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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 강지영 회장, 무얼 말했나?

강지영 “정세관리를 잘 해야 된다” ‘난공불락’ 강지영 회장, 무얼 말했나?
금강산=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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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2  16: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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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영 신임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은 9,10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종교인모임에서 기자들의 인터뷰 공세를 받았지만 공식 발언 외에는 모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남측 7대 종단 수장과 북측 4대 종단 수장이 참석한 가운데 9,10일 금강산에서 열린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종교인들의 모임’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역시 강지영 신임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강지영 북측 단장은 10월 이 직책을 맡기 전까지 노동당 대남사업 담당부서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국장을 맡았고, 2013년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으로 거론됐던 인물이기 때문.

강지영 회장은 남측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인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과 시종일관 이번 모임을 주도했으며, 여러 회의를 주재하며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인터뷰를 요청한 남측 기자들에게 그는 “모임에서 연설한 내용 그대로다”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고, 기자의 남측 종단 수장들과 실무진까지 동원한 이틀 동안의 인터뷰 압박과 권유에도 요지부동, 난공불락의 자세를 견지했다.

결국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 전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세관리를 잘 해야 된다’는 최종적 메시지를 던졌다. 강지영 회장의 공개 발언을 따라가 보자.

○ “반통일세력의 책동이 머리를 쳐들고 있어”

   
▲ 강지영 회장이 남북종교인모임에서 축하연설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강지영 회장은 9일 오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남북종교인모임 본행사에 첫 연설자로 나서 축하연설을 했다. 남북의 합의하에 미리 준비한 연설문이기 때문에 가장 공식적인 북측의 입장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남측 종교단체 대표들을 환영한다고 인사하고 “북과 남 사이에 관개개선의 전환적 계기가 마련되고 있는 시기”에 만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산상봉과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가 성사된 사례를 들며 “일련의 접촉과 통일회합이 진행되고 대화와 관계개선의 분위기가 싹트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달가와하지 않는 반통일세력의 책동이 머리를 쳐들고 있으며 대결과 전쟁의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통일 세력의 책동’과 ‘대결과 전쟁의 위협’을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적시한 셈이다.

그는 해법으로 8.25합의를 상기시키면서 “우리 민족끼리 입장에서 통일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만 있다면 얼마든지 불신과 대립을 해소하고 평화와 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며 “서로 신뢰하고 화합하며 힘과 지혜를 합쳐 민족의 밝은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를 위해 7.4부터 6.15까지의 남북합의들을 “존중하고 귀중히 여기며 철저히 이행하려는 확고한 입장에 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자주 만나야 한다”, 장소.규모 구애 없어

   
▲ 10일 남북 종교 수장들의 회동에서 강지영 위원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10일 오전에 열린 남북 종교 수장단 회동에서는 남측 7대 종단 수장들이 돌아가며 발언했고, 이를 모두 청취한 강지영 회장은 마무리발언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남측의 방북 요구 등에 대한 북측 입장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어느 종단이냐를 막론하고 이만큼도 덜거나 더하거나 할 것 없이 우리 마음은 완전히 일치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며 “앞으로 민족을 위해서,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하실 결의적인 내용들과 함께 ‘이제는 앉아서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옮기자’ 이런 내용이 기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요약했다.

이어 “첫째는 지난 8월 극적으로 북남관계 개선에 합의가 이루어졌는데, 이걸 잘 이끌어 나가야겠다”면서 “서로를 비방하거나 위협하거나 자극하는 일들이 없도록 해서 이 분위기가 계속 통일이 되는 때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겠다”고 말했다. ‘정세관리’를 강조한 셈이다.

둘째로는 ‘7.4공동성명,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들어 “이미 북과 남이 합의한 이런 문제들을 귀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그 다음에 철저히 이행해나가는 확고한 입장을 가질 때 북과 남의 종교인들의 모든 일이 잘 되겠다 생각했다”고 축하연설을 되풀이했다.

마지막으로 “자주 만나야 한다”며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것도 좋고, 글로 써서 통신연결로 할 수 있고”라고 말하고 “둘이 손을 꼭 잡아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앞으로 모든 통일운동에서 연대연합을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방도의 하나로서 북으로도 올 수 있고, 남쪽으로도 갈 수 있고, 여기 금강산에서 또 만날 수도 있고”라고 제시하고 “규모가 구애되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15명이 만날 수도 있고 150명이 만날 수도 있고 그보다 더 만날 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결국 남측 종단들이 여러 교류사업을 제기한데 대해 정세를 잘 관리하고 공동선언을 이행한다는 전제 위에서라면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며, 장소나 규모는 얼마든지 융통성있게 응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 “북의 인민들 격분 안 할 수 있겠느냐”

   
▲ 한국천주교회와 조선카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가 종단별 모임에 마주 앉았다. 이 자리에서 강지영 회장은 보다 구체적인 입장을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공식적인 축하연설과 수장단 회동 마무리발언 외에도 강지영 회장은 10일 오전 종단별 모임 중 카톨릭 모임에서 좀더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 비판적 입장을 제시해 주목된다.

그는 “지금 북남 간의 정세는 완전한 평화적인 이런 게 못 되고 불안정한 상태”라며 “우리가 서울에 나가는 것 어렵지 않게 생각한다. 그리고 남측 분들 평양에 오시겠다면 얼마든지 초청하겠다. 단지 어디서 총포소리가 나고 그런 속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나들이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나아가 “8월 합의 이후에도 우리는 ‘합의했으면 하자’하는데, 신중론, 속도조절론, 작전계획 5015...”라고 지적하고 ‘참수작전’ 발표를 강도높게 성토했다. “우리 북의 인민들이 아무리 북남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좋은 마음을 먹고 있어도 그런 걸 들으면 격분 안 할 수 있겠느냐”는 것.

또한 “통일준비위원회, 통일헌법, 통일항아리, 이게 다 기조에는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국제적으로 외교무대 이런 데서도 울려나오는 소리를 보면 남측의 인사들이 나가서 하는 게 동족을 헐뜯고 체제대결을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종단별 모임이 끝나고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인 김광준 신부가 내년 4월 서울 ACRP(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집행위원회와 5월 1일 상암경기장에서 열리는 원불교 100주년 기념대회에 북측 종단 대표들이 방남해달라고 하자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을 미루라. 그렇게 하면 가겠다”라고 답하고 “능력 검토”라고 농반진반 웃음을 날렸다.

마지막까지 인터뷰 공세와 남북 당국대화 전망 질문에 그는 최종적으로 “정세관리를 잘 해야 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 강지영 회장이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인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으로부터 평화의 종을 선물받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편, 강지영 회장은 조선카톨릭협회 부회장과 조선종교인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맡다 2011년 10월 조평통 서기국장에 발탁됐고, 2013년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으로 나섰지만 남측이 ‘격’을 문제삼아 성사되지 못했다.

지난 4월까지 베이징에서 남측 종교단체들과 실무접촉을 가진 장재언 전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이 건강악화로 물러나자 지난 10월 회장을 맡게 됐으며, 조평통 업무에서는 손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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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억압 하지마", 유엔에 혼난 한국정부

 

[유엔 자유권 권고 짚어보기 ①] 집회시위 및 성소수자 권리 등 유례없이 강한 권고 내려

15.11.12 19:18l최종 업데이트 15.11.12 19:18l

 

 

지난 10월 22일~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지난 9년간 한국의 전반적인 시민적, 정치적 권리 실태를 점검하고 권고를 내리는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위원회(아래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자유권 위원들은 정부, 국가인권위원회, 시민사회단체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의 자유권 규약 이행에 대해 심의하고 지난 11월 5일 최종 권고를 발표했습니다. 

유엔에서 내린 권고는 국내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국제사회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자유권 실태는 어떠할까요? 국내 8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유엔 자유권 심의 대응 한국 NGO 모임은 6회에 걸쳐 유엔 자유권 권고를 짚어보는 기사를 게재합니다. - 기자 말

유엔에서의 호소, "저희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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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 된 역사, 사망하셨습니다' 31일 오전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4차 청소년행동' 회원들과 자발적으로 참석한 중-고등학생들이 손피켓과 국사교과서등을 들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촉구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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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는 해가 갈수록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한 때 극복했다고 믿었던, 어두운 권위주의 정권의 시대로 돌아갈까 두렵습니다. 한국에서 인권옹호자들은 길 위에서, 굴뚝 위에서, 법원 안이 아닌 법원 밖에서, 그리고 감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고, 노동자들은 45일이 넘게 단식 투쟁을 지속하며, 주민들은 9년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 발표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명의 고등학생들이 지난 군사 독재 정권을 미화시킬 것으로 보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며 거리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시민들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고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저희는 어떤 말도 자유로이 할 수 없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거리에 나와 있는 시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지적한 문제들이 자유권 위원회의 최종 권고에 반영되기를 희망합니다."  - 유엔 제네바 위원들 앞에서 발표한 NGO 구두 발표문 (전문보기)

시민적, 정치적 권리란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정치적 기본권, 집회결사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등을 포함하는 권리로 유엔은 지난 1966년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을 채택했다. 

이에 한국의 전반적인 시민적, 정치적 권리 상황을 검토하고 권고를 내리는 유엔 자유권 위원회 심의가 지난 10월 22일~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다. 지난 심의가 2006년이었으니 거의 10년 만이다. 

이번에는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2012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2013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2014년 세월호 참사, 그리고 최근 국정교과서 반대 집회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자유권과 관련돼 주목할 만한 사건들이 모두 심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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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권 구두 발언 준비 중인 한국 NGO 참가단
ⓒ 유엔 자유권 심의 대응 한국 NGO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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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말부터 자유권 대응 활동을 함께 해 온 83개 인권시민사회단체는 11명의 대표단을 자유권 심의 즈음에 제네바 현지로 파견해 로비 활동을 펼쳤다. 자유권 심의는 다양한 국가 출신의 전문가들로 이뤄진 자유권 위원회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무엇보다 이들에게 한국의 인권 실태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원들이 구체적인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더 예리하고 좋은 질문을 바탕으로 권고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유권 심의 기간 동안 위원들의 일정이 매우 빡빡하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민단체 대표단은 유엔 빌딩 카페테리아에서 죽치고 앉아 있다가 위원들이 커피를 마시러 나올 때나 식사를 하러 나올 때,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까지 쫓아가 로비 문서를 전달했다. 한국의 인권상황을 절박한 심정으로 알린 것이다. 어렵게 잡힌 약속 시간에는 로비 문서를 앞에 두고 족집게 과외 선생님처럼 형광펜을 들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쳐가며 위원들을 설득했다. 

사실 제네바 현지까지 가서 로비 활동을 하는 것은 비용이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 평화로운 레만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유엔 건물 안은 전쟁 같은 로비의 현장이었다. 그 안에서 외국 전문가들에게 우리나라 인권 상황이 이렇게나 안 좋다고, 좋은 권고를 꼭 내려달라고 간곡하게 이야기하는 마음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비참하고 비통하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제주 강정 기지 반대 주민들, 밀양 송전탑 반대 할매 할배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등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한국의 인권 상황을 알려나갔다. 

"박래군 구속 정당한가?" 유엔의 날카로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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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승줄 묶인 인권운동가 박래군 지난 4, 5월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이 포승줄에 묶인 채 22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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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권 심의 당일, 각 정부 부처에서 온 40여 명의 한국 정부 대표단들이 심의가 열리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 동안 한국 정부가 자유권 신장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다각도로 시민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는 법무부 차관의 기조 발언이 끝난 후 위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을 통역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군대 내 동성 간 '교제' (same sex relationship in the military)와 관련된 질문을 '교재'(textbook)로 잘못 알아들어 군대 내 인권 교육에 대해 답변을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첫 날 오후 심의가 끝나고 시민단체 대표단은 당일 심의에서 위원들이 내린 권고에 대한 NGO의 답변을 준비해 위원들이 정부 답변과 비교해볼 수 있도록 제출했다. 또한 둘째 날 심의를 위한 추가 자료를 밤새 준비해 위원들에게 전달했다. 이 자료를 받은 위원들은 둘째 날 더욱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심지어 한국 정부가 준비해 온 답변만 반복하고 추가 답변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기존 보고서에 대한 내용을 반복할 필요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나이젤 로들리(Nigel Rodley) 위원은 유엔이 지속적으로 권고한 사형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언급하며 "인권은 여론으로 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여론 때문에 위 권고를 이행하기 어렵다는 정부의 변명을 일축한 것이다.

유발 샤니(Yuval Shany)위원은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와 관련해 "이 조항은 민주적인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알고 있지만 실제는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위원들은 정부가 각종 법안들을 매우 모호하게 해석하여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근거를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베일에 쌓여있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전 합동신문센터)에 대해서는 해당 센터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요청했다.

자유권 위원들은 심의 과정에서 한국의 구체적인 인권침해 사례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변론권이 침해된 장경욱·김인숙 변호사 사건, 세월호 추모 집회 때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 북한 트위터를 리트윗 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한 박정근 사건, 그리고 7월 중순에 구속된 박래군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상임운영위원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하며 정부의 답변을 요구했다. 

특히 정부가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을 세월호 집회에서 불법행위를 주도한 혐의 등으로 구속한 걸 두고는 "집회의 주최자가 집회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의 폭력적인 행위에 책임을 지어야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계속되는 날카로운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한국이 자유권을 보장하고 보호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는 기조 발언이 무색한 반응이었다. 결국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 듣지 못한 채 추가 서면 답변 제출을 하기로 하고 자유권 심의는 막을 내렸다. 

