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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보조

지난 화요일에 안국역 근처 윤보선가에서 한 시민단체의 '후원잔치'가 있었다. 말 그대로 단체의 활동을 후원하기 위한 행사인데, 일반 회원들도 오긴 하지만 사실상 무슨무슨 대표,라는 쟁쟁한 사람들이 더 많이 온다. 모금의 목적이 강하므로 티켓값도 5만 원/10만 원씩 하고, 단체에서는 비싼 티켓을 산 참석자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상당히 신경 쓴다. 이번에는 <아시아의 몸짓과 소리>라고 해서 가야금 연주와 네팔의 전통 춤과 음악을 무대에 올리고, 네팔음식을 준비했다.

 

나는 학부 때 그 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하다가 취업한 뒤로는 1년에 한 번 얼굴 비추는 것도 힘들어진 상태였다. 그러다 거의 1년 반 만에 다시 행사를 돕게 되니 간단한 일인데도 적응이 안 되었다. 처음에는 행사장 입구의 접수대에서 손님들의 접수를 돕고 여러 가지 브로슈어들을 챙겨드려야 했는데, 어느 게 어느 상자에 있는지, 새로운 얼굴은 왜 이렇게 많은지...... 안 그래도 어리버리한 나는 더욱 어리버리해지고 말았다. 회사에 있다가 겨우겨우 행사 시작 시간에 맞춰 왔기에 하는 일에 대해 설명도 제대로 못 듣고 투입되었지만, 다들 바쁘고 정신없는 상황에서 누굴 탓할 수도 없고 그냥 혼자 답답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손님을 맞이하는 표정은 자꾸 굳어져만 가고, 다음번에는 아무리 자원활동가가 급히 필요하다고 해도 이런 식이라면 안 하는 게 좋겠다는 둥 자꾸 딴생각이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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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시작되고 접수대 일이 줄자, 대문 앞에서 경비-_-를 섰다. 사실은 마구 웃으며 환영하던 친구가 자리를 비우면서 그 자리에 대신 선 건데, 아무래도 한 번 굳어진 표정은 잘 안 풀어졌다. 2년 전 이 자리에서의 발랄하고 씩씩하던 내 모습은 이제 새 얼굴의 자원활동가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평소에는 대문 안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윤보선가가 오늘따라 활짝 열려 사람들이 드나들고 시끌벅적하니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도 들어와서 구경하고 싶어했다. 그 심정 누가 모르랴만, 그 집의 주인이라는 부인(? 그래봤자 아주머니지)께서 보안을 위해 행사와 관계없는 외부인은 못 들어오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했기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구경하고픈 그 마음들은 너무 당연하기에, 겉마당(마당이 두 겹이다)에는 들어오셔서 구경하시다 가라고 했다. 힝. 그래도 뭔가 불편해. 티켓이 얼마냐고 물으시길래 내가 5만원이라고 하자, "옴마야~" 식겁하는 표정들... 2년 전에도 했던 생각ㅡ행사를 좀 더 소박하게 만들고, 그 대신 1만 원짜리 티켓도 만들면 좋겠다는ㅡ이 또 들었다(단체의 1년치 살림을 위한 후원잔치라는 거 알지만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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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올해 행사가 그 어느 해보다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동안 내가 좋아하던 이 사람들과 스스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를 실감하는 자리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얼마나 애정을 담뿍 담아 일하는지도 잘 알기에, 언제나 지지하는 마음이지만, 고상하고도 화려한(내 기준에서는) 후원잔치에 대해서만은 좀 아쉽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우울해지려는 표정을 애써 숨겼지만, 뒷풀이에는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랫동안 단체와 떨어져 있었던 데서 오는 낯선 느낌, 행사준비를 처음부터 함께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겉도는 느낌, 일회용 자원봉사자로 전락한 느낌, 삐까뻔쩍한 OO 대표/국회의원들을 접대하는 것이 아무래도 못마땅한 이 삐뚤어진 심보, 소박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이 참석하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들을 곱씹으며 버스를 타고 회사로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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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아마도) 혼자만 우울했던 2007년 후원잔치. 끝. 

+) 아무튼,이라는 접속사는 정말 요긴해. 대충 이런 식으로 끝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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