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6월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치브로커’ 명태균씨로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받고 그 비용을 후원자에게 대신 내게 한 의혹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1심 선고가 22일 나온다. 확정되면 시장직을 박탈당하는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선고될지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조형우)는 22일 오후 2시부터 오 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 1심 선고기일을 연다. 오 시장 대신 여론조사비 대납한 혐의를 받는 후원자 김한정씨, 오 시장의 지시로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여론조사 결과를 직접 받은 혐의를 받는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선고도 이날 같이 나온다.
오 시장은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명씨로부터 총 10차례(공표 3회·비공표 7회)에 걸쳐 여론조사 결과를 받고, 비서실장이던 강 전 부시장을 통해 김씨에게 3300만원 상당의 비용을 대신 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씨가 명씨에게 전달한 돈을 오 시장과 강 전 부시장을 위해 대신 내준 여론조사 비용으로 보고, 이들 세명의 행위를 정치자금법 45조 1항에서 금지한 불법 기부·수수 행위로 판단해 지난해 12월 재판에 넘겼다.
쟁점은 김씨가 명씨에게 준 돈을 여론조사 비용으로 볼 수 있는지다. 그동안 법원은 정치인이 여론조사를 의뢰해 결과를 받아놓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면 여론조사 비용만큼의 재산상 이익을 얻었다고 보고 이를 ‘위법한 정치자금 수수 행위’라고 봤다. 특검팀은 명씨가 오 시장에게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받기로 서로 합의했고, 오 시장은 이 비용을 김씨에게 대납시켜 결국 여론조사 결과를 무상으로 받아 재산상의 이익을 얻었다고 보고 오 시장 등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오 시장은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한 적도 없고, 결과를 직접 받아본 적도 없으며 김씨가 명씨에게 준 돈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강 전 부시장도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고, 김씨는 명씨에게 준 돈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명씨에게 오 시장을 잘 보이게 하려던 것’이지 여론조사 비용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나경원을 이기는 여론조사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오 시장이 자신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했다는 명씨의 주장과 배치된다. 명씨는 또한 오 시장이 자신에게 “(강)철원이하고 의논해서 여론조사 알아서 진행해주시고, 그 비용은 김한정 회장이 계속 지원하도록 말해놓겠다”고 했다고도 주장했다. 양쪽의 주장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특검팀은 명씨와 오 시장을 동시에 불러 대질신문을 진행했으며 명씨는 오 시장 재판에서 특검팀 쪽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재판부가 오 시장이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받기로 명씨와 약속했는지, 오 시장이 김씨에게 이 비용 전달을 시켰는지에 등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명씨로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무상으로 받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해선 재판부별로 판단이 갈린 상태다. 김건희 여사의 1·2심 재판부는 명씨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여론조사를 의뢰하거나 결과를 받기로 합의한 사실이 없다며 명씨가 일방적으로 제공한 여론조사 결과를 위법하게 받은 정치자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윤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여론조사 제공에 대한 ‘묵시적 합의’만 있었어도 여론조사 무상 수수는 정치자금 불법 수수 행위라고 판단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오 시장에게 징역 1년6개월에 3천300만원 추징을, 강 전 부시장과 김씨에게는 각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 부정수수죄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형 확정 이후 5년간 공직에 취임하거나 임용될 수 없고, 현직자의 경우 직을 박탈한다고 규정한다. 오 시장은 이번 사건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을 확정받으면 서울시장직을 상실하게 된다.
▲ 2026년 6월25일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대기업 노동조합이 요구하고 있는 ‘영업이익 N% 성과급’이 쟁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가 ‘호남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를 단체교섭 의제로 올리겠다고 선언한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이 대통령이 “올바른 방향”을 지시했다면서 “(노동조합 요구는) 기업 성장동력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주요 주주로 있는 한국경제도 “입법으로 못을 박아야 한다”며 대통령 발언을 지지하고 나섰다. 양대노총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영업이익 N% 성과급’ 제동 건 대통령… 조선 “올바른 방향”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개인적 의견”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일부 대기업에서 논의된 ‘영업이익 N% 성과급’에 대해 “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영업이익 일부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돌입했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역시 유사한 요구를 하고 있는데 이를 쟁의 대상에 포함하는 것을 숙고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 대통령은 최근 삼성전자 노조가 호남 반도체 공장 투자를 ‘단체교섭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필요하면 시행규칙에 해당하는 지침이나 고시를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22일자 조선일보 사설
이에 조선·중앙·동아 등 주요 보수성향 일간지는 22일 사설에서 대통령이 제시한 방향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사설 <李 “이익 배분은 쟁의 대상 아냐” 옳은 말, 후속 조치 서둘러야>에서 “두 달 전 삼성전자의 N% 성과급 파업 논란 때만 해도 이 대통령은 ‘과도한 요구’라면서도 제동을 걸지 않았고, 노동부는 중재까지 하면서 노사 협상을 지원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지시는 늦었지만 올바른 방향”이라며 “주주 승인 없이 노사 합의만으로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달라는 요구는 자본주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성장 동력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했다.
또 조선일보는 3면 <李 대통령 “쟁의 대상 너무 광범위해져” 노동부에 기준 마련 주문> 보도에서 “실제로 영업이익 중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달라는 요구는 반도체에서 시작해 현재 자동차, 조선, 정보기술, 유통 등 사실상 전 산업군으로 번진 상태”라면서 “하지만 이 대통령 지시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어떤 사업 경영상 결정이든 근로자의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노조가 ‘쟁의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회사는 ‘아니다’라고 주장하면 노동위로 갈 수밖에 없고, 양측이 노동위 중재에도 승복하지 못하면 법원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22일자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도 사설 <李 “영업익 배분, 쟁의 대상 아냐”… 무차별 확장엔 제동 걸어야>에서 “무리한 성과급 제도화 요구와 파업 사태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명확하게 제동을 건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성과급 산정이나 신규 투자, 사업 재편 등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전략적 의사결정은 온전히 기업 경영의 몫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무리한 쟁의에 따른 소모적 갈등을 줄이고, 기업들도 안심하고 경쟁력 강화와 투자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2일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후신인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영업이익 N% 성과급’을 우려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산업 생태계 망치는 ‘N% 성과급’…주총 승인 의무화해야> 사설을 내고 “한경협이 최근 확산하고 있는 ‘영업이익 N%’ 성과급 요구에 우려를 표명하고 대책 논의에 나섰다”며 “무분별한 이익 분배 요구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 막대한 투자가 필수인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결국 그 이익의 기반이 된 초격차의 지속가능성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나눠먹기 요구에 산업 생태계가 망가지기 전에 서둘러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며 “노란봉투법이 과도한 성과급 요구까지 보호하는 문제도 시정해야 한다”고 했다.
▲22일자 한국경제 사설
한국경제 역시 <대통령도 ‘N% 성과급’ 쟁의 대상 아니라는데…입법으로 못 박아야> 사설을 통해 “N% 성과급 갈등으로 여러 기업에서 파업이 벌어지고 현대자동차는 이미 수천억 원의 생산 차질이 빚어진 상황”이라며 “정부가 사실상 손 놓고 있는 사이에 ‘우리도 영업이익의 일부를 달라’는 노조 요구가 빗발치고 HD현대중공업, 한국GM, 카카오 등 거의 전 산업계가 몸살을 앓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경제는 “성과급 역시 얼마를, 어떻게 지급할지는 경영상 판단이지 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현대자동차는 한국경제 최대주주다.
▲22일자 한겨레 5면 보도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보도에서 이재명 대통령 발언을 전하면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우려도 함께 전했다. 한겨레는 5면 <이 대통령 “‘호남반도체 쟁의대상’ 주장 지나쳐… 기준 정리해야”> 보도에서 “이 대통령 발언에 양대 노총은 일제히 반발했다”며 “민주노총은 ‘개정 노조법의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제약하려는 매우 우려스러운 시각’이라고 논평했다”고 밝혔다.
▲22일자 한국일보 3면 보도
한국일보는 3면 <李 “영업이익 배분, 쟁의 대상 아냐”… 노동계 “노봉법 정면 부정”> 보도를 통해 “한국노총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노동쟁의의 범위를 새롭게 제한하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정 노조법의 입법 취지에 따라 노동기본권이 충실히 보장될 수 있도록 법률을 집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외교관 정보 해킹 논란… “정부가 기업 질책할 자격 있나”
SK텔레콤·KT·쿠팡 등 민간기업뿐 아니라 정부기관마저 대규모 해킹 대상이 됐다. 국립외교원 온라인교육시스템 해킹으로 현직 외교관 등 1만 명의 정보가 유출됐으며, 외교부는 이 사실을 10개월간 몰랐던 것이다.
▲22일자 동아일보 8면 보도
동아일보는 8면 <정보기관 요원 수백명 포함 1만명 정보 털린 외교부, 알고도 5개월 숨겨> 보도에서 “정부는 북한 소행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번 해킹으로 해외 파견 정보기관 요원을 포함해 현직 외교관 전원과 정부 부처 주재관 등 최대 1만여 명의 개인정보가 탈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외교부가 2월 초 해킹 사실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통보받고도 5개월여 동안 피해를 숨긴 점도 논란이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전현직 외교관과 주재관 등은 외교부가 20일 보도자료를 내기 전까지 피해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고 밝혔다.
▲22일자 중앙일보 16면 보도
중앙일보는 16면 <외교관 전체 등 최대 1만명 정보 털렸다… 북 소행 가능성> 보도에서 “문제는 외교부가 지난 2월 관계 기관의 통보를 받기 전까지 10개월 가까이 해킹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라며 “외교·안보 인력 정보가 집중된 기관이 보안 문제를 외부에 의존한 셈이어서 보안 역량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비판했다.
▲22일자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는 사설 <외교관 전원 신상정보 해킹… 적성국에 넘어갔다면 어쩔 건가>에서 “귀중한 정보를 적성국 등 외국 정부가 획득하는 경우 테러나 로비 등 각종 공작에 악용될 수 있고, 한국의 외교 활동이 고스란히 분석당할 우려가 높다. 얼마나 소홀히 관리했으면 해킹을 당하고도 10개월간 피해 사실을 몰랐을 정도”라며 “해외 외교·정보 라인의 인적 정보가 통째로 유출된 ‘초대형 보안사고’인 셈”이라고 했다.
▲22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도 사설 <이번엔 외교원 해킹, 피해 규모조차 모른다니>를 내고 “이번 유출 사고는 미상의 공격자가 시스템 보안 설정 미비점을 악용해 지난해 4월과 5월에 걸쳐 서버를 장악하면서 발생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지난 2월 관계기관으로부터 해킹 정황을 통보받고서야 조사를 시작했고 아직도 해킹의 주체는 물론이고 정확한 유출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쯤 되면 정부가 민간기업의 정보 유출을 질책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7일 서울 성동구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거듭되는 이재명 대통령 부동산 논란… 중앙 “또 한 수 배운다” 지적
이재명 대통령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 아파트 매각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 주택 매각 과정에서 매수인이 은행이 아닌 이 대통령 부부 앞으로 17억7000만 원에 가까운 규모의 근저당권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과 매수인이 사적 인연이 없다면서 “매수인 사정을 배려해 등기 이전을 했으며 근저당 설정은 거래 당사자들의 민사상 합의에 따라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22일자 조선일보 2면 보도
하지만 언론은 이 대통령 부동산 매각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일보는 2면 <대통령은 대출 규제 우회… 공정성 논란> 보도에서 “일반 국민이 겪는 대출 규제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 여론이 쏟아졌다”며 “여론을 관통한 키워드는 ‘불공정’이다. 일반적인 1주택자라면 집을 처분한 후 거주할 집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여유 자금을 매수자에게 빌려줘가며 아파트를 파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경향신문도 4면 <일반인이면 가능했겠나… 이 대통령 분당 아파트 매매 ‘뒷말’> 보도에서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아파트를 매도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이 사용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며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을 일반인이 썼을 땐 구청의 토지거래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자금 출처가 명확히 소명되어야 부동산 거래가 허가된다”고 했다.
▲22일자 한국일보 칼럼
한국일보는 이영태 논설위원의 칼럼 <대통령의 ‘매도인 금융’>에서 “본인이 만든 규제를 스스로 우회한 편법이라는 비판을 비껴가긴 쉽지 않다”며 “1억~2억 원이라도 집값을 낮췄으면 이런 불투명한 방식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일반인이라면 매수인이 언제 돈을 갚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뜻 거액을 빌려주기 쉽지 않다”고 했다.
▲22일자 중앙일보 칼럼
중앙일보는 안혜리 논설위원 칼럼 <대통령 부동산 거래의 기술>에서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나 재산공개 때 드러나는 재산 목록과 자산 증식 방식 자체가 매우 훌륭한 재테크 교과서라더니, 이렇게 또 한 수 배운다”며 “분명한 건 무주택 실수요자조차 대출 규제 탓에 분양받은 집 입주도 못 할 판인데, 집값 잡겠다며 규제 만든 당사자인 대통령이 평소 그렇게 비판하던 ‘투기성 갈아타기’일 수도 있는 매수자의 조합원 지위까지 확보해 주려고 무리수를 둔 것처럼 보이니 형평성 논란으로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2일자 세계일보 사설
세계일보는 사설 <李 대통령도 아파트 거래 편법 논란, 규제 정상화 계기 삼아야>에서 “청와대는 ‘매수자 사정에 의한 것’이라고 했지만,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라며 “이번 거래는 금융·재건축 규제의 허점과 편법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했다. 이어 세계일보는 “불법은 아니라지만 고강도 대출·재건축 규제를 피해 사금융이라는 편법을 동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며 “이번 사태는 대통령조차 편법을 동원해 거래해야 할 정도로 현행 대출·재건축 규제가 시장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밝혔다.
