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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정의를 향한 과거청산 결의대회’ 개최

희생자 유족 등 600여명, 진실화해기본법 개정안 조속 처리 촉구
▲사진= 류경완 담쟁이기자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등 30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주관한 ‘진실과 정의를 향한 과거청산 결의대회’가 4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희생자 유가족 등 6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대회는 역사정의실천연대와 권은희, 소병훈, 진선미, 추혜선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중단된 지 7년째를 맞아 피해자들의 고통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하고 있어 국가폭력으로 얼룩진 한국현대사의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과거청산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 이날 과거청산 결의대회는 새 정부와 국회가 과거청산을 위한 입법에 적극 나서도록 촉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참가자들은 20대 국회에서 입법 발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안(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재개 및 조사권 강화 등)의 조속한 처리와 이를 통해 한국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 등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 후속조치를 촉구했다.

원로 사학자인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과거청산 작업은 어느 것 하나 반듯하게 마무리된 일이 없음을 사례를 들어 지적하곤, “한국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부터 화해와 평화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중단된 과거사 정리가 새롭게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격려사를 통해 “오늘 결의대회를 계기로 그간 과거청산의 재개를 위해 추진된 많은 입법적 노력들이 조속히 결실을 맺기 바란다”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이날 대회 공동주최자인 권은희, 소병훈, 진선미 의원은 올해 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으며, 추혜선 의원 역시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한국전쟁 유가족들과 권위주의 통치 시기 고통을 당한 피해자들 600여명은 이날 대회 결의문을 통해 국회와 정부가 과거청산에 나서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한편 결의대회에 앞서 제4차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보고대회가 열렸다. 대회에선 지난 2월23일부터 3월2일까지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 2차 학살지에서 진행된 4차 공동조사 결과와 관련, 지속적인 유해 발굴을 통해 민간인학살 사건의 실상을 기록하는 데 국가가 나설 것을 거듭 촉구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net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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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을 미국 ‘환경단체’까지 반대했다고?

 

미국 원자력 지지단체인 ‘환경발전’, 문 대통령에게 ‘탈원전 반대’ 서한 보내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제공 :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핵심 공약인 '탈원전' 실천에 나서자 이른바 원전마피아들이 반기를 들었다. 급기야 환경단체라고 주장하는 미국단체까지 탈원전에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 원자력 지지 단체인 '환경발전(Environmental Progress)' 마이클 쉘런 버거 교수는 지난 5일 학자들과 환경단체 회원 27명 명의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탈원전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환경발전은 한국 보수 언론에서 '환경단체', '환경 운동가 단체' 등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처장은 이 단체가 환경단체라는 것에 대해 "사쿠라(가짜)"라고 일축했다. 이어 그는 "원자력 찬양단체"라며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원자력을 '클린 에너지'라고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 언론들은 환경발전의 설립자인 마이클 쉘런 버거 교수가 2008년 타임지에서 뽑은 '환경의 영웅'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다큐멘터리 '판도라의 약속'에 출연해 원전의 필요성을 주장한 원전 지지자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수력원자력이 2014년 판권을 사 원전을 홍보하기 위해 국내에 배급했다.

환경발전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환경발전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환경발전 홈페이지

미국의 단체가 갑자기 한국의 탈원전에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해외에서 원전은 죽어가는 사양산업이다. 원전 건설사인 프랑스 아레바와 미국 웨스팅 하우스는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시장에서 실패했고, 이제 중국과 러시아, 한국에만 원전 건설을 할 수 있는 기업이 남아있다.

쉽게 말하자면, 원전을 사고 팔 수 있는 시장이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원자력과 관련된 과학자들과 교수 등은 원전 사업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탈원전에 반대입장을 보이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탈원전을 주장하는 이들은 원전 해체의 기술력을 갖춘다면 건설시장 못지 않은 큰 시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환경발전은 홈페이지에 공개한 서한을 통해 원전을 모두 없애면 석탄이나 천연가스 사용이 늘어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고 대기 질이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양이원영 처장은 "문재인 정부가 석탄 에너지를 늘리자고 한 것이 아니"라며 "원전과 석탄을 함께 줄이면서 재생에너지로 커버하고 중간에서 가스가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반박했다.

환경발전의 우려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단계적인 탈원전뿐만 아니라 탈석탄까지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는 석탄발전에 대해서도 신규 석탄발전 금지와 노후 석탄발전 10기에 대해 임기 내 폐기를 약속했다.

고리1호기 영구 폐쇄를 앞두고 18일 자정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탈핵부산시민연대가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에서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자력 발전소 건물 벽면에 대형 메시지가 투사되고 있다.
고리1호기 영구 폐쇄를 앞두고 18일 자정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탈핵부산시민연대가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에서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자력 발전소 건물 벽면에 대형 메시지가 투사되고 있다.ⓒ그린피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대선 공약으로 '원전 제로'를 약속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1978년에 가동을 시작해 올해로 40년이 된 고리원전 1호기의 영구정지를 선포했다. 또한 신규 원자력 발전 계획 백지화, 원전 설계 수명 연장 금지를 선언했다. 지난 1일부터는 탈원전 정책의 일환으로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를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점점 탈원전이 가시화 되자, 공대 등 60개 대학 교수 417명은 지난 5일 국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졸속추진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2차 집단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전문가들과 계획을 논의하지 않고 대통령의 선언 하나로 탈원전 계획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제왕적 조치라며 원자력 산업을 말살시킬 탈원전 정책의 졸속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에게 원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전문가의 권위로 원전을 확대해 온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익중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대표는 "원자력 전문가들은 원전산업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라며 "이해 당사자들이 정책을 결정하면 어찌 올바른 정책이 되겠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또한 원자력이외의 대안이 없는 것으로 믿게 만드는 일종의 우민정책이 지속됐던 것은 이러한 전문가들의 의사결정이 보장된 탓이라고 꼬집었다.

양이원영 처장 역시 "반대로 원전 확대나 신규원전을 건설할 때 안정성 고려는 했냐.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은 국민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은 공약"이라면서 "원전 건설에는 시민들과 공청회나 토론 없이 일방적으로 그것도 밀실에서 졸속 추진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원전에 대한 이익 공유하면서 최근 일어난 원전사고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다"며 "전문가가 연구를 해서 결과를 발표해야하는데, 정작 자기들에게 필요한 이익이 줄어들 것 같으니까, 탈원전 반대에 목소리 높이는 것은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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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도청 프레임에 봉인된 X파일, 승자는 삼성이었다

 

프레임 전쟁 ⑬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 조선일보와 MBC가 만나고 중앙일보가 맞서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7년 07월 08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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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만에 '무죄' 한승헌 "늦어빠진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시민사회 원로 40여 명 '무죄 축하연' 열어... "아직 할 일 많다"

17.07.07 20:29l최종 업데이트 17.07.07 20:29l

 

 

"솔직히 기쁘기보다 착잡하고 참담합니다."

42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마침내 주홍글씨를 지웠지만, 한승헌 변호사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부장판사 이헌숙)는 1975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던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한 변호사는 '유럽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된 김규남 의원을 애도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그가 '북괴'를 이롭게 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015년 12월 대법원이 김 의원의 재심 무죄판결을 확정하면서 한 변호사도 자연스레 무죄가 됐다.

여든넷 인권변호사 "아직 할 일 많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등 시민사회 원로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승헌 변호사(가운데) 무죄 축하연이 열렸다.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등 시민사회 원로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승헌 변호사(가운데) 무죄 축하연이 열렸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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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평양냉면집에서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등 시민사회 원로 40여 명이 마련한 한승헌 변호사 무죄 판결 축하연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 변호사는 자신보다 더 참혹한 형을 받았거나, 이미 사형이 집행돼 재심 무죄 판결을 직접 듣지 못한 이들을 떠올렸다. 그는 "그때 그 제도와 법률 또는 권력의 독수가 지금도 가시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1934년생인 한 변호사는 올해로 여든넷이다.

 

그는 유신독재 시절 '김지하 오적 필화 사건' 등을 변호하며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불렸다. 권력 앞에 벌거벗은 피고인에게 나라도 우군이 되어주자는 마음이었지만 자신의 삶도 고됐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옥살이를 할 때는 '각서를 쓰면 내 보내주겠다'는 중앙정보부의 제안을 거절한 대가로 47살에 소년교도소 생활을 했다. 한 변호사가 그 시절을 떠올리며 "교도소 중에 여자교도소 빼고 다 가봤다"고 농담을 건네자 원로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오랜 '의뢰인' 백기완 소장은 "한 변호사와 어려운 고비를 몇 번 넘겼다"고 회상했다. "유신 반대 싸움하다 잡혀가고, 전두환 일당에게 잡혀갔을 때"도 한 변호사는 돈 한 푼 받지 않고 그를 변호했다. 오랜 수배 생활 때문에 처참한 몸으로 수감된 그를 이틀에 한 번씩 접견 와 살핀 것도 한 변호사였다. 백 소장은 "한 변호사의 무죄 선고는 정말로 반갑게 맞이할 사건"이라며 "그를 반공법 위반으로 감옥에 넣은 것 자체가 반공법이 무효라는 걸 보여준다"고 소리 높였다. 모든 테이블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약 30년 만에 다시 만난 '유럽간첩단 사건' 피고인 김판수씨(좌)와 한승헌 변호사(우)
▲  약 30년 만에 다시 만난 '유럽간첩단 사건' 피고인 김판수씨(좌)와 한승헌 변호사(우)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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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축하연에는 '유럽 간첩단 사건'의 마지막 생존자 김판수씨도 참석, 한 변호사와 약 30년 만에 재회했다. 1969년 5월, 27살의 김씨는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한 변호사와 처음 만났다. 간단한 사실관계 확인 후, 한 변호사는 김씨에게 "혹시 여기까지 온 걸 후회합니까?"라고 물었다. 김씨는 "좀 고통스럽긴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며 "'길을 잘못 들어 신세 망쳤다'는 사람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고, 후회한 적도 없는 걸 자랑으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한 변호사도 당시를 떠올리며 "무죄를 확신하면서도 유죄를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간첩이 만들어지던 시대에, '조작 간첩' 변호하는 시국변호사의 현실이었다. 끝내 김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던 대법원은 지난해 1월 그의 재심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이 사건을 설명하던 한 변호사는 "너무 늦어빠진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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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88% 대멸종 이후 출현, 공룡 가고 개구리 왔다

조홍섭 2017. 07. 06
조회수 4530 추천수 0
 
새로 쓴 개구리 진화사, 공룡 빈자리 포유류 더해 개구리 차지
나무에 서식지 마련, 난태생 고안 등으로 세계 퍼져 6700종 진화
 
Peng Zhang, Sun Yat-Sen University.jpg» 청개구리는 공룡 멸종 뒤 급속하게 서식지를 넓히며 세계로 퍼져나간 3 무리의 고대 개구리 가운데 하나이다. Peng Zhang, Sun Yat-Sen University
 
6600만년 전 거대한 혜성 또는 소행성의 충돌과 함께 지구에는 대멸종 사태가 일어나 날지 못하는 공룡을 포함해 생물 종의 4분의 3이 사라졌다. 포유류는 그 생태계의 빈자리를 차지해 번성했다.
 
그러나 대멸종의 기회를 잡은 동물이 포유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개구리가 중생대 동안 서서히 진화해 종이 분화했다는 기존 학설과 달리 대멸종 사태 이후 급속히 종이 나뉘어 세계로 퍼졌다는 가설이 나왔다.
 
f1_Brian Freiermuth.jpg» 마다가스카르의 이 청개구리도 대멸종 이후 서식지를 나무 위로 넓혀 확산한 종 가운데 하나다. Brian Freiermuth
 
중국과 미국 연구자들은 전 세계 개구리 156종의 핵 유전자 95개를 새로 분석하고 기존 145개 종의 유전자 데이터와 함께 화석자료 등과 비교했다. 과학저널 <미 국립 학술원 회보(PNAS)> 3일 치에 실린 이들의 논문은 이제까지 개구리 계통 유전학 연구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것으로 개구리 진화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동 저자의 하나인 데이비드 블랙번 미국 플로리다 자연사박물관 학예사는 “지구에 개구리가 산 지는 2억년이 넘지만 우리가 오늘날 보는 것처럼 엄청나게 다양한 개구리가 폭발적으로 분화한 것은 공룡의 대멸종 사태 이후의 일”이라고 이 박물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개구리는 현재 6775종이 밝혀져 있으며,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류군에 속한다.
 
