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시와 노래...

7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6/25
    한국전쟁 60주년 맞이 시 두 편
    무화과
  2. 2010/06/11
    2010/06/11(1)
    무화과
  3. 2010/06/11
    다닥다닥 붙은 집(1)
    무화과
  4. 2010/05/26
    호수1(2)
    무화과
  5. 2010/05/25
    여승 (1)
    무화과
  6. 2010/05/20
    오랜만에, 아무 것도 아닌 일(2)
    무화과
  7. 2010/04/22
    당신들이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 브레히트
    무화과
  8. 2010/03/31
    엄마걱정 - 기형도
    무화과
  9. 2010/03/25
    외롭지 않아 - 옥상달빛(2)
    무화과
  10. 2010/03/12
    시 몇 편
    무화과

한국전쟁 60주년 맞이 시 두 편

통일이 언제 되니?                                 -권정생

 

우리 나라 한가운데

가시울타리로 갈라놓았어요.

 

어떻게 하면 통일이 되니?

가시울타리 이쪽 저쪽 총 멘 사람이

총을 놓으면 되지.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베르톨트 브레히트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첫 번째 전쟁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전쟁이 일어났었다.

지난번 전쟁이 끝났을 때

승전국과 패전국이 있었다.

패전국에서 하층 서민들은

굶주렸다. 승전국에서도 역시

하층 서민들은 굶주렸다.

 

 

 

요새 참여연대 앞에서 군복 입고 시위 하시는 분들

전쟁을 겪은 세대라서 확실히 우리 세대보다 전쟁에 대한 거부감이 클 거 같다.

그런데 문제는 전쟁을 피하려는 게 아니라 이기려 한다는 거

전쟁을 이기기 위한 노력이 전쟁을 만드는 일인데...

그분들께 권정생 선생님 시를 읽어 드려야 한다.

 

밑에 브레히트 시는,

그냥, 한국전쟁 60주년 맞이해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6/11

해결방법                               -브레히트                      

 

6월 17일 인민봉기가 뒤

작가연맹 서기장은 스탈린 가에서

전단을 나누어 주도록 했다.

그 전단에는, 인민들이 어리석게도

정부의 신뢰를 잃어 버렸으니

이것은 오직 2배의 노동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다고 씌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산하여 버리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을까?

 

 

엄마 엄마 우리 엄마                      -권정생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온달같이 고운 엄마

 

고생 고생 살던 엄마

불쌍 불쌍 우리 엄마

 

좋은 반찬 나를 주고

나쁜 반찬 엄마 먹고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좋은 옷도 못 입고서

 

고생 고생 살던 엄마

불쌍 불쌍 죽은 엄마

 

엄마 엄마 무덤가에

꽃 한 송이 피어 있네

 

엄마같이 야윈 얼굴

꽃 한 송이 피어 있네

 

 

 

그래도 시가 있어서 다행이야. 분노하고 위로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다닥다닥 붙은 집

다닥다닥 붙은 집                                                                 -백창우 개사

 

맘 놓고 놀 수가 없어요 정말 맘 놓고 놀 수가 없어요

시끄럽다는 소리가 더 시끄러워요

 

맘 놓고 노래할 수가 없어요 정말 맘 놓고 노래할 수가 없어요

듣기 싫다는 소리가 더 듣기 싫어요

 

 

원작은 사북초등학교 6년 심선이가 쓴 시

 

다닥다닥 붙은 집

 

맘 놓고 놀 수가 없어요.

시끄럽다는 소리가

더 시끄러워요.

 

처음 이 시 봤을 때 빵 터졌다. 그리고 통쾌했다.

시끄럽다는 소리가 더 시끄럽다니, 듣기 싫다는 소리가 더 듣기 싫다니.

그래, 대체로 어른들은 자기 기준에서 아이들에게 훈계하지만

정작 그 기준으로 자기를 돌아보지는 않지.

 

그래서 나도 한 마디 보태면,

우려스럽다는 소리가 더 우려스러워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호수1

호수1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밖에

 

정지용,<시문학>,1930

 

 

개똥이네집 6월호에 서정오 선생님이 시인 정지용에 대해 쓴 글에서 소개한 시다. 시인이 어린이를 위해 쓴 시란다, 대부분 동시가 그렇듯 굳이 어린이들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어른들이 더 봐야할것이다.

 

이 시도 참 아름답다. 대구가 기가 막히다. 특히 '폭 가리지만'과 '눈 감을 수밖에'의 대구가 눈이 부시다. 운율도 그렇고, 뜻은 다르지만 '가리'와 '감을'을 입에서 발음할 때 나는 소리가 비슷해서 참 재미있다.

