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시와 노래...

7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7/23
    새벽, 자전거를 타며(1)
    무화과
  2. 2008/07/22
    겨자잎을 씹으며
    무화과
  3. 2008/07/07
    자라난 손톱
    무화과
  4. 2008/07/02
    이 세상에 나를 닮은 사람은 없네
    무화과
  5. 2008/06/23
    시 3편
    무화과
  6. 2008/05/23
    계란말이 대실패기 (3)
    무화과
  7. 2008/05/23
    무제
    무화과
  8. 2008/05/16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슬픔(1)
    무화과
  9. 2008/05/12
    김일성만세 - 김수영
    무화과
  10. 2008/03/27
    불필요한 말들에 대하여
    무화과

새벽, 자전거를 타며

안양천의 시계는 한강의 그것보다 훨씬 자욱하여

마치 구름의 한 가운데 머무는 것 같았다.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없는 원초적인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멀리서 보이는 불빛들은 경계부터 희미해져 도깨비처럼 증발하였다.

숨을 들어마실때마다 한움큼씩 시큼한 기운이 폐부로 전해졌다.

확실한 것은 내가 어디쯤을 가고 있다는 것

지나온 길이 생각보다 길고

지나갈 길은 가늠이 안되는 어느지점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

나는 길을 잃지도 허우적대지도 않았지만

또한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했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다 환영처럼 보이고

체인을 굴려가는 두 다리 외에는 내 몸뚱아리조차 믿기지 않았다.

 

 

가도가도 끝은 보이지 않고 시작도 기억나지 않는

다리를 멈추면 그게 바로 끝인

20대 마지막의 나날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겨자잎을 씹으며

세상의 슬픔은 코에서 시작된다

찡하게 밀려오는 감정의 낮은 목소리

멀리 스피커에서는 시와의 화양연화가 들리고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노랫말이 또 한 번 코끝을 건드리고

코끝으로 밀려드는 슬픔과

코끝에서 퍼져가는 감회에 허우적거리며

우적우적 아침밥과 함께 겨자잎을 씹는다

거센 빗줄기 물러간 하늘은

또 왜 저리도 공허하게 맑은지

이번 슬픔 지나가면 다 울어버리고 나면

나도 저럴 수 있을 것인지

다시 겨자잎을 씹으며

슬픔인지 뭔지 모를 것들을 꼭꼭 씹으며

언제나처럼 마지막일 것 만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라난 손톱

시간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며칠 밤이 지났을까 문득 반달돌칼같은 손톱이 자라나 있었다

옛날 옛적 곡물을 베었을법한 둥근 모서리에

독이 올라도 한참 올랐나보다

내가 휘두른 돌칼에 오늘도 한 명 상처를 입고

나는 또 미안하고 미안하고 수백번을 미안해도

어느새 손톱은 자라나고

손톱밑에 시꺼먼 욕심이 끼어들고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손톱깎기로 아무리 다듬어 끝을 둥그스럼하게 해도

둥그런 모서리도 있다는 것을 몰랐던 거다

손톱이 자라난 시간을 몰랐던 거다

손톱밑의 검은 때를 보지 못한거다

손톱깎는 일조차 버거운 나날들을 지나가면서

반성조차 희미해져 또 누구를 할퀴고 갈것인가

봉숭아물 지쳐가는 계절엔 단풍에게 마음을 나눠졌던

그 아름다운 손톱은 어디갔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 세상에 나를 닮은 사람은 없네

이 세상에 나같은 사람은 없네

동으로 거스르는 조용한 물결이 나에게 이야기하네

얼굴에 부딪히는 맞바람이 내 귀에 속삭이네

 

길을 따라 내려가던 두바퀴를 잠시 멈추고 강물을 마주했네

바람은 멈추고 시커먼 물살은 내얼굴이 비치치 않네

여기까지 함께 왔던 숨소리도 들지지 않았네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숨 한 번 차지도 않았지만

내 마음 언제나 다리밑을 서성이네

 

저쪽으로 가라고 일러주던 별빛들은 사라지고

저만치에서 나를 따라오던 그림자도 흩어졌네

건전지가 다 된 뒷등이 마지막처럼 깜박이네

 

이 세상에 나를 닮은 사람은 없네

 

 

 

 

 

문득 나는 조은과 다른다. 현지와 다르다. 여옥이와 다르다. 오리와 다르다......

