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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녀'가 될뻔한 오늘 아침

요즘은 글을 쓰다보면 -_- 계속 투정에 불퉁거림이다. 쩝...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이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집앞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타자마자 녹취관련해서 뭐가 안된다는 후배의 문자가 왔길래, 답장 문자를 보내느라 정신없었고 그런 와중에 앞 좌석이 비었길래 냉큼 앉았다.

 

그리고 또 계속 문자를 날리고, 한번은 전화통화까지 하고 있는데, 다음 정류장쯤 가다보니 나이드신 할아버지 한분이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내가 경로석 즈음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통화를 하면서 내 앞으로 오면 일어나야지...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내 옆쪽에 왠 아저씨 한명이 나를 째려보며 서있었다.

 

순간 느꼈다. 이 아저씨에게 나는 나이드신 분 놔두고 자리에 앉아있는 싹수없는 젊은이로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뭔가 아저씨의 대응이 있겠군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 아저씨, 버스에 올라탄 나이든 할아버지를 모셔오더니 내 발을 '툭~' 차면서 앙칼진 목소리로 '일어나!' 라고 말한다.

 

순간 기분이 확~ 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통화를 마치고 계속 씨부렁거리고 있는 아저씨한테 한마디 했다. "아저씨, 말과 행동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예요?"

 

그랬더니, 이 아저씨 '옳거니 잘걸렸다' 생각했는지 잔소리를 더욱 쏟아낸다.

"나이드신 분이 탔으면 자리를 양보해야지, 여기 경로석이 아닌가? 나같은 사람도 서서 가고 있다가 더 나이드신 분 있어서 자리내드릴려고 하는데, 젊은 사람이 그러면 못써. 너같은 사람은 아마 한번도 자리양보도 안하고 그러고 살고 있을 것이다. 인생 그렇게 살면 안된다.... (그외에도 수없는 말들...)"

 

화나니 개길수밖에... 그 사람많은 버스 안에서 나도 시끄럽게 말했다.

"그렇다고 너라니요. 나이든 분 공경하라고 할려면 젊은 사람도 공경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아저씨 화가 더 났나 보다. 그래도 다행히 상스러운 욕까지는 섞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위아래로 싹~ 훑더니... (하필 오늘 옷을 좀 요란하게 입었다) "학생인지 아줌만지 모르겠는데,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라고 계속 잔소리를...

 

옆에 있던 아줌마들도 "그냥 학생이 잘못했다고 하고 끝내~"라고 말한다. 뭐... 똑같이 떠들고 있으니 특별히 누구 편들려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방금 자리를 양보한 할아버지가 계속 불편해하는 기색이다. 그제서야 버스 안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 성질에 여기에서 그치랴. 한마디 또 했다.

 

"아저씨 같이 정의감이 엄청나게 투철한 분이 있어서 이 사회가 정말 좋아지겠네요. 저같은 사람 완전히 나쁜 사람 만들어놓고 잔소리 하시니 뿌듯하신 가부죠?"

 

아저씨, 계속 잔소리 이어짐. "비아냥거리는 것 보소. 니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나는 거기에서 대화를 끊고, 이어폰을 끼고 다른 쪽 창을 보며 아저씨를 무시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까지 약 10여분 동안 아저씨는 내가 듣든지 말든지 계속 뭐라고 씨부렁 거린다. 나는 계속 무시했다. 그리고 내가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예끼~ 이 못된 것!" 도 내뱉어 주신다.

 

기가 막혀 하면서 '으이그 버스쪽을 향해 *큐를 한번 날려줘?'라고 생각하다가, 그제서야 '개똥녀'가 떠올랐다. 크허~ 개똥녀가 달리 만들어진 게 아니었구나.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아랫사람 가르치려 들려고 하는 것은 사실 얼마나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인가. 그런 것이 나보다 좀 더 과격하게 표현된 사례가 개똥녀 아닌가! (물론 개똥 안치웠다든지 세부적인 사항은 좀 더 지탄받을만도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정말 짜증나는 일은 불친절하고 제멋대로의 잣대를 가진 버스운전사 아저씨를 만나는 것과 함께 이 경로우대석을 둘러싼 세대간의 끊임없는 갈등이다.

 

이것을 심지어는 어떤 어른들은 경로석이니까 아예 자리가 비어있어도 앉아있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젊은이는 그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 그 젊은이가 몸이 아파 앉아있더라도 앉은 순간부터 싸가지 없는 젊은 것이 돼버린다.

 

나는 경로우대석은 말그대로 노약자우대석이지 경로자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비워진 자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건 도덕적 관습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고 개개인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 영역일 뿐, 대놓고 비난하고 훈계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또 하나 황당한 일은, 예전에 버스에서 겪은 일인데 아주 건장하게 생긴 40대 남자가 10대 청소년이 자기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았다고 욕하고 화내는 일이 있었다. 버스안에서는 손아래사람이 손윗사람에게 무조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이상한 규칙을 제멋대로 갖다 대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버스안에서 나타나는 나이주의의 왜곡비약된 대표적 사례다.

 

이래서 '어른'이라는 것은 정말 싫다. 나도 이제 늙었지만... 아침의 일을 밤까지 곰곰히 되씹으며...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 일은 청소년들의 경우 민감하게 반응했을 '니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더냐'는 이 주옥같은 멘트에 반박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

 

만약 다시 한번 그런 경우를 당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예, 우리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어요. 손아래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 윗사람은 공경할 필요가 없다고!"

 



이건 주제가 좀 다른데... 지난 일요일에 겪었던 일이다.

 

언니와 조카 나현이와 전주 모백화점에 갔는데

조카가 유모차에 타고 있어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앞의 한 부부가 아기가 탄 유모차를 먼저 밀어넣고 있는데

문이 닫히려고 하는 것이다.

깜짝 놀란 부부는 바깥쪽 오픈 버튼을 계속 누르고 다시 시도했는데

역시 다시 문이 닫히려고 했다.

