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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와 부안에서-경치에 반하고 사람들에게 반하고

[변산반도여행기]


전주와 부안에서-경치에 반하고 사람들에게 반하고


 


1. 전주-현대자동차의 주야맞교대에 분노하다


전주와 부안을 3박 4일동안 다녀왔다. 3월 10일 전주현대자동차에서 노동조합집행부가 직권조인으로 주야맞교대제에 합의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침울해있었는데, 마침 박병현동지가 몇몇동지들과 이야기좀 해보자고 하여 갔었다.


사실 그동안 전주현대자동차 투쟁소식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정세에 어두웠던 내가 참 부끄럽게 느껴졌다.. 전주를 내려가려면 진작에 갔어야지.. 그렇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때라는 옛속담도 있지않은가? 하면서 바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3월 15일 목요일 오전 9시 20분 기차를 탔다. 기차는 익산까지 온후에 갈아타게 되었는데, 전주가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보자, 한 남자분이 어디서왔냐고 묻는다. 하긴 그 근방에서 전주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대답도 하기전에 그 남자는 "강원도에서 왔지요?" 하고 되묻는다. 깜짝놀라서 어떻게 알았냐고 하자 내가 강원도 사투리를 쓰고 있다고 했다.. 하~~ 벌써 나도 강원도 사람이 다 되었구나......


전주에 내려서 첫 느낌은 황산벌이 생각났다. 전주는 나즈막한 야산들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라고 했다.


약속시간이 오후 7시였는데, 도착한 시간이 거의 오전12시정도였으니, 약 7시간 먼저 도착한 셈이다. 이렇게 약속시간을 미리 앞당겨서 지켜본적은 처음인것 같다. 나는 혹시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라도 한번 들어가보고 싶어서 일찍 도착했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가보지는 못했다. 예정대로 저녁 7시에 일부 현대자동차 동지들과 모임을 시작했다. 발표와 토론이 같이 이루어져서 토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것 같았다.


모임에 왔던 사람들은 정말 백제사람들같았다. 백제인들은 말투와 억양뿐 만아니라 생김새에서도 나타난다. 내가 본 백제인은 쌍가풀이 없는 약간 가느다란 눈매에 재치스런 입담이 쏟아지는 입술이 특징이다. 광주에 사는 내 후배인 송한수가 전형적인 백제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와보니, 다들 백제인이다. 여기에 있는 내후배, 공영옥의 남편인 김홍연도 전형적인 백제인이다. 툭툭뱉어내는 농담반 진담반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조금후에 들어온 그의 아들도 전형적인 백제인이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분들이 매우 힘들어하고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았다. 나는 현대자동차의 모든 분들을 다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일부 현장사람들을 만나보면서, 현장에서 투쟁을 지속될 것임이 예측되었다. 내겐 한시름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었다.


2. 전주비빔밥


전주라는 선입견이 아니더라도 음식맛이 너무 좋았다. 전주역세권에서 멋모르고 내맘대로 시켜서 먹어보았던 비빔밥은 서울맛 그대로여서 매우 실망스러웠어다. 저녁에 동지들이 간 집은 그다지 특색있는 집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뭘 내놓아도 맛있다. 동태찌게, 양푼양념고기, 하다못해 김부스러기까지..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라고 전주에 왔으니, 전주동지들을 따랐어야하는 것을......


저녁에 후배네 집에 세명의 객이 묵게 되었다. 거의 새벽 3시가 초저녁처럼 밤을 다새우면서 할 이야기가 많았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의 삶이 정말 지난하구나... 후배네 집에서 내놓은 복분자한잔은 먼곳의 피로를 모두 가셔주었다.


3.반란의 고장 부안에 가다: 새만금, 핵폐기물설치반대투쟁의 현장


아침에 MBC해고노동자 지지투쟁에 지원을 갔다. 그 지역사회에서 열심히 주민들에게 일을 했던 한 여성 아나운서가 비정규직으로 계약되었다가 이번에 해고를 당했다. MBC가 국가기업은 아니지만, 지역사회주민의 신뢰를 받고 일을 하다가 갑자기 해고통지서를 받았을 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무언가 위로의 말은 잘 못했지만, 나의 눈빛은 분명 그를 지지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게다.


지지투쟁이 끝나고, 아침에 유명한 전주콩나물해장국을 먹다가, 갑자기 부안에 사는 두 동지들에 이끌려 의기투합하여 부안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전주에서 평생을 운동밖에 몰랐던 내 후배, 부안이 집이어서 아무런 걱정도 없는 두 동지,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었다.나도 서해안은 강원도에서 꽤 먼거리여서 며칠에 걸려서 왔는데... 내가 언제 이런 일을 해보랴!! 하는 마음으로 동참했다. 사실은 현대자동차 동지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기 그지 없었지만 말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마음이 바빴다. 내후배는 차량도 준비하고.. 부안사람들은 차를 기다리는동안 시골에 구입하려던 생필품을 구하기위해 큰 시장으로 향햐고..


