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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총회, 北인권결의안 14년 연속 채택... 5년 연속 ICC 회부 권고

 
유엔총회, 北인권결의안 14년 연속 채택... 5년 연속 ICC 회부 권고
 
 
 
김원식 | 2018-12-19 08:20:5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유엔총회, 北인권결의안 14년 연속 채택... 5년 연속 ICC 회부 권고
‘가장 책임 있는 자’ 제재, ‘북한 리더십’ 겨냥... 북한, “적대 세력의 정치적 음모” 강력 반발

 

유엔총회 회의장 모습 (자료 사진)ⓒ뉴시스/AP

유엔은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채택했다.

유엔총회는 17일(현지 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본회의를 열어 북한인권결의안을 표결 없이 컨센서스(consensus, 전원합의) 방식으로 채택했다.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은 지난 2005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14년째다.

특히, 2012년과 2013년, 그리고 2016과 2017년에 이어 5번째로 결의안이 표결 없이 컨센서스 방식으로 처리됐다. 컨센서스 방식은 투표를 거치지 않는 의사결정 방식으로, 개별 국가들이 합의에 불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장일치와는 다른 형식이다.

앞서, 북한인권결의안은 지난달 15일 유엔총회에서 인권을 담당하는 제3위원회에서도 합의 방식으로 채택돼 본회의에 상정됐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공동 작성한 결의안에 우리 정부와 61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우리 정부도 결의안 채택에 동의했다.

올해 결의안도 북한 인권 상황에 특별한 진전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큰 틀에서 지난해 결의안의 기조와 문구를 사실상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대부분 북한에서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 유린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2014년 유엔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가 보고서에서 지적한 고문과 비인도적 대우, 강간, 공개처형, 비사법적·자의적 구금·처형, 적법절차 및 법치 결여, 연좌제 적용, 강제노동 등 각종 인권침해 행위를 거론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결의안은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해 반인류 범죄의 ‘가장 책임 있는 자’와 ‘북한 리더십’에 대한 선별적 제재 등 책임 규명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북한 인권의 ICC 회부 권고는 2014년부터 5년 연속이다.

올해 결의안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외교적 노력을 환영한다”는 내용이 새로 들어갔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새롭게 조성된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또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도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환영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북한은 올해도 유엔총회의 결의안 채택에 관해 강력하게 반발했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이날 “결의안에 언급된 인권침해 사례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몇몇 탈북자들에 의해 조작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특히, 결의안 작성을 주도한 일본에 대해서도 “전범 국가인 일본이 인권을 언급하는 것이 놀랍고 우려스럽다”면서 이는 북한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북한의 정치, 사회제도를 전복하려는 적대세력의 정치적 음모라면서, “결의안을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거부한다”고 강조했다.

*‘민중의소리’에 게재된 필자의 기사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1&table=newyork&uid=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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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물때까치가 희귀 겨울철새가 되었을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12/19 09:20
  • 수정일
    2018/12/19 09:2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윤순영 2018. 12. 17
조회수 1396 추천수 1
 

작지만 맹금류처럼…두세 배 무거운 먹잇감도 사냥

환경변화에 민감…먹이생태계 변화 지표종 될 수도

 

크기변환_YSY_8465.jpg» 희귀조류 물때까치.

한강하구 공릉천 일대의 농경지에 물때까치가 해마다 찾아와 월동을 한다. 지난 10월 초부터 물때까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리를 이루지 않고 홀로 지내거나 암수가 함께 생활한다. 물때까치는 양서파충류, 포유류, 곤충 등 다양한 육식먹이를 사냥하며 월동기간에는 작은 새와 들쥐를 주식으로 한다.

크기변환_DSC_2292.jpg» 나뭇가지에 앉아 사냥감을 살핀다.

12월 12일, 물때까치가 넓은 초지와 농경지의 나무 꼭대기나 전선에 몸을 세워 앉은 채, 꼬리를 끊임없이 아래위로 움직이며 사냥감이 있을만한 곳을 살펴본다. 풀섶 위는 약간의 정지비행으로 탐색하고, 땅 위의 먹이를 찾기 위해 지표면 가까이 날다가 급상승하여 나뭇가지에 앉거나 전깃줄에 앉는다.

크기변환_DSC_2429.jpg» 사냥감을 발견하면 급강하한다.

크기변환_YSY_8497.jpg» 물때까치의 정지비행.

논으로 내려앉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반경 300미터를 샅샅이 수색한다. 물때까치는 사냥터가 정해지면 그 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볏짚 위에 내려앉은 물때까치가 주변을 집중적으로 수색한다. 뭔가를 발견해 이리저리 몰고 있는 듯하다. 행동이 빨라지고 몸을 볏짚 안으로 깊숙이 집어넣었다가 꺼냈다가 한다.

물때까치가 땃쥐의 목을 정확히 물었다. 순식간에 사냥이 끝났다. 물때까치는 몸에 비해 큰 머리, 넓은 턱, 긴 꼬리를 가졌고 튼튼한 부리는 맹금류처럼 아래로 굽어 있으며 끝은 매우 날카롭다. 부리의 강점을 최대한 이용해 종종 자기 체중보다 2∼3배 무거운 먹이를 사냥하기도 하는 등 작지만 맹금류만큼이나 엄청난 공격성을 지녔다.

크기변환_YSY_8677.jpg» 사냥감을 찾는 물때까치.

크기변환_YSY_8663.jpg» 사냥감 찾기가 여의치 않아 자리를 옮기는 물때까치.

그러나 물때까치는 발톱이 맹금류처럼 강하지 않아 움켜쥐고 먹이를 찢어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먹이를 나뭇가지나 철사에 꽂아 놓고 먹는 것이 수월하다. 부리가 쪼아 먹기보다 찢어먹기에 잘 발달되어 있어 마치 잔인한 도살자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성질 괴팍한 새로 보일지 모르지만 신체적으로 발톱과 다리가 위력적인 부리를  따라가지 못해 극복해 가며 사는 어려움이 있다고 보는 편이 좋겠다. 이들의 사냥감 전시는 과시, 구애, 영역표시 등 생존전략적인 표현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지속적인 행동 관찰을 통해 보다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크기변환_포맷변환_포맷변환.jpg» 물때까치가 땃쥐를 사냥해 나뭇가지에 꽂아놓았다.

때까치과의 조류는 식성이 다양해서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데에 이용되기도 한다. 환경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때까치의 변화는 때까치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 내의 먹이생태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어 지표 종으로서 연구가치가 있는 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1960년대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6~7월 무렵 재때까치와 물때까치 새끼를 둥지에서 꺼내오거나 온화하고 앞이 트인 숲을 좋아해 둥지에서 밖으로 갓 나온 새끼를 계속해 따라다니며나무를 흔들어 앉지 못하게 해 떨어진 때까치를 잡기도 했다. 독자 여러분도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개구리를 잡아 먹이로 주고 넓은 턱 때문에 턱걸이를 시켜가며 키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길이 들면 어깨 위에 앉아 재롱을 부리는 등 사람을 잘 따르는 새이기도 했다.

크기변환_YSY_8690.jpg» 사냥감을 발견한 눈치다.

크기변환_YSY_8700.jpg» 재빨리 공격하는 물때까치.

그러나 환경변화로 인해 지금의 물때까치는 한강, 임진강 하구, 강원도의 비무장지대 등지에서 드물게 관찰될 정도로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겨울철새다. 중국 북부와 만주 지방에서 번식하고 중국 중·남부와 한국 등에서 월동한다. 다른 새들에 비해 번식지와 월동지가 매우 좁고 개체 수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보호할 필요가 있다.

크기변환_YSY_8705.jpg» 물때까치가 볏짚 깊숙이 머리를 넣었다.

크기변환_YSY_8707.jpg» 땃쥐 사냥에 성공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8.15 광복 이후 우리나라는 가난한 나라였다. 자원이 부족하고 식량이 부족했던 우리나라는 6.25 전쟁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생산 시설이 파괴되어 더욱 어려워졌다. 60년대에는 경공업을 중심으로 노동력이 필요했고 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발전하여 우리나라는 큰 환경변화를 겪었다.

새삼스럽게 텃새, 겨울철새, 여름철새를 분류한다는 것이 사람의 탓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환경이 좋았던 시절 4계절 우리 곁에 있었던 새들이 겨울철새, 여름철새로 나뉘어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있는 씁쓸한 변화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크기변환_YSY_8723.jpg» 만족한 표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텃새인 때까치, 봄과 여름에 관찰되는 칡때까치와 노랑때까치, 철새통과시기에는 긴꼬리때까치, 가을과 겨울엔 재때까치와 물때까치 등 6종의 때까치를 일반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그중에 가장 큰 물때까치의 몸길이는 31cm이다. 눈 선은 검은색이고 흰색 눈썹선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재때까치와 비슷해 보이지만 물때까치가 몸이 더 크고 꼬리가 길다. 등과 머리꼭대기는 연한 회색이다. 부리는 검고 아랫부리의 기부는 색이 엷으며, 다리는 검은색이다. 날개는 검은색이고 흰 줄무늬가 뚜렷하다. 허리는 회색이고 꼬리는 검은색인데, 가장자리 깃의 흰색은 끝부분에서 약간 넓어진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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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헌법을 지켜 줄 테니 너희도 뭘 좀 내놓아야지?

[장석준 칼럼] 1996년 노개위, 그리고 2018년 경사노위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촛불정부인가, 아니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3기인가?"

 

지식인선언네트워크 등이 개최한 토론회(11월 30일)에서 조돈문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물음을 던졌다.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 아니냐는 실망과 비판에서 나온 물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요즘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보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보다 더 오래 전 정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정부? 아니면 김대중 정부? 물론 그때도 연상된다. 둘 다 자의반 타의반 친노동 세력이라 지목됐으나 집권 후에 모두 노동을 탄압하거나 노동권을 후퇴시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최근 행보가 기억 저 편에서 끄집어내는 것은 더 전 정권의 잔상이다. 바로 김영삼 정부다.  

특히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가 돌아가는 꼴 때문에 그렇다. 그 모양을 보노라면, 김영삼 정부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이하 노개위)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국 역사상 '총파업'이라는 이름에 가장 부합하는 투쟁이었던 1996~1997년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반대 총파업을 불붙인 그 노개위 말이다.  

헌법 지켜줄 테니, 너희도 내놔라?  

1996년 5월에 노개위가 설치되자 노동운동 일부도 이 기구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다. 1년 전 막 출범한 민주노총은 아직 노총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개위는 한국노총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에게 참여를 요청했다. 민주노총에게 이는 조직의 위상을 확인받을 좋은 기회로 보였다.  

더구나 김영삼 정부는 노동계 참여를 유도하면서 민주노동조합운동의 숙원을 해결해줄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 복수노조 허용, 정치활동 금지 철폐, 제3자 개입 금지 철폐 등을 받아들이겠다고 운을 뗀 것이다. 복수노조 금지, 정치활동 금지, 제3자 개입 금지는 헌법에 규정된 노동3권을 사실상 무력화한 대표적 악법들이었다.  

민주화의 산물인 제6공화국 헌법 정신에 따르면, 이들 악법은 이미 폐지됐어야 마땅했다. 굳이 사회적 대화 기구의 의제로 올려 생색 낼 것도 없이 정부가 법안을 제출해 폐지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이들 개혁 과제를 굳이 노개위 안건으로 올려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로서는 이런 의제를 다루는 테이블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애초에 이것이 정부의 노림수였다.  

그러나 막상 민주노총이 노개위에 참여하자 분위기는 애초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김영삼 정부는 재계가 요구한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들, 즉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시간제(오늘날 탄력근로시간제라 불리는)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민주노총이 노동3권 관련 개혁을 얻고 싶다면 이들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른바 '맞교환'을 강요했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대등한' 사회 세력이라 여긴다면, 이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계약 관계는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게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용자와 노동자는 결코 대등하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이 바로 이렇게 바라보고 있고, 그래서 노동3권이라는 특별하면서 중대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의 약속을 실현할 책임이 있는 정부는 이 권리의 보장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김영삼 정부는 이런 당연한 임무의 수행을 다른 노동권의 엄청난 후퇴와 맞바꿔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민주노총은 기만당했다고 생각했고, 곧바로 노개위에서 철수했다.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김영삼 정부는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시간제를 포함한 노동법 개악안을 안기부법 개악안과 함께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했다가 총파업의 반격에 부딪혔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김영삼 정부 말기 대혼란의 시작이었다.

한데 요즘 언론에 흘러나오는 경사노위 상황은 이런 20여 년 전 노개위의 판박이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노개위나 노사정위원회와는 전혀 다른 사회적 대화의 모범을 만들겠다며 노사정위의 간판을 경사노위로 바꿔 달았다. 그리고 노동계로서는 솔깃할 수밖에 없는 의제를 내세웠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노동3권 관련 법제를 손보겠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민주노동조합운동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동조합 가입 허용, 특수고용직의 노동조합 설립 허용 등이 있다.  

이런 의제들이라면, 노동계가 경사노위에 쌍수 들고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재계는 ILO 기본협약 비준의 전제로 자기들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토를 달았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하고 사업장 점거파업을 금지하며 파업 시 대체근로자를 투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단협 유효기간 연장 · 사업장 점거 금지 논의재계 손 들어주나", 2018년 12월. 12일자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다시 한 번 맞교환론이다. 노동3권이 예전보다 신장되니 재계도 얻어가는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김영삼 정부의 재판이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공정하게' 주고받아야 하며 정부의 역할은 이 거래를 '공평하게' 중재하는 것이라는 식이다.  

이런 문재인 정부의 태도에 우리는 김영삼 정부에게 던졌던 의문을 고스란히 다시 던질 수밖에 없다. ILO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게 집단적 노사관계 제도를 손보는 것은 이른바 '민주화된' 대한민국 정부가 한참 전에 이미 했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다시 한 번 이 당연한 헌법상 권리의 보장을 또 다른 노동권의 후퇴와 맞바꿔야 한다고 요구한다. 구어체로 표현하면, 이런 말이다.  

"좋아, 헌법을 지켜 줄 테니 너희도 뭘 좀 내놓아야지."  

어느 모로 봐도 헌법 수호자의 언어는 아니다.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국가의 기원을 논하며 '골목길 깡패'라는 비유를 들곤 하는데, 아무래도 저 문장은 거대 자본에 붙은 그 쪽 직업군의 언어일 뿐이다.  

'맞교환'의 피해는 가장 약한 노동자들에게로  

더구나 노개위 때나 지금이나 이런 맞교환론은 지극히 사악한 얼굴을 감추고 있다. 정부와 재계가 노총에게 서명하라고 협박하는 맞교환 목록에 든 노동권 후퇴 조치들은 하나같이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가장 커다란 고통을 안기는 내용이다. 기업별 노동조합을 만들 여력조차 없어 실은 노총 바깥에 방치된 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조치들이다. 

노개위의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이 바로 그러했다. 정리해고는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도 무시무시한 위협이었지만, 그래도 이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장렬한 전투라도 벌일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은 수의 노동자는 이제 정리해고'제도'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끽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만 두라면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됐다. 변형근로시간제 역시 주로 강력한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소득 감소와 노동시간 연장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파견근로제 도입은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2등, 3등 노동시민의 급증을 알리는 신호였다. 

1997년 벽두에 민주노총은 이런 노동권 후퇴를 총파업으로 일단 막았다. 한국노총까지 합류하고 시민운동 단체들도 엄호하며 거리의 시민들까지 지지하니 김영삼 정부도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때가 1987년 민주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으로 시작돼 나름대로 진화하고 있던 한국 사회 민주 역량과 연대 의식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지구 자본주의는 이 성취가 더 이상 진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1970년대~1980년대 초에 영국, 프랑스 등에서 좌파적 대안의 성장을 가로막고 신자유주의 시대를 개막한 외환위기(<신자유주의의 탄생: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장석준 지음, 책세상 펴냄))가 한국에서도 역사의 다른 전개 방향을 차단했다. 

