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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1
    2010/03/01(1)
    무화과
  2. 2010/02/22
    북인권? (3)
    무화과
  3. 2010/02/21
    오소영 공연(5)
    무화과
  4. 2010/02/18
    내 고향
    무화과
  5. 2010/02/17
    개 꿈?
    무화과
  6. 2010/02/16
    [내가 살던 용산] 상현이의 편지 -앙꼬
    무화과
  7. 2010/02/15
    새해(1)
    무화과
  8. 2010/02/11
    눈오는 파주 (2)
    무화과
  9. 2010/02/10
    2010/02/10(1)
    무화과
  10. 2010/02/09
    2010/02/09(1)
    무화과

기다림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리며 살았던 적이 있다.

날마다 편지가 배달되는 시간만 기다리며 하루를 보냈다.

빈 편지통, 혹은 가득차 있지만 기다렸던 편지는 오지 않는 나날들.

그러다가 기다리던 편지가 오는 날이면 뛸듯이 기뻐 철창밖으로 날아갈 것 같던 기분.

그리고 또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기다림.

어쩌면 그 당시 나에게는 편지 자체보다도 기다리는 시간이 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유난히 추위가 길게 느껴지던 올 겨울, 내내 봄을 기다렸다.

아직 겨울이 빈 나무가지끝에 남아있지만 꽃샘추위가 마지막 한탕을 벼르고 있지만

그래도 봄이 성큼 다가왔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기다리던 봄이 와버렸으니 난 또 무얼 기다리며 살아가나.

 

시와 1집이 드디어 나왔다, 내가 출소하고 나서 얼마 안됐을 때 1집 준비한다고 들었는데

기다리고 기다리던 1집이 나왔다. 당연히 바로 샀다. 이미 공연에서 다 들어본 노래지만,

레인보우와 함께 공연할 때랑은 곡 분위기가 사뭇 달랐지만 여전히 위로가 되는 노래들.

한동안 시와1집에 파묻혀 살게 될 거 같다.

기다리던 시와1집이 나왔으니 난 또 무얼 기다리며 살아가나.

 

이제 3월. 2010년 프로야구 개막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프로야구 개막해버리면 또 무얼 기다리며 살아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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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1

1.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를 못느끼겠다. 그냥 이제 나도 그 사람이 싫다.

 

2.

나를 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을 내가 그리워해야할 필요를 이제는 못느끼겠다. 그냥 이제 나도 그 사람들 안보고 사는 게 좋다.

 

난생 처음으로 과거를 지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3.

선미는 내 이야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창언이도 내 이야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창언이에겐 미안했고 선미에겐 서운했다.

병역거부도 하고 나름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게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그래도, 솔직한 마음은 선미가 나에게 공감해주길 바랐다.

그사람들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병역거부를 하지 않았다면, 남들이 보기에 자유롭게 살지 않았다면, 선미나 창언이가 나에게

일말의 부채의식이나 미안함이 없었다면, 내가 했던 말이 불편했을까?

 

안다. 친구들이 불편했던 건 내가 병역거부를 했고 기타 등등이 아니라, 내가 했던 말이라는 걸.

그래도 아주 속좁은 생각인 줄 알면서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마치 내가 병역거부를 했고

내가 활동가로 살았었고... 이런 것들 때문이라고. 자꾸 아닌 줄 알면서 바보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주 잘못된 생각으로 내린 잘못된 결론인 줄 또렷히 알면서도

병역거부도 내 기억에서 지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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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권?

같이 사는 친구가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인이다. 기특한 것ㅋㅋ

집에 사랑방 후원인 소식지가 온다. 이런 것도 있었나? 사랑방이 소식지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인권오름만 내는 줄 알았는데, 쩝.

 

궁금한 마음으로 얼른 열어보았다.

이러 저러한 이야기들이 실려있고, 반가운 이름들도 눈에 띈다.

사랑방 활동 구조를 본다. 자유권팀, 사회권팀, 반차별팀....

그러다 북인권팀에서 눈길이 머무른다. 응? 북인권팀?

 

순간 BOOK인권팀이라고 인식했다. 석진이 BOOK인권팀이라구???

아... 젠장. 이제 정말 출판사 직원 됐나보다. 北인권을 보고 BOOK인권인 줄 알았다.

북카페, 북디자이너, 북콘서트 같은 단어들처럼...