▲감사원. ⓒ연합뉴스
윤석열이 두목?… “감사원, 尹 호위무사 전락”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 관저 이전 비리 ‘봐주기 감사’를 주도한 의혹을 받는 유병호 감사원 감사위원이 지난 20일 구속됐다. 특검에 따르면 유 위원이 윤석열씨를 ‘두목’으로 지칭하며 “반대파를 청소하려면 권한이 필요하다”고 적은 메모가 발견됐다.
▲22일자 경향신문 8면 보도
경향신문은 8면 <윤석열에 “두목” “반대파 청소”… 유병호가 ‘감사원 실세’ 된 방법> 보도에서 “유병호 감사위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두목’이라 부르며 감사원 사무총장 승진을 청탁한 정황이 나타났다”며 “특검은 유 위원 등 7명으로 구성된 (감사원 내 사조직)타이거파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부동산 통계 조작 사건 등 문재인 정부 실책을 파헤치는 감사를 주도한 것으로 판단한다. 타이거파의 존재가 수사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한국일보는 사설 <구속 유병호 “尹은 두목”... 호위무사 전락한 감사원 실상>에서 “유 감사위원은 제기된 혐의를 전부 부인했으나, 그와 윤석열 정권의 밀착은 감사원 안팎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유 감사위원의 책임이 크지만, 감사원이 그를 방치한 것은 조직 분위기가 상당히 망가졌다는 방증일 것”이라고 했다.
▲22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구속된 유병호 통해 ‘감사원 돌격대’ 만든 윗선 밝혀야> 사설에서 “유병호 위원을 통해 헌법기관인 감사원을 대통령의 ‘친위 돌격대’로 전락시킨 윗선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며 “자신에게 충성하기만 하면 아무리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논란을 일으켜도 밀어주고 챙겨주는 ‘윤석열 스타일’ 아닌가. 21일 국회 의결로 활동 기한이 연장된 종합특검이 남은 기간 총력을 다해 감사원을 망가뜨린 배후를 밝혀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를 비롯해 국가폭력 피해자로 구성된 시민단체들이 21일 오전 11시 빗속에서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앞 '국정원 국가폭력 자료 전부 공개 요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국정원은 국가폭력 진상규명 조사에 협조하라!"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를 비롯해 국가폭력 피해자로 구성된 시민단체들이 21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앞에서 '국정원 국가폭력 자료 전부 공개 요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는 국가정보원의 '2024년 촛불집회 참가 시민·대학생 상대 미행·감시·도둑 촬영 사건' 등 과거의 반민주·반인권적 기록들을 모두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시민단체는 국가정보원이 국가폭력 기록을 공개해야 올 2월 출범한 3기 진실·화해위원회(3기 진화위)가 국가폭력 진상규명 조사의 소임을 다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종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문사지회장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최종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문사지회장은 여는말을 통해 국가정보원이 스스로 국가폭력의 과오를 인정하고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정원은 그들이 벌인 국가폭력 진상을 규명하자는 의문사위원회, 진실화해위원회, 세월호 참사 조사위 등 어떤 조사기구에도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해왔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국정원이 스스로 과거 국가폭력 과오를 인정하고 자료를 공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성규 민주노총 열사특위 위원장은 국가정보원이 과거 중앙정보부, 안기부 시절 군사독재정권 보위를 위해 많은 의문사 사건을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진중공업 박창수 열사, 박태순 열사 등 여러 의문사 사건이 국정원의 소행이라는 구체적인 정황과 증언이 확인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국정원은 핵심 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스스로 조사 범위를 제한하며 진상규명을 가로막았다"라며 더는 국정원을 비롯한 공안기관의 자료 은폐와 비협조를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또 "대통령 직권으로 과거사 관련 자료를 전면 공개하도록 명령하고, 진상규명에 필요한 모든 협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성철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노성철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 상임대표는 그동안 국가정보원은 조직이 부여받은 임무와 달리 '음지에서 일하고 음지를 지향해왔다'고 목청을 높였다.
국가정보원이 과거 "국민을 감시하고 민주화 운동가들을 탄압하면서 진실을 음지 속에 가두어 왔다"는 것.
그는 "완전한 정보공개를 통해 과거 정부와 국정원의 권력남용과 국가가 자행한 불법 폭력의 역사를 완전히 끊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창욱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진상규명위원회 상임대표, 이은정 서울대민주동문회 사무총장, 김호정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처장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국가정보원의 국가폭력 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빈 포스터에 붙이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백경진 전국시국회의 공동대표는 3기 진화위 조사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어느 정도로 진상규명에 협조할 것인지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김익렬 연대장이 작성한 4.3의 진상을 기록한 회고록이 제주 4.3 진상조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바가 있다"고 예를 들며, "국정원이 가지고 있는 사찰자료, 반인권자료들을 공개한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라고 관련 자료의 공개를 촉구했다.
이어 국가폭력 사건의 종결을 위해서 "가해자의 진솔한 반성과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언이 끝난 이후에는 국가정보원의 국가폭력 관련 사건을 빈 포스터에 붙이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6년 하반기 업무보고 관련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7.16 연합뉴스
복지는 사람을 이해하는 제도다. 누군가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알지 못한다면 적절한 복지정책도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복지는 언제나 데이터를 필요로 했다. 과거에는 공무원의 현장조사와 신청서, 상담기록이 중심이었다면, 오늘날에는 행정정보와 공공데이터, 그리고 AI 기반 분석기술이 그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
AI 대전환 시대는 복지정책의 질문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누가 도움이 필요한가?"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어떤 데이터를 활용해야 가장 정확하게 찾을 수 있는가?"가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하나의 질문이 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어디까지 국민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기술의 한계를 묻는 것이 아니다. 국가 권한의 경계를 묻는 질문이다. AI 시대, 데이터는 새로운 복지 인프라가 되었다. 오늘날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데이터가 부족하면 AI는 위험을 발견하지 못하고, 데이터가 왜곡되면 잘못된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복지 AI의 성능은 알고리즘보다 데이터 품질에 더 크게 좌우된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인 '행복e음'은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방자치단체와 관계기관은 소득, 재산, 복지급여, 공공요금, 사회보장 정보를 연계하여 복지 대상자를 관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AI를 활용한 위기가구 발굴에도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는 분명 필요한 변화다. 복지는 신청을 기다리는 행정에서 벗어나 먼저 찾아가는 행정으로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I가 더 많은 데이터를 요구할수록 국가는 더 큰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복지 데이터는 일반 데이터와 다르다. 복지 데이터는 단순한 행정정보가 아니다. 장애 여부, 질병 이력, 소득과 재산, 가족관계, 돌봄 상황, 기초생활보장 수급 여부와 같은 정보는 개인의 가장 취약한 삶을 담고 있는 민감한 정보다. 이러한 정보는 유출되는 순간 경제적 손실보다 더 큰 사회적 피해를 남길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AI 시대에는 개별 정보보다 데이터의 결합이 새로운 위험을 만든다는 점이다.
건강정보 하나만으로는 많은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건강정보와 금융정보, 위치정보, 가족관계 정보가 결합되면 한 사람의 생활패턴과 경제상황, 심지어 미래의 위험까지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AI 시대 개인정보의 위험은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쉽게 연결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복지 데이터 거버넌스'다.
인공지능(AI)을 활요한 상담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필자는 앞으로 복지 AI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복지 데이터 거버넌스(Welfare Data Governance)라고 생각한다. 데이터 거버넌스란 단순히 데이터를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다. 누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지, 어떤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공유할 수 있는지, 그리고 누가 책임질 것인지를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규범과 운영체계를 의미한다. AI 시대에는 알고리즘보다 데이터 거버넌스가 더 중요하다. 잘못된 알고리즘은 수정할 수 있지만, 국민이 국가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복지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는 왜 데이터 최소화를 선택했는가? 유럽연합(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은 데이터 최소화(Data Minimisation)와 목적 제한(Purpose Limitation)을 핵심 원칙으로 제시한다. 필요한 만큼만 수집하고, 수집한 목적 외에는 활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제적 효율성을 낮추기 위한 규제가 아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다. 이런 원칙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AI 원칙에서도 이어진다. OECD는 AI가 혁신을 촉진하는 동시에 인권과 민주적 가치, 투명성을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술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네덜란드의 SyRI(System Risk Indication) 사건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복지 부정수급을 예방하기 위해 세금, 소득, 고용, 복지급여 등 여러 공공데이터를 결합해 위험도를 예측하는 AI 시스템을 운영했다. 정책의 목적은 타당했다. 그러나 2020년 헤이그 지방법원은 SyRI 운영을 중단시켰다.
시민들은 자신이 어떤 데이터를 근거로 위험군으로 분류되었는지, 왜 감시 대상이 되었는지, 알고리즘이 어떤 기준으로 작동했는지 알 수 없었다. 특히 이주민과 저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알고리즘이 운영되면서 특정 계층을 과도하게 감시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위험군으로 분류된 시민은 최대 2년 동안 정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정보를 확인하거나 판단 기준을 설명받기는 어려웠다.
결국 2020년 2월 헤이그 지방법원은 SyRI가 유럽인권협약(ECHR) 제8조가 보장하는 사생활 및 가정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SyRI 사건이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AI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AI를 통제할 거버넌스가 실패한 것이다. 이제는 '복지 데이터 거버넌스'를 설계해야 한다 필자는 앞으로 AI 복지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복지 데이터 거버넌스라고 생각한다.
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AI의 정확도가 아니었다. 복지 부정수급 방지라는 공익적 목적 자체는 인정했지만, 그 과정에 개인정보 보호와 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적 균형과 비례성이 무너졌다고 보았다. 특히 데이터 활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부족했고, 국민이 자신의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을 중요한 문제로 지적했다. 또한 개인정보와 사생활에 대한 침해 우려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AI의 실패가 아니라 거버넌스의 실패였던 것이다.
지난해 10월 4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컨퍼런스 '디지털 복지 국가에서의 AI 정책 암시'를 알린 포스터
복지 데이터 거버넌스란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하는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를 누가 수집할 수 있는지, 어떤 목적에서 활용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결합할 수 있는지,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그리고 누가 최종 책임을 질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제도적·윤리적 운영체계를 의미한다.
이런 방향은 국제사회가 제시하는 AI 규범과도 맞닿아 있다. 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은 '데이터 최소화'와 '목적 제한'을 핵심 원칙으로 제시하며, OECD AI 원칙 역시 AI가 혁신과 함께 인권, 민주주의, 투명성을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좋은 AI는 데이터를 가장 많이 수집하는 AI가 아니라, 국민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활용하는 AI라는 의미다.
우리나라 역시 AI 기반 복지행정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럴수록 복지 데이터는 행정의 자산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에 맡긴 신뢰의 자산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복지를 위해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이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지 못한다면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AI 대전환 시대의 복지는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경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자신의 정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제도와 원칙, 그리고 책임체계를 구축하는 경쟁이 되어야 한다. 복지 데이터는 국가의 자산이 아니다. 국민이 자신의 가장 어려운 순간을 국가에 맡기며 형성된 사회적 신뢰의 자산이다.
국가는 데이터를 통해 국민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데이터를 통해 국민을 감시해서는 안 된다. AI 시대 복지국가의 경쟁력은 가장 많은 데이터를 보유한 국가에서 나오지 않는다. 국민이 자신의 정보를 가장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국가에서 나온다. 그것이 AI 대전환 시대, 우리가 새롭게 설계해야 할 복지 데이터 거버넌스의 출발점이며, AI 시대에도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될 새로운 복지의 원칙이다.
[여의도 앨리스] “정치부 기자들이 전하는 당최 모를 이상한 국회와 정치권 이야기입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월13일 국회 국민의힘 당대표회의실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회동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국민의힘이 6·3 지방선거 이후 제후는 많지만 맹주는 없는 춘추전국시대식 힘의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무소속 의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 잠재적 대선 주자들 중 누구도 주도권을 쥐지 못한 채 당 안팎에 난립한 상태여서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비당권파 A의원은 20일 통화에서 “지금 국민의힘은 힘의 평형 상태”라며 “장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 (비당권파) 의원들은 많은데 시기나 방법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보니 계기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당권파도 당내 상황이 교착 상태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장 대표의 리더십이 공고하다고 주장했다. 당권파 인사 B씨는 이날 통화에서 “일종의 교착·소강 상태지만 장 대표가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다”며 “일부 의원들이 장 대표의 연임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이 그 근거”라고 말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달 2일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중구 릴레이 순회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국민의힘을 포함한 범보수는 6·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결과 오 시장과 한 의원이라는 유력 대선 주자를 확보했다. 오 시장과 한 의원은 모두 장 대표와 선거 전후 대립 구도를 보였지만, 3명 중 어느 쪽도 당내 세력을 뚜렷하게 장악하지 못했다. 이 대표는 개혁신당의 지방선거 부진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 C씨는 이날 통화에서 “장 대표는 강성 당원을 확보했지만 의원들이 따르지 않고, 오 시장은 대중적 인지도가 있지만 측근 의원과 당원 지지가 부족하다”며 “한 의원은 따르는 의원들 그룹이 있지만 확장성이 부족하고, 이 대표는 차세대에서 강력한 주자지만 현재는 힘이 빠진 상태”라고 말했다.