 

불과 몇 달 전에 호기롭게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을 막아냈던 민주노동조합운동은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지금 우리는 그때 일을 영화(<국가 부도의 날>)로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세월이 지날 만큼 지났다 여기지만, 상처는 더욱 곪고만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거센 바람은 산업과 직종, 사업장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휩쓸었지만, 가장 커다란 타격을 받은 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강력한 기업별 노동조합 우산 바깥에 있는 이들이다. 여전히 노총의 보호막 바깥에 있는 이들이 20여 년 전 '맞교환'의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있다. 

그런데 지금 경사노위에서 오가는 이야기도 정확히 이 구도 그대로다. 탄력근로시간제를 사용자에게 더욱 유리한 방향으로 개정하자고 하고 있고, 단체협약 유효 기간을 연장하자고 하며, 사업장 점거파업을 금지하거나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을 자유롭게 하자고 한다. 하나같이 노동자의 단체행동권과 단체교섭권을 제약하는 조치이며,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조직-미조직 가릴 것 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족쇄를 채우려는 짓이다. 

하지만 누가 더 큰 피해자가 될지, 누가 미래의 가능성을 더 많이 박탈당할지 따져 보면, 이번에도 역시 가장 약한 노동자들이다. 아무래도 단체행동권과 단체교섭권의 행사는 이미 강한 노동조합이 있는 노동자보다는 새로 노동조합으로 단결하는 노동자에게 더 절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사노위에서 오가는 재계 요구안은 전자보다는 후자에게서 더 나은 미래를 쟁취할 수단을 빼앗아간다.  

촛불 이후 많은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새롭게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촛불이 한국 사회에 남긴 가장 소중한 자취들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힘을 모아 지옥 같은 노동 현장을 바꿔간다면, '헬조선'은 반전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재계 요구안은 수십 년만에 비로소 등장한 이 희망에마저 족쇄를 채우려 한다. 헌법의 약속을 뒤늦게 실현할 몇몇 조치와 이 족쇄를 맞교환해야 한다고 한다. 노동계가 이 논리에 따라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합의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덫이다. 그것도 다시 한 번 가장 약한 노동자들이 최대 피해자로 예정돼 있는 덫이다. 

파견근로제 철폐부터 의제로 올려라  

이게 모두 오해나 억측일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의 노동 정책에 대한 많은 이들의 의심과 우려는 이미 확신으로 바뀌는 중이다. 그럼에도 경사노위가 의미 있다고, 사회적 대화가 유효하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한 가지 길이 있다.

참담한 사건이 있었다.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 비극이다. 발전소에서 일하던 젊은 노동자 김용균 님의 죽음이다. 그런데 언론이 파면 팔수록 이 죽음은 외환위기 이후 어느덧 우리에게 익숙해진 노동 법제들 때문임이 명명백백 드러나고 있다. 사망 사고가 벌어진 하청 작업은 다분히 '불법 파견'이었다("김용균씨 업무는 '불법파견'발전5사도 알고 있었다", 2018년 12월 17일자 <한겨레>). 모순투성이 파견근로제가 양산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불법' 파견 중 하나였다.  


이 상황에서 자칭 '촛불'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간단명료하다. 파견근로제 철폐를 의제에 올려야 한다. 20여 년 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처음 도입이 논의된 이 제도의 폐지를 안건으로 삼아야 한다. 정말 그렇게 한다면, 누구든 '사회적 대화'를 달리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게 아니라면, 그것은 '대화'도 아니고, '사회적'이지도 않다. 경사노위란 한갓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기구일 뿐이다. 

 

 

▲ 1996년 12월 양대 노총 총파업 관련 기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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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구속은 꿈같은 이야기 사법농단 사건, 최악 결말도 예상"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538]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8.12.18 10:50l최종 업데이트 18.12.18 10:50l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오른쪽), 고영한  전 대법관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사법농단 관련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 하고 있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오른쪽), 고영한 전 대법관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사법농단 관련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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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사법농단 핵심 피의자인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 이미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사법농단을 공모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게 영장 기각의 주된 사유였다.

영장이 기각되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사법농단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으로 이미 법관 탄핵과 특별재판부 도입 주장이 나왔지만, 어느 하나 진척된 게 없다. 이 상황을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 지난 13일 서울 건대입구역 근처에서 만났다. 다음은 한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법관 탄핵, 어느 한 사람도 놓쳐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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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관 탄핵이나 특별재판부 얘기가 있지만, 진척은 전혀 없어요. 사법 농단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된 지 6개월이 지났어요. 현재 상황 어떻게 보고 계세요?
"사법 농단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온 지 벌써 반년이 넘었잖아요. 그런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것 외에 진척된 게 전혀 없어요. 게다가 관련자들에 대한 책임도 제대로 추궁되지 않았고,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제도 개혁도 아무런 진전이 없고요. 이러다 보니까 아무것도 처리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 아무래도 대법원 문제이기 때문인가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거겠죠. 우선 법원 내부에서는 이 사법농단 사태가 왜 문제인지를 인식 못하고 있어요. 특히 고위 법관 중심으로 사법농단 사태를 두고 '관행 있었다. 뭐가 죄고 잘못인가'라는 책임 회피성 인식이 있고요. 더 나아가서 현 정권이 정치보복을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몰고 가려고 하지요.

또 하급법관들은 이 문제에 대해 별 인식이 없거나, 그렇지 않으면 함부로 말 꺼냈다가 손해 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 문제 제기를 그렇게 강하게 하지 않고 있는 것 같고요.

외부적으로는 야당이 이 사법농단 사태를 왜곡해서 현 정권에 대한 반대 전선을 펼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사태를 다시 정치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편 가르기에 나서고 있고요. 또 그 반대편에 있는 여당이나 정부는  일부 소수의 국회의원만 이 부분에 관심이 있을 뿐, 그들대로 사법농단 사태를 제대로 척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요."

- 법관 탄핵과 특별재판부 도입은 지금도 유효한가요. 아니면 시기가 늦은 건가요?
"이 두 방안은 시간과 무관하게 의미 있는 것들입니다. 사실 법관 탄핵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요. 물론 사법농단 사태가 터져 나온 지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늦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탄핵이 불가능할 정도로 늦은 건 아니지요.

특별재판부 도입 문제는 이제 임종헌 전 차장 재판이 시작된 만큼 보다 본격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판 진행 중이라도 특별재판부 법이 통과되어 이 사법농단 사태의 전담재판부가 구성되면 사건을 그리로 이관하면 되니까 그것도 큰 문제는 없죠.

제일 큰 문제는 이 두 방안은 모두 국회의 소관인데, 바로 그 국회가 이 사건에 대해 너무 소극적이라는 것이죠. 음모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어쩌면 국회의원들이 개인적으로 연루된 것이 있는 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요.

하지만, 아무리 그런 점에 미루어 양해하려고 해도 이 사법농단 사태만큼은 국회의 직무유기가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을 버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사실 이 사태는 우리나라 법치주의 근간을 흔든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을 부정한 사건이거든요. 이런 중차대한 범죄적 행위에 대해서는 국회가 좀 더 과감하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들을 처단하려고 노력해야죠.

그리고 또 하나, 탄핵하고 특별재판부법 도입을 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요, 법관들이 이걸 과거 관행이었다거나 혹은 뭐가 잘못됐냐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일벌백계식 경고를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들이 그동안 익숙해 왔던 법원의 내부 문화라는 것 자체가 법치에 반하는 것이고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고 사법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다.이런 행태가 엄청난 과오이자 잘못된 것으로 일종의 과거사에 해당한다. 이제 이런 잘못된 내부 문화는 지금 당장 척결하라. 특히 당신들이 상급자라고 인식하고 있는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장 혹은 법원장이 그런 명령을 하면 법관답게 그 명령을 단호히 거부하라'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던져주어야 합니다.

현재 수준에서 이런 경고에 가장 걸맞은 방법이 탄핵 절차고 특별재판부 법의 제정·시행이라 할 수 있지요."

- 법관은 임기가 있어서 탄핵이 늦으면 안 되지 않나요?
"아마 한 사람 임기가 내년 2월인가에 만료된다고 들었습니다. 임기가 만료되어 법관의 직에서 물러나게 되면 그 사람에 관한 한 더 이상 탄핵 절차를 진행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탄핵 절차를 서두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번 사법농단 사태처럼 국가의 근본을 부정한 사건의 경우에는 그 책임자를  응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법원 내부에서 관행처럼 아무런 죄의식이나 문제의식 없이 이루어져 온 사법농단 사태 같은 일이 법적으로 잘못되었고 이건 국가와 국민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하는 잘못된 일이라는 걸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일입니다. 법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차대한 시대적 책무이니까요. 그래서 임기 만료가 다가오면 조금 무리한 점이 있더라도 탄핵 절차로 넘어가 그 헌법 부정의 행태들을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도록 하게 해야 돼요. 어느 한 사람도 놓쳐선 안 되는 거죠."

"김명수 대법원장, 내부 권력 관계에 휩쓸려 표류"
 
국감 인사말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이 10일 오전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김명수 대법원장(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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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법원행정처를 폐지한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대법원에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회의와 법원사무처를 설치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제출하였지요. 정말 실망스럽고 분노마저 느낄 정도로 잘못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사법 시스템을 아예 법관 자기들의 성역으로 만들어놓겠다는 의지가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이번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에는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가 놓여 있고, 이걸 가능하게 했던 게 법원행정처이고 그를 중심으로 포진하고 있는 권력 지향적 법관들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장의 이 개정안은 이런 체제를 해소하기는커녕, 그 권력집중의 틀은 그대로 유지한 채 단순히 사법행정회의라는 옥상옥의 기구만 만드는 데 그쳤습니다. 이건 분명히 개악입니다.

그동안 법관이 사법행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법농단을 할 수 있었던 건 비공식적인 과정을 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의 개정안은 이걸 거의 공식화시켜 버립니다. 사법행정회의라는 무력한 기구를 하나 만들어 놓고 거기에다 분과위원회를 둡니다. 그 분과위원회는 원칙적으로 법관들로 구성하게 해 놓고요. 그러니 지금보다 훨씬 많은 법관이 사법행정의 영역에 개입해서 무언가 자신의 입신양명을 꿈꿀 수 있는 길을 궁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습니다.

물론 사법행정회의에 비법관 위원들이 들어가니까 뭔가 민주적 감시와 견제가 가능한 듯이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비법관위원이라고 해봐야 여태까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절차를 통해 추천된 사람 중 대법원장이 임명합니다. 그것도 비상근으로요.

그런 위원들이 얼마만큼 견제력을 행사할 수 있을는지 의심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죠. 11명의 위원 중에 4명에 불과해서 그런 노력조차도 별로 의미 없는 것이 되어 버리기 십상이지요. 한마디로 이건 개정이 아닌 개악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평가일 듯합니다. 그럴 바에야 현재의 법원행정처를 존치하고 그 기구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법관들만 내쫓아버리는 것이 훨씬 더 나을 듯합니다."

-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응은 어떻게 보세요?
"대법원장이 조금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법체제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저지른 사법농단 사태를 과거사 차원에서 청산해야 한다는 국민적 분노가 그 하나이고요. 지난 촛불집회에서 집적된 국민들의 사회개혁 요구를 사법 영역으로 어떻게 끌어들여서 어떤 개혁의 과제들을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할지 해법을 찾는 게 나머지 하나입니다.

그런데,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는 후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고 전자조차도 문제 핵심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채 법원 내부의 권력 관계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변호사법 개정해서라도 김앤장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 사법농단 과정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커넥션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나요?
"우리 사법체계에서 가장 문제가 김앤장을 비롯한 대형 로펌들에 대한 시민적 감시체제를 확보하고 이를 법치의 이념에 맞게 개혁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법농단사태와 관련하여 강제징용 문제를 다루던 재판에서 김앤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서로 협의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다른 대형 로펌은 법인 체제를 갖추는데 특히 김앤장의 경우에는 사무실 공동의 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어떤 때는 하나의 조직이었다가 어떤 때는 몇백 명 변호사 사무실 연합체의 성격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일종의 도깨비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요.

문제는 이런 변신술 속에서 그들이 우리 사법체계나 법치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법과정에서 김앤장이 미치는 영향력은 적지 않은 듯합니다. 실제 이번 사법농단 사태에서 보듯 비리나 부정에도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런 의심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가 김앤장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그 어떤 틀도 존재하지 않아요. 이 때문에 가능하다면 변호사법을 개정해서라도 김앤장 체제를 사무실 공동이 아니라 공적 책임을 지는 법인 체제로 바꾸도록 강제해 그 안에서 일어나는 권력 현상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봐요."

- 로펌에 국가가 개입하는 게 가능할까요?
"로펌이든 변호사 사무실이든 원칙적으로 비영리여야 합니다. 변호사 직은 기본적으로 공익적 성격을 띱니다. 국가의 법을 직업 활동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들이 법률 사무를 독점하여 처리할 수 있는 것 또한 국민들이 그 업무수행에 대하여 나름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 직무를 신탁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요. 바로 이런 공익적 성격으로 인하여 변호사에 대한 각종의 규제나 윤리통제 같은 것들이 가능하게 됩니다.

변호사의 개업 형태 또한 이런 국가법에 의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나름의 깊은 논의가 더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공룡조직으로 변해버린 김앤장과 같은 법률가 집단에 대해서는 법치의 원칙에 충실한 시민적 감시와 견제가 절실하다고 봅니다."

- 지금 있는 법으로는 김앤장을 규제할 수 없나요?
"변호사협회는 변호사들에 대해 징계권을 가지고 있으니 지금도 사법농단과 관련해 김앤장 또는 그 소속 변호사를 징벌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지금 변협이 회장 선거 국면에 들어가 있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요. 변호사 징계권을 가진 또 다른 기관인 법무부 역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고요.

그러다 보니 김앤장이라는 공룡조직은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무적의 아성인가 싶기도 합니다. 제가 변호사법을 바꾸어서라도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현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 추세로 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 어려울듯"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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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법원이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 구속 영장을 기각해 국민을 분노하게 했어요. 기각 과정 어떻게 보셨어요?
"영장 기각 소식을 들었을 때 별 느낌은 없었어요. 잘못된 법원 문화에 함몰된 법관이라면 아무런 인식도 없이 그냥 그 영장을 기각할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하나님 같은 (전직) 대법관을 감히 구속시켜요?

이어서 든 느낌은 법원 내부에서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임종헌 차장 수준에서 꼬리 자르기 하고 몸통은 보호해야 한다는 정도의 내부적 합의가 있었던 건 아니냐는 의심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정말 심각한 것은 법관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 수준에서는 자기들이 감히 어떻게 대법관님을 구속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분명히 하였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말 이는 문제적인 것이 그 법관들은 오로지 법원만을 쳐다보고 있어요. 선배 법관, 혹은 상급자인 법관, 모시고 있던 법관, 혹은 데리고 있거나 후배인 법관들만이 그들의 시선이 닿는 대상이라는 것이지요. 국민은 그 바깥에 자리 잡고 있어요. 우리 국민들이 새롭게 각성해야 할 것이 이 점입니다.

법관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처신을 하든, 자기들이 떠받드는 상전은 국민이 아니라 선배 법관들이고 자기보다 위에 있는 법원장이고 대법관, 대법원장들이지요. 그들은 철저하게 법원 내부에서 법관으로만 살아가지 국민 혹은 시민으로 살지는 않아요.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이번 사법농단 사태는 양승태 이하 몇몇 법관들의 개인 비리·부정을 넘어서서 법원 전체의 구조 문제로 자리매김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모두는 이 점을 각별히 유념해야 할 듯합니다."

- 그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도 어려울까요?
"지금 추세로 보면 그럴 거 같아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검찰이 소환해서 신문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구속영장 발부는 거의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요. 기소가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기소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당부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요.

