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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은 과학농사를 어떻게 하고 있나

김수복 선생의 ‘북의 과학기술정책’ - 북의 과학농사(1)
  • 김수복 6.15뉴욕지역위 공동위원장
  • 승인 2019.04.01 19:17
  • 댓글 1

김수복 선생의 <북의 과학기술정책> 연재 시리즈 중에서 세 번째 주제, <북은 과학농사를 어떻게 하고 있나>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1. 생물농약 토착미생물발효퇴비 유기질비료 생산과 이용
2.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내포한 일련의 사건들 
3. 과학기술이 안아온 기적
4-1. 과학농사의 현장(1)

4-2. 과학농사의 현장(2)
4-3. 과학농사의 현장(3)
5. 내가 만난 농업과학자들(동영상)
6. 글을 마치며

[참고] 이전 연재시리즈 차례

<북의 자연 대개조사업>
1. ‘강성국가’ 물꼬 튼 북의 자연흐름식 물길공사
2. “자연흐름식 물길, 강성국가의 천하지대본 담보할 만년재부”

<북의 고리형 순환생산체계와 후방산업>
1. 지속가능한 문명 실현하는 북의 농축산정책
2. 세포지구 축산기지로 가는 길
3. “젊어지라 복 받은 대지여” - 세포축산기지
4. 모범적인 후방축산기지들


1. 생물농약 토착미생물발효퇴비 유기질비료 생산과 이용

전국적으로 모판 벼씨뿌리기가 시작되었다. 정보당 10톤의 벼수확을 목표를 향해서 농업근로자들이 땀 흘리는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다수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생물공학, 미생물공학, 나노공학 등의 최첨단과학기술의 협력으로 가능하게된 생물농약, 식물성장촉진제, 토착미생물발효퇴비, 유기질비료 흙보산비료 등이 농업현장에서 어떻게 도입되어 이용되며 다수확에 기여하는지를 북의 보도를 통해서 살펴보겠다.

2.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내포한 일련의 사건들

얼마전 한 독자가 전화를 주었다. 북은 할 일도 많은데 왜 그렇게 지나치게 과학기술에만 목을 매고 있느냐는 약간은 항의성 전화였다. 나의 글들도 역시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북의 정책에 관한 것들이다. 북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자력자강(자력갱생)과 과학기술인 것이 사실이다. 누가 보아도 이 두 가지가 국가 핵심정책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따라서 북의 자력갱생과 과학기술정책에 대해 이해를 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반에 대해서 이해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북에서 과학기술을 자력갱생을 이끌어가는 기관차로 본다. 해방 이후 새나라 건설 초기에 있었던 사건들을 되짚어 보면 그 점이 더욱 확실해진다. 그러한 일관성있는 정책의 사례들 시간별로 몇 가지 적어 본다. 그 이전의 사례는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항일빨치산투쟁을 승리로 마감하고 해방조국으로 귀향한 김일성 장군은 1945년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대중연설을 한다.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전민족이 대단결하여 새조국 건설에 손잡고 나아가자”는 유명한 연설이다. 지식있는 사람이라 함은 학자, 과학자 모두를 말한다.

당시 이 연설은 해방을 맞았지만 아직도 미군정 아래 실망과 혼돈 속에 절망하고 있던 많은 이남의 과학자들에게도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강영창, 계응상, 리승기박사도 이들 중의 하나였다. 그 이후 이들은 속속 북으로 연구기지를 옮기고 북의 과학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된다.
한 나라의 정책은 그 나라의 깃발에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소비에트 연방, 중국공산당의 깃발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동당의 깃발을 살펴보자.

아래 왼쪽은 소련국기의 일부이다. 공업의 상징인 망치와 농업을 뜻하는 낫이 있다. 농공업 발전에 전력투구하겠다는 선언이다. 그 오른쪽은 중국공산당기이다. 역시 망치와 낫이 그려져 있다. 식민지해방투쟁에서 승리한 뒤 낙후된 농공업을 일으켜 강국건설을 달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밑에 공화국 로동당기가 있다. 망치와 낫은 비슷한데 한가운데에 붓이 있다. 붓은 지식 또는 과학이다. 새나라 건설에서 농공업과 더불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당시 사회주의 나라들에서 혁명과정에서 지식계급이 환영받지 못하고 배척당했던 역사가 있다. 그러나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뚜렸하게 표방했다. 공화국이 다른나라들과 건국에서부터 확연히 차이가 나지 않는가.

소련국기 중국공산당기
조선노동당기

1952년은 밀고 밀리던 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다. 그 와중에 국가과학원을 12월 1일에 창립했다. 총대를 잡았던 과학기술자들을 불러들이어 과학연구사업에 재배치했다. 그렇게 탄생한 국가과학원은 현재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핵심 첨단과학연구기관이 되었다. 
북에서 흔히 보이는 3대혁명의 깃발이 있다. 남쪽에서도 3대혁명이라는 말은 알려져 있지만 그 내용이 사상, 기술, 문화 혁명이라는 사실은 잘 모른다. 내 자신도 수년 전 3대혁명의 내용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에 어리둥절했었다. 혁명은 과격하고 파괴적이며 피를 흘리는 숙청도 다반사로 여기는 폭력적 과정이라고 배웠기에 3대혁명은 당연히 3배나 더 무서운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한가롭게도 문화와 기술이 3대혁명의 내용이라니 처음에 믿기지가 않았다. 
2012년 평양방문 때에 국제상품전람회장 입구에서 보니 3대혁명 붉은 깃발이 파란 하늘에 빗기어 저 멀리서 나부끼는 것이 아닌가. 호기심과 반가움으로 그 깃발 앞으로 먼저 갔다.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에서 우리당의 총로선입니다.
김일성 1992 4.15.”

▲ 3대혁명 깃발 앞에서. 2012년 9월 촬영[사진제공 : 김수복]

3. 과학기술이 안아온 기적

엄혹한 고난의 행군시기(1994-2008)에 멈춰섰던 기계들이 시간이 가면서 녹이 슬고 있었다. 적대적인 나라들은 북이 이제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조롱스런 웃음을 지으며 그날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2008/9년에 들어오면서 숨죽였던 큰 공장들이 돌아가는 보도를 자주 접했다. 녹슬었던 공장이 다시 돌아가는 단순재가동이 아니고 최첨단기술에 의한 새로운 기계들이 돌아가는 희안한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지식체계가 혼돈되는 시대였다.
북의 최대 화학섬유공장인 함흥 2.8비날론공장도 전력부족으로 10여년간 맥이 끊어졌었다. 2010년 3월초에 아직 엄동설한이 기승을 부리는 북방의 매서운 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함흥시민들이 솟구치는 기쁨으로 꽉찬 가슴을 억제할 수 없어서 속속 모여들었다. 2.8비날론공장재가동 축하 함흥시민 10만군중대회가 열렸던 것이다. 고난의 행군은 이제 과거가 되었고 강성대국 건설의 자신감을 축포로 쏘아 올린 것이었다. 
대북 경제봉쇄로 외국과의 문물교역이 철저히 봉쇄당해온 상태에서도 자력갱생에 기반한 튼튼한 과학기술적인 토대를 충실히 쌓았기에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북에서는 농업생산은 자연기후조건이 아니라 농업과학기술에 의하여 담보된다는 믿음으로 그러한 경험과 실적을 일반화하면서 모든 농업근로자가 과학농사의 주인공이 되자는 운동이 차넘치고 있다. 전민과학기술인재화의 당 정책을 힘있게 실현하고 있다.

전국의 약 4,000여 개의 협동농장들은 각자 과학기술보급실을 운영하면서 원격교육망을 통해서 김일성종합대학, 인민문화궁전, 과학기술전당 등에 연결된 배움터가 되고 있다. 따라앞서기, 따라배우기, 경험교환운동을 활발히 벌려 앞선 단위의 다수확 농법을 배우고 있다. 
특별한 것은 각 도, 시, 군은 자체적으로 애국복합미생물비료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약 200개 군에 공장이 운영되고 있다고 추정한다. 토작미생물연구에서 잘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기질비료생산에서도 지방에 고유한 원료원천을 개발 이용하기 때문에 유기질비료도 대단히 다양하다. 자력갱생 농사는 자기 특성에 맞게 지방마다 다르게 진행된다.

4. 과학농사의 현장(1)

북의 과학농사에 관한 글들을 소개하겠다. 양해를 구하는 점은 비전문가가 수집한 것이어서 종합성과 전문성이 떨어진다. 다만 전체적으로 북의 과학농사의 흐름과 현주소는 알 수 있다고 본다. 같은 이름의 연구성과가 반복 보도되고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더 발전된 과학기술이 연구에 적용되어 더욱 효과적이고 이용에 편리한 제품이 개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에는 평양에서 운 좋게 만났던 과학자들의 동영상이 있는데 그들의 과학자적 태도가 감동적이다.

아미노산미량원소복합비료 (2011년 8월 10일 조선중앙통신)

국가과학원 중앙실험분석소 과학자들이 아미노산미량원소복합비료를 우리식으로 연구완성했다.
닭, 오리를 비롯한 가금류 털에서 추출한 복합아미노산과 금강약돌(백반 또는 명반)에서 뽑아낸 수십 종의 미량원소, 희토류원소들을 화학적으로 결합시켜 만들었다. 생산공정이 단순하고 원가가 적게 든다. 80여개 농장들에서 화학비료 시비량을 30-40% 줄이면서도 논벼와 강냉이 남새 등의 수확량은 훨씬 늘었다. 종자 싹튀우기률을 7-10% 올리면서도 기간은 단축되었다.

락랑구역 룡호협동농장에서 (2012년 2월 3일 로동신문)

티오균비료를 모살이가 되는 차제로 주었더니 뿌리활성이 높아지고 영양성분을 많이 흡수하여 좋은 성과를 냈다. 논벼의 후반기 생육상태가 좋아졌다. 뿌리썩음병을 예방하며 이삭의 여문률과 천알(낟알)질량도 늘어나게 되었다.

첨단생물농약 아베르멕틴 연구개발 (2012년 3월 25일 조선중앙통신)

애국복합미생물센터 과학자들이 21세기 생물농약으로 주목받고 있는 아베르멕틴을 연구완성하고 공업화 성공했다. 새 농약은 농업, 축산, 원림, 산림부문에 적용한다. 효과가 강력하고 지속기간이 길다. 구제하기 힘든 것으로 알려진 수십종의 병해충을 완전히 박멸할 수 있다. 
참고: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인체와 생물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수의축산부문에서 높은 기생충구제효력을 나타내고 있다. 아베르멕틴(Avermectins)은 일본의 한 연구소의 최근 연구 성과에 의거해서 앞선 나라들에서 만든 최첨단생물농약이다. 북에서도 아베르멕틴을 완성했다는 것은 생물공학의 수준이 세계적이라는 증거이다.

평양에 생물농약기지건설 (2013년 1월 20일 통일뉴스 우리민족끼리기사 전제)

평양시 농촌경리위원회는 보통강유기질복합비료공장에서 효능이 높은 생물농약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살충 살균효능이 높아서 여러 병해충들을 박멸할 수 있고 농업과 원림부문 등 적용범위도 넗고, 정보당 사용량이 많지 않다. 생물농약이란 천적곤충, 천적미생물, 길항미생물 등을 이용하여 병해충 및 잡초를 방제하는 것이다.

함경남도 정평군 복합미생물비료생산기지 (2013년 1월 25일 로동신문)

정평군에서 복합미생물비료공장을 개건하고 생산을 정상화하였다. 자기식으로 군의 실정에 맞게 온도보장과 공기갈이에 유리하게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한 것도 특색있다. 기술집단은 지난해 봄에 먼저 아미노산미량원소복합비료 생산공정을 본보기로 꾸렸고 그 경험을 일반화하는데 달라붙었다.

재령군 삼지강협동농장 (2017년 4월 5일 로동신문)

흙보산비료가 일반 비료보다 높은 효과를 내는 것은 물풀림성후민산함량과 질소, 린, 카리움을 비롯한 풀림성영양원소함량이 훨씬 높기때문이다.
참고: 흙보산비료의 일종인 후민산비료생산 사례. 세포지구 목장건설 초기에 평강군에 먼저 흙보산비료 공장을 세워서 지력을 높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니탄 100킬로그람을 분쇄해서 석회로 위에서 120도 열로 산화시킨다(태운다). 물 200리터와 가성소다 5킬로그람을 섞어서 4-5시간 끓이면 화학반응으로 후민산비료가 된다.

지효성나노비료 개발 (2017년 8월 2일 로동신문)

려명기술사의 일군들과 연구사들이 흡수보습형 피복비료인 지효성나노비료를 개발하여 농업생산에 이바지하고 있다. 초흡수성 수지와 미량성분들이 함유된 무기흡착제를 피복하여 직물의 성장에 알맞도록 토양의 누기를 보장하고 영양분의 누실을 막아주며 지효성을 보장한다.

과학농사가 안아온 응당한 결실 천연생물영양활성제 《봉화산1》호를 도입하고

Published on Jul 28, 2017 소요시간7:53

비디오를 직접 들으면 더욱 좋다. 비디오 내용은 아래와 같다.

변덕스런 이상 기온으로 인한 가뭄으로 황해남도에서도 한창 자라는 농작물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고있다. 허나 과학농법을 받아들여 자연의 횡포를 극복한 단위들의 경험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평안남도 개천시 룡진협동농장
개천시에서는 이미 남조류 식물활성퇴비와 신양2호균에 의한 발효퇴비 방법을 도입해서 지력을 높인 경험이 있다. 강냉이 농사에서 금년에는 새로 개발한 천연생물영양활성제 봉화산1호까지 도입했다. 고온현상으로 인한 가물이 지속되었지만 농작물 생육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높고 안전한 소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개천시협동농장경영위원회 위원장 김순화 증언
금년에 깊이갈이를 못한 상태에서 강냉이를 파종했는데도 봉화산1호로 종자처리한 강냉이 뿌리는 40센치 이상 깊히 들어가서 영양을 빨아먹다보니 일체 영향이 없다. 정보당 10-12톤 가능하다.
봉화산1호 천연생물양양활성제는 우리나라에 자라는 수십 가지의 식물에서 유기무기 영양성분을 비롯한 생리활성 요소를 추출해서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가물이 들면 환경적응 능력이 있어서 식물의 뿌리는 더 깊이 땅속으로 들어가서 수분과 영양을 보층하려는 습성이 있다. 천연생물영양활성제 봉화산1호는 영양 및 성장촉진제 역할을 하여 뿌리 발육을 촉진시키고 빛합성 능력을 높여준다. 씨뿌리는 시기에 봉화산1호로 종자처리하고 파종하면 뿌리가 40센티이상 땅속으로 더 들어가므로 수분과 영양을 잘 흡수해서 가물을 이겨내게 된다. 장마철에는 뿌리가 깊이 들어가니 왠 만한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화학비료 사용량을 현저히 줄여주어서 유기농법을 강조하는 당정책 관철에 전진을 가져오게 되어 농업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금년에 가물을 이겨냔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개천군에서 내년에는 100퍼센트 봉화산1호를 도입하겠다.

룡진협동농장 작업반장 김명진 증언
금년 처음 도입하여 무지재배(여러개체모아심기-편집자주)를 했는데도 가물을 안탄다. 과학기술적 요구를 엄격히 지키면 된다. 규정은 아주 간단하다. 씨뿌리는 시기에 종자처리하고 모판단계와 이삭패는 시기에 5-6회 분무만 하면 된다.

평안남도 중화군 관봉협동농장
저수지로부터 제일 먼곳에 있기에 물보장이 어려워 농사에 지장이 많았다. 3년전부터 봉화산1호를 도입한 경험이 있어서 올해도 강냉이와 벼가 전혀 가물 피해를 받지 않았다. 
관봉협동농장 기사장 리원국증언. 봉화산1호를 사용하니 콩꽃이 필 때에 떨어지는 것도 방지한다. 가물이 오면 수확고가 보통 5퍼센트에서 심지어 30퍼센트도 소출이 감소했는데 금년은 가물 피해가 없다. 오히려 50-150퍼센트 증산이 예상된다.