유전자 분석 결과 오늘날 개구리 종의 88%는 대멸종 사태 때 살아남은 3개 계통에서 기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룡 등 대부분의 육상동물이 사라진 생태계에서 이들 개구리 무리는 급속하게 서식지를 넓히며 다양한 종으로 분화했다.
 
Figure-1_timetree.jpg» 계통유전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새로 작성한 개구리 진화의 계통도. 중생대 말 대멸종 사태(점선)을 계기로 종다양성이 급속히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
 
그렇다면 대멸종 뒤 개구리가 크게 번성한 비결은 무엇일까. 공저자인 데이비드 웨이크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교수는 나무에서 새로운 서식지를 마련한 것과 난태생을 고안한 것을 꼽았다.
 
그는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대멸종 사태 뒤 세계는 매우 황폐화했는데 식물이 다시 살아났을 때 꽃이 피는 속씨식물이 지배하게 됐다. 바로 이때가 나무 진화의 전성기였다. 개구리는 나무에 살기 시작했다. 개구리가 특히 남아메리카로 급속하게 분화해 나간 비결은 나무에 사는 능력이었다.”라고 말했다.
 
나무는 육상 포식자로부터 도피처를 제공해 줬고, 개구리가 바닥에 내려왔을 때는 땅에 떨어진 나뭇잎에 숨을 수 있었다. 또 나무는 번식장소이자 곤충이 풍부한 먹이터이기도 하다. 
 
frog3.jpg» 대멸종 뒤 살아남은 3 대 무리 가운데 하나인 나타타누라 개구리. 카메룬에 서식한다. Brian Freiermuth
 
올챙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알에서 바로 새끼 개구리가 나오는 난태생은 현재 개구리의 절반가량이 채택하는 번식 방법이다. 웨이크 교수는 “유생을 거치지 않는 직접 발생과 나무 서식지 확보가 결합해 개구리의 급속한 분화를 낳았다”고 말했다.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개구리는 10개 계통이지만 이 가운데 청개구리상과, 맹꽁이과, 나타타누라(Natatanura) 무리 등 3개 집단만이 살아남아 오늘날 개구리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연구자들은 계통지리학적으로 볼 때 현재 개구리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으며, 초대륙 판게아와 뒤이은 남반구 초대륙 곤드와나가 분리하면서 현재의 분포를 이루게 됐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이처럼 대멸종의 위기를 기회로 삼은 개구리는 현재 세계적인 멸종위기에 놓여있다. 논문의 주저자인 장펑 중국 국립중산대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과 교수는 “이 연구에서 가장 멋진 일은 개구리가 얼마나 강인한 동물인지를 밝혔다는 점이다. 개구리는 공룡을 멸종시킨 격변을 살아남아 재빨리 번성했다. 하지만 요즘 개구리는 인류가 서식지를 파괴하는 바람에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대멸종 사태보다 강력한 거대한 멸종사태를 일으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플로리다 자연사박물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Yan-Jie Feng et al, Phylogenomics reveals rapid, simultaneous diversification of three major clades of Gondwanan
frogs at the Cretaceous–Paleogene boundary, PNAS, www.pnas.org/cgi/doi/10.1073/pnas.17046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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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북한 ‘선제타격’은 ‘최악의 전쟁’으로 확대될 것”

 

재래식 보복 공격만으로도 초기 피해 엄청나... 첫날에만 3~6만명 사망 예측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7-07-07 11:33:26
수정 2017-07-07 11: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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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는 북한에 '선제공격'은 최악의 전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 기사에서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에 '선제공격'은 최악의 전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 기사에서 보도했다.ⓒ뉴욕타임스 인터넷판 캡처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른바 대북 군사적 수단의 하나로 거론되는 '정밀 타격(Surgical Strike)'은 북한의 반격으로 최악의 전쟁 상황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6일(현지 시간) '북한에 대한 정밀 타격은 최악의 전쟁(Fighting)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북한과 미국의 대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어떠한 군사적 공격도 북한의 반격을 불려와 한국에는 잔혹한(bloody) 피해를 입히는 위험을 초래해 사용할 수 있는 군사적 옵션(선택)이 없다"고 보도했다.

NYT는 그 이유로 미국의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을 겨냥한 미국의 군사공격 시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배치한 자주포와 방사포 등으로 한국의 수도권을 향해 집중적인 보복공격에 나서는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NYT는 미국 민간 연구기관인 노틸러스연구소의 2012년 보고서를 토대로 북한이 이러한 재래식 무기로 한국의 군사 시설을 겨냥한다면, 몇 시간 안에 3천여 명이 사망하고 민간인을 겨냥했다면 3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군사 전문가들을 인용해 북한이 미국의 군사공격을 받더라도 곧바로 핵무기에 손을 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했다. 북한이 미국의 핵 보복을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핵무기나 생화학무기의 즉각적인 사용은 자제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NYT는 김 위원장이 전면적인 북침을 격퇴해야 하거나, 외부의 핵 공격 또는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시도가 임박했다고 판단할 때는 이러한 무기에 의존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했다.

NYT는 이러한 대량살상무기가 아닌 휴전선의 재래식 무기만 동원되더라도 북한의 반격으로 한반도는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하고, 전황의 예측 또한 어렵다고 지적했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앤서니 코즈먼 연구원은 미국의 북한 공격 이후 단기간에 벌어지는 상황을 예상하는 것은 '3차원 체스와 같은 아주 복잡한 게임'이라고 묘사했다.

NYT는 미국이 북한 선제 타격을 시행한다면, 확전으로 치달을 요소가 양측 모두에 많아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멈추기가 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의 공격을 받는다면 의도적으로 '제한적 대응'을 하기보다는, 미국과 한국의 북침에 대비해 단시간에 화력을 집중시켜 큰 피해를 안기려 할 것으로 전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민중의소리

"미국의 선제공격은 '끝장내기 게임' 될 것" 
남경필 경기도지사, "한국 국민 스스로 목숨 지켜야"

노틸러스연구소는 북한이 예고 없이 서울과 수도권의 군사시설을 향해 포 공격을 할 경우 첫날 만 하루 동안 6만 명의 사망자가 날 수 있다고 예견했다. 북한이 수도권을 겨냥한 170mm 자주포, 240mm와 300mm 방사포 공격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가 초기 피해를 가늠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제프리 호르넝 연구원은 이에 관해 NYT에 "북한도 (미국의 선제공격이) 싸움 없이는 완화할 수 없는 '끝장내기 게임(end game)'이라는 것을 안다"며 "격전(barrage)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의 방사포 등 재래식 무기를 한국 보복 타격에 사용하고 탄도미사일은 미군 군사기지 등에 사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 군사문제 전문가 조지프 버뮤데즈는 "탄도미사일은 주일 미군기지 등 군사시설을 겨냥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에 배치된 미사일 방어체계는 이스라엘의 단거리미사일 방어체계인 '아이언 돔'의 기능을 해내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 때문에 한국과 미국은 레이더로 북한의 포를 탐지한 후 공습으로 궤멸시키는 대포병 전략에 집중할 것으로 봤다.

노틸러스연구소는 이라크전을 토대로 한미가 이 전략을 구사하면 북한이 시간당 1%의 포를 잃고, 만 하루 동안 포 전력의 5분의 1 정도를 상실하며, 3∼4일이 지나면 북한의 포대를 제압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 과정에서 탱크와 지상군을 휴전선으로 보내거나, 주요 항만에 특수부대를 투입할 가능성도 예상했다.

NYT는 북한의 보복 공격으로 인한 인명 피해 규모는 한국 정부의 국민 보호 능력에 달렸다면서도 피상적인 민방위 훈련, 비상 물품 비축 부재 등 일반 주민의 '안보 불감증'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전 후) 첫 72시간이 문제"라며 "각 개인들은 그들 자신의 목숨을 지켜거나, 스스로 대비해야 한다"라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인터뷰 내용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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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한반도 평화 구상’]“북한 체제 보장하는 비핵화”…이산상봉 등 ‘선이후난’ 로드맵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ㆍ‘평화 구상’에 담긴 5대 정책 방향·4대 제안
ㆍ“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포괄적 접근
ㆍ‘10·4 선언 10주년’ 추석에 성묘 방문·적십자회담 제의
ㆍ휴전일에 군사적 적대 행위 중단 제안…북 호응 미지수

[문 대통령 ‘한반도 평화 구상’]“북한 체제 보장하는 비핵화”…이산상봉 등 ‘선이후난’ 로드맵
 

문재인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 구상’의 요지는 우선 전쟁을 방지해 평화를 정착시키고 북한의 안보·경제적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체제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에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를 위한 대화로 나설 것을 촉구하고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긴 여정’에 첫발을 떼면서 손쉬운 현안에서 신뢰를 쌓자며 이산가족 상봉 등 구체적 사안도 제시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보였다.

■ ‘체제 보장 비핵화’ 평화 구상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남한이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갖고 남북대화를 재개하는 것에 대한 지지를 확보한 뒤 이날 연설을 통해 자신의 대북구상에 탄력을 가했다. 지난달 30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 등을 통해 밝힌 북한 붕괴, 흡수통일, 인위적 통일 반대를 더욱 확장해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비핵화’를 추구하겠다는 입장도 드러냈다. 특히 이 같은 접근법은 북한에 대해 정권교체나 공격을 하지 않고 체제를 보장하겠다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언급과도 맥이 닿아 있다. 

더 나아가 “북핵문제와 평화 체제에 대한 포괄적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북한의 안보·경제적 우려도 해소하겠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그간 북한이 ‘핵 개발은 자위권’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북한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며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지난 9년의 정부가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말했다. 

■ 공식화한 ‘문재인 로드맵’ 

 

이를 실행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로드맵도 공개됐다. “한반도 평화 통일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먼저 쉬운 일부터 시작해 나갈 것”이라는 이른바 선이후난(先易後難) 접근 방식이다.

시간적으로는 가장 먼저 7월27일 휴전협정 64주년을 맞아 남북이 군사분계선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적대적 행위를 중지하자는 제안이 담겼다. 군은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 조치로 대북 심리전 확성기 방송을 전면 재개했다. 일각에서는 남한 정부가 이를 선제적으로 중단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또 추석과 맞물린 10·4 정상선언 10주년을 계기로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더해 성묘 방문을 제의했다.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자며 북한의 참여를 재차 요청했다.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도 열어뒀다. 문 대통령은 ‘올바른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한반도 긴장과 대치국면을 전환시킬 계기가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며 “남북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제재·압박 국면, 북한의 ICBM 발사 등에도 불구하고 평화 체제 구축,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등을 강조한 것은 대화를 강조한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 북한의 호응 가능성은 

주목되는 것은 북한의 반응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하고 핵 보유국 지위를 바탕으로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북한이 이 제안에 당장 반응을 보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북한은 민간 교류를 통해 접촉을 확대시켜 나간다는 구상에 부정적이다.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참석차 방한했던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스포츠 교류가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 것이라는 기대에 대해 “천진난만한 생각”이라며 “정치·군사적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흡수통일이나 체제 붕괴를 배제하고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비핵화라는 접근법에 대해 북한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특히 군사분계선 적대행위 상호 중단과 관련된 군사회담 등에 대해서는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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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 홍장표 경제수석에 기대를 건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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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7/07/07 11:38
  • 수정일
    2017/07/07 11:3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최저임금인상 요구는 촛불시민혁명의 인권선언문이다.
 
