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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 시한 일주일…김재연 무기한 단식, 홈플러스 살리기 연대 확산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6/27 09:16
  • 수정일
    2026/06/27 09:1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기자명 김준 기자
  •  
  •  승인 2026.06.26 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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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연 진보당 대표, 무기한 단식 돌입
정육코너에 텀블러, 채소코너에 가위
홈플러스 한마음협의회, 11,480명 민원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가 26일 홈플러스 정상화를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 홈플러스 지부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가 26일 홈플러스 정상화를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 홈플러스 지부

홈플러스 회생절차 기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이들을 살리기 위한 연대가 이어진다. 죽는 것 빼고 다 한 이들을 위해 26일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가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다. 아울러 29일에는 김광창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단식에 돌입할 예정이다.

 

26일 김재연 진보당 대표가 홈플러스 노동자들과 함께 단식에 돌입했다.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해 긴급운용자금 2,000억 원 조달이 시급한데,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 증권이 분담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면서 노동자들만 해고 위기에 처했다.

기자회견에서 안수용 홈플러스 지부장은 “정상화 시키겠다”고 말했던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10만 노동자와 소상공인들의 일자리는 보호할 가치가 없는 것이냐” 따지며 “정부가 노동자의 생존보다 자본의 이해관계에만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우리는 이것이 노동을 존중하는 정부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 김재연 대표는 “노동자와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지키고, 홈플러스 청산이라는 대파국을 막기 위해 오늘 이곳에 섰다”며 단식에 돌입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의 청산 절차가 현실이 되는 순간 수만 명의 노동자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고 소상공인들은 연쇄 도산하게 된다”며 “노동자가 살아야 홈플러스가 살고, 소상공인이 살아야 민생경제가 살아난다”고 이재명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전국 홈플러스 직원들이 매장에서 국민신문고 제출을 위한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 홈플러스 제공
전국 홈플러스 직원들이 매장에서 국민신문고 제출을 위한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 홈플러스 제공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입점점주들도 정부에 파산을 막아달라 호소하고 있다.

 

현재 홈플러스에 자금줄이 끊기면서 폐점이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남은 매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정육코너에 텀블러가, 체소 매대에 가위가 올려지는 상황이다. 상품 공급이 끊기면서 자체브랜드(PB) 상품들이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듬성듬성 위치하는 거다.

홈플러스 직원대의기구 한마음협의회는 협력사와 입점점주 등 총 11,480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신문고를 통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

한마음협의회는 정부를 향해, “전 직원이 회생을 위해 자구 노력을 이어왔지만, 운영자금 고갈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파산을 막기 위해 2,000억 원의 운영자금 대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메리츠금융에게도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이 1,000억원 규모의 연대보증 제공 의사를 밝힌 만큼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도 2,000억원 규모의 긴급 운영자금 대출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며 “메리츠가 사회적 책임과 포용적 금융 차원에서 운영자금을 지원한다면 홈플러스 회생은 물론 채권 회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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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고 뿌리 친일파 민영휘 8000억, 춘천 묘 환수 사정권에

친일재산조사위 16년 만에 부활… 춘천 6만평 묘소 파묘 사정권

친일재산조사위원회 16년 만에 부활, 오는 12월 출범 예정

민영휘 춘천 묘 6만평 시가 34억, 법적 장자 민형식 지분 환수 대상

묘막은 강원도 문화유산 자료로 지정, 안내판엔 친일 행적 빠져

2026-06-26 20:25:35
 

친일파의 재산을 국가가 거둬들이는 작업이 16년 만에 다시 시작된다. 그 첫 사정권에 휘문고와 풍문고의 뿌리인 친일파 민영휘의 무덤이 들어왔다. 강원도 춘천시 동면 장학리, 6만평 산자락에 왕릉처럼 자리 잡은 묘소다. 뉴탐사 취재진은 배기성 역사강사와 함께 이 묘를 직접 찾았다.

 

왕릉처럼 단장된 무덤

 

현장에 들어서자 거대한 신도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신도비는 고관대작의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이다. 비석에는 민영휘의 호를 딴 '하정부군'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정작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친일 행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선조의 벼슬 내력만 빼곡했고, 한일합방을 안타까워했다는 식의 문구만 남아 있었다.

 

봉분은 잘 손질돼 있었고 석물도 번듯했다. 묘로 오르는 길목에는 가축 사육 제한 구역 표지가 서 있었고, 큰 개 두 마리가 사납게 짖었다. 이 땅의 면적은 약 6만평이다. 개별 공시지가로 계산하면 시가가 34억원에 이른다. 등기부에는 권리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체납된 세금 탓에 여러 차례 압류된 흔적도 보였다.

 

휘문과 풍문, 그리고 8000억

 

민영휘는 1906년 휘문고의 전신인 휘문의숙을 세웠다. 다섯 번째 첩 안유풍의 이름을 딴 학교가 지금의 풍문고다. 두 학교 이름에는 민영휘 부부의 흔적이 그대로 박혀 있다. 그는 1910년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 친일로 권력을 등에 업고 재산을 불렸다. 말년 재산은 오늘날 가치로 4800억~7800억원, 흔히 8000억원대로 불린다.

 

명성황후의 먼 친척으로 여흥 민씨 권력의 한복판에 있었다. 배기성 역사강사는 그를 가렴주구의 대명사로 짚었다. 평안도 관찰사 시절의 수탈이 갑오년 동학농민전쟁의 한 불씨가 됐다는 것이다. 배 강사는 백범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일화도 들려줬다. 옥에 갇힌 아들에게 곽 여사가 "평안 감사가 된 것보다 낫다"고 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평안 감사, 곧 민영휘의 악명이 백성들 사이에 자자했다는 뜻이다. 배 강사는 "오로지 자기 영리 영달만을 위해 일평생을 살았다"고 말했다.

 

'조선 후기 정치인'으로 둔갑한 묘막

 

묘소 아래에는 무덤을 지키는 가옥이 따로 있다. 이름은 춘천 민성기 가옥, 민영휘의 증손자대 인물 이름을 땄다. 이 집은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 자료로 지정돼 있다. 관리비도 예산으로 집행된다. 문제는 안내판이다. 안내판은 민영휘를 "조선 후기 관료이자 정치인"이라고만 적어놨다. 친일파라는 사실은 한 글자도 없다.

 

배 강사는 안내판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람은 친일파"라고 했다. 그는 "이런다고 친일 매국노 민영휘의 악행이 덮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영문 안내문에도 친일 행적은 빠져 있었다. 두 학교를 두고는 "알고 보면 민영휘의 고등학생, 안유풍의 고등학생"이라고 표현했다.

 

환수 사정권에 든 6만평

 

친일재산 환수의 법적 절차가 다시 움직인다. 친일재산국가귀속법은 5월 7일 국회를 통과했다. 6월 2일 공포됐고, 6개월 뒤인 12월 2일 시행된다. 2010년 활동을 멈췄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16년 만에 부활한다. 환수 대상에는 친일재산은 물론, 이를 처분해 챙긴 대가까지 포함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친일재산 환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다시 마련됐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12월 출범한다.

 

뉴탐사 취재진이 민영휘 묘를 찾은 날, 공교롭게도 법무부에서는 조사위 설립준비단 발족식이 열렸다. 취재진은 환수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용만 의원실에도 이 묘소를 알렸다.

 

환수의 길은 등기를 들여다보면 보인다. 이 땅은 민영휘 한 사람이 아니라 법적 장자 민형식과 안유풍 소생인 민대식·민규식·민천식의 이름으로 사정됐다. 민형식은 민영휘의 자작을 물려받았고, 정부가 공식 인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그의 지분은 환수 대상이 된다. 민규식도 친일 행적이 있어 환수 가능성이 높다. 지분이 국가로 넘어가면 무덤 역시 파묘를 피하기 어렵다.

 

청주 상당산성에서는 이미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국가로 귀속된 땅에 묘를 쓸 수 없어 안유풍과 민대식, 민천식의 묘가 모두 파묘됐다. 충북인뉴스 김남균 기자가 이끄는 '친일청산 마적단'이 그 토지를 추적한 결과였다. 정작 민영휘 본인의 무덤만 춘천에 그대로 남아 있다.

 

민영휘 일가는 해방 뒤에도 힘을 잃지 않았다. 휘문과 풍문 학원 이사장직을 대물림했고, 증손자 민헌기는 서울대 의대 교수를 지냈다. 친일재산 환수에는 후손들이 줄곧 소송으로 맞서 왔다. 묘막의 문화재 지정과 안내판 표기를 손질할 권한은 강원도와 춘천시에 있다. 우상호 강원도지사와 육동한 춘천시장이 이를 어떻게 다룰지가 남은 변수다.

 

역사까지 손봤다는 가문

 

배 강사의 이야기는 무덤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여흥 민씨 삼방파가 막대한 재력으로 역사 자체를 손봤다고 봤다. 인현왕후를 선, 장희빈을 악으로 새긴 대중의 기억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배 강사는 1980년대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을 그 통로로 지목하며 "완벽한 역사적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인현왕후가 바로 민영휘 가문의 선대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검증이 더 필요한 해석이다. 다만 그는 "민영휘만 보면 조선 후기를 통째로 말아먹은 집안"이라고 했다.

 

조사위는 12월 출범한다. 민영휘의 무덤은 아직 춘천 장학리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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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뱃속의 쥐'와 한국 정치의 미래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김종구(언론인) | 기사입력 2026.06.27. 00:13:45 최종수정 2026.06.27. 08:39:59

한 사회의 가치관은 사람들의 생각이 한꺼번에 바뀌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낡은 세대가 물러나고, 다른 생각을 품은 젊은 세대가 그 자리를 메우면서 서서히 방향을 바꾼다. 가치관의 변화는 설득의 결과라기보다 세대교체의 결과다.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의 가치가 물질주의에서 탈물질주의로 이동하는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조용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피파 노리스는 '뱀 뱃속의 쥐'라는 인구학적 비유로 설명했다. 비단뱀이 삼킨 쥐는 곧바로 소화되지 않는다. 뱀의 몸통을 따라 천천히 이동한다.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거대한 꿈틀거림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청년 세대가 품은 가치관은 세월과 함께 사회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미래의 정치 지형도 서서히 바뀐다. 정치는 세월을 등에 업고 세대와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20·30대 젊은이들은 이제 40·50대가 됐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개혁과 인권의 가치를 자신의 시간 속에 새겼다. 몸은 늙어가도 청년기의 신념은 쉽게 늙지 않는다. 이들은 지금 진보 진영을 떠받치는 가장 두터운 기둥이 됐다. 민주당이 누리는 정치적 우위는 상당 부분 이 세대가 만들어낸 인구학적 흐름 위에 서 있다.

2030남성, '보수화' 아닌 '진보 이동 차단'

문제는 그다음이다. 몸통을 지나고 있는 쥐는 머지않아 꼬리로 이동한다. 그런데 뒤따라오는 2030세대는 앞선 세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깊은 성별 균열이 세대 내부를 가르고 있다. 2025년 대선에서 20대 여성의 58%는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다. 반면 20대 남성의 지지는 24%에 그쳤다. 내란과 탄핵이라는 거센 정치적 격랑을 겪고도 김문수·이준석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이런 흐름은 2026년 6·3 지방선거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현상을 단순히 '청년 남성의 보수화'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윤석열 정부에 일찌감치 등을 돌렸다. 탄핵에도 찬성했다. 그런데도 진보로 향하지 않았다. 이들의 선택은 '보수화'라기보다는 '진보로의 이동 차단'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이 세대 남성에게 깊이 새겨진 것은 내란 사태가 아니다. 그보다 앞선 10년의 생존 경쟁과 젠더 갈등이었다. 내란이 닥쳤을 때 그들은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굳어 있었다. 헌정질서를 뿌리채 흔든 충격적 사건도 그 틀을 깨뜨리지 못했다.

