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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새로운 길'

[진단] 포스트 하노이, 한반도는 어디로? (4)

하노이 회담 불발 이후 북미, 남북관계, 국제정세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진단, 포스트 하노이, 한반도는 어디로?>라는 제목으로 6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진단] 포스트 하노이, 한반도는 어디로?
1.트럼프식 빅딜론이 가져오는 위험한 후폭풍
2.패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제국주의는 없다
3.트럼프정권의 동북아 정책과 한반도
4.북의 ‘새로운 길’
5.북미교착의 장기화, 남북동시 압박과 통제의 강화
6.어디로 갈 것인가

 

▲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사진 : 구글지도 캡처]

4. 북의 '새로운 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 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언한 '새로운 길'은 무엇일까? 하노이 회담이후 북의 정책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아직 없기에 현시점에서 이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북이 일관하게 추진해왔던 정책에 비추어 추론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길'은 미국과의 협상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새형의 전략국가가 전개하는 반제평화전략

먼저, 북은 핵을 보유한 '새로운 형의 전략국가'로서 '반제평화전략'을 일관하게 밀고 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핵보유국들이 핵을 무기로 패권강화와 약소국에 대한 지배를 추구하였다면, 북은 핵보유국의 위상을 바탕으로 제국주의 세력의 지배와 패권에 반대하고, 세계비핵화를 선도하는 반제평화전략을 펴려고 한다. 북이 더이상 핵무기를 실험, 생산, 사용, 전파를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4불정책'을 대내외에 표방하고 선제적인 조치를 취해 온 것은 단순히 대미협상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세계평화세력을 향한 메시지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4불선언'은 북미협상의 결렬 여부와 관계없이 견지할 전략적 입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주변 나라들과 국제사회는 조선반도의 긍정적인 정세 발전을 추동하려는 우리의 성의 있는 입장과 노력을 지지하며 평화를 파괴하고 정의에 역행하는 온갖 행위와 도전들을 반대하여 투쟁하여야 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나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는 자주, 평화, 친선의 이념에 따라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단결과 협조를 계속 강화하며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것"이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공위성'발사는 북이 일관하게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자주적 권리'임을 분명히 해왔고, 정지위성발사 등 '우주강국'을 위한 준비를 해왔던 점에서 비추어 기술적 준비가 완료되면 언제든 쏘아 올릴 가능성이 있다. 다만, 북이 미국과의 협상 여지를 남겨놓았고 미국이 북미협상교착의 책임을 북에 전가하려는 선전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만큼 가까운 시일안에 이를 단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북이 인공위성을 발사할 경우 유엔안보리에서의 새로운 대북제재를 결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그 시기는 조중, 조러 관계 등의 진전과 맞물려 있다.

하노이 합의는 무산되었지만 북은 세계 앞에 비핵화와 평화의지를 과시했고, 합리적 협상안을 내놓음으로써 누가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지 분명히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과 북에 대한 영상은 크게 달라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중, 조러관계가 강화되는 가운데 유엔에서 대북제재를 해제,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전략국가의 지도자로서 세계 외교무대에 강하게 등장했다. 베트남정상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이 향후 여러 나라들과의 정상회담을 의욕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제국주의 패권에 맞서는 반제평화외교를 전략적으로 밀고 나갈 것을 시사한다.

우리민족끼리정책에 의한 남북관계 진전 노력

다음으로, 북은 북미협상의 교착에도 '우리민족끼리정책'에 따라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며, 특히 9월 평양선언에서 합의한 남북사이 '평화정착'과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재개, 철도 도로연결사업 등을 이행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남북사이 사회문화교류, 국제 체육행사 등에서 단일팀 구성과 공동응원 등 남북사이 단결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이 미국의 남북관계통제정책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문재인정부가 얼마나 자주적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자력자강에 의한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총력

다음으로, '자강자력'의 기치 아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총력을 경주할 것이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은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을 통해 "경제발전과 인민 생활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 임무는 없다."고 밝혔다. 북이 미국의 최고수준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자력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어낸다면 트럼프정권의 최고압박정책은 사실상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은 반제평화전략, 우리민족끼리정책에 기초한 남북사이 평화정착, 자강자력의 경제발전전략을 일관하게 밀고 나갈 것이다. 이는 본질에서 핵보유국의 길이며, 이것이 '새로운 길'이다. 사실 이는 전혀 새로운 길이 아니라 '예비된 길'이다.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고 북미사이 평화와 공동번영을 이룰 수 있는 길을 걷어찼다. 최선희 부상이 "미국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고 한 것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김장호 기자  jangkim21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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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불량배라면, 기후변화는 핵폭탄"

[인터뷰]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2019.04.04 21:49:05
 

 

 

 

올 봄 한국 최대의 화두는 미세먼지다. 그간 우리는 인간이 바꾼 지구 환경이 실제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좀처럼 체감하기 쉽지 않았다. 이상 기온은 아주 먼 과거에도 있기 마련이었으므로, 엘니뇨, 라니냐 등의 용어도 '과거에도 있었던 일'로 치부하기 쉬웠다. 미세먼지 사태는 직접적이다. 인간이 배출한 유해먼지가 안개와 섞여 대기 중에 짙게 끼자, 대중은 인류의 생산 활동이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음을 직접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기분까지 우울하게 만드는 미세먼지가 걷히고 봄기운이 실감났던 지난 3일, 서울 삼청동 과학책방 갈다에서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초대 원장)을 만났다. 조 전 원장은 최근 저서 <파란하늘 빨간지구>(동아시아 펴냄)에서 기후변화가 어떤 파생 효과를 낳는지, 인류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기후변화가 인류 문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통합적으로 거론했다.  
 
국립기상과학원에서 30년간 공직자로 일한 조 전 원장은 책모임에서 만난 이들과의 우연한 계기로 <중앙선데이>, <한겨레>, <경향신문> 등에서 대중을 상대로 알기 쉬운 기상 과학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조 전 원장은 이번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에 관해 여태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나열하며 인류가 지금이라도 지구적 차원의 시스템 변화에 나서야만 기후변화로 인한 파멸을 막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대기과학자인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미세먼지 위험을 골목 불량배에, 지구 온난화를 핵폭탄에 비유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미세먼지 사태는 환경부 정책 실패" 
 
프레시안 : 올 봄 미세먼지가 그야말로 국가적 이슈가 됐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미세먼지란 '중국에서 불어오는 나쁜 먼지' 정도로 이해하는 듯하다. 
 
조천호 : 미세먼지에 관해 언론 보도 내용과 인식이 조금 다르다. 
 
우선 미세먼지와 황사를 구분해야 한다. 황사는 자연먼지다. 우리 옛말로는 '흙비'다. 일제 강점기 일본이 '황사'라는 단어를 썼지만, 고비사막의 흙이 날아온 기상현상이니 흙비가 더 정확하다. 고비사막이 사하라사막처럼 모래만 있는 게 아니다. 예전부터 황사는 있었다. 황사에 유해물질이 섞임에 따라 미세먼지의 위험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프레시안 : 미세먼지 사태의 주원인은 중국인가? 
 
조천호 : 2007년 당시 충남 안면도의 기후감시센터에서 근무했다. 거기서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든 대기 질을 관측하는데, 중국에서 한국으로 공기가 훅 들어올 때 고농도 미세먼지가 관측됐다. 주로 석탄을 태웠을 때 나오는 황산화물 관측량이 늘어났다. 반면,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미세먼지량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미세먼지의 모든 책임을 중국으로 돌리는 건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공장이나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은 보통 햇빛을 받으면 금방 파괴된다. 공장에서 1㎞ 정도만 떨어져도 오염물질을 관측하기 어렵다. 서울이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해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지만, 보통의 경우 강원도만 가도 공기가 다르다고 느끼지 않나. 그런데 한국과 중국 거리는 그보다 훨씬 멀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미세먼지가 들어오려면 여러 기상조건이 맞아야 한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지상으로부터 3㎞ 정도 위에 있다. 따라서 △중국의 미세먼지 수준이 고농도일 때 △이들 물질이 중국 내 고기압에 의해 높이 치솟아 오른 상황에서 △때마침 편서풍이 불 때 한국으로 넘어 들어올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되지 않을 때 중국의 미세먼지는 대부분 중국 내에 머무르고, 설사 한국 쪽으로 날아온다손 쳐도 오는 도중 다 사라진다. 
 
프레시안 : 올해가 미세먼지 관측사상 최악이었다. 올해 특별히 고기압, 편서풍 영향이 강했나? 
 
조천호 : 미세먼지 고농도 사례일 경우는 기상조건이 그렇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환경부 기준으로 고농도 사례는 10% 정도, 즉 열흘 중 하루가량이다. 물론 봄에는 닷새 중 하루 정도일 테고, 여름은 더 드문드문 관측될 것이다.  
 
이 정도 기준을 제외하면 항시적으로 한국 미세먼지가 중국 영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프레시안 : 저서 <파란하늘 빨간지구>에서 서울 미세먼지 농도는 2000년대 초반이 지금보다 더 짙었다고 했다. 최근 미세먼지에 관한 대중의 우려는 지나친 건가?
 
조천호 :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서울의 대기오염 수준은 꾸준히 개선됐다. 그런데 디젤차 관련 정책에서 큰 실수를 범한 일이 있다. 디젤차에 ‘클린’ 이미지가 붙어 디젤차 보급률이 크게 치솟았다(디젤차가 연비가 좋고 이산화탄소를 적게 뿜는다는 명목에 따라 정부는 2010년 유로5 기준을 만족하는 디젤차에 환경개선부담금을 면제해줬다.). 이 때문에 그간 개선되던 서울 대기오염 수준이 2010년 이후 정체됐다.  
 
이와 관련해서 환경부의 정책 실패를 거론할 필요가 있다. 2004년 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세계와 한국에서 '연무(Haze)', '스모그(Smog)', 그리고 '미세먼지(Particulate Matter)'의 검색 횟수를 구글 트렌드를 이용해 산출해봤다. 우리가 말하는 '미세먼지'는 교과서에서나 사용하는 과학 용어고, 일반적으로 쓰이는 단어는 연무나 스모그다. 
 

▲ 2004년부터 2019년까지 구글 트렌드로 검색한 세계인의 미세먼지(연무, 스모그) 관련 검색 현황. 한국이 환경부 발표 이후인 2012년 이후 유독 '미세먼지'라는 전문용어를 대중이 사용함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 제공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세계인들은 '연무'나 '스모그'로 미세먼지를 검색한다. 한국인도 2012년에는 '연무'나 '스모그'를 해당 기상현상을 확인하는 데 사용했다. 그런데 한국인은 2014년부터 '미세먼지'로 해당 현상을 검색하고, 특히 봄철에 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왜 유독 한국인만 일반인은 전혀 사용하지 않은 과학 전문 용어로 해당 현상을 확인할까. 
 
세계보건기구(WHO)가 2013년 10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이 소식이 나온 후 환경부가 미세먼지 예보제 시행 등 미세먼지 대응 방안에 나서겠다고 홍보한다.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대중은 이에 충격을 받아 전 국민이 '미세먼지'라는 전문 용어를 알게 된다. 미세먼지 농도를 시간 단위로 체크하는 나라는 한국뿐인 걸로 안다. 미국만 해도 이 정도 정밀 자료는 일평균으로 낸다.  
 
그런데, 이전해인 2012년에는 WHO가 디젤자동차 배기가스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이때는 디젤차 배기가스에 관한 어떤 위험 인식도 개선되지 않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선택적 대응에 따라 대중의 위험 인식이 크게 흔들렸다. 
 
그 결과, 실제로는 한국의 미세먼지 농도가 과거보다 개선됐지만, 대중의 미세먼지 위험 인식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커졌다. 사실과 위험 인식이 반비례하는 형국이 됐다. 환경부의 정책 실패다. 대중에게 미세먼지 위험을 인식시켰다면 정부가 할 일은 하나다. 미세먼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그간 정부는 제대로 된 해결도 하지 못하고 그저 중국만 바라보는 꼴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을 그간 안 했다. 과학 문제를 과학으로 대응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대응하다 수습이 제대로 안 되는 모습이다.  
 
프레시안 : 디젤차가 미세먼지를 많이 유발한다고 했는데 왜 그런가? 휘발유차나 LPG차는 괜찮나? 
 
조천호 : 물론 휘발유차나 LPG차도 미세먼지를 배출하지만 디젤차가 더 많이 배출한다. 디젤차가 내뿜는 배기가스에는 '낙스(NOx, 질소산화물)'가 포함돼 있다. 공기에는 매우 안정된 가스인 질소가 있다. 평소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디젤차의 실린더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산소와 질소가 결합해 낙스가 생성된다. 디젤차는 휘발유차에 비해 매우 높은 온도에서 폭발이 일어나므로 낙스도 훨씬 많이 생성된다. 낙스는 오존과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주범이다.  
 
최근 정부가 디젤차 퇴출 등을 추진키로 했다. 늦었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일본의 경우 비록 극우주의자이긴 하지만, 이시하라 신타로 도지사 당시 강력한 디젤차 퇴출 정책 등을 추진해 대기 질을 개선했다.  
 

