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김복동 할머니 일대기 ‘절규하며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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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송환 장기수·12명 종업원·김련희씨는 시급한 인도적 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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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8 1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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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뒤집자"는 한국당 의원...'극우의 전당' 멍석 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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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빨갱이 새끼 잡아라. 빨갱이 앞잡이 새끼 잡아라. 간첩 잡아라!"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유족들에게 트라우마로 박힌 '빨갱이'와 '간첩' 소리가 버젓이 울려퍼졌다. 장소는 다름 아닌 국회였다.
8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공동 주최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가 열렸다. 이 공청회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지만원 씨가 참석했다.
논란 속에도 끝내 지 씨를 국회로 불러들인 이 자리를 1000여 명의 방청객이 발디딜 틈 없이 메웠다. 일부 방청객들은 성조기와 태극기를 가져왔고, 유튜브로 방송을 중계하는 60~70대도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모임인 5.18 유족회를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들은 공청회 도중 "역사를 왜곡해선 안된다", "진실은 거짓을 이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그러자 대회의실에 가득했던 천 여명의 관중들은 일제히 "빨갱이 새끼가 여기 있다", "간첩을 잡아라", "죽여라" 등의 거친 언사를 하며 격양된 반응을 보였고, 사회자는 "(5.18 유족 등을) 끌어내라"라고 소리쳤다.
ⓒ프레시안(박정연)
20여 명 남짓한 5.18 유족회원들과 5월 어머니집 회원들은 약 100여 명의 방청객들에 의해 물리적으로 끌려나왔다. 이 과정에서 항의를 하는 5.18 유족들과 끌어내려는 방청객들 사이의 몸싸움이 일어났으나, 국회 방호직원들의 만류로 저지되기도 했다.
이들은 대회의실을 벗어나서도 계속해서 고성과 함께 몸 싸움 시도가 이어졌고, 이로 인해 경찰 5명이 출동하기도 했다. 방청객들은 광주 유족을 가리키며 "빨갱이를 잡아가라", "간첩을 잡아가라"고 소리쳤고, 광주 시민들은 "모욕하지말라"고 외쳤다.
5월 어머니집 회원인 이근례씨는 다른 유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방청객들을 향해 "왜 내 자식이 빨갱이냐"며 "거짓말 하지 말아라"고 눈물을 쏟았다. 그는 "어떤 남자가 나보고 아주 순식간에 '빨갱이 같은 년'이라고 욕을 했다"며 "5월 가족들은 '빨갱이'라는 단어에 트라우마가 있다. 광주 사람들은 대대손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국민인데 아주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유가족인 추혜성 씨는 "국회가 어디냐.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민의의 정당이다"라며 "5.18 특별법이 구성이 되어서 한국당도 진상조사위원을 추천해서 정당하게 구성을 했으면, 그것에 최선을 다해야지. 왜 5월을 폄훼하고 왜곡하냐"고 했다.
그는 "지만원은 5월 광주를 폄훼하고 왜곡해서 벌금형을 받았는데 신성한 국회에서 왜 저런것(공청회)를 여냐"며 "지만원 말대로 북한군이 내려왔다고 하면, 북한군이 600명 침투해서 그런 짓을 할때 국민을 보호하는 이나라 군인들은 무엇을 했냐"고 강조했다.
김창수 조선의열단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이 국회까지 와서 이런 공청회를 연다고 하는 것은 국회를 모독하는 것이고 광주민주화운동을 모독하는 것이고 광주의 영령, 유가족 모두 모독하는 것"이라며 "국회는 민의의 전당인데 어느 국민이 국회에서 이런 공청회를 용납하겠나"라고 했다.
▲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서 지만원씨가 5.18 북한군 개입 여부와 관련해 발표하려 하자 5.18 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항의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만원 "전두환은 영웅"... 여야3당 "멍석깔아준 한국당 제 정신이냐"
지만원 씨는 "전두환은 영웅"이라며 "전두환은 47살 때 별이 두 개 였는데, 그 순발력과 용기가 아니었다면 이 나라는 김재규가 일으키는 쿠데타 손에 넘어갔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다가 2013년 명예훼손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지 씨는 5.18 민주화운동에 600명의 북한군, 이른바 광수(북한 특수군인)가 개입했다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이라며 "시위대를 조직한 사람도, 지휘한 사람도 한국에는 없다"고 했다.
망언은 지 씨에서 그치지 않았다. 행사를 마련한 한국당 이종명 의원은 “80년 광주 폭동이 10년, 20년 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민주화 운동이 됐다. 이제 40년이 되었는데 다시 뒤집을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80년 5월 전남도청 앞에서 수십 수백명 사람들이 사진에 찍혔는데, '북괴군이 아니라 나다'라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상으로 축사를 한 김진태 의원은 "5.18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 된다"면서 "이번 전당대회에 나온 사람들은 이러니 저러니해도 5.18 문제만 나오면 다 꼬리를 내린다, 이래서는 정말 싸울 수가 없다"고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 14일 오후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 앞에서 5.18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위원 선정과 관련 나경원 원내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중이던 오월 어머니회 회원들이 한국당 진상규명 조사위원 선정과 관련 기자회견을 준비하며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 씨는 "5·18 주역들은 북한인과 고정간첩, 적색 내국인으로 구성됐다"며 "작전의 목적은 전라도를 북한 부속지역으로 전환해 통일의 교두보로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 씨는 "(사진을 가리키며) 여기 얼굴이 보이는 사람이 장성택과 리선권"이라며 북한 고위간부를 지낸 이들이 5.18 당시 광주에서 주요직책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근거는 광주 5.18 사진 사료와 비슷한 구도로 찍은 북한 간부들의 사진 뿐이었다.
또한 5.18 당시 군부의 폭력 참상을 찍은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두고 "북괴가 찍은 사진을 받아 자신의 이름으로 세계에 방송하게 한 간첩"이라며 "(곤봉으로 시민을 매질하는 사진을 가리키며) 힌츠페터가 광주에 가서 몇 시간 만에 돌아와 일본에서 송고한 사진"이라고 했다.
지 씨는 지난해 말 힌츠페터와 그의 광주행을 도운 택시기사 김사복씨를 '간첩', '빨갱이'로 지칭해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바 있다.
여여 3당은 이번 공청회를 강하게 규탄했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허무맹랑하고 사기에 가까운 지 씨의 주장에 동조하는 건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의 원혼을 모독하는 행위"라며 "지만원 씨가 주장하는 허무맹랑하고 사기에 가까운 북한특수부대 광주 잠입설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주제로 배정한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평화당 최경환 의원은 논평을 내고 "황당하고 경악스럽다"며 "5·18 북한 개입설을 주장하다 사법적 심판이 끝난 지만원에게 멍석까지 깔아준 것도 모자라 악의적으로 국민 분열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분명해졌다"고 했다. 이어 "고작 지만원 같은 인사를 내세워 아무리 5·18을 왜곡하려 한다 해도 이를 믿어줄 국민은 없다"며 "자유한국당의 5.18 왜곡과 진상규명 방해 행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도 "이미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은 지씨를 다시 불러 행사를 개최하는 몰상식한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며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 한국당이 제 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일본 속의 조선”이 처음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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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고문은 워싱턴 소재 <21세기 연구원> 정기열 원장이 보내온 글이다. 미국 드퍼대 학생들이 재일조선대학교를 방문한 경험이 의의가 깊다고 판단되어 소개한다. 기고문 일부 내용은 독자들과 판단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
들어가는 말: 천지개벽하는 조미관계와 ‘개 버릇 남 못 주는’ 제국의 이율배반
2019년 새해 벽두부터 ‘조미관계정상화’를 향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작년 2018년 한해 내내 조미관계가 ‘대결’에서 ‘대화’로 구도가 전환되며 ‘70년 조미(핵)대결사’는 오늘 드디어 종말을 고하고 있다. ‘극단적 비정상 상태’ 그 자체였던 70년 양국관계가 정상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모든 것이 근본에서부터 서서히 바뀌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디지만 하나씩 둘씩 바뀌고 있다. 그 사실을 오늘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오늘 바뀌고 있는 것은 그러나 구도만 아니다. 조선을 대하는 태도, 자세 또한 바뀌고 있다. 구도, 태도, 자세가 바뀌면서 두 나라 사이 많은 것이 오늘 근본에서부터 수정되기 시작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천지개벽(天地開闢)이 따로 없다. 그 격세지감, 천지개벽은 그러나 누가 선사한 것이 아니다. 누구의 선사품이 아니다. ‘제국’(帝国)이 개과천선(改過遷善)했기 때문은 더욱 아니다. 그들은 개과천선 같은 것을 모른다. 역사상 존재한 모든 제국이 같다. 그들은 자신을 근본에서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존재다. 밖에서 힘으로 강제하거나 아니면 안에서부터 썩을 대로 썩어 내부 붕괴를 하기 전엔 스스로를 바꿀 수 없는 존재다. 오늘 미국이 대표적 경우다.
2019년 새해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관계개선에 더욱 ‘올-인’하는 모습이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 트럼프 면담, ‘친서교환’, 스톡홀름에서의 조미실무회담 소식으로 세상 언론이 뜨겁다. 조미관계에서 변한 것이 하나 있다. 워싱턴은 조선 앞에선 이제 “제국 행보”를 삼가한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때로 제국 행세 할 때조차 눈치 보며 한다. 그러다 주제 파악 못한 채 과거 버릇이 계속되면 조선은 대꾸도 않는다. 워싱턴의 못된 버릇 고치기 위해서다. 요즘 그 못된 버릇이 고쳐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띤다. 이유여하를 막론코 미국은 오늘 조선 앞에선 더 이상 ‘제국 행세’ 않는다. 대신 종전선언, 평화협정체결, 교류, 친선, 협조, 관계정상화를 논한다. 그 워싱턴은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예의 그 못된 버릇을 여전히 벌리고 있다. 주권국가 베네수엘라에 대한 노골적인 ‘정권교체’를 시도하고 있다. 선출된 현직 대통령 마두로를 두고 어디서 기어 나온 듣도 보도 못한 30대 중반의 ‘워싱턴키드’’(Washington kid)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난리다. ‘붕괴 직전’ 모습의 워싱턴 정신상태가 오늘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이다.
