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뉴욕타임스, 삼성 이재용은 뇌물죄 피의자

뉴욕타임스, 삼성 이재용은 뇌물죄 피의자

 


-이재용, 국회청문회 위증 혐의도
-특검, 삼성과의 이메일 담긴 최순실 소유 타블렛 컴퓨터 입수

뉴욕타임스는 박최스캔들을 수사 중인 특별검찰팀이 뇌물죄의 피의자 신분으로 삼성전자 이재용 부사장을 소환하기로 결정했음을 신속하게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11일 ‘Samsung Leader Is Named a Suspect in South Korean Bribery Inquiry-한국 삼성 이재용 부회장, 뇌물 혐의에서 피의자로 지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삼성의 실제 1인자인 이 부회장이 박근혜가 최순실과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는 뇌물죄의 피의자로 목요일 특검에 출두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기사는 이 부회장은 최순실이 운영한 두 재단에 삼성이 기부한 수백만 달러의 기금이 뇌물이었는지의 여부와 이 부회장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집중 조사를 받게 될 것이며 이미 다른 삼성 고위직 임원들도 이와 관련해 조사를 받은 바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국회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이 삼성의 기부 결정에 자신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 증언에 대해 특검은 이것이 사실과 다름을 입증하는 증거를 확보했다며 국회가 이 부회장을 위증 혐의로 고발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아울러 특검은 최씨가 사용했던 타블렛 컴퓨터를 추가로 입수했고 그안에서 최씨가 삼성그룹 임원과 교환한 이메일을 찾아냈으며 그 이메일에는 삼성이 지원한 재정지원에 관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고 발표했다고 기사는 보도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소환과 조사로 인해 박근혜와 관련된 뇌물죄에 대한 수사가 큰 진척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뉴욕타임스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nyti.ms/2ijCX3y

Samsung Leader Is Named a Suspect in South Korean Bribery Inquiry

한국 삼성 이재용 부회장, 뇌물 혐의에서 피의자로 지명

Jay Y. Lee, the vice chairman of Samsung, at the National Assembly in Seoul, South Korea, last month. The special prosecutor’s office recommended that he be investigated on suspicion of perjury. KIM HONG-JI / REUTERS

지난달 한국 서울의 국회 청무회장에서 이재용 삼성 부회장. 특별검사팀은 그가 위증 혐의로 조사받기를 요청했다.

By CHOE SANG-HUN

JANUARY 11, 2017

SEOUL, South Korea — A special prosecutor investigating the corruption scandal that led to President Park Geun-hye’s impeachment summoned the de facto head of Samsung for questioning on Wednesday, calling him a bribery suspect.

한국 서울 –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당하게 했던 부패 스캔들을 조사 중인 특별검사팀은 수요일 삼성그룹의 실제 1인자를 뇌물죄 피의자로서 조사받도록 소환했다.

The de facto leader, Jay Y. Lee, the vice chairman of Samsung, will be questioned on Thursday, according to the special prosecutor’s office, which recommended that he also be investigated on suspicion of perjury. Mr. Lee effectively runs Samsung, South Korea’s largest conglomerate; he is the son of its chairman, Lee Kun-hee, who has been incapacitated with health problems.

삼성그룹의 실제 1인자인 이재용 부회장은 목요일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특별검사팀은 전했으며 아울러 그가 위증 혐의로 조사를 받을 것도 요청했다. 이씨는 한국의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을 사실상 총괄하고 있으며 그는 건강상의 문제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이건희 회장의 아들이다.

He is expected to be asked whether multimillion-dollar donations that Samsung made to two foundations controlled by Choi Soon-sil, a longtime friend of the president, amounted to bribes, and what role, if any, he played in the decision to give the money. Investigators at the special prosecutor’s office have questioned other senior Samsung executives as suspects about the bribery accusations.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최순실이 운영한 두 재단에 삼성이 기부한 수백만 달러의 기금이 뇌물이었는지, 그리고 그 기부 결정에 있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이씨는 질문받게 될 것이다. 특별검사실의 수사관들은 뇌물 혐의의 피의자로서 삼성의 다른 고위직 임원들을 신문했다.

Neither Samsung nor Mr. Lee responded immediately to the announcement on Wednesday.

수요일의 발표에 대해 삼성도 이씨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Allegations that Ms. Park helped Ms. Choi extort millions in bribes from Samsung and other companies are at the heart of the corruption scandal that led to the National Assembly’s vote to impeach her last month. Since then, Ms. Park’s powers have been suspended, and she is on trial at the Constitutional Court, which will ultimately decide whether to end her presidency.

최씨가 삼성과 기타 기업들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뇌물을 강탈하도록 박 대통령이 도움을 주었다는 혐의가 지난달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이끈 부패 스캔들의 핵심에 있다. 그 이후로 박 대통령의 직무는 중지되었고 그녀는 헌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직을 끝낼 것인지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Last month, Mr. Lee testified at a National Assembly hearing that he was not involved in the decision by Samsung to make the donations. He also said that the donations were not voluntary, suggesting that the company was a victim of extortion, not a participant in bribery.

지난달 이재용 부회장은 국회청문회에서 자신은 삼성의 기부 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또한 그는 기부가 자발적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삼성이 뇌물죄의 가담자가 아니라 강요의 피해자임을 암시했다.

The reference on Wednesday to possible perjury charges against Mr. Lee stemmed from that testimony. The special prosecutor’s office said it had evidence that Mr. Lee had “received a request for bribery from the president and ordered Samsung subsidiaries to send bribes to destinations designated by the president.”

이씨에 대한 위증죄 혐의 가능성에 대한 수요일 언급은 바로 그 증언에서 나왔다. 특별검사팀은 이씨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뇌물 요청을 받고 박 대통령이 지정한 곳에 뇌물을 보내도록 삼성 자회사에 지시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It asked the National Assembly to file a perjury complaint against Mr. Lee, which would authorize the special prosecutor to open an investigation of that charge.

특별검사팀은 국회가 이씨를 위증 혐의로 고발해서 특별검사팀이 그 혐의에 대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청했다.

Asked whether investigators would seek to arrest Mr. Lee on bribery charges, a spokesman for the special prosecutor’s office, Lee Kyu-chul, said, “All possibilities are open.”

뇌물 혐의로 이씨를 구속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특별검사팀 이규철 대변인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대답했다.

In November, state prosecutors indicted Ms. Choi on charges of coercing 53 big businesses, including Samsung, to contribute $69 million to her two foundations. They identified Ms. Park as an accomplice but stopped short of filing any charges against the businesses, all of which insisted that they were under government pressure to donate.

지난 11월 검찰은 자신이 운영하는 두 재단에 6,900만 달러를 기부하도록 삼성을 포함한 53개 기업들을 강요한 혐의로 최씨를 기소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규정했지만 기업들에 대한 기소까지는 진행하지 못한 채 수사를 중단했고, 기업들은 정부가 기부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In its impeachment bill, the National Assembly asserted that the donations were bribes, made with the expectation of political favors from the president.

탄핵소추안에서 국회는 기업들의 기부가 박 대통령으로부터의 정치적 특혜를 기대한 뇌물이었다고 주장했다.

The special prosecutor, which took over the investigations from the state prosecutors last month, has been looking into possible bribery charges against not only Ms. Park but the businesses, particularly Samsung. Ms. Park cannot be indicted while in office.

지난달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인계 받은 특별검사는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특히 기업들, 특히 삼성의 뇌물 혐의 가능성을 수사해왔다. 박 대통령은 재임 중에는 기소될 수 없다.

Samsung gave the largest donations to Ms. Choi’s foundations, totaling $17 million. Unlike the other corporate contributors, it went beyond support for the foundations, signing an $18 million contract with a sports management company that Ms. Choi ran in Germany, to fund a program for training Korean equestrians, which mainly benefited Ms. Choi’s daughter. Samsung also contributed $1.3 million to a winter sports program for young athletes that Ms. Choi and her nephew ran.

삼성은 가장 큰 기부금액인 총 1,700만 달러를 최씨의 재단에 증여했다. 다른 기업 기부자들과는 달리, 삼성은 이 재단들을 후원하는 정도를 넘어, 최씨가 독일에서 운영하는 스포츠 메니지먼트 회사와 1,800만 달러 계약을 맺어 한국 승마선수들의 훈련 프로그램에 자금을 댔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최씨의 딸을 위한 것이었다. 또한 삼성은 최씨와 최씨의 조카가 운영하는 어린 선수들을 위한 동계 스포츠 프로그램에 13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Also on Wednesday, the special prosecutor’s office said it had acquired a tablet computer used by Ms. Choi that contained emails she exchanged with a Samsung executive. The emails contained information about the financial support provided by Samsung, the prosecutor’s office said.

또한 수요일에 특별검사팀은 최씨가 사용했던 것으로, 최씨가 삼성그룹 임원과 교환한 이메일이 저장되어 있는 테블릿 컴퓨터를 입수했다고 발표했다. 그 이메일에는 삼성이 지원한 재정지원에 관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고 특별검사팀은 말했다.

The special prosecutor has been investigating whether Samsung gave its support to Ms. Choi in exchange for a decision by the government-controlled National Pension Service to support a contentious merger of two Samsung affiliates in 2015. Moon Hyung-pyo, chairman of the pension fund, was arrested last month on charges that he illegally pressured the fund to back that merger when he was South Korea’s health and welfare minister.

특별검사팀은 2015년 논란이 되어 온 두 삼성 계열사의 합병을 정부가 관리하는 국민연금이 지원 결정한 대가로 삼성이 최씨에게 후원했는지를 조사해왔다. 국민연금공단의 문형표 이사장은 한국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합병을 지원하기 위해 불법으로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지난달 체포되었다.

The national pension fund’s support was crucial for the merger, which analysts said helped Mr. Lee inherit control of Samsung from his father.

국민연금공단의 지원은 그 합병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분석가들은 그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아버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삼성 경영권을 상속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부분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십시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주러 북 대사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준비 완료" 강경발언

주러 북 대사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준비 완료" 강경발언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7/01/12 [08: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조선은 지도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라도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시험을 할 준비가 되었다고 김현중 러시아 주재 조선 대사가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과의 대담에서 밝혔다. 이는 새롭게 들어서게 될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올바른 선택을 해야할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의 신호가 아닌가 한다.     © 이용섭 기자

 

조선의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김현중 러시사 주재 조선 대사가 러시아 리아노보스트 통신과의 대담(인터뷰)에서 밝혔다고 러시아방송 스푸트닉이 보도했다.

 

스푸트닉은 "평양은 '어느 때라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김현중 주러 조선(북한) 대사가 리아노보스티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고 김현중 러시아 주재 대사의 말을 전했다.


계속해서 스푸트닉은 "이에 앞서 김정은 북한 지도자는 신년사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이 최종단계에 도달했다고 신년사에서 언급했다."고 김정은 조선 국무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시험 준비가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언급한 신년사 내용을 또 다시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관련된 신년사 내용에 대해 김현중 조선 대사는 "최고 지도부 결정에 의해 임의의 시간에 임의의 장소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발사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스푸트닉이 보도했다.


조선 대사는 이외에도 "한국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미국의 사드는 실제 러시아, 중국을 견제하고 있지만 북한은 북한에게 조준될 수 있는 사드와 전략적 핵무기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확보했다."고 밝혔다면서 성주에 배치하기로 한 사드에 대한 조선측의 강경한 입장을 전하기도 하였다.


