 1960년대에 블록불가담운동으로 제3세계 자주외교를 실질적으로 이끌어나갔듯이, 이른바 ver.2로 업그레이드된 블록불가담운동을 다시 재가동 하겠다는 그런 의지가 이번 신년사에서 선보였고, 동시에 이는 미국과의 세기의 대결을 끝장내고, 21세기를 자주의 시대로 전변시켜 내기 위한 북의 전략적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자 ver.2된 ‘세계자주역량’ 구축을 그렇게 시작하려는 것과 같다.  

  괜한 억측도 아니다. 충분한 이유도 가능하다. 예전과는 달리 북은 이제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에 이어 핵강국까지 되었다. 이른바 (경제력과 비례해야 한다는 그 착시와 편견을 떼고 본다면) 전략국가로서의 위용을 갖췄다는 말이다. 그런 국가이기에 미국과 중국 등 대국들을 움직일 수가 있었고, 그 움직임의 최종 종착지는 헌법과 당 규약에 나와 있는 반제평화전략일 수밖에 없게 되어 진다. “조선노동당은 자주, 평화, 친선을 대외정책의 기본 이념으로 하여 반제자주역량과의 연대성을 강화하고 다른 나라들과의 선린우호관계를 발전시키며 제국주의의 침략과 전쟁책동을 반대하고 세계의 자주화와 평화를 위하여 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투쟁한다.”(노동당 규약 서문 중에서)

  북의 반제평화전략은 이렇듯 다른 여러 나라들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또렷하고 확고하다. 즉, 세계 최대의 핵강국이자 ‘마지막’ 제국주의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을 상대로 펼쳐진 전선이기에 그 정당성 또한 대단하다. 그러다 보니 각국에게 “조선반도의 긍정적인 정세발전을 추동하려는 우리의 성의있는 입장과 노력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하고는 “평화를 파괴하고 정의에 역행하는 온갖 행위와 도전들을 반대하여 투쟁하여야 할 것”을 호소(주문)할 수가 있는 것이다.
  
  북은 그렇게 전략국가, 북의 외교버전 ver.2를 재가동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말로써만이 아니라, 핵강국으로서의 힘을 갖고서 말이다. 그 연결고리에 ‘세계비핵화’라는 새로운 반제평화전략이 숨어있고, 결과도 참으로 궁금하게 되었다.

  (2) ‘핵동결 선언’과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상관성에 관한 서술이다

  앞에서 누누이 얘기하고 있었듯이 결론적으로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그 자체가 미국이 1차 정상회담 때 합의했던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이해를 이제야 정확히 했다는 것이고, 그 회담전략으로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 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위 글, “■ 2019년 신년사에서 밝힌 ‘핵동결 선언’이 갖는 그 정치적 의미는?” 참조)  

  그 전제하에 우리가 살펴봐야할 몇 가지 지점은 첫째,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가 함의하는 그것은? 둘째, 그러면 ‘스몰딜’ 방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셋째, 항구적 평화체제 수립과 주한미군 철수문제와의 그 상관성은? 이다.   

  ①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가 함의하는 그것은? 

  다음의 한편 그 기사가 힌트를 주고 있다. 2018년 12월 20일 <조선중앙통신>에 실린 기사하나가 그것인데, ‘낡은 길에서 장벽에 부딪치기보다 새 길을 찾는 것이 나을 것이다’라는 제목의 논평기사이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미국은 이제라도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용어의 뜻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며 특히 지리공부부터 바로 해야 한다. 조선반도라고 할 때 우리 공화국의 영역과 함께 미국의 핵무기를 비롯한 침략무력이 전개되어 있는 남조선지역을 포괄하고 있으며 조선반도 비핵화라고 할 때 북과 남의 영역 안에서 뿐 아니라 조선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주변으로부터의 모든 핵위협 요인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데 대해 똑바로 알아야 한다. (중략) 애초에 비핵지대였던 조선반도에 핵무기를 대량 끌어다놓고 핵전략 자산의 전개와 핵전쟁연습 등 우리를 핵으로 끊임없이 위협함으로써 우리가 핵전쟁 억제력을 보유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한 장본인이 미국이다. 그렇게 놓고 볼 때 조선반도 비핵화란 우리의 핵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의이다.” 

  참으로 중대한 내용을 많이 담아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의미가 미국의 핵전략 자산들이 배치된 주일미국군기지들, 괌(Guam)의 미 공군기지, 미국의 전략잠수함 등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과 남의 영역 안에서 뿐 아니라 조선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주변으로부터의 모든 핵위협요인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가 그 증거문장이다.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가 정말 위와 같이 그렇게 해석되고 의미된다면, 그런  엄청난 결정을 트럼프 행정부가 할 수 있겠는가? 절대 할 수 없다. 주일과 괌 기지를 미 본토로 철수하는 문제는 미국의 동북아 지배질서와 연동된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동북아 지배질서를 포기하라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를 임기 4년의 트럼프 행정부가 실현해내기는 불가능한 일이 된다. 그래서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는 세계비핵화와 연동된 매우 장기적인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는 필연적으로 목표 재조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왜 부쩍 ‘스몰딜’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지가 이제야 그 의문이 풀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 속에는 미국이 핵패권 국가로서의 체면유지 때문에 ‘스몰딜’이라는 용어를 쓸 수밖에 없고, 그렇게 자기 합리화 과정이 필요할 만큼 ‘매우 깊은’ 수세에 빠졌음도 분명 보인다는 것이다. 해서 용어는 ‘스몰딜’이지만 그 내용까지 ‘스몰딜’일 수는 없고, 그 해결의 입구에도 ‘핵동결’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도 발견된다.

  연동해서 앞으로의 비핵화 공정도 <‘신고 → 검증 → 폐기’의 절차적, 기술적 공정이기보다는 ‘핵동결 → 핵군축 → 핵폐기’라는 정치적 해결과정>이 될 수밖에 없음도 안내한다 하겠다.   

  그 근거 첫째는, 신년사 제2부(남북관계)에서도 잠시 언급하였듯이 핵동결 선언이 핵보유 국가만이 취할 수 있는 그런 조처라는 사실을 암기해낸다면, 그런데도 이제까지 미국의 태도-북의 핵보유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와는 달리, 일언반구 논평도 없이 곧바로 제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응수한 것은 북을 핵보유국(전략국가) 대 핵보유국(전략국가)으로서 동등한 자격으로 핵협상에 응하겠다는 그런 의미밖에 있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겠다는 그런 의미와 같은 말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이 북의 양해를 받아 국제사회의 이목과 눈들 때문에 IAEA를 통한 검증절차를 이행시키는 그런 시늉은 해낼 수 있겠지만, 그 본질에는 미국과 북이 정치적 해결을 통해 그 비핵화프로세스를 완결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 의미는 결국 핵보유 국가가, 그것도 ICBM 등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한 전략국가가 핵보유를 ‘0(제로)’으 만든다는 의미에서의 ‘무(無)핵화(강조, 필자)’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서로 인정했다는 것과 같다. 

  바로 이 인식에 제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도, 북도 동의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도 ‘무핵화’가 핵무기와 핵시설이 아예 없어진다는 그런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가능성의 유일성은 핵을 가진 모든 국가들이 동시적으로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동의가 이뤄질 때만이 가능한 그런 개념이라 했을 때 핵을 가진 북만이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그런 ‘무핵화’는 절대 이뤄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 무핵화는 고사하고, 당장의 현실에서도 미국이 세계패권과 동북아 패권지위 유지와 관련된 그런 괌과 주일기지를 폐쇄한다든지, 거기에 배치된 핵전략자산들을 미 본토로 철수한다든지 하는 그러한 것들만으로도 트럼프 행정부가 할 수 있는 그런 권한범위 안에 있지 않다. 미국의 동북아 및 세계지배전략과 관련된 전략적 판단개념이기에 그렇다는 말이고, 북 또한 종국에는 세계비핵화, 그리고 지금 당장의 북미협상에서는 그러한 미 전략자산들의 한반도 완전철거가 목적이 되고 있는 상황 하에서는, 즉 그렇게 서로의 전략적 구상이 확인되어진 지금의 이 상황 하에서는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의 등가도 핵보유 전략국가인 북의 입장에서는 과거의 핵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현재와 미래의 핵과 그 시설들을 제거해나가는 그런 개념으로서의 비핵화여야 한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는 그런 비핵화개념이다.(해서 앞으로는 북만의 일방적 비핵화는 가능한 상상력의 범위영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해서 그 이후 진행될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공정은 ‘핵동결선언’ (과거의) 핵은 유지’ : 대북제재 해제와 한미군사훈련 중단 및 전략자산무기 한반도 진입금지’, 핵군축’ (현재, 미래)의 핵무기 및 시설 검증 및 폐기’ : 주한미군 완전철수, 평화협정체결과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완전 무핵화: 미국 무핵화’가 다 포함되는 그런 광의의 개념과 그 이행 로드맵 전체를 일컫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두 번째 근거는 이미 현실에서도 미국의 대북정책이 ‘가능하지’ 않는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정책목표보다는 ICBM 위협 제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가 미 의회에서도 대두되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미 하원 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으로 내정된 브래드 셔먼 의원은 1월 18일 <VOA>와 인터뷰에서 “북한에 제한된 양의 핵무기 보유를 허용하고 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것이 비핵화보다 현실적”이라고 주장한 것이 그 예다. 

  또한 지난해 12월 국무부 동아태국과 국제개발처 아시아국이 공개한 '공동전략보고서'에서는 "미국의 장기 목적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이나 "단기적으로는 핵개발 동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핵·탄도미사일 실험 및 분열성 물질 생산 중지 △비핵화 초기조치 획득을 열거한 바도 있다.

  이 외에도 이전과는 달리 현실 가능한 목표에 천착하자는 발언들이 쏙쏙 나온다. 마운트 미국과학자연맹 선임연구원은 "북을 비핵화하겠다는 비현실적 시도에 시간을 쓰느라 북으로부터의 위협을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중략)” 그렇게 지적했고<연합>, 클래퍼 전 미 국가정보국장은 "북의 비핵화, 더 이상 미국의 카드 아니다... 미국이 이를 수용하고 관리에 초점 맞춰야"라고 했으며, <블룸버그>는 "미국의 도전과제는 북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능력을 파악하고 동결시킨 뒤 해체할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라며 동결, 군축, 폐기의 수순으로 보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미국 내 16개 정보기관을 관장하는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1월 29일(현지시간)  “북, 모든 핵무기 포기하지 않을 듯”이라는 공개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듯 과거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가 이렇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사전 여론정지 작업과 같은 것이다. 충격완화를 위한 그 사전정지 작업으로 말이다. 

  비교적으로도 기간 미국의 북핵정책 목표가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서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최종적이고 전적으로 검증된 비핵화)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난해(2018) 11월 ‘핵리스트 제출 요구’를 잠정 폐기한다고 했던 것에서 다 확인되며 이런 일련의 초치들이 다 북핵정책 목표 수정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면 너무 과한 주장일까? 아니면 후퇴를 나름 정교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겠으나, 엄연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결론은 그 최종 종착지에게 미국은 북을 핵보유 국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 핵문제를 정치적으로 풀 수밖에 없다는 그런 입장으로의 최종정리이다.

  이유도 충분하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미국과 소련이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으며, 미중 간의 핵문제도 핵대결로 치닫지 않고 외교관계가 작동하여 해결한데서. 그렇듯 북핵문제도 북이 핵을 보유한 이상, 그것도 이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미본토를 실제 공격할 의사가 있는 그런 국가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갖고 있는 이상 정치 담판이라는 외교가 작동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 핵보유 국가 간의 핵문제 해결이 늘 그렇게 되어 왔듯이.

  ② 그러면 ‘스몰딜’ 방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부쩍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이 위에서도 잠시 언급한 ‘스몰딜’ 방식의 해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여기에는 미국의 궁색한 고충을 반영하고 있으며 체면유지를 위한 그 발버둥에 다름 아니다. 

  실체적으로는 북을 핵보유 국가로, 그것도 ICBM 등을 보유한 전략국가로 인정해야 되지만, NPT체제유지와 핵패권 유지를 위해서는 그럴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고육지책 논리가 바로 ‘스몰딜’이라는 해법 그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과 정치적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음을 위에서 이미 밝혀졌다. 이를 다시 한 번 요약해보면 그 첫째에 미국이 기간 고집했던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 해제’를 철회했다는 의미가 그 속에 담겨져 있고, 둘째는 그러다보니 미본토를 겨냥한 북의 ICBM 위협 우선 제거와 일부 제재해제를 맞바꾸겠다는 그런 식의 인식이 가능해진 것이고, 셋째는 ‘스몰딜’ 운운하는 그 방식에는 기술적으로 북핵 완전폐기가 불가능하다는 그런 인식을 내포하고 있어서 그렇다. 이른바 핵동결 → 핵군축 → 핵폐기의 순으로 가는 그런 경로의 전제와 함께, 위에서도 잠시 언급하였듯이 기술적 해결방식 아니라 정치적 해결방식으로 해결되어진다는 그런 의미이다.  

