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물고기는 멍청한가? 물총고기 보면 생각 달라진다

물고기는 멍청한가? 물총고기 보면 생각 달라진다

조홍섭 2018. 12. 31
조회수 50 추천수 0
 
입을 ‘움직이는 노즐’로 물줄기 세기 정밀 조절해 ‘백발백중’
가까운 먹이는 점프로 사냥, 바닥 퇴적층에 쏘아 먹이 잡기도
 
1a.jpg» 물총고기는 맹그로브에 사는 작은 담수어이지만 포유류를 뺨치는 ‘지적’ 행동을 하는 물고기로 유명하다. I. 첨프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다 허탕 쳐 본 사람이라면 물과 공기의 굴절률 차이를 안다. 보이는 것과 실제 있는 곳은 많이 다르다. 그러나 물총고기는 물속에서 물줄기를 뿜어 물 밖 1∼2m 떨어진 풀잎의 곤충을 정확하게 맞춰 떨어뜨린다.
 
바람을 고려해 화살을 날리는 양궁선수 같은 솜씨다. 그러나 물총고기는 사격능력 못지않게 뛰어난 인지와 학습 능력을 지닌 ‘똑똑한’ 물고기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스테판 슈스터 독일 바이로이트대 동물생리학자는 과학저널 ‘실험 생물학 저널’ 10일 치에 실린 리뷰논문에서 물총고기가 보이는 놀라운 능력을 최근 이뤄진 다양한 연구를 통해 분석했다. 물총고기는 사람과 비슷한 방식으로 목표를 찾는 시각능력을 지닌 데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물줄기를 뿜는 것이 아니라 먹이와의 거리 등을 고려해 정밀하게 물줄기 세기와 형태를 조정한다. 물에 떨어진 먹이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며, 호기심과 학습 능력도 뛰어나다. 그는 “왜 3만5000종이 넘는 물고기 가운데 물총고기만이 물줄기를 쏘는 전략을 진화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능력이 먹이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다른 기술이 함께 진화하도록 추동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2a.jpg» 물총고기가 서식하는 맹그로브 습지. 물이 탁하고 물결이 일어 물 밖 곤충을 쏘아 잡는 일은 매우 어렵다. 스테판 슈스터, ‘실험 생물학 저널’ 제공.
 
슈스터 박사는 물총고기의 거친 서식환경이 이런 능력 진화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길이 12∼18㎝인 이 물고기는 인도부터 동남아와 호주 북부까지 맹그로브의 담수에 10종이 사는데, 조류에 따라 매일 수심이 크게 변한다. 게다가 물이 혼탁하고 바람으로 물결이 일어 잎에 앉은 곤충이나 거미를 조준하는 일이 쉽지 않다. 또 영역이 따로 없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익숙한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물총고기는 파리에서 작은 도마뱀까지 사냥하는데, 실험실에서 잘 훈련한 배고픈 개체라 65㎝ 거리에서 100%의 적중률을 보일 정도로 정확하게 물줄기를 쏜다. 그 비결은 입을 ‘움직이는 노즐’처럼 이용하는 데 있다. 표적의 크기와 거리를 고려해 적당한 세기의 물줄기를 발사한다. 앞서 뿜어져 나간 물방울 속도보다 뒤에 발사된 물방울 속도가 빠르게 때문에 먹이에 도달할 때쯤엔 커다란 물 덩어리가 돼 타격한다.
 
ar2-1.jpg» 맹그로브 잎 뒷면에 앉은 파리(위)와 물속에서 본 모습. 사냥의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다. 스테판 슈스터, ‘실험 생물학 저널’ 제공.
 
이 물고기는 경험과 관찰로부터 배우는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움직이는 표적을 이용한 실험에서 물총고기는 적중률을 차츰 높여갔는데, 표적이 움직이는 방향 앞으로 물줄기를 쏘는 기술을 터득했다. 놀라운 것은, 직접 해 보지 않더라도 옆에서 이런 모습을 본 동료 물총고기의 성공률도 함께 높아졌다.
 
잎에 앉은 벌레를 쏘아 떨어뜨린다고 다 입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이 물고기 서식지에는 다른 물고기들도 공중에서 떨어지는 먹이를 늘 노린다. 그런데 물총고기는 떨어뜨린 먹이의 98%를 차지한다. 그 이유를 슈스터 박사는 “먹이가 잎에서 떨어지는 순간 물총고기는 떨어지는 수직과 수평 속도, 방향, 높이 등을 고려한 다음 포식자로부터 급박하게 피할 때 취하는 동작으로 급가속해 먹이에 달려든다”고 밝혔다.
 
1b.jpg» 물총고기는 1개 속에 10종이 있다. 그러나 3만5000여 종 가운데 물줄기를 쏘아 사냥하는 다른 물고기는 없다. 바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문제는 비슷한 추적능력을 보유한 같은 종 사이의 경쟁이다. 슈스터 박사는 “실험 결과 물총을 쏜 물고기는 특별한 이득이 없고 먹이는 물총고기 무리 전체에 고루 돌아갔다”고 밝혔다. 실제로 야생에서 물총고기는 가까운 먹이를 발견하면 물줄기를 쏘는 대신 물 밖으로 점프해 직접 잡는다. “사격은 에너지가 덜 들고 연속 발사도 가능한 이점이 있지만 먹이 확보가 불확실한 반면, 점프는 힘들지만 먹이를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서는 득이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물총고기는 이밖에 물줄기를 물 밖 먹이를 사냥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바닥 퇴적층에 쏘아 숨어있는 수생동물을 사냥하기도 한다. 또 상당수 물총고기는 늘 구할 수 있는 새우 등 물속생물을 주 먹이로 삼는다.
 
물총고기의 정교한 물줄기 발사 행동은 정교한 거리와 타이밍 조정 등에서 “투수가 공 던지는 행동”과 견줄 만하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그러나 슈스터 박사는 “독을 2m 밖에 뱉는 코브라나 혀를 먼 거리에 ‘뱉어’ 사냥하는 카멜레온 등 뉴런이 사람처럼 많지 않은 동물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왜 수많은 물고기 종 가운데 물총고기에게서만 이런 행동이 진화했는지는 수수께끼”라고 덧붙였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tefan Schuster, Hunting in archerfish – an ecological perspective on a remarkable combination of skills,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2018 221: jeb159723 doi: 10.1242/jeb.15972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공장에서 쫓겨난지 10년, 다시 돌아가는 '그들'

31일, 해고자 119명 중 71명 공장 복직...쌍용차지부 "존중받는 일터 만들것"
2018.12.30 13:50:07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공장을 떠난 지 10년 만에 다시 돌아간다. 31일 해고노동자 119명 중 60%인 71명이 복직한다. 해고노동자들은 이날 아침 7시30분 공장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출근할 예정이다. 이번에 복직하지 않는 나머지 48명은 합의서에 따라 2019년 상반기에 복직할 예정이다. 
 
이번에 복직하는 노동자 중에는 2012년 서울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리고 40일 단식농성을 벌였던 김정우 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정리해고가 아닌 징계해고자로 지난 10년 동안 싸운 윤충열 수석부지부장, 2015년 공장 안 굴뚝농성으로 노사교섭을 끌어낸 김정욱 사무국장 등이 포함돼 있다. 
 
김득중 지부장은 이번 복직자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앞서 김 지부장은 조합원들이 모두 복직한 후 가장 마지막에 복직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김 지부장이 이번 복직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그 약속 때문이다.  
 
2019년 상반기 말까지 나머지 해고자 복직키로 
 
쌍용차 노·노·사(쌍용차노조·금속노조 쌍용차지부·쌍용차 사측)는 지난 9월 13일 저녁, 쌍용차 해고자 119명 전원을 내년 상반기까지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당시 합의문을 보면 회사는 2018년 말까지 해고자 119명의 60%를 채용하고, 나머지 40% 해고자를 2019년 상반기 말까지 단계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행여 2019년 상반기 대상자(40%) 중 부서배치를 받지 못한 복직 대상자가 있을 경우, 2019년 7월 1일부터 2019년 말까지 6개월간 무급휴직으로 전환한 후, 2019년 말까지 부서배치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합의 이후 회사를 상대로 한 일체의 집회나 농성(2009년 구조조정 관련)을 중단하고, 이와 관련된 시설물과 현수막 등을 자진 철거하기로 했다. 또한, 사측이 이번 합의를 위반하지 않는 한 회사를 상대로 집회나 시위, 선전 활동을 포함한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해고자 복직으로 발생하는 회사 부담을 줄이기 위한 지원 방안과 경영정상화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프레시안

해고자가 119명이 된 이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대량해고에 반대하며 2009년 77일간 대규모 공장 옥쇄파업까지 벌였다. 하지만 사측은 음식물 반입을 막고 가스를 끊었고 경찰은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강제진압에 나섰다.  
 
결국 980명의 정리해고 대상자를 무급휴직 462명, 희망퇴직 355명, 정리해고 165명으로 조정하는 것으로 노사협상이 타결됐다. 그러던 중 2010년 인도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돼 이듬해 기업회생절차를 마친 쌍용차는 2015년 12월 노(기업 노조)·노(금속노조 쌍용차지부)·사 3자간 합의안을 마련했다. 2017년 상반기(6월)까지 전원 복직을 위해 노사가 최선을 다한다는 게 골자다.  
 
이에 따라 기술직 신규인력 채용 수요가 있을 때마다 입사지원자 가운데 해고자 3, 희망퇴직자 3, 신규채용 4의 비율로 단계적으로 채용하되 복직점검위원회를 구성, 진행과정을 매달 점검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노사가 최선을 다한다'는 두루뭉술한 합의안은 사측이 합의 이행 책임에서 회피할 수 있는 빌미를 만들어줬다.  
 
결국, 쌍용자동차는 165명의 해고자 중 45명만을 복직시켰고 나머지 120명은 여전히 복직을 기다리게 됐다. 노사 간 합의가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그렇게 기다린 복직자 120명 중 한 명은 지난 6월 27일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주중 씨다. 복직에 합의한 해고자 숫자가 119명인 이유다.  
 
쌍용자동차지부 "존중받는 일터를 만들겠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합의된 해고자 119명 중 71명이 31일 공장으로 복귀하는 셈이다. 쌍용자동차지부는 "2018년 12월31일 쌍용차 해고노동자 119명 중 60%인 71명이 공장으로 돌아간다"며 "2009년 6월8일 정리해고 이후 10년 만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해고노동자들은 아침 7시30분 공장 정문에 모여 기념인사와 기자회견을 갖고 출근할 예정이다.  
 
쌍용자동차지부는 "너무도 긴 시간을 견뎌온 노동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카네이션을 건네고 따끈한 떡 한 덩이 선물한다"며 "10년 만에 일터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은 품질 좋은 명품 자동차를 만들고, 존중받는 일터를 만들겠다고 다짐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숙제도 산적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약속한 손배소 취하, 그리고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등이 대표적이다. 쌍용자동차지부는 "국가손해배상, 가압류 취하가 경찰 내부 반발로 진행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살인 폭력진압에 대한 책임자 처벌도, 대법원의 박근혜 청와대 재판거래 진상규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진실을 밝히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전쟁은 최고의 장사다"

[전쟁국가 미국·1강-④] 1차 대전, 'JP모건을 위한 전쟁
2018.12.29 11:59:08
 
 

 

 

 

"최고로 신뢰할 만한 회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1차 대전 때 군인 1명을 죽이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만 5000달러였다. 그런데 유럽의 어떤 대기업도 정부가 저지른 이런 극도의 낭비에 대해 단 한 차례도 항의하지 않았다. 살인을 개별 조폭들에게 맡긴다면 건당 비용은 100달러를 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대기업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살인이 이들 대기업의 주업이기 때문이다. 무기는 그들이 자랑하는 상품이다. 정부는 그들의 고객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들이 만든 제품은 아군이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적군도 사용해왔다.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 터지는 포탄 파편이 전선에 나가 있는 한 인간의 뇌와 심장과 내장을 파고드는 동안, 2만 5000달러의 대부분인 이윤은 무기 제조업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의 1934년 3월자 기사 '무기와 인간'의 첫 부분이다. 다음 달 별도의 소책자로도 발간된 이 기사는 유럽 무기산업의 추악함을 고발한다. 그러나 이 고발 기사는 유럽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1차 대전 당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이 전쟁이 '민주주의에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한 전쟁'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며 참전을 단행했다. 나아가 민족 자결, 국제연맹 창설 등 14개 평화 원칙을 내세우며 미국의 주도로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했다. 윌슨의 평화 원칙은 지금까지도 미국 외교의 대원칙으로 추앙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미국의 참전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도, 평화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파산 위기에 빠진 미국의 은행가와 무기 제조업자들을 구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금융재벌 JP모건을 구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당시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 측의 무기 구입 및 차관 획득을 위한 유일한 대행자였던 JP모건은 연합국 측의 패배 가능성이 보이면서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거액의 전쟁물자 외상 대금과 대출금을 모두 떼일 판이었다. 미국이 참전한 진정한 이유다. 이 때문에 어떤 이는 1차 대전을 '세상을 JP모건에 안전하게 만들어준 전쟁'이라고까지 말한다. 그 실상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제국주의 열강의 자살극, 1차 대전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위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이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한 세르비아 인에게 암살된다.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면서 1차 대전이 발발한다.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그리고 오스만제국을 한편으로(Central Powers : 중부세력),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일본을 다른 한편으로(Allies : 연합국) 4년 3개월여 동안 자본주의 열강 간에 참혹한 전쟁이 벌어진다. 1815년 나폴레옹전쟁이 끝난 이후 100년간 지속됐던 유럽의 평화가 깨진 것이다.

1918년 11월 11일 전쟁이 끝났을 때 군인 사망자가 1000만 명, 민간인 사망자는 2000만 명으로 무려 3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 비용은 자그마치 1860억 달러. 미국 등 연합국이 1230억 달러를 사용했고 독일은 390억 달러를 썼다. 연합국 중에서는 영국이 540억 달러, 미국이 220억 달러를 지출했다. 

전쟁 발발 당시 이미 영국은 노쇠한 제국이었다. 전쟁 비용 540억 달러의 36%를 국민 세금으로, 64%는(352억 달러) 외부 대출로 충당했다. 대출의 주요 공급원은 미국이었다. 1914년 3월부터 1920년 3월까지 영국이 지출한 540억 달러는 그 이전 225년간의 정부 지출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쟁 직전 7억 1100만 파운드였던 영국의 국채는 종전 즈음에는 82억 파운드로(390억 달러 ; 당시 1파운드는 4.76 달러) 6년 만에 정부 부채가 1150% 증가한다. 사실상 국고가 파산 상태에 이른 것이다.  

한마디로 영국은 미국이 제공하는 무기와 미국에서 빌린 돈으로 전쟁을 치렀다. 이에 따라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은 전쟁이 끝난 후 전쟁 부채를 갚느라 몰락의 길을 걷는다.

반면 미국은 1917년 4월 2일 참전을 결정했지만 실제 전투에 참여한 것은 종전 6개월 전인 1918년 5월이었다. 미군은 연 인원 200만 명이 참전해 11만 6000명이 전사하고 20만 4000명이 부상을 당했다(반면 4년 이상 전쟁을 치른 프랑스는 100만 명 이상이 전사했고 영국 전사자 역시 100만 명에 육박했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 중 영국, 프랑스 등에 제공한 군수물자와 신용 대출 덕에 전쟁 이후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최대 채권국이라는 지위를 바탕으로 향후 세계의 진로를 좌우하는 핵심적 지위를 차지한다. 전쟁 기간 미국 대기업과 정부는 유례없이 긴밀한 결탁 관계를 맺었다. 경쟁을 통제하고 대기업의 이윤을 보장하면서 은행과 군수기업들은 크게 번창했다. 

이처럼 연합국 측에 전쟁 물자를 공급하고 전쟁 자금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2만 1000명의 백만장자와 억만장자가 생겨났다. 반면 미국의 공공부채는 1913년 10억 달러에서 1919년 말 250억 달러로 2500% 늘어난다. 미국 국민 1인당(1억 3000만 명)의 200달러의 전쟁 부채를 진 셈이다. 국민들의 혈세와 수십만 군인의 목숨을 대가로 2만 1000명의 거부가 태어난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단숨에 경제 부흥을 이룩한 일본, 베트남전쟁에 참여해 경제 개발의 기반을 닦은 한국의 경우와 비교해 보라. 1차 대전 당시 세계 최강의 국가들이 벌이는 전쟁에서 연합국 측의 군수물자 공급 및 신용 대출을 독점한 JP모건은 도대체 얼마나 벌어들였을까. JP모건에게 1차 대전은 '최고의 장사' 기회였던 셈이다. 

'죽음의 상인' 

사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대다수 미국인들은 관심이 없었다. 1차 대전은 구대륙 제국주의 열강의 추악한 이권 다툼이었을 뿐이다. JP모건이 군수물자 공급과 신용 대출로 영국과 결탁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참전할 이유도 없었다.  

이러한 전쟁의 실상, 즉 대다수 국민이 혈세와 목숨을 희생하는 동안 미국의 군수기업과 은행들은 떼돈을 벌었다는 추악한 진실은 1930년대 이후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그 진실이 소상히 밝혀진 것은 1934년 4월부터 2년간 지속된 미 상원 군수산업조사특별위원회의 조사에 의해서였다.(나이위원회에 대해서는 올리버 스톤, 피터 커즈닉 공저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현대사 1권 138~158쪽과 스메들리 버틀러 <전쟁은 사기다> 참조) 
 

▲ 스메들리 버틀러(1881∼1940년) 장군의 저서 <전쟁은 사기다>(War is a Racket) ⓒFeral House

공화당 소속의 노스다코타 주 상원의원 제랄드 나이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조사위원회는 일명 나이위원회, 또는 '죽음의 상인' 조사위원회로 불린다. 군수기업을 '죽음의 상인'으로 지칭한 것이다. 조사위원회는 조사관과 회계사 80명을 동원해 1차 대전 당시 미국 대기업들의 회계장부를 샅샅이 조사했다. 특위 위원들은 그 결과를 보고 경악했다. 

특위 위원 중 한 명인 제임스 포프 상원의원은 앞으로 청문회를 통해 "그 탐욕과 음모와 전쟁 공포를 조장하는 선전과 로비의 실태가 공개되면 국민은 경악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관련 정보가 공개되는 순간 온 나라가 충격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참전 이유는 민주주의도 평화도 아닌, 미국의 제국주의적 영향력 확대와 대기업의 이윤 때문이었다. 

나이위원회가 소집되기까지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있었다. 1917년 11월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혁명에 성공하며 정권을 잡은 볼셰비키는 차르 치하 당시 외무장관의 비밀서류를 발견해 이를 공표했다. 그것은 전쟁이 끝난 후 전승국들이 전체 오스만제국의 영토를 적절히 나누어 갖는다는 내용이었다(사이크스-피코 협정). 