이래경  | 등록:2017-07-07 10:29:37 | 최종:2017-07-07 10:41: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최저임금 인상’ 홍장표 경제수석에 기대를 건다! 
[다른백년 칼럼] ‘최저임금 1만원’은 촛불 인권 선언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최저임금 정책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갑론을박의 토론이 있는 것은 미래로 향해 나가는 한국사회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마침, 필자가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하면서 구성된 비전위원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새정치의 사회경제운영의 원칙’이라는 문건을 통하여 필자는 박근혜 정권이 마감되는 2018년 기준하여 1만 원을 원칙으로 적용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같이 참여한 비전위원 여러분들과 비전 내용을 당과 연계하는 의원들의 대부분 의견이 너무 과격하다 조언하면서 이를 공식적으로 만원에서 8000원으로 조정한 경험이 있다.

최근 소개된 국민정책연구원의 연구보고서 내용은 매우 공을 들여 준비한 것으로 현실에 대한 통계를 중심으로 조밀하게 분석한 전문성은 인정할만하나, 변혁기에 놓인 한국사회의 과제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변화에 대한 의지가 매우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행여 전문성을 가장해서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의 핵심적 정책에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상기 보고서는 급격한 임금 인상이라는 개혁에 반대하면서 현재적 상황을 통계라는 단순한 프리즘을 통하여 접근하는 기능적 한계를 지니는 반면에, 다만 최저임금이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를 준비없이 성급하게 시행하려는 것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어 후자의 부분은 충분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정말 가관인 것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위원장이라는 사람의 발언이다. 평소부터 그를 국세청의 사무관급 인물이라고 낮게 평가한 필자이지만, 오래 전부터 합의하고 준비해온 종교기관과 종교직업인들에 대한 과세 계획을 연기하려는 그의 의도적 발언에서 교회장로라는 사적인 신앙의 영역과 국가운영의 공적인 중심주제를 혼동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던 차에, 역시나 대선의 선거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의 만원으로 인상'을 시기상조라고 우기는 편협한 그의 모습에서 민주당 정권의 성격과 문재인 대통령의 앞날에 심각한 불안을 느낀다. 그의 발언은 철밥통 공직사회의 반(反)개혁적 모습을 무의식 중에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논쟁은 선거법과 헌법개정, 검찰과 국정원 개혁과 더불어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매우 중차대한 기제이며,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성격을 규정짓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하게 저수준 노동의 임금인상이라는 단순한 영역을 넘어서 한국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사회철학적 실천적 중심과제이며,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산업 전반에 대한 변혁적 계기 또는 촉매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부동산 투기 등 지대추구활동이 여전히 왕성하고 기득권의 위세로 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전 인구의 17%가 천형적 빈민으로 분류되는 가운데,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원을 참여적 조건에서 개별적으로 제공하려는, 그리고 1997년이후 신자유주의가 활개를 치면서 시장기제라는 미명하에 기업의 이익 실현이 단세포적으로 작동하는 경제의 현실에서 시민적 삶의 영역을 온전하게 보호하려는, 이러한 최저임금 논쟁은 현재의 한국사회와 문재인 새 정부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위에 언급한 국민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서 볼수 있듯이, 단순하게 최저임금이라는 분야만을 분리시켜 다른 OECD 국가들과 통계적인 수치만을 나열하여 비교하는 것은 예의 통계학적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질적인 평가는 정치경제학적 거시 관점에서 출발점을 잡아야 하며, 해방 이후 70년간 누적된 사회경제적 적폐와 결함을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의지를 담아내야 한다. 국제간의 비교는 총체적 내용을 담보해 낼 때만이 비로소 유의미하다.

현재 한국에서는 통계상 제대로 잡히지 않는 토지 소유 등 부동산 소유 현황과 금융 자산의 편재로 인해 연간 발생하는 400~500조 원의 불로성 자산소득의 80~90%를 불과 1.0%의 소수가 차지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산업운용 체계 내에서 생산되는 주요한 부가가치의 70%를 30대 재벌이 빨대처럼 독식하는 경제구조 속에서 평범한 시민들은, OECD 최고수준의 과다한 주거와 교육 비용, 그리고 역으로 OECD 최저수준의 사회이전소득효과와 사회안전망의 절대적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하루가 생존 경쟁의 전장 터이며, 불안과 위기라는 단어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신속한 인상을 검토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적 요소는 내수시장 규모의 심각한 위축이다. 미국의 경우, 내수시장의 규모는 국민순소득의 70% 수준이며 유럽국가들의 평균 역시 65% 수준을 상회하는 반면에, 한국은 50% 수준도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2016년 기준 국민순소득이 1400조 원이라고 추정할 때 내수시장규모는 800조 원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위에 언급한 극심한 불평등과 부의 편재, 그리고 복지안전망 이라는 국가기능의 결핍마비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우려하는 주요한 입장은 한국산업의 경쟁력이 급격히 저하될 수 있다는 걱정과 자영업과 중소기업에게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책적 선의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규모의 실업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협박성 발언이 보태진다.

상기 입장에 대한 답변에 앞서 여러분의 일반적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국사회경제의 운용에 대한 두 가지의 변혁적 시각을 제공하는 문건 내용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것은 2014년 상반기 두 달간 한시적으로 활동했던 새정치 비전위원회에서 필자가 피력하고 서면으로 제출한 내용이다. 

“현시점에서 한국 정치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성장의 결과가 가져온 부정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긍정적 요소들을 키워나가는 일종의 강제적 순환이며 핵심은 경제운용의 성과를 어떻게 배분하는가에 달려있다. 배분의 가장 주요한 기능은 국민경제 내부에 생산과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그 성과를 국민모두가 공정하고 정의롭게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분의 영역은 이미 언급하였듯이 1차적으로 산업의 경제적 활동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총괄적인 지수는 노동배분율로서 국민경제의 총 부가가치분에서 피고용임금노동자들이 받는 보수의 비중이다. 노동배분율을 적정수준으로 끌어올려야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노동배분율(자영업분야를 제외한)은 1997년 IMF 직전 1400만 명의 피고용임노동자를 대상으로 63% 수준까지 올라갔다가 2013년 현재 1700만명의 피고용임금노동자 대상으로 58% 수준까지 후퇴하였다. 즉 지난 15년간 피고용 임금노동자가 300만 명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배분율은 오히려 5.0% 이상 격감한 것이며, 이는 내수경기가 어려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동시에 노동시장구조의 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산업경제 활동의 영역에서 최저임금의 수준을 그저 시간당 1만원이라고만 규정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회평균임금의 70% 수준 이상으로 정하는 것이 규범적이며 정책적으로도 효과적이다. 산업별 직종별 사업장별 이라는 삼동(三同)의 조건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관철시켜야 하며, 저임구조를 혁파하기 위해서 비정규직 임금이 반드시 정규직 임금보다 높게 책정되어야 한다. 복지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조세체계의 전반적 개혁을 필요로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불로소득인 자산소득에 대해서 포괄적이고 강력한 누진세를 강화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이러한 1차적 영역에서의 배분이 선순환을 이루면, 내수시장이 확장되고 560만 명의 영세 자영자들의 수입이 증대되며, 다양한 분야에서 놀랄 만큼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문건은 최근 경제수석으로 임명된 홍장표 전 부경대 교수의 글로 홍 교수는 놀랍게도 필자의 견해를 거의 완벽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그는 최저임금인상의 이론적 배경이 된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2015년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의 연구총서에 발표한 '소득주도 성장과 중소기업의 역할'이라는 연구논문의 결론부의 일부를 아래와 같이 발췌하여 옮겨 적는다.

“소득주도 성장은 실질임금과 가계소득증대를 통하여 내수를 증진하고 생산성을 높여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전략이다. 한국경제의 수요체제나 생산성 체제에 관한 선행 연구들은 소득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질임금의 증가, 가계소득의 증진은 총 수요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실질임금 상승이나 복지의 증대는 단지 비용 상승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유효수효의 중가는 노동 절약적 기술진보를 촉진시켜 노동생산성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동시에 실질임금상승은 (내수기반을 확대하여) 고용을 증가시킨다. (중략) 이는 지나치게 높은 한국 경제의 수출의존도를 낮추고, 수출과 내수의 균형성장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중략. 소득주도 성장은 최저임금의 단계적 인상, 저소득가구에 대한 생활임금보장, 생산성 증가율과 실질임금 증가율의 연계를 주요한 정책수단으로 한다, 그리고 영세소상인과 저임금노동자 가구의 생계를 지원하는 사회복지제도의 강화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의 시간당 만원으로 인상을 거부하는 이유로 한국산업계 특히 중소기업에 급격한 부담과 타격으로 인해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이 증대할 것이라는 판단은 개혁의지를 거부하고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고집하는 것으로 명백한 잘못이다. 잘못이라는 근거로 두 가지의 역사적 경험을 들어본다. 

첫째는 북유럽에서 1960년대에 도입했던 랜-마이드너 정책 이야기이다. 당시에 불어 닥친 불황과 수출경쟁력의 저하의 원인을 임금 불평등과 산업경쟁력의 부족으로 보고, 사회연대임금정책을 실시하고 일정수준의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면서 동시에 부가가치증대와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산업혁신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저부가가치 분야에서 일하던 산업인력이 대거 고부가가치 산업 분야로 이동하게 되면서 현재 북유럽은 세계적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지역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물론 사민당 중심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정치환경이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다.

두 번째는 질풍노도의 6월 민주화운동 이후 1987년 에서 1990년대 중반의 한국에서의 경험이다. 

이 기간 동안 인금인상율은 두 자리를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가파른 임금인상이라는 걱정에 비춘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은 도산했어야 맞다. 그러나 오히려 이 기간 중에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며 우뚝 서는 거인들로 성장하였다. 실제적인 한강의 기적은 이때 이루어진다. 긴 설명을 대신하여 짧게 이야기하자면 임금 인상이 엄청난 생산성 향상과 혁신기제로 작동하였던 까닭이다. 이전까지 기업들이 성장에 의존해왔던 특혜와 투기 그리고 저임금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조건에서 한국의 대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다양한 혁신의 노력을 통하여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IMF 과정에서 부도로 사라진 기업들 대부분은 상황과 조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혜와 비리, 부정 그리고 투기에 의존해 왔던 기업들이다. 선진국가 기업들의 역사를 보아도 임금이 높아서 부도가 난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며 대부분 경영과 전략의 실패가 주류를 이룬다.

최저임금 인상은 한국경제의 약점인 중소기업의 혁신전략과 직접 연계되는 매우 중요한 주제인 만큼, 문재인 정부는 중소기업의 구조혁신을 제약하는 온갖 산업생태계를 개선하는데 모든 정책을 선제적으로 강구하여야 한다. 대기업들의 갑질 불공정거래의 차단과 공정한 시장질서의 구축도 긴급하지만, 기존의 관행이었던 중소기업의 과잉 보호 역시 매우 위험하다. 

단기적으로 중소기업의 임금부담은 당연히 상품가격과 납품단가로 반영이 되어 시장에서 판매되거나 수요처인 대기업이 지불하여야 마땅하다. 장기적으로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가격인상 요인을 흡수하면서, 메기 이론에 따라 경쟁력을 키우되 시장기제에 의거해서 최저 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을 만큼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은 마땅히 퇴출되어야 한다. 고통의 대가를 치러야만 미래의 기회가 주어진다. 다만 최저임금의 인상이 내수시장 수요의 확대라는 선순환적 효과로 돌아오는 약 3년간을 유예의 기간으로 설정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별도의 지원적 보상책이 준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에 관해서는 홍장표 수석과 김상조 위원장이 누구보다도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장 크게 우려되는 영역은 560만 명이 종사하는 자영업 분야이다. 이 분야에 대해서도 중소기업 영역 못지 않은 냉정함으로 단기적 정책과 장기적인 관점이 동시에 필요하다.

