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는 사람들’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기자가 오랜 기간 지켜봐 온 마약 중독 당사자들이 약물과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연재입니다.
지금까지 마약 중독 이야기를 많이 봐 오셨을 겁니다. 마약 중독자 수가 이미 상당히 급증했고, 투약 연령대가 10대 청소년까지 내려왔으며, 약물에 취한 사람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짓을 할 수 있는지까지 우리 사회는 이미 충분히 이야기를 소비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는 사람들’ 이야기를 싣기로 한 이유가 있습니다. 중독 당사자들의 회복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무사히 약물 중독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당사자가 모든 사회적·경제적 자원을 다 끌어다 쓰고, 삶이 바닥을 다 드러내게 되어도 실패하는 경우가 셀 수 없습니다.
실패하는 결말이 필연이어서는 안 됩니다. ‘100만 중독자’ 시대라고 합니다. 처음 약물 중독 문제 취재를 시작한 이후 여러 중독 당사자들을 만났습니다. 대부분의 이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정성스럽게 일구고 있었습니다. 삶에 열심을 다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느껴지는 감동이 있습니다. 정말 많은 중독 당사자들에게서 그런 강한 의지를 느꼈습니다. 그 삶들을 통해서 중독 문제가 없는 나는 얼마나 내 생활을 진심으로 아꼈던가 오히려 돌아보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죄를 외면하는 이도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살면서 저지른 한순간의 실수로부터, 불행히 빠져버린 덫에서 다시 나오고 싶어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길게는 3년 가까이 지켜보는 중입니다.
어떤 도움을 받느냐에 따라 다시 나오게 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렇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들을 봐 왔습니다. 중독 당사자들이 공적 도움을 받으려면 여론이 있어야 합니다. ‘왜 약쟁이들에게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힐난이 아니라, 이들을 돕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큰 어려움에 빠질 거라는 현실 인식이 필요합니다. ‘끊는 사람들’은 연재를 보시는 분들을 감히 설득하고자 합니다.
‘끊는 사람들’ 연재에서는 중독자 대신 중독 당사자라는 용어를 쓰려 합니다. 중독자라는 말은 직관적이지만 한 사람을 중독이라는 특성으로만 규정합니다. 중독 당사자라는 말은 중독을 당사자가 겪는 문제 혹은 경험으로 분리하고, 사람을 중독과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기자가 오랫동안 만나온 이들을 중독자로만 보지 않고, 더 입체적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중독 당사자 이야기를 통해 다른 문제도 드러내려 합니다. 처방약에 의한 중독 문제, 교정시설의 열악한 현실, 중독 문제의 사회적 요인, 여성 중독자들이 겪는 막막함을 다룰 계획입니다. 나아가 ‘회복판’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을 돕는 현재 시스템은 냉정하게 말해 오합지졸입니다. 어쩌다 ‘약쟁이들’과 가까워진 기자가 개인적 감정과 친분에 빠져 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게 애쓰겠습니다. 이 연재의 마지막쯤엔 이야기를 읽으신 분들의 생각이 기자와 비슷해지기를 기대합니다.
“기자님, 미나가 없어졌어요. 끊을게요!”
영상통화 화면이 툭 끊긴다. 화면 너머엔 중독 당사자 딸 미나(22·가명)를 둔 여진(54·가명)이 있었다. 까매진 화면을 보며 생각한다. 이번엔 며칠 뒤에야 소식이 들려올까? 이 가출의 끝은 어디일까? 미나가 심하게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런 경우 여진에게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미나가 사라지기 4개월 전, 2025년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밤. 그날도 여진은 돌아오지 않는 딸 미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필로폰에 손을 대기 시작한 미나는 가을부터 상태가 나빠지더니 12월 들어서는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곤 했다. 엄동설한에 변변한 옷가지도 없이 나간 딸이 일주일 넘게 들어오지 않는다. 겨울밤은 나쁜 상상을 달래기에는 너무 어둡고 길다. 중독자 딸을 둔 다른 엄마가 언젠가 여진에게 말한 적이 있다. 자녀 중독 문제를 겪는 엄마들은 대부분 불안을 달래는 약을 처방해 먹는다고. 여진은 날마다 그 말의 뜻을 새로 알게 된다.
미나는 안정적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예쁘고 영특한 외동딸이다. 학업 성적이 좋았고 미술, 음악, 글쓰기에도 두루 재능을 보였다. 창작하는 일로 먹고 산다면 어디서든 돋보일 것이다. 여진은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타고난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을 한결같이 챙기는 성품을 지녔다. 스스로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데도 탁월하다. 어디를 가도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그런 여진이 하나밖에 없는 딸 미나에게 어떤 사랑을 주었을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진은 미나를 정성으로 기르고 돌봤다. 어떻게 봐도 미나와 마약은 잘 달라붙지 않는 것 같다.
좀처럼 웃음을 잃지 않는 여진도 미나가 며칠씩 집을 비우자 눈물로 보내는 밤이 잦아졌다. 여진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본다. 미나가 집을 비운 이후 여진은 반려견 후추의 산책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후추는 일주일 넘게 산책을 나가지 못해 우울해져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가출은 예감이 좋지 않다.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돌아오면? 미나가 다시 외출하는 그 순간부터 같은 생지옥이 또 되풀이될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온 신경이 대문에 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다 밤을 넘겨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그때부터는 날을 새로 세게 될 것이다.
여진은 이제 뭐가 더 나은 건지 모르겠다. 미나가 집에 있어도, 집에 없어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눈물이 다 마른 여진은 기도를 하면서 미나가 없는 열흘째 밤을 이겨내기로 한다. 미나가 큰 일을 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공부든 사고든, 한 번 하면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딸이었다. 그리고 4개월 뒤, 미나는 사건 기사에 등장하게 된다.
“엄마, 난 뭐라도 해야 돼”
12월 31일 밤, 새해를 얼마 안 남겨두고 미나가 집에 돌아왔다. 가만 살펴보니 미나의 다리가 염증으로 퉁퉁 부어 있다.
한 달 전 가출에서 미나는 팔 이곳저곳에 주사를 찌른 탓에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주사바늘이 낸 상처가 심한 염증이 됐기 때문이다. 여진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미나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분명히 눈치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엔 다리다. 팔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았으니 다리에 주사바늘을 찔러넣었을 것이다. 미나는 함께 약을 한 ‘친구’의 집에서 고열로 며칠씩 사경을 헤맸다고 말했다.
여진은 잘못 찌른 주사바늘 때문에 혈관이며 간에 감염이 생겨 죽을 뻔했다던 한 중독 당사자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렇게 죽을 뻔했는데도 약을 끊지 못했다는 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생각을 멈추게 된다. 미나는 정말로 위험했다. 패혈증이 왔을 수도 있었다. 이번 가출 때 ‘미나가 정말 죽는 것은 아닐까’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들었던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집에 오자마자 해본 소변 시약검사는 모두 음성이었다. 제대로 찌르지를 못해서 나온 음성인 셈이다.
22년 된 미나의 작고 가녀린 몸은 이곳저곳이 상해 있다. 필로폰은 사람을 먹지도 자지도 않게 각성시킨다. 팔·다리 염증은 물론이고, 제때 식사를 하지 못해 체중이 크게 줄고 위장이 상했다. 이렇게 긴 가출 후에는 ‘병원 투어’를 하곤 한다.
겨우 몸을 추스르면 미나는 어차피 다시 집을 나갈 것이다. 지난 가을 미나는 다이어트약, 불안장애약을 무서울 정도로 먹어댔다. 약을 하도 먹어서 심장이 아프다고 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약물이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면 심박수와 혈압이 치솟아 가슴 압박과 흉통을 느낄 수 있다. “엄마, 난 약을 끊을 생각이 없어. 난 무슨 약이든 해야만 하는 몸이 되어버렸어. 난 뭐라도, 필로폰이라도 주워서 해야 돼.” 미나의 말을 들은 여진의 마음이 무너진다.
이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미나는 또 가출했다. 올해 2월, 미나는 서울 강서구의 한 모텔에서 필로폰을 하다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여진을 맞았다. 같이 약을 하던 20대 남성 투약자와 방에서 싸움이 났다고 했다. 싸움이 크게 번지자 소리를 들은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다. 잠도 밥도 부족한데 싸우면서 얼굴엔 얻어맞아 생긴 멍자국이 있었다. 여진의 마음이 다시 한번 무너졌다.
다시 두 달 뒤, 2026년 4월. 미나는 사건 기사의 주인공이 된다. ‘실종신고로 딸 찾았더니 호텔서 필로폰 투약…20대 여성 구속’.
2월 강서구 사건 이후 한동안은 마음을 잡은 듯했던 미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4월 9일 밤 또 집을 나섰다. 영상통화 중이던 여진이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던 이유다. “기자님, 미나가 없어졌어요. 끊을게요!” 다음 날, 여진은 결국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미나는 구속됐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몸이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어요. 더 망가지기 전에 잡혀야 해서 신고했어요. 살아는 있어야 내일을 도모하니까요.”
4월 가출을 끝으로 미나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심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ADHD 진단과 약 처방…그 후 모든 것이 시작됐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을 말할 때면 여진은 2022년의 어느 날을 떠올린다. 고등학교 3학년으로 대입 준비에 한창이던 미나는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진단을 받았다. ADHD약을 처방받은 곳은 서울 시내의 한 병원이었다.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의 페니드정.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다. 학업 스트레스를 받던 미나는 이 약에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같은 술을 마셔도 누구는 취하고 누구는 멀쩡하듯 약도 가끔 주인을 만난다. 이 약은 미나에게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미나는 자꾸 약을 더 달라고 여진을 조르기 시작했다. 끝도 없는 실랑이가 이어졌다.
대체 이 약이 무엇이길래 이럴까, 궁금해진 여진이 약을 먹어봤다. ADHD가 없는 여진에게 이 약은 불쾌한 두통을 안길 뿐이었다. 소가 앞에서 머리를 잡아끄는 것 같기도 했다. 미나의 머릿속에서는 달랐다. 시끄러웠던 머리가 조용해지고, 너무 많은 생각들 사이에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미나는 약을 얻기 위해서는 뭐라도 할 수 있게 됐다. 친구들에게 부탁해 약을 받기도 했다. 여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처방약 중독 때문에 입원한 중독치료 전문 병원은 갓 약맛을 들인 미나에게는 정보의 보고 같은 곳이었다. 처방약 중독 입원자와 마약류 중독 입원자가 같은 병실에서 생활하는 환경에서, 흘러가지 않았어야 할 정보가 미나에게 갔다. 미나가 느끼던 강렬한 이끌림과 왕성한 호기심은 필로폰 투약을 필연적으로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2025년 10월, 미나는 결국 필로폰을 만났다. 미나는 여진에게 “나는 내가 필로폰을 하게 되고야 말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가출이 시작됐다. 사나흘이던 가출이 일주일이 되고, 보름이 됐다. 첫 가출로부터 반년 뒤 미나의 질주는 여진의 신고로 겨우 멈추게 됐다.
“중독성이 있는 약이라는 걸 전혀 몰랐어요. 의사는 ‘의존이 생길 수는 있지만 중독성은 없다’고 분명히 얘기했거든요.” ADHD약을 처방해주던 전문의의 말은 믿음직했다. 여진은 그날로 돌아가서 약 처방을 되돌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2023년, 우수한 성적으로 원하던 대학에 입학한 미나는 중독 문제로 학업을 더 지속하지 못하고 자퇴했다. 2025년에는 다른 유수의 대학에 한 번에 편입했다. 이 학업도 더 이어가지 못하고 쉬고 있다. 미나뿐이 아니다. 의사를 믿고 처방받은 약을 의심 없이 삼켰다가 중독의 굴레에 빠진 청년들은 어느 회복 기관에 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 약을 처방한 의사들은 문제 없이 잘 살아간다. 미나에게 ADHD약 30일치를 턱 처방해 준 의사도 그렇다. 책을 내고, 방송도 여러 편에 출연한 유명 인사다. 미나처럼 처방약으로 중독 문제를 겪게 된 아들을 둔 아버지는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②편에서 계속)
시사타파TV 대표 이종원씨가 2021년 11월 개혁국민운동본부(개국본) 전국 임원진 회의에서 "추미애 출마는 나와 정청래, 김어준이 짠 고도의 정치공작"이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개국본 전 회원이 뉴탐사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같은 취지의 발언은 호남 개국본 회원들이 만든 '행동일지'라는 기록물에도 남아 있다. 이 회원은 회의 참석자가 20여명이었고, 발언을 직접 들은 사람이 자신 말고도 여러 명이라고 말했다.
