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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세계화와 노동자운동(1)-중국과 아시아사회운동

태국에서 열렸던 아래 회의에 대한 이야기.(7월15~17)
Understanding Global Finance, Bulilding International Resistance
국제금융의 이해, 국제적 저항 건설

아래 태국에서 진행되었던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대한 아시아 노동자대회'에 연결된 일정. 주빌리사우스는 이 행사들을 연계해서 참가를 조직하기 위해 앞의 일정을 그렇게 잡았습니다. 방콕 출라롱콘 대학에서 진행.

이 행사는 주빌리사우스 노동자대회에 결합했던 각국의 노조들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의 노조, 농민조직 등 대중조직, 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 등을 포함하는 지역에서 온 사회운동 활동가, 연구자들이 함께했습니다.(공동주최 :Bretton Woods Project, Eurodad, Fifty Years is Enough, Focus on the Global South, Gender Action, IDEAS, Jubilee South APMDD, Solidarity Africa)
* 관련된 프로그램 소개와 일정은 이곳 링크  참조

이 회의는 Conference on A Decade After : Recovery and Adjustment since the East Asian Crisis(아시아 금융위기 10주년 토론회)라는 (주로 학술) 행사 뒤에 이어졌습니다. 회의 제목 그대로, 여러나라의 사회운동들이 금융위기 10년을 맞아서 그 동안의 금융세계화의 양상을 평가-이해하고 운동적인 대응전략을 논의하는 차원에서 기획된 것입니다. 여러가지 발제와 토론이 있었는데, 주로 생각해볼만 한 것들을 정리해봅시다.

전체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무래도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 운동단체들이 모여서 진행하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깊다는 것.(당연한가;;;) 국제적인 수준에서 자본운동이나 금융기구의 움직임, 그리고 국가간 체제에 대한 것들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이고 심화된 토론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국내에서라면 이런 것들은 몇몇 저자의 책에나 언급되거나, 좌파-현장파들은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 혹은 개량주의네 하면서 비난을 일삼을 만한 내용들이죠.(금융세계화의 양상을 강조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강조하는 것을 왜 개량주의라고 비난하는지 그 머리 속을 이해하기가 더 힘든 노릇입니다만.)

몇가지 쟁점들과 생각해야할 지점들.

중국이라는 문제 - 거대한 팽창

먼저, 전체적으로 프로그램 내내 문제가 되었던 것은 중국이라는 쟁점입니다. 앞선 글에서도 참가한 대중운동 단위 중에서 중국의 부재가 가시적이라는 것 등을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금융세계화, 따라서 미국 헤게모니 하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운명에 중국이 큰 쟁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외환(달러)보유고는 이미 1조3천억 달러가 넘어서 일본을 넘어 세계최대인 상황입니다. 이러한 거대한 달러는 외국자본들의 상당 부분이 FDI에 기반하는 데, 이 자본은 주로 미국의 재무성 채권과 미국의 해지펀드 등에 투자됩니다. 이렇게 미국으로 순환된 자본은 다시 중국에 투자되는 방식으로 순환합니다. 알려진대로, 이 순환에 있어서 미국에 투자된 외국자본에 비해서 외국에 투자된 미국자본은 두배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여러가지 입장과 해석이 있더군요. 일단 중국의 거대한 생산과 미국의 거대한 소비가 불안정한 균형에 있다는 건 대부분 동의하는 데 그 함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등등.

일부에서는 중국이 미국이 아니라 주변-반주변 국가들에 대해서 대안적인 투자를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래 다시 언급하겠지만 중국이 최근 투자를 전략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스티글리츠의 주장과도 공명할 뿐 아니라 중국 체제의 성격을 볼 때 실현가능성도 의문입니다.

포스트-워싱턴컨센서스를 제안하는 스티글리츠는 (중국만이 아니라) 각국이 외환보유고를 개도국에 투자해서 국제적인 유효수요를 확대하자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진보주의자들.. 리버럴들의 대안이라고 보면 될텐데요, 이렇게 해야 장기적으로 현재의 금융체계가 붕괴하지 않을 것이고 글로벌한 통치성도 유지될 것이라는 거죠. 이는 현재의 금융세계화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노선일 뿐 아니라, 중국 자체가 이미 대안세계를 위한 어떤 전망을 갖거나 제시할 수 없는 조건에서 그냥 "좋은 희망"일 뿐인 것같습니다.

한편, 예측에 있어서는, 중국이 "때를 기다린다"는 해석도 있습니다.(중국은 미국 시장 외에 대안적인 투자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안한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죠.)

어차피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일정한 시기에는 중국이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지랫대로 엄청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중국은 시간을 벌면서 (물론 때로는 심각한 신경전을 펼치─는 척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미국 재무성의 요구나 월스트리트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중국이 이미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고, 중국의 지배엘리트들도 그런 지향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

따라서 이러한 전망은 아리기나 백승욱 선생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미국헤게모니의 위기 이후에 미국-중국의 공동지배(스페인-제노바 공동지배와 같이)로 갈 수도 있다는 예상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군사력과 경제적 지배력이 상이한 지역에서 우세하게 되고, 세계체제는 이러한 국가들의 공동지배에 의해서만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쟁점은 아시아의 운명과 관련해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회의 내내 여러 섹션에서 쟁점이 되었을 텐데요, 그것이 사회운동, 대안세계화 운동-전망과 어떤 관련을 맺을 지는 이어지는 글에서 더 이야기해보는 것으로 하죠. 특히 중국의 외환보유고와 관련해서는 아시아 지역 차원의 대안으로 제시기되는 아세안+3(한.중.일) 차원의 양자간-다자간 통화 스왑 장치로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아시아 통화기금’(AMF) 구상과도 관련됩니다. 그것의 의미와 전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여튼, 이 쟁점은 다음 글에서 더 이야기 해보죠.

(아시아 지역의 대안적 금융체계에 대한 것은 최근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인 심상정 후보캠프에서 관련된 공약을 내면서 쟁점으로 부각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심상정 캠프의 관련된 공약에 동의하지도 않고, 반대에 가까운 입장이지만 그것을 사고하는 것 자체는 매우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의 경우, 국내적인 변혁과 동시에 남미에서 ALBA와 같은 대안적인 지역경제-금융협력체계를 제안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대안적인 무역을 시작하는데, 몇개 나라가 석유-의료서비스-콩을 교환하는 망을 만들거나 공동의 지역은행을 창설하거나 하는 것이죠. 변혁의 문제가 국내정치적인 것만 아니라 이미 최소한 지역적 수준의 대안으로 확장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그것에 대해서도 자기 입장이 필요하겠죠. 물론 심상정 후보캠프의 것은 운동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국가전략으로 보인다는 게 문제지만. 여튼 자세한 내용은 담글에서.)

중국의 노동력

이런저런 발제 중에서 강조되는 것은 또한 중국이 세계시장에 편입된 것이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 특히 중국의 거대한 노동시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인구로만 보아도 중국의 거대한 인구는 세계 노동력의 1/5 정도에 이릅니다. 이 노동력의 편입이 가지는 의미는, 중국 국내의 노동정치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죠.

중국에서 온 학자들도 발제를 했었는데, 주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중 한명은 중국의 후진타오 체제가 제시하는 전략으로서 '조화사회'를 언급하면서 노조(공회)설립의 의무화 등이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노동친화적인 체제를 통해서 사회적 불안, 계급투쟁의 촉발을 제어하겠다는 전략인데, 어느 정도로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중국의 이러한 전략이 성공한다면 중국 체제의 안정은 물론, 새로운 노동타협체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겠죠.(그러나 그 반대의 가능성이 더 커보이고 따라서 그것은 반대의 방향에서 국제적인 계급투쟁에 엄청난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국의 지금과 같은 방식의 거대한 팽창은 에너지 수요에 있어서나 환경적인 측면(특히 co2 배출, 지구온난화와 관련해서)에서 재앙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팽창이 어떤 지점까지 가능할지는 알수는 없지만, 어느 시점에 긴급한 문제로 부각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의미의 "정치적인" 측면은 물론이려니와생산과  에너지 사용에 있어서 기술과 이것의 사회적 조직화와 같은 것들이 정치적 문제로 제기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아프리카

21세기 들어서 중국은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를 크게 확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진타오가 아프리카를 순방하면서 외채탕감, ODA 확대, (주로 에너지 관련 국영기업들의) 직접투자 등을 약속했죠. 이러한 중국의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지원 확대는 이제 미국에 비슷한 규모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중국이 장기적으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로 나이지리아나 앙골라 등 산유국에 대한 지원이 중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데, 아프리카는 미국 헤게모니가 배제한 지역이기 때문이죠. 아프리카는 주로 금융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들에게는 변변한 주식시장, 채권시장도 없는 버려진 곳입니다. 전쟁이 나든 인종청소에 학살이 벌어지든 버려두는 것이죠. 그런데 중국이 이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미국의 입장도 애매한 것같습니다. 여전히 금융적인 투자가치는 없지만 석유자원이 문제인 것이죠.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이 지역의 사회운동도 (서로 다른 이유로) 중국에 더 친화적이고 기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일단,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국가들처럼 IMF 협약,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미국, 유럽과 국제금융자본들은 IMF 협약을 통해서 이들 나라의 물, 전기 등의 필수서비스와 에너지, 광물자원을 체계적으로 약탈해왔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러한 조건을 달고 있지 않죠. (이 점은 금융세계화 과정에서 국제금융기구나 초국적 금융자본과 관련된 비판이 집중되어 왔던 지점이라는 점에서, 중국에 대해서 일단 여기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아프리카의 사회운동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진보적인 입장에서 인권, 정치 민주화와 같은 쟁점에서 조건을 달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는 것같습니다. 최악의 독재국가들에 대해서도 중국이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지역 차원의 대안적인 지역적 협력체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도 우회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중국이 서구의 이러한 명분의 개입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별로 가능할 것같지는 않지만 말이죠.

또 하나는 중국이 이렇게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외채 등의 방식으로) 자국 자본의 우회적인 침투를 위해 활용했던 서구와는 달리 (기술 이전 등을 통해서) 아프리카 각국의 내재적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한다는 문제제기도 있었습니다. 역시 중국 정부의 입장이 문제일 텐데요, 여기에 중국은 국내 정치에 있어서 '조화사회'와 마찬가지로 외교에 있어서 '조화세계'라는 전망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 역시 같은 만큼의 한계를 가질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국내적으로 발전주의 정책이 중시되고 아프리카 관계에서도 에너지자원이 중시될 것이라는 점.

최근 미국은 이제까지 유럽사령부가 관장하던 아프리카의 군사작전을 총괄하기 위해한 별도 기구로 아프리카사령부(아프리콤)를 신설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각국들이 미군의 주둔에 부담을 느끼면서 군사기지 설치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자, 일단은 군사기지 없는 사령부 형태로 추진하는 것도 검토되는 것같습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을 비교하게 하는데, 앞으로도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중국, 성공적인 발전국가?