유례없이 강한 권고 받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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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권 심의가 열리는 Palais Wilson
ⓒ 유엔 자유권 심의 대응 한국 NGO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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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같았던 제네바에서의 1주일. 노력의 결실인 최종 권고는 지난 11월 5일 발표됐다. 거기엔 9년 전에 비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상당히 구체적이고 강한 권고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서는 한국 정부에게 현재 수감 중인 병역 거부자 전원을 즉각 석방하라고 권고했다. 이런 권고는 처음이다. 또한 성소수자(LGBTI)를 차별하는 문제에 대해선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포함해 어떤 종류의 사회적 낙인과 차별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라고 요구했다. 이 또한 유례없이 강한 권고다. 

자유권 위원회는 최종 권고문에서 1)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철폐 2) 양심적 병역 거부자 전원 즉각 석방 및 사면 3) 평화로운 집회결사의 자유 보장을 주요 권고 사항으로 꼽고, 이에 대해서는 1년 후에 이행 여부를 집중 감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자유권 심의 때 이름이 언급된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심의가 끝난 지 며칠 안 된 지난 11월 2일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유엔에게 좋은 권고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정부가 권고를 이행하는지 감시하는 일이다. 이후 이어지는 기고문에서는 이번에 받은 권고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권고 이행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모니터링 할 것인지 주제별로 나눠 살펴보려 한다. 또한 자유권 심의에 참가한 시민사회 대표단은 오는 25일(수) 오후 7시, 서울 NPO 센터에서 활동 보고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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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 자유권 심의에 참가한 한국 NGO 대표단
ⓒ 유엔 자유권 심의 대응 한국 NGO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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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손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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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으면 수능 볼텐데…세월호 부모는 울어버렸다

등록 :2015-11-12 11:06수정 :2015-11-12 11:58

 

세월호 참사 피해를 입은 경기 안산 단원고 1~2학년 학생들이 12일 오전 제38지구 제14시험장인 안산 원곡고 정문 앞에서 ‘수능대박 기원‘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3학년 수험생들을 응원하고 있다. 안산/뉴시스
세월호 참사 피해를 입은 경기 안산 단원고 1~2학년 학생들이 12일 오전 제38지구 제14시험장인 안산 원곡고 정문 앞에서 ‘수능대박 기원‘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3학년 수험생들을 응원하고 있다. 안산/뉴시스

단원고 생존학생 75명 중 72명 응시
후배·학부모·교사 “시험 잘봐” 응원
일부 유족들 자녀 책상 앞에서 눈물
재학생들 노란리본 배지 달고 등교
세월호 참사 당시 극적으로 탈출해 구조된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3학년 학생 70여명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수능을 치렀다.

 

생존자 75명 가운데 3명을 제외한 72명이 수능에 응했는데, 후배들과 학부모, 교사는 물론 세월호 참사 유족 등의 격려와 응원 속에 시험장으로 향했다.

 

이들은 그동안 4개 반으로 나눠 수업을 받아왔으며, 이날 수능은 안산 시내 고등학교 14곳으로 나눠 시험을 치렀다. 단원고는 참사 이후 2학년 교실이 그대로 보존돼 있기 때문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험장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에 이날 정상 수업이 이뤄진 단원고에서는 1·2학년 학생들이 가슴과 넥타이, 가방 등에 노란 리본 배지를 달고 등교했으며, 일부 세월호 유족들도 2학년 존치교실을 찾아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를 입은 경기 안산 단원고 1~2학년 학생들이 12일 오전 제38지구 제14시험장인 안산 원곡고 정문 앞에서 ‘수능대박 기원‘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3학년 수험생들을 응원하고 있다. 안산/뉴시스
세월호 참사 피해를 입은 경기 안산 단원고 1~2학년 학생들이 12일 오전 제38지구 제14시험장인 안산 원곡고 정문 앞에서 ‘수능대박 기원‘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3학년 수험생들을 응원하고 있다. 안산/뉴시스
 
세월호 참사 피해를 입은 경기 안산 단원고 1~2학년 학생들이 12일 오전 제38지구 제14시험장인 안산 원곡고 정문 앞에서 ‘수능대박 기원‘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3학년 수험생들을 응원하고 있다. 안산/뉴시스
세월호 참사 피해를 입은 경기 안산 단원고 1~2학년 학생들이 12일 오전 제38지구 제14시험장인 안산 원곡고 정문 앞에서 ‘수능대박 기원‘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3학년 수험생들을 응원하고 있다. 안산/뉴시스
지난해 7월부터 생존학생들의 심리치료를 맡아온 김은지 단원고 마음건강센터장은 “아이들의 심리상태는 보통의 학생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다만 세월호 참사를 겪고 여기까지 온 강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수능시험도 잘 치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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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었어!'…박근혜 '복지 전쟁' 선전포고

'다 죽었어!'…박근혜 '복지 전쟁' 선전포고
[시사통] 이슈독털 11월 12일
시사통 김종배 2015.11.12 11:43:23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매일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말의 속뜻과 총선과의 상관성이 점쳐지면서 여는 여대로, 야는 야대로 미묘·복잡·거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목거리는 박 대통령의 말만이 아닙니다. '발'도 분명 주목거리입니다. 박 대통령의 발끝이 향하는 곳, 그곳도 총선이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에서 제11차 사회보장위원회에 참석했는데요. 눈여겨 볼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청와대가 내놓은 보도 자료의 한 구절을 볼까요?

"사회보장위원회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2011년에 발의하여 2013년 1월 시행된 개정 사회보장기본법에 의해 출범한 사회보장정책에 관한 최고 심의 조정기구로, 회의에 대통령이 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청와대 설명 그대로입니다. 사회보장위원회의 산파는 박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다가 11차 회의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참석했습니다. 이 발걸음이 뜻하는 바가 뭘까요?

자신의 '옥동자'였는데도 3년 가까이 '사생아' 취급했던 박 대통령이 이제야 발걸음을 놓은 이유는 시기적 특수성입니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박 대통령이 복지를 본격적으로 챙기기 위해 뒤늦게 사회보장위원회를 찾은 건 아닙니다.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지 전쟁을 펼치기 위해서입니다. 사회보장위원회 회의 결과를 전하는 청와대 보도자료의 한 구절을 읽어보죠.

"이날 토론에서 일부 위원들은 최근 서울시의 청년 지원 수당 등이 사회보장위원회와 사전 협의 없이 발표되는 것에 대해, 중앙과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협력하여 청년들의 일할 능력을 키우고 원하는 일자리를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위원회와의 협의·조정 없이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일부 위원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누리 과정 예산 편성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중앙과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합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중앙과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사업에 대해서는 사회보장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청와대는 이렇게 콕 찍었습니다. '청년 수당'을 겨냥하는 한편, '누리 과정'을 부각시켰습니다. 앞으로 청와대가 주도할 복지 의제의 핵심 소재로 이 두 가지를 꼽은 것인데요. 이 두 복지 사안은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싸움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사안들입니다. 싸움도 목검 승부가 아니라 진검 승부 수준의, 치열한 싸움이 될 것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중앙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지 사업을 펼치면 그 복지 사업 예산만큼의 교부금을 깎겠다고 선언하면서 전투 레벨을 의도적으로 '업(up)' 시키고 있으니까요. 

박 대통령의 복지 행보는 이처럼 전투 모드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복지를 가장 뜨거운 갈등 요인으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복지에 대해 '선빵(선제 공격)'을 치고 나온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소극적으로는 연말·연초에 또다시 재연될 누리 과정 예산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하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야당 소속 단체장이 주도하는 복지 사업에 박 대통령이 직접 저지선을 침으로써 이른바 '복지 포퓰리즘'이 총선 이슈가 되는 걸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헌데,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더 정교하고 교묘한 전략도 깔려있습니다. 바로 역 심판론의 포석 깔기인데요. 복지를 매개로 지방자치단체의 '선심성 복지 포퓰리즘'이나 '정략성 복지 사보타지'에 대해 맹공을 퍼부음으로써 지방자치단체 심판론을 유도하려는 것입니다. 청와대가 사회보장위원회 회의 결과를 전하면서 청년 수당과 누리 과정 예산 편성 문제를 콕 찍어 별도 설명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서울시와 성남시의 청년 수당 사업을 '선심성 복지 포퓰리즘' 대표 사례로, 시·도교육청의 누리 과정 예산 편성 거부를 '정략성 복지 사보타지' 대표 사례로 삼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야당 소속 자치단체장, 또는 진보 성향의 교육감을 싸움의 당사자로 만듦으로써 해당 지역 주민의 반발 또는 원망을 표심으로 조직하려는 것입니다.

청와대의 이 같은 의도를 새정치민주연합도 간파했는지, 어제 '복지 후퇴 저지 특별대책위'를 꾸렸습니다. 근래에 보기 드문 발 빠른 대응이라고 평가할 만합니다만, 한계가 있습니다. 특위 이름 그대로 청와대를 상대로 한 복지 전쟁의 성격을 '저지'로 맞추면 공성전이 아니라 수성전을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 앞에서 청와대를 상대로 '그게 아니라 이게 진실입니다'라고 외치게 되는 겁니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이 증명하고자 부단히 노력할 그 '진실'의 핵심 내용은 실현 가능성이 될 것이고요. 이러면 새정치민주연합의 대응은 청와대가 짜는 프레임에 갇히게 됩니다. 잘해야 본전인 싸움을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새정치연합의 정석 플레이는 '가드'를 올리는 게 아니라 강력한 크로스 펀치를 날리는 것입니다. 무상 급식과 같은 킬러 콘텐츠를 발굴해 전국적 총선 의제로 삼는 것입니다. 정권과 언론과 어용 단체가 에워싼 성에 갇히는 게 아니라 드넓은 평원에서 진을 펼치는 것입니다. 과연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면대결의 배포와 기상천외의 창의성을 내보일 수 있을까요?

어찌 됐든 이제 복지 전쟁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프레시안 조합원, 후원회원으로 동참해주세요. 좌고우면하지 않고 '좋은 언론'을 만드는 길에 정진하겠습니다. (☞가입하기)
 
 
시사평론가 김종배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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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이 일본 재무장 시도를 불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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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2  10: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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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일 제막식 이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대전 평화의 소녀상을 찾은 평화의 소녀상 작가 김서경, 김운성 부부.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통신원]

11일, 대전에서 세 번째 수요문화제 열렸다. 이날 수요문화제에는 어린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한 층의 시민들이 참여했는데, 특히 평화의 소녀상 작가인 김서경, 김운성 부부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이 대전 평화의 소녀상을 찾은 것은 지난 3월 1일 제막식 이후 8개월 만에 처음이다.

 김서경 작가는 이날 수요문화제에 참석해 “최근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건강상 문제로) 몇 주째 나오고 못하고 계신다”며, “하지만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수요집회를 지키고 있는 여러분들이 있기에 이 문제가 꼭 해결될 것이다”고 말했다.

김서경 작가에 이어 김운성 작가도 얼마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일 외교적인 문제가 있는 소녀상을 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했느냐’는 일본인들의 질문에 대해 “당신들 불편하라구요”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소녀상의 의미를 참가자들에게 전했다.

김 작가는 “한일회담이 진행될 때마다 일본이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회담 전제조건으로 걸고 있는 것이 밝혀지면서 ‘일본사람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굉장히 불편하게 생각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소녀상이 일본을 응징하거나, 욕을 하는 모습이 아닌데도 일본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전쟁을 하지 마라’, ‘평화를 지켜 달라’는 간절한 외침과 더불어 일본이 현재 추진하는 재무장 시도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일본 군함도 강제동원 피해자 최장섭 할아버지의 장남 최기현씨도 수요문화제에 참석해 발언에 나섰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통신원]


일본 군함도 강제동원 피해자 최장섭 할아버지의 장남 최기현 씨도 수요문화제에 참석해 발언에 나섰다.

최 씨는 “저 자신도 아버님이 그런 상처를 입으신 것을 망각하고 잊어버리고 살았다”며, “하지만 젊은 후대들은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정권이 역사책을 거꾸로 돌리려 하고 있지만, 그나마 밑에서 국민들이 나서고 있다”며 “작은 불이 모닥불이 되고, 큰불의 불씨가 되듯이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 대전범시민운동본부' 홍경표 집행위원장은 친일청산문제와 역사교과서문제는 밀접한 사안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통신원]


발언에 나선 민주민생대전행동 김창근 상임대표는 “해방 이후 친일청산을 통해서 새로운 민족정기를 세웠더라면, 감히 친일을 했던 자들이 미국에 빌붙고, 일본에 빌붙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며, 고통을 당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조속히 풀렸을 것”이라 말했다.