평안남도 증산군 풍정협동농장과 황해남도 옹진군 만진농장도 봉화산1호를 도입해서 예상 밖의 작황을 거두고 있다. 당정책의 요구대로 과학농사의 기치를 높이 들 때에 그 어떤 이상 기온이나 염피해도 능히 극복하고 얼마든지 높고 안전한 소출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현실로 증명해 주고 있다.

김수복 6.15뉴욕지역위 공동위원장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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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함께, 동아시아 공동체 의회를 설치하자

[일한관계의 새로운 100년을 찾아] 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북핵 문제와 일본에 대한 불신이 그것이다. 전자는 지난 해 이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해결의 과정에 접어들었지만, 후자의 해결은 아직 요원하다. 오히려 한일관계는 지난 해 가을 이후 위안부 문제, 징용노동자 배상 문제 등으로 악화일로에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29일 한국과 일본 인사들이 모여 한일 관계의 새로운 100년을 모색하는 대화 모임이 서울 '대화의 집'에서 열렸다. 대화문화아카데미와 동아시아평화회의가 공동 주최한 이날 모임에는 일본 측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그리고 한국 측에서 이홍구, 김영호, 백낙청 등 지식인 4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하토야마 전 총리와 와다 교수는 각각 '일한관계의 새로운 100년을 찾아' '일한 협력으로 일조 국교 수립을!'이라는 제목의 발제문을 발표했다. 전자는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창설을, 후자는 조속한 북일 수교를 제안하고 있다. 특히 와다 교수는 "(대북) 제재를 유지한 채 (2002년 9월의) 평양선언에 따라 국교를 맺고 대사관을 개설하고 즉각 핵미사일 문제, 경제협력 문제, 납치문제에 관해 협상하는 것이 좋다."면서 "여기까지는 제재에 저촉되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대화에서 일부 한국 참가자들은 과거사 부정으로 일관하는 현 아베 정부의 태도로 보아 한일관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1965년 미국의 강권으로 수립된 한일 관계는 이제 새로운 한일관계로 바뀌어야 하며, '신한일관계'에서 '한'이란 남한만이 아니라 북한도 아울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3.1운동 당시 한민족의 과제가 독립이었다면 현재의 과제는 새로운 한반도평화체제 수립이며, 이를 위해서는 북핵문제의 해결과 함께 북일관계의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특히 1910년 한일병합은 일본의 무력에 의해 강제된 것이므로 원천무효라는 것이 확인돼야 하며, 이에 따라 북일 수교 시 일본의 경제 지원은 (1965년 당시의) '청구권'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담은) '배상'의 형태가 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날 발표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友紀夫) 전 총리의 발제문을 소개한다.편집자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연합뉴스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오늘, 일한관계의 앞으로의 새로운 백년을 내다보며 논의하는 것은 대단히 뜻 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논의의 자리에 저를 초청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남북관계가 몇 년 사이 어떻게 움직일지조차 분명한 예측이 어려운 가운데 백 년 후까지는 가늠도 안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과거의 연장선상이 아닌 형태로 일한관계가 어떠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담아 조망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일한관계의 향후 백 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우선 과거 백 년의 총괄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3.1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야말로 중요하고 친일잔재 청산이 과제다"라고 언급하는 한편, "이웃나라와의 외교에서 갈등요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친일잔재 청산도 외교도 미래지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본과의 협력도 강화할 것"이라면서 "힘을 모아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할 때 한국과 일본은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가 될 것"이라고 호소하셨습니다.  
 
피해자들이란 분명 최근 현안인 징용공이나 위안부였던 분들을 염두에 둔 발언이겠지만, 이들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일한 외교 마찰의 심화는 최대한 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문 대통령의 연설에서 느꼈습니다.  
 
문 대통령께서는 훌륭한 연설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설에 대해 일본정부 측이 어떻게 응답할지가 앞으로의 일한관계 방향성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백 년 전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였습니다. 개국을 한 일본은 구미 열강에 져서는 안 되겠다며 뒤늦게 해외에 진출하고, 오키나와, 타이완 등과 함께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그 행동은 대일본(大日本)주의라 불립니다. 탈아입구(脱亜入欧)라는 열병에 걸려 식산흥업(殖産興業), 부국강병(富国強兵)의 구호 아래 크고 강한 나라를 지향하며 식민지 쟁탈전에 참여했습니다.  
 
그 결과, 만주사변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전선은 확대되고 일본은 역사적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문제는 일본이 대일본주의에 따라 일련의 행동을 취한 일에 대한 일본 스스로의 총괄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도쿄재판의 결과를 수용했지만, 이는 연합국 측이 수행한 재판입니다. 때문에 식민지화나 전쟁을 통해 고통과 비극을 입힌 분들에게 진심 어린 사죄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일본주의를 수행한 것은 정부였지만, 당시의 최고책임자는 천황 폐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난 번 문희상 국회의장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면 천황의 사죄가 필요"하다고 한 말은 최고책임자가 사죄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으로, 한국 측에서는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발언일 것입니다.  
 
다만 일본인 대부분은 천황 폐하를 숭상(尊崇)하고 있으며, 현 헌법상 천황 폐하는 어디까지나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는 상징적 존재이다 보니, 많은 일본 국민이 "문 의장은 그런 말까지 하나"라고 생각한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천황폐하는 사죄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현재의 아키히토(明仁) 천황은 오는 5월에 '생전 퇴위'를 하십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1990년 5월, 귀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의 궁중만찬회 자리에서 "한반도와 우리나라의 길고도 풍요로운 교류 역사를 돌아볼 때, 쇼와(昭和) 천황께서 '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 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존재했음은 참으로 유감이며 또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던 말씀을 상기합니다. "우리나라로 인해 초래된 이 불행한 시기에 귀국 사람들이 맛본 고통을 생각하며, 저는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없습니다"라고 사죄의 마음을 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탄생일에 즈음해서는 폐하 자신의 말로서,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 일본기>에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으로 본래는 금기가 아닐까 생각되는 발언을 하셨습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자신의 태생(出自)에 관한 사항까지 언급한 것은 천황 폐하가 얼마나 현재와 같은 일한 관계를 우려하며 풍부한 교류가 이뤄지던 옛 관계로 되돌리고 싶어 하시는가 하는 의사 표현이었다고 믿습니다.  
 
이어 1994년 3월에 김영삼 대통령을 초청한 궁중만찬회에서 천황폐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귀국은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며, 사람들의 교류는 역사서에 드러나기 이전의 아득한 옛날부터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귀국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우리 조상은 귀국의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양국의 길고도 밀접한 교류 동안 우리나라가 한반도 사람들에게 다대(多大)한 고난을 입힌 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해, 이 일에 대한 저의 깊은 슬픔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만, 지금도 변함없는 마음을 안고 있습니다. 전후 우리 국민은 과거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 서서 귀국 국민과의 사이에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우정을 만들어 내고자 힘써왔습니다".
 
천황 폐하가 가장 일찍, 가장 진지하게, 가장 명확하게, 한국 여러분께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 것입니다.  
 
저는 천황 폐하의 한국민에 대한 마음을 일본정부, 그리고 일본국민이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한국 여러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의 총리 재임 중에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천황폐하의 한국 방문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받고 그 뜻을 천황 폐하께 전달해드렸습니다. 아쉽게도 폐하의 방한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5월에 탄생하는 새로운 천황 폐하가 한국민의 환영 속에서 방한하게 될 기회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는 간단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 여러분들은 천황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지니셨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만일 그러한 기회가 생겨 새 천황이 헤이세이(平成) 천황과 같은 심정으로 한국민을 접할 때 일한관계는 커다란 진전을 이루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총괄이라는 의미에서는 천황 폐하보다도 국민의 의사로서 일본정부가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5년, 즉 전후 50주년 기념일을 맞아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되었습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는 먼저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밝히며 평화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쉬이 망각하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에 국책을 그르쳐 전쟁으로 가는 길을 걸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의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多大)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의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여기에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한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라면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아시아 사람들에게 고통을 입힌 일에 대하여 명확하게 반성과 사죄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깊은 반성 위에서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고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고 끝맺었습니다. 천황 폐하의 마음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일본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무렵 일본은 훗날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게 된 경제적 침체의 입구에 이미 들어서 있었습니다. 일본은 패전 후, 반성 아래 평화헌법을 제정함으로써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육해공군과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겠다고 헌법 9조를 통해 맹세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경제를 중심으로 발전을 이루어 기적적인 전후 부흥을 성취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 버금가는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여서, 경제에 거품이 일었고 그 대책에 실패한 탓에 이후 오랫동안 경제불황 시대가 계속되었고 국민들은 자신감을 상실했습니다.  
 
그 사이 중국 등을 필두로 주변 국가들은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일본 국민은 중국이나 한국 등 사람들 에게 관용의 마음을 점차 잃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배경이 일부 일본인의 혐한(嫌韓)과 혐중(嫌中) 감정을 증폭시켰습니다. 독선적이고 편협한 내셔널리즘이 확산되는 바탕을 만든 셈입니다.  
 
국민의 불만이 한때는 정-관-재계의 유착 체질로 물든 자민당 정권을 향해감으로써 2009년 총선에서 민주당 압승으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실현되었고 하토야마 정권이 탄생했습니다. 하토야마 정권은 일본 외교의 중심축을 옮겨 대미의존보다는 미일안보를 기본으로 삼되 아시아를 보다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기에, 한일, 중일 관계 모두 양호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후 아베 자민당 정권이 복귀하자,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 재검토 의향을 보였을 뿐 아니라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고노 담화 검증 발언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이 이어져, 일한관계는 정상회담이 오랫동안 열리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습니다. 그 후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에서도 양국 정부 간 합의가 성립하는 등 일시적으로는 최악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작금은 징용공출신자 문제나 한국 해군의 레이더 조사(照射) 문제가 일어나면서 일한관계는 지극히 비정상적 상태에 놓여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2015년에 미국의 요청도 있어 일한 외교장관이 회담한 결과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이 합의를 읽은 순간, 이것 가지고는 최종적 결말을 볼 수 없는 게 아닐까 우려했습니다. 왜냐하면 합의에 따라 총리의 사죄와 일본정부의 10억 엔 거출이 결정됐지만, 이 합의를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해결'이라 한 것은 일본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태도로 두 번 다시 사과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한
국민의 감정을 자극할 것이라 우려됐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한 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저는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内田樹) 선생의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한국으로부터 과거 전쟁 당시의 종군위안부 제도에 대하여 냉엄한 비판과 사죄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일한조약으로 법적으로는 결말을 봤다, 또는 한국에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했으니 언제까지나 똑같은 문제를 들먹이지 말라는 식으로 짜증 섞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전쟁 피해에 대해서 패전국이 짊어지는 것은 사실상 '무한책임'입니다. 정해진 배상을 했으니 책임은 이제 다했다는 말을 패전국 측에서 할 수는 없습니다. 전승국이든 구 식민국이든 그쪽에서 먼저 '이제 더 이상 책임 추궁은 안 하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책임은 계속 짊어져야 합니다."  
 
저는 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일본 위정자가 가질 수 있을 때에 위안부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전 징용공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 대법원이 배상을 명한 판결에 대하여 고노(河野) 외상 등이 비난 발언을 거듭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1991년에 야나이(柳井) 조약 국장이 "개인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에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한 바 있고, 일한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일한 양국정부가 징용공 피해자 분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냉철하게 대화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한국 해군 레이더 조사(照射) 문제는 작년 말 일본해(동해)에서 한국 해군 구축함이 해상자위대의 P1 초계기에 화기 관제 레이더를 조사한 데 대해 일본 정부와 많은 국민이 대단히 위험한 행위라며 항의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의 이 함정은 조난당한 북한 어선을 구조하는 와중이었고, 한국군 측에 자위대기를 공격할 의도가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항공 막료장을 지낸 다모가미(田母神) 씨에 따르면, 최근의 화기관제 레이더는 상시적으로 거의 전방위로 전파를 계속 배출하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항공기 등에 전파가 조사되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위험하다며 크게 법석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로가 냉철해지고, 지나친 일이 있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끝날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냉철함을 잃게 하여 호전적 분위기로 순식간에 기울어버리는 일본 여론에 있다고 느낍니다. 지금만큼 일한관계에서 미래를 직시하고 냉철해야 하는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혜택과 영향을 받아왔으며 앞으로도 누구보다도 서로에게서 영향을 주고받을 것입니다. 이웃끼리 서로 증오하면 서로에게서 나쁜 영향을 받을 터이고, 반대로 이웃끼리 서로 사랑하면 서로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더욱 더 서로를 신뢰하고 함께 협력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저의 조부이신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郎)는 1954년 총리대신으로 취임했다가 1956년 일소 국교회복을 이루고 사임하셨습니다. 그는 전후에 곧 총리가 될 기회가 있었지만 내각 구성 직전에 추방처분을 받았습니다.  
 
추방당하여 청경우독(晴耕雨読)의 나날을 보내던 중 리하르트 쿠덴호프 칼레르기(Richard Coudenhove-Kalergi) 백작의 저서 <전체주의국가 대 인간>을 읽고 심취하게 됐고, 그의 '우애' 이념에 공감하여 <자유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그 책을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정계에 복귀한 후에는 우애를 '상호 존중' '상호 이해' '상호 부조'라고 설파하면서, 우애 사회의 실현에 힘썼습니다.  
 
일본인 어머니를 둔 오스트리아인 쿠덴호프 칼레르기 백작은 자유와 평등의 가교로서 '우애'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20세기 초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두 전체주의로 뒤덮인 유럽에서 전체주의와 싸우기 위한 사상으로 '우애'를 제창한 것입니다. 
 
그는 우애의 이념에 바탕을 두고 범유럽주의를 주창했으며, 그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석탄철강공동체를 탄생시키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서로 미워하던 독일과 프랑스 양국은 석탄과 철강의 공동관리를 비롯한 협력을 쌓아 나갔습니다. 또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주변국에서도 경제 중심의 협력관계가 심화되어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그 움직임이 오늘날의 유럽연합(EU)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제 독일과 프랑스가 또다시 전쟁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럽이 사실상 부전(不戦)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애가 결코 과거 이념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세계정치에서 가장 소중한 이념이라는 점입니다. 
 
우애란 자기 존엄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타인의 존엄성도 똑같이 존중함을 말합니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타인의 자유도 존중하고,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개성을 살려 서로 돕는 일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우애는 자립과 공생(共生)으로 인수분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자립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엄성이 존중됩니다. 하지만 자기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니 타자와 자신이 다른 존재임을 이해하고 기뻐하면서 서로 돕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는 의존하거나 무작정 기대는 것이 아닌 공생입니다. 공생 없는 자립도, 자립 없는 공생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애란 사람과 사람 사이만이 아니라 국가 간에도 성립되는 이념입니다. 근대국가는 한 나라만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타국과의 다양한 협력과 영향 속에서 존재합니다. 국가로서 어떻게 자립을 도모하며 다른 나라와 공생해 나갈 것인가가 국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현재 일본은 미국에 대한 의존이 지나치니 중심축을 보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로 옮기는 것이 우애 국가가 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우애의 이념을 더 넓게 바라보면 인간과 자연 사이에도 성립된다 하겠습니다. 인간이 자립하면서도 자연과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지는 인류 최대의 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세계화가 작동하지 않고 내셔널리즘이 고양되고 있는 현재, 우리는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저는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우애 이념에 따라 지역기구를 창설하고 구성 국가들의 상호이해의 장을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른바 지역주의(regionalism) 이념에 따라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 말입니다.  
 

▲ 지난 3월 29일 한국과 일본 인사들이 모여 한일 관계의 새로운 100년을 모색하는 대화 모임이 서울 '대화의 집'에서 열렸다. 이홍구 전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 명예교수(왼쪽부터) 등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공동체 안에서는 결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분쟁은 철저한 대화로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힘의 행사는 결코 분쟁의 본질적 해결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우애 이념에 기초해 동아시아 부전공동체를 꿈꾸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창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세안(ASEAN) 10개국은 이미 경제를 중심으로 통합되어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또한 시진핑 주석은 아시아를 운명공동체라 하면서, 2020년까지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ASEAN 10개국에 일한중 세 나라가 더해지면 동아시아 공동체의 핵심이 형성됩니다. 중국은 그러한 의사를 표명했으니, 일본과 한국의 태도가 남았습니다. 나는 일본이야말로 그 선두에 서서 깃발을 흔드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이 지역에서는 다름 아닌 일본이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입혔고, 이후 7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정한 화해가 달성되었다고 여겨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70년이란 획을 맞이하던 해에 일본이 역사를 응시하고 침략과 식민지 지배로 인해 고통 받은 사람들과 국가들에 대해 분명히 사죄와 보상을 할 수 있었다면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해 크게 전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총리 재임 중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중요성을 설파했습니다. 그리고 일한중 3국 협력 사무국을 서울에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소기의 목적이 아직 이뤄졌다고는 보기 어려워 안타깝습니다.  
 
