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문 대통령 “핵 동결 북한에 무엇을 줄지 미국과 협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6/29 12:03
  • 수정일
    2017/06/29 12:0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17-06-29 07:46수정 :2017-06-29 08:36

한-미 정상회담 위한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간담회
북핵 해결 ‘포괄·단계·행동 대 행동’ 원칙 재확인
“핵 동결이 대화의 입구, 완전한 비핵화가 출구”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미국행 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7.6.28.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미국행 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7.6.28.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북한이 핵 동결을 하면 그에 대해 무언가를 주어야 할 것이고, 준다면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인지 한-미 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비핵화의 첫 단추로 북한이 추가 핵 개발을 않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경우, 그에 상응해 어떤 보상 조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미국과 논의를 하겠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반도 위기의) 가장 이상적인 해법은 원샷으로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한꺼번에 이루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어쨌든 북한과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핵 동결 정도는 약속을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추가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멈추고 핵 동결을 선언하는 것과 동시에 대화를 시작하고, 비핵화를 향한 행동이 진척되는 것에 상응해 북한이 원하는 조처들을 단계적으로 취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핵 동결은 대화의 입구이고, 그 대화의 출구는 완전한 핵 폐기(비핵화)다. 핵 폐기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것”이라며 “중간에 여러 가지 이행 과정을 거칠 수 있고, 각 이행과정들은 하나하나 완벽하게 검증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6자 회담 당사국들이 합의한 ‘포괄적(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연계)-단계적(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행동 대 행동(비핵화의 각 단계마다 상응하는 행동으로 보상)’ 원칙이 지금의 한반도 위기 해법으로도 유효하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핵 동결을 핵 폐기를 위한 대화의 입구라고 생각한다면, 핵 폐기에 이를 때까지 서로가 행동 대 행동으로 교환해가는 여러 단계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문 대통령의 발언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핵 동결 및 검증에 이어) 핵 시설에 대한 폐기 단계에 들어선다면 그 때는 또 무엇을 줄 수 있을지, 궁극적으로 기왕에 만든 핵 무기와 핵 물질들을 다 폐기하는 단계에 이르면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이런 부분들도 한-미 간 긴밀히 협의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핵 동결 선언→ 검증→핵 시설 폐기→검증→핵무기·핵물질 폐기→검증’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프로세스를 상정하고, 각 단계마다 우리 쪽이 취해야 할 상응조처를 미국과 협의해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인 김정숙씨와 28일 오후(현지시간) 방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 방문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부인 김정숙씨와 28일 오후(현지시간) 방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 방문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다만 “지금까지 한-미 양국의 공식 입장은 북한의 핵 동결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연계될 수 없다는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나쁜 행동에 대해 보상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면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축소를 논의할 수 있다’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최근 방미 발언이 국내는 물론 워싱턴 정가에서도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자 정상회담을 앞두고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워싱턴/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현지시간) 방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2017.6.29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현지시간) 방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2017.6.29청와대사진기자단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800733.html?_fr=mt1#csidx63201df650a6ddca2b7113242b07ec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리에겐 애국이나 누군가에겐 학살이다"

시민사회, 문재인 대통령에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성찰 촉구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7.06.28  16:25:46
페이스북 트위터
   
▲ 한베평화재단, 베트남프렌즈 등 53개 시민사회단체는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베트남 역사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우리에게는 애국의 역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학살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을 언급하며 애국을 강조한 데 대해 시민사회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성찰하라고 촉구했다.

한베평화재단, 베트남프렌즈 등 53개 시민사회단체는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베트남 역사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명진 스님이 읽은 기자회견문에서, 이들 시민사회는 "20세기 우리가 겪은 가장 비극적인 두 개의 전쟁. 바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다. 이 두 개의 전쟁은 한국사회에 씻을 수없는 상처를 남겼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통합과 애국을 강조했다. 그러나 통합에 방점이 찍힌 추념사는 정의의 관점에서 균형있는 시각을 제시하지 못했다. 애국과 보훈에 대한 강조로 정작 우리가 겪은 두 개의 큰 전쟁 중 하나인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성찰을 간과하고 말았다."

   
▲ 명진스님이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이들 시민사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성찰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그리고 "이번 현충일 추념사 논란의 한가운데에는 바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의혹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며 "참전 병력수가 전쟁 당사국인 미국 다음으로 많았던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의 피해도 매우 크다. 민간인 학살문제는 20년이 되도록 여전히 의혹으로만 머물러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성찰하고 해결하는 정부가 되길 기대한다. 이제 더 이상 베트남과의 역사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참전군인의 상처뿐만 아니라 베트남 피해자들의 아픔까지 보듬는 것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하는 정의로운 국가의 모습"이라며 정부차원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 이예진 씨는 "우리에게는 애국의 역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학살의 역사였다"고 꼬집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예진 '베트남프렌즈' 소속 청소년은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 "참전군인분들의 희생과 경제발전에 가려지고 묻힌 사람들 역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애국의 역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학살의 역사였다"고 꼬집었다.

"평화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이 베트남 전쟁 당시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베트남 전쟁의 모든 피해자분들에게 사과하여 그 분들이 조금이나마 상처가 치유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유학생인 도 웅옥 루옌 씨는 "한국에 살면서 한국이 일본을 끊임없이 원망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목적으로든 다른 나라게 가서 사람을 죽였으면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며 "한국 군인에 의해서 베트남의 많은 민간인이 생명을 잃었다는 것을 반성한다면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30여 명이 참가했으며, 가수 홍순관 씨가 노래를 불렀다.

   
▲ 가수 홍순관 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한편,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전 참전군인은 애국이라고 한 현충일 추념사로 베트남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베트남 현지 언론은 연일 현충일 추념사 비판 기사를 쏟아내고 있으며, 한국제품 불매 여론도 일고 있다는 것.

급기야 베트남 외교부는 지난 12일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발언과 행동을 삼가해 줄 것을 요청한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이에 한국 외교부는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고만 밝혔다. 한국과 베트남은 올해 수교 25년을 맞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단독] “밤 살수는 처음, 살수차 지침도 전날 처음 봐” 백남기 사건 살수차요원의 거짓말

 

백남기 사건 직후 작성된 경찰 ‘살수차요원 진술조서 및 청문감사보고서’ 입수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 사건’ 당시 충남 9호 살수차 요원이던 최모 경장이 밤 살수 경험이 전혀 없던 상황에서 민중총궐기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사건 직후 작성된 ‘경찰 진술조서’ 확인 결과 드러났다. 최 경장은 작년 9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충분한 교육을 받았고, 밤 살수 경험이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 최 경장은 ‘살수차 운용 지침’을 민중총궐기 전날 처음 본 것으로 확인됐다. 충분한 교육과 운용 지침 숙지 없이 살수차 요원들이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2015년 11월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 직후 작성된 살수차 요원들의 진술조서 일부
2015년 11월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 직후 작성된 살수차 요원들의 진술조서 일부ⓒ민중의소리

경찰이 국회와 법원에 제출을 거부하던 ‘백남기 청문감사보고서’를 <민중의소리>가 28일 입수했다. 해당 감사보고서는 사건 당시 살수차 요원이던 최모·한모 경장의 진술조서와 7쪽짜리 서울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 보고서로 구성됐다.

충남 9호차 살수차 요원, 밤 살수 등 실전 경험 전무
살수차 운용 지침도 전날 처음 봐
살수차 내 모니터 조작법도 몰라

해당 보고서에는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이 주먹구구식으로 살수차를 운용했다는 기록이 담겼다.

최 경장의 증언이 담긴 진술조서에 따르면 최 경장은 민중총궐기 현장에 투입되기 전까지 실전경험이 없었다. 최 경장은 백 농민을 직사살수한 ‘충남 9호 살수차’에서 물대포의 방향을 조작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민충총궐기 두 달 전 지휘검열 당시 살수차 조작요원으로 2~3번 준비했던 경험밖에 없어서 살수차 조작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또 살수차 운용지침을 민중총궐기 전날 교육에서 처음 봤다고 증언했다. 경찰이 충분한 교육과 살수차 운용지침 숙지를 시키지 않고 살수차 요원들을 실전에 주먹구구식으로 투입한 것이다.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직후 살수차 요원이었던 최모, 한모 경위의 경찰 진술조서. 맨 위와 중간 진술은 최 경장, 맨 아래 진술은 한 경장 진술.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직후 살수차 요원이었던 최모, 한모 경위의 경찰 진술조서. 맨 위와 중간 진술은 최 경장, 맨 아래 진술은 한 경장 진술.ⓒ민중의소리

사건 당시 충남 9호 살수차 운전과 물대포 강도 등을 조작했던 한모 경장 역시 살수차 실전 경험은 한 번(2014년 9월 충남 보령 플랜트노조 집회)밖에 없었다. 한 경장은 살수차 내에서 실제 발사 등을 실행하는 조장이였지만, 내부에 설치된 모니터 작동 방법조차 잘 알지 못했다. 살수차 요원들은 해당 모니터를 보고 사물의 위치를 가늠해 물대포를 발사한다. 하지만 그는 당시 4분할 된 모니터 화면을 대화면으로 바꾸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다. 밤 집회 당시 주변이 어두운 상황에서 외부 사물을 보는 유일한 수단인 모니터 화면을 키우기 위한 시도 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최 경장과 한 경장은 국회 청문회 등에서 “밤이라서 어둡고 가랑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모니터 화질이 좋지 않아 백 농민 등을 보지 못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반복했다. 모니터 작동 방법을 잘 몰랐다는 취지의 증언은 전혀 하지 않았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살수차 운용을 주먹구구식으로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실무자뿐만 아니라 현장을 관리했던 경찰 지휘부 등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쓰러진 백 농민 부축한 시위대 겨냥해 직사살수
살수차 요원 ‘잘못 인정’에도 ‘정당한 직무집행’ 논리 고집한 경찰

2015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맞고 실신한 민중총궐기 참가자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2015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맞고 실신한 민중총궐기 참가자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기타

진술조서에는 충남 9호 살수차가 사건 당시 백남기 농민을 부축하러 나온 시위대를 겨냥해 직사살수를 했다는 진술도 담겼다.

쓰러진 사람을 대신해 등으로 살수를 막은 사람에게 추적살수를 했는지를 여부를 묻는 청문감사관의 질문에 최 경위는 “비닐 우의를 입고 있는 사람이 물포를 맞았는데도 자리를 옮기지 않아 방향을 옮겼다가 다시 맞췄다”고 진술했다. 그의 진술은 민중의소리가 사고 직후 공개한 살수차가 백 농민과 그를 부축하고 있는 집회참가자 등에게 12초~17초정도 직사살수한 영상 내용과 일치한다.

 

국회 청문회에서 최 경장은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고, 특정인을 겨냥해 직사살수한 적이 없다. 밧줄을 당기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시위대 무리를 향해 상하좌우 방향을 바꿔가며 살수를 했다”고 증언했다.

최 경장과 한 경장 모두 사건 직후 진행된 조사에서 백 농민 사건의 “잘못을 인정한다”, 직사살수 행위 등의 “위험성을 인정한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현장 실무자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그간 경찰 지휘부는 백 농민 사건이 폭력 시위대를 향한 정당한 직무집행이라는 논리를 고집했다. 급기야 작년 9월 백 농민 사망 당시 사망진단서 사인이 병사라는 이유로 무리하게 부검 시도를 강행하며 논란을 키웠다.

관련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제왕적 대법원장'이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 끝장낼 때

 
[기고] 제왕적 인사권과 사법 독립은 양립 불가

 

 

 

 

지난 22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일부 판사들의 사퇴 요구에 직면했다. 1988년 김용철 대법원장의 용퇴이후 30년 동안 없었던 일이다. 지난 19일엔 사법사상 세 번째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소집돼 판사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등을 요구사항으로 결의했다. 양 대법원장은 시민단체에 의해 직무남용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한 상태이기도 하다. 국회법사위도 조사청문회를 벼르고 있고 국회개헌특위는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을 대법원장에서 사법평의회로 이양하는 개헌안을 내놓았다. 

이 모든 움직임은 지난 3월 5일 법원행정처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이 언론보도를 탄 이래 계속 진행돼 온 저강도 사법파동의 후과들이다.  


사법파동의 1단계 산물로 이인복 진상조사위가 구성돼 지난 4월18일 조사결과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부실조사로 말미암아 다시 판사들이 들고 일어나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 및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사법파동의 2단계였다. 지난 19일 개최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아예 사법개혁 저지 의혹 및 판사 블랙리스트의혹 추가조사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권한 위임을 요구했다.  

이번 사법파동의 성격상 양승태 대법원장은 한국 사법부의 마지막 제왕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 꼭 그렇게 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촛불시민혁명으로 공사 분간 못한 제왕적 대통령을 쫓아냈다. 드디어 제왕적 대법원장도 도마 위에 올라와있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은 지금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사법 부문의 영순위 제도 적폐라고 할 수 있다. 

청산 대상 사법 적폐라고 하면 유전무죄, 특히 재벌 총수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을 제일 먼저 떠올리기 쉽다. 전관예우와 정치사법도 빠뜨릴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사법적폐들이 단연 대법원장의 제왕적 법관인사권에 그 뿌리와 토대를 두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사법파동은 처음으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을 본격적으로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한국 사법 역사의 획기적 사건이다.  

우리 헌법과 법률은 대법원장에게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전방위적 법관인사권을 부여한다. 대법원장은 모든 법관에 대해 첫째, 최초 임용 여부와 10년 주기 재임용 여부를 정할 수 있다. 둘째, 전국 어디로나 정기적으로 전보시킬 수 있다. 셋째, 해외연수를 보내줄 수 있다. 넷째, 고법부장 승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다섯째, 법원행정처의 모든 보직에 발탁할 수 있다. 대법원장은 또한 여섯째, 모든 지법원장과 고법원장을 임명할 수 있고, 일곱째, 모든 대법관에 대해 임명제청권을 갖는다.  

대법원장의 법관인사권 행사를 견제하기 위해 대법관회의, 대법관후보추천위, 판사회의 등이 없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통과의례를 위한 들러리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장은 사법부 안에서 누구한테도 견제 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을 누린다. 제왕적 대법원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거꾸로 한국의 법관들은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 앞에 장기판의 졸처럼 무력감을 느끼며 사법부 관료로 길들여진다. 매년 전보와 승진, 재임용이 대규모로 이뤄지는 현행 법관인사제도 아래서 한국의 법관들은 꽃보직과 승진, 좋은 임지와 주요 재판부를 향해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면 대법원장과 그의 대리인인 소속 법원장에게 잘 보여야 한다. 주요 사건을 판결할 때도 혹시 튀지나 않을까, 혹시 밉보이진 않을까 신경을 써야한다. 이처럼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은 법관독립의 관점에서 수용할 수 없는 제도다. 

비교법적으로 한국의 대법원장처럼 제왕적 인사권을 보유한 외국의 대법원장을 찾아보기 어려운 건 그래서다. 선진국에서는 법관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법관의 전보마저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소신파 법관을 오지나 한직으로 좌천 인사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재임용 제도도 소신파 판사를 해임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높기 때문에 운영하지 않는다. 

대법원장이 대법관제청권을 갖는 나라도 없다. 대법원장 덕에 대법관이 된 이가 대법원장과 대등한 입장에서, 때로는 대법원장과 맞서며, 판결하는 게 쉽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원장도 소속법관의 호선으로 뽑고 사무분담과 사건 배당도 법관자치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 자체를 대법원장이 아닌 별도의 헌법기관(사법평의회, 사법최고위 등 다양한 명칭)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선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이 대법원장 1인에게 속한다는 엄청난 사실이 알려지면 외국의 대법원장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잠시 부러움과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으나 곧바로 한국의 사법부를 매우 얕잡아볼 게 틀림없다. 법관인사권이 대법원장 1인에게 집중되면 법관사회의 관료화와 법관독립(사법독립)의 손상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법관사회를 눈치 보는 난쟁이들의 관료사회로 타락시키는 제왕적 대법원장의 존재는 민주법치국가의 품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대법원장이 제왕적 권력을 누리는 대가는 누가 지불하는가? 일차적으로 법관이 지불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법이용자인 국민이 지불한다. 세상의 이목이 쏠린 주요 사건에서 법관이 인사권자인 대법원장과 소속법원장의 의중을 살피게 되면 공정사법이 멀어지고 사법불신이 확산된다. 우리나라 법관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의 제왕적 대법원장 아래서는 소신파 판사들이 발붙이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거 놔두면 진짜 큰일 난다. 한시바삐 바로잡아야 한다. 제왕적 대법원장 탓에 소심법관이 소신법관을 대체하면 사법부의 권력통제는 시늉에 그치고 약자보호는 지체되며 사법불신은 심화된다. 이것이 기관과 제도로서 제왕적 대법원장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인권보장에 미치는 해악이다. 그로 말미암는 사회적 비용은 힘없는 국민 순으로 몸으로 부담한다. 

