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9일(금요일, 6일차) : 무이네(화이트샌듄, 레드샌듄, 피싱빌리지)

 

- 화살도 비껴간다는 땅, 무이네에서의 첫 기상. 너무 피곤해 아침 9시 경에나 눈을 떴다. 좋은 방으로 방을 옮겼다. 하루에 20달러짜리 방이다. 2층에 있는데 울산 L형이 묵었던 방의 윗층이다. 수영장과 해변이 함께 조망되는 좋은 방. 이번 여행에서 가장 비싼 방에서 하루 묵는 호사를 누리는 줄 그때는 몰랐다. 호텔에서 아침을 반미와 카페 스아 다로 때웠다. 호텔에 물어보니 오토바이 렌트를 할 수 있다 했다. 베트남 사내와 함께 오토바이를 살펴봤다. 그는 오토바이마다 값이 차이가 있다고 했다. 6달러짜리는 그저 그랬다. 새것이 눈에 띄었다. 그건 8달러란다. 완전 새 거란다. 그는 반복해서 그 점을 강조했다. 8달러짜리가 당첨됐다. 그는 내게 조심해서 타라, 이거 완전 새 거다, 라고 신신당부했다. 알았다고 빽 소리를 지르며 웃었다. 그도 웃었다. 웃더니 다시 강조한다.
 

- 호텔에서 내일(30일) 정오에 달랏으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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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옌 게스트하우스. 2층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묵었다.>

 

- 오토바이를 가지고 나와 무이네 도로를 질주했다. 빨간 신호에 멈춰섰을 때 옆에는 지프차 한 대가 멈췄다. 그 차를 모는 가이드는 어디 가냐고 물었다. 화이트 샌듄(White Sandune)에 간다고 했더니, 거기까지 가는 길이 복잡하니 자신을 따라오라 했다. 고맙다 하고 그 차를 따라갔다. 가는 길 내내 아름다웠다. 드넓은 평원이 펼쳐지는가 하면 반대편에는 남중국해의 바다가 보이고 갑자기 붉은 토양이 드러나는 곳이 보이기도 했으며 사막은 아니지만 높은 모래 언덕들이 보이기도 했고, 아름다운 묘지가 나오기도 했다. 앞에 달리던 지프차가 오른쪽 샛길 같은 곳으로 꺾어지는 게 보였다. 그 길은 비포장도로였다. 하지만 내가 탄 오토바이는 새것이기에, 그깟 비포장쯤이야 하고 샛길로 접어드는 순간, 이건 그냥 비포장도로가 아니라 바람을 타고 날아온 모래들이 군데군데 쌓여 있기도 했다. 그 순간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면서 전복됐다. 다리에서는 피가 흘렀고 어깨도 아팠다. 그렇지만 경미한 사고였다. 빨리 달리던 것도 아니었고 바닥이 아스팔트가 아니라서 제법 푹신하기도 했다. 다만 어깨가 땅에 닿을 때 돌이 있었던 것 같았다.
 

- 저 앞의 지프차가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갈수밖에 없었고 가다가 다시 한번 전복됐다. 오토바이를 빌릴 때 “이거 새 거다”라고 거듭 강조하던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 가까스로 화이트 샌듄 가까이에 도착했다. 오토바이를 키핑한다는 베트남 사람이 돈을 받았다. (5000VND). 거기에 세우고 화이트 샌듄을 향해 걸었다. 오아시스 같은 곳에는 음식을 팔고, 네 발 달린 오토바이를 빌려주는 가게가 있었다. 다들 쉬는 중인 듯했다. 거기서 스위스 노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앞서 달리던 지프차의 승객들이었다. 사막에 갔다가 오는 길인 것 같았다. 그들은 나더러 아까 보니 오토바이가 넘어지는 것 같은데 괜찮냐고 묻는다. 피가 나는 다리를 보여줬더니 혀를 끌끌 찬다. 뭐 이 정도 쯤이야, 난 괜찮은데.
 

- 그들과 헤어져 조금 걸으니 하얀 모래 사막이 펼쳐졌다. 젊은 서양 남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사막과 잘 어울리는 풍경. 사막이라니. 태어나서 사막은 처음 본다. 물론, 정말 큰 사막은 아니었지만 신기했다. 바람 속의 하얀 모래만 거르는 장치라도 있나? 무이네에는 화이트샌듄, 레드샌듄이 있고 이곳 땅의 흙은 붉다 못해 새빨갛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각각 다른 곳에 모일 수가 있는 것일까?
 

- 관광객들 중에는 화이트샌듄을 빼먹고 레드샌듄만 가는 사람들도 있다. 길이 어려워서 못 찾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곳이 더 아름답다. 호수, 연못,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 옛 로마가 진주했던 북아프리카 트리폴 리가 이런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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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샌듄에서 나와 돌아오는 길. 붉은 토양과 초록색 풀이 어우러진 무이네의 땅. 정말 흙 색깔은 빨갛고 또 빨갰다. 젊은 시절의 임옥상 작품들을 연상케 하는 찬란한 보색대비.