이 비밀협약은 1916년 2월에 수립되었고 같은 해 5월 관련 국가 정부들로부터 비밀리에 비준을 받았다. 당시까지 명목상 중립을 지켰던 미국 정부도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타 국가들은 물론 관련 국가의 국민들도 이 비밀협약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일단의 수정주의 역사가들이 전쟁 당시 비밀 외교 등을 연구하면서 미국이 참전한 진짜 이유는 민주주의나 세계 평화가 아니라 영토 획득과 기업의 이윤 때문이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또한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고 1933년에는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유럽에 새로운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에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전쟁',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윌슨의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와중에 나이 의원은 1934년 2월 상원 외교위에 무기, 탄약 등 전쟁 장비 제조 및 판매에 관련된 개인과 기업들에 대한 조사를 제안했다. 미국이 새로운 해외 전쟁에 말려드는 것과 미국 군대가 기업인들의 해외투자 보호수단으로 쓰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1934년 4월, 상원 군수산업조사특별위원회가 설립됐고 군수품재벌 관련 청문회가 시작됐다. 조사위원회의 활동 목적은 전쟁을 통한 부당이득 취득이 있었는지, 무기 제조업자들이 선전 활동을 통해 정부를 전쟁으로 몰아갔는지를 조사하는 한편 앞으로 전쟁 수행 과정에서 대기업의 이윤 추구가 일절 없도록 정부가 모든 무기 제조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해야 하는지 등 향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청문회 시작되기 직전 미 군수산업을 고발하는 두 권의 책이 같은 날 발간됐다. H. C. 엥겔브레히트와 F. C. 해니건 공저의 <죽음의 상인들>, 그리고 언론인 조지 셀드스가 쓴 <철, 피, 이윤>이 그것이다. 두 책은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고 특위 조사관들에게 많은 기초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서두에 말한 <포춘> 3월자 '무기와 인간' 이 별도의 소책자로 발간됐다.  

영국과 JP모건의 결탁 

1차 대전 발발 당시 중립을 표방했던 미국은 어떻게 전쟁에 끌려들어 간 것일까? 그것은 미국의 금융재벌 JP모건이 영국 정부와 결탁한 때문이었다. 

석유, 금융, 식량 등 주요 국제 문제에 대해 30년 넘게 비판적 글을 써온 윌리엄 엥달은 저서 <화폐의 신>(Gods of Money)에서 "월가의 머니트러스트는 전쟁에 참여해야만 유럽에 재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파산한 영국이 남겨놓은 공백을 치고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이른바 '미국의 세기'를 창출한 첫 걸음이다"라고 지적한다. 

1936년 2월 24일 발표된 나이보고서는 "조사 대상이 된 군수업계는 때로 비정상적인 편법, 미심쩍은 특혜와 커미션 같은 방법을 써먹었다. 그들은 일이 되게 하기 위해 외국 정부 관료나 그들의 절친한 친구에게 뇌물을 먹이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발발 직후 JP모건은 영국이 군수품, 무기, 군복, 화학물질 등 현대전을 치르는 데 필요한 모든 물품을 구매하는 데 영국 정부를 위한 유일한 거간꾼 노릇을 하게 된다. 더욱이 영국 정부는 JP모건을 미국 민간은행에서 빌리는 모든 영국 전쟁부채의 독점적인 금융대행사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JP모건은 전시 구매를 조직하고 거기에 자금을 조달하는 일, 그리고 어떤 회사가 공급처가 될 것이며 물품 가격은 어떻게 책정할지 따위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모건가와 연계된 기업들은 모건이 눈치 빠르게 벌인 이 사업에서 가장 큰 이득을 챙겼다. 

1915년 1월 금융회사 JP모건의 수장 J. P. 모건 2세는 백악관에서 윌슨 대통령을 만나 JP모건과 영국의 결탁 문제를 논의했다. 그 자리에서 윌슨은 모건그룹이 "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행하는 그 어떤 조치에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1916년 한 해에만 미국 업계는 12억 9000만 달러 상당의 군수품을 영국과 프랑스에 수출했다.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기 직전인 1917년 4월 JP모건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50억 달러어치(현재 시세 900억 달러) 군수품을 수출했다. 만일 그 대금이 상환되지 않으면 심각한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JP모건의 동업자 토머스 라몬트는 1915년 4월 필라델리아에서 열린 정치사화과학아카데미에서 행한 "전쟁이 미국의 금융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쟁 관련 품목을 취급하는 우리나라 제조업체와 상인들은 사업을 통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중략)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진척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미국이 국제적인 금융대출시장에서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역이나 금융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문제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전쟁을 끝내지 않고 질질 끄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독일의 수출무역이 거의 완전히 바닥상태지만, 만약 전쟁이 조기에 끝나버리면 우리는 십중팔구 독일이 재빠르게 기사회생해서 다시 경쟁국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1917년이 되면서 별안간 상황이 좋지 않게 굴러갔다. 1917년 2월 러시아 군부가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러시아 황제가 폐위되었다. 러시아 군 지도부는 반란을 진압할 힘이 없었다. 만일 러시아 군대가 전쟁에서 손을 뗀다면 독일은 더 이상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을 동시에 감당하느라 기진맥진할 필요 없이 오로지 서부전선에만 전력을 집중할 수 있을 터였다. 그것은 곧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의 패배를 의미했다.

JP모건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에 15억 달러가 넘는 전쟁 차관을 주선해주고, 유럽 교전국에 제공된 50억 달러어치의 군수물자에 관한 인수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니만큼 끝내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는 거두는, 그들로서는 전혀 뜻하지 않은 사태가 일어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이런 상황에서 1917년 3월 5일 월터 하인스 페이지 영국주재 미국 대사가 윌슨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밀서를 보낸다. 그는 록펠러 가문과 가까운 사이였다. 영국 대사로 부임하기 직전 록펠러재단 산하 일반교육위원회의 위원을 맡기도 했다.

"저는 우리를 서서히 압박해오는 이 위기에 대처하려면 JP모건의 역량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고 봅니다. 일개 민간기관이 담당하기에는 너무 엄청나고 급박한 상황입니다. (중략) 그렇지만 우리가 독일과의 전쟁에 직접 참가한다면, 연합국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아마도 신용이 될 겁니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 정부는 얼마든지 영국과 프랑스에 차관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차관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을 겁니다. (중략) 우리가 독일과 전쟁을 벌이지 않는 한 우리 정부는 당연히 그러한 직접적인 신용을 제공할 수 없을 겁니다."

4주 후인 1917년 4월 2일, 윌슨은 의회에 선전포고를 요청한다. "민주주의에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참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윌슨이 참전을 선택한 진정한 동기는 참전을 해야만 전후 협상 과정에서 발언권이 보장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2월 28일 백악관을 방문한 민간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쟁에 참여한 국가의 수반이라면 미국 대통령은 평화협상 테이블에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중립국 대표로 간다면 기껏해야 '문틈으로 떠드는' 정도밖에 할 수 없겠지요. 미국 대통령의 말이 먹히려면 협상 테이블에 참가해서 우리의 외교정책을 밀어붙이고 옹호해야지, 안 그러면 아무것도 될 수 없어요."  

윌슨의 선전포고 요청에 대해 상원에서는 단 6명만이, 하원에서는 50명이 반대했다. 반대 의원들은 윌슨을 '월스트리트의 앞잡이'라고 공격했다. 조지 노리스 상원의원 "우리는 이제 성조기에 달러 문양을 그려 넣게 될 것"이라고 비아냥댔다. 로버트 라폴레트 상원의원은 참전 문제를 놓고 국민투표를 한다면 반대가 10배 이상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만큼 미국 국민들은 유럽 열강들이 벌이는 전쟁에 관심이 없었다. 정부는 자원병 100만 명 확보를 호소했지만 참호전과 독가스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열기는 식어갔다. 자원병 모집 공고 6주 만에 입대를 자원한 사람은 7만 3000명에 불과했다. 결국 의회는 징병제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선전포고 이후 1918년 11월 11일 종전까지, 이번에는 미국 정부가 연합국에 93억 8631만 달러를 대출해 준다. 영국이 41억 3600만 달러, 프랑스가 22억 9300만 달러를 빌렸다. 그러나 사실 영국 정부나 프랑스 정부는 그 돈을 만져보지도 못했다. 그 돈은 연합국에 공급되는 전쟁물자 대금으로 미국 재계가 부리나케 쓸어갔다. 미국 재계는 대부분 모건그룹, 아니면 록펠러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나이위원회 활동은 성공했는가? 

나이위원회의 근본 취지는 미국이 새로운 해외 전쟁에 말려드는 것, 그리고 미국 군대가 기업인들의 해외투자 보호수단으로 쓰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1차 대전 동안 군수기업 등의 부당한 이득 취득이 있었는지, 무기 제조업자들이 선전 활동을 통해 정부를 전쟁으로 몰아갔는지를 조사하는 한편 앞으로 전쟁 수행 과정에서 대기업의 이윤 추구가 일절 없도록 정부가 모든 무기 제조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해야(무기산업 국유화) 하는지 등 향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1936년 4월 3차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마친 나이위원회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공하지 못했다. 첫째, JP모건과 록펠러, 듀퐁 등 미국 대기업들이 전쟁을 통해 어마어마한 이윤을 취했다는 사실은 밝혀냈다. 

둘째, 무기업자가 정부를 전쟁으로 몰아갔는지에 대해서, 즉 윌슨의 참전 동기가 JP모건 구하기였는지에 관해서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했으나 정치, 언론, 대학 등 제도권세력의 물타기 작전에 희석됐다. 즉 '미국 이상주의 외교의 위대한 선구자, 윌슨'이라는 신화는 큰 타격을 입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셋째, 전쟁으로부터 이윤을 제거하겠다는 노력은 완전히 실패했다. 나이 의원을 비롯한 위원들은 한때 무기산업 국유화라는 근본적 개혁까지 고려했고, 현실적으로는 전쟁 이윤에 대해 중과세하는 법안을 제출했으나 이 모든 노력은 5년간 미 의회 내에서 잠자고 있다가 1941년 12월 미국의 2차 대전 참전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930년대 대중들의 분노에 전전긍긍했던 대기업들은 2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취한다.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이 "자본주의 국가에서 전쟁을 하려면 전쟁 수행 과정에서 기업들이 돈을 벌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들이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것이므로"라고 말할 정도였다. 미국 대기업은 2차 대전에서 1차 대전보다 훨씬 더 큰 이윤을 취했으며 이후 미국에는 군산복합체가 정착되면서 영구 전쟁 국가로의 길을 걷게 된다.

나이위원회의 활동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미 국민의 지지는 차고 넘쳤다. 출범 1년이 채 안 된 1934년 12월 말 현재 나이위원회 활동을 지지, 격려하는 편지가 자그마치 15만 통이나 접수됐다. 위원회 활동이 끝나가던 1936년 3월 7일 갤럽 여론조사에서 "사적인 이윤을 위한 무기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82%가 '그렇다'(18% '아니다')고 대답했다.  

이 여론조사에서 펜실베이니아주 서부의 한 잡화상은 "지난 수 세대 동안 무기 관련 이윤 시스템이 우리를 전쟁으로 몰아갔다"고 지적했다. 이는 윌슨이 JP모건을 연합국 전담 금융거래자로 허용했을 때 이미 "참전으로 가는 길은 뚫렸다"는 나이 위원장의 발언과 정확히 같은 맥락이다. "미국에게 전쟁이란 국민을 속여 대기업을 배불리는 수단이다"(노엄 촘스키), 또는 "외국과의 전쟁은 부르주아계급이 생각하기에 이득이 생길 것 같을 때만 일어난다"(조지 오웰)는 발언도 마찬가지다. 

더글라스 맥아더보다 더 용맹했고, 그보다 훨씬 군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스메들리 버틀러 장군의 반전 고전 <전쟁은 사기다>가 출간된 것도 이때였다(1935년). 이 책에서 버틀러 장군은 다음과 같이 전쟁의 실상을 고발한다.  

"전쟁은 사기다. 언제나 그래왔다. 전쟁은 아마도 가장 오래됐고, 손쉽게 가장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으며, 그리고 확실히 가장 사악한 사업이다. 나아가 (한 나라의 국경을 넘어) 국제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사업이다. 또한 이윤은 돈으로 계산되지만 손실은 인간의 목숨으로 지불되는 유일한 사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사기'야말로 전쟁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라고 믿는다. 전쟁이 실제로 무엇인가 하는 것은 '(권력) 내부'의 극소수 사람들만이 알 뿐이다. 전쟁은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가 희생하는 사업이다. 전쟁을 통해 극소수의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다."  

"나는 현역 군인으로 33년 4개월을 복무했으며 그 대부분을 대기업과 월가, 은행가들을 위한 고급 조폭(a high class muscle man)으로 일했다. 한마디로 나는 자본주의를 위한 사기꾼, 조폭이었다.  

1914년 나는 멕시코, 특히 탐피코를 미국 석유업계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이티와 쿠바를 내셔널시티뱅크가 돈을 긁어모으기에 적당한 장소로 변모시키는 것을 도왔다. 월가의 이익을 위해 중미 6개 국가를 침탈하는 것을 도왔고, 1902∼1912년에는 브라운브라더스국제은행을 위해 니카라과 소탕을 도왔다.  

1916년 미국 설탕업계가 도미니카공화국에 진출하는 것을 도왔으며, 1903년에는 온두라스를 미국 과일 기업들이 활동하기에 적당한 곳으로 만들어주었다. 1927년에는 스탠다드오일이 아무런 방해 없이 중국에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알 카포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해줄 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기껏해야 시카고의 3개 구역에서 사기 행각을 벌였지만, 나는 세 대륙에 걸쳐 그 짓을 했으니 말이다." 

나이위원회는 1936년 4월 발표한 3차 보고서를 통해 전쟁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기심을 추구하는 조직(기업)이 국가로 하여금 군사행동에 나서도록 선동하고 겁박하는 행위를 방치하는 것은 세계 평화에 반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 국민의 염원, 나이위원회의 지적을 미국의 지배엘리트는 교묘하게 회피하고 거부했다. 일례로 <뉴욕타임스>는 위에 말한 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뿐만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 <시카고 트리뷴> 등 유력 언론, 월터 리프먼 등 저명한 언론인들도 나이위원회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모두 회의적, 또는 적대적 태도를 취했다. 즉 대기업을 비롯해 미국의 제도권 세력은 전쟁을, 전쟁을 통한 이윤 획득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J. P. 모건, 나이위원회에 출석하다 

1936년 1월 7일, 미국 금융계의 최고 거물 J. P. 모건이 나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했다. 세기의 격돌이라고 할 만한 빅 이벤트였다. 만일 윌슨의 참전 결정이 JP모건의 군수물자 외상 대금 및 대출금 회수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 입증된다면 미국 정부와 대기업의 도덕성과 정당성은 추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해 위원회 측은 1년 가까이 금융회사 JP모건의 각종 문서 200만 건을 조사했다. 나이 위원장은 라디오 방송에 나가 국민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대기업의) 상업적 이익 보장을 위해 미국의 중립정책을 연합국에 대한 대출을 허용하는 수준까지 밀고 갔습니다. 연합국들은 미국이 결국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대해(결국은 참전할 것이라는) 일말의 의구심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잘 몰랐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치부책을 누가 쥐고 있는지,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를 말입니다." 

J. P. 모건은 이런 추정을 부인하는 9쪽짜리 성명을 발표했다. 연합국들에 대한 대출은 (전쟁의 승패와 관련 없이) 회수에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들이 '대출금의 안전 회수'를 위해 정부에 압력을 넣어 참전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판타지 같은 허구의 이론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1월 7일 청문회에서 위원회 측은 전쟁이 일어난 1914년 윌슨이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국무장관의 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로버트 랜싱 전쟁장관 편에 서서 미국 은행가들이 교전 당사국에 대출하는 것을 허용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를 공개했다(이 결정 직후 브라이언은 장관직을 항의 사퇴했다). 전쟁의 한쪽 당사국에 전쟁 자금을 대출해주면서 중립을 주장하는 것은 사실 '눈 가리고 아웅'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또한 나이 위원장은 윌슨이 참전 이전에 이미 연합국들의 밀약을(연합국이 이길 경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 동맹국 영토를 분할 지배한다는) 알고 있었으며, 상원 외교위원들에게는 나중에(1919년) 베르사유 평화회담에서 비로소 알게 됐다고 '허위' 증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윌슨이 의회와 국민을 기만했다는 얘기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현대사>의 공저자 올리버 스톤과 피터 커즈닉은 1차 대전 당시 윌슨의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나이 위원회 조사는 윌슨이 사실상 국민을 속이고 전쟁에 참전했음을 보여주었다. 윌슨은 연합국들에 대한 대출과 기타 지원을 허용함으로써 중립정책을 해쳤고, 독일군의 만행을 의도적으로 과장했으며, 연합국들 간의 밀약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은폐했다. 1차 대전은 민주주의 확보를 위한 전쟁과는 거리가 멀었고. 제국의 전리품을 나눠먹기 위한 전쟁이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현대사> 153쪽)  

그러나 우드로 윌슨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민주당 의원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 사태를 두고 당시 <워싱턴 포스트>는 "항의와 분노의 회오리바람이"이 몰아쳤다고 표현했다.  

상원의원 톰 코널리(텍사스)가 공격을 주도했다. 그는 1월 17일 상원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나는 특위에서 주장하는 혐의들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악랄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니까요. (중략) 특위 위원장이라는 자가 우리를 평화로 안내하겠다고 하면서 돌아가신 분(윌슨)에 관한 역사의 기록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그분은 위대했고 선하셨으며 살아생전에는 적들과 감연히 맞선 분이었습니다."  

그는 이어 나이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1차 대전 관련 미국 역사 기록에 먹칠을 하려는 가증스러운 짓거리"라고 비난했다. 

다음날에는 윌슨 행정부 말기 재무장관을 역임한 카터 글래스 상원의원(버지니아)이 공격에 나섰다. 그는 나이에 대해 "악랄한 중상모략, 돌아가신 대통령에 대한 말로 다할 수 없는 비방, 윌슨의 무덤에 오물을 뿌리는 짓거리"라고 비난했다. 주먹으로 탁자를 얼마나 세게 두들겼는지 들고 나온 문건에 마구 피가 튀었다. 글래스 의원은 이렇게 고함쳤다.

"아니 이런 악의적인 선전선동이 어디 있습니까. 거짓 주장입니다. 모건 가문이 우드로 윌슨의 중립정책을 바꿔놓았다니 말이나 됩니까!" 

나이 위원장은 차분하게 반박했다. "정말 놀라운 일은 특위 활동을 잠시 중단하기 위한 '사전 조율' 같은 것이 없었는데, 모건과 그 일파들이 출석하면서 특위에 대한 적대감이 분출됐다는 사실"이라며 사과 발언을 하는 대신 관련 서한과 문건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전리품을 나눠 먹기로 한 사실을 알면서 참전했다. 그런데 우리는 연합국들 간에 비밀협약이 있었다는 사실을 베르사유 평화회담에 가서야 비로소 폭탄 같은 뉴스로 알게 됐다"(5편에 계속됩니다.)  