그럼에도 제왕적 대법원장에 대한 우리사회의 문제의식은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문제의식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도 일천하고 미약하다. 그 업보는 결코 간단치 않다. 

 

첫째,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을 위한 아주 중요한 실천과제를 오랫동안 놓쳤다. 제왕적 대법원장을 그대로 둔 채 사법독립과 공정사법,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논하는 어리석음에 너무 오래 빠져있었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국정원과 검찰의 시녀화, 총리의 각료제청권 형해화 등 불법과 편법에 빚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은 100% 헌법과 법률에서 나온다. 양대 제왕적 권력의 합헌성과 합법성 차이는 어째서 대통령의 권력행사가 수시로 정치문제로 비화한 반면 대법원장의 권력행사는 그런 일이 없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대법원장처럼 합헌적, 합법적 제왕에 대해서는 외부 비판이나 시비 논쟁이 몹시 어렵다. 

둘째, 지난 역사에서 제왕적 대법원장은 제왕적 대통령에게 합법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며 제왕적 대통령을 뒷받침해온 가장 중요한 기둥이었다. 정권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정치적, 정책적 사안에서 대법원장은 서울지법과 서울고법의 요로에 배치된 심복법관들과 대법원장의 제청권 행사로 구성된 대법원을 통해 구원투수 노릇을 했다. 코드가 맞는 제왕적 대법원장이 결정적인 순간에 판결로 정권의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도 운신의 폭이 좁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제왕적 대통령을 청산하려면 동시에 제왕적 대법원장도 청산해야 한다는 진실을 좀처럼 깨닫지 못했다. 

지금은 촛불시민혁명으로 제왕적 대통령을 쫓아내고 다시는 제왕적 대통령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관련 제도 개혁을 강구하는 중이다. 이런 시점에서 제왕적 대통령의 강력한 동맹인 제왕적 대법원장을 본격적으로 문제 삼게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또한 판사들이 앞장서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매우 자연스럽다. 실은 법학자나 법운동가도 사법부의 내부사정을 아는 게 쉽지 않다. 하물며, 재판받을 경우를 제외하면 사법부의 권력을 체감할 일이 전혀 없는 일반시민에게 사법부의 내부사정은 너무나 먼 얘기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법관들이 제왕적 대법원장의 관료적 사법행정제도를 법관독립의 관점에서 비교법 연구를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건 법관들의 연구모임, 우리법연구회가 1988년에 등장하면서부터다. 그러나 국제인권법의 관점에서 유엔과 EU, OECD 등 국제기구의 관련규범까지 본격적으로 검토하며 더 체계적인 연구조사를 진행한 건 이번에 문제가 된 국제인권법연구회가 2011년에 출범하면서부터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현재 5백 명 가까운 현직 법관을 연구회원으로 둔 최대 법관연구모임이다.  

2015년 7월 국제인권법연구회 안에는 사법행정과 법관인사 관련제도를 하나씩 잡아 매달 집중 토론하는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연구모임'(인사모)가 결성됐다. 법원행정처는 인사모의 활동상황과 토론결과를 비상한 관심과 경계심을 갖고 감시했다. 법원행정처는 인사모를 법원행정처를 반대하는 불온한 조직으로 규정했다. 지난연말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법관독립 강화의 관점에서 법관인사제도에 대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자 법원행정처는 금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탄압과 회유의 양동작전을 전개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법원행정처는 법관인사제도 학술대회를 어떻게든 내부행사로 축소하거나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종료(9월 24일)이후로 연기하려고 공작 차원의 꼼수를 몇 가지 동원했다. 통틀어서 법원행정처의 사법개혁저지의혹 또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불리는 일련의 사태가 지난 3월 5일 언론보도로 알려지면서 이번 사법파동이 점화된다. 

이런 흐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번의 사법파동은 문제의식과 조직력을 갖춘 단단한 주체들이 형성돼 있을 뿐 아니라 오랜 조사연구에 의해 탄탄한 논리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전례 없이 '준비된' 사법파동이다. 사법제도의 부분개혁을 내걸었던 과거의 사법파동과 달리 이번엔 법관인사제도와 사법행정시스템의 전면개혁을 내세운 사실도 이번의 특별한 준비태세를 보여준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주체와 역량이 준비돼 있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쉽게 물러서거나 중간에 포기할 것 같지 않다. 전국법관대표회의도 오는 7월 24일, 2차 회의 때부터 법관의 독립성을 국제규범과 선진국 수준으로 보장하는 데 필요한 법관인사제도의 전면 재설계 논의에 착수할 전망이다. 하필이면 양승태 대법원장 말년에 이렇듯 과거와 차원이 다른 사법파동이 터졌다. 소장법관들이 보기에 양 대법원장 시절에 대법원장의 제왕화와 법원행정처의 관료화가 부쩍 심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5일에 공표된 현직법관 507명의 설문조사결과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법관인사와 사법행정에 대한 소장법관들의 진단과 평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절대다수의 응답법관들은 현행 사법행정/법관인사시스템의 주요제도들을 빠짐없이 반드시 고쳐야할 나쁜 제도로 평가했다. 법관독립의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의 대법관제청제도와 법원장임명제도, 법관전보제도와 법관승진제도, 사무분담제도는 조금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절대다수의 현직법관들은 또한 법관독립 침해주범을 다름 아닌 제왕적 대법원장과 관료화된 법원행정처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일반법관들은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이 법관독립과 상극이며 본원적인 사법적폐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었다. 이제 법원 안팎의 누구도 이 설문조사결과를 외면하거나 덮을 수 없다. 더 이상 그 문제의식과 처방전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딴청부릴 수 없다. 사법개혁 문제의식의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 사법제도사는 법관설문조사결과가 공표된 지난 3월 25일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로 확연하게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개혁파 법관들은 현재의 제왕적 대법원장과 법관인사제도에 대한 유력한 대안으로 사법부와 사법행정의 법관자치방안을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차성안 판사는 첫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정책 최고결정기관으로서 제왕적 대법원장을 대체한다, 둘째, 대법원장이 임명해온 법원장을 소속법관 호선으로 선출한다, 셋째, 법원장의 사무분담권한을 판사회의 운영위를 선출해서 넘겨준다, 넷째, 지법-고법 이원화를 통해 고법부장 승진제도를 없앤다, 다섯째, 법원행정처를 상근법관 중심에서 비법관 전문가조직으로 대체한다는 방안을 제시한다.  

위의 방안들은 기본적으로 지금의 제왕적 사법행정/법관인사를 최대한 법관자치형 사법행정/법관인사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이러한 대안은 개헌 없이 법원조직법과 대법원규칙을 고치기만 해도 가능한 점이 장점이다. 또한 법관설문조사결과가 말해주듯이 절대다수의 법관들이 이러한 5종 세트 개혁안을 지지하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개헌의지를 표명하고 국회개헌특위가 구체적 개헌안 마련에 나선 지금 시점에서 대법관제청권을 행사하고 법관인사권을 가질 최고사법정책기구를 어떤 원칙과 모습으로 구성할지는 좀 더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  

이미 언급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사법행정권과 법관인사권을 대법원장에게 주지 않고 별도의 헌법기관에 준다. 보통 사법평의회나 사법최고위 등의 명칭이 붙는데 구성 원리에 따라 세 유형으로 대별된다. 법관대표로만 구성하는 순수법관자치기구형, 법관대표를 중심으로 법률가직역(검찰, 변호사, 법학교수)대표를 망라하는 법관·법률가자치기구형, 국회대표와 법관대표를 중심으로 변호사대표와 법학교수대표를 섞는 국회·법률가혼합기구형이 그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임명직이나 당연직이 아니라 각 직역이나 국회에서 선출된 ‘대표’들로 위원회가 구성된다는 점이다.  

어떤 유형이든 상관없이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이 별도의 합의제헌법기관에 부여될 경우 법관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볼 일이 없다. 인사권자가 합의제 대표기구이기 때문에 특정한 한두 사람의 눈치를 봐도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모든 위원들의 눈치를 보는 건 물론 불가능하다. 또한 법관독립성도 강화된다. 일단 대법원장이나 소속법원장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데다 법률가들이 주도할 사법정책기관이 법관독립에 역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양승태 대법원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 28일 전격 발표한 판사회의 상설화 정도로는 부족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제일 필요한 것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정직한 고해와 철저한 반성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다음, 과거의 잘못을 책임지고 바로 사퇴해서 새 길을 앞당겨주든가, 모든 사심을 버리고 전국법관대표회의와 함께 사법개혁에 앞장설 것을 약속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만약 어정쩡한 제3의 길을 선택하면 고작 1, 2주 안간힘을 쓰다 결국 소장법관들에게 떠밀려 그만둘 수밖에 없다. 

두 가지만 생각해보면 왜 그런지 답이 나온다. 양 대법원장이 이도저도 아닌 대응으로 면피하려들면 법관들의 집단행동, 즉, 사퇴요구가 빗발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국회가 인사청문회국면이 끝나는 즉시 사법파동 청문회 개최를 벼르게 될 것이다. 시민단체들의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도 수사의 칼을 뽑을 시점을 저울질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양승태 대법원장은 오직 사법부의 명예와 법관의 독립을 위해서 어떤 길이 최선인지만 고민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작금의 상황에서 남은 임기를 채우려면 최소한 국민들과 법관들에게 막판 감동과 믿음을 줘야 한다.  

그래서 말이다. 나는 이번의 사법파동을 계기로 양승태 대법원장이 제왕적 대법원장 시대를 본인의 대에서 끝내겠다고 깜짝 선언하고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발본적인 개혁방안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하는 파격적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만약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과오를 진솔하게 사과하며,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개혁주도권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대승적으로 뒷받침해줄 경우 전국법관대표회의도 양승태 대법원장 임기 중에 치고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새 대법원장이 임명되면 아무리 개혁적인 인물이라도 권한의 대폭 축소를 달가워하지 않고 타협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반면 양 대법원장의 경우 허물이 큰데다 임기도 다 돼 어떤 개혁안을 내밀어도 적극적으로 저항할 힘이 없다. 일반적인 예측과 달리 제왕적 대법원장의 해체 및 사법행정시스템 재설계 방안에 대한 합의가 전국법관대표회의와 양승태 대법원장의 몫일 수도 있는 이유다.  

양 대법원장의 임기가 90일도 채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양 대법원장의 임기 내에 그와 같은 합의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 그럼에도 양 대법원장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제왕적 대법원장의 해체와 법관독립의 강화라는 사법개혁의 목적과 방향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서 확립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드물지만 진보의 역사가 가장 맞지 않는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실현하는 때가 있다. 어쩌면 지금이 그와 같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작동하는 때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번의 잘 준비된 사법파동의 결과로 사법부에서 제왕적 존재가 제거되고 사법독립과 법관자치가 획기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낙관한다. 머지않아 전개될 개헌국면도 사법개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으로 기대한다. 후세의 역사가 2017년의 대한민국은 촛불시민혁명의 힘으로 제왕적 대통령에 이어 제왕적 대법원장을 청산하고 법관독립과 공정사법을 보장하는 새로운 사법행정시스템을 만들어냈다고 기록할 것으로 상상하며, 양승태 대법원장의 올바른 결단을 촉구한다. 

다른 글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험대 오른 한국사회 탈핵논쟁…“투명한 정보공개가 관건”

 

등록 :2017-06-27 20:23수정 :2017-06-28 10:44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왜
후쿠시마 사고이후 건설 결정 
안정성 의문·주민들 반발에도 
전세계적 탈핵 흐름과 거꾸로

과거실패 반면교사 삼아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 내부 분열 
사회적 관심 못끌고 반쪽 결론 내 
정확한 정보전달·투명운영 전제돼야
부산을 비롯한 동부지역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회원들이 지난해 11월14일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대인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고리원전 신고리 5·6호기 예정 부지 앞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는 바람개비 행진을 하고 있다. 울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부산을 비롯한 동부지역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회원들이 지난해 11월14일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대인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고리원전 신고리 5·6호기 예정 부지 앞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는 바람개비 행진을 하고 있다. 울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부가 27일 내놓은 이른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운영계획 발표는 본격적으로 전 사회적인 ‘탈핵 논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핵발전소를 둘러싼 논쟁을 시민사회가 직접 참여해 결정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사회 안에서는 석달이라는 제한된 활동기간이 갖는 한계를 인식하고,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의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가 바탕이 되어야 공론화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고리 5·6호기는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벌어진 뒤 국내에서 처음으로 건설 여부가 결정된 핵발전소다. 앞서 한수원은 2009년 2월 신고리 5·6호기의 건설기본계획을 확정했으나 후쿠시마 사고가 벌어진 뒤인 2011년 10월 신고리 5·6호기의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당시 주민들은 중대사고에 대한 대비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주민들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예정지가 ‘핵발전소 밀집지역’이라는 문제도 제기했다. 신고리 5·6호기가 들어서는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주변에는 반경 3㎞에 가동이 영구정지된 고리1호기를 포함해 총 8기(올해 11월 가동 예정인 신고리 4호기 포함)의 핵발전소가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신고리 5·6호기의 내진설계(규모 6.9)가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진의 최대 규모인 7.5에 못 미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린피스에서는 안전성에 대한 적절한 조사 없이 건설이 결정됐다며 지난해 9월 법원에 건설 취소소송을 제기했으며 현재 진행 중이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일부 대선후보들도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건설 중단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였던 신고리 5·6호기는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지역 경제에 미칠 파장 등을 따져본 뒤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논란의 불이 지펴졌다. 당시 김 위원장은 원자력 학자들과 일부 지역 주민들의 공사 중단 반발을 의식해 공약에서 한 발 물러선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환경단체 등은 국내 최초의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와 함께 신고리 5·6호기의 건설도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공론화위원회 설치”를 제안한 것이다.

 

시민사회에서는 공론화위원회의 출범이 “유례 없는 논쟁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을 중단한 독일·대만과 달리 우리나라는 핵발전소 건설이 계속돼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공론화 과정에서 투명한 정보 공개와 여론 형성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공론화위원회 운영안을 보면 “이해 관계자나 에너지 분야 관계자가 아닌 사람 중 국민적 신뢰가 높은 덕망 있고 중립적인 인사를 중심으로 10인 이내 선정하고 불특정 국민 대상 설문조사 겸 여론조사를 먼저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언론 등을 통해 핵발전소의 문제를 다루는 여론전이 뜨거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핵발전소 관련 정보 전달도 투명하게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공론화위원회의 벤치마킹 사례로 독일의 ‘핵폐기장 부지 선정 시민소통 위원회’나 일본의 ‘에너지 환경의 선택에 대한 공론조사’ 등을 제시했으나, 앞서 국내에서는 고준위 핵폐기물의 처리 등을 논의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한 바 있다. 당시 정보 공개와 소통 문제로 운영위원 일부가 탈퇴하면서 반쪽짜리 결론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석달이라는 기간을 정해 논의한다는 점에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겪었던 논란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또 매몰비용 등 경제성 논의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진다면 애초 위원회의 운영 취지에 맞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시민배심원 제도, 배경과 운영은?

 

 

1980년대 덴마크에서 ‘합의회의’ 처음 도입 
국내 GMO·생명복제기술·전력정책 시민배심원 제도 시도
정부 주도의 시민배심원제 시도는 이번이 두 번째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뼈대는 시민배심원 제도에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 시민 가운데 10명을 선발해 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참여 민주주의’의 틀을 가지고 있다.

 

시민배심원 제도의 뿌리는 덴마크에서 시작했다.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사회학)의 연구자료를 보면, 덴마크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사회적인 결정을 위해 ‘합의회의’라는 제도를 운영해왔다. 합의회의는 신문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지원한 시민 가운데 15명 정도의 패널을 선발한 뒤, 이들이 자료와 전문가 강의를 통해 주제를 익힌 뒤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내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비영리단체인 제퍼슨 센터가 1970년대 초반 무작위로 뽑힌 시민들이 4~5일 동안 정부 정책 등 중요한 문제에 대해 논의한 뒤 결정하는 ‘시민배심원 회의’라는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국내에서 시민배심원 제도를 운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1998년 유전자변형식품(GMO)에 대한 정책 제언을 위해 ‘합의회의’를 처음 열고, 1999년에는 생명복제기술, 2004년에는 전력정책 전반에 대한 시민사회의 의견을 모으는 시민배심원 제도가 운영된 바 있다.