내란 이후 탄핵 광장의 풍경도 굴절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응원봉의 거리는 여성의 공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흐름에 합류하는 게 마치 젠더 갈등의 다른 편에 서는 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정치적 선택은 깊게 패인 갈등의 물길을 따라 흘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를 읽는 핵심 기준이 달라진 점이다.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공정·능력·역차별'이 새로운 눈금이 됐다. 치솟는 집값, 치열한 취업 경쟁, 계층 이동의 어려움, 병역 의무와 젠더 갈등이 청년들의 시간을 채웠다. 많은 청년들은 민주당이 자신들이 겪는 불공정과 박탈감보다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을 앞세운다고 받아들였다. 자신의 삶이 정치의 언어에서 빠져 있다고 느끼며 이들은 점차 민주당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30대 여성, '가치 투표'와 '자산 투표'의 충돌 시작

주목할 대목은 2030 여성에서도 미세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는 점이다. 6·3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여성의 56.7%는 정원오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1년 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얻은 58.1%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30대 여성의 민주당 지지는 51.3%에 머물렀다. 가까스로 우위를 지켰으나 대선 때(57.3%)보다 6%포인트가량 내려앉았다.

30대는 삶의 무게가 달라지는 나이다. 결혼과 출산, 주택 구입, 자녀 교육 등과 맞닥뜨리는 시기다. 정치적 가치만이 아니라 경제적 이해관계가 삶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성평등과 인권,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믿음은 여전해도 아파트 가격, 은행 대출, 자산 형성에도 매우 민감해진다. 정치적으로 '가치 투표'와 '자산 투표'가 충돌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타난 30대 여성의 표심은 변화의 첫 징후일지 모른다. 진보의 가치를 품고 뱀의 몸속으로 들어온 쥐가 생애주기와 자산이라는 길목을 지나며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그 변화는 작다. 그러나 오늘의 미세한 균열은 내일의 정치 지형이 된다. 여성이 민주당의 영원한 지지 기반으로 남을 것이라는 기대는 오산에 가깝다.

코스피 호황도 양날의 칼이다. 자산시장은 가진 사람의 재산을 불려준다. 그러나 종잣돈 없는 청년에게 호황은 남의 잔치다. 번쩍이는 주가의 불빛은 자신의 빈손만 더 선명하게 비출 뿐이다. 상대적 박탈감의 청구서는 결국 정부여당에게 돌아온다. 만약 주가 오름세가 갑자기 꺾여 장세가 크게 흔들리면 상황은 더욱 무거워진다. 뒤늦게 빚을 내 올라탄 청년들이 시장의 흔들림 속에서 상처를 입는다면 그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인구학적 우위의 종말

한국 정치의 내일은 20·30대가 결정한다. 그들은 민주주의보다 공정을, 이념보다 자산 형성 기회를, 역사보다 미래를 더 절박하게 바라본다. 지금의 성별 균열과 박탈감이 한때의 청년기를 지나 세대의 기억으로 굳어진다면, 민주당이 누려온 인구학적 우위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진보 정치는 이제 오래된 언어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민주화의 기억만으로 미래를 설득할 수도 없다. 청년들의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정치적 문법'을 세워야 한다.

첫째, 민주주의와 공정이 만나야 한다. 청년들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묻고 있을 뿐이다. 절차와 제도만으로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공정한 출발, 공정한 경쟁, 다시 일어설 기회를 민주주의가 만들어준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삶 속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을 '공정 대 반칙'이라는 새로운 전선으로 바꾸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청년들에게 기성세대의 향수로만 들릴 것이다.

둘째, 청년들에게 자산을 일굴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청년들이 느끼는 박탈감의 뿌리는 스스로 삶을 일으킬 기회를 잃었다는 데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하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다. 주택과 금융, 창업과 노동시장 전반에서 누구나 자산 형성의 사다리 첫 칸을 디딜 수 있어야 한다. 자본시장 호황도 그 열기가 청년의 삶을 데우지 못한다면 빈 껍데기 호황에 불과하다.

셋째, 청년의 상처는 물질적 보상만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부당하게 대우받는 세대'라는 인식이 굳어지면 어떤 지원도 마음을 되돌리기 어렵다. 필요한 것은 돈을 넘어선 '인정의 정치'다. 청년들의 불안과 분노를 사회적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인정의 정치'란 분노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원천을 함께 응시하며 해법을 찾는 일이다. 다음 세대를 가르치려는 정치보다,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정치가 더 오래 살아남는다.

넷째,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정치는 젠더 갈등에 너무 오래 사로잡혀 있었다. 여성의 권익과 성평등은 여전히 지켜야 할 가치다. 그러나 사람을 성별로만 나누기 시작하면 함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공정은 누구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질서다. 그 질서가 흔들리면 갈등은 끝없이 되풀이된다. 집을 구하는 일, 일자리를 얻는 일, 불안정한 노동을 견디는 일,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남성과 여성을 함께 짓누르는 삶의 무게다. 정치는 그 무게를 함께 덜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갈라졌던 두 마리의 쥐가 다시 같은 길을 갈 수 있다.

'미래의 쥐'를 둘러싼 장기전

마지막으로, '미래의 쥐'를 바라보아야 한다. 정치는 선거를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시간은 선거보다 훨씬 길다. '뱀 뱃속의 쥐'가 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이제 막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으며 자라느냐에 따라 정치의 미래가 달라진다. 미래를 바꾸려면 지금부터 다음 세대의 마음에 씨앗을 뿌려야 한다.

비단뱀의 뱃속에서 젊은 쥐는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 정치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시간이 데려올 문제를 먼저 보고, 길을 바로잡는 일이다. 2028년 총선과 그 이후의 대선은 권력을 겨루는 승부만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지, 어떤 가치를 남길 것인지를 묻는 시간이다. 허락된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뱀은 오늘도 앞으로 나아간다. 몸속의 쥐도 멈추지 않는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김종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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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경쟁하는 첫 세대...'전업 자녀' 청년의 현실

[소셜 코리아] 청년정책의 개혁을 위한 세 가지 제언

26.06.26 06:41최종 업데이트 26.06.26 09:08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88만원 세대, 이태백, N포세대.

지난 20년간 청년을 부르는 이름은 계속 변화해왔다. 이 이름들에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위험이 담겨 있다. '88만원 세대'가 저임금 노동과 비정규직 문제를 드러냈다면, '이태백'은 높은 청년실업률과 학교-노동시장 이행의 실패를 보여주었다. 'N포세대'는 청년의 일자리 문제가 주거, 결혼, 출산, 삶의 전망 전체로 확장되었음을 투영한다. 그리고 2026년, 청년은 '전업자녀'로 불린다. 청년 고용문제가 악화하면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 청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녀는 부모의 경제적 보호 속에서 역량 축적 시간을 확보하고, 부모는 가사나 돌봄 부담을 덜고 고령화에 대비하는 부모-자녀 상호이익을 얻는 세대가 나타났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책 를 통해 이러한 새로운 가족 유형을 ‘전업자녀’라고 이름 붙였다. ⓒ한국경제신문

청년문제의 핵심은 학교를 졸업하고도 바로 일자리에 안착하지 못하는 노동시장 이행의 어려움이다. 15-29세 청년 고용률은 23개월 연속으로 하락하고 있고, 졸업 후 첫 취업에 소요되는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2025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청년이 최종학교를 졸업하고 첫 일자리를 얻는데 걸리는 평균 기간은 11.3개월이며, 1년 이상 걸린다고 응답한 청년은 31.3%에 달한다(국가데이터처, 2025).

20-39세 청년 중 특별한 사유없이 구직활동을 하거나 취업하지 않은 '쉬었음' 청년은 65만 4천 명(2026년 4월 기준)으로, 2003년 동월(29만 8천 명)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청년 인구가 지속해서 감소하는 것을 고려하면 수치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많은 청년이 쉬었음 상태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쉬었음 인구 월별 변화 추이.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 2003-2026

여러 실증연구들은 청년의 노동시장 이행이 누가 더 오래 준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지원할 가족자원이 충분한지에 따라 달라짐을 보여준다.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청년은 취업을 미루고 좋은 일자리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출생 코호트일수록 20대에 경험하는 학교-노동시장 이행은 더 길고 불안정하며 비선형적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불리한 가족배경을 가진 청년이 더 분절적이고 불안정한 이행을 경험한다. 즉,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청년은 생계를 위한 조기 취업을 유예하고 더 긴 탐색 기간을 가질 수 있는 반면에, 가족자원이 부족한 청년은 저숙련·저임금 일자리로 더 빠르게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청년의 노동이행 어려움이 사회구조적 불평등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 노동시장 이행의 격차. A. 1969-1985년생이 19~29세에 좋은 일자리(중위임금 이상 상용직 일자리)를 가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버지 교육수준(가족배경)에 따른 차이가 최근 코호트에서 커진다. B. 1980-1996년생이 18-34세 코호트별 정규직 이행 비율 변화이다. 최근 코호트에서 아버지 직업이 일반기술/단순노무직인 경우 정규직 이행확률이 크게 감소하는 것을 보여준다.변금선(2018), 하은솔(2026)이 한국노동패널자료를 이용해 분석.

AI에게 밀려나는 청년들...부모도 버팀목 되기 어렵다

AI는 청년 노동시장 이행을 다른 방향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기업은 신입사원보다 경력직을 선호하고, AI는 이러한 흐름을 더 거세게 만든다. AI가 모두의 일자리를 똑같이 줄이는 것이 아니라, 경력 초기 청년의 일자리부터 대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규입사자인 근속 1년 미만자 중 청년층(15~29세) 비중은 2006년 33.6%에서 2025년 25.2%로 하락했다(경총, 2026). 최근 3년간 청년층 일자리는 21만 1천 개 줄었는데, 이 중 20만 8천 개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감소했다(한국은행, 2025).

신규채용 중 청년층 비중 추이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

AI 노출도에 따른 연령대별 고용증감국민연금공단 ‘지역별 고용조사’

AI 시대에는 청년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지금까지는 가족자원이 청년에게 더 긴 준비기간을 제공하는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AI가 청년의 첫 일자리 자체를 줄이는 상황에서는 부모의 지원도 좋은 일자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전략적으로 이행을 유예하던 중상층 가정의 청년조차 좋은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지고, 더 많은 청년이 원하지 않는 '쉬었음' 상태에 놓일 수 있다. 현행 미취업 청년을 위한 정책은 대부분 부모 혹은 본인의 소득과 자산을 자격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별하고, 구직활동과 특정 프로그램 참여를 조건으로 지원한다. 그러나 일자리가 없고 청년 다수가 불안정한 이행의 단절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선별적 정책은 오히려 청년 사각지대를 넓힐 뿐이다.

AI와 경쟁하는 첫 세대, 청년을 위한 정책 혁신이 필요하다

AI 시대의 청년정책은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청년 누구나 안정적으로 미래를 탐색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보편적 정책을 확충해야 한다.

88만원 세대부터 이태백, N포세대까지. 지난 20년간 청년을 부르는 이름은 계속 변화해왔다. 이 이름들에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위험이 담겨 있다. 구글AI스튜디오 생성형 이미지

첫째, 보편적인 청년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현재 미취업 청년을 위한 정책은 구직활동을 조건으로 6개월간 월 50만 원의 수당을 지원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구직활동을 조건으로 한 단기 현금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 파고를 버틸 수 있도록 청년 누구나 기본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과 서비스를 보장해야 한다.

