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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조미회담과 트럼프의 조선정책기조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6/19 15:43
  • 수정일
    2017/06/19 15:4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개벽예감254] 오슬로 조미회담과 트럼프의 조선정책기조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7/06/19 [14:33]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트럼프는 왜 조선정책기조 결정을 뒤로 미루었을까?
2.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오슬로 조미회담
3. 트럼프가 직접 결정한 조선정책기조 4개항
4. 핵동결은 선결조건이 아니라 최종목표다
5. “핵공포에 덜덜 떠는 아메리카제국을 굴복시켜라”

 


1. 트럼프는 왜 조선정책기조 결정을 뒤로 미루었을까?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은 2017년 1월 20일 취임식을 마치고 백악관에 들어간 날로부터 며칠 뒤 국가안보관리들에게 조선정책기조 권고안 목록을 작성하여 자신에게 제출하라고 지시하였다. 권고안 목록이라는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관리들이 각자 생각하는 여러 가지 정책방침들을 단문으로 간략하게 서술하여 문헌목록처럼 죽 열거한 문서를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가자마자 그런 긴급지시를 내린 것은 그가 조미핵대결이 격화되는 현 정세를 얼마나 심각하게 대하고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로이터통신> 2017년 4월 2일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관리들은 조선정책기조 권고안 목록을 마침내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근 2개월에 걸쳐 진행된,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권고안 목록이 4월 초에 완성되었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그것을 받아보고 그 가운데서 몇 가지 방침을 선정하면, 그것이 곧 새로운 조선정책기조로 확정될 판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국가안보관리들이 촉박한 시간에 쫒기며 근 2개월에 걸쳐 작업을 진행한 끝에 작성한 조선정책기조 권고안 목록을 받아놓고서도, 결정을 차일피일 뒤로 미루었다. 2017년 6월 12일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미국 국방장관은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조선의 핵무기프로그램이 “가장 절박하고, 위태로운 위협(the most urgent and dangerous threat)”이라고 지적하였는데, 그런 불안과 공포는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체가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만사를 제쳐놓고 가장 먼저 처리해도 시원치 않을 조선정책기조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7년 5월 29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려놓은 글이다. 미국 언론매체들을 불신하는 그는 트위터를 사용하여 자기 주장을 직접 전파하는 선전선동술에 열중한다. 위의 트위터 메시지는 조선이 당일 오전 5시 38분 강원도 원산 인근 갈마반도 끝에서 초정밀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동해에 띄워놓은 표적을 7m 편차로 명중시킨 소식을 듣고 발신한 것이다. 그 트위터 메시지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북조선은 또 다른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조선의 이웃나라인 중국에게 큰 결례를 보였다. 그러나 중국은 애쓰고 있다"는 문장이다. 동해 '코리아작전구역'에 전진배치된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을 초정밀탄도미사일로 타격하기 위해 조선이 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는데, 그것을 두고 중국에게 결례를 보였다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지난 5월 9일 오슬로 조미회담이 원만히 진행되었고,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5월 11일경 조선정책기조를 결정하였으나, 조선이 미사일발사를 계속 강행하자, 조선의 초정밀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국과 결부시키는 억지논리를 편 것으로 생각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정책기조 결정을 한 달 넘게 차일피일 미뤄오던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지난 5월 11일부터 12일 사이에 조선정책기조를 결정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일피일 미뤄오던 조선정책기조를 결정하였다는 사실은 지난 5월 25일 워싱턴을 방문하고 있었던 한국 국회의원 세 사람이 워싱턴 주재 한국 언론 특파원들에게 알려준 중요한 정보다. 당시 한국 국회의원 세 사람은 미국 국무부에서 조섭 윤 조선정책특별대표를 면담한 뒤에 워싱턴 주재 한국 언론 특파원들과 만났는데, 국민의당 김관영 국회의원은 자기들이 조섭 윤 조선정책특별대표를 면담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약 보름 전에 조선정책기조를 결정하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백악관에 들어간 직후부터 조선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급박하다고 재촉하더니, 정작 4월 초에 조선정책기조 권고안 목록을 받아놓고서도 왜 신속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한 달 넘게 뒤로 미룬 것일까?

 


2.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오슬로 조미회담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정책기조를 결정하기 직전인 2017년 5월 9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조미회담이 진행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조미회담이다. 그런데 오슬로 조미회담과 같은 시점에 오슬로 반관반민대화도 진행되었다. 오슬로 반관반민대화는 최선희 조선 외무성 미국국장과 미국 민간정책연구기관인 새로운미국재단(New America Foundation) 쑤잰 디매지오(Suzanne DiMaggio) 국장을 비롯한 양측 대표단 사이에서 진행된 비공식대화였고, 오슬로 조미회담은 최선희 조선 외무성 미국국장과 조섭 윤 미국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 사이에서 진행된 비공개회담이었다.

 

오슬로 조미회담에 관한 보안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고, 반관반민대화만 진행된 줄 알았다. 오슬로 조미회담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그 회담이 열렸던 날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난 6월 13일 쌔라 헉커비 쌘더스(Sarah Huckabee Sanders) 백악관 대변인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조선에서 실형을 받고 수감되었던 아토 웜비어(Otto Warmbier) 석방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조섭 윤 조선정책특별대표가 지난 5월 9일 오슬로에서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을 만났다고 밝혔던 것이다. 쌘더스 대변인은 오슬로 조미회담에서 웜비어 석방문제만 논의된 것처럼 말했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오슬로 조미회담에서 양측 대표들은 여러 가지 조미현안들을 논의하였는데, 웜비어 석방문제는 그 현안들 가운데 하나였다.

 

▲ <사진 2> 이 사진은 2017년 5월 12일 중국 베이징 국제공항에 나온 최선희 조선 외무성 미국국장이 평양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출국장을 걸어가는 장면이다. 사진에서 왼쪽에 보이는 사람이 최선희 국장이다. 최선희 국장은 2017년 5월 9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첫 조미회담에 조선측 협상대표로 파견되었다. 베이징 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마주친 취재기자의 질문에 최선희 국장은 "여건이 되면 트럼프 정부와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오슬로 조미회담이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음을 암시한다. 오슬로 조미회담에 파견된 조선측 협상대표와 미국측 협상대표가 조선이 납득할만한 수준에서 조미현안들을 원만히 논의하였기 때문에 조선에서 체제전복죄로 실형을 살고 있었던 웜비어가 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웜비어 석방문제는 미국 국무부가 오슬로 조미회담에서 조선 외무성에게 정중히 요청하는 형식으로 논의되었지만, 조선에서 체제전복죄를 저질렀다가 15년형을 받고 수감된 미국인을 구출하는 책임은 미국 대통령에게 있으므로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이 웜비어를 석방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최선희 국장에게는 그 요청에 즉답을 줄만한 결정권이 없었다. 그래서 <뉴시스> 2017년 6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오슬로 조미회담에서 최선희 국장은 평양에 주재하는 스웨덴 외교관이 웜비어를 면회할 수 있도록 선처하겠다는 답변만 주었을 뿐이다. <사진 2>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오슬로 조미회담에서 어떤 중요한 문제가 논의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오슬로 조미회담 자체가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므로, 그 회담에서 어떤 현안들이 논의되었는가 하는 문제도 당연히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이 웜비어를 돌려보내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들어준 것을 보면, 오슬로 조미회담이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것이 분명하다. 오슬로 조미회담을 마치고 2017년 5월 12일 중국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타려던 최선희 국장은 취재기자의 질문에 “여건이 되면 트럼프 미국 정부와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체제전복죄로 실형을 받은 수감자를 석방하는 조치는 어느 나라에서나 최고지도자의 사면령으로 실행되는 법이다. 사면문제에 관한 한, 조선도 예외가 아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에서 체제전복죄를 저지르다가 체포되어 15년형을 받은 웜비어를 사면하였고, 조선의 사법기관은 그를 석방하여 지난 6월 13일 미국으로 돌려보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웜비어의 사면, 석방, 송환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들어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오슬로 조미회담에 파견된 미국측 협상대표가 회담 중에 조선이 납득할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석방요청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슬로 조미회담에서 조선측 협상대표와 미국측 협상대표가 조선이 납득할만한 수준에서 조미현안들을 원만히 논의하였기 때문에 웜비어가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조선과 미국 사이에 제기된 가장 중대하고, 시급한 현안은 조미핵대결을 언제, 어떻게 종식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다.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키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현안은 없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오슬로 조미회담에 협상대표를 파견한 목적은 조선이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킬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이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킬 가능성을 타진하였다는 말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 달 넘게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어오던 조선정책기조를 실현할 가능성을 타진하였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킬 조선정책기조의 실현가능성을 오슬로 조미회담에서 타진한 뒤에 한 달 넘게 미뤄오던 조선정책기조를 결정하였던 것이다. 미국의 국가안보가 파탄되느냐 유지되느냐 하는 사상 최대 국가안보문제가 조선정책기조에 걸려있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책기조를 결정하는 문제를 그처럼 신중하게 처리하였던 것이다. 

 

 

3. 트럼프가 직접 결정한 조선정책기조 4개항

 

트럼프 대통령이 오슬로 조미회담에 파견한 조섭 윤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는 지난 5월 25일 국무부를 방문한 한국 국회의원 세 사람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한 조선정책기조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연합뉴스> 2017년 5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조섭 윤 조선정책특별대표가 자신을 만난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말해준 트럼프 대통령의 조선정책기조는 아래와 같이 네 가지 정책목표를 추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1)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2) 조선에게 제재와 압박을 가한다.
(3) 조선의 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
(4)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정책목표를 읽으면서 누구나 직감하게 되는 것은, 그 정책목표들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에 오바마 행정부도 위와 똑같거나 유사한 정책목표들을 내걸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실패전철을 답습하려는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능력이 백치 수준이 아니라면, 실패전철을 그대로 답습할 리 없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정책목표들은 복잡하고, 중대하고, 민감한 내용을 대폭 생략한 단문으로 서술되었다. 그러므로 생략된 내용을 되살려내어야 단문 뒤에 존재하는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첫째, 조선정책기조 제1항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조선이 핵시험을 진행할 때마다 이전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상투적으로 꺼내놓은 말이다. 전혀 새롭지 않아 진부한 느낌마저 주는 상투적인 발언내용이 왜 가장 중시되어야 할 조선정책기조 제1항에 올라가 있는 것일까?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문장에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생략되었다. 그 문장에서 생략된 내용을 되살려내 다시 읽으면, 조선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핵보유국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얼핏 똑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제1항의 속뜻을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핵보유국은 공인 핵보유국이고,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는 핵보유국은 비공인 핵보유국이다. 공인 핵보유국과 비공인 핵보유국을 가르는 판별기준은 핵확산금지조약 가입여부다.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한 공인 핵보유국들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이고,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아 비공인 핵보유국으로 된 나라들은 조선, 인도, 파키스탄이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핵보유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으므로 논외로 친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비공인 핵보유국들인 인도와 파키스탄에게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불간섭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그 두 나라에게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면, 미국은 조선에게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선정책기조 제1항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에게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는 불간섭 정책을 추구하게 된다는 속뜻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 미국 대통령들처럼 조선의 비핵화를 조선정책기조로 정했다면, 조선정책기조 제1항에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할 게 아니라, 조선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으며, 조선의 비핵화를 추구한다고 명시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비핵화를 추구하지 않는 불간섭 정책을 새로운 조선정책기조로 결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7년 4월 15일 태양절 105주년 경축 열병식에 등장한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길이가 24m, 지름이 1.9m, 사거리가 12,000km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고체연료엔진을 사용하여 거대한 원통형 발사관에서 사출되는 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발사준비공정이 매우 간단하여, 언제든지 명령만 내리면 즉시 발사위치로 이동하여 발사될 수 있다. 조선이 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33분 뒤에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조선이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할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한 것은 핵무장을 완성하였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무장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자신이 결정한 조선정책기조 제1항에서 조선에게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는 불간섭 정책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미핵대결은 그렇게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끝나가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인도와 파키스탄이 비공인 핵보유국들이라고 해서, 미국이 그 두 나라를 비공인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한 적은 없다. 비공인이라는 것은 공식적인 인정행위 자체를 배제하는 개념이므로, 미국이 조선을 비공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미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에게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키기 위해 조선에게도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조미정책기조 제1항에 따르면, 조미핵대결은 곧 끝나게 되어 있다.

 

미국의 이전 행정부들이 지난 24년 동안 제1국정과제로 추구했던 조선의 비핵화를 트럼프 행정부가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면, 조미핵대결이 격화되어 폭발임계점에 이른 오늘의 조미관계를 근본적으로 뒤집어놓을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비핵화를 포기한 새로운 조선정책기조를 결정한 것은 지난 시기 조선에게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집요하게 요구하며 온갖 적대행위를 계속했던 미국이 결국 전략적으로 완패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난 24년 동안 치열하게 전개되어온 조미핵대결은 바로 그렇게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끝나가고 있다.

 

둘째, 조선정책기조 제2항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에게 제재와 압박을 가한다”는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구분한 것처럼 제재와 압박을 구태여 구분한다면, 제재라는 것은 경제제재를 뜻하고, 압박이라는 것은 정치모략과 군사압박을 뜻한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조선에게 들이대는 경제제재, 정치모략, 군사압박이 모두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이 낳아놓은 직접적인 산물이며, 조선의 정권붕괴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고위관리들은 미국이 조선에게 제재와 압박을 가하는 목적은 조선의 비핵화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조선의 비핵화는 조선의 정권붕괴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셋째, 조선정책기조 제3항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의 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권교체란 반미자주정권을 친미예속정권으로 교체시킨다는 뜻이므로, 정권교체는 정권붕괴와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조선정책기조 제3항에서 미국이 조선의 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 정치모략, 군사압박을 중지한다는 뜻이며, 정권붕괴를 노리는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한다는 뜻이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7년 4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주재 각국 대사 15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오찬을 베풀면서 담화하는 장면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유엔안보리가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를 추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에서 트럼프 대통령 오른쪽에 앉은 여성이 니키 헤릴리 유엔주재미국대사이고, 트럼프 대통령 왼쪽에 앉은 남성은 류지이 유엔주재중국대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주재 각국 대사들에게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를 추가해야 할 것이라는 발언을 꺼내놓았을 때는 그가 조선정책기조를 결정하기 전이다. 2017년 5월 11일경 그가 결정한 조선정책기조 제3항은 미국이 조선의 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 정치모략, 군사압박을 중지한다는 뜻이며, 정권붕괴를 노리는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한다는 뜻이다. 물론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전까지 트럼프 행정부는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 정치모략, 군사압박을 계속하겠지만,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면, 트럼프 행정부는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하게 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렇게 놓고 보면, 조선정책기조 제2항과 제3항은 상호모순된다. 제2항은 대조선적대정책을 계속한다는 뜻을 내포하였고, 제3항은 대조선적대정책을 폐기한다는 뜻을 내포하였으니, 이거야말로 모순이 아닌가.  
이런 모순현상과 관련하여 렉스 틸러슨(Rex W. Tillerson) 미국 국무장관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연합뉴스> 2017년 5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틸러슨 국무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에 파견한 홍석현 특사를 지난 5월 18일 국무부 청사에서 접견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의 정권교체도 추구하지 않고, 조선을 침략하지도 않고, 조선의 체제를 보장하겠으니 “(조선은) 우리를 한 번 믿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틸러슨 국무장관의 그 발언은, 그 발언시점으로부터 약 1주일 전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한 조선정책기조 제3항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연합뉴스> 2017년 6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틸러슨 국무장관은 6월 13일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미국이 조선에게 원유, 석유 같은 필수품 공급을 불허하는 방안을 추진하도록 다른 나라와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극단적인 경제제재로 조선의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한 조선정책기조 중에서 제2항과 제3항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틸러슨 국무장관이 홍석현 특사 앞에서 꺼내놓은 발언과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꺼내놓은 발언도 서로 모순된다.   
왜 이런 모순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현재진행형 서술과 미래지향형 서술을 구분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에게 제재와 압박을 가한다”는 제2항은 지금 어떤 행동을 실행하는 중이라는 현재진행형 서술이고, “조선의 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제3항은 앞으로 어떤 행동을 실행할 것이라는 미래지향형 서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조선에게 제재와 압박을 가하는 중이지만, 앞으로 외교적 해법으로 정세가 바뀌면 제재와 압박을 중단하고 조선의 정권교체를 더 이상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명한 것이다.
 