 

정부가 중심이 돼 시민배심원 제도를 운영한 것은 2009년 처음 문을 연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처음이다. 그러나 당시 위원회 운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2013년 10월 다시 문을 연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도 논란을 거듭하다 2015년 6월30일 운영을 종료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
◎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국이 좋은 걸까? 무서운 걸까?

대통령에 당선되면 가장 먼저 방문하는 나라, 미국은 한국에게 어떤 존재인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터뜨려 우리민족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준 나라. 6.25전쟁에 참전해 이남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준 나라. 무상원조로 한국경제를 일으켜 준 나라. 군사작전권을 넘겨받아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는 나라’일까? 기획연재, ‘한미관계 이대로 좋은가?’에서는 미국 그 이면에 숨은 적폐를 역사적 사건들을 소재로 재조명해본다.[편집자]

“사드로 깨질 동맹이 무슨 동맹이냐”는 문정인 특보의 발언을 막말이란다.

1년이 넘게 자국민들이 촛불로 사드를 반대해도 보도 한 번 않던 언론이 사드 배치가 연기돼 트럼프 미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대서특필한다.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했던 성조기가 사드 배치 찬성 집회에도 나타나,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뜻에 따르라"고 고함질이다.

미대사관 인간띠잇기를 두고 ‘한국대사관이 시위대에 포위되면 어떻겠나’라며 미국 언론인지 한국 언론인지 헷갈리는 사설을 써대고 있다.

이처럼 미국보다 미국을 더 걱정해주는 정치인과 언론이 너무 많다.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성조기. [사진 뉴시스]

사람이 사대를 하면 머저리가 되고, 나라가 사대를 하면 식민지가 된다

국어사전에 사대주의는 ‘주체성이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나 사람을 붙좇아 자기의 존립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미국을 숭상하고 미국 말을 잘 들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병이 바로 숭미사대주의다.

우리는 주변에서 미국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품고 있거나, 자신이 미국의 홍보사절단이라도 되는 양 미국 사회를 과도하게 찬양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여기에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까지 겹치면 어떻게든 미국과 비교하며 한국을 까지 못해 안달하는가 하면, 자녀의 미국 시민권 취득을 위해 원정출산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 하면 자유, 풍요, 힘센 나라 등의 단어를 떠올리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미국에 쓴소리라도 하려 하면 마치 자기 나라인 듯 발끈하여 반박하는가 하면 심지어 미국사회에서 빈번한 총기난사 같은 문제에 대한 정당한 비판도 “님이 아직 미국에 대해 잘 모르시나본데”라며 전력으로 미국을 옹호하고 나서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 겨울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성조기는 미국병의 극치라 할만하다.

이들이 성조기 집회를 연 게 지지하는 대통령의 탄핵을 막는 데까지 미국의 힘을 빌려보려는 뼛속 깊은 사대근성의 결과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리퍼트 미 대사 피습 사건 당시 개고기와 미역을 갖다 주며 부채춤에 굿판을 벌이는 석고대죄 행사를 하는가 하면, 버지니아 총기난사 범인이 한국계라는 이유로 미 대사관 앞에 무릎을 꿇고 한국인에 편견을 갖지 말아달라고 사과 집회와 자성의 금식 시위까지 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는다.

최근 사드 찬성 집회에 성조기가 재등장하자 “미국이 그리 좋으면 사드 들고 미국 가서 살든가”라는 말이 나왔는데, 적절한 촌평으로 보인다.

 

‘미니슈퍼’를 아시나요?

한때 가게 이름 뒤에 ‘미니슈퍼’라고 붙이곤 했다. 슈퍼마켓에서 마켓은 사라지고 규모가 작다는 것을 표현한다는 것이 그만 국적 없는 말 ‘미니슈퍼’라는 신조어로 탄생한 것이다. 지금도 가게 다녀온다는 걸, “요 앞 슈퍼에 다녀올게”라고 흔히 표현한다.

왜 이런 말이 생겨 났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실력 탓일까?

한국의 영어 열풍은 ‘영어 잘하기 범국민운동’이라도 벌이는 기세다. 3~4세 아이들을 영어로만 말하게 하는 어린이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극성스런 부모가 아니라도 거의 본능적으로 자녀의 영어공부에 열을 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를 잘해야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대학에선 중국철학 마저 영어로 수업하고, 영어실력이 부족하면 승진은 꿈도 꿀 수 없는 세상이니 오죽하겠는가.

영어 교육에 대한 과도한 집착, 이 또한 사대주의의 발로로 보인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에게 올리는 중요한 결재서류는 영문으로 작성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영어를 미 본토 발음으로 구사하면 양아치도 학자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까지 생긴다.

일제 강점기에는 창시개명을 하고, 학교에서 조선말을 사용하다 들키면 몰매를 맞던 시절이 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어를 강요하지 않아도 자진해서 우리말 보다 영어에 집착한다.

제 나라 제 민족의 힘을 믿어야 미국병을 고친다

영화 ‘암살’에서 염석진(이정재 분)은 “일본이 망할 줄 몰랐다”며 자신의 친일 행적을 변명했다.

이처럼 사대주의는 강자의 힘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공포감에 기인한다.

그러나 천하를 호령하던 청나라도 망했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도 쪼그라들었다. 승승장구하던 일본도 결국 폐망하고 말았다. 미국이라고 영원할 리 없다.

미국에 자주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가장 높던 시절은 2000년대 초반, 6.15공동선언으로 민족대단결의식이 고취된 시기다.

특히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나라로 국민의 33%가 북한을 지목한 반면 39%가 미국이라고 답했다(2004년 1월12일자 조선일보).

제 나라 제 민족의 힘을 믿게 되면 미국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든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시민의 힘을 믿고,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민족의 염원을 받아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당당히 나서주길 기대해 본다.

[기획연재] 한미관계 이대로 좋은가?

(1) 5.18광주 학살과 5.16쿠데타의 공통점 – 미국의 국내정치 개입

(2) 맥아더 포고령, ‘일장기 대신 성조기’ – 분단과 청산하지 못한 친일

(3) 정전협정문에 대통령 이승만은 왜 이름 빠졌나? – 군작전지휘권

(4) 사드, 문재인 대통령 뜻대로 안되는 이유? – 한미상호방위조약

(5) 미군, 아직 한반도에서 전쟁 중 – 한미합동군사훈련

(6) 두 여중생의 죽음, 15년이 지난 오늘 미군은? – 주한미군 범죄와 SOFA

(7) 미국이 좋은 걸까? 무서운 걸까? – 숭미 사대주의

(8) 우리는 IMF를 잊지 않았다 – 대미의존 경제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관련기사icon두 여중생의 죽음, 15년이 지난 오늘 미군은?icon미군, 아직 한반도에서 전쟁 중icon사드, 문재인 대통령 뜻대로 안되는 이유?icon정전협정, 대통령 이승만의 이름은 왜 빠졌나?icon맥아더 포고령, ‘일장기 대신 성조기’icon5.18광주 학살과 5.16쿠데타의 공통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민의당의 '5월 5일' "시체는 하나인데 모두 자기가 범인이라고..."

 

폭로 이틀 전 조작 자료 유입...무분별한 네거티브 공세 "안철수, 사과해야"

17.06.27 20:44l최종 업데이트 17.06.27 20:44l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연이어 출마하며 사실상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쳤다. 아들 문준용씨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 채용 의혹 역시 한 차례 불거졌던 사안으로 선거 초반에는 큰 이슈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앞섰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지난 대선 기간 내내 '문준용'에 매달렸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서도 의혹 제기가 있었지만, 논란을 생산하고 주도했던 것은 국민의당이었다. 

국민의당은 '검증'이라는 명분 아래 문씨와 관련한 수많은 의혹들을 쏟아냈다. 선거운동 기간 국민의당이 발표한 문씨 관련 발표는 모두 29건이다. 하루 평균 2건에 가까운 의혹 제기와 논평으로 상대 후보를 공격한 것이다. 이러한 증상은 선거 후반으로 갈수록 심해졌다. 특히 여론조사 공표 기간이 끝나고 '깜깜이 선거'로 들어간 이후에는 단순 의혹이 아니라 수위 높은 폭로전을 펼쳤다. 
 
국민의당 “문재인 아들 취업특혜 진상규명 응답하라”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 이용주, 이태규 의원과 선거운동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앞에서 문재인 후보 아들 특혜 취업 규탄 집중 유세를 펼치며 “문 후보 아들 문준용씨가 고용정보원에 근무하지 않으면서 매월 월급을 받아갔다”며 문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 이용주, 이태규 의원과 선거운동원들이 지난 4월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앞에서 문재인 후보 아들 특혜 취업 규탄 집중 유세를 펼치며 "문 후보 아들 문준용씨가 고용정보원에 근무하지 않으면서 매월 월급을 받아갔다"며 문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문씨와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함께 다녔다는 인물의 폭로가 나온 것도 이때다. 지난 5월 5일 김인원 국민의당 공명선거추진단 부단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후보 아들 준용씨가 한국고용정보원 채용 과정에 대해 '아빠(문 후보)가 얘기를 해서 어디에 이력서만 내면 된다고 얘기를 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며 증언한 사람을 "준용씨와 함께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 대학원을 다녔던 한 동료"라고 밝혔다.
 
단순히 '문씨의 채용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라는 의혹 차원을 넘어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문씨 채용에 직접 개입했다는 폭로였다. 김 부단장은 또 "아버지(문 후보)가 대통령까지 하려면 좀 치밀하게 했어야 하는데, 너무 허술했다. 파슨스 있을 때도 지 아버지(문 후보에 대해) 별 얘길 다 하고 다녔다", "돈 물 쓰 듯했다"는 내용의 증언도 가감 없이 공개했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폭로는 모두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의당은 당원 이유미씨가 조작된 자료를 이준서 전 최고위원에게 전달해 폭로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작된 자료가 어떻게 당의 검증 체제를 통과해 누구의 책임 아래 폭로된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이씨가 안철수 전 대표의 카이스트 제자이고, 2012년 대선도 도왔다는 점에서 안 전 대표의 책임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오마이뉴스>는 5월 5일 전후로 국민의당을 취재했던 내용과 조작 사실이 밝혀진 후 현재까지의 취재내용을 바탕으로 이번 사건이 진행됐던 과정을 되짚어봤다. 

[5월 2일] 조작된 자료의 출발점

김인원 부단장은 지난 5월 5일 해당 자료를 공개하면서 제보자가 5월 2일 마지막 대선후보 TV토론회를 보고 인터뷰에 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토론회에서 문씨와 관련한 내용이 거론되지는 않았다. 다만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의 분열을 놓고 책임 공방을 벌였다. 안 후보는 "계파 패권 때문에 탈당했다"고 주장했고, 문 후보는 "민주당 쪼갠 건 안 후보"라고 맞섰다. 

그 날은 마지막 TV토론이 있는 날이자 투표일 전까지 공표가 가능한 마지막 여론조사가 실시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각 당은 지지율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네거티브 공세에 열을 올렸다. 국민의당은 이날도 '문재인 후보는 친인척 권력 비리 의혹에 대해 떳떳하다면 당장 국민의당을 고발하기 바란다'라는 제목으로 김철근 대변인의 논평을 내놓았다. 국민의당은 문씨뿐 아니라 문 후보의 처조카의 특혜 채용 의혹까지 제기한 상태였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당시 연이은 토론회 실패로 당의 사기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라며 "마지막 토론회에서도 이렇다 할 반전 지점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여론조사를 앞두고 홍준표 후보와 실버크로스가 거론되고 있어서 초조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5월 3일] 조작 자료가 당으로 들어오다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씨의 취업 특혜 증거 조작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이준서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왼쪽)과 이유미씨.
▲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씨의 취업 특혜 증거 조작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이준서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왼쪽)과 이유미씨.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해당 자료가 당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폭로 이틀 전인 5월 3일이다. 복수의 당 관계자들은 당원 이씨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난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때 국민의당은 이용주 의원이 단장을 맡은 공명선거추진단 이외에도 다양한 통로를 통해 문씨와 관련한 제보를 받고 있었다. 일부 관계자들은 독자적으로 문씨 의혹을 파헤치기도 했다. 

한 당직자는 당시 상황을 놓고 "시체는 하나인데 서로 자기가 죽였다고 말하는 꼴이었다"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내부에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자기가 문씨의 취업 특혜 의혹을 증명할 수 있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경쟁했다는 얘기다. 선거가 치열해질수록 공적을 세우려는 사람들에 의해 허위 정보가 넘쳐나는 시기였다. 해당 자료는 공명선거추진단으로 입수돼 다른 당 관계자들에게 전파된 것으로 확인됐다. 

마찬가지로 조작된 것으로 드러난 음성녹음도 이날 당으로 전달됐다. 당원 이씨는 친척동생과 모의해 해당 음성을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호 공명선거추진단 수석부단장은 5월 5일 브리핑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보자와 인터뷰는) 5월 3일에 했고, (제보자는)한국에 있다"라며 문준용씨가 그 당시엔 아버지가 정치할 생각이 전혀 거의 없었고, 현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날 마지막으로 발표된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는 2위와 10%p 이상의 차이로 1위를 독주했다. 안 후보는 20% 내외 지지율로 홍 후보와 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국민의당은 이날도 서울대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가지고 "문준용씨의 의혹이 사실이라는 고용정보원 전 간부 아들의 증언을 확보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간부는 언론 인터뷰에서 "권재철 전 원장에게 (문씨 채용에 대한) 압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라고 밝혔다. 

[5월 4일] 이용주 단장의 사과, 주춤하는 네거티브 공세
 
 국민의당 이용주 공명선거추진단 단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권재철 초대 한국고용정보원장 재임 시절 특혜채용 의혹 10여건이 발견됐다고 밝히고 있다.
▲  지난 4월 24일, 국민의당 이용주 공명선거추진단 단장이 권재철 초대 한국고용정보원장 재임 시절 특혜채용 의혹 10여건이 발견됐다고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용주 의원은 국민의당 공명선거추진단장으로 선거기간 내내 문씨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주도했다. 그는 4월 24일 "권재철 초대 한국고용정보원장 재임 시절인 2006년 3월~2008년 7월까지, 문준용씨를 비롯해 영부인 친척 등 고위공직자 자녀와 부인 등이 고용정보원에 채용됐다"라며 9명 명단을 공개했다. 이 의원이 언급한 '영부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아름다운봉하' 이사장을 지칭한 것이었다. 

그러나 5월 4일 이 의원은 "'권양숙 여사와 (특혜취업 의혹을 제기한)권 모 과장'의 친척 관계가 있는지에 대하여 추가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애초에 저희가 파악한 것과 일부 다른 사실이 확인되어 이를 정정하고자 한다"라며 사과했다. 그는 "향후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으면 응분의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 권양숙 여사께는 이후 직접 찾아뵙고 다시 정중히 사과를 드리겠다"라고 말했다.