B씨는 “광역단체장인 오 시장은 총선에 힘을 쓸 수 없는 데다 재판 리스크가 있다. 한 의원은 당에 들어올 수 없고, 이 대표는 합당을 원하겠지만 당내 일각의 비토가 심하다”며 “이들은 당내 구심점이 없어서 공성전을 통해 당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자기들끼리 싸워서 화력도 분산된다”고 말했다.
부산 북갑 보궐선거에 출마한 한동훈 무소속 후보가 지난 5월28일 부산 동구 부산 MBC에서 열린 후보자 토론회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그 결과 국민의힘은 당내 리더십 문제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표용지 부족 사태 대응 등 주요 의제를 어떻게 풀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일부 강경 지지층의 지방선거 재선거 주장에 대해서는 당내 의견이 엇갈린다. 또 장 대표 퇴진을 바라는 의원들은 사퇴를 끌어낼 뚜렷한 명분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A의원은 “장 대표가 연임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 번 더 공천받아 당선되는 게 목표인 의원들은 누구와도 척지기 싫어한다”며 “소수 의원은 강성 당원들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으니 부정선거론 같은 현안에서 적극 나서지 않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원들이 적당히 타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교착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를 두고도 당내 관측이 엇갈린다. 옛 친윤석열계인 D의원은 기자와 만나 “오 시장이 유죄가 확정돼 서울시장 선거를 다시 치른 후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장 대표 사퇴론이 강해지면서 상황이 바뀔 수 있다”며 “그런 변수가 아니라면 당분간 현재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C씨는 “장 대표가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공화당과 합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당내 균형추가 깨질 수 있어서 비당권파가 결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 E씨는 이날 통화에서 “교착 상태는 한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오 시장이나 한 의원이나 이 대표는 여러 의미로 모두 당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이 차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참여하지 못하면 전당대회가 끝나도 당내 상황이 정리 안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 예비경선을 위한 합동연설회에서 당권 경쟁자인 김민석 전 국무총리와 정청래 전 대표가 공개 충돌했다. 김 전 총리가 정 전 대표를 겨냥 "반명분열주의를 심판해야 한다"고 직격하자, 정 전 대표도 "저는 민주당을 입당한 이래 한 번도 민주당을 떠난 적이 없다"고 김 전 총리를 우회 공격했다.
김 전 총리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8.17 전당대회 예비경선 합동연설회에서 본인 연설로 "앞으로 2년을 지난 1년처럼 또 다시 명청대전(이라는) 기사 제목을 보기 원하시는가"라며 "명청대전을 끝내야 한다. 자기정치와 사당화로 당정갈등을 일으키는 당대표는 안 된다"고 말해 정 전 대표에게 맹공을 폈다.
김 전 총리는 특히 "반명분열주의는 심판해야 한다"며 "말로만 친명이면 뭐하나. 대통령 공격을 비호하고, 당내 갈등을 부추기고, 조중동에 밑반찬을 주는 게 반명이고 분열주의 아니면 뭔가"라고 정 전 대표를 맹비난했다. "선거승리도 못하고 연임하려는 무책임이 용납돼야 하나"라는 등 정 전 대표의 연임 출마 자체도 비판했다.
김 전 총리는 "반명, 분열주의, 신천지의 3자 비밀연합을 깨는 것이 이번 전대의 본질"이라고 규정, 최근 강성 친명(親이재명)계 일각에서 정 전 대표를 겨냥해 제기한 '신천지 연루 의혹'을 우회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이 3자연합의 핵심들이 온갖 궤변과 왜곡으로 당과 정부와 대통령을 흔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총리는 정 전 대표가 최근 전대 구도를 두고 본인이 '집단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온갖 기득권으로 힘을 쓰던 당대표가 왜 갑자기 약자 행보를 하며 집단폭행 운운하나"라며 "대표 한 번 더 하자고 멀쩡한 다을 깡패소굴에 비유하는 자기정치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라고 날을 세웠다.
김 전 총리는 정 전 대표가 개혁을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데 대해서도 "선당후사를 해도 모자란 판에 5월에 끝낼 검찰개혁을 굳이 전대 시기로 넘기는 선사후당으로 제대로된 개혁이 가능하겠나"라고 꼬집으며 "이미 제가 정리한 정부 입장대로 보완수사권 폐지 문제를 조속히 마무리해주실 것을 당지도부에 다시 요청한다"고 어필했다.
김 전 총리는 이외에도 "선거에도 전국의 주요지역을 커버하지 못한 당지도부", "사상 최대의 특보단을 임명한 당대표의 사당화", "자기과시 폭탄선언으로 합당논의를 수렁에 빠뜨린 자기정치"라는 등 정청래 지도부에 대한 선거 책임론, 합당불발 책임론 등을 거듭 제기해 비판했다.
정 전 대표도 반격에 나섰다. 정 전 대표는 우선 "정청래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가 있다. 저는 2대 1, 3대 1로 때리면 맞겠다"며 "그러나 그 상처를 당원들께서 지켜주시리라 믿는다", "개혁당대표 정청래의 손을 잡아 달라. 도와 달라"고 말해 이른바 '언더독' 전략을 유지했다.
정 전 대표는 그러면서도 "저는 민주주의, 민주당주의, 개혁주의자다. 일편단심 민주당 바라기다. 민주당에 입당한 이래 한번도 민주당을 떠난 적이 없다"고 김 전 총리를 우회 겨냥했다. 김 전 총리의 정치적 약점인 2002년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 사태를 시사하며 본인의 강점을 상대적으로 강조한 것.
정 전 대표는 "2016년엔 억울한 컷오프로 공천에 탈락했지만 탈당하지 않고 총선승리의 제물이 되겠다며 백의종군했다"며 "'더컸 유세단'을 만들어 지원유세까지 다녔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전 총리는 후단협 사태 당시 노무현 후보가 아닌 정몽준 후보로의 단일화를 촉구하며 당을 탈당했었고, 정 전 대표는 이를 '자기정치'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정 전 대표는 "민주당의 정체성은 개혁", "뿌리를 자르고 꽃을 피울 순 없다"는 등 당의 '정통성' 또한 재차 내세웠다. 특히 그는 최근 친명계를 중심으로 신중론이 일고 있는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대해 "검찰개혁의 마지막 과제인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당원과 함께 제 손으로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전 대표는 역시 친명계와 갈등 소재였던 본인의 간판 정책 1인1표제에 대해서도 "1인1표제는 일점 일획도 손댈 수 없다"며 "1인1표제를 추진한 사람은 누구이고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또한 1인1표제를 흔드는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말해 친명계 측에 날을 세웠다.
그는 김 전 총리 등 당권 경쟁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6.3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과 관련해선 "민주·진보 세력의 통합과 연대를 성사시키겠다"며 "우린 연대하면 승리하고 분열하면 패배했다. 그게 6.3 지선의 교훈"이라고 방어하기도 했다. 앞서 그가 경기 평택을 선거에 대해 '무공천을 했어야 했다'고 말한 것의 연장선상 발언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왼쪽부터)·고민정·정청래·김보미·송영길 당 대표 후보가 20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 당원존에서 열린 당 대표·최고위원 예비경선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기념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친명계 주자인 송영길 전 대표는 타 후보에 대한 비판보다는 "저 송영길은 감옥에 갇혔다. 모든 동지들이 외면했고 민주당도 애써 못 본 척 했다", "마침내 무죄를 받고 돌아와선 다시 계양구로 가지 못하고 인천에서 가장 어려운 연수갑에 출마 명령을 받고 싸워 이겼다"는 등 본인의 헌신을 호소하는 데 집중했다.
송 전 대표는 특히 "이재명과 함께 해 왔다"며 "무슨 인연이었는지 정말 목숨 걸고 세월을 함께 걸어왔다. 이 대통령은 말이 필요 없다. 이재명의 최근 정치 인생은 송영길의 인생과 결합돼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송 전 대표는 그러면서 당 기조로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외연확장 기조를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그는 "개혁을 입으로 하지만, (그러면) 실제 개혁이 아니라 동기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장기·단계적 탈원전 △종합부동산세 기준 상향 등 문재인 정부 당시 자신의 정책 '우클릭'을 어필했다.
친문(親문재인)계 주자인 고민정 의원은 "족보 논쟁을 하지 말자", "멸칭은 퇴출시켜야 한다"는 등 당내 갈등 완화에 주력했다. 고 의원은 "수십 년의 정치이력을 갖고 계신 분들조차 구시대의 유물인 족보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나뉘고 갈라져서 손가락질 하는 분열의 정치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민주당의 모습은 정작 우리 안의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조차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사상검증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어느 편인지를 묻고 또 물으며 우리들의 진지를 스스로 좁혀나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당권 경쟁 과정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를 향한 비난이 친명계를 중심으로 일었던 것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유일한 청년 후보인 김보미 후보는 최고위에서 부결된 청년최고위원 선출제와 선관위의 기탁금 상향 결정을 비판했다. 김 후보는 "그간 민주당 최고위는 무엇을 했나"라며 "이재명 대표 시절 당직선거공영제를 도입하려 했다. (이 대표가) 기탁금이라도 줄여놓았더니 (이번엔) 오히려 더 올려놓았다"고 정청래 지도부를 겨냥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부산에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의 ‘전대 기탁금’ 관련 언급을 두고 국민의힘이 ‘당무 개입’ 운운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밀실의 공천 개입’과 ‘광장의 의견 개진’을 같은 저울에 올리지 말라”고 맞받았다.
박경미 민주당 대변인은 20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과거 국민의힘이 배출한 대통령이 단죄된 것은 국가권력을 동원해 ‘공직선거 공천’에 개입했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적과 같이 공직자의 공직선거 관여는 엄연한 불법이지만, 당원의 당직선거 의견 개진은 정당한 정당 활동”이라고 강조한 뒤 “이 명백한 차이를 고의로 외면하거나 인지하지 못했다면, 정치적 비판이 아니라 공당으로서의 자질 부족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이 SNS를 통해 “청년 후보의 기탁금은 몇 배로 늘어나 청년 후보들이 힘들어한다니 아쉽다”, “가능하다면 기탁금을 종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을 고려해 보시면 어떨까 한다”고 밝힌 점을 언급하며 “청년 정치인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자는 당원으로서의 선의의 조언을 어떻게 국민의힘은 ‘가이드라인 하달’로 둔갑시킬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미지 출처=이재명 대통령 'X' 글 캡처>
또 “‘이중잣대’라는 비난은 번지수가 틀렸다”며 “과거 민주당이 비판한 것은 행정부 권력으로 여당 대표를 찍어내고 공천을 설계하려던 권력 남용이다. ‘밀실의 은밀한 공천 개입’과 ‘광장의 투명한 의견 개진’을 같은 저울에 올리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비판과 견제는 야당에 부여된 정당한 권리”라면서도 “상식과 법리를 갖추지 못한 논평은 상대를 베지 못하고 자신의 손만 벨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야당의 역할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꼬투리 잡아 정쟁의 불씨를 지피는 것이 아니라, 민생을 돌보고 국정을 감시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청년 정치인들을 걱정하는 대통령의 진심마저 정쟁의 도구로 소비하는 무모함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는 국민의힘을 향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으로 기소된 오세훈 서울시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6-06-17 ⓒ 사진공동취재단
오는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조형우)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를 내린다.
쟁점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오 시장이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에게 비공표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후원자인 사업가 김한정씨에게 약 3300만 원의 조사 비용을 대신 부담하게 했는지 여부다. 오 시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특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달 17일 결심공판에서 오 시장에게 징역 1년 6개월과 추징금 3300만 원을 구형했다.
이번 선고가 주목받는 이유는 오 시장 사건 자체보다 며칠 전 나온 윤석열씨의 유죄 판결 때문이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는 같은 '명태균 여론조사' 사건으로 기소된 윤씨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과 추징금 약 1396만 원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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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윤씨 부부와 명씨 사이에 여론조사 무상 제공에 관한 '순차적·암묵적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앞서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은 김건희씨가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는 다른 결론이었다.
특검도 바로 움직였다. 특검은 최근 오 시장 사건을 심리하는 형사합의22부에 윤씨 사건 판결 내용을 분석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진관 재판부가 인정한 법리가 오 시장 사건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특검은 오 시장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를 명씨에게 요청한 실질적 의뢰자이며, 두 사람 사이에 여론조사 실시에 관한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핵심은 오 시장의 '인식'과 '승인' 여부
두 사건 모두 명태균씨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둘러싼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이다. 하지만 재판부가 판단해야 할 핵심 쟁점은 다르다.
윤씨 사건에서는 명씨가 무상으로 제공한 여론조사가 정치자금법상 재산상 이익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다. 명시적인 계약서나 대가 지급 약속이 없더라도 반복적으로 제공된 맞춤형 여론조사가 후보자의 선거 전략에 활용됐다면 정치자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이진관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반면 오 시장 사건은 여론조사 자체보다 비용이 누구의 의사로 지급됐는지가 중요하다. 특검은 오 시장이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당시 비서실장이던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통해 김한정씨가 비용을 대신 부담하도록 했다고 보고 있다. 결국 오 시장 측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제3자가 지급하도록 했는지가 쟁점이다.
오 시장은 재판 과정에서 명씨를 만난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명씨가 선거 전략을 맡길 정도의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지 않았다며 여론조사를 의뢰하거나 비용 대납을 요청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김한정씨 역시 자신의 판단에 따라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비용을 지급했을 뿐 오 시장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특검은 명씨 진술과 김영선 전 의원의 법정 증언 등을 토대로 오 시장이 여론조사를 요청했고, 비용은 특정 후원자가 부담하기로 했다고 본다.