 

발제 중에는, 외환위기 이후의 '쇼크요법'에 대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주로 IMF가 "금융위기를 불러온 경제의 구조조정을 촉진해야한다"는 명분으로 강요하는 협약에 의해서 이루어지죠. 대표적이고 극적인 케이스는 오히려 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에 적용된 프로그램들이었습니다. 급격한 사유화와 공공부문의 붕괴.. 이어지는 자신시장의 창출과 급격한 빈곤화, 성장동력의 소실 등이 결과였죠. 물론 IMF는 끝까지 밀고 나갑니다만.

 

문제는 그게 아니고, 중국이 이에 비해서 일종의 '연착륙' 모델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더라는 겁니다.(물론 동의하지 않는 토론자들도 많죠.) 베트남 역시 비슷한 케이스로 언급되는데, 발제 중에 언급되는 지표만 봐도 이들의 성장속도는 엄청나더군요. '전성기'의 남한, 대만 등도 앞지르는 속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경제성장은 '질서있는 개방' 혹은 '연착륙'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미 이들 국가가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추진한 80년대말-90년대초 이전에도 민족주의적 발전국가였다는 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중국은 문화혁명의 종료 이후 덩샤오핑 시기부터 그랬고, 베트남도 꾸준히 정책을 전환해왔죠. 그 이전의 역사를 보는데 있어서도, 그것이 본질적으로 다른 제3세계 개도국과 발전주의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세계시장에 재통합되는 과정에서 직업적으로 잘 훈련/교육되었을 뿐 아니라 국가-당의 지시에 순응적이고 규율있는 노동자들은 국제적인 생산 재배치에 아주 매력적인 공간이 되었던 것이죠.

 

결국 혁명 몇십년 만에 세계시장에 복귀하면서 애초에 혁명가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적 성공을 만들어낸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북한에 있어서도 북한 엘리트들이나 미국-남한의 리버럴들은 이런 방향의 구상을 가질 텐데요.) 그런 점에서는 쿠바가 이례적인데, 지역적인 정세의 차이(아시아와 남미)와 결합해서 정말로 다른 효과들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망도 아마 다를 수 있겠죠.(이 대목은 좀 우울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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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주로 중국 이야기까지만 해야할 것같군요. 국제금융체계 등과 관련된 여러 흥미로운 쟁점에도 중국이 연관되기는 하는데, 그건 그 쟁점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중국이 쟁점이 되는 분위기가, 묘한 점이 느껴지더라는 겁니다. 주로 서구 쪽에서 온 참가자들에게 중국은 뭔가 공포스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같고, 아프리카에는 어떤 희망, 아시아 참가자들에게는 우려와 기대의 양가감정 같은 것. 사회운동에 있어서도 민족국가의 지정학적 운명이 미묘하게 인식에 반영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냥 느낌일 뿐인지 실제로 그런 것인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한가지 에피소드. 태국의 비디오샵 같은 곳에는 한국의 드라마가 많이 깔려 있습니다. 인기가 있다는 것을 보고 느낄 수가 있는데요, 공중파에서도 주몽과 같은 드라마를 해주고 있는 걸 봤습니다. 필리핀 사람과도 이야기를 하다보니 주몽이 인기리에 방송 중이라고 합니다. 너무 민족적인 판타지라 해외 판매는 글렀겠구나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동남아 TV시장에서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도 느끼게 됐죠. 그런데 이들 나라에서 주몽과 같이 중국과 대립하는 드라마가 수용되는 맥락은 뭘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중국과는 어떤 식으로든 갈등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아시아 각 민족들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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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중국에 대해서는 좀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아래 연재가 도움이 됩니다.(백승욱, 사회진보연대 기관지 연재)

[{사회진보연대} 기획연재] 신자유주의 시대 중국 (2002년)

[연재순서]
1. 흔들리는 중국 (1·2월 합본호)
2. 외부의 자극으로 내부의 구조조정을: WTO 가입과 중국의 미래 (3월호)
3. 국유기업 개혁과 중국의 노동자 (4월호)
4. 黑猫白猫: 외국인 직접투자와 대외개방 (6월호)
5. 마오쩌뚱의 유령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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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칸, 남한정부의 무능과 기만

세 토막의 글
1
. 아프칸 납치 사태에서 남한 정부의 무능과 기만

2. 아프칸에서의 무능과 비교되는 뉴코아-이랜드에서의 신속한 대응
3. 피해자들은 뒤에 숨는 보수-근본주의 기독교 교회에 대한 비판
 
1.
오늘 두 번째 인질이 살해되고 청와대, 외통부의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정부의 대응은 하나하나가 모두 무능과 기만으로 점철되어 있다.

탈레반의 포로교환이라는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오늘 '공식확인'하는 등 사태가 진행될 때 마다 '확인 중'(즉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협상에서 무능을 감추기 위한 수사도 대거 동원하는 데 언론에는 협상-타협 가능성을 흘리는 한편, 오늘은 "책임을 묻겠다"는 엄포까지. 남한 정부가 탈레반에 책임을 물어? 지나가는 미국 개가 웃을 노릇이다. 아프칸 괴뢰 '정부'에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책임전가도 시작이지만 남한 정부 자신의 무능을 드러낼 뿐이다. 그런 과정에서도 미국의 책임을 배제해주는 '감동적인' 충성.

아프칸 '정부'는 물론이지만 미국도 공식적으로 '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마치 故김선일 씨 납치 때 노무현이 '철군은 없다'고 곧장 대응하면서 살해를 재촉한 것을 반복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납치 사건은 탈레반은 물론 미국도 전혀 손해볼 것이 없는 판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번 사태의 해결에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 정부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심지어는 피랍자 가족들까지 미국대사관에 '호소'하러 가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현재 상태에서 해결할 의지가 없는데 그것은 '테러범과 협상없다'는 공허한 원칙 때문이 아니다. (이미 곳곳의 납치 사건에서 각국 정부들의 협상은 일반적인 것이다. 미국도 선례가 있으나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현재의 갈등, 탈레반의 잔인성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럼 탈레반은? 역시, 자신들의 건재를 전세계에 위성 TV로 매일 생중계하고 있는 마당에 아쉬울 것이 없다. 미국과 탈레반, 양 극단주의자들의 이해가 이렇게 일치하는 사건인데다가, 이들이 서태 해결의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마당에 남한 정부의 무능은 구조적으로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문제는 남한 정부가 이러한 자신의 무능에 대해서 책임지지는 않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기만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한 정부의 무능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충실한 동맹국으로 복무해온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독자적인 정치적 결정은 실종되고 미국의 전쟁전략이 곧 남한 정부의 결정사항이 되는 상황에서 남한 정부가 할 수 있는 거의 없다. 역설적으로, 남한정부는 가장 미국에 충실했기 때문에 가장 무능하다는  점. 지금의 무능은 아프칸에서의 무능이라기보다 미국에 대한 무능이라는 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청와대가 말한 정치적 수단의 한계). 따라서 정부가 기자회견을 통해서 한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능이 노무현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는 데 이르면 정부의 태도는 ''기만''이 된다. 자기 나라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지도 못하고, 그것의 해결을 요구하지도 못하는 전적인 무능. 더구나 자신의 무능을 폭로하는 자리에서조차 미국의 책임을 끝까지 배제하는 태도는 정부의 기만이 매우 "의식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에서 사태의 해결을 위해 미국이 나서야한다는 진단, 주장은 정당하다. 그러한 요구가 이 사태의 원인은 물론 해결되지 않는 원인 또한 미국의 전쟁에 있다는 것과 남한 정부의 '묻지마 한미동맹'에 있다는 점을 폭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는 미국의 무책임한 반응들 목록/한겨레신문)


2. 
두번째 인질이 살해되면서 곧장 정부가 한 일은 뉴코아 농성장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다. 필수공익사업장도 아닌 민간사업장, 국가기간산업도 아닌 사업장에 공권력을 두번이나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그 '신속한 집행'도 더 뚜렷하다.

남한 정부는 아프칸에서의 완전한 무능을 국내에서 '만회'라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아프칸 피랍자들은 구할 수 없지만 비정규직을 탄압하는 이랜드-뉴코아 악질자본은 구해줄 수 있다는 뜻일까?

정부가 '인질 살해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황당한 공문구라는 것을 아는 대중들은, 그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전혀 '공문구'를 날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탈레반에대해서는 (자신이 불가능하고 무능하기 때문에) 무력사용을 배제하지만,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그것을 "당장" 사용한다. 이것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전혀 해결할 능력이 없는, 오직 쉽게 사용가능한 폭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남한 정부의 무능을 더욱 부각시킨다.

3.
마지막으로 한가지.
나는 이번 사태의 핵심적인 원인들을 명확히하는 것이 중요하고 특히 지금 시점에서는 미국의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사태해결을 위해 압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정세적 개입이다. 따라서 피해자들이 아프칸에 간 것이 책임이라는 식(여러가지 버전의 피해자 책임론)으로, 정부의 책임을 면제하고 정부의 무능을 실천적으로 비호하는 입장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다소 논쟁적으로 말해보자.
피해자들에게 어떤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히 부당하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남한 보수 기독교회의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일까? 나는 피해자들과 보수 기독교회(라는 제도와 사회적 세력)은 구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피랍자들이 살아야하는 이유는 그들의 아프칸에서의 '단기선교' 혹은 '봉사'활동이 정당하거나 부당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그것과 무관하게 인권으로서 정당화되어야한다.

샘물교회는 기독교 우익 NGO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기독교 뉴라이트 등과 관계를 가져왔다. 이들은 신지호 등이 주도하는 뉴라이트 단체인 '자유주의연대'와 통합을 논의하기도 했다. 강남과 신도시 중산층을 기반으로 하는 신흥 대형교회들은 적극적으로 뉴라이트 운동을 통해 정치화되고 있다. 미국에 대해 비판의식이 전무한 것은 시청앞 성조기 집회를 주도하는 선발대형교회와 다를 바 없다.

이들 기독교 보수주의 진영, 복음주의이자 근본주의자들인 이들의 행태는 비판적으로 보아야한다. 이들이 공격적인 '해외선교'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고 이는 국내에서의 선교가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측면도 작용한다. 그리고 이들이 아프칸과 같은 곳에서 하는 '선교'의 본질이 무엇인가?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전쟁 이후에 남한에서 '선교'하면서 반공발전주의 기독교 교회를 '부흥'시킨 것과 같은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의 유기적인 일부, CNN과 더불어 이데올로기 전쟁의 일부라고 할 만하다.

따라서 오히려 보수주의 기독교가 수행하는 '해외 선교활동''에 대한 비판은 제기될 필요가 있으며 피랍자들은 그것과 무관하게 살아 돌아와야한다는 점을 요구해야하지 않을까? 이런 비판이 없는 상황에서 사태의 원인의 일부인 보수주의 기독교 교회들은 '피해자 책임론은 안된다'는 여론, 혹은 더 정확히는 '피랍 피해당사자'  뒤에 숨어서 자신들도 '피해자'인 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보수 기독교 교회는 오히려 23명을 사지로 내몬 가해자의 유기적 일부다. 이들은 지금도 일말의 회계와 반성이 없다. 한기총에서 어떤 반성적인 입장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대중들의 이들 보수주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숨길 수 없을 정도인데, 이런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납치피해자=보수 기독교 교회"로 더욱 강하게 등치되고 있다. 또 이들은 '반-기독교 근본주의'라고 할만큼 극단적인 (상징적) 폭력을 자행하고 있고, 그 성격에 상관없이 모든 기독교 교회와 신자들를 겨냥하고 있다. 구별할 수 있는 비판, 책임묻기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생기는 비극중 하나이다.

