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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 죽이겠다", "싹 다 잡아들여"…내란 재판서 드러난 그날의 민낯

[12.3 비상계엄 1년] ① 광장 함성 잦아든 뒤 찾아온 법원의 시간

최용락 기자 | 기사입력 2025.12.01. 08:58:10

12월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언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45년 만에, 그리고 1972년 유신 이후 52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선포한 '친위 쿠데타'이자 '내란'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28일 갤럽에서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11명의 전직 대통령(윤보선, 최규하 제외) 중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비상계엄 사태는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여전히 내란 관련자들의 재판이 진행 중이고 국민의힘에서는 '윤 어게인'을 외치는 상황이다. <프레시안>에서는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비상계엄이 우리에게 준 의미, 그리고 청산해야 할 문제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12.3 비상계엄 사태로부터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친위 쿠데타'로 민주주의의 근간과 모두의 일상을 뒤흔든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 광장의 함성은 잦아들었지만, 그날의 진실을 밝히고 내란 우두머리와 가담자를 단죄하기 위한 법원의 시간은 꾸준히 이어졌다.

법정에서 드러난 그날의 민낯은 어땠을까. 사태의 정점인 윤석열 전 대통령에서 한덕수·김용현·이상민 등 국무위원, 여인형·조지호 등 군경 수뇌부에 이르기까지 내란 관련 혐의자들이 받고 있는 재판의 경과와 주요 증언을 정리했다. 재판 기간 내내 일었던 재판부에 대한 잡음도 들여다봤다.

① 윤석열, 내란우두머리·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윤 전 대통령은 현재 두 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시작돼 32차 공판이 끝난 내란우두머리 혐의 등 재판, 지난 9월 시작돼 11차 공판이 진행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 재판이다.

내란우두머리 혐의 재판에서는 비상계엄 당일 국회 침탈에서 정치인 체포에 이르기까지 윤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이 복수 증인의 일관된 증언을 통해 확인되는 중이다. "문짝을 부수고라도 안으로 들어가 다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들었다는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증언, 계엄 당일 체포 대상 정치인 명단과 함께 "싹 다 잡아들여서 이번에 싹 다 정리해라"는 말을 들었다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증언이 대표적이다.

직권남용 재판에서는 경호처를 동원한 체포영장 집행 방해, 비상계엄 관련 국무위원 의결권 침해 등이 다뤄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주로 체포방해에 관한 신문이 이뤄졌다. 윤 전 대통령 첫 체포 5일 전인 지난 1월 10일 사퇴한 박종준 전 경호청장은 윤 전 대통령이 고위공직자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은 "전부 불법"이라 주장했다고 증언했다. 또 '영장 집행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윤 전 대통령 측 입장은 완강했다고 밝혔다.

재판 과정에서는 윤 전 대통령의 태도도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월 석방돼 4개월만인 7월 재구속된 뒤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 16번 연속 불출석한 윤 전 대통령이 직권남용 재판 시작되자마자 보석을 청구하고 신문에 나와 "1.8평 방에서 서바이브(survive)가 힘들다"며 석방해주면 "사법절차에 협조하겠다"고 한 장면은 인구에 회자됐다.

그 뒤 재판 출석을 재개한 윤 전 대통령이 증인들과 설전을 벌이다 면박을 받는 장면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10월 국군의날 군 간부 회동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이라는 말을 했는지를 두고 다투던 중 곽 전 특전사령관이 "이런 말까진 안 하려 했는데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을 잡아오라며 당신이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고 했다"고 말하자 윤 전 대통령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닫은 장면이 대표적이다.

정치인 체포와 관련해서도 윤 전 대통령은 '법률가 대통령이 불법지시를 내렸겠나'라며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독자 지시라는 취지의 주장을 펴던 중 홍 전 차장에게 "피고인,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건 아니죠"라는 꾸짖음에 가까운 말을 들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 1차 공판에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② 한덕수·김용현·이상민…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 받은 국무위원

12.3 비상계엄과 관련한 국무위원들의 법 위반 여부를 다투는 재판도 다수 진행 중이다. 현재 한덕수 전 국무총리,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김 전 장관과 이 전 장관은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른 건 한 전 총리다. 내란특검은 지난 26일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은 이 사건 내란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사람임에도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의무를 져버리고 계엄 선포 전후 일련의 행위를 통해 내란 범행에 가담했다"며 징역 15년형을 구형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계엄 당일 국무회의실 CCTV 공개가 큰 관심을 받았다. 영상에는 한 전 총리가 계엄 관련 문건을 챙기고 다른 국무위원과 돌려보는 모습,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한 전 총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결국 한 전 총리는 지난 지난 2월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계엄 문건 등을 본 적이 없다'고 한 진술이 위증이었다고 인정했다.

김 전 장관은 사전모의 단계에서부터 사후처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내란에 가담한 혐의를 받아 총 3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그 중 내란중요임무종사 재판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김용군 전 헌병대장과 함께 받고 있으며 27차 공판까지 진행됐다.

재판에서는 주로 선관위 무력점거 및 사전모의 과정에 대한 공방이 이뤄지고 있는데, 현역 정보사 군인이 증인으로 출석한다는 이유로 상당 기간 재판 전체가 비공개돼 시민사회에서 비판이 일었다. 변호인들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고, 법정에서 소란을 일으켜 감치 명령을 받은 일도 논란이 됐다.

이 전 장관 재판은 8차 공판이 진행됐다. 주 쟁점은 언론사 단전, 단수 지시 여부다. 허석곤 전 소방청장은 이 전 장관에게 계엄 당일 '경찰이 언론사 단전·단수 요청을 하면 협력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전화를 끊은 뒤 소방청 간부들에게 "단전·단수가 우리 의무냐"고 물었는데, 아니라는 데 모두 동의했고 관련 지시도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 전 장관은 소방청에 "만에 하나 그 문건과 관련된 사안이 벌어졌을 때 누군가의 지시가 있더라도 안전에 유의하라고 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필요하면 경찰과 협의하라"고 한 것 뿐이라고 주장 중이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위증 등 혐의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한 전 총리는 "비록 비상계엄을 막지 못했지만, 찬성하거나 도우려 한 일은 결단코 없다"며 "이것이 오늘 역사적인 법정에서 제가 드릴 가장 정직한 말"이라고 했다. ⓒ연합뉴스

③ 여인형·조지호,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 받은 군경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등 군·경 인사도 대거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과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다.

일부를 살피면, 여 전 사령관 등 재판에서는 곽 전 사령관이 증인으로 출석해 지난해 11월 여인형·이진우 전 사령관이 동석한 국방부 장관 공관 모임 당시 '국회, 선관위 병력 충돌 언급이 있었고, 계엄 이틀 전 특전사 출동 장소를 들었다'고 밝혔다.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은 계엄 당일 선관위 출동 당시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서 가져오라'는 명령을 들었다고 진술했으나, 여 전 사령관은 부인 중이다.

여 전 사령관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도발해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 목적으로 지난해 10월경 평양에 무인기를 투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일반이적 혐의를 적용받아 지난 10일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기소됐다.

조 청장 등 재판에서는 방첩사, 국가수사본부가 한 정치인 체포 시도 협력 여부, 국회 출입통제 지시 등이 관건이다. 정치인 체포와 관련 전창훈 전 국수본 수사기획담당관은 당시 연락을 맡은 경찰 간부로부터 조 청장이 "합동수사본부 100명, 차량 20대 등 명단 작성을 준비하라", "방첩사 지원 5명은 사복 차림으로 보내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국회 통제와 관련 임정주 전 경찰청 경비국장은 전면 재고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다.

조 청장은 현재 탄핵심판도 받고 있다. 변론은 끝났고 연내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첫 재판에서 조 청장 측 대리인은 "세 번의 항명"과 "사직 의사 표명"으로 "계엄 해제 의결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국회 측 대리인은 "계엄 해제 결의는 국회의원, 시민, 보좌관이 월담까지 해 이룬 것인데 피청구인이 소극적으로 혹은 용인해 발생한 일인 듯 주장하는 데에 분노마저 느낀다"고 맞받았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④ 내란 재판의 또 다른 주인공, 재판부

내란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재판부도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이는 윤 전 대통령 내란 재판을 담당한 지귀연 부장판사였다. 지 판사는 윤 전 대통령이 처음 구속된 뒤 그간 관행과 달리 구속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 결국 윤 전 대통령을 풀어주는 결과를 낳아 많은 지탄을 받았다.

이후 재구속된 윤 전 대통령이 16차례나 재판에 불참하는데도, 지 판사가 미온적으로 대응한 일도 질타를 받았다. 지난 2일 내란재판 의무중계가 시작된 뒤로는 불출석 시 강제구인을 예고하는 등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재판을 진행한 다른 판사들과 지 판사의 재판진행이 대비되며 비판 여론이 일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윤 전 대통령 내란 재판 1심 선고는 내년 2월경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에 앞서 1월에는 한 전 총리에 대한 1심 선고도 예정돼 있다. 내란 혐의자들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은 계엄의 밤 총구 앞에서도 민주주의를 지키려 한 시민들의 열망에 부응하는 모습일까.

최용락 기자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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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최악의 개인정보 유출...조선일보 “문 앞까지 털렸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쿠팡 계정 3370만개 무단 노출 사태 일제히 1면

늑장 인지에 축소 신고 의혹, 점유율 높이기 골몰에 로비·착취·사망 의혹까지

일간지들, 1면에 비상계엄 내란사태 1년 기획 시작

기자명김예리 기자

  • 입력 2025.12.01 07:41

  • 수정 2025.12.01 07:43

▲쿠팡. ⓒ연합뉴스

국내 유통업계 1위인 쿠팡에서 발생한 초유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1일 아침신문 1면에 올랐다. 외부로 누출된 고객 계정이 국내 성인 4명 중 3명 꼴인 초유의 대규모인 데다, 쿠팡 내부 직원 소행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30일 “쿠팡 계정 3370만개가 무단으로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노출된 정보는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일부 주문 정보”라며 “쿠팡은 현재 기존 데이터 보안 장치와 시스템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은 전날 모바일 앱과 피해자 개별 연락을 통해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공지했다. 쿠팡은 이날 박 대표 명의로 공개 사과를 했다. 전날 고객 계정 3370만건이 무단으로 노출된 사실을 알렸다.

이는 올해 3분기 밝힌 활성고객(구매 이력이 있는 고객) 2470만명보다 큰 규모로, 업계 안팎에선 사실상 쿠팡의 모든 고객 정보가 노출된 것으로 추정한다. 동아일보 등 다수 신문들은 “쿠팡의 활성 이용자 수가 3200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모든 회원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셈”이라고 전했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고객 이름과 전화번호, 집주소, 이메일, 주문 정보다. 외부 해킹이 아니라 내부 직원의 유출로 보인다.

9개 전국단위 아침종합신문 가운데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가 1면 상단에 이를 보도했다. 중앙일보와 한겨레, 한국일보는 1면 하단에 이를 보도했다. 다음은 신문들이 1면에 올린 관련 기사 제목이다.

▲20일자 동아일보 1면

경향신문 : 쿠팡 3370만명 정보, 6월부터 샜다

국민일보 : 3370만명… 사실상 전 국민 개인정보 털렸다

동아일보 : 3370만명 정보 털린 쿠팡 “中직원 소행 의심”

서울신문 : 4명 중 3명이 털렸다 쿠팡발 ‘정보유출 포비아’

세계일보 : 고객정보 다 털린 쿠팡, 5개월간 몰랐다

조선일보 : 대한민국이 ‘문 앞까지’ 털렸다

중앙일보 : 쿠팡 중국인 전 직원, 고객에 협박메일

한겨레 : 쿠팡 3370만명 고객정보 유출

한국일보 : 3370만명…쿠팡 사실상 전고객 정보 털렸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19일 쿠팡으로부터 침해사고 신고, 20일(1차)과 29일(2차) 정보유출 신고를 각각 받았다. 이후 현장 조사 과정에서 공격자가 정상적인 로그인 없이 3370만개 이상 고객 계정의 고객명, 이메일, 배송지 전화번호 및 주소, 일부 구매 이력 등을 유출한 것으로 확인했다. 쿠팡의 1차 신고 당시 4536개 계정으로 파악된 피해 규모는 2차 신고 때 약 7500배나 폭증했다.

▲20일자 세계일보 1면

조선일보는 “특히 쿠팡의 경우 이름, 휴대전화 번호, 집 주소 같은 기본 신상 정보뿐 아니라 새벽 배송을 위해 소비자들이 기입한 아파트·빌라 공동 현관 비밀번호와 최근 주문 상세 내역까지 악용 소지가 큰 민감 정보가 모조리 유출됐다”며 “개인 정보를 활용한 문자나 전화 사기뿐 아니라, 주거 침입 같은 물리적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는 이유”라고 했다.

유출 규모도 신고 당시보다 7500배 커 축소 신고 의혹도 일고 있다. 경향신문은 “개인정보 유출 규모도 당시의 4500명에서 7500배나 많아 피해 규모를 축소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지난 11월 초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인지했다. 뒤늦게 경찰청·한국인터넷진흥원·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신고했으나 당시만 해도 4500개 계정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파악하는 데 그쳤다. 조사 결과 피해자 수가 7500배가량 늘어났다”고 했다.

▲20일자 조선일보 1면

세계일보는 “쿠팡의 1차 신고 당시 4536개 계정으로 파악된 피해 규모는 2차 신고 때 약 7500배나 폭증했다”며 “앞서 개인정보 보호 위반으로 역대 최대 과징금(1348억원) 처분을 받은 SK텔레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약 2324만명)보다 1000만여명이나 더 많다”고 했다.

당장 이용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집단 소송 움직임도 일고 있다. SNS에 ‘집단 손해배상 청구’를 제안한 김경호 변호사는 통화에서 “대규모 플랫폼인 쿠팡에 요구되는 보안 수준은 매우 높다”며 “민감한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관심과 투자가 부족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최근 쿠팡으로부터 이번 사태와 관련한 고소장을 접수하고 정확한 개인정보 유출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서버기록 등 관련 자료를 임의제출받아 분석 중이다. 쿠팡 고소장에는 피고소인이 특정되지 않고 ‘성명불상자’로 기재됐다.

“노동자 목숨도, 고객 보안도 못 지켜”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다수 신문이 1면에 이어 2면과 3면 등 주요 지면 전면을 털어 관련 보도를 이어갔다. 쿠팡 이용자들의 원성과 보안 주의사항, 유출된 정보 유형, 그간 쿠팡의 잘못된 사업 방식과 대응 태도를 짚는 보도들이 이어졌다.

한국일보는 쿠팡이츠가 점유율을 높이는 이면에 노동을 불법 착취한 의혹을 보도했다. <“실적 못 채우면 강제야근, 연차 사용 제한”…쿠팡이츠 불법 노동착취 폭로도>에서 쿠팡이츠가 광고영업 부서 노동자들에게 강제로 야근을 강요하고 연차사용을 제한하는 등 노동착취를 일삼는다는 내부 폭로를 보도했다. 이 신문은 60여 명의 계약직 노동자와 3개월 단위로 재계약하고 이들을 정규직 노동자 10여명이 관리하는 구조 속에서 퇴근을 안 시키고 할당량 채우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현직 노동자 증언을 전했다.

▲20일자 한국일보 2면

경향신문은 3면 <노동자 목숨·고객 보안 못 지킨 쿠팡…‘내실 없는 성장’의 민낯> 기사에서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과 관련한 불기소 외압 의혹으로 상설특검 출범을 앞둔 데다 심야 배송에 따른 물류센터 노동자와 택배기사의 과로사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쿠팡은 e커머스 업체로서는 기본인 고객 정보 보호에도 소홀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고 짚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프로덕트 커머스 활성고객은 2470만명으로 2020년 대비 1000만명가량 늘었고 연간 매출도 지난해 40조원을 돌파했다. 이 신문은 업계 관계자들을 인터뷰해 “쿠팡이 노동자 복지와 고객 데이터 보호 등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는 관리를 소홀히 했던 것 아닌가”, “e커머스는 가지고 있는 고객의 민감한 정보가 많다보니 보안 관련 예산을 매출 대비해 계속 늘려야 한다”, “대외적 로비에 집중하느라 내실을 기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쿠팡은 정부 대관 업무 등을 위해 국회의원 보좌관 등 퇴직공직자를 올해 18명(계열사 포함) 영입했다.