이어 그는 “민주주의를 올바로 세우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친일청산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 대전범시민운동본부' 홍경표 집행위원장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한마디로 ‘역사쿠데타’이고, 자기의 입맛에 맞는 역사만 가르쳐 자민당이 장기집권하고 있는 현재의 일본과 같은 상태를 꿈꾸는 것”이라 말하며 친일청산문제와 역사교과서문제는 밀접한 사안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 제3차 대전수요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일본 재무장 반대”, “국정교과서 폐기”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통신원]


한편, 평화나비대전행동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문화제를 매월 두 번째 수요일 저녁 7시에 개최하고 있다. 제4차 대전수요문화제는 12월 9일에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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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안정된 뒤 통진당·노동당까지 함께해야"

[인터뷰] 나경채 진보결집+ 대표

15.11.11 11:53l최종 업데이트 15.11.11 11:5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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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경채 진보결집+(더하기) 대표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제야 겨우 국민들 앞에 설 수 있는 작은 자격증을 획득했다"라며 "진보세력이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초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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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은 야당이다. 또 야당이라고 하면 새정치연합을 말한다. 바꿔 말하면 새정치연합이 야당이고 야당이 곧 새정치연합인 셈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사에서 야당이 하나였던 적은 없다. 언제나 제3세력이 존재했고, 제1야당과 함께 '야권'을 형성해 왔다. 때로는 제2의 보수정당이, 때로는 진보정당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 이들은 제1야당의 선수교체를 위해 뛰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지금은 국회 내에 정의당이 있다. 그리고 국회 밖에 '진보세력'들이 제3의 세력으로 존재한다. 이들이 다시 야권의 선수교체를 위해 힘을 모았다. 정의당과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더하기)는 지난 3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합의하며 통합을 결정했다. 국민모임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새로운 정치세력을 모색해 왔다. 노동정치연대는 다시 한 번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준비 중이었다. 진보결집+는 노동당 내에서 진보 통합을 주장하던 그룹이 탈당 후 구성한 단체다. 

나경채 진보결집+대표는 지난해 12월 치러진 노동당 대표 선거에 진보통합을 공약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진보통합을 당론으로 결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자 했으나 그의 주장은 다수 당원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그와 뜻을 같이하던 당원들이 당을 떠나 진보통합 작업에 참여했다. 그런 점에서 나 대표는 이번 진보정당 통합에 큰 역할을 하면서도, 풀지 못한 숙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9일 나 대표를 서울 중구 진보결집+ 사무실에서 만났다. 

나 대표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제야 겨우 국민들 앞에 설 수 있는 작은 자격증을 획득했다"라며 "진보세력이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초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이 계속되고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손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정치행위라고 생각한다"라며 "이번 총선을 계기로 양당체제의 균열을 예고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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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세력, 새로운 통합정당으로 심상정 정의당 대표, 김세균 국민모임 대표, 양경규 노동정치연대 대표, 나경채 진보결집+(더하기) 대표는 3일 오전 국회에서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통합선언' 기자회견을 갖고 "새로운 통합 정당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양당 독점 정치 현실에 분노하면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는 국민에게 진보정치가 대안이 될 것"이라며 "오늘의 통합 선언을 통해 진보정치는 더 강해질 것이며 믿음직한 대안 정당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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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나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국민 10명 중 1명은 진보 선택"

- 우여곡절 끝에 진보결집이 이뤄졌다. 소감이 어떤가?
"매우 기쁘지만 앞으로의 일에는 굉장히 조심스럽다. 지난 2011년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 당시 진보신당(현 노동당)도 합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다만 그것을 추진했던 분들과 함께하지는 않았다. 통합진보당이 잘 되길 바랐고, 조금은 뒤늦더라도 진보신당에 남아 두 번째 (통합)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걸 보면서 진보정당이 함부로 합쳐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 지난해 지방선거를 치렀다. 나 역시 재선(서울 관악구의원)에 도전했다가 실패했고, 진보정당이 거의 학살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통합진보당뿐 아니라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모두 공직자 수가 절반으로 떨어졌다. 매우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나마 희망을 볼 수 있었던 건 각 진보정당의 총득표가 9.2%로 유권자 열 명 중에 한 명은 진보정당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여전히 진보적인 투표를 했다. 그래서 진보정당의 통합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고, 그때부터 속해 있던 노동당 대표 선거를 준비하며 통합을 호소했다. 

노동당 대표가 되고 당 안에서 진보통합의 합의를 구하려 했지만 어렵게 됐고, '진보결집+(더하기)'로 우여곡절 끝에 기본 합의를 이뤘다. 정의당 역시 심상정 대표로 지도부가 바뀌었지만 그 합의를 잘 지켰고, 기대보다는 늦은 시간이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야 겨우 국민들 앞에 설 수 있는 작은 자격증을 획득했다. 진보세력이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초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 최종 합의까지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무엇이 쟁점이었나?
"당초 10월에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겠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새로운 당의 명칭 관한 논의가 길어졌다. 밖에서 보기에는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정의당의 경우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생소한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선보이는 방식이 현명한 것인가 의문이 있었고, 나머지 세 조직은 진보정당들이 미약하지만 힘을 모아 시작했다는 것을 새로운 당명으로 선언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당명을 바꾸기는 하지만 당장이 아니라 총선은 정의당으로 치르고 이후 대의원대회를 통해 바꾸기로 결정했다."

"세 번째 통합 노력 있을 것"

- 진보 세력이 온전히 다 결집했다고 보기 어렵다. 여전히 노동당이 남아 있고, 옛 통합진보당 세력도 존재한다. 녹색당 역시 별도의 길을 가고 있다. 이후 추가적인 통합 작업이 가능한가?
"당연히 해야 한다. 당장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우선은 지금의 정당을 안정된 반석 위에 올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옛 통합진보당, 노동당까지 함께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녹색당의 경우는 계속 독자적인 전망을 밝혀왔기 때문에, 지금 섣불리 언급하는 건 실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노동당의 경우 총선 결과 평가에 따라 통합이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다. 옛 통합진보당의 경우 이해 가능한 진보세력이 되기 위한 토론이 있어야 하고 일정한 준비가 되면 세 번째 통합 노력이 있어야 한다."

- 현재 노동당에 남은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두 번의 통합을 거부했다. 또 그 과정에서 지도부들이 탈당해 통합에 합류하면서 남긴 상처들도 있다. 감정적인 부분도 해소해야 하고 정치적 설득도 있어야 하지 않나?
"정서적으로 감정이 남는 것은 당연히 감수할 수밖에 없다. 다만 노동당에 남은 분들도 정서가 정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진보결집+ 역시 정의당과 통합하자고 하는 게 정의당의 어떤 인사들과 친해서 하는 게 아니다. 총선을 준비하고, 이후 평가를 통해 당의 방향을 허심탄회하게 고민하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그때 좋은 판단을 해주길 부탁드린다."

- 진보세력이 결집했지만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해 보인다. 이번 통합 작업이 어떤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하나? 
"아직은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일 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정의당의 지지율은 통합진보당보다 낮았다. 평균 2%를 왔다 갔다 했는데, 올해 접어들어 진보정당 통합이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지지율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하기도 했고, 안정적으로 5~6%를 기록하고 있다. 그 사이 당 대표 선거를 잘 치렀다는 평가도 있다. 전반적으로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이 계속되고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손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정치행위라고 생각한다. 진보정당이 작은 세력이지만 이제 국민들이 지켜볼 만한 정도는 됐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당에는 당원 가입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도 현장 노동자들과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을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통합이 완성되면 조직적인 입당 흐름도 생길 것이다."

- 기존의 정의당은 노동자 기반이 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통적으로 진보정당은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는 것을 자기 정체성으로 해왔다. 그런 부분의 변화를 예상하고 있나?
"역사가 오래된 정당이면 자신들의 분명한 지지기반이 있기 마련이다. 고정적 지지가 없다면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정당으로 정의당이 노동자와 서민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통합진보당은 표를 모으는 양적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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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경채 진보결집+(더하기) 대표는 지난해 12월 치러진 노동당 대표 선거에 진보통합을 공약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진보통합을 당론으로 결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자 했으나 그의 주장은 다수 당원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결국 그와 뜻을 같이 하던 당원들이 당을 떠나 진보통합 작업에 참여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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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도 통합진보당으로 결집이 이뤄졌었다. 당시에는 통합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지금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가장 큰 차이는 통합진보당을 구성했던 주류 인사들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지금 통합을 하려는 세력들은 스스로 진보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에서 변화를 수용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혁신하지 않는 진보와는 함께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과거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 나눠져서 표가 분산되니까 합쳐야 한다는 양적 논리였다면, 지금은 진보의 내적변화라는 질적인 측면에서 통합이 이뤄진다는 차이가 있다."

- 결국 '정의당' 당명으로 총선을 치르게 된다. 정의당은 현재 심상정 대표의 리더십이 크게 발휘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번 결집이 '정의당+α' 수준이라는 인식이 있다.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의당은 다른 세력들과 비교해 이미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준비된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고 싶다. 정의당의 기본적 틀을 가져다 쓰는 것은 맞지만, 정의당이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배타적이거나 패권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무리다. 진보정치를 해온 사람은 모두 조직적으로 아픈 기억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의당도 통합진보당의 좌절을 겪고 왔다. 그런 기억을 잊지 않는다면 통합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 진보정당의 결집 이후에도 기존의 정의당 당원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가장 많기 때문이다. 기존 정의당에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당원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과거 이들은 소위 '운동' 세력에 반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천 명 가량 되는 진보결집+ 안에도 다양한 사상이 있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분도 있고, 개혁당에 참여하신 분도 있다. 사상의 방향이 서로 다르다. 그런 사람들이 새로운 정당에서 만나는 것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보다 역동적인 정당을 만들 수도 있다. 또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연합해야 할 때도 있다. 지금이 그런 시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성소수자 혐오나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같은 일부 사상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태는 자유주의라는 무기를 들고 투쟁해야 한다."

- 진보결집이 이뤄지고 정의당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양당체제는 견고하다. 이 구도를 어떻게 깰 수 있다고 생각하나?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보수성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때로는 극우진영까지 스탠스를 넓힌다. 어떨 때는 여성, 서민 등 사회적 약자를 이야기하지만 전체적으로 친기업 정당이라는 지지기반을 숨기지 않는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처럼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라는 태도를 보이다가, 어느 때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기도 한다. 그 자체로 개혁진영과 자유주의 진영 모두에서 허약한 지지기반을 드러내고 있다. 거기서 발생하는 갈등이 계속 내재돼 있다. 또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이 형성되지 않고, 호남에서 조직적 이탈 기운이 생성되고 있다. 이런 혼란은 누구의 편인지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정리될 수 있겠지만, 자신들이 소외된 사람들의 편이라는 선언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을 계기로 양당체제의 균열을 예고해볼 수 있다. 제1야당이 효과적으로 싸우지 못한다면 대표 선수를 교체해야 한다. 제1야당은 작은 야당과 손잡으려 하지도 않고, 내부를 정비하지도 못한다면 제3세력의 입장에서는 제1야당 교체를 정치적 목표로 가질 수밖에 없다. 정치는 평가를 먹고 자란다. 이제는 제1야당을 교체하자는 목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정도는 됐다고 생각한다."

"야권 대토론 통해 최소한의 합의 이뤄야"

-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에 부정적 여론이 60%가량 되지만 이것이 야당의 지지로 넘어오지 않는다. 이것은 진보정당도 마찬가지다. 이런 현상은 왜 발생하고, 반정권 여론을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부정책을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지만 야당의 지지율이 높아지지 않고 무당층만 늘어난다. 그것은 정치적 대안을 찾기보다 탈정치와 정치혐오가 늘어난다는 말과 같다. 진보정당이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자신의 투표행위로 무엇인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 이번 총선에서도 '정권심판론'은 큰 힘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또 야권연대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정의당의 전략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
"총선만 생각해서는 풀리지 않는 문제다. 야당 세력 사이에 대토론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최소한의 합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이뤄지는 야권연대는 이미 식상하다. 질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것은 제1야당이 그런 고민이 없다는 점이다. 새정치연합은 비록 두 번째로 큰 세력이지만 이대로라면 정권교체를 하지 못할 것이다. 매번 근소한 차로 패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교체를 위한 선수교체를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보다는 야권 대토론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큰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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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농업인의 날, 북한 농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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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 과정에서 어른들이 놓치는 중요한 사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11/11 07:21
  • 수정일
    2015/11/11 07:21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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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미국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놀랐던 일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선생님이 학생에게 질문할 때에 답변하는 학생으로부터 공포심과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고, 둘째, 점심시간에 자동차를 운전하고 학교 밖을 자유롭게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고, (미국은 고1에 해당하는 만 16세가 되면 운전면허 취득 가능.) 셋째, 학생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규칙과 제도가 생각보다 매우 허술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첫째와 둘째 모두 넓은 의미로는 셋째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겪은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국에서 학생이 수업에 빠지기 위해서는 부모의 서명이 들어간 ‘notice of abscence’(결석통보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아시아계 및 히스패닉계 부모들의 상당수가 맞벌이를 하고 있는데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안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학생들이 부모 동의하에 대신해서 서명을 합니다. (가끔은 동의절차가 생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미국 고등학교가 커리큘럼제로 운영되다 보니 학생들이 해당과목 선생님들에게 할당된 교실을 매 시간 입실하고 퇴실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시험문제 유출 가능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학생은 1교시에 화학을 듣고, 어떤 학생은 3교시에 화학을 듣는데 그들이 받게 되는 시험문제는 동일합니다. 그러니 1교시에 먼저 시험을 치룬 학생이 3교시에 시험을 치룰 학생에게 문제를 다 가르쳐주면 미리 답을 다 찾아서 100점을 맞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일 한국 학교에서 이와 같은 상황이 가능하다면 아마도 학생들은 마음 놓고 결석통보서를 학교에 제출하게 될 것이고, 시험문제를 미리 파악한 뒤 시간대 학생들 중 만점자가 속출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학부모들의 항의와 언론의 무차별 비난으로 학교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미국 학교에서 이와 같은 일이 좀처럼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에게서 돌아온 반응은… 매우 황당하다는 듯…

“That's not right, and that's cheating!”(그것은 옳지 않아. 그리고 그것은 부정행위야!)

