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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최저임금은 문 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가늠자’

  • 이정희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집행위원장
  • 승인 2018.07.12 15:57
  • 댓글 0

2019년 최저임금 인상 논의가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4일까지 2019년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결정을 서두르고 있다. 물론, 정치권은 예산안 조차도 법정시한인 12월 초는 말할 것도 없고 집행일을 넘겨 처리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결정도 14일이 최종시한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시기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예산반영 등을 고려하면 7월 중에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해 최저임금위는 정치권의 최저임금법 개악으로 인해 파행을 빚었으며, 결국 시한에 쫓겨 인상액을 포함한 기준 설정 등 쟁점에 대한 논의가 충실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

민주노총이 빠진 노동자쪽은 2019년 최저임금액을 1만790원으로 제시했으며 사용자측은 동결을 주장하는 등 현재까지 차이가 크게 나고 있다.

2019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자본가 진영과 보수언론은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사용자쪽은 해마다 주장해온 업종, 지역별 차등적용안이 부결되자 최저임금위 불참을 선언하는 등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공세를 펴고 있다. 사회적 논의가 충분하게 진행되지 않은 조건에서 2019년 최저임금은 결국 정부쪽 의지를 반영하는 공익위원안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2019년 최저임금을 어느 수준에서 결정하는가 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지속여부를 판단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산입범위 확대로 인한 감소분을 제외하더라도 2019년 최저임금을 8700원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

▲ 사진 : 뉴시스

2019년 최저임금 인상액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경제지표는 2가지다.

하나는 5월말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소득동향>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2인이상 가구 가계소득은 3.7% 상승했지만 1분위(하위 20%)의 가계소득은 129만원으로 전년 대비 8.0% 하락해 역대 최고의 하락률을 보인 반면, 5분위(상위 20%)의 가계소득은 1015만원으로 9.3% 늘었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 또한 “소득분배의 악화는 우리에게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자료는 통계청이 6월 중순에 발표한 <5월 고용동향>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5월 취업자 수가 7만2000명 증가해 8년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문재인 정부의 고용확대 목표인 30만 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업종별로는 공공행정과 사회복지서비스 부문은 취업자가 증가한 반면 제조업에서 7만9000명이 감소했으며,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등에서 고용이 감소했다.

5월 고용동향 결과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으며, 경제수석과 일자리수석을 교체하고 정부 내에서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이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계기가 되었다.

6월 고용동향 또한 취업자 수가 10만6000명 증가에 그쳐 고용률 하락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

1분기 가계소득동향에서 확인된 양극화 심화는,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하며 그 방도는 저소득층 복지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저임금노동자의 소득향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선 이견이 거의 없다.

문제는 고용동향인데 5~6월 고용동향의 결과는 한국경제가 하강, 침체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객관적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이런 경향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쪽과 보수언론, 문재인 정부 일부 경제라인에서는 경기하강과 취업자수 감소를 이유로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동향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고용동향에서 취업자 수가 감소한 업종은 제조업(12만6000명), 교육서비스업(10만7000명), 도소매·숙박업(3만2000명)이 대표적이다.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이었던 제조업에서 취업자수가 대규모로 감소하고 있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조선업 불황의 지속과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의 영향이 크며, 장기적으로는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서비스업 종사자의 감소는 인구구조 변화로 취학인구가 감소하는 장기적 경향성으로 봐야 한다. 도소매업과 숙박업의 경우 경기변화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업종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제조업 쇠퇴 등 한국경제의 경기 하강에 따른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취업자수가 감소한 3대 업종 중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업종은 도소매업과 숙박업 정도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역시 경기 하강에 따른 영향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향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음식숙박업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최저임금에 따른 지원과 종합적인 경영 지원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할 정도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볼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일부 계층의 어려움보다 사회적 양극화 심화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필요성이 훨씬 큰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또 다른 통계자료인 국세청의 <2016년 귀속년도 근로소득 백분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 1774만 명의 연평균소득은 3359만원으로 월 280만원 수준인 반면, 중위소득자의 소득은 연평균 2424만원으로 월 202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의 절반인 887만 명은 월급 200만 원 이하를 받고 있으며 노동자 10명 가운데 3명의 임금 수준은 법정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최저임금은 직접적으로는 400만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실질적으로는 900만의 저임금노동자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제라인 교체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을 우경화하고, 최저임금 1만원 공약도 후퇴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는데 2019년 최저임금 결정에 따라 우려가 현실로 드러날지, 기우로 끝날지를 가려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적 대화의 진실성과 현실 추진력도 2019년 최저임금 결정에 달려있다는 점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정희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집행위원장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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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와 고영주, '반헌법행위자 열전편찬위'가 주목한 이름들

[현장] 제헌 70주년 맞아 집중검토 대상자 405명 중 115명 중간 발표...임내현 전 국민의당 의원도 포함

18.07.12 12:09l최종 업데이트 18.07.12 14:12l
사진·영상: 유성호(hoyah35)

 

반헌법행위자열전1차 명단 발표하는 한홍구 한홍구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책임편집인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정사 적폐청산과 정의로운 대한민국 : 헌법제정 70주년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1차 보고회’에 참석해 반헌법행위 집중 검토 대상자 405명 중 1차 115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 반헌법행위자열전1차 명단 발표하는 한홍구 한홍구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책임편집인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정사 적폐청산과 정의로운 대한민국 : 헌법제정 70주년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1차 보고회’에 참석해 반헌법행위 집중 검토 대상자 405명 중 1차 115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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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梁承泰, 1948.1.26. 〜)
양승태는 제15대 대법원장 출신으로 '사법농단' 사태의 주역으로 법조계 안팎에서 최악의 대법원장으로 지탄받는 인물이다. 경남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판사가 된 이래 엘리트 코스를 밟아 대법관과 대법원장을 지냈으나 법원의 이익과 대법원장의 권력을 위해 정치권 과의 거래를 시도함으로써 사법권 독립을 해치고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를 하였다. 서울지법 판사 시절 12건의 긴급조치 판결과 4건의 간첩조작 사건 재판에 배석판사로 참여하였고, 제주지법 부장판사 시절 2건의 간첩조작 사건의 재판장으로 참여하여 반헌법 행위자 집중검토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위키피디아나 나무위키의 설명이 아니다.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상임대표 이만열, 이하 열전편찬위)가 12일 반헌법행위자 115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양승태와 고영주, 노덕술, 박찬일, 박처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15년 10월 시민사회 지식인 100여명이 모여 결성된 열전편찬위는 앞서 2017년 2월 405명의 '반헌법행위 집중검토대상자'를 먼저 발표했다. 이날은 그 가운데 115명에 대한 1차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405명 명단에 포함됐던 박근혜·박정희 전 대통령, 황교안 전 총리, 김기춘 전 비서실장, 김장수 전 주중대사에 대한 내용은 실리지 않았다. 근래 정치인 가운데에선 임내현 전 국민의당 의원이 포함됐다. 열전편찬위는 115명 선정에 대해 "특별한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사가 원활해 빠르게 진행된 명단부터 발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열전편찬위는 ▲ 내란 및 헌정유린 ▲ 부정선거 ▲ 고문조작 및 테러 ▲ 간첩조작 ▲ 학살 ▲언론탄압 등을 기준으로 '반헌법 행위자'를 규정했다. 이만열 열전편찬위 상임대표(전 국사편찬위원장)는 이날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헌법제정 70주년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1차 보고회'에서 "곳곳에서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기 위한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조사 연구도 그 연장선 위에 서 있다"라면서 "그간 우리 사회 의 이념공간을 오염시킨 헌법과 반헌법의 전도된 관계를 바로잡고 역사적 정의를 한층 더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열전편찬위원회 책임편집인을 맡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리스트에 오른 면면을 보면 상당수가 돌아갔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며 "현실의 법정에 세우진 못했지만 역사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발표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열전편찬위가 발표한 115명의 명단.

가재환 강신욱 강진규 강창성 강충성 강화봉 경무현 고영주 구자춘 길재호 김교련 김근수 김기완 김기홍 김남옥 김동근 김동운 김동하 김성남 김수현 김영광 김용성 김용순 김용진 김윤근 김재춘 김종오 김중서 김태선 김형영 남궁길영 노덕술 노원욱 문귀동 문재준 박래조 박영길 박원택 박종연 박지원 박찬일 박창암 박처원 박충훈 박치옥 방준모 백남은 백용기 백태하 서 성 서재두 서정각 서주연 성종환 신갑생 신상규 신영주 심상은 안강민 안경상 안응모 양두원 양승태 오정근 유병창 유정방 윤기병 윤재호 윤종원 윤진원 윤태일 이강학 이근직 이낙선 이상귀 이서우 이용택 이우철 이재권 이재준 이종구 이종명 이종원 이철환 이철희 이춘구 이치왕 이학봉 이협우 이희권 임내현 임동구 장경순 전재구 정구영 정형근 조인구 조일제 조한경 진형구 차철권 최규하 최난수 최대현 최문영 최병규 최운하 한경록 한웅진 한종철 한환진 허문도 홍필용 황산덕 황진호

열전편찬위가 주목한 인물, 양승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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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헌법행위자열전1차 명단 오른 양승태 한홍구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책임편집인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정사 적폐청산과 정의로운 대한민국 : 헌법제정 70주년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1차 보고회’에 참석해 반헌법행위 1차 명단에 오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반헌법행위자열전1차 명단 오른 양승태 한홍구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책임편집인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정사 적폐청산과 정의로운 대한민국 : 헌법제정 70주년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1차 보고회’에 참석해 반헌법행위 1차 명단에 오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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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표에서 주목할 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기록이다. 최근 불거진 사법부 재판 거래 의혹의 정점에 서 있는 양 전 대법원장은 열전편찬위가 선정한 '주목할 만한 사람 9명'에도 포함됐다.

열전편찬위는 "1차 발표자 115명 중 민간인학살에서 악명을 떨친 경기도경국장 한경록, 이승만 정권 국정농단의 주역 경무대 비서 박찬일, 김대중 납치사건의 실행책임자 중앙정보부 해외공작단장 윤진원, 동아일보 광고탄압과 코리아게이트의 주역 중앙정보부 차장보 양두원, 5공 설립 주역이자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수사책임자 안기부 차장 이학봉, 언론탄압의 선봉에 선 5공의 괴벨스 허문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총책임자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부림사건 담당검사이자 빨갱이 낙인의 전문 공안검사 고영주, 간첩조작 사건에 적극 협조한 현 사법농단의 주역 대법원장 양승태 등은 특별히 주목할 만한 사람들"이라고 명시했다.

양승태는 1986년 제주지방법원 부장판사 시절 강희철 간첩조작 사건(1986. 12. 4. 제주지법 1심 판결)과 오재선 간첩조작 사건(1986. 12. 4. 제주지법 1심 판결)에 재판 장으로 관여하였다. 강희철 사건의 경우 재판 당시 양승태 판사는 피고인에게 '고문이 없었는지' 물었으나 결국 무기형을 선고했다. 피해자인 강희철씨는 양승태 부장판사가 "자신이 무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외면했다"면서 "그 판사의 이름 안 잊어버렸다, 양승태"라고 증언했다. 


열전편찬위는 지난 2017년 2월 집중검토 대상자를 발표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을  반헌법행위자로 선정한 바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 의혹이 논란이 되기 전이었다. 열전편찬위는 "양승태가 본 위원회에 의해 반헌법행위자 집중검토 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6건의 간첩 조작 사건 재판과 12건의 긴급조치 위반 사건 판결에 관여하였기 때문"이라며 "본 위원회는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법농단 사건'이 문제되기 전에 이미 양승태를 반헌법행위 집중검토대상자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강희철 사건과 같은 날 1심 선고를 받은 오재선 사건의 경우도 유사한 내용이다. 오재선씨는 재판정에서 자신은 '빨갱이가 아니고 고문을 당해 하는 수 없이 허위진술을 했다'고 말했으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오재선씨는 이 사건으로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다. 그는 양로원에서 양승태가 대법원장이 된 사실을 알았고, 그가 자신의 1심 재판장이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았다. 오재선 사건은 현재 재심이 진행 중이고 7월에 최종 선고가 있을 예정인데 무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이다. 


열전편찬위는 A4 16쪽의 지면을 할애하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반헌법 행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홍구 교수는 "양승태는 보고서만 600쪽에 이르는 등 아마 가장 방대한 사건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열전편찬위는 양 전 대법원장을 "박정희 정권 하에서 많은 법조인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이 유린당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저항하는 길을 선택하였지만 양승태는 유신체제에 순응하며 간첩조작 사건과 긴급조치 위반 사건의 재판관이 되었다"고 평했다.

열전편찬위는 양 전 대법원장이 관여한 김동휘 사건(1976. 4. 30, 1심 선고), 이원이 사건(1976. 4. 30, 1심 선고), 장영식 사건(1976. 5. 7, 1심 선고), 조득훈 사건(1976. 6. 8, 1심 선고) 강희철 간첩조작 사건(1986. 12. 4. 제주지법 1심 판결)과 오재선 간첩조작 사건(1986. 12. 4. 제주지법 1심 판결)등 6건의 간첩조작 사건을 지적하며 "6건의 간첩조작 사건은 재심에서 무죄(1건은 재판 진행 중)를 선고 받았으나 양승태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한 적이 없다. 사과는커녕 거기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고 철저히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한홍구 교수는 "간첩사건을 6건이나 한 사람은 전무후무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열전편찬위는 또 "양승태는 이들 간첩 사건 이외에도 서울형사지법에 근무할 당시 1975년 심지연, 최열, 이명준 등 대학생들, 1975년 이부영, 성유보 등 전 동아일보 기자, 1977년 이혜경, 배경순, 고광순 등 여대생들의 재판에 배석판사로 참여하여 12건의 긴급조치 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내린바 있다"고 지적했다. 한홍구 교수는 "양승태가 화려한 법원 경력을 쌓으며 엘리트 코스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간첩 조작사건과 긴급조치 등을 통해 공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열전편찬위는 최근 사법부 재판 거래 의혹도 반헌법 행위로 봤다. 열전편찬위는 "양승태 사법부는 원세훈 사건뿐 아니라 통상임금 판결, KTX 여승무원 재판, 국가배상 소멸시효 판결, 전교조 판결, 통진당 사건 등 사회적 파장과 영향력이 큰 여러 사건들을 정치적 거래에 활용하려 했다"면서 "양승태 사법부가 재판부의 독립적 판단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지 않고 청와대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건을 정치적 거래로 이용하려 했다"고 했다.