▲20일자 경향신문 3면

조선일보는 4면에서 <로비로 각종 논란 틀어막아온 쿠팡, 올해 정부·국회 출신 18명 채용> 기사에서 “쿠팡은 전현직 대표 모두 대관 분야 출신이고, 야간 근무자의 잇따른 사망 사고, 입점 업체 수수료 문제 등 각종 논란을 막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정치권 인사를 대거 영입해 왔다”며 “야권에선 ‘대관 조직을 동원해 당장의 논란을 막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소비자는 안중에 없었던 것’이라며 ‘5개월간 정부도 쿠팡도 개인 정보 유출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냐’는 비판이 나온다”고 썼다.

일부 신문은 중국 국적 직원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강조해 보도했다. 국민일보와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1면 본문 주요 대목에서 쿠팡에서 퇴사한 중국 국적 지원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제목에 보도했다. 경향신문과 세계일보는 기사 끝무렵에 이를 언급했다. 세계일보는 1면 기사 말미에 “일각에선 유출 주범으로 거론된 중국 국적의 전 쿠팡 직원은 한국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직원은 쿠팡 측에 협박성 이메일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쿠팡이 정부의 ‘정보보호와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을 두 차례 취득하고도 네 차례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반복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했다.

일간지들, 비상계엄 내란사태 1년 기획 시작

대다수 신문이 1일부터 1면에 12·3 불법계엄 1년을 맞는 기획 보도를 시작했다. 경향신문은 1면에 12·3 불법계엄에 맞섰던 시민들을 다시 만나 이들의 지난 1년을 되짚었다. 계엄군을 소화기로 막았던 의원실 보좌관과 계엄 8일 뒤 부산 서면의 집회에서 발언한 ‘술집 여자’라고 밝히고 발언한 시민, 은둔하다 광장의 집회를 계기로 연대 활동을 시작한 청년, 광장을 지킨 의료 봉사자 등을 인터뷰했다.

▲20일자 경향신문 1면

동아일보는 1면 <계엄의 밤 1년, 어둠은 걷히지 않았다> 제하 보도로 “국격 추락까지 불러온 ‘그날’의 1년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 신문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만장일치로 파면됐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지만, 계엄을 선포한 동기와 김건희 여사와의 공모 여부 등이 규명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며 내란사태 진상규명 현황과 남은 숙제들을 전했다.

▲20일자 동아일보 1면

세계일보는 1면 머리기사 <12·3 비상계엄 1년, 그날 밤의 기록>에서 당시 현장을 다시 돌아보는 기사를 냈다. “밤늦게 대통령실이 방송사에 생중계 여부를 문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일보를 포함한 언론사들은 대통령이 심야에 직접 브리핑을 할 것이라는 점만 파악할 수 있었다 (…) 세계일보 정치부를 포함한 언론사 정치·사회부 기자들은 계엄 선포 직후 회사와 국회 등으로 긴급 소집됐다. 기자들은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실과 비상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질 국회로 분주히 이동했다. 대통령실 인근에서는 계엄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20일자 세계일보 1면

한겨레는 <그날 국회로 달려가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을 찾습니다>란 제목의 사진 모음 기사를 1면 머리에 배치했다. 그 아래 배치한 <“군, 계엄 1년 전부터 대북전단 살포”>에서 “국방부 직할부대인 국군심리전단이 2023년 10월부터 지난해 12·3 비상계엄 직전까지 대북 전단을 몰래 보냈다는 증언이 당시 대북 전단 살포 작전에 참여했던 장병에게서 나왔다”고 보도했다. 6면엔 대북전단 살포 병사의 인터뷰를 전했다.

▲20일자 한겨레 1면

한국일보는 1면 머리기사 <국민이 계엄 끝냈지만 더 갈라진 정치>에서 내란 사태 의미를 짚으면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여야 원로, 정치학자, 평론가들은 ‘국민은 헌법 가치를 다시 새겼고, 사회는 빠르게 일상을 회복했지만, 정치만은 양극단으로 갈라져 오히려 분열을 부추기며 후퇴하고 있다’고 공통적으로 진단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1면 하단에 “계엄 1년”을 문패로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 인터뷰를 배치하고 “내란 관여 세력에 대한 단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특검으로 끝내야 한다”며 “명백한 혐의가 있지 않은 한 보복성으로 파헤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전했다.

▲20일자 조선일보 1면

국민일보는 ‘비상계엄 1년 지금 대한민국은’ 기획에서 “한국사회는 단죄의 규모와 강도를 두고 갈등이 오히려 증폭되는 부작용도 겪고 있다”며 “내년 내란 재판 선고와 지방선거를 계기로 이제는 정년연장, 연금개혁, 개헌 등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의제에 매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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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군, 계엄 1년 전부터 대북전단 살포”…국방부 심리전단 전역자 증언

내란 365일

“23년 10월부터 2개월에 1~2번씩

계엄 직전 10㎏ 풍선 100개 보내”

권혁철기자

수정 2025-12-01 08:33등록 2025-12-01 06:01

국군심리전단의 대북 전단 살포 작전을 밝힌 ㄱ씨는 같이 근무했던 장병들을 생각해 실명과 얼굴 공개는 원하지 않았다.

국방부 직할부대인 국군심리전단이 2023년 10월부터 지난해 12·3 비상계엄 직전까지 대북 전단을 몰래 보냈다는 증언이 당시 대북 전단 살포 작전에 참여했던 장병에게서 나왔다. 윤석열 정부 집권기에 민간단체뿐 아니라 군 당국에서도 대북 전단을 보낸 사실은 일부 보도가 됐지만, 작전에 참여한 장병의 구체적 진술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심리전단은 유사시 대북 전단 살포, 확성기 방송 등 심리전을 수행하는 부대다.

2023~2024년 심리전단에서 군 복무를 한 ㄱ씨는 30일 한겨레와 만나 “2023년 10월 중순 최전방에서 부대원들과 함께 대북 전단을 담은 대형 풍선 10여개를 처음으로 북쪽으로 날려 보냈다”고 말했다. ㄱ씨 소속 부대는 그때부터 2024년 11월까지, 2개월에 한두 차례 정도 작전을 수행했다고 한다. 그 뒤로는 작전 때마다 풍선을 100개쯤 날려 보냈는데, 풍선마다 10㎏ 정도의 전단을 매달았다는 게 ㄱ씨 증언이다.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가 지난해 5월2일 밤 9시께 경기도 파주시에서 대북 전단을 매단 풍선을 날리고 있다.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제공

심리전단의 대북 전단 살포 작전은 2023년 9월26일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규제하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나온 뒤 본격화됐다. ㄱ씨는 “헌재 결정 전에는 후방에서 전단 살포 훈련을 했는데, 그해 9월부터는 군사분계선과 인접한 최전방 기지에서 훈련을 하기 시작했고 훈련 횟수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ㄱ씨는 실전 같은 훈련을 한달쯤 하고 다음달인 10월에 실제 북한으로 전단을 매단 풍선들을 보냈다고 했다.

ㄱ씨 설명을 들어보면, 당시 심리전단은 군사지도에 북한의 군사 기지, 공항, 일정 규모의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 좌표를 그려놓고, 풍향과 풍속 등을 실시간으로 계산해 가장 적합한 지점을 살포 지역으로 정했다. ㄱ씨는 “가장 멀리는 동해안의 원산까지 전단을 보내봤다”고 했다.

지난해 5월29일 오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의 논에 북한에서 보낸 대남 전단 풍선이 떨어져 있다. 연합뉴스

심리전단은 전단 살포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민간단체가 대북 전단을 날려 보내는 날을 골라 작전을 했다. ㄱ씨는 “부대원들이 밤 9~11시쯤 이름과 소속 부대가 표시된 군복을 벗고 특수작전 요원이 입는 검은 옷(흑복)으로 갈아입은 뒤 작전에 투입됐다”고 했다. 심리전단은 ㄱ씨 부대뿐만 아니라 중·서부 전선 일대 여러 곳에서 전단 풍선을 날려 보냈다고 한다.

심리전단의 대북 전단 살포를 추적해온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평양 침투 무인기뿐만 아니라 대북 전단으로도 북한을 자극해, 계엄 선포 명분을 마련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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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용감한 행보... '노무현의 꿈' 이루기 위한 비책 있다

[전강수의 경세제민] 토지공개념 구현 위해 필요한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

25.12.01 06:43최종 업데이트 25.12.01 06:43

조국 조국혁신당 신임 당대표가 지난 11월 23일 청주 오스코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남소연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지난 11월 23일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지금 부동산 시장은 다주택자의 이기심, 투기꾼의 탐욕, 정당과 국회의원의 선거 득표 전략, 민간 기업의 이해득실이 얽힌 복마전"이라며, 토지공개념과 보유세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27일에는 해방 후 농지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죽산 조봉암 선생 묘역을 참배한 자리에서 "죽산은 이승만 정부에서 친일 지주 세력의 완강한 반대를 뚫고 농지개혁을 단행했다"라고 강조하며, 조국혁신당은 토지개혁을 토지공개념으로 이어받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윤석열 정권에서 종합부동산세(아래 종부세)가 무력화되고 거대 양당이 표심을 의식해 사실상 감세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야당 대표가 정치적 위험이 따를 수도 있는 주제를 정면으로 꺼내 든 것은 실로 용감한 행보다. 이재명 정부가 유독 보유세를 빼놓고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억지스러운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실현해서 부동산 공화국을 혁파하자고 오랫동안 역설해 온 나로서는 조국 대표에게 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조국 대표의 외침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더불어민주당과 여권 인사들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토지공개념 정신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정부는 노무현 정부다(여러 사람이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실패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는 재집권에 성공하지 못한 탓에 탁월한 부동산 정책까지도 실패한 것으로 매도당하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부동산 투기라는 '괴물'에 맞서 부동산보유세 강화라는 정공법을 택했던 가장 개혁적이고 용맹한 정부였다. 조국 대표가 앞으로 진정으로 토지공개념을 구현해 가려면, 노무현 대통령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으며 올바르게 세웠던 원칙을 정교하게 다듬어 완성해야 한다.

지대추구는 경제를 망치는 주범

지난 11월 17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연합뉴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부동산 투기를 개인의 재테크 수단으로 여기지만,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병리 현상이다. 토지와 자본은 둘 다 생산수단으로 기능하지만, 양자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기계, 건물, 댐, 도로, 수로 등 자본은 인간이 비용과 노력을 들여 만들어내기에 그 소유권을 철저히 보호하고 이익을 보장해야만 생산이 늘어난다. 반면, 토지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게다가 토지의 가치는 소유주의 노력이 아니라, 도로가 깔리고, 지하철이 들어서고, 인구가 모이는 등 공동체의 발전에 의해 결정된다.

자본에 부여하는 것과 같은 절대적 소유권을 토지에 부여하면 토지 소유자에게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불로소득이 주어지지만,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땀 흘려 벌어들이는 노력소득을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투기와 사회의 기반을 뒤흔드는 악성 불평등·양극화는 여기서 시작된다.

농지개혁 이후 수십 년이 지나는 사이에 대한민국은 기업이 혁신적인 기술 개발에 투자하기보다 안전한 땅 투기에 몰두하고, 청년들이 창업을 도모하기보다 빚을 내서라도 아파트를 사고 건물주가 되기를 꿈꾸는 '지대추구 사회'로 전락했다. 토지 불로소득이 노동 소득과 생산적 이윤을 압도할 때, 근로 의욕과 투자 의욕은 꺾이고 사회의 역동성은 사라진다. 실제로 부동산은 대한민국에서 소득과 부의 양극화, 주기적 불황, 지역 격차의 주요 원인으로 자리 잡았다. 바야흐로 부동산 문제는 단순한 집값 등락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내부로부터 갉아먹는 악성 종양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 정책은 실패가 아닌 미완의 혁명

2003년 9월 3일 당시 서민주거안정과 관련, 현장방문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이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주공아파트를 방문해 주민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의 역사에서 노무현 정부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 이전 정부들이 투기가 일어날 때만 반짝 규제하고 경기가 나빠지면 다시 투기를 조장하는 '냉열탕식' 정책으로 일관했다면, 노무현 정부는 문제의 근원을 건드렸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실거래가 제도를 도입해 시장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였고,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연 10만 호씩 공급하며 주거 복지의 물꼬를 텄다. 무엇보다 종부세를 신설하여 부동산 고액 보유자의 불로소득을 환수하면서 투기 근절의 기틀을 닦기도 했다. 종부세는 근로소득과 비근로소득 간 과세 형평성을 높이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재원까지 마련하는 획기적인 정책이었다.

당시 보수 언론과 기득권 세력은 종부세에 대해 '세금 폭탄'이라며 격렬히 저항했고, 지방민과 중산층·서민층이 거기에 동조해 다수 국민이 동요했다. 하지만 사실 종부세 과세 대상은 전체 세대의 2~4%에 불과했다. 더욱이 종부세가 본격적으로 걷히기 시작한 2006~2007년경부터 부동산 가격은 완연한 하향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의 조직적인 저항과 선동 속에서도 '부동산 공화국 해체'의 깃발을 끝까지 내리지 않았던 고군분투의 모범이었다. 그 정신은 결코 폐기할 것이 아니라 계승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퇴행과 오류의 시절: 이명박과 박근혜의 오류, 그리고 문재인의 실책

2019년 11월 19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상암동 MBC에서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안타깝게도 노무현 정부가 물러난 뒤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은 처참하게 후퇴했다. 이명박 정부는 "아파트값을 세금으로 잡는 나라는 없다"라며 종부세를 무력화했고, 수도권 곳곳에 전면 철거 방식의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며 주민들의 탐심을 자극했다. 혹자는 이때의 정치를 '탐욕의 정치'라고 부른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간신히 유지되고 있던 금융 규제까지 완화하며 부동산 시장 부양에 몰두했다. 2016년 이후 수도권에 불어닥친 부동산 광풍은 두 정부의 투기 조장 정책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했지만, 부동산 정책에서만큼은 노무현 정부의 철학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임기 전반 3년 동안 투기를 근절할 근본 정책인 보유세 강화에 극도로 미온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임대주택 등록제를 통해 다주택자들에게 과도한 세제 혜택을 부여하며 과세를 피할 길을 마련해주었다. 당시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 제도를 두고 투기꾼들에게 '꽃길'을 깔아준 것이라며 혹평했다.

임기 4년 차부터 부동산 과세 강화로 시장 안정화를 도모했지만, 이미 집값은 오를 대로 오른 뒤였다. 취득세·양도소득세·종부세를 몽땅 급격히 강화하고 주택 수 기준의 차등 과세 방식을 적용했으니 격렬한 조세 저항이 일어나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였다. 요컨대 문재인 정부는 전반기에는 미온적인 부동산 조세정책으로 부동산값을 폭등시켜 서민층의 마음을 잃었고, 후반기에는 정반대의 극단적인 정책으로 세 부담을 급증시켜 중산층의 마음을 잃었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당시 고위 공직자들이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인 것은 온 국민의 마음에 불을 지른 것과 다름이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반감에 기대어 노골적인 부동산 시장만능주의로 돌아섰다. 공정시장가액 비율과 세율을 낮추고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폐지함으로써, 종부세를 무력화해 버렸다. 재건축·재개발 규제 전면 해제,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대출 규제 완화 등 전방위적 부양 정책이 그 뒤를 이었다. 그 결과 안정세를 보이던 서울·수도권의 부동산값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고 지금은 투기 광풍의 조짐이 완연하다.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명박 정부 정책과 내용이 유사했지만, 속도와 범위 면에서 더 급진적이고 광범위했다. 이는 부동산 공화국을 더욱 공고히 해서 국가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위험한 도박이었다.