각 당이 치열하게 네거티브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국민의당의 '주포'가 고장이 난 것이다. 이날은 사전투표 일이기도 했다. 투표소로 유권자들이 향하는 가운데 이 의원의 사과는 국민의당에 악재 중 악재였다. 이 의원이 "사과한다"라면서도 "권양숙 여사의 친척이 아니라고 확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의혹 자체를 완전히 부인하지 않은 것 역시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한 발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첫날 사전투표율은 11.7%로 전국에서 500만 명에 가까운 유권자들이 투표소를 찾았다. 전날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에게 크게 뒤처지며 홍 후보에게 추격당하는 것으로 나온 안 후보 측은 높은 사전투표율에 더욱 불안감에 휩싸였다. 당시 <오마이뉴스>와 만났던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 의원이) 사과를 할 거면 일찍 해야지 왜 지금 하는 건지 모르겠다"라며 "지금은 아주 작은 것 하나도 예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5월 5일] 조작된 자료 폭로, "100% 신뢰" 자신했던 국민의당
 
박지원 "문재인 아들 고용정보원 근무하지 않으면서 월급 받아갔다" 국민의당 박지원 상임공동선대위워장과 소속 의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아들 문준용씨가 고용정보원에 근무하지 않으면서 매월 월급을 받아갔다”며 “이것은 국민 세금을 도둑질 한 것이다. 등교하지도 않고 학점을 받은 최순실 딸 정유라 사건과 똑같다”고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박지원 "문재인 아들 고용정보원 근무하지 않으면서 월급 받아갔다" 국민의당 박지원 상임공동선대위워장과 소속 의원들이 지난 4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아들 문준용씨가 고용정보원에 근무하지 않으면서 매월 월급을 받아갔다"며 "이것은 국민 세금을 도둑질 한 것이다. 등교하지도 않고 학점을 받은 최순실 딸 정유라 사건과 똑같다"고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5월 5일 오전 11시, 김인원 부단장이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문준용씨의 고용정보원 원서 제출은 문재인 후보가 시켜서 한 일"이라며 "문준용씨의 미국 파슨스 대학원 동료는 문씨가 "아빠가 얘기를 해서 어디에 이력서만 내면 된다"라는 얘기를 했다고 증언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카오톡 화면을 갈무리한 사진과 변조된 음성을 공개했다. 

그동안 국민의당은 줄기차게 의혹 제기를 하면서도 구체적인 물증을 내놓지 못했다. 대부분이 "어떠했더라"는 식의 정황 증거를 내놓고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의혹을 키워왔다. 그런 가운데 문씨의 학교 동료가 아주 구체적으로 문 후보가 문씨 채용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증언했다는 것은 이전까지와는 비교되지 않는 수준의 폭로였다. 당연히 기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기자들은 김 부단장과 김성호 수석부단장을 둘러쌌다. 

이 자리에서 김 수석부단장은 "증언자를 100%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문준용 이야기뿐 아니라 (참여정부) 시민사회수석의 딸에 대해서도 문준용씨가 '나와 같이 특혜 입사를 해서 꿀 보직을 받았다'라고 직접 얘기를 했다. 이 부분을 확인했다"라며 "우리가 당시 시민사회수석의 딸이 그 당시 은행에 입사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 증언의 신뢰도를 저희는 100%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자 여러분 중 한 명을 딱 지정해서 만약에 이메일로 인터뷰를 요청하면 자기가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메일 주소를 본인으로부터 가져왔다"라며 해당 제보자와 이메일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오마이뉴스>도 당시 제보자와 이메일 인터뷰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며칠 후 국민의당은 제보자의 사정으로 인터뷰가 어렵게 됐다고 알려왔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국민의당의 폭로 내용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측이 해당 의혹을 폭로한 이용주 의원, 김인원 부단장, 김성호 수석부단장 등을 고발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전하면서 관련한 내용을 언급하는 수준으로만 보도를 했다. 폭로 내용이 구체적인 반면 제보자와 제보를 접수한 사람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가능하다고 했던 인터뷰까지 무산되면서 제보를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오마이뉴스> 기자는 국민의당으로부터 '왜 기사를 쓰지 않냐'라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제보자는 보호할 수 있지만, 당에서 제보자와 통화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도는 밝혀야 제보 내용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 김성호 수석부단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보자와 통화는) 국민의당에서 했다"라고 말했을 뿐 제보가 입수되고 검증된 과정을 더 공개하지 않았다. 

"제보 너무 완벽해 의심, 그래도 나갔으면..."
 
박주선 "문준용 취업 특혜 의혹 제보 조작 확인" 대국민 사과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대선 기간 국민의당이 발표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의 고용정보원 취업 특혜 의혹과 관련 제보가 조작된 것이 확인됐다며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박주선 "문준용 취업 특혜 의혹 제보 조작 확인" 대국민 사과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대선 기간 국민의당이 발표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의 고용정보원 취업 특혜 의혹과 관련 제보가 조작된 것이 확인됐다며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조작된 자료가 폭로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김성호 수석부단장과 김인원 부단장인 것으로 보인다. 이용주 의원의 경우 전날 '영부인 친인척 특혜채용' 의혹 제기에 사과하면서 다시 네거티브 전면에 나서지 않는 모습이었다. 김 부단장은 27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나와 김성호 수석부단장이 검증하고 (기자회견)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의원에게도 최종적인 검증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을 놓고 국민의당 내부가 받은 충격도 상당하다. 한 보좌관은 "당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윤미, 이준서 두 사람이 저지른 일이라고 수사 결과가 나와도 어떤 국민이 믿어주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설령 두 사람이 꾸민 일이라고 해도, 그걸 입으로 말한 건 김인원 부단장이었고, 고위 당직자들이었다"라며 "치명타가 아니라 이미 사형선고가 내려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안철수 전 대표의 책임도 거론된다. 안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라며 "안 전 대표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이유미씨가 측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안 전 대표가 당의 대선 후보라는 점에서 모든 책임을 다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안 전 대표가 조작된 자료를 미리 알았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자기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에서 사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이번 사건을 놓고 "국민의당의 민낯이 제대로 드러난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거 때 많은 사람이 미친다"라며 "공명선거추진단뿐 아니라, 공보단, 대변인실 모두 그랬다. 제보 내용이 너무 완벽해 의심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모두가 (언론에)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거 전략을 쥐고 당을 이끌 리더십이 전혀 없었던 게 이런 참상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딴지 필진의, 아니, 은수미의 청와대행을 격렬하게 환영한다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딴지일보 편집장 김창규(필명 죽지않는 돌고래, 약칭 죽돌)의 인터뷰집을 샀다. 지승호 선배와는 또 다른 맛의 인터뷰를 긁어내는 재능을 가진 걸 일찌기 아는 바 눈에 띈 김에 냉큼 카드를 긁었다. 그런데 그 책에 없는 인터뷰 하나가 가물가물 떠올라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인터뷰 대상 이름은 기억나지 않으나 무척 호감과 공감이 갔던 인터뷰였기에. 

 

 
 
3863397.JPG 
 
 

딴지일보 검색을 해서 김창규 인터뷰를 뒤지다보니 내 기억이 잘못되었음을 곧 알게 됐다. 인터뷰어조차 달랐다. 죽지않는 돌고래가 아니라 딴지일보 정치부장물뚝심송이었다. 당연히 인터뷰이도 알게 됐다. 은수미 의원이었다. 다시 읽어 보니 예전에 보았을 때의 느낌이 새록새록 죽순이 되어 돋는다. 서는 곳에 따라 풍경이 바뀌는 법이고 지나온 길에 따라 상대방 코스를 판단하는 이치라 내가 느낀 호감과 공감 목록을 줄줄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응답하라 1988보다 한 단계 위 세대, '말죽거리 잔혹사' 세대에 해당하는 그녀의 인생 역정은 기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이다. 위장 민증 가지고 공장에 들어가고 거기서 별의 별 일을 겪고 감옥에 가고 세상 바닥을 쓸고 하는 운동권 후일담이야 거실 책꽂이 한 켠에 수북하다. 


비록 현장 투신 한 번도 못한 처지로 시덥잖은 부채의식은 있겠지만, 유별나게 감응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선이 갔던 것은 그녀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지나치기 쉽고 까먹기 좋은 '가늘고 보잘것없는' 기억들 말이다. 

 
은수미 의원에 따르면 감옥에선 평생 커피를 안먹던 사람도 커피를 먹고 싶어하게 된다고 한다. 즉, '자유'의 문제는 기호마저 바꾼다는 것이겠다. 사회에선 거들떠보지도 않는 초코파이에 이등병들이 환장을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보통 인터뷰들은 여기에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데 은수미 의원은 기억 한 자락을 더 뽑는다. 

 

 

 

"어떤 오십대 아주머니 한 분이 평생 노래 한 번 안 해본 분인데 커피가 그렇게 마시고 싶다고 하시는 거에요. 그러다가 이십대 교도관이 어머니뻘 되는 이 아주머니에게 자기 앞에서 노래를 세 곡을 하면 커피를 한 잔 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교도관도 장난이었죠. 그냥 노래 세곡 하면 커피를 준다고 한 것뿐인데, 이 아주머니가 진짜 똑바로 서서 노래를 하시더라구요. 천주교 신자였는지 성가를 두 곡 정도 하시고 나서 동요를 부르시더군요. 나비야, 나비야 하는 노래를 하는 겁니다.

 

옆에서 보는 제가 정말로 눈물이 나더라구요. 교도관도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다가 이게 너무 진지해지니까 놀란 거에요. 착한 교도관이었어요." 

 


이 대목에서 가슴이 찡해진 것은 은수미 의원의 시선이었다, 고종석 기자 표현대로 "나라의 깃털 하나도 못건드릴 거면서 말의 인플레만 심했던" 사노맹 투사로서, 그것도 "격앙하기 쉬웠던" 20대로서 사실 이 장면에서는 '교도관에 대한 분노'가 앞서기 쉬웠을 것이다. 이 개새끼가 커피 하나 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현장에 있었다면 괜시리 정의감에 불타올랐을지도 모른다. 50대 아주머니에게 "노래 세 곡 부르면 커피 한 잔 주지." 하는 20대 교도관이라니. 이런 싸가지! 너는 에미도 없냐. 이른바 '진보'라는 사람들이 참 쉽게 빠지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는 정의로움의 함정(내가 진보라는 말은 아님).


하지만 은수미 의원은 거기서 장난이었지만 너무 진지해지니까 놀라버리는 착한 교도관을 발견한다. 이해가 간다. 사실 별 악의도 없이 조롱의 의사도 없이 이미 줄 생각하고 있으면서 "노래 하나 하면 줄게요!" 는 일상에서도 많이 보는 장치지 않은가. 단, 20대 교도관의 경우 그 커피가 얼마나 절실한지, 평생 커피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왜 커피에 환장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겠지. 


교도관은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이다. 노래를 그만하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떠나 버릴 수도 없고. 나비야 나비야 나올 때 와와 박수 치면서 커피 건네고 끝내고 싶은데 그 타이밍도 잘 모르겠고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본 듯이 말하냐 하면 그게 착한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인간적인 미안함'이 부르는 결정 장애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은수미 의원은 그걸 본 것이리라. 결국 부처 눈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엔 돼지가 보이는 법이라는 사실은 무학 대사 이래의 진리다. 

 

 

3863920.JPG 

 


이외에도 인터뷰는 별 신경 세우지 않고도 물 먹듯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늦깎이 대학생으로 열 몇 살 차이나는 대학생들과 어울려 공부할 때 김수행 교수가 강의실에서 그녀에게 내린 평가는 가슴 뭉클하다. "지금 나한테 답안지를 받아간 은수미라는 사람을 아는가? 자네들 선배였고, 아주 극렬한 운동권이었다가 감옥 갔다가 돌아왔다. 그런데 이 친구는 돌아와서 어떻게 이렇게 공부를 하는지, 정말 죽어라 공부를 했는지, 이번에 최고점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젊은 피'로 정계에 들어가기 시작한 386에 대한 원천적 불신이, 적어도 내게는 있다. 특히 '의장님'이나 '총장님' 출신들이라면 두 페이지 접어서 본다. 실력은 없고 이름만 높은, 샥스핀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를 줄은 알았는데 20년 동안 해 놓은 것이라곤 좀 의관정제하고 다초점 누진렌즈 구비해야 몇 줄 보일까 말까 한 사람들. 하지만 김수행 교수의 평가(강의실에서 한 것이니 증인도 많으리라) 는 최소한 이 은수미라는 386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든다. 적어도 의장 놀이하면서 가마 타고 등장해서 그 이름값으로 한세상 호령한 이들과는 좀 결이 다르지 않을까.

 

 

19417509_730930153761769_2628489608068638336_o.jpg 

 

 

 

 

 

 

 

 

은수미.jpg

(위 이미지는 당시 은수미 의원의 첫 연재물 마빡입니다)

 

한번에 보는 은수미칼럼(클릭)

 

 

 

 

 

 

산하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15남측위 "한반도 평화대화 물꼬 터야"

<추가>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이창복, '북핵 정책 전환' 촉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7.06.27  13:19:34
페이스북 트위터

 

   
▲ 6.15남측위원회는 27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대통령에게 다시 권고합니다. 동맹은 변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핵문제에 매달려서는 문제의 진전이 한 보도 나갈 수 없습니다. 사드 문제는 철수되어야 합니다.”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촛불의 힘으로 혁신하는 가운데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의 목소리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미국에 전달해줘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주문했다.

6.15남측위원회는 27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이 땅에서 전쟁을 막고, 한반도 평화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이 여는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창복 의장은 여는말을 통해 “핵은 북에 있어서는 상당히 중요한 생존의 문제일 것이다. 우리는 북을 설득하고 대화와 평화의 입장에서 함께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핵 제재는 실패했다. 이제 바뀌지 않으면 우리의 평화는 멀리 갈 수 밖에 없다”고 ‘선 핵폐기’ 정책의 전환을 촉구했다.

6.15여성본부 상임대표인 권오희 수녀는 이 땅에서 전쟁의 무기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더 이상의 사드배치를 원하지 않고 더 큰 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의 민간인들이 교류를 하려면 남북의 정상이 만나야만 확실하다”면서 “남북의 정상이 만날 수 있는 길, 그 길을 저희들은 간곡히 원하며 요구한다”고 밝혔다.

김영호 6.15농민본부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참에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존심을 세워”달라며 “자신있게 남과 북이 함께 평화를 나눌 수 있는 당당한 목소리를 전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인 김삼열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김삼열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가 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한반도 핵문제는 북미간 적대관계를 비롯한 냉전체제로부터 기인한 것이므로, 쌍방의 안보우려를 동시에 해결하는 평화협상을 시작하여 한반도 평화의 디딤돌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최근 중국은 물론 미국 외교협회 등 각계에서 제안한 군사적 행동의 동시 중단, 즉 <핵-미사일 실험 동결>과 <한미연합군사훈련 및 전략자산 전개 중단>을 첫걸음으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 즉각적으로 군사적 행동을 중단하고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핵문제 해결과는 독자적인 영역에서 남북대화 재개, 남북공동선언 이행에 대한 의지를 확고하게 견지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이 땅 국민들의 염원과 절박함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에게 “6.15, 10.4선언의 정신을 철저히 견지하며 한미 정상회담에 임할 것을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6.15민족공동행사를 성사시키지 못한 6.15남측위원회는 8.15민족공동행사의 서울 개최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 북측의 반응을 지켜본 뒤 입장과 일정을 구체화 할 예정이다.
 

“희망도 섞으면서 경고도 하는”
<미니 인터뷰> 손미희 6.15남측위원회 신임 대변인
   
▲ 손미희 6.15남측위원회 대변인(왼쪽)이 27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창복 상임대표의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오늘 긴급하게 기자회견을 열게 된 배경은?

■ 손미희 대변인 : 6.15남측위원회는 6.15공동행사 성사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가 안 된 과정에 여러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한.미 정상회담이 놓여있는 거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도 있지만 우려도 많고, 그래서 각계각층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관계 문제, 평화 문제, 통일 문제로 가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니까 우리 목소리를 내고자 한 것이다.

오히려 이른바 ‘촛불 정권’, 국민을 등에 든든한 백으로 둔 정권이니까 우리의 목소리를 가지고 가라는 것이다. 좀 희망도 섞으면서 경고도 하는. 그래서 일각에서는 청와대로 우리 목소리를 들고 가서 전달해야 한다고 했지만 6.15남측위원회의 위상을 고려해 이곳에서 하게 된 것이다.

□ 오늘 여러 제언 중에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뭔가?

■ 오늘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지역들까지 기자회견문을 회람해 마지막 결론으로 ‘전쟁을 막고 한반도 평화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존중의 장이 되어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내용적으로는 사실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도 가서 국민을 등에 업고 할말 다 하고 와라. ‘전쟁은 안 된다’, ‘대화하라’는 것이다.

기자회견문 회람할 때 구체적인 군사훈련 문제 등 이러저러한 강한 내용들도 많았다. 그러나 6.15남측위원회는 중간적 입장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하면 되는데 무슨 방향을 제시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결국 구체성은 각 개별단체들이 입장을 낼 때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이렇게 되면서 정말 두리뭉실한 기자회견문이 됐다.

□ 한.미 정상회담 이후 6.15남측위원회의 북측과의 교류 계획은?

■ 6.15남측위원회에서 따로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 각급회의를 다 잡아놨다.