 

관련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고생 끝에 잡았지만... 애인 말고 두목을 잡는 법

[보이스피싱의 모든 것 ⑤] 지난해 붙잡은 피의자 중 '총책'은 0.3%뿐... 어떻게 뿌리뽑을까

18.12.30 10:59l최종 업데이트 18.12.30 10:59l
그래픽: 고정미(yeandu)

 

 

 

개그 소재로도 종종 쓰이는 보이스피싱,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오마이뉴스>는 총 일곱차례에 걸쳐 보이스피싱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고, 범죄조직의 실체를 분석하는 한편, 현장에서 보이스피싱과 대면하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아봤다. 이 기사는 다섯번째다.[편집자말]
 경기 안양만안경찰서는 검찰과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기로 억대를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이모(23)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범죄수익금을 들고 웃는 모습을 찍어 서로 공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  2016년 3월 22일 경기 안양만안경찰서는 검찰과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기로 억대를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이모(23)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범죄수익금을 들고 웃는 모습을 찍어 서로 공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피의자 신원불상으로 기소중지를 할 때마다 '이러려고 검사가 됐나' 싶었다."

검찰 내에서 '보이스피싱 저승사자'로 불리는 박경세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변호사시험 2기)는 자신이 악착같이 수사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기소중지는 피의자의 소재불명 등으로 수사를 더 이상 진행 할 수 없을 때 내려지는 결정이다.

<오마이뉴스>가 취재 중 만난 판사는 한 지방법원 영장판사로 근무했을 때 보이스피싱 피의자들을 상대로 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떠올리며 "두목 애인은 있었는데, 두목은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보이스피싱 범죄 피의자 상당수가, 특히 총책으로 불리는 거물급 피의자는 결국 수사망을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검거자 중 절대다수는 현금인출팀 말단

 보이스피싱 직책별 검거인원
ⓒ 고정미

관련사진보기


보이스피싱 조직은 완전체 조직이다. 피해자를 낚는 '콜센터팀'과 낚인 피해자들 대면하는 '현금인출팀'으로 나뉘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그 위에는 우두머리인 '총책'이 최정점에 있다(관련 기사 : "조폭보다 훨씬 무섭다" '완전체 기업' 대해부).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검거된 보이스피싱 범죄 피의자 2만 5473명 가운데 총책은 72명에 불과하다. 피라미드식 구조로 이뤄지는 범죄 특성상 총책보다 콜센터팀이나 현금인출팀의 검거인원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극소수의 총책만 검거되고 있다는 게 김 의원실의 설명이다.

수사기관에 붙잡히는 보이스피싱 범죄자 대다수는 피해자에게 현금을 받아 전달하는 현금인출책이다. 콜센터는 주로 해외에 위치한 데다 최근에는 1차 콜센터, 2차 콜센터 등으로 분화돼 더욱 검거가 쉽지 않다. 현금인출책의 경우 은행이나 대면 현장에서 검거가 가능하지만 콜센터의 경우 신고가 사후적으로 이뤄진다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

현금인출팀 역시 점 조직으로 운영돼 검거되더라도 수사가 보이스피싱 조직 전반으로 확대되기 어렵다. 현장에서 검거되는 말단 조직원은 상위 지시자 한 명 외엔 윗선과 소통하지 않는다. 한 검사는 "현금인출책을 검거하고 거기에 한 명을 더 검거하는 경우도 운이 좋을 때"라고 설명했다.

[해법 ①] 머리를 잡으려면 : 국제공조
 
 27일 오전 서울 마포 경찰서에서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 수사대 수사관들이 제주에서 대만인이 운영한 중국인 상대 대규모 보이스피싱 콜센터를 검거하고 압수한 증거품을 조사하고 있다.
▲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수사관들이 2017년 12월 27일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대만인이 제주에서 운영한 중국인 상대 대규모 보이스피싱 콜센터를 검거하고 압수한 증거품을 조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결론적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까지 일망타진을 위해서는 먼저 콜센터팀을 잡아야 한다. 현금인출팀은 조직원이 사실상 개별적으로 움직이지만, 콜센터는 상호 관계가 두터운 경우가 많다. 주로 가족·친척·지인 소개로 합류한 조직원들은 해외에 거점을 둔 콜센터로 건너간다. 조직원 한 명을 잡거나 콜센터 위치정보 등을 알아낼 경우 조직의 상당 부분을 잡아낼 수 있다. 그렇기에 콜센터가 위치한 국가와의 국제공조가 중요하다.

지난 2015년 경찰은 중국 공안과 공조 수사를 벌여 처음으로 중국 내 보이스피싱 총책과 조직원 45명을 무더기로 검거했다. 수사에 참여한 경찰 관계자는 "콜센터 위치가 중국으로 확인되면 통상 수사를 종결했었는데, 당시에는 경찰청 고위 간부가 직접 중국을 방문해 공안부의 수사 책임자를 설득한 끝에 중국 조직원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인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로 확산돼 벌어지는 것으로 수사기관은 파악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과의 협조가 어려워 총책 등 조직 일망타진이 어려웠지만, 공조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또 중국인 보이스피싱 피해자도 늘어나는 추세라 중국 공안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할 것으로 수사기관은 내다보고 있다.

[해법 ②] 범죄 도구를 없애라 : 대포통장과 대포폰 차단 
 
 전남 여수경찰서는 30일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해 수억원을 가로챈 조선족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2개 조직원 14명을 붙잡아 그 중 7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증거품.
▲  전남 여수경찰서는 2015년 6월 30일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해 수억원을 가로챈 조선족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2개 조직원 14명을 붙잡아 그 중 7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증거품.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국제공조수사가 사후 처벌을 통한 예방방법이라면 애초 범죄에 쓰이는 도구를 차단하는 사전 예방방법도 있다. 보이스피싱에 사용되는 대표적 도구가 대포통장과 대포폰이다. 이 두 도구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수사망을 피해 숨을 수 있게 해주는 '무기'다. 금융범죄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 범죄 도구인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없애는 게 근본적인 방안이라고 말한다.

건수는 점점 줄고 있지만 대포통장은 여전히 보이스피싱 범죄의 주요 수단이다. 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의 자료에 따르면, 대포통장을 이용한 사례는 지난 2016년 약 4만 6천 건(월평균 3885건)에서 지난해 상반기에는 약 2만 건으로 월평균 3497건으로 감소했다.

이런 감소세는 금융당국이 신규 계좌 개설 절차를 강화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은행에서 새로운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분증, 주민등록등본을 지참하는 동시에 계좌 개설 목적 등을 자세히 밝혀야 한다. 그러나 대포통장만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보이스피싱 조직에 유통하는 일당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대포통장에 비하면 대포폰은 제재가 훨씬 덜 하다. 1인당 개설할 수 있는 휴대폰 개수에 사실상 제한이 없다. 주요 이동통신사 3사(SKT·KT·LG)와 알뜰폰 약 30개 사를 포함해 사용자 한 명이 휴대폰을 100대 넘게 개통할 수 있다. 휴대폰을 개설하면서도 개통자가 직접 대면할 필요도 없다.

박경세 검사는 범죄 도구 마련에 많은 자금이 들게 하는 방식으로 범죄 이익의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보이스피싱 조직은 대포통장과 대포폰에 많은 돈을 사용한다"라며 "대포통장, 대포폰의 시세가 올라야 조직이 적자가 본다, 그렇기 위해선 대포통장, 대포폰 양도 사범들을 엄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타인에게 팔아넘기는 범죄자의 형량을 높이면 그에 따라 시세도 올라간다는 주장이다.

[해법 ③] 엄벌을 위하여 : 걸리면 '조직 범죄'로
 
 충북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일 중국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으로부터 사기 수법을 배워 국내에서 서민들을 등친 한국인 일당이 무더기로 적발했다. 사진은 경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들.
▲  충북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5년 6월 2일 중국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으로부터 사기 수법을 배워 국내에서 서민들을 등친 한국인 일당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사진은 경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한국에서 보이스피싱이 성향하는 것은 법이 관대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바로 양형의 문제다. 대포통장·대포폰을 만들어 보이스피싱 범죄에 건네고 그 대가로 돈을 챙기는 범죄자는 보통 무죄나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미국의 경우에는 징역 수십 년을 받을 수 있는 범죄다.

총책 등 주범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지난 2015년부터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피고인에게 징역 5년 이상을 구형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지만, 재판부마다 다르게 판단하고 낮게는 징역 1년을 선고하는 사례도 있다.

한 판사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적용되는 '사기죄'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한 사람이 수억 원 이상 피해를 당하는 게 아니라 수십 명의 사람이 각각 수백만 원의 피해를 본다"라며 "사기죄로는 기껏해야 징역 10년 이하고, 상습 사기로 걸어도 형량이 높지 않다, 상한선 10년도 총책을 기준으로 하면 나머지 공범들의 형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한 사람이 5억 원 이상을 손해 본다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돼 재판부가 가중처벌을 내릴 수 있지만, 개별 사건이 여러 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 사기로밖에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검찰은 보이스피싱 조직 윗선에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기도 했다. 형법 제114조인 범죄단체조직죄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했을 경우 성립하며, 이전까지는 조직폭력배에게 주로 적용돼왔다.

그러나 지난 2016년 8월 수원지검 안산지청이 기소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조직원만 110명에 달하는 '기업형 조직'으로 피해자들에게 총 약 54억 7천만 원을 가로챘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조직 핵심 간부들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기소한 건 전국적으로 처음"이라고 밝혔다.

박경세 검사는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할 경우, 양형이나 구속 여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범죄단체조직죄로 재판에 넘겨진 총책에게 징역 20년을 확정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박석운 “촛불주역들은 모두 ‘팽’ 당했다”

[원희복의 인물탐구]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박석운 “촛불주역들은 모두 ‘팽’ 당했다”

글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입력 : 2018.12.30 09:36:01 수정 : 2018.12.30 09:45:06

 


 

[원희복의 인물탐구]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박석운 “촛불주역들은 모두 ‘팽’ 당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촛불혁명의 ‘주역’이다. 그는 박근혜 정권에 맞서 삭발과 단식까지 했고, 2015년 민중총궐기를 주도했으며, 2017년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그래서 그는 촛불시민을 대표해 2017년 12월 5일 독일 베를린까지 가서 에버트 인권상을 받았다. 그는 2018년 청와대에 들어가 ‘떡국’도 얻어먹었다. 이는 청와대도 그를 촛불 주역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는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이며, 민중공동행동 박석운 공동대표(63)다. 그러나 그는 요즘 불 꺼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아무런 반응 없는 청와대 앞에서 ‘여전히’ 주먹을 치켜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촛불 핵심 주역이던 민중총궐기투쟁본부를 재규합, ‘민중공동행동’이라는 연대단체까지 만들었다. 왜 그는 촛불 이전으로 되돌아갔을까. 

-왜 촛불혁명 주인공이 이 추운 겨울에 청와대 앞에서 손을 치켜들고 있는가.

“우리가 문재인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이다. 그런데 개혁에 역주행하니 저지하러 나섰다. 대통령이 발표한 경제활력안을 보고 경악했다. 사회공공시설(SOC)에 대한 전면적 민간 개방은 이명박·박근혜 시절에서도 못했던 것이다. 너무 빨리 ‘노무현 말기’처럼 되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이제 채 2년도 안 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는 것도 고민스러웠을 것이다.

“그렇다. 일면 모순이지만 개혁 역주행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재인 정부가 왜 개혁 역주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사실 왜 그런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나마 제일 진보적이고, 나머지 모두 우클릭하고 있다. 촛불항쟁에서 제일 미진했던 부분이 국회 개혁이다. 국회가 적폐의 온상으로, 민주당에도 준적폐세력이 끼여 있다. 청와대 핵심 보좌진들은 내공이 약하고, 겉멋만 들었다. 개혁의 깃발만 흔들었지 내실화에 대한 내공이 약하다. 초기에 이벤트로 감동은 줬지만 막상 서민들의 삶에 변화를 주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전교조 처리문제, 통합진보당 해산 원인 규명, 그리고 민주노총에 대한 불신 등은 보수세력이 제기하는 소위 ‘촛불청구권’이라는 진보 갈라치기 프레임에 빠졌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민주당이 촛불을 주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일종의 자격지심이나 경계심 아닐까.

“촛불청구권이라는 얘기는 정말 웃기는 것이다. 촛불은 2015년 노동자·농민·도시빈민 등이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민중총궐기 투쟁에서 시작했다. 1~3차 촛불항쟁도 민중총궐기투쟁본부에서 주도한 것이다. 그 탄압으로 백남기 농민이 죽었다. 촛불 양상은 민중들의 절규에 일반 시민들이 호응해 전국민적 항쟁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가장 앞장선 민중이 가장 소외됐다. 백남기 농민이 죽고, 트랙터 투쟁으로 제일 앞장선 농민에 대해 대통령은 연두회견에서부터 농민의 ‘ㄴ’ 자도 꺼내지 않았다. 촛불청구서는커녕 노동자·농민·도시빈민 모두 ‘팽’당했다.”

-바로 그 팽에 분노해 민중공동행동을 만든 것인가. 

“팽당한 것에 대한 불만보다 제대로 된 적폐청산과 개혁 역주행의 저지를 위해 만든 것이다. 지난해 5월 민중공동행동을 만든 결정적 계기가 최저임금산입 범위 개악과 은산분리 개악을 보면서다.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이 일어서 50여개 단체가 결성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단체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게 진화·발전시킨 것이다.” 

지난 촛불혁명 과정을 좇아 <촛불민중혁명사>를 저술한 기자의 입장에서 촛불혁명은 친일 및 민주화 역사왜곡에 항의하는 민주화 원로 모임 가운데 함세웅 신부의 퇴진행동이 시작해 민주노총 중심의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희생자 연대모임 416연대 등이 가세하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자 백남기투쟁본부가 촛불혁명을 이끌었다. 뒤늦게 가세한 시민사회단체 출신은 청와대·정부 등 요직에 등용됐다. 

그러나 처음 촛불을 든 전교조와 민주노총, 그리고 농민들은 여전히 추위에 떨고 있다. 노동자가 요구한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노동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노조이고, 심지어 민주노총은 ‘귀족노조’라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박 공동대표는 “전교조 문제에 대응하는 모습은 일종의 ‘패륜’, 표현이 너무 과하다면 촛불에 대한 배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중공동행동 박석운 공동대표가 2018년 12월 17일 한국서부발전 김용균씨 죽음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민주노총 제공

민중공동행동 박석운 공동대표가 2018년 12월 17일 한국서부발전 김용균씨 죽음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민주노총 제공 

■촛불 100대 과제 중 39개 과제 진척 없어 

민중단체 진영에서는 전두환·노태우 정권도 단행한 양심수 석방을 문재인 정부가 외면하고 있는 것도 대표적 섭섭함으로 꼽고 있다. 특히 8대 종단 대표가 청와대를 방문해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요청했지만, 문 대통령은 이를 외면했다. 박 공동대표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은 점점 옥타브가 높아가는 느낌이다. 

그래도 기자가 ‘한반도 평화 정착은 가장 큰 성과’라고 문재인 정부의 치적을 언급했다. 이에 그도 “뒤뚱거리긴 하지만 한반도 평화의 흐름이 주류가 된 것은 주요한 성과”라고 인정했다. 지난 5월 민중공동행동 발기문에는 촛불이 요구한 100대 과제 중 39개 과제가 전혀 진척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그는 “그나마 그때는 ‘똑바로 하라’는 것에 중점을 뒀기 때문에 후하게 점수를 매겨준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민중공동행동의 비판처럼 문 정부를 탄생시켰던 민중·진보세력은 급속히 이반하는 반면, 보수세력은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도 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층 이반 실태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산토끼를 잡기 위해 집토끼를 버리는 ‘우클릭’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이 방법이 20년 집권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도 청와대의 그런 정국 인식이 의심스럽다. 만약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3대 실패는 부동산 폭등과 보수대연정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점, 그리고 한·미 FTA로 진보세력에 등을 돌리고 신자유주의에 빠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보수언론과 경제관료가 만든 프레임에 빠지고 있다. 그렇게 가선 안 되기 때문에 우리 민중세력이 나선 것이다.”

박 공동대표는 1955년 부산 출신이다. 어머니가 야채행상을 하는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그는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부산고를 나와 1973년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집안을 챙겨야 하는 의무감 때문에 판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유신헌법을 배워보니 너무 엉망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1974년 반유신·민주화운동인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는 만 스무 살이 안 된 ‘소년범’으로 4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기소유예로 석방된 그는 대학에 복학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1976년 12월 8일 졸업시험까지 치르고 한국은행에 특채까지 됐다. 그러나 그해 12월 박동선 사건(한국 정부가 박동선을 통해 미국 의회와 정부에 거액의 뇌물을 뿌린 사건)이 터졌다. 그를 포함한 법대생 3명이 이 박동선 사건의 진상 공개와 유신 철폐, 긴급조치 해제를 요구했다. 그는 다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1979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곧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는 10·26사태가 터지고 제적생들이 복학하는 ‘서울의 봄’이 왔다. 

1980년 3월 그도 대학에 복학해 복학생대책협의회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전두환의 신군부가 5·18 학살을 일으켰고, 그는 1년여 도피생활 끝에 다시 검거됐다. 게엄령이 끝나 석방된 그는 그나마 1986년 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1984년부터 조영래 변호사가 운영하던 시민공익법률상담소에서 일했다. 그는 “7~8월 노동자 대투쟁 때 전국을 다니며 노동법 상담을 했다”고 말했다. 89년 권인숙씨가 만든 노동인권회 초대 소장을 하면서 산재피해자 상담활동을 했다. 91년 원진레이온 투쟁이 그 대표적 활동이다. 
 

■그동안 역임한 집행·공동위원장 100여개 

그는 김영삼 정권 때인 1996년 ‘노동법 날치기 저지 범국민대책위’와 ‘올바른 노동법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으로 첫 연대모임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그는 성은 ‘집’이요, 이름은 ‘행위원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각종 시국 관련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가 맡은 집행·공동위원장은 100여개나 됐다. 2007년 한·미 FTA 반대 시위로 구속됐으나 집행유예로, 2008년 광우병대책위 투쟁으로 다시 구속됐다. 2008년부터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를 10년간 했고, 2009년부터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로 지난 촛불혁명을 주도했고, 현재 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로 있다. 

기자가 ‘언제까지 길거리에서 손을 치켜들 것인가, 운동권에서 은퇴할 생각은 없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는 “나도 시골 가서 아내와 여행을 즐기며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 “민주화가 이뤄지고 노동자·농민들이 잘사는 세상이 되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 말은 은퇴할 생각이 없다는 말과 같다. 오히려 그는 2019년 새로운 ‘과업’을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우클릭을 보면서 결국 민중문제는 민중 자신이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원희복의 인물탐구]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박석운 “촛불주역들은 모두 ‘팽’ 당했다”

-민중세력의 정치세력화는 과거에도 추진했지만, 일정한 한계에 부딪친 일이다. 민중·진보세력 내부도 쌓인 앙금이 아직 많아 보인다. 

