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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어떤 점들.
이제 기차로 빠리를 떠난다. 예정보다 하루 더 있던 빠리를 아침 기차로 떠나는 이유는 암스테르담에 고흐 미술관이 월요일에는 열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가야 오후 반나절을 볼 수 있다.(하지만 정작 와보니 잘 못된 정보였다;; 월요일도 연다.)
혼자 여행하기
* 좋을 때
나의 속도대로 움직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루브르박물관에 들라클루아 앞에서 한시간 넘게 보내도 부담이 없고, 페르라세즈 묘지에서 한참을 헤메도 누구에게 미안하지 않다. 기분내키면 빠리에 하루 더 머물수도 있고.
내 느낌대로 움직일 수 있다. 런던에서 최근 한국인에게 인기 뮤지컬은 ‘빌리 엘리엇’이나 ‘맘마미아’. 혼자라면 시간이 허락하지 않을 때에도 ‘레미제라블’을 선택할 수 있다.
눈치보지 않고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 오르세 미술관, 미술 작품 앞에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난다면, 그럴 수 있다. 쪽팔려서 감정을 자제할 필요가 없다.
셀카 찍는 재미. 특히 야경을 배경으로 타이머로 셀카찍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뭔가 만드는 느낌인데, 정말 재밋다.
혼잣말 하기. 같이 다니면 대화할 사람은 같이 있는 상대방 뿐이다. 하지만 혼자 다니면, 말할 수 있는 상대는 무한정. 나한데 혼잣말을 해도 되고, 누군가 맘에 내키는 상대에게 말할 수도 있다.(물론 들리진 않겠지만;;)
배경 음악깔기. 굳이 대화할 필요가 없을 때가 많으므로, 분위기에 적합한 음악을 mp3로 들으면서 다닐 수 있다. 음악을 깔면 주변이 아주 달라보이고, 느낌이 새롭다. 빠리 밤거리에서 쇼팽을, 퐁피두 현대미술관에서 punk rock을 들어보자.
대략 스릴있다. 누군가에게도 의존할 수 없고 가끔 실수하기도 하는 긴장과 스릴. 전방위적인 판단을 스스로 할 것을 요구받게 되는데, 단점이자 장점.
* 좋지 않을 때
Please, Take me a picture.. 라고 말하기 짜증날 때가 있다. 마음씨 좋아보이는 (주로 젊은 여성;;) 외국인을 찾으려고 두리번 거려야하고 귀찮을 때가 있어서 사진은 주로 등장인물 없음.
2인분씩 먹는 메뉴는 주문하기 힘들다. 뭐 먹으라면 먹겠지만 돈 아깝다. 중국식당의 딤섬 같은 경우가 그런데, 이런 식이다보니 그냥 샌드위치나 핫도그 먹는게 편하다. 문제는 식사는 부실하고 걷기는 많이 걷다보니 살이 너무 빠진다는 것. (아, 적당한 다이어트에는 좋으니 장점이라고 해야하나?)
가끔 한국어가 그립다. 하지만 장기간 유학간 분들이나 이민간 분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니 패스.
한국에서 투쟁 소식들을 때. 어차피 한국에 있다고 도움되는 형편도 아니지만, 마음이 또 그렇지가 않고 무거워진다. 로밍한 핸드폰으로 집회 안내 문자도 몇 개씩은 오는데, 거참.
그밖에 단점은.. 생각보다 많이 없는 것같다. 흠, 더 생각나면 나중에 이야기하자. 나가봐야할 시간됐다.
빠리의 인상
떠나는 마당에 이야기하자면, 번잡한 대도시이지만 문화적으로 풍성한 곳이라는 것, 그리고
괜히 낭만적인 도시라고 하는게 아니라는 점도.
노틀담 성당에서부터 퐁네프 다리, 예술가의 다리, 루브르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길은 환상적이다.(그에 비해서 유명한 상젤리제 거리 같은 곳은 좀 번잡하다.) 곳곳에 길거리에서 키스하는 연인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전혀 어색해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자연스럽다. ‘빠리의 연인’ 같은 드라마가 나올 만한 분위기라는 건데, 모르는 남녀라도 여기서는 며칠만 붙여놓으면 연인이 될 것같다.