  이와 관련된 미국의 속내도 분명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월 11일 “어떻게 하면 미국민에 대한 리스크를 줄여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북·미 간) 대화에서 진전시키고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미국민의 안전이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보수 성향의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이에 대해 “미국이 본토에 대한 북한의 미사일 위협 문제만 해결되면 (북한과의) 합의를 수용할지 모른다”고 해석했다. 북미가 일단 핵동결과 대북 제재 일부 완화를 주고받는 합의를 하고 상호 이행하면서 신뢰를 조성한 뒤 다음 단계 협상으로 나아가는 ‘선 신뢰 조성, 후 비핵화’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그런 예측들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어찌 북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 논의가 정치회담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본질을 제대로 이렇게 이해하기만한다면 제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돌고 있는 그런 굉장한 미국의 희망사항, ‘스몰딜’과 같은 그런 ‘가짜뉴스’가 판치는 충분한 이유를 알 수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ICBM 폐기-제재 완화'에 합의하고 곧바로 관계개선과 비핵화를 위한 핵사찰·검증을 위해 상호 연락사무소를 평양과 워싱턴에 개설하고, 이 과정에 '종전선언'을 시행하고 '평화협정'도 추진한다는 그런 시나리오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북이 풍계리와 동창리 시설 현장검증 전문가 참관허용, 영변 핵시설 동결 등의 조치를 취하고 미국 자신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제재 면제, 인도적 지원 재개, 연락사무소 개설 등으로 합의될 것이라며 그 회담의 성격을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박지원 의원 같은 사람은 이에 대해 1월 15일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북의 ICBM 폐기와 개성공단 재개 등 미국의 경제 제재 완화 조치라는 딜이 이뤄질 것이라며 "(그 경우) 금강산 관광이나 혹은 개성공단 두 가지 정도는 합의가 될 것 아닌가, 그래서 경제협력 인도적 지원 차원의 제재완화가 될 것이다"고 판단한다.   이런 판단은 박 의원만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언론, 대북전문가들과 정치권에서도 유사 반복된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그들의 이러한 바람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우선, 금강산 관광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 등은 민족내부의 문제로써 이런 문제를 북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절대 (공식) 의제화하지 않는다. 좀 더 의역하자면 논의된다 하더라도 비공식 논의이며, 또 백번 양보하여 이 비공식 논의결과가 설령 공개된다 하더라도 그 공개수위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관련된 내용으로 포장될 것이다. (앞으로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남북의 협의사항을 존중한다든지, 남북 간의 교류협력을 적극 이해하고 지지한다든지, 기간 적대정책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다든지 ... 등등으로)      

  왜냐하면 북의 일관된 입장이 ‘민족내부의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우리끼리 해결해나간다는 그런 민족자주와 자결의 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우리 민족내부의 문제를 미국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논쟁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즉, 논쟁의 대상이 아니며 만약 미국이 실제 민족내부의 문제인 금강산 관광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에 그 브레이크를 걸어 놓았다면 이는 무조건 그 간섭을 철회해야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그 대책과 남북 간의 교류협력을 존중해줘야 하는 것이지 북미정상회담에서 공식의제로 채택하여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그런 것의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두 번째로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전 북은 일관되게 대북제제 해제와 종전선언을 주장했던 만큼, 그런 상황에서 북이 그 전제조건을 철회하지 않았는데도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그 대전제가 해결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논리적으로 맞는 것이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2일 "대북 제재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지만, 그러면서도 “몇몇 매우 확실한 증거를 얻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하여 그 출구전략을 제시한 것이 그것이다. 즉, ‘매우 확실한 증거’는 정치적 판단의 문제이고, 그 판단을 트럼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 되어서. 결과도 제2차 북미정상회담 2월 말 개최로의 확정이다.  

  그런 만큼,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 평화협정체결 문제를 비롯한 평화체제 구축문제와 북미간의 새로운 관계정립이라는 그런 방향에서 그 핵심내용이 다뤄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구체적인 이행방안으로. 

  내용은 북의 선(先)행동에 대한 상호신뢰의 징표로 존재했던 대북제재 해제와 종전협정보다는(이는 이미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그 자체로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해결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기 때문에)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의 주된 내용은 한반도 평화지대 구축과 관련된 일련의 프로세스 첫 단계라 할 수 있는 북의 핵동결 확인과 이에 대한 등가로 미국의 한반도내 전략자산들의 배치, 반입, 훈련 등 중단과 한미합동군사훈련 영구중지 등이 협의-확정될 것으로 보인다.(2019년 신년사가 이를 명확히 해준다.)

  이후 핵군축 단계에서는 이제껏 우리 국민들이 귀가 아프게 들어온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북미국교 수립 등 그런 것들이 해결되면서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체제 수립과 비핵화정책은 계속 실현되어 갈 것이다.

  이렇듯 북핵문제의 본질은 이제 그 전략적 우위가 미국이 아니라 북이고, 그 성격도 북핵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이고, 그 이행방식도 신고-검증-폐기의 그런 기술적 방식이 아니라 동결-군축-폐기라는 그런 정치적 방식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③ 항구적 평화체제 수립과 주한미군 철수문제와의 그 상관성은?  

  그 과정에서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체제구축 수립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것은 주한미군 철수문제이다. 그런 만큼, 어떤 연관이 있는지 하는 그런 문제는 필히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결론도 매우 ‘깊은’ 연동관계가 있다. 바로미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서 방위비 분담, 동북아평화유지군 등 그런 문제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도저히 희석될 수는 없다. 본질적으로도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 주한민군 철군문제는 상수로 밖에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무조건 철군이 그 정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최종적으로 향후 북미정상회담에서는 꼭 이 문제가 다뤄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어떻게? 상상해보면 이는 금방 알 수 있다. 

  주한미군이 계속주둔 되고 있는 한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졌다고 해도(‘주한미군 있는’ 평화체제) 한반도는 여전히 언제든지 다시 미국이 개입할 수 있는 그런 땅으로 전락하게 되어 진다. 이른바 ‘가역적’ 평화체제라는 것이다. 즉, 평화협정만 체결되어졌지 여전히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자주권은 획득하지 못했다는 의미와 같다. 

  철수의 당위성은 또한 6.12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종전선언을 구두로 약속하면서 가진 그 기자회견에서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주한미군을 집으로 데리고 오고 싶다”며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이미 공식화하였다. 이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문제로 그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채택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국가정책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또 연방연합제 통일로 가는 그 과정에서도 주한미군 철수문제와는 비례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 이른바 연방연합제는 ‘주한미군 있는’ 평화체제에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는 그런 통일방안이라는 말이다. 왜? 연방제 통일이 외세로부터 빼앗긴 자주권 회복과 전 민족적인 단합과 단결을 실현하는 그런 방식의 통일이라고 한다면 주한미군 주둔과 자주권은 비례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 그 연장선상에서 참고로 동북아 평화유지군도 반드시 털고 가야만 한다. 이유는 양국체제론에 그 기반을 두고 연방연합 통일대신, 남북 평화공존체제를 합리화시켜 주고 있는 그런 기저이기 때문이다. 

  (3) ‘새로운 길’에 대한 해석이다

  아래 한 문장 때문에 2019년 북 신년사에서 핵심키워드가 유일 결정될 뻔했다.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 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강조, 필자)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대전제에 대한 해석을 참 잘해내어야 한다. 다름 아닌, ‘새로운 길’이라 하여 제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그 ‘새로운 북미관계’ 그 자체가 파괴되고, 무조건적인 ‘미국과의 힘 대결 추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길’이라 하여 ‘새로운 북미관계’수립 그 자체가 궤도 이탈되는 그런 북의 독자적인 힘 노선이라기보다는 그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한 방도가 ‘대화와 협상’의 방식보다는 다른 방도로도 바뀔 수 있다는 그런 엄중한 경고로 해석해 내어야만하기 때문이다. 

  즉, 그래야만 북의 전략적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019년 신년사에서도 “호상 인정하고 존중하는 원칙에서 공정한 제안을 내놓고 올바른 협상 자세와 문제 해결 의지를 가지고 임한다면 반드시 서로에게 유익한 정착점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는 그 의미가 읽혀지고 ‘새로운 길’에 대한 진정성을 읽어낼 수가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도 언필칭 전문가들과 언론들, 정치인들은 그 ‘새로운 길’을 2019년 신년사 중 북미관계에서 그 핵심 키워드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으면서 그 ‘새로운 길’에 대한 해석을 병진노선의 부활(‘과거의 길’로 해석), 혹은 중국과의 밀월 등으로 오독해내고 있다.  

  <연합뉴스>는 1월 3일자 기사에서는 "김정은 '새로운 길'은 미국 대신 중국과 손잡기 시사"라는 제목기사가 그 예이고, 통일연구원 또한 같은 날 내놓은 신년사 분석 자료에서 “새로운 길 모색 언급은 과거 경제·핵 병진 노선으로의 회귀나 과거로의 퇴행으로 보긴 힘들다”며 “기본적으로 그런 길들은 새로운 길이라기보다는 과거의 길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연구원은 “결국 미국의 상응 조치들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6·12 합의를 이행할 필요가 없다는 수사적 배수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까지 해석하였다. 

  결론적으로 둘 다 참으로 1차원적인 해석에 불과할 뿐이고, 특히 통일연구원의 해석은 그야말로 정말 형이하학적이다. 병진노선으로의 회귀가 ‘과거의 길’이기 때문에 ‘새로운 길’이 아니라는 그런 식의 분석은 연구원이 내놓을 수 있는 그런 분석법이 결코 아니다.

  이유는 북이 설령 병진노선으로 되돌아 갔다하더라도, 이것에 대한 분석기준은 대개 어느 한 국가가 전략노선을 변경할 때 그 본질이 해당시기 목표가 어떻게 변화되었느냐에 따라 그 전략노선의 변경이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인과관계가 핵심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에 따라 전략노선의 유의미성을 판단해내어야지 그냥 과거와 같은 동의어가 사용되어졌다하여 그것 때문에 ‘과거의 길’이고, 그 전략적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그렇게 해석해내는 것은 참으로 정직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병진’이라는 단어가 다시 재등장했다는 것만으로 ‘과거의 길’이라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국가의 전략적 목표 달성여부, 시대적 상황, 역사적 과업 등 이런 것들을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그 소요시기에 맞는 그런 전략노선이 채택되어졌느냐, 아니냐가 그 본질로 되어져야만 한다. 했을 때 단순히 같은 ‘병진’용어가 재등장 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과거의 길’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백번 양보하여 생각해볼 때 굳이 그러한 생각을 계속 갖고 가고 싶다면 기간 북이 핵-경제 병진노선에 대해 ‘혁명적 승리(완전 승리)’라는 총화를 해놓고도, 왜 또 다시 핵-경제 병진노선을 들고 나오느냐? 하는 그런 인식의 연장으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계속 가져가고 한다면 그런 의도까지 매도할 수는 없다고 봐진다.  

  그렇다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인식적 오류는 경계해야 한다. 다름 아닌, 윗글에서도 잠시 언급되었지만, 1960년대의 ‘국방-경제 병진노선’과 2010년대의 ‘핵-경제 병진노선’에는 같은 ‘병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도 그 어느 누구하나 2010년대의 병진노선에 대해 낡은 ‘과거의 길’로 진입한 전략노선이었다는 그런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똑같은 논리로 그렇다면 2018년에 마감한, 그것도 ‘혁명적 승리’로 총화한 그 병진노선이 설령 1년 만에 다시 재등장한다 하더라도 그 용어의 재등장만으로 ‘과거의 길’로 낙인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40년의 기간은 되고, 1년의 기간은 안 된다는 것도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전략노선이 기간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시대적 상황, 역사적 과업달성 여부, 소여시기의 전략적 목표 달성여부 이런 것들로 판단해야 하는 그런 개념이이서 그렇다.) 연동해서 ‘선군정치’를 내세웠던 김정일 집권시기에도 북은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사실상의 선군경제노선도 넓은 개념으로서는 병진노선인데, 그렇다면 이 또한 설명할 길은 없다. 

  다시 말해 결론은 해당시기에 전략상 필요하다면 재등장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본질이라는 말이다.

  바로 그 전제로 지금의 정세 하에서 정말 정세를 냉정하게 분석해봤을 때 그 ‘새로운 길’을 다시 병진노선으로 회귀해야 할 만큼 그렇게 급변한 정세변화가 일어났느냐하는 그런 문제로 해석해내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선, 상황적으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예상되어 있는 등 북미협상은 계속 진행형에 있어 병진이 등장할 만큼, 그 전략적 환경이 절대적으로 변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억측이 따른다는 점이다. 둘째는, 기간 핵-경제 병진노선을 가장 최상위의 의미가 있는 ‘혁명적 승리’로 결속(총화)하였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다시 그 병진노선 구호를 제시한다는 것은 다소 그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셋째는, 핵보유국이자 전략국가는 굳이 병진노선을 채택하지 않더라도 핵전력 강화의 길은 충분이 걸을 수가 있다는 점이다.      

  이상으로부터 ‘새로운 길’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병진노선의 재등장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과의 신(新)밀월을 지칭하고 있는 것일까? 이 또한 가능하지 않는 발상이다. 왜냐하면 북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대국주의 의존전략을 구사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비록 그 해당국가가 사회주의 형제국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더더욱 가능하지 않는 발상이 될 수밖에.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이는 충분히 증명되는 범위 안에 있다. 