넷째, 조선정책기조 제4항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화는 외교적 해법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외교적 해법은, 몇 해에 걸쳐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가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버린 클린턴 행정부 시기의 조미고위급회담이 아니며, 부쉬 행정부가 조미고위급회담을 회피하려는 술책으로 조작해놓았던 6자회담은 더욱 아니다. 조선정책기조 제4항에서 언급된 조미대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몇 차례 공개적으로 언급한 조미정상회담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조미핵대결은 종식될 수 없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고, 제4항을 다시 읽으면, 조미정상회담으로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가 조선정책기조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핵동결은 선결조건이 아니라 최종목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조선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의 비핵화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2017년 5월 31일과 6월 1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진행된 반관반민대화에 참석한 조선측 대표들은 조선의 비핵화 문제가 논의되는 것 자체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게 닥쳐온 “가장 절박하고, 위태로운 위협”인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킬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기를 바란다면, 조선의 비핵화가 아니라 조선의 핵동결을 조미정상회담의 최종목표로 택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핵동결이란 핵시험과 중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중지한다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조선정책기조 제1항의 의미를 뒤집어보면,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에게 요구하는 것은 조선의 비핵화가 아니라 조선의 핵동결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핵동결 문제를 직접 거론한 적은 없지만, 핵동결은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그가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할 유일한 출로다.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조선의 ‘선 핵동결, 후 핵폐기’를 주장하면서, 2단계 비핵화 방안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그런 주장은 조선의 핵폐기라는 환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지 현실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변화된 조미관계를 직시하면서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미국의 전직 고위관리들은 조선이 핵무장을 완성하여 조선의 비핵화가 불가능하게 되었으므로, 현실적인 대안은 조선의 핵동결밖에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2016년 10월 25일 미국 대외관계협의회(CFR) 토론회에 출연한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당시 미국 국가정보국장의 발언, 2017년 4월 25일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켈리 맥사먼(Kelly E. Magsamen) 전 미국 국방부 아태차관보 대리의 발언, 그리고 2017년 6월 13일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진행된 토론회에 출연한,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과 조선정책조정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의 발언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7년 6월 13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진행된 토론회에 출연한 윌리엄 페리가 연설하는 장면이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과 조선정책조정관을 지냈다. 연설에서 그는 조선의 비핵화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으므로, 트럼프 행정부는 조선의 핵동결을 대안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윌리엄 페리만 그렇게 주장하는 게 아니라, 몇몇 다른 전직 고위관리들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가 차츰 명백해지면서 근본적으로 변화된 조미관계를 직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조선의 비핵화를 포기하고 조선의 핵동결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15일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북한의 핵포기 결단은 남북 간 합의의 이행의지를 보여주는 증표”라고 하면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조선은 자기와 미국이 맞서 싸우는 조미핵대결에 한국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판인데, 문재인 대통령이 조선에게 핵포기 결단을 요구하고, 조선의 핵동결을 남북정상회담의 선결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조선에게 황당한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조선은 조선의 비핵화라는 말 자체를 용납하지 않으며, 조선의 핵동결을 남북정상회담의 선결조건으로 제기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조선에게 비핵화를 요구하고, 조선의 핵동결을 남북정상회담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면 남북정상회담은커녕 남북관계개선마저도 전혀 진척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5월 29일과 30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을 진행할 것인데, 그 기회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새로운 조선정책기조를 귀담아 듣고 정세오판에서 벗어나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5. “핵공포에 덜덜 떠는 아메리카제국을 완전히 굴복시켜라”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핵동결 요구를 들어줄지 아니면 거부할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해온 조미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수를 트럼프 행정부가 전향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조선은 그에 상응하여 핵동결 요구를 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어 조선이 핵시험과 중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중지하겠다고 공약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그에 상응하여 조미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다고 공약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조미정상회담은 조미핵대결을 완전히 종식시킴으로써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을 실현하는 결정적인 전환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조미핵대결에서 전략적 패배를 코앞에 두고 있는 미국이 국가안보파탄위험에서 구출되고 아시아태평양지역에 평화가 실현되는 사상 최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견된다.

 

물론 세부사항으로 들어가면, 합의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를테면, 조선이 핵동결을 공약하는 경우 조선의 핵시험과 평화적인 핵활동을 구분하고, 전자를 중지시키고 후자를 용인하는 문제, 조선의 중장거리미사일 발사와 평화적인 위성발사를 구분하고, 전자를 중지시키고 후자를 용인하는 문제, 조선의 핵무기 및 핵기술이 해외에 이전되는 핵확산을 금지하는 문제, 조선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회원국으로 복귀하는 문제 등을 합의해야 할 것으로 예견된다. 조선은 국제원자력기구에 복귀할 수 있지만, 핵확산금지조약에는 복귀하지 않을 것이다. 비공인 핵보유국들인 인도와 파키스탄도 국제원자력기구 회원국들이기는 하지만, 핵확산금지조약은 체결하지 않았다.

 

다른 한 편, 미국이 조미평화협정 체결을 공약하는 경우 대조선적대정책을 포기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문제, 조선침공전쟁연습을 중지하는 문제,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문제 등을 합의해야 할 것으로 예견된다. 특히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정세를 뒤집어놓을 엄청난 충격파를 몰고 올 것이므로, 공개된 합의문에 명시하지 않고 공개하지 않는 이면합의로 신중하게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 <사진 6>

 

▲ <사진 6> 위쪽 사진은 미국 본토 워싱턴주에 있는 루이스-맥코드 통합기지에 주둔하던 미국 육군 제23화학대대 병력 250명이 2013년 4월 4일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미국 육군 제2사단으로 재배치되어 행진하는 장면이다. 미국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64년 동안 평화협정 체결을 한사코 거부하면서,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종식될 최종단계에 이르렀으므로,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철수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국군 철수는 의회 승인도 필요하지 않으므로, 트럼트 대통령의 명령으로 언제든지 전격철수를 단행할 수 있다. 지난 시기 베트남전쟁이 북베트남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최종단계에 이르렀을 때,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철수명령을 내리자 남베트남에 주둔하던 미국군 500,000명이 불과 3개월 만에 완전히 철수되었다.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빠리에서 북베트남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마자 남베트남에 주둔하던 미국군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가운데 1973년 3월 29일 북베트남은 마지막 미국군 포로들을 석방하였고, 미국은 마지막 전투부대를 철수시켰다. 아래쪽 흑백사진은 바로 그 날 마지막 전투부대가 철수하는 장면이다. 그로부터 2년 뒤 남베트남 정부의 무조건 항복으로 베트남전쟁은 종식되었고, 베트남은 통일위업을 달성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조미핵대결 종식전략에 대해 서술하였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핵대결 종식전략에 대해서도 서술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미핵대결 종식전략은 전략적 핵압박공세로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하여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을 알지 못하고 비난공세에 매달려온 문외한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겠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해결하려는 한반도의 근본문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주한미국군을 완전히 철수시킴으로써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역사적인 과업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런 역사적 과업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역량을 집중하여 조선의 핵무력을 비상히 강화해왔으며, 이전에 비할 바 없이 강해진 핵무력으로 전략적 핵압박공세를 가중시켜 조미핵대결을 최종단계로 끌어간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미핵압박일정표는 조선이 다종다양한 핵공격전법들과 핵타격수단들을 하나씩 차례로 세상에 공개하거나 시험발사하면서 미국을 국가안보파탄의 벼랑끝으로 밀어버리는 핵압박공세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여온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조미핵대결은 최종단계에 이르렀다. 지금 조선에게 남은 일은 조선이 보유한 4종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하나씩 차례로 시험발사하는 것이다. 2017년 6월 7일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로벗 쑤퍼(Robert Soofer) 국방부 핵미사일방어정책 부차관보는 조선이 2017년 안에 첫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단행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미국에게 닥쳐온 국가안보파탄위험이 폭발임계점으로 밀려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조미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수를 공약할 때까지, 다시 말해서 미국이 조선에게 굴복할 때까지 조선은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 준비태세를 계속 견지할 것이다. 그렇게 조미핵대결을 최종단계로 끌어간 조선의 시야에 보이는 목표는 이런 것이다. “핵공포에 덜덜 떠는 아메리카제국을 굴복시켜라.”

 

 
<보충서술>

 

이 글을 탈고한 직후, 미국 일간지 <월스트릿저널> 2017년 6월 18일 보도기사를 읽었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과 미국은 지난 1년 이상 비밀접촉을 해왔다고 한다. 이것은 오바마 행정부 말기부터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거쳐 지금까지 미국이 조선과 비밀접촉을 꾸준히 진행해왔음을 말해준다. 웜비어 석방문제도 그 비밀접촉에서 해결되었다.

 

위의 보도에 따르면, 2017년 5월 9일에 진행된 오슬로 조미회담에서 최선희 조선 외무성 미국국장이 조섭 윤 미국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에게 조선이 핵시험을 동결하는 방법으로 미국과 협상할 용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월스트릿저널>은 그 보도기사에서 최선희 국장이 조섭 윤 특별대표에게 조선의 핵동결 문제를 제시하였다고 서술했지만, 조섭 윤 특별대표가 조선의 핵동결 문제를 먼저 제시하였고, 최선희 국장이 그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어째든 조선과 미국이 조선의 핵동결과 미국의 평화협정 체결을 맞바꾸는 형식으로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킬 가능성을 오슬로 조미회담에서 타진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조미핵대결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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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택은 여당 몫 국회 ‘운영위원장’부터 내놔야

찾아가고, 초청하고, 만나자고 해도 거부했던 자유한국당
 
임병도 | 2017-06-19 08:41:4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이하 원내대표) 문재인 대통령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에 대해 “더이상 협치를 않겠다는 협치 포기 선언”이라며 임명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정 원내대표는 “국민의 눈에 어떤 문제나 결격사유가 있어도 내 맘대로 한다는 오만과 독선의 의미가 담겨 있다”며 “모든 문제의 시작은 문 대통령 본인의 잘못된 인사에서 비롯됐다”고 말했습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추경과 정부조직법 처리,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표결, 다른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 앞으로 국회 관련 현안에 대해 원활한 협조는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국회 운영위를 소집해 청와대 인사문제의 심각성을 따져볼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정우택 원내대표의 말을 정리하면 ‘모든 문제의 시작은 협치하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앞으로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 오히려 국회 운영위 소집을 통해 조국 민정수석을 불러다 문책하겠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자유한국당이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찾아가고, 초청하고, 만나자고 해도 거부했던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협치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협치의 기본은 소통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미 자유한국당을 향해 계속 대화와 소통을 하자고 했고, 이를 거부한 것은 자유한국당입니다.

지난 6월 9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예정에도 없던 브리핑을 했습니다. 박 대변인은 “강 후보자가 외교부와 유엔 무대에서 쌓은 경험을 기반으로 새 리더십으로 외교의 새 지평을 열어가도록 도와줄 것을 국회에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는 국회에 전병헌 정무수석도 보냈습니다. 전병헌 정무수석은 온종일 국회에 머물면서 각 당 지도부와 원내대표단 등을 만나 강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을 요청했습니다.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은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를 만나 ‘대통령이 국회 주요직을 맡고 있는 분들과 소통하기 위한 자리’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국회상임위원장과의 오찬 참석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정우택 원내대표는 불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6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기 전 여야 지도부 간의 차담회 자리를 마련했지만, 정우택 원내대표는 빠졌습니다.

6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오찬에 여야 모든 상임위원장을 초대했습니다. 하지만 야당 소속 상임위원장으로는 국민의당 소속인 유성엽 교문위원장, 장병완 산자위원장, 그리고 바른정당 소속 김영우 국방위원장만 참석했습니다. 자유한국당 소속 상임위원장은 불참한 것입니다.

간곡히 요청하고, 찾아가고, 만나자고 해도 거부해놓고 이제 와서 ‘협치를 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자유한국당의 말은 궤변에 불과합니다.


‘여당 몫 국회운영위원장 자리 내놓지 않고 버티고 있는 정우택’

야당은 국회운영위를 소집해 조국 민정수석과 조현옥 인사수석의 출석을 요구하겠다고 합니다. 국회운영위에 조국 민정수석 등이 참석하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말이 반드시 나옵니다. 최종 목표는 조국 민정수석을 쳐내겠다는 의도입니다.

현재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은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은 여당 몫입니다. 즉 자유한국당이 아니라 민주당이 맡아야 합니다.

국회운영위원장을 여당이 맡는 이유는 회기 결정이나 의사일정 협의, 특별위원회 구성 등 국회 운영이나 대통령비서실, 경호실 소관 사항 등 주요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국회운영위 위원장을 맡고 있으면 야당이 운영위를 국정 발목잡기용으로 쓸 수 있습니다. 야당이 청와대 업무보고를 받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청와대를 공격하는 등의 정치적 목적으로 운영위 소집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권교체가 됐으니 당연히 여당이 운영위원장을 해야 한다고 몇 차례 한국당에 요구했으나 논의가 안 되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무조건 문재인 대통령의 발목을 잡겠다는 자유한국당의 강력한 의지와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자유한국당은 조국 민정수석을 부르기 전에 국회운영위원장 자리부터 내놔야 할 것입니다.


‘사과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야당이 해야’

 

▲6월 17일 조선일보의 사설 .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PDF

 

야당과 조선일보는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인수위도 없이 시작한 문재인 정부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태도입니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야당과 국민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마이웨이 하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민심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소통하고 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를 야당이 거부해 놓고 문 대통령이 마이웨이 하고 있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자유한국당 정태욱 원내대변인은 ‘지지도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며 ‘오로지 실력과 실적만이 말해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대책, 검찰 개혁, 언론 개혁, 재벌 개혁 등을 막고 있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집단이 야당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적폐 세력과 손잡고 있는 야당이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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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조대엽 ‘정조준’ 인사대치 제2라운드

 

[아침신문 솎아보기]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강행에 조선일보 “너무 빨리 대결로, 대통령이 손해”

정민경 기자 mink@mediatoday.co.kr  2017년 06월 19일 월요일

문재인 대통령이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에 대해서는 “검증에 안이했다”고 말하는 반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임명은 강행했다. 문 대통령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강행에 대해 “선전포고라든가, 협치가 없다고 하지말아달라”고 당부했지만 언론은 청와대와 야당의 갈등을 부각했다.

다음은 19일 아침에 발행하는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첫 원전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대한민국 탈핵 신호탄
국민일보 ‘靑 검찰 개혁 반대 조직적 움직임 있다’ 
동아일보 ‘文 대통령 검증 안이했다, 강경화는 임명’ 
서울신문 ‘예정대로 강경화는 임명, 3野 반발’ 
세계일보 ‘강경화 임명 강행, 정국 시계제로’ 
조선일보 ‘9급, 1만명 뽑는데 22만 몰렸다’ 
중앙일보 ‘사드 이어 문정인, 싸늘해지는 워싱턴’ 
한겨레 ‘국내 첫 원전 고리 1호기 오늘 0시부터 영구정지’ 
한국일보 ‘개혁 조급증에 구멍난 靑 검증 시스템’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서 물러난 것을 두고 “(검찰개혁의) 목표 의식을 너무 앞세우다 보니까 검증에 약간 안이해졌던 것 아닌가, 우리 스스로도 마음을 한 번 새롭게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18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했다. 강경화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채로 임명됐다. 지난달 21일 외교장관 후보자로 내정한 지 28일 만이다. 