둘째, 청년이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모든 청년이 AI 개발자나 로봇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 등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 해결과 관련해 청년이 일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 가치를 창출하는 한편, 청년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구상하는 '청년 참여소득 시범사업'이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셋째, 산업전환 과정에서 초과이익을 얻는 기업이 사회초년생을 위한 신규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인공지능 전환(AX) 과정에서 청년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불가피한 변화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청년채용을 미래인재를 키우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관련 경력이나 전공자가 아니어도 일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숙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AI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판단, 관계, 책임, 창의성은 어떻게 기를 것인가. 청년이 기술에 적응하도록 요구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기술이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의 능력과 사회적 역할을 키우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AI 시대, 우리는 청년을 어떻게 호명하게 될 것인가. AI와의 경쟁에서 설 자리를 빼앗기고 노동시장 바깥으로 밀려나는 청년을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

변금선 서울연구원 인구변화대응연구센터장본인

필자 소개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을 거쳐 2020년부터 서울연구원에서 청년, 인구, 복지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지역사회보장위원회 위원,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청년신진분과위원장, LAB2050 연구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생애과정 빈곤과 불평등 관점에서 청년, 소득보장, 그리고 AI돌봄과 복지를 연구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에게 복지정책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손쉽게 설명해준 <복지, 그게 뭐예요?>(사계절)을 쓰기도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전업자녀 #청년노동시장 #청년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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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내란 재판 때 '5·18 특별법 위헌' 주장한 전상석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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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전상석 편

군 법무관 시절엔 군단장에 맞고도 굽히지 않아

동양통신 필화사건에 무죄 선고한 강직함도

사법파동 때 판사 153명 집단사표 주동했지만

조금씩 체제 순화, 재일 유학생 강종헌에 사형

고문 조작한 간첩단 박노수·김규남에도 사형

대법관 재임용 탈락 후엔 전경환·장세동 변호

전두환 회고록에 "여간 고마운 일 아니었다"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쳤다. 전상석(全尙錫, 1929~2001) 항목에서 가장 인상적인 일화는 그가 평생 사직서를 품고 다녔다는 것이다. 친구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유신헌법 시절 대통령긴급명령 조치에 불만하여 골프공에 무엇 무엇이라고 쓴 공을 치고 울분을 달래었"으며, 늘 사직서를 써서 갖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직서는 30년 가까운 법관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바깥 구경을 하지 못했다. 속으로는 울분을 삼키면서, 손으로는 사형을 선고하고 긴급조치를 집행했다. 이것이 전상석이라는 인물의 핵심적인 비극이다.

1929년 서울 아현동 출생, 양정중학교에서 법조계로

전상석은 호적상 1929년 9월 4일(실제로는 1928년 음력 7월 14일) 서울 아현동에서 태어났다. 미동초등학교, 양정중학교를 거쳐 1952년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1954년 제6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군 법무관 시절, 거구의 군단장이 얼굴을 때리면서까지 부정처분 사건 피고의 석방을 명령했지만, 그는 "군법회의 재판도 거쳐야 한다"며 끝까지 명령을 거부했다고 전해진다. 권력 앞에서 굽히지 않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전상석(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명판결과 오욕' 사이를 오간 법관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이 떠오른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 집권 초기까지 활동한 일부 법관들은 처음에는 인권을 옹호하는 진보적 판결을 내렸으나, 체제가 강고해지면서 점차 그 체제의 도구로 변해갔다. 학자들은 이를 "점진적 동화(gradual accommodation)"라 부른다. 단번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타협들이 쌓여 결국 큰 타락에 이르는 과정이다. 전상석의 30년이 정확히 이 궤적을 그린다.

1970년, "기밀이 아니다"라는 명판결

전상석의 이력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1970년 동양통신 필화사건이다. 국방부장관이 국회에서 공개한 내용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기자들이 군사기밀 누설로 기소됐는데, 전상석은 "불특정 다수인에게 공개된 공연한 사실은 기밀이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언론은 국가안보와 언론자유의 한계에 대한 '획기적' 판결이라 평가했다.

 

전상석.(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69년 박노수·김규남 사건, 사형선고, 그리고 43년 만의 무죄

같은 시기 전상석은 유럽거점 간첩단사건 1심 재판장으로 박노수와 김규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중앙정보부가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이었다. 박노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법학박사였고, 김규남은 현직 공화당 국회의원이었다. 1972년 7월, 두 사람은 재심이 진행 중이던 와중에 사형이 집행됐다. 2015년 12월, 대법원은 사형 집행 43년 만에 무죄를 확정했다. 재판부는 "사과와 위로의 말씀과 함께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명복을 빌 대상이 이미 43년 전에 죽은 사람이었다.

 

이른바 ‘유럽간첩단’사건으로 재판 받는 피고인들. 오른쪽에서 맨 끝이 박노수. 그 옆이 김규남이다. ⓒ 진실위 자료사진

1971년 사법파동, 눈물 흘리던 리더

전상석 이력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1971년 7월 사법파동이다. 검찰이 판사 3명에 대해 향응수수를 빌미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화가 난 판사들은 성격이 화통하고 리더십이 강한 형사8부 부장판사 전상석의 방에 모여들었다. "이럴 바에 우리 다 쥐약 먹고 죽어버리자"는 말까지 나왔다. 판사들이 문을 잠그고 커튼을 친 채 대책을 논의했고, 회의가 끝난 후 기자들이 들어갔을 때 전상석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서 사표를 썼다. 전국에서 153명의 판사가 사표를 제출하는, 사법사상 초유의 집단행동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1971년 사법파동을 보도한 ㄱ 해 7월 29일 조선일보 1면(나무위키)

유신 이후, 승승장구하는 '체제수호의 첨병'

그러나 사법파동은 허무하게 끝났다. 그리고 1972년 유신 선포 이후, 전상석은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사법파동 주역이었던 유태흥(1919~2005)이 형사지법원장으로 영전한 것처럼, 전상석도 체제의 일부가 됐다. 그가 사표를 썼던 그 손으로, 이제는 재일 유학생 강종헌과 김철현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들은 모두 재심에서 무죄가 됐고, 『반헌법행위자열전』은 "김철현은 2026년 현재도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적었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3·1민주구국선언, "교활한 이중인격자"

1976년 명동성당 3·1민주구국선언 사건 1심 재판장으로서 전상석은 김대중(1924~2009), 윤보선(1897~1990), 함석헌(1901~1989), 문익환(1918~1994)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변호인단 26명이 항의하며 전원 사임했다. 피고인이었던 함세웅 신부는 그를 "아주 교활한 이중인격자"라고 평가했다. 변호사 홍성우는 다른 시선으로 "통이 큰 분"이라고 회고했지만, 같은 사건을 겪은 두 사람의 평가가 이렇게 갈린다는 것 자체가 전상석의 복잡한 양면성을 보여준다.

 

1976년 명동성당 3·1민주구국선언 사건 당시 함석헌. 이희호, 김대중.(함석헌기념사업회)

전두환 정권, 그리고 변호사가 되어서도 전두환을 변호하다

대법원 판사가 된 전상석은 1983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에서 문부식과 김현장의 사형을 확정했다. 전두환이 곧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1986년 대법원판사 재임명에서 탈락한 후, 그는 변호사로서 전경환(전두환의 동생) 새마을비리 사건과 장세동 사건을 변호했다. 그리고 1996년, 전두환 내란재판에서 전두환의 변호인으로 나서 5·18특별법을 위헌이라 주장하며 재판부와 격렬히 충돌했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전상석에 대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고 길게 적어 감사를 표했다.

 

전상석(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점진적 동화'를 겪은 법관들의 역사는 가장 위험한 경고로 남는다. 한 번에 타락하는 사람은 드물다. 작은 타협들이 쌓여 큰 타락이 된다. 전상석은 사법파동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그 직후 유신체제의 승진 사다리를 올랐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전상석의 사직서를 떠올렸다. 평생 품고 다녔지만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그 종이가, 한국사법부의 가장 슬픈 상징으로 남아 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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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경협’이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 기자명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6.26 06:50
  •  
  •  댓글 0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피조물은 처음부터 잔혹한 악마가 아니었다. 인간과 소통하고 선의를 나누고 싶어 했던 선량한 마음을 품은 존재였다. 그러나 기괴한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괴물’이라는 낙인이 찍한 순간 피조물은 절망하며 외친다. “너희가 나를 악마라 부르니, 행동으로 내가 악마임을 증명해주마.” 창조주를 향한 복수의 화신으로 전락해 버린 우리의 주인공은 외부의 지적과 비판을 흡수한 존재가 급기야 원래의 모습을 비틀어 바깥에서 예언한대로 구체화되고 마는 역설을 보여준다.

1944년 탄생한 국제통화기금(IMF)도 본래의 목적을 이탈해 정착한 케이스다. 당초 IMF는 일시적인 외환위기에 직면한 국가들에게 자금을 융통하여 세계 경제의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순수한 금융 소방수의 목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제3세계와 비판적 경제학자들이 “저 기구는 미국 금융자본의 대리인이자 약소국 경제를 수탈하는 도구”라고 거칠게 비판하자, IMF는 생존 과정에서 아예 그 비판의 틀을 체화한다. 냉전기를 거치며 IMF는 피지원국에 미국식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가혹한 ‘월스트리트의 칼날’로 완벽히 변질된다.

1947년 부처 간 정보 분석을 조율하기 위한 순수 연구·분석 기구로 출범했던 미 중앙정보국(CIA)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 “해외 정권을 전복하고 독재자를 육성하는 공작 괴물이 될 것”이라는 의회의 우려와 의심에 부딪히자, CIA는 자신들의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해 아예 그 비판적 예측 속으로 뛰어들어 비밀공작의 사령탑이 되었다. 대화와 타협의 중재자였던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단이 전쟁의 압박 속에서 결국 독재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소멸한 서사 또한 순수한 목적이 특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파멸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유사한 역설의 그림자가 지금 외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특별한 행보 위에 드리워져 있다. 외무부가 지난 6월 5일 출범시킨 ‘한·중동 포괄적 경제협력 태스크포스(TF)’를 둘러싼 환경이 정확히 과거 사례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나 명분으로나 TF의 출범 자체는 대단히 시의적절하고 전략적인 포석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미국과 이란 간의 종전 논의가 가시화되는 국면에서, 중동 지역의 전후 재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의 진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은 국가 경제적 실리를 최우선으로 둔 대단히 갸륵한 기획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지난 6월 16일 프랑스 에비앙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 만찬에서, 주최국과의 치밀한 사전 교섭 끝에 우리 대통령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바로 옆자리에 앉히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것 역시 모처럼 있는 외무부의 ‘득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중동 TF’가 과연 당초의 ‘순수한’ 설립 취지에 따라 움직일는지 여부에 대한 의심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이익에 봉사해 온 외무부의 전력 때문이다. 그리고 한 시간 반 동안 나란히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트럼프가 이란 재건자금 3천억 달러에 관해 이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합리적인 추론 때문이기도 하다.

자주연합을 비롯한 진보 단체들이 연이어 내놓는 비판과 의심의 골자는 명확하다. 이번 중동 경협 구상이 진짜 경제적 목적이 아니라 트럼프가 던진 거대한 ‘중동 청구서’를 조용히 대납하기 위한 사전 위장막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를 단순한 음모론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는 트럼프의 전형적인 비즈니스 문법에 있다. 트럼프는 사실상 미국의 ‘전쟁 배상금’을 우방과 동맹국들에게 전가하려고 노골적으로 압박해 왔고, 그 분담의 주체로 한국이 강력하게 거론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시기적으로 TF가 에비앙 만찬 이전에 먼저 신설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의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초의 순수한 의도와 전략적 기획이 에비앙 만찬이라는 ‘결정적’ 국면에 처해 ‘트럼프의 압박’이라는 덫에 걸려들었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수 TF가 트럼프에 의해 오염되었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만찬 자리에서 조선의 핵문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현실론’적 접근법을 트럼프가 수긍하는 모습을 보일 때 이 대통령으로서는 그러한 ‘긍정적 고갯짓’을 트럼프가 좋아하는 금전적 ‘한 방’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싶었을 가능성도 있다. 

당초 6월 5일 TF 출범 당일 외무부는 보도자료로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안정화와 고부가가치 신산업 협력이라는 원론적인 목적만을 전면에 내세웠었다. 처음에는 전후 재건 시장의 선점이니 우리 기업의 진출 발판 마련이니 하는 얘기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6월 22일 조현 외무장관은 직접 기자간담회를 갖고 “미·이란 간 MOU 타결 가능성이 거론되기 전부터 선제적으로 대비해 왔다”면서, TF의 핵심 임무를 ‘우리 기업들의 중동 피해 복구 사업 참여’와 연결 지어 홍보했다. 진짜 우리기업 지원이라면 문제는 없다.

문제의 대목이 바로 프랑켄슈타인과 IMF와 CIA의 역설이다. 우리 기업의 중동 진출과 공급망 안보라는 국익을 위해 도출된 기획이 외부의 압박과 “결국 미국의 대리 기구”라는 지탄에 직면해 끝내 비판자들이 우려하던 최악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바꾸어버릴 가능성 말이다. 관료제적 속성상 상부의 지시와 미국의 강요가 지속되면 TF는 당초의 주체적인 경협 기획들을 슬그머니 뒤로 미뤄두고, 속으로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겉으로는 ‘국익을 위한 투자’처럼 그럴듯하게 장식하려고 고심하는 미국 ‘앞잡이 기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물론 그러한 굴절된 프레임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냉정하게 자문해야 한다. 왜 우리가 타국이 일으킨 못된 전쟁의 뒷수습을 대신 짊어져야 하는가. 대한민국이 미국의 채무대납자라는 말인가.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환심을 사는 일종의 ‘페이스메이커’ 비용으로 이 재건자금을 대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기도 한다. 국익을 거래의 제물로 바치겠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트럼프의 외교는 선불로 지불한 의리에 보답하는 법이 없다. 우리가 먼저 저자세로 청구서를 받아드는 순간 동맹이라는 이름의 약탈적 요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뿐.