그동안 우리 역사는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라는 상전을 모시다가 겨우 우리가 주인인 듯한 시대를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법관이란 또 다른 상전을 모시고 있습니다. 대통령 위에 법관이 있는 시대가 현재인 듯해요. 어쩌면 이 사법농단 사태가 터져 나온 것은 역으로 우리가 우리의 삶을 그나마 바꿀 소중한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사법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나 법치주의는 미래가 없을 것 같아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개혁특위 '국회 정보위원회 제도개선 방안, 국가정보원 예산의 민주적 통제 방안에 대한 공청회'에 참석해 발표를 하고 있다.
▲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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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농단 사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시나요?
"저는 지금 최악의 상태를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국회는 겨울의 동면기에 접어들고 있고 북한 문제라든지 경제 문제라든지 하는 것이 국민들의 관심을 흐트러트리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사법농단 사태가 물타기 되어 버리지 않을까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무엇보다 국회를 압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법농단 사태를 과거사 수준에서 청산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시대적 과제인데 그 첫 단계의 열쇠를 국회가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운동의 차원에서 국회를 보다 강하게 압박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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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에서 노동자들이 낙엽처럼 말라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굴뚝에서 노동자들이 낙엽처럼 말라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사회원로 148명, “파인텍 고공 농성자 408일 전엔 내려오게 해야”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12/18 [09:5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사회원로 148명이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굴뚝농성 중인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박준호 씨가 12월 24일 전에는 땅으로 내려오게 해야 한다며 사측과 정부의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사진 : 민중의소리)     © 편집국

 

작년 11월 파인텍(구 스타케미칼) 노동자 홍기탁·박준호 씨가 서울 양천구 서울에너지공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 오른지 400일이 넘어가고 있다.

 

 ‘스타플렉스(파인텍) 고공농성-무기한단식 해결 촉구 사회원로모임’은 17일 오후 1시 서울 양천구 목동 스타플렉스 사무실 건물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사측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은 홍기탁·박준호 씨가 굴뚝에 오른지 401일이 되는 날이며, 차광호 파인텍지회장이 단식농성을 시작한지 7일이 되는 날이다.

 

이들이 굴뚝농성에 들어간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사측이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에 약속한 고용, 노동조합, 단체협약 승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노사간 합의도 파인텍 노동자 차광호 씨의 세계 최장기 408일간 고공농성 끝에 이뤄진 바 있다. 사회원로들은 두 노동자가 굴뚝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한 것도 모자라, 408일의 기록을 넘기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주장했다.

 

사회원로들은 “고양이 한 마리가, 새 한 마리가, 꽃 한 송이가 저토록 고립되어 있었다고 해도 안 될 일”이라며 “이 차가운 겨울 저 높은 굴뚝에서 그들이 낙엽처럼 말라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을 마친 비상시국 선언 참가자들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에 문제해결 촉구 서한을 전달했다. 이들은 고용노동부 장관, 국회을지로위원회, 국가인권위원장에게도 해당 서한을 전달할 예정이다.사회원로 선언에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김중배 전 MBC 사장, 명진 스님, 단병호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대표,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등 148명의 원로들이 참여했다.

 

한편 금속노조는 두 노동자가 굴뚝농성 408일인 24일 전에 내려올 수 있도록 총력투쟁에 돌입할 계획이다. 18일 제사회단체 연대 결의 및 3차 투쟁 선포 기자회견, 19일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과거 고공 농성자들의 연대투쟁 선포 기자회견, 20일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진행된다.  24일까지 문제해결이 안될 경우 24일 집중 행동, 29일 전국 노동자 규탄대회를 열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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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교착’

<2018 송년특집 ②> 북미관계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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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17  17: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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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2018년은 한마디로 ‘격변의 해’였습니다. 70여 년에 걸친 분단과 전쟁의 역사에 파열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웬만큼 굵직한 사건들을 차치하더라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역시 세 차례의 북중정상회담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 것입니다.

한반도에 과연 평화와 통일의 싹이 틀 것인가? 올해 안에 예상됐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의 내년으로의 순연과 내년 초 예정된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 기대를 걸면서, 통일뉴스는 <2018년 송년특집>으로 ①남북관계 ②북미관계 ③북한 내부 ④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외정책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 올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자료사진-통일뉴스]

2018년 6월 12일 오전 9시(한국시간 10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센토사섬에 있는 카펠라호텔에서 만났다. 

두 정상은 우리 민족과 전 세계 앞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이라는 네 개의 기둥으로 구성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되는 조(북)미 수뇌회담이 두 나라 사이에 수십 년 간 지속되어온 긴장상태와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는 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획기적인 사변”이라고 평가하고, “공동성명의 조항들을 완전하고 신속하게 이행”하기 위해 고위급 후속협상을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열기로 했다. 

   
▲ 북미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 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 [자료사진-통일뉴스]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후속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루 빨리 ‘종전선언’을 하고 싶다는 희망과 함께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될 때 제재를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6월 13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계개선이 진척되는데 따라 대조선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의향”을 밝혔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 측이 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한 신뢰구축조치를 취해나간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게 계속 다음 단계의 추가적인 선의의 조치들을 취해나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알렸다. 

6월 19일 한.미 국방부는 8월말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가 중지되고 한미 해병대 연합(KEMP)훈련 2개도 유예됐다. 북한은 이미 4월 20일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노동당 중앙위 제7기 3차회의 결정서를 통해 △4월 21일부터 핵실험과 로켓 시험발사 중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 등을 표명했다. 

미국 주류 언론들은 “실패”라고 혹평했으나, 7월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방북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정상회담 이후 첫 고위급회담을 진행했다. 북한은 서해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과 발사대 폐기 작업에 들어갔다. 북.미 장성급 및 실무회담을 거쳐 정전협정 체결 65주년(7.27) 계기에 미군 유해 55구가 송환됐다.    

10월 19일 미국 국방부는 한미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 유예를 발표했다. 내년 봄 독수리연습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들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군사합의서에 의거 비무장지대(DMZ) 초소 철거 등이 진행되는 흐름에 맞춘 셈이다. 북.미 후속협상 동력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 지난 10월 7일 김정은 위원장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만났다. [자료사진-통일뉴스]

10월 7일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실무회담 조기 개최’에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의 상응조치 요구에 미국이 꿈쩍하지 않으면서 2개월이 넘도록 북.미 실무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지난달 8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연기된 고위급 회담마저 감감무소식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은 일치감치 내년 초로 넘어갔다.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월 또는 2월에 (2차 북미정상회담이) 있을 것 같다”면서 “장소 3곳을 검토 중”이라고 확인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3일 ‘정현’ 명의 논평을 통해 “지금 조미협상은 교착상태에 있다”고 선언했다. 16일 북한 외무성 산하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은 미국이 종전선언과 제재 완화 등 상응조치는커녕 제재.압박만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조선반도 비핵화에로 향한 길이 영원히 막히는 것과 같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내년 초 북미관계의 진전을 위하여

1차 북미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는 결코 폄하될 수 없다. 동시에 지금 북미관계가 “교착상태”라는 사실도 외면할 수 없다.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이 역사적 문건임에도 불구하고 빈 터에 4개의 기둥만 세웠다는 다소 혹독한 평가를 받는 이유다. 

지난해 전쟁 위기에 처했던 한반도 정세가 올해 들어 평화 무드로 확 바뀌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남북미 정상 간 끈끈한 유대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톱다운 방식’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여러 차례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지어 “김정은 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비마다 나서서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다했다. 지난해 12월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 제안으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이끌었다. 3월초 남측 특사단의 방북.방미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북미정상회담 개최 약속을 이끌어냈다.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받아냈고 5월 26일 2차 회담으로 무산 위기에 처했던 1차 북미정상회담 불씨를 되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르지 않겠다”며 한발 빼는 모습을 보이던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으로, 10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성사시켰다.  

지난달 30일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주최 토론회에서 ‘문 대통령이 다시 나서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은 정창현 현대사연구소 소장이 “문재인 대통령은 할 만큼 했다”고 잘라 말한 이유다. 그는 “남북미 모두 실무적 뒷받침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서로 미덥지 않아 하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중재할 한국 측 인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중앙정보국(CIA) 국장 시절 폼페이오는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매개로 김영철 부위원장과 활발하게 소통했었다. 

전직 고위당국자도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을 앞세워서 여기까지 잘 끌어왔다”고 호평했다.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10월초 폼페이오 방북, 11월말 한미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각론을 이행할 실무 책임자와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 7월초 평양 공항에서 악수하는 김영철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 두 사람은 지난달 8일 뉴욕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연기 이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정부 당국자는 “장관급에서 정상 간 합의를 뒷받침할 사람이 없다”고 인정했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설득하지 못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의미 있는 카운터파트로 인정받지 못했다. 북핵 관련 주무장관은 아니지만,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행정부 각료급 중 유일한 핵 협상 경험자이자 자신 만의 해법(‘리비아 모델’)을 가지고 있다. 북미 고위급 회담 대표인 폼페이오 장관이 제시하는 북핵 구상과 해법을 ‘비토’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볼턴 보좌관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역량과 강한 의지를 갖고 폼페이오 장관을 내실 있게 지원할 수 있는 한국 정부 내 장관급 인사가 필요한 이유다. 

근본적 난제는 접근법을 둘러싼 입장 차이다. 특히, 제재 완화와 직결되는 “되돌릴 수 없는 지점(no return)”까지 갔다고 받아들여질 비핵화 조치가 쟁점이다. 미국은 줄곧 신고.검증을 주장해왔다. ‘신고’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온 북한은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계기에 ‘미국의 상응조치와 맞물리는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카드를 내밀었다. 한국 내 일부 전문가들은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일부를 미국에 건네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미국은 일단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이던 신고서 제출 요구를 접었다.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과 10월 폼페이오 방북 합의에 따라 북한이 풍계리.동창리 전문가 참관 허용 등 몇 가지 조치를 하고 미국이 상응조치를 통해 우선 신뢰를 쌓자는 것이다. 

“신뢰조성을 앞세우면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단계별로 해나가는 방식으로 조미관계를 개선해나갈 것”(12.16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 담화)이라는 북한 입장이 관철됐다고 볼 수 있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북.미가 합의하는 로드맵, 주요 쟁점에 대한 해법이 없는 한 다음번 협상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외교소식통은 “청와대와 외교부, 국정원이 각자 제안서를 건네는데 그 해법들이 미국이 보기에 흡족하지 않은 것 같다”고 알렸다. 또 “신고 문제를 정면으로 대하지 않고는 북미관계의 결정적 진전은 어렵다”면서, 검증 의정서 문제로 협상 자체가 깨졌던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 않고 “신고 과정에서부터 북미가 협력적 메커니즘을 구축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한국 홀로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하는 게 힘에 부치는 상황에서 주변 나라와의 공조 필요성도 거론된다. 미국 설득이 당면과제라는 점에서,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보다는 일본이 보다 적절한 파트너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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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살인기업 처벌’ 외국은 다르다

태안화력 김군 추모열기… 정부·국회 향해 ‘살인기업 처벌·외주화 중단’ 요구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던 24살 청년. 태안화력발전소에 입사한지 3개월 만에 석탄운송설비를 점검하는 야간근무를 하던 중 연료공급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을 거둔 김용균 군을 추모하는 물결이 온·오프라인에서 확산되고 있다.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계속되고 있는 추모의 행동은 ‘중대재해 살인기업 처벌’, ‘죽음의 외주화 중단하라’는 요구를 담고 있다.

산안법 위반 기업 처벌 ‘솜방망이’, 외국 사례 보니…

우리나라 5개 발전사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7800여명이다. 지난 2012년부터 5년간 5개 발전사에서 일어난 산재사고 346건 중 337건이 하청업체 직원에게 발생했다. 자그마치 97%에 해당한다. 이 기간 사고로 숨진 40명 중 37명이 하청노동자이기도 했다.

지난 15일 세월호광장에서 열린 촛불추모제에서 마이크를 잡은 의사 김철주씨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라고 요구했다. 참가자들도 한목소리로 동의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법, ‘살인기업 처벌법을 도입하라’는 것이다.

그간 산업재해(산재)로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에 대한 처벌은 약소했다. 지난 10년 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2만 2000여명, 재해를 입은 노동자는 100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기업이 저지른 산안법 위반 사건 3만 3648건 중 95.4%는 약식기소로 벌금형(평균 432만원)을 받았고, 9건만 구속 처벌됐다.

▲ 지난 4월25일 종로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세계 산재사망 추모의 날(4월28일) 결의대회’ [사진 : 뉴시스]

외국의 사례는 이와 상반된다. 영국에선 ‘기업살인법’을 적용해 처벌하고 있다. 영국은 2007년 노동자·시민의 사망사고에 대한 기업 법인의 처벌과, 기업과 정부 최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법 제정으로 영국에서는 회사의 매출과 자산을 넘어서는 강력한 처벌이 이뤄졌다. 2011년 ‘이튼 앤 코츠월드 홀딩’이란 회사는 노동자 사망사고가 나자 385만 파운드의 벌금을 맞았다. 이 385만 파운드라는 금액은 기업 연 매출액의 250%에 해당했다.

산재기업을 처벌한 결과, 법 제정 전 1만 명 당 사망 노동자 비율이 0.08명이었던 것이 제정 후인 2014년엔 0.04명으로 줄었다. 2014년 기준 그 비율이 1.08명인 한국과 대조된다. 기업살인법 제정 이후 영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산재발생 비율이 낮은 국가가 됐다. 캐나다와 호주에서도 2003년 ‘기업살인법’이 만들어졌다.

또 민주노총의 보고에 따르면, 영국의 한 대형 슈퍼마켓에서 하청노동자 1명이 사망하자 해당 기업은 벌금 37억 원을 받았고, 미국은 현대기아차 하청업체에서 노동자가 사망했을 당시 30억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산재에 대한 처벌을 다룬 법안 개정이 국회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속도는 지지부진하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김선동 의원(통합진보당)이 ‘기업살인처벌법안’을 발의했지만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19대 국회 종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선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종훈 민중당 의원이 ‘산안법 개정안’과 ‘산업안전보건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각각 발의했다. 정부 역시 28년 만에 ‘산안법 전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개정안에는 법의 보호 대상을 넓히고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하고, 도금작업 등 유해·위험한 작업의 도급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민중당은 14일 대변인 논평에서 “여기에 기업살인처벌법의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17일 성명을 내 산안법 개정안 논의가 진척되지 않는 것에 대해 “산재사망은 정치권의 단골 메뉴였다. 사고가 터질 때 마다 현장에 달려가 법 제도 개선을 공언하고, 국정감사 때마다 하청 산재의 심각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작 입법시기에는 각종 정치 공방을 하느라, 수많은 법 개정안이 단 한 번의 논의도 없이 폐기 처분됐다”고 비판하곤 국회를 향해 “산안법 개정안을 즉각 심의 통과시킬 것”을 요구했다.

또 “산재를 일으킨 기업과 경영책임자에 대한 벌금과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이고, 감시감독을 소홀히 하고 기업에 부역한 공무원도 함께 처벌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면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해온 민주노총은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16명의 국회의원들에게 산안법 전부 개정안에 대한 입장과 향후 추진계획을 묻는 공문을 발송했다. 민주노총은 이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모아 오는 26일 발표한다고 밝혔다.

▲ 사진 : 뉴시스

“‘죽음의 외주화’가 부른 죽음”

지난 13일과 15일 저녁, 광화문 세월호광장에 모여 촛불을 든 추모객들은 김군의 모습에서 2016년 구의역 사고를 떠올렸다. 2016년 5월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정비 하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열아홉 살의 또 다른 청년 김군. 두 사람 모두 하청업체 소속된 청년노동자였고 2인1조로 해야 할 업무를 혼자 하다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는 “하청업체의 업무지시서엔 설비 운영이 지연되지 않도록 설비가 떨어지면 즉시 제거하라고 돼 있다”고 전했다.

태안화력 하청업체 입사 3개월 차인 김군은 4조2교대로 근무하며 12시간씩 일했다. 6km가량의 컨베이어벨트를 3회씩 돌며 현장을 점검하고 낙탄을 치우는 일을 했다. 어둡고 컴컴한 곳에서 헤드랜턴도 없이 18km를 걸으며 꼬박 12시간을 일했다.