* 에펠탑 뒤, 안경너머로 바라본 빠리의 석양
Sur le quai
Sur le quai, ‘버스, 정류장’의 OST(루시드 폴)이기도 하고, 내 핸드폰에도, 네이트온의 아이디에도 있는 문구다. ‘on the dock'이라는 뜻의 불어라고 하는데, ’on the platform'이라고 새길 수도 있다.
빠리의 역에는 quai 1, quai 2, quai 3.. 이렇게 플랫폼을 표시한다. 이제 sur le quai.
이 문구가 노래 가사에 나온 적이 있는데, 영화 “셀부르의 우산” 주제가에 이 문구가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더욱 아련할. 잊을 수 없는 영화와 그 음악이다.
http://blog.naver.com/ydiana?Redirect=Log&logNo=80033815735
Ils se sont separes sur le quai d'un gare
Ils se sont eloignes dans un dernier regard
어느 역 플랫폼에서 그들은 서로 헤어졌답니다.
그들은 마지막 눈길을 건네며 서로 멀어져 갔답니다.
이렇게 이어진다.
빠리, 안녕.
* 좀 서둘러 가느라 빠리에서 들렸던 중요한 곳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못했다. 루브르 박물관--오르세 미술관--퐁피두 현대미술관과 프랑스 공화주의의 기념물인 팡테온 사원 등에 대한 것. 일단 여기 암스테르담을 뜨면서 정리해보자. 인터넷 환경이 너무 좋지 않은데, 그건 베를린도 만만치 않을 듯.
빠리, 꼬뮌 전사들의 벽
페르라세즈(Pere Lachaise) 묘지에 갔다. "꼬뮌전사들의 벽“이라고 불리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빠리 꼬뮌 전사들이 총살당한 벽이 있는 곳이다.
아침부터 찾아간 이곳은 한적한 마치 한적한 공원 같다. 쇼팽, 발자크, 짐 모리슨 등 유명한 이들의 무덤도 많은 곳이라 찾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드문드문 있다.
찾기가 쉽지 않다. 묘지입구의 이정표에는 한참을 찾아도 꼬뮌전사들의 벽은 나오지 않는다. 무작정 걸어가서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묘지 동쪽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실에 가서 안내 지도를 받아보았지만 거기에도 없다. 한시간반 정도를 언덕빼기의 묘지를 헤멘다. 오늘은 날씨가 덥다. 그리고 문득 한 구석에서 그 벽을 만났다.
한적한 구석. “AUX MORTS DE LA COMMUNE, 21-28 Mai 1871”이라고 씌여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꼬뮌의 죽음을 위해”라는 뜻. 불어아시는 분들, 맞나요?)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묘지 자체의 벽돌 벽이다. 앞에는 장미 꽃 다발들이 놓여있다. 벽에 손을 대본다. 슬픔이 들려오는 것같다. 벽에는 총알 자국 같은 것들도 있다. 피처럼, 혹은 혁명처럼 붉은 담쟁이가 참혹한 벽을 감싸고 있다.
어떤 순간에 우리는 역사의 “나쁜 방향”을 마주할 수도 있지만, 죽음에 도망치지 않고, 죽음도 어쩔 수 없는 주체들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역사를 어떻게 살아야할까.
벽 앞의 계단에서 가져온 사과를 하나 먹으면서 한참을 앉아서 바라본다. 가끔 이곳을 찾는 사람이 들렸다가고, 나처럼 사진을 찍는다.
벽이 보이는 맞은 편에는 프랑스공산당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레지스탕스 희생자를 위한 기념비가 있다. 여기에는 루이 아라공이 레지스탕스를 위해 쓴 Strophes pour se souvenir (Strophes to help you remember, 1955)라는 시의 한 구절이 새겨져있다.
그 옆쪽에는 “프랑스공산당의 누구누구”이런 식의 묘비명이 적힌 무덤들이 이어져있다. 프랑스의 공산주의자들도 죽으면 이 벽이 보이는 곳에 함께 있고 싶어했나보다.
이걸로 빠리까지 와서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거의 한 셈이다. 여행의 이제까지의 과정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시간.
가는 길에는 쇼팽의 묘지를 만났다.
