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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최순실, 박근혜 선거 주도적 관여’ 증거 잡았다

[단독]검찰 ‘최순실, 박근혜 선거 주도적 관여’ 증거 잡았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ㆍ“서울→대전→대구→부산 유세” 제안 “역순이 좋겠다” 바꿔
ㆍ특검, 9일 ‘뇌물공여 혐의’ 삼성 최지성·장충기 참고인 조사

검찰이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배후에서 최순실씨(61·구속기소)가 각종 선거를 진두지휘해온 증거를 다수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8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8)의 휴대전화 등에서 나온 녹음파일들을 들어보면 최씨가 ‘문고리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과 함께 1998년 이후 박 대통령이 직접 출마하거나 간접 지원했던 선거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미공개 녹음파일에서는 한 참모가 ‘서울→대전→대구→부산’ 순으로 일정을 제안하면 최씨가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게 좋다”는 식으로 일정을 수정했다. 

검찰은 최씨가 이처럼 다양한 상황에서 핵심 조언자 역할을 해온 정황을 포착했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최씨를) 웬만한 국회의원보다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검찰이 확보한 박 대통령과 최씨, 정 전 비서관 간 ‘3자 대화’ 녹음파일 11개 중 10개는 2012년 대선이 열리기 전에, 나머지 1개는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일 때 각각 녹음됐다. 당선인 신분일 때 나눈 대화는 2012년 12월 세 사람이 식당에서 함께 식사할 때 녹음됐는데, 주로 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정무적 조언’을 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검찰은 전체 녹음파일 236개 중 일부는 청취만 하고 아직 서면용 녹취록을 만들지 않았다. 법원에 제출한 녹취록도 29건뿐이다. 최씨의 재판 도중 녹취록이 추가로 제출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94억원대 뇌물공여 혐의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실장(부회장·66)과 장충기 차장(사장·62)을 9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다. 이들을 상대로 삼성전자 등의 최씨 측 지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인지 등을 추궁할 방침이다.

두 사람은 조사 도중 피의자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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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스님, 이틀 넘기기 어려울 듯

[3신종합] 정원스님, 이틀 넘기기 어려울 듯자주평화통일의 한길, 나의 죽음 헛되지 않기를, 민중이 승리하는…
▲ 사고 당일 "웃는 사진 남기려 했는데..."라는 문구와 함께 페이스북에 사진을 남겼다. [사진출처 정원비구 페이스북]

정원 스님의 동생으로부터 치료와 관련한 일괄 위임을 받은 박교일 자주평화통일 상임대표(정원 큰스님 분신항거 비상대책위원장)는 평소 본인의 지론과 가족(동생)의 뜻에 따라 연명과 관련된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중환자실 정원스님 담당 책임 의사인 이한나 교수는 환자의 기도 상태 등에 비추어 현 수준을 유지할 때 이틀을 넘기기 어렵다는 한강성심병원의 소견을 전했다.

▲ 정원스님은 11월26일자 자신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유서 같은 글을 남겼다. [사진출처 정원비구 페이스북 ]

정원 스님의 분신 시도는 일시적인 충동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유서는 현재 검찰에 넘어가 있는 휴대폰과 테블릿pc에 기록돼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평소 SNS를 통해 몇 차례 (분신) 암시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26일 페이스북 담벼락에는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나의 죽음이 어떤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중의 승리가 되어야 한다. 제도화 된 수사로 소신공양을 수식하지마라. 나는 우주의 원소로 돌아가니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마라”라고 적힌 도화지를 찍은 사진을 남겼다.

정원 스님은 평소 도화지에 자신의 뜻을 적어 SNS에 올리곤 했다. 이를 통해 그의 세계관과 현 정국에대한 견해를 확인할 수 있다. “승가는 시주물이 하늘에서 오는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오는것이며, 사회구성원이 눈물과 땀의 결과물로 제공됨을 잊지 말고 시주자인 민중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 정원스님은 도화지에 자신의 의견을 적어 SNS로 공유하곤 했다. [사진출처 정원비구 페이스북]

“박근혜는 즉시 물러나고 직무 중단하라! 대법원은 부정선거 소송 심판하라! 시민혁명을 성취하자! 한·일 협정 파기하라! 한·미 군사협정 파기! 정치인들은 민의를 배신하지 마라”

한편 경찰이 점유해간 정원스님의 휴대폰과 테블릿pc를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경찰은 사고 접수 직후 여권과 지갑만 있고 휴대폰은 없었다고 발표한데 이어, 휴대폰을 국과수에 넘겼다고 했다가 돌연 검찰이 가져갔다며 말을 돌리고 있다.

박교일 대표는 이와 관련하여 “지난 백남기 농민 때도 그렇고,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등 군사정권 시절에 정권의 위기를 용공조작으로 돌파하려는 음모를 한 두번 꾸민게 아니다”라면서 검찰과 공안기관의 용공조작 가능성에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주문했다.

▲ 정원스님은 유독 대선 부정선거에 유독 관심을 보였다. [사진출처 정원비구 페이스북]

 

 

[2신] 정원스님 분신 장면, 사진 공개

-용공조작 의혹 제기, 분신 장면 포착 시민 제보 사진 공개

▲ 시민의 제보로 포착된 정원스님의 분신 당시 사진

8일 16시 정원 큰스님 분신항거 비상대책위(위원장 박교일 자주평화통일실천연대 상임대표)는 기자브리핑 통해 시민의 제보로 확보한 광화문광장 인근 공원에서 분신을 시도한 정원스님의 모습이 포착된 사진을 공개했다.

한편 박교일 위원장은 기자 브리핑에서 경찰이 정원 스님의 휴대폰과 테블릿pc를 가족들에게 돌려주지 않는 것과 관련해 용공조작 음모를 꾸미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측은 점유한 휴대폰과 테블릿pc가 현재 수사를 위해 검찰에 넘어가 있다고 밝혔다.

▲ 정원스님이 페이스북에 남긴 4자 시

 

[1신] 정원스님 의식불명, ‘박근혜 즉각 구속’ 요구 분신

-자주평화실천연대 정원 큰스님, 세월호 1000일 집회 직후 분신, 서울대병원 중환자실, 의식불명

▲ 세월호 1000일 집회에 참석한 정원 큰스님(비구)이 세월호 천막앞에서 초를 들고 있다.

7일 22시30분경 세월호 1000일 집회가 끝난 직후 분신을 시도한 정원 큰스님(비구)이 8일 11시 현재 서울대학교 병원 중환자실에서 온몸 70% 이상의 3도 화상으로 인한 의식불명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위중한 상태로 볼때 화상 전문병원으로의 이송조차 불가능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자주평화통일 실천연대 불교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정원 큰스님(비구)은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 규탄과 부정선거 내란범 처벌, 한일 위안부 졸속 합의 및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사드 배치 반대 등과 박근혜의 즉각 구속 및 처벌을 외치면서 광화문 광장에서 온 몸에 분신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장에서 경찰은 정원 큰스님(비구)의 휴대전화와 태블릿pc를 수거하였으나 보안상 및 수사상의 조치라며 돌려주지 않아 응급 상황임에도 가족과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하지 못했다.

▲ 박교일 자주평화통일실천연대 상임대표가 서울대병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에서 “경찰은 현장에서 이미 정원 큰스님(비구)의 신원을 파악했고, 그의 거주지에 경찰을 파견하여 거주여부까지 확인해 놓고도, 처음 가족들에게 '휴대폰이 없었다'고 답했다”라며 점유한 휴대전화와 태블릿 pc를 가족들에게 돌려주고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또한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아 응급상황에서 가족과의 연락을 방해한 것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며 담당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했다.

한편, 정원 스님은 "벗들이여 그동안 행복했소. 고마웠소. 고마운 마음 개별적으로 하지 못하오. 메세지 다 지웠고, 이 글 올리는 즉시 초기화 할것이오. 사랑하오. 민중이 승리하는, 촛불이 기필코 승리하기를 바라오. 박근혜와 그 일당들을 반드시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정의가 바로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촛불은 가슴에서 불붙여 활활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안녕. 부디 승리하여 행복해지기를..."이라는 마지막 메세지를 남긴 것으로 확인 됐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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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사의 청와대 비밀회동과 조선의 전략핵압박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1/09 10:55
  • 수정일
    2017/01/09 10: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개벽예감 223> 밀사의 청와대 비밀회동과 조선의 전략핵압박
 
 
 
한호석 통일학연구소장 
기사입력: 2017/01/09 [09:26]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6월 이후 갑자기 강도가 높아진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
2. 미국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에 나타난 밀사
3.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꾸는 전환계기
4. 전술핵압박을 전략핵압박으로 전환시킨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
5.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6. 조선의 대미전략은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어떻게 다른가?

▲ <사진 1> 이 사진은 2017년 1월 1일 0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 여사와 당, 국가, 군대의 핵심지도성원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경의를 표시하는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군 고위지휘관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경의를 표시하였던 예년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조선의 최고영도자와 핵심지도성원들은 1993년부터 23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핵대결이 끝나게 될 2017년을 그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맞은 것으로 해석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6월 이후 갑자기 강도가 높아진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

 

대북발언의 강도를 비교할 때,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은 이전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발언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격해졌다. 지난 몇 달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공격적이며 극렬한 대북발언을 연신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을 보도한 언론기사들을 분석하면, 한 가지 변화양상이 돋보인다. 원래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은 취임 직후부터 험하게 들려오기는 했지만, 특히 2016년 6월 이후 대북발언강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발언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립이니 자멸이니 응징이니 하는 매우 자극적인 말까지 사용하여 공격성과 과격성을 드러내었다. 2016년 6월 1일부터 이 글을 탈고한 10월  16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6월 6일 - 북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고집할수록 고립과 자멸에 빠질 것이라는 발언 
6월 13일 - 비핵화 없는 북의 대화제의는 기만일 뿐이라는 발언  
7월 11일 북의 도발위협을 방치하는 것은 수많은 인명피해를 방치하는 것과 같다는 발언
8월 15일 - 북의 간부들과 주민들에게 행복을 추구할 새로운 기회를 안겨주겠다는 발언  
8월 23일 - 북측 체제가 균열조짐을 보이며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발언 
8월 24일 - 북의 무력도발이 임박하였다는 발언 
9월 6일 - 북의 무력도발은 북의 자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발언 
9월 12일 - 북이 핵개발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발언 
10월 1일 - 공포정치와 인권유린으로 고통 받는 북의 주민들이 탈북하여 남으로 오기 바란다는 발언 
10월 11일 - 폭정에 신음하는 북에서 대량탈북이 있을 것을 예상해 대량탈북을 수용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발언 
10월 13일 - 북의 가혹한 공포정치가 북측 주민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으니, 탈북하여 남으로 오기 바란다는 발언 
10월 16일 - 북에서 사회지도층 탈북이 증가하는 것은 폭압적인 공포정치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발언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발언이 지난 6월 이후 더욱 공격적이고 극렬하게 바뀐 원인은 무엇일까? 제임스 클래퍼(James R. Clapper)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비공개로 서울을 방문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얼핏 봐서는 서로 무관하게 그 두 현상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었는지 인과관계를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2016년 5월 4일부터 1박2일 비공개로 서울을 방문하고 워싱턴 디씨로 돌아갔다.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1,750명 요원들이 근무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을 이끌면서, 16개에 이르는 각종 국가정보기관들의 수장으로서 국가정보사업 전반을 감독, 지휘하며, 국가안보문제에 관한 극비정보를 작성하여 대통령에게 매일 직보하는 고위직이다.


그런 고위직에 있는 ‘거물’이 왜 갑자기 서울에 나타난 것일까? 그는 서울에서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협의한 것일까? 이 흥미진진한 물음에 해답의 실마리를 준 것은,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부와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부에 각각 실린 보도기사들이다. 그 두 보도기사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2. 미국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에 나타난 밀사
 
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 나타난 클래퍼 국장은 한민구 국방장관, 빈센트 브룩스(Vincent K. Brooks) 주한미국군사령관, 청와대 고위당국자, 국가정보원 고위당국자를 줄줄이 만났다고 한다. 그러면 그는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만나지 않은 것일까?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 보도기사에서 한국 정부 “핵심소식통”은 클래퍼 국장이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느냐고 묻는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자, 그 문제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잡아뗐다. 만일 클래퍼 국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다”고 명백히 답변하면 되는데, “확인해줄 수 없다”는 아리송한 답변을 꺼내놓은 것은, 그 두 사람의 비밀회동사실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 <사진 2>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 국가, 군대의 핵심지도성원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경의를 표시한 때로부터 12시간 뒤인 2017년 1월 1일 정오에 신년사를 발표하였다. 신년사를 발표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었을 때, 조선은 격정으로 들끓었고, 세계는 시선을 집중하였다. 신년사 중에서 특히 국제사회가 주목한 것은,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클래퍼 국장의 이전 서울방문사례를 들춰보면, 그는 2011년 5월 30일 서울방문 중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만났고, 2014년 5월 13일 서울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드러난다. 이전에 있었던 두 차례 회동사례를 보면, 그가 2016년 5월 4일 서울방문 중에도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클래퍼 국장이 2011년 5월과 2014년 5월에 각각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그가 한국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당시 체류일정도 2박3일로 잡혔었는데, 2016년 5월 그가 서울을 세 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한국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며 체류일정도 1박2일로 짧아졌다. 이것은 2016년 5월 세 번째 서울방문이 이전에 있었던 두 차례 서울방문과 달리, 뭔가 급하고, 더 중대한 임무를 갖고 방문한 것이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2016년 5월 4일 클래퍼 국장을 서울에 보낸 사람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이다. 국가정보국장이 대통령의 지시나 허락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다른 나라를 비공개로 방문해서 그 나라 수뇌를 만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6년 5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은 클래퍼 국장을 서울에 급파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중대한 문제를 협의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백악관이 다른 나라에 대통령 특사(presidential envoy)를 파견하게 되면, 일정한 외교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준비시간이 요구된다. 하지만 매우 중대한 국가안보문제가 불거져 시간이 촉박한 경우에는 외교절차를 생략하고 밀사(secret emissary)에게 특명을 주어 급히 파견하는 관례가 있다. 그런 특별관례를 생각하면, 2016년 5월 4일 서울을 비공개로 방문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비밀리에 만난 클래퍼 국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급파된 밀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대통령 밀사와 한국 대통령의 비밀회동은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음을 말해준다.   


클래퍼 국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 보도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외교안보부문 고위당국자”가 전한 말을 인용한 그 보도기사에는 “클래퍼 국장과의 대화 내용 중에는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과 관련한 논의를 할 경우 한국이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문의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인용문은 클래퍼 국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에서 조미평화협정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준다. 만일 그 충격적인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면, 청와대는 자기에게 몰아친 일파만파를 수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밀사를 보냈는지, 그리고 왜 과거사례들과 달리 청와대 비밀회동이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는지, 이제야 분명해진다.


“한미동맹은 영원무궁하다”고 외치는 미국의 선전을 티끌만한 의심도 없이 믿어온 열렬한 동맹예찬론자이며, 주한미국군과 핵우산이 한국과 자신을 지켜준다는 미국의 선전을 신봉하는 정통파 친미주의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밀사가 자신에게 느닷없이 조미평화협정문제를 꺼내놓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꽤 컸을 것이다. 조미평화협정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핵우산을 철거하는 지름길이고,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의 폭발뇌관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어찌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았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아니 그로서는 종내 생각하기 싫은 조미평화협정문제가 미국 대통령 밀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충격적인 장면은, 비밀회동 직후인 2016년 6월 초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공격적이고, 극렬한 대북발언을 계속 쏟아내고 있는 원인을 밝혀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대북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클래퍼 국장과 만난 비밀회동에서 받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심리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꾸는 전환계기

 

지난 40여 년 동안 조선은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제의를 수없이 보냈으나, 미국은 성의 있는 답변을 보내기는커녕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며, 되레 각종 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여 조선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실전급 대북공격연습으로 대답하였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밀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비밀회동은 그처럼 오만방자한 미국이 이제는 자기 입으로 조미평화협정문제를 거론할 만큼 태도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미국의 오만방자한 태도가 그 만큼이라도 바뀐 것일까? ‘세계의 지배자’로 자처하는 아메리카제국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바꿔놓을 극적인 전환계기는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적국이 힘을 집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확 떠밀어버릴 때, 바로 그럴 때 파멸공포에 전율하는 ‘거대한 공룡’은 황망히 꼬리를 내리며 적국에게 “우리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간청하게 되는 것이다.


