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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국민, 설 연휴 첫날에도 긴급하게 모여 “조희대 탄핵” 외쳐

 

이영석 기자 | 기사입력 2026/02/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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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청산 국민주권실현 178차 긴급 촛불대행진’이 촛불행동 주최로 14일 오후 2시 대법원 앞에서 열렸다.

 

‘조희대를 탄핵하라! 법비들을 응징하자!’라는 부제로 열린 이날 집회에 연인원 4,000여 명(주최 측 추산)의 촛불시민이 함께했다.

 

  © 김영란 기자

 

사회를 맡은 김지선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설 연휴 시작하는 날 만나니까 정말 가족 같고 좋다. 새해 복을 내란 단죄라는 복으로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인사했다.

 

또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 중 한 명인 이상민에게 징역 7년이 선고된 것을 비롯해 최근 있었던 내란 관련 재판 결과들에 열불이 터지지만 “헌법재판소부터 이진관 재판부까지 모든 재판부가 내란죄를 줄줄이 인정하고 있다”라며 “이걸 지귀연이 엎는다면 그날로부터 무기한 총력 투쟁에 들어가겠다”라고 밝히면서 “각오를 단단히 하자. 어떤 결과가 나오든 최종 승리는 국민의 것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회자가 참가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촛불집회를 시작했다.

 

“촛불로 몰아쳐 내란 완전 단죄하자!”

“내란세력 최후보루 조희대를 탄핵하라!”

“내란단죄 가로막는 법비들을 응징하자!”

“내란수괴 윤석열에게 사형을 선고하라!”

 

권오혁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기조 발언에서 “민주개혁 진영이 모두 힘을 합쳐 내란 청산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국민이 우려하고 있는 내부 다툼으로 균열을 만드는 일에 힘을 쏟아서는 안 된다”라며 이는 “12.3 내란 이후 일관된 국민의 명령이며, 우리 세대에 부여된 역사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머지않아 내란 법비 조희대를 탄핵하고 내란 청산의 새로운 단계로 올라설 것이다”라며 “촛불광장을 2배, 3배로 키워서 그날을 앞당기자”라고 호소했다.

 

서영교 민주당 국회의원은 최근 국회 법사위에서 법왜곡죄, 재판소원제, 대법관 증원 등 3대 사법개혁안을 통과시켰다며 “설 연휴 끝나고 바로 국회 본회의에서 이 세 가지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저희가 그동안 머뭇거린 게 맞다. 언젠가부터 머뭇거렸다”라고 고백하며 “여러분이 계속 촛불집회를 열어 ‘국회는 정신 차려라’ 해 줘서 세 가지 사법개혁안을 법사위에서 모두 통과”시킬 수 있었다면서 “여러분(국민)이 하자는 대로, 옳은 길을 함께 가겠다”라고 말했다.

 

또 “윤석열이 사형을 선고받고 사면될지 걱정되는가”라며 내란, 외환죄에 한해 사면을 금지하는 법안을 이미 대표 발의했다면서 사면 금지법도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 서영교 국회의원(왼쪽)과 윤현주 회원.  © 김영란 기자

 

윤현주 강남서초촛불행동 회원은 “법비 우인성의 김건희 무죄 판결! 법비 김인택의 명태균, 김영선 무죄 판결! 법비 오세용의 곽상도와 아들 50억 뇌물 무죄 판결! 법비 류경진은 이상민 재판에서 사기범의 형량인 고작 징역 7년을 선고하였다”라며 법비들이 “판결을 통해 조희대의 졸개라고 스스로 입증한 거 아닌가”라면서 “조희대 탄핵은 내란 단죄의 필수 조건”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설 명절이 끝나는 바로 다음 날 윤석열 내란 재판 1심 선고가 진행된다. 내란 수괴 윤석열에게 무기징역이나 사형이 선고되지 않는다면 이 나라 사법부는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다”라며 참가자들을 향해 “설 명절 내내 우리 모두 내란 단죄 홍보대사, 조희대 탄핵 운동의 전파자가 되자”라고 호소했다.

 

여현정 양평군의원은 지금까지 밝혀진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진상을 두고 “서울-양평 고속도로(종점 변경 특혜)가 국정 농단이 아니라는 증거가 하나라도 있는가?”라고 규탄하며 “2차 특검을 통해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공흥지구 고속도로 그리고 김선교가 관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양평군 공무원 죽음의 모든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고 책임자들이 샅샅이 처벌”되기를 촉구했다.

 

이어 지난 총선에서 여주, 양평의 시민단체들이 최재영 목사 초청 시국 강연회를 개최한 것과 관련해 여주, 양평의 민주시민들이 검찰과 사법부로부터 탄압받고 있는 현실을 고발했다.

 

  © 김영란 기자

 

권현문 새날 PD는 “오늘 장동혁이 어제 송영길 대표 무죄 나온 건에 대해 ‘사법부의 신뢰가 녹아내리고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 재판을 재개하라’는 얘기를 했다”라며 신뢰가 떨어진 사법부 보고 재판을 재개하라는 게 “앞뒤가 안 맞는다”라면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가”라고 꼬집었다.

 

또 이재명 재판 파기환송으로 대선 개입 사건을 일으킨 “조희대가 아직도 대법원장직에 있다”라며 “조희대 탄핵”을 연호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명절 연휴 다음 날 윤석열에게는 사형 선고만 남았다”라며 “윤석열 사형 선고뿐만 아니라 김건희와 내란세력들, ‘이채양명주’ 사건을 일으킨 세력들에 대한 분노를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당부했다.

 

박근하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상임대표는 “법비들은 친미친일 매국노, 내란범들에게는 한없이 가벼운 형을 선고하며 사실상 면죄부를 주면서, 학생들의 정당한 투쟁에 대해서는 구속영장 청구는 말할 것도 없고 실형 선고와 벌금 폭탄까지 던지고 있다”, “경찰과 검찰도 마찬가지다. 폭력적인 연행과 기소 그리고 수년 전의 투쟁까지 엮어서 병합 사건을 만들고 악랄하게 탄압하고 있다”라고 대학생들에 대한 탄압 실태를 전하며 “이는 대학생들의 정의로운 투쟁을 막기 위한 협박”이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대진연이 지금까지 이렇게 열심히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촛불국민의 사랑과 믿음 때문”이었다며 “앞으로도 위대한 촛불국민을 따라 주저함 없이 불의에 맞서 싸워 나가는 용감한 청년학생들이 되겠다”라면서 대학생들의 벌금 모금에 함께해 주기를 부탁했다.

 

촛불행동은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인 윤석열 선고 재판이 있는 오는 19일 오후 2시 대법원 앞에서 긴급 촛불대행진을 다시 개최할 예정이다.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 권오혁 공동대표.  © 김영란 기자

 

▲ 여현정 군의원.  © 김영란 기자

 

▲ 권현문 PD.  © 김영란 기자

 

▲ 안진걸 소장.  © 김영란 기자

 

▲ 박근하 상임대표.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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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이 진정 원하는 건 빠른 판결 이전에 바른 판결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권력 앞에 작아지는 법원이 아니라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공정하고 당연한 상식을 보고 싶다.” 서울 강북구에서 온 권시현 학생.  © 김영란 기자

 

▲ “법비 놈들이 국민 눈치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이놈들이 끝에 몰려 있다. 이것이 바로 촛불국민 힘 아니겠는가? 법비들을 반드시 응징하고 윤석열 사형 선고 받아내자.” 이길재 강원촛불행동 대표(오른쪽).  © 김영란 기자

 

▲ 오는 19일 윤석열 선고를 앞두고 “조희대 사법부는 작당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결의를 다지려고 오늘 나왔다.” 김미경 천안아산촛불행동 회원.  © 김영란 기자

 

▲ 가수 백자 씨가 「1년8개월쏭」, 「내란수괴 사형하라」, 「법비에게 철퇴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불렀다.  © 김영란 기자

 

▲ 최은비 마포은평서대문촛불행동 회원이 ‘몸풀기’ 순서에 무대에 올라 노래 「신발끈 고쳐 매고」에 맞춰 율동했다.  © 김영란 기자

 

▲ 참가자들이 몸풀기 시간에 최은비 씨의 율동을 따라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 가수 정도훈 씨가 「재판을 아무나 하나」(개사곡), 「풍문으로 들었소」(개사곡), 「날이면 날마다」(개사곡)를 불렀다.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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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문제 핵심은 '불로소득'...이젠 다른 해법이 필요합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조치가 오는 5월 9일부터 재시행된다. 다주택자가 보유한 조정대상지역 주택 양도차익에는 최고 75%(지방세 포함 82.5%)의 세율이 적용된다. 사진은 12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일대. ⓒ 연합뉴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분량 때문에 지난 첫 번째 공개서한에서 서술하지 못한 정책 제안에 대해 다양한 요청이 있어서 고심하다가 한 번 더 쓰게 되었습니다(관련 기사 : '똘똘한 한 채' 막을 확실한 방법...이 대통령을 응원합니다 https://omn.kr/2gy74).

요즘 저뿐만 아니라 부동산 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대통령께서 X(옛 트위터)에 올린 부동산 관련 게시글을 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동산 문제가 초래한 사회경제적 폐단을 대통령님처럼 이해하고 표현한 분은 지금까지 없었거든요.

대통령께서는 과거 정부처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여 주거 안정을 반드시 달성하겠습니다"와 같은 '선언'에 그치지 않고 부동산 불로소득이 발생하는 경로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거론하고 국민과 소통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계신데, 이건 아마도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을 총체적이고 유기적으로 파악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국민을 믿고 나가겠다고 하셨으니 저 같은 사람의 가슴이 뛰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부동산 문제 해결에 실패한 3번의 민주 정부(김대중 정부, 참여정부, 문재인 정부)의 경험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실패의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정책적 측면에서만 보면 저는 핵심을 놓치거나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합니다.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불로소득

정책적 측면에서 과거 민주 정부의 부동산 실패의 최대 이유는 부동산 문제가 불로소득 문제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 약하거나 놓친 데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실수요 보호' 등 수많은 미사여구가 동원되었지만 '불로소득'이라는 과녁에 정조준하지 못한 부동산 세제는 수많은 문제를 발생시켰고,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내세웠지만 불로소득을 고려하지 않는 전월세 대책은 전세값 폭등은 물론 집값 폭등을 초래했습니다.

또 두터운 주거복지를 강조했지만 불로소득 환수 및 차단과 함께하지 않는 주거복지는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불로소득을 고려하지 않는 재건축/재개발 정책은 주거 안정에 도움은커녕 투기와 부패의 진원지가 된 것이 그간 정책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 탈출"이라는 언어로 표현된 목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동산 문제의 핵심인 불로소득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되니까요.

대통령께서 X에서 지적한 매입형 주택임대사업자들이 누리는 특혜, 즉 보유한 주택이 임대 의무기간이 끝났는데도 양도세 중과 대상에서 제외될 뿐만 아니라 공제도 받고 세율도 낮게 적용되는 것도 역시 불로소득의 문제입니다. 그들이 엄청난 시세차익, 즉 불로소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니까요. 대통령님처럼 새로 주택을 건설·공급하는 건설형 임대주택사업자도 아닌데, 이런 과도한 불로소득을 누리게 해서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도모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것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불로소득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에 대해서 주택임대사업자에게 이런 혜택을 부여하지 않으면 민간임대주택 공급이 줄고 이것은 '전월세 공급 부족→전월세값 상승'으로 이어져 세입자만 고통스럽다는 반론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데, 이 지점에서 부동산은 체제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께서 찬찬히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부동산 일반에 대한 보유세 강화와 '실거주'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혜택의 정책 기조를 입법화하면 부동산 투기가 상당히 차단되어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가능성은 크게 높아질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전월세 수요는 줄어들게 됩니다.

또 신규주택도 불로소득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주택, 즉 잘 설계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2억 5천에서 3억 5천만 원 사이에 공급하면 전월세 수요는 더 줄어들게 됩니다. 같은 위치에 일반분양주택 전세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비교해 보면 비용은 비슷한데,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 주거 안정성 면에서 전세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꾸준히 공급하면 주택임대사업자에게 엄청나게 혜택을 부여할 '상황적 이유'는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주택임대사업자에 혜택 준 '상황'도 정책 실패가 만들어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서울 시내 아파트 4만2천500세대가 적은 물량은 결코 아니다"라며 등록임대주택의 다주택 양도세를 중과할 경우 일정한 부동산 시장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송파구청 도시임대사업 민원실 모습. ⓒ 연합뉴스

그뿐 아니라 저는 주택임대사업자에게 엄청난 혜택을 부여해가며 전월세를 안정시키려 했던 상황을 살펴보면 이것 역시 불로소득을 중심에 두고 고민하지 않은 대증요법식 정책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전세대출 증가로 인한 전세값 상승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된 전세대출은 2008년에는 대출한도를 1억 원으로 했다가 2009년부터는 2억 원으로 확대했는데 이렇게 대출한도를 2억 원으로 확대하니까 2억 이하의 전세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전세대출 한도를 3억 원으로, 2015년에는 5억 원으로 올리니 전세가는 이에 맞추어 계속 상승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전세가와 매매가의 갭(gap)이 줄어든 걸 이용하는 이른바 '갭투기'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는데, 바로 이런 '상황'을 보고 박근혜 정부는 다주택자에게 각종 세제 혜택을 주는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도입한 것입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2017년 12.13 대책에서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세제 혜택을 더 크게 늘리면서 전세대출을 더 많이 해주고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보호를 위해 도입된 반환보증보험의 한도도 100%까지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는데, 불행하게도 이때부터 전세 사기 설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2020년 7.10 대책에서 아파트는 주택임대사업자 대상에서 제외시키자 갭투기의 대상이 전국의 빌라와 오피스텔로 옮겨갔고, 2022년에 기준금리가 상승하자 전세가도 떨어지면서 전세 사기 피해자가 창궐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대통령께서도 잘 알고 계시는 다주택자들에게 엄청난 불로소득을 누리게 한 주택임대사업자 제도가 만들어진 상황 혹은 배경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설명한 까닭은 정책에서 불로소득 변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부동산 세제를 통한 집값의 하향 안정화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과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통해서 전세수요 자체는 줄 수 있지만 전세 대책은 꼭 필요합니다. 즉 '불안한 전세'를 '안전한 전세'로 전환하는 대책 말입니다.

'불안한 전세'에서 '안전한 전세'로

일단 저는 매입형 임대주택사업자에게 주는 세제 혜택은 대폭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주택자의 임대업 등록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가 민간임대시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대통령께서도 아시듯이 부동산 대전환이 일어나면 전세는 월세로 점진적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은 결과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부동산 세제개혁을 통해 투기가 크게 줄어들면, 즉 잔뜩 낀 집값 거품이 서서히 빠져서 매매차익이 기대되지 않으면 임대인은 매월 임대소득을 누리는 월세를 더 선호하게 됩니다. 전세의 월세화 진행은 그 자체로 임대차시장이 안전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월세는 사기의 위험성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보증금이 얼마 되지 않은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월세를 매달 지급하기 때문에 중간에 집주인이 바뀌는 것도 알게 됩니다. 만약 집주인이 얼마 되지 않는 보증금을 의도적으로 돌려주지 않으면 그만큼 더 살면 됩니다.

그렇더라도 기존 전세를 '안전한 전세'로 전환하려면 먼저 전세대출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보증금의 80~90%까지 대출해주는 전세대출을 최소한 보증금의 60~70% 이내로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주택가격 하락 시 전세보증금 손실 방지를 위해 매매가 대비 전세보증금이 70% 이상인 경우엔, 깡통전세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세대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실상 만기가 없다시피 한 전세대출 원리금 상환을 유도할 필요도 있고,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전세대출을 DSR 산정에 포함시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보증금 반환보증 한도 역시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전세의 안정성은 크게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전월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2회 이상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주택 임대차 제도는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권한을 1회만 부여하여 4년 거주를 보장하고 있는데, 10년을 보장하는 상가 임대차 제도와의 차이를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초등학교가 6년제이기 때문에 최소 6년 이상, 계약갱신청구권을 2회 이상은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로소득형 재건축'에서 '시장형 재건축'으로

재건축 정책도 불로소득 공화국 탈출 차원에서 기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재건축의 관건은 '사업성'이었는데, 거칠게 말해서 사업성은 일반분양 수익의 크기에 따라 결정됩니다. 수익이 크면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분담금이 줄어듭니다. 일반분양 수익은 다음과 같이 결정됩니다.