부안으로 가는길: 낮은 산.. 익산, 논산.. 왜 익산인가? 낮은 산과 절들: 문화재.. 불교문화재만 문화재인가?부안으로 가는 길에는 산이 거의 없었다. 서해안이고 남쪽이라 산이 없고 너른 평야만 보였다. 지나가는 곳이 김제인데.. 그 유명한 김제평야... 낮은 들녁에 오고있는 봄을 맞으러 가다니 너무 가슴이 설레었다.


새만금, 핵폐기물설치반대투쟁의 현장에 가다. 새만금을 지나면서 부안동지가 밖에 보이는 것이 바다가 아니라고 한다. '이건 바다도 아니고 호수도 아니여!!!!' 방조제로 막아서 인공적인 호수화된 모습이라고 했다. 그 지난한 투쟁의 현장이었던 새만금에 온것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공호수와 새만금의 인공방조제......부안동지는 계속 설명한다. 여기는 바다가 아니라고..... 그 곳 어민들의 허탈감에 가슴에 저려온다.


부안주민들의 핵폐기물설치 반대투쟁때 나도 한번 간 적이 있다. 그 당시 부안주민들과 함께 살았던 고길섶동지의 제안으로 '핵물질이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주민들에게 이야기하기위해서였는데, 그때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급하게 간 바람에 연단에 올라가자마자 주민들의 말똥말똥한 눈들만 빽빽하게 보이고, 나는 정작 할말이 생각나지않아 버벅대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 초청을 해준 고길섶동지에게 매우 미안했는데, 그 동지가 바로 여기있다.


길을 가면서 먹거리를 줍다. 부안에 들어서자 부안동지들이 바빠졌다. 부안동지네 생태학교를 들려서 부엌식기를, 농협에 들러 간단한 야채등을 사고, 부안에 사는 또한 동지를 함께 데리고, 격포해수욕장쪽으로 향했다.


생태학교 마당에는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아님) 마당에 있었던 이순신장군상이 있었다. 시멘트가 아니고 주물로 만든것 같다. 그 당시 전국의 모든 학교에 주물로 만든 이 이순신장군상을 설치했던것 같다. 입구에는 새 한마리가 나무로 만들어져서 세워져있고, 화단에는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는 허성호동지의 삶의 터이다. 우리는 서로 동백꽃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마디씩 하면서..학교 안을 들여다보니, 부안 핵폐기물설치 반대투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한쪽 벽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다. 부안사람들은 이제 투쟁의 경험을 가지고 남은 일생을 살아갈 것이다.


격포 해수욕장은 아름다왔다. 서해바다는 푸른색이라기보다는 검은색에 가깝기는 하지만, 물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준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를 보고, 그 바다의 넉넉함을 가지고 또다시 일터로 돌아가곤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쭈꾸미를 처음 본것 같다. 정말 쭈꾸미에게는 미안했다. 쭈꾸미를 조금 사들고 이제 해안가로 향했다. 우리는 해안가를 오염시키기는 싫어서 해안가에서 한참 떨어진 들판에 쭈그리고 앉았고, 쭈꾸미요리를 시작하는 부안사람의 손이 바쁘다. 쭈꾸미 샤브샤브..쭈꾸미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요리사의 손이 바쁘게 쭈꾸미를 손으로 건져서 먹기 바빴다. 쭈꾸미를 통째로 먹어야한다는것도, 쭈꾸미 샤브샤브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정말 평생몰랐을 일이었구나.. 마찬가지로 부안사람들은 강원도에 오면 꿩고기를 넣은 막국수가 있고, 옥수수를 갈아서 일정한 틀에 눌러서 만든 올챙이국수를 본적도 없을 것이다.


어찌보면, 지금까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인간은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도 서로 격리되어 다른 문화를 형성하고 살다가 죽는 것이다. 교통이 많이 발달하였다고 하지만, 동쪽끝인 강원도에서 서쪽끝인 부안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자주 볼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의 거의 99%는 어느 한 곳의 땅에 고착되어있다. 24시간이 부족하고 1년이 부족하다지만, 반복적인 삶을 제외하고는 평생동안에 얼마나 다른 경험들을 하고 살아갈 수 있는가? 나의 목표를 다른 사람과 맞추어보기나 했는가? 반복적인 삶(일생동안의 노동력재생산을 위한 필요노동시간일게다)을 줄일수만 있다면 인간은 정말 발전할텐데......아쉬움과 미련을 남기고, 우리는 또다시 반복적인 일상으로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가는길에 부안동지가 해안가를 바라보며, 변산반도에도 하늘과 땅이 열리는 길이 있다고 했다. 바다가 갈라지는 길이 있다고 했다. 우리의 지난한 삶도 하늘과 땅이 열리듯이 마침내 열어제껴질때까지..... 우리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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