열전편찬위는 그러면서 "군부독재 시절 사법부는 독재자의 사법권 침해를 막지 못했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또 때로는 마지 못해 정치권력에 협조했지만 양승태 대법원장 때처럼 사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정치권력과 거래를 시도하며 사법부의 권위를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는 한 적은 없었다"며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짚기도 했다.

이날 보고회에 참석한 이종걸 의원(경기 안양시 만안구)도 "인권의 최후의 보루여야 할 대법원장이 거리낌 없이 반헌법 행위를 했던 것들이 밝혀지고 있다"라면서 "역사의 법정에 세워 판결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일탈이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 결국 '반헌법행위자'로 기록된 양승태, 사법농단 사태까지 추가

'한국판 괴벨스' 고영주
 

쏟아지는 사퇴 요구에 당당한 고영주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MBC 정상화를 위해 고 이사장과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지적에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지난 2017년 7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MBC 정상화를 위해 고 이사장과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지적에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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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헌법행위자열전1차 명단 오른 고영주 한홍구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책임편집인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정사 적폐청산과 정의로운 대한민국 : 헌법제정 70주년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1차 보고회’에 참석해 반헌법행위 1차 명단에 오른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반헌법행위자열전1차 명단 오른 고영주 한홍구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책임편집인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헌정사 적폐청산과 정의로운 대한민국 : 헌법제정 70주년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1차 보고회’에 참석해 반헌법행위 1차 명단에 오른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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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편찬위가 '주목할 만한 사람 9명'에는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해 입길에 올랐던 고영주 전 방문진 이사장도 지목됐다.

열전편찬위는 "고영주가 열전편찬위원회의 반헌법행위자 집중검토 대상자가 된 것은 1980년대 부산 지역 최대의 용공 조작 사건인 '부림사건'(1981년)과 관련해 부산지검 검사로서 고문 조작한 조서로 반국가단체 사건 기소한 담당검사였기 때문"이라며 "고영주는 대법원에서 부림사건 재심 무죄가 확정된 뒤에도 여전히 '부림사건 은 공산주의 운동이며 오늘날 종북세력의 뿌리'라면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좌경화된 사법부의 판단으로, 사법부 스스로가 자기 부정을 하는 것', '이번 판결은 좌경의식화 학 습을 받은 사람들이 현재 중견 법관까지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꼬집었다.

부림사건은 사건 발생 33년만인 지난 2014년 9월 25일 고호석 외 4인에 대한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 국가보안법 을 포함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이 확정된 바 있다.

열전편찬위는 고 전 이사장을 "27년여 검사 생활 대부분을 공안 분야에서 활동한 마지막 '구' 공안검사"라고 총평하며 "그는 '한국판 괴벨스'·'고벨스'(고영주+괴벨스)로 불리기도 한다"고도 전했다.

근래 활동한 정치인 중에선 19대 국회 새정치민주연합·국민의당 출신 임내현 전 의원이 포함됐다.

열전편찬위는 "임내현은 인천 지검 재직 시절인 1983년 납북어부 (월북자가족) 간첩사건인 정영 사건의 수사(기소)검사로서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 했다. 사건 피해자 정영 등이 수사기관(안기부 인천분실)에서 심각한 고문을 받아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호소했으나 이를 전면 외면했으며, 재판 과정에서 법원과 긴밀히 협력하여 비공개재판을 진행하는 등 검사로서의 인권보호 의무는 준수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만열 상임대표는 이날 명단을 발표하며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작업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하고 모두가 준수해야 할 헌법적 가치가 우리 생활 속에 보다 굳건히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헌법제정 70주년 반헌법 행위자열전 편찬 1차 보고회'를 열고 115명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간첩 조작 사건으로 이름을 올렸다.
▲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헌법제정 70주년 반헌법 행위자열전 편찬 1차 보고회'를 열고 115명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간첩 조작 사건으로 이름을 올렸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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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박근혜 부녀의 대(代) 이은 친위쿠데타 음모

박정희의 ‘1962년 봄’ vs 박근혜의 ‘2017년 봄’
 
정운현 | 2018-07-12 15:37: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 박정희의 ‘1962년 봄’

박정희의 권력욕(權力慾)은 그 뿌리가 깊다. 당시로선 그만하면 선망의 대상이었던 보통학교(현 초등학교) 교사를 때려치우고 만주로 간 것부터가 그 시작이다. 나이가 많아서 군관학교 입교가 거부당하자 혈서를 써서 보내면서 일제에 충성을 맹세했다. 비록 군인기질을 타고났다고는 해도 군관학교 수석졸업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수석졸업 특전으로 일본 육사로 유학을 가게 된 그의 앞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졌다.

(참고로 만주군관학교는 두 곳이 있었다. 봉천(현 심양)에 있던 봉천군관학교와 신경(현 장춘)에 있던 신경군관학교가 그것이다. 둘 중에는 봉천군관학교가 먼저 설립됐으며 신경군관학교는 그 후신이다. 백선엽은 봉천군관학교 9기생이며, 박정희는 신경군관학교 2기생 출신이다)

해방 당시 그는 만주군 중위였다. 이듬해 5월, 중국 톈진에서 미군 함정 LST에 몸을 실었는데 만주로 향한지 6년만의 귀향이었다. 군도(軍刀) 하나를 달랑 찬 패잔병 몰골이었다. 한동안 고향에서 뒹굴던 그는 서울로 올라 왔다. 그 또래의 만주군관학교 출신이나 일본육사 출신 선후배들은 전부 미군정이 세운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가 이미 장교로 임관해 있었다. 뒤늦게 그는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 2기로 입교했다.

1948년 소위 ‘여순사건’ 직후 군 내의 좌익색출, 즉 숙군(肅軍) 파동에 걸려 인생 자체를 종 칠 뻔 했지만 그는 용케도 살아남았다. 살기 위해 좌익 동지들을 판 데다 황군(皇軍) 선배들의 구명운동 덕분이었다. 그는 다시 군에 복귀했고, 얼마 뒤에 6.25를 맞게 됐다. 전쟁은 그에게 반전의 기회를 주었다. 우선 좌익 딱지를 뗄 수 있었고, 군인(특히 작전장교)으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휴전협정 체결(1953.7.27.) 넉 달 뒤 그는 장군으로 진급했다. 그는 군인으로서의 능력은 출중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전향자’인 그를 감시하는 눈초리는 끊이지 않았다. 소장 진급 후 육본 작전참모부장으로 있던 그는 ‘레프트(좌익)’라는 이유로 갑자기 한직인 2군 부사령관으로 좌천됐다. 부질없는 가정을 해보건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이 인사 하나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때는 장면 내각 시절이었다. 4.19 혁명, 즉 학생들의 피의 대가로 그저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정권이었다. 게다가 신·구파 갈등에다 민중들의 민주화 열기와 요구는 뜨겁고 치열했다. 나라가 혼란한 것은 당연했다. 민주주의는 혼란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 틈을 노린 것은 북이 아니라 한 무리의 정치군인들이었다. 박정희 소장 일당은 ‘혁명’ 운운하며 결국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서울을 장악한 후 서울시청 앞에 모습을 드러낸 쿠데타군 수뇌부. 왼쪽은 장도영 육참총장, 오른쪽은 박정희 소장

결론은 ‘식은 죽 먹기’였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한강다리를 건넌 쿠데타 군은 총 한 방 제대로 쏘지 않고 서울을, 아니 대한민국을 접수하였다. 장면 총리는 이날 새벽 쿠데타 발발 소식을 듣고 은신하였으며, 윤보선 대통령은 ‘올 것이 왔다’는 알 듯 말 듯 한 얘기로 쿠데타를 기정사실화 했다. 미국은 결국 승자 편을 들어줬고, 진압에 나서려던 원주 야전군사령관으로 있던 이한림만 혼자 애를 태웠다.

탱크로 정권을 탈취한 군사정권 앞에는 걸거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독무대였다. 얼마 뒤에는 쿠데타 당시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던 장도영(당시 육군참모총장)마저 반혁명사건으로 몰아 토사구팽 함으로써 마지막 돌 하나까지 말끔하게 제거하였다. 쿠데타 당시 육군 소장이었던 박정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제 손으로 별 셋, 별 넷 계급장을 달았다. 당시 최고 권력자인 최고회의 의장 신분이었으니 ‘별’이 별 의미가 없기도 했다.

그럭저럭 ‘군정(軍政) 2년’ 가운데 1년이 지나고 2년차(1962년)로 접어들었다. ‘혁명공약’ 6항에서 내건 ‘원대복귀’가 서서히 화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사회혼란을 수습한 후 원대복귀 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했던 그들이었다. ‘혁명주체’ 가운데 몇몇은 박정희를 찾아가 혁명공약대로 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번 잡은 권력을 내놓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이미 권력의 꿀맛을 본 그들이었다.

이 상황에서 박정희 일당은 과연 어떻게 처신했을까? 그 답을 듣기 전에 먼저 아래의 기사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참고로 아래 기사는 1998년 5월 16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것으로, 필자가 작성했다. (기사 말미에 해당 링크가 연결돼 있어 중앙일보 사이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음)

[5·16 발굴비화 2제] 박정희, 친위쿠데타 극비 추진
중앙일보, 1998.5.16

5.16 이듬해인 62년 봄 박정희 (朴正熙)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군정 (軍政) 연장 명분을 찾기 위해 전방 사단장에게 친위 쿠데타를 제의했으나 상대의 거부로 무산됐다고 당사자가 임종 전 증언한 사실이 밝혀졌다. 증언자는 朴대통령의 만주군관학교 1년 후배이자 5.16 주체세력의 일원으로 지난 3월 작고한 최주종(崔周鍾) 예비역 육군소장. 崔장군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만주군관학교 후배인 김광식 (金光植.71.여주대 학장) 씨를 불러 "마지막 증언을 남기겠다" 며 이같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崔장군은 "62년 혁명군에 대한 원대복귀와 민정이양 요구가 나라 안팎에서 거세게 일자 朴의장이 군정연장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당시 8사단장 (의정부 주둔) 인 나에게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달라고 극비 제의했었다"는 증언을 남겼다고 金씨는 전했다. 친위쿠데타 계획은 崔장군의 반대에 부닥쳐 수포로 돌아갔는데, 최고위원을 겸했던 崔장군은 63년 3월 5관구사령관으로 사실상 좌천됐다가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65년 군수기지사령관을 거쳐 68년 예편조치 됐었다. 崔장군을 아끼는 朴대통령은 그러나 70년대 들어 그를 주택공사사장에 7년간 재임토록 배려했다.
http://news.joins.com/article/3645196

군정 2년차인 1962년 봄, 박정희는 군정을 연장하기 위해 나름의 묘수(?)를 짜냈다. 바로 ‘친위쿠데타’였다. 박정희는 후배 가운데 믿을만한 최주종 당시 8사단장(당시 경기도 의정부 주둔)에게 쿠데타를 제안했다. 그때 최 장군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쿠데타를 일으키면 이들을 제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정을 연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결국 무산되었다. 최 장군이 박정희의 쿠데타 제안을 거부하였기 때문이었다.

최주종 장군

필자는 위 기사에 등장하는 최주종, 김광식 두 사람을 모두 만났다. 최주종은 신경군관학교 3기생, 일본육사 58기생으로 두 곳 모두 박정희의 1년 후배였다. 최 장군은 5.16 당시 박정희의 요청으로 쿠데타에 협조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군인들과는 달리 군정에 참여하지 않은 채 군에 남아 있었다. 박정희로서는 심복과도 같은 후배인데다 현역 군인이어서 친위쿠데타를 부탁할 적임자로 판단했던 것 같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최 장군이 만약 쿠데타를 일으켜줄 경우 체포하여 몇 년간 해외로 빼돌린 후 나중에 요직에 등용한다는 제안이 있었다고 했다.

박정희의 친위쿠데타 제안을 거부한 죄로 최 장군은 괘씸죄에 걸렸다. 소위 ‘혁명주체’ 가운데는 김동하·박임항(신경 1기), 이주일·윤태일(신경 2기), 김윤근(신경 6기·일본육사 60기) 등 박정희의 군관학교 선후배들이 더러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막상 권력을 잡고 보니 이들이 걸림돌이 되었다. 박정희에게 혁명공약을 지키라고 주장한 사람들도 이들이었다. 결국 박정희는 이들을 반혁명사건으로 몰아 내쳤다. 이들이 주로 함경도 출신이어서 흔히 이를 ‘알래스카 토벌작전’이라고 부른다.

