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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김오랑, 그리고 박정훈…정부는 국민에 '모욕감'을 줘선 안된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4/05/18 09:44
  • 수정일
    2024/05/18 09: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박세열 칼럼] 아직도 계속되는 이 '모욕감'들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5.18. 05:03:06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1995년 검찰이 내놓은 논리다. 당시 이 논리를 내세웠던 검찰에 따르면 내란 미수는 처벌할 수 있지만 내란이 기수(행위 완료)되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윤석 검사(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이 법리를 설명하며 이성계가 쿠데타로 이씨 조선을 세웠는데, 조선이 이성계의 쿠데타를 처벌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검사들은 그런 족속들이다. 이 발언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5.18특별법이 국회를 통과되자 검사들은 새로운 논리인 '사정변경의 원칙'을 내걸고 수사에 돌입한다. 법률 행위의 기초가 된 사정이 '예견치 못한' 중대한 변경을 받게 되어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뒤집게 됐다는 말이다. '예견치 못한' 중대한 변경이란 김영삼 정권의 등장이 되겠다.

'모욕감'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에 온 국민은 집단적 모욕감을 느꼈다. 그렇게 검찰은 '전두환 신군부'를 위한 '완벽한 형법 논리'를 내세웠지만, 정작 국가가 국민이 모여 이뤄진 것이란 사실은 망각했다. '성공한 쿠데타'라는 집단 기억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쓴 검찰 집단이 간과한 건 국민들이 겪을 모욕감이었다.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김오랑 소령이나 정선엽 병장 같은, 신군부의 군사 반란에 저항한 '제복 입은 영웅들'이 있어서였다. 그들은 죽음을 통해 반란의 '증거'를 남겼고, 역사는 일부나마 바로 세워질 수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44주기를 맞아 서울 마포구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에서 음악인, 연극인, 역사가들의 자발적 참여로 열린 '오픈콘서트-기억록'을 16일 저녁에 찾았다. '사랑 많은 세상'이라는 단체가 주관해 '기억'을 주제로 한 이 콘서트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키워드로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의 하나회에 맞서다 전사한 고(故) 김오랑 소령(후에 중령으로 추서)을 선정했다. 작곡가 윤일상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했고 박학기, 김장훈, 이정렬, 손병희, 배우 이기영, 이원종 등이 참여해 제각각의 재능을 녹여 김오랑을 기렸다.

최근 영화 <서울의봄>에서 많은 이들이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김오랑(극중 이름은 오진호)의 마지막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잊혀져 가던 김오랑을 불러낸 건 1000만 영화였지만, 매해 5월이 되면 제각각의 기억을 더듬어 온 사람들은 늘 있어왔다. 개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기억은 개인적이지만 또한 집단적인 것이다. 콘서트장을 꽉 메운 사람들과 함께 앉아 하나의 기억을 위해 집단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기억의 원동력은 저마다 다를 터다. 내가 김오랑을 떠올리며 내내 떨치지 못한 감정은 '모욕감'이었다. 정부는 국민에게 모욕감을 줘선 안된다.

김오랑은 같은 관사에 사는 '절친' 박종규 중령에 의해 교전 중 전사했다. 전두환, 노태우 일당은 김오랑을 특전사령부 뒷산에 마치 "죽은 강아지(김오랑의 조카 김영진의 말)" 마냥 묻어버렸다. 국가를 지키려 한 군인을 암매장해버린 것은 말할 수 없는 '모욕감'을 남겼고, 아직도 그 모욕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김오랑의 모친은 홧병으로 세상을 뜨고 그의 부인은 눈이 먼 채로 남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백방을 뛰어다니다 실족사했다. 온 가족이 멸문의 화를 당했는데, 대한민국 군은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김오랑 동상 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다. 좋다. 이 모욕감은 기억의 집단화를 자극한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사진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군사 반란은 전두환이 주도했지만, 그걸 완료해 '성공한 쿠데타'로 만든 사람은 노태우다. 노태우는 전두환이 위기에 빠지자 국가 안보의 대의를 땅바닥에 팽개치고 전방을 지키던 9사단을 출동시켜 서울 광화문을 점령했다. 김오랑과 같은 군인들의 죽음을 기어이 '개죽음'으로 만들어 모욕감을 줬다. 노태우는 2021년 죽었는데 그가 속죄 했는지 안했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나라는 그를 국가장으로 예우했다. 내란죄로 처벌받은 사람도 국가장을 치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얘기다. 노태우에 대한 예우는 국민들에게 모욕감을 줬다. 윤석열 정부라고 다를 게 없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수석비서관이 노태우 정권의 언론인 회칼 테러를 기자들 앞에서 농담이랍시고 내뱉어 또 다른 모욕감을 주고 떠났다.

그 노태우의 딸 노소영 씨 측은 최근 이혼 소송 과정에서 재산 분할을 요구하면서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1년경 비자금 300억원을 사돈인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건넨 뒤 어음을 담보로 받았다"고 했다. 자신이 기여해 일궈낸 '부'가 '노태우 비자금'에 근거하고 있다고 당당히 주장하는 그 모습에 국민들은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쩌면 순수한 '탐욕'은 얼굴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군사 반란의 후손들이 군인 김오랑을 모욕하고 있고, 그 모욕감은 1979년 12월과 1980년 5월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공유되어 단단하게 벼려지고 있다.

총선에 패배한 집권 세력은 "방향은 옳았지만, 국민이 체감하기에 부족했다"고 강변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모두 발언을 통해 지난 2년의 국정 추진 상황을 보고한다면서 경제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대한민국의 외교 지평을 넓혔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렇게 잘 하고 있다. 국민들은 왜 몰라주고 있나'라는 식이다. 국가를 잘 운영한다고 (실제 잘 운영했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많다) 해서 선거를 이길 순 없다. 정치란 국가를 이루는 '유권자'들의 복합적인 감성을 이해해야 하는 일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자존감'을 건드리는 순간 모욕을 느낀다.

그런 모욕감들이 이번 총선을 윤석열 대통령의 심판으로 이끌었다. 이를테면 홍범도 장군은 일본군에 맞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머나먼 이국 땅에서 쓸쓸히 죽은지 80년만에, 그의 흉상이 육군사관학교 교정에서 철거당할 상황에 처했다. 집단 기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런 인식들이 국민들에게 모욕감을 줬다. 스스로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착각한 자들은 타인에게 '모욕'을 주면서도 그것이 '모욕'인지 모른다. 해병대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이 특히 그렇다. 채상병 사망 진상 규명을 위해 초동 조사를 맡은 해병대 박정훈 대령이 조사 결과를 보고한 후에 갑자기 '항명 수괴죄(후에 항명죄)'로 입건됐다. 그가 조사해 국방부장관 결재를 거친 서류에 적혀 있던 채상병 사망의 책임자 리스트는 '윗선'의 개입으로 갑자기 쪼그라들었고, 채상병 죽음에 책임을 느껴야 할 '별'들은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느라 급급하다.

부당한 지시에 항의했다가 졸지에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혀 재판을 받고 있는 군인 박정훈의 모습을 보고 있는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이란 게 대체 뭐겠나? 군인 김오랑을 야산에 묻어버리고, '성공한 쿠데타'를 위해 '불의'에 저항한 그의 행동을 역사에서 지우려 한 것들과 같은 모욕감을 주는 일들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면서 '집단 기억'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모욕 주지 않는 사회는 우리가 품격 있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적 합의다. 거듭 말하지만 정부는 국민에게 모욕감을 줘선 안 된다. 박정훈 대령에게 국가가 행하고 있는 일들이 그걸 지켜보는 국민에게 '모욕감'을 주는 행위라는 걸 깨지 못하는 한 윤석열 정부에는 희망이 없다.

아직도 명예회복이 요원한 김오랑 소령을 5월에 떠올리며 든 생각이다. 그는 군의 본보기같은 인물이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김오랑의 명예를 제대로 회복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모욕감'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김오랑 중령, 박정훈 대령,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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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를 모두 옮겨라"... 5·18 이튿날 전두환 거품물게 한 경찰이 있었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전라남도경찰국 안병하 도경국장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

24.05.17 20:30최종 업데이트 24.05.17 21:59

▲ 전남지방경찰청이 세운 안병하 치안감 흉상 ⓒ 연합뉴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실정법 준수가 큰 의미가 없었다. 전두환과 신군부가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실정법을 뛰어넘는 저항권 행사가 용인될 수 있었다. 광주시민들이 전두환과 신군부를 향해 총을 들고 무장한 것은 정당한 권리행사였다.

그런데 또 다른 형태의 저항으로 볼 만한 상황이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났다. 이른바 준법투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안병하 도경국장이 이끄는 전라남도경찰국에 의해 전개됐다. 신군부의 영향을 받는 내무부 치안국은 '시위를 강력하게 진압하라'는 지시를 거듭거듭 내렸다. 하지만 전남도경은 총을 내려놓고 시민 안전에 역점을 뒀다. 전남도경은 이런 식의 비협조를 통해 결과적으로 전두환에 맞서는 형국을 만들었다.

1980년 5월 19일, 안병하 국장은 경찰의 총기와 실탄을 광주 시내 제31보병사단(충정부대)으로 옮길 것을 지시했다. 5·18 이튿날에 광주 경찰을 비무장으로 전환시킨 이 소산 조치에 관해 당시의 현지 경찰관 일부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5·18 시민군의 일원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 있었던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이 쓴 <안병하 평전>은 그런 평가들을 소개한다.

 

"경찰에게 무기가 있었다면 시민에게 발포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민과 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 최아무개(전남도경 상황실)

"만약 그때 무기를 소산하지 않았다면 여러 가지 참혹한 일들이 생겼을 것입니다." - 안아무개(광주경찰서 수사과)

일선 경찰의 말에서도 느껴지듯이, 전남도경이 계엄사령부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면 1980년 5·18은 '시민군 대 계엄군'이 아니라 '시민군 대 군·경'의 대결이 됐을 것이다. 5·18이 전두환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데 전남도경이 일조한 셈이다.

물론 전남도경도 당시 국가권력의 죄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가 작년 12월 26일 펴낸 보고서인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군과 경찰 등 국가권력에 의한 연행, 구금, 조사과정 등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사건>은 "5·18 기간 중 체포된 사람들은 제31사단, 상무대, 공군 헌병대, 광주교도소, 지역 경찰서/파출소 등으로 연행·구금"됐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전남도경의 지휘를 받는 광주 경찰에서도 국가권력에 의한 5·18 인권침해가 일어났다.

안병하 국장을 비롯한 전남도경의 발포 거부는 그런 한계점과 더불어 인식될 필요가 있다. 신군부의 인권 탄압에 동조한 측면과, 신군부의 강경진압 요구를 거부하고 총을 들지 않은 측면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병하의 판단

 

▲ 안호재 안병하인권학교 대표 ⓒ 김종성

 

1928년 7월 3일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난 안병하는 도쿄의 중학교와 서울의 광신상고에서 공부한 뒤 1948년 11월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했다. 이듬해 5월 23일 소위로 임관한 그는 22세 때 발발한 한국전쟁 기간 중에 춘천전투와 음성전투에 참전했다. 그러고 나서 5·16 쿠데타 1년 뒤인 1962년 11월에 육군 중령으로 군을 나와 경찰의 길을 걸었다.

 

지난 9일 경기도 하남YMCA교회에서 인터뷰한 안호재 안병하인권학교 대표는 "부친은 처음에 경찰 발령을 받고 치안국에 있다가 곧바로 부산중구경찰서장으로 갔다"고 말했다. 특채 형식으로 총경 계급장을 달고 첫 발을 내디딘 34세의 안병하는 그 뒤 승승장구했다. 간첩 검거와 대간첩작전에서 성과를 거둬 내무부장관 표창과 중앙정보부장 표창도 받았다.

서울 서대문경찰서장, 치안국 과장, 강원도경국장, 경기도경국장을 거친 그는 51세 때인 1979년 2월에 전남도경국장에 취임했다. 마지막 임지가 될 광주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해 10월 박정희가 쓰러지고, 12월에 전두환이 쿠데타로 군부를 장악했다. 이는 안병하의 경찰 내 위상을 높이는 원인이 됐다. 그는 육사 11기인 전두환·노태우와 막역한 사이였다. 노태우와는 밤중에 만나 술도 마실 정도로 각별했다고 안호재 대표는 말했다.

안 대표는 1980년 전반기 상황과 관련해 "항간에 이야기 돌기로는 부친이 공직자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다 그런 소문까지 나왔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부탁하러 연락하고 찾아오고 그랬어요"라고 한 뒤 아버지가 전두환과 가까워진 계기를 설명했다. 아버지가 경찰 지위를 활용해 전두환의 인맥 관리에 도움을 줬다는 것이 안 대표의 말이다.

"전두환이 정치군인이잖아요. 정치군인을 하려면 옛날에는 경찰 없이는 안 됐거든요. 누구를 만나게 해달라는 연락이 오면 (부친이 만나게 해주고). 특히 사업가들."