▲ 인류가 일으킨 지구 온난화로 인해 세계는 대멸종 시기에 접어들었다. 이는 온난화 효과의 겨우 문턱에 불과하다. ⓒpixabay.com

지구 온난화는 정의의 문제 
 
프레시안 : 미세먼지도 결국 인간 활동으로 인해 생긴 오염이다. 미세먼지 문제가 지구 온난화, 즉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가? 
 
조천호 : 미세먼지도 위험하지만, 기후변화와 같은 종류의 위험이라고 보기는 무리다. 미세먼지가 뒷골목 폭력배의 위험 수준이라고 하면, 기후변화는 핵폭탄 수준의 위험이다. 
 
미세먼지 사태와 같은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게 런던 스모그나 로스앤젤레스 스모그 사태다. 이들 사태가 사회 시스템을 바꾸지는 않았다. 충분한 정책적 규제로 문제를 해결 가능했다. 기후변화는 다르다.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는 우리 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뒤바꿔야만 해결 가능하다.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차량 배기가스 등 대기오염물질은 어느 정도 투자하면 금방 잡을 수 있다. 배출 후 길어도 일주일 정도면 햇볕과 반응해 사라진다. 하지만, 온실가스는 한번 배출되면 수백 년 간 대기에 남아 계속 축적된다.  
 
온실가스는 정의의 문제도 일으킨다. 온실가스를 유발했고, 유발하는 나라는 대부분 선진국이거나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나라다. 하지만 그 피해는 투발루, 방글라데시 등 전혀 책임이 없는 나라에 일방적으로 전가된다. 기후 변화로 인한 홍수, 폭염 피해 등도 가난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입는다.  
 
지금 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는 30년 전에 배출된 오염물질이다. 당장 우리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편익을 얻지만, 30년 후 우리 후손은 우리가 누린 편익의 피해를 일방적으로 입는다. 세대 간 정의의 문제도 발생한다.  
 
온실가스 수요 자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류의 욕망을 통제해야 한다. 문명의 생존방식을 통째로 뒤집어야 한다.  
 

▲ 온실가스를 전혀 저감하지 않은 경우 2100년 지구 대기의 모습 가정도. 국립기상과학원이 만든 자료다. ⓒ조천호 제공


인류는 더 더운 지구에서 생존한 경험이 없다 
 
프레시안 :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가 매우 무섭다고 하지만,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쉽게 와 닿지 않는 문제다. ‘온난화된다면 여름에 더 더워지겠네’ 정도에서 대부분 사람의 생각이 멈추는 게 현실일 것이다. 하지만 책을 보면 온난화가 말 그대로 지구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지구가 따뜻해지면 지구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나?
 
조천호 : 지구에 아주 긴 시간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됐다. 두 기간의 지구 평균 기온 차이는 4~5도에 불과하다. 이런 기온 변화가 1만 년에 걸쳐 이뤄졌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약 100년 만에 사람이 지구 평균 기온 1도를 끌어올렸다. 어마어마한 변화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지구 기온이 변화하면 생태계가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 
 
지질학적으로 볼 때 지구 역사에서 신석기 혁명부터 이어진 현 시기는 '홀로세(Holocene)'인데, 많은 학자들이 산업혁명 이후 시기를 따로 떼어 '인류세'로 부르자고 하는 이유다. 인류가 일으킨 온난화로 인한 지구 대멸종 시기를 따로 설명해야 할 정도다. 여태 지구에서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는데, 현재 지구가 과거 대멸종 시기의 언저리에 이미 도달했다. 
 
그린란드 빙하의 공기방울 안 먼지를 조사하면 빙하기 당시 날씨를 알 수 있다. 빙하기 때 날씨는 홀로세, 즉 인류 문명 시기보다 매우 안 좋았다. 이런 시기를 지나다 약 1만 년 전 날씨가 드라마틱하게 안정되고, 그때 농업혁명으로 이어지는 인류사가 시작된다. 빙하기 때는 기후가 워낙 불안정하니 농사를 못 지었고, 기온이 안정되고서야 농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인류는 오직 홀로세의 안정된 날씨에서만 문명을 존속시켜 왔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 안정이 깨지고 있다. 1만 년 간 인류가 쌓아온 기본적인 생존 패턴이 변화하게 된다. 
 
기후 변화가 인류 문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안다. 14세기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소빙하기가 이어졌다. 이 시기에 전 지구적으로 폭동과 분쟁, 기아, 질병이 만연했고 그로 인해 인류사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유럽에서 기근이 횡행해 마녀사냥이 이어졌고,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으며, 명나라가 멸망하고 조선은 경신대기근을 겪었다. 지구 평균 기온의 아주 작은 변화가 사회를 송두리째 바꿨다. 
 
이미 우리는 기후 변화가 야기하는 영향력을 직접 받고 있다. 시리아 내전 사태의 가장 근본적 원인은 기후 변화다. 2010년 러시아는 가뭄으로 인해 밀 생산량 감소가 우려되자 밀 수출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세계적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했다. 식량 폭등은 선진국보다 가난한 나라,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힌다. 결국 민주적 체계가 불안정했던 북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서 아랍의 봄 사태가 일어났고, 이는 시리아 내전으로까지 이어졌다.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기후 변화의 무서움을 언급하며 이 사건을 예로 들었다.  
 

▲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pixabay.com

금세기 안 북극 얼음 사라질 수도 
 
프레시안 : 지구 온난화가 해류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바닷물의 이동이 왜 지구 온난화 영향을 받나? 
 
조천호 : 온난화로 인해 북극 해빙이 녹으면, 북극의 시커먼 바다가 햇빛을 흡수해 해양 온도가 올라간다. 그로 인해 북극권 전체의 기온이 상승한다. 앞서 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올랐다고 했는데, 북극권은 3~4도가량 올랐다.  
 

▲ 지구 기온 상승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이를 더 가속화하는 움직임(양의 되먹임)이 일어난다. 이 상황이 되면 이제 인류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지구 온난화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로 인해 해빙이 녹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북극권은 더 가열된다(양의 되먹임 현상). 그 결과 바닷물의 흐름 자체가 변화해 생태계와 세계 기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유럽 상당 국가는 위도가 높은데도 한국보다 겨울이 따뜻한데, 그 이유는 멕시코 만류가 가져온 따뜻한 바닷물 덕분이다. 이 같은 흐름이 깨질 수 있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기존 북해는 물이 차갑기 때문에 내부의 메탄하이드레이트(일종의 메탄 얼음)가 공기에 노출되지 않았다. 그런데 북극해 물이 따뜻해짐에 따라 메탄하이드레이트가 공기 중으로 노출되면서 메탄이 방출될 수 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만큼 치명적인 온실가스다. 
 
시베리아 동토는 여름 시기 자란 풀이 썩기 전에 얼어버린 땅이 수만 년에 걸쳐 층층이 쌓인 구조다. 이 안에 담긴 탄소량이 현재 대기 중 탄소량의 두 배가량 된다. 북극이 따뜻해짐에 따라 시베리아 동토도 녹으면, 이들 탄소가 공기 중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가 되어 온실화를 더 강화할 수 있다(양의 되먹임).  
 
이 지경이 되면 사람이 만드는 이산화탄소는 이제 의미가 없다. 지구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직접 내뿜는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과거 사람이 살지 않던 때 지구가 이랬다. 지난 80만 년 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180~280ppm(공기 분자 100만 개 중 이산화탄소 분자가 180~280개)을 유지했다. 산업혁명 후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히 짙어지기 시작해 현재 수준은 405ppm이고, 매년 2ppm씩 오르고 있다. 현재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과거에서 찾으려면 300~5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상황이 이어지면 앞으로 지구에 빙하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이대로 지구 기온 상승을 못 막는다면 금세기 안에 북극 해빙이 완전히 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천호 : 그린란드 빙하가 모두 녹으면 해수면이 6~7m 상승한다. 남극 빙하까지 모두 녹으면 해수면이 60~70m가량 상승한다. 지금 탄소 배출 수준을 인류가 전혀 저감하지 않는다면 2100년경 해수면이 1m 정도 상승한다는 게 현재 기후 예측 결과다. 그런데 이는 기온이 선형적으로 상승한다는 가정에 기반했다. 북극해 메탄하이드레이트 노출, 동토 내 탄소 노출 등의 영향은 예측 모델에 반영되지 않았다. 실제로는 일정 수준을 넘어설 경우 기온 상승이 비선형적으로, 가속화된다.  
 
2020년대,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 
 
프레시안 : 지난해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기후변화에관한국가간협의체(IPCC) 제48차 회의에서 세계는 205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종전의 2도 목표보다 기준이 더 엄격해졌다. 그만큼 세계가 기후변화 위기감을 절실히 깨닫는 중인 듯하다.  
 
반면,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처럼 기후변화 자체를 허구로 치부하는 움직임도 있다. 당장 한국도 IPCC 목표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만일 1.5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되나? 
 
조천호 : 현 추세로 인류가 탄소 저감을 하지 않을 경우, 지구 기온이 1.5도 상승하는 시점은 2040년경이다. 2040년 지구 기온이 1.5도 오르면 지구의 모든 장소에서 항상 변화한 기후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2도 이상 오른다면, 예측이 아예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지난 500만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보다 2도 이상 오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지구 평균 기온이 2도 이상 오른 지구에서 생존해 본 경험이 없다. 현재 인류는 전혀 미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다만 예측 가능한 건, 2도 이상 기온이 오를 경우 지구가 탄성력, 자기 복원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인류를 번영케 한 안정된 기후로 지구가 스스로 자기 복원할 힘을 잃어버린다. 파국적인 상태로 돌입할 수 있다.  
 
프레시안 : 한국은 지구에서 일곱 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다. 지구 온난화에 큰 책임이 있지만, 당장 국내의 경제 발전 압력 등으로 인해 지구촌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가 쉽지 않다. 국민적 공감대 수준도 매우 떨어진다. 중국, 베트남 등 신흥 국가도 경제발전을 위해 탄소배출량을 줄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과연 지구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이 가능할까? 
 

▲ <파란하늘 빨간지구>(조천호 지음) ⓒ동아시아

조천호 : 대기오염이나 수질오염 등은 보통 사건이 먼저 일어나고 과학자들이 후속 역학조사를 통해 원인을 밝혀낸다. 당장 미세먼지만 하더라도 스모그, 즉 안개가 끼니 사람들이 공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기후변화는 과학자들이 먼저 밝혀냈다. 사람이 기후변화를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후변화의 무서움을 대중이 체감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결국 꾸준히 대중이 기후변화 위협을 인식하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대응하기 매우 어렵다. 정부와 언론, 정치권, 학계가 꾸준히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당뇨병과 같다. 한 번 병에 걸리면 온갖 합병증이 발생한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온도의 문제가 아니다. 식량 부족, 물 부족, 날씨 변화 등이 수반되고, 그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가 함께 일어난다. 
 
2006년 런던정치경제대학교 니콜러스 스턴 교수가 '스턴 보고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지금껏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큰 시장 실패가 기후 변화다. 지금 기후 변화 대응에 나서지 않는다면, 금세기 중반 인류가 지불해야 할 기후 비용은 세계 총생산(GDP)의 5~20퍼센트에 이른다. 어떤 나라도 이 정도 돈을 지출하면서 재정을 꾸릴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선다면  기후변화 대응 비용은 GDP의 1퍼센트 수준으로 막을 수 있다. 
 
지금의 기후변화는 너무 풍족해서 일어났다. 결핍이 아니라 과잉으로 인해 발생했다. 과잉생산 체계가 기후변화의 주원인이다. 이 체제를 지구적 차원에서 바꿔야 한다. 바꾸는 건 너무 어렵다고들 하겠지만, 이대로 대량생산체제를 놔둔다면 인류는 더 큰 파국에 직면할 것이다. 현재 예측 모델에 따르면 2020년대가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이다. 이 시간 안에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인류가 이기심을 버리고 지구적으로 협력해야 시스템의 전면적 변화를 꾀해야만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불가능하리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단 한 번 이 같은 사례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그랬다. 전시 체제에 돌입하면서 남성들이 모두 징발되자, 미국은 국가 전체를 전시 체제로 돌리고 여성들이 나와 산업 현장을 떠받쳤다. 이 같은 총체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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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다" 속초까지 번진 고성 산불, 주민들 '발 동동'

주민들은 인근으로 대피 중... 소방당국 '변압기 폭발' 화재 원인으로 추정

19.04.04 21:50l최종 업데이트 19.04.04 22:54l

 

 

고성 산불…식당 삼킨 불길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주유소 맞은편 도로변 변압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 한 식당이 불타고 있다.
▲ 고성 산불…식당 삼킨 불길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주유소 맞은편 도로변 변압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 한 식당이 불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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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 버스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산에서 난 산불이 확산돼 속초시 한 도로에서 버스가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 불에 탄 버스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산에서 난 산불이 확산돼 속초시 한 도로에서 버스가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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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건물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 산불이 확산돼 건물이 불에 타고 있다.
▲ 불타는 건물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 산불이 확산돼 건물이 불에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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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뒤덮은 고성 산불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 산불이 확산되고 있다. 불길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2019.4.4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제공]
▲ 하늘 뒤덮은 고성 산불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 산불이 확산되고 있다. 불길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2019.4.4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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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산불 진화작업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 산에서 불이나 소방대원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2019.4.4  [강원도 소방본부 제공]
▲ 고성 산불 진화작업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 산에서 불이나 소방대원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2019.4.4 [강원도 소방본부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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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강원 인제군 남면 남전리 약수터 근처 44번국도 주변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강풍이 불고 건조했던 이날 오후 2시 45분 무렵 산불이 신고됐으며, 오후 9시까지 약 10헥타르를 태운 것으로 알려졌다.