조국 대표가 가야 할 길: 노무현의 종부세를 업그레이드하라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대한민국 어떤 정치인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토지공개념과 보유세 강화의 필요성을 인식한 조국 대표에게 제안하는 형식으로 논의를 전개해 보자. 조국 대표는 조봉암의 실천을 애써 기억하며, 노무현이 닦아놓은 토대 위에서, 문재인과 윤석열의 실책과 오류를 염두에 두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과 방식으로 정책을 만들어 끊임없이 의제화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조세 저항의 벽'을 넘을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그것으로 국민과 정치권을 계도하는 일이다.

첫째, 노무현 정부 당시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난 종부세를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고액 보유자에 대한 과세 강화를 통해 윤석열 정부가 무너뜨린 보유세 체계를 복원하되, 문재인 정부의 실책인 '주택 수별 차등 과세'를 '가액 기준의 일률 누진과세'로 개편해야 한다. 강남의 비싼 집 한 채를 가진 사람이 지방의 싼 집 두 채를 가진 사람보다 세금을 덜 내는 모순을 없애고, 오직 '자산 가치'에 따라 일률적으로 세금을 매기자는 말이다. 아래 표의 맨 오른쪽 열은 종부세 세율 개편의 한 가지 방안이다.

▲주택분 종부세 세율 개편안2005년 이후 종부세 세율의 변천과 향후 개편 내용전강수

일정한 조건을 갖춘 1주택 실거주자에 대해서는 세금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현행 장기보유자 공제를 1주택 실거주자 공제로 전환해서, 1주택 실거주자로서 5년 이상 거주하고 과표 50억 원 이하인 경우, 매년 10%씩 세액을 공제하되 총 80%까지 공제해 주는 것이다. 이 장치를 두면 현재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염려하는 '한강 벨트' 주민들의 반발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

둘째, 장기적으로는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노무현의 정신을 완성하는 핵심 열쇠다. 국토보유세는 모든 토지 소유자를 대상으로 부과하여 세수 순증분을 모든 국민에게 1/n씩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는 새로운 세금이다. 국토보유세는 여러 면에서 종부세보다 우수하다. 주택 따로, 종합합산 토지 따로, 별도합산 토지 따로 과세하는 용도별 차등 과세를 폐지하고, 건축 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알려진 건물 보유세를 제외하며, 극소수 고액 보유자만이 아니라 모든 토지 보유자에게 부과하기 때문이다. 종부세보다 토지공개념 정신에 더 부합하는 것은 물론이다. 보유세 강화가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히는 이유는 '내기만 하고 받는 것은 없다'는 인식 때문인지 모른다. 세수 순증분을 다른 데 쓰지 않고 그대로 국민에게 1/n 씩 나눠주면 조세 저항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

나는 "불평등 시대 부동산 정책의 방향"이라는 논문(서울사회경제연구소, <불평등 시대의 부동산 정책>에 수록)에서 국토보유세를 도입해 전체 부동산 보유세(재산세 포함) 실효세율을 0.37~0.76%로 높이고, 세수 순증분을 전액 기본소득으로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지급하면, 순수혜 세대가 전체 세대의 83.4~85.9%에 달할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비례세를 가정하고 계산한 결과로, 만일 누진세 구조를 도입한다면 순수혜 세대의 비중은 90%를 훌쩍 넘어설 것이다.

종부세는 그 세금으로 혜택을 입는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소수 기득권층의 조세 저항을 막아설 사회세력이 등장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국토보유세는 그렇지 않다. 순수혜자가 될 90% 이상의 국민은 소수의 순부담자들이 벌일 조세 저항을 막아설 강력한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상위 2~4% 부동산 부자들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어 종부세를 두고 '세금 폭탄' 여론이 형성되었지만, 전 국민의 약 90%가 혜택을 보는 구조를 만든다면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고 기득권층의 저항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지속 가능한 개혁'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토지공개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제 개혁이 핵심이지만, 아울러 주택 공급 방식을 전면 전환하는 일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공공임대 주택을 건설해 공급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유지를 강제수용해서 조성한 공공택지를 그대로 민간 건설업체에 매각하거나 그곳에 주택을 건설해서 분양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사유지를 강제수용한다는 것은 매우 높은 공공성을 전제로 하는 행위다. 그와 같이 고도의 공공적 행위를 해놓고는 그 토지를 민간에 매각해 버렸으니,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원칙상 강제수용한 토지는 국공유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옳다. 또 빈약한 국공유지 비율을 생각할 때 공공기관 이전·유휴 부지와 군 골프장 같은 기존 국공유지도 국공유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앞으로는 공공택지와 국공유지를 가능한 한 민간에 매각하지 말고, 토지임대부 주택과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급에 집중해야 한다. 토지임대부 주택에 적용되는, 건물만 분양하고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여 임대료를 받는 방식은 서민들에게 저렴한 내 집 마련 기회를 제공하면서 투기를 원천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현재 6% 수준(2022년)에 머물고 있는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 비율을 OECD 평균(7.1%) 이상으로 높이는 것 또한 시급한 과제다. 부동산 투기로 인한 불평등이 심화하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서민층이 주거 문제로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한국의 장기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OECD 평균이 아니라 유럽 모범 국가의 수준(약 20%)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의 꿈, 이제는 현실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유성호

노무현 대통령은 기득권층의 거센 저항 속에서도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부동산 불패 신화와 맞서 싸웠다. 비록 당시에는 기득권층의 조세 저항과 수구 언론의 왜곡으로 인해 그 뜻이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그가 제시한 방향은 분명 옳았다.

조국 대표가 꺼내든 토지공개념은 조봉암의 실천을 재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노무현의 꿈을 다시 호출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 이번에는 조금 달라야 한다. '세금을 더 걷겠습니다'가 아니라,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해 국민 여러분께 배당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정교하게 설계한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 모델은 노무현 정부가 겪어야 했던 조세 저항의 파고를 거뜬히 넘을 튼튼한 선박이 되리라 기대한다. 조국 대표를 필두로 대한민국 정치권이 이 길을 걸어가, 언젠가는 대한민국이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땀 흘린 사람이 대접받는 정의로운 나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사족 한 마디. 이 기대를 충족하려면 조국혁신당과 조국 대표는 너무 짙은 조국의 그림자를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당명에서부터 '조국'을 빼기 바란다. 지금보다 더 추락하지 않을까,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폭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기겠지만,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라고 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당명으로 당을 새롭게 하고 내부 조직의 '결함'을 철저히 제거한 다음, 조봉암의 토지개혁을 이어받은 토지공개념 비전을 소리높여 전파하라. 그러면 희망과 변화의 상징으로 뉴욕시장에 당선된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처럼, 우리 국민은 조국 대표를 대한민국의 조란 맘다니로 세워 줄 공산이 크다.

#조국대표 #토지공개념 #종부세 #기본소득연계형국토보유세 #전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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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투쟁'에서 밀리면 내란 진압도 힘들다



이봉수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원장

hibongs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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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25.11.30 14:27

  • 수정 2025.11.3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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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수 현장칼럼] 엘리트 카르텔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④

우리나라 엘리트 카르텔은 내란을 주동하고도 반성은커녕 책임도 지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데 이들이 어떻게 민주주의 복원을 방해하는지 분석하고 제동을 거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AI 활용 설정

베르겐-벨젠 수용소를 해방시킨 영국군은 방치된 시신들을 수백 구씩 집단매장했다. 안네 프랑크와 언니 마르고트 프랑크가 묻힌 곳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집단매장지 앞에 비석을 세워놓았다. © Pixabay

프랑스, 독일, 폴란드, 남아공… 그리고 한국이 비극을 극복하는 방법

 

2000년에 한겨레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중년의 만학도로 6년간 영국에서 살 때 방학이 되면 차를 몰고 유럽 전역을 여행하곤 했다. 여행계획을 짤 때 가족이나 친지들의 불평은 전쟁터나 학살지, 전쟁박물관, 포로수용소, 공동묘지 같은 비극의 현장을 왜 그리 많이 집어넣느냐는 거였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새 용어에 ‘죽음과 재난의 매력’이란 설명을 붙여야 했던 말콤 폴리와 존 레넌의 책<Dark Tourism: The Attraction of Death and Disaster>이 2000년에 나왔으니 그런 여행이 유행을 타기도 전이었다.

 

암스테르담을 여행할 때는 안네 프랑크의 은신처를 방문했다. 프랑크네 일가는 2년간 숨어살던 건물에서 체포돼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다. 그후 안네는 언니 마르고트와 함께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이감된 뒤 둘 다 최악의 생존환경에서 전염병에 걸려 숨진다. 영국군이 수감자를 전원 구출하기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

 

소설가나 기자가 되는 게 꿈이던 사춘기 소녀 안네는 언젠가 일기를 출판할 생각으로 밝히길 원치 않는 내용은 일부 편집한 뒤 <뒤채>라는 그럴싸한 책 제목까지 지어 두었다. 앞 건물에서 책장으로 가려진 비밀통로로 연결된 뒤채가 은신처였던 것이다.

 

안네는 ‘기록의 위대성’을 나름대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일기에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고 쓴 적이 있다. 그는 또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다, 난 죽어서도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고 썼다. 그는 또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인간 내면의 선함을 믿는다’고 했다. 그의 소망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일부는 이뤄졌다. 미국 대통령 케네디는 “역사를 통틀어 큰 고통과 상실의 시기에 인간의 존엄성을 대변해 온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안네 프랑크만큼 설득력 있는 목소리는 없다”고 말했다.

 

가치의 경중을 따질 일은 아니지만, 나는 안네의 일기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이 제주4.3 관련 기록물이라고 생각한다. 둘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안네의 일기는 2009년에 등재됐고 4.3기록물은 올 4월에야 등재됐다. 한 소녀의 일기는 600만 유대인을 학살하는 광기의 시대에 반성과 희망의 메시지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에 견주어 4.3기록물은 너무나 길고도 험한 과정을 거쳐 방대한 기록물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전자를 압도한다.

 

‘12.3의 밤’이 되살린 추미애의 기억

 

제주4.3기록물은 1만 4673건이나 되는 희생자와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과 녹취록, 군법회의 수형인명부와 옥중엽서, 시민사회의 진상규명운동 기록과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로 구성돼 있다. 한마디로 개인 기억의 편린들을 집단기억으로 되살리고 기록한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다.

 

지난 13~14일 열린 제주4.3평화포럼에선 ‘제주4.3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4.3의 세계화’를 주제로 추미애 국회법사위원장이 기조강연을 했다. 그가 강연에 초대된 이유는 제주4.3의 진상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한 덕분이다. 그는 정치인들이 ‘빨갱이 콤플렉스’를 겁내 제주4.3을 거론하길 꺼리던 1999년에 정부기록보존소를 샅샅이 뒤져 ‘제주4.3수형인명부’를 찾아냈고 제주4.3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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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으로서는 제주4.3 진상규명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추미애 국회법사위원장이 13일 제주썬호텔에서 열린 ’12.3의 밤이 되살린 4.3의 기억’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 이봉수

수형인명부 발굴로 정부 책임을 끌어내다

 

그는 김민웅 교수와 나눈 대담집 <추미애의 깃발>에서 수형인명부에는 재판절차 없이 형을 매기고 육지 형무소로 보내졌던 교사∙농부∙학생 등 사상범이라고 추정할 수 없는 2530명이 기록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형인명부가 발굴되면서 제주4.3의 진상규명을 공식화할 수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첫째는 정부가 제주4.3을 인정하고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공식 요청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둘째는 법적으로 재심 재판을 열 수 있는 근거가 되었지요. 이걸 근거로 22년이 지난 2021년 3월,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던 333명의 희생자에게 재심 재판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제주4.3 발발로부터 73년 만에 희생되신 영령들을 자유롭게 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제주4.3평화재단 강봉효 기념사업팀장에게 문의했더니 올 11월 4일 기준으로는 재심을 거쳐 무죄선고를 받은 제주4.3 수형인이 2132명에 이른다고 답했다.

 

4.3평화포럼에서 양정심 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은 제주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의의를 설명했고, 이용우 동덕여대 교수는 엄격했던 프랑스의 독일협력자 숙청 사례를 소개했다. 해방 전후에 8천~9천 명의 나치협력(혐의)자가 레지스탕스에 의해 정식 재판 없이 처형됐고, 재판을 통해서도 9만 8천명이 실형을 선고받고 1500명이 처형됐다. 공무원은 2만 1천명, 장교 등 군인은 1만 5천명이 축출됐다.

 

나치 협력 프랑스 언론 900종 발행 금지

 

특히 언론은 나치에 협력한 신문 900종의 발행이 금지되고 538개 언론사가 기소됐다. 그중 115개 사는 유죄 선고를 받아 재산이 몰수되기도 했다. 특히 언론인에게 엄정하게 책임을 물었던 것은 영향력이 컸고 물증도 남았기 때문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9월호에 소개한 바와 같이, 프랑스는 포고령으로 ‘언론인 신분증 없이는 기자로 일할 수 없다’고 못박은 뒤 긴 설문지를 주고 나치 점령기간의 활동내역을 적어내도록 요구했다. 드골 대통령은 숙청을 밀고 나가면서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더라도 다시는 반역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4.3평화포럼에서 발제된 폴란드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례는 ‘위르겐 슈트로프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게토 봉기 진압작전을 지휘한 독일군 사령관 위르겐 슈트로프가 작성한 것이었다. 국립추모연구소의 마렉 돈브로프스키 기록보관소 부소장은 슈트로프가 허영심과 야망에 사로잡혀 너무나 잔혹하게 진압한 상세 보고서를 남겼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슈트로프는 역설적으로 반인륜 전쟁범죄에 영원히 경종을 울린 장본인이 됐다.

 

폴란드는 이 보고서를 디지털 아카이브로 저장해 뒀는데 내용을 검색해보니 그는 5만 6천 명 유대인을 체포했고, 작전중에 7천 명을 사살했으며 수용소로 이송중에 6929명을 처형하는 등 모두 13929명을 죽였다. 화재와 유탄에 맞아 숨진 폴란드인도 6천 명이 넘었다.

 

피해자의 진술이 아니라 가해자가 남긴 이 드문 보고서는 나치 체제가 저지른 범죄를 고발할 뿐 아니라 변론조차 불필요해진 최종 기소장이 됐고 자신도 처형됐다. 보고서에 첨부된 유대교회 폭파 장면을 찍은 사진 등은 유대인 대량학살의 보편적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돈브로프스키 부소장은 발제를 마무리하면서 “고통스러운 내용이 담긴 기록을 보존함으로써 전 세계에 걸쳐 회복탄력성을 구축하고 기억이야말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어책임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넬슨만델라기념관 건립과 아카이브 작업, 시민교육과 대외홍보 등으로 과거를 청산하고 민주주의 발전의 주춧돌로 삼았다.

 

아직도 아득하게 먼 한국의 과거사 청산

 

프랑스 독일 폴란드 남아공의 과거 청산 노력과 성과에 견주면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멀다. 제주4.3만 하더라도 공식적으로는 ‘제주4.3항쟁’과 같은 온전한 이름을 쓰지 못하고 있다. 제주4.3평화공원 전시장 안에 있는 비석은 비문이 없는 ‘백비’ 상태로 누워 있다. 평화공원 행방불명인묘역에는 유해를 찾지 못한 실종자들의 표석이 4078기나 서 있다. 제주항 근처 주정공장에 갇혀 있다가 재판절차도 없이 앞바다에 수장되거나 단기 징역형을 받고도 육지 형무소로 이감된 뒤 6.25전쟁이 발발하자 처형된 사람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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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묘역에는 유해를 찾지 못한 이들의 표석이 끝없이 줄지어 서 있다. 위령조형물에는 처형장으로 향하는 수형자의 눈길이 애처롭다. © 이봉수

제주4.3은 그나마 재심이라도 이뤄졌지만, 1946년 대구10월항쟁과 1948년 여순항쟁, 1950년 20만이 희생된 보도연맹사건과 부역자 누명 학살 등은 대부분 재심은 물론 진상규명도 제대로 안 된 상태이고 가해자와 책임자 처벌은 시작도 못 했다.