“알고 있다. 현장 노동자·농민들에게도 허무·패배주의가 팽배해 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민중의 정치세력화다.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민주빈민연합 등 기층 민중조직이 감동을 만들어야 한다. 2020년 총선을 예상하면 민중당·노동당·녹색당·사회변혁노동자당은 ‘무난한 안락사’가 될 것이다. 정의당은 자기들은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449통(고스톱에서 아슬아슬하게 점수를 못내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의당은 현 여론지지율로 독자적 원내교섭단체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착각이다. 정의당의 가장 큰 약점은 기층 대중조직이 없다는 것이다. 선거는 기층 대중조직이 돈과 사람과 표를 모아줘야 한다. 돈·표·사람이 결합되면 제1야당, 아니면 확실한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 그 기세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민중공동행동의 공식 입장인가. 

“아니다. 개인적 생각이다. 나중에 진보진영에 공식 제안하려 한다. 이 작업은 실제 노동자·농민들이 해야 하고, 우리와 같은 원로들은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미 긴조세대(70년대 긴급조치 학생운동권 세대)는 물리적 나이도 60세 이상으로 운동권에서도 은퇴할 나이다. 하지만 그는 2020년 총선거를 겨냥해 진보진영의 대통합을 도모하고 있다. 그를 보면 마치 통통 튀는 찰고무처럼 단단하고 집요하다. 그는 부산고·서울대 법대 등 소위 일류 고교·대학을 나왔다. 유명한 삼성 장충기 사장도 고교 동문이고, 돈 잘 버는 로펌 대표도 대부분 대학 동문이다. 기자가 “동창회에는 가느냐”는 질문에 그는 “간다”고 대답했다.

기자가 다시 “대기업 임원이나 판·검사로 편안하게 산 동창을 보면 어떤가”라고 아픈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는 “동창회에 가면 내가 제일 큰소리를 치고, 친구들은 나의 행동을 존중해 준다”면서 “인생에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아쉬움이란 촛불민중항쟁으로 대통령만 바꾸고 나머지 정치권력을 바꾸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300936011&code=940100#csidx331aaa250e097519ae4f804fe245b0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예멘군 사우디남부 미사일 타격 및 사우디휴전협정 다수 위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12/30 11:20
  • 수정일
    2018/12/30 11:2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사우디 다수 휴전협정 위반 및 예멘군 사우디남부 공격
 
번역, 기사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8/12/29 [11:57]  최종편집: ⓒ 자주시보
 
 

예멘군 사우디남부 미사일 타격 및 사우디휴전협정 다수 위반

 

지난 12월 6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시작된 유엔지원 예멘평화정착을 위한 예멘휴전협정회담은 일주일 간의 협상 끝에 마침내 예멘전의 예멘 양 당사자들인 예멘군과 하디세력 사이에 정전협정에 합의서명을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 유엔은 12월 18일부터 예멘휴전협정이 발효된다고 발표를 하였으며, 예멘전의 가장 핵심지역이자 전략적 도시인 후데이다흐 항구 도시에 휴전협정이행감시단을 파견하였다.

 

하지만 이 같은 휴전협정합의와 유엔휴전협정이행감시단의 예멘 현지 파견에도 불구하고 예멘전은 이전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사우디주도연합군들과 예멘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예멘전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지는 원인은 본지에서 이미 분석을 하였듯이 예멘전의 당사자들이자 주요 침략자들인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과 그 괴뢰국 사우디아라비아가 휴전협정협의에 참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우디가 이끄는 연합군들은 휴전협상기간과 그 이후에도 이전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예멘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계속해왔다.

 

이러한 사우디주도연합군들의 공격에 맞서 예멘군들 또한 사우디군과 그 고용병들에 대해 강력하게 반타격을 가하고 있다. 예멘군과 사우디주도 연합군들 사이의 격렬한 전투와 휴전협정위반에 대해 이란의 이르나, 레바논의 알 마스다르가 12월 28일 자에서 “사우디주도 연합군들 24시간 동안 64번 휴전협정위반” “후티군 여러 발의 미사일로 사우디아라비아 남부 포격”이라는 제목으로 관련 사실을 전하였다.

 

먼저 알 마스다르의 보도에 의하면 예멘군들은 12월 27일 밤 사우디아라비아 남부에 여러 기의 미사일을 발사하였으며, 예멘 국경근처에 있는 많은 군사기지들을 목표로 타격을 하였다. 로켓대대를 이끌고 있는 후티군들은 아시르 지방의 사우디군 집결지를 향해 《질잘 - 1》 미사일 두 기를 발사하며 공격을 시작하였다.

 

예멘군들은 자신들의 미사일이 아시르 지방 알리브 네거리 사우디군들의 집중지를 타격하였으며, 그 공격의 결과 국경지방에서 여러 명의 사우디 병사들이 숨지고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후티군들은 지잔과 가까운 지방에 있는 사우디군 주둔지들을 향해 또 다른 미사일들을 발사하였다. 후티군들은 자신들의 미사일들이 지잔 지방의 예정된 목표물들을 정확하게 타격하였으며, 그 공격 과정에서 여러 명의 사우디 군들이 죽고 다쳤다고 주장하였다고 알 마스다르가 예멘전황을 전하여주었다.

 

한편 이란의 이르나는 예멘군과 사우디주도연합군 사이에 맺어진 휴전협정을 연합군들이 24시간 동안 64차례나 위반하였다고 예멘군 대변인 준장 야히야 싸리가 금요일에 말했다고 보도한 예멘 싸바통신(Saba news agency - SNA)을 인용하여 보도하였다.

 

예멘군 장군은 예멘군 측에서는 계속 휴전협정을 준수하고 있는 과정에서 사우디주도연합군들의 협정위반이 발생을 하였다고 말했다. 싸리는 연합군들이 민간인 거주지역들에 대해 51회에 걸쳐 공격을 감행하였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르나는 “예멘전의 예멘 양 측은 스톡홀름에서 1주일간의 협상 끝에 12월 13일 휴전에 합의를 하였었다. 12월 18일부터 휴전협정이 발효되었지만 예멘 당국자들은 사우디주도연합군들이 협정을 반복적으로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고 보도하여 휴전협정합의와 발효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주도연합군들이 협정을 위반하면서 계속적으로 예멘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여주었다.

 

이처럼 현재 예멘전은 유엔 지원하에 이루어진 스톡홀름 예멘휴전협정체결과 발효에도 이전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전쟁 양 당사자 사이에 격렬한 전투기 지속되고 있다. 위에서도 이미 언급을 하였듯이 이와 같은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게 된 원인은 사우디주도연합군들이 예멘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면서 휴전협정을 위반하고 있는데 있다.

 

예멘전 역시 수리아전과 마찬가지로 서방제국주의연합침략세력들과 그 괴뢰들은 한결같이 교환한 술책을 쓰면서 상대국과 세계인민들을 기만 우롱하고 있다. 그들은 휴전협정을 맺었다고 상대편이 긴장의 끈을 늧추면 그 수간 더욱더 강력한 공격을 들이대어 자신들의 당초의 목적 즉 상대편을 무너뜨리고 지배체제를 구축하고자 준동을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과 그 괴뢰들의 교활성과 악랄성을 단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건 나를,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 번역문 전문 -----

 

후티군 여러 발의 미사일로 사우디아라비아 남부 포격

 

편집국 - 2018년 12월 28일

 

▲ 예멘의 싸바통신(Saba news agency - SNA)에 따르면 예멘군과 사우디주도연합군 사이에 맺어진 휴전협정을 연합군들이 24시간 동안 64차례나 위반하였다고 예멘군 대변인 준장 야히야 싸리가 금요일에 말했다. 예멘군 장군은 예멘군 측에서는 계속 휴전협정을 준수하고 있는 과정에서 협정위반이 발생을 하였다고 말했다.     ©이용섭 기자

 

베이루트, 레바논 (오전 8시 20분) - 후티(예멘)군들은 어제(12월 27일) 밤 사우디아라비아 남부에 여러 기의 미사일을 발사하였으며, 예멘 국경근처에 있는 많은 군사기지들을 목표로 타격을 하였다.

 

로켓대대를 이끌고 있는 후티군들은 아시르 지방의 사우디군 집결지를 향해 《질잘 - 1》 미사일 두 기를 발사하며 공격을 시작하였다.

 

후티군들은 자신들의 미사일이 아시르 지방 알리브 네거리 사우디군들의 집중지를 타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 공격의 결과 그 국경지방에서 여러 명의 사우디 병사들이 숨지고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후티군들은 지장과 가까운 지방에 있는 사우디군 주둔지들을 향해 또 다른 미사일들을 발사하였다.

 

후티군들은 자신들의 미사일들이 지잔 지방의 예정된 목표물들을 정확하게 타격하였으며, 그 공격 과정에서 여러 명의 사우디 군들이 죽고 다쳤다고 주장하였다.

 

 

----- 번역문 전문-----

 

사우디주도 합군들 24시간 동안 64번 휴전협정위반

 

테헤란, 12월 28일, 이르나(IRNA) - 예멘의 싸바통신(Saba news agency - SNA)에 따르면 예멘군과 사우디주도연합군 사이에 맺어진 휴전협정을 연합군들이 24시간 동안 64차례나 위반하였다고 예멘군 대변인 준장 야히야 싸리가 금요일에 말했다.

 

▲ 예멘군들은 12월 27일 밤 사우디아라비아 남부에 여러 기의 미사일을 발사하였으며, 예멘 국경근처에 있는 많은 군사기지들을 목표로 타격을 하였다. 로켓대대를 이끌고 있는 후티군들은 아시르 지방의 사우디군 집결지를 향해 《질잘 - 1》 미사일 두 기를 발사하며 공격을 시작하였다. 예멘군들은 자신들의 미사일이 아시르 지방 알리브 네거리 사우디군들의 집중지를 타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 공격의 결과 그 국경지방에서 여러 명의 사우디 병사들이 숨지고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섭 기자

 

예멘군 장군은 예멘군 측에서는 계속 휴전협정을 준수하고 있는 과정에서 협정위반이 발생을 하였다고 말했다.

 

싸리는 연합군들이 민간인 거주지역들에 대해 51회에 걸쳐 공격을 감행하였다고 덧붙였다.

 

예멘전의 예멘 양 측은 스톡홀름에서 1주일간의 협상 끝에 12월 13일 휴전에 합의를 하였었다.

 

12월 18일부터 휴전협정이 발효되었지만 예멘 당국자들은 사우디주도연합군들이 협정을 반복적으로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9341**1771

 

Follow us on Twitter @IrnaEnglish

 

 

----- 원문 전문 -----

 

Houthi forces fire several missiles into southern Saudi Arabia

 

By News Desk - 2018-12-28

 

▲ 예멘의 싸바통신(Saba news agency - SNA)에 따르면 예멘군과 사우디주도연합군 사이에 맺어진 휴전협정을 연합군들이 24시간 동안 64차례나 위반하였다고 예멘군 대변인 준장 야히야 싸리가 금요일에 말했다. 예멘군 장군은 예멘군 측에서는 계속 휴전협정을 준수하고 있는 과정에서 협정위반이 발생을 하였다고 말했다.     ©이용섭 기자

 

BEIRUT, LEBANON (8:20 A.M.) – The Houthi forces launched several missiles into southern Saudi Arabia last night, hitting a number of military targets near the Yemeni border.

 

Led by their rocket battalion, the Houthi forces began their assault by firing two Zilzal-1 missiles towards a gathering of Saudi soldiers in the Asir Province.

 

The Houthi forces claimed that the missiles hit the gathering of Saudi soldiers at the Aleeb Crossing in the Asir Province.

 

As a result of this attack, several Saudi soldiers were allegedly killed and wounded at this border province.

 

Furthermore, the Houthi forces fired another round of missiles towards the Saudi military’s positions in the nearby province of Jizan.

 

The Houthi forces claimed that their missiles hit their intended targets in the Jizan Province, killing and wounding several Saudi soldiers in the process.

 

 

----- 원문 전문-----

 

Saudi-led coalition violates ceasefire agreement 64 times in 24 hours

 

Tehran, Dec 28, IRNA – A ceasefire agreement between Yemeni forces and the Saudi-led coalition was violated 64 times in 24 hours by the coalition forces, Spokesman for Yemeni Armed Forces Brigadier General Yahya Saree said on Friday according to Yemen’s Saba news agency.

 

▲ 예멘군들은 12월 27일 밤 사우디아라비아 남부에 여러 기의 미사일을 발사하였으며, 예멘 국경근처에 있는 많은 군사기지들을 목표로 타격을 하였다. 로켓대대를 이끌고 있는 후티군들은 아시르 지방의 사우디군 집결지를 향해 《질잘 - 1》 미사일 두 기를 발사하며 공격을 시작하였다. 예멘군들은 자신들의 미사일이 아시르 지방 알리브 네거리 사우디군들의 집중지를 타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 공격의 결과 그 국경지방에서 여러 명의 사우디 병사들이 숨지고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용섭 기자

 

The violations occurred while the Yemeni side continued to uphold the ceasefire agreement, the Yemeni General said. 

 

Saree added that the coalition forces have launched 51 attacks on residential areas. 

 

The warring sides in Yemen agreed on a ceasefire on December 13 following a week of negotiations in Stockholm. 

 

The ceasefire agreement came into force since December 18, but the Yemeni officials have criticized the Saudi-led coalition for repeated violation of the agreement.

 

9341**1771

 

Follow us on Twitter @IrnaEnglish

 
광고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통일뉴스 선정 ‘2018년 한반도 10대뉴스’

3차례 남북정상회담/사상 첫 북미정상회담/3차례 북중정상회담...
데스크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8.12.29  23:14:27
페이스북 트위터
2018년은 한마디로 ‘격동의 해’, ‘전변의 해’였습니다. 얼핏 몇 가지만 꼽아도 △평창 동계올림픽 북측 대표단 참가와 특사 방남, △3차례 남북정상회담, △3차례 북중정상회담,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 등 대형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분단 70여년에 걸쳐 켜켜이 쌓인 한반도의 모순이 올해 1년 사이에 그 해결의 단초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한반도에서 경천동지할 변화 속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펼쳐졌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 변화의 핵심인 북미관계가 6.12정상회담 이후 그 이행과정에서 삐걱거리면서 연말까지 교착항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내년으로 순연(?)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역시 내년 1-2월로 예정된(?)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 기대를 걸면서 통일뉴스가 ‘2018년 한반도 10대뉴스’를 선정 발표합니다. / 편집자 주

 

1. 3차례 남북정상회담 (4월27, 5월26일, 9월18-20일)

   
▲ 올해 남북은 세 차례나 정상회담을 열었다. 사진은 제1차 정상회담 장소인 판문점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세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4월27일 판문점 남쪽 ‘평화의 집’, 5월26일 판문점 북쪽 ‘통일각’ 그리고 9월18-20일 평양. 그 결과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이 나왔다.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은 지난 10년간에 걸친 남북관계 갈등과 한반도 전쟁 분위기를 일소하고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대화 분위기를 이끈 기관차 역할을 했다. 두 정상은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으며, 백두산 천지에 올라 손을 잡고 치켜 올려, 역대급 민족공조를 과시하고 있다. 올해 말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무산됐지만 내년으로 순연된 셈이다. 남북정상회담은 계속된다.

2.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 (6월12일)

   
▲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열었다. 두 정상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이라는 ‘북미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후 양국은 ‘완전한 비핵화 대 체제 보장’을 향한 여정에서 종전선언, 대북제재 해제, 북핵 리스트 신고 등에서 갈등을 겪으면서 지금 난관을 맞고 있다. 미국 측이 고위급회담과 실무회담 등을 타진하고 있으나 북한 측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내년 초 2차 북미정상회담을 예상하고 있지만 불확실한 상황이다.

3. 3차례 북중정상회담 (3월25-28일, 5월8일, 6월19-20일)

   
▲ 베이징 제3차 북중정상회담.

2011년 말 ‘김정은 시대’ 들어 북중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두 정상의 만남은커녕 실무 차원의 대화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 남북관계가 풀리고 급기야 북미정상회담이 예상되자 북중관계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김정은 위원장-시진핑 국가 주석은 3월25-28일(베이징)과 5월8일(다렌) 그리고 6월19-20일(베이징) 세 차례 만났다. 세 차례 회담을 통해 두 정상은 ‘단계적 비핵화’ 등 북미대화를 조율하면서, 7년간의 공백을 상당 부분 복원해 향후 국제정세 변화에도 양국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4. 평창 동계올림픽(2월9-25일) 북측 참가와 특사 방남

   
▲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공동입장.

김정은 위원장이 2017년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후 한반도 상황이 갑자기 부산해졌다. 평창올림픽은 단순한 북측 선수단의 참가만이 아니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특사의 개막식 참석,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폐막식 참석 등으로 이어져 남북관계는 일거에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문 대통령은 ‘김영남-김여정’을 접견했고, 이는 3월 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남측 특사단의 방북으로 이어졌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평화올림픽으로 자리 잡았고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단초를 여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5. 북측,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노선으로 (4월20일)

   
▲ 북 노동당 중앙위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김정은 위원장은 4월20일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을 천명했다. 5년 전인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에서 핵무력 건설을 삭제하고 경제건설로 일로매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울러 이날 전원회의에서는 ‘Δ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 Δ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Δ핵무기, 핵기술 이전 않을 것’ 등도 표명했다. 북한의 비핵화 카드는 6.12북미정상회담 성사에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급격히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6. 6.13 지방선거 (6월13일)

   
▲ 6.13 지방선거 결과 도표.

6.13지방선거는 광역 17곳 중에서 더불어민주당 14곳, 자유한국당 2곳, 무소속 1곳 승리의 결과로 나왔다. 보수 우익진영의 몰락, 여당의 압승이라 부를 만했다. 유권자는 △1년 정도가 지났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 △평창올림픽과 4.27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남북화해 분위기, △하루 전에 열린 6.12북미정상회담의 분위기 등이 쓰나미가 되어 민족화해 정부와 여당에 몰표를 주었다. 이를 두고 한반도에 6.12북미성명으로 외적 탈냉전이 이뤄졌다면, 4.27선언으로 위로부터의 내적 탈냉전에 이어 6.13지방선거로 아래로부터의 내적 탈냉전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7.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 (12월26일)

   
▲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에서 서울-평양 도로표지판 제막식 장면.

남북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12월26일 개성 판문역에서 열렸다. 북측과 남측은 각각 “민족사에 특이할 역사적 사명”, “우리의 경제 지평을 대륙으로 넓혀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랜 기간 남북이 갈구하던 ‘철의 실크로드’가 열린 것이다. 이로써 남과 북은 분단선에 의해 형성된 장벽과 섬에서 벗어날 계기를 마련했다. 그런데 이날 행사는 ‘착공식’이 아닌 ‘착수식’이었다. 당장 공사를 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공사를 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때문이다. 민족의 동맥마저 외세의 간섭을 받아야 하는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8. 남북 군사분야 진전과 JSA 비무장화

   
▲ 남북 도로 연결과정 중 군사분계선에서 만난 남북 군인들.