  북은 단 한 번도 중국, 러시아(소련)와 관계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그것과는 상관없이 기대지 않았다. 자주, 친선, 평화의 원칙에 입각한 대외정책이 매우 일관되게 작용한 결과이다. 그러면서도 또한 중국 등 사회주의권, 러시아 등 친선국과의 관계는 항상 우호적이었다. 왜냐하면 이들 국가들을 통해 평화, 번영을 추구한 것이 북의 아주 오래된 전통적인 대외정책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후 북미관계가 제 아무리 좋아지더라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이들 전통 우호국보다 우선시하는 그런 상황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뜻은 또한 대국주의와는 더 철저하게 자주, 평화, 친선의 외교관계가 실현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른바 사회주의 형제국가와의 관계 우선주의는 여전히 작동할 것이며 또한 여전히 그렇다하더라도 중국 등 사회주의대국에 기대는 그런 국가발전전략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미국과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면 도대체 ‘새로운 길’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상상 가능한 범위로는 전쟁도 생각할 수 있다. 근거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북은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싸울 수 있는 그런 국가이기 때문이다. 시늉만이 아니라 실제 전쟁을 하겠다는 그런 국가적 의지가 있는 유일국가임이 분명해서 그렇다. 

  그런 만큼, 미국을 최대한 압박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방식도 상상할 수 있다. 역사적 경험으로도 이는 충분히 증명된다. 미국과의 전쟁경험이 그것이다. 그것도 승리한 경험이다.(북의 판단으로) 그러니 신년사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하여 전쟁을 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전쟁 그 자체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그 형태와 내용, 즉 당시에는 재래식 중심의 전쟁이었다면 지금 현대전은 상상할 수 없는 가공할만한 현대무기들로 치러지는 것만큼 ‘새로운’에 충분히 부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론은 그리 ‘가능성 그리 높지 않다’이다. 이유는 아래 글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핵전력 강화와 연동된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 전략국가에 걸 맞는 최대높이의 정치군사적 압박,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 및 민족공조에 의거한 역 포위 전략 등 다양한 압박수단들이 존재하고 있어서 그렇다.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유효실탄들이 많은데, 굳이 인류의 재앙을 초래할만한 최후의 수단인 핵전쟁을 선택한다? 그렇게 현명하지도 가능성이 높은 발상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길? 우선은, 핵전력 강화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핵보유국의 핵전력 강화는 특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군사영역과 경제영역에서 진행할 수 있는 매우 일상적인 활동들이다. 북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조건에서는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운용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인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해 신년사에서 대량생산과 실전배치라는 핵전력 강화를 언급한 이유도 그런 인식의 연장이라고 봐진다. 

  그리고 이는 또한 핵보유 국가들은 물론이고, 설령 미국과 북이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 하더라도 그 약속과도 당장 충돌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이유는 위 글에서 이미 밝혔듯이 완전한 비핵화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공정을 거쳐 먼 훗날 실현될 장기과제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와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의 ‘의미 있는’ 행보 하나가 눈에 띈다. 2018년 11월 16일 보도된 내용,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지도 과정에서 언급된 "우리 당의 정력적인 영도 아래 오랜 기간 연구개발 되어온 첨단전술무기(강조, 필자)는 우리 국가의 영토를 철벽으로 보위하고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비상히 강화하는 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고 밝힌 그 대목이 그것이다. 

  동시에 (핵전력 강화의) 그 본질을 미사일 시험발사(실전) 재개로 국한해서 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국가 핵무력 완성국가에서는 핵전력 강화를 핵시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 없이도 진행할 수 있는 그런 충분한 능력과 조건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시뮬레이션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다. 

  또한 그렇게 볼 수 있는 그 근거에는 핵동결을 왜 처음부터 왜 그렇게 완결적인 형태로 선언하지 않고, 이른바 미완의 핵동결‘3불’정책에서 완성된 핵동결 ‘4불’로의 정책전환이 왜 일어났느냐 하는 그런 문제에 천착하면, 숨은 1cm를 찾을 수가 있다.  

  다름 아닌, 미국을 최대한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북미 협상의 진척 정도를 봐가면서 내올 수 있는 그런 정책이었단 말인데, 그 연장선상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잡혔다는 것은 제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많은 부분에서 일정정도의 긍정적 진척이 꽤 진행되었음을 의미해서 그렇다.   

  다음으로는, 전략국가에 걸 맞는 정치군사적 압박도 상상 가능한 범위이다.  

  여기서 잠깐, 전략국가와 관련한 해설을 해내면 김정은 위원장은 2017년 11월 29일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난 며칠 뒤인 12월 22일 전략국가라는 개념을 썼다. 당 세포위원장 대회에서였다. 그때 처음 등장했다. 

  이의 정치적 의미가 전략국가라는 것이 세계체제의 관점에서 국제질서를 변경시킬 힘을 실질적으로 가졌느냐, 안 가졌는가가 더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문제이고, 그 핵심에 바로 핵무력 개념이 있고, 그 핵무력의 실체가 첫째는, 핵보유와 함께, 핵무기를 보유했느냐의 문제. 둘째는, 그 핵무기 보유로 인해 게임 체인지 국가가 될 수 있느냐의 문제. 셋째는, 그 게임 체인지를 통해 인류의 염원이라 할 수 있는 ‘핵 없는 세계’를 추동해 나갈 수 있느냐로 나타난다 했을 때 북이 지금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얻어 내려는 결과가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체제, 북미 간의 새로운 관계,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라고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세계질서의 근본변화와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 누가 감히 얘기할 수 있으랴. [전략국가에 대해서는 필자의 <통일뉴스> 기고 글(2018.06.05.), “정상국가와 전략국가 사이(하): 북한은 전략국가가 분명하다” 참조] 

  그렇게 북은 한 치의 양보 없는 치열한 북미대결전에서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에 이어 국가 핵무력 완성까지 한 핵강국이 되었기에 세계 정치구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국가 반열에 분명 들어섰다.(경제력과 비례한다는 그런 개념으로서의 전략국가를 이해한다면 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북이 전략국가가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일본이 왜 전략국가이지 않는가? 이 물음에 답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북이 왜 전략국가인가? 도 충분히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국가가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사회주의권과의 동맹관계 강화, 제3세계 국가들과의 세계자주역량 재구축, 민족공조이념 복원에 의한 남북의 공동전선, 미국(1) 대 북-중-러-남의 다자구도 구축 등 전략국가가 할 수 있는 그런 정치·외교적 압박은 충분히 미국을 설득해낼 수 있는 그런 압박수단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 결론을 대신하며

  이제 트럼프는 ‘사랑에 빠졌다’는 둥 그렇게 ‘썸’만 탈 수 없게 되었다. 핵동결 선언과 ‘새로운 길’은 정말 ‘사랑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 것이다.  

  실증적으로도 제2차 북미정상회담 그 자체가 회담개최의 대전제였던 제재해제와 종전선언(혹은, 생략하고 바로 평화협정체결로 직행하는 것도 가능하다)에 대해 공식, 혹은 비공식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며, 또 ‘다자 협상’으로 포장된 중국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1차 때와는 달리 미국이 일언반구가 없다는 것은 분명 미국이 2차 정상회담에 응할 태세가 완료되어다는 의미와 같다.   

  해서 북미 간의 ‘새로운 관계’와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시간표는 보다 분명 빨라질 것이고, 비례해서 남북관계도 연동되어져 숨 가쁘게 돌아갈 것 같다. 

  희망은 분명 그렇게 동 터오고 있음이다. 북미관계에는 오랜 적대관계, 그것도 ‘철천지원수’ 관계’가 끝장내지고, 남북관계는 분단 74년 만에 그 재결합의 서광이 깃들려 한다. 어찌 흥분되고 감격에 복받치지 않겠는가?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마침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미의 관계도 그 유례가 없을 만큼,  선순환 구조가 잘 맞아떨어지는 그러한 상황과 맞닿았다. 분단 70여년 만에 찾아온 엄청난 기회이고, 이는 ‘모세의 기적’에 비견할 만하다. 

  결코 이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 유대민족이 그 타이밍 ‘모세의 기적’ 때문에  살아남았듯이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국운상승도 결국 타이밍을 잡아야만 하는 것과 같다. 

  북에게는 국가 핵무력 완성이라는  정치군사적 힘이 있고, 남에게는 촛불정부라는 정당성이 있고, 미국에게는 국가우선주의라는 자국 중심의 정책우선주의가 있을 때, 그렇게 3박자가 다 맞아떨어질 때 기회를 확 잡아야 한다. 충분한 기회이다. 

  황금 돼지해가 그렇게 우리 민족을 일깨우고 있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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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중환자실, 흙더미…시간을 품은 이야기들의 집

여관, 중환자실, 흙더미…시간을 품은 이야기들의 집

등록 :2019-02-02 09:07수정 :2019-02-02 09:11

 

[토요판] 커버스토리
내가 시작된 집 

사진가 24명이 그들 삶 시작된 곳
수십년 만에 찾아가 사진으로 기록
옛 모습 그대로 영업하는 여관부터
주차장 또는 고속도로 중앙선으로, 
재개발이 흔적 없이 지운 집들까지 

 

24명의 사진가가 그들의 삶이 시작된 곳을 찾아 사진으로 기록했다. 재개발로 철거돼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집, 반짝이는 고층빌딩숲에 지워진 집, 축구 연습장을 만들기 위해 흙더미로 변한 집, 가장 낮은 자들을 품는 무료병원 중환자실로 바뀐 신생아실,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세월을 쌓아온 집들까지…. 과거 옛집에서의 한때를 찍은 사진과 수십년 만에 새로 찍은 사진이 포개져 서로에게 말을 건다. 누군가가 시작된 집에서 사진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대가 사람 할퀴며 역사 쓰는 동안

 

사람 품었던 집은 말없이 시대 기억

 

내가 떠난 집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세계가 나를 흔들고 무너뜨릴 때도

 

끝내 살아남아 나를 지탱할 이야기

 

 

 

농촌의 가난이 몰려드는 곳에 도시가 있었다. 서울까지는 도착했으나 그 이상은 가지 못한 사람들이 비좁은 집에 몸을 포개 살았다. 1966년 박상찬(48·음악단체 프로젝트21앤드 대표)의 부모가 경남 고성군에서 이사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열댓평 집에선 3대 3가구가 가족 구분 없이 섞여 잤다. 5년 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식구는 12명(그의 가족 7명+작은아버지 가족 4명+할머니)이 됐다. 좁은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앵두를 따 먹고, 닭싸움을 하고, 개와 달리기를 했다. 그의 가족은 6살 때(1977년) 북아현동으로 이사 갔고 남아 있던 작은아버지 가족은 1985년까지 살았다. ‘86 서울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서울시가 ‘무허가 건축물을 정화한다’며 허물었다. 골목 안쪽에 있던 판잣집들이 철거돼 골목과 합쳐졌고 집이 있던 자리엔 담장이 세워졌다. 그가 수십년 만에 옛집 터를 찾아 카메라로 찍었다. 41년 만에 찍은 골목 사진 위에 어린 시절의 사진(그가 4살 때 장미를 꺾어 누나에게 주는 장면)을 포갰다. 사진 박상찬 제공, 그래픽 이정윤 기자 bbool@hani.co.kr
농촌의 가난이 몰려드는 곳에 도시가 있었다. 서울까지는 도착했으나 그 이상은 가지 못한 사람들이 비좁은 집에 몸을 포개 살았다. 1966년 박상찬(48·음악단체 프로젝트21앤드 대표)의 부모가 경남 고성군에서 이사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열댓평 집에선 3대 3가구가 가족 구분 없이 섞여 잤다. 5년 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식구는 12명(그의 가족 7명+작은아버지 가족 4명+할머니)이 됐다. 좁은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앵두를 따 먹고, 닭싸움을 하고, 개와 달리기를 했다. 그의 가족은 6살 때(1977년) 북아현동으로 이사 갔고 남아 있던 작은아버지 가족은 1985년까지 살았다. ‘86 서울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서울시가 ‘무허가 건축물을 정화한다’며 허물었다. 골목 안쪽에 있던 판잣집들이 철거돼 골목과 합쳐졌고 집이 있던 자리엔 담장이 세워졌다. 그가 수십년 만에 옛집 터를 찾아 카메라로 찍었다. 41년 만에 찍은 골목 사진 위에 어린 시절의 사진(그가 4살 때 장미를 꺾어 누나에게 주는 장면)을 포갰다. 사진 박상찬 제공, 그래픽 이정윤 기자 bbool@hani.co.kr
내가 시작된 집에서 그 이야기들도 시작됐다.

 

내가 이 세계로 들어와 섞인 이야기. 나를 이 세계에 심은 사람들의 이야기. 나와 그들이 이 세계에서 ‘서로’가 된 이야기. 나를 이 세계가 흔들어도 끝내 살아남아 나를 지탱해온 이야기.

 

 

시대가 사람을 할퀴는 동안

 

나(홍영진·67)는 섬의 여관에서 시작됐다.

 

서울대병원 소아과 의사였던 아버지(홍창의·96)는 한국전쟁 때 제주도로 파견됐다. 1951년 1·4 후퇴 때 병원도 부산과 제주로 피란했다. 아버지는 서울대병원이 제주 한림에 만든 구호병원에서 일했다. 마땅한 병원 건물이 없어 면사무소 창고를 빌려 피란민들과 제주도민들을 진료했다.

