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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시와 노래...

7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2/20
    강물
    무화과
  2. 2008/02/10
    그 여자네 집
    무화과
  3. 2008/02/05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무화과
  4. 2008/02/04
    청주에서 썼던 시들 + 수원에서 쓴 시
    무화과
  5. 2008/01/08
    여행
    무화과
  6. 2007/12/26
    신풍역에서
    무화과
  7. 2007/12/25
    사라진 손톱(1)
    무화과
  8. 2007/12/14
    내 시간
    무화과
  9. 2007/11/17
    내 마음
    무화과
  10. 2007/11/16
    커피를 물보다 많이 마신 날
    무화과

강물

강물                                                  박용하

 

 

얇게 얇게 생선회 저미듯

곱게 곱게 바람 접어 밀리는 물결

아무도 없었지요, 3월

강가에는 소원성취 초 꽂아놓고

누군가 빌다 갔더군요

물 보러 갔었어요

당신 생각이 문득 올라오더군요

올라와 물결 따라 한결같이

밀리는 걸 어쩌겠어요

견딜 수 없는 것들만

삶이 되겠지요

돌 던지던 짓도 그만두고

밀리는 물결따라 참 멀리 갔지요

나는 고통받는 자였던가요

고통하는 자였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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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집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 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언듯언듯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여하고 싶은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은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김칫독 안으로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허리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목화송이 같은 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히,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네집

 

어느날인가
그 어느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있던 집

여자네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지리산에 갈 때 마다 산장에 비치된 시집을 집어드는데,

그 시집들엔 나희덕도 있고 도종환도 있고 장석남도 있고

백무산도 있고 아무튼 좋은 시들이 참 많은데

그 중에서도 김용택의 '그여자네집'에 짜구 눈이 간다.

한 번 읽고 두 번 보고 세 번 감상하게 된다.

지리산에 갈 때 마다 얼른 산장에 도착해서

그 여자네 집을 읽고 싶어 그 아름답고 장엄한 풍경을 제껴두고

발걸음을 빨리하게 된다.

 

어디선가 이 시와 관련된 김용택 시인의 산문을 읽은 적이 있다.

어두워진 밤 노란 은행나무 잎사이로 잎보다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앞을 아쉬워서 지나치지도 용기내어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계속 뒤돌아보면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혹시나 뒷걸음 칠 핑계꺼리가 없을까 상상하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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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장석남

 

 

저 새로 난 꽃과 잎들 사이

그것들과 나 사이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무슨 길을 걸어서

새파란

새파란

새파란 미소는,

어디만큼 가시려는가

나는 따라갈 수 없는가

새벽 다섯 시의 감포 바다

열 시의 등꽃 그늘

정오의 우물

두세 시의 소나기

미소는,

무덤가도 지나서

화엄사 저녁 종 지나

미소는,

저토록 새파란 수레위를 앉아서

 

나와 그녀 사이 또는

나와 나 사이

미소는,

돌을 만나면 돌에 스며서

과꽃을 만나면 과꽃의 일과로

계절을 만나면 계절을 쪼개서

어디로 가시려는가

미소는,

 

 

 

새벽 감포 바다에 가보고 싶다.

노고단을 올라가며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산길을 걸으며

멀리서 들려오던 해질녘의 화엄사 종소리를 기억한다.

새로난 꽃과 잎들 사이, 그녀와 나 사이

그래서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걸까? 나는 따라갈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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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썼던 시들 + 수원에서 쓴 시

머릿카락의 비명

 

 

은빛 날개가 번뜩이면

검은 욕망이 우수수

침묵처럼 낙하한다

 

날카롭게 잘려진 틈새로

독버섯같은 욕심이

한숨처럼 새어나온다

 

차디찬 바닥에선

온기잃은 분신들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른다

 

 

 

 

내 귀에서 자라난 소리

 

 

어둠이 다소곳이 내려앉은 고요한 밤

빛이 사라진 자리에 소리가 자라난다

 

밤 11시를 넘어가는 시계의 초침소리

뒤척이며 잠든 손님들의 새근새근 숨소리

밤새도록 이글대는 형광등 소리

멀리 담 넘어 개짖는 소리

그리운 님 애타게 부르는 풀벌레 울음소리

구름 뒤 달님의 미소짓는 소리

잠들지 못하는 밤 심심한 눈꺼풀 꿈벅거리는 소리

 

날부르는 당신의 심장소리

다가서면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

 

침묵하는 가을 밤

내 귀에서 자라난 소리

 

 

 

 

빗방울 합주곡

 

 

퐁퐁퐁

귓볼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창 밖에 연주회가 한참이다

새들도 풀벌레도 모든 밤의 악사들도

어둠속에 침묵하며 연주회를 경청한다

 

차가운 새벽이 코 끝을 간지르고

나는 베토벤처럼 헝클어진 머리로

넓다란 객석에 저 홀로 앉아서

빗방울의 합주곡을 감상한다

 

총총총

지상으로 추락한 천상의 선율

세상을 두드리는 타악기의 향연

단조로운 리듬은 천 번 만 번 새롭고

투명한 음색은 땅 위의 것들과 부드러운 화음을 이룬다

 

간 밤에 무슨 꿈을 꾸었지?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

가을을 가득 채운 음표들의 춤사위

 

 

 

2007년 늦은 여름과 가을에 청주에서 썼던 시들

 

 

 

 

저 하늘을 날아

 

 

창살너머 하늘하늘

부는 바람

창살사이 쭈볏쭈볏

손 내미는 햇살

 