내부적으로 남쪽의 8.15행사를 일단 충실하게 준비하자. 지금 그 논의를 하고 있다. 남과 북이 함께하는 것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 기류를 보고 각급회의를 통해 토론하자는 것이다

원래는 지난 2월 심양회의에서 6.15공동행사 치르고 7월 정도에 6.15공동위원장회의를 갖자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에 따라 공동위원장회의가 열릴 것이고, 그게 없으면 실제 8.15공동행사도 어려울 수 있다.

□ 6.15남측위원회 대변인을 맡게 된 계기는?

■ 6.15여성본부 공동대표 임기를 마치고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고 했는데, 이창복 의장님이 실무급은 맞지 않다면서 “나를 도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면서 대변인을 제안했다.

글쓰는 것도 말하는 것도 안 돼 어렵다고 했지만 대변인실을 꾸리고 해보자고 해서 자꾸 이유를 대기가 뭐해서 부족하지만 시작해 보기로 했다.

올해 초부터 이야기가 되다 5월 31일 상임대표자회의 때부터 엉겁결에 시작하게 된 거다.

□ 6.15공동행사가 무산된 과정에서 6.15남측위원회가 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외부로 드러냈는데.

■ 대변인을 맡자마자 너무 정신이 없었다. 6.15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는 내부 돌아가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대표를 맡으면서 결정에만 참여해왔다. 대변인 업무도 서툴러 전화받고, 설명하는 것도 익숙지 않았다.

6.15남측위원회 내부적으로도 행사장소를 일단 개성으로 북측에 제안했다가 다시 평양으로 제안했고, 공동행사 무산 기자회견도 내부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연기하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어쨌든 앞으로는 대변인실을 통해서만 6.15남측위원회의 입장을 발표하기로 회의를 통해 공식 결정했다.


(추가2, 17:2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미정상회담 쟁점 : 누가 대북정책 주도권 확보하나

 

문 대통령, 북한과의 대화국면 주도할 수 있을까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17-06-27 07:28:51
수정 2017-06-27 07:32:43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전직 주미대사 초청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홍구, 문 대통령, 한덕수, 홍석현.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전직 주미대사 초청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홍구, 문 대통령, 한덕수, 홍석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한미정상회담에서 남북 간 대치 국면을 안정시키고 북한과의 대화 국면을 조성하는데 한국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돌아올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에서 사실상 자유롭기 힘든 한국이 미국의 동의를 얻어 대북정책에서 주도성을 보일 수 있다면, 이는 북한의 '핵 포기'라는 한미 양국의 공동목표로 나아갈 수 있는 중대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북한과 대화 반드시 필요"
'핵 동결'→'핵 폐기' 2단계 접근법 한미 공감대 강조

문 대통령은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주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밝히면서 한국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을 뒀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자신의 대북정책 구상이 서로 다르지 않다며 불필요한 논란을 적극 해소하려고 한 모습에서 그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미국 CBS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서는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국제 사회가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서 해왔던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전에 북한과 대화한다는 구상은 오랫동안 지속돼온 미국의 정책과 근본적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그와 같은 과거 정부의 실패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고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저도 그에 대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똑같은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 폐기'라는 양국의 공동 목표가 달성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최고의 외교적 성과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높였다.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하는 것은 북한에 굴복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대화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할 필요가 없다"며 "저는 아무런 전제 조건 없는 그런 대화를 말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6.15 남북공동성명 17주년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문재인 대통령(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민중의소리/뉴시스


이러한 입장은 문 대통령이 제시하고 있는 '2단계 접근법'으로도 나타난다. 2단계 접근법은 '핵 동결'과 '핵 폐기'로 단계를 구분해 북핵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말한다. 대북압박과 제재로만 이어진 지난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과 달리 북한과 대화에 임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춘 방안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우선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동결시키고, 2단계로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를 이뤄야 한다는 단계적인 접근 방법의 필요성은 미국 내에서도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며 이 역시 현재 미국의 대북정책 노선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북한과의 대화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미국을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연일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웜비엄 사망 사건과 관련해 유가족에게 조전을 보내는 등의 행보도 미국 여론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문 대통령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북핵 해법까지는 아니더라도 트럼프 대통령과 큰 틀에서 단계적인 접근법에 합의할 경우 향후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문 대통령의 경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북한과의 대화에 미국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점도 가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대해 규탄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인도적 차원의 민간 교류에 힘을 싣고 있는 것도 향후 국면에서 미국보다 더 넓은 보폭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다.

문재인 대통령, 한미정상회담 준비에 '매진'
사드 배치 문제 등 쟁점도 산적

그런 만큼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물밑에서 한미정상회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출국을 이틀 앞둔 26일 전직 주미 한국대사들과의 초청 간담회에서 "성과 도출에 연연해 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우애와 신뢰를 쌓을 예정"이라며 담담하게 말했지만, 한미정상회담은 외교력의 첫 시험대라는 성격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부담은 실제 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문 대통령은 최근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와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을 주도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외교 자문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26일 이홍구 전 주미대사 등 7명의 전직 주미대사를 청와대로 초청해 대화를 나눈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한미군의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라는 이슈도 겹쳐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사드 배치 문제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아니라며 겉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한미 양국의 핵심 쟁점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이 미군이 애초 한미 양국 간의 합의 사항과 다르게 서둘러 사드를 배치했다며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터라,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당초 한미 합의에는 올해 말까지 사드 발사대 1기를 배치하고 나머지 5기는 내년에 배치하기로 돼 있는데, 벌써 사드 발사대 2기가 대선 전에 기습 배치된 것도 모자라 4기가 추가로 몰라 배치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한미 합의 내용 일부를 공개하며 "어떤 연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 모든 절차들이 앞당겨졌다"고 지적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청와대 차원의 조사까지 지시했지만, 아직까지 진상을 밝혀내지 못한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오는 28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30일 백악관에서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연 뒤 그 결과를 직접 언론에 발표할 예정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명균 통일부장관 후보자의 안일한 청문회 답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6/27 10:35
  • 수정일
    2017/06/27 10:3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조명균 통일부장관 후보자의 안일한 청문회 답변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6/27 [07:0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조명균 통일부장관 후보자     ©통일부 제공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같은 날 국회 외교통일위 박주선(국민의당) 의원 등에게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에서 "북핵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 정착,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남북 정상회담 등 다양한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혀 정상회담 추진 의사도 밝혔지만 북핵문제가 완전히 해결 되는 단계에 가서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과연 남북관계를 미국 눈치 보지 않고 주도적으로 발전시켜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였다.

 

특히 북과 대화를 위해 한미군사훈련 중단 등도 고려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유관국과 협의를 해야할 일이라며 미국과 협의를 통해 대북문제를 풀어갈 것임을 시사하였다.

 

한반도 문제를 자주적 관점이 아니라 미국과 상의해서 풀어가겠다는 입장이어서 과연 남북정상회담 등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시작단계였기 때문에 이런 관점으로도 남북대화가 추진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북은 이미 수소탄까지 시험한 상황이고 이제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만 남겨두고 있다. 핵폐기는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고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북은 안보리상임이사국 중에서도 미, 중, 러만 보유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수소핵탄두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국으로 완전히 올라서게 된다. 그 개발이 끝나 버리면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미 사이에 전쟁이 나네 마네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것은 명약관화다.

 

이런 상황에서 북이 핵폐기를 해야만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통일부장관직을 수행한다면 무슨 성과를 남길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과 상의해서 추진하다가는 아무 것도 못한다.

시간도 없다.

북은 2개월 안에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단행할 것이란 제도권의 양욱 국방전문가의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조율하다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최근 북이 미국이 군사훈련을 중단한다면 핵과 미사일 시험을 동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는 사실상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앞두고 던진 최후 통첩이 아닐 수 없다.

 

북이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는 걸 기다리기 전에 그것을 중단할 수 있게 남측이 적극적으로 북을 만나 북의 의도를 파악하여 순리와 합리성을 따져보고 이를 가지고 미국과 조율을 해서 미국과 대북정책을 이끌어내야지 주도적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미국의 대북정책은 이미 실패했다. 현재 미국은 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지금까지 실패만 거듭해왔으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런 미국에게 계속 협상을 맡겨놓는다면 즉, 한반도의 운명을 통째로 내맡긴다면 결국 북은 완전한 핵보유국으로 가게 되고 북미사이에 전쟁 극단적 전쟁위기가 조성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자주적 권리를 가진 정부라면 자신의 결심으로 북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실현가능성이 있는 합리적 해법을 찾아 주도적으로 구현해가야 한다. 미국도 결국엔 이런 한국의 노력을 고마워하게 될 것이다.

 

▲ 북에서 유괴되어 집단납치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중국 주재 북 류경식당 여 종업원 12명의 여성들     ©자주시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김련희 씨와 여종업원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 벌써 두 달이 훨씬 넘었는데도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것을 보면 과연 남북관계를 풀어갈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 통일부 관계자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와 완전히 달라진 정세를 바로 보고 현실에 맞는 정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상황은 훨씬 엄중해졌다. 김대중 대통령도 용기있는 결단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지금은 더욱 과감하고 용기있는 결단이 요구되는 시기가 아닐 수 없다.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백범 김구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

선생이 묻힌 효창공원이 국립묘지로 성역화 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정운현 | 2017-06-26 15:10:3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백범 김구 선생의 이력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백범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적이 한번 있다. 한민당 수석총무 설산 장덕수(張德秀) 암살사건과 관련해서였다. 고하 송진우, 몽양 여운형에 이어 설산 장덕수가 1947년 12월 7일 서울 제기동 자택에서 암살되었다. 당시 설산은 미소공동위원회 참가 문제를 두고 백범과 갈등을 빚고 있었으며, 한민당과 한독당의 통합에도 앞장서서 반대하던 인물이었다. 이 때문에 백범이 암살 배후인물로 오해를 사게 됐다.

5차 공판이 열린 4월 8일, 미군정 군사법정은 백범 앞으로 12일 오전 9시 증인으로 출정하라는 소환장을 보냈다. 백범에게 소환장을 보낸 사람은 재판장이 아니라 미합중국 대통령 트루먼이었다. 일개 살인사건에 증인 소환 요청을 하면서 미국 대통령 명의로 소환장을 발부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증인 출석을 하루 앞둔 4월 11일 백범은 자신이 이 사건과 무관함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금번 군율(軍律)재판소에 출정함은 나를 미국대통령 트루만 씨의 명의로 불렀으므로 국제 예의를 존중하고자 함이지 내가 증인이 될 만한 사실이나 자료를 가진 까닭은 아니다. 내가 장 씨 사건에 관련이 있는 것처럼 발표된 데 대해서는 나에게는 아무 책임도 없다. 그것은 담화를 발표한 그 부문의 모략이며, 따라서 그 부문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설산 장덕수 암살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백범 김구 선생

8차 공판이 열린 3월 12일, 백범이 증인으로 출석하였다. 9시 45분 미군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백범이 입정했다. 검은 두루마기 차림에 검은 구두, 굵은 검은 테 안경에 자주색 토시를 끼고 검은 색 중절모를 손에 든 백범이 법정 한 복판에 놓인 증인석으로 가 조용히 앉았다. 통역은 김용식(金溶植·전 외무장관). 곧이어 검사의 인정신문이 시작되자 검사가 그에게 물었다.
“직업은 무엇이오?”
그러자 백범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
당시 법정에서 취재를 하고 있던 조선통신사 사회부 기자 조덕송(趙德松·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이 장면을 두고 자신의 회고록에서 “나는 순간 가슴이 뻑뻑해지도록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감격에 자기를 주체하지 못했다. 정말 명답이 아닌가! 나는 눈시울까지 뜨거워짐을 의식했다.”고 썼다. (필자는 반민특위 관련 증언 청취 차 조덕송 선생을 여러 번 만났는데 조 선생은 반민특위 출입기자로도 활동했다.) 
이어 강거복 변호인과 검사의 증인신문이 시작됐다. 몇 군데 발췌해보면 다음과 같다.

변호인 : 장덕수 씨를 아십니까?
증 인 : 잘 알지요.
변호인 : 언제부터 아십니까?
증 인 : 장덕수 씨가 일곱 살 때부터 아는 사이요.
변호인 : 김석황이나 신일준이나 기타 사람에게 장덕수 사건에 대해서 무슨 명령을 하신 일은 전혀 없습니까?
증 인 : 전혀 없소.

검 사 : 1947년 8월이나 혹은 9월쯤 장덕수 씨가 선생을 찾아간 일이 있습니까?
증 인 : 종종 찾아왔소.
검 사 : 무슨 목적으로 찾아왔었습니까?
증 인 : 사제 간이니까…… 혹 병문안으로 온 적도 있겠고 하니 그 목적이란 것을 명백히 지적할 기억은 없소.
검 사 : 장 씨가 찾아간 목적은 선생이 임시정부로 하여금 미소공동위원회에 참가하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이 아니었소?
증 인 : 원 답답하구려…… 임시정부는 기능이 없는데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있겠소?
검 사 : 직접 본인이 장 씨에게 불만하다고 말한 적은 있소?
증 인 : 없소.
검 사 : 작년 8월이나 9월 중에 김석황, 조상항, 손정수, 신일준 4명이 찾아왔을 때 장 씨를 없애버리라고 말한 적은 없소?
증 인 : 없소.
검 사 : 확실하오?
증 인 : 확실하오.
검 사 ; 다른 것은 기억이 없다면서 이 기억만은 확실합니까?
증 인 : 사람을 죽이라니 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니만치 확실치 않을 수 없소.
검 사 : 내가 장시간에 걸쳐서 질문하는 목적은 선생의 본심을 혹 오해해 가지고 아랫사람들이 그런 사건을 일으키지나 않았는가 싶어서 그러는 것인데 어찌 생각하오?
증 인 : 나는 동족과 조국을 사랑하오. 그러한 나로서 어느 좌석에서든지 그놈 죽일 놈이니 마니 함부로 말할 리가 없소.
검 사 : 그렇다면 선생의 제자 격인 피고인들이 진술한 것마다 왜 한결같이 선생과 관련된 내용으로 부합 일치될까요?
증 인 : 알 수 없지요. 그러니까 모략이라 생각하오.
검 사 : 누구의 모략이란 말이오?
증 인 : 그것을 이루 다 말하자면 모 단체 등의 나 개인에 관한 것이 나오겠지만, 어쨌든 나는 왜놈 이외에 죽일 리가 없소.
검 사 : 그러면 김석황은 선생을 두고 거짓말을 한 셈이오?
증 인 : 그렇소. 거짓말을 안 할 수 없는 환경에서 그리 된 것 같소.
검 사 : 무슨 환경으로 그랬을까요?
증 인 : 그야 경찰에서 고문도 했다고 합디다. 
검 사 : 경찰에서 고문을 했다는 말은 확실히 보고 하는 말이오? 짐작으로 하는 말이오?
증 인 : 내 눈으로 고문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소만 고문했다는 소문을 들었소.

백범이 장덕수 암살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나온 것은 범인 김석황(金錫璜)의 기소장 내용 때문이었다. 당시 한독당 중앙위원으로 있던 김석황은 조사과정에서 자신이 백범을 찾아갔을 때 백범이 장덕수 등을 두고 “이놈들은 나쁜 놈이야”라고 말했으며, 그 후 살해계획을 백범에게 알렸더니 “아, 그런가.”라고 말하더라고 진술했다. 검사는 이 점을 두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으나 별다른 애초에 관련이 없었으니 성과나 나올 리 만무했다.

증인신문은 무려 네 시간 반 만에야 끝이 났다. 재판장은 15일 아침 9시부터 공판을 속개하며 백범에게 다시 증인으로 출두해 줄 것을 요청하고 폐정을 선언하였다. 3월 15일 9차 공판에 백범이 증인으로 다시 출석하였다. 그런데 이날 재판정에서 예기치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 증언 도중에 백범이 퇴정하는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오전 9시, 백범이 공판정에 나와 증인석에 앉자 검사가 곧바로 신문을 시작했다.

검 사 : 지난 금요일(12일) 내가 신문한데 대하여 선생이 답변한 내용 중에서 피고인들이 진술하기를 모두 선생의 명령을 받아서 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물었던바 선생은 모략에서 나온 것이라고 답변한 바 있는데 그러면 그 모략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증 인 : 대답을 못하겠소.
검 사 : 대답을 못한다는 것은 그 답변이 혹 피고인들에게 대하여 유죄가 되든 무죄가 되든 하여간 무슨 영향을 줄까 싶어 그러는 것입니까?