문 대통령은 “국회에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오지 않은 상태에서 임명을 하게 되어서 좀 유감”이라며 “대통령과 야당 간에 인사에 관한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마치 선전포고라든지, 무슨 강행이라든지, 이제는 협치는 더 이상 없다든지 마치 대통령과 야당 간에 승부를 겨루고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표현들을 하는 것은 참으로 온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 19일 경향신문 1면.
▲ 19일 경향신문 1면.
언론은 야권이 강 장관 임명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고, 향후 여야 대치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에 야3당은 반발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긴급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아무런 해명과 사과조차 없이 숨어서 부끄러운 일을 하듯이 임명장을 줬다”며 “협치 포기 선언”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김수민 원내대변인은 “가파르게 냉각될 정국의 책임은 전적으로 청와대와 여당에 있다”고 했다. 바른정당은 19일로 예정된 6개 국회 상임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 야 3당은 인사검증 실패 책임을 물어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과 조현옥 인사수석 사퇴를 요구했다.

 

일부 언론은 인사를 둘러싼 청와대와 야당의 갈등을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대통령 對 야당, 너무 빨리 대결로 간다’에서 “새 정부 출범 두 달도 안 돼 너무 빨리 대결 국면이 벌어지려 한다”며 “모두 패자(敗者)가 되지만 결국 대통령의 피해가 더 크게 된다”고 썼다. 또한 “지금 사퇴한 법무장관 후보자 외에도 김상곤, 조대엽 후보자의 흠결은 맡을 직무와 직결돼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청와대 인사를 반대하는 야당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  

 

▲ 19일 조선일보 사설.
▲ 19일 조선일보 사설.
동아일보 역시 사설 ‘강경화 임명 강행한 文, 더 낮은 자세로 野 설득하라’에서 대통령과 야당의 갈등을 부각했다. 동아일보는 “대통령이 ‘유감’이란 말까지 하며 미약하나마 야당에 유화 제스처를 보낸 것으로 보이지만, 야당의 반발은 오히려 거세지는 형국”이라며 “ 야당의 거듭된 경고에도 밀어붙이는 것은 야당을 더욱 강경하게 몰아갈 뿐”이라고 썼다. 이어 이 신문은 “당장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본회의 인준 표결과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 정부조직법 개편 같은 국정 현안이 여소야대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될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 19일 동아일보 사설.
▲ 19일 동아일보 사설.
반면 경향신문은 다른 야당과 같은 입장을 보인 국민의당을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문 대통령 인사와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당의 태도”라며 “야당으로서 선명성을 보인다는 것이 고작 한국당 따라하기라니 한심”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경향신문은 “국민의당은 자신들의 행위가 호남의 문 대통령 절대지지 민심에 부합하는지 자문할 일이다”라며 “협치를 볼모 삼아 공세만 취하는 것은 무능함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썼다.

 

 

▲ 19일 경향신문 사설.
▲ 19일 경향신문 사설.
고리 1호기 영구정지…대한민국 ‘탈핵’ 시작되나

 

한국의 첫 원전인 고리 1호기가 18일 밤 12시(19일 0시)에 영구정지됐다. 고리 1호기가 상업적 운전을 시작한 지 40년 만이다.  

고리 1호기는 부산 기장군에 위치하고, 1971년 착공한 뒤 1977년 6월19일 가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4월29일 본격적인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2007년 설계수명 30년을 채웠으나 다시 10년간 운전할 수 있는 수명연장 허가를 받아 40년간 전력을 생산했다.

고리 1호기는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안전성 등이 도마에 오르며 폐쇄 여론이 고조됐다. 다만 영구정지가 됐다고 해서 바로 고리 1호기가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고리 1호기는 영구정지 후 해체 절차를 밟아 부지를 복원하기까지 적어도 1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 19일 한겨레 1면.
▲ 19일 한겨레 1면.
고리 1호기 영구정지에 대한 언론의 온도는 달랐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해당 소식을 1면에 배치하고, 경향신문은 5면, 한겨레는 8면 전면을 원전에 대한 기사로 배치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관련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고리 1호기가 영구정지되면서 한국도 이제 원전 해체 시대로 접어들게 됐다”고 평가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탈핵’ 로드맵 수립의 신호탄이 된 셈”이라고 썼다. 또한 “한국수력원자력은 19일 고리원자력본부에서 고리 1호기 퇴역식을 연다. 이날 문 대통령이 탈핵 로드맵을 공식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통령이 ‘탈핵’ 메시지를 전할 것을 기대했다. 

[경향신문] 40년 굉음 내던 원자로 터빈, 버튼 하나 누르자 '잠잠'_종합 05면_20170619.jpg
19일 경향신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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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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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특보 지원 못할망정, 이 나라 언론들 왜 이러나

문정인 특보 지원 못할망정, 이 나라 언론들 왜 이러나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6/18 [20: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문정인 특보의 미국 방문 발언에 대한 언론들의 부정적인 보도들 

 

도대체 문정인 특보가 미국에서 한 발언 중에 틀린 말이 단 한자라도 있는가.

 

북핵문제의 핵심원인은 미국이 한반도에 주변, 정확히 말해서 북 턱 밑에서 핵항공모함, 핵잠수함 등 대규모 핵공격수단을 들이밀고 매년 셀 수 없이 북침공격훈련을 해대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은 중국, 러시아는 물론 미국의 페리 전 장관, 핵전문가 해커 박사 등 나라와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북의 핵동결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대북 군사적 위협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우리나라 문정인 외교안보 특보가 그와 한 치도 다름없는 말을 했는데 왜 한미동맹 균열을 조장한다는 말이 나오는가.

자유한국당과 같은 미국인보다 더 친미적인 사대매국정치세력이 민족의 존엄과 주권은 안중에도 없는 이런 망발을 했다고 해서 언론들이 지적을 못할망정 앵무새처럼 대서특필로 받아적어 보도하는 행태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는가.

 

사드배치도 그렇다. 문정인 특보는 사드배치를 하고 말고를 언급한 것이 없다. 환경영향평가만은 법대로 정당하게 해야다는 것이었고 이는 주민의 안전은 물론 지구 생태계, 인류의 복지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과 한국의 대통령도 심지어 신도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라고 강조했던 것뿐이다. 너무나 지당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래 미국이 원하면 국토가 오염되고 귀중한 인류 자산인 온갖 동식물과 세균들이 사드 전자파에 의해 멸종할 수도 있는데 환경영향평가도 없이 무조건 네네하면서 사드기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것도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보복과 대응군사적 압박으로 나라가 경제 군사적인 극단적 위기에 빠져드는데 미국의 요구라면 무조건 고개숙여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해서 멸종할지도 모를 식물과 미생물에 인류 구원의 특효약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이 들어있을 수도 있는데도 환경영향평가를 무시해야 한다는 것인가.

 

성주는 우리나 참외의 80%를 생산하는 곳이고 최근 들어서는 전혀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유기농 참외 생산도 점차 늘리고 있다. 세계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유기농은 생태계의 균형이 관건이다. 천적들이 해충을 잡아먹고 미생물들이 토양을 비옥하게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요구라고 해서 환경영향평가 없이 무조건 기지를 배치했다가 이런 생태계 균형이 깨지면 세계 인류는 다시는 성주참외를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문정인 특보는 너무나 지당한 말을 한 것이다. 하기에 사대매국으로 제정신을 잃은 일부 친미수구세력들이 준동을 하더라도 언론들이 바로 잡아주어야 할 것인데 부화뇌동하여 문정인 특보를 공격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이 얼마나 치욕스런 일인가.

 

물론 한국이 미국의 경제와 군사력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는 조건에서 미국의 보복조치에 대한 우려를 아예 저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외교는 밀고 당기기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상황에 서게 하기 위해서는 특보나 측근은 총대를 매고 직언도 해야 하고 상대국에게 정당한 이치라면 강한 언질도 해야 한다.  그럴 때 언론들이 우리 국익을 지키기 위해 총대를 맨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어야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기본이며 상식이다.

 

국민의 바른 판단은 언론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제도에 있어 언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다. 언론인들 어깨에 걸린 이 막중하고도 영예로운 임무를 한시도 망각하지 말고 이제는 친미사대 앵무새 언론에서 벗어나 영혼을 가진 언론, 제 나라, 제 민족, 호혜평등, 인류보편적 상식에 부합한 언론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언론이 앞으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국민들로부터 적폐청산대상 1호로 지목될 것이며 국민들의 가혹한 비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젠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이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시대이다. 국민을 함부로 여기다가가는 이 나라 언론들도 더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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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신고리5·6호기 백지화 탄력받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6/19 07:42
  • 수정일
    2017/06/19 07:4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두고 원자력 업계 "철회하라"...환경단체 "탈핵 공약 이행"

박소영 기자 psy0711@vop.co.kr
발행 2017-06-18 16:09:38
수정 2017-06-18 16: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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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원전.
고리원전.ⓒ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한국사회가 탈원전을 향한 첫발을 내딛었다. 고리 1호기 사용 영구 정지는 한국 사회 원전 정책 변화의 시작이다. 하지만 갈길은 멀다. 특히나 현재 건설중인 신고리 5,6호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이제 막 시작 된 탈원전 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점쳐 볼 수 있는 중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발하는 원전업계와 탈원전을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 이를 견인할 시민사회의 기싸움이 팽팽하다.

신고리 5,6호기 5월 기준 공정률 28%
한수원 “계약금 일부 1.5조원 이미 집행..사업 중단시 2.5조원 손실”

문재인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사업 백지화에 반발하고 있는 원자력 업계에서는 신고리 5,6호기의 공정률이 이미 28%에 달하고 있어 사업을 중단할 경우 천문학적인 비용 손실을 감수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건설 허가 승인이 난 이후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공사가 진행 중인 신고리 5,6호기는 오는 2022년과 2023년 3월에 각각 완공될 계획이다.

지난 5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작성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황’ 자료에 따르면 4월말 기준 사업종합공정률은 28%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설계 79%, 구매 53%, 시공 9%의 공정률을 합한 수치다. 총 사업비 8조 6천억원 가운데 1조 5천억원이 집행된 상태다.

원자력 업계 및 학계에서는 사업 백지화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 교수 200여명은 이달 초 성명서를 통해 “일방적인 탈원전 정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고, 한수원 노동조합에서도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시도를 철회하라”는 성명서를 내고 위원장이 직접 국정기획자문위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수원은 사업이 중단시 영향으로 기존에 투입된 1조 5천억원과 계약해지 비용 1조원 등을 더해 2조 5천억 가량의 비용이 발생할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신고리 5,6호기가 울산 지역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유치한 사업으로서 사업 중단시 이에 반발하는 민원이 빗발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정률 28%는 장비구매 계약까지 포함된 것...실제 건설공정률은 그보다 낮아”
18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맞춰 탈핵 선언 요구 목소리도 나와

그러나 공정률이나 비용 등을 근거로 신고리 5,6호기의 사업 백지화를 반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원자력안전대책특별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한수원이 밝힌 28%의 공정률은 장비 구매계약 등을 포함한 수치로서 실제 건설 공정률은 10%도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본격적인 공사는 아직 시작된 게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구매한 장비가 있더라도 기존에 가동 중인 원전에도 교체해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구매 공정률은 더 적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했다. 한수원 자료에 따르면 종합공정률에 포함된 구매 항목에는 원자로 설비, 터빈발전기, 보조기기 등이 포함돼 있다.

게다가 외국의 사례를 비춰 봐도 공정률은 사업 중단의 판단 기준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대만의 경우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목격한 이후 탈핵 여론이 높아지면서 지난 2014년 공정률 98%로 완공 직전이던 원전 건설이 중단되기도 했다.

노태민 부산탈핵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나중에 핵발전소를 가동한 뒤 발생할 핵폐기물 처리비용이나 그로 인한 위험들을 생각하면 잠시라도 가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초래한다”라면서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서 현재 운영중인 발전소 가동을 중지하고 건설 중인 핵발전소에 대해서도 백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탈핵 단체들은 문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으로 내세운 신규 원전 건설 전면중단과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월성 1호기 폐쇄 등 탈핵 공약을 신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특히나 18일 고리1호기의 영구 정지에 맞추어 문 대통령이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선언해야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사업 취소가 결정되면 대통령, 산업부 장관, 한수원의 건설 중단을 발표하게 되고 이후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취소 반영 검토 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최종 반영하게 된다. 전원개발사업추진위의 승인을 거치면 최종적으로 사업이 취소된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여부 등을 포함해 구체적인 탈핵 로드맵을 이달 말 100대 국정과제로서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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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노동자상으론 부족, 100평 공간으로 확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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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7  22: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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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자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대표는 16일 용산역 광장에서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을 위한 릴레이 행동전에 나서 노동자상 뿐만 아니라 100평 규모의 추모공간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렇게 조그만 동상 하나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데, 이마저 허락하지 않는다니 너무하지 않나. 새 정부도 출범했으니 용산역 광장에 100평쯤 공간을 확보해서 오가는 사람들이 이곳에 서린 슬픈 역사를 한번쯤 되돌아볼 수 있는 추모의 장소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일제 식민지강점기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집결지였던 용산역 광장에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추진하던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추진위원회(상임대표 단체 : 민주노총·한국노총)가 지난 4월 6일부터 진행해 온 릴레이 행동전이 지난 16일로 72일에 접어들었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인 이희자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대표(75살)는 햇살이 뜨거운 16일 용산역 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중 “우리 아버지가 용산역을 통해 끌려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용산역에서 기차에 실려 끌려간 후 저 세상으로 가셨거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귀환했지만 일찌감치 병에 걸려 돌아가셨는데 누구도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며, 왜 이곳 용산역에 강제징용 노동자 동상이 건립되어야 하는지를 역설했다.

일제는 전국에서 강제징용한 노동자들을 용산역에 집결시켜 한쪽으로는 부산역으로 옮긴 후 시모노세키를 거쳐 일본 전 지역과 남양군도, 파푸아뉴기니 등으로 동원했고 또 다른 방향으로는 평양을 거쳐 중국, 시베리아까지 끌고 다녔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누가 나에게 이런 사실을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기록을 갖다 준 것도 아니다. 40대에 시작한 유족회 활동을 통해 한 가지씩 사실을 알아 가는데 걸린 시간이 30년이었다”며, “최소한 용산역을 지나 다니는 사람이라도 이 역사를 마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래야 할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1일 건립추진위원회가 당시 국토교통부의 부지협조 불가 입장에 따라 제막식을 하지 못하고 이후 릴레이 행동전이 진행되고 있는데 대해서는 “지난 정권이 하지 못한 일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건립추진위원회가 세우려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너무 협소하다고 거듭 지적하면서 용산역 광장에는 강제징용 지도를 만들어서 여기서부터 어느 곳으로 얼마나 많은 우리 선조들이 끌려갔는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알 수 있도록 추모와 교육을 겸한 시설이 세워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가능하다면 용산 미군기지 건물 중에 아직도 남아있는 일제시대 일본군 숙소, 교육장 등은 미군기지가 나가면 돌려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비극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어릴 적에는 부모를 일본에 빼앗겼고 나라가 돌봐 주지도 않았다.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해 차별받고 헐벗었다. 이제 200~300명밖에 남지 않은 생존자·유가족들의 노후는 정부가 껴안아주길 바란다. ‘그래도 살아있으니까 이런 대우를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대표는 시민들에게 우리의 현재가 그런 아픈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야 다시는 그런 아픈 과거가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 이날 릴레이 행동전에는 현인덕 전국공무원노조 서울본부 통일위원장(노동자상 오른쪽)과 강제징용 희생자 유가족인 이명구 씨 등이 함께 했다. 릴레이 행동전은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가 주관해 진행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편,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추진위원회는 지난 3월 1일 용산역 광장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건립할 예정이었으나 ‘외교부의 반대로 부지를 내어주기 어렵다’는 국토부의 답변으로 무산된 바 있다.