안병하는 대간첩작전뿐 아니라 시위 진압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안병하 평전>은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시위 진압도 남 못지않게 잘한다며 유능한 경찰로 평가를 받아왔다"고 말한다. 거기다가 신군부 실세인 전두환·노태우와도 친밀했다. 그랬기 때문에 1980년 5월 19일부터 안병하가 보여준 모습은 전두환·노태우에게는 뜻밖일 수밖에 없었다.

안병하는 5월 18일 새벽부터 치안본부의 강경진압 지시를 받았다. 평전에 따르면, 손달용 치안본부장은 그와의 통화에서 "계엄당국의 시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가며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평전에 따르면 안병하의 판단은 이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압 강도를 더 높이면 시민들이 학생시위에 합세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안 국장은 어떻게든 시위가 더 커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서 시위대가 제풀에 지쳐 가라앉도록 하는 게 서로 피해를 줄이면서 사태를 수습하는 현명한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안병하를 움직인 배경

 

▲ 경기경찰국장 시절 안병하 치안감(왼쪽) ⓒ 안호재

안병하는 시위 진압에 능한 경찰이었다. 하지만 경찰이 시민에게 총을 들면 사태가 악화될 뿐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그는 일선 경찰관들에게서 총기를 거둬들였다. 평전에 따르면, 전남도경이 작성한 '집단사태 발생 및 조치 상황'이란 문서에 이렇게 적혀 있다.

 

"광주권 2개 경찰서 무기·실탄 및 비밀문건 소산 완료(5.19. 22:00)."

이 조치는 신군부를 경악시켰다. 시위가 들끓는 광주에서 무기를 치워버린 이 사건을 신군부는 황당해 했다. 그런 신군부의 반응을 1980년에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이 작성한 '전남도경국장 직무유기 피의 사건'이란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전에 따르면, 이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치안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찰 무기를 폭도들로부터 피탈을 방지하겠다는 소극적인 발상하에 치안본부장에 건의한 후 경찰 2개 서(署) 및 4개 기동대의 무기 약 1300정을 도경 안전가옥에 이동·소개시킴으로써 5.21. '진도개 둘'이 발령되고 5.22. 자위권이 발동되었음에도 광주 시내에 근무하는 전 경찰의 무장을 불가능케 하였고."

광주 경찰의 무장을 불가능케 한 안병하의 조치에 대해 '친한 후배' 전두환은 한심하다는 어투로 혹평했다. <전두환 회고록> 제1권에서 전두환은 광주 상황이 확산된 것은 안병하 국장 때문이라며 이렇게 서술했다.

 

"광주사태 초기에 경찰력이 무력화되고 그로 인해 계엄군이 시위진압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전남경찰국장의 중대한 과실 때문이었다. 파출소가 습격당하고 경찰차가 불타는 등 소요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는데 시위진압을 지휘해야 할 전남경찰국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았다. 점심을 먹는다며 경찰국 청사를 떠난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이 연락두절 상태가 된 것이다."

안호재 대표는 아버지가 치안본부장뿐 아니라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김종환 내무부장관 등의 압력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 압력하에서도 안병하가 시민의 안전을 우선시했던 것이다. 그가 이처럼 소신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데는 '믿는 구석'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9년 4월 7일 자 <경향신문>에 보도됐듯이, 안병하는 일선 경찰관들과의 소통에 신경을 쓰는 상관이었다. 그래서 경찰 직원들이 자신의 명령을 따라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신군부 핵심부가 자신과 절친하다는 점도 자신감의 요인이 됐을 수 있다.

그에 더해, 안호재 대표는 참전 군인인 아버지가 전쟁 경험이 없는 육사 11기 이하의 장교들 앞에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경찰이라면 마땅히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소신에 더해, 그런 소신을 관철시킬 만한 자원들을 갖고 있다는 점이 1980년 5월의 안병하를 움직인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전남도경이 총을 들었다면

 

▲ 2018년 10월 22일 전남지방경찰청은 5·18 당시 순직 경찰관 4명의 부조상을 청사 입구에 세우고 '5·18 순직경찰관 부조상 제막·추념식'을 열었다. 사진은 함평경찰서 소속 정충길 경사와 이세홍·박기웅·강정웅 경장의 부조상과 안병하 치안감 흉상(왼쪽)의 모습. ⓒ 연합뉴스

시민군이 전남도청을 장악한 뒤인 5월 25일, 안병하는 이희성 계엄사령관 등의 강경진압 요구에 대해 "경찰이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발포를 거부했다. 다음날 그는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가 8일간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6월 2일 의원면직 형식으로 경찰복을 벗은 그는 6월 13일 귀가한 뒤부터 투병 생활에 들어갔다. 8일간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은 8년간이나 이어졌고, 국회 광주청문회 출석 요구를 받은 상태에서 1988년 10월 10일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경찰에서 쫓겨난 뒤에 안병하는 유럽과 미국의 병원들을 다녔다. 고려대 의대 구로병원, 국립경찰병원, 국립의료원에서도 치료를 받았다. 안호재 대표는 아버지의 건강이 호전되지 않은 이유를 육체적 요인보다는 정신적 요인에서 더 많이 찾았다. 후배 군인들에게 고문과 수모를 당한 것이 훨씬 더 큰 상처가 됐다고 말한다. 안병하는 고문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안병하가 소신 있게 행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자신이 참전 군인이라는 사실에 있었다. 그런 자부심이 후배 군인들에 의해 상처를 입은 것이 건강을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됐던 것이다.

안병하는 사후 5년 뒤인 1993년에 5·18 피해자로 인정됐다. 2017년에는 '제1호 경찰영웅'으로 선정되고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특진됐다. 2019년에는 전남경찰청에 안병하공원이 개장됐다.

전두환은 안병하 때문에 광주 상황이 악화됐다고 핑계를 댔다. 경찰이 제대로 대응했다면 계엄군이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었다고 둘러댔다. 전남도경이 총을 들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됐을지는 확단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안병하가 총을 치우지 않았다면 전남도경이 국민들을 상대로 무기를 드는 역사의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점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전남도경 #광주경찰 #5·18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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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두려움에 떨고 있다



검찰 '학살 인사'의 설계자는 윤 대통령... 위기 피하려다 감당 못할 사태 올 수도

 

24.05.17 07:09최종 업데이트 24.05.1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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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생중계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 9일 오전 열렸다. 서울 용산역 로비에 마련된 텔레비젼을 통해 기자회견이 생중계 방송되고 있다. ⓒ 이정민

 

김건희 여사 수사 지휘부 전격 교체의 설계자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여러 정황으로 분명해지고 있다. 검찰총장의 이례적 침묵 항변이 이번 인사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검찰 '인사 학살'의 단초는 올해 초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의 김 여사 조사 요청으로 짐작된다. 특검에서 난도질을 당하느니 미리 면죄부를 주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을 텐데, 윤 대통령은 이마저도 "너희가 감히"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느닷없는 민정수석 부활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의문이 풀린다. '민심 청취'는 구실이었을뿐 실은 검찰 지휘부를 숙청하기 위한 포석이었던 셈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칼을 들 수는 없으니 대신해서 손에 피묻힐 대리자가 필요했을 터다. 민정수석에 검찰총장보다 아홉 기수나 높은 선배를 택한 것도 검찰 조직 전체에 '찍소리 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윤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그림을 그린 뒤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의아한 건 이런 위험한 계획을 일사천리로 진행한 무모함이다. 그 사이 '거사'를 중단해야할 많은 일이 있었다. 총선에서 궤멸적 참패를 당했고, 지지율은 곤두박질쳤고, 보수층마저 등을 돌렸다.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치솟았다. 하지만 모든 신호가 불리하게 나타나는 데도 윤 대통령은 짜놓은 작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배우자를 법의 심판대에 올리지 않겠다는 일념에서일 것이다. 그것은 홍준표가 말한 '상남자'의 도리가 아니라 '누가 감히 내 아내를 건드리느냐'는 제왕적 오만함의 발로다.

 

윤 대통령의 무참한 검찰 인사로 김 여사 수사는 더 볼 것도 없게 됐다. 불신임을 당한 검찰총장이 "인사는 인사고 수사는 수사"라고 해봤자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권력의 풍향계를 누구보다 잘 감지하는 이들이 검찰 아닌가. "사건의 실체와 경중에 맞는 올바른 판단 나오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신임 중앙지검장의 발언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김 여사 수사팀에게 그 말은 빠르게 무혐의로 결론내라는 지시로 들릴 것이다.

 

채 상병 순직 사건을 대하는 윤 대통령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VIP 격노설'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한 것처럼 해석됐지만 실은 그 안에 속내가 담겨있다. 윤 대통령은 경찰 수사에서 사단장의 무혐의가 밝혀지면 대통령실 외압 의혹도 자연히 해소될 거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해병대 수사단의 과실치사 적용이 틀렸으니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외압 의혹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거다.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의 전제로 수사 결과를 제시한 건 바로 이런 점을 노린 것이다. 어떻게든 경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특검법을 거부해 시간을 끌어보자는 심산이다. 믿는 것은 공수처의 부실한 수사력이고, 경찰의 '충성심'이다. 윤 대통령의 동문서답식 답변에는 경찰에 대한 수사가이드 라인이 숨어 있는 셈이다.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두고, 고교 후배 장관과 경찰청장을 '이태원 참사' 책임에도 꿋꿋하게 남겨둔 이유가 뭐겠는가.

 

윤 대통령이 한사코 자신과 배우자를 향한 수사를 막는 근저에는 사법적 두려움이 또아리를 틀고 있을 게다. 본인이 특검의 수사 선상에 오르고, 탄핵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정의와 공정이라는 허울로 남에게 무수히 많은 상처를 입힌 당사자이니 그 두려움은 더욱 클 것이다. 김 여사도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고, 재판정에 출석할 지 모르는 상황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윤 대통령 부부의 두려움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잘못한 게 있으면 응당 책임을 지고, 그렇지 않으면 조사받고 해소하면 될 일이다. 그 당연한 것을 거스를 경우, 후에 감당못할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시중에는 윤 대통령을 향해 '윤똑똑이'라는 비아냥이 돈다. 자기만 혼자 잘나고 영악한 체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데, 윤달의 윤(閏)에 윤 대통령의 성씨인 윤(尹)을 붙인 것이다. 지금 윤 대통령이 하는 것을 보면 딱 그꼴이다.

 

이충재 (h871682)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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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기술자' 尹, 노동자를 '조삼모사' 원숭이로 보나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윤석열의 '노동약자보호법'에 도사린 이데올로기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 기사입력 2024.05.17. 08:58:14

 

 

영국의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거대한 타락(the Great Degeneration)>이란 책에서 '법의 지배'(the rule of law)가 '법기술자의 지배'(the rule of lawyers)로 타락한 현실을 개탄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새로 법률을 만들어 '과도한 규제'와 '부패한 제도'를 양산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에서 '법의 지배'가 '법기술자의 지배'로 타락한 대표적 영역이 노동 문제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산업안전보건법, 고용(실업)보험법, 산업재해보험법, 남녀고용평등법, 근로자참여증진법 등 무수한 노동법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노사법치 이데올로기의 일환인 '노동약자보호법'

 

법기술자들은 이미 존재하는 노동법 조항을 개정하고, 그 해석을 보완하며, 나아가 적용을 확대하려는 사회적 대화와 정치적 논의를 조직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이런 저런 논리를 만들어 현행 법제도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우기면서 자꾸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 노동법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논리의 통합성을 사회적 통합성보다 중시하는 이들의 논리에서 핵심은 노동시장 상층에 적용하는 법률을 노동시장 하층에 적용할 수 없으며,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시장 하층을 위한 법률을 따로 만들어 법제도에서 상층과 하층을 분리하는 작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노동시장이 분단되어 있다면서 노동법도 분단시키자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분단과 양극화를 빌미로 제도적으로 '노동법의 분단과 양극화'를 노리는 것이다.

 

서울대 법대 졸업 이후 평생을 법기술자로 살아온 이력에 걸맞게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법 분단과 양극화'의 선두에 섰다.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 민생토론회에서 "거대 노조에서 소외돼 있는 미조직 비정규 근로자"를 위해 '노동약자보호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스물다섯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박수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노동현장'을 주제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노동시장 양극화' 빌미로 '노동법 양극화' 추진

 

대통령은 '노동약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의 토론회 발언에 따르자면 "노동시장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노동약자의 대척점에 "이념으로 무장한 기득권 노조 카르텔"을 내세웠다.