지금 시점에서 이미 그러한 은폐구도, 등치구조가 공고해진 상황에서 다른 비판이 실제로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늦어서 이제는 그것을 대중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실천적으로는 너무 위험하고 불가능한 문제제기라고 해도, 사태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고에서 그것을 억압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동행해서 그것을 지지하는 미국의 근본주의-복음주의 기독교, 그리고 여기에 동조하는 남한의 근본주의-복음주의 기독교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테러와의 전쟁"에 계속 복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음 비극을 또 다른 방식으로 예고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점에서 기독교 선교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주장들에 대해서 그 순진함?을 의심한다. 예를 들어 "다함께"는 "근본적인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제국주의적 침략과 억압"이라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 모두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관용적인 이들이 기독교 근본주의에도 역시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까. 그러나 그 제국주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그런 극단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인식해야할 것이다. 제국주의 지배 세계체제의 유기적 일부인 종교적 근본주의에게만 면죄부를 주는 방식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모든 지배체제와 같이 제국주의 역시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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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문화대혁명


문화대혁명 - 중국 현대사의 트라우마
백승욱 지음 / 살림

 

문화대혁명의 과정과 쟁점들에 관한 책. 얇은 책이지만, 흥미진진하다. 핵심적인 내용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책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모리스 마이스너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를 함께 보면 도움이 된다.(전반적인 과정에 대한 서술은 두 책이 보완적이다. 백승욱 선생의  이 책은 문혁의 '혁명적 주체'들인 조반파 내부의 지형과 운동에 대해서 더 자세히 언급한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문혁이 남긴 쟁점들은 정리해서 제시한다.

당장 현재적으로, 문혁의 기억은 자본주의적 모순이 첨예하게 부활하는 중국에서, 노동자들의 저항 속에서 불현듯 출현하고, 따라서 운동을 과잉-과소결정한다.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서 문혁 과정에서 제기된 쟁점들, 문혁이 남긴 쟁점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사고를--그리고 정치적 시도/실험들을-- 멈추지 말 것'을 요구한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로 후퇴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왜? 당내의 주자파(走資派) 때문에? 혹은 상부구조 변혁의 지체 때문에? 그렇다면 토대가 문제? 그럼 토대는 무엇인가? 이데올로기는 상부구조인가?라는 문제들. 그리고 자본주의 세계체계 속에서 민족국가 단위의 사회주의 체제가 부딪히는 곤란, 당을 관통한 문혁, 그리고 당이라는 쟁점, 대중과 당의 관계라는 쟁점. 그리고 대중의 급진적 진출과정에서 '대중의 공포'라는 쟁점.

 

하나하나가 단행본 책으로 나와도 모자를 매우 중요한 쟁점들이다. 이런 각각의 쟁점들을 문혁을 통해서 어떻게 사고할 수 있는지 저자가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하게 하는 책이다. 그런 연구가 있기 전까지 당분간은 몇몇 다른 이론들을 우회할 수밖에 없겠지만. (여튼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를 다시 보는 것은 도움이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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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된 "문혁16조"(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정/1966.8.8)는 문혁의 핵심지침이 되는 기본문건이다. 마오쩌뚱 지시로 천보다, 왕리 등이 초고를 작성한 후 수차례 수정을 거쳐 통과된다.

 

지금 읽어보아도 "문혁16조"에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다시 "혁명"을 하자는 요구가 담겨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내용에 대한 이론적, 역사적 평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미 국가권력을 장악한 공산주의자들이 그것을 다시 혁명하자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야한다. 국가권력은 커녕 대중운동조직의 집행기구를 '개혁'하지도 못하고, 권력근처에조차 가보지 못했으면서도 '개혁'적 요구에도 주춤거리는 우리 운동들을 현재를 비추어보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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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곳에서 돌아본 노동자운동(2)

아래 포스트에 이어지는 글.

7월 중순 며칠간 태국에서 진행된 회의들에 참석하면서 생각한 것들. 두번째로.

Asian Labor Assembly Privatization Of Essential Service (Focus on Water and Power)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대한 아시아 노동자 회의( 물과 전력)

 

각국 운동이 가지는 인식의 편차

 

회의 과정에서 느낀 것은 각국의 대중 운동의 발전정도에 따라서 활동가들의 사고도 제한된다는 점입니다. 앞선 포스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발전정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나라 운동이 처한 정세--국가기구의 역량, 정치제도, 종교 등등--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겠죠. 저나 남한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마치 대단히 '학술적인' 논쟁으로 보이는 것조차도 그 나라의 대중운동의 발전이 영향을 주는 모습들이 느껴지더군요. 그것은 이론(+사상)이 대중운동과 맺는 상호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이론의 입장에서는 대중운동들과 교통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할 수도 있겠죠. ("지성의 명철함과 지성에 대한 대중운동들의 우위" ^^;)
 
굳이 '발전정도 '라는 말을 쓴다면, 자신들의 운동을 얼마나 보편적인 원칙에 따라서, 국제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기준이 가능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동남아 한 나라의 활동가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빌린 '외채'는 정당하므로 상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발언으로 다른 참가자들이 뜨아,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나라의 참가자는 WTO, FTA 에 대한 토론에서 "물과 에너지를 여기서 제외하도록 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죠. 그러나 문제는 WTO, FTA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되어야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연관된 부문에만 집중하는 태도는 설사 연대가  확장되어도 그것이 여전히 다른 '부문'과의 (어떤 점에서는 실용적인) 연대로 사고될 뿐, 전체적으로 이들 자유무역기구-제도를 폐기하는 투쟁으로 나가지 않는 문제를 발생시키게 됩니다.

 

국제금융기구는 ILO 노동기준을 지켜라!?

 

한 발제에서 PSI(국제공공노련)는 국제금융기구(WB의 월포위츠까지)에 대한 로비를 통해서 노동친화적인 투자를 요구해야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하더군요. 발제 제목도 CLS Policies at International Finance Institutions 입니다. (CLS = Core Labour Standards)

 

프리젠테이션 마지막에는 "자랑스럽게" 이런 내용까지. (ITUC는 ICFTU가 전환한 국제노총)
Pres. Wolfowitz announced in meeting with ITUC (Dec 06):
All WB infrastructure projects in future will come under the new (CLS) requirements, which are aimed at ensuring workers‘ rights to trade union organisation and collective bargaining, freedom from discrimination in the workplace and the elimination of child labour and forced labour.”

 

월포위츠의 이 말을 보니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픽~ 나오더군요.(하다못해 스티글리츠도 아니고;;) 이런 걸 보면, 국제노총이나 국제산별노련들이 하는 활동이 잘 드러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총회장 만나서 로비하는 셈인데.. 이들이 노동조합(상급단체)인 이상 국제적 연대와 투쟁을 조직하는 것보다는 ILO나 국제금융기구 상대로 로비하는 데 열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발제에서는 ILO 기준에 대한 일종의 "교육"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조항들을 국내 노동정치에 활용하라는 취지였겠죠.

 

이 발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발언이 많았습니다. 인도, 파키스탄(참가자들이 주로 공산당 당원들) 활동가들의 비판도 있었죠.  국제금융기구에 대하여 노동권보장 요구는 그들의 정당성을 보완해줄 뿐입니다. WTO 각료회담에 '개입'하려고 하는 국제노총이나 신자유주의적인 NGO들 입장의 연장선인 셈인데, 한심한 일이죠.

 

그러나 다른 조건을 사고할 필요성

 

한편, 이런 점들에도 불구하고 '다른 조건'들을 역시 고려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부분도 있습니다. PSI가 몰두하는 ILO 조약에 대한 제 비판에 대해서는 필리핀 좌파 활동가들은 동의하지 않더군요. 국내 투쟁에서 노동권을 쟁취하는 데 있어서 ILO 조약이 도움이 된다는 입장입니다. (PSI는 앞서 언급한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CLS준수요구의 연장선에서 ILO와의 관계를 보는 입장이라, 맥락으로보면 문제가 있다는 점을 비판했던 건데;;)

 

한편으로, PSI의 ILO 조약에 대한 입장과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서는 국제적 사회적 합의주의로 비판할 수 있으나 필리핀에서는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입장일 수 있는 것이죠. 한국의 경우에도 91년 ILO 공대위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고, 지금도 여러가지 쟁점에서 ILO 협약도 비준하지 않는 정부를 공격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운동의 국내적 조건과 경험이 국제적인 입장에도 반영되는 데, 이것이 상이한 차이로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지반을 확인할 수 있는 합의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구체화되는 것이 필요할 것같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각국 노동자운동이 처한 정세적 조건을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겠죠.(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 남한 노동운동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논쟁의 과잉이 사고에 영향을 주는 셈인데, ILO 조약과 관련해서는 그런 논쟁구도로만은 이해할 수 없다는 점.

 

주변-반주변 국가에서 사유화의 주체들

 

그 외에도 이 회의에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국제금융기구들IFIs이나 수출신용기관들ECA, 중국이나 일본, 남한의 공기업들, 국제적인 컨설팅 기업들까지 여러 주체들이 주변-반주변 국가들의 공공부문 사유화에 개입하고 있더군요.(물론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주체는 각 국가들이고, 그래서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투쟁은 이들 국가에 대한 것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컨설팅 기업들 중에는 남한에 합작형태 등으로 진출한 것들도 있는데요, 노무현 정권이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서비스시장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주로 전제하는 것이 이런 금융과 결합된 컨설팅 기업들이라는 점을 상기할 수있습니다. 자본의 초민족화에 적극적인 행위자가 되겠다는, '금융화된 발전전략'이 노무현 정권의 한미FTA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부분.

 

특히 중국, 일본, 남한의 공기업들이 초국적인 투자자로 등장하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국적인 차원에서 공기업의 사유화를 막는다고 하더라도, 해당 기업에 대한 주식시장 상장-해외투자의 과정에서 사실상 초민족 자본으로 발전해가는 것에 대한 반대가 필요합니다. 특히 남한의 경우 수자원공사,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 등이 이런 방식으로 '진출'하는 데 노조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판단의 문제일 수도 있죠.(민족주의와 경제주의) 그러나 이들 공기업의 사유화를 반대했다면 해외'진출'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물론, 이들이 투자한 나라의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것은 중국입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이어진 IMF외환위기 10년 토론회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에 거기서 다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중국의 국영기업들이 초민족적 투자자로 등장한다는 점은 중국과 아시아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중국의 노동자운동일텐데요, 이번 주빌리사우스 노동자회의에 참석한 나라들의 지정학적 분포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참가국들을 나열해보면 남한-홍콩-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인도-파키스탄-스리랑카 등등인데, 동, 동남, 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을 둘러싼 나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간이 빠져있다는 점이 매우 가시적이라는 것이죠. 중국의 자율적인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아시아 전체(물론 그보다는 세계 전체^^;) 노동자운동에 중요한 문제라는 점.