“날강도 미제와는 반드시 피의 결산을 보아야 한다”며 적개심과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조선이 핵무장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핵타격력을 갖춘 여세를 몰아 미국을 벼랑끝으로 힘껏 떠밀어 백악관을 파멸공포로 전율하게 만들었을 때, 바로 그럴 때 미국은 이제껏 40여 년 동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평화협정문제를 황망히 꺼내들며 “우리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간청하게 되는 것이다.

▲ <사진 3> 이 사진은 2016년 3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병기화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화성-14 곁을 지나는 장면이다. 조선은 2016년 상반기에 네 차례 성능시험을 통해 화성-14의 성능을 질적으로 향상시켰고, 지금은 시험발사를 앞두고 있다. 성능이 질적으로 향상된 화성-14의 사거리는 11,000km이고, 뭉툭하게 생긴 탄두부에는 각개발사식 재진입체 5-6개가 들어가는데, 재진입체 1개마다 열핵탄두 1발씩 들어간다. 만일 화성-14가 4발만 떨어지면, 미국 본토 전역은 완전히 초토화되어 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주목하는 것은, 미국 대통령 밀사가 조미평화협정이라는 사상 최대의 안보문제를 가지고 박근혜 대통령 앞에 나타나기 11일 전인 2016년 4월 23일 조선에서 일어난 사변이다. 그 날 조선은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초강력한 핵타격수단의 위력을 세상에 보여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전략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을 수중발사하는 시험에 성공한 것이었다.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극성’ 수중발사시험을 지도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제는 남조선괴뢰들과 미제의 뒤통수에 아무 때나 마음먹은 대로 멸적의 비수를 꽂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시뻘건 불줄기를 내뿜으며 동해 바다 속에서 솟구쳐 올라 포물선 비행운을 하늘가에 수놓으며 날아간 ‘북극성’이 예리한 비수가 되어 자기 뒤통수에 꽂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란 미국은 지난 40여 년 동안 입 밖에 전혀 꺼내지 않던 조미평화협정문제를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비밀회동에서 꺼내놓았던 것이다.


<동아일보> 2016년 5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서울에 나타난 클래퍼 국장은 청와대로 가기 전 국방부에 들러 한민구 국방장관과 담화하면서 “북한이 지난달 23일 함경남도 신포 앞바다에서 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북극성, KN-11)의 위협능력과 개발실태도 공동평가”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대통령 밀사를 청와대에 급파한 미국의 관심이 조선의 ‘북극성’ 수중시험발사에 온통 집중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청와대 비밀회동을 거론하면서 그냥 스쳐갈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미국이 조선에게 평화협정을 먼저 간청하는 게 아니라, 조선이 미국에게 그 문제를 제의해오면 그에 응하겠다는 단서가 미국의 손에 들려있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2016년 5월 7일 보도기사에서 한국의 외교안보부문 당국자는 “중국이 평화협정 논의의 필요성을 워낙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데다 북한도 당대회 이후 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클래퍼 국장이 평화협정을 거론한 것은 그런 국면에 대비하는 차원 같다”고 말했는데,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미국은 청와대 비밀회동이 있은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2016년 5월 6일부터 나흘 동안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이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공식 제의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 제의에 응답할 긴급준비가 요구되었기에 대통령 밀사를 청와대에 급파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사진 4> 이 사진에 보이는 것은 미국의 피스키퍼 대륙간탄도미사일 탄두부에 들어가는 각개발사식 재진입체 W87이다. 열핵탄두 6개가 들어간다. 화성-14 탄두부에도 그런 각개발사식 재진입체가 들어간다. 타격목표를 향해 비행하는 화성-14 탄두부에서 각개발사식 재진입체들이 분리, 사출되면, 그 재진입체들은 위성항법으로 유도되는 극초음속 하강비행을 계속하면서 제각기 지정된 타격목표들을 향해 각개돌진하여 동시다발로 타격하게 된다. 이것은 화성-14가 전 세계에 현존하는 모든 미사일방어체계를 뚫고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미국의 그런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미국의 섣부른 예측과 달리,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제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정은 당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미국은 핵강국의 전렬에 들어선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여야 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조선에서 침략군대와 전쟁장비들을 철수시켜야 합니다.”

 

 

4. 전술핵압박을 전략핵압박으로 전환시킨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

 

과거에는 조선이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수없이 제의했으나 요즈음에는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제의하지 않는 까닭은, 조선의 새로운 대미전략이 대미핵협상을 영구히 중지하고 대미핵압박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지난날 조미핵협상이 진행되던 시기에, 미국이 억지와 전횡을 부려 협상이 중단되면 조선은 핵시험이나 탄도미사일발사연습을 단행하는 핵압박으로 미국을 몰아세워 핵협상을 재개시키곤 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핵무장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던 지난날 조선의 대미핵압박은 전술핵압박이었다. 조선의 전술핵압박은 미국의 억지와 전횡으로 중단된 핵협상을 다시 재개시키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 오늘 조선은 핵무장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전략적 핵공격력을 가졌으므로, 조선의 대미핵압박은 전술핵압박에서 전략핵압박으로 전환되었다. 조선의 전략핵압박은 미국의 억지와 전횡으로 중단된 핵협상으로 미국을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조선의 강력한 핵압박으로 벼랑끝에 떠밀린 미국이 벼랑에서 떨어져 파멸하든지 하는 최후의 양자택일로 미국을 끌어가는 것이다.


2016년에 조선의 대미관계에서 발생한 여러 현상들은 조선이 전략핵압박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이며 미국을 최후의 양자택일로 끌어가고 있으며, 조선의 연속적인 전략핵압박을 받는 미국은 양자택일의 아슬아슬한 벼랑끝으로 떠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정치사를 새로 쓰게 만들 사회주의핵강국과 제국주의핵강국의 숨 막히는 마지막 대결이 바야흐로 우리 눈앞에서 왕왕 벌어지는 중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올해 2016년에 들어와서 조선은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미는 전략핵압박강도를 높이기 위해 핵무기병기화 완성단계를 하나씩 세상에 공개해오고 있으며, 벼랑끝에 떠밀린 미국은 전략폭격기, 전략잠수함, 항모타격단 같은 핵타격수단들을 한국에 출동시키고,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 인권공세, 악선전, 정보유입 등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조선의 전략핵압박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의 핵무장 완성으로 조미관계의 전략균형이 깨져버린 것을 생각하면, 미국의 그런 군사적 움직임은 벼랑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모질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 <사진 5> 이 사진은 2017년 1월 1일 0시를 몇 초 앞두고 트럼프 당선인과 그 가족이 플로리다주 팜비취에 있는 그의 호화휴양소 마러라고에서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뉴스>를 통해 새해 첫 시각을 알리는 생방송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사진 속에서 그들은 웃고 있지만, 만일 조선이 화성-14 시험발사를 단행하면, 갓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가 버티기에는 너무 무거운 압박으로, 너무 혹심한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지난날 조선의 전술핵압박은 핵협상궤도에서 이탈한 미국을 다시 끌어들기를 반복하면서 무려 10년 이상 지루하게 이어졌지만, 조선이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밀어버리고 있는 오늘 사회주의핵강국과 제국주의핵강국의 마지막 대결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날 것이다. 그 마지막 대결은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조선의 최후결전으로 미국이 파멸하든지 둘 중의 하나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이다.


예견하건대, 미국이 정세를 오판하지 않으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게 될 것이고, 미국이 정세를 오판하여 조선에게 덤벼들면 조선은 최후결전으로 미국을 파멸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16년 5월 4일 청와대의 문을 열고 들어선 미국 대통령 밀사의 입에서 조미평화협정문제가 나온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핵강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못한 ‘겁쟁이’ 미국의 초라한 경력에 따르면,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5.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면, 조선은 그 간청을 받아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미평화협정은 급속히 체결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과 미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밀고 당기는 장기적인 평화회담을 진행할 처지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조미평화회담이 지난날 진행되었던 조미핵협상처럼 장기화되면, 안보위험에 빠진 한국이 자기의 생존방도로 핵무기개발을 택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선과 미국에게 모두 매우 불리한 정세가 조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과 미국은 평화회담을 신속하게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조선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미국은 한국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미평화협정이 주한미국군 철수와 핵우산 철거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고 핵우산을 철거하지 않으면서 평화협정을 체결할 길은 없다. 조선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목적은 미국이 아무 때나 휴지조각처럼 내던질 수 있는 평화협정문이나 받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켜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고 핵우산을 철거시켜 평화통일을 실현할 결정적인 정세변화를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핵우산을 철거하는 날은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최후의 날이 될 것으로 예견된다. 다시 말해서, 조미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과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의 대격변 속에서 벌어질 두 갈래의 사변들인 것이다. 


위와 같은 전망과 예측에 따르면, 2016년 5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이 밀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기 전에 백악관 내부에서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을 포기하는 문제까지 폭넓게 논의된 것으로 추론된다. 이런 추론은 미국이 한국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온 동맹예찬론자들과 친미주의자들의 믿음이 몽매하고 허망한 환상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급격한 정세변화에 휘말린 미국이 태도를 갑작스럽게 180도 바꿔버린 충격적인 경험은 세계정치사에서 흔하다.


최근 한국의 일부 언론매체들이 정세변화에 휘말린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분석기사를 내보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문화일보> 2016년 9월 21일부에 실린, “미, 한국 떠나지 않는 생각은 착각, 중과 수교하면서 대만 ‘헌신짝’처럼 버려”라는 제목의 분석기사에 시선이 멎는다. 그 기사에서 한국의 어느 국제정치학자는 “우리 국민 중 상당수가 한미동맹은 아무런 문제없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우리는 미국이 지켜주기에 별 걱정할 것 없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에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은 결코 한국에서 떠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지적하였다.

▲ <사진 6> 이 사진은 2017년 1월 2일 오후 6시 5분 트럼프 당선인이 트위터에 올려놓은 글이다. 이 짤막한 글은 또 한 차례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이 트위터 문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신년사에서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힌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예고하였는데, 트럼프 당선인은 트위터에서 그런 시험발사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런 단정적인 표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또한 그 기사에서는 지난날 미국과 대만의 관계변화를 거론하면서 “미국은 1972년(1979년을 착오함-옮긴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우방국인 대만을 버렸고, 대만은 유엔회원국 지위에서도 헌신짝처럼 내던져졌다”는 경험을 상기시키고, 미국이 대만을 포기한 것처럼 한국도 포기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였다.


하지만 그 보도기사를 쓴 기자는 미국-대만관계의 심층정보를 알지 못한 것 같다. 왜냐하면 미국은 대만을 포기하는 척하였으면서도, 실제로는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 지배권 안에 붙들어두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중국이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의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지 못했고, 되레 미국의 계략에 끌려 다니며 수교회담을 오랫동안 지루하게 진행하였던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날 중국, 미국, 대만 3자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는 오늘 조선, 미국, 한국 3자관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예측할 시사점을 준다는 점에서 살펴볼 만하다. 

 

 

6. 조선의 대미전략은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어떻게 다른가?

 

1954년 12월 2일 미국은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고, 1955년 3월 3일 그 조약을 발효시켰다. 그로써 대만은 미국에게 안보를 내맡기고 미국의 지배를 받는 미국의 반공거점, 군사기지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그런 미국-대만관계가 언제까지나 원상대로 유지된 것은 아니었다. 


중국, 미국, 대만 3자관계에 변화를 불러일으킨 계기는 중미관계정상화였다. 1971년 7월 9일 당시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가 대통령 밀사로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하였는데, 그로부터 6일 뒤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son) 당시 미국 대통령은 중국 정부의 방중초청을 수락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로써 중국과 미국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중미수교회담이 시작된 배경과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은 핵무기와 위성운반로켓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자기의 전략적 지위를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이를테면, 중국은 1964년 10월 16일 자기의 첫 핵시험을 진행하였고, 1966년 10월 27일에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으며, 1967년 6월 17일에는 수소탄시험을 진행하였다. 중국은 핵무장에 성공한 이후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 핵시험을 45차례나 진행하면서 자기의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강화, 발전시켰다.


그것만이 아니라, 중국은 1970년 4월 24일 자기의 첫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고, 1971년 3월 3일 두 번째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다.


중국이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면서 중미관계의 전략균형은 깨져나갔는데, 그런 근본적인 정세변화가 시작되자 미국은 중국과 적대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1971년에 미국이 중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게 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둘째, 196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소련을 사회제국주의라고 헐뜯으며 타도대상으로 규정하였고, 미제국주의보다 사회제국주의가 더 위험한 존재라고 하면서 새로운 대소전략을 추진하였다. 그것은 중국이 소련을 고립시키기 위해 소련의 적국인 미국과 손을 잡는 전략이었다. 1971년에 중국이 미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게 된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중국이 핵보유국, 인공위성발사국의 전략적 지위에 올라서자 유엔에서 중국의 지위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이를테면, 1971년 10월 25일 유엔총회는 “중국 대표를 유엔의 유일한 합법적인 대표”로 인정하면서, “장제스(蔣介石)의 대표들이 유엔에서 불법적으로 차지하였던 자리에서 그들을 축출”한다고 규정한 유엔총회 결의안 2758호를 채택하였다. 그로써 유엔은 대만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을 박탈하고 그 자리에 중국을 영입한 것은 물론이고, 대만의 유엔회원국 자격도 박탈하고 유엔 밖으로 완전히 축출해버렸다. 이것은 중화민국이라고 참칭해온 대만이 하루아침에 국가지위를 잃어버리고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었음을 말해준다.

▲ <사진 7> 이 사진은 2017년 1월 4일 션 스펜서 백악관 대변인 내정자가 시카고대학 정치연구소가 주최한 간담회에 발언자로 출연하여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사진에서 가운데 있는 사람이 션 스펜서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즉흥적으로 트위터를 한다는 생각은 오해라고 지적하면서, "복잡한 문제를 처리할 때, 그는 매우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스펜서의 평가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의 트위터 정치활동에는 그의 전략적 사고가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대만은 그런 최악의 안보위험 속에서도 붕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미국은 중국과 수교회담을 진행하면서도 대만과 단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대만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을 여전히 유지하였고, 대만방위사령부(Taiwan Defense Command)를 대만에 여전히 존치시키면서 대만을 미해군 제7함대 작전구역에 포함시켜놓았으며, 대만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공약을 재확인하였고, 미국산 무기수출과 군사교류를 통해 대만군을 강화시켰고, 대만과 무역 및 투자를 지속하였다.  


그런데 대만에게 또 한 차례 치명적인 안보위험이 닥쳐왔다. 그것은 1979년 1월 1일 중국과 수교한 미국이 대만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을 종지(terminate)하겠다고 대만에게 통고한 것이다. 그에 따라 1979년 4월 28일 미국은 대만방위사령부를 해체하고, 대만에 주둔하던 미국군 병력을 전원 철수하였다.


그러나 대만은 그런 최악의 안보위험 속에 두 번째로 빠졌는데도 붕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대만방위사령부를 해체하고, 대만에 주둔하던 미국군 병력을 철수하기 18일 전에 미국-대만 상호방위조약을 대체할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을 채택하였다. 대만관계법에서 미국은 만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경우 미국은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무력개입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해놓았다.


미국-대만 상호방위조약이 종지된 이후 미국군이 대만에 주둔할 수 없고, 미국군이 대만군과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할 수도 없지만, 미국군은 여전히 대만군과 고위급 군사회담을 계속 진행하였고, 대만군 고위지휘관들을 미국에 불러와 군사교육을 계속하였으며, 미국산 무기들을 해외수출경로를 통해 대만군에게 끊임없이 제공하였다. 이런 사정은, 미국이 중미수교 이후 대만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한 중국의 대미전략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음을 말해준다.