명씨는 오 시장이 "나경원을 이기는 여론조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진술했다. 특검은 최근 제출한 의견서에서도 오 시장이 여론조사를 요청한 의뢰자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결국 명씨 진술의 신빙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를 재판부가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유무죄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이 이진관 판결에 주목한 이유
▲정치 브로커 명태균으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받은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심 결과가 나오는 13일 명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물론 특검이 윤씨 사건 판결문을 오 시장 1심 재판부에 제출한 것은 단순히 두 사건이 모두 명씨의 여론조사와 관련돼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진관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명씨와 윤씨 부부 사이에 명시적인 계약이나 지시가 없었더라도 여론조사의 반복적인 제공과 수령, 실제 활용 과정 등을 종합하면 묵시적인 의사의 합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론조사가 반드시 특정 후보에게만 독점적으로 제공돼야 정치자금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봤다. 다른 인사들에게 조사 결과가 함께 전달됐더라도 후보자가 이를 선거 전략 등에 활용할 수 있었다면 경제적 가치는 인정된다는 취지였다.
윤씨 사건은 '명태균 여론조사'와 관련해 정치자금성을 인정한 첫 1심 유죄 판결이다. 특검이 판결 내용을 별도로 분석해 제출한 것도 같은 법리를 오 시장 사건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검은 오 시장 사건 역시 같은 법리 구조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명씨가 단순히 일반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 아니라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를 만들고 전달했다면, 이는 해당 후보를 위한 정치적 용역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 시장이 이를 의뢰하고 비용 지급까지 제3자에게 맡겼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이 성립한다는 논리다.
조형우 재판부가 마주할 세 갈래 판단
두 사건의 가장 큰 차이는 공모 구조다. 윤씨 사건은 무상으로 제공된 여론조사의 경제적 가치와 정치자금성이 중심이었다. 반면 오 시장 사건은 김한정씨의 비용 지급이 오 시장의 인식이나 승인 아래 이뤄졌는지가 핵심이다.
재판부가 김씨의 비용 지급을 독자적인 행동으로 판단하면 오 시장에 대한 공소사실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오 시장이 비용 지급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이를 묵시적으로 승인했다고 판단하면 정치자금법 위반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오 시장 측은 김씨가 개인적으로 여론조사를 의뢰했다고 주장한다. 특검은 김씨의 개인적인 조사였다면 명씨가 오 시장에게 유리하도록 조사 방식이나 결과를 조정할 이유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재판부의 판단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는 무죄다. 재판부가 명씨 진술만으로는 오 시장의 여론조사 의뢰와 비용 대납 공모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김한정씨의 비용 지급을 오 시장과 무관한 독자적 행위로 본다면 오 시장의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 형사재판에서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범죄사실이 증명돼야 한다. 명씨와 김 전 의원의 진술 외에 통화 내역, 메시지, 여론조사 전달 과정 등 객관적 자료가 공모관계를 얼마나 뒷받침하는지가 관건이다.
두 번째는 유죄를 인정하되 오 시장의 가담 정도를 제한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다. 재판부가 오 시장이 비용 대납 사실을 인식하거나 승인했다고 보면서도, 직접 비용 지급을 지시하거나 전체 과정을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경우 유죄 판단 자체는 유지되더라도 오 시장의 역할과 책임 정도가 양형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는 특검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받아들이는 경우다. 재판부가 명씨와 김 전 의원의 진술, 여론조사 진행 경위와 비용 지급 과정 등을 종합해 오 시장이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비용 대납까지 사전에 협의하거나 승인했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이 경우 오 시장이 정치자금 제공의 수혜자일 뿐 아니라 범행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다만 이는 가능한 판단 구조를 나눈 것이다. 실제 결론은 재판부가 각각의 진술과 증거를 어느 범위까지 인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편 특검은 오 시장 1심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 시장직 상실 가능성이 유무죄 판단이나 양형에 고려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시장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가 돼 시장직을 잃는다. 다만 22일 선고는 1심으로, 선고 결과와 관계없이 항소심에서 다시 다퉈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22일 선고의 핵심은 조형우 재판부가 이진관 재판부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느냐가 아니다. 명씨 진술의 신빙성과 김한정씨의 비용 지급, 오 시장의 인식과 관여를 재판부가 어떻게 연결할지가 관건이다. 나아가 이번 판단은 엇갈리고 있는 '명태균 여론조사' 사건의 법리가 어느 방향으로 정리될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
2018년 3월 20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박종철 열사의 부친인 박정기 씨를 만나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고 있다. 2018.3.20. 연합뉴스
검찰청 해체 및 보완수사권 폐지에 맹렬히 반대하는 국민의힘 측이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그 주요 근거로 부각시키곤 한다. 검찰 수사가 아니었으면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겠느냐는 것이다. 주로 검찰 출신 인사들이 그런 논리를 앞장서 설파한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과 2차장,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역임하는 등 대표적 공안통이자 '친윤 사단' 출신인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 해체와 보완수사권 폐지가 1987년에 이뤄졌다면 박종철 군의 공식 사인은 원인 불명의 심장마비가 됐을 것이고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브리핑은 진실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지검 안산지청 차장,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등을 지내고 윤석열 정권 시절 국민의힘 추천으로 KBS 이사로 활동한 김종민 변호사는 14일 국민의힘 주관 '보완수사권 필요성'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부천서 성고문 사건 당시 검찰이 없었다면 진실이 밝혀졌겠냐"며 "얼마 전 광주 5·18은 그렇게 떠들던데 박종철은 어디 갔고,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어디에 갔느냐"고 주장했다.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 검찰은 오히려 가해자인 문귀동의 성고문 사실을 막무가내로 덮고 기소유예 처분한 반면, 피해자인 권인숙에 대해서는 "혁명을 위해서라면 성(性)까지도 도구화한다"는 날조된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 법정에서 무려 징역 3년을 구형했다는 점에서 김종민 변호사의 오인 또는 왜곡은 실로 어처구니없다. 박종철 사건에 대한 아전인수도 그 못지않은 수준이다. 이처럼 해당 사건을 둘러싼 검찰의 조직적 은폐 사실은 가리고 일면만 미화해 여론을 오도하려는 행태는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할 때마다 반복된 것이기 때문에 익숙한 풍경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정점식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장윤기 사건이 드러낸 수사 공백과 보완 수사권의 필요성' 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7.14. 연합뉴스
검찰 조직의 영웅신화? 문무일 총장, 부산까지 찾아가 사죄
"새로운 다짐하려 여기에…과거 잘못 다신 되풀이 안 할 것"
그러나 보수 인사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검찰의 영웅신화처럼 착각하는 것과 달리,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검찰 자체 진상 조사에 의해서도 "검찰총장 이하 검찰 지휘부에 전달된 청와대 및 안기부의 외압에 굴복해 졸속 수사, 늑장 수사, 부실 수사로 점철되었음"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던 사건이다. 종전까지 자신들의 흑역사에 대해 결코 반성 입장을 표명한 적 없던 검찰이 문재인 정부 시절 수동적으로나마 과오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한, 통틀어 몇 안 되는 드문 사례 중 하나인 것이다. 검찰은 뭐라고 사과했던가.
지난 2018년 3월 20일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을 직접 찾아가 입원 중이던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 씨를 만났다. 문 총장은 병상에 누워있는 고령의 박 씨를 향해 상체를 숙인 채 "저희가 너무 늦게 찾아뵙고 사과 말씀을 드리게 돼서 정말 죄송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버님께서 그동안 고생해 주신 걸 저희들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잘못된 건 참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척추 골절로 수술을 받고 온종일 누워 지내던 박정기 씨는 힘겹게 입을 떼 "고마워요. 와주셔서…"라고 답했다.
문 총장은 다시 "너무 그동안 긴 세월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검사) 후배들이 잘 가꾸어서 제대로 된 나라가 되도록 만들어보고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이에 박정기 씨는 "감사합니다"라고 전했다. 문 총장은 20여 분간의 병문안을 마치고 병원 1층으로 내려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으며 "오늘 저희는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면서 "과거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고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 사명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2018년 10월 11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활동 보고를 토대로 언론에 배포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 -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립 방안 및 대책 수립 권고' 보도자료 중 일부
'관계기관 대책회의' 결정에 굴복, 직접수사 중단해
사건 축소·은폐·조작 기회 제공…범인은닉 적극 방조
결국 허언이 되긴 했으나, 검찰 수장이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던 '과거의 잘못'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로부터 6개월여 뒤인 2018년 10월 11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활동 보고를 토대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 -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립 방안 및 대책 수립 권고>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검찰이 처음부터 직접 수사를 하지 않은 의혹에 대해
-검찰은 1987. 1. 16. 박종철의 부검을 통해 사망원인을 정확히 파악한 뒤 초기에는 직접 수사를 계획하였고, 실제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의 주검을 처음 본 의사 등을 조사하는 등 내사에 착수하였음.
-그러나 1. 17. 오후 검찰총장이 국가안전기획부장, 법무부장관, 내무부장관, 치안본부장 등이 참석한 관계기관대책회의에 다녀온 후 검찰의 직접 수사가 중단되었고, 치안본부가 수사를 담당하게 되었음.
-검찰은 치안본부의 진상규명 의지를 신뢰할 수 없어 직접 수사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관계기관대책회의의 결정에 굴복하여 치안본부에 수사를 일임함으로써 사실상 사건 축소 및 은폐 조작 기회를 제공한 결과가 되었음. 즉, 검찰은 직접수사 방침을 변경하여 경찰에 수사를 일임함으로써 조기에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는 데 실패하였고 결과적으로 2차, 3차 수사가 이어지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음.
2. 검찰이 1차 수사 결과에 대해 졸속으로 수사한 의혹에 대해
-당시 여론을 조기에 무마하기 위해 검찰의 수사를 단기간에 종료하라는 검찰 지휘부의 지시 또는 관계기관대책회의의 결정에 따라 검찰은 처음부터 사건을 신속하고 '조용히' 마무리하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수사 인력을 투입하고, 매우 짧은 수사 기간을 설정한 후 수사에 착수하였음.
-법무부 검찰국 검찰3과의 「고문치사(박종철)」 문서철 중 1987. 1. 19.자 「고문치사 사건 수사중간보고서」를 보면, 검찰은 처음부터 피의자를 2명으로 확정한 상태였고 공범에 대한 조사는 수사의 초점이 아니었음.
-구체적 수사 내용을 보더라도 검찰은 치안본부에서 사건이 송치되자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아니하고 단기간에 졸속으로 수사를 끝냈음.
* 국민의 관심 대상이 된 중요 사건임에도 피의자 2명에 대하여 각각 2회의 조사만 하였고 피의자들에게 추가 공범의 존부, 상관의 지시나 관여 등에 관해 치밀하게 질문하거나 집요하게 추궁한 흔적이 드러나지 않음. 고문치사에 직접 가담한 피의자들의 참여를 배제한 채 실황조사(현장검증)를 하였고, 박종철이 사망한 대공분실 9호실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음에도 그 작동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았음. 단 2명의 검사가 하루에 피의자들 2명 및 공범으로 의심되는 경찰관(총 5명)을 모두 조사하는 등 충실한 수사를 하지 못하였음.
-특히 치안본부 대공5차장 등의 범인 도피와 관련하여, 만약 수사 초기에 대공분실에 있었던 CCTV의 작동 여부, 시청자 유무 등을 직접 확인하여 조사했다면 대공5차장 등을 범인도피죄가 아니라 고문치사의 공범으로 의율할 여지도 없지 않았으나 이러한 수사 지연 및 직무유기로 인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기회마저 놓친 결과가 되었음.
-검찰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인권 보장보다는 신속하고 '조용히' 기소함으로써 치안본부의 진상 은폐를 사실상 묵인하고, 여론을 잠재우려는 정치적인 고려(정권 안정)를 우선하여 사건을 처리하였음.
1987년 2월 7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제단 홈페이지
천주교사제단 폭로 때까지 장기간 수사 착수 지연해
"박종철 고문치사 검찰 수사 문제점 소상히 알려야"
3. 검찰이 추가 공범에 대한 수사를 지연한 의혹에 대해
-검찰은 1987. 2. 27. 이미 구속된 고문 경찰관 2명으로부터 추가 공범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음에도 즉각 수사하여 사건의 진상(범인이 뒤바뀐 것인지, 추가 공범이 더 있는지, 이러한 사정을 치안본부 간부들이 인지하고 있었는지, 사건 은폐를 치안본부 간부들이 지시하고 개입하였는지 등)을 수사했어야 함에도 그때부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이를 폭로한 5. 18.까지 약 3개월 동안 수사에 착수조차 하지 않았음.
* 당시 서울지검장은 조사단과의 면담(2018. 8. 9.)에서 "당시 검찰총장은 자기 책임 하에 꼭 수사해서 전부 밝히도록 책임지고, 법무부 장관도 책임지기로 했으니 너무 재촉하지 말고 좀 참아가면서 해달라는 식으로 말했다. 검찰총장이나 법무부 장관이 본래 나한테 부탁하듯이 말할 이유가 없으니까, 대강 이게 청와대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검찰총장은 자꾸 '일주일만 있다가 하자'고 했고, 일주일이 있으면 또 일주일, 일주일 하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한편 기자들이 매일 오던 상황이라 기자들도 적어도 범인 이름은 정확히 모르지만, '이거 몇 명 더 있는데' 정도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당시 잠이 안 올 정도였고 차장, 부장, 담당 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발표해주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고 진술.
-이러한 장기간의 수사 착수 지연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관계기관대책회의를 통한 청와대, 대통령의 영향 및 지시에 따른 것으로 추정됨.
