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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독립은 시작됐다

오전부터 슬슬 머리 왼쪽 뒷편에서 신호를 보낸다. 머리 왼쪽 뒷편이란 내 몸의 일부를 인식한 적이 별로 없지만, 이 녀석이 신호를 보내자 그제서야 내 몸에 그런 일부가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런데 오늘은 마음속에서도 무언가 불편한 녀석이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   *   *

어젯밤부터 엄마가 독립하는 나를 보며 이래저래 안타깝고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자 나는 조금 심란해졌다. 출근길에 자취방에 갖다놓을 후라이팬이며 세탁망 등등을 한보따리 둘러매고 나왔다. 조금 복잡한 지하철에서 문쪽으로 다가가던 도중 역시 민폐를 끼쳤다. 아마도 옆에 있던 아저씨의 등을 후라이팬 손잡이로 찔렀던 것 같기도 하고... -_-; 열차 문이 열렸고, 긴가민가 하면서 돌아봤더니 아저씨의 험악한 표정이 내 모든 감정을 한 번 더 뒤숭숭하게 만든다.

[에이 이게 뭐야 아침부터 민폐나 끼치고]

얼렁뚱땅 우당탕탕 어리버리 실수쟁이지만 민폐를 끼칠 때마다 내가 조금 싫어진다.

오늘은 어제부터 심란했던 마음 때문에 스스로 [괜찮다]며 다독이지도 못했다.



목이 잠기고, 기침도 나고, 열도 오르는 것 같다. 걸어다니자면 바닥 위에서 내가 0.5cm 동동 떠다니는 느낌이다. 달뜬 얼굴에 생각도 동동 뜬다. 아파서 괴로울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비정상이 된 느낌은 확실하다. 작업 중인 두 책의 필진과 관계자들로부터 오늘도 슬금 시달리고 나니 팔다리에 힘이 빠진다. 너무 긴장해버렸다. 쓸데없이.

 

오늘 내가 왜 이럴까- 아픈 건 아픈 거고 내면의 문제가 면역력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했다.

내 면역력은 어디로 갔을까.

 

아무래도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이번에도 엄마다.

엄마는 걱정이 끊이질 않아 계속해서 챙겨주느라 바쁜데, 나는 그것 때문에 마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그래 어여 여길 떠나자. 마음을 먹고, 내일까지는 짐을 다 옮겨야겠다고 다짐한다. 

엄마가 어제 이사하는 집이 궁금하다며 당장 가보면 안 되겠냐고 말했는데, 어쩐지 집을 알려주면 시간 날 때마다(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찾아올 것 같아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역시 난 정말 나쁜 딸년이었어.

 

엄마가 뭐라 하든,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당분간 나무처럼 광합성만 해야겠다. 흔들리지 않을테야. (루냐는 당분간 나무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나름 진정한 여행이기도 한 자취 생활. 가정사에 시달리기 싫어서 10년 전부터 꿈꿔온 독립. 산전수전 아직 덜 겪어봐서 엄마 그늘에서 나오려고 내맘대로 시작해버린 독립. 젊어서 고생 사서 한다는 속담을 나도 한번 지켜보자고 시작한 독립. 머리가 나빠 수족이 고생해도 내 머리 써가며 살아보자고 시작한 독립. 이제서야 나는 비행연습을 시작하는 아기 새의 기분을 알 것 같다.

루냐는 이제 나무이자 아기 새이기도 하지만, 이제 2만원으로 월급날을 기다려야 하는 거지루냐가 되기도 했다. 마음만큼은 초라해지지 말아야지. 앞으로 1년 동안 나와 함께할 그 공간을 다른 무엇이 아닌 루냐 공기로 채울테야. 음후후.  

 

+) 인쇄 걸어 놓고 시작한 포스팅, 시간 가는 줄 모른다. 400페이지는 언제 다 인쇄됐다냐. 켁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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