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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응원하고 돌아왔습니다!”

대학생 이한희의 강릉 여자아이스하키 통일응원 참가기
강릉=이한희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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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4  18: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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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희(항공대학교 4학년, 대학생겨레하나 회원)
 

   
▲ 2일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린 여자하키 세계선수권 개막전에서 대학생겨레하나 등 남북공동응원단이 북측 선수들을 응원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한희 통신원]

북측의 선수들이 강릉에서 열리는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화통일 동아리 대학생겨레하나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는 과거 남북교류가 활발했다고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이 들었지만 먼 역사였고, 통일은 멀게 만 느껴졌습니다. 지난 10년 간 제가 뉴스를 통해 본 남북관계는 얼음장 같았고, 살벌하기만 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저에게 북측선수들이 강릉에 온다는 사실은 너무 신기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학생들은 결심했습니다. 응원단도 없이 타지에 와서 경기를 벌일 북측선수들을 우리가 직접 응원하고 만나야겠다고.

응원을 가기로 결정한 뒤부터 남북이 함께 만나는 것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남과 북이 결정하고, 결심하면, 이렇게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동안 그 어떠한 교류도 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이 참 이상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북측 선수들을 응원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벅차고 설레였습니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까? 어떤 응원을 좋아할까?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지난 2일, 강릉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강릉하키센터 경기장에 도착하는 순간 남측 사람과 북측 사람의 만남이 쉽지 만은 않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절대로 만나면 안 되는 사람처럼 억지스러운 경찰과 진행요원들이 만든 긴장감이 참가자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경기장 안전 문제를 넘어서는 과도한 2중, 3중의 몸수색과 가방 바닥까지 ‘뒤지는’ 검사를 마치고 나서야 겨우 경기장에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 통일응원 참가자들은 막대풍선을 두드리고 단일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응원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한희 통신원]

통일응원 참가자들이 입장을 마치고 선수들을 맞이하기 위해 통일응원단장의 몸놀림에 맞춰 막대풍선을 두드리고 단일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응원연습을 해보았습니다. 처음 해보는 응원이지만 마치 오랜 기억 속에 있다 나온 것처럼 낯설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짝짝짝, “하나다” 짝짝짝. “이겨라” 짝짝짝, “코리아” 짝짝짝. 구호를 외치는 순간 내 마음 속에 있던 작은 분단장벽마저 자연스럽게 허물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응원소리가 울려펴지는 사이 북측의 선수들이 빙판을 가르며, 경기장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반가움에 제 몸이 먼저 반응하고 움직였습니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큰 박수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렇게 와서 경기하면 되는데, 이렇게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었는데, 왜 우리는 싸워야만 할까, 수없이 반복되는 생각들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만나면 안 되는 걸까.

   
▲ 2일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 세계선수권 디비전 2 그룹 A(4부리그) 대회 1차전에서 북한과 호주가 맞붙었다. 북한팀은 1:2로 패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한희 통신원]

호주팀과의 경기가 시작되고 참가자들의 응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북측 선수들을 환영하는 마음으로 ‘반갑습니다’를 부르고, 골을 넣을 때면 우리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빙판에서 뛰고 있지는 않지만 함께 호흡하고 뛰고 있는 제2의 선수가 되어 열정적으로 응원을 펼쳤습니다.

그 중 제 마음을 울렸던 구호는 20명의 북측 선수들의 이름을 한명, 한명 불러주는 응원이었습니다. “진옥” 짝짝짝, “최은경” 짝짝짝, “김은향” 짝짝짝, “김능금” 짝짝짝, “김향미” 짝짝짝... 선수들의 이름을 불렀을 때 마음속이 뜨거워지면서 아, 우리가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가진 한 민족이었구나! 민족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서로를 부르는 것도 통일이고, 우리 민족이 함께하는 모든 것이 통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한희 통신원]

안타깝게도 경기는 1:2로 호주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경기종료 후 무거운 마스크를 벗자, 뻘겋게 상기되어 있는 북측 선수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기에 북측 선수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통일응원단은 경기 때보다 더 크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통일조국’, ‘우리는 하나다’를 외쳤습니다. 분명 우리의 응원에 보답하고자 꼭 이겨서 웃는 얼굴로 우리와 인사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선수들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마주한 북측의 선수들은 하키 스틱으로 빙판을 두드리고 손을 들어 우리에게 흔들어 주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고 한 번도 그들을 향해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응원을 하면서 이렇게 눈을 마주치는 것도 통일이고, 서로를 부르는 것도 통일이고, 우리 민족이 함께하는 모든 것이 통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공동응원에 참가한 서울대학생겨레하나 회원들이 경기장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한희 통신원]

남으로는 북측 선수들이 내려오고, 북으로는 남측 여자축구 선수팀이 평양에서 지금 경기를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스포츠로 이어진 남과 북의 만남. 이번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이 평창올림픽에서 평화의 올림픽으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평창 올림픽의 슬로건은 Hello PyeongChang입니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에는 Hello라는 인사조차 편안하게 나눌 수 없는 우리가 있습니다. 2018년 2월, 우리가 만났을 때에는 안녕하세요, 언제 봐도 반갑습니다! 우리말로 편하게 인사할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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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거리 아닌 중거리 미사일 발사…목적은?

 
미중 정상회담 앞두고 무력 시위
2017.04.05 10:21:40
 

 

 

 

북한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 아닌 IRBM을 발사하면서 수위를 조절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합동참모본부는 5일 "오전 6시 42분경 북한이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며 "비행거리는 약 60여km이며 방향 방위각 93도, 최고고도 189km로 비행했고 북극성 2형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미국 태평양사령부 역시 이날 성명을 통해 초기 분석 결과 북한이 지난 2월 12일 발사한 '북극성 2형'을 시험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령부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의 관측 결과 이번 발사가 북미 지역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 지난 2월 13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12일 북극성 2호가 발사됐다며, 김정은(오른쪽 세 번째) 국무위원장이 이를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지난달 22일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실패한 것으로 관측된 이후 14일만이다. 당초 북한이 미중 정상회담과 김일성 생일 등 굵직한 이벤트를 계기로 탄도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이 ICBM이라는 고강도 군사적 행동 대신 IRBM을 선택하면서, 미국과 중국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미중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감행하면서 자국에 가하고 있는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다만 북한이 지난 3월 7일에는 '핵 전투부 취급 질서' 점검을, 그리고 같은 달 18일에는 로켓의 신형 엔진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힌 만큼, 이번 발사 역시 자신들의 군사적 필요에 따라 예정된대로 진행한 시험 발사라는 해석도 있다. 또 향후 ICBM 발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8시 30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미사일 발사 상황을 파악하고 대비태세를 점검했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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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제대로 조사하려면 목포 조선소로 가는게 바람직

‘선체는 바로 섰을 때 가장 안정된 구조’ 반드시 복원해야
 
신상철 | 2017-04-04 20:21:1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인양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점에 대하여는 지난 번의 글 - ‘세월호 인양방식을 보며 드는 걱정과 우려’에서 충분히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선체는 바로 섰을 때 가장 안정된 구조’

기본적으로 선체는 바로 세웠을 때 구조적으로 가장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철판의 두께만 비교해 보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거제 삼성조선소에서 신조선 감독으로 근무하며 25,000톤급 컨테이너선을 건조할 당시 더블버톰(double bottom, 이중저-선저하부) 외판의 두께는 대략 36mm였습니다. 그것도 고장력강(High-tensile steel)을 써서 그렇습니다. 고장력강이란 열처리를 거쳐 인장강도가 높아진 철판이라는 뜻입니다. 그에 비해 좌우현측외판은 18∼22mm 철판으로 연강(mild steel)을 씁니다. 열처리가 안 된 일반 철판을 뜻합니다.  

따라서 세월호의 현재 상태는 두껍지도 않고 강도도 높지 않은 좌현 외판이 선체 전체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물 속에서는 그나마 부력으로 인해 중력의 압박이 덜했겠지만 육지로 나온 이후엔 그 중력을 고스란히 떠받치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왜 물 속에서 선체를 바로 세우지 않았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해수부가 전문적인 기술 집단이니 그렇게 인양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Non-Sense!”입니다. 전 세계 해운, 조선, 인양업계에서 두고두고 웃음거리로 회자될 겁니다. 이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중국업체를 투입한 것을 포함, 조선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우리 해수부 스스로 추락시킨 사건입니다.

 

세월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선수부위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두 줄의 손상이 나중에 밝혀진 바 인양계획 초기에 와이어케이블을 그곳에 거는 바람에 와이어가 파고들어 생긴 손상이라는 얘기를 듣고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적으로 그 수준은 아마추어 인양업자도 하지 않을 작업입니다.

▲ 지난달 26일 완전히 떠오른 세월호 선수. 특히 세월호 좌현선수에 생긴 두 줄의 손상은 초기 인양 계획 당시 와이어케이블이 선체를 파고 들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이치열 기자

 


해수부의 진의

 

해수부의 계획 (1)누워있는 그대로 인양 (2)목포신항으로 이동 거치 - 이 두 일련의 계획이 목적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정말 이해할 수 없고, 제가 알고 있는 그 어떤 항해, 조선, 인양 전문가들 어느 누구도 모르는 ‘해수부만의 깊은 뜻’이 있는지 나름 열심히 검색을 해 보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작년 7월 해수부 관계자는 선체를 세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선체가 수직으로 세워지게 되면 그 안에 있는 화물이나 또 여객실 부분에 있는 자재들이 흐트러지고 유실될 우려가 있어서”라고 말합니다. 이 기사 내용에 달린 댓글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직으로 세운다고 왜 유실의 우려가 있을까? 뒤집히는 것도 아닌데. 이쪽에서 저쪽으로 횡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제자리에서 방향만 바꾸는건데. 옆으로 눕힌 채 인양하면 화물과 자재들은 층층이 쌓인 꼴이 되어 자체로 무너질 수도 있고 수색 자체가 안 되고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될 것임. 

똑바로 세울 수 있다면 세우는 것이 최선임. 어느 정도 움직임이 있겠지만 그건 감수해야 함. 이미 화물들은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진 상황인데 더 이상 흐트러뜨릴 수 없다며 눕힌 채 인양한다는 것은 이상함. 똑바로 세워 인양하면 선체 수색도 용이하고 선체를 절단할 이유도 없음. 똑바로 세우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위험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유실방지를 위해 눕힌 채 인양하는것이라면 말이 안 됨."  - 항적사수(출처 : http://actachiral.blog.me/220777576701) 

블로거의 지적과 같이 화물이나 자재의 흐트러짐을 위해 혹은 유실을 우려하여 선체를 세우지 않고 인양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것을 우려하여 눕혀 인양하는 것보다 세워서 인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훨씬 더 크고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다니기 편하고, 수색하기 편하고, 조사하기 편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체는 바로 섰을 때 강도가 가장 강하다는 것을 간과한 처사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해수부가 왜 그러한 결정을 했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결과적으로 (1)제대로 된 선체조사가 이루질 수 없도록 지장을 초래하고, (2)형식적인 조사 이후 절단 및 해체하여 고철로 실어 나르기에 매우 용이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해수부장관을 포함, 세월호 인양과 관련된 관계자들의 집을 90도 옆으로 눕혀서 살아보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 상태로 과연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지... 수 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최악의 사고를 겪은 나라에서, 그 사고의 원인을 조사해야 할 선박의 선체를 90도 옆으로 눕혀놓고 조사한다고 하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해외토픽감입니다.  

선체를 눕혀놓고 조사를 하라고 하는 것은 사고원인 조사를 하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하더라도 대충 하라는 뜻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번에 선체조사위원으로 선정되신 분들의 고민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밥 줄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요.

해수부가 선체를 옆으로 눕혀놓고 선실 수색이 어려우니 선실만 절단해서 직립시켜 수색하자는 ‘꼼수신공’ - 그것이 선박 해체 수순의 신호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말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조사위라면 그분들께서 공정하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할 것이라고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부디 조사위가 중심을 잘 잡고 대응하시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 목포 인근 대형조선소로 이동하라

세월호 사고가 난 바로 다음 날 ‘Air Pocket’을 이야기하며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을 즉각 투입하라는 글을 여기저기 올릴 때의 다급했던 심정이 지금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왕지사 옆으로 누워서 올라온 배 그대로 둘 것인가, 그리고 이왕지사 목포신항에 들어온 배 야적장으로 올릴 것인가. 천만에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모든 계획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짚어봐야 합니다. 늦었다 싶을 때가 가장 이른 때입니다.

(1) 미수습 희생자에 대한 수색 

미수습 희생자 가족분들께서 선체를 바로 세우고 수색을 하는 데에 동의해 주신다면 그렇게 계획을 수립하면 되지만, 만약 지금 상태에서 수색을 우선해달라고 요구하신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그렇게 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바로 선 것만큼 수색이 용이하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접근가능하고, 어차피 객실 내부의 뻘을 모두 걷어내어야만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상당부분 사람의 손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세월호를 육상으로 올리지 않고 현재 반잠수선에 올려진 상태 그대로 수색을 해야 합니다.  

(2) 목포 인근 조선소로 이동 

미수습 희생자에 대한 수색과 수습이 완료가 되고 그에 대해 모든 유가족분들께서 동의를 하신다면 세월호는 현재 위치인 목포신항 인근에 있는 대불공단내 조선소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목포 대불공단에는 대형 조선소들이 많습니다. 영암의 현대삼호중공업과 해남의 대한조선이 있고 그 외 여러 수리 조선소들이 즐비합니다. 한때 조선산업의 호황을 누리던 목포 지역 조선소들은 2013년을 기점으로 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수주가 많아 들어갈 자리가 없어 걱정할 일은 없다는 얘깁니다.

▲ 현대삼호중공업 전경 사진=현대삼호중공업 홈페이지

조선소에는 선박의 건조, 수리 및 검사와 관련한 모든 설비와 인력이 완비되어 있습니다. 고장난 배는 육상 야적장으로 올라가야 할 것이 아니라 수리 조선소로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3) 조선소의 설비와 인력이 필요한 이유 

세월호를 수리해서 새 배를 만들어 운항에 투입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제대로 하려면 부분적으로 설비의 가동 혹은 전원의 복구 등이 필요할 수 있으며 관련 전문인력과 기술진의 입회와 자문이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조선소에는 수십 만톤의 선박을 건조하기 위한 총체적인 기술진과 전문인력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설비에 대한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수백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선박에 대한 조사를 그러한 조력없이 맨 손으로 맨 눈으로 한다는 생각 자체가 무모한 겁니다.  