양양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도 지난 밤부터 행정안전부와 강원도청으로부터 "동해안 전 지역 대형산불주의보, 강풍경보, 건조주의보 발령, 소각금지 등 산불조심하시기 바랍니다"란 경보 문자를 연속해서 받고 있다.

필자는 인제 산불이 빠른 시간에 진화되기를 바라며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원에서도 오후 7시 20분 무렵 산불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4일 오후 9시 25분 속초에서 친구가 촬영한 사진을 보내왔다. 산불은 넓은 범위에 거쳐 속초시내를 향해 접근하는 위급한 상황이다.
▲  4일 오후 9시 25분 속초에서 친구가 촬영한 사진을 보내왔다. 산불은 넓은 범위에 거쳐 속초시내를 향해 접근하는 위급한 상황이다.
ⓒ 박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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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암리엔 친구 아버님이 거주하시기에, 속초 시내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친구는 다급한 목소리로 "우리 아버지 집도 걱정된다. 근처인 거 같은데…"라고 말했다. "연락은 드렸니" 묻자, "지금 전화가 들어왔다. 다시 통화하자"는 얘기를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20분가량 지나서 친구와 전화가 다시 연결됐다. "아버님은?" 하고 안부를 물었다. "지금 (아버님 집에) 가다 돌아왔는데 접근할 수 없다. 큰일 났다. 아버지는 일단 다른 마을로 피신했다는데, 집이 어떻게 됐는지 가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친구는 숨이 찬 목소리로 말한 뒤 다시 "전화가 왔다"며 끊었다.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로 속초 시내까지 위험한 상황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재를 빠르게 진압하기엔 강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고 한다. 소방당국은 도로 주변 변압기 폭발이 고성 산불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  고성과 속초 시내에 번진 산불
ⓒ 김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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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과 속초 시내에 번진 산불
ⓒ 김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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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태그:#고성산불#주민소개령#강풍주의보발령#속초시 위험#인제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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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관계, 단순한 선의만으로 안돼 강력한 핵억제력만이

[목요집회] 북미관계, 단순한 선의만으로 안돼 강력한 핵억제력만이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9/04/04 [17: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1216회차 민가협 목요집회가 오후 2시 탑골공원 앞에서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1216회차 민가협 목요집회.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참가자가 '공안탄압중단하라'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 조영건 구속노동자후원회 회장, 김영승 통일광장 장기수,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 자주시보, 박한균 기자

 

“한반도 평화시대,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국가보안법 철폐하고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

"북미관계 개선은 단순한 선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1216회차 민가협 목요집회가 오후 2시 탑골공원 앞에서 진행되었다.

 

꽃샘추위가 지나고 따뜻한 봄기운을 맞이하면서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서 이날도 민가협 어머니들과, 원로 인사들이 어김없이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의 목소리를 높였다.

 

조영건 구속노동자후원회 회장은 여는 발언에서 “만물이 소생하는 이 봄날 태양광선의 자연은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산천초목을 다 소생시키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만든 이 세상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다 활짝 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묻고는 이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이 ‘국가보안법’이라고 주장했다. 

 

조영건 회장은 “가장 나라를 걱정하고 촛불정부가 잘하길 정말 빌어주고 있는 이 인사들이 여기에 계신 분들”이라며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양심수를 석방하고 국가보안법 폐지하라”고 문재인 정부에 촉구했다.

 

사회자는 얼마 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대표들을 청와대에 초정한 간담회를 언급하고 진보인사를 배제한 것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하면서 탑골공원에서 울려 퍼지는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철폐의)목소리에 청와대가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민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으로 김영승 통일광장 장기수는 “미국이 남측 정부를 좌지우지하기 위한 정책을 취하기 위해서 탄압의 수단으로 국가보안법을 유지시키고 있다. 모두가 국가보안법을 철폐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발언을 이어갔다.

 

김영승 장기수는 북미관계에 있어서 “현재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만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비핵화는 남북(한반도) 전역에 해당된다. 미국이 핵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세계 패권을 위해서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판문점 선언, 9.19평양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개선되었으며, 북한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용의를 밝힌 상황에서 남북 간의 합의가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미국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미워킹’ 그룹을 만들어 남북관계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기기 위한 ‘제국주의 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영승 장기수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유해송환, 평양과 워싱턴 연락사무소 설치로 북미관계 정상화, 비핵화문제’ 등 실무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언급하고 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합의를 무산시킨 장본인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를 상기시켰다. 결국 합의 무산은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선비핵화 후 경제지원)’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하노이 회담의 교훈은 북미관계 개선은 단순한 선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강력한 핵억제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그는 “미국의 내정간섭을 반대하고 주한미군을 철수를 외쳐야 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밝혔듯이 ‘민족자주, 민족자결’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셔 주인된 자세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들이 국민들을 통제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악법이 국가보안법이다. 독립운동가들을 잡아 가둔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의 명을 이어오면서 민주, 통일인사를 때려잡은 악법이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성환 위원장은 “최근 들어 ‘자유한국당 해체하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남한 사회에 민주주의가 들어서고 재벌들을 비호하고 있는 ‘수구보수정당’이라는 자유한국당을 끝장내자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러한 국가권력과 정당의 비호 하에 삼성재벌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을 유린하고 온갖 불법비리를 자행했다. 무노조 경영을 위해 노동자들을 납치, 감금하고 미행하는 등 ‘마피아’ 범죄 조직임을 스스로 들어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러한 재벌들의 반노동 반사회적인 경영 자태를 끝장내기 위해서 국민들을 간첩으로 몰아서 죽이고 감옥에 보내는 반민주 악법부터 철폐되어야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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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생존자들은 사과를 원한다”

<추가> 베트남전 한국군 피해자 103명, 문 대통령에 청원서 전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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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4  16:2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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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생존자들은 사과를 원한다”

   
▲ 4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 청원서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우리는 무엇보다 한국 정부에게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생존자들은 사과를 원한다’라는 것을 이 청원서를 통해서 분명히 알리고 싶습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거나 직접 피해를 당한 민간인학살 피해자 103명이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을 상대로 4일 ‘청원서’를 제출했다.

‘제주 4.3 평화상 특별상’ 수상을 위해 방한한 하미 마을 학살 피해자 동명의 응우옌티탄(62)과 응우옌티탄(57) 씨가 참석한 가운데 4일 오후 2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 청원서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심아정 시민평화법정 조사팀 간사가 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성한 103장의 청원서를 오늘 대한민국 청와대에 제출한다”며 “베트남 피해자의 외국 정부에 대한 집단 청원은 최초의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1999년부터 공론화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논의가 2019년으로 20년째가 된다”며 “그 20년 동안 한국 정부는 그 어떤 진상조사를 시작하지도, 공식인정을 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하고 “한국 정부는 청원법이 정한 90일 내에 103명의 피해자들에게 책임 있는 답변을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베트남 정부가 한국의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한국 정부가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한국 정부의 그 누구도 우리에게 찾아와 사과를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가 일본에 의해 식민지배를 당했던 불행한 시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여전히 일본 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그러한 입장과 태도는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문제에 있어서도 일관되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베트남 전쟁은 1975년에 끝났지만, 우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 '제주 4.3 평화상 특별상' 수상차 방한한 하미 마을 학살 피해자 두 명의 응우옌티탄 씨가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했다.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가 통역을 맡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103명의 베트남 피해자들은 청원서에서 “우리는 베트남 전쟁 중 한국군 파병 기간(1964~1973) 동안 한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거나 큰 상해를 입은 사람들”이라고 밝히고 “한국 정부는 위 시기에 325,000여 명의 한국군을 베트남으로 파병”했고, “파월 한국군은 베트남 중부 5개 성에서 작전을 수행하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썼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은 1975년에 끝났지만, 우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며 “2015년과 2018년에는 우리 중 일부가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학살을 증언하고 한국 정부의 사실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상기시켰다.

특히 지난해 4월 서울에서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시민평화법정)을 개최해 이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한국 정부의 진상규명 의무와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제주4.3, 광주5.18, 한국전쟁 등 과거 발생한 민간인학살 문제에 대해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진상조사를 하여 진실을 밝혔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한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해 발생한 전쟁범죄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신속하게 나서줄 것을 원한다”고 밝혔다.이들은 청원서에 △진상조사 및 사실인정, △공식 사과 및 공식 선언,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요구하고 “부디 한국 정부가 우리의 간절한 목소리에, 용기를 내 꺼낸 목소리에 응답해줄 것을 기대하고 기다린다”고 맺었다.

“한국 정부, 이 절박한 요구에 대해서 꼭 응답해주길”

   
▲ 두 명의 응우옌티탄 씨가 103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들고 관계자들과 함께 청와대 관계자 면담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지난해 서울에서 개최된 시민평화법정에서 생존자 증언에 나섰던 응우옌티탄 씨는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마을 학살 당시 “8살에 한국군 학살로 가족을 다 잃고 전쟁고아가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시민평화법정에서 최선을 다해서 진실을 말했고, 베트남에 돌아가서 한국 정부의 응답을 기다렸다”며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한국정부로부터 그 어떤 답변도 들은 바 없다”고 밝히고 “이번에는 103명의 베트남 피해자들이 직접 청와대에 전달하는 청원서를 가지고 왔다. 이번에는 한국정부가 이 베트남 청원인들의 이 절박한 요구에 대해서 꼭 응답해주고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제주4.3평화상특별상을 수상하게 됐는데, 그 계기로 제주와 광주를 방문할 수 있었다”며 “제주에서 광주에서 만났던 이야기들이 저희 베트남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제주에도 광주에도 저희 베트남이 겪었던 똑같은 아픔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 이번 한국 방문의 가장 큰 기념”이라는 것.

그는 “이 청원서에 한국 정부가 세심히 관심을 기울여달라”며 “우리 베트남 피해자들을 위해서 이제는 뭔가 행동해야 될 것이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 한 명의 응우옌티탄 씨는 “저는 (제주4.3평화상 특별상)상을 수상했다라고 하는 기쁨보다는 제 명예가 회복되었다고 하는 영예가 훨씬 더 크게 다가왔다”며 “이 상을 수상한 이 영예를 우리 마을에서 희생됐던 135분의 영령들과 함께 나눌 것이다. 고향에 돌아가면 이 상을 그분들의 영전 앞에 바치고 향을 먼저 피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마을의 위령비 뒷면으로 과거 한국군의 전쟁범죄를 기록한 비문이 있었다. 그런데 그 비문이 한국 대사관의 압력에 의해서 지금은 덮여있다”며 “정작 우리 피해자들은 동의한 적이 없다. 우리 주민들이 그 비문을 덮는데 동의하지 않는 것은 진실은 진실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관련 질문에 “그 비문이 연꽃무늬 대리석으로 덮힌 게 2000년”이라고 확인했다.

그는 “굉장히 많은 분들이 제주 4.3위령제에 와 주었더라. 그리고 한국의 총리가 직접 위령제에 찾아주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이분들은 저승에서나마도 이제는 좀 따뜻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며 “우리들의 이러한 절박한 요구에 한국 정부가 가장 빠르게 답변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고 촉구했다.

“울음바다 속에서 이 청원서 한 장 한 장을 작성하셨다”

   
▲ ‘평화나비 네트워크’ 6기 전국대표를 맡고 있는 이태희 학생이 제주4.3의 상징인 붉은 동백꽃 뱃지를 두 응우옌티탄 씨에게 직접 달아주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는 “청원 작업은 3월 1일부터 3월 15일까지 지난달 보름간 베트남의 중부지방 2개성, 꽝응아이성과 꽝남성에서 이루어졌다”며 “이 두 곳은 과거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지역이고, 이 곳에 굉장히 많은 피해자 분들이 계시지만 시간적인 여러 가지 한계로 이번에는 16개 마을 밖에는 돌아다니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서명이 끝나고 내가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굉장히 많은 베트남의 피해자 분들께서 청원하고 싶다고 하는 그런 연락을 계속 주고 있다”며 “아직 가지 못했던 빈딘성, 푸옌성, 그리고 카인호아성, 이렇게 한국군 주둔지를 중심으로 굉장히 많은 피해자 분들이 한국 정부에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린다”고 말했다.