일한중 정상회담이 차차 재개되어 일한중 협력이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한반도는 평화를 향해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몇 차례나 열렸고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도 하노이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에서 아무런 합의도 얻어지지 않았으니 회담이 결렬했다, 실패했다는 식의 부정적 논조가 눈에 띄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핵개발을 완전히 멈추고 미국이 경제제재를 완전히 풀어 양국간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한두 번의 정상회담으로 결론 날 일은 아닙니다. 양자가 어떻게 타협점을 찾아갈지 그 윤곽이 오히려 이번 회담에서 어렴풋이나마 드러난 만큼, 좋았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상회담을 앞으로도 이어감으로써 그 사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미국도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북미관계가 질적으로 개선되어 한반도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이야말로 일본과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움직임을 지원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일본은 한반도의 남북분단에 커다란 책임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저 트럼프 대통령을 전면적으로 지지한다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한국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백 년 후를 바라본다면 한반도는 어떤 형태로든 하나의 국가가 되어있을 테니 말입니다. 몇 년 전까지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 안에 어떻게 하면 북한을 편입시키는가 하는 문제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남북관계의 급진전으로 이 틀에 북한을 넣어서 생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동아시아 공동체 의회를 설치하고, 그곳을 경제, 무역만이 아니라 환경, 에너지, 교육, 문화, 안보 등 모든 분야를 논의하는 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는데, 오키나와(沖縄)와 제주도가 그러한 회의의 개최 지역으로 적합하리라는 생각입니다. 
 
일본과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세계 양대 강국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중국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동아시아국가들과 평화적으로 발전해갈 수 있도록, 또한 북한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평화롭고 안정된 국가로 발전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하리라 사료됩니다.  
 
거기에 성숙한 국가인 일본과 한국의 커다란 삶의 방식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발상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일어나 동아시아를 평화롭고 매력적인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 목적을 다하고자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전진 실현시키기 위해, 일본, 한국, 중국이 중심이 되어 국가를 초월한 인터내셔널 파티를 만들지 않겠습니까? 
 
이를 제안하면서 제 연설을 맺고자 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난 3월 29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관계의 새로운 100년을 모색하는 대화 모임에서 발제하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 명예교수(왼쪽부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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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언론이 ‘거꾸로 가는 靑’ 지적

[아침신문 솎아보기] 경향신문 “거꾸로 가는 청와대”, 한겨레 “독야청청?”

이정호 기자 leejh67@mediatoday.co.kr  2019년 04월 02일 화요일

두 명의 장관 후보자가 낙마한 뒤 모든 언론이 청와대의 안일한 현실 인식을 지적하는 보도를 내놨다. 윤도환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1일 언론브리핑에서 조현옥 인사수석과 조국 민정수석 교체 여론을 두고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고 말해서다.

윤도환 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민정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사 쪽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런 지적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병역, 세금, 불법 재산증식, 위장전입, 연구 부정, 음주운전, 성 범죄 등 청와대가 제시한 7대 인사 배제 기준에 위배되는 후보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정호 전 후보자는 2003년 경기 분당에 아파트를 보유한 상황에서 서울잠실 재건축 아파트를 갭투자로 매입했다. 이는 전형적 부동산 투기다. 낙마하지 않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과 딸도 2006년 이후 세차례 위장전입했다.

윤도환 수석은 이날 낙마한 두 후보자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윤 수석은 조동호 후보자에게 쏟아진 비난을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돈을 보내려고 전세금 올렸다는 부분이 자극적으로 보도됐다”며 언론의 자극적 보도 탓으로 돌렸다.

경향신문 “거꾸로 가는 청와대”, 한겨레 “독야청청?” 

경향신문은 이런 청와대의 안일한 인식을 2일자 4면에 ‘인사참사에도 문제없다…거꾸로 가는 청와대 현실 인식’이란 제목의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 2일자 경향신문 4면(왼쪽)과 한겨레 5면.
▲ 2일자 경향신문 4면(왼쪽)과 한겨레 5면.
 

경향신문은 이 기사에서 여당에서도 조국 민정수석의 사퇴를 거론한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이 “조국 수석이 사퇴하는 게 맞지 않겠나”라고 했고, 다른 의원은 조동호 전 후보자를 두고 “그런 인사를 대체 누가 추천했는지 우리도 미스터리”라고 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도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청와대만 독야청청하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보였다.  

한겨레도 이런 청와대의 현실 인식을 비판하며 2일자 5면에 ‘독야청청?’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흠결 있는데도 못 잡은 게 아니다. 지명할 땐 문제가 없었다”는 윤도환 수석의 황당한 해명을 비판했다. 

동아일보, 靑 “조국-조현옥 수석이 뭘 잘못했나” 

조선일보는 2일자 1면에 조국 조현옥 수석을 엄호하는 윤도환 수석의 말을 빌려 ‘조·조 문제없다, 그러니 조치도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동아일보도 이날 1면에 ‘청, 조국-조현옥 수석이 뭘 잘못했나’는 제목으로 관련 사실을 보도했다.

▲ 시계방향으로 2일자 조선일보 1면, 동아일보 1면, 중앙일보 3면.
▲ 시계방향으로 2일자 조선일보 1면, 동아일보 1면, 중앙일보 3면.
 

 

중앙일보도 3면에 ‘윤도환, 문제 없으니 특별한 조치도 없다, 조국 엄호’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놨다. 중앙일보는 청와대의 이런 엄호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도입이란 핵심 과제를 조국 수석이 진두지휘해왔기에 조국 수석이 빠질 경우 검찰 개혁의 좌초를 걱정해서라는 해석을 내놨다. 특히 중앙일보는 향후 국회 진출 가능성이 있는 조국 수석에게 ‘경질’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게 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다수라고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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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한미 연합 군사훈련 서푼 짜리 힘 자랑' 조소.경고

조선, '한미 연합 군사훈련 서푼 짜리 힘 자랑' 조소.경고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9/04/02 [06:37]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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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한미연합 군사 훈련을 서푼짜리 힘 자랑이라고 조소하고 모처럼 마련된 긴장 완화 정세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 민족끼리》는 2일 서푼짜리 힘 자랑으로 얻을 것은 세인의 조소와 비난 뿐이다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이같이 밝혔다.
  
조평통은 "최근 미국과 남조선 군부가 공중과 해상에서 연합훈련들을 강행하며 우리에 대한 군사적압박에 매달리고 있다."며 강조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3월 18일부터 29일사이에 전투기, 공중조기 경보기, 정찰기, 직승기 등 각종 군용기들을 동원하여 유사시 《구출 작전 능력을 숙달》한다는 구실로 연합 공중 탐색구조 훈련인 《퍼시픽 썬더》를 감행한 미국과 남조선 호전광들은 연안경비함 《WMSL-750》호까지 제주도에 끌어들여 3월 28일에는 《불법환적》함선단속을 위한 연합해상 검문검색 훈련을 벌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공군은 이미 3월중순부터 조선반도 주변 상공에 정찰 자산들을 집중 투입하고 있는 상태에서 지난 3월 20일에는 괌도 앤더슨기지의 전략 폭격기 《B-52》편대까지 동원하여 일본 열도의 동해안을 따라 로씨야의 깜챠뜨까반도 인근 상공까지 비행 시켰다."고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또한, "이것은 모처럼 마련된 긴장 완화 분위기를 파괴a 하려는 위험한 군사적 도발이며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기로 확약한 싱가포르 조미 공동성명과 북남선언들의 리행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움직임은 미국과 남조선당국이 운운하는 《평화》타령이 내외 여론을 기만하기 위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으며 여전히 우리와 힘으로 대결하려는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것으로 된다."고 한미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했다.

 

아울러"조선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내외의 한결 같은 요구에 역행하여 불신과 대결로 일관된 적대시 정책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구태의연하게 그 누구를 힘으로 놀래 보겠다는 것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조평통은"군사적 허세에 매달릴수록 궁색한 처지와 취약성만 드러내보일 뿐이며 서푼짜리 힘자랑으로 얻을 것은 평화의 파괴자, 무모한 호전광이라는 세인의 비난과 규탄 밖에 없다."며 적대정책에 의한 대결적 자세를 버릴 것을 촉구했다.

 

보도는 끝으로 "조선반도의 정세가 악화 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세계 앞에서 한 약속을 줴버리고 군사적 도박을 강행한 도발자들이 지게 될 것이다. 미국과 남조선 호전광들은 군사적 위협이 우리에게 절대로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경거망동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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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단독으로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작업 시작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4/02 08:17
  • 수정일
    2019/04/02 08:1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국방부, “향후 북이 호응해오면 즉각 공동발굴로 전환”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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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1  15: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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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이 1일 화살머리고지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추가 사전작업을 시작했다.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이날부터 공동으로 발굴작업을 개시해야 하지만 북측의 호응이 없어, 남측이 단독으로 일단 작업에 들어갔다.

노재천 국방부 부대변인은 1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군은 오늘부터 군사분계선 이남지역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향후 실시될 남북공동발굴작업에 대비한 사전 준비 차원에서 작년에 이은 추가 지뢰 제거 및 기초 발굴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현재까지 공식적인 답변이 없”으며 “향후 북한이 호응해 올 경우 즉각 남북공동발굴로 전환될 수 있도록 제반 준비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은 지난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9.19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사전작업을 진행해 왔다. 지난해 11월 22일까지 지뢰를 제거하고, 정전협정 체결 65년 만에 철원에 도로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합의 이행은 제자리걸음이다. 2월 말까지 공동유해발굴단을 구성해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유해를 발굴하기로 했지만, 관련된 남북군사회담에 북측이 호응하지 않은 상황.

다른 합의도 진척이 없다. 남북 간 군사적 신뢰조치 핵심기구인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설치 논의도 합의문에만 담겼을 뿐,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남북군사당국자 사이 직통전화 설치, 서해 평화수역 문제 등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후속조치는 물론, 1일부터 시작하기로 한 한강하구 민간선박 항행 합의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군사합의를 포함을 하여 남북 간에 합의된 사항들이 원만하게 잘 이행이 되어서, 이행될 수 있도록 사전준비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면서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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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기다린 특수고용 노동자는 여전히 운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노조 하기 쉬운 세상, ILO 협약 비준으로

 

 

 

"노동조합은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봤거나 도와준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하는 얘기이다. 노조 만드는 절차는 간소한데 만드는 순간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사용자들이 노조 핵심을 콕 집어 해고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에겐 보복성 전환배치와 각종 불이익 폭탄을 안겨준다.
 
노동조합 지키는 게 더 어렵다고 말하는 것조차 사치가 되는 노동자들도 많다. 한국에서 노동조합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자’로 인정받는 관문부터 통과해야 한다. 이 나라 노동조합법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법 제2조에서 정의된 ‘근로자’ 구성요건을 모조리 다 채워야 노동조합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지만 
 
그 관문에 서있는 이들 중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게 최소 200만에 달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다. 화물트럭·레미콘·덤프트럭 기사, 대리운전·퀵서비스·택배 기사, 간병인,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방과후 교사 등 멀쩡한 노동자들인데 오직 이들이 ‘근로계약’이 아니라 도급 또는 위탁계약을 체결한다는 이유로 노동자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고려시대 노비 만적은 “왕후장상(王侯將相)에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라며 난을 벌였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벌써 신분제 철폐를 내건 대규모 반란이 있었는데, 800년이 지난 지금은 자본가에 종속된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노조도 못 하는 현실이다. 자본가가 되는 데에는 아무런 규제가 없는데 노동자로 인정받으려면 온갖 허들을 다 뛰어넘으라는 거다.
 
이미 특수고용 문제는 20년 전인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 쟁점이 되어 왔다. 그 뒤 대선 때마다 주요 후보들은 200만에 달하는 표심을 잡기 위해 특수고용 관련 공약을 내걸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모두 대선에서 구체적으로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공약하고 당선된 바 있다.(위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
 
자본가를 위해 ILO 협약 위반도 감수? 
 
그러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는 20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다. 대선 때마다 쟁점이 되어 공약을 걸고 당선되기만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약속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사항을 경사노위라는 기구에 외주 줘버렸다. 국민에게 약속한 내용을 이행하면 되지 그 이행 여부를 왜 다른 기구에 맡기나? 
 
“단결권 관련 공익위원안은 국제노동기준 위반마저 감수하고 경영계 요구를 충분히 반영해 노동계 불만이 큰 상황 …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결성권을 보장하라는 국제노동기구 권고도 있었지만 경영계 요구로 공익위원안에 반영되지 않고 장기 과제가 됐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3월 18일, 경사노위에서 ILO 협약 비준과 노동법 개정 의제를 다루는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의 공익위원 대표를 맡고 있는 이승욱 교수가 기자회견에서 내뱉은 말이다. 얼마나 노골적인 얘기인가! 20년간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외쳐온 노조 할 권리라는 처절한 요구를, 그것도 자본가들 요구 때문에 외면하겠다는 것 아닌가.
 
즉, 경사노위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불이행을 배신이 아닌 것처럼 마사지 해주고 자본가들 요구에 맞게 국제노동기준을 깎아주고 그들의 소원수리를 해주는 기구에 다름 아님을 보여준다. 어떻게 "국제노동기준 위반마저 감수하고 경영계 요구를 충분히 반영"한다는 얘기를 공개적인 기자회견장에서 당당하게 밝힐 수 있을까? 
 

▲화물업종 기사들은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린다. ⓒ공공운수노조

특수고용 노조 할 권리도 바겐세일?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가장 반색하는 쪽은 적폐세력 자유한국당이다. 박근혜가 추진했던 노동개악과 문재인 정권의 정책에 차이가 없지 않은가! 이제 더 이상 숨죽이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2018년의 마지막날(12월 31일), 환노위 임이자 의원(자유한국당 간사)이 특수고용 관련 개악안을 발의하게 된다. 
 
이 법안은 기본적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니라고 규정한다. 다만 노동자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점은 인정되니 노동조합 비슷한 ‘단체’를 결성할 권리, 교섭 비슷하게 사업주를 상대로 계약조건을 ‘협의’할 권리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 단체가 파업, 즉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할 권리는 금지한다. 민·형사상 책임까지 명시해서 말이다.
 
이건 뭐 '반층짜리 엘리베이터'라는 비유도 아깝다. 장애인들이 타다가 사고로 수없이 목숨을 잃었던 리프트, 반층짜리 휠체어 리프트 수준이다.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아 노동조합도 금지되고, 노동조합과 유사한 권리 2개만 준다는 것이니 말이다. 교사·공무원은 그나마 노동자로 인정한 상태에서 기본권을 할인했다면, 특수고용은 아예 기본권을 바겐세일 해준 거다.
  
"결사의 자유 원칙에 의해 군인과 경찰만을 제외한 모든 노동자는 스스로 선택한 단체를 설립하고 그런 단체에 가입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런 권리의 적용 대상을 정하는 기준은 고용관계 존재 여부에 기초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농업노동자, 일반 자영업자(self-employed workers), 자유직 종사자의 경우에는 종종 고용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노동자들도 단결권을 누려야 한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 판정 해설집, para. 254) 
 
임이자 입법안 역시 ILO 핵심협약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내용이다. ILO는 이미 3~4회에 걸쳐 한국 정부를 상대로 화물트럭기사를 비롯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를 제한 없이 인정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위 내용처럼 ILO 협약 원리는 특수고용은 물론이고 일반 자영업자에게도 결사의 자유를 차별 없이 보장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입성 뒤 변심한 더불어민주당 
 
그렇다면 ILO 협약 원리에 맞게 법안을 발의하면 되는 일 아닐까? 놀라지 마시라. 이미 그런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2017년 2월에 한정애 의원이 대표발의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이다. 특히 이 법안은 아예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하나만 콕 집어서 노조법 2조만 원포인트로 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 이 법안의 현재 상태는 어떠할까?
 
