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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을 개, 돼지로 보는자들의 운명

서민을 개, 돼지로 보는자들의 운명은

우리 나라의 옛 고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한 왕과 중이 바둑을 두며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왕: 《네 보기에는 내가 무엇으로 보이느냐?》

중: 《부처님처럼 보입니다.》

왕: 《내 눈에 네가 무엇으로 보이는지 아느냐?》

중: 《글쎄요.》

왕: 《내 눈엔 네가 돼지로 보인다.》

백성을 사람취급 안하는 봉건시대 절대군주의 폭군적기질을 유감없이 드러낸것이라 하겠다.

왕의 말에 중은 이렇게 대답한다.

《부처의 눈으로 보면 사람이 부처로 보이지만 돼지의 눈으로 보면 사람이 돼지로 보이지요.》

자신을 돼지로 본 왕의 눈이 돼지의 눈이라는 중의 은유적인 조소였다.

결코 웃음을 자아내는 옛 이야기로만 대할수 없다. 이른바 《민주주의》를 떠드는 남조선에서도 이런 사실을 얼마든지 목격할수 있기때문이라 하겠다.

얼마전 남조선교육부의 정책기획관 라향욱이 어느 한 언론사 기자들과의 먹자판에서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개, 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망탕발언을 하여 각계층의 공분을 사고있다.

이에 대해 남조선야당들은 교육부의 사과와 중징계를 강하게 압박하고있다. 그러나 과연 교육부가 사과하고 망탕발언의 임자만을 징계한다고 남조선당국내에 존재하는 중세적사고관, 사회의 비참한 현실이 달라질수 있겠는가.

사실 모양만 인간세상이지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람 살곳이 못되는 곳이 바로 남조선이다.

그곳에서는 살게 해달라고, 그저 먹고 살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같이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기지 않고있다.

뼈빠지게 일해도 겨우 죽벌이도 안되여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로동자들, 밥쌀수입을 반대하여 물대포에 쓰러지면서도 삶을 요구하는 농민들, 비정규직을 대량 만들어내는 반인민적인 로동개악때문에 한쪽에선 실업자행렬이 물기가 축축한 눈들을 번뜩이고있다.

어디 그뿐인가.

등록금에 시달리는 대학생들, 《보육대란》에 눈물짓는 녀인들, 밀양의 로인들, 집이 아닌 철탑과 굴뚝우에서 몇십, 몇백일씩 고공롱성을 이어가는 해고자들…

그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초보적인 대접도 못받고있는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수다하다.

그래도 현 남조선집권자는 《행복》이니, 《대박》이니 하며 마냥 들뜬 기분으로 살아가고있다. 얼굴에 화사한 웃음을 띄우고 입으로는 달디단 《꿀물》만 매일같이 게워내고있다.

《복지》니, 《경제민주화》니 하는 화려한 공약은 개나 돼지를 얼릴 때 구유통에 내놓는 뜨물이였던가. 남조선민중은 먹어보지도 못했건만 《공약》이라는 두글자만 댕그렇게 남긴채 《복지》는 본적없이 사라지고 《경제민주화》는 1%만을 위한 《재벌민주화》가 되여 99% 국민들의 삶은 사실상 개나 돼지보다 못하게 만들어가고있다.

현 남조선집권자에게 있어서 국민은 개나 돼지 이외에 그 어떤 존재도 아니다.

그러다나니 《세월》호참사는 국민에게만 참사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건만 희생자유가족들에게 돌아온것은 《시체장사군》, 《거지근성》이라는 쌍욕이였고 경찰깡패들에 의해 짐짝처럼 내팽개쳐지는 비참한 대우뿐이였다. 현 남조선집권자가 참사당일 7시간동안이나 얼굴의 주름살을 없애는 《보톡스》주사를 맞느라고 청와대안방에서 딩굴 때 수백명 아이들이 죽어갔다. 최근에는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기한마저 연장해주지 않고 강제로 종료시키려고 악을 쓰고있다.

남조선민중은 달콤한 《공약》, 거짓과 위선의 교태에 속아 악녀를 《부처》로 잘못 본 덕에 《돼지》의 삶을 강요당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력대 그 어떤 권력도 민심을 억누르지 못했고 종당에는 파멸을 면치 못했다.

지금 남조선이 그렇게 무르익어가고있다.

국민을 개, 돼지취급하는 《부처》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정적속에 폭풍이 준비되고있다. 국민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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