미국은 대만을 자기 지배권 안에 계속 붙들어두기 위해 중국과 대만을 각각 상대하는 노회한 책략을 펼쳤던 반면, 중국은 미국의 책략을 저지, 파탄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대만을 귀속시키는 통일위업을 성취하지 못하였다. 중미수교로 대만을 미국의 지배권에서 분리시켜 자기에게 귀속시키려던 중국은 아메리카제국의 음험한 본성을 간과하였기에 전략핵압박으로 그 제국을 강박하지 못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오늘 조선의 대미전략이 1970년대 중국의 대미전략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1970년대 초 중국은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의 지위에 올라 중미관계의 전략균형을 깨뜨렸으면서도 전략핵압박을 가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떠밀어버리지 못한 채 미국과 수교회담을 시작하였고, 그래서 그 수교회담이 장기화되었고, 그런 틈에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오늘 조선의 태도는 전혀 다르다. ‘동방의 핵강국’, 위성발사국의 전략적 지위에 오른 조선은 조미관계의 전략균형을 깨뜨리고, 전략핵압박을 단계적으로 가중시켜 미국을 벼랑끝으로 힘껏 떠밀어버리고 있으며, 미국이 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간청하든지 아니면 미국이 조선의 최후결전으로 파멸하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최후의 양자택일을 강박하는 것이다.


지금 조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제의 뒤통수를 아무 때나 마음먹은 대로 찔러버릴 멸적의 비수”라고 표현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을 꺼내들고 전략핵압박을 단계적으로 가중시키고 있으므로,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어쩔 수 없이 양자택일의 벼랑끝에 떠밀려, 평화협정 간청이냐 미국의 멸망이냐를 택해야 하는 참으로 가긍한 신세가 된 것이다.


만일 조선의 전략핵압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날에는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대격변이 일어나게 될 것이며, 그로써 남과 북은 평화통일을 급속히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경우 급속히 실현될 통일씨나리오에 대해서는 2016년 10월 10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격동시대에 생각하는 평화협정, 핵무장, 평화통일’에서 논한 바 있다.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지금 조선은 중국도 손대지 못한 사상 최대의 경국대업, 전략핵압박으로 미국을 굴복시킬 사상 최대의 경국대업을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고 오직 자력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구는 중국에 비해 55분의 1밖에 되지 않고, 영토는 중국에 비해 8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조선이 왜 스스로를 ‘천하제일강국’이라 하는지 이해할 만하다.  

 

▲ <사진 8> 이 사진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마이클 플린이 2016년 11월 18일 뉴욕 맨해튼에 있는 트럼프 타워에서 걸어가는 장면이다. 플린은 2016년 11월 하순 백악관 국가안보부문 관리들로부터 조선의 핵무기프로그램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들었지만, 그 설명에 나오지 않은 극비정보를 더 듣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조언하여, 국가정보기관 고위관리로부터 직접 조선의 핵무기프로그램에 관한 특별기밀정보를 듣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9> 이 사진은 2016년 12월 21일 플로리다주 팜비취에 있는 마러라고 휴양소 안으로 들어가는 세 사람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맨 앞에 있는 사람이 트럼프 당선인이고, 가운데 보이는 사람이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사람이 레인스 프리버스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이다. 그 날 저 호화로운 휴양소에서 만난 이 세 사람은 국가정보기관 고위관리로부터 들었던 조선의 핵무기프로그램에 관한 특별기밀정보에 관한 대책을 숙의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10> 이 사진은 2016년 3월 15일 키 리졸브 조선침공전쟁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한반도 해상작전구역으로 출동한 미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가 함재기들을 잔뜩 싣고 부산해군작전기지 부두에 접안하는 장면이다. 만일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키 리졸브' 전쟁연습준비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조선은 이미 예고한 대로 화성-14 시험발사를 단행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선과 미국이 무력격돌을 벌이는 미증유의 대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키 리졸브' 전쟁연습준비를 중단시키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갓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에게 죽음의 선택으로 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11> 이 사진은 1972년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여 마오쩌둥 당시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는 장면이다. 닉슨 대통령은 마오 국가주석을 만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할 때, 윌리엄 로저스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가지 않고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과 키신저의 특별보좌관 윈스턴 로드만 대동하였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을 자신의 밀사로 베이징에 급파하여 미중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것처럼, 며칠 뒤 공식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을 자신의 밀사로 평양에 급파하여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할 것이다. 조미핵대결 최종국면에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에게는 이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12> 1993년부터 23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핵대결은 미국 본토에 대한 조선의 막강한 핵공격능력이 완성된 올해에 끝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미핵대결 최종국면에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전략전 선택에 직면하였다. 2017년은 23년 간의 조미핵대결을 끝낼 대격변을 향해 도도히 흐르기 시작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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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테러’당할뻔 했던 ‘아찔했던 순간’

 
 
 
‘문재인을 향한 기습 돌진과 차량 방화 암시, 단순 시위가 아닌 테러 행위’
 
임병도 | 2017-01-09 08:32: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북 구미에서 극우단체와 박사모 회원들의 시위와 폭력으로 차량에 갇히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1월 8일 문재인 전 대표는 구미시의회에서 지역 기자단과의 간담회가 예정됐습니다. 극우단체와 박사모 회원들은 문 전 대표가 방문하기 1시간 전부터 구미시청 입구에서 태극기와 피켓을 들고 문재인 전 대표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극우단체 회원들과 박사모 회원들은 ‘우리가 뽑은 박근혜 대통령 우리가 지킨다’, ‘구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라’는 내용의 현수막과 함께 ‘종북수괴 물러가라’ ‘문재인은 평양가라’ 등의 문재인 전 대표를 비난하는 피켓을 들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문 전 대표가 간담회를 마치고 구미시청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차량을 에워싸거나 앞에 드러누워 문재인 전 대표가 탄 차를 포위했습니다. 극우단체와 박사모 회원들은 주먹으로 차를 내려치거나 침을 뱉기도 했으며 “빨갱이 밟아 죽여라”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차 안에 갇혀 있다가 경찰의 도움으로 25분 만에 구미시청을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전에 모의 된 박사모의 조직적인 문재인 시위’

 

▲ 박사모 카페에 올라온 문재인 전 대표 구미시청 방문에 결사항전한다는 글 ⓒ박사모카페 캡처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극우단체의 폭력과 난동은 단순한 시위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이미 문 전 대표가 구미시에 오기 전부터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박사모 카페에는 1월 8일 오전 10시쯤 ‘오늘 구미시청에 문재인이 온다고 해서 결사항전 할 겁니다’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장본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이가 구미시청을 방문한다’라며 ‘우리는 막아야 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다른 박사모 회원은 ‘문재인 간첩의 구미시청방문을 저지해 주십시오’라며 문 전 대표의 구미시 방문을 막아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구미시 방문을 막아 달라는 글에는 ‘몽둥이로 개 패듯이 때려잡으세요’,’빨갱이 개새끼들은 몽둥이가 약이죠’라는 험악하고 폭력적인 댓글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문재인을 향한 기습 돌진과 차량 방화 암시, 단순 시위가 아닌 테러 행위’

 

▲문재인 전 대표의 차량을 방화했어야 하는데 아쉽다는 트위터의 글과 문 전 대표를 향해 기습 돌진을 시도하다 저지 당하는 모습 ⓒ트위터 캡처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극우단체의 시위를 단순 시위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트위터에서는 차량 화재 사진과 함께 ‘이렇게 태웠어야 합니다.’라며 ‘하늘이 준 기회였는데 아쉽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단순히 글에서만 차량 방화를 암시한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극우단체 회원이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 기습적으로 돌진하려다가 사복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는 글과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구미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는 순간에도, 밖에서는 극우단체 회원이 ‘문재인 나랑 1:1 맞장 뜨자’라는 폭력적인 극언이 이어졌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간담회를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려는 과정에도 문 전 대표를 향해 욕설과 폭력을 가하려는 행동이 이어졌고, 일부는 쓰레기가 섞인 흙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김경수 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단체 회원들이 비상식적이고 폭력적 집단 행위를 했다”라며 “그들이 보여준 범죄 행위에 대해 사법당국은 철저히 수사하고 응분의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라며 당국의 수사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에서 돌아다니는 ‘문재인 떨어뜨리는 방법’

 

▲박사모 카페에 올라온 문재인 떨어뜨리는 방법 ⓒ박사모 캡처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폭력적인 행동 이전에도 온라인에서의 조직적인 악플과 유언비어 유포 등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일베와 박사모에는 ‘문재인을 떨어뜨리는 방법’이라며 ‘문재인 지지자인 것처럼 북한 대놓고 옹호하기’,’다른 민주당 후보들이랑 싸움 붙이기’,’문재인이랑 상관없는 주제랑 연관시키기’ 등 지능적이면서 악의적인 수법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금괴를 보유하고 있다거나 엘시티에 연루됐다는 유언비어도 계속 유포되고 있습니다. 문 전 대표가 금괴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현실성 없는 거짓에 불과하고, 엘시티 관련자들도 대부분 새누리당이었습니다. 당시 문 전 대표와 민주당 사람들은 엘시티 이영복 회장이 로비할 위치도 능력도 되지 않았었습니다. (관련기사:문재인 금괴 보유량이 한국 전체보다 많은 1000톤?)

대선주자 1위로 손꼽히는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극우세력의 불법적인 행동과 조직적인 악성 유언비어 유포는 계속될 것입니다. 문제는 극우세력이 하는 불법적인 행동들이 처벌받지 않는 비정상적인 모습에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경호 강화와 함께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흑색 선전 등에는 단호히 법적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233 

▲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가 8일 오후 구미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떠나려 하자 보수단체 회원들이 문 전 대표의 차를 막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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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떡, x새끼... 욕 나오지만, 성난 민중이 이깁니다"

 
[촛불에게 길을 묻다] 이철수 목판화가

17.01.09 07:02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정대희쪽지보내기

▲ 매일아침 '나뭇잎편지'를 배달하는 이철수 목판화가. 그의 작품은 통찰적 언어와 선적인 그림이 특징이다. ⓒ 정대희

"욕을 입에 달고 삽니다."

첫 마디부터 뜻밖이었다. 통찰적 언어와 선적인 그림, 이철수 판화 속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농촌에서 퍼 올린 고즈넉한 삶의 모습과 경구 같은 시적 표현을 판화에 담아왔기에 더욱 그랬다. 나무판 앞에서 탐욕을 끊는 칼을 들 때는 경건한 수도자 같기도 했다. 여백을 단 한 줄로 채운 촌철살인 문구는 우리 등짝을 세게 후려치는 선승의 죽비소리였다. 그런 그가...   

목판화가 이철수 씨(63. 제천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만난 건 작년 12월 22일, 10차 촛불집회를 앞둔 때였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2시간 30여 분만에 제천 백운면 평동삼거리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주변 가게에서 음료수라도 사려고 두리번거렸는데, 자동차 창문을 연 그가 활짝 웃었다. 그냥 타란다. 걸어서 10여 분 거리인데, 도착 시간에 맞춰 마중 나왔다.     

이철수의 '욕'
 
▲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에 대한 목판답시 ⓒ 이철수

"여보! 우리 왔어요."

이철수씨가 마당에서 큰소리로 소식을 알리자 주방에서 부인 이여경씨가 "우리, 좀 이따가 봐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기분 좋은 만남, 두 분과의 인연은 항상 이랬다. 1천여 평 논 앞에 선 그의 집 낮은 담장을 보고 걸을 때부터 작은 설렘과 평화가 찾아왔다. '이철수, 이여경이 사는 집'이라는 문패를 지나면 사뭇 농부 예술가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는 작업대에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칼을 들고 나무를 팠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무슨 작품이냐고 물으니 "오래전에 스케치했는데,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에 대한 답시 성격"이란다. 나무판에 거꾸로 새긴 글씨가 익숙하지 않아 낭송을 부탁했다. 

"누가 부르는지/누가 길을 일러주는지/담쟁이 어린잎이/앞서 걷는다/제일 작은 잎이/늘 앞에 선다/앞서 걷다/뒤서게 되는 날 /뒤 선 거기서 조용히/제 잎을 키워/크고 짙은/푸르름이 된다/어느 바람 부는 날/앞서 걷는 담쟁이들/어서 가라고/서둘러 가라고/손 흔든다/어린잎들 앞서가는/벽에서"

'담쟁이 어린잎이 앞서 걷는다'라는 문구가 그의 최근 심정을 대변하는듯하다. 담배를 피워 문 그에게 '요즘 마음자리가 불편하지 않으시냐'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너무 화가 치밀었어요. 경제가 어렵다고 모두 애를 태우는데, 저 짓을 하느라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60년 넘게 살면서 갈고 닦은 인문학적, 미학적 감수성을 총동원해 보면 욕이 합당합니다. 여전히 마음의 평화를 구하지만, 분노가 일지 않을 수 없어요. 존재에 대한 이해나 통찰도 필요하지만 싸울 때, 분노할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성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1000만 촛불이 광장을 밝히는 지금이 분노하고 싸워야 할 때라는 뜻이다. 그는 최근 작업 노트에 구체적으로 분노한 흔적도 남겼다. "제가 할 수 있는 현란한 욕을 적기 시작했다"면서 작품 밑그림을 보여줬다. 

"개떡, X발, X새끼..."

꼭두각시와 악마들... 그리고 뒷산 무덤
 
▲ 장탄식을 금할 수... ⓒ 이철수

그의 말처럼 현란하지 않아 실망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대하는 불편한 마음자리가 보였다. 그가 매일같이 이메일로 보내는 '나뭇잎 편지'에도 요즘 거친 형용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추악한, 사악한, 뻔뻔한, 비굴한, 교활한...'   

"과거 독재와 단순 비교하기도 어려운 정권입니다. 정신병자 집단에 가까운 기형 권력이죠. 마약 중독자라고 거칠게 퍼붓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흔치 않은 권력자를 보고 있어요. 이에 기생해 온 하수인 방조자들의 권력 속성도 보았습니다. 꼭두각시를 앉혀놓고 주인 없는 집안처럼 마구 주워 먹었습니다. 악마들이죠."

분노의 크기만큼, 촛불을 든 시민들에 대한 경외심도 컸다. 그에게 새해 신년 인터뷰에서 독자들에게 해주실 덕담을 부탁하니, 손사래부터 쳤다. 

"아호를 뒷산 무덤으로 바꿀까 해요. 하는 일 없이 엎드려있는 사람입니다. 촛불을 보면서 이제 저의 사회적 역할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어요. 길을 너무 잘 찾고 있어요. 특히 대안 언론과 청년세대의 약진이 놀랍습니다. 이렇게 성장하리라고 짐작도 못 했습니다. 87년 민주화운동 때보다 국민적 분노가 크고, 지혜로워졌습니다. 

무당 같은 어쭙잖은 여성에 농락당한 대통령, 우리가 위임한 권력의 부도덕성과 무능력에 대한 표피적 분노를 넘어 사회 권력 구조라든지, 그 아래 기생하는 권력의 존재방식까지 두루 인식하고 있어요. 이미 미래의 과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87년 군중들과도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군중이 촛불을 들고 있어요. 통찰력 있는 대중을 보게 된 거지요."

박근혜가 밉지 않은 단 한 가지 이유

그가 말한 '다른 차원'은 자기 일상 속에서 성찰하는 촛불에 맞닿아 있다. 

"일상 속에서 갑질을 경험하고 자기가 갑의 자리에 설 때도 있을 겁니다. 권력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일상 속에서 왜 이리 무력했는지, 또는 내가 왜 이렇게 함부로 했는지를 통찰하는 눈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 우리 일상 속의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 자신과 주변을 살피고 그 관계를 한꺼번에 통찰하는 계기였고 교육의 장이었습니다. 박근혜를 미워할 필요가 없다면, 그 하나가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그는 작년 12월 16일에 배달한 나뭇잎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시린 주말입니다. 우리들의 촛불군중은 순한 초식동물입니다. 뻔뻔하고 교활한 권력과 하수인들은 파충류·포식자를 닮았습니다. 그래봐야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난 초식의 민심이 이깁니다. 꼭!"
 