현장조사 결과, 사고 당시 2인1조로 근무하도록 한 내부규정도 지켜지지 않았다. “2인1조 규정만 지켜졌어도… 사고 당시 다른 사람이 컨베이어벨트를 멈췄다면 큰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고 현장노동자들은 주장했다.

김군이 일한 곳은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이지만 그가 소속된 업체는 한국발전기술(주)이라는 외주하청업체였다. 김군은 1년 계약직 비정규직노동자로 일했다.

시민대책위는 “김군을 죽인 건 컨베이어벨트가 아니다. 발전사가 직접 운영해야 할 업무를 민영화, 외주화시켰기 때문”이라며 ‘죽음의 외주화’를 멈추라고 요구했다.

발전소 운영사들은 설비점검 등 안전관리에 꼭 필요한 업무마저 외주화했다. 김군이 일했던 업무 역시 정규직이 하던 업무였고, 2인1조로 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발전소의 외주화로 업무가 외주하청업체로 떠넘겨졌다.

한국서부발전은 지난 2015년 7월 석탄설비 운용·정비사업을 경쟁 입찰했고, 한국발전기술이 해당 사업을 낙찰 받았다. 한국발전기술은 인력부족과 인건비 절감을 위해 1인 근무 체계로 바꿨다. 외주업체 입찰 시 낮은 금액으로 입찰에 응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하청업체는 2인1조 근무를 1인 근무로 바꾸면서 인건비를 줄였다.

또 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과 김군이 소속된 한국발전기술은 작업현장의 사고 위험성을 알고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3억 원의 추가 비용 때문이었다.

전국공공운수노조와 발전비정규연대회의는 14일 ‘사망사고 현장 조사 결과 공개 브리핑’에서 사고현장을 직접 설명하며 “노동자들이 28차례 작업 현장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지만, 한국서부발전에서는 ‘이렇게 고치는 데 3억 원이 드니 다른 방법으로 고쳐주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 사진 : 함형재 담쟁이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답하라’ ‘외주화를 멈춰라’ ‘살인기업을 처벌하라’. 지난 주말 세월호광장에 모인 촛불추모객들이 외친 구호들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7일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 대한 특별산업안전보건감독과 12개 발전소에 대한 긴급안전을 실시하고, 석탄화력발전산업에 대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제도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임을 밝혔다. 현장노동자들과 추모객들의 요구에 답해야 할 곳은 정부 관계부처만이 아닌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로 향하고 있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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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딜레마에 빠지다

[쿼바디스, 한미동맹](10) 2017년 한반도 미사일 위기와 한미동맹
  • 장창준 정치학박사
  • 승인 2018.12.17 10:35
  • 댓글 0

베트남 전쟁 ‘비밀 협상’의 실패와 그 교훈

1966년 12월6일, 미국과 베트남의 외교관들이 비밀리에 폴란드에 들어온다. 베트남 전쟁의 확대를 막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국과 베트남 사이의 비밀 협상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들의 길은 엇갈렸다. 미국측은 폴란드 외교부 청사에서 베트남 대표단을 기다렸다. 베트남측은 폴란드 주재 베트남 대사관에서 미국 대표단을 기다렸다.

그들은 결국 만나지 못했다. 비밀 협상은 시작도 전에 좌초된 것이다. 그들의 길은 왜 엇갈렸을까? 왜 그들은 다른 장소에서 상대방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왜 그들의 ‘비밀 협상’은 실패했는가.

‘비밀 협상’ 실패의 원인은 북베트남 폭격에 있었다. 비밀 협상은 1966년 11월 초부터 미국과 베트남, 그리고 중재 역할을 담당했던 폴란드 사이에서 협의되고 있었고, 12월6일 폴란드에서 비밀리에 협상을 하기로 합의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비밀 협상’의 장애물이 등장했다. 미국이 12월 초부터 북베트남의 도시인 하노이에 대한 폭격을 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 베트남 협상 대표단은 폴란드로 출발한 시점이었다.

북베트남 외교부는 미국이 협상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고, ‘비밀 협상’의 중단을 결정한다. 그러나 폴란드에 도착한 베트남 대표단에게 직접 협상 중단을 알리는 것은 ‘비밀 외교’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미국측 대표와 베트남측 대표가 엇갈린 장소에서 상대방을 기다린 것은 이 같은 과정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미국의 하노이 폭격은 우발적인 사건이었을까? 전쟁을 평화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한 비밀 협상을 하면서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하노이 폭격을 개시했단 말인가? 결론은 후자였다. 미국은 비밀 협상과 하노이 폭격을 병행했다. 폴란드 비밀 협상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맥나마라 당시 미 국방부 장관이었고, 이 계획은 존슨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존슨과 맥나마라는 하노이를 폭격하겠다는 미국 합동참모본부(JCS: Joint Chiefs of Staff)의 군사 계획을 승인했다. 하노이 폭격은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미국의 군사행동이었다.

당시 미국은 북베트남에 대한 군사적 공세로 인해 북베트남이 ‘비밀 협상’에 착수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베트남이 외교 협상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라 믿고 하노이 폭격을 강화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하노이 폭격이 개시되자 베트남 정부는 협상 중단을 결정했다. 폭격과 비밀 협상을 병행하겠다는 미국의 결정이 비밀 협상을 실패로 이끈 것이다. 전쟁은 지속되었고, 미국과 베트남은 더 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평화협정에 나설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 ‘비밀 협상’의 실패는 이같은 병행론이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국은 교훈을 못 찾은 듯하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협상이 잘돼가고 있다”고 하면서도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조선)이 협상에 임하고 있다”는 얘기를 종종 해왔다. 대북 제재와 북미협상을 병행하고 있다.

2017년 한반도 미사일 위기를 거친 후에 2018년 들어와 북미 사이의 외교 협상이 시작되었다. 하노이 폭격은 군사적 적대행위였다. 대북 제재는 외교적 적대행위이다. 그것이 군사라는 외피를 쓰건, 외교라는 외피를 쓰건 적대행위는 ‘외교 협상’의 장애물이 된다. 미국은 이미 50년 전에 실패한 병행론을 언제까지 지속하려 하는가. 한국 정부는 이같은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2017년 한반도 미사일 위기

2017년 한반도는 전쟁 위기 상황이었다. 습관적으로 ’북핵 위기’라고 부르지만, 북핵 위기가 아니라 미사일 위기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위기였다. 북한(조선)은 ICBM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미국은 그것을 저지하는 데 올인했다.

2017년 4월의 위기는 실재했다. 미국이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새롭게 출범한 트럼프 정부는 북한(조선)의 ICBM 개발을 막아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북한(조선)의 핵과 미사일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이 선택지에 올랐다. 대북 선제공격을 공공연하게 거론하면서 최첨단 전략자산을 모두 한반도에 전개했다. 트럼프 정부가 4월26일 대북정책을 발표하는 날, 시리아를 폭격한 것은 분명히 북한(조선)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였다.

3월18일 트럼프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조선)과의 핵전쟁을 항상 걱정해야 하며,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딱히 결정된 무언가가 없다면 미국으로서는 군사행동이 가장 익숙한 선택이 될 것이다.

다행이 위험스러운 상황은 넘겼다. 트럼프의 자제력이었건, 북한(조선)의 억제력이었건 4월 위기는 무사히 넘겼다. 그러나 안도의 숨을 돌리기 전에 위기는 또 다시 찾아왔다. 7월말~8월초로 접어들면서 위기는 다시 고조되었고, 그 위기는 점차 충돌을 향해 치달았다.

8월8일 북한(조선)의 전략군 대변인이 괌 포위 사격을 경고했다. 이틀 뒤 전략군 사령관이 직접 등장해 “8월 중순까지 괌도 포위사격 방안을 최종 완성”하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고드리고 발사대기 태세에서 명령을 기다릴 것”이라고 밝힌다. 미국의 적대정책, 그리고 8월20일로 예정되어 있는 한미군사연습에 대한 북한(조선)의 군사적 반발이었다. 8월14일 전략군 사령관으로부터 괌 포위사격 계획을 보고받은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하여 한숨 돌리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8월20일 한미군사연습이 강행되고 상황은 다시 악화된다. 8월22일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이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위험천만한 군사적 도발을 걸어온 이상 백두산 혁명강군의 무자비한 보복과 가차없는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밝힌다. 게다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발사대기상태에서 놈들의 일거일동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군사적 대응의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일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후 북한(조선)은 자신의 예고대로 미사일 발사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인다. 9월부터 진행되는 미사일 발사는 ‘시험 발사’가 아니라 ‘실제 발사’였다. 미사일의 발사 각도 역시 ‘고각발사’가 아니라 ‘정상각 발사’였다. 8월26일 북한(조선)은 세 발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다. 8월29일에는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중거리 미사일 ‘화성 12형’을 발사한다. 화성 12형은 2700km를 비행했으며, 북태평양 해상에 떨어졌다. 이날 발사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은 “태평양상에서의 군사작전의 첫걸음이고 침략의 전초기지인 괌도를 견제하기 위한 의미심장한 전주곡”이라고 밝혔다.

9월15일 북한(조선)은 화성 12형을 다시 발사한다. 이번엔 이동식발사대에서 발사되었고, 3700km를 비행했기 때문에 거리상으로 괌보다 더 멀리 날아갔다. 8월29일과 9월15일에 발사된 화성 12형은 괌 포위사격을 검토한 전략군 소속 미사일이다. 그리고 9월15일 발사된 미사일은 평양에서 괌까지의 거리인 3356km를 훌쩍 뛰어넘는 거리였다. 사실상 괌 포위사격을 단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보다 앞선 9월3일, 북한(조선)은 6차 핵시험을 단행했다. 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한 것이다. 이제 북한(조선)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미사일을 시험 발사에서 실제 발사로 전환하고, 실제 발사 미사일의 이동거리가 점차 길어진다. 즉 미국 본토에 점차 가까운 곳에 미사일을 이동시킨다.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수소탄까지 시험한다.

미국으로서도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9월19일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장에 섰다. 거기서 “북한(조선)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발언을 한다. ‘한번만 더 미사일을 미국 가까이 발사하면 군사력을 동원하겠다’는 경고 메시지였다. 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가 무엇을 생각했든 그 이상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반발한다. ‘우리는 미사일을 또 발사할 것이니, 붙으려면 붙어보자’는 김정은식 메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미 군통수권자가 사실상 군사공격을 공언함으로써 위기는 극대화되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의 전략공군사령부가 데프콘2(전쟁 직전 태세)를 발령하고 대기상태에 놓인 적이 있다. 어쩌면 작년 9월 이후 북미 양측 역시 이같은 상황이 전개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조선)이건, 미국이건, 그것이 최고 결정권자 차원에서의 결정이 되었건, 현장 지휘관 차원의 오판이 되었건 일순간에 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2017년 11월29일의 ICBM 발사는 ‘정상각 발사’가 아닌 ‘고각 발사’였다. ICBM은 실제 사거리를 비행하지 않고, 최고고도 4475km로 비행하다가 평양에서 950km 떨어진 곳에 낙하하였다. 만약 북한(조선)이 11월29일 ICBM을 정상각으로 발사하고 여기에 미국이 요격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군사적으로 대응했다면 북미 전면전이 실재화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 2017년 11월28일 김정은 위원장은 ‘화성 15형’ 시험발사 명령을 내린다.

동맹, 딜레마에 빠지다

이 상황을 누구보다 우려하면서 지켜보았을 곳은 청와대였다. 또한 11월29일 ICBM이 정상각으로 발사되지 않고 고각으로 발사되는 것을 보면서 그 누구보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곳도 청와대였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ICBM 위기를 감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 선언에서부터 시작해서 8.15 광복절 경축사 등에서 가장 강조했던 것이 ‘평화’였다. 베를린 선언에서는 “핵과 전쟁의 위협이 없는 한반도”를 강조했고,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된다”면서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스스로 토로했던 것처럼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동맹은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억지하고, 만약 전쟁이 발생하면 격퇴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 체결된다. 그런데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전쟁은 이제 상정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핵전쟁이고, 핵전쟁이 발생하는 순간 이미 한반도는 재앙 속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핵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한반도의 상황은 그 자체로 동맹의 목적을 변화시켰다. 이제 동맹은 오직 전쟁을 억지하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동맹은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이 돼 버렸다. 아니 그런 동맹이라면 존재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돼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ICBM 위기는 한국 정부를 딜레마에 빠뜨린 셈이다. 미국이 북한(조선)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군사행동을 개시한다면, 한미동맹은 어떤 공동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은 미국의 군사행동에 동참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미국의 군사행동에 동참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어느 쪽으로든 쉽지 않은 결정이다. 다행히 그런 선택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북미대결이 궁극적으로 종식되지 않는 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하는 딜레마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은 ‘본토 우선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이같은 딜레마에서 빠져 나올 준비를 마쳤다. 미국은 대북정책에서도 ‘동맹국의 안보’보다는 ‘미본토 안보’를 더 중요하게 설정했다. 2018년 4월 미 의회 인사청문회에서 폼페오 미 국무부 내정자는 북미정상회담을 “미국에 대한 북한(조선)의 핵위협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동맹국이 우선인가, 자국이 우선인가 하는 미국이 처한 동맹 딜레마에서 미국은 ‘쿨하게’ 자국의 안보를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동맹의 딜레마는 오롯이 한국에만 적용되는 현실이 되었다. 이제 우리도 선택해야 한다. ‘동맹국이 우선인가, 자국이 우선인가’에서 자국의 안보가 우선이라고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래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것만이 동맹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길이다.

동맹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대북 제재를 북미협상의 장애물로 인식해야

베트남 ‘비밀 협상’의 장애물은 북베트남 폭격이었다. 2017년 한반도 평화의 장애물은 대북 선제공격이었다. 이 장애물은 2018년 들어와 ‘일단 제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조선)이 미본토 보복공격 능력인 ICBM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을 미국이 확충하지 않는 이상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의 장애물은 사라진 것인가. 또 하나의 장애물이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대북 제재다.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한 북미협상은 쉽지 않다. 북미협상의 교착은 한반도 평화 과정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제재는 2018년부터 형성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 과정의 결정적 장애물로 작동하고 있다.

트럼프는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조선)이 대화에 나왔다고 주장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폭 때문에 협상에 나왔다는 인식의 되풀이다. 바로 그와 같은 미국의 인식 때문에 베트남 전쟁 ‘비밀 협상’은 실패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북한(조선_)이 대북 제재 때문에 협상에 임했고, 그래서 완전한 비핵화까지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그런 인식이 지배하는 한 북미 외교 협상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럴 경우 문재인 정부의 동맹 딜레마는 지속된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 과정을 진척시켜 왔다. 남과 북이 비무장지대를 포함한 남북 접경지역에서 한반도 평화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히 훌륭한 평화정책이었고 역대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한 성공적인 대북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 단계 더 진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하나의 껍질을 벗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한 외교력을 강화하는 것,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깨고 나와야 할 껍질이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대북 제재가 한국에 적용되는 경우에 한정하여 그것을 ‘면제’받는 소극적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서울 정상회담이 아직까지 합의되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소극적 방식으로는 더 이상 남북관계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북미대결의 양상은 분명히 바뀌었다. 군사 대결이 종식되고 외교 대결이 본격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 제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북미 외교가 교착 상태에 빠진 원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는 또 다른 동맹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남북관계 발전을 목표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대북 제재와 한국 정부 역시 대북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동맹 논리에 의해 좌초될 수 있는 것이다. 군사 대결에서 외교 대결로 바뀐 2018년 상황에서도 한반도 평화와 한미동맹은 상충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외교 노력은 대북 제재와 병행하는 순간 절대 성공할 수 없다. 50년 전의 베트남 ‘비밀 협상’의 교훈이, 그리고 2018년 12월 한반도의 현실이 그것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대북 제재를 북미협상과 남북관계 발전의 장애물로 인식하는 것이 동맹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는 첫 조치이다. 대화와 제재는 결코 병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을 때 동맹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동맹의 딜레마에서 빠져 나왔을 때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과정은 그 종착점을 향해 나갈 수 있다.