검사의 질문에 백범은 즉답을 하지 않은 채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는 검사 대신 재판위원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할 말은 이미 다 했소. 내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미국 대통령의 요청이 있어 국제 예양(禮讓)을 존중해서 증인으로 여기 나온 바인데 마치 나를 죄인처럼 취급하는 듯하니 나로서는 매우 불만이오. 내가 지도자는 못되더라도 일개 선배요, 나라를 사랑하는 내게 대해서 법정에서 이렇듯 죄인취급을 함에는 나로서 이 이상 말 할 것이 없소. 이 사건에 대해서는 시종 아무 것도 모른다고 했으니 만일 나를 죄인이라 보면 기소를 하여 체포령을 띄워 잡아넣도록 하시오. 증인으로서는 더 말 할 것이 없으니 나는 가겠소.”

말을 마친 백범은 모자를 한 손에 들고 뚜벅뚜벅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 누구도 백범을 제지하지 못했다. 방청석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채 법정 문을 나서기 전에 강거복 변호인이 급히 백범에게 다가와 뭐라고 귓속말을 하자 백범이 다시 증인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그 때 피고석에 앉아 있던 주범 박광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사형을 받아도 좋지만 저분(백범)은 왜 붙들어다 놓고 들볶는 거요?”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장내가 수습되자 강거복 변호인이 재판장에게 증인신문 종결을 요청했다. 재판장은 검사 측과 상의한 후 증인신문 종결을 선언했다. 백범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법정을 빠져나왔다. 두 차례에 걸친 백범의 증인 출석은 이걸로 모두 끝이 났다. 나중에 재판부는 백범이 장덕수 암살사건과 무관함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미묘한 시기에 백범이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함으로써 세간의 오해를 사는 등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이는 당시 미군정과 한민당, 이승만 등이 노리던 바였다.

오늘은 백범 서거 68주기다. 일제하에서는 일생을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했고, 해방 후에는 완전한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노심초사하였으나 끝내 극우세력의 하수인인 안두희가 쏜 총탄에 생을 마감했다. 백범인들 티끌만한 오점이나 허물도 없을까마는 그만하면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는 발행될 예정이나 백범을 기리는 우표는 발행되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는 하나 긴 안목에서 보면 역사는 그래도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된다. 선생이 묻힌 효창공원이 국립묘지로 성역화 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선생의 안식을 기원한다.

포병소위 안두희가 쏜 흉탄을 맞고 서거한 백범 선생

2017.6.26. 백범 선생 68주기에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7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태권도시범단 전주 공연, 통일 열기 '들썩'

전북겨레하나 · 6.15전북본부, 전주 방문한 북녘 동포 뜨겁게 환영
전주=김성희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7.06.26  23:34:23
페이스북 트위터

김성희 (전북겨레하나 사무총장)

 

   
▲ 전북겨레하나와 6.15전북본부 회원들은 26일 전북도청 공연장에서 진행된 ‘2017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 기념 ITF-WTF 합동 시범 공연’에 참석, 통일 열기를 내뿜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26일 오후 5시부터 전북도청 공연장에서 열린 ‘2017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 기념 ITF-WTF 합동 시범 공연’이 열렸다. 이 행사에 전북겨레하나와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전북본부가 회원, 시민, 어린이 400여 명으로 환영단을 구성, 참석하여 공연장을 통일의 열기로 뜨겁게 달구었다.

무주 태권도공원 일대에 환영 현수막

   
▲ 전북겨레하나와 6.15전북본부를 비롯한 많은 평화통일단체들이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무주에 현수막 100여 개를 게시했다.[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이에 앞서 전북겨레하나와 6.15전북본부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무주에 현수막 100여 개를 게시했다.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와 6.15남측위원회의 각 지역, 부문 본부 등 전국의 평화통일운동단체가 현수막 걸기에 참여했다.

‘우리는 하나, 북측 태권도 시범단 방문을 환영합니다’, ‘분단의 장벽도 우리 힘으로 격파합시다’,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합시다’ 등의 구호가 무주 나들목에서 태권도 공원 가는 길목마다 펄럭이고 있다.

북녘 동포 만나는 기대감으로 들썩

   
▲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구호를 연습하는 어린이들과 시민들.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오후 4시부터 행사장에 모인 황민주 6.15전북본부 상임대표의장과 김은경 전북겨레하나 이사장 등 ‘북측 태권도 시범단 시민환영단’은 한반도기를 나누고 구호를 연습하며 전주에 온 북녘 동포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었다.

팔복어린이집 원생 등 어린이 200여 명도 선생님의 손을 잡고 구호를 목청껏 외치고 한반도기를 흔들었다. 4시 30분부터 입장이 시작되자 환영단은 어린이들부터 안전하게 입장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통일틀’ 선보인 ITF 시범단

   
▲  북측 ITF 시범공연은 약 50분 동안 시종일관 박진감 있게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시민환영단과 일반 청중 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오후 5시부터 송하진 전북도지사와 북측의 장웅 IOC 위원, 리용선 ITF 총재 등 내빈들이 행사장에 입장했다.

송하진 전라북도지사의 축사에 이어 시작된 ITF 시범공연은 약 50분 동안 시종일관 박진감 있게 진행됐다. 여성해설원이 각 동작을 자세히 설명하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시범단은 다양한 기본동작과 호신술, 격파술 등을 펼쳐보였다. 특히 이틀 전 개막식 공연에서 실패했던 10cm 송판 격파를 성공시키자 큰 박수와 함성이 터졌다.

마지막에는 ‘조선 민족은 하나이 최대 숙원은 통일’이라며 ‘통일틀’로 불리는 시범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우리는 하나다’ 외치고 ‘우리의 소원’ 부르며 통일열기 고조

   
▲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시민 환영단은 한반도기를 흔들고 응원의 함성을 지르며 장내를 뜨겁게 달구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시민 환영단은 한반도기를 흔들고 응원의 함성을 지르며 장내를 뜨겁게 달구었다. 선수단이 입장하거나 퇴장할 때는 ‘우리는 하나다’, ‘평화 통일’, ‘통일조국’ 등의 구호를 크게 외쳤다.

시범 공연이 끝나자 기립하여 환호를 보냈고 누군가의 선창으로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을 불렀다. 장내의 카메라는 환영단에 집중되었고 영문을 모르고 관람 왔던 시민들도 분위기에 동화되어 함께 구호를 외쳤다.

웅장한 음악과 화려한 퍼포먼스가 가미된 WTF 공연까지 마치고 기념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환영단은 다시 한 번 뜨겁게 구호를 외치고 한반도기를 흔들었다.

밝은 표정의 북측 선수단과 임원, 환영단 향해 여러 차례 손 흔들어

   
▲ 북측 선수들은 바로 뒤편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환호하는 환영단을 향해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공연을 마친 북측 선수단은 객석 중앙 무대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선수들은 바로 뒤편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환호하는 환영단을 향해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몇몇 시민들이 선수단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기도 했는데 북측 선수와 여성 해설원도 밝은 표정으로 응하는 장면도 보였다.

한편 장웅 IOC 위원은 시민 환영단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행사장에 입장하면서 환영단 방향을 손으로 가리키며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행사가 끝난 후 만찬장으로 이동하기 전에는 출구에 서서 한반도기를 펼쳐 들고 선 시민들 쪽을 마주보며 한참 동안 손을 흔들었다.

남북관계 기대감 높아진 시민들

   
▲ 환영단을 이끈 방용승 전북겨레하나 공동대표는 “보람을 느낀다”며 밝게 웃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오늘 행사에 참석한 대학생 임정우군(전북대 경영학과 3학년)은 “그동안 남북교류가 없어서 정말 오랜만에 북측 분들을 만나니 정말 새로운 느낌이었다”며 “이제 교류가 다시 시작된다는 희망을 느꼈고 특히 우리 전북과 북측의 교류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또한 태권도복을 입은 여덟 살 아들과 함께 참석한 서신영씨는 “아들이 태권도를 배우는데 북한 사람들도 우리랑 같은 태권도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큰 감동을 받은 것 같다. 아들의 손을 잡고 북측 동포들을 보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는 뜻깊은 하루였다. 빨리 통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환영단을 이끈 방용승 전북겨레하나 공동대표는 “북측 선수단과 임원들의 표정이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개막식 때보다 훨씬 밝아졌고 우리의 환영 덕분인지 무주 공연 때 실패했던 10cm 송판 격파도 성공시켰다. 보람을 느낀다”며 밝게 웃었다.

이어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확신도 밝혔다. “장기간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있었는데 촛불로 만든 새 정부에서는 화해협력 시대가 펼쳐지리라는 기대가 높다. 오늘 이 자리에 와서 보니 그런 변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든다. 여전히 우리는 한 핏줄 한 겨레이고 하나가 되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 그 길에 전북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전북겨레하나와 6.15전북본부는 6월 30일 폐막 공연에도 환영단을 구성하여 참석할 예정이다.

 

<사진으로 보는 이모 저모>

   
▲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구호를 연습하는 어린이들과 시민들.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 시민환영단을 향해 손을 흔드는 장웅 IOC 위원.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 시범공연의 의미와 출연자를 소개하는 북측 해설원.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 방용승 전북겨레하나 공동대표의 선창으로 응원단이 단일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 보건의료노조 전북지부 조합원들도 참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 북측 취재기자도 시민환영단의 열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 행사 후 장웅 IOC 위원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 시범공연이 끝나자 일어서서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는 시민환영단. [사진 - 통일뉴스 김성희 통신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준용 특혜 의혹' 조작 당원은 안철수의 제자

 

카이스트 사제 인연으로 '청춘콘서트' 도와, "안 전 대표는 모르는 일"

17.06.26 21:09l최종 업데이트 17.06.26 22:50l

 

 

박주선 "문준용 취업 특혜 의혹 제보 조작 확인" 대국민 사과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대선 기간 국민의당이 발표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의 고용정보원 취업 특혜 의혹과 관련 제보가 조작된 것이 확인됐다며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박주선 "문준용 취업 특혜 의혹 제보 조작 확인" 대국민 사과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대선 기간 국민의당이 발표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의 고용정보원 취업 특혜 의혹과 관련 제보가 조작된 것이 확인됐다며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국민의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의 취업 특혜 의혹의 증거로 제시한 자료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 가운데, 해당 증거를 조작한 당원 이유미씨가 과거 안철수 전 대표의 제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의 '진심캠프'에 참여했고, 이때 경험을 엮어 책 출간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대선 당시 국민의당에 제보된 카카오톡 캡처와 음성녹음 파일이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라며 "본의 아니게 국민 여러분께 허위사실을 공표하고 혼란을 드려 공당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국민의당은 지난 대선 기간 '문준용 특혜채용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면서 문 대통령을 공격했다. 지난 5월 5일에는 문씨가 취업하는 과정에서 문 대통령(당시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이 힘을 썼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 갈무리 화면과 음성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같은 내용들이 조작됐다는 것.
 

ad

박 비대위원장은 "이 자료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이유미 당원과 이준서 전 최고위원으로 하여금 곧바로 검찰에 출석해서 진실을 밝히도록 조치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이씨가 어떤 이유로 조작된 자료를 제출했는지, 이씨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취재결과 이씨는 안 전 대표가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에 교수로 재직 중일 당시 재학생으로 안 전 대표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이씨는 안 전 대표가 전국을 돌며 '안철수 현상'을 만들었던 '청춘콘서트'에 서포터즈로 활동했고, 2012년 대선 때는 안 전 대표의 '진심캠프'에 참여했다. 

이는 이씨가 당시 캠프 경험을 바탕으로 출간한 책 <66일, 안철수와 함께 한 희망의 기록>에 자기소개로 내세운 내용이다. 그는 "안철수 교수의 제자로 청춘콘서트 서포터즈로 활동한 것을 인연으로 지난 대선 기간 안철수의 진심캠프에 참여해 열정을 불살랐다"라며 "두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을 건강하고 상식적인 세상으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서였다"라고 밝혔다. 

앞서 이씨는 지난 2012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로 전남 여수에 출마했지만 경선에서 탈락했다. 또 2016년 총선에서도 국민의당 예비후보로 같은 지역에 출마한 바 있다. 당시 이씨는 '출마의 변'에서 "안철수 대표의 청년공감 희망콘서트 강연자로 활동하며 지난 10년 동안 정치참여 과정에서 생애 가장 뜨거운 진심을 불살랐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씨에게 조작된 자료를 받아 당에 전달한 이준서 전 최고위원 역시 안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불렸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 1월 국민의당 창당과정에서 IT벤처 창업가인 이 전 최고위원을 영입하며 "젊은 IT 창업가들이 마포 당사를 찾아왔다. 천하의 인재가 다 모이는 국민의당을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라면서도 "안 전 대표는 당시 자료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박주선 비대위원장도 이날 회견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안 전 대표가 조작 사실을 인지했는지 묻는 말에 "그건 모른다"라고 답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리무중에 빠진 미국의 전쟁전략, 막판승부만 남은 조미핵대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6/26 13:01
  • 수정일
    2017/06/26 13:0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개벽예감255] 오리무중에 빠진 미국의 전쟁전략, 막판승부만 남은 조미핵대결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7/06/26 [12:11]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공중타격수단 645대 집결시킨 미국의 핵공격위협
2. 미국의 전쟁전략은 실속 없는 허세전략일 뿐이다
3. 다섯 가지 참담한 곤경들과 한 가지 치명적 위험
4. 룡성구역에서 초소형 로켓엔진이 불줄기 뿜은 사연
5. 오늘의 조미핵대결은 55년 전의 미러핵대결과 어떻게 다른가?

 

▲ <사진 1> 1966년 11월 2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시작된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은 1968년 1월 23일 푸에블로호 나포사건과 1969년 4월 15일 EC-121 격추사건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위쪽 사진은 푸에블로호 함장과 승조원 82명이 포로신세가 되어 원산항에 도착한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조선인민군 공군 미그-21 추격기 2대의 공격을 받고 동해 상공에서 격추되어 탑승자 31명 전원이 몰살당한 미국 해군 소속 첩보기 EC-12의 비행모습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공중타격수단 645대 집결시킨 미국의 핵공격위협

 

1966년 11월 2일 조선인민군이 군사분계선 서부전선에서 미국군을 습격하여 6명을 사살하였다. 이 습격은 1960년대 후반 조선인민군이 끊임없이 지속하였던 기습공격의 시작이었다. 만일 지금 조선인민군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미국군 6명을 사살하는 사건이 있었다면, 미국은 조선을 침공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생난리를 치겠지만, 당시에는 미국군 6명이 사살당한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미국은 무슨 약점이 잡혔는지 그냥 어물어물 넘어가고 말았다. 미국의 약점을 간파한 조선인민군은 더욱 드센 기습공격을 들이대었다. 군사분계선에서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1967년 한 해 동안 미국군 16명이 사망하였고, 51명이 부상당했다.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은 1968년 1월 23일 조선인민군 해군 소속 어뢰정 3척과 공군 소속 미그-21 추격기 2대가 원산 앞바다에서 조선을 정탐하던 미국 해군 소속 첩보선 푸에블로호(USS Pueblo)를 나포하는 사건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와 더불어, 조선인민군 특수부대 전투원 31명이 1968년 1월 21일 서부전선 경계망을 뚫고 서울 한 복판까지 침투하여 청와대 습격을 기도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30일에는 동해 해상경계망을 뚫고 남하한 조선인민군 특수부대 전투원 120명이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울진에 각각 기습상륙하여 두 달 동안 교전을 벌였다. 1969년 4월 15일에는 조선인민군 공군 소속 미그-21 추격기 2대가 동해 상공에 나타난 미국 해군 소속 EC-121 첩보기를 격추하여 탑승자 31명 전원을 몰살시켰다. <사진 1>


1966년부터 1969년까지 계속된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은 미국군에게 커다란 인명손실을 안겨주었고, 그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그 기간 동안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으로 미국군 75명이 사망하였고, 111명이 부상당했다. 아래의 통계자료는 당시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이 얼마나 격렬하였는지 말해준다.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이 푸에블로호 나포로 절정에 이르렀을 때, 미국은 조선을 무력으로 굴복시켜 자기들이 당한 사상 최대의 치욕을 씻어보려고 하였다. 격노한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단일군사작전으로는 가장 방대한 규모의 무력을 한반도에 집결시켰다. 이를테면, 당시 조선침공을 노린 미국 해군의 ‘포메이션 스타 작전 (Operation Formation Star)’에는 엔터프라이즈함(USS Enterprise), 타이컨더로가함(USS Ticonderoga), 코럴씨함(USS Coral Sea), 레인저함(USS Ranger), 요크타운함(USS Yorktown) 등 항공모함 5척과 강습상륙함 키어싸지함(USS Kearsarge)을 주축으로 하여 순양함 10척, 구축함 13척, 보급함 6척 등 총 35척으로 편성된 어마어마한 해상무력이 출동하였다. 항공모함 5척과 강습상륙함 1척에 실린 각종 함재기는 총 445대나 되었다. 동해에 몰려든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은 공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당시 조선침공을 노린 미국 공군의 ‘컴뱃 팍스 작전 (Operation Combat Fox)’에는 일본 후주(府中)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5공군 전투비행대 소속 전폭기 20대, 미국 본토 노스캐롤라이나주 쎄이무어존슨공군기지(Seymour Johnson AFB)에 주둔하는 제4전술비행단 소속 전폭기 72대, 일본 오끼나와 가데나(嘉手納)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18전술비행단 소속 전폭기 36대, 오끼나와 나하(那覇)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64요격기대대와 제82요격기대대 소속 요격기 48대, 미국 본토 워싱턴주 맥코드공군기지(McChord AFB)에 주둔하는 제318요격기대대 소속 요격기 24대가 출동하였다. 이 전폭기들과 요격기들은 오산공군기지, 군산공군기지, 수원공군기지, 김포공군기지, 광주공군기지에 분산배치되어 출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 미국은 조선을 침공하기 위해 전폭기 128대, 요격기 72대, 함재기 445대를 포함하여 무려 645대나 되는 어마어마한 공중무력을 집결시켰던 것이다.