경제적 성과가 선순환이 이루어지던 IMF 이전 시기에는 자영업의 평균소득이 봉급생활자 수준을 넘어서서 대부분의 임노동자들이 자영업을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2017년 현재의 상황은 전문직종과 일정규모 이상의 소수 자영업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월 평균 수입은 임노동자들의 평균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200만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의 가계부채가 몇 년 사이에 급속히 늘어 부동산 대출과 함께 한국경제의 잠재적 시한폭탄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자영업에 관한 접근은 단순히 현재 논쟁대상인 최저임금 인상만의 주제로 좁혀 보아서는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자영업을 일자리 창출과 복지기능을 상실한 국가부재에서 오는 방편적 잠재적 반(半)실업군으로 인식하면서 접근해야 마땅하다.

한편 장기적 관점에서 필자는 전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제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는 시점에서 자영업 분야는 위에 언급한 심각한 현재적 문제를 노출함과 동시에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비선형적 직업선택(jobs on demands, GIG)의 형태로 진화하면서 자유롭고 전문적인 그리고 자기실현과 만족이라는 미래지향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며, 일인소유 형태의 자영업에서 지역내의 공동 협업과 공유적 네트워크를 통하여 사회적 경제로 편입되고 재구성되면 질적인 부가가치와 내용을 담보해 낼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한국적 현실의 반(半)실업군인 자영업 분야는 최저임금인상 문제와는 별개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반드시 재편되고 재구성이 불가피한 영역으로 새로운 시각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경제의 운용성과와 연동되어 접근하고 파악되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충격은 일반시민으로서 소비자들이 분담하는 방식으로 흡수하여야 한다. 우선 임금인상 부분만큼 다양한 서비스 비용의 인상을 인정하여야 하며, 편의성을 떠나서 총 사회적 소비량은 영업시간과 대충 무관하므로 장시간 노동의 관행을 탈피하여 영업시간의 단축을 도입하여야 한다. 필자가 80년 초 처음 유럽을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상점들이 근무시간에 맞추어 문을 닫는 바람에 치약 하나 구매하는데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당시에는 화가 났으나,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음식점들도 개폐점 시간을 정확히 명시하여 노동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야 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한국도 이제 이러한 유럽의 경험과 관행을 필요에 따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임금인상 부분만큼을 사회 전체가 긍정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노동에 대한 효율성이 제고되고 노동의 소중함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최저임금의 시간당 만 원대 인상이 내수시장 규모를 확대하면서 자영업 분야에도 시차를 두고 선순환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며, 다양한 형태의 혁신기제로 작동하면서 거대한 변화를 불러 올 것이나, 문제의 핵심은 과연 소규모의 자영업자들이 내수시장의 확대라는 효과가 나타나는 2-3년의 단기적 부담을 이겨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이 분야의 전문적인 경험과 소견이 없는 관계로 필자로서는 책임있는 정책을 제시할 수 없으나, 다만 아이디어 수준에서 제안해보고자 한다.   

우선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문제는 사회에서 일찍 퇴출된 중년들과 사회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임시방편으로 일하는 청년세대가 주요 구성원이라 판단하면서 실업문제와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항상 실업의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이 현실적으로 실업에 빠지지 않도록 사전적인 지원체계와 환경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국민경제와 국가재정에도 도움이다. 

그간 별로 실효적이지는 못했지만 저소득근로에 대하여 EITC(Earning Income Tax Compensation)라는 보충적 세제지원의 방식을 과감하게 확대하여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도 일정기간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여, 일정소득을 올리지 못한 부족부분과 결손부분을 역으로 보상해주는 방식을 연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난제는 투명한 회계기장을 의무화 할 수 있느냐에 따라 도덕적 해이와 부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취약점이 있다. 손쉽게는 임금인상의 일정 분을 선순환 효과가 일어나는 유예기간 동안 직접 보상해 주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재정적 부담이 클 수 있는 반면에 감추어진 고용 (shadow employment)의 신고가 의무화되어 투명하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의 보다 많은 제안과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최저임금 일 만원 인상’은 문재인 새정부의 성격과 의지에 달려 있다. 유럽대학의 명예교수인 필립 슈미터가 지적했듯이, 문재인 정부가 광장의 시민적 요구분출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기존 정치적 세력의 타협의 과정으로 출범한 것이라면, 기존 최저임금 위원회의 절차적 타협과 조정을 통하여 해당 기간의 매년 인상률을 결정하는 일상적 과정으로 진행할 일이다 (normal progressive).

만약 문재인 정부가 촛불시민혁명이 요구하는 것처럼 과거의 적폐청산을 넘어 새로운 역사의 시대를 열고자 출범한 개혁 정권이라면, 최저임금인상은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일상적 절차가 아닌 정권적 과제로 수행되어야 한다(reformative transformation). 최저 임금을 2020년 까지 시간당 만원으로 급격하게 인상하는 것은 비교하자면 호족세력의 기반을 배척한 조선초기의 토지수세논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필요하다면 절차와 과정도 정치적 의지로 돌파해야 한다. 결정이 이루어지면 일체의 예외를 인정해서는 아니 된다. 단 한 건도 예외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

최저임금인상 요구는 촛불시민혁명의 인권선언문이다.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234&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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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이 낳은 코미디, 세계 최초 '모래 썰매장'

4대강은 흘러야 한다

 
모래 팔아 공사비 충당하겠다더니... 산더미처럼 쌓인 모래성 어찌할꼬

17.07.07 07:16 | 글:최병성쪽지보내기|편집:김도균쪽지보내기

▲ 꼬리를 물고 서 있는 덤프트럭들. 무슨 일일까? ⓒ 최병성

대형 덤프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 서 있다. 중장비들이 강강술래 놀이라도 하는 것일까? 건설 현장으로 운반할 한강의 모래를 담기 위해 대기 중이다. 

2012년 12월, 4대강 사업이 완공된 지 벌써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강에서 얼마나 많은 모래를 퍼냈기에 2017년 7월 현재도 덤프트럭들이 꼬리를 물며 4대강 모래를 팔고 있을까? 

4대강에서 퍼 올린 모래가 언제 다 팔릴지 아무도 모른다. 변종 운하를 만들기 위해 강물 속의 모래까지 깊이 파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모래를 파냈는지 4대강 현장으로 가보자. 한강이 흐르는 경기도 여주시 곳곳에서 쌓여 있는 모래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마치 경주 왕릉에 온 듯하다. 그러나 경주의 봉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모래성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작은 먼지처럼 보일 만큼 모래성의 규모가 엄청나다.  
 
▲ 2017년 7월 현재 가득 쌓여 있는 4대강 준설토의 위용. 준설토에 비하면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주변 마을은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 이 모래들은 언제 다 팔릴까? ⓒ 정성헌

언뜻 보면 오래 전부터 이곳에 있던 동산처럼 보인다. 모래성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도 않았는데, 바람에 실려 온 씨앗들이 이렇게 자랐다. 모래성을 덮은 그물들도 찢겨 누더기가 되었다. 4대강 사업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보여준다.  
 
▲ 4대강 준설토 동산에 나무가 자라고, 그물막은 찢겨 누더기가 되었다. ⓒ 최병성

국민 세금 한 푼도 안 든다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약속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한 국민의 반대 여론이 염려되었다. 그래서 한가지 꼼수를 생각해냈다. 모래를 팔아 한반도 대운하 공사비의 60%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민자를 유치하여 국민 세금은 한 푼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과연 정말이었을까?  
 
▲ 4대강에서 파낸 모래로 공사비의 60%를 충당한다고 호언장담했는데... ⓒ 이명박

4대강 사업이 완공된 지 벌써 5년의 시간이 다 되어 간다. 모래를 팔아 공사비를 충당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인 모래성은 무엇일까? 4대강 공사비를 다 지불하고도 남은 모래일까?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한반도 대운하보다 규모가 작은 4대강 변종 운하에 22조 원이 넘는 혈세가 들어갔다. 22조 원 중 8조 원을 수자원공사가 부담했다. 그리고 수공 8조 원에 대한 이자 3400억 원을 매년 국민 혈세로 지불하고 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녹조로 뒤덮인 4대강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 수천억의 혈세를 매년 쏟아붓고 있다. 4대강 공사 시작 이후 지금까지 약 30조 원을 퍼부었다. 4대강 준설토를 팔아 국민 세금 한 푼 들이지 않고 공사한다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은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세계 최초의 모래 썰매장

한강에서 퍼낸 모래와 자갈을 수십m 높이로 쌓아놓은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바람에 날아온 풀과 나무가 자라며 자연스러운 동산이 되었다. 한강에서 퍼 올린 모래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15t 덤프트럭 233만대 분량이다. 서울 남산의 크기와 비교하면 남산의 절반 정도인 3천500만㎥ 규모다. 
 
▲ 태초부터 있던 동산이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강을 살린다며 강에서 파낸 모래로 쌓아올린 모래성이다. 2017년7월 현재 한강변에 쌓여 있는 모래성의 모습이다. ⓒ 정성헌

산처럼 높은 4대강 모래성 곁에 살아가는 주민들은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 겨울과 봄엔 모래 폭풍으로 창을 열 수도 없고, 여름에는 쓸려온 토사가 배수로를 막아 마을과 농경지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 그런데 여주시는 왜 4대강 사업에 찬성했을까? 

여주시는 한강 모래를 2012∼2017년 6년 동안 매년 580만㎥를 판매하여 모두 1천899억 원의 순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여주시의 꿈은 망상에 불과했다. 준설토 판매량은 연간 겨우 평균 100㎥에 불과했다. 경기도 감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쌓인 준설토를 다 처리하려면 앞으로도 16년이 지난 2031년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돈이다. 강에서 퍼 올린 모래와 자갈을 쌓아놓은 곳은 농민들의 농경지였다. 모래를 쌓아두기 위해 농경지를 빌린 임차료와 영농 보상비로 지금까지 지급된 비용이 약 400억 원이 넘는다. 저 많은 모래를 다 팔아도 남는 이익이 없다.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 있다. 준설토를 다 팔면 농지를 원상복구 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 비용이 무려 150~200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만약 농지 주인이 농지 전용허가가 종료되는 2017년 후 모래를 이전해 달라 요구할 경우, 운반비로 1560억 원이 추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여주시는 돈이 될 줄 알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에 찬성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돈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여주시는 준설토가 팔리지 않자, 모래를 이용하여 돈을 벌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세계 최초의 모래 썰매장이라는 관광 상품을 만든 것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추가 예산이 필요했다. '준설토 적치장을 이용한 관광자원 조성사업' 명목으로 2억5천만 원의 예산을 승인받았다. 길이 55m, 폭 15m의 모래 슬로프를 만들었다. 이동식 화장실과 몽골 텐트 등 부대시설을 설치했다. 모래 썰매장에 총 1억7천3백여만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었다. 
 
▲ 개장도 하지 못하고 폐장된 모래썰매장. ⓒ 최병성

세계 최초의 모래 썰매장은 여주시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 주었을까? 모래썰매장을 직접 올라가 보았다. 수십m로 쌓인 거대한 모래성이니 경사는 높았다. 작은 모래주머니 계단을 밟고 모래성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연 모래 썰매장은 얼마나 신나는 놀이가 될까? 겨울눈처럼 미끄러지지 않으니 속도감이 전혀 없다. 입안에 씹히는 모래는 기본이요, 신발과 온몸에 모래 먼지를 뒤집어 써야 했다. 모래 썰매장에 찾아올 손님이 없었다. 결국, 아까운 예산만 날린 채 모래 썰매장은 폐장되었다. 

여주시는 5천만 년 만에 찾아온 발전의 기회라며 4대강 사업을 적극 찬양했다. 여주시의 관변단체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에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환경 파괴와 혈세 낭비의 재앙뿐이었다. 