센서가 고장이 났나 하면서

우리도 아슬아슬하게 들어갔는데

 

알고봤더니 안에 있던 젊은 남학생 하나가

이 부부와 유모차를 생각해 안쪽에서 오픈 버튼을 누른다는 것이

닫힘버튼을 계속 눌러대고 있었던 것이다.

 

화가난 이 애기 아빠, 얼굴이 벌개져서 학생에게 욕해댄다.

"야이 씨*놈아 *만한 놈아, 개**야, 니가 우리 애기 다치면 어떻게 할라고"

안에 있던 10여명의 사람들이 다 민망하게 계속 심한 욕설을 퍼부어댄다.

학생이 실수로 그랬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면서 툭 내뱉었다.

"아따~ 아저씨, 욕 너무 심하게 하시네..."

그랬더니 아저씨 욕하던 것을 뚝 멈춘다. 계속 얼굴은 울룩불룩 거리더니

자기가 내려야 할 층에서 후다닥 내렸다.

 

아저씨가 내리고 나서야 다른 사람들이 한마디씩 해댄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너무 심하네..."

"저 갓난애기가 더 민망하겠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흐흐... 내가 한마디 내뱉길 잘했구나' 생각했다.

 

....

여기까지 쓰다보니...

오늘 아침 위 사건의 아저씨랑 신나게 싸운 것도

이 여파인가보다 하고 생각이 정리가 된다.

'아니다' 싶으면 무조건 내뱉고 보자...

물론, 오늘 오전의 내 행동이 잘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저씨 문제를 떠나 버스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실례를 범한 셈이니까...

그러나, 문제가 있다 싶으면 계속 내뱉어야지... 싸움이 되더라도...

=_= 그게 내가 속안터지고 살길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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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함께할 사람!! =ㅁ=)/

소위 '공적인 인간'이 되길 자처한 순간부터

곧바로 정말 '공적인 인간'이 돼 버렸다.

(잠잘때는 기사쓰는 꿈과 라디오로 온갖 뉴스를 듣는 꿈을 꾼다!)

 

그런 와중에 내 머리와 가슴에 스믈스믈 기어들어오는

간절한 생각이 있는데...

내가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천추의 한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새만금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거다.

이것저것 떠오르지만, 신통방통한 아이디어는 별로 찾아볼 수 없고...

 

단지 내 수준에서 해볼 수 있는 것....

첫번째, 새만금 15년, 새만금 운동 6년을 정리할 수 있는 영상프로젝트.

물론 생각만 하고 있지 하나도 구체화시키지는 않고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두번째는...

요몇주 사이에 새만금을 한번 정리해보려고 웹사이트들을 뒤지는데

운동이 사그러드니, 기록도 사라지는가!

2001년 이후로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들이 거의 없더라.(농발게 제외)

어딘가 아직도 열정을 내뿜고 있는 이들의 최근 몇년간의 자료들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을텐데...

그리하여... 새만금운동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웹페이지를 만들어야 겠다는

욕심을 꾹~ 가졌다.

 

두번째 생각을 갖자마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 보니...

"참 좋은 생각이야~!!"

 

...

그리고?

 

"그런데 그걸 누가 어떻게 다해?"

 

큭...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분명히 어딘가에도 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없을까... 어려운 논쟁에 어려운 자료에... 정리한다는 건...

저 넓은 갯벌에 있는 백합들을 모다 긁어 모아 64홀 대규모 골프장에

10열 종대로 줄지어 놓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일단 손은 대봐야지...

누구 함께할 사람!!!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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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어대기

-_-;; 이번주에만 굵직한(내관점으로는) 기사를 8개나 쓰고

30개정도의 기사를 교정, 재창조, 편집했다.

매주 비슷하긴 하지만, 이번주에는 남의 일에도 기웃거리느라

더 머리를 썼더니, 지친다 지쳐~

아침에는 잠을 설쳐가며 기사를 쓰는 꿈을 꾸며

현실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다.

왜 이러고 사는고...

 

이렇게 각박한 상황에서

나의 혈압을 쑥 올라가게 만드는 일이 두건이나 있었으니...

한개는 굳이 여기 서술하지 않겠다.

다시 쓰려고 하면 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게 될 터이니 말이다'

어쨌건 마음씀씀이의 문제였다.



우리 사무실과 옆사무실은 점심밥을 지어먹는다.

요일별로 당번을 정해놓고 있는 김치, 배달하는 반찬 등으로

대충~ 떼우는 편이긴 한데... 그럭저럭 먹고 살았다.

그런데 지난주와 요번 주,

옆사무실 식구들이 밥당번을 하는날 밖에서 일이 연달아 생기면서

2주간 남은 우리 사무실 식구들끼리

부랴부랴 밥을 챙겨먹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그런 경우 사전에 다른 사람과

밥당번을 바꾸는 것이 관례임에도 그 절차가 빠졌다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가 생기면 앞장서서 따지길 좋아하는 내가

오늘도 어김없이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2주간 너무했다" (는 요지의 잔소리를 중얼중얼)

아! 그런데... 한 양반 하는 말이...

"우리는 밖에 전장에 나간 거잖아! 전장에 나가서 밥 신경쓰는 게 말이 되냐?"

크헉!! 농담 한답시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그렇게 생각하는게 정말 맞겠지?)

우리 사무실 사람들은 밖에 취재나갈 때 다른 사람하고 당번 순서를 바꾸는,

전장에서는 있어서는 안될 사람들이란 말인가?

화를 버럭 내려고 하니, 옆에서 눈치빠른 다른 친구가 끼어든다.

"그런 문제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 잖아~"

이어서 잔소리를 이어갔다.

얘기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 어제 밖에 나가서 먹은 '비빔밥' 얘기한다.

그러더니 또 다른 한 친구가...

"그렇다고 나가서 먹은 사람이 꼭 다 비빔밥 먹은 건 아니었어"

꾸엑~~~ 지금 누가 자기들끼리 맛있는 밥 먹었다고 화내고 있는 줄 아나?

독기가 돌은 나는 말했다.

"=_= 밥당번이 연락도 없길래 우리끼리 공동재정(식대)으로 짜장면 시켜먹었어 (1만원)"

그랬더니 또 한친구

"밥안지어먹고 매식할때는 공금에서 5천원만 하기로 한거 아니예욧?"