장창준 정치학박사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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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태어날 때부터 제국이었다"

[전쟁국가 미국·1강-②] 독립전쟁에서 남북전쟁까지
2018.12.17 07:58:59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지난 12월 5일부터 오는 3월 13일까지 총 8회에 걸쳐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의 '전쟁국가 미국' 강연을 마련했습니다. 이 강연에서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추구해온 군사주의 노선이 현재 세계의 혼란과 부의 양극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후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봅니다. 
 
<프레시안>은 격주로 진행되는 강연을 정리해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아래는 지난 12월 5일 진행된 1회 강연을 보강한 내용입니다. 1회 강연은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더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전편 보러 가기 : 미국은 왜 전쟁을 하는가?)


미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미국은 태어날 때부터 제국이었다'고 말한다. 즉 "초기 정착민이 영국을 떠나 버지니아에 도착하고 서쪽으로 이주하던 시절부터 미국은 정복을 추구하는 제국이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건국 이후 미국이 안고 있는 근원적 모순을 지적한다. 미국인의 자유를 위해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 노예 등 타자(他者)들을 정복해 온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이 살해됐다. 영국인이 처음 북미 대륙에 닿았을 지금의 미국 영토에는 약 1000만 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1900년 그 숫자는 20만 명으로 줄어든다. 미국은 처음부터 전쟁과 살육으로 세워진 나라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하였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라는 부분에서 크게 고민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는 당연히 흑인도 포함돼야 했지만 그랬다가는 미국 경제를 지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흑인 노예는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이었다. 

게다가 제퍼슨은 그 자신이 농장주로서 노예를 부렸으며 흑인 노예와의 사이에 사생아를 낳기까지 했다. 결국 흑인 노예는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백인들의 재산으로 규정됐다. 미국 독립선언문이 말하는 '사람'이란 결국 백인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의 경제발전은 흑인 노예의 희생에 의한 것이었다. 1800년대 초 미국의 흑인은 전체 인구의 20% 정도였다. 남북전쟁이 일어난 1860년대 백인 인구는 2700만, 흑인 노예는 400만 명 가량(약 13%) 됐다. 자유 신분의 흑인은 48만 8000명에 불과했다.

노예제도는 1860년대 남북전쟁으로 폐지됐지만 흑인들의 실질적 참정권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60년대 민권운동에 의해 비로소 확보됐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흑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2등 시민으로 취급받고 있다.  

미국의 자유, 미국의 노예제 

'미국의 자유, 미국의 노예제(American Freedom, American Slavery)'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미국의 자유와 노예제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뜻이다. 즉 흑인 노예의 희생이 있었기에 백인의 자유가 가능했다는 뜻이다. 같은 제목의 책도 있다. 이처럼 미국은 출발부터 모순적인 국가였다. 이 근원적 모순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지금 트럼프가 추구하고 있는 반(反)이민 등 백인우선주의 정책이 그 증거다.  

지배와 정복으로 출발한 미국은 '화(和)'를 모른다. 너와 내가 다르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어 평화롭게 살자는 생각이 없다. 미국은 '동(同)을' 추구하는 국가다. '내 식대로 하지 않으면 넌 죽는다'는 게 그들의 사고방식이다. 9.11 테러 직후 부시 대통령은 세계를 향해 "우리 편 아니면 적(You are with us or against us)"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야말로 미국인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1783년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1789년 연방정부를 출범시켰으며 이후 1850년까지 북미 대륙을 정복해 나간다. 이 시기를 영토 팽창의 시대라 할 수 있다. 

1783년 독립 당시의 미국 영토는 북미 대륙 동쪽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애팔래치아산맥 동쪽에 13개 주가 있었고, 산맥 서쪽에서 미시시피 강까지는 오늘날 중서부(Midwest : 오하이오, 일리노이, 인디애나 등)라 부르는 곳으로 당시에는 아직 주권을 갖지 못한 영토(territory)였다. 대륙 서쪽의 절반 이상은 스페인 땅이었고, 북쪽(오늘날 캐나다)은 영국이 갖고 있었다. 또 남으로는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요컨대 독립 당시 미국은 유럽 강대국에 둘러싸이고, 북미 대륙 각지에서 원주민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였다.
 

▲ 지도 1. 1783년 미국 독립 당시 북미 대륙 (출처 : 월터 라페버 <The American Age> p.29)


그런데 이런 나라가 불과 60년 만에 북미 대륙 대부분을 석권할 정도로 팽창한다. 여기에는 당시 유럽의 정세가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면서 이후 1815년 나폴레옹전쟁이 끝날 때까지 4반세기 동안 유럽의 열강들이 혁명과 반혁명으로 나뉘어 전쟁을 벌인 것이다. 즉 유럽 열강은 아메리카 대륙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1803년 제퍼슨 대통령은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를 사들여 단숨에 영토를 두 배로 늘린다(루이지애나 매입). 당시 유럽의 패권을 놓고 영국과의 일전을 앞둔 나폴레옹은 군자금 마련을 위해 1500만 달러라는 헐값에 루이지애나(미시시피 강 서쪽에서 로키산맥 동쪽에 이르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루이지애나 주와는 다르다)를 팔아버린다. 기존 영토와 맞먹는 넓이의 이 지역에서 훗날 13개 주가 생겨난다.  

한편 1836년에는 미국 남서쪽 국경 넘어 멕시코 땅에 정착한 미국계 이민들이 텍사스 공화국(Lone-star state)을 설립하고 독립을 선포한다. 미국계 이민들은 타국의 땅에 나라를 세운 것뿐만 아니라 멕시코가 금지한 노예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 연방정부는 텍사스의 미국 합병을 꺼리고 있었다. 북부의 여러 주들이 노예제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45년 제임스 포크 대통령이 텍사스를 미 연방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면서 미국과 멕시코 간에 전쟁이 벌어진다(멕시코전쟁 1846~1848년) 

1848년 미국은 멕시코로부터 태평양과 맞닿은 서부지역까지 빼앗는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등 미국 서부의 도시 이름이 스페인어원인 것이 이곳이 원래 멕시코 땅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국은 전쟁과 정복을 통해 대륙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을 관통하는 영토 대국으로 성장한다.  

당시 미국의 목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의 캐나다와(캐나다는 186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다) 멕시코까지 차지하려 했다. 캐나다를 정복하려던 전쟁이 1812년의 미영 전쟁(1812년 전쟁)이다. 이른바 '사촌간의 전쟁(Cousin's War)'으로 불리는 이 전쟁은 미국사에서 아주 유명하다. 영국군이 미국 본토에 상륙해 백악관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2001년 9.11 테러 전까지 미국 본토가 침공 당한 유일한 사건이다. 결국 계획했던 캐나다 정복은 실패한다.

미국은 원래 쿠바도 정복하려 했다.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 당시 제퍼슨 대통령은 "다음 목표는 쿠바"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그런 미국이 1850년 이후 영토적 팽창을 사실상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2가지 이유가 있었다. 인종주의와 노예제가 그것이다. 우선 미국이 쿠바와 멕시코로 영토 팽창을 계속할 경우 비백인 인구가 늘어날 것을 우려했다. 비백인 인구가 백인 우위를 위협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또한 남쪽으로의 영토 팽창이 노예제를 확대해 남부 주들의 위상을 강화하는 것도 달갑지 않은 사태였다. 연방정부를 장악한 북부 세력은 자유민들의 임금노동을 바탕으로 상공업 발전을 꾀하고 있었다. 

이제 미국의 목표는 영토 팽창에서 상공업 발전과 미국 경제의 해외 진출로 바뀐다. 1850년대까지 미국은 기본적으로 농업국가였다. 하지만 이제 제조업과 상업의 발전을 통해 해외로의 팽창에 나선 것이다.  

 

▲ 지도 2. 1850년까지 미국의 영토 팽창 (출처 : 월터 라페버 <The American Age> p.132)


'먼로 선언'과 '명백한 운명' 

그에 앞서 19세기 전반 미국의 영토적 팽창 과정에서 제기된 두 가지 핵심 이데올로기를 살펴본다. 하나는 먼로 선언이고 다른 하나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 하는 존재인 것처럼, 모든 국가는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이념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국익을 위한 행동을 그럴 듯한 명분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그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요체는 '자신에게 좋은 것이 모두에게 좋다'는 것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대외정책의 경우 '미국에 좋은 것이 세계에도 좋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한다. 

19세기 전반 미국의 영토적 팽창 시기에는 먼로 선언과 명백한 운명이, 19세기 말 미국의 해외 진출 때에는 문호 개방(Open Door)과 민족 자결(National Self-Determination)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수행한다. 우선 먼로 선언과 명백한 운명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먼로 선언은 1823년 12월 제5대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발표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유럽의 그 어떤 국가도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미국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에 대해 일절 간섭하지 않을 것이며, 유럽 열강 역시 아메리카 대륙의 내정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흔히 먼로 선언을 고립주의 선언으로 이해하는데, 이는 미국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정확하게 이 선언은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의 독점적 세력권'이라는 점을 밝힌 것이다.  

먼로 선언이 발표된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 1823년은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 남미의 주요 국가들이 스페인,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직후이다.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식민종주국 스페인 등이 몰락하면서 남미 여러 나라가 독립했다. 

그러나 전쟁이 나폴레옹의 패배로 끝나고 유럽의 구질서가 회복되면서 유럽 열강들은 과거의 식민지를 되찾으려 했다. 바로 이때 미국은 바로 먼로 선언을 통해 유럽 열강의 아메리카 개입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또는 '명백한 사명'은 1845년 존 오설리번이라는 언론인이 만든 말이다. 간단히 말해 미국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으로 세계로 계속 뻗어 나가면서 자유를 전파할 특별한 운명을 타고 났다는 얘기다. 미국은 워낙 특별한 나라라서, 미국이 세계로 진출할수록 자유의 영역은 넓어진다는 자기 합리화다. 따라서 텍사스, 캘리포니아, 오리건 등 대륙 서부로 진출할 자격과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먼로 선언과 '명백한 운명'이 합쳐져 먼로 독트린이 완성된다. 1945년 12월 2일 제임스 포크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먼로 독트린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면서 미국은 더 활발하게 서부로의 팽창을 계속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가 바로 멕시코전쟁이다. 먼로 독트린의 입장에서 본다면 멕시코전쟁은 타국의 영토 탈취가 아니라 자유의 영역의 확대가 되는 셈이다. 

'명백한 운명'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미국 경제의 해외 팽창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은 이 경쟁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미국이 가장 눈독 들인 시장은 중국이었다.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이었기 때문이다. 1853년 페리 제독이 이른바 '흑선' 함대를 이끌고 일본에 개항을 요구한 것은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미국에 큰 일이 일어난다. 남북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2차 대전을 포함해 건국 이래 미국이 치른 수많은 전쟁 중 미군 전사자가 가장 많았던 전쟁이 남북전쟁이다. 4년간의 동족상잔에서 60만 명이 죽었다. 당장 내전이 발발했으니, 중국이고 일본이고 외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미국의 해외 진출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일본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비록 강제로 개항을(1854년) 당하기는 했지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과학계의 천황이라고 불렸던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가토 슈이치라는 비판적 지식인과 나눈 대담에서 '일본이 서구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중요한 이유는 개항 직후 서구 열강이 남북전쟁 등 전쟁에 휩쓸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1853~56년에는 영국, 프랑스와 러시아가 크림전쟁, 1861~65년에는 미국의 남북전쟁, 1870년에는 프랑스가 프로이센과 보불전쟁을 벌였다. 이런 전쟁들이 없었더라면 일본도 미국 등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역사의 우연 덕분에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남북전쟁은 노예제를 유지하려는 남부 주들이 미 연방에서 탈퇴해 별도의 국가를 세우려던 것을 연방정부의 무력으로 저지시킨 전쟁이다. 이 전쟁은 미국에 커다란 상처를 안겼지만, 미국이 통합 국가로 성장하는 데 아주 중요했던, 거쳐야만 했던 과정이었다. 

미국을 영어로 하면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United States of America)', 여기서 스테이츠(States)는 곧 '국가들'을 말한다. 미국의 주(州) 하나 하나가 곧 국가인 셈이다. 그래서 남북전쟁 이전 미국을 영어로 설명할 때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 아(are)'라고 복수형 동사를 사용했다. '아(are)'가 '이즈(is)'라는 단수형 동사로 바뀐 때가 남북전쟁 이후다. 드디어 미국이 명실상부한 하나의 국가가 된 것이다. (3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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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왜 거부했는가?

[개벽예감 326] 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왜 거부했는가?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12/17 [09: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12월 10일 미국이 일으킨 엄중한 사태

2. 12월 3일 통일각에서 진행된 비공개접촉

3. 조선,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하다

4.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일어난 의견마찰

5. 조선은 왜 보복을 자제하였을까? 

 

 

1. 12월 10일 미국이 일으킨 엄중한 사태

 

2018년 12월 13일 미국군 소식지 <스타즈 앤드 스트라입스(Stars and Stripes)>가 불길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것은 6.25전쟁시기 조선에서 사망한 미국군의 유골을 발굴, 송환하기 위한 조미협상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미국은 조선에 묻혀있는 미국군 유골을 조선과 미국이 공동으로 발굴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조미협상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면서, 미국군 유해 55구가 송환된 이후 2018년 8월부터 조선과 몇 차례 서신을 교환하면서 의견을 조율해왔는데, 이제는 서신교환마저 중단된 것이다. 

 

미국군 유해를 발굴, 송환하는 문제를 두고 조미관계에서 발생한 이런 정황은 한국군 유해를 발굴, 송환하는 문제를 두고 남북관계에서 발생한 정황과 매우 대조적이다. 2018년 9월 19일 평양에서 진행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일정 중에 남측 국방장관과 북측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하였는데, 그 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2019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공동유해발굴을 진행하기로 약속하였다. 화살머리고지는 백마고지와 함께 6.25전쟁시기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다. 남과 북은 화살머리고지에서 공동유해발굴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그 지역에 묻혀있는 지뢰와 폭발물을 2018년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공동으로 제거하였고, 2018년 11월 22일에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화살머리고지로 통하는 폭 12m의 남북연결도로를 개설하였다.   

 

이처럼 남과 북은 공동유해발굴을 합의하고 착실히 이행하고 있지만, 조선과 미국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제4항에서 공동유해발굴을 합의하였으면서도 전혀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대조적인 모습은 지금 난항을 겪고 있는 조미협상의 현실을 보여준다. <사진 1>  

 

미국 국방부 당국자가 조선에 묻혀있는 미국군 유해를 조선과 미국이 공동으로 발굴하는 사업이 중단되었다는 불길한 소식을 미국 언론매체에 알려주기 사흘 전인 2018년 12월 10일 유해발굴사업이 중단된 것보다 훨씬 더 불길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관리국은 최룡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정경택 국가보위상, 박광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선전선동부장에게 “싸이버공격과 심각한 인권침해 및 검열행위 등을 지휘, 시행”하였다는 ‘죄목’을 씌우고, “북조선제재 및 정책추진법에 의거하여 그들을 제재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것은 엄중한 사태였다. 미국이 감행한 이번 제재사건으로 하여 이미 난항을 겪던 조미협상이 위험지경으로 밀려갔으니, 어찌 엄중하다 아니 할 수 있겠는가. 

 

돌이켜보면, 조선과 미국이 치열한 핵대결을 벌였던 2017년 11월 말까지 조선이 미국 본토 전역의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지하핵시험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단행할 적마다, 미국은 조선을 제재하면서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켜왔었다. 그런데 2017년 11월 29일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종식되었을 뿐 아니라, 조미핵대결에서 패한 미국이 2018년 6월 12일 역사상 처음으로 조미정상회담에 끌려나와 역사적인 합의가 이루어졌고, 조미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조선이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선의의 조치들을 연속 취하면서 그 조치들에 상응하여 미국의 대조선제재가 완화되어야 한다는 정당한 요구를 제기하였고, 제재가 완화되기 전에는 미국과 어떠한 협상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제재를 완화하기는커녕 되레 자극적인 추가제재를 감행하였다. 