러시아 주재 김현중 조선 대사는 미국에 대해서도 강경한 발언을 이어갔다. 스푸트닉은 "우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우리 주권을 침해할 경우 대응할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밝혀왔다. 선제 핵공격이 미국의 독점권은 아니"고 덧붙였다고 김현중 러시아 주재 대사의 말을 빌어 조선의 대 미 초 강경 입장을 전하였다.

 

도널드 트럼프 신정부가 들어설 날이 점점 더 다가옴에 따라 조선에서도 대 미 강경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요 몇 일사이 미국에서는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이나 전문가 혹은 언론들이 나서서 대 조선 강경발언들은 연이어 쏟아내었다. 이러한 미국의 강경한 발언들에 대해서 조선에서는 언론이나 관계자들을 통해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원론적인 언론보도만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오늘 러시아 주재 김현중 대사의 발언은 대단히 대 미 강경발언이다. 조선 관계자로부터 이와 같은 강경한 발언이 나오는 것은 최근 들어 처음이다.

 

이제 새롭게 들어서게 될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선택을 올바르게 해야할 것이다. 만약 현 오바마 정부나 이전의 정부들처럼 대 조선관계를 가져갔다가는 온 누리를 경천동지하게 될 대 사변이 발생을 할 수도 있겠다는 전조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이러한 전조나 징후들은 새롭게 들어서게 될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는 신중하면서도 유화적인 분위를 이끌어가면서 대 조선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냉정한 자세로 대 조선 대응책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남북경협기업 100일 철야농성 해단..생존권 비대본 발족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1/12 11:49
  • 수정일
    2017/01/12 11: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반드시 살아 민족공동번영에 앞장설 것"남북경협기업 100일 철야농성 해단..생존권 비대본 발족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7.01.11  12:16:37
페이스북 트위터
   
▲ 남북경협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유동호)는 11일 오전 11시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100일 철야농성 해단식 및 남북경협기업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비상대책본부 결성식'을 열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남북경협기업은 반드시 살아남아 민족공동번영에 앞장설 것이다."

정부의 '5.24조치'와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피해를 입은 남북경협기업인들의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 100일 철야농성이 11일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들은 오는 설날인 28일 전까지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다시 모인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남북경협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유동호)는 '100일 철야농성 해단식 및 남북경협기업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비상대책본부 결성식'을 열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1998년 남북경협 시작을 되새기며, "남북경제협력은 남과 북의 정치군사적 긴장에 흔들리며 요동쳤다. 2016년 2월 드디어 마지막 남은 개성공단마저 중단되며 이로써 모든 남북관계는 단절되었다"고 꼬집었다.

"희망은 사라진 듯했고 어둠 속에서의 오랜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남북경협기업은 침묵할지언정 쓰러질 수 없었다. 기나긴 굶주림과 사회의 냉대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놓을 수 없는 것은 남북경협 재개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남북경제협력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남북경협기업은 반드시 살아남아 민족공동번영에 앞장설 것"이라며 "기업인이 살아남는 것이 남북관계 개선의 지름길이요, 기업인은 살아남는 것이 민족 미래비전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철거된 '100일 철야' 농성장.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철거된 농성장을 바라보는 기업인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해단식에서는 기업인들이 홍용표 통일부 장관에게 보내는 호소문도 발표됐다. 호소문은 개성공단 피해기업에 정부가 5천 2백억 원을 지원한 점을 명시하며, 이에 준하는 보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오는 3월 말까지 지원기준과 방법을 결정할 것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유동호 위원장은 "극한적 생존위기에 몰린 남북경협기업의 피어린 염원을 모아 강행한 '100일 철야농성'이었다"며 "춥고 아리고 서럽고 버거운 속에서 100일 지났다. 그러나 철야농성을 통해 얻어진 값진 선물은 단결하였다는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남북경협기업의 생존과 남북관계 개선의 성패여부는 국민의 관심"이라며 "남북경제협력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남북경제협력 사업은 우리 민족의 미래이자 바로 지금 현재"라고 호소했다.

이날 해단식에서는 '100일 철야농성' 천막을 철거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으며, 정양근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 신양수 금강산기업협회 회장, 동방영만 남북경제인연합회 회장, 김한신 남북경제협력연구소 대표 등 50여 명의 기업인과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의장, 심명민 '통일경제포럼' 소속 학생 등이 모였다.

   
▲ 기업인들이 정부의 빠른 대책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철거된 농성장에서 주먹을 쥔 기업인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와 함께, 이날 내륙기업, 금강산 투자기업 등 피해를 입은 기업인들을 하나로 묶은 '남북경협기업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비상대책본부'가 결성됐다. '비상대책본부'는 남북경협기업 생존대책수립을 위한 단일조직이다.

이들은 △남북경협기업 실제 피해규모산정, △기업의 통일 요청안 마련 및 대정부 건의, △생존권보장 기업연대 등의 활동을 할 예정이다.

한편,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농성을 오늘로서 마무리를 하게 되는 그 시점에서 하루바삐 경협 기업인들과 금강산 관광과 관련돼서 피해를 본 분들이 좀 여러 가지 정상화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부 입장이 딱히 진전되거나 바뀐 것은 없다"면서도 "예산 관련된 협의는 관계부처가 지속적으로 가능한 범위를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기업 경영과 관련된 컨설팅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사항들은 계속 지원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정, 16:0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중저항에 찬물 뿌리는 대선주자들의 기회주의 행태

스님 분신, 국가보안법에 입 닥치고 있는 정치인들
 
김갑수 | 2017-01-12 10:18:4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민중저항에 찬물 뿌리는 대선주자들의 기회주의 행태
 - 스님 분신, 국가보안법에 입 닥치고 있는 정치인들


촛불항쟁이 두 달 넘게 지속되면서 1,000만이 넘는 연인원이 거리에 나갔는데도 나라꼴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촛불항쟁의 핵심 의제인 박근혜 탄핵은 유동적인 가운데 항쟁기운은 시나브로 시들어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마지못해 탄핵심리에 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반동수구들이 다시 발호할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낙관할 거라고는 조금만치도 없다.

그들은 지금 시간을 끌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힘이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 판결을 내릴 것이다. 재작년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킬 때는 ‘연내 판결’ 하겠다고 날을 박아 예고까지 한 그들이 아닌가? 사실 국회 탄핵안 가결은 노무현 때도 있었던 일이다.

사태가 이토록 비관적 조짐을 보이게 된 1차 책임은 야당 정치인들에게 있다. 그들은 민심을 선도하기는커녕 아예 민심을 따라오지도 못한다.(않는다) 명분과 실리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야당 정치인들은 명분을 추구해야 할 때 실리를 저울질하고, 실리를 챙겨야 할 때 명분을 내세우며 뒷북질이나 한다.

예컨대 초기에 촛불이 터졌을 때 ‘박근혜 사퇴’는 사퇴대로 주장하면서도 ‘국회 총리 추천’ 제안은 못 이기는 척 받았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야당은 무슨 심보인지 국회 총리 제안을 받는 것은 어용짓을 하는 것이라며 거부했다. 결과는 황교안 권한대행체제로 나타났다.

국회 탄핵 때도 그랬다. 탄핵안을 1주일 먼저 발의하면 선명한 것이고, 가결선 확보를 위해 1주일 후로 미루면 어용이라고 했다. 그들이 하는 짓이라고는 ‘빠돌이’들을 선동하는 것뿐이다. 사익을 추구하더라도 최소한의 절제와 염치는 있어야 하는 법인데 광기에 가까운 빠돌이들에게 의존하다 보니 절제는 물론 모든 염치도 불구한다.

개헌안만 해도 그렇다. 왜 지금 개헌을 말하는 것이 어용이란 말인가? 문재인을 비롯한 일부 대선주자들은 박근혜 사퇴와 구악청산이 우선이기 때문에 개헌은 뒤로 미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대선에 대비하여 당내 경선 룰 논의는 하려고 하니, 그들의 속셈이 무엇인지는 불을 보듯 환하다.

지금 시점에서 독일식 정당명부제, 수개표와 결선투표제, 대통령 권한 분산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은 정권교체 이상으로 중요하다. 개헌에 비박이 일부 동조한다고 해서 어용짓이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럼 비박이 가담해서 가결한 탄핵도 어용짓이었나? 깨 놓고 말해서 문재인이나 안철수나 반기문이나 비박들이나 뭐가 그리 큰 차이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런 사람들 입에서 민족통일의 비전과 국가보안법 폐기 문제가 나올 리가 없다. 그들은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도무지 모른다. 아니면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애써 모르는 체하고 있다. 스님이 촛불광장에서 분신했는데도 이에 대해 성명서 한 장이 없다. 매정하고 가혹하다. 오늘의 야당은 정치적 선택을 떠나 너무도 비인간적이다.

그러면서도 촛불은 자기들의 정권교체를 위한 것인 양 치부한다. 이런 당신들이 무슨 야당이란 말인가? 오십보백보 당신들이 서로를 손가락질하거나 아니면 ‘비박’을 비토할 자격이 있는가? 야당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적 행태가 촛불 민심에 찬물을 뿌리고 있으니 백성들만 답답하고 우울하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table=c_booking&uid=407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두 눈 뜬 채 숨진 아들... 아버지는 37년간 싸우고 있다

 

'군 의문사' 허원근 일병 아버지 허영춘의 마지막 투쟁

17.01.12 07:22l최종 업데이트 17.01.12 07:22l

 

 

 의문사 법 개정을 촉구하는 아버지 허영춘 님의 1인 피켓시위. 피켓을 목에 건 분이 허영춘 님이다.
▲  의문사 법 개정을 촉구하는 아버지 허영춘 님의 1인 피켓시위. 피켓을 목에 건 분이 허영춘 님이다.
ⓒ 고상만

관련사진보기


"아버지. 제가 참 궁금한 게요. 어떻게 지난 33년간 그렇게 싸울 수 있으셨는지 싶어요. 1984년에 장남 잃고 지금까지 진상규명을 위해 싸워 오셨는데 도대체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시는지. 사실 어머니들은 모성애 때문에 절대 포기하지 못하지만, 통상의 아버지들은 하다 하다 안 되면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하는데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시잖아요?" 

그렇게 해서 듣게 된 허원근 일병 아버지의 사연은 참 슬펐다. 시작은 1984년 4월 2일, 아버지의 꿈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잠을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장남 허원근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군 입대 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들이었다. 4월 3일에 첫 휴가를 받아 나온다던 아들이 갑자기 꿈에 나타났으니 아버지는 당연히 기뻤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자신을 보며 '아버지'라고 절규했다고 한다. 