 

아버지의 동료가 소개해준 숙소가 태양여관(제주도 제주시 한림읍)이었다. 어머니가 임신 중이어서 방이 3개뿐이던 여관 전체를 빌려 썼다. 여관은 한림항으로 나가는 뒷골목에 있었다. 육지에서 온 외판원들이 들고 온 물건들을 파는 동안 머무는 여관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가끔 한림항에서 육지의 전쟁을 걱정하며 바다 저편 비양도를 바라보곤 했다. 1951년 7월 의료진이 부산으로 합류했을 때도 아버지는 외과의사 한명과 제주에 남아 환자들을 돌봤다.

 

나는 1952년 그 여관에서 태어났다. ‘결과적으로’ 나는 장남이 됐다.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형이 전쟁통에 세상을 떠났다. 1953년 귀경한 서울대병원으로 되돌아갈 때까지 나의 식구들은 태양여관에서 살았다. 나의 기억엔 없는 여관을 아버지는 그리워했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했다. 수차례 방문 끝에 2015년 여관의 위치를 확인했다. 내 나이 62살에 내 출생의 장소를 처음 봤다.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 태양여관의 이야기도 계속되고 있었다. 6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름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1층짜리 건물은 2층이 돼 있었고 3개뿐이던 방도 7개로 늘어나 있었다.

 

그사이 “세상이 아프면 의사도 아파야 한다”던 아버지는 한국 소아의학계의 ‘어른’이 됐다. 1987년 6월항쟁 직후 창립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의 초대 이사장이 됐고, 아버지의 이름을 딴 책(1975년 첫 발간 뒤 263명의 필자가 참여해 현재 11판까지 낸 <홍창의 소아과학>)은 선구적인 한글 의학 교과서로 평가받았다. 아버지를 따라 소아과 의사가 된 나도 전공의 시절 의사가 부족한 제주도에서 파견 근무했고 인의협 창립에도 참여했다.

 

지난해 추석을 맞아 아버지와 나, 내 아들들과 손자, 4대가 제주도로 건너가 태양여관 앞에 섰다. 낡은 새시문에 빨간 글씨로 이름을 새긴 여관 안에선 시간이 품어온 이야기들이 묵고 있었다. 지난 시간을 살아낸 세대와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갈 세대가 서로를 대견해하며 여관 앞에서 오랜 이야기를 풀어냈다.

 

2018년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태양여관은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서울대병원에서 파견 간 소아과전문의 홍창의(오른쪽 둘째·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초대 이사장)씨가 2년 동안 머물며 아들 홍영진(오른쪽 첫째·전 인하대병원 소아과 과장)씨를 낳은 곳이다. 지난해 추석을 맞아 4대가 제주도로 건너가 태양여관 앞에 섰다. 홍영진 제공
2018년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태양여관은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서울대병원에서 파견 간 소아과전문의 홍창의(오른쪽 둘째·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초대 이사장)씨가 2년 동안 머물며 아들 홍영진(오른쪽 첫째·전 인하대병원 소아과 과장)씨를 낳은 곳이다. 지난해 추석을 맞아 4대가 제주도로 건너가 태양여관 앞에 섰다. 홍영진 제공
나(안선영·49)는 동대문상가아파트(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다동 524호에서 시작됐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던 부모님이 1970년 부산을 떠나 방 하나, 부엌 하나인 집에 닿았다. 12평 남짓인 작은 집엔 한해 먼저 상경한 큰아버지 여섯 식구(큰아버지 부부와 사촌남매 넷)가 살고 있었다. 두 가구 합쳐 아홉인 집에서 단칸방을 쪼개 할머니 방을 따로 만들었다. 밤에 몸을 움직이려면 자고 있는 식구를 타고 넘어야 할 만큼 집은 비좁았다.

 

숨을 곳 없는 집에서 신기하게도 내가 생겼다. 입 하나 느는 게 큰 부담이던 시절이었다. 어머니가 큰어머니의 눈치를 볼까 염려한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절대 아이를 지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해 연말 나는 기어코 태어났고 식구를 두자릿수로 만들었다. 인근 병원 의사가 집으로 왕진을 와 어머니의 출산을 도왔다.

 

농촌의 가난이 몰려드는 곳에 도시가 있었다. 서울까진 도착했으나 그 이상은 가지 못한 사람들이 5층짜리 아파트의 4층과 5층에 모여 살았다. 1~3층에선 노동자가 된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이 땀으로 젖은 동대문의 일상을 구성했다. 누군가는 한국이 입는 옷을 재단했고, 누군가는 한국이 신는 신발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옷과 신발을 등에 지고 날랐고, 누군가는 누군가가 먹는 밥을 머리에 이고 배달했다.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과 딸로서 그들은 가난한 노동을 구원하느라 바빴다.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집에서 직선거리 600m 떨어진 동화시장에서 양복기술자로 일했다. 한 층을 두개 층으로 분리해 아래층에선 미싱(재봉틀)을 돌렸고 다락이 된 위층에선 재단과 ‘마도메’(미싱 작업 뒤 단추 등을 다는 마무리 손바느질·일본식 봉제용어)를 했다.

 

내가 태어나기 한달 전 붉은 화염(1970년 11월)이 일었다. 아파트에서 300m, 동화시장에선 100m도 안 되는 거리(평화시장)에서 스물두살의 재단사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몸에 불을 붙였다. 그의 죽음에 놀란 만삭의 어머니는 두 팔로 뱃속의 나를 꼭 감싸 안았다. 내가 태어나기 8개월 전엔 서울시가 지은 와우아파트가 무너졌고(4월), 내가 태어나고 일주일 뒤(12월15일)엔 제주에서 부산으로 항해하던 남영호가 침몰했다. 불타고 무너지고 침몰하는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던 때였다. 3년 뒤 우리 식구는 그 좁은 집에서 분가(종로구 충신동)했다. 대학생이 된 나는 학생운동을 하며 그동안 외면하고 살았던 동대문의 전태일을 다시 만났다.

 

사진을 찍으러 45년 만에 찾아간 아파트는 재개발이 바꾼 풍경 속에서도 옛 모습(신발 도매상가로 특화)을 유지하며 여전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촬영 몇달 전 어머니가 쓰러졌다. 뇌손상으로 기억이 흐려진 어머니의 뿌연 이야기를 부여잡고 내가 시작된 집을 찾아가 사진에 담았다. 낡은 아파트의 계단 창문 너머에 우리 식구가 아파트를 떠나던 해 지어진 ‘동대문맨숀’이 있었다. 그 잿빛 아파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 옛날 열 식구의 빨래를 들고 옥상을 오르내리던 엄마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피를 토하며 생산량을 맞추던 시대를 견디고 탄생시킨 오늘은 그때보다 덜 고달플까. 나는 지금 나와 내 가족이 살아갈 작은 집을 짓고 있다.

 

2018년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1970년 안선영씨는 할머니와 큰아버지 식구가 같이 사는 12평 남짓 아파트에서 머릿수 10명을 채우며 태어났다. 그 한달 전 청년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 소식에 만삭의 어머니는 뱃속의 그를 꼭 감쌌다. 현재 신발 도매상가로 특화된 동대문상가아파트 다동의 모습. 안선영 제공
2018년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1970년 안선영씨는 할머니와 큰아버지 식구가 같이 사는 12평 남짓 아파트에서 머릿수 10명을 채우며 태어났다. 그 한달 전 청년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 소식에 만삭의 어머니는 뱃속의 그를 꼭 감쌌다. 현재 신발 도매상가로 특화된 동대문상가아파트 다동의 모습. 안선영 제공
나(윤수영·38)는 학살이 일으킨 공포 속에서 시작됐다.

 

아직 신혼이었던 부모님은 광주의 이층 양옥집(광주시 남구 양림동) 1층에 방 하나를 얻어 살았다. 집주인 식구들이 1층에서 같이 거주하며 공간을 나눠 가졌다.

 

1980년 5월 아버지의 직장은 전남도청 근처 전일빌딩(5·18 당시 계엄군의 헬리콥터 기총소사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에 있었다. 거래장부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러 출근한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머니는 나를 업고 금남로가 내려다보이는 집 앞 공원에서 혼자 무서워 떨었다. 밤에도 총소리가 들렸고 불꽃놀이 하듯 밖이 환했다. 소리가 새어나오는 집으로 총알이 날아든다는 소문에 어머니는 백일도 안 된 나를 이불로 말아 장롱 안에 숨겼다.

 

1년 뒤 여수(전남)로 이사 가며 떠난 그 집을 37년 만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갔다. 디자인회사로 바뀐 옛집 앞에서 주름진 어머니가 백발이 된 아버지의 팔짱을 꼈다. 시대가 사람을 할퀴며 역사를 쓰는 동안 사람을 안아주던 집은 말없이 시대를 기억하거나 기억에도 남지 못한 채 사라졌다.

 

 

나 없는 집을 지키며

 

사진들이 찍은 것은 존재가 아니라 부재였다.

 

내가 시작됐으나 이젠 내가 없는 곳을 기록했다. 수십년 만에 찍은 내 출생의 장소는 사람 대신 차들이 쉬는 공영주차장이 돼 있거나, 주차장을 나온 차들이 무섭게 내달리는 고속도로 중앙선이 돼 있었다. 수평을 깔고 앉은 수직의 고층빌딩으로 바뀌었거나, 재개발로 흔적을 잃고 아파트 단지 속으로 숨어버렸다. 내가 시작된 집을 담은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나였다.

 

나(최경아·49)는 죽음이 대기하는 병원에서 시작됐다.

 

1970년 내가 태어난 성가병원(재단법인 천주교성가회·서울시 강북구 미아동)은 1990년 성가복지병원(사회복지법인 성가소비녀회·성북구 하월곡동)으로 이름과 장소를 바꿔 무료병원이 됐다. 성가복지병원은 일반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 가난한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의탁하는 의료기관(후원: 국민은행 017-25-0001-379)이었다. 노숙인과 무연고자, 장애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찾아가 아픈 몸을 맡겼다.

 

내가 48년 만에 병원을 찾아갔을 때 옛 신생아실은 중환자실이 돼 있었다. 내 삶이 시작된 자리에 죽음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이 세계로 삶이 오고 가는 통로는 그렇게 연결돼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중학생 때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 처음과 끝을 맞는 삶들이 나를 운명처럼 글에 묶었다.

 

내 생의 자리에서 가장 낮은 생을 마무리하는 이들을 촬영하며 나(2018년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 부문 수상자)는 내가 걸어갈 길을 생각했다. 나(현재 르포문학작가)는 방송사에서 시사·다큐 작가로 20년 넘게 일했다. 2015년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기획이 거부당한 뒤 방송 일을 접었다. 나는 웅장하거나 으리으리한 것들에 내 글을 보태지 않을 것이다. 웅크리고 스러지는 것들 곁에서 나는 쓸 것이었다.

 

1970년 당시 서울시 도봉구 수유동: 최경아씨가 한살 때 집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최경아 제공
1970년 당시 서울시 도봉구 수유동: 최경아씨가 한살 때 집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최경아 제공
2018년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최경아씨는 1970년 미아동의 성가병원에서 태어났다. 48년 만에 찾아간 병원의 신생아실은 위치(하월곡동)와 이름(성가복지병원)을 바꿔 무료병원 중환자실이 돼 있었다. 일반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 가난한 환자들이 성가복지병원을 찾아 의탁했다. 최경아 제공
2018년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최경아씨는 1970년 미아동의 성가병원에서 태어났다. 48년 만에 찾아간 병원의 신생아실은 위치(하월곡동)와 이름(성가복지병원)을 바꿔 무료병원 중환자실이 돼 있었다. 일반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 가난한 환자들이 성가복지병원을 찾아 의탁했다. 최경아 제공
나(조혜경·48)는 지금 없는 병원에서 시작됐다.

 

부모님이 살던 동네 산부인과병원(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이었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병원 건물의 위치를 찾아냈을 땐 음식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갓난아기였던 내가 40대 후반의 나이가 되는 동안 병원은 스파게티 전문점이 돼 있었고, 건물 벽에선 벽화로 그려진 나무가 진짜 나무(가로수)와 경계를 섞고 있었다. 내 카메라 앞에서 74살이 된 어머니가 포크를 들었다. 나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던 건물에 앉아 스파게티를 먹으며 어머니는 재빨리 가버린 세월을 낯설고 서먹서먹해했다.

 

나(정지현·45)는 어머니가 기억하기 싫어하는 집에서 시작됐다.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유달산 중턱에 그 집(전남 목포시 서산동)이 있었다. 찬 바람이 눈보라를 휘날리던 1974년 새벽에 나는 조부모와 고모·삼촌의 사랑을 받으며 태어났다. 그 사랑이 어머니에겐 미치지 못했다.

 

한해 전 태백산맥 끝자락의 너른 평야(전남 영암)에서 시가로 온 어머니는 고된 시집살이를 겪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밥을 이불을 덮어 아랫목에 두면서도 갓 결혼한 어머니에겐 누룽지 먹을 시간도 주지 않았다. 물 길으러 갈 때를 빼곤 대문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며 어머니는 눈물겨워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어머니에게 고모들은 “음식 잘하는 걸 보니 어디서 식모살이라도 하다 왔나 보다”며 핀잔을 줬다.