으아~~~ 원칙적으로는 맞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짜장면을 시켜먹게 되었는지 그 상황은 생각안해봤나?

식사시간인 12시까지 아무런 연락도 없었기에, 알아서 밥을 지어먹을 시간도 없었단 말이다.

매식을 해야 할 상황을 만든게 도대체 누구란 말이더냣!!!

 

오간 대화들 때문에 화가 가시지 않는다.

되씹을 수록 화가 부룩부룩~~~

그래, 난 밥에 목숨건 사람이다!

그런데 왜 밥을 무시하는 태도로, 밥먹는 즐거움을 빼앗아가냔 말이다.

순간... 이럴 것 같으면 뭣하러 같이 식사를 하나...

돈들어도 그냥 혼자 나가서 사먹어버려?

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갔다가 정신을 다시 차리고...

 

-_- 밥상위에서 실랑이가 오간 후에야

당번은 밥을 못지을 상황이 됐을 경우, 꼭 미리 조절을 한다는

규칙을 꼭 지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밥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씀씀이'의 문제라니깐...

=_=+ 다음주에 지켜볼테닷!!!

 

그나저나 요샌 왜이렇게 화나는 일이 많은것인가...

밖의 문제인가, 나의 문제인가... 크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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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 해머씨를 만나다!!

몇해전에 웹툰 작가의 한명으로
해머툰을 신문에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해머툰(toonbook.com)의 작가,
다시 말하면 미디어 다음의 만화 '뒷북'의 작가
박철권씨가 전주에 왔다.

객사에서 일주일간 열리는 '독도사랑' 시사만평전에 참석차 온 것.
후다닥 달려가서 아는 척하고 사인해달라고 부탁드렸더니
'해머툰'을 안다며 감동해주시고, 그 귀여운 '해머' 캐릭터도 그려주셨다~


일기형태로 그리는 해머툰은 빨강머리 친구와 함께 너무 코믹한데
시사만평 '뒷북'은 가끔은 서정적이고, 가끔은 유쾌하게 풍자적이다.

 

 

작가 본인은 인사만 잠깐 나누었을 뿐이지만
약간 수줍은 듯 소박한 느낌. 캐릭터와 정말 닮았다.
개막식 행사가 끝날 때쯤 한번 더 인사를 해주시는 모습에 감동했다!!
미적지근 팬에서 열혈팬으로 불타오르겠다~




사는게 힘들면 '씨바~' 한번 외쳐봐 "해머툰"

30대 초반의 노총각 프리랜서로 보이는 해머씨의 만화, 해머툰. 고대 원시인의 모습을 연상케하는 해머씨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본 사람들은 "캐릭터와 정말 똑같이 생겼어요"라며 감탄사를 연발한다고 한다.


해머툰의 소재는 그다지 광범위하지 않다. 인생 살기의 괴로움, 금연 경험담, 끊임없이 자신을 갈구는 절친한 빨강머리 친구와의 투닥거림 등 일상에서 터져나오는 에피소드들을 만화적 꾸밈을 집어넣어 표현한다.

그런 해머툰이 재미있는 이유는 내 정신과 신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누구보다 세심하게 관찰하며 만화적인 과장을 섞어 폭소를 만들어내는 만화의 전형에 충실한 표현법 때문이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웅웅거릴 때 해머씨의 머리는 툭 갈라지고 그 속에서 조그만 아기 해머씨가 나와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내 머릿속에 뭔가 들어서 내 머리를 꼬집는 것 같애"


해머씨는 붉은악마의 열풍속에서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는 평범한 소시민이며 원조교제, 소리마다 폐쇄 등 사회적으로 공감할 만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크게 "씨바~"라고 거침없이 욕을 퍼부어 준다. TV 뉴스를 보며 "저런 죽일 놈이 다 있나"라고 중얼거리는 보통의 우리네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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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 MP3 선물받다!!


27일 MP3 선물 전달식...

-_-;; 그 내막을 보면...



 

 

지난 27일 역사적인 MP3 선물 전달식이 열렸다.
-_-;; 지난주부터 볼때마다 우리를 붙잡고 갈구길래
눈물을 머금고 돈을 긁어모아 MP3를 선물했다.

 

선물받으면 회식을 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얻어먹지 못했다. 두고보자~

게다가!!!
지난주가 생일이었다는 이유로 갈굼을 당한 것인데
알고보니 그건 음력 가짜생일이었고
진짜는 다음달이란다.

또.... 진짜 생일때는 디카를 내노란다.

=_=;;; 환장하겄네~


MP3를 들고 너무 너무 기뻐하는 선배를 보니... 쩝... -_-;;;

과정에서... 꼭 그 비싼 선물을 해야 하냐며 난감해 했지만...

이상하게 일치한 것은 '좋아하는 선배'니까 선물해보자는 것이었다.

각종 대책위를 비롯해 개인문제 해결사까지... 이리저리 바쁜...

'이런~ 씨알~' 등등의 욕=_=;;속에 묻어나는 따뜻함을 알기에...

'무리'스러운 선물도 때론 괜찮겠다는 생각도 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리저리 전화해서

'MP3없는 사람하고 무슨 대화가 통하겠냐'

혹은 이어폰 꽂고 뭔말하면 '뭐라고 음악듣느라 못들었어'라고

말하며 자랑을 일삼는 선배...

우리가 한 일주일은 더 고생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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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 배운 하루(잡담)

1. 겉도는 기사 말고 심도있는 기사를 써보겠다고 욕심을 부렸더니 오늘 하루종일(지금 이시간까지도 -_ㅠ) 정리가 안되는 고통에 허덕이고 있다. 내가 왜 욕심을 냈을꼬.... 흑... 후회 막심...