 

제재를 완화하라는 조선의 요구를 받아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모른 척하면서 잠자코 있으면 상황이 악화되지 않았을 터인데, 트럼프 행정부는 조선의 제재완화요구에 자극적인 추가제재로 응답하였을 뿐 아니라, 그 무슨 싸이버공격이니 심각한 인권침해니 하는 당치도 않은 구실을 내걸어 조선의 고위급 인사들을 제재하는 엄중한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추가제재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은 망측스런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제재가 너무 망측스러워 보도하지 않았지만, 조선이 가장 중시하는 국가적 자존심을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제재로 건드리며 자극하였으니 조선이 어찌 분노하지 않았겠는가!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가 자극적인 추가제재를 감행하여 조미관계를 악화시켰으니, 얼마 전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으로부터 응답을 받지 못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요청해오던 조미고위급회담과 조미실무급회담은 언제 성사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제2차 조미정상회담도 언제 개최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 연방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한 일본의 일간지 <아사히신붕> 2018년 12월 13일부 보도는 트럼프 행정부가 2019년 초에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조선이 미국에게 응답하지 않고 있어서 조미정상회담 개최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지적하였다. 

 

돌이켜보면, 2018년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중에 “내년 초 어느 시점에(sometime early next year)”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었고, 12월 1일에는 취재기자들에게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2019년 1월이나 2월에 열릴 것 같다고 하면서 정상회담 개최지로 세 군데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국무장관도 2018년 11월 28일 취재기자들 앞에서 “(조미)고위급회담이 너무 머지않아(before too long) 열리기를 매우 기대한다”고 말했다. 존 볼턴(John R. Bolton) 국가안보보좌관도 2018년 12월 4일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릿저널>이 주최한 최고경영자 연례회의에서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2019년 1월 또는 2월에 열리게 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런데 일련의 조미협상들이 이른 시일 안에 순차적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하던 트럼프 행정부에게 갑자기 무슨 이상한 바람이 불었는지 태도가 돌변하여 조선에게 자극적인 추가제재를 감행한 것이다. 이런 돌변현상은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해괴한 사건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제재를 발표하였던 2018년 12월 10일 직전에 그들의 태도를 돌변시킬 만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무슨 사건이 있었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가 그처럼 돌변하였을까?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의 고위급 인사들에게 제재를 감행한 엄중한 사태와 관련하여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취재기자들에게 “미국 정부는 대북제재법(H.R. 757)에 따라 북한인권침해상황에 관한 보고서 및 제재대상을 정기적으로 발표해오고 있는데, 이번 발표는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미국이 대조선제재법에 따라 관행적으로 제재를 가해오고 있으므로, 이번에 있은 추가제재도 특별히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정말 그럴까?

 

돌이켜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6월 12일 조미정상회담 이후에도 대조선제재를 계속해왔지만, 지난 몇 달 동안 그들이 발표한 제재대상은 조선의 고위급 인사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발표한 제재대상은 제재조치를 위반하면서 조선과 거래하였다는 ‘죄목’을 씌운 중국기업들과 로씨야기업들, 그리고 그런 기업과 관련된 조선의 해외체류인사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제재대상은 조선의 고위급 인사들이다. 얼마 전 제재조치를 위반하였다는 ‘죄목’을 씌워 중국기업들, 로씨야기업들과 조선의 해외체류인사들을 제재했던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에는 제재조치위반이 아니라 싸이버공격이니 인권침해니 하는 ‘죄목’을 씌워 조선의 고위급 인사들을 제재하였으니, 이를 어찌 관행으로 볼 수 있겠는가.    

 

 

2. 12월 3일 통일각에서 진행된 비공개접촉

 

그러지 않아도 조미협상이 난항을 겪는 민감한 시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왜 추가제재를 감행하여 조미관계를 악화시킨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거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조선, 중국, 로씨야, 이란, 베네수엘라, 수리아 같은 나라들을 걸핏하면 제재하는데, 제재결정권은 스티븐 므누신(Steven T. Mnuchin) 재무장관이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게 아니다. 제재조치는 재무장관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반드시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검토한 다음 트럼프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 시행된다.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각료회의를 거쳐 제재를 결정하면, 재무부가 앞에 나서서 제재조치를 발표하는 것이 그들의 제재절차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보면, 이번 추가제재는 트럼프 대통령, 팜페오 국무장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므누신 재무장관 등이 참석한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논의되고, 그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의 분석초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왜 조선에게 추가제재를 감행하여 조미관계를 악화시켰는가 하는 의문에 맞춰져야 하는데, 여기에 얽혀있는 복잡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얼마 전 한국의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미국 중앙정보국(CIA) 산하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 앤드루 김(김성현)은 2018년 12월 말에 퇴임하게 된다. 그는 조선문제에 관련한 정보를 분석, 판단하는 코리아임무쎈터를 이끌어오면서, 팜페오 국무장관을 수행하여 조미고위급회담에 빠짐없이 배석하였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보는 조선문제에 관한 정보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왔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측 지역에 있는 통일각을 촬영한 것이다. 올해 들어 통일각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하여 남북회담은 물론 조미실무급접촉도 진행되었다. 그런데 올해도 얼마 남지 않은 12월 3일 통일각에서 중요한 비공개접촉이 진행되었다.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 코리아임무쎈터 총책임자로서 팜페오 국무장관을 수행하여 조미고위급회담에 빠짐없이 배석하였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보는 조선문제에 관한 정보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앤드루 김이 통일각에서 조선측 인사들과 비공개접촉을 진행한 것이다. 한국 언론보도을 분석하면,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 사찰을 허용하면 제재를 완화한다는 새로운 방침을 결정한 트럼프 행정부는 앤드루 김을 통일각에 파견하여 조선측에 새로운 제안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 그가 퇴임을 앞두고 자기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였다. <연합뉴스> 2018년 12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앤드루 김과 일행이 2018년 12월 3일 판문점에서 조선측 인사 3~4명을 만났다고 한다. <중앙일보> 2018년 12월 5일 보도에 따르면, 12월 2일 서울에 나타난 앤드루 김은 이튿날 판문점 북측 지역에 있는 통일각에서 조선측 인사들과 두 시간 가량 회담하였고, 다음날 워싱턴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2018년 12월 3일 통일각 비공개접촉에서 무슨 문제가 논의되었을까?  

 

앤드루 김이 통일각 비공개접촉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간 2018년 12월 4일 워싱턴 현지소식통의 발언을 인용한 중요한 정보가 <중앙일보>에 실렸다. 보도기사를 원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미 행정부 내에선 북한이 비핵화과정에서 성실한 조치(sincere measures)를 취하면 미국도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는 방침을 마련했으며, 이에 따라 실무선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성실한 조치는 북한이 핵물질 일부라도 국제원자력기구에 신고하거나, 영변핵시설 사찰을 허용하는 게 될 수 있다. 대북제재를 일부 풀 수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위의 인용문은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조선에 대한 제재를 변함없이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고집해오던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방침을 변경하여 새로운 방침을 마련하였다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마련한 새로운 방침은 조선이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성실한 조치”를  취하면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실한 조치”라는 것은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를 폐기하고 사찰을 허용한다는 뜻이다. 위의 인용문은 조선이 핵물질 일부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하는 것도 “성실한 조치”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조선의 핵물질은 녕변핵시설단지에서 생산되는 것이므로, 녕변핵시설단지 사찰을 허용하면 자동적으로 조선의 핵물질 생산량 및 보유량을 알 수 있으므로,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 사찰을 허용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조미협상의 쟁점으로 된다.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조선에 대한 제재를 변함없이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고집해오던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방침을 변경하여 새로운 방침을 마련하였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회의를 소집하여 새로운 방침을 마련하는 문제를 논의, 결정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이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로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던 날로부터 꼭 1년이 되는 2018년 11월 29일 전후에 백악관 각료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 사찰을 허용하면 제재를 완화한다는 새로운 방침이 그 회의에서 결정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방침을 조선에 제안하는 문제도 그 회의에서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백악관 각료회의의 결정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앤드루 김을 판문점으로 급파하였다. 2018년 12월 3일 판문점 통일각에 나타난 앤드루 김은 며칠 전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결정된 새로운 방침을 조선측 인사들에게 제안하였다. 이것이 통일각 비공개접촉의 내막이다.   

 

 

3. 조선,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하다

 

그런데 통일각 비공개접촉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조선은 앤드루 김을 통해 전달받은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조선이 조미고위급회담이 개최되기를 고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청을 여전히 무시하면서 응답을 주지 않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그런 사실을 잘 말해준다. 

 

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왜 거부했을까?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의 녕변핵시설단지 사찰허용에 상응하는 조치로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다. 조선이 요구하는 것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조선이 이미 실행한 비핵화조치들에 상응하는 조치로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조선과 미국이 동시적이고, 대등하고, 단계적인 조치들(synchronized, equivalent, phased measures)을 실행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조선에게 있어서, 그것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고, 공명정대한 원칙이며, 일점일획도 변경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원칙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방침을 변경하여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조선이 받아줄 수 없는 전제조건을 꺼내놓았다. 녕변핵시설단지 사찰을 허용해야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달아놓은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은 조선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이미 실행한 비핵화조치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따라서 새로운 제안은 동시적이고, 대등하고, 단계적인 비핵화의 원칙에 어긋나는 제안이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바로 그런 까닭에, 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하였던 것이다. <사진 3> 

 

2018년 12월 3일 통일각 비공개접촉을 마치고 빈손으로 워싱턴에 돌아간 앤드루 김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통일각 비공개접촉에 나온 조선측 인사들에게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제시하였으나, 조선이 그것을 거부했다는, 자기들에게 매우 실망스러운 사실을 지적하면서,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한 것은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는 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는 미국 중앙정보국 지나 해스펄(Gina C. Haspel) 국장의 손을 거쳐 트럼프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되었다. 그 보고서를 받아본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2018년 12월 11일부가 트럼프 대통령과 중앙정보국의 껄끄러운 관계를 들춰낸 보도기사를 실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앙정보국이 자신에게 보내오는 정보보고서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정보기관 분석가들은 자기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정보보고와 다른 내용을 공식석상에서 발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자주 곤혹스러움을 느끼곤 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엇갈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앙정보국의 정보보고를 “불신한다(distrust)”는 것이다. 또한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불신하는 정보보고들 가운데는 로씨야의 2016년도 미국 대선 개입사건에 관한 정보보고도 있고, 조선의 핵포기의지(비핵화의지라고 해야 정확함)에 관한 정보보고도 있고, 이란의 핵무기개발에 관한 정보보고도 있고, 지구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보보고도 있고, 싸우디 아라비아 왕세자가 반대파 인사를 살해한 사건에 관한 정보보고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비핵화의지에 관한 중앙정보국의 정보보고를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무슨 뜻인가? 

 

앤드루 김은 통일각 비공개접촉에서 조선측 인사들에게 제시한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조선이 거부한 사실을 두고,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하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보고내용을 불신하면서 여전히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정을 파악하면, 앤드루 김이 2018년 12월 말에 퇴임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4.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일어난 의견마찰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한 이후, 백악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이 새로운 제안을 거부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인 2018년 12월 5일 또는 6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각료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제2차 조미정상회담 개최시기를 2019년 1월 또는 2월로 예측하는 발언을 꺼내놓았던 날이 12월 4일(화요일)이고, 미국 재무부가 조선의 고위급 인사들에 대한 추가제재를 발표한 날이 12월 10일(월요일)인데, 그 며칠 사이에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각료회의가 진행되었고, 재무부가 각료회의 결정에 따라 대조선추가제재를 감행하였던 것이니, 백악관 각료회의가 열릴 수 있었던 날은 12월 5일 또는 6일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한 직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소집된 각료회의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각료들이 조선의 거부행동을 성토하는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평소에도 강경발언을 꺼내놓는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국방장관, 무누신 재무장관 등은 그날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조선에게는 애초부터 비핵화의지가 없었으므로 미국이 속은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면서, 조미협상을 포기해야 한다느니 뭐니 하면서 시끌벅적 떠들어댔을 것이다. 상황변화에 따라 요리조리 말을 바꾸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인 팜페오 국무장관은 격앙된 분위기를 살피며 말을 아꼈을 것이다. <사진 4>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달랐다. 그는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제안을 거부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속단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고 지적한 앤드루 김의 보고내용을 수긍하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각료회의에서도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는 각료들의 주장을 수긍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2018년 12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 메시지에 올린 다음과 같은 메시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북조선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었는데, 나는 우리가 (조미협상을) 서두르지 않고 있으며, 대단한 경제적 성공을 거둘 멋진 가능성이 (조선에게) 있다고 항상 대답하곤 한다. 김정은(국무위원장)은 그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자기 인민을 위하여 그 가능성을 충분히 이용할 것이다. 우리는 잘 하고 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는 각료들의 주장에 동의하였다면, 위와 같은 트위터 메시지는 나올 수 없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물론이고, 각료들도 조선에게 비핵화의지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대는 판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왜 그런 주장을 수긍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조선의 비핵화의지를 부정하는 중앙정보국의 정보판단과 각료들의 주장을 수긍하는 순간, 자신이 2018년 한 해 동안 쌓아올린 조미협상의 모든 성과들, 그가 미국과 전 세계를 향해 자신이 이룩한 훌륭한 외교성과라고 자찬해온 성과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미국 민주당을 비롯한 백악관 안팎의 반대파들로부터 집중공세를 받으며 시달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자찬해온 최고의 외교성과마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경우 자기 정치생명이 급속히 단축될 수밖에 없는 위험이 닥쳐오게 될 것을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조선의 비핵화의지를 부정하는 중앙정보국의 정보판단과 각료들의 주장을 수긍하지 못하는 것이다. 

 

조선의 비핵화의지를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각료들 사이에서 의견마찰이 생기면서 어수선하게 진행된 백악관 각료회의는 결국 조선에게 고강도 제재를 추가한다는 결정을 이끌어내고 끝났다. 그렇게 되어 미국 재무부는 백악관 각료회의의 결정에 따라 추가제재를 긴급히 준비하였고, 2018년 12월 10일 월요일 아침 제재조치를 발표하였던 것이다. 

 

 

5. 조선은 왜 보복을 자제하였을까?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12월 10일 추가제재를 감행하여 조선이 가장 중시하는 국가적 자존심을 건드리며 조선을 자극하였으니, 이제는 조선이 그에 대응해 보복할 차례다. 조선은 어떤 보복조치를 취할 것인가?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제재를 발표한 날부터 일주일이 지난 2018년 12월 17일 현재까지, 조선은 보복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지난 일주일 동안에 있었던 조선의 반응은 2018년 12월 13일 조선의 웹싸이트 <우리민족끼리>에 실린, ‘시간은 미국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줄 것이다’라는 제목의 개인논평과 12월 16일 조선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이 발표한 담화밖에 없다.

 

개인필명으로 발표된 논평보다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의 담화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조선외무성이 담화를 발표한 형식이 이전과 좀 달랐다. 2018년 11월 2일 조선외무성은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유지방침을 비판하는 논평을 외무성 미국연구소 소장의 이름으로 발표하였었는데, 이번에는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의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담화발표주체의 격을 연구소장에서 정책연구실장으로 한 급 낮춘 것이다. 또한 담화는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제재를 “악랄한 대조선적대행위” 또는 “도발적 망동”이라고 규탄하면서도, 발언수위를 조절하였다. 담화에서 주목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지금 국제사회는 우리가 주동적으로 취한 비핵화조치들을 적극 환영하면서 미국이 이에 상응하게 화답해나올 것을 한결같이 요구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미관계개선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미국무성이 대통령의 말과는 다르게 조미관계를 불과 불이 오가던 지난해의 원점상태에로 되돌려 세워보려고 기를 쓰고 있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인용문을 읽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관계개선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 국무부는 대조선제재에 매달리고 있다는 조선외무성의 견해를 알 수 있다.  조선은 추가제재로 엄중한 사태를 일으킨 트럼프 행정부를 강경한 어조로 비판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담화는 강경한 어조를 자제하면서 미국이 “제재압박과 인권소동의 도수를 전례없이 높이는 것으로” 조선의 핵포기를 유도하려고 하면 “조선반도 비핵화로 향한 길이 영원히 막히는...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미국은 <최대의 압박>이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라도 깨닫고 싱가포르 조미공동성명리행에 성실히 림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조선은 보복이 아니라 경고와 충고로 대응한 것이다. 