시험문제를 빼돌리려고 해도 이를 필요로 하는 학생이 있어야 하고, 결석통보서를 위조하려고 해도 함께 거짓말을 하고 수업을 빼먹을 학생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 학생들도 수업을 땡땡이치기는 합니다. 다만 이 경우 대놓고 빼먹지 편법으로 결석통보서를 제출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이에 따른 불이익도 감수하지요.

물론,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만으로 미국의 모든 학교들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를 내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스캔들’과 ‘엔론 회계부정 스캔들’에 있어서 미국 언론과 사법부가 보여준 모습에 한국인 상당수가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와 같은 학교에서의 살아있는 교육과 체험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교과서 국정화가 역사교육 정상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현재의 법률체제가 정부 고시만으로 국정화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으며 입법부나 여론이 개입할 성격의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 속에서 저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여 부모의 동의가 있는 듯 태연하게 결석통지서를 제출하거나, 시험 문제를 미리 알아내어 답을 딸딸 외워서 고득점을 하는 영악하고도 부도덕한 학생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면,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법 또한 교육적 목적에 부합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정화는 온갖 편법, 졸속행정, 무책임, 무질서, 모순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행정부가 입법부의 견제 없이 월권행위를 스스럼없이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사법부는 팔짱만 끼고 있으며, 대표 필진으로 선임된 교수는 성추행 논란으로 중도 하차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교육백년대계라고 가르치면서도 그 근본이 되는 역사교과서 집필은 1년이면 충분하다고 강변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 청소년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역사교육 정상화를 하겠다며 청와대, 여당, 행정부가 보여주는 모습 속에서 우리 청소년들은 강자는 어떠한 편법도 모순도 그냥 힘으로 밀어붙여서 얻어내면 된다는 약육강식의 정글 논리를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음주 논란이 있건, 성추행 전력이 있건, 피해망상증이 있건,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콘텐츠를 맞춤형으로 만들 능력만 있다면 모두 끌어 모아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해도 된다는 뻔뻔함과 교활함에 대해 배우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올바른 내용”이면 뭐하겠습니까? 그 제작 과정이 부도덕과 불법으로 얼룩져있다면…

사실, 우리 사회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역사교육 정상화”가 아닙니다. 공정한 게임의 룰이 정해지고, 그것을 위반하는 사람은 반드시 불이익을 받고 이에 순응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땀 흘린 만큼의 대가를 받는다는 사회의 규범, 질서 및 도덕성을 확립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럴 때에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존중과 배려가 자리 잡는 건전한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어떠한 부정과 편법도 없이 좋은 성적을 내는 학생들만 있다면 그들은 동료 학생으로부터 진정한 존경과 부러움을 받게 될 것이고, 비록 성적은 안 좋더라도 도덕과 규칙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을 모두가 인정한다면 사회가 이들을 기꺼이 포용할 수 있겠지요. 미국 사회의 건강한 시스템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도덕과 규칙에 대한 존중이 자리 잡지 못할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우리는 감수해야만 합니다. 결석통보서의 위조 가능성을 막기 위해 부모에게 확인 전화를 일일이 해야 하고, 인감증명서까지 제출토록 하여 진위를 확인해야 한다면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시험문제의 유출 가능성을 막기 위해 시험 볼 때마다 다른 유형의 문제지를 사용해야만 한다면 이것 역시 그만큼의 사회적 비용이 지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몇십 년 동안 별 탈 없이 운영되어온 SAT와 TOEFL의 문제은행 제도가 한국 학생으로 인해 딜레마에 빠진 것도 이러한 잘못된 문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국, 문제은행의 데이터 량이 아무리 많더라도 10년이면 모든 문제유형들이 노출되게 됩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년 교수들과 선생님들을 모처에 가둬놓고 문제를 출제토록 하는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풍경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육 정상화”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도 한참 잘못 끼워졌습니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의 정상화”는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역사…교…육…의 정상화” 거리가 멀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역사 내용이 정상화되면 뭐합니까? 그것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삶의 지혜와 역사적 교훈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고 굴복시켜 강자가 된다면, 어떠한 편법과 부도덕함도 모두 덮을 수 있다”는 것이 된다면 말이죠. “교육의 비정상화”의 극치가 될 것입니다.

사진출처: 뉴스1

지금 이 시각에도 광화문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청소년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만이 올바른 국가관과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유일한 길”이라고 부르짖는 어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아마도 이것이겠지요.

“아이는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자라지 않고 어른들이 행하고 보여주는 대로 자란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다시한번 그들에게 질문할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역사교육을 우리에게 주입시키면 과연 올바른 국가와 국민이 될까요?”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KPCC) 소장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899&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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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역사 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네티즌 “영매세요?”

[SNS] 바른 역사 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네티즌 “영매세요?”朴대통령, 또 총선개입 발언 논란..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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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48회 국무회의에 참석, 모두발언 후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을 겨냥한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총선개입 논란을 일으킨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에는 “국민을 위해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발언해 파장을 예고했다.

박 대통령은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국회가 각종 경제 법안들을 처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비판, “국민들께서는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하고 국민과 직결된 문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나서 달라”며 이 같이 말했다.

해당 발언을 접한 일부 네티즌들은 이는 ‘유권자들에게도 지침을 내리는 격”이라고 맹비난했다.

   
   
   
   
   
 

또 이날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관련해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른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며 다시 한 번 국정화 강행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 역시도 네티즌들의 공감을 사지 못하고 있다.

서주호 정의당 서울시당 사무처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박근혜 씨는 역사를 제대로 배워서 혼이 그 모양이냐”고 일갈, “대통령부터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까지 연일 입만 열면 황당한 말을 쏟아내는 참담한 나라”라고 개탄했다.

그런가하면 한 네티즌은 “바른 역사를 못 배워서 혼이 비정상인 현장을 목격중”이라고 냉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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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주민들에 밥 사주고... '주민투표 소문'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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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영덕리 영덕읍 천정리 주민들이 영덕조각공원 앞 오리요리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이들은 3~4인에 4만9000원짜리 오리요리 풀코스로 55만 원 정도의 식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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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이 주민들을 상대로 여행을 보내주고 선물도 주고 밥도 사준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10일) 사실로 확인됐다. 한수원 직원과 주민들이 한수원에서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선물 보따리를 들고 식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제보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급한 듯 더듬거리는 음성에서 애절함이 묻어났다. 사실 확인을 위해 찾아간 영덕읍 영덕조각공원 앞 오리전문점에는 70,80대로 보이는 40여 명의 어르신들이 식사하고 있었다. 한수원이라고 찍힌 신분증을 매고 있던 직원도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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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원에서 받은 것으로 보이는 소핑백에는 한수원 ‘에너지팜’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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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인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비슷한 제보가 많아서 어제도 허탕만 쳤는데 오늘은 한수원 직원이 주민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게 됐다"며 "원자력 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 하루 전날 주민을 상대로 식사를 제공한다는 것은 투표를 방해하려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오후 5시경 현장을 포착하여 이영일 한수원건설 본부장에게 전화로 항의했더니 '일상적인 견학 활동'이라고 말했다"며 "다시 말하지만, 주민투표를 못 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민들에게 금품과 식사를 제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이영일 본부장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기자들이 들이닥치자 한 주민은 "내가 범죄자도 아니고 밥 먹는 데까지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한다"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주민들은 빠른 식사를 마친 뒤 타고 온 버스에 올라탔다. 쇼핑백 내용물에 대해서도 "집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한수원' 신분증을 매고 있던 직원은 기자의 질문에 "내가 말하기 싫으면 그만이다. 주민들 기금으로 움직이고 우리는 안내만 했다. 식비 결재는 하지 않았다"면서도 "국책사업을 하면서 홍보비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신분을 밝히길 거부했다. 

이 직원의 말대로라면 나이 많은 주민들이 한수원 직원에게 식사를 제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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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원 직원으로 보이는 동행자가 식비를 결재하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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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결과, 이들은 경북 영덕리 영덕읍 천전리 주민으로 확인됐다. 주민들은 울진군 덕구온천과 울진 한수원을 견학한 뒤 이곳에 도착해, 11개의 테이블에서 오리요리 풀코스로 3~4인에 4만9000원짜리 음식과 소주, 음료수 등으로 약 55만 원 어치의 식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의 또 다른 제보자는 "식비 계산은 한수원 직원이 결재한 것"이라고 확인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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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마친 주민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함구하며 빠른 걸음으로 버스로 향하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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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령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대회 대외협력 위원장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았지 정확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는데 투표를 몇 시간 앞두고 한수원이 건설본부장까지 대동하여 영덕에서 버젓이 선물을 안기고 밥을 접대하는 것은 영덕 주민을 무시하는 것이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한수원이 이런 행위로 주민투표를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문제는 영덕 주민투표 관리위원회를 포함하여 영덕의 모든 단체가 강경한 대응을 할 것이다"고 입장을 밝혔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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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언 이행, 통일의 꽃 피어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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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0  18:5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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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종교 수장들이 총집결한 가운데, 남북종교인모임이 9일 오전 금강산호텔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남과 북의 종교인들이 더욱 자주 만나고 교류함으로써 힘을 합쳐 평화와 통일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남북공동선언들을 이행하기 위한 활동을 보다 적극화해 나갈 것이다.”

남과 북의 종교인 200여명은 9일 금강산에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종교인들의 모임’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 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을 다짐했다.

남측 7대 종단 수장들을 포함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대표단 145명과 북측 4대 종단 수장을 포함한 조선종교인협의회 대표단 50명 등 남북의 종교계 지도부가 사실상 총출동한 셈이다.

   
▲ 강지영 신임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이 축하연설에 나섰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조선종교인협의회 신임 회장인 강지영 조선카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축하연설에 나서 이번 대회가 “우리 겨레의 통일열망인 양 단풍이 붉게 타는 좋은 계절에 민족의 명산 금강산에서” 열리게 됐다며, “남측의 종교단체 대표 여러분들의 사랑과 평화의 마음을 담아 조선종교인협의회와 북측 종교인들의 이름으로 열렬히 환영한다”고 인사했다.

강지영 회장은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를 거론하며 “일련의 접촉과 통일회합이 진행되고 대화와 관계개선의 분위기가 싹트고 있다”면서도 “이를 달가와하지 않는 반통일세력의 책동”을 지적하고 “우리 신앙인들은 이 땅에 드리운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공고한 평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뇌출혈로 와병 중인 장재언 회장에 이어 지난 10월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을 맡은 강지영 회장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은 겸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왼쪽부터 김영주 한국기독교회협의회 총무, 자승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강지영 조선카톨릭교협회 위원장, 남궁성 원불교 교정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대표회장인 자승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은 축하연설에서 “백두산이 민족의 정기를 의미하고 한라산이 민족의 성품을 뜻한다면, 금강산은 우리 민족의 굳건한 꿈을 상징한다”며 “금강산에서 만큼은 민족의 공존과 밝은 미래를 만날 수 있었다”고 지난 시기를 회고했다.

자승 스님은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끝까지 인내하며 희생하는 사람이다. 공멸을 막아서기 위해 한 몸 던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면서 “우리가 앞장서서 가는 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는 길 위로 반드시 통일의 꽃은 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측의 윤정호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부위원장과 리규룡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오경우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회 서기장이, 남측은 박남수 천도교 교령과 남궁성 원불교 종무원장, 어윤경 성균관 관장이 각각 연설했다.

김광준 KCRP 사무총장과 서철수 조선카톨릭협의회 서기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모임에서 연설자들은 7.4선언과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강조하고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를 갈구했으며, 종교인들이 화해와 단합에 앞장서자고 호소했다.

   
▲ 비가 내리는 가운데 추색이 만연한 풍악산(금강산)을 오르는 남북 종교인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남북 종교인들은 이원형 천주교 민족화해위원회 총무와 려정선 천도교회 중앙위원회 서기장이 공동낭독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종교인모임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신앙과 교단을 존중하면서 애국애족의 마음과 남북선언에 기초하여 종교인들 사이의 연대를 강화하며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에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정과 과거청산을 회피하고 독도 강탈행위에 광분하며 평화헌법 9조를 폐기하고 군국주의 길로 내달리고 있는 일본의 행위를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7대 종단 수장을 포함한 145명의 남측 대표단은 이날 오전 9시 남측 동해선출입사무소를 거쳐 숙소인 금강산호텔에 도착해 오전 10시 55분(현지시간, 한국시간 11시 25분) 금강산호텔 2층 금강홀에서 남북종교인모임을 가졌으며, 오후에는 점심 식사후 신계사 방문과 구룡연 등반에 나섰다.

이틀째인 10일 오전에는 각 종단별 모임을 갖고 오후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삼일포 산책에 나선 뒤 귀환했다.

