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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로 살아간다는 것

병역거부자로 살아간다는 것 이라고 쓰고 보니 너무 거창하다. 그냥 사는 건데 쩝.

하고 싶은 말은, 병역거부자가 되는 일은 징병을 거부해서 감옥에 다녀오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싫든 좋든 병역거부를 결심하는 순간부터 감옥에 다녀와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폭력과 군대와 평화에 대한 끊임 없는 질문을 받아야한다. 이것은 뭐 대단한 사상이나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병역거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의 타이틀을 획득하거나 한 때의 이벤트가 아닌 아주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삶과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다.

 

살짝 걱정이 되는 친구가 있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그 친구의 삶도 걱정이지만 그친구가 혹여나 전쟁없는세상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이미 끼치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걱정이기도 하다. 병역거부가 삶이 아니라 타이틀이 되어버리면 어떤 비극이 일어날까.

물론 병역거부자들이 시종일관 무겁고 진지하고 이럴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정말 그냥 군대가기 싫어서 군대를 거부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러기에는 지금은 그 대가가 너무 막대하기 때문에 이런 거부자들은 한참 있어야 나올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한때는 병역거부라는 타이틀을 먼저 봤었다. 평화주의자로서 내면이 가득 찬 이후에야 병역거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병역거부자의 타이틀을 획득하기 위해서 성급히(지금 생각해보면) 병역거부를 선언해버렸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후에 평화주의자들을 만나면서 그 당시의 성급했던 선언을 지켜갈 수 있었지만, 또 다른 친구들은 성급한 결정에 후회를 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병역거부자. 확실히 센 느낌이다. 감옥에 갔다온다니. 사람들은 그래서 병역거부자들을 함부로 보지 않는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나에게 종종 함부로(나쁜의미아님) 하지만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같은 경우는 내가 진지하게 무게를 잡는다면 십중팔구 나의 연기에 다 넘어갈 것이다. 내 친구들은 나를 병역거부도 한 '이용석'으로 보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병역거부자' 이용석으로 보기 때문일것이다.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지 그사람들이 알면 병역거부자에 대한 배신감을 느낄지도.... 암튼 사회적으로 많은 불이익을 받지만, 또 한편에서는 다른 형태의 권력(이렇게 표현할수 있을까?)을 획득하는 것이 병역거부자이다. 그리고 정말 별거 아닌 그 권력에 살짝쿵 눈이 멀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나 또한 얼마나 소심하고 쪼잔하게 이리저리 계산하고 병역거부자인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은근히 병역거부자임을 내세우기도하는지 알고 있다.

 

다시 각설하고 병역거부 타이틀이 분명 유명해지는데, 그리고 소위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에게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받는 눈빛을 받는데 유용할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신을 병역거부와 정 반대의 삶으로 이끌어 가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백번 양보해도 병역거부자라는 타이틀을 병역거부자 스스로가 신경쓰는 것은 그다지 좋은 모습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병역거부자가 되기로 하는 것은 병역거부자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병역거부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병역거부자는 아주 다양할것이다. 누구는 근본적인 평화주의자 일것이고, 누구는 폭력이나 전쟁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일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현실과의 최소한의 타협을 조정하는 일이다. 누구는 농부로 살아갈 것이며, 누구는 마을공동체를 꾸리는 활동가로, 누군가는 대안학교 교사로 살아갈 것이다.

 

세상 모든 기자들과 언론들이 관심 가져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만큼 병역거부자 이름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 병역거부, 더 넓게 양심에 따른 거부는 이름없이 살아가며 자기 삶을 고요하게 들여다보며 자신의 삶속에서 다른 존재를 인식하고 세상속에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좀 멀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쓴 글이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를 바라고 내가 참여하는 행사들이 대박나기를 바라고 내가 좀 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운동은 뭔가 더 쎈 것을 잘 포장해서 관심을 많이 끄는 운동이 아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병역거부자로 불리거나 유명해지는 것에 신경쓰기 보다는 어떻게 살아갈지 삶을 고민하면 좋겠다. 사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느껴지는 요즘 더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내가 평화주의자라고 입으로 떠들어대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병역거부자라고 인정해준다고 해서 내 삶이 평화를 살아가는 것은 아니더라.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떻게 돈을 벌고, 무엇을 먹고,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무슨 일을 할 지. 결국 모두가 하는 고민들이지만, 바로 거기에 평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병역거부자가 되기 위해서 아주 현실적으로 군대를 거부하는 것보다 감옥가는 것을 준비해야하고, 감옥가는 것보다 살아가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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