모래를 강으로 돌려보내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의 모래를 왜 끔찍하게 파냈을까? 운하를 만들어 배가 다니기 위해서는 모래를 파내고 물길을 만들 명분이 필요했다. 이 대통령은 강을 살리기 위해 모래가 쌓여 죽은 강의 모래를 파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을 살린다는 미명 아래 수많은 굴착기들이 강을 휘저었고, 생명의 강은 피 흘리며 죽어갔다. 
 
▲ 모래가 쌓인 죽은 강을 살린다며 강을 직선화하여 거대한 수로로 만들었다. 4대강이 굴착기 삽질 아래 붉은 피 흘리며 죽어갔다. ⓒ 습지와새들의 친구

정말 모래가 죽은 강의 증거일까? 아니다. 물만 가득한 곳을 강이라 하지 않는다. 강은 물과 모래, 자갈과 습지 등의 다양한 환경과 그곳에 깃드는 수많은 생명들로 이뤄진 곳이기 때문이다.  

모래가 강에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있다. 모래는 수많은 생명이 깃드는 곳일 뿐만 아니라, 물을 맑게 정화하는 기능을 한다. EBS 하나뿐인 지구에서 모래의 수질 정화 기능을 보도한 적이 있다. 작은 유리그릇 3곳에 모래를 담고 물을 흘려보냈다. 3단계 모래를 거치며 물이 맑아졌다. 
 
▲ 3단계 모래 비이커를 거치며 오염수가 맑게 정화되었다. 단지 모래만 통과했을뿐인데. ⓒ 하나뿐인 지구

실험을 담당한 충남대학교 환경공학과 서동일 교수는 "실험실에서 작은 장치로 실험했을 때, 40~50% 정도의 오염물질 제거 효과가 있는데, 실제 현장에선 더 큰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모래가 오염된 물을 정화시켜준다는 것이 정말일까? 우리가 매일 마시는 수돗물은 정수장에서 모래 여과 장치를 통과한 물이다. 정수장의 수돗물 생산 과정에서 물속 부유물질을 걸러내기 위해 응집침전을 시킨 다음 반드시 모래 여과장치를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모래 덕을 보고 있다는 기초적인 상식을 잊고 살아온 것이다. 모래에 있는 미생물이 세균을 처리하고, 암모니아 냄새를 제거하며, 합성세제 역시 모래를 거치며 제거된다. 

수돗물 생산과정에 모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모래가 죽은 강의 상징이라며 모래를 다 파냈다. 강은 직선화되었고, 물만 가득한 수로가 되었다. 이 전 대통령의 변종 운하 소원이 이뤄졌다. 그러나 많은 물이 물을 맑게 한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리 물이 많아도 모래 사라진 변종 운하의 결론은 '녹조 라떼'였다. 

4대강 사업은 생명의 강을 파괴하여 식수를 오염시킴으로써 국민의 생명을 위험으로 몰아간 범죄다. 국토를 파괴하고 국고를 거덜 내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4대강 청문회를 반드시 해야 한다.  

녹조 라떼가 된 4대강을 다시 살리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수문을 열어 강을 흐르게 하고, 강에서 퍼낸 모래를 다시 강으로 돌려보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여울과 소와 습지 등의 다양한 환경이 생겨 강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할 것이다. 
 
 
▲ 2017년 6월말 현재, 낙동강 달성보 부근에서 만난 낙동강 오늘의 모습. 강물이 흐르지 않고, 모래가 사라지니 녹조가 죽어 오색찬란한 수채화가 되었다. 신음하는 4대강을 살리는 길은 수문을 열어 강을 흐르게 하고, 모래를 다시 강에 돌려주는 것뿐이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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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한’ 미국과 ‘제재반대’ 중·러, 안보리서 ‘정면충돌’...추가 대북제재 난항

미국 대사, “군사력 사용” 으름장... 북한 ICBM 발사에도 ‘결의안’ 힘들 듯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자료 사진)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자료 사진)ⓒ뉴시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로 5일(현지 시간) 오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긴급회의를 개최했지만, 북한 추가 제재를 요구하는 미국과 이에 반대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정면충돌했다.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오늘은 매우 암울한(dark) 날"이라며 "불법적인(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위험하고, 무모하며, 무책임한 것"이라며 전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비난했다.

헤일리 대사는 "북한이 외교적 해결을 닫아버리고 있다"면서 "우리(미국)가 가진 여러 능력 가운데 하나가 막강한 군사력(considerable military forces)"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해야 한다면 그것을 사용하겠지만, 그런 방향으로 진입하지 않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대북 선제타격을 비롯한 군사 옵션까지 언급한 것이다.

헤일리 대사는 또 "유엔 제재를 위반해 북한과의 교역을 허용하는 나라, 심지어는 장려하는 나라들이 있다. 이런 나라들은 미국과의 교역도 계속하고싶어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대북 교역이 유엔제재를 위반할 경우 중국의 대미 교역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중국을 겨냥했다.

헤일리 대사는 이어 "새로운 대북 유엔 결의를 제안할 방침"이라면서 이번 북한의 ICBM 발사를 계기로 새로운 안보리 대북 제재결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헤일리 대사는 "북한의 새로운 (전력) 증강에 비례해 국제사회가 대응 수위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며칠 안에 안보리에 결의안을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헤일리 대사의 이 같은 언급에 영국과 프랑스, 일본, 한국 대사 등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하면서 추가 제재 등에 동의하는 발언을 내놨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추가 제재에 반대하며, 특히 '군사적 옵션'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블라디미르 사프론코프 유엔주재 러시아 차석대사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질식시키는(strangle) 것은 인도적 도움이 필요한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을 생각할 때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제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프론코프 대사는 중국이 주장한 쌍중단(雙中斷·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동시 중단)에 관해 지지 입장을 표명하면서 "모든 국가는 전쟁을 야기하는 도발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사적 수단은 배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언에 나선 류제이 유엔주재 중국 대사도 "대북 군사 수단은 옵션이 아니다"라고 헤일리 미 대사의 발언을 일축했다. 류제이 대사는 거듭 '쌍중단'을 문제 해결책으로 제시하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 철회를 요구했다. 류제이 대사는 "사드는 지역의 전략적 안전을 해치고, 비핵화와 평화적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사드 철회를 거듭 주장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같은 입장으로 미국의 제안에 강력하게 반대하자, 흥분한 헤일리 미국 대사는 "그들(북한)은 당신들이 말한 것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서 "우리가 함께 해야 하고 행동을 늦출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헤일리 대사는 감정을 이기지 못한 듯 "만약 북한의 행동에도 즐겁다거나, 북한과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면, 앉아서 제재에 반대하거나 새로운 (제재) 결의안에 비토(Veto,거부권)를 행사하면 된다"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안보리에서 미국과 미국을 지지하는 서방측과 중국과 러시아 측이 정면충돌함에 따라 유엔의 추가 대북제재는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중국과 러시아 정상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대화'를 우선시하는 공동 입장을 표명함에 따라, 북한의 ICBM 발사에도 불구하고 유엔 안보리의 추가적인 제재 결의안 채택은 난항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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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신문, "핵무력완성의 최종관문...ICBM '화성-14'형 단번 성공'

북 신문, "핵무력완성의 최종관문...ICBM '화성-14'형 단번 성공'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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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5  12: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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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ICBM '화성-14'형 시험발사 명령을 하달하는 사진과 명령서, 시험발사 장면을 1면에 올렸다. [캡쳐사진-노동신문]

"국가 핵무력 완성을 위한 최종 관문인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시험발사의 단번 성공"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5일 '위대한 우리 조국 만만세!' 제목의 정론에서 북한 주민들의 반향을 담은 사진과 함께 전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시험발사에 대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이라는 병진노선에 따라 빠른 속도로 발전된 북한의 국력과 자립적인 국방공업의 위력을 시위한 일이며, "세기를 두고 강위력한 국방력을 갈망해온 우리 공화국(북)의 역사에 특기할 대경사, 특대사변"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세계를 변화시킨 10가지 발명'과 같은 화제가 곧잘 인터넷에 오르기도 하지만 "지구상의 가장 강력한 '절대병기'와 함께 조선이 보유한 대륙간탄도로케트가 세계에 주는 영향력은 그 어떤 특대 발명과도 견줄 수 없을만큼 위대한 것"이라며, 북이 핵과 ICBM 보유국임을 과시했다.

나아가 "제국주의 반동들이 세계의 민심을 기만하고 협박하면서 불의의 축으로 돌리려던 지구는 이제 이 우주에 없"으며, "넓고 넓은 이 행성의 역사는 2017년 7월 4일부터 새로운 자전을 시작하였다. 그 중심에는 조선이 있고 인류 역사의 궤도는 자주의 축을 따라 그려지고 있다"고 ICBM 시험발사 성공의 감격을 표시했다.

신문은 "자기를 지킬 힘이 없으면 외세의 농락물이 되고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우는 비참한 수난자의 운명을 강요당해야 하는것이 지난 날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오늘의 세계"이고 "핵을 가진 몇몇 나라들이 핵을 가지지 못한 많은 나라와 민족들의 운명을 마음대로 짓누르며 전횡과 강권을 일삼는 것이 미제를 비롯한 열강들이 세워놓은 부정의의 '국제질서'"라고 지적하고는 7월 4일을 기해 '힘의 만능'과 '선제타격'론에 '준엄한 징벌의 선고'를 내렸다고 강조했다.

이날 신문은 전체 6면 중 6면을 제외한 1~5면에 '화성-14'형 시험발사 소식을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실었다.

   
▲ 김정은 위원장의 '화성-14'형 시험발사 현지지도를 다룬 5일자 <노동신문> 4면. [캡쳐사진-노동신문]

한편, 신문은 '화성-14'형 시험발사의 성공에는 지난 3월 18일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 발사장에서 진행된 '대출력 발동기(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의 성공이 토대가 되었다고 상기시켰다.

신문은 이날 시험을 참관한 김 위원장이 "로케트공업 부문에 남아있던 교조주의, 보수주의, 형식주의와 다른 나라의 기술을 답습하던 의존성을 완전히 뿌리뽑고 명실공히 개발창조형 공업으로 확고히 전변된 주체적인 로케트공업의 새로운 탄생을 선포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대사변"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이날 시험을 '3.18혁명'이라고 칭하며, "“오늘 이룩한 거대한 승리가 어떤 사변적 의의를 가지는가를 온 세계가 곧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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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미국 핵이다!

 
['전쟁 국가' 미국] 북핵 해결을 원한다면 미국 핵의 실체를 보라
2017.07.06 00:43:08
 

 

 

 

2015년 11월 이후 중단됐던 <'전쟁국가' 미국> 연재를 재개합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핵무기가 미국의 대외정책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를 중심으로 살펴볼 계획입니다. 핵은 인류의 생존에 대한 최대 위협이며, 북한 핵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평화의 최대 걸림돌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4일 북한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 성공을 발표했습니다. 2006년 이후 다섯 번의 핵 실험과 이번 ICBM 성공으로 북한은 사실상 세계에서 9번째로 핵보유국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이는 북한에 대한 미국 핵 외교의 명백한 파탄을 의미합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북핵 불용'을 수없이 외쳐왔지만 그 결과는 북한의 핵 보유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1994년 제네바 기본 합의와 2005년 9.19성명 등 북한 비핵화를 위한 숱한 노력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근본 원인을 도외시 했기 때문입니다. 즉 북한의 체제 안전입니다. 북한식으로 말하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이며, 우리식으로 하면 한반도 평화체제의 확립입니다.  

미국과 북한의 역사적 적대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 한, 즉 북한의 안보가 보장되지 않는 한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군사력으로 북한 핵을 무력화 하려는 시도는 공멸을 불러올 뿐입니다.  

지난 70여 년간 미국은 자신의 핵무기는 평화를 지키는 좋은 것이고 다른 나라들의 핵무기는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것이라는 이중기준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자들이 증언하듯이 '모든 핵무기는 절대 악'이며 '핵무기와 인류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 양식 있는 세계 시민들의 보편적 결론입니다. 