이제 외무부의 중동 TF는 자신이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아님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비판과 압박에 밀려 결국 예언된 괴물로 타락하지 않으려면 당초 세웠던 갸륵한 경제적 초심을 날카롭게 유지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미국의 백지수표가 아니다. 미국의 부당한 재정 전가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 철저히 우리 기업의 중동 진출 지원과 국익 확보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외무부는 모처럼 얻은 ‘득점’을 미국의 치다꺼리에 날리지 말 일이다.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정신을 다시 깊이 새겨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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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환수 땐 전쟁 나도 미군 안 온다?…지금도 전시 지원 규모 한국은 몰라

권혁철기자

  • 수정 2026-06-26 06:51

전작권 환수, 오해를 넘어

② 전쟁 수행 가능한 군대 만들기

2024년 6월22일 미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이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해군 제공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에 반대하는 진영은 미군이 전작권을 넘겨주면 “전쟁이 나도 미군이 한국을 도우러 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전쟁 때 국가 존망의 위기를 미군 등의 도움으로 넘긴 기억 때문에 이런 우려가 나온다.

한미연합군사령부(연합사)에는 전쟁 등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 전투부대와 주한미군, 미국에서 오는 증원군을 하나로 묶어 지휘하는 작전계획이 있다. 전작권 환수 뒤 연합사가 해체되면 이 작전계획이 사라지고 전시증원전력도 없을 것이라는 게 전작권 환수 반대 쪽에서 펴는 주요 논리다.

전시증원전력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이 기존 2만8천명 규모의 주한미군에 더해 한반도 전장에 보내는 병력과 무기체계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일부에서는 시차별 부대전개제원(TPFDD)에 △육해공군 및 해병대를 포함한 병력 69만여명 △5개 항모전투단 등 해군 함정 160여척 △전투기 등 항공기 1600여대 등이 미군 전시증원전력 규모로 정해져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시에 미군이 얼마나 지원되는지는 군 관계자들도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이다.

한 군 관계자는 한겨레에 “미국이 전시증원전력의 상세한 내용을 우리에게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미군 현역 전체 병력 규모가 130만명가량인 상황에서 이 규모의 절반이 넘는 ‘전시증원전력 69만명’이라는 숫자는 현실적이지 않다. 미 전체 항모전단이 11개로 전시증원전력 항모전단 5개는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한국군 내부에서도 “69만명 규모 등 대규모 전시증원전력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미국의 전략도 과거와 달라졌다.

증원전력 69만명이라는 것은 중동과 한반도에서 동시 전쟁 발발 시 북한이 전쟁 목적을 달성하기 이전에 저지·격퇴한다는 ‘윈윈 전략’에 따른 것이다. 미국 행정부에서 이 전략은 1990년대 초반에 형성돼, 2012년 폐기됐다.

현재 미국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하며 있는 주한미군도 필요하면 한반도 밖으로 내보내겠다고 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북한 억제에 대한 ‘주도적 책임’을 한국에 맡기고 미국의 역할은 ‘결정적이지만 제한적인 지원’으로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국 주도, 미국 지원’으로 한반도 방어 구조가 재편되고 있어 전작권 환수와 무관하게 미국의 대규모 전시증원전력은 실체가 불투명해졌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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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126년만 강진에 32명 숨져…"사망자 1만 명 넘길 수도"

24일 저녁 북부서 규모 7.5 '이중 지진'…수도 카라카스 건물 붕괴·시몬 볼리바르 공항 폐쇄

김효진 기자 | 기사입력 2026.06.25. 18:30:20

베네수엘라 북부에 126년 만에 가장 강한 지진이 발생해 최소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4일 오후 6시 4~5분께 베네수엘라 북부에서 39초 간격으로 규모 7.2 및 7.5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다. 첫 지진은 야라카이주 산펠리페 인근에서, 두 번째 지진도 인근 유마레 근처에서 발생했다. 첫 지진 발생 깊이는 20km, 두 번째 깊이는 10km였다. 지질조사국은 이 이중 지진의 첫 지진을 전진, 다음 지진을 본진으로 설명했다.

실종자 수색 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AP> 통신을 보면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은 지진 여파로 25일 새벽 기준 최소 32명이 숨지고 70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로드리게스 대행은 지진으로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이 피해를 입어 폐쇄됐고 카라카스 지하철 및 천연가스 서비스도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또 학교 수업도 며칠간 중단될 예정이라고 했다. 일부 학교 건물은 대피소 및 기부 거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미 지질조사국 자료를 보면 베네수엘라 기준 이번 지진은 1900년 10월29일 규모 7.7로 추정된 카라카스 지진 뒤 126년 만에 가장 큰 지진이다. 지질조사국은 베네수엘라 북부는 과거 큰 지진이 발생해 온 지역이지만 이번 지진 발생 지점 250km 이내에선 지난 100년간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7번만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 중 2번은 지난해 9월 연이어 발생했다.

미 지질조사국 "사망자 1만~10만 이를 가능성 44%"

이번 지진 사망자가 1만 명을 넘길 확률이 상당하다는 추정이 나와 우려가 커진다. 미 지질조사국은 사망자가 1만~10만 명에 이를 가능성이 44%, 10만 명을 넘길 가능성도 30%로 봤다. 사망자 수가 1000명~1만 명에 이를 가능성은 22%로 봤다. 조사국은 "이 지역 주민들이 전반적으로 지진에 취약한 구조의 건물들에 거주 중"이라고 설명했다.

카라카스는 큰 혼란에 빠졌다. <AP>는 카라카스 시민들이 건물 밖으로 대피해 거리로 나와 있었고 벽 전체가 무너져 가구가 드러난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져 있었다고 전했다. 어떤 이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반려동물을 꼭 껴안고 있었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카라카스 바루타 지구에서 건물 두 채가 붕괴해 3명이 사망했다고 지역 당국이 밝혔다. 차카오 지구에서도 1명이 사망하고 건물 4채가 완전히 붕괴됐다고 한다. 카라카스 동부에 사는 코로 마르티네스(56)는 통신에 "엄청난 굉음이 났고 집 안 물건들이 떨어져 내렸다. 냉장고 안 물병도 쏟아졌다. 이런 건 처음 겪어 본다"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북부 해안 라과이라주의 경우 정확한 사상자 규모가 파악되지도 않은 상황이다.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은 초기 사상자 집계에 라과이라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호르헤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미 CNN 방송에 이 지역에서 건물 15채가 붕괴한 걸로 보고됐다고 전했다. <로이터>를 보면 24일 밤 라과이라의 한 병원 밖에 수많은 부상자들이 피를 흘리며 모여 있었고 붕괴한 건물에선 화재가 발생했다.

폐쇄된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도 라과이라에 위치한다. <로이터>가 공유한 베네수엘라 전 국회의원 윌머 아수아헤가 촬영한 영상을 보면 지진이 공항을 강타한 순간 천장에서 형광등이 떨어지고 자욱한 연기가 피어 오르자 사람들이 긴급히 대피한다. 공항 천장이 거의 무너져 내리고 바닥이 잔해로 뒤덮인 광경도 촬영됐다.

지진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상당할 전망이다. 미 지질조사국은 이번 지진으로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 2~20%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조사국은 경제적 손실 규모가 100억~1000억달러(15조~154조원)에 달할 확률을 39%, 1000억달러를 넘길 가능성도 30%로 예측했다.

다만 에너지 시설 피해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주요 원유 생산지인 마라카이보 호수 인근 마라카이보 민방위 당국은 부상자가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엘팔리토 정유소 직원도 피해가 없었다고 했다.

각국 지원 의사 표명…트럼프 "새 친구들 위해 나설 것"

각국이 지진 피해 지원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리의 새롭고 훌륭한 친구들을 위해 함께 하겠다"며 "미국은 기꺼이 도울 준비가 돼 있고 능력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을 전격 생포한 뒤 후임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과 협력 관계를 유지 중이다.

인근 중남미 국가들도 나섰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외교부에 베네수엘라 지원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구조대 및 구급대원 300명, 의약품 등을 카라카스로 보낼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도 인도적 물품 즉각 전달이 준비됐다고 밝혔다.

스페인 외무부도 성명을 내 "형제 같은 베네수엘라 시민들에 전폭적 연대와 지지를 표한다"며 "필요한 모든 긴급 구호 물자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는 19세기 초 스페인 식민지배에서 독립했다.

한편 <AP>를 보면 25일 오전 일본 혼슈 북부 이와테현 동쪽 바다에서 규모 7.2 지진이 발생했지만 일본 기상청은 지진해일(쓰나미) 위험은 없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 전 국회의원 윌머 아수아헤가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한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의 지진 당시 모습. ⓒAF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에서 지진으로 부상을 입은 이들이 병원 밖에 모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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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비핵화’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기자명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6.24 07:01
  •  
  •  댓글 0
 
 

조선은 핵보유국이다. 오래된 ‘핵 가질 결심’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이 아니다. 미국의 전술핵은 1958년부터 한국에 배치되어 있었다. 조선의 핵은 미국의 핵위협, 적대정책, 체제전환 압박, 군사계획, 금융봉쇄가 장기간 누적된 결과물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6자회담에 일말의 기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은 작계 5029에 따른 주한미군의 대북 압박 강화, 전략적 유연성에 기초한 한국의 전초기지화, BDA 자금동결 등을 보면서 기대를 접었다.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함으로써 판을 바꾸는 것만이 조선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었다.

 

조선은 1993년 3월 NPT 탈퇴를 선언했다. 팀스피리트 훈련과 IAEA의 특별사찰 요구를 탈퇴 이유로 들었다. 6월에는 미국과의 협상 끝에 탈퇴 ‘효력 발생’을 유보했다. 1994년 봄 조선이 영변 원자로에서 사용후 연료봉을 꺼내 재처리할 가능성이 커지자 펜타곤은 군사옵션을 검토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미국은 10월 조선은 제네바합의를 체결한다. 조선은 영변 5MW 원자로, 재처리시설, 50MW, 200MW 흑연감속로 건설을 동결한 다음 최종 해체하기로 했고 미국 측은 KEDO를 통해 경수로 2기와 연간 중유 50만 톤을 제공하기로 했다.

2001년 부시 행정부는 대북정책 재검토에 들어갔고 2002년 조선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미국의 핵태세 검토와 선제공격 분위기로 조선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해 경계심을 높였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한 후 조선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를 조선이 시인했다고 주장했지만 조선은 부인했다. 11월 KEDO는 중유 제공을 중단했고, 12월 조선은 제네바합의로 동결됐던 원자로와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하고 IAEA 봉인과 감시 장비를 제거했다. 제네바합의의 붕괴다.

조선은 2003년 1월 NPT 탈퇴를 선언했고, 2월에는 영변 5MW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7월에 조선은 8,000개 폐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미국 측에 통보했다. 이때부터 조선은 ‘핵 억제력’을 공공연히 거론하기 시작했다. 제네바합의가 막고 있던 플루토늄 경로가 다시 열렸고, 북핵은 협상 카드에서 실제 무기화 단계로 더 가까이 이동했다. 2003년 8월 중국 주재로 첫 6자회담이 열렸다. 조선은 불가침조약, 관계정상화, 경수로·중유·식량 지원을 요구했고, 그 대가로 핵시설 폐기와 미사일 시험, 수출 중단을 제안했다.

이 무렵 한국이 대북정책에서 지렛대를 행사하려 하다가 미국의 동맹 교육에 압살당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3년 9월 25일 유엔총회 계기에 윤영관 외무장관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회담한다. 언론 폭로에 따르면 윤 장관은 파월 장관에게 “미국이 북핵문제에서 양보하지 않는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검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한다. 파월은 “그것은 동맹국 간에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어설픈 전략으로 개망신한 사례다. 이라크 파병 거부 따로, 대북 입장 완화 요구 따로 했어야 했다.