▲ 성난 초식의 민심이... ⓒ 이철수

- 촛불 시민을 초식동물에 비유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처음에 촛불 든 시민들을 보면서 이렇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상투적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촛불이 매주 고조되는 것을 보면서 걱정할 게 없다는 생각이 또렷해졌어요. 

민심은 자기의 거대한 잠재력을 알고 있어요. 몸이 대형차급이어서 누구를 작심하고 때리지 않아도, 자칫 살인에 이를 수 있어서 몸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비폭력 촛불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여기까지 이르렀구나 하는 경이로운 생각이 들었어요. 절대로 지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n/1로 사는 초식동물들의 지혜
 
▲ 때 되면 다시 켜 지지요 ⓒ 이철수

매 주말 광장의 촛불을 세던 일부 언론들은 김진태 국회의원이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말한 뒤에 더 조바심을 냈다. 날이 추워지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촛불이 줄어들지 않을까? 매 주말 감격과 걱정의 연속이었다. 작년 12월 10일 전국에서 100만 촛불이 타오른 뒤에도 그랬다. 그는 12일에 보낸 나뭇잎 편지를 이렇게 맺는다.

"촛불 숫자를 세고 계시는지요? 촛불 가꾸고 거두려 들 것 없습니다. 때 되면 다시 켜지지요."

- 왜 그런 말을 새겼나요? 
"선한 초식동물들은 쉬지 않고 풀을 뜯어야 존재를 지킬 수 있는 생명체입니다. 민중의 삶도 그렇습니다. 앞만 보라고, 일만 하라고 하면서 존재를 분열, 파편화시키는 사회에서 그 알량한 주말을 반납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초식동물은 연약하지만 생태적으로 군집할 때를 압니다. 필요하면 모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는 150만분의 1이 되려고 나왔다'는 한 시민의 말에 감동을 받았죠. 이제 잘난 사람도 대중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n분의 1'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혜가 바깥으로 흘러넘치는 시대입니다. 리더를 자처하거나 짐짓 가르치고 이끌겠다는 낡은 사고도 이참에 청산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이어 "지금의 혁명적인 상황을 이끈 것은 지식인이나 운동가가 아니라 다중지성"이라면서 "역사 변화의 순간은 도둑처럼 오기도 하는데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거저먹으려 하거나 운동권의 조급증으로 재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우린 이깁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2002년부터 쓰기 시작한 나뭇잎 편지는 3000여 통에 육박한다. 최근 두 달 어간에 쓴 나뭇잎 편지의 소재는 오롯이 '촛불'이었다. 기승전 '탄핵', 기승전 '하야'였다. 그는 작년 11월 11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었다. 

"촛불로 차고 어두운 밤을 밝히고 시린 마음을 덥히지요.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촛불은 따로 또 함께 시대를 건너는 길동무들입니다."

촛불 개벽
 
▲ 시대를 건너는 길동무들... ⓒ 이철수

- 우린 지금 어떤 시대를 건너는 길동무들인가요? 
"돈만 생각하는 신자유적인 시장경제를 살고 있어요. 나남 없이 고립되어 외로움을 느끼는 시대, 뿔뿔이 흩어져 나 하나를 지키는 데에도 허덕거리며 살도록 강요받는 사회입니다. 또 판에 박힌 고집불통의 언어들이 내면화된 사회입니다. 청문회에 나온 완고한 법률가, 국민을 통치대상으로 보고 그 틀에 사람들을 집어넣으려는 사람들. 대중들은 이들이 던져주는 말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그걸 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이런 세상에서라도 나를 돌아보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경책을 전하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시민들이 이미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시대 한 공동체를 함께 살면서 저 만의 생각도 가꾸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요."

그는 "요즘 한 대선 후보가 혁명이라는 말을 썼다고 쏘아보는 사람들이 있던데, 우리가 버린 언어 중에 개벽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질적으로 변화하면서 시대를 건너고 있는 촛불 혁명을 촛불 개벽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무적의 촛불'을 만드는 법
▲ 질기고 집요한... ⓒ 이철수

작년 12월 13일에 쓴 나뭇잎 편지의 주제는 '시민의 연대'였다. 

"검사장의 120억 무죄! 도 개탄스럽고, 삼성을 위시한 재벌가의 2세 승계 과정에서 드러난 편법상속은 상상 이상입니다. 이런 현실, 박근혜만 치운다고 될 문제가 아닌 건 잘 아시지요? 서두를 것 없습니다. 질기고 집요한 시민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 무엇을 위해, 어떻게 연대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2016년 겨울을 밝힌 촛불은 기대 이상으로 경이로웠습니다. 주권자들의 권력이 이렇게 장엄하고 아름답게 존재를 드러낸 적이 있나요? 광우병 촛불이 있었고 그 뒤에 크고 작은 시민 결집을 보아왔는데, 얻어야 할 것 충분히 얻지 못한 채 흘러버렸어요. 허탈했죠. 밑천 없는 삶들 때문입니다. 현실의 변화나 구조적 개혁을 강제할 저력이 부족했던 거지요. 

이번엔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자기 삶의 일상에서 변화를 만드는 지속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를 향하는 손가락질을 나에게도 해야겠죠. 그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살아온 것을 반성하고 고쳐야 합니다. 무적의 촛불을 만드는 근원은 성찰과 반성입니다. 자신을 태우면서 밝히는 촛불의 미덕처럼 말입니다."

그는 "자기 안의 모순을 고치려는 일상적인 노력과 연대가 필요하다"면서 "촛불을 내려놓으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촛불 현장에서 모금통이 오면 돈을 넣듯이 우리들의 변화의 열망을 대신해줄 시민단체 회원이 되어 후원금이라도 내야 하고 바른 언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연대하지 않는다면? 그는 "우리 앞에 함부로 군림하고 살던 자들이 우리의 일상으로 우리 곁으로 어김없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촛불은 00이다
 
ⓒ 이철수
 
▲ 촛불은 "우리"입니다. ⓒ 이철수

- 그동안 수많은 촛불을 새겨 나뭇잎 편지에 담아 보내셨습니다. 촛불은 000이다. 한 마디로, 또는 한 개의 그림 형상으로 정리해주실 수 없나요? 
"음... 그런 것은 미리 질문을 줬어야지요. 하-하-하."

그는 이날 인터뷰 자리에서는 웃음으로 넘겼다. 대신 다음 날 아침, 8만여 명에게 배달한 나뭇잎 편지로 답했다. 그 어떤 바람이 불어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 같은 수만 개의 촛불 속에 7개의 붓 자국(깃발)을 남긴 그림과 함께...

"촛불은 우리입니다."      
 
"촛불 드는 심정으로 바른 언론 후원하자"

이철수 판화가가 <오마이뉴스>에 준 두 가지 선물

이철수 목판화가는 "일상에서 촛불 드는 심정으로 시민운동을, 바른 언론을 후원하자"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제천참여연대 공동대표이면서 여러 시민사회환경단체-대안언론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또 오마이뉴스에 매월 1만 원 이상씩 자발적 구독료는 내는 10만인클럽 회원이다.  

그에게 두 가지 부탁을 했다. 10만인클럽의 글씨와 홍보 동영상이다. 그는 즉석에서 동영상을 찍었고, "모눈종이의 한 칸 한 칸을 채워나가듯이 10만인클럽 회원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은 글씨를 써서 이메일로 보내왔다. 
▲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 이철수
 


"우리가 관제언론이라고 표현하잖아요. 권력이 원하는 말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말을 그들의 말을 하도록 하고 싶어 하는 시대죠. 정치권력도 시키고 싶은 말이 있고, 경제권력, 때로는 문화 권력도 우리에게 말을 강요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온전한 말, 바른 언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마이뉴스도 우리 시대의 정론, 올바른 말의 창고 역할을 하고 있는 미디어인데 10만인클럽(매월 1만 원 이상씩 오마이뉴스를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시민들의 모임)을 가득 채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촛불 정국에서도 바른 언론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지 확인했잖아요. 10만인클럽에 회원이 되어주십시오. 저도 회원입니다. 보람 있는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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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친구들 만나면,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 할 수 있길”

“먼저 간 친구들 만나면,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 할 수 있길”

 
등록 :2017-01-07 19:46수정 :2017-01-08 10:08
 
세월호 생존학생들 촛불집회서 첫 공개 발언
“7시간 동안 제대로 보고받고 지시했다면…”
“비난받을까 두려워 숨어있었지만 용기낼 것”
새해 첫 촛불집회 주최쪽 추산 전국 64만명 참여
세월호 1000일을 이틀 앞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1차 촛불집회에서 참사 이후 처음 대중 앞에 나타난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이제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월호 1000일을 이틀 앞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1차 촛불집회에서 참사 이후 처음 대중 앞에 나타난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이제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들이 새해 첫 집회 무대에 올라 지난 1000일을 말했다. 생존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시민들 앞에서 발언을 한 건 참사 이후 처음이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생존학생들은 “우리는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게”라는 말을 남겼다.

 

7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1차 촛불 집회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가라’에서 당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9명(김진태, 김준호, 이종범, 박준혁, 설수빈, 양정원, 박도연, 이인서, 장애진)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 대표로 발언을 한 장애진(20)씨는 “시민 여러분 앞에서 온전히 입장을 말씀드리기까지 3년이 걸렸다”며 “많은 시민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이야기를 열었다.

 

장씨는 “저희는 모두 구조된 것이 아니다. 저희는 저희 스스로 탈출했다고 생각한다”며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다. 구하러 온다고해서 그런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없게 됐고 평생 볼 수 없게 됐다. 저희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 저희가 잘못한 거라면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씨는 “저희가 나온 것 죄송하고 죄지은 것 같아 유가족 뵙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했다.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상징하는 구명조끼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상징하는 구명조끼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월호 참사가 3년 지난 지금 생존학생들의 상처는 무뎌지지 않았다. 장씨는 “단호히 말씀드릴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괜찮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친구 페이스북엔 잔뜩 글이 올라옵니다.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괜히 전화도 해봅니다. 친구들이 너무 보고싶어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밤을 새기도 하고 꿈에 나와달라고 간절히 빌면서 잠이 들기도 합니다”고 말한 뒤 울음을 참지 못했다.

 

생존학생들은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규명에 대해서도 강력히 의지를 보였다. 장씨는 “저희는 대통령 사생활 알고 싶은 게 아니다. 그 7시간 제대로 보고받고 지시했더라면, 가만히 있으란 말 대신 당장 나오라는 말만 해줬더라면 지금처럼 많은 희생자 낳지 않았을 것”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이어 “저희는 그동안 당사자이지만 용기 없어서 비난받을까 두려워 숨어있기만했다. 저희도 용기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장씨는 친구들을 향해 말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나중에 친구들 다시 만났을 때 너희 보기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책임자한테 제대로 죗값 물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저희 뜻 함께 해주시는 많은 시민분들 우리 가족들,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조속히 규명되길 바랍니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게. 우리가 나중에 너희들을 만나는 날이 올 때 우리들을 잊지말고 열여덟 그 시절 모습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감사합니다.”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참사 이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 세월호 생존학생들과 유가족들이 포옹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참사 이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 세월호 생존학생들과 유가족들이 포옹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발언을 마치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올라와 눈물을 흘리며 생존학생들을 한 명씩 껴안았고, 지켜보던 시민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날 오후 5시45분께 시작된 본집회엔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추산으로 서울에만 시민 60만명(전국 64만)이 모였다. 경찰은 저녁 7시45분 기준 광화문광장에 2만4천명의 시민이 모였다고 추산했다. 가수 이상은씨는 <어기어디어라>, <언젠가는> 등의 노래로 시민들을 위로했다. 7시35분께 주최 쪽은 아직 검은 바닷 속에 있는 미수습자 9명을 위한 소등 행사를 진행한 뒤 노란 풍선 1000개를 하늘로 날려보냈다. 이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노래에 맞춰 시민들은 다같이 일어나 율동을 함께하며 추위를 녹이고 청운동과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유가족과 시민들은 단원고 학생들의 단체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을 들고 청와대 인근 청운동 동사무소로 행진했다. 이 행진에는 고 김관홍 잠수사의 어머니, 박원순 서울시장,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이 함께했다. 박원순 시장은 청운동 앞 연단에 올라 “제가 대통령이었다면 세월호 참사 당일 지체 없이 헬리콥터 타고 팽목항에 가 한 명도 남김없이 구조하고 또 성역없이 진상 조사해서 책임자를 처벌했을 것”이라며 “이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상상하는 바”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어 “세월호 인양되고 모든 진실 공개될 때까지 유가족·시민들과 함께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노란색 종이에 ‘3주기를 넘기지 말고 세월호를 인양하라’, ‘거짓 없는 대한민국’ 등의 문구를 적어 청운동에 설치된 차벽과 폴리스라인에 붙이는 활동을 벌였다.

 

박수지 고한솔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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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위독한데” 경찰, ‘분신’ 정원스님 보호자 연락 ‘세월아 네월아’

 

전신에 3도 화상.. ‘골든타임’ 허비한 세월호‧백남기 참사 반복되나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박근혜 즉각 퇴진’ 촛불 집회에 참석한 60대 남성이 7일 밤 10시30분경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분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분신한 60대 남성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사찰의 정원스님(속명 서용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서씨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어 현재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하지만 경찰이 서씨의 소지품을 수거, 현재 돌려주지 않고 있어 8일 새벽 4시 현재까지도 보호자와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측은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서씨에 대한 응급조치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 5시 기준, 서씨는 응급조치 후 중환자실로 옮긴 상태다.

☞ (영상) 긴박한 정원스님 응급실 밤샘 상황

이날 서울대병원에는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만이 소식을 듣고 뒤늦게 달려왔다. 정 전 의원과 취재 중인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현장에 있던 종로경찰서 강력계 형사에게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다’고 항의, 조속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시간을 끄는 듯한 모습마저 보였다.

   
▲ 정원스님 분신 소식에 서울대병원으로 달려온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이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미지=이상호 기자 트위터(@leesanghoC)생중계 화면>

현장의 시민들은 ‘당초 종로서는 정원스님의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가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가 이제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고 전했다.

경찰은 ‘확인할 것이 있다’며 소지품을 돌려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시민들은 ‘경찰이 의도를 가지고 시간을 끌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 종로경찰서 앞에서 시민들이 정원스님 보호자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소지품을 돌려달라며 경찰에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있다. <이미지=이상호 기자 트위터(@leesanghoC) 생중계 화면>

정 전 의원과 이상호 기자, 일부 시민들은 종로경찰서까지 동행했다. 정청래 전 의원은 “종로서 정보과 형사는 가족 아니면 소지품을 돌려줄 수가 없는데 같이 활동한 대표의 신원조회 후 소지품을 돌려주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경찰 측은 서씨 소지품에 휴대폰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분신 현장에서 ‘경찰이 정원스님의 휴대폰을 수거해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도 있는 상황이다.

☞ (영상) 정원스님 소지품 주지않는 경찰에 애걸하는 시민들

 

한편, 경찰은 서씨의 소지품 감식 후 결과가 나오는 대로 서씨와 함께 활동한 지인에게 이를 통보해주겠다고 밝힌 상태다. 서울대병원에는 현재 30여명의 시민들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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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어떻게 마약에 스와핑까지, 황교안은 책임 없나!

청와대 어떻게 마약에 스와핑까지, 황교안은 책임 없나!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1/08 [01:4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청와대 사람들이 이용했다는 고급요정의 마담이 그들이 행태를 고발한 것을 보면 너무 충격적이다. 요정에서 뇌물을 주고받고 마약에 스와핑까지... 썪어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 '그것이 알고 싶다' 바로가기

http://program.sbs.co.kr/builder/endPage.do?pgm_id=00000010101&pgm_mnu_id=14825&contNo=cu0015f0105900&cooper=daum

 

7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우병우 편을 소개하는 미리보기 방송만 봐도 청와대와 그 주변 정치권이 썪어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썪을 수 있는지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애용했다는 고급요정 마담의 증언에 따르면 청와대 만찬 후 그 정치인들이 이 고급요정에 와서 마약에 스와핑까지 하는 난교 난장판을 벌리고 뇌물을 주고 받았다는 것이다.

