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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취재거부, 이유 없는 일일까

 

[비평] 집회현장 기자 폭행에 잇딴 규탄 성명… 본질 사라진 노조 혐오 보도 되돌아봐야
송창한 기자 | 승인 2019.04.08 13:14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민주노총의 탄력근로제 확대 반대 집회와 관련해 민주노총 조합원에 의해 MBN 촬영기자가 발목을 접지르고, TV조선 기자가 밀려 넘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MBN·TV조선 기자협회를 비롯,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기자협회 등에서 민주노총에 항의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특정언론사에 대한 취재거부가 언론인에 대한 폭행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금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다. 

취재기자 폭행은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협회 등이 폭행 사태에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에 민주노총 측도 "일어나선 안될 일이 벌어졌다.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왜 이 같은 사태가 반복해서 발생하는지에 대해 언론계 역시 따져볼 부분이 적지 않다. 민주노총의 취재거부를 유발한 특정 언론의 보도태도는 무엇이었는지 돌아보지 않고 일방적인 유감입장만을 표명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저널리즘의 원칙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4월 3일자 MBN '뉴스8', 4월 4일자 TV조선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지난 3일 민주노총은 국회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논의에 항의하며 환경노동위원회 회의를 참관하기 위해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경찰 간 대치가 격화됐고, 현장을 취재 중이던 MBN 촬영기자가 민주노총 조합원에 의해 발목을 접지르는 부상을 입었다. TV조선 기자에 대한 폭행은 경찰서에서 발생했다. 집회 과정에서 김명환 위원장 등 민주노총 조합원 2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TV조선 기자는 김 위원장에게 “집회가 과격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조합원 3명이 취재영상 삭제를 요구하며 기자를 밀었고, 기자는 넘어졌다. MBN 기자와 TV조선 기자는 전치 2주 판정을 받고 경찰에 폭행 신고를 접수했다.

전국언론노조 MBN지부, MBN·TV조선 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기자협회 등에서 잇따라 민주노총에 강력히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노조 MBN지부는 민주노총에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 및 집회 현장에서의 취재 자유 보장 등 적극적 조치를 촉구했다. MBN 기자협회와 TV조선 기자협회는 그동안 민주노총의 취재거부와 집회 현장에서의 위협이 적지 않았다며 취재거부는 취재원의 권리로서 존중하지만, 폭행은 금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국 59개 방송사, 3천 여명의 방송기자들이 소속된 방송기자연합회는 한 발 더 나아가 민주노총을 '과거 군부독재 하수인'에 비유했다. 방송기자연합회는 성명에서 "박정희 독재시절, 동아투위 선배들이 발표한 자유언론실천선언의 결의사항은 '언론인을 불법 연행 폭행하지 말라'였다"며 "수적 우세를 이용해 집회를 취재 중인 기자를 폭행한다면 과거 군부독재의 하수인들과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전국 신문·방송·통신사 소속 현직 기자 1만 여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기자협회도 “취재기자를 폭행한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며 “헌법에 의해 언론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단지 불편한 관계, 다른 관점의 보도를 이유로 취재를 방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기자협회는 이번 민주노총 일부 조합원들의 취재기자 폭행에 유감을 표명하며 기자들에 대한 폭행에 대해 강력히 대처할 것을 밝힌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이들의 비판처럼 취재기자에 대한 폭행은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MBN·TV조선 기자협회의 취재거부 권리를 존중한다는 입장 정도를 제외하면 이들의 비판 성명에서 사태발생의 근본 원인, 즉 특정언론에 대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 짚어보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기자협회가 언급하고 있는 '다른 관점의 보도'는 무엇이기에 이 같은 상황이 반복해서 발생하는 것일까. 

4월 3일자 MBN '뉴스8', 4월 4일자 TV조선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사태가 발생한 3일 MBN 종합메인뉴스 '뉴스8'의 관련 리포트는 민주노총과 특정매체 간 갈등의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날 MBN은 민주노총의 탄력근로제 확대 반대 집회와 관련해 총 4건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우선 민주노총의 시위를 '폭력시위'로 규정한 리포트가 이 중 첫머리에 자리했다. 민주노총 집회 현장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장면들과 이에 대한 해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경찰 연행 내용이 대부분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면 주 52시간이 무력화된다는 입장이다'라는 문구가 민주노총 입장의 전부다.

이어 국회 환노위에서 이뤄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논의가 합의에 실패했다는 '단신' 뉴스가 전해진다. 남은 두 꼭지는 "민주노총 집회 참가자들의 폭력적인 행동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유달리 민주노총에서 폭력사고가 많이 난다"는 앵커멘트와 함께 민주노총 소속 MBN기자 폭행사태와 MBN노조·기자협회의 강력 항의 소식으로 채워졌다. 

이 날 MBN 뉴스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 층위와 맥락, 쟁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국회 환노위 합의 불발 소식을 전하면서도 여야의 입장차이마저 전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의 폭력성'으로 점철된 보도였다. 

같은 날 TV조선 종합메인뉴스 '뉴스9'도 <국회 담장 부순 민노총…김명환 위원장 연행>리포트에서 "민주노총은 이렇게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며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며 조합원 경찰 연행 소식을 전했다. MBN 보도와의 차이점은 조합원 연행에 대한 민주노총 측의 반응과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한 여야의 입장을 짧게나마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행된 조합원들이 석방된 4일, TV조선은 석방 소식을 전하며 "민주노총이 법 위에 군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고 보도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었다. '민주노총 공화국', '민주노총의 국정농단' 등의 발언 인용이 이어졌다. 뒤이어 TV조선 기자에 대한 폭행사태와 한국기자협회의 비판 성명 소식도 함께 전했다. 같은 날 MBN 역시 '민주노총 공화국'이라는 한국당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보도했다. 

민주노총은 조선·중앙·동아·문화일보, 매일경제, TV조선, 채널A, MBN 등 8개 매체에 취재제한을 두고 있다. 보수·경제 매체다. 각 사별로 짧게는 7년, 길게는 20년째 취재제한이 지속된 상태다. 취재에 응한다 한들 이들 언론이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하지 않고, 정해진 논조로 민주노총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언론노조 MBN지부는 "지부는 그간 종편 출범 이후 민주노총이 MBN에 대해  취한 취재거부 조치를 풀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다해왔다"며 "같은 노동자로서 동지의식을 가지고 각종 집회와 기자회견에 적극 참여했고, 민주노총 측에도 여러 차례 대화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또 다시 이런 불행한 사태가 재발한 것"이라고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MBN지부의 '백방의 노력'이 취재거부의 근본원인이 되는 MBN 보도에도 미쳤는지 의문이다.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번 폭행 사태와 특정 매체들의 보도태도에 대해 "기자분들에 대한 폭력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보수·경제매체 중심으로 민주노총의 폭력성 문제를 얘기하는데, 어떤 집회와 시위를 하건 집회시위를 하는 이유나 주장을 담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노린다. 이 같은 보도행태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보수매체는 노동시간과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 '싼 임금, 장시간 노동'을 장려하는 식으로 보도하고, 경제매체는 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재계의 입장을 대변한다"며 "민주노총 주장의 합당함이나 그 주장의 내용을 싣는 게 아니라 답을 정해놓고 묻는 행태가 있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민주노총은 향후 집회현장에서 집회 시작 전과 중간에 공지를 통해 취재제한 매체들에 양해를 구하고, 기자들에 대한 폭행금지 안내를 실시할 방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의 변화가 없다면 특정매체들에 대한 민주노총의 취재제한과 집회 참가자들의 거부감이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사태와 같은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성찰과 노력도 동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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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임기 여성과 갓난아이 시신 수백구..." 목격자들도 충격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최소 '800명'… 억울하게 죽은 사람 많아

19.04.08 21:03l최종 업데이트 19.04.08 21:03l

 

 

 아산시 배방읍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아산시 배방읍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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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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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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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게 묻은 사체 일부와 옷가지 등이 땅 밖으로 노출돼 있었다. 그 주변에서 어린아이가 밤새 울다 지쳐 죽었다." - 증언 1
"산에 칡뿌리를 캐러 갔는데 사체가 방공호를 따라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부패한 시신이 나뒹굴고 악취가 진동했다." - 증언 2
"산에 나무하러 간 아이가 너무 무섭다고 도망쳤다. 곳곳에 삐져나온 해골바가지가 너무 많았다고 했다."- 증언 3


2018년 봄 설화산에서 부녀자와 아동, 노인 가리지 않고 학살당한 참혹한 현장이 공개됐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에서 208구의 유해가 수습됐다. 부녀자들이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비녀 89점과 구슬을 비롯한 아이들 장난감이 다수 발견됐다. 감식 결과 어린이 유해만 58구로 확인됐다. 성인 남성은 19구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한국전쟁 인민군 부역 혐의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는 주로 20~30대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설화산에서 확인된 희생자 상당수는 가임기 여성과 어린아이였다. 발굴에 직접 참여한 전문 인력과 현장을 찾았던 봉사자 등은 60여 년 전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1950년 9월부터 1951년 1월까지 북한군 부역 혐의로 지목받은 당사자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 이웃들이 진상조사와 재판 없이 무참하게 총살당하고 흉기에 찔려 죽었다. 

67년 만에 양지로 나온 유골들은 민간인학살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민간인학살 공동조사단에 따르면 아산시에서 최소 800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산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발굴을 계속할 예정이다.

대대적인 부역자 색출작전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현장
▲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현장
ⓒ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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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26일(음력 8월 15일) 미군 기갑사단은 대전과 조치원을 차례로 수복했다. 이들이 천안을 통과해 서울로 진격할 것이라는 소식이 아산 지역에 퍼졌다.

 

아산지역 부역자 처벌은 1950년 9월 26일~27일 미군이 천안을 지나던 무렵부터 각 읍·면 치안을 맡았던 치안대에 의해 시작됐다. 그리고 9월 29일 온양 경찰이 복귀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민간인 희생의 가해자는 온양 경찰과 경찰의 지시를 받은 의용 경찰, 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등 치안대였다. 온양 경찰은 사찰계에서 주도해 부역 혐의자를 체포해 가두고 조사와 처벌까지 감행했다.

각 지서에는 본서에서 파견한 사찰 경찰이 지서 주임과 소속 순경 등과 함께 부역자를 분류해 처벌했다. 부역 혐의자 체포는 주민들의 증언이나 밀고로 이뤄졌고 조사과정에서 구타, 전기고문 등은 예삿일이었다.

체포된 사람 중에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많았다. 희생 규모도 경찰서장이나 해당 지서 주임의 재량에 따라 달라졌다. 처형이 집행될 때는 경찰의 인솔로 치안대원들이 부역 혐의자들을 처형장소로 끌고 가 총살했다.

마을주민‧일가족 몰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
 
 이 자리에서 부녀자들이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비녀만 89점이 나왔다. 감식결과 어린이 유해만 58구로 확인됐다. 208구 유해 중 성인남성의 것은 19명에 불과했다.
▲  이 자리에서 부녀자들이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비녀만 89점이 나왔다. 감식결과 어린이 유해만 58구로 확인됐다. 208구 유해 중 성인남성의 것은 19명에 불과했다.
ⓒ 한국전쟁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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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리에서 부녀자들이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비녀만 89점이 나왔다. 감식결과 어린이 유해만 58구로 확인됐다. 208구 유해 중 성인남성의 것은 19구에 불과했다.
▲  이 자리에서 부녀자들이 착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비녀만 89점이 나왔다. 감식결과 어린이 유해만 58구로 확인됐다. 208구 유해 중 성인남성의 것은 19구에 불과했다.
ⓒ 한국전쟁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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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조사단의 조사와 생존 목격자들의 증언을 기록을 보면 한국전쟁 중 부역자 외에도 이웃이 이웃을 밀고하고,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죽고 죽이는 억울한 죽음이 수없이 저질러졌다. 

1950년 12월 초 배방면 북수리 4구에 살던 김석남씨는 온양경찰서에 수용됐다가 살해당했다. 앞서 김씨는 북수리 이장 곽세영씨의 공출 착복 사실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전쟁이 나자 청년방위대 소대장인 곽씨의 사위 정아무개씨가 김석남과 그 가족을 '빨갱이'로 몰아 김씨를 비롯해 일가족 5명을 살해했다. 

의용군으로 징집 나간 방씨 가족 5명, 의용군으로 징집된 부친을 둔 성낙구씨 가족 5명, 엄진섭씨와 그 처가 살해당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1951년 1월 초 배방면 장재리에서는 양대운씨와 처 이만순, 딸 양춘자와 양영순, 아들 양구창과 양춘호, 임신 중이던 양대운씨의동생 양대록의 처 윤순희, 그의 자녀인 유아 2명 등 일가족 10명이 모두 참변을 당했다. 

1951년 1월 5일 배방면 세교리 1구에서는 전달석과 모친 유아무개씨, 형 전윤옥과 전준옥, 형수 박아무개씨와 심아무개씨, 조카 전해달·전해광·전해자·전해종, 미작명 영아 1명 등 가족 11명도 경찰의 지시로 배방면사무소 창고에 감금됐다가 살해당했다. 이들은 전윤옥과 전준옥의 인민위원회 활동 혐의로 몰살당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세교리 주민 30여 명도 연행돼 총살됐다. 

당시 전달석의 동생 전유는 전해천, 김병학 등 세교리 주민과 서울에서 피난 왔던 이광수와 함께 처형장소로 가던 중 도망쳐 생존했다.

배방면 창고는 1·4후퇴(1951년 중공군의 공세에 따라 정부가 수도 서울에서 철수한 사건)시기에 배방면 주민들을 감금했던 곳이다. 부역 혐의자 가족들은 별도로 관리하고, 도민증 발급을 이유로 야간에 연행했다. 감금 기간은 보통 2~3일 정도였다. 1950년 12월 창고 보초를 섰던 임아무개씨는 주민들이 밤에 연행됐고 맞거나 발가벗겨지는 것을 목격했다. 임씨에 따르면 보초를 섰던 당시 40~50명의 주민이 갇혀 있었고 부녀자, 노인, 유아는 물론 갓난아기까지 포함돼 있었다. 

임씨는 당시 시체 썩는 냄새가 지독해 일하지 못했고, 결국 땅을 팔아버렸다고 한다. 

생존자들은 1951년 1월 초 치안대원들이 주민 60~70명을 연행해 감금했다고 증언했다. "사람들이 '장날 소떼 엮이듯' 새끼줄로 묶인 채 끌려가 배방면 성재산 방공호에서 총살당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생존자는 "1951년 1월 7~8일 배방면 향토방위대가 면내 10여 개 마을주민 남녀노소 300여 명을 곡물창고에 집합시킨 후 저녁에 새끼줄로 묶어 성재산으로 끌고 가 총살했다"고 증언했다.

탕정면 용두리, 염치읍 대동리 유해발굴 계속
 
 한국전쟁 당시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한국전쟁 당시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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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에서 208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  2018년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에서 208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 한국전쟁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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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는 올해 탕정면 용두리와 염치읍 대동리 새지기 일원에서 유해발굴을 이어갈 예정이다. 

9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탕정면 용두리와 염치 대동리 새지기, 두 곳은 생존자 증언에 따라 일부 현장 조사를 마친 상태다. 주민들은 탕정지서와 면사무소 곡물창고 등으로 연행했다가 용두리와 대동리 야산에서 처형당했다. 

아산시유족회 조사에 따르면 탕정면 희생자 유족은 70여 명이다. 희생자보다 유족이 적은 이유는 노인부터 갓난아기까지 부역 혐의자의 가족 전원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유족이 있더라도 '빨갱이'로 몰릴까 두려워 고향을 떠나야 했다. 생존한 유족들은 그동안 시신 수습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먼발치에서 술 한 잔 올리고 돌아서는 것조차 숨어서 해야 했다. 

탕정면과 염치읍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다수의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살해 도구로 총칼뿐만 아니라 농기구와 죽창 등을 사용해 더욱더 끔찍한 상황이었다. 아산시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 사건 유해발굴사업을 위해 2018년 지방보조금 예산 1억1400만 원을 의회로부터 승인받았다. 전국지방자치단체 중 유해발굴사업을 직접 지원한 사례는 아산시가 처음이다.

"생존자들은 잊히기만을 강요당해왔다"
 
 홍남화 회장은 “지금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지나간 역사를 끄집어내서 어쩌자는 것이냐며 불편해 하는 분들도 많다”며 “그러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매래는 없다’고 했던 신채호 선생님의 말처럼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아산시민의 동행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홍남화 회장은 “지금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지나간 역사를 끄집어내서 어쩌자는 것이냐며 불편해 하는 분들도 많다”며 “그러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매래는 없다’고 했던 신채호 선생님의 말처럼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아산시민의 동행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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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은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잊히기만을 강요당해 왔다." 

홍남화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 회장이 탕정면과 염치읍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사업을 앞두고 한 말이다. 