 

왠지 기분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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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영 공연

오소영 공연을 봤다. 공연 중간에 해프닝(?)이 있었고, 원래는 스탠딩에 맞춰 설계된 무대를

맨 앞자리 의자에 앉아서 보느라 목과 허리가 고되기는 했지만, 공연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오소영은 시와와는 다른 무엇이 있다.

자신을 좋아하는 오래된 팬들은 1집에 배어있는 '정서'에 공감해주시는 분들, 이라고 오소영이 공연 중간에 말했는데, 그 말이 딱 들어맞는 거 같다. 아마 2집을 발표한 지금 오소영과는 또 다른, 딱 그 시절 그 나이의 오소영만이 가질 수 있는 방황과 혼란 같은 것들이 음악에 그대로 묻어있다.

 

나는, 20대에 제대로 방황해보지 못했다. 항상 길은 복잡하지 않았고, 그냥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언제나 해야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이 내 앞에 놓여있었고, 대체로 나는 그 일들이 즐거웠다. 실증을 느낄 때쯤, 혹은 생각이 바뀌어 갈 때쯤이면 또 어느샌가 새로운 일들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 20대에 불만은 없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절에만 허용되는 '방황'을 한 번 쯤 해봤으면 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무언가 통과의례 같은 걸 못 치르고 지나온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내 또래를 좋아하지만, 그들에게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들 외부에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홀로 사람 바글거리는 명동 한 복판에 서있는 기분이랄까.

 

오소영 1집은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뒤늦게 아쉬워하는 그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 나는 오소영 1집을 들으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숨어있는, 내가 경험해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었던 상황과 감정이 오소영의 노래에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소영 1집이 나에게 겪어보지 못한 과거라면, 2집은 내가 살아야 할 미래다.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여성들은 30대 후반을 지나면서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것 같다. 완벽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러면에서 아주 급진적이고 도발적이면서도 여유와 유머를 가진다고 하면 내가 받는 느낌을 어느 정도 표현한 것 같다. 오소영 2집도 그런 느낌이 든다. 1집에서의 방황과 불안함, 이런 것들을 다 극복하고 결론처럼 내려진 명쾌한 대답은 아니다. 그런 건 왠지 딱딱한 아스팔트길 느낌이 든다. 그보다는 발바닥 아프고 가끔씩 희미해지고 하는 들판에 난 풀밭 길이다. 길이지만 길이 아니기도 해서, 길을 둘러싸고 있는 풀밭들과 어울어질 수 있는 길. 방황, 불안함을 그대로 품어 안고 천천히 세상과는 다른 나만의 빠르기로 걸어가는 길. 워낙 지 잘난 맛에 사는 놈이라서 남들 삶에서 배우려는 노력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내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몇몇 내 친구들과 같은 느낌을 오소영 2집에서 받았다. 롤모델 리스트에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공연 보고 나와서 잊고 지내던 말이 생각났다. 한 때 나는 내 이상형은 노래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래서 결혼한다면, 이상은이나 이소라와 결혼할거라고^^ 그래 노래잘하는 사람하고 결혼해야겠다. 그래서 날마다 아침에 노래 불러 달라고 해야겠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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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젊었을 때에 거닐던 고향 마을 산과 들의 모습들이 엊그제인 듯 눈에 어립니다. 살아서 단 한 번이라도 고향 땅을 밟아 보고 그 심정을 고향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픈 생각은 나이가 더해 감에 따라 더욱 더해 가는 것 같습니다.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허영철, 303쪽

 

악랄한 전향 공작에도 빙긋이 웃기만 하며, 교도소측에게 "망상에 걸려 있는 광신 분자", "공산주의 사상을 맹신하여 전향을 계속적으로 거부"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노혁명가가 늙그막에 친지에게 쓴 편지에서 고향에 대한 애절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고향...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 편인데, '고향'만큼은 참 나도 가지고 싶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마을과 산과 들, 혹은 골목길이 있을까? 내가 살았던 동네들, 쌍문동, 방학동, 화곡동, 하단동, 화정동, 운암동, 문정동, 괴안동, 그리고 문발리... 어느 한 곳에 제대로 정 준 곳이 있었나? 나중에 몸과 마음이 상처입거나 지쳤을 때, 찾아 돌아가면 따뜻하게 맞이해줄 사람들과 풍경이 있을까?