최 장군도 이들과 함께 얽혔고, 결국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한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반혁명사건이라는 것 자체가 혁명동지들을 제거하기 위해 만든 조작사건인데다 최 장군의 경우 친위쿠데타 강요까지 받았던 몸이었다. 박정희는 그게 미안했던지 얼마 뒤 최 장군을 풀어준 뒤 주택공사 사장에 앉혔다. 최 장군이 주공 사장 시절 강남 구반포에 5층짜리 주공아파트를 건설했다. 그런데 초창기에 분양이 잘 되지 않자 궁리 끝에 사장인 자신이 이 아파트에 입주해 모범을 보였다. 1997년 말에 최 장군을 처음 만난 곳도 바로 이 주공아파트에서였다. 당시 그는 폐암 말기였는데 얼마 뒤인 1998년 3월 3일 사망하였다. 
(초창기에는 분양이 되지 않아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이 아파트가 지금 재개발을 앞두고 수억대를 호가하는 보물이 되었다고 한다)

김광식은 신경군관학교 마지막 기수인 7기생 출신이다. 해방 후 그는 군에 들어가지 않고 서울공대에 진학해 교수가 되었는데 나중에 여주대 총장을 지냈다. 김광식을 처음 만난 1997년 당시 신경군관학교 졸업생 가운데 생존자는 자신을 포함해 이한림(2기), 김윤근·김동훈·육굉수·김세현(이상 6기) 등 6명이라고 했다. 막내인 김광식은 이들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최 장군과도 평소 가까이 지냈다. 최 장군이 그에게 친위쿠데타 증언을 남긴 것은 두 사람의 돈독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도 우연한 기회에 김광식을 능동 그의 자택에서 만났는데 9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체력이나 기억력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김광식 씨(현 98세)

끝으로, 최주종 장군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덧붙여둘 것이 있다. 구반포 아파트로 최 장군을 만나러 갔다가 최 장군의 부인으로부터 재미난 얘기를 하나 들었다. 숙군 당시 박정희와 함께 처벌받았던 김학림(金鶴林)의 부인(강씨)이 일본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 뒤 나는 강 씨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 편지에서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됐다. 박정희가 육영수와 결혼하기 전에 잠시 동거했던 이화여대생 이현란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열어보시기 바람) 
[발굴] “박정희 동거녀 이현란, 아들 낳았다”
http://blog.ohmynews.com/jeongwh59/280188


2. 박근혜의 ‘2017년 봄’

2016년 말 jtbc에서 보도한 태블릿 PC 하나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이로부터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이 본격 불거지기 시작했고, 날이 갈수록 여론은 악화되었다. 급기야 그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고, 헌법재판소로 공이 넘겨진 채 해가 바뀌었다. 2017년 봄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박근혜에게 그해 봄은 하늘이 무너지듯 했을 것이다. 하필이면 작년은 그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헌재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대다수 시민들은 탄핵 인용을 거의 확신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이 엄청난 사건을 두고도 ‘탄핵 기각’을 점쳤다(확신 혹은 기대 등도)는 후문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들 가운데는 청와대 등 권력 중추들이 포함돼 있었던 셈이다. 당시 헌재 재판관들의 면면으로 볼 때 청와대가 그런 기대를 가질 만도 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헌재의 ‘탄핵 기각’에 대비해 계엄선포 건의 등을 검토한 문제의 기무사 문건 일부

청와대와 집권세력 일각에서 ‘탄핵 기각’을 점치고 있던 그 무렵 광화문은 촛불 시민들로 가득 찼다. 2016년 말부터 시작된 촛불시위는 이듬해 3월까지 계속됐으며, 전국에서 연인원 1700만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작은 불상사 하나도 나지 않아 세계인들로부터 찬사가 쏟아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헌재에서 만약 탄핵이 기각된다면 ‘큰일’이 날 것이 분명했다. 급기야 박근혜 정권은 군을 앞세워 대를 이은 ‘친위쿠데타’를 기도했다.

핫이슈가 된 ‘기무사 계엄 검토’ 문건은 실로 가공(可恐)할만 하다. 탄핵 기각에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시민들을 마치 폭도나 적군 대하듯 하였다. 평화로운 집회를 벌여온 시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탱크 등 중화기와 무장병력을 동원해 서울 한복판 광화문과 여의도 등에 배치하려 했다. 그 숫자가 무려 탱크 200대, 장갑차 55대, 무장병력 4800명, 특전사 1,400명… 장비와 병력 규모가 1961년 박정희 일당의 군사쿠데타를 크게 웃돈다.

작년 3월, 만약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돼 이 음모가 현실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랬다면 일단 대규모 유혈사태는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군이나 경찰은 상부의 지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도 발포하는 로봇 같은 집단이다. 4.19 때도 그랬고, 1980년 광주에서도 그랬다. 여차 했으면 우리는 서울서 다시 또 참극을 겪을 뻔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가 본분인 군이 되레 국민들을 향해 총과 대포를 쏠 궁리를 한 것이다. 오로지 박근혜 정권의 안위를 위하여.

21세기 대명천지에 쿠데타 음모라니. 그것도 대를 이어서. 이는 실정법이나 국민감정 그 어느 것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반역행위다. 일벌백계만이 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건 작성자와 배후세력 등을 밝힐 독립수사단 구성을 지시했고, 어제 단장에 공군 법무장교 전익수 대령을 임명했다. ‘1962년 봄’이 그랬듯이 ‘2017년 봄’도 무위로 끝이 났다. 앞에는 한 참 군인이 있었다면 뒤에는 의로운 촛불이 있었다. 결국 총칼을 굴복시킨 촛불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참극 또한 막은 셈이 됐다. 실로 위대한 촛불이여, 촛불이여!

2017년 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집회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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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 전면개혁 또는 폐지해야’ 79%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7/12 15:58
  • 수정일
    2018/07/12 15:5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리얼미터> 조사 결과, ‘현행 유지’는 11.3% 불과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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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2  1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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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출처-리얼미터]

국민 10명 중 8명이 ‘촛불집회 때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 사실이 드러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를 전면 개혁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tbs> 의뢰로 이 기관이 11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2명에게 ‘국군기무사령부 존폐’에 대해 물은 결과, ‘존치시키되 기존의 정보업무를 방첩이나 대테러로 제한하는 등 전면 개혁해야 한다’(전면 개혁) 응답이 44.3%, ‘존재하는 한 군(軍)의 정치개입이나 민간인 사찰을 막을 수 없으므로 전면 폐지해야 한다’(폐지) 응답이 34.7%였다.

총 79%, 즉 국민 10명 중 8명이 국군기무사령부를 전면 개혁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현행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현행 유지)는 응답은 11.3%에 불과했다. ‘잘모름’은 9.7%로 집계됐다. 

‘전면 개혁’ 여론은 수도권과 영남, 30대 이상 전 연령층, 무당층과 한국당 지지층, 중도층과 보수층에서 우세했고, ‘폐지’ 여론은 호남과 충청권, 정의당 지지층과 진보층에서 우세했다. 20대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전면 개혁’과 ‘폐지’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별로는 50대(폐지 34.8% vs 전면 개혁 48.2%)와 30대(35.7% vs 46.0%), 40대(39.1% vs 45.1%), 60대이상(25.8% vs 40.5%)에서 ‘전면 개혁’ 여론이 우세했다. 20대(폐지 41.4% vs 전면 개혁 42.9%)에서는 ‘전면 개혁’과 ‘폐지’ 여론이 팽팽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이념성향별로는 중도층(폐지 31.8% vs 전면 개혁 56.4%)과 보수층(현행 유지 29.9% vs 전면 개혁 34.7%)에서는 ‘전면 개혁’ 여론이 절반을 넘거나 우세했고, 진보층(폐지 50.1% vs 전면 개혁 43.7%)에서는 ‘폐지’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지정당별로는 무당층(폐지 21.8% vs 전면 개혁 43.1%)과 자유한국당 지지층(현행 유지 37.4% vs 전면 개혁 41.7%)에서는 ‘전면 개혁’ 여론이 우세했고, 정의당 지지층(폐지 51.8% vs 전면 개혁 43.5%)에서는 ‘폐지’ 여론이 다소 우세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폐지 43.9% vs 전면 개혁 45.4%)에서는 ‘전면 개혁’과 ‘폐지’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지난 11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15,657명에게 접촉해 최종 502명이 응답을 완료, 3.2%의 응답률을 나타냈고, 무선전화(80%) 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이다.

이에 앞서, 지난 10일 인도를 방문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집회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가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것과 관련해,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을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국방부는 11일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및 위수령·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 의혹 수사를 담당할 특별수사단장에 공군본부 법무실장인 전익수 대령(48)을 임명했다. ‘비육군’ 군검찰이 국군기무사령부의 환부를 도려낼 칼자루를 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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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손은 핸들, 한손은 핸드폰”…사고 유발 ‘죽음의 전투콜’

등록 :2018-07-11 05:00수정 :2018-07-11 12:04

 

 

[창간30돌 특별기획 - 노동orz]
4부 플랫폼님, 제가 정말 사장님입니까
② 죽음의 전투콜

 

<한겨레>는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orz’를 통해 낮게 웅크린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서 낮밤을 바꿔 일하는 제조업체 노동자와 감정·감시 노동의 이중고를 겪는 콜센터 노동자,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들의 삶을 전해드렸습니다.

 

기술 발달로 배달대행 앱 등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위탁계약’을 맺은 탓에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됩니다. ‘노동orz’의 이번 장면은 두 바퀴에 몸을 의지해 아스팔트 위로 쫓기듯 내몰린 배달대행기사들입니다.

 

 

일러스트 이재임
일러스트 이재임
“연남동 하나 떴으니까, 제 예상으로는 연남동 가면서 ○○김밥 하나 뜨면 잡고, △△찜닭 하나 뜨면 잡고, 그러면 딱 좋겠는데….”

 

오토바이를 3대나 갖고 있다는 영민(23)님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신흥 에이스다. 싹싹한 인상에 말투도 친절해 업장에서도 인기가 많다. ㄱ업체에서 일한 지 1년째인 영민님이 정산하러 사무실에 들어오면 다들 물어본다. “오늘은 몇개나 했냐? 한 70개 했냐?” 영민님은 “아니에요” 하며 멋쩍게 웃었다.

 

영민님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사진 찍는 게 마냥 좋아 사진과에 갔지만, 투자한 만큼 성공하기 쉽지 않아 보여 중도에 그만뒀다. 지금은 사이버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한다. 배달하고 쉬는 하루에 수업을 몰아 듣는다고 했다.

 

어느 날 영민님이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전투복같이 생긴 오토바이 전신 안전복을 입고 사무실에 왔다. ‘썸’ 타고 있는 △△찜닭 알바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만나지 못했단다. 영민님은 “전 보호장구에는 돈 안 아껴요. 바지 안쪽에 무릎보호대가 붙어 있는 청바지도 있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영민님은 ‘썸녀’에게 보여주고 싶을 때만 보호장구를 착용할 뿐, 정작 배달할 때는 무릎보호대조차 하지 않았다. “무릎보호대는 쉬는 날 착용해요. 일할 때 하면 콜 잡는 게 10개는 줄어들걸요. 12시간 내내 뛰어다녀야 하는데 자꾸 흘러내리고 불편해요.” 콜 수가 줄어들까봐 부상 위험도 감수하는 영민님은 퇴근 30분 전부터는 콜을 잡지 않았다. 썸녀와 함께 퇴근하기 위해서다. 연애는 위대했다.

 

기자가 3주 가까이 일한 배달대행 ㄱ업체와 ㄴ업체를 통틀어 헬멧을 제외한 무릎보호대 등 보호장구를 했던 이는 기자를 제외하면, ㅁ햄버거와 배달대행업체에서 투잡을 뛰던 박경수님, 그리고 입사 두달 만에 “무서워서 더는 못하겠다”고 퇴사한 박선명님 두명뿐이었다. 무릎보호대가 흘러내릴까 뒤뚱거리며 뛰는 기자를 보며, 다른 기사들은 “언제까지 하는지 보자”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내뱉었다. 배달 기사들이 보호장구마저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단 하나, 콜을 많이 잡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배달 기사가 받는 콜 수수료는 주문 매장과 배송지까지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ㄱ업체에서는 매장에서 배송지의 거리가 500m까지 2450원, 500m~1㎞ 2750원, 1㎞~1.5㎞ 3175원, 1.5㎞~2㎞ 3675원 등으로 500m 단위로 수수료가 늘었다. 경력에 따라 1~4등급으로 나눠 근속일수가 길수록 수수료를 조금 더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발표한 배달대행업체 기사 건당 평균수수료가 3011원인 것을 고려하면, 배달 한건당 20분씩 잡아도 최저시급을 살짝 웃도는 수준이다.

 

 

플랫폼 환경이 빚은 ‘죽음의 전투콜’
고정급보다 성과급업체서 더 경쟁
모든 기사가 동시에 콜 확인 가능
플랫폼의 압박에 마음 더 조급해져

 

보호장구는 거추장스러워 잘 안해
“무릎보호대 하면 콜 10개는 줄어요”

 

수수료는 직선거리 기준이지만
실제 주행거리는 훨씬 더 걸려
횡단보도 주행·신호위반 다반사
“준법 100점 지키면 돈 못 번다”

 

 

수수료 산정 기준이 되는 거리는 도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지도상의 직선거리였다. 4월27일 마포의 한 국숫집에서 숙명여대까지 기자가 배달한 주행거리는 2.8㎞였지만, 지도상의 직선거리는 1.7㎞였다. 배달 기사로서는 실제 주행거리와 직선거리를 최대한 일치시킬수록 효율적인 운행을 하는 셈이다. 차선을 넘나들며 자동차 사이를 주행하는 ‘칼치기’와 신호 위반, 횡단보도 주행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가 두번째로 일한 ㄴ업체에서 만난 이승준(23) 팀장의 특기는 ‘역주행’이다. 용산 지역을 꽉 잡고 있어 ‘용산의 아들’로 불렸던 준헌님은 중앙선을 타고 달리다 성민(47)님에게 혼나기도 했다. “애○○들이 위험한 줄 모르고 아무렇게나 타고 있어.” 준헌님은 ㄱ업체에서 일하는 1년 동안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10번이나 당했다고 한다. 2016년 전국 오토바이 사고 건수는 1만3076건으로 모두 428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서울 지역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13%(48명)가 이륜차 사망자다.