 

하지만 이 시의 백미는 대단한 비유, 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저렇게 표현했을까 싶은 그 비유에 있다.뭐라 설명할 수 없이 내 감정이 시인의 감정에 일치되며 황홀해진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저 구절을 만났을 때 가슴을 딱 치고, 보고 싶은 마음 못이겨 눈 감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여승

여승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출근하려고 빈둥거리다 시간이 살짝 남아서 백석시집을 꺼내 들었다,

백구두에 백정장 입고 다닌 북쪽 멋쟁이였다는 시인은 그러나 시 만큼은

백구두, 백정장과는 살짝 다른 멋이 나게 쓰는 시인이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눈은 푹푹 나리고'와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에

꽂혔는데, 눈이 오는 모양을 '푹푹'이라고 표현한 것이 참 재미있었고

보통 '사랑을' 할 텐데 '사랑은'이라고 하니 익숙한 표현을 낯설게 하면서 오는 신선함과

그러면서도 기막히게 입에 착착 붙는 어감이 좋아서였을게다.

 

오늘 아침엔 <여승>을 읽었다. 흔히들 백석의 시에는

20세기 초반 북쪽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우리 토박이 말이 잘 살아있다고 하던데

확실히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살짝 어색해보이지만, 막상 소리내어 읽어보면 입에

딱 붙는 재밌는 표현들이 많다.

 

'녯날같이 늙었다'거나 '불경처럼 서러워졌다'는 표현도 참 느낌이 좋다.

옛날같이 늙었다는 건 뭘까. 늙는 건 미래의 일인데, 옛날이라는 과거로 비유를 하는데 이게 참 매력있다. 불경처럼 서럽다는 것도, 불경을 제대로 안읽어봤지만, 절에서 스님들이 나지막히 읊조리는 걸 보면 서럽다기 보다는 차분한 느낌이었는데, 서럽다고 표현한 것이 여승이 되는 시 주인공의 상황과 겹치면서 감정을 몰입할 수 있는 비유가 되어버렸다.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는 표현도 참 슬픈 일을, 이렇게 슬프게 표현할수 있다니, 하는 장탄식이 절로 나오게 한다. 그냥 '죽었다' 라고 했으면 이런 감정이입은 없었을텐데.

 

그리고 시에 나오는 여인의 삶이 참 기구하다.

최근에 <몽실언니>를 봤는데, 이 여인의 삶이 몽실언니와 겹쳐져 보인다. 몽실언니 뿐만 아니라 권정생 선생님이 쓴 <한티재 하늘>에 나오는 수많은 여성들과 겹쳐 보인다. 조선왕조가 무너지며 일본을 통해 근대문물이라는 것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근대 사회가 한반도에서도 작동하면서 소수 몇 명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감내해야하는 희생은 확실히 약자들-여성들에게 지워진 것 같다. 이 시에 나오는 여인은 그런 구구절절한 사연은 안나와 있어서 단정지어 말 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팔자가 박복한 특정 개인이기 보다 그 시절 여인들의 삶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랜만에, 아무 것도 아닌 일

내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누군지 안다.

그래서 안 좋다. 솔직한 글을 쓸 수가 없다.

하지만 좋을 때도 있다. 조용히 와서 살짝 내 마음을 살펴보고 가는 이들에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전해줄 수 있다.

문득, 조약골이 부른 아무것도 아닌 일을 들려주고 싶다.

이 노래가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이 노래에 위로받았던 것처럼

위로받길 바라며.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니까. 금새 성큼성큼 걸어오기를.

물론 그렇기 위해서 지금 당장은 뼈가 아프고 심장이 녹아내리겠지만.

괜찮다고,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지금 아무 것도 아니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될 수 있기를. 

 

 

아무것도 아닌 일

글 이밝은진
곡 조약골

어느날 넌 그렇게 왔어
아무것도 아닌 일
귓가를 스치는 사소한 입김으로 왔어
그걸 난 기억해

그래서 아닌 줄 알았지
아무것도 아닌 일
뼈가 아프더라도 그건 아무 것도 아닌 일
심장이 녹더라도 그건 아무 것도 아닌 일

어제처럼 밥을 먹고
어제처럼 취하고
어제처럼 잠을 자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
금새 성큼 성큼 걸어올 만큼
어느새 물이 키보다 높이 차오를 만큼

그래서 아닌 줄 알고있어
아무것도 아닌 일
마음 쓰지 말고
별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온만큼 갈꺼라고
아무것도 아닌 일
빨리 갈꺼라고
괜찮다고
아무것도 아닌 일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dopehead.net/files/nothing-06.mp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당신들이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 브레히트

당신들이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당신들이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추측컨대, 당신들은 백만장자인 모양이다.

당신들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 ― 미래가 당신들 앞에 환히 보인다.

당신들의 부모는 당신들의 발이 돌멩이에 부딪히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놓았다.

그러니 당신은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 계속해서 살 수가 있을 것이다.

 

비록 시대가 불안하여,

내가 들은 대로 어려운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만사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말해 줄 당신의 안내자들이 있다.

어떤 시대나 타당한 진리와

언제나 도움이 되는 처방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은 모든 요령을 수집해 놓았을 것이다.

당신을 위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한

당신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일에 사정이 달라진다면 물론 당신도 배워야만 할 것이다.

 

 

나는 백만장자도 아니고, 내 부모님은 나에게 사랑 말고는 줄 것이 없고(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나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은 '요령'을 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고민거리를 던져주면서 나 스스로 깨치게 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배워야 한다. 책을 더 많이 읽고,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울고, 웃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모자르다.