 

대추리에서 농민들이 고향을 빼앗길 때, 이해하고 싶어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그 감정들.  '고향'

 

갈수록 이 험한 세상에서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보험회사와 증권회사에게 미래를 의탁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얼마 되지도 않은) 내 돈에게 친절한 거니까. 국가도 솔직히 믿을 수 없다. 결국 내게도 필요한 건 '고향'이란 이름의 공동체라는 생각이 든다.

 

뿌리내리지 못한 삶을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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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꿈?

며칠 전, 아마 설 연휴 때 였을 텐데.

아주 인상깊은 꿈을 꿨다.

지금은 구석구석 자세한 내용까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가장 핵심적인 줄거리는 기억이 생생하다.

 

1. 서점에 갔다. 교보였는지, 영풍이었는지,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분야별로 매대도 있고 하는 걸로 봐서 대형서점이었다. <내가 살던 용산>이 이쁘게 배치되어있는지 살피다가 문득 <안녕, 전우치?>가 눈에 띄었다. 서점 직원한테 이 책은 잘나가냐고 물었는데, 서점 직원 대답이 "완전 대박이예요!"

 

2. 두 번째 꿈은 거의 기억은 안나는데, 자전거를 잃어버린 꿈이었다. 화들짝 놀라서 생각해보니 내 자전거는 회사에 고이 모셔두었다. 자전거를 너무 방치해둬서 자전거가 나에게 경고했나보다. 기름칠도 좀 하고 묵은 때도 닦아야겠다.

 

두 꿈다 개꿈인가? 자전거 잃어버린 꿈은 개꿈이면 좋겠고 안녕, 전우치? 대박나는 꿈은 현실이 되면 좋겠는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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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용산] 상현이의 편지 -앙꼬

<내가 살던 용산> 가운데 다섯 번째 편인 '상현이의 편지'

교정보면서 여러번 울었다. 이 이야기를 읽고난 뒤 이성수 님의 영정 사진을 볼 때,

표정이 너무 평온해 보이는 거 같아서 울음이 왈칵 쏟아지게 만들었던 만화.

장례식날 먼발치에서 염색한 소년의 뒷모습만 보고도 그 소년이 상현이인줄 알 수 있었다.

 

"정직한 게 죄라면 우리가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라는 고 이성수 님의 말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솔직히 내가 보기엔 이놈의 나라에선 정직한 게 죄다. 그리고 정직한 사람들은 벌을 받는다. '가난'이라는 벌을. 가난은 원래 죄 될것이 아닌데, 오히려 떳떳하고 거룩할 수 있는 일인데, 이놈의 나라에서는 가난함이 무능력한 일이 되고, 무능력한 사람은 죄인이거나 인간 이하 취급하거나 한다.

 

이 만화의 화자인 상현이는 얼마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던데...

상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한 미래가 기다릴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는 수밖에 없다. 그 방법 밖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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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2010년으로 접어들 때는 책마감중이라 정신이 없었다.

2009년이 가는지, 2010년이 오는지 그런거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벌써 2월도 중순이 지났지만, 설날을 핑계삼아 새해가 되었다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내 나이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자꾸 떠오르는 2009년의 시간들과

2010년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하는 마음이

새해가 활짝 열렸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2009년은 역시나,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고,

예상하지 못한 궤도로 삶이 접어들면서 전혀 만날 일이 없었던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아직도 정신이 없다. 내가 처한 상황과 조건들이 어떤건지 가늠이 안된다.

그냥 살던대로 살면 되는건지, 어떤지 모르겠다.

나를 이야기하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들이 점점 사라진다.

언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표현될 내 삶이 혼란스러워진거다.

나는 이제 평화활동가도, 인권활동가도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그렇다고 그냥 회사다니는 회사원도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병역거부자'다. 내가 갇히기 싫어하면서도 때때로 이용해먹었던

'병역거부자라는 사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그 한 단어로 설명되긴 싫다.

내가 누군지 설명할 길은 갈수록 막막해지지만,

여전히 2010년도, (어쩌면 죽을 때까지) 결국 내가 누구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가야겠다.

 

새로운 길,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나를 떠나지 않은 사람들.

올해도 모험같은 일들이 펼쳐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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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파주

아침에 일어나보니 핸드폰으로 간밤에 눈이 내려 출근길 정체 예상이라는 방송문자가 와있다.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보니 음. 눈이 제법 쌓여있다. '오늘은 걸어서 출근해야지.' 마음 먹는다.