 

2. 국적포기 문제에 대해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던 나... 좋아하는 기자님이 쓴 글들을 읽으면서 그냥 '군대 얘기 너무 많다' 정도만 생각하다가... 전북대에 교수 2명이 자녀를 국적포기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에게 연락해서, '총학생회는 신원공개하라고 뭐 안한다냐??'라고 캐묻다가... '컥...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정리하던 중... 인권과 헌법을 양손에 쥐고 날카로운 칼날을 휘두르시는 교수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바로 명쾌한 글을 보내주셨다.... 결과적으로는 뿌듯하였으나 과정에서의 나의 고민을 돌아보니... 부끄럽다.

 

이어서... 좋아하는 기자님도 날카로운 칼날 교수님의 글을 보며 '부끄러웠다'고 직접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훌륭한 기자라 해도 현장을 방문하고 다양한 의견들에 귀를 열어두지 않으면 자칫 나중에 '부끄러울 수 있는' 글을 쓸 수도 있다고... 좋아하는 기자님은 항상 현장을 뛰어다니셨는데, 최근엔 지위가 '상승'하여 데스크에 많이 앉아계신다고 한다. 주류언론들의 주장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기에는 힘든 조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많은 걸 느끼고 배운 하루였다.

 

3. '안녕, 프란체스카'가 시들해지면서 예전에 봤던 '괴기대가족'을 다시 보고 있다. 엔딩곡이 너무 좋아서 음악을 따서 엠피3로 반복해서 듣고 다니는데 오늘 집에 들어던 중 '괴기대가족'에 나오는 주인공과 똑같이 생긴 얼굴에 똑같은 머리모양을 한 남자를 봤다. 드라마에서 막 튀어나온 듯 했다. 신기했다.


 이렇게 생겼다. 코믹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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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평]국적포기 천태만상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고는 한국국적 포기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적법이 개정된 후 시행을 앞두고 국적포기 신청자가 급증하며, 사회가 이를 둘러싼 논란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약 20여일 사이 국적포기자 수 1,820명. 국적을 포기한 공무원 및 부유계층에 대한 비난의 여론. 덩달아 터진 연예인 국적포기와 군대 입대 여부를 둔 논란. 국적포기자와 그 부모의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국적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여세를 몰아 국적포기자의 권리를 더 제한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홍준표 의원.

 

‘마녀사냥’을 거론하면 ‘국적포기자’로 내몰리게 돼 버리는, 이성을 잃은 듯한 인터넷 토론공간. 국적선택의 자유, 계층간의 위화감 조성, 병역의 의무 등 다양한 접근과 다양한 가치관이 혼재되면서 무엇이 옳은 해법이고 대안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병역의 의무’가 계층간 위화감 조성의 문제와 뒤섞이며, 몇해전부터 제기되어왔던 양심적 병역거부 등 국가가 강제하는 반평화적이고 비효율적인 통제와 동원의 논리에 균열을 내고자 했던 시도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적선택의 자유’라는 기본적인 권리를 실현하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병역의 의무를 당연시하고 신성시해야 할 이 나라’에서는 민족을 배신하고 국가를 배신하는 극악무도한 행위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국적포기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도 인권침해보다 더 중요한 필요에 의해 당연시된다. 이건 깊이 들어가면 자신의 프라이버시 침해로 되돌아오는 것이 당연한데도 말이다.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군대의 신앙화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니, 저절로 흘러넘치는 ‘정말 국적포기하고 싶게 만드는군’이라는 생각에 자신도 흠칫 놀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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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참여정부, '재벌-국가 동맹'으로 전락"

최장집 교수의 글을 발췌 정리한 기사다.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다.

 

얼마만큼 깊이있는 글인지는 잘모르겠다.

이제 읽어봐야지...



"참여정부, '재벌-국가 동맹'으로 전락"
  최장집 교수, "재벌이 중심되고 정책이 봉사. 권위정권보다 더 친재벌"

 

 

참여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는 '원로'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교수 겸 아세아문제연구소장이 최근 참여정부의 변신을 '재벌-국가동맹'으로 규정한 뒤 "이제 재벌이 중심이 되고 하위파트너로서 국가의 정책이 그에 봉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질타했다.
  
  "한국의 실질적 민주주의 계속 퇴보하고 있다"
  
  최장집 교수는 오는 25일 오후 3시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창립 10주년 및 월간 <노동사회> 1백호를 기념해 개최되는 '한국의 노동, 과거 현재 미래' 심포지엄에서 발표할 '민주주의와 한국의 노동'이라는 글에서 최근의 '노동의 위기, 노동운동의 위기'를 둘러싼 자신의 견해를 가감 없이 밝혔다.
  
  24일 <프레시안>이 미리 입수한 이 글에서 최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적어도 제도적 절차적 수준에서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크게 발전했지만 사회경제적 수준에서 무엇을 이루어냈느냐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기준에서 볼 때는 그 발전이 매우 초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저히 퇴보했고 현재 계속 퇴보하고 있다"며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서로 반비례하여 발전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두 개의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우리 현실을 지적하며 논의를 시작했다.
  
  최 교수는 "중산층의 해체, 전체 경제 활동 인구의 16%에 이르는 3백60만의 신용불량자의 양산, 빈곤층의 증가, 고용 불안, 빈부 격차의 증가, 저상장 지속과 높은 청년 실업률 등의 문제는 불평등의 심화라는 현상을 창출하고 이것은 또 범죄, 살인, 가정해체, 자살률 등의 증가와 같은 사회 해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어서 최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의 민주정부들은 권위주의 정부보다도 더 성장 중심적, 재벌 중심-노동 배제적인 경제, 사회 정책을 추진해왔다"며 "특히 이것은 민주정부 스스로 적극적으로 그것을 선택한 결과였다는 데 큰 특징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정부의 이런 선택은 최근의 성장주의, 시장효율성, 시장합리성, 시장 주권이 큰 힘을 획득하는 데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고, 그 결과 민주주의 기반 자체를 스스로 허무는 위험 지역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최 교수는 "민주주의의 잠재적 지지자들은 시장경쟁에서의 취약계층과 실업과 고용 불안정으로 위협받는 그룹-계층들, 시장경쟁이 가져오는 불평등화의 효과를 정치적 방법으로 완화해주기를 바라는 집단-계층들, 민주정치를 통하여 대표되고 보호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민주정부들이 스스로 시장원리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탈정치화와 정치의 다운사이징에 앞장섬으로써 스스로의 권력과 사회적 기반을 약화시킨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커다란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민주정부의 세 단계 '변신' : '재벌-국가 동맹'의 탄생
  
  최장집 교수는 민주정부의 '변신' 과정을 세 단계로 요약하며 참여 정부의 '변신'을 꼬집었다.
  