증언자는 신원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이종원씨 지지자들의 좌표 찍기와 온라인 공격을 우려해서다. 인터뷰는 AI 음성변조를 거쳐 방송에 나갔다. 변조 전 원본 음성은 뉴탐사가 보관하고 있다.
행동일지는 호남 지역 개국본 회원들이 2021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1년 동안의 활동을 날짜별로 정리한 문서다. 개국본은 서울에 본부를 뒀지만 실제 동원력은 호남에서 나왔다. 이 문서는 2022년 리포액트 허재현 기자와 정숙 시민기자가 한 차례 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그때는 주목받지 못했다. 최근 정숙 기자가 뉴탐사에 다시 제보하면서 재조명됐다.
개국본의 전신은 '개싸움 국민운동본부'다. 2019년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회계 논란이 불거지자 이씨는 이 조직을 해산하고 2021년 3월 사단법인 형태의 개혁국민운동본부를 새로 세웠다. 20대 대선 경선이 시작되던 시기와 겹친다. 두 조직 모두 대표는 이씨였다.
"이재명 이름은 거명하지 못하게 했다"
행동일지에는 2021년 7월 4일 청주 CJB컨벤션센터 추미애 후보 응원전 기록이 있다. 이씨 바로 아래 총괄본부장이었던 '백두'라는 닉네임의 인물이 "추미애 후보님만 응원토록 했고 이재명 후보의 이름은 절대로 거명하지 못하게 했다"고 적혀 있다. 그 아래에는 "표를 분산시키기 위한 고도의 정치공작의 일환으로 의심된다"는 회원들의 판단이 붙어 있다. 이씨와 총괄본부장이 "개국본이 추미애 후보의 캠프"라고 말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당시 추미애 후보는 당내에서 고립돼 있었다. 그를 돕는 현역 의원이 사실상 없었다. 법무부 장관 시절 윤석열 검찰총장과 충돌한 것을 두고 당내 여론이 나빴던 탓이다. 그 빈자리를 개국본이 메웠다.
회원들의 속내는 달랐다고 증언자는 말했다. "본부에서 추미애를 응원하라고 하니 하는데 우리의 마음은 이재명이다. 이재명이가 월등히 지지도 높고 이재명은 응원 안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항의가 이어지자 본부에서 돌아온 답은 이랬다고 한다. "이재명을 응원 못 하게 하면 우리 해체해 버리란다."
추미애 비서실장에게 쏟아진 욕설
행동일지에 따르면 2021년 10월 2일 부산 합동연설회에서 흐름이 뒤집혔다. 개국본 회원들이 추미애와 이재명을 함께 외치자 추미애 후보 측 총괄 비서실장 천O배씨가 추미애만 응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이씨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천씨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다고 문서에 적혀 있다. 이 장면을 본 회원 대다수가 크게 당혹스러워했다는 기록도 함께 남아 있다. 추미애만 응원하라고 회원들을 단속하던 총괄본부장 백두까지 이씨의 욕설 대상이 됐다.
인천 행사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씨는 그날 저녁 방송에서 천씨를 다시 비난했다. 10월 3일 수원 합동연설회부터 개국본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행동일지에는 "개국본 대표 이종원 때문에 두 패로 갈라진 응원자"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추미애를 진짜로 응원하겠다는 회원들은 '찐추'라는 이름으로 따로 천막을 차렸다.
기자회견은 호남이 하고, 차는 이종원이 탔다
2021년 10월 10일 이재명 후보가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그러나 이낙연 후보를 지지하던 의원들이 선거운동에 나서지 않으면서 선대위는 겉돌았다. 11월 19일 호남 개국본 회원들이 광주 서구 치평동 민주당 광주시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명의 핵심은 이랬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구성한 지금의 나눠먹기식 선대위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므로 즉각 해체되어야 한다." 후보 중심으로 선대위를 다시 짜라는 요구였다. 며칠 뒤 송영길 대표는 당의 권한을 이재명 후보에게 넘겼다.
증언자는 이 기자회견에 이씨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 이종원이는 이 기자회견에 개입을 했냐. 안 했어요. 전혀. 그 사람은 이재명 후보가 이렇게 올라가는 걸 싫어하는 놈이야"라고 그는 말했다. 피켓 하나에 7000원씩 드는 비용도 호남 회원들이 각자 부담했다고 했다. 행동일지에 실린 기자회견 사진에도 이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2021년 11월 20일 시사타파TV 라이브 영상 캡쳐
이재명 후보는 11월 20일 자신의 카니발 차량에 이씨를 태웠다. 차가 움직이는 동안 두 사람은 차 안에서 라이브 방송을 함께 했다. 이 방송은 이재명TV와 시사타파TV로 동시에 나갔다. 증언자는 이씨가 그 뒤 방송에서 자기 공으로 돌렸다고 했다. "자기가 회원들한테 국회의원들한테 전화하라고 시켜 갖고 전화하니까 이렇게 했다고 거짓말을 치더라고. 그래 놓고는 우리한테는 수고했다고 말 한마디 안 한 놈이야."
이씨는 지금도 이 카니발 동승을 앞세운다. 전주대 강연 행사장에서 뉴탐사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유를 묻자 이씨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내가 이낙연을 지지하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나를 카니발에 태웠겠냐"고 맞받았다.
행동일지에는 또 다른 대목이 있다. "대표 이종원은 회원들을 생각해서 말하는 듯 열심히 하지 말라고 했다"는 기록이다. 문서에는 이를 두고 "격려를 하는 듯 포장했지만 지역 임원들 힘빼기 발언이었다"고 적혀 있다.
증언자는 이런 말을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라고 했다. "투표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사람 새끼 같으면 지지를 한다면 여러분 우리가 힘들지만 며칠 안 남았으니까 열심히 합시다. 이렇게 해야 맞잖아요. 그런데 열심히 하지 말래요. 어디 같은 데 오지도 말래."
임원 20여명 앞에서 정청래·김어준을 거론했다
증언자는 이재명 후보 확정 뒤 열린 전국 임원진 회의에서 문제의 발언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씨가 며칠 전부터 방송에서 중요한 회의라고 예고해 지방 회원들이 새벽밥을 먹고 올라왔다고 한다. 회의 중 부산 회원들이 왜 이재명을 응원하지 못하게 했느냐고 따지자 이씨가 열을 냈다는 것이다.
"추미애는 저하고 정청래하고 어준이 형하고 고도의 정치공작을 했다. 공작을 해 가지고 추미애를 내세우고 이런 것은 공작이었다."
▲호남개국본 행동일지에 기록된 이종원의 발언내용(좌), 문제의 발언 당시 사진(우)
행동일지에는 정청래·김어준 두 사람의 이름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재명을 살리기 위해서 추미애를 등판시켰다. 원래 작전이었다"는 이씨 발언이 기록돼 있다. "막판에 추미애가 결선을 갔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하니까 내가 그건 안 된다 싶어서 고도의 정치공작을 한 거다"라는 대목도 붙어 있다. 증언자는 이씨가 이 말을 마친 뒤 좌중을 향해 한마디를 덧붙였다고 했다. "설마 이거 녹음하신 분들은 없겠죠." 발언이 나온 회의 현장 사진도 행동일지에 실려 있다. 왼쪽 끝에서 모자를 쓰고 마이크를 잡은 인물이 이씨다.
텔레그램도 문자도 읽지 않았다
뉴탐사는 8월 31일 오후 6시 41분 김어준씨에게 텔레그램으로 질문을 보냈다. 2분 뒤인 오후 6시 43분에는 정청래 의원에게 같은 내용을 문자로 보냈다. "이종원이 2021년 11월 개국본 임원들 앞에서 추미애 출마는 본인과 정청래, 김어준의 정치공작이라고 했는데 혹시 이런 얘기 들은 적 있나요"라는 내용이다. 두 사람 모두 방송이 끝날 때까지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정 의원은 여론조사 조작 의혹 관련 질의를 보낸 8월 24일 이후 모든 문자에 응하지 않고 있다.
뉴탐사는 추미애 전 장관 캠프에서 일했던 관계자와도 통화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공작 차원에서 추미애를 등판시켰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놀랐다고 한다. 다만 이씨 쪽에서 사후에 그렇게 평가했을 가능성은 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씨는 8월 31일 시사타파TV 정규 방송을 하지 않다가 뉴탐사 방송이 진행되는 도중 방송을 시작했다.
이번 보도는 개국본 관련 취재의 1단계다. 뉴탐사는 이씨의 해명 내용을 확인한 뒤 후속 보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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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미군은 라라크섬에 있는 로켓발사대 두 곳을 공격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투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란은 요르단에 있는 미국 공군 기지 두 곳에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을 가했다. 지난달 29일 이후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기간이 끝난 셈이다.
[CNN]은 “이번 충돌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에는 기뢰가 없다고 선언한지 며칠 만에 발생했다”면서 “이란에 대한 군사적 행동보다는 경제적 압박을 극대화하려는 워싱턴의 최근 초점 전환과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30일 IRGC의 보복 공격. [사진 갈무리-프레스TV]
이란 국영 [프레스TV]에 따르면,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침략자에 대한 응징” 작전을 실시했다. 미사일과 드론으로 요르단 내 미군이 주둔 중인 킹 후세인 기지와 알 아즈라크 기지 내 전투기 전개 지역과 기술 및 수리 기반시설을 타격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는 것.
IRGC는 미군의 라라크섬 공격으로 다수의 이란 전투원과 동포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며 필요하고 합법적인 대응이었다고 주장했다. “침략과 범죄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슬람공화국의 통제력을 약화시키려는 적들의 절박함을 해결할 수 없으며 모든 공격에는 더 파괴적 대응이 따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미국 중부사령부는 SNS 메시지를 통해 미군의 행위가 “침략”이라는 IRGC의 성명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미군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임박한 위협인 IRGC의 기뢰부설부대에 제한적인 정밀 타격을 가했다”며 “본질적으로 위협은 이란이 만들었고 미군은 민간 선박, 상선과 글로벌 교역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호하기 위해 그 위협을 제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3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가 열린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이란과 경제적 관계를 끊지 않는 나라는 2차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예고했다.
같은 날 키르기즈공화국 수도 비슈케크에서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열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등이 참석한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2026년 2월23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국빈방한 환영 만찬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6개 부처 장관 후보자가 교체된 이재명 정부 개각에 대해 언론 평가가 엇갈렸다. 조선일보는 ‘공소 취소 모임’을 주도한 김승원 민주당 의원이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된 것을 놓고 “‘셀프 사면’을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한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민주당 내 강경파(김승원), 친문재인계(김경수), 소수 야당(이해민·용혜인)이 골고루 기용돼 “범여권의 통합·결속을 도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30일 법무부·재정경제부·국토교통부·국방부·중소벤처기업부·성평등가족부 등 6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교체하는 중폭 개각을 단행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개각 인선 발표에서 “이번 인사는 대한민국이 나아가야할 전사회를 선도하기 위한 인사”라며 “역동성과 전문성을 갖춘 새로운 리더십으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변화를 만들고 대체불가 대한민국으로의 도약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장관 주목한 조선, 재경부 주목한 중앙
조선일보는 31일자 1면에 <새 법무장관에 ‘공소취소 모임’ 대표> 기사를 냈다. 6개 부처 개각 중 ‘법무부’에 주목한 것이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판사 출신의 재선 의원으로, 이 대통령 재판의 공소 취소를 주장하는 의원모임에서 공동대표였다. 최근 이 대통령 사건 등이 수사 대상에 포함된 ‘조작기소 특검법’ 공동 발의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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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중앙일보는 경제 부처 개각에 주목했다. 정부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에 이형일 재경부 1차관, 국토부 장관 후보자엔 ‘경기 라인’으로 분류되는 홍지선 국토부 2차관을 발탁했다. 1면 <부동산·세제, 그대로 간다> 기사에서 중앙일보는 “핵심 경제 부처 장관에 현직 차관을 승진시킨 건 ‘장관 교체’의 모양새를 갖춰 개별 정책에 대한 불만은 해소하면서도, 현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는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라고 했다.