홍남화 회장은 "갈수록 매장지 위치를 찾기가 어렵고, 도시개발과 도로건설 등 각종 개발사업으로 유해발굴이 불가능한 곳도 많다"며 "한국전쟁 당시를 목격한 생존자의 증언을 듣기도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전수조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지나간 역사를 끄집어내서 어쩌자는 것이냐며 불편해하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처럼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아산시민의 동행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는 일반 주부부터 회사원, 교사, 학생, 어르신까지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아산지역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일제 잔재 청산, 독립운동사 발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한국전쟁 아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사업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충남시사>와 <교차로>에도 실렸습니다. <충남시사신문>은 아름다운사회건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시민이나 단체를 찾아가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를 소개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2년째 한국전쟁 아산시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사업을 추진중인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를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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깰 수도 엎을 수도 없는 불가역적 북미협상

<분석과 전망> 지금의 북미협상이 옛날의 북미협상과 다른 점
  • 한성 자주통일연구소 소장
  • 승인 2019.04.07 14:02
  • 댓글 0
▲ 테런스 오쇼너시 미 북부사령관{사진 : VOA캡처]

미국 내 전쟁세력이 북에 무기 폐기를 요구하는 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막기 위해서다.

테런스 오쇼너시 미국 북부사령관 겸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사령관이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생산과 실전 배치가 임박했으며 미국 본토 공격용이라고 했다. 3일 미국 연방 상원 군사위원회 전략군 소위원회가 주최한 미사일 방어 관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다. 아울러 증인으로 참석한 새뮤얼 그리브스 미사일방어청(MDA) 청장은 북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을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처럼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다고도 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다. 북이 일반적으로 벌이는 전략적 군사활동에 대한 서술이어서다. 그럼에도 눈 여겨 볼 만하다. 현 시기 북미협상을 중심에 놓고 전개되고 있는 북미대결전에서 미국이 북의 군사무기에 대한 우려를 유독 많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미협상의 내용이 될 수 없는 탄도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폐기를 요구했던 조류와 궤를 같이 하는 흐름이다. 미국 내 전쟁세력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반대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여론전의 일환으로 보인다.

북미협상에서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문제는 미국 내의 전쟁세력들이다. 북의 북미협상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전환과 한반도 평화 구축 그리고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미국 내의 전쟁세력을 약화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정을 실현하며 더 나아가 세계 평화애호세력과의 연대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반제평화전략으로 명명되고 있다. 미국 내의 전쟁세력들은 북미협상에서 북의 무장해제를 강조하고 있다. 대북제제의 해제의 조건으로 비핵화에서 더해 군사무기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탁에 오른 존 볼튼 백악관 안보 보좌관의 빅딜문서 이른바, 노란 봉투에 탄도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폐기가 포함돼 있는 것에서 그리고 미군 수뇌들이 북의 ICBM과 SLBM 그리고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언급하는 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 전쟁세력들이 북미협상을 통해 북의 무장해제를 강조하는 것은 6.12북미공동성명이 합의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깨는 것을 종국적인 목적으로 한다.

북미대결에는 북미협상이 없으며 북미협상에는 북미대결이 있다.

북미대결전은 북미대결과 북미협상으로 구성된다. 북미대결은 북과 미국 내 전쟁세력들이 전개하는 북미대결전이며 북미협상은 북과 미국 내 평화세력이 전개하는 북미대결전이다. 북미대결은 미 전체가 북 전체와 격돌하는 강 대 강 대결로서 또렷하면서도 간결한 양상을 띤다. 하지만 북미협상은 복잡하다. 북과 미 평화세력 간의 대화이되 여기에 미국 내 전쟁세력이 개입해드는 양상을 띠는 것이 북미협상인 것이다. 북미대결은 북미협상 없이 진행되지만 북미협상은 그 안에 북미대결을 동반하는 이유다.

기간 북미대결전에서 역사적인 북미협상은 세 번 있었다. 94년 제네바 합의와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께 그리고 2005년 9.19공동성명 등이다. 그 북미협상들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들이 아니다. 다 북의 핵미사일 연구.개발이 마련한 것들이었다. 북이 핵미사일 연구.개발을 하자 미국이 불려나왔던 것이다.

세 번에 걸친 전략적 북미협상은 북미관계 정상화를 성과적으로 추동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그러나 다 파기되고 말았다. 미국은 그 책임을 북에게로 돌렸지만 거짓말이다. 세 번에 걸친 전략적 북미협상을 깬 것은 미 전쟁세력이었다. 미 전쟁세력이 북미협상에 어떻게 개입하고 어떻게 결렬시키는 지를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가장 쉬운 사례로 70년 대 말 카터의 주한미군철군 철회 과정을 들 수가 있다.

주한미군철군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카터는 1977년 취임 직후 군에 철군방안 검토를 지시한다. 북미관계 정상화로 이어질 것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전쟁세력들은 대선 전 부터 작전에 돌입했다. 미 전쟁세력의 중심부에 있었던 스탠스필드 터너 CIA국장이 대북정보 특별팀을 꾸린 것이 핵심이었다. 육군 특별조사대 소속된 대북 정보담당관 존 암스트롱을 앞세웠다. 2년여 활동 끝에 암스트롱 보고서가 1978년에 완성됐다. 사단 숫자가 알려진 28개가 아니라 41개이며 지상군 숫자도 최대 65만명에 달할 뿐 만 아니라 탱크 수도 당초 알려진 것 보다 80% 이상이나 많고 새로운 탱크 사단도 존재한다는 것 등이 주 내용이었다. 남북 군사력이 균형을 이뤘다는 기존 미 정보기관의 평가를 뒤엎는 보고서였다. 주한미군철군론자였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심각한 파장을 낳을 심각한 보고서”라며 탄식을 했다. 카터의 철군론의 근거를 흔들어버리는 보고서였던 것이다. 미 전쟁세력은 한발 더 나아간다. 1979년 1월 ‘아미 타임스(The Army Times)’라는 국방전문지에 암스트롱 보고서 내용을 누출했다. 미 전쟁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주류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한 것은 미리 정해진 수순이었다. 카터는 결국 1979년 2월 9일 철군 보류결정을 하는 것으로 주한미군철군을 철회하고 만다.

북이 핵무력 완성 이후에 마련하고 있는 북미협상은 불가역적이다.

북은 핵.미사일 개발.연구로 미국에 세 번에 걸쳐 강제했던 북미협상이 미 전쟁세력에 막혀 깨지고 말자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 핵.미사일 전략을 개발.연구에서 생산.배치로 바꾼 것이다. 그 역사적 전환이 2017년 11월 29일 핵무력 완성이다. 북미협상은 곧바로 열렸다. 현 시기 북미협상은 북의 원자탄과 수소탄 그리고 ICBM과 SLBM 등 북의 핵무력 완성이 불러온 판인 셈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에 탄도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폐기 문제가 억지로 오르고 이어 미군 수뇌들이 북의 ICBM과 SLBM 그리고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언급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 북미협상이 핵무력 완성으로 새롭게 꾸려졌음에도 미 전쟁세력의 북미협상에 대한 개입은 여전이 활발하다.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세계의 정세분석가들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과정에 큰 역할을 한 볼턴에게서 카터의 주한미군철군론이 철회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터너 CIA국장을 떠올렸다. 아울러 볼턴이 들고 있던 노란 봉투에서는 터너 국장이 대북정보 특별팀에게서 건네받았던 암스트롱 보고서도 떠올렸다.

북미협상을 깨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방해하려는 미국 내 전쟁세력들의 음모적 행태는 하지만 이제 와서는 오래 갈 것이 못된다. 현 시기 북미협상은 핵미사일 연구.개발이 아니라 핵무력 완성이 마련해준 판이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의 전쟁세력들이 그리하고 있듯 이런 저런 방해는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무력한 반발일 뿐이다. 지금의 북미협상은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가 없으며 엎을 수는 더 더욱이나 없다. 현시기 북미협상이 갖는 특성인 불가역성이다. 이런 저런 곡절과 난관이 있기는 할 것이지만 북의 반제평화전략이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북미관게 수립이라는 시대적 요구는 이후 북미협상에 의해 실현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성 자주통일연구소 소장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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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명심해야 할 하노이의 교훈

[현안진단]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명확히 입증해야
2019.04.08 10:25:18
 

 

 

 

제재 완화에 매달리는 것은 잘못된 퍼즐 풀기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지난 한 달여간 회담 결렬의 이유와 사정을 놓고 회담 당사자와 내외 전문가 사이에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이들은 양측 협상 카드 구성의 불균형에서 문제점을 찾기도 하고 혹은 톱다운 협상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특이한 협상 기술이나 미국의 국내정치적 변수를 문제 삼기도 했다.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이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것처럼, 회담 결과에 대한 전문가 사이의 여러 분석과 해석도 확실한 공감대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은 회담 결렬책임을 상대에게 넘기고 있으며 전문가들도 편을 갈라 한 쪽이 먼저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과 북한은 물론 주변 분석가들도 어느 누구 하나 협상을 깨자고 하는 측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지금 미국과 북한은 상대를 비난하기보다는 협상 재개를 위해 고심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의 조기 재개를 염원하면서 하노이에서 양측이 동시에 범했다고 생각하는 실수 하나를 지적하고자 한다. 바로 대북제재 문제를 양측이 모두 협상 의제화했다는 점이다. 

제재를 부과하거나 해제하는 문제는 성격상 일방적 조치로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대북 제재는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해야 풀 수 있으며,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한다면 그 진도에 맞추어 완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비핵화의 선행 조치가 먼저 있어야 한다.

뒤집어 생각해서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하면 대북 제재는 북한이 요구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해제가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진 상황에서는 대북 제재를 유지할 그 어떤 명분도 실리도 없다. 

현실 경제의 절박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대북 제재 완화 요구를 뜻대로 관철시키지 못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대북 제재 문제를 미국에게 추가 협상카드로 안겨준 셈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는 대신 얻고자 하는 것이 겨우 대북 제재 해제라고 한다면 핵 개발에 쓸데없이 공을 들인 꼴이 된다.  

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얻고자 하는 것은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보장이다. 비핵화의 대가는 북한이 비핵화로 당연히 취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협상을 통해 확보해야 한다. 협상의 대상이기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 조치 이전에라도 일정한 선불을 요구할 수 있다.

제재 해제나 완화는 비핵화가 되면 당연히 따라오는 비핵화의 결과로 북한이 핵포기 대신에 협상을 통해 얻어야 하는 비핵화의 대가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미국이 대북제재 완화를 협상카드화 한다면 이 역시 안보리 권한 침해에 해당할 수 있으며 적절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제재라면 카드로 쓸 수도 있다. 과거 리비아나 이란의 대미협상에서도 제재 해제의 내용이나 수준을 구체적으로 협상문에 담지 않았으며, 미국도 유엔안보리에 제재 해제를 건의한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게 안보와 체제보장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비핵화의 대응물은 어디까지나 안보와 체제보장이다.  

대북 제재는 비핵화가 이행된다면 상황에 따라 당연하게 완화되거나 또는 해제되는 문제로 북한이 미국에 매달릴 문제가 아니다. 또한 북한의 요구와 같이 비핵화 이행 정도에 맞춘 단계별 제재 해제란 수학 공식처럼 되는 일도 아니다. 

만약 북한이 먼저 비핵화 조치에 나선 후, 따라오게 될 제재 완화 수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협상 분위기 차원에서 거론할 수는 있어도, 협상 의제로 하는 것은 상대측에 카드 하나를 더 얹어주는 결과만 되는 셈이다.  

비핵화 조치 이전에도 북한에 경제지원을 할 수는 있는데 그것은 유엔대북제재의 예외조치로서 가능한 것이지, 비핵화 이전에 제재해제를 취하면서까지 할 것은 아니다. 북한은 비핵화에 대응하여 미국에 요구할 그림을 크게 그려야 한다. 

협상 상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로부터 빈손으로 귀국할 때 가졌을 낭패감의 실체가 무엇이었을까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항간에는 협상팀이 문책당할 것이라거나 내부단속을 강화하고 대미협상과 관련해서 부여했던 주민들의 과도한 기대를 통제하며 '새로운 길'의 모색에 주력할 것이라는 등 여러 이야기가 돌고 있다.  

북한은 이처럼 하노이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 추스르기를 하면서 미국을 다시 보고 있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세계 최강의 지도자인 것은 트럼프 개인이 위대해서라기 보다 미국 자체가 세계 최강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도 국내정치에서는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재선을 원한다면 국내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 공산국가나 독재국가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를 상대할 때 북한이 겪는 어려움일 것이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에만 초점을 맞추어 협상을 한다면 앞으로도 제2의 하노이는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 

미국은 대통령의 생각에 실무진이 무조건 승복하지도 않고 국민 여론은 더더군다나 대통령의 조치를 뒤집을 수도 있는 체제다. 따라서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어깨 너머에 있는 미국 자체와 협상을 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미국 여론의 신뢰는 트럼프 대통령보다 훨씬 낮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미관계에서 만족할 성과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

대북 인식에 있어서 트럼프 대통령보다 훨씬 회의적이고 보수적인 미국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확실하고도 명확하게 입증해야 한다. 

이런 시기에 북한은 14기 최고인민회의를 새로 구성했다. 그리고 곧 제1차 회의를 소집한다. 중요한 시기에 열리는 중요한 행사다. 

이번 회의가 내부 몸 추스르기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하노이에서 놓친 김정은 위원장의 한반도 평화 이니셔티브를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김정은 위원장의 수준이 아니라 북한 주민 전체의 총의로 국제사회에 보여주길 요청한다.

싱가포르의 역사적 성과물은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으로 만들었다.

하노이에서 완성하지 못한 성과를 수확하기 위해 이번에는 북한 주민의 결단으로, 다시 말해서 최고인민회의의 결정으로, 비핵화 실천 의지를 명백하게 함으로써 김정은 위원장의 한반도 평화 이니셔티브를 다시 살리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싱가포르 회담으로 모처럼 얻은 기회를 날릴 수는 없다.  

제14기 최고인민회의는 헌법 개정을 통해 기존헌법 전문에 애매하게 표현된 핵무장 관련 언급을 완전히 삭제하고, 2013년 제13기 최고인민회의가 채택한 법령('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을 폐지하여 국제사회에 한반도 평화 이니셔티브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하노이 회담은 끝나지 않았으며 이를 한반도 평화노력의 실패사례로 남겨둘 수는 없다. 4월 11일 한미정상회담과 같은 날 열리는 제14기 최고인민회의에서 하노이 회담을 교훈 삼고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는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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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불쌍하면 낙태 허용? "그런 식으론 안 된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4/08 11:05
  • 수정일
    2019/04/08 11:0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원 밖의 여자들 ②] 김지윤 녹색당 정책팀장

19.04.08 08:53l최종 업데이트 19.04.08 10:32l

 

주류 정치판이나 국회라는 '원' 안에서 벗어나, 치열하게 활동하는 여성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원 밖의 여자들'은 개성있는 여성 정치인이나 활동가 등을 조명합니다. 단순히 주류 정치판 밖에 있는 이들이 아니라, 새로운 목소리를 내며 그 '원'에 사소한 균열을 만들어가는 이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지난 3월 30일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에서 참석자들이 헌법재판소에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  지난 3월 30일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에서 참석자들이 헌법재판소에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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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죄 폐지 촉구 시위를 하루 앞둔 지난 3월 29일, 제천으로 향하던 무궁화호 열차 화장실 안에서 영아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다음날 오전, 20대 여성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며 죄책감을 느꼈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영아유기 혐의로 입건됐다.

#.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린 지 약 3개월 뒤, 18살 여성이 인공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그는 수능이 끝난 후에야 인터넷 비밀 상담을 통해 접촉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다 사고를 당했다.


7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두 사건은, 한 가지 물음을 남긴다. 만약, 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헌재는 오는 11일을 선고 기일로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일 변동 등의 변수가 없다면, 이날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선고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여성들이 절박하게 목소리 높이는 이유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일부 사례를 떠나서도, 여성들에게 임신중지는 피부로 와닿는 중요한 문제다. 지난 2월 1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 여성 4명 중 3명(75.4%)은 현행 낙태죄(자기낙태죄, 동의낙태죄)를 개정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임신을 해본 여성 5명 중 1명(19.9%)이 임신중지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이런 현실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헌재 재판관 구성이 바뀌고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어느 때보다 낙태죄에 관한 '전향적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지만, 그 '이후'에 관한 논의는 부족한 실정이다.

"흔히들 한국 사회가 압축 성장했으며, 빠르게 민주화됐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성의 권리와 관련해 그 압축 성장을 못할 건 뭔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지윤 녹색당 정책팀장은 "낙태죄 폐지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헌재가 현행 낙태죄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국가가 임신중지를 여성의 권리로 인정하는 대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임신중지 약물 도입, 성교육과 피임 접근성 개선뿐만 아니라 성과 재생산에 대한 인식 변화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윤 정책팀장은 지난 3월 30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의 주최 단체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아래 모낙페)에 녹색당 소속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낙태죄 위헌을 촉구하는 헌재 앞 1인 시위에 참여하는 등 낙태죄 전면 폐지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목소리 높이고 있다.  

낙태죄 폐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김지윤 녹색당 정책팀장
▲  김지윤 녹색당 정책팀장
ⓒ 녹색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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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 세계적으로 임신중지 권리는 계속 확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각 국이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전면적으로 임신중지를 범죄화하고, 여성을 마치 죄인 취급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국가와 사회가 존중해야 한다. 임신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중지할 것인지, 출산할 것인지를 여성이 결정하고 그에 관한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기본권, 인권이다."