잊을 수 없는 그 사건, 그리고 전해진 비보
 
아들의 목소리에 아버지는 놀라 꿈에서 깨었다고 한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시계를 보니 시각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후 아버지는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했다고 한다. 머릿속에서 장남이 절규한 '아버지' 소리가 내내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일이면 집에 온다고 했으니 그저 개꿈이겠지 싶으며 위안 삼던 그때였다. 4월 2일 밤 10시경, 마을 이장 집에서 전보가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듣게 된 소식, 아들의 사망 소식이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빨리 아들의 부대로 달려가 아들의 생사를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생각 외엔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전남 진도를 출발하여 낯선 강원도 화천까지 내달려 도착해 보니 시각은 4월 3일 아침이었다는 것이다. 무작정 검문소에서 사망한 군인 부대를 물으니 안내를 해주어 해당 부대에 도착하니 아들이 연병장 담벼락 아래 놓은 탁자 위에 눕혀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아들 허원근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장남으로서 늘 아버지를 도와 집안일을 거들었던 아들. 착하며 성실했고 공부도 매우 잘해 집안의 기대를 받았던 아들이었기에, 그런 아들이 죽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들이 지금 저 탁자 위에 숨진 채 누워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누군가가 덮여있는 흰 천을 벗기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현장을 지키고 있던 군인들은 아버지에게 "군의관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막아섰다고 한다. 정말 내 아들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막아서는 그들 앞에서 아버지는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한참을 기다리니 오후가 되어서야 군의관이 도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내 벗겨진 흰 천 안에서 드러난 모습, 아버지는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믿고 싶지 않았던, 믿을 수 없었던 그 사실, 내 아들 허원근이 거기에 숨이 끊긴 채 누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잊을 수 없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숨진 아들 허원근의 눈이었다. 아들이 두 눈도 감지 못한 채 숨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아버지는 아들의 눈에 손을 대며 마음속으로 빌며 쓸어내렸다. 훗날 아버지는 이때 자신이 한 아들과의 약속을 여러 탄원서에 적었다. 특히 1984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아버지는 그 마음을 이렇게 적고 있었다. 

"나는 내 아들의 영전에서 꼭 불명예를 씻어 너의 영혼을 잠들게 하겠다 하고 다짐했습니다. 지하에서나마 (아들이) 편히 잠들게 하여 주십시오." 
 
 아들의 사인 규명을 위해 싸워온 지난 33년간의 아버지 전쟁. 허원춘 님이 의문사 법 개정을 위해 농성중 언론과 인터뷰하는 중이다.
▲  아들의 사인 규명을 위해 싸워온 지난 33년간의 아버지 전쟁. 허원춘 님이 의문사 법 개정을 위해 농성중 언론과 인터뷰하는 중이다.
ⓒ 고상만

관련사진보기


진실을 밝히기 위한 아버지, 허원춘의 전쟁

그랬다. 아들이 죽은 1984년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는 아들 허원근에게 한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말 처절하게 노력해 왔다. 사건 당시 45살이었던, 전남 진도에서 김 양식 사업에 몰두하며 살아왔던 촌부 아버지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된 것은 아버지의 진도 집을 찾아갔을 때였다. 

자살로 처리된 아들의 진짜 사인을 밝히기 위해 아버지가 글을 쓰고 관련 자료를 정리한 방을 들어가 보니 책장이 하나 보였다. 그리고 그 책장에 꽂혀 있던 법의학 전문 서적 6권.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이 아버지가 의학 전문 영어가 가득한 이 책을 독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전태일 열사가 1970년 11월 노동자의 권익을 외치며 분신하기 전 늘 외쳤던 말씀은 "나에게 서울대 학생 친구가 한 명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였다고 한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전태일 열사가 한자로만 쓰여 있던 근로기준법을 독해하는데 어려움이 커 그런 소원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것처럼 이 아버지 역시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영어를 모르니 읽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배운 게 인터넷이여. 거기에 영어 스펠링을 한 자 한 자 쳐서 그 뜻을 해석하면서 공부했지. 참 돌아보면 미치지 않고서는 못할 일이여." 

그렇게 해서 밝혀진 지난 2002년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의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 진상규명 발표. 의문사위는 허원근 일병이 타살되었으며 가해자는 해당 부대 상관에 의한 오발 사고 후 사인을 조작하기 위해 추가로 두 발을 더 발사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러한 발표에서 아버지가 더 놀라웠던 것은 따로 있었다. 

이 사건 당시 군 헌병대는 아들 허원근은 자살했으며 그 시각은 4월 2일 아침 10시경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의문사위가 사건 발생 시각을 새롭게 밝혀낸 것이다. 아들이 숨진 시간은 4월 2일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였다는 것. 

그랬다. 아버지는 그제야 1984년 4월 2일 새벽 4시에 자신이 경험했던 그 사건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꿈속에서 아들 허원근이 찾아와 자신에게 '아버지'라며 절규했던 바로 그 시각, 새벽 4시였던 것이다. 얼마나 원통했으면, 얼마나 억울했으면 아들은 그렇게 아버지를 찾아와 울었을까. 

포기할 수 없는 이 아버지의 전쟁

하지만 여전히 진실은 멀리 있다. 의문사위의 조사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국방부는 다시 그들만의 특조단을 구성하여 허원근 일병이 다시 자살했다고 번복했다. 그렇게 번복과 번복을 거듭하며 최종적으로 내려진 대법원의 판결은 너무도 끔찍했다. "허원근 일병의 사인을 명확하게 알 수 없다"며 다만 부실한 수사로 인한 유족 피해를 인정하는 위자료 3억 원만 인정하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수용하지 않았다. "아들을 잃고 돈을 벌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며 아버지는 위자료 3억 원 수령도 거부했다. 그러면서 '아들은 자살하지 않았다. 그 진실을 찾아달라'며 다시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12월 29일, 대법원이 다시 한번 이 사건 재심청구에 대해 최종적으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이었다. 
 
 2016년 12월 29일 대법원에서 재심청구가 기각 결정된 날, 아버지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  2016년 12월 29일 대법원에서 재심청구가 기각 결정된 날, 아버지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 고상만

관련사진보기


이제 법적으로는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지금, 나는 최종 기각 결정이 난 후 아버지에게 여쭸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냐고.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 상황에서 과연 아버지는 어떤 말씀을 하실까? 그날따라 12월의 찬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던 서초동 대법원 건물 앞에서 아버지는 내내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마침내 눈을 뜨며 나에게 던진 말씀은 뜨거웠다. 

"다시... 검찰에 진정서를 낼 거야.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끝까지, 끝까지...싸울 거야. 도와줘." 

아버지가 바라는 꿈은 지난 2009년 12월에 해체된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예산 낭비'라며 강제 해체시킨 군 의문사위를 다시 발족시켜 공정하고 객관적인 수사로 모든 사망 군인의 진실을 밝히는 것. 왜 그날 내 아들이 3발이나 총을 맞고 죽었는지, 그게 말이나 되냐는 의문에 상식적인 답을 들려줄 조사기구가 다시 만들어질때까지 아버지는 싸움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가 이 꿈을 만드는 힘이 되고 싶다. 그 꿈을 응원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기다린다. 허원근 일병을 애도하며 '진실은 끝내 침몰하지 않음을' 이 연극, <이등병의 엄마>가 약속하려 한다. 함께 해 주시라. 
☞ 당신의 이야기도 '뉴스'가 됩니다. 지금 시민기자로 가입하세요!   ✎ 시민기자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트럼프 당선자에 이어 디트라니 대사까지 대북 정책 근본적 변화 주문

북한 핵미사일, 트럼프의 선택은?트럼프 당선자에 이어 디트라니 대사까지 대북 정책 근본적 변화 주문
▲ 트럼프 당선자가 지난 2일 자신의 트위트에 북핵 문제에 대한 의견을 기재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지난 2일 “북한은 미국의 일부 지역에 도달할 수 있는 핵무기 개발의 최종 단계에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North Korea just stated that it is in the final stages of developing a nuclear weapon capable of reaching parts of the U.S. It won't happen!”라는 트윗을 날린데 이어, 디트라니 전 6자회담 대북협상특사가 6일 미 공영방송 NPR에 출연해 같은 맥락의 발언을 해 ‘미국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온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일고 있다.

조지프 디트라니(Joseph R. DeTrani)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동아시아국장 출신으로, 미 정부 사정에도 밝은 대북전문가로 통하며 현재 정보안보연맹(INSA)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디트라니는 방송에서 “북한이 미 본토에 도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가 임박했다. 2017년에 ICBM을 시험 발사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거가 무엇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는 “북한은 사거리 4,000Km에 이르는 ‘무수단’을 성공시켰다. 최근 KN-08을 언급하고 있는데, KN-08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다. KN-08은 9,000Km로 미 본토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간다”라며 오랜기간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핵탄두의 탑재 능력과 관련해서도 ‘가능하다’라고 답했다.

▲ 조지프 디트라니(Joseph R. DeTrani)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동아시아국장 출신으로, 대북전문가다.

이어 디트라니는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갖고 있다면 미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대해 “우리(미국)는 북한과 마주앉아야 한다. ‘무수단’으로 한국, 일본은 물론 괌까지 (미국의) 통제권을 벗어나고 있다. (북한이) ICBM을 시작하면 미 본토가 위협받는다. 그 전에 해결해야 한다”라고했다. 또한 “지금까지 미국의 대북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라고 자평하면서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 체결,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북한) 정권을 교체하려는 적대정책 폐기 등을 다루는 것으로 대북정책의 변화를 주문했다. 왜냐하면 이런 의제가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이유'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의 하늘에 북한 핵미사일이 떨어지는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라며 인터뷰는 끝났다.

트럼프 당선자가 말한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It won't happen!”이 디트라니의 주문을 (트럼프가) 접수한 것이라면, 2017년 북·미 간에 혁명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icon흔들리는 공조, 사드 배치 막을 수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근혜-김기춘, '우리 안의 박정희'가 키운 괴물

 

[김당의 나까프 ⑥] '신(新) 김기춘뎐' (5) : 김기춘의 몰락과 '72년 체제'의 종언

17.01.11 11:35l최종 업데이트 17.01.11 11:35l

 

 

☞'신(新# 김기춘뎐' #4# "난 깨끗한 비단옷 입은 아낙네" 김기춘 '악의 평범성' 보여주다)

"김영삼이 국가부도로 국가경제를 무너뜨렸다면, 박근혜는 국기문란으로 국민의 영혼을 '결딴'냈다. 김영삼은 박정희 유신정권이 자신을 제명하자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어록을 남겼다. 박정희 딸에게는 '칠푼이'라고 독설을 날렸다. 왜 그런 비판과 독설을 했는지 이제 와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정희가 비명횡사한 10월 26일이 지나고, 우리는 지금 국민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야 나라가 바로 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부닥쳤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26일 "김영삼의 '칠푼이' 독설... 이제야 이해가 된다"(http://omn.kr/lffo)에서 이렇게 썼다. 10월 26일은 박근혜 정권의 '조종'을 울린 날이다. 그 이틀 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한 날, JTBC는 최순실의 국정 개입 의혹을 입증하는 태블릿PC 문건을 공개했다. 이튿날 박 대통령은 다시 카메라 앞에 서서 "일부 연설문과 홍보물 표현 등에서 도움받은 적 있다"고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르-K스포츠재단과 최순실-차은택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고, 다음날 '최순실 의혹'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했다. 

검찰이 대통령이 지시해 만든 재단을 압수수색한 것은 '조종'을 울리는 신호탄이었다. 공교롭게도 10월 26일은 1979년 아버지 박정희가 심복의 총탄에 쓰러진 날이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최후진술에서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는 동향 출신이고 은인이며 상관이다. 친형제만큼 가까운 관계다. 그러나 많은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대통령 한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0.26사건 촉발한 부마항쟁의 뇌관은 김영삼의 국회의원직 제명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10월 27일자)와 대통령 시해 사건에 대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의 중간수사결과 발표(10월 28일자)를 전한 동아일보 1면. 전두환 합수본부장과 소복 입은 박근혜의 사진이 눈에 띈다.
▲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10월 27일자)와 대통령 시해 사건에 대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의 중간수사결과 발표(10월 28일자)를 전한 동아일보 1면. 전두환 합수본부장과 소복 입은 박근혜의 사진이 눈에 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관련사진보기


10.26사건 이틀 후인 10월 28일 계엄사 합수본부장(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대통령 시해사건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동아일보> 1면에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전두환 소장의 사진과 소복을 입고 빈소에서 분향하는 '큰영애 박근혜'의 사진이 실렸다. 이때만 해도 '박정희의 양아들'로 불린 전두환 소장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또 한 번의 쿠데타로 집권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전두환 합수본부장은 최종수사결과 발표에선 김재규가 대통령이 되려는 망상을 갖고 대통령을 시해했다고 발표했다.