  "첫번째 변신: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세력들의 다수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것으로 믿는 정당의 후보를 지지해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민주정부가 성립하지만, 이들 정치적 집권 세력은 정부가 된 이후 어떤 경제적, 사회적 정책을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 대안적 정책, 실천 프로그램, 이를 추진할 인적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
  
  두번째 변신: 정부가 된 이들은 시민사회와 시장에서의 막강한 헤게모니를 대면하게 되면서 국가관리와 정부정책의 수립-업적평가라는 압력에 놓이게 되는데, 그 압력은 주로 대중매체와 여론에 의해 두 방향에서 작용한다. 한 방향은 정부의 업적이 언론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평가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정부의 핵심이라고 할 리더십과 집권세력 자체에 대한 능력이 모든 계기마다 평가되고 추궁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두 외부세력에 대한 의존을 키워왔는데 하나는 권력집단인 재벌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내의 전문가 집단인 행정관료들이다. 이 과정에 대북문제와 한미관계에 있어서는 일정한 개혁성을 유지하려는 자세를 견지하지만 아무런 경제-사회정책을 갖지 못한다.
  
  세번째 변신: 이런 기득권과의 타협에 의한 문제 해결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증폭시켜 민주정부는 빈부격차, 고용불안정, 노동자소외, 사회해체라는 결과와, 정체성의 위기가 수반하는 리더십의 약화와 정부수행-업적의 하락이라는 두 가지 부정적 효과의 증폭에 직면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부에 대한 잠재적, 현재적 지지 세력의 이탈이 증대하고, 정부의 기반은 더욱 취약해진다."
  
  최 교수는 특히 "민주정부의 집권 세력들은 그들 스스로가 절차적 정당성과 도덕성을 가졌다고 자임하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의 민중적 지지기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취약하다고 믿는 보수 세력과 좋은 관계 설정 또는 지지의 확대가 중요하다고 믿고 그렇게 노력한다"며 "그 결과 민주정부와 재벌기업간의 동맹이 이루어지게 되고, 정서적 급진주의와 실제 제도적, 정책적 실천의 극도의 보수적 내용이 기묘하게 결합하는 양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 결과 성장주의와 시장지상주의는 동전의 양면의 짝을 이루며 그 중심에 재벌-국가 동맹이 위치한다"며 "이 동맹에서 재벌기업은 국가의 역할과 그 행위의 범위가 무엇인가를 정의해 주고, 국가가 해야 할 정책을 제공해 주며, 관료 행정의 규칙과 규범의 모델을 제공한다"고 지적해다. 그는 "이제 재벌이 중심이 되고 하위파트너로서 국가의 정책이 그에 봉사하는 내용이 마련된다"며 "이 속에서 대학, 언론, 교회 등도 기업 조직과 연계가 강화되면서 그 반대편의 민중적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정부의 무능과 정책실패가 '노동 위기'의 근원"
  
  최 교수는 이같은 '재벌-국가동맹' 하에서 "노동 특히 노동운동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세계적 브랜드의 자랑스런 이미지 반대편 어두운 그늘에서 이들의 발목을 잡는 하찮은 무리처럼 인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기업이 노동에 대해 부정적,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문제가 되는 것은 개혁적인 것으로 상정되었던 민주정부의 태도이며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현재 민주정부의 지도자들이나 노동행정 및 정책 결정자들이 기업계의 완강한 보수적 견해와 다를 바 없는 태도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민주정부-재벌기업 동맹의 환경 하에서 노동운동이 자리잡을 여지는 매우 좁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최근 '비정규직법안'을 둘러싼 갈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는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는 문제보다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유연화의 방향을 완결짓고자 하는 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이렇게 정부의 정책의도가 사전에 결정된 속에서 노조는 참여해 작은 것이라도 얻으며 그 과정에서 폭력적, 급진적, 파괴적 집단이 아닌 이성적 협상의 파트너라는 이미지 개선의 효과를 얻느냐, 아니면 더 중요한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현재의 얻을 것을 포기하고 판을 깨느냐 하는 선택의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드러난 전체 노동운동의 도덕적 위기를 증폭시킨 노조의 폭력사태가 과연 노조의 문제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는 바로 민주정부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한다"며 "이 문제의 근원은 정부의 노동정책, 사회정책, 경제정책에 있으며 민주정부가 민주주의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 무능과 잘못된 정책의 산물"이라고 정부의 책임을 질타했다. 그는 "IMF 사태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화는 미국보다 더 높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수준으로 과격하게 진행됐다"며 "과연 한국의 노동시장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유연화해야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중소기업의 해외직접투자를 국내로 돌려 고용을 촉진하고, 투자를 유인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중산층으로 상승 이동 안 되나?"
  
  최 교수는 "한국 사회는 노동 관련 의식에 관한 한 철저하게 계급적"이라며 "한국사회의 상류층과 중산층, 나아가 한국인 일반이 노동에 대해 갖는 인식은 분명 계급적으로 차별적이고 민주정부의 지도자들과 노동정책 결정자들의 노동과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인식 역시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노동귀족이나 노-노대결이니 하는 담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1970년대 시카고의 US철강회사의 철강노조원들의 월평균 임금은 시카고에 소재하는 대학 교수들의 평균임금보다 높았고, 일본 IMF-JC 소속 기카큐슈의 신일본제철 철강 노조원들의 임금도, 또 독일 IN Metall 노조원들도 웬만한 대기업 사원은 물론 임원 봉급에 비해서도 큰 차이가 없다"며 "한국의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 정규직 노조원들의 임금은 왜 높으면 안 되고, 이들의 자녀들에 대해 대학까지 학비를 지원하고 가족이 의료보험혜택을 받을 때 그것을 왜 특혜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최 교수는 "이들 정규직의 임금 수준과 회사 복지가 중산층의 범주에 들어갈 대졸사원이나 임원진 또는 대학교수들의 그것에 비교되지 않고 왜 비정규직 노동자나 중소기업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그것과 비교되어야 하는지, 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산층으로 상승 이동을 하면 잘못된 것인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왜 국가와 기업이 아닌 정규직 노동자들이 책임져야 하는지, 기업의 오너, CEO, 경영진, 정부의 공직자, 중산층, 대학교수 등 다른 집단이나 계층에 비해 왜 노동운동은 특별히 도덕적이어야 하는지, 그들이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것만 왜 특별히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는지, 이들이 선진국 노조원들이 향유하는 경제적 시민권을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리 과격한 기준인지 한번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덕적인 접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으로 노동문제 풀 수 없어"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간곡한 당부로 글을 끝냈다.
  