-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은 흔히 태아의 생명권이나, 종교적 신념 등을 내세운다. 
"각자 개인의 윤리와 가치관이 있다. 어느 종교인이 그 종교 나름의 신념으로 임신중지를 반대할 수도 있다. 문제는 개인의 도덕률이나 특정 종교의 교리를 전 사회에 강제하고 한 나라의 형법으로 규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임신중지를 강간, 살인, 사기, 횡령과 같은 범죄로 규율하는 것이 옳은가? 이는 여성의 몸 자체를 범죄화하고 여성의 몸에 낙인을 찍는 것이다. 낙태죄가 존재하는 한 여성은 평등한 시민으로 존중받는 사회일 수 없다."

실제 한국은 임신중지에 극히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나라다. 우생학적·유전학적 요인, 강간, 근친상간 등 모자보건법이 말하는 특정한 사유 안에서만 예외적으로 임신중지를 허용한다(모자보건법 제14조). OECD 36개국 낙태법을 비교해 보면 한국보다 임신중지가 어려운 국가는 단 한 곳, 칠레뿐이란 분석도 나온다(책 <배틀그라운드> 참조). 36개국 중 30개국은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거나, 본인이 원할 경우 임신중지를 할 수 있다.

- 11일 헌재가 자기낙태죄(형법 제269조 1항, 임부 처벌 조항)와 동의낙태죄(형법 제270조 1항, 의료인 등 처벌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선고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전망하나.
"특별히 전망하고 있지 않고, 다만 전향적이길 기대한다. 언론이야 예측을 내놓을 수 있고 저희도 어느 정도 가늠해 보는 건 있지만, 지금 무어라 말하긴 어렵다. 위헌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사유로 위헌인 것인지, 헌법불합치라면 어떤 부분이 불합치라는 것인지에 따라 판단이 다 달라진다. 결정문이 나올 텐데, 그 문구 하나하나를 뜯어봐야 한다."

지난 2012년 낙태죄 합헌 선고 때는 재판관 의견이 4대4로 나눠졌다. 그때와 달리 이번 선고에서 6명 이상의 재판관들이 위헌 의견을 내 정족수를 넘기더라도, 어떤 형태(단순 위헌, 한정 위헌, 헌법 불합치)와 논리를 택하는지에 따라 평가가 갈릴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헌재가 '임신 초기에까지 낙태죄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논리를 들면서 한정 위헌을 선고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2012년 낙태죄를 두고 위헌 의견을 냈던 4명의 재판관들도 '초기에는 허용해줄 필요가 있다'는 내용으로 접근했을 뿐, 전면 폐지를 말하진 않았다. 이는 임신중지를 전면적으로 비범죄화할 것을 요구하는 여성계 입장과는 다소 온도차가 있다. 

- 임신중지를 허용하더라도, 주수나 사회경제적 사유 등을 통해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네가 정말 많이 가난하고, 돈도 못 벌면 임신중지를 허락해줄게'라는 식의 관점으론 안 된다. 커리어도 좋고, 연봉도 높은 어느 여성이라도 지금 이 시기에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학생이고 벌이가 어려워도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여성이라면 편견과 제약 없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출산하고 양육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주수나 사유는 '허락'의 요건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야 할 조건이다.

'이만큼 가난해야만 임신중지가 가능하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결국 '이 정도로 가난하면 낳지 말라'는 얘기나 다를 바 없다. 예를 들어 현행 모자보건법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임신중지를 '허락'한다. 이는 장애인이 출산을 하려고 하면 병원에서 '정말 낳으실 거냐?'는 질문을 받는다든지, 시설에서 불임시술을 강제 당한다든지 하는 현실로 나타난다. '허락'을 뒤집으면 '하지 말라'는 강요가 나온다."

권리로서의 임신중지 "여성들은 처벌도 허락도 거부한다"

- 국가가 임신중지를 허락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인가. 
"근본적으로 관점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임신중지는 국가가 처벌할 일도 아니지만, 더 나아가 허락할 일도 아니다. '처벌 안 한다, 다만 허락한 사유 안에서 임신중지를 하라'는 건 임신중지를 여전히 귄리가 아닌 시혜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여성들은 처벌도 허락도 거부한다.

성과 재생산의 권리로서 임신중지의 유일한 기준은 임부의 요청이며, 임부의 건강과 안전만이 제한 조건이 돼야 한다. 낙태죄를 폐지하고, 임신중지는 여성의 기본권이며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여성의 판단으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 단순하고 지당한 명제이지만 이 기조를 명확히 세워야 구체적인 입법을 할 수 있다.

국가는 낙태죄가 전면 폐지되면 여성들이 위험한 선택을 하거나, 문란한 성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피임 접근성을 높이고, 적절한 피임과 임신중지에 관한 사회적 의료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임신중지는 초기에 하는 것이 좋지만, 이를 '초기에만 허락해 주겠다'는 것과 '어떻게 하면 여성이 초기에 안전하게 중지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할지' 국가가 고민하는 것은 다르다."
 
 헌재 앞에서 낙태죄 위헌 촉구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김지윤 정책팀장.
▲  헌재 앞에서 낙태죄 위헌 촉구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김지윤 정책팀장.
ⓒ 녹색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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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죄 전면 폐지는 너무 빠른 변화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소수자들이나 여성의 인권을 말하면 '나중에'라거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 '때'는 언제일까. 한국에서는 성과 재생산 권리에 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늦어도 너무 늦었다. 1953년 형법 제정 이래 낙태죄가 개정도 없이 존치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야 말로 여성 시민의 존엄에 심각하게 문제적이다.

다른 나라는 재생산권을 꾸준히 확장해온 역사가 있다. 반면 한국은 피임, 임신, 임신중지, 임신유지, 출산, 양육 등의 전 과정이 건강하고 안전하며 자유롭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 흔히들 한국 사회가 압축 성장했으며, 빠르게 민주화됐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성의 권리와 관련해 그 압축 성장을 못할 건 뭔가."

이어 그는 "다른 나라들의 선례를 봤을 때 너무나 자명한 건 임신중지를 어렵게 하면 오히려 모성사망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산부인과 의사 윤정원씨도 책 <배틀그라운드>에서 "미국에서는 임신중지가 합법화되면서 1970~1976년 사이 임신중지로 인한 모성사망이 1백만 명 출생 당 40명에서 8명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합법적인 임신중지와 안전한 임신중지 사이에는 유효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임신중지 비범죄화 뿐만 아니라 성교육·의료서비스 등 개선해야  

김 팀장은 "임신중지를 비범죄화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기부터 양질의 성교육을 보장하고 피임 정보 확대와 정확한 피임법의 접근성을 높여 원치 않는 임신 자체를 줄이는 것, 그리고 임신중지를 하려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방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성평등 정책과 성교육을 강화하고, 피임 접근성을 높이고, 의사들에게 임신중지 의료에 대한 적정한 수가를 보장하고, 이를 건강보험 안으로 포섭해내야 한다. 현재 의사들은 수련의 때 임신중지 시술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다. 임신중지가 원칙적으로 불법이기 때문이다. 의료인 교육 시스템 개선, 보완 교육 등 함께 보완돼야 할 것이 많다."

그는 이어 낙태죄가 폐지 되어도 임신중지하는 여성을 비난하는 문화가 잔존하고, 시술하는 의료인을 낙인찍는 분위기가 된다면 여성들이 현실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낙태죄 폐지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낙태죄는 제정 때부터 50년 이상 국가가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도구였다. 국가가 원할 땐 임신 중지가 강요되다시피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땐 비난하고 낙인찍었다. 여성에 대한 치욕의 역사를 담고 있는 법이다. 낙태죄가 폐지는 한국 사회의 여성 인권 향상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 낙태죄 폐지가 같이 가야 한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등이 사회서비스 등에 있어 차별받지 않는 것,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 것, 여성의 재생산권이 보장되는 건 전부 맞물리는 문제다.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다."

여성들은 낙태죄 폐지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던졌다. 11일 헌재는 어떤 답을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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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국가직 전환 외면하는 언론은

[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중동 외 신문들 ‘소방관 국가직 전환 청신호’ 입 모아… 한전이 책임 물게 될까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2019년 04월 08일 월요일
 

강원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산불 진화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고성군·속초시·강릉시·동해시·인제군 등 5개 시·군은 지난 6일 응급대책, 재난구호, 복구에 필요한 행정 금융 등 특별 지원을 받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이번 산불을 계기로 열악한 소방 인력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 SNS에서는 까맣게 그을린 마스크 사진이 공유됐다. 최전선에 나서 산불과 싸운 ‘숨은 영웅’이자 비정규직 노동자, 산림청 소속 특수진화대원이 착용했다는 방진 마스크다.  

특수진화대원은 산사태, 병해충, 산림 훼손 등 산림 업무 대부분에 참여할 뿐 아니라 큰 산불이 발생했을 때 산 속으로 들어가 진화하는 ‘수색대’ 역할을 한다. 산림청은 지난 2016년부터 특수진화대를 자체 채용하고 있다. 현재 전국 5개 지방청과 20여개 관리소에 소속된 특수진화대는 총 330명이다. 

 

▲ 4월5일자 서울신문 3면.
▲ 4월8일자 서울신문 3면.
 

서울신문은 “특수진화대원은 하루 8시간씩 주 5일 근무를 하며 일당 10만원을 받는다.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법정수당만 수령하고 별도의 성과급과 다른 수당은 없다. 월급은 200만원도 되지 않고 퇴직금도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는 “무엇보다도 이들은 1년마다 새로 모집돼 늘 고용불안 상태에 놓여 있다. 때문에 이번 산불을 계기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산불 특수진화대의 전문성을 키우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분명하다”는 산림청 관계자 발언을 전했다.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주세요’라는 청원이 게재됐고 청원 동참 인원은 7일 만에 16만명을 넘어섰다. 소방관 국가직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다. 이미 국회에도 관련 개정안들이 발의돼 있으나 지난해 11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넘어서지 못했다. 

 

▲ 4월5일자 국민일보 4면.
▲ 4월8일자 국민일보 4면.
 

국민일보는 “소방공무원 대부분은 지방직 공무원으로 시·도소방본부에 소속돼 있다. 5만명이 넘는 전체 소방공무원 중 국가직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지방직의 문제는 지자체 재정 여건에 따라 소방 인력과 장비에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최소한의 인력도 확보하지 못해 격무에 시달리거나 장비가 부실해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은 주로 인력 확충이나 장비 개선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번 강원 산불은 전국적이고 즉각적인 화재 대응의 효과를 입증하면서 국가직 전환에 또 하나의 명분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등도 관련 소식을 기사나 사설에서 다뤘다. 

한편 언론의 이번 산불 진화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국민일보(소방차·소방관 5배↑… 양양 산불보다 19시간 빨리 진화)는 “강원 고성·속초 산불 진화 대응은 14년 전 같은 기간에 발생한 양양 낙산사 화재와 비교할 때 19시간이나 완진 시간을 단축했다. 파견된 소방 인력과 차량도 5배나 늘었다”며 “신속 대응이 가능했던 것은 2017년 7월 소방청 개청 이후 대형 재난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 체제를 정립했기 때문이란 평가”라고 전했다.  

△소방청은 4일 오후 9시44분 화재 비상 최고단계인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전국 가용 소방력 총동원 명령 △4일 밤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주재 상황판단회의(오후 8시30분, 오후 11시30분) △5일 중앙재난안전대책 본부 가동(0시)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회의 주재(0시25분) △중대본부장 현장 브리핑(오전 3시) △국가재난사태 선포(오전 9시) △중앙수습지원단 운영(오후 5시) △6일 5개 시·군 특별재난지역선포(오후 12시33분) 순으로 정부 대처가 기민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 대응의 허술함과 노후 장비 등 재난 대응 시스템 문제도 지적된다. 우선 강풍이 불 때나 야간에 띄울 산불 진화용 헬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초기 진화에 실패한 이번 산불이 고성 천진해변과 속초시내 등 두 갈래로 퍼졌음에도 ‘아날로그식’ 대응”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힌다. 

 

▲ 4월5일자 경향신문 1면.
▲ 4월8일자 경향신문 1면.
 

한국일보는 “봄철 산불이 연례행사가 됐음에도 현재 강원소방본부가 보유한 헬기는 구조용 소형헬기 2대뿐이다. 전국적으로 산불진화에 가용할 수 있는 헬기는 산림청 소속 47대와 지자체가 민간인으로부터 임차한 66대 등 157대지만, 이마저 정비에 들어가는 헬기가 적지 않아 화재 진화로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특히 이번처럼 해가 지고 난 뒤 산불이 발생했을 때 출동할 수 있는 헬기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했다. 야간침투비행능력을 갖춘 일부 군 헬기 활용의 경우 작전용 헬기를 용도에 맞지 않는 곳에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한 것으로 전했다. 

경향신문도 산불 대응을 위한 새로운 로드맵 필요성을 제기했다. 헬기 등 장비 확충 문제와 더불어, 소나무 등 침엽수가 대형 산불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복구 과정에서 활엽수 비중을 늘려 산불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는 방안이 나온다. 이번 산불 피해 지역 80~90%는 소나무 등 침엽수가 밀집한 곳이라는 점에서 산불 등 각종 재해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산림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난 보도 문제점도 거듭 지적되고 있다. 지난 4일 밤 늑장 특보로 뭇매를 맞은 공영방송은 수화 통역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비판 받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성명을 통해 “4일 밤 화재가 발생한 지역의 청각장애인들은 10시간 가까이 제대로 된 재난 대피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 위험에 노출됐다”고 비판했다.

긴급재난문자가 한국어로만 제공돼 외국인들이 산불 관련 정보를 알 수 없었다는 점도 지적됐다. 행정안전부 재난정보통신과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긴급재난문자의 경우 해당 지역 기지국 내에 통신 중인 휴대폰에 일괄적으로 문자를 뿌리는 것이라 수신자가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일일이 구분할 수 없다”며 “관계부처 등과 협의해 국내 체류중인 외국인에게 재난 정보를 보내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4월8일자 한국일보 3면.
▲ 4월8일자 한국일보 3면.
 

경찰은 5일 국과수에 고성 산불 원인이 된 전신주 개폐기와 전선의 감정을 의뢰했다. 한국일보는 “피해가 컸던 고성·속초 화재 발화장소인 전신주 개폐기가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드러날 경우 관리자인 한국전력을 상대로 한 주민들의 줄소송이 이어져 막대한 규모의 손배소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86명이 사망하고 가옥 및 건물 1만4000여채가 소실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불의 경우, ‘퍼시픽가스앤드일렉트릭’이 지난달 28일 발화 책임을 인정하며 “회사 측이 무려 105억달러(11조9490억원)의 배상금을 물어야 할 수 있다”고 주주들에게 공지했다. 

“5·18 때 공군 수송기, 김해로 ‘시체’ 옮겼다” 

76명의 5·18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를 찾을 수 있을까. 5·18민주화운동 기간 계엄군이 공군 수송기를 이용해 광주 외부로 ‘시체’를 운반한 기록이 담긴 문건이 나타났다. 8일자 경향신문이 ‘소요진압과 그 교훈’이라는 군의 3급 비밀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문건 가운데 1980년 5월25일 ‘김해~광주’를 운항한 수송기 기록 옆에 ‘시체(屍體)’라고 적혀 있다. 경향신문은 “김해로 옮겨진 ‘시체’는 군인 사망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중 영남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는 없었기 때문”이라며 “군은 임무수행 중 사망한 군인은 죽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영현(英顯)’으로 기록하며 ‘시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고 했다.  

경향신문은 이 문건이 육군본부가 5·18민주화운동 1년 뒤인 1981년 6월 ‘광주사태의 종합분석’이라는 부제로 243권만 만들어졌으며, 문건 110쪽에는 5·18 당시 공군 수송기 지원 현황과 수송 물품 등이 적혀 있다고 설명했다. 

▲ 4월8일자 경향신문 5면.
▲ 4월8일자 경향신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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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변의 산골마을에 울리는 열차의 기적소리

[개벽예감 342] 북변의 산골마을에 울리는 열차의 기적소리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04/08 [09:04]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혜산-만포선이 지나는 산골마을 회중리

2. 현실 속에 존재하는 핵미사일렬차

3. 미국이 두려워하는 열차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

4. 출동명령 대기하는 조선의 핵미사일렬차

5. 마지막 공간이 아직 남아있다

 

 

1. 혜산-만포선이 지나는 산골마을 회중리

 

2019년 4월 1일 미국 국방부는 ‘미국의 핵억제정책’이라는 제목의 자료에서 “북조선은 미국 본토를 타격하는 능력을 보여준 매우 정교한 여섯 차례의 핵시험과 세 차례의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진행하였”고, 그로써 “북조선의 핵능력은 우리 동맹국들과 미국 본토를 위협하고, (로씨야와 중국의 핵능력으로) 복잡해진 전략적 환경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하였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2019년 4월 3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소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미국 북부사령관 겸 북미주항공우주방어사령관 테런스 오셔너시 공군 대장은 2017년에 조선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수소탄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직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생산하여 실전배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에 서술한 두 가지 내용은 조선이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와 수소탄시험을 각각 성공적으로 진행한 2017년 이후 조선의 핵무력에 대한 미국 군부의 평가가 그 이전과 비교하여 완연히 달라졌음을 말해준다. 2017년 이전에 미국 군부는 조선이 미국 동부지역에 도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느니,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대기권재진입능력을 입증하지 못했다느니 뭐니 떠들면서 제멋대로 사실을 왜곡하고 조선의 핵무력을 얕잡아보았었다.  

