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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진심.

항상, 사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보여주면, 역사도 구조도 이론도 다 따라온다.

 

[낮은 목소리로] 시름앓는 농민은 왜 못 보았나

 

광주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복잡했습니다. 신안에서 배 타고 온 사람들, 광주에서 시내버스 타고 온 사람들, 진도에서 다리 건너온 사람들, 구례에서 산 넘어 온 사람들. 그렇게 모였으니 재미있고 어수선했습니다. 사회자의 구호소리 높았고 연사의 ‘엄혹한 농촌의 현실’에 농민의 생활은 이미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처참했지만 술잔과 덕담이 오갔고, 약간 흥분되고 따뜻했습니다. 모인 이들은 젊은 사람들이 날라온 음식을 서로 권했고 이름표를 차고 온 사람들을 이름표가 없는 사람들이 나무랐습니다. 단체모자를 쓰고 온 영광 사람들에게 원자력 발전소가 아직 무사한지 안부를 물었고, 배추값 폭락에 시름 깊은 해남 농민에게 혹시 공짜로 뽑아와도 되느냐고 강진 사람이 묻자, 해남 사람이 그래서 강진에 대머리가 많다고 핀잔 줍니다.



광주 삼도에서 오신 아주머니들에게 이렇게 찬 날씨에 고생하신다고 하자 “우리가 제일 젊어” 하십니다. 행사 중간에 갑자기 연단에 올라오신 어르신은 “말 많은 놈들은 다 사기꾼이여” 하시고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노래공연이 이어졌고, 행진을 했고, 광주시청에서 경찰이 뭐라고 방송을 하고, 기자들이 사진을 찍고, 전경들 옆에서 전경 부모회라는 사람들이 현수막을 들고 시위대에 시위를 하고, 방송차량에서는 “시장 나와라” 외칩니다. “시장이 무엇을 잘못했을까나?” 물어보고 “텔레비전에는 그런 말 없던디” 하십니다.

-산넘고 물건너온 남도사람들-

유리창에 돌이 날아가고, 경찰들이 곤봉으로 사람들을 때리고, 또 사람들이 경찰들을 때립니다. “다 우리 자식들인디, 때리지 맙시다” 하니까 “아, 그럼 노무현 오라고 해” 합니다. 시청앞 분수대 근처 유명 작가가 만들어 놓은 조형작품에 불이 들어왔고, 해지면 집에 가야 되는 농민들은 집에 가시고, 몇몇은 여전히 결사항쟁 중입니다.

집에 와서 뉴스를 보니 폭도가 거리를 삼키고, 불나고, 유리창이 깨지고, 경찰이 다치고, 교통이 마비되었습니다. 관련자를 엄단하고 다시는 집회를 못하도록 불허하고 잡아간 사람들은 다 구속한다고 합니다. 뉴스에는 해남 사람 놀려먹다 대머리가 된 강진 사람들이 없고, 원자력 발전소 탓에 모자를 쓰고 온 영광 사람들이 없습니다. 복분자를 많이 먹어 힘이 좋다는 구례 사람이 없고, 광어회를 점심으로 먹는 진도 사람들이 없습니다.

광주 삼도 아짐들은 불법 폭력시위 가담자로 숫자화되고 음식을 날라온 군농민회 간부들은 주동자가 되었습니다. 전북 군산의 74세 농민이 집회에 다녀오다 웅덩이에 빠져 돌아가셨습니다. 경남 진주의 81세 노인이 집으로 가시려고 길을 건너다 참변을 당했습니다. 그 연세에 무엇 때문에 집을 나섰는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균형은 가운데를 본다는 것이 아니고, 진실을 보는 것입니다. 균형잡힌 시각이란 명과 암, 재미와 의미, 겉과 속의 소통관계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본질을 관통하는 흐름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잘 몰라서 한 쪽만을 보는 것은 고치면 되지만, 일부러 한 쪽만을 보고 또 그것이 전부인 양 다른 한 쪽을 의도적으로 감춘다면 이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나고, 돌이 날아가고, 경찰이 다치고 다 사실입니다. 그것만을 강조하면 다른 쪽의 사람과 사실은 없어집니다.

-뉴스엔 온통 폭력·교통마비뿐-

요구를 알리는 방법이 틀렸으면 그것이 틀렸다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요구 자체가 무엇인지, 아예 그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마치 폭력집회 그 자체를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정부가 경찰을 내세웠고 경찰은 전경을 앞선에 세웁니다. 이 현실 자체가 하나의 비극이고 인간 본성에 대한 폭력입니다. 광주에 있는 소비자단체 여성들이 수입 소고기를 먹지 말자고 피켓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옆에서 풍선을 들고 있습니다. 농촌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이 한 쪽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들고 있는 풍선처럼 세상이 화사하게 부풀어 오르길 기도합니다.

〈강광석/전농강진군농민회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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