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또 짤렸어요.

학원 일을 그만뒀어요. 정확하게는 시험 후 학원 재정비와 함께 정리됐습니다.

이상하죠? 왜 전 메이데이가 지나면 늘 사교육과 인연이 끊기는 것일까요?ㅋㅋㅋ

 

 

작년엔 너무 호되게 당하면서도 결정된 비정규직의 말로에 한동안 화가 삭을 줄 모르더니

이번엔 한번 당해봐서 그런가, 작년만큼은 아니네요.

사람의 감정이란게 반복되면 점점 무뎌지는건가 봅니다.

사실 이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이긴 하는데 말이죠..

암튼 다시 고시생으로 돌아가야 하는 생활에 솟아오르는 화를 누르고 그냥 곱게 나왔습니다.

 

원래는 6월까지만 일을 하려고 했었는데, 예상보다 한달먼저 공부를 시작하게 된 셈이예요

솔직히 다른 한편으로는 학원에서 먼저 말해줘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어요.

 

근데 자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두달정도 만나서 정이 붙기 시작한 애들 때문에요.

4월부터 얼렁뚱땅 맡겨진 고1내신 수업에 솔직히 화가 났지만, 그냥 돈의 노예로 살기로 한거 어디까지 가나보자 하고 시작했습니다. 애들한테 정이 붙을까 두려워서 이름도 말 안하고 그냥 내신준비만 했었어요. 막판엔 학원에서 요구하는 노동강도가 너무 세서 애들한테 짜증도 냈었거든요.

 

  스승의 날이라고 생각지도 못하게 선물을 준비한 애들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조금씩 풋돈을 모아서 마련한 장미꽃 두 송이와 목캔디, 음료수보다 더 감동받았던 건 학원 교무실에서 들은 스승의 노래와 애들의 마음 씀씀이였어요, 전 솔직히 아이들에게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보다 일찍 퇴근하는 저를 챙겨주려고, 수업시간에  "공부하다가 질문이 생겼는데. 언제 집에 가세요?"라고 묻는 아이들에게 속 뜻도 모르고 차갑게 말했거든요. 물어볼 게 있으면 지금하든가 아님 다음주 화요일에 하도록하고.  난 퇴근시간을 꼭 맞춰서 나갈거라구요.

결국 애들은 제가 퇴근하기 전에 쉬는시간에 달려가서 꽃이며 선물을 사들고 들어왔어요.

 

 

오늘은 마지막 수업을 하는데,

정을 주는 것도, 어느새 붙어버린 정을 떼 버리는 일도 자신이 없어서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하고 나왔거든요. '안녕'이라는 말을 할 용기가 없었어요.

그냥 당장 다가오는 시험이 걱정되고 안쓰러워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야기와

책을 많이 읽으라는 말만 강조하고 수업을 끝냈습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어떻게 알고 아이가 울먹이다가 끝내 눈물을 보이는데

어떻게 할 바를 몰라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줬습니다.

그 아이가 다음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쪽지 한 장을 건네줬는데,

아이들도 저도 이별할 준비가 안된건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이것들이 어찌 알았는지, 집으로 가는 학원차를 타기 전 교무실로 우르르 몰려와서

울먹이고 또 눈물을 흘리는데 전 감히 다독여 주지를 못했습니다.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쪽지를 읽으면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과연 이런 관심을 받아도 부끄럽지 않은가 하구요.

심히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바로 욕심이 나더라구요.

부끄럽지 않은 선생이 될 기회를 갖고 싶다는.

 

스승의 날 때 선물해주고 싶은 학교 선생님이 하나도 없다는 아이들에게

그래서 스스로 삶의 태도가 염세주의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엔 그렇지 않은 선생님도 분명히 존재하고, 너희에게도 분명히 만날 수 있는 언제가 있으니, 염세적 태도는 아직 갖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고 싶은 욕심이 났습니다.

 

근데 그걸 못해서 아쉽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앞으로가 중요하겠죠.

작년처럼 다시 공부를 시작하지만, 작년과는 분명 상황이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년엔 혼자라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밤에 이불을 덮고 잠을 잘 때면 이대로 눈을 뜨지 말고 관속에 들어간 것 처럼 편안하게 갔으면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은 좀 다를 것 같습니다. 달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언젠가 이 관심을 줄지 않는 화수분처럼 넉넉하게 돌려줄 수 있도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