이러한 분석은 경향신문 1면 <‘경제·부동산 난맥’에 장관 교체> 기사와 엇갈린다. 경향신문은 “집권 2년차 민생 정책 ‘쇄신’ 뜻”> 부제목을 달았다. 한겨레 1면 제목은 <부동산·경제 사령탑 바꾸고, 진영 연대 강화>이다. 한겨레는 “성난 부동산 민심을 달래고 민주·진보 진영 내 연대를 강화하는 등 다목적 인사”라고 했다.
조선 “어떻게 국정 쇄신이라 할 수 있겠나”
조선일보는 사설도 김승원 의원에 주목해서 냈다. <“李 공소 취소” 외친 사람을 법무장관 지명한 대통령>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이 대통령이 이런 인물을 법무장관에 기용한 것은 자기 사건의 공소 취소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뜻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법무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선 검찰총장을 통해 수사 지휘를 할 수 있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공소 취소 사유가 없는데 수사 지휘권을 발동해 공소를 취소하게 하면 명백한 직권남용”이라며 “김 후보자는 올 초 ‘정치검찰이 조작 기소한 이 대통령 사건은 지금 당장 공소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조작된 기소는 폐기 대상’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대응에 앞장서 온 인물을 법무장관으로 앉히는 데 어떤 뜻이 있겠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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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개각과 관련해 하나의 사설을 더 냈다. <청와대 진짜 책임자는 놔두고, 이게 국정 쇄신인가>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징벌적 과세와 주택 공급 혼선, 급변동을 초래한 증시 정책은 모두 청와대가 주도했고, 핵심 인물은 김용범 정책실장”이라며 “김 실장은 자리를 보전했고 재경부와 국토부 장관들만 물러났다. 후임으로 지명된 이들은 모두 기존 장관 밑에서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했던 차관들이다. 실패한 정책을 주도한 청와대 실세는 유임시킨 채 함께 손발을 맞추던 차관들로 간판만 교체한 것인데 어떻게 국정 쇄신이라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다른 보수 성향 신문의 논조는 조선일보 대비 차분했다. 동아일보는 <6개 부처 개각… 국정 방향 점검하고 ‘디테일’은 내각에 맡겨라> 사설에서 “국정 지지도 회복을 위해선 인사 쇄신을 통한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개각의 폭을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라고 했고 중앙일보는 <6개 부처 개각, 대통령부터 변화 보여야 한다> 사설에서 이번 개각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는 위기 국면을 서둘러 전환하겠다는 절박감이 엿보이는 인사”라며 “이번 개각에 여론의 불만이 반영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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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자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이번 개각이 범여권 통합을 꾀한 인사라고 봤다. 경향신문은 중도적 목소리를 내던 이소영 민주당 의원(중기부 장관)과 친문재인계 적자 김경수 전 경남지사(정무특보), 소수 야당인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성평등부 장관)을 거론한 뒤 “민주당 내 강경파에서부터 친문재인(친문)계, ‘왼쪽’을 자임하는 소수야당에 이르기까지 고루 기용했다”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지지율 하락속 중폭 개각, 국정 심기일전 계기 되길> 사설에서 “중도·보수층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데만 치중하지 않고 범여권 통합도 중시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중도 확장 노선은 지지층의 단단한 결속이라는 바탕이 있을 때 더욱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인선”이라고 했다.
신문 1면 장식한 네팔 대홍수 현장 르포
네팔 대홍수 현장에 간 기자들의 르포 기사가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100㎞ 떠내려갔다, 강 하류를 채운 통곡> 기사에서 “이번 홍수로 최소 3800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며 “치트완 엑스포센터에는 실종자 가족 수십 명이 벽에 걸린 모니터를 살피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수습된 시신 사진이 10초마다 한 장씩 넘어갔다. 얼굴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시신이 많았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수십년간 본 적 없는 홍수… 경고 있었지만 주민들 대피 안 해”> 기사에서 한국에서 네팔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만난 네팔인 유학생 수야시 반다리(29)씨의 이야기를 전했다. 반다리씨는 “홍수 피해를 입은 고향에 어머니와 할머니, 여동생이 살고 있는데, 아직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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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자 조선일보 1면 사진기사.
중앙일보는 <“내 동생 아직 발전소에…” 전단지 든 누나의 절규> 기사에서 동생을 찾는 전단지를 들고 있던 프리야 카렐(36·여)이 취재진에게 “Korean?(한국인)”이라고 묻더니 이내 “내 동생이 두산이 짓는 발전소에 다니다 홍수에 실종됐다”고 울먹였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는 “내 동생이 아직 그곳에 있다고 한국에 꼭 알려 달라”고 호소했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조선일보 기고에서 “이번에 홍수 피해가 난 네팔 북부 라수와 지역을 지난 6월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셰르파가 ‘빙하 고인 물 터지면 큰일 난다’고 했던 말이 불과 두 달 만에 현실이 되다니 믿기지가 않는다”고 했다.
한겨레 “위기의 이 대통령, 조기 레임덕 피하려면”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가 이재명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을 피하기 위해선 세 가지 결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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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자 한겨레 23면 기사.
<‘집권 2년차’ 위기의 이 대통령, 조기 레임덕 피하려면> 기사에서 성 기자는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위험 수위에 다가서고 있다”며 4개월 동안 △6·3 전국 동시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수도권 아파트값 오르기 시작 △코스피 지수 급락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사 보완수사권 폐지 △김민석 민주당 대표 등의 요인이 지지율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성 기자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모든 일을 하면 시스템이 필요 없다”며 “레드팀의 부재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에게 쓴소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에게 쓴소리하는 측근이 누구일까.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성 기자는 △청와대 참모 대대적으로 개편 △공소취소 특검 포기 △개헌 추진을 조기 레임덕을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했다.
1983년 5월 18일부터 23일 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금 보수의 상당 부분을 잠식한 극우층, 특히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에게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어떤 의미였는지 대부분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국민의힘 여의도 중앙당사에 몇 안 되는 '자랑스러운 대통령'으로 YS 사진을 걸어놓고 있으면서도 당내 인사들과 그 지지층은 5·18을 극도로 폄훼하고 모욕하는 행태를 부지기수로 벌인다. 이는 결과적으로 YS의 존재와 업적을 짓밟는 짓이라고 할 수 있다.
"충격적 학살 소식에 심화(心火)가 솟아올라 견딜 수 없어"
"전두환 일당 참극, 민족의 가슴에 영원한 멍울이 될 한(恨)"
YS에게 5·18은 중요하다는 정도를 넘어 '심화(心火)가 솟아올라 견딜 수 없는' 사건이었고, '한순간 한순간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으며, '이 민족의 가슴에 영원한 멍울이 될 수밖에 없는 한(恨)'이었다. YS는 5·18 이틀 뒤인 1980년 5월 20일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전두환 신군부의 5·17 쿠데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도중 무장 군인들에 의해 1차 가택연금을 당하던 상황을 <김영삼 회고록>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 참고 기사 <5·18, 헌법 전문에 왜 넣어야 하나>
"그날 밤부터 '광주사태'가 단편적으로 전해졌다. 권력에 눈먼 정치군인들의 야만적인 학살극이 시작된 것이었다. 1980년 5월 20일 아침 8시경 M16 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착검까지 한 무장 헌병 중대병력이 내 집 주변을 에워쌌다. 그중 20여 명은 대문을 밀고 들어와 10여 평 남짓한 비좁은 마당이 꽉 차게 늘어섰다. 내가 서둘러 회견문을 읽으려던 차에, 군 책임자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 순간부터 무장한 군인들은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몰아내고 내 집 안팎을 완전히 봉쇄했다.
연금이 시작될 즈음, 나는 광주에서 걸려 온 당원들의 떨리는 전화 목소리를 통해서 충격적인 학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심화(心火)가 솟아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계엄군의 검열로 누더기가 된 신문이나 TV를 통해서는 일반 국민들이 '광주사태'의 진상을 알 도리가 없었지만, 광주의 소식을 이미 전해 들은 나로서는 '광주'가 보도되는 한순간 한순간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으로 다가왔다. 정권욕에 사로잡힌 전두환 일당은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돌림으로써 역사에 남아서는 안 될 참극을 연출하고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3년 5월 18일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가며 낸 성명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
성명을 내도 국내 언론엔 한 줄도 보도 안 되자 '비장한 결단'
전두환 정권, 병원에 강제 이송…음식 냄새 피우고 망명 권유
광주민주화운동이 '광주사태'로 불리던 시절, YS는 군인들이 상도동 자택 부근 길목을 100여 미터 앞에서부터 막는 삼엄한 가택연금 속에서도 비상계엄 해제 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몰래 밖으로 전해 외신에 보도되도록 하고, 집으로 찾아온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전두환의 만행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도 밝혔지만 국내 언론에는 한 글자도 보도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1983년 5·18 3주년을 앞두고 뭔가 비장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무렵 마하트마 간디의 저서를 읽으며 비폭력 무저항 단식투쟁에 천착하게 된 YS는 정확히 5월 18일을 기해 '단식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무기한 곡기를 끊는 투쟁에 돌입했다.
"국민 여러분! 나의 단식은 5·17 군사쿠데타에 의하여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파괴·부정당함은 물론, 민주화를 요구하던 수백 수천 명의 민주시민이 광주에서 무참히 살상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데 대한 자책과 참회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며, 비극적인 광주사태로 목숨을 잃은 영혼과 거기서 희생된 민주시민들과 그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에 동참하는 기회이며, 동시에 반민주적인 독재 권력의 강화와 인권 유린 및 정치적인 탄압에 대한 항의와 규탄의 표시입니다. 또한 나의 단식은 앞으로 우리가 전개해야 할 민주화 투쟁은 생명을 건 투쟁이어야 하며, 생명을 건 투쟁만이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께 알리면서 나의 투쟁 결의를 굳건히 다지기 위한 것입니다."
YS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이 성명서 내용을 전화로 외국 언론기관에 직접 낭독해줬고 유수의 통신사인 AP, UPI, 로이터, AFP, 교토통신 등이 이 사실을 일제히 세계에 타전했다. 단식 8일차인 5월 25일이 되자 전두환 정권의 당국자와 경찰 간부 등이 찾아와 단식 중지 및 병원 치료를 권했다. YS가 이를 물리치자 경찰 수십 명이 들이닥쳐 YS를 완력으로 구급차에 태워 서울대병원 12층 병동에 강제 이송하고 다른 환자들은 전부 퇴거시켰다. 당시 병원에서 측정한 YS의 체중은 61kg으로 평상시 70kg보다 벌써 9kg가량이 줄어있었지만 YS는 일체의 음식과 의료행위를 거부한 채 단식을 지속했다. 민정당 권익현 사무총장이 병실로 찾아와 전두환의 제안이라며 연금 해제와 해외 망명을 권하기도 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제12일(5월 29일). 원래 단식을 하려면 식사량을 단계적으로 줄여 가는 과정은 물론이고, 관장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과정 없이 곧바로 단식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고통이 심해졌다. 이날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복통이 엄습해 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온몸을 구르며 비명을 참으려 해도 되지 않았다. 머리까지 깨지는 듯 아파오고 온몸에 진땀이 나며 기력이 빠졌다. (…) 전두환 정권은 내가 단식을 중단하도록 온갖 수단을 다 썼다. 불고기, 생선 등 맛있는 음식상을 차려와 내 병상 앞에 갖다 놓고 냄새를 풍기도록 했다. 나는 '그따위 비열한 짓 하지 말고 당장 가져가라!'고 고함을 쳤다."
