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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일요일

가을은 유난히도 몸을 자극한다. 온 몸 구석구석 가을의 파장 긴 햇살이 파고든다. 일요일 아침의 한가하고 여유로운 공기는 심장을 거쳐서 손끝과 발끝까지 다다른다. 내 온 몸은 9월을 느끼고 아무도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파르륵 떨린다. 지난 밤 만취의 술에서 깨어나지 못한 정신은 길상사 조용한 극락전 앞 벤취에서 꾸벅거린다. 아직은 한낮의 더위는 여름을 기억한다. 그늘은 서늘하지만 햇볕은 아직 살갗을 그을리기 충분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하늘엔 이제 막 불켜진 붉은 십자가에 걸려있는 구름은 더딘 발걸음을 늘어놓고 있다. 부쩍 접어든 가을덕분에 기분은 상쾌하고 고요하지만 갑자기 사는 일이 무서워졌다. 지겨워진다. 해야하는 너무 많은 일들이 버겁지는 않지만 귀찮아진다. 고장난 라디오처럼 세상과 주파수 맞지 않아 지지직 거린다고 생각했는데 굳이 세상하고만 안맞은게 아닌 거 같다. 생각보다 고장이 심하고 여러군데가 나 있는 라디오였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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