   
▲ 남북종교인모임에 앞서 남측 7대 종단과 북측 4대 종단 수잗들이 상견례를 치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번 남북종교인모임에는 남측에서 자승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대표회장으로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박남수 천도교 교령, 어윤경 성균관 관장,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남궁성 원불교 교정원장이 참가했으며, 김희중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은 ‘한일 주교회의’와 겹쳐 이은형 천주교 민족화해위원회 총무가 대신했다.

북측에서는 조선종교인협회 회장인 강지영 조선카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강명철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강수린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참가했으며, 고령의 류미영(94)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위원장을 대신해 윤정호 부위원장이 참가했다.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에서 8.25합의가 채택되고 10월말 남북노동자 통일축구가 평양에서 열린 뒤 다시 금강산에서 남북종교인모임이 열림으로써 대규모 민간교류 본격화 기대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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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 사람, 언젠가 다시 북으로 돌아갈거다”

 
[인터뷰] 탈북에서 탈남으로, 최승철씨 “남한은 또 다른 형태의 독재국가… 탈북자는 전쟁포로”
 
입력 : 2015-11-10  09:24:17   노출 : 2015.11.10  14:50:30
 

최승철(45)씨는 지난 1999년 함경북도 청진의과대학을 졸업했다. 2년 동안 북한에서 소화기 내과 의사로 일하다 2002년 5월 탈북했다. 중국과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는 5년간 머물렀고 2008년 영국으로 넘어갔다. 지금은 영국에 있는 양대 탈북 주민 협회 중 하나인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런던 남서쪽에 위치한 뉴몰든은 영국의 대표적인 한인 타운이다. 1000여명의 탈북 주민도 뉴몰든에 살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최씨를 뉴몰든의 한 가게에서 만났다. 큰 키에 마른 몸을 가진 그가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검정색 정장 차림이었다. 북한 말씨보다는 서울 말씨에 가까웠고 대화 중간 중간 영어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그는 ‘스텔라’ 맥주를 주문했다. 탈북자라는 인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자신이 ‘북한 사람’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북한 사람이다. 그걸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고 하면 안된다. 저는 북한이라는 표현보다는 조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건 저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약 2시간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탈북의 이유, 그가 본 한국사회, 그리고 ‘탈남’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 영국에 있는 양대 탈북자 협회 중 하나인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승철씨를 지난 1일 런던 뉴몰든에서 만났다. 사진=금준경 기자
 

“엘리트 집안, 나는 자유주의자였다” 

“그럼 왜 탈북했나?” 과거 한국에서나 지금 영국에서나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는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저는 북측에서 괜찮게 살았다. 형제들은 지금도 잘 살고 있다. 북측에서는 매주 생활총화랑 간부회의를 해야 했다. 구속되는 게 굉장히 싫었다. 제 생각을 바꿔놓으려고 아내와 어머니가 엄청나게 노력했다.”

하지만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1999년 그는 첫 번째 탈북을 한다. 당시 목적지는 한국이 아니었다. 중국이었다. 탈북이라기보다는 말로만 듣던 세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고 했다. “북에 있다가 중국에 가니 이렇게 황홀한 동네가 어디있나. 내가 사는 삶과 비교해보니 우리가 사는 삶은 삶이 아니구나. 우리 삶은 짐승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석 달 후에 그는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002년 5월 진짜 탈북을 한다.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1년만인 2003년 5월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북에 있던 아내도 데려왔다. 부부는 어렵지 않게 한국 사회에 정착했다. 그는 외환 중개사무소를 설립해 해외 투자 상담과 외환 중개 관련 일을 했다. 돈 버는 게 체질에 맞았다. 최씨는 “아마 탈북자 중에 저만큼 돈을 많이 번 사람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에는 ‘성공한 탈북자’로 보도됐다. 

한국사회의 탈북자는 ‘전쟁포로’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는 정체성을 잃어갔다. 남한에서 허용하는 탈북자 유형은 하나뿐이다. 북한 자체를 부정하고 남한 사회를 찬양하는 것. 그래야 정부도, 언론도, 탈북자 인권단체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이 기준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대입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정은 정권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우리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 될 수도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저는 조선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인공기를 들면 어떻게 될까. 잡혀간다.”

그가 남한에서 체감한 탈북자의 위치는 ‘전쟁포로’였다. “한국에서 탈북자는 체제 경쟁의 승전물이다. 그러니까 사회에 속할 수도 없고 인권 개념이 작용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큰 거 바라는 거 아니다. 남한 국민과 똑같이 대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늘 색안경을 끼고 보고 우리는 늘 영세민일 수밖에 없다. 남한은 통일은 물론이고 아직 탈북자를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았다.”

실제 지난 달 심재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통일부와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탈북자 73.2%가 자신이 ‘하류층’라 답했다.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50.5%이 하류층이라 답했다. 남한에서의 생활을 더 나쁘게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 남북하나재단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 20.5%가 ‘최근 1년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답했다. 이는 일반 국민(6.8%)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한국에는 3만명의 탈북자가 살고 있다. 

 

   
▲ 영국에 있는 양대 탈북자 협회 중 하나인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승철씨를 지난 1일 런던 뉴몰든에서 만났다. 사진=금준경 기자
 

“한국언론, 뭘 알고나 쓰나” 

한국은 그가 기대했던 사회가 아니었다. 탈북자로서 받는 차별이 힘들었던 것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최씨는 “한국은 도덕, 윤리, 국가, 민족 등 아무것도 없는 나라”라며 “자본이 모든 걸 좌우하고 있으며 개인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 방법을 취하는 사회다. 나쁜 자본주의의 극단에 있다.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자본주의의 황홀함만 보는데 전혀 황홀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친일파 논란에 대해 “어떻게 친일파의 후손같은 사람들이 뻔뻔하게도 사회 기득권을 잡나. 그런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 게 너무나도 신기하다”며 “물론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앞선 것은 맞지만 우리는 최소한 저 정도는 아니지. 어디서 저런 되먹지 못한 사람들이 인민들을 괴롭히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맥주를 들이켰다. 

언론도 그의 눈에는 다를 바 없었다. 특히 북한과 관련해 한국 언론에는 잘못된 정보가 넘쳐났다고 그는 지적했다. 탈북자가 생기면 일가족이 처형을 당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하나의 사례다. 그의 가족은 그가 탈북한 이후에도 북한에서 잘 지내고 있다. 영국에 온 이후에도 누나와 통화를 했다. 누나는 “어떻게 영국까지 갔냐”며 “너 참 대단하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가족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이 북한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북한의 현재 정권이 오래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가 남한이라면 나는 달려가서 막을 거다. 북한 사회가 잘못하는 것도 많지만 잘하고 있는 것도 많다. 보건이나 교육,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는 자부심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한국에는 권리가 없다. 정권과 자본 입맛에 맞는 인권과 권리다. 어떻게 보면 북과 비슷하다.”

“영국정부, 알면서도 다 속아준다”

정체성 혼란과 남한에 대한 실망, 2등 국민으로 취급받는 현실 등은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는 지난 2008년 영국으로 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난민 신청을 한 다음 비자를 받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은 일을 할 수 없다. 북한 혹은 남한으로 돌아갈까 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럼에도 영국에 남을 수 있었던 건 난민 심사 과정 중에도 주택을 제공받고 아이들 교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매년 2만명 가량의 난민을 받아들인다. 

최씨는 “영국 정부가 바보라서 2만명이나 되는 난민을 받아들일까?”라며 “사실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속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난민 신청자)한테서 내가 사기 당하는 거 같아도 너희 자식들에게 다 받아낸다는 거다. 영국은 세율이 아주 높다. 영국은 최소한 10년, 20년, 100년을 내다본다. 한국은 지금 당장 이익을 바란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훨씬 이익이다. 아주 우수한 장사꾼이다.” 한국은 자본주의를 좋아하면서도 장사를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식으로 정착한 탈북자들은 영국 사회 구성원으로 일하고 세금도 낸다. 영국에서도 사업을 하는 최씨도 한 달에 400파운드가 넘는 세금을 낸다고 했다. 한화로 계산하면 70만원 수준이다. 그는 “탈북자들이 한국을 떠나는 건 경제적인 측면으로만 따져도 한국이 손해”라며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는 걸 막고 싶다면 복지 정책을 빨리 시행해야 한다. 복지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장 저렴하고도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 영국에 있는 양대 탈북자 협회 중 하나인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승철씨를 지난 1일 런던 뉴몰든에서 만났다. 사진=금준경 기자
 

“영국? 남한? 언젠가 북으로 돌아갈 것” 

“그러면 계속 영국에 사실건가요?” 영국 사회의 복지제도와 시민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오간 다음 최씨에게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는 지금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의 마지막은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북한 정권과는 별개로 우리는 북한 사람이다. 그걸 부끄러워 하거나 감추려고 하면 안된다. 그래야 나중에 통일이 되거나 북한 사회에 변화가 생겼을 때 우리 힘으로 개혁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탈북자 협회에서 하는 주된 일도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자신이 어디에서 온 줄 알아야 제대로 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남한에서 태어나 영국에 살고 있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너는 북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북한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하면 자만일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 힘으로 북을 변화시켜야 한다. 북이 정치 시스템만 바꾸면 잘 발전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남한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남한의 탈북자 정책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아무런 기대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탈북자 정책이라는 건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것 밖에 없다. 실질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게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기대도 없고 요구하고 싶은 것도 없다. 한국은 지금 자기 국민들 인권도 못 챙기는데 어떻게 우리한테 해주겠나. 기대도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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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삼·멍게·개불의 계절 “우리도 해산물 주류”

해삼·멍게·개불의 계절 “우리도 해산물 주류”

황선도 2015. 11. 09
조회수 1552 추천수 0
 

곁들이 안주감 무시 말아야, 몸에 좋고 맛과 풍미 일품

해삼과 멍게는 대량생산 체제 돌입, 당당히 수산물 '주류'로

 

10-1.jpg» 무척추동물인 해삼, 멍게, 개불 등도 바다 수산물 가운데 주당의 안주로, 건강식으로 높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살아있는 멍게의 모습.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김광복 전문위원
 
■ 해삼 
 
소주 한잔하러 횟집에 가면 회가 나오기 전에 먼저 나오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일명 ‘츠케다시’라고 한다. ‘붙이다’라는 뜻의 일본어 ‘츠케루’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우리말로 ‘곁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주 요리인 메인 메뉴가 아니고 사이드 디시에 해당한다. 이렇게 주류에 끼지 못하고 나처럼 항상 비주류인 해산물이 있는데, 해삼·멍게 그리고 개불이 그것이다.
 

1-2.jpg» 해삼, 멍게, 미더덕이 본 술안주가 나오기 전 곁들이 안주로 나와 있다. 사진=황선도

 
산에는 산삼, 밭에는 인삼, 바다에는 해삼이라 부를 정도로 ‘삼(蔘)’은 신선(神仙)과 맞닿아 있는 영험함을 느끼게 한다. <전어지>에 ‘해삼은 성이 온하고 몸을 보하는 바, 그 효력이 인삼에 맞먹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생겼다.’라고 이름이 붙여진 까닭이 기록되어 있다. 
 
인삼의 학명은 Panax ginseng으로 ‘Panax‘는 만병통치약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인삼에 사포닌 성분이 많아 심장에 좋다고 하고, 해삼에도 역시 사포닌 성분의 홀로수린이 있어 피의 응고를 막아준다고 하니, 옛 선인들은 약리학적 선견을 가진 게 분명하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해삼은 전복, 홍합과 함께 삼화(三貨)라 한다.’라고 그 값어치를 높이 샀다. 중국에 남삼여포(男蔘女鮑)란 사자성어가 있는데, 남자에게는 해삼, 여자에게는 전복이 좋다는 뜻이다. 
 
중국 전통 음식문화에서는 인체의 특정 부위와 닮은 음식을 먹으면 해당 인체 부위가 좋아진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해삼이 보혈하면서 몸의 열을 떨어뜨리고, 배설기관을 관장하는 신장을 이롭게 하여 정력을 강하게 하기 때문이다.
 

2-1.jpg» 바다 밑바닥에 서식하는 돌기해삼.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에 정약전은 해삼을 관찰하고 기록하였으니, <자산어보>에 해삼은 이렇게 기록돼 있다.
 
‘해삼은 큰놈은 두자 정도로 몸이 오이와 같고, 온몸에 잔 젖꼭지가 널려있다. 한 쪽 머리에 입이 있고, 다른 한쪽 머리에 항문이 있다. 뱃속에는 물체가 있는데 그 모양이 밤송이 같다. 창자는 닭의 것과 같고 껍질은 매우 연하여 잡아들어 올리면 끊어진다. 배 밑에는 발이 백 개나 붙어있어 걸을 수 있으나 헤엄칠 수 없고 그 행동이 매우 둔하다.’
 
겉모양뿐 아니라 해부학적으로도 묘사하였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해삼은 길쭉하고 울퉁불퉁하게 생긴 독특한 모양 때문에 오이를 닮았다 하여 영어로 바다 오이란 뜻의 시큐컴버(Sea cucumber)라고 부른다. 
 

1280px-Actinopyga_echinites1.jpg» 미크로네시아에 서식하는 해삼의 일종. 입과 다리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사진=François Michonneau, 위키미디어 코먼스


해삼은 해안선 바로 밑에서부터 깊은 심해까지 해삼이 살지 않는 해저라고는 없다. 다른 동물이 영양부족으로 극히 낮은 밀도로밖에 살지 못하는 세계에서 안개처럼 떠돌아다니는 수중 유기 부유물이나 해저 표층에 엷게 쌓인 퇴적물을 섭취하여 살아간다. 
 