 

남한 노동자운동에서 국제주의의 취약성

 

이번 회의를 보면서 계속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남한 노동자운동에게 '국제주의' 혹은 '국제연대'는 무엇일까하는 점이었습니다. 분임토론에서는 공동행동전략도 논의되었는데, 공동행동이 결의되면 실행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동행동'이 국제기구의 회의에 대응하는 이벤트성 투쟁이거나 혹은 참가자들도 조직적으로 책임지지 못하는 아이디어성 발언--일단 아이디어 지르고 보는 무책임한 NGO들은 이해가 안됩니다--이 많아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여튼)

 

예를 들어서 이번 참가단의 단장이었던 이호동 전해투 위원장이 속한 발전노조. 활동가들도 많고 사유화 반대투쟁도 열심히했던 훌륭한 조직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국제연대는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어서 어려운 점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회의에 참가하거나 국제연대사업에 대해서 '외유' 혹은 '사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물론 어용노조들이 노조 간부들 '해외연수'랍시고 놀러가는 행태에 대한 비판 때문인데, 그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거나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

 

이런 현상은 이른바 '현장주의'가 사업장 경제주의와 연결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활동을 경시하기 때문일 겁니다. 국내에서도 자기 기업밖에 있는 사업장, 노조가 아닌 사회운동과의 연대에 인색한 것이 남한의 전투적 (대기업의) 기업별 노조들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외국의 노동자운동-사회운동과의 연대는 정말 "딴나라 이야기"인 것이죠. 사업장 내 문제, 국내 문제에 몰두하고 국제적 운동에 대해서는 맹목인 건데요, '국제연대'는 오직 투쟁에 대해서 외국의 지원을 요구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그에 걸맞는 국제연대를 추구하지는 않는 것이죠. 민주노총 정도 되면 국제연대에 나름의 기여를 하고,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네팔과 같이 자율적인 노동자운동이 성장하는 곳의 활동가들에게 지원도 할 수 있을 텐데, 제기하기도 힘든 분위기입니다.

 

좌파의 경우에도 이런 점에서 보면 현장주의에 불과하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노조 현장파-좌파라고 해도 국제사업담당자나 일부 활동가를 제외하면 국제주의적 사고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것같습니다. 이전 어떤 글에서 남한의 좌파가 국제주의에 가깝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지만,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같습니다. 좌파는 反-민족주의에 불과한데 그것은 아직 국제주의자는 아닌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국제주의를 좌파가 수용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좌파들이 민족주의 반대를 쉬운 알리바이로 가지면서, 국제주의를 실제로는 수용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더 "막대를 구부리는" 비판도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국제주의라고 해서, 곧장 국제금융기구, 자유무역제도들에 대한 투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국제주의적인 접근이라고 해서 사유화반대 투쟁에 있어서도 곧장 그런 초국적 기구들을 대상으로 투쟁해야하는 것은 아닌데, 그 나라의 국가를 상대로 투쟁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가장 유효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남한 국가가 아닌 동남아 각 나라들의 경우에는 다를 수도 있을 겁니다. 남한은 국가기구가 강력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투쟁이 중요할 수 있지만, 국가자체가 매우 취약한 필리핀 같은 경우에는 국제기구들을 직접 상대해야할 수 있죠. 이 점은 남한에서 98년, IMF에 대한 직접적인 투쟁이 촉발되지 않았던 부분적인 이유일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운동주체들의 신자유주의와 국제금융기구들에 대한 몰인식에 기반한 것이 더 컷다고 생각되지만 말이죠.)

 

그밖에.

 

이 회의는 애초 물과 에너지에서 출발한 회의이지만 투쟁 목표는 계속 확장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투쟁, 자유무역체제에 대한 투쟁 등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제도들에 대한 투쟁으로 논의가 확장됩니다. 그 때문에 논점이 흐려진다는 불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그것은 어쩔 수 없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습니다.

 

WTO, FTA 반대 투쟁에 대한 워크샵만 보더라도, 물, 에너지 사유화를 반대하는 것으로만 사고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자유무역 기구-제도에 반대하는 것으로 논의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참가자들의 사고과 경험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물, 에너지 사유화는 이러한 자유무역 기구-제도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일 것이죠.

 

회의 마지막 참가자 총회에서는 아시아 지역의 노동자운동-사회운동의 네트워크 형태의 연대조직을 건설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Campagin for People's Rights to Natural Resorce and Essential Service(자연자원과 필수서비스에 대한 민중의 권리 운둥)이라는 이름이죠. 앞선 글에서 썼던 것처럼 이 회의를 조직한 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의 활동이 의미있는 것은, 이렇게 국제적인 수준에서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를 (말로 만이 아니라) 실제도 조직한다는 점입니다.

 

지역별 운영위원을 호선할 때에는 반드시 여성을 포함시키는 것도 인상적.(아마 이런 방식이 국제 사회운동에서는 일반적인 것같더군요) 지역(남-동남-동 아시아)별로 2인씩 배정한 운영위원에 지역별 1인을 여성으로 했으니 1/2을 여성으로 배정한 셈이죠. 할당제와 관련한 여러 쟁점이 있기는 하지만, 인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다음 포스트는 이어진 회의 "Understanding Global Finance, Bulilding International Resistance "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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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곳에서 돌아본 노동자운동(1)

7월 중순 며칠간 태국에서 진행된 회의들에 참석하면서 생각한 것들.

 

아래 일정은 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에서 주최-조직한 필수서비스의 사유화와 관련된 노동조합의 회의였습니다. 주빌리사우스는 외채탕감운동단체이지만 중심부 국가들이 외채를 이용해 주변-반주변 국가들을 착취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비판과 반대운동을 전개해왔죠. 집행국도 (필리핀 사람들인데) 다른 국제NGO에 비해서 매우 건강합니다.

 

특히 외채를 통해 주변-반주변을 착취하는 유력한 방식이 필수서비스(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공공서비스)의 사유화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반대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당 부문에 노동조합들을 직접 조직하려는 시도가 이번 회의였던 셈이죠. 주빌리사우스가 건강하다고 하는 것은, 집행국의 정치적 성향(주로 필리핀의 비공산당좌파들이 함께 하더군요) 때문만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방식의 운동을 국제적인 수준에서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Asian Labor Assembly Privatization Of Essential Service (Focus on Water and Power)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대한 아시아 노동자 회의( 물과 전력)

 

국가단위를 넘어선 국제적-지역적인 접근

 

언급한대로 이 회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수서비스 산업의 사유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프로그램은 각 국에서 진행되는 필수서비스의 사유화가 국내적인 사안이라기 보다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집중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서 필수서비스의 사유화 문제를 각 나라 사회운동의 국내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죠.


이런 점은 남한의 공공부문 노동자운동에도 부족했던 측면입니다. 주로 남한의 공공부문노동자운동은 국내정치적인 요소만 고려했는습니다. 물론 국제 금융기구의 직접적 강제보다는 남한의 지배계급이 능동적으로 추진한다거나, 금융위기 과정에서 국가가 다른 주변-반주변 국가처럼 취약해지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특수한 지형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는 인식을 계속 국내에 가두는 편향을 낳게 됩니다.

 

따라서 사유화가 진행되는 직접적 과정은 국내정치적인 제도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국제금융기구, 중심부 국가, 초민족자본, 국제적인 컨설팅 기업, 주반-반주변 국가를 모두 고려해야하고 이 주체들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메커니즘 속에서 움직인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 지역적 관점에서 전반적인 접근을 통해서 말이죠. 남한에서는 IMF 구제금융 이후 (직접적으로 IMF SAPs에 의해 강제된 사유화에 대항하는) 몇년 동안 사유화반대 투쟁을 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IMF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 적이 없을 정도로 국내정치에 대한 대응에 집중해왔습니다.

 

한편, 이러한 회의가 아시아에서 조직되는 대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산업적 팽창 때문에, 물-에너지도 emerging market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적극적으로 사유화, 주식상장, 지분매각 등을 통해서 금융화됩니다.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대한 사회운동의 접근방식


공공부문의 사유화 반대에 있어허 해당 노조들은 주로 고용, 임금,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이러한 문제가 신자유주의의 문제라는 인식정도에서 사유화반대투쟁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특히 사회운동들의 문제제기는 물-에너지에 대한 인민의 권리, 환경에 대한 권리, 정보의 공개-참여 등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이더군요. 인민의 보편적 권리의 한 항목이라는 것으로 말이죠.

 

노조와 사회운동의 접근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노조에 있어서도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 사유화 반대투쟁들을 평가할 필요가 있을 텐데요, 남한에서는 사유화에 대해서 공공성-국부유출 이런 방식으로 비판하기는 했는데, 그게(국부유출은 민족주의적인 구호고, 공공성이라는 구호는) 인간-시민의 권리라는 방식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꼭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사용하는 개념도 차이가 나는데, 회의 제목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만  남한에서 "공공 public 서비스"라고 부르는 것들을 그곳 논의에서는 "필수 essential 서비스"라고 부릅니다.)

 

공공성 수호라는 구호는 국가가 이런저런 항목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데 더 중점이 있는데, 인간-시민의 권리라는 것은 인권의 항목으로 바라보는 것으로서 접근 방식이 다른 거죠. 공공성 구호가 남한에서 중심이었던 것은 국가가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기도하고, 따라서 사회운동이 국가와 투쟁하는 것에 비중을 두는 상황에 근거하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이 투쟁이 보편적인 인권-시민권을 확장하는 투쟁으로 나가지 못하고 코포라티즘에 수렴될 위험성도 매우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그런 점에서 저는 "사회공공성" 구호에 대해서는 항상 "?"를 칩니다.) 물론, 국가의 책임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전략적인 함의가 있고 그런 점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여튼 남한의 정세에서 운동에도 그런 효과가 발생한 셈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를 상대화하는 대안까지 함께 고려하고 운동에 기입해야한다는 점.


특히 에너지의 경우 지구온난화 문제와 함께 결합해서 인식할 필요성


이번 프로그램에서 가장 관심있게 들었던 발제는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에너지부문의 노동자운동이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취지에서 배치되었습니다. (옆 사진에서 발제하는 사람은 Red Constantino라는 그린피스 활동가)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는 다른 자료를 참조하면 될 테니 여기서는 생략.  다만 도쿄협정의 CO2 감축 요구는 선진국 정부의 무시는 물론이려니와, 그 자체로도 에너지가격을 높이면서 빈곤층, 노동자에게 고통을 심화한다는 점을 인식해야하고 그런 측면에서 민주적 통제, 세계화반대와 함께 인식해야한다는 접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운동이 체제에 부담을 주고 체제전복적이어야한다는 주장은 월러스틴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그러나 환경과 관련된 '산업'자체가 성장할 수 있고, 자본은 여기서도 이윤을 얻을 수 있죠. 그런 점에서 환경규제가 '체제에 부담'을 주는 것인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다만 자본주의 자체가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도록 하는 물질적 한계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 이것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혹한, 주체없는.. 폭력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류의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보편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다른 운동적 접근이 필요할 것같습니다.)


