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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부터 슬슬 머리 왼쪽 뒷편에서 신호를 보낸다. 머리 왼쪽 뒷편이란 내 몸의 일부를 인식한 적이 별로 없지만, 이 녀석이 신호를 보내자 그제서야 내 몸에 그런 일부가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런데 오늘은 마음속에서도 무언가 불편한 녀석이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 * *
어젯밤부터 엄마가 독립하는 나를 보며 이래저래 안타깝고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자 나는 조금 심란해졌다. 출근길에 자취방에 갖다놓을 후라이팬이며 세탁망 등등을 한보따리 둘러매고 나왔다. 조금 복잡한 지하철에서 문쪽으로 다가가던 도중 역시 민폐를 끼쳤다. 아마도 옆에 있던 아저씨의 등을 후라이팬 손잡이로 찔렀던 것 같기도 하고... -_-; 열차 문이 열렸고, 긴가민가 하면서 돌아봤더니 아저씨의 험악한 표정이 내 모든 감정을 한 번 더 뒤숭숭하게 만든다.
[에이 이게 뭐야 아침부터 민폐나 끼치고]
얼렁뚱땅 우당탕탕 어리버리 실수쟁이지만 민폐를 끼칠 때마다 내가 조금 싫어진다.
오늘은 어제부터 심란했던 마음 때문에 스스로 [괜찮다]며 다독이지도 못했다.
목이 잠기고, 기침도 나고, 열도 오르는 것 같다. 걸어다니자면 바닥 위에서 내가 0.5cm 동동 떠다니는 느낌이다. 달뜬 얼굴에 생각도 동동 뜬다. 아파서 괴로울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비정상이 된 느낌은 확실하다. 작업 중인 두 책의 필진과 관계자들로부터 오늘도 슬금 시달리고 나니 팔다리에 힘이 빠진다. 너무 긴장해버렸다. 쓸데없이.
오늘 내가 왜 이럴까- 아픈 건 아픈 거고 내면의 문제가 면역력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했다.
내 면역력은 어디로 갔을까.
아무래도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이번에도 엄마다.
엄마는 걱정이 끊이질 않아 계속해서 챙겨주느라 바쁜데, 나는 그것 때문에 마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그래 어여 여길 떠나자. 마음을 먹고, 내일까지는 짐을 다 옮겨야겠다고 다짐한다.
엄마가 어제 이사하는 집이 궁금하다며 당장 가보면 안 되겠냐고 말했는데, 어쩐지 집을 알려주면 시간 날 때마다(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찾아올 것 같아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역시 난 정말 나쁜 딸년이었어.
엄마가 뭐라 하든,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당분간 나무처럼 광합성만 해야겠다. 흔들리지 않을테야. (루냐는 당분간 나무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나름 진정한 여행이기도 한 자취 생활. 가정사에 시달리기 싫어서 10년 전부터 꿈꿔온 독립. 산전수전 아직 덜 겪어봐서 엄마 그늘에서 나오려고 내맘대로 시작해버린 독립. 젊어서 고생 사서 한다는 속담을 나도 한번 지켜보자고 시작한 독립. 머리가 나빠 수족이 고생해도 내 머리 써가며 살아보자고 시작한 독립. 이제서야 나는 비행연습을 시작하는 아기 새의 기분을 알 것 같다.
루냐는 이제 나무이자 아기 새이기도 하지만, 이제 2만원으로 월급날을 기다려야 하는 거지루냐가 되기도 했다. 마음만큼은 초라해지지 말아야지. 앞으로 1년 동안 나와 함께할 그 공간을 다른 무엇이 아닌 루냐 공기로 채울테야. 음후후.
+) 인쇄 걸어 놓고 시작한 포스팅, 시간 가는 줄 모른다. 400페이지는 언제 다 인쇄됐다냐. 켁 -_-
댓글 목록
n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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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하고 힘내~잘할 수 있을 것이야,,
글고 보니 우리 동갑이었던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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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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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난 나뷔를 나보다 두 살 어리다고 생각했었는데;;(생각없이 학번에 나이를 끼워맞춰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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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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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보다, 아기 새보다, 거지가 와닿는 것은....-_-;;;부가 정보
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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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철커덕딸그락소리는 프린팅과 포스팅의 합주였군요. :)축하할 마음에 은근슬쩍 댓글 남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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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n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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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냐님도 독립을 하셨군요. 대추리에서 돌아올 때는 기차안에서 잠들어서 작별인사도 못했네요. 반가웠어요.^^부가 정보
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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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양이/ 그,그렇지? ;;;꼬/ 은근슬쩍 댓글도 달리고 독립은 좋은 거구나~ㅋㅎ (먼산)
ScanPlease/ 스캔 님의 글을 통해 '그남' 표현법을 알게 되었다는! 저도 반가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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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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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하지만, 어머니 얘기에 제 가슴도 아프군요.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취'의 이미지는 좀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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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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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스물여섯인데, 화이팅이에요.^^* 나도 빨랑 독립해야지..ㅎ부가 정보
스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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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엔 독립을 해야 하는거군요...난, 그때 머 했을까나?? 쩝~부가 정보
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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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 벌써 여덟 OTL 독립은 고사하고...부가 정보
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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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ism/ 엄마를 생각하면 정말 그렇죠.. 그래도 자취해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누리려고요. 월세가 아깝지 않도록! (으응?)kino/ 흐흣, 네엡!
스머프/ 하이코, 그,그런 뜻이 아니라. 투덜이 스머프 님은 스물여섯을 어떻게 보내셨을까나- 문득 궁금.
달군/ 허허;; 독립하면 소모되는 게 많아요(어쭈, 벌써 아는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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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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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셈 (프란체스카 모드로 축하 인사를...)부가 정보
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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넴~(프란체스카를 몇 번 못 봐서 어떻게 답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ㅁ] 받침으로 라임을 맞춰보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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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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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스물여섯이 궁금하시다고 하니 갑자기 저도 그때 뭘했는지 막 생각을 하게 되네용~ (더 구체적으로 생각나면 포스팅 하겠삼..ㅎ) 그리고, '독립'에 관련한 포스팅을 저도 한적이 있는뎅...별로 재미있는 글은 아니지만, 참고하셈~!^^ http://blog.jinbo.net/skmoon/?pid=324부가 정보
uG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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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냐, 독립 축하해요. 그리고 뭐가 필요한지 말해줘요. 말하는 모든 것을 선물할 수는 없지만 내 조건에 맞게 선물할께요^^추신: 라임을 맞춘 센스는 Good~~! Y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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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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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프/ 포스팅 잘 봤어요 ㅋ 언젠가 스머프 님의 26살 이야기도 듣고 싶네요uGonG/ 고마워요.. 뭐가 필요한지 물어봐주는 마음이 고맙네요. 잘 지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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