다시 한 번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접속해 보았다. 2017년 2월에 발의된 후 같은 해 9월에 환노위 전체회의에 상정까지만 이뤄진 채 정지되어 있다. 지난 글에서 다뤘던 홍영표 교원노조법 개정안과 똑같이 고용노동 법안소위에서는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은 채, 2년 넘게 그저 국회 안에서 잠자고 있다. 아니, 대체 2017년 2월 뒤에 무슨 일이?
 
그렇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 전교조 합법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청와대 입성 후 그들은 약속을 어기고 입을 싹~ 씻어버렸다. 대선 이전에 발의한 법안, 국제노동기준에 충실한 법안은 내팽개쳤다. 그 대신 자본에게 유리한 법안만 발의하고 자유한국당과 함께 밀어붙이고 있다.
 
ILO 권고 받는 부끄러움 반복할 건가 
 
이명박 정부 시절에 화물트럭 기사, 덤프트럭 기사가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다는 이유로 전국건설노조와 전국운수노조를 불법화 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에 대해 관련 노동조합들이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하자 ILO는 한국 정부에게 매년 아래와 같은 강력하고 구체적인 권고를 결정한 바 있다. 
 
[2011년 권고 내용] 위원회는 화물차량 운전기사와 같은 자영 노동자(self-employed worker)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들 권익의 증진과 방어를 위해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조직을 통해, 그 어떤 사전적 승인 조치 없이 해당 조직의 규정에 따라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연맹과 총연맹에 가입할 권리를 포함하여, 결사의 자유를 전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한국정부에 요구한다. 
 
[2012년 권고 내용] (i) 대형화물트럭 운전기사들이 설립하였거나 가입한 조직이 그들 자신의 선택에 따라, 그리고 해당 조직의 규정에 따라, 그 어떤 사전적 허가 없이 연맹과 총연맹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것. (ii) 전국건설노조와 전국운수노조에게 차량소유 운전기사들을 조합원에서 배제시킬 것을 요구한 권고를 철회하고,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 하의 조항을 포함하여, 이들 연맹들에 대해 노조 조합원들을 각 노조가 대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그 어떤 조치도 삼갈 것. 
 
노동조합 명칭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ILO가 "결사의 자유를 전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 "노조가 대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그 어떤 조치도 삼갈 것"이라는 표현까지 권고에 담았다는 것은 한국 정부 입장에서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일들이다. 특수고용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권고를 어겨서 계속 부끄러운 권고를 받고 싶은 건가? 
 
노조 하기 쉬운 세상 만들기 
 
매년 저런 권고를 받고 있는데 자본가들 소원수리 해주느라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을 늦춘다면 국제사회가 얼마나 비웃을까? 한국의 노동조합법은 해고자 실업자 구직자는 물론이고 특수고용 노동자가 단 한 명이라도 가입하면 노동조합 전체를 불법화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국제노동기준과 결사의 자유를 모두 씹어 먹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한국은 노동조합 하기가 참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노동자들 표를 긁어모으기 위해 대통령에 당선되려고 너도 나도 특수고용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던 것 아닌가? 특수고용 문제는 무려 20년 묵은 과제이다. 이제는 풀고 가야 한다. ILO 기본협약을 당장 비준하고, 노동조합법 제2조의 ‘근로자’ 개념만 조금 확장하면 되는 일이다.
 
오는 4월 13일, 전국의 특수고용 노동자들 수만 명이 서울로 올라온다. 화물트럭·레미콘·덤프트럭 기사, 대리운전·퀵서비스·택배 기사, 간병인,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방과후 교사 등 업종과 하는 일은 모두 다르지만 똑같은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이다. 지금까지 설명했던 ILO 기본협약 비준과 노조법 2조 개정이 이들의 핵심 요구이다.
 
"노동자 및 사용자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사전 인가를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여 단체를 설립하고 그 단체의 규약에 따를 것만을 조건으로 하여 그 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ILO 제87호 결사의 자유 협약의 제2조 문항이다. 노조 할 권리에는 차별이 없어야 하며 사전 인가를 받을 필요도 없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 판정에 따르면, 결사의 자유는 일반 자영업자에게도 제한 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한국의 특수고용과 같은 유형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너무 늦었다. 차별 없이, 사전 인가 없이, 특수고용에게 노조 할 권리를 즉각 보장해야 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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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선거운동 ‘자유한국당 vs 민주당’ 어떻게 달랐나?

불법을 저지르고도 당당한 자유한국당의 황당한 변명
 
임병도 | 2019-04-01 08:49:3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자유한국당의 축구장 내 불법 선거 운동으로 경남FC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도 징계를 받게 됐습니다.

지난 30일 창원축구센터에서는 경남FC와 대구FC의 경기가 열렸습니다. 이날 경기장에는 개막전 때보다 더 많은 6천 명이 넘는 유료 관중이 몰릴 만큼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이날 창원성산 보궐 선거에 출마한 각 정당 후보자들은 대부분 창원축구센터를 찾아 열띤 선거 유세를 펼쳤습니다.

경기장 밖에서 선거 유세를 펼친 다른 정당과 달리,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강기윤 후보는 정당명과 기호, 이름이 새겨진 점퍼를 입고 경기장 안까지 들어와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경기장 내 선거운동 위반, 승점 10점 감점되면 2부 리그로 강등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공지한 ‘경기장 내 선거 운동 관련 공지’

자유한국당의 경기장 선거 유세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규정한 경기장 내 선거운동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입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입후보자가 입장권을 사서 입장하는 것은 허용합니다. 하지만 경기장 내에서 정당명, 후보명, 기호 등이 노출된 의상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10점 이상의 승점 감정, 무관중 홈경기, 연맹이 지정한 제3지역에서 홈경기 개최, 2000만 원 이상의 제재금, 경고 중 1가지 이상의 무거운 중징계를 받습니다.

승점이 10점 이상 감점되면 2부 리그로 강등될 수도 있을 만큼 경기장 내 선거운동은 불법입니다. 자유한국당의 불법 선거 운동으로 경남FC와 응원하는 경남 도민들만 피해를 입게 됐습니다.


불법을 저지르고도 당당한 자유한국당의 황당한 변명

▲법무부 장관 출신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경기장 내 불법 선거운동에 대해 ‘앞으로 법을 잘 지키겠다’고 말했다. ⓒMBC뉴스 캡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경기장 내 불법 선거운동 지적이 나오자, 앞으로는 법을 잘 지키면서 유세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보면 앞으로 법을 잘 지키겠다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제재와 벌어져야 할 정도로 막무가내였습니다.

<경남FC가 공식 입장으로 밝힌 당시 상황>
경남FC 임직원은 경기 전 선거 유세와 관련하여 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연맹)으로부터 사전 지침을 전달받았으며 또한 경호 업체와의 미팅 시에 동 지침을 전달하여 경호 업체 측에서도 경호 담당자가 충분히 숙지하여 철저히 준비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고 선거 유세가 있는 경기 당일에 연맹에 주의 사항을 재차 확인하여 경기장 내 선거 운동 관련지침을 모든 임직원들이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경기 당일 황 대표는 강 후보 유세 지원을 위해 경기 시작 30분 전에 장외이벤트 행사장에서 관람객들과 인사를 하고, GATE 1번 근처 중앙매표소에 입장권을 구매하고자 줄을 서있었던 사실이 확인되었고, N석 근처 GATE 8번을 통해 입장 시 입장권을 검표하는 과정에서 경호 업체 측에서 정당명, 기호명, 후보자명이 표기된 상의는 입장 불가로 공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유세원들은 검표원이 “입장권 없이는 못 들어간다.”라고 얘기를 하였지만 이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들어가면서 상의를 벗지 않았습니다.

 

매표 업무 확인 차 N석으로 이동하던 직원이 일부 유세 원과 경호원이 실랑이하는 모습을 확인 경기장에서 유세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 “경기장 내에서는 선거유세를 하면 안된다”, “규정에 위반된 행동이다”라며 선거유세를 만류하는 과정에서 강 후보 측과 실랑이가 벌어졌으나, 강 후보 측에서는 이를 무시한 채 계속적으로 선거 활동을 진행하였으며, 직원에게 “그런 규정이 어디 있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라고 하면서 계속적으로 선거 활동을 진행하였으며, 계속해서 상의 탈의를 요구하자 옷을 벗는 척만 하며 다시 착용하였고, 경기 진행을 위해 경기장 중앙 출입구에 있던 직원이 상황을 인지하고 경호원에게 재차 제지 요청과 인원 충원을 요청하였고, 운동장에서 N석 쪽으로 달려가 강 후보 측 수행원에게 “상의를 벗어달라” 고 요구하였으나 수행원이 “왜 벗어야 되냐” 고 항의하여 “연명 규정이다”라고 하고 경호원이 계속 저지를 하는 모습과 상의를 벗는 것을 확인하였고, 몇 분 뒤에 강 후보자 일행들이 경기장을 나간 것으로 파악이 되었습니다.

▲자유한국당 공보실이 기자들에게 발송한 ‘경남FC 축구장 인사 관련 입장문’

자유한국당 공보실은 경기장 불법 선거 운동 사건 이후 기자들에게 보낸 <경남FC 축구장 인사 관련 입장문>에서 선거관리위원회와 강기윤 후보의 문제라는 변명을 내놓았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선거관리위원회 문의 결과 후보자가 선거 유니폼을 입고 입장해도 된다는 유권 해석을 받고 들어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경기장 내 선거 유니폼 착용 금지 조항이 있기에 이 주장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자유한국당은 ‘선거운동을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는지를 몰랐던 것은 후보 측의 불찰이다’라며 후보만의 문제로 국한시켰습니다.

그동안 황교안 대표가 계속 지역에 체류하면서 선거 지원 유세를 하는 등 지도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었습니다. 단순히 후보 만이 아니라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안일한 선거운동 방식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기장 선거운동 ‘자유한국당 vs 민주당’

▲손혜원 의원실 김성회 보좌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경기장 내 선거운동 사진과 글 ⓒ페이스북 캡처

자유한국당의 경기장 내 불법 선거운동 사건이 벌어지자 손혜원 의원실 김성회 보좌관은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슷한 상황에서 민주당은 어떻게 했는지를 사진과 함께 공개했습니다.

김 보좌관은 “2018년 6월 9일 대구시장 선거 임대윤 후보를 돕기 위해 삼성라이온즈 파크를 찾았다. 경기장 안은 특정인이 표를 사고 들어온 공간이기 때문에 공개된 장소로 볼 수 없어 선거운동이 불가하다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라 우리 의원들은 각각 삼성라이온즈 유니폼을 구입해 입고 지정석에 앉아 페이스북 라이브로 야구 중계를 했다”며 “온라인 선거운동은 어느 때나 가능한 반면 경기장 안에서 관객을 대상으로 후보를 연호하거나 지지를 호소할 수 없는 선거법을 준수한 조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손혜원·이재정·홍익표·조응천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은 선거 유니폼이 아닌, 삼성라이온즈 유니폼을 착용한 상태였고, 관중석을 돌아 다니지 않고 구입한 지정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경남FC는 기업이 운영하는 구단이 아니라 ‘시도민 구단’입니다. 시민들과 도민들의 자발적인 후원과 응원으로 운영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경남FC는 이번 사태로 징계는 물론이고 경기 흐름에 영향을 받게 생겼습니다.

선거 당선을 위해서라면 시민들이 불이익을 당해도 괜찮다는 자유한국당의 막무가내식 선거운동은 도의적인 책임은 물론이고 법적인 책임까지도 져야 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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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평화협정 주장은 북한 주장과 동일”,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검찰 발상

김지현 기자 kimjh@vop.co.kr
발행 2019-04-01 08:25:13
수정 2019-04-01 08: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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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욱 변호사.
장경욱 변호사.ⓒ양지웅 기자
 

각종 행사 및 집회에서 나온 평화협정 체결, 미군 철수 등을 주장을 두고 검찰이 최근 “북한의 주장 및 선전과 궤를 같이 하는 주장”이라며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 등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양중진 부장검사)는 보수단체 소속 홍모씨가 장경욱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를 국보법 위반(회합‧통신, 찬양‧고무) 등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최근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 했다.

장 변호사는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바 있으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양심수후원회, 인권연대 등 시민단체 운영위원 및 고문변호사 등으로 활동해왔다.

검찰은 장 변호사가 지난 2013년 11월 12일 독일포츠담 세미나리스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국제대회’에 참석한 것을 문제 삼았다. 홍씨가 고발장에 막연히 적시한 범죄사실을 근거로 한 경찰 수사 내용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 대회에서 북한 정부기구인 조국통일연구원 박영철 부원장 등과 공동 참석해 접촉한 점, 발표를 통해 ‘한반도 불안은 미국과 남한 탓이며 해상경계선을 새로 확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 등이 국보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장 변호사에 대해 이메일 내역, 유선전화 및 휴대폰의 통화기록 등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검찰은 장 변호사의 발표 내용이 ‘국가보안법 철폐, 평화협정 체결, 한미군사훈련 반대 및 주한 미군철수, 615공동선언 이행, 북방한계선(NLL)부정’ 등 북한이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한다며 이 같은 혐의가 적용된다고 수사 의견서를 통해 밝혔다. 

다만 국제대회 장소가 외국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국보법 구성 요건인 이적 목적을 입증할 직접증거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을 이유로 무혐의 결론을 냈다. 

검찰이 ‘북한의 주장과 같다’고 본 장 변호사의 발언 내용은 사실상 진보진영 뿐 아니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도 폭넓게 통용되고 있는 주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북한의 입장과 유사하다며 ‘이적성’이 있다고 한 검찰의 판단은 시대착오적 혹은 편의적 발상으로 비춰질 소지가 크다.  

검찰이 여전히 색깔론에 휩싸여 국보법 사건을 대하고 있다는 비판이나 정치·사회적 실상과 동떨어져 있는 국보법 고발 사건을 단순히 처벌을 위해 기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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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은 ‘헛다리짚기’, 외교는 ‘마유미 인도’에 총력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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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9/04/01 10:29
  • 수정일
    2019/04/01 10:2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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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KAL858 문서 공개...‘무지개 공작’ 보조역 충실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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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31  12: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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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부의 30년 경과 공문서 공개의 일환으로 KAL858기 사건 관련 외교문서가 대량 공개됐다. 첫 번째 공문은 1987년 11월 29일 오후 3시 50분에 주 바그다드 총영사대리가 '당지발 KAL기 실종 보고'를 외교부장관 앞으로 보낸 것이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1987년 11월 29일 KAL858기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전두환 정권은 수색 보다는 범인 추적과 인도에 주력했음이 32년 만에 공개된 외교부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이는 이 사건을 북괴 테러로 예단하고 대통령선거에 활용한 ‘무지개 공작’과 맥락이 닿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가 이번에 공개한 30년이 지난 문서들 중 KAL858기 관련 문서는 1만 건이 넘는 방대한 것으로 주로 버마(미얀마)와 태국, 바레인 등 관련지역 대사관과 일본과 미국 등 관련국 대사관과 주고받은 공문서들이다. 일부 문서는 ‘공란’으로 남겨져 공개되지 않았으며, 공개된 문서 중 일부 문구는 검은 색으로 가려진 부분도 있다.

박강성주 박사가 행정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외교문서들과 상당 부분 겹쳐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강성주 박사는 공개받은 외교문서들을 분석해 2016년 11월부터 <통일뉴스>에 연재한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마유미, 신분 확인과 KAL 사건 연루 확인 못해

당시 외교부는 나중에 김현희로 알려진 ‘하치야 마유미’와 사망한 ‘하치야 신이치’의 신분을 확인하고, 이들을 북한과 연관지어 한국으로 압송해 오는데 외교력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이들을 인도한 공식적 명분은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국가로 인도하는 국제관례 때문이었다.