-이와 같은 '검찰의 장기간 수사 착수 지연'은 검찰이 그 직무를 유기한 것으로 평가됨은 물론이고, 나아가 추가 공범에 대한 수사 착수를 의도적으로 지연함으로써 치안본부가 은폐 공작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적극 협조한 결과가 되었으며, 이는 치안본부의 범인은닉을 적극 방조한 것으로 판단됨. (후략)
이에 따라 검찰 과거사위는 "조사 결과와 같이 검찰은 실체적 진실 발견과 인권보호 의무를 방기하고 정권 안정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조작할 기회를 주었고, 치안본부 간부들의 범인도피 행위를 의도적으로 방조했다"면서 "수사 초기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수사는 이른바 관계기관대책회의를 통해 검찰총장 이하 검찰 지휘부에 전달되는 청와대 및 안기부의 외압에 굴복하여 졸속 수사, 늦장 수사, 부실 수사로 점철되었음을 확인했다"고 결론지었다.
이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검찰의 과오에 대해 통렬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 검찰총장이 피해자의 유족(박종철의 아버지)에게 직접 찾아가 사죄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며 "앞으로 이와 같은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소상히 알리고, 동시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립하고 검사 개개인에게 직업적 소명의식을 확고히 정립할 수 있는 제도 및 대책을 수립할 것으로 권고한다"고 했다.
1986년 7월 17일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대한 검찰의 조작 수사 결과 발표를 그대로 보도한 경향신문 지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그 직전에 터졌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도 파렴치한 날조
치부 눈감고 미화…깊은 부끄러움과 성찰 화두 삼아야
즉, 전두환 정권 시절 검찰 조직은 경찰과 마찬가지로 하등 자랑스러울 것 없는 정권의 앞잡이였을 뿐이다. 박종철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6개월 전, 앞서 거론했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터져 사회를 경악시켰을 때 "우발적인 폭언‧폭행만 있었고 성적 모욕은 없었다"는 으레 조작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가해자 문귀동 경장에게 면죄부를 줬던 게 바로 검찰이었다. 심지어 "권인숙의 '성적 모욕' 허위사실 주장은 운동권 세력이 상습적으로 벌이고 있는 소위 의식화 투쟁의 일환으로서, 수사기관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정부의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파렴치하게 매도하는 패악과 공작을 서슴지 않았다. 이랬던 검찰이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박종철 사건의 진실을 만천하에 드러낸 게 아니라는 얘기다.
부검을 진행한 최환 검사는 극히 예외적인 존재였고, 그 외 검찰이 수뇌부나 조직 차원에서 한 일은 위에서 본 대로 시종 축소‧은폐 시도였다. 검안의 오연상, 부검의 황적준, 일부 언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한 종교계와 재야 인사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박종철 사건의 진상이 과연 밝혀졌겠는가. 그럼에도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과 내란 사태까지 거친 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려는 시도에 맞불을 놓겠다고 박종철 사건을 끌어들이는 건 자가당착을 넘어 후안무치한 일이다.
김호경 시민언론 민들레 에디터
현직 검찰총장이 직접 부산까지 내려가 병상의 90대 노인을 향해 허리를 굽힌 채 곡진하게 사죄했던 진정성을 한때의 쇼이자 이벤트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면, 특히 검찰 출신 인사들은 박종철 사건 수사의 치부엔 철저히 눈감은 채 필요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대신 깊은 부끄러움과 성찰의 화두로 삼아야 한다. 영장 청구권, 기소권 독점과 함께 수사권까지 틀어쥔 검찰이 얼마나 손쉽게 타락하는지, 다른 무수한 '제 식구 감싸기' '정적 죽이기' 사례와 함께.
시민단체들이 호남 반도체 투자에 대해 딴지를 거는 미국과 국힘당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먼저 ‘함께 만드는 통일세상 평화이음’(평화이음)은 18일 성명을 통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장관, 미 7공군 대변인의 발언을 지적하며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이 한국 땅에 투자하겠다는데 미국이 왜 간섭인가. 투자 압박도 모자라 한국 내 투자 계획마저 뒤엎겠다는 것인가”라고 질타했다.
이어 “미국이 이러는 것은 호남 반도체 투자로 안 그래도 무너져 내리는 한국 사회 기득권 질서가 결정적으로 깨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이 지지·지원한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은 색깔론을 덧씌우고 영남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등의 방식으로 호남을 차별했다”, “결과적으로 한국 정치는 친미 매국 집단 국힘당 부류가 득세하는 왜곡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며 나라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라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호남 반도체 투자는 국가 균형 발전과 한국 정치의 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성사해야 한다”라며 “미국은 부당한 간섭과 압박을 즉각 중단하라!”, “호남 반도체 방해하는 미 7공군은 한국을 떠나라!”라고 호소했다.
촛불행동은 지난 16일 발표한 성명에서 호남 반도체 투자를 반대하는 미국과 국힘당의 행태를 열거하고 “그야말로 이재명 정부의 호남 반도체 투자 계획을 파탄 내기 위한 총공세가 벌어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가 국가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호남 반도체 산업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민관이 힘을 합쳐 미국과 극우기득권세력의 방해를 뚫고, 호남 반도체 사업을 성사시켜야 한다”라고 했다.
촛불행동은 “미국의 방해를 물리치고 호남 반도체 성사하자!”, “호남 반도체 시비 거는 미 7공군 박살내자!”라고 호소했다.
아래는 평화이음, 촛불행동 성명 전문이다.
[성명] 호남 반도체 투자 가로막는 미국을 규탄한다!
미국에서 호남 반도체 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9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에 불러와 생산 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라고 했다. 호남에 투자하지 말고 미국에 우선적으로 투자하라는 압박이다. 미국에 일하러 간 우리 노동자들을 쇠사슬로 묶어 불법 체포·구금했던 깡패 나라답다.
미국 7공군 대변인은 10일 “미 7공군은 광주 기지에 중요한 군사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와 관련해 “모든 요구사항을 충족하고 강력한 연합 대비 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대한민국 공군과 긴밀한 협조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역시 호남 반도체 투자에 대놓고 딴지를 거는 태도다.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이 한국 땅에 투자하겠다는데 미국이 왜 간섭인가. 투자 압박도 모자라 한국 내 투자 계획마저 뒤엎겠다는 것인가. 이러한 방해를 극복하지 못하면 정부와 삼성, SK하이닉스의 투자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자칫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미국이 이러는 것은 호남 반도체 투자로 안 그래도 무너져 내리는 한국 사회 기득권 질서가 결정적으로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지·지원한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은 색깔론을 덧씌우고 영남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등의 방식으로 호남을 차별했다. 이 때문에 호남은 낙후하고 인구가 유출됐다. 결과적으로 한국 정치는 친미 매국 집단 국힘당 부류가 득세하는 왜곡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며 나라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호남 반도체 투자는 지난 시기의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고 국가 균형 발전과 한국 정치의 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성사해야 한다. 호남 반도체 성사를 위해 우리 모두 힘을 모으자.
미국은 부당한 간섭과 압박을 즉각 중단하라!
미국의 방해 물리치고 호남 반도체 성사하자!
호남 반도체 방해하는 미 7공군은 한국을 떠나라!
2026년 7월 18일
함께 만드는 통일세상 평화이음
[성명] 미국의 방해를 물리치고 호남 반도체 성사하자!
- 호남 반도체 시비 거는 미국을 규탄한다 -
이재명 대통령이 ‘국토 균형발전’의 핵심 과제로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공식화했다. 그런데 미국이 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딴지를 걸고 있다.
미국의 투자자인 마이클 버리는 이재명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호남 반도체 투자에 대해 ‘종말의 시작’이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또한 미국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으로 불러와 생산 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남 반도체 투자 계획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온라인에서는 ‘동맹이 아니라 웬수’라는 댓글이 이어지며 미국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국힘당과 조중동도 호남 반도체 산업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한 총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추경호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지사는 국힘당 대구경북 의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호남 반도체 투자를 반대하는 입장을 냈고, 국힘당 원내대표와 최고위원 등은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또한 조중동은 ‘정치 리스크가 기업 미래를 흔든다’는 등의 비판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라는 단체의 입장도 예사롭지 않다. 최태원 회장이 SK하이닉스의 호남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하자, 느닷없이 ‘사업 주체인 각 계열사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사안을 이사회 승인 이전에 공개한 것은 OECD 기업지배구조 원칙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미 다 알려진 것처럼 OECD는 미국이 주도하는 기구인데, 이를 근거로 든 것이다.
심지어 미 7공군까지 나서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예정 부지인 광주 군공항 기지에 대해 ‘미 7공군이 중요한 군사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면서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대놓고 공장을 못 짓게 하겠다는 심산 아닌가.
그야말로 이재명 정부의 호남 반도체 투자 계획을 파탄 내기 위한 총공세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이 한국 땅에서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투자를 하겠다는 것을 미국과 국내 극우기득권세력들이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밝힌 대로 호남 지역은 장기간 국가 개발에서 소외되어 경제적으로 매우 취약한 지역이다. 지역 내 총생산 규모를 보더라도 특·광역시 중 광주는 약 59조 원 수준으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영남권의 대표적 산업 거점인 경남(약 140조) 등과 비교해도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는 해방 이후 독재 정권들이 영남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며 호남 차별 정책을 추진해 온 결과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국가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호남 반도체 산업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를 위해 민관이 힘을 합쳐 미국과 극우기득권세력의 방해를 뚫고, 호남 반도체 사업을 성사시켜야 한다.
▲ 2026년 7월18일 유튜브 '정민철의 진짜에요' 갈무리. 정민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예비후보가 기탁금 문제를 거론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8·17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당대표·최고위원 후보의 기탁금을 대폭 높인 것을 두고 청년 정치 신인들의 도전 문턱을 높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향신문은 “청년정치에 대한 당 전반의 무신경을 반영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고 한국일보는 “어떤 청년이 이런 정당을 믿고 표를 주겠나”라고 비판했다.
경향 “청년정치 말하면서 잇달아 문턱 높인 민주당”
민주당 선관위는 지난 14일 전당대회 당대표와 최고위원 출마 기탁금을 각각 1억 원과 5000만 원으로 정했다. 최고위원 예비경선 출마에 필요한 금액만 따로 보면 지난해 500만 원에서 올해 2000만 원으로 4배 올랐다. 39세 이하 원외 청년은 비용을 50% 감면받지만, 조직·지지세가 없는 정치 신인의 경우 친족 지원 없이는 출마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자신의 엑스(X)에서 “노무현 대통령님의 ‘돈 안 드는 선거’ 개혁이 없었다면 저도 정치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며 “제가 민주당 당 대표일 때 ‘당직 선거 공영제’를 도입하려다 후보 난립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반론 때문에 기탁 금액을 대폭 줄였다. 그런데 이번 당 지도부 선거에서 기탁금이 대폭 상향되고 특히 청년 후보의 기탁금은 몇 배로 늘어나 청년 후보들이 힘들어 한다니 아쉽다”고 했다. 이에 민주당 관계자는 오는 21일 전체회의에서 다시 한번 기탁금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20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20일 사설 <청년정치 말하면서 잇달아 문턱 높인 민주당>을 내고 “민주당은 당원 수 급증에 따른 선거비용 증가, 후보 난립 방지를 기탁금 인상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거액의 국고보조금까지 받는 집권여당이 선거비용 부담 조금 줄이겠다고 청년정치인의 기탁금 부담을 크게 늘린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당내 청년층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이런 규칙을 만들면서 사전 의견수렴도, 사후 설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청년정치에 대한 당 전반의 무신경을 반영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조직·지지세가 있는 기성 정치인은 기탁금 인상이 부담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당대표 후보에 출마하는 정청래 전 대표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후원금 한도가 2000만 원 부족하다고 했더니 4억4000만 원이 입금됐다”고 했다.
민주당은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1명을 청년 몫으로 배정하는 청년 선출직 최고위원도 8년 만에 부활시키로 했다가 계파 간 표 싸움 도중에 보류했다. 경향신문은 “계파 간 거래를 통해 선호투표제 도입과 선출직 청년 최고위원제 도입안 부결을 맞바꿨다. 그런 식이니 ‘꼰대 기득권 정당’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했다.
▲ 20일자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도 20일 <‘말 따로 행동 따로’ 민주당의 청년 사랑> 사설을 냈다. 한국일보는 “차기 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지는 일을 보면, 청년층 실망이 당연하다 싶다”며 “경선 출마를 위한 기탁금을 후보 등록 직전에 올린 것도 청년 정치 신인들에게 높은 벽을 친 결과가 됐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각각 대표와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한 송영길 의원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당규상 당비 납부 요건을 채우지 못해 피선거권이 없다. 당 지도부가 이들의 출마를 허용하는 특혜를 준 것도 세대 간 형평성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며 “2022년 같은 사유로 출마를 저지당한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이 ‘청년은 안 되고 686은 된다’며 불공정 정당을 공식 선포했다고 비판했다. 어떤 청년이 이런 정당을 믿고 표를 주겠나”라고 했다.