남한에서도 공공연맹 안에 에너지관련노조들과 환경운동연합 등이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라는 것을 구성해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에너지 소유-운영구조에 관심이 집중된 측면이 있고 지구온난화문제 등 보다 넓은 환경운동의제에 대해서는 접근이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도 노조들의 인식이 가지는 편차는 크게 드러나더군요. 환경운동단체들의 주장이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같이 할 수 있냐 없냐가 갑론을박. 인도의 어떤 참가자는 화해불가능이라고 주장하기도. 생태주의를 노조의 이념으로 수용하는 것이 중요할 텐데, 에너지 부문 노동자 당사자들, 특히 주변-반주변의 노동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경로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체제 대안이라는 것이 해당 부문의 노동자에 대한 대안을 필수적으로 포함하지 않으면 안되겠죠. 특히 환경운동 진영과 함께 노동자 운동이 고민하면서 공동의 "전략적 합의"를 국제적인 수준에서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너지분야 분임토론에서 이런 주장을 언급하긴 했는데, 다른 참가자들은 좀 시근퉁 하더군요 ─_─;;)


사유화와 젠더

 

프로그램 중에는 물과 전력의 사유화가 여성에게 특히 문제라는 내용의 워크샵이 있었습니다.  여성이 '가사'유지와 더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인데요, 특히 가정을 유지하는 임무가 여성에게 주어지며, 특히 물의 경우 여성이 획득하도록 요구받는다는 점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가족구조에서 물을 확보하는 것이 여성의 임무로 규정된 이상 여성들은 물을 얻기 위해서 더 힘든 조건에 처할 수밖에 없죠. 또한 생계를 부양하는 빈곤여성의 경우 공공요금의 인상은 더 큰 부담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성노동자에 대한 해고만이 아니라, 필수서비스, 특히 물의 사유화가 여성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이러한 논의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전 발제를 했던 PSI--국제공공노련--는 성주류화전략에 입각해서 여성에 대한 구조조정이 국가의 노동력 개발이나 생산성에도 역행한다는 입장으로 이야기하는데 그건 좀 그렇더군요.) 여성노동자의 측면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여성일반의 문제로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특히 정규적인 노동자 인구가 적은 주변부 국가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더욱 의미가 있겠더군요. (남한과 같은 사회라고 예외는 아닙니다만.)

 

그런데 이런 문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유화 반대운동을 생계부양자로서의 여성의 피해가 가중된다는 식으로 진행할 수 있는가는 고민이 필요한 것같습니다. 여성을 사유화 반대투쟁에 동원할 수 있기는 할텐데, 가족 내 여성의 위치를 당연히 전제하면서 고정하는 효과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주변부국가에서 지역차원에서 여성들을 조직하는데는 의미있는 경로일 수는 있겠군요. 가족 내에서 불평등한 여성의 역할을 전제하고 여성을 조직하는 방식은 꼭 이런 예만이 아니라도 학부모의 역할, 가족 내 돌봄노동의 역할 등 여러가지가 있을 텐데, 어떤 의미일지 어떤 방식의 접근이 필요한지는 고민해보아야할 것같군요.

 

<더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 포스트에. 글이 너무 길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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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와 보편주의(인용)

정교분리와 보편주의간의 충돌의 문제에 대한 인용. 이슬람 혹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보편주의라는 의미는 아니고 오히려 그 종교들이 가지는 성격의 일부로서 보편성을 제거한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이 쟁점을 상기하는 데는 아프카니스탄 인질납치와 관련된 상황 뿐 아니라 주빌리사우스 물-전력 사유화 노동자 회의에서의 논의도 영향을 주었다. 물 사유화 반대 투쟁 등에 종교적 윤리를 반대 논리로 활용할 수 있는가라는 쟁점. (<무례한자들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포스트) 다만, 다시 생각해보면 종교직 윤리와 논리를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사람이 염두에 둔 것은 일종의 "영성 페미니즘"이었던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편적인 것일 수 있지만, 종교들간의 충돌이 일상적인 곳에서라면, 역시 항상 기존 종교들의 논리에 흡수되거나 동화될 위험에 있는 것이 사실인 것같다.

▒ 원문 :
대안 세계화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하여: 사회운동의 새로운 프로세스로서 시민교육운동

http://www.movements.or.kr/bbs/view.php?board=journal&id=1700 (장진범)
* 강조와 문단나눔은 나

대안세계화 운동을 위해서는 대중운동들 간의 국제주의적 연대를 매개할 수 있는 보편주의적 이념들이 필수적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그 중 하나일 테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또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많은 조류가 민족형태에 포섭되면서 여러 사회운동들을 매개할 수 있는 역량을 상실해 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마르크스주의가 보편주의적 이념으로서의 역량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이나 평화주의, 생태주의, 다문화주의 등 다른 보편주의적 이념들과의 대화와 상호개조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가 제기된다. 보편주의 간의 갈등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이 특수주의 간의 갈등이라면 특수주의의 상위에 있는 보편주의가 갈등을 매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가문과 가문의 갈등을 상위에서 매개하는 민족처럼. 그러나 쟁점이 되는 것이 보편주의 간의 갈등이고, 따라서 그 상위에 보편주의를 설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그 상징적 사례 중 하나로 프랑스에서 벌어진 히잡(hijab) 논쟁을 들 수 있다. 당시 쟁점은 ‘정교분리’라는 관점에서 종교적 표식이 금지된 프랑스의 학교 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계 프랑스 여성들이 히잡이라는 이슬람 전통 스카프를 쓰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종족적 차별, 문화적 인종주의 등을 문제삼는 문화주의자들은 이를 허용할 것을 주장했고, 여성의 종속과 불평등, 그리고 그녀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두 가지 보편주의적 이념 간의 갈등은 전면적이며, 아마도 이것이 실천적으로 해결되는 데는 매우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이 같은 모순을 부정하는 가운데 양자가 (사실상 어느 하나의 절대적 우위 하에) 자연스럽게 수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든지 자신의 이념의 정당성을 근거로 다른 이념의 정당성을 부정하려고 하는 이념은 신뢰하기 어렵다. 우리는 각각의 이념의 정당성을 낳는 복합적이고 불균등한 물질적 조건이 존재하는 한 이 모순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따라서 이 갈등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기예를 익혀야 한다.

 

또한 보편주의에 고유한 위험으로서 자신의 이념에 내재하는 공백과 모순을 부정하려는 경향을 제어하면서, 이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개방함으로써 보편주의 간의 (갈등적) 교통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교육은 ‘보편주의 간의 갈등’을 다루는 ‘갈등적 다원주의’를 조직하고 유지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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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며칠간 ; 비동시대성

7월 초중순 열흘정도를 태국에 다녀왔습니다.

 이런 일정들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Asian Labor Assembly Privatization Of Essential Service (Focus on Water and Power)

/ 7월 8일~12일
Conference on A Decade After : Recovery and Adjustment since the East Asian Crisis

/ 7월 12일~14일
Understanding Global Finance, Bulilding International Resistance / 7월 15일~17일

주로 남-동남아시아의 사회운동, 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행사들이었습니다. 첫번째 것은 '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에서 주관한 노조단위의 회의였고, 공공노조, 공무원노조 동지들과 참석. 뒤의 것들은 노조활동가들도 있었지만 주로 NGO, 학자들이 참석하는 회의였습니다.

 

원래는 공식참가 예정이었지만 노조활동 쉬고하는 바람에 개인자격으로 참가. 다소 경제적-정치적 부담이 있기는 했지만, 하긴 덕분에 공식참가였다면 함께하기 힘들었을 국제금융 관련 일정까지 함께 참석할 수 있었으니 불행중 다행 혹은 전화위복이랄까요. 주로 회의들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서 글을 몇개 쓰겠지만, 우선 태국이란 나라에 다녀왔으니 회의와 무관한 그 곳 느낌부터.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서 말하자면, 열흘정도, 피부색이 진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니까 사람을 보는 미美적인 취향도 바뀌더군요. 피부색이 진한 사람들이 더 친근하고 익숙하고, 어쩌다 가끔 보는 (주로 관광객들인) 한국인들을 보면, 뭔가 피부색도 희멀건한 것이 인상도 밋밋하게 느껴지고 그렇더라구요. 역시 익숙한 게 아름다워 보이는 건지, 아니면 (저를 포함해서) 한국 사람들 인상이 평면적이라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음식도 태국음식도 잘 맞고 특히 인도음식이 아주 취양에 맞더군요. 흠;; 인종주의적인 미적 기준이나 그런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혹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한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밑에 캄보디아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그곳 어린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태국이야, 캄보디아보다는 잘 사는 나라이지만(그렇다고 해도 1인당 GNP는 남한의 1/7 수준입니다.) 유사한 혹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갖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번째 회의는 휴양지로 유명한 파타야의 소박한 호텔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곳에는 백인남자들이 태국 아가씨들을 한명씩 데리고 다니는 게 길거리의 주된 풍경입니다. 말하자면 '현지애인'일 텐데 변형된 형태의 매매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구걸하지는 않지만 젊은 여성들에게 이 것이 생존방식이 되는 곳. 파타야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다녀온 분의 말에 따르면, 젊은 한국 남성들(기껏해야 20대 후반으로 보이는)들까지 그렇게 하고 있더라는군요.. 착찹한 일입니다.

 

뒤의 두 회의는 방콕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방콕에 세계의 배낭여행족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한 '카오산 거리'라는 곳이 있죠. 정말 상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외국인인 거리.(아래 사진)

 

이곳에서 보니, 태국관광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더 보입니다. 의식주 관련된 것을 제외하자면 주로 있는 것들이 (그 유명한 태국) 맛사지, 피부관리, 미장원과 같은 일종의 하인노동들인 대인서비스들과 디스코텍, 바와 같은 유흥업소들.

 

결국, 낮은 임금에 기반해서 값싸게 고급 대인 서비스를 받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중심부국가의 관광객들이 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앞서 말한 '현지애인'이나 매매춘도 그 일부겠죠. 태국은 이런 방식으로 관광산업에 '특화'한 셈입니다.

 

(사실 태국에 대표적인 '볼거리'인 불교 사원들은 화려하기는 하지만 인접한 캄보디아 같은 곳에 비해서 크게 볼거리가 있나 싶은데다가, 해변도 필리핀 등에 비해서는 그리 훌륭한 편이 아니라는 게 중평입니다. 그러니 태국의 관광산업에는 이렇게 '다른 요소'가 있는 셈입니다.)

 

저도 맛사지도 받고 했지만, 이런 것들이 세계체계 안에서 불평등한 구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더군요. 특히 이런 하인서비스는, 참. 