 

그러나 2019년 4월 1일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미국의 핵억제정책’이라는 제목의 자료가 명백히 말해주는 것처럼, 조선은 미국 군부가 로씨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핵억제정책을 적용하는 나라로 되었다. 그러므로 미국 본토에 전략적 핵위협을 가하는 3대 핵강국은 로씨야, 중국, 조선인 것이다. 2017년 말에 조선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넘어 핵강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그래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1월 1일에 발표한 신년사에서 조선을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있는 핵강국”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지난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핵강국 조선에게 핵포기를 요구하는 괴이한 외교문서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했다. 핵강국에게 핵포기를 요구하다니, 지나가던 소가 들어도 웃음보를 터뜨릴 소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강국 조선이 핵무력을 스스로 포기하고, 핵탄두와 핵물질을 미국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증에 걸렸다.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과는 협상을 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대망상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다시 말해서 핵강국 조선에 대한 핵포기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 한, 조미정상회담은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과대망상증에서 벗어나 판단력을 회복하면, 조선의 비핵화가 로씨야의 비핵화나 중국의 비핵화처럼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대망상증에서 벗어나려면,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핵강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글에 서술된 내용은 그런 현실들 가운데 한 가지를 말해준다.  

 

량강도 혜산에서 자강도 만포에 이르는 북부철길구간을 개건, 보수하는 공사가 2017년 10월 중순에 완료되었다. 그 공사는 산이 많은 조선에서도 손꼽히는 험준한 산악지대에 부설된 252km 구간의 철길에 중량레일을 설치하고, 침목을 교체하며, 차굴 76개, 철교 116개, 역 42개소를 개건, 보수하는 매우 방대하고 어려운 공사였다. 혜산-만포 북부철길은 1988년에 개통되었고, 1993년에 전 구간이 전기철도화되었는데, 2011년 4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혜산-만포선 개건보수공사가 시작되었고, 6년 만에 완공된 것이다. 

 

그런데 좀 이해하기 힘든 일이 생겼다. 매우 방대하고 어려운 철길개건보수공사를 6년 만에 완료하였으면, 당연히 성대한 준공식이 열렸어야 하는데, 북부철길개건공사준공식이 진행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이해하기 힘든 일은 한 가지 더 있다. 1993년에 전 구간이 전기철도화된 혜산-만포선을 개건, 보수하면서 기존 전철설비를 들어내고 비전철화한 것이다. 그로써 혜산-만포선에서는 전기기관차가 아닌 디젤기관차(조선에서는 내연기관차라고 부름)로 열차를 운행하게 되었다. 험준한 산악지대의 철길에는 경사가 가파른 구간이 많기 때문에 디젤기관차보다 힘이 좋은 전기기관차로 열차를 운행하는 법인데, 조선에서 가장 험준한 산악지대에 있는 혜산-만포선에서는 이전에 운행해오던 전기기관차를 내보내고 디젤기관차를 들여왔으니,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혜산-만포선은 왜 디젤기관차가 운행하는 철길로 바뀐 것일까? 

 

전국 각지 철길들이 전기철도화된 조선에서 전기기관차를 운행하는 것이 대세이지만, 조선에 디젤기관차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선에서 디젤기관차는 군수렬차나 특별렬차를 운행할 때 사용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혜산-만포선이 2017년에 군용철길로 개건되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조선이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직전인 2017년 10월 중순 혜산-만포선이 군용철길로 개건된 것은 조선의 핵무력완성과 혜산-만포선 개건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사진 1> 

 

▲ <사진 1> 서방측 상업위성이 촬영한 이 사진은 2018년 12월 7일 미국 라디오방송 이 보도한 상업위성사진자료다. 이 사진에 나타난 지역은 험준한 산악지대에 있는 자강도 화평군 회중리 일대다. 회중리는 동서남북이 해발고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로 둘러싸였고, 압록강을 사이에 둔 조중국경에서 약 20km 떨어진 북변의 산골마을이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위의 위성사진자료에서 지하미사일기지 출입구가 건설되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6년간의 대공사를 거쳐 군용철길로 개건된 혜산-만포선이 바로 그 산골마을 회중리를 지난다. 이런 사실을 살펴보면, 높은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천연방벽 안에 건설된 회중리 지하요새는 군용철길로 개건된 혜산-만포선에 연결된 대륙간탄도미사일기지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 강한 암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를 밝혀준 것은 뜻밖에도 미국 언론보도였다. 2018년 12월 5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과 라디오방송 <NPR>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각각 보도하였다.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원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조선에 있는 영저리 지하미사일기지에서 약 11km 떨어진 회중리 일대에 새로운 지하미사일기지가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회중리 일대를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자료를 분석한 미들베리국제연구원 군사전문가는 그곳에서 지하미사일기지 출입구가 건설되는 현장을 확인하였다고 밝혔다. 출입구를 먼저 건설하고, 내부공사를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내부공사를 끝내고 출입구를 맨 나중에 건설하는 법이므로, 회중리 일대에서 출입구건설공사가 진행되는 것은 지하미사일기지가 거의 완료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회중리 지하미사일기지 출입구건설공사현장이 서방측 상업위성에 촬영된 때가 2018년 12월 5일이었으므로,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오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회중리 지하미사일기지에 배비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8년 12월 7일 미국 언론보도에 그 이름이 나오기 전에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산골마을 회중리는 어디에 있을까? 조선지도를 펼치면, 자강도 화평군에서 한 개의 점으로 표시된 회중리라는 산골마을을 찾아낼 수 있다. 회중리 일대의 자연지리적 환경에서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은 거대한 천연방벽이다. 회중리는 동서남북이 오가산(1119m), 운동산(1334m), 신원봉(1335m), 판자봉(1069m)으로 둘러싸였고, 압록강을 사이에 둔 조중국경에서 약 2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북변이다. 놀라운 것은, 6년간의 대공사를 거쳐 군용철길로 개건된 혜산-만포선이 바로 그 산골마을 회중리를 지난다는 사실이다. 

 

위에 서술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앞에서 제기된 의문들이 저절로 풀린다. 해발고가 1000m 이상인 높은 산들로 사방이 둘러싸인 천연방벽 안에 건설된 회중리 지하미사일기지는 군용철길로 개건된 혜산-만포선에 연결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기지인 것이다. 

 

 

2. 현실 속에 존재하는 핵미사일렬차

 

혜산-만포선과 회중리 지하미사일기지를 서로 연관시키면, 다음과 같은 가상씨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열차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은 핵미사일렬차를 회중리 지하미사일기지에서 출동시켜 252km 구간의 혜산-만포선 임의의 지점에서, 임의의 시각에 기습적으로 발사하는 전시핵공격씨나리오다. 물론 이런 핵공격씨나리오는 가상적이지만, 그 가상씨나리오에 등장하는 핵미사일렬차는 가공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한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핵미사일렬차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1) 열차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은 핵미사일렬차는 외형과 크기가 화물렬차와 똑같고, 차체도색도 똑같이 했기 때문에 미국 정찰위성과 첩보위성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다. 완벽한 위장술이다. 그에 비해, 차량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은 대형 발사대차는 외형과 크기가 화물차보다 훨씬 크고, 차체도색도 다르게 했기 때문에, 발사대차가 지하기지에서 출동하여 발사지점으로 이동하는 동안 미국 정찰위성의 추적을 받을 위험이 있다. 전시상황에서 정찰위성의 추적을 따돌린다는 말은 적국의 선제핵공격을 피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선제핵공격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가장 우월한 이동식 핵탄발사체계는 전략잠수함과 핵미사일렬차다. 조선은 전략잠수함과 핵미사일렬차를 모두 보유한 핵강국이다. 

 

(2) 지난 시기 소련군 전략군이 핵미사일렬차를 실전배치하여 운용하였던 경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소련의 핵미사일렬차는 디젤기관차 3량이 끌었다.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너무 무거워 디젤기관차를 3량이나 배치해야 했다. 또한 소련의 핵미사일렬차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각각 1발씩 실은 지붕개폐식 발사차량 3량, 발사통제설비가 설치되고 지휘관과 기술요원들이 탑승한 통제차량 1량, 디젤유와 윤활유를 실은 유류공급차량 1량, 군수물자를 실은 병참차량 1량, 탑승인원들이 28일 동안 먹을 식량을 실은 급식차량 1량, 탑승인원이 교대로 휴식, 취침하는 숙박차량 1량으로 이루어졌다. 지하군사기지를 광대무변한 대평원에 건설할 수 없었던 소련에는 핵미사일렬차가 드나드는 지하미사일기지가 없었기 때문에 핵미사일렬차를 수 천 km 구간의 철도망에서 쉬지 않고 계속 운행하는 식으로 미국 정찰위성과 첩보위성의 추적을 따돌렸다. 그래서 핵미사일렬차에 28일 동안 먹을 식량을 싣고 다니면서 지휘관과 기술요원들이 24시간 열차 안에서 숙식하며 교대근무를 했던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들은 1987년부터 2004년까지 소련군 전략군이 실전배치하여 운용한 핵미사일렬차 몰로데쯔를 촬영한 것이다. 소련은 각개발사식 다중열핵탄두 10개가 장착된 열차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 세 발을 핵미사일렬차에 탑재하였다. 미국은 소련의 핵미사일렬차를 '죽음의 열차' 또는 '유령렬차'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소련은 핵미사일렬차 12대를 운용하였다. 그런데 소련이 붕괴된 후 로씨야는 2007년에 핵미사일렬차를 폐차하였다. 위의 사진은 열핵탄두와 핵심부품들이 제거된 핵미사일렬차가 철도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것을 촬영한 것이다. 로씨야는 우월한 핵탄발사체계인 신형 핵미사일렬차를 다시 만들려는 5개년 개발사업에 착수하였지만, 경제난에 발목이 잡혀 긴축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 와중에 로씨야의 핵미사일렬차 개발사업도 중단되고 말았다.     

 

(3) 핵미사일렬차에 탑재된 열차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냉발사체계(cold-launch system)에서 발사되는 고체연료미사일이다. 열발사체계(hot-launch system)에서 발사되는 액체연료미사일은 발사되는 순간 엄청난 화염과 폭풍이 일어나기 때문에 열차에서 발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했더라도 냉발사체계를 만들지 못하면, 핵미사일렬차를 만들지 못한다.  

 

(4) 지하미사일기지에서 출동한 핵미사일렬차가 임의의 지점에서 정차하면, 개폐식 지붕이 열리고, 열차 안에 눕혀진 원통형 발사관이 유압장치에 의해 수직으로 세워지고, 원통형 발사관에서 원형덮개가 열리고,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원통형 발사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밖으로 튀어 오른다. 냉발사체계 고압가스발생기가 분출하는 고압가스에 의해 원통형 발사관에서 사출된 대륙간탄도미사일은 20m 정도 공중으로 솟구쳐 오른 뒤에 점화되고, 각도를 이리저리 꺾어가며 비행궤도에 곧바로 진입해 목표물을 향해 탄도비행을 시작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육중한 하중과 발사후폭풍에 견딜 든든한 중량차체를 만드는 기술과 냉발사체계를 만드는 기술만 있으면, 핵미사일렬차를 만들 수 있다. 조선은 중량차체제작기술과 냉발사체계제작기술을 이미 가졌으므로, 핵미사일렬차를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로 되지 않았다.  

 

(5) 핵미사일렬차에 탑재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전투부에는 핵탄두가 아니라 메가톤급 열핵탄두(수소탄두)가 장착된다. 거기에 장착되는 열핵탄두는 여러 개의 타격목표를 향해 제각기 날아가는 각개발사식 다중열핵탄두다. 그러므로 핵미사일렬차를 만들려면, 각개발사식 다중열핵탄두를 만들어야 한다. 조선은 각개발사식 다중열핵탄두를 제작하는 기술을 이미 가졌으므로, 핵미사일렬차를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로 되지 않았다.    

 

(6) 대형 발사대차는 차량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한 발밖에 싣지 못하지만, 핵미사일렬차는 열차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세 발이나 실을 수 있다. 핵미사일렬차는 위장술이나 미사일탑재능력에서 발사대차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   

 

 

3. 미국이 두려워하는 열차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

 

지난 시기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미사일렬차를 실전배치하여 운용한 나라는 소련이다. 소련군 전략군은 몰로데쯔라고 부른 핵미사일렬차를 1987년에 실전배치하여 2004년까지 운용하였다. 핵미사일렬차 몰로데쯔에는 각개발사식 다중열핵탄두 10개가 전투부에 들어간 열차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발사차량마다 한 발씩 모두 세 발 실렸다. 그러므로 핵미사일렬차 몰로데쯔 한 대는 각기 다른 타격목표를 향해 각개발사식 다중열핵탄두 3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초강력한 핵탄발사체계였다. 만일 열핵탄두 30발을 맞으면, 미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미국에게 몰로데쯔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몰로데쯔를 ‘죽음의 열차’ 또는 ‘유령렬차’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당시 소련군 전략군은 핵미사일렬차 12대를 실전배치하여 운용하였다. 소련군 전략군은 대평원에 펼쳐진 광활한 철도망에 200개소의 발사지점을 설치하였다. 당시 소련의 핵미사일렬차는 임의의 지점에 정차하여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못하고, 지정된 200개소의 발사지점에 정차하여 발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소련의 광활한 전기철도망에서 전선을 철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련의 핵미사일렬차가 전기철도화된 철길을 달리다가 지정된 발사지점에 정차하면, 철길 옆에 설치된 특수장치가 평시에 전기기관차 운행에 사용되는 철길 위의 전선을 옆으로 밀어놓은 뒤에, 원통형 발사관을 수직으로 세우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정찰위성과 첩보위성이 지정된 발사지점 200개소를 집중적으로 감시하면, 소련의 핵미사일렬차가 추적당할 위험이 있었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조선은 전기철도화된 혜산-만포선을 비전철화함으로써 지난 시기 소련의 핵미사일렬차가 지녔던 취약성을 완전히 극복하였다. 

 

그런데 소련이 붕괴된 후, 로씨야는 미국과 체결한 전략무기감축협정에 따라 핵미사일렬차 몰로데쯔를 2007년에 폐차하였다. 핵미사일렬차 12대 가운데 2대가 열핵탄두와 핵심부품들이 제거된 채 살아남아 쌍끄뜨뻬쩨르부르그에 있는 철도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었다.

 

그러나 핵미사일렬차가 가장 우월한 핵탄발사체계라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는 로씨야는 핵미사일렬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2014년에 로씨야는 바르꾸진이라고 불리는 신형 핵미사일렬차를 제작하기 위한 5개년 개발사업에 착수하였다. 당시 로씨야가 개발하기 시작한 핵미사일렬차 바르꾸진에는 2010년부터 생산되는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RS-24 야르스가 탑재될 예정이었다. 바르꾸진 설계를 맡은 모스크바열공학연구소는 전술핵폭탄이 몇 백 m 밖에서 터져도 견딜 수 있는 세계 최강의 방탄-방충격-방화염차체로 핵미사일렬차를 설계하였다. 로씨야는 올해 2019년까지 핵미사일렬차 바르꾸진 개발사업을 완료하기로 예정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제재조치와 국제석유가격 하락으로 악화된 경제난이 로씨야의 발목을 잡았다. 경제난을 겪는 로씨야는 신형 무장장비를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10만톤급 핵추진 항공모함 개발사업을 경항공모함 개발사업으로 대체하였고, 2,300대를 생산하려던 차세대 주력전차 아르마타를 100대만 생산하기로 대폭 감축하는 등 무장장비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는 긴축조치를 취했는데, 그 와중에 휩쓸린 핵미사일렬차 개발사업은 2017년 12월에 중단되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중국의 지하미사일기지에서 전략군 병사들이 핵미사일렬차 앞에 도열한 장면이다. 이 사진을 보면, 중국의 지하미사일기지에 철길이 복선으로 깔렸고, 핵미사일렬차가 원통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련의 핵미사일렬차 몰로데쯔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2015년 12월 5일 중국은 핵미사일렬차에서 둥펑-41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하였다.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둥펑-14는 각개발사식 다중열핵탄두 10~12개를 장착한 초강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중국의 핵미사일렬차에는 둥펑-14가 세 발씩 탑재된다. 만일 중국이 핵미사일렬차에 실린 메가톤급 열핵탄두 30발을 미국 본토를 향해 모두 발사하면, 미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다. 핵미사일렬차는 상상을 초월하는 초강력한 전략무기다.     