 

장수경 기자가 지난달 2일 서울 마포구 빵가게에서 음식을 받아 배달하고 있다. 배달대행 기사들은 콜을 받기 위해 음식을 배달하는 중에도 한손에는 휴대전화를 놓지 않는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장수경 기자가 지난달 2일 서울 마포구 빵가게에서 음식을 받아 배달하고 있다. 배달대행 기사들은 콜을 받기 위해 음식을 배달하는 중에도 한손에는 휴대전화를 놓지 않는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기자는 주문배달대행인 ㄱ업체에서 배달대행만 하는 ㄴ업체로 직장을 옮긴 첫날, □□치킨 픽업→◇◇떡볶이 픽업→□□치킨 배송→△△통닭 픽업→△△통닭 배송→◇◇떡볶이 배송’을 51분 만에 끝냈다. 한시간도 안 돼 3건을 한 셈이지만, 이승준 팀장에겐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그는 “여기 애들은 20분이면 3개를 해요. 시속 60㎞ 이상 달려야 돼요”라고 말했다. 20분에 3개를 치려면, 조리 시간과 현장 결제 등 대기 시간을 제외하고 음식 하나당 픽업에서 배송까지 6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2011년 피자 배달 노동자의 죽음으로 폐지된 ‘30분 배달제’보다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옆에서 김호윤 실장이 “나중에 익숙해지면 한 손으로 핸들 조작하고, 한 손으론 운행 중에 휴대전화 콜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라고 기자를 독려했다.

 

김호윤 실장의 조언은 적확했다. 콜은 기사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잠시 신호에 걸렸을 때라도 울리면 좋으련만, 운행 중에 더 다급하게 울렸다. 남들보다 먼저 콜을 잡으려면 달리는 중에 휴대전화에서 손을 뗄 수 없다. “준법정신은 50점만 지키면 된다. 100점을 지키려고 하면 돈은 못 번다.” 이기재 형님이 조언했다.

 

이런 업무 환경에서 교통사고는 예정된 사건이었다. 기자는 업무에 적응될 때까지 최대 8주간 고정급을 주던 ㄱ업체에서 2주간 일하다, 완전 성과급제인 ㄴ업체로 직장을 옮겼다. 완전 성과급제인 ㄴ업체는 ㄱ업체보다 훨씬 경쟁적인 환경이었다. ㄱ업체에선 한 기사가 배달 앱으로 콜을 클릭하면, 다른 기사가 그 콜을 볼 수 없었다. ㄴ업체는 모든 기사가 동시에 콜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초 단위 콜 잡기 경쟁, ‘전투콜’이 벌어졌다. 실시간으로 주문 경과 시간을 알려주는 플랫폼의 압박, 한건이라도 콜을 더 잡아야 3000원을 벌 수 있다는 조급함, 하루 12시간 아스팔트 위에 있어야 하는 피로감 등이 전방위적으로 기자를 압박해왔다. 그리고 이틀 만에 사고가 났다. 운전이 미숙한 기자 개인의 탓도 있겠지만, 성과급제와 교통사고는 일종의 ‘패키지’였는지 모른다.

 

전투콜에서는 경쟁자였지만, 배달 기사들은 경찰 단속 앞에서 빛나는 동료애를 발휘했다. 4월29일 ㄱ업체 단톡방엔 경찰 단속을 알리는 문자가 다섯번이나 올라왔다. “신촌 기차역 신호 무시 단속.” “일방통행 단속.” 불법 주행이 일상에 가까운 기사들은 이렇게 단속을 피했다. 한건 배달해 3000원 남짓 손에 쥐는 기사들에게 수만원짜리 딱지는 가장 두려운 존재다.

 

교통 신호도 배달을 하는 데 방해 요소일 뿐이다. 5월4일, 신공덕동의 한 오피스텔에 샌드위치를 배달한 뒤 바로 길 건너 아파트에 김밥을 배송하러 가는 길이었다. 횡단보도로 달리면 곧장 넘어갈 수 있었지만 시간이 좀더 걸리더라도 신호를 받아 유턴하기로 했다. 신호에 두번 걸려 5분이 지나갔다. 뒤따르던 ㄷ콜과 ㄹ업체 소속 기사는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지자마자 얄밉게 도로를 건넜다. 이날 신호에 걸린 횟수는 세어본 것만 32번, 신호에 걸린 시간은 35분이었다. ‘배달대행으로 생계를 꾸리지 않아서 80점 정도의 준법정신을 유지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씁쓸했다. ‘용산의 아들’ 준헌님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는 ‘10분이면 많은 걸 할 수 있다’였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배달대행 배달원의 종사 실태 및 산재보험 적용 강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는 교통사고로 내몰리는 배달 기사들의 노동 여건이 나온다. 배달 지연 등 배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배달 기사 38%가 “음식값을 변제해야 한다”고 답했다. ‘건당 일정 금액을 물어낸다’는 답변도 35%에 달했다.(중복응답) 돈을 벌려면 동료 기사들과 경쟁해 콜을 많이 잡아야 하는데, 콜을 많이 잡아 배달이 지연되면 기사 개인이 변상해야 한다. ‘죽음의 전투콜’은 건당 성과급과 쉴 새 없는 질주를 강요하는 플랫폼 환경이 빚어낸 괴물이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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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뛸지 토끼들 지켜보는 꼴" 이해찬, 다음주 초까진 출마여부 결정할 듯

'세대교체' 말하며 친문 분화될 가능성도... 이해찬 측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건 안정"

18.07.11 07:54l최종 업데이트 18.07.11 07:54l

 

 무소속 이해찬 의원이 21일 오후 서울 강북구 한신대에서 '한반도 통일의 미래상'을 주제로 강연을 하기 앞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은 2016년 6월 21일 서울 강북구 한신대에서 '한반도 통일의 미래상'을 주제로 강연을 하기 앞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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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가까이 이해찬에 대한 관심이 쭉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만으로도 이해찬 전 총리는 남는 장사한 거다. 지금 상황에서 출마를 결심하면 온몸으로 관심을 받을 거고, 반대로 불출마하면서 당의 어른으로 남겠다고 해도 미담으로 남는다. 이 총리의 존재감을 여실히 보여주는 정국인 거다. 당 대표에 누가 나가냐가 아니라 이해찬의 출마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더불어민주당 한 중진 의원의 해설이다. 이 의원은 현재 당내 상황을 "호랑이가 달릴지 말지 토끼들이 보고 있는 꼴"이라고도 평했다. 이해찬 의원(세종, 7선)의 당 대표 출마 여부를 놓고서다.

친문(친문재인계) 좌장격인 이 의원의 출마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는 건 당권 경쟁을 노리는 친문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어서다. 김진표(4선)·최재성(4선)·윤호중(3선)·전해철(재선)·박범계(재선) 등 친문 의원들의 출마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해찬 의원이 등판할 경우 자연스레 교통 정리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각종 당 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1위를 고수하던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출마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이 의원 거취에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이해찬 의원은 적어도 다음주 초까지는 출마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당권 레이스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다음 주 초까지는 가불가 결론을 내야 하지 않겠나"라면서 "아직까지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민주당이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을 7월 21일까지로 확정하면서 본격적인 당권 경쟁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친문 단일화? 분화?

 

당내에서는 이 의원의 출마가 임박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언론에 이름이 계속 오르내리는 데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출마하겠다는 뜻 아니겠나"라면서 "마음의 결정을 이미 해놓은 상태에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것 뿐이라는 관측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이 중진 의원은 그러면서 이해찬 의원이 당권 도전에 나서더라도 친문 내 후보 단일화가 어려울 수 있다는 데 한 표 던졌다. 그는 "실질적으로 현재 친문 내부 상황도 복잡하다. 잠재돼 있는 갈래들이 이번 전당대회에서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라며 "친문 주자들이 분화될 수도 있다고 본다"라고 전망했다. 이어 "과거 한국당에서 서청원과 김무성이 싸웠던 정도까지는 안 가겠지만 자칫 친문 내 분화가 '신' 계파 갈등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도 짚었다.

실제 '친문'으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이해찬 의원의 출마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이 초선 의원은 "이해찬 의원의 역량이나 장악력은 다들 알지만 이제는 당도 세대 교체를 해야 하지 않겠나"라면서 "친문 주자들이 출마 문제를 두고 이해찬 의원과 계속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해찬 전 총리와 당권 경쟁하는 모습을 누가 바라고 있겠나"라면서 "개인적으로 이 의원이 출마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가 접촉한 다수의 친문 의원들은 이해찬 의원 출마 여부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극도로 꺼렸으나 '세대 교체론'에는 적극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또다른 여권 관계자도 "이해찬 의원 입장에선 출마를 빨리 결정해봤자 부담스럽기만 하지 좋을 게 없다. 시간이 흐르며 알아서 정리가 되고 마치 깔때기 같이 자신이 되는 방향으로 수렴되길 기다리는 것"이라면서도 "이해찬 의원이 당 대표가 되는 게 당의 미래를 볼 때 환영하고 반색할 일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놓고 나서고 있는 박범계 의원 외에 전해철 의원이나 최재성 의원 같은 이들이 팔 걷어붙이고 이해찬 전 총리와 싸우는 모습은 서로 부담이지 않겠나"라며 "미래지향적인 카드인지 아닌지, 세대 교체 얘기가 왜 나오는지 곱씹을 필요가 있다"라고도 덧붙였다.

이해찬 측 "세대교체? 지금 필요한 건 안정"... 다음주 초까지 거취 결정
 

큰사진보기 11일 오전 진주을 정당선거사무소에서 개최된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이해찬 수석 공동선대위원장의 발언 후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선대위 직책) 이해찬 수석 공동선대위원장, 갈상돈 진주시장 후보, 추미애 상임선대위원장, 김경수 후보, 강기정 공동선대위원장, 민홍철 경남상임선대위원장.
▲  지난 6월 11일 오전 진주을 정당선거사무소에서 개최된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이해찬 수석 공동선대위원장의 발언 후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 김경수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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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해찬 의원 측은 "아직 출마 여부를 말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니다"라면서도 세대교체론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론을 펴는 모습이었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10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세대교체는 일리 있는 말"이라면서도 "당내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혁신만 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열린우리당 시절에 보지 않았나. 리더십을 기반으로 한 안정이 있어야 혁신도 가능하다"라고 피력했다. 이 의원의 중량감을 에둘러 어필한 것이다.

이어 이 관계자는 "만약 민주당이 한국당처럼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라 일대 쇄신이 필요한 거라면 젊은 혁신이 필요할 지 모르겠지만,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나"라며 "세대교체가 필수 불가결한 조건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이 의원 출마로 인한 친문 후보 정리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적극적인 출마 선언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봐선 아무래도 (이해찬 의원의) 영향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라고도 말했다.

한편, 한때 전당대회 최대 변수로 꼽혔던 김부겸 장관에 대해선 출마가 힘들어졌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한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청와대로 공을 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게 큰 실수였다"라면서 "당시 분위기로 인해 본인이 지나치게 업(up)됐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 하는 의원들이 많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또다른 의원은 "영남권에서는 아직까지 김부겸 카드로 다음 총선을 치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완전히 불씨가 꺼진 건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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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장, 경찰 수사 시작하자 휴대폰 해지했다

검찰은 왜 한 달 간의 통화기록만 수사하라 지시했나
 
임병도 | 2018-07-11 09:24:5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KBS는 대검진상조사단이 조선일보 사장 아들이 장자연씨와 수차례 통화를 했고, 조선일보 간부가 통화 내역을 경찰 수사기록에서 빼려고 고생하고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KBS뉴스 화면 캡처

 

7월 9일 <KBS>는 장자연씨 사건을 재조사하고 있는 대검 진상조사단이 장자연씨와 조선일보 사장 아들이 수 차례 통화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KBS>는 대검 진상조사단이 “조선일보 모 간부로부터 해당 통화내역을 경찰 수사기록에서 빼려고 고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방 씨 등을 소환해 조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방정오 TV조선 전무는 KBS 보도에 대해 “KBS가 ‘조선일보 측 핵심 관계자의 진술’이라는 정체불명의 근거를 내세워 저와 고 장자연씨가 여러 차례 통화했다고 보도했으나 저는 장씨와 단 한 번도 통화한 적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재판 기록을 보면 경찰은 조선일보 사장 아들의 통화 기록을 살펴봤지만, 장 씨 간의 통화 내역은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렇다면 대검 진상조사단이 확보한 진술은 정확한 휴대폰 통화 기록을 통해서 입증될 수 있습니다. 다시금 장자연씨 사건 연루 인물들에 대한 휴대폰 수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자연씨 사건 재조사의 핵심은 당시 수사가 얼마나 부실했기에 대부분 무혐의로 처리될 수 있었는지 여부와 누가 장 씨를 죽음으로 몰았는지 찾는 일입니다.

장씨의 죽음은 신인 여배우의 단순한 자살이 아닙니다. 권력을 쥔 자들이 여성 인권을 유린했음에도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간 범죄에 대해 다시금 정의를 세우는 일입니다.

2009년 술접대와 성접대를 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배우 장자연씨.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통해 우리 사회 어둠을 고발했지만, 그 많던 가해자 중 단 한 명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장자연 사건, 성상납 가해자는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한국일보>는 장자연씨 사건과 연관된 수사. 재판기록 5,048쪽을 확보해 인터넷에 공개했습니다. 이 기록을 토대로 당시 수사의 문제점을 파헤쳐봤습니다.


조선일보 사장, 경찰 수사 후 곧바로 휴대폰 해지

장자연씨 문건에는 “2008.9 경 조선일보 방 사장에 대한 룸살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경찰은 조선일보 방 사장의 이름이 거론됐지만, 혐의가 없다며 내사 종결하고 수사를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던 점을 본다면, 당시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당시 경찰은 방씨와 장씨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수사하기 위해 통화 기록 등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당시 경찰의 휴대폰 통화 기록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졌을까요?

문: 당시 방상훈에게 직접 통화나 연락을 하여 전화번호를 요청한 것은 아니지요.
답: 예,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조선일보사에서 검찰청(법조팀)과 경찰청(경찰팀)을 총괄하는 OOO 부장으로부터 피의자 방상훈의 휴대전화를 통보받은 이유는 통상적으로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했다는 것인가요.
답: 예, 보통 형사들이 언론사와 접촉할 때에는 OOO부와 접촉을 합니다.

