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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31
    단짝친구
    무화과
  2. 2010/05/31
    2010/05/31
    무화과
  3. 2010/05/26
    호수1(2)
    무화과
  4. 2010/05/25
    여승 (1)
    무화과
  5. 2010/05/20
    오랜만에, 아무 것도 아닌 일(2)
    무화과
  6. 2010/05/18
    비야 많이 많이 내려라
    무화과
  7. 2010/05/13
    몹쓸 사람(3)
    무화과
  8. 2010/05/06
    마음(1)
    무화과
  9. 2010/04/29
    나는 공산주의자다 웹포스터(5)
    무화과
  10. 2010/04/26
    빗소리(1)
    무화과

배여진 걱정마!

삽자루는 5000년 정도 묵은 63빌딩보다 크고 두꺼운 나무로 되어 있고

삽날은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마치 하느님이 태초에 지구를 만들때 쓰던 물건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삽 하나 구해서

 

대한민국 서울시 강남구와 서초구와 송파구를 한 삽에 불끈 떠서

저 멀리 태평양 적도 부근에 훌러덩 던져버리면.

거기서 지들끼리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든,

오세훈을 시장으로 뽑든, 공정택을 교육감으로 뽑든,

그냥 알아서 지지고 볶고 잘들 사시라 했음 좋겠다.

 

그래도 배여진은 구해줘야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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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짝친구

어렸을 때도, 지금도

사람들 사귀는 걸 좋아해서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많다.

어딜가도 밥 한끼 같이 먹고 술 한잔 나눌 사람들이 있다.

소영누나는 나보고 폭풍친화력이라고 하던데, 폭풍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내가 속한 곳에서 두루두루 친한 편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뭐 모두랑 친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두루두루 친하다. 함께 놀면 어색하지 않고 즐거운 정도는 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지금껏 단짝친구를 가져본 적은 없다.

굳이 단짝친구가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친구가 일곱 명만 돼도 일주일에 한 명씩 만나다 보면 일주일이 가버리니까...

그래도 가끔씩 단짝친구가 있는 아이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수학여행을 갈 때,

나는 누구 옆에 앉아도 수다떨며 재밌게 갈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와 앉아야 할지, 혼자 가지 않기 위해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단짝친구가 있다면 당연히 그 친구와 앉아서 갔을터인데.

모두와 친하면서도 그래서 심심하고 쓸쓸하기도 했다.

 

단짝친구라고 하긴 약간 애매하지만,  단짝친구에 가까운 친구도 있었다. 내 잘못으로 떠나보냈다.

 

사실 나는 언제나 알고 있었다.

나도 단짝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고 있다는 걸

근데 앞으로도 단짝친구는 없기가 쉽다는 걸 알고 있다.

단짝친구를 원하는 다른 한편으로는 또 모두가 나와 친하길 바라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넋두리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버릴 수 없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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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1

김창완 아저씨가 내 자전거 (페니어)를 보고 말했다

"어~ 멋진데!"

 

가슴이 쿵쾅 거렸다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거야' 노래 가사처럼

내 마음을 누가 눈치채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처럼 심장이 요동쳤다

 

집에 돌아와서 오늘까지 계속 산울림 노래만 주구장창 듣는다

 

그렇게 좋았던 기분이, 짝사랑 하는 사람을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들떴던 기분이

기사보고 잡쳤다.

 

용산 참사 항소심 판사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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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1

호수1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밖에

 

정지용,<시문학>,1930

 

 

개똥이네집 6월호에 서정오 선생님이 시인 정지용에 대해 쓴 글에서 소개한 시다. 시인이 어린이를 위해 쓴 시란다, 대부분 동시가 그렇듯 굳이 어린이들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어른들이 더 봐야할것이다.

 

이 시도 참 아름답다. 대구가 기가 막히다. 특히 '폭 가리지만'과 '눈 감을 수밖에'의 대구가 눈이 부시다. 운율도 그렇고, 뜻은 다르지만 '가리'와 '감을'을 입에서 발음할 때 나는 소리가 비슷해서 참 재미있다.