일반분양 수익 = 일반분양 물량 × 분양가

대통령께서도 잘 아시듯이 '기존 용적률'이 낮고 '허용 용적률'이 높을수록, 즉 일반분양 물량이 늘어날수록, 그리고 투기 분위기가 일어나 분양가가 높아질수록 사업성은 더 올라가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재건축 활성화는 언제나 투기의 도화선이 되어왔습니다.

부동산 대전환의 관점으로 보면 사회가 제공한 '증가한 용적률'의 이익을 개별 조합이 누리는 건 불로소득입니다. 그러므로 높아진 용적률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공공임대주택의 형태로 환수하고 재건축으로 인한 초과이익의 일부를 환수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 이제 가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하면 사업성이 떨어져 재건축이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대통령께서 구상할 걸로 예상되는 보유세를 전반적으로 높이면 집값이 하향 안정화되기 때문에 분양가도 낮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시장형 재건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붙이자면 지금까지 재건축은 '불로소득형 재건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장형'이 말하는 '시장'이 무슨 뜻인가 하실 것 같아 좀 더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쉽게 말해서 '시장'은 자기 돈을 내고 새집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시장에서 물건을 사려면 그에 상응하는 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시장형'의 본뜻입니다. 그러니까 단독주택의 경우 낡고 위험해지면 부수고 자기 돈을 들여서 집을 새로 지어서 소유하는 것이 바로 '시장형'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파트 재건축은 건축비 일부를, 아니 심지어는 건축비 부담은 고사하고 아예 돈을 받으면서 재건축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기존 용적률은 낮고 허용 용적률은 높아서 일반분양 물량은 많았고 분양가도 높았기 때문입니다. 불로소득 환수의 방법인 공공기여의 의무도 줄여주었습니다. 세간에서는 재건축 과정에서 엄청난 불로소득을 누리는 것이 '시장'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원론에서 보자면 이것은 시장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시장 원리는 생산에 대한 기여의 결과를 존중하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장과 불로소득은 상극입니다.

'시장형 재건축'이 정착되면 재건축은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데, 사실 이것이 정상적입니다. 30년 된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짓는다는 것은 자원의 낭비입니다. 환경파괴도 수반됩니다.

이와 같은 '시장형 재건축'은 투트랙으로 진행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사업성이 좋은 경우입니다. 분양가가 매우 높은 강남을 포함한 한강 벨트 지역과 분당 등의 아파트 재건축이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재건축의 불로소득 환수 장치는 반드시 제대로 적용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사업성이 떨어지는 재건축 단지의 경우입니다. 다시 말해서 건물 노후 및 안전 등의 이유로 재건축이 꼭 필요한 단지가 높은 분담금으로 재건축 실행이 불가능한 경우입니다. 물론 분담금을 부담할 수 있는 세대도 있겠지만 대부분 분담금 부담이 버겁거나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조합원이 LH 등의 공공에 대지 지분을 매각하고 매각 대금으로 분담금을 상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방식을 선택하는 조합원에게 건물 분양권을 부여하면 결국 조합원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분양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분담금이 부담스러운 조합원의 대지 지분 가격이 3억 원이고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의 분양가가 2억 5천만 원이면 그 가구는 5천만 원과 함께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고, 대지 지분의 가격이 2억 원이면 5천만 원의 분담금만 부담하면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라는 새집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길을 열어 놓으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재건축은 추진이 쉬워지고 분담금이 부족해서 강제 퇴거 되는 세대는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기존 거주자의 정주권이 보호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방식을 실제 적용하려면 좀 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시장형'이라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재건축은 건설사와 자금이 충분한 조합원에게는 큰돈을 버는 기회였지만, 분담금이 부족하거나 없는 조합원에게는 그동안 구축한 인간관계가 사라지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이 방식이 집값 상승을 촉발하고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이제 '불로소득형 재건축'이 아니라 시장의 원리가 적용되는 '시장형 재건축'으로 전환되어야 하는데, 대통령님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아 새로운 방식을 제안해보았습니다.

부동산 대전환에 꼭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시길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대통령님, 잘 아시는 것처럼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은 '체제'로 작동합니다. 그러므로 불로소득 공화국에서 탈출하려면 새로운 체제를 구성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환수하는 것이 체제의 바탕에 깔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본이 되는 것이 부동산 세제입니다. 왜냐면 세제는 모든 부동산에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그 위에서 국공유지나 공공택지에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위주로 공급하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하고 한편으로는 공공임대주택 공급도 꾸준히 늘려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전세 수요가 자연스럽게 줄고, 집값이 하향 안정화되기 때문에 전세는 월세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전세대출과 보증금 반환보증 한도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동시에 1회만 세입자에게 부여했던 계약갱신청구권을 2회 이상으로 부여해서 최소한 초등학교 6년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면 전 국민 주거권 실현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온갖 사회경제적·환경적 문제를 일으켜왔던 '불로소득형 재건축'은 재건축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다양한 방식으로 환수하는 '시장형 재건축'으로 전환하되, 분담금이 부족하거나 없는 조합원은 대지 지분을 공공에 매각하는 대신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을 분양받도록 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하여 기존 거주자의 정주성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국민을 믿고 부동산 대전환을 추진하겠다는 대통령님의 말씀에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지금까지 정확히 21년 동안 부동산 개혁에 매달려 온 저로서는 가슴이 뛰는 일입니다. 꼭 성공해 주십시오. 말씀하신 것처럼 국민을 믿고 용기를 내주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이재명#부동산#불로소득#공화국#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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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압승에 일본의 호전성을 경계하는 이유

오세훈 씨알의소리 편집위원

goodbridg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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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평화 위협하는 극우파 총리의 야망

일제의 살육의 역사와 제도화된 잔혹성

불안한 땅에 사는 나라의 대외 팽창 야욕

들어가며

2026년 2월 8일. 일본의 집권 자민당이 창당 이래 최다 의석을 차지했다. 일본은 이제 ‘전쟁할 수 있는 나라’의 염원을 이룰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310석이 개헌안 발의선인데, 자민당은 316석을 얻었다. 여기에 연정대상인 일본유신회의 36석을 합하면 여권은 352석이 된다. 전체의석의 3/4 이상(75,7%)을 차지한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처음으로 일본 우익은 꿈을 이루었다. 이로써 우리 대한민국과 북한, 중국과 대만의 미래가 매우 불안해졌다. 불길하다. 재무장한 일본은 2차대전 때의 그 지상 최악의 악마로 다시 돌아올까. 지난 80년 동안,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우리도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중국은 G2의 한쪽이 되었다. 핵무기도 가지고 있다. 북한도 만만치 않다. 일본은 가장 먼저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다. 동시에 미국과 중국처럼, 일본도 5대양 6대주의 그 어디든, 자국에 이익이 된다면, 서서히 하나씩 사실상의 식민지로 만들 것이다. 초반에는 경제력으로 지배하고, 저항하면 군사력으로 제압할 것이다.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1961~ )는 실은 취임(2025년 10월 21일) 직후부터, 특히 동북아평화를 위협하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발설해왔다. 일본 최초의 여성총리(104대)라는 역사성과 故 아베 전 총리 뺨치는 강성 보수성향의 정치인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가 ‘야심적으로’ 주장하는 이슈는 세 가지다. 1)비핵 3원칙--보유하지 않는다. 만들지 않는다. 들여오지 않는다—을 재검토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핵공격 피폭국이다. 헌법에 “전쟁을 벌이지도 않고 무장도 하지 않는다”, 는 조항을 둔 것은 그 때문이다. 2)중국이 대만을 점거할 경우, 일본은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중국은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외교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꺼내면서 초강경 태도를 취하고 있다. 3)우리의 독도 영유권 문제다.

이 여성은 총리가 되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독도-일본에서는 竹島(죽도. 다케시마)라고 함-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취임 직전에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2월 22일)에 장관급이 참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에는 어느 극우단체 심포지엄에 초대되어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관하여 우리가 어정쩡하게 하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이 기어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욕적인 도발이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8월 13일에 참배한 것에 대해서 “종전일인 8월 15일에 참배하라”고 비판한 일도 있다. 바로 그 여인이 지난 1월 13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최상으로 환대했다. 평범한 사람들도 ‘과공비례’(過恭非禮)의 고사를 떠올렸다.

 

8일 오후 일본 도쿄 자민당 개표센터에서 당선확정자에게 꽃을 달아 주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2026. 02. 08 [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총리를 앞세운 일본 우익의 저의와 그 흉포한 과거사를 미국도 알고, 중국도 알고 있다. 당연히 우리도 알고 있다. 전쟁은 심지어 사소한 감정다툼으로 시작하기도 하고, 불의한 정치인들과 나쁜 정치가 섞여서 일방이 선전포고도 없이 선제공격함으로써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기도 한다. 역사의 교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과연 격동하는 한-중, 한-미, 한-일 관계에서 크고 깊은 지혜를 발휘하여 대한민국과 동북아를 굳건한 평화의 땅으로 너끈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슬픈 열도

일본은 태평양 ‘불의 고리’ 위에 놓인 불안정한 땅이다. 이 열도의 대표적인 특징은 지진과 화산, 태풍과 해일 등 천연재해다. 일본은 3000만년 전, 이른바 ‘태고시대’(太古時代)의 지각변동 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대략 10만 년 전쯤에, 열도가 오늘의 지도와 비슷한 모양(지형)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6500만년 전(신생대 4기)에 형성되었으며, 200만년 전쯤 오늘의 일본열도와 비슷한 꼴을 이루었다는 주장도 있다. 둘 다 전문가들의 연구내용이다. 그 숫자의 차이를 따지는 일은 별로 의미가 없다.

그 후 변함없이, 규모를 가늠할 수도 없고, 횟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하고 빈번한 화산활동이 기나긴 세월 동안 이어졌다. 지금도 1년에 크고 작은 자연재해가 1천 회 넘게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보면, 하루에 3회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는 셈이다. 나는 이 점이 일본과 일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고려사항이라고 생각한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같은 초고강도 지진(강도 9 이상)과 해일은 100년~200년 안에 한 번씩 일어나는 경향이라는 연구자료가 있다. 물론 규칙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 사이에, 여러 차례 일어날 수도 있고,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중대형급은 한 사람의 생애 동안 두세 번 겪을 수 있다고 한다.

멀쩡하던 땅이 언제든 흔들릴 수 있고, 갈라질 수도 있고, 그 틈에서 종말론적 불기둥이 솟아오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태내에 있을 때부터 느끼기 시작하며, 죽는 날까지 그 공포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은 불행하다. 그 감각은 그들의 무의식 속에 깊숙이 잠재한다. 일본인들은 참으로 특별한 족속이다. 그에 관하여 누구든 측은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특별한 자연환경이 일본족의 정체성을 결정한 핵심요소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사람들마다 개인차가 있고, 예외도 있으며, 지역별로 재해의 종류와 강도와 빈도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00년 동안,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운 지역(현 단위)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상전벽해’

이 말은 원래 도교(道敎)에서 나온 격언이라고 한다. 긴 세월이 흐르면, 뽕나무밭(桑田, 상전)이 푸른 바다(碧海.,벽해)가 되고, 또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면 바다가 다시 뽕밭이 된다는 신선의 말이었다. 현대인의 수명이 100년 안쪽이니, 이 시대의 남녀노소는 그 불노장생(不老長生)의 초인들에게나 가능한 초월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질학(地質學. geology)에서 언급되는 숫자들은 좀 크다. 구약성서의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조차 지금으로부터 불과 3000년 전의 기록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는 문학 또는 일종의 신학에서 쓰일 수 있는 말이지만, 그 자체로 왜소한 인간의 기준으로는 잴 수 없는 무한수(無限數)이기도 하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시간이다. 제방을 넘어 들이닥친 해수가 강을 타고 역류하기 시작하더니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넓은 들판이 삽시간에 바다가 되었다. 2차대전 때 원자탄을 맞은 일본! 그 폐허 위에 이룩한 빛나는 현대사와 그 화려한 문명! 그 위대한 성취가 천연재해 앞에서 모래성처럼 속절없이 무너졌다.

코발트빛 푸른 바다, 아득한 수평선을 넘는 황홀한 석양, 그 압도적인 풍광을 특권적으로 누리던 언덕들은 사라지고 그곳에 우럭(rock-fish)이 떼 지어 다니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충격적인 피해는, 아직 도망치지 못한 어린이들과 노약자들과 그들을 챙기려고 애쓰던 청장년 계층 대부분의 죽음을 포함한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듯, 멈추지 않고 달려드는 해일과 지진은 마치 오래 굶은 표범이 토끼를 쫓는 기세였다. 분명코 인간계의 종말을 목표로 삼은 형국이었다. 쓰나미에 맞아서 망자가 된 2만 명의 이웃들은, 가두리 양식장의 어류가 집단폐사하여 물에 떠 있는 것과 같았다.

실로 참혹한 꼴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재앙으로 인하여, 지도에서 사라진 도시와 마을이 여러 곳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현장은 공허 그 자체다. 이는 현실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이다. 기괴한 일이었다.

굴지의 강병부국 일본이 그 진재(震災)지역들을 재생하려고 10년 넘도록 애를 썼으나 실패했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살아난 사람들은 누구도 죽지 않은 것을 행운으로 여기지 않았다. 가족도 잃고 고향도 잃었으니 그야말로 모두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들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표현능력을 잃었다. 몸과 마음은 활성을 잃었다. 숨이 끊어진 시간부터 죽음으로 계산하는 것은 기계적이다. 그들은 그 상태로 생면부지의 낯선 땅으로 ‘추방되어’ 넋을 잃은 채 우왕좌왕하다가 생을 마칠 것이다. 이 초현실적인 재난의 목격자들은 66년 전(2011년 3월 재앙일로부터 1945년 8월 패전일을 계산한 것), “하늘에서 지옥이 떨어졌다”고 했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그 멸절적 참상을 떠올렸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일본 후쿠시마 원전 모습. 2011년 3월 25일. AP 연합뉴스

이 광경은 계몽주의 재난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었다. 불과 10여년 전, 인류사회 전체가 생생하게 목격하며 다 함께 종말론적 상상을 하도록 만들었다. 재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로 인하여, 일본사람들은 예외 없이 심각한 트라우마를 앓는 집단이 되었다. 후쿠시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의 주민들이라 해서 덜하지 않다. 실로 안쓰러운 일이지만, 일본사람들과 일본열도의 숙명이다.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실은 이는 인류사회 전체의 숙명이고 아픔이다. 열도가 형성되고,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 지속된 현상으로, 언제든, 누구에게든, 어느 지역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일본이 2차대전 패망의 결과, 그 폐허 위에 이룩한 문명은 어느 모로 보나, 사뭇 기적적이다. 한편으로는, 두 가지 점에서 위태롭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하나는 아무리 높은 탑을 튼튼하게 쌓아올린다 하더라도, 동일본 진재(東日本 震災)의 비극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열도인들의 그 심리가 타자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공격성으로 나타날 가능성이다.

공포와 공격의 함수관계

작은 일에도 두려워서 벌벌 떠는 소심한 겁쟁이들이 뭉치면, 억눌려 지내던 시간 동안, 높은 퇴적층처럼 쌓인 억압은 언제든지 타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돌변할 수 있다. 두려움과 불안이 집단화되면, 외부에 대한 공격성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공인된 이론이다. 그 집단 안에서는, 개인의 자아와 책임감은 약화된다. 평소에는 결코 하지 못할 행동을 저지른다. 전쟁 중에 적지(敵地)를 점령한 부대원들이 폭력집단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흔한 것은 이와 관련이 깊다. 아군의 피해를 과장한 정보가 집단에 공유되면 그 메시지를 명분 삼아 야만성이 점차 고조된다. 메시지에 독한 ‘양념’을 집어넣으면 만행은 최악이 된다.

신적인 권위의 천황을 받드는 병력은 그 어떤 악행도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쉽고 편하게 합리화한다. 제국은 그 만행들을 표창한다. 이 언어도단의 전도현상(顚倒現狀) 앞에서, 정상적인 심리상태와 올바른 판단력을 유지하거나 발언할 수 있는 사람들은 희소하다. 그들의 제안은 채택되지 않고 도리어 보복을 당한다. 죽거나, 정신병자가 된다. 양심의 편에 서는 것은 그런 일이다.