 

윤 대통령의 '노동약자보호법' 구상에 깔려 있는 이데올로기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산업안전보건법, 고용(실업)보험법, 산업재해보험법, 남녀고용평등법, 근로자참여증진법, 건강보험법, 국민연금법 등 기존 노동법과 사회법의 적용을 이른바 '노동약자'에게 확대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념적으로 '노동약자보호법'의 배후에는 '일의 세계'(the world of work)에서 보편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노동시장 상층과 하층으로 영구히 분리하려는 음모가 자리잡고 있다. 이를 통해 '노동시장 분단체제'를 완성하고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는 '분할통치'(divide and rule) 이데올로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노동법의 통일적이고 보편적인 적용을 거부

 

윤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엘리트들이 진심으로 노동약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법의 지배' 원리의 출발점인 '법 앞의 평등'을 추구하면 된다. 다시 말해 "기득권 노조 카르텔"에 속한 노동시장 상층 노동자들이 누리는 법률적 권리와 이익의 법제도적 적용을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에게도 차별 없이 확대하면 된다.

 

하지만,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노동법과 사회법의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적용에는 관심이 없다. 노동법과 사회법의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적용이 노동시장 상층과 하층을 점진적으로 통합시키면서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법기술자 가운데 한 명인 윤 대통령은 노동법의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적용을 모색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를 위한 법제도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본심은 노동자를 일류와 이류로 분열시키겠다는 것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법률가의 지배'

 

국제노동기구(ILO)는 2019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해 발표한 선언문에서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노동시장과 사회복지 제도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각국 정부가 근로시간과 안전보건 등 노동기준을 통일적으로 적용하고 노동기본권을 노동시장 하층까지 보편적으로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1776년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한 사회가 부패 단계에 이르면 지배 엘리트들이 정치와 경제에서 '지대 추구'(rent-seeking)에 몰두한다고 썼다. 2014년 니얼 퍼거슨은 <거대한 타락>에서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는 엘리트의 지대 추구가 '법의 지배'를 대체한 '법률가의 지배'라는 형태로 이뤄진다고 썼다.

 

그리고 2024년 윤 대통령은 '노동약자보호법'이라는 미명 하에 노동법과 사회법의 적용 대상을 차별적으로 분단시킴으로써 한국의 노동 문제를 '법률가의 지배' 하에 두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본질적으로 그의 '노동약자보호법' 제안은 한국 지배 엘리트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분할통치'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다.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을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원숭이로 보는 권모술수에 다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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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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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취업자 26만1천명 증가…60살 이상이 29만명 증가

통계청 ‘4월 고용동향’

기자박수지
  • 수정 2024-05-17 08:47
  • 등록 2024-05-17 08:47
 
지난 10일 경북 경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경산시 잡(JOB) 페스티벌'을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경북 경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경산시 잡(JOB) 페스티벌'을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취업자 수가 26만1천명 늘어났다. 10만명대로 꺼진 취업자 수가 한달 만에 20만명대로 반등했지만, 60대 이상 취업자 수가 크게 늘어난 영향이 컸다.

통계청이 17일 발표한 ‘4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15살 이상 취업자는 2869만3천명으로 1년 전보다 26만1천명 증가했다. 올해 1~2월 30만명대를 유지했던 취업자 수 증가폭은 3월 17만3천명으로 급감했다가, 3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며 20만명대를 회복했다.

연령별로 보면 청년층(15∼29살) 취업자가 8만9천명 감소했고, 40대 취업자도 9만명 줄었다. 30대는 13만2천명, 50대는 1만6천명, 60살 이상은 29만2천명 각각 증가했다. 고용시장의 ‘허리’로 불리는 40대 취업자 수는 줄고, 60살 이상 취업자수가 늘어나는 현상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산업별로는 수출 호조 및 반도체 경기 회복의 영향으로 제조업 취업자가 10만명 늘었다. 2022년 11월 10만1천명 이후로 1년5개월 만의 가장 큰 증가 폭이다.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9만3천명), 정보통신업(6만8천명)도 취업자가 늘었다.

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 분야는 6만6천명 줄었고, 교육 서비스업과 도매 및 소매업도 각각 4만9천명, 3만9천명씩 취업자 수가 감소했다. 15살 이상 고용률은 63.0%로 1년 전보다 0.3%포인트 상승했다. 1982년 7월 월간 통계 작성 이후 4월 기준으로 가장 높다.

실업자는 8만1천명 늘어 2021년 2월(20만1천명) 이후 3년2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실업자는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째 증가세다. 실업률은 3.0%로 1년 전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실업자 증가세에 대해 서운주 통계청 사회통계국장은 “2022~2023년 코로나 극복으로 실업자가 감소한 기저효과가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설명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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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수사에 구속영장 남발”…대진연 기자회견 열려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5/1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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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2시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대통령실에 면담을 요청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문경환 기자


지난 1월 5일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다음 날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들이 이에 항의하며 대통령실을 방문해 면담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면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학생들은 전원 연행되었다가 풀려났는데 최근 검찰이 사건 관련자라며 대진연 회원 등 4명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해 17일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에 대진연과 서울촛불행동 등 12개 시민사회단체와 96명의 개인 연명인이 구속영장 청구를 규탄하고 기각을 촉구하는 연대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대진연 회원 ㄱ 씨는 “(영장이 청구된 4명 중) 3명은 대통령실 면담 요청과는 전혀 무관했던 사람들”이라면서 “주동자와 배후 세력을 찾겠다고 대진연을 무리하게 표적 수사하며 구속영장을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대진연에) 올해만 벌써 15명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심지어 최근에도 2명의 대학생을 구속해 2개월간 구치소에 가두어 놓기도 했다”라며 정권의 대진연 탄압을 규탄했다. 

 

대진연 회원 ㄴ 씨는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유가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이후에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라는 것이었다면서 “(검찰은) ‘탄압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투쟁하겠다’ 이런 말을 한 것이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라며 분노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이 오만방자한 윤석열을 탄핵시키지 못하고 김건희를 아직도 구속하지 못한 것이 내가 유일하게 반성할 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진연 회원 ㄷ 씨는 “진짜 구속되어야 할 자 누구인가? 김건희이자 윤석열이다. 주가조작, 고속도로 종점 변경, 허위 경력,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 수많은 범죄 의혹이 차고 넘치는 김건희 아닌가?”라며 “윤석열 독재 정권은 탄핵만이 답”이라고 주장했다. 

 

대진연 회원 ㄹ 씨는 “소통하겠다던 대통령을 찾아간 것, 국민이 분노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 대학생들이 한 모든 것이지만, 윤석열 정권은 대학생들을 향해 검찰 권력을 이용해서 공안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는 “청년 학생들의 대통령 면담과 그 요구는 지난 22대 총선 민심에서 확인되고 확정되었다. 죄를 지은 자 특검에 나서라 하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실은 이와 같은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 김민웅 상임대표.  © 문경환 기자


그러면서 “정권의 범죄에 저항하는 것은 청년 학생들의 마땅한 권리이자 역사의 진실”이기에 “구속영장을 즉각 철회해야 마땅하다”라고 외쳤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잔고 조작 및 사문서위조 등으로 구속되었던 윤석열의 장모 최은순은 1년 형을 다 채우지도 않고 가석방”되었다며 “공정과 상식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김건희 특검법을 거부한 윤석열에게 면담 요청을 한 정의로운 대학생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 아니라 의혹이 넘쳐나는 김건희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대진연 측은 구속영장 기각을 촉구하는 탄원서에 지금까지 1,600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대진연은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있는 17일 오전 9시 30분에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 문경환 기자

 

  © 문경환 기자

 

  © 문경환 기자

 

  © 문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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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행 깬 김건희…동아일보 “국힘 반성문, 용산 눈치에 할 말 삼켜”



[아침신문 솎아보기] 명심 추미애 꺾였다...국회의장 ‘이변’ 우원식에 신문들이 쏟아낸 주문은

법원, 의료계 ‘증원정지’ 신청 기각…한겨레 “필요한 곳에 의사 늘릴 방안 구체적으로”

 

기자명김예리 기자

  • 입력 2024.05.17 07:44

  • 수정 2024.05.17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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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6일 김건희 여사가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의 부인과 함께한 모습.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자취를 감춘 지 5개월 만인 어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방한 중인 캄보디아 훈 마넷 총리 내외와의 오찬에서다. 17일 신문들이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공식 오찬에 참석한 모습을 사진으로 전했다. 한겨레는 “윤 대통령이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를 공식 사과한 지 일주일, ‘김건희 방탄’ 논란을 부른 검찰 고위급 인사를 한 지 사흘 만”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검찰의 김 여사 수사 지휘라인이 갑자기 교체돼 ‘김건희 방탄 인사’라는 시비가 불거졌다. 박성재 법무장관은 16일 “(검찰 인사시기를 늦춰달라 했던 이원석 검찰총장 의견을) 다 받아들여야 인사를 할 수 있느냐”고 했다. 경향신문은 이를 두고 “이 총장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에 대해 신속한 수사를 지시한 후 갑작스럽게 인사가 단행되다 보니 대통령실이 이 총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경찰은 모친의 통장 잔고 증명서 위조 공모 혐의로 고발된 김건희 여사에게 16일 무혐의 처분했다고 보도했다.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지난해 7월 김 여사가 모친 최은순씨의 잔고 증명서 위조를 공모했을 것이라 보고 용산경찰서에 김 여사를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신문들에 따르면 서울 용산경찰서는 이 사건을 각하 처분했다.

한겨레는 “최은순씨는 2013년 경기도 성남시 땅 매입 과정에서 4차례에 걸쳐 약 349억원이 저축은행에 예치된 것처럼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로 징역 1년을 확정받고 복역하다 지난 14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사세행이 “최씨는 징역 1년의 형량을 다 채우지도 않고 가석방됐다. 법 앞에 평등이 철저히 무너진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통탄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일부 신문은 사설을 내고 김 여사를 둘러싸고 불거진 의혹 해소를 요구하는 사설을 냈다. 세계일보는 “김 여사의 등장 자체가 뉴스가 되는 비정상적 상황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법과 원칙에 따른 검찰 수사만이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을 해소하는 해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여사 수사 지휘부를 ‘검찰총장 패싱 물갈이’한 데에 “인사 시기나 내용으로 볼 때 대통령실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17일 세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국민의힘 소장파 모임인 ‘첫목회’가 “(정부여당의) 공정과 상식의 붕괴를 지적”하면서도 김 여사 관련해서는 말을 아낀 점을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이들의 반성문엔 ‘주어’가 생략됐다”며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지목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뒤 “김 여사 관련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지휘부 교체 인사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용산의 눈치를 보며 할 말을 삼킨 것 외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김 여사가 공개 활동하려면 공적 감시·관리 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며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임명을 꼽았다. 그 중 제2부속실은 국회 추천 없이 윤 대통령이 설치하면 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김 여사는 명품백 수수 이전에도 리투아니아 방문 당시 명품 매장 방문, 봉하마을 코바나컨텐츠 직원 동행 등 처신이 도마에 올랐다. 잠행 기간에는 국무총리 인선을 두고 비선 논란도 불거졌다”며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김 여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후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 중’이라고 했으나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라고 했다.

▲17일 경향신문 3면 사진기사.

의대증원 이대로… “정부 졸속 정책, 국민 피해 키워”

서울고등법원이 의대 증원추진을 멈춰달라는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등의 신청을 각하·기각했다. 대입 수시모집 요강을 이달 안에 확정하도록 한 일정을 고려하면 27년 만의 증원이 사실상 확정된 것이다.

서울고법 행정7부는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이들의 항고를 각하·기각 결정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법원 결정에 대국민 담화에서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고, 의료계는 즉시 재항고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일보는 “재판부가 의대 증원을 ‘공공복리’라고 인정한 만큼 투쟁 명분은 사라지게 됐다”고 했다. 재판부는 전공의와 의대교수의 신청에는 각하 결정했지만, 의대생에 대해서는 “회복이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원고 적격을 인정했다. 그러나 의대생이 일부 손해를 입더라도 의료개혁이란 공익 목적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우리나라는 의료의 질은 우수하나 필요한 곳에 의사의 적절한 수급이 이뤄지지 않아 필수·지역의료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있다”고도 밝혔다. 의료계가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가 “주술적 영역”이라고 밝힌 데에는 그 규모 자체에 대한 타당성을 인정한 건 아니지만 집행정지 이유가 될 순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밝힌 필수·지역의료 복원을 위한 길은 험난해 보인다. 지역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을 늘리려면 공공병원을 늘리고 늘린 의사를 지역과 공공의료기관에 배치해야 하는데, 정부의 의료정책은 이를 보장하지 않는 탓이다. 공공의료 시민단체들은 광주와 울산 등에서 기존 공공병원 설립 계획도 무산시키면서, 의사가 늘어도 수도권 비급여 진료에 몰려 ‘돈벌이 의료시장’이 더 과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해왔다.

9개 아침신문이 모두 관련 사설을 냈다. 대다수가 법원 결정을 계기로 의료계가 현장에 복귀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국민일보는 사설 제목에 “의대 증원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항고심 심리 과정에서는 의대 증원이 졸속 추진된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법원도 ‘일부 미비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이 엿보인다’고 지적했다”며 “정부가 주먹구구 식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국민 피해를 키웠다”고 했다.