 

하지만 이 시의 백미는 대단한 비유, 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저렇게 표현했을까 싶은 그 비유에 있다.뭐라 설명할 수 없이 내 감정이 시인의 감정에 일치되며 황홀해진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저 구절을 만났을 때 가슴을 딱 치고, 보고 싶은 마음 못이겨 눈 감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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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

여승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출근하려고 빈둥거리다 시간이 살짝 남아서 백석시집을 꺼내 들었다,

백구두에 백정장 입고 다닌 북쪽 멋쟁이였다는 시인은 그러나 시 만큼은

백구두, 백정장과는 살짝 다른 멋이 나게 쓰는 시인이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눈은 푹푹 나리고'와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에

꽂혔는데, 눈이 오는 모양을 '푹푹'이라고 표현한 것이 참 재미있었고

보통 '사랑을' 할 텐데 '사랑은'이라고 하니 익숙한 표현을 낯설게 하면서 오는 신선함과

그러면서도 기막히게 입에 착착 붙는 어감이 좋아서였을게다.

 

오늘 아침엔 <여승>을 읽었다. 흔히들 백석의 시에는

20세기 초반 북쪽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우리 토박이 말이 잘 살아있다고 하던데

확실히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살짝 어색해보이지만, 막상 소리내어 읽어보면 입에

딱 붙는 재밌는 표현들이 많다.

 

'녯날같이 늙었다'거나 '불경처럼 서러워졌다'는 표현도 참 느낌이 좋다.

옛날같이 늙었다는 건 뭘까. 늙는 건 미래의 일인데, 옛날이라는 과거로 비유를 하는데 이게 참 매력있다. 불경처럼 서럽다는 것도, 불경을 제대로 안읽어봤지만, 절에서 스님들이 나지막히 읊조리는 걸 보면 서럽다기 보다는 차분한 느낌이었는데, 서럽다고 표현한 것이 여승이 되는 시 주인공의 상황과 겹치면서 감정을 몰입할 수 있는 비유가 되어버렸다.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는 표현도 참 슬픈 일을, 이렇게 슬프게 표현할수 있다니, 하는 장탄식이 절로 나오게 한다. 그냥 '죽었다' 라고 했으면 이런 감정이입은 없었을텐데.

 

그리고 시에 나오는 여인의 삶이 참 기구하다.

최근에 <몽실언니>를 봤는데, 이 여인의 삶이 몽실언니와 겹쳐져 보인다. 몽실언니 뿐만 아니라 권정생 선생님이 쓴 <한티재 하늘>에 나오는 수많은 여성들과 겹쳐 보인다. 조선왕조가 무너지며 일본을 통해 근대문물이라는 것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근대 사회가 한반도에서도 작동하면서 소수 몇 명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감내해야하는 희생은 확실히 약자들-여성들에게 지워진 것 같다. 이 시에 나오는 여인은 그런 구구절절한 사연은 안나와 있어서 단정지어 말 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팔자가 박복한 특정 개인이기 보다 그 시절 여인들의 삶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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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무 것도 아닌 일

내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누군지 안다.

그래서 안 좋다. 솔직한 글을 쓸 수가 없다.

하지만 좋을 때도 있다. 조용히 와서 살짝 내 마음을 살펴보고 가는 이들에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전해줄 수 있다.

문득, 조약골이 부른 아무것도 아닌 일을 들려주고 싶다.

이 노래가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이 노래에 위로받았던 것처럼

위로받길 바라며.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니까. 금새 성큼성큼 걸어오기를.

물론 그렇기 위해서 지금 당장은 뼈가 아프고 심장이 녹아내리겠지만.

괜찮다고,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지금 아무 것도 아니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될 수 있기를. 

 

 

아무것도 아닌 일

글 이밝은진
곡 조약골

어느날 넌 그렇게 왔어
아무것도 아닌 일
귓가를 스치는 사소한 입김으로 왔어
그걸 난 기억해

그래서 아닌 줄 알았지
아무것도 아닌 일
뼈가 아프더라도 그건 아무 것도 아닌 일
심장이 녹더라도 그건 아무 것도 아닌 일

어제처럼 밥을 먹고
어제처럼 취하고
어제처럼 잠을 자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
금새 성큼 성큼 걸어올 만큼
어느새 물이 키보다 높이 차오를 만큼