민주노총 통일위원회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이미 일본에도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 땅에 세우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반발, 지난 4월 6일부터 매일 용산역 광장에서 노동자상 모형과 함께 릴레이 행동전을 진행하고 있으며, 오는 8월 15일까지는 노동자상 건립 제막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추진위원회 대표 단체인 양대노총은 지난 2015년 평양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서 후속작업으로 합의한 ‘강제징용 관련 남북노동자 대토론회’ 평양 개최를 올해 8.15~10.4기간 내에 성사시키고 내년에는 노동자상 평양 설립도 빠르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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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정신이상자로 여성혐오를 지우다

 

[프레임 전쟁] 10 강남역 살인사건, 경찰의 ‘정신이상자의 묻지마 살인’ 프레임에도 피어오른 ‘여성혐오’ 담론의 시발점

정민경 기자 mink@mediatoday.co.kr  2017년 06월 18일 일요일

한 사건을 ‘프레임’에 넣어 바라볼 때, 사건의 원인을 하나로 좁히는 부작용을 낳는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살인’이냐, ‘여성혐오 범죄’냐에 대한 논의로 프레임 대결이 펼쳐졌다. 이 대결의 문제는 사건을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하면 ‘여성혐오’라는 프레임은 ‘틀린’ 것처럼 취급하는 데 있다.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한 이들은 당시 경찰이 사건을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여성혐오 범죄를 주장한 이들을 향해 비극적 사건을 ‘여성혐오’ 의제에 동원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에 원인은 여러 가지 일 수 있으며, 조현병 환자의 살인이라고 결론이 난다고해도 여성혐오가 역시 사건의 또 다른 원인이 될 수 있다.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살인’ vs ‘여성혐오 범죄’ 

2016년 5월 17일 한 남성이 서울 강남역의 노래방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한 여성을 살해했다. 해당 사건은 △전혀 알지 못하는 여성을 살해한 점 △범인이 피해자가 오기 전까지 여섯 명의 남성을 그냥 돌려보낸 점 △사건 직후 체포된 범인이 경찰에 “여자들이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점 때문에 ‘여성혐오’ 범죄사건의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임을 강조한 시민들은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추모행사를 열고, 포스트잇을 붙였으며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구호를 외쳤다. 끊임없는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흉악 강력범죄에 노출되는 여성 피해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수많은 여성들은 이 사건에서 자신들이 공중화장실을 갔을 때 느꼈던 서늘함이 단순한 우려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명명한 것은 여성들이 느꼈던 일상적 공포였다. 공중화장실을 갈 때 누군가 칸 속에 있지는 않을까, 밤에 길을 걸을 때 이어폰을 낄까 말까 망설였던 순간, 엘리베이터를 탈 때 함께 누가 타는지 의식했던 시간들이 모여 만든 공포는 여성들의 일상에 피로감을 더해왔다.

▲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시민들은 강남역 10번출구에 추모공간을 만들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시민들은 강남역 10번출구에 추모공간을 만들어 포스트잇 부착 등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통계 역시 이 공포가 ‘근거 있는 공포’임을 말해준다. 대검찰청의 2015년 범죄분석 피해결과에 따르면 1995년 강력범죄(살인, 강도, 강간, 방화)에 노출된 여성 피해자는 전체 7947명 중 29.9%인 2377명이었고 남성은 5570명이었으나 5년 뒤 2000년에는 전체 피해자 8765명 중 남성피해자가 2520명으로 뚝 떨어진다. 여성 피해자는 6245명이었다. 이후 여성 피해자는 꾸준히 늘어 2014년 3만4126명을 기록했다. 남성 피해자는 2009년 5649명까지 증가했지만 꾸준히 줄어 2014년에는 3552명이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해당 통계를 두고 “강력범죄의 성별 피해자 현황은 강력범죄가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특히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경우는 여성이 전체 통계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극명하게 높다. 2014년 흉악 강력범죄 피해자 3만4126명 가운데 성폭력 범죄 피해자는 2만 9863명(87.5%)이며, 이 가운데 여성은 2만7129명으로 90%에 달했다.

(관련기사: 한겨레 '이유있는 언니들의 분노, 통계로 짚어봤습니다')

시민들, 특히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느꼈던 많은 여성들은 이 사건을 통해 공포의 실체를 알게 됐다. 엄기호 작가는 이러한 시민들의 움직임을 두고 ‘집단적 각성’이라고 표현했다. 엄기호 작가는 “일각에서는 우연한 사고에 과잉 대응한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이들이 깨달은 우연은 그 사고가 아니라 자신들의 집단적 운명”이라고 썼다.  

여성들이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느낀 ‘집단적 운명’은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느껴봤던 감정일 것이다. 크게 다른 감정이 아니다. 엄기호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월호에서부터 메르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이 계보가 그려지고 있다. 이 국가와 사회가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와 그리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슬픔, 그리고 무고한 죽음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한” 것이었다. 이 집단적 각성은 “그 불행한 사건이 언제 내 차례가 될지 모르며, 그 차례는 정확하게 약자들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게 하는 사건들”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범인이 조현병을 앓았다며 ‘정신이상자의 묻지마 살인’으로 브리핑했다. 2016년 5월23일 강신명 경찰청장은 “혐오는 의지적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며 “이번 사건은 발생 열흘 전 김씨가 본인이 일하던 장소에서 쫓겨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고자질한 것으로 소위 망상을 하게 돼 피해의식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 청장은 “김씨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며 “실체가 없는 망상으로 인한 범행을 혐오범죄로 보긴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 강남역 10번출구에 붙은 포스트잇.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강남역 10번출구에 붙은 포스트잇.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정신병 증상은 사회적 맥락에서 발현된다”

 

‘조현병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경찰의 결론을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고 해석하기에는 오류가 있다. ‘조현병’과 ‘여성혐오’는 배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유형의 개념이기에, 두 개념이 동시에 겹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라고해서 여성혐오에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현병 환자의 망상에 낀 여성혐오는 한국사회의 사회문화적 환경을 비췄다.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사건이 진짜 조현병 증상 때문에 생긴 거라면, 오히려 여성혐오가 작동한 무의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현병 환자의 망상에도 사회학적 맥락이 들어가 있다. 망상도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서천석 정신과전문의 설명에 따르면 정신병 증상은 사회적 맥락에서 발현된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시절에는 많은 조현병 환자들이 환청을 호소하며 중앙정보부가 자신을 미행하고 도청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에는 CIA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망상들이 많았고 2000년대 이후에는 삼성이 소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여성혐오 의식이 정신병의 증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무의식에는 사회현상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때문에 서천석 전문의는 “만약 환자의 망상에 여성혐오가 포함돼 있다면 그 심각성을 인정하고, 사회 전반에 이런 의식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구조적 개혁을 하고 의식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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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가해자가 경찰에서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대목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무시’라는 개념이 가해자가 자신도 모르게 여성혐오적 생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한다.

 

“조현병에 시달렸던 피의자는 평소 수많은 남성들로부터 어쩌면 더 많은 무시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모욕감과 수치심도 느꼈을 것이다. 비가시적이나 구조적 차별에 많은 피해를 입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상대적 약자인 피의자가 ‘평소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말했다는 사실은 ‘내가 무시해 마땅한 너(여자)마저 감히 나(남자)를 무시해?(너는 나를 무시해선 안된다)’는 생각의 다른 표현이다.”(여성혐오와 젠더차별, 페미니즘-이나영, 2016)  

‘강남역 살인사건’이 조현병 환자의 망상으로 인한 묻지마 살인사건이었더라도, 그 망상에는 ‘여성혐오’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찰 브리핑 받아쓴 언론, 여성혐오를 지우다  

사건 당시 많은 언론이 경찰의 브리핑을 그대로 받아 ‘조현병 환자의 일탈’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프레임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한 사건에는 마치 하나의 이유만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에 문제다.  

조선일보의 ‘강남역 뒤덮은 추모 포스트잇 5000장’(5월20일)과 같은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추모의 벽의 엄숙한 분위기와는 달리, 일부 극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남녀 간에 성별을 비하하는 볼썽사나운 싸움이 벌어졌다”며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여성 혐오 범죄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발언을 인용하며 해당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님을 강조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경찰이 “(김씨가) 최근 정신분열 약을 복용하지 않아 증세가 악화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면서 “여성에게 무시당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범인의 변명에 현혹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시민의 발언을 인용했다.  

 

▲ 2016년5월20일 조선일보.
▲ 2016년5월20일 조선일보.
 
‘조현병 환자’만을 강조한 보도는 결국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님을 언급하는데 사용됐다. 용의자가 조현병, 남성, 30대, 빈곤층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해당 사건은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살인’이 될 수도, ‘여성혐오 범죄’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조현병을 가지고 범죄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관련 보도에서는 범죄와 조현병의 상관관계나 인과관계를 정교하게 설명했어야 했다. 하지만 언론은 경찰의 브리핑을 그대로 받아쓰는데 그쳤다.

 

경찰 브리핑을 그대로 보도한 언론들의 또 다른 문제점은 경찰의 모순을 지적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은 당시 발표 내용과 이어지지 않는 대책을 내놓았다. 당시 경찰은 “여성의 불안감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여성 대상 범죄 및 묻지마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경찰이 발표한 대책에는 △6월1일부터 8월31일 3개월 동안 여성범죄대응 특별 치안 활동 △위험인물에 대한 제보 접수 후 순찰 강화 △신변 위협을 받는 여성들에게 위험 상황을 곧바로 알리는 ‘스마트 워치’ 지급이 포함돼 있었다.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고 발표한 경찰이 ‘여성 대상 범죄’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모순이다. 물론 경찰은 조현병 환자 등 정신장애인을 격리하는 대책들도 내놓았다. 경찰이 내놓은 대책은 △여성범죄가 아니라고 사건을 규정지으면서 여성 범죄 방지 대책을 내놓은 점 △정신장애인 혐오를 확산하는 대책을 내놓은 점에서 문제가 있다.

만약 경찰이 발표대로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살인’이라면 대책은 여성뿐 아니라 모든 시민으로 확대돼야 했다. 어쩌면 경찰은 ‘이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데, 여성들은 발표를 믿지 않고 불안해하기 때문에, 여성 대상 범죄 대책을 일단 내놓겠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여성들이 왜 불안한지를 고려해 최종브리핑을 내놓았어야 했고, 섣불리 “이 범죄는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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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강조하며 정신장애인 혐오 강화한 경찰과 언론

 


또 다른 문제점은 경찰의 브리핑과 대책이 결과적으로 정신장애인의 혐오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는 브리핑과 함께 정신장애인 혐오를 조장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정부는 강남역 살인사건 등에 대한 조치로 ‘여성 대상 강력 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대책’을 통해 여성 범죄에 대한 대책과 함께 정신질환자에 대한 응급입원 조치 실행, 학교에서 조기에 정신질환을 분류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라는 장애인 혐오를 조장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언론 역시 이런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받았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켰다. ‘묻지마 살인 부른 망상, 국내 50만명 정신분열증 앓고 있다’(뉴스1), ‘국내 10명 중 1명 정신분열증 환자…인권 논란에 관리 어려움’(MBN), ‘정신분열증 환자 관리 더 어려워져…정신보건법은 예방에 역행’(연합뉴스)과 같은 기사가 대표적이다.

심층적 뉴스를 다루는 탐사보도프로그램도 ‘강남역 살인사건’을 보도하면서는 아쉬운 면모를 보였다. 대표적 탐사보도 프로그램 SBS ‘그것이 알고싶다’ 강남역 살인사건편(2016년 6월4일 방영)은 여성혐오범죄를 부정하고 정신장애(조현병)인의 범죄로 규정해 조현병 환자에 대한 전수조사 등의 대책을 내놓은 경찰의 시선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방영했다. 추가적으로 비판적 관점을 보도하지도 않았다.

언론보도와는 다르게 통계는 총범죄자 중 정신장애인 비율이 0.3%(2012년 경찰통계연보)라고 말하고 있다. 경찰과 언론은 해당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새로운 먹잇감을 찾은 게 아닐까.  

 

▲ 2016년 5월 2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추모 참여자 인권침해 공동대응 기자회견.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016년 5월 2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추모 참여자 인권침해 공동대응 기자회견.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페미니즘 열풍’의 시발점 된 강남역 살인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등장한 ‘페미니즘 열풍’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언론사가 눈에 띄기도 했다.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은 당시 ‘강남역 살인사건’을 보도하며 여성혐오 등 페미니즘 개념을 적극적으로 확산시킨 언론으로 꼽을 수 있다. ‘페미사이드’라는 개념을 1면 기사에 등장시킨 한국일보의 ‘극단 치닫는 여성혐오, 무섭지만 굴하지 않겠다’(5월20일) 기사는 대표적 사례중 하나다. 이 기사는 ‘페미사이드’(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의 결합어,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것을 규정짓는 단어) 용어를 설명하며 “우연한 결과로 희석돼 온 그간의 페미사이드를 여성 혐오 범죄로 분명하게 가시화하겠다는 여성들의 의지와 연대”를 언급했다. 경향신문 사회부는 강남역 10번 출구에 시민들이 남긴 1004개의 포스트잇을 빼곡히 기록해 책으로 남기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 2016년5월20일 한국일보.
▲ 2016년5월20일 한국일보.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들이 지금까지 자신만 겪는 줄 알았던 개별적 공포와 사건들을 한데 모으는 계기가 됐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저자 이민경 작가는 강남역 살인사건의 의의를 가리켜 “여성혐오범죄, 증오범죄 속 여성 대삼 범죄로 분류될 첫 번째 사건이 강남역 살인사건에 빚지고 있다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민경 작가는 “증오범죄는 인정하지만 여성혐오범죄라는 지칭이 본질을 다룰 수 없다는 가치판단 자체에 여성혐오가 깃들어 있다”며 “이 사건에서 ‘여성’이라는 말을 빼는 것은 존재하는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려는 핑계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경찰이나 법정의 결론과는 별개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논쟁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한국사회는 ‘여성혐오’라는 개념에 조금 더 익숙해졌다. 물론 여전히 경찰이나 법정은 강남역 살인사건의 동기에서 ‘여성혐오’를 지우고 있다. 대법원은 4월14일 김씨에게 살인죄로 30년 징역을 선고했지만 판결문을 보면 ‘김씨가 여성을 혐오했다기보다 남성을 무서워하는 성격 및 망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피해의식으로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했다’고 판단했다. ‘여성혐오’라는 표현에는 선을 그은 것이다.  

 

▲ 2017년5월17일 경향신문.
▲ 2017년5월17일 경향신문.
 
그러나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없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에 대한 담론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사건 1주기였던 지난 5월17일 기사를 살펴봐도 이런 흐름을 알 수 있다. 꾸준히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관련된 기사를 내온 한국일보와 한겨레, 경향신문은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스트가 된 이들을 인터뷰하는 기획기사 등을 실었다. 그 외에도 서울신문 ‘출근길, 난 오늘도 여혐과 마주쳤다’, 국민일보 ‘1년 전 오늘 스러진 여성인권, 아직도 여성은 무섭다’처럼 여성들이 일상에서 맞추지는 공포와 혐오를 인정하는 기사들이 종종 접할 수 있다. 동아일보도 ‘코르셋과 맨박스로부터의 탈피’라는 칼럼을 통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혐오는 더 이상 개인적 고민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담론으로 대두됐다”고 강조했다. 