새롭지도 않은 생각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 3편

밤 미시령                                        -고형렬

 

 

저만큼 11시 불빛 저만큼

보이는 용대리 굽은 길가에 차를 세워

도어를 열고 나와 서서 달을 보다가

물소리 듣는다

다시 차를 타고 이 밤 딸그락,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듯

시동을 걸고

천천히 미시령으로 향하는

밤11시 내 몸의 불빛 두 줄기, 휘어지며

모든 차들 앞서 가게 하고

미시령에 올라서서

음, 기척을 내보지만

두려워하는 천불동 달처럼 복받친 마음

우리 무슨 특별한 약속은 없었지만

잠드는 속초 불빛을 보니

그는 가고 없구나

시의 행간은 얼마나 성성하게 가야 하는지

생수 한 통 다 마시고

허전하단 말도 허공에 주지 않을뿐더러

-그 사람 다시 생각지 않으리

-그 사람 미워 다시 오지 않으리

 

 

 

남해 금산                                                    -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겨울노래                                            -오세영


산자락 덮고 잔들
산이겠느냐,
산그늘 지고 산들
산이겠는냐,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아침마다 우짖던 산까치도
간 데 없고
저녁마다 문살 긁던 다람쥐도
온 데 없다.
길 끝나 산에 들어섰기로
그들은 또 어디 갔단 말이냐,
어제는 온종일 진눈깨비 뿌리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내리는 폭설暴雪
빈 하늘 빈 가지엔
홍시 하나 떨 뿐인데
어제는 온종일 란蘭을 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물소리를 들었다.
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

 

시가 나에게로 왔다. 그 어두컴컴한 한 시절의 시멘트 뱃속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계란말이 대실패기

점심을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뿔사 반찬들을 아침에 다 먹어버렸다

야채실을 열어서 브로콜리를 데치고

오랫만에 만만한 계란말이나 할까

갖은 재료들을 준비한다

 

아따 그놈 속이 꽉 찬 양파를 썰다가

계란말이 만큼이나 세상이 만만해보였던 나의 20대가 저물었음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눈물이 울컥 참을 수 없어서 애꿎은 양파에게 화풀이를 한다

도닥도닥 칼질이 양파를 내리친다

 

쪽파도 썰어넣고 마늘다진것도 넣고

계란을 풀고 물을 살짝 타준다

예전엔 미쳐 몰랐다 계란말이에 물을 타면 더 잘 익고 부드러워지는것을

세상사는 일은 결국에 물을 얼마나 타는것이냐에 달려있다고

물을 타면서도 잃지 말아야할 모습이 있다고

계란말이에 물타는 법을 가르쳐준 친구가 내게 말을 거는듯하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다져진 양파와 쪽파 마늘에 계란을 풀고 소금간을 해서 살짝 흘러보낸다

이제부터는 맛보다는 디자인에 신경을 쓸 차례다

김밥이 그렇듯 계란말이 또한 말려진 두께와 전체적인 모양새가 중요하다

예쁘게 말린 계란은 못생긴 놈보다 2.9배 맛있다

 

그런데 아뿔싸

익기도 전에 타들어 간다

후라이팬 바닥에 붙은 계란이 본분을 망각하고 후라이팬과 일체가 되려고 한다

아...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기름이 부족했던 것일까? 후라이팬이 덜 달궈졌었던 걸까?

