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날마다의 장례 / 김혜순

슬픔이란 이름의 새를 아시는지

그 새의 보이지 않는 갈퀴에 대해 들어보셨는지

그 새의 투명한, 그러나 절대로 녹지 않는

갈퀴에 머리채가 콱 잡혀서

나는 문설주에 고개를 기대고 서서 말하네

잘 가거라 항구를 떠난 잠수함아

여기 절벽 위에 서 있는 나를 잊지는 말아라

 



누군가 내 심장 박동 소리로 내 속을 쿵쿵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저 잠수함 저 혼자 떠난 거야

누군가의 손가락 내 관자놀이에 쉬지 않고 파닥거리기 때문에

저 잠수함 저렇게 혼자서 가라앉기만 하는 거야

 

엄마의 몸속에서 내팽개쳐진 그날 저녁부터

날마다 가라앉기만 하는 잠수함

이제 내 탄생의 그 종착역에 다 와간다고 기별이 오는데

내 슬픔의 박자는 이렇게 쉬지 않고 울리고

내 슬픔의 숨은 이렇게 쉬지 않고 헐떡거리고

추운 밤의 밀물 같은 슬픔이 온몸을 적시는데

 

찬물 속의 찬물처럼 나 흐느끼는데

 

항구를 떠난 잠수함아 우리가 처음 헤어지던 그날 잊지는 않았겠지

그 깊은 바다 속에서 혼자 흐느끼고 있지는 않겠지

내 머리채를 놓고 이 새가 날아가버린 날

매일 매일 가라앉는 꿈, 그 속의 잠수함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시체처럼 나는 네 속에

비로소 탑승하게 되는 거겠지?

그러니 부탁이야,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헐떡거리며 서 있는

김혜순을 잊지는 말아줘

 

밥하기가 귀찮거나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을 때, 나는 편한 옷차림으로 이 햄버거 가게를 즐겨 찾는다. '50년대 미국식'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의 이 가게는 일본에서 시작된 체인점이다. 기원도, 진실도 찾아볼 수 없는 그 공간에는 작은 벤치가 놓여 있어 기다리는 시간 동안 옆에 놓인 잡지를 볼 수 있다.

 

패션 잡지 일색에 가끔 여행 잡지도 섞여 있다. 나는 여행 잡지를 읽거나 패션 잡지의 여행-문화 섹션을 읽곤 한다. 그 날도 햄버거를 하나 주문해 놓고 잡지책을 들여다 보다가, 이름은 익숙하지만 한 번도 작품을 읽어본 일이 없는 한 소설가의 에세이집에 대한 소개를 읽게 되었다. 그 글은, 유명한 소설가였던 남편을 잃은 한 젊은 작가의 에세이집과, 이 소설가의 에세이집을 비교하면서 이 소설가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한 줄, 소설가의 블로그 주소.

 

괜한 호감을 느끼며 그녀의 블로그에 들어가, 그녀가 읽었던 시들을 따라 읽는다.. 늘상 그러하듯, 댓글을 따라 또다른 블로그에 들어가 보고, 또 들어가 보고 하다가,, 배경음악으로 쳇 베이커의 time after time을 설정해 둔 블로그에 멈춰 섰다.

 

일요일 오후 같은 쳇 베이커의 목소리.. 한 번 들으면, 떠나오기 힘든 그런 음색임을.. 공감하는 이가 있다면 커피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군. 훗....

 

그 블로그에서, 장 그르니에의 '섬'의 한 구절을 본다.. 섬...

하..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다시, 읽어볼까... 내 작은 서가로 다가가니...

책은, 한동안 눈길 한 번 못 받은 채 그렇게 놓여 있다.

 

한가운데 책갈피 겸 꽂혀 있는 건, 칼을 든 꽃순이 시절 인디포럼 엽서 한 장...

책의 제일 앞장엔, 그 책을 내게 선물해 준 선배의 못난이 글씨..

 

노래는 쳇 베이커를 지나, 오아시스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로 갔다가 다시 쳇 베이커로..

 

그동안 나는 몇 년에 이르는 과거를 다녀온다..

2002년 인디포럼, 그리고 1998년 선배와 함께 했던 세미나며 다툼이며 노래며 눈물까지..

 

자꾸만 기억의 폭이 넓어져 간다..

안타깝구나.. 가슴이 먹먹하니 아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