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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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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분위기로 숙연하다. 그런데 나에겐 추모의 분위기에 마음이라도 보태고 싶어지면서도 망설여지는 일들이 보인다. 그런 모습 때문에 여러 고민이 들어 또 이렇게 짧지 않은 글을 쓰려 한다.
 
많은 이들이 노 전 대통령은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분이고, 그래서 그의 개혁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그와 대립각을 세워오던 진보정당들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검찰조사 등으로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으나, 대통령 재직중에 정치개혁의 초석을 놓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진보신당 논평) 심지어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이런 사태가 오기까지 침묵해온 자신들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단다. 이건 웬 고해성사인가?
 
고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나누고 애도를 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재임기간 내내 그의 경제개혁은 물론이고 정치개혁에 있어서도 진정성 없음을 비판해 왔던 진보세력에서 갑자기 이런 태도로 돌변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나는 이런 태도가 ‘애도’와는 하등 상관 없는 것이라고 본다. ‘애도’라는 것은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남아 있는 다른 생명들 곁을 떠나감을 슬퍼하는 것이지,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핑계로 또는 그 죽음의 억울함에 기대어 결국엔 그가 옳았음을 인정하는 ‘고해성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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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는 지난 주말 많은 이들의 추모 분위기 속에서 조금은 다른 종류의 슬픔을 느꼈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까 봉하마을을 찾아온 조문객들이 조중동 등 언론사들의 왜곡보도를 규탄하면서 하는 말이 "당신들, 어디 노무현 같이 훌륭한 대통령을 이 나라에서 다시 만나 볼 수나 있는 줄 알아?"였다. 2004년 탄핵사태 때 그랬던 것처럼, 아니 그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비극적인 방식으로 ‘메이저 보수세력’의 희생양이 된 '마이너 보수세력' 노무현은 점점 시민들 사이에서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대안적 정치인의 최대치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나왔던 많은 시민들이 결국 4.15총선 투표장으로 가서 민주당 후보를 찍을 것을 종용받았던 것처럼,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많은 시민들도 그런 반복되는 역사의 순환 속으로 복귀할 것을 강요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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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니 이런 말이 있더라.
 
"인간 노무현의 특이성은 ('도덕성'의 붕괴라는) 이 사실을 '수치'(shame)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었다. 그만큼 그의 주이상스는 한국 사회의 평균을 넘어서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죽음은 한국 부르주아의 위선을 외설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 이택광 블로그  (http://wallflower.egloos.com/1909217)
 
내가 대학을 다녔던 딱 그 기간만큼 대통령직에 있었던 그의 정책 대부분에 반대했던 나이지만,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위 사실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자살을 그만이 가진 도드라진 자존심 때문이라 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고... (물론 성격을 파악하는 문제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진실로 간주할 수는 없지만...) 노무현이 이명박, 전두환과 대립적으로 보이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비자금 수천억원을 챙긴 놈은 떵떵거리면서 골프치러 다니고, 전과 14범에다가 성매매를 일삼는 비서관을 청와대 내에서 거느리고 있는 대통령도 고개 뻣뻣이 들고 다니는데, 그에 비하면 노무현이 뭐 그렇게 잘못을 했냐는 항변, 나올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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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무현 지지자들은 노무현을 죽인 ‘공범’들을 색출해 내 분노를 쏟아내려는 듯 하다. 그런데 한승수, 박근혜, 정몽준 등의 조문이 저지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동영의 조문이 저지된 것은 나로선 좀 이해하기 힘들었다. 정동영이 임기말의 노무현 대통령을 많이 씹기는 했지만, 정적(政敵) 수준은 아닌데 굳이 막을 필요 있나? 그런 생각이 들던 와중에 프레시안에 실린 다음 글을 보고 노무현 지지자들의 심성 밑바닥에 있는 사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대통령직에 계실 때 그 수모와 고초를 당하시고도 당당한 의지를 보이셨기에, 언제까지나 꿋꿋하시리라 믿었습니다. 진보라는 사람들이 허망한 몽상을 쫓느라 님을 공격하고 등을 돌려도 희망을 간직하시기에, 늘 저희 곁에서 등불이 되어 주실 줄만 알았습니다. (...)
대통령님을 괴롭힌 모든 인종들을 지목해서 조목조목 비난하고 싶습니다만, "원망 마라"고 하신 당부를 지금은 따르겠습니다. 검찰이 법으로 사람을 잡는 인간사냥개 노릇을 한 것이 아닌지도 지금은 따지지 않고, 얼치기 진보들의 자기방어용 결벽증이 대통령님께 얼마나 부담스러웠을지도 지금은 들춰내지 않고(...)
 
권위주의적인 표현인 ‘각하’라는 표현을 김대중 대통령때부터 쓰지 않는게 관례가 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에게 ‘각하’라는 극존칭을 써가며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노무현을 공격했던 이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여기에 맞장구를 치려는 듯, 일부 네티즌들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타살에 진보/보수를 막론한 모든 언론사와 정치세력들도 공범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단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분위기는 분명히 진보냐 보수냐, 또는 개혁이냐 수구냐 같은 이념논쟁이 아니라, ‘노무현’이냐 ‘非/反노무현’이냐 라는 대립구도를 띠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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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죽음이 현 정권의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이라는 점을 백번 인정한다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루된 이번 사건 또한 이전 정권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권력형 비리의 한 사례라는 것이다. 물론 액수로 치자면 군사정권 시절에 비자금 조성한 놈들과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분명 그들 사이에도 64억이라는 돈이 오갔다. 검찰의 강압적, 저인망식 수사의 문제점을 염두에 둔다 하더라도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피해자일 뿐이라고 하는 건 순 억지일 뿐이다.
 