 

시민사회의 성찰과 민주주의 교육, 그리고 집권세력의 철저한 반성으로 나치의 학정과 유대인 학살의 트라우마를 상당부분 극복한 반면 한국은 여전히 ‘기억 투쟁’에서 민주진영과 수구∙극우 세력이 팽팽한 대치 국면을 보이고 있다. 부패 카르텔의 정점에 있는 윤석열 정권 자체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전쟁까지 마다하지 않는 파시즘 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낸 게 12.3 내란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반성은커녕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며 내란 선동자를 비호했고, 제주4.3 왜곡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제주도민을 조롱했다.

 

‘기억 투쟁’에 열성적인 수구기득권세력

 

진상규명은 도외시하고 ‘기억 투쟁’에 열성적인 쪽은 수구∙기득권세력이다. 그들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추앙하는 리박스쿨을 만들어 어린 학생들을 세뇌한다.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은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웠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송현광장에 이승만 기념관을 세우려 했다.

 

파리 개선문 아래에는 ‘영원한 불꽃’, 런던 세인트제임스궁 앞에는 추모탑 등 조형물이 마련돼 있는데, 우리나라 도시들은 어떤가? 광화문에도 전국 학교에도 지배자와 장군의 동상만 있을 뿐, 병사들의 충혼탑들은 산골짜기나 변두리로 ‘추방’되어 있다. 4.19혁명의 희생자들도 당시에는 시민이 거의 찾지 않던 수유리에 모셔졌다. 베를린을 여행할 때 베를린 중심지인 브란덴부르그 문 바로 옆에 ‘학살 유대인 추모공원’이 조성돼 있는 것을 보고 진정한 반성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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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펜던트〉는 영국의 중도신문인데도 나치 등 과거사 청산을 끈질기게 주장한다. 2008년 5월 2일자 1면은 90살 안팎의 노인들인데도 아직 검거되지 않은 나치 전범들을 수배하는 기사로 채워졌다. © Independent

내란 진압도 힘든 ‘기억 투쟁’의 공론장

 

‘기억 투쟁’에서 민주진영이 불리한 요인은 보수 편향이 심한 우리나라 언론 지형에도 있다. 선진국 가운데 한국처럼 재벌언론과 언론재벌, 그리고 수구 성향 종교단체가 소유한 매체들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이스라엘의 극우 정권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언론인을 무차별 살상한 것도 ‘기억 투쟁’에서 이기려는 술책이라 할 수 있다. 영국 <가디언>은 2023년 10월 가자전쟁이 발발한 뒤 이스라엘의 공습 등으로 숨진 언론인이 247명에 이른다고 지난 8월 26일 보도했다.

 

제주4.3항쟁도 제주 언론들이 공감할 뿐 대부분 중앙언론들은 오히려 진상을 왜곡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도민은 너도 나도 공감하는 4.3항쟁에 관해 육지 사람들은 “또 4.3이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어쩌면 제주도민만 서로 공명하는 반향실(echo chamber)에 갇혀 있다는 느낌도 든다.

 

1년이 다 지나도록 내란이 진압되지 않고 있는 요인도 기득권 카르텔이 워낙 공고한 데다 수구언론이 내란 진압에 제동을 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의 항명을 ‘조국사태’와 ‘추윤갈등’이란 틀로 왜곡해온 법조기자 카르텔은 여전히 멤버가 별로 바뀌지 않은 채 기자실을 장악하고 있다. 정치부 기자 구성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언론의 왜곡보도도 실명으로 비판하고 상세히 기록했더라면 그런 행태를 무한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처럼 기억해야 할 다크 투어리즘의 현장이 많은 나라도 없다. 분단과 전쟁, 학살과 재난, 탄압과 저항, 아픔과 슬픔의 장소가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제주에서 숱하게 터진 민란도, 동학농민전쟁도, 제주4.3도 제대로 기억되지 않았기에, 보도연맹사건과 부역자 누명 학살, 4.19학살, 인혁당사건 사법살인, 5.18광주학살로 이어졌다. ‘기억 투쟁’에서 밀리면 비극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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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봉쇄'가 일본의 존립위기? 대만은 왜 중국의 ‘발작 버튼’일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5/11/30 09:56
  • 수정일
    2025/11/30 09:5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웃 나라 타이완] 대만의 지정학(地政學)적인 중요성

박범준 자유기고가 | 기사입력 2025.11.29. 22:35:20

일본과 중국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불구경, 싸움구경이 제일 재밌다고 하던가? 카페에서 옆자리 연인끼리 다투기만 해도 다른 일 보는 척하면서 온 신경을 집중하기 마련이다. 중국과 일본의 싸움, 우리는 바다 건너 불구경이나 즐기면 그만일까?

다툼의 양상은 이미 언론에 상세히 보도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첨예한 대립을 통해 대만이 가진 지정학적 중요성을 살펴보자.

먼저 사건의 발단이 된 다카이치 총리의 말을 살펴보자. 지난 11월 7일, 그는 일본 국회 답변에서 "중국이 대만을 해상 봉쇄할 경우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라는 후보 시절 자신의 발언을 재확인했다. 같은 말이지만 자민당 총재 후보의 발언과 현직 총리의 발언은 그 무게가 확연히 다르다. 일본, 미국, 한국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지지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르면 중국의 대만해협 봉쇄는 중국 국내 문제다. 그런데 그게 왜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가 될까? 일본이 존립위기 사태라고 판단하든 말든 그게 왜 또 이렇게 큰 문제가 될까? 중국은 왜 그 발언을 용납하지 못할까?

대만해협 문제를 자국의 존립위기 사태로 받아들인다는 건 일본이 동아시아 지역 패권국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인접한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일본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WSJ)의 칼럼 '왜 중국은 일본과의 싸움을 선택하고 있나(Why China is picking a fight with Japan)'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일본이 대만을 공격하면 일본에 막대한 위협이 된다. 단기적으로는 무역이 중단돼 일본의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과 에너지 수입이 차단되며, 대만에 체류 중인 수만 명의 일본인이 위험에 처한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발언을 옹호하는 주장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전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움직이는 시대가 아닌가? 이런 논리라면 전 세계 웬만한 분쟁에도 우리 문제라고 나설 수 있다. 대만해협이 아니라 페르시아만이나 말라카 해협 분쟁도 자국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본인이 많이 사는 하와이나 페루의 분쟁에도 개입해야 한다. 대만만큼 가까운 한반도 분쟁에도 당연히 일본이 개입할 수 있다. 대만 문제를 자국의 존립위기로 받아들이겠다는 주장은 '지역 문제를 우리 문제로 인식하는' 지역 패권국의 꿈을 공식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존립위기 사태'는 그저 나라가 위기에 처한다는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2015년 아베 정권은 안보법제를 제·개정했다. 그때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을 법적으로 규정한 용어가 바로 '존립위기 사태'다. 바꿔말하면 '존립위기 사태'는 '일본이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태'를 의미하는 법적인 표현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해석하면 중국이 대만과 군사적으로 대립하면 일본이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이 된다. 그동안 다른 현직 총리들이 대만 관련 발언을 자제했던 이유다.

중국과 수교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 – 미국, 일본, 한국 등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그렇다고 중국의 대만 병합을 허용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지지하지만, 그 '실현'은 엄연히 다른 얘기다. 미국의 공식 입장은 '하나의 중국을 변함없이 지지하지만, 일방적인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이다. 원칙은 지지할 뿐 중국의 대만 병합에는 명확하게 반대한다. 중국은 '원칙'에만 만족하고, '실현'엔 욕심내지 말라는 뜻이다. 외교적인 말장난처럼 보인다. 초강대국이니까 할 수 있는 '배짱 외교'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대만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는 표현만은 자제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이 나섰다.

중국에게 대만은 소위 '발작 버튼'이다. 단지 체면 때문이 아니다. 그들 표현에 따르면 '핵심 이익 중에서도 핵심 이익'이다. 초강대국을 꿈꾸는 중군은 경제, 과학기술, 군사력,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중국이 넘어야 할 장벽은 소위 도련선(島連線, Island Chain)을 넘는 것이다. 지금 중국의 해상 영향력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갇혀 있다. 도련선 너머 대양으로 해군력을 내보낸다는 건 세계적인 군사적 영향력을 갖는다는 뜻이다. 러시아, 소련 등 소위 '대륙 세력'이 한 번도 이루지 못한 꿈이고, 영국과 미국 등 '해양 세력'이 모든 것을 걸고 막아온 일이다.

▲ 소위 도련선(島連線, Island Chain)을 표시한 동아시아 지도. 냉전 초기 중국, 소련 등 공산진영의 대양 진출을 막기 위한 선으로 미국방부에서 고안한 개념이다. ⓒ나무위키

동북아 지도를 살펴보자. 중국에서 대양에 나가는 동쪽 길은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일본으로 막혀있다. 남쪽도 필리핀과 동남아의 섬들로 첩첩산중이다. 바다 위의 만리장성 같다. 그 장성(長城). 일차 도련선(First Island Chain)의 한 가운데 대만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일본, 대만, 필리핀은 모두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는 나라들이다. 중국이 열심히 항공모함을 만들고 도련서 너머로 군사훈련을 해보기도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패권국에 걸맞는 대양해군을 운용할 수 없다. 여기서 대만이 중국 땅이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대만은 중국을 가두는 족쇄에서 중국이 대양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교두보로 단번에 바뀐다.

도련선을 돌파해 대양으로 나가고 싶은 중국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는 대만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 소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충분하다. 중국계 인구가 절대다수이고, 역사적으로 청나라의 일부였으며, 중화민국 정부가 1949년 대만으로 넘어가 존속하고 있다. 외교적으로도 세계 대다수 국가가 원칙뿐이긴 하지만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고 있다. '과연 대만이 중국의 일부인가'라는 주제는 이후에 다루겠지만 중국과는 전혀 다른 입장도 존재하고 역시 설득력이 있다. 여하간 초강대국을 꿈꾸는 중국에게 대만은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대만의 이러한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중국 정부는 대만 문제에 대해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는다. 중국인들의 민족 감정도 절대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이 작심하고 중국의 '발작 버튼'을 눌렀다. 온라인 게임 중 중국 게이머에게 도발할 때 다른 나라 게이머들이 쓰는 표현이 'Taiwan Number One(대만 최고)'이다. 대한민국 초등학생도 아는 중국인들의 '발작 버튼'을 일본 총리가 모를 리 없다. 일본이 중국을 도발한 이유는 명확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전쟁 가능한 '보통 국가'가 되어 초강대국 미국 아래서 지역 패권국이 되고자 한다. 패전 이래 80년 동안 변함없는 목표다. 그 목표가 옳은지 또 가능한지를 떠나서 일관된 목표를 추구하는 일본의 외교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중국과 일본이 꾸고 있는 서로 다른 꿈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양국의 국내 정치를 봐도 물러설 이유가 없다. 다카이치 신임 총리가 중국 때려서 잃을 게 없다. 한국이나 북한을 때려서 정치적 이익을 얻는 것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이번 사태로 그의 지지율이 많이 올랐다. 시진핑 주석의 인기도 일본을 때릴수록 올라간다. 양국의 정치 상황이 연료를 공급하고 있으니, 이 싸움이 쉽게 끝나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그 싸움의 중심에 대만이 있다.

내가 대만으로 이주할 때부터 중국의 군사적 위협 때문에 위험하지 않겠냐는 걱정을 들었다. '2027년 대만 침공설'처럼 위험한 루머도 떠돈다. 정작 대만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마치 휴전선 60km 아래 수도 서울을 둔 한국 사람들이 큰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대만을 두고 긴장이 높아지는 이유가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이라면, 대만에서 당장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보는 이유 역시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이다. 그 중요성 때문에 미국은 대만을 포기할 수 없다. 중국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국과 대만이 마주하는 양안(兩岸) 사이에는 무수한 말 폭탄이 오갈 뿐 군사적 충돌 없이 현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박범준 자유기고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글쓰는 일을 하며 대전, 무주, 광양, 제주 등 전국을 떠돌았다. 제주도에서 바람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2016년 첫 타이완 여행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2024년부터 타이완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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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카이치에게서 윤석열과 젤렌스키가 보인다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5.11.29 18:47
  •  
  •  댓글 0
 
   
 

젤렌스키의 길: 미국의 각본대로 춤춘 ‘광대’의 비극
윤석열의 길: 미국만 믿고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독재자’
다카이치의 운명: ‘아시아판 나토’의 불쏘시개
미국이 쳐놓은 덫, 그 끝은 공멸이다

일본 열도가 다시 군국주의의 망령으로 뒤덮이고 있다. ‘여자 아베’로 불리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집권한 뒤, 일본의 우경화는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가 되었다. 대만 유사시 자위대 출동, 평화헌법 개정 시도, 그리고 일본 자위대의 노골적인 전쟁연습‧군사훈련까지.

그의 행보를 보고 있자니 기시감이 든다. 어딘가 익숙하다. 우리는 다카이치의 얼굴에서 감옥에 있는 윤석열과, 전쟁의 수렁에 빠진 젤렌스키의 얼굴을 본다. 이 세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공통점이 있다. 바로 ‘미국을 믿고 자국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확신범’들이라는 점이다.

젤렌스키의 길: 미국의 각본대로 춤춘 ‘광대’의 비극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를 보자. 그는 집권 초기부터 자국의 지정학적 특성을 무시하고 미국의 부추김에 따라 나토(NATO) 가입을 무리하게 추진했다. 미국은 뒤에서 박수를 쳤지만, 정작 전쟁이 터지자 우크라이나 땅을 러시아를 소모시키기 위한 ‘대리 전쟁터’로 이용했을 뿐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국토는 폐허가 됐고, 수많은 젊은이가 미국의 패권을 위한 총알받이로 사라졌다. 젤렌스키는 ‘자유 세계의 영웅’이라는 미국의 훈장을 받았을지 모르나, 역사 앞에서 그는 자국민을 파멸로 이끈 무능한 지도자일 뿐이다. 다카이치가 지금 일본을 ‘아시아의 우크라이나’로 만들려 하고 있다.

윤석열의 길: 미국만 믿고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독재자’

1년 전, 12.3 내란을 일으켰다 감옥에 간 윤석열은 또 어떤가. 그는 집권 내내 “한미동맹 강화”를 앵무새처럼 외쳤다. 미국이 시키는 대로 퍼주기 외교를 하고,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켰다.

그의 맹신은 망상으로 이어졌다. 자신이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도, ‘미국 형님’이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미국에게 윤석열은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일회용 장기말’에 불과했다. 결국 그는 국민의 저항에 부딪혀 비참하게 몰락했다. 외세 의존형 독재자의 말로는 언제나 감옥 아니면 망명이었다.

 

다카이치의 운명: ‘아시아판 나토’의 불쏘시개

지금 다카이치 총리는 정확히 이 두 사람의 전철을 밟고 있다. 그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편승해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하고 부추기자,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 날뛰고 있다.

다카이치의 착각은 젤렌스키, 윤석열과 똑같다. 미국이 일본을 지켜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이다. 그러나 냉정히 보자. 미국에게 일본은 동맹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막아낼 ‘방파제’이자 ‘최전선 총알받이’다. 다카이치가 꿈꾸는 ‘강한 일본’은 미국의 하청을 받아 아시아 이웃 국가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는 ‘용병 국가’일 뿐이다.

