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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해고가 던진 숙제

비인격적인 모멸감에 시달리다 분신해 숨진 경비노동자 이만수(53)씨가 일했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입주민들이 끝내 경비 78명을 전원 집단해고했다. 지난 3일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만장일치로 경비용역업체 변경을 결정함으로써 단 한 명의 경비노동자도 고용승계되지 않아 자동해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비인격적 대우→분신→집단해고’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충격과 함께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 부유층에 만연해있는 낙후되고 야만적인 ‘노동관’이 문제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노동력마저 사고 판다. 그러나 사용자는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을 산 것이지 그들의 ‘인격’까지 구매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 압구정동으로 상징되는 부유층은 경비노동자들을 하인 부리듯 했고, 일상적인 폭언과 인격모독을 자행했다. 심지어는 동물에게 먹이 주듯 음식물을 던지기도 했다니 그 속에 베인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인 노동관이 경악스러울 뿐이다. 욕설과 강제노동이 난무하던 80년대의 산업현장이 재현된 듯하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절대적인 ‘갑을’ 관계다. 1년마다 계약갱신을 통해 경비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경비노동자들의 입장에서 고용은 목숨과도 같은 문제다. 사용자인 입주자대표회의는 분신사망에 이르게 한 인격모독과 열악한 처우의 해결 대신 계약갱신 즉 집단해고를 택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행위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실제 사용자임과 동시에 경비노동자들의 임금을 지급하는 고용주이기도 하다. 중간에 경비용역업체가 있을 뿐이다. 경비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노동력을 공급받음으로써 이들은 노동력 사용에 대해 어떤 책임도, 의무도 없으며 나아가서는 최소한의 도덕적 양심도 필요가 없게 된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계약을 갱신한 것일 뿐, 집단해고 자행에서 자유롭다. 비정규직 문제, 그중에서도 간접고용형태가 낳은 살풍경이다.

경비노동자 분신과 집단해고는 낡고 병든 시스템, 노동체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격이나 도덕성, 선의(善意)에 호소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는 체제의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상적 노사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정상적인 자본주의 사회라면 응당 뒤따라야할 것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에 불과한 한국사회에서 노조는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가 자기방어를 할 수 있는 기본장치이며,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권리다. 노동자 스스로가 적극 나서 해결해야할 과제다.

또한 정상적인 정치가 올바른 노사관계 형성을 적극 뒷받침해야한다. 여전히 경비노동자직은최저임금도 못받는 최악의 일자리이며, 간접고용으로 인해 정상적인 노사관계 형성도 매우 어렵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계약시 최저낙찰제를 통해 경비용역업체를 선정하며, 난립된 용역업체들은 경비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갉아먹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조건이 유지·개선될 수 있도록 ‘표준낙찰제’로 바꾸고, 입주자대표회의에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우는 방안을 마련해야한다. 경비노동자 분신과 집단해고는 ‘노동’과 ‘정치’를 근본 과제로 남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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