조선소로 이동해서 선체 바로 세우고 (조선강국이며 건설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선체 바로 세우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니 염려마시기 바랍니다) 제대로 확실하게 조사한 후 그리고 세월호를 복원해야 합니다.  

(4) 세월호 - 반드시 복원해야 한다 

진상규명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월호는 복원해야 합니다. 운항가능할 정도의 복원이 아니라 영원히 보존가능하고 접근가능하고 교육가능할 수준으로의 복원을 말합니다. 물론 물에 떠야 하며 자력으로 이동 가능한 수준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세월호는 팽목항 인근 혹은 안산 인근에 있어야 합니다. 자력이동이든 Tug Boat 예인이동이든 왔다갔다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초유의 사건’입니다. 대서양에서 야간에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경우 2천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대형 해난사고였지만, 승조원과 여객 모든 분들이 최선을 다했던 ‘안타까운 재해(災害)’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사건은 섬이 빤히 보이는 연안에서 선박이 전복한 이후 단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최악의 인재(人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를 보며 교훈을 얻고 학습함으로써 동일한 사고를 두 번 다시 겪지 않도록 그 중심에 세월호가 온전한 모습으로 자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희생된 우리 어린 자녀들과 최선을 다하였으나 고인이 되신 분들을 추모하고 가족 분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서로 기대고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공간으로서 세월호가 곁에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세월호 복원을 수리조선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할 방법이 있는가요?

신상철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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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을 박근혜 ‘옆방’으로

 

[김종철 칼럼] 광주민중항쟁 능멸하고 국가의 ‘민주화운동’ 규정을 모독한 ‘회고록’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cckim999@naver.com  2017년 04월 04일 화요일
 
전두환이 지난 3일 출간한 ‘회고록’이 1980년 5월 ‘광주 학살’ 희생자 유족들의 가슴에 다시 불을 질렀다. 그 민족적 참극의 ‘주범’인 그가 민중항쟁 37주년을 앞둔 시점에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주장한 까닭은 무엇일까?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이런 말도 했다. “내란으로 판정됐던 광주사태는 어느 날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되더니 어느 순간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정치적으로는 신화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민주화운동이라는 인식에 어긋나는 어떠한 이의도 용납되지 않는다.” 
 
전두환은 새로운 ‘학설’도 제시했다. “우리 사회 저변에는 군수공장과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한 시민군이 국군을 공격했던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런 의문을 증폭시키는 새로운 진술과 정황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지만 이를 공론화하는 길은 봉쇄된 것 같다.” 
 
전두환은 1931년 1월 18일 생이니 올해 만 86세이다. ‘회고록’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망발’을 단순히 그의 ‘고령(高齡)’ 탓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김영삼 정권 시기인 1996년 말에 구속된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적용된 ‘죄목’은 무려 13개나 되었다. ‘반란 수괴’ ‘반란모의 참여’ ‘상관 살해’ ‘내란 수괴’ ‘내란목적 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1심에서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징역 22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의 선고 내용인 ‘전두환 무기징역과 2205억원 추징’, ‘노태우 징역 17년과 2628억원 추징’을 확정 선고했다. 그런 ‘대역죄’를 저지르고도 전두환과 노태우는 겨우 2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김영삼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 전두환씨가 지난 2015년 11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전두환씨가 지난 2015년 11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3권으로 이루어진 <전두환 회고록>은 마치 그런 사실들이 전혀 없었다는 듯이 역사를 왜곡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날조하고 있다. 이런 대목이 바로 그렇다. “맨손에 태극기를 들고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친 기미 독립선언을 ‘3·1운동’이라고 부른다. 빼앗은 장갑차를 끌고 와 국군을 죽이고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으로 국군을 사살한 행동을 3·1운동과 같은 ‘운동’이라고 부를 순 없다.” 1980년 5월 18일 시작된 광주민중항쟁 기간에 “전두환은 물러가라”, “김대중을 석방하라”고 외치던 시민들에게 무기로 먼저 공격을 가해 많은 사상자를 낸 것은 전두환이 실질적으로 지휘하던 계엄군이었다. 시민들과 학생들은 ‘자위책’으로 지서와 파출소, 예비군 무기고에서 꺼낸 총칼로 계엄군의 양민 학살에 맞섰을 뿐이다. 그런데 전두환은 37년이나 지난 지금 그것을 ‘폭동’으로 몰아붙이면서 터무니없이 3·1운동에 견주어 극도로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나는 광주사태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희생자”, “계엄군 발포 명령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겨레> 4월 4일자 1면 기사(‘전 각하, 자위권 발동 강조 군 기록 나와’)는 “80년 5월 2군사령부가 작성한 문건을 기무사가 보관하다 국방부 과거사위원회에 제출”한 문건에는 “‘전(全) 각하(閣下) 난동 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명시돼 있다”고 보도했다. 전두환은 이 기사 내용에 대해 어떤 반박을 할 수 있을까? 
 
전두환은 국가가 법으로 ‘5·18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한 광주민중항쟁을 ‘폭동’이라고 매도함으로써 그 운동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친 이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유족과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 따라서 그는 헌법과 형법, 그리고 민법에 따라 사법적 처리를 받아야 마땅하다. 전두환의 ‘회고록’에 대해 5·18 관련 단체들과 정치권에서는 ‘지독한 자기합리화를 위해 저지른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고, 광주시장 윤장현은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들과 함께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전문가들이 전두환을 사법적으로 응징하는 운동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전두환은 1996년 12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등 혐의로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뒤 2015년 11월 10일 기준으로 겨우 50.86%인 1121억원 만을 납부했다. 그런데도 그는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면서 국민을 우롱했다. 
 
전두환은 박정희가 1961년 5월 16일에 일으킨 군사쿠데타를 지지하는 ‘육사 생도들의 시가행진’을 주도한 이래 그의 총애를 받았으며, 장교가 된 뒤에는 영남 출신 중심의 ‘하나회’를 이끌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불의의 죽음을 당한 뒤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가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탈취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1980년 5월 ‘서울의 봄’이 전두환 일파의 쿠데타로 무너지지 않았다면, 한국사회는 신속하게 민주화의 길로 치달았을 것이다.  
 
전두환은 1987년에 ‘호헌’이라는 구실로 장기집권을 꾀하다 6월항쟁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뒤에도 ‘광주 학살’이나 쿠데타에 대해 단 한 마디 사죄도 하지 않다가 이번에 펴낸 ‘회고록’을 통해 반민주적이고 파렴치한 본질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가 아무리 고령이라 하더라도 주권자들은 ‘적폐 청산’을 위해 이런 인물을 더 이상 ‘자유롭게’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전두환은 이번 사건으로 엄정한 사법처리를 받고 서울구치소의 박근혜 ‘옆방’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박정희의 유신 잔재를 청소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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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이순덕 할머니, 일본 정부의 사죄 끝내 못 받고 4일 영면

"화병에 돌아가신 어머니, 나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이순덕 할머니, 일본 정부의 사죄 끝내 못 받고 4일 영면

17.04.05 05:27l최종 업데이트 17.04.05 08:35l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최고령이었던 이순덕 할머니가 4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글은 지난 2007년 고 이순덕 할머니를 직접 찾아 뵙고 인터뷰한 내용으로, 이국언 <빼앗긴 청춘 돌아오지 않는 원혼>(시민의 소리, 2007)에 소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재작성했음을 알립니다. - 기자 말
 

 빈소에 마련된 고 이순덕 할머니 영정 사진
▲  빈소에 마련된 고 이순덕 할머니 영정 사진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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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최고령이었던 이순덕 할머니가 4일 끝내 일본정부의 사죄를 받지 못한 채 한 많은 삶과 이별했다. 향년 100세. 1918년 전라북도 익산 모현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작고하시기 전까지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최고령이었다.

평생 고단한 삶이었다. 어릴 적 기억이라고는 단칸방 초가집 한 채에 소작지 하나 없는 가난한 살림뿐. 남의 집 삯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시절, 감히 학교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길쌈을 해 시장에 내다 팔고 오는 길에 장에서 공책하고 연필을 사다 주더라고. 그런데 아버지는 여식을 가르쳐 놓으면 나중에 시집가서 친정에 편지한다고 연필을 바로 분질러 버리더라고. 공책은 부엌에서 불 질러 버리고. 그래서 완전 까막눈이었지."

집안일을 돕고 있던 1937년 봄 어느 날이었다. 열아홉 살 때였다. 가난한 농촌에 먹을 것이 없는 농민들은 할 수 없이 쑥을 뜯어다 보리밥에 섞어 허기를 때우고 있었다. 그 해는 또 유난히 흉년이기도 했다.

"저녁이라도 준비한다고 혼자 논두렁에서 쑥을 캐고 있는데, 30, 40대 가량 보이는 남자가 오더니 이런 고생하지 말고 배불리 먹을 것도 주고 좋은 신발도 주는 곳을 알아봐 준다고 자기만 따라오라는 거야."

된장국에 밥 한 끼 어디서 얻어먹으면 그나마 다행인 시절, 배불리 먹을 데가 있다는 그 한마디는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유혹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서고 만 것이다. 

안면부지의 남자를 따라 철길을 따라 걸어가던 중 그녀는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 아버지를 뵙고 인사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집에 잠깐 들렀다 가겠다고 그랬지. 그런데 여기까지 왔는데 안 된다는 거야. 그러더니 시간이 없다면서 덥석 손목을 틀어잡더라고."

순간 깜짝 놀라고 당황해 했다. 손목으로 전해 오는 힘은 완강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그 사내는 그의 뺨을 후려 갈기더니 강압적으로 길을 재촉했다. 태도도 이전과는 180° 바뀌어 있었다. 

익산 읍의 여관까지는 한 시간 반쯤 걸음이었다. 여관에 도착하니 이미 14, 15명의 처녀들이 도착해 있었다. 모두 그녀와 같은 처지의 농민의 딸들이었다. 같이 저녁을 먹고 한 방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두려움에 밤새 잠 한 숨 잘 수 없었다. 모두 무엇 때문에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고 밤새도록 울기만 했다. 그러나 방문 바깥은 이미 자물쇠로 잠겨있어 도망 갈 수도 없었다.
 

 트럭을 타고 이동 중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  트럭을 타고 이동 중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 독립기념관 '잃어버린 청춘 떠도는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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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카키색 군복을 입고 다리에는 각반을 찬 일본군 3명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에는 총을 두르고 있었다. 이어 이들의 지시에 의해 행선지도 모르고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도착한 곳은 중국 상해(上海)역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곧바로 트럭 한대에 태워졌다. 3시간 정도 달려간 곳은 한 일본 육군의 주둔지였다. 군용텐트와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여자라고는 없었다. 이어 인솔자들은 여기 저기 서 있는 오두막 같은 곳에 끌고 온 처녀들을 한 사람씩을 따로 따로 떼어 들여보내고 있었다.

오두막은 다다미 2, 3장 쯤 넓이로 침대 형식의 잠자리는 낙엽 위에 대나무로 엮을 깔개가 마련돼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국방색의 모포가 깔려 있었다. 전시 중 야전에 마련된 임시 거처인 셈이라 비 단속도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비만 오면 빗물이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사흘간은 아무것도 없이 오두막에서 쉬고 있었다. 군복과 같은 색의 상의와 몸뻬를 지급받았다. 그 사이 혈액검사와 606호라 불리는 주사를 맞았다. 그때만 해도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지 못했다.

같은 처지의 조선 처녀들끼리는 서로 얼굴도 볼 수 없었다. 각자 떨어져 있었고, 식사는 군인이 오두막 앞에 가져다 놓고 문 밖에서 종을 울려 표시를 했다. 그러면 각자 식사를 챙겨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먹는 것이었다.

4일째인 어느 날. 군복에 별이 3개가 붙어있던 '미야자키' 또는 '미야자와'라는 이름의 노 장교가 오두막에 들어왔다. 그리고 겁에 질려 있는 그녀에게 잠자리를 강요했다. 부대에서 제일 직급이 높아 보이는 그 장교는 그로부터 사흘 밤 매일 오두막을 찾았다. 그는 토요일에는 자기가 올 것이기 때문에 다른 병사를 상대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미야자와가 돌아간 다음날부터 오두막에는 병사들이 행렬이 이어졌다. 저항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일어나면 때리고 다시 일어나면 발길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줄선 일본군 병사들
▲  일본군 위안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줄선 일본군 병사들
ⓒ 독립기념관 '잃어버린 청춘 떠도는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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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전선 병참사령부 위안소 게시판에 적힌 위안소 이용 주의사항
▲  중국전선 병참사령부 위안소 게시판에 적힌 위안소 이용 주의사항
ⓒ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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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죽이기를 파리 죽이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어. 한번은 어떤 놈이 술을 처먹고 와서 갑자기 같이 있던 어떤 친구의 목을 내리쳐 버렸어. 그 자리에서 목이 떨어져 나가더라고. 피가 얼마나 솟구치던지, 아휴~ 끔찍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지. 말도 못해 그 놈들."

평일에는 8, 9명, 일요일에는 15, 16명의 병사를 상대해야 했다. 평일에는 아침 9시부터, 일요일은 그보다 이른 아침 7시나 8시경부터 병사들이 몰려왔다. 심지어 생리기간에도 남자를 상대해야 했다. 

606호라는 주사는 2주에 한 번씩 맞는 것 외에 검진은 따로 없었다. 당시에도 '샤크'라 불리던 일종의 콘돔기구가 지급되고 있었지만 모든 병사들이 이것을 착용한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을 전혀 만날 수 없었지. 군인들이 항상 문 밖에서 지키고 있었으니까. 우리들끼리 만나면 어디 도망가자고 모의할까봐, 식당에서 만나도 얘기도 못 붙이게 했어. 얘기 하다 걸리면 맞아 죽다시피 했지. 가막소도 그런 가막소가 없었어." 

처음에는 일본 말을 못한다고 맞기도 많이 맞았다. 1년쯤이 지나자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해방 한두 달 전 어느 날이었다. 한 장교가 들어오더니 왜 자기 이외에 딴 남자랑 잤느냐며 군화발로 배를 걷어찼다. 그리고 갑자기 긴 칼을 꺼내더니 그녀의 등을 그대로 내리쳤다. 그 자리에서 졸도해 버렸다. 다시 정신을 차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바닥이 흥건하게 피에 젖어 있었다. 

"아마 머리를 바로 내리쳤다면 나도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야. 그런 놈들은 내가 뜯어 먹어도 시원치 않아. 징그러운 놈들."