 

아니 무슨 청와대에서 마약류와 관련된 여러 의약품을 그렇게 많이 사들였는지는 의문이었는데 이제야 그 의문을 풀 실마리가 잡힌다. 공식적인 경로로 그 많은 양의 마약류 의약품을 가져가기 어렵게 되자 추적이 어렵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근 군부대를 통해 추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마약류 의약품이 청와대로 계속 정기적으로 들여갔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였으니 이건 청와대에 완전 중독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음을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왜 박근혜 대통령이 쉬는 관저에 청와대에 들어가자마자 고급 침대를 4개 씩이나 새로 들여다 놓았는지도 함께 연결시켜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또한 정윤회가 실권을 쥐고 있을 때 회사 사장이나 관직에 오르려는 정치인들이 그를 만나기만 하려고 해도 2천만원은 내야 했다고 한다. 그러니 최순실이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를 때는 그 가격이 얼마일지 상상이 되지 않으며 그들이 정치계, 경제계 인사들로부터 얼마나 해쳐먹었는지 눈앞에 훤히 그려진다.

 

3분 미리보기의 내용만 봐도 충격이 이럴진대 그 본 방송 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차마 보기가 두렵다.

 

문제는 황교안 총리 등 지금 청와대에서 권한대행을 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황교안 총리가 마약에 스와핑을 했다는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총리로서 이런 청와대와 그 주변 정치권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시정시켜야할 핵심 책임자 중에 한 사람이 황교안 총리가 아닐 수 없다. 사실상 부통령에 해당하는 서열 2위의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이런 썩어 문드러진 청와대 소굴에서 굴러먹던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권한대행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권한대행을 하면서 청와대를 혁신하기는커녕 과저 죄행을 감추기에만 급급할 것은 자명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우병우 편은 우병우 심판의 중요성만이 아니라 황교안 총리 등 현 청와대의 모든 적폐세력들이 당장 물러나야한다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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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세월호 1000일, 시와 그림으로 본 박근혜 정부의 민낯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1/08 11:55
  • 수정일
    2017/01/08 11: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2016세월호참사기억프로젝트2.5[들숨:날숨], 홍성담 화백 그림 전시·기억시 낭송문화제

17.01.07 22:42l최종 업데이트 17.01.07 22:58l
글·사진: 박호열(tkaenao)

 

 

홍성담 화백 작, ‘내 몸은 바다 3 - 청와대의 밤’ (194x130cm·캔버스에 아크릴릭, 2016년) 304명의 원한에 가득 찬 원혼들이 밤마다 청와대 주변에 몰려가 배회하며 ‘내 죽음의 진실을 밝혀라!’라고 울부짖으며 밤을 지새우고 있다. 416기억전시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월호참사기억프로젝트2.5[들숨:날숨]에서 전시하고 있는 홍성담 화백의 세월호 연작 중 하나다.
▲ 홍성담 화백 작, ‘내 몸은 바다 3 - 청와대의 밤’ (194x130cm·캔버스에 아크릴릭, 2016년) 304명의 원한에 가득 찬 원혼들이 밤마다 청와대 주변에 몰려가 배회하며 ‘내 죽음의 진실을 밝혀라!’라고 울부짖으며 밤을 지새우고 있다. 416기억전시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월호참사기억프로젝트2.5[들숨:날숨]에서 전시하고 있는 홍성담 화백의 세월호 연작 중 하나다.
ⓒ 홍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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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1월 9일은 세월호 참사 1000일이다. 4월 16일은 3주기가 된다. 2017년에는 세월호 참사가 규명되고 책임자가 처벌될까. 또 세월호가 인양돼 미수습자 아홉 명은 귀환할 수 있을까.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의 얼굴에 3년 만에 웃음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진상규명이 되는 날, 밤하늘의 별이 되어 진도 바다를 밝힌 아이들의 원혼은 엄마아빠 품에 안길 수 있을 테다. 그런데 그 별은 이미 안산 단원고 인근 416기억전시관(단원구 고잔동 661-3 현대상가 4층. 031-411-7372)에서 여명의 빛을 밝히고 있었다. 

지난 6일 방문한 기억전시관. 전시관 안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는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얼굴이 새겨진 동그라미 원통이 보인다. 아이들에게 띄우는 편지를 넣을 수 있는 '지관'이다. 곁에는 고 김관홍 잠수사와 미수습 희생학생 판화, 그 주에 생일을 맞은 아이들 얼굴을 그린 캐리커처가 나란히 걸려있다. 

 

내부로 발을 디디면 천장에 조그마한 조명을 단 사각형 도자기 '기억함' 304개가 별빛처럼 주위를 밝혀준다. 기억함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304명의 생전 삶이 담겨 있다. 기억함에는 희생자의 이름을 적은 노란 종이별이 붙어 있고 안에는 학생증, 사진, 편지, 안경 등이 들어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기억함을 '별'이라고 부른다. 

416기억전시관에서는 2016세월호참사기억프로젝트2.5[들숨:날숨]이 진행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홍성담 화백의 '세월호 연작 <들숨 날숨>' 전시와 기억시 낭송문화제 '금요일엔 함께 하렴'으로 구성됐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원애리 416기억저장소 문화기획팀장은 "아이들이 들숨과 날숨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침몰한 세월호 내부나 '도대체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에 우리가 아직도 들숨과 날숨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원 팀장은 "제대로 숨을 쉰다는 것, 들숨과 날숨을 힘겹게 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에 대한 희망을 안고 사람들이 안산을 찾아오게 하고 싶었다"며 "이 프로젝트를 통해 2014년 4월 16일 그 날, 세월호 참사의 현장에 있었던 희생자, 생존자, 그리고 국민들이 함께 겪었던 모든 것을 직면하고 다시는 잊지 않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세월호 참사는 304명의 국민을 '물고문'해 죽인 국가폭력"
 

홍성담 화백 작 ‘4월 16일 오전 10시 20분’ (130x162cm·캔버스에 아크릴릭, 2016년) 세월호 참사 2년이 훨씬 더 지났으나 지금까지 제대로 된 진실은 밝혀진 게 거의 없다.
▲ 홍성담 화백 작 ‘4월 16일 오전 10시 20분’ (130x162cm·캔버스에 아크릴릭, 2016년) 세월호 참사 2년이 훨씬 더 지났으나 지금까지 제대로 된 진실은 밝혀진 게 거의 없다.
ⓒ 홍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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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 화백 작 ‘눈물’ (194x130cm·캔버스에 아크릴릭, 2016년) 바다 속에서 죽었다던 내 귀한 아이가 오늘 내 품에 안겼다. ‘엄마! 오늘은 내가 엄마의 눈물을 닦아 줄게’
▲ 홍성담 화백 작 ‘눈물’ (194x130cm·캔버스에 아크릴릭, 2016년) 바다 속에서 죽었다던 내 귀한 아이가 오늘 내 품에 안겼다. ‘엄마! 오늘은 내가 엄마의 눈물을 닦아 줄게’
ⓒ 홍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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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작품 <세월오월>로 최순실 청문회에도 이름이 오른 홍성담 화백(62). 광주항쟁 당시 시민군 문화선전대원으로 활약했던 그는 1989년 대형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그렸다가 당시 안기부에 연행돼 20일 넘게 물고문을 당하고 3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홍성담 화백은 물고문의 악몽을 치유하기 위해 그림으로 국가폭력을 증언했다. 그리고 304명을 물고문으로 죽인 박근혜 정부의 국가폭력에 칼끝을 겨누기 위해 이번에는 세월호를 그렸다. 홍 화백은 "지난해 여름 7~8월 두 달간 나도 감당 못 할 정도로 미친 듯이 그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홍 화백에게 국가폭력과의 싸움은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는 평생에 걸쳐 한국사회 국가폭력의 시스템과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 희생자들의 고통을 화폭에 담으며 '국가폭력이라는 이름의 괴물은 무엇인가'를 줄기차게 물었다. 그 질문은 이번 연작에서 박근혜 정부와 자본과 언론권력의 긴밀한 국가폭력을 정면에서 직시한다. 

홍 화백은 "세월호 참사는 304명의 국민을 아주 천천히 물고문해 죽인 국가폭력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학살사건은 광주학살 이후 약 35년간 권력의 비호 아래서 커왔던 자본가들의 타락과 관료들의 부정부패, 그리고 정치권력의 무책임과 무능력이 서로 카르텔을 형성해 국민을 학살한 국가폭력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35년 전의 국가폭력이 총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세월호 학살은 자본과 국가권력과 똥개 기레기들이 합작해 정교하게 이루어진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 기록을 토대로 그린 '세월호 연작 [들숨 날숨]'은 오는 9일까지 기억전시관에서 전시한다. 이후에는 부산(1월 13일~2월 8일·카톨릭센터 대청갤러리), 성남(2월 중순~3월 초, 미정), 고양(3월 20일~26일·한양문고 갤러리), 광주(4월 3일~5월 10일·광주시립미술관)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지방전시에는 연작의 후속 작품들이 순차적으로 전시된다.  

"촛불의 바다가 염원하는 건 새로운 세상, 개헌은 국민 합의 후"
 

홍성담 화백 작 ‘내 몸은 바다 4 -기억교실’ (162x112cm·캔버스에 아크릴릭, 2016년) 빼앗긴 416기억교실의 칠판에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썼다. 아이(   )의 이름이 바로 여기에 있다.
▲ 홍성담 화백 작 ‘내 몸은 바다 4 -기억교실’ (162x112cm·캔버스에 아크릴릭, 2016년) 빼앗긴 416기억교실의 칠판에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썼다. 아이( )의 이름이 바로 여기에 있다.
ⓒ 홍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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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화백에게 세월호 참사를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정면에서 다룬 이번 전시는 감회가 남다르다. 2004년 안산으로 이전해 작업실을 마련한 그에게 단원고와 아이들은 '이웃'이다. 아이들이 수장당한 진도 맹골수도는 홍 화백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전남 하의도 뒤편이다. 

홍 화백은 "416기억전시관은 맹골수도에서 학살당한 단원고 학생들의 귀중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며 "바로 이곳에서 지금도 떠돌고 있을 아이들의 영혼과 함께 전시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아이들과 전생의 인연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6일 오후 기억전시관에서 광주와 제주 등지에서 온 이들에게 작품 설명을 했다. 그는 매 작품을 설명하면서 물고문 끝에 수장당한 아이들의 죽임을 적시했다. 삶과 죽음의 칼날 같은 경계에서 자신보다 더 참혹하게 물고문을 당한 아이들의 원혼을 그림으로 소통하며 치유하듯, 설명했다. 
 

 홍성담 화백이 6일 오후 416기억전시관에서 기억시 낭송문화제 ‘금요일엔 함께 하렴’에 앞서 세월호 연작을 설명하고 있다. 그가 설명하고 있는 작품 ‘꿈’(162x260cm·캔버스에 아크릴릭, 2016년)은 시민들의 힘으로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  홍성담 화백이 6일 오후 416기억전시관에서 기억시 낭송문화제 ‘금요일엔 함께 하렴’에 앞서 세월호 연작을 설명하고 있다. 그가 설명하고 있는 작품 ‘꿈’(162x260cm·캔버스에 아크릴릭, 2016년)은 시민들의 힘으로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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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기억시 낭송을 할 예정이었던 신경섭 시인은 "그림 속 주제가 가슴에 밀려 왔다. 고향을 갖고 있는 바다와 아이들에게 영원히 고향인 부모님들을 생각하는 정서 그리고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보았을 대한민국 등에 대해 홍 화백으로부터 설명을 듣지 못했으면 제대로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섭 시인은 "이런 프로젝트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작가가 말하려는 진실과 저항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홍 화백은 '세월호 연작'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몇 점이 될지 아직 모른다. 광주 전시에서는 10여 점이 추가된다. 촛불국민들 덕택에 새 힘이 솟는단다. 국가폭력에 항거하는 최전선에서 붓으로 투쟁해 온 그에게 '촛불'은 어떤 의미일까. 

"오늘도 촛불은 시대의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다. 거대한 촛불의 바다가 염원하는 게 단지 대통령 하나 바꾸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촛불의 바다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어요. 촛불은 국가매판세력과 권력과 재벌의 강고한 결합으로 생겨난 타락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불가역적으로 청소해야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죠. 

정치가들은 더럽고 추악한 협잡을 그만 멈춰야 합니다. 모든 정치적 사안들, 특히 개헌 문제에 관한 정략적 셈법을 멈춰야 해요. 촛불도 이미 개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번 개헌만큼은 1987년 당시처럼 사기 협잡꾼 정치가들에게 맡겨둬서는 결코 안 됩니다. 개헌은 국민들이 1년이든 2년이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지하게 토론과 합의를 거친 후 해야 합니다."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 개혁의 출발선은 유가족에게 있어" 
 

 박정화씨가 기억시 낭송문화제 ‘금요일엔 함께 하렴’에서 홍성담 화백의 세월호 연작 중 ‘마지막 숨소리’(194x130cm·캔버스에 아크릴릭, 2016년)에 대해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  박정화씨가 기억시 낭송문화제 ‘금요일엔 함께 하렴’에서 홍성담 화백의 세월호 연작 중 ‘마지막 숨소리’(194x130cm·캔버스에 아크릴릭, 2016년)에 대해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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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가 어둠에 잠기자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유가족과 시민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여섯 번째 기억시 낭송문화제 '금요일엔 함께 하렴' 채비를 마쳤다. 기억시는 박근혜 정부의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아이들 중 미수습자 4명과 수습학생 중 5명을 제외한 241명과 선생님 11명을 추모하는 안도현 시인 등 교육문예창작회 소속작가 35명이 창작한 작품들이다.  

김태철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교사의 사회로 문을 연 낭송문화제는 희생자 304명을 기리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2학년 9반 '혜선 엄마' 성시경씨와 '은정 엄마' 박정화씨가 홍성담 화백의 그림에 대해 설명을 했다. 유가족들은 지난해 여름 홍 화백에게서 작품에 대한 도슨트(전문 안내원) 교육을 받고 매번 낭송문화제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박정화씨는 작품 '마지막 숨소리'를 가리키며 "처음 그림을 접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텼다"며 "이 그림은 우리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좁은 창문턱에 엄지발가락으로 지탱한 채 친구의 손목을 잡고 포기하지 않았으나 아이들을 잔인하게 수장시킨 것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울먹였다. 

말씀솜씨로 나선 정진후 정의당 전 의원은 "유가족과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납득하고 인정할 수 있을 때 416 이후의 새 출발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학 교수는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개혁하는 출발선은 바로 유가족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원고 2학년 7반 희생학생 12명(박현섭·서현섭·성민재·손찬우·송강현·심장영·안중근·양철민·오영석·이강명·이근형·이민우)을 잊지 않는 기억시가 낭송됐다. 수학여행을 떠난 2학년 7반 33명 중 생존해 돌아온 아이는 단 1명뿐이었다. 담임 이지혜 선생님도 별이 된 아이들 곁을 지켜주고 있다. 