1983년 6월 4일 미국 워싱턴 시내 주미한국대사관 근처인 듀폰써클에서 김대중(오른쪽)과 문동환 목사가 김영삼의 단식투쟁을 지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
DJ "최후의 수단, 감동…재야 민주세력 결집시키는 전기"
동교동계-상도동계 손잡아…민추협 결성, 신민당 돌풍으로
당시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이 소식을 접하고 크게 감동하며 재야 민주세력을 결집시킬 중요한 전기(轉機)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는 일절 보도되지 않자 <김영삼의 단식 투쟁(Kim's Hunger Strike)>이라는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하기까지 했다. 독자 투고가 아닌 칼럼니스트 자격의 기고였다. DJ는 또 YS를 지지하기 위해 워싱턴과 뉴욕 등에서 재미 교포들과 팻말을 들거나 피켓을 목에 걸고 행진했다. 한국 대사관과 국무부, 백악관 앞에서도 가두시위를 벌였다.
"단식은 극한 투쟁이며 최후의 수단이었다. 나는 감동했고, 동지적 연대감을 느꼈다. 김영삼 씨의 단식에는 중요한 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전두환 정권 하에서 야당 정치인의 첫 항거였다. 단식투쟁은 재야 민주세력을 결집시키는 전기가 될 수 있었다. (…) 그 후로 김영삼 씨와는 현안에 대해서 긴밀히 협의했다. 그해 광복절에는 서울과 워싱턴에서 김영삼 씨와 공동 명의로 '민주화 투쟁은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한 투쟁이다'라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 <김대중 자서전>
DJ가 주시한 대로 YS의 몸을 던진 절박한 투쟁은 제도권과 재야를 망라하고 민주 진영의 광범위한 결속을 불러일으켰다. 함석헌, 문익환, 홍남순, 이문영, 예춘호 등 재야 지도자들이 동조 단식에 들어갔고, 특히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박정희 사망 이후 처음으로 손을 잡아 '범국민 연합전선' 구축에 나섰다. 이는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 및 신한민주당(신민당) 창당 돌풍으로 이어지게 된다. YS는 급기야 체중이 14kg이나 빠지고 혈압이 급강하하면서 의사들도 "극히 위험한 단계"라고 진단하자 단식 23일째인 6월 9일에야 중단을 선언했다.
"국민 여러분!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결심했던 몸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신념으로 민주화투쟁의 과정에서 그 고통과 고난의 맨 앞에 설 것이며, 그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나는 광주사태에서 희생된 영령과 조국의 제단에 자신을 던진 현충(顯忠)의 넋,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청년·학생들의 투쟁과 고난을 생각하면서, 그 고난의 맨 앞의 일부를 나 자신이 떠맡기 위하여 민주 투쟁의 최일선에 설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서약하는 바입니다."
1983년 5월 18일부터 23일 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 부인 손명순 여사가 간병을 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
단식 투쟁 꼭 10년 뒤 특별 담화 발표…YS의 '국정과제 1호'
국힘은 망언 되풀이 퇴행만…"당 대표실에서 YS 사진 내려라"
그로부터 꼭 10년 뒤인 1993년 5월 13일, 대통령에 취임한 지 이제 두 달여밖에 안 됐음에도 YS는 청와대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특별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문민 민주화를 향해 우리가 걸어온 고난에 찬 역정에서 볼 때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뚝한 한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1983년 23일간의 단식투쟁을 회상한 뒤 "분명히 말하거니와 오늘의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민주정부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정당하게 평가되고 올바르게 역사에 기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그 명예를 높일 수 있는 사업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온 국민이 그 날을 기념할 수 있도록 기념일 제정 ▲망월동 묘역을 민주 성지로 가꿔나갈 수 있도록 묘역의 확장 등 지원 ▲5·18 당시 계엄군과 교전을 벌인 장소인 전남도청 위치에 광주민주화운동 기념공원 조성 및 기념탑 설립 등을 약속했다. 피해자들 위로에 필요한 모든 노력과 지원을 다하겠다고도 공언했다. YS에게는 5·18 문제 해결이 '국정과제 1호'였던 셈이다.
이어 1995년 12월에는 YS가 민자당 강삼재 사무총장에게 내린 지시에 따라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과 '헌정질서 파괴 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고, 5·18특별법에 의해 전두환·노태우는 반란수괴 및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등 죄목으로 역사적 심판을 받았다. 1997년 4월에는 5·18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됐으며, 같은 해 5월 18일에는 정부가 주관하는 첫 5·18기념식이 거행됐다. '광주사태'라는 명칭은 공식적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5·18에 대한 역사적·법적 규정을 정립하는 데 YS가 남긴 족적은 거대하고도 뚜렷했다.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 주최로 1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6.8.24. 연합뉴스
그럼에도 YS를 계승했다는 국민의힘과 그 전신 보수정당에서는 5·18 왜곡 사태가 끊이질 않는다.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시절에도 김진태·이종명 의원 공동 주최로 지만원 씨 등 극우 인사들이 발표자로 참석한 가운데 국회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를 개최해 "광주 폭동" "북한군 개입"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 "전두환은 영웅" 등 온갖 참혹한 망언을 쏟아낸 바 있다. 최근 이진숙 의원이 주최해 큰 파문을 일으킨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공개 포럼'은 그 판박이인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5월엔 5·18 정신의 헌법 전문(前文) 수록 등이 포함된 개헌안의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불참해 39년 만의 개헌을 끝내 무산시키기도 했다.
김호경 시민언론 민들레 에디터‧편집이사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29일 부산시당위원장인 박홍배 의원의 지역사무소(부산 사상구) 개소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국민의힘은 정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 맞다면 이진숙을 내쫓고, 그게 아니면 김 전 대통령 사진을 (당 대표실에서) 내리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진숙 의원을 내쫓기는커녕 이 의원 제명 촉구 결의안 표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조경태·한지아·김예지·우재준 의원을 거꾸로 징계할 태세다. 이 의원은 이 와중에도 5·18을 "소요 사태" "거의 폭동"으로 매도하는 영상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는 등 점입가경이다. YS가 살아있다면 본인 입으로 "당장 장동혁 대표실에서 내 사진 내리라"고 불호령을 내릴 게 분명하지만, 국민의힘은 실상 YS를 부정하는 듯 전두환·노태우 시절로 퇴행하고만 있다.
30일 한은이 발표한 '수요 주도 물가 압력이 근원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한은은 최근 반도체 수출 호조 영향이 내수로 파급됨에 따라 물가 수요 측 압력이 커질 가능성을 점쳤다.
한은은 "상반기 물가상승을 주도했던 고유가 등 공급측 압력은 점차 완화되는 반면, 반도체 수출 호조로 경기 개선세가 지속되면서 수요측 압력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최근 국내 경제는 반도체 경기 호조에 따른 교역조건 개선으로 실질 국내총소득(GDI) 증가율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크게 웃돌아 가계와 기업의 실질구매력 확대가 수요측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2000년 이후 수요 주도 근원물가 상승기가 네 차례 있었다고 밝혔다. 2002년 카드사태 이전,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2011년 글로벌 금융위기 회복기, 2022년 팬데믹 충격 회복기다.
한은은 이 시기 특징으로 가계 소비여력이 확충되면서 소비가 호조를 나타낸 점을 꼽았다. "근원물가 상승기에 앞서 임금과 자산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가계 소비여력이 개선"됨에 따라 "실질구매력 증가가 소비 확대로 이어지면서 근원물가 상승 압력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수요가 회복됨에 따라 그간 누적된 비용압력이 가격에 쉽게 반영된 점 역시 물가 자극 요인으로 꼽혔다.
한은은 "근원물가 상승률이 2%대 중반을 넘어서면 개별품목의 가격 움직임에서 (상승) 동조성이 심화"했다며 "특히 개인서비스 품목에서 이런 특징이 더욱 뚜렷했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특히 지금의 반도체 수출 호조처럼 "교역조건 개선을 통한 GDI 기반 수요충격은 GDP 기반 충격보다 근원물가에 더 큰 상승압력으로 작용했다"며 "수출가격 상승에 따른 교역조건 개선 충격은 수입가격 하락에 따른 충격에 비해 근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전체기간에 걸쳐 더 크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분석 종합 결과 "과거 수요주도 고 근원물가기 경험과 최근 여건을 종합하면, 향후 국내 근원물가는 수요측 물가압력이 점차 확대되면서 2% 중후반의 높은 오름세가 상당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GDP 갭률이 1%포인트 확대될 경우 근원물가 상승률은 약 0.1~0.4%포인트 높아질 수 있으며, 교역조건 개선에 따른 GDI 증가가 소비 확대로 이어질 경우 약 0.05~0.2%포인트의 추가 상방압력이 더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제주에서 장기 실종된 30대 여성 장아무개씨의 주검이 발견된 지난 24일 제주시 한림읍에서 경찰이 사건 현장 근처를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만에 주검 4구가 발견됐는데 제대로 뒤지면 얼마나 나올지.” “이러다 다 죽어. 빨리 탈출하시길.”
제주에서 경찰관이 ‘허위 종결’한 실종 사건의 30대 여성과 60대 남성의 주검이 잇달아 발견되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제주의 치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통계로 볼 때 제주를 ‘공포의 섬’ ‘범죄도시’라고 보는 시선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30일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지난해 제주의 범죄 발생비는 4193.8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2위 부산(3605.5건)과도 격차가 벌어진다. 하지만 범죄 발생비는 주민등록인구 10만명당 발생 건수로, 이때 인구수에는 제주에 사는 주민(약 67만명)만 들어가지만 범죄 발생 건수(2만7880건)는 외지인이 저지른 범죄도 포함한다.
예를 들어 관광객이 렌터카를 몰다 음주운전이 적발돼도 제주의 범죄 건수에 들어간다. 매년 1300만명이 찾는 관광지 제주는 주민등록인구보다 ‘생활인구’가 상당히 많아 인구 대비 범죄 건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생활인구란 특정 지역에 주민등록을 두지 않았지만 관광, 취업, 통학 등의 이유로 머물고 있는 이들까지 포함해 실제 그 지역에 있는 인구를 뜻한다. 한 경찰관은 “제주에서 살인·강도 같은 4대 강력범죄는 매우 드물고 폭력이나 소액 절도 사건이 대부분”이라며 “상주인구가 적다 보니 범죄율 1위는 맞지만 통계의 착시가 있다”고 했다.
무사증 제도로 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다 보니 ‘이번 실종 범죄의 배후도 중국’이라는 괴담도 퍼지고 있으나 제주의 외국인 범죄율은 대도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검거된 피의자 중 외국인 비율은 제주의 경우 3.5%로 1위인 경기 남부(4.13%)보다는 낮고 서울(3.42%), 인천(3.19%)과 크게 차이가 없다.
이달 22일부터 사흘 동안 30대 여성 장아무개씨를 비롯한 실종자 주검 4구가 수습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제주 실종지도’가 등장하기도 했다. 29일에도 20대 남성이 실종 신고 하루 만에 서귀포 해안가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수색만 하면 주검이 나오는 동네”라는 글이 온라인에 이어졌다. 하지만 경찰청이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에게 낸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제주에서 접수된 실종 성인(가출인) 접수 건수는 786건으로, 인구 10만명당 접수 건수로 치면 18개 시·도경찰청 중 7위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6개 부처 장관을 바꾸는 중폭 개각을 단행했다. 조국혁신당과 기본소득당, 친문 인사까지 명단에 올랐다. 그런데 친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인사는 한 명도 없었다.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전 대표를 심판했던 호남에서는 유시민 작가를 향한 반발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조국혁신당·기본소득당·친문까지 껴안았지만 친정청래계만 없었다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에는 이형일 재경부 1차관이 지명됐다. 법무부 장관에는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방부 장관에는 강신철 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이 발탁됐다. 성평등가족부 장관에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는 이소영 민주당 의원, 국토교통부 장관에는 홍지선 국토부 2차관이 이름을 올렸다. 청와대 인선도 함께 나왔다.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이 인공지능(AI) 수석으로 들어갔고, 하정우 전 AI미래기획수석은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정무특보로 발탁됐다.