매티스 전국방장관, 켈리 전비서실장: “우리가 임기 동안 한 일의 대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의 해외주둔(아프간, 시리아, 한국, 나토 등지의) 미군철수를 못하게 말리는 일이었다”
조선 앞에선 평화를 구걸하고 돌아서선 자기를 지킬 힘이 없는 상대에게 제국(늑대)의 이빨을 또 다시 드러낸 베네수엘라사건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물을 수 있다. 트럼프의 조선에 대한 절절한 구애가 진정성 없는 거짓인가? 아니면 임기 초 때처럼 그가 아직도 네오콘전쟁세력에게 포위되어 처신이 자유롭지 못한 것인가? 후자라고 진단한다. 매티스 국방장관 사퇴 직후 1년 반 비서실장으로 일하다 동반 사퇴한 존 켈리의 <LA Times> 대담기사 내용이 그리 진단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다. 둘 다 해병대 장성출신인 백악관 최고위각료들이 2년 가까이 한 일은 ‘대통령이 틈만 나면 주장한 해외주둔미군철수를 못하게 막은 일’이다. 그 대상 국가들은 지난 2년 시도했으나 실천에 옮기지 못한 국가들이다. 매티스, 켈리 사퇴 직후 그러나 트럼프는 결국 자신의 공약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먼저 시리아, 아프간에서 철군이 시작됐다. 어느 순간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빌미로 주한미군철수 또한 전격적으로 단행할 수 있다. 트럼프가 살아있을 경우 ‘나토에서의 탈퇴’ 또한 시간문제일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그가 오늘도 여전히 네오콘전쟁세력에게 포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019년 미국국가정보전략>: “트럼프 대통령 국가안전에 위협”
1월 23일 17개 국가정보조직이 공동으로 발간한 <2019년 국가정보전략>(2019 National Intelligence Strategy)의 충격적 내용이 공개됐다. “트럼프 대통령 국가에 위협적 존재’(“President Trump a Threat to the Nation”, 2019 US Intelligence Strategy Report Says)라는 주장이다. 지난 2년 트럼프시대를 끝없이 논하면서 한 이야기가 현실로 가시화되고 있다. 오늘 워싱턴은 기본 극소수의 트럼프진영과 절대다수의 반트럼프진영으로 나뉜 채 서로 막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언론은 거의 100% 반트럼프진영에 있다. 현직의 대통령을 국가정보조직들이 집단으로 ‘국가에 위협’이라는 주장은 1963년 케네디를 암살한 조직 곧 ‘딥스테이트’(Deep State)로 불리는 ‘금융지배세력’(The Financial Elites)이 그를 언제든 제거하겠다 공개 협박한 것에 다름없다. 트럼프가 과연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까? 그가 살아서 백악관을 걸어나갈 수 있을까? 등을 지난 2년 끝없이 물었던 상황이 오늘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 지배세력은 오늘 국면이 시리아, 아프간, 머지 않아 한국에서의 미군철수마저 실천에 옮길 것이 확실해보이는 트럼프를 더 이상 살려둘 수 없다 결론 내린 것 같다. 반대 경우 그와 같은 내용의 국가정보전략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와 같은 분석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정보 공개 직후인 1월 28일 CIA, FBI, NIA정보조직 수장들이 상원청문회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대통령의 조미관계개선, 시리아철군, 아프간철군에 대해 항명에 다름없는 발언을 던졌다. ‘대통령 정세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자신들을 임명한 대통령의 권한과 지위를 집단으로 능멸한 행위다. ‘나토탈퇴’ 즉 수백 년 세계를 지배한 ‘대서양세력’(The Atlantic Power)의 근본을 허무는 어마어마한 초대형사건마저 터트릴 것이 확실한 ‘미친 놈’ 트럼프를 더 이상 살려둘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워싱턴지배계급 내부에 자리잡음 없이 불가능한 일종의 공개반역행위들이 연일 터지고 있다. 살아있는 현직의 대통령을 ‘국가안전에 위협’이라 말한 것은 트럼프를 물리적으로 제거하겠다는 내부 결정이 이미 내려졌다는 증거다. 대단히 구체적인 위협이다. 트럼프가 고대하고 있는 2-3월 전후해서 가지려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2차조미정상회담 때까지 그가 살아남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모른다.
트럼프 생존 여부 관계없이 ‘늑대’는 과거처럼 조선 앞에선 늘 ‘순한 양’처럼 행동할 것이다
트럼프가 살아남아 그가 바라고 고대하던 대로 70년 조미(핵)대결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인 종전선언, 평화협정체결, 나아가 주한미군철수 결정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인류사적 과업을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이뤄낼 수 있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러나 만의 하나(오늘은 ‘만의 하나’가 아니다. 백의 하나도 아닐 것 같다. 어느 순간 그가 어떤 처지에 놓일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 2년에 비해 그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노골적이고 거세다. 트럼프로 인해 그들의 수백 년 세계지배구도가 극한의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가 잘못될 경우 트럼프행정부에서 ‘밀월관계’를 구가하며 순항하던 모양의 조미관계는 어떻게 될까? 많은 이들이 갖는 의문이다. 또 다시 과거의 핵대결구도로 180도 곤두박질칠까? 아니면 극도의 혼돈 과정을 거치더라도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조미관계는 결국 또 다시 대화구도에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을까? 이 역시 후자라 진단한다. 조미(핵)대결은 누누이 말했듯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누가 백악관에 있던 대화 구도는 따라서 결국 유지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일정한 기간 트럼프와 했던 밀고 당기는 과정이 또 다시 재연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조미관계는 누가 있으면 되고 없으면 안되는 상황은 이미 아니다. 두 나라는 이미 핵전략국가 대 핵전략국가 관계다. 대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관계다. 러미가 온갖 문제로 아무리 씨름해도 핵대결로 갈 수 없듯 조미관계 또한 이제 대화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세상천지 모든 상대에게 툭하면 이빨을 드러내는 제국은 조선 앞에선 언제나 ‘순한 양’처럼 행동했다. 70년 조미대결사 전기간 그랬다. 코리아전쟁 발발 6개월 뒤 휴전협상에 매달리던 때부터다. 왜? 제국이 조선 앞에서 어제오늘 변함없이 순한 양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딱 하나다. 힘 때문이다. 맨주먹으로 싸우다시피 한 조선을 상대로 1950년 전쟁 때 유엔을 등에 업고 15개 추종국가 끌고 갔던 때도 미국이 당시에 넘지 못했던 ‘조선의 힘’은 다른 것이 아니다. ‘조선사람의 정신’이다. 북녘동포들의 힘은 그러나 오늘 주지하듯 정신만이 아니다. 더 단단해진 정신력 외에 북녘동포들이 오늘 스스로를 지칭해 부르는 ‘핵전략국가’의 힘까지 더해진 (북녘 표현으로) ‘불패의 힘’이다. 그 힘을 이 글에선 ‘살리는 힘’이라 부르자. 늑대가 양을 해치는 힘을 ‘죽이는 힘’에 비유하면 늑대의 기(죽이는 힘)를 죽여 양을 살리고 지키는 힘을 ‘살리는 힘’이라 불러 크게 틀리지 않다. 그렇다. 조미대결사 전기간 제국이 조선 앞에서 양처럼 순하게 행동한 것은 앞에 논한 것처럼 그들이 개과천선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그리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강제한 조선의 힘 때문이다. ‘제국주의’ 본성이 ‘죽이는 힘’이라면 그 죽이는 힘을 ‘살리는 힘’으로 강제해 정의와 평화를 지켜내는 일은 따라서 ‘반제자주’라 정의해 역시 틀리지 않다. 조선이 1세기 가까이 금과옥조처럼 지켜온 반제자주는 그러므로 자신과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힘’이다. 그리 비유해 틀리지 않다.
조미관계개선의 본질: ‘제국주의 곧 죽이는 힘’과 ‘반제자주 곧 살리는 힘’의 역학관계
오늘 조미관계에 발생한 천지개벽은 우리민족의 1세기 위대한 반제자주민족해방투쟁이 이룩한 변화다. 반제자주의 살리는 힘이 강제한 변화다. 세상은 그러나 어제처럼 오늘도 여전히 거꾸로 말한다. 왜? 첫째는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는 제국주의가 세상을 속인(속이고 있는) 결과다. 둘째는 제국의 종이 되어 노예처럼 산 결과다. 셋째는 사대주의, 외세의존이 골수까지 찬 결과다. 그들이 세상을 거꾸로 보는 이유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필칭 소위 주류보수언론이 세상을 속이는 짓은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태영호 박상학, 이만갑 같은 “탈북자”들 데려다 세상 속이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무엇으로도 속일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들이 신주처럼 모시는 미국이 오늘 그들이 버리고 도망쳐 나와 “악마”라 욕하는 바로 그 ‘조국’ 앞에 순한 양이 되어 ‘종전선언’, ‘평화협정체결’, ‘조미관계정상화’에 동의하고 그를 실천에 옮기게 될 천지개벽의 변화다. 오늘 그들을 이용하는 “분단적폐세력”의 운명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갈까? 주인이 몰락할 경우 종들은 언제 용도폐기 될까? 시간문제다.