구 상임이사는 “대부분의 베트남 피해자분들은 한국군에 의한 50년 전의 학살로 나는 가족을 잃었고, 그리고 집과 모든 재산을 잃었고 그리고 배움의 기회마저 잃었다고 말씀하셨다”며 “대부분의 피해자 분들이 울음바다 속에서 이 청원서 한 장 한 장을 작성하셨다”고 전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프로젝트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6기 전국대표를 맡고 있는 이태희 학생은 “지난 1월 나비기금과 함께하는 베트남 평화기행을 다녀왔다”며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깊은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남은 삶을 살아가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님들의 모습과 많이 겹쳐보였다”며 “한국의 가해 역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과 한국 정부의 공식 사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다시는 이러한 전쟁이 비극이 발생되지 않도록 평화나비의 대학생들도 곁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다.

“20년만에 한-베 베트남 전쟁 새롭게 대면하는 계기”

   
▲ 지난해 시민평화법정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임재성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지난해 시민평화법정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임재성 변호사는 “1999년으로부터 20년만에 베트남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로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며 “20년만에 한국과 베트남이 50년 전에 있었던 전쟁에 대해서 새롭게 대면하는 계기가 바로 오늘 청원서를 접수하는 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임 변호사는 “외국인 역시 청원법에 근거해서 국가기구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나도 청원에 참여하고 싶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청원이 아니라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청원에 함께했으면 좋겠다’ 말씀하셨다”며 “나와 김남주 변호사는 103명의 법률적 대리인으로 이후의 진행 상황들을 우리가 수신을 하고 또 베트남에 계신 103명들에게 어떠한 진행 상황들이 만들어지는지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1969년 당시 퐁리·퐁넛 마을에서 학살을 했던 1소대, 2소대, 3소대장, 그리고 중대장을 모두 소환해서 조사를 했다는 사실이 2000년에 <한겨레21>에 보도가 됐다”며 2017년 국가정보원에 행정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거부당해 법원에 제소해 1,2심에서 정보공개 판단을 받았지만 국정원은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면서 “1969년에 퐁리·퐁넛 학살을 조사한 기록들을 신속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두 응우옌티탄 씨와 구수정 상임이사, 인성재 변호사 등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103인의 청원서를 접수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했다.

( 추가, 5일 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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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노위 전체회의 불발…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하라”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 불발…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하라”
▲ 사진 : 노동과세계

국회 본회의(5일)를 앞두고 3일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법안’ 등에 대한 여야 합의를 논의하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고용노동소위가 오후5시17분에 산회됐다. 이로써 이날 오후5시로 예정됐던 환노위 전체회의도 취소됐다. 임이자 소위소위장(자유한국당)은 “탄력근로제, 최저임금법 등 5일 본회의 처리는 불가능하다”면서 “3당 간사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2일 노동법 개악 강행 처리에 맞서 국회 진입투쟁을 벌이다 임원 등 8명이 연행된 민주노총은 이날도 “노동법개악 중단”을 요구하며 국회 앞 투쟁을 벌이던 중 김명환 위원장을 비롯해 25명이 연행됐다. 고용노동소위 산회에 따라 1일부터 진행된 민주노총의 강도 높은 투쟁도 오후5시40분경 마무리됐다.

민주노총은 이날 저녁 입장문을 내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 개최불발은 “민주노총 투쟁의 결과이며, 민주노총 조합원의 승리”라고 밝혔다.

김명환 위원장의 연행에 대해선 “역대 정부를 통틀어 민주노총 현직 위원장이 집회 와중에 연행되기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민주노총은 이번 위원장 연행을 민주노총과 민주노총의 노동기본권 및 노동법 개악 중단 요구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보여주는 중대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하곤 강제 연행한 위원장과 간부, 조합원을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아래는 민주노총 입장 전문.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민주노총 투쟁은 더욱 거세진다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 개최 불발과 조합원 연행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

민주노총은 3일 환노위 고용노동소위에서 노동법 개악 논의가 본격화됨에 따라, 노동법 개악과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국회를 향한 수위 높은 투쟁을 벌였다.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 개최불발은 이 같은 민주노총 투쟁의 결과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승리다.

그러나 노동법 개악을 강행 처리하려는 국회에 분노한 노동자 투쟁이 격렬했던 결과, 이날 오전 투쟁 과정에서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 등 19명, 오후에는 6명, 전체 25명이 연행됐다.

영등포서에 김명환 위원장이, 양천서에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등 4명, 서부서에 신승민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 등 4명, 서대문서에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 4명, 서초서에 김태선 정보경제연맹 위원장 등 4명, 광진서에 이양진 민주일반연맹 공동위원장과 손창원 대학노조 사무처장 등 4명, 도봉서에 황상길 철도노조 서울지역본부장 등 4명이 강제 연행돼 있다.

역대 정부를 통틀어 민주노총 현직 위원장이 집회 와중에 연행되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민주노총은 이번 위원장 연행을 민주노총과 민주노총의 노동기본권 및 노동법 개악 중단 요구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보여주는 중대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경총 청부법안을 포함한 노동법 개악에는 그리 적극적이면서, 민주노총의 법 개악의 부당함에 대한 호소는 손톱만큼도 반영하지 않았고, 분노한 조합원을 연행하는 경찰은 비호처럼 빨랐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간부의 이번 투쟁은 정당한 분노의 표출이다. 강제 연행한 민주노총 위원장과 간부, 조합원을 즉각 석방하라.

국회는 비록 노동법 개악 강행처리를 연기했지만, 4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밀어붙일 것이 자명하다. 위원장을 빼앗긴 민주노총의 투쟁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민주노총은 긴장을 놓지 않고 범의 눈으로 지켜보며 더 많은 조합원을 조직할 것이다. 이는 백만 조합원만의 조직이 아닌 2천5백만 정규직,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인 민주노총의 의무이자 임무다.

2019년 4월3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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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초원의 마지막 ‘극한 방랑자’ 몽골가젤 무사할까

조홍섭 2019. 04. 03
조회수 917 추천수 0
 
1년에 남한 절반 면적 돌아다니기도…철도, 국경선이 이동 가로막아
 
512.jpg» 몽골 동부 대초원 지대에 서식하는 몽골가젤. 수천 마리가 무리 지어 최고 시속 65㎞ 속도로 12∼15㎞를 달릴 수 있다. 야생동물보전협회(WCS) 몽골 지부 제공.
 
몽골 동부에는 한반도 면적의 대초원이 펼쳐진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온전한 마지막 온대 초원이다. 이곳에는 하루 200∼300㎞를 거뜬히 주파하는 ‘극한 방랑자’ 몽골가젤 100만 마리가 산다. 몽골가젤은 어깨높이 80㎝에 몸무게 40㎏인 중형 영양이다.
 
평범한 몸집의 이 가젤이 상상을 넘어서는 이동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이 장기 현장연구 결과 밝혀졌다. 데이드 난딘쳇첵 독일 괴테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응용 생태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몽골가젤 22마리에 위성 추적장치를 붙여 1∼3년 동안 이동 경로를 추적한 결과를 밝혔다.
 
512 (1).jpg» 몽골가젤 서식지. 푸른 곳은 분포 지점, 푸른 선은 이동 경로, 초록색은 보호구역, 붉은 선은 관통 철도 계획 지점을 가리킨다. 난딘쳇첵 외 (2019) ‘응용 생태학 저널’ 제공.
 
몽골가젤 한 마리가 연간 이동하는 범위는 평균 1만9346㎢로 경상북도 면적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생 움직이는 범위는 평균 10만㎢로 남한 면적과 같았다. 개체마다 차이도 커 1년에 5만㎢ 이상의 범위를 다닌 가젤도 있었다. 몽골가젤의 이동 면적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120만 마리의 누가 철 따라 이동하는 아프리카 세렝게티-마라 생태계보다 4배나 넓다.
 
몽골가젤은 여름철 지역적 강우로 풀이 돋아나는 곳에서 새끼를 낳고 겨울에는 눈이 적게 쌓여 이동과 먹이 찾기가 쉬운 곳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번식과 월동지를 정해 반복적으로 이용한다는 이제까지의 통념과 달리 가젤은 한 장소를 고집하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무리의 이동장소가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2015년 극심한 가뭄 끝에 혹한과 폭설이 내렸는데, 가젤 무리는 먹이를 찾아 언 강을 건너 300㎞ 이상을 이동했다. 만일 이런 이동이 가로막힌다면 가젤 집단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512 (2).jpg» 몽골가젤 수컷(앞)과 암컷 그림. 필립 스클레이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가젤 서식지 안에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국경선이 지나고 철조망 울타리가 쳐 있어 가젤이 통과할 수 없다. 위성추적 기록을 보면, 가젤 한 마리는 울타리에 가로막히자 59일 동안 울타리를 따라 80㎞를 걸어갔다. 
 
이 가젤은 절박하게 뚫고 지날 통로를 찾았고, 쉽사리 그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평균적으로는 가젤은 열흘에 걸쳐 11㎞ 거리의 울타리를 따라가며 통과할 길을 모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무선 추적한 가젤의 80%가 국경에 의해 이동이 영향받았다.
 
512 (3).jpg» 철조망은 장거리 동물의 이동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도 한다. 야생동물보전협회(WCS) K. 올손 제공.
 
연구자들은 “자원이 조금씩 여기저기 일시적으로 분포하는 곳에서 유랑하는 동물은 모든 경관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꼭 필요하다. 그래야 극한 상황이 벌어지는 지역을 피할 수 있다”라고 논문에 적었다. 연구자들은 적어도 11㎞에 한 군데는 가젤이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이동통로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국경뿐 아니라 다른 선형 장애물도 가젤을 위협한다. 몽골에는 광산 개발이 붐이어서 곳곳에 철도가 건설되고 있다. 몽골 정부는 서식지를 관통하는 5683㎞의 철도를 건설할 계획이다.
 
512 (4).jpg» 몽골가젤 서식지를 관통해 장거리 철도가 건설될 예정이다. 사진은 고비사막을 가로지르는 몽골관통철도의 모습이다. 피에르 안드레,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사냥과 밀렵,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 이변, 수족구병 등 질병, 가축과의 경쟁, 개발로 인한 서식지 분단 등도 가젤의 위협 요인이다. 물론 이 지역 곳곳에 몽골가젤 보호구역이 설정돼 있지만, 이번 연구에서 보호구역은 가젤 이동 경로의 8%를 커버할 뿐이었다. 가젤은 광산 등 훼손지역을 회피했지만, 보호구역을 선호하지도 않았다.
 
연구자들은 “몽골 동부 스텝은 세계에서 온전하게 보전된 가장 큰 온대 초원지대의 하나이고 최대 규모의 유제류 집단이 사는 곳”이라며 “특히 철도, 고속도로, 국경 울타리 등 선형 구조물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대책을 개발계획 단계부터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Dejid Nandintsetseg etal, (2019) Challenges in the conservation of wide-ranging nomadic species. Journal of Applied Ecologyhttps://doi.org/10.1111/1365-2664.1338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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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승부로 끝난 보궐선거, 민주당은 실리를 챙기다.

자유한국당의 선전, 패배의 원인은 황교안과 오세훈
 
임병도 | 2019-04-04 09:35: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피가 말리는 접전이 펼쳐졌습니다. 4·3 국회의원 보궐선거 창원성산 선거 개표 이야기입니다.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당선됐지만, 한국당 강기윤 후보와의 표 차이는 불과 504표에 불과했습니다.

보궐선거가 시작되기 전에는 정의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개표가 시작되자 강기윤 후보가 앞서갔습니다. 개표율이 94%가 넘어갈 때까지도 여영국 후보는 강기윤 후보에게 0.5% 포인트 뒤졌습니다.

강기윤 후보의 승리로 끝날 수도 있겠다는 개표율 99.98% 때 여영국 후보가 강 후보를 역전했습니다. 개표를 지켜보던 정의당은 지옥에서 겨우 빠져 나온 셈입니다.

최종 득표율은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45.75%(4만 2663표), 한국당 강기윤 후보가 45.21%(4만 2159표)였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선전, 패배의 원인은 황교안과 오세훈

 

 

https://www.youtube.com/watch?v=3hxcyqjTCMk&feature=youtu.be

창원 성산 지역은 고(故)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이자 진보 성향이 강한 곳이라 자유한국당이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선거 결과를 보면 자유한국당이 나름 엄청나게 선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기윤 후보가 여영국 후보에게 불과 504표 차이로 패배한 원인을 보면, 오세훈 서울시장의 고(故)노회찬 의원 비하 발언을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지역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발언이 자유한국당으로 기울어지는 유권자의 마음을 닫게 했다고 봐야 합니다.

또 하나의 원인은 정당명과 기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창원축구센터에 들어간 황교안 대표와 강기윤 후보의 불법 선거 운동 때문입니다.

경기장 내 선거운동이 금지돼 있으니 안 된다고 막는 경남FC 관계자를 뿌리치고 들어간 자유한국당의 행태에 창원성산 시민들은 분노했고, 선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관련기사: 경기장 선거운동 ‘자유한국당 vs 민주당’ 어떻게 달랐나?)