 

기사 외에도 각종 미디어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여성주의 액티비즘이 매우 활발해졌다. 강남역 10번 출구 운동 등에서 시작해 페미네트워크, 불꽃페미액션, 리벤지포르노(디지털성범죄)아웃, 페미당당, 페미디아 등 다양한 조직을 결성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페미니즘 이슈뿐 아니라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등 사회이슈와 노동이슈에도 함께 하고 있다. 이 비극적 사건을 계기로 한국사회가 그동안 감추고 지워왔던 ‘여성혐오’가 드러났고 그에 대한 연대가 확장됐으며 그 연대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 2016년 10월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강남역 10번 출구’ 등 페미니스트 그룹들과 시민이 보건복지부의 시행 개정안 및 낙태죄를 반대하는 폴란드의 ‘낙태 금지법’ 반대 시위를 모티브로 하는 검은 시위를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2016년 10월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강남역 10번 출구’ 등 페미니스트 그룹들과 시민이 보건복지부의 시행 개정안 및 낙태죄를 반대하는 폴란드의 ‘낙태 금지법’ 반대 시위를 모티브로 하는 검은 시위를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이렇게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여성혐오 담론을 지우려던 수많은 시도들은 사후적으로, 사실상 실패한 게 아닐까. 
 

참고문헌 

‘뉴스의 배경’-조영주, 2016 
‘우리에게도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민경, 2016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엄기호, 2016 
‘대한민국 넷페미사’-권김현영, 손희정, 박은하, 이민경, 2016
‘여성혐오 젠더차별, 페미니즘’-이나영,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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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부동산 대책 발표, '핀셋 규제'의 방향은?

 

아파트 중도금에 대출 심사 적용, 투기과열지구 지정도 일부 가능성

17.06.18 10:35l최종 업데이트 17.06.18 10:35l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최근 들어 시세가 급등하고 있다.
▲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최근 들어 시세가 급등하고 있다.
ⓒ 신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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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다음주초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대출규제와 투기과열지구 지정 등 여러 예측이 나오고 있다. 대출 규제는 현재 아파트 집단 대출에 대해서도 부채상환비율을 적용하는지가 관심거리다. 

LTV·DTI 선별적 규제? 집단대출에 DTI 적용하나

이번 대책에는 담보인정비율(아래 LTV)과 총부채상환비율(아래 DTI)등 대출 규제가 포함될 것이 유력해 보인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지속적으로 대출 규제에 대해 언급해왔다. 

 

현재 적용되는 DTI는 70%, LTV는 60%다. 상환기간을 1년으로 한정하면, 연 1억 원을 버는 사람은 최대 7000만 원(70%), 1억 원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은 최대 6000만 원(6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비율이 올라가는 만큼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다. 

LTV와 DTI는 7월을 끝으로 완화 조치가 끝난다. 8월부터 LTV는 수도권 50%, 지방 60%로 강화된다. DTI의 경우 서울은 50%, 경기인천은 60%가 된다. 일단 현재 상황에서 완화조치는 추가 연장 없이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관심이 모이는 것은 추가 대출 규제에 대한 것이다. 그동안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LTV와 DTI의 선별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투기 세력을 잡으면서 실수요자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집단대출 심사시 DTI 적용하면 투기 세력 원천 차단"

맞춤형 대책의 하나로 거론되는 것은 아파트 집단대출(중도금)에 대해서도 DTI 등을 적용하는 방안이다. 현재 아파트 분양 집단 대출은 대출자에 대한 별도의 심사가 없다. 그런데 집단대출에도 DTI가 적용되면, 중도금 대출을 받기도 까다로워진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처음 분양 신청을 할 때, DTI가 적용된다고 하면 투기 세력들이 원천 배제되는 효과가 있다"면서 "예를 들어 소득이 없거나 집을 2채 이상 소유해, 갚아야 할 빚이 많은 사람은 심사를 통해 집단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최환석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지난 11.3 대책에서 아파트 분양권 전매 규제가 시행됐음에도 최근 아파트가 투자 수요로 급등세를 보였다"면서 "중도금 대출도 대출 규제를 하게 되면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이후 처음으로 투기과열지구 나오나?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을 방문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을 방문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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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집값이 급등한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는 것도 맞춤형 대책카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투기과열지구 지정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를 하고 난 이후 결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언급했었다.

투기과열지구는 재건축 아파트 매매를 아예 차단하는 강력한 카드다. 지난 2011년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 등 3곳에 대한 투기과열지구 지정이 해제된 이후, 아직까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사례는 없다.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현저히 높은 지역이 대상이다. 2개월간 청약경쟁률이 5:1을 초과하거나, 주택 전매 행위가 성행하는 등 주거 불안 우려시 지정할 수 있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곳은 재건축 조합원 지위의 양도가 금지된다. 재건축 아파트를 사더라도 조합원 지위를 얻을 수 없다. 과열지구에서 재건축 아파트를 산 사람은 일정 기간 거주하다가 재건축이 진행되면 돈 한 푼 못 받고 나와야 한다. 사실상 재건축 거래가 중지되는 것이다.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의 경우 주택담보대출시 40%만 적용되고, 담보인정비율(LTV)도 50%가 적용된다. 과밀억제 권역 안에 있는 재건축 아파트는 의무적으로 후분양을 해야 한다. 분양권 전매도 소유권이전 등기를 완료하기 전까지 원천 금지된다.

송 연구위원은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하면 정말 해당 지역에 거주하려는 의사가 있는 실수요자만 들어오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금리 인상과 맞물려 판단하면, 신중해야 할 듯"

금리 인상과 맞물린 시기를 감안할 때, 정부가 신중한 판단을 하지 않겠느냐는 일부 예측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3일 부동산 대책 때 정부는 투기과열지구 지정도 검토했지만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서울, 경기 과천과 성남, 부산, 세종을 규제 강화 지역으로 지정하고 분양권 전매 제한을 강화했다. 특히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는 분양권 전매를 '소유권이전등기' 시점까지 미뤘다. 따라서 이번 대책에서도 분양권 전매 추가 강화 등으로 해법을 찾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최 팀장은 "(투기과열지구 지정 문제는) 7월 금리인상 문제와 맞물려 봐야 할 것 같다"면서 "투기과열지구 등 강력한 대책이 나온 뒤, 금리 인상까지 맞물린다면 단기간 시장이 급랭할 수 있다는 부분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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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개혁의 고삐를 당겨야 할 시점

철도, 민영화할 것인지, 말 것인지만 결정하면 된다
[기고] 철도 개혁의 고삐를 당겨야 할 시점

 

 

한국철도의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동안 한국철도가 갖고 있던 문제는 운영기관의 독점문제가 아니라 국토부의 철도 정책 독점이 문제였다. 국토교통부는 전 세계 모든 철도운영 국가가 직면해야 했던 철도적자 문제를 운영기관의 비효율 문제로 규정하고 철도공사와 그 임직원들을 부실의 주체로 몰아세웠다. 
 
이 바탕에는 국토부의 공적체제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내재되어 있다. 한국철도가 국영체제였을 때에는 공무원 마인드로는 절대로 경영혁신을 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무원인 국토부 정책담당자들은 혁신과 담쌓은 무사안일주의가 공무원 조직의 특성이라고 대놓고 말했다. 대안은 시장경쟁이었다.  
 
민간의 창의적인 경영 방식을 도입하고 경쟁을 통한 효율화를 이루게 된다면 철도는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것이 국토부의 입장이었다. 철도민영화는 이를 위한 전제조건이었다. 여기에 제동이 걸린 것은 참여정부 때였다. 민영화 로드맵을 밟던 철도청은 공적체제인 철도공사(코레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정보와 자료를 독점하고 있는 관료들은 언제든 민영화의 길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해외사례의 아전인수식 해석과 현실 문제를 특정한 프레임으로 구성해 법을 만들고 제도화 했다. 그 결과 100년 독점체제의 낡은 한국철도를 경쟁체제 도입으로 회생시킨다는 명제가 만들어졌다.   
 
재벌 친화적 보수 정권 시대에 철도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수술시도가 이루어졌다. 그 방아쇠가 된 것은 평택-수서 간 신설되는 고속노선이 되었다. 한국철도의 고질적 문제인 수송용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제시되었던 60킬로미터 남짓의 신선을 철도민영화의 트로이 목마로 밀어 넣은 것이다. 용인시를 파탄 내고 의정부시마저 민자 철도의 수렁에 밀어 넣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국책연구원 한국교통연구원이 국토부의 청부해결사로 앞장섰다. 교통연구원의 이데올로그들은 수서고속철도 민영화는 한국철도가 도달할 유토피아로 그려냈다.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박근혜 정권은 취임 첫해 수서고속철도를 코레일로부터 분리해 내는 데 성공했다. 민영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공적자금이 투자되었지만 지분매각금지 법제화는 절대 안 된다는 국토부와 새누리당의 고집으로 이사회에서 정관만 바꾸면 언제든지 민간회사가 될 수 있는 주식회사가 만들어졌다. 
 
현재 개통 6개월이 지난 SRT(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많은 언론들은 6개월 만에 850만의 승객을 실어 나른 SRT가 코레일과의 경쟁체제를 안착시켰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SRT가 기록한 850만의 승객은 경쟁의 결과가 아니다. 존재하지 않던 철도 인프라가 신설되면서 선로용량이 증가하고 이용객이 늘어난 것이다. SRT가 운영했든 코레일이 운영했든 확장된 고속철도망이 이룰 수 있는 성과이다. 
 
경쟁체제가 아니라 통합운영구조에서는 수서역에서도 포항, 마산, 진주 까지 운행구간을 늘려 수서역 이용객들의 편의성도 늘어난다. 승객이 몰리는 주말에는 코레일이 보유한 20량 편성의 고속열차 투입이 가능해 더욱 많은 좌석을 공급할 수도 있었다.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구현된다면 더 많은 이로움이 창출된다. 통합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는 것은 철도의 공공성을 확장시키는 지렛대다.  
 
국토부나 교통연구원이 경쟁체제의 효과라며 선전하는 것들이 경쟁을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이라면 철도경쟁체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경쟁효과는 통합구조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들이다. 반면 경쟁체제의 부정적 영향은 한국철도의 기초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고속철도운영 수익으로 그나마 영업적자를 벗어났던 코레일은 또다시 만성적자의 늪으로 유도되고 있다.  
 
경쟁에 내몰린 코레일은 비용절감이 화두가 되다 보니 인력감축이나 외주화의 손쉬운 길을 택하게 됐다. 지난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에서 보듯 외주화는 만성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나쁜 일자리이며 인간 경시 풍조를 만연시킨다. 정규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하던 광운대역의 철도공사 정규직 노동자는 작업 중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코레일은 가뜩이나 적자기업의 오명을 쓰고 있는 마당에 적자를 양산하는 지방선의 운행을 줄이려 시도했다. 열차운행이 줄면 당연히 이용 환경이 악화되고 이용자가 외면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히게 된다.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 수송분담률 상승 자체가 사회적 이익이 되는 철도가 지역에서부터 부실화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역과 역으로 이어지던 지역의 공동체와 문화, 역사가 소실되는 것이다. SRT에서 시작되는 나비효과의 결과이다. 
 
15일 열린 국토부 장관 인사 청문회에서 많은 의원들이 김현미 장관 후보자에게 SRT관련 서면질의를 했다. 안호영 의원은 수서고속철도 운영을 SRT에 맡긴 것이 공공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보는지 물었다. 장관 후보자는 SRT 경쟁도입으로 인해 요금인하 등 긍정적인 측면과 철도공사 경영악화 등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행 경쟁체제가 공공성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인지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현미 후보자가 국토부 장관에 임명된다면 면밀히 검토할 측면은 의외로 간단하다. 부정적인 측면이 현행 체제로 극복이 가능하다면 SRT 경쟁체제를 지속시키면 된다. 반대로 코레일로의 통합 구조가 부정적인 면을 상쇄하고 긍정적인 면을 유지 할 수 있다면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어떤 구조가 부실을 영구화 시키는지 판단하면 된다. 현재의 구조를 설계하고 집행한 여러 이해집단의 방해와 견제가 만만치 않겠지만 사회적 유익을 최고의 가치로 놓는다면 철도 개혁의 고삐를 당겨야 할 시점이다.  
 
다행인 것은 김현미 장관 후보자가 코레일과 SRT의 통합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철도가 시민들의 친근한 벗으로 다시 태어나는 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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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최첨단 구축함 상선과 충돌 대파, 상선은 멀쩡

미, 최첨단 구축함 상선과 충돌 대파, 상선은 멀쩡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6/18 [02:5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7년 6월 17일 새벽 필리핀 컨테이너선과 충돌하여 심각한 파손을 당한 피츠제럴드 미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     © 자주시보

 

▲ 피츠제럴드함이 결국 요코스카 미군기지로 자력으로 이동하지 못해 예인선에 끌려가고 있다.     © 자주시보

 

복수의 국내외 언론보도에 따르면 17일 새벽 2시 반쯤 일본 시즈오카현 미나미이즈초에서 20km 떨어진 해상에서 미국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함이 필리핀 컨테이너 선박과 충돌하여 측면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며 미군 벤슨 함장을 비롯한 미해병 3명이 부상을 당하고 7명이 실종되었다. 안타깝게도 만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실종 해병들의 구출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 거의 멀쩡한 필리핀 컨테이너선     © 자주시보

 

▲ 피츠제럴드함 충돌 관련 기사 댓글     © 자주시보

 

하지만 충돌했던 필리핀 컨테이너선은 약간 긁혔을 뿐 거의 멀쩡한 상태여서 많은 이들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는 배를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배는 파도를 이겨내며 나가야 하기 때문에 정면은 매우 튼튼하지만 측면은 그에 비교할 수 없이 약하다. 컨테이너선 배수량이 3배나 큰 점보다 부딪힌 위치가 결국 미군 함선에게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큰 군함이라고 해도 측면을 파고드는 대함미사일에 치명상을 피할 수 없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프랑스 엑조세 공대함미사일로 셰필드 대형 구축함을 단발 격침했던 것도 바로 이 이치 때문이다. 또한 미군 잠수함이 항공모함 측면을 머리로 들이박아 잠수함은 멀쩡했는데 항공모함에는 구멍이 뻥 뚫렸것도 같은 이치 때문이다. 그래서 천안함도 미군 잠수함 머리와 충돌로 동강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나왔던 것이다.

 

특히 군함은 여러 무장장비를 탑재해야 하고 포탄과 미사일도 많이 실어야 하기 때문에 배를 무겁게 만들 수 없다. 따라서 무거운 철판으로 측면까지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점 때문에 로켓무기가 발전한 현대전에서 항공모함이나 구축함과 같은 대형장비들이 매우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고 볼 수 있다.

 

북은 그래서 대형 함선은 거의 보유하지 않고 있다. 대신 각종 대함미사일과 어뢰 등 원거리 타격무기를 장착한 빠른 속도의 어뢰정과 잠수함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각종 대함 탄도미사일과 대함 순항미사일을 수없이 많이 개발 준비해두고 있는 것이다.

북에 대형 구축함이나 항공모함이 없다고 곧잘 무시하는 반북진영 전문가들이 많은데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그나저나 이지스 구축함은 100개 이상의 공격 목표물을 탐지하여 동시에 수십개를 요격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바로 옆에서 들이박고 있는 느려터진 대형컨테이너선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은 좀 의아하다.

 

레이더 감시병도 혼자가 아니뿌만 아니라 육안 관측병과 중층적으로 감시하게 되어 있는데 왜 이를 피하지 못했는지 납득이 안 된다.