특히 미국 핵무기는 세계적 불안정의 근원입니다. 미국이 핵무기를, 핵에 의한 위협을 포기하지 않는 한 다른 나라로의 핵무기 확산은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핵 보유는 이를 잘 말해줍니다. 

북핵의 뿌리는 미국 핵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며 핵무기를 초석으로 한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판적으로 직시하지 않는 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비판을 바랍니다. 편집자.
 

▲ 2010년 림팩 훈련에 참가한 미군 함정들. ⓒnavy.mil


핵무기와 함께 시작된 전후 

2차 대전은 핵무기라는 유산을 인류에 남겼다. 핵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당초 원자폭탄의 개발은 나치 독일의 세계 정복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에 대해 사용됐다.  

미국의 원폭 투하는 군사적 필요 때문이 아니었다.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일본의 군사적 패배는 명약관화 했다. 게다가 미국의 무차별 공중폭격으로 이미 도쿄 등 64개 도시가 초토화됐다. 이런 상태에서 단 두 방의 원폭으로 수십만 민간인을 무차별 살해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원폭을 투하한 진정한 속내는 또 다른 승전국 소련에 대한 무력 과시였다. 핵무기를 독점한 미국이 앞으로 만들어 나갈 세계 질서를 따르라는 엄포였다. 이후 핵무기는 미 대외정책의 핵심 초석이 된다.  

가장 강력한 재래식 폭탄보다 무려 1500배 이상 파괴력이 큰 원폭을 손에 넣은 미국은 완전히 새로운 자신감을 갖게 된다. 트루먼 등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원폭은 포커판의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같은 존재였다. 어떤 패도 누를 수 있는 절대 반지, 만능의 보검이었다. 원폭은 세계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2차 대전 후 미국의 목표는 세계를 미국 주도의 단일한 경제권으로 묶어내는 것이었다.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체제 복원, 즉 세계 전체를 미국의 투자 및 수출시장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이 각각 유럽대륙, 중국과 동남아 지역을 자신의 배타적 경제권으로 만들려 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전체를 자신의 생활권(Lebenslaum)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전쟁 직후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거대했고, 여기에 절대무기인 핵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두 핵심 지역인 독일과 일본은 물론 소련까지도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 체제에 통합시키겠다는 것이 미국의 목표였다. 

소련이 지향한 것은 세계 공산혁명이 아니라 일국사회주의 건설이었다. 주로 자국 영토에서 전쟁을 치른 소련의 경제는 완전히 망가졌다. 게다가 핵무기를 독점한 미국을 상대로 세계 공산혁명을 시도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에서 소련은 미국을 따라갈 수 없었다.  

소련의 재건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안전보장과 경제 재건이 그것이다. 안보를 위해서는 독일을 중립화하고 폴란드 등 동유럽을 소련의 통제권 아래 두어야 했다. 독일은 1,2차 대전에서 소련을 침공한 최대 안보 위협이었으며 폴란드 등 동유럽은 역사적으로 독일 등 외부세력의 침공 경로였기 때문이다.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독일로부터 전쟁 배상을 받아낼 심산이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 때까지만 해도 미국과 소련의 전후 목표는 충돌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 회담에서 독일의 전쟁 배상 규모를 200억 달러로 하며 그 중 절반을 소련에 할당할 것에 합의했고,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통제권을 사실상 인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의 대일본 참전을 절실히 원했던 미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양보였다. 

미 대외정책의 핵심 초석이 된 핵무기 

그러나 미국이 원폭을 가지면서 미소 협력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미국은 핵무기의 위력으로 미국의 의지를 소련은 물론 세계에 관철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아시아에서는 소련을 배제한 채 일본을 단독 점령했고, 유럽에서도 독일의 대소련 전쟁 배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독일의 분단을 밀어붙였다. 냉전의 시작이다. 미국의 군사적 일방주의는 2003년 부시의 이라크 침공 때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 시작된 것이다.  
 

▲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 미국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유일하게 남겨진 건물이다. ⓒ위키피디아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도 원폭 덕택이었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은 일본과 함께 자본주의 복원이라는 미국 전후 구상의 핵심지역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이었다. 핵무기가 없었다면 미국은 한국전쟁에 개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재래식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던 소련으로부터 서유럽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설령 소련이 서유럽을 침공한다 하더라도 핵무기로 격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한국전쟁 발발 직후 미국은 지상군을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냉전이 핵무기경쟁 등 극단적 군사 대결 상황으로 치닫는(냉전의 군사화) 결정적 계기였다. 1950년 4월 미 국가안보회의는 NSC-68을 통해 소련이 군사력으로 세계 정복을 꿈꾸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의 대대적인 재무장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두 달 후 발생한 북한의 남침은 소련의 세계 정복 야욕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고, 미국의 국방비는 단숨에 3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전쟁으로 본격화된 미국의 대대적 군비 확장 및 군사적 일방주의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패전국 일본과 서독의 재무장도 추진됐다.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의 군사력은 비약적으로 증강됐고 소련에 대한 압도적 우위를 확보했다. 미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을 초래했다. 소련의 개입과 반대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에 베트남 내전의 평화적 해결을 규정한 제네바 합의(1954년)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군사개입에 나선 것이다.  

소련은 미국과의 피 말리는 군비 경쟁 끝에 1991년 스스로 무너졌다. 군비 경쟁의 핵심은 핵무기였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 학자 유르겐 브룬은 냉전에 대해 "소련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한 고의적 군비경쟁"이라고 말했다.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핵무기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례로 부시 행정부는 2002년 핵태세보고서(NPR)를 통해 러시아, 중국,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북한 등 7개 국가에 대해서는 핵 선제공격(First Strike)을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들 나라는 미국의 잠재적 적국(러시아, 중국)이거나 미국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른바 '불량국가(rogue state)'들이다. 

이 가운데 이라크 후세인과 리비아 가다피는 이미 미국에 의해 제거됐고, 시리아에서는 2011년 이후 내전이 진행 중이다. 이란과는 핵 협상이 타결됐으나 트럼프 이후 합의가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2006년 이후 다섯 차례 핵실험을 했으며 2012년 헌법 개정을 통해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2002년 부시 행정부는 요격미사일금지협정(ABM)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후 (이란과 북한의 핵위협을 이유로) 동유럽과 동아시아에 미사일 방어망 건설을 밀어붙였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겹치면서 러시아, 중국과의 군사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 자국의 핵 군사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4월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했다는 이유로 그해 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2014년 9월 향후 30년간 무려 1조 달러를 미국 핵무기 성능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북한 등 불량국가와 테러 세력에 의한 핵위협에 대비한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그러나 진정한 속내는 러시아, 중국 등 잠재적 적국에 대한 핵 군사력의 우위 유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도 핵무기는 미 대외 정책의 핵심 초석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 핵은 나쁘고 미국 핵은 좋다? 

최근 들어 북한의 핵 개발이 세계 평화의 최대 위협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과연 그런가? 미국 핵은 평화를 지키는 좋은 것이고, 북한 핵은 평화를 해치는 나쁜 것인가? 핵무기는 미국에게 무엇인가?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것인가? 그리고 핵무기가 있음으로 해서 세계는 평화와 안정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인류 절멸의 위기에 처했는가? 

미국의 주류 정치인과 제도권 학자들은 미국의 핵무기는 평화를 지키는 좋은 것이며 북한, 이란과 같은 무책임하고 무모한 세력이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핵무기로 인해 2차 대전 이후 세계가 안정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의 많은 시민들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 

반면 비판적 지식인과 시민들, 평화운동가들은 미국에게 핵무기는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거대한 망치(hammer)이며, 세계적 불안정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핵무기를 개발했고, 유일하게 핵무기를 사용한 국가로서 이후 핵무기를 앞세운 압도적 군사력으로 세계에 대해 미국의 의지를 강요하고 관철시켜 왔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핵무기 보유를 고집하고 핵무기를 앞세운 군사주의를 계속하는 한, 이에 저항하려는 국가와 세력들의 핵무기 보유 시도는 결코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핵 위협 세력이라는 말이다.  

북한 핵이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금, 북한의 핵 위협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주체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미국의 주류 정치인, 제도권 학자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북한 핵문제가 제기된 후 4반세기가 지난 지금 미국의 대(對)북핵 정책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0년대 초 이후 30년 가까이 '북핵 불용'을 외쳐왔지만 그 결과는 북핵 보유였다. 2006년 10월 북한의 첫 핵실험에 대한 미국 언론의 반응은 지난 60여 년간 미국의 핵정책이 불러온 결과라는 것이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미국의 핵위협을 받아온 국가다.

'북핵 불용'이라는 미국 정부의 공식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을 보유하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인가? 미국의 말과 행동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때문은 아닌가? 이런 의문들에 대해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생각과 판단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70여 년간 핵의 역사를 통해 미국이 핵무기를 어떻게 활용해 왔고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를 알아야 한다.
 

▲ 지난 4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오른쪽 아래 검은색 옷)이 '화성 14형'(오른쪽 위)을 시험 발사에 성공한 뒤 관계자들과 기뻐하고 있다. ⓒ노동신문


핵 억제인가, 핵 테러인가 

'핵무기'는 2차 대전 후 미국 대외 정책의 핵심 초석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게 말해오고 있다.  

아이젠하워 정부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을 진두지휘했던 존 포스터 덜레스는 1953년 국무장관 취임 직후 "유사 이래 우월한 문명은 언제나 보다 효과적인 무기를 개발해냄으로써 저급한 문명에 대한 우위를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3년 발간된 회고록()에서 "원자탄, 그리고 이를 사용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현재 전 세계에 걸친 미국의 군사 공약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지난 2005년 채택된 미국의 합동핵작전교리(doctrine for joint nuclear operation)는 "분명히 말하건대 핵무기는 앞으로 50년간 미 군사력의 초석으로 건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의 정치가, 군인, 외교관들은 핵무기가 미 대외정책의 초석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로 '평화'를 내세운다. 지난 70여 년간 핵무기가 세계 평화를 유지해온 근간이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억제 이론(deterrence theory)'이다.  

한마디로 말해 핵무기가 강대국 간의 (핵)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핵전쟁이 초래할 무시무시한 인명 피해를 감당할 수 없기에 강대국은 전쟁을 피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유식한 말을 쓰자면 '상호 확증 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에 의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때문에 전쟁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20세기 전반 전쟁에 의한 사망자가 1억 명이었던 데 비해 (핵시대가 도래한) 20세기 후반의 전사자는 2000만 명에 불과(?)했다는 통계 수치를 제시한다. 핵무기가 평화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나아가 핵무기가 냉전 시대의 '긴 평화(long peace)'를 가져왔다며 이를 국제정치에서의 '핵혁명(nuclear revolu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핵이 국제정치를 안정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미국 정부와 전략가, 국제정치학자 등에 의해 널리 유포돼 왔다. 대다수 미국인은 물론 세계의 많은 시민들이 이를 신봉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월트는 "억제 이론의 핵심적 측면은 이제 (현실로) 잘 정립돼 있다. 어떤 종류의 '핵전쟁'도 불가능하다는 점(infeasibility)이 매우 잘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최소한 그렇다고 기대해 보자)."고 말할 정도다.  

케네스 월츠라는 또 다른 저명 학자는 이란의 핵무장이 중동 정세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스라엘 핵무기에 대한 억제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70여 년간 핵의 역사는 억제 이론이 부분적 진실에 불과하다는 점을, 그리하여 전체적 진실을 가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선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핵공격 이후 1949년 8월 소련의 핵실험 때까지, 즉 미국이 핵무기를 독점하고 있을 동안 핵무기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있지도 않은 소련의 핵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 정부는 일본에 대한 핵 공격이 전쟁 종결을 앞당기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아이젠하워를 비롯한 대부분의 고위 군 장성들이 핵공격에 반대했다는 사실, 전쟁 조기 종결을 위한 다른 대안들이 있었다는 사실, 일본 핵 공격의 1차적 목적은 소련 등에 대한 무력 과시를 통해 미국의 세계 패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 등이 이미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  

냉전 시대가 '긴 평화'였다는 허구 

냉전 시대의 '긴 평화'라는 것도 지극히 서방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냉전의 주요 무대였던 유럽에서 미국/서유럽 대 소련/동유럽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종의 평화 상태를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30년에 걸친 국제전이 벌어졌다.  