이변은 없었던 통영고성, 황교안의 공안검사 후배 정점식 당선

▲4·3 보궐선거 통영고성에 출마한 자유한국당 정점식 후보 내외가 3일 오후 통영시 북신동 자신의 선거 사무실에서 당선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변은 없었습니다. 4·3 통영고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정점식 후보는 개표 시작부터 앞서 나갔고, 개표가 끝날 때까지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정점식 후보의 최종 득표율은 59.46%(4만 7082표)로 35.99%(2만 8490표)에 그친 민주당 양문석 후보를 큰 표 차로 따돌리고 당선됐습니다.

전통적으로 보수 강세 지역인 탓에 당연히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정점식 후보의 당선은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정 후보가 황교안 대표의 공안검사 후배이기 때문입니다.

자유한국당 정점식 당선자는 대검찰청 공안 1·2과장,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2차장, 대검 공안부장(검사장급) 등을 거친 ‘공안통(通)’입니다. 특히 2014년 황교안 대표가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 위헌정당·단체 대책 태스크포스 팀장으로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했습니다.

정점식 후보가 공천됐을 때 모두들 ‘황교안 키즈’라고 했듯이, 앞으로 정 당선자는 자유한국당 내에서 황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4·3 국회의원 보궐선거,민주당은 실리를 챙기다

▲보궐선거 결과가 합산되지 않은 국회 정당별 의석수 현황.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은 교섭단체 요건인 20석을 확보했다. ⓒ국회홈페이지 캡처

2석뿐이었던 까닭에 이번 보궐선거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자유한국당이 선거 기간 내내 외쳤던 정부 심판론이 먹혀 들어갔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적으로는 자유한국당의 선거 전략이 민심을 파고들었다고 봐야 하지만, 내부적으로 자유한국당은 오히려 더 힘든 지경에 처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정의당이 1석을 차지하면서 민주평화당과 합쳐 교섭단체 구성 요건인 20석을 충족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회는 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의 3개 교섭단체 체제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4개 교섭단체 체제로 재편됩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의 입장을 바른미래당이 교섭단체라는 지위를 이용해 주도해왔는데, 이제는 그 힘을 잃게 됩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선거제도 개혁 패스트트랙 협상이나 공수처 신설 등에 엇박자를 보였던 바른미래당 보다 정의당과 민평당이 합쳐진 교섭단체가 말이 잘 통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에 이어 또 다른 교섭단체와 싸워야 하는 입장에 놓여, 패스트트랙 협상을 마냥 자신들 입장으로 끌고 갈 수는 없게 됐습니다.

보궐선거 결과를 종합해 보면,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정의당+민주평화당의 싸움이 더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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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한미 도발에 미쳐 강력 규탄 단죄

조선,한미 도발에 미쳐 겅력 규탄 단죄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9/04/04 [09:2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조선은한미의 퍼시픽선더 훈련 등을 거론하며 강력 규탄했다.     ©



조선이 최근 한국과 미군의 연합훈련을 지적하면서 도발에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강력 규탄 단죄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 민족끼리》는 4일 "군사적도발행위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조평통은 " 얼마전 미국과 남조선군부가 전투기, 공중조기경보기, 정찰기, 직승기 등 각종 군용기들을 동원하여 유사시 《구출작전 능력 숙달》을 구실로 연합 공중탐색구조 훈련 《퍼시픽 썬더》를 강행하였다."며 한미의 군사훈련을 언급했다. 

기관지 우리민족끼리는 "이러한 속에 남조선에 기어든 미국의 연안 경비함은 남조선해군과 함께 지난 3월 28일 제주도 해역에서 연합해상 검문검색 훈련을 벌렸다."며 "이보다 앞서 미국은 괌도에 있는 미공군기지의 전략폭격기 《B-52》편대를 조선반도 주변에로 비행 시켰다."고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지적했다.

또한, "남조선에서의 무력증강과 전쟁연습은 조선반도에 평화와 안정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 되기를 바라는 온 겨레와 국제사회의 지향과 몀원에 배치되는 위험천만한 도발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규탄했다.

이어 "온 겨레의 한결같은 의사에 맞게 민족적 화해와 평화 분위기를 고조 시키고 민족번영의 시대를 열어 나가자면 이 땅에서 전쟁의 위험을 말끔히 들어내야 한다."고 현시기에 군사적 움직임이 전혀 필요치 않다 것을 강조했다.

아울러 "민족의 보금자리인 조선반도를 공고한 평화지대로 만들 때에만이 우리 겨레가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누릴수 있으며 후손만대의 번영도 이룩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총포성이 요란하고 화약내가 짙게 풍기는 속에서 불신과 대립이 해소될 수 없고 대화와 협력도 활기를 띨 수 없다는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도는 "남조선의 이전 보수《정권》들이 우리 공화국을 겨냥하여 끊임 없이 감행한 각종 군사적 도발행위들은 북남관계를 불신과 대결의 최극단에로 몰아 넣었다."며 "상대방을 반대하고 위협 하는 군사적 도발 행위들이 북남관계발전과 조선반도의 평화보장에 주되는 장애로 된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고 역설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문제해결을 《힘으로 담보》해야 한다, 《빈틈 없는 대비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미국과 남조선 군부 호전광들은 여전히 우리와 힘으로 대결하려는 어리석은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 냈다."고 한미를 싸잡아 비난했다.

보도는 "최근 미군부와 남조선 호전 집단의 심상치 않은 군사적 움직임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면서 "앞에서는 《평화》와 《대화》를 떠들고 뒤에서는 상대를 겨냥한 전쟁연습책동에 미쳐 돌아가는 것은 양면적 태도의 극치로서 이는 우리 겨레와 국제사회의 커다란 분노와 강력한 항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거듭 비난했다.

기사는 끝으로 "평화의 흐름에 난관을 조성하는 군사적 도발 행위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며 "온 겨레는 내외 호전 세력들의 북침 전쟁소동을 짓 부시기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 나서야 할 것"이라며 전쟁소동을 가시고 민족의 평화 번영을 위해 나갈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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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궐선거 1:1 균형 맞췄지만 범여권에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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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9/04/04 09:44
  • 수정일
    2019/04/04 09:4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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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창원성산 정의당 신승은 ‘민심이 범여권에 경고’... 민주당 기초의원 1석도 못 얻어

정민경 기자 mink@mediatoday.co.kr  2019년 04월 04일 목요일

3일 경남 창원 성산과 경남 통영‧고성에서 실시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각각 여영국 정의당 후보와 정점식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번 선거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PK(부산, 경남) 민심을 볼 기회였다. 결과적으로 범여권과 한국당이 1:1로 의석을 나눠가져 균형을 지켰지만 범여권에 민심이 경고를 울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창원 성산 보궐선거 개표 결과 여영국 후보는 4만2663표로 45.75%의 표를 차지했고 한국당 강기윤 후보는 4만 2159표로 45.21%의 표를 차지했다.  504표 차이로 여영국 후보가 신승했다.  

통영‧고성에서는 정점식 한국당 후보가 4만7082표로 59.47%의 표를 차지했고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만8490표로 35.99%의 표를 차지해 정점식 한국당 후보가 여유 있게 당선됐다.  

 

▲ 4일 한겨레 1면.
▲ 4일 한겨레 1면.
 
4일자 아침신문들은 재보궐 선거 소식을 1면 주요기사로 다뤘다. 언론은 이번 선거가 △1:1로 균형을 이루는 결과가 나와 앞으로 여야 대치가 가열되고 △정의당이 창원성산에서 한 석을 얻어 국회 원내교섭단체를 다시 결성해 국회 판도에 변화가 오고 △창원성산에서 중반까지 정의당 후보가 뒤지다 역전승을 한 결과는 민심이 범여권에 경고를 줬고 △민주당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과 기초의원 한 석도 가져가지 못해, 민심이 국정에 경고를 내렸다는 해석을 내놨다.

 

다음은 4일 아침 발행하는 주요 종합 일간지 1면에 실린 재보선 관련 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1:1…‘견제‧균형’ 택한 민심” 
국민일보 “與도 野도 옐로카드” 
동아일보 “1대1” 
서울신문 “국회 ‘4당 체제’로 변화…개혁입법 힘 받는다” 
세계일보 “보수‧진보 1:1…민심, 균형 택했다” 
조선일보 “창원성산은 정의당, 통영고성은 한국당” 
중앙일보 “보궐선거 1:1…여영국‧정점식 당선” 
한겨레 “정의당, 노회찬 지역구서 극적 역전승” 
한국일보 “범여권 겨우 건진 1승…PK 표심은 싸늘했다”
 

 

 

▲ 4일 한국일보 1면.
▲ 4일 한국일보 1면.
 
창원성산의 역전승…PK민심이 경고 준 것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PK표심이 범여권에 경고를 줬다는 해석이 대다수였다. 특히 창원성산 선거에서 개표 중반까지 한국당 후보에게 뒤지다가 역전 승을 한 것을 두고 그렇게 해석했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 “부산경남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 추세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청와대는 장관 후보자 낙마 등 인사 실패와 관련해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인식을 드러낸 게 후보 단일화 직후 상승세를 타던 창원성산마저 위태롭게 했다는 점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고 썼다.  

경향신문도 이날 사설에서 “창원성산에서의 박빙승부가 펼쳐진 것은 한국당이 내세운 ‘정권 심판론’이 일정 부분 먹혀들었다고 보여진다. 선거 기간동안 불거진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논란, 장관 후보자 2명 낙마 등 인사 실패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 사설은 “‘진보정치 1번지’에서 가까스로 신승을 거둔 정의당에서 ‘막판 청와대 때문에 혼났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촛불 정권’을 자임하는 집권여당으로서 지난 2년 동안 시민의 믿음을 얻는데 실패한 것은 없는지 돌아봐야 할 때”라고 썼다.

 

▲ 4일 경향신문 사설.
▲ 4일 경향신문 사설.
 
중앙일보는 이날 3면 기사에서 “범여권 후보 단일화까지 했지만 가까스로 승리를 거뒀다는 점은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 민심이 진보 진영에 마냥 우호적이진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범여권의 실책에 더해 탈원전 정책을 언급하는 언론도 있었다. 조선일보는 3면 기사에서 “‘진보·노동계의 아성’인 창원성산에서 개표 막판까지 뒤지다가 504표차 신승을 거두면서 인사 참사·탈원전·경제 위기에 요동치는 민심 이반이 확인됐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썼다.  

한국일보도 1면 기사에서 창원성산의 표심을 “정부의 탈원전정책으로 업계 최대기업인 두산중공업과 협력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지역경제가 휘청거리자, 일부 노동계 표심이 여권 단일후보에서 이탈해 한국당 후보 득표율이 예상보다 높게 나왔다”고 분석했다.  

 

▲ 4일 동아일보 5면.
▲ 4일 동아일보 5면.
 

또 언론은 기초의원 보궐선거에서 경북 문경시 나·라 선거구는 모두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됐고, 전북 전주시 라선거구에서는 민주평화당 후보가 당선돼 더불어민주당은 1석도 가져가지 못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6면 기사에서 “민주당은 기초의원 선거 3곳에서도 모두 패배했다.(...)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파문, 장관 후보자 2명의 낙마 여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보궐선거 패배까지 겹치면서 여권은 각종 입법 과제 추진 등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다”고 썼다. 

 

 

 

선거 이후…교섭단체 꾸리게 된 정의당‧평화당, 국회변화 기대

 

이번 선거 이후 정의당은 민주평화당과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중앙일보는 “교섭단체를 구성하게 되면 향후 선거법 협상 등에서 정의당이 목소리를 더 높일 수 있게 된다”고 예상했다.  

민주당 당내 변화도 예상된다. 중앙일보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가 다음 달 열릴 당 원내대표 경선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경선에선 당권파에 힘을 실어주느냐, 비당권파로 당을 보완하느냐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바른미래당의 경우, 손학규 대표의 거취까지 보도에 언급될 정도였다. 한국일보는 3면 기사에서 “창원에서 거처를 마련하며 선거 지원에 올인했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이날 이재환 후보가 3.57%의 득표율에 그치면서 거취는 물론 정계 은퇴까지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7656#csidx497f3df0ca52ec0b7d973ee0daf0d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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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만난 한강은 바다처럼 넓고 거셌다

윤순영 2019. 04. 02
조회수 864 추천수 0
 

어로한계선 넘어 중립수역 직전까지…한국전쟁 후 첫 답사

김포시 남북정상회담 1돌 기념 '한강 하구 물길 열기' 행사 예정

 

크기변환_DSC_8355.jpg» 바다처럼 펼쳐진 김포시 시암리 앞 한강하구의 모습. 역류한 예성강물과 임진강, 한강의 물이 여기서 모두 만나는 세물머리이다. 건너편 산들이 황해도 개풍군이다.

 

늘 보던 한강이 아니었다. 황톳빛 물은 바다처럼 펼쳐졌고 세찬 바람에 파도가 높게 일었다. 황해도 개풍군의 나지막한 산들이 코앞에 펼쳐졌다. 태백산 금대봉에서 발원해 490여㎞를 달려온 한강물은 서해 바다와 만나기 앞서 여기에서 임진강과 합류한다. 

