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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가 필요해

때로는 상징과 비유를 쓰지 않고 직접적으로 한 표현들이 사람들의 해석을 거치면서 의미심장한 문구로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면,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쓰고 막아보려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 두 마디이다. 반복되는 두 마디의 강렬한 포스가 듣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사랑노래로 생각한다. 아무리 애를쓰고 막아보려해도 들리는 너의 목소리라니, 얼마나 끈적한 고백인가. 소설가 한강은 한 에세이에서 이 노래를 들으면 정태춘박은옥의 '그대 고운 목소리에~'로 시작하는 노래가 생각난다고 한다. 그런데 델리스파이스의 말을 들어보면 이 노래의 가사가 쓰여진 배경은 이렇다. 방음시설이 잘 안되어 있는 집에 살고 있을 때, 옆집 사람의 말소리가 너무 시끄럽게 들려서,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해도 역부족이었던 경험에서 쓴 가사라는 것이다. 델리스파이스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암튼 사랑노래로 사람들이 받아들여도 충분히 아름다운 노래임은 틀림없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또한 데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처럼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님의 침묵에서의 님이 무슨 부처라느니 민족이라느니 말들을 하지만 난 아무리 봐도 그건 사랑시다. 사랑하는 님이 멀리 떠나가버려서 너무 슬픈거다. 뭐 근데 이건 확인할 수 없으니... 넬 노래 중에 제목이 기억이 안나지만, "유난히 내 곁에만 산소가 모자란듯..."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갑자기 바로 이 구절도 상징과 은유가 아닌 직접적인 표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숨쉬기 힘들정도로 외롭고 힘든 감정상태가 아니라 정말로 산소가 모자라서 숨쉬기가 힘든거다. 고산지대도 아닌데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나는 오늘 아침에 경험했다. 요새들어서 자주 이런 경험을 하는데 술을 마신 다음날은 숨쉬기가 힘들다. 산소가 뇌에 잘 공급이 안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느린 걸음에도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람들을 둘러보면 다들 멀쩡하다. 유난히 내 곁에만 산소가 모자란 듯 나 혼자서만 숨쉬기가 힘들다ㅠㅠ 넬도 술마시고 난 다음날 이 가사를 썼을까? 암튼 때로는 의도적으로 상징과 비유를 배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상징을 띄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람들이 의미를 덧칠하기도 한다. 산소가 뇌에 잘 공급되면 더 정리된 글을 썼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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