양쪽 가슴과 엉덩이에는 그때의 상처가 또렷이 남아있었다.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서까지도 한동안 치료를 해야 했다. 
 

 중국과 미얀마 국경지대 구덩이에 버려진 사체들. 이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로 기록되어 있다.
▲  중국과 미얀마 국경지대 구덩이에 버려진 사체들. 이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로 기록되어 있다.
ⓒ 독립기념관 '잃어버린 청춘 떠도는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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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어느 날이었다. 오두막 뒷길에 조선인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해방이라며 환성을 올리고는 어서 가자고 일러줬다. 그러고 보니 일본 병사들은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다 돌아온 것도 아니야. 해방이 됐어도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는 사람도 있었어. 내가 같이 가자고 해도 자기는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는 거야.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하더라고. 참 불쌍한 사람이었는데."

조선인들을 따라 지붕도 없는 화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며칠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집 문 앞에 들어서면서 '어머니' 하고 불렀더니, 어머니는 안 보이고 이모가 뛰어 나오더라고. 내가 없어진 후 찾아 헤매다 화병에 부모님 모두 다 돌아가셨다는 거야. '너 때문에 죽었다'고 그러더라고."

산소에 올라가 몇날 며칠 '어머니'를 불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남동생마저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1년여 후 주위의 소개로 17살이나 많은 김제의 한 남자의 후처가 되었다. 애가 없었지만 남편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활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8년여 후 남편이 병사한 뒤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 그 집을 나와야 했다. 

두 번째 만난 사람은 광주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사별한 남자의 후처였다. 광주시 서구 쌍촌동에서 그런대로 알뜰살뜰 살아가고 있었지만 종내 애는 생기지 않았다. 고심 끝에 산부인과를 찾아갔지만 애를 갖기는 어렵다는 대답이었다. 의사는 과거에 무슨 무리한 일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첫 번째 남편이나 재혼한 두 번째의 남편에게는 자신의 과거를 끝내 말하지 못했다. 두 번째의 남편과도 사별한 할머니는 이내 가족도 자식도 없이 혼자가 되고 말았다.
 

 1994년 3월 14일 관부재판 첫번째 당사자 본인 신문을 위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법원으로 향하는 원고들. 왼쪽 두번째가 고 이순덕할머니.
▲  1994년 3월 14일 관부재판 첫번째 당사자 본인 신문을 위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법원으로 향하는 원고들. 왼쪽 두번째가 고 이순덕할머니.
ⓒ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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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말수도 없이 한없이 조용한 모습이었지만, 꼭 그런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할머니는 1992년 12월 당시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의 도움을 받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7명 등 도합 10명의 원고들과 함께 시모노세키 지방재판소에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어느 해 증인심문 참석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일본정부는 정부의 사과대신, 일종의 국민기금 형태로 위안부 문제를 마무리 지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일본의 취재기자들이 할머니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의향을 물어왔다.  

"내가 거지인 줄 아느냐. 여기저기서 돈을 모아서 주게. 일본정부가 정식으로 사죄하면서 주면 모를까, 나는 그런 식의 돈은 받을 수 없다."

취재기자들의 간담까지 서슬 퍼렇게 만든 할머니의 단호한 대답이었다. 관부재판은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1심에서 처음으로 30만엔의 배상 판결을 거뒀으나, 이어 2001년 히로시마 고등재판소에 뒤집어진 뒤, 2003년 최고재판소에서도 기각판결을 내림으로서 12년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광주에서 혼자 의지할 데 없이 살아오던 할머니는 그 뒤 서울에 올라가 최근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병마와 다투며 그의 마지막 여생을 보내왔다.  

"말 못하고 지금까지 숨기고 살았지. 부끄러워서 지금도 말 못해."

100세를 일기로 끝내 고단한 삶을 내려 놓은 이순덕 할머니. 이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는 38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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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시민의 선택]‘대권 문’ 열려면…경선 갈등·보수중도층 비호감 극복해야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ㆍ‘대선 직행’ 티켓 잡은 문재인의 과제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수도권·강원·제주 순회경선에 참여한 대의원들이 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수도권·강원·제주 순회경선에 참여한 대의원들이 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의 19대 대통령 후보로 3일 문재인 후보가 확정됐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대세론을 타고 있다지만 대선을 ‘문재인의 시간’으로 만들려면 당 추스르기와 중도·보수층의 ‘문재인 비토론’ 극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문 후보를 겨냥한 비문연대도 넘어서야 할 과제다.

■ 가장 큰 숙제는 당내 통합 

문 후보의 가장 큰 숙제는 당내 통합이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45%로 압도적 1위다. 문재인(31%), 안희정(14%), 이재명(8%) 등 세 경선 후보의 지지율 합은 53%다(세부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당 지지율과 안·이 후보 지지율만 온전히 흡수하면 무난히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장 경선 과정에서 후보들 간 감정의 골이 깊게 파였다. 안 후보는 문 대표 측을 겨냥해 “질리게 한다”고까지 했다. 이 후보 지지자 일부는 경선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물론 안·이 후보는 “경선 승복”과 “한 팀”을 강조하고 있지만, 두 후보 지지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당내 비문재인 정서도 여전하다. 

 

상대편에 대한 문 후보 측 일부 지지자들의 과도한 공격과 그로부터 증폭된 상호불신도 치유가 필요하다. 문 후보의 임종석 비서실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문자폭탄이나 18원 후원금 등은 함께해야 할 동지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며 “이제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자”고 적었다.

■ ‘문재인 비토론’ 넘어서야 

당 바깥에선 ‘문재인 비토론’을 넘어서는 게 과제다. 문 후보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데도 본선 경쟁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측의 논리가 ‘문재인 비토론’이다. 30%대의 견고한 지지층이 있지만, 비호감층이 많고 중도·보수층의 거부감도 뚜렷하다는 것이다. 안 후보가 경선 때 줄곧 공격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당내 경선 때 적폐청산을 앞세워 지지층을 묶어세운 문 후보는 본선에선 ‘통합’을 좀 더 강조하며 중도·보수층 공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맞춰 ‘통합대통령’ ‘일자리대통령’ ‘안보대통령’을 주된 표어로 활용할 공산이 크다. 문 후보는 첫 행보로 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물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다.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도 참배한다. 통합 행보 일환으로 풀이된다.

■ 비문연대도 변수 

다른 당 후보들의 비문재인 연대 흐름도 변수다. 문 후보의 최대 라이벌은 국민의당 안철수 경선후보라는 게 중론이다. ‘문재인 대 안철수’ 구도를 기본으로 홍준표·유승민 등 보수정당 후보와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등 비문재인 흐름이 안 후보 측에 얼마나 결집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확고한 지지층을 확보한 문 후보로선 다자구도일수록 유리하지만, 안 후보와의 양자 구도에선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문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비문연대·반문연대는 적폐연대”라며 견제했다. 비문연대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중도·보수층이 안철수 후보의 손을 들어줄 경우 만만치 않은 승부가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문 후보에게 최악의 상황은 당내 균열과 중도·보수 확장 실패, 중도·보수 세력 결집이 서로 맞물리면서 문 후보의 세력 축소와 안 후보의 세력 확대가 추세를 형성하는 경우다. 달리 말하면 문 후보가 당내 통합을 이루고 외연 확대에 성공할 경우 비문연대는 큰 변수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내 통합과 외연 확장, 비문재인 연대는 서로 물고 물린 변수들이다. 그래서 선순환의 사이클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당내 통합은 그 첫 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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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비극, 불평등 사회가 만든 감정절벽

우리나라를 정상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평등의 구조를 바꾸어나가는 것
 
박찬운  | 등록:2017-04-03 13:16:30 | 최종:2017-04-03 13:38:5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목포신항을 찾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겠다 해놓고 별다른 설명 없이 현장을 떠나버렸다. 약 한 시간을 차가운 바닥에서 농성하며 황 총리를 기다린 유가족들은 분노하며 오열했다. 지난 토요일 일어난 일이다.

사진 출처: 아시아경제

나는 절망감을 느낀다. 나 또한 분노에 손발이 떨린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국민을 섬긴다는 공복 중 제1 우두머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휴일 아침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심리적 배경은 무엇인지, 이 시대는 어떻게 저런 괴물ㅡ나는 감히 박근혜나 황교안을 이 시대가 만든 괴이한 인물, 곧 괴물이라고 말하겠다ㅡ을 탄생시켰는지.

박근혜가 3년 동안 세월호 유족들을 지속적으로 박해하고 황교안이 그에 동조해 온 것은 그들의 비정상적 (인권) 감수성ㅡ공감능력의 부재ㅡ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에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어야 할 어진 본성(이것을 仁이라 함)이 결여되어 있다. 맹자가 말한 仁이 있다는 단서로서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발견할 수 없다.

이런 심리상태는 박근혜나 황교안에게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방해한 세력들(몇몇 특조위원, 관련 공무원, 국회의원, 정치인들의 선동에 동조한 극우단체 등)에게서도 공히 발견된다. 이들도 모두 인권 감수성이 없거나 부족하다. 이들에게서 측은지심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찌해서 이들에게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성 결여 현상이 생겼는가.

나의 판단으론 이들과 비극의 희생자들 사이에 ‘감정절벽’이 있고, 이 절벽이 있는 경우엔 맹자의 인간본성론이 수정된다는 것이다. 박근혜와 황교안 그리고 이들 추종세력은 비극의 희생자들을 보아도 특별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슬피 울어도 그것이 가슴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전달되긴 커녕 귀찮을 뿐이다.

감정절벽은 상대가 같은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때 생긴다. 계급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노예제 사회에서 상대가 노예라 생각해 보라. 노예의 주인은 노예와는 전혀 다른 감정세계에서 산다. 나는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계급화 되어가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지난 3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양극화는 은연중에 우리 사회를 신분사회로 만들어버렸다. 요즘 학생들의 친구관계를 보아도 강남학생들은 강북학생이나 지방학생들과 교류가 적다고 한다. 사회경제적으로 자신들과 맞지 않는다는 내면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나와 같은 부류로 여기지 않는 심리기제가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 근저엔 계급화되어 가는 불평등 사회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것이 세월호 사고 이후 이 비극을 우리 사회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박근혜와 황교안은 불평등 사회구조를 대변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를 정상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힘쓸 일은 불평등의 구조를 바꾸어나가는 것이다. 양극화 사회에서 탈출해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너도, 나도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세월호와 같은 비극이 없어질 것이라 믿는다.

박찬운 /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156&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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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전교조 죽이기’인가?”

“아직도 ‘전교조 죽이기’인가?”
 
 
 
편집국
기사입력: 2017/04/03 [23:22]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철회, 전교조 전임자 인정 등을 촉구했다. (사진 : 교육희망)     © 편집국

 

전국교직원노동조합민주교육과 전교조 지키기 전국행동(199개 단체 연대)은 3일 1130분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철회▲ 해고된 33명 교사들의 원상복직과 16명 신규 전임 인정▲ 헌법이 규정한 노동조합의 권리 보장 등을 촉구했다.

 

전교조 등에 따르면 교육부는 시도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하고 시도교육청에 압박을 가하여 전교조 2017년 신규 전임자(16)의 휴직 인정을 방해하고 있으며강원(1), 서울(2), 경남(2교육청의 전임 휴직 인정을 직권취소할 방침이라며 부당 외압을 가하고 있다.

 

이들은 노조 전임 휴직이 헌법에 의해 보장된 교육노동자의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전교조 전임을 둘러싸고 혼란이 발생하고 있는데 대한 책임은 박근혜의 전교조 죽이기 공작을 아직도 버젓이 수행하고 있는 교육부와 고용노동부의 시대착오적인 태도에 있다며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를 규탄했다.

 

전교조 등은 노동인권을 탄압하는 국가라는 오명을 언제 벗을 것인가교사들의 노동기본권을 언제까지 짓밟으려는가?”라며 고용노동부가 법외노조 통보를 철회하고 교육부가 후속조치를 철회하는 것이 이 모든 혼란을 멈추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 참가자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교육부에 항의 방문을 하려고 했으나 교육부는 응하지 않았다.(사진 : 교육희망)     © 편집국

 

한편 이들은 조선동아를 비롯한 일부 황색언론들이 교육부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편파적인 기사와 사설을 쓰고 있다며 전교조 전임자를 무단결근자전임을 승인한 교육감들과 전교조를 불법행위자로 낙인찍었다고 규탄했다이들은 휴가 낼 권리와 전임할 권리를 부정하고 전교조 탄압의 본질을 외면하는 보도는 그저 교육노동자에 대한 폭언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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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아직도 전교조 죽이기인가?

교육부는 전임 휴직 무단 훼방’ 중단하라!

 

범죄자 박근혜가 파면구속되었다유신 회귀를 꿈꾸던 반민주세력의 구심이 민중의 힘에 의해 해체된 것이다하지만 아직 청산되지 않은 국정농단의 부역자들은 사죄와 반성은커녕 구체제 지키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일찍이 전교조를 한 마리 해충에 비유했던 박근혜가 전교조 죽이기’ 공작을 본격화할 때 이를 거들었던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 하며 전교조를 여전히 적대시하고 있다이들은 파면구속되지 않고 활보하는 또 하나의 박근혜인 것이다.

 

아이들을 내팽개쳤다고 했는가조선과 동아를 비롯한 황색 언론들은 최소한의 보도 윤리마저 내팽개치면서 교육부의 나팔수를 자처하고 나섰다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기사와 사설을 돌아가며 쓰면서 전교조 전임자를 무단결근자전임을 승인한 교육감들과 전교조를 불법행위자로 낙인찍었다휴가 낼 권리와 전임할 권리를 부정하고 전교조 탄압의 본질을 외면하는 보도는 그저 교육노동자에 대한 폭언일 뿐이다언제는 전교조가 학생들을 오염시킨다더니 이제 와서는 아이들에게 돌아가라며 가당치 않는 훈계까지 하는 일부 언론의 횡포를 학생들이 보고 배울까 두렵다따라서 이러한 언론 역시 적폐 청산의 대상이다.

 

분명히 하거니와노조 전임 휴직이 헌법에 의해 보장된 교육노동자의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전교조 전임을 둘러싸고 혼란이 발생하고 있는데 대한 책임은 박근혜의 전교조 죽이기 공작을 아직도 버젓이 수행하고 있는 교육부와 고용노동부의 시대착오적인 태도에 있다전교조 전임자 휴직 신청이 있은 지 두 달이 다 가도록 승인 처리가 되지 않는 이유는 교육부가 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하면서 전임을 인정하지 않도록 외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따라서 교육부의 전임 휴직 무단 훼방이 문제다.