그래서 아닌 줄 알고있어
아무것도 아닌 일
마음 쓰지 말고
별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온만큼 갈꺼라고
아무것도 아닌 일
빨리 갈꺼라고
괜찮다고
아무것도 아닌 일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dopehead.net/files/nothing-0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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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 많이 많이 내려라

비야 많이 많이 내려라

모내기 앞둔 논두렁 넘치고 넘쳐서

내 마음 속 가시처럼 박혀있는

아픈 기억들 모두 다 씻어 내어라

돌돌돌 시냇물 따라 흐르고 흘러

내 마음 속  따뜻하게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낱말들을 세상 곳곳에 뿌려 주어라

 

비야 주룩주룩 내려라

슬픈 사람들 얼굴에 입맞추어라

누구나 한가득 눈물을 머금고 살아가니

가득차 흘러넘치는 눈물을 네가 가려 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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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사람

용산 만화책 작업같이 했던 김성희 작가가 만화책이 새로나왔다고 선물해줬다.

김성희 작가의 첫 만화 단행본! 제목이 참 인상적이다. <몹쓸년>

몹쓸 년이라니... 아직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김성희 작가의 부모님이 하신 말씀이 아닐까 싶은데.

 

만화책을 선물로 받으며 싸인을 부탁했더니, 속표지에 큼지막한 글씨로

"용석씨, 사랑하고 삽시다. 누군가에게 몹쓸 사람 되더라도 진심으로 살아요."라고 써줬다.

'사랑하고 삽시다'야 뭐 흔히 듣는 좋고 아름답고 그래서 별 감흥없는 말이지만

뒷 구절 '누군가에게 몹쓸 사람 되더라도 진심으로 살아'라는 일갈이 마음에 박혀왔다.

 

몹쓸 사람이라니. 내가 누군가에게 몹쓸 사람이라니.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래도 진심으로 살으라고 이야기해주니 참 고맙다.

 

부천, 수원, 전주, 안동에서 잘 거다.(부천에선 어젯밤에 잤다)

그동안 일만 하는 거는 아니지만 또한 놀러가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여행하는 것 같은 설레는 마음.

겉으로는 일요일에 안동가야하고 금요일에 익산에 있을텐데 서울 왔다갔다 하기 싫은 거라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15일 행사에 가지 않을 구실을 만든 것 뿐이다.

나를 아직 보지 않고 싶어하는(그렇다고 나는 알고 있는) 사람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진심으로 살아가라고 했는데, 몹쓸 사람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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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싫은 사람 억지로 좋아할 수 없고

좋은 사람 억지로 싫어할 수 없다.

 

슬픈 건

싫은 사람은 좋아지기 힘든 반면에

좋은 사람은 좋은 감정이 누그러들기도 하고 가끔 싫어지기도 한다.

 

이런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내 마음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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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주의자다 웹포스터

 

드디어 두번 째 책. 홍보를 위해 만든 웹자보. 물론 내 작품이 아니다.

수경선배가 뚝딱(말그대로 뚝딱) 만들었다.

 

'내가 살던 용산' 진행할 때는, 처음이고, 일정에 쫓기며 너무 정신없었고,

수경선배가 많은 것을 알아서 해줬는데

그래서 '내가 작업한 책이 나왔다'는 느낌은 그리 크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두번 째에다 좀 더 여유있게(?) 작업했고, 외주디자이너와 일하느라

내가 더 신경써서 챙겨야할 게 많았다. 오히려 첫 책보다 '드디어 책이 나오는 구나.'하는

기분이 많이 든다. 물론 많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나오는 거지만.

 

이 책을 하면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많이 생각했고, 많이 배웠다. 허영철 선생님의 생각은 나와 많이 다르지만, 누군가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있는 일일까.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때, 그렇지 못하고 뱉어내는 비판과는 다른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없이 하는 비판은 비판의 대상에게만 날아가지만,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던지는 비판은 자기 스스로에게 던지는 비판이 된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게 된다.

 

이제 내일이면 인쇄소에서 책이 도착할거고, 다음주면 서점에도 깔릴거고.

그동안 마감하느라 미뤄두었던 중요한 일들을 해야겠다.

노조 만드는 일도 더욱 박차를 가해야하고, 한동안 못봤던 사람들도 만나고,

꽃도 보러가야하고, 할 일 참 많다. 다 열심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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