한겨레는 “의대증원만으로 부족한 곳에 의사를 늘릴 수 있느냐는 의구심은 의료계만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필요한 곳에 의사를 늘릴 방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증원은 의료개혁 논의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그동안 뒷전으로 밀린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방안에 대해 지금부터 본격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17일 경향신문

우원식 의장 당선…한겨레 “경선 과정, 민주당 뼈아픈 성찰 해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당선인 총회에서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됐다. 과반 1당 민주당 투표 결과로 다음달 5일 새 국회 첫 본회의에서 우 후보의 의장 당선은 사실상 결정됐다.

신문들은 우 후보 당선을 놓고 ‘예상을 뒤엎은 결과’ 또는 ‘이변’, ‘명심 뒤집기’ 결과라고 표현했다. 경선은 당초 ‘대여 강경파’ 추미애 당선인이 친명계 후보로 정리되면서 대세가 정해진 것처럼 보였으나 이와 다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우 의원은 후보 수락인사에서 “중립은 몰가치가 아니다. (22대 국회는) 앞의 국회와는 완전히 다른 국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당원들의 ‘탈중립’ 요구를 일정 부분 의식한 것으로, 과거처럼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주요 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사태를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경향신문은 “특정 정당 독주에만 힘을 보탤 때는 민심이 최소한의 균형을 잃고 오만하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어의추(어차피 의장은 추미애)’란 말이 나오던 경선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우 후보로 결론 난 것도 이런 주문”이라고 했다. “우 후보가 당내 ‘을지로위원회’를 이끈 민생 전문가인 점은 기대를 걸게 한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난맥이 심하다 해도 민심은 어느 일방 독주를 용인하지 않는다”며 “오만한 태도를 보인다면 당내에서부터 언제 또 역풍이 닥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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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민주당은 ‘명심’ 논란을 빚은 이번 경선 과정을 뼈아프게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박찬대 원내대표가 경선 후보들을 접촉해 구도를 정리하고, ‘당심이 곧 명심이고, 명심이 곧 민심’(추 당선자)이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것은 민주당이 과연 민주정당인지 의심케” 한다“고 했다. 이어 우 의원이 “‘현장형’ 정치인으로 꼽힌다”며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것은 물론 민생 현안 해결을 위해 설득과 중재의 정치력을 적극 발휘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예상과 다른 선택이 나온 것은 한 사람을 황제로 모시는 ‘1인 당’ 체제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한 때문일 것”이라며 “이 대표가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우 의원도 사실상 친명 중진 역할을 해왔다”며 “책임에 대해 새로 생각하기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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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 “교육기관들 가운데서 최고의 기준 창조”

완공된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현지지도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4/05/1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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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5일 완공된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를 현지지도했다고 노동신문이 16일 보도했다.

 

당중앙위원회 비서들이 현지지도에 동행하였으며 현지에서 중앙간부학교 건설을 한 설계 및 시공 단위 관계 성원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맞이했다.

 

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완공된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전경을 보며 “보면 볼수록 위엄있다. 정말 본보기적인 교육기관다운 학교를 우리 손으로 일떠 세웠다”라고 기뻐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교양 구획과 교무행정청사, 교사 종합강의실, 다기능 강당, 회의실, 도서관, 체육관, 기숙사와 식당을 비롯한 여러 곳을 돌아보며 지난 3월 30일 이곳을 현지지도하면서 준 과업들의 집행 정형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설계 부문 및 시공 단위의 일꾼들과 건설자들이 지난번에 지적한 문제들을 올바로 퇴치하고 건축 마감 공사를 최상의 수준에서 질적으로 진행함으로써 학교의 교육환경과 조건의 모든 구성 요소들을 흠잡을 데 없이 꾸린 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했다”라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건축물의 구조적 특성도 현대 교육 발전 추세와 교육학적 원리에 맞게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되었으며 원림 녹화 사업도 세계적 수준에 부합되게 높은 경지에서 실현되었다”라면서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는 정치성과 현대성, 실용성이 확고히 보장된 만점짜리 교육시설이다. 우리나라 교육기관들 가운데서 최고의 기준을 창조하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새 시대를 대표하는 우리 당의 정치학원으로 거연히 일떠선 중앙간부학교가 진짜배기 핵심 골간들, 김일성-김정일주의 정수분자들을 키워내는 자기의 중대하고도 성스러운 사명에 항상 충실함으로써 조선노동당의 강화발전과 영원무궁한 번영에 참답게 이바지”할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하면서 개교식을 앞두고 운영 준비를 빈틈없이 갖출 것과 준공식을 정치적 의의가 크게 훌륭히 조직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신문은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완공과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히신 새 시대 5대 당건설의 휘황한 진로를 따라 전당 강화의 새로운 전성기가 펼쳐지고 있는 역사적인 시기에 우리당 간부 양성의 최고전당인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가 주체건축과 주체교육 부문의 본보기적 창조물로 훌륭히 일떠섰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새 시대 5대 당건설 노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2년 10월 17일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를 방문해 교직원, 학생들에게 한 기념 강의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시대 우리 당건설방향과 조선로동당 중앙간부학교의 임무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정치건설, 조직건설, 사상건설, 규율건설, 작풍건설’을 새 시대 당건설 방향이라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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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 향했던 청년, 5·18 ‘뒷것’으로 남다

[5·18 민주화 운동 44주기]
계엄군에 맞서던 강학 손남승씨
동지 두고 빠져 나왔다는 죄책감에
유공자 신청 거부하고 세상과 단절

기자정대하
  • 수정 2024-05-16 07:53
  • 등록 2024-05-16 05: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
11:04
1980년 12월 광주 백제야학 학생들이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공연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홍곤 제공
1980년 12월 광주 백제야학 학생들이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공연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홍곤 제공

지역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대학생 가객. 노동야학 교사로 무장 계엄군에 맞서 싸운 시민군.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노동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린 청년 연출가. 손남승(66)의 찬란했던 20대를 대표하는 이력들이다. 하지만 그는 ‘살기 위해’ 도청을 빠져나온 지 44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은둔자로 남아 있다. 그는 왜 세상과, 5·18과 단절하며 살고 있을까? 몇해 전 손남승의 ‘스토리’를 전해 듣고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이달 초 그의 근황을 다시 들었다. 지인을 통해 만남을 요청했으나 “나 같은 놈한테 앞에 나서 말할 자격이나 있겠느냐”며 모습을 끝내 드러내지 않았다.

가요제서 대상 받은 대학생 가객

“며칠 전에 통화허는디, 그럽디다. 부끄럽고 아픈 기억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도저히 사람들 앞에 나설 수가 없다고.”

그와 접촉한 선배 김홍곤(67)이 15일 전해준 말이다. 김홍곤은 젊은 시절 지인들 가운데 손남승이 거의 유일하게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이다. “얼마 전 김민기 선생 다큐 보셨지요? 김 선생 얘기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나서지 않겠다’는 남승이 말이 꼭 ‘오월의 뒷것으로 살겠다’는 뜻으로 들리데요.”

두 사람은 광주 ‘백제야학’에서 처음 만났다. 손남승의 광주일고 동기인 박용성이 두 사람을 소개했다. 김홍곤과 박용성은 전남대 국어교육과 입학 동기였다. 백제야학은 1980년 2월 강학(교사) 8명이 만든 노동야학이다. 손남승, 김홍곤, 최문수 등 대학생들은 60여명의 학생들과 광주 방림신협 지하실에서 공부했다. 백제야학 교장이던 김홍곤은 “근현대사, 한문, 근로기준법 위주로 가르쳤고, 음악은 구전가요나 민중가요를 함께 불렀다”고 했다. 학생들은 무등양말, 호남전기, 태광산업, 일신방직 등에 다니던 10대, 20대 노동자들이었다.

광주의 노동야학인 백제야학 강학(교사)들이 1980년 4월 야유회를 가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뒷줄 맨 왼쪽이 김홍곤씨, 둘째가 손남승씨다. 김홍곤 제공
광주의 노동야학인 백제야학 강학(교사)들이 1980년 4월 야유회를 가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뒷줄 맨 왼쪽이 김홍곤씨, 둘째가 손남승씨다. 김홍곤 제공

백제야학은 검정고시 야학으로 출발해 얼마 안 가 노동야학으로 전환했다. 강학들이 들려준 사연은 처연하다. 1978년 사직공원 근처 승공회관에서 검정고시 야학을 하던 손남승·박용성 등은 1979년 산수동오거리로 자리를 옮겨 ‘사랑의 학교’라는 야학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아이스크림 공장에 다니던 학생 하나가 포장용 프레스에 손가락 세개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회사는 합의금으로 손가락 한개에 3만원씩 9만원을 제시했다.

검정고시 야학을 노동운동 야학으로

소식을 전해 들은 강학들은 분노했다. 박용성의 분노가 특히 컸다. 그는 회사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를 수집해 유인물을 만들어 뿌릴 준비를 마친 뒤 사장을 찾아가 담판했다. 결국 300만원을 받아냈다. 하지만 열악한 노동 현실은 그대로였다. 허망하고 괴로웠다. 격론 끝에 노동운동에 방점을 둔 ‘노동야학’으로 바꾸기로 했다. 김홍곤의 고등학교 은사 임기석 방림신협 이사장의 도움으로 전남대병원오거리의 신협 건물 지하실에 터를 잡았다.

1980년 봄 5·18이 터졌다. 백제야학이 문 연 지 석달 만이었다.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강학인 손남승과 김홍곤, 학생 김순옥과 이정례가 5월19일 백제야학 지하실에 모였다. ‘광주시민이여, 궐기하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제작했고, 다섯차례에 걸쳐 배포했다. 같은 시기 광주의 또 다른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이 외부로부터 고립된 광주 상황을 시민들과 공유하려고 유인물을 제작해 시내 곳곳에 뿌렸다.

손남승과 김홍곤은 5월21일 오후 전남대병원오거리에서 유인물을 나눠 주다가 총격을 받았다. 김홍곤은 “(도청 집단발포 후) 화순 방향으로 퇴각하던 계엄군이 탱크에서 기관총을 쐈다. 가드레일 철판에 맞아 튄 총탄 파편이 근처 상점의 셔터에 박혔다”고 회고했다. 두려웠다. 두 사람은 김홍곤의 집으로 도망쳐 다락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다. 도청 앞 집단발포로 많은 시위 군중이 희생되자 분노한 시민들이 무장을 시작하던 때였다.

“파리코뮌도 실패…도청 남으면 죽는다”

손남승은 “(시민군 본부인) 도청으로 가겠다”고 했다. 김홍곤이 “나는 무섭다. 노동자 혁명정부인 파리코뮌도 실패하지 않았냐. 결국엔 진압되고 죽을 테니 가면 안 된다”고 말렸다. 당시 손남승에겐 미래를 약속한 여성이 있었다. 손남승은 “사랑도 소중하지만 내겐 혁명이 더 중요하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전남대병원오거리에서 헤어졌다. 김홍곤은 그길로 광주를 걸어서 빠져나와 화순을 거쳐 고흥으로 몸을 피했다. 살고 싶었다.

손남승은 도청 1층의 상황실에서 일했다. 백제야학을 하며 알게 된 노동운동가 출신 이양현(74)을 그곳에서 만났다. 이양현은 학생투쟁위원회 기획위원이었다. ‘최후의 날’인 5월27일이 왔다. 그날 새벽, 손남승이 다급한 목소리로 “계엄군이 유동삼거리까지 왔다. 자는 사람들 다 깨워야 한다”고 이양현에게 말했다. 비상이 걸렸고, 새벽 3시를 조금 넘겨 무장한 시민군들이 도청 전면과 후면에 배치됐다.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계엄군의 화력은 압도적이었다. 손남승은 도청 담장과 도지사 공관의 철책을 연달아 넘은 뒤, 재래식 야외 화장실 안으로 숨었다. “똥물에 몸뚱이를 담그고 콧구멍만 내놓고 있었다고 그래요.” 김홍곤이 전한 손남승의 당시 상황이다. 아침이 밝자 손남승은 도지사 공관의 가사도우미에게 집으로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뒤 아버지가 타고 온 짐자전거에 ‘똥범벅’으로 올라타 집으로 도망쳤다.

살아남은 손남승은 백제야학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80년 12월 학생들과 함께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을 무대에 올렸다. 손남승은 1979년에 열린 제2회 전일방송가요제(VOC대학가요제)에 훗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 박현희와 함께 ‘전남대 중창단’이란 이름으로 나가 대상을 받을 만큼 음악 실력이 출중했다. “멋쟁이였제. 얼굴은 이국적으로 잘생겼고, 기타 솜씨도 대단했어요. 그뿐이여? 글도 진짜 끝내주게 잘 썼어요.”