 

강화도 북쪽 철산리 앞바다로 흘러드는 북한의 예성강 물이 조류에 떠밀려 이곳으로 역류하니 여기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 물이 모두 만나는 세물머리인 셈이다. 민간 선박이  김포시 하성면 시암리 앞 세물머리까지 온 것은 65년 만의 일이다.

 

1일 김포시가 주관한 '한강하구 물길 열기 사전답사' 행사에 참가했다. 바람이 세차고 물결이 높아 쉽지 않은 항해였지만 역동적인 한강하구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정하영 김포시장을 비롯한 환경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은 태운 배 10여 척은 김포시 전류리에서 출발해 한강하구 중립 수역 앞 시암리 습지까지 '물길을 열고' 돌아왔다. 민간인이 한강하구 어로한계선을 넘어 중립수역 직전까지 간 것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다.

 

크기변환_DSC_8004.jpg» 한강하구 답사를 위해 김포시 전류리 포구에 대기하고 있는 선박들.

 

이번 행사는 한강하구 남북 공동조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민간에게 자유항행을 허용하기로 합의한 이후 첫 번째 항행 시도였다. 김포시는 이번 사전답사를 바탕으로 오는 27일 다시 한강하구 물길 열기 행사를 열 예정이다.

 

크기변환_DSC_8052.jpg» 한강하구 중립 수역 앞 하성면 시암리 습지를 행해 달려가는 배.

 

크기변환_DSC_8060.jpg» 멀리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보인다.

 

이번 행사는 오는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하고, 한강하구의 자유항행을 축하하기 위해 벌이는 '평화의 물길 열기 행사'의 사전 답사였다. 김포시는 애초 전류리 포구부터 유도까지 왕복 45㎞ 구간을 운행할 예정이었으나 최근의 남북 관계를 고려해 중립수역 입구까지 구간을 축소했다.

 

크기변환_DSC_8252.jpg» 한강하구답사 선박이 한강 하구의 너른 물길을 달린다.

 

크기변환_DSC_8156.jpg» 북쪽을 향해 흐르는 한강 앞에 북한 개풍군의 산들이 가로막아 선 듯 나타난다.

 

한강하구는 1953년 정전협정에서 남북의 민간 선박이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민감 수역’으로 분류돼 사실상 어로한계선 이북으로는 민간선박 출입이 제한되어 왔다.

 

크기변환_DSC_8328.jpg» 이번 답사에는 정하영 김포시장과 환경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참가했다.

 

남과 북은 지난해 11월 5일부터 한 달간 강화도 말도∼파주시 만우리 구역에서 수로측량·조석관측 등 공동조사를 실시하고, 이달 1일부터 민간선박의 자유항행을 허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김포시는 특히 중립지역에 위치한 유도에 대한 생태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한강하구의 유일한 섬으로 생태적 가치가 큰 이 섬에 대한 생태조사는 앞으로 비무장지대(DMZ) 생태보전을 위한 남북협력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크기변환_DSC_8375.jpg» 김포시 하성면 시암리 습지까지 물길을 열고 전류리 포구로 돌아오는 선박들.

 

정하영 김포시장은 “한강 최북단 전류리 포구를 출발해 어로한계선을 넘어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강하구 중립 수역까지 다녀왔다. 비록 한강과 임진강, 조강이 만나는 세 물머리 중립수역을 넘어가지는 못했지만 김포의 한강하구에, 대한민국에, 봄이, 평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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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주52시간 노동시간단축법안'을 폐기하라

[사설] 차라리 '주52시간 노동시간단축법안'을 폐기하라
▲ 연행되는 민주노총 임원[사진 : 노동과 세계 제공]

억이 막힌다. 오늘 국회 본관 진입을 시도한 민주노총 임원 8명 전원이 무참하게 연행되었다. 이유인즉, 탄력근로제 확대법안과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악안을 국회가 4월 3일 고용노동소위와 환노위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고, 4월 5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처리하는 수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을 대동하고, 1일 국회를 찾아 탄력근로제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과 새로운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오는 5일 본회의에서 처리해달라고 당부했다는데,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목숨걸고 개악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홍 부총리는 홍영표 원내대표와 만나 "최저임금법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관련 법이 굉장히 절실하고 절박하다"면서 "국회에서 오는 5일까지 꼭 좀 이 법을 처리해 달라"고 말했다. 누구에게 절실하고 절박하다는 것인가. 결국 자본가 아닌가. 또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과정이 사실상 시작됐다"면서 "이번 주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이 이뤄져 내년 최저임금이 새로운 결정 방식에 의해 잘 진행되도록 해달라"고 했다는데, 누구를 위해서인가. 결국 고용노동부 관료들을 위해서 아닌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도 "탄력근로제 확대는 우리 사회에서 52시간제 근로시간 단축 입법의 안착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안착’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일 줄은 몰랐다. 또 "최저임금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논의되도록 하는 결정체계 개편을 담아 입법이 완료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는데, 무엇이 합리적이고, 무엇이 객관적인가. 고용노동부 장관이면, 한쪽에서는 위험노동으로 죽어나가도 다른 한쪽에서는 100억대의 연봉잔치를 벌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용과 노동에 아무리 편파적으로 신경써도 표시도 안날텐데, 합리, 객관, 공정은 또 무슨 말인가.

홍영표 원내대표는 "산업현장에서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는 탄력근로제 확대나 최저임금 제도 개선은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 ‘산업현장’의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재벌과 자본의 목소리인가, 노동자의 목소리인가. 노동운동가 출신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입에서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나 쓰던 ‘산업현장’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또한, "탄력근로제만 해도 국회에서 논의만 하면 몇 시간 만에도 다 통과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수차례에 걸쳐 간곡하게 호소했지만 현재까지 전혀 진전되지 않아 정말 안타깝다"고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급한 쪽은 자유한국당이니, 그것들이 몽니 부리면 그만두면 될 일을 왜 목숨걸고 통과시키려고 하나. 그냥 놔둬도 알아서 국회에 기어들어와 통과시키자고 애걸을 할 터인데 거꾸로 누가 구걸을 하나. 배짱도 없다.

그릇된 상식 중의 하나가 자유시장경제는 평등을 훼손하나 성장과 경쟁력에 능하고,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사회민주주의 개혁정책은 평등을 지향하나 성장에는 잼병이라는 식의 평가이다. 자유시장경제가 1929년 대공황과 2008년 금융공황의 주범이며, 양극화와 빈곤의 악순환을 만드는 근본토양으로, 성장에도, 평등과 복지에도 실패를 거듭해 ‘시장의 실패’라는 저주스러운 경제학 용어가 탄생했는데, 노동자 서민의 피와 원한이 묻어 있는 말이다.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에서 성장의 정체가 발생하는 것은 반동지배계급의 저항과 사보타쥬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복지와 평등을 강화하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2차 대전 이후의 경제의 황금기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왕 소득주도 성장을 내건 문재인 정부가 해야할 일이란 경제적폐세력을 청산하는 강도 높은 개혁이지 우경화와 투항, 역주행이 아니다. 이렇게 가면 문재인 정부는 개혁도 놓치고, 성장도 놓칠 것이며, 결국 촛불시민의 지지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 국회 진입을 시도하는 민주노총 임원[사진 : 노동과 세계 제공]

탄력근로제 개악과 최저임금법 개악은 노동자 앞에 밥상 차려놓고 솥단지를 엎는 짓이다.
차라리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는 게 나았다. 최저임금을 두 번 올려놓고, 산입범위를 개악할 때만 해도 밥상차려놓고 숟가락 뺏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노동자의 직접참가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결정구조 자체를 개악하려고 하니, 촛불정신이 밝혀준 직접정치를 완성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겠다. 그러나 이미 시행되고있는 노동자의 직접 참가에 의한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훼손하려 해서는 안된다. 촛불혁명정신의 근본을 건드는 짓이며, 직장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길에 역행하는 일이다. 오늘 오르지 않은 임금은 내일 올리면 되고,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투쟁할 수 있는 명분이라도 살아있게 된다. 그러나 결정구조 자체에서 노동자의 직접참가를 봉쇄하는 식으로 개악해 버리면, 이제 노동자들의 투쟁의 명분까지 앗아가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솥단지를 엎는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솥은 놔둬야 할 게 아닌가. 정책적 시행착오를 만회하려는 것은 필요하나,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알고 행해야 한다.

차라리 주52시간제 노동법을 폐기하라.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지금 왜 노동시간을 단축하자고 하는가.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나누고, 장시간 노동의 오명을 털어내고 과로사와 위험노동을 극복하자는 것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은 무엇 때문에 대통령부터 휴가를 챙겨 쓰는 액션을 취한 것이고, 주52시간제는 뭐하러 시행하자고 했는가. 사용자들이 주52시간제가 임금상승을 유발하여 문제라고 한다는데,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고용을 늘리고, 임금비용을 더 내라고 시행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제는 전에 받던 야간수당, 연장근로수당도 못 받게 생겼다. 보완책을 찾으려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고용증가와 임금상승분에 대해 사용자측 부담과 정부지원책의 연관성을 찾아서 해결을 해야지 탄력근로제를 늘려줘 버리면 난무하던 편법과 불법이 합법화되지, 주52시간제가 어떤 식으로 안착된다는 말인가.

민주노총과 진보진영도 부족한 것이 많으니, 촛불혁명이 만들어준 지지를 2년 만에 다 까먹은 것을 굳이 탓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정도껏 해야 한다. 최저임금구조 개악안과 탄력근로제 연장안은 그 동안의 정책적 시행착오를 만회할 회심의 한 수가 될 수 없고 역풍만 불 뿐이다. 경제성장도, 명분도, 지지도 잃게될 정책을 목숨 걸고 밀어붙여야 하겠는지 정부여당은 재고해 봐야 한다.

현장언론 민플러스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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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역사 제주 4·3’

 
[제주 4·3 71주년] ‘이름 없는 역사 제주 4·3’
 
제주 ‘월정리 해변가’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임병도 | 2019-04-03 08:29:2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독립언론 제주의 소리와 1인 미디어 아이엠피터 공동기획 영상 ‘이름 없는 역사 제주 4·3’

1947년 3월 1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기리는 3.1절 기념행사를 하던 날, 별안간 6살 난 꼬마 아이가 외지인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치여 숨을 거둡니다. 아이를 친 경찰은 그대로 경찰서까지 도망쳐 버립니다.
이를 본 도민들은 분노해 돌을 던지며 기마경찰을 쫒아갑니다.

“폭도다.! 민란이 일어났다.! 저들을 막아라.!”

경찰은 항의하던 도민들을 폭도로 오인해 총을 발포합니다.

이제까지 본 적 없던 시뻘건 불을 내뿜는 99식 총구에 길을 지나던 아무 죄 없는 젖먹이 아이와 여성들이 쓰러져 나갑니다. 총알이 박힌 가슴팍 한가운데가 너무 뜨겁고 눈앞에 피 흘리며 널브러져 있는 젖먹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어찌하지도 못한 채 숨이 꺼져갑니다.

그렇게, 통곡의 70년을 만들어낸 피맺힌 광란의 시대가 서막을 올립니다.

“제주도 사람은 빨갱이다.”
오로지 이 한 마디만 알고 있는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이 제주도로 들어옵니다. 그들은 마치 짐승을 사냥하듯 눈에 보이는 제주도민을 빨갱이로 몰아 토벌해갑니다. 어쩌면 그들은 조금이나마 재미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차가운 새벽하늘을 가르며 봉화가 올라가고 광기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경찰과 서북청년단은 돌아가라. 우리들은 빨갱이가 아니다. 우리는 단독선거를 반대한다.”
무기를 든 남로당원들은 그대로 경찰서에 쳐들어가 경찰과 그 가족들을 살해합니다.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죽여라, 저들은 폭도이고 빨갱이들이다. 다 쓸어버려라!”

오라리에서는 매서운 불길이 타오르고 서로를 향한 눈빛에는 피가 서려 있습니다. 옆집 삼촌은 뒷덜미가 잡힌 채 질질 끌려갑니다.

별안간 천둥번개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그대로 꼬꾸라져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고개를 돌려봐도 숨을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길거리에는 공포로 가득 찬 비명만이 들립니다.

대부분 노인과 아녀자,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누구네 딸은 옷이 벗겨진 채, 누구네 아이는 두 다리를 잡힌 채 바위에 패대기 쳐져, 누구누구는 마치 굴비 새끼 엮듯이 엮여서, 그렇게 억울한 누명을 쓴 제주도민들은 차마 입에 담지 못 할 방법들로 죽어갑니다.

해안가 5km를 벗어난 중 산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자진해서 해안가로 내려와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명령에 따르지 않아도, 명령에 따라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슴팍에 총칼이 박힐 때까지 이유를 모르고 죽는 사람도 허다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살인이었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이자 피서지인 제주 월정리 해변에 끌려오는 것은 곧 사형을 의미했습니다. 해안가를 등지고 매일 수 십 명이 총살당하고 대검에 찔려 죽어갔습니다.