미국이 쳐놓은 덫, 그 끝은 공멸이다

젤렌스키는 나라를 잃었고, 윤석열은 권력을 잃었다. 이제 다카이치 차례다. 미국은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을 희생양 삼는 데 주저함이 없다. 다카이치가 미국의 깃발을 들고 선봉에 서는 순간, 일본은 평화헌법이 지켜주던 번영을 잃고 전쟁의 공포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외세를 등에 업고 자국민을 볼모로 잡은 지도자의 끝은 언제나 파국이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윤석열이 갇혀 있는 서울구치소와 포성이 멈추지 않는 우크라이나의 들판을 보라. 그것이 미국이라는 썩은 동아줄을 잡은 당신의 머지않은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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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환 수석, “진실 규명의 그날까지 함께하겠다”

유족회, ‘KAL858기 사건 38주기 추모제’ 개최

  • 기자명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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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1.29 15:23
  •  
  •  수정 2025.11.2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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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KAL858기 탑승 희생자 유족회’가 주최한 ‘KAL858기 사건 38주기 추모제’가 29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역 4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대한항공 KAL858기 탑승 희생자 유족회’가 주최한 ‘KAL858기 사건 38주기 추모제’가 29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역 4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국민주권 정부에서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저희가 사실 여러분의 그 여정을 어떻게 하면 끊어낼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87년 11월 29일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편 실종사건’의 유족들 앞에서 전성환 대통령실 경청통합수석비서관은 “긴 세월 동안 기억의 끈을 놓지 않고 애써주신 유족 분들과 또 여러 시민단체 또 언론인들 또 관계기관들에 종사하셨던 분들에게 위로와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성환 대통령실경청통합수석이 연대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의 추모제 참석은 처음이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전성환 대통령실경청통합수석이 연대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의 추모제 참석은 처음이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전성환 수석은 29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역 4층 대회의실에서 ‘대한항공 KAL858기 탑승 희생자 유족회’가 주최한 ‘KAL858기 사건 38주기 추모제’에 참석해 연대사를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KAL 858기 추모식에 참석해 공개 발언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전 수석은 “KAL858기 사건은 그 당시도 그렇지만 지금도 돌아보면 냉전과 분단의 상징이기도 하고 그 시대에 국가 테러의 혹은 여러 테러의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며 “정부가 그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 수석실과 또 여러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며 “상황이 녹록치는 않긴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국민주권 정부에서 여러분의 그 기회의 끈들을 이어가서 진실 규명에 그날까지 함께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김호순유족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호순유족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호순 유족회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현재 저희 유족들은 하루하루를 기다림과 안타까움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미얀마 안다만 해역에서 칼 858기로 추정되는 동체를 발견하고도 6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수색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애타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회장은 “미얀마 군부의 구테타로 수색이 연기되어 이렇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야속하게만 느껴진다”며 “하루 빨리 KAL858기 동체를 찾아 유해를 수습하여 가족들의 슬픔이 조금이나마 덜어지기를 그리고 온 천하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날 추모제에는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1987년 11월 29일, 115명의 승객을 태우고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아부다비를 경유, 서울로 향하던  KAL858기가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실종됐고, 정부는 북한 테러범 김승일.김현희에 의해 공중폭파됐다고 발표했지만 국정원과거사위를 통해 이 사건을 대통령선거에 활용한 '무지개 공작'이 밝혀졌고, 진실규명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미국은 이 사건을 빌미로 북한에 대해 1988년 1월 20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구MBC는 2020년 1월 <MBC 뉴스데스크> 보도를 통해 KAL858기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미얀마 안다만 수심 50m 해저에서 발견됐다고 단독보도했고, 외교부는 현지 수색을 위해 예산까지 책정하기도 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미얀마의 정정불안이 이어져 아직까지 현장 수색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병철 대구MBC 국장이 연대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심병철 대구MBC 국장이 연대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심병철 대구MBC 국장은 “저는 99% 추정 동체가 KAL858기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하고, “확인해 본 결과 추정 동체가 있는 지역은 미얀마 영해가 아닌 접속수역이다”며 “미얀마 정부의 도움이 있어야 되겠지만 그 이전과 비교했을 때는 우리 정부가 요구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접속수역(接續水域, contiguous zone)은 영해(12해리)에 접속해 있는 수역으로서, 영해기준선으로부터 24해리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그 영토 및 영해상의 관세·재정·출입국관리·보건·위생관계 규칙위반을 예방하거나 처벌하기 위하여 필요한 국가통제권을 행사하는 수역이다.

심 국장은 “ICAO(국제항공기구)에 보면 항공기 사고와 관련해서 사고 조사 결과와 다른 새로운 어떤 사실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나타날 때는 재조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며 “영해는 조사할 수 있는 주체가 미얀마이지만, 영해가 아닌 경우에는 항공기 등록국인 대한민국이 조사 주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런 부분들을 미얀마 정부에게 각인을 시켜서 우리 정부가 힘을 쓰고, 압박이라도 좀 하고, 그리고 여의치 않으면 우리 정부가 나서서라도 조사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면 미얀마 정부가 지금 전 세계적으로 고립되어 있는데 굳이 이런 문제까지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정부에 당부했다.

정진욱 민주당 의원은 영상 연대사에서 “지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KAL858기 동체 인양과 미얀마 해역 수색 재개 문제를 외교부에 거듭 질의하면서 정부가 이 문제 해결을 더 미룬다면 직무유기라고 주장한 바 있다”며 “국회에서 수색 재개와 유해 귀환을 위해 끝까지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유가족을 대표해 가톨릭대 교수 나형성 신부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유가족을 대표해 가톨릭대 교수 나형성 신부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유가족을 대표해 가톨릭대 교수 나형성 신부는 추도사를 통해 “이종인 대표 전언에 따르면 미얀마 안다만 해역은 1월에서 2월이 수색하기 가장 좋은 때라고 한다”며 “알맞은 때를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는 대구MBC 취재 당시 수중 수색작업을 맡은 바 있다.

류인자 유족회 부회장은 호소문 낭독을 통해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우리는 지난 7월 초부터 수색 재개를 요청하는 활동을 시작하였다”며 “무엇보다도 먼저 동체 확인을 위한 소규모 수색대를 구성하여 2026년 1월 말 이전에 수색을 실시하여 더 이상 지체되지 않도록 조속히 추진해 달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외교부는 미얀마 군부와의 협의를 더욱 적극적으로 다각도로 진행하여 가능한 방법을 찾아달라”, “기획재정부는 미얀마 수색이 가능해지는 즉시 예비비로 수색비용이 책정되도록 사전에 모든 준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오랫동안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에 앞장서온 신성국 신부(왼쪽)가 헌화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오랫동안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에 앞장서온 신성국 신부(왼쪽)가 헌화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강보경 변호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모제에서는 ‘KAL858기 사건의 과거, 현재 미래’ 영상을 상영했고, 참석자들의 헌화와 유가족들의 기념촬영으로 마무리됐다.

추모제에는 진상규명 활동에 앞장서 왔던 신성국 신부와 김성전 항공기 전문가, 심동수 폭약 전문가, 이덕우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이사장, 박순희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선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전 상임대표, 정대화 전 상지대 총장, 최규엽 신한대 초빙교수, 유지열 KBS PD 등이 참석했다.

추모제를 마치고 유가족들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추모제를 마치고 유가족들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대한항공 KAL858기 탑승 희생자 유가족 호소문(전문)

미얀마 해역에 있는 KAL858기 추정 동체와
유해 확인을 위한 수색을 조속히 추진해 주십시오

<대한항공 KAL 858기 탑승 희생자 유족회(이하 ‘유족회‘)>는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 해역에서 실종된 KAL 858기 탑승 희생자 가족들의 모임으로서, 지난 38년 동안 유해라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지금까지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 1월 초 대구 MBC의 KAL858기 특별 취재팀이 미얀마 안다만 해역에서 KAL858기 동체로 추정되는 엔진과 날개, 꼬리 부분의 잔해들을 발견하였고, 본 유족회의 요청으로 문재인 정부가 나서서 수색팀을 구성하고 국회에서 예산을 받아 2021년 2월 초 수색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미얀마로 떠나기 직전에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로 인해 수색은 연기되었고, 4년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미얀마 군부와의 협의에 진전이 없어 수색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유해라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수색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저희 유족들의 가슴은 안타까움과 애통함으로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동영상으로나마 동체로 추정되는 것을 보았기에 그 잔상이 뇌리에 남아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안타까움은 더욱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우리는 지난 7월 초부터 수색 재개를 요청하는 활동을 시작하였고, 9월 11일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 기자회견 때 KAL858기 추정 동체 수색에 관한 질문을 받은 대통령께서 고민해 보겠다는 답변을 하셨기에 조만간 수색이 시작되기를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38주기 추모제를 지내며, 절박한 심정으로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 외교부는 미얀마 군부와의 협의를 더욱 적극적으로 다각도로 진행하여 가능한 방법을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 기획재정부는 미얀마 수색이 가능해지는 즉시 예비비로 수색비용이 책정되도록 사전에 모든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 무엇보다도 먼저 동체 확인을 위한 소규모 수색대를 구성하여 2026년 1월 말 이전에 수색을 실시하여 더 이상 지체되지 않도록 조속히 추진해 주십시오.

- 국민 여러분,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격려와 연대가 필요합니다. 부디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시어 저희 유족들의 절절한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KAL858기 탑승 희생자들의 유해가 하루 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25년 11월 29일

대한항공 KAL 858기 탑승 희생자 유족회 회장 김호순과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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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벌써 1년'…촛불 시민 "특별재판부 설치하라"

김민주 기자

minju@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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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혁명

  • 입력 2025.11.29 21:45

  • 수정 2025.11.2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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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차 '긴급' 전국집중 촛불대행진 열려

"윤석열은 탄핵됐지만 나라가 안정 안 돼"

"조희대 사법부가 내란 청산을 방해한다"

"한덕수 구형 15년 아니라 150년 돼야"

"박성재 등 구속영장도 계속 청구 마땅"

6일 국회서 '국민주권승리 1주년 콘서트'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역 8번 출구 앞에서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이 '167차 긴급 전국집중 촛불대행진'를 진행했다. 2025.11.29. 이호 작가

"대선개입 내란공범 조희대를 탄핵하라!"

"내란세력 척결 위해 특별재판부 즉각 설치하라!"

"조작수사 범죄집단 정치검찰 진압하자!"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인근(서초역 8번 출구 앞)에서 열린 '167차 긴급 전국집중 촛불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은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과 특별재판부 설치를 촉구했다.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이 주최한 이날 집회에는 5000여 명(주최 쪽 추산)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12.3 내란 발생 1주년이 다 된 시점에 열린 이날 조희대 사법부의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과 공범들에 대한 납득할 수 없는 재판 진행을 거세게 비판했다. 또한 검찰의 한덕수 전 국무총리 징역 15년 구형과 패스트트랙 사건 항소 포기에도 거칠게 항의했다.

시민들은 "윤석열과 내란 공범들에 대한 특별재판부를 신속히 설치해야 한다"면서 "재판이 개판이다! 특별재판부 설치하라! 윤석열 접대재판 지귀연을 퇴출하라!"고 외쳤다.

집회 사회를 맡은 김지선 서울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윤석열이 탄핵되고 새 정부가 시작된지 5개월이 지났지만 나라가 안정되고 있지 않다"면서 "조희대를 필두로 한 세력이 내란 청산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불법 계엄 국무회의를 한 한덕수는 구형 15년이 아니라 150년이 구형됐어야 한다"며 "내란이 일어난 지 1년이 다 돼가고 있는데, 내란 청산에도 모자란 시간이 어영부영 지나가고 있다. 모든 권한을 이용해 내란 청산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은희 중구용산촛불행동 대표는 기조 발언을 통해 "윤석열은 전 국민이 보는 재판에서도 자신의 죄를 다른 자들에게 떠넘기는 비열한 자다. 술에 취하고 권력에 취해 이 나라를 수렁에 빠뜨리고 대국민 학살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윤석열 재판장이 지귀연이다. 윤석열을 풀어줄 것이 확실하니 국민들이 울화통 터지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내란 당시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은 지금도 계속 싸우고 있다"면서 "정부와 여당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라"고 했다.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역 8번 출구 앞에서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이 '167차 긴급 전국집중 촛불대행진'를 진행했다. 2025.11.29. 이호 작가

집회에서는 '조희대 탄핵, 특별재판부 설치 추진 국회의원 선언'에 참여한 국회의원 명단도 공개됐다. 선언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승원·김우영·김준혁·민형배·염태영·이해식·장종태·장철민·진선미·차지호·김병주 의원과 조국혁신당 강경숙·김준형·차규근·황운하, 무소속 최혁진 의원 등이 함께했다.

권오혁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이렇게 정치가 민심을 받들어 하나될 수 있도록 국민이 손잡아 이끌어줘야 한다"면서 "여전히 내란 세력들은 준동하고 정치는 내란 청산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이번에는 내란 청산에 불을 붙이고 국회를 움직여야 한다"면서 "국회가 조희대를 탄핵하고 특별재판부 설치에 즉각 나서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KBS 홍사훈 기자도 촛불 시민들에게 계속 집회에 나와 주도록 독려했다. 그는 "조희대 사법부의 의도는 지금 (윤석열, 한덕수 등 내란범) 재판이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고 희화화면서, 동네 소매치기 잡범 재판이라고 (국민에게) 주입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홍 기자는 이어 "다음 주 추경호 구속영장 심의가 있지만, 영장 전담판사 4인방이 버티고 있으니 우리 기대와는 달리 기각될 확률이 높다"고 우려하면서 "우리가 계속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기자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도 계속 신청해야 한다"면서 "이 나라의 사법부가 얼마나 썩었는지, 이 나라가 법관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틀렸지만 우리의 딸, 아들이 사는 세상만은 조금이라도 바꿔야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역 8번 출구 앞에서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이 '167차 긴급 전국집중 촛불대행진'에서 조은성 감독이 발언하고 있다. 2025.11.29. 이호 작가

내년 1월에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대한민국은 국민이 합니다' 조은성 감독도 무대에 올랐다.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12월 3일 내란 때 시민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록한 영화다.

조 감독은 "나는 12·3 내란 날 총을 든 군인이 국회에 들어가고, 계엄군이 몰고 온 장갑차를 시민들이 맨몸으로 막아선 것을 봤다"면서 "윤석열 정권의 절망감은 여러분의 위대한 헌신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눈빛에서 흔적없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여러분의 용기로 내가 다시 카메라를 잡게 됐다"면서 "그런데 조희대 사법부는 무엇을 하고 있냐.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는 판사들의 기계적 중립은 스스로 내란 공범이라고 (자백)하는 것"이라고 외쳤다.

그는 이어 "판사들의 시선을 모두 카메라로 기록해 훗날 역사의 법정에서 민주주의를 누가 구했고 내란을 누가 방조했는지 알리겠다"면서 "비겁한 사법부는 깨어있는 시민을 이기지 못한다. 이 땅의 사법 정의가 바로서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집회는 무대 위 발언이 끝난 뒤 오후 5시 10분 서초역을 시작으로 강남역을 거쳐 CGV 강남까지 행진했다. 길가의 시민들은 행진을 보고 손을 흔들거나, 응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촛불행동은 12·3 내란 1주년에 맞춰 12월 3일(수) 오전 11시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국힘당 해산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6일(토) 열리는 '내란저지 국민주권승리 1주년 촛불콘서트'는 오후 4시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사전집회를 한 뒤, 오후 5시부터 국회에서 본 행사를 열 예정이다.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역 8번 출구 앞에서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이 '167차 긴급 전국집중 촛불대행진'를 진행했다. 2025.11.29. 이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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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미국 허락' 기다리다 100년 간다... "통보하고 당장 가져와야"

세계 6위 군사강국이 '능력 부족' 핑계... 굴종의 사슬 끊어야

이승만은 편지 한 통으로 넘겼는데, 되찾는 건 왜 이리 힘든가

연합 편대비행 공중 지휘에 나선 진영승 합참의장과 존 대니얼 케인 미국 합참의장이 탑승한 KF-16, F-16과 E-737 항공통제기 등 항공기가 11월 3일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뉴시스

최근 한미 안보협상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가 다시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에 조건을 달고 훈련 강화,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 연합지휘체계 유지 등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이번 협상 역시 한국의 군사주권을 확보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복무하는 종속 구조를 공고화하는 방향이었다.