그렇다. 오늘 진행 중인 세상의 그 모든 변화는 누가 준 것이 아니다. 누구의 선사품이 아니다. 조미관계 경우 남북해외 우리민족이 피땀 흘려 쟁취한 것이다. 1세기 넘게 쉼없이 싸워 만든 결과다. 우리민족이 일궈낸 ‘위대한 인류사적 업적’이다. 그 모든 천지개벽은 2018년 김정은 위원장 신년사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신년사 뒤 70년 최악의 적대관계는 오늘 조미 양국 정상 간에 일종의 ‘밀월관계’가 형성될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밀월관계를 대표하는 상징은 오늘 ‘친서교환’이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 친서를 ‘러브레터’라고까지 부른다. 친서외교는 2019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천지개벽한 조미관계를 상징하는 정상 간 밀월관계 곧 ‘조미관계정상화’는 그러나 국가차원에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민간차원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최근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미국과 ‘일본 속 조선’과의 첫 만남”이 그것이다. 63년 역사 상 처음으로 ‘철천지 원쑤 제국주의’가 조대를 찾은 사건이다. ‘미국과 일본 속 조선’의 첫 만남은 그러나 뜨거웠다. 이글은 오늘 민간차원에서도 전개되는 ‘조미관계정상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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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화중인 재일조선대 학생과 미국 드퍼대 학생[사진 : 정기열 원장 제공] |
“‘미국과 일본 속 조선’의 첫 만남’”: “North Korea in Japan: Colonialism and Education”
“일본 속의 조선”이란 표현은 조대를 찾은 미국 드퍼대(DePauw University) 학생들이 듣고 있는 교육학부 강의제목이다. 제목 뒤에 “식민주의와 교육”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14명 남녀(3학년 11, 4학년 3 / 백인 12, 흑인 1, 어머니가 우리민족, 아버지가 백인인 여학생 1) 대학생들을 인솔한 30대 중반의 백인교수 데맄 포드 박사가 개설한 강의다. 참고로 그의 조대 방문은 이번이 처음 아니다. 2016년 11월 조선대학교 60주년 기념학술대회 때 그는 미국측 발제자로 참가했다. 당시 그가 발표한 논문은 “세계사적 견지에서 본 해외코리안의 민족교육과 조선대학교: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민족교육”(Korean Education for Overseas Koreans and Korea University from the Perspective of World: Korean Education as Resistance to Colonialism)이다. 2016년 조대 방문 뒤 그는 북녘(조선) 방문을 희망했다. <21세기 연구원>은 다음 해 8월 그와 그의 친구 4명이 참가한 “조선학습관광”(Korea Study Tour)을 조직했다. 그리고 작년 초 포드 교수는 <21세기 연구원> 부원장 중 하나로 연구원 사업에 합류했다.
여행 직후 우리는 드퍼대-조선대가 참가하는 <국제학생교류프로그램>(Int’l Student Exchange Program: ISEP)을 함께 기획했다. 작년 1월 양쪽 대학에서 공식 허가가 내려졌다. 그 뒤 1년의 준비를 거쳐 모두 16명(교수 2명 포함)의 미국대학생대표단의 첫 조선대학교 방문이 실현됐다. 방문 이틀 째 포드 교수는 드퍼대, 조선대 학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진행했다. 강의 제목은 “The US-DPRK Relationship and the Fracturing of Unipolar Imperialism: Past, Present and Future”(조미관계와 일극제국주의의 붕괴: 과거, 오늘, 미래)다. 특강은 <21세기 연구원> 기관지 겸 독립영문매체인 <The 21st Century>(21cir.com)에 실렸다. 조선대학교 측에서도 외국어학부 교수의 영어 강의가 진행됐다. 강의 내용은 “재일본조선인역사와 민족교육운동”이다. 첫날 조대 방문에서 미국대학생들은 박물관 견학, 학생, 교직원과 함께 점심, 강의, 자유대화, 조선무용연습 참관, 무용학습과 통일열차, 풍물(이곳에서는 ‘세마치’라고 부른다)공연연습 참관, 풍물(북, 장구, 꽹과리, 징)학습, 그리고 저녁환영만찬을 대학식당에서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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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학교를 방문중인 미국 드퍼대 학생들[사진 : 정기열 원장 제공] |
“생이 바뀌는 경험”(Life-changing Experience): “요코스카해군기지지하터널”, ‘강제징용’, ‘식민지노예노동’
체류 3일 째 아침부터 재일본조선인들의 ‘강제징용 노예로동’ 현장에 대한 학습방문이 시작됐다. 감상문에 소개된 것처럼 지하터널 현장 방문이 미국학생들에게 준 충격이 적지 않았다. 일제가 전쟁 말기 강제징용으로 끌고간 조선인노동자들을 동원 건축한 요코스카해군기지지하터널을 직접 들어가본 미국학생들의 “일본 속 조선”에 대한 학습은 그때부터 심각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미국학생들 생각이 빠르게 자라기/변하기 시작했던 시점은 바로 그때 같다. 그들의 ‘일본 속 조선’ 학습은 5일 째 늦은 오후 시간 바람이 몹시 매서웠던 날 문과성(文科省) 앞 ‘고교무상화 금요투쟁’까지 참가하게 되면서 그들 뇌리 속에 깊이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다. 그날 저녁 그들 모두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조선대 졸업생이 운영하는 불고기집 ‘온돌’에서 열린 만찬행사 때다. 14명 학생 거의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 이틀 뒤 오후 ‘일본 속 조선’에 대한 학습을 모두 마친 그들은 모두 무사히 미국에 돌아갔다. 몇일 뒤 그들 전원은 뜨거운 ‘감상문’을 보냈다. 교수도 귀중한 논문을 발표했다. 학생들 글에 ‘생이 바뀌는 경험’이란 표현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아래 감상문 내용을 짧게 요약한다: “오기 전 예상을 훨씬 넘었다, 끝없는 배움의 연속이었다. 짧은 5-6일 이리도 많은 것을 배울 줄 상상 못했다, ‘재일본조선인운동, 민족교육운동’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됐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반세기 식민지배가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 조선사람에게 통일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됐다, 코리아의 통일을 지지한다, 나도 당신들과 함께 코리아 통일을 위해 싸우겠다, 이번 여행을 평생 못 잊을 것이다, ‘생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등이다. 이미 감상문 일부는 <조선신보>(일어판)에 먼저 소개됐다. 독자들 반응이 뜨겁자 신보에서 학생들 감상문 전체를 우리말로 번역해 신문에 싣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이삼 일 안에 신보에 실리게 될 것 같다. 미국대학생들 방문 기간 조선대 학생 약 2-30여명도 행사 전기간 교대로 참가했다. 보다 많은 학생들의 참가를 위한 대학의 배려다. 언어문제로 참가는 외국어학부 영어전공 학생들이 먼저 선정 대상이 됐다. 둘째 날 드퍼대-조대 교수의 영어공개강의 참가는 그러나 제한이 없었다. 원하는 학생 누구나 참가했다.
강의에 조대생이 100여명 넘게 참가했다. 반응도 뜨거웠다. 조대도 미국학생들도 모두 놀랐다. 외국어학부 영어전공 학생들도 행사에 누가 참가하는지를 놓고 선정과정이 필요했을 정도다. 참가 요구가 높았기 때문이다. 행사에 대한 반응은 ‘미국과 일본 속 조선’ 모두 같다. 학생, 교수 누구랄 것 없이 모두 뜨거웠다. 무엇보다 학생들 반응이 놀라웠다. 그들 모두는 순간에 ‘친구’가 됐다. 마치 수십 년 사귄 친구처럼 됐다. 일주일을 모두 그리 보냈다. 금방 하나가 됐다. 북녘처럼 ‘일본 속 조선’에게도 미국은 평생 ‘제국주의적’이다. 북녘 식으론 ‘철천지 원쑤’다. 반면 미국에게 ‘조선’은 평생 ‘악마’다. 70년 ‘악마화선전전’이 가공해낸 악마다. 서로 평생 ‘적’으로, ‘악마’로 알고 살았다. 그래서 서로를 알 기회가 없었다. 만날 기회도 없다. 물론 그들만이 아니다. 세상 전체가 그랬다. 남녘동포들도 크게 차이 없다. 우리도 몰랐다. 우리도 몰랐으니 다른 곳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서로 평생 ‘적’, ‘악마’로 알고 살았던 그들은 그러나 만나자마자 ‘친구’가 됐다. 순간에! 그렇다. ‘가공된 악마’는 정녕 순간에 사라졌다.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제국주의 원쑤’도 가슴과 가슴이 만나고 서로의 심장이 통하며 금방 ‘동지’가 됐다. 그들이 배운 우리 말 중 하나가 ‘동지’다. ‘축배’란 말도 배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이 외친 우리말은 ‘축배, 동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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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론중인 재일조선대 학생과 미국 드퍼대 학생들[사진 : 정기열 원장 제공] |
<21세기 연구원>의 첫 “국제학생교류프로그램”(ISEP)의 성과와 의의, 전망
방문을 마치며 포드 교수가 제안했다. 조선대학이 받으면 드퍼대학은 내년에도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연구원 측에 내년 또 다시 같은 프로그램을 조대와 함께 조직해줄 것을 부탁했다. 조대에 그런 뜻을 전했다. 조대도 드퍼대와 같은 반응을 내놨다. 드퍼대가 다시 온다면 더 뜨겁게 환영하겠다는 뜻을 알려왔다. 이번 첫 국제학생교류프로그램 사업 성과가 서로의 심장 속에 깊이 각인된 결과라고 믿는다. 행사 뒤 양 대학 모두 이번 사업을 발기하고 조직한 <21세기 연구원> 측에 감사를 표했다. 연구원은 이번 사업에서 얻은 수익금을 대학에 기증했다.
연구원이 이번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한 목적은 아래와 같다: 1) 드퍼대 포드 교수 강의 제목처럼 ‘일본 속의 조선’을 세상에 바로 알리기 위함이다; 2) 세상이 전혀 몰랐던 재일본조선인들의 70년 민족교육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3) ‘일본 속의 조선’은 일본당국이 해방 이후에도 조선사람(총련동포)들에게 끝없이 가한 식민지시대 민족차별정책과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법적 문제 등 온갖 형태의 탄압과 정치사회경제문화적 권리 박탈, 제약, 차별, 제재가 70년 넘게 가해지는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고 아름답게 활짝 핀 한송이 흰색의 ‘목련꽃’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목련꽃은 조선대학교의 ‘대화’(大花)다); 4) 재일본조선인들에 대한 역대 일본당국의 온갖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적 차원의 차별, 억압, 탄압 문제들 중에서도 ‘조선학생들을 고교무상화프로그램에서 유독 제외시키고 있는’ 일본당국의 비열한 처사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5) 재일본조선인들을 상대로 70년 넘게 일본당국이 벌이고 있는 “국가차원의 인권범죄, 인종범죄”가 세상에 철저히 숨겨져 있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6) 달리 말해 70년 넘게 재일본조선인들이 처하고 있는 ‘최악의 인권문제”가 세상에 철저히 숨겨져 있는 현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7) 아베가 공언하고 있는 ‘총련조직과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을 말살’하기 위한 비열하고 악랄한 민족차별정책으로 인해 전국의 수많은 조선학교들이 오늘 더욱 더 큰 재정위기, 폐교위기에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8) 끝으로 ‘조선(우리)학교 살리기 운동’에 우리민족은 물론 국제사회 특히 미국유럽사람들도 참가할 수 있도록 “재일본조선인문제”를 영어권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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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물강습을 받고 있는 미국 드퍼대 학생들[사진 : 정기열 원장 제공] |
“교수님, 우리가 미국서 배운 것 혹 모두 거짓 아닌가요?”