남북관계가 풀리면서 역설적으로 대북지원 사업이나 남북 경협이 아닌 군사분야에서 진전이 이뤄졌다. 군사분야는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영향을 덜 받았기 때문이다. 군사분야에서의 진전은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가 체결되면서 이뤄졌다. 당시 남측 당국은 이 합의서를 두고 “사실상 불가침합의서”라고 규정할 정도였다. 이 합의서에 근거해 육해공에서 적대행위가 중지됐으며, 660km의 한강하구 공동조사도 끝났으며, 특히 비무장지대(DMZ) 내 지뢰가 제거되고 감시초소(GP)가 철거되면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가 진행되었다.

9.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 (9월14일)

   
▲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 장면.

4.27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9월14일 문을 열었다. 남북은 1992년 고위급회담부터 연락사무소 설치 문제를 논의했지만 실현되지 않았으며, 2005년 개성공단에 남북경협사무소가 마련돼 사실상 연락사무소 역할을 했지만 2010년 5.24 조치로 폐쇄됐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서울·평양 연락사무소 설치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의 성격으로서, 남북 당국간 회담·협의, 민간교류 지원, 왕래 인원 편의 보장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365일 24시간 남북 소통체계가 구축됐다. 연락사무소는 개소 후 100일 동안에 285차례의 회담·협의를 가졌다.

10. 빈약한 남북 민간교류

   
▲ 빈약한 남북 민간교류 중 그나마 치러진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4.27판문점선언으로 민간 교류 활성화의 기대가 컸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민간통일운동은 6.15, 8.15, 10.4 그리고 개천절, 새해맞이, 3.1절 행사 등 민족공동행사를 주도하며 대북지원 사업 및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올해 남북 당국이 주도권을 가지면서 6.15와 8.15행사를 치르지 못했다. 10.4선언 11주년 민족통일대회도 정부가 직접 챙겨, 민간 차원이 소외됐다. 그나마 8월 서울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와 평양 ‘제5회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 축구대회’, 10월 평양 남북태권도합동공연, 11월 3-4일 남북 민화협의 금강산 공동행사만이 명맥을 유지했다. 남북 민간교류는 당국 간 교류의 부수적 교류로 취급돼 축소됐으며, 향후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가카 빅엿’ 서기호 “탄핵 대상에 차관급 대우가 말이 되나”

등록 :2018-12-29 09:09수정 :2018-12-29 10:24

 

 

 

블랙리스트 판사 1호 서기호 변호사

“사법농단 판사 솜방망이 징계 한심
행정처에 현직 판사 상근제 없애야”

‘가카 빅엿’ 페이스북 발언 2년 전
촛불 재판 개입한 신영철 사건 때
법원장이 불러 “요주의 인물” 경고

 

 

“존경받는 판사가 되는 게 꿈이었죠. 본격적으로 잘해보려고 하던 참에 나가라고 하니 참 황당했죠.” 양승태 대법원에게 찍혀 2012년에 재임용에서 탈락했던 서기호 변호사가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상록’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존경받는 판사가 되는 게 꿈이었죠. 본격적으로 잘해보려고 하던 참에 나가라고 하니 참 황당했죠.” 양승태 대법원에게 찍혀 2012년에 재임용에서 탈락했던 서기호 변호사가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상록’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서기호 변호사는 양승태 대법원에게 찍혀 2012년 강제로 판사 옷을 벗었다. 당시에도 ‘비판적 판사에게 재갈 물리기’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최근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서 법원행정처가 서기호 당시 판사의 재임용 탈락을 사실상 기획했음을 보여주는 문건들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나 사법농단 실태와 법원 민주화 등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법정에 두번 선 적이 있다. 한번은 제2금융권의 한 회사가 고정금리 계약을 어긴 채 일방적으로 올린 금리에 대해 소액 소송을 제기했을 때(원고)였고, 다른 한번은 선거운동 한달 동안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있을 때 이를 깬 기사를 썼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당했을 때(피고)였다. 지금은 상당히 나아졌지만, 당시 판사는 원고든 피고든 법정의 당사자에게 말할 기회를 거의 주지 않았다. 태도도 고압적이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기자에게 ‘비폭력대화법’을 페이스북 등에서 전도하고 자신의 법정에서도 이를 적용하는 판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비폭력대화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공격적인 폭력성을 제거하는 대신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대화를 말한다. 상대의 말을 먼저 있는 대로 들어주고 이해하는 게 필수적이며, 상당한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법정에서 결코 쉽지 않은 대화법이지만, 그런 시도 자체야말로 소중하게 여겨졌다. ‘가카 빅엿’이라는 유행어로 대통령(이명박)을 비판했다가 2012년 초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던 서기호(48·호칭 생략)가 바로 그 판사였다.

 

 

재임용 탈락으로 법원을 떠나는 서기호 판사가 2012년 2월 17일 낮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법원노조와 시민들이 열어준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재임용 탈락으로 법원을 떠나는 서기호 판사가 2012년 2월 17일 낮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법원노조와 시민들이 열어준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법원행정청의 서기호 찍어내기 문건

 

-요즈음 어떻게 지내나.

 

“국회의원 끝나고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2년간 일했는데 잘 안 돼서 접고, 지난 8월부터 법무법인(상록)에서 일하고 있다. 요새 변호를 맡은 사건은 미투 1호였던 서지현 검사 건이다. 공익적인 성격이 강한 사건이어서 저한테 딱 맞다.”

 

-최근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2012년 서 변호사의 판사 재임용 탈락이 기정사실화 돼 있었던 사실이 문건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데.

 

“며칠 전에 검찰에 조사받으러 갔을 때 보니까 2012년 2월1일자로 작성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에서 만든 문건이 있더라. 내가 재임용 탈락을 통보받은 날이 2월10일인데 그 열흘 전에 이미 탈락을 기정사실화해 놓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웠던 내용이다. 제가 법관인사위에 출석해서 소명하고 한 게 다 형식적 절차였던 셈이다. 당시에도 그런 느낌은 있었지만 물증이 없어서 확실히 말을 못했는데, 이번에 드러나는 증거를 보면서 법원이 정말 이렇게까지 했구나 싶어서 정말로 참담하다.”

 

서기호는 2011년 1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들을 심의하겠다고 하자 이를 비판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부터 SNS 검열 시작이라죠? 방통위는 나의 트윗을 적극 심의하라. 심의하면 할수록 감동과 훈훈함만 느낄 것이고, 촌철살인에 감탄만 나올 것이다. 앞으로 분식집 쫄면 메뉴도 점차 사라질 듯. 쫄면 시켰다가는 가카의 빅엿까지 먹게 되니"라는 글을 올렸다. <조선일보>가 이를 1면에 보도하면서 타킷이 됐고, 이듬해 2월 그는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가카 빅엿’은 당시 인기를 끌었던 팟캐스트 ‘나꼼수’가 만든 캐롤송 ‘쫄면 안 돼’ 노래 가사의 일부였다.

 

-재임용 탈락 때 ‘가카 빅엿’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사실 저에 대한 찍어내기는 그보다 3년 전인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가 터졌을 때 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출발점이었다.”

 

신영철 당시 대법관이 2008년 서울 중앙지방법원장 시절 촛불집회 관련 재판을 특정 판사에게 몰아주기 배당을 하는가 하면 재판을 빨리 끝내라고 판사들에게 압력을 넣은 사실이 2009년에 밝혀졌다.

 

-당시 서울지법 판사였던 서 변호사가 법원 내부 게시판과 판사회의에서 신영철에 대한 징계를 요구한 것 때문인가.

 

“징계 요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법원 게시판에 그런 글을 올린 사람은 20명이나 됐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의견 개진을 하는 정도였다면 저는 글만 올린 게 아니라 판사회의 개최를 주도적으로 요구하고, 법원 사무분담에 관한 법원장의 권한 축소 등 제도 개선도 촉구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저는 선동자이자 주동자급이었다. 게다가 법원행정처에서 신영철 재판관 문제를 미봉하기 위해 무슨 제도개선 티에프를 만든다면서 나보고 일선 판사 대표로 참석해달라고 요구했는데 거부했다. 상황을 모면하려는 속셈이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그 정도 선에서 수용하고 마는데 저는 저항했으니 그때부터 내쫓으려고 작심했던 것 같다.”

 

-찍혔다는 기미를 느낀 것은 언제인가.

 

“2010년 초에 서울 북부지방법원으로 인사 이동이 있어 갔더니 법원장(고 박삼봉)이 처음부터 ‘서 판사는 신영철 대법관 사건 때 나선 것 때문에 요주의 인물이니까 조심하라’는 식으로 말하더라. 그 뒤에 제가 재판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더라. 예를 들어 비폭력 대화를 공부하고 연습해서 재판에 적용해 보고 이를 확산시키려고 하면 그런 것을 왜 하느냐고 막았다.”

 

2012년 2월 17일 재임용 탈락으로 법원을 떠나는 서기호 판사가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법원노조와 시민들이 열어준 퇴임식에서 그를 지지하는 트위터 모임 ‘국민의 눈’ 힘 회원들이 선물한 '국민법복'을 입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2년 2월 17일 재임용 탈락으로 법원을 떠나는 서기호 판사가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법원노조와 시민들이 열어준 퇴임식에서 그를 지지하는 트위터 모임 ‘국민의 눈’ 힘 회원들이 선물한 '국민법복'을 입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1년 판사 첫 언론인터뷰 이어 
페이스북 등 통해 ‘표현 자유’ 길 터 
비폭력대화법 재판 적용 등 실험

 

 

“탄핵돼야 할 사람을 차관급 대우해” 판사 재임용 탈락은 1997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었다. 서기호가 법원을 떠나던 2012년 2월17일 서울 북부지방법원 정문 앞에서는 북부지법 직원들과 시민들이 연 ‘국민 퇴임식’이 열렸다. 그의 구명을 바라는 트위터 모임 ‘국민의 눈’ 회원들은 이날 서기호에게 자신들이 만든 ‘국민법복’과 ‘국민법관’ 임명장을 전달했다.

 

-재임용 탈락은 개인적으로는 고난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판사 등 법조인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이라는 측면이다.

 

“검찰도 마찬가지지만 법원 수뇌부는 개별 법관의 표현의 자유에 매우 인색하다. 법원이 통일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저는 판사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사회적 이슈나 쟁점에 대한 자기 견해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활동도 그런 차원이었다. 2011년 12월 쯤엔가는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난 뒤 CBS의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이건 팩트에 가깝고, 저도 많이 반성이 됐다, 앞으로 저렇게 해서는 안 되고, 공개재판이니 녹음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현직 판사가 그런 인터뷰를 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법원 내부가 시끄러웠겠다.

 

“당시까지만 해도 공보관이 아닌 판사가 스스로 외부 인터뷰를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여기던 때다. 며칠 뒤 법원장이 불러서 갔더니 법원의 공식 입장과 다른 것을 인터뷰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더라. 당시 차한성 행정처장이 ‘부러진 화살은 허구다, 실제 재판을 그렇게 진행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찍힐 줄 알면서도 그랬나.

 

“사실을 얘기하는 거니까 설마 찍히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런 나의 행동은 책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웃음) 책을 읽다보니 폭이 넓어지고, 용기와 지혜가 좀 생겼다. 남들이 하는 대로 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면서 살고 싶었다.”

 

-지금 판사나 검사들의 표현의 자유가 많이 나아졌다.

 

“그렇다. 지금은 판사들이 자유롭게 실명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쓰고 인터뷰도 하고 있다. 검사들도 과거에는 허가를 받아서 언론 인터뷰를 했지만, 지금은 신고만 하면 된다.”

 

서기호는 1997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000년 제주 지방법원 예비판사로 법원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인천지법과 서울남부지법을 거쳐 2008년부터 서울지법 민사단독 판사로 일했다. 2009년 신영철 사건이 불거졌을 때 그는 서울지법 단독판사 대표 2명 중 한명으로, 문제 제기에 앞장섰다.

 

-법원의 행정권력에 대한 통제 즉, 법원 민주화 문제도 서 변호사가 제기했던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최근 제안된 사법 개혁안이 대법원에서 많이 후퇴하는 등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대법원장 일인에게 집중된 사법행정 권한을 사법행정회의라는 합의제 기구에 이양해야 한다. 그리고 사법행정회의에는 외부인사가 절반 들어가서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행정처에 현직 판사가 상근하는 것을 없애야 한다. 이러한 내용의 사법발전 방안이 현직 판사들의 반대로 대법원에서 대폭 수정됐다. 이름만 행정처에서 사무처로 바꿀 뿐이지 실질적인 변화는 거의 없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원래 사법발전위원회 후속추진단(단장 김수정)이 마련한 안대로 가야 한다.”

 

-사법행정 권력을 휘둘러 재판에 개입하는 등의 사법농단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징계도 솜방망이에 그쳤다. 법원이 뼈를 깎는 자성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징계에 회부된 사람 중 이민걸, 이규진, 박상언, 정다주, 김민수 등 최소 5명은 관여 정도가 심해 징계가 아니라 탄핵 대상이다. 그런데도 6개월 정직과 감봉 처분에 그쳤다. 또, 2명은 아예 불문에 부쳤다. 법원 스스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직을 받은 사람은 그 기간이 끝나면 일선 판사로 복귀가 가능하다. 그들은 고등부장이기에 관용차 지급 등 차관급 대우를 계속 받게 된다. 기가 막힌 일이다.”

 

1970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서기호는 3남1녀 중 셋째다. 그는 네살 때부터 2년 간 부산의 작은 아버지 집에서 살았다. 아이들이 없어 적적했던 작은 어머니가 데려다 키웠지만, 어린 그에게는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됐다. 목포에서 초·중·고교를 다닌 뒤 1988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1학년 2학기에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고 싶어” 들어간 가톨릭학생회 활동에 푹 빠졌다. 2학년 때는 동아리 대표, 3학년 때는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4학년 때는 전국 조직을 만들었다. 1991년 여름 경희대에서 열린 범민족대회에 참석하려다 경찰의 검문에 걸려 집시법 위반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기도 했다. 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1995년 복학했을 때는 “사회운동을 계속할 자신이 없어”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서기호 변호사는 지난 26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법원 민주화를 위해서는 우선 행정처에 상근하는 판사부터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서기호 변호사는 지난 26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법원 민주화를 위해서는 우선 행정처에 상근하는 판사부터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재심해 이긴 뒤, 스스로 사표 내고파”

 

-서 변호사야말로 사법농단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문건으로 속속 나오고 있는데 구제받을 길은 없나.

 

“현행법상으로 재심은 안 된다. 재심이 가능하려면 제 재판의 재판장이 직무와 관련된 범죄를 저질렀어야 하는데 그런 혐의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사법농단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을 허용하는 특별법이 제정돼야 가능한데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고 있어 20대 국회에서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라도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저는 설령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재심에서 이기더라도 판사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승소하더라도 바로 사직서를 낼 것이다. 여러 활동을 해보니까 판사로 재판하는 것도 좋지만, 법원 밖에서도 할 게 너무 많더라.”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정의당 비례대표로 4년 간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는데 다시 정치할 생각도 있나?

 

“정치도 법원 밖 활동의 한 영역이기는 하다. 그러나 4년 간 정치를 해보니까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문영역이더라. 준비가 된 사람이 해야 하고, (정치에) 맞는 사람이 해야 한다.”

 

서기호는 가정에서도 아들 두명이 사춘기를 지날 때 “불화한 적이 없”었다. 비폭력대화의 힘이었다. 최근에는 명상에도 입문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동안 ‘싸움닭’ 또는 ‘튀는 판사’라는 험담에 시달렸다. “사건 처리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존경받는 판사가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을 짓밟은 자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였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76245.html?_fr=mt1#csidx09d3b70efddd4a480b3b7a5e8fe45bd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무 실체도 없는 '이상한' 재판... "이 판결은 무효"

[현장] 제주4.3 특별법 국회 토론회... 군사재판 무효-명예훼손 처벌 등 '갑론을박'

18.12.28 20:30l최종 업데이트 18.12.28 20:37l

 

 ‘제주 4.3 70주년 의미와 특별법 개정에 관한 방송토론’이 2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와 오마이뉴스TV 주최로 열렸다. 이 토론에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4.3범국민위 상임공동대표 정연순 변호사, 미래시민연대 사법감시센터장 부상일 변호사가 참석했다.
▲  ‘제주 4.3 70주년 의미와 특별법 개정에 관한 방송토론’이 2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와 오마이뉴스TV 주최로 열렸다. 이 토론에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4.3범국민위 상임공동대표 정연순 변호사, 미래시민연대 사법감시센터장 부상일 변호사가 참석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제주4.3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희생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결국 올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내년 4.3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선 제주4.3 70주년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의 주요 쟁점과 전망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1999년 제주4.3특별법('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지 19년 만인 지난해 12월 희생자 국가 보상금 지급, 군사재판 무효,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4.3명예훼손 처벌 등을 포함한 전면 개정안('제주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됐지만, 지난 9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법안소위에서 계속 심사하기로 한 뒤 추가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제주4.3제70주년범국민위원회(아래 범국민위)'와 <오마이뉴스>가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범국민위 상임공동대표인 정연순 변호사를 비롯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보수단체인 미래시민연대 사법감시센터장을 맡고 있는 부상일 변호사 등 진보-보수 인사들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자 모두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지만 군사재판 무효, 명예훼손 처벌 등 주요 쟁점에선 서로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쟁점1] 군사재판 무효와 재심 절차 간소화 '투트랙' 제안

제주4.3 당시 군사재판 희생자는 2500여 명에 이른다. 지난 17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4.3 군사재판 수형인 18명에 대한 재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공소기각'을 구형했다. 4.3 수형인 명단 외에는 이들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당사자들은 다음달 17일 1심 판결을 앞두고 사실상 무죄 취지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나머지 수형인들이나 유족들이 일일이 재심 절차를 밟기는 쉽지 않다. 특별법 개정안에는 4.3 당시 군사재판을 아예 무효로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제주 4.3 70주년 의미와 특별법 개정에 관한 방송토론’이 2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와 오마이뉴스TV 주최로 열렸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박주민 의원은 "공소기각은 공소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검찰 스스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국가가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진상 규명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부상일 변호사는 군사재판 무효화 법안이 삼권분립 정신에 어긋난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부 변호사는 "4.3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의미 있겠지만 법원 판결을 입법적 조치로 무효로 한 전례가 없는데 선례를 남길 수 있어 법률가로서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이에 정연순 대표는 "군사재판 수형자나 사형 당한 사람이 2500명이 넘는데 모두 공소기각에 따라 재심을 청구하면 사법부도 큰 부담이 되고, 연로한 분들이 살아 있는 동안 국가의 실질적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재판을 다하라는 건은 그분들과 유족에 요구할 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삼권분립 침해 주장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반역죄나 국가보안법은 재판기록이 다 보관돼 언제든 재심이 가능하지만 이분들은 영장도 없고 판결문도 없는데 수형기록만 가지고 범죄자로 남기는 게 삼권분립 정신인가"라고 지적했다.