  최 교수는 "노동의 위기로 나타나는 현상이 먼저 민주정부에 있다고 해서 노조, 노동운동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며 "도덕적인 접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으로서는 오늘의 노동문제를 이해하고 풀어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지금 노동운동은 ①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중소기업의 여성ㆍ이주 노동자 등의 이익을 하나의 조직 내에서 어떻게 대표할 수 있을지, ②현재의 재벌기업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의 기업별 노조와 다르게 비정규직 중소기업 여성 노동자의 조직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과 영세자영업의 규모가 큰 산업구조를 어떻게 전환할지, ③노사관계에 있어서 법, 제도의 형태로 국가/정부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방향을 어떻게 모색할지, ④보수양당이 팽팽한 표의 균형을 만들 것이 예상되는 현실 정치의 전망 속에서 노동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의 표를 어떻게 조직할지, ⑤고전적인 생산직 노동자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노동이 생계의 중심적 수단이 되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될 수 있는 온건현실주의적 노선을 어떻게 견지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 교수는 결론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과제는 선출된 민주정부가 어떻게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민주정부의 노동정책이 시장과 사회공동체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 정부 정책이 총량적 경제 성장만을 지향하기보다 평균적 공동체 성원의 경제적 조건이 개선되는 것을 동반하는 성장을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민주정부의 중요한 역할과 이를 견인할 시민사회에서의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5일 심포지엄에서는 최 교수의 기조 강연에 이어 그간 한국 노동의 현재 상황을 엄밀한 실증적 분석을 토대로 밝혀온 김유선 노동사회연구소장이 '한국의 노동-진단과 과제'라는 글을 발표하고,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 정광호 한국노총 사무총장 직무대행, 주대환 민주노동당 정책의원회 의장, 황기돈 한국노동교육원 사무총장 등이 지정 토론을 할 예정이다.

 

강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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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곰과 고래 이야기

논실마을학교에 놀러갔다가

방바닥을 뒹굴고 있는 인형들을 보며

구성해본 것...

야!오!이!다... 주제없음, 소재없음, 의미없음.... 인가?

 

PS. 춘자!! 내가 주말에 진국이를 만났다네~

사진 한컷 찍었는데 보려면... => 여기 포토스토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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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노예계약 파문 종결... 씁쓸함

부제 : 맘가는 사람 편들기

 

어제 웃찾사를 봤다. 매주 웃찾사를 본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맘에 드는 몇개 코너에만 시선을 고정시킨다(요즘은 '화상고'와 '왜이래' 코너만 보게 된다). 그런데 어제는 다 봤다. 시끄러운 사건이 종결된 직후라, 또 녹화시점이 갈등이 최고조였을 때인지라 개그맨들의 표정을 유심히 봤다. 내 주변의 상당수의 사람들도 그렇게 웃찾사를 봤단다.

 

'노예계약' 논란은 온라인에서 뜨거운 네티즌 논쟁을 만들었지만, 그중 몇개 글들만 훑어본지라 나도 정확하게 사실을 알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 한편, 갈갈이 박준형의 박승대 기획사로부터의 독립선언 소식을 전에 접했기 때문인지 박승대에 대한 인상은 좋게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보니, 얼핏 소식을 들었을 때 개그맨들의 편을 들꺼라 생각했던 네티즌들이 웃찾사에서 해당개그맨 퇴출운동까지 벌이는 상황을 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합의 기자회견을 한 후에는 '이것들이 개그하고 있네'라는 반응을 보이며, 아주 냉소를 터뜨린다.

 

이 문제를 오늘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얘기하다보니, 사무실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둘다 실망스러워서 웃찾사를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안들더라'였다.

 

내가 생각한 건 이런거였다.

 

잘못된 개그맨사회의 시스템을 고치려는 노력은 여러차례 있었다. 박준형의 경우 자신이 힘을 키운 후 억압한 당사자로부터 독립한 경우다. 세련된 방식이다. 김재우라는 개그맨의 경우, 아직 '뜨지' 않은 상태에서 이면계약을 거부했다가 퇴출을 당했다. 고군분투하다가 개인의 절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세번째 방법이 박준형 처럼은 힘없지만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몇몇 개그맨들이 집단적으로 문제제기를 한거다. 그러나 이들은 방송계 기득권과 여론의 흐름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욕은 욕대로 먹고, 울며 합의했다. 환하게 웃으며 화해 기자회견을 한 사람들 뒤에 웃지 않고 있는 몇몇 개그맨들의 표정은 이런 안타까움을 보여주는 듯 하다.

 

첫번째 의문은 자신의 처지가 부당하다고 느낄 때 이를 제기하는 방법은 위의 세가지 외에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인가이다. 만약 나라면 역시 세번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더 다른 '세련된' 방법이 있다면 알려달라.

 

두번째 의문은 '방송에서 웃겨야 할 개그맨들이 시청자들 눈살을 찌뿌리게 하고 있다. 그래서 둘다 싫다'는 논리다. 방송에 출연한 개그맨들의 웃음 뒷면의 아픈 현실은 이해하지만, 그걸 들추고 나와서는 안된다? 공인은 공인답게 본분에 충실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이지 않은가? '국민의 안전한 출퇴근을 책임져야 할 지하철 노조가 파업이라니...' 억지스런 비유인가?