 

1992년 할아버지 사망(이후 할머니는 부모님의 분가(1976년)한 광주 집에서 생활) 뒤 처음으로 지난해 어머니와 그 집 앞에 섰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던 집을 딸과 오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도 어머니는 집 곳곳에 묻은 기억들을 되살렸다. 태어난 시각에 맞춰 사진에 담은 집의 빛깔은 새벽만큼 검푸르렀다. 이젠 우리 가족 아무도 살지 않는 쇠락한 동네에서 배를 타는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젊었다.

 

나(이연호·50)는 흙더미로 변한 집에서 시작됐다.

 

부모님이 결혼 뒤 마련한 첫 보금자리(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였다. 집은 김포공항에 바짝 붙어 있었다. 공항에 취직시켜준다는 사람의 말을 믿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은 집에 아버지가 세를 얻었다. 그 사람은 ‘와이로’(뒷돈)만 챙기고 연락을 끊었다.

 

집에 있으면 비행기 뜨고 내리는 소리로 귀가 멍했다. 비행기가 머리 위로 날아갈 때마다 비행기 따라 고개를 쳐들던 나는 거꾸로 넘어져 논두렁에 처박혔다. 공항을 포기한 아버지는 미군부대에서 일했다. 아버지가 출근해 집을 비운 사이 큰아버지가 와서 살림살이를 차에 싣고 성남(경기)으로 가버렸다. ‘반강제 이사’를 당한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성남에서 터를 잡고 산다. 비행기 소리에 잠을 설치느라 우리 형제가 많아졌다고 어머니는 그 시절을 웃으며 회상했다.

 

지난해 어머니(아버지는 2010년 작고)와 방문한 옛집은 철거당해 축구장 터가 돼 있었다. 흙과 폐자재가 쌓인 집터에 서서 어머니가 어깨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올려다봤다. 50여년 전에도 어머니는 저 자리에서 출근하는 아버지를 배웅하고 있었겠구나 생각했다.

 

1969년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갓난아기 때 이연호씨가 김포공항 옆에 위치한 집에서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다. 아버지는 김포공항에 취직시켜준다는 사람의 말을 믿고 공항 옆에 세를 얻었다. 이연호 제공
1969년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갓난아기 때 이연호씨가 김포공항 옆에 위치한 집에서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다. 아버지는 김포공항에 취직시켜준다는 사람의 말을 믿고 공항 옆에 세를 얻었다. 이연호 제공
2018년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이연호씨가 45년여 만에 찾아간 옛집은 축구장 터로 철거돼 흙더미가 돼 있었다. 어머니가 폐자재가 쌓인 집터에 서서 어깨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연호 제공
2018년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이연호씨가 45년여 만에 찾아간 옛집은 축구장 터로 철거돼 흙더미가 돼 있었다. 어머니가 폐자재가 쌓인 집터에 서서 어깨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연호 제공
나를 내보낸 집들을 시간이 통과하자 시간이 흘린 이야기들이 남았다. 방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선 나는 맷돌질하는 세상에 갈리지 않으려고 세상보다 빨리 돌았다. 집이 헐려 사라져도 맷돌 사이로 떨어진 이야기의 가루는 땅에 붙어 날아가지 않았다. 그 이야기가 건네는 위안에 의지하며 나와 그들과 이 세계의 이야기도 계속될 것이었다.

 

*태어난 집을 이야기하는 사진집단 ‘포토청’의 단체전(‘Birthplace’)이 2월1일부터 28일까지 경기도 성남시 ‘갤러리 카페앤드티’(중원구 산성대로 594 세영빌딩 3층)에서 열린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1992년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 당시 한살이던 ‘아기 김혜리’가 집이 있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유모차를 타고 있다. 김혜리 제공
1992년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 당시 한살이던 ‘아기 김혜리’가 집이 있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유모차를 타고 있다. 김혜리 제공

 

2018년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 27살이 된 김혜리씨가 같은 장소에서 카메라 앞에 앉아 아기 때의 사진을 들고 촬영했다. 김혜리 제공
2018년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 27살이 된 김혜리씨가 같은 장소에서 카메라 앞에 앉아 아기 때의 사진을 들고 촬영했다. 김혜리 제공

 

1973년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 성애병원 신생아실에 갓 태어난 김중백씨가 누워 있다. 김중백 제공
1973년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 성애병원 신생아실에 갓 태어난 김중백씨가 누워 있다. 김중백 제공

 

2018년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 현재의 성애병원 모습. 신생아실이 있는 신관(왼쪽)과 장례식장이 있는 본관 사이를 구름다리가 잇고 있다. 김중백 제공
2018년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 현재의 성애병원 모습. 신생아실이 있는 신관(왼쪽)과 장례식장이 있는 본관 사이를 구름다리가 잇고 있다. 김중백 제공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80947.html?_fr=mt1#csidx4ea1b244e835644a2f77e2fa7efe7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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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자본논리를 넘어 민중의 삶이 나아지는 나라”

“정치와 자본논리를 넘어 민중의 삶이 나아지는 나라”
 
노동시민사회단체, 설 맞이 합동기자회견 개최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02/02 [08:5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설을 맞아 사회대개혁을 요구하는 합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민중당)     © 편집국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설을 맞아 적폐청산과 사회 전면개혁을 요구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1일 오후 1130분 서울역 광장에서 합동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와 자본논리를 넘어선 민중의 삶이 나아지는 나라를 기원했다귀향길에 나선 국민들에게는 안전한 귀향길’ 선전물과 물티슈를 배포했다.

 

이들은 촛불항쟁 후 두 번째 설을 맞는 오늘우리는 개혁이 멈추고 실종된 곳에는 반드시 수구보수세력의 적폐가 부활하고썩은 내 나는 아우성이 들어찬다는 것을 다시 목도한다며 썩은 정치판을 흔들고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리며 국민의 힘으로 열어놓았던 한국사회 대개혁의 기회가 다시 역사의 뒤안길로 파묻히고 있는 꼴을 보고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개혁이 실종되고 촛불의 요구가 짓밟히는 만큼 노동자민중 삶의 고통은 커지고 깊어진다며 이런 가운데 노동자농민빈민중소영세상인 등 삶의 질이 나아질 거라 기대했던 민중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정부는 친재벌 정책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설 명절 이후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와 함께 1,000인 단식단을 구성하고 2월 9일 7차 범국민추모제를 진행할 것이며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투쟁을 힘차게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이들은 노동자와 상인이 연대하고상인이 농민과 연대하고농민이 빈민과 연대하고빈민이 4.16 가족과 연대하고진보정당과 연대하고민중전체와 연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과세계보도에 따르면 합동기자회견에 참석한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예전 같으면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하고 있을 텐데 지금은 아무런 의미 없는 명절이 됐다서부발전이 죽였고정치인들이 죽였다그리고 구조적으로 비정규직을 만들어 놓은 이 나라가 내 아들을 죽였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용균이의 죽음 앞에서 정말로 위로하고 싶다면 죽음이 헛되지 않게 비정규직 정규직화 약속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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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자본논리를 넘어 민중의 삶이 나아지는 나라를 위한

<설 명절맞이 노동시민사회단체 합동기자회견문>

 

촛불항쟁 후 두 번째 설을 맞는 오늘우리는 개혁이 멈추고 실종된 곳에는 반드시 수구보수세력의 적폐가 부활하고썩은 내 나는 아우성이 들어찬다는 것을 다시 목도한다.

 

1,700만 촛불과 함께 가슴 벅차게 타올랐던 우리의 희망은 어디로 갔는가촛불광장에 나와 노동자 농민빈민청년학생영세자영업자 등 열심히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절대다수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개혁을 부르짖던 정치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정치개혁재벌개혁사법개혁교육개혁사회안전망 개혁 등 한국사회 70년 묵은 온갖 구조적 적폐를 청산하고 시민이 주인되는 새사회로 전진해야 한다는 촛불의 요구를 반드시 실행하겠다던 수많은 위정자들의 약속은 다 어디로 갔는가.

 

촛불정신과 개혁은 실종되고박근혜 국정농단 총관리자였던 황교안의 부활과 재벌특혜세력 부활을 지켜보고 있다썩은 정치판을 흔들고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리며 국민의 힘으로 열어놓았던 한국사회 대개혁의 기회가 다시 역사의 뒤안길로 파묻히고 있는 꼴을 보고 있다개혁이 실종되고 촛불의 요구가 짓밟히는 만큼 노동자민중 삶의 고통은 커지고 깊어진다.

 

경제관료와 보수정당보수언론 등 재벌과 재벌특혜세력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이 경제위기 원인이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여념이 없다이런 가운데 노동자농민빈민중소영세상인 등 삶의 질이 나아질 거라 기대했던 민중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정부는 친재벌 정책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심지어 이 사회 구석구석 쌓인 적폐를 청산하라는 준엄한 국민의 명령을 등한시 한 끝에재벌특혜세력은 4.16 참사마저 더럽히려 하고 있다.

 

재벌갑질에 신음하는 중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 곡소리는 끊이질 않는다저임금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의 삶을 개선할 방안을 정부는 몰라서 실행하지 못하는가어디에도 끼지 못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청년들의 삶은 고 김용균 노동자 삶이 웅변하고 있다고 김용균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지 54일째다설 명절 전 장례를 치르고 싶은 바람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는 문재인 정부 정책은 어디로 간 것인가억울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 54일이 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지만 정부는 국가 주요시설인 발전소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우리는 설 명절 이후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와 함께 1,000인 단식단을 구성하고 2월 9일 7차 범국민추모제를 진행할 것이다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투쟁을 힘차게 전개할 것이다.

 

우리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노동자와 상인이 연대하고상인이 농민과 연대하고농민이 빈민과 연대하고빈민이 4.16 가족과 연대하고진보정당과 연대하고민중전체와 연대할 것이다우리는 설을 맞아 어느 때보다 행복해야할 권리와 바람이 있다이를 위해 우리는 투쟁하고 연대할 것이다.

 

우리는 연대로 강해질 것이고강해진 우리는 정부가 미룬 적폐청산과 우리 사회 전면개혁에 나설 것이다.

 

2019년 2월 1

설을 맞이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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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 정상회담, '빅 딜' 나오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2/02 09:14
  • 수정일
    2019/02/02 09: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정욱식 칼럼] 마지막 핵무기가 북한을 떠나면

 

 

 

"저에게는 같은 시간에 마지막 핵무기가 북한 땅을 떠나고 제재가 해제되며 대사관 국기가 내걸리고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완벽한 결말이 있습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월 31일 스탠퍼드대학에서 한 연설과 일문일답 중 가장 눈에 띈 부분이었다. 이 대목을 주목한 이유는 개인적인 희망 및 활동과 맞닿아 있다. 

나는 북한이 주장했던 "단계적" 해법으로는 문제 해결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왔다. 이게 틀려서가 아니다. 단계를 하나씩 밟으면서 정상으로 가는 방식은 당사자들의 변심과 교체, 한반도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세력의 반격과 저항, 예기치 못한 변수들의 개입 등으로 정상 정복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난 25년간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 해결에 실패한 핵심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톱다운 방식을 제안해왔다. 이건 정상회담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협상 당사자뿐만 아니라 의제도 톱다운 방식이 유용하다는 것이다.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로 간주되어온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의 폐기를 최종적인 상응 조치들인 대북 제재 해제,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와 동시적이고 구체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로드맵에 합의하는 것이 2차 북미정상회담의 핵심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유력한 방식으로 제안한 것은 이랬다.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이 북한 땅을 떠나 제3국으로 반출될 때 상기한 상응 조치들을 취하고, 이러한 상응 조치들이 완료될 때 제3국에서 핵무기와 핵물질 폐기에 돌입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제3국은 러시아나 중국을 유력하게 검토할 수 있다고도 봤다. 이 방법밖에는 희망이 없다고 여긴 나는 이 방안을 졸저 <비핵화의 최후>에 담았고, 국내외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북미 간 공감대 형성? 

경로의존성을 경계하면서도 이러한 해법이 조금씩 가시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받는다. 우선 앞서 소개한 비건의 발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선 그는 "마지막 핵무기"의 처리 방안을 두고 '폐기하다(dismantle)'가 아니라 '떠나다(leave)'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북핵 폐기 방식으로 외부 반출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 하나는 제재 해제, 대사관급 관계 수립, 평화협정 체결 등 핵심적이고도 최종적인 상응 조치를 "마지막 핵무기가 북한을 떠나는 것"과 "같은 시간"에 이뤄져야 한다고 밝힌 부분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선 비핵화, 후 상응 조치'가 아니라 동시 이행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건 역시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이 먼저 하면 우리는 나중에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동시적이고 병행적으로 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비건의 발언이 북한 측과 얼마만큼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온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몇 가지 주목할 점들도 있다. 우선 비건은 최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최선희 외무성 부상, 그리고 그의 새로운 파트너가 된 김혁철 외무성 대미정책 특별대표를 두루 만났다. 그 직후에는 중국 및 러시아의 대표단과도 회의를 가졌다. 이들 두 나라는 북핵 외부 반출시 유력한 접수국들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는 미묘하지만 중대한 변화의 조짐도 담겼었다. 이전까지 북한이 고수한 "단계적 조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 대신에 "빠르게"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또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국제사회가 환영할 만한 결과"를 내놓겠다는 자신감도 피력했다. 그 직후 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과의 4차 정상회담을 갖고는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북중 공조 의지도 다졌다. 