어쩔수 없이 첫장은 스크램블로 급 변신을 시도한다

이제 기름도 넉넉하게 두르고 후라이팬도 여유있게 달구고 불도 살짝 줄이고

그런데 두 번째 장도 마찬가지다 그 다음도, 그 다음도

결국 4장의 계란말이 대신에 한 접시 가득쌓인 스크램블이 완성됐다

동생이 나무란다

 

후라이팬이 문제였다. 오래된 후라이팬은 더이상

계란말이나 부침개를 지쳐내기에는 삶이 버거운 녀석이었다

힘들어하는 녀석에게 괜한 노동을 시켰나 싶어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계란말이에 물타는 법을 배웠건만

그렇게 쉬운 계란말이를 대실패했다

세상에 만만한 것이 없어보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무제

살다보면 나무의 색깔이 빠뀔때마다 한 번 정도씩은 갑자기

마지막 술잔처럼 삶이 버거워질 때가 있다

밤새 흘린 눈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시간이 무거워질때가 있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라고 해도 그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칼마냥

내 인생이 꼬여있는것도 아닌데

비록 넉넉하지는 못하더라도 구질구질하게 가난한것도 아닌데

무작정, 한숨조차 버거워질 때가 있다

외로운 마음이 저혼자 달아나버린 순간이 있다

 

과거는 지지리 궁상맞고

미래를 불안하고 초조해서

어쩔수 없이 현실에 머무르는 각도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하늘을 높이 올려다보고

아무생각없이 페달을 저으며

바람에 대고 크게 소리치고

그러다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다음 계절에나 어쩌다 다시 한 번 찾아오는

그냥 그렇고 그런 순간들이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슬픔

사람들은 저마다 한움큼씩의 큰 슬픔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강철같은 심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바다같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남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혹은 알수조차 없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어서

동백꽃처럼 슬픔을 뚝뚝 떨구기도 하고

말하지 못한 설움 복바쳐 거슬러 오르기도 하고

 

그 누가 누구의 슬픔을 알아 줄 수 있으리오

그 누가 누구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으리오

그 누가 누구의 소리없는 오열에 귀기울일 수 있으리오

 

나 혼자 슬픔의 주인이기를 바랬는데

나만의 애인이기를 바랬는데

모두들 남모르게 몰래몰래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바에는 서로서로 만나면 될 것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차피 상처투성이가 될 것을 알 만큼 나이를 먹지 않았던가

 

오늘 나는 너의 슬픔을 보았다

내가 잘못 본 것일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본것을 그대로 믿어버리련다

그리고 네가 슬픔을 가졌다는 것을

나와 같은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고맙게 여기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일성만세 - 김수영

金日成萬歲                                        -김수영

 

 

‘金日成萬歲’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言論의 自由라고 趙芝薰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金日成萬歲’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政治의 自由라고 張勉이란

官吏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아무래도 김수영은 썩 대단한거 같다.

김수영 40주기를 맞아 김수영문학세미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수영시인의 미발표 시 15편과 일기 20편이 공개되었다고한다.

위의 시는 그 시들중 한 수

아무래도 저런 시를 쓰고 발표할 수는 없었겠지...

지금이라도 저런 시를 쓰면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갈 수도 있겠지

아무튼 참 대단하다. 저런 시를 쓸 수 있다면

간단 명료하고 명쾌하게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여

세상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불필요한 말들에 대하여

달콤한 말들을 속삭여 본 적이 언제였더라?

내가 뱉은 말들은 혓바늘 돋힌 말들

너의 가슴팍을 찔러놓고 저 멀리 날아가버리고

귀찮아 쉽게 던진 내 한마디에 너는 내게서 멀어져가고

생각없이 뱉어버린 한마디에 노란 가로등 처량한 골목끝에서

너는 달빛처럼 울음을 터뜨렸고

 

진지한 삶을 웅변해 본 적이 언제였더라?

한숨처럼 새어 나오는 의미없는 농담들

열정은 소나기 내리는 아스팔트처럼 식어가고

아무때나 튀어나오는 척추에서 뽑아낸 말들이

가치있는 것들의 가치를 퇴색시키고

나는 또 헐거워지고, 또 헐거워지고

 

때로는 나의 말이 너의 반짝이는 눈망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너와 나 사이에 놓인 흔들리는 다리

홍수로 불어난 강가에 놓여있는 위태한 다리

모든 불행은 다 여기서 시작되었다

 

어느덧 사람들은 말하고 있는 나를 상상하고

어느덧 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을 상상하고

내가 말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나를 거느리고 있었다

 

모든 말들이 눈감고 달려가기를, 침묵으로 달려가기를

그저 노래하기를 귀를 열고 노래하기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