 

조선은 왜 보복하지 않고 경고와 충고로 대응한 것일까? 만일 조선이 보복하면 미국도 보복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제껏 진행되어온 조미협상이 완전히 파탄되고 보복의 악순환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그런 사태가 일어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보복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 대통령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이색적인 모습은 트위터에 밤낮으로 열심히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 날부터 미국 언론매체들을 불신하면서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퍼뜨리고 있으며, 자기를 비난하는 미국 언론매체들과 정면대결을 벌이고 있다. 오죽하면 지난 40여 년 동안 해마다 12월 중순에 대통령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백악관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어온 언론인 송년회를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취소해버렸겠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인 송년회를 취소한 것은 그와 미국 언론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만일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에게 보복조치를 취하면,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하는 미국 언론계는 조미협상이 완전히 파탄되었다고 떠들어대면서 협상실패의 책임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물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조선의 보복조치가 미국 언론계의 반트럼프공세를 본의 아니게 도와주는 사태로 번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언론계의 반트럼프공세를 도와주는 것은 조선에게 손해만 안겨줄 것이다.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제재에 대해 보복하지 않고 경고와 충고로 대응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2)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8년 1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하원을 장악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연방하원을 장악한 기세를 몰아 탄핵결의안을 발의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연방하원에서 탄핵결의안이 통과되어도, 공화당이 장악한 연방상원에서는 통과되지 않을 것이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을 받아 백악관에서 쫓겨날 가능성은 없다. 그렇지만 탄핵결의안이 연방의회에 상정되는 것은, 그러지 않아도 허약한 그의 정치생명을 급격히 단축시키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탄핵결의안이 연방의회에서 통과되지 않더라도, 탄핵결의안이 연방의회에 상정되어 미국이 발칵 뒤집히면, 트럼프 대통령은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없게 되고, 2020년 대선에도 출마하지 못하게 된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앞으로 2년밖에 남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안에 완료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과업이므로 단계적으로 실현될 것이고, 따라서 추진시간을 요구한다. 이런 사정을 파악하면,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에 재선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만일 트럼프가 아닌 다른 사람이 2020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한반도의 비핵화는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은 보복조치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단축시킬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조선이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제재에 대해 보복하지 않고 경고와 충고로 대응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추가제재를 감행하여 조선의 국가적 자존심을 건드리고 조선을 자극하였지만, 조선은 미국과 또 다시 정면대결을 벌이는 것을 두려워하여 보복을 자제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일념으로 보복을 자제하였고, 트럼프 행정부에게 제재를 완화하고 종전선언을 발표하라는 압박을 지속적으로 가할 것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최종목표를 향해 난관과 혼돈을 뚫고 전진하는 조선의 발걸음은 가로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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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국의 추가 제재에 “비핵화 향한 길 영원히 막힐 수 있어” 반발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12/17 11:44
  • 수정일
    2018/12/17 11: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외무성 미국연구소 개인 필명으로 수위 조절…“우린 조미 관계개선 주장”

신종훈 기자 sjh@vop.co.kr
발행 2018-12-17 09:51:58
수정 2018-12-17 09:5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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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자료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자료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협상 교착상태에서 미국의 대북 '인권공세'가 다시 거세지자, 북한은 '비핵화로 가는 길이 영원히 막히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반발했다.

북한은 1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 개인 명의 담화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담화는 "국무성을 비롯한 미 행정부 내의 고위 정객들이 신뢰 조성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우리에 대한 제재압박과 인권소동의 도수를 전례없이 높이는 것으로 우리가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타산했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으며 오히려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에로 향한 길이 영원히 막히는 것과 같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최대의 압박'이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라도 깨닫고 싱가포르 조미 공동성명 이행에 성실하게 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담화는 "싱가포르 조미수뇌회담 이후 지난 6개월 동안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고위정객들은 매일과 같이 우리를 악의에 차서 헐뜯었다"며 "(미 국무성·재무부는) 무려 8차에 달하는 반공화국 제재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에는 있지도 않은 '인권문제'까지 거들면서 주권국가인 우리 공화국 정부의 책임간부들을 저들의 단독제재 대상 명단에 추가하는 도발적 망동까지 서슴지 않는 등 반공화국 인권모략 소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자료사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자료사진)ⓒ뉴시스/AP

앞서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관리국(OFAC)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조직지도부장과 정경택 국가보위상, 박광호 노동당 부위원장 겸 선전선동부장 등 고위급 인사 3명에 대해 '인권 유린'을 거론하며 제재 대상에 추가한 바 있다.  

최근 미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북한 인권회의 소집 시도, '인신매매국 자금지원 금지 대상' 재지정 등 대북 압박성 행보가 계속되자 북한이 침묵 기조를 깨고 강한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다만 개인 필명 형식을 통해 메시지 수위 조절은 유지했다.  

담화는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미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며 "미 국무성이 대통령의 말과는 다르게 조미관계를 불과 불이 오가던 지난해의 원점상태에로 되돌려세워보려고 기를 쓰고 있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우리는 신뢰조성을 앞세우면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단계별로 해나가는 방식으로 조미관계를 개선해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 13일에는 "우리는 미국이 허튼 생각의 미로에서 벗어나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를 인내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개인 필명 논평을 통해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 바 있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뉴시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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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전 교수 “2018년은 탈냉전 평화통일시대의 서막”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57주기 추모식’ 후 강연
이계환 기자  |  k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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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16  22: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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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57주기 추모식’이 16일 오전 남한산성 안에 위치한 고인의 묘역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57주기 추모식’이 16일 오전 남한산성 안에 위치한 고인의 묘역에서 진행됐다.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의 약력 보고에 이어 추도사가 진행됐다.

<조용수 평전>의 저자이기도 한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는 “25년 전 ‘조용수 평전’을 쓸 때 느낀 점은 조용수 사장이 돌아가실 때 모든 언론들이 침묵했다는 것인데, 최근에도 변함없이 기자가 기레기로 불리고 있다”면서 “57년 전 민족일보가 제시한 4대 사시를 다시 추구하는 언론이 생겨 고인의 뜻을 기려야 한다”고 추모했다.

이어 원 기자는 고인의 묘 앞에 최근 발간한 <촛불민중혁명사>를 헌정해 눈길을 끌었다.

고인의 추모식 때면 꼬박 참가하는 재일동포 이춘웅, 임영웅 씨는 추도사에서 “최근 일본에서 고인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소개하고는 “재일동포들 사이에서도 조용수 사장의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고 알렸다.

고인의 동생인 조용준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유족을 대신해서 참배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조 이사장은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난 최백근 선생이 얼마 전 묘를 망우리에서 마석 모란민주공원으로 이장했다”고 상기시키고는, 매년 겨울 최백근-조용수 두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참배객들이 각각 오는데 내년부터는 참배객을 생각해서 서울에서 두 고인을 함께 추모할 수 있게끔 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모식에는 조용준 이사장과 가족들을 비롯해 박중기, 김영옥, 김준기 등 통일원로들, 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일본지회 회원들 그리고 처음으로 참배 온 성남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등 20여명이 참여했다.

특히, 이번 추모식에는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가 참여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최근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 추모식 후 참배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창훈 통신원]

 

강정구 전 교수 “2018년은 탈냉전 평화통일시대의 서막”

   
▲ 추모식 후 식당에서 최근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는 강정구 전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강정구 전 교수는 강의에서 “2018년은 탈냉전 평화통일시대의 서막”이라고 규정했다.

강 전 교수는 이전에도 6.15선언과 10.4선언이 있었는데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면서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가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반도는 냉전구조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데 이전에는 남북 사이에 내적으로 탈냉전이 이뤄졌으나 외적 탈냉전이 북미 사이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4.27선언과 9.19선언에서 보듯 남북 사이에 내적 탈냉전이 일어났고, 특히 북미 사이에도 6.12성명으로 외적 탈냉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강 전 교수는 내적 탈냉전의 경우 위로부터의 탈냉전과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탈냉전도 일어난 것을 강조했다.

즉, 내적 탈냉전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위로부터의 탈냉전이라면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박정희-박근혜 세력과 자유한국당이 몰락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탈냉전이 이뤄진 것이라는 점이다.

강 전 교수는 “이처럼 올해 내적인 탈냉전이 위와 아래로부터 일어나고 또 외적 탈냉전도 일어나게 된 근거는 촛불혁명과 북측의 ‘핵무력 완성’”이라고 정리했다.

강 전 교수는 “촛불혁명이 가져다 준 현 상황은 천재일우의 기회이자 경천동지할 변화”라고는 “이 기회와 변화를 놓쳐서는 안 된다. 탈냉전 평화통일시대를 맞이하자”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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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고니에 독수리까지... 금강이 달라졌다

[현장] 수문개방 후 금강에 찾아온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

18.12.15 20:12l최종 업데이트 18.12.15 21:05l

 

 세종보에서 만난 생명들
천연기념물 제228호이자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목록에 취약종인 흑두루미 한 쌍이 새끼를 양쪽에서 보호하고 있다.ⓒ 김종술
    
4대강 살리기로 썩어가던 금강이 변하고 있다. 수문개방으로 수위가 낮아지고 모래톱이 생겨났다. 낮은 여울에 살아가는 왜가리, 백로, 물떼새가 노니는 강변에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까지 찾아들었다.
 
4대강 사업 후 막힌 강물이 썩으면서 물고기 떼죽음과 함께 녹조가 창궐해 악취가 진동했다. 기자는 그런 강을 1년에 300일 이상 찾아다녔다. 금강의 발원지인 전북에서 충북, 대전, 충남, 전북까지 400km 정도.
 
"얼굴이 좋아졌네요."
"얼굴에 화색이 도는데 좋은 일 있나요."

 
최근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 수문개방 후 금강의 달라진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탓인지 자꾸만 웃는다. 신문, 잡지에서나 보던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을 매일같이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싱글벙글한다. 최근 금강 주변에 찾아든 손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①큰고니
   
 세종보에서 만난 생명들
추수가 끝난 충남 서천군 들녘에서 만난 천연기념물 제201-2호 큰고니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김종술
 
지난 4일 추수가 끝난 충남 서천군 들녘에서 큰고니 무리를 만났다. 30마리 정도가 흩어져서 논바닥을 파헤치고 있었다. 300m 정도까지 접근하자 보초병이 눈치를 채고 경고음을 보낸다. 유라시아대륙 북부, 아이슬란드에서 번식하고, 유럽, 카스피해 주변에서 찾아든 천연기념물 제201-2호이자 멸종위기야생동식물II급인 큰고니의 삶을 알고 있기에 더는 접근은 할 수 없었다.
 
금강을 찾은 큰고니는 서천과 군산을 왕래하며 3월까지 금강에서 관찰된다. 무리를 지어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큰고니. 약 140cm 정도의 크기로 어미 새는 온몸이 흰색이며, 어린 새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 때가 묻은 듯 회색빛이 돈다.

②흰꼬리수리
 
 세종보에서 만난 생명들
천연기념물 제243-4호인 흰꼬리수리 한 마리가 모래톱에 앉아있다 날아오르고 있다.ⓒ 김종술
 
공주보 상류 모래톱에서는 흰꼬리수리가 자주 관찰된다. 수문개방이 이루어지고 낮아진 수심층 하늘을 빙빙 돌다가 일직선으로 쏜살같이 물속으로 내려 꽂는다. 기다랗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쥔 물고기를 쥐고 다시 날아오르는 모습은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천연기념물 제243-4호이자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목록에 준위협종(NT)으로 분류된 국제보호조다. 4대강 사업으로 급감했던 흰꼬리수리는 수문개방 후 자주 목격되고 있다. 대형 맹금류인 흰꼬리수리는 가끔 고라니 사체를 먹는 경우도 확인했다. 때론 먹이를 먹을 때는 까치와 까마귀가 몰려들어 싸우기도 했다.

③독수리
 
 세종보에서 만난 생명들
고라니 사체를 먹기 위해 모여든 천연기념물 제243-1호 독수리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김종술
 
지난 13일 충남 공주시 우성면 강변에 천연기념물 제243-1호이자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목록에 준위협종(NT)으로 분류된 국제보호조인 독수리가 몰려들었다. 하늘을 빙빙 돌면서 차례로 내려앉는 모습을 보면서 찾아간 강변에는 2마리의 독수리가 고라니 사체를 뜯고 있었다.

5m가량 떨어진 곳에는 26마리가 앉아 있었다. 고라니 사체를 뜯어 배를 채운 독수리가 껑충껑충 뛰어서 자리를 피하자 다른 독수리가 찾아드는 방식으로 순식간에 가죽과 털만 남겨놓았다. 독수리가 먹다 남긴 잔해는 까치와 까마귀가 해치웠다. 부리에 붉은 피가 묻은 독수리는 차례로 날아 하늘을 뒤덮었다.

④검은목두루미
     
 세종보에서 만난 생명들
천연기념물 제451호이자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보호되고 있는 검은목두루미.ⓒ 김종술
 
추수가 끝난 논에 물을 채워둔 얼음판에서 첫 번째로 만난 겨울 철새는 검은목두루미였다. 천연기념물 제451호이자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자료집(Red List)에는 관심대상종(LC: Least Concern)으로 분류돼 있다. 기자의 차량을 보고도 본척만척한다.

⑤흑두루미
 
 세종보에서 만난 생명들
천연기념물 제228호이자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목록에 취약종인 흑두루미 한 쌍과 새끼가 함께 있다ⓒ 김종술
 
흑두루미 한 마리가 날아와서 쉬고 있던 검은목두루미에게 달려들자 흑두루미를 피해 후다닥 달아가 버린다. 흑두루미는 천연기념물 제228호이자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목록에 취약종(VU)으로 분류된 국제보호조로 지구상 생존 개체 수는 대략 1만1600개체 정도로 알려져 있다.
 
현장에서 만난 장남들판 지킴이는 "흑두루미 5마리가 찾아와서 지금은 암수 2마리와 새끼 2마리 총 4마리가 남아 있다. 그리고 검은목두루미는 한 마리만 왔다. 간혹 검은목두루미가 흑두루미 쪽으로 다가온다 싶으면 흑두루미가 쫓아 버린다. 같이 살아가면 좋은데, 아마도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흑두루미 4마리가 있다는 곳으로 가보았다. 암수가 양쪽에서 새끼를 보호하며 먹이를 먹고 있다. 간혹 새끼가 1m 이상 떨어지면 어미가 날개를 퍼덕이며 불러들이는 모습이 모성애가 보였다. 이런 모습은 지켜보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고라니와 까마귀, 비둘기가 시샘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세종보에서 만난 생명들
천연기념물 제228호이자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자료목록에 취약종인 흑두루미 한 쌍과 새끼가 함께 있다ⓒ 김종술

인근에서는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원앙, 참매도 관찰됐다. 10마리가 넘는 고라니가 자유롭게 노닐고 비둘기, 까치, 까마귀 등 이름 모를 새들까지 야생 동물원에 들어온 느낌이다. 

⑥고라니, 그리고...
 