 

한국은 노동권 국제기준을 지키지 않아 유럽연합과의 무역협정에서도 불리한 입지에 놓였다노동인권을 탄압하는 국가라는 오명을 언제 벗을 것인가교사들의 노동기본권을 언제까지 짓밟으려는가얼마나 더 많은 교사들을 해고해야 만족할 것인가돌이키기 어려운 피해를 전교조에게 언제까지 입힐 것인가지금이라도 정부는 국제기준을 지키고 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라교원노조에 대한 탄압을 당장 중단하라고용노동부가 법외노조 통보를 철회하고 교육부가 후속조치를 철회하는 것이 이 모든 혼란을 멈추는 길이다.

 

우리는 1700만 촛불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정부에 요구한다.

 

1. 전교조 탄압 공작에 대해 사죄하고 법외노조 통보와 후속조치를 즉각 철회하라!

1. 해고된 33명 교사들을 원상복직 시키고 16명 신규 전임을 즉각 인정하라!

1. 헌법이 규정한 노동조합의 권리를 보장하라!

 

탄압이면 항쟁이다!” 오늘 69주년을 맞는 43항쟁 당시의 구호였다전교조 죽이기와 노동탄압을 중단하라는 촛불 광장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전교조와 교육시민사회는 끝까지 저항하고 행동할 것이다.

 

박근혜 파면구속법외노조 원천무효!

박근혜가 불법이고 전교조는 합법이다!

교원노조 탄압하는 교육부를 해체하라!

 

2017년 4월 3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민주교육과 전교조 지키기 전국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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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에 쌀 담아 북으로 보냈다

 

강화도에서 보낸 쌀, 입쌀밥이 되고 한 솥 죽이 되거라17.04.03 20:05l최종 업데이트 17.04.03 20:05l글: 이승숙(onlee9)편집: 김대홍(bugulbugul)작년 11월엔가 한 일간신문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새터민들이 쌀을 페트병에 담아 바다에 띄운다는 내용이었다.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져나갔다가 밀려들어오는 물때에 맞춰 강화도의 한 바닷가에서 이루어지는 이 행사는 벌써 스무 번도 넘게 진행되었는데, 참여자들 대부분이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물때 맞춰 북한으로 쌀을 보낸다는데...

이 기사를 본 아는 사람이 신문사로 연락해서 행사를 주관하는 담당자와 선이 닿았다. 함께 하고 싶다는 의향을 전했더니 다음 번 물때에 맞춰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3월 28일이 마침 물때가 좋을 때라 쌀을 보낼 계획이라는 연락을 해왔다. 

그 말을 들은 지인은 사발통문을 돌렸고, 하루 사이에 약 90킬로그램에 달하는 쌀을 얻었다. 농사를 짓는 어떤 분은 선뜻 반 가마니(40킬로그램)나 주셨다. 배가 고픈 사람은 먹어야 한다며 농사지은 쌀을 내어주셨는데, 건네주는 쌀자루에 그 분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는 듯했다.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모은 쌀.
▲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모은 쌀.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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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장소에 가보니 인근 각지에서 오신 분들이 여럿 계셨다. 멀리 경상도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다. 새벽 참에 집을 나와 강화도까지 달려왔다니, 그 분들의 정성이 참으로 대단했다. 

탈북난민들의 인권을 돕는 단체에서 주관하는 이 행사는 햇수로 벌써 2년째 진행되고 있다. 원래는 약 7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그때는 동해안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하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 바닷가에서 바로 보낼 수 있는 강화도로 장소를 옮겼다고 그랬다. 동해안은 오가는 거리도 멀 뿐만 아니라 배를 빌리는 삯도 많이 들었는데 강화도는 그런 비용이 들지 않아 아낀 돈만큼 쌀을 더 보낼 수 있게 되었다며 흐뭇해 했다. 

강화도는 북한의 황해도 옹진군, 연백반도 등과 인접해 있다. 그곳 출신 탈북자의 말에 의하면 남한에서 떠밀려온 해양 쓰레기들을 황해도 바닷가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더구나 바닷가에서 고무 튜브를 주운 어떤 사람이 그것을 몸에 두르고 바다를 헤엄쳐 남한으로 건너왔다고도 한다. 그러니 강화도에서 페트병에 쌀을 넣어 바다에 띄우면 틀림없이 황해도 해안에 도착할 것이라며 관계자들은 힘주어 말했다. 
   
쌀 1킬로그램에 한 달치 월급이라니... 

물이 빠진 바다는 먼 곳까지 갯벌이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한 강화도의 갯벌은 뻘 흙이 그대로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갯벌은 천연의 자연 정화장치일 뿐만 아니라 바다에 깃대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고마운 생산처이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낙지며 조개 같은 먹거리들이 수두룩하다. 썰물이 들어 바다가 길을 열어주면 사람들은 갯벌로 나간다. 그리고 밀물이 들 때까지 조개 따위를 채취한다.

 

 북녘 땅 배고픈 동포들을 생각하며 한 톨의 쌀알도 소중히 다룹니다.
▲  북녘 땅 배고픈 동포들을 생각하며 한 톨의 쌀알도 소중히 다룹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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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이리라. 드넓은 갯벌은 황해도 바닷가에도 펼쳐져 있을 테고, 그곳 사람들도 조개를 따러 갯벌로 나갈 것이다. 그렇게 채취한 해산물들을 요리해 먹기도 하겠지만 밀가루며 쌀로 바꾸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루 종일 허리 굽혀 뻘밭에서 일해 봐야 고작 몇 줌의 밀가루와 바꾸면 그만일 그들에게 쌀이 들어있는 페트병을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심 봤다'와 같은 것이지 않을까.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쌀이 귀해서 노동자의 한 달 월급에 맞먹는 돈을 줘야 겨우 쌀 1킬로그램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쌀 1킬로그램이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다. 보통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20킬로그램 한 포대 쌀값이 약 4만 원 가까이 하니, 1킬로그램이면 우리 돈으로 2천 원 정도 밖에 하지 않는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한 달 치 월급을 줘야 구할 수 있다니, 과연 이 말이 진짜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먹을 게 넘쳐나는 지금 우리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말이지만 살길을 찾아 남한으로 온 새터민들이 직접 한 말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입쌀밥이 되고 죽이 되는 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남한으로 온 탈북이주민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일이라서 그런지 우리와 달랐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안다고, 그들은 내 일인 양 걱정하였다.

 

 빈 페트병에 약 1킬로그램의 쌀을 넣어 보냅니다.
▲  빈 페트병에 약 1킬로그램의 쌀을 넣어 보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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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이 무사히 잘 가서 그쪽 사람들이 받았으면 좋겠네. 그래서 입쌀밥도 해먹고, 쌀 한 줌 넣고 죽도 끓여 먹고 그랬으면 좋겠네."

함경북도 무산에서 온 아주머니는 연신 그렇게 말하며 페트병에 쌀을 넣었다. 한 톨의 쌀도 아까운지 바닥에 떨어진 쌀알까지 알뜰하게 주웠다. 

저만큼 빠졌던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갯벌 안까지 깊숙이 뻗어있는 선착장에도 성큼성큼 물이 차올라왔다. 배를 묶어두는 곳까지 물이 찼을 때 페트병을 띄워 보내면 북한까지 가장 잘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또 얼마간을 기다리다가 마침맞게 물이 들어왔을 때 띄워 보내기 시작했다. 이번에 보낼 쌀은 모두 합해 480킬로그램 정도 된다. 한 번 할 때마다 이 정도씩 보냈다고 하니 쌀을 구입하는 비용도 엄청 날 것 같다.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도와주는 후원자들의 지원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바닷물은 달의 힘을 받아 하루에 두 번 드나들기를 반복한다. 음력 보름과 그믐 때면 물이 최고로 빠지고 또 밀려들어온다. 바닷가 사람들이 말하는 '사리'가 그때인데, 사리는 말 그대로 곱배기를 뜻한다. 즉 물이 보통 때의 곱배기로 많이 들어온다는 말이니, 쌀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때는 '사리'때라고 볼 수 있다.  

 

 "쌀아, 잘 가거라. 배고픈 우리 동포에게."
▲  "쌀아, 잘 가거라. 배고픈 우리 동포에게."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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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해보면 참 재미있어요. 쌀을 담은 페트병들이 마치 오리 떼가 줄 지어 가듯이 물을 따라 북으로 가는데, 참 흐뭇하고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던 어떤 분이 그러셨다. 내가 보내는 이 쌀 한 줌이 북한 땅의 배고픈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빌며 쌀을 넣은 페트병을 띄워 보냈을 그 분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다.

쌀아, 부디 잘 가거라, 우리 동포들에게

저 멀리 부옇게 북한 땅이 건너다 보였다. 우리가 보낸 이 쌀들은 오늘 저녁 무렵이면 그곳 바닷가에 닿을 것이다. 

"쌀아, 북녘 땅 동포들에게 부디 무사히 잘 가거라. 잘 가거라."
"이 다음에는 물길이 아닌 땅 길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빈다."

우리는 저마다 그런 소망을 담아서 400개가 넘는 페트병을 바닷길로 보냈다. 우리의 소망을 아는지 쌀을 담은 병들은 북으로 올라가는 물길을 따라 줄 지어 가기 시작했다. 하늘 길로도 땅 길로도 갈 수 없는 북녘 땅, 그러나 이렇게 물길이라도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그 물길로 따뜻한 마음이 간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이 되기 위한 우리의 마음이 간다.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모아진 우리의 마음이 북으로 북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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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선 본선직행 “국민이 집권해야 정권교체다”

문재인 대선 본선직행 “국민이 집권해야 정권교체다”

등록 :2017-04-03 21:11수정 :2017-04-03 23:43
 
민주당 후보로 확정…합산 57% 득표
“국민 대통령 시대 열겠다” 수락 연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저녁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민주당의 19대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꽃다발을 들고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문 후보는 이날 열린 수도권·강원·제주 마지막 순회경선을 포함해 총 4차례 순회경선 누적 득표율 57%를 얻어, 결선투표 없이 후보로 확정됐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저녁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민주당의 19대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꽃다발을 들고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문 후보는 이날 열린 수도권·강원·제주 마지막 순회경선을 포함해 총 4차례 순회경선 누적 득표율 57%를 얻어, 결선투표 없이 후보로 확정됐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문재인 전 대표가 3일 더불어민주당의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4일 국민의당 경선을 끝으로 5월9일 치러지는 대선에 출마할 각 당의 후보가 모두 확정되면, 5자 구도의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펼쳐질 전망이다.

 

문 후보는 이날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민주당의 ‘제19대 대통령 후보자 수도권·강원·제주 선출대회’에서 60.4%(39만9934표)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네차례의 경선 결과(재외국민투표 포함)를 합산하면, 문 후보는 57%(93만6419표)를 얻어 결선투표 없이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문 후보는 2012년 18대 대선에 이어 두번째 대선에 도전하게 됐다.

 

* 그래프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 그래프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2위는 21.5%(누적득표율, 35만3631표)를 기록한 안희정 후보가 차지했다. 이재명 후보는 수도권·강원·제주 경선에서 22%(14만5688표)를 얻어, 안 후보(17.3%, 11만4212표)를 앞질렀지만, 누적 득표율에서 불과 0.3%포인트 차로 안 후보에게 밀려 21.2%(34만7647표)로 3위에 올랐다. 최성 후보는 0.3%(4943표)를 득표해 4위에 머물렀다.

 

문 후보는 이날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오늘 우리에게 승자와 패자는 없다. 승자가 있다면 그건 바로, 촛불을 밝혔던 우리 국민들”이라며 “국민이 집권해야 정권교체다. 국민의 삶이 달라져야 새로운 대한민국이다. 시대를 바꿔라. 정치를 바꿔라. 경제를 바꿔라! 문재인, 그 명령을 받들어 국민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쌓여온 상대 후보 진영과의 갈등을 의식한 듯 “그동안 어느 캠프에 있었든 누구를 지지했든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함께할 때 우리는 강하다. 우리가 함께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정의당(심상정)을 시작으로 바른정당(유승민), 자유한국당(홍준표)은 이미 후보를 확정지었고,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가 이미 압도적인 ‘6연승’을 거둔 터라 대진표는 이미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재 문 후보에게 가장 유리한 ‘5자 구도’가 계속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을 제외한 다른 후보들 모두 ‘자강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반문재인 연대’, ‘중도·보수 후보 단일화’ 등의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단일화 합의에 따라, 4자 구도 또는 3자 구도가 짜이며 문 후보의 대세론이 출렁일 수 있다.

 

문 후보는 이날 후보 확정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철수 전 대표와의 ‘양자대결’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안 후보가) 자유한국당 등과 함께 연대해 단일 후보가 된다는 뜻인데, (그런 일은) 있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한국당 등과) 함께하는 후보라면 적폐 세력들의 정권 연정을 꾀하는 후보라고 생각한다”며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들이 (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89162.html?_fr=mt1#csidx402145c0ea31d4ab6a69cdc8f1b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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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침몰 당시 세월호 “‘4번 탱크 평형수’ 없었다” 열적외선 영상 분석 결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4/03 11:06
  • 수정일
    2017/04/03 11:0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해경 열적외선 동영상에 147톤 평형수 안 나타나, 관계 전문가 “전면 재조사 시급”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7-04-03 05:50:55
수정 2017-04-03 05:57:38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최근 인양된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해경 초계기로 촬영된 열적외선 동영상을 <민중의소리>가 관계 전문가와 함께 정밀 분석한 결과, 배의 복원력을 유지하는 데 쓰이는 4번 탱크의 평형수(147.5톤)가 비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선박 관련 전문가들은 4번 탱크의 평형수가 사라진 원인과 함께 세월호 침몰 진상에 대한 근본적인 재조사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해양경찰청은 침몰 상공을 선회한 초계기(CN-235)가 촬영한 3시간 분량(오전 9시~낮 12시)의 동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이 동영상은 일반 카메라와 열적외선 카메라 기능을 번갈아 작동시켜 열적외선 동영상을 함께 보여 주고 있다. 열적외선 동영상은 열적외선 카메라가 감지한 해당 물체의 온도 차이에 따라, 색상이나 명도가 달리 나타나게 된다.