 

10.26사건이 발생한 원인에 대한 분석은 여러 갈래다. 차지철과의 알력과 박정희에 대한 불만의 표출(합수부 발표), 부마사태 현장 시찰 후 박정희 정권의 정당성에 회의(김재규 주장), 박정희의 핵개발 추진에 따른 미국의 개입-조장설(시중 음모설) 등이다. 그러나 YH사건-김영삼총재 제명파동-부마항쟁으로 이어진 역사의 흐름을 보면, 부마사태가 격화되면서 위기에 직면한 정치권력의 내분이 빚은 필연적 귀결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건 발생 당시의 정황을 보면, 김재규는 사건 당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궁정동 별관에 대기시키고,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차지철 살해를 암시하는 등 사전에 '거사'를 기획했다. 그럼에도 만찬 도중에 박정희가 부마사태를 중앙정보부의 정보부재 탓으로 돌려 김재규를 질책하고, 차지철 또한 과격한 어조로 그를 공박한 것이 김재규의 '거사'를 결행토록 만든 비등점이 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부마항쟁의 진압을 둘러싸고 권력 내부에서 온건한 대응이 정국혼란을 키웠다는 강경론(차지철의 "탱크로 확 밀어버리자")이 득세한 가운데, 당일 박정희-차지철이 김재규를 면전에서 질타한 것이 그의 분노의 방아쇠를 격발시킨 것이다. 그 긴박했던 상황 속에서 김재규가 내뱉은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놈(차지철)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올바로 되겠습니까?"라는 격정의 쓴소리 속에 10.26사건이 발생한 배경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10.26사건은 박정희 1인독재 유신체제의 장기화에 따른 정치-경제적 모순이 반정부 시위로 폭발한 가운데 위기를 맞은 권력 내부의 암투와 맞물려 빚어진 필연적 귀결로 볼 수 있다. 그것을 촉발한 닷새 간의 부마항쟁을 격발시킨 뇌관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국회의원직 제명파동이었다. 결국, 박정희가 김영삼이라는 '닭의 모가지'를 비튼 것이, 김재규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원인이 됐다.

박정희 다시 부활시킨 김영삼, 김기춘은 김영삼 당선 일등공신
 

 지난 1989년, 당시 김기춘 검찰총장이 검찰청에서 현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지난 1989년, 당시 김기춘 검찰총장이 검찰청에서 현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박정희의 죽음으로 1972년 10월 17일(대통령 비상조치)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꼬박 7년간 지속된 유신체제는 종말을 고했다. '인간 박정희'는 심복이 쏜 '흉탄'에 맞은 비극적 죽음으로 인해 신화가 되었다. 유신체제에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대행하다가 유폐된 '유신공주 박근혜'도 그와 더불어 유사 신화가 되었다. 그로부터 18년 뒤에 박정희를 부활시킨 것은 단군 이래 최대의 환란(換亂)을 초래한 김영삼 정부였다. 

IMF 환란은 70년대부터 누적된 재벌 특혜와 정경유착, 관치 금융이 핵심인 박정희 성장모델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부실한 국정운영 책임이 면제될 순 없었다. 10.26 이후 유폐된 '유신공주'박근혜가 정치의 전면에 나선 계기도 국가 부도 위기였다. 고도성장을 겪다가 난생 처음 마이너스 성장과 환란으로 대량해고에 직면한 대중은 다시 박정희를 소환했다. 박정희를 죽인 것도 김영삼이지만 부활시킨것도 김영삼인 셈이다. 

그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우리가 남이가'로 영남 100만표를 더 결집시켜준 고향(거제시 장목면)과 학교(경남고) 후배 김기춘이었다. 김기춘은 유신헌법을 기초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국회해산권 등 초헌법적 권한과 정수의 1/3에 해당하는 국회의원 및 법관의 임명권을 부여함으로써 대통령 1인독재를 가능케 해준 악법이었다. 김기춘은 나중에 김영삼이 '칠푼이'라고 독설을 날린 박근혜의 비서실장이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박정희는 유신체제 7년을 포함해 무려 18년을 통치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그에게 원한을 산 사람도 많지만 신세를 진 사람도 많다. 박근혜 정부에선 박정희 시절에 복무한 공직자들의 2세들이 유난히 많이 기용되었다. 이른바 '박정희 키즈'들이다.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서종철 전 국방장관의 아들)과 류길재 통일부장관(류형진 전 국가재건최고회의 고문, 국민교육헌장 초안 작성), 그리고 김준경 KDI 원장(김정렴 전 비서실장 아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인사는 김용준 총리후보자의 낙마와 윤창중 대변인의 성추행 등으로 초장부터 삐걱거렸다. 2세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통솔할 사령탑이 필요했다. 허태열 비서실장이 조기 하차하고 감기춘이 유신공주의 비서실장으로 등장한 배경이다. 5.16장학생 출신인 그는 신직수 법무장관밑에서 유신헌법 초안을 기초했고, 그후 부장검사로 승진해 중앙정보부에서 대공수사국장으로 5년간 근무했다. 그런데 1979년 청와대로 옮겨 드디어 최고 권력자의 지근 거리에서 법률비서관으로 막 비상할 찰나에 10.26사건으로 날개가 꺾였다. '유신공주'도 그때 유폐되었다. 

'박정희 키즈'와 '올드 보이' 김기춘의 귀환

절정기에 날개가 꺾인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감했기 때문일까? 일흔다섯의 김기춘을 비서실장으로 앉힌 것은 국민에게 뜻밖의 인선이었지만 유신공주에게는 '뜻한 바'였다. 누가 뭐래도 박근혜는 '박정희의 후광'으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대표적 2세 정치인이다. 박정희 유신체제에 복무한 공직자의 2세들을 지휘-통솔하는 데는 유신헌법을 기초하고 유신체제를 유지한 '유신 본당'의 귀환이 제격이었다.

김기춘은 이미 2007년 대선 한나라당 경선 때 박근혜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부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했다. 언론은 그와 김용갑 전 의원,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등 박근혜를 도운 원로 자문그룹을 '7인회'라고 불렀다. 특히 김기춘은 2013년 7월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맡아 박정희-박근혜 2대에 걸쳐 '윗분의 뜻을 받든' 끈끈한 인간관계를 유지했다. 

사람들이 '올드 보이'의 귀환을 우려한 것은 박정희 시대로의 회귀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 우려는 반대세력을 긴급조치로 억압했던 박정희 DNA(유전자)가 다시 발현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정국의 주요 고비마다 김기춘을 비롯한 7인회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당사자들은 어디까지나 '자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분명한 사실은 7인회 멤버 중에서 유신공주의 지근거리에서 직접 국정에 참여한 '올드 보이'는 김기춘이 유일했다는 점이다. 

그 '올드 보이'가 비서실장으로 재직한 동안 청와대에서는 대기업을 갈취해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들고,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블랙 리스트' 뿐만 아니라 '적군 리스트'까지 만든 사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또한 SBS가 입수한 문체부 블랙리스트(타소관 확인리스트)에 따르면, 문체부는 국정원의 첩보로 검증을 받아 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골방에서 기획된 이런 은밀한 정경유착과 문화공안 통치는 박정희 유신정권의 정보정치와 철권통치의 변주곡이다. 반대세력에 대한 직접적 탄압이 배제와 차별로 세련(?)되게 바뀌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문화융성을 4대 국정지표로 삼아 주요 정책 집행에 수천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하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은 단지 '윗분'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적'이나 '불순세력'으로 규정하고 정부예산 집행 대상에서 아예 제외함으로써 국민세금을 사유화한 것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과 이념을 기준으로 국민을 내편과 네편으로 가르는 이런 배제와 차별의 공안통치는 본질적으로 '72년 체제'의 산물이다.

72년체제... 일-중은 국교 정상화, 남북한은 독재 강화해 국민 탄압
 

 [표] '72년 체제'를 만든 사건들
▲  [표] '72년 체제'를 만든 사건들
ⓒ 김당

관련사진보기


장덕진 교수(서울대 사회학과)에 따르면, 72년 체제는 "정치적으로는 유신, 경제적으로는 중화학공업정책, 조세 및 복지정책에서는 소득세와 기업 부담을 줄이고 간접세에 의존하는 저부담 저복지 체제가 도입된 해"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도 유신체제라는 용어는 사용하지만, 장 교수의 말처럼 72년체제는 학문적 시민권을 얻은 적이 없다. 72년 체제는 오히려 국제정치에서 일-중 또는 중-일 관계를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한다. 

일-중 관계에서 72년 체제는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2. 21)에 이은 다나카 일본 총리의 중국 방문(9. 25)으로 전격적인 일-중국교정상화(9. 29)를 이룬 것을 의미한다. 70년대 초 '아시아는 아시아의 손에 맡긴다'는 닉슨 독트린과 함께 찾아온 데탕트는 주한미군 철수론과 함께 한반도에 충격파를 던졌다. 이때 국제정세 변화의 흐름을 읽은 중국은 대만을 축출하고 UN에 가입한 이후 개혁개방으로 선회한다. 일본은 미-중 관계가 곧 정상화될 것임을 알고 재빠르게 미국보다 먼저 중국과 수교하게 된다.

남북한도 해빙의 흐름을 타고 분단 27년만에 남북 직접 대화로 7.4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는 '국내용'이었음이 머지 않아 드러났다. 박정희의 지시를 받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비밀리에 궁정동 안가에  '풍년사업'(10월유신) 팀을 가동한 것은 7.4공동성명보다 두 달 앞선 5월 중순께였다. 북한 역시 그해 4월에 김일성에게 이중영웅 칭호를 수여하고 4.15를 '민족적 대명절'로 제정해 탄생 60주년기념 행사를 개최하는 등 김일성 우상화를 시작했다. 

박정희는 그해 10월 17일 전국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이어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11. 21)해 유신헌법을 제정-공포하고, 12월 27일 제8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사실상 종신 대통령제의 시작이었다. 김일성 역시 비슷한 시기에 최고인민회의 제5기 1차회의(12. 25~28일)를 개최해 새 헌법을 공포하고, 주석제를 신설해 국가주석에 올랐다. 북한은 김일성 유일체제로, 남한은 종신 대통령제로 독재정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데탕트와 국민의 통일 염원을 악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과 일본이 데탕트라는 국제정세 변화의 흐름을 읽고 치밀한 외교전략으로 자강의 길을 가는 동안, 남북한의 위정자들은 국가의 백년대계보다는 정권을 강화하는 데 급급했다. 그들의 권력의지는 남북간의 적대적 공생-의존 관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했다. 북한체제는 경쟁자에 대한 숙청과 술타니즘(Sultanism)을 통해 김일성 우상화를 강화했고, 남한체제는 북한 위협을 전제로 '불순세력'에 대한 탄압을 합리화했다. 이처럼 일-중관계의 72년 체제와 남북한의 72년 체제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87년 체제가 72년 체제에 갇혀 있을 가능성

장 교수가 '72년 체제'를 생각한 배경은 흔히들 거론하는 87년 체제가 실제로는 72년체제에 갇혀 있을 가능성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지난해 <경향신문>에 "87년 체제라는 틀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다"면서 자신이 72년 체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이렇게 썼다. 