이런 변변찮은 먹이로 견뎌낸다는 것은 바로 신선에나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바닷속에서 은밀하게 다니는 쥐로 표현해, 바다의 쥐(海鼠)라고 해서 나마코(なまこ)라고 부른다. 
 
우리 고전 <물명고>에는 해삼을 우리말로 뮈라고 하고, 다른 이름으로 흑충(黑蟲), 해남자(海男子) 등도 씌여 있다. 오래전부터 한방에서는 해삼이 원기 증진이나 정자 생성 등 정력 보강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해삼의 별칭을 ‘바다의 남자’라는 뜻으로 해남자(海男子)라고 붙이지 않았을까? 
  
해삼은 어류가 아니고, 불가사리나 성게와 같은 극피동물이다. 두꺼운 근육 속에 석회질의 작은 골편들이 흩어져 있는데 이것이 극피이다. 
 
겉보기에 아주 다른 모습으로 앞뒤가 길쭉하지만, 해삼을 단면으로 잘라 보면 역시 오각 방사대칭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몸의 앞 끝에는 입이 있고 그 둘레에 다수의 촉수가 있으며, 뒤끝에는 항문이 있다. 배 쪽에 관족이라는 것이 많이 있어 이것으로 바닥을 기어다닌다.
  
해삼은 한 종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 보통 15㎝ 크기로 갈색이나 녹색을 띠는 몸통에 돌기들이 솟아나 있는 돌기해삼(Stichopus japonicus)이 주로 분포하고, 식용으로 쓰인다. 
 

800_19071.jpg» 돌기해삼. 일본의 한 수족관에서 기르는 모습이다. 사진=Opencage

 

그래서 배양장에서 생산되는 종묘도 이 종이다. 돌기해삼은 퇴적물 섭식성으로 종류를 가리지 않고 먹어 내장기관을 통과하면서 영양분은 흡수하고 나머지는 찌꺼기로 배출하여 해저 바닥에 쌓인 유기물을 제거하는 정화효과가 크다.
 
조하대 암반 또는 자갈 바닥에서 간혹 발견되는 몸통 길이 30㎝ 정도의 대형 해삼인 개해삼(Holothuria manacaria)은 몸통이 딱딱하고 지저분한 황갈색을 띠어 마치 ‘딱딱한 나무토막’처럼 생겼으며 육질이 단단하고 질겨서 날것으로는 식용이 어렵다. 
 
동해와 남해에 몸통 길이 3㎝ 전후의 소형 오각광삼(Cucumaria chronhjelmi)은 선홍색이나 분홍색의 몸통에 갈색의 촉수를 가지며, 부유물을 걸러 먹는다. 일반적인 해삼과 달리 많은 잔가지가 잘 발달한 촉수를 가진 타원광삼(Cucumaria japonica)과 진흙에 살면서 표면에 돌기가 없이 매끈한 가시닻해삼(Protankyra bidentata) 등이 있다.

 

3-1.jpg» 청해삼.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김광복 전문위원 
   
소위 물질하는 사람들 세계에서 홍해삼(紅海蔘)이라고 부르는 해삼이 있다. 일반적으로 해삼이라고 부르는 청해삼(靑海蔘)과 구분하여 특별 취급하는데, 사실 이 둘은 단일 종으로 돌기해삼이다. 
 
서식지 환경과 먹는 먹이에 따라 색깔과 생김새가 좀 다른데, 연안에서 흔히 잡히는 청해삼은 인공종묘 생산기술이 이미 개발되어 최근 종묘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암청록색인 청해삼과 달리 홍해삼은 수심 20m 내외의 외해 청정해역에서 잡히는데, 깊은 수심까지 도달하는 장파인 붉은색을 받아들여 적색 또는 황갈색을 띈다.

 

4-1.jpg» 홍해삼.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김광복 전문위원

 
홍해삼은 청해삼에 비하여 클 뿐만 아니라 가격도 30% 더 높다. 같은 종인데도 서식환경이 다른 홍해삼은 인공종묘 생산기술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더 귀하다. 
 
부영양화가 진행되고 부니가 있는 내만의 얕은 뻘에는 흑해삼이 주로 서식하는데, 체색이 검은 편이라 구별이 쉬우나 역시 동일 종이다. 흑해삼은 홍해삼에 비해 맛도 떨어지고 가격도 저렴하나 청해삼보다는 비싸다. 중국 사람들은 흑해삼을 귀중하게 여기며 좋아한다고 한다.

5-1.jpg» 흑해삼.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김광복 전문위원

  
해삼에는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는데, 하면과 재생력이 그것이다. 수온이 8~10℃에서 식욕이 가장 왕성하고 성장이 빠르나 17℃ 이상이 되면 먹는 것을 중지하며, 25℃ 이상에서는 활동을 중지하고 여름잠을 잔다. 
 
전해 내려오는 말로 동면이나 하면을 해서 일정기간 잠을 자는 동물들은 정력에 좋다고 한다. 그래서 해삼의 실질적인 성장기인 12월에서 다음해 4월까지 제일 실하여 약효가 좋고, 동지 전후가 제일 맛있는 시기이다. 
 
적의 피습을 받거나 강한 자극을 주면 창자를 버리거나 몸을 스스로 끊어 버리기도 하는데, 재생력이 아주 강해서 수개월 정도 지나면 손상된 부분이 다시 생겨난다. 
 
해삼이 스스로 버리는 내장을 일본말로 ‘고노와다(このわた, 海鼠腸)’라 하며, 향이 강하고 맛이 뛰어나 고가의 식품으로 미식가들이 즐겨먹는 별미이다. 다이버들은 바닷속에서 해삼을 잡아 올려 내장만 빼먹고 육질은 선심을 쓴다. 
 
나도 모를 때는 몸통을 통째로 준다고 고마워했다. 지금은 화낸다.

Bare Dreamer _Dried_sea_cucumber.jpg» 중국 음식재료상점에 가득 쌓인 말린 해삼. 사진=Bare Dreamer, 위키미디어 코먼스

 
해삼 특유의 그 오돌토돌한 식감은 딱딱하지만 부드럽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해삼의 독특한 향과 식감은 소주 한잔을 부르기 충분한 유혹이다. 
 
소주의 씁쓸하고 강한 뒷맛에 해삼이 더해지면 향긋함이 남고, 오돌토돌한 씸힘은 입속을 무료하지 않게 해준다. 사실 해삼은 숙취해소 및 간 기능 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니 술과 궁합이 잘 맞는 안주이다. 잘 생각해 보면 술 한잔 없이 해삼만 먹어본 기억은 찾기 힘들다. 
 
중국은 해삼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이다. 전 세계 해삼 생산량의 70%가 중국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생산되는 곳에 따라 해삼 가격도 천차만별인데 일본 북해도 해삼이 최고이고, 그 다음으로 우리나라 동해안 해삼이 높은 몸값에 중국으로 수출된다. 
 
칠레나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저가 해삼과는 가격 차이가 수십~수백에 이르기도 한다. 더운 해역에서 자란 해삼은 탄력이 떨어져 하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해삼 등급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탄력뿐 아니라 울퉁불퉁하게 난 돌기이다. 돌기는 수직으로 곧고 길어야 하며 그 수가 많을수록 좋다. 
 

8-2.jpg» 해삼의 종묘 배양장 모습. 사진=해삼수산 박송범 대표


현재 중국의 해삼 시장은 전통 약재 외에도 여러 종류의 상품으로 개발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건강식품이나 즉석식품 등의 먹는 소비 방식은 물론이며, 화장품과 기능성 물질 등 신산업에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해삼 산업의 규모는 무려 10조원이 넘는다고 하니 실로 대단하다. 중국의 해삼 소비가 늘어난 것은 경제발전 덕분이다. 그동안은 비싸서 상류층에서만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 보상심리로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면을 둘러싼 차고 깨끗한 우리 바다는 좋은 해삼을 키우기에 적합하다. 연안에서 양식을 할 수 있어 수확하기도 쉽다. 해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해삼을 양식하는 것은 분명 블루오션이다. 정부에서는 해삼 양식 조성지를 만드는 양식 해삼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9-1.jpg» 종묘배양장에서 생산한 해삼종묘. 사진=해삼수산 박송범 대표
 
■ 멍게
 
우리가 흔히 먹는 멍게 또는 우렁쉥이(Halocynthia roretzi)는 몸이 껍질로 덮여 바닷속 수심 5~20m의 조하대 암반에 붙어살고 있으므로 패류의 일종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분류학상 척삭동물문에 속한다. 
 
동물분류체계에서 척삭동물문에는 척추동물, 미삭동물, 두삭동물 등의 3개의 아문(亞門, 문과 강의 중간)이 있는데, 우렁쉥이는 미삭류이다. 여기서 척삭(脊索)이란 몸길이 방향으로 있는 몸을 지지하는 심지(또는 끈)를 말한다. 
 
인간과 같은 척추동물은 척삭이 발전하면서 척추뼈로 이루어진 척추가 되지만, 우렁쉥이 같은 미삭동물은 유생기에 가지고 있던 척삭이 척추로 발전하지 못한 채 성체가 되는 경우이다. 미삭동물인 우렁쉥이의 배아가 척추동물인 인간의 배아와 같은 척삭을 가진 연관성이 높다는 이유로 생명공학자들은 우렁쉥이를 연구하여 인간의 초기진화관계를 규명하고자 하고 있다. 
 
결국, 생김새도 다르고 하등동물인 줄 알았던 우렁쉥이가 분류체계에서 보면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고등한 동물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우습게 보지마시라’고 경고한다. 실제 우렁쉥이는 유생시기에는 올챙이와 유사하게 생겨 꼬리부분을 따라서 길게 원시적인 척추가 나타나지만, 곧 고형물에 부착하고 파인애플 모양의 성체로 변태하면서 척추는 사라진다. 

 

ProjectManhattan1280px-SeaSquirt.jpg» 멍게. 사진=ProjectManhattan, 위키미디어 코먼스

 
일반적으로 바위 등에 붙어사는데, 부착 부위의 반대쪽인 위쪽에 물을 빨아들이는 입수공과 물을 내뿜는 출수공이 있다. 여기에서 입구가 ‘+’ 모양인 것이 입수공이며 ‘-’ 모양인 것이 출수공이다. 출수공은 입수공보다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출수공에서 나온 배설물이 입수공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렁쉥이는 입수공으로 들어온 바닷물이 몸통을 거쳐 출수공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플랑크톤과 산소 등을 걸러서 섭취한다. 출수공은 걸러진 바닷물을 배출할 뿐 아니라 번식을 위해 정자와 난자를 뿜어내는 역할도 한다. 
 
출수공을 통해 나온 정자와 난자는 물속에서 수정이 이루어지는데 수정된 유생은 물속을 떠다니다가 바위 등에 달라붙어 성체로 변태를 시작한다. 우렁쉥이는 한 개체가 정소와 난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자웅동체로 한 개체가 자손을 낳는 무성생식과 정자와 난자를 수정하여 자손을 낳는 유성생식, 두 가지 번식방법을 사용한다. 
 
무성생식의 경우, 어미의 몸에서 새로운 개체가 솟아나오는 출아법으로 번식하는데 새로 출아된 새끼는 어미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남아 여러 개체가 무리를 만든다. 유성생식을 할 때는 평소 물을 배출하는데 쓰는 출수공을 통해 난자와 정자를 내뿜어 수중에서 수정한다. 
 
알을 낳는 시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수온이 10℃ 정도 되는 10월 중순부터 낳는다. 알의 크기는 지름 0.3㎜이며 2주에 걸쳐 하루에 1만 2000여 개를 낳는다. 
 
수정 후 이틀이 지나면 올챙이 모양의 작은 유생이 깨어나 물속을 떠다니다가 3일째가 되면 머리 부분으로 다른 물체에 달라붙어 변태하여 성체가 된다. 1년 후에 약 10㎜가 되고, 2년째에 10㎝ 정도로 자라며, 알을 낳기 시작한다. 3년째에는  18㎝가 되고, 수명은 5∼6년으로 알려졌다. 

 

04192595_R_0.jpg» 경남 거제 바다에서 양식한 멍게를 항구로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멍게 껍질은 등황색으로 그 표면에는 울퉁불퉁한 젖꼭지 모양의 돌기가 많이 붙어있고, 형태가 파인애플을 닮아 ‘바다의 파인애플’이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는 짧고 몽땅한 도깨비 방망이를 닮아 보인다. 
 
일본에서는 우렁쉥이가 램프의 유리통, 즉 등피 호야(ほや, 火屋)와 닮았다 하여 호야(ほや, 海鞘)라는 이름이 붙었다. 멍게는 딱딱하고 두꺼운 껍질에 싸여 있는 모양새가 칼집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칼집 초(硝)’자를 써 해초류(海硝類)로 분류된다. 
 
육질은 식물성 셀룰로오스와 비슷한 튜니신(Tunicin)이라는 물질로 이루어진 피낭에 싸여있고, 피낭의 상단에는 물이 들어오는 입수공과 출수공이 있다. 따라서 영어로는 피낭이란 뜻의 튜니케이트(Tunicate) 또는 바다의 물총이라는 뜻의 시 스쿼트(Sea squirt) 또는 어시디언(Ascidian)란 이름이 붙었다. 
 