이미 알려졌듯이 하치야 마유미와 하치야 신이치는 위조된 일본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제외하곤 12월 15일 한국에 인도하기까지 아직 정확한 국적이나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이야 마유미와 하치야 신이치 사체를 확보하고 있던 바레인은 한국 정부의 조기 인도 요구에 “마유미가 KAL 사건에 연루 되었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음”이라는 이유로 한국 인도를 머뭇거리고 있었다. “신이찌와 마유미가 사용한 AMPLE 독약물이 반드시 북괴제조라고 단언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할 수 없음”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측 전언이다.(BHW-0339, V4.0105)

실제로 바레인 측은 마유미의 신원 확인 등 좀 더 구체적인 증거 제출을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87년 12월 10일 ‘마유미’를 북한 공작원으로 보는 이유 등을 문서로 바레인 외교장관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독약 자살이 북괴 공작원 수법이고, 여권의 정교한 위조와 원발급자의 공산주의활동 경력 등을 꼽았다.(WSB-6765)

그러나 결국 마유미와 하치야 신이치 사체를 인도받은 결정적 근거는 마유미와 북한의 연관성이 입증됐기 때문이 아니라 ‘귀국주의 및 피해주의 선례’에 따라 자국민 피해가 가장 큰 한국에 범인을 인도한 것이다.

즉, ‘항공기상에서 행한 범죄 및 기타 행위에 관한 협약’(1969 도꾜협약)과 ‘민간항공의 안전에 대한 불법적 행위의 억제를 위한 협약’(1973 몬트리올협약)에 근거해 버마 정부는 한차례 인도약속을 번복한 뒤 12월 14일 오후 간신히 인도에 응했다.[외교 교섭 경위 등 설명, V3.0166]

미국 대사관 제보로 태국 산악지역에서 ‘헛다리짚기’만

   
▲ 1987년 12월 10일 미군 P-3기에 의해 KAL858기 부유물이 처음으로 발견된 곳은 버마 안다만 해상 두 지점에서였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외교부 공문서의 대부분은 마유미 한국 인도를 위한 외교부와 대사관 사이의 전문에 집중돼 있고, 정작 수색은 헛다리만 짚다가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외교부가 의도와 상관 없이 ‘무지개 공작’ 보조역에 충실했던 셈이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등은 사건 발생 사흘 만인 12월 2일 ‘대항항공기 폭파사건 북괴 음모 폭로 공작’, 이른바 ‘무지개 공작’을 수립, “북괴의 테러 공작임을 폭로, 북괴 만행을 전 세계에 규탄하여 북괴를 위축시키고 국민들의 대북 경각심과 안보의식을 고취함으로써 가능한 대선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키로 방향을 정했다.

하치야 마유미와 하치야 신이치의 신분조차 확인되지 않고, KAL858기의 ‘실종’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북괴’에 의해 ‘폭파’됐다고 단정하고, ‘대선사업’을 위해 활용하기로 결정한 것. 12대 ‘대선’은 87년 6월항쟁을 거쳐 12월 16일 대통령 직접선거가 실시됐고, 김영삼.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가 당선됐다.

이미 권력의 꼭지점에서 이같은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외교부는 일본인 여권 소지 혐의자의 북괴와의 연관성을 흘리며 한국으로 인도를 위해 전력을 기울였고, 상대적으로 수색은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귀중한 사건 초기 수색이 엉뚱한 곳에서 진행된 이유도 확인됐다. 우리 정부는 태국과 버마의 협조를 받아 초기에 주로 태국 칸차나부리 산악지역을 집중수색하다 나중에서야 KAL858기의 교신이 끊긴 버마 안다만해역으로 눈을 돌려 부유물 몇점을 수거하는데 그쳤다.

외교부 문서에 따르면 ‘칸차나부리’ 지역을 특정한 정보를 제공한 인물은 트레버 에번스(Trevor Evans) 주한미국대사관 2등서기관이었다. “추락한 비행기는 방콕 서쪽 약 150마일 칸차나부리 지역에 있다”고 했고, “제보자는 상기 제보 내용을 금일(11월 29일이나 30일 추정) 16:30 주방콕미대사관 직원으로부터 전화로 통보받았다”고 비공식 문서에 기록돼 있다.[KE- -8 실종사고 관련 주 미국대사관 제보 내용, V1.0012]

결국 태국 산악지역에 추락을 목격했다는 여러 제보가 있었지만 모두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태국은 일찌감치 항공수색을 중단하고 형식적인 내륙수색만 진행하며, 버마쪽을 수색하라고 권고하기에 이른다. 이때는 이미 두 혐의자의 자실시도 등으로 수색에 대한 관심은 가리워지고 있을 때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피해 가족 중 승무원 가족들은 12월 8일 성명을 발표 “열흘이 지난 오늘까지 실종KAL기에 대한 수색작업은 지지부진한 형편이고 KAL당국은 아직까지 탑승객들의 생사확인 및 추락위치조차 정확히 규명하지 못한채 안타까운 시간만 보내고 있다”며 “주먹구구식의 전근대적인 수색 작업을 보고 회사측의 무성의하고 비과학적이며 체계없는 수색작업에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고 규탄했다.

실제로 KAL858기 관련 부유물이 처음으로 발견된 건 사건 발생 12일 만인 12월 10일 뒤늦게 수색에 참여한 미군 정찰기에 의해 버마 안다만해역에서 였다.[KAL기 실종사고, V5.0005]

이어 11,12일까지 부유물이 발견되고, 첫 부유물 수거는 “버마화물선(DAGON 1호)가 12.13 북위 13-45, 동경 97-26에서 노란색 LIFT RAFT(약 20X10 FEET)를 발견, 수거하여 12.14 저녁 랑군에 입항”한 것이었다.[RAW-0933, V5.0135]

‘무지개 공작’과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들

   
▲ 국정원 진실위가 공개한 하치야 신이치의 여권에는 한국 방문 기록이 남아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안기부를 주축으로 권력 핵심은 이미 12월 2일 무지개공작을 수립해 ‘북괴 공작’ 집행하고 있었지만 외교부는 마유미를 붙잡아 둔 바레인과 사고 추정지역인 버마와 태국 등에서 통상적인 사고수습을 진행했다.

한국 바레인 대사대리는 12월 2일 오후까지 “SHINICH의 사체 및 MAYUMI를 당초 입원한 SULMAMIYA 병원에서 12.2. 저녁 육군병원으로 이송한후, 육군병원은 외부 출입자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음. 금 12.2.출입을 시도해보았으나, 상부의 지시로 일체출입을 허용치않고 있다고 하는바, 일본대사관측도 접근치 못하고 있다함”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마유미 신분 확인은커녕 접근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북괴 테러’라는 단정은 이미 내려졌던 셈이다. 외교부 공문서에도 ‘공란’ 부분이 많이 남겨진 것도 단순한 인적사항 비공개 수준을 넘어 이같은 사정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외교부는 대통령선거 전에 ‘북괴 공작원’으로 단정한 마유미를 인도받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결국 12월 15일 김포공항에 마유미가 압송돼온 장면을 선거당일인 16일 조간 1면 기사로 채울 수 있었다.

박강성주 박사는 12월 10일자 문서를 특별히 주목한 바 있다. “마유미가 늦더라도 15일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라는 문구가 있기 때문이다(DA0799654, 43쪽). 안기부(현 국정원)의 이른바 ‘무지개 공작’ 문건이 아니더라도 12월 16일 대선 전 김현희를 전격 압송하려 했던 정부의 계획이 엿보인다는 평가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몇가지 의혹도 그대로 확인된다. 주일대사관은 “11.29-12.1. 간 바레인 리전시 호텔에 6회의 전화가 동경으로부터 걸려갔는바, 이것은 모두가 일본 보도기관이 걸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음”이라고 보고했지만 사건 발생 직후 마유미 일행이 바레인 리전시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 기자들이 알기는 어려운 시점이었다.[JAW-7093, V3.101]

외교부는 “현지시간 11.30.(월) 16:00 주 바레인 일본 대사관에게 양인들의 인적사항 및 소재파악 요청하였음”이라며 “일본 언론 기관이 11.29와 30일에 하찌야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음. 사실 재확인 보고 바람”이라고 의문을 표하고 일본대사관에 재확인을 지시했다.[WJA-5508, V3.0148]

이 외에도 △11월 14일 일본 ‘나리따 공항’ 출국의 진실 여부, △하치야 신이치(추후 김승일)가 ‘주바레인 한국대사 명함’을 소지한 경위, △하치야 신이치의 한국 방문 기록, △유시야 UAE 참사관의 사건 하루전 ‘나우식 KAL858 부기장’과의 만찬, △마유미 일행의 바레인 체류 등 숱한 의문점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지만 이번에 공개된 외교부 문서에서 답을 찾기는 어렵다.


(추가,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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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협상 결렬시킨 트럼프, 텔레미트리 점검하는 전략군

[개벽예감 341]핵협상 결렬시킨 트럼프, 텔레미트리 점검하는 전략군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04/01 [08:47]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망나니본색

2. 협상으로 좁히기 힘든 조미핵협상의 엄청난 간극

3. 조선인민군 전략군, 마침내 텔레미트리 점검하다 

 

 

1.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망나니본색

 

2019년 3월 7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조선정책특별대표가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2019년 3월 18일 <자주시보>에 실린 ‘조미협상을 위기에 빠뜨린 세 가지 사건’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외교문서의 윤곽을 비건 특별대표의 기자회견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고 하였다. 글에서 나는 그 외교문서의 윤곽을 핵분렬물질 제거, 핵탄두 제거, 대륙간탄도미사일 제거, 생화학무기프로그램 영구동결, 기존 핵시설을 민수용 원자력시설로 전환 등 다섯 가지 요구로 요약하였고, 그런 강도적인 요구가 하노이 정상회담을 결렬시킨 요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외교문서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2019년 3월 29일 영국 통신사 <로이터즈>는 독점보도기사에서 <로이터즈> 백악관 특파원이 그 외교문서 전문을 읽어보았다고 밝혔다. 그 외교문서는 우리말과 영어로 각각 작성되었으므로, 그는 영문본을 읽은 것이다. <로이터즈> 백악관 특파원은 우연한 기회에 그 문서를 읽어본 것이 아니었다. 외국통신사 특파원이 백악관 외교문서를 우연히 읽어보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기밀문서보관권한을 가진 백악관 고위관리가 그 외교문서를 <로이터즈> 백악관 특파원에게 슬며시 보여준 것이다. 

 

백악관 고위관리가 대통령의 외교문서를 외국 언론매체에 공개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괴이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괴이한 짓을 저지른 백악관 고위관리는 누구일까?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외교문서를 전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였던 바로 그 백악관 고위관리가 백악관의 문서관리내규를 위반하면서 <로이터즈> 백악관 특파원에게 그 외교문서를 슬며시 보여준 것이다. 2019년 3월 3일 미국 언론매체 세 군데에 연이어 출연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외교문서를 전했다는 사실을 밝혔던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 바로 그가 지난 3월 29일 <로이터즈> 백악관 특파원에게 그 외교문서를 슬며시 보여주었던 것이다. 볼턴이 그 외교문서를 <로이터즈>에 공개한 것은 여론공작이다. 이 여론공작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백악관 각료회의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서로 긴장된 표정으로 악수하는 장면이다. 그 두 사람은 극우이념과 제국주의사상을 공유하며 정치적으로 공생한다. 두 사람 사이의 차이점은 볼턴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무력침공도 불사하는 극우세력의 대표자라면,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강제외교를 선호하는 극우세력의 대표자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주의국가들과 반미국가들에게 퍼붓는 볼턴의 협박과 공갈을 트럼프식 강제외교의 보조동력으로 이용하고 있고,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사회주의국가들과 반미국가들에게 협박과 공갈을 퍼부으면서 자기가 속한 네코온의 존재감을 내외에 과시하고 있다. 트럼프와 볼턴의 정치적 공생관계는 그런 식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외교문서를 <로이터즈> 백악관 특파원에게 슬며시 보여준 볼턴의 행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트럼프와 볼턴은 그 외교문서를 언론에 공개하여 자기들이 조선에게 제기한 리비아식 비핵화 요구에 대한 지지여론을 확보하려고 어리석게 책동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로이터즈>에 공개한 외교문서에는 그 자신이 2004년부터 제기해온 조선의 핵폐기방안이 담겨있다. 그는 자신이 주장해온 조선의 핵폐기방안이 정당하다고 강변하기 위해 그 외교문서를 <로이터즈>에 공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 직후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마익 팜페오 국무장관보다 한 발 앞에 나서서 조선의 비핵화문제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잡소리를 늘어놓은 것은 그런 심리가 작용한 행동이었다. 

 

(2) 요즈음 미국의 안보전문가들과 정세분석가들은 조선이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설정해놓은 조선의 핵폐기라는 협상목표가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국가정보기관들도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보보고를 백악관과 연방의회에 각각 제출하였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 팜페오 국무장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그런 여론과 정보보고를 외면하면서 자기들의 주장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조선에게 핵폐기를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입장이 담긴 외교문서를 <로이터즈>에 공개함으로써 자기들이 주장해온 조선의 핵폐기방안에 대한 지지여론이 조성되기를 기대한 것으로 생각된다.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보여준 외교문서를 읽어본 백악관 특파원이 작성한 <로이터즈> 2019년 3월 29일 독점보도기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외교문서에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를 밝혀주었는데, 그 독점보도기사에 서술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문서에 담긴 조선의 핵폐기방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조선은 현존하는 모든 핵활동을 중단하고, 새로운 핵시설 건설도 중단한다.  

 

해설 -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기한 핵동결 요구다. 이런 핵동결 요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신년사에서 밝힌 핵동결 선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우리는 이미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데 대하여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왔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동결 선언과 트럼프 대통령의 핵동결 요구는 상충되지 않는다.

 

(2) 조선은 자기의 핵프로그램에 관한 “포괄적 선언(comprehensive declaration)”을 한다. 

 

해설 -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기한 핵신고 요구다. 핵프로그램에 관한 포괄적 선언은 완전한 핵신고를 뜻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핵신고는 조선의 최고국가기밀정보를 미국에게 넘기라는 요구다. 조선은 미국이 제기한 핵신고 요구를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라고 비난하면서 전면 거부하였다. 2018년 7월 7일 조선외무성 대변인은 담화에서 “미국측은 싱가포르수뇌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지적하고, “미국은 저들의 강도적 심리가 반영된 요구조건들까지도 우리가 인내심으로부터 받아들이리라고 여길 정도로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조선은 2018년 7월 6일부터 7일까지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진행된 김영철-팜페오 회담에서 미국의 핵신고 요구를 전면 거부하였다. 이처럼 조선이 2018년 이후 강도적인 요구라고 맹렬히 비난하면서 거부해온 핵신고 요구를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외교문서에서 또 다시 공식적으로 제기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조선에 대한 모욕이며 외교도발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핵신고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 한,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로 중단된 조미협상은 영영 재개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3) 조선은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이전한다. 

 

해설 -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기한 핵반출 요구다. 미국은 2004년 리비아를 비핵화하면서 그 나라의 원심분리기와 핵폭탄설계도를 미국 본토 테네시주에 있는 오크리지국립연구소(핵무기연구소)로 반출하였는데, 조선의 비핵화도 그처럼 리비아식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싱가폴 정상회담을 앞둔 2018년 5월 초부터 리비아식 핵반출 요구를 조선에게 제기하였다. 일본 언론 <아사히신붕> 2018년 5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팜페오 국무장관은 2018년 5월 9일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접견하면서 조선의 핵탄두와 핵물질, 대륙간탄도미사일 일부를 6개월 안에 미국에 넘겨줄 것을 요구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볼턴은 2018년 5월 9일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뒤에 처음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조선의 비핵화 방안에 대해 말하면서 “리비아식 해법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떠들어댔다. 때를 같이하여, 마익 펜스 부통령은 2018년 5월 21일 미국 언론과 회견하면서 조선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폭언을 늘어놓았다. 볼턴이 말한 리비아식 해법이라는 것은 미국이 감언이설로 가다피 정권을 속여 리비아의 핵무기개발사업을 완전히 파탄시킨 술책을 뜻하고, 펜스가 말한 리비아의 전철이라는 것은 미국의 기만술에 넘어가 화학무기까지 전부 폐기하는 무장해제를 당한 가다피 정권이 미국과 추종국들의 공중폭격, 그리고 미국 중앙정보국의 배후조종을 받은 반란군의 공격으로 붕괴된 사건을 뜻한다. 