앞에서 말했듯이 미국은 핵무기라는 든든한 뒷배경이 있었기에 한국전쟁에 개입했고 베트남전쟁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무수한 핵 위협과 핵 공갈을 했다. 6.25 발발 직후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 공격 계획을 세웠으며, 1950년 11월 중공군에 패퇴했을 때는 실제 핵 공격을 하려 했고, 휴전 협상 과정에서도 핵 위협을 했다.  

1954년 프랑스군이 베트남군에 패배했을 당시 미국은 프랑스에 전술 핵무기 공격을 제안했다가 프랑스의 거부로 무산됐다. 1969년 닉슨 대통령은 북베트남에 대해 조기 휴전 협상을 강요하기 위해 핵무기를 탑재한 B-52 폭격기 등을 출격시키기도 했다. 이른바 '광인 이론(madman theory)'에 따른 핵 공갈이다. '나는 실제 핵 공격을 강행할 수도 있는 미친놈이니까 알아서 기어라'는 협박이다. 


 

▲ 1965년 미군 헬기가 남베트남의 베트공 기지를 공격하고 있다.ⓒAP=연합뉴스


뿐만 아니다. 1946년 이란 북부에 주둔해 있던 소련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핵 위협을 시작으로 1956년 수에즈운하 위기, 1958년 이라크의 사회주의 정권 수립,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등 중동지역에서도 미국은 수시로 핵 위협을 동원했다. 석유자원의 보고인 중동지역에 대한 소련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냉전 시대의 긴 평화란 미국, 유럽, 소련에만 해당되는 지극히 국지적인 현상이었다. 

그 긴 평화가 과연 진정한 평화였는가. 아니다. 우선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다. 당시 케네디를 비롯한 미국 정책 당국자들은 실제 핵 전쟁이 일어날 확률을 30~50%로 봤다고 한다.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40여년 뒤 "케네디 대통령이 (핵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행운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사태 당시에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면 핵 전쟁이 벌어질 뻔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우선 베를린 위기가 한창이던 1961년, 미국은 소련에 대한 전면 핵 공격 계획을 세웠다. 소련의 핵무력을 일거에 무력화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백악관에서 핵 전쟁 분석가로 일했던 다니엘 엘스버그에 따르면 실제 핵공격이 단행됐을 경우 사망자는 6억 명으로 추산됐다. 엘스버그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는 미국이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보다 100배나 되는 참극을 계획했다고 개탄했다. 당시 미 군부는 소련에 대한 전면 핵 공격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를 말린 것은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1983년 11월에도 미.소 핵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그해 3월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매도했다. 또한 '별들의 전쟁', 즉 전략방위구상(SDI)이라는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천명하는 등 대대적인 핵전력 증강에 나섰다.  

그해 10월에는 소련 영공에서 대한항공(KAL) 007편이 소련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등 미소 대립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미국은 유럽에서 나토 회원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에이블 아처(Able Archer, 유능한 궁수)'라는, 소련에 대한 모의 핵 공격 훈련을 실시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의 호전적 태도에 극도로 긴장했던 유리 안드로포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미국에 대한 선제 핵 공격을 심각하게 고려했었다고 한다. 미국에 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소련 레이더에는 미국의 핵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으로 비쳐졌고 핵 전쟁 매뉴얼에 따르면 소련은 대응 공격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당시 레이더 책임을 맡았던 소련 관리가 매뉴얼을 무시함으로써 핵 전쟁을 회피할 수 있었다. 훗날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80년대 전반이야말로 미소 핵 대결에서 가장 위험했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이것이 평화인가. 인류 전체를 몇 번이고 몰살할 수 있는 핵 전력으로 무장한 채 대치하고 있는 불안한 휴전 상태일 뿐이다. 결코 평화라고 말할 수 없다.

미국은 언제나 핵 우위를 추구해 왔다 

많은 사람들은 냉전 시대를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이 대등한 핵 전력으로 무장한 채 팽팽하게 대립했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두 핵 강국의 대치'라는 사실은 부분적 진실일 뿐이다. 왜냐하면 1970년대 전반까지 미국의 핵전력이 소련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이다.  

특히 1960년대 중반까지 소련은 미국의 핵 공격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1961년 미 군부가 소련에 대한 전면 핵 공격을 주장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 소련의 핵 전력이 미국과 대등해지기 전에 싹을 잘라내자는 것이었다.

미국의 독립연구자 가레스 포터에 따르면 1955년 미국과 소련의 군사력 격차는 45대 1이었다. 1965년에는 9대 1로 그 격차가 좁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압도적 우위였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근대 국가간 체제가 성립된 이후 최대 군사 강국과 2위 군사 강국 간의 군사력 격차가 이처럼 컸던 적은 없었다.  

1954년 프랑스의 패배로 사실상 끝이 난 베트남의 민족해방전쟁에 미국이 개입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압도적 군사적 우위 때문이라는 게 포터의 주장이다. 미 핵전력의 압도적 우위에 기가 질린 소련과 중국이 계속 미국에 양보를 했고, 이에 따른 행동의 자유에 도취된 미국은 남베트남에 반공 친미 정권을 세울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그 후 20년에 걸친 야만의 전쟁이었고 미국의 치욕적 패배였다. 

억제 이론에 따르면 핵 보유국 간의 전쟁은 불가능하다. 핵 전쟁의 아무리 작은 피해라도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인명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이다. 핵의 역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1960년대까지 미국은 압도적 핵 우위를 바탕으로 핵을 사용하지 않고도 소련을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켜 왔다. 어느 한 쪽이 압도적 핵 우위를 누리고 있고 이러한 객관적 현실을 상대방도 알고 있다면 굴복과 양보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것이 1945년 이후 20여 년간 미소 관계의 진실이다.  

1962년 흐루쇼프가 미국의 턱밑, 쿠바에 비밀리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압도적 핵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이었다. 미국은 핵 전력의 압도적 우위 외에도 독일과 이탈리아, 터키 등 소련의 주변에 핵무기를 배치해놓은 반면 소련은 자국 영토 외에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해외 기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흐루쇼프의 시도는 실패했고 2년 후 권좌에서 밀려났다. 이후 소련은 대대적인 핵 군비 증강에 나섰고 1970년대 중반에 비로소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소의 핵탄두는 한때 무려 7만 개 가까이에 이르렀다.  

핵무기가 단지 상대방의 핵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면 인류 전체를 몇 십 번 죽이고도 남을 핵탄두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핵 우위를 통해 상대방을 굴복시키겠다는 야망', 이것 외에는 핵 군비경쟁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또한 핵 군비경쟁의 주도자는 언제나 미국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핵군비 경쟁은 지구촌의 안전을 위협한 것만이 아니었다. 시민들의 생활과 복지에 쓰여야 할 소중한 자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1961년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이임사에서 고백한 군산복합체가 바로 그것이다. 끝없는 군비 경쟁 끝에 소련은 제풀에 쓰러졌고 미국은 군산복합체가 지배하는 군사국가로 변모했다. 막대한 자원을 군사력 증강에 쏟아 부은 결과 미국의 민생은 피폐해졌고, 민주주의마저 위협당하기에 이르렀다.

미 내무장관을 역임한 스튜어트 우달은 현재 미국의 상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핵무기 경쟁, 그리고 그 실상의 은폐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핵무기 경쟁과 그 실상의 은폐는 미국 정부가 거짓 현실을 근거로 작동하게 만들었다. 이는 정의를 왜곡했다. 또한 미국의 도덕성을 망가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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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봉춘’의 부활을 위하여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7/06 09:27
  • 수정일
    2017/07/06 09:2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마봉춘’의 부활을 위하여
 
 
 
강기석 | 2017-07-05 12:40:5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언론장악 9년의 적폐, 청산을 위한 첫걸음’ 세미나에서 MBC노조 김연국 위원장은 “현 MBC 체제에 비판적인 두 명의 스타 PD가 주조(主操) 근무를 명 받았다. (주조는 모든 방송 프로그램이 송출되는 장소로 24시간 근무체제다) 1년쯤 지나니 밤샘근무를 밥 먹듯 하는 주조 근무가 나이 든 PD에게 ‘너 한 번 견뎌 보라’고 육체적 고통을 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가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종일 MBC에서 만들어지고 송출되는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것은 못 견딜 일이었다는 것이다”고 전했다. 그리고 자신은 지난 1년 자신의 회사 MBC가 만든 뉴스를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MBC 뉴스는 일부 간부들과 경력도 불분명하고 채용 경위도 불투명한 80여 명의 보도국 시급기자들이 만든 지 오래다. 그리고 이들이 지금 빗발치는 공영방송 개혁 요구에 대해 자한당과 함께 스크럼을 짜고 결사적으로 ‘방송장악 저지투쟁’을 벌이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①방송통신위·KBS·MBC이사진 장악-②낙하산 사장-③간부 인사·제작편성 자율권 축소·상명하달식 통제체제-④비판적인 사내 구성원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⑤비판적 프로그램 폐지·친정부 홍보 프로그램의 일상화 수순을 거쳐 ‘마봉춘’이란 별칭으로 사랑받던 MBC를 ‘앰병신’이란 천덕꾸러기로 전락시켰다.(KBS도 마찬가지) 이 과정에서 뒷조사. 협박.노조탄압 등 온갖 불법과 탈법이 동원됐음은 물론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영방송을 정상화하기 위해 이 순서와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인 ‘방송장악방지법’이 자한당이나 바른정당의 반대로 정식 안건으로 채택조차 되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KBS·MBC 이사진을 교체하고 새 사장을 선출하는 것은 내년 8월에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어떻게든 그때까지 버티면서 전체적 정치상황의 반전을 노려보겠다는 것이, 공영방송을 결사적으로 지키려는 수구세력의 속셈임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가 있다.

민주개혁진영이 뭐라도 해야 할 상황인데 다행히 곧 방송통신위원회가 민주개혁진영에 유리한 구도로 짜이게 된다. MBC에 대한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시작됐다. KBS 기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어제 김연국 위원장은 촛불시위를 요청했는데, 사실 이때쯤 대대적인 촛불시위로 내부 투쟁에 힘을 실어 주는 것도 대단히 좋은 방법인 것 같다.

한겨울의 촛불로 박근혜 탄핵, 한여름의 촛불로 마봉춘 되살리기.

국민의 방송을 제자리로 찾아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0&table=gs_kang&uid=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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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뱅어떼 씨를 말린 주범은?

 

사진과 기록으로 보는 군산 째보선창 100년 (2)

17.07.05 20:41l최종 업데이트 17.07.05 20:41l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군산 내항에서 바라본 금강 하류(2012)
▲  군산 내항에서 바라본 금강 하류(2012)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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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통계연보(1938)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군산 앞바다 어장(고군산군도 근해, 금강)에서 잡히는 주요 어류는 조기, 복어, 상어, 민어, 홍어, 뱅어, 갈치, 게, 삼치, 대구, 청어, 새우, 숭어, 병치, 가오리 등 35종에 달하였다. 그중 뱅어는 일본인도 무척 좋아하는 어류였으며 금강 하류에서 많이 잡혔다.

베도라치 치어(실치)를 뱅어로 착각하는 이를 종종 본다. 뱅어가 한반도에서 거의 사라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베도라치는 농어목, 뱅어는 뱅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다. 뱅어는 몸길이 10cm 쯤으로, 가늘고 긴 몸에 꼬리 부분은 편평하다. 머리는 위로 편평하며, 몸통은 투명한 은빛으로 배에 작고 검은 점이 줄지어 있다. 산란기(봄)에는 강으로 올라와 알을 낳는다. 