빠리, 로댕과 모네, 까미유 끌로델
겨우 어제 도착했기 때문에 빠리에서 이야기는 좀 더 있다가 쓰려고 했지만, 오늘 다녀온 두 곳의 이야기는 먼저 해야할 것같다. 도착한 다음날, 다녀온 곳 중 두군데 이야기. 에펠탑이나 개선문 같은 것들도 있지만 그보다, 로댕미술관과 모네미술관.
로댕, 클로델
에펠탑에서 조금 걸어가면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앵발리드 군사박물관 옆에 로댕 미술관이 있다. 수수하게 보이지만, 안쪽의 정원이 멋지다. 그리고 로댕과 까미유 클로델의 작품들이 있다.
나는 조각은 잘 모르지만, 로댕이 인상파 화가들이 대상 속에서 “보이는 것”을 묘사하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작업을 조각에서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대상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형상으로 창조해낸다.
그의 작품 중에서 미술관의 앞뜰에 전시된 “칼레의 시민들”과 “지옥의 문”은 당장 눈에 띈다. “칼레의 시민들”은, 어떤 대의(포위당한 도시의 동료 시민들을 위한)를 위해서 희생하는 “시민”들을 형상화한 작품인데, 도덕적이기도 하고 자신의 결정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비극적인 것일 때, 드러나는 숭고함을 나타낸다.
“지옥의 문”도 잘 알려진 작품. 이 작품을 둘러보면, 이 문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영화와 같은 동적인 영상이 없을 시기에는 정지한 것 속에서 움직임을 형상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지옥의 문”은 지옥을 들어가려고 하는, 혹은 거부하려고하는 영혼들의 끔찍한 몸짓이 가득한 문을 형상화한다. 현대에 그러한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다면 아마 영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댕의 작품은 그것이 비록 정지한 것이지만 사실상 움직임을 보여준다. 조금만 주의 깊은 감상자라면 그것이 청동으로 만든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로댕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생생하다. 그것은 특히 그들이 살아있는 육체의 특성, 움직이는 근육들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이 작품은 단테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생각은 근육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하는 것같다. 생각은 단지 두뇌라는 기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육체--따라서 그것이 존재하는 물질적 관계--와 근육 속에서 존재하는 데, 로댕의 작품은 그것을 형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움직이는 것을 쉽게 표현하는 지금과는 달리 정적인 표현수단을 통해서 동적인 것을 표현하려고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치열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같다. 현대에는 한편으로 너무 손쉽고, 그래서 그런 치열함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미술관의 한 방은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으로 채워져있다.
Sentiment님의 블로그에서 인용(http://blog.naver.com/insomnia0?Redirect=Log&logNo=150021674671)
16세의 천재 소녀 조각가. 까미유는 그렇게 로뎅과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한다.
42세의 대조각가 로뎅은,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이렇게 가르친다,
"형태는 깊이로 보아라,
주가 되는 면을 분명하게 나타내어라,
형태가 너를 향해 있는 것으로 상상하라,
모든 생명은 중심에서 나오고, 안에서 점점 밖으로 퍼져 나간다,
소묘에서 윤곽선을 보지말고, 돋을 새김을 보라,
돋을 새김이 윤곽선을 결정한다,
중요한 것은 감동하기. 사랑하기. 소망하기. 걱정하기. 살아가기이다,
예술가가 되기 전에 먼저 뜨거운 가슴을 가져라,"
그녀와 로댕의 관계는 영화 “까미유 끌로델”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 많이 알려져있다. (나는 영화는 보지 못했다.) 작품만 보더라도, 까미유 끌로델은 훨씬 동적이고 격정적인 감정을 작품에 쏟아 붓고 형상으로 창조한다.
로댕의 어떤 작품에도 비할 바가 아닌 작품이 이곳 전시실에 있다. the Waltz 라는 작품. 보면서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남녀가 춤을 추는 모습을 묘사한 이 작품 속에서 그들은 살아있다. 특히 여성의 끌리는 치마는 대상에 움직임을 부여한다.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왈츠. 그냥 보아도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지만, 이렇게 해보자. 작품 주위에서 내가 대신 왈츠를 춰보자. (마침 MP3 플레이어에는 쇼팽의 Waltz No.1 In E Flat Major Op.18(Grande Valse Brillante)가 있었기 때문에 들으면서) 잘 모르지만 영화든 어디서든 본 듯한 왈츠 스텝을 작품주위에서 밟아보자. 그렇게 보면 작품이 정말로 춤을 추기 시작하고, 열정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사실, 까미유 끌로델의 감성은 왈츠같은 ‘춤곡’과는 어울리지 않아. 그런데 왜?)