심리학이론 중에 공포-공격 가설(Fear-Aggression Hypothesis)이 있다. 자연재해나 사회적 불안이 길게 지속되고 오래 누적되면, 집단의 상층부는 이를 외부를 공격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 휘하 조직은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성을 야만적으로 발휘하며 역사에 피묻은 족적을 남긴다. 일본은 기나긴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그 당사자였다.

500년 전, 이순신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싸움은 건너뛰겠다.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조약(1876년)부터 1945년 항복할 때까지, 일제가 조선과 중국, 그 민초들에게 자행한 만행들만으로 국한하더라도, 일제는 150년 동안, 필설로는 형언키 어려운 잔혹함을 실행했다. 그렇게 천인공로할,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던 당사자는 아직도 당당하다. 큰소리친다. 오늘의 일본 우익은 그 ‘잔인 유전자’와 언제든 무기산업과 무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굴지의 산업경제력을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이종자, ‘대륙낭인’

나는 몇 년 전, 한상일 교수의 ‘일제의 대륙팽창과 대륙낭인’이라는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으면서도, 속으로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대륙낭인’(大陸浪人)이라는 특이한 젊은이들이 비공식 신분으로 만주와 시베리아, 조선과 중국을 종횡무진하며 활약했다.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우리 독립운동사에서도 종종 거명되는 우치다 료헤이(內田良平. 1874~1937)다. 이 사람은 불과 20대 초반 나이에 대륙낭인이 되었다.

그는 서른 살도 되기 전에, 1901년 도쿄에서 흑룡회(黑龍會)라는 대륙낭인 모임을 창설했다. 황제나 다름없던 이토 히로부미와 거래도 하고, 그를 너무 온건하다, 며 공개비판을 하기도 했다. 1907년, 헤이그 밀사파견으로 일본 수뇌부가 격노하여 고종을 압박할 때, 우치다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강경론을 주도했다. 조선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동학군들을 만나 협상도 하고,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어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쳤다. ‘러시아 망국론’은 그의 저작이다. 중국쪽으로는 일찍이 쑨원(孫文)과 절친이 되어 신해혁명(1911년) 때도 도움을 주었으며, 손문이 죽을 때(1925년)까지 혈맹으로 지냈다. 이때는 ‘지나관’(中國觀)을 집필했다.

일본에서는 그를 학자로 분류한다. ‘대륙낭인’으로 활동한 일본의 극우 우국지사들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 그들은 정부로부터 비용을 받지 않았다. 이권에 개입하여 사업도 하고, 거기서 번 돈으로,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으면서 일본에 도움이 되는 일을 알아서 하면서 뛰어다녔다. 21세기 일본 우익 강경파들은 100년 전, 그 ‘대륙낭인’의 정신을 착실하게 잇고 있는 후손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그 대표적 인물이다. 대륙낭인들은 개인의 정치경제적 성공과 일본의 대륙지배가 목적이었고, 우리 독립군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 나라를 되찾는 것이 목표였다.

초토화작전과 삼광작전

간도참변

일제가 공식적으로 ‘초토화작전’(焦土化作戰), 삼광작전(三光作戰)이라는 표현을 문서에 남긴 것은 중일전쟁(1937년) 이후라고 하지만, 훈춘사건(일제가 현지 마적패와 짜고 자국 영사관을 공격하여 10여 명의 자국 요원들을 살해하고, 우리 독립군들이 공격한 것으로 조작한 사건) 이후, 간도에서 자행한 무차별적 살육과 그 잔혹함의 내용은 전형적으로 삼광작전(三光作戰)에 의한 초토화였다.

일제는 1920년 10월부터 1921년 4월까지 6개월 넘도록 북간도 전역의 한인촌 초토화작전(焦討化作戰)을 펼쳐 무자비한 살육을 저질렀다. 이 기간 동안, 3만 명 이상의 우리 동포들이 살해되었으며, 요인들 150명을 검거되었다. 가옥 3,500채, 학교 60여 개소, 교회 20여 개소, 양곡 6만 석을 소각했다. 현지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서방언론에 제보하여 이 지옥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역임한 백암 박은식 선생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겨놓았다.

“아아! 세계민족 중에서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친 자 수없이 많지만, 어찌 우리 겨레처럼 남녀노유(男女老幼)가 참혹하게 도살당한 자 있을 것이오. 역대 전쟁사에서 군사를 놓아 살육 약탈한 자 수없이 많지만, 저 왜적처럼 흉잔포학(凶殘暴虐)한 자는 들은 적이 없다.

저 왜적이 우리 서·북간도의 양민 동포를 학살한 일 같은 것이야 어찌 역사상에 일찍이 있었던 일이겠는가. 각처 촌락의 인가·교회·학교 및 양곡 수만 석을 모두 불태우고, 남녀노유를 총으로 죽이고 칼로 죽이고, 생매장하고 불에 태우고 결박하여 죽이고, 주먹으로 때려죽이고 발로 차서 죽이고 찢어 죽이고, 불에 태우고 가마에 삶고, 해부하고 코를 꿰고 옆구리를 뚫고 배를 가르고, 머리를 베고 눈을 파내고 가죽을 벗기고, 허리를 베고 사지를 못 박고 수족을 잘라서, 인류로서는 차마 볼 수 없는 일을 저들은 오락으로 삼아 하였다.

조손(祖孫)이 함께 죽고, 혹은 부자가 함께 참륙(斬戮) 당하고, 혹은 남편을 죽여 아내에게 보이고, 형을 베어 아우에게 보이며, 혹은 상인(喪人)으로 혼백(魂魄) 고리를 가지고 난을 피하다가 형제가 함께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혹은 산모가 기저귀에 싼 어린애를 품고 화를 피하다가 모자가 같이 명을 끊었다. 그밖에 허다한 일을 종이에 다 적을 수 없으며, 우리와 화양(華洋) 각처의 조사보고도 그 참상을 다 말할 수 없었다.”

이를 간도참변이라고 부른다(*華洋:중국과 서양. 동서양이라는 뜻).

삼광작전은 살광(모조리 죽인다, 殺光), 소광(모조리 태운다, 燒光), 창광(모조리 강탈한다, 搶光)의 단계를 거쳐 초토화한다는 일제의 전쟁기술이었다. 서양학자들은 이를 학술용어로 ‘Scorched Earth Policy’라고 쓰고 있다.

관동대지진

관동대지진(1923년)은 공포가 공격성으로 돌변한 대표적인 사례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는 순식간에 살육의 명분이 되었고, 군과 자경단은 조선인 5천 명을 색출해 죽였다. 당시 일본 유학생이던 함석헌은 이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함석헌은 이를 우발적 현상이 아니라, 일본사회에 깊고 짙게 뿌리내려 있는 국가주의와 집단적 불안이 결합하여 제노사이드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이와 같은 ‘집단적 불안의식’은 일본열도에 내재되어 있는 자연환경의 특성과 유관하다. 그는 훗날 자연의 붕괴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마음”이었다고 갈파했다. 연약한 인간들이 거대한 공포 앞에서 연대하지 않고, 증오와 살육으로 돌진했다. 관동진재는 일본 사람들에게 잠재된 공포심이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집단적 잔혹성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원형적 사건이었다.

난징대학살

일제는 1937년 12월 13일부터 6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난징(중국 남경)의 민간인과 비무장 병사들 합하여 30만 명을 죽였다. 2만 건이 넘는 강간을 저질렀다. 피해자들 안에는 어린이와 노인이 포함되었다. 도시 안의 가옥들 대부분과 상점들은 약탈당했고, 불태워졌다. 간도참변의 규모에 비하여 10배다. 잔혹함의 내용은 동일하다. “지옥 같은 폐허”로 기록되었다.

대만 이민자 부부의 딸로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아이리스 장(1968~2004)은 1984년에 난징사건에 관한 사진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잔혹한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난징의 강간’을 썼다. 1997년 출간 후, 일본의 우익세력과 극우민족주의자들로부터 지속적인 협박과 위협을 받았다. 일부는 ‘난징대학살’ 자체를 부정하며 그를 공격했고, 살해위협과 모욕적인 편지를 했다. 그는 끝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진실을 밝힌 대가였다.

위에 서술한 살육의 역사는 극히 일제가 저지른 만행들의 극히 일부다. 일제의 만행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비하여 단 한 가지 점에서 다르다. 나치는 인간을 숫자로 환원해 제거했다. 살육을 산업화했다. 일제의 폭력은 달랐다. 일본군은 피해자를 끝까지 인간으로 남겨둔 채, 그 인간성을 파괴했다. 참수, 고문, 강간, 생체실험 등은 단순한 군사행위가 아니라 제도화된 잔혹성이었다. 이는 살해가 아니라, 인간을 부수는 일이었다. 존재를 붕괴시키는 악마의 파괴공학이었다.

나는 일본열도의 자연재해가 일본인의 잔혹성을 결정지었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끝없이 반복되는 공포가 사회 전반에 축적되었고, 그것이 군국주의와 결합했을 때 외부를 향한 무제한적 공격성으로 분출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 폭력은 생존의 논리가 아니라, 공포를 외화하는 방식이며, 오랜 전통이었다. 더욱 심각하고 우려되는 것은 그 특징은 항구적이라는 점이다.

 

8일의 중의원선거에서 압승한 자민당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9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2월 10일

맺으면서

오늘날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일본 정객들의 역사 부정과 호전적 언사는 단순한 외교적 무례가 아니다. 한일, 한중 관계사의 바탕에는, 대표적으로 간도참변과 난징대학살에서 보인 잔혹성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런 일본은 종종 마치 피해자였던 것처럼 처신한다. 세계가 일본을 경계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하다. 일본 정부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천명함으로써 21세기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었다. 중국은 ‘중화’의 세상을 위하여 미국에 도전하고 있으며,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온갖 술수를 다 구사한다. 일본은 미-중-러 G3의 세상을 G4로 바꾸려고 이웃과 세상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력

-GDP:미국,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4위

-國富:3위

-대외 순자산: 1위

-증시규모:3위

-외환보유:2위

-비서양권 국가들 가운데, 최초의 OECD 가입국이며 G7 회원국

일본재무장은 일본 우익의 염원이다. 이는 이제까지 미국의 중국 견제 목적에 부합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완승 기자회견‘에서, “헌법개정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그가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현대 일본의 중요한 정책에 관한 대전환‘을 실행하겠다는 말이다. 최종 목표는 단순명쾌하다. 평화헌법 9조의 정신을 지우고, 자위대를 전쟁할 수 있는 군사조직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세계 3위의 경제력은 세계 3위의 전투력으로 전환가능한 무력과 같다. 일본이 플루토늄 10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정설이다. 당장 1250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머지않아 핵보유국이 된다. 우리가 어찌 일본의 재무장과 과거사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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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쿠팡에 가혹하다?…실제론 직무유기 중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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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6/02/14 10:31
  • 수정일
    2026/02/14 10:3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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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준 기자
  •  
  •  승인 2026.02.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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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택배노조, CLS 경영진 추가 고발
17개월째 결론 없는 쿠팡 수사
미국 자본의 ‘사법 주권’ 흔들기
FTA 파기는 자기들이 해놓고?

12일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쿠팡 CLS 대표이사 3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고발 기자회견' ⓒ 김준 기자
12일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쿠팡 CLS 대표이사 3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고발 기자회견' ⓒ 김준 기자

미국의 쿠팡 투자사는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를 차별 행위라 규정하며 법무부에 국제투자분쟁 중재(ISDS) 의향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실제 정부는 이와 반대로 쿠팡에 관련 수사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쿠팡에 유리하게 지연하고 있다.

택배노조는 12일 고용노동청 앞에서 “고용노동부가 1년 5개월째 산재 사망 관련 수사 결과를 내놓고 있지 않다”고 규탄하며 쿠팡로지스틱스(CLS) 대표이사 3인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추가 고발했다.

2024년 5월 야간 배송 중 사망한 노동자, 고 정슬기 씨의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보통 산재 관련 수사가 시작되면 검찰 송치까지 길어도 1년 정도 걸린다. 그러나 1년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고용노동부가 결과를 내놓지 않는 거다. 

서비스연맹 법률원의 조혜진 변호사는 “수사기관에서는 쿠팡의 위반 사실을 확인하였는지조차 전혀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고 말하며 “즉각 쿠팡 CLS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사측은 유령 아이디를 돌려 쓰면서 노동자의 휴식권을 강탈하고 연속 근무를 종용하였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며 “이는 단순히 과로를 넘어서 법망을 피하기 위해 기만적인 수법까지 동원된 구조적 살인”이라고 설명했다.

택배노조와 지난해 11월 야간 배송 중 목숨을 잃은 고 오승용 씨의 유족은 “수사기관의 직무유기로 인해 현장에서는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며 오승용 씨의 사고에 대해서도 CLS 경영진을 고용노동부에 추가로 고발했다.

12일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쿠팡 CLS 대표이사 3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고발 기자회견' ⓒ 김준 기자
12일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쿠팡 CLS 대표이사 3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고발 기자회견' ⓒ 김준 기자

이처럼 정부가 쿠팡을 향한 수사를 지연하고 강한 규제를 가하지 못하고 있으나, 미국의 쿠팡 투자사들은 되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근거해 “한국 국회와 행정부 등이 쿠팡에 부당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고 억지 부리며 한국 정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12일 법무부는 언론 공지를 통해 전날 쿠팡 주주인 폭스헤이븐(Foxhaven Capital GP, LLC), 듀러블(Durable Capital Associates LLC), 에이브럼스 캐피탈(Abrams Capital, LLC) 및 각 관계사 등이 ISDS 중재의향서를 한국 정부에 추가 제출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투자회사 그린옥스(Greenoaks Capital Partners LLC)와 알티미터(Altimeter Capital Management LP) 등은 지난달 22일 정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데 이어 한국 정부를 향한 부당한 압박을 시도하는 거다.

이들은 “한미 FTA 11.5(1)조의 공정·공평 대우 의무, 제11.3조 및 제11.4조의 내국민대우 의무와 최혜국 대우 의무, 제11.5(2)조의 포괄적 보호 의무, 제11.6조의 수용 금지 의무 위반으로 이와 관련해 수십억 달러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이 한미 FTA 정신을 사실상 파기하며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미국 투자사들이 거꾸로 FTA 조항을 들먹이며 한국의 정당한 규제 주권을 압박하는 것은 내로남불 행태라고 지적할 수 있다. 자국의 보호무역에는 관대하면서 한국의 민생 규제에는 소송으로 맞서는 것은 명백한 이중잣대라는 비판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앞서 접수된 중재의향서와 마찬가지로 ‘국제투자분쟁대응단’을 중심으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대응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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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가 내란세력, 오징어 게임 없애는 지름길

박명훈 기자 | 기사입력 2026/02/13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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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대표, 심리학자, 청년이 ‘한국 국민의 생각과 행동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악법 중의 악법 국가보안법’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국민주권당은 13일 오전 11시 유튜브 채널에서 대담 「국가보안법, 폐지가 답이다」를 실시간 중계했다. 대담은 ‘가수 백자TV’, ‘뉴탐사’, ‘민족위TV’, ‘촛불행동TV’ 유튜브 채널에도 동시에 송출됐다.

 

대담에는 박준의 주권당 상임위원장,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청년 평론가 양희원 씨가 출연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이 한국 사회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 왼쪽부터 박준의 상임위원장, 김태형 소장, 양희원 씨.  © 국민주권당 유튜브 채널

 

국가보안법은 이승만 정권 시기인 1948년 “반국가 활동 규제”를 구실 삼아 제정됐다. 이승만 정권으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이 ‘반북·반공’ 논리로 국민을 탄압하고, 기득권을 지속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후 국가보안법은 8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 국민의 생각과 행동을 옥죄고 있다.

 

박준의 상임위원장은 “국가보안법의 핵심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북한과 관계가 있는 모든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사상과 생각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정면 배치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또 자주독립의 요구, 국민이라면 누구나 정당하게 할 수 있는 요구를 권력자들, 집권세력이 마음에 안 들면 탄압하는 그 대표적 도구”로 국가보안법이 활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극우 유튜버들이 어린아이들을 향해 “종북이냐, 빨갱이냐”라고 물으며 공격적으로 싸움을 붙이고 있다며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고, 계속 번식하고,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김 소장은 윤석열이 국가보안법에서 12.3내란의 명분을 찾았는데 이는 “중세 시대적 사고, 또 히틀러가 했던 사고랑 똑같은 얘기”라며 국가보안법 폐지 없이는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빨갱이”, “종북”이란 표현은 “마음속, 머릿속에 들어 있는 사상”을 규정하는 거라며 “윤석열 입장에서는 ‘민주당 이놈들이 나한테 협조를 안 하고 계속 딴지 거네. 자꾸 방해하네. 그러니까 분명히 저것들이 마음속에 반국가적인 사상이 있을 거야’”라며 내란을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또 이러한 윤석열의 행태는 국가보안법을 통해 “자기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세력”을 “지레짐작, 관심법”으로 찍어 누르려는 거라고 꼬집었다.