단원고 2학년 7반 열여덟 살가운 아들에게 띄운 '기억시'
 

 416기억전시관에서 기억시 낭송문화제 ‘금요일엔 함께 하렴’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신경섭 시인의 기억시 낭송을 듣고 있다.
▲  416기억전시관에서 기억시 낭송문화제 ‘금요일엔 함께 하렴’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신경섭 시인의 기억시 낭송을 듣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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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시는 신경섭 충남 예산여고 교사가 썼다. 그는 "2014년 4월 13일 예산고 제자들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16일 오전 우도에서 참사 소식을 듣고 황망했다"고 당시 상황을 되짚었다. 신 시인에 이어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아이들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기억시를 낭송했다. 처연한 음악을 배경으로 시를 낭송하는 내내 실내는 힘겹게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하영이의 호흡을, 엄마와 아빠의 숨결을 불어다 마디마디 네 열여덟 마디에 넣어줄게. 함께 어두운 터널 같은 마디 속을 빠져 나와 환한 세상으로 다시 나오는 거야" - '실수를 딛고 마디를 늘린다는 건' 중에서(송강현을 기억하며)

"서러운 땅, 억울한 땅, 대한(大恨)의 땅에선 그걸 단절시켰다.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오늘도 부모님들은 진실을 밝히고자 투병과 투쟁을 함께 하신다" - '아비가 아들에게 전하는 심장의 명령' 중에서(심장영을 기억하며)

"중근아 지켜보고 있나, 아빠가 숙제를 다했다. 네가 출력해준 기타 코드 다 외웠어. 처음엔 눈으로 익혔는데 이젠 절로 손이 기억하고 그냥 잡히더라, 어때 잘했지? 근데 검사 맡아줘야지" - '아빠 숙제 다 했어, 검사 맡아줘야지?'(안중근을 기억하며) 

'중근 아빠' 안영진씨는 "시를 낭송했는데 무척 힘들었다"며 "작은 아들에게 정을 많이 못 줬는데도 잘 자라줬다.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는데… 그렇게 떠나 한스럽기만 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안영진씨가 작은 아들 고 안중근을 기억하며 기억시 ‘아빠 숙제 다 했어, 검사 맡아줘야지?’를 낭송하고 있다.
▲  안영진씨가 작은 아들 고 안중근을 기억하며 기억시 ‘아빠 숙제 다 했어, 검사 맡아줘야지?’를 낭송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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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미화씨가 외아들 고 오영석군에게 띄우는 기억시 ‘웃음으로 치료하는 간호사’를 낭송하며 오열하고 있다.
▲  권미화씨가 외아들 고 오영석군에게 띄우는 기억시 ‘웃음으로 치료하는 간호사’를 낭송하며 오열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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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축구선수가 꿈이었지만 아빠가 병실에 입원하시면서 간병을 하느라 병원에 자주 들락거리면서 새로운 꿈을 꾸었지. 웃음으로 치료하는 간호사 되고 싶었어. (중략) 넌 이곳에 없지만 이제 아빠랑 엄마가 눈물을 닦고 이 시대의 우울을 치료할게" - '웃음으로 치료하는 간호사'(오영석을 기억하며)

'영석 엄마' 권미화씨는 안간힘을 다했다. 시를 쓴 종이를 움켜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하늘의 별이 된 아들에게 또박또박 엄마의 가슴을 띄웠다. '영석 엄마'의 시 낭송으로 참고 참았던 실내는 오열의 바다가 되고 말았다. 

권씨는 "하나뿐이었던 내 아들…, 지금도 매일 영석이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다"며 "언젠가 내가 일을 하다 다리를 크게 다쳐 수술 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여자 간호사가 힘에 부치는지 부축하기 힘들어하자 영석이가 곁에서 많이 도움을 줬다. 그런 일을 겪은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엄마, 나 간호사로 꿈을 바꿨어'라던 그런 아들이었는데…"라고 울먹였다.

기억시 낭송문화제는 세월호 3주기 직전인 4월 14일까지 매주 이어진다. 그동안 발표한 기억시는 오는 13일부터 전시할 예정이다. 세월호참사기억프로젝트2.5[들숨:날숨]을 총괄해온 이지성 416기억전시관 소장은 "유가족과 촛불을 든 국민들이 힘차게 움직이면 참사의 진실은 더 빨리 밝혀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근혜 탄핵'은 국가폭력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의 결과예요. 국가권력이 함부로 탄압하려고 해도 결국 국민들이 이긴다는 거죠. 특히 이번 탄핵은 박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묻는 게 아니잖아요. 재벌대기업과 새누리당 국회의원, 보수언론 등이 그간 한통속으로 연결된 것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거잖아요. 이들 연결고리들을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다시 도돌이표가 될 수밖에 없어요. 머리만 자르면 몸통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반드시 뿌리를 뽑아내야 해요. 그래야 대한민국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세월호참사기억프로젝트2.5[들숨:날숨]이 진행되고 있는 416기억전시관 문을 열면 단원고 아이들의 사진과 편지 등이 들어있는 ‘지관’, 고 김관홍 민간 잠수사, 미수습 희생학생의  판화, 이주에 생일을 맞은 학생들의 그림이 찾는 이를 맞는다.
▲  세월호참사기억프로젝트2.5[들숨:날숨]이 진행되고 있는 416기억전시관 문을 열면 단원고 아이들의 사진과 편지 등이 들어있는 ‘지관’, 고 김관홍 민간 잠수사, 미수습 희생학생의 판화, 이주에 생일을 맞은 학생들의 그림이 찾는 이를 맞는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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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추가)세월호 1,000일 앞둔 11차 범국민행동, 광화문에 60만 촛불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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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7  21: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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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둔 7일 광화문 광장에서 60만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새해 첫 주말 촛불, 11차 범국민행동이 진행됐다. 촛불은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에서 총 64만 5,000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새해 첫 주말을 밝힌 11차 범국민 촛불이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둔 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60만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부산·광주·대구·대전 등 4만5,000명, 총 64만5,000여명이 함께 헸다.

이날 광화문 광장에는 3년 전 함께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친구들을 떠나보낸 9명의 단원고 2학년 생존 학생들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학생들은 그간 겪었던 마음고생과 먼저 간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오랜 세월 곱씹었던 고민과 다짐을 들려주었다.

이들은 먼저 “3년이 다 되도록 참사의 책임자가 누구인지 밝혀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민들 덕분에 다시 한 번 제대로 된 진상규명의 기회가 생긴 것 같다”며 감사를 표했다.

사고 당시를 회상하면서 “배가 기울고 한 순간에 물이 들어와 머리끝까지 물에 잠겨 공포에 떨면서 친구들이 배안에 있으니 구조해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우리의 요구를 무시하고 지나쳤다”며, “살아남은 우리가 모두 구조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탈출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답장이 오지 않는 걸 알면서도 계속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받지 못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괜히 전화를 하곤 한다며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말할 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대통령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 대신 당장 나오라는 말만 해주었더라면 이렇게 많은 희생자를 낳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통령의 사생활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조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나중에 친구들을 만났을 때 ‘너희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고, ‘우리와 너희를 멀리 떨어뜨려 놓았던 사람들 다 찾아서 책임묻고 제대로 죄값을 치르게 하고 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 세월호 생존 학생들은 이날 3년만에 공개적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유가족 부모들이 울먹이는 이들을 끌어 안아주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생존 학생들의 발언 이후 세월호가족협의회 2학년 10개 반 대표 부모들은 무대에 올라와 울먹이는 학생들을 안아주었다.

부모들은 “사고 난지 998일째가 되는 오늘까지 세월호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고 인양도 되지도 않았으며, 책임자가 처벌받지도 않았다”며, “촛불이 꺼질까 두렵다. 잊지 말고 끝까지 촛불을 들어 3주기 전에 모든 것이 밝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전명선 세월호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박근혜는 탄핵 중에 신년 기자간담회라는 걸 열어서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게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헷갈려하는 망발을 늘어놓았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세월호 7시간이 탄핵소추 이유로 명기되는 등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물은 것은 역사적인 사건인데, 정작 박근혜는 왜 자신이 탄핵당해야 하느냐고 부인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더 이상 놀라울 것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미수습자인 허다윤 학생의 아버지 허흥환 씨는 “3월이 되어 새로 선체 인양이 시도될 것인데 국민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의 품에 돌려 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꼭 지켜달라”고 도움을 호소했다.

   
▲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세월호 가족들이 지난 1,000일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지겹다’라는 말이었다. ‘죽은 자식 팔아서 돈 챙기는 시체장사한다’는 말까지 들었다”며, 그간 유가족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잔인한 압박이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우리 사회에는 사람 목숨도 돈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통념이 있지만, 유가족들은 그걸 거부했다"며, "세월호 침몰 원인을 알려고 하고 왜 국가가 구조를 하지 않았는지 알아야겠다고 외칠 때 누군가 이들을 지독하게 짓밟았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는 유가족들과 함께 했던 시민들의 힘으로 지금 그렇게 한 자들의 정체가 드러나고 있다”며, “우리가 옳았고 우리가 이겼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위원은 “우리는 지금 세상을 바꾸는 중”이라며, “이제 돌려주겠다. 지겨우니 그만 내려오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날 대회에서는 저녁 7시 30분께 세월호 1,000일을 상징하는 소등행사를 열어 1,000개의 노란 풍선을 하늘로 날려보냈다.

대회를 마친 시민들은 세월호 가족들을 선두로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삼청동 총리공관 방향으로 행진을 한 후 저녁 9시 30분부터 다시 광화문 광장에 모여 집회를 정리했다.

   
▲ 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 발족식. 김중배·노세극·이성미·황진 공동대표 등이 창립선언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본 대회에 앞서 오후 5시부터는 4.16세월호참사 국민조사위원회 발족식이 진행됐다.

작년 9월 박근혜 정부에 의해 강제해산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2기 특조위를 구성하고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을 집중하기로 하는데, 그 과정까지 중단없이 유가족과 국민이 직접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박영래 상임연구위원은 “국민적 관심과 지지만이 진상규명을 위한 유일한 해답이며, 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의무이고 사명”이라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자료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가능하니 다양한 분야에서 지원해 달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촛불집회보다 탄핵반대집회에 더 많은 인원이 모인 것으로 집계한 결과를 발표해 편파적 인원집계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저녁 7시 45분 광화문 일대에 최대 2만4,000명이 모였으며, 탄핵반대집회에는 오후 4시 5분 기준 3만7,000명이 모였다고 발표, 일부 언론은 이를 인용해 처음으로 탄핵반대 집회에 촛불집회보다 많은 인원이 모였다고 보도했다.

퇴진행동은 이날 광화문에는 광화문 광장 양 도로와 사거리 및 시청 방향으로 시민들이 운집했다며, 주말을 반납하고 11주째 광화문에 오는 시민들에 대한 경찰의 흠집내기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추가-8일 0:20)

   
▲ 세월호 유가족들이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사진을 앞세워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TV 드라마를 패러디해 박근혜 대통령과 대리인 서석구 변호사의 죄를 묻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청년정당에서 미래에 대한 자신의 다짐과 그 실현을 거래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세월호를 인양하다’ 노란리본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광장에서는 에어포켓에 시민들이 숨을 불어 넣어 뱃고동소리를 내는 세월호 추모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박근혜 정부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이 ‘광장극장 블랙텐트’를 세우고 박근혜 정부가 퇴진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공연을 올리기로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는 경기도 양평군이 몽양여운형기념관 위탁운영자를 기존 기념사업회에서 마을 새마을회와 상명대 산학협력단으로 바꾸려한다는 규탄집회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만18세 참정권 운동 서명.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박근혜 끝내고 이루고 싶은 3가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박근혜와 함께 헬조선을 만든 장본인으로 재벌이 지목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퇴진행동은 1월을 국민대토론의 달로 정하고 공식 홈페이지 등을 홍보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광화문 미술행동이 조성한 촛불시민 포토존,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국정교과서 폐기 서명운동에 시민들이 줄지어 참여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박근혜 퇴진 청년결사대가 운영한 ‘세월호 7시간 진실의 종을 울려라’ 코너.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세월호 9명의 미수습자를 상징하는 조형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추모콘서트 출연자들. 왼쪽부터 하이미스터메모리, 사이, 조동희, 말로, 정민아씨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가수 이상은씨는 애틋한 정서로 널리 알려진 '언젠가는'을 불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즉석에서 만든 '잊지말자 세월호 1000일' 모형.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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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강제 연행' 부인했다면 위안부 합의 무효 근거

'한일 위안부 협상' 이면, 그 판도라의 상자 열리나
일본이 '강제 연행' 부인했다면 위안부 합의 무효 근거

  이재호 기자  2017.01.06 17:11:49
 
법원이 외교부에 지난 2015년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한 협상 문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합의 이후 통화했던 내용을 공개하라는 소송에서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김정숙 부장판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송기호 변호사가 외교부를 상대로 '2014년 4월 한일 국장급 협의 개시 이후 2015년 12월 28일까지 한일 외교부 장관 공동발표문을 도출하기 위해 진행한 협상에서 일본군과 관헌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의 존부 및 그 사실 인정 문제에 대해 협의한 협상 관련 문서'를 공개하라는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라면 피해자와 국민은 일본 정부가 어떠한 이유로 사죄 및 지원을 하는지, 합의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지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아베 총리가 공개석상에서 합의 중 강제연행과 관련된 발언을 하는 등 일본 정부는 외교 관행을 져버린 전력이 있다"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본의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평가 및 배상을 다루고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보호되는 국가의 이익은 국민의 알 권리보다 크지 않다"고 언급했다. 

외교부가 "(일본과) 서로 비공개하기로 합의한 사항으로 양국 간의 신뢰관계가 깨질 수 있다"며 비공개의 주요 근거로 삼아온 부분에 대해서는 "이 사건 정보가 비공개를 원칙으로 진행됐다는 점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외교부도 이를 입증할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송 변호사는 그동안 위안부 합의와 관련된 문서를 공개하라는 정보 공개 청구를 진행해왔다. 그는 지난해 2월 외교부를 상대로 위안부 협의 당시 △군의 관여 부분 △성노예 용어 사용 금지 문제 △강제 연행 인정 문제 등과 관련한 협상 문서를 밝히라는 정보 공개 청구를 신청했으나 외교부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송 변호사는 같은달 29일 이에 대한 정보공개 소송을 진행했다.  

소송에서 승소한 송 변호사는 판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일본은 위안부 합의 발표 이후 일관적이고 공식‧지속적으로 전시 성노예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제 연행과 전쟁 범죄를 부인했다"며 "합의 공동 발표에서 '군의 관여'라는 문구가 성병 검사와 같은 위생관리를 포함하는 의미라고 일방적으로 설명했으며, 위안부의 강제 연행에 대해 부인해왔다"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이와 같이 일본이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이후에도 대외적으로 강제 연행을 부인하는 것에 대응하여, 전시 성노예의 본질적 핵심인 일본 군 관헌과 군에 의한 강제 연행에 대헤 한일 협의 사항을 공개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책무인 국민의 기본권 수호 의무를 다하는 것임을 확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의 승소 판결은 법원이 한일 위안부 합의 속에서 일본이 '강제 연행'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이는 곧 합의가 무효임을 밝힌 셈"이라고 규정했다. 

송 변호사는 "정부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 인권 문제인 '위안부' 합의 실체를 법원 판결에 따라 즉시 공개해야 한다"며 "만일 정부가 항소하는 방식으로 공개를 거부한다면, 이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 윤병세 외교장관(오른쪽)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지난 2015년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 최종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부는 그동안 송 변호사의 정보 공개 청구에 대해 "일본의 동의 없이 (합의 과정을) 공개하는 것은 외교적 신뢰관계에 큰 타격을 준다"며 "한일 양국 간 협의 시 상호 비공개하기로 합의한 사항"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또 위안부 합의 과정이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주장해왔다. 