그리고 1월 중순 김영철 부위원장을 만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매우 좋은 만남"이었다고 했고, 김영철 일행으로부터 방미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해결을 위한 비상한 결단력과 의지를 피력한 데 대하여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예단키는 어렵지만, 두 정상 사이에 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 관련 기사 : 트럼프와 김정은이 고무된 까닭은? 

결승점에 합의하면 

정리하자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선 '스몰딜'보다는 '빅딜', 특히 북핵 폐기 방안 및 근본적인 상응 조치들을 두고 통 큰 합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러한 결승점에 합의하면,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디테일 속의 악마들"도 수두룩하고 비건의 연설과 질의응답에서도 북미간의 여전한 시각 차이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평화적으로 한반도 질서를 변경하려는 '작용'은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세력의 '반작용'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반작용을 이겨내려면 김정은과 트럼프의 정상회담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중재자로, 때로는 당사자로 역사적 기회를 포착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 비건의 표현처럼 "70년 묵은 한반도의 전쟁과 적대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거보(巨步)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시작되었고, 또한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불가역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 저서 <비핵화의 최후>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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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수뇌회담의 초점은 단계별, 동시행동” <조선신보>

“제2차 수뇌회담의 초점은 단계별, 동시행동” <조선신보>
이계환 기자  |  k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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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1  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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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수뇌회담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재일 <조선신보>는 1일 ‘조미(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기초한 행동계획의 확정’이라는 기사에서 “조미쌍방이 공동성명 이행의 첫걸음을 내딛자면 무엇보다 조선의 선행조치와 제안, 정책적 의지에 상응한 미국의 비핵화 조치, 관계개선을 위한 신뢰조성 조치와 계획이 합의되어야 한다”면서, 이같이 2차 북미정상회담의 초점을 짚었다.

즉, 현재 북미관계 교착상태의 출로는 “단계별, 동시행동에 의한 신뢰조성”이라는 것이다.

특히, 신문은 “조선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한 미국의 과감한 행동계획, 대화상대에게 적대시정책과 핵전쟁 위협의 종결을 확신케 하는 실천적 조치들을 트럼프 대통령이 결단하고 그 집행을 위한 준비가 마무리될 때 또 하나의 역사적인 상봉이 이루어지게 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신문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 비핵화를 이룩해나가는 과정에서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을 준수하는 것”에 합의했는데, 이후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든 원인은 미국이 이 합의에서 탈선해 “신뢰조성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일방적 핵무장 해제 요구와 무모한 제재압박 소동에 매달린데 있다”고 짚었다.

즉, 미국은 ‘선(先)핵폐기-후(後)보상’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북한에 대하여 핵시설과 물질, 무기에 관한 목록을 먼저 신고할 것을 요구해 나섰다는 것이다.

신문은 미국이 “조미 핵대결의 귀추를 바로 보지 못하고 패전국에나 적용될 수 있는 일방적이며 강압적인 논리를 들고 나왔다”고 꼬집으면서, 그러기에 제1차 북미정상회담은 “핵무기로 서로 상대를 겨루는 조선과 미국이 70년에 걸치는 대결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마련된 평화담판”이었기에 “여기서 미국은 결코 ‘승자’가 아니었다”고 명확히 했다.

따라서 “공동성명에 조선의 일방적 핵폐기를 의미하는 용어인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는 없으며 오직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명기되었다”는 것이다.

신문은 “그 실현을 위해서는 조선이 해야 할 몫이 있고 미국이 해야 할 몫이 있는 것만큼 쌍방이 단계별, 동시행동으로 신뢰를 구축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한발 한발 함께 나가야 한다”면서 “이렇게 놓고 보면 앞으로 개최될 제2차 조미수뇌회담은 그동안의 미국의 그릇된 협상태도가 시정되어 공동성명의 정신에 기초한 동시행동조치가 확정되는 자리가 된다”고 예측했다.

신문은 “조선은 ‘세계최대의 핵보유국’으로서 강권과 전횡을 일삼는데 익숙된 미국이 악습에서 벗어나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걸음을 착실히 이어나가도록 이끌고 있다”며, 북미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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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 전교조의 ‘딥 체인지’, 조합원 뜻대로~

[인터뷰]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

1월2일부로 임기를 시작한 권정오 전국교직원노조 위원장을 만났다. 지난해 연말 시행된 전교조 19대 임원선거에서 기호 3번 권정오(53)·김현진(45) 후보조가 51.5%를 득표해 결선 투표없이 당선했다. ‘바꾸자! 전교조, 주목하라! 교사의 일상에, 선택하라! 새로운 세력을, 딥(DEEP) 체인지’를 슬로건으로 건 권정오 위원장의 서른살 전교조의 새 계획을 만날 수 있었다. [편집자]

오전 9시, 출근과 동시에 진행된 다소 어수선한 인터뷰는 권정오 위원장이 직접 타준 차 한 잔의 여유로 안정을 찾았다.

연초에 누구나 그렇지만 울산에서 올라와 6만 조합원의 위원장이 된 권정오 선생님은 최근 일상이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사진 : 선현희 기자]

근본적인 변화

권 위원장의 고단한 서울 생활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첫 질문을 던졌다. 영어까지 써가며 ‘딥(DEEP) 체인지’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근본적인 변화. 전교조 전체가 근본적인 변화를 하지 않으면 이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없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모였음을 표현했다.”

권 위원장은 전교조가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위기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는지 물었다.

“선거 기간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노동조합이 제발 조합원 얘기 좀 들어주세요’였다. 이말을 바꾸면 조합원이 전교조의 주인이 아니었다는 것. 활동가 중심의 사업관행들이 너무 오래되다보니, 대중조직 다운 활동은 사라지고 대중과 지도부가 격리된 상황이 위기의 본질이다.”

사실 진보진영 내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한 번쯤 이런 진단을 했다. 문제는 실행 여부. 권정오 집행부는 ‘조합원을 주인으로’라는 결심이 ‘구호’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담보가 있는지 물었다.

“조합원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아무도 예상 못했던 결선 투표 없이 1차에 당선된 선거 결과는 ‘딥 체인지’에 대한 단순한 지지가 아니라 조합원들이 체인지의 주역이 되겠다는 의사 표현이다.”

[사진 : 선현희 기자]

조합원의 뜻대로

권 위원장은 조합원의 힘과 지혜를 모으면 ‘참교육의 함성’을 넘어 서른살 전교조가 한국사회의 새로운 30년을 설계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넘쳐났다.

2019년 집행 첫해, 권 위원장은 직접민주주의의 토대를 닦는 것을 제1목표라고 했다.

“첫째 전교조 중앙본부의 인원과 기능을 줄이고 지부와 지회의 역할을 높이겠다. 두 번째는 의사결정 구조에 조합원들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신설된 조합원총회의 기능을 높이겠다.”

시스템을 아무리 잘 갖춰도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인데, 조합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 아닐까? 권 위원장은 이런 의구심을 풀어 주었다.

“조합원의 뜻대로. 조합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사업은 기획 단계에서 폐기한다. 사업의 시작은 조합원의 발기로, 집행은 조합원의 힘으로, 결과는 조합원이 덕 보게….”

[사진 : 선현희 기자]

교육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권 위원장은 우리 사회에 ‘교육권’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교육권 지원센터를 설치하고, 교육권 보호법을 제정하겠다.”

교사의 권리와 권위를 보장받겠다는 ‘교권’이 아니라 교육할 권리를 의미하는 교육권. 교육권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표현에서 ‘선생질’이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존경받는 스승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작 무너진 것은 교권이 아니라 교육하고 교육받을 권리 바로 교육권이 무너졌다.”라는 권 위원장의 말은 오래도록 마음을 무겁게 했다.

권 위원장은 최근 50대 교사의 명예퇴직자가 늘어나는 이유도 교육권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사에게 부여되는 교육 이외의 과다한 업무와 스트레스가 그들을 더 이상 학교에 버틸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교육권이 무너진 데는 학부모의 책임도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마라’는 옛이야기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자녀들에게 학부모가 선생 욕을 해대는데 그 학생이 선생님을 어떻게 대할지는 뻔한 일이다.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해졌다. 전편을 다 보진 못했고, 중간중간 몇편을 봤다는 권 위원장은 ‘스카이 캐슬’은 드라마 장르로는 호러(공포)물이라고 답했다.

“30년 교사생활을 하고 있지만 설마 진짜 저럴까… 싶다가도, 학교장 표창(대학진학에 반영) 받으려고 자기 자녀를 학생회장 시키기위해 온갖 수단 다 동원하는 것 보면 또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서른살 전교조의 꿈

권 위원장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의 위기상황을 전교조는 어떻게 함께 헤쳐나갈지에 대한 물음에는 즉답을 피했다. 다만 관성적이고 형식적인 사업태도와 구호만 난무한 실속없는 투쟁전략으로는 진보진영의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권 위원장은 말한다. “1989년 전교조를 창립한 지난 30년간 전교조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과정이었다. 무상급식, 고등학교 무상교육, 혁신학교 등 모두 전교조의 꿈이었다. 서른살 전교조는 여전히 미래를 꿈꾼다. 교육이 미래고, 전교조의 상상이 미래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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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김복동 할머니 훨훨 날으소서” 94개 만장과 노란 나비들의 행진

故 김복동 할머니 노제, 600여명 시민들 참여한 가운데 엄수돼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9-02-01 12:10:59
수정 2019-02-01 12: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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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운구행렬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을 지나 영결식이 열리는 옛 일본대사관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운구행렬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을 지나 영결식이 열리는 옛 일본대사관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우리의 영웅! 김복동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책임자 처벌..."

평화·인권운동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故 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배웅길. 청년들은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보여주는 94개의 만장을 들고 서울광장에서 구 일본대사관까지 행진을 펼쳤다. 시민들은 평화를 상징하는 노란 나비를 흔들며 만장 뒤를 따랐다.

고 김복동 할머니의 영면을 기원하는 거리의 제사, 노제가 1일 오전 8시 50분 경부터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시작됐다. 김 할머니를 배웅하기 위해 시민들은 이날 오전 8시 30분 경부터 서울광장에 모여들었다. 6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은 "김복동 할머니 사랑합니다. 할머니의 꿈 이뤄드리겠습니다"라는 사회자 최광기 씨의 말에 함성으로 답하며 첫 발걸음을 뗐다.

이날 행렬의 선두엔 환한 웃음을 지은 김복동 할머니가 두팔을 벌리고 나비들과 함께 날아가는 그림이 걸린 차량이 섰다. 해당 차량은 온통 노란 꽃과 나비로 꾸며져 있었다.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가 운구차에 앞서 김 할머니의 영정 사진과 위패를 들고 걸었다. 침통한 표정의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과 손영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소장도 노란 나비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도 연신 눈물을 닦아내며, 다른 정부 인사들과 함께 운구차 곁을 따라 걸었다.  

뒤이어 시민들이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님 나비되어 훨훨 날으소서"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걸어갔다.  

김복동 할머니의 목소리가 차량의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만장을 두손으로 꽉 쥐고 선 학생과 시민들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떨궜다가 천천히 움직였다.

시청광장 벽면에 설치된 시민 게시판에는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인터뷰 영상이 나왔다. 시민들은 행진을 잠시 멈추고 할머니의 영상을 지켜보기도 했다.

시청광장-세월호광장-미대사관을 지나 구 일본대사관 인근에 다다르자 행진이 잠시 멈췄다. 사회자는 "김복동 할머니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할머니의 꿈을 이루겠습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시민들도 구호에 맞춰 수차례 힘찬 함성을 질렀다.  

또한 시민들은 "일본은 공식 사죄하고 법적 배상하라"라고 함께 거듭 외쳤다.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김복동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다시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졌다. 시민들은 "김복동 할머니와 끝까지 함께 한다"고 다짐했다.  

노제 행렬은 마지막으로 27년간 일본 정부를 향해 공식 사죄를 요구한 김복동 할머니가 있었던 곳, 매주 수요집회가 열리는 구 일본대사관 앞에 도착했다. 만장을 든 시민들은 구 일본 대사관을 등지고 소녀상을 향해 만장을 들어보였다.  

노제가 끝나고 같은 장소에서 오전 10시 30분부터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시민장 영결식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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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주엘라에서 석유강탈을 추구하는 미국의 음흉한 목적과 기만성

미국 베네주엘라 사태에서 석유강탈이 진짜 목적이다.
 