 

김 소장은 “국가보안법은 반평화·반통일·반민주·반인권 악법인 동시에 정신병적 악법”이라면서 국가보안법이 한국 국민 사이에서 “내재화·내면화됐다”, “70년을 거치면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버렸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생각이 다른 이웃과) 같이 살라고 얘기하는 게 맞는 거지 ‘저 사람 쫓아내고 죽여라’ 이건 그야말로 정신병적 광기”, “한국 사회에 국가보안법이 가져온 가장 큰 폐해 중의 하나는 배타주의를 강화한다는 것”이라며 “공존을 거부하고, 마음에 조금만 안 들면 죽이려 하고, 쫓아내려고 하는 쪽의 심리를 강화하는 데 근본 원인”이 국가보안법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더 많은 상금을 차지하고자 서로를 죽여야 하는 내용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거론하며 “한국 청년들은 지금 ‘오징어 게임 사회’에 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오징어 게임을 하고 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이 게임 자체를 없애버리고 싶다’ 이런 생각”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국가보안법이 있기에 한국 청년들은 그런 생각을 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군 생활을 하다가 얼마 전 전역한 양희원 씨도 견해를 밝혔다. 양 씨가 소속된 여단은 다행히 12.3내란 당시 계엄군으로 동원되지 않았다고 한다.

 

양 씨는 군대에서 같이 지낸 청년들에 관해 “다 좋다. 다 착하다. 여전히 공동체 의식, 민주주의에 대한 지향이 살아있다”라면서 “그런데 문제는 극우(세력)의 영향에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관해 청년들 사이에서 ‘야 너 친중이야?’, ‘너 설마 이재명 편드는 거야?’, ‘미국은 옳고 북한과 중국은 나쁘다’ 식의 말이 나왔다며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보안법이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양 씨는 “국가보안법이 청년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제한시킨다는 게 제일 커다란 문제”라며 “청년들이 미래를 책임지려면 특히 격변하는 국제 정세, 급격히 발전하는 인류 기술 문명 이런 것들을 감안할 때 정치, 인문학적 상상력도 더욱더 풍부해져야 하는데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정치적 상상력이 절반,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주장하는 것 혹은 그와 유사해 보이는 무언가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받다 보니까 사회주의랄지, 자주의 문제에 있어서는 미군 철수 같은 주장을 하면 ‘어? 나 매국하는 거 아니야? 나 대한민국에 위해를 끼치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거 아니야?’라는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또 내란세력과 극우 인사들 사이에서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막말이 나오는 것에 관해 국가보안법이 있기에 한국이 진보·민주진영을 일상적으로 탄압하고 “구조적으로 ‘빨갱이는 죽여도 되는 나라’”가 됐으며, 국가보안법이 “극우세력의 존재 기반”이 되고 있다고 했다.

 

대담자들은 국민이 12.3내란을 제압하고, 국회에서도 진보·민주진영이 극우세력을 압도하는 현 국면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적기라는 데 공감했다.

 

그 밖에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내란세력의 기반 자체를 없애 내란 완전 청산이 가능하며 ▲노조 활동 등 국민의 정치세력화를 보장할 수 있고 ▲청년들이 극우화되지 않고 자신의 포부를 밝힐 수 있는 환경을 꾸릴 수 있으며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을 이루고 ▲미국에 휘둘리지 않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이룰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아래는 대담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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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철수 협박’과 빼앗긴 경제주권

  • 기자명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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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6.02.1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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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0억 원의 혈세를 삼킨 ‘만년 적자’의 비밀
교활한 지엠 자본과 공적 자금 투입의 한계
자주권 없이는 민주주의도 생존권도 없다

한국지엠(GM)이 경영악화를 이유로 전국 9개 직영정비센터를 폐쇄하겠다고 통보했다. 앞서 지난 1월 1일 세종부품물류센터 하청노동자 120명을 해고했다. ‘GM 철수설’이 다시 회자되는 이유다.

한국지엠이 위기를 구실로 보따리를 싸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한국 정부는 국민의 혈세를 쏟아붓는다. 2018년에도 공적자금 8,100억 원을 지원해 ‘10년간 철수하지 않고 공장을 유지하겠다’는 약속받았다. 하지만, 그 기한을 2년 앞두고 또 철수설이 불거진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미국계 다국적기업이 한국법인을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8,100억 원의 혈세를 삼킨 ‘만년 적자’의 비밀

한국지엠은 지난 2018년 적자를 이유로 군산공장을 폐쇄했다. 이로 인해 약 2,000명의 노동자가 실직하고 협력업체들이 도산하며 군산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창원, 부평 등으로 공장 폐쇄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 문재인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한국 정부로부터 8,100억 원이라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받아 챙긴 한국지엠은 이후로도 장부상 만년 적자를 기록하며 법인세조차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

생산 현장의 노동자들은 세계 최고의 숙련도를 자랑하며 밤낮없이 공장을 돌리지만, 회사는 늘 ‘적자’를 호소한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 ‘만년 적자’의 실체는 다국적기업이 전매특허처럼 사용하는 ‘이전가격 조작’에 있다.

한국지엠은 완성차를 해외 본사나 계열사에 넘길 때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책정한다. 반대로 자동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부품이나 원재료는 본사로부터 비싼 가격에 사온다. 싸게 팔고 비싸게 사오는 구조 속에서 이익이 남을 리 만무하다.

회사는 이렇게 인위적인 적자를 만든다. 그리고 이를 구실로 한국법인이 내야 할 세금을 면제받는다. 우리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생산한 부가가치는 고스란히 미국 본사의 이익으로 흡수되는 구조다.

여기에 본사가 빌려준 돈에 대한 고율의 이자까지 뜯어간다. 불투명한 업무지원비 명목으로 돈을 송금하기도 한다. 이것은 경영이 아니라 약탈이다. 기업 활동이라는 가면을 썼을 뿐, 그 본질은 국부 유출과 다름없다.

교활한 지엠 자본과 공적 자금 투입의 한계

 

지금도 한국지엠은 ‘외국인 투자 촉진법’에 따라 온갖 특혜를 누린다. 그러다 경영악화나 노조와의 마찰을 핑계로 공장을 폐쇄하고, 노동자를 해고한다. 공적자금을 투입한 한국 정부가 지엠의 이런 행태를 막을 방법이 없을까?

산업은행이 한국지엠 지분 17.02%를 가졌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중대한 자산 처분에 대해 거부권(Veto)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엠 자본은 교활한 방법으로 법망을 빠져나간다.

첫째, 자산의 20% 이상을 처분할 때만 한국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지엠은 이를 잘게 나누어 매각하는 ‘살라미 전술’로 법적 감시망을 우회한다. 이번엔 정비센터 몇 개, 다음엔 부품센터 하나,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쪼개서 팔아치운다. 그러면 거부권을 행사할 법적 근거가 사라진다.

둘째, 경영권 보호라는 법적 장벽이다. 수익성 개선을 위한 구조조정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당한 ‘경영적 판단’으로 해석돼 정부의 개입 근거가 매우 약화된다. 이번 정비센터 폐쇄나 하청 노동자 해고를 지엠은 '경영상의 필요'라고 주장한다. 법원은 기업의 경영권을 폭넓게 인정해주기 때문에, 산업은행이 거부권을 휘두르려 해도 “정당한 경영 활동을 방해한다”는 역공을 당할 수 있다. 법적 싸움으로 가면 정부가 이기기 쉽지 않은 구조다. 더구나 ‘쿠팡 사태’에서 확인한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나 미 의회 차원의 압박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셋째, ‘철수 협박’ 때문이다. 정부는 지엠이 아예 짐을 싸서 떠날까 봐 전전긍긍한다. 지엠이 철수하면, 정부는 수만 명의 일자리와 지역 경제가 무너지는 걸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거부권을 당당하게 쓰기보다는, 지엠의 요구를 적당히 들어주면서 "제발 한국에 붙어만 있어 달라"고 사정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8,100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주고도 주도권을 못 잡는 이유다. 특히 2018년도 그렇고, 2026년에도 지방선거가 있다. 한국지엠 철수는 생산공장이 위치한 인천 부평, 창원, 보령 등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결국, 정부는 대량 실업과 지역 경제 공동화라는 철수 위협 앞에 적극적인 권리 행사를 주저하게 된다. 이는 경제 주권을 지킬 공공적 통제 수단의 부재를 의미한다.

자주권 없이는 민주주의도 생존권도 없다

한국지엠 노동자들이 직면한 고용 위기는 우리 사회의 ‘경제 주권’ 상실과 직결된다. 외국 자본의 이윤 동기가 국가의 산업 정책을 압도한 것이다. 한 지역 경제 자체가 위협받는 구조다. 투표로 선출된 권력이 행사하는 ‘민주주의’는 달러 자본의 보이지 않는 강제력 앞에 무력해진다.

경제주권을 지키는 길은 달러 자본의 착취를 규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주는 단순히 외세를 배격하는 구호가 아니다. 우리 경제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의미한다. 국가가 외국자본으로부터 ‘경제 주권’을 확립하지 못하면 노동자의 생존권도, 지역 경제도, 민주주의도 지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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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워싱턴 울린 승려들 '침묵의 순례'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예수살기 대표.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전 상임의장.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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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일 간 텍사스~워싱턴 3700 킬로미터 걸어

증오 · 혐오 난무하는 분열된 미국에 평화 메시지

진보 · 보수 떠나 주민들 환영… 합장하고 꽃 선물

평화의 걷기는 권력의 언어에 대한 비폭력적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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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6일,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맑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몇몇 불교 승려들이 조용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목적지는 미국의 정치적 심장부인 워싱턴 D.C였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아닌 오직 두 발로 108일 동안 약 3700킬로미터를 걷는 여정. 이름하여 ‘평화를 위한 순례(Walk for Peace)’.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그것은 소수 수행자들의 결연한 수행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순례는 한 종교의 수행을 넘어, 미국 사회 전체를 울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확장되었다.

3700킬로미터는 결코 가벼운 거리가 아니다. 사막과 평야, 도시와 농촌, 고속도로 곁의 먼지 날리는 길과 이름 없는 시골길을 지나야 했다. 때로는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때로는 갑작스러운 비와 추위가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순례단은 속도를 재촉하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구호를 외치기보다 침묵을 택했고, 주장보다 걸음을 앞세웠다. 그 침묵의 행렬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이들이 거쳐 간 도시마다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와 꽃을 건넸고, 아이들은 손을 흔들었다. 어떤 이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어떤 이는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종교가 달라도,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걷는 이들의 고요한 결의 앞에서 사람들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평화라는 단어가 뉴스의 수사나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땀과 물집과 침묵으로 구현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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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보수 성향이 강한 ‘바이블 벨트’ 지역에서의 반응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종교적, 문화적 차이가 뚜렷한 공간에서 불교 승려들의 순례가 환영받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수천 명이 길가에 모여 이들을 맞이했고, 일부는 침묵 속에 행렬 뒤를 따르며 동행했다. 이는 특정 종교에 대한 호감의 표현이라기보다 분열과 갈등에 지친 미국 사회가 ‘평화’라는 단어에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108일이라는 시간 또한 상징적이다. 불교에서 108은 번뇌의 수를 의미한다. 인간을 괴롭히는 수많은 집착과 분노, 탐욕을 상징하는 숫자다. 순례단은 매일의 걸음을 통해 그 번뇌를 하나씩 내려놓겠다는 의지를 몸으로 드러냈다. 그들의 발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내면의 수행이자 사회적 메시지였다. 갈라진 공동체, 증오와 혐오가 난무하는 공적 공간 속에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도 말할 수 있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워싱턴에 도착한 날, 그들의 모습은 처음 출발할 때와 사뭇 달랐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렸고, 발은 상처로 가득했지만 눈빛은 더욱 맑아 보였다. 순례의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었다. 정치적 중심지에 도달한 그들의 침묵은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던졌다. 과연 평화는 선언으로 오는가, 아니면 이렇게 한 걸음씩 내디딜 때 비로소 가까워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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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가 이 순례에 열광한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거대한 담론과 날 선 논쟁에 지친 사람들이, 말보다 삶으로 보여주는 태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평화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평화를 위해 3700킬로미터를 걷는 이는 드물다. 그 드묾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평화를 위한 순례’는 하나의 이벤트로 끝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발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잠시 속도를 늦추었고, 서로를 향한 적의를 내려놓았다. 어쩌면 평화는 거창한 합의나 대단한 결단이 아니라, 그렇게 누군가가 먼저 걷기 시작할 때 비로소 현실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 덮인 워싱턴을 울린 침묵의 행진은 단순한 종교적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장면이었고, 동시에 하나의 질문이었다. 눈 위를 맨발로 걸어가던 승려들의 발걸음은 느렸지만 단호했다. 입을 닫은 채 합장하고 걸었던 그들의 침묵은 오히려 어떤 연설보다도 또렷했다. 그날의 행진은 오늘의 미국 정치, 더 나아가 세계 질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묻는 도덕적 경고였다.

워싱턴 D.C.는 폭설 직후의 차가운 정적에 잠겨 있었다. 영하의 기온, 얼어붙은 도로, 흰 눈 위에 선명히 남는 발자국. 그 위를 맨발로 걷는다는 것은 수행의 차원을 넘어 상징적 행위였다. 불교 전통에서 맨발은 겸손과 비움, 그리고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서원을 뜻한다. 그들은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가하고 있는 상처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걸었다. “몇 초면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 대신 그 몇 초를 평화의 시작으로 쓰라.” 이 문장은 그날 행진의 핵심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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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은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시작해 링컨기념관 방향으로 이어졌다. 동선 자체가 하나의 선언이었다. 내전의 분열을 넘어 연방을 지켜냈던 링컨, 그리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선언을 다시 역사 위에 세운 장소. 그 앞에서 울린 침묵은, 오늘날 미국 사회가 겪고 있는 극단적 분열과 맞닿아 있었다. 참가자들은 “증오를 멈추라”, “자비는 힘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작은 팻말을 들고 있었지만, 구호는 외치지 않았다. 확성기도 없었다. 침묵이 곧 메시지였다.

이 장면이 특별히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이름이 다시 미국 정치의 중심에 서 있는 시점과 겹치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절제와 성찰의 발걸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힘을 과시하며 세계의 규범을 흔드는 정치가 있다. 대비는 선명하다. 평화의 걷기는 특정 후보를 겨냥한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 행진이 던진 질문은 분명히 오늘의 권력을 향해 있었다. 우리는 어떤 리더십을 원하는가. 힘으로 군림하는 정치인가, 아니면 규범을 존중하는 정치인가.

트럼프식 정치는 스스로를 “강한 리더십”이라 부른다. 거래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동맹을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하며, 국제 규범을 재협상의 대상으로 돌리는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결단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 강함이 무엇을 남겼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동맹은 신뢰의 공동체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의 카드로 취급되었고, 국제기구와 다자협약은 불신과 탈퇴의 위협 속에 놓였다. 기후협약, 무역 질서, 인권 담론, 동맹 외교 — 수십 년간 축적해온 합의의 구조는 “미국 우선”이라는 구호 아래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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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질서는 완전하지 않다. 불평등과 위선, 이중 기준이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최소한의 예측 가능성과 규범 위에서 유지되어 왔다. 약속은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 협정은 존중될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트럼프식 일방주의는 바로 그 토대를 잠식한다. 힘이 곧 정의라는 메시지가 반복될 때, 국제사회는 규범이 아니라 공포와 계산으로 움직이게 된다. 강대국은 더 강하게, 약소국은 더 위축되며, 다자주의의 공간은 축소된다.