조선 “사태 본질, 충분한 검토 없이 밀어붙이고 보는 일방통행 정책”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식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상장 폐지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김 실장은 지난 19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상장 폐지 자체가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며 “그건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20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는 1면 <靑 “레버리지 상품 상장 폐지 어렵다”>, 2면 <‘삼전닉스’ 레버리지에 이미 12조원 몰려> 등의 기사를 내며 당국의 레버리지 도입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조선일보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16개 종목의 시가총액은 15일 기준 11조9000억 원”이라며 “상장폐지를 결정한다면, 투자자들의 매도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오히려 증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자들이 이미 손해를 본 상태에서 상장폐지로 원치 않는 시점에 보유 자산을 처분하게 될 경우 금융 당국이 집단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레버리지 상폐 못해” 일단 하고 보는 졸속 국정 후폭풍> 사설에서 “지난 5월 말 이 상품 출시 후 한 달 동안 코스피가 3% 넘게 급등락한 날이 절반이 넘어 증시를 투기판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며 “애초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2개 종목에 2배 레버리지를 허용하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대부분 전문가가 지적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주무 부처인 금융위 내부의 우려를 뭉개고 초고위험 상품을 법 시행령까지 고쳐가며 5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추진했다”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정부가 내놓은 처방은 예탁금을 3000만 원으로 올리는 정도의 땜질식 미봉책뿐”이라며 “사태의 본질은 충분한 검토 없이 밀어붙이고 보자는 일방통행 정책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단 강행하고 문제 생기면 그때 고친다’는 졸속·일방 국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동 현장 갈등을 증폭시킨 노란봉투법, 사법 체계의 혼란을 불러온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도 같은 실패를 범했다”며 ”국가의 근간 정책을 ‘일단 지르고 보기’식 실험 대상으로 삼는 듯하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라고 했다.
동아 “시군구 30% 소아청소년과 무의촌” 중앙 “대졸 이상 실업자 48만”
20일자 아침신문 1면은 신문별로 엇갈렸다. 경향신문은 지난 18일 발생해 주말을 넘겨 이어지고 있는 인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를 1면 톱에 보도했다. 사망자는 없지만 소방당국이 ‘국가소방동원령’까지 발령했는데도 물류센터 내부에 가연성 생활용품이 가득해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쿠팡은 3면 <5년 전 대형 화재 겪고도… 쿠팡, 안전관리 제대로 했나>, 사설 <반복되는 대형 물류센터 화재, 언제까지 봐야 하나> 등을 통해 “물류시설 화재가 반복되는 건 예방을 위한 기업의 노력과 이를 뒷받침할 제도에 빈틈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20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
동아일보는 1면에서 지역의료 문제를 짚었다. <소아과 전문의 0~2명 시군구 30% ‘무의촌’> 기사에서 동아일보는 “전국 시군구 10곳 중 3곳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아예 없거나 부족해 아이들이 아파도 제때 진료받기 어려운 사실상 ‘소아과 무의촌’”이라며 “현장에선 소청과 전문의 공백이 소아 응급 환자의 ‘골든타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1면에 <‘1인당 GDP’ 축배 든 날> 기사와 <대졸자는 일 없어 운다> 기사를 연이어 냈다. 한국의 1인당 GDP가 전년 대비 7.6% 올라 3만9164달러로 추산된 날, 지난 2분기 대졸 이상 실업자가 48만1000명으로 집계된 것을 꼬집은 것이다. 중앙일보는 “문제는 취업 경험 자체가 없는 실업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 20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 20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한겨레는 <퇴행의 여당 전대 “제발 미래를 보라”> 기사를 1면에 냈다. 한겨레는 “이재명 정부 출범 2년차 여당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지만, ‘적통’ ‘자기 정치’ 등을 두고 후보들 간 갈등만 부각되며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끊이지 않는다”며 “민주당을 지켜온 원로와 청년·여성 문제 등을 고민해온 당내 정치인들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얘기해야 하는 전당대회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1면 <SNS 연령제한 넘어 ‘중독 알고리즘’ 겨냥> 기사에서 청소년 보호 관련 해외 주요국 실태 조사에 나섰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14세 미만 가입을 제한하는 연령별 규제와, 플랫폼 기업에 애플리케이션(앱) 설계 단계부터 청소년 중독을 예방할 안전설계 의무를 지우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일보는 “미국 정치권에선 ‘SNS=담배’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미국 40여 주에선 주정부 소송과 학부모 집단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그러나 SNS 연령 제한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먼저 규제에 나선 주요 선진국들의 결론이다. 청소년의 접근성을 어느 정도 낮출 수는 있지만, 원한다면 가상사설망(VPN)을 통한 우회, 부모 계정 도용, 생년월일 허위 입력 등을 통해 규제를 손쉽게 피해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따라서 연령 제한을 넘어 추천 알고리즘 자체에 대해 규제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고 했다.
[통일뉴스 7월 월례강좌] 박종철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북중정상회담 평가와 한반도 정세전망'
기자명 이승현 기자
입력 2026.07.19 23:02
수정 2026.07.2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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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8~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방문은 여러모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앞서 시 주석은 5월 14~15일 베이징에서 전략적 경쟁관계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면전에서 핵심이익인 대만문제를 잘못 처리하면 미중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강력한 의지를 발신하며 회담을 주도했다.
나흘 뒤인 5월 19~20일 역시 베이징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청한 시 주석은 미국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에 공동대응하고 공정한 다극화 세계질서 구축과 경제·에너지 분야 밀착 등 중·러의 전략적 협력을 선언했다.
이란전쟁에서 발을 빼지 못한 채 한 차례 방중을 연기한 끝에 베이징을 찾은 트럼프는 회담 직후 대만에 대한 미국산 무기판매를 승인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래적 태도를 취해, 중국에 회담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평가가 나왔다.
푸틴은 시 주석과의 공동성명에서 북한과 함께 중국의 숙원사업인 두만강 출해 문제에 관한 3자협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시 주석의 평양 국빈 방문은 베이징에서 트럼프와 푸틴을 잇따라 만난 후 그가 올해 처음으로 일정을 잡은 해외순방이어서 더욱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19년 6월 이후 7년만에 이루어진 평양방문에는 차이치(채기, 蔡奇) 당 서기처 서기, 왕이(왕의, 王毅) 외교부장, 류하이싱(류해성, 刘海星) 당 대외연락부장, 당방유(당방우, 党方友) 당 정책연구실 주임, 동쥔(동군, 董軍) 국방부장, 정산제(정목결, 郑栅洁) 국가발전 및 개혁위원회 주임, 왕원타오(왕문도, 王文濤) 상무부장 등 당·정·군 고위 인사가 망라되어, 양국 협력의 수준과 구체적 내용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이후 북·중은 우호조약 65주년(7.11)을 전후해 박태성 북한 내각총리와 왕후닝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각각 당정대표단을 이끌고 고위급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통일뉴스]가 지난 14일 저녁 서울 청계천로 전태일기념관 2층 공연장에서 '북중정상회담 평가와 한반도 정세전망'이라는 주제로 7월 월례강좌를 개최한 배경이다.
박종철 교수가 14일 전태일기념관 2층 공연장에서 열린 '북중정상회담 평가와 한반도 정세전망' 주제의 [통일뉴스] 7월 월례강좌에서 강의하고 있다. [사진-조천현]
강연자로 나선 박종철 경상국립대학교 교수는 "북한과 중국이 과거의 대북 제재 악순환을 넘어 전략적 협력과 철저한 국익 중심의 실리 외교로 전환했다"고 총평했다.
국제질서의 대전환기 미·중의 전략 경쟁과 코로나19 이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급격한 중국 내부의 변화, 북중 경제협력의 현황 등에 대해 각 분야별로 정리한 뒤 이번 시 주석의 평양방문은 "북·중·러 3국 연대라기보다는 미·중 경쟁 속에서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한편, 러시아의 핵·미사일 기술 이전을 비롯한 독점적 대북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반패권주의(대미)와 반제국주의(대일)에 대한 북의 확고한 지지를 얻고 한반도내에서 트럼프식 선제타격 등 군사적 돌발행동을 억제하는 판을 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주변국 중에서도 가장 진지하게 북 비핵화를 접근했던 중국이었지만 "북 비핵화 또는 최소한 핵 동결 관련해서도 성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시 주석과 중국은 미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 상대로는 힘을 발휘하지만 정작 이웃한 남북에 대해서는 영향력 발휘에 제한이 있는 것 같다고 짚었다.
북한은 시 주석의 체면을 세워주기보다는 방북 전 김정은 위원장의 핵물질 생산확대 발표(6.3), 김여정 당 부장의 비핵화논의 거부 담화(6.7) 등을 통해 철저히 국익중심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강렬한 의지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지도부는 핵 동결을 위한 노력도 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고 앞으로는 비핵화 접근을 크게 바꿀 것"으로 짐작했다.
이미 북중 당정 지도부 사이의 교류가 진행되고 있는데, 중국 민간 엘리트들사이에서는 "'아마도 북과의 접촉면을 늘려가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점차 높이려는 것이 아닐까'라며, 전략적 인내로 간다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강연 내내 중국은 민관 사이의 정보교류가 이뤄지는 미국이나 한국과 달리 정부와 학자들간의 정보교류가 차단돼 있는 구조여서 지도부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북한은 2022년 2월 24일부터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2024년 6월 북러 동맹 체결 이후 유엔안보리 5개국의 대북제재 공조가 와해되면서 제재 무력화와 더불어 러시아로부터 원유 및 밀가루 등을 여유있게 공급받고 있으며, 2026년 2월 28일 이란전쟁 발발 이후에는 북핵고도화에 대한 미국의 압박도 거의 없는 가운데 중국의 구애를 받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북 비핵화를 이미 종결된 사안이라며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용인하는 기조를 취하고, 중국 역시 제재의 한계를 인정하며 장기적인 해법으로 선회했다고 박 교수는 판단했다.
중국 역시 미소 양극 냉전이 붕괴된 후 미·중·러 전략경쟁 및 다극체제에 접어든 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계기로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 가시화되면서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될 듯 했으나, 러-우 전쟁과 이란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압박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고 있다.
중국 분위기는 올해 하반기 트럼프의 중간선거와 2028년 시 주석의 4연임 결정을 연관지어서 "트럼프가 계속 말썽을 피워주는 것이 중국으로서는 미국을 추격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기회이다. 트럼프는 우리 편이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러-우전쟁이 길어지면서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이후 북방영토 잠식과 동해진출 봉쇄, 소련시기 이념갈등과 국경분쟁 등 역사적으로 불신이 깊은 두 나라의 관계도 역전되어, 지금은 러시아가 중장비를 비롯한 이중용도 물자를 중국에 의존하며 매달리는 형세라고 판단했다.
박 교수는 미국과 러시아가 전쟁에 발복을 잡힌 사이에 중국과 북한은 '꽃놀이 패'를 쥔 형국이라고 말했다.
박종철 교수는 미국과 러시아가 전쟁에 발복을 잡힌 사이에 중국과 북한은 '꽃놀이 패'를 쥔 형국이라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박 교수에 따르면, 현재 세계질서는 미국과 중국이 인공지능(AI)과 미래 산업 표준 규범을 두고 90%를 상회하는 점유율을 가지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러시아는 첨단기술과 반도체, 우주탐사 등 분야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이다.
또 2020년 초부터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미국과 서방의 힘은 다소 위축된 반면, 중국을 비롯해 북한, 베트남 등은 철저한 통제를 기반으로 국력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상승시켜 세계체재 변동의 토대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이 시기에 중국은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이로운 속도로 첨단기술을 습득하고 주요 도시에 전기차 도입과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해 지금은 7~8년 전과는 전혀 다른 도시 환경을 만들어 냈으며, 강력한 반간첩법 시행과 내부 단속 강화를 통해 외국인이 중국 학자나 공무원을 접촉하는 것 자체가 극도로 어려울만큼 사회 통제력을 구축했다.
그전에는 변방지역이나 소수민족 인구, 외국인 거주 실태 등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했었는데, 코로나 이후 안면인식과 스마트폰 동선추적 등 첨단기술을 통해 아주 정확하게 인구센서스가 진행되었다.
군 장성 숫자를 140명 정도로 간소화해 군대 지휘계통과 구조를 효율적으로 개편했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군인에 대한 사회적 예우가 일상화되어 마치 '미국식'에 '군사주의'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평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바이든, 트럼프를 막론하고 동맹에 안보와 무역이익을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시대를 부정하고, 동맹에 투자와 기여를 요구하여 패권을 유지하는 거래주의 구조로 완전히 바뀌었다.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난 20년간 국경에 철조망을 늘리고 출입금지구역과 감시카메라 설치를 확대하는 등 통제를 강화하여 외부에서 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영역 자체가 크게 줄었고, 과거와 달리 세관 공무원 등을 통한 자료수집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중국에 체류하는 노동자가 20만 명에 달한 적도 있으나 2026년 3월 현재 대부분 귀국한 상태인데, 이때 단둥 지역 북한 노동자들은 월 3,500~4,000위안(한화 약70만~80만 원) 수준의 중국 노동자 최저임금을 받는 것으로 파악했다.
북중 공식 교역액은 지난해 기준 약 2억~3억 달러모로 매우 작은 규모이지만, 노동자들이 벌어들이는 비공식 현금수입이 교역액의 수배에 달해 북한 경제 운용에도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양 뿐만 아니라 신의주나 혜산과 같은 곳에서도 전기자동차와 불도저, 트럭 등 개인소유 차량 등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경제력을 갖춘 계층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하면서 지금은 코로나 당시 끊겼던 개인무역상을 통한 북한 제품 유입도 다시 늘고 있다고 한다.
동해 출해를 위한 두만강 개발계획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나오지만 북중간에 논의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우선 중국측에서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 다만 중국이 원하는 출해는 북중러가 국경을 접하는 두만강 하류의 중국 영토인 방천에 항구를 지어서 군함을 띄우려고 하는 것인데 "러시아와 북한은 중국의 출해를 막기 위해서 1950년대 두만강철교를 낮게 건설했고, 이번에 두만강자동차도로 역시 7m 높이를 맞추어서 지었다"라고 하면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사진-조천현]
박 교수는 중국 엘리트들은 한국 정부가 나토와 협력을 강화하고 희토류의 대일 우회지원, 일부 국회의원들의 대만 방북 등 '하나의 중국' 원칙과 중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한국의 사정을 감안하여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굳이 거론하지 않지만 최소한 다카이치에 대해서는 중립이라도 지켜야 하는데 "중국의 관점에서 한국은 중일관계를 중립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크다고 한다.