 

모든 레이더 감시병이나 육안관측병이 근무태만을 해야만 발생할 수 있는 사고가 난 것이다. 미군의 정신상태가 엉망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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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물고문·전기고문하더니 박근혜가 ‘이자고문’ 하더라

박정희가 물고문·전기고문하더니 박근혜가 ‘이자고문’ 하더라

등록 :2017-06-17 10:14수정 :2017-06-17 10:22
 
[토요판] 커버스토리
구순 노기자의 ‘끝나지 않은 인혁당 사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거짓말을 했다. “과거사 피해자들을 만나고,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겠다”던 약속은 2013년 정부 출범 직후 없던 말이 됐다. “인혁당에는 2개의 판결이 있다”며 ‘인혁당(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의 실체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대중의 뭇매를 맞고 뱉은 약속이었다. 최악의 사태는 그 후에 찾아왔다. 박근혜 정권 출범 5개월 뒤인 2013년 7월, 국가정보원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무기수·유기수 가족 77명에게 가지급된 배상금의 일부를 반환하라고 소송을 걸었다. 2011년 1월 대법원이 ‘지연 이자가 과하다’며 30여년치 이자액을 삭제하자, 국정원이 이들이 앞서 받았던 491억여원 중 원금 271억여원 등을 제외한 돈을 이자까지 쳐서 되갚으라고 한 것이다. 법원은 국정원의 손을 들어줬고, 피해자 가족들은 되레 돈을 갚아야 할 채무자 신세가 됐다. 연 20%에 이르는 연체 이자율은 하루가 무섭게 빚 덩치를 키워간다. ‘물고문’, ‘전기고문’이 끝나더니 어느덧 ‘이자고문’이 시작됐다. 한국 사회는 이들의 고통에 과연 뭐라 답해야 할까. 글 이명선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사진 셜록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은 거짓말을 했다. “과거사 피해자들을 만나고,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겠다”던 약속은 2013년 정부 출범 직후 없던 말이 됐다. “인혁당에는 2개의 판결이 있다”며 ‘인혁당(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의 실체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대중의 뭇매를 맞고 뱉은 약속이었다. 최악의 사태는 그 후에 찾아왔다. 박근혜 정권 출범 5개월 뒤인 2013년 7월, 국가정보원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무기수·유기수 가족 77명에게 가지급된 배상금의 일부를 반환하라고 소송을 걸었다. 2011년 1월 대법원이 ‘지연 이자가 과하다’며 30여년치 이자액을 삭제하자, 국정원이 이들이 앞서 받았던 491억여원 중 원금 271억여원 등을 제외한 돈을 이자까지 쳐서 되갚으라고 한 것이다. 법원은 국정원의 손을 들어줬고, 피해자 가족들은 되레 돈을 갚아야 할 채무자 신세가 됐다. 연 20%에 이르는 연체 이자율은 하루가 무섭게 빚 덩치를 키워간다. ‘물고문’, ‘전기고문’이 끝나더니 어느덧 ‘이자고문’이 시작됐다. 한국 사회는 이들의 고통에 과연 뭐라 답해야 할까. 글 이명선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사진 셜록 제공

 

▶ 국가정보원이 민주투사에게 수억원의 빚을 지웠습니다. 사형 선고 18시간 만에 8명이 사형당하고 17명이 수감됐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무기수·유기수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최악의 공안 사건으로 분류되고, 대법원 사형 선고가 있었던 날은 국제법학자협회가 꼽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기록됩니다. 30년 넘게 빨갱이라 손가락질받으면서 숨죽여 살아온 인혁당 피해자들은 왜 사건의 가해자인 중앙정보부의 후신 국정원의 채무자가 됐을까요?

 

구순의 노기자 강창덕은 고문으로 조작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포함해 모두 7번의 투옥, 13년의 수감생활을 했다. 강창덕의 서재 겸 안방. 책 사이로 한반도기가 꽂혀 있다
구순의 노기자 강창덕은 고문으로 조작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포함해 모두 7번의 투옥, 13년의 수감생활을 했다. 강창덕의 서재 겸 안방. 책 사이로 한반도기가 꽂혀 있다

 

대구 봉덕시장 인근의 한 여관방. 그날도 어김없이 ‘유신 반대 삼총사’가 시린 추위를 뚫고 한자리에 모였다. 벽지가 누렇게 바랜 허름한 여관방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좋았다. 맏형 강창덕(당시 47살)은 동생들이 도착하자마자 곧장 문을 걸어 잠갔다. 창문 틈 사이로 인기척도 확인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강창덕은 미닫이 창문의 걸쇠를 돌려 잠그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경일(당시 44살)과 이재문(당시 40살)도 그제야 온돌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취재노트를 꺼냈다. 1974년 2월 어느 겨울밤, 셋은 유신 반대 지하신문인 <참소리> 창간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니들 여기 올 때 뒤밟히면 안 된다. 우리 다 죽는다.”

 

셋은 1974년 초 박정희 유신독재의 진실을 알리고자 지하신문을 만들기로 결의했었다. 신문이 완성되면 새벽녘 대구 중앙로 인근에 몰래 뿌리자는 계획을 세웠다. 신문의 제호는 <참소리>, 논단은 <진실로>로 정했다. 제 목소리를 잃은 언론을 대신해 세상의 참된 소리, 즉 진실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였다. 강창덕은 언론계와 정계, 나경일은 노동계, 이재문은 학계로 영역을 나눴지만 그들의 주요 취재 대상은 대학이었다.

 

그해 겨울은 어느 때보다 매서웠다. 1974년 1월8일 박정희 대통령은 긴급조치 1호와 2호를 선포해 전국민의 입을 꽁꽁 얼려버렸다. 막걸리를 마시고 술기운에 유신 반대 발언을 했다가 영장 없이 체포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유신헌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자는 발의 또한 금지됐고, 보도와 출판은 정부에 의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자유는 박탈됐고, 인권은 유린됐다.

 

‘유신(維新)헌법’이 아니라 ‘유신(有神)헌법’이었다. 낡은 제도를 새롭게 하겠다는 유신(維新)헌법은 사실 대통령 박정희를 대한민국의 신(神)으로 만드는 법이었다. 이를 좌시하지 못한 이들은 대학생이었다. 전국의 수많은 대학생이 철창행을 각오하고 반유신 운동에 나섰다. 4·19 혁명이 이승만 정권에 종지부를 찍은 것처럼 이번에도 민중의 힘으로 독재를 몰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민주화란 꽃봉오리가 대학가에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대학생들 데모 분위기 어떻노? 유신 반대 선언문 가져왔제?”

 

당연히 대학생들의 유신 반대 운동과 선언문이 주요 기삿감이었다. 당시 서울대의 경우 학생운동이 상대적으로 덜 활발했던 의대와 공대에서도 민주화운동 바람이 불고 있었고, 여러 여자대학교 학생들도 데모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었다. 때마침 1969년 3선 개헌 운동과 1971년 교련 반대 데모 때 강제 징집됐던 학생들이 복학하면서 점차 그 세가 확대되고 있었다.

 

<참소리>의 편집장은 강창덕이었다. 강창덕은 1956년 서른의 나이로 <영남일보> 공채 1기로 입사하고 모두 5년간 기자로 일했다. 그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기자였다. 영남일보 사주가 이승만 대통령이 창당한 자유당 배지를 달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자 항의의 표시로 사표를 냈었다. 강창덕은 그 뒤 <대구매일신문>으로 이직해 ‘이승만 저격수’가 됐다. 이승만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는 기사를 지칠 줄 모르고 써 내려 갔다. 그중 하나가 이승만 정권의 만행 중 하나였던 ‘코발트 광산 학살 사건’이었다. 강창덕은 고향 경북 경산에 특파원으로 내려가 부락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폐갱 속에 묻힌 수천구의 억울한 죽음을 기사로 옮겼다.

 

그런 그에게 <참소리>는 다시 참기자로 거듭나는 계기였다. 신문사를 퇴사하고 14년 만에 다시 펜을 잡았지만, 저격의 대상이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바뀌었을 뿐, 끓어오르는 기자 정신은 온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강창덕의 책상. 안중근 의사가 남긴 ‘견리사의 견위수명’(눈앞 이익을 보면 대의를 생각하고,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강창덕의 책상. 안중근 의사가 남긴 ‘견리사의 견위수명’(눈앞 이익을 보면 대의를 생각하고,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민청학련 배후 지목되자 <참소리> 불태워

 

“등사판 작업할 때는 꼭 고무장갑 끼고 하래이.”

 

경찰의 사찰과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는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야 했다. 지문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신문을 만질 때마다 늘 고무장갑을 꼈고, 수첩은 늘 빈 상태로 남겨두었다. 책잡힐 만한 메모는 애초에 남기지 않았다. 뜻을 함께한 동지들끼리 사진을 찍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진실은 드러나도 그들은 얼굴 없는 기자로 남아야 했다. 강창덕과 알고 지냈던 동생인 백정호(당시 32살)는 이 소식을 듣고 기꺼이 <참소리>의 물주가 되기로 했다. 미술학도였던 백정호는 미술학원에서 번 돈을 형들의 민주화운동을 위해 바쳤다. 등사판과 종이는 백정호의 주머닛돈으로 마련했다.

 

그 무렵 유신 정권의 칼날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전국의 대학생들이 1974년 4월3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서울의 봄을 꿈꾸다가 경찰에 발각됐다. 곳곳에 심어진 사복경찰의 감시를 결국 피하지 못했다. 결국 중앙정보부는 관련 학생들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이란 명칭을 달아 1024명을 연행하고 180여명을 구속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곧장 4월3일 긴급조치 4호를 발동했다. “민청학련에 관련된 단체와 그 구성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하는 일을 금한다”고 공표하면서 전국을 유신의 손아귀에 넣어버렸다.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사람을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도 이때다. 긴급조치 4호를 위반하거나 비방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했다.

 

“안 되겠어. <참소리> 모두 태워야겠어.”

 

1974년 4월25일 중앙정보부장 신직수가 발표한 수사상황은 결정적으로 강창덕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도록 했다. “민청학련 배후에 과거 공산계 불순단체인 인민혁명당(인혁당)이 연루됐다”는 방송을 듣고 강창덕 자신도 이에 연루될 수 있다고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1964년 터진 인혁당 사건에 대해 전혀 아는 바는 없었지만, 이 불똥이 자신에게도 튈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날 밤 강창덕은 바로 짐을 싸서 대구를 떠났다. 하지만 도피 열흘째인 5월6일, 동서가 운영하던 양복점에서 남대구경찰서 보안 경찰들한테 붙잡히고 말았다.

 

강창덕이 법원에 제출한 재산 목록.
강창덕이 법원에 제출한 재산 목록.
고문으로 날조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고문은 숨 쉴 틈 없이 계속됐다. 남대구경찰서 수사관들은 강창덕을 기다란 나무 의자에 손발을 묶어 누인 다음, 수건으로 얼굴을 덮고 물을 부었다. 경찰봉으로는 손바닥과 발바닥을 거침없이 때렸다. 퍼렇게 멍이 들어가는 몸을 보면서 그는 ‘이 고문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두려움에 떨었다. 중앙정보부로 옮겨가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낮인지 밤인지 모를 창문 없는 고문실에서, 온 감각을 도려내고 싶은 끔찍한 고문이 매일같이 반복됐다.

 

 

‘이승만 저격수’ 기자 출신 강창덕
<참소리> 만들어 박정희 정권에 맞서
1974년 민청학련 배후로 지목돼 구속
중정,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조작

함께 잡힌 이창복·전창일 등 동료도
불법 고문 등 시달리다 목숨만 건져
강령·규약 등 물증도 없는 조작사건
선고 18시간 뒤 8명 전격 사형집행

재심 통해 무죄 확정판결 내려지자 
정부, 원심확정일 이후 이자 포함
491억원을 피해자 77명에게 배상
평화재단 출연, 사회단체 등 기부해

2011년 대법원이 이자과다지급 판결
국정원,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 내
연 20% 연체이자율에 시달리고
재산 압류, 부동산 강제경매 내몰려

 

 

원칙대로면 고문은 유신헌법에서도 금지사항이었다. 유신헌법 제10조 2항에는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쓰여 있었지만, 박정희 정권에서 고문은 늘 편하게 가져다 쓸 수 있는 값싼 도구가 됐다.

 

“공산주의 책 보면서 북한 사주 받은 거 아니야? 북한 방송 몰래 훔쳐 들었다고 실토해!”

 

고문 기술자들은 조작된 자백을 받아내는 데 선수였다. ‘살아서 못 나간다’고 협박은 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토해낼 때까지 어떻게든 살려 둬야 했다. 고문을 하다 기절을 하면 군용 담요를 덮어 주물러서 혈액순환을 시켰다. 그러고 다시 깨어나면 멱살을 잡아 고문 의자에 앉혔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강창덕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대화가 있었다. 바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명이 만들어진 경위였다. 조서를 작성하던 중 조사관들끼리 나누던 대화를 통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라 명명된 배경을 들었다. 일단 잡아 놓고 입맛에 맞게 사건명을 붙인 것이었다.

 

“이 사건 명칭을 뭐라고 했으면 좋겠냐?”

 

“서도원, 도예종 등 1차 인혁당 관련자들이 많으니 인혁당 재건위라고 하면 어떻겠냐?”

 

검찰로 넘어가도 모든 게 똑같았다. 군 검찰관에게 신문을 받는 동안에도 중앙정보부 사람들이 함께 입회했다. 죽음만은 피하고 싶어 피눈물 흘리며 받아 적은 거짓 진술서대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다르게 말하면 검사가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며 자리를 떴고, 그사이에 중앙정보부 사람들은 또다시 고문 협박을 했다.

 

고문으로 주물러 만든 허위 사실은 재판에서도 뒤집어지지 못했다. 1974년 7월8일 서울 중구 필동 헌병사령부 법정에서 열린 인혁당 첫 재판은 잘 짜인 연극과도 같았다. 긴급조치 4호가 발동하고 두 달 남짓 지나는 동안 강창덕을 비롯한 사건 연루자 25명은 중앙정보부가 쓴 대본을 완벽히 외웠다. 1964년 ‘인혁당’ 자체가 조직된 적이 없었으니, ‘인혁당 재건위’라는 말은 사실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있지도 않은 것을 재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유신반대 운동을 잠재울 희생양만 있으면 됐다.

 

강창덕의 가족사진. 아버지가 없는 가족사진에 불과했지만 사진 뒤에는 ‘출소 시까지 반려'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강창덕의 가족사진. 아버지가 없는 가족사진에 불과했지만 사진 뒤에는 ‘출소 시까지 반려'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공판조서가 변조되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 중 고문으로 받아낸 진술 말고는 이렇다 할 증거가 없었다. 반국가 단체 결성을 위한 강령이나 규약, 체계, 조직활동에 대한 어떠한 물증도 제시되지 못했다. 증거물이라고 해봤자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라디오와 사회주의와 관련된 서적 몇 권이었다. 증거가 부족하면 재판 도중 검사가 피고인들을 끌고 내려가기도 했다. 이창복(당시 42살)이 그러한 경우였다. 공소장을 읽던 검사가 휴정 중에 보통군법회의 밑에 있는 사무실로 데리고 가 이창복에게 추가 진술서에 지장을 찍도록 강요했다.

 

“이창복! 북한 노동당 제5차 대회 보고문 써 있는 노트 본 거 다 알고 있어. 빨리 지장 찍어.”

 

“맹세코 그런 노트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헛소리 말고 목숨이라도 부지하려면 지장 찍어!”

 

누군가 죽어야 이 일이 끝난다는 걸 일찌감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전창일(당시 47살)이었다. 중앙정보부 6국 ‘윤 계장’은 그를 따로 불러내 사형수 명단에서 빠졌으니 안심하라고 미리 언질을 줬다. 극동건설에서 중동지역 수주를 담당하던 전창일은 외국어와 무역에 능통했다.