 

▲ <사진 2>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이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으로 절정에 이르렀을 때, 미국은 선제핵타격으로 조선을 위협하였는데, 그 때 동원된 공중핵타격수단이 F-4D 전폭기다. 이 전폭기에는 전술핵탄 2발을 탑재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은 F-4D 전폭기 128대를 동원한 선제핵타격으로 조선을 위협하였고, 주한미국군기지 핵무기고에는 각종 전술핵탄 950발이 쌓여 있었다. 위의 사진은 미국 공군이 퇴역시킨 각종 전투기들을 내다버리는 애리조나주 사막의 폐기장에 F-4D 전폭기들이 줄지어 놓여 있는 모습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위에 열거한 미국의 공중무력에서 주목되는 것은, 공중전에 사용되는 요격기(interceptor)보다 공중전과 폭격에 모두 사용되는 전폭기(fighter bomber)가 훨씬 더 많이 출동하였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 공군이 운용하던 F-4D 전폭기는 전술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었는데, 1967년 당시 주한미국군기지 핵무기고에는 각종 전술핵탄 950발이 쌓여 있었다. 만일 전술핵폭탄을 2발씩 탑재한 F-4D 전폭기 128대가 출격하여, 조선의 전략거점들에 전술핵폭탄 256발을 모두 투하하였더라면, 조선은 다시 일어서기 힘든 핵참화를 입었을지 모른다. <사진 2>


당시 미국군의 공중공격을 막아낼 조선인민군의 방공무력은 사거리가 21km인 100mm 견인식 고사포, 사거리가 10km인 85mm 견인식 고사포, 사거리가 8.5km인 37mm 견인식 고사포밖에 없었다. 이 3종의 고사포들은 수동식으로 조작하는 방공무기들이었다. 조선이 사거리가 76km인 지대공미사일 번개-1 시제품을 만든 때는 1968년 10월 28일이었으니, 그 지대공미사일은 1969년 후반에 가서야 실전배치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미국이 주한미국군 핵무기고에 보관하고 있었던 B43 전술핵폭탄과 B57 전술핵폭탄은 초음속으로 낙하돌진비행을 하는 핵폭탄들이었으므로, 조선인민군의 수동식 고사포로 미국군의 전술핵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또한 당시 미국은 W25 공중발사핵탄도 실전배치하였는데, 사거리가 9.7km이고 비행속도가 마하 3.3인 그 공중발사핵탄을 조선인민군의 수동식 고사포로 막아내는 것은 더구나 불가능하였다. 당시 조선의 공군력은 645대가 넘는 각종 기종을 총동원한 미국의 공중무력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당시 조선에게는 미국의 공중핵타격을 막아낼 방어수단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후반기에 미국은 역량상 대비가 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각종 공중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여 조선을 무지막지하게 위협하였다. 미국의 핵위협에 직면한 조선에게 세계 각국의 걱정스러운 눈길이 쏠렸다. 정세는 극도로 긴장되었다. 

  

▲ <사진 3> 이 사진은 조선에서 발행된 우표인데,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전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완성하자!"는 전투적 구호가 들어있다. 군인들만이 아니라 인민들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우표에 그런 구호가 들어간 것은, 조선인민군이 자기의 독창적인 전법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말해준다. 비록 무기가 열세이고 수량적으로 부족해도, 강한 정신무장을 갖추고, 자기 전법에 능통하면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특유의 전쟁관을 체험적으로 믿게 되기까지 조선은 험난한 고비를 수없이 넘어야 하였다.     © 자주시보

 

 

2. 미국의 전쟁전략은 실속 없는 허세전략일 뿐이다

 

그런데 뜻밖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역량대비가 무색할 만큼 압도적인 공중핵타격수단을 동원한 미국의 핵전쟁위협 앞에서 조선인민군은 물러서거나 위축되기는커녕 되레 미국군에게 연속공격을 더욱 드세게 들이대었다. “덤빌 테면 덤벼라”는 식이었다. 당시 전투수단이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조선인민군은 도대체 무엇을 믿었기에 그토록 격렬한 연속공격으로 미국군에게 엄청난 인명손실을 안겨주며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일까? 전술핵폭탄을 탑재한 미국 공군 전폭기들의 선제핵타격위험을 조선인민군이 알지 못해서 미국군에게 겁도 없이 연속공격을 들이댄 것일까? 그런 건 아니었다. 당시 조선은 미국 공군 전폭기에 전술핵폭탄이 탑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주한미국군 핵무기고에 각종 전술핵탄들이 무드기 쌓여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문제는 조선의 시각에서 이렇게 설명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조선의 전쟁관은 미국의 전쟁관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세한 무기만 있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단순무지한 전쟁관이라면, 우세한 정신무장과 우세한 전법을 가지면 비록 무기가 열세라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조선의 유별난 전쟁관이다. 정신무장은 전쟁목적에 대응하는 개념이고, 전법은 전쟁방법에 대응하는 개념이고, 무기는 전쟁수단에 대응하는 개념인데, 조선인민군은 그 세 가지 요인들 가운데 제1요인과 제2요인에서 미국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하므로 제3요인의 열세를 만회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비록 무기가 열세이고 수량적으로 부족해도, 강한 정신무장을 갖추고, 자기 전법에 능통하면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특유의 전쟁관을 체험적으로 믿게 되기까지 조선은 험난한 고비를 수없이 넘어야 하였다. 일제식민지시기 항일전쟁에서, 건국 초기 6.25전쟁에서 그렇게 싸워 두 강적들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조선의 특이한 전쟁관을 성립시킨 피어린 체험이었다. <사진 3>


그렇다면 이번에는 정반대쪽에서도 의문이 생긴다. 역량대비가 무색할 만큼 압도적인 공중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여 조선을 침공하려던 미국군은 왜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수치스럽게 물러났을까? 일반상식으로 풀기 힘든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1960년대 후반 국제정세와 그에 연동된 미국의 전쟁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5년 3월 8일 미국군 해병대 3,500명이 베트남에 상륙하였다. 이 상륙은 미국 지상군이 베트남전선에 처음으로 파병되었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그 날부터 8개월 동안 베트남전쟁에 지상군을 계속 증파하여 1965년 12월말 200,000명으로 대폭 증강되었다. 미국은 200,000명으로 증강된 대병력과 압도적으로 우세한 공중무력으로 1966년 성탄절 이전에 베트남전쟁을 끝낼 수 있으리라고 타산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치명적인 오산이었다. 미국은 1966년 성탄절 이전에 전쟁을 끝내기는커녕 전쟁의 수렁에 더 깊이 빠지고 말았다. 1969년 상반기 6개월 동안만 해도, 베트남전쟁에서 미국군 4,500명이 사망하였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의 수렁에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1969년 1월 20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갓 임명된, 전쟁광으로 악명 높은 헨리 키씬저(Henry A. Kissinger)가 고안해냈다는 ‘광기전략’이야말로 그런 광기 어린 몸부림이었다. 소련을 압박하면 베트남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한 키씬저는 공중핵타격수단을 동원하여 광란적으로 협박하면 소련이 겁을 먹고 베트남전쟁을 끝낼 것으로 어리석게 타산하였다. 전쟁전략에 대해 무지몽매한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당시 미국 대통령은 키씬저의 말만 듣고 소련을 위협하는 핵광기를 부렸는데, 1969년 10월 27일부터 ‘자이언트 랜스 작전(Operation Giant Lance)’이라는 작전명으로 감행한 대소핵타격위협이 그것이다. 미국 공군 제92전략항공우주비행단 소속 B-52 장거리전략폭격기 18대가 전략핵폭탄을 가득 싣고 소련군 방공레이더망에 일부러 포착되도록 북극해 상공에서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장시간 비행하는 핵무력시위였다. 하지만 전쟁광의 저급한 지능으로는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방도를 찾지 못했다. 대소핵타격위협이 아무런 실효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닉슨은 작전개시 나흘 만에 ‘자이언트 랜스 작전’을 취소하고 말았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1967년 10월 27일 출격명령을 받은 미국 공군 제92전략항공우주비행단 소속 B-52 장거리전략폭격기가 이륙하는 장면이다. 소련을 압박하면 베트남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한 헨리 키씬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전쟁전략에 대해 무지몽매한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소련을 위협하는 '자이언트 랜스 작전'을 감행하도록 건의하였다. 그 작전명령에 따라 전략핵폭탄을 가득 실은 B-52 전략폭격기 18대가 소련군 방공레이더망에 일부러 포착되도록 북극해 상공에서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장시간 비행하는 핵무력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그런 핵타격위협이 아무런 실효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닉슨은 작전개시 나흘 만에 그 작전을 취소하고 말았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런 사실들을 살펴보면, 미국이 베트남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제2전쟁을 일으키기는커녕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미국에게는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능력은 고사하고 한 개의 전쟁에서도 이길 힘이 없었다. 이것은 미국이 걸핏하면 꺼내들곤 하였던 이른바 ‘두 개의 전쟁전략(two-war strategy)’이 사실은 속이 빈 허세전략에 지나지 않았음을 말해주었다. 베트남에서 전면전을 벌이면서 동시에 한반도에서도 전면전을 할 수 있다던 미국의 ‘두 개의 전쟁전략’은 애초부터 허세를 부리는 기만술책 이외에 다른 게 아니었다. 1960년대 후반기에 있었던 조선인민군의 기습공격과 미국 항모타격단 철수는 미국의 ‘두 개의 전쟁전략’이 허세전략이었음을 세상에 드러내주었다.


그로부터 세월은 멀리 흘렀다. 미국의 군사력은 ‘두 개의 전쟁전략’을 꺼내들고 허세도 부릴 수 없을 만큼 더 약화되었다. <뉴욕타임스> 2009년 3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이라는 두 개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미국은 ‘두 개의 전쟁전략’을 공식적으로 재고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고 하였으며,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2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냉전시기부터 견지해온 ‘두 개의 전쟁전략’을 폐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미국의 군사력이 ‘두 개의 전쟁전략’을 꺼내들고 허세를 부릴 수 없을 만큼 약화되었다는 말은 미국이 전쟁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은 어느 한 지역에서 “대규모 지역전투(major regional conflict)”를 벌이면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도전을 “망쳐놓는(spoil)” 전쟁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는데, 그런 믿음에 기초하여 성립된 새로운 전쟁전략이 이른바 ‘원-플러스 전략(one-plus strategy)’이다. 2012년 1월 5일 리언 패네타(Leon E. Panetta)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원-플러스 전략’을 공식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이 발표한 ‘원-플러스 전략’에서 전면전이라는 일반개념을 쓰지 않고, 대규모 지역전투라는 좀 생소하게 들리는 특수개념을 쓴 것은, 2003년부터 계속되는 이라크전쟁과 2001년부터 계속되는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염두에 둔 어법이다.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미국의 지상군이 적국의 정규군과 격렬하게 벌이는 고강도 전면전이 아니라, 비정규군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테러집단과 싸우는 저강도 지역전투인 것이다. 또한 미국의 ‘원-플러스 전략’에서 말하는, 다른 지역에서의 도전이란 조선의 핵무력 증강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원-플러스 전략’에 따르면, 미국은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고전하면서도, 다른 한편 조선이 핵무력을 증강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야 하는 것이다. 

 

▲ <사진 5> 이 사진은 2006년 이라크 안트바르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부상당한 미국군 병사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모습이다. 2016년 6월 29일 현재 이라크전쟁에서 미국군 4,424명이 사망하였고, 31,952명이 부상당했으며, 미국 민간인 245명이 사망하였다. 다른 한편, 2016년 10월 18일 현재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미국군 2,386명이 사망하였고, 20,049명이 부상당했으며, 미국 민간인 1,173명이 사망하였다. 또한 미국은 그 두 전쟁에 2조1,311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쏟아 부었는데도 전쟁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 자주시보,

 

 

3. 네 가지 참담한 곤경들과 한 가지 치명적 위험

 

미국 국방장관이 2012년 1월 5일 ‘원-플러스 전략’을 발표한 때로부터 5년 반 세월이 흘렀다. 지난 5년 6개월 동안 미국의 ‘원-플러스 전략’은 제대로 작동되었을까? 오늘 한반도정세와 국제정세가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의 ‘원-플러스 전략’이 제대로 작동되기는커녕, 미국은 그 전략을 폐기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곤경과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 2012년 1월 이후 미국이 겪는 네 가지 참담한 곤경들과 한 가지 치명적 위험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국은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의 깊은 수렁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재정전문 웹싸이트 <더 밸런스(The Balance)> 2017년 6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이라크전쟁에 쏟아 부은 전쟁비용은 무려 1조609억 달러에 이르고, 2001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쏟아 부은 전쟁비용은 무려 1조702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고강도 전면전도 아닌 대규모 지역전투에 그처럼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쏟아 붓는 통에 미국의 국가재정파탄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미국은 두 개의 깊은 수렁에서 계속 허우적거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임기 안에 그 두 전쟁이 끝나는 것은 여전히 난망하니, 이것이야말로 참담한 곤경이 아니면 무엇인가. <사진 5>


둘째,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이란과 시리아를 굴복시켜 이스라엘의 안보를 지켜주려던 미국의 중동전략이 실패로 끝나가고 있다. 외신을 인용한 <뉴시스> 2016년 12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하싼 로우하니(Hassan Rouhani) 이란이슬람공화국 대통령은 핵추진잠수함에 설치할 소형 가압경수로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보고서를 석 달 안에 제출하도록 원자력청장에게 지시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의 핵개발저지선을 정면에서 돌파한 이란이 마침내 핵추진잠수함 개발사업에 착수하였음을 말해준다. 핵추진잠수함에 설치할 가압경수로를 만들려면, 경수로의 연료로 사용될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해야 한다. 2017년 1월 28일 이란원자력청은 IR-8 차세대 원심분리기에 육불화우라늄(UF6)가스를 주입했다고 밝혔다. 원심분리기에 육불화우라늄가스를 주입하면, 우라늄농축공정이 시작되고 고농축 우라늄을 얻어낼 수 있다.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해보려고 온갖 술책을 총동원하였던 미국은 참담한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다른 한편, 시리아전쟁에서는 시리아정부군이 러시아군, 이란군, 헤즈볼라군, 시아파 민병대의 군사지원을 받으며 반란군을 속속 제압하고 있다. 2017년 5월 4일 러시아, 이란, 터키는 시리아평화협상 4차회담에서 시리아 영토에 안전지대를 창설하는 의정서를 채택하였다. 친미반란군을 육성, 지원, 사촉하여 시리아내전을 일으켰고, 그것을 시리아전쟁으로 확전, 격화시켜 시리아정부를 전복하려던 미국은 시리아평화협상에서 제외되는 ‘왕따’를 당하고 있다. 다급해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인 백린탄을 마구 쏘아대고, 시리아군 전투기를 공중에서 격추하고, 공습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그 추종국들의 공습확대는 오폭에 의한 민간인 사상자만 더 늘어나게 하였다. <아전스 프랑스 프레쓰(Agence France-Presse)> 2017년 6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추종국들의 오폭으로 지난 한 달 동안 민간인 472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미국은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만이 아니라 시리아전쟁에서도 참담한 곤경에 빠졌다.