한미연합사는 한반도 전쟁 발발시 미국이 병력 약 69만 명까지 증원한다는 작계 5027에 이어 2004-5년 당시 조선 정권 붕괴, 쿠데타·내전, 대규모 탈북 등 급변사태에 대응한다는 차원의 작계 5029를 작성하려고 시도했다. 아울러 미국은 주한미군의 증원과 역내 출동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중국은 반발했고 2004년 11월 라오스 개최 ASEAN+3 때 노 대통령은 원자바오 총리에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생각은 전혀 달랐다.

조선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단순한 병력 조정으로 보지 않았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주한미군을 한반도와 동북아 어디에나 투입할 수 있는 기동군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보았다. 2005년 5월 조선중앙통신은 미국 고위관리들의 발언을 들어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 비상사태 때 세계 각지의 미군을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게 하는 구상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에게 그것은 감군이 아니라 압박의 방식 변경이었다. 병력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더 넓은 전장과 더 큰 규모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정확한 평가였다.

조선은 2005년 2월 “핵무기를 제조했다”고 공개 선언한다. 5월에는 영변 원자로에서 8,000개 폐연료봉 인출을 완료했다고 발표했고, 6월에는 재처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은 협상 입지를 높였다. 핵무기 보유 선언은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니라 향후 핵실험의 예고였다. 그 후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고, 조선은 모든 핵무기와 기존 핵프로그램 포기, NPT와 IAEA 안전조치 복귀를 약속했다. 미국은 한국에 핵무기가 없으며 조선을 핵무기로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했다. 또 에너지 지원, 북미·북일 관계정상화, 평화체제 논의 원칙이 들어갔다.

 

그러나 9·19 공동성명 나흘 전 미 재무부는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를 애국법 311조에 따른 ‘주요 자금세탁 우려기관’으로 지정했다. 미국은 BDA가 조선 정부기관과 전위회사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했고, 위조 달러·마약·위조 담배 등 불법 활동을 용이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약 2,500만 달러의 조선 자금이 동결됐다. 미국 입장에서는 핵 협상과 별개의 불법금융 차단 조치였지만 조선 입장에서는 체제의 해외 결제망을 겨냥한 금융 봉쇄로 받아들였다. 이 조치가 9·19 합의의 이행 동력을 빠르게 잠식했다.

2005년 11월 5차 6자회담이 열렸지만, 조선은 BDA 동결자금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고 협상은 진전되지 않았다. 2006년 4월 김계관 부상은 미국이 BDA 동결을 풀면 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BDA는 단순한 돈 2,500만 달러 문제가 아니었다. 조선이 보기에 이는 미국이 9·19 합의로 관계정상화, 상호존중 약속을 하면서 그 배후에서는 조선을 타격하기 위한 덫을 놓고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니 조선이 얻은 결론은 분명했다. 핵을 포기하면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핵을 포기하는 순간 협박당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2006년 10월 3일 조선 외무성은 “앞으로 안전성이 확고히 담보된 조건에서 핵시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한다. 동시에 선제 핵사용 금지, 핵이전 금지, 한반도 비핵화 노력도 언급했다. 조선은 핵실험을 단순 군사행동이 아니라 “억제력 입증”이자 “협상 지위 상승”의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드디어 10월 9일 조선은 풍계리 인근에서 1차 지하 핵실험을 실시한다. 조선은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과시한 것이다. 6자회담은 이후 재개되지만, 이제 협상은 “핵개발 방지”가 아니라 “이미 핵실험을 한 조선의 핵능력 동결·폐기” 문제로 성격이 바뀐다.

2007년 9월 말 다시 6자 회담이 열렸다. 10월 3일 채택된 6자회담 합의서는 조선의 일반적인 핵 비확산 약속을 문서화했다. 10월 3일 김정일 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은 하루 종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대화를 나누었고, 회의 중간에 김계관이 노무현에게 최근 6자회담의 결과를 브리핑했다. 최종 선언문에는 2007년 12월 31일까지 조선과 미국이 해야 할 의무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이 폭파되었고 북조선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해제한다는 발표도 있었지만 6자회담의 합의는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다.

결국 조선은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으로 전 세계에 자신이 핵보유국임을 선포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조선은 2017년 9월 3일 ICBM 장착용 수소탄 실험을 마침으로써 총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완료했다. 할 때마다 핵 능력의 고도화를 선보였다. 인도와 파키스탄 역시 1974년과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총 6기의 핵장치를 폭발시킴으로써 전 세계에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조선이 몇 번의 ‘핵 콘서트’를 더 해야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인가.

이런 형국에 조선의 비핵화라는 어휘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대화의 ‘문턱’에 올리든 먼 훗날의 ‘출구’라면서 지금 올리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먼 훗날’의 일이라면 그 때 가서 말할 일이다. 지금 누가 미국, 러시아, 중국의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는가. ‘먼 훗날’의 일이라면 그 때 가서 모든 핵보유국들의 비핵화를 말하면 된다. 비트겐슈타인의 『트락타투스』 마지막 명제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지금의 의제는 핵전쟁 방지, 군비통제, 그리고 평화체제일 뿐이다. 끝.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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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무죄 8건' 임휘윤…간첩조작 묻자 "쓸데없는 소리"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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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25 09:20

  • 수정 2026.06.2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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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임휘윤 편

김제 출신으로 TK들 차지하던 공안·강력부장

1981년 학림사건 안강민·김경한과 공판 진행

박동운 재일간첩 고문조작 "기억 자체가 없다"

김태홍 조작 사건 "그 말이 그 말 아니오" 억지

송씨 일가 간첩단 핑퐁재판의 또다른 주역

최양준, 오주석, 김장호 등 모두 재심에서 무죄

초원 복집 사건을 도청 사건으로 본말 뒤집어

승승장구 검찰 인생, 이용호 게이트로 마감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임휘윤(任彙潤, 1944~2021) 항목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그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했던 말이었다. 2018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PD가 박동운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에 대해 물었다.

"한 분은 사형 선고 받으시고 한 분은 10년 선고 받으셨는데, 그분들 사건에서 전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임휘윤의 대답은 이랬다.

"전혀, 기억 자체가 없고 나는 정상적으로 처리했겠지."

그리고 "영장 없이 체포가 되고 고문이 있었는데"라는 후속 질문에는 "쓸데없는 얘기 말고 돌아가쇼"라고 쏘아붙여 인터뷰를 끝냈다.

이 한마디가 임휘윤이라는 인물을 가장 정확하게 압축한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재심 무죄 사건의 검사, 무려 8건이었던 사람의 마지막 말이 "돌아가쇼"였다.

 

임휘윤(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호남 출신으로 TK의 자리를 차지

임휘윤은 1944년 4월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1962년 이리(익산) 남성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1970년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이 동기에는 양승태(1948~ ), 김승규, 이종찬, 강재섭 등이 있다. 1973~75년 육군법무관으로 복무한 뒤 전주지검 검사로 시작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흥미로운 지점을 짚는다.

"TK 출신이 아니고는 할 수 없다는 서울지검 공안1, 2부장과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 대검 강력부장 등을 지냈다."

호남 출신이 TK 카르텔의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는 것이 그가 얼마나 철저한 충성으로 인정받았는지를 보여준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냉정한 기술자'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이 떠오른다. 동독 슈타지의 일부 심문관들은 신념이 아니라 직업적 효율성으로 움직였다. 그들에게 피의자의 고통은 업무의 변수일 뿐이었다. 임휘윤이 제일교포 유학생으로 한국어 구사력이 완전하지 않았던 김태홍에게 사형을 구형하면서 보인 태도가 그렇다. 우리말이 서툰 김태홍이 자신이 사형을 구형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옆자리에 있던 친구에게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인권 감수성이 거의 없는 임휘윤에게 그것은 일상적인 절차였을 뿐이다.

 

‘재일동포 간첩사건’ 김태홍씨 재심 무죄', 김민경 기자, 한겨레신문, 2017-06-15

1981년 학림사건, "쓸데없는 소리"의 시작

임휘윤의 반헌법 행위 첫 정점은 1981년 학림사건이다. 전민노련-전민학련 사건으로 이태복, 이선근 등이 무리한 고문 조작 수사를 당했다. 임휘윤은 안강민(1941~ ), 김경한(1944~ ), 박순용(1945~2026)과 함께 이 사건의 1·2·3심 공판검사로 관여했다. 피해자들은 검사 앞에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텐데 누가 책임 질래"라는 협박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2012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31년 만이었다.

 

“늦었지만 진실 밝혀져 다행”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두 번째) 등 ‘학림사건’ 연루자들이 7일 서울 명동 민들레영토 카페에서 진실화해위의 발표를 환영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81년 ‘학림사건’ 신군부가 조작했다”, 경향신문. 2009.07.07

박동운 사건, "기억 자체가 없다"

같은 해 임휘윤은 박동운 간첩조작 사건도 담당했다. 한국전쟁 중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남파간첩이라는 가정에 가정을 거듭해 24년간 고정간첩 활동을 했다는 죄목을 만들어낸 사건이다. 박동운은 사형, 무기징역을 거쳐 18년을 복역했다. 어머니와 동생, 작은아버지까지 옥살이를 했다. 2009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바로 이 사건에 대해 임휘윤은 30여 년 뒤 카메라 앞에서 "기억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2009년 11월 13일,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던 날. 오른쪽부터 피해자 박동운씨, 한등자씨. ⓒ 진실의힘 제공

김태홍 사건, "그 말이 그 말 아니냐"

1981년 재일한국인 유학생 김태홍 간첩조작 사건에서 임휘윤은 35일간 보안사 불법구금 끝에 만들어진 자백을 그대로 받아 기소했다. 김태홍이 "북에 갔다 온 적은 있지만 간첩행위는 안 했다"고 항변하자 임휘윤은 "그 말이 그 말 아니냐"며 듣지 않았다. 김태홍은 우리말이 서툴러 자신이 사형을 구형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옆자리 친구에게 물어봐야 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15년을 복역했다. 2017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최종 무죄 확정 받은 재일교포 조작간첩 피해자 김태홍 씨.(뉴시스, 2013.11.23.)

송씨 일가, 핑퐁재판의 또 다른 주역

1982년 송씨 일가 간첩단조작 사건에서 임휘윤은 김경한과 함께 수사를 맡았다. 대법원에서 두 차례나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됐지만, 안기부와 검찰이 법원에 공작을 펴 끝내 유죄를 받아냈다. 임휘윤은 피해자 송기준이 안기부에서 한 진술을 부인하자 안기부 수사관을 다시 불러 "이 사람 또 부인한다, 이야기 좀 잘 해주지"라며 협박했다. 송기준은 평화박물관 면담에서 "임휘윤 검사 얼굴이 지금도 빤하지, 뭐. 꿈에도 자꾸 나오는데…"라고 증언했다.

 

1982년 '송씨 일가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인 송기복 씨가 2008년 10월 29일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민변과 참여연대가 검찰 60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개최한 '검찰의 과거사 반성 촉구 및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에서 증언하고 있다. 2008.10.29. 연합뉴스 자료사진

8건의 재심 무죄, 가장 많은 기록

임휘윤이 담당한 사건들, 학림사건, 박동운, 김태홍, 송씨 일가, 최양준, 오주석, 김장호, 함주명은 모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한겨레는 임휘윤을 "가장 많은 재심 무죄 사건의 검사"로 보도했다.

1992년 부산 초원복집 사건, 본질을 뒤집다

검사로서 출세를 이어가던 임휘윤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부산 초원복집 사건의 선거법 위반 수사책임자였다. 정부 기관장들이 모여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선거에 개입한 이 사건에서, 임휘윤은 사건의 본질을 선거법 위반이 아닌 도청 사건으로 뒤집는 역할을 했다. 권력의 부정행위를 들춰내기 위해 도청 장치를 심은 이가 오히려 처벌 대상으로 몰렸다.