 

조선은 리비아식 핵반출 요구를 맹렬히 비난, 배격하였다. 2018년 5월 16일 조선외무성 김계관 제1부상은 담화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튼을 비롯한 백악관과 국무성의 고위관리들은 <선 핵포기, 후 보상>방식을 내돌리면서 그 무슨 리비아 핵포기방식이니,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니, <핵, 미싸일, 생화학무기의 완전페기>니 하는 주장들을 꺼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 이것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있어서 대국들에게 나라를 통채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존엄 높은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다. 나는 이러한 처사에 격분을 금할 수 없으며, 과연 미국이 진정으로 건전한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미관계개선을 바라고 있는가에 대하여 의심하게 된다”고 하면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 대해 재고하겠다고 엄중히 경고하였다. 2018년 5월 24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담화에서 리비아의 전철을 운운한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하면서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여하에 달려있다.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수뇌회담을 재고려할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였다.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리비아식 핵반출 요구는 감히 입에도 올릴 수 없는 극우깡패의 망상에 불과하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04년 어느 날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쉬가 미국 테네시주에 있는 핵무기연구소인 오크리지국립연구소를 방문하여 연구소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원심분리기를 살펴보는 장면이다. 원심분리기는 우라늄을 농축하는데 사용되는 핵물질생산장치다. 미국은 2004년 초 당시 리비아의 국가지도자였던 가다피를 속여 4,000개가 넘는 원심분리기와 핵폭탄설계도를 미국 본토로 가져갔다. 미국으로 반출된 4,000개 이상의 원심분리기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채 나무보관상자에 들어있었다. 이것은 가다피가 핵무기생산을 아직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못하였음을 말해준다. 가다피가 미국의 기만술에 넘어가 미국에게 넘겨준 핵폭탄설계도는 리비아가 파키스탄 핵개발책임자 압둘 카디르 칸에게 많은 돈을 주고 사온 것이다. 가다피 정권은 1~2억 달러를 들여 핵무기개발사업을 추진하였으나, 미국과 추종국가들의 강력한 저지와 방해에 걸려 진척시키지 못하였다. 미국은 리비아가 핵무기개발사업을 포기하면 제재조치를 해제해주고,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허용하여 경제번영을 이룰 수 있게 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가다피를 속였다. 미국의 기만술에 넘어간 가다피는 핵무기개발사업을 포기하고, 화학무기를 폐기하고, 원심분리기와 핵폭탄설계도까지 넘겨주었으나, 미국은 제재해제와 관계개선을 뒤로 미루면서 내란이 일어날 때까지 시간을 질질 끌다가, 2009년 8월 8일 가다피반대세력이 폭동을 일으키고 2011년 2월 15일 무장반란을 일으키자 기다렸다는 듯이 리비아군 전략거점들을 공중폭격으로 모조리 파괴하여 가다피 정권을 전복시켰다. 이처럼 가다피 정권은 미국의 비핵화 기만술책에 걸려들어 무장해제를 당하였고, 가다피 자신도 2011년 10월 20일 씨르테전투에서 반란군에게 붙잡혀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외교문서에서 요구한 것이 리비아식 비핵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가 바라는 핵협상은 하지 않고, 조선을 리비아처럼 비핵화하려는 망상에서 사로잡혀 망나니짓을 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조선이 그처럼 맹렬히 비난, 배격해오는 리비아식 핵반출 요구를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외교문서에서 또 다시 제기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조선에 대한 모욕이며 외교도발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핵반출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 한,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로 중단된 조미협상은 영영 재개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4) 조선은 핵탄두와 핵물질을 미국에게 넘길 뿐만 아니라, 핵기반시설, 탄도미사일, 미사일발사차량, 관련시설들, 생화학무기프로그램을 “완전히 해체(fully dismantle)”한다. 

 

해설 -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기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핵폐기 방안이다. 그는 조선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과 함게 생화학무기를 폐기하는 문제까지 덧씌웠는데, 이것은 조선을 리비아식 비핵화하겠다는 뜻이다. 지난날 미국이 가다피 정권을 무장해제시킬 때 가장 신경을 쓴 것은 화학무기의 완전폐기였다. 

 

그러나 핵폐기도 생각하지 않는 조선에게 생화학무기까지 폐기하라고 요구하였으니, 조선으로서는 노여움으로 기가 막혀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을 겨냥한 미국의 핵우산을 철거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고, 미국의 핵공격위협에 맞선 조선의 핵억제력만 폐기하라는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2018년 5월 16일 김계관 제1부상의 담화에서, 5월 24일 최선희 부상의 담화에서, 12월 13일 논평원의 논평에서, 12월 16일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의 담화에서 미국이 제기한 조선의 일방적인 핵폐기를 강도적인 요구라고 비난하면서 전면 배격하였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문서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기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핵폐기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 한, 하노이 조미정상회담 결렬로 중단된 조미협상은 영영 재개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5) 조선은 미국과 국제전문가들로 구성된 사찰단에게 핵폐기현장에 대한 “완전한 접근(full access)”을 허용한다.   

 

해설 -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기한 핵사찰 요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이 이미 폐기하였거나 앞으로 폐기하려는 세 가지 주요시설(지하핵시험장, 서해위성발사장, 녕변핵시설단지)에 대한 외부 전문가들의 현장방문을 허용할 뜻을 밝혔으므로, 이 문제는 조미협상이 재개되는 경우 합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선과 미국은 사찰범위와 사찰방식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한 기억을 갖고 있다. 1993년에 시작된 조미핵대결은 양측이 사찰범위와 사찰방식을 놓고 벌인 정면충돌로 촉발되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1993년에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저질렀던 어리석은 핵사찰 요구를 또 다시 꺼내들었다. 물인지 불인지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에게 역사의 심각한 교훈을 깨달으라는 것은 너무 과도한 요구인가?   

 

(6) 조선은 모든 핵과학자들과 핵기술자들을 비군사적 직종으로 전직시킨다. 

 

해설 -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핵과학자 및 기술자들의 거취문제까지 거론한 내정간섭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장 증오하고 배격하는 것은 주변대국의 내정간섭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기한 내정간섭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 한,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로 중단된 조미협상은 재개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 협상으로 좁히기 힘든 조미핵협상의 엄청난 간극

 

미국의 전현직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9년 3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배석자 없이 일 대 일로 마주앉아 핵담판을 벌이자고 제안하는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했는데, 팜페오 국무장관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그 제안을 반대하였다고 한다. 측근들의 반대의사를 받아들인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단독회담을 하기는 하였으나, 핵담판은 하지 않고 의례적인 단독회담을 간략하게 진행하였고, 단독회담 직후 확대회담이 시작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선이 핵무기를 폐기할 때까지 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느니 뭐니 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다가, 조선이 강도적인 요구라고 비난, 배격하는 리비아식 비핵화 요구를 담은 외교문서를 전하고 회담장을 떠났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원인이 미국의 대조선제재를 해제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충돌을 일으킨 데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제재해제문제는 부차적인 결렬원인이었다. 한반도의 비핵화문제에 대한 조선의 관점과 미국의 관점이 완전히 상반된다는 것, 바로 이것이 하노이 정상회담을 결렬시킨 근본원인이었던 것이다.  

 

2019년 3월 20일 서울에서 진행된 비공개 강연에서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 코리아임무쎈터 책임자를 지내다가 2018년 12월에 퇴임한 앤드루 김이 말한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6월 싱가폴 정상회담 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출동시키지 말 것을 요구하였을 뿐 아니라, 괌과 하와이를 비롯한 태평양작전구역에 전진배치되어 조선을 위협하는 핵전략자산을 미국 본토로 전부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다른 한편,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외교문서에서 드러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핵동결, 핵신고, 핵반출, 핵폐기, 핵사찰, 핵전문인력 전직을 포괄하는 리비아식 비핵화를 요구하였다. 

 

이처럼 조미핵협상의 간극은 완전히 상반되는 방향으로 벌어졌다. 도무지 접점을 찾을 수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구상과 트럼프 대통령의 비핵화구상은 너무도 상충적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을 출발하기 전날인 2019년 2월 25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전국주지사협의회 만찬에서 자기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매우,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느니, “우리의 생각은 일치한다”느니 뭐니 하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내막과 실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곧이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2018년 5월 초부터 속에서 타들어가고 있었던 조미핵협상의 심각한 갈등국면을 은폐하려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식의 기만발언을 늘어놓으며 세상을 속여오다가, 급기야 하노이 정상회담 중에는 조선에게 리비아식 비핵화를 요구하는 망나니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하노이 정상회담 첫째날 저녁 회담장소로 사용된 호텔에서 진행된 간소한 만찬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에서 혐오대상으로 낙인찍힌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만찬에 참석시키지 않았다. 위의 사진을 보면, 정상회담 첫날 만찬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우호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우호적인 분위기는 둘째날 아침부터 돌변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을 리비아식으로 비핵화해야 한다느니 뭐니 하는 강도적 요구를 꺼내들고 망나니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배격하는 핵신고, 핵반출, 핵폐기, 핵사찰, 핵전문인력 전직을 요구하여 조미핵협상을 파탄으로 몰아갔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트럼프 대통령이 조미핵협상을 결렬시킨 망나니본색을 드러냈으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그런 상황에 맞춰 새로운 대처방안을 찾아야 하였다. 이런 사태가 오게 될 것을 예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미 2019년 신년사에서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 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리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미리 경고하였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조선전쟁연습을 중단하는 자기 약속을 2019년 3월에 지키지 않았고,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조선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리비아식 비핵화를 요구하였고,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에도 의연히 조선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계속하고 있는 어두운 현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의 자주권과 최고리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모색하는 새로운 길은 어디로 향하는가?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조선이 자기의 협상목표를 달성하는 길은 망나니짓 같은 리비아식 비핵화 요구로 핵협상을 결렬시킨 트럼프 대통령을 힘으로 굴복시키는 길밖에 없다. 핵무기를 움켜쥔 망나니를 핵협상으로 다시 끌어내 조선의 협상목표를 달성하는 강력한 힘은 오직 핵무력에서 나온다는 것, 이것은 1993년 핵위기 이후 25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이 수많은 고비와 난관을 헤쳐가며 체득한 대응철칙이다. 

 

2019년 3월 28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이 흥미로운 보도기사를 실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태풍으로 혹심한 자연재해를 입은 뿌에또리꼬(미국이 점령한 대서양의 섬)를 2017년 10월 3일에 시찰하였는데, 피해현장을 돌아보면서도 줄곧 조선과의 핵대결상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며, 수행부관이 항상 들고 다니는 이른바 핵가방(nuclear football)을 문득 손으로 가리키며 “이게 바로 내가 김(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지칭함-옮긴이) 때문에 가지고 다는 것”이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커다란 검은색 가죽가방처럼 생긴 핵가방에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미국 대통령이 미국군 합참의장에게 핵공격명령을 내리는 특수통신장치가 들어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그런 혼잣말이 불쑥 흘러나왔던 2017년은 조미핵대결이 폭발상황에 다가서고 있었던 긴장된 시기였으므로, 그는 핵대결이 격화되어 핵전쟁이 일어날까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7년 8월 14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면서 지휘소에 들러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동시다발로 쏘아 괌을 포위사격하는 징벌계획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발사준비태세를 검열하면서 “미국놈들이 우리의 자제력을 시험하며 조선반도 주변에서 위험천만한 망동을 부려대면 이미 천명한대로 중대한 결단을 내릴 것”이므로,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언제든지 실전에 돌입할 수 있게 항상 발사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었다. 

 

뿌에또리꼬 재해지역 시찰에서 드러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미사일위협발사를 가장 두려워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망나니짓 같은 리비아식 비핵화 요구로 핵협상을 결렬시킨 트럼프 대통령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힘으로 굴복시켜 조선의 협상목표를 달성하는 길은 미사일위협발사를 단행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 조선인민군 전략군, 마침내 텔레미트리 점검하다

 

최근 조선의 몇몇 지역들에서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미사일위협발사징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현상은 다음과 같다. 한국 정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동아일보> 2019년 3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한반도 인근 상공에 나타나 통신신호감청활동을 벌이던 미국군 소속 RC-135W 전자정보수집기가 마침내 지난 3월 25일부터 조선에서 미사일활동과 관련된 무선통신이 간헐적으로 오가는 정황을 포착하고, 감청활동을 대폭 강화했다고 한다. 

 

미국군은 전자정보수집기가 감청한 통신신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한국군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군 지휘부는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국군이 감청한 통신신호는 텔레미트리 신호(telemetry signal)인 것이 확실하다. 일반적으로, 미사일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신되는 무선통신신호가 바로 텔레미트리 신호다. 텔레미트리는 미사일이 발사된 뒤 목표를 향해 탄도비행을 하는 동안 비행속도, 비행방향, 비행거리, 비행고도 등을 계측하여 지상통제소에 실시간으로 계속 보내주는 계측정보발신장치다. 지상통제소는 텔레미트리 신호를 수신하여 미사일의 비행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데, 대체로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기 전에 텔레미트리를 점검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므로 미국군 전자정보수집기가 조선에서 발신된 텔레미트리 신호를 지난 3월 25일부터 몇 차례 감청한 것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미사일위협발사를 준비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뚜렷한 징후로 된다.  

 

위에 인용된 보도에 따르면, RC-135W 전자정보수집기가 지난 3월 25일부터 몇 차례 감청한 텔레미트리 신호가 발신된 곳은 함경남도 신흥 일대라고 한다. 신흥은 어디인가? 조선지도를 펼치면, 동쪽으로 덕성군, 서쪽으로 영광군, 남쪽으로 흥원군, 북쪽으로 부전군과 장진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 신흥군이다. 신흥군 중심지인 신흥읍은 영광군에 가까운 곳에 있다. 텔레미트리 신호가 발신된 신흥읍 일대에는 무엇이 있을까? 위에 인용된 보도기사에 따르면, 신흥읍 일대에는 고체연료미사일공장과 미사일보관시설이 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지난 3월 25일부터 함경남도 신흥군 신흥읍 부근에 있는 미사일보관시설에서 고체연료미사일에 내장된 텔레미트리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점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진 4> 

 