 

어찌되었건 개그맨들이 개그사회의 이면을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킨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사건이 일단락되고 있는 중 전체적인 여론의 추이를 보면, '웃찾사 이제 보기 싫다'가 가장 확실한 결론인 듯 하다. 이면계약 문제를 없었던 걸로 하는 등 당사자간의 문제는 해소됐지만, 비슷하게 또 다른 문제가 터지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개그맨 사회, 혹은 방송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는 '해당 개그맨들의 인기하락, 웃찾사 시청률 하락'으로 끝나야 되는가?

 

얘기를 돌려서...

 

앞에서 언급했듯, 정확하게 상황파악도 못한 상태에서 느끼는 심정만 주리주리 써본 것. 사무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내 스스로에게 발견하는 것은 아는 사람이니까 편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어제도 사소한 논쟁이 있었는데, 얘기하다보니 상대방이 비판한 대상이 나의 학과 교수였기 때문에 더욱 편을 들고 있었다. 한개 더! 최근 god 손호영의 양어머니가 남편 불륜을 폭로하기 위해 기자회견 했다가 자식들을 싸잡아 비판해서 논란을 빚고 있다. 4~5년전 손호영군의 열성적인 팬이었다보니 양어머니의 논리에는 하나도 귀가 안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늦게만치 오늘 한겨레신문을 펼쳐들었더니, 한 섹션으로 이 문제를 다룬 글을 발견했다. 그래서 펐다. 내 의문을 풀만한 논지의 글은 아니었다. 그러나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긴 하다. (또 다른 한편의 의문, 냉소적인 것이 때로는 객관적인 것과 동일시 될 수 있지 않는가!!)

 

휴~ 머리 아퍼~~~ @@;;;



‘멀대’ 박승대와 개그맨 화상고 권법식 대결 ‘예측불가식’ 화해, 닮은꼴?


△ 18일 서울 등촌동 <에스비에스> 공개홀에서 열린 스마일매니아 박승대 사장과 ‘웃찾사’ 개그맨들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박 사장이 웃찾사 맴버들과 화해의 몸짓을 하고 있다. 연합


이재현의 인물로 세상읽기


연예 매니지먼트회사 스마일매니아의 대표 박승대씨와 이 회사 소속 인기 개그맨들 14인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게 요즘 술자리 화제다.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출연 중인 윤택 등 14인의 개그맨들은 데뷔한 2003년에 SBSi, 스마일매니아와 3자계약을 일단 하고서 또 다시 2004년에 스마일매니아와 계약을 맺었는데, 14인은 바로 이 후자의 계약이 이중계약이라며 무효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양쪽은 18일의 공동 기자회견에 이르기까지 서로 번갈아 기자회견을 열고 변호사를 내세워서는 공방을 벌였고 네티즌 사이에서도 편을 갈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늘 그렇듯이 이런 식의 다툼에서 어느 한쪽 말만을 믿을 것은 못된다. 14인은 기자회견에서 계약 무효의 근거를 ‘노예’ 계약이라는 매우 선정적인 이유에서 구했는데 상당히 수긍이 가는 내용이다. 연예계의 관행으로 보아서 신참 연기자들은 극히 불리한 상황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개념’이니까 말이다.

반면에 박승대 대표의 주장도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 같다. 공짜로 먹이고 가르쳐 가면서 무명 연기자를 키워 주었는데 이제 와서 난데없이 악질 계약자로 매도당하고 있다는 게 박 대표의 하소연이다. 한국사회 특유의 가부장제 온정주의를 기준으로 삼아 따진다면 14인이야말로 아주 배은망덕 한 셈이 된다. 네티즌의 의견이 양쪽으로 갈리는 것도 아주 당연하다.

일부 종이신문의 논조는 상당히 묘하다. 개그맨이란 본디 사회에 웃음을 주어야 하는데 서로 싸우는 게 꼴사납다는 것이 그 요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니까 수익의 분배를 둘러싼 사적인 다툼은 늘 있기 마련인데 개그 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세대인 나는 이번 개그 계의 다툼을 그 자체로 즐기며 지나치지를 못하고 쓸데없이 역사, 사회, 문화, 정치 등의 영역으로 확장해서 읽게 된다. 나쁜 버릇이다.

우선, 코미디나 개그에도 역사가 있고 상징 투쟁이 있다. 라디오 시대에는 만담이 있었다. “장에 소 팔러 간 사이에 낳았다 해서 장소팔이라우”라는 식의 빠르고 시끄러운 만담 말이다. 진공관 라디오 시절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장소팔과 고춘자 콤비는 만담 레코드를 내기도 했는데 TV에 밀려 순식간에 무대 뒤로 사라져버렸다.

1960년대 말 TV 코미디 초창기에는 의 <웃으면 복이 와요>가 있었다. 그 이전 순회 극단의 시절부터 살아남은 구봉서, 서영춘 등의 희극인 진영에 배삼룡, 이기동, 배일집 등의 새 코미디언들이 가세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시기 코미디언의 전형은 배삼룡이다. 바보 캐릭터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대세’였는데 오늘날 방송가에서는 이런 콩트 중심의 코미디 형식에 ‘정통’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소위 정통코미디를 몰아낸 것은 70년대 중반부터 태동한 ‘개그’였는데 전유성, 이상용, 임성훈, 최미나, 김병조, 이홍렬 등은 기존 콩트 형식의 구식 코미디와는 달리 2 - 3분 가량의 짧은 꼭지를 기본 포맷으로 해서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유머에 바탕을 둔 새로운 유형의 웃음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했다. 일종의 세대 교체였던 셈이다. 70년대 청년문화, 대학문화를 배경으로 해서 탄생한 개그는 대중음악 쪽의 통기타 포크송에 상응하는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개그가 등장함에 따라 기존의 정통 코미디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는 상투형으로 몰렸고 반면에 기존의 코미디언들은 새로 등장한 개그맨들이 희극 연기도 제대로 못한다고 비판했다.