까미유의 이 작품은 정지한 조각 속에서 움직임을 표현한다는 측면에서만 아니라, 사랑하는 남녀의 육체적 움직임을 작품 속에서 표현한다는 점에서도 탁월하다. 그러나 그 육체적 움직임은 단지 육체적인 사랑만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고양된 것이다. 비록 로댕이 그것을 거부하고, 그녀는 30년 동안 정신병원에 유폐되었지만, 그녀의 조각에서는 로댕의 작품들 속에서 느낄 수 없는 진실함과 치열함이 동시에 배여난다. 그래서 가슴 아프고 코끝이 찡해진 걸까.
클로드 모네, 빛에 대하여
지도를 보고 어렵게 찾아간 모네미술관.
정작 모네의 작품은 지하 한 층에 50여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서울의 모네展에서의 느낌을 좀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관람.
전시된 모네의 작품 중, “템즈강에 비친 런던의 영국의회”Londres le palerant Reflets sur la Temise(1899-1901, 불어를 모르니 한글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이라는 작품은 빛의 방향에 따라서 건물사이로 새어나오는 빛과 그림자, 물에 반사되는 빛을 그린다. 물에 비친 빛은 같은 흰색이라도 다른 곳에서는 다시는 불가능한 효과를 만들어낸다.(아래 그림은 전시된 것은 아닌데, 같은 것을 찾지는 못했다.연작시리즈 중 하나)
모네의 수련시리즈는 전에 국내전시를 보고 이야기한 포스트(http://blog.jinbo.net/rudnf/?pid=129)에서도 언급한 것이지만, 수련보다는 물에 비친 빛을 묘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역시 여기서 보이는 작품들도 그렇다. 모네의 수련시리즈에서는 물에 비친 대상에 대해서 직접 보이는 대상(수련)이 비교되면서 물에 비친 대상은 모호하게, 수련은 뚜렷하게 보인다. 모네는 이 뿐 아니라, 대상이 비추어지는 각도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서, 물에 비친 것과 직접 보이는 것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한다.
역시 인상적인 작품은 모네의 "장미정원". 로댕의 작품을 감상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것을 영상으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천천히 장미정원으로 걸어가자.(일본풍 다리가 있는 정원도 마찬가지다) 차츰 빛과 색채가 제각기 흔들리는 곳으로 한걸음 씩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는 형체도 없고, 다만 살아있는 색채들, 그리고 그것을 비추는 빛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천천히 다가가면서 감상한다.)
모네는 형태보다 색이 우위에 있는 그림을 그리고, 점점 형태 자체는 사라져간다.(말년에 그의 시력저하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기의 몇몇 작품은 밋밋한 느낌이다. 빛을 강조해주던, 마치 빛의 ‘보색’과 같은 형태라는 양념이 사라지면서 빛이 도드라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느낌.
빠리에서 첫날, 두 개의 미술관을 보고 나서 생각해보니, 가야할 곳들이 많다. 하루 정도 더 있어야할까. 이 곳이 맘에 드는 이유 중에 하나는 와인과 어울리는 치즈가 터무니없이 싸다는 점이다. 그리 좋은 것을 욕심내지 않는다면, 2003년 보르도産 와인 한 병이 우리돈 5000원 정도, 혼자 먹기는 부담되는 크기의 브리치즈 한 조각이 1500원 정도. 글을 쓰면서 혼자서 한 병을 다 비우고 기분좋게 취한다.