이 명단에는 빠진 계보가 하나 있다. 친문으로 분류되는 김경수 전 지사가 들어갔고, 조국혁신당과 기본소득당에서 각각 한 명씩 나왔다. 전당대회 전후로 팀 김어준 쪽에서는 정청래 전 대표의 국무총리설과 법무부 장관설이 거듭 나왔다. 홍사훈 기자가 총리도 시킬 만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유시민 작가가 정청래 전 대표를 총리나 장관으로 천거한 적은 없다. 다만 대통령 주변에 쓴소리하는 참모가 없다는 그의 비판은 사람 쓰는 문제를 겨냥한 것으로 읽혔다. 개각 발표 하루가 지나도록 정청래 전 대표 쪽 인사는 끝내 한 명도 호명되지 않았다.
판사 출신 법무장관, 육사 출신 국방장관…조직 안착에 방점
법무부 장관에 판사 출신을 앉힌 데는 균형 계산이 깔려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에는 이미 검찰 출신 한찬식 수석이 임명돼 있다.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모두 검찰 출신으로 채우면 검찰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김승원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강경파와는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10월 공소청과 중수청 출범을 앞두고 검찰 조직을 다독일 자리에 그를 앉혔다.
국방부 장관 인선에도 비슷한 계산이 보인다. 강신철 후보자는 육사 출신이다. 문민 통제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강 후보자의 이름은 12·3 비상계엄 국면에서 반대편에 적혀 있었다. 여인형 당시 국군방첩사령관의 휴대전화 메모에 향후 군 인사에서 배제하거나 내보낼 대상으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앞에 놓인 과제는 3군 사관학교 통합이다. 군 내부 반발을 뚫어야 하는 일에 육사 출신을 앞세웠다.
경제부총리와 국토부 장관을 나란히 차관 승진으로 채운 것도 눈에 띈다. 기존 정책 기조는 바꾸지 않겠다는 신호다. 동시에 빠른 집행을 주문한 인선이다. 홍지선 후보자는 경기도에서 도로정책과장과 철도국장을 거쳐 2020년 7월 도시주택실장까지 지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 기본주택 정책을 맡겼던 인물이다. 청와대에는 메가 프로젝트 보좌관 자리도 새로 생겼다. 기후에너지부 출신 이원주 실장이 앉았다. 반도체 단지 조성에서 병목이 되는 용수와 전력을 풀라는 배치다.
이소영 의원의 중기부 장관 발탁은 다음 총선까지 시야에 넣은 인사로 보인다. 지역구인 과천·의왕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내준 곳이다. 이 의원은 이낙연 대표 시절 발탁돼 친낙계로 분류됐고, 이재명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에는 쓴소리를 하던 의원이었다. 용혜인 의원은 1990년생으로, 90년대생 첫 장관이 된다. 지명 직후 이준석 의원과 한동훈 전 대표가 나란히 반발했다.
구윤철, 공항에서 교체 통보…신천지 연관 행사 질의엔 끝내 침묵
교체된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자신의 경질을 공항에서 알았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참석차 인천국제공항까지 이동한 상태였다. 측근이나 청와대 라인에서 미리 귀띔받은 것이 없었다. 청와대가 인선을 마지막까지 보안에 부쳤다는 이야기다.
구 부총리를 둘러싼 미해명 사안도 그대로 남았다. 2019년 마포에서 열린 노벨재단 행사 영상에는 그가 맨 앞줄에서 박수를 치는 장면이 담겼다. 이 행사를 주최한 이희자 근우회장은 신천지 유착 의혹을 받아온 인물이다. 뒷줄에는 정청래 당시 전 의원이 앉아 있었다. 구 부총리가 당시 기획재정부 차관이었고 정청래 의원의 권유로 마지못해 참석했다는 제보가 뉴탐사에 들어왔다. 7월 24일 재정경제부 대변인에게 관련 기사와 제보 내용을 문자로 보내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7월 24일 구 부총리 본인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대변인은 문자를 읽었다. 구 부총리는 8월 30일까지도 문자를 열어보지 않았다. 전화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
최민희 "인내하고 절제하며"…정청래는 결혼식 이야기만
개각을 받아든 친정청래계의 표정은 페이스북에 그대로 드러났다. 최민희 의원은 왜 민주정부만 들어서면 부동산이 이러냐고 적었다. 골목상권에 찬바람이 분다는 말도 붙였다. 그러면서 "저희들, 인내하고 절제하며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라고 썼다. 뒷부분에는 기본소득과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묶은 기본사회와 억강부약·대동세상에 동의해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개각 명단이나 신임 후보자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었다.
정청래 전 대표는 개각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MBC 기자의 결혼식 이야기를 올렸을 뿐이다. 통합형 인사라 흠잡을 지점이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환영한다고 쓰면 지지자들에게 면이 서지 않는 자리다. 아직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씨 말은 꺼내기도 싫다" 광주 택시기사들
유시민 작가는 호남이 김민석 대표에게 몰표를 준 이유를 호남 메가 프로젝트에서 찾았다. 프로젝트가 어그러질까 봐 호남이 이익 투표를 했다는 취지다. 이 발언에 전북 의원들이 먼저 반발했다. 안호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호남의 선택을 왜곡하지 말라고 적었다. 호남의 높은 민주 시민 의식에서 나온 선택이지 이익 투표가 아니라고 했다. 박희승 의원은 전북이 반도체 투자 지역도 아닌데 김민석 후보를 압도적으로 밀었다며 당원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29일 광주에서 만난 시민 10여명의 답도 두 의원의 반박과 다르지 않았다. 예외는 한 명이었다. 광주공항에서 만난 서울 거주 승객은 유시민 작가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의 당무 개입은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나머지는 하나같이 유시민 작가를 비판했다.
같은 공항에서 만난 광주 시민 승객은 이익 투표론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정청래 전 대표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지켰다고 말하는 데 대해 "말은 그렇지"라고 답했다.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공항에 대기 중이던 택시기사는 더 셌다. 정청래 전 대표가 법사위원장 시절에는 잘했지만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유시민 작가의 오만한 권력자 발언에 대해서는 "윤석열 때 했어야지"라고 했다. 이 기사는 군공항 이전에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메가 프로젝트 수혜를 지키려 표를 몰아줬다는 해석이 이 한 사람에게서 이미 무너진다.
군공항 맞은편 마을의 온도는 달랐다. 100년 된 초등학교가 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토지 거래는 이미 묶여 있었다. 마을에 하나뿐인 부동산 중개업소는 토요일 오후 5시에 문이 잠겨 있었다. 경로당 자원봉사자는 전투기 소음이 사라지는 것 말고는 기대가 없다고 했다. 40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부부는 전당대회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취업을 준비 중인 20대 청년은 반도체 공장이 들어온다는 사실도, 김민석 대표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헌법을 바꿔서라도 한 번 더 했으면"
광주송정역 택시 승강장은 전당대회 기간 정청래 전 대표가 환대를 받았다고 자랑했던 곳이다. 29일 그 자리에서 만난 기사들의 답은 달랐다. 한 기사는 김민석 대표 당선을 잘된 일로 평가했다. 정청래 전 대표에 대해서는 "실수를 많이 했다"고 잘랐다. 유시민 작가에 대해서는 "왔다 갔다 한다"며 상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른 기사는 정청래 전 대표를 두고 말을 함부로 한다고 했다. 유시민 작가 이름이 나오자 이 기사는 욕설부터 뱉었다.
권리당원이라고 밝힌 기사는 중도 확장론에 손을 들었다. 다음 총선에서 이기려면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손발 맞는 사람과 일하고 싶어 하는 것을 두고 오만한 권력자라 부르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다.
가장 긴 말은 마지막 기사에게서 나왔다.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과 지금을 비교했다. 예전에는 유시민 작가가 무슨 말을 하면 받아줬는데 지금은 통하지 않으니 헛소리를 한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호남에 신경 쓴 사람이 누가 있었냐고 그는 되물었다. 김대중 대통령 때도 이쪽은 배가 고팠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법을 바꿔서라도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익 투표가 아니라 고마움의 표시였다.
호남의 오래 눌린 소외감을 정면으로 꺼낸 첫 대통령이라는 말은 인터뷰마다 되풀이됐다. 정작 유시민 작가가 호남의 이익으로 지목한 반도체 단지는, 그 부지 맞은편 마을에서 화제조차 되지 않았다. 이전 계획을 처음 듣는다는 주민이 있었고, 땅은 이미 거래가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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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스마트AI경영학과 연구교수이자 국제법·과학기술혁신정책 전문가다. ITU 전문위원,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 최연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정책과 입법연구소 의장을 맡고 있다. 중앙정부·지자체·공공기관 자문을 수행했으며 대한민국인재상, 대통령표창, 법제처장표창, 과기정통부 장관표창 등을 수상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1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앞에 놓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사진=김용민 의원 페이스북
민주당에서 노무현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선거 때마다 그의 이름이 등장하고, 5월이 되면 봉하마을이 정치의 중심이 되고, 연설에서는 ‘사람 사는 세상’이 반복된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무엇을 계승한다는 것인가. 노무현의 이름인가. 노무현의 이미지인가. 노무현의 지지층인가. 아니면 노무현이 실제 정치에서 감당했던 원칙과 선택인가. 이 질문들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노무현을 기억하는 것과 노무현을 계승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좋은 사람’으로만 기억하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노무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그를 지나치게 아름답게 기억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 상고 출신 변호사. 인권변호사. 지역주의에 도전한 정치인. 그리고 대통령. 물론 모두 중요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노무현의 정치가 설명되지 않는다.
노무현은 꽤 자주 자신의 지지층을 불편하게 만든 정치인이었다. 그의 선택에는 늘 논쟁이 따라붙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그랬고, 이라크 파병이 그랬고, 부동산 정책도 그랬다. 정치적 타협도 지지자들에게는 때때로 배신처럼 보였다. 그는 모든 순간에 옳았던 정치인이 아니다. 오히려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선택을 많이 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을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논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노무현에게 정치는 ‘편을 드는 기술’이 아니었다
오늘날 정당정치에서 정치인은 끊임없이 계산한다. 당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지율은 어떤가. 온라인 반응은 어떤가. 다음 선거에 도움이 되는가. 상대방에게 공격받을 가능성은 없는가. 물론 정치에서 이런 계산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계산이 정치의 전부가 되는 순간 정치인은 지도자가 아니라 여론의 추종자가 된다. 노무현의 정치가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는 적어도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정치적 방향을 놓고 지지층과 충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무현을 좋아했던 사람들조차 그의 모든 선택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노무현 정치의 특징이었다.
지지자에게 박수받는 것과 국가를 위해 필요한 선택을 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정치에서 말하는 리더십이다. 여기서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생각을 가져와볼 필요가 있다. 밀은 다수의 의견이 언제나 진실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경계했다. 다수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억압하면 사회 전체의 사고능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정당정치에 적용하면 꽤 불편한 결론에 도달한다.
당원 다수가 원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정책이 항상 좋은 정책인 것도 아니다. 온라인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말이 가장 필요한 말인 것도 아니다. 정치인은 때때로 지지자에게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당은 정치조직이 아니라 거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2007.1.16 연합뉴스
정치인의 용기는 ‘반대편을 공격하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정치에서 용기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상대 정당을 강하게 공격하면 용기 있다고 한다. 정부를 비판하면 소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용기는 다른 곳에 있다. 자기편에게 반대하는 것. 지지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말을 하는 것. 당 지도부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손해가 되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면 공개적으로 수정하는 것. 이것이 훨씬 어렵다.