미국학생들이 행사 기간 자기들 교수를 찾아가 토로한 고백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그 동안 배우고 아는 거의 모든 것이 혹 거짓 아닌가?’였다. 한두 학생만 그런 물음을 던진 것이 아니다. 두 교수의 전언에 의하면 거의 모든 학생들이 자신들을 찾아 같은 내용의 고백을 했다는 것이다. 남녘 표현으로 ‘참교육’의 중요성을 또 다시 절감한 1주일이었다. “누가 무슨 내용으로 어떤 방향으로 무슨 목적을 갖고 어떻게 후대들을 교육하는가?”라는 문제가 교육에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또 다시 새롭게 절감한 시간이었다. 포드 교수가 행사 5일 째 오전 조선대학교 행사(영어강연대회) 때 드퍼대, 조선대 학생 모두 앞에서 한 짧은 축하연설을 소개한다: “교원으로 가장 보람되고 기쁜 일은 가르치는 학생들의 생각과 사고가 자라고 깊어지는 것을 보는 일이다. 이번 행사를 통해 자신이 데리고 온 학생들 거의 모두가 5-6일이라는 짧은 기간 빠르게 자라고 변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동을 경험한다. 이번 교류프로그램이 성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 나서고 자신들을 가족처럼 따듯하게 맞아준 조선대학교와 학생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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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동체놀이 중인 재일조선대 학생들과 미국 드퍼대 학생들[사진 : 정기열 원장 제공] |
”13명 일본인 납치문제”와 일제강점기 “수백만 조선인(납치, 징용, 징병, 성노예 등)희생자 문제”
일본당국이 하루 속히 일제강점기 저들이 우리민족에게 가한 온갖 형태의 식민지범죄와 1945년 해방 뒤에도 일본 땅에 남은 수십 만 재일본조선인들에게 오늘 이 시간까지 또 다시 가한 온갖 형태의 식민지범죄에 대한 사죄와 보상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천인공노할 과거 그 모든 범죄에 대한 진솔한 인정과 사죄, 적극적 보상없이 “조선과 관계정상화 하겠다”는 주장은 한낮의 개꿈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제국)에 편승 우리민족의 영구 분열을 70년 넘게 획책하고 확대, 조장하는 것으로 자신의 이득을 꾀한 비열한 과거의 모든 공개, 비공개 범죄들에 대해서도 성실하게 인정, 반성, 사죄하고 적극 보상해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일본당국은 오늘도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틈만 나면 ‘13명 납치자문제’를 끄집어낸다. 일본우익들의 소위 ‘납치자 문제’는 “작은 바늘을 큰 몽둥이”라 우겨대는 행태를 빗댄 표현인 ‘침소봉대’(針小棒大)의 극단적 형태다. 집단적 사이코패스행위다. 집단정신병이다. 수십 년 같은 ‘거짓깃발’(False Flag)을 끝없이 흔들어대는 것은 사이코패스행태에 다름없다. ‘납치문제’는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처럼 ‘늑대 출현 거짓말’을 끝없이 반복하는 행위와 같다. 같은 거짓말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병이다. 소위 납치문제는 따라서 제 국민 모두를 집단으로 정신병자 만드는 일에 다름아니다. 제 국민과 세상을 상대로 “이미 오래 전 끝난 납치자 문제”를 수십년 재탕하며 오늘도 “조선사람 모두를 끝없이 악마화하는” 일본지배세력의 행위는 위선의 극치다. 부끄러운 줄 모르면 그는 이미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숱한 양심적 일본인들을 위해 소위 ‘납치자 문제’에 대한 정의를 아래 다시 정리한다.
‘납치문제’는 “일제가 식민지시대 수백만 조선인들을 저들의 침략전쟁과 강제노동 현장으로 끌어가고 수십만 조선여인들을 ‘일본군성노예’ 목적으로 ‘납치해간’ 국가차원의 범죄”가 진정한 “납치자 문제”다. 그들의 반세기 제국주의범죄가 진정한 납치자 문제다. 수백만 조선인들에 대한 제국주의범죄는 70년 지난 오늘도 부정한 채 ‘수십 명 납치자 문제’를 오늘도 끝없이 재탕하며 조선사람들을 악마화하는 일본사람들의 정신상태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일본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납치자 문제는 자기기만이다.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하여 결국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일이다. 하기야 아베, 다로 같은 일본우익세력은 납치자 문제를 저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 권력을 얻는다. 오늘도 그것으로 자리를 유지한다. 그들에 달리 할 말을 잃는 이유다. 그들 정신세계에는 자신을 진솔하게 돌아보고 반성하는 기능은 아예 본래부터 없다고 진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일본군성노예로 끌려갔던 김복동 할머님께서 몇일 전 93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치셨다. 돌아가시면서도 ‘일본에 대한 분노’를 외치셨다. “아베 사죄를 받지 못한 것이 한’이라는 유언도 남기셨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과 집단, 민족, 국가에게 미래는 없다.
나가는 말
‘미국과 일본 속 조선’의 첫 만남 전기간 서울 KBS TV 편집국 기자 3명이 조대를 방문했다. 그들은 ‘재일본조선인 민족교육운동’ 전반을 1년 넘게 특별 취재하고 있다. 같은 기간 KBS TV 보도국도 3명의 기자들을 파견 조선초중급학교를 중심으로 특별 취재를 벌이고 있었다. 두 기자단은 우리 행사도 취재했다. 미국학생들과 대담도 했다. 미국대학생들의 역사적인 첫 조대방문이 나름 의미가 적지 않다 생각한 것 같다. KBS TV로부터 왜곡함이 없는 객관적 기사를 기대해본다. 머리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모든 것은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정녕 천지개벽이다. 이번 주 동국대학에서 교수와 박사생 4명이 조대를 방문했다. 다음 주에는 북한학대학 교수 10여 명이 조대를 방문한다고 한다. 그렇다. 조미관계가 ‘대결’에서 ‘대화’로 구도가 바뀌며 우리민족을 70년 나눠 놨던 온갖 분단의 장벽들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동시에 지난 70년 역대일본당국이 장막 뒤에 꼭꼭 숨겨 놓은 재일본조선인들에 대한 그들의 천인공노할 ‘식민지범죄’ 또한 오늘 만천하에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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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일조선대와 공동프로젝트에 참가한 미국 드퍼대 학생들[사진 : 정기열 원장 제공] |
정기열 21세기연구소 발행인 겸 편집인 webmaster@minplus.or.kr
"형제복지원에서 아동 시신 소각했다" 의혹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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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9/02/08 09:21
- 수정일
- 2019/02/0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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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인권 유린의 상징 중 하나인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아동들의 시신을 소각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나와서 주목된다.
7일 방송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충격 증언 '형제 지옥원'"편에서는 1970-80년대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불법 납치, 감금, 구타, 성폭행 등 무자비한 인권 유린의 실태에 대해 취재, 보도했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는 <프레시안>에서 최초로 보도했던 형제복지원이 수용됐던 아동들을 해외로 입양보낸 사실 뿐 아니라 아동들이 질병 등으로 사망했을 경우 불법으로 소각했을 가능성에 대해 보도했다. (☞관련 기사 바로 보기 : [단독] 형제복지원도 입양기관과 공생관계였다)
"쓰레기장에서 사람을 태웠다. 소각 후 뼈를 직접 봤다"
형제복지원에서 '선도실 소지(심부름하는 사람)'로 있었던 김모(가명) 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걷지도 못하고 그냥 울기만 하는 아기들을 관리했다. (관리자들은) 아기에 대한 영·유아 지식이 없었다. (그때) 애들이 많이 죽어 나갔다, 조그마한 애들이"라고 '유아소대'의 실상에 대해 증언했다.
김 씨는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마대 포대 등에 담아서 나왔다"면서 "그 야밤에 선도실 요원이 손수레를 끌고 목욕탕 불로 태웠다. 사람 타는 냄새는 나무 타는 냄새와 확연히 다르다"고 밝혔다.
형제복지원에 무려 22년간 수용됐던 하인복 씨도 이날 인터뷰에서 유사한 상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어린 나이에 배가 고프면 주워 먹는데 최고 만만한 게 쓰레기다...그런데 쓰레기장이 목욕탕 옆에 있었다. 그렇게 먹다가 불 때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간부 세 사람이 와서, 밑에 세 사람이 들고 와서 온갖 쓰레기 섞어서 뚤뚤 (마대자루로) 말아서 갖고 왔다. 이 세 사람이 안 가고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사이에 다 탔을 거 같으니까 한 사람이 할아버지에게 '꺼내봐라' 했다...사람을 태운 거죠. 그거는 그 말을 그렇게 하는데 나는 처음에 얘기할 땐 안 믿었다...저는 그거(뼈) 모아둔 걸 보여주는 걸 직접 내가 봤죠."
하 씨는 머리뼈, 골반뼈 등의 모양을 봤을 때 다른 동물의 뼈가 아니라 사람의 유골이었다며 "어른 뼈는 아닌 것 같았다"고 말했다.
▲ 형제복지원 생존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린 아동 시신 소각 당시 상황. ⓒJTBC 화면 갈무리
▲ 형제복지원 생존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린 아동 시신 소각 당시 상황. ⓒJTBC 화면 갈무리
"가족이 있는 아이들도 부랑아로 둔갑시켜 불법 수용...보조금, 노동착취, 해외입양으로 아동 팔아 돈 벌었다"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다수의 아동이 실제로는 오갈데 없는 부랑아나 고아가 아니라 멀쩡히 가족이 있는 경우도 다수였다는 사실도 지적됐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강호야 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길거리 단속 과정에 경찰에게 잡힌 뒤 형제복지원에 가게 된 상황을 증언했다.