우리말에 ‘우멍거지’라는 말이 있다. 우멍거지는 끝에 가죽이 덮인 어른의 자지를 말하는 것으로 포경의 순수한 우리말인 셈이다. 멍게의 생김새가 이와 비슷한데, 차마 그대로 쓸 수가 없어서 가운데 두 글자를 떼어내 ‘멍거’를 멍게로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멍게가 우렁쉥이와 함께 표준어가 된 사연을 아는지? 우리말 표준어 사정 원칙에는 다음과 같은 표준어 규정 제 23항이 있다.
 
“방언이던 단어가 표준어보다 더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그것을 표준어로 삼는다. 이 경우, 원래의 표준어는 그대로 표준어로 남겨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렁쉥이가 표준어이고, 멍게는 방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표준어인 우렁쉥이보다 방언인 멍게가 더 널리 쓰이자 표준어로 추인하고, 애초의 표준어도 학술 용어 등에 쓰이는 점을 감안하여 남겨 두었다는 사실. 

 

11.jpg» 수산시장에서 파는 멍게. 사진=황선도

   
멍게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 서식하나 특히 동해와 남해안에 많다. 해안지방에서는 예전부터 식용으로 사용하여 왔으나 전국적으로 이용하게 된 것은 6.25 이후이다. 
 
예전에는 양식법이 개발되지 않아 해녀나 잠수부에만 의존하던 귀한 해산물이었지만, 1950년대 이후 양식업이 성행하면서 쉽게 멍게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경남 통영지방을 중심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연간 2만여t씩 생산됐으나, 매년 물렁병 등으로 폐사율이 높아져 2003년에는 생산량이 5000t에도 못 미치게 되었다. 
 
소비는 늘어나는데 생산량이 줄어들게 되자 결국 일본으로부터 대량 수입하게 되었다. 일본산 멍게의 수입이 늘어나자 가뜩이나 어려운 멍게 양식업자들이 양식을 포기하는 사례가 줄을 잇게 되었다. 
 
그런데 2011년 일본 지진 여파로 일본산 멍게의 수입이 전면 중단되자 국산 멍게가 다시 각광받게 되었다. 지진 피해가 가장 컸던 일본 센다이 지역이 멍게의 주산지이다 보니 일본산 멍게가 국내시장에 다시 유통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흔히, 날로 초고추장에 찍어서 먹는다. 멍게의 향미는 향긋하고, 먹고 난 후에 입안에 뒷맛이 감도는 독특한 경험이다. 멍게 특유의 맛과 향은 불포화알코올인 신티올(cynthiol) 때문이며, 함량이 많은 글리코겐은 인체가 포도당을 급히 필요로 할 때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다당류라 피로회복에 효과적이다. 멍게가 여름철에 특히 맛이 좋은 이유는 수온이 높아지면 글리코겐의 함량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01697820_R_0.JPG» 멍게 요리. 사진=예종석 
 
바닷가 횟집에 가면 ‘돌멍게’라고 불리는 놈이 있다. 겉모양이 돌멩이와 비슷하여 돌멍게라 부른다. 물론 표준어는 아니다. 
 
비전공자인 내가 관련 도감을 살펴보았을 때는 거북등안장멍게(Chelyosoma dofleini)와 개멍게(Halocynthia hispida)가 가장 유사하였다. 그래서 분류 전문가에게 의뢰하였더니 리테르개멍게(Halocynthia hilgendorfi ritteri)와 이가보야개멍게(Halocynthia hilgendorfi igaboja)라는 두 개의 아종을 돌멍게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표본이 확보되어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회신을 주었다. 
 

 

13-1.jpg» 바닷속의 살아있는 돌멍게 모습.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김광복 전문위원


앞으로 학계의 전문성과 일반 대중이 만나야 하는 이유가 또 생겼다. 겉면은 가죽질로 2㎜ 정도로 두껍다. 그러나 속살은 부드럽고 시원한 맛을 내어 인기가 좋다. 

거제에서 돌멍게를 먹고 나서 멍게를 먹었는데, 멍게 맛을 느끼지 못한 기억이 있다. 그만큼 돌멍게의 향과 맛이 강하다는 이야기이다. 
 
속살을 빼낸 껍데기에 술을 따라 먹다가 취해 버렸다. 껍질이 가죽처럼 두껍고 단단하며 속이 깊어 술도 많이 들어간다. 가을철에 특히 맛이 좋다.  

 

14.jpg» 돌멍게 한 접시.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김광복 전문위원
 
끈멍게는 수심 20m 정도 바닷속 바위에 붙어산다. 여러 종류의 동물이나 해조류에 의해서 덮여 있어 발견이 쉽지 않다. 몸은 긴 타원형으로 배의 뒷부분이나 왼쪽 부분이 다른 물체에 고착한다. 
 
입수공은 몸의 앞쪽 끝에 있으며, 출수공은 몸의 중앙보다 조금 앞쪽에 있다. 표면에는 불규칙한 홈과 주름이 있고, 13~20개의 크고 작은 촉수를 가지고 있다. 외피는 짙은 황갈색, 암황색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며 드물게 회백색을 띠는 개체도 있다. 안쪽 살은 옅은 노란색 또는 흰색을 띤다.
 
멍게와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모양새를 한 것으로 미더덕이 있다. 미더덕은 몸통이 굵은 곤봉 모양이고, 성숙한 개체는 긴 자루의 끝을 바닷속 고형물에 고착시키고 거꾸로 매달려 산다. 
 
몸통 길이 5~10㎝ 크기이다. 입수공과 출수공이 몸통 앞쪽 끝에 있는데, 입수공은 배쪽으로 약간 굽어 있고 출수공은 앞쪽을 향해 있다. 양 수공 가까이에 불규칙한 돌기가 많이 있다. 
 
몸통 아랫부분 또는 자루부분의 표면에는 불규칙한 주름이 있으며, 앞 부분에는 가로주름 또는 불규칙한 홈이 나 있다. 몸통 색깔은 이들이 사는 바다 밑바닥에 따라 다른데, 보통 황갈색에서 회갈색 또는 노란색을 띤다. 
 
암수한몸으로 난소는 가늘고 길며 서로 평행으로 배열한다. 정소는 작고 둥글며 난소 사이를 메우고 있다.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있는 미더덕의 종류는 미더덕(Styela clava), 두줄미더덕(Styela partita), 긴자루미더덕(Styela longipedata), 세줄미더덕(Styela esther) 그리고 주름미더덕(Styela plicata)이 있다. 그밖에 아종인 상칭미더덕(Styela clava symmetrica)은 제주도과 일본에만 서식한다. 
 
상업적인 양식은 미더덕과 일명 오만둥이라고도 부르는 주름미더덕을 주 대상으로 하고, 식용으로도 이 두 종을 이용하고 있다. <자산어보>에 음충(淫蟲)이라 기록된 동물이 있는데, 기재 내용으로 미루어 미더덕 종류인 것으로 추측된다.

 

Matthieu Sontag_800px-Styela_clava.jpg» 바다밑에 서식하는 미더덕의 모습. 사진=Matthieu Sontag, 위키미디어 코먼스 
 
우리나라의 전 연안에 분포하며 패류 양식장과 선박의 밑에 많이 부착하여 피해를 준다. 미더덕은 날로 먹기도 하고 된장찌개에 넣어 먹기도 한다. 찌개 속 미더덕을 건져 톡 터뜨리는 맛을 깨문다. 조심하라! 그 뜨거움이란…. 마산지방의 미더덕찜은 향토음식으로 유명하다. 미더덕은 요새 급격히 수요가 늘어나서 양식을 하는 곳도 있다. 

 

16.jpg» 미더덕찜과 된장찌개속 미더덕 모습. 사진=황선도
 
■ 개불 
 
개불쌍놈은 성미가 아주 고약하거나 행실이 나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개불은 개의 불알을 말하는데, 개 불알 같은 쌍놈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바다에도 개의 불알이 있어 개불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일어로 유무시(ゆむし)이다. 영어로는 페니스피쉬(penis fish)라고 하니 알 만하지 않겠나. 수산시장에서 젊은 처자들이 수조에 들어 있는 개불을 보고 민망해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러다가 막상 횟상에 올라와 권유를 가장한 강요로 한 점 먹어보고는 접시 채 움켜쥐고 먹을 만큼 생긴 것과는 다르게 맛은 일품이다. 고려 말 요승 신돈이 정력 강화제로 즐겨 먹었다고 전해오고, 한방에서는 성기능이 쇠약해져 음낭 습하거나 냄새가 날 때 개불을 권하기도 한다.

 

17-1.jpg» 수산시장에서 판매 중인 개불의 모습. 사진=황선도  
 
개불(Urechis unicinctus)은 한때 둥근 통 모양새 때문에 환형동물문으로 분류되었으나, 최근에 좌우대칭과 비체절성 등의 특징을 가지는 의충동물문으로 독립되었다. 개불 몸길이는 10~30㎝라고 하지만 수축되고 늘어나니 그 길이를 장담할 수가 없다. 
 
소시지 모양의 원통형에, 입의 앞쪽에 오므렸다 늘였다 할 수 있는 짧고 납작한 주둥이가 있다. 이 주둥이 속에 뇌가 들어 있어 다른 동물의 머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꼬리의 센털은 9~13개 있는데 항문을 에워싸고 있다. 몸 겉면에는 유두상의 많은 작은 돌기가 있다. 몸 색깔은 붉은빛을 띤 유백색 또는 소위 살색이라 보기에 더욱 민망하다.

 

18.jpg» 개불. 사진=황선도
 
암수딴몸으로 암컷과 수컷은 각각 알과 정자를 만들어 수중에서 체외수정을 한다. 연안의 모래흙 속에 유(U) 자 모양의 구멍을 파고 살며 양쪽 구멍은 둘레가 낮게 솟아올라 있다. 맛과 향이 좋아 횟감으로 인기가 있으며, 겨울(11~2월)이 제철이다.

그러고 보니, 비주류 해산물로 취급받고 있는 해삼, 멍게 그리고 개불은 소위 정력에 좋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래도 해삼, 멍게, 개불이 비주류이냐? “우리도 주류이고 싶다”는 그들의 울부짖음은 정당하다. 아니 이미 “주류”이다.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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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 미치지 않는 선까지만? 이미 넘고 있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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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11/10 10:20
  • 수정일
    2015/11/10 10:20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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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드라마 ‘송곳’ 구고신의 실제 모델,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입력 : 2015-11-09  15:25:48   노출 : 2015.11.09  16:07:37
 

최근 드라마로 제작된 웹툰 ‘송곳’의 작가 최규석은 원래 이 작품의 이름을 ‘오거나이저’로 정하려 했다. 수많은 ‘오거나이저(organizer, 노조를 조직하는 사람)’를 녹여 만든 캐릭터가 송곳의 주인공 구고신이라는 점에서 구고신의 현실 인물이 더욱 궁금해진다. 지난 4일 최 작가가 구고신을 그리며 자주 찾았다는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를 찾았다.  

고문의 옛말, 고신. 송곳에는 구고신의 고문 후유증을 나타내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공원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이용하다가 머리가 땅을 향하자 구고신은 잠시 공황상태에 빠진다. 지난 1981년 공안기관에 붙잡혀 사흘 밤낮을 거꾸로 매달려 ‘비녀꽂기’, ‘통닭구이’를 당했던 하 교수를 연상케 한다.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사진=이치열 기자
 

하 교수는 인하대 74학번으로 군부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을 했다. 하 교수에 따르면 자신은 낭만적으로 운동을 했던 학번인 반면 70년대 후반 학번들은 열심히 공부해 사상적으로 무장한 이론가들이라 자신들이 제대로 선배대접을 받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1981년 5월 공안당국이 하 교수의 후배 한명을 학림사건과 연관 짓기 위해 끌고가 고문했고, 그 후배는 하 교수의 이름을 언급했다. 하 교수도 끌려가 사흘 동안 고문을 받았다.  

당시 하 교수 역시 고문을 견디다 후배 이름을 불었고, 공범이 된 하 교수와 그의 후배가 만났다. 하 교수는 “후배가 얼마나 매를 맞았던지 손목이 멍이 들다 못해 아예 새까맣게 됐더라”고 말했다. 후배에게 물었다. “왜 하필이면 내 이름을 얘기했냐?”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며칠 고문 받다 보니 ‘하종강 선배는 지금쯤 징역가는 게 인생의 보탬이 될지 몰라’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 교수는 “날 고문 받게 했던 그 후배가 사실 사상적으로 선배였다. 그가 보기엔 내가 시시한 선배였고, 학생운동하다 노동운동으로 넘어갈 때 쯤 감옥 한 번 다녀오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이었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고문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의 후배는 고문 후유증으로 송곳에 나온 구고신처럼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다.

10여 년 전 부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그 후배를 만났을 때다. 후배가 하 교수에게 물었다. “형은 그 일(노동운동)을 20년 넘도록 계속 하고 있는 이유가 뭐요?” 하 교수는 폼 나게 대답했다. “난 아직 세계관이 바뀌지 않았거든, 철학을 바꾸지 않았거든” 후배가 슬쩍 웃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 이렇게 답했다.