문제는 외교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내 정치에서도 갈등은 조정되기보다 증폭되었다. 상대를 협상 파트너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언어, 언론과 사법부 같은 제도적 견제 장치를 불신의 대상으로 몰아붙이는 태도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 민주주의는 승자의 독주가 아니라 패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다. 다수의 선택이 존중되되, 소수의 권리가 보호되는 구조다. 그러나 힘의 정치에서는 다수의 환호가 곧 정당성의 전부가 된다. 그 순간, 규범과 제도는 걸림돌로 취급된다.

그의 정치적 언어는 두려움을 동원해 지지를 결집시키는 방식에 의존해왔다. 이민자를 위협으로, 비판자를 배신자로, 타국을 착취자로 규정하는 단순화된 서사는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두려움은 쉽게 분노로 전환되고, 분노는 합리적 토론을 마비시킨다. 그 결과는 사회적 피로와 불신의 누적이다. 공동체는 하나로 묶이기보다 서로 다른 진영으로 고착된다. 민주주의의 심장은 타협과 숙의에 있는데, 그 공간이 점점 좁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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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평화의 걷기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말의 속도에 맞서 걷기의 속도를 택하는 것. 빠른 분노 대신 느린 성찰을 선택하는 것. 지도자의 몇 초짜리 발언이 시장을 흔들고, 외교적 긴장을 고조시키며,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시대에, 침묵으로 걷는 행위는 상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권력의 언어에 대한 비폭력적 응답이다.

세계는 미국을 단순한 한 국가로 보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국제적 신호가 된다. 만약 미국이 다자주의를 경시하고 동맹을 압박의 수단으로만 다룬다면, 다른 강대국들은 그 틈을 활용한다. 규범이 약해진 공간에서는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냉혹한 세력 균형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 위험이 있다. 트럼프식 접근은 단기적 협상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도덕적 권위를 약화시킨다. 권위는 군사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신뢰와 일관성, 약속을 지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링컨기념관 앞에서 되새겨진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문장은, 그래서 더욱 무겁다. 평등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인권은 협상의 카드가 아니다. 국제 규범 역시 일시적 편의에 따라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 아니다. 미국이 스스로 세워온 질서를 스스로 허무는 순간, 그 불안정은 결국 미국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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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필요하다. 국가는 안보를 지켜야 하고, 자국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힘이 절제되지 않을 때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지배가 된다. 동맹을 설득하기보다 압박하고, 국제 규범을 개선하기보다 탈퇴로 위협하며, 내부의 비판을 포용하기보다 배척하는 태도는 지도자의 강함처럼 보일지 모르나, 실은 불안을 드러낸다. 진정한 강함은 규범을 지키는 데서 나온다. 법과 제도를 넘어서는 충동을 억제하는 데서 나온다.

평화의 걷기는 미국 곳곳에서 이어져온 비폭력 시민행동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교회와 사찰, 시나고그와 모스크, 시민단체와 지역 공동체들이 이민자 보호, 총기 희생자 추모, 기후 정의 요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이번 행진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종교가 권력을 쟁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잊기 쉬운 윤리적 기준을 상기시키려는 움직임이다.

눈 위에 남은 맨발의 자국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장면이 던진 질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힘을 선택할 것인가. 두려움과 분열을 동원하는 힘인가, 아니면 자비와 절제를 바탕으로 한 힘인가. 민주주의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더 큰 목소리보다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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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구호가 아니다. 규범을 복원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는 의지다. 트럼프 개인을 넘어, 힘으로 군림하는 정치 전반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미국이 다시 세계의 리더십을 말하고자 한다면, 먼저 세계가 신뢰할 수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눈 덮인 워싱턴을 걸었던 승려들의 침묵은 바로 그 점을 일깨운다. 몇 초의 말이 아니라, 오래 남는 태도가 역사를 만든다.

눈 위의 발자국은 사라지지만, 역사의 기록은 남는다. 세계의 규범을 존중한 지도자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힘으로 질서를 흔든 인물로 기록될 것인가. 선택의 무게는 권력을 쥔 이들에게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발걸음 또한, 여전히 눈 위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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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과 공안기관의 뒤에는 미국이 있다”…영화 「실행자들」 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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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2.13 08:51
  •  
  •  댓글 0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 부부장. [사진-노동신문]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 부부장. [사진-노동신문]

김여정 조선로동당 부부장이 12일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대북무인기 침투사건 유감표명에 대해 '비교적 상식적인 행동'으로 평가한다며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김 부부장은 12일 '한국당국은 주권침해도발방지조치를 강구해야 할것이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담화에서 "새해벽두에 발생한 반공화국무인기침입사건에 대하여 한국통일부 장관 정동영이 10일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시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한국당국이 내부에서 어리석은 짓들을 행하지 못하도록 재발방지에 주의를 돌려야 할 것이라는 것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 장관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 제1500회를 맞아 지난 1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사 축사에서 "이번에 일어난 무모한 무인기 침투와 관련하여 북측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는 바"라며 공개적으로 북측에 유감을 표명했다.

정 장관은 미사 당일 군경합동조사TF가 접경지역에서 북으로 무인기를 날린 민간인들과 이들의 행위에 관여한 혐의가 있는 현역 군인과 국정원 직원을 입건하고 압수수색을 벌인 사실을 언급하고는 "이러한 불행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서로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약속했던 「9·19 군사합의」가 하루빨리 복원되어야 한다. ‘공중에서의 적대 행위’는 지금이라도 당장 중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부장이 정 장관의 유감표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정부가 추진하는 9.19 남북군사합의 중 비행금지구역 설정 복원 방침이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지난 10일 천주교 명동성당 미사에서 무인기침투와 관련 북측에 유감을 표명한 정동영 통일부장관 [사진-통일부]
지난 10일 천주교 명동성당 미사에서 무인기침투와 관련 북측에 유감을 표명한 정동영 통일부장관 [사진-통일부]

김 부부장은 "한국당국은 자초한 위기를 유감표명같은 것으로 굼때고 넘어가려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공화국 령공침범과 같은 엄중한 주권침해사건의 재발을 확실히 방지할수 있는 담보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다시금 명백히 하지만 우리는 반공화국 무인기침입행위를 감행한 주범의 실체가 누구이든, 그것이 개인이든 민간단체이든 아무런 관심도 없다. 우리가 문제시하는것은 우리 국가의 령공을 무단침범하는 중대주권침해행위가 한국발로 감행되였다는 그 자체"라고 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성불가침의 주권을 침해하는 도발사건이 재발하는 경우 반드시 혹독한 대응이 취해질 것임을 예고해둔다"고 거듭 강조했다.

"여러가지 대응공격안들 중 어느 한 안이 분명히 선택될 것이며 비례성을 초월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한 김 부부장의 담화는 [노동신문]에는 게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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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정동영 대북무인기 침투 유감표명은 '상식적인 행동'...재발방지'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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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2.1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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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 부부장. [사진-노동신문]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 부부장. [사진-노동신문]

김여정 조선로동당 부부장이 12일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대북무인기 침투사건 유감표명에 대해 '비교적 상식적인 행동'으로 평가한다며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김 부부장은 12일 '한국당국은 주권침해도발방지조치를 강구해야 할것이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담화에서 "새해벽두에 발생한 반공화국무인기침입사건에 대하여 한국통일부 장관 정동영이 10일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시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한국당국이 내부에서 어리석은 짓들을 행하지 못하도록 재발방지에 주의를 돌려야 할 것이라는 것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 장관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 제1500회를 맞아 지난 1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사 축사에서 "이번에 일어난 무모한 무인기 침투와 관련하여 북측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는 바"라며 공개적으로 북측에 유감을 표명했다.

정 장관은 미사 당일 군경합동조사TF가 접경지역에서 북으로 무인기를 날린 민간인들과 이들의 행위에 관여한 혐의가 있는 현역 군인과 국정원 직원을 입건하고 압수수색을 벌인 사실을 언급하고는 "이러한 불행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서로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약속했던 「9·19 군사합의」가 하루빨리 복원되어야 한다. ‘공중에서의 적대 행위’는 지금이라도 당장 중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부장이 정 장관의 유감표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정부가 추진하는 9.19 남북군사합의 중 비행금지구역 설정 복원 방침이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지난 10일 천주교 명동성당 미사에서 무인기침투와 관련 북측에 유감을 표명한 정동영 통일부장관 [사진-통일부]
지난 10일 천주교 명동성당 미사에서 무인기침투와 관련 북측에 유감을 표명한 정동영 통일부장관 [사진-통일부]

김 부부장은 "한국당국은 자초한 위기를 유감표명같은 것으로 굼때고 넘어가려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공화국 령공침범과 같은 엄중한 주권침해사건의 재발을 확실히 방지할수 있는 담보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다시금 명백히 하지만 우리는 반공화국 무인기침입행위를 감행한 주범의 실체가 누구이든, 그것이 개인이든 민간단체이든 아무런 관심도 없다. 우리가 문제시하는것은 우리 국가의 령공을 무단침범하는 중대주권침해행위가 한국발로 감행되였다는 그 자체"라고 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성불가침의 주권을 침해하는 도발사건이 재발하는 경우 반드시 혹독한 대응이 취해질 것임을 예고해둔다"고 거듭 강조했다.

"여러가지 대응공격안들 중 어느 한 안이 분명히 선택될 것이며 비례성을 초월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한 김 부부장의 담화는 [노동신문]에는 게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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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라는 진단명은 없다

[기고] 진단이 여는 대중의 언어

문호진 의사, <수능해킹 : 사교육의 기술자들> 저자 | 기사입력 2026.02.13. 07:57:35

의사들은 진료실에서 '발열'을 두려워하는 환자를 자주 만나곤 한다. "열만 떨어뜨리면 다 괜찮아지겠죠?"

그러나 발열은 병이 아니다. 병이 있다는 신호이고, 해열제만 쓰면 일시적으로 상태는 나아지지만 원인은 그대로 남는다. 때로는 열을 억지로 낮추는 것이 오히려 경과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학벌주의'도 마찬가지다. 특정 대학 이름만으로 능력을 판정하는 관행, 의사결정 과정의 불투명성, 지적 성취에 대한 사회적 불신,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구조적 의존성, 과열된 사교육 시장. 이 모든 것은 증상일 뿐이다.

그리고 이 증상에 대해 전문가들이 내놓는 처방은 대개 대증치료였다. 서울대를 비롯한 유명 대학의 정규직 교수들이 '학벌주의 완화'를 위해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정책을 제시한다. 그러면 수험생 커뮤니티에서는 "그럴 거면 모든 대학 이름을 서울대로 바꾸면 되겠네"라는 조롱이 돌아온다. 특정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와 대중 사이에서 같은 패턴이 오랜 시간 반복되어 왔을 뿐이다.

이 상황을 많은 전문가와 언론이 '청년이 극우가 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해왔다. 익명의 군중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어도, 그 가운데 누구라도 유명 대학의 그 교수들보다 학벌주의의 수혜를 더 많이 누렸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상한 일이다.

수혜를 더 많이 받은 쪽이 덜 받은 쪽을 향해 "극우적이다", "학벌주의를 옹호한다"고 공격하는 꼴이다. 대증치료만을 반복해온 의사가, 낫지 않는 환자를 보며 '환자가 과격해졌다'고 기록하는 셈이다.

진료 과정에서 환자의 모든 불만이 정당할 수는 없어도, 환자가 납득하지 못하면 그것은 의사의 책임이다. 입증 책임은 전문가에게 있다. 비전문가가 납득하지 못하면 그것은 전문가의 실패다. 이는 전문성을 내세워 사회적 권위를 얻는 분야라면 어디서든 적용된다.

대중은 "해열제만으로는 낫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문제는 반복되는 불편과 부조리라는 '어떤 병의 흔적'을 몸으로 느끼면서도, 이 증상의 원인을 설명할 진단명이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대증치료가 반복될 때, 대중의 조롱은 판단이 실패한 결과가 아니다. 판단을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해도 들어주는 이가 없는 현실의 누적에 수반된 증상일 뿐이다.

기원도 진행 과정도 다른 별개의 병들을 "학벌주의"라는 말로 봉합해버린 것은, 발열과 기침과 오한을 묶어 "감기주의"라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병은 남고, 말만 커진다.

'학벌주의'라는 말이 정확한 진단명인지 묻는다면, 의사라면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증상은 맞다. 그러나 진단명은 아니다.

초기 학벌주의, 보여주기식 정당화가 숨기는 병기의 진행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학벌주의'부터 정의하자. 학벌주의란, 특정 유명 대학을 나왔다는 표식 하나만으로 실제 역량이나 기여와 무관하게 채용, 승진, 사회적 인정의 기준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불편한 사실이 하나 있다. 서울대라는 단일한 표식이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것은, 서울대 졸업생 집단이 균질하게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학벌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뜻일 수는 있어도, 오히려 덜 위험한 상태인 면이 있다.

집단적 교육문화, 학번과 공채와 고시기수에 따른 연공서열, 비교적 예측 가능한 커리어 경로가 일반적이던 시대에 "유명 대학 출신"이라는 표식은 실제로 어느 정도 균질한 경험과 궤적을 함축했다. 이 문화와 인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나, 오늘날 '학벌'을 둘러싼 현상 전부를 초기 학벌주의의 틀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 초기 학벌주의는 가장 단순하고 벌거벗은 형태의 권력이었다. 표식이 인격이나 도덕성이나 역량을 입증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이 서울대 나왔다고? 그래서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표식과 실체 사이에 간극이 남아 있었고, 그 틈 안에서 대중은 자기 나름의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초기 학벌주의는 비민주적일 수 있어도 '읽히는 권력'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병명은 무엇인가. 공적 기여와 무관하게 정당화되고 재생산되는 특권적 엘리티즘. 이것이 병명이다. 학벌주의는 이 병의 초기 형태였고, 수혜자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데 실패했기에 비판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병의 진화다. 표식은 교묘해지고, 정당화는 정교해지고, 대중의 판단 여지는 줄어드는 방향으로 이행한 것이다. 이 진화의 궤적을 추적할 진단 프로토콜을 제안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병명이 있으면 병기(staging)를 설정할 수 있다. 초기 학벌주의에서 고도화된 엘리트주의로의 이행을 추적할 수 있게 된다.

앞서 보았듯, 초기 학벌주의 시기에는 "서울대 나왔으면 뭐하나, 하는 짓 보소"라는 대중의 판단이 작동할 여지가 있었다. 고도화된 엘리트주의는 이 간극을 봉합한다. 그 핵심에 보여주기식 정당화가 있다.

공적 기여란 무엇인가. 학력이나 네트워크를 통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대신, 지적 담론에 보탬이 되고, 공공의 이익에 실제로 기여하여, 시민들이 '이 사람이 있어서 사회가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를 통한 사회적 인정 자체는 민주사회에서 부당하지 않다. 문제는, 그 실질이 없거나 형식에 불과한데도 기여가 있는 것처럼 정당화되는 구조다.

보여주기식 정당화란, 표식이 실체를, 보여주기가 실제 기여를 대체하는 통로다.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볼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대표적이다.

비판하려는 것은 스토리텔링 자체가 아니다. 현실의 스토리텔링에는 기억, 고난, 순간성처럼 자기 경험에서 우러난 감정과 도의적 고민이 있다. 재현할 수는 있되 꾸며낼 수는 없는 차원이 있다. 그런데 생기부, 포트폴리오, 자기소개서에서 요구되는 것은 이와 아무 상관 없다. 관료적 형식의 뼈대 위에 감정을 억지로 덧칠한 문서에 가깝다. 교사도 좋아하지 않고, 대학도 좋아하지 않고, 학생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데 멈추지 않는, '이름만 스토리텔링'인 반(反)스토리 구조다.

자기소개서와 학교생활기록부에 적힌 서사들을 떠올려 보자. 생명과학 수업에서 생태계 단원을 배운 뒤 기후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환경 동아리를 만들어 캠페인을 주도했다는 이야기. 지역사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다는 어떤 학생의 서사는, 이제는 너무나 흔하다.

이는 독서와 탐구가 연결되고, 탐구가 실천으로 이어지고, 실천이 성장으로 귀결되는 완결된 스토리처럼 보인다. 이런 보여주기는 겉보기 표식과 배움의 실체 사이의 간극을 거짓으로 봉합하는 의례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학생의 실제 역량이나 기여와 상관없는 정당화가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면 "노력하는 학생을 왜 깎아내리느냐"는 비난이 돌아온다. "스토리도 있고, 활동도 했고, 서사도 완결됐는데 뭘 더 따지냐"는 말과 함께 "반지성주의자"라는 딱지가 붙는다. 대중이 판단하고 의문을 제기할 여지는 점점 좁아진다.