"(집이 있다고) 했다. 했는데 시청으로 보내주더라. 영도다리 건너입니다. 우리 집이' 이랬더니 '응 그래 집 보내줄게' 이러는데 그때부터 형제복지원 차가 와서 우리를 싣고 가 버리는데, 그때부턴 내 인생이 내 정체를 잊어버렸다. 그때부터."
'부랑인 단속' 과정에서 잡힌 아이들은 형제복지원으로 끌려와 머리를 깎이고, 헌옷을 입고 깡통을 들게 한 뒤 '부랑아'로 조작돼 사진이 찍힌 뒤 불법 수용됐다. 이처럼 형제복지원은 빈곤층 아동을 사실상 납치해 '고아', '부랑아'로 둔갑시킨 뒤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받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날 방송은 형제복지원이 이처럼 불법 납치, 감금, 수용한 아동들을 정부 보조금, 노동 착취, 해외입양 등 세 가지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면 그 과정에서 부산의 경찰, 시 공무원들이 형제복지원과 결탁돼 있음을 알 수 있다.
▲ 형제복지원에서 조작한 부랑아 사진들 ⓒJTBC 화면 갈무리
"박인근 일가, 사상 온천, 호주 골프장 등 상당한 부 축적"
형제복지원은 1987년 검찰 조사로 충격적인 실상의 일부가 외부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인근 원장(2016년 사망)은 당시 2년 6개월형만을 살고 풀려났고, 이후 재단 이름을 바꿔가며 사회복지시설을 계속 운영했다. 그는 아들에게 법인 대표직을 물려주는 등 그가 형제복지원을 통해 축적한 엄청난 부는 자식들에게 상속됐다. 2014년 '느헤미야'로 법인명을 변경한 형제복지원은 설립 55년 만인 지난 2017년에서야 허가가 취소됐다.
이날 방송은 박인근 일가가 형제복지원이 있던 부산 사상구의 한 온천과 그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인근 전 원장의 최측근은 박 전 원장이 "'내가 그래도 가족들한테 (건물) 한 개 씩은 다 물려줬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방송은 "온천, 골프장을 비롯한 상당 수 건물과 재단 운영권이 박인근 일가로 넘어갔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민성 부산시의원은 "대부분은 목욕탕 사업을 하는데 쓰이거나 호주 골프장을 구입하거나 이런 비용으로 지출이 된다. 박인근의 재산을 은닉하고 재산을 불리는 데 쓰였다"고 밝혔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태에 대해 수사한 김용원 전 검사(현재 변호사)는 당시 형제복지원 수사가 청와대의 압력에 의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형제복지원이 정치권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면서 "이 (수사) 외압의 주체는 청와대"라며 "시설 운영 주체가 누구냐? 박인근 원장이 운영했냐? 천만이다. 전두환 정권이 운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바로 보기 : "전두환은 왜 형제복지원 수사를 방해했나")
오거돈 부산시장은 이날 방송에서 형제복지원 문제에 대해 "진상 규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목격자의 제보를 취합하고 시굴도 하는 등 사전 작업을 거치고, 필요하다면 앞으로 유해발굴 작업까지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2018년 취임 후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진상 규명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해 11월 20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당시 검찰 수사가 외압에 의해 조기 종결됐다고 사과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검찰은 1987년 당시 내무부 훈령을 근거로 박인근 전 원장이 특수감금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법원의 판결에 법령위반이 있다며 형제복지원 사건을 대법원에 비상상고 했다.
사고 발생부터 장례 시작까지..‘김용균이 떠난 뒤, 57일간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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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동료노동자들·시민사회·정치권 공조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결말

지난 5일, 정부와 여당은 태안화력 故 김용균 씨 사고와 관련한 후속대책을 발표했다. 당·정 발표문에는 그동안 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와 유족이 요구해 온 내용이 적잖이 반영됐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원칙으로, 하청노동자 사망사고의 책임이 원청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용균 씨가 몸 담았던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부터 ‘공공기관으로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키로 했다. 또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권고를 정부·여당, 사측이 수용하기로 약속했다.
안전을 외면하고 비용과 효율을 앞세워 진행되어 온 발전산업 민영화의 흐름을 바꾸는 출발점이 마련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28년 만에 하청노동자 산업재해 사고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 원안에 비해 후퇴된 지점도 많았지만, 노동법률 전문가들은 긍정적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성과는 “내 아들의 죽음이 다신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와 그 가족들,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을 바로잡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거리로 나섰던 시민대책위 관계자들과 용균 씨 동료들, 이 투쟁을 곁에서 응원하고 함께해 온 시민들,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줄 알았던 일부 정치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용균 씨의 죽음 또한 다른 하청 노동자들의 사고처럼 묻히고 말았을 일이었다.

청년 노동자의 쓸쓸한 죽음에
촛불든 시민들…“내가 김용균이다”
지난해 12월11일 새벽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에서 김용균(24)씨가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분진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사고를 당한 뒤, 몇 시간 동안이나 방치돼 있다가 동료들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사고를 당한 용균 씨의 상태는 너무나 처참했다.
이 사고는 거의 모든 언론에서 다뤄졌고,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면서, 갖가지 사고 원인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발전소 점검 업무는 본래 2인1조가 원칙이었지만, 민영화 과정에서 예산과 인원이 축소돼 이같은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하청노동자들의 지속적인 위험 설비 개선 요구도 원-하청으로 나뉜 ‘위험의 외주화’ 구조 속에서 대부분 묵살돼 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원청 관리자가 하청 노동자들에게 직접 지시한 메신저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불법 파견 논란도 일었다.
또 용균 씨가 일했던 곳에서만 2010년 이후 8년 간 10여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숨진 사실도 드러났다. 사고가 있을 때마다 고용노동부의 조사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사고가 반복돼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원청 서부발전은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사측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다는 의혹도 언론을 통해 수차례 제기됐다.
용균 씨 동료 노동자들은 시민사회와 결합해 ‘청년 비정규직 故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용균 씨의 가족들은 권한을 시민대책위에 위임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는 수많은 시민사회의 동참으로 이어졌다. 사고발생 이틀 만에 태안시외버스정류장과 서울 광화문에서 용균 씨를 추모하는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시민대책위는 매주 토요일마다 추모문화제를 개최했다.
광화문과 태안버스터미널에 모인 시민들은 “내가 김용균이다”를 외치며, ‘죽음의 외주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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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30일, 발전 하청노동자의 죽음은 예견됐다
-8년간 12명 사망 ‘죽음의 서부발전’, 약속한 재발방지책만 지켰더라면...
-“미안해서..” 홀로 죽은 청년 노동자를 향한 시민들의 눈물과 촛불
국회 찾아간 용균 씨 어머니
1400여 노동안전·법률 전문가들
목소리에 힘입어 통과된 ‘김용균 법’
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자식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용균이가 겪은 안전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며 거의 모든 시민대책위 활동에 참가했다. 시민대책위 주최 대부분의 기자회견과 집회에 참석해 진상이 규명되고 사고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줄 것을 호소했다.
또 김 씨는 시민대책위와 함께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 관련 법안 통과를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엔 하청노동자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부개정법률안이 계류되어 있었다. 법안 처리를 위해 상임위 논의와 공청회 등이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런데 보수야당 일부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발목잡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법률개정안 핵심 내용들이 후퇴되는 등 난항을 겪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특별감찰반원 김태우 수사관의 일방적 주장을 바탕으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여야만 민생법안을 처리해주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정부는 산안법 등 처리를 위해 이들의 정치공세까지 감내해야 했다.
김 씨는 국회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끈질기게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국회 밖에선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영하의 날씨 속에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1400여명의 노동안전·법률 전문가들도 가세했다. 이들 전문가들은 “용균 씨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목된 ‘위험의 외주화’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산재사고 발생 시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쳐 ‘김용균 법’이라 불리는 산안법 전부개정안이 지난해 12월 27일 국회를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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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알맹이 없는 대책’ 발표, 계속된 시민들의 투쟁
정부 관계부처는 사고 발생 이후 수차례 해결 방안이 담긴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근본 원인과 관련된 내용이 빠진 ‘알맹이 없는 대책’이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잇따라 발생해 온 하청 비정규직 산재사고의 근본원인을 ‘위험의 외주화’로 판단했다. 본래는 정규직들이 하던 업무를 효율과 비용의 논리로 외주화 한 뒤,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데서 나온 판단이었다. 또 ‘하청비정규직들의 시설개선 요구가 대부분 비용을 이유로 묵살됐다는 점’과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이 무겁지 않았다는 점’ 등에서도 외주화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에 시민대책위는 “외주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는 곧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원청이 직접고용하라”는 요구였다.
12월 17일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관련 합동브리핑’을 열었지만, 근본대책은 빠져 있었다.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긴급안전조치 등에 대해서만 발표했을 뿐, ‘위험의 외주화’ 문제와 관련한 대책은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이 같은 내용으론 뭔가 바뀐다 해도 겉핥기식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문제를 근본에서부터 바로잡기 위한 노동자와 시민들의 투쟁은 계속됐다.
전국 곳곳에서 故 김용균 씨를 추모하기 위한 촛불이 타올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故 김용균 씨의 유언이 되어버린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를 기치로 각종 기자회견과 집회, 행진, 선전전 등을 시작했다. 청년전태일 등 청년학생단체들은 ‘청년비정규직 故 김용균 청년추모행동’을 발족해 추모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용균씨가 사망한 지 한 달여가 지난 1월 11일, 시민대책위는 ‘故 김용균 청년 비정규 노동자 관련 대정부 요구안’을 내놨다. 설 명절 전에 용균 씨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1월 19일까지 정부가 관련해 답변을 달라고 요청했다.
1월 15일 고용노동부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029건의 법 위반이 적발됐다”는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그달 18일엔 고용노동부과 산업통상자원부가 독립적인 조사활동과 중립적 운영이 보장되는 ‘특별산업안전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진상조사위원을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추천하는 전문가와 현장 노동자 등으로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라”는 요구와 관련해서는, “정규직 전환여부에 대해선 본격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라는 짧은 답변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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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대책위 단식농성 15일째 발표된 당정 후속 대책
시민대책위 “적폐 카르텔 뛰어넘지 못했다”
공공운수노조 “정부 여당에만 기대지 않을 것”
사고 발생 40일이 넘어가도록 정부에서 근본문제에 대한 대책이 나오지 않자, 시민대책위는 투쟁의 수위를 높였다. 태안에 있던 빈소를 서울로 옮겼고, 시민대책위 공동대표 5인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종교인들은 추모기도회와 오체투지로 정부에 근본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이들은 설 연휴에도 단식과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대표단의 단식농성이 15일째에 접어들었던 설 명절 당일(5일), 정부와 여당은 전보다 진전된 대책을 발표했다. 그제서야 대표단의 단식농성도 중단됐다.