대통령이 나서 한일상호군수지원협정은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미국과 더불어 한일이 군사연습과 교류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갖고, 중국이 취하는 희토류 대일금수조치를 한국이 우회제공하는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심각한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전쟁하는 나라에는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원칙과 비교해 한국의 무기수출 원칙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들의 단골 레퍼토리라고 덧붙였다.
결국 중국 민간 전문가들은 한국이 주체적으로 북과 대화하려는 노력없이 주변국에만 협조를 구한다고 비판하면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한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기 보다는 '충돌방지' 수준의 소극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화하고 남북의 경계에 물리적 장벽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도래한 '단절의 시대'에 우리의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간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일고 학생들을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고 외친 사실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10대 학생들이 극우세력·일베발 '혐오'에 물들어가고 있다는 점이 새삼 확인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전현직 교사 시민기자들이 필자로 참여하는 <10대 극우화, 해법은 없나> 기획을 통해 '10대 극우화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고, 우리 사회와 학교의 변화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야구 응원할 때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그런 말 쓰면 안 된대요."
"맞아, 너희도 야구 배우지?"
한 반에 여덟 명밖에 없는 시골 초등학교지만, 두 명이나 주말 야구를 한다. 그냥 친구끼리 삼삼오오 하는 야구가 아니다. 지역 클럽에 소속되어 단체 점퍼까지 갖춰 입는 나름 제대로 된 야구다. 그러다 보니 야구하는 아이들은 배재고의 '탱크데이, 스타벅스 가야지' 지역 비하 응원 사건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스타벅스에 갈 일도 없고, 커피를 마시지도 않는 나머지 5학년 남자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서 나라가 시끄러웠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직 사회 수업에서 한국사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으니(5학년 2학기부터 배운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말 끝에 '노' 붙이고... 일베 모르는 아이들이 왜 이런 말투 쓸까
▲멋진 표어. 소리내어 여러 번 따라 읽었다.이준수
탱크데이나 '스타벅스 가야지'는 한국사를 좀 알아야 가능한 조롱이다.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내게는 일정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는 조롱보다도 '~했노, ~좋노' 말투가 더 곤란하다. 강원도인 이곳에서도 오래전부터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웃긴 말투로 슬며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밥 빨리 먹었노."
울산이 고향인 내게는 몹시도 어색한 표현이었다. 경상도에서는 이런 식으로 말을 하지 않는다. "밥 빨리 묵었네"나 "벌써 다 뭇나?"는 자연스러워도 "밥 빨리 먹었노"는 부자연스러웠다. 덜컥 겁이 났다. 정체불명의 '~했노'는 일베에서 쓰는 표현 아닌가.
"그게 무슨 말이야? 신기한 말투네."
"경상도 사투리잖아요."
"아 그래? 선생님이 듣기에는 조금 어색해서."
"쌤, 사투리 해 보세요."
해맑게 사투리를 요구하는 아이는 웃는 얼굴이었다. 일베라는 곳의 '이응'도 모르는 아이였다. 경상도 사투리에서 사용하는 '~노'와 일베식 말투의 '~노'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경상도 사투리를 전혀 모르는 초등학생은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디서 이런 말을 들었어?"
"틱톡이랑 유튜브 쇼츠요."
"그랬구나. 그런데 말 끝에 '노'를 붙인다고 모두 경상도 사투리는 아니야."
간단한 경상도 사투리 몇 개를 알려주고 아이를 돌려보냈다. 그렇지만 마음 어딘가가 찜찜했다. 당시의 내 심정을 경상도 식으로 표현하면 '와, 억수로 애매하네'였다. "밥 빨리 먹었노"를 가지고서 아이를 지적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모욕한 것도 아닌데. 그렇지만 습관적으로 '~그랬노'를 붙이는 건 학급 언어 사용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았다.
"앙, 기모찌"부터 "~좋노"에 이르기까지 학교 아이들은 말 중간중간 일베식 용어를 사용한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은 악의를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일베가 무엇인지, 극우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동시에 안심할 수도 없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마주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다
▲지역 비하 성격을 가진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일으킨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대표 선수가 6일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광주일고 야구부 대표 선수에게 사과문을 전달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나는 '10대 극우화'라는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바로는 극우화의 흐름을 조금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실에서 만나는 초등학생들은 극우 이념을 공부하지 않는다. 극우 유튜버를 후원하지도, 편향된 역사책을 읽지도 않는다. 그런데 극우 커뮤니티에서 유통되는 말이 어느새 학교에 들어와 있었다.
"이기야! 이기!"
*"이기야(이거야)"는 2006년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 관련 연설에서 했던 발언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했노, 이기야"를 일베에서 희화화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다.
"또 나쁜 말. 예쁜 말 써야지."
"네,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쓰는 극우의 언어는 '웃긴 말'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 그냥 일종의 '드립' 같은 것이다. 특별히 전라도를 미워해서도 아니고, 장애인을 혐오해서 비하 표현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그 말을 하면 친구들이 웃기 때문이다. 표현이 자극적일수록 반응은 더 크다.
많은 사람들이 '10대 극우화'를 염려하지만, 진짜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다. 아이들이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어른들의 언어다. 정치인은 상대를 향해 막말을 퍼붓고, 유튜브는 자극적인 혐오 콘텐츠를 추천한다. 인플루언서는 조롱으로 돈을 번다.
교실에서는 "고운 말을 쓰자"라고 가르치는데, 교실 밖에서는 거친 말이 박수를 받는다.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 규칙이 있으면 뭐 하나. 하교 후 인터넷 세상에서는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데. 그럼 아이들이 잘못 배운 걸까. 아니면 어른들이 잘못 가르친 걸까.
"그 말이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알고 쓰냐? 누군가는 상처받는다."
"죄송합니다."
"반성은 빨라서 좋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생각보다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생은 아직 교사의 눈빛에 멈출 줄 아는 나이다. 못된 것만 배웠다고 아이를 호되게 꾸짖고 싶지는 않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혐오의 언어를 장난으로 넘기지 않는 연습이다.
10대 극우화를 걱정한다면 아이들만 들여다볼 일이 아니다. 나는 묻고 싶다. 과연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흉내 내고 싶은 좋은 말을 만들어 주고 있는가.
지난 글에서는 민주공화주의의 첫 번째 역사적 확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왕과 황제의 권력으로부터 국가를 해방시키고, 국가의 주인을 국민으로 바꾸는 일. 그것이 민주공화주의가 처음 맞닥뜨린 시대적 과제였습니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이르기까지 국민주권은 근대 민주공화정의 출발점이 되었고, 인류는 이를 통해 정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정치철학도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으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시대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고, 정치철학은 그 문제에 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민주공화주의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국민주권은 국가권력이 어디에서 정당성을 얻는가라는 질문에는 분명한 답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또 다른 질문에 충분히 답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19세기 후반 이후 인류가 맞닥뜨린 거대한 변화는 민주공화주의 앞에 바로 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1948년 12월 10일 프랑스 파리의 샤요 궁에서 열린 제3차 국제연합 총회. 이날 총회에는 당시 국제연합 회원국 58개국이 참여했으며, 찬성 48개국, 기권 8개국, 반대 0표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이 채택되었다. 이 선언은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원칙을 국제사회가 처음으로 공동 선언한 역사적 사건으로, 국민주권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현대 헌정질서와 국제질서의 보편적 원리로 확립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 산업혁명은 민주공화주의에 무엇을 물었는가
산업혁명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기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폭발적으로 확대했습니다. 증기기관은 공장을 움직였고, 철도는 대륙을 연결했으며, 기계화는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생산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자본주의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끌었고, 근대 문명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발전과 함께 새로운 문제도 만들어 냅니다. 풍요는 모두에게 똑같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농촌 공동체는 해체되었고, 수많은 노동자는 도시의 공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아동노동과 여성노동, 빈곤과 질병은 산업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법률적으로는 모두 자유로운 시민이었지만, 현실에서 자본과 노동은 결코 대등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민주공화주의의 첫 번째 확장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까지 보장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국민주권을 부정하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민주권이라는 위대한 성취만으로는 산업사회가 만들어 낸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시 정치인과 사상가들은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를 더욱 확대하려 했고,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구조적 불평등을 비판했습니다. 노동운동은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고,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를 정치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렸습니다.
해법은 달랐지만 문제의식은 하나였습니다. 국가는 단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기구에 머물러야 하는가. 아니면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
민주공화주의는 바로 이 질문 앞에서 국민주권이라는 자신의 첫 번째 역사적 성취를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주권은 권력이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무엇을 위해 행사되어야 하는지까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국가의 역할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가는 더 이상 외부의 침략을 막고 국내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야경국가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산업사회가 만들어 낸 빈곤과 실업, 노동문제는 국가가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새로운 요구를 낳았습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가 도입한 사회보험제도는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후 노동입법과 공교육, 사회보장제도는 여러 나라로 확산되며 현대 복지국가의 토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자유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는 더 이상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조건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권과 교육권, 사회보장권 등 사회권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권리였습니다. 민주주의 역시 스스로를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재산을 가진 일부 남성에게만 허용되었던 참정권은 노동자와 여성에게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국민이라는 개념 자체가 계속 넓어졌고, 민주주의는 더 많은 사람을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며 발전해 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국민주권을 부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민주권을 더욱 완성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가장 통찰력 있게 설명한 사람이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였습니다. 그는 『거대한 전환』(1944)에서 시장이 사회를 압도하면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대응을 시작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가 말한 '이중운동(double movement)'은 시장의 확대에 맞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국가의 역할이 함께 확대되는 역사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복지국가와 사회권이 발전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민주공화주의가 시대의 새로운 질문에 응답하며 한 단계 더 발전해 간 역사적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민주공화주의에 국가의 역할을 다시 묻게 했다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친 세계사의 격동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제 민주공화주의 앞에는 국민주권보다 더 깊은 질문이 놓여 있었습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 국민주권만으로 충분했는가
산업사회가 민주공화주의에 국가의 역할을 다시 묻게 했다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친 세계사의 격동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산업사회의 내부에서만 제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제질서 역시 민주공화주의가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 유럽의 열강은 산업혁명이 만들어 낸 생산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자유와 평등, 국민주권을 이야기하던 국가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의 수많은 민족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근대 민주공화정이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모순이 존재했습니다.
국민주권은 자국민에게는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민중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자유를 말하던 국가들이 다른 민족의 자유를 빼앗았고, 민주주의를 자랑하던 국가들이 식민지에서는 폭력과 강압에 의존했습니다. 국민주권은 국가 안에서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원리가 되었지만, 국가 밖에서는 아직 인류 보편의 원리로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민주공화주의에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민주권은 특정 국가의 국민에게만 적용되는 원리인가. 인간은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20세기 초 세계 곳곳에서 전개된 민족해방운동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등장했습니다.
대한민국의 3·1민족혁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3·1민족혁명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민족자결을 요구한 정치혁명이었으며, 국민주권을 일부 국가만의 권리가 아니라 모든 민족이 누려야 할 보편적 원리로 확장하려는 역사적 실천이었습니다. 같은 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을 국가의 기본원리로 채택한 것 역시 이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한 선택이었습니다.
3월 1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열린 '1919 서대문, 그날의 함성'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문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6.3.1.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건국 이전부터 국가의 이름보다 국가의 원리를 먼저 세웠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시켜 온 민주공화주의를 대한민국의 헌정원리로 받아들이겠다는 정치적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공화주의 앞에 놓인 과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29년 세계대공황은 자유시장에 대한 낙관을 근본부터 흔들었습니다. 대량실업과 빈곤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켰고, 사회적 절망은 파시즘과 나치즘, 군국주의와 같은 전체주의가 성장하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국가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국가는 시장을 방관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가. 이 질문에 가장 큰 이론적 정당성을 제공한 사람이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였습니다.
그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을 통해 시장의 자율성만으로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며, 국가는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고용정책을 통해 국민의 삶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케인스의 주장은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 시대적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국가는 단지 질서를 유지하는 기관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여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마주한 가장 거대한 비극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산업혁명과 대공황이 던졌던 질문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민주공화주의 앞에 남겼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산업문명이 만들어 낸 과학기술이 인간을 얼마나 대규모로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세워진 국가가 국민을 억압할 수 있었고, 합법적인 국가권력이 인간을 조직적으로 말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목격했습니다. 아우슈비츠는 단지 하나의 강제수용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근대 문명 전 체가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처절한 질문이었습니다. 국민주권만으로 인간의 존엄은 끝까지 지켜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이전의 어떤 질문보다도 근본적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의 역사는 민주공화주의를 부정한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민주권이라는 첫 번째 역사적 확장만으로는 새롭게 등장한 시대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류가 하나씩 확인해 간 역사였습니다.