증상이 가리는 병의 기전

이 이행의 과정을 의학적 진단의 틀로 풀어보면 하나의 역설이 드러난다.

어떤 병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 병인(etiology). 그 병이 왜 생기는가. 둘째, 임상경과(clinical course). 그 병이 어떤 단계를 거쳐 진행되는가. 셋째, 예후(prognosis). 치료하면 어떻게 되고,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 셋을 모르면 증상만 보게 된다. 그리고 증상만을 본 사람은 판단을 완전히 반대로 하게 된다.

매독이 이 역설을 가장 잘 보여준다. 매독의 병인은 스피로헤타라는 나선형 세균이다. 임상경과는 1기, 2기, 잠복기, 3기로 진행된다. 예후는 분명하다. 치료하면 완치되고, 치료하지 않으면 심장과 혈관, 뇌와 척수를 침범해 치명적 합병증으로 이어진다.

이 셋을 모르는 사람에게 매독은 어떻게 보이는가.

치료하지 않은 환자를 보자. 1기 궤양은 몇 주 뒤 저절로 사라진다. 환자는 나았다고 생각한다. 2기의 전신 발진과 림프절 종창도 저절로 사라진다. 또 나았다고 생각한다. 수년간 증상 없는 잠복기가 이어지면 병은 완전히 치유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병원체는 체내에서 심장, 혈관, 뇌, 척수로 침투하고 있다. 3기에 이르면 대동맥이 터지거나 뇌가 손상되는 치명적 합병증이 나타난다.

반대로, 치료받는 환자를 보자.

매독의 표준 치료제는 페니실린이다. 1940년대 이래 거의 유일하게 효과적인 치료제이며, 제대로 투여하면 거의 항상 완치된다. 그런데 페니실린을 투여하면 세균이 죽으면서 방출하는 독소 때문에 환자는 고열, 오한, 근육통을 겪는다. 치료 전보다 상태가 나빠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매독 치료에서 거의 항상 일어나는 반응이다. 치료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증상만을 본 사람은 이 현상을 반대로 해석하게 된다. 치료하지 않으면 증상이 사라지고, 치료하면 악화된다. 기전을 모르는 사람은 증상을 그저 방치할 뿐이다. 이 구조가 학벌주의를 둘러싼 현실의 우리 교육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자.

유명 대학 졸업만으로는 취업이나 영향력을 보장받기 어려워지자 "서울대도 다 똑같지는 않네"라는 말이 나온다. 많은 사람이 이를 학벌주의가 약해지는 것으로 해석한다. 1기 궤양이 사라졌을 때 나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러나 유명 대학이라는 단일한 표식의 효력이 약해진 자리를, 더 미세하고 추적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채우고 있다. 부모의 경제적 배경, 출신 중고교와 지역, 교수 추천서를 얻을 수 있는 관계망, 가족 배경이 작동하는 인턴십 경험. 엘리트 사회 내부의 권력 구조는 더 복잡하게 분화되고, 추천과 후견의 연결고리는 더 은밀해졌다.

초기 인턴이나 연구실 이력에서 미세해 보이는 차등이, 이후 경력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격차로 이어지는 정성평가 중심의 선발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졸업해도, 추천서를 알아볼 수 있는 부모가 있는지, 교육특구나 유명 고교 출신인지에 따라 이후 진로의 질이 갈린다. 서클과 추천서가 작동하는 영미권에서 이는 이미 상식에 가깝다. 같은 학위란 같은 기회를 뜻하지 않는다.

학벌주의라는 도덕적 이분법으로만 현실을 이해한다면, 서울대 졸업장의 가치가 떨어졌으니 학벌주의가 완화되는 중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의학적 진단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병이 나아진 것이 아닌, 병기가 넘어간 것이다. 학벌이라는 대중의 눈에 잘 보이는 표식이 약해진 자리를, 눈에 보이지 않는 사적 네트워크와 문화자본이 채운 것이다.

진단명이 없으면, 완화나 잠복기로의 이행 여부를 구분하기 어렵다. 오히려 보이지 않기에 더 위험하다.

진단 없는 사회, 은폐된 엘리트주의

대중은 보이는 권력만을 견제할 수 있다. 고도화된 엘리트주의는 보여주기식 정당화를 거쳤기에 보이지 않는다. 이를 들여다볼 언어도 없다.

이것이 병기의 문제다. 암에도 1기, 2기, 3기, 4기가 있다. 1기에서는 한 곳에 머물러 있어 제거가 가능하다. 4기에서는 온몸에 퍼져 치료가 어렵다.

이 틀로 병기를 구분하면 이렇다. 1기는 단순 학벌주의다. 표식만 있고 정당화가 없다. 견제가 가능하다. 2기는 학벌에 스펙이 붙기 시작하는 단계다. 3기는 학벌이 소멸된 것처럼 보이지만, 보여주기식 정당화, 서사, 교양이라는 새로운 표식이 등장하는 단계다. 견제가 어려워진다. 4기는 완전한 상징권력화 단계다. '선한 영향력'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견제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한국에서 '학벌주의'라는 말은 발열, 두통, 불면 같은 증상 목록일 뿐이다. 그 증상이 어떤 기저질환에서 비롯되었는지, 병이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를 말해주는 체계는 없다. "학벌주의는 나쁘다"라는 명제만 있으면 1기도, 2기도, 3기도 전부 똑같이 나쁘다. 완전한 해소만이 유일한 목표가 되고, 점진적 개선이나 단계적 이행은 의미를 잃는다.

어떤 의사가 "저는 발열에 반대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단이 아니다. 발열은 기전의 결과이며, 몸이 보내는 신호다. 그 신호를 없애려는 의학은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

"학벌주의는 나쁘다"는 말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물론 기수제와 연공서열, 고시 엘리트의 독점이 노골적으로 작동하던 시기에 그것에 반대하는 운동은 필요했다. 사법개혁 등 초기 학벌주의가 실제로 문제가 되는 분야에서는 지금도 비판의 유효성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언어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쓰이고 있는지가 문제다. '학벌주의는 나쁘다'는 말은 듣기에 옳고 단호하며 도덕적으로 안전하다. 그런데 여기서 구조적 역설이 생긴다. '학벌주의'라는 말은 대중이 자신의 감각을 표현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언어다. 그 언어를 정의할 권한을 특정 집단이 독점하는 순간, 대중은 말 자체를 빼앗기게 된다.

서울대 출신 교수들이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주창한다. 예일 로스쿨이 US News 랭킹 참여를 거부한다. 언론은 '역시 무언가 다르다'는 찬사를 보낸다. 위계를 해체하겠다는 선언이 위계의 꼭대기에서 발화될 때, 그것은 비판처럼 보일 뿐 특권을 재확인하는 절차에 불과다.

무엇이 학벌주의인지를 정의하는 권한, 어떤 정책이 완화에 기여하는지를 판정하는 권한까지 같은 집단에 쏠리면, 남는 것은 이중의 독점이다. 구조의 수혜와 구조 비판의 언어를 동시에 점유하는 독점. 질환을 정의하고 치료를 결정하는 권한이 특정 집단에 넘어가는 의료화와 다르지 않다.

서울시교육감을 비롯한 고위 공직, 교육 담론을 주도하는 위원회와 자문기구를 구성하는 이들의 분포와 출신을 살펴보면 독점에 가까운 편중이 보인다. 이 편중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그들의 국가 차원의 장기과제와 달리, '학벌주의 완화'를 내세우는 이들이 자신들의 권한으로 가장 쉽게 시정할 수 있을 법한 문제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등장하는 얼굴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유명 대학 졸업생 집단이 균질하지 않게 보일수록, 엘리트 네트워크가 폐쇄적이고 불투명하게 작동하는 양상은 오히려 더 쉽게 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학벌주의 완화'가 아니라, 초기 학벌주의에서 고도화된 엘리트주의로의 이행이다. 그리고 이 이행을 포착할 틀이 아직 없다.

틀이 없으면 불만은 분석이 아니라 분노의 형태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망칠 기회조차 얻어본 적 없는 이들, 구조에 대한 감각을 언어화할 수단을 갖지 못한 이들이 '극우'라는 라벨 아래 혐오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물론 그들의 분노가 혐오로 흘러간 지점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 혐오 역시, 증상인 면이 있다. 분석의 언어를 박탈당한 자리에서 감각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출구가 분노이고, 분노가 틀 없이 표출될 때 혐오의 형태를 띠는 것은 개인의 악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책임을 그들에게 온전히 돌리는 일은, 병원균 대신 발열을 퇴치의 대상으로 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진단의 틀이 없는 사회에서 증상은 곧 죄가 되고, 죄의 판정은 진단권을 가진 쪽의 몫이 된다. 그 '비판적 지식인'들의 행위 뒤에 어떤 의도가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도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결과까지 불분명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구조의 수혜자가 이를 비판하는 언어까지 독점하고, 그 바깥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낙인을 붙이는 일이 반복될 때, 의도와 무관하게 하나의 결과만은 분명해진다. 견제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 그리고 견제의 언어가 사라진 사회에서 권력은 더 이상 권력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합적 문제, 단선적 대응

교육 현장의 문제를 논하는 강연장이나 토론회에서, 교사나 연구자 등 교육 전문가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종종 있다. 학벌주의의 완전한 해소로 직접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제안을 꺼내면, 내용은 조금씩 달라도 형태는 비슷한 반문이 돌아온다.

"그건 그냥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평가를 더 정확하게 하자는 말 아닌가요?"

그러나 앞서 구분했듯이, 공적 기여를 통해 인정받는 것과 공적 기여 없이 표식만으로 인정받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민주사회의 정상적인 작동 방식이다. 후자가 엘리티즘이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이 글에서 병인을 '공적 기여와 무관한 정당화'로 정의했고, 임상경과를 '표식의 고도화'로 추적했으며, 치료하지 않으면 견제 불가능한 상태로 넘어간다는 예후도 제시했다.

앞서의 매독은 단일 치료제로 보통 완치되는 매우 예외적인 질병이다. 대부분의 질병에서 환자는 주사 한 번에 병이 낫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복합적 처방은 근본적이지 않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어떤 진단이나 대안이든 결국은 결과로 평가받을 뿐이다.

고령 암 환자의 경우, 기대여명이나 치료의 부작용을 고려하여 적극적 개입 대신 경과 관찰을 택하는 일도 적지 않다.

어떤 접근이 '더 근본적'이고 어떤 접근이 '덜 근본적'인지를 따지는 일은 현대 의학이 직면한 복합적 질환들 앞에서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그리고 교육 분야에서의 엘리티즘의 양상은 대부분의 질병보다 복잡하다.

그런데 또 다른 반응이 돌아온다. 학생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권하면, "제가 보는 건 제도나 교육과정이라서, 학생들의 말이 그 틀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런 문제제기를 문서화하기 어렵다는 말도 따라온다.

의사들이 이런 말을 듣는다면 기이하게 여길 것이다. 교과서와 가이드라인이 있더라도 그것은 참고할 수 있는 요소일 뿐이다. 같은 진단명이라도 환자의 연령, 기저질환, 생활환경, 본인과 가족이 적극적 치료를 원하는지에 따라 개입의 방향이 정반대가 될 수 있다. 환자를 직접 만나보지 않고, 조직검사 결과와 영상, 혈액검사 수치만 보고 수술을 결정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것은 진료가 아니다.

환자가 호소하는 내용이 기존 진단 체계로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환자의 문제가 아니라 진단 체계의 한계다. 문서화하기 어렵다면 문서화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환자가 있고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이지, 가이드라인이 있고 환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있고 교육과정과 교육제도가 있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진단의 단위를 포착하려면 결국 환자를 만나야 한다. 학생도 다르지 않다.

《수능 해킹》(문호진·단요 지음, 창비 펴냄)을 쓰는 과정에서 수많은 학생의 증언을 들었다. 그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병인을 정의할 수 있었고, 경과를 추적할 수 있었으며, 예후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학생이 표식을 위한 무의미한 노력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실제 공적 가치에 기여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이 이 병의 경과를 되돌릴 수 있는 경로라는 판단은 그 과정에서 나왔다.

그러나 도덕주의의 이분법 안에서는 병기라는 개념이 없으니 "지금 몇 기인가"라는 질문이, 나아가 진단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지금은 엘리트주의 2기입니다, 3기 잠복기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대입전형의 요소들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라고 처방하면, "줄세우기식 교육의 부활 아니냐, 학벌 없는 세상 외에는 임시방편일 뿐이다"라는 지적만이 돌아온다. 그것은 의학도, 사회과학도 아니다.

그리고 이제 서울대 교수들조차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외친다. 오랫동안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해온 이들이 갑작스레 학벌 타파의 언어를 선점하는 장면이다. 의도는 따져보기 어렵고, 선의로 제안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가 어떠했든 결과는 이미 나와 있다. 수십 년간 '시험 줄세우기 타파', '학벌주의 타파'를 외치며 추진한 정책들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지표는 거의 모든 면에서 나빠져왔다. 엘리트 재생산 기제는 더 불투명해졌고, 지역에 따른 수능 성적의 불평등은 심화되었으며, 사교육비는 계속 늘어났다.

이쯤 되면 진단을 다시 봐야 한다. 아니, 애초에 '진단'이라는 절차 자체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정의되어 있었는지부터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학벌주의와 사교육은 흔히 원인도 알 수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지옥에서 온 문제'처럼 다뤄져 왔다. 그러나 이 두 현상 역시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는 패턴일 뿐이다. 대입이라는 특수한 제도가 주는 압박감에 가려져 '예외적' 문제처럼 보였던 면이 클 뿐이다.

어떤 사회현상에든 원인과 결과가 있다. 현장에서 관찰되는 정책의 결과가 지속적으로 나빠졌다면, 그 원인을 구성하는 당국의 개입에 대한 평가 역시 당연히 그 방향을 향해야 한다.

지금은 의도를 논할 때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지표들이 여러 방면에서 지속적으로 나빠져왔고, 학생들이 겪는 고통은 실재한다. 평가는 냉엄해야 한다. 그리고 그 냉엄한 평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최소한의 분석 틀이다. 문제를 어떤 층위에서 볼 것인지, 어떤 변화를 경과로 기록할 것인지, 어떤 개입이 어떤 지점을 건드렸는지를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진단 프로토콜이 필요한 시점이다.

진단이 여는 대중의 언어

학벌주의라는 진단명은 없다. 이 글이 제안하는 것은, 대중이 감지한 증상에 진단명을 붙이고 경과를 추적할 수 있는 프로토콜이다.

오늘의 교실에서는 같은 양상만이 반복되고 있다. "학벌주의 완화"라는 취지만으로 개입이 정당화되어 현장에 적용된다. 효과에 대한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고, '현장이 취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기존 정책이 무한정 정당화된다.

진단 프로토콜이 있으면 달라진다. 현장의 상태를 진단하고, 병기를 설정하고, 개입 후 변화를 다시 점검하여 병기를 재설정하고,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여 다음 개입을 조정한다. 4기로 이행했다면 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2기로 회귀했다면 프로토콜에 맞춰 대응을 이어가면 된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모든 개입을 "학벌주의 완화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검증 없이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이 개입으로 인해 병이 2기에서 3기로 악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후 엘리트 재생산 구조가 더 불투명해졌는가? 대중이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늘었는가, 줄었는가? 이런 질문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진단 프로토콜을 도입한다고 해서 지금의 현실이 저절로 개선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해결책이든 적용 이후의 효과를 확인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선순환을 되살리려면, 우리는 증상과 병의 정의, 즉 진단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나빠지는 길이 있다면 회복되는 길도 있다. 진단을 할 수 있다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도 물을 수 있다.

우리는 평가 대신 다시 교육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기록을 통한 성장 스토리의 누적' 같은 더 정교한 평가라는 환상이 교육을 질식시키고 있다. 보여주기식 정당화를 평가하는 데 매달리는 대신, 교육 자체가 공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차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평가는 그 다음 문제일 뿐이다.

예컨대 고분자 탄소화합물에 대해 배운 내용을 억지로 기후운동과 연결해 스토리를 만드는 대신, 연산 과정의 충실성과 지적 과정의 완성도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 그 학생이 훗날 공학자가 되었을 때, 그가 설계한 구조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그것이 진짜 공적 기여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사회적 기업 캠페인 구상' 같은 보여주기식 활동 대신, 학생이 실제로 관심을 갖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의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글을 쓰도록 격려하는 편이 낫다. 학생이 졸업 이후 시민으로서 충실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주체가 되도록 교육이 도와야 한다.

