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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평전

이 겨울의 끝자락, 새봄이 묻어나는데,

잔악무도한 일제타도와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위해

온몸을 바친 박헌영.

 

 

제1, 혁명의 바람

제2, 상해의 젊은 혁명가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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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 장마

 

모성애(?)가 깊이 각인된, 한편으론 이념과 가족이라는 복잡하게 엮인.

지루한 장마처럼 할머니와 외할머니, 삼촌과 외삼촌 사이의 갈등이 전쟁의 한 복판에서 이글거린다.

 

삼촌과 외삼촌은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분단구조로 정착되지만,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평화와 화해의 길로

들어선다. 구렁이을 통한 화해방식이 참으로 독특하다. 어떻게 구렁이를 넣을 생각을 했을까.

뱀과에 속한, 그러나 약간은 징그러운, 독이 없다고 한다.

 

지루한 장마는 끝났다. 장마속에 지속된 갈등은 할머니들간의 화해와 장마가 끝남과 동시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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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쏘.공, 지금내리실역은 용산참사역...

30년이 훨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린 난쏘공의 세계에 살고 있다. 아니, 그 보다 더 끔찍한 세상에 말이다.

 

나에게 재개발과 관련된 기억들은 별로 없다. 농촌에 살았지만 그다지 넉넉한 형편도 아니요, 어린 나이에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매일 농사지으며 고생하는 것은 쭉 봐와서 그런지. 약간의 의미는 알 것 같다. 피폐해지고 삶이 주눅들고 무관심과 냉대..등등

 

농사짓는 땅들이 국립복덕방(주공, 토공 등)에 수용되고 이주비를 받은 것..내가 받은 것은 아니고 부모님께서 받은 것이지만, 그것이 나의 간접적 경험이다. 첨부터 땅, 토지, 집 이런 것에 관심이 없었기에. 그저 농사짓는 땅은 계속 농사를 짓도록 하지, 뭘 한다고 아파트를 짓나 싶을 정도였다. 부족한 것도 아닌데..

 

처음, 촌으로 와서 국립복덕방에 수용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동네사람들이  은근히들 반대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일들이 진행되자 반대하는 사람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수용해야지 별 도리 없다가 우세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이 나서서 값을 더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긴 마찬가지지만 그것은 수용을 전제한 부분적 반대였다. 촌사람들의 순박함인지, 아니면 정권이 하는데로 그냥 따라가는 것이 몸에 베어서 그런지, 잘 모르지만....하여튼 싱겁게 끝났다.

 

그리고, 목격한 것은 뿔뿔이 흩어지는 마을공동체, 친지, 이웃들.... 내 경험은 세입자의 입장에서 철거민과 같은 처지는 아니었다. 재개발이지만 원주민이였던 관계로 별다른 마찰이나 갈등이 표면화되진 않았다. 물론 약간의 보상때문에 소소한 분노는 있었고 그로 인해 정든 삶터를 등진다는 것, 공동체가 해체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향수....용산이나 난쏘공처럼 격한 분노와 갈등은 아니었다.

 

요즘 사람들끼리, 모이면

촌으로 들어가서 살자며 땅, 살곳 등을 이야기한다. 주로 돈이고 땅값이고 목적에 맞는 땅을 고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장벽은 돈이다. 어쩌면 빚을 얻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 될 수도. 그러나 이러한 욕망들이 커지면, 미치고 환장하면 혹 재개발에 찬성하거나 쫒겨나는 사람들에 대해 무정해질까 두렵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땅(토지)을 소유한다는 것, 그것도 대규모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택을 소유한다는 것, 그것도 많이 가지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매달 임대료 내기도 빠듯하고, 월세내는 것도 버거운 내 삶.

돌이켜보면 내가 난쏘공이고 내가 지금 용산참사역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난, 그 중심에 있으면서 무관심했다.

1년간 내 일만 하고, 건성건성으로 용산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했는지도.

 

내일모레가 딱 1년째다.

 

2009년 1월 20일에서 2010년 1월 20일까지 용산의 역사는 그 기간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기 위해 나는 뭘 해야 할까. 용산이라는 공간, 1년이라는 시간속에 가두어선 안된다.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아울러 용산과 난쏘공은 분노와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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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조세희)

용산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리 이야기다. 난.쏘.공의 첫 소설이다.