사고발생 62일 만인 오는 9일, 어머니 김미숙 씨는 아들 故 김용균 씨를 떠나보낸다. 용균 씨의 장례식은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번 정부 발표로는 ‘위험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관행을 바로잡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시민대책위의 입장이다. 또 당·정이 용균 씨 동료들에 대한 ‘공공기관으로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지만, 직접고용을 통한 전환방식이 아니기에 원-하청 ‘외주화 구조’를 온전히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발전산업 민영화와 외주화를 추진해온 관료들이 정부 곳곳에 있는 한,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기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설 명절 당일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민대책위는 “우린 산업통상자원부와 공기업에 똬리를 틀고 발전 산업의 민영화와 외주화를 추진해 온 적폐 세력의 공고한 카르텔, 그것을 핑계 삼는 정부의 안일함을 뛰어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정부 여당의 발표에서 희망을 보았다”며 “노동자와 시민의 힘을 믿는다. 뜻을 모아준 시민들, 유족과 현장 노동자의 투쟁 없이는 오늘의 발표도 불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민대책위는 “애초 목표했던 바를 이루기 위해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대책위 중심에서 투쟁을 이끌었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도 성명을 발표하고 “‘죽음의 외주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이상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여당의 발표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단결한 투쟁으로 지속적으로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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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문재인 정부의 통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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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반이 좀 넘었지만, 5년 임기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의 기간을 지난 것 같다. 정부 초기의 자리 잡기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후반기는 전반기에 비하여 큰일을 하지 못한 채 지난날의 뒷 수습에 급급하며 지내기가 일쑤이다. 따라서 지금 문재인 정부의 치적을 평가해도 좋은 시점이라고 하겠다. 우선 필자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본적인 느낌을 말해둔다면, 문재인 대통령 개인이 항상 서민을 생각하는 매우 선량한 인간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기에 전체적으로 호감을 갖고 관찰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야겠다. 이 기본적인 느낌이 평가에 있어서 다른 어떤 논리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4일 2019년 첫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우선 남북관계에 관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가장 전면에 떠오른다. 전 세계적인 국제 정세의 변화나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에 있어서의 정세 변화의 추세에 비춰볼 때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하겠다. 다만, 그 변화의 시간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이견이 있는 것이다. 6.25 한국전쟁 때 휴전 협정이 제의된 후 체결되기까지 장장 3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되었다. "북한을 석기시대로 되돌릴 수 있다"는 정도의 위력을 가진 미공군에 의한 폭격이 계속되고 있는 참혹한 상황에서도 장장 3년이라는 긴 기간을 밀고 당기며 흥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핵무기에 관한 협상은 북한에 대한 혹독한 경제제재가 있기는 하지만, 전쟁 당시의 폭격에 비하면 덜 심각한 일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길게 잡으면 휴전 협정 3년의 배 정도의 기간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지금 하는 일을 보면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무슨 협상 타결의 과실이 돌아올 것처럼 기대를 부풀게 하고 있어 걱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만, 전파 매체의 시대에 핵 협상이 조속히 진전되어 합의를 이루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지금 경제가 여러가지로 어렵다. 그것은 정부의 책임만으로 돌릴 일만은 아니다.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 초기에 정부 주도 경제는 끝이 나고 민간 주도 경제로 이행된 것이다. 지금 경제를 정부 주도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어디까지나 경제는 민간 주도로 되는 것이고, 정부의 역할은 그 뒷받침을 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인식을 새로이 할 때 우리의 경제에 관한 판단은 달라질 것이다. 크게는 국제 경제의 추세가 있고, 그 밑에 국내 경제의 변동이 있는 것이며 정부는 다만 3차적으로 돕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의 기본 방향은 서민 경제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최저임금의 인상 폭이 약간 너무 높았다고는 여겨지기도 한다.
최근 한일 간의 갈등을 놓고 어느 국내 야당 지도자가 우리 외교의 축이 한·미·일에서 한·중·북한의 축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의 갈등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판단으로 비외교적인 언사라고 생각한다. 국제정치의 대세를 장기적으로 전망하여 볼 때 판세의 변화는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몇십 년 단위, 50년 또는 100년 단위의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야당 지도자의 말은 너무 성급하고도 미국의 위력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 혁명시대가 아닌 비혁명시대의 국제 정치의 변화는 미터(m)나 킬로미터(km)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밀리미터(mm)나 센티미터(cm)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빙하가 움직이는 것과 같이 알게 모르게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움직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러한 빙하의 움직임에 둔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세기 또는 세기적인 단위로 볼 때도 미국의 영향력은 지대할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줄 안다. 그러한 거시적인 안목에서 한일관계는 얼마간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과거 정권의 적폐청산을 놓고서도 논란이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한 전직 대법원장까지도 구속되어 재판이 계속되는 대규모의 적폐청산 작업이다. 촛불혁명이 100퍼센트의 혁명은 아니지만, 혁명에 준하는 대변혁이라고 볼 때 그러한 적폐청산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4.19혁명 후 수립된 장면 총리의 민주당 정권은 "혁명적 사태를 비혁명적 방법으로 수습한다"는 허정 과정수반의 방침을 따라 혁명적 상황을 비혁명적/평상적 방법으로 대응하였기에 혁명적 격랑에 밀려 전복되고 말았다고 할 것이다. 그때 있은 군사 쿠데타는 그러한 돌출 사태다. 따라서 혁명적 상황에는 혁명적 또는 준혁명적 대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 되었다. 그러한 역사적 안목에서 볼 때 이제까지의 문재인 정부 하의 적폐청산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어떤 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이제는 확장이 아니라 수습의 단계로 들어서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광주형 일자리 합의가 요즘 화제가 되었다. 경제각료를 지낸 광주시장의 새로운, 대담한 실험 같은데, 아무래도 어설픈 가건축물 같다. 특히 정상을 벗어난 노사관계의 합의는 지속성이 문제일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확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거대 야당에서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권후보 지망생들의 경합이 눈에 띄고 있다. 여당인 집권당 안에서도 앞으로의 대권주자 이야기가 슬슬 화제로 되고 있다. 여기에 노파심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대통령이 여당의 대권후보 경합에 개입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는 것이다. 대권후보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후보가 되는 것이지, 섣불리 대통령이 개입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남북미중 정상, ‘세기적 드라마’ 연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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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7 14: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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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 박수환과 동아일보 사장의 '흑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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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지난 1월 28일부터 '언론과 기업의 부적절한 공생관계'를 심층 취재한 내용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언론과 기업의 연결고리는 홍보대행사 뉴스컴 대표인 박수환이라는 여성이었다. 박수환은 2016년 8월,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던 송희영과 대우해양조선이 유착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송희영은 박수환의 '중계'로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접대골프, 초호화 해외여행 등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그로부터 2년 반쯤 지난 뒤 뉴스타파가 보도한 '박수환 게이트'는 한국사회의 수구언론이 얼마나 부패하고 반윤리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방대한 자료는 박수환의 휴대폰 문자 파일인데, 거기에는 2013년 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저장된 2만9534건의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뉴스타파는 '박수환 문자(1) 고위언론인의 채용 청탁'을 시작으로 '박수환 문자(2) 조선일보 기자들이 받은 비행기 티켓, 에르메스 그리고 전별금'(1월 29일자), '박수환 문자(3) 동아일보 사주와 박수환'(1월 30일자), "박수환 문자(4) '1등 신문' 조선일보의 기사거래”(2월 1일자)를 잇달아 내보냈다.
'박수환 문자' (1), (2), (4)는 뉴스타파에 들어가면 금세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최고위 언론인'인 동아일보 사주 김재호(동아일보와 채널A 사장)에게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 관련 기사 바로 보기) 곁들여 말하면, 김재호는 1975년 3월 17일 새벽, 박정희 정권과 야합해 자유언론실천운동의 주역(기자, 피디, 아나운서 등) 113명을 폭력으로 추방한 김상만의 장손이다. 그들이 바로 그날 오후 결성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지금까지 44년 동안 복직과 명예회복을 끈질기게 요구해 왔는데도 김상만의 사주 자리를 물려받은 장남 김병관과 장손 김재호는 단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 지난 2013년 봄부터 동아투위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동아일보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글을 쓰고 있음을 밝혀 둔다.
'박수환 문자'에 따르면, 김재호는 박수환과 수시로 골프 모임을 갖거나 식사를 함께 하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김재호가 박수환을 통해 '의사 처방 없이는 구입이 불가능한 전문의약품을 제공받았다'는 내용이다. 그 의약품은 한때 박수환의 고객사였던 동아제약이 제조, 판매하는 약품이다. 박수환은 2013년 3월 11일 김재호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외국에서 오신 연세 많으신 친척 분께 선물로 드릴 거라고 이미 얘기해 두었습니다. 염려 마시와요. 전문의약품이라 처방전 없이는 못 구하거든요. 선수끼리는 confidentiality가 최우선입니다. 오늘 중 비서실에 전달될 겁니다." 김재호는 바로 그날 이런 답장을 휴대폰으로 보냈다. "강 사장이 보내주셨는데 무지 많이 보내셨네요~^^; 주변에 쫙 뿌려야겠습니다~ 박사장님 혹시 필요하세요?" "주변에 도움이 많이 필요한 남정네들한테 선물 하시와요"(박수환의 응답) 문제의 '전문의약품'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두 사람은 제약회사 사장까지 동원해 '흑거래'를 했을까?