남자가 모조리 죽어 ‘무남촌’이라 불리던 제주 북촌리에서는 이틀 만에 400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요?

이제는 증오도, 분노도 없습니다. 오직 겁만이 남아 마치 온통 시커먼 늪 속에 빠진 것처럼 집요하게 괴롭혀 왔습니다.
수 만 명의 생명이 동백꽃의 그것처럼 소리 없이 스러져 갔습니다.

여러분이 걷고, 즐기고, 휴식을 얻는 이 땅 어느 곳이 학살 터가 아닌 곳이 있을까요?
제주도민 가운데 유족 아닌 사람이 있을까요?
이 이야기를 듣고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들의 기억은 70년 전 그날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70년 전 그날에 갇혀 영원히 풀려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4.3 희생자들은 아직까지 이름 지어지지 못한 채 애처로이 70년 전 그날을 떠돌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기억할 사람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유튜브에서 바로보기: ‘이름 없는 역사 제주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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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개신교를 파헤치다①] 극우개신교 뿌리는 제주 4.3 학살 주도한 서북청년단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발행 2019-04-03 07:18:06
수정 2019-04-03 07: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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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 철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서북청년단 단원들.
소련군 철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서북청년단 단원들.ⓒ기타

극우세력의 활동이 심상치 않다. 극우적 성향의 유튜브 방송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광주항쟁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계속된다. 심지어 이런 주장이 국회에까지 등장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한국 사회의 극우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력은 바로 한국개신교다. 개신교는 지금 태극기집회 등 극우세력 활동의 주축을 이루고 있고, 각종 극우적 성향의 정치 논리들을 하나님의 뜻이라 믿으며 행동하고 유포한다. 개신교가 극우주의의 행동대원으로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개신교 극우화의 역사와 배경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 사회 극우화의 맥락을 읽는 데도 중요한 요소다. 극우개신교의 역사와 배경을 짚는 기사를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이 질곡의 역사 속에 교회는 분단과 냉전을 신학적으로 정당화면서 빛을 잃고, 일부는 신앙의 이름으로 자매․형제․부모 그리고 이웃을 총칼 앞에 서게 했습니다. 싸늘한 주검 위에 흙 한줌 뿌릴 시간마저 빼앗긴 수난의 역사 앞에서 교회는 침묵하였습니다. 편을 가르고 등을 돌리며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스스로 심판자의 자리에 서서 죄악에 동참하였습니다. 우리 안의 무서운 폭력성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사죄합니다. 십자가 아래 화해의 여정에 무릎을 꿇고 참여합니다.”

제주 4.3항쟁 70주년을 맞이한 지난해 4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정의평화위원회와 인권센터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주 4·3 역사 정의와 화해를 위한 기도회’를 열고 제주 4.3 유족들과 국민에게 학살에 동참했던 과거를 사죄했다.  

이에 앞서 3월28일엔 제주를 직접 방문해 제주 4.3 희생자들이 묻혀있는 의귀리의 현의합장묘와 송령이골 무장대 무덤에 식수를 하며 “아직 우리는 유족들이 내밀어 주시는 용서의 손길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유족들이 전해 준 고결한 화해의 메시지를 값싸게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한국 기독교는 4.3의 치유와 화해를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해사실을 고백하지도 못했습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4.3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는 이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유족들의 손을 덥석 잡기에는 우리 손은 여전히 희생자들의 피로 적셔져 있습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였던 지난해 4월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 학살에 함께한 서북청년단은 이북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개신교인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단체였다.
제주4.3항쟁 제70주기였던 지난해 4월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주4.3희생자들의 분장을 한 시민들이 4.3항쟁을 추모하는 403광화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주4.3 학살에 함께한 서북청년단은 이북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개신교인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단체였다.ⓒ임화영 기자

제주 4.3항쟁 70주년을 맞아 개신교계 연합기관인 교회협이 사죄한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제주 4.3항쟁 당시 민간인 학살 등을 자행한 ‘서북청년단’(서북청년회)의 중심세력이 바로 개신교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서북청년단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개신교 세력은 이후 한국개신교의 주류가 됐고, 지금 거리에서 극우세력과 함께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극우개신교의 사상적 기반이다. 

북 서북지역 출신 개신교인이 
중심이 돼 만든 ‘서북청년단’… 
제주 4.3 토벌대로 참여해 민간인 학살 자행
 

서북청년단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악명’ 높은 이름이다. 서북청년단은 1946년 11월 30일 서울 종로YMCA에서 결성대회를 열고 출범한 단체로 공식명칭은 ‘서북청년회’지만 대중들은 이들을 ‘서북청년단’이라 불렀다. 서북청년단은 이후 해방공간에서 좌익세력을 대상으로 암살과 테러를 자행했고, 특히 제주4.3항쟁에 토벌군으로 참여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는 등 범죄를 저질렀다.

지난 2003년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발간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는 “서북청년회는 4.3사건 발발 전부터 도민들과 갈등을 빚어 사건 발생의 한 원인으로까지 지목받아왔는데, 이승만과 미군은 강경작전을 앞두고 서북청년회를 아예 군경에 편입시켰다. 이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대량 주민 희생을 초래하는 결과를 빚었다. 서북청년회 위주로 경찰이 재편됐고, 군대에는 ‘서청중대’가 따로 편성됐다”며 “이승만과 미군의 후원 아래 제주 사태의 최일선에 서게 된 서북청년회는 군 경 모두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고 밝히고 있다.

4.3항쟁 당시 9연대 보급과 선임하사로 제주에 있었던 윤태웅 씨는 지난 2001년 진상조사위와의 인터뷰에서 “서북청년 이놈들이 고얀 놈들입니다. 처녀를 겁탈하고, 닭도 잡아먹고, 빨갱이로 몰기도 하고. 이놈들이 사건을 악화시켰습니다. 진압을 하라고 했으면 진압만 하지…. 그래서 도망갈 길 없는 주민들이 더 산으로 오른 겁니다”라고 증언했다.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 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서북청년단은 영락교회 청년회가 중심이 돼 만들어진 조직이다. 영락교회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초대회장을 지내는 등 한국개신교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한경직 목사가 1945년 세운 교회다. 1945년 12월 베다니전도교회로 시작해 1946년 영락교회로 개명했다. 한경직 목사는 1945년 신의주 제이교회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소련군이 진주하기 시작하자 신의주 제일교회 윤하영 목사와 함께 ‘기독교사회민주당’을 만들어 대항했다. 이후 지부 결성 과정 등에서 여러 차례 소련 군정과 충돌했고, 결국 1946년 윤하영 목사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오게 됐다.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지난 2월 발간한 ‘우리는 너무 몰랐다’에서 “공산당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대체로 서북지역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이 제일 먼저 모이는 곳이 교회였다. 우리나라 해방 후 대형교회문화가 생겨나는 현상도 이러한 분단 현실 속에서 잘 설명된다. 영락교회는 서북지역(황해도 평안남북도) 사람들의 집결지였다”고 설명한다. 

지난 지난 2011년 성탄특집으로 KBS에서 방영된 고 한경직 목사 관련 다큐멘터리 방송화면
지난 지난 2011년 성탄특집으로 KBS에서 방영된 고 한경직 목사 관련 다큐멘터리 방송화면ⓒ뉴시스

이런 사실은 한경직 목사가 생전에 한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1982년 규장문화사에서 출간된 ‘한경직 목사’라는 제목의 자서전 형식의 책에서 한경직 목사는 “그때 공산당이 많아서 지방도 혼란하지 않았갔시오.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 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그러니까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되었지요”라고 증언했다. 

서북지역에서 월남한 청년들이 반공의식을 가지고 제주4.3학살에 가담한 이유는 무엇일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을 역임한 최태육 목사(한반도통일역사연구소)는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통해 1948년 5월10일 열린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가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최태육 목사는 “당시 개신교인들은 남한에 친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원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련 공산주의에 먹힌다고 생각했다. 공산주의가 득세하면 개신교가 생존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여겼다. 이미 북에서 이런 경험을 가진 개신교인들은 정치·생존적 입장으로 5.10 선거를 만났다. 이를 방해하는 세력은 없애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주 4.3과 여순사건 진압 등에 개신교인들이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1947년 한경직 목사 설교 
“공산주의이야 말로 일대 괴물입니다.  
이 괴물이 지금 삼천리강산에 횡행하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 괴물을 벨 자 누구입니까?  
이 사상이야말로 묵시록에 있는 붉은 용입니다.”
 

개신교인들이 이런 정치 생존적 입장만으로 학살에 가담할 수 있었을까? 학살의 죄의식을 지워줄 장치가 필요했다. 남한 단독정부, 친미 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세력을 악마화한 것이다. ‘교회와 권력’이란 책에서 김진호 목사(제3세계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는 “공산주의자들은 적이고, 그들을 궤멸하면 우리에게 종교적 축복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영락교회를 이끈 한경직 목사가 1946년과 1947년에 한 설교를 살펴보면 서북청년단의 이러한 종교적 배경을 잘 알 수 있다.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가 2009년 발간한 ‘한경직 목사 설교선집1’에 수록된 ‘기독교와 정치’라는 제목의 설교(1946년)에서 한경직 목사는 “신자의 사명은 여기에 있습니다. 천고에 빛나는 진리를 파악한 우리가 철저한 사상교화 운동에 나서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강연회나 토론회를 개최하고, 잡지나 소책자를 발간하는 등 기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국으로 이 운동을 추진시켜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독교인은 잠잠합니다. 최선의 정치 이념이 우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퇴영적(退靈的)입니까? 좀 더 주도성을 가집시다. 십자가를 가지고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을 합시다. 전후(戰後)에 각국의 기독교 민주당이 일어나 주도성을 가지고 활발히 움직이는 것을 보시오! 일어나 일합시다!”라며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한다. 한 목사의 이런 설교는 그해 11월 설립된 서북청년회에 영락교회 청년들이 참여하도록 이끄는 계기가 됐다. 

1947년에 한 ‘기독교와 공산주의’라는 설교에선 이렇게 말했다.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발표한 공산당 선언 첫 구절은 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한 괴물이 유럽을 횡행하고 있다. 곧 공산주의란 괴물이다.’ 저들의 말 그대로 공산주의이야 말로 일대 괴물입니다. 이 괴물이 지금 삼천리강산에 횡행하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 괴물을 벨 자 누구입니까? 이 사상이야말로 묵시록에 있는 붉은 용입니다. 이 용을 멸할 자 누구입니까?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한 목사는 공산주의를 괴물이라고 지칭하며 그 괴물과 싸울 것을 설교를 통해 독려했다. 이듬해 제주4.3항쟁 진압에 서북청년단이 참여한 것도 바로 이런 독려가 바탕이 된 것이다. 

제주 4.3 초기 진압 책임자 
조병옥 경무부장(개신교인) 
“저 사탄의 진영(陣營)이  
순순히 굴복하면 몰라도  
여전히 그의 악을 계속(繼續)한다면 
그들이 무저갱으로 전락하는 
운명의 날이 멀지 아니할 것”
 

제주 4.3항쟁 초기 진압 책임자로 개신교인이었던 조병옥 경무부장은 1948년 4월 20일 서울 경무부경찰공보실이 발행한 ‘총선거와 좌익의 몰락’이라는 책자를 통해 “이제 세계(世界)는 조직된 공산주의(共産主義) 악도(惡徒)의 도량(跳梁)을 막기 위하야 일어나 조직하고 있다 그것은 유엔이오 미 영 불 중의 동심협력(同心協力)이요 로마 왕법(法王)의 명령(命令)이다. 이제 파괴되랴는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기 위하야 반공세력(防共勢力)이 나날이 결속(結束)되고 있다. 저 사탄의 진영(陣營)이 순순히 굴복하면 몰라도 여전히 그의 악을 계속(繼續)한다면 그들이 무저갱으로 전락하는 운명의 날이 멀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육 목사는 지난해 쓴 ‘제주4.3과 기독교인이 돌아봐야 할 것’이라는 글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긍정적 자아로, 이에 동조하지 않는 개인과 단체를 부정적 타자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그는 이를 신학화한다”며 “공산주의 진영, 즉 ‘사탄의 진영’은 무저갱으로 굴러떨어질 것이라는 의미이다. 반면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은 ‘공산주의 악도의 도량’을 막는 세력이다. 그는 신학적 해석을 통해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을 사탄의 진영과 의의 진영으로 발전시켰다”고 설명했다.