 

- 빨간색, 하얀색, 푸른 평원, 쭈욱 뻗은 아스팔트 도로, 무덤들, 간간이 나타나는 소떼. 무이네의 풍경을 설명하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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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샌듄에서 돌아와 레드샌듄을 찾아나섰다. 낯선 형식의 무덤들이 있고 소떼가 도로 한가운데를 점유했다. 소를 몰고 가는 아이는 긍지에 찼지만 개구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김제동은 TV에 나와 “소를 몰고 나갔다 오면 이미 어른”이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레드 샌듄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돈을 받고 슬라이딩 깔판을 대여해주던 일곱 살 소녀 ‘바’라는 아이도 이미 어른인 걸까?

 

소녀는 내게 “Do you want sliding?”하고 묻는다. 필요 없다 하니 알았다 하며 계속 따라온다. 유창한 영어로 어느 나라에서 왔냐 등 이것 저것을 묻는다. 내가 미안하지만 따라오지 마라, 난 그걸 탈 생각이 없다고 하자 울 것 같은 얼굴의 아이는 돌아섰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거절을 당해야 하는 그 아이에게 나는 미안했다. 전세계에서 온 다양한 국적, 인종, 계층, 성별,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No thank you”를 들어야 하는 일곱 살짜리 바는 김제동의 말처럼 이미 어른인 것일까. 아직 10대가 되지도 못한 나이에, 10대가 되어서도 하루하루를 거절로 채워갈 ‘바’ 그리고 그의 언니인 듯한 이름 모를 열한 살 무이네 소녀, 또 깔판을 들고 사막을 헤집고 다니는 그 많은 소녀들에게 무이네, 화살도 비껴간다는 땅은 어떤 의미일 것인가? 제1세계에서 온 이들에게 무이네는 그저 휴양지이지만 이 소녀들에게는 어떤 땅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레드 샌듄을 내려왔다. 5,000VND을 받고 오토바이를 지켜주는 아이에게 윽박지르며 장난치다 악수를 청하는 서양 중년 남자를 본 건 그때였다. 그자가 미웠다. 레드샌듄을 떠나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 레드샌듄에서 태국에서 온 커플 사진을 찍어줬다. 신혼여행을 온 것 같았다. 사막 초입까지만 들어와서 사진만 찍고 총총이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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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싱 빌리지에 도착했다. 먼저 온 싱가폴 사내가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해지는 바다는 무척 아름다웠다. 어릴 적 엄마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들의 세네카에는 인상적인 타이틀들이 적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아버지의 바다에 은빛 고기떼』(박기동 저)가 있었다. 어릴 때라 그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 제목이 주는 심상만은 오래도록 남았다. 그래서일까. 난 석양이 드리운 달력 그림 같은 바다 사진 보다 거기에 비치는 뉘엿한 햇살로 인한 은빛 물결이 더 좋았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는 시간이 더 좋았다. 이곳 피싱 빌리지의 풍경 또한 그러했다. 노동을 마친 이들이 바구니 배를 해변에 정박시키고 그물을 털고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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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이네 해변의 한 해물 레스토랑에서 새우와 조개구이를 먹었다. 코카콜라도 시켰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자본주의의 맛! 드라마 <내사랑 구미호>에서 신민아가 마신 사이다에 비할까. 이 레스토랑 주인의 아이로 보이는 애가 친구들과 함께 쥬스를 마셨다. 10살, 12살 아이들 넷. 10살짜리가 제일 키가 컸고 귀여운 12살 소년의 이름은 “메”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베트남 숫자 세는 법을 다시 복습받았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 자지러졌다. 과일 쥬스를 마시더니 자전거를 저마다 타고 총총이 사라졌다. 레스토랑 앞 펼쳐진 바다 속으로 해는 사라졌다. 그 험한 바다에 낚시를 드리운 청년 뒤로 석양이 붉었다. 그 프로필 실루엣은 아름다웠지만 난 사진을 찍지 않았다. 풍경은 흘러가는 것이었고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바다에는 험한 파도에 몸을 던진 아이들이 있었다. 엄청난 높이의 파도에도 불구하고 저만치 나아가 머리만 보이는 그 모습들. 용자들이었다. 두려움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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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로 돌아 왔다. 옆방의 서양 여자애들은 어젯밤 나간 듯했다. 어젯밤에 중국 여자애 둘이 새로 왔다. 무이네에서는 사이공과는 달리 중국 애들을 보기가 힘들다. 샤워 후 맥주 2병. 8000VND×2병=16,000VND. 밤에 혼자 한 병 더 8,000V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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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15:05 2010/12/15 15:05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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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막
    2010/12/15 15:0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역쉬 카뮬을 새로 사갖고 간 건 잘한 일이란 생각이 떠나질 않슴다. 일단 사진만 보고 있삼.하루에 너무 많이 올리면 보는 사람도 체합니데이~
  2. ll
    2011/12/25 23:0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캄보디아 살 때 오토바이 전도사고는 밥먹듯이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제껀 250씨씨 혼다 aX-1이었고.. 나름 라이더라 자부하며 험로만 달라길 고집했죠.. 유사가 흐르는 길은 많이 경험했습니다. 정말 달리기 힘든 길이예요. 발은 아예 내려놓고 끌듯이 달리는 편이.. 익숙해 질 때 까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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