 

“전창일, 넌 대한민국 제거 대상에서 제외됐어. 극동건설의 김용산 회장에게 고마워하게. 이 일을 다 끝내고 예전처럼 국가를 위해 외화벌이를 해야 하지 않겠나?”

 

“무슨 말씀입니까? 제거 대상이라뇨?”

 

“그러니까 극형은 면했단 소리요.”

 

실제로 극형을 위한 작업은 밀실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있었다. 대법원 재판을 앞두고 공판조서가 변조된 것이다. 대법원은 공판을 따로 열지 않고 공판조서와 증거를 근간으로 법률적 해석만을 검토하기 때문에, 공판조서 조작은 재판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큰 사건이었다. 실제 답변과 다르게 적힌 부분은 “공산주의국가 건설을 위해 비밀조직을 구성하기로 했다” 등 반국가단체 결성과 관련된 핵심 증언들이었다. 사실상의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검찰이 유일하게 법원에 내민 증거이기도 했다.

 

“서도원, 도예종, 우홍선, 이수병, 송상진, 하재완, 김용원, 여정남. 8명 사형!”

 

비극적인 예감은 들어맞았다. 8명에게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 사형수 8명은 선고가 난 지 불과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강창덕은 자신이 무기징역을 받은 사실보다 8명의 사형 집행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독방에 홀로 앉아 ‘과연 이 땅에 법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품으며 자신이 살아남은 사실에 되레 환멸을 느꼈다.

 

 

7번의 투옥, 13년간의 수감생활

 

강창덕의 반골 기질은 어린 시절부터 다분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7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강창덕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일본제국주의가 벌인 만행에 대해 들으며 성장했다. 그런 영향으로 17살이 된 강창덕은 만주 일대에서 벌어지는 무장독립투쟁에 대한 소식을 듣는 대로 바로 주변에 알렸다. 일본 순경은 강창덕을 주재소 땅굴에 가뒀다. 1944년 8월, 강창덕의 첫 옥고는 이때 시작됐다.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1945년 6월, 해방을 두어 달 앞둔 시점에 일본 순사로부터 일본 해군 지원병에 자원할 것을 강요받았지만 이를 당당히 거부했다. 일본군이 되는 것도 싫었고, 조국이 아닌 일에 목숨을 바칠 수 없었다. 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던 그는 이내 잡혔고, 인생 두 번째 옥고를 18살에 치렀다.

 

해방이 되고 갓 20살이 된 강창덕은 분단된 나라가 싫었다. 대구상업중학교(현 대구상원고) 학생이었던 강창덕은 1947년 11월 학생 대표로 웅변대회에 나가 ‘미국과 유엔에 의해 한반도가 분단될 위기에 처했다’며 좌중을 설득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한 우익 학생 단체가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강당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은 이 모든 책임을 연사인 강창덕에게 지웠다. 그는 대구형무소에서 1개월 옥살이를 하고 석방됐지만 결국 학교에서는 퇴학처분을 받았다.

 

네 번째 옥살이도 비슷하다. 통일을 주창하는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됐다. 조선정치대학(현 건국대)을 다니고 있었던 강창덕은 서상일 의원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찬조 연설에 나가 평화통일을 얘기했다가 1952년 2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붙잡혔다. 옥살이를 하고 나온 강창덕은 1956년 조봉암 진보당 대표의 경산지역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경산에서 조봉암의 표가 이승만의 2배 이상 앞지른 것은 그의 평생 자랑거리다.

 

신문사 퇴사 이후 강창덕은 1960년 5월 장면 정부가 제정한 반공임시특별법(현 국가보안법과 유사)과 데모규제법(현 집시법과 유사)을 2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결사반대 운동을 벌였다. 반공임시특별법은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단체를 결성하는 것을 금지했고, 데모규제법은 사실상 데모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2대 악법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강창덕은 이 일로 약 한 달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자마자 다시 문제가 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반국가행위 특별법’을 소급입법으로 제정해 강창덕을 다시 잡아들였다. 무려 징역 12년을 구형하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여섯 번째 투옥은 2년8개월 만에 끝이 났지만 박정희 정권은 1974년 4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강창덕을 연루시켰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총 8년8개월을 복역한 뒤 1982년 성탄절 특사로 석방됐다. 강창덕이 그때까지 항일운동, 민주화운동, 평화통일운동의 대가로 치른 옥고는 총 7번, 그 기간은 13년이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강창덕(1927년생, 왼쪽부터), 전창일(1928년생), 이창복(1933년생) 세 사람이 옛 서울구치소였던 서대문형무소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세 사람은 이곳에서 오랜 투옥 생활을 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강창덕(1927년생, 왼쪽부터), 전창일(1928년생), 이창복(1933년생) 세 사람이 옛 서울구치소였던 서대문형무소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세 사람은 이곳에서 오랜 투옥 생활을 했다
교사 어머니, ‘양은 찜통’ 방문판매해 돈 벌다

 

아들은 민주화운동을 하던 아버지가 달갑지 않았다. 장남 강상호(52)는 늘 가족보다는 나라를 위해 싸우는 아버지가 미웠다. 어머니 허숙자의 어깨에 올려진 무거운 짐을 늘 곁에서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정권의 눈엣가시였던 아버지 때문에 교사였던 어머니는 1971년 겨울 갑작스레 대구에서 경북 영천 평천리로 발령이 났다. 도시에서 연고가 없는 촌으로 발령이 나는 것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가구나 가재도구는 챙길 틈도 없이 어머니는 어린 세 아들을 데리고 평천으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 강창덕은 대구에 남아 민주화운동을 계속했다.

 

평천으로 이사 가면서 아들들은 아버지를 일 년에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했다. 돈은 엄마가 벌었다. ‘소매치기도 교사 지갑에는 손을 안 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 교사의 월급은 쥐꼬리만했던 터라, 어머니는 돈을 벌고자 방문판매를 하기 시작했다. 오후 무렵 교사 일이 끝나면 집에서 양은으로 된 찜통을 머리에 가득 이고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찜통을 팔았다. 당연히 잘 팔릴 리가 만무했지만 어머니는 세 아들의 반찬 값이라도 벌고자 했다.

 

어머니는 세 아들에게 ‘절대 어디서도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지 말라’고 자주 당부했다. 경찰들이 이따금씩 집에 찾아와 가택수색을 했는데 혹시라도 어린 자식들 일기장에 아버지 이야기가 쓰여 있으면 문제가 될까 노심초사했다. 실제로 사복경찰들은 아들들의 학교 앞으로 찾아가 몰래 감시하고 돌아가곤 했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들 앞에서 단 한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장남 강상호는 기절하듯 쓰러져 주무시는 어머니의 이불을 묵묵히 목 끝까지 덮어드렸다.

 

아버지를 면회하러 가는 길은 너무도 멀었다. 1년에 딱 두 번, 방학 때만 겨우 갔다. 쌀가마니만한 자루에 책 100여권을 담아 들고 이동하는 일은 어린 강상호에게 너무도 힘들었다. 면회 시간은 10분 남짓이었지만 책을 빼오고 다시 넣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책 안에 불순한 내용이 있는지 없는지 검사받는 데 시간을 다 썼다. 면회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영천에서 전주교도소까지 가려면 버스 두 번, 기차 두 번을 타야 했다. 어렵사리 전주역에 도착하면 어머니와 아들 셋은 급히 국밥을 말아 먹고 택시를 타고 전주교도소에 도착해 숨을 고르기 바빴다.

 

1982년 12월 아버지가 출소한 후에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빚을 청산하기 위해 지내던 집의 보증금을 빼야 했다. 가족은 어쩔 수 없이 허름한 양계장을 헐값에 빌려 집처럼 꾸몄다. 여름이면 닭똥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그래도 다섯 가족이 함께 몸을 누일 수 있게 돼 행복했다. 어렵게 아버지가 아파트 경비일을 구했지만, 벌어온 돈은 몽땅 빚을 갚는 데 썼다. 서울에서 유학을 하던 둘째 동생 강상우(당시 18살)는 잘 곳이 없었으나 가족들이 걱정할까 말은 하지 못하고 학교 근처 공공 화장실에서 쭈그려 자며 등하교를 했다.

 

 

국정원, 인혁당 배상금 반환 소송을 걸다

 

2008년 1월, 천신만고 끝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강창덕은 2009년 8월 손해배상금 15억2200여만원을 받았다.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인용된 금액의 65%를 가지급받은 것이다. 30여년 만에 빨갱이 딱지를 떼고,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사과의 대가를 받은 것이지만 기쁨보다는 설움이 먼저 터졌다. 박정희 정권의 희생양이 되어 송두리째 날아간 그의 젊음과 자유는 화폐로 보상될 수는 없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죽은 아내였다. 아내는 시외 분교로 출근하는 버스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2년간 병상에만 누워 있다가 1987년 여름 세상을 떠났다. 평생 남편 없이 아들 셋만 키우다 호강 한번 못 하고 떠난 아내에게 참 미안했다. 아들 셋과 공놀이 한번 못 한 것은 평생의 한이 됐다. 인혁당 사건으로 8년8개월을 꼬박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아들들에게 살가운 포옹도 못해줬었다. 강창덕이 받은 15억여원은 아내의 목숨 값이자 아들 셋의 파괴된 행복의 대가였다.

 

2009년 9월 인혁당 무기수·유기수 관련자와 그 가족 77명이 가지급받은 손해배상금은 모두 491억여원이었다. 원심 확정판결이 있었던 1975년 4월9일부터 지급 시점까지 밀린 이자를 포함해 계산한 금액이었다. 강창덕, 전창일, 이창복 세 사람 모두 돈을 받자마자 신세 진 곳에 가장 먼저 빚을 갚았다. 가장 없이 가정을 꾸리느라 그간 부채가 많았다. 십시일반 돈을 걷어 재단도 만들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피해자 일가족들이 8명 사형수 가족들과 함께 돈을 모아 4·9평화통일재단을 만든 것. 인혁당 진실 규명을 위해 싸운 천주교인권위원회에도 일부 기부를 했다. 반통일·반평화·반인권 행위를 뿌리뽑고자 다 같이 힘을 모았다.

 

77명의 피해자들은 당연히 손해배상 대법원 판결이 나면 나머지 35%의 배상금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2011년 1월, 대법원은 원금은 인정했지만 이자가 너무 많이 계산됐다며 30여년치 이자를 삭제해 판결했다. 이자 지급 기준일이 2심 변론 종결일로 바뀌면서 손해배상금은 280억원가량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대법원이 내세운 근거는 사건이 벌어졌던 1974년으로부터 ‘장시간의 세월이 흘러 통화 가치의 변동이 생겼고, 이로 인해 예외적으로 지연 이자의 기산점을 변론 종결일부터 잡아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간의 세월’과 ‘통화 가치의 변동’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없었다. ‘장기간’, 또는 ‘상당한’이라는 추상적인 표현만 담겨 있을 뿐이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그해 7월 국정원은 결국 77명에 대해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걸었다. 가지급받은 491억여원 중 대법원이 인정한 280억원을 제외한 금액뿐 아니라, 심지어 대법원 판결 이후부터 현재까지 갚지 않은 기간에 대한 이자를 포함해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법원은 국정원의 손을 들어줬고, 피해자 가족들은 졸지에 국정원에 손해배상금 일부를 도로 돌려줘야 하는 처지가 됐다.

 

연 20%에 달하는 연체 이자율은 반환금을 눈덩이처럼 불려나갔다. 강창덕의 경우, 2013년 10월 기준 8억3300만원이었던 반환금은 2017년 6월 기준 13억원을 넘겼다.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하루에 37만7700원이 이자로 붙었다. 법원의 명령에 따라 강창덕이 법원에 제출한 재산 목록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월 30만원짜리 월세방의 보증금 300만원과 월 18만원씩 지급되는 6·25 참전 보상금, 그나마 집에서 값이 나가는 에어컨과 침대가 적혀 있었다.

 

전창일과 이창복의 사정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창일의 딸 셋은 연 20%에 달하는 이자율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갚았다. 은행 이자가 국정원에 내야 할 이자보다 싸기 때문이다. 이창복의 집은 부동산 강제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작은 정원과 텃밭을 일구며 부인과 여생을 보내고자 마련한 집을 ‘채권자’ 국정원을 위해 압류한다며 법원이 통지를 해왔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가해자인 중앙정보부의 후신 국정원이 인혁당 피해자들의 채권자가 되었다.

 

“아버지 박정희는 몸을 고문하더니, 딸 박근혜는 경제적 고문을 하네요.”

 

인혁당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 이명선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사진 셜록 제공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99171.html?_fr=mt1#csidxad21ffb4fdb15eb842b0e973f34e4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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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 간다"의 어원,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다

 

[한국전쟁, 그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복원 ②] 학살 Ⅰ편

17.06.16 21:02l최종 업데이트 17.06.16 21:02l

 

 

 1950. 7. 29. 유엔군이 진주 부근 마을에서 사로잡은 부역자 혐의자를 산으로 연행하고 있다.
1950. 7. 29. 유엔군이 진주 부근 마을에서 사로잡은 부역자 혐의자를 산으로 연행하고 있다.ⓒ NARA
(* 이 기사 안에는 학살 현장 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심약하신 분들은 보지 마시길 권합니다)

언어와 시대상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한다. 곧 그 시대에 유행하는 말을 분석해 보면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1958년에 졸업했다. 그러니까 나의 소년시절은 한국전쟁 중이거나 휴전 직후였다. 

그 시절 사람들이 자주 썼거나 유행한 말은 '공갈치다', '얌생이 몰다', '골로 간다' 등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그런 말을 자주 뱉었다. 대학 재학시절 조동탁(시인 조지훈 본명) 선생으로부터 그 말의 어원을 자세히 배운 적이 있었다. 

조 선생은 한국전쟁 당시 종군작가단으로, 전란 현장에서 생생한 장면을 여러 편의 시에 담았다. <다부원에서> <도리원에서> <죽령전투> <서울에 돌아와서> 등으로, 선생은 강의시간이면 당신의 자작시들을 학생들에게 자주 낭독해주셨다. 그러면서 당신이 겪은 한국전쟁 당시의 체험담과 그 시대 유행어의 유래도 들려주셨다. 

나는 그제야 그 말들의 뜻과 실체를 적확히 알고는 그 시대가 야만과 공포의 시절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그때 사람들은 목구멍에 풀칠을 하거나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부도덕한 일들도 별 죄의식 없이 함부로 저지르기도 했다. 

유행어 '공갈치다'의 공갈(恐喝)이라는 말은 "공포를 느끼도록 윽박지르며 을러댐"을 뜻했다. 한국전쟁 전후 그 시절은 군경이나 우익단체 회원들은 민간인에게 총구를 겨냥하면서 공갈치는 일들도 흔했기 때문에 그 말이 매우 유행했다. 그래서 그 말을 자주 쓰자 나중에는 그 어의가 평가절하로 거짓말하거나 과장한다는 말로 폭락했다. 

'얌생이 몰다'는 말의 유래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 교외에 사는 어떤 사람의 염소가 어느 날 미군부대 안으로 들어가서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부대 보초에게 그 사실을 말한 뒤 허가를 받고는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기 염소를 몰고 나오면서 견물생심으로 그 참에 미군 보급품을 잔뜩 훔쳐 나왔다. 여기에 재미를 들인 그는 다음부터 일부러 염소를 미군 부대 안으로 들여보낸 뒤 그것을 찾으러 들어가는 핑계로 그런 짓을 거듭했다. 그래서 얌생이 몰다는 말은 '도둑질하다', '남의 물건을 훔치다'는 말이 된 것이다.
 1950. 9. 29. 충주. 주민들이 민간인 학살 암매장 현장에서 시신을 파내고 있다.
1950. 9. 29. 충주. 주민들이 민간인 학살 암매장 현장에서 시신을 파내고 있다.ⓒ NARA
'골로 간다'

'골로 간다'는 말도 한국전쟁 전후로 매우 흔하게 썼다. 우리 악동들은 상대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야, 너 골로 갈래?"라고 말했다. 우리 악동들은 '그저 혼내 준다'는 정도로만 알고 무심코 썼다. 그런데 그 말의 어원을 적확히 알고 나니까 참으로 무서웠다. 