‘혁명 철학’ 익히려고 떠난 독일 유학

‘공장의 불빛’이 노동자들 참여로 무대에 오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김홍곤은 기억한다. “남승이 주도로 강학들이 연출하고 학생들 전원이 배역을 맡아 출연했어요.” 당시 공연장엔 백제야학을 후원했던 최연석 목사의 주선으로 김민기와 임진택 등 서울의 문화운동권 사람들도 왔다. 김홍곤은 “공연 내내 눈시울을 붉히던 김민기 선배가 뒤풀이 자리에서 ‘내가 만들었지만, 노동자의 현실이 이렇게 슬프고도 생생하게 드러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회상했다. 백제야학은 1981년 ‘미리내 야학’으로 이름을 바꾼 뒤 장소를 옮겨 1984년까지 운영됐다.

손남승은 그 후 군에 갔다 제대한 뒤 백제야학 강학 출신인 여성과 결혼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던 손남승은 1989년 독일 유학을 떠났다. 김홍곤에겐 “혁명을 위해 헤겔과 마르크스를 더 공부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1994년 김홍곤이 한국에 잠시 들어온 손남승을 만났을 때 “그날 새벽 도청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자괴감에 여전히 시달린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손남승은 끝내 학위를 받지 못한 채 1990년대 후반 귀국했다.

광주로 돌아온 손남승은 김홍곤의 말처럼 ‘5·18의 뒷것’으로 지금껏 살고 있다. 그는 1995년부터 시작된 5·18유공자 보상 신청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김홍곤은 그에게 정부가 지난해 말까지 받았던 8차 유공자 보상 신청을 권했다. “아들을 위해서라도 신청하라”고 몇번을 설득했으나, 손남승은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홍곤은 “결벽증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격 조건에 조금 미달해도 유공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뭐가 그리 부끄럽다고 나서지 못하는지 안타까웠다”고 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으나 “먹고살아야 하니까 일은 하고 있다”는 짤막한 답변만 들었다.

여전히 5월을 아파하는 백제야학 사람들

4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해 5월을 아파하는 백제야학 사람은 또 있다. 박용성은 5·18 직전 전남대 총학생회 교육부장으로 학생운동을 이끌다가 수배가 떨어져 여수로 도피했고 가족들의 설득으로 그해 6월 자수했다. 하지만 구타와 고문으로 척추에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는 실어 증세를 보여 기소 중지로 풀려났다. 박용성은 전남 여수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 전교조 지부 결성을 주도한 일로 해직교사가 됐다. 몇해 전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고 박관현에 관해 인터뷰한 뒤 석달을 앓았다는 그는 이번 한겨레가 요청한 인터뷰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전남 지역 사립학교에서 2년간 교사 생활을 하다가 공단에서 용접공으로 6~7년을 보낸 김홍곤은 요즘 식당을 운영한다.

광주의 노동야학인 백제야학 교장이었던 김홍곤씨.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광주의 노동야학인 백제야학 교장이었던 김홍곤씨.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백제야학은 5·18 이후에도 ‘뒷것’ 역할을 담당했다. 백제야학이 들었던 노동자 교육운동의 깃발은 와이(Y)야학, 한얼야학, 무등야학이 이어받았다. 김홍곤은 “야원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강학들과 학생 20여명이 지금도 모임을 한다”며 “손남승이 세상 밖으로 나와 남은 생을 옛 동지들과 함께 보낼 수 있게 설득하고 또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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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충남도, '대통령 의전용' 착공식 준비 공사에 수억원 지출... 비용은 시공사에 떠넘겨... 정작 대통령은 불참

24.05.16 07:06l최종 업데이트 24.05.16 07:06l

심규상(djsim)

 

충남도가 한 시간의 충남 공공임대주택 기공식(착공식) 행사를 위해 최소 수억 원이 드는 일회성 사전 공사를 벌여 논란이다. 사진은 지난 4월 18일 기공식 당시 시삽 장면이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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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온다고 시멘트 포장하더니 결국 1시간 쓰고 철거 충청남도가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충남 공공임대주택 기공식(착공식) 행사를 위해 최소 수억 원을 들여 축구경기장 절반 크기의 면적에 콘크리트를 깔고, 수천 평 공간에 파쇄석을 실어다 다지는 한편, 1km에 이르는 차단막을 설치하는 일회용 공사를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행사가 끝난 후 유효기간 1시간짜리 시설물들은 현재 철거가 진행 중이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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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남도가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충남 공공임대주택 기공식(착공식) 행사를 위해 최소 수억 원이 드는 일회성 공사를 벌여 논란이다.

 

한 시간짜리 기공식을 위해 축구경기장 절반 크기의 면적에 콘크리트를 깔고, 수천 평 공간에 파쇄석을 실어다 다지는 한편, 1km에 이르는 차단막을 설치하는 일회용 공사를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참석에 대비해 의전을 고려한 공사를 한 것인데 준비 정도가 과도해 보여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정작 윤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사업시행사이자 충남도 산하기관인 충남도시개발공사는 공사비와 행사비 전액을 시공사에서 부담했고, 공사 내역 또한 적정해 보인다며 예산 낭비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지역 시민사회에서는 결국 공사비가 입주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축구장 절반 크기 콘크리트로 포장... 기공식 끝나자 철거 돌입

 

기공식 때 행사 무대를 차리고 참석자들이 모였던 콘크리트 바닥을 뜯어내는 공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일 현장 모습.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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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식 때 행사 무대를 차리고 참석자들이 모였던 콘크리트 바닥을 뜯어내는 공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일 현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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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도지사 김태흠)와 산하기관인 충남개발공사(사장 김병근)는 지난달 18일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한 시간 동안 충남형 공공임대주택인 리브투게더 기공식을 개최했다. 기공식이 열린 곳은 공공임대주택 예정 부지인 충남 홍성군 내포신도시 한울초등학교 인근 RH16 블록이다.

충남형 도시리브투게더는 신혼부부와 청년 등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과 주택 마련 기회 제공, 저출산 위기 극복 등을 위해 추진 중인 분양 전환 공공임대주택 공급 사업이다. 이날 기공식에는 500여 명이 참석해 공공임대주택 건립 사업의 의미를 나누며 착공을 축하했다.

 

기공식이 끝난 후 20일 만에 다시 찾은 현장에서는 중장비가 굉음을 내며 공사를 하고 있었다. 처음엔 본격적인 아파트 공사가 시작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착공이 아닌 철거 공사였다.

 

기공식 때 행사 무대를 차리고 참석자들이 모였던 콘크리트 바닥을 뜯어내는 공사였다. 기자가 바닥 면적을 대략 측정해 보니 가로·세로 약 60여 미터의 'ㅁ'자 형태로 축구경기장 절반 정도 크기였다. 축구경기장 절반 크기의 콘크리트 바닥을 한 시간짜리 기공식을 위해 만들었다는 얘기다.

 

유효기간 한 시간짜리 시설물은 콘크리트 바닥만이 아니었다. 충남도는 무대 공간의 4~5배에 이르는 넓이의 공간에 평균 1미터 이상의 파쇄석을 실어다 깐 뒤 바닥을 다졌다. 복토 높이가 약 2m에 이르는 곳도 많았다. 최소 덤프트럭 수백 대 이상을 실어다 부은 것으로 보인다. 충남도는 이 공간에 한 시간짜리 임시 주차장과 임시 행사장, 진입로를 만들었다. 공간마다 굵은 끈을 이용해 주차선도 만들었다.

 

콘크리트 포장 공사와 바닥 복토 공사는 비가 내려 땅이 질퍽거릴 것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입구에서 무대까지, 또 주차장에서 무대까지 '呂' 자 모양의 행사장 테두리에 철재 파이프를 연결해 2단으로 약 1.5미터 높이로 분리막을 설치했다. 윗쪽 'ㅁ' 구역은 콘크리트 포장을 한 무대, 아래쪽 'ㅁ'구역은 주차장, 가운데는 무대와 주차장을 오가는 통로다. 행사 시간 동안 참석자들의 출입과 이동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짐작된다.

 

"사전 공사비만 5억"... 성대하게 진행된 기공식

 

기공식 때 행사 무대를 차리고 참석자들이 모일 예정인 곳은 콘크리트로 포장했다. 바닥 면적을 대략 측정해 보니 가로·세로 약 60여 미터의 'ㅁ'자 형태로 축구경기장 절반 크기였다. 사진은 지난 3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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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기공식 행사도 성대하게 진행됐다. 30여명의 주요 내빈을 위한 현장 다과회장도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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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공공임대주택 건립 예정지를 빙 둘러 차단벽을 설치했는데 차단벽 아래 2~5미터 높이의 경사면은 방수포를 이용해 덮어 놓았다. 덮개 공사를 한 곳은 무대를 중심으로 'ㄱ'자 형태로 약 수백 미터 구간이다. 경사면 덮개 공사는 미관상 이유와 토사가 유출 방지와 흙먼지 등이 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익명의 공사 관계자는 "기공식 준비를 위한 사전 공사비로만 5억 원 정도가 쓰였다"고 귀띔했다.

 

당일 기공식 행사도 성대하게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는 20여 개의 몽골 텐트와 대형 무대,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고, 30여명의 주요 내빈을 위한 현장 다과회장도 설치됐다. 식전 공연으로는 합창과 새마을운동 연극 퍼포먼스가 개최됐다. 이날 시삽에만 도지사, 도교육감, 시장·군수, 도의원 등 30여 명이 무대에 섰다. 시삽과 함께 축포를 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한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했다. 행사가 시작된 지 30분 정도가 지나자, 더위를 견디지 못한 참석자 절반 이상이 자리를 떴다.

 

일회성 공사, 대통령 의전용이었는데... 결국 윤 대통령은 불참

 

공공임대주택 건립 예정지를 빙 둘러 차단벽을 설치했는데 차단벽 아래 2~5미터 높이의 경사면은 방수포로 덮었다.(오른쪽 사진) 덮개 공사를 한 곳은 무대를 중심으로 'ㄱ'자 형태로 약 수백 미터 구간이다. 그 아래로 굴삭기를 이용, 기공식 행사장 바닥에 파쇄석을 이용해 복토작업을 하고 있다.(지난 3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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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석을 실어다 깐 뒤 바닥을 다졌다. 복토 높이가 약 1.5m에 이르는 곳도 많았다. 행사장 테두리에 철재 파이프를 연결해 2단, 약 1.5미터 높이로 분리막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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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시작된 지 30분 정도가 지나자, 더위를 견디지 못한 참석자 절반 이상이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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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근 아파트 주민들에 따르면 충남도는 지난 3월 초부터 약 보름 정도 공사를 벌였다. 그런데 기공식 행사가 끝나자마자 분리막과 주차선을 철거했고 뒤이어 콘크리트 바닥 철거공사를 하고 있다.

 

이처럼 일회성 행사를 위해 배보다 배꼽이 큰 행사를 한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함에 따라 의전 및 통제를 하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의 공사 관계자는 "애초 윤석열 대통령이 기공식에 참석하기로 해 갑자기 공사 결정이 떨어졌다"며 "내부에서도 'VIP가 참석한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과도하게 일회용 공사를 할 필요가 있냐'는 볼멘 소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지난 2월 27일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국정과제 '공공주택 50만 호 공급'의 모범사례인 충남형 리브투게더 착공식에 대통령 참석을 건의했다"고 공개했다.

 

충남도 관계자는 "애초 기공식은 3월 26일이었고, 이날 대통령께서 참석하기로 해 관련 준비를 한 것"이라며 "그런데 예정일을 일주일쯤 앞두고 다시 참석이 어렵다고 알려와 기공식 행사를 다시 4월 18일로 연기했다"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4월 기공식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충남도 관계자는 세부 준비 과정과 소요 비용에 대해서는 "산하기관인 충남 도시개발공사와 시공사 측이 협의해 한 일"이라며 구체적 답변을 하지 않았다.

 

시행사이자 도 산하기관인 도시개발공사 관계자는 "대통령님께서 참석하시기로 해 전문업체에 자문한 후 시공사에 공사는 물론 당일 행사까지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했다"며 "기공식 준비와 행사비는 전액 시공사에서 부담해 얼마나 들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취재 요구에 답변하기 위해 시공사 측에 문의했지만, 소요 비용은 내부 영업비밀로 알려주기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시공사는 디엘이앤씨(전 대림건설)다.

 

대통령 참석이 예정됐던 충남도와 충남도시개발공사가 주관한 기공식 행사에 드는 비용을 전액 시공사에 떠넘겼다는 얘기다.

