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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가리키는 데 손가락만 보는’ 대통령

불가에 내려오는 말 가운데 ‘달을 가리키는 데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다. 실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엉뚱한 데만 정신을 판다는 의미다. 1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내놓은 말이 꼭 이와 같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지 3일만에 공개적으로 입장을 내놓았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는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루머들이 들어오지만 그것들이 다 현실에 맞는 것도 아니고 사실이 아닌 것도 많이 있다”라고 말해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보고서를 ‘루머’라고 일축한 뒤,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이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은 없으며, 문제는 문건 유출에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1일 ‘내일신문’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의혹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5.8%가 “사실일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 질문에는 청와대가 이를 전면부인했다는 설명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사실이 아닐 것”(26.1%)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두 배가 넘었다.

한 마디로 국민은 정윤회씨의 국정농단 의혹이야말로 이번 사건에서 집중해야 할 ‘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내놓은 해법은 문건 유출이라는 ‘손가락’이다. 달을 가리키는 데 손가락만 본다는 불가의 일화를 인용한 이유다.

문제는 대통령의 인식 착오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기가 무섭게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문건 유출 수사를 배당했다. 애초 세계일보의 명예훼손 혐의를 다루고 있던 형사1부가 함께 다룰 것이라는 예상도 넘어선 조치다. 특수부는 과거 검찰 지휘부의 하명 사건을 담당했던 중수부의 기능을 흡수한 부서다. 물론 검찰은 문건의 실체적 진실도 함께 수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명예훼손 혐의를 입증하는 데서 보조적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그렇다면 검찰 수사 역시 달을 보는 대신 손가락을 잡는데서 그칠 것이 뻔하다.

대통령이 계속 엉뚱한 데에 정신을 판다면 국민의 의혹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정윤회씨가 국정에 무단으로 관여해 권력을 휘둘렀는지 여부에 그치지 않고, 왜 대통령이 나서서 측근과 ‘비선’을 옹호하는 지로 옮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국민은 물론 대통령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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