9시 36분 01초 열적외선 동영상에서 평형수, 힐링, 연료 탱크 등이 구분되어 촬영된 모습. 위는 원본 사진, 아래는 각 탱크별로 명도차가 난 부분. 파란색 점선으로 표시한 부분은 주변보다 명도가 높고 빨간색 점선으로 표시한 부분은 주변보다 명도가 낮음. 명도가 높을수록 즉, 밝아질수록 온도가 높다. (사진은 해경이 공개했던 세월호 침몰당시 촬영 영상을 캡쳐한 모습이다.)
9시 36분 01초 열적외선 동영상에서 평형수, 힐링, 연료 탱크 등이 구분되어 촬영된 모습. 위는 원본 사진, 아래는 각 탱크별로 명도차가 난 부분. 파란색 점선으로 표시한 부분은 주변보다 명도가 높고 빨간색 점선으로 표시한 부분은 주변보다 명도가 낮음. 명도가 높을수록 즉, 밝아질수록 온도가 높다. (사진은 해경이 공개했던 세월호 침몰당시 촬영 영상을 캡쳐한 모습이다.)ⓒ민중의소리

세월호가 좌현으로 쓰려져 침몰할 당시인 오전 9시 36분 01초 전후의 열적외선 동영상을 보면, 세월호 우현 쪽의 선저 표면이 온도 차이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1번 연료 탱크와 2번 연료 탱크는 연료의 특성상 다소 온도가 높게 하얀색으로 정확하게 표시되고 있다. 또 해수가 들어 있는 2번 평형수 탱크와 5번 평형수 탱크 및 우현 힐링 탱크(배의 좌우 양 측면에 위치해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함)는 바닷물과 명도와 비슷하게 검게 표시되고 있다. 평형수가 없이 비어 있는 탱크(3번)나 나머지 선체 부분은 중간 정도의 비슷한 명도로 구분되어 표시되고 있다.

세월호 평형수, 힐링 탱크, 연료 탱크 등 입체 그래픽 사진
세월호 평형수, 힐링 탱크, 연료 탱크 등 입체 그래픽 사진ⓒ세월호 특조위

세월호는 운항 당시 그래픽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2번, 4번, 5번 평형수, 그리고 4번 평형수 탱크 좌우 양쪽에 위치한 힐링 탱크 등에 해수를 채운 상태에서 운항했다. (3번 평형수 탱크는 비움) 그런데 평형수가 들어 있어야 하는 4번 탱크 부분은 공교롭게도 비어 있는 탱크나 일반 선체와 같은 명도로 열적외선 영상에서 표시되고 있다. 세월호 열적외선 동영상 곳곳에서 이 같은 사실은 여러 차례 확인된다. 초계기가 세월호 선저를 일반 카메라로 촬영할 때는 전부 파란색으로 동일하게 표시되나, 열적외선 카메라로 전환하면 각각의 구분이 명확하게 표시되고 있다. 따라서 평형수가 들어 있어야 할 4번 탱크가 비어있는 다른 선체 부분과 같은 명도로 표시된다는 것은 침몰할 당시 이 탱크가 비어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세월호 일반 동영상과 열적외선 영상의 차이점을 뚜렷하게 알 수가 있다
세월호 일반 동영상과 열적외선 영상의 차이점을 뚜렷하게 알 수가 있다ⓒ해경 영상 캡처

이 같은 사실은 세월호의 침몰이 더욱 진행된 오전 10시 21분 40초 전후의 열적외선 동영상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해당 열적외선 동영상을 보면 206.3톤의 평형수가 적재된 2번 평형수 탱크와 51.3톤이 적재된 우현 힐링 탱크, 그리고 중앙 양쪽으로 두 탱크에 223톤이 적재된 5번 평형수 탱크는 각각 명확하게 검은색 명도로 표시되고 있다. 검은색 부분도 해당 평형수의 용량과 거의 비슷한 비율로 표시된다. 하지만 우현 힐링 탱크와 이어져 147.5톤의 평형수가 있어야 할 4번 탱크는 비어 있는 일반 탱크나 선체와 같은 명도를 보인다.

오전 10시 21분 40초 열적외선 동영상에서 촬영된 평형수, 힐링, 연료 탱크 부분. 명도차가 확연히 보인다. (사진은 해경이 공개했던 세월호 침몰당시 촬영 영상을 캡쳐한 모습이다.)
오전 10시 21분 40초 열적외선 동영상에서 촬영된 평형수, 힐링, 연료 탱크 부분. 명도차가 확연히 보인다. (사진은 해경이 공개했던 세월호 침몰당시 촬영 영상을 캡쳐한 모습이다.)ⓒ민중의소리

열적외선 카메라 전문가, “4번 평형수 부분은 비어있는 부분과 명도가 같다”
청해진 관계자 “모두 채우고 운항했다. 진상 조사 필요”

3월 31일, 세월호 열적외선 동영상을 분석한 열적외선 카메라 관련 세계적인 업체의 한국 지사 전문가는 "해당 초계기에 장착된 열적외선 카메라는 감시와 판별에 쓰이는 카메라로 보이며, 충분히 해당 물체의 온도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열적외선 카메라는 물체에서 발생하는 온도 에너지를 감지하는 원리로 작동한다"며 "해당 초계기와 세월호 거리에서도 열적외선 카메라는 해당 물체의 온도 차이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전문가는 "세월호 침몰 당시 선체 열적외선 동영상도 물체 온도 차이에 의해 명도를 달리하고 있다"며 "검은색으로 표시되는 부분(2번, 5번 평형수, 우현 힐링 탱크)은 해당 물체의 온도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밝은(흰)색으로 표현되는 부분도 그 물체의 온도가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해당 부분들이 각각 물과 기름 등을 담고 있다면, 각각 같은 명도로 표시되는 것이 상식"이라고 밝혔다. 또 "4번 탱크로 알려진 부분은 확연하게 다른 평형수 탱크 부분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함께 분석에 참여한 또 다른 전문가는 "해당 영상이 아날로그 형태의 촬영 영상이고, 소스가 없어 정밀한 분석을 할 수는 없지만, 육안으로도 분명하게 구분된다"며 "평형수로 알려진 부분은 바닷물과 비슷한 명도를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4번 탱크로 알려진 부분은 분명히 다른 평형수 탱크로 알려진 부분과는 다르다"며 "비어 있거나 물이나 기름이 없는 다른 선체 부분과 거의 같은 명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월호의 운항사인 청해진해운의 고위 관계자는 4번 평형수 탱크 관련 열적외선 동영상에 관해 "해당 영상을 보니,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면서도 "4번 평형수 탱크가 침몰 당시 비어있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세월호 2, 4, 5번 평형수 탱크는 한국에서 운항하면서 항상 모두 채워진 상태였다"며 "조선소에서 점검 이후 해당 평형수 탱크를 조정한 적도, 조정할 이유도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월호가 출항할 당시부터 4번 탱크에 평형수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느냐"의 물음에 "세월호가 일본에서 운항할 때는 3천여 톤이 넘는 화물을 적재하고도 단 300여 톤의 평형수만으로도 운항했다"면서 "당시 세월호는 2, 4, 5번 고정 평형수를 건들지 않고 다른 평형수 조정만으로도 흘수선(선체가 물에 잠기는 한계 표시선)을 맞출 수가 있어서 건드릴 필요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만약 우리 선원들이 4번 평형수를 뺐다면, 검찰 조사에서 다 드러났을 것"이라며 "만약 2, 4, 5번 평형수에 손을 댔다면 고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4번 평형수가 없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것은 반드시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 마린 호가 31일 오후 유가족들의 오열속에 목포신항에 접안하고 있다.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 마린 호가 31일 오후 유가족들의 오열속에 목포신항에 접안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선박 전문가, "평형수 조정은 스위치로 가능"
세월호 특조위 관계자, "충격적인 내용, 특조위 재가동 통한 전면 재조사 필요"

한 선박 관련 전문가는 '4번 평형수 소멸' 가능성에 관해 "선박의 평형수 조절은 펌프 스위치 작동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전문가는 "세월호도 조타실뿐만 아니라, 선미 쪽에 관련 컨터롤 박스 스위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배의 기본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이 스위치 작동으로 평형수를 빼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당 컨트롤 박스에 잠금장치 등이 없느냐"의 질문에 "그냥 일반적인 스위치 보호캡만 있고 잠금장치 등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

또 다른 한 선박 전문가는 "세월호의 평형수가 만일, 운항 중에 사라진다면, 조타실에서는 알 수 없느냐"는 질문에 "펌프가 작동하고 있다는 램프 외는 따로 알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 전문가는 "조타실 한쪽에 있는 이 램프를 유심히 관찰하지 않는 이상 모를 수도 있다"며 "특히, 배 중간에 있는 4번 평형수가 사라졌다면, (기울어짐이 둔해) 선원들은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 전문가는 또 "만약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140여 톤에 달하는 평형수가 없었다면, 이는 복원력 상실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선체가 인양된 이상, 이와 관련해 우선적인 조사가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침몰 당시 '세월호 4번 평형수 소멸' 가능성에 관해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을 역임한 한 전문가는 "열적외선 동영상 분석 내용은 충격적이고도 중요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선체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가 초계기가 촬영한 동영상이라는 것은 특조위도 파악했었다"며 "열적외선 영상에 관해서도 정밀 분석 등을 의뢰하고자 했지만, 특조위가 조기에 강제 해산되는 바람에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만일 4번 평형수가 침몰 당시 없었다면, 복원성 계산 등 침몰 원인에 관한 모든 기존 보고서나 추론을 다시 작성해야 한다"며 "이번 분석 내용은 세월호 특조위를 재가동해 침몰 원인에 관해 전면전인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더욱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열적외선 동영상 확인 결과, ‘4번 평형수가 없었다’는 <민중의소리> 단독 보도와 관련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2일, “현재 세월호 인양 추진단에 확인한 결과, 해당 내용은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세월호 인양 추진단은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목표로 하는 부서”라며 “침몰 원인에 관해 조사한 산하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관련 내용을 파악해 보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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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삽자루만한 크기 전파교란장비 위력

북의 삽자루만한 크기 전파교란장비 위력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4/03 [08:5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4년 4월 수호이24 전폭기가 미 도널드 쿡 이지스 구축함에 근접 위협비행을 하고 있다.

 

▲2011년 이란이 나포한 미국 최첨단  RQ-170 고고도무인정찰기 아래 천에는“우리는 미국을 짓밟을 것이다”, “미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구호가 적혀 있다.

 

지난 3월 15일 예정웅 국방전문가가 서프라이즈에 소개한 “조선, 3월6일 화성 중, 장거리미사일 4기가 아니라 13기를 쏘았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충격적인 북의 전파교란무기를 소개하였다. 이 글의 미사일 관련 내용은 연합뉴스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이 글을 통해 2011년 이란이 미국 최첨단 스텔스 무인정찰기 RQ-170 센티널을 고스란히 공중나포했던 사건과 2014년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가 미국의 도널드쿡 구축함의 레이더를 무력화시키고 능욕했던 사건이 북의 도움에 의해 가능했으리라는 본지의 추정이 더욱 확실해졌다.

 

[필자가 얼마 전에 목격한 바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무장 장비관에는 전파를 알아내고 전파를 마음대로 차단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장비 즉, 조선이 만든 (GPS) 전파방해 기재가 전시 되여 있었다. 
놀라운 물건을 본 것이다. 조선이 (GPS)통신체계를 조작하는 전자통신장비가 대단히 크고 복잡한 전자기구라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실제의 크기가 보통 삽자루만한 높이에 조금 두꺼운 기계에 불과하다. 한 두 사람이 들고 다니면서 원하는 곳에,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장소의 주파수를 입력하고 세워두면 상황 끝, 남조선의 어느 지역만 골라(GPS) 차단장치를 켜놓으면 그 지역은 전자통신 기능이 상실된다. 보기에 대단한 전자기재도 아니다. 그 (GPS) 조작기계의 종류도 여러 가지 형식을 띠고 있으며 다양하다. 그 전파조작기술도 이제는 낡은 기술이라고 한다.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우주에 떠있는 통신인공위성을 아예 작동을 중단시키는 기술까지 갖고 있다고 한다.]- 서프라이즈 3월 15일 예정웅 ‘조선, 3월6일 화성 중, 장거리미사일 4기가 아니라 13기를 쏘았다’ 중에서

 

인공지구위성을 이용한 GPS나 레이더 모두 전파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정웅 전문가가 언급한 전파방해 장비를 이용하면 거의 모든 전자장비를 무력화할 수 있게 된다. 제 아무리 뛰어난 장비라고 해도 레이더가 먹통이 되면 장님과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한다.

실제 미국에서 신형 전투기 F-22랩터가 가상 공중전에서 단 한 대로 상대 수십기를 떨어뜨려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것도 결국은 최첨단 레이더장비를 갖추고 있어 먼저 적기를 발견하고 미사일을 발사하여 격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F-22랩터도 그라울러라는 미국의 전자전기와 가상전투에서 맥도 추지 못하고 격추되었던 것이다. 그라울러가 먼저 전파교란장비로 랩터의 레이더를 먹통으로 만들어 버린 후 대공 미사일을 발사하여 격추한 것이다.
이 전자전 능력에 있어 미국이 중국, 러시아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미국이 세계최강의 군사강국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 그라울러와 같은 전자전기를 중국은 지금 개발하고 있다. 러시아는 특별한 전자전기를 내세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미국의 이 전자전 능력을 능욕하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2011년 미군 첨단 무인 정찰기가 이란 공군부대 활주로에 고분고분 착륙하는 장면, RQ-170 드론 나포 사건이 벌어진 직후 이란방송에서 공개한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2011년 12월 9일 우리 언론들이 대서특필한 이란 혁명수비군의 미국 최첨단 스텔스 무인정찰기 RQ-170 센티널 공중나포했던 사건이 그 중 하나이다. 
당시 이란은 미국에서 단 5대밖에 만들지 않았던 최첨단 스텔스 고공무인정찰기를 전자덫을 놓아 나포하여 이란 공항에 착륙시킨 후 이를 전세계 언론에 공개하였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그렇게 강력하게 돌려달라고 요구하였지만 이란은 명백하게 영공을 침범한 것을 나포했기 때문에 이는 전리품이라며 돌려주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내부의 핵심 전자장비는 완벽하게 봉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복제를 하기 위해 아무리 분해해보려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보통 핵심부품을 건들면 폭발하게 만들어 기술을 보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란은 얼만 안 가 그 내부를 다 분해하여 더 날쌘 복제품까지 만들어 공개하여 미국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완전히 미국을 능욕한 것이다. 당시 이란은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이 무인 정찰기 기술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중국, 러시아와도 공유할 의지가 있음을 피력한 바 있다. 
무인정찰기에 들어가는 기술은 첨단 중에서도 최첨단이다. 앞으로는 무인기 등 로봇 싸움이 대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수십년 공들여 개발한 관련 모든 기술을 한 순간에 이란과 반미진영에 고스란히 넘겨준 것이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2014년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가 미국의 도널드쿡 구축함의 레이더를 무력화시키고 능욕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우크라이나전쟁 발발한 직후 미국은 러시아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흑해에 도널드쿡 구축함을 보내 러시아를 겁박하기 시작했다. 흑해는 주변국들만 이용할 수 있는 바다이며 다른 나라 군함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사전 양해를 받아야 하는데 미국은 그냥 밀고 들어간 것이다.