문: 경찰은 방상훈이 경찰에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 날 바로 가입 해지를 한 이유를 조사하였는가요?
답: 굳이 수사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OOO 부장을 통해서 받았다고 하는 그 전화번호가 방상훈 사장이 해지했다는 번호와 같은 번호라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나요?
답: 예, 당시에 들었습니다.

경찰은 수사하면서 조선일보 사장의 휴대폰 번호를 직접 찾아낸 것이 아니라 검찰과 경찰청 출입기자단을 관리하는 조선일보 부장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장자연 사건은 단순히 언론사와 접촉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주 일가와 연관된 범죄를 수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수사 초기부터 개인이 아닌 언론사가 조직적으로 수사에 대응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조선일보 부장이 휴대폰 번호를 경찰에 알려준 날, 휴대폰이 해지됐다는 점입니다. 휴대폰 번호를 알려준 날 해지를 했다는 것은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증거 인멸을 하려고 했다는 의혹마저 드는 대목입니다.


대포폰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수사조차 하지 않은 경찰

문: 위 내용에 의하면 방상훈은 2008.9.1부터 9월 30일 한 달 동안 총 35 통화를 한 것을 알 수 있지요.
답: 예
문: 조선일보사의 사장이 한 달에 35통의 통화를 하였다는 것을 경찰에서는 믿었나요.
답: 개인 패턴이기 때문에 증인이 뭐라고 답할 것이 없습니다.
문: 방상훈 사장의 부인과는 한 달 동안 세 통화를 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경찰에서는 믿었나요.
답: 가족과 통화 내역이 있었기 때문에 본인이 사용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경찰은 조선일보 사장의 휴대폰 통화기록을 통해 한 달에 35통의 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휴대폰 통화가 빈번한 사회에서 메이저 언론사 사장의 한 달 통화량이 35통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다른 휴대폰 사용 가능성도 의심할 수 있습니다.

통화량이 너무 적어 다른 언론사 대표처럼 대포폰을 사용하는지 묻지만, 경찰은 ‘잘 모르겠다’는 답변 뿐입니다.

문: 우리나라의 지도층이나 언론사 대표나 국장 부장들이 대포폰을 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요.
답: 잘 모르겠습니다.
문:경찰은 조선일보 OOO 부장으로부터 통보받은 전화번호 이외에 방상훈이 사용하는 전화가 있는지 조사하였는가요
답: 따로 조사하지는 않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문: 경찰은 방상훈의 업무상 회사 전화와 비서의 통화 내역 등을 조사하였는가요.
답: 기억이 없습니다.

통화량이 적어 별도의 휴대폰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경찰은 조선일보 부장이 알려준 휴대폰, 그마저도 해지된 휴대폰만 조사했습니다.

조선일보 사장이라는 특성상 회사 전화나 비서 등을 통해 연락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는 아예 조사도 하지 않았는지 ‘기억이 없다’고 말합니다. 장자연씨와 연관된 조선일보 사장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검찰은 왜 한 달 간의 통화기록만 수사하라 지시했나.

장자연씨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방상훈 사장의 핸드폰 통화 내역 같은 경우, 사회적인 의구심이 많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뽑을 수 있는 통신자료를 최대한 뽑아서 대조해 보고 싶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통화 기록 요청은 1개월에 불과했습니다.

문: 경찰은 장자연과 김OO 등 사건관계자들의 통화 내역은 1년 동안 조회한 반면 방상훈에 대해서는 불과 한 달만 조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통상 1년의 통화내역을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각의 차이이지만 검사, 판사가 문건에 2008.9이라고 나와 있으니 2008.9 한 달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문: 당초 경찰이 조사한 통화 범위는 2008.9.11부터 9.17까지 1주일에 불과한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앞서 답변한 이유와 같은 이유입니다. 수사팀에서는 처음부터 1년 치 통화내역을 신청하였는데, 왜 11일부터 17일까지는 모르겠으나 검사님과 판사님은 그 정도면 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경찰 진술에 따르면 경찰은 1년 치의 통화 내역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검사와 판사가 한 달치면 된다고 했고, 결국 통화기록 수사는 2008년 9월뿐이었습니다.

장자연씨 문건에는 ‘2008년 9월 조선일보 사장을 만나서 술접대와 잠자리를 요구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최소한 9월 전후로 수개 월 간의 통화기록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판사와 검사는 다른 기간의 통화기록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수사 축소 의혹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KBS, ‘조선일보 사장 아들, 장자연과 수차례 통화’ 보도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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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과 홍세화, 그리고 예멘 난민

[기고] 우리는 모두 난민의 후예들이다

 

 

꼬마가 시멘트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멍하니 앉아있다. 잔해 속에서 막 구조된 피투성이 아이가 사지를 늘어뜨린 채 구조대원의 손에 옮겨진다. 생후 1년 남짓한 아이는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채 링거 주사를 손에 달고 울부짖는다. 유투브에 'Syrian children'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 속에 비쳐진 모습이다. 건물이 통째로 날아가는 폭격이 끝나고 나면 잔해더미 속에 사채들이 뒤엉켜 있다. 거리엔 부모 형제를 잃은 아이들이 불탄 자동차를 놀이터 삼아 위태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영상은 참혹해서 성인 인증을 해야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시리아 땅에서 벌어진 참상이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에서 지역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말만 들어도 끔찍한 "인종청소"란 단어가 외신면을 차지하고 그 대상자들의 처지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혀를 차고 측은함을 느낄 수 있다. 단, 지금 한국의 분위기를 보면 그들이 멀리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불쌍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정우성과 홍세화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우성의 발언과 홍세화의 칼럼에 달린 댓글 때문이다. 제주도에 피난 온 예멘 난민들의 처지를 이해하자는 두 사람의 말과 글에 달린 댓글에는 저주와, 혐오가 넘쳐나고 있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을 쫒아내자는 청와대 청원 인원은 진즉에 6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난민을 추방하자는 의견에는 기존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없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이야기 했던 사람도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도 무서운(?) 난민들을 내보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 배우 정우성은 4년째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무한경쟁에 내몰린 한국 사회의 현실이 여실히 투영되고 있다. 직장을 잡기도, 사랑을 하기도, 집을 사기도, 노후를 지내기도 만만치 않은 현실은 아주 작은 계기만 있어도 깊은 상처를 받는 구조가 되었다. 정상이라 여겨지는 틀에서 자칫하면 떨어져나갈 위험에 처해 있는 사회다. 이런 곳에서 공포가 지배자로 등장하는 일은 역사 속에서 숱하게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타자는 공포를 해소하거나 그 원인으로 누명 씌우기에 딱 알맞은 무력한 대상이다. 
 
1929년부터 1939년까지는 대공황시기였다. 실업자가 넘쳐났고 거지들이 거리를 메웠다. 독일에서 이 원죄를 유태인이 뒤집어썼다. 히틀러는 절망에 빠진 대중들에게 독일 사회가 겪는 모든 고통의 원인은 유태인에게 있다고 화살을 돌렸다. 대중들은 표적으로 몰린 유태인에게 돌진했다. 대공황 뒤 1939년 발발한 2차 대전은 홀로코스트란 참혹한 살육극을 만들어냈다.   
 
1923년 일본을 뒤흔든 관동대지진의 희생양은 조선인들이었다. 조선인들이 대지진의 혼란을 틈타 도둑질을 하고 일본 여자를 강간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군대와 경찰이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민간인들은 자위 목적이라며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들을 색출했다. 외모로 구분이 안 되는 탓에 잡혀온 사람들은 심문을 받았다. 심문자들은 조선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일본말을 시켰고 서툰 일본어로 대답하는 사람들의 배에는 죽창이 꽂혔다.  
 
실제로 늘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은 주류 사회의 언저리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들은 일상적 편견 속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들어내기 보다는 감추는데 익숙하다. 지옥 같은 삶을 피해 도망쳐온 난민도 마찬가지다. 말도 음식도 생활방식도 다른 낮선 땅에 도착한 이들은 경계심 가득한 길고양이들처럼 움츠리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난민들이 공포를 확산시킨다는 것은 남성 주류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자유가 넘쳐나고 있다는 푸념과 다르지 않다.  
 
500여명의 예멘 난민들이 한국 사회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를 양산한다는 주장은 우리가 타자화 시킬 수 있는 대상 모두에게 적용가능하다.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고, 지방대 출신이라고 무시하고, 고졸이라고 업신여기고, 비정규직이라고 내몰고, 탈북자라는 꼬리표로 얼마든지 가둬둘 수 있는 사회는 지금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숨통이 막힌 것은 1%만 행복한 세상을 위해 치달은 결과이다. 최근 두 항공사가 보여주듯 재벌들의 갑질이 횡행하고 똑똑한 20억 짜리 아파트 한 채가 칭송받는 사회에서 노량진 거리 컵 밥을 먹는 이들의 꿈은 유린당할 수밖에 없다. 
 
근대 한국 사람들의 상당수는 난민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 낮선 땅 만주를 향해 달리는 경의선 열차 안이나 상해 행 배안에는 식민지배의 폭압을 피해 탈출하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만약 중국이 일본 개입 명분을 준다며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를 폐쇄시키고 조선인들을 내쫒았다면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국민당 장제스 총통은 김원봉이 주도하는 의열단을 지원했다. 마오저뚱과 홍군은 조선의용군으로 한인 독립운동가들을 포용해 공동 항일 투쟁을 했고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조선 진격작전도 벌였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과 우스리스크, 하바롭스크에 정착한 한인들은 가장 열성적인 항일 지원 세력이었다.  
 
삶의 터전을 떠나온 사람들에 손을 내미는 것은 인류애라는 가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류애가 숭고한 이유는 인종도, 지역도, 종교도, 사상도 초월하기 때문이리라. 동시대 지구상에 생존하는 인간으로서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그 어느 것 보다 인간다운 일일 것이다. 예멘 난민들의 손을 잡아주자. 그리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진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손을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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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드러난 김정은 위원장의 자신감

싱가포르에서 드러난 김정은 위원장의 자신감
 
 
 
곽동기 주권연구소 수석연구원 
기사입력: 2018/07/11 [09:28]  최종편집: ⓒ 자주시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이제 북한과 미국은 첨예한 대결 상대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관계를 이끌어내는 시험에 들어섰다. 싱가포르 회동 과정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보였던 행보를 보면 향후 북미관계를 내다볼 수 있다.

북한-싱가포르 정상회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6월 10일 오후 2시 36분,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를 찾은 목적은 북미정상회담이다. 하지만 그는 싱가포르에 도착하여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절차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먼저 싱가포르 대통령궁 이스타나에서 리센룽 총리와 양자회담을 가졌다. 싱가포르 외교부에 따르면, 비공개로 진행된 북한-싱가포르 회담에서는 북한-싱가포르 관계, 최근 한반도에 나타난 긍정적인 상황을 포함한 북한 및 지역 정세가 화제에 올랐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싱가포르 정부가 집안일처럼 성심성의껏 제공해주고 편의를 도모해줬다”며 사의를 표했으며 “북미 상봉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면 싱가포르 정부의 노력이 역사적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회담에는 북한 측에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수용 부위원장, 로광철 인민무력상이 배석했다. 북미정상회담을 조율할 핵심인물들이 회담 전날에 모두 북한-싱가포르 회담에 참석한 것이다. 싱가포르 측에서는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외교장관 등이 배석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도 이튿날인 6월 11일 오전에 싱가포르 정부와의 정상회담에 나섰다. 하지만 세계적 패권국가라 불리는 미국과 달리 그런 미국과 정상회담을 벌이는 북한 최고지도자가 여유롭게 싱가포르 정부와 정상회담을 벌이는 것은 또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사의”라는 말 그대로 싱가포르 정부에 감사를 표한 것일 수 있다. 경호문제나 기타 안전상의 이유로 개최지로 나서기 부담스러울 수 있는 북미정상회담을 선뜻 맡으며 북한당국과 미국당국에 성심성의껏 편의를 도모한 데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한 것이다.

파격적인 심야참관

김정은 위원장은 이튿날에도 파격행보를 보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6월 11일 밤, 김정은 위원장은 싱가포르의 주요 명소를 참관하였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마리나 베이 샌즈 건물의 전망대에서 시내 야경을 둘러보고는 “싱가포르가 듣던바대로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건물들마다 특색이 있다”고 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오늘 참관을 통하여 싱가포르의 경제적 잠재력과 발전상을 잘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마리나 베이 샌즈 건물의 스카이 파크, 싱가포르항, 에스플러네이드 극장 등을 참관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를 참관하는 동안 김정은 위원장을 알아본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장면들은 언론에 이미 공개되었다. 그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관광객들에게 여유로운 인사를 건네며 참관을 마쳤다.

이날의 심야참관은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싱가포르 세인트리지스 호텔에 머물던 김정은 위원장은 현지시각으로 11일 오후9시4분(한국시각 오후 10시4분)께 시내 관광에 나섰으며, 같은 날 오후 11시22분(한국시각 12일 오전 0시22분)께 숙소로 돌아왔다.

이 날의 심야참관에는 싱가포르의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외무장관과 옹예콩 전 교육부 장관이 동행·안내했다고 한다. 북측에서는 김영철·리수용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로광철 인민무력상,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등이 동행했다고 한다.

사뭇 달랐던 트럼프 대통령

그에 비해 트럼프 대통령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조용하였다. 대낮인 오후 2시에 창이 국제공항으로 내렸던 김정은 위원장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시간으로 밤 9시 20분에 파야 레바 공군기지를 이용하였다. 안전상의 이유로 군사지역을 이용할 수는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 비해 대중 접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싱가포르 총리를 만난 것 이외에는김정은 위원장이 파격적으로 보였던 “심야 참관”같은 외부 일정도 없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싱가포르행은 캐나다에서 열렸던 G7 정상회의 직후에 배치된 일정이었는데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황급하게 상가포르로 떠나는 바람에 다른 수반들이 미국에 서운함을 내비칠 정도였다.