또한 노무현의 도덕적 결벽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그래봤자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평균적인 도덕성이 심각하게 하향평준화된 상황이라 상대적으로 그의 도덕성이 높아보이는 것일 뿐이지만), 처음부터 그를 둘러싼 민주당 세력이 부패했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이다. 2002년 대선 때 민주당이 불법대선자금 119억여원을 모금했고, 그 중엔 삼성에서 받은 30억원도 있었다.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참여정부가 태생부터 거대 기업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 그래서 참여정부의 부패실상은 암흑 세력의 유혹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씨앗 자체가 부패의 토양에 심어졌다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참여정부’라는 이름도 삼성 구조조정 본부에서 만들어준 이름이라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개인의 카리스마적 정치 스타일과 탈권위주의적 언행 등은 대중들에게 이런 미묘한 차이를 커다란 간극인 것으로 이해되게 했으며, 이런 차이에 기반해 결집한 ‘노사모’등은 이른바 ‘3김정치’에 후속하는 패거리 정치를 만들어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터진 (그들의 상징적 존재인) 노무현의 죽음은 급기야 지금과 같은 악무한적 원한과 분노의 정치로 귀결되고 있다. 나는 바로 이것이 고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번 사건이 낳은 가장 비극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시민들의 정치적 상상력은 ‘노무현이냐 이명박이냐’하는 양자택일식 선택지 안에서 한계지워질 것이고, 이명박도 노무현도 아닌 제3의 길을 추구해 왔던 진보운동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억압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사건은 당연하게도 표면상으로는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살아있는 권력이 죽은 권력을 살해한 사건이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죽은 정치인의 유령이 산 정치를 지배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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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생명의 죽음을 앞에 두고 너무 매정한 말만 쏟아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다른 어떤 이유에서가 아니라 바로 ‘소중한 생명의 (억울한) 죽음’이기에 애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나에게도 ‘정치인 노무현’이 훌륭해 보일때가 있었다. 대통령 후보시절, 모 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 ‘반미 좀 하면 어떠냐’는 발언으로 청중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장면을 본 고3시절의 나 또한 함께 박수를 쳐 주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웹서핑 중에 발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파업중인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앞에서 행한 연설문을 보고 왠지모를 생경한 감동이 느껴졌다.
 
“여러분! 이번 여러분의 파업은 법률상 위법입니다. 그런데 법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저 산동네의 철거민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도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해서 따뜻하게 등 눕힐 수 있는 구들장이 필요하고 그 사람 자식들도 밥 먹던 상이나마 행주로 닦아 책 놓고 공부할 수 있는 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법에 위반되었다고 무허가라고 집을 뜯어버립니다. 노점상들도 그렇습니다. 입에 풀칠을 하려고 나와 있는 노점상들을 도로교통법을 걸어 목판을 차버립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집에 불이 나 다섯 가구가 몽땅 타버렸는데 피해액이 백만 원도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목판 하나는 전 재산입니다. 밥 못 먹게 하는 법, 그것은 법이 아닙니다. 
여러분! 헌법에는 노동3권을 명시해놓고 방위산업체는 안 된다고 합니다. 입만 열면 안보, 전쟁 위협을 하면서 비행기로 3분 거리에 있는 서울에 왜 63빌딩을 짓습니까? 방위산업체 쟁의는 안 된다고 하는 말은 대한민국 노동운동을 콱 밟아버려라 이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법은 정당할 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야 합니다. 또 말로만 하지 말고 악법은 국민의 손으로 철폐시켜야 합니다. 노동자가 놀면 온 세상이 멈춥니다. 그 잘났다는 대학교수, 국회의원, 사장님 전부가 뱃놀이 갔다가 물에 풍덩 빠져 죽으면 남은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세상을 꾸려 나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노동자가 모두 염병을 얻어 자빠져 버리면 우리 사회는 그날로 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 경제, 사회관계 등 모든 것을 만들 때 여러분이 만듭니까? 그게 바로 오늘 한국의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사회를 위해 우리 다함께 노력합시다.“
 
많은 이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법안을 만들어 수 많은 이들을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고, 한 평생 땅에만 의지해 정직하게 살아온 평택 대추리 농민들을 내쫓아 미군기지를 들여오고, 게다가 컴퓨터 게임하듯 소중한 생명들을 짓밟았던 미국의 이라크 학살동맹에 참여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여전히 나에게 비판의 대상일 뿐이다. 또한 나는 그가 ‘민주화된 시대에 분신이라는 낡은 투쟁 방식을 고집한다’고 비판했던, 그의 재임기간에 죽어간 수많은 열사 노동자들을 그곳에 가서 꼭 만나뵙고 그들에게 사과하길 바란다.
 
하지만 나는 ‘인간’ 노무현을 추모한다. 발톱이 빠질 정도로 고문당한 부산지역 운동권 대학생들을 변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노동자 파업에 함께 나서 이 땅에 ‘법’이 가야할 길이 어딘지를 고민했던 ‘변호사’ 노무현을 추모한다. 그런 ‘인간’ 노무현은 2009년 5월 23일 보다 훨씬 전에 죽은 것이 분명하지만, 오늘 우리가 추모해야 할 노무현은 단연 후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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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죽음을 진정 애도하는 길은 무엇일까?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이들을 고인의 무덤 앞에 제물로 갖다 바치고 ‘나야말로 진정한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다’라고 외치는 신앙고백은 올바른 애도의 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땅의 ‘정치’ 자체를 죽음으로 내모는 길이다. 모르긴 몰라도 고인은 이 땅의 ‘정치’까지 자신의 동행자로 만들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남긴 유산을 올곧게 평가하자. 그것이 진정 한 생명의 죽음을 애도하는 올바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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