그때 러시아 수호이24 전폭기 2대가 멀리 창공에서 육박해오고 있음이 도널드쿡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수호이24는 폭탄은 많이 탑재하지만 속도가 느리다. 미군에게는 가장 손쉬운 먹이감이었다. 그래서 자신있게 요격준비에 들었는데 얼마 안 가 바로 레이더가 먹통이 되고 말았다. 레이더를 고치려고 아무리 노력을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긴급하게 수동 레이더를 전개했다. 하지만 그것도 먹통이었다. 그 사이 수호이24는 도널드 쿡 바로 앞까지 와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자세를 취했다가 스치듯 지나갔다. 그렇게 30분간 도널드쿡을 유린한 후에야 2대의 수호이24는 유유히 사라졌다.
긴급히 항구로 돌아오자마자 탑승했던 미해군 수십 명이 바로 사직서를 냈다. 월급보다 목숨이 더 중요하다며...
당연히 미국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미군파병을 하지 못했다. 결국 크림반도가 러시아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사건과 북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이란은 원래부터 북과 군사적 교류협력을 많이 해온 나라이다. 이란의 무기체계는 거의 모두 북의 기술로 개발 배치된 것이라는 게 국방연구원에서 펴낸 ‘이란을 알면 북한이 보인다’라는 책에 잘 나와 있다.
러시아의 경우는 도널드쿡 사건이 발생한 후 10여일만에 푸틴 대통령이 북의 부채 98억7000만달러(약 당시 환율로 10조2391억3800만원)를 탕감하는 내용의 협정을 비준했다. 

이 협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여일간의 러시아방문 당시 맺어진 것인데 비준을 미루고 있다가 도널드쿡 사건 직후 바로 비준되어 효력을 발생시켰던 것이다.

 

미국이 고고도무인정찰기 RQ-170은 GPS를 이용하여 지상에서 조종하게 된다. 이란에서는 미국의 이 위성통신을 무력화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전파지시를 따르도록 RQ-170에 명령을 내려 역조종까지 한 것이다.

 

도널드쿡의 레이더는 위성의 도움도 받지만 자체의 위상배열레이더를 가동하여 주변에서 공격해오는 모든 것들을 탐색하여 요격한다. 위상배열레이더는 많은 목표물을 동시에 자동탐색하는데 수호이 전투기에 장착한 전파교란장비가 그것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킨 것이다.

 

예정웅 전문가가 평양의 무장장비전시관에 가서 직접 본 그 장비의 크기가 삽자루만한 길이에 한 두명이면 들 수 있었다고 하니 전투기에 얼마든지 장착할 수 있는 장비일 것이다.

 

현재 사드를 배치하고 북의 지하기지를 파괴하겠다고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들여 수입하는 F-35전투기나 온갖 스마트폭탄은 모두 전자장비가 핵심이다. 그것이 무력화된다면 무용지물 고철덩어리로 전락하게 된다. 스마트폭탄을 쏘면 역으로 되돌아와 아군을 타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북이 지난해 수소탄 시험을 두 차례나 하고 이를 미 본토까지 운반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용 고출력 엔진까지 얼마 전에 공개하자 미국과 우리 수구보수진영에서는 대북선제타격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높아가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B1-B, B-2 스텔스 폭격기가 뜨면 한나절도 되지 않아 북의 모든 레이더기지와 주요 전력시설 등이 다 파괴되어 장님이 될 것이라며 그 다음에 미국이 순항미사일 등으로 북을 초토화시킨 후 참수부대와 해병대 등을 투입하면 3일 안에 북을 점령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위성통신이 먹통이 되면 스텔스 폭격기도 함부로 북에 침투하지 못한다. 위성통신을 통해 지상 관제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제타격은 군사기술적 측면에서만 봐도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을 압박하지 않으면 미국 독자적으로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모종의 결단을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그것이 선제타격이 아니라 북미직접대화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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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갑니다, 이명박 4대강 탄핵하러

 
[4대강 독립군, 미국에 간다] 미국은 왜 댐을 허무나
17.04.03 05:22 | 글:김병기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
박근혜 탄핵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은 적폐청산 1호라 할 만 하다. 차기 정권은 수문 개방뿐만 아니라 4대강 청문회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선정해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대통령 선거에 즈음해 미국 현지 취재 등을 통해 4대강 사업의 폐해를 환기시키고,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편집자말]
▲ 투명카약을 탄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와 '낙동강지킴이' 정수근 시민기자를 비롯한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24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도동서원앞 녹조 가득한 낙동강에서 멸종위기 물고기 '흰수마자' 그림에 '나는 살고 싶다' 글을 적은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 이희훈


[프롤로그] 4대강 독립군 다시 뭉쳤다

"와~ 대박이네유. 세상에 이런 영상을 찍은 사람 봤슈?"

삽을 들고 금강을 쏘다닌 그에게선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런 몸을 바짝 붙이며 세종보에서 방금 찍은 핸드폰 동영상을 들이댔다. 최악 수질 4급수에 서식하는 생명체, 아래 20초 영상을 클릭하면 금강 실지렁이가 꿈틀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니~ 왜 영상이 올라가지 않는 겨? 나 원 참. 여기 좀 봐유, 꼭 35%에서 멈추네유." 

그는 세종보에서 공주보로 차를 몰다가 신호등에 걸려 잠시 멈춘 틈에 투덜대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 영상(?)을 자기 페이스북에 빨리 올려야 하는 데 몇 번이나 업로드에 실패하자 조바심을 냈다.  

금강의 요정. 큰빗이끼벌레를 먹은 뒤에 특종 기사를 터트려서 괴물기자라고 불리는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51)는 '4대강 독립군'의 맏형이다.      

"이 장화는 비싼거라요. 3만 원.(웃음)"

가슴까지 차오르는 장화를 신고 세종보 상류의 물 빠진 펄 바닥을 걷는 또 다른 그가 말했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회색 강바닥을 장화로 한번 쑥 훑으니 먼지를 일으키며 모래 바닥이 드러났다. 세종보 상류에 쌓인 퇴적토는 2~5cm 남짓. 육안으로 확인한 것만 그렇다. 

물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 자갈도 두껍게 회색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펄을 뒤집어썼다. 웅덩이와 물 가장자리에는 어김없이 녹조 찌꺼기가 쌓였다. 죽은 조개가 밟힐 때마다 소리를 냈다. 그는 곤충채집하듯이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혀 금강의 죽음을 카메라에 담았다.  

- 매일 낙동강을 취재할 텐데, 여기 강바닥 상태가 더 심한가요? 
"더 심하네요."

대구에서 온 그는 말수는 적지만 행동은 빨랐다. 이날, 세종보 관리소장이 강에서 어슬렁거리는 불청객을 확인하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오늘 또 기사 쓸 거예요?" 관리소장이 김종술 기자에게 말을 거는 사이에 그는 혼자 100m 앞질러 가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정수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45.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 김종술 기자가 '금강종술'이라면 그는 낙동강을 지키는 '낙동수근'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알력이 있다. 서로의 페북도 챙긴단다. 아니 감시한다. 서로 동태를 파악하면서 배우고 싶다는 뜻이다. 가끔 만나면 티격태격하지만 얼굴을 붉히는 건 아니다. 생산적 긴장관계 또는 선의의 경쟁 관계이다. 

"제발~ 투덜이 형. 시끄러워욧!"   

한 사람 더 있다. 김종술 기자를 만나면 그의 입에서 자주 튀어나오는 단골 멘트다. 그는 김종술과 정수근 사이에 의견이 엇갈릴 때 논리적으로 중재한다.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을 하다가 백수가 된 지 4년 차인데 누구보다 바쁘다. 전화를 걸면 강바닥을 누비고 있거나, 논문을 쓰는 중이다. 그는 현장에서 이론을 생산하는 4대강 정책통이다. 

물웅덩이 앞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그에게 다가가니 회색 펄로 덧칠된 돌멩이를 들어 보이면서 한마디 했다.  

"돌멩이에 붙은 이것 보세요. 수서곤충 날도래인데요, 비교적 맑은 물에 살죠. 이 녀석들이 줄고 깔따구나 실지렁이들이 늘었어요.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있죠? 이런 곳에서 물고기와 치어들을 볼 수 있는 데 여긴 없습니다."

꼼꼼한 그는 '에코큐레이터'라는 희한한 명함을 들고 다니는 이철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45.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사전적 의미로는 환경 관련 콘텐츠 정보를 수집해서 선별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전파하는 자다. 

세 명의 시민기자, 아니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부터 4대강을 해방시키려는 '4대강 독립군'이 미국에 간다. 사전 모의를 하려고 지난달 21일 금강에서 뭉쳤다.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건 작년 9월 '4대강 청문회를 열자'를 모토로 3000여만 원 펀딩에 성공한 뒤 처음이다. 이들은 낙동강과 금강을 탐사보도하면서 '댐의 나라' 미국이 댐을 허무는 이유를 현지 취재하겠다고 약속했었다. 

4월 9일부터 4대강 독립군은 미국으로 날아간다.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이야기는 예고편이다.  

[장면 1] 녹색 손 

박근혜 탄핵 이후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전임 대통령 예우를 받으며  잘 살고 있다. 그의 강남 사무실 한 달 임대비용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전직 대통령 연금 등)으로 충당할지도 모른다. 4대강 사업이 완공된 뒤에도 매년 수천억 원의 국민 세금을 털어서 유지보수 비용을 마련한다.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한 일을 '호주머니 턴다'는 식으로 표현해서 거북하실 수 있다. 너무 천문학적인 돈이어서 그렇다. 4대강 사업에 쓴 혈세 22조 원은 전 국민 호주머니에서 45만 원을 털어서 만든 돈이다.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면서 대선에서 표를 유혹했던 그는 민간인이 된 뒤에도 국민 주머니를 털고 있다.   

그가 자기 업적을 세우려고 4대강에 쏟아 부은 22조 원은 거의 날렸다. 멀쩡한 4대강을 죽은 강이라고 우기면서 이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였다. 하지만 김종술 기자가 녹조에 한번 담갔다가 올린 녹색 손, 이 사진 한 장만 봐도 4대강 사업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24일 오후 4대강 사업 이후 금강 실태 취재에 나선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충남 서천군 금강하구둑 부근에서 곤죽 상태인 녹조에 손을 담궈 보고 있다. ⓒ 권우성


[장면 2] 하늘에서 본 녹색강

그래도 부족하다면 그동안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의 사이트에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충격적인 동영상을 공개한다. 작년 여름 4대강 독립군 탐사보도 때 찍었다. 4대강 수문을 지금처럼 닫아 둔다면 올여름에도 여러분은 죽음의 녹색강을 목격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를 쫓겨나면서 했던 이 말을 기억하실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맞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국정농단의 악취가 더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이 말을 들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면 강이 살아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그 말. 

하지만 시간은 그의 기대를 배반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취는 더 짙어졌다. 4대강 완공 첫해에는 물고기 떼죽음, 다음 해부터 '녹조라떼'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녹조 현상이 심해졌다. 그 다음 해에는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했다. 금강을 지키는 김종술, 낙동강을 지키는 정수근 기자가 현장에서 퍼 올린 특종은 이 전 대통령의 주장을 무장해제했다.  

[장면 3] 깔따구·실지렁이 천국

4대강 독립군들은 작년에도 징글징글한 특종들을 쏘아 올렸다. 시궁창에서나 발견되는 깔따구와 실지렁이가 강바닥에 우글거리고 있다는 기사였다. 혹시, 맑은 물에도 이 생명체들은 사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4대강 독립군이 발견한 깔따구 사진과 환경부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수생태 오염지표종 자료 사진을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 강바닥에서 퍼 올린 흙 속에서 찾아낸 환경부 수생태 4급수 오염지표종인 실지렁이 ⓒ 김종술

 

▲ 환경부 수생태 오염지표종 자료 ⓒ 김종술


환경부 자료가 맞는다면 영남인들은 지금 수돗물로 사용할 수 없는 낙동강 물을 정수해서 먹고 있다. 4대강 독립군들이 뭉친 지난달 21일에도 강바닥에 죽어있던 조개껍질로 한 삽 펐더니, 깔따구가 무려 2~3마리 나왔다. 비단결 같던 금강 바닥 전체가 시뻘건 깔따구로 덮여있다고 봐도 된다. 

어처구니없는 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의지와 무관하게 당신들이 낸 세금으로 4대강에서 깔따구와 실지렁이를 양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맘대로 최순실에게 넘긴 것처럼,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자기 맘대로 돈을 썼다. 박근혜씨가 탄핵된 지금도 매년 2천억 원의 세금으로 4대강 수문을 굳게 닫아걸고 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눈감는다면? 결과는 뻔하다. 박근혜와 같은 '국정농단 괴물'을 키울 수 있다. 지금도 4대강에는 최악 수생태 지표종이 무럭무럭 크고 있다.     

[장면 4] "다 나와! 다 밀어!" 4대강 공격개시명령

5년짜리 대통령이 자기 업적으로 4대강을 끌어다 쓰겠다는 탐욕과 소유욕은 폭력을 낳았다. 잠시 대한민국 국회 시곗바늘을 7년 전으로 돌려보자.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의 4대강 흑역사는 민의의 전당인 여의도 국회에서 벌어진 고함과 비명, 폭력으로 시작했다. 2010년 12월8일 오후 4시15분, 당시 김무성 한나라당 대표는 4대강을 짓밟는 공격 개시 명령을 내렸다. 

"다 나와!" "다 밀어!" 

아비규환이었다. 3~4명의 여당 의원들은 의장석을 점거했던 야당 의원들의 사지를 들고 한 명씩 끌어내렸다. 그들은 의장석을 점령한 뒤 2분 만에 4대강 예산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이름만 바꿔 4대강 사업을 추진했다. 그 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1등 공신이었던 김무성 대표는 예산 날치기 돌격 대장이었다.