 

경제난에 발목이 잡힌 로씨야는 핵미사일렬차개발사업을 중단하였지만, 로씨야의 뒤를 이어 핵미사일렬차 개발에 뛰어든 중국은 자기의 개발사업을 중단 없이 밀고나갔다. 미국 중앙정보국 정보자료를 인용한 온라인매체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12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2015년 12월 5일 중국은 핵미사일렬차에서 둥펑-41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하였다고 한다. 둥펑-41은 각개발사식 다중열핵탄두 10~12개를 장착한 초강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2015년 12월 31일 중국 국방부는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열차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는 <워싱턴자유횃불>의 보도내용을 확인하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오늘 중국은 핵미사일렬차를 실전배치하여 운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4. 출동명령 대기하는 조선의 핵미사일렬차

 

조선에서는 핵미사일렬차를 어떻게 개발하였을까?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서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조선에서 핵미사일렬차가 개발되었음을 뚜렷이 말해주고 있다.

 

(1) 2017년 2월 12일과 5월 22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중거리전략미사일 북극성-2형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조선에서 전략미사일이라고 하면, 핵탄두 또는 열핵탄두(수소탄두)가 장착된 미사일을 뜻한다. 조선의 전략미사일 동체에는 일련번호가 쓰여 있는데, 일련번호 앞에 적혀있는 ‘ㅈ’은 전략미사일을 표시한 것이다. 핵탄두 또는 열핵탄두가 장착된 신형 중거리전략미사일 북극성-2형은 원통형 발사관에서 냉발사체계로 발사되는 고체연료미사일이다. 조선이 100% 자체기술로 개발한 고체연료미사일을 ‘북극성-2’라고 부르지 않고, ‘북극성-2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고체연료미사일이 몇 가지 서로 다른 유형으로 개발되었음을 말해준다. 

 

2017년 2월 12일과 5월 22일에 각각 시험발사된 북극성-2형은 무한궤도식 발사대차(조선에서는 리대식 발사대차라고 부름)에 실린 원통형 발사관에서 발사되었다. 그런데 북극성-2형 중거리전략미사일이 들어간 원통형 발사관은 길이와 지름이 너무 커서 무한궤도식 발사대차에 어울리지 않는다. 발사현장을 촬영한 보도사진을 보면, 무한궤도식 발사대차 앞뒤로 원통형 발사관이 길게 나와 있어서 매우 불균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북극형-2형 중거리전략미사일이 들어간 원통형 발사관이 무한궤도식 발사대차가 아니라 핵미사일렬차에 탑재될 수 있게 설계, 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북극형-2형은 핵미사일렬차에서 발사되는 열차발사식 중거리전략미사일인 것이다. 

   

(2) 탄체길이가 12m인 북극형-2형 중거리전략미사일은 2단형으로 설계되었는데, 핵미사일렬차에 실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탄체길이가 20m 정도 되어야 하며, 3단형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미 10여 년 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 밑에 화성-13 대륙간탄도미사일을 3단형으로 설계하여 제작하였던 조선이 핵미사일렬차에 탑재할 3단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쉽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7년 5월 22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북극성-2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두 번째로 시험발사하는 장면이다. 탄체길이가 12m인 북극성-2형은 원통형 발사관에서 발사되는 2단형 고체연료미사일이다. 무한궤도식 발사대차가 원통형 발사관을 수직으로 세우고, 원형덮개를 열고, 북극성-2형을 발사하는 순간, 원통형 발사관에 설치된 냉발사체계의 고압가스발생기가 분출하는 고압가스에 의해 북극성-2형이 위쪽으로 사출된다. 사출된 북극성-2형은 20m 정도 공중으로 솟구쳐 오른 뒤에 점화되고, 각도를 이리저리 꺾어가며 비행궤도에 곧바로 진입해 타격목표를 향해 탄도비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2) 2017년 4월 15일 평양에서 성대하게 진행된 태양절 경축 열병식에 여러 종류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등장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조선이 실명과 실물을 모두 공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화성-13과 화성-15인데, 그날 열병식에는 실물은 공개하였면서도 실명은 공개하지 않은 대륙간탄도미사일도 등장하였고, 실명과 실물이 전혀 공개되지 않은, 처음 보는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도 등장하였다. 그날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태백산’이라는 차종명칭이 차체 앞부분에 선명하게 새겨진 7축14륜 발사대차에 실려 있었다. 7축14륜 발사대차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직 시험발사를 하지 않은 이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북극성 계렬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화성 계렬은 발사판 위에 수직으로 세워놓고 발사하는 액체연료미사일이고, 북극성 계렬은 냉발사체계로 작동되는 원통형 발사관에서 사출되는 고체연료미사일이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이 북극성-2형이므로,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북극성-3형이 아닐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열병식에 나타난 7축14륜 발사대차에 거대한 원통형 발사관이 실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원통형 발사관에 들어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차량발사식과 열차발사식으로 각각 제작되는 것이므로, 원통형 발사관을 실은 발사대차가 있으면, 원통형 발사관을 실은 핵미사일렬차도 당연히 있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이 실전배치한 최신형 둥펑-41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차량발사식 유형과 열차발사식 유형으로 각각 제작되었고, 따라서 둥펑-41이 들어간 원통형 발사관을 실은 발사대차도 있고, 둥펑-41이 들어간 원통형 발사관을 실은 핵미사일렬차도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면, 7축14륜 발사대차에 실은 원통형 발사관과 똑같이 생긴 원통형 발사관을 실은 핵미사일열차가 조선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7년 4월 15일 태양절 경축 열병식에 거대한 원통형 발사관을 싣고 등장한 7축14륜 발사대차들이 행진하는 장면이다. 사진에 나타난 원통형 발사관에는 북극성-3형이라고 불리는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들어간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에 나타난 원통형 발사관은 7축14륜 발사대차에 실렸지만, 그와 똑같은 원통형 발사관은 핵미사일렬차에도 실린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둥펑-41이 들어간 원통형 발사관을 실은 발사대차도 있고, 둥펑-41이 들어간 원통형 발사관을 실은 핵미사일렬차도 있다. 조선도 그와 마찬가지로 원통형 발사관을 발사대차와 핵미사일렬차에 각각 탑재한다.     

 

(3) 2017년 7월 26일 조선의 온라인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세계가 예상하는 조미대결전의 승자’라는 제목의 영상편집물을 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선의 지하요새 출입구를 촬영한 사진 두 장이 그 영상편집물에 들어있었다. 출입구에 설치된,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미닫이식 강철차폐문이 전기장치로 움직이는 모습이 촬영된 사진이다. 한 눈에 봐도, 매우 견고한 방탄-방충격-방화염시설이 분명하고, 미국의 지하관통폭탄으로 파괴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핵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지하요새로 보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하요새 안으로 두 줄기 강철궤도가 나있다는 사실이다. 사진 속의 지하요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들어있는 원통형 발사관을 탑재한 핵미사일렬차가 드나드는 지하미사일기지인 것이다. 지하요새 출입구를 보여주는 두 장의 사진은 조선이 핵미사일렬차를 실전배치하였음을 세상에 알렸다. <사진 6>   

 

▲ <사진 6> 위의 두 사진은 2017년 7월 26일 조선의 온라인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에 실린 '세계가 예상하는 조미대결전의 승자'라는 제목의 영상편집물에 나오는, 조선의 지하요새 출입구를 촬영한 것이다. 출입구에 설치된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미닫이식 강철차폐문이 전기장치로 움직이는데, 매우 견고한 방탄-방충격-방화염시설이 분명하다. 조선 각지에 건설된 지하요새들은 통신설비, 전력공급시설, 조명설비, 급수시설, 환기시설, 방습시설을 완비하였다. 조선의 지하요새는 미국의 지하관통폭탄으로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핵공격에도 견딜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진에 보이는 지하요새 안으로 두 줄기 강철궤도가 나있다는 사실이다. 이 지하요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은 핵미사일렬차가 드나드는 지하미사일기지인 것이다.     

 

(4) 조선이 북극성 계렬의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들어간 원통형 발사관을 세상에 공개한 때로부터 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조선은 북극성 계렬의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탑재한 핵미사일렬차를 회중리 지하미사일기지에 실전배치해놓고 혜산-만포선에서 몇 차례 시험운행을 하였을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2018년 한 해 동안 혜산-만포선에서 핵미사일렬차의 기적소리를 울리며 몇 차례 시험운행을 진행하고, 성능을 판정하였지만, 외형과 크기가 화물렬차와 똑같고 차체도색도 똑같기 때문에, 미국의 첩보위성은 전혀 포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1월 1일에 발표한 신년사에서 “지난해에 우리 당과 국가와 인민이 쟁취한 특출한 성과는 국가핵무력완성의 력사적 대업을 성취한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국가핵무력완성을 세상에 선포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포한 국가핵무력완성의 의미는 2017년에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와 수소탄시험에서 성공한 것으로만 좁혀서 이해될 수 없다. 국가핵무력완성의 의미는 핵탄발사체계인 핵미사일렬차와 전략잠수함을 완성하였다는 뜻으로도 이해된다. 핵강국들이 보유한 4대 핵전략자산을 손꼽으면 핵미사일렬차, 전략잠수함, 장거리전략폭격기, 핵추진 항공모함인데, 장거리전략폭격기와 핵추진 항공모함은 광활한 영공과 영해를 가진 대국에게 필요하고, 다른 나라를 들이치는 침략전쟁에 동원되는 핵전략자산이므로, 영공과 영해가 좁은 조선에게는 필요하지 않을 뿐더러,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있는 핵강국”인 조선은 침략적 핵전략자산을 보유하지 않는다. 조선에게 필요한 것은 미국의 핵위협에 맞설 자위적 핵전략자산이다. 오늘도 회중리 지하미사일기지에서 출동명령을 대기하고 있는 핵미사일렬차가 바로 그런 자위적 핵전략자산이다. (조선의 자위적 핵전략자산인 전략잠수함에 관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우리 공화국은 마침내 그 어떤 힘으로도, 그 무엇으로써도 되돌릴 수 없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쟁억제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국가의 핵무력은 미국의 그 어떤 핵위협도 분쇄하고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됩니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합니다”라고 단언하였다. 조선이 2017년에 자위적 핵전략자산들인 대륙간탄도미사일, 열핵탄두, 핵미사일렬차, 전략잠수함을 모두 완성하였기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그처럼 확신성 있게 단언할 수 있었다.  

 

 

5. 마지막 공간이 아직 남아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신년사에서 사용한 표현을 빌리면, 조선의 핵미사일렬차는 “전체 인민이 장구한 세월 허리띠를 조이며 바라던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이다. 그런데 지난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인민이 장구한 세월 허리띠를 조이며 만들어낸” 자위적 핵전략자산을 폐기하고, 핵탄두를 떼어내어 미국에 넘기라고 요구하였다. 이것은 핵무기개발을 포기하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허황된 감언이설로 리비아의 핵개발사업을 중단시키고, 핵개발장치를 미국 본토로 반출해가고, 화학무기를 폐기시켜 무장해제를 하였을 뿐 아니라, 리비아에게 약속했던 제재조치를 해제하지 않고 되레 반란군을 사주하여 가다피 정권을 전복시킨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을 조선에게 적용해보겠다는 소리다.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발언은 불법무도한 폭언이며 조선에 대한 모욕으로 들린다. 

 

2019년 4월 6일 일본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핵포기 제안을 듣고 “얼굴을 붉히면서 일방적인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하고 그 요구를 즉각 거부하였다고 한다. 그 자리가 외교발언이 오가는 정상회담이었기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제력을 발휘하여 그 정도의 거부발언으로 끝냈지만, 만일 정상회담이 아니었더라면 격노하였을 것이다.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조선에게서 “평화수호의 보검을 빼앗으려는 날강도 미제의 우두머리”로 보일 것이니, 어찌 격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2007년 5월 17일 남북철도련결구간에서 열차시험운행을 하기 위해 남하한 북측 디젤기관차와 열차를 촬영한 것이다. 조선에서는 디젤기관차라고 하지 않고 내연기관차라고 한다. 사진 속의 디젤기관차 앞에 '내연 602'라는 표시판이 붙어있다. 조선의 핵미사일렬차도 위의 사진에 나타난 일반열차와 똑같이 생겼다. 하지만 조선의 핵미사일렬차는 미국의 핵위협을 분쇄하고, 미국의 모험적 무력도발을 제압하는 가장 강력한 자위적 핵억제력을 발휘한다. 조선은 2017년에 자위적 핵전략자산들인 대륙간탄도미사일, 열핵탄두, 핵미사일렬차, 전략잠수함을 모두 완성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국가핵무력완성을 세상에 선포하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인민이 장구한 세월 허리띠를 조이며 만들어낸 자위적 핵전략자산을 폐기하고, 핵탄두를 떼어내 미국에 넘기라는 강도적 요구를 제기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선호한다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리비아식 해법은 불법무도한 제국의 망상이다. 불법무도한 제국에게 불의 징벌을 예고하는 듯, 열차는 오늘도 혜산-만포선에서 기적소리 울린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리비아식 해법을 제안한 사실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만일 그런 사실이 조선에 알려지면, 분노한 조선인민군과 조선인민들 속에서 반트럼프 감정이 폭발하여 “날강도 트럼프놈을 핵으로 응징하자”는 과격한 요구가 빗발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조선이 대미협상을 완전히 중단하고, 제2차 조미핵대결을 벌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이 대미협상을 완전히 중단하고 제2차 조미핵대결을 벌일 때가 아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무도한 리비아식 해법에 끝내 매달린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2차 조미핵대결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겠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한 충격을 주어 불법무도한 리비아식 해법을 포기하게 만드는 마지막 선택공간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선은 그 마지막 선택공간에 집중되고 있다. 불법무도한 제국에게 불의 징벌을 예고하는 듯, 열차는 오늘도 혜산-만포선에서 기적소리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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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조선학교 학생들이 바라본 한반도 변화

[기고] 일본 조선학교를 다녀오다
 
 
 
Ⅰ.
지난해 12월에 일본 오사카에 있는 동오사카 조선 중급학교와 요코하마의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했는데, 고립된 채 유지보수조차 되어 있지 않은 학교 건물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정치인들은 북한과의 연관성을 이유로, 조선학교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하고 폐쇄하라며 지역 사회에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이처럼 일본 내 조선학교는 다른 국제학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심스럽고 위험한 것으로 취급받고 있다. 

1990년대 도쿄대학교에서 공부했을 때 동료들에게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일본 사회의 엘리트였으며 우정을 바탕으로 소수 공동체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에 상당한 호소력이 있었다. 당시 나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동료들에게 감동했다. 내가 일본의 강력한 의사 결정 커뮤니티에 들어간 미국인이 된다는 생각에 고무되어 있었다. 

그들은 조선학교에 대해 아주 낯선, 전체주의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조선학교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평범한 일본인과의 교류를 거부한다고 했다. 일본인들 눈에는 조선학교와 학생들이 이데올로기적이고 융통성이 없으며 비밀스럽고 기이한, 마치 북한 음모의 한 부분처럼 묘사되었다. 

이후 조선 고등학교에 다닌 사람을 만나 그들이 일본에서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겪은 끔찍한 차별에 대해 알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 일본 조선학교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학교>(김명준 감독, 2006) 스틸컷.


Ⅱ. 
나는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서 12년 이상 살고 있다. 도쿄대에서 공부했던 시절과는 다른 시각으로, 조선학교를 찾은 셈이다. 특히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에는 능숙하지만 일본어는 그렇지 못한 딸 레이첼과 같이 조선학교를 방문했다.  

우리가 동오사카 조선 중급학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도쿄대의 오래된 기숙사가 생각났다. 1987년 당시 도쿄대 기숙사는 수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지만, 사려 깊고 창의적인 학생들로 가득했다(비록 지금은 다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동오사카 조선 중급학교 역시 제대로 수리되어 있지 않았다. 건물 외벽의 페인트가 벗겨졌으며, 내부 콘크리트는 갈라져 있었다. 학교는 조선인 교육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우익세력에 의해 정부의 지원이 중단된 채 학교 학생들과 가족들의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지키고자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투쟁 의지는 강했다. 최근 한국과 일본 간 긴장이 높아지면서 한국에서도 조선학교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한국인을 적대시하는 우익세력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일본 내 조선학교의 투쟁 의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됐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은 토요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과외 활동에 집중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몇 시간에 걸쳐 축구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전통 한국 무용과 한국 음악을 연습하는 등 자신들의 활동에 몰입했다. 

Ⅲ. 
나는 조선학교와 학생들의 모습에 엄청난 교감을 느꼈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학교만의 특징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에는 상업적인 시설이 전혀 없었다. 어디에도 광고가 없었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이미지는 상업 디자이너가 제작한 것도 아니었다. 화장을 하거나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학생도 없었다. 학교의 장식물은 오롯이 학생들이 활동의 일부로 직접 만든 것이었다.

학교는 협동을 통해 운영되는 소규모 공동체였다. 그것은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헌신적인 몇몇 사람에 의해 한국 문화가 보존되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1987년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봤던 문화가 그대로 느껴졌다. 이에 지난 30년 동안 과도하게 상업화된 소비문화로 사라진 것을 조선학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12명의 중학생들과 마주 앉아 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고, 일본 사회가 조선학교와 학생들에게 적대적인 압력을 가할 때 대응 방법 및 그들의 생각을 들었다. 학생들은 비교적 개인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말했다. 