구름이었어라

한 마리 새였어라

심장에 아로새긴

전생의 기억 따라

 

바람을 만나면

바람에 몸을 싣고

햇살이 비추면

창공에 높게 날아

 

가끔씩 지칠 때면

고독한 산허리

춤추는 나무 어느 가지 끝자락에

살며시 내려앉아

한 숨 돌리리

 

2007년 봄에 수원에서 썼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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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곳을 떠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

내가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이면 충분하다

익숙한 풍경과 오래된 거리와 새로운 바람이면

낯선 사람들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조선시대 어느 읍성 높은 망루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멀리 소나무 밭과 빙그르 돌아가는 하천과

땅으로 내려앉은 낮은 건물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그런 곳이면 좋겠다

 

어느덧 스멀스멀 자라난 손톱과

면도를 하지 못해 까칠한, 풍성하지 못한 턱수염

언제나 욕심은 새롭게 자라난다

 

애시당초 무언가를 찾기위해서 떠났던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서 떠났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돌아온 서울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어두운 안개에 휩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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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역에서

지하실의 익숙한 곰팡내가 기차와 함께 도착했다가 순식간에 떠나간다

날마다 온수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도착할 어떤 곳을 향해

수많은 역들을 꾸벅꾸벅 졸면서 지나간다

그곳에 어떤 이야기들을 남겨놓았을까

 

언제나 인생은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은 신풍역 플랫폼에서 지하철과 함께

잠시 머무르는, 바로 앞 정거장의 바람들이었을 것이다

 

기차는 울지않는다

스크린도어 뒤에서 다만 사람들이 들을 수 없게

흐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차와 함께 온 그 바람들도 울지 않는다

애시당초 울음이란 아름다우면서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방식이었을테니

 

나도 울지 않았다

때로는 펑펑우는 날도 있었지만

졸면서 지나쳤던 무수히 많은 역들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신풍역 모퉁이 조그만 치킨집에서

조용히 미소띄운 나를 보며

그녀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기차는 조용히 신풍역을 출발한다

기차도 나도 지나가는 바람따위 붙잡지도 흔들리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의 길을 갈 뿐이다

왜 나는 눈물 흘리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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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손톱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린 왼손

네번째 약지 손톱의 끝트머리가 움푹 패였있다

손톱이 잘려나간 각도는

이 세상과 수직으로 만난다

손톱깍기로는 도저히 이루어 낼 수 없는 저 경사를 보라

 

감자였을까 양파였을까 버섯이었을까

오이였을지도 파프리카였을지도

칼날에 잘려나간 내 손톱은

어떤 접시에 들어갔을까

 

채식하는 내 친구들은 얼떨결에 사람고기 맛을 봤을터인데

잘려나간 손톱은 어느집 뱃속에서 서럽게 울고있으려나

 

살아가는 일은 이다지도 칼로 사방군데 썰어대는 일이라고

아무도 모르게 사람고기까지 먹게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거라고

그래서 손톱 끝트머리가 무덤덤하게 시려오든

손톱조각 들어간 창자가 시커멓게 독이 오르든

아픈 몸, 외로운 마음 질질 끌고라도 가는 일이라고

 

성탄절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린

손톱하나 이상하게 패여있는 못생긴 손이

나에게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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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간

내 시간은 똥

다른이들은 하찮게 보더라도

나에겐 너무도 소중해요

 

내 시간은 낙엽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밟히고 조각나고 바스라지고

끝내 돌아갈곳으로 가지못해요

 

내 시간은 고장난 시계

세상의 시간과 다르게 돌아가는 바늘

사람들의 시간과 다르게 돌아가는 시계

 

당신이 날마다 나를 바람맞혀도

당신이 날마다 약속시간 안지켜도

당신이 날마다 날마다 내 시간을 뭉개버려도

 

1년 2개월의 시간도

단 한 순간의 멈춤도

길게 이어지는 호흡같은 공간도

 

모두 다 내겐 너무나 소중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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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내 마음                                         안동 대곡분교 2년 이승영

 

내 마음에는 날마다 놀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사무 일만 시킨다.

내 마음에는 도망갔으면 좋겠다.

   

                                                               (1969년 10월 6일)

 

 

 

이오덕선생님이 엮은 '일하는 아이들'이라는 어린이 시집에 실린 시다

나의 글이, 나의 시가, 나의 삶이 이처럼 정직했으면 좋겠다.

겉치장이나 기교따위는 벗어던지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아주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솔직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어쩜 이렇게 짧은 몇 개의 문장으로

아주 일상적인 단어들로

자신을 진실되게 드러내고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참 공부가 많이 되는 시다.

 

근데 69년에 초등학교 2학년이었으면 지금은 나이가 꽤 많겠다.

이 시의 주인공이 지금 이 시를 보면 수줍으면서 부끄러우면서

재밌어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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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물보다 많이 마신 날

커피를 물보다 많이 마신 날

 

 

커피를 물보다 많이 마신 날은

부어오른 목울대가 쇠소리를 내뱉는다

 

거친 숨결보다 더 많은 말을 내뱉은 날은

씁쓸한 커피향이 입안에서 잠복한다

 

커피색보다 짙은 어둠이 숨어든 거리에서

목소리보다 더욱 둔탁한 발자국소리

터 벅 터 벅

하늘엔 조각달 저 혼자 산책나왔나보다

 

 

 

목도 아프고 발바닥도 아픈고 머리도 아픈날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한 숨 푹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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