번역, 기사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9/02/01 [11:31]  최종편집: ⓒ 자주시보
 
 

베네주엘라에서 석유강탈을 추구하는 미국의 음흉한 목적과 기만성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베네주엘라 사태는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 그리고 그 괴뢰국가들에 의해 정치, 경제, 군사, 사회, 언론 등 모든 분야에서 동시적으로 현 베네주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니꼴라스 마두로 정부에 대한 압박과 회유 그리고 선전선동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라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구호는 바로 “민주주의의 회복”이요, “인도주의 붕괴”요하면서 그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지도자를 “독재자” “인민생활을 붕괴시켜 고통을 주는 무능한 지도자” 등으로 매도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독재정권을 교체(실제로는 강제로 붕괴)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선전전을 벌이면서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압박을 가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키워놓은 해당 나라의 허수아비(주구)를 “탁월한 야당 지도자”요, “민주화의 투사”요 하면서 그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면서 그 나라에서 정부를 반대하는 대규모 유·무혈시위와 폭동을 일으키도록 사주를 한다. 2017년에 이어 채 2년도 안되어 발발한 베네주엘라 사태가 바로 그렇게 일어난 것이다.

 

대규모 유·무혈시위와 폭동과정에 대해 해당 나라의 정부당국이 강력하게 대응을 하면 또 다시 인권탄압이요, 민주주의파괴요, 자유의 보장이요 뭐요 하면서 해당 나라를 부도덕하고 악랄한 독재국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같은 나라로 몰아가는 선전선동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마지막 수단으로 해당 나라 내부적으로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도록 지휘를 한다. 현재 베네주엘라는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기 직전에 돌입한 상태다. 

 

하지만 자신들이 지휘한 군사쿠데타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을 경우 바로 반군세력이요 뭐요 하면서 자신들이 조직한 고용병들을 동원하여 해당나라에 투입을 하여 군사적인 작전을 펼친다. 물론 당연히 자신들이 투입한 고용병들에 대해서도 독재체제에 맞선 정의의 반군세력이라고 치켜세워주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물론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베네주엘라에 대한 군사적 조치로 이 단계도 철저히 준비를 마친 상태에 있다.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그때에는 드디어 군사력을 동원하여 직접 해당 나라를 침략공격을 한다. 베네주엘라에 대해서 이 역시 준비를 마친 상태에 있다. 바로 그를 위해 볼튼의5,000명의 군대 꼴롬비아 파견”이라는 내용이 적힌 쪽지가 공개되었으며, 미국의 13개 주와 중남미 15개 국가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 남부군 사령관 꼴롬비아 방문” 그리고 “미군 전투기들 꼴롬비아에 계속해서 착륙”이라는 사실들이 공개가 되었다.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자신들에게 고분고분 하지 않은 나라들에 대해 위와 같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목적이 존재한다. 먼저 첫째가는 목적은 “신세계질서”구축을 위한 지배주의와 패권주의의 달성이다. 이는 그 세력들의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목표이다. 두 번째는 온 누리를 영원히 식민  배를 하기 위한 것이다. 세 번째는 경제적 목적이다. 즉 해당 나라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자원 및 노동력을 착취하고자 하는데 있다. 넷째는 현실적이며 즉시적인 목적인데 바로 무기와 군수물자 그리고 생필품 등과 같은 소모품들을 팔아먹으면서 경제적인 부를 계속 쌓아가고자 하는데 있다.

 

이번 베네주엘라의 사태 역시 위와 같은 여러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벌이고 있는 것이다.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베네주엘라에서 얻고자 하는 숨겨진 속셈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매장되어 있는 석유자원의 강탈에 있다. 일반인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기에 오늘 날 연료시장(에너지 시장)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이 된다고 믿고 있을 뿐이지 국제적인 석유수요와 공급은 실질적으로 국제석유연합(카르텔)에 의해 결정이 된다. 당연히 국제유가 역시 그들 결정을 하는 것이지 석유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2015년이 베럴 당 100달러 선이던 국제유가가 석 달만에 그 1/3수준인 36달러 까지 대 폭락을 했던 이유가 바로 그들이 국제석유시장을 완전히 틀어쥐고 통제를 하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당시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서규에 나라의 경제를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그리고 자신들에 맞서 자주적인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던 러시아, 이란, 베네주엘라의 경제를 붕괴시켜 궁극적으로 해당나라를 무너뜨리고 다시 자신들이 석유와 경제 그리고 정치적인 지배를 하기 위해서 벌인 음흉한 계책에 의해 발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러시아와 이란에서는 통하지 않고 실패를 하였으나 나라의 경제가 거의 석유에 의존을 하고 있던 베네주엘라는 나라의 경제가 심각하게 타격을 받았다. 그로인해 베네주엘라 인민들의 삶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바로 이를 빌미로 마두로 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해서 베네주엘라의 경제를 붕괴시켰다는 둥, 인민들을 탄압하고 부패한 독재정권이다 보니 경제가 무너져 내려 베네주엘라 인민들의 삶이 궁핍해졌고 또 인도주의의 재난이 닥쳤다는 등 하면서 자신들이 벌인 비열하고 악랄한 책동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마두로 정부에 떠 넘겼다. 바로 이 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 것 역시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소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거대 런론들과 이를 고스란히 되받아 물어 나팔을 불어댄 괴뢰국가들의 언론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현재도 그 기조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이를 빌미로 2017년 몇 개월에 걸친 대규모 시위와 폭동을 조장하였으며, 작년도 8월에는 마두로에 대한 암살을 시도하였다. 또 그 과정에서 미미했지만 군사쿠데타를 지휘하기도 하였다.

 

베네주엘라는 1998년 마두로 대통령 이전 우고 차베스는  통령에 당선이 된 후 자국에 무궁무진하게 묻혀있는 석유자원을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강탈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과감하게 자국의 원유채굴시설들을 국유화해버렸다. 차베스는 거기에서 얻어지는 수익을 과감하게 베네주엘라 인민들에게 돌렸다. 차베스가 시행한 정책은 바로 사회주의 정책이다.

 

이를 대단히 못 마땅해 하던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그 이후부터 오늘 날까지 다시 석유패권을 가져오기 위해 끊임없이 베네주엘라에서 대규모 시위와 폭동 등을 사주하여 그 나라를 정치적인 위기로 몰아갔다. 또한 그들은 베네주엘라의 지도자를 암살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위키리키스가 폭로한 바에 의하면 이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재임 14년 반 동안 무려 135회의 암살에 시달렸으며, 현 대통령 마두로는 겨우 5년 여 기간 동안 무려 36회의 암살 위기에 처했었다.

 

이와 같이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약 20여 년간 자신들에게 맞서 자주적인 베네주엘라를 이끌어오고 있는 정권들을 붕괴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지만 실패를 하자 이번에 드디어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등에서 벌인 붕괴책동을 넘어 군사적인 방법까지 동원을 하는 만행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현재 왜 베네주엘라 사태가 발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결코 서방의 거대 주류언론들이나 현 남쪽의 언론들이 보도하는 내용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 더 정확히는 검은 그림자 세력들의 나팔수들일 뿐이지 결코 온 누리 인민들이나 현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 겨레 구성원들에게 정의와 진리에 입각한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지 않는다.

 

아래 스뿌뜨닉끄 1월 31일 자 두 편의 기사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명백하게 증명을 해주고 있다. 기사에 대해서는 따로 분석은 하지 않으니 위 내용과 연결하여 읽어보기 바란다.

 

 

----- 번역문 전문 -----

 

미국 국제개발처, 구아이도 베네주엘라의 ‘민주주의 회복’에 대해 동의

 

▲ 마크 그린 미국 국제개발처(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 USAID) 처장 은 베네주엘라의 자칭 임시 대통령 구아이도와 전화로 회담을 가졌으며, 회담과정에서 라띤 아메리까 나라의 민주주의 "회복을 돕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데 합의를 하였다고 처장이 말했다. 그린은 베네주엘라 국회 뿐 아니라 인권문서 그리고 독립 언론과 관련된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같은 핵심 민주적인지지자들에 대한 미국의 변함없는 지지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그린 처장은 미국 정부의 니꼴라스 마두로에 대한 비난을 하고 있는데 대해 강조하고, 베네주엘라에서 완전한(원문-반구) 자유를 추구하는 시민 중심적 통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에 대해 미국 국제개발처가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였다."고 미국 국제개발처가 수요일 성명서에서 밝혔다.     ©이용섭 기자

 

라띤 아메리까 2019년 1월 31일 11시 00분(최종 2019년 1월 31일, 11시 04분)

 

모스끄바 (스뿌뜨닉끄) - 마크 그린 미국 국제개발처(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 USAID)  처장 은 베네주엘라의 자칭 임시 대통령 구아이도와 전화로 회담을 가졌으며, 회담과정에서 라띤 아메리까 나라의 민주주의 "회복을 돕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데 합의를 하였다고 처장이 말했다.

 

"그린은 베네주엘라 국회 뿐 아니라 인권문서 그리고 독립 언론과 관련된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같은 핵심 민주적인지지자들에 대한 미국의 변함없는 지지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그린 처장은 미국 정부의 니꼴라스 마두로에 대한 비난을 하고 있는데 대해 강조하고,  베네주엘라에서 완전한(원문-반구) 자유를 추구하는 시민 중심적 통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에 대해 미국 국제개발처가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였다."고 미국 국제개발처가 수요일 성명서에서 밝혔다.

 

국제개발처에 따르면 논의를 하는 동안 구아이도는 베네주엘라의 "긴박한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해서 그린에게 말하였으며, 그린(원문-후자)은 미국은 "증가하는 인도주의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베네주엘라 전지역에 긴급 구호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잇다."고 되풀이 하여 강조하였다.

 

"처장과 임시 대통령 구아이도는 베네주엘라의 존엄과 인권 및 민주주의 회복을 돕기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공동의 약속을 한 후 대화를 마쳤다."고 성명서는 덧붙였다.

 

개발처는 앞으로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해 구아이도파(팀)와 지속적으로 접촉할 것이다고 말하였다.

 

니꼴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워싱턴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러시아, 메히꼬, 뛰르끼예, 우루구아이 등 다른 나라들은 마두로를 합법적으로 선출된 유일한 대통령으로 인정을 하면서 베네주엘라에 대한 외부의 불간섭원칙을 존중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베네주엘라는 국제 유가의 하락으로 촉발된 정치, 경제적 위기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반정부세력들(원문-야당)은 악화된 인도주의 문제를 말잔치(원문-수사학)를 통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1월 23일 베네주엘라 국회의 야당 지도자인 구아이도가 반정부 시위가 진행되는 가운데에 스스로를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언을 한 후 위기는 새로운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다음 날 신속하게 구아이도를 인정한 미국은 인도주의지원에 2천만 달러 이상을 제공한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 번역문 전문 -----

 

'기름 강탈" 미국 '베네주엘라 인민들과 함께 서 있다.' 내용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었다.

 

▲ '기름 강탈" 미국 '베네주엘라 인민들과 함께 서 있다.' 내용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었다. 니꼴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이전에 미국시민들에게 호소하였고 그리고 그를 지지해주고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의 "조국을 라띤 아메리까의     ©이용섭 기자

 

라띤 아메리까 2019년 1월 31일, 10시 03분(최종 2019년 1월 31일, 12시 41분)

 

니꼴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이전에 미국시민들에게 호소하였고 그리고 그를 지지해주고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의 "조국을 라띤 아메리까의 웻남화"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하였다.

 

백악관 언론 담당 허커비 사라 센터스는 야당이 주도하고 있는 베네주엘라 국회의장인 구아이도가 올린 내용:" 미국은 베네주엘라 인민들과 함께 한다."는 글을 뉴욕타임스 기사에 연계시켰다.

 

그렇지만 사회관계망(눈) 이용자들은 센더스의 호응에 대해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였고 그리고 그녀의 상관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인들과도 함께 서 있지도 않다."고 주장하였다.:

 

일부 누리꾼들의 반응은 마두로의 - 워싱턴은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돌파하였다라는 생각을 반영하였다.:

 

▲ 베네주엘라 누리꾼들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이 현재 베네주엘라에서 벌이고 있는 만행의 진짜 목적은 베네주엘라의 민주주의와 인도주의 그리고 인권의 회복을 위한다는 미국의 주장에도 불구하고석유강탈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용섭 기자

 

▲ 현재 미국이 벌이고 있는 베네주엘라 사태의 진 목적은 베네주엘라에 매장되어 있는 무궁무진한 석유 강탈에 그 진짜 목적이 있다.     ©이용섭 기자

 

1월 23일 스스로 라띤 아메리까 나라의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언을 한 구아이도는 베네주엘라 군의 지지는 니꼴라스 마두로를 퇴진시키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을 (트위터에)썼다.

 

"마두로씨에 대한 군부의 지지철회는 정부를 변화시키는데 대단히 중요하며,  관련업무에 종사하는 대다수는 최근 이 나라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지지할 수 없다는데 동의한다. 이번의 전환은 핵심 군사파견단의 지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는 군대와 보안군과 비밀협상을 가졌다."

 

센더스의 지지트윗은 마두로가 트럼프 행정부가 까라까스 내정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고, 조국은 또 다른 웻남(웻남전쟁)화 하지 말 것을 "미국 인민들"에게 호소를 한 직후에 나왔다.

 

▲ 니꼴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미국이 현 베네주엘라 사태를 일으킨 진짜 목적은 베네주엘라에 매장되어 있는 무궁무진한 석유를 강탈하기 위한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용섭 기자

 

1원 29일 베네주엘라 대법원은 과도정부의 은행계좌 및 금융거래를 자국 관할내에서 차단을 하고 그의 활동에 대한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연금(여행금지)조치를 결정하였다.