런던에서, 두 번째
런던에서 (여행자의 입장에서) 가장 좋고, 부럽기도 한 것은 이 곳의 주요 미술관, 박물관들이 무료라는 것이다. 물론 박물관-미술관이 아닌, 의회 같은 경우에는 투어비를 받기도 하고 웨스트민스터나 세인트폴과 같은 성당들은 입장료를 받지만 말이다. 덕분에 내셔널갤러리, 테이트 브리튼, 데이트 모던 등을 연결해보면 미술사를 조망해볼 수도 있고, 영국박물관을 통해서 문명의 역사를, 자연사박물관, 과학박물관을 통해서 자연과 과학의 변화와 발전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부러운 이유는, ‘공짜’여서만은 아니다. 이 정도 수준이 되는 전시물들이 있다는 것부터 그렇다. 한편으로는 학문, 과학과 예술이 ‘공공’의 것으로 대중이 언제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열려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일이다. 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과학과 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정념을 고양시킬 수 있다. (사진은, 일단 공룡화석에서 시작하는 자연사박물관.)
빅뱅, 지구의 탄생과 공룡시대부터 석기시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로마를 거쳐 다빈치(르네상스)와 미켈란젤로를, 그리고 르누아르와 고흐에서, 피카소까지, 최초의 증기기관에서 우주선까지 자연과 인류의 역사와 그 성과를 종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다.
(물론 나는 ‘구경’은 했지만 그런 ‘기회’를 누렸다고 하기는 힘든데, 수박겉햝기 식의 관광객식 구경일정으로는 전시물의 내용을 확인할 틈도 없이 단지 그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달쯤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간절히 들었다. 여튼 이번 여행은 주마간산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 갈 수밖에. 하지만 운에 따라 가끔 한 두가지라도 깊이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있기를 바랄 뿐이다.)
미술사 ; 추상에서 추상까지
미술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보면서 느끼고 생각하게 된 것들을 이야기해보자.
영국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의 예술은 한편으로는 사실적인 묘사가 뛰어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추상적이라고 할만하다. 대상의 특질 중에서 부각하고 싶은 것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기 때문이다.(그것은 사실과 유사하게 만들 '실력'같은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아래 사진과 같은 람세스2세 두상은 대단히 사실적이다.)
그런 추상의 극단적인 경우가 여러 신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종교이기도 하지만, 현실에 대상이 없는 추상적인 개념들을 눈에 보이게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대상의 어떤 특징은 묘사되는 형상 속에서 '순수하게' 드러난다. 종교적 열망과 세계를 개념화하려는 철학, 그리고 예술은 이런 방식으로 같은 뿌리에 얽혀있는 것일까?
이집트의 경우, 사람 그림은 얼굴은 옆면, 눈은 앞면, 몸통은 정면, 다리는 옆면을 그린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대상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쪽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 미술은 사실化되었지만 황금비례에 맞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그린다는 점에서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 이런 미술의 특징은 그것의 존재 이유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라기보다는 보여주고 싶은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미술을 발전시켰다.
르네상스 이후에 근대에는 점차 대상과 말그대로 닮은 것을 그리려는 노력이 집요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내셔널 갤러리) 미술사 책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 15세기에 원근법을 도입하는 그림들이나 사실적 묘사가 뛰어난 16, 17세기 미술들이 그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내셔널 갤러리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인상파 전시실은 다시 보다 화가가 전달하고자하는 것을 전달하는 것에 충실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상과 닮은 것은 다음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데, 마네와 고흐 등은 빛을 통해서 그런 느낌들을 전달한다. 대상과 닮지 않았더라도 대상을 더욱 잘 드러내는 빛을 화폭에 담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변화들 덕분에 사진과 영상으로 대상을 담을 수 있는 시대에도 회화가 아직 살아남을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사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사진이 정확하고, 영상과 서사를 결합시켰던 회화들(특히 그리스도의 수난이나 그리스-로마 신화를 표현한 작품들)은 영화가 대체하는 시기에도 말이다.
템즈 강을 건너서 데이트 모던에 가면 현대미술을 전시한다. 20세기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품들. 사실 작품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아서 이럴 때만큼 영어실력이 아쉬울 때가 없다. 오디오 가이드라도 들으면 좀 더 이해가 될 텐데.(미술관, 박물관들에는 영어와 함께 불어, 이태리어, 독일어, 일본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박물관 미술관에는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넘친다. 얼마 있다가는 중국어 오디어 가이드도 등장할 듯.) 칸딘스키나 피카소 정도를 넘어가면 이해가 너무 힘들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회화가 대상 자체가 아니라 어떤 추상적인 관념, 이념들을 전달하는데 몰두한다는 점. 사진이나 영화와 경쟁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미술계 밖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죄송하지만) 그런 측면은 현대미술에 일종의 강박처럼 느껴진다.