한미가 발표한 협의 결과에는 전작권 환수를 위한 세 가지 조건(한국군 능력 검증, 연합지휘 능력, 안보환경 안정)이 앵무새처럼 반복됐다. 문제는 이 조건들이 철저히 미국의 입맛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다.

세계 6위인데도 능력 부족?

미국과 군 당국은 늘 "아직 한국군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한국의 군사력은 이미 세계 5~6위 수준이다. 이미 차고 넘치는 능력을 갖췄는데도 '조건 미충족' 타령을 하는 것은, 미국이 전작권을 돌려줄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조건부 전환 구조에서는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전환을 무기한 늦출 수 있다. 주권 회복을 남의 나라 채점표에 맡기는 꼴이니, 애초에 조건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승만은 편지 한 통으로 넘겼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알 수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에게 보낸 편지 한 통으로 국군 지휘권을 넘겼다. 그렇게 간단했다. 그런데 되찾아오는 길은 왜 이리 험난한가.

노무현 정부는 전작권 환수 기한을 못 박아 주권 회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조건에 기초한 전환'이라는 족쇄를 스스로 찼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 덫에 걸려 능력 검증을 위한 연합훈련에만 매달렸고, 현 정부 들어 논의는 실종됐다. 이재명 정부가 임기 내 환수를 선언했지만, '동맹 현대화'라는 미명 아래 미국산 무기 구매만 늘어나며 예속은 깊어지고 있다.

껍데기만 한국 사령관, 알맹이는 여전히 미국

백번 양보해서 전작권을 환수한다고 쳐도 문제는 남는다. 현재 논의되는 한미연합사 구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무늬만 환수'가 될 공산이 크다.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는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을 맡더라도, 미군 4성 장군이 부사령관으로 버티고 있는 한 실질적 지휘권 행사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현대전의 핵심인 정보 자산과 전략 무기 통제권을 여전히 미군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연합작전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미군의 시스템 안에서 허수아비 노릇을 할 위험이 크다.

정답은 '통보 후 환수'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기한을 또다시 미루는 조건부 환수가 아니다. 애초에 한국의 군사주권을 제약해 온 구조 자체를 걷어내야 한다. 한국군이 이미 갖춘 능력을 의심하며 미국의 '합격 도장'만 기다리는 노예 근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법은 명쾌하다. 문장렬 전 교수는 "그냥 주었듯 그냥 가져오는 것이 답"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에 구걸할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가져오겠다"고 사전 시한을 통보하고 실행하면 된다.

조건 조항과 연합지휘 종속, 미국산 무기 의존을 유지한 채 추진되는 환수는 기만이다. 이제는 종속 구조의 해체를 전제로 당당하게 주권을 선언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전작권 환수가 주권 회복이라는 본래 목적에 다가설 수 있다.

한경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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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를 구해야 한다

 

파시즘 체제와 유착, 대형화 웰빙 추구로 극우화

애초 한국 원신앙, 이기이원론, 유교윤리가 기반

일제 강점기 항일참여 여부로 가톨릭-개신교 갈려

미국 등에 업은 이승만 정권에서 사실상 국가종교화

새는 양 날개로 난다지만, 한국교회는 ‘극우주의’와 ‘웰빙’이라는 양 날개로 추락중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외형적인 몰락에 접어든 한국교회는 2025년 12월 3일, 윤석열이 저지른 불법계엄을 옹호하는 것으로 영적·도덕적 파산을 맞았다. 전광훈이나 손현보 목사 같은 이들이 윤석열을 ‘하나님이 세운 사람’으로 내세우며 계엄령을 신탁인 양 여길 때, 한국 기독교의 주류는 아무도 저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이제 한국교회는 성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

아사미 마사카즈와 안정원은 『한국 기독교, 어떻게 국가적 종교가 되었는가』(책과함께,2015)에서 “일본에서 기독교가 거의 수용되고 있지 않음을 고려한다면, 한국 기독교를 둘러싼 현상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8쪽)라고 말한다. 일본에서는 기독교를 말할 때 가톨릭(천주교)과 개신교 양측을 다 포함하지만, 한국에서는 양자를 엄밀하게 구분한다.

1784년, 이승훈(1765~1801)이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최초의 신자가 되면서 한반도에 기독교가 들어왔다. 사은사(謝恩使)의 일원으로 베이징에 갔던 그는 자연과학 서적을 수집하면서 천주교 관련 서적도 함께 수집하게 되었고 프랑스 신부까지 접촉하게 됐다. 귀국한 이승훈은 사제를 대신해 세례를 베풀었는데[代洗], 새로운 신자는 대부분 양반 계급이었다. 이들은 관학(官學)이던 성리학에 의문을 품고 학문적 모순과 사회를 개혁할 원리를 찾는 중에 천주교를 연구하게 되었다.

 

서울 명동성당 전경.

천주교는 종교가 아니라 서학(西學), 즉 유럽의 학문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신 앞에서의 평등을 가르치는 천주교는 엄격한 신분 질서 아래 억압당하던 하층계급으로 빠르고 널리 퍼져나갔다. 1791년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해교난(辛亥敎難) 이후, 약 100년 동안 되풀이된 교난에서 희생당한 천주교 신자의 숫자가 그것을 증명한다. 1801년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약 3000명, 1839년 기해교난(己亥敎難) 때 113명, 1866년에서 1871년까지의 병인교난(丙寅敎難) 때 약 8000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당시의 인구를 감안하면 천주교 교세가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사미 마사카즈와 안경원의 말대로 “조선 기독교의 역사는 곧 조선가톨릭교회의 박해와 순교의 역사였다.”(94쪽) 그러나 오늘의 한국에서는 1879년, 천주교보다 약 1백년 늦게 세례자를 배출했던 개신교가 기독교를 대표한다.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일화이지만, 천주교 사제보다 뒤늦게 한반도에 당도한 개신교 전도사는 한국에서 천주교 신자들과 접촉했고 그들에게서 조선말을 배웠다. 그러기만 했을까? 신천지가 기성 교단의 신자를 빼가듯이, 천주교 신자를 개종시키기도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개신교가 득세한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천주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조선 왕실 500년을 지켜주던 중국이 아직 서구의 간섭과 침략을 막을 수 있을 만큼 건재했다. 그래서 서구는 조선에서 무수한 순교자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으나, 개신교가 들어올 즈음은 청나라가 아편전쟁에 패하여 중화질서가 급속히 해체되는 때였다. 신미교난(1871)을 마지막으로 조선은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1882)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었고, 서구와 맺은 최초의 조약으로 미국 개신교 선교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상 숭배를 중시하는 유교와 제사를 우상 숭배로 간주한 기독교 교리가 대립하면서 조화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천주교 박해의 원인이다. 이 사실만 보면 유교의 가르침을 목숨 걸고 따랐던 조선인이나 그 뒤의 한국인은 영영 기독교를 배척해야 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한국 기독교, 어떻게 국가적 종교가 되었는가』는 한국 사회에 기독교가 깊이 침투한 요인을 이렇게 짚었다. ①한국의 원신앙(原信仰)이 일신교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신교인 기독교를 수용하는 기반이 되었다. ②조선시대에 주자학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는 기독교의 세계관과 유사한 점이 있었다. ③유교 윤리를 중시하는 자세가 기독교 윤리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했다. ④일제 강점기에 기독교가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①~③은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데 유교가 오히려 유리한 기반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톨릭과 개신교 ④에서 다른 양상을 보였다.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동안 개신교는 민족주의와 굳게 결합했고, 독립 투쟁에 적극적이었다. “사실 항일운동의 중심이던 독립협회 지도자의 대다수는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교회가 항일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였고, 1907년부터 일본은 항일운동의 거점이 교회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136쪽)

지은이들은 한국전쟁 후 개신교회가 확대되어가는 반면에 가톨릭교회가 현저하게 열세가 된 이유 중 하나로 가톨릭교회가 식민통치에 침묵했던 사실을 든다. “가톨릭교회는 식민지 시대에 항일운동에 관여하는 것을 꺼렸고 신사 참배 문제에서 보듯이 정치적 발언을 회피해왔다.”(147쪽) 가톨릭교회는 항일운동과 더불어 고양된 민족의식을 수용하지 못했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 때 미국에 다녀온 유학생 태반이 기독교 신자이거나 기독교에 우호적인 사람들이었다. 반면 가톨릭교회의 경우 미국 유학 경험자가 거의 없었다.

해방 직후 미군은 한국을 통치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활동한 경험을 가진 선교사들의 정보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군 통치 책임자였던 더글러스 맥아더와 존 리드 호지는 민주주의와 기독교 선교를 구별하지 않고 미 국무성에 선교사 파견을 요청할 정도로 신생국의 기독교화를 강력하게 지원했다. 초대 대통령이자 개신교 신도인 이승만의 제1공화국(1948~1960)에서 기독교는 사실상 국가 종교의 역할을 했다.『한국 기독교, 어떻게 국가적 종교가 되었는가』는 전광훈·손현보 등이 퍼트리고 있는 기독교입국론(基督敎立國論)의 뿌리가 해방 직후, 남한에 진주한 미 군정청의 정책과 닿아 있다고 암시해준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개신교 목사 전광훈, 손현보 씨.

배덕만은 『전광훈 현상의 기원』(뜰힘, 2025)에서 전광훈의 신학적으로 이단적인 행태와 극우주의 정치 행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전광훈 현상’은 한국 개신교계에 돌출한 이질적이고 일회적인 현상이 아니라 한국 개신교계의 역사적·구조적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교회가 반공과 친미주의에 치우치면서 비도덕적이고 비민주적으로 행동하게 된 극우화의 원인을 네 가지로 꼽았다. ①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월남한 교인들에 의해 남한의 교회가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고향, 재산, 가족, 교회를 잃어버린 월남한 교인들은 북한과 공산주의에 대한 근원적인 분노와 공포를 집단적 무의식이자 삶의 양식으로 내재화했다. 동시에 자신들에게 삶의 공간과 신앙의 자유를 제공한 미국과 그들이 추구하는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를 종교화하게 되었다. 제주 4·3사건에서 도살자 역할을 맡았던 서북청년단은 월남한 목회자였던 한경직이 세운 영락교회 청년회와 동일 조직이다.

②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파시즘 체제와 맺은 끈끈한 정교 유착과 거기서 얻은 기득권. ③한국 교회가 초창기부터 수용했던 근본주의적 신앙과 신학. 근본주의는 한국에서 우익 정부와 배타적 일치, 숭미와 반북, 진보적 좌파와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극단적 적대감으로 표출되었다. ④한국 교회가 처한 존재론적 위기감이 초래한 종말적 광기. 한국 교회는 21세기에 진입하면서 빠르게 신자들이 이탈하고 교세가 급감하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교회가 반성과 개혁 대신, 문제의 원인을 페미니스트·종북좌파·이단·동성애자·외국인(중국인·무슬림)에게 돌리게 된 것. 여기에 한국 교회가 미국의 기독교 민족주의자(기독교 우파)의 기독교 국교화 전략을 따라하고 있다는 것을 추가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보수화와 극우화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쓴 김진호는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오월의봄, 2020)에서 현재 쇠락을 거듭하고 있는 대형교회의 극우주의보다는 그가 만든 개념인 ‘웰빙보수주의’ 현상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IMF를 막 극복한 2000년대 초반에 수입되어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태도’에 두루 쓰이는 웰빙(well-being)은 중상위 계층이 주도하는 계급 현상이다. 지은이는 강남에 몰려 있는 대형교회가 웰빙보수주의의 문화적 실천 장소가 되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2000년대 이후 교회에서는 가난이 사라져갔다. 특히 그 무렵 급성장한 교회들은, 대부분이 강남권에서 성공을 이룬 덕에,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고 권력을 가진 자들로 채워졌다. 바야흐로 가난의 기억 자체가 없는 이들의 교회가 대두하고 있다.”(127~128쪽)

현재 신천지는 한국의 개신교 주류로부터 이단이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모든 대형교회와 목사들은 이단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젊은 여 집사에게 빤스 내려라. 한번 자고 싶다 해보고 그대로 하면 내성도요, 거절하면 똥”이라고 호기롭게 떠벌이는 전광훈 말이다. 김진호는 “2000년대 어간부터 한국 개신교에서 이탈한 이들 중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이들의 다수가 신천지로 이동했다”(266쪽)면서, “교회가 잊어버린 약한 자들을 향한 위로와 치유의 기능은 신천지에서 매우 잘 발달되어 있다. 그것이 2000년대 신천지의 광속 성장 비결이다.”(268쪽)라고 말한다. 주여, 한국교회를 구해줍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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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50억 클럽' 곽상도 징역 3년 구형... 아들은 징역 9년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5/11/29 11:42
  • 수정일
    2025/11/29 11:4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50억 클럽'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곽상도 국민의힘 전 의원이 2023년 10월 25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은 대장동 개발사업 민간업자로부터 아들 퇴직금 명목으로 약 50억 원의 뇌물을 받아 은닉한 혐의를 받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징역 3년을 구형했다.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재판장 오세용)는 곽 전 의원 사건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검찰은 곽 전 의원 아들 곽병채씨에 대해 징역 9년, 벌금 50억1062만 원, 추징금 25억5531만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에 대해 범죄수익은닉죄에는 징역 2년,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징역 3년을 합쳐 총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곽상도 전 의원은 2021년 4월 대장동 개발사업 과정에서 김만배씨로부터 하나은행 컨소시엄 와해 위기를 무마하는 등 국회의원 직무 관련 뇌물로 약 25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금액을 화천대유 직원이던 곽병채씨의 퇴직금 및 성과급으로 가장하고 은닉한 혐의도 있다.

당초 검찰은 뇌물 혐의를 적용해 곽 전 의원을 기소했으나, 2023년 2월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법원은 "병채 씨가 받은 돈을 곽 전 의원이 받은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후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부자 간 공모 정황과 자금 수수 내역이 구체화됐다고 보고,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를 추가 적용해 곽 전 의원을 다시 기소하고 병채 씨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검찰 "말단 직원임에도 50억 받아... 사회 통념 반해"

검찰은 최종의견 진술에서 "이 사건은 곽 전 의원 아들 병채씨에게 세전 5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실제 제공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면서 "말단 직원임에도 퇴직위로금 명목으로 50억 원을 받았고, 차량 및 주거 학자금 지원을 받았다. 대장동 개발사업 관계자 누구도 병채씨와 같은 직급의 직원이 이같은 수익을 받은 것을 찾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만배씨가 곽 전 의원 덕분에 대장동 개발 사업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을 수차례 말한 사실과 곽 전 의원이 김씨에게 돈을 요구한 사실 등이 이 사건 재판과정에서 제3자 진술과 객관적 녹음파일을 통해 모두 확인됐다"며 "아들의 성과금 명목으로 교묘하게 금품을 수령해 죄질이 불량하고 사회 통념과 상식에 반한다"고 했다.

반면 곽 전 의원 측은 "피고인들에 대한 기소는 이중기소에 해당한다"며 "피고인은 선행사건으로 기소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3년 9개월 넘는 기간 동안 재판을 받아왔고, 선행사건이 선고된 이후에도 2년 9개월 넘는 기간 동안 또다시 1심을 재판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들의 성과금은 곽 전 의원과 관련 없이 지급된 것이며, 국회의원 및 여러 활동들과 연결시킬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반박했다.

김만배씨 변호인은 "범죄수익은닉에 관해 김씨가 병채씨에게 과도한 금액의 성과급 등 명목으로 지급하는 게 일반적 상식에 벗어나는 일은 맞다"면서도 "그렇지만 그걸 억지로 김씨가 곽 전 의원과 병채씨에게 뇌물을 줬다고 할 수 없다"며 무죄를 요청했다.