 세종보에서 만난 생명들
기자를 보고 세종보 강물에 뛰어들어 건너편 둔치로 이동하는 고라니.ⓒ 김종술
 
다시 찾아간 세종보에서는 고라니 한 마리가 낮아진 강물에서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모습이 포착됐다. 기자를 발견하고는 강물에 뛰어들어 건너편 들판으로 사라졌다. 수문개방으로 드러난 모래톱에는 왜가리, 백로, 가마우지가 쉬고 있다. 작은 할미새와 인디언 추장새로 불리는 후투티가 벌레를 잡아먹느라 기자의 접근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세종보에서 만난 생명들
수문개방으로 드러난 세종보 모래톱에 왜가리, 백로, 가마우지 등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종술
 
안타까운 장면도 목격했다. 수문이 굳게 닫힌 하굿둑과 백제보 상류에서는 물흐름이 없는 탓에 강물이 얼어붙고 있다. 강 중앙 모래톱에 쉬어야 할 새들이 얼음판에 모여 오들오들 떨고 있다.
 
 세종보에서 만난 생명들
수문개방으로 드러난 세종보에 할미새도 보였다.ⓒ 김종술
 세종보에서 만난 생명들
수문개방으로 드러난 세종보에 후투티도 보였다.ⓒ 김종술
  
모래톱에서 살아가던 새들과 야생동물이 수문개방 후 다시 찾아들고 있다. 지난해보다 마릿수도 증가하고 있다. 강물을 가로막는 콘크리트 보가 철거되고 더 많은 생명이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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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비핵화 위한 평화의 오솔길 열다

<2018 송년특집 ①> 남북관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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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15  11: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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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2018년은 한마디로 ‘격변의 해’였습니다. 70여 년에 걸친 분단과 전쟁의 역사에 파열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웬만큼 굵직한 사건들을 차치하더라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역시 세 차례의 북중정상회담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 것입니다.

한반도에 과연 평화와 통일의 싹이 틀 것인가? 올해 안에 예상됐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의 내년으로의 순연과 내년 초 예정된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 기대를 걸면서, 통일뉴스는 <2018년 송년특집>으로 ①남북관계 ②북미관계 ③북한 내부 ④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외정책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 만에 처음으로 한반도 정중앙 강원도 철원에 도로가 11월 22일 연결됐다. 도로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남북 군인들이 군사분계선에서 만났다. [자료사진-통일뉴스]

1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2월 평창 동계올림픽, 4월 판문점선언, 5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9월 평양공동선언. 70여 년 분단사에서 남북은 2018년 1년 도 채 안 돼, 숨 가쁘게 움직였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선언’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선언’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평화의 오솔길을 여는 실천 서약이 됐다.

남북, 65년 만에 처음으로 군비통제 실천하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남북 사이에는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비무장지대(DMZ)라는 용어가 무색하게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남북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한반도에서 평화는 말뿐인 주제였을 뿐이다.

하지만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가 체결되면서 급변했다. 총 6개 조항으로 구성된 ‘군사분야 합의서’는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조치를 넘어, 운용적 군비통제를 통한 한반도 평화구축의 토대를 이루는 합의서였다.

11월 1일부터 지상.해상.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1976년 미루나무 사건 이전과 같이 비무장 군인들이 경계를 서기 시작했다.

12월 12일 비무장지대(DMZ) 내 시범적으로 철거된 총 22개의 감시초소(GP) 현장검증이 완료됐다. 그 과정에서 남북 간 초소를 연결하는 길도 만들어졌다. 남북 공동유해발굴을 위해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지역 비무장지대의 지뢰가 제거되고, 한반도 정중앙에 도로가 새로 만들어졌다. 경의선.동해선에 이어 세 번째이다. 12월 9일 총 35일간 660km의 한강하구 공동조사도 끝났다.

   
▲ 9월 19일 남측 송영무 국방장관과 북측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평양 백화원초대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군사분야 합의서’에 명시된 7개 주요 사안 중 5개가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군사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드는 사안만 남았다.

이러한 합의 이행을 발표하면서 국방부는 ‘65년 만의 처음’이라는 문구를 자주 썼다.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 이행된 일이기 때문이다.

남측이 1973년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 1974년 ‘불가침 협정체결’, 1982년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 1988년 ‘7.7선언’ 등으로 꾸준히 군비통제를 제안하고, 북측이 1990년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을 공식 발표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남북이 서명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남북불가침합의서에도 군사력의 운용과 배치를 통제하는 군비통제를 담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배경에서 9월 군사분야 합의서의 성과는 65년 한반도 분단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획기적인 사건임이 틀림없다.

“잠재적인 적국 사이에 전쟁의 가능성을 줄이고, 전쟁 발발 시에 그 범위와 폭력을 제한하며, 평시에 전쟁준비에 소요되는 정치적, 경제적 비용을 감소시키기 위해 행하는 모든 형태의 군사적 협력”이라는 현실주의적 군비통제의 주창자인 셀링과 핼퍼린의 ‘군비통제’ 정의가 한반도에서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서해 군 통신선을 정상적으로 가동해, 전쟁의 원인이 되는 상호 불신과 오해, 오산을 줄이는 정보를 교환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조치와 DMZ 내 감시초소 철거 상황을 서로 검증해, 군사력 활동의 투명성을 높이고 상호 감시, 확인하는 등 군사적 신뢰구축을 쌓았다.

국방부는 “국제 군비통제 노력에 있어서도 매우 드문 모범사례”라고 평가할 정도로 한반도에서의 운용적 군비통제가 빠르게 실현되고 있다.

   
▲ 비무장지대(DMZ) 내 시범적으로 철거된 남북 감시소초(GP) 사이에는 작은 길이 만들어졌다. 황색 수기만이 군사분계선(MDL)임을 상징했다. 12일 오전 9시경 남북 군인들이 군사분계선에서 만났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은 신년사부터 9월 평양공동선언까지

정전협정 65년 만에 평화협정 체결의 전제이자 실천 사항인 운용적 군비통제는 지난 1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도 담겼다.

김 위원장은 “무엇보다 북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부터 마련하여야 한다”며 “지금처럼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불안정한 정세가 지속되는 속에서는 북과 남이 예정된 행사들을 성과적으로 보장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서로 마주 앉아 관계개선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도, 통일을 향해 곧바로 나아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더이상 하지 말아야 하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4월 ‘판문점선언’에서 명문화됐다.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고, △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하며,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한 것.

5월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남북 정상은 다시 만나 ‘판문점선언’ 이행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군사분야 합의서’를 체결하며,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하는 ‘판문점선언’ 이행을 본격화했다.

   
▲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장군봉에 올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주목되는 것은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른 운용적 군비통제 실천이 북핵 문제 해결의 견인장치가 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북핵 문제는 북.미 간 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9월 평양 공동선언에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가 명시돼, 남북이 처음으로 북핵 문제를 다뤘다. 그리고 ‘군사분야 합의서’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운용적 군비통제가 비핵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지금은 북핵 문제가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무엇보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막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은 운용적 군비통제로서, 북핵 문제 해결을 촉진하는 분위기를 가져온다. 북한이 비핵화 이후에도 자칫하면 재래식 군비경쟁으로 갈 수 있는데, 이를 미리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평가했다.

김상기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도 ‘2019 한반도 연례정세전망’ 보고서에서 “과거 남북관계에서 군사분야가 상대적으로 협력이 어려웠던 후순위 과제였던 반면, 2018년 남북관계에서는 군사협력이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군비통제의 성과는 그 자체로 우발적 충돌 방지와 긴장완화 효과를 가질 뿐 아니라, 한반도 안보 딜레마의 감소를 낳으면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 이행을 촉진하는 효과도 가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북제재에 막혀 논의만 무성한 남북협력

한반도 분단과 전쟁 이후 첨예했던 군사적 갈등이 완화되면서 평화체제로의 전환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2018년이지만, 정작 남북 간 협력사업은 논의만 무성할 뿐, 실제로 진척을 보지 못했다.

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 간 대화의 문을 열겠다고 발표한 이후, 1월 9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렸다. 그리고 지난 10월 5차 남북 고위급회담까지 진행하면서, 남북은 ‘판문점선언’와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작성했다.

2월 북측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시작으로 4월 ‘봄이 온다’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 7월 평양 남북통일농구경기, 8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 10월 10.4선언 11주년 평양 민족통일대회 등 굵직한 행사가 열렸다.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공동진출과 2032년 하계올림픽 공동개최에도 남북이 힘을 합쳤다.

13일 현재 방북 6천255명, 방남 808명, 북한주민접촉신고 수리 678건, 남북 간 차량운행 5천631회, 남북 간 항공기 운항 10회 등 남북 간 교류협력은 수치상으로 증가했다.

   
▲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들이 단일기(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4월 평양에서 남측 예술단이 '봄이 온다' 공연을 펼쳤다.[자료사진-통일뉴스]
   
▲ 9월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365일 24시간 남북 소통체계가 구축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2018년 남북의 가장 큰 성과는 ‘판문점선언’에 따라 개성공단 내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한 것이다. 애초 8월 개소가 목표였으나, 미국의 발목잡기로 9월에서야 문을 열었지만, 365일 24시간 남북 소통체계가 구축됐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향후 서울.평양 상주대표부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현대화 사업, 산림협력, 보건의료협력 등 남북 간 협력사업은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 현실에 부딪혔다.

6월 합의된 남북 도로협력은 8월 경의선 도로 공동조사만 했을 뿐, 동해선 도로조사 일정은 아직도 잡지 못하고 있다.

7월 한 차례 진행된 경의선.동해선 철도 공동조사는 실제 철도를 움직이며 조사하려던 계획이 유엔군사령부의 저지로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11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의 면제 승인으로 11월 30일부터 12월 17일까지 일정으로 공동조사를 진행했다.

오는 26일 개성 판문역에서는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현대화 사업을 위한 착공식이 열린다. 하지만 착공식은 실제로 공사를 진행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일을 시작하는 ‘착수식’의 의미로 진행된다. 대북제재 때문이다.

11월 29일 남측이 북측에 소나무재선충 방제약제 50t을 전달했지만, 대북제재 품목인지 아닌지 확인이 우선이었다. 양묘장 현대화 사업 등 남북 간 산림협력도 대북제재의 영향 아래 있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 따라 한반도 건강공동체 구현을 위해 보건의료사업도 시동을 걸었지만, 12월 12일 인플루엔자에 대한 정보를 시범적으로 교환하는 수준에 그쳤다. 의약품 지원도 대북제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12월 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특별전 ‘대고려전’이 시작했다. 남북 정상은 북측 고려 유물 전시에 구두 합의를 했지만, 결국 유물이 오지 않았다. 사진은 북측 유물인 고려 태조 왕건 좌상이 전시될 연꽃모양 받침이 들어있는 유리관 옆에 나란히 전시된 희랑대사 좌상. 희랑대사는 왕건의 스승으로, 1100년만의 만남에 대한 기대를 모았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남북 정상이 합의했지만, 지켜지지 않은 일도 적지 않다.

10월 북측 삼지연관현악단의 방남 공연은 성사되지 않았고, 내년 3월까지 진행되는 고려 건국 1100년 기념 ‘대고려전’에 북측의 왕건상은 오지 않았다. 가을 서울 남북통일농구경기는 잊혔으며, 11월 남북적십자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34년 만의 성사 기대를 모은 남북 국회회담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판문점선언’으로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의 기대도 있었지만, 당국 우선주의로 잡음이 일었다. 남북 당국이 6.15선언 18주년 공동행사 개최를 합의했고, 민간 차원에서도 공동행사를 추진했지만, 당국 간 합의로 무산됐다. 10.4선언 11주년 민족통일대회도 정부가 직접 챙겼다.

8월 평양 ‘제5회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U-15) 축구대회’, 10월 평양 남북 태권도 합동공연, 11월 3-4일 남북 민화협의 금강산 공동행사 만이 명맥을 유지했다.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의 사업도 쉽지 않았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가 11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에 대북 인도적 지원을 제재 예외로 인정해달라는 서한을 보냈지만, 대북 인도적 지원이 재개됐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한 ‘판문점선언’이 무색하게 정부는 남북협력사업 하나하나마다 대북제재 위반 여부를 따졌을 뿐이다.

북한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10일 “민족내부 문제에 대한 외세의 간섭을 허용하면 오히려 복잡성만 조성되고 언제 가도 조국통일문제를 우리 민족의 의사와 이익에 맞게 해결할 수 없다”며 “북남관계개선은 그 누구의 승인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며 누구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대북제재는 북한의 핵.미사일의 부산물이기에, 북한이 풀어야 할 숙제임은 분명하다. 북한과 미국의 대화에 제재 해제 여부가 달렸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으로 운용적 군비통제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 분위기 조성과 동시에, 남북경협 준비 자체가 “비핵화의 진전을 이끌어내고 촉진하는 계기가 된다”는 정부의 입장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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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한미대사 “대북제재, 북 지도부에 직격탄 되기 어렵다”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 VOA 인터뷰서 “북, 제재에 익숙”
▲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대사.

첫 여성 주한미대사를 지낸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이 최근 “현실적으로 대북 제재는 생각만큼 북한(조선) 지도부에 직격탄이 되기 어렵다”고 제재 효과에 회의론을 펴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08년 9월부터 3년여 동안 주한미대사를 맡았던 그는 지난 13일(현지시각) 공개된 미국의소리(VOA)와 인터뷰에서 미국 재무부가 북 인권상황과 관련해 추가 제재를 가한 의미를 질문 받곤 “사실 북한(조선)이 제재를 견디지 못해 대화 테이블로 나왔다는 주장이 과연 맞는 분석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이렇게 답했다.

스티븐스 소장은 이어 “북한(조선)이 제재를 받으면, 경제적 어려움이 따라 무기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논리”라면서 “하지만 북한(조선)은 정말 긴 시간을 제재 속에 살아왔고, 그런 일상에 익숙해졌을 것”이라고 했다. 제재에 내성이 생긴 만큼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단 얘기다.

그는 “오히려 북한(조선) 지도층은 중국 등과 사업 파트너를 맺으며 제재를 통해 보다 획기적인 사업을 구상한다는 분석도 있다”고 알리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영향을 받게 되겠지만,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평가절하했다.

VOA가 “제제가 북한(조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북한(조선)의 비핵화를 위해 미 행정부는 어떤 노력을 추가로 기울여야 하냐”고 묻자 스티븐스 소장은 “우선 북한(조선)과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한 트럼프 행정부의 노력은 옳다. 두 지도자가 서로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최고 성과라고 생각한다”면서 “미국은 사상 처음 북한(조선) 지도자와의 만남을 허락했지만, 북한(조선)은 이후 미국의 실무협상 요청에 대응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북한(조선)이 비핵화와 관련해 어떤 노력을 펼쳐줄 수 있을지, 또 미국이 무엇을 해주기 바라는지 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대북 제재 일변도로는 어려운 만큼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서로 협상해야 할 때란 얘기다.

조선중앙통신 “미국의 제재압박은 제 앞길에 장애물 놓는 우둔한 짓”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3일 조선중앙통신은 ‘정현’이란 필명으로 낸 <시간은 미국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줄 것이다>란 제목의 논평에서 “지금 조미협상은 교착상태에 있다”면서 “출로는 미국이 우리가 취한 조치들에 상응한 조치들로 계단을 쌓고 올라옴으로써 침체의 구덩이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 전제는 제재압박에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붓는 것이 허망한 노릇이라는 것을 가급적으로 빨리 깨닫는 것”이라고 꼬집곤 “수십 년 동안 제재 속에서 살아오면서 자력갱생의 정신과 자급자족의 기질이 뼈속까지 체질화된 우리 인민들에게는 조선에 조금만 더 압력을 가하면 굴복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미국이 오히려 가긍하게 보일 뿐”이라고 혀를 찼다.

중앙통신은 또 “대조선 제재압박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미행정부의 행태가 이전 백악관 주인의 ‘전략적 인내’와 얼마나 일맥상통한지 지금 제3기 오바마 정권이 집권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라고 비꼬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바로 미친 짓(Insanity: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이란 아인슈타인의 명언으로 “충고”했다.

그러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와있는 지점에 미국이 당도하기를,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이 허튼 생각의 미로에서 벗어나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를 인내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며 “미국은 제재압박이야말로 제 앞길에 장애물을 놓는 우둔한 짓이라는 것을 한시바삐 깨닫고 쓸데없는 입방아 찧기 대신 조미관계의 축에 미국의 바퀴를 가져다 맞추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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