학교의 기본 주제는 협력이었다. 학교는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팀의 일원으로 협력하는 곳이었다. 이런 태도는 개인을 파괴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나르시스트적 소비문화에 의한 인간성 파괴를 감안할 때 그들의 문화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레이첼은 학생들과 한국어로 대화했다. 레이첼은 그들과 점심을 먹은 뒤 오사카 시내를 구경하고,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레이첼은 학생들과 오사카 시내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레이첼은 그들이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배력하는 모습에 감동받은 것처럼 보였다.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가운데)과 레이첼(가운데 왼쪽), 그리고 동오사카 조선 중급학교 학생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Ⅳ.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요코하마에 있는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했다. 김찬욱 교장과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그의 딸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아버지와 딸은 지역사회에 기반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일 양국의 대안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얼마나 노력했는지, 또 지금까지 학교가 어떤 압력을 견디며 살아남았는지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와 레이첼은 우리를 위해 다코야키를 만들어온 15명 정도의 학생들과 함께 앉았는데, 레이첼은 나는 아랑곳없이 그들과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나는 김 교장과 함께 그의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일본에서 한국어로 교육을 하고, 일본 및 전 세계에 걸친 제국주의와 식민 통치의 유산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데에 따르는 엄청난 어려움에 대해서 대화했다.  

김 교장은 일본의 심각한 사회 및 경제 문제에 관한 공개 세미나 자료의 사본을 보여주었다. 나는 조선학교가 당면한 실질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교육하면서 예술·음악·작문 등을 과외 활동이 아닌 필수 항목으로 교육하는 학습법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인상을 받았다.

Ⅴ. 
몇 달 뒤, 내 친구 가와나카 요가 가와가나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여학생 3명, 남학생 1명 등 총 4명을 각각 A, B, C, D로 표시)을 인터뷰했다. 

학생들은 노래방과 프리쿠라를 좋아하는 여느 일본 학생들과 똑같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이라는 정체성과 '분단'이라는 현실을 이해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조선학교의 교육 방식과 일본에서의 생활 방식이 나름의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 내용을 전한다. 

- 조선반도(한반도)에 통일과 평화의 징조가 보이는데, 학생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나

학생 A : 북남 수뇌회담이 진행되었을 때 이야기지요? 역사를 배우는 사람으로, 기쁜 일이지만 '겨우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다.  

학생 B : 우리가 조국을 방문할 땐 보통 중국을 경유해서 간다. 그런데 '만약 통일된다면 남한을 거쳐 평양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수업 중에 했다. 

학생 C : '조선(북한)은 사회주의이고 한국은 자본주의사회이니까, 통일되면 어떤 사회가 될까?' 같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학생 D : 우리 자신이 특별히 변한 것은 없지만, TV나 신문에서 '북조선, 북조선' 하고 방송하던 게 눈에 띄게 적어졌다. 우리가 '통일의 한길로 걸음을 때기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분위기다.  

- 일본 사람들이 조선을 더 많이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 

학생 A : 글쎄요. 직접 만나고 교류하면, 선입관이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인식 등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내 여러 고등학교와 교류하고 있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지막에는 '평범한 보통 고등학생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사실 우리는 조선을 잘 아는 조선 사람은 아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그렇다고 일본 사람도 아닌 조선과 일본 중간에 있는 느낌이랄까? '조선인'이 맞지만, 스스로를 '조선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좀 복잡하다. 경우에 따라 '조선 사람'이라고 규정되는 건 어색할 때도 있다. 다만, 이런 배경을 정확히 알고 편견 없이 평범한 한 사람으로 대해줬으면 한다. 

- 뉴스를 볼 때 어떤 미디어를 주로 이용하나. 일본의 주요 미디어가 보도하는 내용은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나 

학생 A : TV에서 정보를 얻는다.  

학생 B : '라인 뉴스'(네이버의 자회사 '라인'이 일본에서 제공하는 뉴스 서비스)에서도.

학생 C : 학교에 있는 조선(북한) 쪽 신문도 본다. 

- 다들 근처에서 사는지. 조선 학교와 지역 주민 간 교류도 궁금하다 

학생 A, B, C, D : 대부분 전차를 타고 통하교를 한다. 다소 먼 거리다. 

- 그렇다면 지역 주민과 교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가? 

학생 D : 학교 행사가 있을 때면, 선전 포스터를 전달한다.

학생 A : 평상시에는 학교 앞 긴 계단길을 정기적으로 청소하며, 지역 주민과 접점을 늘리고 있다.  

- 우익 단체 사람들에게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일본 사람 중에도 재일교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경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학생 A : 우리도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다. 자기 생각이 없으면, 작된 정보가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을 가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들과 교류할 때도 마찬가지다.  

- 일본에서의 생활, 만족하나? 노래방이나 프리쿠라('Print Club'의 일본식 발음으로, 스티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도 좋아하나?  

학생 C : 좋다.  

학생 A, B : 일본의 평범한 보통 고등학생들과 같다.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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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교착의 장기화-압박과 통제의 강화


[진단] 포스트 하노이, 한반도는 어디로? (5)
▲ 코리 가드너 미국 상원의원(공화당)이 지난 3월 7일(현지시간)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관련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미국 및 국제사회의 기준을 준수할 때까지 완벽한 제재 집행과 강력한 군사 태세, 북한 정권의 체제 고립 등을 포함한 최대 압박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 : 뉴시스]

5. 북미교착의 장기화-압박과 통제의 강화

양립할 수 없는 북미입장

북미 모두 협상의 여지는 남겨두었으나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상대에게 공을 넘겼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하노이 합의무산은 북미협상의 향배를 좌우하는 근본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때문에 어느 한쪽이 굴복하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다. 단계적 동시이행을 통한 새로운 북미관계를 추구하는 북의 입장과 최고압박을 통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강제라는 트럼프정권의 대북정책은 양립할 수 없다. 북미협상은 상당기간 교착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트럼프는 북의 비핵화 댓가로 평화협정과 주한미군철수 등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의 길로 갈 생각이 추호도 없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통한 이남에 대한 군사적 지배력을 유지한 가운데 '경제부흥'을 미끼로 북을 무장해제시키고 베트남식 개방으로 끌어내려한다. 따라서 북미협상이 재개되고 일정한 진전이 있더라도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근본적으로 폐기되지 않는 한 더 근본적인 쟁점에 부딪히게 되어있다.

문재인 정부는 포괄적 로드맵 합의와 단계적 실천을 중재안으로 내놓았으나, 북미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긴장을 완화시키는데서 역할 이상으로 북미간 의미있는 합의안으로 작동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북제제 강화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제재를 강화하지는 않겠다고 했으나 거짓말이다.
지난 3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북에 대한 '추가제재' 철회를 지시”했다고 올리고, 29일 “북한이 이미 굉장히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현시점에서 북한에 대한 추가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미국내 강화되는 대북제재강화 움직임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동을 걸고 유화책을 쓰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쇼에 불과하다.

오히려 향후 1년 동안 미국은 대북제재에 올인할 것이다.
미의회는 하노이 회담 직후 '초강력세컨더리보이컷'을 상정했다. 트럼프는 '세컨더리보이콧'을 대중 무역전쟁의 카드로 쓸 것이며, 이를 고리로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을 더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이미 미 의회는 지난달 26,27일 집중적으로 대북관련 청문회를 열고 대북제제강화목소리를 높였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21일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광범위한 추가제재안을 철회”시켰다고 언급한 미국 독자적 세컨더리 보이콧에 해당하는 추가제재를 발표했다. 제재 명단에는 중국의 ‘다롄 하이보 인터내셔널 화물 회사’와 ‘랴오닝 단싱 인터내셔널 포워딩 회사’가 포함되었다. 또한 같은 날 국무부와 해안경비대와 공동으로 대북 해상거래 주의보를 발행하여 북한(조선) 선박과 환적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 18척의 이름과 국제해사기구(IMO) 번호, 선적 정보를 공개했다. 한국 선박 ‘루니스호'와 ‘피 파이어니어호' 역시 환적의심 선박으로 지정되었고, ‘피 파이어니어호’는 한국정부가 억류중이다. 노골적인 제재강화움직임이다.

4월 2일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핵확산금지조약(NPT) 장관급 회의를 열고, 불법으로 핵을 개발한 북한(조선)을 향해 성토하는 자리를 조직했다.

인권공세도 더욱 강화할 것이다. 
3월 21일 국무부는 북 인권개선 예산으로 6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발표하고, 다음 날 유엔인권이사회는 17년 연속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계 미국인 모르스 단 북일리노이대 법대 교수를 국무부 국제형사사법대사(ambassador at large for Global Criminal Justice)에 지명했다. 단 교수의 그간의 북한관련 연구활동에 대해서는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와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찰, 주미 한국대사, 북한과 협상하는 (동아태) 차관보 등이 주목해 왔으며, 단 교수의 지명에 대해 미국 내 북한 인권 단체들과 미국내 탈북민들은 크게 반기는 분위기이다.

남북관계 통제 노골화

미국은 남북관계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압박도수를 높일 것이다.
남북사이 군사적 대결해소와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에 대해 유엔사를 앞세워 강하게 제동을 걸고 나올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는 “DMZ 올레길 개방”에 대해서도 언제 무슨 트집을 잡아 제동을 걸고 나올 지 알 수 없고, 보다 전면적인 평화정착노력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을 것이다.
또한 '워킹그룹'을 통해 남북사이 철도, 도로연결은 물론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를 제외하고는 민간교류조차 원천봉쇄하려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정부는 미국이 유엔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영변핵시설폐기 등을 끌어내는 카드로 쓰라고 제안했으나 트럼프정권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4월 1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정부는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쓸 것이나 미국은 오히려 한국정부에게 제제유지강화를 압박하는 공간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미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4월 5일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와 관련해) 모호한 적이 없었고, 미 행정부의 정책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남북협력사업에 대한 대북제재 예외 결정을 내려달라는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호소에 대해 미 국무부는 대북제재이행을 거듭 촉구하는 것으로 답했다.
한 마디로 4.27판문점선언과 9월평양선언 이행은 중대한 도전에 부닥칠 것이다.

한미일 동맹 복원과 한일관계 개선 압박

미국은 최근 악화되고 있는 한일관계 복원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으로 벌어진 갈등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일 미 국무부는 한미 외교장관 회담 결과 자료에서 “양국이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과 한미일 협력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밝히고, 하루 뒤 국무부 관계자는 “일본과 미국은 한국과 함께 국제 압박 캠페인의 최선두에 있다”고 밝혔다.

4월 5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는 한·미‧일 3국 간의 유대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상원 결의안(S. Res. 67)을 가결시켰다. 결의안은 "북한(조선) 문제 해결을 비롯한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와 평화, 안정을 위해 세 나라가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공통된 위협으로 “북한(조선)의 지속적인 국제법과 인권 위반”을 지목하고 “3국 간 외교,안보 공조 강화를 위한 전략 마련과 실행이 중요하다”고 명시했다. 또한 대북제재와 관련해 “제재의 완전하고 효율적인 시행과 추가적인 대북 조치 평가를 위해, 3국이 공조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을 비롯한 다른 회원국들과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친미보수세력의 친미반북대결 공세 강화

이에 따라 남측내 친미보수세력의 반북대결공세와 세력결집 움직임 또한 더욱 강화할 것이다. 그간 주로 경제문제에 집중했던 반문재인 공세는 북미교착국면이 본격화함에 따라 대북정책에 대한 공세-남북공동선언파괴 공세로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황교안의 등장에 따라 보수세력 내부에서 반북극우세력의 헤게모니가 강화되면서 반북대결공세는 더욱 기승을 떨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정권의 대북정책이 총선을 앞두고 한국내 친미보수세력의 부활과 재결집을 통해 친미보수연합을 획책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차기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목표로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트럼프행정부 내부에서조차 '한국정부가 미국과는 다른 길을 가려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요컨대, 북미관계 교착상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중재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대북제재 강화, 남북관계 통제, 한일관계복원 압박, 친미수구세력에 대한 음성적 지원방식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노이 2차북미정상회담 합의 무산 이후의 정세를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의 이러한 행동은 한국민의 반발과 분노를 자아낼 것이나, 그것이 어떤 형태의 행동과 저항으로 이어질 지는 전적으로 한국민 자신의 몫이다.

김장호 기자  jangkim21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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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야기 그만하자는 사람들에게

현장] 4·16 세월호·김용균·황유미·대구지하철·춘천봉사활동·스텔라데이지호 산재 및 사고 유가족들과 함께한 영화 ‘생일’ 상영회

박서연 기자 psynism@mediatoday.co.kr  2019년 04월 06일 토요일
 

“먹지 마. 네 오빠는 밥도 못 먹는데 너는 지금 반찬 투정할 때야? 나가! 나가라고”

수호 엄마 순남은 오빠 옷만 사 와서 토라진 동생 예솔이 반찬 투정을 하자 나가라고 소리쳤다. 내복만 입고 집 밖으로 쫓겨난 예솔은 목 놓아 울었다. 수호 엄마도 식탁 앞에서 가슴을 쥐고 내쫓아버린 딸과 함께 울었다. 수호네 가족은 아직도 2014년 4월16일을 살고 있다.

▲ 산재 및 사고로 고인이 된 분들을 위해 영화 ‘생일’을 관람한 유가족들이 함께 일어나서 묵상하고 있다. (왼쪽부터 대구지하철 참사로 딸을 잃은 전재영씨, 세월호참사로 딸을 잃은 윤경희씨,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 생명안전 시민넷 활동가,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사고로 딸을 잃은 최영도씨) 사진=박서연 기자.
▲ 산재 및 사고로 고인이 된 분들을 위해 영화 ‘생일’을 관람한 유가족들이 함께 일어나서 묵상하고 있다. (왼쪽부터 대구지하철 참사로 딸을 잃은 전재영씨, 세월호참사로 딸을 잃은 윤경희씨,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 생명안전 시민넷 활동가,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사고로 딸을 잃은 최영도씨) 사진=박서연 기자.
 

 

수호 엄마 순남, 아빠 정일, 동생 예솔, 옆집에 사는 친구 우찬, 우찬이 엄마, 수호가 물 밖으로 밀어줘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은빈, 단짝 성준 등 영화 속 수호와 관련된 많은 사람이 아직도 수호를 잊지 못한 채 산다. 

하지만 영화는 한 번도 ‘4·16 세월호 참사’라는 단어를 구체적으로 꺼내지 않는다. 그날의 참사를 자세히 묘사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날 이후’ 수호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 ‘담담히’ 보여준다. 

영화 속 수호네 가족처럼 ‘그날 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사람들이 지난 5일 저녁 7시 CGV용산아이파크몰에 함께 모여 영화 ‘생일’을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상영회는 생명안전 시민넷과 반올림, ‘생일’ 영화사가 마련한 자리였다. 

4·16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사고,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현장실습 사고,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유가족 어머니 김미숙씨,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가족 아버지 황상기씨, tvN 고 이한빛 PD 유가족 등 총 140여명의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흐느꼈다.

영화가 슬픔을 ‘담담히’ 그려낸 것처럼 관객들도 120분의 시간 동안 ‘내내’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관객들은 슬픈 감정을 영화가 끝난 후에도 지우지 못했다. 서로를 토닥여 줬다. 영화가 끝난 직후 ‘작은 이야기 마당’이 마련돼있었지만, 15분 정도 감정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어쩌다 유가족이 됐을까? 

세월호 참사로 딸 김시연 양을 잃은 윤경희씨는 “두 번째 보는 거라 안 슬플 줄 알았는데 또 울어버렸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발언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윤경희씨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 세월호 참사로 딸 김시연 양을 잃은 윤경희씨가 영화 ‘생일’을 관람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 세월호 참사로 딸 김시연 양을 잃은 윤경희씨가 영화 ‘생일’을 관람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윤경희씨는 “‘내가 어쩌다 세월호 유가족이 돼서 마이크를 잡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자체가 너무 서럽다. 5년이 다 되도록 한 명의 책임자도 처벌하지 못한 채 아이들의 5주기를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다른 참사 유가족분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 말하며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윤씨는 “저희 아직도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못 했다. 아직도 싸우고 있는데 그런 장면이 이 영화에 없어서 아쉽긴 해도 우리 가족들의 마음을 잘 담아줘서 감독에게 고맙다. 어려운 영화 찍어준 배우들도 고맙다. 우리 아직 안 끝났다고 이제 시작하는 거라고 국민에게 이 영화를 통해 알리고 싶다”고 말하자 관객들은 큰 박수로 응원해 줬다.

유가족은 우는 게 맞나요 웃는 게 맞나요?  

대구지하철 참사로 딸을 잃은 전재영씨도 “두 번째 보는 거라 눈물 안 흘릴 줄 알았는데 눈물이 나왔다”며 “세월호 영화임에도 감독이 많이 절제한 것 같다. 나도 저랬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정 이입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재영씨는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수호 동생인 예솔이가 물에 안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저는 사고 후 4년간 지하철을 못 탔다”면서 “제3자가 볼 땐 유가족들이 ‘울어야 할까요? 웃는 게 맞을까요?’”라고 물었다.  