   
▲ '송곳' 구고신의 실제 얼굴 모델인 송영수 씨
 

“그런 것들 때문이라면 난 운동을 벌써 포기했을 거요. 이 일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어. 조직 다 정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운동 그만둔다고 다 말해놓고. 몇 번이나 그랬지만 못 그만뒀어. 그런데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자꾸 형 생각이 나는 거야. 그때 나 때문에 고문당했던 사람들, 나 때문에 징역 산 사람들, 내가 만난 노동자들.”

'송곳'에서 구고신은 노동상담소를 운영한다. 하 교수는 “나도 조직운동을 안 해본 건 아니고 조직은 꼭 필요하지만 내가 감당하긴 어려웠다. 서로 옳다고 생각하는 노선에 대해 조직 내부에서도 성실하게 싸워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한다. 노동상담을 내 영역으로 정했더니 ‘쉬운 길 간다’며 못마땅하게 보던 후배들도 많았다”고 했다.“당시 후배의 목이 메었다”고 말하는 하 교수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시시한 선배와 자타공인 이론가 후배는 그렇게 고문으로 엮여 구고신이 됐다. 그 후배는 부산에서 환경미화원, 마을버스 기사, 사회복지사, 용역회사 파견 노동자 등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을 모아 최초로 ‘지역일반노조’를 만들었던 송영수씨다. '송곳' 구고신의 실제 얼굴 모델이다.  

홀로 노동상담(교육)의 길을 걸어 온 30여년의 시간은 박사학위는 물론 공인노무사 자격증 하나 없는 그를 더 돋보이게 한다. 그는 ‘쉬운 길’을 가장 오래 걸어온 사람이다. 그가 기억에 남는 이야기하나를 들려줬다.

“노동재해(산업재해라는 표현이 노동자가 노동과정에서 당하는 재해라는 뜻을 분명히 담지 못한다며 이렇게 표현한다)에 관심 있는 의료인 150명의 모임이 있었다. 자기소개를 하던 중 한 손에 검은 장갑을 낀 청년이 나와 ‘장갑을 벗어도 되냐’고 말했다. 손가락 다섯 개가 모두 잘려 없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순간적인 사고를 당해 부상입어 이렇게 절단되면 산재처리가 된다. 그런데 오랜 세월 노동해서 직업병 걸리는 것은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훌륭한 간호사·의사선생님, 앞으로 공장에서 일하다 폐병 걸리고 수은 중독돼 병원을 찾는 노동자가 있거든 친절하게 대해 달라’였다. 그 친구는 자신의 얘기는 하지 않았다.“

송곳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하종강 교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이런 노동자들의 얘기가 송곳에 녹아있다. 하 교수는  최규석 작가에 대해 “노동운동이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약자의 편에 서는 태도를 취하는데 약자를 도와야한다는 것은 사실 보수의 정서다. 운동의 발화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구사할 만큼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라고 했다.

하 교수는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노동운동가들은 성격은 거칠고, 눈 부릅뜬 채 강경한 어조로 회의하는 식의 격앙된 단일캐릭터”라며 “그런데 실제 이런 사람은 거의 없고, 파업을 준비하는 노동자들도 진지하고 조용하게 말한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홈에버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 영화 ‘카트’에 보면 식당에서 노조 가입원서를 돌리고 작성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 교수는 “노동운동을 해본 사람들은 그 장면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는지 떠올린다. 삼겹살 집 구석에 대여섯 명 노동자 불러놓고 ‘노조가 왜 필요한지’ 한 두 시간씩 열심히 설득하는 걸 여러 번, 주눅 든 시선으로 건배하며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가입원서를 받는다. 영화는 짧으니까 ‘카트’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송곳에서는 이런 장면들이 살아있다”고 말했다.

송곳에는 노동운동을 하자고 설득하고 조합원들이 노조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하루는 최 작가가 하 교수에게 이런 걸 물었다고 한다. “구고신이 해고당한 사람들을 설득할 때 6개월만 싸워보자고 말하는 장면을 넣으려고 하는데 이런 설득이 가능하냐” 하 교수는 종종 해고자를 설득할 때 “6개월만 당신 인생 없다고 하고 싸워보자.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입을 피해도 크지 않다. 변호사 선임하지 않으니까.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경험은 인생의 큰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꼭 입을 피해가 크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 교수는 “소송은 한번 시작하면 몇 년 동안 이어지는데 운동조직은 흩어지기도 하고 동지가 없어지기도 한다”며 “아무도 없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소송에 의지하게 되고 졌을 때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송곳의 명대사 “지는 건 안 무서워요. 졌을 때 혼자 있는 게 무섭지. 그냥 옆에 있어요. 그거면 돼요”가 연상된다.    

   
▲ jtbc 드라마 ‘송곳’
 

하 교수에 따르면 최규석 작가는 완벽주의자다. 청소노동자 장면 몇 컷을 위해 직접 새벽에 청소차에 올라 경험한 뒤 청소차를 씻는 공간은 있지만 사람 씻을 공간은 없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경찰과 노조의 대치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 경찰을 섭외해 술 한잔하며 현장의 얘기를 듣는다. 하 교수는 “'송곳'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현실에서 노동운동가들이 겪었던 이야기들”이라고 말했다.

노동개혁 “노동자들이 미칠지도 모른다”

송곳이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경영진이 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하 교수는 노동개혁의 쟁점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일단 장기근속자의 임금을 줄이는 ‘임금피크제’를 통해 절감한 임금으로 청년을 더 고용해 청년 실업을 해소한다는 주장이 있다. 두 번째는 비정규직 기간 연장 문제, 마지막은 일반해고 도입이다.”

일단 임금피크제로 청년 실업을 해결할 수 없다. 하 교수는 “경력이 많은 노동자와 청년 노동자의 호환성이 없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를 한다고 해서 청년실업이 해결될 수 없고, 이는 OECD 등 수많은 곳에서 입증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설사 이게 가능하다고 해도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국내총생산 중 노동소득의 비중이 계속 낮아지고 있는 게 큰 문제”다.

한국은 국민총소득 대비 기업소득의 비중은 약 25%로 OECD 가입국 중 1위다(2009년~2012년). 즉 노동자나 자영업자가 가진 돈에 비해 기업이 가지고 있는 돈이 세계적으로 많은 편이고 특히 2000년 이후 기업소득 비중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하 교수는 “기업이 가진 돈을 노동자 쪽으로 옮겨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연장과 일반해고 도입은 노동환경의 하향평준화다. 송곳에서 구고신은 비정규직이 왜 월급을 더 받아야 하는지 쉽게 설명한다. 우산공장과 부채공장이 있을 때 우기 땐 전자, 건기 땐 후자의 노동자가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면 두 곳을 오가는 노동자들이 생긴다. 이게 노동유연화이며, 이들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덕분에 기업은 필요한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고 수익도 늘어난다. 하지만 이렇게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을 배우거나 고용불안을 감내하며 기업에 돈을 벌어다주지만 비정규직의 월급은 더 낮다.

송곳에서 구고신은 “더 번 돈은 중간에서 깃발 들고 ‘오라 가라’ 한 놈들, 파견이나 사내하청이니 하도급이니 하는 간판 달고 이 회사 저 회사 사람 뿌리는 알선업자들이 더 먹는다”며 “이게 소작이랑 지주 중간에서 착취하던 마름이랑 뭐가 다르냐”고 말했다.   

하 교수가 지적하는 한국 비정규직 문제는 이 뿐이 아니다. 한국은 비정규직 업종에 제한이 없다. 모든 업종에 비정규직이 가능하니 사장 입장에서는 비정규직 고용을 늘릴 유인이 생기고, 파견용역도 현재 32개 직종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두 직종을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표준직업분류표에 따르면 이 두 업종에 속하는 세세분류업무는 400개가 넘는다. 현재 파견 허용 업종 32개를 400여 개로 확대하는 것이다.

일반해고 도입은 곧 노조탄압으로 이어진다. 하 교수는 “MBC는 기자, PD 등 직종을 폐지해 ‘사원’으로 만들고 노조간부들은 비보도국으로 보냈다”며 “노동개혁은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노조간부들을 저성과자로 분류해달라는 기업의 민원을 정부가 나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운동은 더 위축되지 않을까? 하 교수는 “노동자·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더 나빠질 것도 없고, 위기가 아닌 때도 없었다”며 “경영자들이 농담처럼 ‘노동자들이 미치지 않은 선까지만’이라고 하지만 이번 노동개혁이 추진되면 노동자들이 미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조에 대한 공격이 밀려들어오지만 입이라도 뻥끗하기 위해서는 노조밖에 대안이 없다.

이어 하 교수는 “지금 민주노총의 운동방식의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를 모르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며 “현재 한국에서 민주노조를 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 밖에 없다. 지금은 최규석 작가의 표현대로 ‘비판보다는 모범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생각이 달라도 모아볼 때”라며 오는 14일 있을 ‘10만 민중총궐기’를 응원했다.     

하 교수는 “민주노총이 정규직 중심이라고 쉽게 비난하기도 하는데 '송곳'이 대표적으로 정규직이 희생한 경우”라며 “일터로 가지 못한 12명은 모두 정규직”이라고 말했다. '송곳'의 배경이 된 이랜드 노조 투쟁은 지난 2007년 6월 해고통보 이후 511일 간 정규직·비정규직 연합 노조가 투쟁해 지도부 12명이 복직하지 않는 조건으로 174명이 복직하게 된 경우다.

이런 승리들이 희망이다. 하 교수는 “지금이 어려운 시기라 느껴지지 않겠지만 조금씩 바꾸고 있다”며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 당시 경기도에서는 ‘민주시민’이라는 과목을 개설할 수 있고 교과서를 만들 수 있게 돼 이 방(하 교수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모여 교과서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배우 팀 로빈스의 말을 인용했다. “진정한 변화는 워싱턴의 칵테일파티나 백악관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변화는 풀뿌리운동이다.” 그는 “자기가 속한 곳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민주시민’ 과목이 점점 많이 채택되고, 교육과정에도 반영되고, 다른 나라처럼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노동교육을 하는 날을 꿈꿨다.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사진=이치열 기자
 

짧은 인터뷰 중간에도 하 교수에게 노동 강연을 요청하는 전화가 왔다. 일정을 조정하느라 수첩을 뒤적거리며 하 교수가 진을 뺐다. 요즘도 거의 매일 강연을 하는 하 교수는 “제겐 한 두 시간 일정이지만 1년에 한번 하는 행사에 절 초대한 분들도 있으니까요”라고 했다. 서는 데가 바뀌지 않아 풍경 역시 달라지지 않았나보다. 하 교수 역시 그의 후배가 그랬듯 여전히 노동자 곁에 서 있다.

 

송곳의 배경 이랜드 파업 500일은 무엇?

송곳 주인공 이수인 실제 모델 김경욱 노조위원장의 안타까운 희생

웹툰 송곳은 수많은 노동운동가들을 취재하던 최규석 작가가 김경욱 전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을 만나면서 얼개가 잡혔고 주인공 이수인은 김경욱을 모델로 그려졌다. 김경욱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5년 간 군복무를 하다 전역한 뒤 1998년 까르푸 정규직 매니저로 입사했다. “다들 그렇듯 승진 빨리 해서 점장도 하고, 본사 진출도 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2002년 새로 부임한 프랑스인 중동점장은 송곳에서처럼 ‘직원들을 다 내보내라’고 지시했다. 당시 농산과장이던 김경욱은 고민 끝에 2003년 1월3일 노조에 가입했고, 같은해 6월부터 전체 직원 6000명 중 1%인 60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들어갔다. 임금인상도 됐고, 해고를 지시했던 지점장은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노조위원장이 됐다.

까르푸는 이랜드그룹에 인수돼 홈에버가 됐다. 파업의 빈자리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경욱은 비정규직도 노조에 가입하도록 했다. 2004년 주5일제를 이뤄냈고, 2005년에는 비정규직 노조가입을 회사와도 합의해 2006년 단체협약도 체결했다. ‘물러나도 되겠다’ 싶었을 무렵 단협을 어긴 외주화가 시작됐다.

조합원 600명은 2007년 6월30일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했다. 다음날인 7월1일은 비정규직법 시행 날이었다. ‘1박 2일 점거’로 시작됐지만 조합원들은 21일을 버티다 공권력에 의해 끌려나왔다. 김경욱은 7월10일 연행돼 구속된 뒤 10월22일 풀려났다. 이후 137일 천막농성 등 511일을 싸워 정규직이었던 지도부 12명을 제외한 174명이 일터로 돌아갔다.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해고돼 받은 퇴직금 7000만원을 투쟁비로 내놓으며 김경욱 위원장이 구속된 이후 노조를 이끌다 구속된 이남신 수석부위원장 등 지도부의 몫도 컸다. 하종강 교수에 따르면 협상 막판 한 달은 노조지도부가 174명 복직에 대해 회사와 합의했지만 ‘지도부를 버릴 수 없다’는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기간이었다.  

노동계에서는 이랜드노조 지도부의 결단을 “아름다운 희생”이라고 평가했고, 김경욱 위원장은 “안타까운 희생”이라고 표현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JTBC ‘송곳’은 노조가 성장하는 모습과 2003년 까르푸 투쟁 승리의 과정을 12화에 담아 방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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