▲ 뉴스타파 관련 보도 화면 갈무리
그 무렵 동아제약은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검찰의 의사 리베이트 수사 등 각종 현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김 사장이 동아제약으로부터 전문의약품을 선물 받은 보름 뒤, 선물을 보낸 동아제약 강정석 사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국내 1위에서 글로벌 제약회사가 되겠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동아제약 홍보기사였다. 하지만 인터뷰의 주인공인 강 사장은 이후 회삿돈을 빼돌리고,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건넨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뉴스타파 기사)
동아일보가 박수환의 고객사와 기사 거래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메시지도 발견되었다. 2014년 10월 13일부터 동아일보가 4회에 걸쳐 연재한 홍보 기획기사 'GE의 혁신노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기획이 마무리된 뒤인 2014년 12월 19일 박수환과 김재호가 주고받은 문자에서 당시 기사가 1억 원짜리 청탁기사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회장님 안녕하시지요? 저희 클라이언트인 GE와 동아일보 산업부가 작지만 1억짜리 프로젝트였는데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해주셨습니다. GE가 아주 좋아해서 내년에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업부 칭찬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수환 올림." "네~ 감사합니다~"(김재호) 동아일보는 이듬해에도 'GE의 혁신'을 다룬 기사를 다시 내보냈다.
사장인 김재호가 브로커인 박수환을 매개로 거액의 '게재료'를 받고 담당 부장에게 지시해서 GE 홍보기사를 연재하게 했음이 분명히 드러났는데도 김재호는 뉴스타파의 보도에 대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재호는 지난 1월 2일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아일보는 권력을 비판하면서도 펀 가르기가 아닌 공존의 가치를 생각하며 품위 있는 바른 언론의 길을 걸었다. (···) 1919년은 인촌선생과 동아일보 창간에 뜻을 모은 젊은 분들이 오로지 민족을 위한 신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과 헌신을 한 시기였다. (···)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면서 100년 전 오늘을 떠올려 본다. 20대의 청춘 인촌과 그 동료들은 암흑의 시절에도 민족의 미래를 꿈꾸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김재호의 이 말이 왜 새빨간 거짓인지에 대해서는 동아투위가 자유언론실천선언 44주년을 맞은 지난해 10월 24일 발표한 성명서('동아·조선일보 폐간운동을 제창합니다')를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동아일보는 1920년 4월 1일 '국민주주' 형식으로 창간되었는데, '창간 사주'를 자칭한 김성수는 동아일보를 교묘한 방법으로 사유화한 뒤 일제강점기 에 '천황 폐하'에게 거액의 '국방 헌금'을 바치는 등 부일(附日) 매국·매족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그의 장남 김상만은 박정희에 굴복해 1975년 3월 17일 동아일보사 언론인 113명을 강제 추방한 장본인입니다. 현재 사장 김재호가 이끄는 동아일보와 채널A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있던 때 얼마나 열심히 부역행위를 했는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동아일보는 내년 4월 1일이면 창간 100주년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세기 가까이 민주주의 발전과 민족의 통일에 기여하기는커녕 김성수와 그 후손의 사유물이 되어 치부의 도구로 전락한 동아일보가 성대하게 100돌을 기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뉴스타파의 박수환 게이트 보도를 보면서 한국 언론에 대해 느낀 바를 간단히 적겠다. 뉴스타파가 4 차례에 걸쳐 내보낸 탐사보도기사는 언론과 기업의 추악한 '공생'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획기적 성과였다. 그런데 한겨레 인터넷판과 <미디어오늘>, 그리고 <미디어스>가 뉴스타파의 기사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 것을 빼면 거의 모든 매체가 그 보도를 외면했다. '침묵의 카르텔'보다 심각한 '묵살의 카르텔'로 일관한 것이다.
cckim999@naver.com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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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걸어와”
설 연휴 첫날인 지난 4일 오후 5시50분께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2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윤 센터장은 응급의료 전용헬기를 도입하고, 재난·응급의료상황실과 응급진료정보망 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 온 응급의학전문의이다. (▶관련 기사 : 응급진료 시스템 구축 앞장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 돌연사)
이 교수는 <골든아워> 2권 ‘부록’에서 이런 윤한덕 센터장을 두고 “그가 보건복지부 내에서 응급의료 일만을 전담해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정부 내에서는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윤한덕은 중앙응급의료 센터를 묵묵히 이끌어왔다”며 “임상 의사로서 응급의료를 실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일이 응급의료 전반에 대한 정책의 최후 보루라는 자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다. 외상의료 체계에 대해서도 설립 초기부터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고 했다. 이어 “내가 본 윤한덕은 수많은 장애 요소에도 평정심을 잘 유지하여 나아갔고, 관계에서의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걸어왔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골든아워>에서 윤 센터장을 ‘냉소적이면서도 진정성이 있는 인물'로 기억했다. 2008년 겨울, 이 교수가 윤 센터장을 찾아갔을 때, 윤 센터장은 이 교수에게 “지금 이국종 선생이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동안에 아주대학교병원에 중증외상 환자가 갑자기 오면 누가 수술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이 교수는 “그가 나를 보자마자 던진 질문의 함의는 선명했다. ‘외상 외과를 한다는 놈이 밖에 이렇게 나와 있다는 것은 환자를 팽개쳐놓고 와 있다는 말 아니냐? 그게 아니면 환자는 보지도 않으면서 보는 것처럼 말하고 무슨 정책 사업이라도 하나 뜯어먹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였다”고 썼다. 이 교수는 “그는 내내 냉소적이었으며 나를 조목조목 비꼬았다. 그럼에도 나는 신기하게도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외상센터 관련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그 시기에 그를 종종 보았다”고 했다.
이 교수 눈에 비친 윤 센터장은 ‘순수한 열의를 가진 젊은 의학도’이기도 했다. 2009년 가을, 두 사람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열린 외상센터 관련 심포지엄에서 만났다. 바쁜 일정 중에 시간을 쪼개 광주에 내려온 윤 센터장은 발표가 끝내고 강당을 빠져나갔다. 이 교수는 그를 쫓아갔다. 윤 센터장이 도착한 곳은 자신의 모교인 전남대 의과대학 강의실이었다. 계단식으로 놓여있는 책상을 손으로 쓸던 윤 센터장은 “내가 말이야, 여기서 공부했었어. 여기서 강의받을 때는 말이야. 이 답답한 강의실을 벗어나서 졸업만 하면 의사로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 요즘 애들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수업을 들을라나?”라고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이 교수는 “윤한덕의 표정이 어린 학생 같이 상기되었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몰아세우던 윤한덕은 거기에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순수한 열의를 가진 젊은 의학도의 뒷모습이었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중증외상센터 공모가 있던 당시 내놓았던 대형 병원들의 말은 지금과 달랐다. 그들은 해당 지역에 중증외상 환자들이 수없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지역 주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중증외상센터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런 병원들이 권역별 중증외상센터 사업에서 우선적으로 선정됐다. 그랬던 이들이 지금은 외상환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들의 의견대로 가자면 이 사업은 시작된 의미가 없다”며 “중증외상센터의 사업의 종료를 생각했다. ‘중증외상센터 무용론’과 함께 국가적 지원이 끊어지면 모든 것은 뜻밖에 쉽게 정리될 수도 있었다”고 썼다. 이 교수와 함께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윤한덕 센터장은 “2018년 이후에 이 사업이 잘도 계속 가겠구나…”라고 읊조렸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윤 센터장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 교수는 “곧 끝나겠구만… 차라리 끝나는 게 좋겠어…”라고 말했다.
급성 심장마비로 인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윤 센터장은 평소 심정지 환자 생존율 개선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자동심장충격기’라는 말 대신 ‘심쿵이’라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용어를 사용하자고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26일 페이스북에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며 “언젠가는 심쿵이(자동심장충격기)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부착되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당신이 남을 돕지 않으면 누구도 당신을 돕지 않게 됩니다. 당신이 할애하는 십여분이 누군가에게는 수십 년의 시간이 됩니다”라며 “응급환자에게 이 기계를 사용하면 누구도 당신에게 배상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쓰러진 사람을 보면 적극적으로 도우십시오. 그로 인해 겪게 될 송사는 보건복지부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했다.
한편, 서울 중부경찰서는 7일 윤 센터장에 대한 부검 결과 “1차 검안 소견과 같이 고도의 관상동맥 경화로 인한 급성 심장사가 1차 소견이며 약물 검사 등 최종 부검 결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회신을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81187.html?_fr=mt1#csidx6e84db840ce79f8b719dee7d44e6ada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석방된 IT 사업가 “기분 좋지만 한편으론 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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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보법’ 기소된 대북 사업가 김호씨 부부

중국을 통해 북한 기술자들과 경제협력 사업을 하던 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지난 1일 설 연휴를 앞두고 석방된 김호씨가 심경을 밝혔다.
김씨는 앞으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됨은 물론 지난해 여름 이후로 떨어져 있던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와 설 명절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김씨는 6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석방됐다고 끝난 게 아니라 답답하다”며 “말끔하게 사건이 종결된 게 아니라 재판은 계속 검찰에서 지저분하게 해왔던 방식대로 이어질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앞서 김씨 사건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조의연)는 지난 1일 오후 김씨 측의 보석 신청을 받아들인다는 결정을 내렸다.
김씨 측 변호인은 국보법으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법원이 보석 신청을 허가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표현했다. 김씨도 석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해 8월 9일 자택에서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에 국보법상 회합·통신·자진지원 등 혐의로 체포된 뒤, 같은 달 11일 구속됐다.
김씨 아내 고모씨는 그 이후부터 이날 남편의 석방까지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중학교, 초등학교, 어린이 집에 다니는 세 아이들과 김씨의 아내 고씨는 그 날, 낯선 사람들이 집안에 들이닥쳐 가장을 붙들어간 악몽이 자리 잡은 집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사실 그 때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낯선 사람을 보면 ‘혹시 나도 잡아가는 게 아닐까’, 집에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누군가 찾아오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이 있었어요.”
가족들은 최근 김씨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며 재판부에 보석신청서를 제출했다. 칠순의 아버지, 김씨의 누나 그리고 김씨의 아내와 세 명의 아이들이 각각 재판장에 편지를 썼다. 글을 모르는 막내는 그림을 그렸고, 김씨의 아내가 막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어 한켠에 적어주었다.
“아빠, 보고 싶어. 아빠, 빨리 와. 빨리 와서 나랑 같이 놀이터 가서 놀자. 아빠, 사랑해.”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7살 막내딸이 김씨에게 보낸 편지의 전문이다.