"민주화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한국인들 중에서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가치를 내놓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왜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가. 세계 최고 수준의 성장제일주의와 황금만능주의는 왜 사라지기는커녕 갈수록 두드러지는가. OECD에서 압도적 1위인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에도 불구하고 고령유권자의 정치적 충성도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복지로 고통받으면서도 복지를 늘리자고 하면 반대가 더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이 바로 '87년 체제가 72년 체제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다. 사람들은 87년 체제를 이야기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이른바 386세대들의 열망과 성취만을 담은 역사 해석이고, 1979년 박정희 개인의 사망으로 72년체제가 끝난 것처럼 보인 것이 착시일 가능성이 있다는 추론이다.

"1979년 박정희라는 개인의 사망과 더불어 이 체제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만약 착시였다면, 그러한 착시를 더욱 부추겼던 것은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나는 72년 체제가 하나의 제도가 되지 못하고 박정희라는 개인의 영웅담이 되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그가 사망하자 72년 체제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다른 하나는 전두환이라는 새로운 독재자의 드라마틱한 등장이었다. 그는 광주라는 무대를 통해 선명한 혈흔을 묻힌 채 등장했고, 그것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72년 체제가 끝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변주되고 내면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박근혜 탄핵을 지지하는 가운데서도 탄핵에 반대하는 자칭' 애국보수 세력'이 태극기와 함께 미국 성조기를 들고 나서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젊었을 때 박정희의 자주국방에 박수를 쳤던 이들이 나이 들어 노무현의 전시작통권환수는 기를 쓰고 반대하고 사드(THAAD) 배치는 찬성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재심 무죄사건 100건 중 대다수가 72년 체제의 산물

72년 체제가 내세운 핵심 가치는 '반공'과 '안보'였다. '한국적 민주주의'를 위해 유신헌법을 선포할 때도, 중화학공업정책을 통한 자주국방을 강조할 때도, 방위세(직접세)를 신설하고 부가가치세(간접세)를 도입할 때도 안보가 우선이었다. 72년 체제 안에서 국가안보는곧 정권안보였다. 

그러나 72년 체제 안에서 간첩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이 40년 뒤에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무죄확정 재심 사건만 100건에 이른다. 그중 상당수는 72년 체제 안에서 안보를 팔아 조작된 사건이다. 이처럼 김기춘이 기초한 유신헌법과 비상대권(긴급조치권)은 이미 역사적 심판을 받았을뿐만 아니라, 사법적으로도 악법이었음이 증명되었다.

72년 체제에서 조작된 간첩 가운데 일부는 유죄판결 당시 사형을 당했거나, 옥사를 했거나,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다. 일부는 감시와 냉대 속에서 간첩의 자식 또는 부모로 야만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72년 체제를 담당했던 박정희 정부가 '나쁜 정부'였음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실은 차고 넘친다. 그중에서도 특히 국가배상금관련 통계자료를 보면, 박정희 정부가 역대 정부 가운데서 공권력의 불법행위를 남발한 가장 '나쁜 정부'였음을 알 수 있다(관련기사는 다음 편에 이어짐).

국가예산과 국민세금을 동원한 배제와 차별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반(反)한다. 반헌법이다. 박근혜의 오늘은 '박정희 신화와 그 후광'을 빼놓고 설명이 안 된다. 김기춘은 '대를 이은 나쁜 정권 충성하기'의 표상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와 김기춘은 '우리 안의 박정희'가 키운 괴물일지도 모른다. 79년 10월 김재규가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듯이, 우리는 지금 '우리 안의 72년 체제'를 죽이기 위해 '우리안의 박정희'가 키운 박근혜와 김기춘의 목을 비틀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다음 편에는 국정원의 대외비 자료를 근거로 박정희 정부가 얼마나나쁜 정부였는지를 보여주는 신김기춘뎐 마지막회가 이어집니다.)

☞ 당신의 이야기도 '뉴스'가 됩니다. 지금 시민기자로 가입하세요!   ✎ 시민기자란?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국가정보원 대외비 자료와 직원 인터뷰를 토대로 '국정원 흑역사'를 파헤친 <시크릿파일 국정원>(메디치미디어, 2016)의 저자로,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본부장(편집국장)을 지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카터 미 국방 "北ICBM, 위협 안되면 격추까진 필요없어" 대폭 후퇴

카터 미 국방 "北ICBM, 위협 안되면 격추까진 필요없어" 대폭 후퇴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7/01/11 [10:4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10일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재임 중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이틀전인 8일에 했던 "북한 탄도미사일 미국 위협시 격추할 것"이라는 강경발언에서 대폭 후퇴를 한 "北ICBM, 위협 안되면 격추까진 필요없어"라고 발언하였다. 이는 결국 "격추불필요" "격추불가"를 말 하는 것으로서 이틀만에 대 조선 유화발언을 하였다.     © 이용섭 기자


10여일(현지 시간)후 물러나게 될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8일 미 NBC방송과의 대담(인터뮤)에서  "北ICBM, 위협 안되면 격추까진 필요없어"라고 발언하여 이틀 전에 했던  "북한 탄도미사일 미국 위협시 격추할 것" 이라는 강경발언에서 대폭 뒤로 물러섰다.

 

당초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조선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국들을 위협할 경우 격추할 것"이라고 강경발언을 했었다. 그러나 애슈턴 타커 미 국방장관은 8일에 했던 자신의 대 조선 강경발언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10일 임기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북한) 미사일이 위협적이면 요격하겠지만 위협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반드시 요격할 필요는 없다"는 카터의 발언을 전한 AFP통신의 보도를 인용하여 연합뉴스가 전했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이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위협이 안된다면 굳이 격추할 필요가 없는 이유로 "우선 요격 미사일 재고를 아끼고 다음으론 (북한 미사일의) 비행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에) 더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굳이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요격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을 했다고 AFP의 보도를 인용하여 연합뉴스가 전했다.

 

한편 애슈턴 카터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ICBM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강경 발언과는 대비된다며, 조지프 던포드 미군 합참의장도 카터 장관의 발언에 같은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차기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 물러나는 카터 장관과는 달리 던포드 합참의장은 합참의장직을 그대로 맡을 예정이다."는 로이터통신보도를 받아 연합뉴스가 보도하였다.

 

한편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8일 미 NBC방송과의 대담(인터뷰)에서 "조선의 핵 능력과 탄도미사일 개발계획(프로그램)은  '심각한 위협'이고, 국방부의 임무는 '북한보다 한 발 앞서 있는 것'"이라면서 조선이 만약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시험을 하게 된다면 적극적으로 격추에 나설 것이라고 강경한 발언을 했었다.

 

하지만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불과 이틀 후 그의 임기중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이전에 했던 강경한 발언에서 대폭 뒤로 물러나 "北ICBM, 위협 안되면 격추까진 필요없어"라고 발언을 하였다. 이는 실질적으로 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시험을 해도 격추하지 않겠다거나 혹은 격추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까지 해석을 할 수가 있다.

 

요즈음 오바마정부 퇴임을 10여 일 앞 둔 시점에서 미 행정부 고위 관료들이나 전문가 그리고 언론들이 나서서 대 조선 강경발언들을 쏟아냈는데 정작 국방을 담당하는 국방장관이 "격주무용론" "격추불가론"을 언론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밝혔으니 대 조선 강경발언들은 완전히 그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물론 1월 20일 출범하게 되넌 도널드 트럼프 신정부에게 가장 큰 핵심문제이자 중대한 문제는 세계의 수많은 언론들이나 전문가들이 평하고 있듯이 조선의 핵 과학기술의 뚜렷한 향상과 《단 · 중 · 장거리》 미사일의 사거리 연장과 정확성, 정밀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선의 핵, 미사일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미국이 동맹국을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애슈턴 카터가 강경발언을 한 이틀만에 대폭 뒤로 물러선 유화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항상 "우리의 핵 폭발력의 한계가 없다." "우리 미사일의 사거리에는 한계가 없으며, 폭발력에도 한계가 없다." "적들이 지구상 그 어디에 숨어 있어도 단 한 놈도 모조리 격멸소탕할 수 있다.",,,,라고 끈임없이 강조해오고 있다. 이제 미국은 조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양 국간의 정상적인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대폭적인 대 조선 정책전환을 해야한다. 그 길은 오로지 《조미평화협정체결》밖에 없다. 그 길만로 가는 것만이 세계의 평화를 담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된다.

 

조선의 핵물리학자인 리학남은 "우리에게는 원쑤들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릴수 있는 소형화된 핵무기들과 그 운반수단들초정밀타격무기들이 있고 지금 실전배비되여 발사명령만을 기다리고있다."라고 강조하여 이미 소형화, 경량화된 핵무기가 실전배치되어 있음을 밝혔다. 계속하여 그는 "우리는 핵탄두폭발시험과 핵탄두장착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탄도로케트시험발사를 비롯하여 공화국의 자위적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갈 것"이라고 조선의 핵 물리학자들의 의지를 전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조선이 공개하는 핵 과학기술의 진전과 미사일기술에 대해 더 이상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정책을 세워야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해법이 생기게 마련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거의 완벽하게 아무것도 안 한 유엔총장, 반기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1/11 11:49
  • 수정일
    2017/01/11 11: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충렬의 정권+교체] 누가 '영혼없는 대통령'을 권하나?
이충렬 작가  2017.01.11 08:50:33

 
곧 있을 대선에서 '영혼이 없는 대통령'이 뽑힐 가능성은 혹시라도 없을까? 이번 주 귀국하여 본격적으로 차기대선에 뛰어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막스 베버가 최초로 설파한 '관료는 영혼이 없다'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널리 희자되곤 한다. 한국사회를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관료사회를 묘사할 때 이 말만큼 정곡을 찌르는 말은 없다. 
 
반기문 전 총장은 1970년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무공무원으로 관료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22년동안 유신독재와 전두환 독재, 그리고 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주미대사관 참사관, 본부 미주국 국장, 장관특보 등을 거치면서 출세의 발판을 닦았다. 특히 1985년 노신영 국무총리의 의전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권력핵심과 줄이 닿아 장래의 출세를 예약하였다. 노신영 전 국무총리는 지금도 반기문이 가장 존경하는 멘토라고 한다.  
 
60년대 박정희독재가 강화되던 시절 그가 학생시절에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없다. 공무원으로서 그는 유신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미화하는 본국의 훈령을 충실히 홍보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광주시민학살도 북한의 사주를 받은 불순세력의 폭동이라는 전두환 정권의 공식 설명을 충실히 홍보하였을 것이다. 그는 관료로서 독재정권에 부역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이나 가책없이 오로지 개인의 성실과 노력으로 승진과 출세 코스만 바라보고 위로 달리는 인생을 걸었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도 그는 대통령외교안보 수석비서관과 외교통상부 차관을 역임하는 등 승진가도를 달렸다. 모두의 부러움을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코스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한국의 외교정책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기였다. 냉전기간 우리 외교의 원칙이었던 북한과의 대결정책을 평화와 화해정책으로 정책의 기조를 극적으로 전환하였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이나 개성공단의 설립 등 새로운 대북정책을 시현하였다. 또한 미국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었던 외교정책을 한국의 능동적 역할 중심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대전환의 시기에 반기문이 단순 실무 이외의 족적을 남긴 것은 없었다. 육사출신의 보수적 군인이었던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김대중 대통령과 팀을 이뤄 남북관계의 새 장을 개척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반기문은 그저 '실무적으로만' 존재하는 외무관료였다. 정책의 철학이나 패러다임의 전환은 그의 관심밖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영혼없는 실무자'였던 셈이다. 
 