곽상도 "증거 숨긴 건 검찰... 재판 받아야"

최후 진술에서 곽상도 전 의원은 "검찰은 처음부터 유죄결론과 어긋나는 증거가 나오면 증거를 제출하는 게 아니라 검사들만 아는 곳에 숨기고 사실인 듯 재판부에 제시하고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는 조작이라고 단정했다"며 "증거를 숨긴 검사가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제가 뭘 단 하나라도 했다는 게 재판 대상이 돼야 하는데 제가 했다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뭘 해야 심판을 하는데, 권력자 지위에 있었던 걸 심판하고 처벌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말했다.

아들 병채씨는 "무슨 이유인지 검찰은 선행 공판에선 공범이 아니라고 하다가 아버지에게 무죄가 선고되니 공범이라고 한다"며 "제가 타에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범죄에 연루되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아버지와 모의했다니 상상의 범위마저 벗어난다"고 말했다.

김만배씨는 "저의 잘못된 언어 습관과 공통비 다툼 여파로 곽 전 의원 부자에게 큰피해 입혔다 생각해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린다. 1심을 두 번 받게 된 것도 저의 탓 같아 죄송하다"며 "재판부가 여러 사정 감안해서 지혜로운 판결 내려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재판부는 내년 1월 30일 오후 2시에 1심 판결을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곽상도#김만배#곽병채#50억클럽#대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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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오세훈 운 끝났다…서울시장 승부, 김민석까지 총동원”

“당 안팎서 더 핫한 경선해야…정원오, 서울의 맘다니”

하어영기자

수정 2025-11-29 10:53등록 2025-11-29 09:05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8일 유튜브채널 한겨레티브이(TV) ‘뷰리핑’에 출연해 인터뷰하고 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8일 내년 지방선거 판세와 관련해 “서울시장이 관건이다. 민주당은 김민석 국무총리를 포함해 모든 자산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내 박주민, 전현희, 박홍근, 서영교 이런 분들이 먼저 세게 붙어야 한다. 최근 정원오 성동구청장도 열심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날 유튜브채널 한겨레티브이(TV) ‘뷰리핑’에 출연해 “민주당에게 서울은 쉽지 않다. 그래서 당 안팎의 후보들이 모두 나와 핫한 경선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 의원은 정 구청장을 따로 언급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정 구청장이 (구정을 한 것을) 보니 뉴욕시장 맘다니가 연상됐다”며 “‘서울의 맘다니’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본인의 특기인 실용적인 정책들을 앞세우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 밖에서는) 홀로 정치하는 건 안 되니 주변에서 좋은 후보군이 있으면 북돋고 경쟁하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민석 국무총리 차출설에 대해선 “무조건 이기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뒀다. 박 의원은 진행자가 ‘당에선 김 총리가 경쟁력은 있지만 그만큼 불리한 상황까지 가서는 안 된단 분위기가 아니냐’고 하자 “민주당은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며 “선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승리를 위해선 민주당의 모든 자산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선거 국면에서) 우리 당내 적격자가 없으면 외부에서라도 구해와야 한다”며 “김대중 대통령은 조순 당시 서울대 교수나 고건 총리를 모셔와서 선거에 이겼다. 당시 그분들은 민주당의 ‘민’자도 잘 모르는 분들이었지만 민주당으로서는 당시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물론 정체성은 중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내세운 대통령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 아니었느냐”고 말했다.

박 의원은 국민의힘과 관련해선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면 국민의힘에서 사라질 사람이 두 사람 있다”며 “한사람이 장동혁 대표고 두 번째가 오세훈 시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 시장은 운이 다한 것 같다. 최근에 하는 것마다 잡음이 나고 실패하지 않았느냐”며 “한강버스도 그렇지만 ‘받들어 총’을 왜 광화문에 갖다 놓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특검에서 (오 시장과 관련한) 미진한 수사는 국가수사본부로 넘길 것이고, 그때는 명태균씨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민주당이 후보를 잘 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은 무섭다. 역사를 돌아보면 누가 이승만을, 박정희를, 전두환을, 박근혜를, 그리고 윤석열을 정리했느냐”며 “역사의 흐름을 잘라보면 그 단면은 혼란스러울지 몰라도 그 흐름은 도도하게 좋은 방향으로 갔다”고 말했다. 또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는 발전하고 인생은 아름답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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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뭔가 다른 정보가 있는줄 알았다”···내란 1년, 여전히 남는 의문들

입력 2025.11.29 10:00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자정을 넘긴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무장군인들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자 국회 직원 등이 격렬히 막아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주간경향] “심지어 수석들도 계엄 발표 직전까지 몰랐다. 기자들과 식당에서 술 마시다 용산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잖나.” 지난해 12월 3일 불법 계엄 당시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에서 비서관을 지낸 인사의 말이다.

계엄 당일 이 인사는 조금 일찍 퇴근해 잠들었다가 새벽 2시쯤 외국에 체류 중인 딸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있는 걸 보고 깼다고 했다. “사전에 알았다면 집에 와서 잤겠나.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게 정진석(당시 비서실장)이나 홍철호(정무수석)에게 조금이라도 운을 뗐다면 아무것도 안 할 사람이었겠냐고.”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우발적으로 벌인 일이었을 것으로 추론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과 군 수뇌부 인사들과의 술자리에서 대통령이 자꾸 비상대권이니 계엄이니 이야기하니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간신들이다. 심기 경호 차원에서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면서 시늉만 냈다는 건데 실질적 준비는 없었던 것 같다.”

대통령실에서 본 내란 “다른 정보 있는 줄”

그는 2022년 대선초 윤석열 선거 캠프의 핵심 인사였다. 하루 8~10시간을 당시 출마를 준비하던 윤 전 대통령과 보냈다. 정권 중반기 그는 대통령실 핵심 참모로 발탁됐다. 그는 대선후보가 되기 전까지의 윤 전 대통령 모습은 지금 시중에 알려진 모습, 예컨대 ‘1시간 회의를 하면 59분을 혼자 떠드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정치권에서는 내가 이 사람(윤석열)과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어떤 사람이냐’라고 호기심 차원에서 묻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높게 평가했다. 내성적인 사람으로 봤다. 정책 논의 자리에서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지도 않았다. 듣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는데 상당히 예리한 질문이었다. 언젠가는 지나가는 말로 자기는 사람을 만나거나 전문가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너무 좋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을 오래 한 사람은 정책에 관심이 없는 편인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후보가 되면서 달라진 것 같았다. 권력이 쏠리면서 급격하게 흑화한 거로 보였다.”

계엄 직후 대통령실은 다 “황당해하는 분위기”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초기에 혼선이 온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이 그래도 우리와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믿었다. 어떤 정보는 대통령에게만 가니까. 부정선거도 본인이 뭔가 증거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북한 동향에 대해 뭔가를 알았다던가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갈수록 ‘개패’(투전이나 화투에서 좋지 않은 패)였던 것이 드러났다.”

지난 11월 14일 내란 특검은 내란 사건 핵심 피의자인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의 보안 폴더에 있던 메모 포렌식 결과를 공개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지난해 11월 9일 작성한 명단이다. 지난해 12월 24일 검찰 조사에서 여 전 사령관은 계엄 직후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연락받았다는 체포대상자 명단 14명에 대해 진술한 바 있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이 명단이 “평소 대통령이 부정적으로 말하던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11월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그런데 이번에 내란 특검이 공개한 여인형 보안 폴더 메모를 보면 이 명단이 12·3 내란 한 달 가까이 전부터 작성·검토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나름대로 치밀한 검토가 이뤄져 왔다는 뜻이다.

이번에 공개된 여 전 사령관의 메모를 보면 나중에 확정된 명단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 나온다. 김건희 여사에게 디올 명품백을 전달한 최재영 목사다. 최 목사는 총 4개로 범주화된 리스트의 세 번째에 김민웅 목사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함께 거론돼 있다. ‘종북주사파’ 정도로 분류됐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도 한때 체포자 명단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1월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서 윤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12월 4일 오후 7시경 김현지(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이석기(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정진상(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강위원(전라남도 경제부지사) 등의 이름을 메모한 사실을 인정하냐”라고 묻는다. 여 전 사령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검거 명단과 관련한 대부분의 질문에는 ‘자신의 형사재판과 관련돼 있다’며 증언을 거부하는 중이다.

“검찰·대법원 내란 참여도 밝혀야”

“군만 출동한 것이 아니다. 검찰과 대법원도 내란에 직접 개입했다. 아직 안 밝혀진 내란의 밤에 있던 사건의 핵심 대목이다.”

민주당 3대 특검 종합대응 특별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신용한 전 서원대 석좌교수의 말이다. 계엄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출동한 군인들이 서버 포렌식에 나서지 않은 것은 검찰과 국정원이 그 역할을 맡기로 했기 때문이라는 증언이 현장 출동 군대 지휘부로부터 나온 바 있다. 실제 통화기록도 확보돼 있지만, 아직 이와 관련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지적이다.

“사실이 규명되면 처음부터 12·3 쿠데타에 모든 기관이 알고 가담했다는 것이 된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은 그날 자신의 행위를 통상업무라고 빠져나가면서 구속영장을 피했다. 그래서 수사의 칼끝이 대법원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 보도를 보면 지난해 12월 4일 새벽 0시 33분에 대법원 회의가 열렸는데 과거 대법원은 이런 비상훈련을 해본 적도 없고 모인 적도 없다. 그날 모여서 무슨 회의를 했는지 조희대 대법원은 지금까지 밝히지 않고 있다.”

정권 교체 후 출범한 특검이 마지막으로 연장한 수사 기한은 12월 14일이다.

김유정 전 민주통합당 의원은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더는 연장은 안 되니 마무리를 해야겠지만 여전히 남은 의문이 많다”고 말했다. “포고령은 누가 작성했는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부처별로 받은 계엄문건은 누가 썼는지도 아직 안 드러났다. 국민이 정말로 궁금했던 대목, 12월 3일 계엄을 선포하면서 윤석열은 야당 핑계 대면서 반국가 종북세력 척결을 내세웠지만,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밝힐 수 없는 개인적 이유를 들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뭐였는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특검이 마무리되더라도 수사기관들이 여전히 남은 핵심의혹은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용인 기자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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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구나' 말이 절로... 제주 '파라다이스'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일

 

[제주 사름이 사는 법] 서귀포 '100년 솔숲' 지키는데 앞장선 여성학자 오한숙희씨

  • 사는이야기25.11.18 06:56최종 업데이트 25.11.18 06:56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라질 위기의 ‘100년 솔숲’서귀포시 동홍동 1000여 평 솔숲에는 25m 정도의 소나무 100여 그루가 밀집해 있다. 교육기관과 빌라가 인접한 이 솔숲이 우회도로 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시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다.황의봉

    "5살, 3살, 백일, 세 아이의 독박 육아 맘입니다. 이 솔숲은 유모차를 밀고 바로 들어올 수 있어서 딱 좋은 놀이터예요. 이만한 공간을 달리 찾을 수 없어요. 왜 없애는 거지요? 우리 애들에게는 도로보다 숲이 필요한데요"(박초연)

    "중학생입니다. 숲 없어지면 슬플 거 같아요. 학생문화원과 외국어학습관에 공부하러 오면 숲이 있어서 조용하고 아늑해 좋았는데, 차가 쌩쌩 달리게 하는 일을 어른들은 왜 하는 거죠?"(현다원)

    "은퇴 후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는 낙으로 삽니다. 허리가 아파 오래 못 앉아 있는데 도서관 문 바로 앞에 솔숲이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나무에 기대거나 걸으며 독서할 수 있거든요. 100년 자란 솔숲, 남들은 못 만들어 안달인데, 이걸 없애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어요."(이상구)

    "맨해튼에서 1년 살았는데 거기 센트럴 파크만 있는 게 아니에요. 동네마다 긴 숲들이 다 있어요. 그래서 살면서 행복했어요. 솔숲 없어진다는 말 듣고 깜짝 놀랐어요. 애국가에도 나오는 귀한 소나무 숲을 너무 쉽게 없애다니 K컬처 자랑해도 내면은 후진국인 거 같아요."(구지슬)

    서귀포 동홍동의 '100년 솔숲'이 사라질 위기에 낙담하고, 분노하고, 하소연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다. 서귀포 우회도로사업으로 4차선 도로가 솔숲을 관통한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솔숲을 지키기 위한 모임을 만들고, 서명운동하고,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서귀포시장과 제주도지사를 만났고, 이제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서귀포 타운홀 미팅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의 거센 반대 여론과 제주 지역 언론의 잇따른 문제 지적에도 불구하고, 강정 해군기지와 성산 제2공항 사태에 이어 또 한차례의 공사강행과 저지투쟁이 벌어질 조짐이다.

    유명 방송인, 인기 강연자 그리고 베스트셀러 저자로 널리 알려진 여성학자 오한숙희씨도 서귀포 100년 솔숲 지키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서귀포 이주 11년, 이곳이야말로 행복한 삶의 모든 조건을 갖춘 파라다이스임을 실감했다는 그에게 솔숲이 사라진다는 소식은 푸른 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을 듯하다.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만난 오한숙희씨로부터 이른바 100년 솔숲이 어떤 곳인지부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기가 파라다이스구나"... 이게 다 솔숲 덕분입니다
     
    오한숙희씨유명 방송인, 인기 강연자, 베스트 셀러 작가로 널리 알려진 여성학자 오한숙희씨는 11년 전 서귀포로 이주했다. 서귀포에서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는 그는 요즘 서귀포 우회도로사업으로 ‘100년 솔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다.황의봉

    "우리가 100년 솔숲이라고들 말하지만 어떤 나무는 200년이 넘었다고도 해요. 천여 평 정도 되는 땅에 높이가 25m는 됨직한 소나무 100여 그루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는데, 100년이 더 되면 됐지 그 이하는 아닐 거라고 봅니다. 원래 이 지역 일대에 아름드리나무들이 연속적으로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조금씩 베어나가는 바람에 지금은 이곳에만 남게 되었다고 해요.

    이 솔숲 주변은 7개의 교육기관들이 모여 있어 교육벨트로 불리는 곳입니다. 해성유치원, 서귀포중앙여중, 서귀포고등학교가 가까이 있고, 학생문화원과 외국문화학습관, 서귀포도서관, 유아교육진흥원이 이 솔숲과 마주하면서 나란히 붙어 있어요. 또 주변에는 서민들이 주로 사는 빌라가 밀집한 곳이어서 학생은 물론 남녀노소가 즐겨 찾는 보물 같은 장소입니다. 2020년도 KBS 보도에 따르면 연간 27만 명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이곳은 휠체어나 유모차가 바로 들어올 수 있고, 도서관에서 책을 들고나와서 읽을 수도 있는 그야말로 도시 생활숲이에요. 그리고 솔숲 옆으로는 잔디광장이 이어져 있어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고, 해마다 서귀포 어린이날 잔치가 열리는 아이들의 놀이터입니다. 빌라 주민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숨통 같은 곳이고요."

    100년 솔숲과 가까운 곳에 사는 오한숙희씨는 개인적으로도 이 숲에 좋은 기억들이 많을 것 같다.

    "제가 11년 전 서귀포로 이사를 올 때 어머니가 싫어하셨어요. 어머니가 황해도 해주에서 내려온 실향민입니다. 6.25 전쟁이 났을 때 처음엔 배를 타고 섬으로 피난을 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으셨어요. 그런데 중증 자폐가 있는 작은 딸애는 도시 생활이 힘들었거든요. 어머니가 결국 손녀를 위해 섬으로 오신 거죠.

    마침 세 얻은 집이 솔숲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어요. 어머니가 이 솔숲과 잔디광장을 보더니 '우리 여기 오길 잘했다, 여기가 파라다이스구나' 하시는 거예요. 어머니는 이 솔숲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셨어요. 딸아이도 할머니 옆에서 그림을 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요.

    저는 이 솔숲을 '원주민 족집게 관광코스'라고 불러요. 육지에서 친구들이 오면 제가 개발한 나만의 관광코스로 안내합니다. 100년 솔숲과 천주교 피정센터로 알려진 면형의 집(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그리고 새섬과 새연교가 바라다보이는 아름다운 바닷가 산책로가 있는 한국SGI 제주연수원이 그곳입니다. 여길 데려가면 사람들이 '너 정말 파라다이스에서 사는구나!' 합니다."
     