박주민 의원도 "실체가 없는 법원 판결을 존중할 가치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당시 형식적이고 실체 없는 군사재판은 무효로 하고, 그렇지 않은 재판은 재심 사유를 확대하고 재심 기간을 줄여주고 재심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등 재심 절차를 줄이는 '투트랙'으로 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쟁점2] 희생자 보상금 1조 8천억 원? "예산 문제는 장벽 아냐"

희생자 국가보상금도 특별법 개정안 쟁점 가운데 하나다. 심보균 행정안전부 차관은 지난 9월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해 "보상금 지급 대상이 1만4천여 명에 이르고, 비용도 1조 8천억 원으로 추산돼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밝혀,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에 박주민 의원은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에 필요하면 비용을 들여야지, 예산 문제가 특별법에 장벽이 돼선 안 된다"면서 "소요 예상 예산이 한 해에 다 지출되는 것도 아니어서 생각보다 큰 부담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제주 4.3 70주년 의미와 특별법 개정에 관한 방송토론’이 2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와 오마이뉴스TV 주최로 열렸다. 미래시민연대 사법감시센터장 부상일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  미래시민연대 사법감시센터장 부상일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부상일 변호사도 "예산 문제는 한 번에 지급할지 나눠서 지급할지에 따라 유연하게 해결할 수 있다"면서 "예산 규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건 거짓말이지만 어떻게든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연순 대표는 "99년 법안에서는 빠졌지만 보상은 희생자에게 실질적인 피해 회복을 구현하자는 취지"라면서 "법안이 통과된다고 바로 돈이 지급되는 건 아니고 시기와 방법은 법안 통과 이후 논의할 문제"라고 밝혔다.

[쟁점3] 집단적 명예훼손 처벌 조항 "4.3 같은 사태 재발방지 차원" 

제주4.3특별법 개정안 가운데는 4.3 진상조사 결과를 부정하거나 희생자, 유가족, 관련 단체를 비방, 왜곡할 경우 처벌하는 법안도 포함돼 있다.

이에 부상일 변호사는 "언론,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야 더 건전하기 때문"이라면서 "집단적 명예훼손을 처벌할 방법이 전혀 없다면 의미가 있겠지만 일반적인 민사소송이나 형법 같은 법률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 추가로 특별조항을 둘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제주 4.3 70주년 의미와 특별법 개정에 관한 방송토론’이 2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와 오마이뉴스TV 주최로 열렸다. 4.3범국민위 상임공동대표 정연순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  4.3범국민위 상임공동대표 정연순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반면 정연순 대표는 "국가 차원에서 채택한 4.3 진상보고서에 나온 사실을 왜곡하거나 희생자에게 인간적으로 해선 안 되는 말로 폄훼하는 걸 상징적으로라도 특별법에 규정해서 교육적, 예방적 효과를 높여야 한다"면서 "개개의 범죄가 아닌 큰 역사적 사건이 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는, 재발방지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주민 의원은 "표현의 자유 지적도 타당하지만 아동 포르노나 독일의 나치 옹호처럼 사상의 자유 시장에 넣지 못하는 표현 행위도 있다"면서 "4.3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해선 일반적 표현 행위와는 달리 특별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박 의원은 "(표현의 자유 문제가) 걱정되면 이 조항은 살리되 '명예훼손할 목적으로', '반복적으로 하면 안 된다'고 문구를 구체적으로 다듬을 필요는 있다"고 제안했다.

"대통령이 약속했는데..." 정부여당 엇박자에 쓴소리

이날 토론회에서는 특별법 개정이 해를 넘긴 데 대해 정부여당 책임론도 나왔다. 박진우 범국민위 사무처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으면 정부와 당에서 노력해야 하는데 당·정·청이 엇박자가 나고 있다, 정부가 행안위에 와서 돈 없다고 거부하는데 당에서 뭐하나"라면서 "당정청 협의를 통해 강력히 추진할  필요가 있고 민주당이 야당 지도부 설득에 나서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정연순 대표는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개정에 동의하는데 명예훼손 처벌이나 배·보상 문제, 군사재판 무효화 문제 등이 거리끼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군사재판은 재심 판결이 나오면 탄력을 받을 것이고 배·보상 문제도 법안에서 천명만 해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여서 통과 못 시킬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지난 1년간 많은 성과에도 특별법이 통과 안 돼 아쉬운 한해였지만 쉽사리 낙담하기보다 꾸준히 해보자는 게 지난 4.3 70년을 관통했던 수많은 분들의 희생과 헌신의 정신이었다"면서 "다만 생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리 사회가 그분들을 진정으로 위로할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며 내년 4.3 이전에 특별법을 통과시키기를 당부했다.

이에 박주민 의원은 "4.3동백꽃 배지를 계속 달고 다니면서 마음은 있는데 보여드린 게 부족했다"면서 "내년 4.3 이전에는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제주 4.3 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  제주 4.3 평화공원에 있는 행방불명인 표석.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 서울KYC

관련사진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리해고 10년 만에 공장으로 복귀하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12/29 11:03
  • 수정일
    2018/12/29 11:0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9일 광화문광장서 ‘2차 범국민추모대회’ 뒤 청와대로 행진 예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 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1990년 일부 개정 이후 28년 만이다.

민주노총과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는 27일과 28일 각각 산안법 개정안 통과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27일 성명에서 먼저 “이번 산안법 개정은 30년 전 15살 문송면 노동자 수은중독, 원진레이온 915명 직업병 판정과 231명 사망을 계기로 전면 개정된 이후 낡은 법이 따라가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노동자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결정이며, 지난 30년의 과제에 물꼬를 튼 성과”이자 “고 김용균 노동자 유족들이 ‘다른 아이들의 죽음을 막고 싶다’며 분노의 눈물로 하루가 멀다고 국회를 찾은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어 “원청 책임범위가 확대되고 처벌이 강화된 것은 개선점”이라면서도 “유해·위험업무 도급금지 문제와 관련해 적용받는 업무가 상당히 제한적이고, 시행령 위임을 통한 추가 확대 가능성도 없어 결국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은 앞으로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게 됐다”고 한계를 짚었다. 기업 가중처벌 조항에 대해서도 “하한형은 도입되지 않아 실질적인 실효성이 제한적”이라며 “노동자가 위험상황에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경우 사업주가 불이익 처우하면 형사 처벌키로 한 조항이 빠진 점은 강력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시민대책위도 입장문에서 “24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억울한 죽음 앞에 만들어진 국민적 관심, 더 이상 아들, 딸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유가족의 절박한 심정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평가하면서도 “입법예고, 국무회의 의결, 국회 논의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하는데 매우 미흡했으며 누더기 법안이 되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처벌 강화, 도급 금지의 범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본질적인 한계가 분명하다”고 꼬집는 한편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 악순환의 사슬을 끊고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직업병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선 법 개정 이외에도 정부와 법원의 엄정한 법적용 의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대책위는 또 “상시‧지속 업무, 생명‧안전 업무 가릴 것 없이 다단계 하청으로 쪼개고 떠넘긴 고용구조가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 고인의 유서와 같은 메시지로 남은 ‘직접 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정부가 대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더불어 “▲대통령 사과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상시지속업무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및 인력충원 ▲태안화력 1~8호기의 작업중지와 안전실비 개선 등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게 하는 것에 모든 힘을 모아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곤 “오는 29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2차 범국민추모제에 함께해 달라”고 호소했다.

28년 만에 개정된 산안법, 그 내용은?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안을 보면, 산재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원청의 책임범위가 확대되고 안전조치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다. 기업에 대한 가중처벌도 도입됐다. 위험성과 유해성이 높은 작업의 사내 도급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유해·위험업무에 대해 도급을 금지했지만 적용받는 업무는 제한적이다. 도금이나 수은, 납, 카드뮴 등을 사용하는 유해작업을 할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위반하면 10억 원 이하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원·하청이 같이 일하는 사업장의 경우, 원청 사업자가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하는 장소가 22개 위험장소에서 원청 사업장 전체로 확대된다. 원청 사업장이 아니라도 원청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장소인 경우 원청이 지배·관리하는 장소까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지켜야 한다.

원청 사업주가 안전 의무를 위반했을 때 현행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높였다.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선 원·하청 사업주에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 처해지며, 법인 대표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한다. 또 처음 산재 사망이 발생한 뒤 5년 안에 다시 법을 위반할 경우 기존 형벌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을 할 수 있도록 강화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 요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기업살인처벌)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하지 못했다. 아래는 민주노총 성명과 시민대책위의 입장 전문.

30년 과제에 물꼬 튼 산안법 개정과 민주노총의 과제
-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 -

지난 18대 국회와 19대 국회에서 논의만 하다 번번이 폐기됐던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20대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구의역 김 군의 참혹한 죽음 이후 2년 7개월 만이며, 고 김용균 노동자 유족들이 “다른 아이들의 죽음을 막고 싶다”며 분노의 눈물로 하루가 멀다고 국회를 찾은 결과다.

이번 산안법 개정은 30년 전 15살 문송면 노동자 수은중독, 원진레이온 915명 직업병판정과 231명 사망을 계기로 전면 개정된 이후 낡은 법이 따라가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노동자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결정이다. 지난 30년의 과제에 물꼬를 튼 성과다.

하지만 많은 과제 역시 남겼다. 가장 중요한 의제 가운데 하나인 유해위험업무 도급금지 문제와 관련해 적용받는 업무가 상당히 제한적이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정비 하청 노동자나 이번 태안화력 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 업무는 여전히 해당되지 않는다. 시행령 위임을 통한 추가 확대 가능성도 없다. 결국, 하청․비정규직 노동자 안전과 생명은 앞으로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게 됐다.

산재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기업처벌 강화는 가중처벌은 도입됐으나, 하한형은 도입되지 않아 실질 실효성 확보는 제한적이다. 노동자가 위험상황에서 작업 중지하고 대피할 경우 사업주가 불이익 처우하면 형사 처벌키로 한 조항이 빠진 점은 강력히 비판받아야 한다.

분명한 개선점도 있다. 무엇보다 원청 책임범위가 확대되고 처벌도 강화된다. 원․하청이 같이 일하는 사업장은 원청이 전부 책임지고, 원청이 지정․제공하는 장소인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책임을 지게 돼 앞으로 태안화력 사고와 같은 경우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매년 6백명이 죽어 나가는 건설현장의 발주처 안전책임과 타워 크레인 등 건설기계 원청책임도 강화된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메탄올 중독 청년 실명 등 현장의 화학물질 관리가 강화돼 화학물질 독성 정보를 정부에 보고하게 되고, 기업 영업비밀 사전 심사가 강화된다. 특수고용노동자, 배달 노동자, 프랜차이즈 지점 노동자에 대한 안전조치가 일부 도입되고, 위험성 평가에 노동자 참여가 법으로 보장된 점 역시 긍정적이다.

구체 법 내용과는 별도로 이번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국회의 무능과 보수 야당이 당리당략에 몰두한 행태는 지적받고 규탄 받아 마땅하다. 목숨을 잃고 다치는 노동자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문제 원인을 제공하거나 조장하는 집단의 의견을 묻고 따른 행위는 보수야당의 근거가 어디인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매년 노동자가 2천4백명씩 죽어 나가는 현실에 참회는커녕 끝까지 법 개정에 반대 입장을 낸 경총, 건설협회, 전경련,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는 생명보다 금전가치를 우선하는 천민자본주의의 사악한 본성과 함께 그들이 왜 적폐세력인가를 여실히 증명했다.

궁극적인 문제 해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법 개정이 김용균 노동자 사망 문제 반복을 막지 못한다는 점이 증명한다. 민주노총이 요구해왔던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법사위에서 논의조차 없었다.

남겨진 과제 해결을 위해 민주노총은 고 김용균 노동자 범국민 추모제를 비롯한 진상규명 투쟁에 집중하면서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강력히 전개해 나갈 것이다.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 완전한 보장을 위해 앞으로도 불굴의 의지로 투쟁할 것이다.

2018년 12월27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28년만의 산안법 개정, 그러나 여전히 김용균은 하청노동자입니다.
이제 정부가 답해야 합니다.

28년 만에 산안법이 개정되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개정이다.특히 24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억울한 죽음 앞에 만들어진 국민적 관심, 더 이상 아들, 딸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유가족의 절박한 심정이 만들어 낸 결과다. 관심 갖고 지켜보며 여‧야 의원들에게 의견을 보내주신 시민들에게 감사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은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입법예고, 국무회의 의결, 국회 논의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하는데 매우 미흡했으며 누더기 법안이 되었다. 처벌 강화, 도급 금지의 범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본질적인 한계는 분명하다. 이 법의 처리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다 사망한 2016년 구의역 김군과 2018년 태안화력 김용균이 하는 일은 여전히 도급으로 남아있게 된다.

한편,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 악순환의 사슬을 끊고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직업병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법개정 이외에도 정부와 법원의 엄정한 법적용 의지가 필수적이다. 고용노동부가 기존에 해왔던 대로 “봐주기 위주의 솜방망이” 처벌이나 “눈가림식 안전점검” 관행을 전면 혁신하지 않는다면 이 비극은 또다시 반복될 위험이 있다.

또한 검찰과 법원이 전관예우나 재벌대기업의 로비에 놀아나면서, 안전보건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고 산재·직업병 예방에 역행한 사업주들에게, 사실상 면죄부에 가까운 가벼운 처벌로 일관해온 잘못된 사법 관행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와 검찰, 법원의 진정성 있는 성찰과 산안법 적용상의 혁신을 엄중 촉구한다.

24세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 앞에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태안 장례식장을 방문하여 약속하고 입장을 발표했지만,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 과정에서 법안이 정쟁의 대상이 되어 계속 후퇴하고, 유가족들은 더 후퇴할까 마음 졸이며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상황에 분노한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2월 17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서 유가족 긴급요구와 5대 기본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태안화력 1~8호기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당장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 대통령 사과,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노동자들이 원하는 산안법 전부개정안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12월 국회 처리,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설비 개선이다.

하지만 철저한 진상규명은 유가족이 모든 권한을 위임한 시민대책위가 특별근로감독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으며,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이 없다. 유가족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태안화력 1~8호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즉각적으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작업중지 요구도 거부되었다.

우리는 산안법 전부 개정안의 통과가 죽어가는 아들, 딸들을 단 한 명이라도 줄이고자 했던 아버님, 어머님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대통령 사과,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상시지속업무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및 인력충원, 태안화력 1~8호기의 작업중지와 안전실비 개선 등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게 하는 것에 모든 힘을 모아나갈 것이다.

이대로라면, 대통령이 말한 “국민들이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할만”한 진상조사는 불가능하다. 상시‧지속 업무, 생명‧안전 업무 가릴 것 없이 다단계 하청으로 쪼개고 떠넘긴 고용 구조가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 고인의 유서와 같은 메시지로 남은 ‘직접 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정부가 대답해야 한다.

아울러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더 이상 아들, 딸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유가족의 눈물겨운 노력에 관심을 가져준 국민들께 호소 드린다. 바로 내일(29일) 오후 5시에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2차 범국민추모제에 함께 해주셔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주시길 간곡히 당부 드린다.

2018. 12.28.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산안법 개정안 국회통과… 민주노총·시민대책위 “이제 정부가 답해야”

29일 광화문광장서 ‘2차 범국민추모대회’ 뒤 청와대로 행진 예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 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1990년 일부 개정 이후 28년 만이다.

민주노총과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는 27일과 28일 각각 산안법 개정안 통과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27일 성명에서 먼저 “이번 산안법 개정은 30년 전 15살 문송면 노동자 수은중독, 원진레이온 915명 직업병 판정과 231명 사망을 계기로 전면 개정된 이후 낡은 법이 따라가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노동자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결정이며, 지난 30년의 과제에 물꼬를 튼 성과”이자 “고 김용균 노동자 유족들이 ‘다른 아이들의 죽음을 막고 싶다’며 분노의 눈물로 하루가 멀다고 국회를 찾은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어 “원청 책임범위가 확대되고 처벌이 강화된 것은 개선점”이라면서도 “유해·위험업무 도급금지 문제와 관련해 적용받는 업무가 상당히 제한적이고, 시행령 위임을 통한 추가 확대 가능성도 없어 결국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은 앞으로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게 됐다”고 한계를 짚었다. 기업 가중처벌 조항에 대해서도 “하한형은 도입되지 않아 실질적인 실효성이 제한적”이라며 “노동자가 위험상황에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경우 사업주가 불이익 처우하면 형사 처벌키로 한 조항이 빠진 점은 강력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시민대책위도 입장문에서 “24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억울한 죽음 앞에 만들어진 국민적 관심, 더 이상 아들, 딸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유가족의 절박한 심정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평가하면서도 “입법예고, 국무회의 의결, 국회 논의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하는데 매우 미흡했으며 누더기 법안이 되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처벌 강화, 도급 금지의 범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본질적인 한계가 분명하다”고 꼬집는 한편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 악순환의 사슬을 끊고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직업병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선 법 개정 이외에도 정부와 법원의 엄정한 법적용 의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대책위는 또 “상시‧지속 업무, 생명‧안전 업무 가릴 것 없이 다단계 하청으로 쪼개고 떠넘긴 고용구조가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 고인의 유서와 같은 메시지로 남은 ‘직접 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정부가 대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더불어 “▲대통령 사과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상시지속업무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및 인력충원 ▲태안화력 1~8호기의 작업중지와 안전실비 개선 등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게 하는 것에 모든 힘을 모아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곤 “오는 29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2차 범국민추모제에 함께해 달라”고 호소했다.

28년 만에 개정된 산안법, 그 내용은?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안을 보면, 산재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원청의 책임범위가 확대되고 안전조치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다. 기업에 대한 가중처벌도 도입됐다. 위험성과 유해성이 높은 작업의 사내 도급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유해·위험업무에 대해 도급을 금지했지만 적용받는 업무는 제한적이다. 도금이나 수은, 납, 카드뮴 등을 사용하는 유해작업을 할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위반하면 10억 원 이하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원·하청이 같이 일하는 사업장의 경우, 원청 사업자가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하는 장소가 22개 위험장소에서 원청 사업장 전체로 확대된다. 원청 사업장이 아니라도 원청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장소인 경우 원청이 지배·관리하는 장소까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지켜야 한다.

원청 사업주가 안전 의무를 위반했을 때 현행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높였다.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선 원·하청 사업주에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 처해지며, 법인 대표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한다. 또 처음 산재 사망이 발생한 뒤 5년 안에 다시 법을 위반할 경우 기존 형벌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을 할 수 있도록 강화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 요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기업살인처벌)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하지 못했다. 아래는 민주노총 성명과 시민대책위의 입장 전문.

30년 과제에 물꼬 튼 산안법 개정과 민주노총의 과제
-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 -

지난 18대 국회와 19대 국회에서 논의만 하다 번번이 폐기됐던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20대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구의역 김 군의 참혹한 죽음 이후 2년 7개월 만이며, 고 김용균 노동자 유족들이 “다른 아이들의 죽음을 막고 싶다”며 분노의 눈물로 하루가 멀다고 국회를 찾은 결과다.

이번 산안법 개정은 30년 전 15살 문송면 노동자 수은중독, 원진레이온 915명 직업병판정과 231명 사망을 계기로 전면 개정된 이후 낡은 법이 따라가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 노동자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결정이다. 지난 30년의 과제에 물꼬를 튼 성과다.