산업혁명은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노동운동은 국가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했습니다. 제국주의는 국민주권의 보편성을 시험했습니다. 세계대공황은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다시 묻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민주공화주의를 향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결국 시대가 던진 수많은 질문은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습니다.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민주공화주의는 이미 이 질문에 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이제 그보다 더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민주공화주의는 두 번째 역사적 확장을 맞이합니다. 첫 번째 확장이 국가의 주인을 국민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면, 두 번째 확장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인간의 존엄으로 확장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인간존엄은 민주공화주의 밖에서 새롭게 덧붙여진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제국주의와 식민지배, 세계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국민주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시대적 성찰이 축적되면서 민주공화주의가 스스로를 더욱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받아들인 새로운 시대의 원리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성찰 위에서 전후 세계는 인간의 존엄을 현대 헌정질서와 국제질서의 가장 중요한 원리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이제 국가의 주인을 국민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인간의 존엄에서 찾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 인간존엄은 어떻게 민주공화주의의 원리가 되었는가
―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이어진 격동의 역사는 민주공화주의에 수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산업혁명은 국가의 역할을 다시 물었습니다. 제국주의는 국민주권의 보편성을 다시 물었습니다. 세계대공황은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다시 물었습니다.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남겼습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국민주권은 근대 민주공화정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인간의 자유와 존엄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이름으로도 폭정을 저지를 수 있었고, 민주적 절차를 거쳐 탄생한 권력 역시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민주공화주의가 직면한 두 번째 과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국민주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주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시대의 문제를 어떻게 민주공화주의 안에서 해결할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이 질문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산업은 전례 없는 생산력을 만들어 냈습니다. 국가는 이전 어느 시대보다 정교한 행정체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문명은 아우슈비츠도 만들어 냈습니다. 인류는 처음으로 근대 문명 자체를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민주공화주의 역시 이러한 역사적 성찰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국민주권은 권력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리까지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존엄은 민주공화주의가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시대의 원리로 떠오르게 됩니다. 시민의 책임이 민주공화정을 지킨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죄의 문제』(1946)에서 나치즘을 히틀러 개인의 범죄로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민주공화정이 무너지는 이유는 독재자의 등장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가 책임의식을 잃을 때라고 보았습니다. 민주공화정은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 되는 것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공공선을 지키려는 시민의 책임과 윤리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민주공화정은 살아 있는 정치질서가 됩니다. 인간은 결코 권력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1903~1969)와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1973)는 『계몽의 변증법』(1947)에서 근대 문명의 역설을 분석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은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인간을 효율과 생산성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도구적 합리성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가 성장과 효율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순간, 인간은 다시 권력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은 바로 이러한 위험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는 정치질서입니다. 인간은 권리를 가질 권리를 가진 존재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전체주의를 단순한 독재체제가 아니라 인간을 정치공동체 밖으로 추방하는 체제로 분석했습니다. 아렌트가 말한 '권리를 가질 권리(the right to have rights)'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등장합니다. 국가가 인정하기 때문에 권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구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국민은 정치의 주체입니다. 그러나 국민 이전에 인간이 존재합니다. 국가의 목적은 국민을 조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존엄은 국제질서의 원리가 되다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 1900~1959)은 『점령된 유럽에서의 추축국 지배』(1944)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특정 집단을 계획적으로 말살하는 행위는 어느 한 국가의 내부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책임져야 할 범죄라는 그의 문제의식은 1948년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으로 이어졌습니다. 철학과 국제법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주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는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했으며, 인간의 존엄은 어느 국가도 침해할 수 없는 보편적 가치가 되어야 했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인간존엄을 받아들이다
이러한 성찰은 전후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1945년 국제연합이 창설되었고,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존엄을 국제질서의 가장 높은 원리로 선언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이 한 문장은 민주공화주의의 두 번째 역사적 확장을 상징합니다. 1776년 미국 독립혁명이 국민주권을 선언했다면, 1789년 프랑스혁명은 그것을 보편적 정치원리로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존엄을 인류 공동체의 보편원리로 선언했습니다. 민주공화주의 역시 이러한 역사적 전환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더욱 성숙시켰습니다.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원리는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국가는 국민의 의사를 실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새로운 원리가 민주공화주의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949년 제정된 독일 기본법제1조. 인간의 존엄은 침해될 수 없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이다.(Die Wü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나치 독재와 홀로코스트의 참혹한 경험을 반성하며, 국가는 인간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을 헌법의 최고 가치로 천명한 것이다. 이는 민주공화주의가 국민주권을 넘어 인간존엄을 국가 운영의 핵심 원리로 확장한 역사적 전환을 상징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49년 제정된 독일 기본법입니다. 기본법 제1조는 선언합니다. "인간의 존엄은 침해될 수 없다." 국가보다 인간이 먼저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이후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는 『정의론』(1971)에서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정치철학의 언어로 정리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사만으로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모든 시민의 기본적 자유가 동등하게 보장되고,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역시 가장 불리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직될 때 비로소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이러한 두 번의 역사적 확장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헌법 제1조는 선언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0조는 선언합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제1조가 국가의 정당성을 설명한다면, 제10조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합니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행사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 두 원리가 결합될 때 민주공화국은 비로소 민주공화주의의 정신을 온전히 구현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공화주의가 앞선 원리를 버리며 발전해 온 정치철학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민주권은 인간존엄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민주권은 인간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토대가 되었고, 인간존엄은 국민주권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밝혀 주었습니다. 민주공화주의의 역사는 앞선 가치를 폐기하는 역사가 아니라, 시대가 던지는 새로운 질문에 응답하며 그 위에 새로운 원리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 온 진화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민주공화주의는 어느 시대에도 스스로를 완성된 정치철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대가 새로운 형태의 지배를 만들어 낼 때마다 민주공화주의 역시 그에 걸맞은 새로운 자유의 원리를 모색해 왔습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인류가 마주한 도전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은 헌법과 국제규범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시민은 법적으로는 자유롭고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대 플랫폼과 초국적 자본,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과 선택을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왕도 아니고 독재자도 아닙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도 아닙니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권력은 우리의 자유를 보이지 않게 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다시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국민주권과 인간존엄만으로 이러한 새로운 권력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가. 인간은 과연 모든 형태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가. 이 질문은 오늘날 민주공화주의가 마주한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입니다. 민주공화주의는 국가의 주인을 국민으로 바꾸었고,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인간의 존엄으로 확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 번 민주공화주의의 진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민주공화주의가 왜 다시 자신의 지평을 넓혀야 했는지, 그리고 비지배(non-domination)가 왜 오늘날 민주공화주의의 새로운 원리로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상] 독일기행 ⑦ 만행을 기록한 드레스덴 군사박물관, '외국인 혐오' 한·일에 던지는 질문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6.07.18. 19:02:32
소비에트연방 병사 추모비가 있는 공원을 지나 군사역사박물관에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군사박물관이나 전쟁기념관은 자국의 자랑스러운 전과를 과시한다. 어떤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찬양하는 분위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자국의 정의롭고 용감한 군대가 불의한 적에 맞서 싸웠다고 선전한다. 전범을 유치한 야스쿠니 신사의 전쟁 박물관 입구에는 자살 공격에 나선 가미카제 특공 용사의 동상이 서 있다. 1층 전시관에는 가미카제 작전에 사용됐던 전투기 제로센이 일장기를 날개에 선명하게 새긴 채 전시돼 있다.
하지만 드레스덴 군사역사박물관은 전쟁을 담담히 관조한다. 폭격으로 파괴된 드레스덴과 시신이 나뒹구는 거리가 담긴 사진이 전시돼 있다. 파괴된 드레스덴 사진은 독일의 피해자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발 더 나아가 히틀러 시대에 자행했던 자국의 만행을 솔직히 드러내고 있다. 1970년 12월 7일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대인 위령탑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사진도 전시돼 있다.
전시관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주인 잃은 신발들이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을 때 거대한 더미를 이루어 쌓여있던 신발과 여행용 가방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신발들을 전시해 놓은 곳의 안내문 제목은 쇼아(SHOAH) 였다. 쇼아는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나타내는 히브리어다.
쇼아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국가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유대인'을 독일 민족의 최대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1939년부터 히틀러는 그들의 '절멸'을 공공연히 언급했습니다. 이미 권리를 박탈당하고 이주 압박을 받던 유대인 시민들은 자의적인 살해 작전의 표적이 됐으며, 이러한 작전은 점차 조직적인 양상을 띠게 됐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된 후, SS(친위대)소속 특수 살해 부대는 폴란드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련 영토 내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남성을 총살했으나, 1941년 가을부터는 여성과 어린이들까지 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국방군(Wehrmacht)도 이 과정에 협조했습니다.
진격이 계속됨에 따라 도시의 특정 구역이 '유대인 구역'으로 지정됐습니다. 유대인 시민들은 강제로 그곳으로 이주당해 노동에 동원됐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비참한 환경 속에 살며 SS, 경찰, 그리고 현지 협력자 등 점령군 세력의 자의적인 횡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유대인을 완전히 절멸시키기로 결정한 후, 1942년 1월 반제 회의에서 이를 위한 절차가 논의됐습니다. SS는 '라인하르트 작전'이라는 암호명 아래 폴란드에 가스실과 소각로를 갖춘 절멸 수용소를 설치했고, 그곳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살해되고 소각됐습니다. 아우슈비츠와 마이다네크 등지에 대규모 절멸 수용소가 있었습니다.
노동이 가능한 사람들은 초기에 군수 산업에 강제로 투입됐습니다(이른바 '노동을 통한 절멸'). 1942년 말까지 '아인자츠그루펜(Einsatzgruppen, 특수임무부대)'은 전선 후방 지역에서 100만에서 2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 주민을 살해했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총 600만 명에 달하는 유럽 유대인이 이 집단학살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안내문은 파시즘 체제 독일군이 저질렀던 만행을 설명하고 있다. 박물관의 존재는 자국이 저질렀던 비극적인 역사를 잊지 않게 하고 있다. 전쟁 후에 태어난 세대에게도 증오 위에 서 있는 민족주의나 자국 우선주의가 어떤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고 있다.
▲홀로코스트 끝에 남겨진 주인 잃은 신발들. 드레스덴 군사역사 박물관 ⓒ박흥수
일본이 떠올랐다. 난징을 비롯한 동아시아 곳곳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부정하고 피해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 증언해 온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실 왜곡과 역사적 책임을 부정하는 이웃 국가. 아직도 도쿄의 이케부쿠로나 신주쿠역 앞 같은 곳에서는 온갖 혐오 구호를 담은 판과 대형 스피커를 설치한 승합차 앞에서 “조센징은 일본을 떠나라”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극우파들의 혐오 행위는 한국에까지 전염돼 대림동과 명동 거리에서 중국인들을 표적으로 삼아 자행되고 있다.
독일에서 유대인이나 폴란드 놈들은 독일을 떠나라고 외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극우파의 활개는 전쟁 책임을 부정하고 변변한 사죄조차 외면하는 일본 정부의 행태가, 일본 사회의 비양심이 숙성한 사회적 환경 탓이다.
군사역사박물관 4층에는 1945년 연합군의 공습 당시 파괴된 예술작품과 벽돌들이 전시돼 있다. 밖으로는 야외 테라스가 이어져 드레스덴 시내가 발아래 펼쳐진다. 높지 않은 대부분의 건물 사이에서 불규칙적으로 튀어나온 것들이 성이나 성당 같은 역사가 깊은 건축물들이다. 그런데 이런 건물들은 멀리서 봐도 알아볼 정도로 검게 그을려 있다. 드레스덴 공습으로 불에 탄 곳이 그대로 남아 있거나 파괴된 건물들을 복원할 때 폭격으로 무너지고 불탄 석재들을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드레스덴 군사역사 박물관 테라스에서 본 시가지. 높게 솟아오른 건물들은 교회나 성으로 폭격으로 그을린 석재들로 인해 모두 검게 보인다. ⓒ박흥수
트램을 타고 구시가지를 향했다. 엘베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 트램 안에서 본 드레스덴은 아름다웠다. 파란 하늘과 듬성듬성 떠 있는 하얀 구름, 흐르는 강을 따라 형성된 시가지와 건축물을 보며 드레스덴을 왜 엘베강의 피렌체로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관광명소인 구 시가지 오페라 하우스 앞에는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다. 광장에 서면 가톨릭 궁전 교회와 드레스덴 성이 보인다. 교회와 성은 곳곳에 얼룩처럼 검은 벽돌들로 채워졌다. 그 아래로 달리는 노란색의 산뜻한 현대식 트램이 검은 건물들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드레스덴역에서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고속열차를 탔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칸을 찾았다. 카레밥과 소시지, 감자튀김은 맥주 안주로 훌륭했다. 한국철도 정규열차에서 식당칸은 사라진 지 오래다. 고속열차를 타면 어디든 세 시간 내외로 도착하는 환경에서 식당칸을 유지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 돼버렸다. 무엇보다 수요가 넘쳐 승객이 앉을 자리도 모자라는 판에 식당칸 운영은 사치가 됐다. 열차 여행의 낭만 하나를 더 추가하기 위해서라도 북으로 달려 대륙으로 이어지는 철길이 열렸으면 하는 꿈을 잠시 꿨다.
열차는 한없이 펼쳐진 노란 유채꽃밭을 창밖에 선사하기도 하고 소박한 시골 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작지만 예쁜 마을을 소개하면서 달렸다. 들판을 휘감은 석양 속으로 열차가 질주했다. 곧 어둠이 몰려왔고 창을 보면 바깥 풍경 대신 객실 안의 내 모습이 들어왔다. 6인실, 출입문이 있는 독립된 방으로 이루어진 객실을 통으로 점유한 채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을 다시 펼쳤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제5도살장> 중)
▲드레스덴 카톨릭 궁전 교회와 드레스덴 성 앞을 달리는 트램. 건축물은 드레스덴 폭격으로 그을린 석재로 복원되어 곳곳에 검은 색을 띠고 있다. ⓒ박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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