인맥이 전혀 닿지않은 노무현정부 시절에도 행운의 여신은 그의 편이었다. 2003년 대통령 외교보좌관을 스타트로 2004년에는 외교통상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곧이어 그에게 인생 최대의 행운이 다가온다. 유엔 사무총장은 대륙별로 돌아가면서 호선하는 시스템이었는데, 2007년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아시아 몫이었다.  
 
원래 이 사무총장 자리를 노렸던 인물은 중앙일보의 사주 홍석현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의하면, 그는 유엔 사무총장을 거치고 대통령에 도전하겠다는 플랜을 세웠다고 알려지는 야심가였다. 그는 이 플랜의 첫 단계로 2005년 노무현 정부의 아그레망을 들고 주미 대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 해 말 갑작스럽게 터진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중도하차하였다. 홍석현 대사의 불행은 반기문의 행운이 되었다. 승진과 출세에 동물적 감각이 뛰어난 반기문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유엔 사무총장 도전의사를 밝히고 그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내 마침내 자신이 꿈에서도 꾸어보지 못했던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다.   
 
유엔의 사무총장은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을 중심으로 줄타기의 파워게임을 하는 것이 주된 작업이다.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완충하면서 국제적 난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주된 임무다. 물론 상임이사국 중에서도 미국이 가장 입김이 센 나라인 것은 말한 필요도 없다. 역대 약소국 출신의 사무총장 중에서도 일부 소신파는 강대국의 압력을 뿌리치고 강대국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 총장도 있었다. 코피 아난 직전 총장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 
 
반기문 총장은 물론 여기에서도 그의 특별한 재능을 발휘한다. 그는 평생 권력에 충성을 바치고 대세를 따른 사람이다. 유엔에서 그는 미국의 충실한 대리인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받는다. 그래서 나온 말이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사무총장'이라는 말이다. 소신을 내세우지 않고 원만함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기름장어'니 하는 별명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여기서 반기문의 일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나온다.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게 실무력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반기문은 국내에서 고위직을 지낼 때나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당대의 권력과 충돌하면서 가치를 추구한 적이 없다.  
 
반기문을 차기 대통령으로 미는 사람들 중에서 유엔 사무총장으로 얻은 경험과 네트워크가 통일 문제나 북한 핵 문제를 푸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황당무계한 주장이다. 실적을 보면 안다. 그가 사무총장을 지낸 지난 10년간 남북한 관계는 최악으로 발전(?)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북한 핵 문제를 아예 어젠다에서 제외하였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남북의 모든 대화 채널을 끊어버렸다. 북한은 이제 미국을 겨냥하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남한은 개성공단조차 폐쇄하는 등 지난 20여년 쌓아온 남북관계는 완전히 냉전시대로 되돌아갔다. 
 
이 와중에 반기문은 완벽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남북관계에 관한 철학도 노력도 보여준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오로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장단을 맞추었을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영혼없는 대통령'을 필요로 하는 시기인가? 금년 초 한국경제신문과 MBC는 공동여론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차기 정부의 국정과제에 대하여, 국민들은 부정부패 척결 (29.9%), 경제위기 극복 및 성장 (26.7%), 민생문제 해결 (18.4%), 양극화 및 불평등 해소 (8.7%)를 들고 있다고 한다. 하나 같이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굳건한 철학과 강인한 개혁의지로 무장하여 기득권세력과 싸워야 할 과제들이다. 한경과 MBC는 이 여론조사의 결과에 대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분노한 국민이 그동안 쌓인 적폐청산을 차기 정부의 최우선과제로 보고 있다고 분석한다. 
 
앞에서 본 국정과제 중에서 반기문 전 총장이 제일 잘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반기문은 아니다라는 결론만 나온다. 그는 민생과 동떨어진 외교관 생활만 한 사람이다. 경제와 민생을 알 리가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10년씩이나 국내에서 유리된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기득권 네트워크의 한복판에서 큰 사람이다. 그가 무엇을 어떻게 개혁을 하겠는가? 평생을 영혼없는 공무원 생활을 한 사람이 이제 와서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의 철학과 소신을 어떻게 발휘하겠는가?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은 집무실에 이런 글귀를 항상 비치했다고 한다. '모든 책임은 여기서 멈춘다.' 대통령 직은 누구에게 책임을 미루는 자리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의 모든 책임이 마지막으로 귀결되는 자리가 바로 그 자리다. 국민들이 탄핵한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이번에 또 다시 '영혼없는 대통령'을 권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세월호 7시간 답변, 탄핵 결정적 증거 나왔다.

법정에 제출한 공식적인 해명이 어떤 문제점을 가졌는지 알아봤습니다
 
임병도 | 2017-01-11 08:59: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이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진행 중인 헌재가 당시 행적을 제출하라고 지시한 지 19일 만이었습니다.

10일 헌재에 제출한 세월호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은 지난 11월 19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나왔던 “세월호 당일, 이것이 팩트입니다”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홈페이지(28개)보다 5개가 늘어났고, 행적에 대한 설명만 조금 체계적이었을 뿐입니다.

“오후 3시35분경 미용 담당자의 머리손질”이 추가됐는데, 이 부분은 언론 보도와 국조특위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자료를 보면 ‘보고서 검토’와 ‘전화 통화’ 등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에 그칩니다.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별로 없습니다. 결국, 헌재는 통화 기록을 제출하라는고 합니다.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답변을 보면, 오히려 탄핵에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의혹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법정에 제출한 공식적인 해명이 어떤 문제점을 가졌는지 알아봤습니다.

① 세월호 참사를 인지한 시각은?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를 언제 알았을까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세월호 침몰을 처음 알게 된 시각은 오전 9시 19입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9시 24분에 안보실에서 문자로 상황을 전파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헌재에 제출된 자료를 보면 “10:00경 국가안보실로부터 08:58 세월호 침수 사고에 대해 처음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9시 24분 문자로 사고를 인지한 것인지, 10시에 서면으로 보고받았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진성 헌법재판관은 “답변서에는 우선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에 대한 최초 인지 시점이 언제인지가 나와 있지 않다”며 “TV 등을 통해서 (사고가) 오전 9시 조금 넘어서부터 보도됐는데, 대통령이 TV를 통해서 확인하지 않았는지를 밝혀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해경 첫 구조선인 123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9시 34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9시 24분에 사고를 제대로 인지했다면, 알고도 제대로 구조 명령을 내리지 않은 셈이 됩니다. 만약 10시에 인지를 했다면 구조를 할 수 있는 최초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됩니다.

② 긴박했던 순간, 53분 동안 전화 통화가 없었다.

10시 서면 보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해경청장과 전화 통화를 합니다. 그런데 오전 10시 30분부터 오전 11시 23분까지 53분 동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화 기록이 없습니다. 대리인단은 이 시간에 서면 보고를 검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 박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합니다.

오전 10시 30분은 탑승객 470명 가운데 고작 70명만이 구조됐을 시간입니다. 오전 11시 23분까지도 구조 인원은 161명에 불과했습니다.

국가안보실이 11시 20분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선수 하단부만 빼고 뒤집혀 선체가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세월호 사진이 첨부돼 있었습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배가 뒤집힌 상황에서 구조인원이 161명에 불과하면, 도대체 왜 구조를 하지 않느냐고 난리가 났어야 정상입니다. 국민들의 생명이 차가운 물 속으로 점점 들어가는 중요한 순간에 보고서만 붙잡고 있었다는 자체가 이미 탄핵 사유로 차고도 넘칩니다.

③ 서면 보고서는 누가 전달했나?

박근혜 대통령이 받았다는 서면 보고는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윤전추 행정관은 오전 10시에 ‘급한 서류’가 와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윤 행정관은 ‘당시 박 대통령은 문을 나와서 서류를 받아 갔다’라고 진술했습니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12시 5분과 12시 33분에 서면 보고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시각 윤전추 행정관은 관저 집무실에는 들어간 적이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 그날 관저 출입은 당일 오전 피청구인의 구강 부분에 필요한 약(가글액)을 가져온 간호장교(신보라 대위)와 외부인사로 중대본 방문 직전 들어왔던 미용 담당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이 제출한 세월호 당일 행적)

대통령 대리인단은 세월호 참사 당일 간호장교와 미용 담당자 외에는 관저에 출입한 사람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직접적인 서류 전달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서류로는 보고서가 올라가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이메일로 보고를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메일을 보내고 수신했던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아직 뚜렷하게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메일로 보고서를 받았는지 아닌지가 나와야 합니다. 만약 그 기록이 조작됐거나 수신이 되지 않았다면, 박 대통령은 제대로 사건 보고도 받지 않고 엉뚱한 짓을 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④ TV도 없었던 관저, 왜 청와대 벙커에 가지 않았나?

박근혜 대리인 측은 “청와대는 어디든 보고받고 지시·결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으며 대통령의 일상은 출퇴근의 개념이 아닌 24시간 재택근무 체제”라고 말했습니다.

수시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TV로 사고를 인지했는지는 제대로 해명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윤전추 행정관은 관저 집무실에는 TV가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벙커에 국가안보종합상황실을 설치했습니다. 상황실에는 국내 23개 주요 정부기관으로부터 실시간 전송되는 위기-재난 현장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자상황판(KNTDS 시스템)도 있었습니다.

육해공군뿐만 아니라, 경찰청, 산림청, 소방본부, 한전 원자력 상황실의 정보가 청와대로 연결됐습니다. 심지어 한반도 주변을 운행 중인 항공기와 선박의 정보도 나왔습니다.

달랑 노트북 하나만 있는 관저 집무실에서 근무했다는 대통령 대리인측의 변명은 도저히 이해될 수 없습니다. 마치 4K 영상으로 통화할 수 있는 위성 전화가 있는데, 손으로 쓴 편지로 소식을 전달한 상황과 같습니다.

‘탄핵 사유의 결정적 증거’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 측은 ‘오전 10시에 세월호 사고 발생 보고를 처음 받았다’라고 밝혔습니다. 사고 상황이 전파된 9시 24분에서 무려 36분이나 지난 시각입니다. 이미 수많은 생명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것입니다.

대리인 측이 제출한 자료를 보면 ‘구조 상황을 보고 받고 보고된 상황에 따른 지시를 하는 등의 대처를 하다가 15:00경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국가안보실이 11시 20분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승선원 474명 구조작업 중’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전 11시 현재 161명 구조’에 선체가 뒤집힌 ‘세월호 현재 상태’라는 사진도 있습니다.