자신감 가득했던 김정은 위원장

김정은 위원장의 심야 참관은 북미정상회담 성공의 자신감을 내비친 행동이다. 6월 11일 밤은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불과 하루 앞둔 시기였다. 대개 주요 회담을 앞두고서는 상대방의 정황을 끊임없이 탐문하며 협상대응전략을 세우기 마련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일명 “미치광이 전략”이라고 불릴 만큼 예측하기 힘든 외교행보를 보였던 것으로 유명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적인 발언에 따라 역사적인 회담의 성과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요소가 다분하였다. 게다가 상대는 세계패권을 쥐락펴락하는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려면 밤을 새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심야참관”이라는 전례 없는 파격을 내보였다. 우리는 참관의 형식이 낮에 있던 의례적인 “참관”이 아니라, 구태여 하지 않아도 외교상 문제가 전혀 않는 심야시간대에 참관이 이뤄졌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즉 김정은 위원장의 “심야참관”은 그 누구의 요청이나 외교적 필요에 의해 결정된 사안이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 내렸던 결정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싱가포르의 경제성장을 직접 둘러보겠다는 속내였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심야참관”은 일종의 배짱 두둑한 행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6월 12일의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영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며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을 깍듯이 예우하였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의 북한-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도 여유가 묻어나지만 “심야참관”이라는 배짱 두둑한 행보는 북미정상회담 성공의 자신감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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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김정은, 미북간 계약과 악수 존중 확신”

첫 고위급회담 ‘합의 불발’에도 북미공동성명 이행 의지 간접 피력
▲ 역사적인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 전문.[사진 : 뉴시스]

북미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첫 고위급회담이 별 합의 없이 마무리돼 우려를 사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각) 밤 김정은 북한(조선) 국무위원장을 신뢰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평양 고위급회담이 끝난 지 이틀만의 입장 표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기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이 미-북이 서명한 계약,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두 사람이 나눈 악수를 존중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밝혔다고 미국의 소리(VOA)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북한(조선)은 북의 비핵화에 동의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 표명은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신뢰에 근거에 북미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고위급회담을 이어갈 의지를 간접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중국은 중국의 무역과 관련한 미국의 태도 때문에 (북미)합의에 부정적 압력을 가하고 있을 수 있다”며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국 입장은, 애초 미국이 더 적극적이었던 한국전쟁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 변화의 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한다. 세 차례에 걸친 북중 정상회담 과정에서 제재 완화와 경제협력 등의 카드로 중국이 북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래서 북미간 최대 현안인 공동성명 이행에 중국이 개입하려 한다고 의심한 것이다. 종전선언의 경우 싱가포르 회담 당시 미국이 북과 단독으로 체결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북이 남쪽은 당연하고, 중국의 참가도 긍정적이어서 결국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첫 고위급회담에서의 사실상 합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한 만큼 싱가포르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고위급회담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정상간 합의가 갖는 추동력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다만 미국쪽 태도 변화가 변수다. 북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보듯 미국이 이후에도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 고집한다면 공동성명 이행은 더 큰 암초를 만날 수 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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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김포공항 테러 : 진상과 은폐의 서사

 
[기고]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을 생각하며
 
강진욱  | 등록:2018-07-10 10:28:55 | 최종:2018-07-10 11:06:4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전두환 정권의 테러·간첩 조작

전두환 정권 시절 치안본부장(1986.1∼1987.1)을 지낸 강민창 씨가 7월 6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이 나라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의 주역. ‘턱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그의 말은 부도덕한 정권의 폭압과 비인간성, 반인륜성을 상징하는 경구가 됐다. 

▲강민찬 전 치안본부장 

전두환 정권 시절 치안본부 대공분실은 용공 조작의 산실이었다. 치안본부만이 아니라 국가안전기획부와 보안사령부, 정보사령부 등등 전두환 체제를 떠받치는 모든 권력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용공 조작에 나섰다.

아람회 사건, 오송회 사건, 한울회 사건, 금강회 사건.. 부림사건,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전북 김제와 전남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 ... 전두환네는 왜 저렇게 많은 간첩들을 만들어 내야 했을까? 극도의 반정부.반미 감정을 대북 적대감으로 치환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방조로 자행된 광주에서의 학살에 지식인들과 대학가는 전두환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정통성 위기에 몰린 정권을 살리기 위해 미국과 전 정권은 없는 ‘북괴 간첩’을 만들어 북한에 화살을 돌리려 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저들은 ‘북한의 테러’를 조작했다. 1981년부터 1983년까지 해마다 기획된 ‘북한에 의한 전두환 광주학살 응징 시해’ 사건들, 그 사건의 최종판인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1983.10.9), 이 테러가 일어나기 약 20일 전 일어난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물 테러(1983.9.22), KAL 858 테러(김현희 사건, 1987.11. 29)가 그것이다. 또 있다. 1986년 9월 14일 일어난 김포공항 테러.

이들 사건이 없었다면 전두환 체제는 지탱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제2의 전두환 정권인 노태우 정권으로의 이양을 보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소련과 북한을 적대시하는 미국의 한미일 3국체제도 유지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의 활약이 돋보였던 김포공항 폭탄 테러는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에서 KAL 858 테러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격이다. 아웅 산 묘소 테러는 ‘북한의 전두환의 광주학살 응징’을, 김포공항 테러와 KAL 858 테러는 ‘북한의 86 아시안 게임 방해 공작’이라는 해설이 붙여졌다. 김포공항 테러의 내막을 잘 아는 어떤 이는 이 사건을 제대로 조사했더라면, 김현희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86 아시안게임 개막 엿새 전

김포공항 테러는 아시안게임이 개막되기 엿새 전인 1986년 9월 14일 오후 3시 10분 경 김포공항 국제선터미널 입구 바깥에서 폭발물이 터져 공항관리공단 전기공 유주환(柳周桓.41) 씨 등 5명이 죽고 약 30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다. 사건 발생 직후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은 “이 폭발 사건은 수법으로 보아 83년 10월 [버마]랭군폭발암살 사건 및 83년 9월 대구 미 문화원 폭발 사건과 유사”하다며 “이는 북괴의 소행이거나 북괴의 사주를 받은 불순분자의 소행”이라고 떠벌렸다. 그는 또 “이번 폭발 사건은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수행[?]을 방해하려는 불순하고도 야만적인 흉계에서 저질러진 것이 분명하다”며 “폭발물 설치는 특별경비 강화로 공항 내부에 설치를 못하고 건물 외곽 쓰레기통에 설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경향신문 1986.9.14) 웃기는 얘기다. 유리창 안은 특별경비구역이고, 창 바깥은 테러리스트들의 구역이었다는 얘기! 

신문들은 너도 나도 전두환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하며 연일 ‘북괴의 테러’를 외쳐댔다. “목격자들의 입을 통해 본 폭발 순간은 83년 9월 대구 미 문화원 폭발 사건 및 같은 해 10월 북괴의 ‘랭군’폭탄테러(한국외교사절 암살 사건) 등의 사건 순간과 너무나 비슷했다”거나 “강력한 폭발로 미루어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직감”한다거나, “아시아경기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방해하려는 흉계”라는 식이었다. (동아일보 1986.9.15). 

 

 

경찰은 그러면서 국내외 불순분자를 찾는다며 9월 1일부터 23일까지 출입국한 내외국인 16만여 명의 명단을 작성하고, 이들 중 아랍권 국가 등 ‘북괴가 테러를 수출하는’(?) 25개국 국적자들의 행적을 조사한다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전두환 정권은 또 시민의 제보를 기다린다며 전단지 수십 만 장을 전국에 뿌렸고 결정적 제보자에게는 1천만 원의 현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제보니 현상금이니 떠든 것은 쇼였다. 뒤에 밝히겠지만, 당시 공항 경비를 맡고 있던 보안사는 소방호스까지 동원해 현장을 말끔히 청소했다. 혹시라도 무슨 증거가 나오지 못하도록 현장을 훼손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 쓰레기통에 뭔가를 집어넣는 것을 봤다고 제보했다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이 제보자는 즉시 격리돼 입을 다물라는 강요에 시달렸을 것이고 살아가는 동안 내내 경찰의 감시를 받았을 것이다. 
     

폭발물의 정체를 은폐하라!

당시 언론은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 치안본부가 나서 사건의 진상을 은폐한데다, 전두환 정권의 보도 통제가 심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천장 보수 공사를 하다 직격탄을 맞아 하반신이 날아간 관리공단 직원 유주환 씨의 몸에선 90개의 볼베어링(납탄)이 나왔지만, 언론은 이를 ‘스테인레스 쓰레기통 파편’이라 했다. 죽거나 다친 이들의 신발을 뚫고 들어온 것도 모두 ‘파편’이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스테인레스 쓰레기통은 순식간에 터져나갔을 것이고, 클레이모아에 장착됐던 700개 납탄이 총알처럼 날아가 사람들의 몸 속을 파고 든 것이다.

사람 몸에 박혔거나 구두를 뚫고 들어온 것을 ‘스테인레스 조각’ 또는 ‘파편’이라고 표현한 것은 테러에 사용된 폭약이 우리 쪽 특수공작원들이 ‘북파공작’ 등에 사용하는 클레이모아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숨기기 위해 ‘클레모아성’ ‘클레모아와 비슷한’ 등등의 해괴한 표현을 동원했다.

 

 

 

 

『금속 파편에 의해 치명상을 입었고, 사건 현장 주변에서 30여개의 파편이 발견돼 클레모아성 폭약류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폭발물 정체-사제폭탄.원격조정 가능성」경향신문 1986.9.15)

『폭탄이 폭발하면서 그 아래 360도 방향으로 파편과 폭풍 등이 퍼진 것이 아니라 군용 클레모아처럼 한 쪽 방향으로만 .. 또 스테인레스 쓰레기통을 이 폭발물의 표피로 이용, 폭발 때 파편이 날아가게 ..』(「폭파 기술 완벽...테러전문가 확실」경향신문 1986.9.16)

『국내에서 생산되는 콤포지션은 군부대에서만 사용되며..』(「폭약 ‘콤포지션C’ 출처를 찾아라」동아일보 1986.9.16)

『경찰 관계자는 “그러나 범행에 사용된 폭약이 ... 고성능 폭약인 콤포지션으로 국내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군사용..』(「김포 테러 수사 원점」경향신문 1986.9.19)

볼베어링이 카트 바퀴에서 나왔다는 기사도 있었다. 클레이모아가 사용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누군가 필사적으로 막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콤포지션C’ 종류의 폭발물을 쓰레기통에 은폐, .. 폭발 순간에 스테인레스가 산산조각나면서 파편 구실을 .. 현장 부근에서 수거한 베어링은 공항의 짐수레에 달린 바퀴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폭발물에 부착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폭약 ‘콤포지션C’ 출처를 찾아라」동아일보 1986.9.16). 
  
김현희 사건이 일어나기 두 달 여 전, 김포공항 사건 발생 1주기에 즈음해 다시 한 번 ‘북괴의 테러’를 상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향신문은 사건 발생 1주기에 즈음해 피해자인 경기기계공고 교사 옥윤철(玉潤哲. 53) 씨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옥 씨는 누이동생과 조카 등 4명을 한꺼번에 잃었고 딸은 반불구가 됐으며, 자신도 사건 발생 후 1년이 다 되도록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옥 씨는 “그동안 내 몸에서 꺼낸 파편이 몇 개나 되고 지금까지 몇 차례나 수술을 받았는지 제대로 기억조차 못할 정도”라며 “아직도 내 몸에 박혀 있는 100여개의 파편이” 박혀 있다고 말했다.(「김포공항 폭발테러 1주...수사는 미궁에」경향신문 1987.9.14) 폭탄이 터지면서 스테인레스 쓰레기통이 조각조각 났고 그 조각이 무려 100여개나 사람의 몸에 박혔을까?
 

소방호스로 현장 ‘말끔히’ 훼손

현장 검증은 제대로 했을까?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현장은 말끔히 치워졌고, 심지어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 모든 흔적과 잔유물들을 깨끗이 쓸어갔다.

『폭발사건 현장이 사건 발생 2시간 만에 소방호스로 말끔히 청소되는 초동수사의 잘못 때문 ..』(「김포공항 폭발 수사 미궁 1년」동아일보 1987.9.17)

소방호스까지 동원해 현장을 말끔히 훼손했으니 무슨 증거물이 나올 리 없다.

『수사본부가 폭발물을 ‘콤퍼지션C’ 종류로 결론을 내린 것은 사건 현장에서 스테인레스 쓰레기통 파편만 수거했을 뿐 거의 증거물이나 유기품 등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 ..』(「폭약 ‘콤포지션C’ 출처를 찾아라」동아일보 1986.9.16).

현장에 증거물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정황도 드러났다.

『수사본부는 또 현장감식을 통해 15일 뇌관과 전원을 이은 전선을 찾아냈다. 수사본부는 이 전선이 한국화약 제품인 뇌관에 붙은 것과 흡사해 정밀감정을 의뢰했다. 경찰은 이 폭약이 한국화약에서 생산, 군납만하고 잇는 콤퍼지션 시리즈임에는 틀림없어 이 뇌관용 전선도 한국화약 것으로 보고 있다.』(「화약 출처에 수사력 집중」경향신문 1986.9.16)

『수사본부는 당초 현장에서 수거된 길이 1.2cm 직경 1mm의 붉은 전선이 한국화약에서 생산되는 뇌관 ‘상용 6호’의 연결선으로 추정했으나, 정밀분석 결과 이 전선은 폭발 당시 건물 청장에서 떨어진 것으로 결론지어졌다.』(「김포 테러 수사 원점」경향신문 1986.9.19)

이처럼 모든 증거를 인멸하고 조작한 뒤 군용폭약이 아닌 사제폭탄이라는 엉터리 결론을 내림으로써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이 사건은 범행에 사용된 폭탄이 ‘콤포지션C’로 만들어진 사제(私製)라는 사실만 밝혀냈을 뿐 수사는 지금까지 미궁에 빠져 ... 수사본부는 [사건 발생 4개월만인] 올[1987년] 1월 17일 서울 강서경찰서로 옮겨졌으며 8명의 경찰관이 배속돼 있으나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지 못해 영구미제 사건화 할 전망이다.』(「김포공항 수사 미궁 1년」동아일보 1987.9.14)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갔던 박종철 고문 치사(1월 14일) 소식이 알려지고, 강민창 본부장이 1월 21일 사임하면서 김포공항 테러 사건도 그냥 흐지부지 됐다.  