한국전쟁 전후로 군경의 좌익학살이나 인민군 또는 좌익들의 우익 학살은 매우 심했다. 서로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피장파장이었다. 그 무렵 군경이나 우익 청년단 회원들은 좌익은 물론, 그들 가족이나 친구까지도, 심지어 인민군이나 좌익 게릴라들에게 밥을 한 그릇 주거나 감자 한 자루 줬다는 이유로 촌부들을 산골짜기로 데려가서 총살한 뒤 그 자리에다 매장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당시 '골로 간다'는 말은 산골짜기로 데려가서 아무도 모르게 죽인 뒤 묻어버린다는 끔찍한 말이었다.
 1950. 10. 10. 함흥. 한 동굴에서 민간인 학살자 시신 300여 구를 들것으로 꺼내고 있다.
1950. 10. 10. 함흥. 한 동굴에서 민간인 학살자 시신 300여 구를 들것으로 꺼내고 있다.ⓒ NARA
 1950. 10. 10. 함흥. 학살 후 우물에 은폐시킨 시신을 주민들이 건져 올리고 있다.
1950. 10. 10. 함흥. 학살 후 우물에 은폐시킨 시신을 주민들이 건져 올리고 있다.ⓒ NARA
 1950. 11. 13. 함흥. 덕산 광산 갱도에서 학살된 시신을 주민들이 끌어올리고 있다.
1950. 11. 13. 함흥. 덕산 광산 갱도에서 학살된 시신을 주민들이 끌어올리고 있다.ⓒ NARA
나는 조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 말의 실체를 NARA(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와 맥아더기념관에서 등골이 오싹하게, 끝내 눈물을 쏟으면서 숱하게 봤다. 그런데 민간인 학살에는 좌익·우익이 따로 없었다. 산골짜기뿐 아니라, 동네 우물에도, 동굴에도, 광산 갱도에도 마구잡이로 데려가 학살한 뒤 은폐했다. 

그동안 분단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 백성들은 산골짜기로, 우물로, 동굴로, 갱도로, 가지 않기 위해 총구 앞에서 그저 벌벌 떨며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양심대로 정직하게 살았거나, 그렇게 사는 이가 가뭄에 콩 나듯 매우 적었나 보다.
 1950. 9. 29. 전주. 주민들이 대량 학살된 시신을 발굴하고 있다.
1950. 9. 29. 전주. 주민들이 대량 학살된 시신을 발굴하고 있다.ⓒ NARA
이번 회 게재 사진들은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 장면만을 모아봤다. 미리 양해 말씀 드릴 것은 사진 뒷면의 설명 영문 캡션에는 가해자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 사진에 예단해서 설명을 달지 않고, 단지 거기 기록대로만 박유종 선생의 도움으로 캡션 원문 번역문을 그대로 달았음을 밝힌다. 

(* 이 사진들은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및 맥아더기념관을 찾아가서 직접 검색 수집한 것이나 아래 사진은 동일 사건을 연속 촬영한 것으로 재미사학자 고 이도영 박사가 NARA에서 발굴해 생전에 필자에게 제공한 것이다.)
 1951. 4. 대구 근교. 인민군 부역혐의자들이 산골짜기로 연행되고 있다.
1951. 4. 대구 근교. 인민군 부역혐의자들이 산골짜기로 연행되고 있다. ⓒ NARA
 1951. 4. 대구 근교. 헌병들의 감시 아래 인민군 부역 혐의자들이 자기가 묻힐 무덤인 줄도 모른 채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있다.
1951. 4. 대구 근교. 헌병들의 감시 아래 인민군 부역 혐의자들이 자기가 묻힐 무덤인 줄도 모른 채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있다. ⓒ NARA
 1951. 4. 대구 근교. 미 군사고문관(맨 왼쪽)이 현장을 지켜보는 가운데 헌병들은 구덩이 속의 부역혐의자를 총살하고자 각자의 카빈(carbine) 총에 탄창을 끼우고 있다. 그제야 무지렁이들도 자기 무덤인 줄 알고는 뒤돌아 엎드리고 있다.
1951. 4. 대구 근교. 미 군사고문관(맨 왼쪽)이 현장을 지켜보는 가운데 헌병들은 구덩이 속의 부역혐의자를 총살하고자 각자의 카빈(carbine) 총에 탄창을 끼우고 있다. 그제야 무지렁이들도 자기 무덤인 줄 알고는 뒤돌아 엎드리고 있다.ⓒ NARA
 1951. 4. 대구 근교. 헌병들이 구덩이 속의 부역 혐의자들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하고 있다.
1951. 4. 대구 근교. 헌병들이 구덩이 속의 부역 혐의자들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하고 있다.ⓒ NARA
 1951. 4. 대구 근교. 헌병들은 구덩이 속의 부역혐의자 총살을 끝낸 뒤 삽으로 흙을 떠서 시신을 덮고 있다.
1951. 4. 대구 근교. 헌병들은 구덩이 속의 부역혐의자 총살을 끝낸 뒤 삽으로 흙을 떠서 시신을 덮고 있다. ⓒ NARA
[이전 기사] 동굴 감금 후 죽은 가족, 여인은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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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진행될 '박도 기자와의 차 한잔' 초대권과 강원도 횡성군에서 열릴 '작가와의 대화' 초대장도 리워드로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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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10.31. 원산. 헐벗고 굶주렸지만 웃음은 떠나지 않는 아이들.
1950.10.31. 원산. 헐벗고 굶주렸지만 웃음은 떠나지 않는 아이들.ⓒ NARA
 1950.9. 한 지아비가 시각장애인 아내를 지게에 진 채 피란길을 떠나고 있다.
1950.9. 한 지아비가 시각장애인 아내를 지게에 진 채 피란길을 떠나고 있다.ⓒ NARA
 1950.10. 서울 은평. 한 소녀가 동생을 돌보며 불타버린 야외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1950.10. 서울 은평. 한 소녀가 동생을 돌보며 불타버린 야외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NARA
 1953.2.19. 전란 중이지만 설빔을 차려 입은 천진난만한 소녀들이 민속놀이의 하나인 널뛰기를 하고 있다.
1953.2.19. 전란 중이지만 설빔을 차려 입은 천진난만한 소녀들이 민속놀이의 하나인 널뛰기를 하고 있다.ⓒ NARA
 1950.10. 옹진전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한 국군 특무상사가 목발을 짚은 채 침통한 표정으로 철조망 앞에 서 있다.
1950.10. 옹진전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한 국군 특무상사가 목발을 짚은 채 침통한 표정으로 철조망 앞에 서 있다.ⓒ NARA
 기자의 저서. 왼쪽부터 <카사, 그리고 나>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약속> <항일유적답사기>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기자의 저서. 왼쪽부터 <카사, 그리고 나>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약속> <항일유적답사기>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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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국 정탐행위 전쟁위험계선 넘어서

북, 미국 정탐행위 전쟁위험계선 넘어서
 
 
 
박한균 수습기자 
기사입력: 2017/06/17 [00:2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최근 북이 남측으로 보냈다는 무인기들, 가운데 무인기가 2017년 6월 8일 인제에서 발견된 것이다.     ©자주시보

 

통일뉴스와 다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16일 "지금 미국은 조선(한)반도 상공에 정찰위성들을 집중시켜놓고 우리(북)에 대한 감시 밀도를 높이고 있으며 각종 정찰기들과 도청수단들을 총동원하여 우리에 대한 정보수집을 맹렬하게 벌이고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미국은 적외선 감시위성 여러 개를 한반도 상공을 통과하도록 궤도를 고정하고 2시간에 한번씩 북 지역을 정탐한다면서 “최근에는 더 많은 위성을 동원하고 정찰위성의 궤도를 수정하는 방법을 사용해 북 지역 상공에 대한 감시밀도를 최대한 높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미국은 지난 시기 한대만 동원하던, 첨단장비를 갖춘 정찰기 ‘U-2S’를 최근에는 2대씩이나 반공화국 정탐 행위에 들이밀고 있다”며 미국이 지난달 신설한 ‘코리아임무센터’와 10월 창설 예정인 524정보대대를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이것은 북침을 노린 미국의 전쟁도발 책동이 이미 위험계선을 넘어섰다는 것을 명백히 시사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110여 차례에 달하는 미국의 침략전쟁사를 돌이켜보면 방대한 무력을 집결시키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정탐모략 행위를 감행하고 그에 기초하여 침략전쟁 계획을 작성함으로써 선제타격의 효과를 극대화하곤 하였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한편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코리아임무센터’를 설치했다고 발표하면서  CIA 내에서 숙련된 요원들을 통해서 북을 전담하고 미국 내 정보기구, 안보기구들과 긴밀한 협조를 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주한미군 제501정보여단에 제524정보대대가 올해 창설될 예정이다. 최근에 부대가 실체도 없고 활동도 하지 않았다는 여론이 있었으며 대북 인간정보를 담당하는 부대로 불리워져 외신에는 스파이부대(SPY UNIT)이라고 나와 있다. 

지난 7일에는 보통 비전투 민간인 소개훈련(Noncombatant Evacuation Operation. NEO)인 '커레이저스 채널'(Courageous Channel) 훈련을 7년만에 실시했다.

 

이처럼 미국은 북에 대응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북은 더욱더 자위적인 핵억제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만큼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북미간, 남북 간의 평화적인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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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백남기 유가족 “경찰청장 언론플레이는 사과가 아닙니다”

 

백 농민 장녀 백도라지 씨

옥기원 기자 ok@vop.co.kr
발행 2017-06-16 17:48:32
수정 2017-06-16 18: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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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앞에서만 머리 숙이는 게 사과입니까. 보여주기식 사과에 유가족은 더 상처받습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장녀 백도라지 씨는 이철성 경찰청장의 사과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이 경찰청장은 ‘백 농민 경찰 물대포 사망사건’이 발생한 지 1년7개월이 지난 16일 오후 “백 농민과 유가족께 깊이 사과한다”는 뜻을 전했다.

“언론보도 통해 사과 소식 접해,
사건 발생 19개월 뒤 형식적인 사과에 더 상처”

고 백남기 농민의 장녀 백도라지 씨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국가 폭력 책임자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자료사진)
고 백남기 농민의 장녀 백도라지 씨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국가 폭력 책임자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자료사진)ⓒ양지웅 기자

백 씨는 이날 오후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청장의 사과 메시지를 접했다. 보도를 접하기까지 경찰을 통해 경찰총수가 이런 메시지를 발표한다는 소식을 전혀 전해듣지 못했다. 그는 “진정으로 사과를 하려면 직접 찾아오거나 저희를 그 자리에 부르는 게 도리인 것 같다”며 “언론 앞에서 애도한다며 고개만 숙이는 형식적인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백씨는 이 청장의 사과 문구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언론에 나온 전문을 봤는데 무엇을 잘못해서 사과한다는 건지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며 “아주 최소한의 사과의 말이 19개월만에 나왔다는 게 황당하고, 그동안 사건 책임자에 대한 직무 정지 등의 최소한 조치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과의 진정성 또한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백씨는 “진정한 사과와 반성 없이 형식치레로 인권경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며 “검경 수사권 조정 사안을 위해 아버지와 우리를 이용하는 상황에 더 상처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 경찰청에서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고 백남기 농민 물대포로 인한 사망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 경찰청에서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고 백남기 농민 물대포로 인한 사망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한편, 백 농민은 지난 2015년 11월14일 서울 광화문광장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고, 이후 300여일 간 의식불명 상태로 지내다 작년 9월25일 세상을 떠났다.

당시 경찰 총수였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고에 대한 유감 표명만 했을 뿐 법적 책임이 따르는 차원의 사과는 거부했다. 이철성 경찰청장 역시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며 사과를 미뤄왔다. 그러던 중 지난 15일 서울대학교병원이 이 백 농민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했고, 하루만에 경찰 총수가 백 농민에 대한 사과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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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검증이 빚은 낙마…검찰개혁 구상 흔들리나

부실검증이 빚은 낙마…검찰개혁 구상 흔들리나

등록 :2017-06-16 22:51수정 :2017-06-16 23:01
 
청 ‘안경환 지켜야’ 분위기 강해
부적합 지적에도 수습기회 놓쳐
문 대통령 향후 국정운영 차질
야당의 ‘조국 책임론’도 부담 커
‘검찰개혁 새 적임자’ 찾기 시급
지난 15일 열린 청와대 수석 보좌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15일 열린 청와대 수석 보좌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승승장구하고 있던 문재인 정부가 출범 37일 만에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를 밝힌 16일 밤 청와대는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잇따른 인사 부실 논란에 이은 국무위원 후보자의 낙마로 ‘적폐 청산’을 강조해온 새 정부의 이미지가 훼손되고, 임기 초반 높은 지지율을 발판으로 개혁 드라이브에 나서려던 문 대통령의 국정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진 탓이다.

 

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청와대에선 ‘안경환은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만취 운전 전력이 드러난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와 달리 안경환 후보자에 대해선 청와대의 집착이 대단하다. 검찰개혁 구상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문 대통령이 낙점한 비검찰 출신의 안 후보자가 과거의 불미스러운 개인사 때문에 물러날 경우 대체 후보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임기 초반 강하게 몰아치려던 검찰개혁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게 청와대 핵심부의 판단이었다는 얘기다.

 

인사청문 대상자 가운데 첫번째 낙마 사례가 나왔다는 점도 청와대를 고민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앞서 김기정 국가안보실 2차장이 과거 품행 논란으로 경질됐지만, 인사청문 대상자가 아니었던 까닭에 ‘자진 사퇴’ 형식으로 선제적으로 정리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안 전 후보자는 시간에 쫓겨 인선했던 청와대 참모진에 견줘 사전 검증에 필요한 시간도 상대적으로 넉넉했다는 점에서 그의 낙마는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실제 야당은 이날부터 검증 부실의 책임을 물어 조국 민정수석의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치권에선 조국 민정수석과 안경환 전 후보자와의 ‘특수관계’가 부실한 검증으로 연결된 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 상황이었다. 안 전 후보자는 조 수석의 서울대 법대 지도교수다. 안 전 후보자가 2000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으로 일할 때 조 수석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으로 호흡을 맞췄고, 안 전 후보자가 2006~2009년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있을 때 조 수석은 인권위 비상임 위원이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국회 운영위원장으로서 빠른 시일 내 조현옥 인사수석과 조국 민정수석을 국회로 출석시켜서 청와대 인사시스템이 작동하는지 따져보겠다. 잘못되고 부실하기 짝이 없는 대통령 인사보좌에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의 더 큰 고민은 최근의 ‘인사 난국’이 안 전 후보자의 자진 사퇴로 매듭지어질 수 있느냐는 데 있다. 야권이 애초 안 전 후보자와 함께 ‘낙마 대상’으로 점찍은 조대엽 후보자 외에도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방산업체로부터 고액 자문료를 받은 의혹 등에 휘말린 상태다. 야권은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 부실이 확인됐다’며 나머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검증공세를 한층 강화할 태세다. 청와대 관계자는 “자유한국당 등 야권이 안 후보자 한명의 낙마로 만족하지 않을 거다. ‘둑’이 한번 터진 이상 인사 난국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공산이 크다. 정부 출범 뒤 최대의 위기인 게 분명하다”고 했다. 이세영 김태규 기자 monad@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799166.html?_fr=mt1#csidx6cb30ff580e48af9f3ca722cce315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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