코미디와 개그 사이의 이러한 상징투쟁은 개그 쪽의 승리로 귀결되어서 80년대 중후반부터는 개그맨들이 코미디 무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일방적인 승리는 아니어서 개별 코너의 형식은 전 시대의 콩트였다. 김형곤, 최양락, 심형래, 이경규, 최형만 등이 <회장님 우리 회장님> <동작 그만> 등의 코너에서 우리를 즐겁게 했다. 90년대 들어서는 김용만, 김국진, 김미화, 신동엽, 이영자, 이경실 등이 새롭게 등장했고 지금 이들은 주로 오락프로의 MC로서 살아남았다.


△ 대학로 소극장에서 일차로 검증된 개그가 방송에 진출하고 있다. 에스비에스 <웃찾사>의 한 장면.

박승대 대표는 1967년 생으로 1986년 KBS 코미디 4기로 데뷔했다고 한다. 박승대 대표는 개그맨으로서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본다면, 어느 쪽인가 하면 보는 이로 하여금 안쓰럽다고 느낄 정도였던 것 같다. 키도 크고 얼굴도 긴 반면에 별로 웃기지 않아서였는지는 몰라도 ‘멀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것 같다. 굳이 딱지를 붙이자면 박승대 대표는 386세대인 셈인데 당시 선배 개그맨들의 인기 내지는 헤게모니에 눌려 제 뜻을 펴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박승대 대표가 개그맨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을 무렵인 90년대 들어서는 시트콤 등이 인기를 끌면서 코미디나 개그 프로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시들해졌고 반면에 각종 버라이어티 쇼나 토크쇼를 비롯한 각종 오락프로는 물론이고 드라마 등의 다양한 장르 안으로 코미디나 개그의 기능이 흡수되어 버렸다.

요즘은 배칠수, 김C, 김원희, 김수로, 신정환, 김성수 등과 같은 연예인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데뷔한 다음에 개그맨 못지 않은 입심과 재담과 개인기로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80년대 초중반에는 공중파 방송의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서만 개그맨이 될 수 있었다. 뽑는 인원수와 경쟁률로 친다면 사법고시보다 더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개그맨들은 기수를 더 유별나게 따지고 군기가 아주 세지게 되었다고 한다. 혹은, 탤런트나 가수와 같은 연예인들과는 달리 개그맨들의 프로그램 준비 및 제작 작업이 집단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얼마 전 KBS의 어떤 개그맨이 후배 개그맨을 구타해서 구속된 사건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용만과 김국진 등이 한때 미국 유학인가를 떠났던 것도 구타 관행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가부장제’ 한국 사회에서 남성 개그맨은 선배에게 구타당하고 여성 개그맨은 남편에게 구타당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개그맨으로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던 박승대씨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개그콘서트>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같은 프로그램이 성공하면서부터였다. 박 대표는 대학로에 박승대홀을 설립해서 신세대 스탠딩 개그맨들을 발굴해냈던 것이다. 박 대표에게는 ‘성공한 개그 CEO'라는 별명이 붙게 되고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되었다. 박승대 대표는 과거의 코미디 프로에서는 재벌 총수 옆에서 “좋습니다”만 연발하는 이사 역할, 혹은 심형래 등의 옆에서 곁다리로 곰 노릇만을 하던 조역 개그맨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이년 사이에 박승대 대표는 이수만, 송승환, 서세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이 되어 나타났다.

정색을 하고 말한다면 이번 사태는 연예 매니지먼트가 아직 충분히 근대화되지 않은 데서 연유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매니저와 에이전시의 일을 분리하지 않은 채, 게다가 기획, 제작하는 일까지 뒤섞어서 사업을 벌려 왔기 때문에 수익 분배에서 분쟁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결국 연예 매니지먼트가 충분히 분업화, 전문화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정색하고 바라보기보다는 한국의 정치가 코미디나 개그의 발전을 막아 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정치가 개그의 소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몇 년 전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1980년대 초반에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전두환을 상기시킨다는 이유로 해서 여러 가지로 ‘압박’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보라.

다른 한편으로, 한국 정치 행태의 우스꽝스러움 자체가 코미디나 개그에는 마이너스였다고 할 수 있다. 2천억원대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전두환씨가 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고 버틴 것이나 그의 아들 전재용씨가 130억원대 괴자금 은닉 혐의로 법정에 출두하면서 고물차를 타고 온 것이야말로 아주 웃긴 일이었다.

한국은 사회적, 계급적 갈등을 정치적 수준에서 표출시킬 수 있는 충분한 제도적 시스템을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요전 번 재보궐 선거의 ‘시청률’, 그러니까 투표율도 매우 낮았다. 반면에 공중파 방송의 개그 프로는 나름대로의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관객들에 의해서 일차로 검증된 개그와 개그맨들만이 <개그콘서트>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요즘의 스탠딩 개그는 슬랩스틱의 요소를 버리지 않은 채 하이 개그의 즐거움도 선사해 준다. 나는 특히 내 모국어가 구어로서 갖는 사회문화적인 힘을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요즘의 스탠딩 개그가 잘 보존하고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요즘 개그 프로야말로 정말 ‘마데인(made in)' 코리아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박승대 대표 등이 만들어낸 시스템의 효과다. 최근에 스타앤컴퍼니라는 이름으로 합병을 한 갈갈이패밀리와 컬투패밀리도 이 시스템에 끼여들었다. 박승대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배후세력의 존재를 언급했다. 이번 다툼은 새롭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스템에서 개그맨의 상품 ‘가치’에 바탕을 둔 시장 ‘가격’의 협상권을 누가 독점할 것인가와 관련해서 벌어진 사태다.

처음에 양쪽은 “다 죽여버리겠다 ~허이짜 허이짜~” 하며 서로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싸우듯 했다. 그러다가는 전격적으로 화해를 해버렸다. 아, 그러고 보니까, 정치와 개그 사이의 공통점들이 떠오른다. 하나는 관객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마무리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시스템의 후진성으로 인해 벌어진 사태의 책임을 언론에 뒤집어씌우는 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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