 

기공식 준비 공사비는 시공사에게 떠넘겨

 

지난 4월 18일 행사가 끝난 후 행사장 모습. 행사 관계자들이 무대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오른쪽 상단이 행사장 무대가 설치된 곳이고, 왼쪽은 주차장을 조성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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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식 때 행사 무대를 차리고 참석자들이 모였던 콘크리트 바닥을 뜯어내는 공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일 현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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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도시개발공사 관계자는 일회성 행사에 과도한 준비공사와 행사로 예산을 낭비했다는 지적에 대해 "사업에 대한 홍보도 시공사의 역할"이라며 "얼마가 소요됐는지 잘 모르지만 그리 많은 돈이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예산 낭비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 시민사회에서는 일회성 공사비에 철거 비용까지 결국 무주택 입주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인 충남참여자치연대 관계자는 "대통령 의전을 위한 사전 준비가 지나쳐 '기둥보다 서까래가 더 굵은 격'이 됐다"며 "도민 혈세가 일회용 공사비로 새 나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도한 행사 준비용 공사비와 행사비는 결국 도민들과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무주택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충남도는 기공식을 한 내포신도시의 RH16 블록 6만 8271㎡의 부지에 84㎡형 949세대(건축 전체 면적 16만 285㎡, 지하 1층, 지상 18∼25층)를 건립할 예정이다. 해당 사업에는 모두 3930억 원이 소요되는데 이중 입주민들의 임대보증금(1544억 원)을 뺀 나머지(2386억원)는 충남도 출자금이나 기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도는 이후 천안·공주·아산·청양 등에도 리브투게더 사업을 벌여 오는 2026년까지 총 5000세대(전 세대 84㎡)를 공급할 계획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착공식을 했지만 착공은 빠르면 오는 10월쯤에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태흠 충남지사가 지난달 18일 오전 11시 충남형 공공임대주택인 리브투게더 기공식에서 이후 머릿돌기념판 글에 새길 글귀로 '힘쎈 충남 리브투게더! 도민에게 희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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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방탄’ 논란 검찰 인사, 특검법 설득력만 높였다

 

법무부는 13일 전격적으로 검사장급 이상 39명에 대한 승진 및 전보 인사를 단행했다. 법무부는 총선 전부터 예정됐던 정기인사라는 입장이지만, 검찰 안팎에서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수사를 겨냥한 ‘방탄 인사’라는 정황이 쏟아지고 있다.

13일 단행된 검사장급 인사의 핵심은 서울중앙지검장을 교체다. 부산고검장으로 ‘좌천성 승진’ 발령을 받은 송경호 중앙지검장은 주가조작 및 명품백 수수 등 김건희 의혹 수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빈자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대변인으로 있던 이창수 전주지검장이 임명됐다. 측근을 내몰고 최측근을 앉힌 형국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4.05.14. ⓒ뉴시스

야당 압승으로 총선이 끝나 특검법 재추진이 눈앞에 다가오자 이제라도 김 여사를 소환조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검찰 내에서 일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2일 송 중앙지검장에게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 전담 수사팀 구성을 지시하면서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김 여사 수사에 활기가 도는 분위기였다. 이 총장은 4개월 남은 임기 안에 주가조작 수사도 마무리할 의지가 있던 것으로 알려졌고, 이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는 7월로 예정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의 2심 선고 뒤 수사 방향을 정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총장의 ‘신속·엄정수사’ 지시 11일 만에 송 중앙지검장을 포함해 검사장급 인사가 단행되면서 수사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번 인사에서 이 총장이 ‘패싱’ 당한 점이 확인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총장은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인사를 미뤄달라’고 요청했으나 묵살됐고, 법무부에서 인사 대상자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사표를 내도록 종용했다는 정황도 흘러나왔다. 결국 이 총장이 지방검찰청 순시 도중 인사 발표가 나 이 총장은 순시를 중단하고 귀경한 뒤 다음 날 일정을 취소했다. 이번 인사에 총장의 수족이라 할 대검 부장 7명 중 외부 개방직을 제외한 6명이 포함됐다는 점을 보면 ‘총장 패싱’은 더욱 명백하다. 결국 이 총장은 인사 다음 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번 인사에 대한 평가 질문을 받고 ‘7초의 침묵’으로 무언의 항의를 했다. 인사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함을 사실상 공개적으로 표명한 셈이다.

이번 인사로 인해 검찰 내에서 의미 있는 항명이 있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출신으로 인맥을 속속들이 장악하고 있다. 패싱을 당한 이 총장이나 전보조치된 송 중앙지검장 모두 ‘윤석열 사단’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번 인사는 숙청의 성격보다는 보다 확실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총선 결과를 보고 수사를 전혀 안 하는 방식은 어렵고 뭔가 안심할 사람도 있어야 되는 상황이 맞물린 것”이라며 “더 안전한 상태를 구축하기 위한 정지작업”이라고 분석했다. 인사 과정에서 의견이 묵살된 이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검찰이 조직적으로 항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 자료사진 ⓒ뉴스1

그러나 이번 인사는 김건희 특검법 추진에는 강력한 명분을 제공했다. 검사장급에 이어 중간 간부 인사도 조만간 이뤄지면, 김 여사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장과 실무 책임자들이 모두 물갈이 된다. 이미 검찰이 수사에 너무 소극적이어서 신뢰를 잃은 마당에 애써 수사하는 움직임을 보이던 지휘 라인이 교체됐으니 수사가 신뢰를 확보하기는 난망하다. 여당에서도 이런 우려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인 김용태 의원은 “국민의 역린이 무섭다는 것을 인지하고 (대통령이) 눈치를 좀 봤으면 좋겠다”면서 “검찰 인사교체는 대통령 기자회견 후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국민들께서 ‘속았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뒤늦게 검찰총장이 수사팀을 꾸리고 엄정한 수사를 지시한 지 며칠 만에 수사팀이 교체됐다”며 “지금 수사를 덮는다고 영원히 덮을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돌출적이지만 홍준표 대구시장이 쓴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 하는 사람이 5천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나”, “그건 방탄이 아니라 최소한 상남자의 도리”라는 글도 ‘김건희 방탄 인사’를 인정하는 꼴이라 결과적으로는 윤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총선 참패 후 영수회담과 기자회견 개최 등 소통 행보에 나섰다. 그러나 민정수석 부활과 검사 출신 김주현 전 차관 임명, 연이은 검사장급 인사를 통해 ‘김건희 방탄’에 몰두하고 있다는 집중해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야당이 밀어붙일 김건희 특검에 여론의 동조까지 실리면, 대통령 거부권만으로 이를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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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5.16 쿠데타를 기획했나

5.16 쿠데타와 미국 ①

5.16 쿠데타는 한국 민주주의뿐 아니라 냉전 시대의 국제 정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1953년부터 1961년까지 CIA 국장을 지낸 앨런 덜레스가 1964년 5월 BBC와 인터뷰하면서 “가장 성공적인 해외 비밀공작”의 사례로 5.16을 꼽았을 정도로 미국은 5.16 쿠데타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 구체적 공작 과정은 지금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미국 정부의 외교문서집 등은 5.16 군사쿠데타를 앞두고 한 달이 넘는 기간의 기록을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961년 4월 12일부터 5월 15일까지의 외교문서에 대한 비밀은 지금도 해제되지 않은 상태다.

본 글에서는 미국이 5.16 구테타를 기획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정치적 이유와 미국의 개입 공작 과정 그리고 5.16 쿠데타가 현시점에 주는 교훈을 정리한다.

4.19 혁명 이후 분출하는 통일 열기와 반미자주 운동

장면 정부는 4.19 혁명 이후 등장했으나 집권 기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장면 정부가 보이는 불안정한 모습은 안정적인 정부를 통해 소련과 공산주의를 봉쇄하기를 원하는 미국의 정책에 부합하지 않았다.

특히 미국은 장면 정부가 4.19 혁명 이후 분출하는 통일 열기와 반미감정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4.19 혁명 이후 통일운동은 혁신세력을 중심으로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가 만들어지고, 전국의 많은 대학교와 고등학교 ‘민족통일연맹’이 결성되어 중립화통일을 주장하거나 남북교류를 촉구하는 등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 한미경제협정 반대투쟁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조직적 반미운동이었다.

이와 더불어 반미 감정도 확산하고 있었다. 1961년 2월 8일 체결된 ‘한미경제기술원조협정’은 한미 관계의 경제적 종속성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진보적 정당과 사회단체 그리고 대학생들은 이 협정이 한국의 경제적 예속을 제도화하며 미국이 한국 내정에 간섭하는 통로를 열어주는 불평등조약이라면서 “한미경제협정 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해 이 협정의 철회와 비준 거부를 요구했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 최초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반미운동이었다.

장면 정부에게서 불안감을 느낀 미국

미국은 한국 상황을 대단히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CIA는 장면 정부의 정치 갈등과 경제적 문제가 미국의 안보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안정화를 위한 조치”를 권고한다. 미 국무부 역시 한국에서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정치적 안정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미 국무부는 “한국의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면 공산주의가 한국 사회를 장악할 수 있다”고까지 우려했으며, “한국의 불안정성 해소는 소련 봉쇄를 목표로 하는 미국 전략의 일부”라고까지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이 느낀 불안감의 실체는 4.19 혁명 이후 고양되는 통일과 반미자주의 기운이었다. 이를 ‘효과적으로’ 진압하지 못하는 장면정부의 ‘무능력’을 목도한 미국은 군부라는 새로운 세력을 한국 정치에 등장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30년 넘게 진행된 군부독재 시대는 4.19 혁명 이후 분출하는 자주통일 열망에 대한 미국의 위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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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직격 인터뷰…“채상병 수사 불법 개입 확인되면, 바로 탄핵 사유”

손원제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기자손원제
  • 수정 2024-05-15 08:16
  • 등록 2024-05-15 07: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
21:47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총선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새긴 ‘신 스틸러’라면 단연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꼽지 않을 수 없다. ‘3년은 너무 길다’는 촌철의 슬로건으로 민심 저변의 정권심판론을 재점화하며, 더불어민주당 공천 파동으로 흐트러지는 듯했던 총선 판도를 일거에 반전시켰다. 이후 당은 쭉쭉 우상향하며 창당 5주 만에 제3당을 꿰찼고, 조 대표 또한 유력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사람들을 놀라게 한 건 그의 달라진 말과 태도였다. 간결한 메시지로 윤석열 정권의 폐부를 찔렀고, 자신감 넘치는 연설로 시민들을 격동케 했다. 지난 2년 윤 정권의 무능과 전횡, 불공정에 지친 국민 다수의 불만을 정치적 분노로 끌어올렸다. 할 말을 삼키며 돌아서던 법무부 장관 시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시기 그가 감내해야 했던 깊이 모를 추락과 고난이 벼리고 담금질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제 22대 국회 개원을 앞둔 조 대표에겐 묵은 숙제와 새로운 과제가 함께 기다리고 있다. 비교섭단체 제3당으로서 ‘검찰독재 조기종식’의 쇄빙선이 되겠다는 공약을 속도감 있게 실천해야 한다. 모든 정당의 궁극적 목표인 집권의 청사진 또한 언젠가는 펼쳐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만을 남긴 재판 리스크는 이 모든 정치 일정에 불확실성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조 대표를 만나 여러 궁금한 점에 대해 묻고 들었다.

정치 결심하며 ‘언어부터 달라져야’ 생각

—이번 총선을 통해 정치인 조국을 재발견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간결명료한 메시지, 막힘 없는 연설 등 과거 학자나 공직자 시절과 크게 달라졌다.

“학자 시절엔 학자의 언어가 필요했고, 민정수석 때는 절제된 단어를 사용해야 했다. 법무부 장관 때는 난장판이라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어느 시점 정치인으로 산다는 결심을 하면서 당장 언어부터 달라져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 막상 거리에서 그렇게 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인데 제가 준비를 애초부터 완벽히 100% 해가지고 그렇게 됐다기보다는 광주·부산 등 거리에서 직접 시민 반응을 접하고 교감하면서 또 변한 게 있다. 부산 사투리 같은 경우는 제가 준비한 거였다. 연설은 첫번째가 광주 충장로 연설이었다. 충장로 우체국 앞 사거리에 모인 시민들 반응을 보고 저도 격동이 되고 상호작용이 되면서 저도 변한 거다. 저 스스로도 놀랐다.”

—염두에 둔 롤모델이 있었나?

“특별히 없었다. 제가 애초 정치를 생각하고 성장한 사람은 아니지 않나. 물론 초중고 때 웅변대회 상탄 적은 있다.”(웃음)

—이번 총선에서 국민정서를 가장 선명하게 대변한 데 대한 반응 아니겠나?

“윤석열 정권 2년간 쌓여 있던 분노, 불만이 있었는데 검찰독재정권의 검찰권 행사 때문에 두려워하고 위축돼 있었던 거 아닌가. 정치인의 역할 중 하나는 국민들이 말할 수 없거나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대신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이분들이 환호를 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자신이 하지 못하는 말을 아주 단호하고 직설적으로 한다는 거였다. 전국을 몇 바퀴 돌았는데 거의 100% 똑같이 나오는 말은 내 말을 대신해줘서 고맙다, 체증이 풀린다였다.”

—애초 목표(10석)를 넘는 결과(12석)를 받았다.