 

태국에 또 다른 모습이 이와 관련되기도 합니다. 방콕에는 서울 못지 않게 고층빌딩이 많습니다. 국제금융 회의 중에 들으니 이들 중 상당수는 초민족 금융자본이나 금융거래와 관련된 기업의 것들이라고 하는군요. 그렇지 않으면 호텔, 쇼핑센터이거나 말이죠. 방콕은 동남아시아에서 나름대로 유력한 초국적 금융도시(혹은 그것을 지향하는 도시)인데, 이를 위한 인프라가 매우 비동시대적으로 갖추어져있는 셈입니다. 고층 빌딩 사이에는 화려한 쇼핑 센터도 있습니다. 외국인들로 넘치는 이 곳은 Siam센터라는 방콕 중심부의 복합건물로 세계의 명품들이 전시, 판매됩니다. (아래 사진)

 

태국은 국내의 산업기반은 거의 없지만 금융자유화와 매우 저렴한 도시 서비스(하인노동을 포함해서)를 통해서 금융센터를 유치하는 전략을 취한다고 볼 수 있겠죠. 서울도 이런 동아시아의 도시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서, 유사하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거리에는 왕의 재위 60년과 팔순을 축하하는 기념물과 사진이 즐비하고, 이를 축하하는 단체복을 시민들이 유니폼처럼 입고 다니며, 군부쿠데타 이후 이들이 헌법제정을 논의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해당 국가의 정치체계가 심지어 봉건적이라고 해도 금융자본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왕실 문장이 새겨진 노란색 반팔T를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매주 월요일마다 반드시 입어야하고, 사기업에도 '권장'된다는 군요. 심지어 TV 뉴스 아나운서과 출연자들까지 노란색T를 입고 방송.)

 

그런 점에서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통화위기가 태국에서 시작된 것이 꼭 우연은 아닐 겁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생산과 무관한 자본운동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항상-이미 비동시대적인 착취구조를 전제한다는 것도 눈앞에서 볼 수 있지요.

방콕은 그래서 서울의 다른, 더 적나라한 모습.

 

이런 비동시대성은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녁 시간, 카오산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에 하나는 서울의 홍대앞과 유사한 클럽문화입니다. 밴드들이 직접 연주-노래하고 젊은 사람들이 춤을 추는 곳. 그곳에 유명하다는 The Club라는 곳에 일행들과 함게 가게 되었는데요, 그곳은 전혀 또 다른 세계더군요. 그곳의 밴드가 하는 락 음악은 미국이나 영국, 한국과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물론 미국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태국의 노래도 다르지 않더라는 것) 음악이나 분위기까지도 익숙한 것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색한 느낌. 광케이블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이동하는 금융자본처럼 문화도 그렇게 이동하는 셈인데, 역시 너무나 비동시대적으로 느껴졌던 겁니다. 그렇다면 그 밴드들에게, 그 음악은 무엇일까, 혹은 그들과 남한의 밴드들과 영국와 미국의 밴드들은 같은 음악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같은 것인가.

낯선 외국에서 금융세계화 시대, 지구적인 비동시대성에 직면하는 또 하나의 순간.

 

그런 비동시대성의 시간들을 압축적으로 만났습니다.

 

=====

 

회의 내용들과, 그곳에서 만난 운동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에 쓰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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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태국의 사원들이 볼거리가 별로 없다고 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느꼈던 것은 두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습니다. 타국 문화와 유산에 대한 폄하이거나 혹은 어떤 오리엔탈리즘일 수도 있지만, 그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언급하자면 이렇습니다.

 

하나는, 작년에 와서 처음에 볼 때 놀랐던 그 규모, 황금으로 번쩍이는 것들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되었다는 점.

 

옆에 불상은 Wat Traimit라는 사원의 유명한 황금불상입니다. 중세시기에 무려 5.5톤의 황금으로 만들어진 불상. 이건 중요한 문화유산이기는 하지만,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5.5톤의 황금에 어울리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시기의 많은 금들이 현재의 태국을 구성하는 시암족들이 크메르왕국에서 약탈한 것이라는 점에서도요. 황금으로 도금한 세계최대의 와불상이 있는 Wat Pho 사원에도 다시 가보았지만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과는 달리 (그 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존중을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가슴이 횡한 느낌.

 

더구나 왕이 미륵불이라고 믿는 불교 나라라는 점에서, 불교가 직접적인 왕정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호국불교'나 시청앞 극우 시위에 나서는 대형 기독교 교회들도 마찬가지죠) 종교가 보편적인 어떤 이념이고자 하길 멈추고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는 이상, 황금불상과 같은 것으로 그 권위를 세워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겠죠. (이런 점 역시 우리나라의 종교들을 비추어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얼마전 앙코르와트를 보았다는 것과 연관됩니다. 많은 양식들이 시암족이 그들로부터 독립했던 크메르왕국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좀 노골적이기도 해서, 방콕에 묵었던 호텔 로비에 걸려있는 장식품들은 태국의 것이 아니라 앙코르와트 유적의 모작이더군요. 심지어는, 태국 국제공항의 출국대를 나서면 보이는 조형물은, 앙코르와트 유적에서 볼 수 있는 힌두교 신화에 대한 조형물입니다. 불교국가인 태국에서 힌두교 신화 조형물이라니 원.(아래 사진)

 

 이 조형물은 힌두교 신화 중에서 비슈누 신이 악마와 신들을 동원해서 불사의 약을 만들기 위해서 1000년 동안 '우유바다'를 휘젖는다는 내용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불교가 힌두교 신화들에 함께 기반하고는 있지만, 좀 너무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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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김진호.최형묵.백찬홍 지음 / 평사리

 

[먼저 이들의 무사기환을 기원하면서 말하자면] 아프카니스탄에서 한국인들이 탈레반에 인질로 잡힌 후, 이 사건과 관련해서 기독교의 ‘해외선교’활동을 돌아봐야한다는 지적이 있다. (한겨레 신문 기사 등 ; ‘한국=기독교 선교’ 인식 탓 피해 가능성) 이번에 납치된 한국인들의 경우에 직접적인 '해외선교‘ 활동은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사건 전 교회의 입장등을 통해서 볼 때) 애초의 취지가 그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분당샘물교회 박은조 목사는 뉴라이트 계열의 기독교 우익 NGO인 '기독교사회책임'의 공동대표이기도 한데 그 연관성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남한 교회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해외에 파견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과 이에 함께한 남한 정부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은 확인하고 가자. 이 글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고와 비판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도. 그러나 이 전쟁의 한 측면이 근본주의 간의 충돌이라는 점, 그것들이 정치가 불가능지는 정세를 폭력을 통해서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을 모방하는 남한의 기독교 근본주의의 공격적인 '해외선교' 역시도 문제의 일부라는 점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비록 정세적 고려 속에서 부차적으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입장은 다소 위험하게도 두 가지 모두와 쟁점을 형성할 수 있다. 기독교가 전적으로 문제라는 입장--포탈사이트 덧글에 만연한, 역시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입장이며 종교적 비관용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것--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면서도, 그것은 전혀 다루질 필요가 없다는 입장--예를 들어 "리장"님의 이 포스트--으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공격적인 ‘해외선교’ 활동에 나서는 이유는 국내 교회 성장세의 둔화 등에서 가지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쉽게 이해하기는 힘든 일이다. 종교기관이 (마치 자본과 같이) 무한이 증식하기 위해서 투자를 확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남한 기독교 교회가 성장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남한 교회가 내재화한 이데올로기, 반공발전주의와 관계되어 있다. 기독교 교회는 반공발전주의 국가에 적합하게 조직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였던 셈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남한 주류 기독교 교회의 이데올로기를 역사적 과정을 검토하면서 진단한다. 그것은 대한제국 말기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을 상징적 사건으로 하는 초기 조선 기독교 전통의 형성에서 일제에 순응하고 타협한 20세기 초반기,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과 반공발전주의를 내재화한 해방이후, 군사독재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를 거쳐,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노골적인 우파 정치세력으로 변신을 시도하는 과정이다. 이에 비해서 반독재 투쟁에 나서고 노동자를 조직했던 진보적인 교회들은 비주류에다가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랜드노조가 투쟁하고 있는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7월8일 열렸던 기독교의 대부흥 행사가 바로 "Again 1907"이었는데, 그것은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을 부활하자는 취지였다. 영적 각성, 교회의 통합 증진과 변화와 갱신을 1907년의 정신을 계승을 통해서 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기업이라는 이랜드의 비정규직 탄압과 이랜드 투쟁에 대한 외면에서 보이듯 그것은 타자에 대한 배려와 내면에 대한 성찰이 부재한, ‘무례’한 것을 넘어서 폭력적인 이벤트가 되어 버렸다.

 

세 명의 공저자 중 김진호 목사의 글이 가장 주목된다. 그는 1907년의 사건들을 정세적으로 분석한다. 러일전쟁 시기였고, 평안도 지역이 이 전쟁에서 일본군의 배후지였다는 점, 이에 따라 이 지역의 민중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민중들은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해줄 수 있는 기독교 교회로 모였지만, 전도사들은 이들 민중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진정한 신앙’을 요구했다. 그 결과가 평양대부흥 운동이었던 셈이다. 이런 특수한 정세에서 전도사들은 대중의 상처를 교회제도에서 전도사의 헤게모니 확립, 비정치적인 종교활동으로 이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욕망과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카리스마적 지도력에 의한 통합을 선호하는 정서를 형성한다.

 

김진호의 이런 분석은 종교가 단일한 실체가 아니며, 그 내부에서 상이한 이데올로기가 경합하거나 결합한다는 점, 그것들은 물질적 정세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게다가 김진호는 이러한 분석에다가 집단적 정신분석도 결합한다. 일제시기 신사참배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대부분의 기독교 근본주의-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공산주의라는 더 큰 적을 발명함으로써 해결하려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에 남한의 주류 교회들은 미국과 반공발전주의 국가의 지원을 통해 크게 성장했다는 점, 산업화 과정에서 대중의 동요와 불안을 성장의 토대로 삼았다는 점도 중요한 분석이다.

 

이런 분석은 기독교 교회의 구체적인 인맥을 통해서 연결된다. 주로 백찬홍의 글은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의 전통을 검토하면서 이들 신학교에 유학했던 한국인 목사들의 의식, 이들의 인맥이 기독교 교회의 특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은 이런 방식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남한 기독교 교회의 현재와 그 역사를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김진호의 글이 특히 흥미로운 것은 종교제도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 물질적-정세적인 요인, 이데올로기적인 요인, 무의식적인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특이하게 김진호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무례한 자들의 기독교”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무례”는 다른 입장, 견해와 대화를 거부하고, 타자의 비판에 닫혀있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례(禮)”는 발리바르의 시빌리떼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종교가 자신을 하나의 보편성이라고 주장한다면(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문자주의자들에게는 불가능하겠지만 ‘영적인 것’과 관계되는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종교가 자신의 보편성을 주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례(禮)”를 갖지 못할 때, 즉 무례할 때 그것은 상징적 폭력이 된다.(그리고 곧 쉽게 물질적 폭력으로 전화한다.)