 

파주로 이사오고 며칠 안돼서 큰 눈이 왔다. 사람들은 지각하거나 파주까지 못들어왔다. 나는 같이 사는 친구와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날은 정말 갑작스레 대단히 많은 눈이 왔고 길이며 나무며 차, 집, 세상에 하얗지 않은 것은 없었다. 발목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아무도 없는 길을 룰루랄라 걸어오는 기분이 참 좋았다.

 

등산화를 챙겨신고 출근길에 나섰다. 저번만큼은 아니었지만 제법 많은 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다. 눈이 오는 날은 확실히 파주로 이사온 것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눈오면 출근길 막히는데 편하게 오는 건 사실 덤이고, 정말 좋은 거는 사방을 둘러서 하얗게 눈 덮인 겨울을 만날 수 있다는 거다. 겨울은, 이래야 제 맛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을 덮고 있는 눈이 왠지 포근하게 느껴진다.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논과 밭이, 땅 속 씨앗들이 봄 기지개를 킬 것만 같다.

 

저 눈처럼 말없이 조용히 살고 싶다. 실없는 소리를 너무 많이 떠들며 살고 있다. 입을 열 때마다 몸 속 무언가가 빠져나가 가슴에 구멍이 뚤리고 점점 넓어지는 기분이 든다.

 

아침부터 일은 안하고 눈 내리는 거 보고 있다. 자유로에 사고 났다고 하던데 역시나 사람들이 늦는다. 키보드 소리와 눈 내리는 소리만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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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0

자전거로 출근하는 길도 좋지만, 걸어서 출근해도 참 좋다.

자전거로 오면 10분밖에 안걸려서 시간 단축되는 건 좋지만

시간이 너무 짧아 안타까운 감이 있다.

걸어오면 30분 정도 걸린다. 자전거 타는 길과 비슷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

노래를 들으며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면 어느새 회사에 도착해 있다. 좋다. 굳이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복잡한 생각들, 재미있는 상상들을 할 수 있다.

 

오늘 아침은 걸어서 출근했다. 할머니한테 전화를 했다.

설날도 다가오고 해서 할머니한테 용돈을 보내드렸는데 고맙다고 하신다.

전화를 하는데 계속 울먹거리신다. 참 난감하게시리. 사실 할머니와 정이 아주 많이 쌓여있지는 않다. 같이 산 적도 없거니와 할머니가 옛날 분이다보니 외손자인 나와 내 동생보다는 외삼촌네 사촌들을 더 가깝게 느끼신다. 뭐 서운하거나 한 건 아니다. 암튼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걸 보니 전화도 더 자주 드리고 용돈도 종종 보내드려야겠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출근길은 교통량이 많은 길은 아니지만 그 때문에 차들이 무지무지 쌩쌩 달린다.

옆에 화물차라도 하나 지나갈때면 귀에 꽂은 엠피쓰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논둑길로 돌아 걸어간다. 논둑길로 접어들면서 한가지 걱정이 들었다.

커다란 개. 이상하게 나는 개가 너무 무섭다. 개한테 딱히 나쁘게 한 일도 없고

어렸을 때 개한테 물린 일도 없는데, 어렸을 적엔 우리집도 개를 키우기도 했는데

나이 먹을 수록 주사바늘과 더불어 개가 무서워진다. 얼마전부터 논둑길 비닐하우스 앞에

커더란 개가 살기 시작했다. 물론 줄에 묶여 있지만 내가 지날 때면 크게 짖어댄다.

자전거로 지날 때는 그래도 내가 휙 지나가고 혹시나 목줄이 풀려서 개가 쫓아와도

도망갈 자신이 있어서 덜 무서운데 걸어가자니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길을 더 돌아 논과 밭을 가로질렀다. 어제 내린 비에 촉촉한 흙이 신발에 엉겨붙는다.

그렇게 돌고 돌아서 개를 피해가는데, 어떤 젊은 여성분이 아무렇지 않게 개 옆을 지나간다.

크엉 크엉 짖어대는 개 옆을 유유히 걸어간다. 아... 왠지 좀 부끄러웠다. 그냥 저렇게 걸어가면 되는구나.내가 무서워하니까 개가 그걸 알고 더 짖어대는 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나도 당당히 개 옆을 걸어서 지나가야지! 물론 그 길을 맞닥뜨리면 또 어떤 판단을 할지, 그건 닥쳐봐야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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