 

화요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튼은 워싱턴은 구아이도를 협박하기 위해 기소한 검찰을 비난하였으며,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야당 지도자를 해치려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고 말하였다.

 

마두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은 베네주엘라의 국영석유회사인  PDVSA에 제재를 가하였으며, 미국 보험회사(원문-은행)에 동결되어 있던 특정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구아이도에게 넘겨주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주엘라 인민들의 의지를 반영한 합법적인 지도자(구아이도를 지칭)"에 동의를 하고 퇴진을 할 것을 마두로에게 요구하였지만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워싱턴이 쿠데타를 지휘하고 있다고 비난을 하면서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구아이도의 자칭 대통령직은 곧바로 미국, 카나다, 이스라엘, 그루이자, 알바이나 그리고 남미의 12개 국가들에서 인정을 받았으나 반면 러시아, 중국, 뛰르끼예 그리고 또 다른 여러 나라들은 마두로를 베네주엘라의 합법적인 유일한 대통령으로 받아들였다.

 

 

----- 원문 전문 -----

 

USAID Administrator, Guaido Agree to Work to 'Restore Democracy' in Venezuela

 

▲ 마크 그린 미국 국제개발처(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 USAID) 처장 은 베네주엘라의 자칭 임시 대통령 구아이도와 전화로 회담을 가졌으며, 회담과정에서 라띤 아메리까 나라의 민주주의 "회복을 돕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데 합의를 하였다고 처장이 말했다. 그린은 베네주엘라 국회 뿐 아니라 인권문서 그리고 독립 언론과 관련된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같은 핵심 민주적인지지자들에 대한 미국의 변함없는 지지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그린 처장은 미국 정부의 니꼴라스 마두로에 대한 비난을 하고 있는데 대해 강조하고, 베네주엘라에서 완전한(원문-반구) 자유를 추구하는 시민 중심적 통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에 대해 미국 국제개발처가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였다."고 미국 국제개발처가 수요일 성명서에서 밝혔다.     © 이용섭 기자

 

LATIN AMERICA 11:00 31.01.2019(updated 11:04 31.01.2019)

 

MOSCOW (Sputnik) - 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 Administrator Mark Green held phone talks with Juan Guaido, self-declared interim president of Venezuela, during which they agreed to "work together to help restore" democracy in the Latin American country, the agency said.

 

"Green reaffirmed the United States' commitment to continue supporting the Venezuelan National Assembly, as well as other key democratic actors like local civil society organisations that are involved in human rights documentation and the independent media. Administrator Green also underscored the US government's condemnation of Nicolas Maduro, and reaffirmed USAID's commitment to promoting citizen-responsive governance in Venezuela, in pursuit of a Hemisphere of Freedom", the USAID said in a Wednesday statement.

 

During the talks, Guaido told Green about "the dire humanitarian situation" in Venezuela, while the latter reiterated that the United States was "ready to provide emergency aid throughout Venezuela to help meet this increasing humanitarian need", according to USAID.

 

"The Administrator and interim President Guaidó closed their conversation with a mutual commitment to work together to help restore dignity, human rights, and democracy in Venezuela", it added.

 

The agency noted that it would continue to be in contact with Guaido's team to work out concrete plans in the coming days.

 

Venezuelan President Nicholas Maduro accuses Washington of staging a coup in the country. Russia, Mexico, Turkey, and Uruguay among other countries, continue to recognise Maduro as the country’s only legitimately-elected president and demand that others respect the principle of non-interference in Venezuela's internal affairs.

 

The country has been suffering from a political and economic crisis triggered by the fall of global oil prices, with the opposition actively using deteriorating humanitarian issues in its rhetoric. On 23 January, the crisis took a new turn when the speaker of the opposition-led Venezuelan National Assembly, Guaido, declared himself interim president amid ongoing anti-government protests. The next day, the United States, which swiftly recognised Guaido, said that it was ready to provide the country with more than $20 million in humanitarian assistance.

 

 

----- 원문 전문 -----

 

'To Steal Their Oil?' WH Roasted for US 'Stands With People of Venezuela' Tweet

 

▲ '기름 강탈" 미국 '베네주엘라 인민들과 함께 서 있다.' 내용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었다. 니꼴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이전에 미국시민들에게 호소하였고 그리고 그를 지지해주고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의 "조국을 라띤 아메리까의 웻남화"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하였다.백악관 언론 담당 허커비 사라 센터스는 야당이 주도하고 있는 베네주엘라 국회의장인 구아이도가 올린 내용:" 미국은 베네주엘라 인민들과 함께 한다."는 글을 뉴욕타임스 기사에 연계시켰다. 그렇지만 사회관계망(눈) 이용자들은 센더스의 호응에 대해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였고 그리고 그녀의 상관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인들과도 함께 서 있지도 않다."고 주장하였다.:     © 이용섭 기자

 

LATIN AMERICA 10:03 31.01.2019(updated 12:41 31.01.2019)

 

Venezuelan President Nicolas Maduro previosuly appealed to US citizens and asked them to support him and prevent the Trump administration from turning his "homeland into a Vietnam in Latin America".

 

White House press secretary Sarah Huckabee Sanders has shared a link to The New York Times' article by Juan Guaido, the head of Venezuela's opposition-led National Assembly, with the message: "America stands with the people of Venezuela".

 

Social media users, however, appeared to be unimpressed by Sanders's response and claimed that her boss, President Donald Trump, "doesn't even stand with Americans":

 

Some netizens' reactions reflected Maduro's sentiments — Washington is after the world's largest oil reserves:

 

▲ 베네주엘라 누리꾼들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이 현재 베네주엘라에서 벌이고 있는 만행의 진짜 목적은 베네주엘라의 민주주의와 인도주의 그리고 인권의 회복을 위한다는 미국의 주장에도 불구하고석유강탈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이용섭 기자

 

▲ 현재 미국이 벌이고 있는 베네주엘라 사태의 진 목적은 베네주엘라에 매장되어 있는 무궁무진한 석유 강탈에 그 진짜 목적이 있다.     © 이용섭 기자

 

Guaido, who declared himself the Latin American country's interim president on 23 January, penned an op-ed, in which he said that support from the Venezuelan military was "crucial" to forcing Nicolas Maduro out of office.

 

"The military's withdrawal of support from Mr Maduro is crucial to enabling a change in government, and the majority of those in service agree that the country's recent travails are untenable. The transition will require support from key military contingents. We have had clandestine meetings with members of the armed forces and the security forces".

 

Sanders's supportive tweet came shortly after Maduro had called on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to not let the Trump administration interfere into Caracas's internal affairs and turn his motherland into another Vietnam.

 

▲ 니꼴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미국이 현 베네주엘라 사태를 일으킨 진짜 목적은 베네주엘라에 매장되어 있는 무궁무진한 석유를 강탈하기 위한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 이용섭 기자

 

On 29 January, the Venezuelan Supreme Court blocked Guaido's bank accounts and financial transactions within the country's jurisdiction, and imposed a travel ban on him until an investigation into his activities is completed.

 

White House National Security Adviser John Bolton stated on Tuesday that Washington condemned Venezuelan prosecutors for threatening Guaido, and warned of "serious consequences for those who attempt to subvert democracy and harm" the opposition leader.

 

In a bid to ramp up pressure on Maduro, the US introduced sanctions against Venezuela's state-owned oil giant PDVSA, and passed control over certain frozen assets held by US-insured banks to Guaido.

 

The Trump adiminstration has been calling on Maduro to step down in favour of a "legitimate leader reflecting the will of the Venezuelan people", while the Venezuelan president has accused Washington of orchestrating a coup and severed diplomatic ties with the country.

 

Guaido's self-proclaimed presidency was instantly recognised by the US, Canada, Israel, Georgia, Albania and over a dozen South American countries, while Russia, China, Iran, Turkey, and several other nations consider Maduro to be the only legitimate president of Venezu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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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공작 꼬리, 표범은 보지 못한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2/01 12:18
  • 수정일
    2019/02/01 12:1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화려한 공작 꼬리, 표범은 보지 못한다

조홍섭 2019. 0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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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만 떨어져도 포식자 눈에는 주변과 구분 안 돼
 
513.jpg» 날개 덮개를 부채처럼 펼친 공작 수컷. 암컷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여도 포식자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터너 호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공작 꼬리만 보면 토할 것 같아.” 찰스 다윈은 1860년 동료 과학자에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물론 농담조였지만, 수컷 공작의 꼬리는 공들여 이룩한 그의 진화이론을 망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보석처럼 아름답고 거대한 공작 수컷의 꼬리(실제로는 꼬리가 아니라 확장한 날개 덮개)는 포식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도망치는 발걸음을 가로막을 뿐이다. 자연은 어떻게 이런 불리한 형질을 선택했을까.
 
이후 다윈은 자연에 앞서 암컷의 선택이 주요하게 작용한다는 ‘성 선택’ 이론을 제시했지만 논란은 계속됐다. 이스라엘 생물학자 아모츠 자하비가 1975년 내놓은 ‘핸디캡(불리한 조건) 이론’은 그런 예다. 천적의 눈에 잘 띄고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큰 장식을 하는 개체일수록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공작 수컷은 이런 허세의 대표적 예이다. 꼬리 장식이 과대한 열대어 구피도 마찬가지다.
 
512 (7).jpg» 거추장스럽게 긴 날개를 끌고 날아가는 공작 수컷. 부담을 감수하는 만큼 능력이 있다는 핸디캡 이론이 있다. 세르보프바브,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런데 이런 주장은 하나같이 수컷 공작을 사람이나 암컷 공작이 보는 것처럼 포식자에게도 보일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과연 그럴까. 수잔 아마도르 케인 미국 하버포드대 물리학 교수 등 미국 연구자들은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반사율 분광학과 멀티스펙트럼 이미징 등 물리학 기술을 동원해 포식자의 눈에 공작 수컷이 어떻게 보이는지 조사했다.
 
흔히 다른 동물이 사람보다 시력이 좋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최근 사람 등 영장류의 시력은 동물계에서 맹금류 등 일부 조류를 빼고 최고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관련 기사거미줄에 '조류 충돌 방지' 무늬 넣는 호랑거미). 영장류는 잘 익은 과일과 새순을 찾고 숨어있는 포식자를 가려내기 위해 다른 포유류보다 뛰어난 시력을 간직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빨강, 초록, 파랑 등 빛의 3원색을 본다. 새들은 여기에 더해 자외선까지 본다. 그러나 고양이과 동물 등 대부분의 포식자는 2가지 빛만 보는 적·녹 색맹이다.
 
00502479_20180601.JPG» 동물의 시력 분포. 가로축은 눈 지름이고 세로축은 시력이다. 사람은 최상위에 위치한다. 케이브스 외 (2018) ‘생태학과 진화 동향’ 제공.
 
짝짓기 철 수컷 공작은 푸른색과 초록색이 어울려 보이는 각도에 따라 무지갯빛으로 보이는 현란한 날개깃에 한껏 펴고 흔들어 댄다. 특히 부채처럼 편 공작 깃털의 들어있는 눈꼴 무늬는 암컷의 시선을 사로잡아, 그 무늬가 짝짓기 성공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연구도 있다.
 
연구자들은 수컷 공작 꼬리의 색깔, 밝기, 질감의 콘트라스트를 초록색 수풀 배경에서 조사했다. 놀랍게도 포식자의 눈으로는 1m만 떨어져도 이런 무늬와 색깔을 배경 수풀과 거의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암컷 공작에게는 깃털의 무늬와 색깔이 푸른 식물에 달린 열매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512 (9).jpg» 숲의 배경 속으로 공작 수컷의 날개가 녹아드는 모습을 그린 테일러의 1907년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포식자에겐 색깔이 화려한 깃털보다 흑백 깃털이 더 잘 보인다”며 “빨강과 노랑 깃털도 마찬가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사람과 다른 새에게는 화려한 색깔로 보이는 새들도 포식자의 눈에는 단조롭게 칙칙하게 보인다”고 덧붙였다. 공작의 주요 포식자는 표범, 승냥이, 호랑이 등이다. 연구자들은 포식자가 시각 이외에 움직임 감지, 청각과 후각 등을 이용해 사냥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공작 날개의 눈꼴 무늬는 가까이에서 가장 도드라지지만 실제로는 주변 배경에 쉽게 녹아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좀 떨어진 곳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부위는 공작의 머리, 목, 가슴에 드러난 푸른 깃털이었다. 부채꼴 꼬리보다 포식자 눈에 더 띄지만, 암컷을 유혹하는 효과는 꼬리보다 더 클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또 실제 공작이 사는 어두컴컴한 숲 속이나 황혼녘에 공작의 화려한 깃털은 이번 실험보다 훨씬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512 (10).jpg»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공작 수컷의 가장 두드러지는 부위는 큰 날개가 아니라 머리와 목의 푸른 깃털이다. 파보 크리스타투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 연구는 미발간된 생물학 분야의 연구를 동료 비평을 듣기 위해 미리 공개하는 누리집인 ‘바이오리시브’에 7일 실렸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uzanne Amador Kane, How conspicuous are peacock eyespots and other colorful feathers in the eyes of mammalian predators?, bioRxiv preprint first posted online Jan. 7, 2019; doi: http://dx.doi.org/10.1101/51424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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