외교부는 판결과 관련, 이날 항소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판결내용 검토 후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편 민변이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양국 정상 간 전화 통화 내용 공개를 요구하며 대통령 비서실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김용철)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 정상 회담 내용은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화통화 내용을 위안부 합의 내용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해 두 나라의 입장이 다르다"며 "내용을 공개할 경우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될 우려가 크고 다른 정상회담에서 신뢰성에 흠결을 가져올 수 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민변이 소송을 제기한 공개 대상은 양 정상의 전화통화 내용을 담은 회의록이다. 민변은 지난해 1월 18일 일본이 정상회담 발언을 자국 외무성 홈페이지에 일방적인 내용으로 공개하자 청와대에 발언록 공개를 청구했다. 이후 청와대가 이 발언록 공개를 거부하자 지난 1월 28일 정보공개법상 이의신청을 진행했으나 청와대는 끝까지 이를 공개하지 않았고 결국 소송으로 이어지게 됐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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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살 성환이의 특별한 힙합

열여덟살 성환이의 특별한 힙합

등록 :2017-01-06 18:56수정 :2017-01-0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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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환군. 사진 제이티비시 제공
장성환군. 사진 제이티비시 제공
[토요판] 커버스토리
세월호 추모곡 ‘옐로 오션’ 부른 장성환
‘아직도 고2’에게 띄우는 ‘지금 고2’의 약속 편지 
▶키 185㎝의 모델이라더니 훤칠했다. <제이티비시>(jtbc) 음악프로그램 ‘힙합의 민족2’에서 세월호 추모곡을 불렀던 장성환군은 정식 가수도 아니면서 랩을 잘 불러 관객 투표 1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세월호 추모곡을 부르자는 아이디어는 선배 가수인 치타가 제안했지만 자신의 랩은 100% 본인이 썼다. 2014년 단원고 희생자들의 당시 나이와 똑같은 18살 고2 성환군은 그의 첫 노래였던 ‘옐로 오션’에 어떤 메시지를 담았을까?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와 관련된 추모곡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처음 공개된 ‘옐로 오션’은 여러모로 특이하다. 지상파가 아닌 종편이라고 하지만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서 추모곡이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것도 서로를 떨어뜨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왔다. 노래가 주목을 끌었던 것은 ‘힙합의 민족2’ 참가자의 막내인 18살 장성환군 역할이 컸다. 모델이지만 중학생 때까지 래퍼가 꿈이었던 그는 신세대답게 자신에게 온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남의 노래만 따라 부르던 고2 남학생이 처음으로 써봤다는 그의 랩은 한편의 시처럼 감동적이었다.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1000만명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지만 세월호를 보는 시각은 아직도 편향적이다. 유가족을 만나고 고민하고 선배들과 토론해 만든 18살 소년의 노래에 정치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한 흑인 차별을 날카롭게 비판한 비욘세의 ‘포메이션’을 지난해 최고의 노래로 뽑은 미국의 개방성을 우리나라에서 기대하는 것은 아직 무리일까? 지난 4일 멋진 노래를 부르고도 인터뷰에 조심스러웠던 18살 장성환군을 만나봤다. 글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우리 아들 나이네라며 안아주셨는데 엄청 따뜻했어요

 

 

‘1999년생 18살. 고2. 소속사와는 작년 3월 계약한, 데뷔를 준비하는 신인 모델. 가수 경력 없음.’

 

데뷔 전인 신인 모델이지만 장성환군의 인터뷰는 내내 조심스러웠다. 고백하자면 기자 생활 20년 동안 대통령과 노숙인까지 여러 직군의 사람을 두루 만나봤지만 가장 조심스러웠던 인터뷰의 하나였다. 세월호 추모곡 ‘옐로 오션’을 텔레비전 방송에서 불러 가요계는 물론 누리꾼들에게 화제가 된 ‘개념있는’ 고교생 모델의 인터뷰가 왜 이렇게 조심스러웠을까?

 

<제이티비시>(jtbc) 음악프로그램 ‘힙합의 민족 시즌2-왕좌의 게임’에 출연한 성환군은 지난해 12월27일 세월호의 슬픔을 담은 ‘옐로 오션’을 선배 래퍼인 치타(본명 김은영·26)와 함께 불렀다. 이 노래는 우리에게 익숙했던 힙합의 상식을 훌쩍 넘어섰다. 넘치는 힘과 강렬한 비트쯤으로 알던 힙합이 얼마든지 슬프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옐로 오션’은 세월호 희생자의 무사 귀환을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 넓은 바다를 덮을 때까지 애도를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성환군은 방송에 나와 ‘옐로 오션’을 부르기 전에 혹시 자신의 노래가 유가족분들에 상처를 줄 수 있을지도 몰라서 찾아뵙고 ‘괜찮다’라는 승낙을 받았다고 했다. 외려 유가족들은 고맙다며 배지를 전해줬다. 그때부터 성환군은 항상 배지를 달고 다닌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옥상에서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웃고 있는 장성환군.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성환군은 방송에 나와 ‘옐로 오션’을 부르기 전에 혹시 자신의 노래가 유가족분들에 상처를 줄 수 있을지도 몰라서 찾아뵙고 ‘괜찮다’라는 승낙을 받았다고 했다. 외려 유가족들은 고맙다며 배지를 전해줬다. 그때부터 성환군은 항상 배지를 달고 다닌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옥상에서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웃고 있는 장성환군.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밖에 누구 없어요”란 한마디에 눈물바다

 

“밖에 누구 없어요?” 이 노래의 압권은 고교 2학년인 장성환군이 부른 도입부였다. 성환군은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교복을 입고 책상에 웅크려서 이 가사를 토해냈다. 노래 부르기 전에 자신의 차례가 됐다며 무대로 걸어 나가다가 관객들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하던 앳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방청객뿐 아니라 선배 래퍼 등 참가자들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경쟁팀의 멤버로 ‘힙합의 민족’에 참가했던 고참 래퍼 엠시 스나이퍼가 “첫 부분부터 눈물이 났다”고 말할 만했다.

 

데뷔 준비중인 풋내기 18살 모델
평소 랩 동경하다 덜컥 방송 출연
예선탈락할 줄 알았는데 승승장구
세월호 추모곡으로 결선 1위 진출

 

관객 펑펑 울리던 도입부 직접 써
자료찾고 고민하니 운율까지 딱딱
“살짝 편지글처럼 쓰고 싶었다”
수위 세다는 지적에도 소신 지켜

 

2014년 4월 단원고 학생들이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가던 나이가 18살. 지금 성환군도 18살. ‘장성환’이라고 쓰인 이름표가 달린 교복, 네모반듯한 책걸상, 거기에 쏟아지는 노랗고 파란 조명. 무대 뒤의 화면에는 희생자들을 뜻하는 고래가 춤추고 있었다. 여리면서도 장엄하고,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무대였다. 곡의 총길이는 4분16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16일을 상징한다. 완벽한 연출이었다.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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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군과 치타가 이 노래를 부를 때 무대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 10여명이 방청석에 앉아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유가족들은 녹화 전에 이 노래의 가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치타와 성환군은 방송 전에 광화문광장을 찾아 유가족들을 만났다. 자신들의 노래가 혹시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광화문에서 만난 유가족들은 걱정과 달리 치타와 성환군에게 “좋은 노래를 만들어줘 고맙다”라며 오히려 격려했다.

 

하지만 이런 멋진 노래를 선보인 성환군을 인터뷰하기 위해서 여러 경로로 접촉했지만 인터뷰까지는 쉽지 않았다. 치타의 기획사 쪽은 3월 예정된 치타의 신곡 발표까지 인터뷰를 간곡히 사양하겠다고 했다. 성환군 쪽도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했다. ‘힙합의 민족’ 방송 내용과 성환군의 힙합에 대한 열정에 초점을 맞춘 예상 질문지를 건네고 나서야 성환군을 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을까”

 

한겨레 사옥을 찾아온 성환군은 긴 목이 훤히 드러나는 스웨터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스웨터에는 노란 세월호 배지가 달려 있었는데 배지 위치가 모델답게 감각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수줍어하는 표정의 앳된 고교생이었다.

 

-세월호 배지는 언제부터 달았나요?

 

“유가족분들이 주셨어요. 12월10일 ‘옐로 오션’을 부르기 전에 저희 노래가 혹시 유가족분들에 상처를 줄 수 있을지도 몰라서 찾아뵙고 ‘괜찮다’라는 승낙을 받았어요. 그러고 나서 유가족분들이 배지를 전해 오셔서 그때부터 달았어요.”

 

-다른 말씀은 없었나요?

 

“‘우리 아들 나이네’라며 저를 안아주셨는데 엄청 따뜻했어요. 얼마나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을까 생각하니 슬펐어요.”

 

-유가족분들 앞에서 노래할 때는 안 울었어요?

 

“리허설 때 살짝. 그런데 녹화 때는 어머니 아버지가 오신 것처럼 마음이 편했어요.”

 

-‘옐로 오션’ 아이디어는 누가 낸 거예요?

 

“치타 누나 아이디어였어요. 저는 정말 숟가락 아니 숟가락도 아닌 젓가락만 얹은 거예요. 원래 제작진에서 준 아이디어는 ‘자유주제’와 ‘아듀 2016’ 2가지였는데 치타 누나가 ‘아듀 2016’을 택하고 세월호를 다룬 곡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여기서 잠깐. 지난해 10월18일 시작한 ‘힙합의 민족2’는 5개의 래퍼 가문의 래퍼들이 배우·모델·개그맨·방송인 등의 도전자(크루)를 각각 선택해 팀을 이뤄 경쟁을 하는 방식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장성환군은 11월16일 도전자로는 막차를 탔고, 여성 래퍼로 구성된 가문인 핫칙스(hot chicks)에 영입됐다.

 

-‘힙합의 민족’에는 어떻게 나가게 된 거예요?

 

“나이 차이가 나는 사촌형이 미국에 사는데 그 형이 랩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따라 듣다가 자연스럽게 랩에 익숙해졌어요. 가수를 하고 싶었지만 디자이너인 어머니 권유에 따라 모델에 도전했고 지난해 3월 모델 매니지먼트 회사인 에스팀과 계약을 맺고 신인 모델이 됐어요. 소속사에서 장기자랑 할 때 랩을 많이 불렀는데 그걸 기억했던 회사 분들이 ‘힙합의 민족’에 저를 추천해서 나가게 됐어요.”

 

-지난 3일 결선에 올라가기 직전 방송에서 관객 투표 1등을 했죠? 관객 투표 1등으로 결승까지 갈 줄 알았어요?

 

“아뇨, 예선 탈락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첫 곡 씨잼의 ‘엠엠’(MM)을 가녹음할 때 제 랩을 듣고 제작진이 ‘못 들어주겠네’라고 했대요. 저는 나중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걸 알았어요. 관객들이 1등으로 뽑아줬던 건 ‘옐로 오션’ 때문인 것 같구요.”

 

-어, 맨 첫 곡 ‘엠엠’ 잘 부르던데요?

 

“아는 사람 통해서 래퍼인 돕덕 형을 소개받고 트레이닝을 받은 뒤 최종 무대에 나갔어요. 받아보니 확실히 달라지더군요.”

 

“항상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세월호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 거 같아요. 그걸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노래를 한 거예요.” 성환군은 인터뷰 내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또박또박 얘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항상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세월호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 거 같아요. 그걸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노래를 한 거예요.” 성환군은 인터뷰 내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또박또박 얘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노래 못하던 막내가 1등으로 결선행

 

-언제가 제일 힘들었어요?

 

“찰스(본명 최재민·37) 형과 일대일 할 때요. 너무 떨려서 가사를 까먹었는데 운좋게 이겼어요.”

 

-근데 랩이 그렇게 좋아요?

 

“‘쇼 미 더 머니’(엠넷에서 2012년부터 시작한 힙합 서바이벌 프로)가 매주 금요일 했는데요, 이걸 안 보면 또래 아이들의 대화에서 끼질 못해요. 힙합은 완전 트렌디하죠. 발라드는 지나치게 감상적이어서 안 듣게 되지만 힙합은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이처럼 청소년에게 힙합은 대세다. 미국 뉴욕의 뒷골목에서 흑인들이 시작한 힙합은 단순히 음악을 넘어서 그림·영화·광고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이런 트렌드를 젊은층이 가장 먼저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성환군은 이런 트렌드에 좀더 적극적이었다. 그는 지난해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힙합 동아리를 만들었다. 고3 때 동아리가 안 되기 때문에 고2 때 후회 없이 해보자는 뜻으로 4명으로 출발했다. ‘다카포’로 이름붙인 이 힙합 동아리는 지금은 학교에서 정식 동아리가 됐고 회원은 10명으로 늘었다. 음악용어인 다카포는 뜻보다는 발음이 좋아서 붙였다고 한다.

 

-힙합은 약간 불량하다는 시선도 있잖아요?

 

“그런 갱스터 랩이 있긴 하지만 요즘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랩도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캐나다 출신 미국 래퍼 드레이크도 그런 음악을 하죠.”

 

-모델 말고 래퍼에 먼저 도전해보지 그랬어요?

 

“음,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요. 현실적으로 내가 가수로 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죠. 그래서 모델을 택했는데 ‘힙합의 민족’에서 해보니까 가수가 너무 재밌어요.”

 

-그러면 모델은 뭐가 좋아요?

 

“촬영하는 그 순간만큼은 주인공이 되는 거니까요. 나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평생 남는 사진으로 저장시켜주잖아요.”

 

-아직 모델 데뷔는 안 했죠?

 

“네 올해 초쯤 데뷔를 준비중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가수로 더 먼저 데뷔를 하게 됐어요.”

 

-지금은 모델과 가수의 비중이 어때요?

 

“예전에는 5대5였는데요 지금은 6대4쯤.

 

아이를 키우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치타, 엘이(LE), 예지 등 핫칙스의 여성 래퍼들은 프로듀서로 막냇동생 같은 성환군을 잘 이끌어주었다. 애교가 많은 성환군은 누나들의 원포인트 레슨을 받으면서 쑥쑥 성장했다. 이런 팀워크 덕분에 성환군은 그 뒤에 일대일이면 일대일, 팀 대결이면 팀 대결에서 승승장구했고 준결승에서 ‘옐로 오션’을 불러 최종 결선(파이널)까지 도전자들 가운데 1위 자격으로 진출했다.

 

‘옐로 오션’은 치타의 생각이었다. 핫칙스 가문의 리더 격인 치타는 방송에서 “세월호 사건이 2014년에 벌어진 일이지만, 현재까지 고통이 이어지고 있어 ‘아듀 2016’ 주제로 세월호 관련 곡을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14년에도 이런 음악을 만들고 싶었지만 저의 목소리와 음악이 좀더 힘있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들을 때 하고 싶었는데 마침 프로그램에서 이런 주제를 던져주었고 이왕 하는 거 더 멋있고 의미있는 무대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힙합의 민족’ 송광종 피디는 “치타가 먼저 세월호를 다루겠다고 전화를 해왔다. 사회 참여적인 노래를 불러온 가수가 아니라서 의외였다”고 말했다.

 

추모곡 관심받자 악플도 늘어
인터뷰도 오해살까 주저하기도
세월호 유가족들 부모님 같아
“얼마나 자식들 안아보고 싶을까”

 

평소 말수 적고 내성적이지만 
무대에선 관객과의 소통 즐겨
7일 광화문서 노래 부르려다 취소 
“대한민국 앞에서 노래하고 싶다”

 

하지만 치타가 부른 이 노래의 도입부를 보면 그가 세월호 노래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땐 눈 감고 눈 뜰 때 숨쉬는 것도 미안해서/ 난 입을 틀어막고 두 손 모아 기도하길 반복했어.” 일반인들도 우울감에 빠지게 했던 세월호의 충격이 감수성이 남다른 예술가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치타는 이 노래를 고교생인 성환군이 함께 하는 게 좋다고 여겼다. 그의 안목은 정확했다. 18살 고교생이 부르는 세월호 노래는 관객들에게 큰 여운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치타가 2014년부터 만들고 싶었던 이 노래는 성환군이 있어서 가능했을지도 몰랐다.

 

 

아직 봄이 많이 춥네, 거긴 어때요?

 

-근데 ‘옐로 오션’에서 도입부에 ‘밖에 누구 없어요?’라고 희생자 시점에서 쓴 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죠? 원래 곡을 써봤어요?

 

“아뇨, 처음이었어요. 세월호 관련 곡을 쓰게 되면서부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까지 그냥 대충 알고 있던 것들 말고 정확하게 알아야 해서 자료를 많이 찾았어요.”

 

-성환군이 한 랩의 끝부분인 ‘아직 봄이 많이 춥네/ 그때 일처럼/ 거긴 어때요’ 이 부분도 참 문학적이에요. 시를 써본 적이 있나요?