'이명박근혜 합동작전'으로 예산이 통과되자 이 전 대통령은 군사작전을 하듯이 밀어붙였다. 수많은 포클레인과 불도저를 4대강에 투입해 내장을 발라내듯 모래와 자갈을 퍼냈다. 이걸 팔아 지역경제를 살리겠다고 말했지만 지금도 남한강변에는 산처럼 쌓아둔 모래언덕이 있다. 바람만 불면 모래사막이다. 

사실 민주적 절차만 지켰어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예비타당성 조사를 해야 했는데, 법의 예외조항을 만들어서 생략했다. 4대강을 조사하려면 몇 년이 걸리는 환경영향평가와 문화재 조사를 2개월 만에 마쳤다. 

[장면 5] 적폐청산 1호 '이명박근혜 4대강'
 

▲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반도대운하 설명회'에서 대운하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당시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면 '종북' '빨갱이'로 몰았다. 4대강 부역자들의 주장을 검증하지 않고 내보내는 '4대강 가짜뉴스'도 판쳤다. 블랙리스트 명단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국정원은 4대강 사업 반대 학자들을 사찰했다. 사업에 참여한 재벌들에게 일감을 몰아주면서 혜택을 줬다. 탄핵된 박근혜 정권과 너무 닮았다.  

지난 4년간 박근혜 정권은 4대강 수문조차 열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혈세를 들여 이명박의 4대강을 지켰다. 박근혜-최순실이 국민 예산을 도둑질한 경제공동체였다면, 이명박-박근혜는 혈세를 강물에 쏟아부은 '4대강 정책 공동체'였다. 박근혜-최순실이 헌법질서를 유린했다면, 이명박-박근혜는 4대강을 죽였다.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한 광장의 촛불은 이제 적폐청산을 명령하고 있다. 보수정권이 대를 이어 법질서를 교란하면서 국고를 낭비한 4대강 사업은 적폐청산 1호라고 부를만하다. 수문을 열거나 댐을 해체하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차기 정권은 국회 청문회나 국정조사를 열어야 한다. 이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4대강 부역자도 심판해야 한다. 청산하지 않는 친일의 역사가 지금도 우리를 옥죄듯이, 4대강 사업 적폐를 청산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4대강 사업은 반드시 나타난다.

[에필로그] 지난 100년간 1300개 댐 허문 미국

"금강은 비단처럼 맑았다. 4대강 사업 준공 5년 만에 실지렁이와 깔따구 천국으로 망가졌다. 미국에 가면 다시 살아난 금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희망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김종술 기자)

"세종보의 물 빠진 현장을 보면서 안타까웠지만, 강이 강처럼 보였다. 여울이 생겼고 일부 모래톱도 드러났다. 희망의 싹이다. 이명박근혜가 4대강을 죽였지만, 아직 완전히 죽은 건 아니다. 댐을 허문 뒤 살아나는 미국의 강에서 더 큰 희망을 보고 싶다." (정수근 기자)

"노자의 도덕경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나온다. 가장 좋은 것이 물이고 그 물은 도와 가깝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이후 우리 물은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있다. 미국에 가서 4대강 사업의 대안과 한국에 적용할 물 관리 정책을 제시하고 싶다." (이철재 기자)

세계 최대 댐 보유국인 미국은 지난 100년간 1300개의 댐을 허물었다. 4대강 독립군은 오는 4월 9일부터 16일까지 미국 엘와강의 댐 철거 이후 복원 현장과 댐 철거를 앞둔 클라마스강의 현장을 취재한다. 미국이 왜 댐을 부술 수밖에 없었는지, 어떻게 댐을 해체했는지를 조명한다. 미국의 석학 인터뷰를 내보낼 예정이며, 국내 전문가의 4대강 심층 분석 글도 준비했다. 

'이명박 4대강 청문회' 위해 4대강 독립군 응원을...



이미 4대강 논쟁은 끝났다. 갇힌 물은 썩었다. 4대강 16개의 댐이 강물을 살릴 수 있다는 주장은 거짓이었다. 박 전 대통령에게 '백 개의 형광등 아우라'라고 치켜세웠던 언론들은 참담한 결과를 만드는 데 한몫 했다. 이 전 대통령 주장을 그대로 옮기거나, 기계적 균형을 맞춘다는 이유로 검증 없이 4대강 찬반 논쟁을 보도했던 언론도 4대강을 죽인 장본인이다.

그들이 망친 것을 증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려고 4대강 독립군이 미국에 간다. 시도 때도 없이 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수구세력들. 그들이 선망하는 미국에 가서 강 살리기 경험을 생생하게 전하겠다. 댐 해체 기술만이 아니라 환경 가치와 정신도 배우고 싶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죽인 4대강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다. 

독립군의 다음 목표는 4대강 청문회나 국정조사를 여는 일이다. 적폐청산이 시작되는 날 4대강 독립군이 취재한 미국 사례를 청문회에 제시하겠다. 이 전 대통령이 탄핵된 박근혜처럼 검찰 포토라인에 선다면 4대강 독립군들이 취재한 자료들을 모아 사법기관에 제출하겠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언론사의 직업기자도 아닌 시민기자들이다. 소위 '기레기'(기자 쓰레기)들이 권력에 기생하면서 스스로 권력을 향유할 때, 이들은 죽어가는 4대강에서 나 홀로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다. 적폐청산 1호, 이명박 4대강을 탄핵하려는 4대강 독립군들을 후원하고 응원해주기 바란다.
 

 4대강 독립군을 응원해주세요


'4대강 독립군, 미국에 가다' 프로젝트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진행합니다. 3명의 시민기자는 매월 1만 원 이상씩 오마이뉴스를 후원하는 10만인클럽 회원이자 특임기자입니다. 제2, 제3의 4대강 독립군들을 만드는 데 함께 하시려면 010-3270-3828(10만인클럽 핸드폰)로 전화 주십시오. 또 이번 현장 취재를 하는데 환경운동연합대구환경운동연합불교환경연대의 도움이 많았습니다. 4대강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해 온 단체들에게도 후원(회원 가입) 마음을 내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위의 단체 이름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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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69주년 제주 4.3사건 추념일’입니다

 
제주 4.3사건, ‘남로당 중앙 지령설’을 반박해주마
 
오늘은 ‘제69주년 제주 4.3사건 추념일’입니다
 
임병도 | 2017-04-03 09:24:4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늘은 ‘제69주년 제주 4.3사건 추념일’입니다. 제주로 내려와서 가장 먼저 찾았던 자료가 ‘제주 4.3사건’입니다. 매년 제주 4.3사건 관련 글을 씁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다행히 올해는 실시간 검색어에도 잠시 오르기도 했습니다.

제주 4.3사건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제주 4.3사건이 남로당 중앙당이 지령을 내려 벌어졌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북한이나 소련의 지시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주 4.3사건은 이승만의 반공청년단과 경찰이 벌인 폭정과 범죄로 시작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극우단체나 뉴라이트 교과서 등은 남로당 중앙당의 지시로 치밀하게 준비된 무장 폭동 사건이라고 6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제주4.3 사건의 남로당 중앙 지령설’이 얼마나 허구인지 하나씩 반박해보겠습니다.


‘박갑동,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은 정보기관이 쓴 것이다’

 

▲ 박갑동은 중앙일보와 ‘박헌영’이라는 책에서 제주 4.3사건이 남로당 중앙당 지령에 의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제주 4.3사건이 남로당 중앙당 지령으로 벌어졌다는 근거는 1973년 박갑동이 중앙일보에 연재한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남로당 지하총책을 지냈다는 박갑동은 중앙일보에 제주 4.3사건을 언급했고, 이후 1983년 ‘박헌영’이라는 책자로 나왔습니다.

…그러던 중 중앙당의 폭동지령이 떨어졌다. 아마도 그 지령은 3월 중순쯤에 현지의 무장행동대 김달삼에게 시달된 것으로 안다.<
…당시 중앙당에서는 이 사건이 터질 무렵 당 군사부 책임자 이중업과 군내의 프락치 책임자 이재복 등을 현지에 파견하여 소위 현지 집중지도로써 군사활동의 확대를 기도했다. 또 폭동의 두목 김달삼의 장인이며 중앙선전부장 강문석을 정책 및 조직지도 책임자로 선정하여 현지로 보냈었다. (박갑동 저 ‘박헌영’ 인간사, 1983, 198~199쪽)

박갑동이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펴낸 책에 나온 ‘제주 4.3사건 관련 글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없습니다. 오로지 박갑동의 주장에 불과합니다.

제주 제민일보의 ‘4.3 취재반’은 일본에 있는 박갑동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해봤습니다. 당시 박갑동은 제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앙지령설은 내 글이 아니고, 1973년 신문 연재할 때 정보기관에서 고쳐서 쓴 것”이라는 충격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박갑동은 “4‧3이 5‧10선거 반대투쟁이라지만 왜 유별나게 제주에서만 그랬겠는가? 4‧3은 서청과 경찰이 횡포를 부려 발생한 사건이다. 본격적인 무장투쟁이 아니며 경찰과 서청에 대항하기 위해 제주도 안에서 자체적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극우단체와 뉴라이트가 주장했던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 최초 유포자’의 글 자체가 거짓인 동시에 정보기관이 만든 날조였습니다.


‘남로당 중앙당 지시가 없었다며 거절당한 제주도당의 협조 요구’

 

▲극우단체와 극우언론들은 제주 4.3사건 추념일을 남로당의 무장봉기일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제주 4.3사건이 남로당 중앙당 지령이라는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신촌회의’입니다. 1948년 남로당 조천지부에서 열렸던 회의를 급습한 경찰이 노획한 문건에서 ‘2월 중순부터 3월 5일 사이에 제주도에서 폭동을 일으킬 것을 요구하고, 경찰 간부와 고위 공무원들을 암살하고 경찰 무기를 탈취하라는 지침이 발표됐다’는 것입니다.

“무장봉기가 결정된 것은 1948년 2월 그믐에서 3월 초 즈음의 일이다. 신촌에서 회의가 열렸는데, 도당 책임자와 각 면당의 책임자 등 19명이 신촌의 한 민가에 모였다. 참석자는 조몽구, 이종우, 강대석, 김달삼, 나(이삼룡), 김두봉, 고칠종, 김양근 등 19명이다. 이덕구는 없었다. 이 자리에서 김달삼이 봉기 문제를 제기했다. 김달삼이 앞장선 것은 그의 성격이 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경파와 신중파가 갈렸다. 신중파로는 조몽구와 성산포 사람 등 7명인데, 그들은 “우린 가진 것도 없는데, 더 지켜보자”고 했다. 강경파는 나와 이종우, 김달삼 등 12명이다. 당시 중앙당의 지령은 없었고, 제주도 자체에서 결정한 것이다.” (이삼룡 증언)

신촌회의에 참석했던 이삼룡의 증언에 따르면 무장투쟁은 강경파와 신중파의 논쟁 속에 12대 7로 결정됐습니다. 북한이나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이 아닌 제주도 자체에서 결정된 셈입니다.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를 보면 4.3직전에 남로당 제주도당은 중앙당 직속 프락치였던 문상길 소위를 만납니다. 문 소위를 만나 ‘무장 투쟁이 앞으로 있을 것이니 경비대도 호응 궐기해야 한다’고 권유하지만 문 소위는 ‘중앙 지시가 없으니 할 수 없다’라며 거절을 합니다.

제주 4.3사건의 무장투쟁은 북한이나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이 아닌 남로당 제주도당이 자체적으로 다수결에 의해 결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선엽, 당 말단에서 빚어진 자의적인 행동이었다’

제주 4.3사건의 남로당 중앙지령설은 국군 장성들의 회고록 등에서도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김정곤 (소장 예편)은 ‘한국전쟁과 노동당전략’에서 육지와 떨어져 있는 제주도를 적화시켜 북상한다는 등의 이유 등을 내세워 ‘중앙지령설’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백선엽 (대장 예편)은 ‘실록 지리산’에서 “여순반란사건은 결코 남로당 중앙의 지령에 의한 것이 아니다. 4‧3과 마찬가지로 당 말단에서 빚어진 자의적인 행동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에 압수된 무장대의 무기들, 죽창, 도끼 등이 보인다 ⓒ미국립문서기록관리원

 

극우단체는 제주 4.3사건을 남로당 중앙당이 치밀하게 준비됐다는 근거로 유격대가 기관총, 대포로 중무장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유격대의 무기를 보면 일본군이 쓰던 99식 소총이나 권총이 일부 있었고, 나머지는 죽창이나 도끼 등 변변치 않은 무기 등에 불과했습니다.

남로당 대정면 책임자였던 이운방은 ‘4‧3사건의 진상’이라는 글에서 “4‧3 투쟁은 일부의 미숙하면서도 모험적인 분자들에 의하여 시기 아닌 시기에 하등의 세심 세밀한 준비도 없이 단지 몇 자루의 소총을 가지고 무장봉기로 저돌맹진한 것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제주 4.3사건의 시작은 경찰의 발포 때문이었다’

 

▲제주도에 출동하는 경비대 대원들을 격려하는 이승만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

 

제주 4.3 사건은 1948년에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1947년 3.1절 기념식에 있었던 경찰의 발포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당하는 ‘3‧1사건’ 발생합니다.

‘3.1사건’이 벌어지자 이에 항의하며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인 166개 기관과 단체에서 파업이 벌어집니다. 1947년 3월 10일에는 중문지서 응원경찰대가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는 군중을 향해 총을 발포해 주민 8명이 부상을 당합니다.

1947년 3월 20일 조병옥 경무부장은 3·1사건 진상조사 담화에서 “제1구경찰서에서 발포한 행위는 정당방위이며 도립병원 앞에서의 발포행위는 무사려한(사려가 깊지 못한) 행위로 인정한다”고 발표합니다.

이승만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지목하며 극우청년단체인 서청 등을 보내 ‘빨갱이 사냥’을 구실로 테러를 일삼았습니다. 부녀자를 강간하고, 민간인을 폭행 감금하거나 양민을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육지 경찰들은 취조를 하면서 파업 주동자와 배후를 대라면서 무조건 때리는 등 심한 고문을 했습니다. 잡히면 고문으로 병신이 되거나 죽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자, 직장을 이탈하거나 피신하는 도민들이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1949년 1월. 봉개리에서 벌어진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에 쫒겨 몸을 피하던 스물다섯 젊은 엄마 변병생씨는 두살배기딸을 안고 오름으로 피신하지만 토벌대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모녀의 시신은 후일 눈더미속에서 발견된다. 억울하게 희생된 모녀의 모습을 기리는 ‘비설’이라는 작품ⓒ백영민

 

제주 4.3사건이 벌어지게 된 배경에는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과 극우단체의 무법적인 태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극우단체는 ‘빨갱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제주 4.3사건을 매도하고 있습니다.