노는 일에는 시간이 잘 나는 데, 일하기 위해선 시간이 모자른 것도 이해하겠는 데,

왜 책읽는 시간이, 두리반을 찾아갈 시간이, 노조 만들기 위해 이것 저것 해야할 시간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뇌할 시간이 도통 부족한 걸까.

이러다 정말 멍청이, 띨띨이가 될까 걱정이다.

생각하지 않고, 아파하지 않고, 때가 되면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월급으로 한 달을 살아가는 것으로 세월이 흘러갈까봐 걱정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엄마걱정 - 기형도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간식을 준비해주시고

방금한 따뜻한 밥 먹이겠다고 날마다 밥을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하셨다.

집에 가면 항상 엄마가 있었기때문에 나는 학교 다니면서 한 번도 집 열쇠를 가지고 다녀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날. 집에 왔는데 현관문이 잠겨있고 집에 아무도 없었다.

왠지 모르게 엄마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엄마가 집 안에서 밖으로 나가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엄마'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덜컥 겁이 났다.

창고쪽으로 돌아들어가는 좁다란 통로에서 안방 창문을 기웃거리면 많이 울었다.

 

기형도의 엄마 걱정을 볼 때면 그날 생각이 자꾸 난다.

 

오랫만에 부천집에 와서 엄마를 봤다. 봤다고 하기도 민망하다.

밤새 놀다가 이른 아침에 기어들어와서 바로 쓰러져 잤으니까.

술퍼마시고 아침에 기어들어온 아들래미를 그래도 오랫만에 왔다고 반가워하신다.

며칠전에 아빠한테 전화 한 통 했었는데, 아빠가 엄마에게 아들한테 전화왔다고 자랑하셨단다.

내가 전화하면 좋아하시니 전화 자주 드리란다.

 

아 이 양반들 어째야하나. 이렇게 쉽게 기뻐하는 양반들. 

이 쉬운 것도 제대로 못하는 이 놈의 불효자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외롭지 않아 - 옥상달빛

외롭지 않아 나는

어둔 밤하늘 별 보면

슬프지 않아 나는

그림처럼 달빛이 내리면


캄캄한 저 골목 따라

반짝이는 가로등 따라

그림자도 슬슬 걷네

나와 닮았구나


아 그렇게도 찾아 헤맨 너의 모습 보면서

참 너와 나는 닮았구나 생각했어


요새 시와 1집과 함께 매일 듣는 노래.

어떻게 들으면 참 외롭구나, 외롭지 않다는 건 반어적인 표현이구나 하는 기분이 들고

또 어떻게 들으면 외로워 보이는 풍경들 속에서도 차분하고 덤덤하게 그렇지만 외로움에 짓눌려 비틀거리지 않고 걷는 거 같아서 노랫말 그대로 외롭지 않은 거 같기도 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 몇 편

혁명                               

 

하느님 몸 속에서

피를 자꾸 뽑아낸다

 

석유 가고 이어

 

자동차 서고

비행기 앉고

공장굴뚝 연기 멎고

높은 집들 텅 빌 때쯤

 

혁명이 온다

 

사람들 다시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오순도순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루는

 

 

 

 

하느님처럼 저절로 있는 나는

낮은 곳으로 흐르다 바다에 이르면

한마리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곤 한다

 

내가 아래로 내려가면 물고기들이

개구쟁이처럼 속살을 간질이며 올라오는데

이것이 오래된 우리의 인사법이다

 

누가 우리의 만남을 시샘하는가

온갖 오물로 괴롭히더니 마침내

등을 삽으로 내리찍고 살을 토막내려 한다

 

 

 

용산참사역

 

대한민국 서울시 인권 일번지

불에 탄 주검 위에 새로 생긴 역

 

다섯구의 시신은 냉동고에서

봄 여름 가을 없이 갇혀 지내다

일년이 되어갈 때 풀려나왔네

 

늙으신 하느님이 비틀거리며

날마다 찾아와서 울고 가던 곳

 

 

 

녹색평론 이번 호에 실린 최종진 시인의 시 몇 편 '용산참사역' 마지막 두 행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늙으신 하느님이 날마다 남일당 앞 인도에서, 레아호프에서 펑펑울고 꺼이꺼이 울고 통을 하고 곡을 하는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때로는 비장한 철거민의 모습을 하고서, 때로는 귀여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서, 시인의 모습을 하고, 백발 성성한 노신부의 모습을 하고, 카메라를 들고, 연필을 들고, 꽃을 들고, 촛불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 행색을 하고

날마다 찾아와서 자기가 지켜주지 못했던, 지켜줄 수 없었던 이들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것을 하느님 믿지 않고 천국과 지옥 믿지 않는 내 눈에도 보이는데소망교회 장로님 눈에는 왜 안보일까? 아. 한 번도 안와봤으니, 몸도 마음도 한 번도 안와봤으니 그러겠구나.

 

그나저나 그 하느님은 얼마나 원통하고 비참했을까. 예전엔 전지전능 했는데 이제는 이건희에 밀리고 건설자본에 밀리고 경찰특공대에게 밀리고 용역들에게까지 밀려 자신의 어린이이 무참히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무력감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