검찰의 꽃까지, 그리고 이용호 게이트로 추락

임휘윤은 1998년 대검 강력부장, 1999년 서울지검장, 2000년 부산고검장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1년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사표를 제출하며 검찰 인생이 끝났다. 정치권 진출설이 돌았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임휘윤(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동독 슈타지 심문관들에 대한 평가는 명확하다. 신념이 없었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념 없는 잔혹함이 더 무섭다. 임휘윤이 보여준 "기억 자체가 없다"는 태도는 신념의 부재가 아니라 책임의 완전한 외면이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임휘윤의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네"를 떠올렸다. 사형 선고와 18년 옥살이를 만든 사람이, 30여 년 뒤 카메라 앞에서 그 일을 "쓸데없는 얘기"로 치부했다. 그 무책임이 공안검찰의 가장 깊은 병폐였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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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반도체 투자, '민심 달래기용 말잔치' 아니라면 3가지 지켜야

[반도체 특별과외] 용인 중단 없는 호남 반도체는 희망고문... 대만·유럽 팹까지 품는 RE100 허브 돼야

26.06.25 06:55최종 업데이트 26.06.25 06:55

반도체 팹 내부의 모습. 호남 RE100 반도체 산단에 필요한 건 전공정 팹(FAB)입니다.이봉렬

최근 언론을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 지역에 수백조 원을 투자해 전공정 팹(Fab·반도체 생산라인)을 포함한 반도체 제조 시설을 짓는 방안을 정부와 조율 중이라는 대형 속보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반도체 특별과외 연재를 통해 수도권에 집중된 반도체 제조 시설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호남 RE100 반도체 산단'의 필요성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입장에서 무척 반갑고 가슴 뛰는 소식입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인재도, 인프라도, 대기업 공장도 모두 수도권으로만 쏠리는 극단적인 일극 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 결과 지방은 소멸해가고 수도권은 과밀화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반도체 전공정 팹 하나가 들어서면 수만 개의 고품질 일자리와 수백 개의 협력업체가 함께 움직입니다.

호남에 대규모 반도체 거점이 조성된다면 청년 인구의 유출을 막고, 교육·의료·문화 인프라가 동반 성장하는 강력한 지역 경제 생태계가 구축될 것입니다. 지방 분권을 외치는 백마디 구호보다, 제대로 된 팹 하나를 지방에 세우는 것이 진정한 균형발전의 마침표가 됩니다.

여기에 더해 이미 닥쳐온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세계적인 노력, 즉 RE100 캠페인에 우리 기업들이 온전히 동참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이기도 합니다. 현재 애플, 엔비디아,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공급망 전체에 2030년까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하라며 강력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전공정 팹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대표적인 전기 먹는 하마입니다. 현재 전력 부족과 송전 선로 포화 상태에 직면한 수도권에서는 청정 에너지를 조달할 방법이 전무합니다.

반면 호남은 대한민국에서 신재생 에너지 잠재력이 가장 풍부한 곳입니다. 전남의 해상 풍력과 전북 새만금의 대규모 태양광 단지는 청정 전력을 현장에서 곧바로 팹에 공급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호남 반도체 산단은 국가 탄소 중립 실현은 물론, 탄소 배출을 줄이지 못하면 반도체를 사지 않겠다는 글로벌 바이어들의 칼날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이렇듯 중차대한 돌파구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닙니다. 여전히 '호남 RE100 반도체 산단'의 본질적인 의의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어떻게든 임기응변으로 상황만 모면하며 시간을 벌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팹 조성 과정에서 심도 있게 다뤄야 할 핵심 사안들도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있습니다. 다음 주로 예상되는 공식 발표가 단순한 지역 민심 달래기용 말잔치나 먼 미래의 양해각서(MOU)로 끝나지 않으려면, 반드시 다음과 같은 구조적 전환과 핵심 조건들이 명시되어야 합니다.

용인 산단 중단이 먼저… 시차 둔 투자는 안 하겠다는 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 2026-01-26연합뉴스

호남 반도체 산단이 단순한 말잔치로 끝나지 않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현재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조성을 과감히 중단하거나 전면적인 속도 조절에 나서는 것입니다.

기업이 동원할 수 있는 자본과 인력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에 수백조 원을 쏟아부으며 대규모 공장을 짓는 와중에 동시에 호남에도 전공정 팹을 올린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만약 이번 발표가 용인 산단을 다 짓고 난 후, 2030년대 후반이나 2040년대에 호남 투자를 시작하겠다는 식의 순차적 계획이라면, 이는 냉정하게 말해 시간 끌기용 카드이자 대국민 희망 고문일 뿐입니다.

벌써부터 그런 조짐이 보입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24일 관훈클럽 초청 관훈토론회에서 "용인에 짓기로 한 것을 짓지 않고 지방으로 간다는 차원이 절대 아니다"라며 논의 중인 지방권 투자는 용인 이전이 아닌 "새로운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관련 기사 : 김용범 "호남·충청 반도체 클러스터, 용인 짓기로 한 것 옮기는 것 아냐"). 이건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수도권 집중을 막고 RE100 요구에 부합하려면 호남 산단이 지금 즉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타임라인이 빠진 발표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입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평택 P6 라인 완공 및 가동 이전에 호남 투자를 시작해야 하고, SK하이닉스는 용인 클러스터 1공장(팹)을 지은 후 2공장으로 넘어가기 전, 바로 호남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가 경제의 리스크를 줄이고 에너지를 찾아 움직이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RE100 달성 목표 시기를 은근슬쩍 2050년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은 이미 '2030년'으로 데드라인을 못 박아두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발표에 명확한 타임라인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리스크 분산의 묘수

두 거인 기업의 투자 소식에 호남 지자체들이 제 살 깎아먹기식 유치 경쟁을 벌이거나, 반대로 특정 한 지역에 두 회사의 팹을 몽땅 몰아넣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반도체 팹을 지방으로 분산하려는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지정학적·인프라적 리스크 해소에 있습니다. 과거 미국 텍사스 한파로 오스틴의 삼성 팹이 멈추거나 대만 지진으로 TSMC 라인이 멈췄을 때 글로벌 공급망이 어떻게 요동쳤는지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한 지역에 모든 시설을 몰아넣으면 전력, 용수, 가스 등 인프라에 가해지는 부담이 임계점을 넘게 되고,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나 사고 발생 시 국가 반도체 산업 전체가 마비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따라서 호남 내부에서도 철저한 분산 배치가 필요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시나리오는 한 회사는 전북에, 다른 한 회사는 전남·광주권에 배치하는 전략입니다.

전북은 새만금을 포함해 광활한 부지와 서해안의 풍부한 신재생 에너지 인프라를 바탕으로 대규모 전공정 팹을 안정적으로 수용하기에 최적입니다. 전남·광주는 이미 앰코코리아를 비롯한 글로벌 후공정(패키징) 기업들의 기반이 탄탄하게 닦여있는 만큼, 이를 연계한 첨단 반도체 전·후공정 벨트를 조성하기 유리합니다. 양사를 전북과 전남으로 나누어 배치할 때, 인프라 과부하를 막고 호남 전체가 골고루 발전하는 상생의 시너지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K-반도체의 한계 깨기… TSMC·UMC와 유럽 팹까지 품어야

마지막으로, 이번 호남 반도체 산단 조성을 국내 대기업 두 곳만의 유치전으로 제한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봐야 합니다. 대한민국 반도체는 메모리 분야에서는 세계 최강이지만, 정작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자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등) 시장에서는 세계 점유율이 단 3% 안팎에 불과한 고질적인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이 한계를 깨부수기 위해 대만의 TSMC, UMC 같은 세계적인 파운드리 기업이나 인피니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같은 유럽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회사들의 팹을 호남으로 유치하는 글로벌 오픈 전략을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펼쳐야 합니다.

현재 대만과 유럽의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과의 지정학적 위기 분산과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동남아(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와 미국, 일본 등지에 공격적으로 해외 팹을 짓고 있습니다. 그들이 새로운 부지를 선택할 때 가장 골머리를 앓는 핵심 요소가 바로 안정적인 재생 에너지와 정교한 제조 생태계입니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전력·용수 인프라의 안정성, 숙련된 엔지니어 풀, 그리고 반도체 장비·소재 공급망의 성숙도 측면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앞서 있습니다. 여기에 호남의 압도적인 재생 에너지 환경과 파격적인 세제 혜택, 인허가 특례 등 국가 차원의 딜이 결합한다면 글로벌 공룡 기업들을 끌어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해외 유수 기업들의 팹이 호남에 둥지를 트는 순간, 대한민국은 메모리 편중을 벗어나 명실상부한 세계 시스템 반도체의 허브로 한 단계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북극의 한기가 미국 텍사스까지 내려 오는 극심한 기후 변화의 시대입니다. 반도체 팹 분산배치야말로 반도체 산업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입니다.NASA

이번 호남 반도체 투자설이 단순히 지역 민심을 의식한 정치적 수사나 구두 선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못 박아둔 2030년 RE100이라는 데드라인은 이제 불과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용인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호남의 RE100 전공정 팹을 착공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정부와 대기업이 내놓을 발표문에는 '수백조'라는 화려한 숫자 뒤에 숨은 모호한 미래 대신, 용인 중단과 호남 즉시 시작이라는 구체적인 로드맵과 타임라인이 반드시 박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빠진 발표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번 발표가 대한민국 반도체의 대전환이자 진정한 국토 균형 발전의 위대한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현장의 노동자들과 지역 시민 사회, 그리고 언론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반도체 #호남RE100반도체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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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日) '미 중심+나토 확대', 에반스(호주) '미 없는 비강대국 주도'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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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6/06/25 09:32
  • 수정일
    2026/06/25 09:3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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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제주포럼서 논한 '미국없는 아사이태평양의 미래' 

  • 기자명 제주=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6.24 23:28
  •  
  •  수정 2026.06.25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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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의 시대, 협력의 재구상'을 대주제로 삼아 24~26일 제주도 해비치호텔&리조트 제주와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되는 제21회 제주포럼.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진행한 '미국없는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 : 아시아 지도자의 시각(Asia -Pacific in the age of America First : Asian Leader's View)' 소주제 프로그램에 토론자로 나선 가렛 에반스(Gareth Evans)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 군축리더쉽 네트워크'(APLN) 의장과 고노 타로 일본 중의원 의원 [사진-ㅌ홍일뉴스 이승현 기자]
'분열의 시대, 협력의 재구상'을 대주제로 삼아 24~26일 제주도 해비치호텔&리조트 제주와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되는 제21회 제주포럼.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진행한 '미국없는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 : 아시아 지도자의 시각(Asia -Pacific in the age of America First : Asian Leader's View)' 소주제 프로그램에 토론자로 나선 가렛 에반스(Gareth Evans)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 군축리더쉽 네트워크'(APLN) 의장과 고노 타로 일본 중의원 의원 [사진-ㅌ홍일뉴스 이승현 기자]

세계 곳곳에서 빈번해지는 전쟁과 분쟁은 국제규범의 붕괴와 집단안보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며, 기존 국제질서의 구조적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우선주의' 시대에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에 대한 안보공약(Security Commitment)을 지킬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는 것 자체도 직면한 도전이 만만치 않다는 걸 보예준다.  

'분열의 시대, 협력의 재구상'을 대주제로 삼아 24~26일 제주도 해비치호텔&리조트 제주와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되는 제21회 제주포럼.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진행한 '미국없는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 : 아시아 지도자의 시각(Asia -Pacific in the age of America First : Asian Leader's View)' 소주제 프로그램에 호주 외교장관을 지낸 가렛 에반스(Gareth Evans)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 군축리더쉽 네트워크'(APLN) 의장과 아베 총리시절 외무상과 방위상을 역임한 고노 타로 일본 중의원 의원이 토론자로 참가해 확연히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고노 타로 일본 중의원 의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고노 타로 일본 중의원 의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고노 의원은 "유럽은 미국없이 가는게 어렵긴 하지만 플랜B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로서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에 필요한 것은 '플랜A+'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플랜A+'에서 '+'는 유럽을 의미한다. 

그는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나토를 태평양지역으로 확대해서 '나프토'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하면서, "일본과 한국,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등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국가들이 이를 조인함으로써 나토가 지역 조직이 아니라 글로벌 방위조직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서슴없이 주장했다.
 
특히 "일본과 한국의 경우, 경제 뿐만 아니라 안보에 있어서 미국이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 때문에 마주 앉아서 의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군사긴장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 나아가 나토 확장 계획까지 적극 끌어들이려는 일본 당국의 인식을 드러낸 것. 