미술관, 박물관에는 주중에는 수업삼아 단체 관람온 학생들로 넘친다. 이런 기회를 가지면서 성장한 어린이들이 과학과 역사, 예술에 대해서 더 깊은 이해를 가지는 것은 물론, 그것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런 곳에는 어린이들을 위해서 ‘직접’ Acting 해볼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테이트모던에서는 이미지를 조작해서 추상적인 이미지를 직접 만들어보거나, 개념들을 환유적으로 연결해볼 수 있는 장난감도 있다. 예를 들어 카지노 슬롯과 같은 것을 돌리면 무작위로 개념들이 조합되어서, “사과--뒤짚다--이것은 예술이다”라는 식으로 말을 만들면서 상상할 수 있다. 초상화 미술관에서는 자기 초상화를 손으로 조합해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예술과 과학이 먼 곳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해볼 수 있는 무엇이 된다.
이번 여행에서 테이트 브리튼에서는 Millais의 ‘오필리아’를 꼭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했다. 오는 27일부터 전시라 지금은 전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림이 들어있는 포스터만 볼 수 있었다. 지구반대편까지 와서 일부러 목표했던 것을 놓칠 때 정말 크게 아쉬울 수 밖에.
영국박물관 British Museum
이건 이름을 영국박물관 British Museum이라기 보다는 World Museun 이라고 해야할 것같다. 세계 곳곳에서 (대부분 약탈행위를 통해서) 가져온 유물들로 채워져있기 때문이다. 하이라이트는 메소포타미아-이집트-그리스 관인데,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지배한 이들 지역의 유물을 제국의 수도에 전시하면서 서양문명의 정당한 계승자로서 자신들을 드러내려고 한 것 같다.
원래 있던 곳이 아닌 곳까지 건너온 유물들을 보면, 과연 이집트나 이라크, 그리스에는 무엇이 남았을까하는 생각까지 든다.(그래서 그리스-이집트까지 갈 생각인 나는 기운이 좀 빠지는 일이다.) 핵심적인 것들을 집요하게 모아왔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처럼 좀처럼 가져올 수 없는 것들은 없지만, 파르테논 신전에서는 기둥과 지붕을 제외하고 가져올 수 있는 조각들은 모조리 가져왔다.
물론, 덕분에 유적들이 보존된다거나, 영국이 이들 나라의 유적보호나 박물관에 지원하고 있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다고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라크를 지배하고 유적을 약탈해온 영국은, 이제 다시 이라크를 미국과 함께 침공한 상황에서 그런 정당화는 더더욱 설득력을 잃는다. (비록 얼마전에 패퇴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족국가단위로 분할된 세계체제에서 민족의 역사적 이상을 나타내는 고대 유적들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영국의 약탈이 부당하기는 하지만, 좀 과격하게 말하자면 유물들이 꼭 그 자리에 있어야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북경박물관에 진나라의 수도였던 서안에 있던 유물이 있다고 할 때 부당하게 느낄까? 하지만 거리로는 더 가까운 만주에 있는 고구려, 발해 유적이 북경에 있다고 할 때 당신의 느낌은?
(다소 포스트콜로니얼리즘적인 시각이라고 해도) 역사적 유적들이 민족사를 구성하고 민족국가를 정당화하는 상징들이 된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 유적을 약탈한 제국주의가 정당화되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한다. 영국인들은 자신을 세계를 지배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유물들을 단지 “옮긴” 것일텐데,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동시에 비판할 필요성.
뮤지컬,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런던에서 마지막날 저녁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봤다. 여행을 떠나면서 가지고 있던 몇 개의 로망 중에 첫 번째 것.
CD로 보고 들었던 것과는 배우들도 약간씩 다르고 해서 느낌이 같지는 않았지만 훌륭했다. 감동할 준비를 하고 간만큼, 몇몇 장면에서는 펑펑 눈물 흘린 작품.
레미제라블은 인물들이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품이다. 플롯도 감동을 주지만, 무엇보다 인물 하나 하나가 깊은 인상을 주고 생각하게 한다. 특히 “숭고한” 인물들은 깊은 감동을 준다.