전씨는 둘 다 맞다고 스스로 답하며 “본인이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게 맞다. 제3자는 그렇게 안 본다. 울면 운다고 웃으면 웃는다고 뭐라고 한다. 같이 슬퍼해 주지는 못 해도 가족 잃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 많은 사람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애가 죽으면 거기서 시간이 멈춘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영화를 보낸 내내 제가 당하고 있던 것들이 다 생각나서 마음이 너무 참담했다. 유가족들은 애가 죽으면 거기서 다 멈춰버린다”며 “4개월이 지났는데 용균이 영정사진을 보면 내가 용균이 같고 용균이가 나 같은 마음이 든다”고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다. 

김미숙씨는 “진상규명이 꼭 제대로 돼야 한다. 책임자들을 꼭 처벌받게 하겠다. 서부발전 그 기업만의 잘못이 아니다. 나라 정치가 잘못돼 자식들이 죽었다. 저는 사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제가 행복해지고 싶지도 않다”고 밝혔다. 

 

▲ 영화 ‘생일’을 함께 본 유가족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 영화 ‘생일’을 함께 본 유가족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는 “4월22일 유미 생일이다. 수호 엄마가 우울증에 걸려 자식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는데 유미 엄마도 우울증에 걸려 똑같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황상기씨는 “반올림에 접수된 피해사례가 상당히 많다. 엄청 많은데 피해자를 낳은 공무원은 한 명도 처벌 안 했다. 정부에서는 이렇게 많은 수천 명의 피해자를 낳은 삼성에 천억이 넘는 돈을 지원하고 있다”며 정부와 기업을 지적했다.

최영도씨는 2011년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사고로 딸을 잃었다. 최영도씨는 “저 역시 이 자리에 나올 줄 몰랐다. 제 딸도 경우 없이 사고를 당했다. 힘겨운 과정을 통해 4년간 싸우며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임을 밝혀냈다”며 “영화는 사건의 기록이자 결국엔 치유가 이뤄지는 과정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치유하는 과정은 다들 다르다. 누구든 재난 참사를 당할 수 있다. 주위 사람들이 희생자 가족들을 잘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영화 ‘생일’ 포스터. 사진=NEW
▲ 영화 ‘생일’ 포스터. 사진=NEW
 

 

2015년부터 안산을 방문해온 이종언 ‘생일’ 영화감독은 “참사로 인해 무너졌던 마음과 변해버린 일상들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한다. 더 많이 보고 주목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영화 관람을 직접 신청해 보러온 고등학생들은 퉁퉁 부은 눈으로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재범(15)씨는 “저는 프랑스에서 살다 한국에 왔다. 세월호 가족분들이 프랑스 와서도 이런저런 활동을 하셨다. 제 어머니가 번역으로 활동을 도왔다. 한국에 와서 세월호 참사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도 방문했었다.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태건(15)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뉴스에서 보도하고 그랬던 게 기억난다. 지나고 보니 진상도 안 밝혀지고 있다. 솔직히 세월호 이야기가 지겨웠던 적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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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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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마드리드 대사관 급습에 ‘중차대한 테러 공격’ 수사 요청

북미 2차 회담 앞두고 발생, 반북한단체 스스로 범행 밝혀
 
뉴스프로 | 2019-04-05 14:44:4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북한, 마드리드 대사관 급습에 ‘중차대한 테러 공격’ 수사 요청 
– 북미 2차 회담 앞두고 발생, 반북한단체 스스로 범행 밝혀 
– 훔친 자료 FBI와 비밀유지 조건으로 공유, 조건 깨진 듯

NBC뉴스가 North Korea calls Madrid embassy raid ‘grave terrorist attack,’ demands investigation (북한 당국 마드리드 대사관 급습은 ‘중차대한 테러 공격’이라며 수사 요청)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급습에 대한 북한 당국의 입장이 담긴 뉴스를 전했다.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급습 사건은 2차 북미회담을 앞두고 발생했으며, 그들이 미국 FBI와 훔친 정보를 공유했다는 점에서 그 배후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이다.

NBC는,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찰관계자가 FBI가 그 정보를 입수한 사실이 맞음을 확인해 주었다고 밝혔다.

기사에 따르면 급습한 조직은 자유조선, 혹은 자유한국이라는 반체제 단체로서 자신들이 대사관을 침입했다고 밝히면서 “부도덕적이고 비합법적인 정권”으로부터 북한을 해방시키는 활동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지난 2월 22일 거짓핑계로 대사관에 진입해 직원들을 묶고, 구타했으며 북한 외교관의 탈북을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컴퓨터와 디지털 파일을 훔쳐서 급히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조직들은 자신들은 폭행을 하거나 재갈을 물린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고 전한다.

기사는, 스페인이 이 사건에 대해 비밀 유지 명령을 해제하고 침입한 10명의 혐의자들 중 7명의 신원을 공개했다고 밝혔으며, 그 중 미국 거주 멕시코 국적의 아드리안 홍창과 미국 시민권자 두 명에 대해서는 국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사는, 스페인 정부의 자체 수사를 통한 용의자 신원 확인인지, 아니면 미국 당국으로부터 침입자들의 이름을 전달받았는지의 여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급습 단체는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상호 합의한 비밀유지 조건으로 미국 FBI와 엄청난 잠재적 가치를 지닌 특정한 정보를 공유했다” 고 밝혔으나 ” 비밀 유지 조건은 깨진 것 같다 ” 고 덧붙였다.

북한 국영 매체는 이 사건에 대해 외무성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서 “외교공관에 대한 불법 침입과 재외공관 점거와 강탈 행위는 국가 주권에 대한 중차대한 위반이자 극악무도한 국제법 위반” 이라며, “이런 행위는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된다”며 수사를 요청하고 있다. (글, 박수희)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nbc 뉴스의 보도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s://nbcnews.to/2HOG8hK

North Korea calls Madrid embassy raid ‘grave terrorist attack,’ demands investigation

북한, 마드리드 대사관 급습은 ‘중차대한 테러 공격’ 수사 요청

A group calling for the overthrow of Kim Jong Un has given the FBI data seized in the raid, a law enforcement source told NBC News.

김정은 체제 전복을 촉구하는 한 단체가 급습으로 확보한 자료를 FBI에 넘겼다고 한 경찰 관계자가 NBC 뉴스에 전했다.

A member of the North Korea’s embassy tells reporters not to take pictures of the diplomatic building in Madrid, Spain. on March 13, 2019.Bernat Armangue / AP file 
2019년 3월 13일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북한 대사관 직원 한 명이 기자들에게 외교관 건물의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있다.

March 31, 2019, 4:35 PM ‎KST 
By Associated Press

North Korea said Sunday it wants an investigation into a raid on its embassy in Spain last month, calling it a “grave terrorist attack” and an act of extortion that violates international law.

일요일 북한 당국은 지난 달 스페인 주재 자국 대사관 급습에 대해 “엄중한 테러 공격”이자 국제법을 위반한 강탈 행위라며 수사를 원한다고 밝혔다.

The incident occurred ahead of President Donald Trump’s second summit with leader Kim Jong Un in Hanoi on Feb. 27-28. A mysterious group calling for the overthrow of the North Korean regime has claimed responsibility.

그 사건은 2월 27일-28일 하노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발생했다. 북한 체제 전복을 촉구하는,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한 집단이 이를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The group says it handed over data stolen from the raid to the FBI, and a law enforcement source familiar with the matter confirmed to NBC News that the bureau has received the information.

그 단체는 이번 급습에서 확보한 자료들을 FBI에 넘겼다고 밝히고 있으며 그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찰 관계자는 FBI가 그 정보를 받았음을 NBC뉴스에 확인해 주었다.

The North’s official media quoted a Foreign Ministry spokesman as saying that an illegal intrusion into and occupation of a diplomatic mission and an act of extortion are a grave breach of the state sovereignty and a flagrant violation of international law, “and this kind of act should never be tolerated.”

북한 국영 매체는 외무성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서 “외교공관에 대한 불법 침입과 재외공관 점거와 강탈 행위는 국가 주권에 대한 중차대한 위반이자 극악무도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이런 행위는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He claimed an armed group tortured the staff and suggested they stole communications gear.

외무성 대변인은 무장한 조직이 직원을 고문했다고 주방하며 그들이 통신 장비를 훔쳤다고 말했다.

FBI has data stolen from North Korea embassy by anti-regime group : 
https://nbcnews.to/2Uq7CQJ

Spanish authorities have accused a 10-member gang of entering the embassy on Feb. 22 under a false pretext, beating and tying up the staff, trying unsuccessfully to persuade an accredited North Korean diplomat to defect, and making off with computers and digital files.

지난 2월 22일 스페인 당국은 10명의 일당이 거짓 핑계를 만들어 대사관에 진입해 직원들을 구타하고 묶고, 공인된 북한 외교관의 탈북을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했으며, 컴퓨터와 디지털 파일을 훔쳐서 달아났다는 혐의를 제기했다.

The anti-regime group, Free Joseon, or Free Korea, has claimed responsibility for the intrusion, though it denies beating or gagging any of the embassy personnel. The group, also known as Cheollima Civil Defense, portrays itself as a movement to liberate North Korea from an “immoral and illegitimate regime.”

자유 조선 혹은 자유 한국이라는 이름의 이 반체제 단체는 그 침입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대사관 직원을 폭행하거나 재갈을 물린 것을 부인한다. 천리마 민방위라고도 알려진 그 단체는 스스로를 “부도덕적이고 비합법적인 정권”으로부터 북한을 해방시키기 위해 활동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The group said on Tuesday it had no contact with any foreign government before the intrusion but said it had offered information of “enormous potential value to the FBI” after the raid.

지난 화요일, 그 조직은 침입 이전에 외국 정부와 접촉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급습 이후 “FBI에 엄청난 잠재적 가치 지닌” 정보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Spain has issued two international arrest warrants in the case, one for a Mexican national residing in the U.S., Adrian Hong Chang, and the other for an American citizen. After lifting a secrecy order in the case, a Spanish investigating judge revealed the identities of seven of the alleged 10 intruders in a court document on Tuesday.

스페인은 그 사건에 대해 두 명의 외국인에게 국제 체포 영장을 발부했는데, 하나는 미국에 거주하는 멕시코 국적의 아드리안 홍 창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미국 시민권자다. 이번 사건의 비밀 유지 명령을 해제한 스페인 수사 책임 판사는 화요일 법원 문서를 통해 10명의 침입자 혐의자들 중 7명의 신원을 공개했다.

It remained unclear if the Spanish government identified the suspects in the raid through their own investigation or whether U.S. authorities had passed on the names of the alleged intruders.

스페인 정부가 자체 수사를 통해 급습 사건의 용의자들 신원을 확인했는지, 아니면 미국 당국이 혐의를 받고 있는 침입자들의 이름을 전달했는지 여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The group has alleged the U.S. betrayed its trust after members approached the FBI. 그 단체는 조직원들이 FBI에 접근한 후 미국이 신뢰를 저버렸다고 주장했다.

“The organization shared certain information of enormous potential value with the FBI in the United States, under mutually agreed terms of confidentiality,” the group said on its website. “This information was shared voluntarily and on their request, not our own. Those terms appear to have been broken.

그 단체는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조직은 상호 합의한 비밀유지 조건으로 미국 FBI와 엄청난 잠재적 가치를 지닌 특정한 정보를 공유했다”고 밝혔고, “이 정보는 자발적으로 그리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공유된 것이지 우리의 요청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 조건들이 깨진 것 같다”고 말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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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혁명 정신·자주적인 자세로 나라 다시 설계해야"

임정기념사업회 등 '3.1대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 학술회의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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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5  18: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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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헌법이론실무학회가 공동주최한 '3.1대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민주공화국 100년의 평가와 과제'주제의 학술회의가 5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대외적으로 지금 우리는 의존을 줄여야 한다.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보다 더 자주적이어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주요 정책 결정에 국민들이 가급적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1대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민주공화국 100년의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린 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컨벤션홀.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1대혁명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의 탄생'이라는 주제의 발제에서 "3.1대혁명의 위대한 정신, 즉 정의·자유·민주·평화의 정신을 기초로 자주(독립)적인 자세로 대한민국을 다시 설계함으로써 순국 선열들의 피에 보답하는 것이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오등(吾等)', 즉 '우리 대한국민'의 책무"라고 밝혔다. 

3.1대혁명정신이 지금 우리에게 부여한 가장 중요한 책무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토론자의 질문에는 '2016년 촛불혁명은 대한민국 전 지역에서 거의 2천만명에 가까운 국민들이 비폭력적·평화적 방법으로 참여하고 정권을 교체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건설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3.1대혁명과 가장 유사한 패턴이라며, '대외 자주'와 '국민주권'을 열쇠말로 제시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이번 학술회의를 공동주최한 헌법이론실무학회 회장이기도 한 김 교수는 발제를 통해 3.1운동의 혁명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4.19혁명, 6월 시민혁명, 촛불혁명과도 구별된다며 '3.1대혁명'이라는 헌사를 바쳤다.

   
▲ 김선택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 교수는 먼저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부터 동년 5월 말까지 세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남녀와 노소, 빈부와 귀천, 종교와 사상을 가리지 않고 200만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한반도 전역과 해외 각지에서 대대적으로 벌인 '독립만세운동'을 일반적으로 널리 부르는 중립적인, 즉 서술적인 명칭"이라고 정의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세계 질서의 재편과정에서 패전국 식민지의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자결주의가 대두되고 이를 논의하기 위해 파리강화회의가 소집되는 것을 포착한 젊은 독립지사들이 일본과 같은 전승국의 식민지도 독립시켜야 한다는 공론화를 시도하기 위해 조선대표단 파견과 함께 조선민 대다수가 독립을 원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기 위해 만세운동을 기획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3.1운동 참가자들의 재판기록에 따르면, 당시 독립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했다기 보다는 조선민족의 독립의지를 대대적으로 과시하여 파리강화회의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고 설명했다.

또 3.1운동은 "조선이 국가로서 독립하는 것만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개국 이래 수천년에 걸쳐 전승되어 온 전제군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급격하게 변경하는, 즉 국체변경을 기도"한 것이며, "만세를 부르는 방식의 평화적 시위였지만 일제는 내란죄로 의율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혁명적 성격을 부각했다.

김 교수는 최근 스테판 가드봄(Stephen Gardbaum) 미국 UCLA 로스쿨 교수가 발표한 '정치적 변혁을 혁명으로 분류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날 것 그대로 인민의 헌법제정권력이 직접 나타나는 진정한 형태의 대중운동 △점진적인 것과는 구분되는 급격히 빠른 속도의 변혁 △개혁과는 다른 근본적인 변화 △법외적인 또는 비상규적인 방식 또는 절차의 사용 등 기준에 비추어 3.1운동은 '혁명'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폭력이냐 비폭력이냐가 혁명의 본질적인 징표는 아니며, 오히려 "3.1운동에서 명시적으로 내세운 비폭력·평화적 운동방식이야말로 그 전까지의 혁명과는 비교되는 태도였고 이를 통해 3.1운동이 혁명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는 찬사를 듣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제 강점기에도 3.1운동을 혁명으로 규정한 예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1944년 대한민국(임시)헌법 제5차 개정헌법(대한민국임시헌장) 전문에서 '삼일대혁명'이라고 명명하고 1948년 헌법 제정 당시 초안이었던 '유진오-행정연구회 공동안'에도 '3.1혁명'으로 표기되어 있었으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논란끝에 3.1운동으로 개명된 역사를 소개하면서는 '참으로 괴이쩍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3.1혁명을 넘어서 3.1대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는 "본시 '대혁명'이라 부르는 것은 혁명들 가운데서 특히 중요한, 역사적으로 분수령이 될만한 커다른 의의를 가지는 '혁명'에 바쳐지는 헌사와 같은 것"이라며 "3.1운동은 혁명이며, 혁명 중에서도 '대혁명'이라고 불리울만한 혁명이다. 그러나 특별히 평가절하적인 뉘앙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3.1운동이라는 범칭을 써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지사들이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건립하고 그 헌법으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며, 이에 따라 국가를 운영할 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정의 △자유 △민주 △평화로 요약되는 3.1대혁명 정신은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체화되었으나 분단이라는 비극적 현대사를 염두에 두고 보면 "100년전 우리가 소원했던 형태의 근대적인 국민국가는 아직도 미완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 김형성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좌장(가운데)으로 하여 김선택 교수(왼쪽 세번째)가 제1주제에 대한 발제를 하고 김재영 변호사, 전종익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토론자로, 김광재 변호사(오른쪽 세번째)가 제2주제에 대한 발제를 하고 이영록 조선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홍석노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연구부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후원으로 개최된 이번 학술회의는 1,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김형성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좌장으로 하여 김선택 교수가 제1주제(3.1대혁명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의 탄생), 김광재 변호사가 제2주제(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과 제헌헌법의 연속성), 방승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제3주제(민주공화국 100년의 과제와 현행 헌법), 정태호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제4주제(민주공화국 완성을 위한 헌법개정)에 대해 각각 발제를 했다.

전종익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재영 변호사, 이영록 조선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홍석노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연구부장,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한주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연구교수, 김종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정인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연구교수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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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불탄 농장의 소 울음과 눈물 삼키는 주인 “울면 뭐해”

대형 산불 피해 본 강원도 고성군, 불길은 잡혔지만..막막한 주민들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9-04-06 07:43:31
수정 2019-04-06 07: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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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때문에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
산불 때문에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민중의소리
 
 

“여기서 죽겠구나 싶었어. 앞에 차에 불이 붙고, 불붙은 트럭이 나뒹굴고, 버스 바퀴에도 불붙어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 대피하고 난리가 아니었어.”