우리는 학벌이나 스토리텔링이라는 위장된 표식으로 수행되는 겉보기 교육이 아닌, 발달의 과정 그 자체가 공적 공간을 풍요롭게 하는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교육의 실질을 회복해야 한다. 진단 프로토콜은 우리 사회가 이 경로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표식 만들기로 빠지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도구여야 한다.

대중은 오랫동안 정확히 보아왔다. 그러나 '공적 기여와 무관하게 정당화되고 재생산되는 특권적 엘리티즘'을 분석할 공유된 틀이 없어서, 기술할 말 대신 '말할 수 없는 분노'만 남았던 것이다.

의사가 발열 자체를 없애려 하는 대신 발열의 기원부터 찾는 것처럼, 교육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가능하다 믿는다. 이 글에서 제안한 진단 프로토콜은 완전하지 않다. 병명의 정의도, 병기의 구분도,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한 적용도 더 정밀해질 수 있고 더 정밀해져야 한다.

이 글에서 든 '학벌주의'라는 개념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우리는 사교육 창궐, 교사의 소진, 학부모의 민원 같은 증상 뒤에 숨은 병을 더 정밀하게 찾아내야만 한다. 결국 이 글의 목적은 완결된 분석이 아니라, 그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프로토콜의 필요성을 제안하는 것이다.

환자가 납득하지 못하면 의사가 책임을 진다. 대중이 납득하지 못하면 전문가가 책임져야 한다. 전문성을 주장하는 자가 설명과 입증의 책임을 진다는 것. 이는 누군가가 스스로를 전문직으로 정의하는 순간부터 지켜야 하는 사회적 계약이다.

그것이 환자를 존중하는 방식이고, 대중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서울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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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개성공단 정상화 희망, 장관은 5.24 해제 적극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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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2.10 18:21
  •  
  •  댓글 1
 
통일부. [통일뉴스 자료사진]
통일부. [통일뉴스 자료사진]

10년 전 오늘(2016.2.10)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중단 결정을 발표하고 이틀 후 홍용표 당시 통일부장관은 이 조치가 '정치적 결단에 의한 행정조치'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0일 통일부는 "2016년 2월 우리가 일방적으로 공단을 전면 중단한 것은 남북 간 상호 신뢰 및 공동성장의 토대를 스스로 훼손하는 자해 행위"였다며, "정부는 개성공단의 조속한 정상화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일부는 이날 '개성공단 중단 10년(2.10) 계기 통일부 입장'을 통해 "개성공단은 남북 간 긴장과 대결을 완화하는 한반도 평화의 안전판으로서, 남북 접경지역의 경제 발전은 물론 남북 공동성장을 위한 대표적 실천공간이자 가장 모범적인 '통일의 실험장' 이었다"고 하면서 '남북 간 연락채널을 복원하여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와 무너진 남북 간 신뢰회복을 위한 다방면의 소통과 대화 재개'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내부적으로는 국회와 협력을 통해 2024년 해산된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을 빠른 시일내에 복원하고 공단 중단 장기화로 인해 고통받는 기업인들에 대해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경영안정 등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등 개성공단 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앞서 지난 2013년 약 5개월간의 전면 가동중단 사태를 풀기 위한 당국 간 회담에서 남측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정세와 무관한 공단의 정상적 운영 보장'을 합의서 형태로 체결한 바 있으나 2016년 2월 남측에서 일방적으로 공단 전면중단을 발표한 일, 그리고 2019년 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을 재개할 용의'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상응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공단 재가동의 결정적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서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날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원들은 개성동단 전면중단 10주년을 맞아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잆ㅏ무소 게이트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다.

북의 호응 여부와는 무관하게 통일부는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취한 개성공단 중단 조치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대북제재인 5.24 조치 해제 의지도 공식화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전날 국회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2020년 문재인 정부 때 '5·24 조치는 실효성을 상실했다'고 선언했고 있으나 마나 한 조치"라고 했다고 하면서 "이를 정식으로 해제하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고, 남북 간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 있기에 이를 회복하는 조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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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생산직보다 기자들 먼저 잘린다...'공중제비' 로봇의 진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2/12 09:09
  • 수정일
    2026/02/12 09:0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강인규 리포트] 인공지능, 단순히 따라가기보다 판을 바꿔야 합니다 ②

26.02.12 06:52최종 업데이트 26.02.12 08:11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월 5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시제품이 손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시간으로 1월 5일, 현대자동차는 라스베이거스 가전박람회(CES)에서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2028년부터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양산해 자동차 생산라인에 투입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 대학에서 기술을 연구해 온 저도 놀랐으니,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더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학자에게는 로봇 기술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관심사이지만, 회사 직원들에게는 생계가 걸린 문제니까요.

현대는 아틀라스를 선보인 자리에서 '공장 투입'을 전격 선언했을 뿐 아니라, 타사와의 협력을 통한 비전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구글 '딥마인드'와의 협업을 발표한 데 이어, 앤비디아와 전략적 제휴 관계도 공개했습니다. 현대가 아틀라스의 '두뇌'에 필요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든든한 우군을 확보했음을 과시한 행보였지요. 이는 로봇의 성능 개선뿐 아니라, 답보 상태에 있는 자율주행 기술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에 한국 언론은 "현대자동차는 더 이상 자동차회사가 아니다"라며 한목소리로 뜨겁게 호응했습니다.

주식 시장도 적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박람회 이후 현대자동차 주가가 수직 상승해 1월 21일 사상 최대인 54만 900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곧 조정과정을 거치며 하락을 거듭해, 2월 6일 종가 기준 47만 800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20일도 안 된 기간에 최고점 대비 15% 가까이 하락한 것입니다. 뜨거운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현실이 여전히 차가웠기 때문일까요? 그러자 현대는 7일, 아틀라스가 빙판 위를 뛰고 공중제비를 도는 영상을 추가 공개했고, 주가는 10일 오전 기준 48만 7천 원으로 소폭 반등했습니다.

아틀라스 발표 이후 한 달간 현대자동차 주가 추이. 1월 21일 정점을 찍은 뒤 조정 국면에 진입한 모습으로, 비전 발표에 대한 기대와 실적 둔화라는 현실이 동시에 반영돼 있다. Google 캡처

현대차의 아틀라스 투입 발표는 2025년 4분기 경영실적 발표를 3주 앞 둔 시점에서 나왔습니다. 이 자리에서 발표될 내용은 투자자들에게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었지요.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39.9%나 줄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코로나 이후 최악의 이익률을 기록했지만, 현대가 실적 발표 직전에 공개한 아틀라스 관련 소식은 주식을 효과적으로 방어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찾아온 주가 재조정은 시장이 현대자동차를 여전히 자동차 회사로 보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당연한 일이겠지요. 회사 이름이 '현대자동차'에, 자동차를 파는 회사를 다른 무슨 회사로 볼 수 있을까요?

자동차 판매 부진은 현대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인 토요타는 작년 4분기 이익이 43% 감소하는 실적 악화를 겪은 뒤 최고경영자를 교체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실적 발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2025년 판매량에서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밝혔지요. 하지만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3% 감소한 것을 볼 때, 매출은 유지했더라도 영업이익은 크게 줄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테슬라는 매출 자체가 감소해, 상장 후 첫 역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세계 자동차 업계의 실적 부진은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관세정책 변화, 전기자동차 판매 감소, 그리고 신규 업체들의 진입으로 인한 경쟁 심화를 이유로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들이 해소된다고 해도, 자동차 회사들이 미래를 향해 달릴 도로가 평탄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저는 두 번에 걸쳐 그 이유를 다루면서, 현대자동차,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선택할 미래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일자리 사라지는 한국, '노조 때리기'로 구할 수 있을까?

조선일보 사설 <이번엔 '로봇 반대', 혁신 싹 틀 때마다 막아 서는 나라>조선일보 PDF

현대자동차가 로봇 투입을 발표한 후 노조는 1월 22일자 소식지를 통해 "노사합의 없이 단 한 대도 들어올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후 사태는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보수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포문을 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현대차 노조, 로봇과 전면전"이라는 기사를 냈고, 이틀 뒤인 24일에는 사설로 "이번엔 '로봇 반대', 혁신 싹 틀 때마다 막아서는 나라"라는 사설로 현대차 노조와 한국사회를 동시에 비판했습니다.

<문화일보>는 노조가 논평도 내기 한참 전인 7일에 '선제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아틀라스 발표 직후, 이 신문은 회사 측 발표를 상세히 소개한 뒤 이런 사설을 썼습니다. "아틀라스·알파마요 충격… 한국 발목 잡는 규제와 노조". 보름 뒤 노조가 사측의 일방적 발표에 우려를 표하자, <문화일보>는 다시 사설을 냈습니다. "'로봇 도입 반발' 현대차 노조… 인공지능시대 러다이트 우려." <매일경제>도 "'로봇 1대도 현장투입 안돼' 아틀라스 거부한 현대차 노조"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기사들을 읽어가는 제 머리에 여러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 한계 중 하나인 '기업 홍보자료 베끼기 경쟁'입니다. 미국 언론이 보도작성 교본으로 여기는 <에이피 스타일북>에는 "기업이 발표하는 기술적 전망에 대한 주장을 검증 없이 무비판적으로 베껴 보도하지 말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언론 다수는 무비판적 보도로 몇 주간 지면을 채웠습니다. 현대자동차는 그 덕을 톡톡히 보았지요. 언론이 나서서 회사 홍보를 해 줬을 뿐 아니라, 그들이 불붙인 '혁신(사측) 대 수구(노조)' 구도의 논쟁 속에서 2025년 실적 부진 소식이 증발했기 때문입니다. 진보언론은 노조 비판을 넘어 일자리 소멸에 대한 사회적 우려로 논점을 넓히긴 했지만, 기술적 검증의 부재라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아틀라스의 2028년 공장투입, 과연 현실성 있는 계획일까요?

먼저 노조 발표에 관한 사실관계부터 살피도록 하지요. 다수의 한국 보도와 달리, 노조는 아틀라스 투입 자체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노조가 문제 삼는 것은 '로봇'이 아니라, '합의 없는 투입'이었지요. 사용자 측이 인력 대체용 기계를 일방적으로 도입할 때 직원들이 침묵하고, 이후 해고통지서를 보낼 때 조용히 짐을 싸는 것이 '시대의 요구'라면, 우리는 그 요구가 사회적으로 정당한지 물어야 합니다. 기업이 기술로 사람을 대체하려는 시도는 생산직뿐 아니라 사무직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만, 다수의 로봇공학자들은 제조업 일자리가 가장 늦게 사라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오히려 당장 위협받는 직업은 지식기반의 사무직입니다. 벌써 변호사나 회계사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기자 300명을 포함해, 무려 직원 3분의 1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했지요. 신문사 경영진은 이번 대량 해고를 "새로운 기술 시대에 맞는 전략적 재편"이라고 주장하며, 사람이 하던 일(스포츠 데이터 정리, 요약 보도 등)을 인공지능 기술로 대체하거나 효율화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기자직을 포함해, 주위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대의 요구'에 거스르는 세력들, 군말 없이 사원증을 반납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려는 직원들을 "러다이트"로 비난하면서, 유튜브에서 '전문가'들이 찍어주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살아남을 직업"을 검색하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러다이트'는 기술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노동자들이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권우성

오늘날 '러다이트'라는 말이 조롱의 의미로 쓰이고, 그것마저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가 동료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데 사용되는 모습을 보며, 왜곡된 과거가 어떻게 현재를 옥죄는지를 절감합니다. 발터 벤야민은 "승리하는 적 앞에서 죽은 자들도 무사하지 못하리라"고 썼지요. 산업혁명의 자본가는 구사대, 경찰, 군대, 형법을 동원해 기계를 부수던 노동자들을 성공적으로 제거했지만, 어쩌면 그들의 진정한 승리는 오늘날 '러다이트'라는 호칭을 조롱거리로 만든 데 있을지 모릅니다.

흔한 오해와 달리, 러다이트들은 기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영국 장인들은 가족 단위로 일을 했고, 이들도 기계를 사용했습니다. 아이들이 목화씨를 빼거나 양털을 고르면, 아내가 물레를 돌려 실을 뽑고, 남편이 실을 받아 직조기와 편직기로 천이나 양말을 짜는 식으로 말이지요. 이런 분업체계는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기술과 품질이 세대를 통해 축적되는 생산방식을 이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장인의 숙련도에 한참 못 미치는 기계를 도입해 물건들을 대량으로 찍어내기 시작합니다. 자동화된 기계는 가격과 생산력에서 장인들을 압도했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 다수는 조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마을에서, 업주가 어눌한 '인공지능 상담원'을 도입한 후 직원을 집단 해고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상황을 '혁신'과 '수구' 구도로 볼 수 없듯, 러다이트 운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노동조합 설립이나 단체 교섭권, 파업은 물론, 노동자들의 집회조차 사실상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참정권까지 재산에 따라 제한되었기 때문에, 노동자 대부분은 투표권이 없었고, 이에 따라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인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렇듯 노사대화도, 실직수당도, 기초생계비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 장인들은 가족의 생계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을 택합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계들을 찾아 부수는 것이었지요. 물론, 가족이 굶거나 해체되는 것을 보는 대안이 있기는 했습니다. 실직한 장인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많은 공장주들이 어린이를 선호했습니다. 임금을 적게 줘도 되고, 말도 잘 듣는 데다, 체구가 작아 탄광의 좁은 굴 같은 곳으로 잘 기어들어갔기 때문이지요.

1820년대에 영국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가 미성년자들이었고, 이들이 처한 노동 환경은 혹독했습니다. 12시간 노동은 기본이고, 14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흔했으니까요. 1833년에 와서야 공장법이 제정돼 9~13세 아동은 하루 9시간, 14~18세는 12시간을 넘기지 못하게 규정했지만, 업주들은 법을 일상적으로 무시했습니다. 아동노동을 금지하라는 목소리가 높아갈 때 "그러면 회사 망한다"며 극렬히 반대했던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러다이트 일원이 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 선택이었습니다. 목숨을 건 싸움이었으니까요. 공장주가 고용한 경비나 경찰, 군대의 총을 피한다 해도, 적발되면 형법에 의해 사형에 처해질 수 있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의 목이 교수대에 걸렸습니다. 그런 이유로, 러다이트들은 이름을 감춘 채 서로를 암호로 부르던 비밀 결사대로서 활동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러다이트들이 아무 기계나 부순 것은 아닙니다. 자신들을 대체하는 기계, 특히 저질의 상품을 양산하는 기계들을 표적으로 삼았지요. 기록을 보면, 러다이트들은 유통망을 차단하기 위해 직물을 운송하는 마차를 습격하곤 했는데, 이때 '정당한 임금'을 주고 '정당한 품질'로 만든 제품은 고이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노동조합, 산업재해법, 실직수당 등 오늘날 우리가 노동자로서 누리는 권리의 상당 부분은 러다이트 운동이 초석을 놓은 19세기 노동운동과 정치적 개혁 덕분입니다. 결국 러다이즘은 기술 거부가 아니라, 기술이 사용되는 방식과 그 권력관계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러다이트는 많은 현대인들이 잊고 있는 사실, 즉 기술이 사람에게 봉사해야 하며, 그 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던 사람들이지요.

사람 대체한다며 웬 '공중제비'를 보여 줄까요?

현대차그룹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지난 7일 아틀라스가 옆돌기와 백 텀블링 등을 하며 연속으로 공중제비를 넘는 영상을 자사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고 9일 밝혔다. [보스턴다이나믹스 유튜브 캡처]연합뉴스

한국에서는 논쟁이 '노조 때리기'로 흘러갔습니다만, 아틀라스 공장투입 논의에서 많은 분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대자동차 생산라인 대부분이 이미 자동화된 상태라는 점입니다. 자동차 생산공정은 크게 '프레스(철판작업)', '차체(용접)', '도장(색칠)', '의장(정밀조립)'으로 나뉘는데, 네 공정 가운데 세 단계가 90% 이상 사람 없이 기계(고정형 로봇)에 의해 처리되고 있습니다.