김씨는 석방을 두고 가족들의 반응을 묻자 “막내딸이 가장 좋아한다”며 “저도 그게(막내딸이 좋아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이어 “저도 애들이 많이 걱정됐는데, 그 걱정이 덜어진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속내는 복잡하다. 그간 차근차근 쌓아온 사업 실적도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상황이다.김씨는 사업 이야기에 한숨을 쉬었다. “납품했던 것들을 다 마치지 못해서 손해가 큽니다. 어쩔 수 없죠.”
앞으로 이어질 재판도 남은 숙제다. 김씨는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다.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 사건은 경제협력 활동을 국보법으로 사건화시킨 것이라고 생각해요. 공안검찰들의 반공주의로 사실 안보와는 전혀 관련없는 조직의 목적으로 저를 악용했던 거죠. 그런 것을 직접 겪으니 너무 억울합니다. 국보법의 문제점과 보안수사대의 악행이 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김씨의 가족들도 매주 열리는 재판에 열심히 참석하느라 바쁘다. 특히 김씨의 아버지는 평생 모르고 살던 국보법에 아들이 연루되자, 관련 토론회와 기자회견 등에도 빠짐없이 오가고 있다.
김씨 아내 고씨는 “아버님은 평생을 일만 하고 사신 분인데, 이젠 칠순 연세에 일도 안하셔야 하는데 생활비에 변호사비에 목돈이 필요하니까 일을 다니신다”며 “어머니 같은 경우는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신 데도 항상 재판에 가셔서 안 들리시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하시고 몇 시간을 사람들 입만 보고 오시는 거다”라고 시부모의 근황을 전했다.
재판을 방청해오며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검찰이 우리한테 반공교육을 시키는건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판사들을 상대로 세뇌교육을 하는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저는 저희 남편 사건을 보면서, 남편 개인이 타겟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남북 평화모드로 돌아선 상황에서 그걸 원치않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저희 남편 사건은 경찰 내사가 몇 년전에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으면 그 때 했어야지. 그 때 잡아갔어야지, 국가안보를 위한 일 아닌가요? 지금 이 시기에 왜 이런 재판이 필요한 일인지 의문입니다. 지금 시기에 국보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평화협정을 반대하는 그런 사람들의 목적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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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원망하는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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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 “미국이 북한에 끌려가”… 홍준표 “한국당 전대 앞둔 술책”
트럼프 “김정은과 관계 좋다” 2차 회담 낙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개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북·미 정상회담의 실무 협상팀의 회담 의제 조율이 시작되기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날짜와 장소부터 먼저 발표한 점에 대해 언론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면,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한 국정연설을 통해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김정은과의 관계는 좋다. 김 위원장과 오는 27일과 28일 베트남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며 “대담하고 새로운 외교의 일환으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역사적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의 인질들은 집에 왔고 핵실험은 중단됐으며 15개월 동안 미사일 발사는 없었다”며 “만약 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북한과 큰 전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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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8개월 전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한 첫 북·미 정상회담 성사가 그랬듯, 그동안의 교착 국면을 뚫고 두 번째 대좌의 문을 연 것도 두 정상의 ‘톱다운’(위에서 아래로) 결단이었다”며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북한의 비핵화 행동과 미국의 상응 조처에 대한 본격 조율이 시작되기도 전에 시간표부터 못박은 것으로 미국 조야의 강한 회의론에도,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개최 의지가 확고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봤다.
한겨레는 “미국은 최근 들어 북한에 긍정적 신호를 발신하며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기대를 표시해왔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달 31일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북한 체제 보장을 재확인하는 한편, 핵신고 요구를 후순위로 돌리고 ‘동시적·병행적’ 이행 방침을 밝히며 유연한 태도로 선회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3일 방송된 미국 CBS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에 미국 정보당국이 회의적 분석을 내놓은 데 대해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우리가 (비핵화 등에) 합의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을 엄청난 경제 대국으로 만들 기회를 갖고 있다”고 낙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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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도 트럼프 대통령의 2차 북·미 정상회담 발표에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헛돌았던 북한 비핵화 협상이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 틀림없다”고 평가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어제 평양으로 날아가 김혁철 전 북한 스페인 대사와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협상에 들어갔다. 날짜를 정해두고 협상을 하면 시한 내에 타협안이 도출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런 면에서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움직임과 이에 대한 미국 측 상응 조치를 두고 벌어질 북·미 간 줄다리기에서 구체적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2차 회담 장소가 베트남으로 정해진 점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중앙일보는 “베트남은 여러 면에서 북한의 거울이 될 만한 나라다. 북한처럼 미국과 전쟁을 치렀고 종전 후에도 20년간 적대 관계를 유지해 왔던 게 베트남”이라며 “이번 2차 정상회담은 북한이 베트남식 번영의 길로 들어서느냐, 아니면 또다시 미국과의 대결 국면으로 되돌아가느냐 하는 중대한 담판이 될 게 분명하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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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비핵화 세부 사항을 따지는 실무 협상은 피하고 즉흥적인 트럼프를 상대하려는 북한의 전략이 통한 것”이라며 “북한은 이후 미국이 비핵화를 요구할 때마다 ‘미국은 싱가포르 초심을 지켜라’고 큰소리를 쳤다. 2차 회담도 똑같이 흘러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아울러 오는 27일 새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통해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하고 보수세력을 결집하려던 자유한국당에선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과 겹치면서 전대 연기론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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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당의 행사이기 때문에 일정대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당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한다면 그 뜻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당 선거관리위원회는 8일 회의를 열어 전대 연기 문제를 논의키로 했다.
국민일보는 “당대표 후보 다수가 전대 연기를 바라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일정 변경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많다”며 “1만여명을 수용할 장소 섭외와 늘어진 기간에 따른 선거 관리, 공정성 시비 등이 문제로 부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6일 기자들과 만나 “전대 일정은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하지만 미·북 회담과 관계없이 진행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후보 간 유불리도 있기 때문에 정해진 수순대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6711#csidx1201d88da1f2ec3bb083ab1fcc6b0cf

[설 특별기획] 나고야의 바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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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2018년부터 독립PD와 독립영화감독을 대상으로 작품 공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된 어린 소녀들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30년 투쟁을 담은 이번 작품 <나고야의 바보들>은 뉴스타파의 제작비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 편집자 주 |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사람들 이야기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다카하시 마코토(76)씨. 그는 전직 교사로 40년 가까이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가르쳤다. 그는 그동안 한국에 100번 넘게 다녀갔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서다.
다카하시 마코토 씨는 1986년 나고야에 있는 야스타고등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던 중, 1940년대 일제가 저지른 태평양전쟁 당시 10대 초,중반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강제 동원된 여자 근로정신대 사건을 처음 알게 됐다.
그의 첫 활동은 1944년 도난카이(東南海) 지진 당시 목숨을 잃은 근로정신대 소녀 6명의 유가족을 찾는 작업이었다. 1988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조선여자근로정신대의 진실규명에 매달려왔다.
1988년 12월 나고야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옛 미쓰비시 공장 터에 지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를 세웠다. 1998년 11월에는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피해보상과 진실규명을 지원하기 위해 '나고야 소송지원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10년 후인 1999년 3월 1일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나고야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지원회는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소송을 진행하며 소송비와 항공료를 지원했다. 그러나 10년 동안 진행된 재판은 최종 패소했다.
재판을 통한 진실규명의 길이 막혔지만, 다카하시 등 소송지원회에 참여한 이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진실투쟁은 재판정에서 미쓰비시 본사로 이동했을뿐이다. 2007년 7월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매주 금요일이면 도쿄 미쓰비시 본사에서 '금요행동' 집회를 열고 있다. 지금까지 금요행동 집회는 450회가 넘는다.
강제노역의 피해 진실을 알리고 일본정부와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하루에 전단지 4,50장 나눠주면 다행일 정도다. 주변 반응은 미지근하고 싸늘하다.
심지어 “너희들은 일본인이 맞냐?는 비난도 들어야 했고, “그렇게 한국이 좋으면 한국에 가서 살아라”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그러나 금요행동 집회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매주 금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나고야에서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온다.
이러한 노력의 불씨는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2009년 3월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 만들어졌다.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위로와 동정을 넘어, 나라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 어린 소녀들이 당해야만 했던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활동이 시작되며,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어졌다. 올해로 10년 째 활동하고 있다.
2009년 9월 25일 미쓰비시자동차가 광주광역시에 전시장을 열면서 자연스러운 불매운동과 함께 미쓰비시자동차전시장 철수를 위한 1인 시위가 시작됐다. 200여 일 동안 계속됐고, 결국 2010년 11월 미쓰비시 전시장은 철수했다.
광주 시민들은 일본 정부의 후생연금 99엔(약 1,100원) 지급이라는 치욕적인 결정 이후 2011년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서명 참여자는 13만 명에 이르렀다.
그해 6월 이 서명용지를 들고 미쓰비시중공업 주주총회가 열리는 일본 도쿄를 을 방문해,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에 직접 전달했고, 미쓰비시로부터 직접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2년 가까운 세월동안 협상이 진행됐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 사이 2012년 양금덕 할머니 등 원고 5명이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원고 11명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 광주고등법원에서 2심 소송까지 승소했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라는 초유의 사법 농단에 막혀 대법원 판결까지 3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렇게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벌인 30년의 시간이 흘러가면서, 일부 피해 할머니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생존 할머니들 역시 대부분 구순이 넘는 고령이 됐다.
피해 할머니들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묵묵히 도왔던 ‘나고야소송지원회’ 회원들도 대부분 백발의 노인이 됐다. 그러나 찬바람이 부는 차가운 겨울 날씨에도, 이들은 매주 금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도쿄 미쓰비시 본사에 나간다. “원고(피해할머니)의 목숨에 내일은 없다”는 문구가 새겨진 플랜카드를 들고서. 국가를 넘어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금요행동’은 계속되고 있다.
<나고야의 바보들>을 취재, 제작한 임용철 PD는 전남,광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소외 받은 사람들을 영상에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싸움-동광주병원>,<꿈의 농학교>등을 연출했다. 2009년부터 10년동안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와 이들을 돕는 일본 소송지원회 회원을 취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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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정상회담 확정과 4자 종전선언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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