강원도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택시기사 조성근(63) 씨의 말이다. 속초시에 산불이 완전히 진압되고 난 뒤인 5일 오후 5시30분경, 조 씨는 기자를 태우고 산불 피해가 가장 심했던 곳으로 이동하면서 전날 자신이 겪은 일을 생생하게 쏟아냈다. 속초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다는 그는, 격양된 어조로 “평생 이런 산불은 처음”이라고 혀를 찼다.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민중의소리

비명에 가까운 소 울음소리 
새까맣게 그을려 힘없이 앉아있는 백구 
폐허가 되어버린 용촌 1리 마을
 

택시기사 조 씨는 전날 밤 8시10분경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군인을 태우고, ‘공현진항’ 근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산불과 마주쳤다. 산불이 발생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해안가 쪽으로 내려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공현진까지 왕복 해봐야 20분밖에 안 걸리거든. 그런데 갔다 오니까, 이미 불이 도로변까지 넘어 온 거야. 거기 도로에 갇혀서 죽는 줄만 알았어. 앞은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이지. 차는 막혀서 도무지 앞으로 안 가지. 앞차는 불이 붙었지…그나마 매일 다녀본 길이라서 겨우겨우 빠져나왔어. 산불이 그렇게 무서운 줄 처음 알았다니까.” 

실제로 그가 전날 공포를 느꼈던 강원 고성군 용촌1리 근처 도로변에 다다르자, 전소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변에 위치한 4층짜리 ‘영동극동방송’ 건물은 새까맣게 불타 있었고, 용촌1리에 다다르자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도로변 주택들은 대부분 시멘트로 된 기둥과 벽만 남기고 폐허가 돼 있었다. 곳곳에, 불타 앙상한 뼈대만 남은 차량들이 보였다. 불탄 차량의 배터리가 녹았는지 수은처럼 보이는 물질이 피처럼 흘러나와 굳어 있기도 했다.

완전히 전소된 영동극동방송 건물
완전히 전소된 영동극동방송 건물ⓒ민중의소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민중의소리

마을 안쪽은 더욱 심각했다. 산불은 산등성이를 타고 마을을 덮쳤다.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전날 바람은 가만히 서 있는 차량을 좌우로 흔들 정도였다고 한다. 산불은 천천히 옮겨 붙은 게 아니라, 커다란 불똥이 날아와 마을을 덮쳤다고 한다. 그렇게 태워버린 집이 30여 채가 넘는다고 용촌1리 마을사람들은 말했다. 

산등성이 바로 밑에 위치한 교회는 불길이 할퀴고 지나간 듯 한쪽만 까맣게 그을린 채 였다. 그렇지만 교회 다음부터 위치한 주택들은 완전히 전소돼 벽돌까지 무너져 있었다. 불타버린 집 앞엔, 온 몸에 그을음을 뒤집어 써 흰 털이 회색털이 되어버린 백구가 힘없이 앉아 있었다. 다리를 다쳤는지,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를 고수했다. 

또 어디선가 비명소리에 가까운 소 울음소리가 여러 차례 들리기도 했다.

그을음을 온 몸에 뒤집어 쓴 강아지
그을음을 온 몸에 뒤집어 쓴 강아지ⓒ민중의소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민중의소리

농장을 잃은 60대 농장주의 허탈한 웃음 
“울면 뭐해. 웃어야지. 먹어야지. 살아야지”
 

완전히 불타버린 농장 앞에서 60대 농장주를 만났다. 그나마 그에게 다행인 것은 그의 붉은 벽돌집은 불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 앞 농장과 주변 주택들은 모두 불타 무너졌지만, 용케 그의 집은 멀쩡했다. 

“마을회관에서 피신하라고 방송하고 난리였어. 어제 마을사람들 모두 피신했었어. 그러고 돌아왔는데, 우리 집은 타지 않았더라고.” 

하지만 그가 키우던 6마리의 소 중 2마리가 죽었다고 했다. 살아남은 소조차 온전하지 못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아있는 소들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고, 등이 모두 까지고 그을렸다고 했다. “살아 있는 게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살아남은 소에게 줄 먹이도 모두 불타버렸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통스러워 했다.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부를 묻는 지인의 전화였다. 그는 지인의 걱정에 ‘허허’ 웃으며 “살아있는 게 다행이지”라고 애써 밝게 답했다.

“울어서 소용 있어? 웃어야지. (밥) 다 먹었지, 먹어야 살지. 안 먹으면 죽는데. 에이 전화만 해줘도 얼마나 고마운데. 고마워. 고마워.” 

그렇게 그가 통화를 하는 동안에도, 소의 울음소리가 몇 차례 더 들려왔다. 고통에 겨워 내는 소리 같았다. 차마 소의 상태를 확인하러 갈 순 없었다. 지인과 통화하며 웃었지만, 그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언제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가득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성(姓)을 물었다. 하지만 그는 하루 종일 기자들에게 시달렸다며 “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아까도 ○○일보 기자가 와서, 이름하고 나이를 계속 알려달라고 하더라고. 그게 왜 필요해. 피해 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데, 이렇게 얘기를 해주면 됐지, 왜 이름과 나이까지 밝히라는 거야. 기자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지들 편리하려고 하는 거잖아. 신문이고 방송이고 뭐고 내 이름 나오기만 해 봐, 가만 안 둔다고 했어.”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건물들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건물들ⓒ민중의소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민중의소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민중의소리

펜션, 공장, 연구소, 대조영 촬영지 모두 탔다 

최초 산불발생지로 추정되는 장소로 향했다. 용촌천을 따라 고성군 토성면 일성설악콘도가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콘도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는 길에도 전소된 펜션, 공장, 연구소, 폐차장, 택배회사 등이 눈에 들어왔다. 

드라마 ‘대조영’ 촬영지도 폐허가 돼 있었다. 촬영지 앞 체험관과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쉼터까지도 새하얗게 불타 재만 흩날렸다. 드라마 촬영 시 사용했던 공성전 투석기, 주변 잔디와 나무 등도 모두 불에 타서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멀쩡한 것은 커다란 비석인 ‘설악씨네라마광개토대왕비’뿐이었다 

한 방송국 기자가 최초 산불이 발생됐다고 추정되는 지점에서 방송을 찍고 있다.
한 방송국 기자가 최초 산불이 발생됐다고 추정되는 지점에서 방송을 찍고 있다.ⓒ민중의소리

산불 최초 발생지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한 주유소인 것으로 추정된다. CCTV에서 불꽃이 튀는 모습이 잡힌 것이다. 한전 관계자 또한 “개폐기와 연결된 전선에 이물질이 날라와 스파크가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확한 감식 결과는 10일 뒤에나 나올 예정이다.

주유소가 불타진 않았지만, 주유소 담장 옆 ‘광케이블 매설지역’ 푯말이 세워진 들판과 숲이 모두 검게 그을려 있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 한 방송국 기자가 불탄 흔적을 가리키며 ‘산불 최초 발생지로 추정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산불 최초 발생지서 용촌1리까지 직선거리는 약 7km다. 중간엔 도로가 있었고, 용촌천이 흐르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불길은 바다 방향으로 마을을 향해 거의 일직선 형태로 내려왔다. 강한 바람이 불길을 바다 쪽으로, 마을 방향으로 옮겨붙인 모습이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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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항복 문서' 들이민 미국, 이면엔 '행정 쿠데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4/06 11:15
  • 수정일
    2019/04/06 11:1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정욱식 칼럼] 미국의 의도를 묻는다
2019.04.05 15:20:10
 

 

 

 

3월 30일 <로이터> 통신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비핵화 정의 문서'를 입수해 그 내용을 전했다. 여기에는 눈을 의심케 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여기에는 상상할 수 있는 요구가 거의 망라되어 있다. 북한이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에 넘기고, 핵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과 생물무기 및 화학무기도 폐기해야 하며, 생화학무기 개발로 전용될 수 있는 이중 용도 시설도 폐기하라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여전히 이를 두고 '빅딜 문서'라고 하지만, 엄밀한 말하면 이는 '항복 문서'에 가깝다. 이는 곧 북한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도 이를 모르지 않았을 터이다. 그래서 묻게 된다. 도대체 미국의 의도는 무엇인가?

미국이 일단 최대치를 제시해 협상 과정에서 이를 조율해 핵심적인 목표, 즉 북핵 폐기를 받아내겠다는 심사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반대로 미국이 상기한 내용을 모두 받아내겠다는 생각이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표면적으로는 대화의 시늉을 하면서도 북한의 거부를 구실삼아 다른 이익이나 목표를 추구하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확신범' 볼턴과 '정치적 야심'의 폼페이오 

주목할 점은 '비핵화 정의 문서'에 존 볼턴 백악관 안보 보좌관의 지론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것이다. 그는 작년 1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른바 '리비아 모델'을 운운해 정상회담의 좌초시킬 뻔한 적이 있었다. 이에 분개한 트럼프가 그를 한동안 대북정책 결정 과정에서 밀어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랬던 그가 2차 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해선 전면에 등장했다. 볼턴은 일종의 '확신범'에 가깝다. 북한과의 협상은 불필요하고 또한 협상도 붕괴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의 영향력이 커진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의 찰떡궁합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선 흔히 볼턴은 강경파로 폼페이오는 협상파로 일컬어지지만 이는 결코 정확한 분석이 아니다. 하원 의원 및 CIA 국장 재직 시 폼페이오도 볼턴 못지않은 강경파였다. 

하지만 국무장관으로 기용되어 북미협상 총괄 임무가 주어지면서 협상파로 인식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작년 7월 방미 때부터 강경파로서의 본색을 또다시 드러내기 시작했다. 북한이 폼페이오를 줄곧 불신하면서 트럼프와의 담판을 원했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더구나 폼페이오는 정치인이다. 그는 2020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캔자스주 상원의원으로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또한 2024년 공화당 대선 후보 하마평에도 꾸준히 오르내리고 있다. 이는 본인의 정치적 야심에 도움이 되느냐의 여부가 대북 협상의 가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3월 18일 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그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직후에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정권 관계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노이 회담이 볼턴 보좌관 때문에 '노딜(No deal)'이 된 것처럼 돼 있지만 사실 회담장에서 볼턴보다 폼페이오의 입장이 강경했다. 폼페이오는 향후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이루는 데 북한과의 안이한 타협은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봤다" 

행정적인 쿠데타가 벌어지고 있다? 

<중앙일보>는 워싱턴 소식통을 인용해, '비핵화 정의 문서'는 국무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재무부, 에너지부 등의 핵심 관계자들이 모여 누락 사안이 있는지 꼼꼼히 검토하면서 작성된 것이라며 "이 문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적으로 어정쩡한 타협을 하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보도 내용은 밥 우드워드의 책 <공포 : 백악관의 트럼프>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9월에 출간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라는 놀랍게도 '북한'이다. 또한 이 책의 결론은 미국의 현직 관료들이 대통령을 상대로 "행정적인 쿠데타"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전쟁도, 김정은과의 담판도 불사할 수 있는 트럼프에 대해 현직 관료들이 공포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한반도에서 전쟁도 평화도 아닌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미국 관료들이 '비핵화 정의 문서'를 작성하면서 북한이 이를 수용할 것이라곤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트럼프에겐 제재를 비롯한 최대의 압박을 가하면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을 것이다.

그 타이밍이 절묘했다.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헨의 의회 증언이 하노이 정상회담 일정과 정확히 일치하고 만 것이다. 트럼프는 호텔 방에서 코헨이 자신을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칭하는 게 미국 방송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을 보고는 모종의 결심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하노이에서 '노딜'을 선택해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바꾸겠다고 말이다. 동시에 김정은과의 노딜을 중국과의 무역협상 및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상업적 욕구도 작용하고 말았다. 

하여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에 하노이 정상회담 결과에 강한 유감을 표하면서 따져 물어야 한다. 왜 결정적인 순간에 북한이 거부할 것이 뻔한 문건을 들이밀어 협상을 결렬시켰냐고 말이다. 첫째 날(27일) 논의된 북미 양측의 제안을 조율하는 데 보냈어야 할 둘째 날을 왜 문건 들이밀기로 파탄시켰냐고 말이다.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한국이다. 그래서 당당해져야 한다. 미국에 사정하는 태도로는 결코 미국을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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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가 보여준 가짜뉴스 대응법

[미디어오늘 1194호 사설]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2019년 04월 06일 토요일
 

가짜뉴스의 역사는 길다. 유언비어에 시달려온 로마 황제들은 유언비어 감시자를 임명해 매일 시중의 소문을 듣고 궁정에 보고토록 했다. 64년 폭군 네로가 미쳐서 로마를 불태웠다는 뉴스도 반대파들이 조작한 가짜뉴스였다. 가짜뉴스는 소크라테스까지 죽였다. 그는 그리스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반역을 선동했다는 가짜뉴스의 희생양이 됐다.

징기스칸은 항상 공격에 앞서 첩자들을 적지에 먼저 보내 몽골 병력 수와 그들의 잔혹·무모함을 과장해서 퍼뜨렸다. 실제 징기스칸 부대는 기동력 있는 소규모 기마대에 불과했다.  

뉴욕타임스는 1964년 3월14일자 1면에 새벽에 귀가하던 28살 여성 키티 제노비스가 살해되는 걸 목격한 이웃 주민 38명 누구도 신고도, 돕지도 않았다고 보도했다. 전날 새벽 3시30분께 약 30여분 동안 뉴욕 퀸스의 한 아파트 앞에서 제노비스가 여러 차례 흉기에 찔려 숨졌다. 뉴욕타임스는 첫 공격 뒤 누군가 ‘그녀를 혼자 내버려두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범인이 잠시 도망갔다가 아무도 키티를 도우러 나오지 않자 다시 나타나 키티를 흉기로 난자했다고 썼다.  

 

▲ 1964년 3월14일 ‘뉴욕타임스’ 기사. 사진=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 1964년 3월14일 ‘뉴욕타임스’ 기사. 사진=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 1964년 뉴욕타임스 도시판 편집자 로젠탈
▲ 1964년 뉴욕타임스 도시판 편집자 로젠탈
 

이 사건은 목격자가 너무 많으면 ‘나 아니라도 누군가 신고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 방관자가 되고 만다는 심리학 용어 ‘방관자 효과’의 대표 사례로 50년 넘게 인용돼왔다. 이 사건은 미국 100여개 심리사회학 교과서에 사례로 실렸고, 이 사건으로 911 신고전화가 가동됐다. 그러나 동생 빌 제노비스가 십수년을 추적한 결과 뉴욕타임스 보도는 가짜뉴스였다.

 

 

피해자의 남동생 빌 제노비스는 2004년부터 누나 죽음의 진실을 추적했다. 12년 조사 끝에 남동생은 2016년 뉴욕타임스 보도가 가짜였다며 다큐멘터리 영화 ‘목격자’를 통해 이 사실을 공개했다.

 

애초 38명이나 되는 목격자는 없었다. 범인이 제노비스를 흉기로 공격하는 걸 본 주민은 6명에 불과했다. 피해자 비명에 4명은 가정폭력이라고 생각했고, 2명은 경찰에 전화로 신고했다. 특히 소피아 파라르라는 여성은 키티를 도우러 뛰어 내려왔고, 키티가 숨질 때 그녀를 안고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처음엔 이 사건을 단신처리했다가 주민들이 방관했다는 얘기를 들은 데스크 손에 커졌다. ‘도시의 방관자’라는 프레임을 고집했던 데스크 로젠탈은 자기가 듣고 싶은 팩트만 끌어 모으다가 대형 사고를 쳤다.  

수천년 계속된 가짜뉴스에 대응법은 두 가지다. 더 큰 가짜뉴스를 만들어 기존의 가짜뉴스를 덮거나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거다. 전자는 대부분 권력자들이 애용했다.

궁지에 몰린 네로는 자기보다 더 큰 증오의 대상이었던 기독교인이 불을 냈다고 가짜뉴스를 퍼뜨려 위기를 모면했다. 늘 여성과 이주민 같은 소수자가 더 큰 가짜뉴스의 희생자였다. 

 

▲ 가짜뉴스.
▲ 가짜뉴스.
 

뉴욕타임스는 후자를 택했다. 뉴욕타임스는 2016년 52년만에 제노비스 오보를 인정하는 사과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아직도 뉴욕타임스가 해야 할 사과기사는 많이 남아 있다. 불황에 일자리 잃은 노동자들의 생존시위에 붉은 칠을 하고 모두가 이탈리아 놈들이라며 총알 밥을 먹여야 한다고 퍼부었던 섬뜩한 사설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런 만큼 뉴욕타임스의 사과는 그냥 나오지 않았다. 제노비스 동생과 1인 미디어의 집념과 함께 미국민들의 높아진 인식이 더해졌기에 가능했다. 제 아무리 팩트체크 매체가 늘어도 이를 비웃듯 늘어나는 가짜뉴스 홍수를 막으려면 국민들 인식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7639#csidx36065f9de4f40998193434a941e67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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