상대방을 공격하면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기편을 비판하면 박수를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정치인의 진짜 소신은 적 앞에서가 아니라 자기편 앞에서 시험된다. 노무현이 남긴 것은 ‘정답’이 아니라 ‘태도’다
여기서 노무현을 지나치게 신격화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이 했던 모든 정책을 오늘날 민주당이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2000년대의 대한민국과 2026년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르다. 경제구조도 달라졌고, 노동시장도 달라졌고, 기술도 달라졌고, 청년의 삶도 달라졌다. 따라서 노무현의 정책을 복사하는 것은 계승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계승해야 하는가. 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권력을 대하는 태도. 정치를 대하는 태도. 국민을 대하는 태도. 자기편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자신의 실패를 대하는 태도. 정치철학은 정책 목록보다 이런 태도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
소크라테스에게 중요한 철학적 태도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정말 옳은가?” “내가 정의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 정의인가?” 이 질문을 정치에 가져오면 상당히 불편해진다. 정치인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해야 하는 직업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인은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일 수 있다.
자신의 정책이 옳다고 믿는 것과, 자신의 정책만 옳다고 믿는 것은 다르다. 자신의 정당이 필요하다고 믿는 것과, 자신의 정당은 비판받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 것은 다르다. 자신의 지지층을 존중하는 것과, 지지층의 모든 판단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노무현을 계승한다는 말 역시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정치가 정말 우리가 말하는 정치와 같은가?” 노무현의 ‘지역주의 극복’은 현재에도 유효한가? 노무현의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역주의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불리한 지역에서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상당한 손해를 감수했다.
오늘날 지역주의가 과거와 동일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주의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정당은 여전히 지역별 정치적 계산을 한다. 후보 공천도 지역구의 정치적 유불리를 고려한다. 정치인 역시 자신이 어느 지역에서 표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
그렇다면 노무현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인은 지역의 표를 따라가는 사람인가, 지역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인가. 이 차이는 상당히 크다. 정치인이 유권자의 현재 욕망만 따라간다면 선거는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가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정치의 역할은 때로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직 생각하지 못한 방향을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권위주의적 리더’와 다른 정치문화를 만들려고 했다. 노무현 정치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권위의 문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본질적으로 엄청난 권력을 갖는다. 그 권력은 사람을 쉽게 취하게 만든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 위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이것은 매우 단순하지만 중요한 원칙이다. 정치인은 국민보다 높은 사람이 아니다. 국민에게 권한을 빌린 사람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더 쉽게 질문받아야 한다. 더 많이 비판받아야 한다. 더 투명해야 한다. 더 책임져야 한다. 노무현을 계승하는 정당이라면 바로 이 원칙을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한다. 정치적 유산은 말로 계승되지 않는다. 행동으로 계승된다.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에서 노무현 대통령 15주기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2024.5.23
노무현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특히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있다. 정치인의 사과다. 정치인은 사과를 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과하면 정치적 약점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대개 설명한다. 해명한다. 반박한다. 상대방의 잘못을 이야기한다. 맥락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는 것은 때때로 그 모든 설명보다 간단하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치에서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책임정치의 출발은 바로 그 문장이다. 실패를 인정한다고 해서 정치인이 무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이 더 위험하다. 노무현을 ‘정치적 성인’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나는 오히려 민주당이 노무현을 지나치게 성역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무현도 정치인이었다. 정책적 오류가 있었고, 정치적 판단의 한계도 있었고, 비판받아야 할 결정도 있었다. 그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의 정치철학도 살아남는다.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정치적 성인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 사람의 철학은 죽는다. 그저 기념물이 되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정말 계승하고 싶다면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도 틀릴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더 중요한 질문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민주당에게 필요한 것은 ‘노무현의 복제’가 아니다 2026년 민주당이 노무현 시대의 정책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년이 원하는 것도 과거의 복원이 아니다. 지금의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AI 시대의 일자리다. 주거 문제다. 교육 문제다. 노동시장의 변화다. 기술과 산업의 변화다. 지역소멸이다. 기후위기다. 그리고 새로운 국제질서다.
노무현 시대에는 없었던 수많은 문제가 등장했다. 따라서 노무현의 정책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질문은 복원할 수 있다. 권력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당은 국민보다 먼저인가. 지지층은 항상 옳은가. 정치인은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정치적 이익보다 국가적 이익을 우선할 수 있는가.
청년에게 ‘노무현 정신’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이 부분도 중요하다. 20대와 30대에게 “노무현을 무조건 존경해야 한다.”라고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청년은 특정 정치인을 존경해야 할 의무가 없다. 노무현을 비판해도 된다.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가 한국 정치에 던졌던 질문을 한번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그 질문이 오늘날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당 역시 청년에게 노무현을 설명하기 전에 자신이 노무현의 질문을 얼마나 감당하고 있는지 먼저 설명해야 한다.
결국 ‘노무현 정신’은 민주당을 위한 말이 아니다. 나는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노무현 정신은 민주당의 소유물이 아니다.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만의 것도 아니다. 특정 정당의 선거 슬로건으로 독점될 수도 없다. 원칙과 상식, 권력의 책임, 지역주의 극복, 대화와 타협,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 이런 가치들은 민주당만의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의 가치다.
그래서 오히려 민주당이 노무현을 독점하려 할수록 노무현의 의미는 작아진다. 노무현을 민주당의 브랜드에서 꺼내 한국 민주주의의 자산으로 돌려놓는 것이 진정한 계승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의외로 거창하지 않다. 노무현의 사진을 더 많이 걸 필요 없다. 새로운 슬로건을 만들 필요도 없다. ‘노무현 정신 계승위원회’를 하나 더 만들 필요도 없다.
대신 정치의 일상에서 보여주면 된다. 자기편을 비판할 것. 잘못을 인정할 것. 상대방의 옳은 말을 인정할 것. 당론보다 국가적 이익을 고민할 것. 지지층에게도 필요한 말을 할 것. 선거에 일정부분 불리하더라도 원칙을 지킬 것.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국민보다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노무현의 이름보다 어려운 것은 노무현의 질문이다 노무현을 기억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노무현처럼 질문하는 것은 어렵다. 노무현의 말을 인용하는 것도 쉽다. 그러나 노무현처럼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고 책임지는 것은 어렵다.
노무현을 추모하는 것도 쉽다. 그러나 노무현처럼 자신의 정치적 지지층과 충돌할 각오를 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나는 민주당이 정말 노무현을 계승하고 싶다면, 노무현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스스로에게 더 많이 물었으면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가. 우리가 주장하는 원칙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가. 우리는 국민에게 설명하고 있는가, 아니면 지지층에게 박수받고 있는가. 우리는 틀렸을 때 인정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굳이 “노무현 정신”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먼저 노무현을 회상하고, 알아볼 것이다. 노무현은 과거가 아니라 하나의 기준이다. 나는 노무현을 민주당의 과거로만 보고 싶지 않다. 그를 정치적 성인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민주당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보고 싶다. 노무현이 옳았기 때문에 민주당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노무현을 계승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노무현이 강조했던 원칙을 민주당 자신에게 적용해보자는 것이다. 그 기준 앞에서 민주당이 통과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통과하지 못한다면 고치면 된다. 그것이 정치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다.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노무현을 닮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이라면 불편해했을 정치적 행동을, 우리도 불편해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노무현 정신’의 최소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청년이 민주당에게 원하는 것도 거창한 것이 아닐 것이다.
과거를 자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현재를 증명하라는 것이다. 노무현의 이름으로 표를 달라고 하기 전에, 오늘의 민주당이 원칙과 상식의 정당인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그 증명이 끝났을 때 비로소, “우리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합니다.”라는 말도 다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수영(36) 시민기자는 대학에서 국제법을 공부했으며, 국제법·과학기술혁신 정책 전문가로 현재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OCU) 스마트AI경영학과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문위원과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Kr-IGF) 위원장으로 일하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정책 자문 및 평가에 참여해 왔다. 지난 10여 년 일자리와 복지 등 전통적인 청년정책에서 출발해 청년의 사회참여와 권리, 미래교육과 과학기술, 글로벌 성장에 이르기까지 청년세대가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정책과 거버넌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내란세력 최후보루 조희대를 탄핵하라!’는 부제로 열린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연인원 1,600여 명이 참석했다.
사회를 맡은 김지선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요즘 이재명 정부 지지율에 대해서 많이들 걱정한다.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여기저기서 내란세력이 들고 일어나서 신나게 공격하고 흔들어대고 있다. 지지율 회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하기로 했던 일을 하는 것”이라면서 “내란 청산에 진심으로 임하지 않으면 내란은 반드시 또 일어난다”라고 경고하고 구호를 외쳤다.
“국회는 조희대를 즉각 탄핵하라!”
“자주 없이 경제 없다. 자주로 살길 찾자!”
“경제 수탈 내정간섭 미국을 규탄한다!”
권오민 강북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조희대는 법원조직법을 무시하고 대법관 후보를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통보했다”라며 “초유의 대법관 재제청 사례까지 만든 범죄자가 국회 출석도 거부하고 아직 대통령 놀이 중인데, 대법원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물었다.
또 “미국이 호남 반도체를 노골적으로 방해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미국 현지 생산 시설 확대를 요구하고, 이제는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100% 부과하겠단다”라며 “남의 나라가 우리 기업의 운명을, 우리 산업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나?”라고 외쳤다.
나현민 강남서초촛불행동 회원은 “우리는 절대로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주권자 국민이 독재자 박정희를 끌어내렸지만, 학살자 전두환이 쿠데타를 발생시켜 국민의 권력을 찬탈했고, 또다시 주권자 국민이 박근혜를 끌어내렸지만 검찰 쿠데타를 일으킨 내란 수괴에게 권력이 넘어가고 말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조희대의 사법 쿠데타를 막지 않고 방치한다면 내란세력인 저들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될 것이고 대한민국은 내란 공범 사법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될 것이 뻔한데 저들의 악행을 우리 국민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염미례 영등포양천강서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지난 8월 16일 트럼프는 한미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하라 지시했다. 그리고 한미연합훈련은 축소 중단되었다”라며 “이렇게 말 한마디로 쉽게 중단시킬 수 있는 거라면 전쟁 위기만 고조시키는 한미연합훈련, 아예 영구 중단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했다.
또 “공화당의 한 의원은 ‘미국이 그동안 한국을 지원해 줬는데 한국 정부는 미국 기업인 쿠팡을 공격하고 있다’며 배은망덕하다는 망언을 지껄였다. 미국에 투자도 우리 기업이 하고, 공장도 우리가 지어주는데 배은망덕한 건 미국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어 “반도체를 내놓아라, 선박을 내놓아라, 우리가 무슨 조공국인가? 우리가 무슨 식민지인가? 우리는 주권국가다! 대한민국은 자주독립의 나라다!”라며 “경제 수탈 규탄한다! 내정간섭 중단하라! 가짜 안보 거짓 동맹 미국을 규탄한다!”라고 외쳤다.
미 7공군 항의방문을 했다가 구속된 후 26일 석방된 윤겨레 대진연 회원은 “우리 대학생들이 오산 미 공군기지 안 도로를 달리며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해방감이었다. 점령군 미군에게 유린당해 온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온몸으로 그들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보람찬 일이었다”라고 했다.
이어 “더 이상 너희 (미국) 뜻대로 되는 것은 없다. 너희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압도적인 힘의 원동력, 사랑과 믿음으로 뭉친 우리가 호남 반도체 성사하고 너희의 전쟁 구상까지도 박살 낼 것이다. 너희가 짓밟은 우리 청년들이 너희를 몰아내고 말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기어이 자주를 쟁취하리라”라고 했다.
