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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고소 남발하는 청와대

8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윤회 문건’이 자신의 지시로 만들어졌다고 보도한 동아일보 기자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3인방’ 등이 최초로 이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같은 혐의로 고소한 지 5일 만이다.

그 동안의 우리 법원 판례로 볼 때 김 비서실장이나 이 총무비서관 등의 고소가 실제 신문사들의 형사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이들 신문들의 보도가 특정 인사들을 비방할 목적을 갖고 있다고 볼 여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이들 신문의 보도가 허위의 사실로 판명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사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고,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이라면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법원의 판례다.

검사 출신인 김 비서실장이나 사전에 법률 검토를 마쳤을 이 총무비서관 등이 이런 사정을 몰랐을 리는 없다. 또 청와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발언력을 가진 조직이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당장 청와대에 의해 고소를 당한 신문들 역시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이나 김 비서실장, 이 총무비서관들의 발언을 충분히 보도하고 있다. 만약 명예를 훼손당했다면 당당히 나서서 사실 관계를 바로잡으면 그 뿐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연일 고소를 남발하는 것은 이들 신문사들, 그리고 언론 전체를 위협하여 입을 막겠다는 의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식으로 고소가 남발된다면 어떤 기자들이 자유롭게 진실을 보도할 수 있겠으며, 어떤 취재원이 마음 놓고 기자를 만날 수 있겠는가? 더우기 이번 사건은 청와대에서 만들어진 문건을 놓고 벌어졌다. 자신들이 문건을 만들고, 그 문건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하니 적반하장도 이런 경우가 없다.

자기 눈에 들보를 가리기 위해 언론을 겁박하는 것은 과거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습성이었다. 유신정권은 반공법과 선거법, 군사기밀보호법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 다양한 수단으로 언론을 옭아매고 이것으로도 부족하면 중앙정보부와 정치깡패를 동원한 벌거벗은 폭력까지 동원했었다. 전두환 정권에서도 편집 간부에 대한 보안사 테러 사건이 발생하는 등 양상은 마찬가지였다. 이제와서 이런 강도짓은 할 수 없다지만, 교묘한 방법으로 언론을 길들이려는 시도는 부활한 셈이다.

기자협회에 따르면 이번 사건을 제외하고도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 관계자가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것은 12건에 달한다고 한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공화국을 지탱하는 핵심 기둥 중 하나다. 집안을 떠받치는 기둥을 허물고 자기만은 무사하리라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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