▲ <사진 4> 위쪽 사진은 201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4축8륜 신형 발사대차가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을 싣고 행진하는 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 로씨야군이 2006년부터 운용하고 있는 이스칸데르-M 고체연료미사일이다. 조선의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의 명칭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로씨야군이 운용하는 이스칸데르-M 고체연료미사일과 모든 면에서 매우 흡사하다.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이스칸데르-M 미사일은 유럽전선에 전진배치된 미국군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조선의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은 사거리가 280~500km, 최고비행고도가 50km이며 비행궤적이 특이한 편심탄도비행을 하면서 한미연합군의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는데, 전투부에는 전술핵탄두 한 발이 장착된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2017년 8월 26일 강원도 깃대령에서 이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을 시험발사한 뒤에 실전배치하였다. 로씨야와 미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던 2015년 봄, 로씨야군은 이스칸데르-M 미사일을 서유럽에 가까운 칼리닌그라드에 전진배치하였고, 미국군은 RC-135W 전자정보수집기를 로씨야 인근 상공으로 출동시켰다. 그러한 로씨야와 미국의 군사적 긴장과 매우 유사하게, 최근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위협발사를 준비하는 징후를 노출하였고, 미국군은 RC-135W 전자정보수집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켰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텔레미트리를 점검한 그 미사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미사일인지 알 수 없지만, 201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처음 등장했던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위협발사를 단행하는 경우 고체연료미사일 중에서도 성능이 가장 뛰어난, 그래서 미국에게 심각한 위협을 안겨줄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을 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의 이름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2018년 2월 8일 당시 남측 언론매체들은 4축8륜 발사대차 한 대마다 두 발씩 실려 열병식장에 등장했던 그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의 사거리가 280~500km에 이른다고 보도하였었다. 특히 그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은 최고비행고도가 80~90km에 이르는 다른 탄도미사일들과 달리 최고비행고도가 50km밖에 되지 않는다. 탄도비행고도가 그처럼 낮은 것은 비행시간이 매우 짧다는 뜻이고, 따라서 적군이 요격미사일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물론 타격정밀도도 매우 높고, 신속발사능력도 갖췄다. 그러므로 그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은 비행궤적이 특이한 편심탄도비행을 하면서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경기도 평택미국군기지와 경상북도 성주의 사드미사일포대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에 전술핵탄두 한 발이 장착된다는 사실이다. 타격정밀도가 높은 한 방으로 피해를 줄이고 전쟁을 순식간에 끝낼 수 있다는 뜻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2017년 8월 26일 오전 6시 49분 강원도 깃대령에서 함경북도 연안 쪽으로 그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 여러 발을 동시에 발사하였다. 당시 한미연합군이 ‘을지프리덤가디언’이라는 작전명칭을 내걸고 대규모 전쟁연습을 감행하자,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그 미사일 탄두는 250km를 날아가 함경북도 김책시 앞바다에 떨어졌다. 그 미사일은 최고비행고도가 50km밖에 되지 않았고, 비행궤적도 탄도미사일과 달라서, 당시 한미연합군은 조선인민군이 미사일을 쏘았는지 방사포를 쏘았는지 알지 못해 헷갈렸었다. 방사포는 조선인민군 육군 포병부대가 쏘는 무기이고, 미사일은 조선인민군 전략군 부대가 쏘는 무기다. 특이한 비행궤적을 보인 그 미사일이 방사포인지 미사일인지 헷갈렸던 한미연합군은 이듬해 201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처음 보는 고체연료미사일이 등장한 것을 보면서 조선인민군이 2017년 8월 26일에 방사포가 아니라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 직전에, 그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을 먼저 기습발사하여 평택미국군기지와 사드포대부터 파괴할 것으로 예견된다.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을 두 발씩 실은 발사대차가 지하기지 차폐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지정된 발사지점으로 신속히 이동하면, 3~4분 만에 기습적으로 발사할 수 있다. 한미연합군이 대응할 시간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위협발사를 단행하는 경우, 전쟁교리에 따라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을 먼저 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나중에 쏘는 순서로 위협발사를 진행할 것으로 예견된다.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은 2017년 8월에 시험발사를 거쳐 성능판정을 끝내고 실전배치되었으므로, 오늘 텔레미트리를 점검할 필요가 없다. 2017년 8월에 그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을 시험발사를 할 때도 미국군의 무선통신감청을 피하기 위해 텔레미트리를 점검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발사하였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국군 관계자는 <연합뉴스> 2014년 7월 13일 보도기사에서 “예전에는 통신감청을 통해서도 발사징후를 포착할 수 있었지만, (조선인민군은) 올해 들어 시험발사 전에 일절 통신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정찰기와 위성 등 한국과 미국의 감시장비가 지켜보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새벽 등 가장 취약한 시간대에 시험발사를 감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국군 관계자도 “(조선인민군이 택한) 발사장소와 시간이 불규칙하고, 감시장비를 회피하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사전발사징후를 포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발사징후를 전혀 노출하지 않는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2019년 3월 25일부터 며칠 동안 신흥읍 일대에서 텔레미트리 신호를 발신하였으니, 이것은 최신형 고체연료미사일 위협발사를 앞두고 발사준비태세를 점검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군에게 의도적으로 알려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두려워하는 위협발사징후가 마침내 나타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위협발사징후에 관한 정보보고를 받았다면, 2017년 한 해 동안 긴박하게 전개되었던 조미핵대결상황을 기억하며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부관이 들고 다니는 핵가방에 자주 시선을 보내면서 불안감을 진정시키려고 애쓸지 모른다. 지능지수가 낮은 산짐승도 한 번 걸린 올무에는 다시 걸리지 않는다는데, 하물며 미국의 국가안보를 책임졌다는 대통령이 2017년에 빠졌던 공포의 올무에 또 다시 걸려들 만큼 아둔한 것일까. 아무리 아둔한 사람이라도 공포의 올무는 피해야 살 수 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할 자구책은 핵신고, 핵반출, 핵폐기, 핵사찰, 핵전문인력 전직 같은 리비아식 비핵화 요구를 전부 철회하고, 협상상대를 존중하는 올바른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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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검사 “여환섭 수사단장 임명, 검찰의 면죄부 수사될 것”

입력 : 2019.03.30 21:32:00 수정 : 2019.03.30 22:19:18
 
임은정(사법연수원 30기) 충주지청 부장검사. 연합뉴스

임은정(사법연수원 30기) 충주지청 부장검사. 연합뉴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폭행·뇌물수수 의혹 사건을 규명할 수사단 단장에 여환섭(사법연수원 24기) 청주지검장이 임명된 데 대해 임은정(사법연수원 30기) 충주지청 부장검사가 강하게 비판했다.

임 부장검사는 29일 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면죄부 검찰의 면죄부 수사 또는 꼬리 자르기 수사로 치닫는 불행한 결말이 예상돼 참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누구에게 수사를 맡기는지를 보면 수사를 맡긴 자의 의중이 엿보이고, 수사 결과까지 다소간 예상할 수 있다”며 “어이없고, 황당함을 넘어서는 참혹함에 할 말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와 관련해 몸통인 청탁자들을 빼고 최흥집 사장만 불구속 기소했을 당시 여 지검장이 대검찰청 반부패부 선임연구관으로 지휘라인에 있었다”고 했다.

검찰은 이날 김 전 법무부 차관의 성폭행·뇌물수수 의혹 사건을 수사할 ‘검찰 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을 꾸렸다. 수사단은 여 지검장 등 13명으로 구성됐다.

임은정 검사 페이스북 캡처.

임은정 검사 페이스북 캡처.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3302132001&code=940301#csidx37bec99afaf22d5b24afff0425b41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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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관행 꿰뚫는 전직 검사에게 허를 찔릴 뻔했다

수사관행 꿰뚫는 전직 검사에게 허를 찔릴 뻔했다

등록 :2019-03-30 17:03수정 :2019-03-3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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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김학의 가로막은 출국금지의 모든 것
지난해 출금 1만5천명…증가세
세금체납, 범죄수사, 형사재판 순
사전통보 없어 대부분 공항 가 알아

김 전 차관, 출금 여부 사전 확인
공항에서 티켓 발권·출국심사 통과
출입국당국, 법무부 보고→긴급 출금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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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 22일 밤 타이 방콕행 비행기에 오르려다가 긴급 출국금지를 당했다. 그는 출국금지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비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출국길에 나섰지만 출입국 당국의 발 빠른 대처로 탑승 게이트 앞에서 발목이 묶였다. ‘한밤의 소동’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을 두루두루 살펴봤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 22일 밤 타이 방콕행 비행기 탑승하기 직전에 출국을 제지당했다. 피내사자 신분인 김 전 차관에 대해 긴급 출국금지 조처를 한 것을 놓고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데다 김 전 차관이 출국금지 여부를 사전에 비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출금 증가세…5년 전보다 1.7배 늘어

 

출국금지의 근거가 되는 법률은 여러가지다. 우리나라의 경우 출국금지가 여권법과 병역법으로도 가능하지만, 주로는 출입국관리법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미국,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등 많은 나라에서 출국금지는 여권법에 의해, 즉 여권 발급을 거부하거나 여권을 취소함으로 출국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출입국관리법 제4조를 보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출국금지 이유가 있는 사람에 대해 법무장관에게 요청하면 통상 3일 이내에 출국금지 여부를 결정하게 돼 있다. 출국금지 대상자로는 ①형사재판을 받는 사람 ②징역이나 금고형의 집행이 끝나지 않은 사람 ③벌금 1천만원, 추징금 2천만원 이상을 내지 않은 사람 ④5천만원 이상 세금을 체납한 사람 ⑤국가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 경제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사람 ⑥범죄수사를 위해 출국이 적당하지 않은 사람 등이 있다. 출입금지 기간은 일반적으로 6개월을 넘길 수 없지만 횟수에 제한 없이 기간 연장이 가능하다.

 

29일 법무부 출국금지 현황 통계를 보면, 지난해 출국금지자는 1만5092명으로 5년 전(2013년·8485명)에 견줘 2배 가까이 늘었다. 사유별로는 세금체납이 6573명(43.6%)으로 가장 많았고, 범죄수사(4521명·30%), 형사재판(2386명·15.8%), 형벌 미집행(642명·4.3%), 벌금·추징금 미납(437명·2.9%) 등이 뒤따랐다. 출국금지를 요청한 기관은 역시 국세청이 6503건(43.1%)으로 1위였다. 검찰과 경찰은 5569건(36.9%), 2325건(15.4%)으로 집계됐다.

 

수사기관의 출국금지가 많은 이유는 내사단계에 있는 ‘피내사자’도 출국금지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내사란 수사기관이 범죄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수사를 시작하기 전에 은밀하게 진행하는 사전 조사활동을 말한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피내사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인에 대한 출국금지까지도 폭넓게 이뤄진다.

 

ㄱ씨는 2017년 초 참고인으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려다가 공항 출입국 심사대에서 출국금지가 된 사실을 알았다.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방법이 없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조언을 들었다. 나중에 이의신청이 가능하지만 당장은 비행기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몇 달 뒤 미국을 또 방문할 일정이 생긴 ㄱ씨는 출입국관리소로 찾아갔다. 이미 출국금지는 해제된 뒤였다. 하지만 그는 출국금지도, 해제도 당국으로부터 통보받은 바가 없었다.

 

출입국관리법은 출국을 금지하거나 출국금지 기간을 연장할 때는 즉시 당사자에게 서면으로 알리도록 규정한다. 출국금지를 해제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관행적으로 출국금지를 알리지 않는다. ‘범죄수사에 중대하고 명백한 장애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는 3개월 이내의 출국금지를 통보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대부분 공항에 가서 출국하려는 시점에 출국금지 사실을 알게 된다.

 

 

일반 출금은 ‘피내사자’도 가능 
긴급 출금은 ‘피의자’로 한정 
“피내사자에 무리한 법적용” 논란 
출금 미리했다면 논란 피했을 것

 

 

하지만 검찰 수사 관행을 잘 알고 있는 김학의 전 차관은 비행기 표를 끊기 전에 출국금지 상태인지를 미리 알아봤다.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을 보면, 누구나 신분증을 갖고 공항이나 항만, 서울 광화문 등에 있는 출입국관리소를 직접 찾아가면 출국금지를 확인할 수 있다. 소송을 위임받은 변호사도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김 전 차관은 출입국관리소를 통하는 ‘공식 절차’를 밟지 않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김 전 차관 쪽이 출입국관리소에 방문해 출국금지를 확인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대신 김 전 차관이 타이 방콕행 비행기표를 끊던 당일(22일) 오전과 문재인 대통령이 진상 조사를 지시한 다음날(19일)에 법무부 청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익 법무관 2명이 출입국정보관리시스템(ICRM)에 접속해 ‘김학의’라는 이름을 입력해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김 전 차관이나 그의 부탁을 받은 누군가의 요청으로 출국금지 조회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심야 출국 시도’를 가능케 했던 내부 공조세력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법무부는 법무관을 상대로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 여부를 조회한 이유와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출국금지가 안 돼 있다는 것을 확인한 김 전 차관은 지난 22일 밤 비행기 티켓을 사서 출국을 시도했다. 하지만 ‘긴급 출국금지’ 조처(출입국관리법 제4조6)로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다. 일반 출국금지와 별개로, 긴급하게 출국금지가 필요한 경우 수사기관은 공항에서 바로 출입국 공무원에게 특정인의 출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다. ‘징역 3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범죄 피의자’가 ‘도망할 우려가 있을 때’ 등이 그 요건이다. 긴급 출국금지는 현장에서 바로 집행하기 때문에 법 적용 기준이 일반 출국금지보다 엄격하다.

 

23일 0시20분에 출발하는 타이 방콕행 타이에어아시아엑스 703편을 타려고 김 전 차관이 출국심사대를 통과해 인천국제공항 탑승 게이트까지 도착했다. 그 사이 출입국당국은 숨 가쁘게 움직였다. 김 전 차관의 출국 시도 사실을 법무부에 보고했고 대검찰청 과거진상조사단에 속한 동부지검 검사가 보낸 긴급 출국금지 요청서를 받았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려는 김 전 차관의 앞을 출입국 공무원이 가로막았다.

 

 

김학의의 경우…사전 출금 했더라면

 

김 전 차관은 출국금지와 달리, 긴급 출국금지는 그 대상을 ‘피의자’로 한정해 형사입건되지 않은 자신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출입국관리법을 보면, 긴급 출국금지는 ‘범죄 피의자’로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형식적인 입건 여부와 상관없이 실질적인 범죄 혐의자라면 피의자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김 전 차관은 진상조사단에서 수사로 전환할 정도로 조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출국을 시도하자 피의자로 보고 긴급 출국금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형사소송법상 긴급체포도 ‘피의자’로 한정하지만, 입건되지 않은 피의자를 우연히 발견하면 긴급체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과거진상조사단은 김 전 차관에 대해 미리 출국금지 조처를 취해 불필요한 논란을 비껴갈 수 있었다. 피내사자 신분인 김 전 차관에 대해 긴급이 아닌 일반 출국금지는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수사관행을 꿰뚫고 있는 전직 검사에게 허를 찔렸고, 한밤의 긴급 출국금지로 부랴부랴 무마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검찰 관계자는 “전직 고위 검사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다가 느닷없이 출국하리라고는 예상하기 힘들지 않나. 재수사 권고를 결정한 뒤 출국금지 등 법적 절차를 차근차근 밟으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주 신지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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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곡 논란 일으킨 도올의 강연, 문제의 본질은...

해방 정국에 대한 도올 김용옥의 역사 인식

 <도올아인 오방 간다>의 김용옥 교수.

<도올아인 오방 간다>의 김용옥 교수.ⓒ KBS

 
마당극 형식으로 강의와 음악을 결합시킨 KBS <도올아인 오방간다> 11회가 논란을 일으켰다. 해방 정국에 관한 도올 김용옥의 강의가 역사 왜곡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3월 16일 방송에서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대략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주의를 상대로 독립투쟁을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일제를 상대로 결정타를 날린 것은 미국이다. 그래서 1945년에 일본이 물러간 자리를 미국이 차지하게 됐다. 미국이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을 꺾은 것과 거의 동시에, 소련도 일본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은 두 강대국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됐다.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의 남과 북을 분할 점령하면서, 분할통치를 목적으로 이승만과 김일성이라는 괴뢰를 각각 세웠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공식 귀환을 막고 김구를 비롯한 임정 인사들의 개인 자격 귀국만 허용했다. 미군정의 견제로 행동반경이 제약된 김구는 그해 12월부터 전개된 신탁통치 국면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고자 반탁운동을 거국적으로 주도했다.
 
반탁 진영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 신탁통치를 추진한 쪽은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고, 미국·영국·소련의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합의된 바에 따르면 한반도는 신탁통치 5년 뒤 통일과 독립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보수 진영은 정략적 의도를 갖고 진실을 왜곡하면서 거국적인 반탁 운동을 전개했다. 이런 속에서 한민족은 단일정부 수립의 기회를 잃고 분단으로 나아가게 됐다."

 
위와 같은 요지의 발언을 하던 중에, 언론에 크게 보도된 "이승만 무덤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김용옥 교수의 언급도 나왔다. 전체 취지를 놓고 볼 때, 김 교수의 강의는 역사학계에서 연구된 결과와 대체로 일치한다. 부정확한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역사 왜곡 수준까지 갔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김 교수는 미군과 소련군을 점령군으로 규정했다. 1945년 9월 9일 맥아더 장군이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는 포고문을 발포한 게 사실이므로, 김 교수의 주장은 문제 될 것이 없다.
 
또 그는 김일성과 이승만을 외세의 괴뢰로 규정했다. 김일성은 무장투쟁 방면에서, 이승만은 외교활동 방면에서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소련과 미국의 결정적 지원 하에 정권을 잡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순히 외세의 협력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외세한테 주도권을 내준 상태에서 권좌에 올랐으니, 괴뢰로 평가한다 하여 사실관계의 오류를 범했다고는 볼 수 없다.
 
 더글라서 맥아더와 이승만.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의 이화장(이승만 자택)에서 찍은 사진.

더글라서 맥아더와 이승만.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의 이화장(이승만 자택)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그런데 김 교수는 미·소 양국이 처음부터 분할통치 목적으로 이승만과 김일성을 내세웠다고 말했다. 미·소 양국 군대의 점령군적 성격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들을 때 얼핏 문제없어 보이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 한국인들이 감정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외세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외세에 대한 반감에 사로잡혀 사실관계를 냉철히 바라보지 못하다 보니, 이 대목에서 문제점을 느끼기 힘든 것이다.
 