현재 사람들이 필요한 영역은 마지막 공정, 즉 의장뿐입니다. 고정형 로봇이 찍어내고, 용접하고, 도장을 마무리한 차체에 엔진과 변속기 등 핵심 부품을 설치하고 시트, 와이어링(전선 설치), 정밀볼트와 너트를 고정하는 작업이지요. 이 단계조차 이미 30~40%가 자동화되었고, 나머지 작업에서 사람의 손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손'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아틀라스를 포함해, 어떤 로봇도 사람 손재주를 흉내 내지 못하고 있으며, 조만간 이 문제가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휴머노이드가 사람 일을 대신할 거라고 주장하면서, 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 예컨대 와인잔을 집어 건네거나, 전구를 교체하거나,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이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지 말입니다. 시연회에서 로봇이 선보이는 것은 대개 이단 옆차기나 공중제비 돌기 같은 '손기술'과 거리가 먼 동작들입니다. 아틀라스의 경우, 박스에서 자동차 부품을 꺼내 선반으로 옮기는 어설픈 동작을 보여 주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홍보한 동작은 360도 회전하는 관절을 이용한 매끈한 '쿵푸 자세'였습니다. 주가가 떨어진 뒤 공개한 것도 '빙판 뛰기'와 '공중회전'이었지요.

이들이 곡예단용 로봇이 아닌데도 '몸 재주'를 주로 선보이는 이유는, 이 동작들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쉽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선처럼 비정형의 물체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작업은 시뮬레이션으로 가르칠 수 없고, 사람이 일일이 원격조종을 하며 훈련시켜야 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요구된다는 것이지요. 1년 치 데이터를 모으려면 1년을 꼬박 작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챗지피티나 제미나이 등의 생성형 인공지능이 주목받으면서, 로봇도 인공지능을 '이식'하면 사람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막연히 믿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컴퓨터공학과 로봇공학은 연관되었을망정, 완전히 다른 영역입니다. 인공지능은 정보를 줄 수 있지만, 그 정보로 물체를 움직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니까요. 게다가 챗지피티와 아틀라스 사이에는, 버클리대 로봇공학자 켄 골드버그가 말한 "10만년 데이터 격차"가 존재합니다.

현재 생성형 인공지능을 훈련시키는데 투여된 문자와 시각 데이터의 분량은 대략 '10만년' 분량에 해당합니다. 사람들이 읽거나 보는데 10만 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방대한 데이터를 쉽게 모을 수 있던 것은 인터넷 덕분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로봇의 손동작을 훈련시킬 만한 데이터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용한 비디오 영상도 찾기 어렵지만, 찾는다 해도 2차원의 이미지를 3차원 데이터로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런 이유로 골드버그 교수는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는 일이 "2년, 5년, 10년 안에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에 앞선 2024년 6월, 테슬라는 공식 계정을 통해 "옵티머스 로봇 2대가 공장에서 자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도 같은 달 주주총회에서 2025년까지 "테슬라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로봇이 1000대에서 2000대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해 사람들을 흥분 시켰지요. 2025년 1월 테슬라 4분기 실적 발표 때도 머스크는 "2025년 말까지 수천 대의 옵티머스 로봇이 유용한 일을 해 낼 수 있겠느냐고요? 예, 저는 그 로봇들이 유용한 일을 해내고 있으리라 자신합니다"고 못박았습니다.

2026년, 약속한 시기가 다가왔고 머스크는 더욱 놀라운 발표를 합니다. 2026년 1월 말, 그러니까 현대가 아틀라스 공장투입을 발표한 뒤 한 달 가까이 지난 때였지요.

"옵티머스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연구개발 단계이지요…현재 우리 공장에서 실질적으로 쓰이고 있지는 못합니다. 로봇을 학습시키려는 목적에 더 가깝지요. 올해 말까지 옵티머스 대량 생산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는 로봇공학의 한계를 3년 안에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단지 기술적 가능성만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공정에서 사람을 대체하기 위해 쏟아부을 막대한 비용이 현명한 투자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공'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다음 글에서 이 문제를 다뤄보겠습니다.

#아틀라스 #인공지능 #강인규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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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외면한 이재명 발언 "노동운동 열심히 하세요"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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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26.02.12 08:00

  • 수정 2026.02.1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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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직접 강조한 노동운동 필요와 정당성

노동자들에게 전하는 변화의 신호와 투지 자극

이재명의 발언을 투쟁의 무기로 활용하는 지혜

탄핵의 승리를 일터의 승리로 연결해야할 과제

"결국 누가 해야 합니까? 여러분이 직접 하세요."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창원 성산구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남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2.6.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며칠 전 창원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노동 현실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열심히 일해도 격차가 크고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토로였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의 답변은 다소 놀라웠다. “해결 방법은 뭐냐,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는 거예요. 노동자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안 됩니다. 힘을 모아야 노동자의 지위가 올라가고, 사용자와 힘의 균형을 맞춰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어요. 정부도 과거처럼 부당한 탄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발언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이 발언이 나온 장소와 청중이 상징적이다. 창원은 한국 제조업의 핵심 거점이자, 대기업과 중소 하청 업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대표적 산업 도시이다. 타운홀 미팅의 참가자들 중에서도 창원 산업 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노동자,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수백 명이 모인 공개적인 자리에서, 국가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특히 미조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겨냥해 '노동자는 단결해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 것은 결코 가벼운 장면이 아니다. 이는 단순하거나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위험한 말’, ‘불편한 말’로 취급되어 왔던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최고 권력자가 공개적으로 인정한 장면이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조직되고 투쟁해야만 임금과 노동 조건이 개선된다는 사실은 노동운동의 기본 명제이지만, 그동안 정부 책임자의 입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었던 말이다. 특히 “정부도 과거처럼 부당한 탄압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은, 그동안 국가 권력이 노동운동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떠올리면 더 의미심장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이 발언은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뿐 아니라, 언론 보도와 SNS, 영상 공유를 통해 이를 접한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당시 현장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대통령의 발언이 끝나자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온다. 이는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과 기대가 순간적으로 표출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노조로 조직돼 있지 않거나 정치적 의식이 상대적으로 낮은 미조직 노동자일수록 '대통령도 이렇게 말한다'는 사실은 큰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 ‘노동운동을 해도 되는구나’,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하는 것이 정당하고 필요한 일이구나’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미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에게도 이 발언은 결코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사실, 조직 노동자들 역시 지난 몇 년간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윤석열 정권 3년 동안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업무 개시 명령, 건설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건폭 몰이', 민주노총을 향한 ‘간첩단 마녀사냥’과 같은 정치적 공격은 노동운동 전반에 강한 위축 효과를 낳았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 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2022.7.19. 연합뉴스

그 결과 노조 조직률은 정체되거나 하락했고, 임금 인상률과 파업 건수, 파업 참가자 수 역시 감소했다는 것이 각종 통계에서 확인된다. 조직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투지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윤석열의 12·3 친위 쿠데 직후 상황에서도 드러났다. 당시에 헌정 질서를 뒤흔드는 계엄 선포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노동자들의 충격과 분노는 컸다.

민주노총은 즉각 총파업을 선언했다. 정치적·도덕적 정당성 면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명분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총파업은 부분 파업에 그쳤고 실제 참가자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노동자들이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오랜 사기 저하와 두려움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조직 노동자들에게도 '이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국가 권력이 공개적으로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부당한 탄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심리적 방어선을 낮춘다. 그래서인지 친기업적 성향의 보수적 주류 언론들은 이 발언을 거의 보도하지 않거나,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이 발언이 노동자들에게 미칠 잠재적 효과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노동운동은 이 발언을 외면하거나 냉소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말만 번지르르하다'거나 '어리석게 속지 말라'는 식의 반응은 현장에서 박수치고 환호했던 노동자들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설명하지 못하고 거리감만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신뢰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낼 정치적·사회적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더욱이 미조직 노동자들의 대다수, 그리고 조직된 노동자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나 민주당을 지지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거리와 광장을 돌아보면, 수많은 민주당 깃발과 지지자들이 함께했던 장면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에게 이번 발언은, 자신들이 거리에서 싸워 만들어낸 성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양대노총 위원장과의 오찬 간담회에 참석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왼쪽),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며 손을 잡고 있다. 2025.9.4. 연합뉴스

따라서 출발점은 그 기대와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다. 윤석열 탄핵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승리와 정권 교체는 우연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과 노동자들이 거리와 광장에서 힘을 모아 싸운 결과였다. 이 성과를 분명히 인정할 때, 그 자신감의 불씨를 다시 일터와 삶터로 옮겨 붙일 수 있다.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정치 투쟁의 경험은, 작업장에서 노조를 조직하고 임금과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경제 투쟁의 자신감을 고무한다.

실제로 9년 전 박근혜 탄핵 투쟁 이후를 돌아보면, 그 효과는 분명하다. 박근혜 정부 붕괴 이후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이전처럼 노골적인 노동 탄압을 이어받기는 어려웠고, 그 정치적 공간 속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은 2016년 약 10% 수준에서 2021년 14% 내외까지 상승했다. 전 세계적으로 노조 조직률이 장기 하락 추세에 있던 시기에도 이는 매우 이례적인 변화였다.

지금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 ‘빛의 혁명’이라 불린 윤석열 탄핵 이후, 한국 노동운동 앞에는 다시 한번 기회가 열려 있다. 오랜 숙원이었던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었고, 대통령의 입에서 “노동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조건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조직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이 공간을 넓히고,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밀 때만 의미를 갖는다.

특히 전체 노동자의 80%가 넘는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핵심 과제다. 중소 영세 사업장,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여전히 낯설거나 두렵다. 그러나 노동조합이라는 집단적 방패와 무기를 가질 때만, 권리를 지키고 늘릴 수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와 경험으로 보여줘야 한다. 동시에 노동운동 내부의 문화 역시 더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바꾸며,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과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난해 여름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이재명 대통령 - 유튜브 화면 갈무리

사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여름 국무회의에서도 그는 산업재해 문제를 논의하던 중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혼자 대응할 수 없기에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역량이 중요한데, 노조 조직률은 올라가고 있느냐”고 직접 물은 바 있다. 이는 노동조합의 역할과 힘을 정책적 차원에서 인정한 발언이었다.

물론 이재명 정부가 과연 이러한 발언에 걸맞게 노동자들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노동운동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있느냐는 질문과 비판은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비판은 '차라리 이런 말도 하지 말라'는 방향이 아니라, '당신이 한 말대로 하라'고 압박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은 그 자체로 투쟁의 좋은 근거가 될 수 있다.

어차피 노동운동의 대표적인 투쟁가인 <인터내셔날>의 가사처럼, “우리의 것을 되찾는 것”은 "어떠한 높으신 양반"이 아니라 "강철 같은 우리 손"의 몫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창원 타운홀 미팅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누가 해야 합니까? 국민들이 해야 하는 거죠. 여러분이 직접 하세요.” 공은 이미 노동운동에게 넘어왔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발언과 이 국면, 그리고 노동운동이 쌓아온 모든 경험을 최대한 활용해 투쟁과 연대를 건설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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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울산시장 예비후보 등록… “새 산업수도 울산, 일하는 시장될 터”

  • 한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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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6.02.11 16:24
  •  
  •  댓글 0
 
   
 

K-조선 미래 망치는 광역비자 정책 바로잡겠다
김두겸 시정 4년, 울산의 골든타임 허송세월
내란 세력은 정치할 자격 없어… 민주진보단일화 준비

ⓒ진보당 울산시당
ⓒ진보당 울산시당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이 11일 울산시장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선거 행보에 돌입했다. 김 후보는 “새 산업수도 울산의 일하는 시장이 되겠다”며 사람 중심의 산업 대전환과 내란 세력 청산을 핵심 기치로 내걸었다.

김 후보는 이날 새벽 5시 샤힌 프로젝트 플랜트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출근 인사를 하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이어 오전 10시 30분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정 운영에 대한 포부와 현 시정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진보당 울산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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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조선 미래 망치는 광역비자 정책 바로잡겠다”

김 후보는 윤석열 정부와 김두겸 울산시정이 추진하는 ‘조선업 광역비자’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 정책은 K-조선의 미래를 망칠 뿐”이라며 “일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산업은 결코 발전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청년들이 떠나는 제조업 도시 울산을 방치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사람이 중심이 되는 AI 시대와 일자리 중심의 산업 대전환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특히 울산의 산업과 공동체를 위한 재생에너지를 통해 110만 시민 모두가 성공하는 ‘울산 대도약’의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진보당 울산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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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겸 시정 4년, 울산의 골든타임 허송세월”

현 김두겸 시정에 대해서는 ‘낡고 독단적인 정치가 울산의 기회를 날려버렸다’고 평가했다. 김 후보는 구체적인 실책으로 다음과 같은 사례를 지적했다.

▲에너지 정책 실패: 울산을 풍력에너지 선도기지로 만들 기회를 상실함.

▲행정 구역 전략 미비: 800만 부울경 경제전략의 메카가 될 기회를 차버리고 지방소멸을 가중시키는 해오름동맹 추진.

 

▲민생 행정 부재: 27년 만의 엉망진창 버스 개편, 문화예술인의 요구와 무관한 오페라하우스 집착.

▲재정 운영 불균형: 전국 꼴찌 수준의 보통교부세 구·군 배부로 ‘부자 시, 가난한 구’를 만듦.

김 후보는 “정부만 쳐다보며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길 기다려서는 뒤처질 뿐”이라며, 시의원·국회의원·구청장 2번을 거치며 검증된 자신의 행정 실력으로 울산의 미래를 개척하겠다고 자신했다.

ⓒ진보당 울산시당

“내란 세력은 정치할 자격 없어… 민주진보단일화 준비”

정치적 과제로는 ‘내란 청산’과 ‘민주진보세력 총단결’을 전면에 내세웠다. 김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을 탄생시키고 비상계엄 해제를 방해한 국민의힘 세력에 대해 “울산시민 앞에 사과부터 하라”고 일갈했다.

그는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사과와 반성 없이 다시 출마할 자격이 있는지 양심에 물어야 한다”며, 내란 청산을 위해 시민들이 원하는 민주진보단일후보와 초당적 협력을 추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아틀라스에서 열린 노동자 일자리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정책 중심의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낡은 관행을 청소하고 일하는 지방정부 시대를 열어 울산시민의 잠재력을 꽃피우겠다”며 울산 선거 여정의 승리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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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합당 논란 일단락…정청래 “이제 승리위해 총단결”

  • 김미란 기자

  • 업데이트 2026.02.11 11:39

  • 댓글 0

이언주 “당 지도부 화합으로 이재명 정부 국정 성공 힘 모을 것”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국혁신당과의 ‘지선 전 합당’ 논의 중단을 선언하고 “우리 안의 작은 차이를 넘어 이제 오직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우리의 큰 같음을 바탕으로 총단결하겠다”고 천명했다.

정 대표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천신만고 끝에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성공만을 생각하고, 앞으로 지방선거 승리에 도움이 되는 일만 하도록 하자”며 “더 이상 합당 논란으로 우리의 힘을 소비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 당원 투표를 시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당의 주인이신 당원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하며 “‘비온 뒤 땅이 굳는다’고 이제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특히 “4월 20일까지 모든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민주당 공천 시간표는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억울한 컷오프는 없을 것이다. 약속드린 대로, 권리당원의 공천 참여를 전면 보장하고, 민주적 절차로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를 공천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적 경선에 참여한 후보들은 모두 승복하고, 공천 후보자에 대해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아 함께 뛰는 민주당의 모범을 보이겠다”며 “이를 위해 민주당 지도부부터 더 단결하고 더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겠다”고 덧붙였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언주 최고위원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합당’ 문제로 정청래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던 이언주 최고위원은 “합당은 단순한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당의 정체성과 당원들의 선택권, 당의 정치 지형과 선거 전략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충분한 정보제공과 당내 숙의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된 방식에 대해서 당원들의 우려를 전달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최고위원들이 당원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다소 무리한 일방적 의사결정을 견제하려고 하다 보니 강하게 주장한 경우도 있었다”며 “이로 인해서 혹시라도 당원 동지 여러분과 동료의원들께 걱정을 끼쳐드렸다면, 이 자리를 빌려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제 논란이 일단락된 만큼 중요한 것은 당의 화합과 안정, 지방선거 승리 그리고 이재명 정부의 국정 성공”이라며 “이제 논의가 정리된 만큼 당 지도부는 더욱 화합된 모습으로 당을 안정적으로 이끄는데 힘을 합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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