 

김진호는 현재 주류 기독교 교회가 타인에 대한 무례함에서 기인한 위기를 정치세력화를 통해 해결하려한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것은 최근에는 시청앞 극우 단체와의 집회(70~80년대 성장한 선발대형교회들), 혹은 보다 세련된 형태로 뉴라이트 운동이나 '기독교사회책임‘과 같은 우익 NGO에 결합(80~90년대 성장한 후발대형교회)한다. 이러한 차이는 각각의 교회들이 성장한 역사와 기반하는 교인들의 정치적 성향을 반영한다. 주로 강남이나 신도시 중산층에 기반한 후발대형교회들은 보다 ’유연하고 세련된‘ 정치적 화법을 구사한다. 이들은 공화당 우파들, 네오콘과 연합한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정치개입을 모방하려한다. 이는 향후 남한 정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반독재 투쟁에 결합했던 진보적인 기독교 사회운동. 80년대 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로 결집한 진보적인 교회들. 이들은 기독교 내에서는 비주류였으나, 70~80년대에 그들의 역할로 인해서 과잉대표되었다가 이른바 “민주화 이후”에 위기에 있다. 이들 중 상당수 명망가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정권에 지배엘리트로 합류했다. 그러나 저자들과는 달리 서경석 목사와 같이 민주화운동을 했던 인사가 우파(뉴라이트)로 전향하는 것과 이는 분리해서 볼 일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어떤 정치분파가 더 효과적으로 확립할 수 있는가에 판단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내용적으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인 기독교 사회운동이 다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비록 인맥으로는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신자유주의 정권에 함께 한 인사들을 비판하고 그것을 신자유주의 비판과도 결합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러한 운동이 부활할 수 있어야 주류 기독교 교회에 대한 비판이 기독교 내부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

 

1.
저자들은 “제3시대 그리스도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다. 기독교 사회운동이나 민중신학이 생소한 나 같은 입장에서는 다양한 사회운동의 이론과 교통하는 것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http://www.minjungtheology.net/

 

2.
내용은 흥미롭지만 책 자체에 대해서 말하자면, 실망스러운 점이 많다. 편집 상의 문제와 목사님들 특유의 만연체까지 겹쳐서 상당히 방만한 느낌이다. 저자들 간의 토론을 통해서 내용을 추리고 표현을 손봤다면 발간된 책 분량의 반 이하로도 충분히 내용을 소화할 수 있었을 것같다.(심하게 말하면 1/4;;) 오타와 비문도 많아서 읽는 중간 중간에 걸린다. 내용 구성에 있어서도 내가 주로 언급한 남한 주류 기독교 교회에 대한 비판과 같은 것에서부터 신학적인 비판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상당히 불균등한 느낌이다. 책 말미에 있는 대담도 본문의 내용, 심지어는 표현과 문장까지 반복한다는 점에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했거나 지면 낭비였거나.

 

3.
종교와 정치의 문제. 최근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지역 노조들의 필수서비스 사유화 반대를 위한 토론에서 쟁점이 되었던 사항이 있다. 어떤 노조활동가가 물 사유화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정치적일 뿐 아니라 윤리적, 종교적인 논리를 활용해야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서 인도에서 온 활동가가 강력히 반발한 것. 종교적 논리를 사회운동에 활용하게 되면 곧 종교 근본주의도 용인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충돌하는 인도와 같은 경우에는 이것이 매우 첨예한 정치적 쟁점이 될 수 있겠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정교분리가 확고하지 않을뿐더러 종교 근본주의 간 충돌이 일어나는 사회에서 종교와 사회운동의 관계는 다른 조건에 처하게 된다. 이런 사회들에서는 정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당분간은 “예의 바르게” 개조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종교들과 연합하기 보다는 정치(그리고 사회운동)를 세속화하는 것, 운동에서도 정교분리를 도입하는 것이 필수적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종교들이 자신들이 서로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더라도, 타자를 인정할 수 있는 예의, 혹은 시민윤리(시빌리떼)를 수용할 수 있는가이다. 그것이 불가능한 정세, 종교들이 처한 조건이라면 종교와의 결합은 위험할 수 있다. 그것은 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의해서 좌익들이 몰살당한 이란에서의 경험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샤라프의 붉은 사원 공격 이후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공세가 확대되고 있는 파키스탄과 같은 지역의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에는 매우 현실적이고 절박한 문제이다.
 

(이슬람이든 기독교이든 종교 근본주의자들과 오히려 좌파가 투쟁해야하는 이유 등에 대해는 타리크 알리의 <근본주의의 충돌>과 같은 책이 도움이 된다. 타리크 알리는 시오니즘과 기독교 근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이슬람도 개혁되어야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럴 때에만 일상화된 극단적 폭력들을 제어하고 ‘정치’가 가능할 것이다.)
 

남한에서 사회운동이 진보적인 기독교 교회와 결합했던 경험이나, 남미에서의 가톨릭 해방신학과 민중운동의 결합은 이와 다른 조건에서 가능했던 것이지만 일반화될 수 없다. 그것들 역시 정세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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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2) 앙코르 유적군

아마 모네가 보았다면 "수련이 있는 연못에 비친 앙코르와트"라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싶은 곳.

앙코르유적군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앙코르와트의 정원 연못에 비친 모습입니다. 요즘에 우기인지라 약간 흐린 날씨라서 그런데 햇볓이 좋았으면 물결이 더 반짝거렸을 것같네요.

 

앙코르 유적군에 대한 설명은 역사책이나 인터넷 사이트에 많으니까 생략.

(다만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유적군 중 대표적인 사원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전체적으로는 많은 사원과 궁전 유적들을 통칭해서 앙코르 유적군을 둘러보는 일정이라는 점은 언급해야겠네요. 그밖에 많은 사원과 유적들 각각에 대한 느낌도, 일단은 생략.)

 

1000년의 시간을 지나면서, 이제는 허물어진, 하지만 한때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황금과 상아,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었을 곳들.

 

한때 장엄과 영광이 깃들였던 위대한 유적이 지금은 밀림 속에 버려져 황폐하게 된 광경을 쳐다보는 것처럼, 여행객에게 동경과 피곤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을 것이다. - 샤를 에밀 부유보 <인도차이나 여행> 1858

 

13세기 이후 크메르왕국이 쇠퇴하면서 이웃한 시암족(지금의 태국이죠)에게 약탈당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폐허만 남은 곳입니다. 태국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곳의 사원들은 지금도 금과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는데 이 곳도 아마 그런 모습과 비슷했겠죠.

 

일행 중에 어떤 분은 로마보다 훨씬 더 위대한 유적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더군요. 저는 로마는 못가봤으니 패스. 그러나 거대한 유적들과, 그 안에 있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들은 쓸쓸함을 더 느끼게합니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양조위는 자신이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앙코르와트의 어느 기둥, 작은 구멍에 속삭이고 진흙으로 메웁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에 하나죠. 저에겐 다른 방식의 운명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 장면의 쓸쓸함이 어울리는 곳들을 여기저기에서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 유적들을 돌아봤지만, 역시 패키지 여행은 여유가 없습니다.(그나마 가이드가 좀 여유로운 분이었는데다가 자유시간으로 주어진 반나절을 또 어느 유적에 찾아간 덕분에 조금은 더 좋았습니다만.)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추천으로는 하루 종일 햇빛의 변화에 따라서 변해가는 유적의 모습을 보아야한다고 하는데, 그런 여유를 부리기에는 쉽지 않았던 셈이죠. 그런 부분이 무척 아쉽기는 합니다.

 

아름다운 유적이 많습니다만, '반테이 스레이'라는 곳의 사연이 잘알려져 있습니다.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붉은 색(아, 이런 표현의 어려움이 있을까요, 그것은 붉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암선셋과 비슷한, 하지만 좀더 촉촉한 색깔입니다.)의 사업으로 만들어진 사원입니다.

 

앙드레 말로는 이 곳에서 Devata(여신)상을 밀반출하려다 당국에 체포됩니다. 그는 여신상에 반해서, 그걸 '동양의 모나리자'라고 부릅니다. 당일날 그 여신상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가이드도 정확한 위치는 모르더군요. 제가 찍은 사진에는 제가 반한 여신상이 담겨 있습니다.^^;

 

(옆의 사진은 앙드레 밀반출하려 했던 여신상, 밑에 소개한 책에서 스캔했습니다. 모나리자라는 비유도 아까운 모습입니다. 앙드레 말로의 행위는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가져가고 싶다는 느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하지만 식민지 문화제를 반출하다가 구속되기도 하고 스페인내전 국제여단에 참여했던 좌파이기도 했다가 드골 정부의 문화장관을 하기도 한 앙드레 말로의 변화무쌍한 경력이 한편으로 떠오르는군요.ㅎ)

 

하지만 굳이 그 여신상이 아니라도 수많은 여신상이 사원에 조각되어 있고, 모두 표정과 얼굴이 다릅니다. 당신이 어떤 느낌의 어떤 모습의 여신을 만나려고 해도 그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반테이 스레이의 여신상들이 가장 아름답지만, 앙코르와트에도 수많은 여신상, 무려 1500여개가 있다고 합니다.)

 

유적들은 대부분 비교적 무른 사암으로 지어져있어 손상이 빠른 편입니다. 한편으로는 무른 돌로 지어졌기 때문에 모든 벽면에 아름다운 조각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도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앞에, 곳곳에서 서서히 마모되는 모습은 가슴이 아프군요. 특히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면서 유적의 훼손도 빠르다고 하는데, 관광객이 밟고 올라서는 유적의 계단들을 보면 그런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여신상 같은 것들은.. 너무나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그 얼굴을 도저히 만져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아름답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천천히, 여유있게 하나하나를 느끼면서 돌아보면 좋을 것같다는 생각이 드는 유적군. 하지만 정말 곳곳에 한국사람들과, 중국사람들(떠드는데 정신이 빠질 지경입니다.)이 너무 많아서 조용히 둘러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앙코르와트는 한편으로는 서구(이 지역을 식민화한 프랑스)의 시각에 의해서 19세기 이후에 '발견'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전혀 다른 맥락에서 관광상품이 되어있습니다. 1000년전 크메르 왕국의 후손들에게 이 유적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또 한편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생각할 몫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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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몇가지 책 중에 아래의 책도 있다.

 

앙코르 : 장엄한 성벽도시 - 시공디스커버리총서 46

 

일반적으로 시공디스커버리총서는 선호하고 좋게 평가하는 편인데, 이 책은 좀 그렇다.