    서귀포도서관 앞 솔숲‘100년 솔숲’ 바로 앞에는 서귀포도서관을 비롯해 학생문화원, 외국문화학습관, 유아교육진흥원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고, 해성유치원 서귀포중앙여중 서귀포고등학교가 가까이 있어 교육벨트로 불린다.황의봉

    100년 솔숲은 현재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다. 서귀포여자중학교부터 삼성여자고등학교까지 4.3㎞의 우회도로를 개설하면서 이미 잔디광장이 파헤쳐졌고, 솔숲에는 당장이라도 굴착기가 들이닥칠 기세다.

    우회도로는 교통이 혼잡한 도심을 피해 멀리 돌아가는 도로를 말한다. 서귀포시의 경우, 산록도로와 중산간도로가 이미 우회도로의 역할을 맡고 있다. 문제의 우회도로는 밀집한 교육기관과 주택가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오한숙희씨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이 우회도로란 게 실은 1965년에 고시된 도시계획에 따른 것이에요. 당시에는 1호 광장이라고 하는 중앙로터리 쪽에만 차도가 있었던 겁니다. 신호등도 없었고, 6개 방면으로 길이 갈라지는 곳이다 보니 정체현상이 빚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서 좀 떨어진 데에 직선으로 우회도로를 내자는 도시계획이 나온 겁니다.

    현재 서귀포에는 일주도로를 비롯해, 4차선 중산간도로, 2차선 산록도로 등 곳곳에 많은 도로가 개설돼 있습니다. 솔숲이 있는 지역은 도심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 말만 우회도로이지, 실제는 도심 관통도로입니다. 교통난 해소가 목표라지만 오히려 교차로 정체를 일으키고 관통지점에 어린이 보호구역이 2곳이라 평균속도가 떨어진다는 게 2020년 도청의 용역결과 보고서에 나옵니다.

    이렇게 서귀포의 현실에 맞지도 않는 우회도로를 4차선으로 4.3㎞나 만든다는 것인데, 이를 3개 구간으로 나눴어요. 지금 문제가 되는 솔숲과 잔디광장은 가운데 구간 1.5㎞로 여기에 들어갈 예산만 445억 원이에요. 전체예산은 1131억 원이고요. 올해 제주도 여성·가족·보육·청소년 복지예산 2232억 원의 절반이 넘는 거액을 녹지대를 파괴하면서 4.3㎞ 도로에 쏟아 넣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제주 사람들은 누구든 "미쳤구나" 하는 공사
     
    솔숲까지 밀어닥친 도로공사서귀포 우회도로는 서귀포여중에서 삼성여고까지 4.3㎞를 관통하게 된다. 모두 3개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제2구간이 교육벨트 앞의 100년 솔숲과 잔디광장을 훼손하고 지나가도록 돼있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황의봉

    100년 솔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서귀포 시민들의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다. 시민모임들이 만들어지고,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각종 집회를 통해 솔숲의 가치를 알리고, 우회도로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이를 전국적 이슈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오한숙희씨는 서미모(서귀포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모임)의 회원이다.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5월에 어린이날 잔치가 끝나자마자 솔숲과 이어진 잔디광장에 펜스를 치고 나무를 뽑기 시작하는 걸 목격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제가 본격적으로 반대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우회도로사업이 일몰제로 사라진 줄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던 거죠.

    2022년 6월 오영훈 도지사가 당선인 시절 제주올레센터에서 열린 서귀포 시민과의 대화에서 우회도로사업을 백지화해달라는 요구에 '알았다, 검토하겠다'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송형록 서귀포신문사 사장과 서귀포시민연대 대표가 우회도로 백지화를 건의했던 겁니다. 당시 제가 사회를 봤기 때문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거든요.

    2020년에 우회도로 공사가 고시된 때부터 이 사업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아오고 있는데, 현재까지 무려 2만 명이 넘었어요. 이 도로 개설에 대해 저희가 설명하면 제주 사람은 누구든 첫마디가 '미쳤구나' 합니다. 육지 분들한테도 이 이야기를 하면 한결같이 '제주도가 웬일이냐'는 반응이에요.

    100년 솔숲을 살리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여론을 조성해야 할 것 같아 환경부 등이 후원하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최한 시민공모전 '이곳만은 지키자'에 응모도 했습니다. '보전 가치가 우수하지만 훼손 위기에 처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이었는데, 100년 솔숲이 선정돼 지난달 25일 한국환경기자클럽상을 수상했어요. 100년 솔숲이 반드시 지켜야 할 숲으로 공인받은 셈입니다. 그런데도 제주도정은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선정 이유에서 '교통량이 감소하는 상황인데, 불필요한 도로 건설에 445억을 쏟아붓는 것은 예산 낭비이며, 기후위기 시대에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학습권과 건강과 정서적 안정의 공간을 짓밟았다는 점에서 저급한 행정'이라고 밝혔어요. 당시 현장 심사를 나온 내셔널트러스트의 숲 전문가도 '수령 230년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도 있으니 반드시 원형 보존해야 한다'라고 강조했고요."

    내셔널트러스트 '이곳만은 지키자'에 선정됐어도 제주도 당국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서미모는 11월 3일 기자회견을 갖고 환경영향평가 전에 불법 공사를 강행한다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제주도청은 그날 오후 도청 건설과에서 '솔숲은 유산적 가치가 없다'라는 반박 보도자료를 내기도 하는 등 공방이 이어졌다.

    이처럼 반대 시민과 도청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도지사나 도의원 국회의원 등과 대화를 통해 해결을 모색할 수는 없었을까.

    "도청이 하는 사업이라 도지사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기만 하면 해결되리라 낙관했어요. 솔숲 지키기 문화제를 열고 관련 언론보도 내용을 첨부하여 도지사 면담을 요청했는데 답이 없더군요. 억지를 쓰다시피 한끝에 잠깐 반대운동 시민대표들과의 면담이 성사된 자리에서 당선자 시절 도지사가 했던 이야기를 리마인드 시켰어요. 그랬더니 '거기 반대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다'라며 건설국장한테 넘겨버리고는 소통비서관을 보내겠다고 하더라고요.

    이틀 후에 소통비서관이 솔숲 현장에 왔는데, 주민들이 50여 명 모여 있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딴 데 가서 대표 한두 명만 만나고 가는 겁니다. 그때 '아, 도지사는 이 공사를 중단할 마음이 없구나!'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죠.

    서귀포시가 지역구인 위성곤 의원은 명색이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위원장인데 이 문제엔 관심이 없어요. 서미모 대표의 전화 연락이나 문자에 아무 응답이 없고 아예 소통을 안 합니다. 도의원들도 그렇고요. 정치인들은 다 표만 계산하는 것 같아요. 무슨 협의회 같은 관변단체와 지가 상승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 건설 관련 업자들이 조직된 표라고 보기 때문에 중립을 내세우면서 시민들의 반대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시민모임 기자회견서귀포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모임(서미모)이 지난 11월 3일 기자회견을 갖고 “도시숲법에 따라 백년 소나무숲을 재평가하고, 처음부터 잘못된 환경영향평가를 재시행하라”고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서미모는 또 이재명 대통령께 서귀포 타운홀 미팅을 요청한다고 밝혔다.오한숙희

    서귀포 우회도로사업과 솔숲 파괴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제주지역 언론에서도 지적이 끊이지 않아 왔다. <제주 KBS> <한라일보> <미디어 제주> 등 다수의 언론에서 솔숲 파괴에 대한 우려와 함께 '행정소송의 소지가 다분하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제주의 대표적 인터넷매체 중 하나인 <제주의 소리> 최근 관련 보도 제목만 일별해봐도 <4차선 도로로 베어낼 서귀포 '백년 솔숲'...숲 지켜야 문화제 개최>(2025.6.8), <천혜의 자연환경 제주? 전국적 훼손 우려지 9곳 가운데 2곳 선정 망신>(내셔널 트러스트 '이곳만은 지키자' 선정관련, 2025.9.23), <제주판 양평고속도로? 서귀포 우회도로 100억대 보상 노선변경 추진>(2025.10.30), <"서귀포 도심 '100년 숲' 밀어버리는 사업 수정돼야">(2025.11.3) 등 우회도로사업에 대한 우려와 비판적 시각을 전하고 있다.

    오한숙희씨는 100년 솔숲 지키기 운동에 발 벗고 나서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특별자치도의 구조적 문제점, 정치인의 공약의 허실, 중립이라는 미명 하의 책임회피 등을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별자치도의 구조적 문제를 절감하고 있어요. 서귀포시는 자치시가 아닙니다. 행정시여서 선출직이 아닌 도지사가 임명한 사람이 시장으로 옵니다. 임명시장 체제에서 서귀포 시민들의 민의가 적극적으로 수렴되기 힘든 것이지요. 솔숲이 사라진다고 문제를 제기해도 환경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요. 특별자치도에서 셀프 승인하면 끝납니다. 자치권을 부여한 것이 본래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폐해가 돼버린 것입니다.

    오영훈 지사는 대표 선거공약으로 '15분 도시'를 내세웠습니다. 직장 학교 상점 공원 등이 가까이 있어 자동차 의존도를 줄이고 친환경적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민이 행복한 도시숲 만들기 5개년 계획에 660억을 투입한다는 겁니다. 기존의 훌륭한 도시숲을 파괴하면서 한편으로는 돈을 들여 숲을 만들겠다니 정말 이율배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국가적 과제와도 동떨어진 것이고요.

    고위공직자라는 분들은 시민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반대운동을 하면 찬반이 나뉘므로 '중립'이라는 식으로 모르는 체합니다. 과연 중립일까요? 올 6월 주소와 핸드폰 번호 같은 민감한 개인정보까지 공개하는 반대청원서에 사흘 만에 750명이 서명할 정도로 시민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찬성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들어 중립이라고 발뺌하는 건 책임 회피일 뿐이에요."

    '딸에게도 100점'인 서귀포
     
    발달장애 청년작가 전시회오한숙희 <사단법인 누구나> 이사장이 전시회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년 4월. <누구나>는 발달장애 청소년을 비롯해 결혼이주 여성, 다문화청소년 등에게 미술 사진 등 예술지원을 함으로써 위로해 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오한숙희

    잠시 화제를 돌려 오한숙희씨의 서귀포 생활을 들어보았다. 서귀포에서의 11년 삶이 어땠을까? 중증 자폐증세로 도시에서 살아가기 힘들어했던 딸은 잘 적응했을까?

    "한마디로 기대 이상입니다. 자연환경이 너무 좋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주도 특히 서귀포의 자연이 더욱 귀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곳엔 사람이 적고, 이동거리 2.5㎞ 반경 안에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다 보니 하루가 길게 느껴집니다. 또 사람들을 오래 사귀면 아주 정다워요. 제주올레가 있어 이를 매개로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요. 오일장이라든가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아날로그 정서여서 저는 좋습니다.

    딸 희나한테도 이곳은 100점입니다. 여기에 굉장히 철학도 좋고 환경도 좋은 사회복지시설이 있어 딸이 거기 다니는데 너무 행복해합니다. 여름에는 바닷가에 놀러 가고, 겨울엔 숲속에 가고, 주말이면 함께 올레길을 걷고요. 또 100년 솔숲에 가서 그림도 그리고 하니까 안정감을 얻은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장애가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육지만큼 예민하지 않습니다. 도시는 인구밀도가 높고 신경과민 상태라서 다들 각박하지만, 이곳은 좀 널널한 편이니까요. 마치 제주도의 전설 설문대할망이 저를 딱 픽업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년여 전 오한숙희씨는 <우리, 희나>라는 책을 펴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딸, 희나와의 30년 동행기'다. 이 책에서는 딸 희나가 그림에 취미를 갖게 되다가, 매년 전시회를 여는 작가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서귀포에 와서 안정감을 찾았다는 희나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을까.

    "저희 집안에 미술 DNA가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도 그림을 하셨고, 제 큰딸도 미대를 나왔어요. 희나는 구상화를 하는 게 아니라 색을 배열하고 층을 쌓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밤새도록 색칠을 하곤 했거든요. TV에도 하고 장롱에도 하고 벽이며 온갖 곳에 색칠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미술작가 선생님이 보시더니 이게 쌓기 작업이라고 하는 거예요. 레이어(층)를 쌓는 작업인데 보통 작가 중에 좀 불안감이 있거나 극도로 예민한 사람들이 이런 레이어 작업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색감이 굉장히 좋고 나름대로 구성력이 있다고 해요. 작가들이 보면 그림이라고 느낀다는 거예요."

    오한숙희씨는 제주도에 와서도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제주도 양성평등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가 100년 솔숲 문제에 대한 제주도정의 태도에 분노해 얼마 전 그만두었다. 서귀포 다문화센터 운영위원으로 자문을 해주고, 가끔 강연 요청이 오면 육지 나들이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요즘 심혈을 기울이는 건 사단법인 '누구나'를 키우는 일이다. 어떤 일일까?

    "제가 서귀포에 와서 살아보니까 육지와는 달리 생활에 여유가 생겼어요. 딸에게도 집중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그림 그리는 동아리를 운영하다가 2018년에 '누구나'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었습니다. 이 지역에 사는 결혼이주 여성들이나 다문화 청소년들, 발달장애 청소년 그리고 노인들이 겪는 차별이나 외로움에 예술지원을 해줌으로써 위로해 주자는 취지입니다. 어머니가 늘그막에 그림 하시면서 삶의 질이 상당히 높아지는 것을 제가 생생하게 봤거든요.

    예술지원은 주로 그림을 많이 하고 사진도 합니다. 미술작업은 각자 직업에 따라 따로 또는 함께 할 수 있는 작업이고 음악과는 달리 소리가 나지 않으니까 조용히 할 수 있잖아요. 그동안 그림책도 몇 권 냈고, 발달장애 청년들을 기성작가로 키워내기도 했습니다. 그중 몇몇은 많이 알려져 초대전에 출품하기도 했고요. 서귀포에 있는 키위새 스테이션이라는 갤러리 공간을 빌려 거기서 주로 전시합니다.

    사단법인 '누구나'를 하면서 저는 아트팜을 만들겠다는 꿈이랄까, 목표를 갖게 됐습니다. 말 그대로 예술과 농장을 결합해 '누구나' 식구들이 생태적으로 자급자족하고 각자의 취미와 특기를 살리면서 생활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땅을 좀 사서 게르촌처럼 각자의 공간을 하나씩 만들어 그곳에서 생활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스튜디오로 삼자는 것입니다. 또 집단이 이용할 수 있는 커다란 게르를 하나 만들어 전시회도 하고, 굿즈도 팔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타운홀 미팅' 요청했지만...
     
    도지사 면담 촉구집회서귀포 시민들은 100년 솔숲을 지키기 위해 문화제 개최, 도지사 면담 촉구, 반대서명운동 등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오한숙희

    서귀포로 이사 오기를 정말 잘했다며 이곳이야말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지인들에게 자랑하던 오한숙희씨는 요즘 100년 솔숲 지키기에 올인하면서 삶이 고달파졌다고 토로한다. 지난 추석 무렵에는 두 달이나 몸져누워 꼼짝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요지부동인 제주도정의 공사 강행 방침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물었다.

    "저는 100년 솔규정합니다. 결국은 여론전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촛불집회처럼 우리도 침낭 가지고 숲에 누워서 천막농성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용산 대통숲 지키기 운동은 기득권과 서민과의 싸움, 중앙지향의 정치와 지방 생활정치의 싸움이라고 
    령실에도 서귀포 타운홀 미팅을 요구했는데 아직은 답이 없네요. 저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 문제를 인지하게 되면 어떻게든 숲을 보존할 수 있는 해결책을 강구하라고 할 것 같아요. 100년 솔숲의 소나무들에게, 그리고 우리 후손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뜻을 같이하는 국민적 차원의 힘을 합쳐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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