지금 일본은 '국방비 증액과 방위산업 육성, 무기수출'에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지금 방위산업을 너무 잘하고 있는 한국을 존경한다. 한일간에 방위산업 동맹을 키워 나가기 바란다"는 언급까지 나왔다.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중국이 남중국해에 이른바 인공섬을 건설하는 걸 사실상 용인한 것부터 트럼프 1기에서도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 않았던 것까지 문제가 많으며, 이 때문에 지금 중국이 과거같으면 생각할 수 없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 영내의 안전보장을 위해 미국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 고노 의원의 의견이다.

가렛 에반스(Gareth Evans)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 군축리더쉽 네트워크'(APLN) 의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가렛 에반스(Gareth Evans)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 군축리더쉽 네트워크'(APLN) 의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에반스 의장은 2003년 이라크전을 필두로 미국은 테러가 발생하는 원인을 제공하거나 스스로 저지르고, 무역전쟁을 촉발하고 빈부격차를 더 크게 만드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하면서 지금은 더 이상 희망과 협력과 꿈꿀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남중국해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문제삼아 중국과 러시아에 그 원인을 돌리기도 하지만, 국제사회의 규칙과 다자주의를 무시하고 있는 미국도 그런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에서도 이제 미국의 동맹에 대한 약속, 미국이 옳은 일을 할 것이라는 믿음은 사라진지 오래됐다"고 하면서 "일본, 한국, 호주, 인도네시아, 인도와 같은 비강대국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해 예전의 질서를 다시 복원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 우월주의는 대의를 잃고 멀어져가고 있다고 하면서, 이제 중국의 '굴기'에 대해 좀 더 이성적인 접근법을 취함으로써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전략적 안정'의 시작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주장이 미국과의 동맹을 버리자는 것은 아니며, '정보 인텔리전스'나 고부가가치 방위기술 등 필요한 혜택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균형을 맞춰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과의 동맹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다른 국가들과 협력을 통해서, 미국이 하지 않고 못하는 것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나가자는 취지이다.

고노 의원이 '플랜A+'를 말한 반면, 에반스 의장은 지금과는 다른 '플랜B'를 강조한 것.

문정인 교수는 이를 두고 고노 의원은 '일본의 전통적인 현실주의자', 에반스 의장은 '미국식이 아닌 호주식 국제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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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없는 한성숙 총리 후보 청문회, 경향신문 “정상 아니다”

기자명윤유경 기자

  • 입력 2026.06.25 07:10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정청래 대표 페이스북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하면서 당대표 연임 도전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25일 주요 신문들은 이 소식을 1면에 실으며 오는 8월17일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여당 내 갈등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신문들은 전당대회가 계파 간 권력다툼이 아닌 비전과 정책 경쟁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청래 연임 도전, 여당 내 갈등 가속화 전망

정 대표는 지난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 당대표직을 내려놓는다”며 “오직 민심, 오직 당심만 보고 저의 길을 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과 자신의 관계를 “동지이자 전우”라고 표현하며 “정치적 운명공동체이자 한 몸 공동체”라고 했다. 그는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의 야당 탄압, 정적 제거, 이재명 죽이기에 맞서 이 대표의 가장 옆자리에서 함께 싸웠다”며 “이 대통령과의 의리는 누가 뭐래도 정청래가 맨 앞자리에서 지킨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 대표는 “이재명 정부는 중도 실용을 주창하지만 한시도 개혁의 과제를 멈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자신이 민주당의 정통임을 주장했다. 첫 외부 공식 일정으로도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아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택했다.

▲ 25일 경향신문 1면.

신문들은 정 대표의 연임 도전 가시화로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여당 내 갈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향신문은 1면 기사에서 “6·3 지방선거 후 당 지도부 책임론, 지지율 하락 등으로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 대표가 연임 수순을 밟으면서 여당 내 갈등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진 기사에서도 “당내에서는 이 대통령이 SNS 글과 공항 환송 행사 미초청 등으로 정 대표에 대한 불편함을 여러 경로로 표현해온 만큼 정 대표가 집권 초기 안정적 당·청관계를 위해 불출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 역시 1면 기사 <정청래 연임 도전… ‘명청대전’ 시작됐다>에서 “정 전 대표가 친명계의 잇따른 불출마 요구에도 당권 연임 배수진을 치면서 여권 분열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며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되는 당 대표는 2028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는 만큼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고 했다.

▲ 25일 조선일보 5면.

조선일보는 기사 <오전에 “李대통령과의 의리” 외친 정청래, 오후에 文 찾아갔다>에서 정 대표가 사퇴 발표 직후 문 전 대통령과 만난 것을 두고 “친노·친문 세력을 결집해 이기겠다는 노골적 메시지”라는 말이 나왔다며 “최근 친명·친청 갈등은 신주류 ‘뉴이재명’과 친노·친문 등 세력 간 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인데, 정 대표가 문 전 대통령과 ‘투샷’ 장면을 연출하자 불편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 “권력다툼에 민생 소홀 없어야”

전당대회는 정 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 송영길 의원 간 3파전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당내에서는 친이재명계 중심의 지지층을 공유하고 있는 김 총리와 송 의원이 결국 단일화할 것이란 전망도 많다.

동아일보는 ‘명청(이 대통령과 정 대표) 대전’ 구도가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동아일보는 “정 전 대표가 사퇴 후 문재인 전 대통령을 찾는 일정으로 당권 레이스를 시작하는 등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과의 연대 구축에 나서면서 2028년 총선 공천권을 쥔 차기 당 대표를 두고 이른바 ‘반청(반정청래) 연대’와의 대결 구도가 격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고 했다.

▲ 25일 한겨레 1면.

한겨레 역시 1면 기사 <정청래 연임 도전장 ‘명·청대전’ 격해진다>에서 “청와대 친명계의 강한 반대 속에 정 대표가 ‘정면 돌파’에 나섬으로써 ‘명-청 대전’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어진 기사에서도 한겨레는 “당내 반정청래 인사들은 물론,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 대표 체제 연장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연거푸 밝힌 터라 전대는 ‘명-청 대결’ 구도로 굳어졌다”면서 “전대 결과에 따라 어느 한쪽은 치명상을 입는 것이 불가피해진만큼, 경쟁이 사생결단식으로 전개될 우려도 제기된다”고 했다.

당내 계파싸움이 과열되는 가운데, 신문들은 이번 전당대회가 비전과 정책 경쟁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현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의 당 운영을 성찰하고 무엇을 쇄신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답을 찾아야 한다”며 “민주당은 국회 운영이나 선거 등에서 12·3 내란 극복을 위해 손잡은 정당들과 연합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국회 과반 의석의 힘으로 검찰개혁·사법개혁 등 각종 개혁법안들을 처리했지만 그중에는 충분한 공론화와 여론 수렴이 이뤄졌는지 따져볼 것도 있다. 강성 당원들 의사에 따른 당 운영이 중도 확장과 국민통합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는지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작금의 양상을 두고 “2028년 총선 공천과 차기 대권을 겨냥한 계파싸움 이상으로 비치지 않는다”며 “이제라도 당권 주자들은 퇴행적 계파투쟁에서 탈피해 이재명 정부 중반기 집권여당의 청사진을 들고 생산적인 경쟁을 해야 한다. 이 대통령도 전당대회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줄 만한 언행은 삼가는 게 옳다”고 했다.

한겨레 역시 사설에서 민주당을 향해 “지방선거가 ‘절반의 승리’에 그친 원인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민생경제 어려움에 대한 깊은 고민은 보이지 않고 권력투쟁에만 매몰된 듯한 모습에, 지방선거 뒤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 지지율보다 낮게 나올 정도로 지지층과 국민들의 시선은 냉랭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상호 감정적 비방 대신 비전과 정책을 중심에 둔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특히 정 대표는 연일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외치고 있어, 보완수사권 문제를 당권 경쟁의 불쏘시개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보완수사권 문제는 당권이 아닌 오직 ‘국민’을 중심에 놓고 최선의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 25일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여권의 정치적 에너지가 권력투쟁 격화로 낭비된다면 시급한 민생 과제 역시 뒷전으로 밀리지 말란 법이 없다”며 “지금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갓 지난 시점이다.

정권 초기야말로 국정 동력을 극대화해 대선 공약을 이행하고 국가적 과제의 초석을 다질 시기”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여권이 민생 안정이나 정책적 고민은 뒤로 미룬 채 내부 투쟁을 계속하는 것은 집권 세력으로서의 책임감을 망각한 행태”라며 “6·3 지방선거에서 민심이 보낸 경고를 무시할 경우 여권 전체의 지지율 하락은 가팔라질 것”이라고 했다.

증인 없는 한성숙 총리 후보 청문회, 경향신문 “정상 아니다”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25~26일 이틀간 열린다. 국민의힘은 한 후보자의 다주택·불법증축 논란, 한 후보자가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으로 주도한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에서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 등을 이유로 지명 철회를 요구했고, 민주당은 ‘정치 공세’라고 맞서고 있어 양측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이번 청문회를 두고 경향신문은 증인과 참고인 없이 진행되는 점을 비판했다. 국민의힘이 신청한 증인·참고인 11명을 민주당이 모두 반대해 한 명도 채택되지 않은 것이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증인 없는 청문회’는 정상적이라고 하기 어렵다”며 “야당이 정치적 공세를 위해 증인을 신청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당이 이를 원천 차단하겠다며 모든 증인을 거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 25일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이재명 정부에서 증인 없는 청문회가 당연시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모두 국민에게 오만하게 비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며 “후보자의 자료 제출을 강제하고 증인 채택을 의무화하는 등 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관련기사

신광영 동아일보 논설위원도 오피니언 ‘오늘과 내일’에서 증인·참고인이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사태를 비판했다. 신 위원은 “증인과 참고인이 없는 한 후보자 청문회는 교차 확인 없는 일방적인 해명만 듣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1년 전 김민석 총리에 이어 한 후보자까지도 ‘증인 0명, 참고인 0명’ 청문회를 열게 됐다.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2000년 이후 총리 후보자 중 이런 청문회를 하는 건 현 정부에서 지명된 두 사람뿐”이라고 꼬집었다.

▲ 25일 동아일보 31면.

신 위원은 “민주당은 지난 정부에서 맹탕 청문회를 막아야 한다며 후보자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처벌하는 법안까지 추진했다. 그래 놓고 정권을 잡고 나니 ‘후보자 철벽 방탄’ 정당으로 돌변했다”며 “여당은 살살하고 야당은 세게 하는 반쪽짜리 청문회지만 증인·참고인 신문은 그나마 최소한의 검증을 위한 ‘룰’이다. 이마저 없으면 공직 후보자들은 의혹이 쏟아져도 답변을 미루다 청문회 하루, 이틀만 버티자는 전략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뒤이어 “민주당이 지금처럼 청문회 문턱을 허물어뜨리면 지금의 야당이 나중에 정권을 잡았을 때 똑같이 검증을 회피하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며 “그때 가서 민주당은 무슨 염치로 여당과 싸울 것인가. 그 틈에 부적격자가 고위공직에 오르는 걸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만 속이 타들어 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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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알게 된 한국 극우와 미국 마가(MAGA)의 관계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6.06.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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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친일에서 뉴라이트까지, 극우의 역사적 계보
상업 생태계로 진화한 음모론과 여론조작
한미 극우의 수직 하청 구조와 순환 공작
외세의 이름을 빌린 명백한 내정간섭
신임 주한 미국 대사가 가져올 위협
민주주의 파괴 공작을 직시해야 할 시점

선거가 끝난 지 20일이 지났지만, 투표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부정선거’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윤어게인’ 세력과 극우 유튜버, 혐오를 조장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결합하면서 온갖 음모론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을 단지 ‘참정권 침해에 대한 저항’으로만 보면 본질을 빗겨간다. ‘부실관리’가 ‘부정선거’로 변질된 현 사태는 내란세력이 주축이 된 한국 극우가 미국 마가(MAGA)의 선거 불복 프레임을 그대로 이식한 정치 공작이라고 봐야 한다.

