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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ton-080406

        “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차를 몰고 가야 할 곳은 외로운 휴게소인지도 모른다.”




        “미래에 대한 근심은 우리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 듯하지만, 정작 그것을 돌이켜보는 것은 안타깝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장소로부터 돌아오자마자 기억에서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이 바로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생각하며 보낸 과거의 많은 시간, 즉 우리가 있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낸 과거의 많은 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낯선 장소를 여행할 때조차도 ‘익숙한 것’을 찾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또다시 여행을 시작할 때 처음 간 뉴저지에서의 첫 커피가 던킨도넛이어서 그런지, 두 번째 미국여행인 보스턴의 춥고 쓸쓸한 일요일 거리에서 내가 추위를 피해 들어간 곳 역시 던킨도넛이었다. 오늘 아침에 먹은 Peet's coffee에 비하면 향이나 맛이나 형편없는 것이긴 했지만...낯설음을 찾아 나선 여행에서 또 다시 익숙한 것을 찾는 것은 사실 아이러니하다.


나는 그냥 잿빛 하늘과 차갑고 강한 바람에서 느껴지는 비냄새를 맡으면서 따땃한 어느 구석으로 들어가 책이 읽고 싶어졌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바로 앞에 있는 지도 모른채...

1시간 넘게 그동안 여행과 함께 읽어야지 하며 6개월을 곁에만 두었던 ‘여행의 기술’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2달러짜리 커피한잔을 시켜놓고, 1시간 넘게 앉아있어서 자책감에서 느꼈을 법한 등 뒤의 불편을 시선을 피하려고 다시 프리덤 레일을 찾아 나섰다.


보스턴은 내가 갖고 있는 런던의 이미지와 닮아있다. 보스턴 다운타운 중심에 있는 관광지의 테마는 영국식민지 시절 저항의 유적지를 프리덤 레일이라는 라인으로 만들어놓았다. 프리덤 레일은 보스턴 코먼이라는 보스턴 시내 한가운데 있는 공원내 관광 안내소를 시작으로 빨간 선을 그어놓은 길을 말한다. 중간중간 그 빨간 라인이 자취를 감춰서 나처럼 엉뚱하게 패스트푸드점에서 길 찾기를 포기할 수도 있지만...


맨하튼에서 몇일 열심히 걸어다닐 때도 느꼈지만, 서울은 정말 크고 복잡한 도시인 것 같다. 맨하튼의 길은 St.와 Ave.로 나누어져 있는 사각형 모양인데, 동서로 뻗어있어 결국 남북방향을 가르는 Street은 걸어서 1-2분이면 가능하고, 남북으로 뻗어있어 결국 동서를 가르는 Avenue는 3-4분이면 한 블록을 옮겨갈 수 있다. 보스톤은 맨하튼과 같이 직사각형은 아니지만, 대략 비슷하다. 다운타운이라 불리는 곳들도 사실 서울 한 ‘동’보다 작은 듯 싶다. 프리덤 레일을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프리덤 레일 관광을 2시간 내로 마치고, 선배집 근처에 있는 보스턴 미술관을 갔다면, 이런 춥고 으슥한 날씨에 더 좋은 ‘관광’이었겠지만 일찍 선배집에 들어가 오랜만에 맛나는 떡복이와 오뎅국을 얻어먹으며 이야기를 나눈 것이 더 좋은 ‘여행’을 만든 듯 싶다.



        “위스망스의 말에 따르면 데제생트는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토론토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또 연착이 되었다. 날씨탓이란다. 이번 보스턴 여행은 비행기 때매 오나가나 고생이다. 보스턴으로 올 때는 아침 5시에 일어나 부산을 떨며 왔는데 항공사에서 over-sold를 하는 바람에, 영문도 모른 채 눈앞에서 비행기를 보내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느라 입국심사를 4번이나 하며 고생을 시키고 일정을 뒤틀어놓더니만, 갈 때는 연착에 연착으로 예정대로라면 이미 토론토를 도착해야 할 시간에 탑승공지조차 뜨지 않고 있다.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않는다.”


        세상이 “단조롭고 작아” 보일 때면, 그는 떠났다. “떠나기 위해 떠났다.”


새로운 곳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으로 무작정 여행을 떠나게 되면, 실망감도 크지만, 여행을 지속할 동력마저 소진하기 쉬운 것 같다. 그냥 떠나보게 되는 것만으로도 쉽게 만족되는 목적이어서 ‘기대’가 빛을 바래기 때문이다. 많은 여행 계획을 앞두고도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짜를 세게 된다. 있으면 떠나고 싶고, 떠나면 돌아가고 싶은......다만, 아직까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서 고집스럽게 자신을 부추기고 있다. 워낙 자극을 안받는 탓에 어려운 과정이긴 하지만.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또다시 연착 공지가 뜨자 사람들이 단체로 탄성을 지른다. 사실 나는 사람들의 탄성을 듣고서야, 그것이 연착 공지라는 걸 확인하는 것이라 한숨도 혼자 쉰다. 그럼 집에 가는 택시비라도 주는 건가?



        “아름다운 대상이나 물질적 효용으로부터 행복을 끌어내려면, 그 전에 우선 좀 더 중요한 감정적 또는 심리적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여행은 새롭게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더불어 그 관계들에서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임을 느끼게 된다.


또한 홀로 하는 여행이서인지, 가끔 엄습하는 외로움 때문에,

모험적인 경향이 커지기보단,

안정감이나 정착하고픈 욕망을 강하게 만들면서,

순응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 도둑고양이도 따듯해 보이는 집안을 부럽게 째려봤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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