“소기의 성과는 얻었다. 조금 아쉬운 건 있다. 여론조사상 계속 치솟고 있었기 때문에 15석까지도 가능하다고 사실 생각을 했다. 조국혁신당이 신생 정당이다 보니까 조직력이 매우 약하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1~2주에는 정체가 있었다. 원래 목표 달성은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점에서는 기쁘다. 창당 5주 만에 12석 얻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검찰독재정권 조기종식이란 상당히 급진적 말을 하지 않았나. 거기에 공감했던 것 같다.”

—실제 많은 국민들이 이 정권이 이대로 더 가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우려했다.

“‘3년은 너무 길다’라는 말은 제가 ‘김어준 뉴스공장’에서 처음 했다. 저희 생각을 풀어서 그냥 쉽게 얘기를 했는데 당의 슬로건이 됐다. 2년으로 충분하고 3년은 너무 길다라고 한 게 공명을 일으킨 것 같다. 그리고 시민들께서 박은정, 차규근 등등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윤석열하고 제대로 싸울 것 같네 그런 판단을 한 것 같다.”

레임덕 이미 시작, 임계점 오도록 변화 만들어낼 것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야권이 대승했지만 200석에는 못 미쳤다.

“아쉽다. 범보수 진영에서 위기감을 느꼈던 것같다. 그렇다고 조기종식이 포기해야 될 목표는 아니다. 여전히 가능하고 필요하다. 이제 총선 민심이 공개적으로 확인되면서 윤석열 정권의 레임덕은 이미 시작됐다. 검찰독재정권 강고한 성벽에 균열이 갔음을 시민들이 알게 됐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본다. 그다음에 제도적으로 보면 192석이 있다. 형식주의적으로는 탄핵도 개헌도 안 되는 거 아니냐 할 수 있다. 정태적이 아니라 동태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된다. 검찰독재정권 조기종식이라는 구호는 선거 전에는 조국혁신당만 얘기하지 않았나.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마자 개혁신당 천하람 당선자 등이 1년 임기 줄이는 개헌을 얘기했다. 이명박 정권 때 법제처장을 한 이석연 변호사도 한겨레 칼럼에서 다음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하고 대선하자고 했다. 이게 신호다. 윤 정권의 무능, 무책임, 비리 등이 하나씩 하나씩 더 나올 거다. ‘박근혜 탄핵’이 야권 170여석 시절 이뤄졌는데, 지금은 192석이다.”

—8석만 더 오면 된다는 건가?

“그렇다. 8석이 아직은 오지 않겠지. 그런데 신호가, 사인이 이미 왔다. 조선일보에도 빙빙 돌려하지만 윤석열 조기 하야까지 사실상 주장하는 칼럼이 실렸다. 이러다가 보수 전체가 망한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러는 것 같은데, 임계점을 넘는 순간이 올 거다. 또 정당 대표로선 임계점이 오도록 정치 주체로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씀드린다.”

—역으로 지금 정권은 심각한 위기라는 건가?

“집권세력 내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 만약 내년에 있을 재보궐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대패를 하는 순간, 그 말은 지방선거에서도 대패한다는 뜻인 걸 모두 알 것이고, 국민의힘 내부에서 윤석열 탈당하라, 개헌하자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내년 재보궐이 정국의 분수령이라는 건가?

“저는 그렇게 예상한다.”

—지난 9일 열린 윤 대통령 기자회견은 전체적으로 어떻게 봤나?

“총선 민심을 받아들일 생각, 국정 기조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 한마디로 ‘오불관언’이다. 너희들은 알아서 해라. 나는 내 길 간다. 모든 특검법 다 안 받겠다는 것 아닌가.”

—하나씩 보면, 먼저 ‘김건희 주가조작 의혹 특검’에 대해서는 정치 공세라고 비판했다.

“일단 정치공세라는 말의 의미는 윤 대통령이 수사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다. 차기 검찰총장, 차기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이 내 아내 수사는 정치 공세라고 한 건 알아서 하라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또 문재인 정부에서 열심히 수사했는데 (혐의가) 안 나왔다고 했다. 정말 적반하장이다. 그 시점에 검찰총장은 자신이었다.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증언에 따르면, 애를 썼음에도 계속 진도가 안 나갔다. 그 수사팀 또는 이성윤은 고립된 섬이었고 다른 윤석열 라인이 수사를 막았다는 취지다. 윤 총장이 인사권을 다 갖고 있었잖나. 정말 뻔뻔하다.

또 사실 도이치모터스 수사는 문재인 정부 때 시작된 게 아니다. 출발은 2013년 경찰 내사보고서에 나와서 막 갔다가 덮여져 있다가 다시 나오게 된 건데, 그게 왜 덮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과정도 저는 매우 궁금하다. 지금 보면 김건희씨 공범들은 다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렇다면 그 보고서가 옳았다는 얘기 아닌가.”

‘디올백 수사’ 뇌물죄 입증 위한 압수수색 관건

—최근 검찰이 명품백 수사에 나선 의도는 뭐라고 보나?

“이원석 총장이 엄정 수사하라며 검사 3명을 파견했다. 저는 첫째는 왜 총선 전에는 그런 지시를 안 했을까 좀 우스꽝스럽다. 법리적으로 보면 김영란법으로는 배우자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건데, 남은 건 뇌물죄 문제가 있다. 직무 관련성이 있느냐 따져봐야 되는데, 그걸 입증하려면 소환 조사 외에도 그 사건 현장 압수수색이 필요하다. 두번째 그 디올백을 지금 대통령실은 대통령기록물로 보관했다고 주장하지 않나. 실제 언제 그 디올백을 김건희씨가 신고하고 보관했는지를 확인해야 된다. 그럴려면 총무비서관실, 경호실 등 대통령실을 압수수색해야 된다. 그걸 통해 디올백을 받자마자 기록물로 반환했는지, 최재영 목사가 폭로하고 난 뒤에 반환했는지 등을 확인해야 된다. 또 디올백을 김건희씨가 썼느냐 안 썼느냐, 상품 딱지, 가격표 등을 뗐느냐 등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확인해야 한다.”

—윤 대통령 본인 발등의 불은 채 해병 특검이다. 뭘 밝혀내야 된다고 보나?

“채 해병 순직 사건 수사 기록을 경북경찰청에 넘겼다가 회수하는 과정에서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이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에게 전화한 게 확인됐다. 유 법무관리관은 이시원이 자신에게 보고서 제출을 요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보도가 됐다. 이시원이 유재은에게 무슨 말을 했느냐, 동시에 이시원은 이 사실을 언제 누구에게 보고했는가를 밝혀내야 된다. 당시엔 민정수석은 없었고, 비서실장은 사정 관련 업무 보고를 받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이시원과 윤 대통령의 사적 관계를 보았을 때 직접 보고와 지시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또 문제의 출발로 올라가 보면, 윤 대통령이 해병대수사단 수사결과에 대해 격노해서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전화를 했거나 불러서 고함을 쳤거나 한 그 사람을 찾아서 무슨 말을 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윤 대통령 역할이 무엇인지가 확인되고 수사에 불법 개입한 것이 확인되면 저는 바로 탄핵 사유라고 본다. 이걸 윤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다. 본인이 과거 우병우 수석 등을 수사할 때 청와대가 수사에 개입하거나 지휘를 하는 건 불법이라고 했다. 직권남용에 대한 기소와 처벌은 임기 뒤에 가능하지만, 탄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온갖 방식으로 결사적으로 특검을 막는 것이다.”

 윤 대통령, ‘탄핵 가능성’ 알기에 결사적으로 막는 것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기자회견에서 해병대수사단의 수사결과에 대해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느냐는 질문이 나왔는데, 윤 대통령은 ‘왜 무리한 구조작전을 폈느냐고 질책했다’며 엉뚱한 답을 했다.

“그 답을 잘못하면 큰일 난다는 걸 아는 거다. 검사 출신이라 말하는 순간 이게 바로 문제가 되는 걸 아니까 의도적으로 동문서답 했다.”

—대통령실에서 최근 민심 청취를 이유로 민정수석실을 부활했다.

“집권하자마자 민정수석실을 폐지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고 본다. 민정수석실의 핵심적 역할 중 하나가 대통령 친인척 관리와 통제, 견제다. 김건희 여사를 감시하는 역할인 건데, 그게 너무 싫었던 것 같다. 지금 민정수석실을 부활한다고 하면서도 친인척 감시 기능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 이제 김주현 수석을 왜 데리고 왔느냐. 총선 전까진 한동훈을 대폭 신뢰를 한 거 아닌가. 그래서 비대위원장까지 챙겨줬는데 총선 과정에서 틀어진 거다. 또 검찰에서도 (명품백 수사 등) 감히 모반을 하려는 듯한 느낌이 있으니까 검찰총장보다 9기수 위 선배를 데리고 와서 누르려고 한다고 본다.”

—결국 검찰 장악용이라는 건가?

“민정수석이 검찰 인사검증권을 쥐니까. 이제 약간이라도 의견차를 보이거나 윤-김 부부 등에 대한 수사를 철저히 하겠다 그러면 좌천시키겠지. 우회적 방식으로 수사에 개입할 수도 있다. 인맥이 워낙 많으니까.” (실제 이 인터뷰 사흘 만인 지난 13일 단행된 검찰 인사에선, 김건희 디올백 수수 사건과 주가조작 의혹 등을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장과 1차장, 4차장 검사가 한꺼번에 전격 교체됐다. 김 여사 소환조사 필요성을 주장하다가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진 이들 대신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대변인을 지내는 등 충성도가 높은 이창수 전주지검장을 임명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한 관계는 실제로 틀어졌다고 보나?

“비유를 하자면 이혼은 하지 않았는데 별거 상태로 들어갔고, 재결합하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

—20년 관계가 왜 그렇게 됐을까?

“출발은 김경율 비대위원의 앙투아네트 발언 아니겠나. 실제 김건희 리스크 쳐내자는 것이 한동훈 개인의 의견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게 김건희씨의 심기를 엄청 건드렸을 거다.”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은 어려워진 것 같다.

“현재로선 답보 상태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교섭단체 문제는 유신의 잔재다. 유신 이전에는 다 10석이었는데, 유신 이후 박정희 정권이 20석으로 2배를 올려버렸다. 또 선거 과정에서 그 문제를 맨 먼저 꺼낸 분은 당시 민주당 상황실장이었고, 민주당은 정치개혁 과제로 원내교섭단체 요건을 줄이겠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와 만나 협조 요청을 안했나?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바뀐 건 견제심리 때문이라고 보나?

“견제 심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정당의 논리상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자력으로 천천히 시간을 두고 단독 또는 공동 원내교섭단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의석 한계가 분명한데 어떻게 가능한가?

“내년 정치 일정을 겪으면서 일정한 변화가 생기지 않겠나.”

지금 ‘대선 도전’ 거론 무리…실력·성과 쌓을 것

—제3당으로서 쇄빙선의 역할 강조했는데, 결국 정당의 목표는 집권 아닌가. 그걸 위한 권력의지는 있나?

“저희는 민주당보다 훨씬 작고 당세도 약한 건 사실이다. 그 상태에서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희가 일당십, 일당백을 해서 실력을 쌓아나가면 한해 한해 달라지지 않겠나. 현재 조국혁신당의 역량으로 집권을 얘기한다는 것은 욕심이고 성급할 수 있다. 길게 보고 꾸준히 노력을 해서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면 언젠가는 국민들이 저기도 집권을 할 수 있겠구나 마음을 주실 거다. 자강불식하며 실력을 쌓는 게 먼저고 과욕을 부릴 생각은 전혀 없다. 궁극적으로 집권정당을 지향하는 건 사실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집권은 결국 대통령을 배출하느냐에 달렸다.

“지금 제가 당 대표니까 대선 출마 얘기를 물으시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저는 지금 신생 정당의 정치 신인 아닌가. 지금 시점에 대권 도전을 말한다는 자체가 무리다. 지금 시점에 해야 될 과제, 그리고 총선 민심으로 확인된 과제를 실현하고 국민들께 효능감을 느끼게 해 드리는 데 집중할 것이다. 대권 도전은 그것들이 쌓이고 난 뒤에 비로소 판단할 문제다.”

—민주당에선 전 국민 25만원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현재 국민들의 민생 상태가 코로나19 때보다 안 좋다는 얘기를 다 하고 있다. 자영업자 폐업률도 매우 높고 물가도 치솟고. 저는 민생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민주당의 방안이 정확히 뭔지는 제가 잘 아직까지는 모르겠다. 추경을 통해서 민생 지원을 하자는 점에 동의한다. 25만원이 왜 어떻게 계산이 나오는지는 저희도 지금 검토 중에 있고, 또 대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지원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논의가 좀 필요하다. 국회가 열리면 민주당과 같이 또는 국회 전체 차원에서 빨리 논의를 해야 된다.”

—조국혁신당이 준비하는 민생 의제는 뭐가 있나?