하지만 많은 과제 역시 남겼다. 가장 중요한 의제 가운데 하나인 유해위험업무 도급금지 문제와 관련해 적용받는 업무가 상당히 제한적이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정비 하청 노동자나 이번 태안화력 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 업무는 여전히 해당되지 않는다. 시행령 위임을 통한 추가 확대 가능성도 없다. 결국, 하청․비정규직 노동자 안전과 생명은 앞으로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게 됐다.

산재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기업처벌 강화는 가중처벌은 도입됐으나, 하한형은 도입되지 않아 실질 실효성 확보는 제한적이다. 노동자가 위험상황에서 작업 중지하고 대피할 경우 사업주가 불이익 처우하면 형사 처벌키로 한 조항이 빠진 점은 강력히 비판받아야 한다.

분명한 개선점도 있다. 무엇보다 원청 책임범위가 확대되고 처벌도 강화된다. 원․하청이 같이 일하는 사업장은 원청이 전부 책임지고, 원청이 지정․제공하는 장소인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책임을 지게 돼 앞으로 태안화력 사고와 같은 경우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매년 6백명이 죽어 나가는 건설현장의 발주처 안전책임과 타워 크레인 등 건설기계 원청책임도 강화된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메탄올 중독 청년 실명 등 현장의 화학물질 관리가 강화돼 화학물질 독성 정보를 정부에 보고하게 되고, 기업 영업비밀 사전 심사가 강화된다. 특수고용노동자, 배달 노동자, 프랜차이즈 지점 노동자에 대한 안전조치가 일부 도입되고, 위험성 평가에 노동자 참여가 법으로 보장된 점 역시 긍정적이다.

구체 법 내용과는 별도로 이번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국회의 무능과 보수 야당이 당리당략에 몰두한 행태는 지적받고 규탄 받아 마땅하다. 목숨을 잃고 다치는 노동자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문제 원인을 제공하거나 조장하는 집단의 의견을 묻고 따른 행위는 보수야당의 근거가 어디인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매년 노동자가 2천4백명씩 죽어 나가는 현실에 참회는커녕 끝까지 법 개정에 반대 입장을 낸 경총, 건설협회, 전경련,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는 생명보다 금전가치를 우선하는 천민자본주의의 사악한 본성과 함께 그들이 왜 적폐세력인가를 여실히 증명했다.

궁극적인 문제 해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법 개정이 김용균 노동자 사망 문제 반복을 막지 못한다는 점이 증명한다. 민주노총이 요구해왔던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법사위에서 논의조차 없었다.

남겨진 과제 해결을 위해 민주노총은 고 김용균 노동자 범국민 추모제를 비롯한 진상규명 투쟁에 집중하면서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강력히 전개해 나갈 것이다.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 완전한 보장을 위해 앞으로도 불굴의 의지로 투쟁할 것이다.

2018년 12월27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28년만의 산안법 개정, 그러나 여전히 김용균은 하청노동자입니다.
이제 정부가 답해야 합니다.

28년 만에 산안법이 개정되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개정이다.특히 24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억울한 죽음 앞에 만들어진 국민적 관심, 더 이상 아들, 딸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유가족의 절박한 심정이 만들어 낸 결과다. 관심 갖고 지켜보며 여‧야 의원들에게 의견을 보내주신 시민들에게 감사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은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입법예고, 국무회의 의결, 국회 논의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하는데 매우 미흡했으며 누더기 법안이 되었다. 처벌 강화, 도급 금지의 범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본질적인 한계는 분명하다. 이 법의 처리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다 사망한 2016년 구의역 김군과 2018년 태안화력 김용균이 하는 일은 여전히 도급으로 남아있게 된다.

한편,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 악순환의 사슬을 끊고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직업병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법개정 이외에도 정부와 법원의 엄정한 법적용 의지가 필수적이다. 고용노동부가 기존에 해왔던 대로 “봐주기 위주의 솜방망이” 처벌이나 “눈가림식 안전점검” 관행을 전면 혁신하지 않는다면 이 비극은 또다시 반복될 위험이 있다.

또한 검찰과 법원이 전관예우나 재벌대기업의 로비에 놀아나면서, 안전보건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고 산재·직업병 예방에 역행한 사업주들에게, 사실상 면죄부에 가까운 가벼운 처벌로 일관해온 잘못된 사법 관행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와 검찰, 법원의 진정성 있는 성찰과 산안법 적용상의 혁신을 엄중 촉구한다.

24세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 앞에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태안 장례식장을 방문하여 약속하고 입장을 발표했지만,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 과정에서 법안이 정쟁의 대상이 되어 계속 후퇴하고, 유가족들은 더 후퇴할까 마음 졸이며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상황에 분노한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2월 17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서 유가족 긴급요구와 5대 기본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태안화력 1~8호기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당장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 대통령 사과,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노동자들이 원하는 산안법 전부개정안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12월 국회 처리,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설비 개선이다.

하지만 철저한 진상규명은 유가족이 모든 권한을 위임한 시민대책위가 특별근로감독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으며,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이 없다. 유가족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태안화력 1~8호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즉각적으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작업중지 요구도 거부되었다.

우리는 산안법 전부 개정안의 통과가 죽어가는 아들, 딸들을 단 한 명이라도 줄이고자 했던 아버님, 어머님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대통령 사과,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상시지속업무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및 인력충원, 태안화력 1~8호기의 작업중지와 안전실비 개선 등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게 하는 것에 모든 힘을 모아나갈 것이다.

이대로라면, 대통령이 말한 “국민들이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할만”한 진상조사는 불가능하다. 상시‧지속 업무, 생명‧안전 업무 가릴 것 없이 다단계 하청으로 쪼개고 떠넘긴 고용 구조가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 고인의 유서와 같은 메시지로 남은 ‘직접 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정부가 대답해야 한다.

아울러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더 이상 아들, 딸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유가족의 눈물겨운 노력에 관심을 가져준 국민들께 호소 드린다. 바로 내일(29일) 오후 5시에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2차 범국민추모제에 함께 해주셔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주시길 간곡히 당부 드린다.

2018. 12.28.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 대통령, 장병 격려.화살머리고지 GP 방문

‘지키는 안보’에서 ‘평화 만드는 적극적 안보’ 강조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8.12.29  08:40:14
페이스북 트위터
   
▲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경기도 연천 소재 육군 제5보병사단 신병교육대를 찾아 훈련병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대통령이 선물한 치킨 200마리와 피자 200판도 배식됐다. [사진제공 - 청와대]

연말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신병교육대를 방문, 장병들을 격려하고 남북 공동으로 도로를 내고 유해발굴을 추진하고 있는 화살머리고지 GP(감시초소)를 둘러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경기도 연천군 소재 육군 제5보병사단 신병교육대를 방문해 훈련병 200여명과 점심을 함께 했다. 정경두 국방장관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영훈 경호처장, 최종건 평화군비통제비서관, 김현종 국방개혁비서관 등이 함께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신병교육대 실내교육장에서 훈련병 200여명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추운 계절에 한국에서는 가장 추운 이 지역에서 신병훈련 받느라 고생들 많았다”며 “이제 수료하고 퇴소식을 한다는데 잘 이겨낸 것을 축하드린다”고 격려했다.

또한 “특히 5사단은 우리 안보의 최일선에 서 있다. 그 위치는 지금 남북관계가 달라지고 있다고 해도 전혀 달라지는 게 없다”며 “여러분이 굳건하게 안보를 지켜줄 때 남북관계도 더 발전할 수 있다. 강력한 국방력의 뒷받침이 없다면 대화라든지 평화라든지 이런 게 아주 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장병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면서 '지키는 평화'를 넘어선 평화를 만드는 '적극적 평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 청와대]

나아가 “과거에는 적의 침략을 막아서 우리 국민의 생명이나 안전을 지키는, 그런 지키는 차원의 안보였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북한과 화해협력 도모하며 우리가 평화를 만들고, 평화를 키워가고, 그 평화가 우리 대한민국의 경제로 이렇게 이어지게 하는, 이런 달라지는 안보”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화살머리고지에서 서로 유해 발굴을 위해 지뢰를 제거하고, 길을 내서 남북한 군인이 서로 악수하고, 조금 있으면 본격적으로 유해 발굴에 들어가고, 이것은 정말로 남북 간에 어떤 평화 이쪽에 있어서는 대단히 상징적인 일”이라며 “그 상징적 역할을 5사단이 맡고 있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가져 주기 바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지금 우리 사병들 급여도 아주 대폭 인상하고 있고, 군 복무 기간도 단축하고 있어서 여러분은 좀 혜택 본다”며 “이제는 좀 외출도, 외박도 위수지역도 벗어날 수 있게 하고, 또는 평일에 외출을 허용해서 하다못해 친구들, 동료들, 전우 간 회식도 PX가 아니라 밖에 나가서 피자집에서 할 수 있게끔”하겠다고 약속하고 “휴대폰 사용도 한꺼번에 다 허용하기 어려울지 모르겠는데 그것도 점차 업무 외 시간에 사용을 할 수 있도록 사용시간 늘려갈 수 있도록”하겠다고 밝혔다.

   
▲ 화살머리고지 GP에 근무 중인 장병들과 악수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제공 - 청와대]
   
▲ 화살머리고지 GP 벙커에 전시된 한국전쟁 유품들. [사진제공 - 청와대]

문 대통령은 훈련병들이 생활하는 생활관을 둘러보며 근무환경을 살펴본 뒤 기념촬영을 하고 방탄조끼와 방상외피를 착용하고 화살머리고지 GP로 이동, ‘화살머리고지 전적 기념비’에 헌화했다.

문 대통령은 GP 내부 벙커를 둘러보고 남북공동유해발굴준비 결과를 청취한뒤 GP 고가초소에 올라 일대를 살펴보고 전유광 제5보병사단장으로부터 작전지역 지형 설명을 청취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역대 대통령들이 DMZ, GOP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최전방 GP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일대에 있는 화살머리고지는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백마고지의 남서쪽 3km 지점에 화살 머리처럼 남쪽으로 돌출된 해발 281m의 고지로, 휴전 협정 직전인 1953년 여름, 중공군은 국군이 확보 중인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고 이에 국군은 두 차례의 방어전투를 치르면서 고지를 사수했던 ‘화살머리고지 전투’로 유명한 곳이다.

지난 9월 19일 평양에서 남북 군사책임자들이 서명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공동유해발굴을 추진하기 위해 ‘화살머리고지’ 일대에 한반도의 정중앙을 잇는 연결도로가 만들어졌고 지난 11월 22일 남북 군인이 악수하는 장면이 보도됐다. 남북은 땅이 녹는 4월부터 유해발굴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위원 송년 만찬에서 “올해는 남북관계에 있어 대결의 역사에서 평화, 협력의 시대로 대전환하는 한 해였다”고 평가하고 “평창올림픽, 3번의 남북회담, 북미회담, 남북철도 착공식, 화살머리고지까지 작년의 꿈같던 구상들이 실현됐다”고 성과들을 꼽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갑작스런 폐업’..하루아침에 실업자된 미소페 납품 공장 노동자들

계속되는 제화노동자들의 수난…노조 “원청이 해결하라”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8-12-28 09:47:13
수정 2018-12-28 09:51:23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미소페 구두를 만드는 제화노동자들이 미소페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청공장 기습폐업을 비판했다.
미소페 구두를 만드는 제화노동자들이 미소페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청공장 기습폐업을 비판했다.ⓒ민중의소리
 

구두 전문 브랜드 미소페에 구두를 납품하는 한 공장이 26일 폐업해 25명의 제화노동자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이는 공장 사장이 갑자기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겠다고 결정해 발생한 일이다. 사장은 이달 초에야 폐업을 통보하는 공지문을 공장에 붙이고 노동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급작스럽게 실업자가 된 제화노동자들은 그간 4대 보험도 가입돼 있지 않은 상태로 일을 해 온 상태라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와 공장폐업으로 실업자가 된 제화노동자들은 27일 서울 성북구 미소페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한 대가가 결국 이것인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미소페에 납품하는 구두를 10년 동안 만들었다는 황규철 씨는 “온갖 갑질을 견디며 일을 해온 결과가 엄동설한에 길거리로 내몰리는 것”이라며 한탄했다. 제화공 김명수 씨도 “어느 날 갑자기 공장운영이 어렵다고 공장을 폐업을 한다고 우리에게 말하더라. 그런데 알고 보니, 폐업하는 게 아니라,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었다”며 “조금이라도 한 푼 더 먹겠다고 25명의 노동자들을 버린 것 아닌가”라고 한탄했다. 

“어려워서 폐업했다”는 공장…뒤에선 중국이전 준비 
길거리로 내몰린 25명의 제화노동자들 
원청 미소페 “갑작스런 폐업으로 우리도 피해자”
 

노조에 따르면, 그동안 제화노동자들은 4대 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일을 해왔다.갑작스러운 폐업으로 실업자가 되면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노조는 제화노동자들이 월급제가 아닌 회사가 주는 구두 숫자대로 구두를 만들어 돈을 받는 ‘개수임금제’로 일을 해 왔기에, 철저한 을의 위치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지난 4월, 탠디의 구두를 만드는 제화노동자들의 파업을 통해 열악한 노동환경이 알려지면서, 처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최근 대법원은 베라슈, 소다 등 구두를 만드는 제화노동자 퇴직금 소송에서 제화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번에 폐업한 A 공장에서도 올해 20년 간 오르지 않았던 공임비가 인상됐다. 지난 10월22일,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통해 기존 공임비 5500원을 6800원으로 인상하고, 12월1일부로 200원을 더 인상키로 했다. 이는 미소페 측이 공장노동자들의 노동환경개선과 하청업체 경영개선을 위한 지원을 결정하면서 가능했다. 

그런데, 갑자기 A 공장 사장이 국내 공장을 폐업을 선언한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어렵다면서 폐업했지만, 사실상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기 위한 위장폐업”이라고 비판했다. 

공장 폐업에 원청 미소페 측도 “당혹스러운 입장”이라고 밝혔다. 미소페 관계자는 민중의소리와의 전화통화에서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저희가 마치 악덕사업주처럼 이윤 좀 늘려보겠다고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며 “공장은 엄연히 우리와 분리된 사업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도 최근에 A 공장 측이 폐업한다고 해서 계획된 물량을 모두 취소시키는 등 피해를 본 상황”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A 공장 사장은 공장을 폐업한다고 미소페에 알리면서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한 뒤 미소페와 다시 거래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고 한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와 공장폐업으로 실업자가 된 제화노동자들은 27일 서울 성북구 미소페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와 공장폐업으로 실업자가 된 제화노동자들은 27일 서울 성북구 미소페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민중의소리

제화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각종 갑질 
“사전통보도 없이 50만원, 100만원 임금삭감” 
“인건비 맞추지 않으면 모두 중국으로”
 

미소페 관계자에 따르면, 회사 측은 폐업한 A 공장 외 다른 하청(협력) 업체들과의 계약에서도 공장사업주 및 제화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위해 납품단가를 인상시켰다.

그럼에도 현장에선 제화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갑질이 그대로 였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B 공장에선 6800원인 공임비보다 500원 적은 6300원으로 신발 제작을 제안하는가 하면, C 공장은 최근 중국으로 일감을 보내며 국내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중국과 비슷한 인건비를 맞추지 않으면 일감을 모두 중국으로 보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또 D 공장에선 제화노동자들이 제작한 신발 중 하나가 이상이 있다는 이유로 6명 노동자의 임금을 사전 통보도 없이 1인당 50만원씩 삭감했다고 한다. E 공장에선 비슷한 이유로 100만원을 삭감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노조는 전했다. 

피해 제화노동자들은 “50만원은 한 명이 3일 동안 14~15시간씩 일을 해야만 벌수 있는 돈”이라며 “그걸 삭감하는 건 너무 부당한 것 같다”고 한탄했다. 노조도 “제화노동자들이 50만원을 벌려면 75족을 생산해야 하고, 100만원의 벌금을 물려면 약 150족을 만들어야 한다”며 “하루에 3~4족씩(일당 3만원 이하) 일감을 내주면서 제화노동자들을 협박하는 사측의 행위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미소페는 “(해당 공장들과) 엄연히 분리된 사업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노조와 노동자들은 원청인 미소페에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문제의 공장들은 미소페에 상품을 납품해온 하청업체로, 관련 없다고 할 수가 없다”며 “원청인 미소페(비경통상)는 2018년 연매출 1050억 원으로, 전년대비 7%의 성장을 했다. 이런 회사가 경영을 이유로 생산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원청 미소페에 이번에 실업자가 된 25명의 제화노동자를 직접고용 해 고용보장을 책임질 것, 미소페 하청공장에서 제화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갖가지 갑질을 중단시킬 것, 중국으로 신발공장을 옮기는 것 중단할 것 등을 요구했다. 

또 노조는 정부에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25명의 제화노동자들에 대한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최은철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이곳 제화거리를 위해서 서울시와 성동구청이 매해 쏟아 부은 세금만 수십억이다. 그 돈, 노동자들에게 단 한 푼이라도 돌아갔는지 묻고 싶다”며 “결국 백화점 납품 업체 중 가장 크다는 업체들이 돈 다 떼어먹고, 20년 만에 임금 좀 올린다고 하니까 (사업장을) 중국으로 빼돌리려고 한다. 정부가 나서서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제화업계 사장들이 백화점 수수료 문제로 하소연할 때, 우리가 백화점 수수료 낮추겠다고 직접 나서서 싸웠다”며 “그런데 그걸 응원·지지하지는 못할망정 공장을 빼돌리는 데 이걸 참을 수 있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수은에 죽고 가스에 죽고... 30년전 '김용균씨'들

[동작 민주올레 33] 동작지역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 탐방 - 신대방길⑦

18.12.28 09:54l최종 업데이트 18.12.28 09:54l

 

 

2017년은 촛불혁명의 승리로 우리 사회 민주화의 새로운 전기를 맞은 해이고, 2019년은 3.1혁명(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여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서울 동작구를 '동작 민주올레'라는 이름으로 구석구석 탐방하면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탐방은 총 여섯 개 길(대방길, 노량진길, 흑석길, 신대방길, 상도길, 현충원길)로 나누어 진행하며, 코스별로 6~7회에 걸쳐 연재한다. '대방길'과 '노량진길' '흑석길'에 이어, 이번에는 '신대방길'이다. - 기자 말

▶ 코스안내 ①원풍모방 노조 터 - ②세왕전기 터 - ③한영섬유 노조 터 - ④보라매공원 - ⑤반탁반공순국학생충혼탑·한국학생건국운동공적비 - ⑥김마리아 동상 - ⑦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 - ⑧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 '더하기'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순찰 업무를 하던 중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24)을 추모하는 행렬이 점점 불어나고 있다. 22일에는 "내가 김용균이다!"를 외치는 3000여 명의 노동자와 시민이 "대통령의 사과, 위험의 외주화 중단"을 요구하면서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보라매공원의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
 

보라매공원의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은 2000년 한국노총의 제안을 정부가 수용하면서 건립되었다.
▲ 보라매공원의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은 2000년 한국노총의 제안을 정부가 수용하면서 건립되었다.
ⓒ 김학규

관련사진보기

   
이런 시점에 보라매공원 호수 서편에 있는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을 찾는 일은 마음을 더 짓누른다.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은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난 2000년에 세워졌다. 한국노총이 처음 요구하여 '노·정·당 산재사망자위령탑 건립 회의' 개최로 이어졌고, 산재보험기금에서 11억 원이 투입되면서 건립되었다.