이런 보고서를 11시 20분에 읽었는데 어떻게 오후 3시에 상황이 심각하다고 인지를 했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골든타임을 놓치고, 대통령으로서 사고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등 직무 유기를 했습니다. 헌법 제10조에 보장된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입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충분하다 못해 넘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23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재인은 기득권 세력", 박원순 시장은 왜 화가 났나

 

'측근 빼가기', '자리 나눠먹기' 정황 있다고 판단한 뒤 작심 발언

17.01.09 21:28l최종 업데이트 17.01.09 22:26l

 

 

 박원순 서울시장이 26일 오전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2017년도 서울시 청년보장사업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문재인도 청산 대상'이라고 한 발언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박 시장이 작년 12월 26일 오전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2017년도 서울시 청년보장사업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 서울시제공

관련사진보기


대통령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박원순 서울시장이 8일 전주에서 지역 언론인들과 만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청산의 대상이지 주체가 될 수 없다", "문 전 대표는 기득권 세력"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것을 놓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시장은 문 전 대표와 관련해 "기득권이 된 사람", "지금의 민주당은 기득권에 기반을 둔 폐해가 적지 않고 당내 '줄 세우기'도 심각하다", "심지어 다음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사람까지 찍어놨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라며 비판했고, 이에 대한 누리꾼 반응도 엇갈렸다. 발언과 관련해 '난데없는 총질 발언' '정치꾼'이라는 비판과 함께 '소신 발언'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호평도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정치권, 특히 야권에서도 박 시장의 발언에 대해 "이렇게 수위 높은 발언을 할 줄은 몰랐다"며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박 시장은 왜 갑자기 '친문(재인) 패권 청산' 발언을 쏟아냈을까?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박 시장은 민주당의 '친문패권'에 대한 정황을 나름대로 파악한 뒤 논란이 된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하는 모 전직의원에게 차기 서울시장 선거 후보를 보장하고 문(재인) 측에서 데려갔다" "전북의 누구는 복지부 장관에 내정돼 있다는 얘기도 하더라"는 말이 박 시장의 귀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문재인 캠프가 차기 정부 집권을 일찌감치 상정하고 벌써부터 '자리 나눠먹기'를 하고 있다는 판단이 박 시장의 '문재인 청산' 발언에 깔린 셈이다.

박 시장의 의중을 잘 아는 인사는 8일 저녁 <오마이뉴스>에 "이런 패권과 독식이 문재인 전 대표의 뜻이든, (그게 아니라) 그 (지지)세력의 뜻이든 지속되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지난 몇 년간 정국을 주도해 온 것은 문 전 대표인데, 오늘 이 사태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한, 박 시장은 문재인 캠프의 '사람 빼가기'에도 크게 낙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의 선거캠프 당시 총괄팀장을 지냈고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임종석 전 의원이 문 전 대표 측 설득으로 지난해 10월 캠프 비서실장으로 옮긴 게 대표적인 사례다. 문재인 캠프가 박 시장에 우호적인 또 다른 서울 지역 의원을 데려가려고 한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돌고 있다.

박 시장의 입장에서는 핵심 측근의 이탈과 차기 자리 보장·내정설 등의 정황들을 '친문패권'의 맥락에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박 시장 측 인사는 "지난 전당대회도 (친문이) 독식하더니 요즘 국회의원들이 다 그쪽을 (의식하고 바른 말 하길) 두려워 한다"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측근들에게 "내가 당해보니 안철수(가 문재인과 결별하고) 당을 나간 것이 이해가 되더라,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캠프 "박원순 아쉽다", 안희정 캠프 "문재인에 '통합' 리더십 있나 의문"  
 
옛 사진 함께 보는 문재인-박원순 박원순 서울시장과 새정치민주연합 선대위원장 문재인 의원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양도성 남산코스 산행 도중 스마트폰으로 사법연수원 시절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있다.
▲ 옛 사진 함께 보는 문재인-박원순 박원순 시장의 '친문 패권 청산' 발언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측에서 '차기 서울시장 후보', '복지부 장관 내정' 등 차기 집권을 상정한 '자리 나눠먹기' 정황이 감지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2014년 4월, 함께 산행 중인 박 서울시장과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선대위원장의 모습.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당내의 다른 주자들은 이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일단 문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정치 언어라는 게 참 조심스러운 것"이라며 "(박 시장 발언이) 참모진과 충분히 논의한 결과는 아닌 것 같다. 아쉽다"라면서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이어 "탄핵 가결 후 민심의 제일 큰 요구는 정권교체다. 이런 민심과 조응하면 국민 마음에 닿지만, 충돌하면 오히려 자기 지지(기반)를 무너뜨리게 된다"라면서 박 시장을 에둘러 비판했다. "(지지율로) 앞서가는 문 전 대표가 견제받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정치는 권투와 다르다. 권투는 관중이 누굴 응원하든 이긴 사람이 이긴 거지만, 정치는 국민이 응원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설명이다.

반면, 김부겸·이재명·안희정 캠프는 "친문패권이 실체가 없다고만 볼 수는 없다"며 대체로 박 시장을 거들면서도 문 전 대표에 대한 대응 수위에서는 온도 차가 뚜렷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박수현 대변인은 "안 지사는 당이든 국가든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비판 발언 관련한)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 논란 등을 보면 소위 '친노(무현)' '친문(재인)' 패권이라는 게 통합이 절실한 사회와는 잘 맞지 않는다. 문 전 대표가 당을 통합적으로 끌어왔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이 비판한 '친문패권'이 실제로 정치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평가였다.  

안 지사는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당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분은 역시 문재인 후보다. 그 후보에게 문제제기하는 것마저 비판할 수는 없다"라고 하면서도 "당에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문 후보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나서줬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김부겸 캠프 관계자는 "('친문패권주의' 논란이) 촉발된 것은 민주연구원의 개헌 관련 보고서 때문"이라며 "추미애 대표가 처음에는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해서 지켜보려고 했는데, 대책이 안 나오면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문패권주의' 실체를 대체로 인정하며, 이와 관련해 당의 공식적인 해명 및 정리가 필요하다는 견해였다.

이재명 성남시장 측 관계자는 "(대선을 놓고) 당내에서 경쟁이 이뤄지는 건 당연하고, 선의의 경쟁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서로 내부에서 음해한다든지, 사실 왜곡이나 비방 등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이재명) 시장의 견해"라고 설명했다.
☞ 당신의 이야기도 '뉴스'가 됩니다. 지금 시민기자로 가입하세요!   ✎ 시민기자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분신항거 정원 큰스님 입적, 대책위 유지계승 행동 돌입

분신항거 정원 큰스님 입적, 대책위 유지계승 행동 돌입
 
 
 
이나윤, 이창기 공동취재 
기사입력: 2017/01/09 [21:5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정원스님     ©자주시보

 

▲ 박근혜 체포, 세월호 진실규명, 한일위안부협정 폐기, 사드 반대 및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주장하며 분신하시는 정원스님,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끝까지 가부좌 정좌 자세로 분신하였다고 한다.     © 자주시보

 

지난 7일 토요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 분신한 정원스님이 이틀만인 9일 저녁 7시 40분 경 안타깝게도 마지막 호흡을 거두고야 말았다.

 

가족들은 '정원 큰스님의 분신항거 비대책위원회'의 박교일 대표에게 장례와 관련된 모든 일을 위임한 상항이다.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못했던 정원 큰스님은 특히 뒤집힌 세월호 안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박근혜 정부에서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오히려 민간잠수사들의 활동까지 가로막는 등 천인공노할 상황을 당시 팽목항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던 충격이 너무 커서 무척 괴로워했음을 스케치북 유언장에 남겼었다.

이후에도 일본군 성노예문제를 사죄도 받지 않고 완전해결을 선언해버리는 박근혜 정권을 보고 분노를 금할 수 없어 상징적 응징 차원에서 외교부에 화염병을 투척하여 8개월 감옥살이까지 하였다.

 

하여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터지자 이번에는 반드시 박근혜를 체포 구속하고 수구적폐세력을 깨끗히 청산하여 자주로 존엄 높은 통일조국을 반드시 건설해야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온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한 몸을 고스란히 바친 것이다.

 

9일 '박근혜즉각구속 정원큰스님 분신항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발표한 정원 큰스님이 분신 전, 한 권의 노트에 촛불을 든 시민들에 대한 당부의 말을 남겨 놓았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박근혜정권의 부정선거 규명과 내란범죄 처벌

    ② 한­일간 위안부합의 및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사드배치 반대

    ③ 세월호 사건의 완전한 진실규명

    ④ 자주 평화 통일 완성

 

특히 “소신공양으로 매국노 집단이 일어나는 기회를 끊고 촛불시민에게 힘을 주기 위함이다”라는 유언에서도 드러나듯이 황교한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에서 촛불을 탄압하고 수구사대매국 세력들의 준동이 거세지는 것을 보고 한 몸을 그대로 불사를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결국 정원 큰스님은 분신의 책임은 박근혜, 황교안과 같은 반민중 사대매국세력에게 있음을 역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우리 국민들은 정원 큰스님의 뜻을 기어이 이루고야 말 것이다.

 

다음은 정원 큰스님 분신항거 입적에 따른 비상대책위원회 성명이다.

 

참고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의 방이 없어서 현재 임시 분향소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층 행사장에 마련하였다. 

정식 조문은 방이 나오는 내일 오전 11시부터 받을 예정이다.

 

 

........................................................................................................

[정원 큰스님의 분신항거 입적에 따른 비상대책위원회 성명서]


1.  2017년 1월 9일 19시 40분 자주평화통일실천연대 소속 정원 큰스님이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2. 분신항거 비대위는 큰스님의 유지가 아래와 같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① 박근혜 즉각구속, 대선무효소송 속결
    ②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③ 한일위안부 합의 및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사드배치 반대

 

3. 분신항거 비대위는

   ①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 이하 시민단체 및 시민들과 함께 연대해 정원 큰스님의 유지를 계승하고 실현하기 위한 행동에 돌입한다.

   ② 정원 큰스님 입적 책임은 박근혜에게 있음을 밝히고, 박근혜와 그 일당의 구속과 처벌시까지 정원 큰스님을 보내 드릴 수 없다.

 

3. 장례위원회 구성을 위해 분신항거 비대위는 10일 10시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 및 제 시민단체에 대표자회의 개최를 (장소는 별도 공지) 제안한다

 

4. 장례위원회 구성을 위해 분신항거 비대위는 10일 10시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과 제 시민사회단체에 대표자회의 개최를 (장소는 별도 공지) 제안한다.  [2017년 1월 9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9일 오후 4시 16분, 팽목항에서 세월호 기원제 열려

1000일 맞은 팽목항, ‘미수습자 수습’과 ‘세월호 인양’ 기원9일 오후 4시 16분, 팽목항에서 세월호 기원제 열려
팽목항=임재근 객원기자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7.01.09  22:29:44
페이스북 트위터
   
▲ 세월호 참사 1000일 맞은 1월 9일 팽목항에서는 ‘미수습자 수습’과 ‘세월호 인양’을 기원하는 기원제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세월호 진상규명을 염원하며 방울종 304개를 등대 주위에 매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세월호 1000일을 맞은 2017년 1월 9일, 오후 4시 16분.

진도 팽목항 등대 앞에서는 세월호 인양 기원제가 시작되었다. 기원제의 시작은 목탁소리와 종소리가 맞춰 진도 향적사 주지 법일 스님의 집전으로 진행되었다. 이어 세월호 미수습자의 수습을 기원하며 9개의 노란 연꽃초에 촛불을 밝혔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상징하며 초와 작은 방울종 304개를 등대 주위에는 놓기도 했다. 또한 미수습자 9명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밥과 탕 9그릇을 올렸으며, 아직은 차가운 바닷속에 있지만 따뜻하게 입으라는 의미에서 배냇저고리와 털신, 흰수건을 함께 올렸다.

세월호 미수습자인 권혁규 군의 큰아버지 권오복 씨도 연꽃초를 함께 밝힌 후 팽목항을 찾은 시민들을 향해 “어제까지는 날씨가 좋았던 날씨가 천일이 되니 바람이 거세졌다”며,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찾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동생과 조카를 수습하지 못해) 지금까지 진도 땅을 떠나지 않고 있다”며, “끝날 때까지 같이 해달라”고 호소했다.