장발장은 주인공인만큼 가장 그렇다. 자신이 누구인지 고뇌하면서도(What Have I Done?) 다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자기 대신 누군가가 누명을 쓸 상황이 되자 자신을 밝히고 쫒기는 몸이 된다.(Who am I?) (비록 간접적이라도) 자신의 잘못으로 죽음에 이르는 판틴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서 코젯(과 그가 사랑하는 마리우스)을 위해 희생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누구에게보다 자신에게 정당하기 위해서 매 순간 위험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악역이라는 자베르도 그렇다. 그가 장발장을 집요하게 쫒는 것은 “법과 정의”에 대한 내적인 신념 때문이다.(Star)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서, 자신이 믿던 “법과 정의”가 허구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쪽을 선택한다.(Soliloquy) 자신이 믿던 법과 정의가, 정의가 아니라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그것을 회피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자신을 부정하는 선택. 역설적으로 가장 진실된 인물 중 한명.
그리고 에포닌이 있다. 그녀는 코젯을 사랑하는 마리우스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는 질투하거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극으로 받아들이고, 그러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 그래서 마리우스가 부탁한 편지를 코젯에게 전하고 오는 길에 시민군의 바리케이트 뒤에서 총에 맞아 죽어간다. 뮤지컬에서 가장 슬픈 장면. 그녀가 부르는 On my own도 잘 알려져있는 감동적인 곡이다.
그리고 앙졸라를 비롯한 학생과 시민들. 그들은 혁명을 위해서 싸우고 바리케이트에서 최후를 맞는다.(내가 본 공연에서 앙졸라 역은 흑인배우가 맡았는데, 카리스마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음시대의 혁명은 노동시장 밑바닥의 이주노동자로부터?) 그들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바리케이트에 남는데, 광주에서 도청에 남은 시민군을 떠올리게 한다.(Drink with me ; 최후의 전날, 바리케이트에서 술을 나누는 시민, 학생)
이들 비극적인 인물들이 불러일으키는 숭고함은, 내가 나 자신에게는 어떻게 충실해야할지, 어떻게 존재를 걸어야할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번 여행 속에서 본 훌륭한 그림들이나 이런 작품에서 느끼는 숭고함은, 쓸쓸한 자유와 함께 이번 여행의 주된 느낌 중 하나다. 레미제라블은 그런 느낌들로 꽉찬 작품.
이제 아쉬운 런던 일정을 마치고 빠리로 떠나는 유로스타 기차 안이다. 워털루 역에서 빠리 북역까지, 영화에서만 보던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스코틀랜드 홀리건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내내 시끌벅쩍거리는 2등석 기차 간. 빠리에 영국팀의 축구경기가 있나보다. 막 도버해협을 지하로 건넜다. 이제 프랑스의 끝없는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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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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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박물관 참 좋죠. 전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보고 '아 이 사람 참 살고 싶었구나' 했는데...그게 죽음을 암시하는 건가...여튼 직접 봤을때,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달리 보이는데 아...이래서 빛이 중요하구나 뭐 그런 생각도 했고요. 저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지요. 그 작은 사이즈에 그런 힘이 있다니..하면서. 유럽은 그리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암스테르담은 꼭 다시 가고 싶어요. ^^참 오르세에서 자화상 보고 울컥하기도 했는데...음...사람 맘은 비슷한 구석이 있나봐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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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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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아/저도 오르세미술관이나 영국내셔널갤러리처럼 큰 데도 인상적이지만 오히려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고흐 미술관과 로댕미술관(로댕보다는 클로델;;)이었습니다. 암스테르담 자체나 나머진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고흐 미술관은, 정말 앞으로 언제 또 보겠냐는 생각이 드니까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지가 않더라구요.부가 정보
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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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고흐 미술관 때문에요. 암스테르담계하나 들까요? ^^부가 정보
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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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아/ 저도 고흐 전시회 유치를 추진하거나, 아니면 한번 더 가거나 하고 싶은 심정. 후자가 쪼금 더 현실적이겠죠. 하지만 곗돈은 아주아주 오래 부어야겠군요. 흑흑 T_T;;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