이 위령탑 앞에서는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기념하여 매년 4월 28일 전후 한국노총이 주도하는 '산재노동자의 날 추모제'가 열린다. 민주노총은 이와 별도로 '4·28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다양한 산재추방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4월 28일이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처음 지정된 것은 1996년이다.

1984년부터 캐나다노총(CLC)이 1914년 제정된 노동자보상보험법 제정일인 4월 28일을 추모의 날로 기념한 것을 계기로 캐나다·미국·영국을 중심으로 기념하기 시작한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을 국제자유노련(현 국제노총 ICFTU)이 1996년 공식화한 것이다.

국제자유노련은 1996년 4월28일 유엔 본부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 참석한 국제자유노련 간부를 중심으로 1993년 5월 10일 태국의 장난감공장 대형화재로 사망한 188명의 노동자를 추모하는 '촛불 밝히기' 행사를 열었고, 세계 70개국에서 같은 날 '촛불 밝히기' 행사를 열었다. 2002년부터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이날을 자체적인 기념일로 지정했다.

현재 국제노총은 4월 28일을 유엔이 정하는 국제기념일로 지정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2000년 8월 국제노총의 요구에 따라 4월 28일을 '산재 노동자의 날'로 지정한 한국노총이 정부에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제18회 산재노동자의 날 추모제 한국노총은 2001년부터 매년 4월 28일 전후로 보라매공원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에서 '산재노동자의 날' 행사를 한다.
▲ 제18회 산재노동자의 날 추모제 한국노총은 2001년부터 매년 4월 28일 전후로 보라매공원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에서 "산재노동자의 날" 행사를 한다.
ⓒ 한국노총

관련사진보기

 
산재추방운동 계기가 된 '문송면 수은중독'과 '원진레이온 사태'

지난 11월 22일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원진 직업병투쟁 30년, 전국 산재노동자 한마당'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산재노동자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추모조직위원회는 이미 7월 1일과 2일에도 산재사망 노동자 문송면 30주기 추모행사도 진행한 터였다.

이날 참석자들은 '산재 추방과 안전한 일터를 위한 희망 선언'을 발표하면서 ▲ 정부 차원에서 산재사망 절반 줄이기 '산재추방 범국민운동' 추진 ▲ '산재노동자 예우와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 산재노동자의 날 국가기념일 지정 ▲ 화학물질에 대한 알권리 보장 ▲ 다단계 하도급과 장시간 노동정책 즉각 중단 ▲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이 행사에 축사를 보낸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자가 잘 살아야 대한민국이 함께 잘 살 수 있다"라면서 "산업재해는 한 번 벌어지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겠다"라고 다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문송면과 원진레이온은 산재추방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문송면은 1988년 7월 2일 수은중독으로 사망할 당시 열다섯 살의 온도계 공장 노동자였다. 충남 서산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던 문송면은 야간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1987년 12월 5일부터 온도계 제조업체인 서울 양평동4가 협성계공에 취업해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을 풀기도 전, 신나 세척과 온도계의 수은을 주입하는 일을 한 지 한 달 만에 몸이 아프고 머리가 쑤시기 시작했다. 문송면은 두 달 만에 회사를 휴직할 수밖에 없었고, 여러 병원을 찾았지만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의과대학에서 산업보건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던 시절의 아픈 현실이었다.

어렵게 서울대병원에서 수은 중독과 신나 중독이라는 진단을 받은 문송면은 비로소 산재요양 승인을 신청하지만, 회사와 서울남부지방노동사무소는 이마저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가 회사와 노동부로부터 산재요양승인을 받은 것은 <동아일보> 등 언론에 사건이 폭로된 이후인 6월 20일이었다.

당시 <한겨레신문>은 '무관심의 그늘 직업병'이라는 기사에서 "산업보건 전문가들은 직업병을 찾아낸 문군의 경우는 '정말 운이 좋은 예'라고 지적한다"라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의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여러 가지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노동자 스스로가 잘 모르는 탓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직업병이 확실한데도 의사들이 제대로 진단을 해주지 못해 보상조차 못 받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렇게 '정말 운이 좋은 예'였던 문송면은 수은 중독 진단을 받은 지 4개월 만인 7월 2일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사망하고 만다. 문송면의 시신은 노동계가 문송면 산업재해노동자 장례위원회를 꾸려 투쟁을 벌인 끝에 회사 측의 공개사과와 보상금 합의를 이루어낸 다음 마석 모란공원 묘지에 안장됐다.
 
 1988년 7월 2일, 문송면 군은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수은 중독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  1988년 7월 2일, 문송면 군은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수은 중독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 일과건강

관련사진보기


문송면이 사망한 지 불과 20일 후인 7월 22일, 이번에는 인견사를 생산하는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이황화탄소(CS2) 중독 참사가 <한겨레신문>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원진레이온 사태는 915명의 직업병 환자와 지금까지 230명의 산재사망자를 낸 대한민국의 산재 역사상 최대·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도 당시까지는 원진레이온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말과 몸짓이 부자연스러운 중증마비상태에 이른 노동자 12명을 강제퇴직 시키는 방식으로 산재를 은폐하고 있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원진레이온직업병대책위원회(위원장 이소선)를 만들고, 원진노동자들은 원진직업병피해노동자협의회를 만들어 지난한 투쟁을 벌였다. 마침내 1991년에 이르러 원진레이온 공장은 폐쇄됐고, 노동안전 관련법 제·개정으로 이어졌다. 노동재해를 전문으로 하는 원진종합센터(원진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원진복지관)가 만들어진 것도 원진레이온 사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뤄낸 성과였다. 
  
원진레이온 산재 문제를 처음 보도한 한겨레신문(1988. 7. 22) 문송면이 사망한 지 불과 20일 후인 7월 22일, 이번에는 인견사를 생산하는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이황화탄소(CS2) 중독 참사가 한겨레신문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원진레이온 사태는 915명의 직업병 환자와 지금까지 230명의 산재사망자를 낸 대한민국의 산재 역사상 최대·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 원진레이온 산재 문제를 처음 보도한 한겨레신문(1988. 7. 22) 문송면이 사망한 지 불과 20일 후인 7월 22일, 이번에는 인견사를 생산하는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이황화탄소(CS2) 중독 참사가 한겨레신문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원진레이온 사태는 915명의 직업병 환자와 지금까지 230명의 산재사망자를 낸 대한민국의 산재 역사상 최대·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 한겨레신문

관련사진보기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

그럼에도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속에 탐욕에 사로잡힌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태도를 전혀 바꾸려 하지 않았다.

아래 도표에서 확인되듯이 산재노동자수는 최근 비록 미세하나마 줄어드는 추세가 감지되고 있지만,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9만 명 전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산재 사망노동자수도 2012년 이후 2000명 이하로 낮아졌지만, 매년 2000명 전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산재로 하루에 5명이 사망하고 250명이 다치고 있는 셈이다.
  
연도별 산업재해 현황(고용노동부 통계) 산재노동자수는 최근 비록 미세하나마 줄어드는 추세가 감지되고 있지만,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9만 명 전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산재 사망노동자수도 2012년 이후 2천명 이하로 낮아졌지만, 매년 2천명 전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산재로 하루에 5명이 사망하고 250명 이 다치고 있는 셈이다.
▲ 연도별 산업재해 현황(고용노동부 통계) 산재노동자수는 최근 비록 미세하나마 줄어드는 추세가 감지되고 있지만,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9만 명 전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산재 사망노동자수도 2012년 이후 2천명 이하로 낮아졌지만, 매년 2천명 전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산재로 하루에 5명이 사망하고 250명 이 다치고 있는 셈이다.
ⓒ 고용노동부

관련사진보기


그나마 노동부의 공식 통계 수치는 신뢰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서울대 의대 교수 이진석은 2005년 기준 비의도적 손상 건강보험 환자 1238만330명 중 278만2491명이 직장 재해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2008년). 이 시기 실제 산재 승인자는 8만5411명이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연구원 신상도는 직업성 손상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 중 건강보험이 69.4%, 일반이 4.9%를 차지할 때 산재보험은 16.1%에 불과했으며, 사망자의 경우도 절반 이상이 건강보험으로 처리한다고 보고했다(2011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산업재해은폐에 대한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향'(2015)에서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 1위 국가이지만 전체 산업재해 발생률은 OECD 국가 평균 이하인 기이한 통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산업재해의 80% 이상이 은폐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 산재노동자수가 고용부 통계를 훨씬 뛰어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년 일하다 다친 산재노동자수를 파악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이 산재를 은폐하고 공상처리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일례로 김용균이 사망한 현장인 한국서부발전을 포함한 발전 공기업들은 사실상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정부로부터 세제 혜택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무재해 사업장으로 인정받아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화력발전 5개사(남동발전, 서부발전, 중부발전, 남부발전, 동서발전) 등 7개 전력기관이 최근 5년간(2013년~2017년) 감면받은 산재보험료는 무려 497억 원이었다.

이들이 무재해 인증을 받아 막대한 이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사업장에서 다치거나 숨진 노동자의 대부분이 하청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산재를 대폭 줄이면서 커다란 이익을 얻고 있을 때, 그 위험은 고스란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떠안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의 <e-나라지표>는 '산업재해현황'을 설명하면서 "산업구조 및 고용환경의 변화 등으로 비정규직, 외국인, 고령, 여성 등 산재취약계층 근로자의 증가와 소규모사업장에 대한 대기업의 하도급 증가 등 재해유발 요인은 지속 증가할 전망"이라며 "재해다발위험에 대한 집중 관리 등 산재취약계층에 대한 실효성 있는 예방정책·사업을 개발, 행정 역량을 집중"할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산재로 사망한 김용균의 사업장이 공공부문인 태안서부발전소였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 말잔치의 허구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뿐이다.
    
김용균의 죽음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위령탑 앞에는 2개의 건립 취지문이 있다. 하나는 2000년 건립 당시 만든 취지문이고, 다른 하나는 2004년에 만든 새로운 취지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나라경제 발전을 위하여 산업현장에서 땀흘려 일하다 불의의 재해를 입은 근로자들의 큰 공적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민들에게 산업재해에 대한 경각심과 노동의 신성함을 고취하고자 이 탑을 세웁니다." - 2000년 12월 27일

처음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을 세울 당시 만든 취지문의 내용이다. 산업재해 노동자는 그들이 나라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국근대화를 위해 무슨 전쟁터에 나간 '산업전사'라거나 불가피한 상황에서 희생정신을 발휘한 '희생자'로 미화할 대상이 아니다.

말 그대로 생명과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에 명시된 노동권과 행복추구권조차 박탈당한 채 산업재해로 억울하게 사망한 노동자일 뿐이다.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 옆의 노동자 군상 위령탑 뒤편의 추모시와 함께 노동자를 '산업전사'로 묘사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 옆의 노동자 군상 위령탑 뒤편의 추모시와 함께 노동자를 "산업전사"로 묘사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 김학규

관련사진보기

   
그런 점에서 본다면 보라매공원에 있는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은 '노동자' 대신 '희생자'가 들어간 그 이름에서부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산재 없는 세상'에 대한 강한 열망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진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위령탑 건립 당시 한국노총의 제안으로 시작됐다지만, 정부가 주도하고 경영계도 함께한 결과로 보인다.

반면 제4회 산재노동자의 날에 즈음하여 만든 '산업재해가 없는 세상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취지문은 접근법이 꽤 다르다. 정부와 자본가의 개입 없는 한국노총의 순수한 작품이기 때문에 그러하리라.

"우리의 경제발전사는 일면 산업재해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1960년대 초 이후 경제발전의 이면에는 광업에서의 탄광사고와 진폐환자를 시작으로 원진레이온 중독사고를 비롯해 공장과 건설현장에서 그리고 최근의 직업성질환에 이르기까지 산재보험법이 제정된 1964년 이후 2003년까지 산업현장에서 업무상 재해를 당한 사람은 모두 350만 명에 이르며 이중 6만2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여기 산재 희생자 위령탑은 산재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꽃을 피운 우리사회가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공을 기림으로써 산업 재해를 우리사회에서 뿌리 뽑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바람입니다.

2004년 4월 28일 제4회 산재노동자의 날"

 
"산업재해가 없는 세상을 위하여" 보라매공원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 앞에는 두 개의 건립 취지문이 있다. 사진은 2004년 4월 28일 제4회 산재노동자의 날 추모제에 즈음하여 한국노총이 만든 취지문이다.
▲ "산업재해가 없는 세상을 위하여" 보라매공원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 앞에는 두 개의 건립 취지문이 있다. 사진은 2004년 4월 28일 제4회 산재노동자의 날 추모제에 즈음하여 한국노총이 만든 취지문이다.
ⓒ 김학규

관련사진보기

   
지금 우리는 한 청년의 죽음 앞에 '산업재해가 없는 세상'을 위한 새로운 발걸음을 뗐다. 국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처리한 것이다. 

심의하는 과정에서는 이장우 한국당 의원이 정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에 대해 김용균의 죽음 앞에서도 "이러다 나라 망한다"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는 소식도 들렸다(관련 기사 : '김용균법' 정부안 멈춰세운 이장우 "이러다 나라 망해"). 

처리 하루 전에도 임이자 자유한국당 소속 고용노동소위 위원장이 환노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다시 한 번 이해당사자 간 공개 토론을 하고서 통과시켜도 늦지 않다"라고 말해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국회 논의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 등이 지난 24일 국회를 찾아 여야 대표에게 법안 처리를 읍소하면서 환노위 회의장 앞을 지키는 단호함을 보이면서 여론이 꿈틀댔고, 결국 국회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김용균의 어머니는 "용균이와 같은 아이들,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을 살리고 싶다, 우리 아들은 죽었지만 그래도 본인이 죽으면서 떳떳하게 무언가 했다는 의미 부여를 해주고 싶다"라고 여야 대표에 호소했다. 

이제 '위험성·유해성이 높은 작업의 사내도급 금지, 안전조치 위반 사업주의 처벌 강화, 산재에 대한 원청의 책임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또 다른 김용균의 죽음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게 하고 노동자들도 국민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노동권과 행복추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산재추방운동의 역사는 한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이렇게 한 단계 발전하게 됐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2차 범국민추모제 태안화력발전소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을 추모하며 '산재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2차 범국민추모제가 12월 29일(토) 17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2차 범국민추모제 태안화력발전소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을 추모하며 "산재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2차 범국민추모제가 12월 29일(토) 17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학규는 동작역사문화연구소 공동대표 겸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국 내주고 ‘김용균 법’ 얻은 문재인 대통령, 2012년에는?

우병우, 김영한 민정수석은 출석하지 않았다
 
임병도 | 2018-12-28 08:40: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일명 ‘김용균 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김용균 법’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숨진 고(故) 김용균씨의 사고를 계기로 시작됐습니다.

개정안에는 유해하거나 위험성이 높은 작업의 사내 도급 금지와 안전조치 위반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날 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지켜본 김용균씨 어머니는 “온 국민이 함께 해 주셔서 제가 힘을 내서 여기까지 왔다.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우리 아들딸들이 이제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비록 아들은 누리지 못하지만, 아들에게 고개를 들 면목이 생겨서 정말 고맙다”고 밝혔습니다.

‘김용균 법’은 재적의원 185명 중 찬성 165표, 반대 1표, 기권 19표로 집계됐는 데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기권 19표도 모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었습니다.


조국 수석 내주고 김용균 법 얻은 문재인 대통령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김용균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정말 위험한 외주화를 막겠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자유한국당이 조국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 출석과 김용균 법 통과를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전 청와대 회의에서 한병도 정무수석이 조국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 참석과 김용균 법 처리가 맞물려 있어 법안 처리에 진척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특감반 관련 수사가 이제 시작돼 피고발인 신분의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제2의 김용균, 제3의 김용균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연내에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라며 조국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 출석을 지시했습니다.

이후 여야 3당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의 31일 국회 운영위 출석을 합의했고, 그제야 김용균 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우병우, 김영한 민정수석은 출석하지 않았다

▲역대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 출석 관련 기사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에 출석하는 일이 뭐가 어렵냐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서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에 출석했던 일은 없었습니다.

2015년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 규명을 위해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 출석 요구가 있었습니다. 당시 김영한 청와대 수석은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파문 이후에 진행된 청와대 특별감찰을 지휘했던 인물입니다.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은 국회 운영위 출석을 거부했고, 아예 사표를 내고 청와대를 떠났습니다.

2016년 국회 운영위는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등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 우병우 민정수석을 청와대 비서실 국정감사에 출석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와 우병우 민정수석은 “역대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적이 없다”라며 거부했습니다.

조국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 출석을 거부한 이유는 다릅니다. 일단 조 수석은 현재 검찰에 고발된 상태입니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으로 국회에 출석했을 때에도 최도술 사건이 있었지만, 그때는 형사고발이 되지 않았습니다.

피고발인 상황의 조국 민정수석은 수사 내용 등을 함부로 공개하기 어렵습니다. 분명 수사 중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답변하면 야당의 정치공세가 쏟아질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국회 운영위 출석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도 있습니다.


2012년 몰래 한진중공업 노동자 빈소를 찾았던 문재인 의원

▲ 2012년 12월 28일 오마이뉴스 정민규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글

2012년 12월 28일 정민규 오마이뉴스 기자는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습니다. 사진 속 문재인 의원은 두손으로 한 남자에게 술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정 기자는 이 사진이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씨의 빈소에서 찍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최강서씨는 1백58억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고, 박근혜씨의 당선으로 큰 압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선에서 패배한 뒤 외부 일정을 하지 않았던 문재인 의원은 몰래 최강서씨의 빈소를 찾았습니다.

당시 술에 취한 문상객이 술을 받으라고 권유했고, 노조 관계자도 만류했지만 문 의원은 술을 마셨고 맨손으로 집어준 편육도 먹었습니다.

정민규 기자가 빈소를 찾은 배경을 묻자 문재인 의원은 “면목이 없어서 제가 어떻게 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대선에서 패배했어도, 대통령이 됐음에도…

▲2012년 토크콘서트 장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조국 교수

12월 27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현실적으로 지금 얻어낼 수 있는 그리고 반드시 연내 처리돼야 하는 법안으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김용균 법”이라고 밝혔습니다.

대선에서 패배했을 때도 문재인 의원은 떳떳하게 사망한 노동자의 빈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이 됐지만 여전히 노동자를 위한 제도를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과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낸 조국 민정수석을 내주고서야 법안을 통과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노동계에서도 정치권에서도 비난을 받는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서, 참 외롭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과 이상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도 조금이나마 이해를 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70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