1947년 무렵, 제주에서는 친일 경찰 출신이 고문하고 친일파 출신 청년단이 도민의 재산을 빼앗고 부녀자를 강간하고, 일본군 출신이 ‘초토화 작전’을 벌여 민간인을 학살했습니다.

4.3사건은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을 받아 벌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 벌인 범죄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제주도민들의 분노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가 강간을 당하고, 자녀들이 몽둥이로 맞아 퇴학을 당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식량을 뺏기는 상황에서 제주도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산으로 도망을 가거나 죽창을 들다가 총에 맞는 일 뿐이었습니다.

제주 4.3사건을 남로당 중앙당 지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일은 친일파 출신 경찰과 군인들, 그리고 이승만의 어용단체였던 반공청년단들이 벌인 범죄를 숨기려는 ‘범죄 은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289 

▲ 2017년 4월 3일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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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괴수로 변한 식품산업과 그 좀비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4/03 09:48
  • 수정일
    2017/04/03 09:4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성훈 칼럼] GMO 좀비와 제초제 강시(僵屍)들의 향연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2017.04.03 08:46:43
 
일찍이 농부시인 웬델 베리(Wendel Berry)는 노래하였다. "사람들은 건강(안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식품산업이 만든 음식을 사 먹으면서,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의료산업의 치료를 받고 있다."
 
미국의 맥거번 상원의원 조사 보고서는 "미국인의 질병 대부분 먹는 음식에서 기인한다(Food-originated diseases)."고 했다. 다른 한편, 서양 의술의 원조 히포크라테스는 "세상의 질병 중에 음식으로 치유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갈파하였다.
 
동서고금에 걸쳐 인생살이에 실물적으로 필수적인 3대 요소를 우리나라에서는 의식주(衣食住)라 일컫고,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식주의(食住衣)라 한다. 일찌기 세종대왕께서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먹는 일은 백성들의 하늘과 같다."고 했거늘, 유독 한국인들만이 의식주, 즉 입는 옷을 그중 첫째로 친다. 이는 본말이 뒤집힌 생각이다. 풀뿌리 백성(民草)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배부른 지배계층들의 한가한 말장난일 뿐이다. 백성들에게 안전한 먹거리가 풍요롭게 공양되는 것이야말로 시화연풍(時和年豐)이 아니던가.
 
거대한 괴수(怪獸)로 변한 식품산업과 그 좀비들 
 
그런데 그 먹거리(음식)에 대기업 자본이 끼어들고 이윤과 이권이 작용하면서 외형적으로는 거대한 식품기업 식품산업으로 발전하였다. 그 와중에 음식의 본질은 훼손되고 각종 화학적 첨가물과 유해색소가 가미되어 먹거리 음식 자체가 독(毒)이 되어가고 있다. 대자연의 일부로써 자라고 키워진 천연 농산물 음식이 변형 변질돼 고혹적인 색상과 달콤한 풍미로 중독성을 유발하는 돈을 벌어들이는 괴물로 등장한 것이다. 성서(욥기)에 나오는 베헤못, 즉 거대한 괴수 대기업자본이 바로 그 변형의 주범이다. 
 
광의의 식품산업에는 종자산업, 비료산업, 농약산업, 농기계산업, 협의의 식품가공산업, 그리고 음식점을 비롯 판매유통업이 포함된다. 요즘 시중에 떠오른 허황한 레토릭의 하나가 이른바 "농업은 미래 성장산업이다."라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정치지도자들이 이명박근혜 정부가 들어서 자주 나타나고 있는데 원래 이 말은 투자('먹튀' 재테크)의 귀재라 일컬어진 조지 소로스가 미국에서 살펴 본 광의의 식품산업 전망을 가리켜 한 말이다. 우리나라만 하여도 순수한 농축산 생산액은 연간 15조원 안팎인데 반하여 광의의 식품산업 가치는 100조원대에 육박하니 대기업 자본의 입장에서 그렇게 말하여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이익단체가 식품산업협회와 작물보호제(생명을 해치는 독성농약을 그럴듯하게 예쁘게 화장을 해서 부르는 말) 산업협회이다. 이들은 제일 먼저 씨앗(종자와 종묘) 산업을 장악하는데 눈독을 들인다. 씨앗(종자)을 지배해야 농업과 식품산업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왕초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본사를 두고 한국의 수도 서울의 광화문에도 지사를 둔 초대형 기업 몬산토사이다. 범지구적으로 세계의 GMO 종자, 제초제 살충제 농약, 식품색소와 첨가제, 가공산업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고 있다. 신젠타, 바이엘, 다우, 듀퐁 등은 그 동조기업들이다. 이들은 식품산업협외와 농약협회를 앞세워 식약처, 농림부, 환경부, 농진청 등 중앙부서와 여야를 막론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 청부과학자 관료와 교수, 지식 매춘부 같은 관련학계, 광고수입(돈)에 생존을 의지하는 언론사들과 기레기들, 일부 어용 관용 농민 시민단체들에 달콤한 유혹의 손을 뻗쳐 GMO(유전자조작) 장학생 좀비로 둔갑시킨다. 영혼이 없는 산송장이라 일컬어지는 강시(僵屍)들이 바로 이들이다.
 
일신의 영화와 부귀 밖에 모르는 영혼도 양심도 없는 관료, 학자, 언론인 심지어 성직자들도 이들의 좀비 강시가 되어 백성들의 피를 빨아댄다. 스스로 따뜻한 피를 생성해 내지 못하는 좀비들의 숙명이다. 그리고 언필칭 "농약(작물보호제)은 과학이다! GMO와 제초제는 안전하다! 이러한 과학을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자는 종북좌빨 세력임이 분명하다!"라고 제창한다. 한국판 정경관언(政經官言)의 합창이다. 애닮고 불쌍할 손, 이들의 희생양이 된 농민생산자와 소비자 백성(민초)들 뿐이다. 
 
동료가 죽어가도 끄덕 않는 몬산토 장학생들! 
 
몬산토사의 GMO 종자 및 제품들 그리고 그 필수 동반자인 라운드업(Round-up) 제초제의 종주국인 미국은 현재 연방정부 환경보호청(EPA) 건강효과분석국(HED)의 한 여성 독물학 전문가 메리온 코프리(Marion Copley)가 30세에 암으로 죽어가며 행한 마지막 읍소에 전율하고 있다. 그녀는 제초제의 주성분인 글리포세이트에 의해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지난 3월4일 자기 부서 상사이며 동료인 '제스 로우랜드(Jess Rowland)'에게 글리포세이트가 암을 유발한다는 환경청의 연구결과를 숨기지 말고 밝히라고 피맺힌 충고의 서한을 띄운다.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을 등졌다. 그 자신 어떻게 제초제의 주성분 글리포세이트에 의해 면역력을 빼앗기고 림프종 종양에 걸리게 되었으며, 어떻게 말기암으로까지 발전했는가를 과학적으로 서술하면서 제발 몬산토사의 사실 은폐를 위한 매수행위에 환경청 간부들이 영혼과 양심을 팔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 한 구절을 의역하여 소개하면, "제스, 당신과 나는 수차례 글리포세이트의 발암성에 관해 토론하였습니다. 당신은 종종 비윤리적인 지식과 논리 그리고 네브라스카 대학으로부터 받은 오래된 석사학위 지식으로 억지 주장을 우기고 버티었습니다. 제발 당신 인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과학지식을 업자(몬산토사)의 이익을 위해 숨기거나 오용하는 정치적 게임에 말려들지 말아 주세요. 뇌물등 월급 이외의 가외수입에 홀리지 말고, 합리적인 사고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당신의 출신대학이 그 업체로부터 막대한 연구비를 수여받았다고 해서 그리고 당신의 동료 안나와 같은 GMO 장학생의 꼬임에 넘어가 그녀를 평가위원회에 넣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케 해서는 아니됩니다. 제발 내가 무덤에 가기전까지는 우리 청의 객관적인 연구결과와 내가 어떻게 글리포세이트 유래의 암에 걸렸는지를 조용히 덮고 가진 않겠습니다. 그것은 내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죽음의 호소에 대해 환경청은 아직 아무런 반성이 없다. 
 
그의 사후, 얼마나 더 많은 농민생산자들과 소비자 국민들이 죽어 나가야 정경관언의 유착이 끊기고 진실과 양심이 제자리에 돌아올지 미국인들은 한탄에 머물지 않고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맨먼저 북미 유기농소비자협회(OCA)를 비롯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환경청 등 정부기관들과 몬산토사등 유전자조작 및 제초제 회사들과의 유착관계를 파헤치자는 주장이 전미대륙에 울려 퍼지고 있다. 특히 의회는 몬산토사의 환경보호청과의 담합행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조사를 즉시 개시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농무성과 환경청 그리고 식약청 관리들이 몬산토사와의 회전문 인사교류로 모두 한 통속이 된 배경을 통렬히 밝혀내고 있다. 몬산토사의 독점적 제초제 "라운드업" 글리포세이트의 암유발성과 독성, 그것이 함유된 미국의 GMO 식품들, GMO와 제초제 성분의 완전표시제(소비자의 알 권리) 시행을 왜 미루고 있는지에 대해 식품의약청의 정경유착관계를 밝히라는 고소고발이 몬산토 본사가 소재한 세인트 루이스에서만도 700건이 넘고 그 물결이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다.
 
세계적인 반(反) GMO/제초제 캠페인의 확산추세 
 
그동안 전세계적으로 무서운 기세로 번져가던 GMO/제초제 재배 추세가 2015-2017년을 기점으로 일단 주춤하고 있다. 세계 전체의 GMO 재배면적이 미미하나마 줄어 들기 시작했다. 세계 초강대농업국인 브라질이 2018년부터 GMO 재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은근히 GMO를 선호하는 듯이 보였던 중국 역시 GMO 선별정책을 공표하면서 재배억제와 수입 선별정책을 공언하였다. GMO 사료곡물을 포함 세계 제일의 GMO 수입국인 일본 정부 역시 모든 가공식품에 유전자조작(GMO) 표시를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규제강화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은 콩, 옥수수 등 8개 작물을 사용한 낫또, 두부, 스낵류 과자 들 33개 가공식품에 대해서만 GMO 식품표시를 의무화 했으나 GMO 전식품으로 표시제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미 볼리비아와 필리핀은 EU 식으로 GMO의 재배, 수입, 판매를 법원의 결정으로 중단하게 됐으며 대만은 학교급식에 GMO 사용을 금지조치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러시아에서는 GMO의 생산 수입 판매는 테러범, 어린이 유괴범에 준하는 처벌이 법제화되어 아예 거래를 못하게 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식용 GMO를 가장 많이 수입해 먹고 사는 대한민국 정부만이 미국, 캐나다 등 GMO 생산 수출국들처럼 식품 성분의 완전의무표시제를 미루고 있다. 그나마 기업이윤 보호 우선정책에 밀려 유명무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최근의 경실련 조사에 의하면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2만여개의 식품 중 GMO 표시를 완전히 하고 있는 식품은 하나도 없다. 농식품부도 농산물 형태로 수입할 때만 GMO 3% 이상 함유분에 한해 신고를 받고 제조 가공단계에 넘어가면 보건복지부와 식약처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눈감아 주고 있다. 아, GMO가 살기 좋은 우리나라, 몬산토사와 신젠타 그리고 CJ 롯데 등 식품대기업들이 장사하기 제일 편한 GMO 소비국가이다. 그 필수 자매품인 제초제 이야기는 다음에 보듯 더욱 가관이다.
 
데자뷰(旣視感): 대한민국 농촌진흥청과 농업관련 신문사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GMO 식품을 제일 많이 수입해 먹고 사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제일 많은 농약을 사용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에선 지금 미국에서 일찍이 경험했던 사건들이 재현되고 있다. 데자뷰라 했던가, 언젠가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기시감(旣視感)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 3월 GMO 종자를 은밀히 개발연구해 왔고 제초제등 농약의 제조판매를 허가해 주는 농촌진흥청이 생명과 환경생태계 위해성이 가장 심한 몬산토사 라운드업 제초제의 주성분인 글리포세이트와 다이아지논, 말라티온 등 3종의 극독성 농약에 대하여 안전성을 재평가 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해당사가 평가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말라티온만 등록 취소하고 나머지 두 개, 즉 제초제 주성분인 글리포세이트와 다이아지논은 발암성 및 유전독성이 없다고 판정하였다. 안심하고 조심히 사용하라는 친절한 보도를 곁들여 발표하였다.
 
글리포세이트의 발암성을 세계 만방에 공표한 바 있는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환경청, 그리고 세계 모든 나라가 깜짝 놀랄 재평가 결과이다. WHO의 2015년 연구발표를 뒤집는 농진청의 위대한 연구실험 조사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나라가 몬산토사와 다국적 농약회사들이 활개를 치며 맹독성 농약과 제초제를 안심하고 팔아먹는 GMO 천국(天國)이라는 뜻이다. 대한민국 정부만이 그 악명이 높은 글리포세이트와 다이아지논이 발암성도 유전독성도 없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몬산토사 간부가 대신 작문한 귀신이 대필한 재평가 기사 같다. 우리나라 토양이 요술을 부린 것인가 아니면 농사법이 탁월한 것일까, 농진청 연구관들이 위대한 요술쟁이들인 것인가. 
 
그런데, 또 이 재평가 결과를 농진청 발표대로 곧이곧대로 보도한 신문이 있다. 한 농업신문이 같은 지면에 또 다른 농약의 홍보성 기사와 나란히 이 재평가 결과를 보도한 것이다. 그것을 기사라고 보도하는 기레기 신문이 다름아닌 선진 농업인들의 기관지라서 더욱 어안이 벙벙하다. 미국 환경청 독극물 연구관 메리온의 죽은 영혼이 한국에 와서 이같은 행태를 보았다면 뭐라 말했을까? 동화 속의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우리나라 농업 농민 농촌 국민들을 자진하여 죽음에 몰아가는 정부기관과 농업신문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이 뭇 생령들과 환경생태계가 얼마나 더 망가져야 정신 차릴 것인가. 제발 한번 살고 갈 인생살이에 단 한번만이라도 돈(기업광고자본)과 권력 앞에 자유로운 당당한 관료와 언론인이 되어 보지 않겠는가. 
 
(이 글은 전국농민회가 발행하는 <한국농정신문> 4월 3일자 '농사직썰'란에 게제될 예정입니다. 필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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