내용인 즉슨, 프랑스인들이 어떻게 앙코르유적군을 '발견'해서 탐사하고 연구하고 복원해서 지금에 이르게되었는가하는.. 유적군 자체에 대한 설명도 아니고 19세기 이후 유적이 프랑스에 의해서 '발견'된 역사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역사가 어떻게 서구에 의해서 지금도 '재구성'되는지를 생생하게 살펴보고 싶은 분에게는 추천하지만, 앙코르 유적군 자체, 크메르왕국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비추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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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1) 먼저 이야기해야할 것

지난 주에 급하게 다녀온 캄보디아. 예정했던 그리스-터키 여행이 여행사 사정으로 취소되면서 급하게 대체한 일정. 최저가 패키지 여행에 혼자 덜렁 따라가긴 했는데,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서는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모든 여행에는 어떤 식으로든 느낌이라는 게 남는 것같군요. 가까운 사람들은 캄보디아 항공 사고가 난 와중에 무슨 여행이냐는 말도 있었지만, 현지 광지들은 한국관광객들로 넘치더군요.ㅋ

 

캄보디아라고 하면 물론 앙코르와트가 대표적인 역사유적군이자 관광지죠. 저도 물론 거길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다녀온 것에 대해더 어떤 말을 하려면 무엇보다 앙코르와트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겠지만, 그 이야기 전에 몇가지 다른 이야기를 해야할 것같군요. 정작 제가 가장 깊이 느끼고 온 것들은, 앙코르 유적들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첫날 일정 중에서, '관광지로 개발된' 킬링필드 희생자 사당이 있더군요. 사당이라기 보다는.. 전시장입니다. 옆에 보는 것처럼,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잡고 있던 시기(75~79년)에 학살된 사람들의 유골을 전시하는 곳입니다. 끔찍하죠.

 

끔찍한 것은, 크메르루주도 마찬가지이지만, 죽은자들의 유골을 정치적으로 전시하는 행위도 역시 그렇습니다. (제가 간 관광도시 시엠립의 것은 작은 편이고, 프놈펜 같은 곳에는 더 크다고 하는군요. 도시마다 이런 게 있답니다..)

 

물론 여기에는 크메르루주 시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베트남전쟁 시기 미국의 호치민루트, 캄보디아 동부지역 폭격을 언급해야할 것입니다. 크메르루주 시기에 학살된 사람이 약 8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할 때 적어도 그 만큼 혹은 그 이상의 인명이 미군의 폭격으로 희생되었지만 주목되지 않았죠. "국민"학교 때 의무적으로 보아야했던 영화 <킬링필드>도 그런 관점에서 크메르루주의 학살만 부각합니다. 여기에는 역설적으로 미국과 베트남의 이해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죽은 자의 유골을, 그들의 영혼의 평안을 위해서 묻거나 화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하는 이런 행위는 베트남이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베트남이 자신들의 78년 캄보디아 침공과 점령, 괴뢰정권의 수립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88년 12월 베트남군이 철수하고 파리강화조약 이후에 연립정권이 들어서기는 했지만, 여전히 베트남이 세운 정권을 주도했던 훈센이 주도하고 있으니 이런 행위도 계속될 수밖에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한 것은, 자신들은 크메르루주의 학살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인도차이나반도에서의 패권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학살같은 것이 없었던 라오스에 군대를 주둔시킨 것도 설명이 안되죠.) 공산주의 정권들 사이에서, 그것도 불과 얼마전에 있있던 미국과의 인도차이나전쟁(베트남 전쟁이라 불리는 전쟁은 사실은 인도차이나 전체의 전쟁이었죠. 보통 프랑스에 대한 독립전쟁을 1차 인도차이나전쟁, 미국과의 전쟁을 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 합니다) 당시에 피를 나누며 싸웠던 이웃나라를 침공하겠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인도차이나 3국(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공산당은 원래 인도차이나 공산당 하나였죠. 그러나 이후 코민테른의 민족당 방침 속은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의 "베트남민족 우선주의"(북조선 생각나는군요;;)에 따라서 각 민족당으로 분할됩니다. 그 결과는 해방 후 각 민족당 사이의 내전이었던 겁니다. 현대에 가장 위대한 반식민지 민족해방 투쟁이자 공산주의 혁명전쟁이라는 베트남전쟁의 주역들조차 이랬다면,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결합이라는 것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는 명확할 것입니다. 20세기 역사에서, 주변, 반주변 인민들의 저항에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결합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했지만, 그것이 20세기 말에 남겨준 유물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공산주의를 자처한 정권들이 권력을 잡은 것이 수십년이지만, 글쎄요 사회가 민주화되거나 했다고 보기에도 어려울 것같습니다. 캄보디아인 가이드와 이야기를 하다보니 직업이 뭐냐고 묻더군요, 노조활동가라고 소개했는데, '노동조합'이라는 '개념'조차도 아예 없는 겁니다. 거참. 그 양반도 국가가 운영하는 어떤 기구에서 일하는 '공식'가이드이고 배울만큼 배운 사람인데 말입니다.(가이드들은 보통 영어와 태국어/중국어를 하는 정도입니다.)

 

내전의 유산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서, 이 나라 전체를 상징하는 말, 빈곤 자체가 전쟁의 결과입니다. 아직도 많은 무기(지뢰가 대표적이지만 대인화기까지)가 남아있어서 범죄에 이용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래는 무기를 회수하자는 켐페인 입간판.

이런 것보다 더 가슴아픈 것은 거리에 구걸하는 아이들입니다. 어디에서나 "one dollar"를 외치면서 달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이 나라의 빈곤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여행중 저녁 시간에 공짜 공연이라는 이유로 찾아간, 어떤 첼로 공연이었습니다.

 

Beat Richner 이라는 첼리스트 겸 의사선생의 공연입니다. 스위스 출신의 의사선생.

자신이 세운 어린이 병원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공연이었습니다. 바흐를 주로 연주했는데, 정작 연주시간의 세배 정도는 이야기를 한 것같습니다. 짧은 영어라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75년 처음 와서 크메르루즈 폴포트 정권 이후에 병원 운영이 중단되었다가 90년대 다시 들어와서 10여년 동안 어린이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더군요.(그렇다고 크메르루주만 비판하는 것은 아니고 닉슨이 살인자라는 이야기도.)

 

많은 어린이들이 기초적인 의학적 처방을 받지 못해서 죽어가고 있고, 특히 어머니가 HIV 감염자인 경우에 어린이들이 더 취약하다는 이야기..이고, 특히 시엠립에 있는 병원은 HIV 감염 어린이를 전문적으로 보살핀다고 합니다. 선진국의 아주 작은 지원, 기부만으로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홈페이지도 있습니다. : http://beatocello.com

 

75년에 들어와서 활동하다가, 20년 가까이 되어서 병원 운영이 가능해지자 다시 들어온 사람, 10여년 동안 병원을 운영하고 진료하고, 지원을 받으러 각국을 순례하고 지금도 낮에는 병원을 운영하고 밤에는 매일 "무료" 콘서트를 여는 사람을 보면서,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요. 이 분 말고도 화가이자 생물학자인 Denis Laurent라는 분도 그림을 기증하고 병원 운영팀에 결합해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제3세계 최빈국에 와서 그야말로 봉사를 하는 사람들과, 빈곤한 이 나라의 어린이들을 보면서, 제3세계 빈곤(특히 빈곤아동 문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한데도 그렇고 남한 노동자운동도 그렇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사고도 없다는 것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전무'하지요.

 

이 나라들의 빈곤의 문제가 단지 '못 산다'는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세계체계의 모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운동적 과제로 전혀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전적으로" 무관심할 수 있었을까요..

 

여전히 저나 노동자운동.. 그리고 대부분의 사회운동들에게 이 문제는 '딴 나라 이야기'일텐데, 그 '딴 나라 이야기'라는 것이 중요한 대목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딴 나라' 이야기라고 해도 그것이 나의 문제가 되지 않아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국제주의가 운동의 새로운 대안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하는 저조차도, 모든 운동의 과제는 단지 남한에서 전지구적 문제가 투영되는 문제에 대응하는 것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스페인 공화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전세계에서 달려왔던 국제여단은 영화속의 이야기일 뿐인 것이지요. 좌파들이 나름대로 국제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제가 보기에 그것은 겨우 '비-민족주의적'이라는 것에 불과하다는 반성입니다. 그러나 비-(혹은 反?)민족주의가 국제주의는 아닌 바에야, 사상과 이념의 혁신에 필수적인 요소로서 국제주의와의 결합은 페미니즘과 결합만큼이나 혹은 반성적으로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노동자운동 혁신에 결합하기가 어쩌면 더 어려운 과제일 것같군요.

 

그렇다고 운동의 방식으로 기부금을 모으고 자원봉사를 가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어떤 시기에는 필요하겠죠) 다른 방식으로 신자유주의 세계체계에 대항하는 운동의 일환이 될 수 있는 어떤 무엇이 필요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제3세계 인민들, 어린이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대안세계의 전망이 혼란에 빠진 이런 시기에는 (지구적) "정의운동"이라는 것, "정의"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대중적인 대항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도. 그 '정의'에 대한 닥터 Beatocello(그 선생의 '애칭'입니다)의 호소에 공감하지 않았다면 2~300명의 관객들이 2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그의 '강의'를 듣고 있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겠죠.

 

마지막날, 옵션 관광의 하나로 가야했던 곳이 있습니다. "평양친선관", 평양냉면집입니다.

(이런 저가 여행에는 여러 옵션이 붙는데, 현지 가이드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이런 것은 아무래도 예의상 해주어야하기 때문에.)

냉면을 포함한 식사를 제공하고, 평양에서 온 젊은 여성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그런 곳입니다. 써빙하던 여성들이 공연을 바로 하더군요. 시엠립에만 서너군데가 있는 것을 봤는데, 북한의 외화벌이 기업들이 서로 몇개가 따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연간 수만명의 관광객들이 북한 주민들을 접촉하고 있는데 국가보안법을 수호하는 국정원 등 국가기구들은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차마 그 장면들을 볼 수 없게 한없이 복잡한 심경이 되었습니다.(그래서 사진도 간판만 찍었습니다만) 특히 '아침이슬'을 가라오케 반주로 부르는데.. 그 복잡한 느낌은 뭐랄까..*&^&$&)*!##%$ 도저히 밥이 목에 넘어가지 않는. 알려진 북한 노래들(반갑습니다, 휘파람 같은 것들)을 포함해서 노래와 춤, 가야금..

 

다큐 어떤나라(A State of Mind)에 대해서 이 블로그에도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그 소녀들이 결국 이 앞에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습니다.

 

이 여행을 다녀오면서, 과연 그들에게 '공산주의'는 무엇이었을까하는 의문이 머리를 채웠습니다. 인도차이나에서, 조선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무엇을 생각했던 것일까, 그들이 생각했던 공산주의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결합 혹은 민족주의화된 스탈린주의도 아니고, 사이비 공산주의적인 민족주의였던 것일까.. 하지만 목숨을 바쳐 제국주의와 투쟁했던, 20세기 자본주의 헤게모니 국가로서 아메리카와 모든 것을 걸고 투쟁했던 그들의 진정성은 무엇이었을까..

 

20세기 인도차이나의 역사의 장면들과, 어린이들, Beatocello씨, 평양친선관의 여성들을 보면서, 20세기를 압축적으로 마주친 느낌이었습니다. 1000년이 넘은 유적들은 차치하고라도 그 많은 관광객들과 함께 너무나 비동시대적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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