미·소 양국이 처음부터 분할통치를 목적으로 이승만·김일성을 내세웠다는 주장은 두 나라의 전략적 의도와 배치된다.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양국은 한반도 전역에 대한 신탁통치에 합의했다. 신탁통치는 한반도 분할을 전제로 하는 게 아니었다. 미·소가 저마다 한반도 전체에 욕심을 냈기에 그런 방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미·소 양국이 한반도 전역을 확보할 목적으로 이승만·김구를 내세웠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부터 분할통치를 목적으로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결국에는 한반도 분단을 조장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한반도 전역에 욕심을 냈다. 좀 벅차기는 하지만 좌우합작을 통해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얻고자 했다. 1946년에 미국이 여운형과 김규식 같은 중도파의 입지를 살려준 것은 이들의 힘을 빌려 좌우합작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민족의 독립과 통합에 바친 삶, 김규식>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김규식과 여운형을 대표로 하는 중도파가 일방적으로 소련에 치우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중시했고, 더 나아가서는 중도파의 진보적 성격을 잘 이용하면 미군정이 인정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개량주의적 개혁을 실시함으로써 좌익에 대신해 대중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런 미국과 달리 이승만은 초기부터 분단을 획책했다. 1946년 6월 3일 이른바 '정읍 발언'을 통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공식 언급했다. 괴뢰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미국의 의도와 달리 그는 자기 나름대로 분단을 획책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이승만 간에 갈등이 나타났다. 차상철 충남대 교수가 쓴 <미군정 시대 이야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국무부와 미군정 당국은 이승만의 단독 정부론을 당연히 용납하지 않았으며, 군정은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해 좌우합작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미국도 이승만과 함께 분단 고착화에 나섰다. 한반도 전역에 대한 지배가 불가능하다는 게 확실해지자, 미국도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결국 이승만이 아닌 미국의 힘에 의해 분단이 고착화됐다.
 
 반탁 집회. 서울시 종로구 평동의 경교장(김구 숙소)에서 찍은 사진.

반탁 집회. 서울시 종로구 평동의 경교장(김구 숙소)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또 김용옥 교수는 미·영·소 3상(相) 즉 세 외무장관의 합의대로 신탁통치가 실시됐다면 우리 민족이 분단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상당수 한국인들이 동의하는 대목이다.
 
해방 뒤에 보수진영이 주도권을 잡을 목적으로 '신탁통치=소련 주장'이란 가짜 뉴스를 생산했던 것은 사실이다. 또 신탁통치가 실시됐다면, 한반도가 쉽게 분단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현대사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신탁통치가 실시됐더라도 우리 민족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가 전개되기는 힘들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만 보더라도, 신탁통치가 우리 민족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았을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일본을 점령한 직후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중국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장졔스(장개석)의 국민당이 마오쩌둥(모택동)의 공산당과 싸우도록 지원했다.
 
그러다가 국민당이 공산당에 밀리자, 전략을 수정해 일본을 핵심 동맹국으로 만들었다. 미국의 전략 수정은 1948년 1월 6일 로이얄 성명으로 공고해졌다. 이날 육군장관 케네스 로이얄은 "자주적인 일본을 건설해야 한다"는 말로 미국의 전략 변화를 명확히 밝혀주었다.
 
신탁통치안이 합의된 1945년 12월만 해도, 미국은 중국을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전략에 따르면, 한반도 전체는 당연히 미국 편이 되어야 한다.
 
중국이 미국의 동맹국이 되고 일본이 미국의 점령국이 된 상태에서, 중간에 있는 한반도가 일부라도 소련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은 미국의 구상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탁통치가 실시됐을 경우에 미국은 한반도 전역을 지배하고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김일성과 소련을 비롯한 반미 진영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반미 진영과 미국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에도 분단이 현실화될 수밖에 없었다. 신탁을 찬성하건 반탁을 찬성하건, 결과는 매한가지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신탁이냐 반탁이냐'가 아니었다. 당시 우리 민족이 우리 운명을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할 역량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를 지킬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신탁을 하건 안 하건 남의 의지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옥 교수도 '신탁이 실시됐다면 우리 민족한테 유리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방송에서 인정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을 갖고도 그는 '신탁으로 갔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갖고 있는 역사인식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이런 모순은 김용옥 교수뿐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의 역사인식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우리 모두가 다 함께 수정해야 할 역사인식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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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전 전사’ 3인 43년 만에 다시 모이다

마석모란공원에서 이장식.. 김병권·신향식·이재문
마석=이창훈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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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30  20: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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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권·신향식·이재문 등, ‘남민전 전사’ 3인의 이장식이 30일 오전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열렸다. 사진은 신향식 선생의 이장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이 함께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남민전 전사’ 3인이 사건발생 43년 만에 다시 모였다. 

긴 겨울을 이겨낸 새싹을 키워내는 봄비가 내리는 30일 오전 11시 정각,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남민전 전사 3인 김병권(고양시 청아공원에서 이장), 신향식(경기도 광주공원묘원에서 이장), 이재문(인천시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이장) 선생의 이장식이 열렸다.

이날 세 번의 이장식 사회는 남민전 관련자 박석삼 씨가 맡았으며, 세 명의 약력 소개 역시 남민전 관련자인 탁무권 씨가 맡아 진행하였다.

이날 열린 세 번의 이장식에서는 남민전 관련자인 고 김남주 시인의 시 세 편이 소개되었다. 

먼저, 시 「김병권 선생님」과 이재문 선생을 떠올리면 쓴 「전사 1」 그리고 신향식 선생을 떠올리며 쓴 「전사 2」가 김남주 시인의 육성으로 낭독되었다.
 
하루에 세 번의 이장식을 치르는 어려움 때문에 서둘러 이장식이 진행되었으며, 총 여섯 명의 추모발언이 이어졌다.

   
▲ 김병권 선생 묘역.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 김병권 선생 부부 영정.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먼저, 김병권 선생 묘역에서는 남민전 관련자 김종삼 씨와 범민련 남측본부 노수희 부의장이 발언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종삼 씨는 “자상하면서도 노혁명가의 굳건한 모습을 간직하셨던 선생님!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어도 항상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의자를 북돋아 주시던 선생님!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여 낙담하고 있을 때 ‘괜찮아! 괜찮아!’ 하시면서 다른 관점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 주시던 선생님! 선생님이 그립습니다”라고 말하고, 마지막에 “그리고 남아 있는 우리들이 시대의 물음에 잘 답할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라고 마무리하였다.

   
▲ 이재문 선생 묘역에서 이장식이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두 번째 이장식이 진행된 이재문 선생 묘역에서는 남민전 관련자인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과 한국진보연대 전창일 상임고문이 발언하였다. 

이 자리에서 권오헌 명예회장은 “저희들이 작은 정성을 모아 38년 동안 백석동 천주교묘지에 외롭게 계시던 선생님을 이곳 많은 열사분들이 계신 마석모란공원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 뒤, 자신의 집에서 피신해 있었을 때의 일화를 소개하며 “다진 마음 변함없이 잘 싸우라!”라고 말이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고 말했다. 

또, 최근 변화된 남북관계와 미국의 처지를 설명하며 “43년 전 남민전 지도부가 결의했던 민족자주와 대단결 정신으로, 침략외세를 몰아내고 자주통일세상을 이뤄내야 할 것”이라며 추모발언을 맺었다.

   
▲ 신향식 선생 묘역.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세 번째 이장식이 진행된 신향식 선생 묘역에서는 남민전 관련자인 차성환 부마항쟁진상규명위 상임위원과 추모연대 박중기 이사장이 발언하였다. 

이 자리에서 차성환 상임위원은 “선생님께서는 항상 소탈하신 모습으로 저희들과 호흡을 같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법정에서도 당당하게 거침없이 자기의 소신을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한 뒤, “선생님을 이곳 민족민주열사묘역에 다른 세분과 함께 모시게 되어서 그나마 저희들이 못 다한 도리를 조금이나마 면하는 것 같아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새로 모신 자리에서 영면하시길 바랍니다”며 말을 마쳤다. 

또한, 세 유가족들은 모두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자리를 같이 해준 부친의 동지들과 여러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 세 번의 이장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마석모란공원에 먼저 자리를 튼 남민전 관련자 박석률 씨의 묘역을 찾아 참배하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한편, 이날 이렇게 세 번의 이장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마석모란공원에 먼저 자리를 튼 남민전 관련자 박석률(2017년 7월 25일 작고) 씨의 묘역을 찾아 참배하였다. 

 

김병권(1921년~2005년 당시 85세) 약력

192. 12. 5.    경북 대구 출생. 
1942~1945.   일본에서 강제징집을 피해 만주로 감. 
1946. 3.       해방 후 귀국하여 대구대중일보 기자로 미군정과 대립하다 폐간. 
1946.          박윤수와 결혼. 
1960.          4.19 혁명 후 사회당 경북도당 상임위원. 
1961. 5.       남북학생회담 추진 시민결의대회 조직 관련 박정희 군사정권에 체포. 
1964.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연루 수배 당하여 피신. 
1968.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권재혁 등과 체포, 징역 5년 선고. 
1975.          사회안전법 발효로 신향식 등과 지하활동. 
1976. 2. 29.   이재문, 신향식과 함께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결성. 
1976. 3. 3     반공법 위반 체포로 징역 3년. 형기 만료 후 전향 거부로 감호 처분. 
1980. 12.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사건으로 대법원에서 15년형 확정 판결. 
1995. 2.       범민련 남측본부 중앙위원, 재정위원장. 
1995. 11. 29.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 사건으로 3년 6월 선고 후 형 집행정지로 출소. 
2002~2003.    6.15 공동선언실천과 한반도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고문.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2003.          뇌졸중으로 쓰러져 입원치료, 안산 ‘행복의 집’에서 투병생활. 
2005. 9. 21.   오후 2:30 운명. 일산 청아공원 안치
2019. 3. 30.   마석 모란공원으로 안치

 

신향식(1934년~1982년 당시 48세) 약력

1934. 12. 1.  전남 고흥에서 父 신춘우과 母 정정옥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 

1959. 11. 30. 전남 고흥 이계영과 결혼. 
1964. 2.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졸업. 
1965. 5.      동아출판사 제작부에 취업하여 임금투쟁과 노조결성. 
              ‘학사주점’과 ‘60년대 학사회’ 상무간사로 활동. 
1966.         재경고흥군 학사모임 ‘삼산친목회’ 결성. 
1968. 8.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징역 3년 6월 선고. 
1972. 2. 25.  비전향 만기출소. 
1975. 7.      박정희 군사독재의 사회안전법 발효에 맞서 간고한 지하투쟁 돌입. 
1976. 2. 29.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결성, 중앙위원으로 활약.
1980. 12. 23. 피검 후 81년 12월 23일 대법원 상고심 기각, 법정 최고형인 사형 확정. 
1982. 10. 8.  정오 12시 서울구치소 교수대에서 형 집행.

 

이재문(1934년~1981년 당시 47세) 약력

1934. 7. 9.  경북 의성에서 父 이만욱과 母 김원남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 
1957.       경북대 정치학과 졸업. 바로 영남일보사 견습기자로 입사. 
1960.     대구매일신문 정치부기자 근무. 4.19 혁명 후 ‘민족일보’가 창간되자, 정치부기자 참여. 우홍선 등과 ‘통일민주청년동맹’ 조직. 
1961.      5.16 군사쿠데타로 ‘민족일보’가 폐간되고 간부들이 검거되면서 수배.
1964. 8.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65년 1월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 
1965. 5. 25.  가톨릭신문 기자 김재원과 화촉.
1971.        ‘민주수호국민협의회’ 대구경북지부 운영위원 겸 대변인 역임. 
1974. 4      ‘민청학련’ 사건으로 1급 수배를 당하여 지하활동에 들어감. 
1975. 4. 9.   ‘인민혁명당’ 사건 8열사 학살을 목격하고 정권에 맞설 조직을 구상. 
1976. 2. 29.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결성, 서기에 추대. 
1979. 10. 4.  수배 속에서 민족해방과 반파쇼 민주화투쟁에 헌신하다 체포. 
1980. 12. 23. 법정투쟁을 다했으나 대법 최종심에서 법정 최고형 사형으로 확정. 
1981. 11. 22.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포승줄에 묶인 채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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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실험 미군은 한명도 들여보낼 수 없다

지역대책위와 시민들, 부산항 8부두 세균실험실 미군 출근저지투쟁
 
이대진 통신원 
기사입력: 2019/03/31 [00: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부산항 8부두(미군전용부두) 진입로를 막고 세균실험실로 출근하는 미군을 막아선 주민들  © 이대진 통신원

 

 지난 13일 부산일보는 <부산항 8부두 미군 생화학실험 의혹>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1면에 보도했다기사는 올해 미 국방부 생화학방어프로그램 예산평가서를 분석한 결과 주피터(JUPITR. 주한미군합동정보포털 및 위험인식통합프로젝트에 따라 부산항 8부두 실험시설로 배정된 예산 항목에 살아있는 매개체 실험(Live Agent Test)이 명시된 사실을 보도했다.

 

지난 2015년 살아있는 탄저균 샘플이 민간 택배회사를 통해 국내로 들어오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그 존재가 밝혀진 주피터 프로젝트는 생화학전에 대비한 생화학 탐지 장비를 실험운용하는 미 국방부의 장기 프로젝트로, 2016년 1월부터 부산항 8부두에 배치 운용되기 시작하였다.

 

미군은 2016년 당시에도 국방부나 부산시 어디에도 사전 설명이나 최소한의 통보도 없이 실험실 설치를 결정하고 장비를 들여오려다가한 언론의 탐사 보도로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부산에는 어떤 시료 반입도 없을 것이라며 주민들을 안심시켜 왔다.

 

하지만 이번 보도로 인해 미군 측의 해명이 완전히 거짓이었음이 드러났으며탄저균이나 페스트균 같은 고위험 병원체들을 몇 번이나 들여왔을 수도 있고언제든지 들여올 수도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보도를 접한 시민들과 지방자치 단체정당들이 누구 할 것 없이 정보공개와 해명을 요구하는 가운데주한미군 사령부 관계자는 주피터 프로젝트 문의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으며우리 국방부는 주한미군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으며 검증된 실험장비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누가 어떤 장비를 어떻게 검증했는지검증한 문서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감만동(8부두미군부대 세균실험실 철거 남구지역대책위(이하 대책위)’는 매일 저녁 촛불집회와 현수막 달기운동 등 주민들의 여론을 모아내는 활동을 해내가고 있으며, 25일부터는 아침출근시간 8부두 입구 도로에서 세균실험 미군은 단 한명도 못 들어간다.”, “세균실험실 즉각 폐쇄하라!”, “미군은 우리 땅을 떠나라” 고 외치며 출근저지 투쟁을 1주일째 이어가고 있다.

 

출근저지 투쟁에 참가한 한 주민은 경찰이 세균 실험하는 미군 출근길을 터주기 위해 주민들을 막을 것이 아니라주민들과 함께 미군의 출근을 막아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니냐?” 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하였다.

 

주민들의 출근저지 투쟁으로 실제 미군들의 정문 출입이 원활하지 못하고 있으며간혹 진입을 시도하던 미군 차량들도 농성중인 주민들에 막히거나 충돌을 우려한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되돌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다음주 4월 1일에도 미군들의 출근을 막으려는 주민들의 투쟁은 계속 될 것이다.

 

▲ 미군들의 출근을 보장하기 위해 진입로를 만들고 있는 경찰들     © 이대진 통신원

 

▲ 경찰이 터준 미군들의 출근길을 더 앞쪽에서 원천봉쇄하기 위해 행진하는 시민들     © 이대진 통신원

 

▲ 8부두 정문으로 진입을 시도하다 막아선 시민들을 보고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돌아가는 미군 차량     © 이대진 통신원

 

▲ 세균실험 미군은 들어가지 못한다는 손팻말 뒤로 8부두에 정박한 컨테이너가 가득 실린 미군 수송선이 보인다.     © 이대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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