셋째, 미국은 유럽에서 러시아의 강한 도전을 받고 있다. 2016년 5월 4일 쎄르게이 쇼이구(Sergey K. Shoygu) 러시아 국방장관은 러시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미국군과 대치하는 러시아 서부국경지대에 주둔할 2개 사단, 남부국경지대에 주둔할 1개 사단을 새로 창설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2017년 6월 21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러시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현재 서부군관구에 군사기지 약 40개소가 건설되고 있는데, 올해 연말까지 서부군관구에 새로운 군사기지 약 20개소를 더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미 2016년 10월부터 본토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 핵탄두가 장착되는 초정밀타격 전술탄도미사일 아이스캔더(Iskander)-M을 전진배치하기 시작하였고, 미국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 SSC-X-8로 무장한 2개 미사일대대를 2016년에 배치하였다. 이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대폭 확장하여 러시아를 위협하려는 미국에게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러시아의 강력한 도전이며, 그런 도전으로 미국의 유럽전략에 큰 파열구가 생겼음을 보여주는 군사정세변화다. 미국은 중동에서는 물론 유럽에서도 참담한 곤경에 빠졌다. <사진 6>

 

▲ <사진 6> 미국은 유럽에서 러시아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러시아는 본토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 핵탄두가 장착되는 초정밀타격 전술탄도미사일 아이스캔더-M을 전전배치하였다. 그로써 러시아는 미국과 그 추종국들의 목에 비수를 겨누게 된 셈이다. 위의 사진은 아이스캔더-M을 4축8륜 자행발사대차에 탑재하는 장면이다. 그 자행발사대차는 아이스캔더-M 2발을 탑재할 수 있다. 그런데 미사일을 기중기로 들어올리는 동안 양쪽에서 병사들이 밧줄로 잡아당기면서 힘들게 탑재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미사일발사준비공정은 아직 자동화되지 못해 수동식으로 작동된다. 저런 식으로 미사일발사를 준비하면 30분이나 소비할 것이다. 그와 달리, 조선이 2017년 5월 29일 원산 인근 갈마호텔 경내에서 시험발사한 신형 초정밀탄도미사일은 발사준비공정이 고도로 자동화되어 자행발사대차가 사격위치에 도착하면 5분만에 발사준비를 끝낼 수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넷째, 미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강한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난 해 중국은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였고, 전략폭격기와 전투기 등 40여 대를 동중국해를 넘어 서태평양까지 출동시켜 대규모 비행훈련을 하였다. 또한 중국은 남중국해의 전략거점으로 떠오른 시사(西沙)군도에 군항, 헬기이착륙장, 헬기격납고, 군용 활주로, 전투기격납고, 지대공미사일 포대 등 전초기지 20개를 건설하였다. 그와 더불어, 중국은 67,000톤급 랴오닝(遼寧)함을 주축으로 편성된 항모전단을 수시로 그 두 해역에 보내고 있다. 이것은 중국의 대양진출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저지하려던 미국의 서태평양전략에 큰 파열구가 생겼음을 보여주는 군사정세변화다. 미국은 중동과 유럽은 물론이고 서태평양에서도 참담한 곤경에 빠졌다.


다섯째, 미국은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당하지 못해 국가안보가 통째로 파탄당할 치명적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요인들 가운데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의 요인들은 미국의 국가안보를 파탄시킬 만한 치명적 위험은 아니고 참담한 곤경들이지만, 다섯 번째 요인으로 서술한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는 미국의 국가안보를 통째로 파탄시킬 치명적 위험이다. 


위에 열거한 정세변화들을 살펴보면, 미국의 ‘원-플러스 전략’이 지난 5년 6개월 동안 차츰 무력화되다 못해 이제는 아예 실종되고 말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미국은 쓸 만한 전쟁전략을 하나도 갖지 못한 암울한 처지에 놓였다. 국방예산자동삭감조치가 해마다 거듭되어 무기 중심의 군사력이 약화되고 있는 판에 전쟁전략마저 오리무중 실종되었으니, 미국군 전투준비태세는 급격히 저하될 수밖에 없다. 미국군 전투준비태세가 오죽 엉망이었으면, 지난 6월 12일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미국 국방장관이 “나는 우리 군대의 전투준비태세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지난 몇 해 동안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개탄하였겠는가! 

 

▲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종말단계 조종유도체용으로 추정되는 초소형 엔진시험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4. 룡성구역에서 초소형 로켓엔진이 불줄기 뿜은 사연

 

2017년 6월 24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MSNBC> 대담에 출연한 마이클 팜페오(Michael R. Pompeo)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도 빠짐없이 북조선에 관해 (내게) 묻고 미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묻는다. 국가안보위협은 트럼프 대통령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의 머릿속은 북조선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계속 얻어맞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근황을 팜페오 국장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조선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언제 단행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발사 후 33분 만이면 워싱턴 상공에 도달할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불시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시험발사의 날, 미국의 국가안보가 파탄되고 말 것이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처럼 날마다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팜페오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진짜 질겁할 충격적인 소식을 가지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미국 연방정부 관리 두 사람이 전해준 소식을 인용한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Fox News)> 2017년 6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21일 조선이 “이전에도 로켓엔진시험을 진행하곤 하였던 윤성시에서(in the city of Yun Song)”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사용될 로켓엔진시험을 진행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은 이전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진행한 적이 있으므로, 지상분출시험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리 질겁할 만한 소식은 아니다.


그런데 조선에는 윤성이라는 도시가 없다. 조선지리를 모르는 미국 연방정부 관리들이 착오로 도시명칭을 잘못 알려준 게 분명한데, 미국에서 용성으로 잘못 발음하는 룡성을 윤성으로 착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룡성은 도시명칭이 아니라 평양의 행정구역명칭이다.


평양 최북단에 있는 룡성구역에는 각종 신형 무기들을 연구개발하는 약 50개의 연구소들로 이루어진 제2자연과학원이 자리잡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 언론과 한국 언론에 가끔 나오는 ‘산음동미사일연구소’다. 보안이 철저해서 외부에서는 그 연구소의 공식명칭을 알지 못하므로, ‘산음동미사일연구소’라는 자의적 명칭이 널리 퍼졌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그늘 진 곳이라서 산음동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미국의 위성사진분석가가 조선의 '산음동미사일연구소'라고 지목한 곳을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이다. 이 사진에는 그 연구소의 일부만 나타났다. 미국의 군사전문 웹싸이트 <글로벌 씨큐리티>에 나온 자료에 따르면, '산음동미사일연구소'는 미국 국가항공우주국(NASA) 산하 연구단지와 미국 공군 산하 아널드공학개발연구단지에 맞먹는 방대하고 현대적인 시설들이 집결된 연구기관이라고 한다. 미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바로 그 '산음동미사일연구소'의 로켓엔진시험장에서 지난 6월 21일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 로켓엔진은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조종전투부(탄두부)에 들어가는 초소형 액체로켓엔진이다. 완성된 조종전투부를 대륙간탄도미사일 본체에 조립하기 직전에 초소형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공정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미국의 군사전문 웹싸이트 <글로벌 씨큐리티(Global Security)>에 나온 자료에 따르면, ‘산음동미사일연구소’는 마셜우주비행쎈터, 랭리연구소, 글렌연구소, 에이미스연구소 등이 집결된 미국 국가항공우주국(NASA) 연구단지와 미국 공군 산하 아널드공학개발연구단지에 “맞먹는(identical)” 방대하고 현대적인 시설들이 집결된 연구기관이라고 하는데, 각종 시험장들, 각종 연구개발시설들 및 생산시설들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미국 국가항공우주국은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데, 조선의 미사일연구소가 그런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였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팍스 뉴스(Fox News)> 보도에 따르면, ‘산음동미사일연구소’의 로켓엔진시험장에서 지난 6월 21일 지상분출시험이 진행되었다. 미국 연방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한 <로이터통신> 2017년 6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6월 21일 조선이 지상분출시험에 사용한 로켓엔진은 “대륙간탄도미사일 로켓엔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추진체(the smallest stage for an ICBM rocket engine)”에 들어갈 로켓엔진이라고 한다. 가장 작은 추진체에 들어갈 로켓엔진은 무엇일까? 한국 언론매체들은 <로이터통신>의 보도내용을 전하면서, 조선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제3단 추진체에 들어가는 소형 로켓엔진을 시험한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러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들어가는 여러 개 로켓엔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로켓엔진은 제3단 추진체 로켓엔진이 아니다. 물론 제3단 추진체 로켓엔진도 크기가 작지만, 그보다 더 작은 초소형 로켓엔진은 대륙간탄도미사일 조종전투부(탄두부)에 들어있다. 그것은 말기유도추진체(post-boost vehicle)에 들어가는 초소형 로켓엔진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 1단, 2단, 3단을 차례로 연소시키며 날아가 추력비행을 끝내는 순간, 조종전투부가 제3단 추진체에서 자동으로 분리되는데, 그 때 조종전투부 안에 있는 초소형 액체로켓엔진이 점화되어 마지막 추력비행을 하게 된다.


지난 6월 21일 조선은 조종전투부에 들어가는 초소형 액체로켓엔진을 시험하였다. 고도의 미사일공학기술을 가진 조선이 제3단 추진체에 들어가는 소형 로켓엔진을 만드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처럼 쉽지만, 매우 예민한 전자장비들이 들어찬 조종전투부에 들어가는 초소형 로켓엔진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체로켓엔진설계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액체로켓엔진설계는 매우 복잡한데,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로켓엔진들은 모두 고체로켓엔진들이지만, 유독 그 초소형 로켓엔진만은 액체로켓엔진이다. 

두 개의 액체연료통과 한 개의 연소실 및 분사구, 그리고 모세혈관 같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도관들과 펌프들로 구성된 초소형 로켓엔진은 모의 핵탄두 여러 발이 들어간 각개발사식 재돌입체(MIRV)와 미사일유도장치를 비롯한 각종 첨단기술제품들에 연결되는 것이다.


조선이 그런 초소형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진행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완성된 조종전투부를 대륙간탄도미사일 본체에 조립하기 직전에 초소형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공정이다. 그러므로 이 글이 <자주시보>에 실리는 6월 26일에는 조선이 조종전투부를 대륙간탄도미사일 본체에 연결하는 최종조립작업까지 모두 끝마쳤을 것으로 예견된다. 최종조립작업이 끝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은 8축16륜 자행발사대차에 탑재된 거대한 원통형 발사관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이 진행되는 것은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마침내 발사대기상태에 들어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발사대기상태에 들어간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백악관에 넌지시 알려주어 그들을 더 큰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기 위해 조선은 초소형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실내시험장에서 진행할 수 있었는데도, 미국 정찰위성이 내려다보는 야외시험장에서 일부러 진행한 것이다. 

 

 

5. 오늘의 조미핵대결은 55년 전의 미러핵대결과 어떻게 다른가?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발사대기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팜페오 국장의 정보보고를 듣는 순간,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자기 머리 위에서 째깍째깍 울리는 시한폭탄 초침소리를 듣는 것 같은 긴장과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미상불 조선의 전략적 핵압박공세는 미국이 국가안보파탄으로 망하는가 아니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살아남는가 하는 마지막 결정을 내릴 때까지 백악관의 숨통을 사정없이 조이고 있다.


백악관이 숨통이 조이는 것 같은 위협을 받으며 불안과 공포에 떨었던 적이 언제 또 있었던가? 1962년 10월 16일부터 28일까지 쿠바미사일위기가 일어났을 때, 백악관은 치명적인 위협을 받았었다. 미국과 한국에서는 쿠바미사일위기라고 부르고, 조선과 러시아에서는 까리브해위기라고 부른다. 쿠바미사일위기는 20세기 최대의 핵전쟁위기로 세계사에 기록되었다. 백악관이 생겨난 이래 처음으로 치명적인 위협을 받았던 55년 전 경험을 돌이켜보면 이렇다. 


1961년 4월 쿠바혁명정부를 무력으로 전복시키기 위해 미국 중앙정보국이 쿠바에 상륙시킨 ‘2506여단’은 제압당했지만, 쿠바는 미국의 무력침공이 임박했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출범한지 3년밖에 되지 않는 쿠바혁명정부가 미국의 무력침공을 막아낼 방도는 소련의 핵억제력에 의지하는 것뿐이었다. 쿠바혁명의 영원한 별로 추앙받는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는 “혁명전쟁이 일어나면, 승리하거나 죽거나 둘 중에 하나다. 제국주의침략에서 쿠바 같은 약소국을 해방시키려면 핵전쟁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8>

 

▲ <사진 8> 이 사진은 1962년 10월 23일 미국의 고고도정찰기가 쿠바의 싼 크리스또발에 있는 소련의 미사일기지를 촬영한 정찰사진이다. 미사일발사대 옆에 미사일을 임시로 보관하는 천막이 보이고, 그 주변에 미사일연료주입차량, 산화제주입차량들이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다. 20세기 최대의 핵전쟁위험으로 세계사에 남은 쿠바미사일위기 당시 소련이 쿠바에 배치한 핵탄미사일은 모두 9발이었는데,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3대 도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였다. 이것은 미국의 국가안보가 치명적인 핵위협으로 파탄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55년 전 소련은 미국과의 핵전쟁을 두려워해서 쿠바에 배치한 핵탄미사일 9발을 불과 18일 만에 철수하고 말았지만, 미국과 핵전쟁도 불사한다고 선포한 조선은 미국과의 핵대결에서 이길 때까지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조선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대기상태에 놓고, 백악관이 굴복할 때까지 그 숨통을 계속 조이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최대의 핵대결로 세계사에 남을 조미핵대결은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조기에 종식될 것이고, 그로써 21세기 최대 사변으로 세계사에 남을 한반도의 통일이 실현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리하여 1962년 9월 8일과 16일 소련의 준중거리탄도미사일 R-12 6발과 중거리탄도미사일 R-14 3발이 쿠바에 반입되었다. 2.3메가톤급 열핵탄두를 장착한 R-12의 사거리는 2,000km였고, 2메가톤급 열핵탄두를 장착한 R-14의 사거리는 4,500km였다. 당시 소련의 핵탄미사일 지하발사거점들이 있었던 쿠바 중북부에서 워싱턴까지 거리는 약 2,000km, 뉴욕까지 거리는 약 2,100km, 시카고까지 거리는 약 2,200km, 로스앤젤레스까지 거리는 약 3,800km이므로,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핵탄미사일 9발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3대 도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의 국가안보가 치명적인 핵위협으로 파탄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소련의 핵탄미사일 9발이 쿠바에 배치되자, 백악관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전율하였고, 미국은 전쟁이냐 협상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벼랑끝에 떠밀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오늘 조선은 미국 본토에 대한 핵타격능력을 완성하였다. 55년 전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핵무기들은 미국의 쿠바침공을 저지하는 전쟁억제수단이었지만, 오늘 조선이 보유한 핵무기들은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전략타격수단이다. 55년 전 소련의 핵탄미사일 9발은 백악관의 숨통을 불과 18일밖에 조이지 못하고 곧바로 철수되었지만, 오늘 조선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은 백악관이 굴복할 때까지 그 숨통을 계속 조이고 있다. 55년 전에는 미국과의 핵전쟁을 두려워한 소련이 쿠바에 배치한 핵탄미사일을 불과 18일 만에 철수하고 말았지만, 오늘 조선은 미국과의 핵대결에서 이길 때까지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지금 미국은 조선의 비핵화를 말하고,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말하지만, 조선에게는 죄다 헛소리로 들린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미국은 55년 전 소련과의 핵대결보다 오늘 조선과의 핵대결에서 훨씬 더 심각한 국가안보파탄위험을 겪고 있으며, 훨씬 더 강도 높은 핵압박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미핵대결은 이제 막판승부만 남았다. 21세기의 최대 핵대결로 세계사에 남을 조미핵대결은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조기에 종식될 것이고, 그로써 21세기 최대 사변으로 세계사에 남을 한반도의 통일이 실현될 것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