 

수학선생이 졸업생에게 굴뚝청소를 한 두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끝나는, 그 가운데 곱추와 앉은뱅이가 공모하여, 투기업자(자본주의)를 살인방화하는 테러? 소설이다.

아니면 말고........ㅋㅋ

 

근데 진짜로, 누가 얼굴을 씻을까? 아니면 둘 중 한 아이의 얼굴이 흰 것이, 설정 자체가 잘못되었는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러한 경계나 설정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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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웃....밥줄이야기

년말년초....

 

[우리이웃, 밥줄이야기]를 붙잡고 방구석을 헤매다.

 

나에게도 그러한 편견과 눈흘김이 있었을 것.

 

나도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밥줄을 위해, 밥숟가락을 위해 위험하고, 그릇되게 보는 일들, 온갖 괄시와 천대를 받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돌이켜본다.

 

직업엔 귀하고 천함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우린 일상생활에서 귀천을 따진다. 그것도 아니 많이..

 

그동안 내안에 잠재된 선입견과 편견, 괄시와 천대가 있었다면 훌훌 털어버려야지.

 

대리운전기사,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 웨이터 등 이런 업종의 이야기도 실렸음 좋았을 것....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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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륭, 열명길과 남도1

모처럼, 그 어렵다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삶과 죽음, 철학적 분위기로 소설을 쓴....박상륭

 

모처럼만에, 두 편의 단편을 읽었다. 역시나.

 

열명길(사전말로 저승길)....시대는 잘 모르지만 하여튼 왕, 시의 대목수 등이 나오는 것으로 봐선

지금은 아닌 것 같고,

 

남도 1은 구수한 사투리에 늙은 할매씨와 어부(늙은 총각)가 나온다.

 

다시 읽거나 아니면 해설서라도 읽어야 이해되는 작품이다.

 

박상륭의 작품(소설집 열명길), 죽음의 한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 죽음에 관한 것들....남도1의 문체는 사투리라서

더더욱 무슨 말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 읽어보면, 그런대로 재미있다.

 

2009년의 수많은 '죽음'과도 관련지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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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

세상을 뒤흔드는 '공산당 선언'(지엔비....아님 그린비...잘 모르겟네?)

맞나?

 

책상위에 턱하니 올려놓고 몇쪽 보는 중.  낡어빠진 구닥다리가 아니라 요즘 더 많이 읽어야 하는 것 같아서.

다시(?) 펼치고 있다.

 

다들 망했다고 하는데 내가 거꾸로 가나!

그래도 다시 생각해볼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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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재 동지

감히 동지라고

말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지만.

 

'노동자평의회와 공산주의 길'.

 

한평생 노동자의 길과 새사회 건설, 변혁의 길에 온 몸을, 지금은

병마와 싸우고 계신다.

 

이번 토요일 출판기념회를 경북 성주에서 한다고.

오래전에 뵙고 아직 소식조차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가야겠다고 결심.

 

86세.....

 

이일재 선생님, 아니 동지

건강하시고 쾌차바랍니다. 그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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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

제목이 맞나?

그림도 잼잇고, 내용도 잼잇다. 나오는 찔찔이도 웃기고.

압권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그냥 배 깔고 뒹굴면서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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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 도가니

현기영 선생의 [누란],

공지영의 [도가니].....

 

광란의 한 시대가 지났다고 생각한 순간, 그 광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서 계속되고 있다.

 

책읽기에 딱 알맞은 계절이라, 몇날몇일을 날밤까야 하는 사과와는 달리, 그냥 쉽게 한꺼번에 쭉 읽어내렸다.

같은 시대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왠지 "내 안에 숨어있는 욕망"을 보는 듯 하다.

 

언뜻, 전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을 헤메고, 패배처럼 여기지지만 이것은 패배가 아니라 진행형이다. 희미한 불빛을 찾아서 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고문, 양극화, 혼돈, 반노동, 광란의 도가니속에서.

 

학교권력, 교회권력 등 수많은 권력과 싸우는 약자들의 모습이 그러져 있다. 비록 영웅적, 투사적이지 않더라도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는데 자칫 허무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허무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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