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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옴.

시골집에 다녀오면 머리가 아프다. 호사가 따로 없는 편안한 생활. 끝없는 신뢰와 애정. 그런 지지기반이 있어서 내가 내멋대로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편안하지 못 하다. 애초에 그것이 없었다면, 나는 나를 좀더 믿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한 직장에서 30년을 일했다. 공고를 나왔으면서도 과장 대우까지, 아빤 최대한을 해낸 사람이다. 사장 표창이니 소장 표창이니 상도 많이 받았고, 회사가 버릴래야 버릴 수 없어 붙잡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아빠의 퇴임식은 참 행복해 보였다. 많은 이들이 찾아와 주었고, 아빠가 정성껏 마련한 송별사는 너무 정석대로라 내가 듣기엔 우습기도 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엄마에 대한 믿음이나 일에 대한 열정이나. 아빤 '참 행복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퇴임식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서도 늦게까지 행복해 하며 잠자리에 들지 못 했다. 그런 아빠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 잡생각은 끝이 없었다. 백운대가 그런 공간인지 머리 희끗한 노동자들도 몰랐을 거다. 30년 넘게 일하고 떠나는 순간에야 겨우 발디딜 수 있는 공간. 70년대 사우디에서 돌아온 건설노동자들에게 주어졌을 법한 '노경협의회'의 꽃목걸이는 우스웠지만, 아빠 노동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영광, 또 영광. 명예퇴직자들에게는 소장과 악수하는 순간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을 테고, 지역건설노동자들은 그 근처에 갈 기회조차 없었을, 그런 것이었다. 소장과 메인 테이블에 함께 앉고, 첫 번째로 표창을 받은 아빠의 영광은 정당한 것이지만, 그런 것이었다.... -

 

아빠처럼, 진심이 있으면 된다고 믿었다. 아빠에겐 진심이 있었고, 아빠가 행복해서 나도 행복했다. 나 역시 진심이 있으면.. 아무리 흔들려도, 자주 게을러져도, 길이 안 보일 때도,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쓸모없어 보여도, 진심을 가지고 있으면 꼬였던 것들도 언젠가는 풀리고 편안해 지리라 믿었다. 그런데....

 

2006년은, 나아가기 보다는 숨어드는 한 해였다. 그래서 참 내가 싫었다.

 

- 돌이켜 보면 다들 열심히 뛰었고, 상상했던 만큼은 아니더라도 많이 실천했고 애썼다. 안팎의 모든 동료들이 존경스럽다. -

 

시골집 컴퓨터엔 참세상이 즐겨찾기 되어 있었다.

 

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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