   
▲ 세월호 미수습자인 권혁규 군의 큰아버지 권오복 씨가 노란 연꽃초에 불을 붙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미수습자들에게 올리는 배냇저고리와 털신, 흰수건. 아직은 차가운 바다 속에 있지만 따뜻하게 입으라는 의미이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본격적인 기원제 공연이 등대 앞에서 펼쳐졌다.

판소리 명창 천명희 씨는 ‘심청가’에서 심봉사가 물에 빠진 대목을 불렀다. 고수 권혁대 씨는 “심봉사가 물에 빠졌지만, 결국은 화주승이 건져냈다”며, “우리 국민 모두가 물에 빠진 학생들을 건져내는 화주승이 되자는 의미에서 이 대목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금비예술단장 전연순 씨와 FCD무용단 서윤신 씨는 함께 '천일의 춤' 퍼포먼스를 진행했고, 전남 장흥에서 온 신고구려군은 ‘12월 이야기’와 ‘천개의 바람’을 불렀다.

   
▲ 금비예술단장 전연순 씨와 FCD무용단 서윤신 씨의 '천일의 춤' 퍼포먼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마지막으로 기원제 참가자들은 미수습자들이 조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염원하며 9명의 이름이 적힌 노란색 연 9개를 띄웠고, 세월호 선체 인양을 기원하는 '인양술래'로 마무리했다.

   
▲ 미수습자들이 조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염원하며 미수습자 9명의 이름이 적힌 노란색 연 9개를 날렸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삼성’이 정유라에게 사준 말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핵심은 권력을 불법적으로 이용해 사적 이익을
 
임병도 | 2017-01-10 08:57:3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제일 중요한 핵심 중의 하나는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불법적으로 이용해 사적 이익을 얻었다는 부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독대한 후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 찬성표를 던집니다. 이후 삼성전자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말을 사주고 훈련비 등을 지원합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물산 보유 주식 가치는 합병 전에는 2조 1050억 원이었는데, 합병 이후에는 1조5186억 원으로 27.9%, 약 5865억 원이 감소했습니다.

국민의 이익은 감소한 반면, 제일모직 지분만 갖고 있던 이재용 삼성부회장은 엄청난 이익을 얻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는 삼섬으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게 됩니다. 삼성이 정유라씨에게 말을 사준 과정을 정리해봤습니다.


‘삼성이 정유라에게 사준 말들:살바토르, 비타나V, 라오싱’

 

▲국제승마연맹 홈페이지에 나온 정유라씨가 승마대회에 출전하면서 탔던 말들

 

국제승마연맹에는 출전 선수들이 어떤 말을 탔는지 상세히 소개합니다. 국제승마연맹 홈페이지를 보면 정유라씨는 2014년부터 ‘로얄레드’,‘피프티 센트 6’,‘살바토르’,‘비타나 V’,‘라우싱 1233’ 등 총 5마리의 말을 타고 출전했습니다.

5마리의 말 중 ‘살바토르’는 2015년 11월 삼성이 7억 원을 주고 구입해 정유라씨에게 준 말입니다. 삼성은 2016년 2월 ‘비타나V’와 ‘라오싱’ 등 말 2마리를 모두 25억 원을 들여 사줍니다. 2014년부터 정유라씨가 탔던 말 5마리 중 3마리를 삼성이 사준 셈입니다.

승마대회에서 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승마계에서는 ‘말이 7할, 기수가 3할’이라고도 합니다. 삼성은 정유라씨에게 30억이 넘는 말을 지원했습니다. 결국, 정유라씨는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삼성으로부터 특혜를 받아, 다른 선수보다 유리하게 선수 생활을 한 것입니다.


‘삼성 박상진 사장,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리겠다’

도대체 삼성은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씩이나 정유라씨에게 말을 사줬을까요? 최순실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독대한 후 박원오 승마협회 전무를 통해 삼성에 정유라씨의 말을 사줄 것을 요구합니다.

삼성은 최씨의 요구를 받고 2015년 11월 7억짜리 ‘살바토르’를 구입해 정유라씨에게 줍니다. 그런데 이 말의 소유주는 정유라씨가 아닌 ‘삼성’으로 등록됐습니다.

최순실씨는 ‘말을 사주라고 했지, 빌려달라고 했느냐’라며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을 독일로 보내라’며 화를 냈습니다. 이 말을 전달받은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은 최순실씨에게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리겠다’라고 합니다.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의 말처럼 삼성은 2016년 2월 25억을 들여 ‘비타나V’와 ‘라오싱’ 등 말 2마리를 구입해 정유라씨에게 제공합니다.

박 사장은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최순실씨 모녀가 독일에 설립한 ‘코레스포츠’에 삼성이 280만 유로(약 35억 원)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코레스포츠의 공동대표이자 로베르트 쿠이퍼스 독일 헤센주 승마협회 대표는 “삼성이 2020년까지 최순실씨가 계획하고 있는 스포츠센터 건립 자금 등 총 2200만유로(약 280억 원)을 지원하기로 돼 있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떳떳하지 못해 자살 생각이 깊어졌다’

삼성전자 박상진 사장은 1월 9일 열린 마지막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박 사장이 국정조사 특위에 제출한 진단서와 사유를 보면 “(박 사장은) 평생 살아온 의미가 없어지고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면서 자살 사고(思考)가 심화돼 폐쇄 병동 입원 치료와 약물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박상진 사장은 경북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와 197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11년 삼성SDI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2014년 삼성SDI가 제일모직과 합병하자, 삼성전자 대외협력부문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5년 3월 승마협회장에 취임했습니다.

명문고와 서울대를 나와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사장으로 타워팰리스에 살며, 인생에 부러울 것 없이 성공한 인물, 그러나 그는 ‘떳떳하지 못한 일 때문에 평생 살아온 의미가 없어져, 자살 생각이 깊어졌다’라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은 단순히 대통령 한 사람만을 심판하는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재벌과 경영인이 어떻게 기업을 운영했고, 권력에 빌붙어 성공했는지 그 실체를 파악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공평하며 정의로운 사회”
대한민국에서 사라지는 말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기억하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23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朴 탄핵 반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

박근혜 '옹호 집회' 관찰기 "폴리스라인 밀어붙여"
[기고] 朴 탄핵 반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
김동규 동명대학교 언론광고학과 교수  2017.01.10 08:21:32
 
두 가지의 천국을 만났다. 하나는 아멘과 할렐루야가 흘러넘치지만 사실은 아귀같은 탐욕과 저주가 이글거리는 곳. 다른 하나는 다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연대의 물결이 강물처럼 고요히 흐르는 곳.
 
휴일 오후에 봉은사 근처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었다. 근데 봉은사역 계단을 오르자마자 대형 스피커 소리가 진동을 한다. 코엑스 쪽으로 군중이 모여 있고 엄청난 음량으로 "할렐루야!"가 터져나온다. 가짜 군복을 입은 해병전우회 할아버지들, 흔들리는 하이톤에 수시로 '박근혜 대통령 살려내야 한다' 중얼대는 할머니들이 가득하다. 말로만 듣던 극우 집회다.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이 무리들을 제대로 관찰하겠는가. 
 
태극기가 난무하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난데없이 집회 초입에 커다란 성조기가 펄럭인다.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부터 20대 초반 청년 그리고 늙수그레한 할머니까지, 년령도 다양한 일가족이 손팻말과 깃발을 흔들고 있다. 
 
마스크 쓰고 성조기 흔드는 청년에게 슬쩍 물어본다. "어디서 왔어요?" 인천에 있는 교회에서 참석했단다. 대절버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박사모(박근혜 대통령 팬클럽)와 어버이연합의 합동 집회라 한다. 아무래도 60대 이상 연령층이 많다. 그런데 의외로 청년층과 젊은 여성들도 적지 않다.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성조기ⓒ김동규

▲박근혜 탄핵 집회에는 '태극기'를 든 젊은이들이 꽤 눈에 띠었다. ⓒ김동규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는 사실관계가 다른 이야기들이 '구호'로 등장하기도 했다 ⓒ김동규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 포착된 한 목사. 그의 가슴에는 '스테프(STEFF)'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김동규

코엑스 앞 8차선 도로 중 4차선을 점령할 정도로 상당한 인원이다. 대형 중계 모니터도 여러 대 설치되어 있다.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은 50대 여성이 "폴리스 라인을 밀어붙여요"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혹시라도 돈받고 동원된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 유심히 면면을 살펴본다. 그건 아닌 것 같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니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상당히 열정적으로. 옆의 할아버지에게 여쭤봤다. 주로 누가 나왔냐고. 
 
말씀인즉 모임 주도는 교회 사람들이란다. 어디서 이런 인원들이 집회에 동원되는지 지금까지 몰랐다. 오늘 분명히 확인한 것은 이들 군중의 절대 다수가 극우 개신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라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무대에서 괴성 지르며 "오 주여"를 외치는 자들이 하나같이 목사들이 입는 설교복 차림이다. 실제로 무슨무슨 교회 목사님 어쩌고 군중들에게 연사를 소개한다.  
 
이 목사들이 열에 들떠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탄핵 주도하는 좌파 세력에게 벼락같은 저주를 내려주시고 우리 박대통령의 억울한 누명을 하느님께서 벗겨달라고 통성기도를 한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에서 오싹하게 묘사된, 서북청년단과 그들의 이념적 모태가 되었던 서북기독교의 악몽이 오늘에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집회의 수준과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긴 말은 필요없겠다. 코메디를 능가하는 다음 사진 한 장만 보면 된다. 연단에 올라있는 주요 목사님들이 가슴에 붙인 명찰이다. 한글로 진행(요원)이라 적고 그 위에 영어로 이렇게 써놓았다.'STEFF'. 
 
목 쉰 소리로 탄핵 반대를 외치는 기도 속에 하느님이 난무하고 역사와 정의가 춤을 춘다. 그들이 꿈꾸는 천국이 바로 저 단어들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그들만의 천국, 그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과 독선을 숨기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먹는 아귀들의 가짜 천국이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저녁 7시 경 광화문에 도착했다. 며칠 있으면 304명의 세월호 참극 희생자들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000일이 되는 날(1월 9일)이다. 차가운 맹골수도 깊은 물 속에 아직도 9명의 미수습 실종자가있다. 유가족 합창단이 눈물의 노래를 불렀다. 친구들을 잃은 9명의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무대에 올랐다. 대표 학생이 글을 읽는데 그 중에서 가장 울컥한 것은 세상을 떠난 친구들과 나중에 18살의 모습으로 서로 만나자는 말이었다.
 
손수건을 꺼내 눈시울을 닦다가 이런 확신이 들었다. 저 아이들의 희생이 이 삭막한 땅에 씨앗을 뿌린 것이라고. 그 씨앗에서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그러한 세상의 일그러진 모습에 분노하는 수백만 촛불의 꽃이 태어났다고. 그러므로 누가 나에게 천국은 어디냐고 물으면 바로 그곳, 아이들이 먼저 가 있는 그곳이 천국이라 답할 거라고.
 
뿌옇게 흐려진 시야 너머로 세월호 천막과 그 위에 펄럭이는 작은 깃발들이 보인다. 애들아 너희들을 잊지 않을께. 이 어둠이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를 묶을지라도 너희들을 위해 촛불을 절대 꺼트리지 않을게. 나는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지상의 엄마 아빠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저 높은 곳을 향해 조용히 기도를 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