윤현주 강남서초촛불행동 회원은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가 대국민 학살을 기획한 내란을 일으켰는데 몇 명만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흐지부지 그냥 넘어가도 되나?”라며 “내란세력이 조희대를 믿고 이렇게 날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조희대가 내란세력의 뒷배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조희대는 12.3 계엄 당일 사법권을 계엄재판부에 넘기려 했던 내란 공범이기 때문”이라면서 “국회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도 말고, 그놈의 역풍 타령도 이제는 개나 줘버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의당은 양경규 전 의원이 단독 입후보한 상황에서 24∼28일 온라인 투표, 29일 자동응답시스템(ARS) 투표 방식으로 당대표 선거를 진행했다.
전체 선거권자 9738명 중 3724명이 참여해 투표율 38.2%를 기록했다. 양 전 의원은 찬성률 94.7%(3409표)로 당대표에 당선됐다. 반대는 191표, 무효는 124표였다.
양 대표는 “더 크고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만드는 일에 나서겠다. 당원을 늘리고 지역을 다시 세워 조직적 토대를 강화하겠다. 변화한 시대에 맞는 진보정치의 새로운 의제를 만들겠다. 노동과 녹색, 여성과 청년,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양 대표는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위원장, 상공회의소노조 위원장, 민주노동당 초대 부대표 등을 역임했다. 2024년 비례대표였던 류호정 의원이 탈당하면서 의원직을 상실하자,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승계해서 4개월간 의정활동을 했다.
정의당은 지난 10∼11일 진행된 후보 등록 기간에 당 대표·부대표 선거 모두 지원자가 없어 입후보 기한을 18일까지 연장했다. 그 결과 당대표 후보로 양 대표가 단독 출마해 당선됐다. 대표 임기는 2년이며, 당선 확정 즉시 시작된다.
함께 치러질 예정이었던 부대표 선거는 입후보자가 없어 공석으로 남게 됐다. 정의당은 추후 재공고를 거쳐 부대표 선출을 위한 선거를 치를 계획이다.
전남 신안군이 염전근로자 안심숙소를 짓겠다며 민간업체에 27억3000만원을 내줬다. 그 자리에는 아직 아무것도 서 있지 않다. 업체는 그 돈으로 호텔 부지를 샀다고 신안군에 스스로 밝혔다. 사업을 밀어붙인 사람은 박우량 전 신안군수다. 박 전 군수는 채용 비리로 군수직을 잃고도 사면·복권됐고,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당대표 특보를 거쳐 6·3 지방선거 공천을 받았다.
27억3000만원 나간 자리엔 논밭뿐
안심숙소 사업은 전체 100억원 규모다.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염전근로자를 위해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투입했다. 신안군을 세 권역으로 나눠 숙소를 짓는 방식이다. 1권역 도초면 오류리에 30억원, 2권역 하의면 대리에 30억원, 3권역 압해읍 장감리에 40억원이 배분됐다.
1권역과 2권역은 신안군이 시설비 예산을 편성해 직접 발주했다. 두 곳 모두 준공됐다. 3권역만 민간위탁으로 갔다. 수탁사업자는 주식회사 스타비아눔이다.
집행 내역을 보면 2025년 1월 9일 10억원, 6월 27일 9억원 등 네 차례에 걸쳐 27억3000만원이 나갔다. 총사업비의 70%에 가까운 돈이다. 그 시점까지 실시설계 용역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취재진이 장감리 현장 두 곳의 번지를 모두 둘러봤다. 논과 밭, 산이었다. 끝자락에 있는 건물은 예전부터 있던 창고였다. 공사 장비 한 대가 서 있었을 뿐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돈은 통장에도 없었다. 신안군이 확인한 보조금 통장의 잔고는 0이다.
"호텔 부지를 샀다" 업체의 시인
6·3 지방선거로 군정이 바뀐 뒤 신안군은 스타비아눔에 잔고증명서 제출을 요구했다. 업체가 낸 답변서에 답이 적혀 있었다.
"24년도 염전근로자 안심숙소 사업비 27억3000만원을 지급받아 안심숙소 및 관광호텔과 단독주택 단지와 진입도로 부지의 토지를 매입하는 비용으로 사용하였음."
업체는 근거까지 댔다. "신안군으로부터 관광호텔 단지 인접 토지를 매입해도 좋다는 사용 승인을 받아 토지 매입비 및 회사 운영비로 사용하였음"이라고 적었다.
신안군의 판단은 정반대다.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회신에서 신안군은 해당 행위가 신안군 사무의 민간위탁 촉진 및 관리 조례와 위탁계약 조항 위반이라고 밝혔다. 사용 승인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방적 허위 주장"이라고 못 박았다. 신안군은 의견서 제출을 요구했으나 업체는 응하지 않고 있다. 반환 절차는 진행 중이다.
국도 77호선 발표 뒤 몰린 22필지
스타비아눔 대표는 장원씨다. 장씨는 원건축 대표이기도 하다. 두 회사의 사업장 소재지는 압해읍의 같은 주소다. 이 주소에는 회사가 더 있다. 박 전 군수 동생 박우득씨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것으로 확인된 엔젤브릿지, 그리고 박우득씨 딸이 이사로 등재된 YJ농업회사법인이다. 엔젤브릿지 대표이사로 올라 있는 김씨는 앞선 취재에서 이름을 빌려줬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땅의 이동 경로는 국도 77호선과 겹친다. 신안 압해에서 해남 화원을 잇는 이 노선은 2019년부터 관계기관 회의를 거쳐 2020년 본격 추진이 발표됐다. 박우득씨 회사인 삼연개발이 장감리 일대 토지를 사들이기 시작한 시점이 2020년이다.
땅은 2025년 들어 손을 바꿨다. 1월 6일 YJ농업회사법인으로, 1월 14일 스타비아눔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신안군이 안심숙소 사업비 10억원을 집행한 시점이 그 사이다. 취재진이 등기부로 확인한 이 일대 토지는 22필지, 2만여평이다. YJ농업회사법인이 3필지 9660평, 장씨 개인 명의가 11필지다.
신안군은 장씨 소유 2필지를 안심숙소 부지 명목으로 1억8000만원가량에 사줬다. 이 돈도 담당 부서 예산이 아니었다. 친환경농업과 예산으로 집행됐다.
'관리·운영 위탁'으로 받아낸 군의회 동의
지방자치법 제117조 제3항에 민간위탁이 가능한 사무가 정해져 있다. 조사, 검사, 검정, 관리 업무 등이다. 시설을 새로 짓는 일은 여기 들어가지 않는다. 안심숙소는 소유권이 신안군에 있어야 하는 시설이다. 애초에 민간에 맡길 수 없는 사업이었다.
군의회 동의는 다른 이름으로 받았다. 신축 사업이 아니라 숙소를 관리·운영하는 위탁이라는 설명이었다.
당시 담당 공무원은 취재진에게 이렇게 해명했다. "공사하고 보조사업하고는 달라요." 보조금은 기성률과 무관하게 통장에 예치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 통장에다 예치를 해 놓는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예치돼 있어야 할 27억원은 없다. 신안군은 잔고증명서 제출과 반납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상태다.
당시 이 사업을 맡았던 과장은 자청해서 섬으로 전보를 갔다. 집행을 요구하는 압력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지역에 남아 있다.
한 신안군민은 취재진에게 이행보증 문제를 짚었다. 위탁 계약을 맺었다면 사업비 범위 안에서 이행보증보험을 걸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성률이 0%인데 전체 사업비의 50%에 상당한 위탁금이 지급됐다는 것은 그건 횡령을 하라고 준 거하고 똑같은 거"라고 말했다.
현재 담당자는 환수 절차를 밟고 있다. 업체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저희가 알고 있는 연락처로 연결이 안 됩니다"라고 했다. 불이행 시 재산 압류까지 검토 중이다.
취재진은 압해읍 원건축 사무실을 세 차례 찾았다. 우편물이 쌓여 있었고 집기만 남아 있었다. 얼마 전 큰 트럭 두 대 분량의 짐이 빠져나갔다는 인근 상인의 말이 있었다. 7월 말자로 폐업하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서울에 있는 지사 사무실도 비어 있었다.
정청래가 박우량을 특보로 세우고 경쟁자는 징계
박 전 군수는 신안군수를 16년 했다. 2025년 3월 대법원에서 직권남용 등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군수직을 잃었다. 신안군 부정 채용 사건이었다. 5개월 뒤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 곧이어 정청래 당시 민주당 대표의 당대표 특보로 임명됐다.
지난해 12월 취재진이 신안 현장에서 찍은 현수막에는 "민주당 정청래 당대표 특보 박우량"이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대법원 확정판결과 사면, 그리고 특보 임명이 한 해 안에 이어졌다.
공천 과정도 평탄했다. 전남도당 공천 기준상 별도 감산 없이 경선에 참여했다. 여론조사에서 앞서던 경쟁 후보는 불법 당원 모집 의혹으로 징계를 받았다가 중앙당 윤리심판원 재심에서 취소 결정을 받아냈다. 그 소식이 나오자 정청래 당시 대표가 당대표 직권으로 비상징계를 결정했다. 당사자 소명 절차는 없었다.
신안군민 대책위원회는 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공천 적격 판정에 항의하는 규탄대회를 열었다. 공천은 그대로 갔다.
결과는 6월 3일 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 신안에서 민주당 후보가 조국혁신당 후보에게 졌다.
신안군은 7월 8일 공유재산 교환, 염전근로자 안심숙소 건립, 기증 수목 사업 등 3개 사업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모두 민선 7·8기에 추진된 사업이다.
취재진은 장원 대표에게 사업비 사용 근거를, 박우득씨에게는 토지 매입 경위와 매도 배경을, 박 전 군수에게는 민간위탁 결정과 사업자 선정 관여 여부를 각각 문자로 물었다. 세 사람 모두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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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난 신문기자가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러 조선 땅을 밟았을 때, 그는 그저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기사를 송고하는 종군기자였을 뿐이다. 처음엔 일본에 딱히 나쁜 감정도 없었다. 오히려 근대화를 이룬 신흥강국이라는 호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사람은 눈으로 보고 마음을 바꾸는 법이다.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Frederick Arthur McKenzie, 1869~1931)는 조선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본의 만행을 직접 목격한 뒤, 펜끝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그는 백년도 더 전에 이 땅에 왔다가, 사진 한 장과 책 두 권으로 후대 한국인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남겼다.
프레드릭 맥켄지(위키피디아)
을사년 이후의 목격자
맥켄지는 런던의 신문사 데일리 메일 소속으로 1904년과 1906년, 두 차례 조선을 찾았다. 첫 방문은 전쟁 취재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1906년 여름 다시 찾아온 그는 이번엔 아예 조선에 눌러앉다시피 하며 약 1년 반을 머물렀다. 1907년에는 순종의 즉위식 현장을 눈으로 지켜봤고, 같은 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한 뒤 전국 각지에서 봉기한 의병의 활동을 취재하러 다녔다. 경기도 양평 지평면 인근 야산에서는 낡고 녹슨 총을 든 젊은 의병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훗날 그는 이때 만난 의병이 "우리는 어차피 죽겠지만, 일본의 노예로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고 기록했다. 이 장면은 훗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회에서 재현될 만큼 깊이 남은 순간이 되었다.
1907년 맥켄지가 촬영해 '대한제국의 비극'에 실린 의병들 사진(위키피디아)
사진 한 장, 책 두 권
맥켄지가 이때 남긴 사진은 오늘날까지 전하는 사실상 유일한 의병 기록사진이다. 제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청년들이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선 이 사진은, 문서보다 더 강한 방식으로 그날의 진실을 증언한다. 그는 이 경험을 담아 1908년 '대한제국의 비극'이라는 책을 펴냈다. 을사늑약 이후 조선에서 벌어진 일제의 탄압과 의병의 항쟁을 세계에 소개한 최초의 서양어 기록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에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꾸민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재판 기록까지 부록으로 실려 있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하나의 고발장에 가까웠다.