옛 문헌에도 뱅어가 맛좋은 어류로 소개된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경기도 양천현 토산조'는 서쪽 굴포(堀浦)에는 몹시 추운 시기에 언제나 백어(뱅어)가 나는데, 그 맛이 제일이어서 먼저 상공(上供)한다고 하였다. 한편 뱅어는 왕기(王氣)가 서린 곳에서 나므로 한강과 백마강에서만 잡힌다고 하였다.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에도 실려 있다. 얼음이 얼 때 경강(京江)에서 나는 것이 매우 좋고 임한(林韓)과 임피(臨陂) 사이에서 정월과 2월에 잡은 것은 희고 국수처럼 가는데, 이를 먹으면 매우 좋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임피는 금강 하류(군산-나포 사이)를 가리킨다. 중종 10년에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도 뱅어를 군산(임피) 토산품으로 기록하였다.

1931년 어느 날 신문에 뱅어찌개 끓이는 법이 소개된 것으로 미루어 일제강점기에도 많은 사람이 뱅어 요리를 즐겨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신문은 뱅어는 겨울에 얼음구멍에서 잡는 것은 굵은 것. 봄가을에 나는 것은 중간크기라며 뱅어와 파를 적당히 썰어 기름과 깨소금을 치고 주물렀다가 끓는 물에 넣고 달걀을 풀어 휘저어 끓인다고 설명한다.  

한때 군산을 풍성하게 했던 뱅어
 
 금강 하류의 뱅어잡이 배들(1936년 5월 11일 치 동아일보)
▲  금강 하류의 뱅어잡이 배들(1936년 5월 11일 치 동아일보)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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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1936년 5월 11일 치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이다. 일제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사진임에도 정겹고 넉넉함이 느껴진다. 사진에는 부연설명 없이 '금강(錦江) 하류(下流)에 몰켜든 백어선(白魚船)'이라고만 적었다. 여기에서 '白魚'는 뱅어의 한자 이름이다. 죽으면 몸이 하얗게 변해서 '백어'라 했다 한다, 지역에 따라 빙어(氷魚)로도 표기한다.

신문은 3년 후에도 풍성한 선창가를 실감나게 그린다. 1939년 5월 5일 치 신문은 <성어기 도래(渡來)로 군산항 대 활기>란 제목의 기사에서 호남의 대(大) 어항인 군산항은 막대한 어획량으로 생활하는 어민이 많다고 소개한다. 특히 1년 중 4~5월은 특산품인 조기, 뱅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때이므로 부두는 품팔이 노동자와 상인으로 대혼잡을 이루고, 금전 융통도 좋아 음식점들이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전한다. 

그 옛날 군산의 봄은 금강과 월명산(105m) 기슭으로 스며들었다. 월명산 자락이 연한 청록으로 드러낼 즈음이면 째보선창으로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뱅어 떼였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어부들이 그물을 올리면 희고 통통한 뱅어들이 우글거렸다. 알밴 뱅어가 가득한 그물이 고깃배보다 더 크게 보였다. 그 모습이 햇빛에 반사될 때는 눈이 부셨다. 

군산문화원장을 지낸 이병훈(1925~2009) 시인은 생전에 "일제강점기 군산 거리를 누비는 뱅어 팔이 일본인들은 뱅어에 그만 황홀해 마구 사다가 먹었던 봄날 그럴 때를 생각한다."며 "금강의 뱅어잡이는 광복 후에도 어부들이 서포, 나포를 지나 강경 턱밑까지 올라가 작업했다, 얼마나 많이 잡았는지 집결지 군산은 온통 뱅어로 하얗게 변했다."고 회고했다.  

그랬다. 뱅어 산란기가 되면 충청도 경기도 배들까지 금강 하구로 몰려들었다. 한꺼번에 70~80척이 뜨는 날도 있었다. 강바닥은 나뭇잎을 뿌려놓은 것처럼 새카맣게 변했다. 배를 댈 곳이 없어 이중삼중 굴비 엮듯 겹겹이 접안했다. 1.5톤~3톤 크기의 소형 풍선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뱅어 떼가 금강 지류(일명 세느강)를 타고 구시장 입구까지 올라와 아이들에게까지 재미난 볼거리를 제공해줬으니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었다. 

뱅어 떼, 씨를 말린 주범은 공장 폐수
 
 뱅어 말리는 아낙들(1936년 5월 28일 동아일보 사진)
▲  뱅어 말리는 아낙들(1936년 5월 28일 동아일보 사진)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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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한 주먹 구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 밥상을 풍성하게 해주던 금강의 뱅어. 그러나 1950년대 말부터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1959년 2월 19일 치 <경향신문>은 "군산만 일대는 화학 공장(고려제지, 한국주정, 풍국제지 등)이 즐비하여 뱅어 등의 어족이 멸망직전으로 어획도 2~3년 전부터 부쩍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언론들이 '어족이 멸망 직전'이라고 경고했음에도 째보선창 주변 공장들은 폐수를 계속 방류하였다. 그 난리통 속에서도 뱅어들은 목숨을 부지했다. 1969년 4월 12일 치 신문은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함께 어물전의 싱싱한 생선이 입맛을 돋운다"며 "뱅어는 부안과 군산 것이 제일 좋다. 1근(375g)에 1백 35원~150원"이라고 가격까지 친절히 소개한다. 이때만 해도 뱅어가 서민들 밥상에 올랐다는 얘기다. 

그러나 1975년 9월 13일 치 <동아일보>는 "(째보) 선창 바로 위 우풍화학, 주정공장에서 버리는 검붉은 폐수가 흘러들고 있고, 그래서 간장 빛깔이 된 개천 위에 붕어 등 민물고기 10여 마리가 흰 배를 드러낸 채 죽어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물빛을 보니 민물고기가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를 알 듯했다"라고 보도하였다. 폐수 방류 20여년 만에 어족의 씨를 말려버렸던 것. 

해마다 봄이면 째보선창을 찾아왔던 반가운 손님 뱅어 떼. 이제는 전설 같은 옛날얘기가 되어버렸다. 뱅어가 멸종되는 과정을 쭈~욱 지켜본 시민의 한 사람으로 안타까움과 함께 탄식이 절로 나온다. 오호통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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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ICBM 발사, 긴박한 국제 정세

 

문재인 정부 새 대북정책 발표에 찬물…UN안보리·G20 정상회의 일정에 주목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7.07.05 09:30

 

 

우려하던 상황이 오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의 거듭된 대화의지 천명에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을 강행해 대치국면을 만들어 내고야 만 것이다. 북한은 4일 조선중앙통신의 특별중대보도를 통해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친필 명령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 발사에 성공했다며 이런 사실을 밝혔다.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의 미사일이 40여 분 간 고도 2300여 킬로미터 정도를 상승했고 930여 킬로미터를 날아간 것으로 파악했다. 북한의 주장에 의하면 이 미사일은 최대 고각발사체제로 진행됐다. 정상각도로 쐈을 경우 최대 9000킬로미터 이상 비행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이는 미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있는 하와이는 물론 알래스카까지도 사정권에 넣을 수 있는 수치다.

청와대는 북한이 이 같은 사실을 밝히기 이전부터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북한이 ICBM급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을 가능성이 미리 언급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와 만나 “북한이 한미정상이 협의한 평화적 방식의 레드라인을 넘어서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북한의 ICBM 발사 성공 주장을 검증해봐야 한다며 최대한 제재와 압박을 하면서도 대화를 이어간다는 기조에는 변함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의 이런 태도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작용했던 걸로 보인다. 첫째는 실제 북한의 주장을 검증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며 둘째는 미국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소집, 자료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직후 트위터에 “북한이 방금 또 다른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사람은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라고 적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이 이것을 더 견뎌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아마 중국이 북한을 더 압박해 이 난센스 같은 상황을 끝내야 할 것”이라고도 썼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응과는 별개로 애초 미군은 북한의 미사일을 ICBM에 이르지 못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 북한의 주장이 사실인지, 어느 정도로 위협이 되는지를 판단하려면 사거리, 대기권재진입 및 단 분리 기술 확보 여부, 핵탄두 장착 가능성 등 세 가지 측면을 평가해야 한다.

북한이 이번 미사일 발사 시험을 통해 이중 사거리라는 면에서 걱정거리를 만들었다는 건 명백하다. 애초 미국은 북한이 사거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충분한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던 듯 하다.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커진 것은 5일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대기권재진입 및 단 분리 기술을 시험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시험을 진행했다고 밝힌 이후이다. 북한은 해당 미사일에 대형중량핵탄두를 장착 가능하다는 설명도 함께 내놨다. 이는 북한이 ICBM의 핵심 기술을 시험한 것이며 도발 목적이 명백하다는 걸 스스로 밝힌 걸로 볼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소형화 경량화 된 핵탄두의 공개와 6차 핵실험 등의 수순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 역시 북한의 ICBM 관련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미 국무부는 성명을 통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면서 “북한 노동자를 초청하거나 경제적·군사적 혜택을 주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를 이행하지 않는 나라들은 위험한 정권을 돕고 방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사적 옵션까지 거론하진 않았으나 북한의 ICBM 발사 시험 관련 주장을 일정 정도 인정한 걸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이러한 입장 표명에 발맞추어 한미 군 당국은 5일 현무-2와 ATACMS 지대지미사일을 동시 사격해 북한의 군사시설을 타격하는 탄도미사일 훈련을 실시했다. 이러한 내용의 군사훈련은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직접 지시해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5일 “북한의 엄중한 도발에 우리가 성명으로만 대응할 상황이 아니며, 우리의 확고한 미사일 연합대응태세를 북한에게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도 발언했다.

한미 양국은 군사적 대응 이외에도 중국의 대북제재 강화를 압박할 걸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을 방문했던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혼수상태로 송환된 뒤 사망하자 그간 중국의 대북압박이 불충분했다며 인신매매국 규정, 단둥은행 제재,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계획 승인,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 작전 강행 등 일련의 조치를 시행했다. 앞서 인용한 미 국무부의 성명 역시 중국을 겨냥한 부분이 적지 않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요청으로 우리 시간으로 6일 새벽 북한의 ICBM 발사 시험에 대응하는 비공개 긴급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이후 정세가 달라질 수 있다. 만일 중국이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미국은 의회에서 이미 승인한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를 강행할 가능성이 커진다.

국제공조라는 측면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문재인 대통령의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독일 방문이다. 애초 문재인 대통령은 6일 독일에서 새로운 대북정책 기조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그간 반복해서 대화를 요구해온 문재인 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이런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G20 정상회의 일정이 진행되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연쇄적인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북한의 ICBM 발사 시험 대응 문제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논의될 것이라는 점은 매우 명백하다.

 

북한이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사진은사진은 쌍안경으로 시험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한국과 미국 등 주변 국가들의 노력과 별개로 북한이 이에 호응하지 않으면 상황의 개선이 어렵다는 점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북한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도발 행위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대응할 경우 남한을 타격할 수 있다는 방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과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보도한 것은 이번 ICBM 발사 시험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해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군사훈련 축소-핵동결 및 비핵화’라는 2단계 해결법을 언급한 것에 대한 대응인 셈이다. ‘한미군사훈련 축소-핵동결 및 비핵화’가 아니라 ‘미군철수 및 평화협정-핵 보유국 인정’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재론하고 이를 통해 한미 양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행보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은 사실상의 전쟁을 각오하는 것이거나 돌고 돌아 대화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은 아직 대화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은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 더해 미 국무부가 “미국은 평화적인 방식만으로의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위협적 행동에 대한 종식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힌 점 등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적어도 북한이 ICBM 발사 시험을 강행한 상황에서는 임기 내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일정 정도 이상의 ‘각오’가 필요해 보인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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