 

“아뇨. 없어요. 2주 정도 준비하면서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까 살짝 편지글처럼 쓰면 어떨까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고민 끝에 쓴 첫 구절과 끝 구절을 수정 없이 살리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첫 구절, 끝 구절 빼고는 엄청나게 수정과 수정을 거듭했거든요.”

 

하지만 관객들의 마음을 망치로 때리는 듯한 감동과 충격을 준 ‘밖에 누구 없어요’를 비롯해 몇 구절은 수위가 세다는 지적을 제작진한테서 받았다고 한다. ‘특정 단어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성환군은 중심을 잡고 자기 이야기를 해서 애초 생각했던 노래를 우리가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 그가 수위가 세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맨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가사를 고쳤다면 이 노래의 느낌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치타와 성환군의 아이디어는 이곳저곳에서 빛났다. 치타가 노래를 부를 때는 노란 조명을, 성환군이 노래를 부를 때는 파란 조명이 나왔다. 노란 조명은 세월호를, 파란 조명은 진도 팽목항 앞바다를 상징한 것이다.

 

-노래도 딱 4분16초에 끝나던데?

 

“그건 제가 아이디어를 냈어요. 첫 녹음을 하는데 노래가 4분18초에 끝나더라구요. 신기했어요. 2초만 당기면 4월16일을 상징할 수 있어서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재미있네요. 또 다른, 작가의 숨은 의도를 공개한다면?

 

“노래 끝날 때 파도 소리가 살짝 들려요.”

 

-성환군이 교복 입는 것과 무대 위의 책걸상 소품은 누구 아이디어예요?

 

“아, 그건 자연스러웠어요. 제가 고등학생이니까 모두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많은 노력과 아이디어가 담긴 노래였던 만큼 반응은 뜨거울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방송 직후 주요 누리집에서 실시간 검색 상위권에 오르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치타와 성환군은 ‘옐로 오션’ 음원 수익을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방송 나간 뒤 반응이 뜨겁던데요?

 

“방송 나가고 연락 많이 받았어요. 잘 봤다고. 페이스북에서 제 얼굴을 많이 보게 돼서 신기해요. 멋지다 이런 댓글도 많이 붙고요.”

 

-부모님이나 학교에서는 어때요?

 

“집에서는 제 노래만 나와요. 부모님이 많이 응원해주시거든요. 특히 엄마가 ‘셀럽’(연예인을 뜻하는 셀러브리티의 줄임말) 됐다고 격려를 많이 해줘요. 선생님들도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옐로 오션’ 메시지는 세월호를 잊지 말자

 

하지만 세월호의 진실을 원하는 목소리에 무조건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에겐 ‘옐로 오션’과 18살 성환군도 예외는 아니다. “어린 네가 뭘 안다고 이런 노래를 만드냐”는 투의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성환군의 취지를 오해하는 분들도 있어요.

 

“어느 정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곡이라도 욕할 사람들은 욕할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정말 이 노래를 만들 때 열심히 고민하고 진지하게 접근했다고 설명하고 싶지만 그래도 그분들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 거 같아요.”

 

아, 온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이고 마냥 신기해야 할 나이의 학생에게 이런 부담까지 지우는 우리 사회의 편협함이 어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표현하는 것은 청소년의 특성이자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인데 말이다. 그가 왜 인터뷰를 주저했는지도 이해가 갔다. 혹시 이 기사로 오해가 생길까 조심스러웠던 이유기도 하다. 그래도 오해를 조금이라도 바로잡아주기 위해 18살 학생이 만든 이 노래의 메시지를 세상에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 노래는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거예요?

 

“세월호를 잊지 말자. 리멤버 416이요.”

 

-학생으로 혹은 시민으로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유가족들에게 이제 좀 그만하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진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항상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세월호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 거 같아요. 그걸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노래를 한 거예요.”

 

애초 성환군은 7일 세월호 1000일을 주제로 한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치타와 함께 100만 관중 앞에서 ‘옐로 오션’을 부르기로 했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성환군이 자신의 생각을 많은 사람 앞에서 펼쳐 보이고 더 큰 용기를 얻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100만명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어디 흔하겠는가? 성환군은 “광화문에 가서도 방송에서와 똑같이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며 웃었다. 매주 주말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는 똘망똘망한 청소년들의 얼굴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인터뷰 다음날인 5일, 성환군의 촛불집회 참여 스케줄은 취소됐다. 치타가 콘서트 일정 때문에 시간이 안 돼 다음번으로 연기됐다고 한다. 100명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 100만명 앞에 선다면서 ‘떨리지만 영광이에요. 대한민국 앞에 서는 거잖아요’라며 살짝 설레던 성환군이 조금은 아쉬워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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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장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미 안보의 5대 위협과제 가운데 하나"

미 국방장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미 안보의 5대 위협과제 가운데 하나"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7/01/07 [10:1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미국 국방장관 애슈턴 카터는 고별 쪽지 글(메모)에서 조선의 핵과 미사일 능력향상이 미국 안보의 5대 핵심과제중에 하나라도 밝혔다. 미국의 조선의 핵과 미사일 특히 대륙간탄도 미사일에 대한 방어를 위해 사시아 태평양 지역에 해외파병무력의 60%를 이 지역에 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 이용섭 기자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조선의 핵 및 미사일 능력향상에 따라 이에 대한 방어능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카터 미 국방장관은 조선으로부터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방어 공역을 충실하게 이행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소리방송(VOA)은 5일 백악관이 발표한 오바마 행정부의 각료 고별 쪽지(메모)를 통해 믹구은 조선의 위협에 반드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하였다.

 

“북한의 지속적인 핵·미사일 도발이 미 안보의 5대 위협 과제 가운데 하나라며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도발과 공격 억지를 위해 필요한 대비책을 강화해 왔다.”는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말을 전했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특별히 강조한 부분은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성능향상이다. 이에 대해 애슈턴 카터 장관은 “특히 미국 본토를 겨냥한 북한의 공격적인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방어를 위해 미사일 방어 능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미국의 소리방송(VOA)이 보도하였다.

 

이는 1월 1일에 발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내용 중에 “첨단무장장비연구개발사업이 활발해지고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른것을 비롯하여 국방력강화를 위한 경이적인 사변들이 다계단으로,련발적으로 이룩되었다.”고 언급을 했다. 비록 누구를 겨냥하여 대륙간탄도 미사일 개발을 했고 또 어떤 대상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시험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다고 하지만 미국에 미치는 그 파장은 실로 엄청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 신년사 발언에 미국 정계와 군부, 정보당국 그리고 국무부를 비롯한 관련된 전 부서와 연구기관들 심지어 언론들까지 법석 뜰 끓고 있다. 물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 대상을 직접적으로 콕 찍어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도둑이 제잘 저리고, 죄 지은 놈 발편잠 못 잔다.”는 우리 조상들의 명언대로 우리겨레에게 지은 죄가 많은 미국이 한 마디로 화들짝 놀라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불에 덴 송아지 꼴을 하고 있다.

 

계속해서 카터는 “알래스카 기지의 지상 발사 요격미사일(GBI)을 30기에서 44기로 늘리고 있고, 일본에 레이더를 추가 배치했으며, 미사일 방어 능력을 갖춘 이지스 전투함(DDG-51)들을 증가시키고, 지상발사 요격미사일인 PAC-3/MSE를 통해 패트리엇 방어체계의 사정거리를 늘렸다.”며 자신들의 방어망이 금성철벽(金城鐵壁)인 듯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애슈턴 카터는 또 동맹국에 대한 방어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였다. 물론 그 동맹국들이란 한국과 일본을 말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에 대해 애슈턴 카터는 “동맹과 동반국들과의 미사일 협력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며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의 한국 배치 결정을 언급했다.”고 미국의 소리방송(VOA)이 전했다.

 

위의 말은 결국 조선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날로 향상이 되어감에 따라 불안감에 싸여 혹시나 동맹관계에 손상이 갈까봐 미리 등을 두드려 주고 그 앞에서 힘껏 근육자랑을 하면서 안심을 시키는 귀 맛 좋은 말 이외에 그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진실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위 카터의 말을 듣고 위안을 삼을지 모르지만 조선과 미국의 군사력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전문가라면 한 마디로 재담(코미디) 수준의 말밖에 안 된다.

 

카터는 한 발 더 나아가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방어를 위해 해군과 공군 자산의 60%와 최신 전력을 이 지역에 배치 중이다.”면 현재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미국의 무력자산들을 얼마나 집중을 하여 배치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본 문제에 대해서는 블링큰의 발언에 대해 전하면서 이미 본 지에서도 언급을 하였다. 위 애슈턴 카터의 발언 즉 “조선의 위협으로부터 동맹국을 방어하고 미국 본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아시아 태평야 지역에 미국 무력의 60%를 집중 배치하고 있다.”는 말은 그야말로 뻔 한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이 아시아 태평야 지역에 무력의 60%이를 정도로 어마어마 하게 배치를 한 것은 《아시아 태평양 회귀전략》 《아시아 태평양 중시전략》에 따라 배치했을 뿐이다.

 

이를 직접적으로 해석하면 미국이 동북아시아에 있는 대국과 강국들 그리고 잠재적인 적수들을 견제하고 궁극적으로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면 선제 핵 타격을 하여 제압을 하고자 하는 아시아태평양 제패전략 실현을 위해 이 지역에 미국 무력의 60%를 집중 배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침략성을 숨기기 위해 교묘하게 조선의 핵 ·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이 지역에 있는 동맹국을 방어하고 미국본토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뻔 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카터는 “지난 8년 간 사드를 괌에 배치했고 탄도미사일 방어 능력을 갖춘 전투함을 일본에 추가했으며 , 오키나와의CH-46 헬기들을 최신 이착륙 수송기인 MV-22 오스프리로 대체하였다. 또 (전략)폭격기들을 지역에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주한 미군의 공군과 육군의 전력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마지막으로 한국의 방어공약에 대해서와 차기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고 언급을 하였다.

 

미국의 소리방송(VOA)은 “한국에 대해서는 북한의 공격에 대응한 방어공약을 계속 충실히 이행하는 한편 점증하는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두 나라의 방어 능력을 포괄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차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전략적 국익을 위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동맹들과 유대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카터 장관의 권고의 말을 전했다.

 

애슈턴 카터 장관의 위의 발언은 지역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아니 오히려 지역의 안보불안만을 점증시킬 뿐이다. 미국 해외무력의 60%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집중하여 배치를 했다는 것은 지역 나라들에게 무력증강을 가져오게 할 뿐 아니라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대단히 높아질 뿐이다. 물론 카터는 지역의 동맹국들과 미 본토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는 상투적인 탈바가지를 씌우지만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 나라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미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 카터에 언급한 무력자산들이라는 것들이 과거 20세기 말까지는 통할 수 있었지만 21세기 최첨단 무장장비의 시대에는 지역과 세계의 안보불안만을 야기할 뿐이지 실전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은 이미 중동과 2015년 우크라이나 사태시 흑해에서 이미 검증이 되었다. 아닌 말로 미국이 자랑하는 THAAD체계나 MD체계 그리고 레이더체계는 현대 전자전과 사이버전에는 그야말로 소총만도 못한 무기일 뿐이다. 이는 현대 무기분야에 조금이라도 아는 전문가들이라면 모두가 동의를 하고 있는 사실이다.

 

미국의 최첨단 무기라는 것들이 현재 예멘에서 동북아시아 어느 작은 나라의 30여년 전의 무기에도 전혀 맥을 쓰지 못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그 연맹국들이 연전연패 초토화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근육자랑은 하지 말고 세계 속에 함께 하는 국가로서 평화와 안정을 지켜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미국 본토의 안전도 담보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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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3000만 마리 떼죽음.... 누명 쓴 '범인'

 

사상 최악의 조류독감, 진짜 원인 따져보니

17.01.06 20:46l최종 업데이트 17.01.06 20:4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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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최순득-최순실 자매와 친분”

[단독] “황교안, 최순득-최순실 자매와 친분”제보자 “최순실 거래 은행지점장 아내는 黃의 측근”…황교안측 아직 답변없어이상호 대표기자  |  balnews21@gmail.com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법무장관 시절 최순득 일가와 친분이 있었으며 이후 관계를 이어온 것으로 안다”는 중요 진술이 나왔다.

최순득 일가와 30년 지인으로 최씨 일가 내부 사정에 정통한 A씨는 6일 고발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2014년 가을경 최순득씨가 황교안 당시 장관과 전화로 만날 약속을 잡는 것을 옆에서 봤으며 이후 실제로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당시만 해도 최순득씨 건강상태가 나쁘지 않아 최순득 일가의 실세로 전면에서 활동했으며, 두 사람이 만나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 최순득 측근 A씨가 최순득씨 일행과 황교안 당시 법무장관이 만난 곳으로 지목한 압구정동의 카페 '커피빈' 외경. 현재는 카페가 문을 닫고 업종전환을 위한 내부공사가 한창이다. ⓒ go발뉴스

A씨는 또 “지난 10월30일 최순실씨가 입국해 거액을 인출한 은행도 다름 아닌 언니 최순득씨 소유의 삼성동 빌딩 1,2층을 쓰고 있는 국민은행 봉은사로 지점이며, 현금으로 5억원을 뽑아간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국민은행 봉은사로 지점은 서울 신사동 최순실씨의 미승빌딩에 2억1,200만원의 근저당을 설정해주고, 얼마 전 매각한 하남땅을 담보로 1억8천만원, 2013년에는 강원도 평창 땅을 담보로 1억원을 대출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뉴스가 직접 국민은행 봉은사로 지점을 찾아 최순실씨가 현금 5억원을 인출해간 사실이 있는지 묻자 은행측은 “그날 최순실씨는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인출여부는 고객정보인 만큼 취재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일단 부인했다.

이와 관련해 A씨는 “국민은행 봉은사로 지점장 문모씨의 아내는 법무부 고위직 간부 공무원이며 평소 최순득 부부와 친분이 있어 최순득씨가 호텔 건립을 추진하던 제주도에 부부동반으로 여행도 함께 다녀온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A씨는 “국민은행 문 지점장의 아내가 황교안 법무장관의 측근으로 지난해 황 장관의 국무총리직 인수 작업도 도와준 것으로 들었다"며 "지난 9월 승진한 것도 그 공을 인정받은 것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 국민은행 봉은사로 지점은 최순실씨의 언니 순득씨 소유의 빌딩 1,2층을 장기 임대해 사용하고 있으며, 지난 2013년 이후 최순실씨에게 최소 3차례 이상 지속적으로 대출거래를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 go발뉴스

고발뉴스는 법무부 고위직 해당 간부와 황교안 대통령 권행 대행에게 각각 반론을 듣기 위해 사무실과 핸드폰 등을 통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아직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 해당 간부는 6일 저녁 8시3분에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최순득 부부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며 제주도 부부동반 여행도 다녀온 사실이 없고, 국무총리 인수작업에 관여해 그 대가로 승진했다는 부분도 사실이 아니니 정정해달라”고 요청해왔다.

황교안 국무총리실 공보팀도 이날 저녁 6시50분 경 고발뉴스로 전화를 걸어와 “황 권한대행은 고발뉴스 해당 보도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최순득을 전혀 모르고, 전화를 받은 적도 없고 실제로 만난 적도 없다. 기 보도된 허위보도와 인터넷 방송을 통한 추가 허위보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알려왔다.

한편, 황교안 권한 대행은 지난해 12월21일 대정부질문에서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이 “미르재단이나 최순실씨에 대한 의혹이 최초에 제기됐을 때 유언비어라고 규정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시나”라고 묻자 “아직 사실 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아 말할 수 없다”며 최순실 일가를 비호하는 듯한 발언을 고수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오늘 저녁 7시 부터 '페이스북-유튜브-트윗'을 통해 3원으로 생중계되는, 고발뉴스 탐사프로그램 <이상호의 사실은 LIVE>을 통해 보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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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1~5회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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