현장 출동 폭약 전문가 “보안사 의심”

왜 이 사건이 이렇게 엉터리 수사로 결말이 났는지 잘 아는 이가 있다. 사건 발생 뒤 40분 만에 현장에 출동했던 당시 치안본부 총포화약계 주임 S씨. 당시 민간 부문의 화약 및 총포 인허가를 총괄하는 곳은 치안본부 총포화약계였고, S 씨는 민간시설에서 일어난 모든 폭탄 또는 폭파 관련 사건을 가장 먼저 검증할 책임과 권한이 있었다.

김포공항 관할경찰서인 서울 강서경찰서는 사건 발생 10분 만에 그에게 연락했고, 그는 신속하게 현장을 보전할 것을 지시하고 30분 만에 현장에 출동했다. 그런데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현장은 폭심 2m를 남겨놓고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물청소까지 한 것으로 보아 증거를 인멸하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그래도 그는 폭심을 살폈다. 혹시 남아 있을 증거가 있나 해서였다. 바닥에 검은 그을음을 보는 순간 그의 입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어, 군용폭약이 터졌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옆에 있던 ‘보안사 복장의 대령 2명’이 인상을 쓰며 윽박질렀단다. “젊은 사람이 뭘 안다고 떠들어?” 기가 찾지만 그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연대장님, 폭약에 대해 잘 아십니까?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산업용은 작업자의 안전을 위해 옥시젼 밸런스를 맞춰.. 산소를 많이 주입하지만, 군용은 살상용이라 그럴 이유가 없으니 산소량이 적어 Co3(탄산)나 Co2(이산화탄소)가 아닌 Co(일산화탄소) 결합으로 불완전연소돼 그을음이 생깁니다. 여기 그을음을 보면 군용폭약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장교 둘은 황망히 자리를 떴다. 쏜살같이 달려가 상급자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여기 웬 이상한 놈이 나타나 일이 꼬이게 생겼다고.. S 주임은 치안본부로 돌아오자마자 무려 6단계 위 계급인 강민창 본부장에게 불려갔다. 일이 어떻게 돌아갔을지는 안 봐도 빤 한 일. 조직의 최고위 상급자에게 깍듯이 경례를 붙였지만, 올렸던 손이 다 내려오기도 전에 험한 욕지기가 그의 얼굴에 꽂히더란다. “너 이 자식, 왜 헛소리 하고 다녀?” “헛소리 한 적 없습니다.” “김포공항 갔었지?” “예...” “삼척동자가 봐도 ‘북괴 소행’이 빤한데 왜 딴 지를 걸어, 엉?” “... ...” S씨는 “순간 내가 위험에 빠졌구나 싶었고, 적당히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강민창 본부장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그의 어깨까지 두드려주며 “그래, 잘 생각했어. 내가 살아야 너도 살지”했단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앞에서 살펴본 대로 사건의 정황과 증거 인멸, 사건의 진상을 감추기 위한 수사 및 엉터리 결론에 비춰 S 주임의 말은 실제와 다름이 없어 보인다. S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곧 공개하려 한다. 사건 당시 소신을 굽히고 타협한데 대해 괴로워했다. 그때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진상을 밝혔더라면 김현희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현장을 방문한 김포공항 폭탄 테러와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 1987년 일어난 KAL 858 테러 모두 ‘동일한 조직’의 소행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여담 : 미궁에 빠진 사건을 다시 끄집어 내다

사건은 왜 미궁에 빠졌을까? 우선, 1983 버마 사건이나 1987 김현희 사건처럼 가짜 북한 공작원을 준비해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또 1983 버마 사건 때처럼 ‘이거 북한이 한 거 맞아요’하고 기자회견 쇼를 벌일 ‘북괴 간첩’(?)을 잡지 못했다.

‘북괴 간첩’을 만들려 하긴 했다. 사건 당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이들을 잡아다 두들겨 패며 자백을 강요했다. 마침 이들 가운데 화약을 다루는 이가 있었다. ‘사제폭탄’ 결론에 딱 맞는 ‘사제 기술자’였다. 전두환 정권은 어쩌면 이 화약 기술자를 ‘고정간첩’으로 만들려 했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내국인으로 거주해 온 김00씨는 1986년 모월모일 북괴의 지령을 받아...김포공항에 잠입 .. ” 그런데 그에게는 치안본부에 아는 이가 있었다. 바로 위에 등장한 S 주임이었다. S씨의 증언으로 다잡은 간첩을 풀어주려니 저들은 무척 아쉬웠했을 것이다. 

아무튼 전두환 정권은 ‘북괴 간첩의 소행’을 입증할 증거나 증인을 조작하는데 실패했고, 결국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그런데 그렇게 사건이 흐지부지되고 난 뒤 23년 만에 ‘혜성처럼’ 새로운 증인과 증거가 동시에 등장한다. 이런 일에 전문성을 보이는 모 월간지를 통해서였다. 

이 월간지 2009년 3월호.「1986년 김포공항 테러는 북한 청부받은 아부 니달 조직 소행」미국에 의해 ‘팔레스타인계 테러리스트’로 불렸던 아부 니달이 북한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고 부하들을 시켜 청부 테러를 자행했다는 말이었다. 반 푼 어치도 논할 가치가 없는, 웃기는 얘기다. 그래서였는지, 이 월간지가 나올 때는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뒤, 특히 지난해(2017.2) 김정남 사건이 벌어진 직후, 이 월간지 기사를 여러 언론사들이 재탕하고 삼탕하면서 ‘북한의 사주에 의한 아부 니달의 테러’가 거의 기정사실화됐다. 이 또한 웃기는 얘기다. 이 나라 언론의 진면목!

왜 이런 작태를 보였을까? 우선 월간지 출간 시점인 2009년 2월(3월호는 2월에 나온다). 2008년 10월 미 국무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시킨데 대한 울분에 찬 반격이었을 것이다. 북한을 다시 테러지원국 명단에 넣기 위해 미국과 한국 내 지배세력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의기투합할 때였다. 당시 한국은 이명박의 세상이었다.

다음은 아부 니달. 미국의 적. 이미 2002년 사망한 것으로 돼 있으니 마음대로 주무른들 누가 뭐라겠나. 북한은? 찰떡궁합을 자랑한다는 절친 한국과 미국의 공적(公敵)이다. 아부 니달의 테러는 1986년 4월 미국의 리비아 폭격을 합리화할 수도 있다. 아부 니달은 리비아 원수 가다피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저들은 떠벌렸으니까. 그로부터 5개월 뒤에 일어난 김포공항 사건을 북한과 아부 니달의 청부테러로 만들면, 북한과 아부 니달 및 리비아의 가다피를 동시에 ‘테러’의 책임을 지울 수 있다. 일타삼피!

1986년 사건을 조작할 당시부터 이런 시나리오가 있었는지, 뒤늦게 그렇게 역사를 ‘편찬’하기로 공모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저들은 얼마든지 자신들의 이념적 필요에 의해 제 멋대로 역사를 왜곡할 수 있는 무리들이다. 김정남 사건이 일어난 직후 김포공항 사건을 ‘북한의 사주 테러’로 규정한 것은, 김정남 사건을 빌미로 미국이 북한을 다시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덕분에(?) 북한은 다시 미 국무부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랐다.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1983 버마 보러가기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581&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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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재용을 ‘JY’로 호명

[아침신문 솎아보기]
누가 자유한국당의 좌클릭을 두려워 하나
보수신문들 윤석헌 새 금감원장에 맹비난

이정호 기자 leejh67@mediatoday.co.kr  2018년 07월 10일 화요일

매일경제 오늘(10일) 4면엔 ‘JY, 대통령 오셔서 큰 힘’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순간 얼마전 작고한 JP를 잘못 쓴 줄 알았다. 아니면 YJ엔터테인먼트를 줄인 말인 줄 알았다. 제목 뒤에 붙은 ‘文, 양국 국민들 기대 커’를 읽고서야 인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만나 나눈 대화라는 걸 깨달았다.

▲ 매일경제 10일 4면
▲ 매일경제 10일자 4면

 

매경은 10일 1면 머리기사도 ‘文, JY 만나 일자리 더 많이 만들어달라’고 제목을 달아 이재용 부회장을 ‘JY’로 불렀다. 대통령은 ‘文’이라고 호명하면서 ‘재용’이라고 달면 안 되나. 영어로 제목 달면 높임말이라도 되나. 

누가 자유한국당의 좌클릭을 두려워 하나 

누가 자유한국당 좌클릭을 두려워 하나.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이다. 류 전 주필이 10일 조선일보 34면에 ‘죽은 자유한국당 左클릭 하면 살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류 전 주필은 “우파가 2020년 총선에서 전멸하면 자유를 삭제한 민주주의, 사회적 경제체제, 1948년의 대한민국 말소가 체제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때가 되면 우파에게 다시 기회가 온다는 뜻이다. 류 전 주필은 자유한국당을 향해 적당한 왼쪽 명당은 신기루에 불과하니 참고 견뎌서 ‘갈수록 더 과격해지는 좌파의 종국적 실패를 노리라고 주문한다. 

▲ 조선일보 10일 34면 류근일 칼럼
▲ 조선일보 10일자 34면 류근일 칼럼

 

 

류 전 주필은 칼럼의 시작을 “요즘 떠오르고 있는 중요한 의제의 하나는 보수라 할까 (중략) 하는 정치‧사회‧문화적 범주가 과연 오늘의 ‘폭망’에서 되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라고 했다.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시라. 오늘 한국사회의 중요한 의제가 ‘자유한국당의 부활’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지. 국민 대부분은 아무 관심 없다. 입만 열었다하면 50년전 케케묵은 얘기나 읊조리는 ‘세금충’들 안 봐서 그나마 좋다고 한다.  

류 전 주필은 오늘의 한국사회를 “혁명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더 무자비하고 더 순혈적이며 더 자살 특공대식 전위투사가 연이어 나오고 또 나와야” 하는 좌파 세상이라고 진단하면서 “영구 혁명은 마침내 우파 멸종, 보수 소멸, 좌익 혁명 독재에 도달한다”고 예견했다. 한국에서 독자가 가장 많은 신문의 주요 칼럼니스트가 현 정부를 영구 혁명이나 꿈꾸며 좌익 혁명 독재로 내달리는 봉인열차쯤으로 여기는 건 분명 정상이 아니다.  

동아일보, 초미세먼지 지역이동 밝혔지만  

동아일보가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19개 미세먼지 예보권역별 초미세먼지(PM2.5) 이동량을 처음으로 분석한 결과를 10일자 22면 전면을 털어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기사 제목을 ‘서울 초미세먼지 88% 외부서 유입… 국내선 충남發 가장 많아’라고 달아 미세먼지의 지역간 이동경로를 관리할 법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옳은 지적이다. 

▲ 동아일보 10일 22면
▲ 동아일보 10일자 22면

 

그러나 건 초미세먼지 배출 자체를 줄이기 위한 지역별 관리체계가 더 필요해 보인다. 동아일보가 공들여 만든 한반도 지도상에 광역시도별 초미세먼지 배출비율을 보면 의외의 지역이 초미세먼지를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충남(27), 전남(21), 부산(20), 경기남부(19), 경남(18) 순으로 많은 배출량을 보였다. 특히 1, 2위가 공기 좋은 농촌으로 여기는 충남과 전남이었다.  

두 지역은 석탄화력발전소과 석유화학단지 같은 공단이 몰려있는 곳이다.

어차피 공기를 통한 이동을 차단할 수도 없는 마당에 배출량 자체를 줄이려면 답은 간단하다. 석탄화력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 동아일보가 석탄화력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에 얼마나 공력을 쏟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보수신문들 새 금감원장에 맹비난 

윤석헌 새 금융감독원장이 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금융감독혁신 과제를 발표했다. 한국일보는 10일자 17면에 ‘윤석헌, 소비자 피해 발생하면 금융사 일벌백계’하겠다고 보도했다. 같은 17면 아래엔 ‘금감원, 키코(KIKO) 사건 원점서 재검토… 피해 기업 보상안 마련’이란 제목의 관련기사도 실었다. 담담하게 새 금감원장의 말을 옮겼다.

▲ 조선일보 10일자 경제1면
▲ 조선일보 10일자 경제1면

 

그러나 조선일보는 달랐다. 조선일보는 10일자 경제1면에 ‘금감원장 윤석헌이 전쟁을 선포했다’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도 ‘금융개혁 한다면서 10년 전 일 재조사 지시한 금감원장’이란 제목으로 법원과 공정위, 검찰 조사에서도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10년 전 키코 사건을 지금 와서 들춰내는데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키코 사건이 과연 끝난 건가. 2007년 하반기부터 중소기업들이 환율변동에 따른 손해를 줄이기 위한 파생상품 키코에 대거 가입했으나 예측과 달리 환율이 상승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1000여 개 중소기업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성동조선은 키코에 수천억원이 묶여 파산의 수렁에 빠져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분명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는 수사결과와 법원 판단을 누가 믿겠는가.