1910년부터는 런던 타임스로 자리를 옮겨 1914년까지 일했지만, 조선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당시 캐나다 출신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1889~1970)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암리 학살의 진상을 세상에 알렸고, 이 기록을 바탕으로 1920년에는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이라는 책을 펴냈다. 같은 해 런던에서는 한국친구회를 조직해 "한국의 독립은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에도 이익이 된다"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참고로 당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항일 언론활동을 벌였던 영국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Ernest Thomas Bethell, 1872~1909)도 비슷한 시기, 비슷한 신념으로 목숨을 걸었던 서양인 언론인이었다. 맥켄지와 베델처럼 낯선 땅의 약자 편에 서기를 택한 외국인들이 있었기에, 조선의 참상은 완전히 묻히지 않고 세계에 전해질 수 있었다.
한국정부는 2014년 삼일절을 맞아 맥켄지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조선 땅에 잠시 머물다 간 외국인 기자 한 사람에게, 백 년도 더 지난 뒤에야 갚은 감사였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위키피디아)
기록하는 자가 지켜야 할 것
맥켄지가 남긴 것은 단순한 특종이 아니다. 그는 힘없는 자의 편에서, 강자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눈앞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었다. 그는 캐나다 퀘벡 태생이었지만, 당시 캐나다는 영국의 자치령(Dominion)이었고 그 자신도 평생 런던의 신문사에 몸담았다. 그가 소속된 영국 언론사는 하필 일본과 동맹을 맺은 나라였다. 자신이 몸담은 언론사와 국가의 외교적 이해관계와 정반대되는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힘없는 이웃 나라의 재산과 목숨을 짓밟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제국의 팽창은 인간의 양심에 반한다고 분명히 적었다. 자기가 속한 언론사와 동맹국의 체면보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진실을 앞세운 선택이었다.
지금 한국을 돌아보면 어떨까. 2024년 12월 3일 밤, 국민들은 텔레비전과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이라는 낯선 단어와 다시 마주해야 했다. 그 순간 시민들의 휴대전화 영상, 기자들의 현장취재, 국회의 담을 넘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 한 장 한 장이 훗날 진실을 증언하는 자료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맥켄지의 사진 한 장이 백년 넘게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이야기되듯, 지금 이 순간의 기록들도 언젠가 역사의 증거로 다시 소환될 것이다.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편에서 사실을 붙잡아 두는 일. 이것이야말로 맥켄지가 백 년 전 조선 땅에서 몸소 보여준 언론의 본분이었다. 지금 한국언론이 되새겨야 할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권력을 쥐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진실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7일 오후 기자들을 상대로 기초연금 개편안에 대한 사전 브리핑을 예정했다가, 1시간여를 앞두고 돌연 취소했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정부 안팎에서는 노인 표심과 직결된 기초연금 개편의 세부사항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직까지 추후 일정도 잡히지 않았다.
복지부가 사전 브리핑을 1시간여 앞두고 취소한 ‘기초연금 개편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복지부는 가난한 노인에게 더 많이 주는 ‘하후상박’ 방식으로 기초연금을 바꾸는 대신, 수급자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먼저 선정기준이 ‘노인 70%’라는 목표수급률 방식에서 ‘소득 기준’으로 바뀐다. 현재 65살 이상 노인의 소득과 재산을 소득인정액으로 환산한 뒤 전체 노인의 70%에게 주던 기초연금의 지급 기준 상한선을 ‘기준중위소득’(국민 가구소득의 중간값)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내년부터 소득이 ‘기준중위소득의 90% 이하’인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고, 2028년 기준중위소득의 86.6%, 2029년 83.3%, 2030년부터는 ‘80% 이하’로 단계적으로 낮추겠다는 방안이다. 현재 기초연금 선정 기준액이 기준중위소득의 96.3%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수급자가 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형편이 어려운 노인에겐 더 많이 지급된다. 현 기초연금은 돈이 많든 적든 소득 하위 70%에만 들어가면, 똑같이 월 35만원(올해 기준)을 받는다. 복지부는 소득을 3단계로 나눠 저소득층을 추가로 더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준중위소득 20% 이하의 가난한 노인은 내년엔 월 38만원, 2028년엔 40만원을 받게 된다. 기준중위소득의 20~40% 사이인 중간층 노인은 같은 기간 각각 35만9천원, 36만7천원이 지급된다. 기준중위소득의 40% 이상인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노인은 월 35만원으로 동결되는 구조다. 내년 기준으로 기초연금의 최저·최고 간 격차는 2만원, 2년 뒤엔 5만원이 된다.
그렇다면 현재 기초연금을 받고 있는 소득하위 70%의 노인들에겐 어떤 변화가 생길까. 복지부는 제도 개편으로 갑자기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보호 방안을 검토 중이다. 5년 동안 기존 수급 규모 70%를 유지하되, 새 기준으로 봤을 때 수급 대상에서 빠지는 노인의 경우 연금액을 매년 줄이겠다는 생각이다. 현재를 ‘100%’(월 35만원)로 보고 10%포인트씩 낮춘다. 예를 들어 기존 수급자가 새 기준(기준중위소득)에서 자격이 상실할 경우 첫해엔 현재처럼 월 35만원을 받고, 2년차엔 31만5천원, 3년차 28만원, 4년차 24만5천원, 5년차 21만원으로 매년 줄어들게 된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기존 수급자는 깎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는 배치되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기초연금 개편의 필요성을 지적하면서도 “이미 받고 있는 걸 깎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밖에 저소득층 부부의 기초연금 감액 축소도 논의되고 있다. 현재는 부부가 모두 기초연금을 받으면 각각 20%씩 깎인다. 정부는 기준중위소득 40% 이하인 저소득층 부부의 경우 감액비율을 20%에서 10%로 축소할 예정이다.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직원 등 직역연금 대상자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기준중위소득 40% 이하인 직역연금 수급자의 경우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부동산은 착시다. 정확히 말하면 부동산을 다루는 보도나 담론들은 거의 대부분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보자.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두고 거의 대부분의 언론이나 전문가가 '주거 사다리가 끊긴다'고 표현한다. "벼랑 끝의 2030", "사다리 끊는 것보단, 투기 감내가 낫겠다"는 말들이 언론을 탄다. 대부분의 언론은 정부의 대출 규제로 주거 마련을 계획하는 청년들이 '위기'에 처해 있고, 서울 부동산 공급 부족으로 청년들에게 집이 부족하며, 부동산 세금 폭탄으로 청년들이 힘겨워한다고 보도한다.
대체 누가 위기에 처해 있는가? 20대가 서울에 집을 살 수 있게 해준다거나 20대의 서울 아파트 매매가 적다고 걱정하는 소리는 일단 판타지에 가까우니 집어 치우자. 사회 초년생인 30대의 사정은 어떨까.
국가데이터처 주택소유통계를 보면 2024년 기준 서울의 30대 가구주 가운데 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18만3456가구, 무주택은 52만7729가구다. 30대 4명 중에 1명만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 '주택 소유'는 서울의 비싼 아파트를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아파트 이외 주택도 포함되고, 소유 주택의 소재지가 반드시 서울일 필요도 없다.
30대 아파트 매수자는 늘고 있다. 2025년 9월 서울 아파트 거래 6796건 가운데 30대 매수자가 2493건으로 36.7%를 차지했다.
요약하면 서울의 30대는 대부분이 무주택자다. 아파트를 사려는 (조건이 되는, 혹은 '영끌'이 가능한) 30대는 꽤 있다.
그런데 아파트를 사려는 30대가 평균적인 30대일까? 서울 아파트를 살 수 있으려면 상당한 자기 자본, 높은 소득과 대출 능력, 평균을 넘는 배우자와의 합산 소득, 혹은 부모로부터의 증여 등이 필요하다. 특히 대출규제가 강할수록 '직장생활을 열심히 해서 월급을 모은 평범한 30대'보다 이미 상당한 자산동원 능력을 가진 30대가 매수시장에 남게 된다.
'2030 영끌족이 집값 상승 때문에 고통받는다'라는 식의 보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다.
2026년 8월 현재 KB부동산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약 12억9167만 원이다. 30대가 중위가격 아파트 약 13억 원 짜리를 산다고 가정해 보자. 최대 LTV 40%를 꽉 채워도 대출은 약 5억1700만 원이다. 따라서 자기 돈이 최소 약 7억7500만 원 필요하다.
그런데 39세 이하 가구의 현실을 보자.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39세 이하 가구의 평균 자산은 약 3억1583만 원, 순자산은 약 2억2158만 원이었다. 즉 평균적인 2030 가구가 서울 중위 아파트를 사기 위해 필요한 7억7500만 원을 맞추려면 5억1700만 원을 빌려야 한다. 이걸 30년 만기 주담대로 계산하면, 1년에 원리금 약 4000만 원을 갚기 위해 다른 빚이 없어도 연소득 1억 원은 돼야 한다. 대략 2030의 상위 5% 정도다. 부모로부터 지원받을 자산가를 포함해도 상위 10% 정도 수준일 것이다.
즉, 자기 자본으로 서울 아파트 구매가 가능한 30대는 20명 중에 1명, 이미 7~8억의 현금 동원력을 갖고 있어 서울 아파트 구매가 가능한 30대는 20명 중에 1명이다.
지금 언론이 걱정하는 건 이런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주거 사다리를 걱정하고, 내집 마련의 꿈을 걱정하며 이 꿈이 서울에 사는 청년층이 보편적으로 겪는 고통인 것처럼 착시 효과를 내는 것이다. 아니, 2030 청년들이, 뉴욕에, 도쿄에, 베이징에, 파리에, 런던에 집을 사는 걸 걱정하는 언론이 대체 어느 세계에 있다는 말인가?
주로 경제지를 보면 '30대가 대출 규제로 서울 아파트를 못 사게 됐다'는 기사가 나온다. 거의 '핀셋 사례'를 집어 내는 수준이다. 그런 '벼랑 끝'에 몰린 '위기'의 30대는 현금 6억~8억 원을 이미 확보했거나, 연소득이 1억 원 안팎인 30대 가구다. 이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2030 세대의 주거 문제'로 일반화하는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그리고 정부를 비난한다. 끝?
통계상으로는 서울 30대 가구의 4분의 3이 무주택인데, 부동산 기사만 읽으면 서울의 30대 대부분이 '이번에 아파트를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언론에서 말하는 '서울 아파트를 사고 싶은 2030'은 2030 전체가 아니라 주택 시장의 경계선에 서 있는 비교적 자산·소득 수준이 높은 일부 2030을 과대표집한 것이다.
'2030의 부동산 민심'이라는 것 자체가 허상이다.
서울 중위 아파트를 살 능력이 있는 10%의 청년들은 정책이 어떻든, 가격이 어떻든 서울에서 기어이 아파트를 살 사람들이다. 상위 10%에서 11%, 12%의 경계에 걸려 있는 소수의 '특별한 사례'들을 청년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사례처럼 과장해 보도하고 부풀리는 사람들의 목적은 따로 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거나(집권 반대 세력과 보수 언론), 사업적으로 이용하려 하거나.(건설사와 시행사)
"35세, 월급 320만 원,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거주. 서울 아파트 구매는 애초에 고려해 본 적 없음" 같은 청년들을 위한 정책은 얼마나 탄탄한가? 이런 사람들은 유령인가? 사회의 모든 역량과 자원을 10%의 '부자 청년'들에게 집중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90% 이상의 2030에게 중요한 건 아파트 가격 상승이나 12억 짜리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보다, 전월세 가격 안정, 공공임대, 공공분양 확대, 전세 보증금 안전 대책 마련,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 완화 등이다. 특히 '직장'이 있는 서울에 접근할 수 있는 '교통 대책'이 다른 부동산 대책보다 가격 안정 효과가 더 있을 수도 있다.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서울 외곽의 수도권 신도시 높은 아파트 숲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저출생 시대에 저 물량을 나중에 누가 받게 될 것인가? 최소한 지금 청년 세대는 노년이 됐을 때, (서울에 집을 보유하려 하지 않는 한) 주거 불안 문제는 겪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이슈에서 '서울 집값'의 문제나 '청년 주거 사다리' 문제는 전체가 아니다. 아주 일부일 뿐이다. 그 일부가 전체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애초 진단이 잘못된 부동산 정책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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