친일에서 뉴라이트까지, 극우의 역사적 계보

이들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극우의 역사적 계보를 추적해야 한다. 이들의 뿌리는 해방 직후 청산하지 못한 친일·부역 세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반공을 생존 무기로 삼은 군사 독재 정권과 이들에 기생한 수구 기득권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전통적인 반공주의에 신자유주의의 약육강식 논리, 그리고 “일본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사상적 기둥으로 삼았다.

이 세력은 2017년 노재봉 전 총리를 좌장으로 삼아 '한국자유회의'를 결성하고, 촛불집회를 체제 전복 세력으로 규정하는 등 우익 이데올로기 공세를 주도했다. 이후 이들은 윤석열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김영호(통일부 장관), 김태효(국가안보실 1차장), 김광동(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등이 바로 그들이다.

상업 생태계로 진화한 음모론과 여론조작

이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대중을 포섭하는 방식은 대단히 치밀하다.

이들은 2010년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미국산 소고기 파동과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으로 수세에 몰릴 때마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 정보기관을 동원해 대규모 댓글 공작과 심리전을 감행했다.

이때 개발된 혐오적 은어와 역사 조롱 콘텐츠는 온라인 공간으로 침투했다.

유튜브와 온라인 게임 채팅창을 통해 일종의 ‘놀이 문화’이자 반사회적 배설구로 가공된 극우적 서사는 10~20대 젊은 남성층을 서서히 물들였다.

과거에는 국가 권력의 비밀공작이었던 여론 조작이, 이제는 자극적 음모론을 유포해 막대한 조회수 수익을 올리는 ‘유튜브 가짜뉴스 산업 생태계’로 진화하여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미 극우의 수직 하청 구조와 순환 공작

최근 양상은 토착 극우 진영이 미국 마가(MAGA) 세력과 수직계열화된 하청 구조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더 구체성을 띤다.

미국의 극우 진영이 부정선거 음모론과 종교 탄압 프레임 등 상층의 논리를 개발하면, 한국의 극우 세력은 이를 그대로 수입해 광장 동원과 온라인 확산을 실행한다.

2023년 미국 마가 세력과 트럼프 주니어 등이 참석한 '빌드업 코리아' 행사에서 한국 측 대표가 미국 마가를 모델로 삼아 활동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이 수직계열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미국 부통령 제이디 밴스 등 마가 핵심 자금책과 연계된 '락브릿지 코리아' 네트워크에 국내 정·재계 인사 및 대기업 회장이 동참하고 있는 점 또한 이들의 결탁이 단순한 일시적 연대를 넘어 조직화된 구조임을 증명한다.

 

이와 관련해 이병권 인문연구자는 “한미 극우 세력은 국내외 이슈를 상호 복제하며 증폭하는 여론 생산 기제를 가동한다”면서 “한국 극우 인사가 특정 사안을 왜곡한 유튜브 영상을 미국 측에 전달하면, 미국 극우 매체는 이를 '한국 교회의 탄압 실상' 등으로 인용 보도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극우 세력은 다시 이 미국 방송을 들여와 '미국 주류 사회가 주목하는 진실'이라며 국내 여론을 호도하는 순환 공작 체계를 완성했다”라고 폭로했다.

외세의 이름을 빌린 명백한 내정간섭

이 수직계열화 구조의 연장선에서 나타난 현상이 바로 미국 리버티대 교수이자 전직 국무부 국제형사사법대사인 모스 탄(한국명 단현명)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국제감시단’의 활동이다.

이들은 민간단체임에도 마가를 통해 미국 현 행정부와 연계된 듯한 인상을 주면서 국내 선거 시기마다 입국해 사전투표소를 무단 방문하는 등 국내 극우 유튜버와 결탁해 부정선거 음모론을 유포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 현장에서 ‘선거 집단 불복’을 유도하며 법치 시스템을 교란하는 불법 행태까지 자행한다.

이러한 외부 세력의 개입은 단순한 참관을 넘어 주권 국가의 선거 시스템을 폄훼하고 여론을 왜곡하는 정치개입이자 명백한 내정간섭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의 퇴행적 극우 음모론을 권위 있는 국제사회의 시각인 양 포장하여 국내 정치 갈등을 증폭시키는 도구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신임 주한 미국 대사가 가져올 위협

더욱이 미 연방 상원 인준을 통과해 공식 부임을 앞둔 미셸 스틸 신임 주한 미국 대사의 존재는 이러한 우려를 가중한다.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 출신인 그는 과거 미국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극우 마가(MAGA) 진영의 부정선거론 기조에 동조해 온 인물이다.

미국 내 선거 제도를 부정한 전력이 있는 인사가 주한 미국 대사라는 공식 외교 직책을 맡아 한국에 부임하는 현실은, 국내 극우 진영의 부정선거 프레임에 강력한 외교적·정치적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미국의 공식 외교관 지위가 한국 내 선거 불복 선동 세력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배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파괴 공작을 직시해야 할 시점

이러한 내외 요인들이 고착화될 경우 향후 치러질 총선과 대선 등 국가의 중대 선거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전망된다.

합법적인 투표 절차와 결과에 대해 ‘국제 감시단’이 외교적 권위를 빌려 조직적·지속적으로 불복을 선동함으로써, 선거제도 자체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고 사회적 대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투표지 부족 사태를 부정선거로 몰고 가는 선동은 미국의 선거 불복 운동인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el)'의 논리 구조를 그대로 복제한 하청 정치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대중의 욕망, 약자에 대한 혐오, 근거 없는 공포와 굴욕감이라는 사대 심리 기제를 자극하여 정교분리의 헌법 원칙을 무너뜨리고 종교와 정치를 일치시키는 파시즘적 사회 구조를 지향한다.

민주주의의 허점을 파고들어 내부에서부터 시스템을 와해시키는 한미 극우 세력의 수직 하청 구조와 상업화된 여론 공작, 그리고 외부 민간단체와 외교 경로를 빙자한 정치 개입의 실태를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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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유사시 미 지상군 1%뿐…한국, 자주국방력 이미 갖췄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6/24 07:55
  • 수정일
    2026/06/24 07: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권혁철기자

  • 수정 2026-06-24 07:04

전작권 환수, 오해를 넘어

1회 한국군의 능력은 부족한가

이재명 정부는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하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1일 제77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장병들을 사열하고 있다. 청와대 누리집

이재명 정부는 전시작전권 환수를 공약하고 빠르면 2027년 말까지 마무리하려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우리 돈 내며 방위를 책임질 건데, 전작권을 미국이 왜 갖고 있느냐”고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미국 쪽은 전작권 전환은 시기보다 조건 충족이 우선이라는 태도를 보이며 시기 역시 2029년 1분기(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군사령관)를 제시했다. 한-미 간 온도 차가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한국군은 아직 능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한겨레는 6·25를 계기로 3회에 걸쳐 전작권 환수 쟁점을 짚어 본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회 미래국방전략위원회에서 “내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 회수되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지키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통령이 “크게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해야 맞겠죠”라고 하자 안 장관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전작권 환수는 군사주권을 회복하고, 유사시 전쟁을 스스로 수행하는 능력을 지닌다는 의미를 띤다.

하지만 보수 쪽은 “한국군은 아직 능력이 부족하다”며 ‘신속한’ 전작권 환수가 아니라 ‘신중한’ 전환을 주장한다. 이들은 한국군은 미군에 견줘 북한을 감시하는 정보자산이 부족하고, 정밀타격 능력이 제한적이며, 지휘통제체계도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유사시 한국 방어에 투입되는 한미연합 전력 가운데 미군 전력은 거의 없다.

지상군은 99%가 한국군 전력이다. 해군은 95% 이상, 공군은 90%가량이 한국군 전력이다.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이 전쟁을 대부분 책임져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현재 2만8500명인 주한미군 가운데 육군은 1만8천명, 공군은 8천명이다.

특히 주한미군은 전쟁 초 직접 전쟁을 수행하는 데 투입되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는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전쟁 초기 주한미군 지상군의 상당수는 미국인 대피작전에 투입된다”며 “미군은 한반도 작전계획에서 미군 전력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내일 전작권을 회수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자신감은 “대한민국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국방력을 갖추게 됐다”(지난해 10월 국군의 날 기념사)는 판단에 터잡고 있다.

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 등의 자료를 보면, 북한의 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024년 기준 약 43조7천억원 수준인데 같은 해 한국의 국방 예산은 59조4천억원이었다. 한국의 국방비가 북한 전체 국가경제 규모보다 많다. 남북 국방비 격차는 430억7천만달러 대 16억440만달러로 26배(2018년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로 추정된다. 북한은 국방비를 전체 예산의 15.8%까지 배정해 “자위적 핵억제력과 전쟁 수행 능력을 끊임없이 확대 강화해 나가겠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 국내총생산이 북한의 59배(2024년 기준)라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기 어렵다.

전작권 환수가 본격 준비되기 시작한 2007년 이후 한국군에 투자된 순수 전력증강비(인건비 등 제외)만 누적 규모로 176조3천억원이다. 이 돈은 전장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감시정찰, 상대 전략·전술 목표를 즉각 타격할 수 있는 정밀타격, 모든 전력과 정보를 통합해 순간적인 결정을 할 지휘통제 능력 건설에 주로 투입됐다. 한·미가 2014년 조건부 전작권 전환 합의 때 설정한 기준으로 알려진 정보감시정찰, 정밀타격, 지휘통제 능력에 집중적으로 전력을 강화한 것이다.

한국군은 과거 미국 정찰위성, 정찰기 등 미국 정보자산을 통해 북한 움직임을 파악해야만 했다. 2012년 탄도미사일을 탐지하는 그린파인 레이더를 도입하기 전까지 한국군은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쏴도 미국이 정보를 주지 않으면 그 사실을 몰랐다. 독자적인 대북 감시망을 갖추지 못한 한국은 미국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신세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은 현재 한반도를 2시간 단위로 체크할 수 있는 독자 군사 정찰위성 5기를 운용 중이다. 향후 초소형 위성 30~40여기가 발사에 성공해 정찰위성들과 상호 보완적인 운용을 하면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 등 북한군의 위협을 거의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 한국군은 이미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4대를 미국에서 도입해 북한을 감시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국내 첫 전략급 무인항공기인 중고도 정찰용 무인항공기 양산 1호기가 출고됐다. 이 무인기는 고도 10㎞ 이상 상공을 비행하며 지상 목표물을 실시간 감시한다. 이성춘 동국대 북한학과 대우교수(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는 “우리 군이 전작권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정밀타격 능력에서도 한국군은 현무-2, 현무-3, 현무-4, 현무-5 미사일,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타우러스 등을 확보했다. 지난해 말부터 일선부대에 실전배치한 현무-5는 탄두 무게가 8톤가량으로 북한의 지하 벙커를 파괴하는 고위력 탄도미사일이다. 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한국형 3축 체계(킬 체인-한국형 미사일방어-대량응징보복) 중 대량응징보복을 완성할 핵심 무기로 꼽힌다. 지휘통제(C2)도 한국군은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를 기반으로 군 정보관리체계(MIMS) 등을 통합한 전장관리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안규백 장관은 지난달 31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미 상·하원 의원들을 만나 “한·미 양국이 2020년 전작권 전환 조건의 94%가 이미 충족됐다고 합의한 것을 포함해, 우리 능력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2014년 당시 합의한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정보감시정찰, 정밀타격, 지휘통제 능력에서 이미 독자적 운영 수준을 달성했다”며 “한국군이 확보한 이 능력들은 미국·영국·프랑스·이스라엘 등 경제력과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군사강국이 보유 가능한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한국군 일부에서는 무인기 위협 증가 등 전쟁 양상 변화, 극초음속미사일 등 북한의 새 무기 개발 등에 대응해 전작권 환수 조건을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한국군이 드론을 막을 능력이 부족하고 북한이 초대형 방사포와 단거리 미사일, 각종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등을 섞어 쏠 확률이 크기 때문에 방공망을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예비역·현역 장성들은 미군과 같은 하드·소프트웨어를 지녀야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전작권 환수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뀌는 조건을 계속 따라가면 전작권 환수는 기약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987년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겠다고 했을 때도 시기상조론이 나왔고, 그로부터 거의 40년 동안 우리 군 능력이 많이 향상됐음에도 계속 같은 얘기가 나온다. 전작권 전환은 조건이나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의 문제이고 정책적인 선택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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