매일경제신문은 조선일보 보다 한 술 더해 1면에 ‘윤석헌 금감원장, 금융사와 전쟁불사’라는 제목을 달았고, 14면 전면을 털어 ‘지배구조 감시하는 검사역 신설… 은행권, 우리만 부담 떠안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보수신문은 금융재벌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윤 금감원장을 공공의적으로 만드는데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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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 특별지시한 문 대통령 "'계엄령 검토' 기무사, 신속 수사"

국방장관에 '특별 지시'... "독립수사단 통해 촛불 계엄령·세월호 사찰 의혹 기무사 수사"

18.07.10 10:30l최종 업데이트 18.07.10 11:41l

 

문재인 대통령 '오늘 수보회의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집회 당시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국군기무사령부와 관련해 독립수사단을 구성, 수사에 나설 것을 송영무 국방부장관에게 지시했다.(자료사진)
▲ 문재인 대통령 '오늘 수보회의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집회 당시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국군기무사령부와 관련해 독립수사단을 구성, 수사에 나설 것을 송영무 국방부장관에게 지시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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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10일 오전 11시 30분]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집회 당시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국군기무사령부와 관련해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신속히 수사에 나설 것을 송영무 국방부장관에게 지시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특별지시 관련 브리핑'을 통해 이런 내용을 전했다.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과거 촛불집회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가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것과 관련,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을 국방부장관에게 지시했다. 대통령은 또 독립수사단이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이 독립수사단 구성을 지시한 이유는 이번 사건에 전·현직 국방부 관계자들이 광범위하게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고, 현 기무사령관이 계엄령 검토 문건을 보고한 뒤에도 수사가 진척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라며 "기존 국방부 검찰단 수사팀에 의한 수사가 의혹을 해소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특별지시는 현안점검회의 등을 통해 모아진 청와대 비서진의 의견을 인도 현지에서 보고받고 서울시각으로 어제 저녁 내려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부터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인도 현지에서 이례적으로 특별 지시를 한 데 대해 청와대는 "사안의 위중함과 심각성, 폭발력 등을 감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사안의 위중함·심각성·폭발력 등을 감안해 국방부와 청와대 참모진들이 신중하고 면밀하게 들여다봤다. 그런 의견을 인도 현지에 가 계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며 "대통령이 보고 받은 뒤, 이를 순방이 끝난 뒤 지시하면 너무 (시간이) 지체된다고 판단, 현지에서 바로 지시를 내렸다"라고 설명했다. 

인도 순방 중 특별 지시한 이유? "사안의 위중함·심각성 감안" 
 

 국군기무사령부 홍보동영상 화면.
▲  국군기무사령부 홍보동영상 화면.
ⓒ 국군기무사령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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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독립수사단은 군내 비(非)육군, 비(非)기무사 출신의 군 검사들로 구성되며, 구성 뒤엔 별도 수사지휘·보고 없이, 독립·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게 된다. 이 고위관계자는 "(통상) 독립수사단은 대검 훈령과 관계없이, 검찰총장 지휘권으로 구성한다"며 "이번 독립수사단은 기존 민간검찰의 독립수사단을 준용해 구성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앞서 5일, 국회 국방위 소속 이철희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보도자료를 통해 2017년 3월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됐다. 이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정을 앞둔 2017년 3월 초 기무사령관이 국방장관에 보고한 문건으로, 군이 위급상황시 위수령·계엄령을 준비·검토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어 9일, 같은당 김병기 의원(서울 동작갑)도 추가로 기무사에서 작성한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상 탐색구조 종결 설득 방안' 문건을 공개해 논란이 확산됐다. 이는 기무사가 2014년 9월 초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상대로 수색 종결을 설득하는 논리까지 개발해 보고한 내용의 문건이다.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자유한국당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극도의 무질서한 치안, 국정이 혼란한 상황을 대비해 비상 조치를 검토한 것이다. 기무사로선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일, 더불어민주당이 '쿠데타' 운운하는 건 음모론일 뿐(김영우 의원, 9일 CBS김현정의 뉴스쇼)"이라는 논리로 맞섰다. 

이에 이철희 의원은 "시민들 집회를 계엄의 대상, 위수령 발동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 자체가 틀렸다고 본다. 유신시대 사고"라며 반박했다. 그는 앞서도 "치안확보를 빌미로 군을 움직이려 한 위험천만한 시도가 없었는지, 또 기무사 외 가담한 군 조직이나 국방장관의 윗선은 없는지 등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대통령 특별 지시와 관련, 국방부는 "빈틈없고 철저하게 후속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최현수 대변인은 같은 날 정례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히면서도 관련한 기자들 질문에는 "아직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만 답했다. 

그는 다만 이날 '국방부가 해당 문건을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국방부가 문건을 먼저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그건 여기서 단정적으로 답변드릴 수 없다"고 답하면서 "대통령 지시 관련, 추가로 내용을 확인해야 더 정확히 답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관련 기사] 
기무사 전방위 정치개입... 세월호 수색종료 논리도 짰다
기무사 '촛불 계엄령' 문건 유출 배경 찾자는 김성태 
시민단체 "'내란 음모' 기무사 해체하고, 황교안도 조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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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내란을 음모한 자들을 처벌하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7/10 11:40
  • 수정일
    2018/07/10 11:4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시민사회, “내란을 음모한 자들을 처벌하라”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07/10 [00:1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시민사회단체들이 최근 기무사의 '내란음모' 계획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 퇴진행동 페이스북)     © 편집국

 

최근 기무사가 촛불국민을 진보(종북)로 규정하고일부 보수진영이 계엄령을 필요 하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계엄령을 준비한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시민사회단체들이 관련자들의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퇴진행동기록기념위원회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민중공동행동, 416연대는 9일 오후 130분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위 군사쿠데타 기획내란 음모 기무사를 해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들은 문건을 보면 단순히 위수령과 계엄령에 대한 법적 검토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보인다며 이것은 헌법 파괴행위이고친위군사 쿠데타이며내란음모라고 분노했다.

 

이들 단체들은 기무사의 정치개입과 민간인 사찰 행태는 이미 두고 볼 수 없는 수준이라며 기무사는 댓글 공작에도 개입했고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시민들에 대한 사찰에도 간여했다고 규탄했다.

 

이들 단체들은 국군기무사의 역사는 군사쿠데타와 군의 정치개입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며 이들의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는 전두환 노태우가 주축이 되어 1979년 신군부가 권력 장악을 위해 12·12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했던 만행을 주도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들은 기무사가 존재하는 한 군의 정치적 중립은 있을 수 없다기무사가 존재하는 한 군은 잠재적 쿠데타 세력이라며 군에 대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무사를 해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들은 구체적으로 ▲ 기무사의 모든 불법 행위 관련 자료 공개▲ 철저한 진상규명▲ 한민구 전 국방장관김관진 청와대 전 안보실장황교안 전 권한대행 등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와 관련자 처벌▲ 국군기무사 해체 및 군의 민간인 사찰 전면 금지▲ 피해자 및 피해 단체에 대한 원상회복과 배상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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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친위 군사쿠데타 기획내란 음모 기무사를 해체하라

 

국군기무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면 위수령을 발령하고 이후 계엄령 선포를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계엄군으로 탱크 200장갑차 550특전사 1400명 등 무장병력 4800여명을 동원하기로 했고심지어 저항하는 시민에 대한 발포까지 계획했다.

 

문건을 보면 단순히 위수령과 계엄령에 대한 법적 검토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보인다보도검열단과 언론대책반을 통한 언론통제 계획을 마련했고국회가 위수령 무효법안을 가결하더라도 대통령 거부권을 이용해 두 달간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적극적 제안도 담겨 있다.

 

기무사 문건이 작성된 지난해 3월 당시 태극기집회에서는 계엄령선포촉구범국민연합이란 단체가 등장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구호가 외쳐졌으며기무사가 세월호 진상규명 반대 집회를 개최하기 위해 보수단체에게 정보를 제공했다고 알려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계엄령 계획이 군을 넘어 박근혜 정권 내 핵심세력과 교감 아래 진행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은 헌법 파괴행위이고친위군사 쿠데타이며내란음모다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누가 기무사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는가구 정권은 누가 기무사와 더불어 이 모의를 기획했는가?

 

그 밖에도 기무사의 정치개입과 민간인 사찰 행태는 이미 두고 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기무사는 댓글 공작에도 개입했고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시민들에 대한 사찰에도 간여했다심지어 안산 단원고에까지 기무 활동관을 배치해 일일보고를 하도록 했다문제는 기무사의 이런 위헌위법 행위가 여러차례 지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반복되어왔다는 점이다.

 

1990년 윤석양 일병의 양심선언으로 민간인 사찰의 실체가 밝혀진 이래 기무사는 민간인 사찰 중단을 약속했었지만드러나는 사실은 기무사가 단 한순간도 무도한 불법행위를 중단한 적이 없음을 보여준다. 1990년에 밝혀진 민간인 사찰 문건에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등의 정치인들을 비롯해 김수환 추기경 등 4000여명의 민간인정치인이 포함되어 있었다이 사건을 계기로 보안사는 기무사로 이름을 바꾸어야 했다이명박 정부 초기에도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사실이 드러나 공분을 샀었다용산참사, 4대강 사업 등에 대한 여론공작이나정부비판 인사들에 대한 사찰 등 지금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건들은 이미 이명박 정부 말기에 사실로 확인돼 큰 논란이 일었던 사안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은 박근혜 정부 내내 이어졌던 것이고 심지어 친위쿠데타 기획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국군기무사의 역사는 군사쿠데타와 군의 정치개입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이들의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는 전두환 노태우가 주축이 되어 1979년 신군부가 권력 장악을 위해 12·12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했던 만행을 주도하기도 했다. 80년 광주와 87년 6월 항쟁, 2016년 퇴진촛불 등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심화되었지만 기무사는 이름을 바꿔가며 어두운 권력 뒤에 숨어 여전히 국민들을 감시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헌법을 유린해 왔던 것이다.

 

몸서리쳐진다기무사가 존재하는 한 군의 정치적 중립은 있을 수 없다기무사가 존재하는 한 군은 잠재적 쿠데타 세력이다군에 대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무사를 해체하는 것이다기무사는 해체되어야 한다그렇지 않고 미봉책으로 대책이 마무리 된다면 기무사는 언젠가는 또 다시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댈 것이 자명하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기무사의 민간인 또는 민간단체 사찰위수령 계엄령 계획 등 친위 군사쿠데타 등을 포함 모든 불법 행위 관련 자료를 전면 공개하라!

 

2. 국회 청문회국정조사특별검사 등 모든 법제도를 활용해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라!

 

3. 당시 한민구 전 국방장관김관진 청와대 전 안보실장황교안 전 권한대행 등에 대해 성역없이 철저하게 수사하라이 사건에 대한 책임자 및 관련자 모두를 즉각적으로 직무에서 배제하고엄중 처벌하라!

 

4. 국군기무사를 해체하라군의 민간인 사찰을 전면 금지하라!

 

5. 피해자 및 피해 단체에 대해 국가가 원상회복과 배상하라!

 

이러한 요구가 이뤄질 때까지 촛불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며근본적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우리는 공동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다.

 

2018년 7월 9

퇴진행동기록기념위, 416연대민중공동행동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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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내란 음모', 황교안·김관진 조사하라"

시민단체들, 기무사 해체 및 구 정권 관계자들 조사·처벌 촉구
2018.07.09 15:41:49
 

 

 

 

군 기무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시 위수령 및 계엄령 선포를 계획했다는 내용이 공개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시민단체들은 군 기무사의 불법 행위 관련 전면 공개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면서 이 사건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퇴진행동기록기념위, 416연대, 민중공동행동,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무사를 해체하고 내란음모에 가담한 관련자 모두를 처벌하는 등 군이 과거의 위험하고 구태한 과거와 단절하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관진, 황교안 등 성역없이 수사해야 한다" 
 
국군기무사가 2017년 3월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문건을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되면 계엄군으로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 특전사 1400명 등 무장병력 4800여명을 동원하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저항하는 시민에 대한 발포까지 계획했다. 
 
이는 단순히 위수령과 계엄령 관련, 법적 검토를 한 게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 퇴진행동기록기념위, 416연대, 민중공동행동,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무사를 해체하고 내란음모에 가담한 관련자 모두를 처벌하는 등 군이 과거의 위험하고 구태한 과거와 단절하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프레시안(허환주)

기무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보도검열단과 언론대책반을 통한 언론통제를 계획했고, 국회가 위수령 무효법안을 가결하더라도 대통령 거부권을 이용, 두 달간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제안까지 계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기무사의 계획이 단순히 군 내부에서 계획됐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박근혜 정권 내 핵심세력과 교감이 없었다는 진행되기 어려운 계획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퇴진행동 등은 이번에 밝혀진 군 기무사의 계엄령 계획 관련해서 "헌법 파괴행위이고, 친위군사 쿠데타이며, 내란음모"라며 "누가 기무사에 이런 권한을 주었는가. 구 정권의 누가 기무사와 이 모의를 기획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당시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김관진 청와대 전 안보실장, 황교안 전 권한대행 등을 성역 없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며 "이 사건에 대한 책임자 및 관련자 모두를 즉각적으로 직무에서 배제하고,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무사, 어두운 권력 뒤 숨어 헌법을 유린해 왔다" 
 
이들은 군 기무사의 그간 역사도 지적했다. 이들은 "군 기무사의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는 전두환, 노태우가 주축이 되어 1979년 신군부가 권력 장악을 위해 12.12 쿠데타를 일으켰다"며 "또한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입했던 만행을 주도하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1980년 광주와 1987년 6월 항쟁, 2016년 퇴진촛불 등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심화되었지만 기무사는 이름을 바꿔가며 어두운 권력 뒤에 숨어 여전히 국민들을 감시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헌법을 유린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무사의 해체도 주장했다. 이들은 "기무사가 존재하는 한 군의 정치적 중립은 있을 수 없다"며 "기무사가 존재하는 한 군은 잠재적 쿠데타 세력이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무사를 해체하는 것"이라고 요구했다. 
 
박석운 기록기념위원회 대표는 "이 사안은 기무사 내 몇 명의 문제가 아니라 김관진 당시 안보실장, 그리고 황교안 직무대행까지 연계된 것"이라며 "의혹을 투명하게 성역 없이 조사한 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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