“이중 돌봄 세대를 챙겨야 된다. 4050 세대의 경우 한편으로는 부모 봉양, 또 한편으로는 자식 교육에 끼어 있는 상태다. 특히 이중 돌봄 세대에 대한 주택 지원 이런 것들이 없어서 연금 등을 동원해서 지원을 하자라는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또 세대 전체로 보면, 싱가포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식의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자는 게 있다.”

—조국혁신당 1호 법안인 한동훈 특검법을 두고 조 대표의 사적 복수, 프랑스어로 르셍티망이라는 비판이 있다.

“잘못된 공적 불의에 대한 원한, 저항이며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는 점에서 르생티망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사적 복수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에 등장하는데 강자에 대한 약자들의 분노, 원한을 뜻한다. 니체는 기득권 세력에 맞선 예수의 투쟁을 르셍티망의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조금 민감한 질문일 수 있겠다.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현 정부 출범 책임론 논란이 불거졌다. 일부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경질하지 않은 문 대통령, 그리고 조국과 추미애 경질을 주장한 임종석, 노영민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책임을 져야 된다 이런 목소리가 나왔다. 어떻게 보나?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 문제일 텐데, 저는 문재인 정부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하고 싶은 말도 좀 있긴 하지만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때 인사 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

“저는 스스로 물러가겠다고 했다. 임명 35일째. 국정 지지도가 계속 떨어졌지 않나. 그래서 이제 그만두겠다고 한 건데. 아주 개인적으로는 제가 사퇴를 하고 윤석열 총장도 사퇴를 해서 장관과 총장을 동시에 경질하고 새로운 장관, 새로운 총장으로 2019년 하반기에 새로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왜 그렇게 안 됐는지는 제가 잘 알 수가 없고, 그런 과정은 나중에 문 대통령께서 회고록 통해서 쓰시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조국 경질을 주장한 참모들 경우도, 추측컨데 국정지지도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법 리스크 현실화 전까진 오늘 과제에 집중

—재판 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다.

“제가 정치 참여와 창당을 결심할 때 대법원 판결에서 파기환송이 되지 않고 어떠어떠한 결과가 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고 시작을 했다. 다만 대법원 판결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가 정치를 결심하게 된 그런 마음가짐을 말씀드리자면 대법원 판결이건 뭐건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 때문에 현재의 저의 활동을 규제하거나 자제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거다. 그래서 리스크가 현실화되기 전까지는 오늘의 현실에 집중하자는 게 저의 각오이자 철학이다. 그다음에 최악의 결과가 난다 하더라도 조국혁신당에는 12명의 당선자 의원이 있고, 16~17만 당원이 있고, 또 지지해준 690만 유권자가 있기 때문에 조국이 없다 하더라도 당은 자신만의 동력으로 굴러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손원제 논설위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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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명 사망' 브라질 남부 홍수로 대규모 '기후 이주' 우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4/05/15 08:35
  • 수정일
    2024/05/15 08: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온난화로 홍수 빈번해져 '마을 전체 이주 불가피' 분석…캐나다선 산불 커지며 연기 미국 중부까지 도달

김효진 기자 | 기사입력 2024.05.14. 19:58:34

 

 

남아메리카 브라질 남부에서 2주 넘게 지속된 폭우와 홍수로 적어도 147명이 사망한 가운데 기후 변화로 이 지역의 홍수가 점점 심해져 마을 전체를 옮겨야 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산불 시즌이 시작된 캐나다에선 점점 더 극심해지는 산불로 연기가 국경을 넘어 미국까지 다다랐다.

 

14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브라질 남부 히우그란지두술주 홍수로 적어도 147명이 사망하고 127명이 실종됐으며 53만8000명이 이재민이 됐다고 보도했다. 히우그란지두술에서 수십 개 마을과 거리가 침수된 가운데 전문가들은 주도 포르투알레그리 주변 침수 면적이 서울 면적의 6배가 넘는 3800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포르투알레그리 인근 과이바강은 재차 최고 수위를 경신 중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과학자들이 5m에 이른 과이바강 수위가 이달 말까지 홍수를 견딜 수 있는 수위인 3m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기후 변화로 인해 이 지역에서 극단적 홍수 및 가뭄이 나타나며 이를 거듭 겪고 있는 주민들이 아예 삶터를 옮길 계획을 품고 있어 대규모 '기후 이주(climate migration)'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짚었다. 포르토알레그리에서 150km 떨어진 작은 마을 무숨 주민 카시아노 발다소는 통신에 지난 7달간 세 차례나 홍수로 집에 밀려 들어온 진흙을 치워야 했다며 "어디로 갈진 몰라도 목숨의 위협이 없는 강에서 먼 곳으로 이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마리아 마를레네 베나시오가 살던 임대주택엔 물이 1.5m 높이로 밀려 들어왔다. 베나시오는 "이 마을은 언젠가 강이 돼 우리가 살기 힘들게 될 것"이라며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고 했다.

 

지역 정부도 주민 대부분이 이주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무숨 시장 마테우스 트로잔은 이 마을 주민 5000명 중 상당수가 이주해야 할 것으로 보고 마을의 40%를 다른 곳에 재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환경 전문가들은 주 내 일부 마을의 경우 마을 전체 주민을 이주시키는 것 외엔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생태학자인 브라질 리오그란데연방대 마르셀로 두트라 교수는 도시 기반시설을 옮겨 도시들이 이 정도 규모의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히우그란지두술은 아마존에서 내려오는 따뜻한 공기와 남극에서 불어오는 찬 공기가 만나는 곳으로 폭우가 드물지 않고 통상 브라질 북부를 건조하게 하고 남부를 습윤하게 하는 엘니뇨(적도 부근 해수면 기온 이상 상승 현상)의 영향으로 더 많은 비가 올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 탓에 그 강도가 극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저명한 기후학자이자 브라질 상파울루대 고등연구소 선임 연구원인 카를로스 노브레의 분석을 보도했다. 노브레 연구원은 평균 기온이 높을수록 바다 증발이 심해져 대기 중으로 더 많은 물이 유입돼 극단적 기상 현상의 발생을 촉진하고 빈도를 늘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기후 현상으로 고통 받는 지역의 중요한 문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기후에 대응해 기반 시설이 건설됐다는 점"이라며 정부가 미래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더 나은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역시 온난화가 배경으로 지목되는 극심한 산불이 올해도 캐나다를 덮치며 연기가 미국까지 도달했다. 13일 미 CNN 방송은 캐나다 전역에서 100개 넘는 산불이 타오르고 있는 가운데 이날 연기가 올해 처음으로 미국 북부로 유입되며 위스콘신주, 미네소타주, 아이오와주에 대기질 경보가 발령됐다고 보도했다.

 

미 연방 환경청(EPA)이 제공하는 실시간 대기질 정보를 보면 14일 오전엔 중부 캔자스주, 네브래스카주까지 '건강에 해로움' 수준(높을수록 대기질이 나쁜 6단계 중 4단계)으로 대기질이 나빠졌다. CNN은 다음주 초까지 미국의 공기질이 나쁜 상태일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에도 캐나다 산불 연기가 미국으로 유입돼 11개 주가 '매우 건강에 해로움', '위험' 등 대기질 수준 최악의 단계를 경험했다.

 

캐나다통합산불센터(CIFFC) 자료를 보면 캐나다 전역에서 138개 산불이 타오르고 있고 이 중 40개가 통제 불능 상태다.

 

CNN과 캐나다 매체 <글로브앤메일>을 보면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포트 넬슨 인근에서 발생한 파커 레이크 산불이 주말 동안 규모를 세 배 불려 13일 오전 포트넬슨 근처 2.5km 지점까지 접근했다. 이 마을 주민 5000명에 대해 이미 지난 10일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재난관리장관 보윈 마는 13일 해당 산불이 이미 5280헥타르((ha)를 태웠다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부 매니토바주도 13일 크랜베리 포티지 마을 인근 1.5km 지점까지 산불이 접근해 주민들이 대피했다고 밝혔다. 매니토바주 산불 관리 책임자 얼 히몬스는 "40년간 산불 대응을 해 왔지만 이번 산불처럼 움직이는 불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글로브앤메일>은 캐나다 소방 당국자들이 기록적 규모의 산불이 번졌던 지난해보다 올해 상황이 더 나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캐나다에선 지난해 산불로 1192만ha가 불탔다. 이는 지난 40년간 가장 큰 연소 면적으로 그 전해 연소 면적의 8배가 넘는다. 캐나다에선 통상 5~9월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온난화로 기온이 높아지며 식생이 더 건조해져 불이 더 빠르고 강하게 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현지시간) 홍수로 브라질 남부 히우그란지두술주 주도 포르투알레그리 시내가 광범위하게 침수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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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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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투세를 둘러싼 4가지 거짓말

1. 금투세가 중산층과 서민을 타격한다?

2. 금투세가 주식시장을 붕괴시킨다?

3. 금투세 도입으로 인한 자본 이탈?

4. 금투세가 한국증시의 저평가를 심화시킨다?

* 금투세 반대 원인?...국힘 평균 재산 56억 중 상당액 금융자산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4.05.09.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실시를 앞두고 정부ˑ여당이 돌연 폐지 의사를 밝혀 논란이 과열되고 있다.

당초 금투세는 2020년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해 2023년부터 시행 예정이었으나 윤석열 정부에 의해 2025년으로 시행이 유예된 상태였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민생토론회에서 느닷없이 금투세 폐지를 공언한 데 이어 최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는 “금투세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우리 증시에서 엄청난 자금이 이탈할 것”이라며 “(금투세 도입시) 1400만 개인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폐지 의지를 천명했다.

이미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금투세 폐지법(소득세법,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중인 상태다.

그러나 금투세 반대여론의 이면에는 시장 현실을 간과한 채 특정 고소득 투자자층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윤석열 정부가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논리적 비약과 가짜 정보를 살펴본다.

1. 금투세가 중산층과 서민을 타격한다?

금투세란 주식, 투자증권, 파생상품이나 펀드, 채권과 같은 금융투자상품으로부터 발생한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이에 따르면 금투세는 국내 상장주식 등에 대한 금융투자소득이 연간 5천만원 이상, 해외 투자 등 기타 금융투자소득이 250만원 이상일 때 부과된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금투세가 중산층과 서민에게 부담을 주는 조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금투세의 주요 과세 대상은 연간 금융투자소득이 5천만 원을 초과하는 고소득 개인투자자들이다.

연간 금융투자소득이 5천만 원을 넘는 이들은 전체 금융투자자 중 0.9%에 불과하다. 금투세는 금융 상위 1%에 대한 세금인 셈이다.

달리 말해 대다수의 중산층 및 서민 투자자들은 금투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금투세가 고소득층에 더 많은 조세 부담을 지우는 공평한 조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2. 금투세가 주식시장을 붕괴시킨다?

정부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이 한국 주식시장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근거가 부족한 공포 조장에 불과하다는 게 중론이다.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과세는 이미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이들 국가의 자본시장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

오히려 금투세는 소득에 따른 과세 형평성을 확보하고 국내 자본시장의 성숙을 도모하는 긍정적인 조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현재 근로·사업·이자소득 등에 세금이 부과되고 있지만 사람들이 기꺼이 근로·사업·예적금에 나서듯, 금융투자소득 역시 세금이 부과된다고 시장이 붕괴될 일은 없다.

3. 금투세 도입으로 인한 자본 이탈?

윤석열 정부는 금투세 도입이 해외자본 이탈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다른 국가들의 예를 통해 반박될 수 있다. 대부분의 주요 국가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세금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에서도 자본 이탈의 심각한 문제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투자 결정은 세금뿐만 아니라 시장의 전반적인 투자 환경, 경제 성장률, 정치적 안정성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 만큼, 금투세 도입 자체가 자본 이탈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많은 국가에서는 금투세 도입이 자본시장의 활성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보고는 거의 없으며, 오히려 과세 체계의 공정성을 향상함으로써 장기 투자를 장려하는 효과가 있었다.

4. 금투세가 한국증시의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킨다?

윤석열 정부는 금투세가 한국 증시의 저평가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 회계 투명성, 주주 친화 정책 등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금투세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일 뿐, 주식시장의 평가 저하를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 아니다.

*금투세 반대 원인?...국힘 평균 재산 56억 중 상당액 금융자산

한편 정부ˑ여당이 고소득 금융투자자에서 걷힐 수 있는 세원을 마다하며 금투세 폐지를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국민의힘 의원과 그 지지자들의 높은 금융소득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2024년 공직자 정기 재산변동사항'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비례정당 국민의미래에 소속된 의원들의 평균 재산은 56억 2537만 원으로 정당 중 가장 많았다. 이중 약 절반 이상이 주식ˑ증권 등 금융자산으로 추정된다.

금투세가 도입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볼 고소득 금융투자자들이 국민의힘에 몰려있다는 말이다.

역대급 세수위기로 국가재정이 망가져 한시바삐 세수 확보에 나서야 할 정부ˑ여당이 유력한 세수확보책을 무시한 채 금투세 폐지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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