제주 4.3항쟁 초기 진압 책임자 조병옥 경무부장은 개신교인이었다. 사진 왼쪽부터 조병옥, 김동성, 장면(1949년 유엔한국대표단)
제주 4.3항쟁 초기 진압 책임자 조병옥 경무부장은 개신교인이었다. 사진 왼쪽부터 조병옥, 김동성, 장면(1949년 유엔한국대표단)ⓒ국가기록원

서북청년단을 비롯해 북에서 내려온 개신교인들에게 있어 반공은 단순히 사상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의 ‘붉은 용’과 ‘사탄’을 비롯한 악마의 세력과의 전쟁이었고, 빨갱이 낙인이 찍히면 가차 없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좌익 전력자를 전향시킨다는 명목으로 만든 보도연맹 결성을 주도하는 등 평안남도 출신으로 공안검사로 유명했던 오제도 검사와 제주 토벌대 출신인 채명신 장군과 이세호 장군이 영락교회에서 장로를 지낸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공산당과 싸우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사탄과의 싸움”
 

이러한 극우적 신앙은 고스란히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1년 8월30일 장충체육관에서 재향군인회(회장 박세환)와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 금란교회(감독 김홍도), 청교도영성훈련원(전광훈 목사)등 보수 단체와 대형교회 신도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반공·애국국민총궐기대회에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고, 목회만 하면 되지 무슨 정치운동에 참가하고 앞장서냐고 말하는 이 있다. 나도 목회만 하고 싶은데 공산당과 싸우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사탄과의 싸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만들어진 보수개신교 정당인 기독자유민주당의 창당준비대회 성격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의 이런 발언은 극우적 성향 개신교인들의 정치 활동이 과거 서북청년단처럼 마치 사탄의 세력과의 전쟁을 치르듯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홍도 목사는 역시 북의 서북지역인 평안북도 출신의 피난민이다. 

김용옥 교수는 ‘우리는 너무 몰랐다’에서 “서북청년단의 특징은 반공정신의 맹렬성과 맹목성에 있다. 북한에서 당한 저주를 풀기 위해 ‘빨갱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무조건 폭력과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북한에서 내려온 이 열혈한 정년들을 이승만은 정권장악의 가장 확고한 지지세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라며 “이승만은 이 서북청년단의 인력을 남한 사회의 반공화를 위한 프론티어로 활용했다. 며칠간의 훈련만 받으면 곧바로 경찰과 군인의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겉으로 보면 버젓한 군인이고, 경찰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월급이 지급되질 않았다. 마음대로 약탈하고, 겁탈하고 죽이고 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서북청년단에 관한 한, 아무런 룰이 없었다. 이 서북청년단의 아버지가 바로 조병옥이고, 장택상이었다. 빨갱이라면 전후좌우 맥락을 무시하고 때려잡는 사람들, 이들은 대체로 반공의 투사들이었고, 열렬한 예수쟁이였고, 인간 평등관을 거부하는 서북의 지주자제들이었다”고 밝혔다. 

개신교 ‘진보’와 ‘보수’  
모두 가졌던 반공의식… 
민주화운동 등을 통해 화해와 변화
 

그런데 반공의식은 우리가 흔히 ‘보수’라고 칭하는 개신교 일부 진영만의 의식이 아니라 ‘진보’까지 포함해 한국개신교의 보편적인 의식이었다. 진보적 신학의 대표적 인물로 한신대와 기독교장로회를 세운 김재준 목사를 비롯해 강원룡 목사, 함석헌 선생, 안병무 박사 등 1970년대부터 반독재투쟁에 나선 개신교계 인물들도 강한 반공주의자들이었다. 이들 역시 해방 직후 북에서 소련 등에 의해 교회가 탄압받던 현실을 직접 경험했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 2014년엔 대표적인 민중신학자인 안병무 박사가 서북청년회 부위원장을 지냈다는 의혹이 기사로 나오기까지 했다.

1988년 3월25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문익환 목사가 육촌동생 문익준, 문순옥 등 친척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만나는 모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개신교 진영의 반공 의식은 시대적 변화를 겪으며 바뀌었다.
1988년 3월25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문익환 목사가 육촌동생 문익준, 문순옥 등 친척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만나는 모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개신교 진영의 반공 의식은 시대적 변화를 겪으며 바뀌었다.ⓒ통일의집 제공

하지만 개신교의 반공의식은 시대가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지난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통해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적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와 이념을 달리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기까지 하는 죄를 범했음을 고백한다. 이것은 계명을 어긴 죄이며, 분단에 의하여 고통받았고 또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이웃에 대하여 무관심한 죄이며, 그들의 아픔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하지 못한 죄”라고 고백했고, “남한 그리스도인들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에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고, 분단이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북한 공산정권에 대하여 깊고 오랜 불신과 뼈에 사무치는 적개심을 그대로 지닌 채 반공 이데올로기에 맹목적으로 집착해 왔다”고 반성했다.  

이듬해인 1989년 3월 문익환 목사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평화통일방안을 협의하는 등 분단 극복을 위한 물꼬를 열었다. 문 목사는 만주에서 태어나 북을 거쳐 월남했고, 한국전쟁 당시엔 유엔군 통역관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개신교계의 이런 변화에 대해 최태육 목사는 “반공주의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자체적으로 극복해냈다고 보긴 힘들다. 해외 통일 운동과 197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이어진 민주화운동과 학생운동의 영향과 함께 젊은 목회자들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수개신교, 한기총 만들며 반공의식 강화 
“영락교회는 청년회와 대학생회를 통하여 
서북청년의 반공투쟁에 관여하였고, 
이것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개신교 일부에서 과거를 반성하고 평화와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동안 독재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한 보수적 성향의 개신교 교단들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1988년 선언에 반대해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을 만들었다. 한기총 초대회장이 바로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였다. 이후 보수개신교 진영의 반공의식은 더욱 견고해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개신교 내부에서도 서북청년단 활동을 사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개신교에선 이들을 건국세력으로까지 추켜세우고 있다.  

2012년 4월 ‘한국교회사학회’와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한경직과 대한민국 건국운동:1945-1948’을 주제로 발표한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는 “우익청년운동의 핵심으로 활동한 것이 바로 서북청년단이었다. 이북에서 자유를 찾아 남하한 서북청년들은 남한에서 좌익이 활개를 치고, 정치적으로 혼란한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영락교회는 이런 서북청년단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영락교회는 청년회와 대학생회를 통하여 서북청년의 반공투쟁에 관여하였고, 이것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1일 한국기독교총연합 주최로 서울 광화문 에서 열린 ‘문재인 탄핵 3·1절 국민대회’에서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시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보수적 성향의 개신교인들의 반공의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1일 한국기독교총연합 주최로 서울 광화문 에서 열린 ‘문재인 탄핵 3·1절 국민대회’에서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시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보수적 성향의 개신교인들의 반공의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한국기독교총연합 홈페이지

이런 시각은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과도 일치한다. 뉴라이트 역사학자 등이 중심이 돼 출간한 ‘대한민국 정체성 총서’ 18번째 책으로 ‘서북청년회’가 출간되기도 했다. 이 책은 “서북청년들은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로부터 탈출한 월남민이었기 때문에 전투적인 반공주의자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미군정 경무부장 조병옥의 말대로, 그들이 없었으면 치안유지도, 건국도 할 수 없었던 중요한 세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건국세력의 하나인 서북청년들의 존재에 대해 거의 완전히 잊어 왔다. 그들은 해방 직후에는 건국운동가로서, 그리고 6.25전쟁 때는 국군이나 유격대원이나 청년단원으로 좌익과 북한군에 대항해 싸웠다. 하지만 대다수는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가족이 없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도 많았다”며 서부청년단을 숨은 건국 영웅으로 추켜세웠다. 

“과거 반성 없는 개신교는 언제든지  
극우주의에 빠질 수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극우적 성향의 개신교인들은 대한민국은 과거 서북청년단 등 개신교 세력이 개신교인인 이승만 박사와 함께 세운 기독교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기총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가 지난 2월15일 열린 취임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세울 때 저항했던 남로당 찌꺼기들하고, 북에서 날라온 주사파 찌꺼기들이 붙어서 청와대를 점령하고, 대한민국을 해체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예수가 세운 나라다. 결단코 그들에게 내어줄 수 없다. 고려연방제로 갈 수 없다. 성도 여러분, 이 나라를 지키자”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문제는 이런 왜곡된 역사 인식이 일부 개신교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신교 일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반공주의 시대에 인식이 여전히 머물러 있다. 최태육 목사는 “개신교가 서북청년회 활동 등 과거의 잘못을 아직 반성하지 않았다. 개신교인 대부분이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모른다. 나이 든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개신교인들도 마찬가지”라며 “개신교는 언제든지 극우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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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 외교문서 공개, ‘무지개 공작’ 전면공개 될까?

통일뉴스, 서울고법 항소중...채희준 변호사 ‘준비서면’ 제출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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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2  15: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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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통일뉴스>가 국정원으로부터 행정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부분 공개'받은 '무지개 공작' 문건. 결정통지서에 '부분공개'로 표기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외교부의 30년 경과 외교문서 공개로 87년 발생한 KAL858기 사건과 ‘무지개 공작’이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무지개 공작’ 문건 전면 공개를 둘러싼 법정공방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 사건을 추적해온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는 2007년 3월 국가정보원에 ‘무지개 공작’ 문건 행정정보공개를 청구해 ‘정보 부분 공개 결정’을 받았지만 절반 이상의 내용이 비공개돼 2017년 10월 ‘전면 공개’를 재청구했다가 거부당하자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 음모 폭로공작’, 일명 ‘무지개 공작’ 계획 문건은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발전위)가 2006년 8월 1일 KAL 858기 사건 의혹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그 존재가 알려졌다.

‘무지개 공작’ 문건은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주도로 KAL858기 사건 발생 사흘만인 12월 2일자로 작성됐고, “11.29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 실종된 대한 항공 여객기 사건이 북괴의 테러 공작임을 폭로, 북괴 만행을 전 세계에 규탄하여 북괴를 위축시키고 국민들의 대북 경각심과 안보의식을 고취함으로써 가능한 대선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2007년 국정원이 부분공개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 음모 폭로공작’(무지개 공작) 문건은 절반 이상이 공란으로 가려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1987년 11월 29일 115명(한국국적 113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채 버마(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사라진 KAL858의 잔해도, 혐의자의 신분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북괴 만행’으로 몰아가 87년 12월 16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 활용하려한 것. 당시 전두환은 6월항쟁에 밀려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고 노태우를 후계자로 내세운 상태였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실제로 외교부가 대통령 선거 이전에 폭파 혐의자 ‘하치야 마유미(김현희)’와 음독자살한 ‘하치야 신이치(김승일)’ 사체를 바레인 정부로부터 인도받기 위해 외교력을 쏟아부은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바레인 당국은 한국 정부의 조기 인도 요구에 “마유미가 KAL 사건에 연루 되었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음”이라는 이유로 한국 인도를 머뭇거리고 있었고, “신이찌와 마유미가 사용한 AMPLE 독약물이 반드시 북괴제조라고 단언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할 수 없음”이라고 판단했다.(BHW-0339, V4.0105)

한국 정부는 87년 12월 10일 ‘마유미’를 북한 공작원으로 보는 이유 등을 문서로 바레인 외교장관에게 제출하고 모든 외교력을 쏟아 부어 결국, 대통령선거 하루 전인 12월 15일 김포공항에 마유미가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장면을 뉴스로 내보낼 수 있었다.

<뉴스타파>는 지난달 31일자 <“대선 전에 김현희 압송”..비밀 외교문서로 본 ‘무지개 공작’“> 제목의 보도에서 “14일 밤 9시 40분 바레인을 떠난 김현희는 대통령선거 전날인 15일 오후 2시 5분 김포공항에 모습을 드러낸다. 김현희가 트랩을 내려오는 장면은 대통령 직선제 부활, 군사정권 종식, 이른바 양김의 대결 등 모든 대선 이슈를 집어 삼켰다”며 “군사정권 연장의 결정적 역할을 한 김현희 신병인도 작전은 안기부 무지개 공작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 실행과정에서 외교부는 사실상 안기부와 한몸이었다”고 보도했다.

   
▲ 외교부는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들을 3월 31일 공개했고, KAL858기 사건 관련 외교문서도 대량 포함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결국 외교부가 30년이 지나 공개한 외교문서들을 통해 보더라도 ‘무지개 공작’이 실제로 이 사건과 12대 대통령선거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음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고, 따라서 ‘무지개 공작’ 문건의 전면 공개의 필요성도 충분히 확인됐다.

무지개 공작 문건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을 담당한 채희준 변호사는 서울고등법원 제4행정부에 이번 외교문서 공개와 언론보도 등을 반영한 ‘준비서면’을 제출, 1심 서울행정법원이 기각한 사유들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원고는 언론인으로서 오로지 사실 보도를 위한 공익적 차원에서 이 사건 청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깊이 감안되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희준 변호사는 “1심에서 비공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는데, 해당 내용은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 대부분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무지개공작 문건에서 비공개된 부분도 공개해야 마땅하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무지개공작 문건이 비밀로 지정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30년이 넘도록 공개하지않는 것은 결국, 영원히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국정원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지개공작 문건도 국민을 위해 작성한 것이어야 하며, 국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는 생산된 지 30년이 경과한 1988년도 문서를 중심으로 총 1,602권(약 25만여쪽)의 외교문서를 3월 31일 정오를 기해 공개했고, KAL858기 사건 관련 문서 1만여 건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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